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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김보윤 “가을 겨울에 반려견이 조심해야 할 질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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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한 살짜리 아이와 20년을 사는 일’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일견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반려동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다. 보호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아이의 생존이, 행복이, 모두 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불안은 건강에 관한 것이다. ‘내가 잘 몰라서, 아이를 아프게 하거나 치료시기를 놓치면 어쩌나’ 걱정을 떨치기 힘들다. 수의학 관련 서적을 보자니 용어부터 너무 어렵고, 인터넷에 기대자니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좋은 병원을 찾기도 어려운데, 반려동물을 데리고 자주 가는 건 더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책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많은 보호자들이 환호했다. 이름하여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 . 질병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반려견의 ‘증상’을 보고 문제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쉽게 썼다. 텀블벅 펀딩 당시 목표 금액 900%를 달성했고, 요청에 따라 추가로 2차 펀딩까지 진행하며 총 1600%를 기록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대학교 학생 세 명(공현철, 김민기, 문건기)으로 이루어진 ‘우주와 아이’ 팀과 김보윤 수의사가 함께 진행했다. ‘우주와 아이’는 “반려동물 입장에서 보호자는 세상의 전부, 즉 ‘우주’와 같다”는 의미를 담아 팀의 이름을 정하고, 반려동물과 보호자가 서로를 더 이해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반려묘 증상 상식 사전』을 만드는 게 이들의 다음 목표다.

 

김보윤 수의사는 서울대학교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래이동물의료센터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에서 안과 전임수의사로 진료를 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해 반려동물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꿨고, ‘우주와 아이’ 팀의 김민기 학생과의 인연을 계기로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보호자분들이 동물병원에 오기 전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고, 병원에 급하게 가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전문가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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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받침으로 쓸 수 있는 책’ 만들고 싶었어요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우주와 아이’ 팀의 김민기 친구가 수의과대학 학생인데요. 저와는 학부 때부터 인연이 있었어요. ‘사람과 반려동물이 어떻게 같이 어우러져서 살아갈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했고, 작년부터 ‘길고양이 집 지어주기’ 프로젝트도 함께 했어요. 그러다가 김민기 학생이 공현철, 문건기 학생과 같이 ‘우주와 아이’ 팀을 만들고 동물과 사랑하며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뜻을 모았는데요. 팀원 중 한 명이 노령견과 살고 있어요. 그 친구가 제안했던 게, 보호자가 빨리 반려동물을 병원으로 데려가서 처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수의사와 같이 집필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면서 제가 참여하게 됐어요. 저도 평소에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라 너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같이 하게 됐어요.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점은 무엇이었나요?


네 사람이 모여서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했을 때, 의학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상식 사전’을 만들자고 의견이 모아졌어요. 요즘에는 조금 달라졌는데, 이전까지는 수의학 사전이 질병 별로 설명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보호자 분들은 질병 종류도 잘 모르시잖아요. 보시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죠. ‘증상’ 별로 정리가 되어 있다면 아이가 이상하다는 걸 더 빨리 알아차리고 동물병원에 더 쉽게 오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집필 과정은 어땠나요?


제가 의학적인 내용을 쓰면 다른 친구들이 감수를 해줬어요. 어쩔 수 없이 의학적인 용어를 쓴 부분이 있으면 보호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을 해주는 거죠. 그러면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바꿔줬어요. 김민기 친구가 수의학을 공부하니까 다른 두 친구가 질문을 하면 의미를 알려주고, 그렇게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교정하는 작업을 같이 했어요. 대신 두 친구들은 보호자의 입장에서 궁금한 점들을 정리해줬고요. 글의 내용 정리도 많이 도와줬어요. 제 이름이 저자로 올라가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이 나오기까지 세 명의 친구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펀딩이 연장 요청에 따라 2차까지 진행됐고, 총 1600% 달성됐어요. 이런 반응은 예상 못하셨을 것 같아요.


네, 이 정도까지 반응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앞으로 이런 책들이 점점 많아질 것 같고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생각도 바뀌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어요.

 

지금까지 반려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책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할 거예요. 어떤 점에서 갈증이 있었다고 보세요?


일단 의학 내용이 들어가 있으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어렵잖아요. 질병, 질병에 대한 설명, 치료법, 관련 증상, 이런 식으로 풀이되어 있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설명 자체도 어려운 것 같고요. 저도 의학 공부를 하고 있지만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이 가려운 부분을 긁어드리지 않았나 생각해요. 저희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건 ‘이 책을 라면 받침대로 쓸 수 있게 만들자’는 거였거든요.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랐어요. 아이가 조금 이상한 것 같으면 바로 펼쳐서 볼 수 있도록. 또 증상에 따라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바로바로 찾아서 볼 수 있고요.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용어와 문장을 다듬었어요. 그 세 가지가 반려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요.

 

맞아요. 가나다 순으로 병명을 정리해 놓은 의학 사전은 어디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하거든요. 이 책은 ‘먹을 때’, ‘볼일을 볼 때’, ‘눈’, ‘입’ 등으로 정리되어 있어서 찾아보기가 쉬워요.


맞아요. 사실 저도 수의학 공부를 하면서 그게 불만이었거든요. 책을 읽기가 어려워서요(웃음). 병원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저희 아이가 췌장염에 걸려서 왔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가 구토를 해요, 설사를 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저희는 구토와 설사를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의 목록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어야 돼요. 그 정도가 되도록 공부를 해야 하는데, 수의학 공부할 때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사전에서 ‘췌장염’을 찾으면 여러 증상과 치료법이 나오지만, 그 질병을 찾을 수 있는 연관성을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항상 그런 부분에 갈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책을 만들자고 이야기했을 때 너무 좋다고 생각했고요. 제가 보기에도 편하고,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수의사를 찾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발병 초기에 보이는 행동 증상, 신체 증상이 정리되어 있는데요. 그걸 알아차리려면 평소에 규칙적으로 체크해야 할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게 있을까요?


이미 중증 환자라면 호흡수, 심박수를 체크해 주시는 게 좋고요. 크게 증상이 없는 아이라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식욕, 식사량, 음수량, 배뇨와 배변 횟수를 체크해 주시면 좋아요. 노령견, 노령묘일수록 호흡 양상을 같이 봐주시는 게 좋고요. 예를 들어서, 평소에도 헥헥 거리던 아이라면 상관없지만, 요즘 들어 가만히 있다가도 헥헥 거리는 경우가 많아졌다든지, 기침을 한다든지, 코골이가 늘었다든지, 이 세 가지를 체크해 주시는 게 좋아요. 만약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예를 들어 설사를 한다든지 변 색깔이 이상하다든지, 그런 때에는 바로 체크하시고 병원에 오시는 게 맞는데요. 사실 평소에 체크하지 않으시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시거든요. 자주 있는 일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아이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거죠?


네. 그래서 아이가 7~10살 정도 됐으면 평소에 이런 것들을 봐주시는 게 좋고요. 수의사에게 그런 정보를 주시면 빨리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만약 열 살이 넘었거나 앓고 있는 질환이 있다면 조금 더 구체적인 면을 체크해 주시면 좋아요. 심장이 안 좋다면 혀의 색이나 호흡수, 호흡 양상을 조금 더 봐주시고요. 신장이 안 좋다면 배뇨 횟수나 양을 자세히 체크해 주시면 좋고요.

 

혀의 색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건, 산소가 부족할 때 청색증이 나타나기 때문인가요?


맞아요. 청색증일 때 혀의 색을 보시면 보라색, 파란색으로 변하는 걸 확인하실 수 있고요. 빈혈도 혀의 색으로 아실 수 있어요. 빈혈이면 빨갛지 않고 창백해지거든요. 선홍빛이 아니라, 약간 흰색에 가까운 핑크빛이에요. 혀보다는 잇몸을 보시고 더 자세하게 아실 수 있어요. 점막 부분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정보를 주거든요. 눈 흰자를 봐도 빈혈을 알 수 있어요. 빈혈이 있으면 기본 혈관조차 없어 보여요. 너무 새하얀 것도 이상한 상태인 거예요. 또 눈을 통해서 황달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응급 상황 판단할 땐 ‘증상의 변화도’를 보세요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보호자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인지, 며칠 더 두고 봐도 되는 상황인지’ 고민이 돼요. 바로 병원으로 뛰어가야 할 증상에는 어떤 게 있나요?


호흡 문제가 제일 커요. 무슨 질병에서 기인됐든 호흡 문제는 1분 1초가 중요한 상황이에요. 평소에도 호흡 양상을 살펴봐 달라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그거예요. 또 호흡 문제만큼 당장 병원에 뛰어가셔야 하는 상황은 아니더라도 급하게 오셔야 하는 게, 오줌을 못 싸는 경우예요. 많이 싸는 경우는 당장 와야 할 일은 아닌데, 아예 소변을 못 본다면 빨리 병원에 오셔야 돼요.

 

소변의 경우, 상황을 얼마나 지켜봐야 할까요?


하루 중에 한 번도 소변을 안 보면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될 것 같아요. 보통 하루에 한 번은 소변을 보거든요. 24시간이 지났는데 한 번도 안 싼다면 오셔야 해요. 어떤 상황이 응급인지 아닌지를 이야기하는 건 어려운데요.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의료 지식이 없는 보호자님이 보시기에도 ‘정말 이상하다,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한 것 같다’ 생각되시면 응급일 거예요. 단순히 설사를 한다면 아마 보호자님도 ‘뭘 잘못 먹었나?’ 싶으실 거거든요. 그건 응급까지는 아닐 거예요. 배뇨의 경우도 하루에 세 번 싸던 아이가 한 번 반 정도만 싼다면, 보호자님도 ‘병원에 가야 되나?’ 생각하실 거예요. 그 정도면 응급 상황은 아닌 거예요. 일단 지켜보셔도 되는 거죠. 그런데 하루에 한 번도 소변을 안 보면 정말 이상한 거잖아요. 병원에 오셔야 하는 상황인 거죠. 누가 봐도 아이의 상태가 이상한 것 같고 바이탈 사인이 확 달라지면, 그때는 응급 상황인 거예요.

 

증상을 일반화해서 말한다는 게 굉장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일 것 같아요. 같은 병이어도 아이마다 상태가 다를 테니까요.


네. 특히 개는 다른 반려동물보다 종 간의 차이가 커요. 크기 차이가 많이 나기도 하고 생김새 차이도 있으니까, 종마다 생길 수 있는 질병의 목록 자체도 달라져요. 그래서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이 책을 보면서 다른 수의사나 보호자가 ‘이건 아닌데? 우리 아이는 이렇지 않은데?’ 하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걸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알고 계셔야 할 것 같고요. 그래도 일반적인 내용은 거의 다 담겼다고 봐요. 실제로 많은 보호자님들이 병원에 오기 전에 먼저 전화로 물어보세요. ‘아이가 설사를 하는데 응급 상황인가요, 병원에 가야 되나요?’ 하고 물어보시는데 ‘걱정이 되시면 오셔야 돼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죠. 직접 아이의 상태를 보기 전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니까요.


맞아요. 그런데 보호자님들은 병원에 자주 오실 수 없잖아요. 아이가 걱정되지만 출근도 하셔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연차를 내고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인 건가?’ 고민되시는 거예요. 정답은 없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보호자님이 느끼시기에 ‘아이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싶으실 때는 반드시 오셔야 된다는 거예요. 약간 애매하다고 생각되시면 일단 몇 시간 정도는 두고 보시고요. 그때 증상의 변화도를 보시는 게 제일 중요해요. 얼마나 빠르게 나빠지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질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증상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면서 빈도가 빨라진다면 병원에 오셔야죠. 변화도, 진행 양상을 보시면 병원에 언제 가야할지 판단하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아이마다 생활 습관이나 행동 방식이 다르잖아요. 수의사보다 보호자인 내가 더 잘 아는 부분도 있는 건데요. 그만큼 보호자가 수의사에게 주는 정보가 중요할 것 같아요. 반드시 전달해야 할 정보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앞서 말씀드렸던 식욕, 식사량, 음수량, 배변 배뇨 상황도 있고요. 증상이 언제 시작됐는지를 알려주시는 게 좋아요. 그 시점 전후로 다른 이벤트가 없었는지도요. 안 했던 산책을 나갔다든지, 안 가던 길을 갔다든지, 이사를 갔다든지, 화장실의 위치가 바뀌었다든지, 그런 이벤트를 알려주시는 게 중요해요. 두 번째로는 아이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셔야 되는데요. 바르는 약, 먹이는 약, 안약, 보조제 등 아이 몸에 들어가고 있는 약이 있다면 빠짐없이 알려주셔야 해요. 그리고 행동학적 변화를 이야기해주시는 게 좋은데요. 아이들이 아파서 밥을 안 먹거나 잠만 잘 수도 있어요. 그런 정보도 주시면 진단에 도움이 되죠.

 

구토는 얼마나 자주 하면 문제가 되나요?


일단 구토를 하는 것 자체는 정상은 아니에요. 공복일 때 토하는 ‘공복성 구토’를 가장 많이 하는데, 그걸 자주 하는 아이들은 구토를 쉽게 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셔야 돼요. 그리고 개체 차이가 있어서, 원래 구토를 잘 안 하는 아이들은 한 달에 한두 번 구토하는 것도 질병 때문에 그런 걸 수 있어요. 반면에 어릴 때부터 공복성 구토를 했던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정상이라고 볼 수 있죠. 사람도 구토를 잘 안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식했을 때 구토를 유발해서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반려견이 어렸을 때부터 키우신 분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맞는 횟수를 잘 알고 계세요.

 

산책 가는 걸 싫어하는 이유가 큰 병 때문일 수 있다고요.


몸이 안 좋은 거죠. 산책 가기 싫어한다는 것은 곧 활동성이 떨어지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평상시에는 산책 가자고 하면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럴 수 있어요. 전염병에 걸렸다든지 전신 질환이 있다든지, 그런 경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데요. 그게 가장 먼저 활동성이 떨어지는 증상으로 나타나요. 어딘가 아프니까 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죠. 그런데 원래 활동성이 별로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평상시 모습과 비교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나이가 들수록 집중해서 봐달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산책 가자고 리드 줄만 들어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고, 먼저 산책 가자고 떼쓰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런 반응이 평소와 다르면 지켜보셔야 돼요. 그 상태가 지속되는지, 점점 활동성이 떨어지는지, 아니면 하루 이틀 그랬다가 다시 나아지는지.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하시면서 보시면 되고요.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 번쯤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으시면 좋아요. 점점 안 좋아진다면 더 빨리 병원에 오실 필요가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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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의 딜레마


무심코 지나치는 증상들도 있을 것 같아요.


잠을 많이 자는 경우도 그런데요. 이 경우는 유의해서 보셔야 돼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통증 호소로 잠을 자는 경우가 많거든요. 눈이든 배든 다리든, 어딘가 아파서 잠을 많이 자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프니까 별로 안 움직이고 싶고, 누워만 있다 보니까 계속 잠만 자는 거죠. 지나치기 쉬운 증상이지만 많이 신경 써주시는 게 좋아요. 통증 반응 중에서도 큰 거니까요.

 

잠을 많이 자는 경우, 하루 이틀은 지켜봐도 될까요?


네, 하루 이틀은 괜찮아요. 그 정도의 통증 사인이면 당장 급한 건 아니에요. 하루 이틀 더 일찍 병원에 온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기지개를 켜는 건 예사로 넘길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그런데 복부가 불편해도 이 자세를 취한다면서요?


사실은 기지개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 자세인데, 이 사인을 보호자들이 기지개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고개를 들고 척추를 안으로 숙이는 자세인데요.

 

요가할 때 ‘고양이 자세’랑 비슷하네요.


네, 그런 자세를 취하는 거예요. 호흡이 불편할 때도 이 자세를 취할 수 있어요. 고개를 들고 기도를 펴려고 하는 거죠. 이걸 기지개 자세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은 기지개를 켜려고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기지개를 켤 때의 자세와는 조금 달라요. 또 일반적으로 기지개를 켜는 빈도수는 낮잖아요. 자고 일어났을 때 또는 누워 있다가 일어났을 때 하고, 가만히 있을 때나 앉아있을 때는 하지 않는데요. 이 자세는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해요. 많이 움직이지 않고요. 가만히 서서 서성거리다가도 해요. 그리고 이런 자세를 자주 한다면, 점점 다른 사인이 동반될 거예요. 소화기 질환이라든지 비뇨기 질환이 같이 보일 텐데, 그러면 빨리 병원에 오셔야 돼요.

 

수의사이기 이전에, 보호자이기도 하시죠? 반려견, 반려묘와 사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반려견과 함께 산지는 12년이 됐어요. 열세 살 된 리트리버가 있고요. 반려묘는 3년 전부터 키우기 시작했어요. 지금 같이 사는 고양이는 두 마리예요.

 

반려견을 키우면서 성장하신 건데, 그 시간이 수의사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나요?


네, 영향이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엄청 좋아했는데, 그때는 야생동물 수의사가 꿈이었어요. 그러다가 반려견과 함께 살면서 조금 더 강아지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같이 살을 맞대고 사는 동물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크다는 걸 알게 됐고, 그게 소동물 수의사가 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수의사가 되시기 전에 ‘반려동물에 대해서 잘 몰라서’ 안타까웠던 적이 있으셨어요?


그렇죠. 수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일 때도 그런 부분이 많았어요. 예전에 토끼를 키웠었는데, 구토를 하고 아팠던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제가 따다 준 꽃사과를 먹고 탈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터넷에도 토끼에 대한 정보는 많이 없었고, 그때 처음으로 수의사가 되면 이런 동물들을 꼭 치료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저희 반려견의 경우에는 열 살 때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요. 제가 수의사가 되기 전에는 중성화 수술의 필요성에 대해서 부모님을 설득시키지 못하다가, 수의사가 되고 나서 직접 해줬어요. 저희 반려묘도 제가 다 중성화 수술을 했고요. 수의사가 되고 나서 부모님께 중성화 수술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제가 직접 수술하겠다고 말씀 드리면서 설득이 됐던 것 같아요.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가 되셨지만, 동물들이 떠나는 모습도 많이 보셔야 하잖아요. 특히 서울대 동물병원은 중증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손을 쓸 수 없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딜레마예요. ‘나는 동물들을 치료해주려고 수의사가 됐는데 죽는 걸 더 많이 보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때는 ‘왜 수의사가 됐지?’ 싶었어요. 보호자한테 ‘이 아이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수의사가 됐나 싶기도 하고요. 거기에서 오는 딜레마는 아마 평생 겪으면서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병원에서 당직 설 때 보면 응급 상황에서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아요. 가장 흔한 증상이 경련, 폐수종인데요. 경련이야 당장 생명과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폐수종은 제일 위험한 호흡 문제를 동반해요. 그런데 열에 여덟은 이미 안 좋은 상태로 병원에 오는 경우예요.

 

그럴 때 정말 착잡하시겠어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고, 보호자 분께 ‘아이에게 쓸 수 있는 약은 다 썼습니다, 약의 효과가 어떻게 작용될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당장 1분 뒤에 숨이 멎을 수도 있고, 약 효과가 있다면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CPR 동의서를 받는데요. 정말 슬퍼요. 그렇게 저희가 손 쓸 수 없는 상황일 때는... 그런 게 저의 가장 큰 딜레마이고, 아마 모든 수의사 분들의 딜레마일 거예요. 평생 이어지겠죠.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 그런 힘든 순간은 어떻게 견디셨어요?


같은 일을 겪은 수의사들끼리의 공감대 형성과 위로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새로운 아이들이 나아가는 걸 보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걸 보면 저도 힘든데, 좋아지는 아이들도 있고 보호자님들이 고맙다고 말씀해 주시면 또 기뻐지니까요. 그러면서 이겨내는 것 같아요.

 


가을 겨울에 주의해야 할 질환들


안과 전임수의사로 일하고 계신데요. 안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안과 질환으로 인해서 죽는 아이들은 없거든요. 제가 수의사가 되고 나서 1년 동안 일반 지역 병원에서 수의사로 일했었는데, 아이들이 죽는 걸 보는 게 제일 마음 아팠어요. 가능한 그런 순간을 안 보고 싶었고요. 안과 질환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은 시력 소실과 안구 소실이에요. 안구를 적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최악인데요. 그래도 그것 때문에 죽지는 않잖아요. 못 봐도 살 수는 있어요. 그런데 우리 생각보다 강아지들은 보지 못해도 잘 살아요. 오감이 다 잘 발달했기 때문에 사람만큼 시력 의존도가 높지 않거든요. 물론 시각도 있으면 너무 좋지만, 시각을 잃어도 보호자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안과를 선택한 것이기도 해요.

 

안과를 찾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뭔가요?


1순위를 꼽으라면 조금 어렵기는 한데요. 응급으로 오면 대부분 궤양이에요. 각막에 상처가 난 걸 각막궤양이라고 하는데요. 안과 질환에서 가장 흔한 게 각막궤양, 백내장, 녹내장이에요.

 

궤양이 쉽게 생기는 편인가요?


생각보다 되게 잘 생겨요. 아이들이 무심코 비비다가 긁힐 수도 있고. 안검염이 있다거나 귀가 간지럽다거나 눈물샘 때문에 긁다가 생기는 경우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눈을 감고 긁기는 하는데, 실수라는 걸 하잖아요(웃음). 그밖에도 지나다니다가 다른 물체나 다른 강아지와 부딪혀서 생기는 경우도 있고요. 이건 보호자님들이 많이 간과하실 수 있는 부분인데, 안구건조증 때문에 생기기도 해요. 개들도 안구건조증이 정말 많거든요. 마른 땅은 갈라지기 시작하듯이, 안구 표면도 마르면 쉽게 갈라져서 상처가 생길 수 있어요. 안구건조증이 있는데 치료가 안 된 아이들은 아무 일이 없었는데도 궤양이 생길 수 있는 거죠. 또 특발적으로 개만 걸리는 궤양이 있어요. 자발적, 만성적으로 생기는 궤양인데 개에게만 주로 특발성으로 생겨요. 아직 원인은 규명되어 있지 않고요. 긁힌 상처가 그런 궤양으로 번질 수 있어요. 이 경우는 그냥 두면 낫지 않고 처치가 필요해요. 궤양은 생각보다 흔하게 잘 생기고, 특히 봄이나 가을에 건조할 때 잘 생겨요.

 

눈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요?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건, 눈 흰자가 빨개지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는 거예요. 이 두 가지가 일반적으로 눈이 아프다는 사인이에요. 추가적으로 눈물을 많이 흘리는 증상이 있을 수 있고요. 이런 증상만 보고 녹내장인지 백내장인지 궤양인지 염증인지 알 수는 없어요.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돼요.

 

반려견이 눈물을 많이 흘려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요. 유의 깊게 봐야겠네요.


네. 그리고 눈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 거라면, 양쪽 다 흘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궤양이 생겨서 눈물을 흘린다면 아픈 쪽 눈의 눈물이 많이 흐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걸 보고도 알 수 있죠. 양쪽 다 많이 흐르는 경우는 눈물샘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유전적, 선천적으로 눈물샘에 문제가 있는 경우죠. 일반적으로 질환이 있어서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경우에는 반대쪽 눈과 차이가 생겨요.

 

그렇겠네요. 두 쪽 눈이 다 아플 가능성은 낮을 테니까요.


맞아요. 두 눈에 동시에 궤양, 녹내장, 백내장이 생기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한 쪽이 아프고 난 다음에 다른 쪽도 아픈 경우는 있겠지만요. 눈물샘과 관련한 문제는 양쪽 다 생길 수는 있어요. 그 부분도 같이 체크해 주시면 좋아요. 일반적으로 눈 질환에 있어서는 눈이 빨개지고 잘 못 뜨는 게 가장 대표적인 사인이에요.

 

지금 시기에 많이 발병하는 질환이 있나요? 어떤 증상을 유의해서 보면 좋을까요? 


눈 쪽에서는 안구건조증이 심해질 수 있으니까 주의해서 보셔야 해요. 말씀드린 것처럼 안구건조증에 기인한 질환들이 많거든요. 궤양, 각막염, 결막염도 잘 생길 수 있으니까 아이 눈이 건조하지 않게 신경 써 주셔야 돼요. 그리고 겨울에는 산책을 잘 못 나가기 때문에, 산책할 때 오줌을 싸는 아이들이 요로기계, 배뇨기계 질환이 생길 수 있어요. 집에서 싸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전까지는요. 오줌을 참다가 약해져 있는 방광을 건드리면 그 자체가 방광염이나 결석 같은 걸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배뇨 유도를 잘 해주시는 게 중요해요. 또 겨울이라고 해서 고지방 고단백의 보양식을 함부로 주시면 췌장염에 잘 걸려요. 평소대로 먹게 해주시는 게 좋고요. 온열기 다루실 때도 조심해서 아이들이 화상을 입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는 게 좋아요.


 

 

반려견 증상 상식 사전김보윤 저/우주와 아이 편 | 북라이프
보호자가 반려견의 건강 상태를 빨리 파악해, 반려견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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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일환 “교과서에는 없는 시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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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을 조각내듯 행과 연으로 나누어 분석했던 학창시절의 국어수업은 늘 어렵고 따분했다. 마음으로 감상하기보다 시어의 함축된 의미를 찾기에 급급했고, 시를 읽고 느낀 감정이 해답지에 나온 정답과 같아야 비로소 시를 제대로 아는 것인 줄 알았다. 문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인데, 교과서에서는 왜 그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시인인 박일환 저자는 학교의 이러한 수업 방식이 늘 아쉬웠다고 한다. 빠듯한 진도에도 불구하고 국어 수업 중, 구태여 학생들이 시를 직접 써 보는 시간을 빼놓지 않았던 이유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해석하는 것에서 나아가 스스로 시를 써 본 학생들은 소곤소곤 내리는 봄비에서 풀잎을 향한 배려심을 발견하고, 감나무를 보며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비로소 시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박일환 저자는 지난 8월, 30년의 교직생활을 끝으로 학교에서 은퇴했다. 이후 학생들이 시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를 펴냈다. 책에는 시를 읽고, 쓰는 방법부터 교과서에서 말하지 않는 ‘시를 대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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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통하게 하는 ‘시’의 힘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를 펴낸 계기가 있나.

 

국어교사로 오래 일하면서 한계에 맞닥뜨릴 때가 많았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고 늘 미진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의 특성과 아름다움에는 정답에 있는 게 아닌데, 마치 있는 것처럼 가르쳐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시를 올바로 느끼고, 쓰는 법에 대한 길잡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어 시간에 하는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하는 게 아니라, 시에 관한 색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국어교사인 아버지와 청소년 딸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필 초기에는 강의식으로 내용을 설명하듯 글을 썼는데, 막상 쓰고 보니 영 재미가 없었다. 또 혼자 설명하는 일방적인 전달 방식보다, 독자가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데 훨씬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국어교사인 나와, 독자 또래의 청소년 딸을 가상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꽤 많은 원고를 썼는데 중간에 엎고 다시 작업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실제로 두 딸의 아버지인 것으로 안다.


그렇다. 하지만 내 딸들은 20대이기 때문에 책에 등장하는 딸 ‘솔비’는 가상의 인물이다. 다만 ‘솔비’라는 이름만큼은 실제 두 딸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었다. 그동안 가르쳤던 학생들 또래의 딸과 시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하면서 썼다.
 
학생들이 직접 쓴 시를 인용해 설명한 것이 좋았다.


그동안 가르쳤던 국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쓴 시의 일부를 선정한 것이다. 가능하면 한 학년 동안 반드시 시를 한 편 정도 써보게 하려고 노력했다. 시 수업을 하려면 적어도 3~4시간을 잡고 시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고, 쓴 시에 대해 이야기해 다시 다듬고 고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국어 시간에 시만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학생들과 함께 시 쓰는 시간을 마련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학창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시가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꼭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시 수업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


내가 쓴 청소년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를 교재 삼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필사한 뒤 감상평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는데 수업마다 ‘열일곱 나의 친구에게’라는 세월호에 관련된 시를 골라 적어오는 친구들이 꼭 있었다. 시집 3쪽에 달하는 긴 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옮겨 적는 학생들을 볼 때 ‘감정이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 한 친구는 수업 시간에 그 시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시가 아이들의 마음을 출렁이게 하고, 감성을 건드리는 것이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시의 힘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했던 기억이다. 
 


직접 써봐야 알 수 있다


수업진도를 맞추기 빠듯한 학교 교육 일정에서도 시 쓰기 교육을 빼놓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좋은 시를 감상하는 것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다. 하지만 감상은 타인의 작품을 보는 것이라 시의 참맛을 느끼는 데 한계가 있다. 아무리 허술하고 부족해도 자신이 직접 시를 써보고, 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치고 다듬는 과정에서 비로소 시가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해보는 것만큼 오래 남는 교육은 없다.

 

한 번도 시를 써보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분명 어려운 경험일 것이다.


시에 대해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르는 단어, 어려운 단어는 절대 쓰지 말고, 구체적으로 써라.” 작가는 알고 있는 사실이더라도 독자는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고, 그때의 정황과 사건을 구체적으로 묘사했을 때 독자는 그 시에 공감할 수 있다. ‘사랑’에 대해 쓰고 싶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했던 구체적인 행동과 장면을 그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 노력했다.

 

학생들이 생각보다 훌륭한 시를 완성해서 놀랐던 적도 있을 것 같다. 


책에 인용된 것이 모두 그런 시들이다.(웃음) 한 학생은 학교생활을 주제로 시를 썼는데, 수업시간에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을 딱딱한 ‘고체’에, 쉬는 시간의 학생들을 흐르는 ‘액체’에 하교할 때의 학생들을 자유로운 ‘기체’에 비유했다. 아름다운 시어를 쓰고, 표현이 훌륭한 시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이런 기발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맞닥뜨릴 때마다 놀라곤 했다. 

 

시 쓰기 수업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나타난 변화가 있나.


교육의 효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의 잠재력을 생각할 때, 시를 쓴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훗날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시를 읽고 공감하며 감동했던 기억, 직접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생각했던 경험은 분명 아이들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데 쓰일 것이다.

 

자유로운 감상에 앞서, 의미를 분석하는 데 급급한 문학 교육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 시인이자 교사의 입장에서 학교의 문학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나.


지나치게 평가와 시험에 종속돼있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는 게 어렵다. 이건 문학뿐 아니라 전반적인 학교 교육이 가진 한계다. 학습의 결과를 점수로 계량화시키기 때문에 평가를 위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 수업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쓴 시를 가지고 평가를 하면 객관성에 문제가 생긴다. 또 국어 과목은 한 학년을 2-3명의 교사가 반을 나눠 가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합의해서 시험 문제를 내야 한다. 창의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시 쓰기 수업을 하려 해도 일단 기본적인 진도를 모두 나간 뒤, 여유 시간을 마련해야 가능하다. 평가권이 교사에게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고질적 문제라고 본다. 점수화된 평가가 아니라 각 교과목에서 가르치는 능력을 세분화해서 교사가 서술형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되어야 수업의 방향도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평가권이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교사는 주어진 범위 안에서, 교육청 지침에 따라 서술형과 객관식 문제의 퍼센트를 맞춰 시험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문책을 받는다. 교사가 자율적으로 논술, 감상문 등 다른 형태의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30년간 교직생활을 했는데 과거와 현재 학생들이 시를 대하고, 생각하는 태도에 있어 차이가 느껴지나.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학교마다 문예반이 반드시 있었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문예반이 싹 사라지기 시작했다. 논술반, 독서토론반 등이 생기기도 했지만, 늘 학생 모집이 되지 않아 운영이 어려웠다. 시대와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것들이 책 말고도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들 마음속에서 ‘시심(詩心)’까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지금도 시를 읽고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서 자연스레 문학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할 것이다.

 

학생들이 시를 친근하게 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운 시를 무턱대고 권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청소년시집을 읽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내가 처음 청소년시집을 출간했을 때, 편집자가 학생들에게 시집을 보여줬더니 “이런 시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고 말해서 ‘성공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웃음) 시인들도 아이들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가 있는 시를 많이 써서 청소년시집이 더 확산되길 바란다. 또 언젠가 시를 웹툰으로 만든 작품을 보았는데,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 나와도 좋을 것이다.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매체와 시가 융합하는 시도가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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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시인’ 아닌 ‘시인 교사’가 됐어야 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교사가 된 것인가?

 

글을 쓰고 싶어서 국문과에 갔는데 선배들이 대부분 부전공으로 교직이수를 하기에 대세에 따라 교직이수를 했다.(웃음) 교사의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수업만 들었고, 성적도 별로 안 좋았다. 그러다 졸업하고 직장을 잡을 때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시험을 보았는데 운 좋게도 덜컥 합격했다. 처음엔 두렵고 막막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가르쳐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더듬더듬 혼자 고민하면서 길을 찾아갔던 것 같다.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와 고민을 교사가 된 이후부터 했던 셈이다. 신임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교실에 자주 드나들고, 주말엔 함께 등산도 했다. 규격화된 수업이 아닌 색다른 수업을 해보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다.

 

교사를 하길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


교사가 된 첫해 여름방학이었다. 그때 당시 27세였는데, 방학을 맞아 무전여행을 떠났다. 고비가 찾아오는 순간,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걸으니 저절로 힘이 나더라. 그때 ‘학교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반면 시인을 꿈꾼 것은 열일곱 살 때부터였다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문학에 관심이 많고 글을 잘 쓰는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내가 모르는 높은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전까지 시인, 소설가는 교과서에 있는 사람이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웃음) 시를 쓰는 친구가 위대하고 멋져 보였다. 그러면서 나도 그런 세계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움텄고, 시집과 문학잡지를 사서 보며 조금씩 시인이 되길 꿈꿨다. 하지만 신이 시 쓰는 재능은 주지 않으셨던 것 같다. 백일장에 나가면 장려상은커녕 입선도 한 번 못 해봤고, 대학에 입학하니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늘 주눅 들어 지냈다. 정식으로 시인이 된 건 37세의 일이다. 당시 빛나는 재능을 가졌던 친구들은 대부분 시인이 되지 않았다. 나는 시인이 되기까지 20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대견하다. 뛰어난 시인, 훌륭한 시인까지는 못 갔어도 성실하게 시를 쓰는 사람정도는 된 것 같다.

 

시인과 교사는 얼핏 생각하면 결이 전혀 다른 직업으로 느껴진다. 시 쓰는 작업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왔을지 궁금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해서 좋은 시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삶에서 나오는 시가 진짜 시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다. 시는 말을 아름답게 꾸미거나 철학적 생각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남과 다른 시선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삶과 분리된 시는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시적인 것들을 많이 끄집어낼 수 있었다. 교사로 일하며 시를 쓰는 삶이 참 행복했다. 행운이었던 것 같다.

 

퇴직하며 펴낸 교육 시집 『덮지 못한 출석부』  후기에 ‘교사 시인이 아니라 시인 교사가 되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썼다. 어떤 의미인가?


교사 시인은 ‘시인’에 방점이 찍혀 있고, 시인 교사는 ‘교사’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교사보다 시인에 좀 더 치중한 삶을 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늘 문인들 모임이나 문학 행사가 먼저였고, 젊었을 때만큼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지도 못했다. 지난해 명예퇴직을 한 이유다. 교육에 열정적인 젊은 선생님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게 학생들에게 더 좋은 일일 것 같았다. 퇴직하면서 교사로 더 열심히 살지 못한 아쉬움, 관성적인 나태함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다.

 

퇴직한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생활이 단조로워졌다. 낮에는 책 읽고 글 쓰고, 저녁에는 사람들을 만난다. 강의 요청도 종종 있다. 단조롭지만 심심하지는 않다.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는 어떤 이들이 읽으면 좋을까.


시에 대해 알고 싶은 청소년은 물론이고, 특히 국어 교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후배 교사들로부터 ‘시를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을 때가 종종 있다. 실제로 시중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시 쓰기 책이 별로 없다. 이 책이 시를 조립하듯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시가 무엇이며 어떻게 감상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한다.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함축적 언어, 은유 같은 것에서 벗어나 시에 대해 다시 깨닫고, 나도 써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봄비
- 유하은

 

봄비가 새록새록 내린다.
가녀린 새싹들 다칠까 봐
조심스레 내린다.

 

풀잎 위 봄비들은
그런 풀잎들이 무거울까 봐
또르르……
굴러 내려온다.

 

책 서문에서 시를 쓰는 게 어렵다면 ‘시심을 품고 시처럼 사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시처럼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평생 시 한 편 읽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왜 시를 읽어야 할까? 책에 인용된 유하은 학생의 시 ‘봄비’가 이 질문의 답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새싹이 다치고, 풀잎이 무거울까봐 살며시 내리는 봄비의 마음은 결국 이 시를 쓴 소녀의 마음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이 바로 시심이다. 몇 년 전, 교육부의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 돼지”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적 있다. 그때 기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얼마 전 구의역에서 청년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는데, 당신의 아들이었다면 어땠겠느냐.”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내 자식이 아닌데,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하나. 그건 위선이다”라고. 공감력은 물론 상상력조차 없는 것이다. 사람들 마음속에 연민이 사라질 때 진짜 헬조선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여린 것을 보면 보듬어주고 싶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경탄할 줄 알고, 불쌍한 것을 보면 도울 줄 아는 마음을 품고 사는 게 시처럼 사는 삶이다. 시는 여린 것, 약한 존재에 대한 올바른 마음을 가르쳐준다.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공부박일환 저 | 지노
다양한 사례를 들어 시라는 게 무엇이고, 사람들이 왜 시를 쓰고 읽는지, 시와 일상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나아가 실제로 시를 쓸 때 도움이 되는 이론과 방법까지 조곤조곤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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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형철 “섬세해지고자 노력하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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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내려고 했던 시기를 한참 넘긴 책이었다. 일간지와 문예지 등에 연재했던 글을 모았지만, 다시 한번 글을 매만지면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다. 신형철 평론가에게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시간을 들여 그 대상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옮기는 것이다.

 

‘정확함’이 그의 도구라면, 지금의 신형철을 관통하는 주제는 ‘슬픔’이다.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는 대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닿으려는 노력은 평론가로서의 삶이 고스란히 비치는 과정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그는 문학 작품 속의 슬픔과 허무함을 꼼꼼히 읽고, 문학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회의한다. 대통력 탄핵 시기와 4대강사업, 용산참사, 천안함 사건 등 현실의 절망을 마주하면서 희망을 새긴다. 구도에 가까운 ‘정확함’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는, 좋은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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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의 새로운 산문집


인터뷰를 꽤 많이 사양하셨다고 들었어요.

 

인터뷰 제안해 주시는 모든 매체에 감사한 마음이지만, 아무래도 같은 답변이 반복되는 측면이 없잖아 있어서요. 인터뷰도 일종의 콘텐츠인데, 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반복이 좀 민망해요. 어쩌다 하나의 인터뷰 정도를 보게 되는 거지 제 인터뷰를 모두 다 찾아보시는 분은 없을 테니, 그 반복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시는 분들도 물론 있습니다만, 그래도요. 그래서 인터넷서점 외에는 대부분 이 책에 실린 글들의 발표 지면을 제공해 준 최소한의 매체 위주로 진행했어요.


말로 하는 인터뷰는 뜻이 다르게 읽힐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무래도 인터뷰 내용이 신경 쓰일 것 같아요.


신경이 쓰이죠. 이를테면 ‘있다’와 ‘없지 않다’가 다를 때가 있잖아요. 조금만 뉘앙스를 다르게 표현해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말이 정리되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8년 동안 쓴 글이 엮였어요.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고 믿는 편이신가요?


당연히 그렇죠. 평론적 성격의 글은 번득이는 영감에 기댈 수가 없어요. 얼마나 오래 생각하고 연구했는가가 글에 고스란히 다 드러나니까요. 이번 책에 실린 글들의 대다수는 일간지나 주간지의 칼럼 꼭지에요. 몇 달씩 구상해서 쓴 글들이 아니어서 그 깊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책을 묶을 때 최대한 보수적인 기준으로 글을 걸러 냈어요.

 

선별 과정에서 글을 많이 수정하시기도 했나요?


싣기로 한 글들은 부분적으로 수정해서 실었죠. 글은 고치기로 마음먹으면 언제든 더 고칠 수 있어요. 더는 고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글도 시간이 지나면 또 고치고 싶은 게 보이죠. 그러니 결국은 어느 시점에서 그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출간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다른 작가님들도 신문 칼럼 등을 모아 책을 내면 욕심이 생긴다고 하시더라고요. 칼럼은 마감이 있는데 단행본은 사실 미룰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고치고 싶은 욕심이 든다고요.


그러게요. 이번 책도 원래 약속한 출간 예정 시점보다 3년을 더 끌었는데, 출판사에서 더는 기다릴 수 없고 무조건 예약판매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어요. 덕분에 책이 나올 수 있었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웃음)


표지의 그림이 낯익은 작품이에요. 난다 출판사에서 황현산 평론가 책을 낼 때도 팀 아이텔의 그림을 많이 썼었죠? 같은 화가의 그림을 썼다는 점을 생각했었나요?


2011년에 김민정 시인의 소개로 이 화가를 알게 됐고  『느낌의 공동체』  표지에도 그의 그림을 사용했었어요. 그 후로 황현산 선생님의 두 권의 산문집도 김민정 시인이 만들면서 같은 화가의 그림을 사용했고요. 이번에는 제 담당편집자이신 류기일 선생이 여러 장의 그림을 저에게 제시했는데, 처음 보는 그림이지만 마음이 끌려서 고르고 보니 같은 화가여서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민정 시인이 평론가들의 성향이 팀 아이텔의 화풍과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 제 취향이랄 게 별 것 없고 또 그걸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팀 아이텔처럼 담담하되 깊은 그림에 제가 끌리는 것 같은데, 제가 그런 문장을 좋아하니 통하는 데가 있나 보다 싶어요.

 

 

정확함에 대하여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한다(38쪽)”는 표현은 작가도 작품을 만들면서 정확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어요. 하지만 작가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작품을 만들 때가 있잖아요.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지기도 하고요.


문학적 커뮤니케이션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불확실성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죠. 의도한 대로 쓰이지도 않을뿐더러, 쓰인 대로 읽히지도 않고요. 제가 ‘정확하다’라는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어떤 문장이 ‘특정한 진실을 잡아채는 데’ 성공했다는 느낌이에요.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이전에 누구도 그렇게 표현해 본 적이 없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내서, 이제는 다른 사람이 그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 할 때 다른 문장을 떠올리기 어렵게 만드는 그런 경지요. 어떤 글이 ‘정확하다’라는 느낌은 당연히 독자 편에서 생성되는 것이겠죠. 그런데 그런 반응을 끌어내는 힘이 창작자 쪽에 애초에 있지 않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런 반응을 끌어내는 힘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요?


‘명제적 지식’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이라면 그냥 명료하게 쓰기만 하면 되겠죠. 그러나 감정적 영역에 대한 ‘비명제적 지식’이 오가는 문학 작품의 경우라면 창작자의 삶의 경험에 대한 이해가 관건이 될 테고요. 경험 중에서도 특히 비극적 경험의 경우에는, 창작자가 그 경험에 대해 깊이 알고 있고 그것을 정확하게 언어화하면 그 문장을 읽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발견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매우 지난한 작업이잖아요. 영원히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지만 계속해서 생각한다는 게, 스스로 지친 적은 없나요?


그게 직업이니까요. 생각하고 또 표현하는 게 직업이니까, 계속해야죠. 그런데 스스로 만족이 안 되는 순간을 ‘지친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 상태는 주기적으로 와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걸 응용해 본다면 ‘라이터스 로우(writer's low)’라고 할까, 글쟁이의 우울함이 있는 것 같아요.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아, 굳이 나까지 쓸 필요 있을까, 그런 생각이 진지하게 밀려오면서 의욕이 떨어지는 상태요.


‘어떤 문장이 어떤 생각을 딱 잡아챌 때’를 정확함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감정과 생각을 한 문장으로 잡아냈을 때의 쾌감이 있을 것 같아요.


예술 분야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늘 자기가 다루는 매체를 사랑하고 또 미워하죠.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언어라는 매체에 대한 애증이 있을 거예요. 뭔가 정확한 문장을 쓰는 데 성공했다고 느껴질 때 드는 생각은 이를테면, 언어가 나를 도와주는구나, 적어도 지금은 이 매체가 내 편이구나, 그런 느낌이죠.


개인적으로 아포리즘이나 잠언을 이해하기를 ‘~이다’ 문장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떤 상황이나 생각을 단정하는 태도가 아포리즘을 만드는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책의 글은 ‘~일 것이다’ ‘~리라’는 단정적이지 않은 문장으로 끝나는 데도 아포리즘의 명징함이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정확함을 추구했기 때문에 오는 확신이었을까요?


십수 년 전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아주 단호하게 썼어요. 뭘 잘 몰라서 용감했던 때였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부터 단정적인 문장을 쓰는 것에 대해 자기 검열이 생겼어요. 이력이 쌓이면서 과거의 글을 돌아보게 되고 그 일면성을 절감하면서 후회하게 되는 일들이 자꾸 반복되니까 자연스레 생기는 현상이죠. 그러나 지금 쓰고 있는 글에 관점이 없을 수는 없으니 그것을 표현하되, 이 관점이 이것과는 다른 관점들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쓰려고 노력해요. 어떤 문장을 그 경계 지점에 세우는 게 쉽지는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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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폭력


냉소를 ‘세련되게 포기하는 것’으로, 폭력을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태도’라고 했어요. 섬세해지기 힘든 시대, 섬세함과 교환할 시간이 없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냉소하고 싶다는 마음을 누르고 알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요?


섬세해질 시간도 여유도 없는 시대 아니냐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라면 과연 그렇기도 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섬세해지려고 노력하죠. 그건 아마 그들이 타인의 섬세하지 않음에 상처를 받아본 적이 있거나, 반대로 나의 섬세하지 않음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적이 있어서일 거예요. 그 경험 때문에 냉소와 폭력에 손쉽게 기대고 싶다가도 자신을 통제하려 애쓰겠죠. 모든 공부가 자기 삶의 필요 속에서 시작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 섬세해지기 위한 노력도 내 삶이 나에게 명령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을 거예요. 저도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데, 다가올 제 시간들 속에는 저를 섬세함 쪽으로 더 가혹하게 몰아세울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시인의 책무를 ‘가장 먼저 울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일’(248쪽)이라고 표현했어요. 시인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의 영향 때문인지, 모두가 점점 더 빨리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들 때가 있어요.


인용하신 제 문장은, 우리가 어떤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할 때 예술가들이 선두에 나서서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려 하기보다는 진실의 복잡성을 견뎌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하고, 또 모두가 잊지 않도록 자꾸만 그 기억을 환기하려는 노력 등을 해야 한다는 것 등의 취지를 담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느려질 수밖에 없고 또 느려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이는 예술가의 책무가 그렇다는 것이고, 그것이 모든 사람의 책무가 될 수는 없겠죠. 예컨대 국가적 참사가 있을 때 현장으로 달려가서 트라우마적 고통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정신의학 분야 의료진들이나 심리상담 전문가 분들의 역할은 당연히 시인과 다를 수밖에 없을 테고요. 그분들은 누구보다 빨라야 하겠죠. 그런데 정혜신 선생님 책을 읽어보면 그런 현장에서도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지려면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니, 빠른 대처가 빠른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에 촉발되는 것이라면 그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술에서 ‘비극을 아름답게 그려도 되는가’의 딜레마는 현상을 예술의 수단으로만 여길 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누구든 어느 정도는 타인을 어떤 목적의 수단으로 삼잖아요. ‘어떤 이를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라고 했을 때, 그 경계는 어디까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타인의 비극을 예술의 소재로 삼을 때는 ‘불행의 단독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어떤 불행이 세상의 많은 슬픔들 중 하나로 일반화되지 않도록, 유일무이한 것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일이라고요. 제가 방금 ‘만들어준다’는 표현을 썼지만 아마 대다수의 불행은 본래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를 거예요. 깊이 들어가서 보기만 한다면요. 그러니까 문제는 얼마나 깊이 들어가서 그 단독적인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는 예술가의 태도와 노력이 중요하겠고, 그로부터 작품의 성취가 결판나겠죠.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예술가가 타인의 비극의 진실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부산물처럼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움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바로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되겠죠. 물론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예술비평의 오랜 난제 중 하나예요.

 

 

평론가의 일


이제까지 낸 평론집과 산문집에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작가들에게 단편과 장편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자주 물어보는데,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작가들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궁금해서예요. 제가 지금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은데(웃음), 이렇게 답해보면 어떨까요. 짧은 산문은 어떤 ‘자리’로 데려가는 것이고 긴 평론은 ‘건물’로 입장시키는 거라고요. ‘자리’에 가서 서면 하나의 관점을 얻을 수 있죠. 여기서 그걸 보니 이렇게도 보이는구나, 하고요. 그 이상은 어렵다는 뜻이에요. 논증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건물’로 들어가면 그 안에 입장과 논증과 사례와 반론에 대한 대비와 기타 등등이 다 있죠. 업무실과 휴게실과 기타 등등이 다 갖춰져 있다고 할까요.   


평론이 일이라면 문학을 독자의 눈으로 보기보다 평론가의 눈으로 읽어야 할 때가 있잖아요. 문학을 단순히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 올 테고요.


그래서 언제나 일독(一讀)의 시간 동안에는 분석적 태도를 최대한 내려놓고 읽으려고 해요. 이를테면 필기도구나 포스트잇을 옆에 두지 않고요. 영화를 볼 때도 첫 관람 때는 그냥 눈앞에 펼쳐지는 것에만 집중해요. 두 번째 볼 때부터는 메모를 하죠. 그래서 언제나 어떤 작품을 처음 읽고 보기 시작할 때가 행복해요.


문단을 순문학과 장르문학으로 나누려는 태도는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순수문학이나 문단 문학이 존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순수문학’이라는 말은 아마 미술 쪽에서 비산업적/비실용적 미술을 ‘fine art’라 부르고 이를 ‘순수미술’로 번역한 데서 적잖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해요. 미술에서는 그 개념이 애초 목적 자체가 다른 두 개의 분야를 분별하기 위해 중립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이어서 별문제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문학은 그런 식으로 이분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 말이 그냥 ‘더 고급한 문학’을 뜻하는 배타적인 말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그래서 별로 생산적이지 못한 말이니까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순수문학’이 ‘장르문학’의 반대말은 더더욱 될 수 없고요. 저는 ‘장르문학’의 실체는 분명히 있으니까 이 말 자체는 써도 되지만 이 말의 반대말은 ‘비장르문학’ 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냥 저는 문학이라는 예술의 인식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 인식의 대상 중에서 특히 인간의 내면을 다룰 때 문학은 다른 장르와 첨예하게 달라지면서 가장 훌륭한 높이/깊이에 도달한다고 믿고요. 제가 선호하는 이런 문학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하튼 ‘순수문학’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분명해요.


교수로 일하면서 동시에 평론을 하기에는 작품을 읽고 보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할 텐데요. 작품을 읽고 보는 시간은 언제, 어떻게 확보하는 편인가요?


요즘은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거의 절망적이에요. 활자 중독이니까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나 차 안에서나 어디서든 책을 내려놓지는 않는데, 대체로 그런 자투리 독서밖에는 못하니 속이 탑니다. 올해는 어떻게든 버텨내고 내년부터는 제 삶의 구조를 재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간은 문학보다 자신의 실패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176쪽)”고 하셨어요. 평론가는 직접 체험이 아닌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으로 배우는데, 한계를 느낄 때가 있나요?


평론가만이 아니라 모두의 문제 아닐까요. 누구나 자기 삶으로부터 배우고, 책을 통해 복습과 예습을 하는 거잖아요. 책은 언제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이럴 때 떠오르는 말이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에서 본 구절인데 ‘그래봤자 야구, 그래도 야구’라는 문구에요. 우리 모두에게 책은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이 아닐까요? 물론 저는 책의 힘을 다른 분들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 속하기는 하겠지만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저 | 한겨레출판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를 풀어놓는다. 평론가로서 작품과 세상 사이에 가교를 놓고자 했던 저자의 성실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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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은정 “쌀값은 농촌 농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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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동자들이 저곡가를 견디지 못하고 농촌에서 올라온 농민들의 자식이었으니, 자신의 고향과 부모를 등지고 밥을 번 셈이다. 이것이 한국 산업화의 근본적인 고통이다. 농민의 자식들이 농촌을 버려야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농촌의 처절한 희생 속에서 만들어진 나라다.(78쪽)

 

『대한민국 치킨전』의 저자 정은정이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를 펴냈다. 농촌 사회학자로서 전작에서 치킨과 자영업에 집중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농업을 이야기한다. 그 중심에는 故 백남기 농민이 존재한다. 보성에서 농사짓던 농민이 2015년 11월 서울에서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다. 경찰이 쏜 물대포였다. 그리고 이듬해 9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운명한다.

 

고인은 그날 왜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을까? 국가 폭력으로 사람이 쓰러졌다. 이 사태에 누가 책임졌을까?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쪽에 맞선 사람들은 어떻게 연대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백남기 농민 투쟁을 함께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이다. 이 책은 백남기 농민의 평전은 아니다. 고인의 삶을 복원하는 동시에 저자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사회에 지니는 의미를 탐색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폭력, 농민ㆍ농촌ㆍ농업, 연대를 기록한다.

 

4년 전  『대한민국 치킨전』 인터뷰 이후로 4년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 책이 그렇게 많이 소비될지 몰랐어요. 덕분에 치킨팔이 하며 강의 많이 다녔고요. 아이 키우고, 책은 쓰던 게 있었는데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 작업하느라 멈췄죠.

 

누군가 백남기 농민에 관한 책을 쓴다면, 자신에게 오리라 예견하셨다고요.

 

노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쪽에 농업 농촌 농민에 관한 대중서를 쓸 수 있는 대중작가가 없어요. 제가 독보적인 게 아니라, 자원이 없는 거죠. 농민들이 돌아가시면 평전이 나오긴 했는데, 주로 큰 남성 작가들이 썼고요. 저는 백남기 농민 투쟁을 보면서, 이건 사모님과 따님들의 투쟁이고 여성들 문제라 생각했거든요. 또 제가 가톨릭 농민회와 오래 활동했고, 그래서 운명이라기보다는 확률상 제게 올 거라고 알고 있었죠.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지 디자인과 제목입니다. 표지, 제목에 관해서 설명해주세요.

 

다행히 윤성희 사진 작가가 개인 작업으로 투쟁 과정을 다 찍어놓아서, 그 사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어요. 표지에 쓰인 사진인 아스팔트가 상징하는 게 있는데요. 먼저 백남기 어르신이 쓰러진 장소입니다. 그리고 농민들이 정치적 요구를 하러 서울 갈 때 아스팔트 농사 지으러 간다고 표현하시거든요. 다음에는 씨앗인데요. 이 책이 마냥 슬프진 않은 게, 씨앗을 뿌렸잖아요. 씨앗을 뿌린다는 건 생명을 심는다는 의미입니다. 뿌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달랐죠. 백남기 농민이 우리밀을 파종하고 왔는데, 수확은 다른 농민이 하셨어요. 이런 의미를 담은 표지, 제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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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인 국가폭력

 

이 책이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담는 듯합니다. 첫 번째가 국가폭력이죠?

 

처음 이 책 집필할 때는 제가 농촌사회학 연구자이니까 농촌 농업 문제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자료, 증언 접하면서 국가폭력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게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게 많아요. 어르신이 쓰러지고 나서도 너무나 많은 모욕, 외면이 있었고 이게 당연한 절차로 진행됐어요. 절차적 민주주의는 달성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죠. 국가폭력으로 사람이 쓰러졌다면, 관련한 사람이 조사받는 게 당연한데 그렇지 않았죠. 경찰청장은 명예롭게 퇴임했고, 살수 요원은 약간의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흐지부지라고 해야 할까요. 넘어갔어요. 가족들 입장에서는 해결된 게 아니죠. 그런데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었고, 해결됐다 생각하는 거 같아요.

 

백남기 농민을 이야기하면서 광주를 뺄 수 없잖아요.

 

차라리 소설이었다면, 너무 소설같다고 이야기했을 거 같아요. 백남기 농민이 중앙대에서 잡혀간 게, 1980년 5월 18일 오전이에요. 계엄군에 끌려가서 김대중 내란 음모랑 엮어서 고문 당했죠. 광주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 당했어요. 이후로 문민 정부 들어서고 나서 5.18 유공자 신청을 받았는데, 어르신은 신청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나 명백하거든요. 잡힌 곳은 서울이지만 계엄군에 잡혔고 날짜가 1980년 5월 18일이에요. 아주 핍진한데, 절대로 신청하지 말라고 가훈처럼 이야기했어요. 왜냐하면 죽은 자들이 있는데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는 거죠. 그렇게 광주를 평생 안고 계신 분인데,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평생 음택이 광주로 정해질 거라고는요. 작가로서 소름이 돋았죠. 너무 부끄러워서 안 보겠다, 안 가겠다 했는데 몸을 누이시게 된 곳이 광주가 되었죠.

 

국가폭력도 문제이지만, 2차 가해도 심각하지 않았습니까?

 

윤서인과 김세의에게 9월에 구형, 10월에 확정이 났어요. 이 때 초고는 다 넘겨져서, 마지막 교열이었는데 듣자마자 집어넣었어요. 유죄 판결이라고 책에 영원히 기록하기 위해서요. 집요함이 있었죠. 네덜란드에서 아이 키우는 직장인인 백민주화를 불러들이는 건, 악행이거든요.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은 사람에게 인간의 윤리를 져버리는 행동들을 곳곳에서 했어요. 윤서인, 김세의가 했고 강용석이 변론을 맡았어요. 이들이 가장 유명인이기도 하고, 시민 입장에서도 화가 나서 꼭 남기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의 악행에 대해서요.

 

살수 요원 이름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 많이 했어요. 재판과정을 보며 확신했죠. 넣어야겠구나. 제 지인들도 살수 요원이 무슨 죄가 있나 명령한 사람이 죄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재판을 봤더니 그게 아닌 거죠. 이 두 명이 얼마나 뻔뻔한가를 알았고 이 두 명이 처벌을 받아야지만 부당한 명령에 거절할 수 있는 제도, 문화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이 두 명이 처벌받아야겠구나, 확신했어요.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문제를 묻고 싶었어요. 재판 과정에서 살수 요원이 자기 가족이 알까 봐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피해자 가족이 들으면 모욕감이 들었을 거예요. 두 사람의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찰 제도의 뻔뻔함이기도 하죠.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넣었죠.

 

 

쌀값은 우리가 농민, 농촌을 대하는 태도

 

두 번째 주제가 농촌, 농민입니다.

 

보성 사람 백남기 농민이 왜 서울에 왔나에 집중했습니다. 그 분은 지역을 지키고, 중앙으로 안 오려고 노력했던 분이에요. 그날만큼은 왜 왔는지 알 거 같아요. 쌀값이죠. 쌀값은 농촌, 농민을 바라보는 관점이잖아요. 물가 상승률만큼도 오르면 안 된다, 그냥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결국에는 농민이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러 오셨어요. 고향을 지키지 못하고요. 쌀값을 해결하지 않으면 반복될 문제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에요.

 

지금 쌀값이 한 공기로 치면 200원인가요?

 

네. 지금 목표값을 한 가마니 19만 6천 원으로 해서 국회에서 협상하려 시작하는데, 이렇게 올라도 밥 한 공기로 나누면 230원이에요. 커피 자판기 한 잔이 300원이거든요? 그 돈으로 시중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럼에도 쌀값은 여전히 200원대에 묶으려 하는 거죠. 민중총궐기 대회 때 농민 구호가 쌀값 21만 원을 보장하라였는데요. 농민이 갑자기 무리한 주장을 한 게 아니에요. 박근혜 이명박 정권에서도 후보 시절에는 농민 표가 필요하니까 그때는 23만 원까지 하겠다고 공약을 내기도 했어요. 안 지켰죠. 2015년 11월 당시 쌀값이 15~17만 원, 전라도는 14만 원까지 주저 앉았어요. 심각성을 알아서 백남기 농민도 오랜만에 서울로 와서 집회 참석하신 건데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21만 원 도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아직 이 싸움이 끝난 게 아니죠. 완벽한 미완의 싸움인 거죠. 농민 주장이 한 공기에 300원을 보장해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가계에 부담이 될까요? 정치만 탓할 순 없어요. 쌀값은 농촌 농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기도 하거든요. 농촌 농민은 능력이 없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온 게 우리 역사니까요. 이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우리에게 성찰, 반성을 요청하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욕, 악플도 많이 달리더라고요. 

 

쌀값이 중요한 게, 농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이유도 있겠죠?

 

책 말미의 인터뷰이 김영호 전농 전 의장님과 이야기하다 결론 내렸는데, 쌀값을 지킨다는 의미가 농촌을 지킨다는 거예요. 전라도가 농도이고, 최대 곡창 지대죠. 쌀값이 보장 안 되니까 다른 환금 작물을 심어요. 시설재배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면 경기도 북부권 양평 딸기 농가는 주저 앉을 수밖에 없어요. 전라도가 따뜻하고 지대가 싸기 때문에 생산비가 낮아요. 양평 농가는 애써서 시설 갖춰 놨는데, 내부 경쟁에서 밀리겠죠. 이렇게 쌀값 보장이 농촌 자체를 지키는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생태적 관점에서 시설 재배가 늘어나는 건 좋지 않거든요. 순환 구조가 깨지잖아요. 모가 자라고, 들판에 푸른 색이 넘치고, 가을에는 황금 들판이 있고, 이런 장면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순기능이 있어요. 그런 면까지 생각하면, 쌀값은 지탱시켜줘야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안 먹으면 북한에 보내도 되고, 가난한 나라에 보내도 되고요. 지혜를 발휘하면 되는데 무조건 안 된다는 건 안 하겠다는 거죠.

 

 

기억해야 할 사람들

 

마지막 주제가 연대인 것 같습니다. 이한빛 PD를 이야기하셨어요. 

 

부친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세월호 가족, 이용관 선생님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인데, 이분들이 손을 잡는 장면이 드라마틱했어요. 아직 내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죠. 이한빛, 백남기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본 폭력과 국가 폭력이거든요. 국가, 자본이 딱 붙은 나라가 한국이죠. 한국형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 노동자를 억압하는 방식이잖아요. 이한빛 의식이나 백남기 의식이 비슷하다 생각해요.

 

이 책이 평전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자면, 주인공이 백남기 농민이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인데요. 이런 구성을 취한 이유가 궁금해요.

 

일단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백남기 어르신 사모님, 따님이 아버지 생전이면 이런 작업을 허락하지 않을 분이라고요. 이름 없이 살다가 고향 산천에 묻히려 한 분이죠. 유족의 확신이고, 그 뜻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책에는 함께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세월호 가족이나 이한빛 PD 부친처럼 가장 슬픈 사람이 슬픔을 알아보고 손을 잡은 데 감명이라면 감명이고 저도 울림이 있어서 그렇게 한 거고요. 어쨌든 저도 씨앗을 뿌리고 싶었던 거죠. 맨 처음에 젊은 이종혁 농민을 넣은 건, 족쇄입니다. 이제 도망 못 간다, 계속 농사 짓고 있어야 한다, 농담처럼 이야기했죠. 그런 작은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국내에 나온 평전은 6개월 정도에 걸쳐, 다 읽어본 거 같아요. 영웅처럼, 원래 비범한 사람처럼 묘사한 책도 많은데, 제 취향에는 안 맞았어요. 실무자를 많이 담으려 했어요. 우리사회가 데모쟁이에 대해 지닌 편견이 있잖아요. 촛불혁명이 이뤄졌다면, 뒤에 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민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었어요. 큰 어르신들은 섭섭해 했죠. 이런 책을 준비 중이라면 당연히 자신에게 갈 거지, 했을 텐데 저는 처음부터 투쟁본부에 명망가는 안 찾아간다고 이야기했어요. 그건 제 의도와 부합하지 않는다고요. 인터뷰하러 가면, “나를요? 내가 왜요?” 하는 사람을 부러 선정했죠. 그분들이 막상 인터뷰하면 말 안 시키면 큰일 날 뻔했겠다 싶을 정도로 사안에 대해 잘 이야기하셨고요.

 

보통 고인 기억하는 글에서는 미담을 많이 넣지 않나요. 그런 이야기도 거의 없었죠.

 

일부러 안 넣었어요. 일단 가족들이 괴로워했었어요. 이 싸움 통해서 사생활이 너무 과하게 드러났거든요. 살림살이, 부엌까지. 언론의 폭력이죠. 허락 안 받고 촬영해갔고요.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이든 한 사람의 삶은 복잡한데요. 제가 직접 뵌 분도 아닌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책에 넣어서 문자로 남긴다는 게 저는 책임질 수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소위 말하는 공생활에 대해서만 썼어요. 에피소드는 많이 들었죠. 워낙 자상하고 성품이 훌륭한 분이거든요. 평전 작업이 나온다면 그런 이야기도 실리겠죠.

 

마지막에는 농민 열사 분들의 삶을 수록했습니다.

 

책 쓸 때부터 염두에 두었어요. 여력이 되면 영정도 넣고 싶었지만 소실된 자료가 많았어요. 늘 마음이 아팠던 게, 생각보다 너무 많이 돌아가셨어요. 홍덕표, 이경해 이 분 정도를 기억하는데, 활동하다 지역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신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리드문에 농민 열사 분들 중에는 유난히 불의의 사고, 교통사고가 많다고 썼죠. 이건 당연히 농촌 인프라 문제거든요. 얼마 전에 충남 농민회 오랫동안 활동하셨던 회장님도 심근경색이 왔는데, 응급차가 너무 늦게 왔어요. 도시에서는 무난하게 넘어갈 일이었는데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계세요. 저는 농촌 다니다, 마음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는데요. 바로 아기를 볼 때입니다. 밤에 열 나거나 아프면, 어떡해요. 이런 시스템에 대해 우리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농촌은 소멸해버릴 거라 생각하는 거 같아요. 여태까지 이렇게 많은 농민이 죽었다, 생존의 권리를 요청했는데 죽임을 당한 거다, 이 책에서 강하게 드러내고 싶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잠시 등장했어요.

 

제가 집요해요. 기록자로서 남겨야 할 게 미담보다는 악행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좋은 사람은 빨리 까먹어요. 그래서 사회학 하는 게 서글프죠. 좋은 이야기를 쓴 게 거의 없잖아요. 제 원칙은 이렇습니다. 악인의 기록은 반드시 남긴다, 코믹하게 남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읽게 만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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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희망은 있을까

 

우리사회가 맛집, 요리를 향한 관심은 높은데 그 근간인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관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괴리를 어떻게 보시나요.

 

더 심각해지고 있죠. 남자 고등학생 선호도 직업에 셰프가 드디어 올라왔어요. 얼마 전까지는 야구 선수, 연예인, 법관, 공무원 이렇잖아요. 여기에 셰프가 등장했다는 데 굉장히 놀랐어요. 청소년이 환상을 보는 거죠. 요리를 하면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얻을 수 있겠다? 완벽한 판타지죠. 어느 나라든 먹는 거에 관심은 많아요. 우리나라도 그렇고요. 담양을 검색어로 치면 연관 검색어가 담양 맛집이 나오잖아요. 온 국민 관심사가 맛집인데, 첫 출발인 농업 문제에는 관심 없는 사회가 우리사회고, 그게 우리 삶을 모순으로 이끌죠. 잘 먹고 건강하고 싶은데 농촌은 버리는 거죠. 이게 전혀 안 맞거든요. 저는 이 괴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만, 희망도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치킨전』같은 책을 쓴 거죠. 4년 전 인터뷰 때도 치킨은 끝났고, 삼겹살을 보고 있다, 50퍼센트 이상 기업이 양돈에 진출했다고 말했는데요. 저의 답답한 운명인지 소임인지, 희망 없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네요. 어쩔 수 없죠. 제가 정책을 짜는 사람은 아니니, 일단 적어 놓는 걸로 농촌 농민 보기에 덜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 제목에 들어간 ‘씨앗’이 백남기 농민이 뿌린 우리 밀 씨앗이기도 하죠? 여기에도 의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밀이 거의 절멸될 뻔했습니다. 미국산 밀이 흔하니까, 국가에서 수매를 안 해줬죠. 그런데 농민들이 소실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인간이 못 만드는 게 딱 하나가 있는데, 바로 씨앗이거든요. 씨앗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농사입니다. 가톨릭 농민회, 한살림, 우리밀살리기 운동본부 이런 쪽에서 밀을 살리려고 엄청 애를 썼어요. 이미 씨앗이 소실된 수준에서, 백남기 농민은 전라도 보성에서 열심히 채집하신 거죠. 동네 어르신이 도시락에 간직했던 걸 달라고 해서 얻었는데, 사람들이 농사를 안 지으니까 밀농사 짓는 방법도 다 까먹었어요.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복원 아닌 복원을 했는데, 지금도 자급율이 채 1퍼센트도 안 되어요. 수매를 안 해주니까요. 선거 때마다 대선 후보들이 자급율을 10퍼센트 올리겠다, 이렇게 이야기는 해요. 우리밀이라고 하니 이미지가 좋잖아요. 그런데 전혀 수매 안 해 주고 소비량 떨어지니까, 또다시 한 번 그런 위기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올해 보리 생산량이 늘었어요. 하곡, 하면 밀과 보리인데 밀값이 보장 안 되니 다 보리로 가는 거죠. 그러면 보리값이 폭락하죠. 이 악순환의 꼬리를 끊는 게 정치거든요. 개별 소비자에게 맡길 수 없는 거고. 정책적으로 우리 밀 소비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를 모아야 하는데, 그런 일조차 하지 않고 있죠.

 

한국 농업에도 정책이 있지 않나요.

 

한국은 소농(가족농) 지향점이 거의 없죠. 대농 중심으로 가는 거고, 옳지 않죠. 저는 공간적 개념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세먼지 많고, 답답한데 건물만 들어서면 끔찍하지 않겠어요? 그야말로 아마겟돈인데요. 생태적 상상력을 높이는 방법이 필요해요. 농촌이 지켜져야 되니까 농민이 필요한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겠죠. 오로지 먹거리 문제, 푸드 이런 것만이 아니라 국토라는 공간이 지켜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농촌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고향세 도입 이야기가 나오는데, 잘 안 될 거 같아요. 우리나라는 이제 고향이 없으니까요. 농촌 기억을 가진 세대가 없는데, 내 세금이 지역으로 간다는 게 용납이 안 되겠죠.

 

농업 선진국은 어떤가요. 농업 이야기 나오면, 우리도 선진화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 나오잖아요.

 

거기도 보조금 싸움이죠. 미국도, 유럽도 다 보조금으로 농사 지어요. 마치 거기는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아는데, 전혀 안 그렇거든요. 특히 쌀은 전세계에서 우리 농민이 젤 잘 짓는대요.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좋아요. 생산성이 없는 게 아니에요. 그런 건 전혀 안 알려져 있고, 미국 농민이 혁신적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보조금 농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고민으로 끌고 가는 건데, 확실히 농촌 문제는 개별 해결은 어려워요. 공공성, 공공 지향에 대한 아이디어에 대해 지지를 해줘야 할 거 같아요. 최소한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 책은 협박하는 의도도 있어요. 농촌 망하면 우리가 죽는다는 협박이죠. 심각성을 잘 몰라요. 원론적인 말인데, 농민에 대한 직군, 농업이라는 산업, 농촌이라는 공간을 함께 해나가지 않는다면 우리 삶을 결국 위협할 거거든요. 더 많은 오염, 오염된 먹거리를 어떻게 견딜 거예요? 아무리 좋은 수입산 유기농도 국내에서 농약 치고 재배한 식품보다 안전하지 않거든요. 그 착각을 박살내야 합니다. 농산물은 신선도의 문제인데, 멀리서 온 게 결코 우리에게 이득일 리가 없어요. 후손들에게 초록색도 좀 보여줘야겠죠. 농촌을 지켜야 하는 데는 정말 명쾌한 이유가 있어요. 따비 출판사가 농업, 농촌 이야기, 이렇게 돈 안 되는 이야기를 펴내고 있는데요. 저는 따비가 우리나라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필요하고요.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네요.

 

다음 책은 어떤 소재로 준비하시나요.

 

지금 하다가 멈춘 게 너무 많네요. 이것 저것 건드려서 수습 안 된 게 많아요. 불량 식품 사회사를 준비하다 멈췄는데요. 『대한민국 치킨전』을 쓰면서 자영업이 심각하니, 르포르타주를 구성해보려고 했어요. ‘남양주 만인보’라고요. 멀리 찾지 말고. 우리 동네를 둘러봤죠. 미용실 원장님, 오래된 병원이 새로운 기기에 밀리는 과정, 이런 걸 보고 충격 받았는데요. 그런 걸 담고 싶었어요. 이번 책에서 인터뷰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배운 걸 잘 써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한국 자영업 문제에 천착해보고 싶어요.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정은정 저/윤성희 사진 | 따비
국가폭력에 희생되었으나 오로지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던 백남기 농민의 삶을 기리고, 그의 뜻을 잇기 위해 자신의 마음과 시간과 몸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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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까데호의 음악은 ‘메뉴판에 없는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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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데호(Cadejo)의 음악은 자연스럽다. 소울과 펑크(Funk), 재즈, 블루스, 힙합을 유연히 왕래하며 그 리듬 속 짜임새 있는 구조와 선 굵은 멜로디, 거칠게 몰아치는 힘을 발산한다. 오랜 시간 인디 씬에서 각자 활동해온 이 베테랑 뮤지션들은 멜로디와 리듬으로 대화를 건네며, 각각 개성을 어필하면서도 평화로운 공존을 이뤄낸다. 첫 앨범 <Mixtape>을 발매한 지 어언 6개월, 10월의 마지막 날 홍대 벨로주에서 공연을 마치고 맥주 한 병과 함께 여운을 즐기는 까데호 멤버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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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기고와 함께 새 싱글 '옆에'를 발표했다. 공연 중 정규앨범도 준비하고 있다 하고. 근황을 들려줄 수 있나.

 

태훈 : 최근 근황은 딱 그렇게 정리할 수 있다. 12월에 새 싱글을 준비 중이고,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상반기 안에 정규앨범을 발표하기 위해 합주를 하고 있다. 공연도 매주 한다.

 

까데호는 각자 활동하던 세 멤버가 뭉친 밴드다. 각 멤버들의 경력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태훈 : 펑크밴드 펑카프릭 부스터(Funkafric Booster)로 시작해서 세컨 세션이란 팀을 오래 했고, 화분이라는 삼바 팀과 사이키델릭 밴드 헬리비전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규철이를 알게 됐고, 규철이가 재호와도 친해서 작년 재즈 페스티벌을 계기로 연을 맺게 됐다. 재호와는 오복성이라는 팀으로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규철 : 쟈니 로얄로부터 출발했다. 그전에 비행선이란 팀도 있었는데 그 팀은 금방 없어졌다. 김오키, 서사무엘과도 같이 활동했다. 재호와는 학교 1년 선배인데 15년째 같이 음악을 하고 있다. 밴드는 태훈이만큼 많이는 못한 것 같다.

 

재호 : 규철이랑은 20~21살 때 처음 만났고 누트립(nuTrip)이라는 팀에서 10년 정도 호흡을 맞췄다. 태훈이와는 홍대 공연하면서 자주 마주치던 사이였다. 서사무엘 밴드도 규철이와 제가 먼저 하고 있다가 태훈이가 합류하고 나서 사정이 있어 나갔다. 제대 후에는 레게 음악을 많이 했다. 소울 스테디 로커스, 윈디 시티에서 활동했다.

 

셋의 합이 잘 맞아서 팀 결성 전부터 활동을 같이 했는지가 궁금했다.


규철 : 태훈이랑은 시작한 곳이 많이 달라서 계속 몰랐다. 10년 넘도록 몰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태훈 : 그래도 오며 가며 얼굴은 몇 번 봤다. 홍대 클럽에서 꽤 자주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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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의 기타를 세컨 세션 시절의 블루스와 재즈 스타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까데호에서는 그때보다 에너지를 더 영글었다고 해야 하나. 톤이 관능적으로 꿈틀거린다.


태훈 : 밴드를 오래 하다 보니 기존에 거쳐 온 밴드들의 특성이 융합된 것 같다. 2012년 세컨 세션 첫 앨범이 나올 때만 해도 재즈에 꽂혀 있었고 재즈적인 소울 펑크(Funk)를 추구했기에 어려운 편성도 쓰고 솔로를 했다. 그러던 것이 헬리비전에선 좀 더 자유로워지고, 화분에서는 삼바의 팝 멜로디를 더하면서 지금 같은 사운드가 나오는 것 같다.

 

기타 연주 시 페달을 쓰지 않는 것도 그렇고, 요즘 씬에서 듣기 힘든 톤이다.


태훈 : 페달을 굉장히 많이 쓰다가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라이브 무대에서 몸도 많이 움직이고 눈을 감고 연주해서 이펙트보다는 연주를 더 연습하자는 취지였는데 오히려 생톤의 매력에 중독된 것 같다.


재호 : 음악 씬에서 가장 두꺼운 줄을 쓴다. 그 게이지는 어디서도 못 봤다.


태훈 : 기타라는 악기는 서스테인도 짧고, 한번 놓치면 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표현하기 어려운 악기라 생각한다. 기타의 최대치를 뽑아내기 위해 그런 부분에 꽂히는 것 같다. 도 닦듯이. (웃음)

 

기타가 메인 멜로디를 차지하는데 굉장히 직관적으로 잘 들린다. 주로 멜로디를 짜는 멤버는.


태훈 : 곡마다 다르다. 재호가 들고 와서 내게 "라인 이렇게 쓰자" 하기도 한다.


규철 : 태훈이가 많이 만들긴 한다.


태훈 : 멤버끼리 즉흥 연주를 하면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

 

<Mixtape>은 보컬과 연주곡 비중이 2/5 정도다. 보컬 트랙을 넣은 의미가 있나.


태훈 : 일종의 시도다. 개인적으로 활동 과정에서 음악을 (이론적으로) 어렵게 접근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어려운' 음악을 열심히 만들어 왔다. 그러던 중 좀 더 '직관적이고, 편하고, 친절하게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컬 트랙들을 몇 개 만들었다. 의도하기보다는 곡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이다. 예를 들면 리프를 짰는데, 재호가 흥얼거려보니 어울려서 다 같이 보컬 트랙을 넣은 경우가 있겠다.


재호 : 앨범 이름을 '믹스테입'이라 지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콘셉트 생각 말고 일단은 멤버들이 갖고 있는 걸 다 내놓자'는 의미였다 언오피셜로 할지 오피셜로 할지도 고민했고, 의도가 많이 들어간 앨범은 아니다. 멤버들끼리도 첫 만남 아닌가. 각자의 색을 자연스럽게 담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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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베이스라인은 전체적으로 음악을 단단히 받쳐주면서 'Dirty beats'와 'Glue'처럼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자연스러운 작업 과정에서 나온 결과인가.


재호 : '내가 주도해야지'라 나눈 건 아니다. 까데호에서 베이스를 플레이할 땐 멤버들을 조율한다는 느낌으로 연주를 하는데 (웃음), 'Dirty beats' 같은 경우는 좀 가벼워진 느낌이고 'Glue'는 내가 테마를 잡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나온 것 같다.

 

까데호에서 베이스를 연주할 때 중점이 있다면.


재호 : '내가 연주하기 편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 나왔던 태훈이의 톤과 페달 쓰지 않는 소리, 줄 게이지와도 연결되어있다. 최대한 직관적으로 연주한다. 녹음을 할 때도 웬만해서는 더블링을 잘 안 한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레어한 감동,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까데호도 그 날 것의 느낌을 살리려 한다. 그러면서도 편안함은 가져가고, 생각을 줄이는 것을 의도하기도 한다. '레어'보다는 '내추럴'에 가깝다.

 

규철의 드럼으로 넘어가자. 까데호의 내추럴함 속 드럼은 오히려 정격적이다.


재호 : 한국에서 힙합을 제일 잘 치는 것 같다.


규철 : 록 음악을 엄청 좋아했고 힙합은 오래 듣지는 않았다. 드럼도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까데호에서는 정말 모든 걸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서 아무 의도도 안 하고 있다.

 

규칙적인 드럼 비트가 까데호 음악의 판을 깔아준다는 인상을 주는데.


태훈 : 맥락을 잡아준다. 힙합과 펑크(Funk)의 경계에 있는 리듬.


재호 : 규철의 리듬으로부터 출발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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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xtape>을 만들면서 사운드를 참고하거나 영향받은 아티스트가 있나.


규철 : 어려운 질문이다. 너무 많아서. 연주자로는 고등학교 때 랜시드(Rancid)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만 까데호에서의 레퍼런스는 딱히 없는 것 같다.


태훈 : 규철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에서 고무적인 부분이 있었다. 둘이 판 우물의 깊이가 비슷하다는 것. 일일이 뮤지션, 스타일을 말하지 않아도 '그런 거 있잖아' 하면 자연스럽게 연주로 대답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말보다는 연주, 음악으로 들려주는 것이 편하다.

 

수록곡 'Autumn leaves'가 그 자연스러움의 결과로 들린다. 제목을 가리면 유명한 재즈 넘버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것 같다.


태훈 : 앞서 얘기했던 재즈 페스티벌 참여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재즈를 해야 하는데 최대한 재즈 같지 않게 삐딱선을 타보자는 생각이었다.

 

정기고와 함께 발표한 싱글 '옆에'가 가장 최신의 결과물이다. 시티 팝의 느낌도 나는데.


재호 : 우리는 이 곡을 빈티지한 소울 넘버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크루앙빈(Khruangbin) 혹은 시티 팝을 얘기하는 점이 재밌다.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의도를 넣어도 의도한 대로 안 나오는구나... 오히려 안도를 했다.

 

작업 과정에도 정기고가 참여했나.


태훈 : 작곡에 참여는 안 했지만 형을 생각하면서 라인을 만들었다.


규철 : 정기 형을 위한 곡이다.


태훈 : 개인적으로 마빈 게이를 좋아하는데, 언젠가 정기 형과 공연 연습할 때 목을 푼다고 마빈 게이를 부르더라. 너무 똑같이 잘 불러서 소름이 돋았다. '언젠가 꼭 같이 해야겠다'라 다짐했다.

 

VHS 영상을 활용한 복고적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다.


태훈 : 영상을 만드는 믿을만한 친구들이 흔쾌히 도움을 줬다. 올림픽공원에서 영상 찍을 때 정말 더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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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경력은 베테랑이지만 까데호 팀 단위로는 데뷔 1년 차 신인 밴드다. '이 팀으로 이런 음악을 보여주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태훈 : 준비를 많이 하고, 정보를 많이 넣어서 레퍼런스를 알아야 이해가 되는 음악을 해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 이건 나를 위한 음악이지,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데호에서는 최대한 그런 습관을 없애고, 직관적이고, 듣기 편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규철 :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이런 사람도 음악을 하는구나! 딴 거 없다. (웃음)


재호 : 다른 팀 할 때도 항상 하는 생각인데, 내가 맘에 드는 앨범을 갖고 싶다. 내가 아쉬움 없는 작품, 아 이거는 마스터피스다 할 수 있는 작품을 내는 것이 목표다.

 

범용성 넓은 음악을 하는데 같이 작업해보고픈 뮤지션이 있나.


태훈 : 먼저 우리만의 사운드를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재호 : 하고 싶은 분야는 많다.


태훈 : 지금 1집을 만들고 있는데 고민인 게, 어떤 합주할 때는 완전 아프로 펑크(Funk)가 나오고, 어떤 때는 레게가 나오고, 어떤 때는 소울 재즈가 나오고... 너무 분식집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웃음)

 

어떤 장르 어떤 스타일을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까데호의 매력이다. 마지막으로 까데호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태훈 : 메뉴판에 없는 요리! 사람들이 못 먹어본 요리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


규철 : '내가 낸데', '내 건데!' 그런 느낌. 이제 '내 것'을 해 볼 때가 됐다.


재호 : 저도 메뉴판에 없는 요리. 그러나 몸에 좋은 요리다.

 

 

인터뷰 : 김도헌, 조해람
사진 : 이해란(HAERAN)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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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에피톤 프로젝트 “솔직한 감정을 실었는지 항상 고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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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팠고,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른 계절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 프롤로그 중


에피톤 프로젝트는 토이와 015B의 뒤를 잇는 차세정 작곡가의 1인 밴드다. 한희정, 심규선, 선우정아 등의 쟁쟁한 객원보컬과 함께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에피톤 프로젝트는 '봄날, 벚꽃 그리고 너' 등 보컬이 없는 연주곡으로도 유명하다.


『마음속의 단어들』은 에피톤 프로젝트가 동명의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떠났던 런던과 파리의 모습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에세이는 좀 부담스러워요, 인터뷰 전 웃으면서 차세정이 말했다. 에피톤 프로젝트라는 이름과 차세정 사이, 작가라는 호칭과 에세이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하는 그가 있었다.


신비주의는 아니었지만 노출을 꺼리는 편이었다. 에피톤 프로젝트 앨범 뒷면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은, 그의 일상을 담은  『마음속의 단어들』 이 반가울 법 하다. 타지에서 산책하고 곡을 만들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일기장을 훔쳐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감정의 물기’가 어린,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지우고 고쳐 쓴 마음속의 단어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앨범 속 가사와 함께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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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에는 담을 수 없는 텍스트


에피톤 프로젝트 이름으로 낸 첫 에세이에요.

 

에세이라는 단어가 아직 저에게는 좀 무거워요. 개인의 철학이 들어가야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아직은 그 정도의 철학이 없는 사람이라서요. 에세이보다는 경수필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아요. 공연 때 글을 쓴다고 말했던 게 커져서 책을 낸다는 이야기로 전해졌어요. 뱉은 말을 지켜야 하니까 앨범을 준비하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기록을 남기려고 했어요.


<마음 속의 단어들> 전 마지막으로 낸 앨범이 4년 전 <각자의 방>이었어요. 슬럼프에 빠진 기간었을까요? 가벼운 마음으로 썼다고 해도 글을 많이 고쳤을 것 같고요.


음반도 이제 정규로 넉 장째예요. 처음 음반 냈을 때는 그렇게 마음이 무겁진 않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감정을 느끼는 일이 누적되다 보니까 뭘 하나 하더라도 스스로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낸다고 이야기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수정하는 작업이 오래 걸렸어요. 단어 하나가 생각이 안 나면 빈칸으로 놓고 대체할 만한 어휘를 찾고, 고민이 많았죠. 가사 쓸 때도 비슷한 맥락인데, 산문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오해할 여지가 더 많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다못해 표지 고르는 것도 오래 걸렸어요.


파리에서 이병률 시인을 만난 이야기가 나와요. 이병률 시인 소개로 달 출판사와 만나게 됐나요?


여행을 주제로 한 북토크 행사에 이병률 시인과 같이 나온 적이 있어요. 제가 런던으로 갈 때 마침 파리로 가신다고 얘기를 들어서 연락 드렸더니 파리 오스터리츠 역에서부터 기차 타고 오는 방법을 보내주시더라고요. 하루 뵙고 신세를 졌는데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달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출간 소식을 알리는 인스타그램에 ‘일기장을 몰래 보는 기분’이라는 댓글이 달렸어요.


나름 오랜 시간 수정을 해서 초고를 보냈을 때, 출판사에서 사소한 개똥철학이라도 개인의 의견이나 감정이 들어가는 게 좋다고 하셔서 조금 더 개인적인 감정을 넣었어요. 어쨌든 책을 읽는 분들이 음반과 하나의 유기체로, 음반에는 담을 수 없는 텍스트가 담겨 있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댓글처럼, 일기의 담백함이 묻어나오더라고요.


제가 미사여구를 잘 쓰는 사람은 못 돼요. 어차피 방백이니까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어제 북토크를 했었어요.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이 오셔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제가 혼잣말로 살다 보니까 별걸 다 한다고 했었죠. 제가 이런 북토크를 할 사람이 아닌데 평일 저녁에 제 음악을 좋아하고 제 글을 좋아해 주신다는 많은 분이 모인 걸 보니 참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처음 느낌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에서도 계속 사랑이 나오지만, 책 속에서 사랑을 말하면 더 개인적인 일이라고 받아들여지거든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음악과는 다른 결로 드러난 것 같아요.


런던에 스튜디오를 구하고 어떤 날은 비 오는 것만 종일 찍었어요. 멍 때린다고 하죠. 그러다가 착안한 게 있으면 조금씩 적는 거죠. 뭔가가 음악으로 오는지 글로 오는지는 그날의 분위기마다 다른데, 작업하면서 두 개의 텐션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옛 기억을 꺼내서 더듬고 헤집어야 할 때도 있었고, 지금도 사실 괜히 썼나 싶은 부분도 조금 있어요.

 

항상 창작자는 글이든 음악이든 사진이든 표현해낼 방법을 고민하죠.


도구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해요. 글 쓸 때도 기기를 바꾸면서 했었어요. 워드는 호환이 되니까 노트북에서 쓰다가 핸드폰에서 쓰기도 하고요. 특히 음악 쪽은 유행이 빠르거든요. 어쨌든 저는 대중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대중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질문과 논외의 이야기지만 장르적으로 강요당할 때가 있어요. 외부에서 작업이 들어오면 정해진 스타일로 해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스트레스를 힙합이나 EDM을 만들면서 반대로 풀어요. 제 음악은 주로 템포 120 이하의 느린 음악이지만 드럼 머신 같은 장비도 작업실에 놔둬요. 감각을 유지하려고 그런 걸 쓰는 것 같아요. 막상 비트 만들고 나면 제가 랩은 못 하니까 다시 발라드로 오죠. 분위기 전환이랄까요.


슬럼프에 빠져 음악 기기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이번 앨범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예전 느낌으로 가보고 싶었다고요.


한창 장비 병이라고 불리는 증상이 있었어요. 특히 노래가 너무 안 써져서 힘들어할 때 하이 엔드 장비에 대한 집착이 있었죠. 주변 지인이 작업실에 놀러 와서 제가 예전에 만들었던 느낌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의 예전 느낌이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제 처음 느낌을 많이 강조했던 것 같아요.


직접 찍은 사진도 책에 실렸어요.


런던에서 제 몸에 항상 붙어있던 게 카메라였어요. 늘 매고 다녔더니 허리가 안 좋아지기도 했어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를 만들 때는 프라하에서 빈까지 보름 정도 짧은 여행을 했었는데, 항상 여행한 도시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앨범은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의 심화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스튜디오도 구하고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제가 있는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고 노력했어요.


글과 음악과 사진 중에는, 사진이 제일 마음 편한 창작 방법인가요?


글쎄요. 셋 다 녹록하진 않아요. 사진은 막 찍을 순 있는데 만족이 어려운 것 같아요. 잘 찍으시는 분이야 핸드폰으로 찍어도 잘 찍으시겠지만 순간을 담아내는 작업이 너무 어렵고, 모두 만만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비해 자기 기대치가 높은 편인가요? 흔히들 완벽주의라고 불리는 성향이 있나 해서요.


자기 걸 하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긴 여행의 시작>을 내고 아마추어리즘적이라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어요. 그 순간 ‘그럼 네가 해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이 조금 받은 거죠. (웃음) 그때부터 더 기술적인 면으로 파고들게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두고 보자는 마음도 있었고요. 커피를 레드불과 섞어먹어 가면서 엔지니어와 만든 앨범이 <유실물보관소>였어요. 하지만 이번 앨범 만들면서는 그렇게 날을 세우면서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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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이다


책에 은근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많아요. 고구마튀김, 좀비, 단 거 등등요.


까탈스럽죠.


까탈스럽다고 표현하는군요. 저는 호불호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게 많아야 하는데, 싫어하는 게 많다고 적어놨군요. 모난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그런 점을 적어놓은 거죠. 좀비는 정말 끔찍해 해요. 누가 <워킹데드>를 추천해주길래 봤는데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왜 싫어한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냐면, ‘밤은 밤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1은 1이다’라는 문장도 많았거든요. 어떤 개념은 그 단어 그대로 봐야 한다는 마음과, 내가 싫어하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문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이라는 낱말에 이런저런 많은 미사여구를 붙일 수도 있겠죠. 그냥 본질은 사랑인데, 화려한 미사여구를 쓴다거나 붙이고 싶지 않았어요. 제 성격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요. 저는 단순한 게 때로는 명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사랑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조금은 싫었어요. 사랑은 사랑이지 왜 포장하려 하냐는 생각 때문에 그런 문장을 썼던 것 같아요. 사랑은, 사랑이죠.


인터뷰를 힘들어하는 성정도 그와 비슷한 게 아닐까요? 이미 작품으로 이야기했고 그 이후 말을 보태기 힘든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저는 독자들이 더 듣고 싶어 한다고 이해했어요. 음반을 통해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책에 넣으려고 했고, 좋아해주시면 사실은 감사하죠.


흔히 에피톤 프로젝트를 ‘1인 그룹’이라고 표현해요. 요즘은 흔히 1인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에피톤 프로젝트도 그 당시 그런 단어가 없었다뿐이지 1인 크리에이터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그런 성향이 있어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내성적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합주도 하고, 책을 내면서 출판사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는 등 협업이 점점 늘어났잖아요.


지금도 이런 성격이지만 제가 먼저 인사를 받거나 건네야 할 때가 생기고,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녹음실에 가면 한정된 시간 내에서 최대한 집중해서 뭘 해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녹음실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태도를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출판업계 계신 분까지 만나서 일을 하게 됐는데, 열심히 살아야죠. “잘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요.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게 여전히 어색하신가 봐요.


그렇진 않아요. 도움받을 때는 받아야 하죠. 연주자, 조명팀, 영상 팀, 무대 팀과 같이 공연을 하다 보니 배우게 됐어요.


혼자서 작업했던 10년 전과 지금의 환경은 많이 달라졌나요?


회사와 미팅하다가 제가 유튜버가 되어야 할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미디어가 너무 많아지고 세상이 달라졌으니 저도 적응해야 할 텐데, 어떤 식으로 맞춰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요새는 참 번뜩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음악하는 사람으로 아까운 건 크리에이팅이라는 범주에 음악이 흡수될까 봐 아쉬워요. 저는 어쨌든 음악이라는 가치가 소중한데, 환경에 발맞춰 살아야 하면서도 이렇게 재밌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되고요.


책에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담겨 있어요. 음악가는 진심을 전해야 한다고요. 진심이라는 게 뭘까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아마 그냥 알 거예요. 기술로 만든 음악이 있고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있는 대로 끄집어내서 나온 음악이 있어요. 저도 이게 정말 내 감정이 맞아? 솔직한 내 감정이 맞아? 하면서 끄집어져 나오는 감정을 그대로 실었는지 항상 고민해요. 그렇게 감정을 담아 솔직하게 만든 곡이 듣는 분들에게 가장 전달이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에피톤 프로젝트를 떠올리면 ‘감성’의 대표주자예요.


요즘은 ‘걤성’이라고 많이들 하죠. (웃음) 감성을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요. 하지만 이건 시류고 분위기인 것 같아요. 트렌드는 거스를 수가 없잖아요. 저는 요새 사람들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 겁내는 것 같아요. 슬프면 슬프다, 좋으면 좋다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말을 못하는 것 같고요.


자기 감정을 말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으로 대신 울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느껴주시면 감사하죠. 어쨌든 창작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를 영화관에서 보고 펑펑 울었는데, 그 음악이 지금도 들리잖아요. 영혼까지 넣었기 때문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지금까지 들리는 걸 거예요.


작곡하는 사람은 한 곡 정도는 시대에 남는 곡을 만들고 싶어 하죠. 에피톤 프로젝트의 최종목표도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곡을 만드는 것일까요?


최종목표라고 하긴 그렇고, 모든 음악가의 꿈이 아닐까요. 한 세기를 관통하는 곡을 만드는 것?


이번 앨범은 객원 보컬을 쓰지 않고 직접 불렀어요.


본질로 돌아가려는 노력이었죠. 열심히 노래를 부르기는 했는데, 다음번에는 전곡을 다 피처링으로 노래를 할까 싶기도 해요. 음반 하나 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죠.


앨범과 책을 어떻게 듣고 읽어줬으면 하나요?


에피톤 프로젝트 음악을 계속 좋아해 주셨던 분들이 그래도 차세정이 아주 무뎌지지 않았구나, 그래도 아직은 자기 감성과 느낌이 있다고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비록 ‘걤성’으로 불리는 세상일지라도요.


앞으로도 에피톤 프로젝트 이름으로 책이 나올까요?


아뇨. (웃음) 책이 참 어렵더라고요. 음반이랑 같이 나왔는데, 만약 다음에 뭔가 또 쓸 일이 있다면 지금보다 준비 기간이 훨씬 더 길어질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뮤직비디오에 수지 나온 거? 그건 자랑하고 싶네요. (웃음)


 

 

마음속의 단어들에피톤 프로젝트 저 | 달
각자의 마음속에는 어떤 단어들이 머물다 떠나갔으며, 지금은 또 어떤 단어들이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른 척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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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태섭 “근대 이전의 한반도, 남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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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 한(국)남(자)스럽니?’라는 말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한국남자는 몇이나 될까. 뒤이어 따라붙는 질문은 ‘한국 남자 같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통용되고 있으며, 듣는 한국 남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것이다. 질문의 답은  『한국, 남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남성성’이라는 것의 실체, 그것이 생겨나고 공고해진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 남자는 그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이상적인 상을 현실로 구현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언제나 다른 사회적 약자들 특히나 여성의 탓으로 돌려왔다. 사회적으로는 폭력과 억압의 주체이고, 내적으로는 실패와 좌절에 파묻혀 있다”는 것. “곤란한 존재들”로 한국 남자를 규정한 이 이야기의 부제는 ‘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다.

 

남성성을 공격받았다고 느끼는 한국 남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사라졌고, 자신들은 여전히 병역의무를 지고 있으며, 여성들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더 이상 불평등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럼에도 자신들의 노고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등등. 『한국, 남자』는 이들의 목소리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그들의 주장은 무엇이고 근거는 타당한지, 면면히 들여다본다.

 

이를 위해 사회학자 최태섭은 조선 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자의 사회사를 추적했다. 『잉여 사회』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팩트에 기반 한 날카로운 통찰력’은 이번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국내외 연구 결과와 통계 자료를 폭넓게 활용하며 ‘한국의 남성성’의 민낯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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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의 억울함과 ‘상상적 박탈’


이번 책에 대한 남성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책을 읽으신 분들의 반응인지는 확실치 않은데요. 제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페이스북으로 직접 찾아와서 글을 남기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주장이 10년째 똑같아요(웃음).

 

어떤 건가요?


요즘 여자들이 무슨 차별을 받느냐, 왜 군대를 무시하냐, 여자는 왜 당직 안 서고 정수기 물통은 남자만 갈아야 하느냐 같은 거죠.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초 커뮤니티에 이번 책에 대한 기사가 공유됐나 봐요. 저는 직접 보지 못했고 전해 들었는데, 그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대요. ‘저는 아직 군대는 안 갔지만, 군대를 무시하면 안 되죠’라는(웃음). 자주 등장하는 댓글 중에 ‘남자는 돈 버는 기계다’라는 것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돈 버는 기계로 살아본 사람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돈을 버는 기계로 살아봤으면 알 수 있는 디테일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고 들은 건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저렇게 말하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한국의 젊은 남성들 중에는, 아버지 세대가 가장으로서 누렸던 것들을 자신들은 할 수 없음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책에서는 그 전제 자체가 허상이라고 하셨어요.


지금의 30대만 보더라도 집안에서 아빠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리고 한국 남자들이 대부분 아빠랑 안 친하죠. 특히 아버지 세대들이 아들에게 어떤 남성성을 전수해주거나 유대 관계를 맺는 것에 굉장히 서툴렀고요. 딱히 집에서 아빠가 군림하는 모습을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건 있었을 거예요. 엄마가 아빠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서 ‘아빠도 챙겨야지’라고 계속 말하는 거죠. 아마 그런 것 속에 아버지가 있었을 거예요. 물론 1980년대 이전에는 군림하는 아버지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일 하느라 바빠서 부재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그렇게 많이 체감했을까 싶고, 생각해 보면 그것도 만들어진 어떤 것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인데, 그걸 지금의 젊은 세대가 느끼고 있다는 게 이상한 구도인 거죠.

 

“상상적 박탈”이라고 표현하셨죠.


네. 애초에 한국 남성들이 엄청나게 존경 받으면서 가장 노릇을 했던 적이 있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거든요. 맨날 술 먹고 집에서 난동부리는 폭군이었거나, 아니면 돈을 열심히 버느라 대체로 집에 없었죠.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종류의 가정은 한국에 있었던 적이 별로 없는데, 어디에서 그런 원형을 보고서 이야기하는 건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멀리는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셨어요.


사실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었는데(웃음), 하도 전통 타령을 해대니까 ‘대체 전통이 어땠는데?’ 하고 본 거예요. 물론 제가 참조한 건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핵심은 ‘근대 이전에 한반도에 과연 남자라는 것이 있었느냐’는 거예요. 그건 남자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무언가의 존재인 거죠. 대장부나 사대부 같은 말로 불렸던 존재가 있었던 것이고, 그걸 지금의 남자랑 등치시킬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들은 소수의 권력자였으니까요.

 

그렇죠.

 

나머지 남자들은 거기에 동원되는 존재였던 건가요?


동원의 구조는 이후에 더 강화되지만, 어쨌거나 조선 후기에는 사회 지도층끼리 모여서 명예 배틀을 하는 거였죠. ‘나는 생계에는 전혀 관심 없고 글만 읽는다’는 걸 가지고 스웩을 자랑하는, 무능력 배틀 같은 걸 했던 거죠(웃음). 그리고 ‘팩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대체로 왜곡된 팩트를 가지고 와서 주장하는 일이 많거든요. 그래서 팩트 확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료를 쌓아놓고 계속 봤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의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왜요?


출처별로 자료가 다 다르고 정리된 자료가 없는 거예요. 같은 연도에 대한 자료도 서로 숫자가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조금 애를 먹었어요.

 

연구자 분도 그런 상황인데, 일반 대중이 혼란을 겪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데이터를 보면서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언론에서 통계를 소개해줄 때 맥락을 자세하게 같이 알려주면 좋은데, 대체로는 보도 자료에서 부각시킨 부분들을 가지고 와서 선정적인 데이터만 뽑아서 쓰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통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많이 왜곡돼 있죠. 너무 안 믿거나 아예 믿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인 거예요.

 


불공평한 게임


“이 책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고 쓰셨어요. “이미 존경받아 마땅한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이나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들이 세상에 넘쳐나기 때문”이라고요.


그렇죠.

 

이미 좋은 페미니스트 책들이 넘쳐난다면 ‘굳이 이 책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사실 이 책 자체도 이미 페미니스트들이 해놓은 남성성 연구에 많이 기대고 있고요. ‘이렇게 좋은 책들이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써야 될까’라는 생각을 몇 번 하기는 했어요. 또 관련된 주제에 대한 책들이 최근에 나오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이유는, 저 역시 글쟁이 생활을 하면서 계속 이 문제를 고민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도 한 번은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 결과물이 이 책인 거죠.

 

개인적인 고민도 있었다고 하셨죠.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답을 내리기 쉽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작업을 통해서는 그냥 보여준 것이고요. 솔직히 말하면 답이 없어요(웃음). 이걸 느끼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부적절함이라는 게 계속 있는 거거든요. 한국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부적절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미래는 한국 남자에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지금의 ‘한국의 남성성’으로 계속 간다면 미래는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요. 미래를 새롭게 여는 존재는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의 입지적인 상황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고민을 해야 되죠.

 

저자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어떤 건지 궁금한데요. 사실 여기에 ‘남성’이라는 단어를 굳이 붙여야 할까 고민이 돼요. ‘이상적인 인간상’이 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여성상’, ‘남성상’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제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 지향하는 바도 그건데요.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상적인 남자’ 같은 건 없고 불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책 말미에서 소개했듯이 서구에서도 그런 건 무너진 지 오래예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연구가 이미 많았어요. 코넬(R. W. 코넬)의 ‘남성성 이론’이나 그 이전에 모스(조지 L. 모스)가 이야기했던 ‘이상적 남성성’ 의 경우에도, 결국에는 달성되지 않았던 거잖아요. 식민지인으로 태어났던 한국의 남성들에게는 더더욱 달성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건 이후에도 마찬가지 문제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것 자체가 엄청난 협박으로써 사람들의 삶이나 행복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요. 이제는 ‘남성성이라고 불리는 알 수 없는 것’ 말고 ‘어떤 인간에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거부하잖아요. 그건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고 우리가 원하는 바도 아니라고요. 그런데 남성들은 반대예요. 만들어진 ‘이상적 남성상’을 견지하려고 해요. 이유가 뭘까요?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얻는 게 있다고 느끼는 걸까요?


그게 코넬이 이야기했던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죠. 지금 한국에서 가장 최고의 남성성이라고 하면 뭘까요? 돈 많은 사람이죠. 이재용 같은. 그런데 한국에 이재용이 많지는 않잖아요. 단 한 명이잖아요. 어쨌든 능력 있고 돈 많이 벌고 부자인 남자가 결국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는 건데, 그것에 동참함으로써 얻는 부수적인 이득이 있다는 게 코넬의 주장이에요. 이른바 ‘가부장제적 배당금’이라는 건데요. 그런 게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자신이 ‘남성 아닌 다른 존재들’ 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도 결국은 불공평한 게임이에요.

 

불공평한 게임이라고요?


남성성을 수호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은 코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코어에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아무 문제없을 거예요. 심지어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고 해도 문제없겠죠. 그 언저리에서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만 희생되는 거예요. 희생되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인 거죠. 그렇게 해서 지켜낸 남성성의 헤게모니는 결국 남성 내부의 높은 사람들이 다 가져가고요.

 

통사적으로 한국 남자의 역사를 정리해 놓고 보니까 눈에 띄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 중에 하나가 생계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되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강화된다는 거예요.


그렇죠. 최근의 흐름도 경제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당대의 남자들이 겪게 되는 결핍이나 가난 같은 문제들을 두고 마치 남자들만 엄청 상처 받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죠. 그 안에서도 착취 같은 것들이 계속 벌어져왔다는 게 사실이고요. IMF 때도 그랬고 국가적 환란이 있을 때마다 그랬죠.

 

책에서 제시하신 통계를 보면, 경제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생계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의 비율도 높아졌잖아요. 그럼에도 남성들만 희생된 것처럼 부각됐어요.

 

맞아요. 그 흐름이 이른바 IMF 이후에 나타났던 ‘기 살리기 프로젝트’라든지 고개 숙인 가장에 대한 동정론이죠. 당시에 유행했던 소설들도 『아버지』나  『가시고기』처럼 부정에 갑자기 주목하는 것들이었고요. 그 소설들의 플롯을 보면, 가족은 몰라주는 아버지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젊은 여성이 등장해요. 그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1990년대 초반에는 풍요 속에서 변화를 모색했던 시기가 있었던 거고, 군사적인 문화나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도 계속 있어 왔는데요. 그게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까지 가기 전에 IMF가 터지면서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식으로 가버리게 됐죠.

 

최근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학습에 있어서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뒤처지는 게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요?


네, 전 세계적으로 남학생들의 학습부진이 나타나고 있는데 오히려 선진국에서 그런 것 같아요.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죠. 해나 로진이라는 저널리스트는 미국의 경우 하층 경제도 여성 위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가모장제가 출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남자문제의 시대』라는 책을 쓴 다가 후토시라는 사회학자는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요. 일본이 훨씬 더 성차별적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한국도 비슷한 거죠. IMF 때 가장 먼저 잘려나간 사람들이 젊은 여성이었다는 건 굉장히 시사적인 부분이잖아요. 성차별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경제의 실질적인 변화로 나타나는 데에도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거죠.

 

젊은 여성들을 가장 먼저 해고하면서 내세웠던 근거도 ‘가장 이론’이겠죠. ‘그래도 너희는 책임져야 할 처자식은 없잖아’라는.


그렇죠. 그리고 ‘너희들은 시집가면 되잖아’라는 거였겠죠.

 

그만큼 ‘가장’에 대한 신화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일 거예요.


동시에, 국가 자체가 정상 가족이라는 걸 통치의 기본 단위로 두고 정책을 만들다 보니까 그쪽으로 쏠려 있는 면도 분명히 있어요. 경제적인 문제를 가족이라는 단위 안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되고, 국가도 그 가족이라는 단위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그런 정상 가족을 구성하지 못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탈락시켜내는 구조가 있어요. 이제는 약간 이성애 파업 시대잖아요. 출산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결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절반이 안 돼요. 사람들은 이미 엄청나게 달라졌는데, 여전히 국가나 제도가 그걸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게 단순힌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고, 국가 자체를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가져올 거라고 봐요. 계속 가구 단위로 세금을 걷고 지원하면, 복지도 조세도 완전히 다 헝클어질 거거든요. 새로운 방식의 가족 구성권이나 1인 가구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적 고려가 없으면 유지 자체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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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되기 싫은 남자들 주저앉히는 사회


앞서 ‘남학생들의 학습부진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 남성이 여성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거라고 보세요?


적어도 20대 이전까지는 남자들이 계속 져요. 서른 넘어가면서부터는 확 차이가 나는데, 20대 이전까지는 취업률이나 대학진학률도 적고요. 여전히 최상위 1%에는 남학생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학교 성적이나 내신에서는 계속 져요. 적어도 그건 있는 거죠. ‘요즘 세상에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아’라고 말하는 남성들의 경우, 거기에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거예요.

 

20대까지는 남성이 여자한테 지는 경우가 많지만 30대 이후에는 달라진다고 하셨어요. 이유가 뭔가요?


기본적으로는 학업에서 밀리는 것도 있는데요. 확실히 군복무 때문에 지연되는 게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대기 시간까지 포함하면 군복무에 2년에서 3년 정도가 걸리는데, 어쨌거나 그 기간 동안 사회에서 배제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취업 연령이 여성에 비해서 늦을 수밖에 없고요. 요즘에는 어학연수나 다른 이유로 휴학하는 남자들도 많으니까 30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죠. 그러면 30대부터 차이가 나는 거예요.

 

취업이나 승진 과정에서는 남성들이 혜택을 보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그렇죠. 여전히 호봉이나 승진 문제에 있어서 그렇고, 특히 임금 격차 문제가 그래요. 임금 격차를 보면 20대에서 제일 낮거든요. 그런데 30대 넘어가면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해요. 그래도 30대에는 70~80% 정도까지 되는데, 4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차이가 확 벌어지죠. 그때 남자들이 돈을 제일 많이 벌 때인데 여성들은 오히려 임금이 확 떨어지기 시작해요. 경력단절하고 똑같이 가는 거죠. 여전히 임금격차 그래프를 그려보면 여성들이 돈도 많이 못 벌고 취업률도 낮은 상황이에요.

 

‘2000년대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젠더 전쟁’에 대해서도 다루셨어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흥미로운 사실은, 인터넷 공간이 ‘남초 영역’이 되었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는 책에서 권김현영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건데요. 초창기 PC통신에서도 불링이나 성차별적 발언이 있었지만, 거기에서는 그래도 싸울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졌다는 거죠. 권김현영 선생님 표현에 의하면 인터넷의 많은 기획들이 여성을 ‘콘텐츠화’ 했다고 해요. 여성 자체가 콘텐츠가 되어버렸고, 여성들이 인터넷을 경험하면서 그런 종류의 성차별 혹은 성폭력에 계속 노출됐던 거죠. 군가산점 논쟁 이후에도 해당 학생들이나 그걸 옹호했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신상을 털어서 성인 사이트에 게재했잖아요. 그런 종류의 공격이 계속 있었죠. 사실 인터넷 이용률을 보면 남녀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남초 영역’이 된 걸까요?


그런데 여성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거죠.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는 익명이거나 회원제로 운영되고, 오픈되어 있고 떠들썩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은 거의 다 남초 커뮤니티예요. 지금도 웹 순위를 보면 거의 다 남초 커뮤니티이고요.

 

‘침묵의 나선 이론’이 떠오르네요. 침묵하기 시작하면 더 소리가 없어지는 거죠.


그렇죠. 그 사람들이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메갈리아 때 보게 된 거예요. 사실은 다 숨어서 활동하거나 혹은 남자인 척하면서 커뮤니티에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생각으로 나온 거고, 그 사람들을 봤더니 인터넷 공간의 문법을 완벽하게 체득하고 있었던 거죠.

 

‘나는 한남이 되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남성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나요?


저에게 질문하시기 전에 책을 먼저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웃음). 이미 책에 다 써놨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개관적으로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오늘의 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조금씩 해나가는 방식밖에는 없지 않을까요.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또 그렇게 다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사회가 주저앉히는 경우가 많아요. 하다못해 명절날 부엌일 하러 들어가면, 부엌에 계신 여자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하시잖아요. 그런 것처럼 기존의 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계속 주저앉히는 면들이 많은데요. 그거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거기에 너무 강직하게 대하면 사람이 부러져버리니까요. 그러지 않고 자신도 지키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고민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남성의 경우에는, ‘한국의 남성성’에 반대해도 적극적으로 발언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외되고 배제되는 게 두려워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러면서 동조 아닌 동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항상 그렇잖아요. 목소리 크고 무례한 사람들 몇 명이 있고 나머지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거잖아요. 어느 집단을 가나 그런 식이고요. 거기에서 저항하거나 벗어나는 사람들한테는 불이익이 돌아가기도 하고... 사실 저한테는 군대가 그런 곳이었어요. 사실은 그 안에서 굉장히 타협을 많이 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내가 군대를 바꾸겠어’라는 생각은 사실 그 안에 들어가면 하지 못하거든요. 개개인이 굉장히 무능해지고 의미 없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런 데에 가면 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운 일이 돼버리죠.

 

그런 개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도 그걸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개개인이 다 바뀌는 게 전체를 바꾸는 일이 되겠지만, 그 전에 구조적인 접근들이 선행되고 어떤 기반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행동하는 게 더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어두운 미래의 서막 열게 될까


군대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할 때,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 이해는 되세요?

 

일단 전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까요.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죠. 다들 군복무에 대해서 느끼는 경험은 ‘아깝다’일 거예요. 그 시간이 아까운 거죠. 군대에 가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그 시간 동안 뭔가 생산적인 일도 하지 못하는 게, 그냥 대기해야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그런데 보상체계를 만들어놓지 않은 건 박정희나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국가에 조금 더 제대로 된 보상체계를 마련하라든지, 혹은 군복무에서 조금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든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되잖아요.

 

하지만 그런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죠?


군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신분 자체가 민간인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굉장히 고초를 겪어요. 그걸 경험했던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해주면 좋은데, 오히려 군내의 인권이나 복지 개선을 위해서 뭘 한다고 하면 ‘이게 군대냐, 애들을 더 빡세게 굴려야지’라는 식의 댓글을 달거든요. 군 복무 기간 단축한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 3년으로 늘려야지’ 하고요. 이제 자신하고는 관계없으니까 하는 농담인데, 그래서 안 바뀌게 되죠.

 

그건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과시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요즘은 정말 편해진 거야’라고 하잖아요.


그렇기도 하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저는 아직 군대를 안 갔지만, 군대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식의 담론들이 인터넷이 흔히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심리일까요?


사실은 두려운 거죠, 군복무가. 앞으로 나에게 닥칠 일이 뭔지 알 수 없으니까 두려운 거고요. 어쨌거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까, 어떻게든 정당화 해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 같은 게 있는 거죠.

 

‘내가 겪어야 할 두려운 일인데, 그에 대한 보상까지 전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건가요?


그렇죠. 정당화 기제가 굉장히 큰 것 같아요. 특히 군 생활을 정말 힘들게 한 사람들, 따돌림을 당했거나 폭력에 희생됐던 사람들 중에서 그런 거에 되게 열 올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사실은 다 국가가 보상해야 되는 문제이고 국가가 군복무 제도를 합리화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고요.

 

국가를 상대로 개선을 요구하지 않고 여성을 원망하는 이유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죠. 그리고 군 가산점 이야기를 10년째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워낙 공무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안 되는 거거든요. 이미 헌재에서 판결을 내린 게, 그것 자체가 군복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무담임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였잖아요. 군 가산점을 통해서 군복무자들에게 보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불평등을 낳게 된다는 이야기죠. 군 가산점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 중 누구도 그 논리를 반박한 적이 없어요. 그러면 이제 버려야죠. 게다가 그게 모든 군복무자들에 대한 보상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이제 다른 뭔가를 찾아야죠. 군복무를 더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문제에 있어서 계속 앞장섰던 사람들이 군필자가 아니었다는 건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 사람들에 의해서 군필자들이 지금의 혜택을 보고 있는 건데, 그 사람들한테 고마워하기는커녕 맨날 ‘군대도 안 갔으면서’ 하면서 욕만 하는 게 아이러니하죠.

 

이번 책을 쓰시면서 새로운 질문들이 생겼다고 쓰셨어요. 그 중 하나가 ‘남자의 성욕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라면서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남자의 성욕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하고, 동시에 여성을 완전히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세요?


그렇죠. 그런데 관대한 동시에 아무것도 안 가르쳐줘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거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타인과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10대 같은 경우에는 남자에게도 금지하고 있잖아요. 되게 이중적이죠. 금지와 지나친 허용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굉장히 뒤틀려있어요.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성욕은 정상 가족에서 부부의 성욕, 그것도 남편의 성욕밖에 없죠. 그런데 실제의 성욕은 그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연령과 방식으로 폭발하고 있고, 그것들은 어떤 공식적인 방식으로도 다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한 방식으로 나가게 되는 거죠.

 

책에서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남자 이야기를 살펴보셨잖아요. 나중에 누군가 『한국, 남자』  같은 책을 쓴다면, 지금의 시기는 어떻게 기록될까요?


엄청난 페미니즘의 물결과 엄청난 백래시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시기로 기록하겠죠. 사회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로 기록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단순히 백래시만 있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당위가 계속해서 찾아오고 있잖아요. 관계만 변하는 게 아니라 산업구조, 경제도 변하고 있고요. 이 기회를 잘 잡는다면 단순히 지나간 에피소드 정도로 ‘예전에 이런 시기가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시기가 될 것 같아요. 어두운 미래의 서막을 여는 시기로 기록되겠죠.

 

지금 우리는 겪어야 하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고, 어쩌면 잘 지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어쨌든 겪어야 될 일이 터진 것이고, 이번에는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은 시기이니까요. 물론 일부 너무 격화되는 측면이 있고, 상호간의 대화가 아니라 단절로 가는 면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활발하다는 것 자체에는 여전히 희망을 걸어볼 만한 지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남자최태섭 저 | 은행나무
가부장제 질서 아래서 성별의 꼬리표가 규정짓는 바를 이해하지 않는 이상 성별 질서의 타파는 어렵다. 여성에 관한 논의는 이미 많으니, 이제 남성성에 대해 돌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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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이슬아, 호언장담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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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청탁하지 않아서, 매일 글을 쓴 사람이 있다. 1992년생 작가 이슬아. 학자금 대출 2천 5백 만원을 갚기 위해 <일간 이슬아> 수필 연재를 기획. 2018년 2월부터 6개월간 SNS로 구독자를 모집해 1주일에 5편의 글을 전송했다. 매일 밤, 자정이 될 무렵이면 구독자들은 메일을 보내왔다. “12시 정각에 글 보내실 거죠?”, “오늘도 설마 지각하는 거 아니죠?” 매일 용기를 내서 글을 썼다. 과거의 이슬아를 가공해서 미래의 이슬아에게 편지를 쓰듯. 누구에게는 수필로 누구에게는 소설로 읽히지만 현재의 이슬아는 다짐한다. “독자가 건네는 말에 쉽게 행복해지거나 쉽게 불행해지지 않도록 튼튼해지고 싶다”고. 첫 만화 에세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와 독립 출판물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동시에 출간한 ‘셀프 연재 노동자’ 이슬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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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기쁘거나 슬프지 말자

 

구독자를 모집하다가 저자가 된 지금, 기분이 어때요?

 

책을 낸다는 일을 너무 고대해서 ‘드디어’ 라는 느낌이었는데요. 아직도 너무 얼떨떨하고요. 제가 진짜 책을 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간 출간 제안을 많이 받으셨죠? 웬만한 출판사에서 모두 눈독 들인 저자라고 들었어요.


종종 기획안을 받았는데요. 제가 쓰긴 너무 어려운 주제가 많았어요.

 

이를테면요?


자유분방, 솔직당당, 발칙한 20대.

 

아.. 부담스러웠겠어요.


두려운 카피였어요. <한겨레21>에 ‘연애인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스스로를 ‘연애인’이라고 명명했으니 제 실수이긴 한데요. 자유분방, 당당 같은 타이틀은 피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그렇지 않기도 하고요. 연애, 사랑 이야기를 쓰는 건 사실이지만 20대를 대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두 책이 동시에 나와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려웠고 실수도 많았지만 재밌는 점도 많았어요.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연결되는지를 직접 경험했으니까요. 출판 전문가가 있는 이유도 정확히 알게 됐고요. 앞으로 웬만하면 출판사랑 계속 하고 싶어요. (웃음) 두 책의 시기가 겹쳐진 건 10월에 열린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에 『일간 이슬아 수필집』으로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원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가 먼저 나올 예정이었어요.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2015년부터 2년간 웹사이트에 연재했던 만화인데 주인공이 ‘복희’와 ‘슬아’예요. 이슬아 작가의 모녀 일기라고 생각할 독자들이 많을 거예요.


실제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어떤 기억들은 과장되고 축소되기도 하잖아요. 기억이란 너무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이 책을 논픽션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저를 낳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오해로 쓰인 책이 맞을 거예요.

 

‘엄마’를 주제로 한 책을 내는 일이 두려웠다고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성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조심스러워져요. 이 만화는 제가 엄마로부터 받은 것들을 기억해서 쓴 글인데, 어떤 좋은 표본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은 같을 수 없잖아요. 살아가는 여건도 다를 테고요. 제가 쓴 글이 어떤 모성 신화 같은 것을 강조하지 않길 바라지만,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엄마는 ‘복희’뿐이니까요. 엄마가 돼 보지 못한 사람이 엄마에 대해 글을 써도 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제겐 모녀 만화라기보다 “‘복희’라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한 소녀의 서사”로 읽혔어요.


그랬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우정, 연대 그런 것도 느꼈어요.


(웃음) 슬아와 복희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니까요. 복희가 너그럽고 다정해서 슬아는 유년기 내내 실컷 웃고 울 수 있었어요. 만약 복희와 슬아가 또래였다면 친구가 됐을 거예요. 슬아는 복희에게 친구로서 갖는 예의를 지켰을 거고요.

 

엄마께서도 만화를 보셨을 텐데 어떤 반응이었나요?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다만 걱정하시죠. <일간 이슬아>를 연재하면서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욕도 많이 들어서요. 너무 많은 말을 들어서 살짝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의 제목을 궁리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아.. 너무 부끄럽네요. 너무 유난을 떤 것 같아서요. (웃음)

 

책 띠지에 “SNS 세계의 셰에라자드 이슬아 작가의 책’이라고 적혀있어요.


그 카피 때문에 엄청 놀림을 받고 있어요. 친구들이 제가 오면 “와, 셰에라자드 왔다”고 막 놀리고. 제가 원래 저자세 마케팅 밖에 못하는 사람이라서요. 쑥스럽지만 띄워 주시니 그냥 실려 가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독자의 마음을 훔친 건, 사실이잖아요.


돈만 좀 훔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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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담담해지는 게 더 편안한 감각

 

『월간 채널예스』에 ‘이슬아의 매일 뭐라도’를 연재하고 있는데, 글을 읽다가 놀란 적이 있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도 실린 글인데요. “독자가 건네는 말에 쉽게 행복해지거나 쉽게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는 더 튼튼해지고 싶다.”(529쪽) 1992년생 작가가 쓴 문장이라니, 어떻게 이런 태도를 벌써부터 가질 수 있을까, 감탄했어요.


사실 엄청 흔들려요. 칭찬 받으면 너무 좋아서요. 덜 좋아하려고 노력하는데, 왜냐면 비난을 받을 때 너무 슬프기 때문이에요.

 

칭찬은 이제 좀 질리지 않아요?


아니요. (웃음) 더 많이 듣고 싶어요. 아직 하나하나가 다 신기하고요. 놀라워요. <일간 이슬아> 연재할 때, 매일매일 메일함을 여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어떤 문장이 가 닿았을까, 가 닿지 못했을까를 상상해보면 문득 두려울 때가 있었어요. 다만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하나하나에 기쁘거나 슬프지 말자, 한번 연재하고 안 할 거 아니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 같아요.

 

총 구독자 수를 물어도 될까요?


총합을 정확히 몰라요. 재구독률이 높긴 했는데, 일부러 숫자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기억하게 되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어요.

 

독립출판물로 만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1쇄를 700부, 2,3쇄는 1,000부를 찍었다고 들었어요. 2쇄를 더 찍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요.


원래 1쇄를 300부를 찍으려다가요 그래도 500부는 찍어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아주 혹시 몰라서 700부를 찍었는데 너무 금방 팔렸어요. 사실 1천 부는 말이 안 되는 부수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집에 책을 쌓을 공간이 없어요. 창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놀랄 만큼 빨리 팔려서 허겁지겁 주문했는데요. 그래서 저희 집 고양이가 많이 놀랐어요. 고양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사는 공간에 큰 장벽이 생긴 거라 방에서 안 나오더라고요. 뭔가 두려운 마음도 컸는데요. 가장 힘들었던 건 포장과 발송이었어요.

 

수필집은 독립서점에서만 팔고 있죠?

물량을 채우느라 사업자등록증을 만들 시간조차 없었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단행본이라기보다 아카이빙에 더 가까운 책이라서요. 연재를 기록한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4쇄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2011년부터 3년간, 한국누드모델협회에 소속되어 누드모델로 일했어요. 첫 번째 이유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시간 대비 가장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일이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의 몸의 용기를 주고 싶어서였다고요. 내 몸을 직관적으로 바라본 경험이 작가 이슬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궁금해요.


내 몸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시작한 일인데, 지금은 제 몸을 그렇게 예뻐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아요. 그냥 내 몸에 무심한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왜냐면 사람들이 여자의 몸에 지나치게 유심하니까요. 오히려 담담해지는 게 더 편안한 감각인 것 같아요. 만화를 그릴 때 생각한 건, 너무 마르지 않은 여자를 등장시키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장래희망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소설가”라고 답한다고요.


“먼 장래의 일”이라고도 덧붙이고요.

 

「상인들」이라는 작품으로 2013년 ‘제5회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 당선된 적이 있어요.


네, 상금을 정말 알차게 썼던 기억이에요. (웃음) 지금은 창비에서 하는 소설 특강 수업을 듣고 있어요. 정세랑 작가님 수업인데 강의가 엄청 재밌어요.

 

작가로서 최후에 쓰고 싶은 건, 소설인가요?


지금은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면 수필을 쓰다 보니까 글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인생에 대한 어떤 조언의 형식으로 답이 올 때가 많아요. 픽션 작가는 한 겹의 보호막이 존재하지만, 제가 쓰는 글은 주인공과 작가가 겹쳐지니까요. 본의 아니게 어려운 노선을 탄 셈이에요.

 

이슬아가 쓰는 모든 수필의 주인공을 ‘작가 이슬아’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나요?


피드백을 보면 그렇죠. 하지만 오해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고 느껴요. 어떻게 하나하나 정확한 이해를 바랄 수 있겠어요. 오히려 작가 본인의 이야기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 놀아볼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성격을 묘사하면서 이런 문장을 썼잖아요. “모든 걸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남자”, “모든 것을 지나치게 별일 아니게 생각하는 여자.” 이슬아 작가는 어느 쪽과 더 닿아 있나요?


중간을 선호하지만 저는 듬뿍듬뿍 말하는 데 가까워요. 감탄도 헤프고 칭찬도 사과도 감사 인사도 되게 많이 말하는 것 같아요. 때로는 너무 많이 표현해서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해서 빈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쉽지는 않아요. 이번에 책을 내면서도 제가 ‘너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쓴 거예요. ‘너무’라는 말을 빼느라 고생했죠.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요?


뭔가 시기별로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시기를 타지 않는 답이 있다면,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좋아요. 사람에겐 당연히 어떤 어두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건강한 것을 지향하는 사람이 좋아요. 농담을 잘하는 사람도 좋고요.

 

대안학교 글쓰기 수업은 지금도 하나요?


계속하고 있고요. 저희 집 서재에서 중년 여성들의 글쓰기 모임 ‘망원글방’을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중년이 아닌 분도 있는데요. 주로 40, 50대 여성이에요.

 

어떻게 만들어진 모임인가요?


제가 돈이 너무 없을 때 초등학생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고 전단지를 돌렸거든요. 어린이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때 한 어린이의 이모님이 똑같은 방식으로 성인 글쓰기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어요. 멤버를 직접 꾸렸는데, 홍삼 장사를 하는 분 등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분들이에요. 1년 반 정도 됐는데 주말마다 이 분들의 글을 볼 수 있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초등학생들의 글과는 정말 차이 나는데요. 한 편의 글이 굉장히 압축적이라고 할까요? 상대적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지 문장의 속도가 엄청 빨라요. 주로 자신이 화자인 글을 쓰시는데, 합평을 한다기보다는 어떤 내용이 좋았는지 서로 편하게 나누는 모임이에요.

 

초등학생 글쓰기 수업을 할 때는 목소리가 좀 달라질까요?


똑같아요. “얘들아~ 나야! 나 왔어”라고 말해요. (웃음)

 

독자 분들이 이 대답을 음성으로 들으면 좋을 텐데, 너무 아쉽네요. 


저는 아이들 글을 보면서 진짜 많이 배워요. 정말 미쳤어요. 너무 잘 써요. 저도 초등학생처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요. 경직되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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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는 생각을 정말 계속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의 추천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총 10명의 친구, 지인, 구독자에게 글을 받았어요.


자기 자랑 대잔치, (웃음)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말할 수 있는데, 정식 출판이 아니니까 하고 싶은 건 다해보고 싶었어요. 과한 시도였지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글을 넣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요. 제가 직접 원고료를 주고 부탁했어요.

 

매월 연재가 끝나면 구독자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늘 “마감 시간을 어겨서 죄송하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저는 ‘죄송할 거면 왜 맨날 죄송할 일을 하냐?’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슬아 작가님의 “죄송하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후의 사과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자정을 넘겨 글을 보내면 정말 많이 혼났어요. “오늘은 펑크냐?”, “당신은 정말 시간 약속이 엉망이다”라는 항의 메일도 많이 받았고요. 제가 글에 대한 피드백은 답장을 안 했는데, 시간 약속을 어긴 일에 대해서는 꼭 답장을 썼어요. 제가 약속을 못 지킨 거니까요. “정말 죄송하다, 그런데 내일은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씀 드렸죠.

 

힘들 때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이 있을 것 같아요. ‘다 지나간다’는 말이 될 수도 ‘사람들은 너한테 그렇게 관심 없어’ 같은 말도 생각할 것 같고.


방금 하신 말씀 다 맞아요. 정말 사실이에요. 독자 분들의 관심, 피드백 정말 감사하지만 이런 관심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서 계속 “지나간다”는 생각을 정말 계속해요. 정말 힘들 때는 말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노래하거나 운동하며 시간을 보내요.

 

지금, 시간을 많이 쓰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운동이에요. 지금 필라테스랑 달리기를 하는데요. 그냥 생각 안 하고 직관적으로 몸으로 배우는 건 항상 즐거워요. 물구나무 서기도 계속 연습하고 있는데 언젠가 벽에 기대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게 제 목표예요.

 

일간지 1면에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는다면, 쓰고 싶은 글이 있나요?


일단 너무 두려운데요. 아무 이야기도 못할 것 같은데. (10초간 생각) 아! 생각났어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 사진을 찍어준 동료 작업자 이다울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이 친구가 3년 동안 투병 중인데, 통증이 실제로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병명을 찾지 못했어요. 이런 케이스가 한국에도 꽤 많고 논문도 있는데요. 병명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당사자는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평소 저는 아픈 사람을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태도가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일간지 1면이라면 의료계 사람들도 많이 보겠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많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다울이는 지금 자신의 투병기(등의 일기)를 연재하고 있어요. 꼭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일간 이슬아>를 읽어준 구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두 권이 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맞아요. 정말 그래요. 아무도 안 읽어주면 안 쓸 테니까요. 독자는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에요. 어디에 있는지 모를 미지의 존재이고, 예측이 불가능한 너무 두려운 존재이지만 기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독자를 너무 생각하면 두려워서 글을 못 쓰니까요. 막 생각했다가 까먹었다가 그렇게 살아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간, 마음, 돈을 써서 제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고요. 정말 오래 하고 싶어요. 가늘고 길게요. (웃음)

 

미슬(미래의 미슬)이에게는요?


미슬아, 아프지 말아. 그리고 좀 부지런해지길. 아마 현슬(현재의 슬아)이가 어떤 많은 실수를 갖고 미래에 갈 텐데, 부디 잘 감당하길 바란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이슬아 저 | 문학동네
문득 나의 유년기와 내 등 뒤에서 조용히 서 있는 엄마를 돌아보게 하는 책. 연필로 그린 듯 슥슥 그린 만화와 함께, 자신의 범상치 않은 가족사를 빼어난 문장으로 묘사한 이슬아 작가의 필력이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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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백영옥 “이제는 환대라는 말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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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책부터 찾아보거든요.”라는 백영옥 작가는 자신을 붙잡아 주고, 자신이 붙잡았던 책의 밑줄들을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저마다의 사연과 복잡한 문제를 이 밑줄들로 말끔히 해결할 수는 없을 터. 백영옥 작가는 다만 사람들이 여기에 잠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하고 바랐다. MBC 표준FM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를 진행하면서 1년 6개월 넘는 기간, 매일 라디오 클로징 멘트를 썼던 백영옥 작가. “라디오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던 그때, 작가는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 원고를 썼고, 그러느라 청탁 받은 단편은 하나도 완성하지 못했다. 위로를 건네고픈 간절한 마음과 안쓰러움이 그로 하여금 “방송 직전까지”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게 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쓰인 원고를 모으니 책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의 다섯 배 분량이 됐다.


읽고 싶어서 쓰기까지 하게 됐다는 백영옥 작가는 전작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과 신작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를 내고 참 좋았노라고 했다. 자신이 꼭 읽고 싶은 책이었다는 말에서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소중한 순간을 만끽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삶의 기술인지 많이 생각한다는 작가의 현재를 엿볼 수 있었다. 이제는 환대가 너무 좋다는 백영옥 작가는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에서 간절히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고, 기쁘면 마음껏 그 기쁨을 즐기라며 우리를 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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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프롤로그에 “책 속의 문장을 약 대신 처방해주는” 책방을 열고 싶었다고 적으셨어요.

 

너무 앞서간 거죠.(웃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도 실은 십수 년 전부터 내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실제로 그 책이 나오기 4-5년 전쯤 지인에게 이런 책을 내고 싶다 했었는데 저작권 문제가 해결 안 돼서 잘 안 됐죠. 그리고 저작권이 해결 되자마자 낸 건데요. 보통은 책이 나오면 우울하기도 한데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참 좋더라고요. 정말로 제가 읽고 싶었던 책이었으니까요.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도 마찬가지였어요. 워낙 책이 많잖아요. 그 수많은 책 속에서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꼭 맞는 책을 맞춤형으로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책으로 치유를 할 수 있다면, 하고 말이에요.

 

책 뒤에 인용된 책 목록이 쭉 있는데요. 분야가 꽤나 폭넓거든요. 이것만 봐도 그만큼 다양한 경우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라디오를 하면서 많이 느낀 건 뉴스에 나오는 경제 지표나 단어들, 수치로 읽히지 않는 행간들에 개인의 사연이 정말 많다는 거였어요. 더구나 새벽 2시 라디오에 사연 보내는 분들은 대부분 잠 못 드는 사람들, 야간에 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때 세상에 너무 힘든 분들이 많다는 걸 정말 많이 느끼게 됐어요. 약간 응급 병동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요. 너무나 응급한 사연들이 많았어요. 살면서 그런 사연을 매일 만나진 않잖아요. 그런데 라디오에서는 매일 그런 사연이 오니까 저도 많이 힘들더라고요. 또 겁이 나서 정신과 선생님들 취재를 진짜 많이 했어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도움이 많이 되나, 하고요. 다행히 제가 작가이기 때문에 사연의 숨은 행간을 볼 수 있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고요. 동시에 가장 많이 배운 건 저였죠.

 

배웠다고요.


그렇잖아요. 글을 쓰거나 라디오를 진행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선생 자신인 것 같아요. 학생들이 아니고요. 정신과 선생님들, 상담소 소장님들 취재하고,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배운 게 정말 많죠. 치유, 힐링 관련한 책이 너무 많다고, 누군가는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그만큼 상처가 많은 사회라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연고를 발라도 계속 긁고 있는 상황이라 상처가 잘 낫지 않는 거죠.

 

글 전반에 아주 간절한 ‘위로’의 정서가 깔려 있거든요.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행복에 대해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했었는데 그런 이유였군요.


이 글에는 대상이 있어서 더 그럴 거예요. 라디오를 하면서 느낀 것 또 하나는 DJ와 청취자 사이에 라포(rapport, 상호신뢰)가 생긴다는 거였어요. 1:1 매체에 가까워요. 신기하죠? 듣는 사람은 DJ가 나에게 이야기한다고 느끼고요. 심지어 저도 내가 이 사람에게 얘기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진짜 방송 직전까지 원고를 많이 고쳤는데요. 간절하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구체적인 사연을 하나 알게 되는 일은 막연히 아는 것과 분명히 다르겠죠.


대장암 말기인 분 사연이 있었어요. 사실 이분 소원은 죽는 거예요. 너무 힘드니까요. 하지만 가족 때문에 힘든 항암치료를 다 견뎌낸 거죠. 보통 암은 5년 동안 재발이 안 되면 완치라고 하는데요. 그 안에 재발되는 경우도 많대요. 그래서 이분은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사연에 하고 계시는 거예요. 편해지고 싶다고요. 이제 안 아프고 싶은 거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생존해 있기는 하지만 나를 제발 놓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거고, 이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사연을 보내셨더라고요. 진짜 힘들어요, 그런 사연 받으면. 얘기하다가 막 울고 그러죠.

 

만약 누군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면, 흐르는 눈물은 그 사람이 나를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약함을 내보일 수 있는 게 진짜 용기니까요. 가끔은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죠. 비 온 후,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일 거예요.(95쪽)

 

예전에는 사람의 고민이란 기출문제처럼 몇 개 카테고리 안에 다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민은 사실 비슷비슷하다고요. 육아 고민, 취업 고민, 결혼 생활 고민 등등 그런 거죠. 심지어 라디오에서 상담 코너를 시작할 때 PD님한테 “오는 사연 다 비슷해서 6개월 이상 못할 거다, 똑같은 얘기만 하게 될 것 같다”라고 하기도 했거든요. 제가 진짜 착각한 거죠. 그 한 개인의 고민은 정말 저마다 다 달라요. 그 사람의 성격, 상황, 살아온 이력,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닌 거예요. 그걸 정말 몰랐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반성하게 돼요.


세월호 때도 그런 칼럼을 썼거든요. 학생 몇 명, 교사 몇 명, 하는 식으로 사람이 숫자로 표기되는 것을 보고 그러지 말자, 한 사람의 이름 하나 하나를 불러주고, 개별적인 고통을 이야기하자, 라고요. 이런 칼럼을 내 스스로 썼으면서도 말이죠. 사람의 고민이 거기서 거기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봐요. 이런 얘기 흔히 하잖아요. 사는 거 다 비슷하다, 사람 다 똑같다, 라면서요. 하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거기서 거기, 절대 아니에요.

 

 

나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방법


특히 걱정하고 있는 것, 위로나 다정의 말을 건네고 싶은 일들은 뭔가요?

 
심리학자들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라는 건데요. 나 자신의 안전지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개방되어 있는 것 같아요.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죠. SNS만 봐도 다 공개가 되어 있으니까요. 타인과의 비교로 자존감을 찾으려 하는데 그러니까 늘 불안한 상태인 거예요. 바닷물 마시는 것과 같은 건데요. 물론 이 구조를 바꿀 순 없어요. 이게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는 별 효용이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만의 안전지대를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 해야겠죠. 내 마음이 덜 황폐해질 수 있도록 내가 나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저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는 사람이에요.

 

책이어야 하는 이유는요?


개방성의 특징은 처음과 끝이 없는 거예요. 그게 인간을 아주 불안하게 만들어요. 비행기 표를 샀는데 더 싼 표가 계속 나올 것 같으면 늘 불안하잖아요. 여행을 갔는데 같은 장소에서 누가 나보다 훨씬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먹으면 갑자기 내 경험이 너무 초라해져요. 나는 좋았는데 남이 한 걸 보는 순간 내 경험의 가치가 계속 누락돼요. 우울할 일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책은요. 처음과 끝이 있어요. 이게 정말 중요해요. 끝이 있기 때문에 닫힌 상태에서 자신의 정리된 생각을 펼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경험은 끝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해요. 특히 요즘 같은 현대인들은 완결되는 경험을 거의 못하죠. 시간이 단편화, 파편화 된 상태로만 경험하기 때문에 그것이 영혼에 남기는 상처가 정말 많아요. 그런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불안함, 촉박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이잖아요.


일중독자라 늘 시간에 쫓겨 살아요, 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줬던 밑줄들이 있는데요. ‘오염된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그 순간에 집중이 되지 않고 여러 가지가 섞여 드는 거예요. 파편화된 시간 경험이죠. 그렇게 시간을 경험하면 시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못 받기 때문에 시간이 점점 더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우리는 끊임없이 스마트폰의 방해를 받죠. 시간이 잘려요. 그래서 늘 바쁘고 불안하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거예요. 제가 올해 SNS를 끊었어요. SNS의 좋은 점도 분명히 있는데요. 확실한 건 SNS를 안 해보니까 놀랍도록 시간이 늘어난 경험을 했다는 거예요. 심지어 저는 SNS를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아예 앱을 다 지우고 습관적으로 보는 일을 아예 안 하니까 다르더라고요. 내가 내 시간을 보호하니까요.

 

내 시간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흥미롭네요.


시간을 보호해야죠. 시간을 보호하지 않으면 계속 오염되고 끊어져요. 아주 맛있는 케이크가 나에게 있는데 계속 먼지도 쌓이고, 누가 침도 뱉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커버를 씌워놓아야죠. 그건 정말 중요해요.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연결이 쉬워지는 만큼 단절도 필요하다는 거죠.


이때 단절은 고립과는 달라요. 지금 얘기하는 단절은 ‘자립’이라는 거고요. 반드시 연결을 전제로 하는 거예요. 같이 있음을 전제로 했을 때 혼자는 빛나요. 혼자 있는 시간, 중요하지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죠. 아무리 나를 알고 싶어서 면벽수련을 하며 자문자답 한다한들 쉽지 않잖아요. 자신을 가장 잘 깨닫게 되는 건 관계를 통해서거든요. 상호적인 거고,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알게 되는 것이고요. 고립되라는 게 아니고 독립하거나 자립하라는 이야기예요. 나와의 관계가 좋아야, 타인과의 관계도 좋을 수 있고요. 그래야 내가 건강해야 잘 살 수 있어요.

 

또 중요한 것이 ‘평균의 종말’이라는 글이었어요. “평균적 행복이란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취향에 나를 대입한 것일 뿐이에요.”(147쪽)이라고 하셨죠. 평균적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우리 뇌가 착각하는 것이 정말 많거든요. 취준생들의 사연이 많이 오는데요.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매몰비용’이에요. 그동안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건데요. 가령 등산을 정말 좋아하는데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되어 있어서 공연 표를 예매했어요. 그런데 그날 날씨가 너무 좋은 거예요. 등산이 가고 싶은데 공연 표를 예매해뒀으니 공연을 보러 가요. 매몰비용 때문인데요. 이럴 때 실은 공연을 포기하고 즐겁게 등산을 가는 게 이득이에요. 우리가 아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지만 감정적이고 불합리한 판단을 내릴 때가 되게 많아요. 이 책에는 행동경제학 관련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읽게 되면 생각지 못했던 프레임의 사각(死角)이 보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기대를 하고 쓴 거예요. 
 
하지만 나와 잘 지내는 게 정말 쉽지 않죠. 변화도 너무 더디고요.


진짜 어려워요. 제가 지향하는 건 ‘미니멀리스트’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웃음) 삶은 너무 복잡하고요. 빠르게 변하죠. 그러니까 나도 그에 맞춰서 흔들려요. 하지만 나침반 바늘이 고정되어 있으면 고장 난 거예요. 계속 흔들려야 해요. 우리도 방향을 찾아 움직여야 하고요. 생각이라는 것도 조금씩 바뀌면서 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안개가 가득한 숲길을 한 시간만 걸으면 온 몸이 젖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변화는 그런 것 같아요. 되게 느리고요. 잘되는 것 같다가도 안 돼요.

 

자신의 활을 쏘는 게 중요합니다. 바람도 마찬가지예요. 삶에는 끝없이 바람이 붑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람을 멈추는 게 아니라, 거센 바람 속에서도 중심을 잡으려는 자세와 화살을 목표에 명중시키려는 마음일 거예요. 비록 화살이 빗나간다 하더라도 말이죠.(158쪽)

 

결국 균형 찾기에 관한 이야기예요. 어느 누구도 사는 게 쉬운 사람은 없어요. 마치 정답을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은 사기꾼에 가까울 확률이 높죠. 무엇을 명쾌하게 얘기하기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최대한 근사치에 다가가려는 안간힘과 복잡한 과정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 좋겠어요. 다만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소개하고, 읽는 분들이 거기서 하나라도 ‘그렇지’하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으로는 라디오 청취자 분들을 위해서 썼기 때문에 안쓰러움이라는 마음이 있고요. 잘 됐으면 좋겠고, 성공했으면 좋겠고, 고백이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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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것들이 주는 삶의 의미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시겠어요.

엄청요. 한 번은 아침에 일어나서 라디오 원고를 쓰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짓을 매일 하겠구나’하고요. 우리는 ‘언젠가는’과 ‘나중에’에 되게 많은 것을 보류해두잖아요.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는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 밥을 많이 먹는다고 나중에 안 먹어도 되는 건 아니죠. 매일 닦아도 먼지는 또 쌓이고요. 나는 책을 읽어도 늘 까먹을 것이고, 밑줄을 그어도 늘 잊어버릴 것이며, 어떤 사람에게 이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 오차를 줄이기 위해 나는 늘 허우적거리고 발버둥 쳐야 하는구나, 라는 걸 어느 순간 확 깨달았어요.

 

“오늘 당장 한 장의 원고를 쓰겠다는 결심이, 노벨상을 받겠다는 원대한 꿈보다 중요합니다.”(247쪽)라고 한 부분과 연결이 되는데요. 그 글의 제목이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였어요.


그게 진실인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는 게 우리 삶이죠, 사실은. 70대 이후에 가장 높은 행복지수가 유지된다고 하는데요. 큰 이유가 노인들의 시간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에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으니까요. 지나온 시간의 빅데이터를 통해 지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축적되어서 손주랑 놀아줄 때도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을 하는 거예요. 부모라면 아이와 단풍을 보면서도 얘가 학원을 가기 전까지 밥을 먹이고, 과일을 줘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하겠죠. 그러니까 결국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이 빨리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간 시야가 좁아지면 행복해지죠.

 

발레를 꽤 오래 하셨잖아요. “무용한 세계가 주는 아름다움”(171쪽)을 통해 “원초적 기쁨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요.


발레를 하면서 렌즈 끼는 게 불편해서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라식 수술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요. 그런데요. 제가 잡지 기자로도 일했고, 작가로 지내면서도 유명한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거든요. 이분들이 끝에는 다 ‘공허하다’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돈이 많고, 그렇게 성취한 게 많은데 공허하다는 거예요. 이들에게 부족한 건 생각해보면 ‘의미’예요. 우리에게 부족한 건 의미죠. 의미가 있을 땐 힘들어도 살아갈 만하거든요. 발레가 그래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즐거운 행위예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라서 진짜 즐거운 걸 찾아내면 거기서 의미가 발생해요. 춤을 추는 것, 책을 읽는 것, 하다못해 길가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순수한 즐거움을 경험하면 의미가 만들어지는 거고요.


그 즐거움은 몰입의 시간 동안 채워지는 충만함 같아요. 쾌락과는 조금 다른데요. 저는 그 몰입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궁극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그 의미를 다량으로 발생시키는 것 중 하나가 예술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춤을 보는 것. 더 나아가 책을 쓰면 의미가 더 많이 발생하죠. 춤을 보는 것보다는 춤을 추는 것, 그러니까 뭔가를 하는 행위를 한다면 말이에요. 이런 행위가 내 인생에 실용적인 도움이 되진 않아요. 하지만 이게 필요한 이유는 그런 무용한 것들이 주는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가 자기 인생에서 하나씩 찾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열렬한 독자로서의 작가님이 많이 느껴지는 책인데요. 예전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북토크에서 “글쓰기는 제 집 같은 곳이에요.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읽는 나와 쓰는 나, 어떻게 관계하고 있나요?


가능하다면 남이 쓴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싶어요. 읽는 행위는 제게는 정말 순수한 즐거움이고요.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잘 쓰려는 강박만 없으면 정말 즐거운 일 같아요.(웃음) 처음 소설을 쓴 이유도 읽기 위해서였거든요. 동네 만화방 단골이었는데요. 더 이상 읽을 만화와 하이틴 로맨스가 없기 때문에(웃음) 썼어요. 중학교 1-2학년 때 한창 하이틴 로맨스와 할리퀸에 빠져 있었는데요. 더 빌릴 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바른손 노트에 모나미 볼펜으로 소설을 썼죠. 어떤 일을 너무 좋아하면 그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사실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하지만 역시 더 본질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책 읽기예요. 읽다가 쓰게 됐고, 소설을 쓰는 재미에 푹 빠진 거죠. 쓰는 일은 조금 더 힘들지만 조금 더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줘서 특별한 거고요.

 

만약 작가님에게 완전한 하루의 자유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보내고 싶으세요?


저는요.(웃음) 되게 재미없는 답인데요. 똑같이 보낼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번쩍 뜨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고요. 창밖을 보면서 ‘글 쓰기 싫다’라고 생각한 뒤에(웃음) 글을 써내려갈 거예요. 그리고는 또 쓰기를 잘했구나, 생각할 거고요.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낮잠을 자겠죠. 또 산책을 하고, 밤에 책을 읽다가 잠들 거예요. 똑같게 살고 싶은데요. 이 일상이 절대 꾸준히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래요. 그래서 이 순간이 소중하고, 순간을 최대한 만끽하려고 하죠. 그 기술이 정말 삶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환대라는 말이 너무 좋아서요. 누굴 만나도 환대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라디오를 하면 게스트가 많이 오잖아요.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죠. 온천장 주인처럼 말이에요.(웃음)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백영옥 저 | arte(아르테)
‘밑줄 사용법’이 담겨 있는 독서 노하우이자,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어떤 말보다 포근한 위로가 되는 문장을 처방해주는 ‘밑줄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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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태섭 “근대 이전의 한반도, 남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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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 한(국)남(자)스럽니?’라는 말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한국남자는 몇이나 될까. 뒤이어 따라붙는 질문은 ‘한국 남자 같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통용되고 있으며, 듣는 한국 남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것이다. 질문의 답은  『한국, 남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남성성’이라는 것의 실체, 그것이 생겨나고 공고해진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 남자는 그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이상적인 상을 현실로 구현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언제나 다른 사회적 약자들 특히나 여성의 탓으로 돌려왔다. 사회적으로는 폭력과 억압의 주체이고, 내적으로는 실패와 좌절에 파묻혀 있다”는 것. “곤란한 존재들”로 한국 남자를 규정한 이 이야기의 부제는 ‘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다.

 

남성성을 공격받았다고 느끼는 한국 남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사라졌고, 자신들은 여전히 병역의무를 지고 있으며, 여성들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더 이상 불평등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럼에도 자신들의 노고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등등. 『한국, 남자』는 이들의 목소리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그들의 주장은 무엇이고 근거는 타당한지, 면면히 들여다본다.

 

이를 위해 사회학자 최태섭은 조선 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자의 사회사를 추적했다. 『잉여 사회』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팩트에 기반 한 날카로운 통찰력’은 이번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국내외 연구 결과와 통계 자료를 폭넓게 활용하며 ‘한국의 남성성’의 민낯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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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의 억울함과 ‘상상적 박탈’


이번 책에 대한 남성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책을 읽으신 분들의 반응인지는 확실치 않은데요. 제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페이스북으로 직접 찾아와서 글을 남기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주장이 10년째 똑같아요(웃음).

 

어떤 건가요?


요즘 여자들이 무슨 차별을 받느냐, 왜 군대를 무시하냐, 여자는 왜 당직 안 서고 정수기 물통은 남자만 갈아야 하느냐 같은 거죠.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초 커뮤니티에 이번 책에 대한 기사가 공유됐나 봐요. 저는 직접 보지 못했고 전해 들었는데, 그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대요. ‘저는 아직 군대는 안 갔지만, 군대를 무시하면 안 되죠’라는(웃음). 자주 등장하는 댓글 중에 ‘남자는 돈 버는 기계다’라는 것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돈 버는 기계로 살아본 사람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돈을 버는 기계로 살아봤으면 알 수 있는 디테일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고 들은 건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저렇게 말하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한국의 젊은 남성들 중에는, 아버지 세대가 가장으로서 누렸던 것들을 자신들은 할 수 없음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책에서는 그 전제 자체가 허상이라고 하셨어요.


지금의 30대만 보더라도 집안에서 아빠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리고 한국 남자들이 대부분 아빠랑 안 친하죠. 특히 아버지 세대들이 아들에게 어떤 남성성을 전수해주거나 유대 관계를 맺는 것에 굉장히 서툴렀고요. 딱히 집에서 아빠가 군림하는 모습을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건 있었을 거예요. 엄마가 아빠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서 ‘아빠도 챙겨야지’라고 계속 말하는 거죠. 아마 그런 것 속에 아버지가 있었을 거예요. 물론 1980년대 이전에는 군림하는 아버지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일 하느라 바빠서 부재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그렇게 많이 체감했을까 싶고, 생각해 보면 그것도 만들어진 어떤 것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인데, 그걸 지금의 젊은 세대가 느끼고 있다는 게 이상한 구도인 거죠.

 

“상상적 박탈”이라고 표현하셨죠.


네. 애초에 한국 남성들이 엄청나게 존경 받으면서 가장 노릇을 했던 적이 있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거든요. 맨날 술 먹고 집에서 난동부리는 폭군이었거나, 아니면 돈을 열심히 버느라 대체로 집에 없었죠.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종류의 가정은 한국에 있었던 적이 별로 없는데, 어디에서 그런 원형을 보고서 이야기하는 건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멀리는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셨어요.


사실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었는데(웃음), 하도 전통 타령을 해대니까 ‘대체 전통이 어땠는데?’ 하고 본 거예요. 물론 제가 참조한 건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핵심은 ‘근대 이전에 한반도에 과연 남자라는 것이 있었느냐’는 거예요. 그건 남자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무언가의 존재인 거죠. 대장부나 사대부 같은 말로 불렸던 존재가 있었던 것이고, 그걸 지금의 남자랑 등치시킬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들은 소수의 권력자였으니까요.

 

그렇죠.

 

나머지 남자들은 거기에 동원되는 존재였던 건가요?


동원의 구조는 이후에 더 강화되지만, 어쨌거나 조선 후기에는 사회 지도층끼리 모여서 명예 배틀을 하는 거였죠. ‘나는 생계에는 전혀 관심 없고 글만 읽는다’는 걸 가지고 스웩을 자랑하는, 무능력 배틀 같은 걸 했던 거죠(웃음). 그리고 ‘팩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대체로 왜곡된 팩트를 가지고 와서 주장하는 일이 많거든요. 그래서 팩트 확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료를 쌓아놓고 계속 봤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의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왜요?


출처별로 자료가 다 다르고 정리된 자료가 없는 거예요. 같은 연도에 대한 자료도 서로 숫자가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조금 애를 먹었어요.

 

연구자 분도 그런 상황인데, 일반 대중이 혼란을 겪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데이터를 보면서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언론에서 통계를 소개해줄 때 맥락을 자세하게 같이 알려주면 좋은데, 대체로는 보도 자료에서 부각시킨 부분들을 가지고 와서 선정적인 데이터만 뽑아서 쓰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통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많이 왜곡돼 있죠. 너무 안 믿거나 아예 믿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인 거예요.

 


불공평한 게임


“이 책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고 쓰셨어요. “이미 존경받아 마땅한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이나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들이 세상에 넘쳐나기 때문”이라고요.


그렇죠.

 

이미 좋은 페미니스트 책들이 넘쳐난다면 ‘굳이 이 책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사실 이 책 자체도 이미 페미니스트들이 해놓은 남성성 연구에 많이 기대고 있고요. ‘이렇게 좋은 책들이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써야 될까’라는 생각을 몇 번 하기는 했어요. 또 관련된 주제에 대한 책들이 최근에 나오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이유는, 저 역시 글쟁이 생활을 하면서 계속 이 문제를 고민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도 한 번은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 결과물이 이 책인 거죠.

 

개인적인 고민도 있었다고 하셨죠.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답을 내리기 쉽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작업을 통해서는 그냥 보여준 것이고요. 솔직히 말하면 답이 없어요(웃음). 이걸 느끼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부적절함이라는 게 계속 있는 거거든요. 한국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부적절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미래는 한국 남자에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지금의 ‘한국의 남성성’으로 계속 간다면 미래는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요. 미래를 새롭게 여는 존재는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의 입지적인 상황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고민을 해야 되죠.

 

저자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어떤 건지 궁금한데요. 사실 여기에 ‘남성’이라는 단어를 굳이 붙여야 할까 고민이 돼요. ‘이상적인 인간상’이 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여성상’, ‘남성상’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제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 지향하는 바도 그건데요.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상적인 남자’ 같은 건 없고 불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책 말미에서 소개했듯이 서구에서도 그런 건 무너진 지 오래예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연구가 이미 많았어요. 코넬(R. W. 코넬)의 ‘남성성 이론’이나 그 이전에 모스(조지 L. 모스)가 이야기했던 ‘이상적 남성성’ 의 경우에도, 결국에는 달성되지 않았던 거잖아요. 식민지인으로 태어났던 한국의 남성들에게는 더더욱 달성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건 이후에도 마찬가지 문제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것 자체가 엄청난 협박으로써 사람들의 삶이나 행복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요. 이제는 ‘남성성이라고 불리는 알 수 없는 것’ 말고 ‘어떤 인간에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거부하잖아요. 그건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고 우리가 원하는 바도 아니라고요. 그런데 남성들은 반대예요. 만들어진 ‘이상적 남성상’을 견지하려고 해요. 이유가 뭘까요?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얻는 게 있다고 느끼는 걸까요?


그게 코넬이 이야기했던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죠. 지금 한국에서 가장 최고의 남성성이라고 하면 뭘까요? 돈 많은 사람이죠. 이재용 같은. 그런데 한국에 이재용이 많지는 않잖아요. 단 한 명이잖아요. 어쨌든 능력 있고 돈 많이 벌고 부자인 남자가 결국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는 건데, 그것에 동참함으로써 얻는 부수적인 이득이 있다는 게 코넬의 주장이에요. 이른바 ‘가부장제적 배당금’이라는 건데요. 그런 게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자신이 ‘남성 아닌 다른 존재들’ 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도 결국은 불공평한 게임이에요.

 

불공평한 게임이라고요?


남성성을 수호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은 코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코어에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아무 문제없을 거예요. 심지어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고 해도 문제없겠죠. 그 언저리에서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만 희생되는 거예요. 희생되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인 거죠. 그렇게 해서 지켜낸 남성성의 헤게모니는 결국 남성 내부의 높은 사람들이 다 가져가고요.

 

통사적으로 한국 남자의 역사를 정리해 놓고 보니까 눈에 띄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 중에 하나가 생계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되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강화된다는 거예요.


그렇죠. 최근의 흐름도 경제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당대의 남자들이 겪게 되는 결핍이나 가난 같은 문제들을 두고 마치 남자들만 엄청 상처 받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죠. 그 안에서도 착취 같은 것들이 계속 벌어져왔다는 게 사실이고요. IMF 때도 그랬고 국가적 환란이 있을 때마다 그랬죠.

 

책에서 제시하신 통계를 보면, 경제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생계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의 비율도 높아졌잖아요. 그럼에도 남성들만 희생된 것처럼 부각됐어요.

 

맞아요. 그 흐름이 이른바 IMF 이후에 나타났던 ‘기 살리기 프로젝트’라든지 고개 숙인 가장에 대한 동정론이죠. 당시에 유행했던 소설들도 『아버지』나  『가시고기』처럼 부정에 갑자기 주목하는 것들이었고요. 그 소설들의 플롯을 보면, 가족은 몰라주는 아버지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젊은 여성이 등장해요. 그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1990년대 초반에는 풍요 속에서 변화를 모색했던 시기가 있었던 거고, 군사적인 문화나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도 계속 있어 왔는데요. 그게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까지 가기 전에 IMF가 터지면서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식으로 가버리게 됐죠.

 

최근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학습에 있어서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뒤처지는 게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요?


네, 전 세계적으로 남학생들의 학습부진이 나타나고 있는데 오히려 선진국에서 그런 것 같아요.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죠. 해나 로진이라는 저널리스트는 미국의 경우 하층 경제도 여성 위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가모장제가 출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남자문제의 시대』라는 책을 쓴 다가 후토시라는 사회학자는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요. 일본이 훨씬 더 성차별적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한국도 비슷한 거죠. IMF 때 가장 먼저 잘려나간 사람들이 젊은 여성이었다는 건 굉장히 시사적인 부분이잖아요. 성차별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경제의 실질적인 변화로 나타나는 데에도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거죠.

 

젊은 여성들을 가장 먼저 해고하면서 내세웠던 근거도 ‘가장 이론’이겠죠. ‘그래도 너희는 책임져야 할 처자식은 없잖아’라는.


그렇죠. 그리고 ‘너희들은 시집가면 되잖아’라는 거였겠죠.

 

그만큼 ‘가장’에 대한 신화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일 거예요.


동시에, 국가 자체가 정상 가족이라는 걸 통치의 기본 단위로 두고 정책을 만들다 보니까 그쪽으로 쏠려 있는 면도 분명히 있어요. 경제적인 문제를 가족이라는 단위 안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되고, 국가도 그 가족이라는 단위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그런 정상 가족을 구성하지 못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탈락시켜내는 구조가 있어요. 이제는 약간 이성애 파업 시대잖아요. 출산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결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절반이 안 돼요. 사람들은 이미 엄청나게 달라졌는데, 여전히 국가나 제도가 그걸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게 단순힌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고, 국가 자체를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가져올 거라고 봐요. 계속 가구 단위로 세금을 걷고 지원하면, 복지도 조세도 완전히 다 헝클어질 거거든요. 새로운 방식의 가족 구성권이나 1인 가구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적 고려가 없으면 유지 자체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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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되기 싫은 남자들 주저앉히는 사회


앞서 ‘남학생들의 학습부진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 남성이 여성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거라고 보세요?


적어도 20대 이전까지는 남자들이 계속 져요. 서른 넘어가면서부터는 확 차이가 나는데, 20대 이전까지는 취업률이나 대학진학률도 적고요. 여전히 최상위 1%에는 남학생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학교 성적이나 내신에서는 계속 져요. 적어도 그건 있는 거죠. ‘요즘 세상에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아’라고 말하는 남성들의 경우, 거기에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거예요.

 

20대까지는 남성이 여자한테 지는 경우가 많지만 30대 이후에는 달라진다고 하셨어요. 이유가 뭔가요?


기본적으로는 학업에서 밀리는 것도 있는데요. 확실히 군복무 때문에 지연되는 게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대기 시간까지 포함하면 군복무에 2년에서 3년 정도가 걸리는데, 어쨌거나 그 기간 동안 사회에서 배제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취업 연령이 여성에 비해서 늦을 수밖에 없고요. 요즘에는 어학연수나 다른 이유로 휴학하는 남자들도 많으니까 30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죠. 그러면 30대부터 차이가 나는 거예요.

 

취업이나 승진 과정에서는 남성들이 혜택을 보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그렇죠. 여전히 호봉이나 승진 문제에 있어서 그렇고, 특히 임금 격차 문제가 그래요. 임금 격차를 보면 20대에서 제일 낮거든요. 그런데 30대 넘어가면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해요. 그래도 30대에는 70~80% 정도까지 되는데, 4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차이가 확 벌어지죠. 그때 남자들이 돈을 제일 많이 벌 때인데 여성들은 오히려 임금이 확 떨어지기 시작해요. 경력단절하고 똑같이 가는 거죠. 여전히 임금격차 그래프를 그려보면 여성들이 돈도 많이 못 벌고 취업률도 낮은 상황이에요.

 

‘2000년대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젠더 전쟁’에 대해서도 다루셨어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흥미로운 사실은, 인터넷 공간이 ‘남초 영역’이 되었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는 책에서 권김현영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건데요. 초창기 PC통신에서도 불링이나 성차별적 발언이 있었지만, 거기에서는 그래도 싸울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졌다는 거죠. 권김현영 선생님 표현에 의하면 인터넷의 많은 기획들이 여성을 ‘콘텐츠화’ 했다고 해요. 여성 자체가 콘텐츠가 되어버렸고, 여성들이 인터넷을 경험하면서 그런 종류의 성차별 혹은 성폭력에 계속 노출됐던 거죠. 군가산점 논쟁 이후에도 해당 학생들이나 그걸 옹호했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신상을 털어서 성인 사이트에 게재했잖아요. 그런 종류의 공격이 계속 있었죠. 사실 인터넷 이용률을 보면 남녀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남초 영역’이 된 걸까요?


그런데 여성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거죠.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는 익명이거나 회원제로 운영되고, 오픈되어 있고 떠들썩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은 거의 다 남초 커뮤니티예요. 지금도 웹 순위를 보면 거의 다 남초 커뮤니티이고요.

 

‘침묵의 나선 이론’이 떠오르네요. 침묵하기 시작하면 더 소리가 없어지는 거죠.


그렇죠. 그 사람들이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메갈리아 때 보게 된 거예요. 사실은 다 숨어서 활동하거나 혹은 남자인 척하면서 커뮤니티에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생각으로 나온 거고, 그 사람들을 봤더니 인터넷 공간의 문법을 완벽하게 체득하고 있었던 거죠.

 

‘나는 한남이 되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남성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나요?


저에게 질문하시기 전에 책을 먼저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웃음). 이미 책에 다 써놨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개관적으로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오늘의 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조금씩 해나가는 방식밖에는 없지 않을까요.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또 그렇게 다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사회가 주저앉히는 경우가 많아요. 하다못해 명절날 부엌일 하러 들어가면, 부엌에 계신 여자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하시잖아요. 그런 것처럼 기존의 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계속 주저앉히는 면들이 많은데요. 그거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거기에 너무 강직하게 대하면 사람이 부러져버리니까요. 그러지 않고 자신도 지키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고민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남성의 경우에는, ‘한국의 남성성’에 반대해도 적극적으로 발언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외되고 배제되는 게 두려워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러면서 동조 아닌 동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항상 그렇잖아요. 목소리 크고 무례한 사람들 몇 명이 있고 나머지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거잖아요. 어느 집단을 가나 그런 식이고요. 거기에서 저항하거나 벗어나는 사람들한테는 불이익이 돌아가기도 하고... 사실 저한테는 군대가 그런 곳이었어요. 사실은 그 안에서 굉장히 타협을 많이 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내가 군대를 바꾸겠어’라는 생각은 사실 그 안에 들어가면 하지 못하거든요. 개개인이 굉장히 무능해지고 의미 없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런 데에 가면 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운 일이 돼버리죠.

 

그런 개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도 그걸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개개인이 다 바뀌는 게 전체를 바꾸는 일이 되겠지만, 그 전에 구조적인 접근들이 선행되고 어떤 기반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행동하는 게 더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어두운 미래의 서막 열게 될까


군대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할 때,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 이해는 되세요?

 

일단 전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까요.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죠. 다들 군복무에 대해서 느끼는 경험은 ‘아깝다’일 거예요. 그 시간이 아까운 거죠. 군대에 가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그 시간 동안 뭔가 생산적인 일도 하지 못하는 게, 그냥 대기해야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그런데 보상체계를 만들어놓지 않은 건 박정희나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국가에 조금 더 제대로 된 보상체계를 마련하라든지, 혹은 군복무에서 조금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든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되잖아요.

 

하지만 그런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죠?


군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신분 자체가 민간인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굉장히 고초를 겪어요. 그걸 경험했던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해주면 좋은데, 오히려 군내의 인권이나 복지 개선을 위해서 뭘 한다고 하면 ‘이게 군대냐, 애들을 더 빡세게 굴려야지’라는 식의 댓글을 달거든요. 군 복무 기간 단축한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 3년으로 늘려야지’ 하고요. 이제 자신하고는 관계없으니까 하는 농담인데, 그래서 안 바뀌게 되죠.

 

그건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과시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요즘은 정말 편해진 거야’라고 하잖아요.


그렇기도 하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저는 아직 군대를 안 갔지만, 군대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식의 담론들이 인터넷이 흔히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심리일까요?


사실은 두려운 거죠, 군복무가. 앞으로 나에게 닥칠 일이 뭔지 알 수 없으니까 두려운 거고요. 어쨌거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까, 어떻게든 정당화 해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 같은 게 있는 거죠.

 

‘내가 겪어야 할 두려운 일인데, 그에 대한 보상까지 전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건가요?


그렇죠. 정당화 기제가 굉장히 큰 것 같아요. 특히 군 생활을 정말 힘들게 한 사람들, 따돌림을 당했거나 폭력에 희생됐던 사람들 중에서 그런 거에 되게 열 올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사실은 다 국가가 보상해야 되는 문제이고 국가가 군복무 제도를 합리화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고요.

 

국가를 상대로 개선을 요구하지 않고 여성을 원망하는 이유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죠. 그리고 군 가산점 이야기를 10년째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워낙 공무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안 되는 거거든요. 이미 헌재에서 판결을 내린 게, 그것 자체가 군복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무담임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였잖아요. 군 가산점을 통해서 군복무자들에게 보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불평등을 낳게 된다는 이야기죠. 군 가산점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 중 누구도 그 논리를 반박한 적이 없어요. 그러면 이제 버려야죠. 게다가 그게 모든 군복무자들에 대한 보상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이제 다른 뭔가를 찾아야죠. 군복무를 더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문제에 있어서 계속 앞장섰던 사람들이 군필자가 아니었다는 건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 사람들에 의해서 군필자들이 지금의 혜택을 보고 있는 건데, 그 사람들한테 고마워하기는커녕 맨날 ‘군대도 안 갔으면서’ 하면서 욕만 하는 게 아이러니하죠.

 

이번 책을 쓰시면서 새로운 질문들이 생겼다고 쓰셨어요. 그 중 하나가 ‘남자의 성욕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라면서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남자의 성욕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하고, 동시에 여성을 완전히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세요?


그렇죠. 그런데 관대한 동시에 아무것도 안 가르쳐줘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거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타인과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10대 같은 경우에는 남자에게도 금지하고 있잖아요. 되게 이중적이죠. 금지와 지나친 허용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굉장히 뒤틀려있어요.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성욕은 정상 가족에서 부부의 성욕, 그것도 남편의 성욕밖에 없죠. 그런데 실제의 성욕은 그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연령과 방식으로 폭발하고 있고, 그것들은 어떤 공식적인 방식으로도 다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한 방식으로 나가게 되는 거죠.

 

책에서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남자 이야기를 살펴보셨잖아요. 나중에 누군가 『한국, 남자』  같은 책을 쓴다면, 지금의 시기는 어떻게 기록될까요?


엄청난 페미니즘의 물결과 엄청난 백래시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시기로 기록하겠죠. 사회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로 기록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단순히 백래시만 있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당위가 계속해서 찾아오고 있잖아요. 관계만 변하는 게 아니라 산업구조, 경제도 변하고 있고요. 이 기회를 잘 잡는다면 단순히 지나간 에피소드 정도로 ‘예전에 이런 시기가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시기가 될 것 같아요. 어두운 미래의 서막을 여는 시기로 기록되겠죠.

 

지금 우리는 겪어야 하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고, 어쩌면 잘 지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어쨌든 겪어야 될 일이 터진 것이고, 이번에는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은 시기이니까요. 물론 일부 너무 격화되는 측면이 있고, 상호간의 대화가 아니라 단절로 가는 면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활발하다는 것 자체에는 여전히 희망을 걸어볼 만한 지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남자최태섭 저 | 은행나무
가부장제 질서 아래서 성별의 꼬리표가 규정짓는 바를 이해하지 않는 이상 성별 질서의 타파는 어렵다. 여성에 관한 논의는 이미 많으니, 이제 남성성에 대해 돌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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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염재호 고려대 총장 “명문대 졸업장, 10년도 유효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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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와 전문화의 시대였던 20세기에는 객관화된 지식 즉, 형식지(形式知, explicit knowledge)가 중요했다. 교과서를 외우고,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중요하던 시절이다. 그렇게 습득한 지식은 주어진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에 좋았다. 하지만 형식지는 더 이상 매력적인 자산이 아니다.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이런 지식보다 필요한 것은 암묵지(暗?知, tacit knowledge). 자신만이 독특하게 느끼고 생각하는 내재화된 지식인 암묵지는 컴퓨터나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영역을 자동화시키는 21세기에 반드시 필요한 지식이다.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전문가보다 고도화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말하는 ‘개척하는 지성’이란 이 같은 새로운 질서, 뉴 노멀(New Normal)이 형성되는 21세기의 사회를 “문명사적 대전환기”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법론에 가깝다. “문제는 위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20쪽)에 있다고 말하는 염재호 총장은 『개척하는 지성』에서 네트워크화로 점차 개인화되는 21세기의 노동 구조를 살피며 개인이, 대학이,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가치를 재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짙게 드리운 불안과 좌절에 대해서 이것은 젊은 세대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에 많은 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하며,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기회라고 역설한다.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80세까지 일해야 한다, 와 같은 염재호 총장의 말은 뉴 노멀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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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방식으로는 안 된다


미래를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밝히셨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총장님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20년 정도 “미래사회와 조직”이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쳤어요. 수업을 하면서 놀란 건 학생들이 부모나 선생이 시키는 대로 선택한다는 점이었어요. 왜 이 학과를 왔는지, 20-30년 뒤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현재는 문명사적으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준비를 안 할까, 고민스러웠어요. N포 세대니, 취업률이니 이야기하는데요. 지금은 이런 것들이 의미 없어졌죠. 대기업더러 신입 채용 하라 하고, 정규직이라는 말을 하면서 평생직장 찾으라고 하는 것은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개념이에요. 이제는 각자가 전문가로서 자기 일을 해야 하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취업률로 겁만 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20세기의 잣대인 거죠. 이렇게 겁만 주는 상황에서는 젊은이들이 꿈을 키울 수 없는 게 당연해요.

 

20세기의 잣대라고요.  


앞으로 명문대 졸업장은 10년도 유효하지 않을 거예요. 변호사라는 직업도 60년대의 그것과는 전혀 달라질 거고요. 대기업도 마찬가지죠. 20세기의 대량생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된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도 그때와 같다 생각하고 똑같이 거기에 시간과 돈을 들여요. 겨우 되면 또 방황하고요. 이런 일련의 상황이 너무 답답했고요. 그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그동안 강연에서도 많이 하고, 방송에서도 했는데요. 정리가 필요하겠다 싶어 책을 쓰게 된 겁니다.

 

책에서도 현재의 불안과 위기를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14쪽)이라고 분석하셨죠. 불안에 앞서 지금의 위치를 거시적 시선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21세기의 사회가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데 문제를 20세기의 방식으로 풀려고 하니까 계속 갈등이 생기거든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논의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시각으로 봐야죠. 제가 총장으로 있으면서 유연학기제를 도입하고, 성적 장학금을 없애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20세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되니까요. 지금은 강의가 너무 많아요. 하버드나 스탠퍼드는 일 년에 2천5백 개 강의가 개설이 되는데요. 고려대는 약 만 개가 개설이 돼요. 바뀌어야죠. 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게 아니라 강의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핵심을 보여주고, 학교에서는 그에 대한 토론을 해야 해요.

 

실제로 고려대에서 그와 같은 방식의 토론 수업이 진행되고 있나요?


학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6학점이 있었는데요. 그 중 3학점을 그런 방식으로 바꿨어요. 일곱 개 테마를 잡아서 40분짜리 동영상을 보고 학생들이 질문을 올리도록 했고요. 그것으로 교수와 학생들이 단체 토론과 그룹 토론을 한 후 학생들이 프로젝트 발표를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이성의 합리성에 대한 토론이 있는데요. 과학의 이성과 합리성이 18세기에 등장하면서 왜 제국주의가 발현되었는가에 대한 토론을 학생들이 하는 식이에요. 여기서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까지 논의할 수 있죠. 물론 처음에는 이런 방식을 학생들이 힘들어하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아주 성공을 해서 나중에는 이런 수업 방식을 다른 대학에 공유하려고도 하고 있어요.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대학교라는 곳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총장님의 답이 될 수 있는 대목이네요.


책에서 ‘지식의 반감기’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건 10년이 지나면 지식의 절반이 쓸모없어진다는 내용이에요. 그렇다면 지금은 지식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근육을 키워야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 되는 거예요.

 

20세기 대량생산체제에서는 교수가 강의를 통해 효율적으로 전문지식을 전수하면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서 이를 활용하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지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이를 암기하여 숙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교육방법은 21세기에는 맞지 않는다.(중략)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설계하는 능력이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228-229쪽)

 

 

다양한 기회를 줘야한다


“개인들은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학습을 해야 할 것이다.”(181쪽)라고도 하셨잖아요. 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평생을 한 직장에서 일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럼요. 계속 공부해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 책 안 읽어요.(웃음)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데 말이에요. 겉으로는 ‘4차 산업혁명’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필요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해요. 4차 산업혁명을 하려면 얼마나 사회가 유연해져야 하는데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거든요. 하지만 아직도 그런 이야기는 별로 없어요. 여전히 다들 대기업에 가려고 하고요. 대기업에 들어가면 30년 동안 일을 하든 안 하든 연봉은 계속 오르니까요. 그런데 그게 뭐가 좋은 사회예요? 다양한 기회를 줘야죠. 저희는 8주씩 하루 6시간을 중국에서 중국어로 수업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100명에게 생활비까지 다 대줘요. 개척하려는 마음이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데요. 이것이 학교가 할 일, 국가가 해야 할 일이에요.

 

개인이 언제든 새로 학습할 수 있도록 사회가 시기별로 다양한 기회를 줘야 하는데요. 그렇지 않다는 점이 지금의 큰 문제겠네요.


네덜란드, 덴마크에서는 1년에 노동인구의 4분의 1일이 실업자가 됩니다. 2년 동안 회사에서 받았던 급여에 달하는 금액을 국가로부터 받아요. 동시에 국가가 재교육을 시켜주죠. 국가는 그 일을 해야 해요. 개인은 힘들더라도 새로운 것을 배워서 다른 걸 해야죠. 기성세대가 그런 시스템을 디자인하지 않고서 한쪽은 젊은이들이 노력하지 않는다고 하고, 한쪽은 기업 탓을 하고 있어요.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21세기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해요. 가령, 창업 하라고 하는데요. 창업이 쉽나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창업 잘못 했다가 망하면 패가망신하잖아요. 제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을 할 때 정부에 창업에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적이 있어요. 대학에 3천만 원 정도의 연봉을 보장해주면서 재교육을 2-3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그걸 만약 만 명에게 해준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런 식의 시스템 디자인을 끊임없이 해줘야지, 창업하라고만 해서는 안 되죠.

 

‘뉴 노멀에 적응하기 위한 조건들’이라는 챕터에서 제일 먼저 꼽은 조건이 ‘포기’였어요. “이른바 기득권이라고 하는 현재의 이익을 과감하게 내려놓아야 한다”(79쪽)고 한 말씀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우리 사회는 너무 빨리 발전했어요. 그래서 일어나는 일들이 있죠. 가령 청년들에게 창업을 하라고 하면서 대학에는 취업 통계를 내라고 하거든요. 당연히 둘 다 해야죠. 하지만 그것을 통계를 내고, 계산해서는, 평가해서는 안 돼요. 저희 학교에서 출석부, 상대평가, 시험 감독을 없애는 ‘3무(無)정책’을 시행했는데요. 수업을 학생이 좋아서 들어야지 수업에 안 들어오면 점수 깎는 게 얼마나 유치한 거예요. 왜 60년대부터 똑같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어야 하고, 16주 수업일수가 있어야 하나요? ‘콜롬버스의 계란’이랑 똑같아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면 돼요.

 

시스템 말씀을 하셨는데요. 실제로 새로운 정책을 도입했더니 발견하게 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나요?


얼마 전에 이탈리아의 ‘베니스국제대학’에 갔어요. 세계 18개 대학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대학인데요. 국내에서는 고려대학교가 유일하게 함께 하고 있거든요. 이곳은 ‘산세르볼로(San Servolo)’라는 섬 전체가 캠퍼스인데요. 교환학생들만 모여서 수업을 하고요. 교수들도 각지에서 파견되어 와요. 다녀온 학생들이 너무 좋아해요. 개설 과목도 재미있는 게 많으니까요. 예를 들면 ‘인쇄 문화’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직지’와 ‘구텐베르크’가 자유롭게 이야기되는 거예요. 그런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창의력도 생기고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강해지니까요. 그런 게 필요한 거죠. 정답을 가르쳐서 무엇해요? 스마트폰 안에 다 있는 걸요.(웃음)

 

관련해서 ‘형식지’보다 ‘암묵지’가 중요하다는 말씀도 여러 번 강조하셨잖아요.


고려대학교가 처음으로 입시에서 논술을 완전히 없앴어요. 그래서 관련 부서의 이름도 ‘인재발굴처’로 바꾸었는데요. 신입생 85%를 심층면접으로 뽑습니다. 학생이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습한 과정, 활동한 내용을 보는 거예요. 그걸 2년 준비해서 올해 처음으로 시행했어요.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단기간에 학원에서 배운 식으로는 할 수 없죠. 작년에 그렇게 85%, 3천 명을 뽑았는데 합격한 학교가 천 개가 됐어요. 다양성이 늘어난 거예요. 이제는 형식지 가지고는 안 돼요. 옛날 이야기지만 제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주임교수님이 한 시간에 책을 몇 페이지 읽는지 물어본 적이 있거든요. 20페이지라고 답했더니 너무 낙담을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살아남을 거냐고요. 미국 애들은 책 엄청 많이 읽어요. 그런데 우리는 책을 읽나요? 요약본만 보죠. 더 이상 그런 학습으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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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뉴 노멀’


‘개척하는 지성’의 특성을 암묵지 능력, 호기심, 시간과 공간 확장 능력, 디자인 능력, 독창성 등으로 설명하셨는데요. 가장 눈길을 끄는 특성은 공감능력이었습니다. 개인화된 세상이라고들 하는데 그럼에도 공감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요?


개척한다는 것은 내가 주체적인 존재로서 시간이나 공간을 확장하는 경험을 하고, 가능성을 발견한다는 건데요.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다양성, 그리고 타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정답만 가르쳐주고 형식지만 학습하다보니까 미리 울타리를 치고요. 이 안에서 A 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기업에 들어가면 1년 이내에 약 30%가 퇴사를 하죠. 인간관계 때문에요. 21세기에는 직장에서 하는 일이 거의 프로젝트잖아요. 시키는 일을 혼자서 하는 게 아니죠. 앞으로는 같이 일을 해야 하고요. 이때 공감능력은 아주 중요해지는 거예요. 점점 더 프로젝트 형식의 일이 되니까 말이에요.

 

“21세기에는 모든 것이 네트워크화된다.”(102쪽)는 이야기가 중요할 것 같아요. 심지어 국가도 초월한 프로젝트들이 이루어질 테니까요.


그럼요, 그런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돼요. 공감능력,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하면 앞으로는 힘들 거예요. 지금 회사들도 제일 힘들어 하는 게 이런 부분이거든요. 거의 6개월씩 훈련을 한다고 하는데요. 그 정도로 되나요? 어렸을 때부터 경쟁만 해온 걸요. 제가 지금 대학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교육 방법도 물론이지만요. 더 이상 성적순으로만 학생을 뽑지 않겠다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객관성을 문제 삼아요. 하지만 고려대학교가 전 세계 4천 8백 개 대학 가운데 86위를 하는 대학이거든요. 고려대를 안 믿으면 어떻게 해요. 미국 대학교를 보세요. SAT 만점 받고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객관성이 문제였다면 다 소송 걸렸겠죠.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이 21세기의 ‘뉴 노멀’인 거죠.


이것은 비가역적이에요. 젊은 사람들, 주말에 일본 가서 라면 먹고 오고, 하잖아요.(웃음) 얼마 전에 대학 총장 포럼이 있어서 다녀왔어요. 그곳에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 부총장이 와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대학1.0부터 4.0까지를 나눠서, 지금을 4.0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건데요. 4.0이 바로 네트워크였어요. 1.0은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같은 것처럼 학자를 키우는 거였죠. 도제식으로, 연구하는 걸 보면서 배우는 것이고요.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프로패셔널들이 생겼어요. 공대 같은 게 20세기의 산물이잖아요. 기술을 빨리 가르쳐주면 그 학생들을 대기업에 써먹는 방식이니까요. 형식지를 배워서 그대로 써먹도록 하는 게 맞았죠. 그러다 대학3.0에 이르러 누구나 다 대학을 갈 수 있게 했고요. 대학4.0이 되면서는 복수학위제도 하고, 교환학생도 하고, 그런 거예요. 그렇게 배우면서 이제는 세계시민이 되는 건데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되면 20세기처럼 이 안에서 막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이에요. 삶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뉴 노멀 사회에서는 우리가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인식이 급속히 바뀔 것이다. 20세기에는 TV, 냉장고, 세탁기 등 내구재가 비싼 것이 당연하지만, 21세기에는 지금 이 순간의 효용을 극대화해주는 여행, 외식, 의류 등 소비재의 가격이 더 비싼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점심값보다 더 비싼 커피값, 집값보다 더 비싼 자동차값, (중략)일 년 동안 허리띠를 동여매고 돈을 모아서 떠나는 해외여행 경비 등 이전에는 노멀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들이 점점 노멀이 되어가고 있다.(240-241쪽)
 
18세기-19세기 농업을 하던 입장에서는 경쟁할 이유가 없었어요. 먹고 살면 됐죠.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다 하버드, 스탠퍼드 가려고 하고 욕심을 부리고 경쟁하다보니까 나타난 현상들이 지금의 것들인데요.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해요. 30년 전에 이민 간 사람이 최근 한국에 와서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해요. 한국이 이렇게 발전했는지 몰랐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헬조선’이야기를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결국 경쟁에서 나오는 마음의 문제인데요. 욕심을 조정하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왜 문과대 학생들이 경영학을 복수전공 하느냐고 해요. 글 잘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리는데 말이에요.

 

 

개척하는 은퇴


총장님도 한 개인으로서, 이런 문명사적인 변화를 맞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으신가요?


저는 계획은 없고, 항상 현재에 충실하며 살았는데요.(웃음) 이런 생각은 했어요. 책에도 수명 이야기를 했잖아요. 지금까지는 2단계만 살았죠.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직장 잡는 준비가 30년, 이후 30년은 열심히 하면서 자기 자식을 자기와 똑같이 키우며 바톤 터치를 했죠. 이후 10년 정도 여생을 살다가 가는, 2단계였다면요. 지금은 3단계가 됐어요. 수명이 길어졌으니까요. 저도 고민이 많아요. 제가 베이비붐세대인데요. 다음에 책을 쓴다면 ‘개척하는 은퇴’를 쓸까 했어요.(웃음) 왜냐하면 제 세대가 700만 정도가 되는데요. 하나도 은퇴 이후가 준비되지 않았거든요. 너무나 심각한 문제가 많이 있는 거예요. 특히 우리나라는 인프라가 많이 구축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개인적으로도 그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가봐요?


다시 저 개인으로 돌아오면요. 저는 원래 자유로운 것을 원했기 때문에 법대 시절에 다들 고시 공부를 할 때도 저만 유일하게 계속 공부를 한다고 했고, 유학을 갔어요. 지금도 저는 같은 생각이에요. 자유롭고 싶어서 교수가 됐고요. 이제부터는 정말 자유롭게 프리랜서 작가가 되면 좋겠다, 생각도 해요. 아직도 20세기의 좁은, 1차 방정식 같은 것으로만 얘기를 하니까 개인을 너무 힘들 게 하는 것 같거든요.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지금 젊은 세대가 인구수도 적은데 이 많은 베이비부머 세대를 어떻게 부양하겠느냐고 하잖아요.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베이비부머들은 80세까지 일을 해야죠. 왜 일을 안 하고 부양 받으려고 해요?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말이에요.

 

저출산으로 노인인구를 떠받칠 노동인구가 적어서 걱정이라고 하는데 70대나 80대를 노동시장에 흡수하는 것은 왜 불가능한가?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제조업에서 필요한 노동력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데, 단순히 사회경제적 이유로만 본다면 저출산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일까?(142쪽)

 

유럽에도 보면 70세에도 바텐더로 활동하잖아요. 식당 웨이터도 하고요. 오히려 더 친절해요. 젊은 사람들만 일해야 하나요? 또, 왜 매일 일해야 해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해도 되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일자리로 유일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아파트 경비원밖에 없어요. 다른 일자리를 정부에서 많이 만들어줘야 해요. 지금 저희 세대에게는 은퇴 이후의 삶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거든요. 저는 그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논의는 아주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총장으로 있으면서 원래 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도 ‘3G스쿨’이었어요. 50대 정도가 다니는 학교인데요. 가령 연금을 받는 교수나 교사는 정말 하고 싶었던 역사나 철학, 영화 같은 것을 배우고요. 그렇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졌던 직업과 관련해서 컨설팅을 하거나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요. 봉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봉사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거죠. 그렇게 대략 세 분류로 교육하는 학교를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60세부터 30년을 더 살 텐데 아무 준비를 안 하니까요. 20대에 향후 30년 살기 위해서 준비한 것처럼 50대면 이후 30년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래야 해요. 아쉽게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에요.

 

이 책은 역시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으세요?


저는 오히려 중학교 3학년 정도가 읽으면 좋겠어요. 중학교 3학년을 둔 학부모가 읽어서 얘기를 해줘도 좋겠고요. ‘개척하는 지성’은 제가 총장이 되면서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온 거였는데요. 그동안은 너무나 주어진 것에서 기득권에 안주하고, 대접 받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찾아다녀야 해요. 세상은 넓고요. 할 게 많아요. 꼭 국내 명문 대학만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해외 대학에 기회가 더 많을 수 있죠.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왜 국내만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젊은 학부모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세상에는 대안이 너무나 많은데 정답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그 생각을 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도전하고, 조금만 바꾸면 엄청난 기회들이 있어요. 딱 한 번 사는 인생이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해보지도 않고 겁을 먼저 먹으면 얼마나 불행한가, 생각해요. 인생에 즐거운 게 얼마나 많은데요.(웃음) 삶의 의미는 자기가 만들어야 해요.


 

 

개척하는 지성염재호 저 | 나남
21세기 뉴노멀 사회를 이해할 열쇠들을 쉽게 풀어 놓았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도전할 젊은이라면 미래를 개척하는 여정에 반드시 지참해야 할 나침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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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인생이 바뀌는 데 5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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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관점 디자이너(Perspective Designer)다. ‘관점 디자이너?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이지?’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만든 직업이기 때문이다.(중략) 관점 디자이너는 관점을 바꿔 생각의 방향이나 구조를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18쪽)

 

자신의 직업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하나의 브랜드를 만든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는 오피스리스 워커(Officeless Worker)다. 하루 100통 이상의 전화 통화를 하고, 수시로 오가는 휴대전화 메시지와 이메일을 이동하는 차 안에서 확인한다. 강연과 미팅이 매일처럼 이어지는 그는 한 달에 20번 월급을 받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어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만든 ‘우아한형제들’에서 근무하기로 결정할 때 계약서에는 “박용후는 2,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을 때 회사를 졸업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후 배달의민족은 2,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고, 그는 계약대로 회사를 졸업했다. 물론 졸업식 이후 바로 입학식도 이어졌다. 졸업과 입학이라는 개념을 직업에 가져온 관점의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One of Them’이 아니라 ‘Only One’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몸소 보여주며 여러 개의 명함을 갖고, 직업의 개념을 다시 정의한 박용후. 그가 자신의 대표작 『관점을 디자인하라』  개념 확장판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나만의 정의를 가지라는 말이었다. 생각의 관성에 머물러 있지 말고, 치열하게 사색해서 얻어낸 자신만의 정의를 갖는 일, 이것이야말로 당신을 대체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고 박용후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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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정의를 가져라


이 책을 처음 냈을 때로부터 5년이 지났어요. 이번 ‘개념 확장판’에서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처음 이 책을 썼을 때는 정신없이 썼어요. 생각이 나면 무조건 기록했으니까요. 5년을 지나오고 보니까요. 바뀐 게 너무 많더라고요. 우선 제가 생각하기에 부끄러웠던 부분은 드러냈는데요. 좋은 회사라고 얘기했는데 알고 봤더니 아닌 사례도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은 뺐어요. 아픈 것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대로 두면 그 책을 읽는 분들은 그 기업이 아직도 좋은 기업인 줄 아실 테니까요. 한편 이 책은 5년 뒤에 바라본 5년 뒤의 관점이에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이야기의 순서도 많이 고민해서 바꿨어요. 그동안의 변화에 대해서도 기존의 것과 연결되는 것들은 다 넣었어요.

 

책에 대한 애정이 많이 느껴지네요.


이 책이 제게는 굉장히 소중해요. 저를 있게 해줬고요. 내가 어떻게 있었는지 설명하는 책이니까요. 그만큼 더 정성을 쏟아서 개정 작업을 하고 싶었죠. 원래는 훨씬 두껍게 내려고 했는데요. 출판사에서 책을 따로 더 내자는 제안을 주셨고요. 다른 내용은 잘 묶어서 『관점을 디자인하라 2』로 낼 예정이에요.

이번 개정판에서 덜어낸 부분이 있다면 더 강조된 것도 있겠죠? 어쩌면 그것이 지금 대표님이 가진 생각의 핵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생각의 공식화가 원칙이라고 생각하고요. 원칙은 자기만의 정의를 갖는 것이라 생각해요. 남의 정의를 갖고 싸우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 나만의 정의를 가지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는 2권에서도 똑같이 할 거예요. 나만의 정의를 내리는 일을 8년 동안 해봤더니 이렇게 하면 좋더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이어서 하려고 해요. 결국은 정의 하는 방법을 얘기하는 거죠.

 

나만의 정의를 내리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특히 ‘파자(破字, 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누는 것)’를 해보는 방법이 있는데요. 저는 한자 쓰는 방법도 바꿔보려고 해요. ‘철학’을 ‘철:학’으로 띄어쓰기를 해보는 거예요. ‘습관’을 ‘습:관’으로 보면 다르죠. 익힐 습(習), 익힐 관(慣)이잖아요. 이걸 뒤집어보세요. 관습이죠. 관습은 뭐예요? 이미 관성이 되어서 익혀야 하는 거예요. 익혀서 관성이 된 게 아니라 관성이기 때문에 익혀야 하는 것이 관습이거든요. 같은 한자인데 무엇을 앞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잖아요. 숙성과 성숙도 그렇고요. 사회와 회사는 무엇이 다를까요? 당황과 황당도 마찬가지고요. 똑같은 한자거든요. 관점을 바꾸는 방법은 뒤집어보는 데 있어요.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보면 돼요.

 

너무 당연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을 생각해보는 거죠.


우리가 학교에서 ‘학습(學習)’을 했잖아요. 배워서 익힌 것이죠. 그런데 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안 남아 있을까요? 습관이 안 되어서 그래요. 관성이 안 된 거예요. 그러면 생각해보는 거죠.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을까? 배우는 것이 문제였을까, 익히는 게 문제였을까, 관성이 되는 단계가 문제였을까. 학습을 ‘학:습:관’으로 보면 이해가 쉬워지는데요. 학교에서 ‘습’은 돼요. 암기는 되는 거죠. ‘암기’의 사전적 의미가 ‘단기적 기억, 기계적 기억’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기억’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또 달라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저는 학교에서 한자를 안 가르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생각하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우리나라는 철학을 암기하게 하는 나라예요. 쇼펜하우어가 몇 년에 태어났는지 물어보는 나라잖아요. 그가 무얼 생각했는지,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묻는 게 아니고 그저 외우라고 하잖아요. 암기만 하니까 기억이 안 되는 거예요.

 

 

깨달아야 바뀐다


이 책은 결국 질문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중에서도 질문을 잘하려면 ‘시작 생각’을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중요할 것 같거든요.


시작 생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제예요. 전제에서 질문이 시작되거든요. 가령 어떤 전제에서 우리 법이 만들어졌느냐를 보면요. 저는 사람은 나쁘다는 전제에서 법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만 빈틈을 주면 나쁜 짓을 할 거라 생각하고 규제하는 거죠. 나쁜 짓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규제하고, 못하게만 하죠. 네거티브 법인 건데요. 포지티브 법, 긍정적 전제로 법이 만들어졌다면 다를 거예요. 잘 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법이 될 거니까요. 질문하는 데에는 전제가 아주 중요해요.

 

실제로 현장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하셨던 거죠?

그럼요, 제 강의를 암기하려는 사람도 있는데요.(웃음) 사람들이 “왜 나는 강의도 많이 듣고, 공부하는데 인생은 그대로지?”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래서 ‘지식’의 의미를 찾아봤어요. 알 지(知) 자, 알 식(識) 자를 쓰거든요. 지식은 안다는 의미예요. 안다는 건 또 뭔지 찾아봤더니 결국 귀결되는 것은 ‘깨닫다’였어요. 그러니까 질문을 뒤집어서 해야 해요. ‘알았니?’가 아니라 ‘깨달았니?’라고요. 안 것과 깨달은 것의 차이를 모르면 깨닫는 데까지 가지 못해요. 알기만 해서는 인생이 바뀌지 않고요. 깨달아야 바뀌어요. 이 부분을 계속 강조하고 싶어요. 알지 말고 깨닫자고요.

 

깨닫기 위해 도움이 될 것 하나가 잠시 멈추어보기 같아요. 강의 때마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한다”(36쪽)고 하셨잖아요.


책을 읽다가 어떤 훌륭한 문장을 만났어요.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나요? 그 문장을 간과하고는 계속 진행하지 못해요. 거기에 멈추거든요. 멈췄다는 것은 이것을 중심으로 생각이 다시 시작되는 거예요. ‘독서는 인두 같은 한 문장을 만나기 위해 활자의 바다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인두 같은 한 문장을 한 문장을 만나면 앞으로 못 가요. 그때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는 거예요. 생각이 흐르지 않고 멈춘다는 거죠. 생각이 수평으로 흐르다가 수직으로 내려가죠. 깊어진다는 게 중요해요. 제 은사님이셨던 김재관 회장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책 제목만 봐도 그 책의 값어치는 했다는 건데요. 생각이 바뀔 수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싼 게 책이라고 하셨어요. 책이 어떻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은 책 안 사면 그만이에요. 발견하지 못한 거죠.

 

“지금은 당연하지 않지만 미래에 당연해질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26쪽)고도 하셨어요.


톰 피터스(Tom Peters)가 이제 벤치마킹의 시대는 끝났다, 퓨쳐마킹의 시대가 왔다, 고 했거든요. 퓨쳐마킹이 바로 미래에 당연해질 것을 찾는 거예요. 뭐가 당연해질까를 생각하는 건데요. 거기에는 ‘워너비’가 있어요. ‘이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 하는 게 있는 거죠. 가령 좋아하는 연예인과 살아보고 싶다는 워너비가 있다고 해볼게요. 그 방법을 찾는 거예요. 좋아하는 연예인과 살아본 기억을 심어주는 접근이 있을 거고요. VR을 이용해서 살아본 느낌을 주는 접근도 있겠죠. 로봇을 만들어서 실제 살아보도록 하는 접근도 있을 거고요. 이 다양한 접근 가운데 무엇이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 생각해보는 거예요. 우리는 그런 워너비가 실현되는 걸 영화로 많이 보는데요. 그런 영화를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워너비를 상상해본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아, 저런 방식으로 구현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겠죠. 깨닫는 게 다른 거예요.

 

관성대로 생각하다 보면 미래에 당연해질 것들에 놀라기만 할 뿐이겠죠.


그래서 거꾸로 생각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됐으면 좋겠어’를 먼저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상상이 경쟁력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상상을 먼저 한 후에 그 상상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거꾸로 생각하는 거죠. 관성대로 생각하면 거기까지 못 가요. 그러니까 거꾸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한 후 찾아와야 하는 거예요.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해요. 상상하는 사람이 이겨요. 기계는 상상을 못하니까요. 예측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대표님만의 상상하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욕망을 읽는 거죠. 인간의 ‘오욕(五欲)’이 있잖아요. 수면욕, 색욕, 재물욕 등의 다섯 가지 욕구가 있는데요. 그 욕구가 미래에는 어떻게 실현될까, 생각하면 돼요. 지금 실현된 것도 있죠. 먹는 방법도 진화했잖아요. 시켜먹고 싶은데 과정이 불편했어요. 왜 내가 일일이 찾아야 하지? 그걸 해결해줬죠. 그렇다면 어디까지 이 욕구가 진화할 수 있을까 상상하는 거예요.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욕구의 마지막 끝점을 잡아두고 거꾸로 내려오면 돼요. 출발은 욕구예요. 오욕이죠. 또 여기에 관여하는 게 바로 ‘칠정(七情)’이잖아요. 화내고, 기분 좋고, 울고, 이런 것들이요. 오욕의 어떤 것을 해결해야 기쁠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철학이나 미래를 다루는 학문은 이렇게 다 연결되어 있어요.

 

관련해서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네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다 오욕이에요. 가령 수면욕. 잘 자야 하는데 코를 골고, 편하게 자지 못하니까 베개를 만들자, 이런 거죠. 코골이 수술은 무서워, 편하게 고치면 좋겠어, 이런 욕구가 있으니까 잘 때 자세를 바꿔주는 베개를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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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보다 사색


한 강연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의 제목을 살펴보면 공통된 단어들을 찾을 수 있는데, 그 단어들로 문장을 만들어 보면 현재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는 책장에 꽂혀있지 않아요. 표지가 보이게 진열해놓죠. 그걸 쭉 보는 거예요. 분야별로 구분도 되어 있잖아요. 인문 분야에서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보는 거죠. 그 안에서 내러티브를 찾는 거예요. 이 책들의 중심 키워드가 뭐지? 힐링이구나, 지금 아프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잖아요. 또 어느 시기가 되면 트렌드 책이 많이 나와요. 아, 불안하구나, 미래를 읽고 싶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어요.

 

더불어 책에서는 소셜미디어를 미적분하라고도 하거든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미적분함으로써 우리가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 흐름을 읽고 다양하고 깊은 개인의 생각을 알아가면서,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의 실체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결국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면서도 결코 당연하지 않은 기발한 생각을 해낼 수 있게 만든다. 즉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기발한 생각의 재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유용한 도구 아닌가?(111쪽)

 

양면이 있죠. 그래서 검색보다 사색이라는 말을 하는 건데요. 앞으로는 사회 갈등이 더 고도화될 거예요. 왜 그럴까요? 각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거든요. 이것은 왜곡되어 있다는 의미예요. 심지어 컴퓨터가 개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다 알아서 좋아하는 것만 보여줘요. 우리는 과거 종이신문적 사고를 가져야 해요. 신문 한 부를 던져주면 개인은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구나, 를 보잖아요. 그것이 과거에 정보를 소비하던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좋아하는 것만 보고 자기최면에 걸려요. 그러니까 한 가지 다른 것을 발견하면 맹공을 퍼붓는 거죠. 따라서 지금은 정확한 통계가 필요한 시대예요. 진짜 사람들의 진심이 무엇인가를, 왜곡되지 않은 마음을 알아내는 기술이 인공지능이 아마 하게 될 거예요. 빅 데이터를 분석하고요. 그런데요. 빅 데이터보다 중요한 건 스몰 데이터예요.

 

스몰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고요.


질문이죠. 어떤 사람의 질문 세 개만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어요. 그 사람과 결혼을 할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결혼을 앞뒀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하지만 아직 확신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고요. 그게 스몰 데이터예요. 그 데이터에서 가지를 쳐 상황을 예측하는 거죠.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검색보다 사색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검색이 사색에 영향을 끼치니까 문제죠. 저는 정말 책을 많이 사는데요. 표지가 읽고 싶기 때문이에요. 표지의 한 줄을 가지고 생각을 많이 했으면 만 원의 값어치를 충분히 한 거예요. 그게 책방에 오는 이유예요. 표지 하나로도 생각이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딥 다이브 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두 번째 책에서 하게 될 거예요.

 

두 번째 책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요?


초고는 다 써서 출판사에 넘겼어요. 내용은 제 수첩 안에 이미 다 있고요. 제대로 넘기기 위해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큰 종이에 키워드를 붙이면서 흐름을 잡는 중이에요. 내년 중에는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관점과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찾은 가장 멋진 단어 ‘깨닫다’


“나는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는 아예 친분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75쪽)고 한 말이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이른바 ‘착한 기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잖아요.


어찌 보면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착하지 않은 기업을 홍보하거나 마케팅하면 두 배, 세 배 피곤해요.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요. 자기를 속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남을 속여야 하거든요. 반면 좋은 기업은 있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사람들이 어떻게 이것을 느끼게 할 것인가, 이것만 고민하면 돼요. 질문의 방향이 한 곳으로만 가죠. 나쁜 기업은 그렇지 않잖아요. 진심을 전하는 방법만 몰입하는 게 아니라 포장하는 기술도 고민해야 해요. 본질이 아니잖아요. 보이는 거고요.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더 쉬운 일이에요. 앞서 이기적이라고 말씀드린 게 그 이유인데요. 제가 일 편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기업’이란 어떤 것인가요?


근본의 차이인데요. 착한 기업, 좋은 기업은 배려가 있어요.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나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 같은 분들 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사람들이에요. 그런 분들이 오래 가더라고요. 그러는 척 하는 것과 그러는 것은 다른데요. 보면 그러는 척 하는 사람이 70, 진짜 그러는 사람이 30이에요. 척을 할 수는 있지만 길게 가지 못해요. 들통이 다 나는 거거든요. 그런 분들을 많이 봤어요.

 

흥미로운 것은 “앞으로 이룰 것들은 덤이라고 생각한다”(62쪽)는 내용이었거든요.


어렸을 때 꿈꾸던 걸 다 이뤘어요. 누군가 BMW를 가질 거야, 라고 꿈꾸다가 그걸 가졌다면 꿈을 이룬 거죠. 그때부터 덤이라는 관점을 가지면 태도는 달라져요. 덤이라고 생각하면 고맙다는 관점으로 가게 돼요.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이 돼요. 꿈을 이루기 전까지는 굉장히 이기적인데요. 그 이후, 즉 덤은 이타적이죠.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뤘으면 다음부터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절실함을 진화시켜야죠. 그 덤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심사숙고가 있어야 하고요. 저는 덤을 쓰는 방법이 그 사람의 품격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잉여를 가지고 어떻게 좀 더 품위 있게, 의미 있게, 가치 있게, 를 고민한다는 거죠.

 

이 생각이 지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저는 불교 신자예요. 나한테 왜 이런 게 주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해봤어요. 8년 동안 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없잖아요. 강의를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요. 강의의 의미를 생각해봤어요. 강의는 제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에요. 강의라는 것은 제가 생각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장치 같은 거예요. 제 강의록은 계속 바뀌거든요. 어떨 때는 두렵기도 해요. 진화하는 것인지, 결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고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가진 것들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해요. 그리고 5년 뒤, 지금 한 일을 되돌아봤을 때 정말 잘했다고 나한테 박수칠 수 있을까 생각하죠. 최근에 찾은 가장 멋진 단어가 ‘깨닫다’인데요. 지금까지의 8년이 내가 알려고, 알게 해주려고 했던 일이라면 앞으로는 많은 사람을 깨닫게 해주는 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아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되니까요.

 

오늘도 강연이 두 개 있다고 하셨는데요. 강연을 할 때 꼭 하는 말은 뭔가요?


저한테 하는 말이 있고, 청중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저한테는 ‘너 그거 진심이니?’라고 물어봐요. 이 말이 진짜인지를 저한테 질문하고요. 청중들에게는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꼭 해요.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고요. 정말 그것밖에 없어요.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책 후반부에는 청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따로 묶으셨는데요. 만약 청년들이 모인 강연이라면 어떤 말을 하시고 싶으세요?


그런 강연에서는 이런 질문을 해요. “10년 안에 당신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라고요.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요. 백 명 중 두세 명이 손을 들어요. 우리나라는 3%밖에 가능성이 없는 나라인 거죠. 부자가 되는 방법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시작이에요. 안 될 거야, 하는데 부자가 될까요? 『논어』에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는 말이 나와요. 인간 같지 않으면 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대로에서 똥을 싸는 사람이 있었어요. 공자가 그걸 보고 그냥 지나쳐요. 그러다 풀숲에서 똥 싸는 사람을 봤는데 막 혼내는 거예요. 제자가 물었어요. 큰 도로에서 똥을 싸는 게 더 잘못한 거 아닙니까, 왜 그 사람은 두고 이 사람만 혼냅니까, 라고요. 큰 길에서 똥을 쌀 정도면 가르쳐도 안 되는 놈이다, 라고 공자가 답하죠.

 

곧 2019년입니다. 독자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시작 생각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작’도 ‘시:작’으로 읽으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처음이잖아요. 스타트. 그런데 ‘작(作)’이 들어 있어요. 만드는 거예요. 생각의 처음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나의 출발 생각, 처음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질문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나는 어떤 전제에서 생각을 시작하는가 질문하라고요. 무의식적 전제가 당신을 지배하지 말게 하라는 건데요. ‘살다보니 그렇더라’, ‘세상은 이런 거야’ 같은 전제를 하지 말아야 해요. 된다는 전제로 시작하면 좋겠어요. 할 수 있다는 전제로 생각을 시작해보면 많은 것들이 보이거든요. 인생이 바뀌는 데에는 5년이면 충분해요. 이때 가장 중요한 건 5년의 첫 날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고요. 이 첫 날의 생각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겁니다.


 

 

관점을 디자인하라박용후 저 | 쌤앤파커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듣고,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느낄 수 있는 비결, 바로 남과 다른 관점을 갖추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관점뿐 아니라 ‘아이디어’가 필요한 그 어떤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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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하정우 “걷고 읽고 쓰면서, 정신을 차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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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가 2011년  『하정우, 느낌 있다』  이후, 7년 만에 두 번째 책  『걷는 사람, 하정우』 를 썼다. 5년마다 책을 쓰고 싶었던 그. 첫 책이 ‘그림 그리는 배우’의 일상이었다면, 이번 책은 ‘걸어서 출퇴근하는 배우’의 이야기다. 영화 <PMC: 더 벙커> 개봉을 앞두고 만난 하정우는 “극장에서만 기자들을 만나다가 북카페에서 간담회를 진행하니 다소 어색하다”며, 출간 소감을 밝혔다.

 

11월 23일 출간한  『걷는 사람, 하정우』 은 이틀 만에 2쇄, 1주일도 되지 않아 4쇄를 찍었다. 비단 하정우의 팬들만 책을 사지 않았다. 걷기에 관심 있는 사람, 자연인 하정우의 삶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가닿았다. 강남에서 홍대까지, 하루 평균 3만 보, 가끔은 10만 보를 걷는 하정우에게 ‘걷는 삶’이란 무얼까. 친구들로부터 ‘걷기 교주’라고 불리는 하정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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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필수품

 

예상보다 책이 늦게 나왔다고요.

 

영화 촬영이 이렇게 빨리 들어갈 지 몰랐어요. 작년에 <1987> 촬영을 마치고 짬이 생겼는데, 올해에는 <신과 함께>가 개봉하면서 시간이 촉박했어요. 2010년에 문학동네 출판사와 책을 냈을 때 기억이 참 좋았거든요. 5년마다 한 번씩 내가 살고 있는 삶을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7년이 지나 두 번째 책을 쓰게 됐네요.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올 해부터인가요?


작년 말에 출판사로 연락을 드렸고요.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한 건 올해 3월부터예요. 휴식을 가질 때, 어떻게 시간을 쓰면 가성비 높은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이것이 저의 7년간의 화두였거든요? 뭘 쓰면 좋을까 생각해보니 7년간 제가 ‘걷기’에 깊이 빠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책을 쓰게 됐어요. 3월에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나기 전에 출판사와 미팅했고요. 본격적으로 쓴 건 4월부터, 마지막 교정까지 보는데 꼬박 8개월이 걸렸네요.

 

책 부제가 ‘걸어서 출퇴근하는 배우’예요. 오늘도 걸으셨나요?


6시 반에 집에 나와서 한남대교 근처 고수부지를 돌았어요. 만 보 정도 걸은 것 같은데요. 요즘 미세먼지가 많아서 얼굴을 꽁꽁 싸매고 다녀요.

 

책을 보니, 하와이에서도 자주 걸으셨더라고요. 휴양지에서 걷는 일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특별할 건 없고요. 대개는 한강 고수부지에서 걸어요. 아마 제가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였다면 굳이 하와이까지 가진 않았을 거예요. 하와이에서도 보편적인 일상을 보내요. 다만 좀 더 자유롭게 걸을 뿐이죠.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셨다고요? DVD도 많이 수집한 걸로 알아요.


책을 사 모으는 걸 좋아해요. 제가 영화를 찍으면 DVD가 나오잖아요? 그 DVD를 사는 영화 팬분들이 있고요. 책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SNS를 하지 않기 때문에 팬들과 가까운 소통을 못하는데요. 어쩌면 이렇게 책을 내는 일이 저만의 소통 방식인 것 같아요. 제게 책은 아날로그 감성 같은 이미지가 아니에요.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필수품이라고 할까요? 지키고 싶은 어떤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메모도 많이 하는 편인가요?


그때그때 일기를 쓰는 편이에요. 제가 배우가 되고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잖아요. 현장 스태프들까지 포함하면 약 1천 명? 그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일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지’ 생각해요. 그래서 그때그때 느낀 감정을 기록하려고 해요. 이번에 책을 쓰면서 예전에 쓴 일기장을 많이 들춰봤어요. 

 

책으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뚜렷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영화를 찍고 나서, 이 작품이 재밌나? 재미가 없나? 판단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책은 더더욱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로서는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내 일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야기 사이사이, 행간에 담긴 감정을 봐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보편적인 일상을 보내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읽혀도 좋겠네요.

 

함께 뛰는 동료 배우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걷기 모임 멤버는 누가 있나요?


배우, 영화 스태프들이 가장 많고요. 같이 일하는 영화제작자 대표, 프로듀서, 정말 어릴 때부터 친구인 직장인들도 많아요. 최근에 영화를 같이 찍은 정우성 형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는데요. (웃음) 주지훈 배우는 저희 팀에 들어오진 않았지만, 가장 뜨겁게 함께 걸었던 시간이 있었고요. 선배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배우는 철들면 안 된다”는 말인데요. 어쩌면 이 말이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의미일 지도 모르겠어요. 우선 바깥 공기를 쐬면 기분이 너무 좋고, 뭔가 입맛이 생기잖아요? 후각도 갑자기 깨는 것 같고. 걸으면 걸을수록 맥주 맛도 더 좋고요. (웃음)

 

책을 읽은 독자 분들이 궁금할 것 같은데요. 효과적으로 오래 걸을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걷는 건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필요 없어요. 오랫동안 걸을 때 꼭 지켜야 할 원칙은 휴식을 반드시 취해야 하는 거죠. 저희는 보통 1교시라고 하는데요. 40분을 걸으면 10분 내지 15분은 꼭 쉬어야 해요. 많게는 10교시까지 걸을 때가 있는데요. 아무리 잘 걷는 사람도 쉬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해요. 관절이나 발바닥, 특히 물집이 잡히는 걸 유의해야죠. 밑창이 좋은 런닝화를 꼭 신고 걸어야 해요. 에어가 충분한 기능성 운동화를 신는 게 가장 좋아요.

 

어떤 길을 걸으면 좋을까요?


그건 독자 여러분 상황에 따라 다를 거예요. 사는 곳 근처에 고수부지가 있다면 좋겠지만, 집 앞 골목, 아파트 단지를 걸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죠. 처음에는 굉장히 지루할 수 있는데요. 다섯 바퀴 내지 열 바퀴, 하루 작은 양부터 실천해 나가면 나중에는 굉장히 크게 다가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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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있다면 나눠야 하지 않나요?

 

걷는 행위에 관한 책이 꽤 많이 나왔어요. 좋아하는 책이 있나요?


한국 독자가 많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는데요. 작가님이 갖고 있는 루틴이 마음에 들었어요. 뭔가 제가 걸으면서 느끼는 마음을 확인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도 흥미롭게 읽었어요.『최고의 휴식』이라는 책은 마인드풀니스 명상법에 대한 책인데요. 내가 알고 있는 공간을 반복적으로 걸었을 때 일어나는 효과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어요.

 

책을 보니, 독서모임을 하신다고요.


아.. 저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지금도 잘 어울리고 지내거든요. 대학교 선후배들도 지금도 친하고. 사실 그 밥에 그 나물인데요. (웃음) 이제 40대가 되니까 술자리를 해도 할 이야기가 별로 없는 거예요. 그래서 1,2주일에 한 권씩 책을 정해서 이 책을 안주 삼아서 만나자고 했어요. 그런 취지로 시작한 모임인데,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자주 만나진 못해요.

 

토니 포터의 『맨박스』 를 읽고 쓰신 글이 인상 깊었어요.


부제가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이었죠? 저자는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맨박스’라고 지칭하고, 이 틀을 과감하게 깨부수고 나와야 한다고 지적하는데요. 읽으면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저 역시 종종 남자답거나 멋진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과연 나는 남자다운가? 남자다운 것은 뭘까? 이런 의문이 들어요. 사실 알고 보면 저는 저음의 목소리 뒤에 집밥을 해 먹길 즐기는 세심한 면도 있거든요. 흔히들 여성스럽다고 말하는 취미도 즐기고요. 저는 ‘남자답다’라는 알쏭달쏭한 말보다는 ‘사람답다’, ‘인간적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 조금 더 기뻐요.

 

전문 작가가아니라고 하셨지만, “이런 문장을 쓰고 싶다”와 같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내 말투를 그대로 글에서 느낄 수 있게 할까. 이것이 큰 고민 중 하나였어요. 음성 지원이 되는 듯한 문체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글을 쓰면서 나는 평소에 어떻게 말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소설이나 시를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그런 생각은 아직 안 해봤어요.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시나리오를 한 편 더 쓰지 않을까요?  『하정우, 느낌 있다』를 쓴 게 2011년인데 지금 읽어보면 너무 오그라들어서요. (웃음) 이번 책은 책 제목 글자 그대로 담백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느낌이나 스토리보다는 그냥 ‘걷는 사람’ 하정우에 대해 썼다고 볼 수 있어요.

 

요즘 자주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지금 찍고 있는 영화에 관한 생각이죠. 늘 촬영장에 가면 시나리오를 정독하기보다는 어떻게 재밌게 찍지? 이 영화가 재밌어야 할 텐데, 같은 생각을 더 하거든요.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고. 그 다음으로는 오늘 저녁에 뭐 먹지? 막걸리를 마실까, 맥주를 마실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웃음)

 

책 34쪽에 이렇게 쓰셨어요. “나는 나의 기분에 지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나의 기분으로 인해 누군가를 힘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 걷기는 내가 나 자신과 타인에게 하는 약속이다.” 내 기분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걷기와 그림’ 외에 또 다른 방법이 있나요?


글쎄요. 가끔 어떤 날은 내 감정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감정에 꽂히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고, 작업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럴 땐 단순해지는 게 방법인 것 같아요. 또 다시 걷는 이야기지만, (웃음) 러닝 강도를 높이거나 반신욕을 해요.

 

“배우는 신비로운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는 어떤 선입견이 있잖아요. 비슷한 고민은 없나요?


누구도 저를 신비롭게 생각하진 않지 않나요? (웃음) 저는 제가 신비롭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힘든 것도 있지만 분명 얻는 것이 많은데요. 좋은 게 있다면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나눠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걷는 행위가 제게 너무 좋으니까요. 이 좋은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거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계획이 있나요?


그건 정말 꿈인데요. 시간이 주어진다면 반드시 가고 싶어요.

 

책을 쓰면서, 개인 하정우가 얻은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이렇게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을 굳혔어요. 계속 잘 걸으면서 소중한 일상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담백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에요.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자주 생각하는데요. 그럴싸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진 않지만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나아간다면 언젠가 바라는 꿈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아침마다 눈을 뜨고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귀찮거든요. 비가 오면 차라리 잘됐다고 좋아할 때도 있고요. 그런데 걷고 나면 뛰고 나면, 찾아오는 행복감이 정말 엄청나요. 그걸 아니까 할 수밖에 없고요.

 

세 번째 책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배우로서 한 작품 한 작품 만들어가다 보면, 이야기할 거리가 생길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니까요. 또 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걷는 사람, 하정우하정우 저 | 문학동네
그가 길 위에서 바라본 노을, 무지개, 하늘, 그의 새벽 걷기 코스의 쉼터이자 카페가 되어주는 한강 편의점, 걸은 후에 그가 직접 조리한 요리 등 그가 모아둔 일상의 단편들이 스냅사진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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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마이클 바스카 “책을 선별하는 게 출판사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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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매일같이 쏟아지는 250경 바이트의 정보가 미국 의회 도서관이나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보다 적은 양의 자료에 비해 더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날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정보는 사실 CCTV 화면이나 마찬가지다. (중략)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전송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보다 중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느냐다.
- 6쪽


심리학자 시나 아이엔가는 마트에서 소비자들에게 스물네 가지의 잼과 여섯 가지 잼을 보여줄 때 구매 의사결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폈다. 소비자들은 여섯 가지보다 스물네 가지 잼의 시식코너에 더 많이 몰려들었지만, 더 많이 구입한 건 여섯 가지 잼 판매대에서였다. 다양한 선택지가 오히려 구매 의욕을 꺾은 셈이다. 선택 사항이 늘어날수록 기회비용에 대한 후회는 늘어난다. 사람들은 적은 후회를 낳는 행위를 선호하고, 더 많은 정보 앞에서 후회를 피하려고 아예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모든 게 과잉인 사회,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도 방대한 정보량으로 인한 피로도 때문이다. 큐레이션은 선택지를 줄이고 덜어내는 돌파구다. 기존의 ‘더 많은 생산’에서 벗어나, ‘더 적은 선택’과 ‘더 좋은 생산’을 추구한다. 미술관에서만 사용되던 이 단어는 옷차림, 스타일, TV 프로그램, 책, 영화 등 모든 영역에서 정보를 추출하고 대신 제공하는 서비스로 다시 살아났다.


마이클 바스카는 출판업계에서 일하며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환경을 목격했다. 모두가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면서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을 무시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큐레이션만큼 지금의 사회와 경제에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수단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과잉 문제에 맞서서 과감히 덜어낼 것을 주장하는 『큐레이션』은 “21세기 사회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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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걸 생산하는 게 문제


한국에 온 건 처음이라고 들었다.

 

매번 오고 싶었는데 마침내 오게 되어서 행복하다. 출판업자로서 많이 여행하는 편이다.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웃음)


『큐레이션』이 많은 국가에서 소개되었는데.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 러시아어, 크로아티아어, 페르시아어, 곧 포르투갈어로도 출판될 예정이다.


책을 냈을 때 이 정도의 반응을 예상했었나?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전세계에 책이 퍼져나간다는 건 기쁜 일이다. 명성을 얻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잘 되고는 있다. 누구나 자기의 말이 그 의미를 전달하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건 자부심이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국가에서도 이 책을 관심 있게 본다는 건, 세계적으로 큐레이션이 주요 트렌드가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래도 전세계가 비슷한 경제적 모델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생산하는 게 문제다. 특히나 데이터와 인터넷 정보를 다루는 산업에서는 큐레이션에 대한 관심사와 중요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큐레이션을 주제로 책을 써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나?


10여 년 전부터 디지털 혁명이 출판업계를 강타했다. 이북이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출판업자로서 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컨퍼런스를 많이 참석했었다. 모든 사람이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걸 보면서, 주로 미술계에서 사용하던 단어가 왜 출판업계에서 나오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멋져 보이고 있어 보여서 사용하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큐레이션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출판업의 문제일까?


출판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출판 관계자들도 이 문제를 이미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매년 백만 종의 책이 매년 출간되는데, 그전에 출간됐던 책까지 합치면 말도 못 하게 정보가 넘치는 상황이다. 어떻게 선별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줄 것인지 해결책을 찾다 보니 책으로도 묶이게 되었다.

 

 

출판사의 역할


지금 시대를 설명하면서 “큐레이션 그 자체가 문화 자본이 되는 새로운 단계(384쪽)”라는 문장이 있었다. 큐레이션 자체가 문화 자본이 된다는 건 어떤 뜻인가?


예전에는 많이 지식을 가졌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특별한 계층이 문화를 전유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달라졌다. 문화가 파급되는 방식도, 예전에는 특정한 곳에서만 특정한 전통의 문화가 퍼졌다면 지금은 전통도 세계화되었다. 어떤 사람이 문화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그 자본은 하나의 문화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어떻게 섞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영국 사람은 이제까지 영국 음식만 먹고,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만 먹어왔다면 이제는 전통을 서로 섞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먹고 있지 않나? 문화자본은 ‘믹스 앤 매치’의 문제다. 어떻게 혼합하느냐에 따라 문화 자본이 결정되는 콘셉트가 기존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편집자와 출판사의 권한이 막강했다. 이후 점차 판매자와 리뷰자가 핵심 중개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힘이 독자에게 이양됐다(271쪽)”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독자가 모든 권한을 다 가졌다는 뜻은 아니다. 출판사와 편집자가 추천한 책을 사람들이 읽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책이 워낙 많다 보니 독자의 리뷰에 실제 독서 시장이 영향을 받는다. 누구나 다 큐레이터가 된 세상이다. 누군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SNS 등에 올리면, 그 감상에 의해 다른 누군가가 책을 읽는다. 출판시장에서도 점점 모든 일이 큐레이팅 화 되고, 개개인이 큐레이터가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서점이나 출판사 자체로도 큐레이션을 하고 있다. 서점에서 소정의 금액을 내면 개인에게 맞는 책을 추천해준다거나, 출판사에서 북클럽을 모집해 선별한 책을 읽는 모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런 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좋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출판사는 책이 나왔을 때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하는 일이 중요하다. 출판사에서 모든 책에 ‘예스’라고 말하면 책이 넘쳐나 감당할 길이 없다. 어떻게 보면 출판업계는 이미 큐레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게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고.


점점 책이 안 팔리는 세상이다.


출판업계뿐만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업계는 예전부터 쉽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도 항상 과잉의 문제가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이 산업에서 연결된 사람들이 파트너십을 맺어서 어떻게 하면 과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큐레이팅 작업을 해서 좋은 정보를 준다면 발전할 만한 미래 방향이 생길 것이다. 이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다 가지고 있는 문제기 때문에, 책 큐레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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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에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큐레이터를 자청하는 단체와 인물이 많아지면서 큐레이션 자체가 피로도를 높이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큐레이션 역시 하나의 과잉이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지적한 부분이 맞다. 좋은 걸 주겠다고 하는 행위가 이미 너무 많아졌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현명하게, 자동화된 큐레이션과 함께 사람의 지식으로 세심하게 선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최근 한국에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원저작물을 무단으로 리뷰하고 그걸로 광고 수입을 얻으면서 원작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원작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까.

제대로 답변이 될지 모르겠다. 분명 어려운 문제고, 원작자의 권리가 진짜 문제일 수도 있다. 큐레이터의 역할은 사회에 영향을 끼치거나 중요한 역할을 받는 게 아니라, 중간에서 도와주는 역할이다. 구체적으로, 법적으로 저작권을 보호해야 할 이슈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 유튜버나 큐레이터들의 권한이 커지고 사회적 영향력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하는 말에 사용자가 많이 휘둘릴 가능성 또한 커진다. 스타 DJ가 믹싱한 음악이 원 작곡가의 곡보다 더 유명해지는 경우도 많지 않나.


개개인도 자기 정보를 큐레이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조차 정보 관리의 대상이 된 건데, 정보 이용자가 스스로 자기 정보를 관리하고 주체적으로 큐레이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이나 회사나 본질은 같다. 큐레이터가 남들보다 뛰어나고 남들과는 다른 선별을 하려면 어떤 분야를 깊게 공부하더라도 많은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로 예외는 없다.


원정보를 축약한 걸 읽는 것도 도움이 될까?


많이, 긴 시간 동안 읽어야 할 것이다. 뛰어난 큐레이션을 하는 사람들은 특정 분야에 대해 남들이 안 쳐다본 수준까지 간 장인에 가깝다. 큐레이터가 되려면 빨리 갈 수 있는 짧은 길은 없는 것 같다.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고,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그러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큐레이션마이클 바스카 저 / 최윤영 역 | 예문아카이브
현대 사회에서 “양질의 콘텐츠만을 선별?조합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재창출하는 큐레이션이 미래를 준비하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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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의경 “가난을 소재로 쓰지만 글은 가난하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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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주문 콜센터에는 ‘지망생’들이 모여 있다. 몇 달 더 일해 고모가 있는 호주에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은 주리, 남자친구와 소원해진 용희, 아나운서 지망생인 시현,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형조 등 각자의 고민을 안은 이 동갑내기들은 오늘도 좁은 사무실 안에서 한 시간에 수십 통씩 전화를 받고 모욕적인 언사를 감당한다. 그나마 콜센터에서는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밖에서 몸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갑질과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콜센터가 주 무대인  『콜센터』에는 김의경 작가가 실제로 일했던 피자 주문 콜센터의 경험이 녹아 있다. 2014년 한국경제신문에서 장편소설 『청춘파산』으로 등단한 작가는 당선 당시에도 콜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사업 부도로 20대에 신용 불량자가, 30대에 개인 파산자가 되었던 경험이  『청춘파산』이 되었듯, 10년 넘게 반지하를 전전하면서 ‘내 집’을 꿈꾸던 경험은 이케아 방문의 경험과 엮여 소설집 『쇼룸』으로 묶여 나왔다. 자발적으로 물건을 사고 성실하게 소비의 노예가 되는 『쇼룸』 속 주인공과  『콜센터』의 청춘은 같은 한국을 공유한다. 일터에서 모욕을 감내하고 다이소와 이케아 물건을 위안으로 삼는다. 모든 게 그들을 낙담시키지만 묵묵히 살아나간다. 가지고 싶고,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을 ‘지망’하는 지망생들의 이야기는 어느 논픽션보다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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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데 못 한 걸 소설에 썼어요


『쇼룸』과  『콜센터』가 거의 동시에 나왔어요.

 

『콜센터』  전에 먼저 『쇼룸』  출간을 협의하고 있었어요.  『쇼룸』은 2014년 말에 이케아가 개장하고 그때부터 머릿속에 쓰던 작품이었는데, 둘다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어요.


어떤 내용으로 썼었나요?


처음 썼던 ‘콜센터’는 추리소설이었어요. (웃음) 콜센터 배경으로 여자 세 명이 주인공인데 살인 사건이 났었죠. 지금은 어떻게 이런 걸 썼을까 싶은데, 당연히 출간 거절도 여러 번 당했어요.  『쇼룸』도 처음에는 「이케아 쇼파 바꾸기」의 장편 버전이었어요. 아닌 것 같다 싶어 2017년에 두 작품 모두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하나는 공모전에 넣고 하나는 출판사에 제안했는데,  『쇼룸』이 출간되겠구나 싶은 순간에  『콜센터』로 수림문학상 당선 통보를 받았죠.


전화로 당선 통보를 받으셨죠? 기분이 어떠셨어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정말이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상을 타도 담담한 것 같은데, 제가 촌스러워서 그런지 몇 주는 꿈 속을 걸었던 것 같아요. 며칠 동안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남편은 여왕 대접을 해줬죠.


상이라는 게, 문단에서 인정받았다는 기쁨도 있잖아요. 상금도 물론 있지만요.


3,4년간 되게 막막했거든요. 두 번째 책은 못 내는구나 싶었고요. 어떤 작가는 계약이 밀려있다는데 저는 원고가 있어도 계약이 안되니까 절망스럽고, 남편은 일하고 있으니 또 집중이 안 되고, 초조한 게 있었죠. 상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고 보상받은 기분이었어요.


남편과의 에피소드가 『쇼룸』에 많이 반영되었던 것 같아요. 「쇼케이스」에서 희영이 이케아에서 하룻밤 자고 오자고 한 이야기도 작가님이 한 말이었을까요?


「쇼케이스」는 제 이야기가 많이 반영되어 있어요. 저희 남편이랑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벌써 결혼생활이 10년 째예요. 결혼식도 못 한 채로 계속 반지하방을 전전하면서 살다가 이케아가 처음 개점했을 때 혼자 갔거든요. 너무 놀라서 60개 쇼룸에 다 앉아봤어요. 그날 집에 가서 남편에게 쇼룸 가서 하루만 옷장에 숨어있다 자고 오자고 제안했어요. 농담 반 진담 반이었는데 남편이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경찰서 가고 싶어?” 하고요. 영업방해죄로 잡혀간다고 해서 밤에는 영업 안 하잖아, 했더니 “가택침입죄!” 하더라고요.


소설에 나온 대사 그대로네요. (웃음)


어쩌면 저희 남편이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을 건드렸나 봐요. 10년 동안 하도 거주지를 옮겨 다니다 보니 불안한 데다, 둘 다 신용이 좋지 않아서 대출을 받을 상황도 아니었어요. 첫 책 내고 1년쯤 지났을 때 남편이 빚이라도 내서 결혼식을 하자고 했었는데, 그때도 소설에 나온 것처럼 결혼식은 필요 없고 글을 쓰게만 해달라고 이야기했었어요. 같이 돈을 벌어서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기적인 마음이었죠. 남편이 그다음 날 자기는 5년 동안 고기를 썰 테니 저는 글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결혼이나 사랑, 행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남편분도 쓰는 과정을 같이 보나요?


소설가 부부의 로망이 있잖아요. 각자 방에서 멋지게 작업하다가 중간에 나와서 커피 마시면서 잘 써가냐고 물어보는 것. 저도 이 사람과 결혼하면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몇 년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소설 봐달라고 하면 피곤하다고 자더라고요. 마지막에 『쇼룸』을 보여줬더니 졸지 않고 보더니 괜찮다고 해줬어요. 남편이 힘이 많이 되고 있어요.


책에서 나온 이야기 중 실제로 한 일이 있으세요? 이케아에서 하루 잔다든가, 진상 고객을 직접 찾아간다든가 하는 일이요.


그러고 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데 못 한 걸 소설에 쓴 것 같기도 하네요. (웃음) 진상의 주소까지 적어놓은 적도 있어요. 이케아는 검색해 보니까 전세계에 이미 그런 일이 많대요. 10대들이 이케아 들어가서 파티를 하거나, 노숙자가 들어가서 카메라에 잡히고, 유명한 유튜버가 들어가서 일종의 광고를 해주기도 하고요. 아직 이케아가 강경하게 대응한 적은 없다고 해요. 남편이 해보자고 했으면 실제로 했을 것 같은데, 못 했으니 소설이라도 한 번 들어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험이 소설이 되려면


『콜센터』도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죠?


한 3, 4년 일하려고 콜센터에 들어가서 반년 있다가 2014년 12월에 신춘문예 당선 통보를 받고 그만뒀어요. 당시 어떤 블랙컨슈머에게 시달려서 힘들었던 때였어요. 대단한 일도 아니었거든요. 잘못했다고 몇백 번은 말한 것 같아요. 계속 죄송하다고 말하다가도 장난스럽다고 다시 하라고 하더라고요. 당선 통고 받는 날 아침에 그 사람이 며칠 잠잠하다 저를 해고했냐고 확인 전화를 걸었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왜 그렇게 해고하고 싶어 했을까요, 그 사람들은 그럴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유도 없이 그랬겠죠?


저도 피자 콜센터에 전화 걸었던 경험이 있어요. 행패를 부린 적은 없지만 경험이 겹치면서 작은 이야기에도 흔들리게 되더라고요. 소설을 쓰려고 콜센터에 들어갔던 건 아니셨을 거잖아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 경험이 소설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굳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시 쓸 때는 감정노동에 초점을 맞춰서 쓰게 되더라고요.


다섯 명의 주인공이 해운대에 갔을 때 함께 “바다다!”라고 소리를 치셨다고요. 아끼는 동생들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걸까요?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저를 보면 영락없는 아줌마였죠. 30대 여성도 많지 않고, 80%는 20대였어요. 대학 재학생이나 휴학생, 고등학생도 있어요. 실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복 입고 와서 전화를 받아요. 거기서 일하는 친구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연애는 못하더라고요. 시간이 금이니까 자기 같은 흙수저는 감정을 통제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나운서 지망생도 있었어요. 머릿속에 그 친구들을 담아두었다 불러내어 썼죠.

청춘 소설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청춘이라는 테마에 매여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콜센터에서 일하다 보니 매일 듣는 게 취업 이야기였는데, 제 청춘도 자의 반 타의 반 그랬거든요. 20대 때 어머니가 부도나고 온 가족이 빚에 시달리면서 살았던 이야기가  『청춘파산』이었어요. 제 청춘 시절의 후회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배우가 연극이나 영화에 출연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살듯이 저도 제 인물들과 함께 20대를 다시 살아보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소설에 나오는 20대도 암울하다는 사람이 있지만, 저는 지금 청춘의 평균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쇼룸』『콜센터』 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쇼룸』에서는 감정 표현 없이 주인공의 상황만 나열되어 있다면, 『콜센터』는 항상 슬프거나 울분에 차 있는 인물의 상태가 그려져요.


『쇼룸』의 평론을 보고서야 저도 깨달았는데, ‘어디에나 있는 것 같은 인물’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두 작품을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고도 말하고요.  『콜센터』 에서는 어떻게든 인물을 깊게 살리고 싶었어요. 콜센터의 다섯 인물을 제가 너무 사랑한 걸까요?


아침과 저녁에 나눠서 썼다고 하셨는데, 다른 시간대에 쓰면서 분위기가 달라진 건 아닐까요?


조명이 달라졌겠죠? 『쇼룸』 은 저녁 시간, 약간 잠겨있을 때 조용하게 썼고요. 기왕이면 밝을 때 『콜센터』 를 썼던 것 같아요. 쇼룸 쓸 때는 차이콥스키 듣고, 콜센터 쓸 때는 「Uptown funk」를 틀어놓고 썼어요. (웃음)


작품 분위기랑 잘 맞아떨어지네요.


그런 식으로 변화를 주려고 했었죠. 2년 정도 실패했다고 생각하니까 2018년에는 어떻게든 두 개를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에 몰입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쓰는 동안 남편이 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생계를 해결하면서 쓰는 게 녹록치 않았을 텐데요.


예전에도 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썼어요. 공장에서도 일하고, 카페에서도 일하고,  『청춘파산』에 나온 일은 다 한 것 같아요. 남편이 일한다고 했지만 저도 일했었거든요. 이제 제 나이로 일자리를 검색하면 더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살 수가 없더라고요. 몇 번 수첩 공장에 나갔다가 나이가 어린 사람을 쓰고 싶다고 해서 일주일 만에 잘린 적이 있어요. 사장이 보통 40대니까 마흔 넘은 사람은 쓰려고 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평생 아르바이트하면서 글 쓸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제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걸 깨달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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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저를 위로해요


육체노동보다는 콜센터 일이 낫다는 말이 여러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서 나와요. 감정을 소모하는 일인데도 육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조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저는 지금도 밖에서 벌벌 떨면서 카드 파는 것보다는 콜센터가 나은 것 같아요. 융통성만 있다면, 일에 대한 노하우를 조금 익히면 진상을 덜 만나거든요. 피해 가는 요령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주 심한 진상을 만나면…. 정말 쉬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계속 전화를 받아야 하거든요. 이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다고 하니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도 왜 법적으로 나를 보호하는 게 없는지, 내가 이렇게 심한 성희롱을 받는데 왜 계속 전화를 들고 있어야 하는지 자주 생각했어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뭔가 쓰고 읽는 요구가 생길 텐데, 그런 상황 속에서 오히려 글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그래도 제가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활동이었으니까요. 20대 때도 일 끝나면 고시원까지 들어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들어가서 글을 쓸 생각에 신이 나는 거예요. 사채업자가 직장에 찾아올 순 있어도 제가 글을 쓰는 걸 방해할 순 없잖아요. 그때는 글쓰기가 오락의 느낌이 있어서 했던 것 같아요. 재미가 없었다면 안 했겠죠. 글쓰기가 고통스럽다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아직 즐거워요.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게 재미있어요.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만약 20대 때 집안에 별일이 없었다면, 살만했다면 글을 썼을까요?


부도가 안 났다면 온갖 책을 수집해서 종일 보는 독자가 되었을 것 같아요. 제가 독서량이 창피할 정도로 다른 작가보다 많지 않거든요. 다른 분들이 작가 이름을 나열하면 저는 잘 몰라서 창피하고, 콤플렉스이기도 해요. 독서량도 많지 않은데 왜 글쓰기를 할까 생각해보면, 저는 어쨌든 경험은 많으니까 계속 경험을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독서는 간접적인 경험이잖아요. 직접 한 경험이 더 글쓰기에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러게요. 선명하게 남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문학을 잘 안 읽잖아요. 이질적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콜센터에서는 누구도 문학을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제 친구들도 제 책만 봐요. 독서는 노력을 들여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소설을 안 읽어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잖아요. 영화나 만화로 볼 수도 있고요. 저는 쉬운 문장으로 몰입감을 주고 싶었어요. 이케아에 와 있는 느낌, 콜센터에 함께 있는 느낌을 주고 싶고, 독자를 끄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안 읽는다고 독자들 탓만 할 순 없잖아요.


콜센터에서 같이 일했던 분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늘 상상해요. 예를 들어 그 지망생이 실제로 아나운서가 됐을까? 솔직히 안 됐을 것 같아요. 꿈에 대해 말하는 게 조심스러운 게, 제가 소설가가 된 것도 운이 많이 작용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20대 친구들을 보면서 다이소나 이케아의 물건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스펙은 좋지만 저임금으로 일해도 비슷한 인재가 어디에나 있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너무 긍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럼 아나운서가 되려고 30대, 40대까지 도전했을까요? 어느 시기에는 포기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소설을 절망적으로 그리진 않아요.


제가 만약 소설가가 되지 못했더라도 소설가가 되려고 애썼던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되게 상투적으로 들리지만, 하지만 그 시간도 삶의 과정 중 하나잖아요. 감정노동에 시달린 시간도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테고요.


『쇼룸』『콜센터』도 힘든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덜 불행하려고 계속해서 활동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작가님도 성격도 비슷할 것 같아요.


『청춘파산』도 의외로 조금 밝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요. 인간사가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잖아요. 되게 불행한 사람들도 살면서 유머를 구사할 때가 있을 거란 말이에요. 사형수도 내일 죽더라도 오늘 재미있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저는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그걸 소설 속에서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유머를 일부러 만들어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담담히 살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은 모습이에요.


동정심을 받고 싶진 않은 거예요. 가난이라는 게 스스로 이겨나가야 하는 부분이잖아요. 아무것도 안 사고 5년 동안 돈만 모은다면 불행할 거예요. 소확행을 추구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이소는 인터뷰 끝나고도 가려고요. 물건이 주는 기쁨이 있어요. 물건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든요.


이케아 가구는 들여놓으셨어요?


하나도 안 들여놨어요. 그런데 수림문학상 상금으로 다음 달에 전세집으로 이사해요. 경기도 성남에 3천 5백짜리 전세집이 진짜 있더라고요. 소설에 그런 집은 없다고 썼는데 찾아냈어요. (웃음) 상금으로 전셋집을 마련했으니 이케아 크노파르프 소파라도 하나는 꼭 사서 오려고요. 취재비를 지불하지 않았으니까 그거라도 해야죠.


앞으로 생각한 소재가 있나요?


아무래도 빚이나 파산 쪽으로 많이 쓴 것 같은데, 여성 파산에 대해 생각을 계속 하고 있어요. 파산에서도 성별의 문제가 분명 있고요. 어머니가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언니도 학습지 교사로 아무리 오래 일해도 파산에서 벗어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지금 이곳의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요. 가난을 소재로 쓰고 싶지만 제 글은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직 못 쓴 이야기보따리가 많아요. 아직은 그래도 안에 많이 있어서 쓰고 또 쓰려고요.



 

 

콜센터김의경 저 | 광화문글방
이 시대 청춘의 모습과 정확히 닮아 있는 주인공 다섯 명이 콜센터에서 겪은 갑질 세태를 ‘웃픈’ 형식으로 제대로 포착한다. 또 진상 고객의 허세와 갑질의 상황들이 청춘의 현재와 어우러져 웃음과 헛헛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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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목인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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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돌고 돌아, 20대 중반이 넘어서 처음 곡을 썼다. 밴드 ‘캐비넷 싱얼롱즈’의 멤버로 음악을 시작해 인디 씬에 김목인이라는 이름을 단단히 뿌리내린 지 15년째. 태어날 때부터 음악가였던 사람은 없는데도, 그는 뒤늦게 음악을 하게 된 자신의 정체성을 자꾸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는 그가 지금껏 해온 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지난 1년의 생활을 차분하고 단정하게 정리한 책이다.

 

어떤 직업들은 특정한 이미지로 존재한다. 싱어송라이터를 떠올릴 때 ‘낭만’이나 ‘자유’같은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하지만 책에 실린 김목인의 하루는 그런 단어들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다. 그는 공연장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인쇄물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많고, 일을 마치면 가계부를 쓰곤 한다. 홍대에 가는 일은 드물고, 노래를 하는 직업인 데도 ‘사석이나 노래방에서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한 독자는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를 읽고 ‘김목인을 아는 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것이고, 아니라면 그의 팬이 될 것’이라 평했다. 이에 공감하며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음악가가 아닌 다른 직업들의 면면까지도 궁금해질 것이라고. ‘일이란 자신에겐 뚜렷하지만 남들에게는 한없이 모호하기 때문이다(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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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싱어송라이터의 일 년 


‘싱어송라이터라는 직업이 뭘 하는 것인지 소개해 달라’는 말에서 시작된 책이에요.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읽기 편한 인문교양서로 쓰기 시작했어요. 정보 위주로 이 직업에 대해 친절히 설명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는데 쓰다 보니 제가 다른 음악가들의 삶을 조사한 게 아닌데 그렇게 구성해도 될까 싶은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같은 싱어송라이터라고 해도 저만 이렇게 살 수도 있잖아요.(웃음) 실질적인 정보보다는 음악가라는 직업을 가진 한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들어 제 1년의 생활을 자세히 기록하는 형식으로 구성을 바꾸었어요. 

 

3집 앨범 <콜라보 씨의 일일>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는데, 책은 3집이 나온 후 1년 만에 출간됐어요. 원고 작업이 그만큼 오래 걸렸던 건가요?


책 집필은 앨범 작업을 하기 전부터 진행됐는데, 방향을 바꿔서 원고를 다시 쓰기로 했을 무렵에 3집 앨범 작업이 시작됐어요. 아무래도 작업을 하는 동안 일어난 일들이니 더 생생하게 원고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틈틈이 생각나는 내용이나 에피소드 등을 일지로 기록해 놨죠. 이후 작업이 끝난 뒤에 3집을 만드는 과정을 추가해서 책을 완성한 거예요.

 

두 작업이 겹쳐서 힘들었겠어요.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좋았어요. 앨범 작업이 끝나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책을 썼다면 아마 이렇게 생생한 경험과 생각을 담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번역서는 여러 권 펴냈지만 본인의 책을 출간한 건 처음이에요. 소감이 어떤가요?


저는 번역하고 글을 쓸 때도 항상 책을 쓴다고 생각하고 작업했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이 첫 책을 낸 것처럼 새롭게 봐주셔서, 제 이름이 단독으로 적힌 책이 나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실감했어요.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게 평소 짧은 글들을 쓰는 호흡보다 훨씬 길다 보니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그만큼 즐거웠어요.

 

제목을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올랐어요.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나요?


사실 이 제목은 출판계약서를 쓸 때 작성한 가제였어요. 이후 책 작업이 마무리된 뒤, ‘작은 가게로서의 음악가’가 제목 후보로 올랐는데 편집자가 ‘직업’이라는 단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거든요. 또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이었기 때문에 이 제목을 그대로 사용해도 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어요. 가제로 두었던 문장이어서 제목을 아직 안 지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래도 편집자의 짐작을 믿고 판단을 맡겼죠.(웃음)

 

 

우리가 몰랐던 음악가의 면면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1집 앨범 <음악가 자신의 노래>에 실린 곡들이 산문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1집을 만들 때의 고민이 책을 쓰는 데도 도움이 됐나요?


책을 쓰려면 한발 물러서서 음악가라는 직업에 대해 바라봐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당시의 생각들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1집 앨범은 2011년에 발매된 거라, 이 시점에 음악가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게 염려스럽기도 했어요. ‘이 사람 아직도 음악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네?’라는 느낌을 줄까 봐요.(웃음) 하지만 그 앨범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책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동안 싱어송라이터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다며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씀해주셔서 신기해요. 제가 주로 만나는 대중은 인디음악의 팬들이기 때문에 ‘이미 다들 아는 내용을 쓰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이 계속 있었거든요.

 

싱어송라이터에게 이렇게 잡무가 많은지 몰랐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PPT를 만드는 모습은 아직도 잘 상상이 되지 않는데(웃음), 꼭 처리해야만 하는 수많은 일들 중 가장 어렵거나 적성에 안 맞는 작업이 뭔가요?


공연 세트리스트를 정하는 거요. 어떤 음악가들에게는 즐거운 일일 텐데 제게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에요. 공연의 긴장을 미리 느끼고, 아직 가보지 않은 현장을 상상해야 하는 게  편하지 않게 느껴지나 봐요. 공연에서 부를 노래를 7곡 정도 뽑으면 되는 일이라 사실 어려운 작업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최대한 잘 골라야 한다는 부담이 커요. 또 음악가들은 외향적일 거라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일의 구조 자체가 외부인과 많이 만나고, 공연장에 서야 하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내향적인 사람도 많아요. 저도 그런 편이라 낯선 사람들을 자주 만나 어떤 부탁을 받고, 그걸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일들이 힘든 일 중 하나였어요. 특히 회사와 함께 일하지 않고 혼자 모든 걸 감당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은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요.

 

여전히 공연이 긴장되세요? 


큰 실수를 한 경험이 있으면 그 공포를 떨치기가 어렵거든요. 5년간 아무 문제없이 부른 노래인데, 어느 날 가사를 한 번 틀리니까 그 노래의 전주만 나와도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컨디션이 안 좋거나 생각이 많을 때도 자꾸 긴장하고요. 실제로 많은 뮤지션들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다들 긴장을 해요. 저는 격차가 좀 작은 편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대기실에서 너무 긴장한 티를 많이 내서 옆에 있다가 저까지 그 긴장이 전염될 때가 있어요.(웃음) 어떤 공연이든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지만 그걸 잘 견디는 것은 각자의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에요.

 

출퇴근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나, 예술 계통에 있는 직업에 대한 흔한 편견이 대중에게 드러나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한가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공연이 없을 땐 뭘 하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을 만나면 뭐라고 대답하세요?


보통은 작업한다고 말할 때가 많아요. 실제로 작업에 관련된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어느 날 한 선배가 전화해서 뭐 하냐고 묻기에 “작업실에서 녹음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 후 얼마 뒤에 또 전화가 왔는데 그때도 작업 중이었거든요. “작업하고 있다”고 했더니 너무 부러워하는 거예요. 어떻게 종일 작업만 할 수 있냐면서.(웃음) 작업과 연관되어 있지만, 실무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도 많은데 그건 이 직업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요. 저는 평소에 작업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에요. 그게 100% 음반 작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요. 또 일주일에 한 번 무대에 선다고 해도 규모가 큰 공연 같은 경우는 일주일 내내 신경 쓰고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시간적으로 보면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바쁜 날들이 많죠.

 

책 작업을 떠나서 평소에도 ‘음악가’라는 직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성향일 거예요. 영화 계통에서 일하고 싶었던 20대 초반에 쓴 노트를 보니 그땐 영화 작업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아마 저는 무슨 일을 해도 이런 책을 펴내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음악가였던 사람은 없는데, 유독 저만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음악가가 된 것 같은 낯선 기분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자꾸 일에 대해 생각하나 봐요. 또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처음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편견 섞인 이야기나 질문을 일상적으로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들에 대해 속으로 답을 내리며 살아온 것 같아요. 특히 1집 앨범을 낼 때 그 생각이 강했죠. 반면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를 쓸 때는 그저 편하게 내 직업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결혼과 육아가 작업에 지장을 주지 않느냐고들 궁금해 하는데, 엄밀히 말해 아직 체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159쪽)’고 썼어요. 이제 3집이라는 체험 결과가 나왔는데, 어떻던가요?


지장을 많이 줘요.(웃음) 심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시간도 많이 부족하고요. 결혼한 싱어송라이터들이 모이면 “결혼하니 노래가 잘 안 써지지 않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특히 연애 감정에 대해 곡을 쓰던 사람들이 더 그렇게 느끼더라고요. 제 작업은 사랑 이야기를 많이 다루지 않아서 그 부분에 있어 힘들진 않았어요. 하지만 주로 일상에서 모티프를 얻다 보니 하루가 거의 비슷해서 작업이 어려웠죠. 저녁에 아내가 육아를 맡고, 나가서 작업할 수 있게 시간을 줘도 막상 나오면 작업은 안 되고 배회만 하게 되는 거예요. 밤늦게까지 뭘 하긴 했는데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논 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오는 거죠. 결국은 3집에 그런 심리를 담게 됐어요. <콜라보 씨의 일일>이 번아웃 된 주인공이 도시를 배회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절반은 힘들었고, 절반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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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될 수 있어요 


‘작은 가게로서의 음악가’ 파트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이 비유가 음악가라는 내 직업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했다.(137쪽)’고 했는데, 싱어송라이터라는 직업을 구체적인 가게에 빗대어 생각해보는 것이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었나요?


창작자는 자신의 자아를 재료삼아 작업을 해요. 그러다보니 일이 개인적이고 비밀스럽고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죠. 그런데 순수하게 창작만 하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잖아요. 현실에서는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까 양쪽이 조화롭지 못해 생기는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요. 제 자아를 굳이 많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날에도, 공연이 있으면 무대에 서야 할 때가 있고요. 하지만 나를 개인이 아닌 ‘하나의 가게’라고 생각하면 좀 나아지는 면이 있어요. 이외에도 싱어송라이터가 회사와 협업할 때 스스로를 개인이라고 생각해서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입장에서는 회사에 의존하게 되거든요. ‘사장님이 나를 잘 챙겨주시겠지’라는 마음이 들면서 인간적으로 바라는 게 많아지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서 자꾸 서운할 일들이 생겨요. 그런데 나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고, 회사는 내 가게와 거래하는 곳이라 생각하면 필요한 일들을 주고받고,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가끔 ‘음악가’란 직업을 작은 가게에 빗대어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공연이 많아지면 작업할 시간이 줄어들고, 작업할 시간을 늘리면 수입이 적어지는 딜레마가 있잖아요. 일을 청탁받았을 때 그것을 할지, 하지 않을지 구분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나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선배들이 “아무거나 들어오는 일이면 다 해라”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일단 자신을 알려야 하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들어오는 일을 다 한다고 앨범이 잘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쉬었을 때 다음 작업에 더 잘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돼요. 만약 하루에 3개의 공연이 들어온다고 하면, 저는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비즈니스로만 생각한다면 ‘하루 일하고 돈 많이 번다’고 할 수 있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공연을 하는 게 심리적으로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리고 앨범 홍보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냥 와서 좀 해달라는 건 안 하죠. 도움이 별로 안 된다는 걸 알아요.(웃음)

 

직업을 직업으로 존재하게 하는 건 수입인 게 당연한데, 예술 계통에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너무 박한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잘 논다’라고 표현하는 영역이 있잖아요. 그 분야의 일은 사람들이 일의 부수적인 어떤 것이라 생각하고, 직업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에 관련된 직업이 생긴 역사는 무척 오래됐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일이 아니라 놀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 인식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게 예술가 지원 사업에 대한 반응이에요. ‘내 피 같은 돈을 왜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들에게 주냐’는 비판이 일잖아요. 단순히 그 직업에 대해 잘 모르니까 생기는 오해인 것 같아요.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를 읽은 동료들의 평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직접 만날 일이 많진 않았지만, SNS에 평을 올려준 분들이 있어요. 장기하 씨나 윤덕원 씨는 음악가의 삶을 잘 정리해줬다고 이야기해주었고, 매니저와 프로듀서들도 자신이 일하며 느꼈던 것들을 잘 써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들이 ‘싱어송라이터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느낄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는 말을 많이 해줘서 고마웠어요. 협업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쓸 때, 제가 그들의 직업을 왜곡하거나 지나치게 자세히 쓴 부분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거든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게 읽어 준 게 특히 보람 있었어요. 한 친구는 이 책을 읽고 제가 작업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것처럼 느꼈나 봐요. 자기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뜨끔했나요?


네, 그랬죠.(웃음)

 

 

싱어송라이터 김목인 씨의 일일


매일 조금씩 다르겠지만, 평균적인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새벽 2시쯤 자서 9시~9시 30분가량에 일어나요. 그때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아내는 나가서 작업을 하죠. 저는 집에서 오전 동안 무언가 해보려고 노력하는데, 메일을 보내야 하거나, 서류 작업이 있으면 음악 작업을 못하기 때문에 항상 유혹에 시달려요. 성과가 보이는 깔끔한 일들을 먼저 할 것인가, 아무리 허술해도 작업을 할 것인가 하는 마음이 싸우면서 오전을 보내죠. 오후에는 오늘처럼 인터뷰를 하는 등의 외부 일정으로 밖에 나갈 때가 많아요. 건반을 여러 번 쳐봐야 한다거나 기타를 연습해야 하는 등의 단순 작업은 밤늦게 할 때도 있는데, 발상에 관련된 건 주로 오전에 하려고 해요. 그때가 집중이 가장 잘되거든요. 

 

연말이라 많이 바쁘죠? ‘음악가에게 1월은 일이 없는 달이다.(15쪽)’라고 했는데, 12월은 다를 것 같아요.


연주자들 같은 경우는 12월에 일이 없으면 ‘내가 한물갔나?’라는 초라한 느낌이 많이 든대요. 얼마 전 지하철역에 앉아있는데 디너쇼 광고가 굉장히 많이 붙어있는 걸 봤어요. 저는 인디 씬에서 활동하다 보니까 그런 공연보다는 연말에 급조된 공연에 가는 경우가 많아서(웃음) 마음 한쪽은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하고 싶지만, 늘 어수선하게 보내게 되는 것 같아요. 12월이지만 올해는 잡혀 있는 공연이 많지 않아요. 그래도 책이 나오고, 북토크가 있어서 공연이 별로 없단 생각이 덜 하네요. 

 

북토크는 공연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이에요. 어떤가요?


싱어송라이터의 공연은 음악과 이야기가 함께 하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소에도 공연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갈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고 느껴요. 그래도 북토크가 공연보다는 훨씬 느슨한 편이죠.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제가 음악 하는 사람이다 보니 북토크를 하면 오시는 분들도 노래를 할 것이라 생각하고 초대하시는 분들도 꼭 기타를 가져올 수 있는지 물으시는 거예요. 기타를 가져가면 공연을 준비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그걸 모르는 분들이 가끔 계시더라고요. “한 두곡만 해주세요”라고 하시는데 한곡을 불러도 가져갈 장비는 똑같아서.(웃음) 그래도 원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단출하게나마 음향장비를 챙겨야 할 일들이 생기더라고요. 어제도 북토크에서 공연 했고, 내일도 할 예정이에요.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긴장하는 정도도 비슷하고요.

 

음악가가 본업이지만, 번역도 하고 글도 쓰잖아요. 각각의 일이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나요?


제게는 그 일들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요. 많은 분들이 어느 시간에 번역하고, 어느 시간에 음악하냐고 묻는데 실제로는 동시에 이루어질 때가 많거든요. 공연이 한가할 때 번역에 집중한다거나, 번역 하다 와서 대기실에 앉아 ‘몇 페이지는 언제 할까?’ 같은 생각들을 혼자 하곤 하죠. 번역이나 글 쓰는 작업은 직업과 무관하게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었어요. 길티플레저인 거죠. 번역할 때마다 ‘이 시간에 앨범 고민해야 하는데’라는 죄책감이 항상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이 저를 보고 “자기에게 꼭 맞는 옷만 입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관심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는 음악, 번역, 글 중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게 없어요. 어느 작업이든 80% 정도 진행되었을 때 느끼는 완성도에 대한 압박감도 동일하고요. 다만 함께 일하는 음악 프로듀서나 연주자들에게는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얘기 안 해요. 그래서 이렇게 책이 나오면 쑥스러울 때가 있어요.

 

‘음악 작업 열심히 안 하는 거 아닌가?’라고 오해할까 봐요? 


맞아요.(웃음) 언제 이런 걸 할 시간이 있나 싶어 할까봐... 다른 일에 더 집중했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서요.

 

SNS 제목이 ‘음악의 회복을 찾아가는 기록’이에요. 음악의 회복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좀 진지했던 시절에 쓴 문구예요.(웃음) 예전에 속해있었던 ‘캐비넷 싱얼론즈’ 멤버들과 음악 씬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그때 나온 말인데, 보통 새로운 마인드를 가지려는 뮤지션들이 ‘음악의 죽음’에 대해 선언을 하잖아요. 기존의 것은 다 죽었고, 우리는 새로운 것을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게 아니라 ‘회복’을 생각했어요. 관성적으로 일하며 잊어버리는 것을 일깨운다는 의미죠. 많은 음악가들이 음악을 일로 하느라고 처음에 가졌던 즐거움을 잊고 사는 느낌이었거든요. 음악가들끼리 모이면 음악 얘기 안 하고, “컴퓨터 업그레이드 했어?” 이런 거 묻는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웃음) 그땐 그 모습이 안 좋아보여서 ‘음악의 회복을 찾아가는 기록’이라고 썼는데 지금은 저도 그렇게 됐어요. 물론 마음 한쪽에는 음악은 어떤 것이라는 나름의 생각이 있죠. 제가 이 책에 쓰지 않은 게 있다면 그런 부분이에요. 노래를 만드는 일이 제게 어떤 변화와 기쁨을 주었는지에 대해서요.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에게 2018년은 어떤 한 해였나요?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2018년을 시작할 때 한국대중음악상 4개 부문(올해의 음반,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포크 음반, 최우수 포크 노래) 후보에 올랐는데 다 떨어졌잖아요.(웃음) 스태프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제 위치에 대해 깨닫게 되었어요. 한계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이정도 규모의 일이었구나’라는 사실이요. 만약 상을 받았다면 ‘나는 굉장히 잘난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는데, 상을 받으려다 못 받으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다’라는 걸 깨달으면서 시작한 한 해였기 때문에 작업의 밀도를 높이는 1년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잘하고, 할 수 있는 일에 더 공들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다른 직업에 대한 호기심, 흥미로 책을 집어든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많은 분들이 큭큭 대며 재밌게 읽었다고 해주셔서 기뻤어요. 실용음악과에 가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 쓴 책이 아니니까요.(웃음) 음악가뿐 아니라 나와 다른 직업에 대해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이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은 이렇게 사는 구나’ 정도의 감상이면 충분할 것 같아요.

 

다음에 쓰고 싶은 주제나 집필을 계획하고 있는 책이 있나요?


사실 계약된 게 몇 가지 있어요. ‘오션 부옹(Ocean Vuong)’이라는 베트남계 미국 시인이 쓴 첫 소설을 번역해야 하는 일이 한 가지고요. 또 하나는 제 가사 수첩에서 노래가 안 된 메모들을 묶어보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 그 책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그런데 수첩의 메모를 독자들이 읽을 만한 형태로 구성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 모르겠어요.

 

‘김목인’이라는 이름을 단 책은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겠네요.


네. 음반도 같은 비율로 나와야 할텐데 말이에요.(웃음) 저희 어머니께서 음반으로 돈 벌고, 그걸 만드는 과정을 써서 또 돈 벌어도 되냐고 하셔서 돈 그렇게 못 번다고 했어요.(웃음) 음반 작업은 아무래도 책보다 훨씬 오래 걸리네요.

 


 

 

직업으로서의 음악가김목인 저 | 열린책들
싱어송라이터를 꿈꾸거나 직업 음악가의 삶이 궁금한 독자들은, 현실 음악가의 일상을 엿보는 특별한 재미를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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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창훈 “이 소설은 나의 총화이자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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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일찍 가장이 되어 많은 날을 바다 위에서 보낸 주인공은 아내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배에서 내려오기로 한다. 그가 간 곳은 고향 섬. 낚시로 소일하며, 고독한 생활을 이어가던 주인공에게 어느 날 한 소년이 다가온다. 낚싯대가 무엇인지, 물고기가 무엇인지, 바다가 무엇인지 묻던 소년은 급기야 물고기를 그려달라고 말한다. “얼이 빠진 상태로” 소년을 바라보던 주인공은 이제 그 소년이 누구인지 깨닫는다.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던지 쇼크가 올 것만 같았다.” 그의 눈 앞에 서 있는 이 소년은 다름 아닌 어린 왕자였던 것이다.


한창훈 작가의 장편소설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는 평생을 바다에서 외롭게 살아온 한 사람이 생텍쥐페리의 그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 그의 시선으로 삶을 통찰하게 되는 이야기다. 한창훈 작가는 여느 때와 달리 이번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을 정도로 이 작품에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3년 전, 이 이야기가 작가에게 왔을 때부터 작가는 이것을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됐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이 소설이 자신의 총화이자 총력이자 결론이라고 단호히 말하는 한창훈 작가. 무엇보다 작가는 “우리는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구에는 바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죠.”라고 당부한다. 바다와 일상과 지구와 인간의 삶이 작가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작가가 그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었는지, 이 한 마디에 모두 이해가 됐다.

 

“우리가 어린왕자의 개념을 잃어버리면 진짜 심각해져요. 정말 순수한 아이의 마음 중 가장 좋은 것만 정제해놓은 존재 같잖아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그리고 그 존재를 만든 생텍스는 전쟁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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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지?


작가님은 마감을 꼭 지키신다고 들었어요. 이번 소설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했던 작품인데요. 이번에도 마감을 어기지 않으셨나요?

 

마감 어긴 적은 없어요. 특히 이 원고는 거의 다 써둔 상태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보통은 절반 정도 써놓고 연재를 하잖아요. 그러면서 내일 것 오늘 쓰고(웃음) 하는데요. 올해 3월부터 한국작가회의 일을 시작해서요. 그걸 시작하면 쓸 수 없으니까 마구, 최선을 다해서 1차로 써놓고 연재를 시작했죠.

 

온라인 연재를 할 때는 독자 반응도 바로 확인할 수 있잖아요. 기억나는 댓글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착각한 것들을 잡아주신 것도 있고, 그랬죠. 가령 이런 부분인데요. 바다가 육지보다 늦게 식고, 늦게 데워지잖아요. 그걸 제가 무심코 착각했어요. 바다가 더 빨리 식는다고 쓴 거죠. 그 내용을 말하는 댓글을 보고 ‘맞아, 내가 왜 이렇게 썼지?’했어요. 착각들을 잘 잡을 수 있었어요.

 

제일 먼저 ‘작가의 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의문이 있었고, 무작정 바닷가를 걸었고, 어느 날 문득 ‘그 무엇’이 왔다, 그게 이 소설이다, 라고 하셨는데요.


(웃음)이 이야기는 제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소설 후반부에 “누구나 한 번쯤은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 가게 돼”(236쪽)라고 한 부분이 있어요. 혹시 ‘그 무엇’에 대한 힌트가 이 문장에 있지 않을까 했어요.


네, 비중 있는 문장이 몇 개 있는데요. 이 문장도 그 중 하나죠. 우리가 ‘이동’이라고 하면 보통 물리적인 이동만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태어나서 한 번도 이동이 아닌 적이 없어요. 성장해가면서 우리는 당연히 경험을 하는데요. 그것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나의 좌표는 다르죠. 이를 테면 첫사랑을 만나기 전과 후가 정말 다르고요. 시간이 지난 다음에 또 내 마음의 위치, 좌표는 달라요. 상황, 감정들이 끊임없이 이동을 해요. 또 다 짐작 못했던 것들이고요. 어느 장소로 간다는 것, 누구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짐작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 사는 모습이자 의미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그렇게 성장하고요. 주인공만 해도 자기 짐작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죠. ‘어린왕자’도 그렇고요.(웃음) 그래서 어린왕자의 입으로 그 말을 한 거예요. 그렇구나, 우리는 끊임없이 낯선 곳으로 불안한 이동을 하는구나, 하고요.

 

물리적인 이동뿐 아니라 심리적인 이동까지도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의문들이 많이 있으셨던 건가요?


물리적인 이동을 자꾸 생각하다보니까 감정이나 심리, 마음의 이동까지 생각이 이어진 건데요. 물리적인 이동도 같아요. 정말 어떻게 거역할 수도 없고, 짐작할 수도 없죠. 짐작도 못한 채로 주인공과 어린왕자가 만났잖아요. 어린왕자는 워낙 먼 거리에서 왔고요. 또 죽음이 내포하고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별과 별 사이의 거리 이상은 되지 않겠어요?


오랫동안 인류 공통의 질문, 우리는 어디서 왔지? 우리는 어디로 가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의문 같은 것들이 있었죠. 특히 사람들은 사라지니까요. 죽어버리면 말이에요. 그 빈 데를 어린왕자가 찾아온 건데요. 결국은 제가 그동안 고민한 것들이 그런 것들이겠죠.

 

원래는 뒤에 여쭤보고 싶었는데요. ‘수평선’이라는 은유가 오래 남았거든요. 이것이 처음에는 삶에서 우리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지향점처럼 보였는데 주인공의 아내가 죽는 장면에서는 죽음과도 연결이 됐어요. 이에 대한 작가님 생각이 듣고 싶어요.


말 그대로 비유니까요. 몇 가지 의미가 있겠죠. 어쨌든 수평선은 정확히 존재하는 점이 아니잖아요. 그냥 눈에 보이는, 가상의 것이고요. 대충 알겠는데 저기가 어디인지를 모르고, 갈 수가 없어요. 이와 가장 비슷한 게 죽음이죠. 우리는 죽음에 익숙해요. 끊임없이 사람들이 죽어나잖아요. 가까운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죽음 자체는 익숙한데 그들이 어디 갈까, 생각이 들어요. 주인공의 경우 아내가 죽었을 때 당연히 수평선을 떠올렸을 거예요. 자신이 늘 수평선을 바라보던 사람이니까요. 모니터에서, 육안으로 수평선이 보인 거고, 자기가 볼 때는 아내가 그리로 갔을 것 같았겠죠. 내가 닿지 못한 곳으로 가버렸다, 그런 의미였어요.

 

일정한 곡선을 그리던 심전도와 산소 포화도, 맥박 모두 반듯하게 퍼져버린 것이다. 나는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횡으로 누운 반듯한 일직선. 그것은 죽음이었고 동시에 또하나의 수평선이었다.


“17시 12분. 사망하셨습니다.”


의사는 사망 선고를 내렸다. 일직선은 그대로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수평선. 아내는 그곳으로 가버린 듯했다. 안녕 난 이곳으로 가, 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 수평선에서 만나, 이러는 것만 같았다.(133쪽)

 

 

이것을 쓰고 싶어서


주인공은 항해사입니다. 작가님께서도 항해 경험이 있으신데요. 직접 항해를 하면서 겪은 경험들이 많이 녹아 있겠죠?


항해가 이동이잖아요. 화물선은 끊임없이 항해를 해야 해요. 제일 무기력한 배는 항구에 묶여 있는 배거든요. 이건 다른 사람 말인데요. 파도가 치더라도 배는 바다에 있어야 한다, 고 말을 해요. 계속 선착장에 묶인 배처럼 무기력한 배가 어디 있겠어요. 파도치는 바다에 나가 이동해야 하는 거죠. 제게는 우선 항해 자체가 익숙했어요. 특히 저는 항해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몇 번 쓰기도 했지만, 쓰고 싶었어요. 해양이라는 데가 사실 낯선 데예요. 관련한 문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해양’이 아니라 ‘해안’이거든요. 바닷가만 갔다가 다시 돌아오죠. 그 바닷가, 경계를 넘어서서 더 멀리 가버리는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늘 제 마음에는 있었어요. 제 주변은 대부분 그랬으니까요. 섬사람들은 배 타는 게 유일한 돈벌이였죠. 그런 인생들을 가까이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저도 어렸을 때 당연하게 ‘나는 어떤 배를 타게 될까?’ 이랬어요.(웃음) 으레 그랬던 거죠.

 

당연히 배를 탄다고 생각했다고요?


시각이 그쪽에 가 있는 건 사실이었어요. 섬사람이라 해서 다 배 탈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거든요. 제 친구들만 봐도 그렇고요. 그런데 저는 그랬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그렇다면 그동안 이 이야기들을 계속 품고 계셨던 건가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요. 이것을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됐다고 말해도 지금은 제 고개가 끄덕거려져요. 그래왔다, 는 것에 여러 가지가 들어 있는데요. 어쨌든 제가 노는 방식이 조금 다르죠. 틈만 나면 바다 나가고, 주로 바다나 섬이 배경인 것만 거의 써왔고요. 심지어 동네 작가들을 데리고 화물선으로 지구 반대편에 가고, 이런 걸 했었거든요. 우선 물리적으로 너무 답답한 곳에 잡혀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계속 아쉬웠어요. 내 삶의 총화가 있을 텐데, 그게 어떤 작품일 텐데, 최소한 그것을 쓰고 싶은데, 했고요. 사실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3-4년 됐을까요? 그때는 단순히 이 소재라고 말하기가 무엇해서 ‘그것’이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서서히 ‘내가 써야 할 것은 이 이야기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저의 어떤 총화이자 총력이자 결론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런 책입니다.

 

그 이야기 안에 처음부터 ‘어린왕자’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이 이야기에서 어린왕자를 빼면 진짜 극히 사소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죠.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타고, 가정이 필요해서 결혼 하고, 아내가 죽어서 쓸쓸히 바닷가에 혼자 수평선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 힘이 좀 없어보였어요. 그러다 생각했죠. 우리 세대에게는 최고의 판타지가  『어린왕자』였거든요. 우주 너머를 생각해볼 수 있었고요. 그 책 때문에 별마다 의미를 두게 되고, 그 영역 너머를 상상했어요. 생텍쥐페리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잖아요.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별을 쳐다보게 만들어준 사람이고, 정말 아름다운 사람인데요. 그런 사람이 왜 죽었나요? 전쟁 때문이잖아요. 생텍쥐페리가 전쟁 때문에 총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었어요. 어린왕자가 지구에 와서 처음에는 생텍스를 만나고, 그 다음 생텍스의 죽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담은 거예요.

 

전쟁에 관한 이야기도 후반부에 중요하게 다루고 있죠.


생텍스가 전쟁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을 무심코 넘기고 살듯 전쟁은 지금도 쉬지 않고 하고 있는데 인식하지 못하죠. 하루도 안 쉬고 전쟁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어린왕자 같은 지구 바깥의 존재가 본다면 지구를 어떻게 정의내릴 것인가, 생각했어요. 특징이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늘 싸우는 종족, 서로 죽이는 종족이라고 정의 내려도 우리는 할 말이 없고요. 공식적으로는(웃음) 지구 밖에서 온 유일한 생명체라고 보고, 그의 눈에 보이는 인간을 말한 거예요. 어린왕자가 가상의 존재라고 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존재로 친다면 산타클로스보다 더 커야죠.(웃음)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거든요. 어린왕자를 작품에 데리고 오면서 제일 고심하셨던 것은 뭔가요?

 

진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말이 되게 써야 하니까요. 주인공의 개인사와 어린왕자의 이야기, 전체 얼개가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같이 흘러가게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요. 어려웠죠. 어린왕자가 너무 큰 존재기도 하고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잖아요. 그가 상징하고 있는 것들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그 미세한 상황에서 애도 많이 쓰고 그랬어요. 그동안 쓴 장편 중에 가장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매순간, 모든 장면이 다 어려웠어요.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다 하면 재미없는데 말이에요.(웃음)

 

주인공과 어린왕자가 이별하는 장면이 좋았어요. 이 작품 속 어린왕자를 ‘두 번째 어린왕자’라고 한다면 첫 번째 어린왕자의 이별보다 안심되는, 성숙한 느낌이었거든요. 서로를 이해하고, 제대로 인사하고 이별하잖아요. 그게 좋더라고요.


비극적으로 헤어지지 않는 것이 목표였어요. 생각해보면 가장 보편적인 이별은 그런 이별이잖아요. 서로 잘 지내라 인사하고 헤어지는 것 말이에요.

 

사실 주인공은 그런 이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어요.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 모두와도 이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요. 심지어 딸과는 만남도 제대로 못했죠. 출생 때도 곁에 없었으니까요. 그런 주인공이 최초로, 어쩌면 최후로 제대로 인사할 수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어린왕자라는 사실이 의미가 있을 거예요.


덧붙일 말이 없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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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이 그대로 되풀이 되는 것, 일상(日常)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새벽 기상에 일어나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하고, 담배 피우면서 그냥 있다가 원고 쓰는 하루 일과를 적으셨었죠. 요즘은 어떠세요?


서울에 오면 그렇게 못 살아요.(웃음) 그런데 정말 중요해요. 1970년대라면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가 의미가 있겠지만요. 지금은 별 의미가 없죠. 일상은 아주 단조로운 건데요.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느냐 계속 물어오니까 그걸 쓴 거고요. 저는 정말 단순하게 하루를 보내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부는가, 보고 오늘은 바다에 못 나가겠구나, 또는 오후에 바람이 바뀌는데 오후에는 뭘 낚으러 가볼까, 하죠. 담배 계속 피우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어쨌든 원고 작업을 좀 하고, 오후에는 동네 산책 하고, 이게 다인데요. 살아보면 하루가 이래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하고 사람들이 질문하겠죠.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뭔가를 더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가장 잘 사는 방법은 평범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이에요. 노자에 있는 말이에요.

 

평범한 삶을 노련하게 사는 것.


기본은 이거죠. 결국 인생은 평범한 거라는 것. 그 평범 안에서 노련하게, 인생에 이것 이상이 없는 것 같아요. 또 노련이라면 바람 방향을 읽을 줄 아는 것, 어설프게 바다로 나가지 않는 것, 이런 거겠죠. 그렇다면 이 지루함까지 포함한 일상이 바로 평화인 거죠. 평화란 말은 사실 잘못된 거예요. ‘전쟁과 평화’가 아니라 ‘전쟁과 일상’이 맞겠죠. 평화는 좀 애매한 표현이고요.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출간 당시 하셨던 북토크 행사에서 “평화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바라보고 있다. 평화의 개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 말씀 많이 공감했었어요.


저 10대 때는 사람들이 툭하면 “전쟁이나 나 버려라”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어차피 생활도 안 좋고, 이러니까요. 스무 살 때인가, 이웅평이라는 사람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난리가 났었죠. TV에서 속보가 뜨고요. 지금도 생생해요. 정말 어수선했어요. “이것은 훈련이 아니고 실제 상황입니다”라고 계속 방송이 나오는데요. 사람들이 “와!”하면서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전쟁 났다고, 잘 됐다고 말이에요. 제가 고2 때 5.18을 겪었는데요. 평화라고 부를 그 일상들, 한 사람에게서 그것을 빼앗는 데 요만한 총알 하나면 되더라고요. 저 총알 하나로 다 무화되어버려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아픔들을 다 갖게 되고요. 전쟁이 이런 거구나, 사람이 사람을 총으로 쏴서 죽인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깨달았어요. 생텍쥐페리를 죽게 한 게 전쟁이었다는 것을, 그때 어린왕자가 울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화물선은 아무 일이 없는 게 목표야. 아무 일 없이 제시간에 제 항구에 도착하는 것. 단지 그것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일 없는 것을 목표로 일들을 해. 조금 우습지? 전쟁도 그럴 거야. 우리의 목표는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전쟁 같은 게 아예 안 일어나도록 하는 거겠지.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아무 일 없는 게 가장 좋은 목표야.”(249-250쪽)

 

어제 일이 그대로 되풀이 되는 것, 그게 일상(日常)이잖아요. 그래서 날 일(日) 자를 쓰는 거죠. 가장 진부한 것, 그것이 최고예요. 화물선도 봐요. 아무 일 없는 게 최고고요. 집에서 누가 사고 안 치는 게 최고예요.(웃음) 일상을 지키려는 노력이 사실은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같아요.

 

한편으로는 어떤 희망도, 절망도 없는 담담한 태도란 생각도 들어요.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희망이라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어. 그런데도 우리 지구인은 그 말을 너무 많이 써.”(239쪽)라고 하잖아요.


맞아요, 짜증나요.(웃음) ‘희망’만 붙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제일 문제가 아이들한테 준비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하는 거잖아요. 준비를 열심히 해야 대학 간다, 준비를 열심히 해야 취직한다, 준비를 열심히 해야 진급이 잘 된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작가로서의 모든 것을 다 넣은 느낌


산문도 많이 쓰시잖아요. 소설을 쓸 때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쓰기는 솔직히 산문이 편해요. 내 방식대로 쓰면 되니까요. 소설은 합의가 되어 있는 서사여야 하니까 더 힘들죠. 특히 사회적인 문제나 이런 것들은 소설보다 산문이 좀 더 유리하다고 봐요. 소설의 능력이 지금 한국 사회에는 워낙 많이 죽어버렸어요. 제 생각에 지금은 좋은 칼럼들이 사람들을 함양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소설 장르에 대한 걱정이 있으시군요.


소설을 무슨 힘으로 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죠. 지금 작가들도 뭔가 정말 대안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원고를 쓰고, 책을 내고, 사람들이 읽고, 무언가가 공유되고, 했던 게 지금까지의 일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 시스템 자체가 많이 허물어졌어요. 다만 이런 얘기를 제가 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 소설을 쓰실 거죠?

지금은 별로 생각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함부로 장담하면 안 되는 건데요. 하여간 이 책을 쓰려고 소설을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지금도 들고요. 딱히 쓰고 싶은 게 떠오르지도 않아서요. 잘 모르겠어요. 조용히 섬에 가서 남은 기간 살 수 있게 이 책이 밥값 정도만 해주면 좋겠네요.(웃음)

 

그렇다면 이제 어떤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계세요?


아무것도 없어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없고요. 계획이 없어요. 작가로서의 모든 것을 마치 이 책 안에 다 넣어버린 그런 기분이에요. 이전까지는 책이 나와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어요. 첫 책이 나올 때도 그랬어요. 동료들 얘기 들어보면 밤을 새서 쓰고, 그러다 단편 하나 끝나면 엄청난 희열을 느끼고 한다는데요. 저는 밤을 새지도 않을뿐더러 마감 끝나고, 원고 넘기면 ‘다 끝났다’정도 느낌이었어요. 그것도 하루 만에 사라지고요. 매사 너무 덤덤했어요. 모든 책이 다 그랬죠. 그런데 이 책은 좀 달랐어요. 책이 나오기를 제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어쨌든 우리는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구에는 바다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죠.

 

 


 

 

네가 이 별을 떠날 때한창훈 저 | 문학동네
인간의 야무진 생명력보다는 소중한 존재의 죽음과 그후 남겨진 이들의 삶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생의 순간들을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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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그림책으로 20만부, 요시타케 신스케의 특별한 발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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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천재’,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있으려나 서점』  출간을 기념해 방한했다. 2013년 첫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출간하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그림책 작가로 떠오른 요시타케 신스케. 그는 2013년 이전까지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한 편집자의 제안으로 그림책을 출간하게 됐다.

 

2018년까지 요시타케 신스케가 직접 쓰고 그린 책은 20여 종. 아동 13종, 성인 7종으로 대부분의 책이 출근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에서 출간 6개월 만에 20만 부를 돌파한 그림책 『벗지 말걸 그랬어』는 2017년 볼로냐 국제도서전 라가치상 특별상을 수상했고, 올해 5월, 일본 초등학생 12만 명이 참여한 ‘어린이 책 인기 투표 TOP 10’에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이 무려 4권이 선정됐다. 그 책들은 『이게 정말 사과일까?』 ,  『있으려나 서점』 ,  『이게 정말 천국일까?』 ,  『이유가 있어요』로 국내에서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각종 추천도서 목록에 선정되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2월 7일, 주니어김영사의 초청으로 요시타케 신스케가 최초로 방한했다. 서울 중구 산다미아노 카페에서 만난 요시타케 신스케는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한국을 올까 말까 망설였는데, 아내가 좋은 기회니 다녀오라고 했다”며 긴장 섞인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20여 분이 지나자 무척 달뜬 목소리도 그림책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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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는 그림책

 

한국에 온 소감이 어떤가.

 

3일간 한국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어제 한국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있으려나 서점에서 벌어지는 있으려나 상담소’를 진행했는데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첫 그림책 『이게 정말 사과일까?』는 일본에서만 22만 부, 한국에서는 5만 부가 팔렸고, 최근작  『있으려나 서점』은 일본에서 10만 부, 한국에서는 출간 3개월 만에 3만 부가 팔렸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 그림을 좋게 봐준 편집자가 없었다면 책을 만들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림책 작가가 된 후 5년 동안 매일매일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나는 겁도 많고 스스로 뭔가를 하는 타입도 아니었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작업 노트가 70권 이상 된다고 들었다. 그림을 그릴 때, 본인만의 특징이 있다면?


실물을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내 그림책을 잘 보면, 어떤 사물과 비슷할 뿐인지 딱 그 사물 같지는 않다. 사람 얼굴도 마찬가지다. 누구하고도 닮지 않은 얼굴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이게 정말사과일까?』를 그릴 때는 한 번도 사과를 보지 않았다.

 

평소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나?


사소한 것을 자주 메모하는 편이다. 사람들이 앉을 때, 어떤 다리 모양으로 앉는지, 아이들이 쭈그리고 앉을 때 팬티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지 등 사소한 장면을 포착한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그 사람다움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많이 보지만 어른들도 많이 본다. 그래서 아이, 어른 모두가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보는데, 바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그런 것이다. 사람들의 습관, 버릇, 거짓말 등을 테마로 그린 『이유가 있어요』도 비슷하게 탄생한 책이다. 내 책에 나오는 아이의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한 편집자의 권유로 40세에 그림책작가로 데뷔했다.


50세에 데뷔한 작가도 있다. 언제든 기회는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쩌면 출판이 희망적인 업종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림책의 장점이 있다면?


보통의 책은 기승전결로 이야기가 구성되는데, 그림책은 꼭 기승전결이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고 깊다. 어릴 때 읽었던 느낌과 어른이 되어서 읽은 느낌이 달라지는 것도 그림책의 힘이다. 그림책은 주로 아이들이 보지만, 요즘은 어른들도 많이 본다. 어떤 독자들이 내 그림책을 보고서, 더 좋은 그림책이 많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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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나?


좋아했다. 스토리가 있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골라서 볼 수 있는 도감 같은 책을 즐겨 읽었다. 다양한 빵이 등장하는  『까마귀네 빵집』이란 책을 읽고서는 엄마한테 “빵 먹고 싶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책은 대개 재밌지만 너무 교육적인 책, 어른들이 생각하는 의도가 드러난 책은 싫어했다. 책을 볼 때 마지막까지 읽을 수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아이들은 뭐든지 쉽게 질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스토리를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는 동네서점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은 서점이 잘 운영되는가?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서점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종이책의 매력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을 알리고 싶어서  『있으려나 서점』을 만들게 됐다. 이 책은 상상 서점 이야기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책을 상상해보고 싶었다.

 

어떤 서점을 좋아하나?


책을 추천해주는 센스가 있는 직원이 있는 서점이 좋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책들을 추천 받을 때 참 좋다.

 

두 아이의 아빠인데, 좋은 아빠는 아니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금방 화가 나고 짜증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웃음) 그리고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같은 책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되고 싶은 아빠의 상은 ‘동경하는 아빠, 제대로 아이들에게 반응해 주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아빠’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다. “이 책 재밌네. 이거 만들면서 즐거웠을 것 같다”고. 내가 즐기면서 책을 만든 게 독자에게 전달됐다는 생각이 들어, 참 기뻤던 기억이다. 앞으로도 즐기면서 책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이 마음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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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 (출간 순)

『이게 정말 사과일까?』 2014년, 주니어김영사
『이유가 있어요』 2014년, 봄나무
『이게 정말 나일까?』  2015년, 주니어김영사
『불만이 있어요』  2016년, 봄나무
『엄마 코 좀 뚫어주세요』  2016년, 예문아카이브
『이게 정말 천국일까?』  2016년, 주니어김영사
『치아 절대 뽑지 마라』  2016년, 예문아카이브
『벗지 말걸 그랬어』  2016년, 스콜라
『아이라서 어른이라서』  2017년, 너머학교
『 뭐든 될 수 있어』  2017년, 스콜라
『아홉 살 첫사랑』  2017년, 스콜라
『심심해 심심해』  2017년, 주니어김영사
『착각 탐정단 1,2,3』  2017년, 을파소
『게다가 뚜껑이 없어』  2018년, 한즈미디어(컴인)
『좁아서 두근두근』  2018년, 대원씨아이
『레츠와 고양이』  2018년, 주니어RHK
『있으려나 서점』 , 2018년, 주니어김영사(온다)
『주무르고 늘리고』  2018년, 스콜라
『레츠는 대단해』  2018년, 주니어RHK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2018년, 주니어김영사(온다)
『오줌이 찔끔』  2018년, 스콜라
『결국 못 하고 끝난 일』  2018년, 주니어김영사(온다)


 

 

있으려나 서점요시타케 신스케 저/고향옥 역 | 온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을 비롯해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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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민섭 “당신 학교의 교훈은 뭐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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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의 이야기는  『훈의 시대』로 이어졌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무엇으로 존재해 왔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던 그는(『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 대학을 나와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개인들이 대리인간이면서 동시에 타인을 끊임없이 대리인간으로 만들며 존재해 왔음을” 깨달았다( 『대리사회』 ). 그리고 삶에서, 거리에서, 마주쳤던 훈들을 수집해  『훈의 시대』에 담았다. 한 시대를 지배해 온 언어가 종말했음을 알림으로써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자고 제안한다.

 

교훈, 가훈, 사훈, 훈화, 훈계, 훈시... ‘훈(訓)’은 언제나 우리 곁을 맴돌았다. ‘순결, 정숙, 배려, 겸손’을 배우며 자란 여학생과 ‘단결, 용기, 명예, 열정’을 되뇌며 자란 남학생. 그들은 사회에 나와 ‘고객만족’과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맨’이 되었고, ‘어디에 사느냐’는 물음에 ‘○○동 ○○아파트’로 답한다. 우리를 거쳐 간 교훈과 사훈과 아파트의 브랜드에는 누구의 욕망이 깃들어 있었을까. 그 결과 우리 몸에는 어떤 욕망이 주입되었을까. 김민섭 저자를 만나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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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더 행복할 예정이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잘 지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은 두 가지가 궁금하실 거예요. 첫째는 대학을 나와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느냐는 건데요. 대학에 있을 때는 내일도 변함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대학을 나와서는 하루하루 어제보다 더 행복해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행복할 예정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삶이 너무 행복해요. 둘째로는 아직 대리운전을 하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지금은 생계를 위해서 대리운전을 하지는 않아요. 제 삶에 맞춰서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대리운전 콜이 나오면 그걸 잡아서 어디로든 가요. 거기에서 맛집 찾아서 아침도 먹고 글도 쓰고, 그러다가 집으로 오는 콜이 있으면 잡아서 돌아와요. 그냥 돌아다니면서 먹고 글 쓰고 했을 뿐인데, 집에 와보면 그날의 수익이 플러스되어 있는 거죠. 굉장히 즐거운 일이에요.

 

대리운전을 계속 하고 계시네요.


얼마 전부터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을 정해놓고 대리운전만 하고 있어요. 노동이라는 게 주는 것이 있거든요. 그렇게 했을 때 쓸 수 있는 글이 더 늘어나요. 단순히 소재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요. 글을 쓸 수 있는 몸으로 변하게 돼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도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든 어느 정도의 육체노동을 반드시 하면서 살고 싶다’고 썼는데요. 노동은 사람을 되게 겸손하게 해줘요. 제가 대리운전의 이용자만 됐을 때보다 노동자도 되었을 때, 겸손한 몸으로 며칠을 더 살 수 있어요. 그런 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계속 하고 있어요. 물론 돈도 되고요(웃음).

 

부럽네요.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계신다는 게.


대학에 있을 때는, 누군가 저한테 행복의 점수가 몇 점이냐고 물으면 0점이라고 대답했었어요. 물론 강의하고 연구하는 건 즐거운데 내일 내 위치가 바뀌지 않을 것 같았고, 바뀐다면 강의 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지위가 바뀌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불안감만 있었죠. 그래서 그때는 행복 지수라는 것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되게 행복해요.

 

『대리사회』가 출간됐을 때 <채널예스>와 인터뷰를 하셨어요. 그때 이미  『훈의 시대』를 구상하고 계셨던데요?


맞아요. 사실  『대리사회』  를 쓸 때 다음 책을 구상한 건 아닌데요. 대리운전을 하면 정말 온갖 곳을 다 가보게 돼요. 여기저기 다니다가 사람들의 언어를 발견했어요. 우리 주변에 있는 언어들 있잖아요. 제가  『훈의 시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언제였냐 하면, 분당에 있는 어떤 건물의 화장실을 갔을 때였어요. 그 건물에 있는 한 회사의 문 앞에 사훈이 쓰여 있었는데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일찍 출근한다’ 등등 다섯 가지가 쓰여 있었어요. 그걸 한참 보면서 서있었어요. ‘이게 뭐지? 내가 이 회사에 다닌다면 어떨까? 이걸 매일 보면서 출근하고 퇴근해야 되는데... 나중에 이게 익숙해지면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때의 경험이  『훈의 시대』를 쓰는 계기가 되었군요.


이런 문장들과 언어들이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 우리를 통제하고, 그렇게 우리 몸을 ‘두 배 더 열심히 일하는 몸’으로 만들어가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그런 게 일시적으로 찾아온 게 아니라 계속 일을 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보다 보니까 ‘우리는 정말 ‘훈’이라는 언어에 포위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대의 언어들이 지방대 시간강사들과 대리인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 『훈의 시대』를 쓰게 됐어요.

 

‘훈’의 다양한 사례들을 조사하셨어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되게 재밌었어요(웃음). 제일 먼저 아내한테 물어봤어요. ‘당신 학교의 교훈은 뭐였어?’ 물었더니 ‘착한 딸, 어진 어머니’였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언어들이 다 사라진 줄 알았어요. 적어도 우리가 드러내놓는 공간에서는 소멸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그 학교의 교훈은 바뀌지 않았을 거잖아요. 그러면 공립 여고들의 교훈과 교가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시니 어떻던가요?


아내한테 사과할 뻔 했어요(웃음). 그런 교훈이 일반적이더라고요. 제가 두 번째로 찾아본 곳이 강원도에 있는 모 여고였는데, 교훈이 ‘성실, 순결, 봉사’였어요. 세 단어를 조합해 보니까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더 찾아보니까 여성의 몸이 아담하다는 걸 교가에서 노래하고 있고, ‘순결한 조선의 여인이 되자’ ‘정숙한 엄마가 되자’ 이런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요즘 젠더 이슈가 많이 있는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누군가를 비난하고 구속시키고 승리를 선언하는 것보다도, 이런 언어들을 찾고 바꿔나가는 게 먼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의 언어를 폐기할 때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리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공립 여고의 교훈, 교가를 다 찾아보셨죠?


네, 그리고 지금 이 내용을 가지고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생애 주기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학교라는 공간을 12년 동안 거치잖아요. 12년 동안 하나의 정해진 ‘훈’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하는 거죠. 사실 ‘훈’들은 교가에 다 박제되어 있어요. 계속 불러야 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교훈이라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고 생각하고,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의 훈이 뭔지도 모르고요. 저부터도 그래요. 아직 저희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갔지만,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저도 모를 예정이었을 거예요.

 

남고의 사례는 굉장히 달랐죠?


너무 달랐죠. 교훈의 키워드도 달랐지만, 여고의 경우는 여성을 젠더로서 호칭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아름다운 꽃송이’ ‘여인’ ‘어머니’ ‘딸’ 같은 거죠. 그런데 남자는 ‘사람’ ‘인간’ ‘국민’ ‘아들’ 등으로 호칭되는 거예요. 의외로 아들이라고 호칭되는 경우도 별로 없더라고요. 아들이라고 하면 몸을 가정에 귀속시키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고 ‘세계와 미래와 조국을 선도해야 하는 몸’이기 때문에 가정을 벗어난 몸으로 계속 확장되는 거예요. 남성들의 몸이 비대해지도록 언어에서부터 이미 규정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째서 여성은 공부하는 몸이 될 수 없는 건가’라는 의문도 들었고요.

 

‘공부하는 몸’이라고요?


남성은 ‘학도’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리는데, 여성의 경우는 한 건도 없는 거예요. 정말 놀랍게도 단 한 건도 없었어요. 남성은 공부해서 미래와 조국을 선도해야 할 몸이 되는 거고, 여성은 공부해서 여성으로 남아야 되는 거잖아요. 사실 저는 그렇게 섬세한 사람은 아니지만, 제 아이들이 그런 몸으로 자라기를 원치 않아요. 제 아들이 그렇게 비대해진 몸이 되길 원치 않고, 제 딸이 그렇게 아담하고 왜소해진 몸으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아요. 같은 몸으로 자라길 바라죠. 그런 몸이 형성되는 데 부단히 관여하는 게 언어들이라는 걸 인식하게 됐어요.

 


익숙하지 않은 언어, 오염되지 않은 언어


책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이죠. 이제 그것들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야 할 텐데요. 강화여고의 경우에는 학생회의를 통해서 교가의 가사를 바꿨죠? ‘여자다워라’라는 후렴구를 ‘지혜로워라’ ‘은수되어라’로 바꿨어요.


오늘 강화여고의 교장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여자다워라’라는 문구가 적힌 바위를 치우시겠다고요. 강화여고에  『훈의 시대』를 보내드렸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책을 읽으시고, 어차피 바위를 치우려고 했는데 내년에 치우기로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버리기보다는 학교에 전시해두기로 하셨대요. 학생들이 보면서 ’우리 선배들은 이런 걸 보면서 학교에 다녔구나‘ 생각하면 산교육이 될 것 같다고요. 정말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세요(웃음).

 

반대되는 사례도 있었죠. 원주여고는 ‘참된 일꾼, 착한 딸,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을 바꾸지 못했잖아요.

 

학생들과 교사들은 압도적으로 찬성을 했는데, 총동문회에서 만장일치로 반대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강행을 하지 않으셨대요. 그런데 사실 저는 교훈을 바꾸지 말자는 의견이 이해가 돼요. 저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아요. 나에게 익숙한 것이고 전통이잖아요. 언어로 인해 개인의 몸이 형성된다고 했을 때, 그런 개인들은 그 언어들을 수호하는 쪽에 서는 거죠.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를 지키려고 하잖아요. 가장 큰 문제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건데요. 제가 책을 쓰면서 가장 희망적이었던 건, 2000년대 이후에 설립된 많은 학교들은 젠더적인 언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1950~1970년대까지 설립된 학교들은 심각한 정도고요. 시대의 언어들이 정말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훈’이라는 게 한 번 정해지면 잘 안 바뀌잖아요.


그렇죠. 예를 들면 1960년대에 설립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여전히 순결, 성실, 봉사 같은 언어들을 보면서 등교하는 거죠. 2000년대에 설립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다르겠지만요. 그런데 결국은 똑같은 아이들이잖아요. 왜 서로 다른 몸으로 형성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죠. 우리는 ‘훈’이라는 것을 박제해 놓고 잘 고치려고 하지 않는데, 사실 언어는 전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시대에 맞게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죠. 특히 중요한 건,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익숙한 언어로 바꾼다는 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게 아니라 시대를 반복하는 일이잖아요. ‘새로운 시대의 다음 세대들은 이런 언어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의한 오염되지 않은 언어들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보통은 자신을 형성한 언어들을 수호하려고 하잖아요.


누구나 그렇죠. 특별한 개인들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개인들이 자신에게 익숙해진 언어들을 계속 반복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반발하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해야 될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낯선 것들이 보이면 ‘이거 이상해’라고 할 게 아니라 ‘저건 어떤 것일까?’ 하고 공부도 해보고 자신의 삶에 적용도 시켜보는 거죠. 익숙한 언어들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보수화된 개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요즘에는 ‘사훈’도 여러 언어로 바뀌고 있죠?


이제 ‘사훈’이라는 용어는 거의 실종됐어요. 뭔가 힙하지 않고, 쿨하지 않고, 혁신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 같아요. 대신 ‘경영 철학, 경영 이념, 창업주 정신, 비전, 인재상, 소명’ 등등 많은 말들로 분화됐더라고요. 비유하자면, 예전의 언어들은 강력하고 딱딱한 고체였던 것 같아요. 마치 몽둥이처럼 때리는 거죠. 사람이 맞다 보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여러 가지 언어로 변형이 됐어요. 고체가 아니라 액체 같아요. 물뿌리개로 뿌리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몸이 젖어 있고, 그런  몸이 되어가는 느낌이에요.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야기한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가 ‘훈’이라는 개념에도 잘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층 더 교묘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눈치 채기 어려워진 거죠.


네. 누가 때리면 ‘아프니까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마치 분사된 물처럼 나오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같이 유동하게 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 철학이나 이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단어들이 있었나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회사 자체에 대한 사훈이고, 또 하나는 회사원들에게 요구하는 사훈이었어요. 회사의 사훈은 거의 ‘고객만족’이었죠. ‘우리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회사가 되겠습니다’라는 건데요. 저는 ‘고객’이라는 언어부터 돌아봐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객이라고 할 때 ‘돌아보다’라는 뜻의 ‘고(顧)’를 사용하는데 ‘방문하다’라는 뜻도 있더라고요. 이게 정체불명의 단어인데, 산업화시기에 많이 쓰이기 시작했어요. 사용빈도가 높아지면서 언제부턴가 손님을 높이는 언어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고요. ‘고객만족’이라는 훈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천박하게 바꿔놓았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 만연한 갑질도 결국 소비자의 지위를 전에 없이 격상시켜 놓은 데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싶어요.

 

회사원들에게 요구되는 사훈은 어땠나요?


그게 ‘인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누구나 생각하는 단어들이 있었어요. 도전, 열정, 노력 같은 것들. 그게 꼭 있더라고요. 우리가 몇 년 전부터 ‘노오-력’이라고 하면서 조롱한 것 같은데, 여전히 ‘노오-력’, ‘도오-전’, ‘여얼-정’ 같은 것들이 회사의 훈에 박제돼 있는 거예요. 그 언어들을 이제 폐기하자라는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하는 공간에 당당히 박제돼 있는 거죠.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회사가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지만, 사실상 ‘우리’에서 상층부의 사람들은 빠져 있는 거잖아요.


그렇죠. 고객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상대해야 되는 건 회사원들이잖아요. 고객이 된 사람들은 조금 더 많은 소비를 하고 그 이익은 회사가 가져가지만 감정 노동, 감정 소비를 담당하는 건 일선에 있는 우리들이죠. 결국 우리가 돌고 돌면서 서로를 다치게 하는 건데 ‘그렇다면 이런 훈을 만들어 놓은 건 누구인지, 그 훈은 과연 누구를 위한 건지’ 계속 생각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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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학교, 회사, 그 다음으로 거주 공간과 관련된 ‘훈’이 나와요. 아파트와 빌라의 브랜드에 관한 내용이죠?

 

브랜드 아파트가 생긴 지는 불과 20년이 안 됐다고 하는데요. 그 이름들이 우리 삶을 너무 잠식해버린 것 같아요. 어디 사는지 물어보면 ‘캐슬에 살아’ ‘래미안에 살아’ ‘자이에 살아’ 하고 대답하는 식이죠. 그런데 요즘 생긴 아파트들은 그 뒤에 또 뭐가 붙어요. ‘래미안 첼리투스’ 같은 거죠. ‘왜 서브 브랜드가 또 붙는 거지?’ 싶어서 친구랑 같이 조사를 했어요. 아파트 브랜드가 생긴 이래 대형 건설사 세 곳이 지금까지 분양한 아파트 이름을 정리해 본 건데요. 서울의 강남과 강남 외 지역, 전국, 이렇게 세 개로 나누어서 통계를 내봤어요. 그랬더니 명확히 보이더라고요. 이런 움직임이 강남에서 시작됐다는 것과, 강북과 전국이 따라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강남에서 서브 브랜드를 붙였다는 게 보이는 거예요.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자신의 공간에 언어를 덧입게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서브 브랜드를 붙인 이후에 오히려 강남에서는 서브 브랜드가 줄었어요. 오히려 지방에서 서브 브랜드가 늘고 강남은 줄어드는 느낌이었는데요. 그걸 붙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권력이 된 것 같아요. 저희가 전수 조사를 다 한 건 아니라서 흐름 정도만 짐작하는 것이지만, 서브 브랜드라는 것조차도 특별함을 덧입기 위한 욕망에서 시작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빌라의 경우는 어땠나요?


저는 아파트보다 빌라의 경우가 더 흥미로웠어요. 가끔 불광천을 산책하는데, 천변에 있는 큰 빌라 이름이 ‘래미안 아파트’더라고요. ‘삼성이 여기에 아파트를 지었나?’하고 봤더니 조금 규모가 있는 빌라였어요. ‘정말 래미안 아파트에 살고 싶었거나 짓고 싶었던 빌라 주인이 이름을 래미안으로 짓는 것으로 타협을 봤구나’ 싶어서 친구랑 한참 웃었어요. 그러다가 근처의 빌라 이름을 찾아 봤는데, 휘황찬란한 이름들이 많더라고요. 아파트 이름을 갖다 붙이는 건 옛날에 지어진 빌라들이고, 요즘 빌라는 ‘아트빌’ ‘하이츠빌’ 이런 이름들이 많았어요. 아파트를 따라가지 못한 빌라와 다세대 주택들이 우리 시대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손가락질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어떤가 싶고요. 그래서 다세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도 해봤는데, 그런 욕망들이 보이더라고요.

 

마치 고등학교의 이름이 ‘서울대 고등학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서울대를 꿈꾸는, 서울대에 진학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의미가 담긴 것 같잖아요.


그렇죠(웃음). ‘명문 서울대 고등학교’ 이런 식인 거죠.

 

“단절의 선언”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그 이면에 ‘단절의 선언’이 있다는 건 씁쓸하게 느껴져요.


예전에 과외를 하러 고급 아파트에 가본 적이 있는데요. 2단계 인증을 거쳐서 들어갔어요. 그때 ‘나는 정말 이곳의 이방인이구나, 빨리 과외하고 집에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에 대리운전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요즘은 대리운전 기사들뿐만 아니라 노동을 하기 위해 아파트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아파트에 들어갈 수는 있는데 나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 출구를 못 찾겠다는 거죠. 요즘 생기는 아파트들은 단절과 폐쇄로써 자신들의 특별함을 덧입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 공간에 살지 않는 타인에게 불친절해진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책을 쓰면서 여러 사례를 찾아보니까, 요즘은 2단계가 아니라 3단계 보안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아파트 전체를 둘러싸는 거죠.

 

아파트 정문에서부터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건가요?


네. 제가 검색 허용이 되어 있는 입주자 카페에 들어가 봤는데, 한 입주자 대표가 ‘우리 아파트를 폐쇄형으로 바꾸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하는 글을 써놨더라고요. 입주민이 아닌 사람들로 인해서 소음 피해도 생기고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써놨냐 하면 ‘이로 인해 우리 아파트의 총 자산 가치는 얼마가 상승할 걸로 생각됩니다’라는 거였어요. 그 밑에 수십 명이 찬성한다고 썼더라고요. 어째서 아파트를 성처럼 둘러싸고 외부와 단절하고 폐쇄를 선언하는 게 자산 가치로 이어지나, 싶었어요. 모든 연결의 가능성을 차단해 두고 그 안에서 어떤 특별한 가치를 선언하고 있는 건데, 거기에서 ‘훈’으로 제시되는 건 ‘안전’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이미 많이 안전해요. 과잉된 안전으로 인해서 모든 연결을 차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정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끼리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그들끼리만 폐쇄된 특정 공간에서 산다면, 그 아이들은 단절과 폐쇄성 안에서 그 내부에서의 연결만 감각하고 자라는 거잖아요. 그건 아주 나쁘다고 생각해요.

 

책과 ‘훈’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올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의 제목을 살펴보기도 하셨죠. 거기에서는 무엇을 보셨나요?


올해 서점에 가면 전에 없던 감정을 받게 됐어요. 베스트셀러 책의 제목들이 이전과 다르다는 거예요. 이전의 베스트셀러들은 ‘관심 있으면 한 번 펴 봐’ 이런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지금 나의 감정을 써놓은 느낌이에요. ‘오늘 나한테 무례했던 사람은 왜 그랬던 걸까’ 하고 우울해서 서점에 들어갔는데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이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사야죠(웃음). 힘들어 죽겠는데 ‘서점 잠깐 들렀다가 떡볶이 먹으러 가야지’ 생각했던 사람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봤어요. 그러면 사야죠, 당연히(웃음). 그 제목들이 마음을 위로해주는 거예요. 책에서 “15,000원의 오늘의 훈”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요즘 책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제목을 하나의 ‘훈’으로 삼아서 위로를 받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책꽂이를 보면 그 사람의 욕망이 보인다고 하셨어요.


거주 공간에서 사람이 온전히 내 공간으로 둘 수 있는 게 책꽂이밖에 없어요. 저는 책꽂이가 모든 개인들에게 허락된,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훈’의 전시 장소라고 생각해요. 책의 제목이 ‘훈’으로써 사람을 위로할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요.

 

올해 출간하신 에세이  『고백, 손짓, 연결』의 경우, ‘죽을 만큼 힘든데 죽고 싶은 건 아니야’라는 제목으로 나올 뻔 했다면서요?


그 책에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그 이야기를 들은 거예요. 그 친구가 회사를 그만뒀을 때였는데 ‘내가 진짜 죽을 만큼 힘든데 죽고 싶은 건 아니거든’ 그러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다 그렇게 사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책 제목으로 쓰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쓰기 한 달 전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나왔어요(웃음).

 

『훈의 시대』  마지막 부분에서 ‘욕망으로 남은 말들’에 대해 쓰려고 하셨죠?


이 책을 쓰는 동안 너무나 많은 막말들이 나오는 거예요.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하고 반응하는데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요.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까 ‘막말들을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겠다, 누가 어느 맥락에서 어떤 막말을 했는지 적어놓으면 이런 짓들을 덜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결국 언어라는 건 우리가 기억할 때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시대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욕망으로 남은 말들’이라는 아카이브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결국은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이야기로 시작하셨어요. 끝은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맺으셨고요.


‘욕망으로 남은 말들’을 마지막 챕터로 하려다 보니까 너무 절망적인 거예요. 그래서 저의 ‘훈’을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예전의 저는 타인이라든지 연결이라든지, 이런 단어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최근의 여러 경험들을 하면서 -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책을 쓰는 과정, 대리운전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그것이 정말 중요한 단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만든 ‘훈’이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거거든요. 그 ‘훈’을 전하는 걸로 책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는 하나의 마음에서 시작됐더라고요. 항공권을 환불하면 80% 이상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을 듣고, 화내고 따지는 대신에, 항공권을 양도 받을 ‘김민섭’을 찾기 시작하셨잖아요. “‘나를 닮은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요.


사실 ‘수수료를 너무 많이 떼어가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라도 할까 싶었는데요. 그 말조차 안 하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저랑 통화하는 그 여행사 직원이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거든요. 나를 닮은 사람일 거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양도할 수 있나요?’ 하고 바로 물어봤어요. 그래도 된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고요. 그런 태도에서 많은 것들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저도 항상 그렇게 사는 건 아니에요. 그때 갑자기 착한 사람이 되었을 뿐이지(웃음), 그렇게 못 살아요. 그런데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면 조금 더 행복할 것 같아요. 

 

살면서 영향을 많이 받은 ‘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일 크게 미친 건 ‘노력’이에요. 저는 이승엽 선수를 좋아하는데, 이승엽 선수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었어요. 그걸 듣고 저도 ‘아, 그렇구나. 노력해야 되는구나’ 생각했고, 노력이라는 단어가 저한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훈’인 것 같아요. 그런데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꼭 그 ‘훈’을 따르는 건 아니에요. 저도 노력을 ‘훈’으로 삼았을 뿐이지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나름의 노력을 했던 건데, 그 노력이 저를 배신할 때가 많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는데, 왜 나는 이것을 이루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늘어나면서 지쳐가고, 자신을 혐오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나는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나의 모든 실패가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로 귀결될 때가 있었고, 그때 그 ‘훈’을 버리게 됐어요.

 

버렸더니 편해지던가요?


그 ‘훈’을 버리고 마음이 되게 편해졌어요. 그리고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하고 김동식 작가를 만나면서, 누군가의 잘됨은 우리의 잘됨이 되고 사회의 잘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누군가 잘됐다고 할 때 ‘저 사람만 잘 먹고 잘 살겠구나’ 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잘됐으니까 나도 잘 되겠구나’ 하는 거죠. 저는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싶고 ‘저 사람의 잘됨이 우리의 잘됨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계속 찾아보고 싶어요. 그 사람을 잘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김동식 작가가 잘 돼서 저는 너무 너무 좋아요. 올해 가장 좋은 일이 뭐였냐고 하면 김동식 작가가 잘 된 거예요. 그 사람의 잘됨은 우리의 잘됨이 될 게 확실하니까(웃음).


 

 

훈의 시대김민섭 저 | 와이즈베리
일상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강요되는 훈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한 개인의 몸을 만드는 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본다면 훈은 결국 한 인간의 격格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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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리, 강승민 “쓸모 있는 어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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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필요 없어. 좀 건달처럼 보이면 어때? 작가는 원래 그래야 해.” 『쓸모 인류』를 함께 쓴 빈센트 리가 강승민 저자에게 빨간색 모자를 씌우며 말했다. 거추장스러운 재킷 대신 반짝이는 비니를 써보라고 제안하는 67세 빈센트 리. 얼결에 두 사람은 빨간 모자 쓴 듀오 저자가 됐다. 어떤 책일지 좀처럼 짐작되지 않는 『쓸모 인류』 . 이 책의 시작은 조금 특별하다. 15년간 기자, 편집자로 살다 지금은 대형 마트에서 피자를 굽는 강승민 저자와 서울 가회동에 한옥을 짓고 매일 요리하는 빈센트 리. 두 남자는 몇 개월 동안 아침 일찍 만나 인생의 사사로운 것들에 대해 논했고, ‘어떻게 살면 쓸모 있는 어른이 될 것인가’에 물음표를 던졌다. 삶의 불편함 혹은 불만을 인지하고,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아직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어쩌면 내 인생의 또 다른 쓸모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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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핑계를 대는 건, 질색이야

 

특이한 책이다. 공저이긴 하지만 인터뷰집도 아니고. 강승민 저자가 빈센트 리를 만난 후 느낀 단상을 담은 책으로 볼 수 있다.

 

강승민 : 빈센트 리를 알게 된 건 10년 전쯤이다. 매거진에서 기자로 일할 때, 그의 아내인 주얼리 디자이너 ‘우노 초이’를 인터뷰했는데, 빈센트 리가 내 영어 이름을 지어줬다. 좀 특이한 어른이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렇게 책을 같이 쓰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빈센트 리의 첫인상은 어땠나?

 

강승민 :  딱딱하지 않고 권위적이지 않은 잘 노는 어른?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었지만 무엇보다 확고한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비가 오는 습한 날이면 시가를 한 대 태울 수 있는 어른이라고 할까?

 

강승민 저자가 당신을 소재로 책을 써보고 싶다고 했을 때, 바로 수락했나?

 

빈센트 리 : 바로라기보다는 조금 의문이 있었지. 나는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내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사회적인 발언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서로 마음이 맞고 시간이 맞았으니까. 한번 써봐도 좋을 것 같았지.

 

『쓸모 인류』라는 제목이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

 

강승민 : 초고를 쓸 때 가제목은 ‘대충 살지 않습니다’였다. 빈센트 리를 인터뷰할 때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왜냐면 그는 생활의 쓸모 있는 많은 것을 스스로 고치는 사람이었으니까. 빈센트는 매일 아침 브런치를 만들고, 사는 공간을 잘 정리 정돈하고, 필요에 따라 집을 뚝딱 고친다. 일만 나불대는 꼰대가 아니라 손을 쓸 줄 아는 인류, 그리고 아내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줄 아는 사람.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Just Do It’하는 성격이라고. 즉각적인 실행이 어떻게 가능한가?

 

빈센트 리 : 특별할 건 없어. 그냥 하는 거지. 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렇지 막상 해보면 별 거 아닌 일이 많아. 가사 분담도 그래.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과연 따로 있을까? 단지 시도하는 인간의 역할이 있을 뿐이야. 나는 스스로의 쓸모를 찾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게 나의 삶을 응원하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어. 내 삶에 핑계를 대는 건, 질색이야.

 

강승민 :  빈센트 리는 질문하는 인간이다. 나는 마흔이 넘도록 제대로 질문하는 법을 몰랐는데, 빈센트 리를 알게 된 후, 쓸모에 관해 고민하게 됐다. 우리 나이로 예순 일곱, 은퇴 이후의 삶에 속하는 빈센트 리는 여유가 많아 쓸모를 생각한 게 아니다. 내 삶이 불편해지고 주눅 드는 걸 참지 못해 그 많은 쓸모를 만들었다.

 

빈센트 리는 동양계 미국인, 사업하던 부모를 따라 홍콩과 미국, 한국을 오가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휴즈항공 등에서 일하다 40대 중반에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LA에서 에너지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다 2017년 은퇴하고, 1년간 가회동의 작은 한옥을 리모델링했다.

 

빈센트 리 : 휴즈항공에서 일할 때, 직장 동료가 사내에서 인종 차별을 당했어. 회사에 문제 제기를 했지만 내가 오히려 조직적 불이익을 당했지. 이후 회사를 상대로 소송했고 승소했지만, 나는 지금도 이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언젠가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가회동 한옥이 외국 관광객들의 명소가 됐다. 문고리가 쉴 틈이 없다고. 굉장히 피로한 일이기도 한데.

 

빈센트 리 : 하루는 아내가 너무 힘들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말했지. “저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 사람들은 어쩌면 평생 한 번 한국을 찾은 건데, 왜 그 행복에 인상을 찌푸려. 좋은 에너지를 주고 간다고 생각해. 잠깐 참으면 돼. 그 사람들이 복을 가져와준다고 생각해.”

 

집을 구할 때, 3가지 규칙이 있었다. “공간이 소박할 것, 집에 격식이 없을 것, 수다를 피우는 공간일 것.” 지인들에게 집을 오픈할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빈센트 리 : 내가 생각한 집은 아지트 같은 공간이었어.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모일 수 있는 ‘제3의 공간’. 지금 시대는 모두가 외롭잖아. 그런데 집마저 외롭고 침묵할 필요가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반가운 친구들이 들락거려 활기가 있어야 해. 그래서 함께 요가를 할 수 있는 오픈 형태의 거실을 만든 거지. 우리 집의 최종 목표는 일상에 지치거나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 행복감을 느끼는 아지트야. 좋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아. 집을 소유하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우리처럼 집을 즐기지 못하는 거지. 나는 소유가 아닌 거주의 편에 서기로 한 거야. 무리해서 집을 살 돈으로 오랫동안 즐겁게 사는 삶을 선택한 거지. 집의 소유보다 집의 생기를 더 고민해야 즐거운 일상이 나올 수 있어.

 

건축가 입장에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클라이언트였다.

 

빈센트 리 : 이 집에 계속 살 거니까. 앞으로 20년 이상 집에 손을 안 대려면, 처음에 가능한 완벽하게 손을 봐야지. 좋은 제품에는 다 고집이 있어. 무슨 일에든 핑계를 대지 않는 게 중요하지. 뭔가 잘못되면 결국 하는 사람의 책임이거든. 주인이 핑계를 대고 대충 하면 일을 맡은 사람도  대충하게 돼. 오래 살기 위해선 디테일이 중요해. 대충할 수 없었지.

 

강승민 : 빈센트 리의 이삿짐을 잠시 도와준 날이었다. 현관 문턱에 짐수레가 이동할 언덕을 만들고, 이삿짐이 지나갈 벽의 기둥 면에는 두꺼운 종이를 붙였더라. 이런 장치가 있으니 일하는 사람이나 집주인이나 서로 인상 붉힐 일이 생기지 않았다. 꼼꼼한 일 처리 방식은 결국 일하는 사람에게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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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다고 “싫다”고 말하면, 꼰대가 된다

 

강승민 저자는 기자로 오래 일하다 피자를 굽는 일을 하고 있다. 갭이 상당히 큰 전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떤 마음으로 결정했나?

 

강승민 : 지금까지 해온 일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호기심도 있었을 거고. 나는 비교적 선택을 쉽게 하는 편이다. 버티는 것도 웬만큼 하고. 물론 안 하던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곳은 온전히 몸으로, 내 노동으로 실력을 인정 받아야 하니까. 지금 생각은 내 삶의 경험치가 조금 앞당겨졌구나, 하는 느낌이다.

 

빈센트 리 : 내가 꿋꿋하다면 어떤 일을 해도 괜찮지. 노동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니까. 사람은 일을 하며 배워. 노동과 예술은 다르지 않지. 머리를 자르는 일도 예술이 될 수 있고, 피자를 굽는 일도 예술이 될 수 있어.

 

대화를 나누다 합의를 못 본 주제가 있었나? 논쟁이 있었다거나.

 

빈센트 리 : 없었지. 서로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생각이 다를 때는 가만히 놔둬야 해. 고치려고 하면 안돼.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제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누군가를 응원하는 말들을 놓지 않는 것.”(25쬭)이라고 썼다.

 

강승민 : 내 또래에게 응원 받는 일은 조금 사치가 아닐까 싶다. 밤새 유튜브에서 <The voice>의 출연자가 올 턴하는 장면을 볼 때가 있는데, 나는 노래를 못 부르지만 누군가의 노래가 모두에게 인정 받는 걸 보면 위안이 된다. (웃음)

 

빈센트 리 :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 쉴 때도 많이 쉬어야 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느끼는 게 중요해. 그래야 열정이 생기고 타인에게 봉사도 할 수 있지.

 

빈센트 리는 요리를 즐겨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음식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빈센트 리 : 나이값의 하나가 음식을 아는 거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집이나 차를 사고 싶어 하지만, 자기가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 정말 내 몸을 지탱하게 하는 건 음식이야. 자신이 먹을 음식을 직접 요리할 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 사람들이 직접 요리를 한다면 이 사회가 더 점잖고 튼튼해질 거라고 믿어. 왜냐면 뭐든 정직하게 만드는 태도를 갖게 될 테니까.

 

쓸모가 있다면, 꼰대가 되지 않을까?

 

강승민 : 중요한 건 내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닐까. 30대, 40대, 50대, 60대가 생각하는 문제가 다 다르니까. “내 생각은 이렇지만 네 생각은 이렇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적어도 꼰대는 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싫다고 “싫다”고 말하면, 꼰대가 되기 쉬울 것 같고.

 

빈센트 리 : 좋은 선생들은 항상 학생들이 나보다 월등할 거라고 믿어.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다 믿는 거야. 어린 아이도 어른이랑 똑같이 보는 거지. 학생과 선생도 마찬가지고. 내가 에순이 넘었지만 아이들한테도 분명 배울 게 있어. 어른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걸 안 주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순진하게 그냥 쑥 주고 말지. 누구에게도 배울 게 있다는 것, 그걸 알아야 해. 알게 된다면 꼰대는 될 수 없겠지.

 

쓸모 있는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승민 : 대충 살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의 생에 있어서는 대충 살지 않는 태도가 쓸모 있는 어른을 만들지 않을까? 빈센트처럼 적당히 까칠할 필요도 있고.

 

빈센트 리 : 인간이 튼튼해지려면 잘 비워야 해. 계속 채우기만 하면 안 되지.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오랫동안 실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돈은 좀 더 받아야지. 위로 올라간다고 모두가 일을 잘하는 건 아니야. 자기가 각자 잘하는 부분을 오랫동안 해야지 조직이 튼튼해져. 사회에는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어야 해. 그래야 세상이 굴러가지. 미국 브라운 유니버시티는 입학생이 들어오면 모두를 칭찬해. 공평하게 대우하지. 대학 생활에서 성공하면 학생이 잘한 거라고 생각해. 성공을 못하면 우리가 잘못 가르쳤다고 말하지. 그에 반해 회사는 반대야. 성공하면 회장, 사장이 잘해서고 실패하면 직원을 탓하지. 이런 태도는 사회에게도 개인에게도 손해지.

 

“한 사람의 까칠한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154쪽)는 문장이 생각난다.

 

강승민 : 까칠한 생각이 누군가에게 미칠 긍정적인 영향이 분명히 있다. 누군가의 냉정한 평가를 괘씸하게 받아들이는 한심한 타입이 아니라면 다음 번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그렇게 보면 ‘까칠하다’, ‘삐딱하다’는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독자들에게 이 책이 더 쓸모 있을까?

 

빈센트 리 : 몸을 움직이려고 결심한 사람들에게 유용하겠지. 나는 벌써 알아. 이 책이 1만 명에게 읽힌다면, 그 중 0.1%의 사람만 달라질 거야. 그런데 생각해봐. 책의 10%만 가져가도 인생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어. 이 책이 별난 건 아니야. 한 사람을 바늘로 살짝 찌른 것밖에 안 되지. 그런데 그거 알아? Just do it. 지금 하라는 거야. 그거 하나면 충분해.

 

강승민 : 내가 지금 잘 살고 있을까? 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질문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래도 좀 더 재밌게 읽지 않을까? 어떤 자극을 준다면 더없이 좋겠고.

 

빈센트 리 : 제목이 무겁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아. 매우 라이트 하지. 가볍게 읽어줬으면 좋겠어. 최종 정산은 생을 마칠 때 하는 거니까. 걱정할 게 아니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사는 게 좋아.



 

 

쓸모인류빈센트, 강승민 저 | 몽스북
빈센트의 지조 있는 행동력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대화 가운데 나오는 생활 철학을 들으며 우리 삶에 진짜 필요한 ‘어른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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