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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형 “내 동화의 첫 독자는 어른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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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LA에서 살고 있는 초등학생 규민이에게 아빠는 낯설기만 한 존재다. 9,600여 킬로미터, 규민이가 있는 LA와 아빠가 있는 서울의 거리만큼 부녀의 사이는 멀어져 있다. 그런 아빠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LA에 왔다. ‘규민’이라는 이름보다 ‘켈리’라는 이름이 훨씬 마음에 들고, 갑자기 방문한 아빠 때문에 친구들과의 여행을 포기한 채 가족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 못마땅한 철부지 딸은 여행 내내 심통이 나 있다. 어색한 동행을 시작으로 한 4박 5일간의 여행은 엄마와 아빠의 다툼으로 마무리되고, 한국에 돌아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본 규민이의 가슴은 자꾸 답답하게 아파온다.


『우리 반 욕 킬러』 ,  『슈퍼 히어로 우리 아빠』 ,  『진짜 거짓말』  등 아이들의 눈높이를 겨냥한 동화를 쓰는 임지형 작가의 신작  『바나나 가족』은 멀리 떨어져 사는 탓에 마음까지 멀어진 기러기 가족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리고 있다. 수화기 너머로 만나온 아빠를 마주한 규민이는 4박 5일의 여행기간 동안 수없이 변하는 여러 감정을 느낀다. 아빠의 쓸쓸한 뒷모습에 잠 못 이루던 규민이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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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지 못하는 가족의 이야기


미국 여행 당시 만난 가족의 사연에서 『바나나 가족』의 이야기를 떠올리셨다고요.

 

2011년에 패키지여행으로 LA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 함께 여행하는 부부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화목하고 좋아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었죠. 여행 일정 중 어느 날, 호텔에서 가이드와 마음이 맞는 여행객 몇 명이 술자리를 가지게 됐는데 기러기 부부 중 남편이 그 자리에 참석을 했어요.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성대모사를 잘하시는 분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재주가 있냐”고 물었더니 그분께서 기러기 생활이 너무 힘들다며 속사정을 털어 놓으시더라고요. 텅 빈 집에 혼자 있기 싫어 여가시간에는 늘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는데 성대모사를 했더니 사람들이 너무 즐거워하며 좋아하더라는 거예요.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오긴 했지만 아내와 단 둘이 한 공간에 있는 게 너무 어색하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겉으로는 단란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가족을 보면서 ‘가족이란 뭘까’ 생각하게 되었고, 동화로 표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그 당시에 초안을 써 놓았다가 내용을 보완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껴서 오래 묵혀 두었거든요. 때마침 올해 미국 여행을 다시 갈 일이 생겨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당시 여행했던 코스를 그대로 다시 방문했어요. 덕분에 내용을 수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2011년 여행에서 보고 느꼈던 내용을 토대로 전체 스토리를 재구성해서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간 많은 책을 출간하셨는데, 올해의 마지막 작품을 낸 소감이 어떤가요?


『바나나 가족』은 올해 나온 7번째 책이고, 개인적으로 통틀어 20번째 쓴 작품이에요. 그동안 제가 써왔던 동화들과 결이 달라서 제 작품을 좋아해줬던 독자들이 실망할까봐 긴장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좋은 평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제가 의도한 부분을 알아주신 것 같아서 고마워요.

 

 

가족, 바나나 한 송이처럼


바나나의 특성에 빗대어 가족의 이야기를 한 것이 돋보였어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4박 5일간 여행하는 것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그런데 내용을 먼저 읽어본 주변인들이 가족보다 여행 이야기에 치중한 것 같다는 의견을 들려줘서 제 의도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바나나는 송이를 작게 떼어 놓으면 빨리 시든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는데 불현듯 이 작품의 가족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곧바로 제목을 ‘바나나 가족’이라 새로 짓고, 바나나를 매개체로 이야기를 수정했죠.

 

중요한 소재를 인연처럼 만난 셈이네요.


숨고르기를 하며 오래 묵혀둘 때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어떻게 내용을 풀어갈까 고민하고 있으면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 좋은 소재가 하나씩 제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는데,  『바나나 가족』은 특히 그랬어요. 사실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생각이 많았던 작품이기도 해요. ‘바나나가 서로 떨어지면 금세 시들 듯 가족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출간할 때까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작가의 말에서 그 고민이 느껴졌어요.


함께 살고 싶어도 사정상 그럴 수 없는 가족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어떤 가족은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안정적일 수도 있고요.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마음이 더 쓰였어요. 하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족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는 거였기 때문에 그 의도가 왜곡되지 않고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의 말을 썼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이 서로 더욱 사랑할 수 있을지 되짚어볼 수 있는 이야기로 읽히길 바랄 뿐이에요.

 

이들 가족과 내내 여행을 함께하는 ‘광주할머니’는 또 다른 주인공처럼 보였어요.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요.


광주할머니가 규민이에게 하는 말들은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이었어요. 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고, 형제들은 다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혼자 살았거든요. 당시에는 외롭다는 생각을 별로 못 했는데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고 나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외롭다고 말하면 정말 외로워질 것 같아 감정을 애써 부정하고 살았던 거예요.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무의식적으로 제가 힘들었던 부분을 광주할머니에 투사해 규민이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또 실제로 미국에 여행을 갔을 당시에 홀로 오신 할머니가 계셨어요.(웃음) 미로 같은 호텔에서 길을 잃을까봐 걱정하시는 모습에 제가 한 방을 쓰겠다고 자처해서 모시고 다녔거든요. 그분이 광주할머니의 모델이 되었어요.

 

『바나나 가족』 에서는 규민이가 그 역할을 하며 할머니와 줄곧 함께 다녀요.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는 것도 광주할머니를 통해서고요.


저는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개척해나가는 이야기를 자주 써왔어요. 그런데 기러기 가족의 아픔은 어른의 입장에서도 해결하기가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이가 혼자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게 작위적이라 생각했어요. 세월을 오래 산 어른이 규민이에게 힌트를 주면 좋을 것 같아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왔죠.

 

전작 『슈퍼히어로 우리 아빠』에는 타인을 구하느라 가족을 등한시하는 아버지가 주인공인 반면,  『바나나 가족』에서는 가족을 위해 홀로 헌신하는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그려집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가족 내의 ‘아버지’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어려운 존재였거든요. 아이들은 부모님이 싸우면 혹시 이혼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두려워하는데, 저는 ‘저러다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모님이 치열하게 싸우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죠. 중학생 때 엄마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비로소 싸움이 끝났고, 이제 제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오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결핍이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쓰는 작품 안에 좋은 아버지를 원하는 주인공을 등장시키고, 아버지가 소홀한 것에 대해 불평불만을 갖는 아이가 나오는 이유는 그 때문인 것 같아요. 그토록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가 아니라 따뜻하고 포근한 아버지가 갖고 싶었던 거죠. 가족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한없이 따뜻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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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동화를 읽어야 해요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여러 권의 책을 펴내고 계세요. 이렇게 많은 작품을 쓸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해요.


제겐 이 일이 생업이니까요.(웃음) 악착같이 쓰거든요. 2008년에 등단한 뒤로 첫 책이 2012년에 나왔는데요. 그땐 아이들 독서논술 지도하는 일을 겸업으로 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아동문학상에 계속 도전했지만 번번이 최종 심사에서 떨어졌고, 일을 마치고 집에 와 새벽 3-4시까지 글 쓰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다 상했어요. 그래서 2015년경에 남편에게 부탁했죠.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글만 쓰고 싶다고요. 그때부터 하루도 안 쉬고 직장인처럼 앉아 글을 썼어요. 그러다보니 작품이 많이 쌓였고, 어느 순간 출판사와 줄줄이 계약이 이루어지더라고요. 요즘도 글을 안 쓰면 불안해서 정해진 분량은 무조건 쓰고 하루를 마쳐요. 강연으로 바쁜 날에도 ‘한 줄이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죠. 그게 쌓이는 것 같아요.

 

어린이 문학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등학생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었는데, 사정상 대학을 안 가고 10년 넘게 일을 했어요. 하지만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못해 광주대학교 문창과에 뒤늦게 입학했어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다 보니 답답하고 힘들더라고요. 그러던 참에 한 선배가 합평 모임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나가보았더니 동화합평반이었어요. 그 모임을 계기로 처음 동화를 읽게 됐어요.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동화는 아이들이나 읽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때부터 동화에 푹 빠져들었죠. 그렇게 동화를 읽고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동화가 나를 자라게 한다는 느낌이 문득 들더라고요. 부모님이 돌아가실 무렵에 성장이 멈춘 내 마음 안의 어린 아이가 동화를 읽으며 성장하는 것 같았어요. 동화는 아이들에게는 성장제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치료제예요. 지금도 저는 동화가 제일 재밌어요.

 

작품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요?


아이 때는 실컷 노는 게 의무인데 요즘은 그게 어려운 시대잖아요. 학원에 가고 공부를 하느라 마음껏 뛰어놀 시간이 없다면 책 속에서라도 재미있게 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만약 『바나나 가족』처럼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이 있다면 동화를 읽으며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 동화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위로의 쉼터였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으로 글을 써요.

 

강연, 북토크 등을 통해 수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어린이 독자가 있나요?


작년에 일산에서 강연을 했었는데 몇 개월이 지나서 그때 강연을 들은 아이에게 메일 한 통을 받았어요. 저를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내용의 편지였어요. 제 강연을 듣고 난 뒤 흥미가 생겨 책을 다 찾아보았고, 그 책을 다 읽고 나니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책도 읽게 되었는데 책을 많이 읽으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며 커서 작가가 되겠다는 거예요. ‘작가라는 꿈을 갖게 해주었으니 작가님이 내 인생을 바꾼 것’이라고 쓴 메일을 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어요.

 

눈물이 날 것 같은 메시지네요.


실제로 많이 울었어요. 너무 좋아서요. 그때 인연이 됐던 사서 선생님께 들었는데 그 아이가 그해의 독서왕이 됐대요. 이전까지는 책을 정말 안 읽던 아이였는데 말이에요. 뿌듯하고 기쁜 마음에 아이에게 답장을 했는데, 또 한 통의 메일이 왔어요. 메일 쓰는 방법을 배워서 처음 편지를 쓴 대상이 저였다고 하더라고요. 강연장에서 만나는 많은 아이들이 다 기억에 남지만 특히 그 아이의 메일을 보면서 ‘이래서 작가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더욱 더 사명감을 갖고 글 쓰고, 아이들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죠.

 

좋은 동화책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요?


구성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이가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고 그걸 받아들이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그 안에서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이야기겠지요. 그런데 제게 있어 동화의 첫 번째 독자는 어른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대변할 수 있어야 좋은 동화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동화 속에서 아이들이 만나는 문제는 어른들이 만든 경우가 많잖아요.  『바나나 가족』 에 등장하는 기러기 가족의 문제도 그렇고, 학업에 찌들어 힘들어하는 어린이의 모습 등도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이 겪는 일들이에요. 아이들의 어려움과 고민을 알기 위해서는 어른이 동화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시사적인 내용을 동화로 풀어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아이들의 문제는 어른들의 문제이고 그건 곧 부모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어른들은 아이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실제로 강연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어른 못지않은 생각과 어휘로 저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라서 잘 모른다는 건 어른들의 착각일 뿐이죠.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의 상황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우리 반 욕 킬러』라는 책을 썼을 때 동화에 이렇게 욕이 나와도 괜찮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때 너무 놀랐어요.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초등학생 또래 아이들에게 그 글을 보여주며 “여기 나오는 욕 중에 너희가 쓰는 것과 다른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욕이 너무 시시하다”고 대답하더라고요.(웃음) 어른들이 동화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님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이들을 올바로 알고, 힘들 때 손내밀어줄 수 있어요.

 

『바나나 가족』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책이 좋은 이유는 나와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에요. 읽으면서 계속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이 우리 가족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한 사람만 잘한다고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가족을 더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떠올려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바나나 가족임지형 글/이주미 그림 | 스푼북
규민이가 엄마에게 전하고 싶은 이 말처럼, 가족의 참 의미가 흐려져 가는 이 시대에 가족의 정을 느끼기 힘든 요즘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가족의 사랑과 중요성을 깨닫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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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민경남 “부동산 투자, 지금 꼭 알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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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에 관해 우리가 궁금해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제목은 『지금부터 부동산 투자해도 부자가 될 수 있다』 . 간결하게 Q&A 형식으로 정리된 내용들은 ‘집을 꼭 사야 하나요?’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집값, 지금이 고점 아닌가요?’ ‘서울 VS 수도권 VS 지방, 어디에 사는 게 좋을까요?’ ‘규제가 점점 많아지는데 다주택자가 돼도 될까요?’ ‘경매로 낙찰 받는 것은 어떨까요?’ 등 현실적인 질문들에 명쾌하게 답한다.

 

막연한 예상이 아니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이다. KB 자산운용에서 부동산펀드매니저 일한 바 있는 민경남 저자는 ‘숫자로 말하자’고 이야기한다. GDP 성장률을 지표로 삼아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엑셀 프로그램을 활용해 투자금 대비 수익률을 제시한다. 올해 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 투자 전문회사 ‘KN Properties’의 대표로 변모한 그는 ‘여의도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애널리스트와 이코노미스트 등으로 구성된 ‘여의도학파’는 금융가의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부동산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다.

 

‘시네케라’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경남 저자는 그 이름 그대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의 투자 경험을 통해 부동산 투자의 원칙과 방식을 공개한 것은 물론이다. 책의 부제는 ‘읽기만 하면 돈 버는 부동산 투자의 기본’이지만 읽기만 해서는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고, 꾸준히 공부하면서 정리하고 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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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예금보다 부동산 투자?

 

부동산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은 이게 아닐까 싶어요. ‘지금 집을 사도 되나요?’라는 거죠.

 

엄청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집값이 떨어질까요, 오를까요’라고 물어보세요.

 

지금이 집값의 ‘고점’ 아닌지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그걸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느냐’는 입장이신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퇴사하면서 굉장히 유명한 투자자 어른을 찾아갔었어요. 공부를 정말 많이 해서 한 번 시장을 읽어보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불가능할 걸?’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맞다, 내가 너무 오만했구나’ 싶었어요. 실제로 해보니까 예측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갑자기 브렉시트 사태가 생기기도 하고, GTX 건설 관련 계획이 발표되기도 하고, 미중 무역 전쟁의 결과도 전혀 예측 못하잖아요.

 

“또 다른 금융위기가 곧 올 것이고,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덮고 가지고 있는 모든 자산을 현금으로 바꿔 은행이나 금고에 보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쓰셨어요.


굉장히 재밌는 게, 부동산 카페에 폭락론자들이 많아요. 폭락하면 사려고 하는 거죠. 잠재수요가 쫙 깔려있는 거예요. 이번에 래미안 리더스원 미계약분 26가구에 대한 추가 모집에 저도 신청했어요. 경쟁률이 900:1 가까이 됐는데요. 대충 계산했을 때,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가격 차이가 15~18% 정도 되겠더라고요. 그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벌떼 같이 달려드는 거예요. 아마 8~10% 정도로 떨어져도 몰려드는 사람이 줄어들겠죠. 사람들이 10~20% 떨어지는 걸 쉽게 이야기하는데, 경매의 경우에도 시세에서 5% 이상 싸게 사기 힘들어요. 제가 회사 다닐 때 옆에 NPL팀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하는 말이 보통 시세 대비 아파트는 5%, 상가는 10% 이내에서 낙찰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5%만 떨어져도 사람들이 벌떼 같이 달려드는 거예요. 제가 봤을 때는 그게 안전 마진이에요.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부동산 투자보다 은행 예금을 택할 것 같은데요. 부동산 투자를 권유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물가와 같이 생각을 해야 돼요. 금리가 2%라고 해도 물가가 2% 오르면 그대로인 거잖아요. 그리고 한 달에 300만 원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아요. 정말 적은 돈을 가지고 생활해야 되거든요. 그렇게 20년 동안 산다고 해도 모이는 돈이 7억 2천만 원이에요. 게다가 50세에 퇴직하고 그 뒤로 40년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달에 150만 원도 못 써요. 내가 언제 죽을지 정확하게 안다면 안분해서 쓸 수도 있겠죠. 그런데 모르잖아요. 원금을 써버릴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투자나 사업을 해야 살아남는 거예요.

 

억대 연봉을 받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투자자가 되셨어요. 후회하지 않으세요?


전업투자자가 된지 이제 만 7개월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래서 함부로 말하기는 굉장히 조심스러운데요. 현재로서는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요. 첫 번째 이유는 제가 한 만큼 벌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만큼 자유도 주어진 거죠. 그리고 제가 지금 보고 있는 게 꼬마빌딩이나 구분상가인데, 그런 경우에는 회사를 다니면서 투자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아무리 부동산 투자업을 한다고 해도 80% 정도는 자리에 앉아 있거든요. 밖에 있는 시간이 20%가 안 돼요. 그런데 꼬마빌딩이나 구분상가의 경우에는 낮 시간에 영업하는 모습을 많이 봐야 돼요. 7~10번씩 찾아가봐야 되는데, 직장생활하면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아요. 또 회사에 계속 남아 있으려면 10년 안에 본부장이 되고 대표이사가 되고 계속 승진을 해야 되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더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매물을 보는 눈’은 경험으로 생기는 건가요?


제가 살 수 있는 물건은 A- 아니면 B 수준인 것 같아요. 특A의 정말 좋은 물건은 못 사요. 제가 볼 때는 그래요.

 

왜죠?


살 수 없어요. 상대방이 팔지 않아요. 제가 이번에 산 매물도 제가 정한 가이드라인, 가격렌즈 안에 들어와서 샀어요. 제가 호재 투자를 안 하는 걸로 유명한데요. 어디에 GTX가 생긴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려와도 쳐다보지 않고, 그냥 싼 걸 사요. 지역은 정해야겠죠. 그 안에서 싼 매물을 사요. 그리고 조금 비싸게 파는 거예요. 두 배 비싸게 팔겠다거나, 지방의 땅을 사서 열 배 차익을 보겠다거나, 그런 건 기대도 안 해요. 관심도 없고요. 너무 위험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사는 매물들은 들고 있으면 굉장히 편안해요.

 

비유하자면 ‘무릎에 사서 허리에 판다’ 정도인 건가요?


그 정도 수준인 거예요. 제가 이번에 공동투자로 상가를 샀는데요. 제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투자자들이 받을 수 있는 수익률은 10% 초반이 될 것 같아요. 물론 투자자들의 요구 수익률은 훨씬 낮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좋은 수익률을 드리는 거고요. 제 수익률은 성과보수 포함해서 20% 이상이에요.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뭘 더 바라겠어요. 복리로 계산하면, 현재 20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10년 동안 8% 수익률을 유지하면 43억이에요. 19%라고 하면 114억이고요. 그러니까 무리할 필요가 없는 거죠.

 

“부동산 투자는 두 번째 매입하는 부동산부터가 시작“이라고 쓰셨는데요. 아직 첫 번째 집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직도 송파구에 있는 빌라 같은 경우에는 6000~7000만 원이면 살 수 있어요. live는 못하지만 buy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매매가가 4억인 집인데 전세가 3억 3천인 거죠. 자금이 많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라고 하더라도 준비는 하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6000만 원 모으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거든요.

 

‘갭 투자’인가요?


그렇죠. 빌라에 대해서는 설왕설래도 있고, 하이리스크 투자예요. 그런데 싸게 사면 되잖아요. 그렇게 해서 내 몸도 일하고 내 자본도 일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죠. 생산의 3요소가 토지, 노동, 자본인데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만 신성한 것이고 옳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일 모레 아플지 어떻게 알겠어요.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거고요.

 

 

처음 집 살 때, 빠를수록 좋죠


“투자 고수라면 좋은 물건을 남에게 추천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직접 삽니다”라고 쓰셨잖아요. 그런데 왜 투자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쓰셨어요(웃음)?


제 입으로 말하기 조금 그렇지만, 이 책에는 정말 좋은 내용이 담겨 있고 진짜 여러 번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쓴  『돈 버는 부동산에는 공식이 있다』도 마찬가지이지만, 한 번 읽기만 하면 기억하기 어렵고 사용할 수도 없어요. 한 번 읽은 다음에 정리를 해보면 조금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십여 년 동안 일하면서 체득한 거거든요. 이번 책의 부제에 ‘읽기만 하면 돈 버는 부동산 투자의 기본’이라고 썼지만,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계속 공부해야죠. 이렇게 투자 방법을 공개함으로써 제 경쟁자들이 생겨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미 자산이 조금 쌓여서, 어차피 제 경쟁자들은 투자 초보자들이 아니에요. 그리고 책을 쓰면서 제가 얻는 기회들이 더 많아요.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거든요. 그러니까 굳이 책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고요. 저희 아이들한테도 이렇게 책을 썼다고 하면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 같아요.

 

만약 자녀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첫 주택은 언제 사는 게 좋다고 하시겠어요?


ASAP(as soon as possible)이죠.

 

여건이 된다면 빠를수록 좋다는 건가요?


그럼요.

 

왜 그렇죠?


매년 정부에서 돈을 6.5%씩 찍어내요. 그 돈의 일부가 실물자산으로 가겠죠. 집값이 오르는 것은, 바꿔 말하면 돈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자산을 가지고 있어야죠. 정부가 한 채는 보호해주잖아요. 여러 가지 혜택이 많죠.

 

젊은 나이에 집을 사려면 대출을 안 받을 수 없겠죠.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몇 퍼센트를 넘지 말라고 하시겠어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불가능해요.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젊은 직장인과 은퇴하신 어르신의 경우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저는 자기자본비율이 26~29%까지 떨어져봤어요.

 

안정적인 투자를 하시는 분이, 어쩌다가 그러셨어요(웃음).


그때는 조금 위험하기는 했어요. 올라갈 거라고 자신했었거든요. 저 같은 사람이 반포 아파트 몇 채를 살 수 있는 상황인데, 안 오를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자기자본비율이 50%가 훨씬 넘어요. 대출이 20% 수준이에요. 안정적이죠. 그리고 9.13 대책 이후로는 대출을 40% 이상 못 받아요. 다주택자도 받을 수가 없고요. 어차피 자기자본비율이 29%까지 내려갈 수 없다는 거예요. 지금은 갭도 벌어졌기 때문에 갭 투자를 하더라도 자기자본비율이 26%가 안 나와요. 그래서 제가 봤을 때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는 30대라면, 1금융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을 다 써도 될 것 같아요.

 

첫 번째 집을 살 때는 새 아파트를 사는 게 좋을까요?


저는 신축을 선호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 매물은 다 지어진지 10년 이내예요.

 

매입하신 물건은 다 서울에 있나요?


네, 100% 서울입니다.

 

왜 서울만 고집하세요?


일단 제가 서울에 살거든요. 그게 되게 중요해요. 부동산에 가보면 간혹 싼 물건이 있을 때가 있어요. ‘왜 이렇게 싸요?’ 하고 물어보면 주인이 해외에 있거나 지방에 거주해서 주변 시세를 잘 모른다고 할 때가 있죠. 그게 첫 번째 이유고요. 두 번째는, 정부 정책이 ‘똘똘한 한 채’로 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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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 사고 있을 때가 ‘사야할 때’


다주택자이신데, 세금 폭탄은 안 맞으셨어요?


근로소득이 두려워서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잖아요. 그리고 양도세 내는 게 쉽지 않아요. 제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게, 2004~2006년도의 규제들과 양도세 폭탄 때문에 사람들 머릿속에 ‘양도세는 엄청난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런데 1년 양도세 총액을 사람 숫자로 나누면 70만 원 정도밖에 안 돼요. 게다가 이렇게 저렇게 공제를 받잖아요. 양도세도 쉽게 낼 수 없어요. 

 

“보유세가 오르고, 양도소득세가 오르면 매수 수요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각종 규제로 주택 공급자들의 리스크를 높이고, 수익을 줄인다면 주택 공급은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실수요자, 투자자, 임차인 모두의 경쟁으로 오히려 가격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사람들이 매매를 안 하려고 할 때, 그때가 살 때인 걸까요?


당연하죠.

 

투자의 기본인가요?


기본이죠.

 

‘남들이 몸을 사리는 데는 이유가 있어, 나도 관망해야겠다’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럼에도 사야 할까요?


일단, 미래는 예측을 못해요. 부동산은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사는 건데요. 조금 더 디테일하게 흐름을 타보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죠. 예를 들면 지금처럼 아무도 안 사고 있을 때가 살 때인 거예요.

 

지금 부동산 경기가 얼어 있잖아요. 공급이 많다고 하고요.


서울의 아파트 공급은 없어요. 기사를 정확하게 읽어야 돼요. 제가 블로그에 신문기사를 분석해서 올리기도 하는데요.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사례가 잘못됐더라고요. 예를 들면, 한강뷰의 지난 달 시세와 1층의 이번 달 시세를 비교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강남 아파트 가격이 떨어졌다는 기사가 나오고 며칠 뒤에는, 서울만 아파트 공급이 감소했다는 기사가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 공급이 많다고 하는 건 전국이 그렇다는 거예요. 실제로 많은 보고서들이 ‘수도권’과 ‘수도권 외’로 나누는데요. 파주, 양주, 의정부, 동두천도 다 수도권이에요. 그런데 거기랑 서울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사실 서울 내에서도 완전 다르죠. 강남 3구의 크기가 파리 시내보다 커요. 그렇게 거대한데 어떻게 하나로 보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강남 대로변에 있는 상가만 보더라도, 임차 공간이 없는 곳이 있고 공실 투성이인 곳이 있어요. 같은 권역이 아닌 거예요. 굉장히 디테일하게 봐야 되는 거죠.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부동산 상승론자이지만 무한상승론자는 아니”라고 하셨더라고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언젠가 끝날 거라고 보세요?


쉽지는 않을 거라고 봐요. 신화까지는 아니고요. 저도 3~5%씩 조금씩 오르기를 바라는 사람이에요. 갭 투자를 예로 들어볼게요. 100원 짜리 물건을 사는 데 내가 가진 돈 30원을 썼어요. 그런데 가격이 5% 상승했어요. 그러면 제 수익률은 17%잖아요. 이거면 됐어요. 충분하잖아요. 조용히 티 안 나게 3%씩 오르면 부자되는 거예요. 물론 GDP 성장률이 1% 이하로 떨어진다면 위험신호죠. 서울 시내에 용적률이 무한상승하고 공급량이 늘면, 그때는 빠져나올 때죠. 내 것 한 채만 들고서 빠져나와야 돼요.

 

그렇지만 그런 시기가 급박하게 올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시죠?


네.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주시해야 돼요. 나중에는 저도 ‘이제는 조심해야 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지역과 매물을 찍어주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재개발, 재건축 투자는 하신 적 없죠?


없어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앞으로 3년간은 안 할 거라고 하셨는데요. 왜 3년인가요?


3년 후에는 순자산이 더 쌓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막연히 3년이라고 했습니다.

 

재건축, 재개발에 투자하려면 순자산이 많아야 된다는 이야기인데, 왜 그렇죠?


2014~2015년에는 1억 5천만 원이면 반포 아파트를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기준으로 재건축 아파트를 사려면 6억 정도가 필요했어요. 재건축 하나 가격으로 신축 아파트 3개를 살 수 있었던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대치동에서 래미안 대치 팰리스 같은 대형 평형을 사려면 10억 정도가 필요해요. 그런데 30평형대인 은마 아파트를 사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해요.

 

또 다른 이유도 있나요?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조합장이 돼서 추진할 수 있으면 되는데 그것도 아니고, 손 놓고 기다려야 되죠. 얼마 전에 은광여고 쪽에 매물이 있어서 친구랑 같이 계산을 해봤어요. 곧 재건축할 가능성이 높은 아파트였는데, 수익률이 57%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투자 안 했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잖아요. 20년이 걸릴 수도 있고. 또 재건축이 진행되면 어느 단계부터는 팔 수가 없어요. 자산이 아주 많다면 사놓고 그냥 둘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라면 작은 신축 아파트를 매매하면서 돈을 번 다음에 번듯한 신축을 사겠어요.

 

책날개에 “이 책은 투자 지역과 매물을 찍어주지 않는다”라고 쓰셨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원하잖아요. ‘그래서 어디를 사라는 거냐’고요. 그런데 이 책에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아예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써놓은 거예요. 책 제목을 정할 때 저는 ‘백서, 기본서, 정석’ 같은 단어를 쓰기를 원했어요.

 

그렇게 제목을 지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부동산 투자의 기본 원칙과 방향을 알려주는 책이잖아요.


홍춘욱 이코노미스트가 추천사에 그렇게 썼더라고요. 이 책을 읽는다고 부자가 되지는 않는데 이 내용을 모르고 투자한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요. 사람들은 부동산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돼요. 매일 두세 시간씩 꾸준히 공부할 자신이 없으면, 내 집 한 채만 사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부동산 투자를 안 하는 게 나은 사람도 있다는 건가요?


아주 많아요.

 

어떤 경우가 그렇죠?


첫 번째는, 본업에서 수입이 잘 나오는 사람들이에요. 두 번째는, 부동산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고요.

 

부동산 관련해서 조언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가 많아요. 이 책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던데요. 이유가 있나요?


그건 제가 정책 담당자들한테 욕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써서 만들었겠어요. 굳이 욕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욕할 시간에 그 정책을 공부해서 적응해야죠. 계속 카멜레온처럼 적응해서 살아가야죠. 이렇게 말하면 기회주의자로 보일 지도 모르겠는데요. 저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라 투자자니까, 거기에 계속 맞춰가야죠.

 

앞으로의 부동산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세요?


별로 없어요.

 

부동산 투자에 대해 공부할 때, 도움이 되는 방법 한 가지만 알려주세요.

저는 글 쓰는 걸 추천 드려요. 투자 공부하는 데 참 도움이 많이 돼요. 자료를 저장해 놓을 수 있고, 그게 내 것이 되거든요. 그래서 글 쓰는 걸 추천 드립니다.


 

 

지금부터 부동산 투자해도 부자가 될 수 있다민경남 저 | 위즈덤하우스
오피스텔, 빌라, 아파트, 상가 투자를 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투자 포인트와 임장에서 계약, 매수, 매도 과정에서 꼭 챙겨야 할 체크리스트를 꼼꼼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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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수민 “내 음악은 가요, 케이팝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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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과 신선함을 갈구하는 음악계가 이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재주를 전설 속 '젊음의 샘'처럼 여기는 것도 과한 일은 아니겠다.' <Your Home> 리뷰의 말미에서 수민을 소개한 문장이다. 표현 그대로 수민은 2018년 한 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메이저 씬과의 협업은 물론 독창적인 첫 솔로 앨범,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린과의 협업 <Club 33> 발매까지 그의 족적은 화려하고 넓었다. 성실한 확장을 꿈꾸는 수민을 11월 18일 경리단길 카페 프레지던트(Cafe President)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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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수민이다. 근황을 알려준다면.

 

콘서트 마무리 후 8일 정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다녀왔고, 이후로는 쭉 작업 모드다. 너무 많은,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 풀고 콜라보레이션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행은 음악 작업을 위해서였나.


8일 내내 작업만 했다. 하루에 작업 2개씩, 잼도 많이 하고, 밤에는 신나게 놀았다. 쉬려고 갔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많이 하게 됐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얼마 전 발매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Aliens> 수록곡 '미끄럼틀'에 참여했다.


원래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오랜 팬이라 항상 밴드에게 곡을 주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나잠수 오빠가 동네에 술 마시러 와선 'X나 어려운 걸로 빨리 내놔!'라고 해서 열심히 만들었다.

 

어려운 곡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노래는 간결하고 멜로디도 잘 들리는데.


멜로디는 쉽게 쉽게 풀면서도 괴상하고, 후렴부에서는 야한 느낌도 넣고 싶었다. 실제로 이 노래를 야한 노래라 생각하고 만들기도 했다. 잠수 오빠가 말하는 '어려운' 느낌은 화성이나 보이싱, 세련된 코드부터 시작해서 BPM 변화나 트랜지션(장르 혼합) 등을 일컫는데, 다행히도 잠수 오빠가 굉장히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워낙 까다로운 사람인데.

 

실제로 '포장을 벗기다' '딱딱하다' 등 다양한 성적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 수민이 '딱딱하다'라 노래하는 부분은 젠더 관념을 뒤집는 재미도 있다.


사실 이 곡은 제 피처링이 계획에 없었다. 잠수 오빠가 남자 입장에서 써본 가사인데 그 파트를 '네가 불러!' 해서 부르게 된 거다.

 

나잠수는 <Your Home>의 마스터링을 맡기도 했다. 나잠수와의 작업은 어땠나.


보통 믹스와 프로듀싱까지 내가 하는 편인데, 워낙 자극적인 사운드를 좋아한다. 담백한 타입도 좋아하지만 거칠 때도 많고, 그런 즉흥적인 면이 작업 과정에서 많이 묻어난다. 잠수 오빠는 반대다. 수치로 보이는 걸 좋아하는, 딱 이공계 스타일이다. '수치상 데시벨 몇을 내리고 피치를 몇 올려줘'라 말하는 게 평소 잠수 오빠라면, 나와의 작업 과정에선 '조금만 이렇게 해줄 수 있어?'라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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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으로는 보아의 <Woman> 수록곡 'U&I'에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2016년 에프엑스 멤버 루나의 'Free somebody'를 좋아한다. 그 당시 들었던 가요 중 최고였다. 뮤직비디오, 프로듀싱, 비주얼 세팅 모든 것이 완벽했다.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사운드클라우드에 그 곡을 내 스타일로 해석해서 올렸는데 그게 대박이 났고, 그 버전을 오리지널 작곡가 패밀리(The Family)라는 부부 팀에게 들려줬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그렇게 SM 송 캠프에서 함께 작업하게 됐다.

 

처음 SM에서는 레드 벨벳과 보아 둘을 가이드로 제시했는데 보아를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들었다. 나는 보아 팬클럽 점핑보아 출신이고, 팬을 넘어 보아의 보컬 프로덕션, 영향, 톤을 모토로 잡았던 사람이었기에 보아의 스타일을 미리 머리에 넣었던 것 같다. 보아가 될지 레드 벨벳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는데, 'U&I'가 보아에게 가는 걸로 결정이 되고 디렉팅을 하게 되자 정말 긴장했다. 웬만해서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보아와의 작업에선 '다다다다 다시 갈게요!' 이럴 정도였다. (웃음)

 

'U&I'는 콜라보레이션 곡 중에서 제일 템포가 빨랐던 곡 같다.


패밀리의 린네아 뎁, 조이 닐 미트로 뎁 부부는 스웨덴 출신이다. 스웨덴 특유의 BPM 구역과 사운드의 특징 - 컴프레스와 리미트도 거의 걸지 않는 스웨덴 특유의 BPM과 청량하고 깔끔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덕분에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다. 나와 진보가 멜로디, 가사를 만들었다.

 

케이팝 프로덕션과 많은 작업을 했다. SM과의 작업은 물론 2016년 방탄소년단의 'Lie'에도 참여했는데, 케이팝이 수민의 음악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나는 한국사람이고 내 음악은 가요, 케이팝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 경험이 적었을 땐 케이팝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다 스무 살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를 보고 충격을 받은 거다. 테디 라일리, 마이클 잭슨이 생각나면서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팀이?' 싶었다. 그 이후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노력하는 모습, 끈기, 열정 등에서도 매력을 느꼈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처럼 자유로운 입장이 아니다. 지정된 시간 안에 많은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듣는 자세도 열정적이고, 훌륭한 음악을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뭘 해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덕션 부분도 항상 주목한다. UK, US차트에 있는 노래들을 다 들어보지만 한국처럼 구성이 오밀조밀한 노래가 없다. 3분 30초 내에서 지루함을 느낄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음악이 케이팝이다. 백반집에 갔는데 반찬이 많아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거랄까. 그런 다채로움을 수용한 노래가 'Seoul, Seoul, Seoul'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은 케이팝의 영향이 크다. 차가운 보컬 프로덕션, 믹스 스타일도 나의 성격과 잘 맞다.

 

케이팝이 글로벌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최근 MNEK, 바찌(Bazzi)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케이팝으로부터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케이팝 자체가 애초에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보니 비디오도 잘 나올 수밖에 없다. 지루할 틈이 없다. 무대 연출도 음악에 맞춰서 수준이 더 높아지고 카메라, 조명 등 음악에 관여하고 있는 분야들이 동시에 발전하는 거다.

 

레드 벨벳의 데뷔곡 '행복(Happiness)'에 N.E.R.D의 채드 휴고가 참여한 것도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후에도 송 캠프 참여 뮤지션들의 리스트를 보면 한국에서 보기 힘든 아티스트들이나 프로듀서들이 있다. 이렇게 하는 곳이 SM밖에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은 어땠나.


빅히트와 작업을 했다기보다는 당시 프로덕션 팀을 하고 있던 닥스킴(DOCSKIM)에게 요청이 와서 리드대로 작업했고, 메인 프로듀서 피덕(Pdogg)과 몇 번 만나 회의도 했다. 아무래도 방탄소년단이다 보니까 수정 사항이 많았는데, 살짝 힘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나왔고 재미있었다.

 

'Lie'의 스타일은 독특하다. 비장하고 어둡다. 수민에게는 낯선 모습인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음악이 살짝 어둡다. <Your Home> 작업은 사랑을 찬미하는 청량한 가사가 주였고 당시 인터뷰도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했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여러 모습이 나오게 된다. 아직도 밝고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사운드는 어두운 느낌이 늘었다. 음악적으로는 다크 하지만, 드럼 베이스는 여전히 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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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 Home> 앨범 리뷰 서두에 융합, 보컬과 멜로디, 메시지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먼저 융합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상당히 다채로운 장르가 공존하는 앨범인데.

 

사실 음악적인 테마는 없었다. 'Seoul, Seoul, Seoul'만 빼면 사랑이라는 주제, 그 안에서 발생하는 애증, 슬픔, 헤어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다. 새롭게 쓴 노래들도 있지만 'Mirrorball', 'In dreams' 같이 전에 만든 곡들도 있다.

 

앨범 발매 직전에 트랙 리스트를 쭉 봤는데 '일치감이 든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모든 곡이 일맥상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르적으로도 마찬가지고. 보컬이 모든 곡을 아우르고 있으니 음악적인 부분은 조금 달라도 기틀을 잡아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물론 세세하게 보면 보컬 믹스나 코러스의 유사함을 찾아낼 수도 있겠다. '다채로움'이 매력인 앨범으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타이틀 곡 '너네 집'은 1980년대 복고풍 신스팝 풍이고, 신세하(Xin Xeha)의 버전과 솔로곡이 다른 인상을 준다.


한동안 신스팝 음악을 듣기는 했지만 영향을 받아서 만든 건 아니고, 갑자기 빠르게 쓴 곡이다. 작업 과정에서 신디사이저가 들어가면 좋겠다 생각했고. 의외로 노래를 만들 때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건 아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이 첨가됐다.

 

신세하와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피처링 자체를 많이 하는 친구가 아니라서 연락 전에 많이 고민했지만 세하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1절을 만들고 바로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 후 너무 마음에 든다는 답이 왔다. 사실 나 자신이 신세하의 팬이기에 세하에게 보다 많은 파트를 주려 했는데, 작업 과정에서 세하가 자기는 딱 여기까지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도 N.E.R.D 이야기가 나왔는데, 'I hate you'의 미니멀하면서 파편화된 리듬 파트는 넵튠스를 떠올리게 한다.


N.E.R.D의 작년 12월 새 앨범이 한국에 풀리자마자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로 달려가서 미친 듯이 듣고 만든 곡이다. 지금의 넵튠스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초창기 넵튠스의 비욘세,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들을 들어보면 기타 싱글 노트나 리프 하나에 드럼, 보컬 코러스를 중심으로 곡을 전개한다. 'I hate you'의 경우는 감칠맛을 내기 위해 후렴구 전까지는 베이스라인을 하나도 넣지 않았다. 2000년대 음악의 확실한 각인을 담아보고자 한 곡이다.

 

'설탕분수'는 벨기에 프로듀서 폼라드(Pomrad)와 함께했다. 리듬이 변칙적이고 베이스 조작도 많이 들어간 독특한 곡이다. 인연이 궁금한데.


나는 폼라드의 광팬이다. 그분은 천재다. 재즈, 가스펠은 물론 트랩도 섭렵한다. 노래를 잘 만드는 건 물론이고 기계를 워낙 잘 다뤄서 공연까지 혼자 다 한다. 한동안 이태원 소프(Soap)에 공연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폼라드의 팬이라는 걸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 소프 앨범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폼라드 내한 소식을 들었고 지인 분이 폼라드의 오프닝 아티스트로 나를 추천했다. 어떻게든 폼라드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 오프닝 셋리스트도 폼라드가 좋아할 만한 리스트를 짰다.

 

공연 마치고 일부러 한 마디도 안 하고 집에 갔다. 다음날 다음 날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안 오는 거다. 열흘이 지나도 답이 안 오다가 메일함을 정리하는데 답장이 와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메일 보낸 같은 날에 작업 제안을 보냈는데 내가 확인을 못한 거였다 (웃음). '설탕분수'라는 제목은 폼라드가 'Sugar fountain'을 그대로 번역한 거다. 따지고 보면 팬으로서 시작한 것이 많다. 보아, 술탄 오브 더 디스코, 폼라드까지. 성덕(성공한 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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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컬 파트로 넘어가 보자. 과거 '박수민'으로 활동할 때와 지금의 수민은 분명 다른 보컬이다. 알앤비 보컬로부터 보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성을 확보한 인상이다.


아무래도 당시엔 곡을 쓰지 않았고 보컬리스트에 국한돼있던 시기였다. 제 음악이 아니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스스로 음악을 만들게 되면서 나를 표현하려다 보니 여기에 어울리는 적재적소 이펙트를 사용하게 됐다. 보컬 자체도 변했다. 과거는 지금보다는 좀 퍼져 있다고 해야 하나. 모든 아티스트들이 다 그런 것 같다. 1-2년 정도 차이는 눈에 확 띄지 않지만, 5-6년 정도가 지나면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나 나는 많이 변한 축이다.

 

진보(Jinbo)와의 콜라보도 뺄 수 없다. 'U&me' 싱글부터 <KRNB2 Part. 1>에 참여했다.


진보도 엄청난 팬이다. 모두가 진보의 팬이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언젠가 진보와 꼭 작업을 해보겠다는 로망이 있었다. 진보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신비로운 인상이었는데, 세상에 얼굴도 잘 안 비추고, 혼자만의 세계관이 있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러브송즈 레코드 시절 진보에게 'Fxxk me'라는 노래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거절당했다. 당시 진보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노래 '봄이 오는 소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둡고 선정적인 노래를 부탁했던 거였다. 이런 음악을 준비하는 사람한테 어둡고 선정적인 노래를 부탁했던 거다. 전후 사정을 몰랐던 때라 기분이 살짝 상하기도 했다. 나 같아도 거절했을 텐데 (웃음)

 

진보를 포기할 수 없어서 다음에 써서 보낸 곡이 'U & me'고 드디어 콜라보를 하게 됐다. 그 인연으로 <KRNB2> 앨범에도 참여했다. 진보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음악을 듣고 어떤 부분을 왜 만들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진보는 알고 있다. 그렇게 음악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최근 얼터너티브 알앤비 장르는 멜로디 힘 자체가 약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수민의 곡은 멜로디 라인이 선명하다.

 

다른 아티스트에게 곡을 줄 때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 내 앨범을 만들 땐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멜로디 라인이 많든 적든 내 귀에 잘 들리면 된다. 단순하게 생각한다. 물론 가사를 쓰는데 멜로디에 공백이 생기면 그때는 좀 쪼개기도 한다.

 

보컬 이펙트를 많이 활용했다. 어떤 트랙에선 보컬을 사운드 샘플로 쓰는 느낌이다.


맞다. 완전 의도적이다. 보컬리스트로 인식되는 전형적인 개념을 없애고 싶었다. 보컬은 음악을 표현하는 하나의 부분이다. 그게 주도적으로 나오는 곡들도 있고 아닌 곡들도 있는 거다.

 

메시지 차원으로 넘어가 보자. '통닭'은 신선한 비유를 보여주는데, 쿤디 판다의 랩이 직설적이라면 수민의 파트는 은유적이다.


남성의 몸을 비유한 게 맞다. 노래를 만들 때 항상 섹슈얼한 요소를 염두에 두는데, 처음 나오는 훅 가사가 'You're so slippery / Your tan skin'이다. 내가 좋아하는 남성의 몸을 표현하고 싶었다.

 

슈퍼프릭 레코즈(Superfreak Records)의 프로듀서 비앙(Viann)과 통닭집에서 통닭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맛있는 거다. 마침 그 친구에게 곡을 받자마자 이 노래 제목은 무조건 '통닭'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치킨이란 주제 아래 이중적인 메시지를 넣었고 쿤디가 랩으로 확인사살을 해줬다. 잘 모르고 들으면 그냥 치킨에 대한 노래다.

 

이중적 메시지 활용이 두드러지는 반면 'Woo' 같은 직접적 표현도 있다.


사실 모든 노래가 훅 빼고는 다 직접적이다. 관계를 할 때 내가 아래일 수도 있고 위일 수도 있다. 벌스에서는 상황을 묘사했고 훅에는 도끼로 찍어버리듯이 확실하게 갔다.

 

'Seoul, Seoul, Seoul'의 메시지도 독특하다. 서울을 노래하는 여러 곡들 중에도 수민의 서울은 좀 다르다.


나는 서울 길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느낀 서울의 이미지는… 서울 사람들 혹은 한국사람들은 감정에 대해 교류하지 않는다. 지하철 타면 모두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골목길에서 차가 마주하면 무조건 빵빵거린다. 만약 그 둘이 서로 알고 있는 사이라면 결코 그렇게 경적 울리지 않을 텐데. 조금만 참고 양보하면 되는 건데도 말이다. 처음부터 가사가 '왜 그렇게 화가 나있어'다. 다들 인상 쓰고 있고, 자기 공간을 침범하면 바로 화내고. 옛날엔 이렇게 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봤을 땐 이 상황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가사가 한 번 바뀐다. '지하철 바깥 한강을 봐 그리고 하늘을 봐'. 부정적 인상도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편리한 도시라는 모순적인 감정도 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봐도 서울처럼 제반 시설 잘 갖춰진 도시가 드물다. 한국의 독특한 특징을 표현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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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의 하루 작업량이 대단할 것 같다. 하루에 얼마나 작업하나.


하루에 1절씩은 꼭 만든다. 마음 같아서는 쉬지 않고 계속 만들고 싶다. 때로는 하루 안에 한 곡을 다 쓰기도 한다. 'Sparkling'이 그런 곡이다. '너네 집'도 사실은 세하한테 일단 보내야 하니까 빨리 작업에 들어갔다. 세하가 거절할 수도 있다는 전제 하에 1절까지만 생각해 둔 건데 세하가 좋다고 해서 다 만든 거다. 나보다 더 열심히 하는 분들도 많다(웃음).

 

발매 예정인 차기작이 있나.


기린과의 작업은 끝난 지 오래됐다. 지금은 음악 외적으로 비주얼적인 것들에 신경 쓰는 단계다(12월 9일 <Club 33> 발매). 이제 막 곡을 준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평소에 좋아하는 뮤지션들이거나 성향이 반대인 아티스트들도 있다. 그게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떤 반응을 얻을지 너무 기대가 된다.

 

나 스스로도 내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앞으로 뭘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내년 초에도 다양한 음악이 나온다. 여러 가지 협업들도 예정되어 있고. 내 차기작에 피쳐링 아티스트가 많지는 않겠지만, 그중에도 반전 아티스트가 있다. 작업은 항상 재미있다. 예상 가능한 아티스트들과도 작업을 하지만 나와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의 작업은 더 기대가 된다.

 

최근 1-2년 사이에 젊은 아티스트들이 씬을 형성하고 있다. 예전에는 각자의 바운더리가 명확했고 독립된 형태였다면, 최근에는 하나로 묶여서 무형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단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아니라 얼터너티브, 대안적 음악으로 자리하는 모습인데.


조금은 단독적이고 싶은 것이 내 생각이지만 현상 자체는 긍정적이다. 장단점이 있지만 확실한 건 예전보다는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포함한 예술 계통의 모든 것들이 가면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기획자들 중에도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 많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교포 출신 아티스트들의 수도 늘었다. SNS의 발달로 국제적 협업도 가능하며 다양한 예술 레퍼런스를 접할 수 있다.

 

길고도 유익한 인터뷰였다. 마지막으로 수민이 추구하는 음악을 정의하자면.


하고 싶은 음악은 너무 많아서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최대한 모든 것들을 건드리고 싶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겠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N.E.R.D가 자기들 음악은 별종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프로듀서로 참여했을 때 뮤지션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 덕분이다. 이런 아티스트가 되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서 N.E.R.D의 존재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된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하나의 답을 내는 게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보고 얘기 하고 싶다. 애증 역시 사랑이듯이.

오랜만에 돌아온 이즘 공식 질문이다. 최근 수민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잘 들었던 앨범을 추천해달라.
아노말리에(Anomalie)의 <Metropole, Pt. ll>. 폼라드 주니어 같은 느낌이다. 굉장히 유연하다. 제임슨(Jamson)도 좋아하고.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Aliens>도 잘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N.E.R.D의 <No One Ever Really Dies>는 명반이다.

 

 

인터뷰 : 김도헌, 정연경
사진 : 최관호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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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세랑 “너무 겸손해지지는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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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설레는 이름이 된 작가 정세랑’. 띠지에 적힌 홍보문구는 아마 ‘정세랑 월드’에 빠진 사람이 만든 문구일 것이다. 설탕을 입힌 반짝거리는 폭탄, 8년 만의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에는 정세랑 월드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이 세계에 빠지면 어떤 이야기를 읽더라도 즐겁고, 빨리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다. 순수하게 남들에게 권하고 싶어진다.


『피프티 피플』  이후 2년, 인터뷰 전날 열렸던 북 토크에 150명 넘는 인원이 몰려 한 시간 넘게 사인회를 진행할 만큼 정세랑의 인기는 날로 커졌다. 한 명이 한 권씩 보는 게 아니라 한 명이 다섯 권씩 사서 주변에 권하는 정세랑의 팬은 정세랑을 그대로 닮았다. 좋은 걸 보면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내밀고, 나쁜 것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독자들. 그래서 정세랑은 오늘도 문학계의 잘못을 지적하고, 대책을 촉구한다. 절망해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뒷배’에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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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이야기 다음


첫 단편집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이미 두 권쯤은 나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웹진 <거울>에서 2012년쯤 단편집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정말 늦었네요. 장편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에 더 많이 마음을 뺏겼던 것 같아요. 단편을 꾸준히 쓰면서도 조금 더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내야겠다고 미루고 있다가, 어떤 단편이 쓴 시기에서 너무 멀어져 버리면 시대성도 떨어지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0년부터 쓴 글이 묶였어요.


이렇게까지 늦게 내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웃음)


단편을 실은 기준이 있었나요?


스무 편 넘는 단편에서 SF는 따로 묶기로 했어요. SF 작가연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SF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3분의 1이 빠지고, 나머지 3분의 1은 성격이 비슷한 단편을 뺐어요. 비슷한 인물, 비슷한 주제나 등장인물의 수 등이 겹치는 게 싫어서요.


읽으면서  『피프티 피플』 의 조각이 모여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영화의 프리퀄처럼요.


나중에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있다는 주제에 계속 집중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어떤 걸 쓰고 있다는 걸 깨달은 기회였어요.


나중에 묶여봐야 알더라고요. 평론가가 말해줘야 아는 것도 있고요.


모두 다르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허희 평론가 님도 제 작품을 읽고 전혀 몰랐던 사실을 짚어주셨어요. 제 작품을 보고 트렌스 내셔널리즘을 이야기하셔서 처음 들어봤는데, 어 이거 하는 것 같다 싶었어요. (웃음)


단편과 장편을 작업할 때 차이가 있나요?


단편 쪽이 아이디어를 조금 더 과감히 실험할 수 있었어요. 아이디어 한두 개가 서로 붙으면 단편을 쓸 수 있는데, 장편은 그것보다 조금 더 기획이 필요하거든요. 단편은 가볍게 실험할 수 있어서 쓰는 것 자체는 더 즐거워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작품의 결이 바뀐 게 있다면.


초반에 썼던 인물은 고립된 상태가 많았어요. 회사에서 안 좋은 상황에 부닥쳐 있다거나, 자기가 죽었는데 죽었다는 사실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다거나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다른 사람들과 친구들, 동료들과 연결된 인물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20대의 고립 상태에서 벗어난 게 글에서도 보이는구나 싶었어요.


초기 장편은 연애 이야기가 많았는데, 단편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연애 이야기가 줄어들었어요.


20대 때 쓴 건 다시 쓸 수 없어요. 그때는 정말 안정된 관계를 원했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사랑하는 반려동물이나 친구들, 혹은 책 속의 인물과도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걸 꼭 연애 관계에서 찾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만든 변화 중 하나였을 거예요.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116쪽)”라고 쓰셨어요. 어떤 뜻이었을까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여러 가지 주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성장이 일어나던 예전 사회보다 열악한 상황이잖아요. 절망에 처해 있을 때 사람들이 사랑 이야기를 많이 찾더라고요. 드라마에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주인공이 재벌 3세와 사랑에 빠지는 추진력도, 사실 우리가 뺏긴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권력과 부를 나눠 받고 싶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절망 대신 사랑을 택하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뒤집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썼던 것 같아요.


말씀을 들으니 그렇네요.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한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지 않겠죠.


빠져나갈 구멍이 막혀있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에 기대는 마음은 저도 알 것 같아요. 제가 정말 힘들었을 때 집에 들어와 읽고 싶은 건 언제나 로맨스 소설이었어요. 그건 사실 나눠 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죠. 그래서 만약 이 절망감이 해소되면 우리가 사랑 이야기를 훨씬 덜 찾을 것 같아요. 더 좋은 직장, 안전한 주거환경, 사회적 인정, 여러 가지 것들이 사람들의 갈망을 해소해준다면요. 저도 로맨스를 많이 썼지만, 로맨스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던 게 지금 와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싶을 때가 있어요. 작가로서 가진 게 너무 없고 늘 위험을 느끼면서 살았기 때문에 구원으로서의 삶, 절대적인 대상으로서의 사랑 이야기를 많이 썼던 건데, 그 달콤함을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이 다음 단계에 관해, 절망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죠.

 

 

능청스러운 거짓말의 격차


「영원히 77사이즈」는 스물여섯 살 때 쓰셨다고요. 처음 발표한 제목은 ‘영원히 66사이즈’였어요.


별 이유는 아니고 몸에 더 관대하게 쓰고 싶었어요. 나이 들면서 보니까 66사이즈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88사이즈로 할까도 생각했는데 어감이 88올림픽 같기도 해서, 조금 더 라지 느낌으로 가고 싶었어요. 엑스라지도 좋고요. 99사이즈라도 상관없었어요.


77사이즈의 주인공이 뱀파이어가 되는 이야기가 신선했어요. 뱀파이어는 대개 창백하고 호리호리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되잖아요.


소모적인 연애 관계에서도 빠져나오고 여행도 맘껏 하고 위험한 집에서 살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죠. 누가 이 여자를 공격하려 해도 상관없게 된 그 해방감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여행 가서 누가 자기를 위협하면 조금 물어버리면 되니까요.


어디든 가는 멋진 뱀파이어가 되었고요.


이 여자는 계속 자기가 죽었고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 여자의 일생은 지금부터 재밌어지거든요. 서울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사람이 되었는데 정작 자신은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그 차이, 정말 일어난 일과 서술자의 말의 격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습격 자체는 기분 나쁘고 폭력적인 상황이었지만, 뱀파이어 소설은 항상 그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웨딩드레스 44」는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지금은 결혼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답이 나온 상태잖아요. 성소수자든 누구든 하고 싶으면 방해 없이 결혼할 권리를 얻어야 하고, 다 같이 결혼하는 분위기보다는 다양한 삶의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답이요. 그 답이 나오기 전까지의 고민이 담긴 것 같아요. 2016년에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의미 있는 이야기지만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르고 ‘2016년에는 왜 이런 걸로 고민했을까’ 생각하는 게 최종 목표예요. 결혼이 훨씬 더 가벼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이야기가 낡으면 저는 기쁠 거예요.


「웨딩드레스 44」 발표 당시 웹을 통해 많이 공유됐었어요. 퍼져나가기 좋은 형식이기도 했고요.


스마트폰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형태였죠. 글의 형태를 미리 아는 게 작가에게 중요해요. 웹에서 읽힐 건지 책에서 읽힐 건지, 전자기기도 어떤 단말기에서 읽힐 건지 여러 가지 것들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쓰면 확실히 쓰는 방식이 달라지더라고요.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읽히는 경험은 작가에게 항상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인생에 한두 번 일어나잖아요. 수많은 사람에게 SNS와 메신저로 건네지는 게 보이면 파도의 느낌이 들면서 재미있어요. 계속 이슈가 된다면야 좋겠지만, 한번쯤 일어난다면 작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고요.


SNS를 통해 읽힐 때는 기분이 어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쓸걸…?”(웃음) 그렇게 퍼져나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죠. 심지어 번호별로 오려 붙이다가 실수를 한 게 제일 속상해요. 여섯 명인가 여덟 명의 이야기가 안 붙은 상태로 나가버린 거예요. 다들 ‘웨딩드레스 44’지만 44명이 아닌 건 문학적 생략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여주셔서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제일 많이 읽힌 글인데 작가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글이 되어버렸죠. 다행히 그 이후 수정해서 책에 실을 수 있었지만, ‘컨트롤 엑스’와 ‘컨트롤 브이’를 항상 조심해야 해요. 너무 정신 없을 때라 제대로 못 봤어요.


지금도 정신 없으시잖아요.


아, 이렇게 살다 죽을 것 같아요. (웃음) 가족 중 한 분이 저 대신 점을 봐주셨는데, 죽기 직전까지 일한다는 거예요. 이 죽기 직전이 80대인지 50대인지 알 수 없잖아요. 이게 과연 좋은 운일까 싶어요.


단편 중에서 작가님의 모습이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은 뭘까요?


「알다시피, 은열」의 화자일까요? 역사 전공인데 자꾸 딴짓하는 게 저랑 닮았어요.


작가님도 역사교육과를 나오셨죠? 대학에서 역사를 배운 경험이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을 거예요.


자료를 수집하는 법, 해석하는 법이 큰 도구가 된 것 같아요. 특히 시점에 따라 기록이 달라지는 걸 소설에서도 많이 써요. 사료도 누가 거짓말을 하거나 어떤 사람의 일방적인 증언이 들어가기도 하잖아요. 예를 들면 「옥상에서 만나요」 화자는 자꾸 자기가 불러낸 것을 남편이라고 부르고 자기 생활을 결혼생활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사실 결혼생활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거든요. 이야기는 계속 결혼 밖으로 나가는데 화자는 계속 결혼이라고 말할 때 생기는 차이가 문학적이라고 생각해요. 능청스러운 거짓말을 하는 거죠.


「이마, 모래」에서는 장르 문학의 느낌이 있었어요. 다른 세계를 설정하고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요.


식문화가 파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마, 모래」를 썼었어요. 어떤 음식이 유행하면 모든 사람이 그 음식을 먹잖아요. 치즈 등갈비가 유행하면 다들 그걸 먹고, 조개구이가 유명해지면 또 몰려가서 먹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으면서도 너무 강렬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든지 한 번에 유행하고 그다음에 싹 사라지는 게 조금 불편해요. 다들 잔잔하고 다양하게 있는 상황을 더 좋아해요.


배명훈 작가님의  『푸른파 피망』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가상의 세계 안에서 식자재를 가지고 반목하잖아요.


맞네요, 통하는 게 있어요. 그분이 아이디어를 주셔서 그랬나 봐요.


작가의 말도 그렇고, 배명훈 작가님이 많이 등장해요.


아무래도 제일 친한 작가고, 도움도 많이 주세요. 그분에게 작가가 혼자 쓰는 것 같지만 어떤 생태계를 이뤄서 쓴다는 걸 배웠어요. 이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을 때 개개인은 다 불행해지는 거죠. 작가의 생태계를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고, 많이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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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를 계속 환기시켜 줄 사람


최근 문화부 장관이 되어야겠다는 말씀도 하신 적이 있는데(웃음), 권위주의자는 아니지만 문단의 권위를 받는 건 중요하다는 말이나, 힘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말을 계속하셨어요.


이용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자본이나 권력이 있어야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완전한 순수성을 지켜서 옳은 사람들이 인정받고 나쁜 사람들이 벌을 받는 세상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그럴 때 어떤 주도권을 가지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막상 우리 세대가 그 주도권을 가지면 잘 쓸 수 있을지 늘 의문이 있어요.


주도권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깥에서 자기를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제게 어떤 권력이 있다는 걸 알아요. 이를테면 이 인터뷰도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쓰고 있고,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권력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쓸 것인지가 제 예민한 주제인데,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어떤 신인 작가를 뽑는 심사위원이 된다면, 그것 역시 권력이에요. 문학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작가를 뽑아야 한다고 제가 주장하는 자리잖아요. 그래서 심사위원은 1년에 한 번만 하려고 해요. 그 이상으로 하면 문학장에서 제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힘이 바로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힘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꽤 큰 힘이에요. 슈퍼히어로처럼, 자기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늘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 지면에서 완전히 고유의 목소리가 나오진 않아요. 부담스럽진 않나요?


인터뷰는 한 번 해석된 목소리로 나올 수밖에 없고, 압축해서 나오면 자극적일 수밖에 없어요. 어쩔 수 없으니 조심도 해야겠지만, 너무 조심하느라고 힘을 안 쓰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해요. 계속 문학계가 투명하게 돌아가지 않고, 다양한 신인을 육성하지 않고, 공적인 자원을 소수의 사람에게 배분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환기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리고 악플은 감수하고 있죠.


악플이 아주 힘들죠.


제 중심부를 해치진 않는데, 피부를 조금씩 긁는다는 느낌은 들어요. 금속이 산에 부식되는 것처럼요. 스무 개 남짓 달리면 조금 녹고 마는데, 수백 개 수천 개 악플이 달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조금씩 녹여 들어오는 그 적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들어요.


그래도 정면으로 맞선다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 학습된, 겸손한, 눈을 깔고 옆을 보는 작가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도발적이라고 싫어할 수도 있지만 특히 젊은 여성 작가들에게 강요하는 아스라한 분위기가 있잖아요. 먼 곳을 분위기 있게 바라보는 형태요. 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똑바로 보고 똑바로 말하는, 의견이 강한 여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너무 겸손해지지는 않으려고요.


작가님 특유의 문체가 있듯이 말체도 있어서, 세게 말해도 그게 ‘센 여자’로 비치진 않더라고요.


그렇죠. 생글생글 웃으면서 시비 거는 타입이에요. (웃음)


작품에 담긴 사상도 센데, 그렇게까지 세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사실 굉장히 음흉한 전략일 수도 있어요. 큰 변화를 원하면서 크림이나 설탕 같은 거로 코팅해서 내놓는 것 같아요. 어떤 작가가 어떤 전략을 취할지는 사실 작가마다 다른 게 맞아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작가가 있을 수 있고, 숨기면서 미로와 암호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저처럼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 안에 뭐가 있는 것처럼 전할 수도 있어요. 그 다양한 전략들이 재미있어요. 독자 입장에서 어떤 작가의 전략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겠죠.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너무 보편을 추구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통계를 끌어안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이한 전략이었거든요. 이 작품은 다른 전략을 취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쓰셔야 해요.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건 또 좋은 일이죠.


「옥상에서 만나요」를 보면, 주인공이 행복하게 사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비급서를 전해주는 열린 결말로 끝나요. 주인공도 언니들에게서 비급서를 받고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추동력은 뭘까요?


이상한 사람도 많고 사악한 사람도 많지만, 우리에게는 공통으로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고 멀리서 봐야 보이는 특징인데, 어떤 분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뒤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할 때가 있거든요. 그냥 일을 그만두지 않고 조직의 비리나 성폭력을 고발한다든지요. 공지영 작가님이나 최영미 시인도 오래전 그 사람이 자신에게 한 일을 밝히는 건 사실 다른 어린 여성 작가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히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익보다 뒤에 오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표현하기


책이 2만 권 나가면 2만 명이 한 권씩 보는 게 아니라, 4천 명이 5권씩 산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사실 더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2천 명이 10권씩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어요. 어제 행사에서 지금까지 30권을 샀다는 독자분이 있어서 ‘앗 잠깐만, 더 적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죠. (웃음)


정세랑의 세계가 코어 팬을 불러들이는 걸까요?


작가랑 독자가 닮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엄청나게 남들에게 권하고 다니는 사람이거든요. 제 책의 독자분들도 좋은 게 있으면 혼자 알고 있는 분들이 아닌 거예요. 다정하면서도 강렬하게 좋아하는 걸 표현하는 분들이시구나, 나도 저런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다만 모든 독자분이 그러는 것 같지는 않고, 조용한 작가의 행사를 하면 줄도 조용히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선대요. 직설적인 작가님 북 토크의 독자분들은 행사장에 들어오면 여기저기 살피지 않고 직선으로 걷는다고 하고요. 독자랑 작가랑 정말 닮아있는 것 같아요. 재밌어요.


행사에서 독자들을 만나면 기분이 어때요?


인터넷 세계에서 족적이 없는, 하지만 책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평소 웹에서는 볼 수 없던 반응도 느꼈어요. 긴 편지도 써오시고, 손으로 만든 자수 제품도 가져오시고요.


열심히 ‘팬심’을 전파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원동력이 뭘까 생각하고는 해요.


제가 느낀 기쁨을 친구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고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면 심심해 보이는 친구에게 꼭 사주고 읽어보라고 해요. 그 작품으로 바뀐 제 세계, 기쁨, 쾌감 같은 걸 나누고 싶어요.


‘중년 프리랜서’로 계약이 밀려있는데, 고갈이 되진 않나요?


그래서 쉬어야 하는 것 같아요. 휴식시간을 어떻게 방어할지가 프리랜서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억지로든 쉬어서 충전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에 쉰다고 했는데 전혀 못 쉬었죠. 1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컨베이어 벨트처럼 굴러가 버렸어요.


지금 남은 계약은 몇 개 있나요?


장편이 네 개, 단편집 두 개, 에세이 두 개, 엽편도 언젠가 모아야 해요.


대중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대중소설가인데요?


많이 팔려야 대중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 너무 책이 안 팔리니까 겨우 턱걸이로 대중소설가 아닐까요? 작게 모아서 한 권씩 내다보면 10만 부 팔 수 있겠죠.


정세랑의 에세이도 궁금해지네요.


웃긴 일이 이상하게 많이 생기는 타입이에요. 다양한 장르를 쓰지만 제 장르는 코미디에 가깝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몇 개월만 통으로 주어지면 쓰기 좋을 텐데, 못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글을 쓰는 작가분들을 존경하게 됐어요. 이분들이 온갖 진퇴양난과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도 계속 글을 썼다는 게 너무 대단하고, 살아남는 것 자체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고 약점이 있어도 일단 살아남고 자리를 잡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옥상에서 만나요정세랑 저 | 창비
‘나’는 “내 후임으로 왔다는 너”를 염려하며 ‘너’가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발견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남긴 자리에 앉은 누군가에 대한 염려는 그 마음만으로 단단한 연대의 힘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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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세현 前 통일부장관 “2018년 가장 큰 사건, 4.27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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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40년이 넘게 남북 관계와 한반도 국제 정치를 지켜본 정세현 前 통일부 장관은 2018년을 “인생에 가장 바빴던 해”라고 말했다. 청와대 통일비서관, 통일부 차관, 국가정보원 원장 통일특별보좌역과 29대, 30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그가 올해를 가장 바빴던 해라고 말하는 데에는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긴 장면도 많이 있었다. 2월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 특사단의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 3월 한국 특사단의 북한 방문, 그리고 4월 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까지. 2017년까지 한반도 위기설이 수시로 나오고, 들어갔던 것을 떠올리면 이 갑작스러운 변화는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어제는 개성 판문역에서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하는 착공식이 열렸다.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는 평양의 현재를 탐색하고(1장),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체험하며 한반도에서 유럽까지 철도 연결이 되는 꿈을 꾸고(2장), 통일된 한반도의 경제 잠재력을 따지며(7장), 그러므로 인내심을 갖고 통일을 준비하자고 말하는 책이다(11장). 특히 정세현 前 장관이 다룬 4부 ‘알아보자’는 통일에 돈이 많이 든다는 오해를 구체적인 자료로 반박하면서 통일이 가져올 경제 효과를 분석하고, 미국과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 안에서 남과 북이 통일했을 때 갖게 될 국제적 위상을 상상한다. 그리하여 진짜 평화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과연 통일은 내 삶을 변화시킬까? 통일을 꼭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질문 앞에서 정세현 前 장관은 다름 아닌 ‘평화’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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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장 큰 사건, 4.27 남북정상회담


“2018년이란 시간은 내게 흘러간 것이 아니라 패스를 하듯 획획 지나갔다.”(327쪽)고 적으셨어요.

 

남북관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를 돌아보면 굉장히 일이 많았어요. 일이 많다 보면 한 해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얘기인데요. 덕분에 나는 2018년이 내 인생에 가장 바빴던 해로 기억될 것 같아요. 물론 일정 면에서 본다면 현직에서, 통일부 장차관으로 뛸 때보다는 덜 바빴죠. 그러나 정부에서 나온 뒤를 말하자면 그래요. 내가 2004년 6월 30일에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났는데요. 이후 약 13-14년 동안 이렇게 바빴던 해가 없어요. 꾸준히 통일 문제를 보느라 회의도 하고, 원광대 총장직에도 있으면서 바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금년처럼 바쁘진 않았어요. 이번에는 하루에 인터뷰, 강연 등이 3-4개씩 있었으니까요.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11-12시가 된 날이 많다 보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잤죠. 곧바로 다음날 6시부터 움직여야 하는 날도 많았고요.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오래 상황을 지켜봐왔음에도, 특별히 올해가 달랐던 이유는 뭘까요?


가장 큰 사건은 일단 4.27 남북정상회담이죠. 4.27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북한이 먼저 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2월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북측 대표단이 왔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친동생 김여정에게 들려 보낸 친서 내용이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초청’이거든요. 그것은 곧 남북정상회담을 하자는 이야기였죠. 결국 친서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것도 북미정상회담의 길잡이를 자처하면서 준비를 한 거예요. 2월 9일 답방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3월 5일 우리가 북측에 특사단을 보냈고요. 그 특사들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을 했잖아요. 트럼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하겠다고 결정을 했고요. 북미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어준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북한이 의도했던 바이기도 해요.

 

북한이 의도했던 바요?


문재인 대통령 등에 업혀서 트럼프를 만나러 가자, 혼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한 해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구했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하겠다는 의사전달을 하자, 그렇게 시작이 된 거예요.


저는 1977년 ‘통일원(1998년 통일부로 명칭 변경될 때까지 활동하던 국무총리 산하 중앙행정기관)’에 들어가서 40년 넘게 관심을 갖다 보니까 모든 안테나가 북쪽으로 열려 있어요. 택시 안에서도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오면 다시 집에 들어가서 또 한 번 뉴스를 체크해보고요. 1월 1일 북한의 신년사부터 계속 관찰할 수밖에 없고요. 그때부터 예의주시했던 거죠. 1월부터 시작해 2월 평창올림픽, 3월 특사, 4월 정상회담, 그렇게 바빴어요.

 

2018년이 이렇게 남북 화해분위기가 되리라고는 직전까지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른바 ‘한반도 위기설’도 워낙 많았고요. 장관님은 상황이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을 하셨었나요?


현장에서 오래 일한 경험으로 볼 때, 남북이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라고 한다면 북한이 와서 부딪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누군가는 옆으로 살짝 튼다고 막연하게 기대는 하고 있었죠. 올해 초에 <JTBC 뉴스룸>에 나갔는데요. 손석희 앵커가 하는 말이, 제가 2017년에 이미 “해가 바뀌면 대화국면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그때서야 기억이 났어요.(웃음)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을 했느냐면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에요. 미국은 북한을 무작정 칠 수 없어요. 중국이 세계 2대 강국이 된 상황에서, 아무리 미국이 북한이 밉다 한들, 북한을 때렸다가는 바로 한반도 전쟁으로 비화되고, 3차 대전으로 가게 되는 거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전쟁은 안 난다고 얘기를 했던 거고요. 그러나 해가 바뀌면 상황이 바뀔 거라고 말한 것은 북한이 그렇게 나오리란 것을 확신한 건 아니고, 소위 원리가 그렇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원리요.


‘궁즉변(窮則變)’, 즉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면 변할 수밖에 없고요. ‘극즉반(極則反)’, 즉 극에 달하면 반전하게 돼요. ‘궁즉변 극즉반’의 원리로 국제 외교는 설명될 수밖에 없거든요. 국내 정치도 그렇잖아요. 장외 투쟁을 하고, 막다른 골목에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도 확 뒤집어지잖아요. 그런 원리에 입각해서 대화국면이 될 거라는 얘기를 한 거고요. 그게 맞았죠.(웃음) 그래서 그때부터 저더러 예언자라느니 그런 말을 하는데요. 저는 예언자도, 족집게도 아니고요. 다만 오랫동안 남북 관계와 한반도 국제 정치를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다 보니까 그런 분석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꾸준히 분석을 하다보면 전망도 비교적 비슷하게 나오죠. 때로는 틀릴 때도 많아요.(웃음)

 

 

통일비용을 제대로 계산해야 한다


책의 4부 ‘알아보자’ 부분을 쓰셨는데요. 제일 먼저 경제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통일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 오해라는 점을 분석하고 있거든요. 


그 내용은 주로 황재옥 박사가 썼는데요. 정부에서 나온 후 이화여대 북한학과 석좌교수를 했는데요. 그때 만난 제자고요. 워낙 제가 많이 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제가 통일비용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2년입니다. 먼저 이걸 봐야 해요. 당시가 시기로는 독일 통일 만 1년이 지난 뒤의 상황이죠. 통일 후 서독이 동독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돈을 많이 썼거든요. 그런데 그건 서독의 중대한 실수 때문이기도 해요. 화폐통합, 부동산 정책 등이 동독 사람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동독 노동자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거예요. 때문에 서독 세금으로 동독을 먹여 살린다는 비판이 나왔죠.

 

그에 대해 당시 서독의 정치적인 의도 때문에 나온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하셨죠.


먼저 화폐통합. 동독 노동자들을 서독 노동자들과 똑같이 고용해야 했는데요. 그게 경쟁력을 떨어뜨렸어요. 거기다가 동독 지역의 부동산 관리를 인정해버리는 바람에 땅값이 엄청나게 올라가면서 싼 땅에 공장을 지어서 싼 임금에 노동자를 고용할 수가 없게 된 거예요. 투자하는 비용이 적어야 기업이 돈을 벌고, 그걸 대가로 그 지역 사람들은 먹고 살게 되어 있는데 그걸 못하게 된 거죠. 그 때문에 서독 국민 세금으로 동독 지역을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나온 거예요. 저는 서독 정부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독일의 통일비용 수준으로 한반도 통일 시 비용을 계산해보니 얼마가 나왔다, 라는 일본 장기신용은행 보고서를 다룬 기사가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나온 거예요. 그걸 보는 순간 제가 “나쁜 놈들.”이라고 했어요. 그건 한반도의 통일 의지를 꺾는 거니까요.

 

실제로 분단 이후 세대에게 통일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여론이 컸죠. 그런 맥락이 있었던 거군요.


동서독의 통일비용 수준으로 남북 통일비용을 계산했을 때 한국 국가 예산의 절반이 들어가야 한다는 식의 내용이었는데요. 엄청난 돈이거든요. 그러면서 이렇게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 정부 혼자서는 감당을 못할 것이고, 아무래도 지역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식의 주제넘은 코멘트를 달아서 기사가 나왔는데요. 아주 화가 났었어요. 일본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계산을 하면서 처음부터 초를 치고 들어간 것은 한국 사람들의 통일 의지를 꺾으려고 한 겁니다. 그래서 통일비용을 제대로 계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것이 바로 ‘통일편익’이 크다는 점이겠죠?


통일 독일이 저질렀던 과오를 범하지 않으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1993년 북핵 문제가 불거지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말끝마다 북한을 붕괴한다는 말씀을 했고요. 그러다보니 학자들 사이에 북한이 붕괴하면 우리가 책임을 진다, 는 흡수통일론이 퍼지게 됐죠. 흡수통일을 하려면 돈이 엄청나게 든다면서 독일식으로 산출을 하기 시작했고요. 이후 김일성 사망을 겪고, 흡수통일론이 대유행을 하죠. 한쪽에서는 또 통일비용 계산이 바쁘게 돌아가고요. 그때 여론조사를 하면 통일 반대가 압도적으로 나왔어요. 그걸 보면서 통일비용이 분단 상황을 고착시키는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반면 장관님은 “통일비용은 경제재투자로 바라봐야”(190쪽) 한다고 하셨는데요.


통일이 되면 들어가는 비용도 있지만 통일 되는 날부터 안 들어가는 비용도 있거든요. 지금도 분단 상황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가는 돈이 많아요. ‘분단비용’인데요. 통일비용에서 분단비용을 빼고 계산해야죠. 독일은 우리만큼 군사적 적대관계가 치열하지 않아서 분단비용이 많이 들진 않았거든요. 꾸준히 서독이 동독을 지원했고요. 그런데 우리는 분단비용이 크기 때문에 그걸 빼고 계산해야 하는 거예요. 또 통일이 되고 나면 우리가 거둘 이익도 있죠. 분단국가라는 딱지 보다는 통일국가가 나은 거거든요. 민족의 권위도 있고요.

 

전쟁에 따른 공포ㆍ불안ㆍ슬픔, 분단국가라는 오명, 민족 권위 추락 등은 보이지 않는 분단비용이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통일 편익 가운데 우리는 통일국가로서의 권위를 꼭 짚어보아야 한다.(중략) 현재 우리는 분단국가라서 무엇보다 권위가 서지 않는다. 또 불안정한 안보 문제로 발생하는 코리아 리스크 때문에 경제발전도 확실하게 보장하지 못한다.(193-194쪽)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불안정하면 ‘코리아 리스크’라고 해서 증권 시장이 춤을 추잖아요. 투자자가 빠져 나가고요. 경제에도 영향을 많이 끼친단 말이에요. 그런데 통일 되고 나면 그런 건 없는 거죠. 더구나 북한의 저임금, 저지대에 투자해 공장을 짓고 북쪽 사람을 고용하면 다시 중소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계산하면 GDP의 2-2.6% 정도만 통일비용으로 지출하면 과거 일본이 계산했던 것의 1/5 정도로도 가능하거든요. 이런 것을 좀 얘기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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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아니면 남의 나라


“통일을 밀어내는 원심력”(227쪽)을 다룬 8장에서 미국, 중국, 일본과 같은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적인 측면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계세요. 어느 한 곳만이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모두 한반도 통일을 위한 “통일을 돕는 구심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구심력은 없고, 원심력은 날로 강건해져서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건데요. 통일의 원심력을 먼저 밀어낼 수는 없어요. 다른 나라가 먼저 통일을 하라고 밀어주진 않거든요. 겉으로는 통일 해야지, 하지만 속으로는 안 되는데, 한국이 통일하면 우리 손해인데, 이 생각을 하는 거죠. 우선 미국은 무기시장이 없어지잖아요. 일본도 우리가 힘이 세지는 게 불안하고요. 중국 역시 친미통일이 되면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친중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그 가능성은 중국도 별 기대를 안 하죠. 이렇게 통일 원심력이 남아 있어서요. 통일을 의도적으로 방해까지는 안 하겠지만 통일이 잘 안 되도록 할 가능성은 많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통일을 먼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에요. 결혼도 당사자끼리 의지가 강하면, 즉 구심력이 크면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라도 하잖아요. 마찬가지예요.

 

“국가이익이 부딪치면 동맹이 아니라 그보다 더 밀접해도 자기 것부터 챙길 수밖에 없다”(234쪽)고도 하셨죠. ‘내 나라’를 우선에 두는 외교적 태도에 대한 말씀도 하고 계시고요.


그렇죠. 통일 문제를 남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요.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이에요. 전부 자기 국가이익부터 챙기는데 말이에요. 아무리 한미동맹이라고 하지만 미국한테 우리 통일하고 싶으니까 당신이 해주쇼, 한다고 해도 안 될 거예요. 밖에 있는 힘이 통일을 시키려고 할 때, 다른 원심력이 방해를 하면 통일 안 돼요. 그러나 통일의 구심력이 커지면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나라들도 “어쩔 수 없네”가 되죠. 그러니까 ‘내 나라 아니면 남의 나라’라는 건데요. 이게 말장난이 아니에요. 원리고 원칙이죠. 아무리 동맹 관계라도 자기 국가의 이익부터 챙기는 것이고, 절대로 자기 문제를 동맹 관계라고 해서 모두 의지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이 손을 잡고, 통일 이전이라도 주변국으로부터 오는 불이익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해요.

 

이런 분석적 정보가 지금까지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워낙 언론에서는 원색적인 보도도 많았고요.

 

6.25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봐야겠죠. 우리는 독일과 달리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요. 남쪽 사람들의 대북 적개심도 대단합니다. 기본적으로 50대 50이라고 봐야 해요. 나는 그렇게 봐요. 북쪽 사람들의 대남 적개심도 만만치 않은데요. 이 사람들의 적개심은 기본적으로 대미 적개심이죠. 미군의 폭격으로 평양 시내가 완전히 쑥대밭이 됐으니까요. 아무것도 없었대요. 초토화라고 했죠. 그걸 중국 사람들이 재건했고요. 그러니까 북쪽 사람들에게 주적은 미국이고, 남한은 종적이에요. 그런데 남쪽은 대북 적개심 하나죠. 바로 이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상대가 올바르게 행동하는 측면도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안 들으려고 해요. 저는 ‘얼마나 나쁜지 들어보자’는 식의 관심을 가지고 상세히 들어다보려고 하거든요.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요. 적개심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핵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하잖아요. 나는 좀 다르게 보는 거예요.

 

적개심을 갖고 있는 언론, 위기를 조장하는 언론도 있어요. 이에 대한 비판도 하셨는데요. 때문에 남북 갈등뿐 아니라 남남 갈등도 여전히 있는 상황이니까요.


적개심만으로 편집하는 사람들은 나쁜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재주들이 있어요. 자기들의 시청자들이 궁금해 한다는 미명 하에 아주 고약한 질문을 하는 거예요. 잘못하면 함정에 빠지기 때문에 그런 곳에는 안 가요.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고 하니까요. 한편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이라는 게 대개 그냥 아주 제너럴한 것까지만 다루죠. 경제부 쪽으로 큰 사람들은 경제 쪽으로만 가서 그렇게 섞이지 않지만요. 사회부에서 사건 담당하는 사람들이 어느 날 정치부로 와서 청와대도 출입하고, 통일부도 가고, 외교부도 가고 그래요. 그러니까 듣고, 들은 대로 기사만 쓰지 분석적인 기사를 안 써요. 또 그런 기사를 쓰면 기자로서 크지도 못하고요. 빨리 빨리 육하원칙에 의거해 소위 스트레이트 기사를 써내는 게 낫죠. 그런 언론인들이 갖게 되는 관심영역에 대한 깊이의 한계 때문에 분석적으로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참, 그 점이 아쉬운 점이죠.

 

 

평화가 안 올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평화를 원하는 세력과 원치 않는 세력은 남북 모두에 있다. 그러므로 북한을 한 덩어리로 볼 게 아니라 평화를 원하는 세력과 원치 않는 세력으로 나누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게 갈라서 봐야 한다.”(310쪽)라고 하셨죠.


중요해요. 평화라는 것은 전쟁이 끝난 상태 아니에요? 전쟁 걱정이 없어지는 상태잖아요. 전쟁 걱정이 없어지면 간단히 말해서 국방비가 우선 상당히 절감이 되게 되어 있어요. 국방비의 평균 1/4 정도는 미국 무기 사는 돈인데요. 그 돈이 줄어들 거잖아요. 이게 아주 복잡한 연립 방정식인데, 소위 냉전 공조 및 분단 체제 아래에서 구축된 기득권은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깨져요. 그렇죠? 대표적인 것이 군산 복합체, 방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잖아요. 무기 수입하는 데 각종 회사들이 많이 있고요.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꿈이 깨지 않아야 합니다. 평화가 오면 안 돼요. 그러니까 갖가지 이유를 들어요.

 

“평화를 원치 않는 세력”이군요.


비핵화는 어차피 안 되게 되어 있다든지, 미국도 결국 그렇게까지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라든지 해서 처음부터 포기를 하도록 만들어요. 평화가 안 올 것처럼 얘기를 하고요. 통일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처럼 비핵화도 꿈꾸지 말자는 식으로 자꾸 여론을 만들어나가려고 하는 거죠. 거기에 언론이 협조를 하고요. 분단 체제로 구축된 대북 적개심을 전제로 해서 여러 사상과 문화 체계에서 먹고 살던 사람들은 그게 깨지면 안 되니까요. 그러니까 북미 협상 보도를 할 때도 ‘결국 잘 안 될 거야’, ‘어차피 안 될 거 꿈도 꾸지 말자’, ‘안 될 건데 대통령은 왜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는가’하는 식이 되는 거예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북미 간에 중재자 역할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데 그것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드는 여론을 조성하려고 하고요. 이런 것을 잘 알아야죠. 언론에서도 교통정리를 해줘야 하는데 그런 언론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 맥락을 읽어내는 데에는 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시는 거죠?


깨어있는 사람들이 읽고, ‘아, 이런 건 잘못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려면 역시 깊이 있게 분석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책만 한 게 없어요. 저널리즘 가지고는 안 돼요. 책은 우선 분량이 있잖아요. 그러면 우선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깊이 들어가면 어떻게 연결이 되고, 어떻게 먹이사슬이 형성되는지 보이는데요. 그걸 밝혀놓으면 독자들이 알게 되는 거죠. 국가의 행복, 국가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러니까 평화가 안 올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무슨 저의로 이런 말을 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요. 저의의 뿌리를 파고들면 거기에 평화의 반대인 전쟁, 긴장 완화의 반대인 긴장 고조, 그 과정에서 누리는 이익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통일 문제와 관련해 시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일까요?


다 사는 게 바빠요. 보통 사람들은 통일 문제나 남북 관계, 그리고 한반도 국제 정치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가 힘들죠. 그냥 언론에서 말하는 대로 이해하는데요. 책을 관심을 갖고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정세현, 황재옥, 정청래 공저 | 푸른숲
평생 통일을 생각해온 최고 전문가들이 그린 통일 한국의 청사진이자 평화의 한반도에서 신나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충실한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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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박준 시인, 그냥 가지 말고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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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한낮, 머플러를 두른 박준 시인을 본 적이 있다. 외투도 입지 않는 계절에 어찌 머플러를 했냐고 물으니, 생활인에서 시인 모드로 전환하는 일종의 장치라고 했다. 오래전 그는 직장에서 퇴근하는 동시에 모자를 쓰곤 했다. 1주일에 3일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오면 먼 지방이라도 꼭 가려고 애쓴다. 주기적으로 휴대폰을 꺼놓고 지내는 박준. 때문에 사과할 일이 종종 생기지만 시를 쓰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12년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후, 딱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가 나왔다. 두 시집 모두 12월에 출간, 똑같이 16글자 제목이다. 여름보다 겨울에 시가 더 잘 쓰인다는 박준 시인은 말했다. “장마를 함께 볼 수 있겠다는 말은 정말 강렬한 고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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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완성되면 그것이 빚일까, 빛일까


시집 제목을 보고는 ‘아, 박준 시집이네’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어제 시집을 받았어요. 시간이 있었는데도 잘 안 봐지더라고요.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상자를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뜬금없는 폭탄일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온 선물일지 몰라서 몇 권을 받아 놓고는 근처에도 안 갔어요.

 

계약한 지 한참 후에 나온 시집이죠?

 

첫 시집이 나오기 전에 계약했으니까, 2012년일 거예요.

 

6년간 쓴 시라고 볼 수 있겠네요.

 

가장 오래전에 쓴 시가 첫 시집이 나오기 한 달 전에 쓴 시니까요. 이번 시집도 퇴고를 오래 했어요. 시행을 조금씩 바꿔도 보고요. 돌이 계속 나오는 밭을 가는 느낌이랄까. ‘이러다 언제 끝나지? 아예 밭이 사라지는 거 아니야?’ 싶었어요.

 

시를 읽기 전 시인의 말을 보았어요.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두 문장(행)의 글자 수가 같아서 그런지 제겐 시로 읽혔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절주절 길게 쓴 버전이 있고, 이것보다 더 짧은 버전도 있었는데요. 너무 멋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성의가 없어도 안 될 것 같아서요. 인쇄 전까지 다시 쓰고 다시 썼어요.

 

평범한 문장 같지만 계속 남더라고요. “빚과 빛.”

 

특정한 시기에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문제가 있잖아요. 그 문제가 미래에도 여전히 나를 괴롭힐 수도 있지만, 그 시기를 잘 통과하면 어느 순간 빛이 되는 것 같아요. 쉽게 이야기하면, 살아가다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될 때가 있고, 언젠가 그 빚에 보답하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빚을 진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하게 시라는 것도 뭔가 어두운 것에서 출발할 텐데 시로 완성되면 그것이 빚일까, 빛일까를 생각해보면, 둘 다인 것 같아요.

 

‘박준 시인의 시집이 이제 두 번째야?’라고 놀라는 독자들이 있더라고요.

 

더 일찍 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을 더 갖고 싶었어요. 첫 시집도 1년을 묵히고 나왔었어요.

 

왜죠?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발문을 허수경 선배가 써주셨는데요. 수경 선배가 말했어요. “내가 네 시에 개입할 여지를 줘도 되냐?” 제가 “당연하다”고 말했더니 “그러면 1년을 더 고치고 쓰라”고 하셨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가 잘 안 갔거든요. 크게 반발하지 않았지만 수긍 하면서도 잘 몰랐어요. 왜 중국 영화를 보면 도를 닦는 스승이 제자에게 계속 물만 떠오라고 하잖아요. 끝이 날 것 같으면 1년 더 하라고 하고요. 아마 시간을 보내며 내공을 쌓으라는 말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제가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뜨거웠던 것 같아요. 과도한 기대, 열망 같은 걸 보신 게 아닐까요.

 

이번 시집은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발문을 썼어요.

 

좋아하는 작가에게 내 글에 대한 글을 받고 싶었어요. 첫 시집도 그렇고 이번 시집에서도 제 욕심을 이뤘어요.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만약 1년 후에나 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어도 기다리려고 했어요. 제가 1년 동안 뭘 할지도 궁금했고요.

 

“조촐하게 시작된 박준의 시 쓰기가 많은 독자를 얻어나가는 과정을 얼마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거기에 속한다.”(95쪽) 발문의 첫문장입니다. 두 번째 시집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를 느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엄격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첫 시집이 책으로써 잘됐잖아요. 너무 잘돼서 생기는 불안 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첫 책보다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은 아니었어요. 두 번째 시집이 문학으로 더 잘돼야 한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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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에 읽는 시

 

4부로 나뉜 시들은 계절을 입고 있어요. 1부는 봄, 2부는 여름, 3부는 가을, 4부는 겨울. 「가을의 말」을 읽고 「겨울의 말」을 읽으니 한 계절이 지난 느낌이 들었어요.

 

시의 순서를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계절의 자연스러운 힘을 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가장 흔하게 하는 인사가 “날씨가 추워졌어요” “내일 비 온대요” 같은 말이잖아요. 굉장히 상투성 짙은 이야기지만 저는 그 말이 좋아요. 상투성 안에 다정함을 발견한다고 할까요? 어쩌면 날씨가 바뀌는 게 세상에서 가장 큰일이 아닐까 싶어요. 한 사람의 삶 속에 기쁨의 사건, 슬픔의 사건은 극히 드물잖아요. 대개는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지나가는데 그때의 평범은 마치 날씨 같아요. 굉장히 작은 일이지만 그 작은 일이 모여서 삶을 이루니까요. 당연한 일이지만 낯설게 받아들이는 데서 시가 시작할 테고요.

 

이번 시집에도 박준 시인이 좋아하는 단어가 등장해요. 곁, 볕, 선잠 같은.

 

어떤 생각을 표현할 때, 이 생각이 가장 덜 훼손되고 나오는 말을 쓰고 싶은 제 마음 때문일 거예요. 그 관념이 최소한 덜 상한 거니까 한 편의 시에서 보면 성공일 수 있는데요. 너무 익숙한 방식의 언어만 사용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돼요. 다음 시집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 방식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봤자 멀리는 못 갈 것 같기도 하고요.

 

뭐? 바로 간다고? 밥 안
먹고?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 받아. 나중에
네가 갚으면 되지. 괜히
잃어버리지 말고 지금
주머니에 넣어. 그럼 가.
멀리 안 나간다. 가. 그냥
가지 말고 잘 가.

― 「사월의 잠」 부분

 

「사월의 잠」은 어디에서 탄생한 시일까 궁금했어요.

 

2016년에 「416 단원고 약전」을 쓰는 중에 꿈을 꿨어요. 저는 너무 강력한 일은 시로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못 써’가 아니라 쓰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과 써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한 상태였어요. 어렵게 썼지만 ‘잘 갔으면 좋겠다’는 말에서 출발한 시예요.

 

첫 시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시는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였어요. 시집에 사인할 때 적어준 시구이기도 하고요. 이번 시집에는 어떤 시구를 적어주실까요?

 

「숲」이라는 시의 마지막 문장 “여전히 그 숲에는 아무도 없으므로 아무도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와 「가을의 말」에 “넘어짐과 일어섬 그마저도 지나서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겨울을 좋아하나요?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겨울에 시를 많이 쓸 것 같아요.

 

좋아해요. 아직 아이 같은 면이 있는지, 폭설이 내려서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이면 좋겠다는 천진난만한 바람이 있어요. 여름엔 시를 잘 못 써요. 예전에 박인환 시인이 김수영 시인에게 “빨리 겨울이 오면 좋겠어. 코트 입고 싶어서”라고 말한 일화가 있는데요. 저도 겨울이 좋아요. 사람을 좀 소극적으로, 내향적으로 만드는 그런 계절인 것 같아요.


머플러를 매일 해도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잖아요. 겨울엔 시인 모드로 더 길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나요?

 

그런 마음도 있고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어요. 사실 시인의 시간을 가장 방해하는 건 화예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편은 아니지만, 화가 나는 경우가 많죠. 불길처럼 화가 일면 마음 한구석에 있던 시가 타버려요. 어떤 화는 3일이 지나야 풀리고 또 어떤 화는 5일도 걸리고. 시인 모드를 가장 방해하는 건 화인 것 같아요.

 

시가 잘 써지는 순간이 있다면요.

 

스스로를 좋아하는 시간에 시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싫어하는 순간에는 시를 못 써요. 비단 시뿐이 아닐 거예요. 내가 싫은 순간에는 무엇도 하기 어렵지 않나요?

 

말수가 적을 것 같은 인상인데, 말재주가 좋아서 볼 때마다 놀라요.

 

실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해요. 소박한 강연도 있지만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말해야 할 때도 있는데요.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떨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강연장에 들어가기 전에 우울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말이 느려지고 정신을 차리게 돼요. 사람이 떨리면 말이 빨라지잖아요. 그걸 방지하기 위해 우울한 생각을 하는데, 좋은 방법은 아니죠.

 

생활인으로 요즘 자주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제 삶의 위기이기도 한데요. 층간 소음이에요. 신경 안 써야지 하는데도 그렇게 잘 안 되고 있어요. 윗집에 보내려고 편지를 정말 여러 버전으로 많이 썼는데요. 내가 가진 모든 시적인 능력을 동원해서 감동적인 편지를 써서 소음을 막아보고 싶었는데 실패했어요. 한 달 전에 편지와 동화책을 보냈는데 답장이 왔지만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제겐 너무 힘든 일이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요.

 

여전히 독주를 즐기나요?

 

칭찬할 일이 생기면 독주를 마셔요. 뭘 쓰고 나서 마실 때가 많은데, 어쩌면 독주를 마시기 위해 내가 글을 쓰나 싶기도 해요. 저는 사진을 찍으면 꼭 충무로에 가서 인화해요. 충무로가 저렴한 것도, 인화를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고양시에서 충무로까지 가서 인화를 하고 도가니탕을 먹어요. 내가 도가니탕을 먹으려고 충무로에 가나 싶은데요. 뭔가 내 삶 안에서 동일한 일을 하면서 일상이 너무 멀리 굴러가지 않게 칸을 채워놓는 것 같아요.

 

예전에 한 선배가 “네 시는 공부한 티를 안 내서 좋아”라고 했다고요. 저는 엄청난 칭찬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사자는 달리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배한테 제가 농담으로 이랬어요.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건데요.”(웃음) 제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어떤 하나에 특별히 경도되는 경우가 잘 없어요. 좋은 책을 읽으면 ‘아,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책을 덮으면 다른 책이 또 좋아요. 대척하는 어떤 사유나 사조에 꽂혀서 ‘아, 이거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요. 하나에 크게 고취되지 않으니까 자유로운 게 아닐까요? 이상한 염세가 있는 걸지도 몰라요. 다만 개인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우리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입출력이 비슷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잖아요. 입력되는 게 많은데 출력하는 매체가 없으면 답답한 것처럼, 자꾸 출력만 하면 한계가 찾아올 수밖에 없죠.

 

“시를 쓰는 일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박준 시인이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이 정해진 상태에서 확 변하는 사람을 볼 때 대단하게 느껴요. 완전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 익숙한 것에서 잘 벗어나는 사람을 보면, 그들은 같은 시간을 살아도 한 번의 삶을 더 사는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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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지 못하면 시를 잘 쓸 수 없어요

 

시집은 6년 만에 11만 부, 산문집은 6개월 만에 15만 부가 팔렸어요. 어떻게 체감하나요?

 

독자들이 시를 어렵다고 느끼는 건 실제로 시가 산문보다 어렵기 때문이에요. 단순하게 난이도로 따질 수는 없지만, 시는 어떤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니까요. 시가 갖고 있는 미학이 독자들의 진입 장벽을 높게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시보다 산문을 읽는 독자의 범위가 넓으니까요. 어떤 책이 더 팔리고 안 팔렸느냐는 개의치 않아요. 다만 아쉬운 건 예전엔 소설을 읽든 산문을 읽든 그냥 독자였는데, 지금은 시 독자, 산문 독자로 구획을 만드는 것 같아서요. 그 경계를 허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시적인 요소가 들어간 산문을 산문집에 넣었던 거예요. 형식적 경계가 아닌 관습적 경계를 허물고 싶었어요.

 

요즘 제가 꽂힌 단어가 있어요. 최은영 소설가의  『몫』을 읽고 나서 계속 ‘몫’이라는 단어가 맴돌아요. 박준 시인이 생각하는 ‘박준 시인의 몫’을 묻고 싶어요.

 

일단 작게 이야기하면, 제가 잘 살지 못하면 시를 잘 쓸 수 없어요. 여기서 잘 산다는 건 부유(富裕)하다는 뜻이 아니라, 사는 일을 잘하는 것이에요. 잘 살고 있을 때 시를 쓸 수 있으니까요. 똑바로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와 문학을 생각하면 시다운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산문을 쓸 때는 강박이 없지만, 시는 정말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또 하나는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공공 도서관이든 학교든 가서 이런 시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시를 읽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창한 마음은 아니지만요. 시가 필요할 때, 독자가 손을 뻗었을 때 시다운 상태로 시가 놓여있길 바라요.

 

산문집을 내고 인터뷰했을 때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이번 시집은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가 닿으면 좋을까요?

 

간혹 중고등학생을 만날 때 “내 돈으로 처음 산 책”이라는 말을 듣는데요. 이것도 욕심이겠지만 교과 과정에서 읽은 시가 아닌 시집을 처음 읽어보는 사람이 제 책을 읽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시집을 선물 받는 사람은 이미 갖고 있는 책을 선물 받아도 “나 이 책 있어”라고 말하지 않아요.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예요. 친구에게 선물한다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독자를 만날 때 참 고마워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그냥 선물 같은 시집이면 좋겠어요. 기프트콘처럼 선물할 수 있는 책. 저로서는 정말 강력한 고백이라고 생각하고 쓴 시라서요. 어떤 뭉근한 선물이면 좋겠어요.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박준 저 | 문학과지성사
함께 장마를 보기까지 우리 앞에 남은 시간을 담담한 기다림으로 채워가는 시인의 서정성과 섬세한 언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묵묵히 차오르는 희망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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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메르스 피해자들 편을 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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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메르스’가 상륙한 한국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하지만 소설을 읽고, 어쩌면 우리는 메르스의 2015년에 대해 절반도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심지어 거의 모를지도 모른다고도. 첫 메르스 의심 환자 신고가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었는지, 그래서 처음 이틀 동안 그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퍼졌는지,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줄도 모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하고, 생활을 했는지, 그리하여 이들의 삶이 어떻게 황폐화 되었는지, ‘마지막 메르스 환자’가 어떻게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살펴보니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법적으로는 설령 지더라도 문학적으로는 이기고 싶다, 생각했”다는 김탁환 작가는 메르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살아야겠다』를 쓰면서 피해자들 편을 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염병은 끝났지만 메르스의 그늘 아래에서 피해자의 삶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소외시키는 병원의 운영체제와 관료제 아래에서만 움직이는 정부의 권력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줬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따라서 작가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하지만 작가가 마주한 것은 놀랍게도 숨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피해자들과 달리 메르스 피해자들은 거처를 옮기고, 취재를 거부하고, 목소리를 숨겼다. 소설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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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는 사람들


2016년 늦봄에 이 소설을 써야겠다, 생각하셨다고요.

 

당시는 3월부터  『거짓말이다』를 쓰기 위해 인터뷰도 하고, 취재하고 있었어요. 5월정도 됐을 때인데요. 기자들 말이, 메르스 1주기가 돼서 피해자들을 만나려고 하는데 아무도 안 만나준다는 거예요. 우선 많은 숫자가 이사를 가서 연락이 두절됐고요. 그나마 연락이 된 분들도 메르스 관련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한대요. 아무도 취재에 응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기자들이 투덜대고 있더라고요. 그게 아주 낯설었어요. 세월호 피해자 분들의 정당성을 계속 주장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메르스 피해자들은 그렇게 숨으니까요. 같은 재난을 겪었는데 왜 다를까 생각했죠. 메르스 피해자들은 지금도 조직이 없어요. 모이지도 않고, 뿔뿔이 흩어져 숨고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요. 2016년에는 저도 피해자 분들을 만나지 못했어요. 2017년 넘어와서 보니까 민사 재판이 시작했더라고요. 겨우 소송을 진행하는 분들과 어렵게 만나서 이야기를 듣게 됐죠.

 

피해자 조직조차 없었군요.


제 창작노트를 찾아보니까 2016년에는 ‘숨는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왜 이렇게 숨는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생각했던 거죠. 사람들이 나와서 메르스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피해가 없다면 나와서 얘기를 할 텐데 말이에요. 오히려 얘기를 할수록 더 문제가 생기니까 벌어진 일이잖아요. 피해자들이 이렇게 되도록 놓아둔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 것이 이 소설의 시발점이었어요.

 

취재를 엄청나게 하셔야 했을 것 같아요. 


우선 세 가지 어려움이, 제가 해야 할 역할들이 있더라고요. 하나는 기자로서의 역할이죠. 취재를 하고, 피해자와 의료진들을 만나는 일이 필요했어요. 또 하나는 학자로서의 역할이었어요. 공부를 해야 하는 거죠. 의학지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소설의 권위가 없어지는 거니까요. 그것은 르포로도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피해자들은 그냥 주사를 맞았다고 해요. 그 주사가 무엇인지는 제가 찾아내야 하는 거죠. 그게 아주 어려웠어요. 서너 달을 계속 그 공부만 했고요. 나머지 하나가 예술가로서의 역할이었어요. 독자가 알기 쉽게, 어려운 용어가 나와도 쭉 읽을 수 있게 쓰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죠. 사회파 미스터리니까요. 다른 소설보다 최소한 세 배는 어려웠어요.

 

감정적인 어려움도 크지 않았나요? 더구나 진행형의 이야기니까요. 이렇게 얼마 되지 않은,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를 써야 했던 이유가 뭘까요?


감정노동도 있었죠. 힘들었어요. 물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지금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다 지치고, 더 고립될 거라 생각했어요. 피해자들이 병원, 지자체, 국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우선 진행이 아주 더뎌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병원 기록에 오류가 있다는 걸 피해자들이 입증해야 하고요. 어렵게 병원 기록을 구해서 문제를 찾아내도 그걸 감정해 줄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감염병 관련 의사들이 증언을 해줘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죠. 증인 구하는 데 1년씩 걸리는 거예요. 그런 시간, 비용이 모두 피해자의 몫인 거죠. 다른 곳에서도 얘기했는데요. 저는 법적으로는 설령 지더라도 문학적으로는 이기고 싶다, 생각했어요. 피해자들이 더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편을 들고 싶었어요. 편을 들려면 지금 들어줘야 하는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거짓말이다』와 비슷했어요.

 

메르스,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내용이 정말 많았어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석주’의 사례도 그렇고요.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죠. 그게 정보화 사회의 맹점이거든요. 여러 곳에서 많이 떠드니까 사람들은 다 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다음 이슈로 넘어가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


“메르스 피해자의 서사를 쓰고자 했다”(628쪽)고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죠? ‘몇 번 환자’로만 알고 있던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인권의 문제예요. 이런 일이 벌어지면 피해자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거든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니까요. 그런데 어느 정도나 희생을 해야 하는지, 희생하라고 했을 때 반론권은 없는 것인지, 하는 인권의 문제들이 많은데 2015년에는 그런 것을 하나도 다루지 않았잖아요. 2015년 메르스 피해자들의 인권은 전혀 보장되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이 책의 핵심이에요. 가령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말이 그래요. 기자들도 도표를 보고 있으면 은연중에 피해자를 가해자로 생각하게 된대요. 1번이 2번에게 옮겼고, 2번이 4번한테 옮겼다, 그렇다면 옮긴 사람은 가해자다, 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게 되잖아요. 심지어 어떤 사람이 한 명에게만 옮긴 게 아니라 여러 명에게 옮겼다면 심한 가해자다, 라고 생각하고요. ‘슈퍼’전파자, 즉 심하게 나쁜 사람인 거죠.

 

메르스에 감염되었느냐 감염시켰느냐만 놓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구분입니다.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되고 또 감염시킬 수밖에 없었던 병원의 관습과 운영 체계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전염을 몇 명이나 시켰든, 메르스 환자는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메르스 환자를 전부 피해자로 둬야, 그들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를 거론할 수 있고, 법과 제도의 잘잘못을 가릴 수 있습니다.(318쪽)

 

그렇게 ‘슈퍼 전파자’라고 불리던 시기에 그 사람은 뭘 하고 있었는지 찾아봤어요. 사경을 헤매고 있었더라고요. 죽어가고 있던 거죠. 온 언론이 자기를 ‘슈퍼 전파자’라며 가리키고 있는데 반론 한 번 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러다 다행히 병이 나아서 뒤늦게 찾아보니까 자기가 그렇게 비판 받았던 거죠. 그러면 생각할 수 있어요.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요. 트라우마죠. 이럴 때 국가나 의료진, 법률가가 그 사람에게 당신은 죄가 없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고 했어야 하는데 하나도 안 했고요. 기본적인 피해자의 인권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은 거예요. 어느 누구도 말이에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사람 목숨, 생명을 천시하는 시스템 속에서 세월호도 터지고 메르스도 일어나고 했”다고 말씀하셨죠. 한 사람의 생명도 소홀히 여겨지면 안 되는데 말이에요. 


메르스 환자가 마지막에 한 명 남게 된 그날, 그날이 어떻게 진행될까 많이 생각해봤어요. 그 하루를 잘 써보고 싶었는데요. 그 사람은 당연히 아침에 질병관리본부 일일 현황을 보겠죠. 나만 남고 다 나갔구나, 알게 되겠고요. 문제는 그날부터 일주일 간 엄청나게 많은 보도가 나왔는데 다 이런 식이었어요. 빨리 메르스 청정국이 되어야 경제가 나아진다, 라고요. 그런데 그걸 마지막 환자는 자기 병실에서 휴대전화로 다 보는 거죠. 어떻겠어요? 나만 없으면 메르스 청정국이 되겠구나, 내가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구나,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거거든요.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가 고통 받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죠. 그 환자를 온 나라가 죽음의 절벽으로 내몬 거예요. 그 부분을 잘 쓰고 싶었어요.

 

돌이켜보니 문제적 장면을 몇 군데 꼽을 수 있겠더라고요. 우선 병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 서둘러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 것, 컨트롤 타워가 없었던 것 등이 그것인데요. 작가님은 무슨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고 보시나요? 


여러 층위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피해 받고 있는 사람의 처절함도, 병을 치료하는 전문기관의 속성도, 전체를 통제하는 권력에 대해서도 알아야죠. 그걸 다 쓰고 싶었는데요. 무엇보다 메르스는 100% 인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월호 때문이거든요. 세월호가 터졌을 때 청와대에서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했잖아요. 대통령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누가 책임지느냐, 하니까 그해 가을에 ‘국민안전처’라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었어요. 군인 출신의 장관이 책임자였고 소방방재처, 해경이 산하기관이었죠. 여기 질병 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데 2015년 메르스가 터진 거예요.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 등을 지휘할 능력이 없었죠. 회의를 하면 엉망진창이 되고요. 만약 세월호 때 통렬히 반성하고 재난 시 대응할 체계를 갖췄다면 19일 동안 병원 이름을 숨기라든지, 하는 말도 안 되는 짓들을 안 해도 됐던 거예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받았고요.


메르스 피해자 분 중에 이 책을 읽으신 분이 있어요. 하시는 말씀이 이 책을 읽으니까 이해가 된다는 거예요. 피해자들은 자기한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알 수가 없어요. 불행이 닥친 것은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기가 어려워요. 피해 당사자들이 파편화되어 있는 거죠. 이게 장편의 힘인가, 생각도 했어요.

 

각자도생, 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요. 국가가 주는 정보를 믿을 수 없으니 개인들의 공포는 커지고 ‘슈퍼전파자’를 비난하게 되고 혼란이 가중되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전후로 양상이 달라졌는데요. 그 이전에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숫자에 비례했죠. 그런데 사스 이후로는 안 그래요. 한 명이 걸려도 정보가 인터넷으로 확 퍼지니까 천 명이 질병에 걸린 것과 똑같은 정도의 공포를 사람들이 느끼는 거예요. 유언비어도 퍼지고요. 이때 국가나 전문가들의 대응이 굉장히 중요한데 2015년에 그런 게 없었던 거죠. 병원 명단을 숨기니까 밑에서 병원 명단이 돌기 시작하고요. 그 명단이 틀렸다고 하니까 수정된 명단이 돌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더 공포를 느꼈죠. 어느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다녀갔다고 하면 그 주변 지역에 사람들이 안 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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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달라지기를


책 첫 머리에 ‘29년 후, 우람에게.’라고 적으셨는데요. 이건 어떤 의미였나요?


마지막 환자였던 김석주의 아이가 우람이에요. 29년 후, 우람이 아버지의 나이가 됐을 때 이 사회가 많이 달라져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 책은 그 아이를 위해서 썼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때가 되면 사회가 달라지기를 바라면서 ‘29년 후, 우람에게’라고 적었어요.

 

“살아야겠다”고 말한, 삶에 대한 의지가 아주 강했던 김석주라는 인물이 마음에 오래 남아요. 실제로도 그렇게 의지가 강한 분이었죠?


네, 김석주의 모델이 된 분은 아주 삶에의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어요. 의사였으니까 자기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알았고, 병원에 대한 이해도 높았어요. 그래서 어떤 치료를 받았을 때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를 다 기록해뒀어요. 자기 모습을 찍어둔 거예요. 그분 사진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런 것들을 다 남기면서 살기 위해 애를 많이 쓴 분이죠.


이분들 이야기를 쓸 때는 카프카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관료주의의 문제거든요. A라는 질병이 돌아요. 거기에는 B라는 검사법을 통해 완치 여부를 확인하자는 합의가 있죠. B라는 잣대로 사람들을 통과시켰는데요. B로 측정이 안 되는 사람이 나온 거예요. 김석주 같은 사람이죠. 제대로 된 공동체라면 이 사람은 B로는 안 되니까 이 사람만을 위한 새로운 검사법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죽을 때까지 그렇게 안 했어요. 내버려둔 거죠. 성에 사람을 넣어놓고 문을 다 닫아버렸어요. 엄청난 관료제의 폐해죠.

 

책에 “이름도 모르는 전염병이 다시 이 나라에 도착하면, 그땐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521쪽)라는 질문이 있는데요. 읽으면서도 계속 그 질문을 하게 됐어요. 달라져있기를 바라지만 말이에요.


사람들은 다 실수할 수 있어요. 운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실수를 하거나 운이 나빴다고 해서 죽으면 안 되는 거죠. 실수를 하더라도 사람이 죽지 않도록 사회에 여러 안전망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안 그렇죠. 길 가다가 갑자기 온수관이 터져서 사람이 죽잖아요. 그냥 펜션에 놀러가서 잤는데 죽으면 안 되거든요. 이중, 삼중의 안전망이 있어야죠. 김용균 씨도 그렇잖아요. 일하다가 옷깃이 걸릴 수 있잖아요. 하지만 옷깃이 걸린다고 그 사람이 죽으면 안 되는 거예요. 실수를 하더라도 살 수 있는 안전망들이 필요한데 없고요. 다만 그런 안전망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폭탄이 돌아가고 있고,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014년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1년 뒤에 메르스가 터졌잖아요. 똑같이 초기 대응이 엉망진창이었고요. 결국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냥 덮고 지나가면 어디선가 또 터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도 여전한 상황인 거죠.

 

계속 덮고 넘어가기만 하니까요. 소설에서도 해선이 말하잖아요. 자책하지 말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제대로 밝히라고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의 경험 자체가 많지 않아요.


근대적 성찰을 해야 한다는 하잖아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데요. 그렇게 하지 않고 지나가고, 지나가고, 하니까 계속 같은 상황인 거예요.

 

소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하지만 소설이 법이나 제도를 정비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문제제기는 할 수 있는 거죠. 메르스 피해자가 병이 완치되었다고는 해도 병에 걸리기 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거든요. 후유증이 심각해요. 이 질병은 주로 호흡기를 공격하니까 폐 기능이 절반 이하로 줄어요. 폐섬유화가 되어서 평생 회복되지 않죠. 감기가 아주 치명적이게 되고, 작은 질병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거예요. 피해자들이 다 그런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데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정신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다 봐야죠.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러면 다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요. 폐를 40%밖에 못 쓰니까 100% 쓸 수 있는 사람으로 교체하고요. 피해자들은 벼랑 끝으로 밀리고, 밀리는 거예요.

 

사회 안전망에 대한 이야기네요.


메르스를 겪기 전에 베테랑으로, 정직원으로 근무했던 사람이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분도 있어요. 그렇게 될 때까지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개입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올해 또 메르스가 있었는데 잘 지나갔잖아요. 그러고 나니까 2015년에 메르스 피해를 입었던 분들이 더 분통이 터지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안 했지? 생각하는 거죠. 놀라운 건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들이 같은 사람들이거든요. 한두 명 징계 받았고요. 2015년에는 다 감추자는 데에 동의했던 사람들이 2018년에는 공개하자는 데 다 동의해요. 전문가 조직인데 전문가로서의 의지 표현을 안 하는 거죠. 사실은 생각이 똑같아야 해요. 그런데 생각이 바뀌잖아요. 그게 위험한 거예요. 정말 말도 안 돼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치명적인 것 같아요.


관료주의죠. 카프카잖아요. 네가 죄인이라고 하는데 누가 그 사람한테 죄인이라고 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 없는 상황.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소설의 역할, 소설가의 역할


트라우마 관리도 중요한 것 같아요. 피해망상을 겪고 있는 분도 있다고요.


특히 이 사람들은 더 위험하거든요. 숨잖아요. 혼자 앓고 있는 거니까요. 더 국가가 적극적으로 접근을 해야 해요. 그런데 그런 게 없어요.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인 것 같아요. 이번 정부 들어서 가습기 피해자들도 만나고, 여러 제스처를 취했잖아요. 그런데 메르스 피해자들에게는 그런 게 없어요. 재판 중이기 때문일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피해자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잖아요. 안 걸려도 되는 병에 걸려서 죽고, 다쳤는데 말이에요. 심각하죠.

 

세월호, 메르스, 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써오셨잖아요. 개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텐데, 어떻게 관리하고 계세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고통에 대해 쓰는 거니까요. 감정이입 해서 고통을 느껴야 하죠. 어떤 고통인지 알아야 쓸 수 있잖아요. 그러고 나면 후유증이 좀 있고요. 쓸 때는 집중해서 쓰고, 그 뒤에는 많이 쉬어요. 이것과는 상관없는 다른 작품을 써요. 이것만 계속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이것을 쓴 후에는 내가 쓰고 싶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좀 쓰고(웃음), 그렇게요. 2년이나 2년 반에 한 번씩 사회파 소설을 쓰는 게 맞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회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막 쓰기 시작하면 내가 못 견디니까요.

 

다음에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벌써 있으세요?


있죠. 너무 많잖아요.(웃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요. 무엇을 먼저 쓸 것인가의 문제고요. 저는 계속 쓸 거예요. 원래 소설이 가지고 있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니까요. 사회의 모습을 기록하고,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갖는 일이 필요하니까 계속 하는 거죠.

 

작가의 말에서 이 이야기가 소설일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적으셨잖아요. 소설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죠. 이게 제대로 된 다큐가 되려면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들을 수가 없어요. 의사,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 취재가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써나갔던 거예요. 제가 하지 못한 부분까지 다 포함해서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어요. 백서라는 것들이 나와 있긴 한데요. 정말 가관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게 써놨어요. 선명하게 쓰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명확해지니까 진짜 모호하게 써놨거든요. 되도록 책임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쓴 거예요. 참 어려워요.

 

책으로 더 많은 관심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 입장에서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세요?

질병관리본부(웃음)죠. 공무원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과연 읽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전염병과 관련된 국가 재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좋겠고요. 그와 함께 인권의 문제를 생각하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어요. 타인의 불행이나 환대의 문제와 다 연결이 되는 거니까요. 이 책은 크게 보면 인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읽으셨으면 해요.


 

 

살아야겠다김탁환 저 | 북스피어
김탁환 작가는 누군가 메르스 사태를 불운한 개인의 비극이 아닌, 허술한 국가 방역 시스템과 병원의 잘못된 관습과 운영체계가 만들어낸 사회적 참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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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장르소설은 읽힌 뒤에 의미를 획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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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고 탄탄한 세계관, 유려한 문체로 사랑받으며 한국 판타지를 견인해 온 작가 전민희. 그가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번에 출간된  『룬의 아이들-블러디드』『룬의 아이들-윈터러』 (이하 『윈터러』 ),  『룬의 아이들-데모닉』 (이하 『데모닉』 )의 뒤를 잇는 ‘룬의 아이들’ 시리즈의 3부다.  『데모닉』이 완결된 지 11년 만에 들려온 반가운 출간 소식. 작가의 오랜 팬들은 ‘써주셔서 고맙다’는 말로 뜨거운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어느덧 20년. 1998년 PC통신 나우누리에  『세월의 돌』을 연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민희 작가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한국 판타지 소설의 1세대 작가’라는 수식어는 빛이 바래지 않았고, 이른바 ‘전민희 월드’는 깊이를 더하며 널리 퍼져 나갔다. ‘룬의 아이들 시리즈’를 비롯해 ‘아룬드 연대기(『태양의 탑』 ,  『세월의 돌』 )’, ‘아키에이지 연대기(『전나무와 매』 ,  『상속자들』 )’가 탄생했으며, 지금까지 완결된 모든 장편소설이 해외에 번역 수출되며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룬의 아이들’ 시리즈는 야후 재팬(Yahoo Japan)이 선정한 ‘2006년 10대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에 이름을 올렸고, 2013년 기준 ‘역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소설’로 발표됐다. 작품의 스토리와 세계관은 게임 ‘테일즈위버’가 만들어지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아키에이지 연대기’로 불리는 두 작품  『전나무와 매』 , 『상속자들』은 동명의 게임 ‘아키에이지’의 원작이다.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 온 작가는 여전히 ‘변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룬의 아이들-블러디드』는 출간 전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됐고, 같은 방식으로  『윈터러』와  『데모닉』 의 개정판도 공개됐다. 20년 전 첫 작품을 연재했던 PC통신 환경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이번에도 작가는 ‘독자들과의 접점’을 모색했다. 그곳에서, 전민희 월드로 통하는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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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는 언제 나와요?

 

살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룬의 아이들 3부는 언제 나와요?’였다면서요(웃음). 이번 책이 마음의 숙제처럼 남아있었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숙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대하고 상상해왔는데, 그에 맞는 작품이 나와야된다’라는 생각이요. 그 분들의 기대에 충족되는 소설이 나와야 되는데, 또 예상한 그대로의 것이 나오면 안 되잖아요. 그 두 가지 생각을 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한테도 독자분들께도 많은 시간이 흘렀잖아요. 사인회에 오셨던 분들이 ‘언제 처음 이 시리즈를 읽었는지’ 많이 이야기해주셨어요. 그 분들도 저도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대를 충족하되, 예상 밖으로 충족되는 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성장한 독자들이 있잖아요.


맞아요. 정말 그 느낌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써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보통은 제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려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써주셔서 고맙다고 하시니까, 저도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같이 인사하게 되는 거죠(웃음).

 

독자들과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느낌도 드세요?


그렇죠. 평균적으로는 저보다 조금 어린 세대가 주류인데, 저랑 나이가 비슷한 분들이 계속 오시기도 해요. 예전에 사인 받으셨던 책을 가져와서 보여주시기도 하고요. 고등학생이거나 20대 초반인 분들도 계시는데, 그게 되게 기뻤어요. ‘그때 재밌었던 우리끼리의 이야기’로 끝난 게 아니라, 제 소설을 새로 보시는 분들이 계시는 거잖아요. 그 분들이 재밌게 보실 수 있었다면 너무 좋죠. 십여 년 전의 작품을 지금 보면 어색할 수도 있고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읽을 만하니까 읽으신 거 아닐까요(웃음). 낡은 느낌이라고 생각되면 못 읽는 거니까요.

 

이번 작품의 부제가 ‘블러디드’잖아요. ‘피 흘리는’의 뜻이 아니더라고요. ‘어떤 성향을 타고난’, ‘순혈의’라는 뜻인데요. 1권을 읽으면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죠(웃음)?


전작들도 약간씩은 그랬던 것 같은데요.  『윈터러』 같은 경우는 검의 이름이니까 초반부터 바로 이해를 하는데, 엔딩까지 읽은 다음에는 또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는 거죠.  『데모닉』은 주인공의 별명인데 끝까지 갔을 때는 해석이 바뀌고요. 장르소설은 편수가 많기 때문에 완결되는 데 시간이 꽤 걸려요. 몇 년 이상 걸리기도 하는데, 완결 때까지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모르기에는 너무 먼 거죠. 그래서 처음에 이게 무슨 뜻인지 알려드릴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권수도 많기 때문에 끝까지 그 이야기를 계속 하지는 못해요.

 

출간 전에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됐어요.  『세월의 돌』 이후 20년 만의 첫 연재였는데, 그때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죠?


진짜 20년 만이었죠. 1998년에 PC통신 나우누리에 연재를 했었으니까요. 그때는 PC통신에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느꼈지만, 생각해 보면 유료 서비스였기 때문에 한정적이었어요. 지금의 웹 환경에서는 조회수가 수십 만이 찍히는데... 그때하고는 갭이 크죠. 그때는 한 화의 조회수가 천이 넘으면 굉장히 큰 거였거든요. 진짜 인기가 많으면 몇 천 정도였던 것 같아요. 오래 돼서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요. 『세월의 돌』도 당시에 누적 조회수가 꽤 많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접근하기가 굉장히 편리해졌잖아요. 예전에는 PC를 마련해서, 유료로 나우누리나 하이텔에 가입을 해서, 게시판을 찾아가서 봐야했고 또 집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휴대폰이나 포터블한 기기로 보잖아요.

 

『윈터러』 ,  『데모닉』의 개정판도 연재하셨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맞아요, 진짜 고생했어요. 일단 PDF가 안 도와줘서 너무 고생을 했고요(웃음).

 

PDF 파일의 원고를 변환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죠? 띄어쓰기도 안 맞고...


틀린 곳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결국 다 봐야 했어요. 일일이 보면서 찾아야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굉장히 꼼꼼하신 성격일 것 같은데, 어떠세요?


모든 면을 꼼꼼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돼요(웃음). 그런데 지금의 웹 환경에 오기 전에도 글이 어디에 실리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똑같은 글도 화면으로 볼 때랑 그냥 출력해서 볼 때, 교정지로 볼 때, 종이책으로 볼 때, 계속 느낌이 달라지는 거예요. 이번에도 휴대폰에 넣어 보니까 너무 다르더라고요. 게다가 카카오페이지는 글자 크기가 조정이 안 되기 때문에 그 모양 그대로 보게 돼요. 마치 책과 같은데, 책에 비하면 글자가 훨씬 적고 작은 화면으로 보게 되는 거죠. 처음에는 어느 정도가 최적인지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카카오페이지에서 가이드라인을 주기는 하는데, 글의 성격에 따라 편집이 다르더라고요. 어떤 게 최적일까 생각하면서 넣어보고 잘라보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제 눈도 바뀌었잖아요. 다른 분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저는 글을 볼 때 지금 봐서 아닌 것 같으면 그냥 다 고칩니다.

 

작품을 쓰실 때도 스스로 만족하실 때까지 고치시잖아요.


그때는 분명히 만족해서 냈는데 또 이러고 있는 거예요(웃음). 그러니까 볼 기회가 없어야 되는데, 이번에는 PDF가 저한테 볼 기회를 만들어준 거죠(웃음).  『데모닉』 은 한 번도 개정을 안 하고 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개정하게 됐어요. 내용적으로도 약간 보완하고 싶은 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윈터러』보다 변경점이 많았다고 할 수 있죠. 새로운 장면도 조금 있는 편이고요. 『윈터러』는 그렇게 많이 변경된 건 아니에요. 포맷에 대해서 생각을 하느라 달라진 부분이 있고요. 이번에 종이책으로 나오면서 한 번 더 교정을 하게 됐어요. 엊그제 교정지가 왔는데, 올 겨울에 또 열심히 교정을 봐야 됩니다(웃음).

 

언제쯤 책으로 볼 수 있을까요?


내년 봄 아닐까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부분이지만, 내년 상반기에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장르소설, 읽힌 뒤에 의미를 획득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작가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를 세세하게 그리고 계시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창작 작업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 그러실 텐데, 일단은 다른 것들을 많이 본 거죠. 거기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게 다른 창작물일 수도 있을 거고, 판타지 같은 경우에는 과거의 세계를 그린 경우가 많아서 역사에 관련된 것들이 그럴 거예요. 저는 어떤 나라의 역사를 보다가 재밌는 부분이 있으면 ‘나는 여기가 왜 재밌을까’ 하면서 모아놨어요. 그때는 이게 나중에 소설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 일이 아니었고요. 저희 학창 시절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그냥 연습장에 적어놨던 거예요. 영어 사전을 찾다가도 뭔가 재밌어 보이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있으면 적어놓고, 책을 읽다가도 재밌는 게 있으면 모아놓고요. 어디에 쓰일지도 모르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지금도 남아있어요.

 

작품 쓰실 때, 예전 연습장을 보기도 하세요?


지금 그것들을 기억하거나 다시 끌어내서 쓰는 건 아니에요. 아마 그때 옮겨 적는 과정에서 한 번 더 머릿속에 떠올렸겠죠.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찾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깊게 들어가 보면 나중에는 어딘가에 남아 있잖아요. 그 순간을 다 외우고 있지 않아요. 그렇게 내가 좋았던 걸 큐레이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취향들이 모여서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고요. 소설을 써야겠다고 했을 때, 일단은 제가 제일 재밌어했던 것들이 와요. 그 다음의 것들이 사이를 채우기도 하고, 최근에 읽었던 것들이 채우기도 하는데요. 최초의 얼개는 예전에 정말 재밌어했던 무언가에서 와요, 항상. 장르소설이라는 건 ‘내가 무엇을 제일 즐거워하는가’를 찾은 결과물인 것 같아요. 재미로 보는 오락물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취향에 맞는 걸 찾으면 잊을 수 없고, 몇 번 또 보게 되고, 너무 사랑하게 되잖아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어야죠. 그걸 찾으려면 내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려고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올해가 데뷔 20주년이었어요.


그런 셈일까요. 연재를 한 시점부터 생각하면...

 

생각 안 해보셨어요?


별로 안 했네요(웃음). 그냥 ‘ 『세월의 돌』  연재한지 20년 됐네’ 이런 생각은 했는데, 그것도 이번에 연재를 하면서 처음 깨달았어요.

 

지나간 20년을 돌아보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처음에는 너무 좋아하는 게 많아서 꽉꽉 채워 넣으려고 하다 보니까 약간 미숙한 면도 있었을 것 같아요. 비유하자면 요리를 내놓는데 맛있는 걸로 상을 꽉 채우려고 했지만, 조화가 안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 거죠. 그래서 개정도 하는 걸 거예요. 이제는 메인 요리가 있고 서브 요리가 있고 코스가 있다는 걸 생각하기는 하는데,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해요. 균형이 생긴 반면에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우려는 그 마음이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고요. 그러려면 다시 저를 채워야겠죠. 지금까지 했던 걸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런 요소가 있다면 어쩌면 제가 좋아하는 핵심적인 취향일 거예요. 독자 분들이 많이 찾아내기도 하세요(웃음). 저도 모르는 공통점을 찾아내실 때가 있거든요. 또 두 번째로 하는 생각은 글이라는 게 사람의 내면을 너무나 잘 반영한다는 거예요. 예전에 쓴 글을 보면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잖아요.

 

그렇죠, 당장 없애버려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웃음).


그때의 자신을 너무 잘 반영해서 그래요. 나의 못난 부분도 반영하고 좋은 부분도 반영하고. 내면과 관계없는 글을 쓴 것 같은데도 그래요. 제가 쓴 소설이 곧 저는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내면이 반영돼요. 쓰는 순간에는 잘 몰라요. 조금 지나고 나서 다시 보는 순간 ‘내가 쓴 냄새가 난다’ 이런 느낌이 드는 거죠(웃음). 그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래서 이렇게 썼겠구나, 싶고요. 그걸 나만 아는 게 아니고 남도 알아요. 독자 분들이 책을 보시고 저에 대해서 추측을 하시는데, 일상의 저를 추측하시는 건 거의 맞지 않지만, 제가 모르는 저는 잘 추측해내세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품을 계속 썼다는 게, 저를 엄청나게 전시한 거예요(웃음). 동시에 ‘내면을 잘 유지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죠. 사람이 나이가 들다 보면 내면을 예전 모습 그대로 간직하기가 어렵잖아요. 예전의 모습에는 미숙한 면도 있지만 동시에 순수한 면도 있고 좋은 요소도 있는데, 그걸 유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아마 사람들이 알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작가에게는 심신 수양이 필요하군요(웃음).


필요할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나의 좋은 면이 반영됐는데 다음 글에서 그걸 유지하지 못하면, 그 글은 다른 냄새일 거예요. 그래서 그걸 유지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판타지 소설의 1세대 작가’로 손꼽히시는데요. 그동안 판타지 소설의 트렌드나 문법, 인기 요소가 바뀌었다는 걸 체감하세요?


그럼요. 사실 최근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어요. 제 작품을 쓰려고 할 때는 묵은 것들을 읽는 게 좋거든요. 최신의 것을 읽는 것보다.

 

왜요?


물론 데뷔하려고 노력하시는 신인 분들은 최신 소설을 열심히 보실 거예요. 최신 트렌드를 읽으려고. 그런데 저는 20년 동안 묵은 게 있잖아요. 거기에 최신의 양념을 뿌리면 이상하게 안 맞을 수가 있을 것 같고, 서서히 변해가야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약간 묵은 걸 보면서 계속 쓸어내듯이 해가야 될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트렌드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약간 먼 곳에서 바라보면 결국 한국인의 내면을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마음이 바빠져서, 글을 읽을 때도 길이가 길면 끝 부분을 확인하고 바로 넘어가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트렌드에도 같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예전의 우리는 영상 매체가 발달하면 사람들이 글자로만 되어 있는 건 별로 안 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지금 웹소설은 굉장히 잘 되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저는 한 번 연재를 해봤을 뿐이지만요.

 

변화에 맞춰서 도전하시는 데 주저함이 없으신 것 같아요.


저는 변화라는 걸 꼭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장르소설이라는 건, 어쨌든 독자가 안 읽어주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읽혀야만 의미가 있는 분야거든요. 사람이 아프면 먹기 싫어도 쓴 약을 먹지만, 음식은 맛이 없으면 먹을 필요가 없잖아요. 약이 아니니까요. 그런 거죠. 장르소설이라는 건 읽힌 다음에 의미를 획득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 명만 읽어줘도 된다는 느낌은 사실 장르소설과는 맞지 않아요. 여러 사람이 읽어줬을 때, 그렇게 읽히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의미가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의 트렌드나 읽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면, 저는 그걸 알 필요가 있는 거죠.

 

그래서  『룬의 아이들-블러디드 를 새로운 포맷으로 선보셨고요.


『룬의 아이들-블러디드』  1권이 기존의 책들과 느낌이 비슷한 데도 있고 달라진 데도 있는데, 이것들을 디테일하게 이야기하시면서 호불호를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것 자체가 잘 된 일인 거예요. 어쨌든 기존 독자로서 읽고 비교하고 계신 거잖아요. 이런 분들이 계셔야 처음 읽는 분들도 그걸 보고 계속 이어가는 거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할 거리가 되잖아요. 이런 말들이 생각을 발생시키는 게 되게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장르소설이 계속 살아나가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여러 사람의 말이 필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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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재밌어야죠


잠시 휴재 기간을 가지신 뒤에, 2권도 연재하실 계획이죠?


네.

 

작품을 쓰시면서 연재하시는 건 처음이지 않나요?


사실 저는 한 권 다 써놓고 연재했습니다(웃음).

 

2권도 그렇게 될까요?


네, 그럴 거예요.

 

『태양의 탑』  이전에는 미리 정해놓은 결말을 바꾼 적이 없으시죠?


네.

 

2권 연재가 끝난 후에, 독자들 반응을 보고 3권의 내용을 바꾸실 수도 있을까요?


지금까지 그런 적은 별로 없었어요.  『룬의 아이들-블러디드』  1권 같은 경우에는 기존 인물을 약간 소개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 그럴 텐데, 뒷이야기를 예상하기 어려운 상태로 끝이 났어요. 이후의 이야기를 추측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생각하시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1권에서 예고되지 않은 사건들이 벌어질 거예요. 그리고 테일즈위버라는 게임과 연계가 되어 있다 보니까, 스토리 작업하시는 분들한테 뒷이야기를 조금 해드렸어요. 내년에 업데이트될 스토리챕터를 작업하셔야 되거든요. 어느 정도 비슷한 분위기로 가면 게임하는 분도 재밌고 책 읽는 분도 재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아마 그와 비슷하게 흘러가겠죠.

 

『태양의 탑』은 7권을 쓰셨다가 폐기하셨잖아요. 이제 그 부분은 완전히 사라진 건가요?


네. 쓰다 보면 부분적으로 폐기할 때는 많이 있어요. 장면을 꽤 길게 썼지만 도저히 들어갈 데가 없는 경우도 있고요. 특히 소설 첫 머리를 쓸 때는 많이 버려요. 그래서 첫 머리를 여러 종류로 써보고, 어떤 때는 그 중에 하나가 뒷부분 어디에 들어가는 식으로 살아남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은 버려지거든요.  『태양의 탑』은 다음 권을 거의 마지막 권으로 하려고 했는데 제가 조금 납득이 안 되는 느낌도 있었고... 하여튼 저한테는  『태양의 탑』이 큰 숙제예요. 본의 아니게 중간에 세월의 갭이 들어가게 됐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어떤 걸 100%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갑자기 전환할 수는 없어서, 제 안에서 타협을 해야 되는 거예요. 옛날의 저와 지금의 제가 타협점을 찾아야 되는 큰 숙제가 있는 것 같아요.

 

첫 머리를 쓰는 게 제일 힘드세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리나요?


예를 들어서 반 권쯤 썼는데 처음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장면으로 갈아 봐요. 그러다 보면 뒷장면도 그에 맞게 변해야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초반은 마치 부품을 갈아 끼우듯이 꼈다 뺐다 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는 편이에요. 장르소설이라는 게 순간순간 계속 재밌어야 되잖아요. 읽는 분은 어떠셨는지 알 수 없지만, 제 목표는 그래요. 힘들고 슬픈 장면이 나오면 재밌게 읽지 않겠지만, 그래도 긴장감을 가지고 계속 페이지를 넘길 수 있어야죠. 그래서 쓰다가 이야기가 늘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플롯상으로는 그 부분이 그대로라고 해도, 어떻게든 바꿔서 재미없지 않게 흘러가도록 해야 되거든요. 쓰다가 좋은 생각이 나서 앞부분을 바꾸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룬의 아이들-블러디드』는 몇 권으로 완결될까요?


『윈터러』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제 마음은 그런데, 어떻게 될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윈터러』 도 7권이 될지 몰랐고  『데모닉』도 8권이 될지 몰랐고, 다 몰랐습니다(웃음). 반쯤 가면 알게 되는데, 1권일 때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있을 중요 사건들을 미리 플로우차트처럼 써놓거든요. 그 흐름이 다 존재해요. 그런데 소설로 풀어보면 어떤 장면은 너무 재밌게 풀려서 길어지고 어떤 장면은 그렇지 않아요. 풀어 쓸 때 쫙 펴지는 게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게 있어요. 『데모닉』 같은 경우에는 중간에 주인공이 공연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제 예상은 반 권 정도였는데 한 권을 채워버렸어요(웃음). 처음 플롯에는 공연으로 돈을 벌어서 다시 떠난다는 컨셉이었는데, 쓰다 보니까 이야기가 너무 풀 게 많아져서 쫙 풀린 거예요.

 

손끝에서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순간이겠네요. 쾌감이 느껴질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정말 엄청 빨리 써요.

 

글 쓰시면서 가장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인가요?


그렇죠. 막 찍었는데 다 작품 사진이 된 기분이라고 할까요(웃음).

 

매니아 팬이 많잖아요. 2차 창작물도 많다고 들었어요.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해서 쓰거나, 뒷이야기를 이어서 쓰거나, 팬 아트를 그리는 건가요?


네, 많이들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한테 보내주시는 분들도 가끔 계신데, 보통은 ‘조금 창피한데?’ 하고 저한테는 안 보내주시는 분들이 많죠(웃음).

 

작가님도 어린 시절에 소설의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쓰셨다면서요? 팬들을 지켜보시는 마음이 어떠실지 궁금해요.


어쩌면 사람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아요. 재밌는 이야기가 끝나면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이어서 쓰거나, 내 마음에 들게 결론을 바꿔보거나, 또는 그 월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가 거기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새 캐릭터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 요소들이 지금 팬픽에 거의 다 있는 것 같고요. 사실 팬픽을 쓴다는 건 거의 창작의 시작이잖아요. 저도 『소공녀』를 읽다가 뒷이야기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최초의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완결을 짓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 마음이 발전해가면서 아예 월드를 새로 만들고 인물도 스토리도 내 마음대로 만드는 식이 됐어요. 팬픽을 쓰시는 분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마음에 몰입해서 쓰다 보면 실력도 많이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팬픽을 쓴다고 반드시 창작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저의 개인적인 의견은, 직업적으로 작가나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안 되더라도, 해보는 것은 굉장히 영혼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굉장히 좋게 생각해요.

 

팬 아트도 그렇지만, 게임을 통해서도 작가님이 상상하시던 이미지가 눈앞에 재현됐는데요. 직접 보실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처음에 테일즈위버를 작업할 때는, 약간 뭐라고 할까요, 제가 컨셉을 드리면 그 분들이 알아서 만드신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아키에이지 같은 경우는 사실상 제가 제작에 참여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일러스트든 월드든 제가 드린 컨셉 대로 나왔는지 검수하는 과정도 있었고요. 그러니까 즐겁게 누리는 게 아니라 그에 맞게 나오도록 미리 정보를 잘 드려야 되는 거죠. 아키에이지의 경우는 게임 제작을 해야 되다 보니까 소설 형태로 쓰지 않고 먼저 줄거리 형태로 썼거든요. 원래는 그렇게 작업을 하지 않아요. 플로우차트 정도는 만들지만 줄거리를 길게 쓰지는 않거든요. 그게 구현되는 걸 바라보는 게 재밌기도 했고, 특히 처음에는 너무 신기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생각한 그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걸 납득하는 것도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임 같은 경우는 다수가 만드는 공동작업이잖아요. 모든 분들이 다 비슷하게 고스란히 숙지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어느 선에서는 게임 전체가 나의 작품은 아니라는 걸 알 필요는 있었던 것 같아요. 알게 되어갔죠.

 

게임과 관련해서는 ‘원작을 정말 전민희 작가가 쓴 것이 맞느냐’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게임사에서 설정을 받아서 소설을 써주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어요. 사실 그 오해가 많이 저를 힘들게 해요. 그런 적이 없는데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최초에 ‘룬의 아이들’ 시리즈가 소설화되기 전에 포리프(4LEAF)라는 커뮤니티 브라우저 형태의 서비스가 있었는데, 그 서비스가 먼저 나오고 나서  『윈터러』  1권이 나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포리프 서비스가 먼저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제가 설정을 만들어줬던 거였어요. 아마도 이런 형태가 별로 없어서 오해를 하시는 것 같아요. 영화의 경우도 영화가 먼저 있고 그걸 소설화하거나, 반대로 소설이 먼저 있고 그걸 영화화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저처럼 처음 시작하는 시작에서 같이 만나서 작가가 세계관과 월드를 만들고, 그걸 가지고 게임사에서 게임을 만들고 동시에 출시하는 경우가 흔치 않으니까요. 그래서 오해가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룬의 아이들-블러디드』의 독자들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건넸어요. 작가님은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세요?


이런 반응을 받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단한 행운이고 복이죠. 그 분들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보답의 형태 자체가 그 분들이 생각하신 것과 같지 않을 수 있지만, 어쨌든 제가 최선을 다하는 걸로 보답을 드리겠습니다.


 

 

룬의 아이들 - 블러디드전민희 저 | 엘릭시르
캐릭터의 생각과 행동에 반응하며 공감하고 이입한다. 캐릭터의 역사가 쌓이면 독자와 세계의 친화도는 높아지고,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역사는 곧 세계의 역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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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광준 “아름다움으로 촘촘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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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웅장한 규모, 각 전시관의 시대적 배경이 되살아난 인테리어, 책에서만 보았던 원작의 감동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놀랐던 점은 수천 년 전 유물이 널려 있는 전시관 바닥에 둥글게 모여 앉은 초등학생들의 모습이었다.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열 살 남짓의 학생들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곁에 두고 자라는 일상에 감탄하다 문득 내 어린 날 박물관 견학 풍경이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수첩과 필기도구를 꺼내지 않았던가?


‘글 쓰는 사진가’이자,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즐기는 ‘딜레당트(예술애호가)’임을 자처하는 저자 윤광준이 추구하는 바가 이런 것이다. 예술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은 삶, 예술이 친근하고 가까운 삶. 그는 자신의 하루를 풍족하게 해주었던 예술의 아름다움을  『심미안 수업』에 풀어냈다. 책을 통해 그가 경험하고 감탄한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의 다섯 가지 예술 분야가 지닌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각적인 사람들을 흠모하며 부러워했던 이들, 예술에 대해 알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던 이들, 우리가 왜 예술을 즐겨야 하는지 궁금했던 이들 모두에게 답이 될 수 있는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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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음악은 어떻게 위안이 되었나


제목이 먼저 지어진 책이다. 2015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다음 책의 제목이  『심미안 수업』이라고 이야기한 지 3년 만에 출간됐다.

 

인터뷰에서 예고를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러버렸다.(웃음) 제목과 구성은 대략 생각한 상태였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고민만 하던 와중에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망막박리라는 병이었고, 검사를 위해 찾은 세 군데의 병원에서 모두 실명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어쩌면 영영 책을 쓸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또 시력을 잃어가면서 막연했던 ‘감각’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어 집필에도 탄력이 붙었다. 그때부터 책 작업에만 집중했다. 신체적 변화가  아주 큰 동기가 된 셈이다.

 

병의 고통을 이겨내는 데 예술이 큰 힘이 되었다고.


두 번의 수술 끝에 다행히 실명은 면했지만 치료를 하는 6개월이 내겐 절망이었다. 그런데 ‘만약 세상을 영원히 보지 못한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별로 억울할 게 없겠더라.(웃음) 세상에 내로라하는 좋은 것은 다 보고 다녔으니 말이다. 정말 질리도록 많이 봤다. 그 생각을 하니 위안이 됐다. 이 책은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는 예술을 보고, 듣고, 느낀 게 절망의 순간에 왜 위안이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다. 남들보다 아름다움을 많이 본 경험을 의미화하는 게 내가 해야 할 남은 과제인 것 같았다.

 

『심미안 수업』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을 갖는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준다. 책의 주제를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예술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예술이라고 하면 먼저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록이나 재즈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도 “음악회 보러 갈래?”라고 물으면 “나 클래식 잘 모르는데…”라며 주눅이 들고, 마지못해 약속을 잡으면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한다.(웃음) 그걸 보며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예술은 알아서 즐기는 게 아니고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운 것인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게 안타까웠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설명이 필요 없다. 감각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나는 예술적 느낌이 나는 모든 것이 다 좋다. 그걸 뭉뚱그리면 아름다움일 것이다. 두려워하고 편견을 가지기 전에 이 아름다움을 우리가 어떻게 감각하고 알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쉽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수많은 예술 분야 중 미술,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의 다섯 가지 분야가 실렸다.


크게 관심을 가졌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에 대해서만 글을 쓸 수 있다. 물론 요리, 패션, 문학 등 여러 예술에 관심이 있지만 독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이 다섯 가지로 집약되었던 것이다.

 

‘내가 미감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콤플렉스 때문이었다.(36쪽)’고 했다.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었나.


결코 아니다. 진심으로 콤플렉스가 있었다. 1980년대에 직장생활을 했는데, 당시는 데모가 아주 치열했고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극명하게 갈린 시기였다. 그때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사회에서 낙인이 찍혀 졸업 후 취직이 어려웠다. 그 시대의 깨어있는 양심들, 지성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은 영화, 출판 등 예술계뿐이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출판계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그때 만난 분들이 너무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고은, 황석영, 유홍준, 이성복 등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한 사람들을 사회 초년생 시절에 만난 거다.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무식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청난 충격이었지. 당시에는 오직 그들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웃음) 그 사람들 덕분에 예술이 무엇인지, 그들이 무얼 지향하고 사는지 서서히 이해하게 됐다. 그들에 대한 경외심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아무리 쫓아가고 싶어도 나는 감히 범접할 수가 없겠더라. 그래서 나는 관심을 수평적으로 넓혔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즐기며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그때의 콤플렉스 덕분이다.(웃음)

 

 

예술적 안목은 길러지는 것


그동안 안목은 타고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안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모든 감각은 성장한다. 와인도 그렇지 않나. 처음 와인을 마시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뭐가 좋은지 잘 모른다. 그런데 마시다 보면 점차 차이를 알게 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경험이 반복될수록 감각은 촘촘해진다. 그동안 앎과 감동을 일치시키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술 작품을 보며 어떠한 감동을 느끼고, 그 감동이 다음 단계의 감동으로 넘어가는 경험이 중요하다.

 

같은 작품을 보아도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다. 취향에 따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아름다움은 체험한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에 존재하는 비례와 균형은 문장, 그림, 음악, 건축 등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다. 체험을 통해 비례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면 다른 분야의 예술에도 그 원리를 적용해보는 습관이 생긴다. 그걸 알고 나면 놀랍도록 많은 궁금증이 풀린다. 이 그림은 왜 이렇게 그렸는지, 저 건물에 창문은 왜 저렇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은 그림에서도 남들은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추상화가 있다.


추상화는 고도의 정신적 작용이다. 피카소가 젊었을 때 그린 스케치는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다운가. 피카소가 추상화를 그리기까지 들인 노력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촘촘한 관찰과 선택, 반복으로 얻어진 결과다. 어떤 상황을 그대로 보지 않고 변형할 힘이 생긴 것이다. 그러한 그림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작가와 주파수가 다른 것이다. 나는 추상화가 현대문명을 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왜 난해해졌는지를 이해하면 추상화야말로 궁극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상화가 현대문명을 연 시작이란 어떤 의미인가? 부연설명을 해준다면.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난 뒤 대부분의 시간을 계속 똑같은 것만 반복하지 오지 않았나.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원칙이 만여 년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19세기에 와서 그게 깨진다. 사진과 기차가 발명되며 인간이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스피드다. 시속 60km를 처음 경험한 사람이 창밖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산과 사람, 마을은 제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창밖 풍경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걸 화가가 그림으로 그린다면?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려는 노력이 바로 추상화의 출발이다. 어떤 사물을 재현하는 걸 넘어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게 핵심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그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점으로만 접근한다. 하지만 작가와 주파수를 맞추려 노력하면 그림이 다가올 것이다. 인간의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자연과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웅장한 자연경관을 보면 감탄이 나오지만 저릿한 감동이나 울림은 없다. 하지만 사람이 남긴 흔적에는 울림이 있다. 예술은 그걸 가장 극대화한 것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또 보고 싶고, 나도 그러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움튼다. 예술의 아름다움이 가진 힘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난다. 얼마 전, 그래피티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n)'가 경매에서 낙찰되자마자 파쇄됐다. 이에 ’뱅크시답다‘는 극찬과 ’지나친 우상화‘라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러한 퍼포먼스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대상을 똑같이 재현하는 게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난 그런 건 하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예술가가 있었을 것이다. 마르쉘 뒤샹 같은 작가가 그런 사람이겠지. 미술은 왜 꼭 그림이어야 하나?는 물음이 있다면, 완성된 그림을 없애는 것은 그림이 아닌가?라는 물음도 있을 수 있다. 퍼포먼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작가에게는 새로운 시도였단 것이다. 아무리 엉뚱한 짓도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다. 나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에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퍼포먼스는 파괴까지도 자신의 작품이라는 걸 계산한 행동이고, 이 또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에 나간 경험이 많은데, 예술에 관해 우리나라와 해외의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인가.


우리가 왜 예술을 ‘앎’으로 접근하는 강박이 클까 궁금했는데, 그 의문이 몽골에 가서 풀렸다. 11월경이 되면 몽골에는 사자자리 유성우가 쏟아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 시기에는 전 세계 천체 마니아들이 몽골에 모이는데, 그때 본 동양인과 서양인의 반응이 극명하게 달랐다. 별이 쏟아지는 장관을 보고도 동양인 그룹은 자기가 보고 싶었던 별을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보려는 타깃이 분명하고, 책에서 보았던 것을 실제로 확인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반면 서양인 그룹에서는 “원더풀(Wonderful)!"이란 외침부터 나왔다. 같은 대상을 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 한쪽은 감탄이 없지만, 다른 한쪽은 감탄이 있다. 유성우가 예술로 바뀌어도 똑같다. 우리는 고흐의 그림이 지닌 아름다움보다 고흐의 작품을 직접 봤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두지 않나.

 

왜 그럴까.


교육의 잘못이기도 하고, 체험을 못 했기 때문에 진가를 모르는 거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상태로 작품을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디테일을 하나도 모른 채 교과서로 지식만 배웠으니 감동이 생길 리가 없다. 동양화는 보통 8폭짜리 병풍에 그려지는데 그게 교과서에 실리면 손바닥보다 작다.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술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편견이 생기는 것이다. 원본의 감동에 빠지는 체험이 쌓일수록 예술이 즐거워질 것이다. 일단 한 번 보고, 느껴보길 권한다.

 

국악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현장에 가야 비로소 국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1980년대부터 국악에 관심이 많았다. 기자생활을 하며 전국의 명인을 다 만났는데, 국악을 이야기할 때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지금까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진도에 살던 김곡례 할머니다. 밭을 가는 평범한 할머니였는데, 아직도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앞에 앉아 노래를 하는데 우리 음악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느꼈다. 이게 바로 음악의 현장성이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거나 멋지게 차려입고 무대에 올랐다면 그 감동이 없었을 거다. 현장에서 국악을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날것의 아름다움이 국악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국악을 지키기 위해 국가에서 많은 공을 들였지만 음악을 전달하는 방식이 개선되지 않았기에 국악은 시끄럽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생기고 말았다. 록 음악은 마이크와 앰프로 소리가 확성될 때 실력이 발휘되지만, 국악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우리 음악의 진가를 모르는 게 안타까워 영주의 한 대청마루에서 국악 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다. 관객 모두 “우리 음악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 가야금 연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며 감탄했다. 국악에 관심을 갖고 싶다면 원래의 상태를 경험해봐야 한다.

 

국악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장소 혹은 공연을 추천한다면.


남산 한옥마을에 서울남산국악당이 있고, 계동에도 국악을 체험할 수 있는 홍보관이나 전수관들이 있다. 편견으로 인해 공연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지, 실제로 국악 공연은 많이 열리고 있다. 책에 소개한 ‘악당이반’의 음반들을 들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설립된 국악 전문 레이블인데, 국악이 펼쳐지는 실제 공간인 한옥에서만 녹음을 하고 연주의 디테일을 담기 위해 프로그램으로 음을 조정하거나 오버 더빙하지 않아 아주 순도 높은 국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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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일상으로, 일상을 예술로


농민신문에 쓴 ‘아름다움은 체험으로 살갑게 다가온다’는 칼럼을 보고, 공공건물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의견에 동감했다. 우리 사회가 일상과 예술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어 예술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다.

 

구분을 넘어 예술을 생활에 끌어들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특별한 것, 특별한 사람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그게 삶으로 들어온다는 걸 낯설게 여기는 것 같다. 나는 누구나 이용하는 공공건물이 1순위로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전철역을 보면 어떤가.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역 하나도 아름답게 지을 수 없는 나라인가? 결코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수용이 잘못된 것이지. 예술이 미술관 안에만 모여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걸어 다니는 길 위에 보여야 하고, 늘 사용하는 테이블에 구현되어야 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작은 차이를 섬세하게 느끼는 예민함’이라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디자인이다. 나는 생활용품을 엄선해서 고르고,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은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준다. 특히 매일 쓰는 물건이면 더욱 치밀하게 따진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들고 있는 이 커피잔이 너무 싫다.(웃음) 입술에 닿는 부분이 두껍고 투박해서 ‘이걸로 커피를 마셔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무겁다. 감각적인 제품들은 형태도 아름답지만 입술에 닿는 감촉까지 좋다. 컵, 커피잔, 조명 등 매일 마주하는 것, 하루라도 안 쓸 수 없는 물건들은 정말 꼼꼼하게 좋은 것을 고른다.

 

보통 생활용품은 쉽게 사고, 아무거나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욕실 수납장에는 사은품으로 받은 수건만 가득하고.(웃음)


그렇지. 하하하. 일상을 왜 그리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나 싶다. 사람들은 쾌적한 잠자리를 위해 비싼 돈을 주고 호텔을 예약한다. 그곳에서 푹신한 매트리스, 새털처럼 가벼운 이불을 보고 감탄한다. 그런데 왜 집에선 안 쓰나.(웃음) 호텔은 어쩌다 한 번 가는 것이고, 내 방에 있는 침대는 매일 쓰는 것인데. 나는 그런 불균형을 참을 수가 없다. 일상에 돈을 써야 한다. 마음에 드는 잔 하나 사는데 천만 원이 드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일상이 아닌 시간은 언제일까? 인생의 99%가 일상이다. 소중한 것과 소중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것을 나누는 출발은 아름다움을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그게 왜 중요한지 스스로 납득해야 행동하기 때문이다.

 

‘취향이 단단해질수록 삶은 구체성을 띤다.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디테일을 채우는 방법이다.(143쪽)’는 문장과 통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퍽퍽함이 왜 생길까 생각해보면 모든 게 너무 관념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행복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쉽게 다가오는데, 추상적인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행복을 이렇게 바꿔보자. 요즘처럼 추운 날, 밖에서 덜덜 떨다 들어와 아주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 조용한 카페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는 것. 이 모든 게 아주 감각적인 행복이다.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은 가질 방법이 없다. 행복이 다가와도 행복인 줄 모를 테니까. 아름다움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감각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삶은 더 구체성을 띤다.

 

요즘 제일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간 큐레이션에 관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양평 ‘이함캠퍼스’의 미술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그동안 예술을 수용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만드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어떤 생각과 물건, 작품을 어디에 놓고 어떻게 보이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오늘 한 얘기가 모두 담긴 공간이 될 것이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여러분, 촘촘해집시다.” 일상이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질 때 내 삶이 바뀐다. 대한민국은 국민 소득 3만 불의 성공한 나라다. 지금까지는 고민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세계 1등 기업만 따라가며 성장해왔으니까. 여태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 다음은 어떡하나. 우리의 고민은 지금부터다. 이제 우리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힘은 창의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창의의 바탕은 체험에서 온다. 예술에 대한 체험을 통해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긴다면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한 개인의 취향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머지않아 우리의 자산이 될 테니까.

 

오래 전, 한 인터뷰에서 ‘나의 가장 큰 꿈은 내가 되고 싶다는 것’이라 했다. 그 꿈은 아직 유효한가?


당연하다. 내가 남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웃음) 내가 될 수 있도록 ‘나’스러운 장치들을 끊임없이 리뉴얼해 나갈 것이다.

 

 

 

 


 

 

심미안 수업윤광준 저 | 지와인
좋은 공간이란 겉에서 보기 좋은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곳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눈, ‘심미안’을 기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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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수일 “수학도 스토리가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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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까지 약 30년 동안 한성과학고, 용산고, 세종과학고 등 학교 현장에서 수학 교사로 학생들을 직접 만나온 최수일 박사는 “아이들이 왜 수학을 싫어할까, 왜 수학을 포기할까”를 늘 고민해왔다. 퇴직 후에도 공교육의 문제와 수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교수법을 꾸준히 연구한 그는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로 변함없이 교육 혁신을 꿈꾸고 있다.


“수학도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수학에도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최수일 박사. 그는 지나치게 깨끗한 지금의 교과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학생들이 당황하고, 곤란에 처하는, 그리하여 스스로 곤란에서 빠져 나오는 교과서를 만들었다. 『개념연결 만화 수학교과서』는 일상 속에서 수학을 발견하고, 질문과 대화를 통해 수학의 개념을 이해하도록 한 ‘만화책’이다.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고, 깜짝 놀라며, 괴로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곧 흥미와 깨달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과정이 곧 수학인 것이다.


초등학교 수학에 등장하는 수학 개념이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초등수학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최수일 박사는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에 등장하는 ‘원주율’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성인은 1%도 안 될 거라고 지적한다. “파이(π)가 3.14라고 말은 하지만 그게 왜 3.14인지는 모르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역시 이미 늦은 걸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최수일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정답은 줘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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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과서, 너무 깨끗하다


‘만화’라는 컨셉은 수학 공부에 흥미를 일으키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나요?

 

흥미라기보다 저는 이게 교육 방향이라고 봐요. 교과서는 이래야 한다는 건데요. 만화는 형식일 뿐이죠. 여기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바보짓(웃음)을 많이 해요. 그게 교육이거든요. 아이들은 엉뚱한 짓을 자꾸 하고, 어른들이 생각을 고쳐주면서 교육이 되는 건데요. 지금 학교 교육은 엉뚱한 짓이 없어요. 필요한 것만 집어넣으려고 하고요. 그렇지만 들어가지 않죠. 교육이란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과정이거든요. 아이들이 아무런 실수를 하지 않고 교과서대로만 공부하잖아요. 그러니까 필요를 못 느끼고요. 곤란을 겪고, ‘아, 이럴 때 수학을 해야 하는구나’를 깨달아야 해요. 그게 제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교과서관이고요. 지금의 교과서는 너무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깨끗하다고요?


교육은 아이들을 힘들게도 하고, 당황스럽게도 하고,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도 해야 해요. 그러면 아이들은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겠죠. 그런 동기부여를 지금 교과서는 안 하고 있어요. “1 더하기 1은 2야. 알았지?” 이러잖아요. 아이들은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걸 알고 싶지 않은데 말이에요. 몰라서 헤매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 책은 아이들이 헤매는 과정을 담았어요. 당황스러움 같은 감정을 유발하도록 했고요. 그 아이들이 제 설명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했어요. 감정이입은 교육에서 대단히 필요하니까요. 감정이입이 되어야 아이들의 생각이 확장돼요. 그 과정을 담지 못한 교과서의 약점을 보완한 책을 만들고자 했어요. 단순히 흥미와 재미를 위해 만든 건 아니에요.

 

저 역시 깨끗한 수학 교과서에 완전히 흥미를 잃은 학생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이것은 이야기로 읽을 수 있으니까 우선 재미있더라고요.


수학도 스토리가 있어야 해요. 아이들을 괴롭히는 스토리텔링이 아니고요. 현재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일어나는 그런 스토리가 있어야죠. 이 책에 있는 스토리는 저 멀리 있는 이야기를 지어낸 게 아니고요.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을 이야기로 만들었거든요. 거기에서 곤란을 유발하면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깨닫게 돼요. 그런 식의 교육이 저는 필요하다고 봐요.

 

곤란함에서부터 학습이 시작된다고 보시는 거군요?


필요하죠. 어려움에 처하면 도움을 요청하잖아요. 공부하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어요. 가르쳐달라고 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려면 내적인 동기가 필요해요. 외적으로 “공부해라”, “공부 안 하면 안 된다”는 동기유발은 통하지 않잖아요. 잔소리니까요. 그럴 필요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하도록 하면 되거든요. 그러면 아이들은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도움을 요청해요. 저는 그게 공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박사님께서는 수학에도 토론이 필요하다는 말씀도 하고 계시죠.


기성 수학은 토론이 필요 없어요. 결과가 나와 있으니까요. 수학은 문화유산이고, 이런 것들이 있고, 네가 크면 이런 게 필요해, 라면서 어른들이 예쁘게 만들어 수학책을 만들었잖아요. 선생님들은 책을 그대로 가르치고요. 하지만 거기에는 아이들 생각은 없죠. 자기 의견을 말할 틈도 없어요. “이건 사각형이야”가 아니라 “사각형이 뭐니?”라고 물으면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잖아요. 혹은 ‘사각형’이라는 말보다 ‘네모’라는 말을 쓰면 아이들이 더 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고요. 이렇듯 질문이나 말을 사용할 때 결과가 나와 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을 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그러면 정해진 게 없으니까 토론이 되죠. 따라서 저는 수학적 개념과 정의라는 것을 가급적 나중으로 늦추면 그 앞에서 아이들이 할 얘기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공간이 지금 우리 교과서에는 없어요. 문제를 풀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여기에 사람이 빠져있어요.

 

 

생활에 쓰이는 수학


책 앞부분에 수록된 박사님 글에서 ‘수학적 민감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교과서 바깥, 일상 속에 수학이 많이 있거든요. 저는 지금 이 공간에서도 도형을 봐요. 사각형 책상이 여덟 개 있잖아요. 2 곱하기 4,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이 민감성이에요. 이걸 보고 아무런 수학적 사고가 없으면 민감하지 않은 거겠죠. 만약 일상생활에서 이런 것이 되면 교과서에서 2 곱하기 4를 보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구구단을 그냥 외우잖아요. 하지만 생활에서 쓰인단 말이죠. 그걸 알면 구구단을 그냥 외우는 게 아니구나, 깨달을 수 있어요. 수학이 필요하다, 쓸모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요. 그것을 수학적 민감성이라고 말한 거예요. 그 민감성을 갖게 되면 수학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교과서에서 별 의미 없이 배운 수학에 의미가 부여되니까요.

 

수학이 생활과 만나는 고리만 찾아도 더 큰 흥미가 생길 수 있겠죠.


아이들을 보면서 왜 수학을 싫어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왜 수학을 포기할까, 하고요. 보니까 이런 생각이 없으니까 당연히 싫어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교과서나 문제집 바깥에서 수학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어른이 돼도 마찬가지죠. 수학은 도처에 있고,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거든요. 게다가 수학에 민감하게 자라면 말이나 토론에 있어서도 논리가 정확하게 돼요.

 

수학 개념이나 정의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정의가 내려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예전엔 저도 외우라고 가르쳤었어요. 우리나라 교육 환경이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잖아요. 저도 그 중 한 명이었는데요. 고등학생만 돼도 입시라는 환경에서 문제를 풀어내야 하잖아요. 계속 그 속에 갇혀 살았다면 몰랐겠죠. 조금 떨어져서 보니 보이더라고요. 여러 시민들을 만나면서 더불어 어린 학생들을 만나게 됐어요. 초등학교 수학에 관심을 가지니까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수학을 포기하거나 싫어하게 되거나 억지로 하는 게 다 초등학교 수학에서 비롯된다는 걸 발견하게 됐죠. 훈련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어디 있겠어요? 운동 훈련은 건강이라도 하지, 수학 훈련은 건강도 안 해요.(웃음)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풀면 결국 부족한 부분에서 걸리고 맙니다.”(4쪽)라고도 하셨죠.


또 개념만 이해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요. 개념과 개념을 연결해야 해요. 물론 지금은 개념도 이해 안 하지만 말이에요. 수학 개념은 고3까지 배우는 12년의 개념이 다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그걸 느끼지 못하면 힘들어요. 개념 하나 하나만 이해하는 게 아니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해야 해요. 그걸 ‘개념연결’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전에 배운 개념과 지금 배우는 개념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이해해야 하죠. 수학은 다 인과관계거든요. A라는 어떤 수학이 있으면 거기서 B가 나오는 거예요. B가 그냥 나오지 않아요. 그 다음 또 C가 나오고요. 그런데 A와 B를 이해하고, 연결하지 않고 C를 그냥 외우니까 어렵죠. A와 B가 얽힌 C 문제는 못 푸는 거예요. 개념을 연결하면 공부가 굉장히 깊어질 수 있어요.

 

단계가 있군요. 먼저 개념을 이해하고, 그 다음 개념과 개념을 연결해서 이해해야 하는.


역사도 그렇잖아요. 어떤 사건 하나만 이해하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어떤 제도를 이해할 때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고리가 있을 거잖아요. 고려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조선시대의 상황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제도를 이해해야지 그 제도만 알아선 안 돼요. 수학도 똑같아요. 개념이 다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수학 교과서는 그걸 가르치지 않아요. 우리나라 수학의 약점이죠. 각각을 가르치는 데에는 강한데 연결고리를 잘 만들지 못했어요. 그게 저의 고민이에요. 그래서 개념을 연결하는 책을 계속 만들고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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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수학 개념만 제대로 이해하면


앞서 “수학적 개념과 정의라는 것을 가급적 나중으로 늦추면” 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언제까지 늦춰도 될까요?


발달심리학과 관계된 이야기라 말하기 어렵긴 한데요. 아이들은 자기들이 배우는 수준에서 통합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도 논리가 있잖아요. 가령 이등변 삼각형의 양쪽 각이 같아요. 꼭지각이 50도라고 하면 나머지 각은 몇 도일까, 물어보면 답을 하거든요. 전체가 180도니까 50도를 빼고, 양쪽 각이 같으니까 130도를 2로 나눈다, 이렇게요. 아주 논리 정연한 설명이죠. 초등학교 3학년이면 말할 수 있어요. 저는 공식을 외우기보다 이유를 설명하는 능력을 키워주자고 말하는 거예요. 설득이 없으니까 흥미를 잃잖아요. 모든 수학에는 논리가 있고요. 그걸 아이들이 하도록 하자고 말하는 거예요. 나이는 크게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공감대는 없고, 선행학습을 많이 하는 게 현실이죠.


요즘은 공식 암기가 유치원 때부터 시작이 돼요. 유치원에서도 방과 후 교육을 하거든요. 거기서 원래 누리과정이 아닌 걸 하죠. 이때 수학은 초등학교 수학이에요. 덧셈, 뺄셈을 유치원 때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시기부터 기호에 노출되면 ‘말’이라는 것이 없어지죠. ‘책이 두 권 있었는데 세 권을 주면 몇 권일까’와 ‘2 3은?’은 엄청난 언어의 차이가 있잖아요. 일찍부터 기호와 공식을 공부하면 나중에 개념을 가르치려고 해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져요. 다 안다고 생각하고 딴 짓 하기가 쉽죠. 그러니까 두 번의 기회를 놓치는 거예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때 배워서 한 번 놓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는 거부해서 두 번 놓치고요. 선행이 그래서 심각해요. 그런데 제가 개념을 이해하라고 하니 머리가 아프죠. 공식만 외우면 문제가 풀리는데 개념을 이해하려면 복잡하잖아요.

 

두 번 놓친다는 말씀이 아프게 들리네요.


그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사실 시험 볼 때는 문제가 없어요. 시험은 개념적으로 묻지 않잖아요. 시험은 답을 내는 거니까요. 그걸 개념으로 다시 생각하려니까 부담돼요. 그래서 그냥 영원히 외우겠다는 학생도 많아요. 하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저는 우리나라 성인들이 수학이 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는데요. 개념적으로 이해가 되면 그걸 다 씁니다. 삶에서 여러 가지로 쓰이거든요. 지금은 공식밖에 아는 게 없으니까 쓸 수가 없죠. 수학 문제를 풀 때만 쓰는 거예요.(웃음) 

 

그렇다면 이미 문제 풀이, 공식 암기 위주의 수학 교육을 시작해버린 입장에 있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수포자’의 길에 이미 들어선 학생들이 개념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신다면?


방법은 따로 없어요. 하지만 사실 중학교 정도 됐을 때면 초등학교 6년 배운 수학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데 몇 달이면 된다고 봐요. 이해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1년도 안 걸려요. 할 수 있어요. 다만 그렇게 하려는 생각이 있어야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어려운데요. 충분히 할 수 있고요. 그렇다고 초등학교 1학년 책부터 다시 봐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중학교 책에도 다 초등수학이 나오거든요. 그때 나오는 개념만 제대로 이해하면 되죠. 가령 ‘약수’를 초등학교 5학년 때 하는데요. 중학교 처음 들어가면 약수가 또 나오거든요. 그때 초등학교 5학년 약수 개념만 제대로 이해하고 다시 중학교 수학을 하면 돼요. 중학생이 되어서라도 그때 그때 등장하는 초등학교 수학 개념만 제대로 이해하면 문제가 안 생길 거예요. 또 이렇게 개념을 잘 쌓으면 수학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결국은 점수도 올라가요. 특히 고등학교 수학은 이게 중요하죠. 수능 같은 건 외워서 안 되거든요.

 

장기적으로는 더 높은 성과를 보일 수 있는 교육 방식이라는 거군요.


개념이 없이는 고등학교 수학은 힘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수학교육을 이렇게 표현하는데요. 지금은 어른이 슈퍼에 다녀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그냥 다녀오는 상황이라고요. 슈퍼에 다녀오라고 하면 당연히 뭘 사와야 하는지 물어야 하잖아요. 이유를 물어야 하는데 묻지 않아요. 수학을 그렇게 배웠어요. 원주율이 파이(π)다, 왜 파이인지 묻지 않아요. 따지는 사람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따지면 이미 외워지거든요. 안 따지니까 외워야 하는 거예요. 오래 가지도 않아요.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도 이런 방법을 쓰지 않잖아요.


초등수학 교과서는 질문이 좀 있긴 한데요. 중학교만 가도 질문은 하나도 없어요. 완전히 성경책이죠.(웃음) 읽고, 받아들여야 해요. 그게 거북해야 하고요. ‘아니, 이게 왜 이렇게 돼?’가 많아야 수학적으로 살아나요. 교과서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아이가 그렇게 공부하는 법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요. 그래서 의식 있는 선생님들은 교과서를 버리고 새로 학습지를 만들죠. 질문을 던지고요. 혁신학교라는 곳이 그런 게 익숙한 곳인데요. 거기도 시민들한테 배척 받는 시대니까요.

 

 

정답은 다 줘버리자


지금의 학교 교육방식에 대한 문제의식도 많으시겠어요.


제대로 개념과 이유를 가르치려고 하면 학력이 떨어진다고 하잖아요. 그 학력이란 점수거든요. 하지만 수학을 달달 외우는 기계로 만들어달라는 말이 어디 있어요? 이건 우리 아이를 바보 만들어달라는 말이랑 다르지 않아요. 물론 성적으로 대학을 가니까 그렇죠. 성적만으로 대학 가는 것을 바꿔야 하는데요. 수학이 가장 심각해요. 과거 빨리 암기를 시켜서 기능인을 길러내야 했던 교육이 지금까지도 이어진 거거든요. 그런 수학에서 벗어나야죠. 창의성을 이야기하고,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수학은 과거의 수학이 아니에요. 진짜 머리를 써야 하는데 교과서는 안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책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요. 선생님의 교육 방법도 바뀌어야 하죠. 그나마 혁신학교가 희망인데 그것마저 다 없애버리면 우리나라 교육은 진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 현장에서 토론이나 동기부여가 안 되고 있다고 하면, 개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 몇 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수학 강의지만 학생들에게 토론을 하도록 했어요. 저는 한 마디도 안 하고요. 진짜 토론만으로 수업을 했는데 학생들이 굉장히 만족하더라고요. 선생님이 말을 안 하고 수업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 교수법이 어렵죠. 하지만 하면 해요. 집에서도 가능하겠죠. 밥 먹을 때도 자꾸 묻는 거예요. 부모가 설교하지 않고요. “어떻게 생각하니?”, “왜 그러니?”가 돼야죠. 사실 아이들은 설명해주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걸 귀찮아하는 순간부터 아이가 부모와 말을 안 해요. 컨설팅을 가보면 초등학교 2학년부터 질문을 안 한다는 선생님도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는데요. 가르치려고 하면 질문을 안 하는 거예요. 아이들의 생각을 물으면 질문을 하죠.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수업을 구상하는 거예요.

 

수학을 예로 들어주신다면요?


“3 곱하기 4가 얼마야?”라고 질문을 하면 다른 생각이 없죠. 그냥 답은 12죠. 그렇게 하면 토론이 안 돼요. 거꾸로 “무엇을 계산하면 12가 나올까?” 해보세요. 많죠. 쉽게 말해서 이런 건데요. 수학도 결과를 물어보면 안 되고요. 과정을 자꾸 물어야 해요. 과정을 물으면 아이들이 시끄럽거든요. 3 곱하기 4가 좋을지 2 곱하기 6이 좋을지 싸울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3 곱하기 4도 알게 되고, 2 곱하기 6도 알게 되죠. 수업이 풍부해지는 거예요. 답은 다 줘버리세요. 그 답에 아이가 스스로 가도록 하면 돼요.

 

학교에서 수학교육에 고민하는 선생님들께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자꾸 점수 위주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수능을 강조하는 순간 선생님들은 설 땅이 없어져요. 지금은 굉장한 교육의 위기라고 보는데요. 선생님들은 다 제대로 교육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거든요. 제도가, 국가가 그걸 방해하는 거죠. 시민들이 경쟁을 유발하고, 학교를 불신하면 더 힘들어져요. 선생님들은 이렇게 교육할 수 있도록 제도만 갖춰주면 할 수 있어요. 교과서가 변화하려면 제도가 먼저 바뀌어야죠.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고민이 많아질 이야기라서 어떤 생각이신지 궁금했어요.


부모들은 어쨌든 학교 안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당장 필요할 수는 있어요. 그게 고등학교죠. 대학을 가야 하니까요. 하지만 외우는 학생이 유리한지 생각이 많은 학생이 유리한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봐요. 저는 생각이 많은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서도 유리하다고 보거든요. 개념이 강하니까요.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어요.

 

이 책의 활용법을 박사님께서 직접 들려주세요.


지금 5학년이더라도 4학년 책을 보고 느끼는 게 있으면 충분하거든요. 사실 5학년 수학도 소재만 달라지는 거니까요. 이 책을 보고 ‘수학이 이런 거구나’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거예요. 이 책은 학교 진도와 맞게 구성해두었거든요. 이 책을 미리 볼 필요는 없어요. 오늘 학교에서 100을 배웠다면 이 책에서 해당 내용을 보면 되겠죠. 선생님 수업이 딱딱해도 이 책 내용이 있으면 받아들이는 게 다를 거예요. 굳이 본다면 한 시간 전이나 하루 전에만 이 책을 보면 돼요. 한참 전부터 이 책을 미리 볼 필요는 없어요. 학교 진도와 같이 맞춰서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교과서’라고 붙인 거예요. 그렇다면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겠죠. 여기서 개념을 이해했다면 다른 문제집을 풀어보세요. 이 책 하나로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개념연결 만화 수학교과서전국수학교사모임 초등수학사전팀 원저/김남준, 최수일 글/김석 그림 | 비아에듀
‘이해 속도가 느린 아이는 호기심을 계속 가질 수 있도록 아이를 철저히 인정하고 배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느려도 괜찮아!’라는 심정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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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엄기호 “2인칭 서사 ‘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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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전시해야 하는 사회. 내 고통이 주목받지 못하면 마이크를 얻지 못한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듣는 감수성은 우리에게 잊힌 지 오래다. 누군가의 고통을 목도하고 그 곁을 가보려고 하지만, 고통의 당사자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넌 내 고통을 몰라”, “아무리 노력해도 넌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같은 말이다. 과연 고통은 나눌 수 있는 것일까?

 

“곁에서 쓴, 곁이 있는 글”을 추구하는 사회학자 엄기호가 ‘고통의 곁’을 성찰했다. 그는 왜 고통을 말하지 않고 ‘고통의 곁’에 주목했을까. 엄기호는 오랫동안 인권 참사의 현장에서부터 육체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겪는 이들이 그 곁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며 당황했다. 고맙다고 말하지만 결국 ‘곁’을 밀어내는 상황. ‘곁’에 있는 사람은 과연 그 ‘곁’에 오래 머무를 수 있을까?

 

“고통을 겪는 이가 자기에게 함몰되면 그 곁도 같이 파괴된다.”(12쪽)

 

꽤 오랜 시간 엄기호는 2인칭의 시선으로 세계를 사회를 사람을 바라봤다. “고통을 겪는 이를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17쪽)이기에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썼다. 표지 그림을 보자. 한 여성이 턱을 괴고 무엇을 곰곰 생각한다. 탁자 위에는 실 전화기가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이는 없다. 작가 이선일의 그림 「여보세요」의 한 부분이다. 고통은 특별한 사건만으로 발생되지 않는다. 엄기호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고통을 들여다보았고, 고통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또다른 ‘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모든 말은 응답을 기대하며 응답하기에 말이 된다.”(13쪽)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곁’에 대해 ‘이야기’로 응답해야 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곁의 의미를 다듬고 곁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18쪽)이라고 말하는 사회학자이기 전에 이야기꾼 엄기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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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한 2인칭 이야기

 

서문만 서너 번 읽은 것 같다. 고통을 생각한 적은 많지만, 고통의 곁을 생각한 적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나더라.

 

‘고통을 마주 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국제 인권운동을 하면서부터다. 인권이란 늘 피해자를 만나고 그들의 고통을 다루는 일이니까.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의 고통을 강조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증언자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정의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전시하여 소비하지 않되 고통의 절대성에 사람들이 충분히 공명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고통을 겪는 이들의 주변 세계를 주목하게 됐다.

 

언제부터 집필에 들어갔나?


고통과 연대의 문제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은 3,4년 전부터 했다. 책을 본격적으로 쓴 건 7월쯤인데, 다른 책에 비해서 속도가 많이 안 났다. 책 제목을 결정한 것도 인쇄하기 며칠 전이었고. 표지도 막판에 바꿨다.

 

제목과 그림을 함께 보니까 책이 궁금해지더라.


지난해가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었다. ‘오늘, 인권을 그리다’ 전시회에 갔는데 이선일 작가의 그림을 보는 순간, 책이 생각났다. 이번 책을 쓰면서 많이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였다. 궁극적으로 고통의 핵심, 슬픔의 핵심은 외로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그림에 너무 잘 표현돼 있다. 절규하는 외로움이 아닌 일상성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2014년에 출간된 『단속 사회』와 연결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도 ‘고통’과 ‘곁’에 대해 오랫동안 성찰한 것으로 기억한다.


초고를 쓸 때 생각한 제목은 ‘고통의 곁, 곁의 고통’이었는데 좀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해보니 ‘곁’이라는 말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도 아니고, 학문적으로 정리된 것도 아니라서 ‘곁’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서 ‘곁’의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또 ‘고통’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고.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 의식이었으니까 담백하게 가려고 했다.

 

“고통에 대한 무지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고통을 성찰하고 쓰는 일이 저자에게도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건,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였다.  『아픈 몸을 살다』  같은 경우는 저자가 실제로 질병(고통)을 겪은 1인칭 이야기지만,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는 고통에 대한 2인칭 이야기니까. 내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해준 사람들을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가의 윤리가 나의 숙제였다. 또한 글 쓰는 사람으로서 독자들이 읽으면서 얻고 느껴야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문제도 있으니까, 들은 사람으로서의 윤리와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윤리, 그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가 고민이었다.

 

‘어떻게 써야 하는가?’의 문제의식을 느꼈겠다.


누군가의 고통의 곁에 있으면서, 그 이야기를 해준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 써도 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고통스러운 장면을 내가 다 쓴다면, 내가 비판하고자 했던 ‘고통의 전시’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1인칭이 아닌 시점에서 글을 쓰거나 기록할 때의 딜레마이자 간극이었다.

 

1부 ‘고통의 지층들’에서 실제 고통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과 관계가 어그러진 ‘선아’ 씨, 젊은 나이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승우’ 씨, 일흔을 넘기면서 온갖 노인성 질환이 찾아와 고통스러워하는 ‘재희 어머니’,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가 신흥 종교에 빠진 ‘덕룡 아버지’. 이들은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독특한 상황에 있는 경우가 아니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재희 어머니의 경우, 한국의 80% 이상의 어머니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거다. 남편과 갈등을 겪는 선아 씨나 질병으로 고통 받은 승우 씨 역시 매우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다. 주변 보통 사람들의 보통 고통, 하지만 그것이 보통 고통이 되는 한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재희는 재희 어머니의 고통을 돌보는 딸이다. 즉 ‘고통의 곁’에 있는 사람인데, 재희 곁에는 재희의 힘듦을 이해해주는 또다른 ‘곁’이 있다. 그래서 재희는 ‘고통의 곁’에 있으면서도 버틸 힘을 갖는데, 이런 상황은 사실 흔치 않다.


가장 중요한 게 가족 간의 신뢰 문제인 것 같다. 재희의 형제자매는 어렸을 때부터 신뢰 관계가 있었다. 때문에 역할 분담도 가능했는데, 한국의 보통 자식들은 결혼한 후로는 자신들이 꾸린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더 강하다. 사실 재희 가족을 다루기는 조심스러웠다. 고통의 곁에 또 다른 곁이 되어준 가족의 케이스가 많진 않으니까.

 

선아는 남편과의 문제를 집단 상담, 마음 수양으로 고통을 풀고자 했다. 타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룰 힘을 키우고자 했다.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이며 분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루에 4킬로미터씩 꼬박꼬박 걷는 시간을 갖는다.


선아는 ‘마음과 분리’를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바깥의 발견을 통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떨어진 케이스다. 걷기가 좋은 것은 홀로 걸을 때도 있지만 가끔 동행이 있다는 점이다. 선아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들판을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바깥’을 만난 셈이다. 고통을 극복하는 문제는 결코 사회적인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실존적인 힘으로 견디는 것인데, 문제는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도를 닦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통의 곁에서 자신의 고통을 극복한 사람을 보면 굉장히 오랫동안 자기 수양을 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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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이 아닌 경청은 경청이 아니다

 

관종의 시대다. 왜 관종이 될 수밖에 없을까? 왜 관종이 되었나?를 따져보면, 우선 주목을 받아야만 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 사회경제의 단면 같다. 무슨 막말을 해도 뉴스에 실려야 하니까. 서양에서는 ‘주목’이라고 말하는데, 주목을 받아야만 정치를 할 수 있고, 정치를 할 수 있으려면 또 주목을 받아야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정 욕구도 있지만, 일종의 경제다. 유튜버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실제로 돈을 벌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주목 받아야 하고 주목을 받으려면 자극적으로 더 세게 말해야 하지 않나.

 

맥락을 읽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긴 글을 읽지 않으니까 자극적인 문장 몇 개, 사진 하나를 보고 사건을 단순하게 판단해버린다.


사람들에게 분별심이 있어야 하는데 선명도, 대비도가 높은 이야기만 소화되니까 점점 문법적으로 가버린다. 즉 긴 글이 필요 없어진 상황이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교양의 가장 큰 역할은 쪼개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어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차이 없는 것을 쪼갤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우치다 타츠루는 이를 ‘해상도’로 비유한다. 즉 교양이 있다는 말은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한 해상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목 경제에서는 해상도가 높은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다. 분별력이 높아져야 하는데 공론장 자체가 파괴되어 있으니까 신중한 언어가 나올 수 없다.

 

“자기에게 함몰된다는 것은 타인의 말을 듣고 바로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법을 잊는다는 말(13쪽)”라고 했다. 어쩌면 곁이 파괴되는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고통스러운 상황이 되면 나만 보인다. 옆의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경청하고 응답해야 한다. 여기에서의 경청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든 하지 않든 경청 역시 돌려주는 것(re-)이 있는 응답이어야 한다. 응답이 아닌 경청은 경청이 아니다. 고통이 곁을 파괴하는 이유는 호소의 일방성에서 비롯한다. 고통을 호소하는 말은 일방적으로 들을 수만 있을 뿐, 응답하기 어렵다. 고통의 곁과 그 곁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만들어진다. 곁에 서 있는 사람의 말에 다른 사람의 말이 보태지고, 그 말에 또 곁에 선 이의 응답이 이어져야 우리에겐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3부 ‘고통의 윤리학 - 고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곁에 대하여’를 주목해서 읽을 독자가 많을 것 같다. 자기 언어로 자신의 고통을 말하기 전에는 고통이 끝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내 언어를 갖는 일은 쉽지 않다.


절규하는 자에서 말하는 자로 바뀌려면, 글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통해 우리는 고통받는 타인의 곁뿐만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는 자기의 곁에 설 수 있다. 중요한 건 ‘신중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글쓰기다. 순간을 포착하고 박제하는 데 집중하면서 우리의 읽는 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예리한 사람인지를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만 늘고 있다. 주목이 정치가 되고 경제가 된 사회에서, 소비자본주의에 맞게 시간을 아끼며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이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고통에 대한 접근에서는 고통의 본질을 보여주는 장면에 대한 예리한 포착보다 그 지층에 대한 신중한 읽기와 쓰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고통을 겪는 이와 그 곁에 선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보태고 나누면서 고통에 대한 쓸모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저자가 선아 씨에게  『걷기의 인문학』을 권하자 선아는 “난 이제 책 읽는 게 힘들어요. 대신 그 책 얘기를 나한테 해주면 되겠네요”(122쪽)라고 말했다. 이 장면이 퍽 인상적이었다.


선아가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한 건 책을 읽기 싫어서 한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던 거다. 요즘 사회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추천만 한다. 이 영화를 봐라, 이곳에 가보라고 추천할 뿐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사람은 없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재밌어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이 궁금해지니까. 선아의 이야기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 달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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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을 의식하게 하는 ‘곁’이 있으면

 

2018년에 많이 읽힌 책을 살펴보면 대개 위로하는 책들이다. 올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지나면 그 위로가 위로가 아니라는 걸 알지 않을까? 시대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참 서글픈 일이다. ‘자기계발의 시대가 가고 위로의 시대가 왔다’는 말, 너무 슬프지 않은가? 자기계발을 했는데 자기계발이 안 됐고, 위로 받고 싶었는데 결국 단 시간의 위로로 끝났다. 지난해 초부터 사람들이 어? 하면서 당황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한국 사회가 바뀔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바뀌었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지표와 상관없이 삶의 자리가 더 팍팍해지고 격렬해졌으니까. 사회적 돌파구가 안 열리니까 버티기가 어려워서 위로를 찾는데, 또 위로가 안 되니까 사람들이 더 과격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연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가장 오해 받는 것 중 하나가 개인과 개인주의라는 말이다. 개인이 성립하려면 ‘나’라는 내가 버티고 있어야 하는데, 자기한테 함몰되면 결국 자기가 사라진다. 지금 시대는 나를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인데, 나를 너무 강조하면 내가 사라진다. 개인주의자가 되려면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바깥에 대한 관심을 꺼버리면 역전된 나르시시즘이 생긴다. 나를 너무 사랑해서 자기만 너무 불쌍하게 바라보게 되니까. 나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자신을 죽여버린다. 그래서 곁, 바깥이 있다는 걸 의식하고 사는 게 중요하다. 바깥을 의식하게 하는 ‘곁’이 있으면 고통에 함몰돼 있어도 한번씩 주변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내가 지켜야 할 곁이 있을 때,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생각하면서 나를 찾아갈 수 있다.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까?


고통의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고통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읽지 않을까. 중요한 건 상호성이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건 고통의 당사자일 때보다 곁에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고통의 곁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누구랑 말할 수 있는가. 2인칭 시점을 회복하려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 고통의 과정에 있는 사람은 삶이 파괴되는 것만이 아니라 재건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통을 피해자화해서 바라보는 것 중 가장 큰 문제는 고통 받은 사람이 재건되는 삶을 보지 못하게 차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격렬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조차도 그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남의 고통에 대해 곁의 위치에서 말할 때조차도 격렬한 고통 속으로 발언자를 밀어 넣고 있다. 즉 삶이 파괴되도록 밀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고통을 말하는 힘으로 그 삶이 재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비슷한 경험을 겪는 사람이 다음을 볼 수 있다.

 

누군가의 고통을 지켜보며 그 곁에 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을 쓸 때 원칙이 ‘사회를 폭로하고 사람을 옹호하라’다. 이 문제에 있어 옹호 받아야 하는 사람은 고통의 곁에 있는 사람이다. 고통의 자리에 관한 어려움과 별개로 고통의 곁에 선 사람들의 서사를 우리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보통 사람들의 보통 고통을 다루려고 한 건, 우리 모두가 대개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대부분 2인칭의 느낌으로 세상을 살지 않나? 2인칭의 삶이 더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1인칭끼리의 전쟁만 보이는 게 아니라 2인칭이 두꺼워졌으면 좋겠다. 고통을 겪는 이를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엄기호 저 | 나무연필
한국 사회 내부의 깊은 속살을 드러내왔던 사회학자 엄기호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고통의 지층을 한 겹씩 들여다보면서 발견하고 성찰해나간 우리 시대 고통의 지질학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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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유라 “평범한 주부가 6개월에 천만원 모은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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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2040 청장년층에게 목돈 마련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수백만 원의 등록금부터 수천만 원의 자취방 보증금, 수억 원을 호가하는 집값까지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필요한 돈은 점점 많아지는데 벌이는 고만고만하다. 노후대비는커녕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오는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현실에 EBS 특별기획 프로그램 <호모이코노미쿠스>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액 연봉자가 아닌 회사원, 아르바이트생, 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이 6개월간 천만 원 모으기에 도전한 것. 심층면접을 통해 최종 선정된 8명의 참가자들은 재테크전문가 이 대표, 성선화, 김유라 멘토의 도움으로 소기의 성공을 거뒀고, 그 진행 과정과 결과가 방송과 함께 책 『6개월에 천만 원 모으기』에 엮였다.


다소 불가능해 보였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천만 원 모으기에 성공한 참가자들의 비결은 사실 특별하지 않다. 적게 쓰고 많이 저축하는 것. 당연하지만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이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호모이코노미쿠스>의 멘토인 재테크 전문가 김유라 저자와 그의 멘티 서동연 씨를 만나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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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는 첫 걸음, 천만 원 모으기


천만 원 모으기가 왜 중요한가요?

 

통장에 돈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돈이 없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월급이 입금되면 다 써버리는 소비패턴이 굳어져 있죠. 하지만 돈을 한 번이라도 모아본 사람은 돈 쌓이는 재미를 알아요. 천만 원을 가졌을 때의 기분을 느껴보았으니까요. 그럼 2천, 3천, 4천… 이렇게 1억 원까지 모을 수 있죠. 요즘 집값을 생각하면 천만 원이 턱없이 적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천만 원은 생각보다 모으기 어려운 돈이에요. 50만 원 씩 모으면 20개월이 걸리고, 100만 원씩 모아도 10개월을 투자해야 하죠. 부자가 되는 기분을 느껴보고, 돈을 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있어서 천만 원은 첫걸음인 셈이에요.

 

책에 등장하는 여러 솔루션 중, 특히 통장 쪼개기가 특히 유용하게 느껴졌어요.


통장을 나누지 않고도 계획된 소비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참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통장 쪼개기가 필요합니다. 식비, 교통비, 의류비 등 세부 항목별로 사용할 금액이 정해져 있어야 하는데 내키는 대로 카드를 쓰니 무분별한 곳에 돈이 다 나가서 가장 중요한 곳에 사용할 돈이 부족하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이 저축을 깨게 되죠. 저는 목적별로 돈을 구분해 쓰는 걸 중요시해요. 나라에서도 매년 각 부처마다 정해진 예산을 편성하는데, 가정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나요? 무분별하게 돈을 쓰면 가정 경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반면 지출을 균일하게 만들면 저축도 균일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죠. ‘난 체크카드를 쓰는데 왜 돈이 안 모이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매월 생활비를 정하고, 그걸 나누어 주급으로 자동이체 시켜보길 권해요. 매주 쓸 수 있는 돈이 정해져있다 보니 자연스레 절약하게 되거든요. 시스템으로 사람을 통제하는 거죠. 단순히 ‘한 달 생활비 50만 원’이라고 정해두면 일주일 만에 50만 원을 다 써버릴 수도 있어요. 체크카드에 남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계획된 소비를 하기 어려워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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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반적으로 몇 개의 통장을 나누면 좋을까요?


일단 ①월급 통장 하나가 있어야 해요. 이 통장은 돈을 배분하는 역할일 뿐이지, 여기서 돈을 쓸 순 없어요. 그 통장에서 ②생활비 통장으로 주급을 자동이체 시키고 ③관리비 통장을 만들어 보험료, 아파트관리비, 공과금 등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관리비를 계산해 이체해 놔요. 이렇게 하면 관리비를 연체해 신용등급이 떨어지거나 가산세가 올라가고 보험이 해지되는 등의 피해를 막을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④예비비 통장을 만들어요. 여기는 자동차세, 자동차보험료, 재산세, 집안 경조사 금액 등 일 년에 한 번씩 들어가는 비용을 합산해 12로 나누어 저축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자동차 보험료가 36만 원이라면 한 달에 3만 원씩, 양가 부모님 생신 축하금이 40여만 원 정도 든다면 나누기 쉽게 48만 원을 책정해 한 달에 4만 원씩 이체하는 거죠. 집집마다 필요한 것이 다르니 각 항목을 정해보고, 한 달에 모아야 할 돈을 계산해 매달 이체하면 연간 예비비가 마련돼요. 이렇게 해서 필요할 때마다 그 통장에서만 돈을 빼서 사용하는 거예요. 그럼 저축을 깨지 않고도 소비를 할 수 있어서 내 통장에 있는 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어요. 단 각 통장에 돈을 이체할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용도 외 사용은 절대 안 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해요.

 

저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대부분 ‘더 이상 줄일 수 있는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소비를 줄일 방법을 어디서부터 찾아보면 좋을까요?


우선 고정 지출을 줄이는 게 중요해요.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누워만 있어도 나가는 돈이니까요. 보험료, 통신비, 관리비 같은 것들이죠. 몰라서 그렇지 잘 찾아보면 통신비 같은 경우 온가족 할인 요금이나 추가약정 제도 등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거든요. 또 최신형 휴대폰을 구입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휴대폰 이자가 굉장히 비싼 거 아시나요? 요금에 합산돼 나오기 때문에 따져보지 않게 되는데, 휴대폰을 살 때는 단말기를 현금으로 구입한 뒤 개통하는 게 훨씬 유리해요. 또 하나의 팁이 있다면 일주일 이상 집을 비울 때 통신사에 전화해 인터넷 사용을 중지하는 거예요. 그럼 기본료에서 그 기간만큼의 요금이 빠져요. 이런 식으로 10원이라도 돈이 새어나가지 않을 방법을 찾아보는 게 중요해요. 무엇보다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건 보험료예요. 의외로 보험료를 너무 많이 내서 고통 받는 분들을 쉽게 볼 수 있거든요. 보험이 만일의 일을 대비하는 돈이라면, 저축은 긍정적인 일을 대비하는 돈이거든요. 내가 죽고 난 후, 혹은 아프고 난 뒤의 일에는 매달 몇십만 원씩 투자하면서 나의 평범한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나도 하지 않는 건 위험한 일이죠. 보험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저축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어요. 현재 보험료를 많이 지출하고 계신 분들은 꼭 리모델링을 받아보시길 권해요.

 

여러 상담 사례 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요?


최근에 어떤 분이 상담을 요청하셨는데 저축을 하나도 못 하는 집이었어요. 지출 내역을 들여다보니 아이 교육비에 상당한 돈이 나가고 있더라고요. 아직 어린 아이였는데 피아노, 태권도 등의 학원을 많이 다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죠. 훗날 아이가 크면 이런 것들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집은 왜 돈이 없냐고 원망을 들을 지도 모른다고요. 엄마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이의 꿈과 전혀 관련 없는 교육에 계속 돈을 투자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교육비를 줄이자고 설득했어요. 끊을 수 없다면 학원을 격달로 다니도록 조정하자고요. 아이가 정말 피아노를 좋아한다면, 집에 있는 피아노만 치면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 테니까요. 다행히 어머님께서 제안을 받아들였고, 피아노 학원에 가서 형편이 어려워 격달로 보내고 싶다고 용기 있게 말하셨대요. 그랬더니 피아노 선생님이 학원비를 할인해주셨어요. 그분이 제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매달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학원을 격달로 보내는 건 생각하지 못했고, 형편이 어렵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결코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진실을 말하면 상대방이 받아들여 준다는 걸 느끼셨대요. 우리 모두 돈에 있어서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돈이 정말 필요에 의해서인지, 단순히 불안이나 스트레스 때문인지도 잘 살펴보아야 하고요.

 

사회 초년생의 경우는 어떨까요?


우선 신용카드를 절대 사용하면 안 되고, 앞서 이야기했듯 주급으로 생활비를 나누어 쓰는 게 중요해요. 만약 일주일에 10만 원씩 쓰기로 책정했다고 하면, 그 돈을 전부 술 마시는 데 쓰든 호텔에서 밥값으로 쓰든 전혀 상관없어요. 사회초년생이 기억해야 할 건 ‘어디에 썼나’가 아니라 ‘얼마를 썼나’예요. 사람들은 자잘한 걸 많이 쓰면서 알뜰하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편의점에서 만 원어치 군것질거리를 열 번 사면 10만 원이죠. 오히려 호텔에서 한 번 비싼 밥을 먹고 나머지 일주일간 집에서 간장계란밥을 먹는 게 더 멋진 삶일 수도 있어요. 알뜰한 것과 계획적인 소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게 문제죠. 아껴서 폼 나게 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열심히 저축해서 해외여행도 다니고요. 저축 안 하고 신용카드로 여행 다녀온 뒤 내내 할부금을 갚아야 한다면 여행이 끝난 뒤의 일상은 불행이잖아요.

 

종잣돈을 모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절약을 하다 보면 슬럼프가 찾아올 수 있는데,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아요. 각 포털사이트마다 절약카페가 많거든요. 그런 곳에 가입해 서로 정보도 나누고, 위로와 응원을 받는다면 힘이 될 거예요.

 

천만 원 모으기에 성공한 이후에는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요? 


워런 버핏이 투자 원칙을 말했어요. 첫 번째 절대 잃지 않는다, 두 번째 절대 잃지 않는다, 세 번째 절대 잃지 않는다. 천만 원을 절대 잃지 않는 게 중요해요. 금액이 크지 않잖아요. 천만 원으로 눈에 띄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는 거의 없어요. 저는 스스로 투자 상품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때까지 이 저축 패턴을 좀 더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목돈이 생겼다고 섣불리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거죠. 꾸준한 저축으로 돈을 계속 늘려나가면서 동시에 재테크 공부를 해야 하고요. 재테크에 대한 공부와 고민은 오래할수록 좋거든요.

 

천만 원 모으기를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남과 비교하지 않는 거요. 다른 사람은 뭘 하지? 다른 사람은 뭘 먹지? 라며 다른 사람의 생활을 자꾸 보고, 따라 하기 때문에 돈을 더 쓰게 돼요. 비교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고 살 수 있잖아요. 만약 내가 원하는 게 종잣돈을 모아 부자가 되는 거라면 지금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해지거든요. 통장 잔고는 탄력이 붙으면 계속 늘어나요. 한 번 플러스 인생을 살면 계속 플러스가 되죠. 다른 사람을 관찰할 시간에 나를 들여다보고, 소비하는 순간의 행복보다 통장잔고의 든든한 행복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6개월에 천만 원 모으기 프로젝트


인터뷰를 함께한 서동연 씨는 2017년, EBS 특별기획 <호모이코노미쿠스>에 지원해 김유라 멘토와 함께 6개월에 천만 원 모으기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남편의 외벌이로 세 아이를 키우던 그녀에게 이 도전은 얼핏 무모한 것처럼 느껴졌다. 서동연 씨는 과연 얼마를 모을 수 있었을까?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6개월 만에 천만 원 이상을 모았고, 프로젝트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그뿐 아니라 글쓰기라는 새로운 취미를 통해 작가의 꿈까지 꾸게 됐다. 가정경제는 물론 서동연 씨 삶의 방향까지 바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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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티 서동연 씨(은행원/ 육아휴직 중)

 


30대 초반의 서동연 씨는 세 남매의 엄마이자 육아휴직 5년 차 은행원이다. 휴직 기간이 길어진 탓에 가계수입은 남편의 월급 340만 원이 전부. 대출금을 상환하고 생활비를 쓰다보면 어느새 저축할 돈은 전혀 남지 않았다. 서동연 씨의 집을 방문한 김유라 멘토는 무분별한 지출을 가장 먼저 지적했다. 서동연 씨 가정의 제일 큰 지출은 식비였다. 그녀는 마트를 놀이터처럼 자주 드나들며 독박육아의 스트레스를 군것질과 외식, 배달음식으로 해소해왔다고 한다. 주방 찬장에는 1 1으로 대량 구매한 과자와 초콜릿이 가득했다. 낭비는 물론이고 건강까지 해칠 수 있는 생활습관이었기에 개선이 필요했다.

 

상담 끝에 김유라 멘토는 그녀에게 하루 만 원씩, 한 달 30만 원을 생활비로 책정했다. 신용카드 사용은 당연히 금지됐다. 30만 원 생활비에 맞춰 서동연 씨는 생활비 통장을 만들어 매달 1일, 7일, 14일, 21일, 28일에 6만 원의 돈이 입금되도록 했다. 지출을 파격적으로 줄여야 했던 그녀는 세 아이의 머리를 직접 잘라주고, 집 근처 청과물 도매시장을 이용해 그때그때 장을 봤다. 더불어 냉장고에 묵혀둔 식재료를 활용해 밥상을 차리는 등의 노력 끝에 생활비 30만 원에 맞춰 생활할 수 있었고, 6개월 뒤 1,155만 원을 모았다.

 

어떤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나요?


서동연 : 직업이 은행원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크게 모아본 경험이 없었어요. 돈을 써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행복하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김유라 멘토님 블로그에서 ‘돈을 쓰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았는데, 과연 어떤 행복일까 궁금하고 배워보고 싶더라고요. 이참에 독한 마음을 먹고 돈을 모아보자는 생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하지만 선정되고 나서는 무척 힘들었죠.(웃음) 매월 80만 원 정도 사용했던 생활비를 하루아침에 30만 원으로 줄여야 했으니까요.

 

소비를 줄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실천했나요?


서동: 고정적인 생활비 중 줄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미용실에 가는 비용이 꽤 크더라고요. 저희는 다섯 식구이기 때문에 한 달간 미용실에서 쓰는 돈만 8만 원 이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미용 가위와 이발기를 사서 아이들 머리를 직접 잘라줬어요. 결과물도 생각보다 괜찮았고, 엄마가 머리를 잘라주니 아이들도 좋아하더라고요. 또 자주 갔던 대형마트에 발길을 끊고,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 그날그날 먹을 식재료만 장을 보기 시작했어요. 사실 처음 프로젝트에 돌입하고는 간식을 끊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김유라 멘토께서 블로그를 해보라고 권해주셔서 간식 대신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 됐어요.

 

김유라 : 저는 한 달 30만 원이라는 생활비만 정해주었을 뿐, 구체적 실천 방법들은 모두 서동연 멘티가 생각한 것들이에요. 30만 원의 생활비가 무척 적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저도 세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하루 만 원이면 집에서 가족과 생활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걸 알아요. 외식을 못하고, 여행을 못갈 뿐인 거죠. 평생 생활비를 30만 원 쓰라는 게 아니라 6개월간 그렇게 살면서 절약하고 저축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에요. 6개월의 절약이 끝난 뒤, 다음 달부터 하루에 2만 원을 쓰면 기분이 어떨까요? 무척 넉넉해진 것 같겠죠.(웃음) 푼돈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 기분을 한 번 느껴보면 만 원이 우리 가족을 살리는 소중한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그걸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프로젝트 초반과 후반의 자신을 비교해 보면 어때요? 돈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서동연 : 초반에는 하루 만 원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저를 위축되게 만들었어요. 이제 사고 싶은 것도 못 사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또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과 김유라 멘티께서 계속 격려하고 응원해주셔서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천만 원 모으기 프로젝트는 단순히 절약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 것 같아요. 지금은 천만 원이지만, 곧 이천만 원이 될 테고 그 뒤엔 삼천만 원을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웃음) 세 아이를 키우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는데 천만 원을 모은 경험 덕분에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남편의 반응은 어땠어요?


서동연 : 저 혼자 절약하는 게 아니라 동참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처음엔 너무 싫어했어요. 이렇게 적은 돈으로 어떻게 생활하느냐고 걱정했는데, 조금씩 통장에 돈이 모이는 걸 보니 바뀌더라고요.(웃음) 지금은 너무 좋아해요. 같이 절약을 하면서 서로 더 돈독해진 느낌이 들어요.

 

프로젝트가 끝난 지 1년이 넘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요?


서동연 : 6개월간 모은 천만 원을 전부 집 사는 데 보탰고, 얼마 전에 이사를 갔어요.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는 6개월간 너무 절약하는 바람에 쌓인 스트레스가 많아 소비가 잠깐 예전처럼 돌아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최근 다시 고삐를 잡고 절약생활을 시작했죠. 한 번 그렇게 절약을 해보니 지금은 별로 힘들지 않아요. 아마 절약 근육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앞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주 정해진 생활비를 입금해 사용하는 습관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어요. 프로젝트 당시보다 금액을 조금 늘리긴 했지만요.(웃음) 이번 달 말에 육아휴직이 끝나서 다시 회사에 복귀하는데, 수입이 늘어난다고 해서 지출까지 늘어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허리띠를 졸라맬 생각이에요.

 

2019년의 계획으로 종잣돈 마련을 결심한 분들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들려주세요.


서동연 : 절약을 하는 동안 ‘돈이 없어서 돈을 못 쓴다’고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돈이 있어도 돈을 안 쓴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컨트롤하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제가 그랬듯이 생각을 조금만 전환해서 덜 스트레스 받고 즐기는 저축을 하시길 바랍니다.

 

김유라 : 기록의 힘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저축하는 과정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기록으로 남기면 성취감이 늘거든요. 소비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SNS 대신 절약 카페들 자주 들어가 나와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해보시길 권해요. 그곳에서는 ‘오늘 무지출 했다’는 게 가장 큰 자랑이거든요.(웃음) 돈을 안 썼다고 자랑했을 때 “왜 그렇게 궁상맞게 사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를 가난하게 만들려는 사람이에요. 그런 말 듣지 말고, 꾸준히 저축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축을 먼저 한 뒤, 지출을 하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6개월에 천만 원 모으기성선화, 김유라, 이대표, 서영아 공저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6개월 간의 경험을 통해 그들이 배운 것은 바로 희망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제 참가자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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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상욱 “물리를 읽으면서 인간이 보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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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리현상이다. 공학적으로도 많은 중요한 응용을 갖는다. 따지고 보면 전자공학의 절반 이상은 진동과 관련된다. 이공계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의 대부분이 진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동은 떨림이다. 비슷한 말이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진동은 기계적이지만 떨림은 인간적이다.
- 6-7쪽


물리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모두 원자와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앞에 있는 찻잔, 매일 마주하는 노트북 모니터와 휴대전화는 왜 딱딱할까? 왜 이것은 검은색이고 이것은 흰색일까? 세계의 모든 존재를 이루는 단위까지 내려가 우리 존재부터 우주라는 커다란 세계까지 들여다보고 질문하는 물리학자는 비과학자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김상욱의 기존 책 제목( 『김상욱의 과학공부』  , 『김상욱의 양자 공부』 )처럼, 김상욱 물리학자는 과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떨림과 울림』도 물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을 소개했지만, 그는 더 나아가 인문학의 언어를 빌려 물리학을 설명했다.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물리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설렘이 다른 이들에게 떨림을 전해주길 바랐다. 이 떨림이 어떻게 전해질지, ‘울림은 독자의 몫이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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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언어로 자연과학을 이야기하기


강의하는 대학을 옮기셨다고 들었어요. 근황을 좀 말씀해주신다면요.

 

재작년까지는 부산대에 있었고 경희대로 오게 되어서 정신없는 한 해였죠. 삶의 터전을 서울로 옮기고 새로운 학생과 조직을 만나서 일이 많았어요. <알쓸신잡3> 출연하기로 한 게 작년 6월 정도였던 것 같아요. 프로그램 촬영하는 중에  『떨림과 울림』이 나오게 됐고요. 가을부터 천천히 고치겠다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었는데 프로그램 홍보 효과로 인해 2018년 안에 책이 나오게 됐어요.


제목이 ‘떨림과 울림’이에요. 문학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울림도 여러 중의적 의미가 있고요.


출판사에서 다섯 개 정도 후보를 주셨는데 처음부터 마음에 든 게 ‘떨림과 울림’이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책의 의도 자체가 인문학의 언어로 자연과학을 이야기해보자는 취지가 있었어요. 내용은 과학적이지만 인문학적인 내용으로 바꾸는 게 제일 좋거든요. 다른 대안은 없을 만큼 잘 지은 제목인 것 같아요.


프롤로그 중 ‘물리학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를 바랐다’는 문장이 있었어요.


의도가 그랬어요.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바탕으로 쓴 책인데, 물리를 설명하는 입문서로 쓸 수 있었겠죠. 그러면 ‘김상욱의 물리 교실’이 되었을 거예요. 칼럼 연재를 끝내면서 보니 제가 저도 모르게 인문학적으로, 감성적으로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물리를 설명한 책은 많고, 비슷하게 써봐야 많은 책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형태로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편집하면서 더 인문학적으로 보이게 많이 고쳤어요.


은근히 과학자의 개그 같은 것도 느껴져요.


본래 글은 농담이 난무하는 편이에요. 그편이 과학을 쉽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서요. 이 책을 편집할 때는 유머 코드는 많이 빼고 인문학적 감성을 더 넣으면 좋겠다고 해서 편집자님과 실랑이 끝에 유머를 거의 다 뺐어요. 제가 말을 잘 듣는 편이어서요. 싸우다 알겠습니다, 하고 들었죠.


말 잘 듣는 타입이실 것 같아요.


얼굴에 ‘범생이’라고 쓰여 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과학은 세상을 바꾸는 근거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물리’에 관심이 많다고 하셨어요.


20세기 이후의 물리학은 다 양자역학이에요. 19세기까지 고전 물리학이 사람의 오감으로 감지되는 상황을 다뤘다면, 20세기 초에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의 거대한 혁명이 나타났죠. 이후 연구는 원자 없이 할 수 없어요. DNA 연구자는 DNA와 원자를 연구하고, 재료과학도 원자로 하고, 20세기 이후 모든 과학은 어느 과목이나 양자 역학을 필수로 가르치고 있어요. 현대 문학과 고전문학이라는 비유로 생각하면 가장 적절할 거예요.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다 현대 문학을 하는 거잖아요. 양자 역학은 분과라기보다는 필수 과목이에요.


저에게는 물리학이 물성으로 이루어진 학문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양자 역학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이론적으로 다가가야 하니까 어렵다고 생각했고요.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어려워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건 아시잖아요. 하지만 누가 물어본다면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망원경으로 관측해도 손쉽게 알 수 없어요. 몇십 년씩 관찰하고 연구해야 보이거든요. 양자역학만 어려운 게 아니라 과학 자체가 인간을 배제한 학문이어서 그래요. 인간의 경험과 이해 방식으로 우주가 이해될 거라는 믿음을 깨뜨리죠. 양자역학이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 언어가 없어서 그래요. 고전 역학은 적어도 용어는 있어요. 지구가 도는지 태양이 도는지 판별하긴 어렵지만, 태양이 돈다는 게 뭔지 상상할 수는 있어요. 마찬가지로 상대성 이론도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걸 상상해 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전자가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한다는 말이 나오면 이건 머리에 그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알리려고 시도하는 원동력은 뭘까요?


알리는 것에는 과학의 지식적 측면과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과학이 있어요. 두 번째를 과학적 태도라고도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서 과학은 과학적 사고 방식으로 가장 크게 기여했어요. 누가 한 이야기나 책에 쓴 증거가 아니라 물질적 증거, 실험으로 재현되는 증거에 입각해 이야기하는 게 바로 과학이에요. 과학적 사고방식은 권위를 깨뜨릴 수 있어서 대단해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권위가 아무리 대단해도, 뉴턴이라는 물리학의 아버지의 권위가 아무리 대단해도 특허청에서 일하는 말단 기사 아인슈타인이 그 권위를 깨뜨릴 수 있어요. 서양에서 생겨난 이 인식이 사회를 바꾸고 민주주의를 만드는 합리성의 전통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합리적 사고방식은 철학에도 있지만, 그걸 물질적 증거까지 끌고 와서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지를 인정하는 사고방식인 거죠.


과학의 지식적 측면을 알린다는 점에서는 어떤가요?


첫 번째 이유라면 모두가 지식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요. 과학적 지식은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데, 제가 그걸 말하는 한 가지 이유는 제가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과학적 지식을 알면 사람들이 사는 데 도움이 돼요. 이 지구가 우주에서 보잘것없는 하나의 행성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주거든요.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철학적으로 근거를 댈 수도 있지만, 생물학적으로 DNA가 인종 간의 차이보다 한 민족 내에서의 차이가 더 크다는 걸 보여주면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하는 탄탄한 근거를 주게 돼요.


물리학을 이야기하면서 생물과 화학이 나오게 되는데,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 전공하는 사람들은 철학을 인문학의 정점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물리학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걸 저희끼리는 물리학 제국주의라고 해요. (웃음) 물리학자들은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건데, 오만한 거죠. 물리학이 다루는 규모가 클 뿐이에요. 그래서 공간에 대한 책을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물리에서 가장 작은 단위가 쿼크인데, 원자와 분자와 단백질, 단세포 생물, 다세포 생물을 지나 행성과 우주까지 물리학자의 눈으로 스케일을 섞은 글이에요. 이전 단계에서는 절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충분한 숫자가 보였을 때 창발적 행동이 나타나요. 결코 원자 하나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죠.


환원주의와 전일주의에 대한 설명도 있었어요. 대상을 쪼갠 부분으로부터 전체를 이해하는 방식이 환원주의라면,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전일주의가 있고요.


원자를 아무리 연구해도 원자로 이루어진 사람의 소화불량을 설명할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한 인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을 이해할 수는 없죠. 하지만 어떤 면에서 사회는 개개인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인간의 괴상한 활동이 국가 전체 방향을 틀기도 하잖아요. 환원주의와 전일주의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고 봐요. 환원주의에 초점을 맞춘 게 물리학이라면 전일주의는 주로 생물학 등에서 많이 이야기하죠. 원자 수준에서는 어떻게 생명이 번식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는지 예측할 수 없는 측면이 나타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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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보는 틀


원론을 다루는 학문이 대학에서 배척당할 때가 많아요. 강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요새 친구들은 재미있거나 취업에 도움 되는 것, 학점에 도움 되는 강의를 듣고는 하죠. 보고 있으면 안타깝죠. 원론적인 걸 왜 사람들이 배척할까요?


쓸데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10년 넘게 융합이니 소통이니 하는 화두가 있었는데, 핵심은 원론적으로 보라는 거거든요. 우리가 너무 분과 학문에 매몰되다 보니까 가습기 살균제 문제 같은 것도 나타나는 거겠죠. 그걸 만든 화학자들은 분명 알았을 텐데요. 개별 학문만을 연구한 사람들이 다른 인간들을 위해 일을 하지 않고 기계처럼 시키는 대로 하면 결국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악의 평범성이 나타나겠죠. 각자 사람들이 자기 일만 하는 평범함이 전 인류에게 엄청난 재난과 피해를 줄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이나 크리스퍼 같은 생명과학 기술을 두려워하는 이유도 과학자들이 세상을 전일적으로 보지 않고 불쑥 실수해서 망칠까 봐 걱정하는 거잖아요. 이미 개별 학문 분야의 발전 수준은 상당한 수준까지 도달해서 이걸 다 모으면 엄청난 능력이지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덫에 걸릴 위기가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개별 분과에 있든 모든 걸 다할 순 없겠지만 전체를 보는 틀을 봐야 해요.


다른 분과를 봐야 한다는 것도 과학적 태도 안에 포함되어 있을까요?


인간에 대한 문제를 모두 과학으로만 다루려는 태도는 또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도 다 뇌과학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진 않아요. 물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부분이 과학화 될 거예요. 인간의 아름다운 감정이나 행동이 결국 다른 동물과 다름없는 번식 욕구 충족이나 많은 자손을 남기려는 행위에서 나왔다고 발견될지 몰라요. 하지만 과학의 발견을 아무리 넓혀도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을 파악할 순 없을 거예요. 왜냐면 인간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치의 문제거든요. 다른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안되고 나이 많은 개체를 돌봐줘야 하고, 자원을 나눠야 하는지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어요. 그건 제가 인간답게 살려면 따라가야 하는 합의의 산물이죠. 아마 어느 시점부터는 우리가 과학으로 추론할 수 없고 인간을 위해 합의한 거니까 따라야 한다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믿고, 그걸 다룬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려면 과학적 방법보다는 지금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게 나아요.


인문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계기가 있었나요?


저도 한때는 과학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어요. 대학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24시간 물리만 공부하던 골수 물리학자였죠. 그때는 정말 물리가 좋았고 물리만한 학문은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2000년대 초 이공계 위기 같은 게 왔을 때 고교생들이 물리학과 기피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하면 물리를 알릴 수 있을까 불순한 의도로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양선을 타고 동아시아 가는 전함 제독처럼, 인문학자들에게 물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감화된 거죠. 아인슈타인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한 번도 한국에 와본 적 없이 한국의 장례식장에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과학적 추론으로는 할 수 없어요.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칙이라는 게 다 역사적 맥락의 산물이잖아요. 과학적으로는 왜 지금 갓을 쓰면 이상한지 입증할 수 없거든요.


이런 내용으로 강의를 하면, 학생들은 어떤 반응이에요?


객관적일 거라고 확신은 못하겠지만(웃음) 좋다고 해요. 끝나고 나서 좋았던 분만 와서 좋았다고 이야기하니까, 통계를 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이게 과학적인 자세가 아닐까요?

 

 

물리는 사랑입니다


말하기에 기반해 글을 쓰신다고 들었어요.


책을 읽는다는 게 사실 머릿속에서 말을 하듯 읽게 되잖아요. 눈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은 묵독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쓸 때도 말을 하듯 써야 읽는 사람이 말하듯이 읽게 될 테니까, 머릿속에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들리기 바라면서 써요. 그래서 가급적 길게 안 쓰고 단문으로 쓰려고 하고요. 고칠 때도 내용 전달보다 물 흐르듯이 안 읽힐 때 고치고요.


칼럼은 언제, 어떻게 쓰세요?


아마 칼럼 쓰는 사람의 90%가 하는 방법일 것 같은데요? 전날, 마감이 써 줘요. 오늘도 마감이 있는데 도망쳐 나왔어요. 아, 정말 안 써지네요.

 

책을 몇 권씩 쓰고도 글쓰기가 힘드신 거죠?


다 그렇지 않을까요? 물리 논문도 마찬가지인걸요. 은퇴를 앞두신 존경하는 교수님이 있는데, 어느 날 지금도 논문의 서문을 쓰려면 너무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서문을 맨 마지막에 쓰거든요. 자기가 한 실험의 내용은 그냥 죽 쓰면 되지만, 서문은 이제까지의 역사와 함께 실험의 이유를 밝혀야 하는데 그게 정말 힘들어요. 지금도 서문을 쓰려고 앉으면 이틀은 못 써요.


인문학 책이나 다른 분야의 책을 많이 찾아보셨다고 했는데, 책은 보통 어떻게 고르세요?


한 책을 읽다 재밌으면 그쪽 분야를 한동안 읽거나, 누군가 불쑥 이야기해준 소설을 보다가 그 작가의 작품을 다 보기도 하고요. 언제나 집에 안 읽은 책이 쌓여 있어요. <알쓸신잡3> 때문에도 책을 어마하게 많이 봤어요.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시작해서 한 회차당 열댓 권씩 샀던 것 같아요. 물론 다 보진 못했죠.


성실한 면이 여기서도 드러나네요.


그게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방식과 비슷해요. 논문을 하나 쓸 때 레퍼런스를 기본으로 4,50개는 써야 하거든요. 아까 이야기한 물질적 증거가 논문에서는 레퍼런스예요. 내 논문의 모든 문장은 다른 데에서 인용해서 보장하거나 직접 실험해서 볼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은 문장이 하나라도 있으면 심사위원이 지적하죠.


방송에서 무한동력을 주장하는 사람이 난입했을 때, 과학의 용어로 이야기하지 않고 그 사람의 언어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의견을 듣기 힘들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말씀하셨던 무한동력기관 발명자의 문제점은 학문하는 기본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거였어요. 자기가 아무리 좋은 일과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이뤄냈더라도 그걸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로 떠들면 안 돼요. 그냥 자기 한 일의 결과만 뽑아내는 건 며칠 안 걸려요. 하지만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전지식이 어마어마하게 많거든요. 그것 역시 중요한 과학적 사고 중의 하나죠. 설명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모든 사람에게 납득을 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이 쓰는 언어를 써야 하는데, 그게 사실 어려워요. 저도 다른 분야를 공부하면 용어들을 모르니까 그게 큰 장벽이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생각을 바꿔서 제가 그들의 용어를 써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떨림과 울림』 도 마찬가지지만 장벽을 낮추는 방법의 하나가 용어를 다른 걸 쓰는 거거든요. 물리학 용어를 써야 할 곳에 인문학 용어를 쓰니까 명징해지지 않거나 오류를 범하기 쉽지만, 그게 장벽을 낮춰주는 거거든요.


물리의 아름다움이란 뭘까요?


물리학자들의 미적 감각은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의 미적 감각과 같아요. 이 우주의 저번에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믿음이고, 그걸 확인해가면서 실제 그렇다는 것을 볼 때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요. 우주가 수학적인 법칙으로 굴러간다는 것의 안도감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보통 물리는 사랑이라고 그래요. “물리는 사랑입니다. 사랑하세요.” 라고 말하죠.


인문학에 맞닿아 있네요. 정언명령이랄까요.


우주도 사랑이라고 말해요. 우주가 뭘 사랑하느냐고 물어보면 우주는 존재를 사랑한다고 하죠. 우주는 존재를 사랑해서 존재하는 거죠. 존재하는 건 놀라운 일이거든요. 존재하지 않으면 설명할 필요 없는데 존재하면 왜 존재하는지 설명해야 해요. 우주는 존재를 사랑하니까요.


마지막으로 『떨림과 울림』을 어떤 식으로 읽어줬으면 하나요?


사실 물리학 이야기를 한 책이에요. 이공계 학생이 1학년 때 배우는 거의 전 과정의 내용을 다 집어넣었거든요. 이걸 읽으면서 인간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리는 원래 인간을 배제한 학문이에요. 배울 때도 인간적인 것들을 버리도록 철저하게 교육받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과학을 일반 사람들에게 가져갈 수 없으니까, 이단의 방법을 쓴 거죠. 이 책으로 물리를 다 알았다고 할 수 없지만, 물리가 멀지 않다는 걸 느껴서 이걸 시작으로 다른 것들에 흥미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떨림과 울림김상욱 저 | 동아시아
나의 존재를 이루는 것들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죽음을 어떻게 성찰할 수 있을지, 타자와 나의 차이는 무엇인지… 엄밀한 과학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물리학자만이 안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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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드로잉메리 “쓱쓱 칠하기만 해도 작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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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녹은 버터처럼, 몽글몽글한 질감의 물감이 붓에 배어있다.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흰 바탕에 색이 입혀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이 모여서 다양한 모습의 ‘메리’를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공간과 순간 속에 있는 인물들. 작가는 그들을 모두 ‘메리’라 불렀다. 말갛게 상기된 볼과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즐거움을 가진 사람들’. 그렇게 ‘메리’는 드로잉메리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고, 독자들의 손으로 건네졌다.

 

작가의 드로잉 영상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자신도 그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국내 최초의 아크릴물감 컬러링 아트북  『Merry Summer』이다. 그리고 드디어! 두 번째 책  『Merry People』 이 출간됐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크릴물감 세트’를 선보이는  『Merry People』은 알찬 구성으로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드로잉메리 작가가 직접 사용하는 용지와 물감이 포함되어 있고, 컬러링 방법을 담은 ‘튜토리얼북’과 스케치가 실린 ‘컬러링북’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종이 팔레트는 작가가 실제 사용하는 것보다 더 질 좋은 것으로 특별히 준비했다. 쓱쓱 칠하기만 하면 작품이 되는  『Merry People』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건 붓과 느긋한 마음, 잠깐의 휴식뿐이다.

 

이태원에 위치한 드로잉메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 옆으로 따스한 색감의 러그가 걸려 있다. 포르투갈의 브랜드 ‘GUR’와의 콜라보로 탄생한 작품으로, 꽃다발을 형상화한 그림을 입체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새하얀 공간을 채우고 있는 다채로운 물감과 화구들이 눈에 띈다. 반가운 ‘메리’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 속에 ‘메리’와 꼭 닮은,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던 드로잉메리 작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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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얻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요즘 많이 바쁘시죠? 두 번째 전시회를 여셨잖아요.


작은 전시예요. 지난 10월에 첫 번째 전시회를 했는데, 그걸 보신 분께서 컬렉션 숍의 한 쪽 벽에 작품을 전시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셔서 하게 됐어요. 공간도 예쁠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항상 가벼운 건 없더라고요(웃음).

 

첫 번째 전시회는 정말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아요.


제가 감흥을 많이 못 느끼나 봐요(웃음). 뭔가 바쁘게 준비하고 정신없이 흘러간 것 같고, 지나고 보면 ‘그래도 어떻게 해냈네’ 싶기는 한데, 당시에는 그런 걸 느낄 새 없이 지나간 것 같아요.

 

SNS에 올리신 영상을 봤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전시회가 끝나고 정리하시는 모습을 찍어서 올리셨죠. 


오히려 전시를 할 때는 정신없이 한 것 같았는데, 그림을 뗄 때는 그 순간 공간이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냥 사진 속에만 있는 걸로 끝난 느낌도 있었고요.

 

새해 시작부터 좋은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Merry People』 이 중쇄에 들어갔다면서요.

감사합니다(웃음). 작년에 예스24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저는 부산에 갈 일이 잘 없는데 그런 기회로 가게 돼서 너무 좋았어요.

 

예스24 수영점에서  『Merry Summer』  특별전을 여셨었죠. 처음에는 한 달로 계획됐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세 달로 연장됐었잖아요.


책을 만들면서도 많이 느꼈지만, 많은 분들이 잘해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고맙기도 하고, 약간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요(웃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의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을 봤을 때 어려운 느낌이 없는 것 같아요. 밝고 가벼운 느낌이 드니까 잘 받아들여주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간결하게 표현하는 게 더 어렵잖아요.


그렇죠, 그릴 때도 가볍게 그리는 건 아니죠(웃음). 그런데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느껴주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많은 사람들한테 공감을 얻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Merry People』을 준비하시는 과정은 어땠나요?  『Merry Summer』  작업을 하셨었기 때문에 한결 익숙해졌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많이 익숙해졌죠(웃음). 한 번 정리가 되어 있는 셈이니까 준비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어요.  『Merry Summer』를 만들 때는 종이 선택하고 물감 준비하는 것부터 해서 출판사랑 같이 고민도 많이 했어요. 이번에는 패키지 박스를 준비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왜요?


『Merry Summer』 는 한 권의 책으로 되어 있었어요. 앞부분에는 설명이 있고 뒷부분에 스케치가 실려 있었는데, 독자 분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보시기가 힘드셨던 것 같아요. 저희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분리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러면서 책이 두 권이 되었는데, 이걸 어떻게 묶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됐고요. 물감도 함께 구성되어 있으니까 그러면 박스를 만들어서 같이 담자고 의견이 모아졌어요.

 

첫 번째 책을 만드실 때부터 패키지 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을 것 같아요. 아이디어도 제시하셨을 테고요.


출판사에서는 어떤 종이를 써야 할지도 고민이 되니까요. 저한테 물어봐 주시면 나름 충실하게 대답하면서  진행을 했죠(웃음). 사실 물감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도 못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림 그리는 영상을 보시고 쉴드(SHIELD) 물감 대표님이 메일을 주셨더라고요. 제가 그 제품을 쓰고 있으니까요. 그때 딱 물감을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연락이 와서, 저는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으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출판사에 여쭤봤더니 아직 연락을 안 드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쉴드 물감 대표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출판사와도 이야기가 돼서 패키지를 만들게 됐어요.

 

작가님과 똑같은 종이, 물감을 사용해서 컬러링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어떤 종이, 붓, 물감을 쓰는지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아마 많은 작가님들이 그런 질문을 받으실 것 같아요. 분명히 궁금하실 것 같기는 해요. 저도 다른 작가님들이 쓰시는 걸 보면 ‘저건 뭘까’ 궁금해지거든요(웃음).

 

패키지에 팔레트까지 들어있는데요. 이것도 실제로 사용하시는 건가요?


아니에요. 제가 쓰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웃음). 제가 쓰는 건 종이 느낌이 강한데, 이건 더 코팅된 느낌이에요. 출판사에서 만드신 건데, 독자 분들이 사용하시기에 더 좋지 않을까 싶어요. 크기가 작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직접 써보니까 가능하더라고요. 그림 하나를 칠하는 데 팔레트 한 장을 쓰면 되더라고요.

 


메리의 시그니처 ‘볼터치’


포털 사이트에서 작가님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화홍 848’이 뜨는 거 아세요(웃음)?


아, 정말요(웃음)?

 

네, 작가님이 추천하시는 붓이잖아요. 또 다른 연관 검색어로 ‘아크릴 붓 추천’도 있어요(웃음). 


저도 독자 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거든요. 작가님들은 어떤 걸 쓰실까 답이 듣고 싶잖아요. 제가 독자 분들의 질문에 다 대답을 못 해드리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말씀드리려고 해요(웃음).

 

드로잉 영상에서 실제로 쓰신 게 화홍 붓이죠?


네, 여기 필통에도 꽂혀 있고요. 
 
왠지 더 좋은 화구를 쓰실 것 같았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비싼 외국 제품만 쓸 것 같고. 일본 제품 중에 ‘바바라’라는 브랜드의 붓이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쓰다 보면 그것도 한계가 있죠. 아크릴은 수채화보다 붓이 빨리 망가지는 편이기도 하고요. 화홍 붓은 더 저렴하지만 불편 없이 쓰고 있어요.

 

‘튜토리얼북’에서 조색 방법도 자세하게 알려주셨어요. 어떤 색을 섞어서 칠하면 되는지 가르쳐주셨는데요. 글로만 보고도 다들 잘 따라하시나요?


대부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그 부분을 쓰면서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실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SNS에 올리시는 작품들 보면 다들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이 별로 없어요. 많이들 물어보시는 게 ‘물 농도는 어느 정도로 맞춰야 되나요’, ‘물감을 얼마나 짜야 되나요’, ‘물감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같은 거고요. 간혹 색을 만들기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SNS나 인터넷에 올린 작품들을 많이 보셨어요?


네, 블로그까지는 많이 못 봤는데 인스타그램은 거의 다 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품들을 보면 그냥 신기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그리는 동안 진짜 즐거웠다고 하시는 글들을 보면 재밌어요(웃음).

 

책을 만들 때 독자 반응을 참고하기도 하셨나요?


네. 그래서 튜토리얼북과 컬러링북을 분리하게 됐고요. 편집자님이 난이도를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 의견도 반영했어요. 그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쓰실 거라는 생각을 조금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Merry Summer』를 만들 때 보다요. 그때는 22~24개 스케치 중에서 어렵거나 조금 난해한 것들을 빼고 20개를 실었었거든요.

 

 

컬러링북을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서 만들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을까요(웃음). 그런데 정말 잘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미술을 하다가 쉬고 계신 분들 중에서 책을 사서 색칠하는 분도 계시고요. 엄청 잘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부담감도 들어요.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만들면 재밌어하실 분도 있으실 것 같고요. 많지는 않으시겠지만요. 예전에 전시회 준비할 때는 큰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영상을 올렸더니 캔버스에 컬러링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고 하신 분도 계셨어요(웃음).

 

작가님의 드로잉 영상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왜 그럴까요?


제가 느끼는 것 그대로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도 가끔 그림을 칠하면서 몽글몽글,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드로잉 영상을 한 번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올렸던 건데, 엄청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거예요. 직접 그리지 않더라도 제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느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흰색에 부드럽게 색이 채워지는 느낌을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느낌 때문에 아크릴물감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저한테 맞는 재료를 찾고 싶어서 다양하게 써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건 색이 가득 찬 느낌이었는데요. 예를 들어서 색연필 같은 경우에는 꽉 채워도 보슬보슬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것보다 조금 더 강하게 색이 입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것저것 써봤어요. 사실 아크릴은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서 더 편리한 걸 쓰고 싶기도 했어요. 수채화는 굳혀서 오래 쓸 수 있지만 아크릴은 짜놓고 쓸 수도 없잖아요. 매번 짜서 써야 되니까 물감도 크기가 작지 않고요. 그런데 결국은 아크릴물감을 쓰게 되더라고요(웃음). 색이 다 채워졌을 때의 느낌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이번 책에는 『Merry Summer』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색깔들을 담으려고 하셨다면서요.


독자 분들이 안 쓰셨던 색깔을 써보실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새로 사용한 색도 있고요. 아무래도 겹치는 색이 반 정도 되기는 하는 것 같아요.

 

겹치는 색은 작가님의 최애 컬러인가요?


최애 컬러도 있어요(웃음). 컬러 중에서는 기본적으로 초록, 파랑, 그리고 ‘메리’의 볼을 칠할 때 사용하는 코랄 레드가 있고요. 또 블랙과 화이트가 있죠.

 

왜 모든 ‘메리’에게 볼터치를 해주시는 거예요?


지금은 약간 시그니처처럼 넣고 있고요. 볼터치가 없으면 메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약간 있죠(웃음).

 

인물들마다 볼터치를 그린다는 걸 아셨어요?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그리시게 된 건가요?


몰랐어요. 낙서하다가 자리가 잡힌 경우인데, 그 낙서에 볼터치가 크게 있었어요. 그게 조형적으로 재밌는 것 같았고 약간 포인트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쭉 모든 그림에 그리게 됐고요. 예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니까 다 볼을 그려 넣었더라고요. 형체는 다른데 다 있어요. 그때 대충 그렸던 볼의 형태가 약간 길쭉했는데, 그걸 그냥 가지고 오게 된 것 같아요. 동그랗게 그리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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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좋을 때 그려요


‘즐거움을 가진 사람들’을 통칭해서 ‘메리’라고 부르시잖아요. 왜 즐거운 사람들만 그리세요?


요즘 모토로 잡고 있는 게 ‘즐거움’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Merry People』까지 그리게 됐는데요. 그냥 제가 즐거운 감정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다른 기분이 들 때보다는 기분이 좋을 때 그림을 많이 그렸거든요. 그런 제 기분이 약간 녹아들어서 많은 분들이 그림을 보시고 ‘편안하다,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것 같기도 해요. 우울이나 다른 감정을 잘 표현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런 것도 나쁜 게 아닌데, 제가 그런 걸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밝은 걸 좋아해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또 차분한 것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것 같고요. 그것보다 조금 더 느낌이 밝지 않나 생각돼요.

 

일상에서 직접 만났던 사람을 모델로 그리신 ‘메리’도 있더라고요. 어떤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나의 메리가 될 수 있겠어’라는 느낌이 드시나요?


그 분을 봤을 때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이 들면 뇌리에 남는 것 같아요. 대부분 눈에 띄는 분일 때가 많고요. 이번 책에 실린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 같은 경우도, 뉴욕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진짜 이런 모습을 하신 분이 앉아 계셨어요. 그림처럼 올블랙 옷을 입고 계셨고 머리 스타일도 똑같았어요. 「길 위에서」도 길을 걷다가 본 할아버지예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다니는 길이었는데 혼자 서서 위를 계속 쳐다보고 계시더라고요. 그렇게 순간적으로 봤을 때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그린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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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길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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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뮤직이즈마이라이프


 

독 눈길이 가는 사람들이 있죠.


지하철에서도 그런 분들을 볼 때가 있고요. 어떤 분이 머릿속에 남으면 약간 각색되어서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제 전시장에 오셨던 분이 계셨는데, 인사도 나누지 못했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군중 속에 있는 그 분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림으로 그린 적이 있어요. 모두 닮지는 않았어요(웃음). 아마 본인은 알아보지 못하실 거예요(웃음). 제 기억에만 있는 모습을 그릴 때도 있고요.

 

작가님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게 일이기도 하잖아요. 여전히 그림 그리는 시간이 즐거우세요?


그 순간에는 좋아요. 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많은 업무가 필요하니까 그런 부분들이 힘들죠. 이메일도 주고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 조율도 해야 되잖아요. 그림 그리는 자체는 너무 좋아요. 책을 만들 때도 그림 그려서 색 채울 때는 되게 재밌었어요. 바쁘긴 해도 엄청 재밌어요(웃음).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그림을 그리세요?


혼자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취미로 그리거나, 심심할 때도 그림을 그려요.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런가 봐요(웃음). 그런데 일로 그릴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냥 심심해서, 아니면 하고 싶어서 그릴 때는 또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 좋기도 하고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작품을 보여줬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그렇죠. 지금은 이대로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슬그머니 조금씩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아예 다른 게 나오면 알아보시지 못할 것 같기도 해요.

 

대중이 자신을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해 버린다면, 창작자로서는 고민이 되겠죠.


그렇겠죠. 그리고 제가 잘 질리는 편이에요, 뭐든지. 굉장히 오래 이어져온 게 메리라는 캐릭터예요. 그 전에는 엄청 많이 바뀌었었어요.

 

‘메리’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잖아요. 할아버지도 ‘메리’, 강아지와 산책하는 여성도 ‘메리’, 남성은 ‘남메리’. 굉장히 독특한 것 같아요.


우연히 그렇게 됐어요. 그림체가 비슷하니까, 딱히 다른 캐릭터가 없이 ‘얘도 메리, 쟤도 메리’ 다 메리라고 말하게 됐는데요(웃음). 저는 한 가지만 그리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 어쩌면 그래서 메리를 질리지 않고 그리는 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Merry Summer』 ,  『Merry People』을 통해서 그림의 매력을 알게 된 분들도 계신데요. 작가님은 무엇을 통해서 그림의 즐거움을 알게 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언니 오빠 따라서 그림 수업에 갔었어요. 그냥 쫓아갔다가 재밌어서 그림 그리고, 그러다가 수업도 듣게 됐어요. 그때는 주입식처럼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줬던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나무는 고동색과 황토색을 섞어서 칠하면 되고 창문을 그릴 때는 흰색 크레파스로 빛을 표현해주면 좋다는 식이었어요. 그게 재밌어서 학교에 가서 그림 그릴 때도 그렇게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잘 그렸다고 칭찬을 받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미술부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일찍 입시 미술을 시작했어요.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엄마가 권유해서 미술학원에 갔던 거였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3년 내내 미술학원에 다녔고, 미대 입시 준비했고, 미대에 다녔고... 특별히 계기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평범했어요. 그냥 즐겁게 그린 것 같아요(웃음).

 

입시 미술을 하는 동안 굉장히 힘들지 않나요? 미대를 다니는 동안에도 ‘앞으로 그림을 그려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되고요.


제가 철이 없었죠(웃음).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까 ‘회사에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저는 애니메이션학과를 나왔는데, 졸업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하나 만들었었어요. 그거에 매진하면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회사를 들어가야 되나?’ 하는 고민을 했던 거죠(웃음). 철이 없어서 돈에 대한 관념이 적었고, 그래서 독립영화 쫓아다니기도 하고 그랬어요.

 

의외의 이력이네요.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기획하는 단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호흡이 너무 길어서, 영화 쪽은 뭔가 재밌지 않을까 싶었어요. 콘티 작가, 스토리보더가 돼야겠다고 생각하고 알아봤는데 마침 찾는 팀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체계가 잡혀있다기보다는, 저처럼 학교에 다니면서 한 번 독립영화를 만들어보자고 모인 친구들이었어요. 그 팀에서 같이 작업했었는데, 직접 해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더라고요(웃음). 감독이나 다른 사람들의 권한이 크고 제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적은 것 같았어요. 스토리보드가 그냥 기획을 공유하기 위해서 쓰이는 것 정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업영화는 다를 수도 있고, 그건 제가 해보지 않아서 다 아는 건 아니지만요. 

 


즐겁게 그리셨으면 좋겠어요


기업들과 협업도 많이 하시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제가 철이 없어서(웃음), 회사는 다니기 싫고 이쪽으로 계속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했고, 용돈 벌이로 알바 같은 걸 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한참 웹툰을 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도 꾸준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웹툰을 열 몇 편 그려서 블로그에 올렸는데 아는 분이 보시고, 그 분도 그림을 그리는 분인데, 그걸 보고 말씀을 해주신 거예요. 자기한테 기업 홍보 웹툰 제안이 왔는데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요. 그 후로 홍보나 설명을 위한 웹툰을 그렸었어요. 그림으로써 하고 싶었던 게 있어서 그쪽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계속 했었고요. 아주 천천히 오게 됐어요.

 

개인 작업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세요?


하죠. 그럴 수 있다면 제일 좋죠. 개인적으로 작업을 안 한 지 오래 됐거든요. 정말 온전히 아무것에도 쓰이지 않는 그림을 혼자 그리는 것, 그런 건 안 한 지 조금 오래 됐어요. 못했다고 해야 하나요. 그렇게 그림을 그릴 때는 정말 좋아요. 행복해요(웃음).

 

『Merry People』 에서 독자들이 가장 어려워할 그림은 무엇일까요?


「언덕에서」 같은 경우는 배경까지 칠해야 하고 머리, 옷, 스카프 등 다 명암이 들어가요. 색깔도 11가지가 사용되고요. 「아름다운 메리들」은 두 가지 색만 쓰기 때문에 색을 섞을 때는 쉬운데, 작은 붓으로 그려야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래서 붓 컨트롤에서 어렵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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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스치는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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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언덕에서

 

 

「스치는 기억」은 어떤가요? 꽃의 볼륨감을 살리려면 여백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초보자에게는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꽃잎이 겹겹이 포개진 모습을 표현하려면 볼륨감이 있어 보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명암을 다 넣을 수는 없으니까 여백만 남겨도 그런 느낌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백을 남기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실까 봐 걱정돼서, 연필 선을 아주 연하게 표시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꼭 그렇게 안 하셔도 된다고 생각해요. 꽃을 다 채워서 칠하셔도 되고 다른 색을 섞어서 그리셔도 되거든요. 조금 더 자유롭게 칠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연필 선은 넣지 않았어요. 여백 남기는 걸 어려워하시고 스트레스 받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안 그러셔도 될 것 같아요.

 

작가님 그림과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실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물론 그렇게 하고 싶으실 수도 있지만, 아무튼 스트레스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Merry Summer』 ,  『Merry People』은 드로잉 영상을 봤을 때의 느낌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책이잖아요. 그냥 그 느낌을 가지고 스트레스 안 받고 그리셨으면 좋겠어요. 즐겁게. 독자 분들이 진짜 재밌게 그렸다고 말씀해주실 때가 정말 좋아요.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그려야 할 부분에는 ‘Keep Calm’이라고 쓰셨어요. 조급한 마음으로 그리면 마음에 안 드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을까요?


저는 스스로가 조금 빠르게 칠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영상을 유심히 보신 편집자님이 엄청 천천히 칠한다고 하시더라고요. ‘Keep Calm’의 아이디어는 편집자님이 주신 거예요. 예전에 제가 작은 부분을 칠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 ‘Keep Calm’이라고 썼었거든요. 그 표현이 좋은 것 같다고 하셔서 넣어주셨어요.

 

그림을 그릴 때 차분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라인 근처를 그릴 때 물감이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 칠하려고 숨을 참기도 해요.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처럼, 순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SNS에서 올해는 더 다양하고 재밌는 작업을 꿈꾼다고 하셨어요.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세요?


음... 종이에 그려진 그림 외에 더 꺼내오고 싶다고 해야 하나요. 전시회 때 나무에 색칠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것처럼 조금 더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GUR와 콜라보로 러그를 만들었던 것처럼 색다른 오브제가 나오는 작업도 너무 재밌고요.


 

 

Merry People드로잉메리 저 | 휴머니스트
아크릴물감 초보를 위한 기초지식, 준비물과 컬러링 기본기와 컬러링하는 방법을 ‘튜토리얼북’에 담았습니다. 엄청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그대로 따라 색칠하기만 하면 돼요. 처음이어도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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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오은영 “미성숙한 사랑이 자녀를 멍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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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부모가 돼서 나에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2년여간 <한국일보>에 정신 상담 칼럼을 연재해 온 오은영 박사의 메일함으로 수많은 편지가 날아들었다. 해결되지 못한 내면의 아픔 때문에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삶과 다른 듯 같은 그들의 사연을 보며 칼럼을 읽는 독자들은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렸다. ‘제게도 비슷한 상처가 있어요.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제가 엄마를 용서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 처절한 울음들을 보며 오은영 박사는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오은영의 화해』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여전히 힘든 ‘나’, 그 상처를 안고 부모가 돼 아이에게 같은 상처를 물려주게 될까 두려운 ‘나’의 삶을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위로와 조언이 담긴 책이다. 우리는 누구도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났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삶이 나의 가슴을 찌를 때, 조건 없이 사랑을 받아야 할 부모로부터 외면 받을 때 오는 좌절감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곤 한다. 오은영 박사는 그런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담담히 전한다.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습니다. 그 상처는 당신의 문제가 아니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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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시작은 ‘나’때문이 아니었다


<한국일보>에 연재 중인 칼럼 ‘오은영의 화해’와 동명의 책이에요.

 

정신 상담 칼럼을 2년여간 연재하면서 사연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많이 보게 됐어요. 사연자를 지면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진심으로 조언을 해왔죠. 그렇게 칼럼을 연재하다 보니 사연을 읽으며 함께 아파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사실 우리 모두는 사연의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니까요.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로 성인이 된 후에도 고통받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들이 모두 정신과 전문의를 만날 수 없으니,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침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죠. 사실 책의 구성을 고민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이 걸렸어요. 칼럼은 한 편씩 읽을 수 있지만, 단행본은 호흡이 길게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칼럼을 묶어서 출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칼럼 속 사연들이 더러 실렸고, 제목도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전혀 다른 책이에요.

 

실제로 칼럼마다 댓글이 굉장히 많이 달리더라고요. 우리가 느끼는 아픔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그 안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수많은 ‘나’가 있어요. 각각의 상처가 있는 ‘나’들이 댓글로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조언하거나 언쟁을 벌이기도 해요. 블로그에 찾아와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정신과 의사로서 그러면 안 되지만, 만약 그분들이 옆에 있다면 손 한번 꽉 잡아주고 안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정말 많이 들었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고, 다른 한편으로는 댓글을 통해 힘을 얻기도 했어요. 어떤 분께서 ‘참 하나님 같은 말씀이네요’라고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그 문장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잖아요. 제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든 정말 책임감을 가져야겠다, 은연중에 쓴 어떤 단어 하나로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아서가 아니라 의아해하면서도 반가워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그동안 쓴 책에는 나름의 순서가 있거든요.(웃음) 첫 책 『엄마표 마음처방전』은 태어난 아이를 올바로 이해하고 알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이후에는 아이가 조금 큰 뒤에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학교생활처방전』을 썼어요. 다음으로 이어진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등도 나름의 순서대로 출간이 되었죠.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알아야 할 부분들을 한 단계씩 나아가는 형태로 책을 쓰고 싶었거든요. 제 책들을 쭉 나열해 보면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과 같아요. 이제 다 성장한 ‘나’와 마주할 차례가 되어 『오은영의 화해』 를 펴낸 거예요. 이 책은 전 연령대의 독자들이 읽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부모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식이니까요.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나를 살펴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단단하고 고요하게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부모와의 관계는 성인이 된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왜 그런가요?


아이에게 부모는 너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독립적이고 성숙한 어른이 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반은 0세부터 20세 사이에 갖춰지는데, 이 시기 동안 아이 인생의 전부인 부모가 무조건적인 사랑과 정서적 안정을 주지 못하면 그 아이는 성인이 된 이후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아이에게 있어 생존의 문제거든요.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사랑을 받고 싶은 대상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에도 아이들은 부모에게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합니다. 그 상태로 성인이 되면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꾸 자신을 찔러요.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며 자녀를 다그치고, 윽박지르고, 비난하는 부모들이 있지요. 그로 인해 자녀는 가장 안전한 대상이어야 할 부모를 두려움의 존재로 느끼게 되죠. 자신을 가장 인정해주어야 할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처는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려요. 우리의 인생은 늘 행복할 수 없고, 불행은 예고 없이 닥치는 데 어린 시절 부모에게 심리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삶에 위기가 왔을 때 이를 극복해나갈 힘을 갖기 어려워요.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식의 입장에서는 아주 속절없는 일이에요. 

 

부모는 가장 큰 사랑을 주는 사람인 동시에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도 해요.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에요. 너무 깊어서 감히 헤아릴 수 없어요. 이 전제는 아마 대부분의 부모가 동일할 거예요. 옳지 않은 태도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도 그 의도는 언제나 좋거든요. 아이를 더 잘 기르고 싶은 마음인 거죠. 단지 미성숙한 부모가 있는 거예요. 자식을 목숨 바쳐 사랑하지만 자신이 그 사랑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하다 보니 미성숙한 상태로 아이를 대해요. 그렇게 준 사랑은 상처를 남겨요. 그러한 태도가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죠.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가 있을까요?


훈육을 핑계로 아이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비교해요. 가르치는 것과 화내는 것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고요. 또 자식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걸 표현하지 않아요. 성적을 잘 받거나, 부모의 뜻대로 행동해야만 아이를 인정하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갑자기 폭발하거나 때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과 달라서 알아듣도록 좋게 말해주지 않으면 부모가 욱해서 내뱉은 말 속에 숨겨진 뜻을 이해하지 못해요.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구나’라는 걸 해석할 수 없으니 그게 그대로 상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상처받은 나, 부모가 되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경우 ‘나는 저런 부모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부모가 되면 같은 상처를 대물림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부모와의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았던 사람들은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서툰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자녀와의 문제가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익숙한 방식으로 아이를 대하게 되는 거죠. 또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은연중에 나오는 행동들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곤 해요.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앞서 말했듯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도나 감정을 해석하는 데 서툴러서 휴일에 아빠가 소파에 누워 잠만 잔다면 ‘우리 아빠가 일하느라 힘들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빠는 나랑 노는 걸 싫어하는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많은 어른들이 그걸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아이의 투정에 때로는 손이 올라가고, 언성이 높아지죠.

 

상처의 대물림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나를 알아차리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이에요. 내가 어떤 부분에 감정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거예요. ‘내가 어린 시절에 이러한 양육을 받고 컸구나’를 알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엄마 아빠가 그만큼 미성숙한 사람이라 나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나를 그렇게 대한 부모님을 이해할 순 없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이 부분에서 아파하고 있구나’를 깨달으면 그것만으로도 문제의 50%는 해결돼요. 내가 아이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실이 아이의 잘못이 아닌 내 잘못이라는 걸 느끼게 되거든요. 이를 통해 ‘내가 이 나이 때는 어땠지? 나도 어린 시절에 이렇게 투정을 부리고 징징거렸구나. 이 나이의 아이들은 그게 당연한 거야.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런 나를 때리려고 빗자루부터 찾지 않았던가? 엄마의 그 이글거리는 너무 눈이 공포스러웠어. 내 아이도 나의 이런 모습을 두려워하겠구나’를 깨닫게 되는 거죠. 물론 이걸 알게 돼도, 내일 또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알고 저지르는 것과 모른 채 저지르는 것은 전혀 달라요.

 

아이를 키우면서 매 순간 침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때 이를 수습할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에게 솔직한 마음을 말하고 사과해야 해요. 어느 날 또 욱했어요. 그럼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좋게 이야기해도 되는 일에 소리를 질렀다. 정말 미안해. 이건 엄마가 고쳐야 할 문제야. 사실 네가 그렇게까지 혼나야 할 일은 아니었어”라고. 그럼 아이가 “엄마는 매일 미안하다고 하면서 나중에 또 그러잖아”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또 사과하세요. “그래 맞아. 엄마가 미안해. 그렇지만 앞으로는 안 그러도록 계속 노력할게. 네가 미워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줘.”라고요. 그럼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를 용서해요. 어리고 순진해서일까요? 아니요.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부모의 진실한 사과가 더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부모를 너무 사랑해서 아이들은 바로 손을 내밀어요.

 

만약 아이가 너무 악을 쓰고 통제가 되지 않아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상황이 온다면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말고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세요. 아이가 악을 쓰는 중에 부모가 말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아이를 노려보거나 한숨을 쉬는 등의 제스처도 하지 마세요. 그냥 지켜보세요. “그렇게 한다고 아이가 괜찮아질까요?”라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기다려주는 태도는 첫째로, 아이에게 ‘네가 감정적으로 격한 상황이 왔을 때 그 이유가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 엄마아빠는 네 감정을 공격하지 않을 거야’라는 걸 알려줘요. 둘째로, 아이 스스로 진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엄마아빠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죠. “네가 스스로 한 번 감정을 추슬러 봐. 그걸 성공적으로 경험하는 걸 엄마아빠가 도와줄 거야. 그래서 가만히 기다리는 거야. 나는 널 지켜주고 있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부모의 태도를 보며 아이가 알게 되는 거예요.

 

아이가 조금 진정하고 나면 그때 ”왜 이렇게 울었니?“라고 물어보세요. 예컨대 ”사탕을 먹고 싶은데 엄마가 못 먹게 했다.“고 이야기하면 ”사탕을 오늘 많이 먹어서 줄 수가 없어. 내일 줄게. 너를 위해서 그런 거야.“라고 설명해주면 돼요.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이걸 하지 못하죠. 자신이 그러한 양육을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같은 말도 다르게 전달해요. ”너 그렇게 사탕 먹으니 이 다 썩어서 매일 병원 가잖아. 너 땜에 정말 미치겠어!“라며 화를 내는 식으로요. 그리곤 착각하죠. 나는 사탕을 먹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아이에게 잘 설명해주었다고요.

 

‘어린아이답지 않았던 아이는 사실 아팠던 거예요(212쪽)’라며 허구의 독립성을 이야기하셨어요. 내 아이가 어른스럽고 의젓할 경우, 한 번쯤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 때는 아이다워야 해요. 떼도 부리고,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철없이 굴어야 건강한 거예요. 의젓하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부모를 생각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 아이의 내면에는 자신의 의존적 욕구를 표현해보지 못해 생긴 구멍이 있을 수 있어요. 부모들이 그걸 알아야 하죠. 인간에게는 의존욕구가 있거든요. 이 의존욕구는 아무 조건 없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는 경험을 통해 채워져요. 의존욕구를 채우지 못한 아이들은 ‘허구의 독립성’을 갖게 됩니다. 마음에는 상처가 있는데 겉으로만 독립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의젓하고, 알아서 제 앞가림을 다 하는 아이들이 이런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의젓하다, 착하다”는 말을 하는 건 결코 칭찬이 아니에요. 허구의 독립성을 갖게 된 아이들은 부모를 실망시킬까 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부모의 처지를 예상하죠. 내가 지금 엄마를 필요로 하지만, 엄마가 바쁘고 힘들 것을 생각해서 말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게 자라 성인이 된 후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어린 시절 허구의 독립성을 가졌을 경우, 가족의 모든 일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힘들게 살아가곤 해요.

 

첫째들이 그런 경우가 많죠.


첫째 또는 순한 아이에게 부모가 의젓함을 강요하곤 합니다. 형제 중 유난히 신경을 써야 하는 아이가 있어 다른 자녀에게 소홀해진다면 “네가 형이니까, 네가 더 착하니까”라고 하지 말고, “동생의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엄마가 동생을 더 감싸거나 더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니 네가 이해해 줘”라고 설명해줘야 해요. 그리고 “동생 때문에 너무 힘들면 꼭 말해줘. 동생을 보살피는 건 엄마아빠의 몫이니 네가 걱정하지 마. 그리고 너도 엄마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엄마가 힘들까 봐 말하지 않는 것보다 말해주는 게 훨씬 더 기뻐.”라고 이야기해주세요. 가정 안에서 자녀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은 따로 있어요. 아무리 의젓한 자녀라고 해도 아이는 결코 부모의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부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자녀가 부모로부터 가장 소중한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보호가 필요할 땐 보호를 해주고, 사랑이 필요할 땐 사랑을 주고, 외로울 땐 옆에 있어주어야 하죠. 예를 들어 아이가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억울하게 선도부에 불려갔어요.”라는 말을 했어요. 이때 엄마가 “네가 매일 문제를 일으키니 그렇지. 네가 잘했으면 왜 너를 불렀겠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를 보호해주는 게 아니에요. 학교에 가서 우리 아이를 왜 나무라느냐고 따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보고 만약 아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아이에게 왜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잘 설명해줘야 한다는 거죠. 아이의 말대로 정말 억울한 상황이라면 전후관계를 따져서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요. 이렇게 엄마 아빠는 조건 없이 너를 믿고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죠.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엄마 지금 일하잖아. 바빠”라고 말하지 않고, “엄마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 바로 갈 순 없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고 너에게 갈게. 조금만 기다려 줘.”라고 말해야 해요. 있는 그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네가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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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팠다면 아픈 게 맞아요


책에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털어놓으라고 조언하고 있어요. 상처가 깊을수록 그 사실을 말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세요.


당연히 어려운 일이에요. 아마 평생 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상처를 털어놓으라는 건 꼭 상처를 준 대상에게 가서 말을 해야 한다는 뜻만은 아니에요. 당신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면, 그게 맞으니 그 마음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의미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뭐 그런 사소한 일로 상처를 받아?”라고 말한다 해도 그들이 틀린 거예요. 당신이 아팠다면 아팠던 게 맞습니다. 용기 내 이야기한다고 해도 부모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말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내면은 단단해집니다. 그로 인해 나를 마주 대할 용기를 내고 나와 화해할 힘을 얻게 돼요. 너무 큰 상처를 받아 부모와 대면하는 게 두렵다면 편지를 써도 좋아요. 그 편지를 부모가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음에 있는 말들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내 내면을 마주하는 일이거든요.

 

화해의 시작은 결국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자신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아주 사소한 것까지 알아가 보세요. 내가 무엇에 화를 내고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부모를 생각할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그 마음을 인정하세요. 내게 상처가 있는 것도, 그 상처로 현재의 삶이 힘든 것도, 부모가 너무 미워서 연을 끊고 싶은 마음도 다 인정하세요. 화해는 나와 내가 하는 거예요. 나의 부모는 죽을 때까지 사과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설사 사과를 한다 해도 내가 그를 용서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괜찮아요. 모든 감정을 그냥 두세요. 그런 마음이 드는 나를 비난하지 말고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그건 당신 때문에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부모와 자식 관계를 떠나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하나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요. 가까운 사람과는 인생의 대화를 하고, 모르는 사람 혹은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은 그저 ‘The others'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웃음) 내가 대인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생각해보세요. 나의 배우자, 자녀와 깊이 있는 삶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친한 지인과 내 어려움을 나누고 나도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있는지, 그 외에 나와 별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진 않은지요. 나에 대해 알게 되면 타인과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거든요. 또 하나는 사소한 일은 사소하게 다뤄야 한다는 거예요.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랑하는 자식과의 일도 사소하게 다루지 못하곤 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양치를 안 하고 잠들었을 때, 아이를 억지로 깨워 이를 닦게 한다거나 혼을 내는 경우가 있죠. 양치를 가르치는 건 중요하지만 오늘 하루 이 안 닦고 잔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이 오늘의 사소한 일을 못 넘겨 큰일로 만들고 관계를 그르쳐요. 누가 어깨를 치고 간 것, 기분 나쁜 어투로 나에게 말을 건 것 등은 사실 사소한 일이잖아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큰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라면 그냥 흘려보내는 게 좋아요.

 

그렇다면 싫은 사람, 서로 맞지 않는 사람과 잘 지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한 반에 30명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어떻게 모든 친구와 다 친하게 지낼 수 있겠어요. 싫은 사람은 생기기 마련이죠. 아무리 싫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도 마음은 속절없는 거예요. 싫은데 어쩔 도리가 있나요? 그런데 다른 사람을 싫어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강요죠. 우리나라는 감정을 굴복시키고 강요하는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싫은 사람, 맞지 않은 사람과는 지나치게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해요. 그저 서로의 안전한 거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진심을 다하면 타인이 알아줄까요? 아니요. 진심을 다해도 뒤통수치는 경우 있어요.(웃음) 그럼 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해야 할까요? 우리는 인간이니까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거죠. 내가 타인에게 마음을 쓰고 배려하는 건,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지 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함이 아니에요. 즉 모든 인간관계를 나에서 시작하면 돼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내가 있고 난 뒤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 싫은 사람과 잘 지내려 애쓸 필요 없어요. 단지 여러 사람 앞에서 그를 싫다고 말하는 건 모욕이니, 속으로는 싫다고 생각하되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정도의 배려만 하면 돼요.

 

얼마 전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셨어요.


유튜브 채널명은 ‘오은영 TV’이지만 프로그램 이름은 ‘오은영의 더 라이프’예요.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비단 육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나’가 가진 고민과 상처를 나누며 좀 더 인간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채널이 될 거예요. 개인의 삶을 단단하고 고요하게 유지하면서, 항상 행복할 순 없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삶을 사는 방법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아직 나와 화해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많은 분이 제게 사연을 보낼 때, 내밀한 상처를 고백하는 동시에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요. 그걸 볼 때마다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파요. 어떻게 하면 이 상처를 극복하고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될까 고민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나쁜 인간은 있어도 못난 인간은 없어요. 그러니 잘난 인간도 있을 수 없죠. 우리 모두는 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나를 못난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고통 속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해요. 더 나은 인간이 되려 하지 마세요. 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나를 마주 대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갖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오은영의 화해오은영 저 | 코리아닷컴(Korea.com)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와는 다르다고, 그때 상처받았고 지금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독자의 내면에 힘이 있다는 것을 믿어 보라고 따뜻한 위로와 함께 명쾌한 조언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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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고병권 “『자본』은 고상한 책, 경제학의 시각으로만 봐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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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제1장을 읽다 보면 마르크스가 "우리가 고찰하는 사회형태에서는" 등의 한정적 표현을 자주 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보지 못하듯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형태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특수한지, 다시 말해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보여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보이는 겁니다. 정상적인 것의 기괴함을 보는 눈이 없으면 자기 시대를 비판할 수 없습니다. (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 22~23쪽)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두꺼운 책은 팔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 권 분량의 책은 한 권으로 내자고 하고, 한 권이라도 두꺼울 것 같으면 줄이자고 한다. 이런 시대에 고병권 저자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통해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12권에 걸쳐 읽어내려고 시도했다. 격월마다 1권씩, 지금까지 총 3권이 나왔다. 중간에 인문 에세이  『묵묵』도 출간됐다. 대단한 속도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읽고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앎의 의지를 추동하는 것에 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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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통해 우리 사회를 읽어내려는 시도

 

북클럽 자본 시리즈가  『다시 자본을 읽자』 ,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화폐라는 짐승』 까지 3권 나왔습니다. 최근 칼럼집  『묵묵』까지 펴내셨는데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원래도 복잡하진 않았는데 이 책 덕분에 삶이 단순해졌어요. 딴 건 할 수가 없어요. 인간관계도 정리되고 있고요. 니체가 철학자가 된다는 건 군인같은 습관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철학자는 군인처럼 규칙적으로 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죠.

 

그간 데이비드 하비라든지 이진경 등 여러 학자가 『자본』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고병권 선생님의 『자본』 읽기는 어떤 점에서 독특할까요?

 

이런 생각을 해요. 예수, 마르크스에 대해 누가 과연 새로운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확인이 불가할 정도로 문헌이 많습니다. 그 자체가 1차 문헌처럼 느껴지는 2차 문헌도 있고요. 대부분은 『자본』을 요약해주는 책이죠. ‘북클럽 『자본』’ 시리즈는 요약이 아니라 오히려 부풀립니다. 12권이 쌓이면 자본 1권보다 더 두꺼울 거예요. 이렇게 쓰는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자본』은 고상한 책이에요. 경제학의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근대적 주권이라든지 국가권력 문제로도 이 책을 볼 수 있어요. 상품 거래는 어떤 인간 관계를 전제하는지와 같은 사회학 주제도 담겨 있고요. 물신주의라는 우리 시대의 종교, 심리학을 다루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속한 시대, 우리사회를 읽는 책으로서 저는 『자본』을 천천히 읽으려고 합니다.  『화폐라는 짐승』에서 “상품은 스스로 시장에 갈 수 없고 스스로 자신을 교환할 수도 없다” 한 문장만으로도 몇 십 페이지씩 썼는데, 이렇게 한 구절을 이리 뜯고 저리 뜯고 천천히 되새기고 있어요.

 

두 번째는, 제가 관심이 가는 구절이 있어요. 이건 정말 마르크스다, 이렇게 느끼는 문장이 있는데요. 『자본』에 관해 이야기한 기존 책은 잉여가치, 이윤율 저하와 같은 개념을 읽는 건 많았어요. 노동력이 매매되는 장면에서의 슬픈 표정, 이런 구절에 주목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구절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해요. 『자본』이 과학적 책이라는 데 공감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과학을 넘어서는 책이 『자본』입니다.  『다시 자본을 읽자』에서는 제가 역사성과 당파성을 이야기했죠. 앎, 앎의 질서가 있고, 그 앎을 떠받치는 영역이 있어요. 사회과학, 정치학에서는 법의 영역이라 할 텐데, 이걸 넘어서는 영역을 저는 읽어내려 했어요.

 

책 앞날개에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가 ‘예리하지만 감성적인 비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본』이 감성적인 책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요.

 

마르크스가 광학 이야기를 했고, 저도 조명 비유를 자주 사용하는데요. 『자본』 첫 문장의 동사가 ‘보인다’입니다.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인다, 시각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어떤 조명을 비추냐에 따라 다르게 와 닿아요. 거기서 앎의 의지가 드러나죠. 이게 당파성, 정서, 감성이겠죠.

 

제가 “두뇌는 심장의 내장”이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는데요. 니체가 자유정신에 관해 쓴 말입니다. 머리는 마음 가는 대로 가게 돼 있어요. 천재는 사기꾼일 수도 있고 과학자일 수도 있죠. 두뇌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방대하고 체계적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디로 어느쪽 지식을 모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마르크스에게 왜 잉여가치를 해명하는 게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토마 피케티처럼 소득분배만 조사해도 양극화가 심하고 재분배를 강화해야 하고, 세금 정책을 쓰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마르크스는 원천을 집요하게 좇을까요? 자본가에게 노동자가 얻어먹고 사는 게 아니라, 사실은 노동자가 자본을 먹여 살린다는 걸 밝히려는 의지가 있었던 거죠. 마르크스 마음이 여기에 가 있었던 거예요.

 

『묵묵』  문체가 차분하다면, 북클럽 '자본' 시리즈에서의 문체는 다정하고, 친절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합니다.

 

쓴 시기 차이가 있어요.  『묵묵』 이 먼저 썼던 글이고, 북클럽 자본 시리즈는 지금 쓰고 있는데요. 유머러스한지는 모르겠어요. 그쪽이 목표이긴 하죠. 웃기지 않는 글이 우리를 좋게 만들 리 없다는 생각은 하거든요. 『모비 딕』에서 허먼 멜빌이 고래에 관해 쓰죠. 고래가 표면에서 햇볕을 쐬는데, 눈이 충혈돼 있어요. 고래는 원래 표면에서도 숨 쉴 수 있으니까 햇볕을 쐬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왜 충혈됐는지를 물어야 해요. 어쩌면 저 고래는 수압이 센 심해까지 갔다 왔기 때문에 눈이 충혈됐을 수 있어요. 심해까지 갔다 올 수 있는 존재와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표면에 있는 자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밑에 갔다 왔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웃음) 다양한 문체를 조절할 수 있다면 대단한 거예요. 물론 제가 거기까진 못 갔을 테고,  『묵묵』은 굳이 말하자면 아래 쪽에 있을 때 쓴 글이죠. 개인적으로는 필수 챕터에요. 여기를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할 거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금도 솔직히는 여기에 가깝죠. 사회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고, 자본을 계속 써야 하니 눈 앞에 있는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계속 밑에 있으면 병들 거라 생각해요. 지금은 경쾌해졌다면 좋겠고, 쉽게 쓰려고 해요. 마르크스의 정신이기도 한데, 그가 『자본』을 쓸 때 어마어마하게 뜯어고치죠. 그 이유가 명확하게 독자를 의식했기 때문이에요. 독자를 위해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어요. 저도 가급적 제 생각이 쉽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글 쓸 때 마르크스 그림을 옆에 두고 보면서 “잘 쓸게요. 보채지 마세요.” 하며 쓰고 있어요. (웃음) 마르크스의 태도와 자세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건 마음이고, 실제로 잘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르크스가 누구이며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묵묵』에 실린 글의 주제 중 하나가 '앎이 삶을 구원할 수 있는가'인데요. 이 물음을 바꿔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마르크스는 지금 현대인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2008년에 쓴 그 글은 앎이 삶을 구원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앎이 어때야 구원할 수 있는지를 물었어요. 공부 많이 해봐야 인생 좋아지지 않거든요. 마르크스가 구원할 수 있을까, 이 물음 전에 우리가 어떤 감옥에 갇혀 있는지부터 알아야겠죠.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그린 공산주의를 설명하라고 하는데요. 마르크스가 미래에 대해 언급하긴 했어요. 징후들. 그런데 이런 건 되게 모호합니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걸 창조한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다르게 본 사람으로, 전복자지 창조자가 아닙니다. 혁명라라면 전복자로서 혁명가죠. 가치 평가 방식을 뒤집은 사람, 가치의 전복자죠. 자본, 잉여가치, 이런 용어가 마르크스가 만든 게 아니라 다 일상 용어였어요. 이걸 다시 보게 한 사람이 마르크스죠. 그는 우리가 얼마나 이상한 세계에 사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입니다. 마르크스에게 구원이 있다면 비판이라는 말과 통할 것 같아요. 구원의 고대 철학적 의미, 그러니까 초월적 메시아를 통해 날라가는 게 아니에요. 마르크스의 구원은 ‘깨어 있다’, ‘잠들지 않는’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를 얼마나 낯설게 볼 수 있는가, 우리가 얼마나 역사적으로 특수한 시대에 살고 있는가, 자연스럽다 느꼈던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고 내 고통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면, 마르크스는 굉장히 좋은 논자라고 생각해요.

 

마르크스가 했던 말이 있어요. 글자 그대로 기억나진 않는데, 이런 맥락이었어요. 해방은 지배계급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억압받는 자가 강해지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요. 고통이 없고 할 일 없는 세계가 구원이 아니라, 어리석은 짓을 깨닫게 되는 것이 구원이라 생각해요. 어떤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는 그 다음 문제겠죠.
 
마르스크가 『자본』 외에도 여러 저작을 냈고, 알튀세의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에서 보듯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어떤 글을 계승하고 어떤 글을 버려야 한다, 이런 논의가 있었잖아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마르크스는 누구일까요?

 

루이 알튀세와 에리히 프롬은 같은 시기에 썼어요. 프롬은 인간주의적 독해를 하면서 『경제학 철학 초고』 텍스트를 많이 인용했고 알튀세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인간주의적 독해와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산당 운동과 연관이 있어요. 흐루시초프의 인간화된 공산주의가 많이 퍼졌을 때죠. 알튀세는 마르크스가 포이에바흐를 비판한 텍스트를 인용하면서 형이상학적 태도를 반대하죠. 마르크스 텍스트에서 어느 시기부터 인간이 사라지고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중요해진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런 독해가 당시 정세 속에서 수행한 역할이 있겠죠. 마르크스 자신의 단절로 볼 수도 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는 알튀세가 행한 해석학적 단절이라 생각해요. 알튀세 스스로도 절단이라는 행위가 과도하게 독해되고 있다고 이후에 말했고요. 새로운 해석학적 프레임은 뭔가 새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못 보게 하기도 합니다. 알튀세처럼 읽으면, 마르크스의 초기 텍스트는 볼 필요가 없나요? 이런 문제가 당연히 제기되고, 소외 개념은 『자본』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나와요. 이런 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게 좋지만 어떤 해석 자체가 절대시될 필요는 없겠죠. 저는 프롬이나 알튀세 모두 중요한 독해를 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고병권의 마르크스는 뭐냐는 질문이 이어질 텐데요. 글쎄요. 딱 한 마디로 이거라고 프레임을 제시하고 싶진 않아요. 제게 그런 자격도 없고요. 제가 마르크스의 앎의 의지 이야기를 했는데, 앞서 니체 말도 인용했죠. 마음 가는 쪽으로 머리가 간다고요. 머리는 늦게 도달할 수 있어요. 이전 텍스트도 중요하다 생각하고, 저는 마르크스의 ‘당파성’, ‘앎의 의지’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보려고 해요.

 

제가 부커진 R에 마르크스 전기에 관해 쓰면서, 귀족적 마르크스, 무자비한 마르크스, 공공연한 마르크스, 국적 없는 마르크스, 공부하는 마르크스, 이런 다양한 마르크스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결국은 다 통해요. 귀족적 마르크스는 따옴표를 쳐봐야겠지만요. 무자비한 마르크스는 법칙을 넘어서까지 보려 하는 태도, 공공연한 마르크스는 음모와 대비되는 면모, 공부하는 마르크스는 지식을 축적하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식을 쌓아온 근거까지 내려가는 모습, 무자비하다는 의미와도 통하죠. 마르크스에게 비판은 근거 자체를 깨부수는 다른 조명을 알려주는 그런 측면이 있어요. 한 마디로 뭐라고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비판가’ 정도가 떠오르네요. 비판이 공부이기도 하고 혁명이기도 하니까요.

 

북클럽 『자본』시리즈를 읽으면 공부하는 마르크스가 떠오릅니다.  1852년에서 1864년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는 스스로 “공적 무대에서 서재로 물러났다.”는 글을 썼습니다. 정말 마르크스는 서재로 물러났을까요, 아니면 서재로 진격한 것일까요? 마르크스의 서재는 혁명으로부터 퇴각한 곳인가요, 혁명이 일어난 곳일까요? 서재의 마르크스, 대영박물관의 마르크스, 늦은 새벽까지 레모네이드 한 잔을 들고 밤을 하얗게 태우곤 하던 마르크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익숙한 혁명가의 이미지를 수정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혁명과 공부는 어떤 관계일까요.

 

공부하는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면서 공부란 새벽 4시라는 표현을 썼어요. 제가 주로 글쓰는 시간이기도 한데요. 1857~1858년 대공황이 닥쳤어요. 사람들이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무기를 찾고, 말을 몰아야 하는데 마르크스는 서재로 갔단 말이에요. 당시 프루동을 비롯해 사회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많은 이데올로기가 마르크스가 보기엔 유해했습니다. 대타협, 이런 식의 주장이 많았어요. 마르크스는 이런 조화론자를 향한 분노가 컸죠. 빨리 팜플릿이라도 써서, 급하게 스케치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혁명이 어때야 하는가로 접근할 때,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는 글 쓰는 사람이에요. 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시거 물고 레모네이드 한 잔 든 채로 어마하게 글을 쓰다 새벽 4시에 잠들었다고 합니다. 노동자는 9시나 10시에 나오겠죠? 다시 말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앞선다는 거죠. 공부란 도래할 걸 미리 읽는 거예요. 여기서 어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미리’라는 말에서 잘못하면 점쟁이가 계시하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공부란 이미 와 있는 걸 예견하는 거예요. 플라톤이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사건이 방황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죠. 이미 만연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포착되고 있지 않는 걸 읽어낸다, 이게 공부입니다. 헤겔과는 반대죠. 헤겔은 늦게 와요. 일어난 뒤에 성찰하고 반추합니다.

 

뒤에 4권에 쓰겠지만, 마르크스와 헤겔이 여러 모로 대비되죠. 둘은 똑같은 구절을 갖다 쓰면서도 다르게 써요. 대표적인 게 “여기가 로도스섬이다, 여기서 뛰어봐라”입니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시대의 높은 장벽을 환기시면서 시대에 갇혀 있다는 의미로 썼어요. 마르크스는 야유하는 말로 쓴 게 아니라 돌파의 지점, 입증해야 할 지점으로 씁니다. 혁명이 계속 패퇴하면서 정세가 반동화될 때, 이 정세를 도약하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난 때로 본 거죠. 여기가 로고스의 섬이고 이제 넘어서야 할 때라고요. 정말 다르죠.

 

공부란 뒤로 물러설 때조차도 도움닫기라는 걸 알고, 공부란 그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읽어내는 시도입니다. 어떤 분야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시대를 넘어서는 사람이죠. 학문하는 노동자라고 니체가 썼지만, 사상가는 아인슈타인이든 다윈이든 마르크스이든 그들이 위대한 건 잘 정리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도약해서에요. 앞서 가는 건 지도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내 말 따르라, 이게 아니라 이미 와 있는 걸 읽어내는 것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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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AI, 최저임금 여전히 유효한 마르크스의 지적

 

3권 주요 주제가 화폐입니다. 화폐의 출현은 공동체 해체와 관련 있다는 게 마르크스의 입장이고, 선생님께서는 오래 전에 내신  『화폐, 마법의 사중주』에서도 설명했습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를 보시는 선생님의 관점이 궁금했습니다.

 

솔직히 잘 몰라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데요. 화폐 공부한 지도 오래 됐고요. 예전에 가상화폐 관련 토론자로 초대받아서 발제문을 쭉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발표하는 분이 새롭다고 말한 게 제게는 전혀 새롭지 않았어요. 그 분이 새롭다고 이야기한 첫째가, 국가 통제를 받지 않는 사적 화폐라는 점이었는데요. 원래 사적 화폐는 많았어요. 오히려 화폐주권을 말하면서 국가가 통일해야 한다고 나온 게 얼마 안 됐죠. 심지어 오늘날에도 중앙 화폐 아닌 화폐가 많죠. 각종 페이부터 시작해서, 게임 머니, 공동체 화폐가 그렇죠. 두 번째가 가상화폐라는 점인데요. 역시 새롭지 않아요. 16~17세기에 사용한 리브로화는 없어진 화폐였어요. 실제 사물은 없고 환전 대상으로, 계정으로만 썼죠. IMF의 SDR이라는 특별인출권도 추상적 화폐거든요. 그리고 원래 화폐가 가상적이에요. 사물성과 혼동되면 안 되죠.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암호화폐라는 건데, 이건 좀 새로웠어요. 화폐는 금본위라든지, 국가 권력이 보장하든지 하는데 수학적 모델을 써서 가치를 담보한 게 그나마 새로웠어요. 나머지 기능적 측면에선 거의 새롭지 않았어요.

 

예전에 JTBC에서 가상화폐 관련 토론을 한 적이 있었죠. 저는 방송을 다 보진 않았고 예고만 봤는데요. 반대하는 분의 주장 중에서 그런 표현이 있더라고요. 이건 화폐가 아니라 금융상품이라고. 그 말도 좀 웃겼어요. 그 분은 화폐를 뭐라고 생각하기에 화폐가 아니라 할까… 화폐의 화폐성이라는 말을 있는데, 국제금융시장에서 결재수단으로서 한국 화폐는 화폐성이 미국 재무부 채권보다 낮죠. 금이라든지 구리가 어떤 나라의 중앙은행 화폐보다 화폐성이 높을 수 있고요. 물론 안정적인 척도가 불안정하니까 그런 표현을 썼겠지만, 화폐 자체가 불안정해요. 국제 환시장만 가봐도 알죠. 유로화 통합되기 이전 파운드화조차 투기 대상이 되어서 가치가 급락한 적이 최근에 있었죠. 금융상품과 화폐는 반대말이 아니에요. 화폐가 금융투기 상품이 될 수 있어요. 물론 비트코인 불확실성이 크고, 그런 점에서 투기성이 크죠.

 

정리하자면 가상화폐는 기능에서 새로운 게 없고요. 화폐로서 과연 절실하게 필요했는지 모르겠고, 새로운 것은 블록체인 기술인데 요건 흥미로워요. 그런데 비트코인이 아니면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블록체인 기술에 과문해서 모르겠는데, 모든 거래 기록이 남는다더라고요. 근거 없는 상상을 해봤어요. 남태평양의 쿨라 시스템에서 썼던 화폐 시스템이 생각났어요. 여기서는 여러 번 돌수록 가치가 올라갑니다. 왜 올라가냐 하면, 여러 부족을 관통할수록 연대의 상징이 되거든요. 그래서 경찰관이 공안적 시각에서 기록하는 것 말고, 신원이 아니라 사연을 화폐에 기록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은 해봤어요. 블록체인 기술이 거래에 사연을 담을 수 있다면, 화폐가 갖지 못하는 성격을 블록체인이 입혀줄 수 있다면, 공동체 화폐에 유용할 수 있을 듯해요. 지금은 가상화폐가 소란스러운 거에 비하면 대단해 보이진 않습니다. 기술을 발전시키면 새로운 여지는 있을 거 같은데, 왜 그쪽으로 안 가는지는 모르겠네요.

 

9권에서 등장할 것 화제인데, 질문 드리겠습니다. 최저임금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임금에 관해서 마르크스는 어떻게 이야기했나요?

 

마르크스에게 임금은 노동력 가치에 대한 지불로, 상품값을 치르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일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고 말해요. 노동력을 임대업에 비유하죠. 우리가 집을 살아보고 나서 값을 정하지 않죠. 계약서를 쓰고,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지불합니다. 똑같아요. 원래는 자본이 제품 만들 때 기계, 원료 살 때처럼 그날 지불했어야 하죠. 그런데 마음 좋은 노동자가 그렇게 못하고 일한 다음에 받기로 해요. 이렇게 하다 보니 체불 임금이라는 게 생기죠. 체불 임금을 마르크스가 재밌게 표현하는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어음만 받고 떼이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체불 규모가 몇 조 단위라고 하죠. 어마어마합니다. 노동자가 부도난 거예요. 이점만 봐도 일한 거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는 게 맞죠.

 

당연히 줘야 하는 거고 얼마를 줘야 하는가가 문제인데, 렌터카를 생각해봅시다. 사용한 만큼 쓰고 원상태로 복구해야 하죠. 노동력도 썼으니까 복구해줘야 합니다. 복잡한 계산이 아니라, 이 사람이 먹고 살 만큼이겠죠. 마르크스는 계속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이라 했습니다. 여기에는 먹을 거, 입을 거, 집 살 거, 그리고 기술 익히려면 교육비도 필요하고, 자본주의가 한 세대만 하고 망할 게 아니니까 다음 세대 자식 교육비도 필요할 거고, 정신적 능력도 중요하니까 여행이라든지 독서에 쓸 돈도 필요하고, 이런 게 포함되겠죠. 그렇다면 이게 한도 없을 텐데 어떻게 계산하느냐? 여기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사회마다 대체로 정해져 있다고 평가합니다.

 

최저임금 발상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복지적 측면이 있죠. 또 한 편에서는 미니멈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최저임금위원회가 기초 생계 조사를 합니다. 하위 40퍼센트를 염두에 두고 산정하거든요. 정상적 노동자 품질 아니라 최소라는 의미인데요. 우리는 최저임금을 준다고 자랑하잖아요. 편의점 같은 데서 ‘임금 협의 가능’이라고 하면 안 줄 수도 있다는 의미라면서요? 최저임금 기준으로 주면 150~200만 원이고, 점주는 그 만큼 못 받는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계산하면 안 된다고 마르크스가 실제로 말했어요. 파트타이머가 30일 일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하루에 짧게는 한 시간에서 네 시간 일하는데, 이 돈으로 살 수 없거든요. 그러니 두 탕, 세 탕 뛰어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시급은 훨씬 높아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연장 근로도 더 줘야 하는 게 당연해요. 실제로 150% 주잖아요. 과로하면 어느 시점부터는 복구가 안 되거든요. 비용이 훨씬 올라가요. 연장근로가 150%이듯 최저임금도 시급이기 때문에 더 줘야 합니다.

 

최저임금 관련해서는 다른 문제가 있어요. 시급, 성과급으로 계산하면 사람이 한시간짜리 두시간짜리, 물건 100개짜리 이런 식으로 말 그대로 인간이 파트 타이머가 되어버립니다. 시간 존재로 돌변하죠. 이게 사물화인데요. 사물화되면 막 쓸 수가 있어요. 최저임금을 바라볼 때 어떤 존재가 어떻게 삶을 살고 능력을 발휘하는지 시각으로 볼지, 자본주의에서 원료 쓰고 기계 쓰듯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지로 볼지는 완전히 시각이 달라요. 지금 논의는 잘못하면, 얼마짜리로 갈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하청 부리기 너무 좋은 사회가 되어버리죠. 최저임금 관련해서 기업이 한국에서 버틸 수 있을지 논란이 있는데, 그런 조명으로 보는 것과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이고 어떤 사회이고 어떤 생산 양식으로 인간이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동력 상품화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최저임금이 아니라 정상임금을 줘야 하는 거예요. 마르크스는 최저임금이 감성적 차원에서 주는 게 아니라, 정상 가격을 지불하라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물건에 지불하듯, 노동자에게도 제대로 지불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최저임금을 통상임금처럼 이해하는 면이 있는데, 말 그대로 최저임금은 더는 내려가지 말라고 있는 거거든요.

 

AI, 자동화, 일자리 소멸에 관해서도 마르크스가 이미 말하지 않았나요. 기계화가 이윤율 저하로 이어진다고 설명한 게 마르크스 위기론의 독특한 점인 듯합니다.
 
위기는 바깥에서 올 수 있어요. 공룡이 행성에 의해 멸망한 게 사실이라면, 이건 외부에서 온 위기인데요. 이런 위기는 천문학의 대상일 수 있지만 마르크스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자본』이 관심 있는 위기는 내재하는 위기에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위기는 강화됩니다. 산업 공황, 화폐 공황, 이윤율 저하, 여러 공황이 있죠.

 

자동화와도 관계 있는 건 이윤율 저하인데요. 가변자본에 대한 투자가 줄고 자동화가 일어나는 걸 마르크스적 용어로는 유기적 구성이 증대한다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윤양은 증대하지만 이윤율은 떨어진다고 보죠.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요인도 말했어요. 그래서 기계화 때문에 자본주의가 망할 거라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식의 주장은 리카도나 멜서스죠. 멜서스의 경제적 버전이 리카도입니다. 마르크스는 두가지 방향을 다 보여줬어요. 마르크스는 자본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위기를 창출한다는 말을 썼어요. 더 큰 위기를 낳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이상한 말이죠. 위기가 있는데 망한다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죠?

 

실업률이 계속 높아지고 AI가 노동을 대체하면 어떻게 할까요? 대다수가 구매력이 없어지겠죠. 제가 대학 시절 김수행 교수님에게 던졌던 질문이, 완전 기계화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였는데요. “간단하지, 물건을 공짜로 나눠주거나 그게 하기 싫으면 문 닫아야지.”라고 답하셨어요. 물론 그렇게까지 가진 않겠죠.

 

마르크스는 기계가 가진 가능성을 봤어요. 노동 시간의 단축이라는 가능성을 봤죠. 더 나아가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는 노동 안 하는 사회로 풍요로운지를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썼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가 부자이냐 아니냐인데, 마르크스는 기계화되면 다른 가능성도 생긴다고 본 거죠. 노동하지 않는 시간으로 부를 잴 수 있고, 이렇게 됐을 때는 노동 시간 자체의 의미도 달라질 겁니다. 지금은 자유시간을 누리기 위해 노동하지만, 나중에는 타자를 위한 가치 창출이 아니라 나를 훈련하는 의미가 중요해질 수 있어요. 이렇듯, 기계의 다른 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공유경제, 공유라는 가치가 나쁘진 않아요. 문제는 어떻게 비자본주의로 전유할까인데, 앞서 말한 블록체인 기술도 왜 그렇게만 쓰는지 모르겠어요. 인터넷이 군사용으로 개발됐지만, 촛불혁명을 가능케 하듯이, 아직도 우리는 기계와 사귀는 법을 잘 모르는 듯해요. 지금 AI가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아마 마르크스는 기계의 다른 용법을 물었을 거예요. 기계화되면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마르크스가 선언하지 않았어요. 공산주의로 이행 경로가 정해져 있지 않듯, 자본주의도 영원하라는 법이 없고, 잠재성을 얼마나 읽어내고,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따라 역사는 달라집니다. 기계의 어떤 용법을 발명해느냐가 중요하겠죠.

 

『언더그라운드 니체』 , 『다이나마이트 니체』 등 이전 책에서는 니체를 다뤘습니다. 니체와 마르크스는 선생님께서 자주 인용하는 두 거장인데요. 흥미로운 지점이라면, 니체가 마르크스를 비판했고 실제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지점이 약간은 다릅니다.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나 세기의 대토론을 했다면, 선생님은 누구 편에 설까요?

 

니체가 마르크스에 관해 언급했다는 구절이 『나의 누이와 나』에 있다는데,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그 책은 니체가 죽고 나서 어떤 사람이 니체 원고라고 주장하여 내놓은 건데, 문헌학적 근거가 없고 저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니체가 사회주의자를 비판한 대목은 많아요. 대표적인 인물이 듀링인데, 듀링은 마르크스도 비판했어요. 저는 오히려 보면 볼수록 니체와 마르크스가 통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두 사람이 영역은 다르지만 모두 근대적 가치를 비판했죠.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을, 니체는 도덕을 비판했어요. 두 사람이 경멸하고 극복해야 할 존재를 노예로 봤다는 점에서도 같았고요. 마르크스는 부르주아를 돈의 노예라 생각하고, 임금인상만을 요구하는 노동자도 노예라고 봤어요. 쇠사슬을 황금사슬로 바꿀 뿐이라는 거죠. 기질이 마르크스는 다혈질이고, 니체는 세게 말하는 거에 비해서는 조금 소심한 듯한데 그래서 한 방 쓰기는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웃음) 그렇지만 조금 거리 두고 편지 주고 받았으면 두 사람이 동시대를 비판하면서 낄낄댔을지도 모릅니다. 펜팔 하면 좋았을 사이?

 

책을 내면서 독자와 직접 만나고 계신데요. 선생님께서 처음 대학생 시절 『자본』을 읽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요?

 

두 가지 생각이 함께 떠올라요. 하나는, 2008년쯤 일입니다. 수유너머에서 한 대학생이 『경제학 철학 초고』를 읽고 있더라고요. 그때도 마르크스를 읽는 일은 이상한 일이었어요. 사회주의가 망한 지가 언제인데, 화석화된 책을 읽는 느낌? 물론 그때 약간 붐이 불었어요.  『게 공선』이라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세계 금융위기 때문에 『자본』이 다시 조명되는 시점이었는데, 여하튼 신기했어요. 제가 재밌냐고 물으니까 재밌대요. 뭐가 재밌냐니까, “노동자는 빵을 위장으로만 느낀다. 빵의 향기도, 촉감도 못 느끼고 배고픔으로만 먹는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게 소외 개념이거든요. 마르크스는 자본가도 똑같다고 썼어요. 보석의 광채에는 관심 없고 가격에만 관심있다고요. 자본주의가 인간을 이렇게 만든다는 건데요. 노동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하고, 그런 점에서 인간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왜 인간은 노동할 때 슬프고 힘들고 동물로 돌아갔을 때, 그러니까 먹고 자고 놀 때가 행복할까, 이게 소외입니다. 그 대학생이 자기도 그렇대요. 편의점에서 일할 때 너무 힘들고, 식사할 때도 위장으로 먹었다고요. 깜짝 놀랐죠. 오히려 마르크스를 못 느낀 건 내가 아닐까? 저는 대학 때 읽었지만 이념으로 읽은 거죠. 니체가 “피로 쓴 건 피로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어쩌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사회 전체적인 틀에서는 『자본』과 사람 사이의 긴장 관계가 예전 같지는 않은 거 같아요. 아무리 좋게 봐도, 『자본』은 좋은 책 중 하나이고, 더 심하게는 그마저도 안 되는 책이죠. 예전에는 불온했다가 이제는 낡아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최대한 잘 봐줘야 고전인데, 고전이라는 말에는 더는 우리 시대의 책은 아니라는 의미가 있죠. 제가 대학 다닐 때의 긴장감은 없어졌죠. 그때는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드는 긴장감이 있었어요. 예감을 하는 거죠. 결별 통보할 때, 아직 상대방이 말 안 했는데 알 것 같은, 공기에서 느껴지는 그런 예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읽을 때 저 책에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 이런 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자본』 접할 때도, 어떤 긴장감이 있었어요. 이 책을 읽으면, 물들지도 모른다, 의식화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요. 그럼 안 읽으면 되는데, 이 책에 묘하게 끌리고 계속 알고 싶은 매력이 있었어요. 자본이 가졌던 매력은, 좋아하게 만드는 쾌락만 있는 게 아니라 두려움도 함께 있어요.

 

저희 때는 독서회 사건이 많았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잡혀가기도 했죠. 지금도 독서 클럽이 많고, 그중에서는 책을 읽으면 인생역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진짜 책이 사람을 바꿨나 봐요. 독서가 공안 사건인 시대였죠. 운동권만이 아니라 안기부도 책을 신뢰했고, 책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까지 있었던 시대가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좀 변했죠. 지금 우리 시대 책읽기, 과연 주체성의 생산이 될까요? 주체성의 생산은 꿈이 바뀌는 건데요. 『자본』은 한때 주체성을 생산했던 책이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 순 있지만 우리 시대 그걸 기대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은 들어요. 또, 모르죠. 언제 누가 어떤 책을 읽어서 바뀔지는요. 근로기준법이 한국 노동 운동에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는 법 만드는 사람은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헌법, 성경, 그밖에 어떤 책을 읽고 뒤집어질지는 몰라요. 어떤 열망 속에서 읽힐지, 책 읽는 배치가 중요하겠죠. 다만 지금은 그리 좋은 배치가 아니라는 느낌은 들어요.  

 

독립서점, 독립출판물 등 개인의 경험을 책으로 펴내는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굳이 책을 내지 않더라도 다양한 플랫폼에서 쓴 글이 유명해져서 유명 작가가 되기도 하고요. 여러 해, 다양하게 책을 내신 저술가 입장에서 저술 환경의 변화, 어떻게 느끼시나요.

 

중요한 질문이라곤 생각하는데, 답하기에 저는 안 좋은 작가입니다. 페이스북도 안 하고, 어떻게 내세우고 어떻게 글이 퍼져 나가는지 잘 알지 못해요. 글쓰기 일반에 관해서 생각을 많이 생각합니다. 한때는 사회학, 인문학, 철학 한다는 말 많이 했는데 요즘은 문학한다는 말을 많이 써요.  『묵묵』도 문학, 에세이로 낸 책이고 이제는 사회과학 철학보다는 생각을 글로 쓰는 존재,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쓰고 어떤 매체에 쓸지에 관해서 고민은 깊은데, 해오던 방식이 책 쓰기라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에 관해서는 잘 몰라요. 내 영역, 하던 것에서라도 잘해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건강 상태 때문인지 고립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글을 쓰거나 읽을 때도, 적정 규모의 사람이 좋아요. 제가 선포할 게 아니니까요. 생각이 멀리 퍼지는 건 좋지만, 제게 5천 만이 알아야 할 생각이 있지 않아요. 그러면 소명의식을 갖고 사도가 되어서 퍼뜨리겠죠. 그렇게까지 아는 게 없고, 작은 몇 가지 떠올린 게 있고 몇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정도예요.

 

지금 두고 있는 다른 관심사나, 다른 책 출간 계획은 있을까요?

 

북클럽 『자본』 때문에 생계도 접은 판에 딴 책을 쓸 수는 없죠. 마르크스에 대해 먼가 해보겠다 해서 쓴 것도 있지만, 한편에서는 이 책이 훌륭한 도약대가 되어줄 거라 생각해요. 공부하는 습관과 관련해서 군인 같은 삶이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업을 마치면 마침 50세가 됩니다. 새롭게 시작하기 좋을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공부할 건 많이 있어요. 공부할 주제가 떨어진 적은 없고, 다 못하고 죽을 게 뻔한데 마음 속에 둔 주제는 몇 개 있습니다.


 

 

다시 자본을 읽자고병권 저 | 천년의상상
역사학자 홉스봄 역시 마르크스의 『자본』이 나오면서 우리 시대를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다시 자본을 읽자』의 저자 고병권에게 마르크스의 『자본』이 흥미로웠던 것은 이런 개념적 사항보다는 문제를 바라보는 ‘마르크스의 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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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보 “가사를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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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의미 있게 관찰하는지”를 ‘부사와 형용사의 세계’에서 조금 더 생각하는 것이 작사가의 일이라고 말하는 작사가 심현보는 지난 12월  『가볍게 안는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와 곡을 동시에 발표했다. “사랑하는 많은 것들을 가볍게 안는 일이 어쩌면 살아가는 일의 전부가 아닐까”라고 말하는 그는 여러 계절 동안 책과 노래를 만들고 다듬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순간들을 정성스럽게 담아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는 심현보는 봄이 오면 모습을 보이는 동네 식당의 야외 테이블, 공원 벤치에 가만히 앉아 몽상에 잠기는 시간처럼 구체적인 순간을 기록했다. 그것은 단지 좋아하는 것들의 나열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안하는 일이었다.

 

아주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들, 나중에 보면 “왜 썼지, 싶은 것들”까지 담아놓은 매일의 기록은 “그럼에도 이런 것을 쓰는 게 그때그때를 의미 있게 바꿔주는” 일이라 좋다. “지나고 나서 보면 별것 아닐지언정 그냥 ‘좋았다’ 하고 지나치는 것과 어떻게 좋았는지를 조금이라도 써놓는 것은 아주 다를 것”일 테니 좋은 것이다. 좋은 것들이 모여 근사한 어떤 것이 된다고 믿는 심현보. 그의 목록을 엿보다가 자꾸 자신의 순간을 돌아보게 되는 사람이 나뿐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커피를 내리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당신과 지구 사이의 무게축이 오른쪽 다리에서 왼쪽 다리로 조용히 옮겨가는 순간이라든가, ‘세탁’을 외치며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도는 세탁소 아저씨의 목소리가 어쩐지 조금 더 활기차게 느껴지는 순간. 자동 세차기를 통과하고 나왔을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왠지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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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질구레하게 더 자주 좋아하는


책 쓰면서 좋으셨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는 글쓰기 자체가 기분을 좋게 하잖아요. 어떠셨어요?

 

일 때문에 쓰는 글이 있죠. 그런 글도 어찌 보면 일상적인 소회나 경험이 조금씩 들어가는 것 같긴 해요.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두는 것은 저의 익숙한 생활 패턴이고요. 다만 그동안 키워드나 장면 위주로 짧게 적었다면 에세이를 쓰고 싶단 생각은 쭉 했었어요. 짧은 글이 좀 있었고, 그것들을 어떤 식의 글로 모을까 생각하다가 이 책이 되었죠. 일상에서 포착하는 것 중 제일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분들과 다를 수 있겠지만요. 제 글을 통해 각자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글을 시작한 계기도 그거였어요.

 

좋아하는 것들이 아주 자세해서 흥미로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좋아하는 게 많은데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지나가게 마련이죠. 저도 그렇고요. 그런데 좋아하는 것들은 사실 각자의 시간과 일상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런 걸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쓰고, 읽으시는 분들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생각했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자신과 달라도, 비슷해도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걸 안 좋아하시면 자신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남들과 비교해서도 좋아하는 것이 많은 편인 것 같단 생각은 들거든요.(웃음)


더 자질구레하게 더 자주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웃음) 저는 진짜 파란색 야외 테이블 좋아하거든요. 편의점 앞에 늘 있는 그 테이블 있잖아요. 그게 편의점 앞에는 늘 있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건 동네 조그만 술집에서 봄이 되고, 사람들이 바깥에 앉을 법한 날씨가 됐을 때 딱 내놓는 그 테이블이에요. 그걸 어느 날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그러면 적어두죠. 단어나 문장을 수집하고 적어두는 것은 가사를 쓰면서 생긴 꽤 오랜 습관인데요. 어떤 것들은 가사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좋아하니까 적어두는 것들이 있는 거죠. 그것들이 이번 책에는 담긴 것 같고요. 좋아하는 게 많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별 거 아닌 것들이 나한테는 별 거여서 그것을 기다리거나 보는 것이 좋으면 좋잖아요. 그것들을 삶에 잘 배치해두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점점 더 자주하게 돼요.

 

“자질구레한 것들을 좋아한다”(18쪽)는 문장도 적으셨는데요. 그 자질구레한 것들의 매력이나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음악하고, 가사 쓰면서도 많이 생각하는데요. 사실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동화하게 되는 이야기는 대부분 이런 일상적인 것들 같아요. 물론 큰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겠지만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자질구레한 것들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나와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들 말이에요. 또 그런 것들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시간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드라마와 달리 대부분 우리는 비슷한 일상을 지내는 것 같고요. 노래 가사에는 그런 일상성이 담보된 경우에 훨씬 더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얻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모여서 무언가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일상에서는 해야 하는 것들, 별로 행복하지 않은 것들이 놓여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두 개 배치하면 한결 낫겠죠.

 

 

하루짜리 일상들


일상이라는 것을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여행을 가도 그 안에는 또 일상이 있잖아요. 여행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서 일상을 살면서 여행하는 나를 상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란 생각을 하거든요. 가기 전에 설레고, 기대도 되고요. 그런데 또 막상 가보면 거기의 일상이 있죠. 그런 것들이 다 사람에게는 행복감을 주는 것이고요. 그게 모여서 자신이 의미 있어진다고 느껴야 하는데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일상에 자질구레한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무언가 근사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267쪽)고 에필로그에 적었는데요. 아마도 이 문장이 작가님의 중요한 주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계획들이 있죠. 꿈이라고 해도 좋고, 계획이라 해도 좋은데요. 이것들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가 돼요. 저도 계획 세우는 거 되게 좋아해요.(웃음) 1월 1일에 하는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계획 세우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것들을 잘게 나누면 또 다시 하루짜리 일상들인 거잖아요. 계획들에 너무 부대끼고,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 하루라서 오늘이 의미 없는 것 같으면 과연 좋은 걸까 싶어지는 거죠. 하루 단위의 나도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쉽지 않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일도 많고요. 다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을 성취해서 얻어지기도 하지만 성취와 상관없이 내가 무언가에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요. 매일 식물을 돌보는 마음과 그렇지 않는 마음은 다를 것 같아요. 일상 속에 배치되어 있는 것들은 내가 좋아하고, 마음을 쓸 수 있고요. 그것들만 조금씩 만들어둬도 좀 나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작가님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체를 즐기는 것도 같고요.


그런 것 같아요. 겨울이 참 힘든데요. 겨울에도 좋아하는 것을 만나거나 좋아하는 것을 하러 가면, 좋아하는 것을 먹으러 가면 다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속 편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없잖아요. 일상이란 게 그리 녹록지가 않고요. 좋아하지 않는 것을 훨씬 더 많이 만나야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 두는 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덜 힘들게, 덜 무너지게, 혹은 덜 아프게 할 수 있는 방법 말이에요. 다른 사람이, 외부 세계가 어떻게 날 대하는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정성과 시간, 마음을 잠깐이라도 쓰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좋아하는 게 많은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늘려나가는 노력이야말로 각자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책이 어찌 보면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떻게 보면 취향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조금 크게 보면 어떤 사람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혹은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거든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는 것, 좋은 것 같아요. 어떤 것은 좋아하다 말 테고요. 어떤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끝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에도 크게 의미 안 두고 ‘나랑 안 맞나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좋으면 하는 거죠, 뭐. 저는 동네 공원에 가는 걸 진짜 좋아해요. 다만 30분이라도 잠깐 앉아 있는 건데요. 이건 저의 생활 방식이고요. 각자에게 그런 것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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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내 위주 말고 조심스럽게 내 위주로

 

낮술 에피소드가 참 좋았어요. 내키지 않는 낮술 약속에 가는 길, 여행자를 보고 잠깐 ‘이렇게 살아도 좋은 걸까?’ 생각에 잠기는데요. 막상 약속 자리에서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죠. 그리고 이렇게 적었어요. “그냥 각자의 시간을 살면 된다”(119쪽)라고요. 매번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 거예요.


매 순간 해야 하는 사소한 선택이 너무 많죠. 사소한 것이 모여서 근사한 것이 된다고 한다면 뭔가 선택을 더 잘해야 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어요. 부담스럽고, 마음 편하게 좋아할 수가 없을 것 같아지고요. 그런데 책 제목이  『가볍게 안는다』잖아요. 선택해야 하는 것, 놓치면 안 되는 것, 잘 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고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는데요. 저 역시 높은 경지에 못 다다라서 그런지 둘 다 너무 어렵거든요. 대범하게 놓아버리지도 못하고, 노심초사 하며 부여잡고 있지도 못한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냥 일상이나 사람들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과하지 않은 강도로 가볍게 쥐고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목도 이렇게 정한 거예요.

 

사소한 순간과
소소한 기억
사사로운 찰나들과
자질구레한 일들
내가 사랑하는 이 모든 것들을 가볍게 안는다.

너무 움켜쥐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놓아버리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가볍게 안는다.(21쪽)

 

이 생각은 삶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해당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을, 어떤 관계를 너무 꽉 부여잡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공간이 있는 상태로 하지만 마음 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정도로만 가볍게 아는 거죠. 말로 하니까 좀 어려운 것 같지만(웃음) 그래요.

 

결국은 태도의 문제겠어요. 삶을, 사람을,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 말이에요. 서두에도 ‘나의 나’라는 표현을 쓰셨잖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덜 드러내는,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을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저도 어른들에게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고요. 한편 요즘은 나를 지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 이야기가 다 맞는 것 같아요. 다만 함량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중요하니까 남에게 피해를 줘도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를 망쳐가면서 사람들에게 애쓰며 살 필요도 없죠. 함량의 문제일 뿐이고요. 그것은 비단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에도 해당하는 말일 거예요. 나를 잘 지키면서도 다른 것과의 관계도 무너지지 않게 잘 가져갈 수 있는 게 어떤 것인가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들 내 위주로 사는데요.(웃음) 너무 내 위주 말고 조심스럽게 내 위주로 사는 거죠.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해요.

 

너무내 위주 말고 조심스럽게 내 위주, 너무 좋네요.


“그래그래,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이렇게 되는 거 있잖아요. 한 사람이 “전부터 먹고 싶었던 게 있는데 너만 괜찮다면 그거 먹으러 가면 좋겠어”라고 조심스럽게 그 사람 위주로 얘기를 하면 나도 기분 좋게 “그래, 오늘 그거 먹자”가 될 수 있는 거죠. 점점 그런 게 더 중요해지고, 의미 있어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러려고 애를 쓰고 있고요. 또 제 선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단추를 꿰는 작업이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배치하는 일인 것 같아요. 어찌됐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위주로 배치할 수 있으면 그렇지 않았을 때와는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찾아내려고 너무 애쓰며 살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웃음)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더라고요. 신기할 정도로 그래요.

 

“삶의 재미와 의미의 차이는 형용사와 부사 같은 것들에서 나온다”(43쪽)고 한 말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봄이 아니라 ‘어떤’ 봄인지, 또 봄을 ‘어떻게’ 좋아하는지 생각하면 조금 쉬워지더라고요.


가사 쓸 때 제가 제일 중요하게, 그리고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거예요. 사실 노래 가사가 대부분 사랑 얘기 아니면 이별 얘기죠. 동사는 정해져 있어요. 그 수많은 노래 가사는 결국 부사나 형용사가 바꿔주는 이야기거든요. 어떤 사랑을 했는지, 어떻게 헤어졌는지, 어떤 식으로 아픈지 말이죠. 그런 게 삶을 풍성하게 해주고,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각자에게는 그런 게 분명히 다 있더라고요.

 

 

일상적인 것들이 중요해요


곡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와 생활하는 사람으로서의 내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가사를 쓰기 이전부터 저는 그런 사람이었겠죠. 그런데 이런 형태의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가 됐을 테고 그게 다시 저에게 영향을 주는 걸 텐데요. 노래 가사를 쓰고, 글을 쓰는 게 관찰하거나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것들을 즐기기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떨 땐 넋 놓고 있기도 한데요. 뭔가 보이거나 생각이 나면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써요.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으려는 노력이겠죠.


관심이나 애정, 성의일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너무 시큰둥하게 살지 말자는 내용이었어요. 시큰둥한 것이 가장 시간을 의미 없이 사용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것도 습관 같아서 그냥 계속 시큰둥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런 시간을 줄이면 좋겠다는 메모를 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습관이나 삶의 태도 비슷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작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이기도 할까요?


많이 하는 말이에요. 본인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이 가사에 분명히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작사는 생활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글이 그렇겠지만요. 저는 작사에 관심 있다고 하시는 분들한테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평소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이나 어떤 이야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려고 애쓰는지가 중요하다고요. 같은 상황을 보고도 각자 포인트라고 하는 것을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니까요. 가령 강남역을 지나가요. 남녀가 대치하고 있고요. 이때 ‘아, 헤어지지 말지’라고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거죠. 저한테는 그런 상황들이 가사가 되거든요. 강남역이라는 장소와 사람들이 다니는 시간대, 그들의 모습과 풍경이 가사가 될 수 있어요. 같은 장면을 보고도 누군가는 다른 상상을 할 것이고요. 그래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의미 있게 관찰하는지 많이 생각해보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조의 <좋아해> 가사가 떠오르네요. 공감을 일으키면서도 잊고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 작사가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 가사 쓰면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어요.(웃음) 사람들에게는 잘 안 물어보니까 모르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때는 정말 그랬는데요.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씩 보는 거예요. 대사를 따라하면서 보는 거죠. 그래서 나온 가사가 ‘몇 번이나 본 로맨틱 코미디’였어요. 사람들 다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 쓴 건데 실제로도 그렇더라고요. 그게 결국은 내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들이 많다는 얘기일 거예요. 가사에 그런 공감의 요소들이 잘 발췌되면 사람들이 더 빨리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진짜 노래 가사는 일상적인 것들이 중요해요. 가사 쓰는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서도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생각해보는 건 제게 아주 중요한 일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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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행복한 게 최고


앞서 1월 1일에 계획 세우는 것도 좋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올해는 어떤 계획 세우셨어요?


2주 이상의 여행을 올해 두 번 꼭 하겠다고 적어뒀는데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작년에도 긴 여행을 못 갔거든요. 사실 계획도 세웠다가 못 갈 수 있잖아요.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게 너무 좋아요. 어떤 것들은 되고, 어떤 것들은 안 되겠죠. 이것 역시 좋아하는 것들을 배치하는 것과 비슷해요.

 

최근에 한 시인이 쓸데없는 다짐을 하는 것이 계획이라고 쓴 걸 봤어요.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으니 재미있네요.


다들 그렇겠지만 그냥 해보면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되게 많은데 안 해도 별 상관이 없으니까 안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건 굳이 해서 또 괜찮은 것들이 있거든요. 말씀처럼 별 의미 없고,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고, 하다가 말 수도 있는데요. 그냥 떠오르는 것들을 그때그때 해보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닌가 싶어요. 해보니까 의미 없네, 안 할래, 할 수도 있죠. 그것도 자연스러운 거고요. 어떻게 사람이 일관성 있게 하나의 태도만 가지고 살 수 있겠어요. 다만 그것들이 본인이 흥미롭고 행복한 쪽으로 변해가면 좋겠죠. 요즘 정말 많이 하는 말인데요. 자주 행복한 게 최고 같아요. 좋은 게 많으면 자주 행복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때로 시큰둥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순간에 나를 다시 깨우는 작가님의 방법은 뭔가요?


매번 다른데요. 어떨 땐 여행이기도 하고요. 어떨 땐 다 끊고 한동안 혼자여야 할 때도 있어요. 또 어떨 땐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할 때도 있죠. 그런 방법도 점점 경험의 수가 쌓이면서 만들어져요. 목욕도 엄청 좋아하는데요. 그것도 매해 다르더라고요. 어떤 해에는 유독 더 목욕이 필요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되게 힘들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만 낫는 느낌이어서 그랬던 것 같거든요. 그런 방식이 각자에게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각자가 나름의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할 거예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아지는 건 무엇인지도 듣고 싶어요.


피부가 너무 건조해져서 힘들어요.(웃음) 글쎄요, 모르겠어요. 각 연령대가 좋기도, 힘들기도 한 거겠죠. 그런데 요즘은 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조금 하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자주 만나고 즐겨 만나는 사람들이 30명쯤 있다면 그 중 서너 명은 되게 좋기도 하고 가까운 사람인데, 다섯 번쯤 만나면 두세 번은 힘들었던 거예요. 이럴 때 그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은데요. 요즘은 그냥 내가 너무 부대끼고 힘들면 덜 만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로 인해 잃는 것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들을 감수하면서 힘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유연해지는 건지 실제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요.

 

처음에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해주신 것 같은데요. 어떤 상황에 있는 분들이 읽었으면 하시는지 궁금해요.


누군가가 어떤 것을 의미 있어 하며 사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에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에세이 읽기를 아주 즐겨 하는 편인데요. 이 책은 제 일상의 구성 요소들, 제가 살면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은 것이고요. 쓰면서도 한 생각이지만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은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지금 부대끼는 분들, 내가 너무 흔들리는 분들이요. 행복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점점 더 많이 생각하고, 행복에 근접해 가는 게 사는 일의 거의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돼요. 살면서 그 요소들을 몇 가지라도 더 발견하는 게 매일의 아주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도 결국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계단 같은 것들이니까요. 내 시간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써나갈지 생각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볍게 안는다심현보 저 | 미호
오늘의 사소한 순간들과 소소한 일들을 가볍게 안았듯이 ‘나’ 역시 가볍게 안아야 한다. 버거움이 차오르면 울어도 보고, 시간을 죽여서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서 벗어나보기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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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독서는 왜 치료일까 - 문요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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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요한(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독서는 치유와 창조를 가져오는 내면의 화학반응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측면에서 상담과 독서는 어떤 점이 비슷할까요? 

 
상담이 치유적이려면 세 가지가 필요해요. 첫째가 공감이에요. 상담을 받는 사람에게 안전함을 제공하기 때문에 필요한 요소죠. 둘째는 상처나 문제를 재경험하는 것입니다. 공감을 받고 안전감을 느끼면 해결되지 못한 채 마음 속에 쑤셔놓은 마음의 상처나 문제를 다시 꺼내서 펼쳐낼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새로운 관점과 통합이 있어요. 안전한 환경에서 상처나 문제를 다시 경험하고 나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삶의 한 부분으로 통합할 수 있게 되는 거죠. 1인칭에서 벗어나 2인칭 혹은 3인칭의 관점에서 보고,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적 배경이나 맥락도 살필 수 있게 돼요. 어떤 독서는 그러한 역할을 합니다. 책을 통해 공감을 받고 자신의 해결되지 못한 상처나 문제를 재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점을 획득하는 일이 종종 벌어져요.

 

독서 치료는 책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의 힘을 발휘해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책이 주는 치료의 힘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흔히 하는 낭독이나 기계적인 필사보다 자유 연상하면서 기록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독서는 일방적인 침투가 아니라 섞임이에요. 저자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교류해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창조적 경험이 일어나는 거죠. 이러한 창조의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 ‘쓰기’라는 영역이고요. 독서를 하면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옮겨 적다 보면 자연스레 어떤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연관된 생각들이 이어지죠. 그러면서 책의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고 자기화되는 연쇄 작용이 일어나고요. 이런 내면의 화학반응이 바로 독서에 재미를 주고 치유와 창조의 경험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해요.

 

최근엔 독서치료를 소모임 형태로 진행하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치료 모임의 효과는 무엇일까요?


독서모임 역시 집단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 아닐까요? 상담의 영역에서도 집단치료는 개인치료보다 훨씬 효과가 커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연대감이라는 측면이 있어요. '나만 유독 이상한 게 아니구나.' '나만 힘든게 아니었구나' 하는 동질감과 소속감이 강력한 위로와 안도감을 주는 거죠.  또 상호자극과 교류가 있는데, 개인치료보다 집단치료는 외부의 자극도 크고 ‘섞임’이 활발해서 자기변형을 위한 여건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어요. 능동성도 있습니다. 집단치료는 집단 자체가 치유의 강력한 도구가 돼요. 치유자는 보조적 역할만을 하고 집단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의 기반이 되어주는 거죠. 이런 이유들에 덧붙여 독서 모임은 의존적인 참여가 아니라 스스로 어떤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거잖아요? 당연히 환자나 피해자의 정체성이 아니라 행위자나 주체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시켜 주는 효과도 있을 겁니다.

최근 책  『관계를 읽는 시간』에선 관계의 문제를 풀어낼 열쇠로 ‘바운더리’를 제시했습니다. 바운더리란 무엇인가요? 


바운더리란 쉽게 말해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해주는 자아의 경계에요. 우리 몸의 피부가 내 몸과 몸의 바깥을 구분해주는 것과 같죠. 때문에 외부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의 역할을 하기도하고 반대로 외부와 교류하는 통로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어요. 사람들은 자아를 개별적인 것으로 분리시켜서 생각하지만 사실 자아는 관계와 집단 안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요. 건강한 자아 즉,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은 '자기보호'와 '상호교류'가 조화를 이루지만 건강하지 못한 경우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거나 혹은 둘 다 제대로 해내지 못해요. 바운더리라는 개념은 보이지 않는 자아의 구조와 관계 방식을 그림처럼 쉽고 명징하게 드러내줍니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단 멈추는 거예요. 관계방식 역시 습관이죠. 바운더리를 건강하게 하려면 습관적인 반응이 아니라 의식적인 반응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자동적인 반응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입니다. 또 바운더리를 살펴봐야 해요. 이것이 나의 책임인지 상대의 책임인지, 나와 상대는 서로의 바운더리를 존중하고 있는 것인지, 이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과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는 거죠. 정중하면서도 솔직한 자기표현을 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정중하고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한데,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하고 감정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만약 연인이 생일선물을 챙겨주지 않아 속상하다면 “당신은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 대신 “나는 당신이 생일선물을 챙겨주면 좋겠어”라고 하는 거죠. 물론 결심만으로는 잘 되지 않아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상상 속에서 수많은 리허설을 해봐야 해요. 

 

건강한 인간관계에 대해 돌아 볼 수 있거나, 도움이 될만한 책을 추천해 준다면 무엇일까요?


다소 진부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책으로는 논어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논어는 한마디로 동양의 인간관계 심리학의 고전이에요. 예를 들면 논어에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라는 문장이 있는데, 군자는 화합하되 남들에게 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같아지려고 하지만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제가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핵심적인 메시지, 자아와 관계의 균형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끊임없이 나와 우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인 것 같아요. 다만, 지금의 시대에 맞게 그 균형점은 옮겨가야 하겠지요.  


 

 

관계를 읽는 시간문요한 저 | 더퀘스트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관계방식, 이것을 이해하고 바꾸지 않는 한 관계에서 겪는 괴로움도 반복된다. 그러면 관계틀은 어떻게 알아보고 바꿀 수 있을까? 그 여정은 ‘바운더리’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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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독서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공감 언어 - 양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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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창순(마인드앤컴퍼니 대표)

 


독서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공감의 언어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측면에서 상담과 독서는 어떤 점이 비슷할까요?


저는 ‘독서 치료’의 장점을 믿는 쪽이에요. 언젠가 TV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흔이 되어가는 시점까지 ‘단 하루도 책을 읽지 않은 적이 없다’는 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분이 갖고 있는 사고의 유연성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독서나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상담은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고, 독서는 언어로 정리된 글을 보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과정이라는 면에서 서로 닮아 있기도 하고요.

 

책이 주는 치료의 힘을 강화해주는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들마다 다르지만 저는 큰 울림을 주는 책을 읽고 나면 주로 혼자서 그 작가가 어떤 의미에서 이런 책을 썼을까 생각하는 편이에요. 마음에 드는 구절을 메모해 놓는 식의 독서일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새로운 글을 써야 할 때 그 독서일지를 보고 있으면 글의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곤 한답니다.

 

최근 독서치료를 소모임 형태로 진행하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치료모임의 효과는 무엇일까요?


저 역시 벌써 몇 년째 ‘CE0 북 클럽’을 진행해 오고 있어요.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물론 제 관점에서요) 편지 형식으로 꾸며서 회원들에게 보내는데,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재밌는 것은 같은 책이라도 편지를 받는 분들의 성격, 기질, 하는 일에 따라서 반응이 다 다르다는 건데요. 그런 면에서 독서모임의 가장 좋은 점은 역시 다양성의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자존감을 지키며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비결로 ‘까칠함’을 내세웠습니다. ‘까칠하게 사는 일’이 내 마음 건강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받기를 바라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면 오히려 여러 부작용들이 생겨나요. 그 중 하나가 그런 나를 내가 싫어하는 심리인데,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등공신이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저는 이것을 좀 더 단호하게 표현하기 위해 ‘까칠함’이란 단어를 선택했고요. 때로는 ‘까칠하게’ 살아갈 때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인간간계를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책을 쓰는 일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작가가 업은 아니라서 책을 쓰는 일은 제게 여전히 모험이에요. 그럼에도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책을 쓰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인데 여기엔 저의 개인적인 삶과 임상경험이 모두 포함돼요. 또 하나는 일종의 예방의학(?) 차원에서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예요. 우리는 인간의 심리나 인간관계에 대한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책으로 그런 정보들을 제공하고 불필요한 상처를 줄여보자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최근엔  『담백하게 산다는 것』을 펴냈습니다. 까칠한 것과 담백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까칠하게 살려고 해도 상처와 스트레스는 있게 마련이에요. ‘담백함’은 그런 스트레스로부터 좀 더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나 할까요? 책의 부제처럼 ‘불필요한 감정에 의연해지는 삶의 태도’를 갖자는 것입니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바람처럼, 흘러가는 물처럼 넘기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것이 담백함에서 강조하는 부분이고요.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아요. 담(淡)이라는 한자를 보면 불화(火)가 두 개 있을 정도로 강한 불길을 물로 끄는 것을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담백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도움이 될만한 책을 추천해 준다면 무엇일까요?


저한텐 스웨덴 작가 헤닝 만켈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도움이 되었고요. 요즘 읽은 책으로는  『크리슈나무르티와 함께한 1001번의 점심식사』 가 좋았어요.



 

 

담백하게 산다는 것양창순 저 | 다산북스
나를 꽉 쥔 채 놓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들고, 기대에 안 차 삶이 괴롭기만 하다. 수십 년간 인간관계를 분석해온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 박사는 그런 사람들에게 ‘담백함’이라는 새로운 처방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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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특집] 이남옥 “치사랑이 아닌 내리사랑의 문형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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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불화하는 이유는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이고, 가족과 불화하는 이유는 서로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내 앞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지만,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가족은 가장 가까울수록 가장 멀어지기 쉽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부부라서, 부모라서 더 전하기 힘든 말들을 상담실에서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힘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남옥 교수는 부부가족상담치료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심리학자다. EBS 프로그램 <달라졌어요> 등에서 상담코치 전문가로 활약했고, 30년간 3만 회 이상 부부가족 상담을 하면서 가족 관계 안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심리적 지름길을 제시해 왔다. 그가 쓴  『우리 참 많이도 닮았다』는 끝나지 않는 부부싸움과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녀, 불행의 모습도 닮은 가족이 상담하면서 끝내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가족 안의 닮음을 인정하고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면서도 온전한 개인으로 관계 맺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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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전세계 공통


현재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 소장으로 계시죠. 가족관계를 위주로 상담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심리학이 사람에 대한 이해잖아요. 독일에서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우연히 가족치료를 만났을 때 사람을 이해하는 너무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위적으로 책과 이론을 통해 공부했던 심리가 너무 명료해지는 거예요. 그때부터 가족이라는 테마에 빠져서 인지심리학 쪽으로 쓰던 박사 논문을 그만두고 가족 테마로 논문을 다시 썼어요. 이후로는 가족과 관련된 일을 확신과 소명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가족관계가 심리학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그전에는 심리적인 특징이나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고 개인을 위주로 치료했다면, 가족치료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어떤 사람도 그저 비정상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 행동을 할 할 만하다는 걸 맥락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 상담은 누군가가 아프고 부족해서 채워주고 고쳐준다기보다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이는 상처나 문제점을 떠나서 그 안에서 본인이 얼마나 존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찾아주는 작업인데, 가족치료주의적 접근을 하면 그게 가능해진다는 거죠.


심리학계에서도 트렌드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처음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나 관계보다는 개인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원가족의 문제를 탐색하는 게 심리 문제 극복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요.


제가 81학번인데, 80년대 심리학에서는 가족 이야기를 못 하게 했어요. ‘나’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는 게 심리학의 트렌드였죠. 가족을 배제한 채로 나를 이해한다는 게 한계에 자꾸 부딪히면서 점차 바뀌어나갔어요. 부모자녀 관계는 소프트웨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나는 건데, 이 과정 없이는 이 사람의 심리를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깨달은 거죠. 그전에는 병이 있으면 그 사람을 치료하면 된다고 했어요. 약물치료도 하고 상담 치료도 해서 가족에게 보내면 일주일이 안 돼서 다시 아픈 거예요. 가족은 반기면서 우리가 잘 보살피겠다고 행복하게 돌아가는데 왜 이 환자는 다시 돌아오는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안 보였던 게 보이는 거죠. 가족 안에서 병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어나는 아주 오묘한 의사소통 패턴이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걸까요?


부모가 빨간 옷과 파란 옷을 사왔어요. 아이한테 좋아하는 걸 고르라고 해서 아이는 빨간색이 좋다고 해요. 그럼 부모가 ‘파란색은 싫으니?’하고 물어봐요. 그 순간 아이는 잘못 이야기했나 싶어 눈치를 보면서 파란색을 고르고, 부모는 다시 아이에게 네 의견을 존중할 거라고, 원하는 걸 고르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이 아이는 두 번 다 뭔가 틀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이런 패턴이 수도 없이 반복되면 뭘 해도 죄책감이 들고 회의가 들 수밖에 없죠. 이런 의사소통을 집중해서 보면 그 안에는 부모의 불안이 있어요. 부모의 원가족 문제나, 부모의 부부관계 문제일 수도 있고요. 얽히고설킨 같은 관계가 있다 보니 개인의 치료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봐야 한다는 거예요. 학습 장애건 우울증이건 인간관계건 원가족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나의 이해에도 도움이 되고 재발이 안 되는 좋은 효과가 있어요.


독일에서 공부했을 때의 독일 가족 상황과 한국에 와서 가족 상담을 했을 때의 한국 가족의 문제가 다르지는 않았나요?


서구세계나 우리나라나 맥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가족은 전 세계 공통이라는 걸 느껴요. 그럼에도 문화적인 특이성으로 보자면 한국에서는 효(孝)가 굉장히 강조돼요. 그래서 부모에 대해 자기감정을 누르고 잘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효가 어떨 때는 가족의 상처를 만드는 주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거죠. 효를 내세우면 가족 안 관계가 내리사랑이 아니라 치사랑이 돼요. 어떤 세대는 오히려 부모에게 더 많이 희생하고 헌신하고 부모의 보호자 역할을 하기도 해요. 그럼 자기는 성장기에 이미 부모에게 다 줬기 때문에 그다음부터 자기가 부모가 되었을 때 너무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자기한테 잘하라는 요구를 하는 거죠. 그럼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야 하나 보다 하고 또 치사랑의 문형을 형성해요. 그래도 자기가 부모님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성적이나 윤리적으로는 아주 좋은 생각이지만, 심리적으로는 결핍이 오는 상황이에요.


‘옳고 그름보다는 심리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고 하셨어요.


패러다임이 다른 거죠. 남에게 아주 모진 행동을 하거나 피해 의식 속에서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가 만들어내는 행동이 있어요. 윤리적 차원에서 어떤 행동은 되고 어떤 행동은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당신의 욕구가 어떻게 결핍되었는지, 그리고 이 결핍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같이 찾아나가야 하는 거죠.


제목이 ‘우리 참 많이도 닮았다’예요. 흔히 남과는 너무 달라서 싸우고, 가족은 너무 닮아서 싸운다는 말이 있는데, 제목도 가족의 닮음을 표현하고자 했을까요?


남들이 가진 갈등도 내 모습하고 비슷하다는 의미였지만, 그런 뜻도 되겠네요. 결혼하면서 배우자의 차이가 처음에는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이후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 텐데, 차이가 결혼 이후에는 갈등 요소가 되죠.


모두가 가족을 한 번씩 경험해 봤기 때문에 와닿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가족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아무리 외로운 사람이어도 가족은 있지요.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우리를 소진시킨다


책에 여러 상담 사례가 나와요.

최대한 내담자의 비밀이나 사생활이 공개되지 않는 선에서 경험을 녹여낸 거라고 보시면 돼요. 우리가 상상하는 가정이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에서 주변에 있는 가족들이 어떤 구체적인 고민거리를 가졌는지, 그 갈등의 양상은 어떤 건지 같이 공감하고 싶었어요. 그런 글을 통해서 상담을 오지 않더라도 비슷한 갈등을 겪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고요.


상담을 하면서 두 사람이 같이 오면 좋겠지만 꼭 한 명만 올 때가 있다고 하셨어요. 근본적으로 관계는 두 사람 이상의 일일 텐데, 가족 중 한 명만 상담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아쉬운 부분이지만 한계는 아니에요.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오더라도 가족 치료가 가능한 방법을 많이 개발해 냈어요. 오지 않는 사람은 상담에 오면 적나라하게 자신의 문제점이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이나 수치심이 있는가 하면, 심리 치료 영역에 관해 무지할 때도 많아요. 그럴 때는 무조건 무력으로 오라고 하지 않고, 편안하게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시작해도 된다고 말하죠. 단 가능하면 상담에 참여하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반드시 알리라고 해요. 가족 몰래 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봐요. 와서 상담을 통해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변화는 분명 개인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로 연결되면서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변화할 수 있어요.


부부관계의 문제는 원가족과도 연결이 깊다고 하셨어요. 원가족의 관계가 어떻게 배우자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나요?


반복 강박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원가족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비슷한 유형의 상처를 만들어내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자였고 어머니가 늘 고생했다면, 그 가족의 딸은 아버지만 같지 않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나중에 보면 똑같은 상황이 되어 있어요.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처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요인에 대해 과반응하기 때문에, 남편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어린 시절 느꼈던 불안과 공포가 다시 올라오는 거예요. 그러면 잔소리하거나, 비난하고 우울해지는 식으로 불안이 행동으로 나타나죠. 남편은 옆에서 다시 무기력한 상태가 되고요. 불행을 심하게 겪은 사람일수록 불행에 민감한 상태가 돼요. 새로운 삶에서 오는 긍정적인 요소를 인지하지 못하고 불행한 상태에 너무 심취하다 보니 조그마한 걸림돌에도 무너지면서 자기 인생이 그렇지 뭐,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상처가 반복되면서 자기 부모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황을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는 표현이 될 수도 있고요.


원가족의 경험은 워낙 어렸을 때의 경험이고 당사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경험이잖아요. 어렸을 때 가족 관계에서 결핍이 있었다면, 성인이 되어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정도가 있어요. 일단은 끊임없이 긍정적인 관계를 제공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경우에요. 가족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이나 이웃, 신앙생활이어도 좋고요. 한두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릴 때마다 부모처럼 안아주는 관계가 형성되면 원가족 경험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해요. 두 번째로는 배우자를 잘 만나면 돼요. 가족 안에서 안정된 애착을 경험한 사람이어서 다른 배우자가 흔들릴 때마다 굳건히 잡아주면 다행이죠. 세 번째로는 상담을 장기적으로 받으면서 자기 모습을 꾸준히 바라보는 방법이 있어요.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상담자를 보러 오기보다는 사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거든요.


상담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나요?


마찬가지로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눠요. 하나는 너무 중증 환자여서 전문가의 개입이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한 경우, 두 번째는 어려움은 느끼지만 죽고 사는 문제까지는 아닌 경우. 이러한 중간 상황에서는 갈등을 풀어나가는 좋은 모델이나 발달 단계의 어려움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이 상황이 편안해지는 거죠. 이게 2차 예방이에요. 1차 예방은 갈등을 겪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공부해 보는 거예요. 스위스에서 부모가 되려는 사람에게 부모 교육을 미리 했더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이혼율이 80% 떨어졌다는 연구가 있어요.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도 그거예요. 아는 게 힘이고 미리 갈등 생활을 아는 게 마음의 건강함을 지켜가는 요인 중 하나예요.


상담을 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의 사례가 있었어요. 방어기제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방어기제란 무엇이고 왜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결국 모든 이야기는 주관적인 이야기죠. 주관적인 이야기일지라도 상호주관성이라는 게 있어요. 이야기 하면 들은 사람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본인의 주관성에만 갇혀서 듣는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너무 사랑받는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배우자가 문제가 많아서 고통스럽다고 한다거나요.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의 특징은 마음 근육이 굉장히 유연해서 남들이 다른 부분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량이 많아요. 그러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은 남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거나 사랑해주지 않으면 자존감에 위협을 받기 시작하죠. 그러면 나를 지키기 위해 방어 기제를 만드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억압하기도 하고, 지나친 합리화를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승화시키거나 부인하고, 투사하고 전이하는 여러 과정이 있어요. 이런 방어기제를 통해 나온 이야기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겹으로 싼 방어기제를 통해 반사되고 왜곡돼요.


오래된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을수록 치료가 힘들 것 같아요.


상담 전문가의 역량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상담하는 장을 아주 안전하게 만들어서 방어기제가 불필요함을 알려줘야 하는 거죠. 자기 상처 안에 부모를 향한 원망이나 화가 있어도 괜찮다는 걸 안심시켜주면 조금씩 자기감정을 직면할 수 있어요.


치료의 기준을 정하는 건 뭘까요? 어디서부터 치료가 필요한가요?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은 치료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상처가 깊은 사람들은 계속 가족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가족 관계에서 만들어진 갈등을 친구와 동료와 자녀와의 모든 상황에서 반복해요. 머리로는 이해했다고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거고, 그럴 때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담사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정말 안타깝죠. 통계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의 절반 정도가 심리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해요.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우리를 소진하게 만드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예를 들어 가족 치료에 대한 강의를 대학에서 하면 강의를 안 듣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왜 학습 태도가 저럴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가족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던 거였어요. 하나하나가 다 자기 이야기 같고 상처를 보고 싶지 않은데 매시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게 힘들었던 거죠. 얼마나 아프고 힘들면 아픔을 다시 느끼게 하는 공부에 대해서도 원망을 하나 생각했어요. 상처가 많은 사람은 방어기제를 계속 만들어내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더 힘들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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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감과 거리감이 공존하는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어떤 게 있고, 이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너무 부모 옆에 있는 사람들은 불안정 애착을 보이기도 해요. 부모에게 애정을 받기는 받았는데 자신이 원하는 상태로 받은 게 아니라 부모가 주고 싶은 형태로 사랑을 준 경우죠. 받은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받은 건 많아서 떠나질 못해요. 받은 게 있기 때문에 그 달콤한 맛을 아는데, 언제 떨어질지는 몰라요. 그럼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고 늘 붙어있게 되죠. 그게 이제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자녀에게 편안한 사랑, 맞춤형 사랑을 주고 떠나가게 하는 게 좋은 관계일 거예요. 친근감과 거리감의 두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있어야 하고, 너는 너, 나는 나 세포 분열이 되어야 해요. 세포 분열이 안 된 가족이 너무 많아요.


부부상담에서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부부관계에서 갈등이 생겨서 상담에 오면 대개 지기 싫어해요. 상대방이 더 많이 해줘야 할 것 같고 자기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 이게 팽팽해지면 누구 하나도 긍정적인 반응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럴 때 상담자가 속상함은 다 자신에게 퍼부어도 괜찮다고 좋은 기운을 ‘대출’해주는 것만으로도 배우자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힘이 되는 거죠. 상호호혜의 원칙이 있어서 분명 긍정적인 시도를 하면 긍정적인 반응이 나와요. 모든 사람은 관계가 좋아지길 바라거든요. 한 번 따뜻하게 하고 챙겨주면서 좋은 거라는 인식이 생기면 그때부터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어요. 악순환을 멈추기도 힘든데 선순환을 만드는 건 더욱 힘들잖아요. 그럴 때 상담자는 마중물 역할을 해서 좋은 순환을 만드는 기초를 만드는 거죠.


상담자가 개입하지 못하는 실생활에서는, 배우자 관계의 악순환을 멈추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미 악순환인 부부 관계에서 긍정 행동을 하라는 건 코마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고기 먹고 기운차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에요.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서 하는 재밌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앞으로 집에 가서 일주일 동안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행동, 배우자 모르게 상대방이 만족스러울 행동을 몰래 하라고 해요. 단, 해놓고 생색내지 않아야 해요. 본인 스스로만 적어가지고 다음 상담 때 오는 거죠. 그리고 동시에 배우자가 자신에게 어떤 긍정적인 행동을 했는지 잘 찾아오라고 숙제를 내줘요. 그전에는 그냥 지나갔던 행동들이 숙제로 찾게 되면 긍정적인 행동을 더 많이 찾게 돼요. 악순환 상태일 때는 부정 행동만 보이던 것이, 긍정적인 걸 찾아오라고 하면 관점이 바뀌는 거죠.


법원에서 조정위원으로 일하고 계세요. 조정위원은 어떤 역할인가요?


이혼 소송 판결을 내리기 전 우리나라는 조정 전치주의라고 해서 판결 전에 조정을 먼저 해요. 두 사람이 합의할 만한 해결책을 찾을 시도를 하는 거죠. 그 이후에도 안되면 제삼자인 판사가 결정을 내려주고요. 이혼은 민사도 아니고 형사도 아니에요.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으니 양쪽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이혼이 안 될 수 있다면 안 되게 하고, 되더라도 자녀가 있으면 모두가 조화로운 해결책을 만드는 역할을 조정위원이 돕고 있어요. 조정안이 나오면 법률적인 효력이 있어서 실제로 재판 절차를 끝낼 수도 있고요.


법률 자문위원으로 있는 자리는 상담과 분위기가 다를 것 같아요. 이혼을 결심하고 오신 분들이잖아요.


하지만 결국 심리예요. 법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판사들도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재산을 나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덜 상처받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최상의 판결이라고 이야기하세요.


흔히 정상가족이라고 불리는 2인 이성애 부모와 자녀의 형태가 아닌 한부모가족이나 조손 가족, 다른 형태의 가족은 어떻게 애착을 형성해야 할까요?


현대사회에서는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나누는 게 무의미해졌어요. 가족구조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정 구조의 특징을 이해하면서 모든 구성원이 심리적인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엄마와 아이만 있는 한부모 가정에서 애착이라는 끈을 가지고 아이를 밀고 당기면 좋지 않아요. 아버지가 없더라도 독립된 관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섬세하게 연결되어야 하죠.


가족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모두 합해서,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요?


친근감과 거리감이 공존하는 관계요. 자기 자식일지라도 남이라는 걸 인정하고 분명히 분열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잘 연결되어야 해요. 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람의 마음을 느끼는 연결성과,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분리가 동시에 있어야 좋은 관계예요.


아무리 해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싫어하는 사람과 양호한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 그 사람이 싫은가 하는 질문을 자기 마음 안에서 찾아보는 게 좋아요. 그 사람과 상관없는 부분들이 나의 투사로 인해 건드려지는 부분도 있을 테고, 실제적으로 그 사람이 자신을 좌절시키거나 위협할 수도 있어요. 첫 번째라면 상처 치유를 통해 의연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고, 두 번째라면 ‘아이 메시지’로 나는 당신이 그렇게 행동할 때 어떤 감정을 느낀다고 말해야 해요.


‘아이 메시지’요?


“당신은 이기적이고 못됐어.”라고 비난하는 ‘유 메시지’ 대신, “나는 당신이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기분이 상했어요.”라고 말하는 거죠. 관계는 다 좋을 수가 없어요. 혼자서도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는데요. 콜라를 마실까 말까, 늦잠을 잘까 말까. 하물며 둘이 있으면 얼마나 갈등이 많겠어요. 다만 갈등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내가 유발한 것들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거죠.


‘립 게빈넨’이라는 독일어 표현을 좋아하신다고 썼어요. ‘차츰차츰 좋아하게 되다’라고 번역해주셨는데, 마지막으로 삶의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과 ‘립 게빈넨’을 연관짓는다면요?


‘립 게빈넨’은 사랑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사랑을 취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 있어요. 우리 눈앞의 찻잔도 너무 좋아하면 어느 순간 굉장히 특별한 의미를 가지잖아요. 물체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면 그가 특별한 의미가 되고요. 이런 과정이 가족 안에서도 필요할 것 같아요.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내 배우자와 자녀의 좋은 점을 찾아서 내 안에서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참 많이도 닮았다이남옥 저 | 북하우스
지치고 힘든 영혼들이 상담실의 문을 열고 아득한 아픔 속으로 걸어 들어가 끝내 상처를 딛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의 본질을 이해하고, 다시 건강한 삶으로 회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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