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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천 “방목 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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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딸 이소연(왼쪽), 작은딸 이소은과 함께

 

 

2017년 3월, SBS <영재발굴단> ‘아빠의 비밀’ 편이 방송됐다. 주인공은 가수 이소은 씨의 아빠 이규천. ‘잊어버려('Forget about it)' 한마디로 당시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른 이규천 씨에게 많은 출판사가 연락을 해왔다. 담당 작가는 이규천 씨에게 출판사들로부터 온 연락을 전달했고 이규천 씨는 수오서재 출판사와 만나 원고를 쓰기로 했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규천 씨의 초고는 다소 무섭고 진지했다. 편집자는 조심스레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교육 철학을 중심으로 편안하게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는 1년 10개월 만에 나온 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농림부문 R&D 전문관리기관장을 역임한 이규천 저자는 정년 퇴임 후 매일 아침 8시, 집 앞 카페로 출근해 원고를 썼다. 책을 쓰다 보니 스스로의 인생이 정리됐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큰딸 ‘이소연’과 대중가수로 활동하다 변호사로 변신, 현재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뉴욕지부에서 부의장으로 일하고 있는 둘째딸 ‘이소은’을 키우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과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방목 철학’을 중시하는 이규천 저자 같은 아빠가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잔소리를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 믿어주는 것. 하고 싶어도 때때로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두 딸이 잘 자란 건 방목 철학에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방목이 ‘방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대관령 목장을 여행한 일을 떠올렸다. ‘과연 저 울타리는 소들을 위한 것일까, 목장 주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 어쩌면 소들이 자신의 자녀일 수 있겠다고 짐작하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튼튼한 울타리를 짓는 일이야말로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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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살려면 잊어버려야죠

 

표지 문구가 인상 깊습니다. “아빠는 너의 전부를 사랑하지 네가 잘할 때만 사랑하는 게 아니야.” 첫째 딸 소연 씨가 콩쿠르에서 떨어졌을 때, 가족들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캠핑에 간 에피소드가 생각났어요. 놀랍더라고요. 보통의 가정 같으면 시무룩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텐데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탈 수도 안 탈 수도 있어요. 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한 걸로 충분한 거죠. 왜냐 그동안 실력이 늘었을 거잖아요. 결과는 나중 일이에요. 정말 중요한 건 과정입니다.

 

책의 핵심 문장 중 하나가 ’‘잊어버려(Forget about it)”입니다. 쉽고도 어려운, 아니 너무 어려운 말인데요. 책으로 읽으니 이것이 해답이겠다 싶더라고요.


삶의 한 과정에서 터득한 것 같아요. 잊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우니까요. 잊는 습관을 갖는 거예요. 책을 읽다 보면 꼭 등장하는 말 중 하나가 “심플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심플하게 살려면 잊어버려야죠.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는 아이한테 잊어버리라는 말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믿고 기다려줘야 해요.

 

이소은 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런 말을 했다고요. “엄마 아빠, 나한테 공부하라고 하지 말고 ‘유익한 것을 하라’고 말했으면 좋겠어.”


제가 어떤 교육 과정을 제안했더니 돌아온 답이었어요. 그때 많이 뉘우쳤죠. 사실 부모가 아이의 의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는 길이니까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옳다고 판단되면 저희 부부는 지체 없이 의견을 수용했어요.

 

자녀교육서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게 “과연 저자의 자녀들도 부모와 같은 생각일까?”였는데요. 두 딸이 직접 쓴 편지를 책에 담았어요. 이런 편지를 받는 아빠라면 정말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아이디어를 주셔서 딸들에게 전화해서 부탁했어요. “너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어떤 이야기를 해도 내가 글을 보지 않고 출판사에 보내겠다”고 약속했죠. 정말 안 읽고 보내줬어요. 최종 교열을 볼 때 처음 읽었죠.

 

그런데 평소에 두 딸에게 편지를 자주 써준 아빠셨더라고요.


딸들이 안쓰러워서 편지를 많이 썼어요. 큰딸은 피아노를 공부하느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으니까요. 저는 잔소리를 안 하는 사람이라서 딸들을 지켜봤어요. ‘얘가 지금 뭘 필요로 할까?’, ‘오늘 좀 어려운 일이 있는 것 같다’ 싶으면 편지도 쓰고 메일도 썼어요. 편지로 자주 소통하니까 큰딸이 미국에 있는데도 거리감을 못 느꼈어요.

 

31쪽에 나오는 ‘딸에게 쓴 편지’가 무척 좋았어요.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하고 활발한 상태를 유지하라. 나쁜 상황은 생각하지 마라. 자신을 낮추지 마라. 경쟁자들이 너에게 하는 말을 깊이 생각하지 말고, 남에게 나쁜 말을 하지 마라. 항상 너에게 호의적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감을 가지고 행동하라.” 2002년 9월에 큰딸에게 쓴 편지 중 일부입니다.


줄리아드 음대에 얼마나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겠어요. 큰딸이 좌절할까 봐 끊임없이 이야기했죠. 딸아이가 그래요. “아빠는 내가 잘난 사람이 아닌데 잘난 사람처럼 느끼게 해줬다”고. 제 삶이 즐거운 것도 아이들 때문이었거든요. 부모도 마음만 갖고 있을 게 아니라 말해야 해요. 그래야 아이들이 알죠.

 

대개 부모들은 더 뛰어난 아이들과 비교하잖아요.


가장 나쁜 게 비교예요. 아이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게 하려면 비교하지 말아야 해요. 비교해서 나아지나요? 나아지면 해야죠. 하지만 비교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방해할 뿐이에요. 줄리아드 음대는 한국 유학생이 많은 학교잖아요.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우리 딸은 친구들이 놀 때 피아노 연습만 했죠. 하루는 학장이 복도를 지나가면서 “그만 집에 가서 자라”고 했대요. 10시간 연습을 마친 딸이 집에 가는데 친구들이 링컨센터에서 웃으면서 놀고 있더래요. 그 앞을 지나가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친구들이 놀 때, 자기는 최선을 다해 연습했으니까요.

 

책을 보니 아이들에게 숙제를 하라고 말했던 기억이 없으시더라고요. 사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던 건,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었을까요?


저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놀고 공부하고 생활하게 하자는 마음만 있었어요. 체면, 권위, 소심함, 어색함을 버리고 아이들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좋은 부모가 되기 이전에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었죠. 저희 부부는 어떤 교육을 시킬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요즘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저흰 빵점 부모겠지만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리려고 노력했죠. 아무리 세상이 바뀐다 해도 교육 정보보다 중요한 건 아이에 대한 믿음과 관계 맺음이니까요.

 

방목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아이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인가? 이 한 가지만 생각하면 돼요. 절제된 간섭,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인내심, 원활한 가족관계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환경적 요인이에요.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로 아이를 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조급함과 답답함을 표현한다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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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슴없이 가서 “미안하다”고 말해요

 

최근 한 일간지와 인터뷰하셨는데 악플이 좀 달리셨다고요. 혹시 보셨나요?


아뇨. 듣긴 했지만 보진 않았어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잖아요. 같은 행위를 보더라도 이쪽에서 보는 사람이 있고 저쪽에서 보는 사람이 있는데, 각자 마음인 거예요. 구태여 남이 보는 나의 모습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타인이 보는 나에게 집중하면 내 환경이 달라졌을 때, 내 정체성이 날라가요. 아쉬운 건, 자세히 들여다보고 비판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미국 커뮤니티를 보면 어떤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면 자기 사진을 이름 앞에 걸고 비판해요. 그러면 저자가 답변도 달고 함께 소통하죠.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너무 익명성에 기반에서 의견을 나누는 게 아닐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두 딸에게 사과도 많이 하셨다고요.


우리는 가리는 것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 놓는 가족이에요. 마음에 안 들면 비판자 역할도 합니다. 마음의 간극이 생기면 서슴없이 가서 “미안하다”고 말해요. 차마 미안하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으면 편지를 썼고요. 이번에 책을 내면서 제 개인 스토리를 많이 썼잖아요. 제가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았는지 아이들은 잘 몰랐어요. 어렸을 때니까요.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곤란한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사과했어요. “아빠가 너희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고요.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일 때는 아이들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낫다고 하셨어요.


저도 나중에 터득한 거예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땐 몰랐죠. 사실 부모가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아이가 가정의 중요한 일원임을 알게 하고 자신이 부모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줘요. 유대감을 높여주죠. 저는 어떻게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결핍을 줬는데, 어떻게 보면 결핍이 축복인 것 같아요. 물론 결핍을 생각할 때도 아이의 결을 봐야 해요. 결핍이 심하게 오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아이에게는 큰 결핍은 피해야 해요. 하지만 결핍으로 인해 오뚝이처럼 우뚝 서는 아이도 있어요. 자기를 단련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죠. 경우에 따라서는 결핍이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큰딸은 결핍이 준 선물 같아요.

 

아이들을 위해 12시간 운전도 기꺼이 하셨다는 이야기도 놀라웠습니다.


제가 능력이 있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형편이 안 됐으니까요. 미국에서 12시간 운전하면서 딸아이 콩쿠르에 간 거죠. 12시간 동안 차안에 있으면서 아이들이랑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어쩌면 이 시간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운전이라면 기꺼이 해줘요. “아빠가 태워 줄게. 뒤에 타”라고 말합니다.

 

두 딸을 키우면서 감정적으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소은이가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했으니까 한국에서는 소은이 이야기만 물어요. 미국에 가면 첫째가 유명하고요. 어떻게 균형을 맞출까, 고민했죠. 아이들이 어릴 땐 예민하잖아요. 자기한테만 관심이 없으면 기분이 상하죠. 소은이가 한창 활발하게 가수로 활동할 때, 첫째가 한국에 오더니 시무룩한 거예요. 그래서 제 사무실로 데려갔죠. 말도 한 마디 안 했어요. 그런데 제 책상 위에 자기 연주회 사진만 있는 걸 보고는 마음이 싹 풀렸죠. 별 게 아니지만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를 깨달은 거예요.

 

자녀들을 공평하게 키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렵죠. 마음은 같아도 행동을 다를 수 있고요. 하지만 부모의 관심과 사랑에 불평등과 불합리가 있어서는 안 돼요. 모든 아이에게는 개성과 그 나름대로의 특별함이 있으니까요. 더구나 자랄 때의 소외감과 부족감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 상처가 될 수 있어요.

 

“부모는 말수가 적고 의연한 척하는 아이에게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256쪽)고 하셨어요.


그런 아이일수록 관심을 더 요하기 때문이에요. 부모가 관심을 기울이면 묘하게 눈빛만 봐도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 순간은 포착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아쉽게도 그건 너무 눈깜짝할 사이라 늘 신경을 써야죠. 저는 딸들과 일대일로 자주 이야기했어요.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죠. 부모들이 염두에 둬야 할 한 가지는 부모가 똑같이 대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아이들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만약 정말 부득이하게 차별해야 할 일이 생길 때는 소외감을 느낄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해줘야죠.


어떤 앵글에서 삶을 바라보는가

 

암울했던 독재 시대에 파면 교수가 되고, 어렵게 떠난 미국 유학에서 정말 치열하게 공부하셨어요. 많이 놀랍더라고요.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으로 유학 길을 떠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나요? 아이들과 함께 떠나준 아내 분도 놀라워요.


아내는 지금까지 제가 하는 일에 대해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어요. 성격이 대범하죠. 제가 행운아예요. 우리 가족은 컴포트 존에서 지내본 적이 없어요. 환경이 좋으면 그 환경을 지키고 싶어서 용기를 못 낼 수 있는데, 저흰 여기 가나 저기 가나 똑같으니까 용기를 낼 수 있었죠. 큰딸이 미국에서 혼자 남아서 피아노를 공부할 때 얼마나 어렵게 살았겠어요. 부모가 치열하게 산다는 걸 아니까 자기도 열심히 산 거예요.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니까 피아노를 잘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한 거예요. 큰딸은 유학 생활비의 2/3를 콩쿠르 상금으로 채웠어요.

 

이소연 씨는 줄리아드 음대에서 8년간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했고,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음악 박사 학위를 취득, 현재 신시내티음대 종신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입니다. 딸의 음반이 나오면 언제나 가장 먼저 들으신다고요.


제가 딸의 최고 팬이니까요. 딸은 지금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 연주를 해야 하니까 집을 많이 비울 수밖에 없어요. 아내랑 가끔 손주를 봐주러 가요. 지금도 치열하게 사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셨잖아요. 손주가 크는 걸 지켜보는 마음은 어떠신가요?


아내와 아침마다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참견하지 말자.” 내가 생각하는 교육관과 딸의 생각이 다를 수 있어요. 저는 조언이라고 말해도 상대는 달리 느낄 수 있고요. 괜히 말을 꺼내면 관계만 나빠져요. 아이가 원할 때, 궁금해 할 때 답해주면 되는 거예요. 두 딸을 키울 때도 그랬어요. 아이에게 잔소리로 들릴 것 같으면 안 하는 게 나아요. 부모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것, 주시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주면 돼요.

 

마지막 장을 읽고 보니, 책 제목(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이 절로 이해가 됐습니다. 교육 방법론보다는 철학을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제 삶이 죽을 때까지 아빠가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인생이라는 게 계획을 세운다고 잘 풀리는 게 아니잖아요. 어느 순간 제 앞에 나타나는 길도 있고요. 인생이란 참 오묘해요. 내가 계획한다고 그 길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에요. 중요한 건 어떤 앵글에서 삶을 바라보는가예요. 저는 아이들한테 월사금을 낸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아빠로 자라나기 위해서 말이에요.

 

젊은 부모들에게 꼭 하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는 일, 이보다 중요한 게 없어요. 보고 느껴야 자기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요즘 드라마 <SKY 캐슬>이 화제라고 하더군요. 무척 안타까워요. 아이들 인생이 성적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저는 인생이 장거리 경주라고 생각해요. 출발이 좋은 사람도 있고 중간에 속도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지막 승부에 강한 사람도 있어요.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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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이소은과 이소연 자매

 

 

이규천 저자가 실천한
‘아빠의 과제’ 5

 

첫째, 아이들이 잘못하거나 실수한 것을 강조하기보다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다. 아빠가 이런 자세를 보여주면 삶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한다.

 

둘째,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좋은 성적 자체만 칭찬하지 말고 그 노력을 더 많이 칭찬한다. 그러면 실패했을 때도 잘할 때까지 노력하려는 투지를 키울 수 있다. 시험에서 매번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셋째, 아이의 실패를 의연히 받아들인다. 아이가 실패했을 때 아빠가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아이는 성공했을 때도 자만하지 않고 더 노력한다. 무엇보다 실패가 곧 부모의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한다.

 

넷째, 아이들의 호기심을 격려해 그 범위를 넓혀줌으로써 더 많은 기회를 얻게 한다. 어른이 앞을 가로막지만 않으면 아이들의 호기심은 무궁하게 솟아나온다. 샘물처럼 호기심이 마르지 않는 아이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해 삶의 지혜를 쌓는다.

 

다섯째, 아이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가족 모두가 나서서 함께 충분히 기뻐해준다. 가족의 응원을 받으면 아이는 다른 목표를 세워 또다시 도전하려 한다.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128-129쪽)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이규천 저 | 수오서재
두 딸을 독립적이고 건강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이끈 아빠의 교육 비법을 묻는 질문에 ‘방목’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해 많은 부모와 교육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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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수민 “테러, 잃을 게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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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금융 기업의 몰락은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8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목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집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남긴 글이 뉴스가 되고, 긍정적인 신호가 쌓여가면서 파주 일대의 땅값도 들썩였다. 세계의 경제와 정치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나 국제 뉴스를 보면서 단번에 사안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나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들, 심지어 인류 역사 내내 이어져온 그 이야기들을 다 알기란 불가능한 까닭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친절한 뉴스다.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 이유는 무엇인지, 민주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아웅산 수지는 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게 됐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기사를 찾는다. 하지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뉴스’ 같은 건, 흔치 않다.

 

이러한 갈증을 느끼는 게 비단 뉴스 소비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 명의 기자가 모여 한 권의 책을 썼다. ‘국제 이슈’를 주제로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숲 전체를 조망하기보다는 구석의 나무 한 그루만 설명하다 기사를 매듭지어야 하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 기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 것에서 출발”한 책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국제 이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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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슈, 잘 모르는 게 당연해요


저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국제 기사는 사건ㆍ사고를 중심으로 단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탓에 독자가 종합적인 맥락을 파악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이수민 서울경제신문 기자가 들려준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

 

“국제부 기자로 일하면서 항상 고민됐던 게, 기사를 단편적으로 짧게 쓰게 된다는 거였어요. 물론 2000~3000자 이상 쓸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럴 시간도 없고 지면의 여유도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사에 부정적인 댓글이 달릴 때도 있어요.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라는 식으로 반응하게 되는 거죠. 그런 댓글들을 보면 ‘우리가 열심히 기사를 써도 결국 전달이 안 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상세하게 다 적으면 지면 때문에 내용이 일부 사라지기도 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짧고 단편적인 기사를 쓰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러려고 기사를 쓴 게 아닌데’ 싶기도 하고, 더 깊숙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도 아쉽고요. 그런 이야기를 출판사 분들과 나누면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됐어요.”

 

이수민 기자는 지난 2017년  『기자 ㆍ PD』  편의 공저자로 참여하면서 출판사 꿈결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국제 이슈와 관련된 책을 준비 중이던 출판사의 제안으로 이번 책의 기획에 참여하게 됐고, 국제부 기자로 일하면서 관심 가졌던 이슈들을 중심으로 목차를 만들어나갔다. ‘쉽게 읽힐 수 있도록’ 풀어 쓰겠다는 마음으로 화제성 있는 주제들을 포함시키면서, 최종적으로 10가지의 이슈를 정했다. 금융 위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본소득, 고령화, 난민, 영토 분쟁, 환경과 에너지 등이다.

 

“국제 이슈라는 게 엄청 복잡하게 얽혀 있잖아요. 책에 다 담지 못할 정도죠. 저희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덜어낸 내용들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국제 이슈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마음먹고 파고들지 않는 이상 깊숙이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전부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국제 이슈는 여러 나라가 얽혀있는 데다가 100년, 150년 전의 역사부터 이어지는 게 많으니까 이해하기 쉽지 않죠. 또 국제 분쟁이나 국제 문제를 바라보는 틀도 여러 가지이고, 학술적으로 들어가면 온갖 학파들이 있고요. 저는 어느 학파에 치우치지 않고, 사건과 사건들을 엮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집필은 양성모 KBS 기자, 연유진 서울경제신문 기자와 함께했다. 세 사람은 동료 기자이자 저자로서 호흡을 맞춰왔다. 두 차례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한 바 있는 양성모 기자는  『기자 ㆍ PD』의 공동 집필에 참여했고, 연유진 기자는 『초보 엄마 숨통 터지는 유모차 여행』를 이수민 기자와 같이 썼다.

 

“책에 실린 내용은 저희가 일하면서 적어도 한두 번은 써봤던 분야예요. 직접 경험을 해봤거나 출장 가서 취재했던 내용들이라서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지만 두려움이 있기는 했죠. 대부분 교수 분들이 이런 내용의 전공교양서를 많이 쓰시는데, 저희는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까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 봐 걱정됐어요.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책도 찾아보고, 비슷한 저작물을 보고 참고하기도 했어요.”

 

‘난민’ 이슈는 이수민 기자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쓴 부분이다.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입국했고 그들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들이 첨예하게 부딪혔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난민이란 낯선 이슈였고, 그렇기에 두려움에서 촉발된 반응들도 터져 나왔다.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예멘 난민 문제가 있었을 때, 제 주변에 있는 정말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조차도, 난민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을 강강할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셔서 너무 놀랐었어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나쁜 사람이 많고 범죄는 어디에나 있는 거잖아요.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네가 그런 사람들이랑 직접 안 마주쳐서 그렇다’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어요. 그런데 아파트에 살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잖아요. 그 사람이 범죄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거고요. 난민과 관련해서 연구하면서 찾아보니까,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 사람들을 두고 처음 난민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아시아에서는 한국전쟁 이후의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난민 문제를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선조들이 일본이든 사할린이든 어디론가 이주를 할 때는 난민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해놓고, 막상 우리나라에 난민들이 찾아왔을 때는 싫으니까 떠나라고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비단 난민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 이면에는 ‘우리 사회가 피부색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모른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주노동자들은 이미 많이 들어와 있거든요. 각 가정의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건설 현장에서는 중국인 없이는 아예 현장이 안 돌아간다고 이야기해요. 공사 현장의 안내판에도 주의사항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같이 쓰여 있을 정도예요. 제가 지금 중소기업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데, 취재처에 가보면 항상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어요. 최소한 두세 명은 있고, 많으면 절반 가까이 되기도 해요.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부족해지니까 다 나가라고 해’라고 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죠. 그렇다면 그들이 우리와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되잖아요.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더 잘 적응했으면 좋겠어요. 프랑스만 보더라도 소외되면 결국 문제가 생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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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게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 ‘테러’


자연스레 ‘테러’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미 유럽에서는 이민자 2세대와 관련된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문제의 원인은 이민 정책의 확대나 그들이 자녀를 출산ㆍ양육하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을 사회가 차별하고 소외시켜왔다는 데 있다. 끊임없이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한 채 자란 아이들 중 일부가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면서 비극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제가 생각했을 때 테러는 잃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수단 같거든요. 그러면 잃을 게 없는 상황으로 가지 않게끔 주변의 커뮤니티가 그들을 지지해야 하죠. 그게 학교든 일자리든 여러 가지 방면으로 다 연결이 돼요. 그렇게 되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데, 그런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거죠. 거기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결국은 문제를 일으키는 거고요. 일단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끝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게 쉽지는 않죠. 이런 저의 생각을 너무 감정적으로 드러내 보이면 안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에서는 최대한 건조하게 전달하려고 했어요.”

 

현재의 국제 이슈를 말할 때 트럼프 대통령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가 처음 대선에 등장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등의 공약을 내걸 때만 해도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와 인물 정도로 치부했지만, 결국 그는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이 됐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과감한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보호무역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일 뿐일까. 어쩌면 치밀한 계산 하에 움직이는 고도의 전략가가 아닐까. 이제 사람들은 트럼프의 진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세계는 그의 입과 손끝과 트위터를 주목하고 있다.

 

“언론에서 주로 다루는 건 미국, 영국, 서유럽 같은 국가들의 뉴스예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만약 인도네시아나 방글라데시, 미얀마에서 지진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다치고 죽으면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보도가 안 될 텐데, 그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으면 몇날며칠 기사가 나올 거라고요. 그곳 사람들의 죽음이 미국인의 죽음보다 가벼운 게 아닌데도, 언론이 그렇게 짜여있는 거죠. 우리나라뿐만이 아니에요. 세계적으로 봐도 미국이나 영국 쪽 뉴스를 깊게 다루는 큰 언론사들은 많지만 제3세계를 깊게 다루는 언론사는 없어요. 되게 기형적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뉴스 소비자들의 지식도 어쩔 수 없이 편향돼 있죠. 우리나라 사람들만 해도 일본이나 중국 같은 가까운 나라의 뉴스가 아니면 거의 안 읽거든요. 트럼프라는 인물에게 강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그의 말 한 마디에 전 세계 기자들이 야근을 하고 있는 거죠(웃음). 저한테도 트럼프가 야근의 모든 원인이었어요(웃음). 트럼프가 아침에 일어나서 트위터에 남긴 글을 보고 기사를 써야 하는데, 그때 우리나라는 밤이니까요(웃음).”

 

『최소한의 국제 이슈』에서 다루고 있는 10가지의 이슈 중, 이수민 기자가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고령화’다.

 

“고령화 문제는 적정한 가계 소득과도 연결되어 있고, 국가의 복지 정책 전반과도 연결돼 있죠. 그런데 다들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굉장히 빠르게 닥쳐올 문제인 것 같고, 이미 시작은 됐다고 봐요. 어떤 분들은 생산 가능 연령의 인구가 많아지면 문제의 여파가 덜할 테니까, 어느 정도 수준의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이야기하시는데요. 예멘 난민 문제로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인지, 지금 정권에서는 거의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기본소득도 결국은 고령화와 직결되는 문제예요. 어느 정도의 기본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의 삶이 흔들리잖아요. 또 고령화가 계속 진행되면 출산율의 문제랑 이어지기도 하죠.”

 

고령화, 난민, 기본소득, 출산율... 각각의 이슈들이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줄지어 서 있었다. 일견 첩첩산중의 형국인 듯 했지만, 달리 보면 하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하는 셈이었다.

 

“다 연결돼 있는 것 같아요. 비트코인의 경우도, 기술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열풍이 불었던 건 금융위기 이후에 사람들이 그 어떤 것도 못 믿게 돼서 그런 거거든요. 전문가의 말을 듣고 투자를 해도 수익이 나지 않는 거죠. 그런데 비트코인은 확실한 것 같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그래프로 보이고, 그러니까 광풍이 분 거라고 봐요.”

 

『최소한의 국제 이슈』 은 ‘자본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금융 위기, 무역,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해 말한다. 이수민 기자가 말했듯 ‘과연 비트코인이 돈이 되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사람들은 왜 비트코인에 열광하는가’를 질문하고, 비트코인이 작동하는 원리인 블록체인을 더 깊이 파고든다.

 

“사실 비트코인의 핵심은 블록체인이에요. 블록체인이 중요하죠. 비트코인은 기술을 활용한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요. 어떤 분들은 미래에는 비트코인이 지금의 화폐를 대체할 거라고 이야기하시는데, 국가의 힘이 유지되는 한 가상화폐 혹은 암호화폐가 현재의 화폐를 대신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화폐를 만들고 통화량을 조절하고, 그렇게 돈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게 국가의 힘이잖아요. 그 힘을 뺏기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국제부에 있으면서 비트코인 뉴스를 2~3년 전부터 썼는데, 그런데도 투자를 감행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런 생각 때문이었어요. 국가가 자신의 힘을 뺏기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나중에는 정부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제재를 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했어요.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전에 차단을 하든가, 아니면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도록 해놓은 상태에서 블록체인 기술만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는 하지 않았더라고요. 아마 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따로 떼어놓고 보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알고 있어요.”

 

최근 중쇄를 찍은  『최소한의 국제 이슈』는 중고등학생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에게 선택받았다. 국제 뉴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들이 있고, 그것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중고등학생들도 그렇고, 초등학교 고학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이 책을 고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직장인 분들 중에서도 국제 뉴스를 보면서 ‘이게 무슨 이야기지?’ 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읽으신다고 하더라고요. 대학교 교양 과목에서 이 책을 강의 교재로 쓰신다는 분도 계셨고요. 저는 ‘일단 독자 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 역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논술이나 독후감을 쓰려는 친구들이 이 책을 보고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이 책이 선택을 받은 가장 큰 이유라면 저희가 일일이 달아놓은 주석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Tip’ 부분을 마련해서 더 자세한 내용을 적어놓기도 했는데, 그런 부분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최소한의 국제 이슈』는 출판사 꿈결의 ‘최소한의’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앞서 출간된 책으로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과학』 ,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인문학』이 있으며, 지난 10월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날씨』가 출간됐다. 이수민 기자는 이번 책에 이어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재테크』를 집필 중이다.


 

 

최소한의 국제 이슈양성모, 연유진, 이수민 공저 | 꿈결
경제지와 방송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저자들은 나무가 아닌 숲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국제 이슈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한다. 저자들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한 국제 이슈들이 한 번에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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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황정은,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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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 전, 가장 먼저 그의 원고를 읽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독자’. 그는 황정은이 가장 신뢰하는 친구이자 독자다. 황정은이 ‘디디’를 다시 써야 한다고 말했을 때, 소설이 좀체 풀리지 않는다고 힘들어 할 때, 그는 언제나 말했다. “그런데 너 이거 써야 하잖아. 너 이거 써야지 다음 소설 쓸 수 있잖아.” 이 말을 찬찬히 곱씹으며 완성한 소설이 바로  『디디의 우산』이다. 2012년 『파씨의 입문』에 수록됐던 「디디의 우산」이 연작 소설집의 제목으로 다른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황정은은 ‘디디’를 다시 호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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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쓴 소설

 

2년 만에 신작이에요. 엊그제 책을 처음 받으셨다고요.

 

네. 받고 많이 좋았습니다.

 

후련한 느낌이 드셨나요?


오래 기다린 사람을 만난 것 같았어요. 마지막 교정지를 출판사에 넘긴 뒤에 조바심이 났거든요. 빨리 나왔으면 해서. 책을 받기 전까지 많이 기다렸어요. 밤에 잠도 잘 못 자고요. 전에는 책 나올 때 이런 걸 겪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좀 달랐습니다.

 

두 편의 중편을 담은 연작 소설집입니다.  『파씨의 입문』에 수록됐던 단편 「디디의 우산」, 『아무도 아닌』의 「웃는 남자」 속 ‘디디’를 다시 호명했어요.


디디는 제 소설에선 드물게 사랑스럽게 존재하는 화자예요. 이 인물을 공연히 「웃는 남자」로 끌어내 파괴하고 부숴버렸다는 후회와 가책감이 있었어요. d도 단편 「웃는 남자」에서 제가 방에 내버려둔 채 이야기를 끝내버렸고요. 이후의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d가 방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중편 「d」를 쓸 때, 도대체 혁명이나 돌파가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엔 ‘혁명’을 생각하는 이야기가 필요했고요. ‘연작소설’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처음부터 연작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습니다. 쓰고 보니 다음 이야기가 필요했고 또 그 다음이 필요했어요.

 

왜 ‘디디’였을까. 왜  『디디의 우산』이라는 제목으로 두 작품을 묶었나를 오랫동안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본래의 세계니까요. dd가 온전하게 있는 세상이고, ‘혁명’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소설이고, 두 개의 중편이 결국 그 소설의 파편에서 나왔으니까. 책 제목이  『디디의 우산』 인 것이 제게는 당연했습니다. 출간을 준비하며 내내 이 책의 제목은  『디디의 우산』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사하고 제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같은 제목의 단편이 이미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와서 다른 제목을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안되겠더라고요.  『디디의 우산』으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다행히 편집부에서 동의해주었어요.

 

표지 속 우산은 접혀 있는데 뒤표지에서는 우산이 활짝 펴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만든 우산을 독자들이 읽어줘야만 그 우산을 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근사하네요. 펼쳐야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우산과 책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표지에 있는 접힌 우산은 페이지들 속에서 내려온 고리같기도 하죠? 동네서점용 책에 들어간 우산을 포함해서, 저는 이 우산들이 무척 좋습니다. 출판사에서 표지 시안 받아보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인사 드렸어요. 우산 이미지들이 아름답고 또렷해서인지 독자에게 책을 건넨다기보다는 우산을 건네고 있구나, 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디디의 우산』이라는 책이지만, 실은 디디의 우산을 하나씩 하나씩……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두 작품을 연결하는 고리는 ‘혁명’입니다. 「d」의 마지막 단락을 퇴고하고 있을 때, 최순실의 태블릿PC가 공개되며 촛불집회가 시작됐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정오가 시작됐다”는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선고한 직후의 짧은 시점이에요.


네. 2017년 3월 10일 정오에서 오후 2시 사이입니다. 저는 그날 광장에 있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화자처럼 거실에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같이요. 재판 결과를 같이 듣고 싶은데 광장엔 나갈 수 없는 사람이 있어서 그 집에 모여 있었어요. 소설 속 구성원과 비슷했습니다. 비혼 여성, 아이를 키우는 여성, 미취학아동, 성소수자…… 사회적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이요. 선고는 21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무척 길게 느껴졌어요. 재판 결과엔 기뻤지만 저는 그 21분 중에 우리가 가장 낙담하고 절망하고 불가능성과 실패를 강하게 예감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 거실에 모인 사람들이 직전을 목격하고 있는 때. 혁명이든 가능성이든 승리든, 그것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때. 그 순간에서 멈추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d」를 쓸 때는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2015년 4월 18일을 자주 생각했습니다. 명박산성 등장 이후로 시위대가 처음으로 경찰 차벽을 뚫고 광화문 앞까지 간 날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돌파’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 어디를 가든 이렇게까지 봉쇄와 고립을 겪고 있다는 것에 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내가 속한 사회의 불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요. 「d」는 2016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쓴 소설입니다. 당시에 제가 느끼기로는 한국 사회에 산소가 희박했어요. 사회적 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고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있었고요.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당하기도 하고. 내가 보고 듣고 실감하는 것만이 세상 만사의 전부는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했어요. 머리로는 알죠. 마음으로는 어렵고요. 제게는 후자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d」를 쓰면서 2015년 4월 18일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미안해요. 고맙고 또 미안하죠.  『디디의 우산』을 기다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고 마무리하면서 그 분들을 많이 생각했어요. 기다려줘서 고맙고 여전히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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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이야기들이 보편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의 주인공에게는 ‘단편이 되다 만 열한개의 원고와 장편이 되다 만 한 개의 원고”(151쪽)가 있어요. “어느 것도 완성하지 못했”지만 “매번 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 주인공은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하길 원했어요. 이 장면을 읽은 독자들은 자연스레 소설가 황정은을 떠올릴 것 같아요.


네.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 문장들을 썼어요. 소설 쓰는 사람이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야기 밖에서도 그 노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문학3』 문학웹에서 2017년 10월부터 3달간 연재했던 작품이에요.


당시에는 300매 정도로 마무리한 소설이었어요. 연재를 마치고 몇 개월 지나 다시 원고를 읽는데 더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년 늦봄부터 가을까지 6개월 동안 다시 썼습니다. 몇몇 장면을 빼고 전부 다시 썼어요. 2018년엔 쓰지 말고 읽기만 하자고 마음 먹었는데 이 작업 덕분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원고지 300매였던 소설이 600매로 늘어났는데 실은 더 쓰고 싶었어요. 쓰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재미가 있고 힘이 자꾸 나고 더 쓸 수 있다, 더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늦어도 연말엔 출간한다는 약속이 없었다면 더 썼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중단한 면도 있습니다. 더 쓰다가 끝내 끝나지 않을까 봐.

 

본격적인 회고 형식의 소설은 처음 쓰지 않았나 싶어요.


단편 「상류엔 맹금류」나 『야만적인 앨리스씨』이 그런 형식에 가깝지만, 원고지 600매 내내 회고에 가까운 독백이라는 형식은 처음입니다. 그것도 화자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포함된 독백. 이런 형식에 관한 불안이 있었어요. 이것이 나의 잘못된 글쓰기로 너무 사적인 이야기가 되지는 않을까? 그런 두려움이요. 하지만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들이 보편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도 있었어요. 내가 속한 사회를 향한 믿음이기도 하고, 책 읽는 사람들을 향한 신뢰이기도 한 것 같고요. 

 

서수경과 김소리, 정진원 등 등장인물의 이름을 성까지 호명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더 분명하게 호명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더 분명하게 호명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소설 작업에선 가급적 구체적인 지명과 주소를 언급하고 있어요. 그렇게 쓰는 게 지금은 좋아요. 그래서 인물의 이름도 가급적, 이웃에 한명은 있을 법한 이름을 씁니다.

 

작품에 실제 기사를 많이 인용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이 소설들을 쓰게 된 동기 자체가 현실의 사건들이었으니까요. 사건들은 소설을 쓰는 제게 영향을 주고 있고 그 영향은 제 소설에 반영됩니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소설이 돼요. 제게는 그렇습니다. 최근 십여 년 동안 사회적 사건들은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저는 그 사건들과 제가 속한 사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디디의 우산』 에 실린 소설들은 제가 쓴 소설 중에 현실이 가장 많이 반영된 소설입니다. 실제 기사가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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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주변에 좋아하는 것들을 가져다 놓아요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마감이 있을 때는 새벽 5시부터 아침 9시까지 작업하고, 9시부터 2시까지는 식사하고 운동 다녀오고 청소하고 고양이하고 놀고. 그리고 2시부터 6시나 7시까지 다시 책상 앞에 앉아요. 어떨 때는 다섯 시간 내내 앉아있기만 할 때도 있어요. 상당히 오래 앉아 있는 편인데 문장을 쓰고 잘라내는 과정을 반복해서, 하루 작업량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마감이 없을 때는 조금 더 마음대로 살아요.

 

주로 낮에 글을 쓰시는 거네요.


저녁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보내고 싶어요. 저녁에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면 이튿날 찌무룩해서 뭔가를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햇볕이 있으니까. 햇볕이 있을 때 쓰는 게 좋습니다.

 

소설이 영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끝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나요? 다른 일을 하나요?


안 써진다고 바로 책상 앞을 떠나면 그날은 쓸 수 없어요. 가급적 그대로 앉아 있어요. 백지를 노려보면서…… 오늘은 도저히 안될 것 같은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은 불편한 자리에서 짧게 낮잠을 자요. 이를테면 책상 밑이라든지 고양이 발치라든지…… 너무 편안하면 길게 자니까. 자고 일어나면 이만 닦고 다시 앉아요. 그럼 쓸 수 있어요. 제 경우엔 막상 쓰기 시작하면 참 좋은데, 쓰려고 책상 앞에 앉기까지가 너무 힘들어요. 책상 앞에 앉기 싫어서 운 적도 있어요. 그래서 책상 주변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져다 놓습니다. 종이 같은 것들이죠.

 

“작품을 안 쓰고 올해는 책만 읽겠다”고 말한 적이 있으시더라고요. 어떤 책을 좋아하시나요?


여러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제게는 좋은 책이에요. 소설의 경우엔 줄거리로 요약하기도 어렵고 어떤 책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 인상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요.


전진성 선생님의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 과 마거릿 애트우드의  『그레이스』요. 김두식 선생님의  『법률가들』도 감탄하면서 읽고 있고,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들도 아껴가며 읽고 있어요.

 

팟캐스트를 오랫동안 진행하신 경험이 있어요. 황정은 작가의 천천한 육성을 좋아한 청취자들이 많았는데요.


특별한 경험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모두 중요한 시간들이었지만 제 말이 영원히 떠돈다는 것에 관한 공포가 있었어요. 말은 글과는 달라서 ‘조심’이라는 게 더 어렵잖아요. 내가 조심하자고 마음을 먹어도 나도 모르게 쌓아온 상투적인 것들이 언제 어느 때 말로 튀어나와서 누군가를 순식간에 상처 입힐지 알 수가 없으니까. 말은 퇴고가 안되는 거예요. 그거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하지만 제안이 있으면 합니다.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 소설이 된다

 

요즘 주요한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가부장제가 한 세대 구성원 각자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나. 그걸 생각해보고 있어요.

 

2005년에 단편 「마더」가 당선되며 등단하셨으니 올해로 소설가로 산지 14년이에요. 황정은표 소설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변화했기 때문에 ‘황정은 소설’을 더 신뢰하는 독자들이 있어요.


변해야겠다는 조바심은 없어요. 저는 그저 영향을 받고 있을 뿐이고요. 여기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제가 속한 사회적 상황들에 영향을 받아요. 그 점은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겠지요. 책을 통해 이 독자들을 만나는 일은 늘 고맙고도 경이로운 경험이에요. 14년 동안 제가 그런 독자를 조금씩 더 만나왔다는 점은 큰 행운이었고요. 하지만 정작 소설을 쓸 때에는 소설을 쓰느라고 독자 생각을 할 수 없어요. 하루 작업을 마치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저런 이야기를 독자들이 어떻게 읽을까, 괜찮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걱정은 걱정이고 제 지향점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을 소설로 써요. 가급적 그 소설을 내게 만족스러운 상태로 마무리하는 것. 일단은 그게 제 과제예요. 그래야 발표할 수 있고 그래야 독자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요. 소설 외의 다른 일을 하고 싶나요?


소설 외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이미 틀렸어요. 다만 이번 생을 전생으로 두고 다시 태어난다면, 어차피 내세니까 욕심을 막 부려보자면, 천재적인 현악기 연주자로 살고 싶어요. 현악기가 연주되고 있는 공간은 그게 없는 공간과는 달라요. 그걸 천재적으로, 해내고 싶어요.

 

“(    )을 계속하겠습니다”의 빈칸을 채워 본다면요?


사랑. 제게도 한줌 사랑이 있고 계속 소설 쓰며 살기 위해서라도 그걸 잃고 싶지 않아요. 조금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는 합니다.

 

 

황정은_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 『파씨의 입문』  , 『아무도 아닌』 ,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 , 『야만적인 앨리스씨』  ,  『계속해보겠습니다』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디디의 우산황정은 저 | 창비
삶과 죽음, 사랑과 인간을 사유하는 깊은 성찰이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아름다운 문장들과 어우러진 가운데 끝내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반가운 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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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만화가 김은성 “엄마가 춤이라도 추고 싶다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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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 좋고, 입담 좋은 어머니가 이야기를 한다. 딸은 그 이야기를 그리고, 다시 질문한다. 대학원 졸업 후, 어머니를 담은 영상 작업을 하던 김은성 작가는 어머니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삶, 그 중에서도 엄마의 삶을” 그리겠다고 다짐한 후 2006년부터 시작된 작업은 2014년 『내 어머니 이야기』  4권을 완간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어머니가 살아온 88년의 이야기를 8년 동안 그린 셈. 아쉽게도 이 놀라운 이야기는 잠시 잊혔다. 책이 절판된 것이다.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세상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책”이라는 말로 강력추천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방송이 나가자 재출간 요구가 쏟아졌고, 드디어 2019년 1월  『내 어머니 이야기』 (전4권)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 소식에 어머니는 “춤이라도 추고 싶다”면서 좋아했다. 교정 작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변소문’이라고 했던 ‘쩡문’을 ‘사립문’으로 교정하게 된 것도 어머니 덕이었다.

 

『내 어머니 이야기』의 개정판 출간으로 독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는 김은성 작가. SNS와 커뮤니티,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많은 독자 후기를 휴대전화에 저장해두고 그는 이제 다음 이야기로 나아간다. 어머니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어머니 이야기’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어쩐지 오래 머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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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보고 저도 책을 다시 찾아봤어요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나도 독자가 되어 책을 읽는 느낌이다”라고 쓰셨어요. 절판과 재출간 사이의 시간이 어땠을지 짐작하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2015년부터 책이 안 나왔어요. 약 3년 정도 책을 못 봤던 거죠. 그 사이 블로그에 독자 분들께서 책을 보고 싶다는 의견을 간간이 올려주시기도 했는데요. 이번에 방송 나오고 생각보다 빠르게, 급하게(웃음) 복간이 되었죠. 한동안 못 보다가 책을 보니까 제가 그린 내용인데도 새로웠어요. 만화 분량도 많잖아요. 저도 쭉 본 것이 아니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했던 거거든요. 게다가 제 이야기라면 정확히 기억이 날 텐데 엄마 이야기를 듣고 그린 거라 다시 보니까 저도 막 재미있어요.(웃음) 그래서 독자가 된 기분이라고 쓴 거였죠.

 

특별히 ‘내가 이런 걸 그렸단 말이야?’라고 생각하셨던 부분이 뭐였는지 궁금한데요.


4권에는 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그렸나(웃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무슨 ‘필’을 받았나 봐요. 되게 세게 그렸다, 다 그렸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또 오랜만에 보니까 책이 객관적으로 보인다고 할까, 그런 게 있었어요. 엄마가 워낙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시는 편이고, 저도 나름대로 만화로 옮기는 걸 재미있게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까 슬픔이나 재미가 많이 느껴져서 굉장히 새로웠어요. 독자 같은 심정으로 봤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에요.

 

절판된 기간 동안에는 아쉬움도 있으셨을 것 같거든요.


일단 책을 독자들이 만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내 어머니 이야기』만 계속 생각하고 있진 않았어요. 2014년에 책이 나온 후에 바로 다른 작업에 들어가서요. 계속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알쓸신잡> 방송 전에 김영하 작가님에게 먼저 연락이 왔었다고 들었어요. 연락 받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김영하 작가님이 출판사에 전화를 해보려고 했는데 출판사가 연락이 안 되니까 저한테 문자를 남기셨더라고요. 아마 제 번호를 찾아서 연락을 주셨던 것 같아요. 일단 김영하 작가님 전화를 받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죠. 방송에 소개를 하고 싶다고, 절판된 것 같은데 책 상황이 어떤지, 이런 저런 말씀을 하셨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그 전에도 작가님이 재미있는 책이라고 몇 줄 소개한 것을 본 적은 있거든요. 그렇지만 연락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저도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요. 방송을 너무 감동적으로 하셔서 저도 막 책을 보고 싶어졌어요.(웃음) 진짜 방송을 보고 저도 책을 다시 찾아봤어요. 너무 안 보면 안 될 것처럼 말씀을 하셨잖아요. 너무 감사해서 방송 나간 후에 연락을 드렸는데요. 계속 “아닙니다, 아닙니다.”하셨어요. 그렇게 두 번의 통화가 있었죠.

 

책으로 연결되는 인연 같은 것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그런 것 같아요. 김영하 작가님이 어떤 지점에 울컥하셨는지도 궁금하고요.(웃음) 소개해주신 덕분에 많은 독자 분들이 보셨잖아요. 평도 많이 올려주시고요. 그러고 나서 엄마한테 독자 평을 읽어드렸더니 엄마는 “만화보다 평이 더 좋다”고 하시면서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떤 평을 읽어주셨어요? 기억나는 것 몇 가지만 들려주세요.


출판사 카페에 올라온 평이 있는데요. 작업에 대한 저의 생각과 딱 맞는 말을 남겨주셨어요.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도, 기쁘고 행복한 이야기도 너무 힘주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소홀하지도 않게 다룬 점’이 재미있다고 하셨는데요. 저도 그 생각을 하면서 그렸거든요. 어떤 극적인 장면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도 않는 편이기도 하고요. 엄청나게 극적인 장면이 평범한 사람의 삶에 그리 많진 않잖아요. 다만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그들이 산 역사 자체가 극적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특별히 극적으로 만드는 데에 별 재미를 못 느낀다고 할까요. 저는 그런 편인데 그걸 딱 읽어주신 거죠.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쓴 글이다, 생각했어요. 또 인터넷 서점에 ‘나의 치졸함을 반성한다’(웃음)는 내용도 있었는데요. 특히 ‘내 이전 세대를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북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왜 추천 도서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부분이 있는데요. 정말 진솔해서 좋았어요.

 

 

엄마를 엄청 많이 이해하게 됐죠


어머니께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실 것 같아요.


엄마가 쇠약해지시고, 한동안은 그러셨어요. 그러다 책이 나오고 되게 기운이 나셨어요.(웃음) 춤이라도 추고 싶다고 하시고, 좋아하셨거든요. 교정 볼 때도 사투리 같은 것 물어보면 좋아하시고요. 계속 자는 거 깨워서라도 물어보라 하시면서 적극적으로 얘기해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엄마가 교정 본 부분도 있었어요. ‘쩡문’을 ‘변소문’이라고 했었는데 이번에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고쳤죠. 먼저 출판사에서 사립문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작은 나무로 만든 문을 ‘쩡문’이라고 한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사립문’으로 교정을 봤죠. 단어에 대한 정확성은 굉장하세요.

 

만화 작업을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도 기승전결이 확실하셨다면서요. 타고난 스토리텔러시네요.


친척들이 모이면 엄마가 가운데 앉아 얘기를 하고요. 나머지 친척들은 엄마 곁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듣는 형국이에요.(웃음) 얘기를 재미있게 하시니까요. 기억력도 좋으신 편이고요. 일단은 관찰력이 엄청 좋으세요. 저는 관찰력 제로거든요. 전 상상력이 좋은 편인데 그러니까 엄마랑 궁합이 잘 맞죠. 그렇다고 엄마 이야기가 100% 맞는 건 사실 아닐 거예요. 조금씩 과장되거나 틀린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완전히 거짓말을 하시는 게 아니니까요. 엄마가 자꾸 그 얘기를 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다, 생각했죠.

 

지금 말씀 무척 흥미로운데요. 처음에 어머니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겠다고 생각하셨을 때도 역사적인 사실, 진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네, 팩트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역사적 사실을 알려고 하긴 했죠. 사실을 알아야 엄마한테 질문을 할 수도 있고요. 저는 사실을 아는 게 맞는데요. 엄마가 얘기하는 건 그냥 다 들었어요. 엄청나게 틀린 경우도 별로 없었고, 조금 틀리다고 해도 문제는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엄마가 그걸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엄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렸어요.

 

그 가운데 어머니가 답하기 싫어하는 질문은 며칠 동안 기다려야 하기도 했잖아요. 또 기다리면 며칠 후에 알아서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다고요.


슬픈 이야기를 묻거나 하면 그랬는데요. 너무 죄송했어요. 다시 회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잖아요. 그럼에도 만화에 조금 들어갔으면 하는 게 저의 욕심이었죠. “그런 얘기를 왜 물어보냐”고 하시면 더 물어보진 않았고요. 가만히 있었어요. 하지만 “얘기하지 마, 됐어”라고 하고 넘어간 것도 사실은 아니죠. 그러면 며칠 지나면 얘기를 해주셨어요. 딱 결심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저한테 협조를 해주시려고 했는지도 모르죠. 그렇게 듣게 된 얘기도 더러는 있었어요.

 

구체적인 작업 진행 과정이 듣고 싶어요.


엄마 구술을 녹음하고, 메모하면서 진행했는데요. 1-2권 때는 녹음하고요. 3-4권은 못했어요. 너무 힘들어요. 녹취 푸는 게 너무 고된 작업이어서 4권까지는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녹음을 40-50개는 했을까요? 우선 사투리를 적어야 했거든요. 제가 ‘스피킹’은 안 되니까 단어가 적절하게 나오지 않아서 연구에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사투리 단어 사전을 만들어서 쓰고 그랬어요. 무엇보다 “~함”, “~했음메”처럼 사투리를 살리는 걸 위주로 했죠.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느낌이 나지 않아서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분들의 정서를 사투리로 안 쓰면 묻어나질 않고요. 일단 저도 재미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사투리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만화를 시작했어요. 고민도 하지 않았어요. 무조건 사투리를 잘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내 어머니 이야기』  작업을 하시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겠어요.


엄청 좋아졌어요. 제가 엄마를 엄청 많이 이해하게 됐죠. 보통은 엄마랑 같이 살아도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 안 채로 살진 않잖아요. 그냥 짧은 대화 정도로만 돈 얘기만 하는 엄마 같기도 하고, 결혼만 강요하는 엄마 같기도 하고 그런데요. 엄마가 산 세월을 쭉 들으니까 이해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또 사이가 안 좋으면 작업을 지속할 수가 없어요.(웃음) 사이가 나쁜 상태를 한 시간 이상 지속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요. 어차피 함께 지내는데 엄마랑 사이 나빠서 뭐하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라도 맞췄죠. 재미있는 게 엄마도 말을 걸면 반드시 풀어졌어요.(웃음) 그렇게 엄마에 대해 많이 알게 되니까 대화가 정말 풍성해지더라고요. 1권 그릴 때는 얘깃거리를 찾아내야 했는데 3권으로 갈 때는 이야기가 넘쳐 나서 쳐내는 게 일이었어요. 그렇게 점점 이야기가 커졌어요. 이제는 제가 엄마 이야기를 알려드려야 할 입장이에요.(웃음)

 

그래서 처음 계획보다 만화를 더 그리게 되신 거군요? 원래는 전쟁에서 이야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어머니의 현재까지 그리게 됐다고 하셨잖아요.


처음엔 그냥 엄마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시작을 했고, 1-2권정도 생각했어요. 현재 이야기가 나오면 껄끄러운 게 많잖아요. 가족들이나 제 얘기도 나올 테고요. 그런 게 두려웠던 거죠. 피란 정도까지만 그리면 예전에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정리되겠구나, 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리다보니까 우선 얘기가 재미있고요. 제가 느끼는 바가 컸어요. 살면서 땅에 다리를 굳건히 두고 사는 느낌 별로 없었는데 얘기를 듣고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 삶이 있구나’를 느끼면서 저도 이상하게 이 땅 위에서 굳건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뿌리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요. 그렇다면 조금 껄끄럽더라도 현재까지 다 그려내는 게 맞겠다, 생각하고 4권까지 그린 거죠. 1권 마치면서 그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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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삶이 도대체 왜 그런 건지


왜 ‘어머니’였어야 했는지 궁금해요. 그 시절을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기록했다는 점도 이 작품의 큰 의미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성의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았죠. 엄마가 너무 힘들게 사시는 것도 봐왔고요. 아버지 때문에 너무 힘드셨고, 자식도 많은데 다 건사하며 사는 걸 칭찬받는 게 아니라 시달림을 받으니까요. 너무 억울하게 산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에 엄마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제 이야기를 하기에는 첫 작업이기도 하고 여러 부담이 있어서요. 무엇을 그릴까 생각했을 때 저절로 엄마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의 삶, 그 중에서도 엄마의 삶을 듣는다면 아주 가깝고 정확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엄마라고 생각했고요. 여자들의 삶이 도대체 왜 그런 건지, 그려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이야기가 원래 영상 작업으로 시작되었잖아요. 그러다가 만화로 그리게 된 계기는 뭔가요?


영화를 하려고 했는데 영화는 제작비도 많이 들고 그렇잖아요. 그러다가 만화 관련 회사에 들어갔고요. 그때 만화를 많이 봤어요. 여성주의 만화, ‘데비 드렉슬러’ 같은 작가도 봤고 다른 만화도 많이 보고 그랬는데요. 보니까 만화가 너무 좋더라고요. 만약 엄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제작비는 물론이고 여러 사람과 협업을 해야 하는데 만화는 내 마음대로 지웠다 그렸다 한다면 훨씬 쉬울 것 같은 거예요. 또 금세 결과물이 나오고요. ‘이런 세계가 있었단 말이야? 그럼 만화로 그려야겠다’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림을 배우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배포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내 어머니 이야기』 에서 작가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뭔가요?


오이 냉국인데요. 삼씨를 갈아 넣어서 만드는 거예요. 삼씨가 대마거든요. 그때는 그런 개념이 없으니까요. 삼씨 넣은 오이 냉국을 한 사발씩 먹으면 그 여름 노동에 지친 몸에 막 기운이 나고 마음도 편안해졌다는 거예요. 그걸 먹고 기분 좋아하는 장면인데요. 힘들게 생활하시다가 이렇게 작은 걸로 기뻐하고, 편안해진 장면이 좋아요. 다 그렇잖아요. 엄청난 행운이 굴러들어온 적도 없고요. 크게 기쁜 일이 있었던 적은 없는데요. 생활하시다가 자그마한 것으로 기뻤던 날들이 있죠. 저는 그런 장면이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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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소한 장면을 그릴 때 작업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좋아졌겠어요.


훨씬 좋죠. 그래서 이제는 어둡고, 힘든 작업을 조금 피하게 돼요.(웃음) 작업을 하는 사람도 좋은 장면을 그리면 너무 힘이 나거든요. 이 책에는 그렇게 기분 안 좋은 장면은 많지 않은데요. 기분 안 좋은 장면은 그릴 때도 기분이 안 좋아서요. 이제 그런 장면은 잘 안 그리려고 생각해요. 대신 꼭 필요하다면 그리되 기분 좋지 않은 장면도 예쁘게 그려야 할 것 같아요. 사실은 그래서 4권에 수정하고 싶은 장면이 있어요. 안 좋지만 꼭 와야 하는 장면이라 해도 그림을 나쁘게 그리는 건 별로예요. 그렇다고 해서 얘기를 못하는 건 아니거든요. 할 얘기는 하되 그림은 상큼하게(웃음) 그려야 할 것 같아요. 4권에 그런 장면이 있어서 좀 덜 바빠지면 빨리 다시 그릴 예정이에요.

 

4권 맨 마지막 장면, 어머니의 한풀이 같은 장면이 좋았거든요. 혹시 그 장면을 좋아하는 장면으로 꼽지 않으실까 생각했었어요.


<고래가 그랬어> 연재할 때 편집자 분이 그 장면을 꼽은 적이 있어요. 저도 그 장면이 속이 시원하고 좋아요. 그 장면 그릴 때 ‘피나 바우쉬’라는 분의 춤을 봤어요. 되게 원초적이고 속 시원하게 감정을 풀어내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 춤이 많아서 거기서 영감을 조금 받았어요. 그런데 그리다보니까 페이지 배분이 잘못 돼서 조금 더 그려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그래서 짧게 됐어요. 거기서 더 풀어냈다면 속이 시원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만화를 늦게 시작하신 편이라서 그 점도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만화의 매력은 뭔가요?


그림은 굉장히 직관적이잖아요. 글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더 많고요. 직관적인 것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매력이 있고요. 만화는 그 두 가지를 다 섞을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제 그림은 아주 단순한 편인데요. 제게는 단순성이 필요했어요. 글도 보고 그림도 보려면 만화가 흑백이어야 했고요. 만화에 너무 많은 요소가 들어가는 건 글에 약간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글과 그림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그리고요. 그림은 가급적 복잡하지 않게 그리려고 해요. 그래도 뜻은 다 전달되니까요.

 

작가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이나 독자가 해석해내는 상상력 부분도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네, 저도 책을 볼 때 그런 여지가 없으면 재미가 없거든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저도 그릴 때 글도 많이, 그림도 많이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내 어머니 이야기』 도 글이 많다고 하는 분들이 있지만 이야기의 양에 비해서는 썩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기회가 되길


가족 분들도 이 작품을 다 읽으셨어요?


원래 처음 책이 나왔을 때는 안 읽었고요. 개정판이 나와도 안 읽다가 슬금슬금 가져가서 최근에는 가족들이 다 읽었어요. 오빠는 처음에 “김영하 작가님이 나랑 생각이 좀 다르신 것 같아”(웃음)라고, 재미없다는 말을 하더니 지금은 느끼는 게 되게 많은 것 같더라고요. 사실 언니가 읽을 때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좀 안 좋은 모습인데 내가 만화를 그린다는 이유로 그걸 그려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언니도 읽고는 “그리다 보면 이 얘기, 저 얘기 다 들어가는 거지”하는 거예요. 지금은 관계가 조금 좋아지는 느낌이에요. 가족과도 소통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 답답함 때문에 4권에는 가족 이야기를 좀 그리게 됐는데요. 한편으로는 우리 집안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꼭 개인적인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쨌든 만화가 소통의 단초가 된 것 같아요.

 

개인의 이야기가 결코 개인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실명으로 작업하다보니 신경 쓰일 때가 있긴 있는데요.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앞으로도 실제 일만을 그릴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만약 그린다고 하면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죠. 이런 생각도 있어요. 그래서 내가 과거만 그린다면 그것이 의미 있는 만화일까, 하고요. 과거는 아련하고 그립고, 그걸 그려놓으면 아름다운 이야기는 될 수 있죠. 하지만 현실을 사는 우리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다만 현실을 사는 사람을 그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여러 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려요. “그린다고 하면 피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그려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런 것 같아요. 안 쓸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리지 않으면 몰라도(웃음) 어떤 부분을 쓰기 시작하면 피할 수 없는 지점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걸 그리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리든지 아니면 아예 그 얘기를 꺼내지 말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타협하거나 물러서려면 안 그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엄청 재미있어 하면서 작업하는 편이거든요. 물론 엄청 힘들고 진이 빠지는 일이에요. 작업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겨울에도 등 뒤에 선풍기를 틀어놓아야 해요. 굉장히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데요.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해야지, 그냥 형식적으로 그려내는 일을 하려고 그렇게 힘이 들게 하고 싶진 않거든요. 힘이 들면서도 재미있는 일을 하려면 꼭 해야만 하는 걸 하고 싶은 거죠. 그러면 당연히 타협할 수가 없게 되고요.

 

“언젠가 독자들이 다시 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이 작품에 대한 확신이기도 할 텐데요. 


어느 정도는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기억이 좋으실 때 이 작업을 마무리해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일단 마무리는 해놨던 거고요. 절판이 되었지만 그동안에도 독자 분들의 재출간 요구도 있었고, 다른 출판사에서도 이 책에 대해 좋게 이야기해준 적이 여러 번 있어서 언젠가 힘을 써보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4권에 이 만화를 그리면서 “뭔가 정리가 된 느낌이 든다. 안개가 많이 걷힌 느낌이다. 정리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나 할까.”라고 한 부분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에요.


4권에 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요. 어떤 단초만 보여준 것이고요. 제 이야기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4권 그리면서 하게 됐어요. 마음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사실 그림을 그린 건 엄마가 아니고 저잖아요. 개인이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자기가 그리는 게 사실은 맞아요. 만약 엄마가 자신을 그렸다면 엄마 인생에 대해서도 더 아시고, 더 만족하시게 되셨을 것도 같은데요. 제가 오히려 엄마 이야기와 함께 제 이야기를 조금씩 그리면서 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겠다는, 다음 책에 대한 생각이 나오게 됐고요. 그런 의미에서 정리가 됐다고 생각을 했어요.

 

앞서 2014년  『내 어머니 이야기』를 완성하고 곧바로 차기작을 작업했다고 하셨는데요. 이제 원고가 완성되었다고요? 이 작업도 오래 걸리셨어요.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는데요. 이 작품도 작업이 좀 힘들었어요. 한 권짜리인데 작업 기간이 길었어요.

 

작가님은 쉬운 작업을 안 하시는 것 같아요.


그것까지 다 해놓으면 다음부터는 엄청 쉬운 작업을 하고 싶어요.(웃음) 재미있고, 쉽고, 책꽂이에 꽂아만 놓아도 기분 좋아지는 책 있잖아요. 그런 만화 작업을 앞으로는 하고 싶어요.

 

다시 독자와 만날 기회를 얻으셨는데요. 독자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신가요?


일단 독자 분들의 생각을 알게 되어서 저는 너무 반갑고, 기뻐요. 무엇보다 ‘내 어머니 이야기’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이야기가 정리 돼야 어머니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자신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기회가 되시면 좋겠어요. 저는 좀 늦게 귀 기울인 것 같거든요. 젊었을 때부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아요. 굳이 어머니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려거든 한 가지 기술이 꼭 필요해요.(웃음) 취재를 하셔야 해요. 그 취재량이 많아져서 질 높은 질문을 하게 되면 진짜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요. 그때 달라지는 거지 그냥 평소에 듣듯 들으면 소용이 없어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내 어머니 이야기김은성 글그림 | 애니북스
개인의 삶은 거대한 역사 앞에서 가볍게 치부되기 일쑤지만 그 개개인의 삶이 모여서 역사가 된다. 그리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와 삶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이 만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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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법의학자 유성호 “대비하지 못한 죽음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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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어쩌다 어른> 등 TV 프로그램에서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법의학 관련자문을 하고 있는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의 월요일은 부검으로 시작된다. ‘매주’ 시체를 보러 가는 그는 지난 20년 간 1,500여 건의 부검을 담당하면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죽음을 꼼꼼히 살펴왔다. 시체가 말하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면 “그 사람 인생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록들을 보게 된다.”(22쪽)는 유성호 교수. 그는 이를 통해 이 세상의 진짜 맨얼굴, 우리 삶의 민낯을 마주해왔다. 그리고 그 일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숙고할 수밖에 없게 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는 유성호 교수가 서울대학교에서 진행한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교양 강의를 기반으로 한 ‘죽음’ 강의다. 책의 저자 소개글에는 ‘죽은 자에게서 삶을 배우는 법의학자’라고 적혀있는데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그러나 자살, 고독사처럼 “대부분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해왔던 유성호 교수에게는 더 없는 진실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더 깊이 죽음을 숙고하고, 준비함으로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 이것은 노련한 법의학자가 쌓아온 삶의 지침이자 죽음의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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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


처음으로 대중서를 내셨어요.

 

아시다시피 전문 논문에 대한 요구가 많으니까요. 대중서는 쓸 엄두를 못 냈어요.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출판사 덕분이에요. 간신히 냈어요.(웃음) 학교에서 하는 ‘죽음의 과학적 이해’라는 교양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썼기 때문에 그나마 빨리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하시는 입장에서는 별도의 대중서 작업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관심 있는 대중에게는 이런 책이 더 많아지면 좋을 거예요. 실제로 이 책의 배경이 된 교양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예상 외로 좋았다면서요?


저도 놀랐던 건데요. 강의를 처음 개설할 때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누가 들을까 싶었거든요. 학교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개설은 하면서도 많이 들을 거란 생각은 못했어요. 60명 규모로 하면서도 폐강되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는데 정원이 꽉 차서 정말 놀랐어요. 게다가 학생들이 수업을 굉장히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법의학이 기본적으로 재미는 있죠. 아무래도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것을 엿본다는 느낌이 있으니 재미있어 하는데요. 제가 더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것이었어요.

 

책도 크게 두 부분, ‘법의학’과 ‘죽음’으로 나눌 수 있잖아요. 그 가운데 교수님이 더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는 죽음 쪽이었군요?


우선 제가 법의학을 시작한 건 이윤성 교수님의 강의 때문이에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또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해보자는 생각도 있어서 시작한 거죠. 그런데 이 학문이 나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킨다고 느꼈어요. 단순히 죽은 사람을 관찰하고, 부검하고, 감정하는 걸 떠나서 그걸 통해 제가 살아온 환경이나 제 지식의 범위를 넘는 다양한 삶과 죽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제 스스로가 성숙해지는 걸 느꼈어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이 직업을 하다보니까 제가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런 발전은 과연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봤어요. 결국 남들은 흔히 관찰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경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개 죽음의 경험은 지인이나 가족에 한정되잖아요. 다양한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내 삶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러면서 이것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 전부터 한 거죠.

 

다양한 죽음을 보다 보니 삶이 성숙해졌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들리거든요.


죽음 때문에 삶이 성숙해진다는 말이 그저 구호가 아니에요. 진실로 그래요. 삶의 종착역이 죽음이잖아요. 그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보다 성실해지는 것 같아요. 단적인 예로 ‘워너원’이라는 그룹이 있어요. 이들이 시한부 그룹이었잖아요. 아마 끝을 분명히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삶은 분명히 유한해요. 그런데 가끔 보면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서 주변에 상처를 주고, 나쁜 짓도 하죠. 우리 삶이 유한하다는 걸 인식한다면 짧은 기간 동안 더 열심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통해서 그런 뜻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제가 법의학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은 재미있는 사건을 물어보시는데요. 역설적으로 법의학을 오래 하신 분들은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시죠. 그러면서 조금씩 성숙해지는 걸 제 자신이 느끼니까요. 이걸 더 잘 전달하고 싶었어요.

 

 

삶의 마지막 챕터, 죽음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숙고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갖는 의미의 지평은 훨씬 넓어질 것”(167-168쪽)이라고 하셨죠.


훌륭한 사람의 죽음이라면 그의 일생을 반추하면서도 우리가 배울 수 있고요. 악인의 죽음이라면 교훈으로써 배울 수도 있어요. 타인의 삶은 우리에게 항상 교훈을 주잖아요.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서 배운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 챕터인 죽음을 보고 배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요. 죽음과 삶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데요. 삶과 죽음을 연장시켜서 보면 다르겠죠.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꺼려 하지만요. 죽음을 직접 마주하는 제가 어떻게 보면 행운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러니까 그런 제가 얘기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인상적이었던 문장이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142쪽)이었어요.


태어난 건 우리의 결정이 아니었죠. 하지만 태어난 후에는 대부분 자기의 삶을 살아요. 더구나 성인이 된 후에는 독립적인 삶을 살죠.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삶의 대미(大尾), 마지막 페이지, 나의 마지막 작품이에요. 독립적인 인생의 끝인 거죠. 그렇게 본다면 왜 죽음을 내 자녀, 내 지인, 내 배우자 등 타인에게 맡기고 부담을 줘야 할까요. 물론 죽음이 늘 뜻한 바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죽음을 준비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요. 중환자 의학이나 연명의료 결정은 그런 의미에서 다룬 건데요. 모두 내 삶의 끝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와 연결되는 문제예요. 100명의 삶이 있다면 100개의 죽음도 다 다를 수 있을 텐데 왜 다 똑같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요. 건전한 삶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숙고하는 것은 성숙하고 독립적인 성인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말씀을 듣고 보니 그간 우리가 죽음을 아주 소극적으로 대해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죽음, 하면 다들 얘기 꺼내기 싫어하시죠. 제가 교양과목을 개설할 때도 젊은이에게 무슨 죽음이냐고 하는 반응이 있었어요. 당연해요. 사회적으로는 죽음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니까요. 하지만 죽음을 숙고할 필요가 있거든요. 우리가 시험공부를 한다고 시험을 꼭 잘 보는 건 아니지만 공부 안 하면 망하잖아요. 그것처럼 죽음도 반드시 대비를 하고, 숙고해야죠.

 

교수님께서는 연명의료계획서도 작성해두셨다고요?


이건 옵션이에요. 꼭 쓸 필요는 없어요. 마지막까지 심폐소생술 등을 유지하고 싶으신 분들도 당연히 있겠죠. 이걸 꼭 하자고 얘기하는 건 아닌데요. 저는 오랫동안 의사한테 너무 지나친 책임을 물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사실 의사는 질병을 예방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직업이지 죽음을 관장하거나 죽음을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 조언하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연명의료를 끝까지 받고 싶다면 당연히 그런 결정을 할 수 있겠지만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그 의료행위가 자신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생각한다면 연명의료를 과감히 중단해달라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명의료계획서는 자신의 의지를 명시적으로 밝혀두는 아주 중요한 결정이 아닐까 싶어요.

 

앞서 밝혔듯이 나는 아내와 함께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혀놓았고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우리 부부가 죽기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을 뽑아보기도 했다.(중략)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반드시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이것저것 소망을 실현해보는 삶을 살아볼 것을 권유한다. 거기에다 내 삶의 종언을 구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 같다.(243-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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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하지 못한 죽음들


언제부터 죽음에 대해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셨어요?


법의학자가 하는 부검 가운데 살인사건은 많지 않아요. 대부분 다루는 것은 갑작스러운 죽음입니다. 대비하지 못한 죽음이죠. 이 경우 법의학 실무를 하다보면 죽음에 대한 아주 다양한 층위를 바라보게 돼요. 물론 처음에는 밝혀지지 않은 살인사건이 있다면 내가 밝혀야겠다, 하는 식의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요. 법의학 실무를 하다 보니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의 죽음이었고요. 이들의 죽음이 너무나 황망하고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가령 요양병원 등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생각보다 좋지 않은 환경에 계셨던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 과연 이분들이 이런 죽음을 원하셨을까, 생각하게 되죠. 법의학이란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요. 매년 100건 이상 부검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진행되는 거죠.

 

법의학자가 마주하는 죽음이 흔히 생각하는 미스터리한 사건은 아니군요? 오히려 그런 사건은 드문 편이라고요?


국내에서 1년에 약 28만 명이 사망하는데요. 그 중 타살은 500명이 되지 않아요. 2017년에는 약 370-380명 정도였죠. 전국에 40명의 법의학자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법의학자가 1년에 10건 정도만 하느냐?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은 급작스러운 죽음이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죽음 중 하나인 자살, 사회적 맥락에서 많은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고독사, 이런 것들을 저희가 다루게 됩니다. 사실 한국에서 준비된 죽음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작년부터는 연명의료중지가 가능해졌으니까 그나마 하나의 방편이 마련됐을 뿐이죠. 우리에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제도가 뭐가 있겠어요. 그러다보니 법의학자들은 준비된 죽음은 거의 보지 못한다고 보면 돼요.

 

책에서 자살의 사회적 맥락을 길게 다루기도 하셨잖아요.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경험도 남다를 것 같네요.

 
자살이 너무 많아요. 정부도 자살에 대해 꾸준히 노력을 하고 있어요. 다만 근본적은 부분은 해결이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자살률이 너무 높죠. 10대, 70대 등 층위도 너무 다양해서 가끔 좌절을 느낄 때도 있어요. 그중 노인 자살은 지금 우리 사회의 큰 숙제인데요. 노인세대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너무 부족해서 더 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많이 자살하세요. 보통 자살을 10만 명 당 20명 정도 한다고 하는데요. 노인 분들은 10만 명 당 100명씩 자살해요. 그건 어마어마한 거예요. 또 젊은 여성의 자살이 상대적으로 높죠. 남성 자살률도 높긴 한데요. 사회적 좌절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세대가 젊은 여성인 거예요.

 

더불어 언론이 자살에 대해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문제 삼기도 하셨잖아요. “심리적으로 허약한 사람에게는 확실전염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189쪽)고요. 


언론의 책임도 분명히 있어요. 자살은 원래 부추기거나 자세히, 반복해서 보도하면 안 돼요. 지금은 누군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장을 지나치게 많이 보여주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또 원인을 단순화시켜요. 유명배우가 가정폭력이나 배우자의 외도로 자살을 했다고 보도를 하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배우를 동일시할 수 있거든요. 언론 보도가 SNS와 결합이 되면 파괴력이 더 커지잖아요. 분명히 문제가 있죠. 

 

워낙 자살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이 심각성을 깊이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좀 무뎌진다고 할까요. 그 다음에 대한 논의도 더 많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도 많이 줄고 있어요. 하나 중요한 것은 음주량 감소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알코올이라는 게 우울할 때 먹으면 방아쇠나 다름없어요. 술을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내가 억제하던 이성이 이완되기 때문이거든요. 처음에는 그런데 실제로는 전반적으로 기분을 다운시키는 거라서 더 우울해지죠. 혈중 알코올 농도가 소주 한 병 마셨을 때 0.1정도 되는데요. 자살하는 사람들은 0.03정도에서 많이 발견돼요. 술이 깰 때죠. 음주량 감소가 자살 감소와 관련이 있다고 봐요. 점차 줄고는 있죠. 하지만 여전히 너무 자살이 많으니까 같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과연 어떻게 자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데요.


저는 자살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다른 부분을 누리지 못하고 하는 안타까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개인에게 조금만 버텼으면, 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사회적으로 답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고 보거든요. 다른 답지를 찾았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사람들도 너무 많아요. 적어도 사회가 보지 못한 답지를 보여주려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전문가를 만나 초기에만 관리할 수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사소한 약물만 복용해도 정말 좋아지거든요. 그런 문턱이 조금 낮아진다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해요. 우선 저는 의사니까 이쪽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국가에서 정신의학 약물에 대한 인식의 문턱을 낮춰야하지 않을까요. 1%는 조현병에 걸릴 수 있고요, 100명 중 5명은 주요 우울장애에 걸릴 수 있는 거니까요.

 

 

결국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 출연도 그렇고요. 교양 강의도 하시고,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와 같은 출판활동도 하셨잖아요. 대중에게 법의학을 좀 더 알리고자 하는 마음도 크신 거죠?


네, 국내에 법의학자가 적어요. 게다가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계세요. 공무원이죠. 또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법의학자의 모습은 단편적 사실이거든요. 저는 법의학자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많이 해야 할 직업은 아니에요.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임상의학을 하는 게 맞습니다. 질병을 고치고 생명을 조금 더 건강하게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게 의과대학 취지에 맞아요. 다만 그 가운데 몇 명쯤은 법의학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거죠. 그렇다면 누군가는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요. 저의 동료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계신 분들은 공무원이라 나올 수가 없어요.(웃음) 저는 대변인 정도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인력부족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늘어나야 해요. 실제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정원을 늘렸어요. 공무원 정원 늘리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정원 미달이 됐어요. 못 뽑은 거죠. 5급 공무원 뽑는데 미달 됐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으세요?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이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개인이 희생을 감수하기도 해야 하는데 그걸 요구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미국도 해외 인력을 많이 채용하고 있어요.

 

교수님도 법의학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도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계속 하신 이유도 궁금하네요.


약간 자만심인데요. 내가 아니면 어떻게 하겠느냐(웃음)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자전거에 올라탔고, 여기서 멈출 수 없으니까요. 내가 아니어도 아마 누군가는 하겠지만요. 나 아니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계속 했어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고 제목에 쓰셨는데요. 교수님의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들려주세요.


월요일은 보통 부검이 있어요. 저희가 여덟 개 경찰서 관할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오는 부검을 받아요. 헤드 타워는 국과수고요. 국과수에서 연락을 받아 저희한테까지 오는 거죠. 부검이 생각보다 힘들어요. 예전에는 부검을 일주일에 두 번 했는데요. 그땐 너무 힘들었어요. 다행히 함께 하는 교수님들이 계셔서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만 부검을 하게 됐고요. 맡고 있는 강의도 몇 개 있어서요. 수요일과 목요일에 수업을 보통 몰아서 해요.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계속 연구를 하죠. 논문을 계속 써야 하거든요. 그밖에 법원, 검찰, 경찰에서 의뢰가 정말 많이 와요. 사망 원인을 판단해야 하는 송사나 의료분쟁이 많죠. 지금도 책상에 백 개쯤 쌓여 있어요. 항상 망연자실이죠.(웃음) 

 

일상과 일을 잘 분리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그건 의외로 쉽게 돼요. 사실 일상으로 가져가면 삶을 영위할 수가 없어요.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147회를 찔린 시체가 왔어요. 그걸 하나씩 다 셌죠. 바깥에서만 센 게 아니라 어디로 들어갔는지 봐야 하잖아요. 안까지 들여다보고 하는데 3-4시간이 걸렸어요. 이런 일을 집에 가지고 간다? 있을 수 없죠. 끔찍한 기억, 마음 아픈 순간은 그 자리에 두고 와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잊지는 않지만 분리는 분명히 해요.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누구나 할 수 있을 거고요. 많이들 물어보세요. 괜찮으냐고요. 안 미쳐요.(웃음) 괜찮아요.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죽음도 있을 테죠?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도 있나요?


끔찍한 사건은 오히려 잘 안 남아 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15년 의정부 화재 사건이에요. 그때 사망하신 분 중에 아이를 끌어안고 있던 분이 계셨어요. 싱글맘이었는데요. 전신화상을 입고 결국 일주일 후에 돌아가셨죠. 그때 그분이 끌어안고 있던 아이는 거의 다치지 않았고요. 그분을 부검했는데요. 너무 마음에 남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싶은 거죠. 그건 정말로 오랫동안 남았어요. 사실 아동학대 사건도 많이 보기 때문에 회의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세상에 왜 이렇게 나쁜 사람이 많을까, 저도 많이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험이 더 쌓이다보니까 사회를 지탱하는 건 그렇듯 가장 평범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파요. 부검하면서 많이 울기도 했던 사건이에요.

 

법의학에게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법의학자가 꿈인 학생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게 우선이죠. 관심이 있다는 학생에게 꿈이 바뀌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니까 늘 관심은 갖되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과대학에 들어올 수도 있고, 생명과학을 공부한 후에 이 일을 할 수도 있어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이라는, 국가가 하는 정의나 인권에 관심이 있으시면 생명과학, 공학, 화학 등을 통해서 기여할 수 있는 방법도 있거든요. 또 성인 분들 중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문국진 교수님의 책이나 제 책을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문국진 교수님은 인세를 전액 법의학계에 기부하시거든요. 저도 이 책 인세를 학교에 기부하기로 했어요. 이 책으로 시작해서 문국진 교수님 책으로 관심을 이어가시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많이 지지해주시면 관련해서 책이 많이 나올 테니까요.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유성호 저 | 21세기북스
법의학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죽음’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사례와 경험들을 소개하며, 모호하고 두렵기만 했던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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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소연 "남은 방황은 쓰면서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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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한 27년 차 시인 김소연. 그는 ‘시를 쓰며 살고 있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 소개에 사족을 단다면 ‘시와 산문을 쓰며 살고 있다’가 될 것이다. 이제까지 낸 산문집  『마음 사전』 『시옷의 세계』   『한 글자 사전』이 사전의 형식을 빌려 언어와 감정을 임시적으로나마 규정해보려는 시도였다면,  『나를 뺀 세상의 전부』에서는 규정하려는 마음을 비우고 오직 그가 경험한 것들을 모았다. 빨래를 개거나, 더위에 지친 할머니에게 꿀물을 타 드린다. 어머니가 혼자 사는 모습을 지켜본다. 인상과 비평을 최소화했지만 ‘나를 뺀 세상의 전부’를 적는 순간 그것이 곧 ‘나’가 되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므로 완성되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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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만남의 가치


꽤 오랫동안 연재한 칼럼이 모였어요.

 

2014년부터 일간지와 문예지에 연재했던 칼럼이에요. 당시 세월호의 충격이 세상을 뒤엎고 있었고, 기성세대인 제가 세상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칼럼 연재를 거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하필이면 시인을 그 자리에 부른다는 건 이 사회를 잘 진단할 수 있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시인의 시적인 입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였어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다 괴롭게 성치 않은 부위를 계속 세상에 노출시키고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사람한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들은 대개 멋있는 일이 아니라 사소한 일이라는 걸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산문은 잠언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을 때가 많은데,  『나를 뺀 세상의 전부』는 생활을 말하는 문장에서 힘을 받더라고요. 잠언보다 훨씬 힘이 센 느낌이에요.


산문은 규정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 쉬워요. 그래서  『마음 사전』을 낼 때는 아예 사전이라는 콘셉트를 가져다 썼어요. 마음에 대한 사전이니까 당연히 주관성이 들어갈 거고, 사람들이 그걸 양해해준다는 전제 하에 마음껏 규정하려는 장치였죠. 그렇게  『한 글자 사전』 까지 실컷 규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아무것도 규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감응하는 개체처럼 자아를 최소화해서 시로도 잘 안 쓰는 작은 만남이나 대화의 가치를 누적해나가고 싶었어요.


생활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어요. 청소와 요리 같은 것들이요.


어느 순간 생활이 평생 동안 탐구해도 될 만큼 어마무시한 세계라는 걸 알았어요. 출판사를 만든 친구와 ‘빨래와 요리와 청소’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겠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예전에는 요리책으로 분류되던 이야기가 요즘은 인생의 지혜를 담게 되고, 자기 욕망을 귀퉁이로 접고 단정하게 살기로 했다는 책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전문가를 만난 날’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님 나이에도 늘 배우고 겸손해지는 때가 있구나 싶기도 하고요.


거기에 나오는 전문가는 사실 이 세상에 널린 사람들이잖아요.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전문가보다 숨어 있는 전문가, 자기가 전문가인지 잘 모르는데 그 분야에서는 오래 일한 분들에게 전문가라고 이름을 붙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보면 놀랍거든요.


<생활의 달인>이 떠오르네요. (웃음)


인간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좋아해요. 무언가를 오래한 사람들의 손모양만 봐도 눈물이 고이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반복과 노력, 훈련을 거뜬히 해낸 겸손함이 있죠. 그런 것들을 봐야 제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과 삶이 많이 나오고 인간이 위대하다는 걸 깨닫는 것 같아요.


최근 새로 배운 생활의 기술이 있나요?


저는 프리랜서라 게을러지려면 엄청나게 게을러질 수 있어요. 예전에는 일어나면 잠에서 제대로 깰 때까지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어제 도착했던 잡지 같은 걸 뒤적거리거 활자중독증 환자처럼 굴었는데, 지금은 잠에서 깰 때까지 제자리에서 몸을 움직여요. 그러면 조금 더 기분 좋게 깰 수 있다는 걸, 태어나서 40년이 지난 다음에야 알았어요.


젊을 때는 들어도 잘 몰라요. 나이가 들어야 소화하는 경험이나 지식이 있기도 하죠.


그렇죠. 어떤 지혜는 떠먹여줘도 퉤퉤 뱉게 되잖아요. 이런 사소한 지혜들이 그런 것 같아요.

 

생활을 챙기려고 하는 순간 시간과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해요. 직장을 다니면서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야근을 하면 안 돼요. (웃음) 생활을 챙기면서 사는 것을 글로 써서 공유할 정도로 우리가 왜 사는지 잊어버리고 획일적인 목표에 자기 시간을 다 쓰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좀더 일찍 알았다면 생활의 달인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머니께서 홀로 생활을 정갈하게 가꾸는 모습을 보면서도 많이 배우셨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혼자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진작에 혼자 살아볼 걸 그랬다고 말씀 하셨어요. 자기 자신이 혼자 살아도 되고 혼자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두 가지 가정과 자격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게 가슴이 아파요. 심지어 닭다리도 최근에 들어서야 처음 드셔보셨다고 하고요.


배우는 과정에서 환대의 한계를 깨닫기도 했어요. 이제까지 글이나 간접적인 경험으로 환대의 개념을 배웠다면, 바깥의 어떤 사람들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걸 본 거죠.


글만 쓰고 사는 샌님들의 바보력이죠. 환대할 줄 모르고요. 환대력이 몸에 밴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 원래 저렇게 생겼는데 내가 이상하게 지적인 수련을 하다가 자폐적인 사람이 됐나 싶어요. 그럴 때 정말 슬퍼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이만큼 읽고 이만큼 쓰면 똑똑해질 줄 알았거든요. 어느 부분에서는 똑똑해지겠지만 그만큼 다른 무능과 무지함이 비슷한 무게로 생기는 것 같아요.

 

 

 

시의 반기를 다시 든다면


90년대 사회상으로는 절망을 이야기하는 게 당연했다면, 지금은 절망이 도처에 있어서 절망을 이야기하기도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어렵다고 하셨어요.


그렇다고 지금 시대에서 희망을 말하면 단순하고 멍청하게 되는 거죠. 그래도… <로마>란 영화 보셨어요? 제가 찾는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예요. 중산층이었던 주인공의 유년기를 그리는데, 흔히 옛날 우리 말로는 식모나 가사 도우미로 표현했던 노동자가 나와서 그 사람의 감각으로 청소하는 장면을 한참 보여줘요. 지루한 노동일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걸 즐기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죠. 하여튼 끝내주거든요. 그런 식으로 우리의 숨은 기억 속에 복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게 많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문학은 어떤 허세나 주입 받은 문학성, 부정성에 도취되어서 목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그런 영화와 같은 모습을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까지 이상한 유미주의적인 태도 속에서 나왔던 작가상이라는 게 결국 성폭력을 자행하게 만들고, 친일문학을 가능하게 하고, 지금 상황을 만든 것과 연결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운 대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저 혼자만이라도 ‘문학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끼워 넣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왜 사람들이 지금 시대에 들어서 시를 선물하려고 하는지 궁금하다고요.


지금도 사람들이 시를 좋아하는 동력이 뭔지 궁금해요. 시인이라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가 힙스터들이 향유하는 문화로 번져가고 있나보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그렇게만 진단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첫 시집이 나온 게 90년대 중반이었는데, 엄청 유명한 대중적 탑 스타만 재쇄를 찍었어요. 누가 팬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없었고 서점도 없고 낭독회 문화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게 정상인 줄 아는 저한테는 이상하죠. 『수학자의 아침』은 만 부가 넘게 팔렸는데, 너무 어마어마한 숫자에요.


한편으로는 평범한 생활을 이야기하는 시가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하셨어요. 사람들이 생활이 시로 쓸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전통적인 방식으로 서정시인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시를 쓰는 분들은 많아요. 그런 분들의 시에는 생활이 많죠, 주로 어머니가 준 밥상 같은 소재로 쓰였지만요. 하지만 이 시대의 어법과 감수성을 장착한 시에서는 생활 이야기가 거의 배제되고 생활을 홀대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나마 우아하게 설 수 있는 선에서 생활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i에게』 에서는 일부러 친구가 선물한 무쇠팬으로 부추전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라든가, 여행을 가서 구멍가게에 두루마리 휴지를 사러 가는 이야기 같은 시를 쓰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스타벅스에 가서 시를 쓰기도 하고요.


스타벅스요?


시를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볼 때는 ‘스타벅스’라는 단어가 천박해 보이는 정서가 있잖아요. 그런 단어 안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가서 천박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게 사실 제가 원하는 상태거든요. 어떤 구차함이나 천박함이 묻어나오면 묻어 나오는 대로 평범하게, 그게 시의 한 정신이면 좋겠어요. 생활을 소재로 쓰는 게 아니라요. 


“시가 세상의 위엄에 반하는 것처럼 시의 위엄에도 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191쪽)고 썼는데, 여전히 시가 반기를 들어야 할 때가 많다고 생각하나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시인들이 저마다의 절규를 내지른 게 90년대예요. 당시 20대 여성 화자를 전면으로 내걸은, 어떤 남성들이 봤을 때는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처럼 삐딱함을 드러내는 시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이제 이십여 년이 지나고, 무엇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왔는지 한번쯤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우리가 생각하는 전위성이나 실험성, 시의 방향도 이 시대에 만연한 것이라면 어느 순간 반기가 아니라 시대에 일조하는 깃발일 수도 있잖아요. 90년대부터 들고 있던 이 시의 반기가 지금 보고 있으니 제일 보수적인 게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이것의 반기를 다시 든다면 무엇일까 싶어요.


시를 쓰지 못했던 기간이 있다고 들었어요. 


2013년  『수학자의 아침』 을 출간할 때까지만 해도 시 쓰는 걸 방황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 했어요. 그 전까지 어디든 달려가서 열심히 쓰고 재미있어했다면,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공간이나 쌍차 투쟁 공간에서 시 낭송을 하면서 우리가 쓴 시가 너무 어렵고 읽기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알던 시와 제가 쓰던 시를 기왕이면 잘 연장해서 투쟁 공간에서도 사용 가능한 시를 쓰고 싶다고 욕망하다 보니 당연히 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고요. 계속해서 그런 시간을 가지다 이제야 좀 쓸만해졌다 싶을 때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어요. 분명 저도 당했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잊어버렸던 거예요. 너무 멍청한 사례인 거죠. 어느 순간 아주 깜짝 놀랄만한 사회적 큰 일 앞에서 제가 얼마나 멍청했느냐를 두 번 세 번에 걸쳐 깨달으니까 제 감각을, 판단력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시를 자신 있게 쓰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생활을 담은 시가 나오면 새로운 시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어딘가로 퇴행하는 느낌은 주고 싶지 않아요. 어렵죠.

 

 

이번 책을 쓰면서 생활을 글로 나타내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세상에 내던져지듯이, 원한 적 없는 채로 태어났을 때 이 삶을 잘 관통해나갈 자기 수단이 필요하잖아요. 저한테는 글쓰기가 그런 쾌락적인 측면이 있어요. 인간이 동물 중에 유일하게 언어를 쓰고 있으니 내가 왜 인간인지 계속 생각하는 기회로 다루고 싶기도 하고요. 글쓰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사는 이유라서, 아파도 그 아픔을 통과하기 위한 숨쉬기의 방법이 글쓰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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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고꾸라지는 좌절감은 없어요


‘눈치우기’ 시인 모임에서 잡지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실패한 전적이 있어요.


10년 정도 일산에서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어서 운영한 적도 있어요. 현대문학 편집위원을 그만둘 때도 그렇고, 어떤 면에서는 실패한 인생인 건데 좌절감은 없어요.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인성의 일부분을 바꿔놓는 뜨거운 경험이었지만, 실패는 아니에요. 시도도 많이 했고요.


죽어라 반복하고 연습해서 얻은 것들”(126쪽)중 하나가 아닐까요? 실패하고 빙그레 웃는 일이요.


좌절감이 드는 실패도 분명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좌절감이 들 이유가 없었던 실패 같기도 하지만, 이런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이 변덕인 건지 제가 진화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는 실패가 시도한 자의 몫인 것 같아요. 그건 시를 쓰면서 알게 된 경험이기도 해요. 혼자 쓰고 실패한 시, 무지 많죠. 그중 조금이라도 덜 창피한 건 세상에 발표하고, 또 발표한 것 중에 그나마 덜 창피한 걸 시집으로 엮어서 내는 훈련을 오래 한 셈이니 실패에 대해 인생이 고꾸라지는 좌절감은 없어요.


“말이 아니라 발로써 자신을 증명”(261쪽)해야겠다는 다짐이 마지막에 실렸어요.


그 글을 쓴 게 2017년 말이었을 거예요. 칼럼을 쓰고 한 해 동안 계속 메신저로 안부를 묻는 대신 웬만하면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어요. 사람이 다짐을 해놓으면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하는데 안 맡긴다, 그럼 SNS에 오늘은 꼭 세탁소에 갈 거라고 남겨 놔요. 그럼 가요. (웃음) 아무도 나를 감시하지 않는 어른이 된 후로 그런 식으로 다짐을 하게 돼요.


 눈빛으로 응원을 보냈던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른에 대해 생각하셨었죠.


좋은 어른은 사회적 부모라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 부모는 너무 감정적으로 가슴 졸이고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하잖아요. 남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슴 졸이지도 않고 듬뿍 사랑을 주지도 않지만, 항상 믿는 눈빛으로 저 먼데에서 울타리를 쳐 주고 불쑥 찾아가도 기댈 수 있는 사회적 부모요. 저를 스승이라고 생각하거나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구나 어른이 될 거라는 자각 없이 어른이 되어버려요. 어른의 자리가 부담스러워서이기도 하고요.


어린 아이들은 제가 철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덩치가 있다는 이유로 어른 취급을 해주더라고요. 어린이도서관에서는 엄마와 제가 있으면 제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려고 할 때가 있고요. 자기 엄마보다 잔소리를 덜 하는 너그러움 때문인 것 같은데, 가끔은 뜨거운 거리보다 먼 거리를 원하는 거겠죠. 그럴 때 물리적으로 어른이라는 걸 배운 것 같아요. 나쁜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사랑에 대한 책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고 곧 나올 예정이에요. 2년 정도 문예지에서 시 청탁이 오면 거절했었는데, 올해부터는 거절하지 않으려고요. 아직 방황이 끝난 건 아니지만 남은 방황은 쓰면서 해보려고 청탁을 많이 받았어요. 다시 시를 쓰는 사람이 될 것 같고…… 모르겠어요. 계획이 없어요. 계획한 대로 늘 살지를 못해서요. 


‘책읽아웃’에 출연했을 때, 젠더와 타인에 대해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저는 사랑의 정수가 궁금한 게 아니라 사랑의 경계지대에 더 관심이 있어요. 시를 공부하면 시의 정수가 아니라 시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시가 궁금해요. 그러다 보니 훌쩍 담장을 넘어 저도 모르게 젠더와 타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요. 사랑을 이야기하다 보니 제가 가지고 있지 않았던 치밀한 젠더 감수성이라든가 10년 후에 봐도 낙후되어 보이지 않을 안목이 필요해서 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어찌나 전세계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남성들이 다 독점했던지, 여성 철학자 혹은 여성 작가가 사랑을 포착한 것과 남성이 포착한 게 거의 1대 9예요.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나를 뺀 세상의 전부김소연 저 | 마음의숲
사소한 것 같지만 제법 사소하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일상을 이야기하며 나와 다르지 않은 시인의 세계를, 우리가 소홀했던 삶의 단면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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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용인 “중년 남성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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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나이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특히 50대의 나이는 여러모로 조금 더 특별할 것이다. 노년이라고 하기엔 아직 너무 젊고, 삶의 어떤 부분에서는 손을 내려놓아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품을 떠나 독립하고, 누군가는 청춘을 바친 자리에서 물러나야할 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즈음. 백세의 절반을 지났지만 여전히 절반을 더 살아내야 하고, 입지는 자꾸 좁아지는 것 같은데 책임져야할 일들은 여전히 많다.


젊은 시절 ‘딴지일보’의 편집장을 지내고  『남편의 본심』 ,  『어른의 발견』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고백하는 책들을 펴낸 작가이자 15년째 치유프로그램 전문회사 ‘노매드힐링’을 운영하는 저자 윤용인에게도 50대는 ‘혼돈의 시기’였다고 한다. 삶에 대한 고민이 닥칠 때마다 그는 책과 문장을 붙들었고, 그 흔적은 2017년 연재종료된 채널예스 칼럼 ‘윤용인의 노비문장’에 담겼다.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은 이 칼럼을 다듬고, 그동안 쌓인 새로운 생각을 보태어 펴낸 책이다. 그는 책을 쓰며 가장 많이 되뇌었던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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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는 게 맞나?’ 자문하며 쓴 책


2017년 6월에 칼럼이 연재종료됐어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강연이 많았어요. 이전에 출간한 책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경상남도 지역 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최우수 도서에 선정돼 지방에 자주 내려갔죠. 제가 만든 명상 프로그램으로 기업체 대상 강연도 계속 진행했고요. 계속 바쁘게 지냈습니다.(웃음)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윤용인의 노비문장(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이 엮인 책이에요. 열 번째 출간인데 소감이 어떤가요?


공저로는 10권이지만 단독 저자로는 8번째 책인데, ‘아 이만큼 나이 먹었구나’ 싶어요. 운이 좋았다고도 느끼고요. 이 책은 이전 책들과 비교해 가장 불안한 상태에서 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어요. 과거에 책을 쓸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을 쓰는 동안은 마치 사춘기 소년이 된 듯 삶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혼란스러웠어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 생각이 옳은가?’라며 끊임없이 자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책이에요. 

 

‘작가의 말’에서 그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집필의 시기는 나에게 혼돈의 시기였다(6쪽)’고요. 50대에 접어들며 일어난 마음의 변화였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특정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나이대에 찾아오는 고민이죠. 보통 각 나이마다 누군가에 의해 삶을 평가받곤 하잖아요. 10대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20대에는 직장 상사나 친구, 30-40대에는 직장 동료 또는 후배들에게 평가를 받는데, 50대가 되면 자녀가 그 역할을 해요. 아이들이 굳이 부모의 삶을 평가하려 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전까진 내가 아이들의 삶을 검토해주고 있었다면, 이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는데 그게 자신 없고 불안한 거예요. 자녀가 성인이 되면 절로 부모의 허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오는 걱정이 컸어요.

 

책 제목을 짓느라 무척 심사숙고한 것으로 알아요.


정말 고민 많았어요. 처음 책을 쓰면서 독자 타깃을 40대 중반~60대의 중년 남성으로 겨냥했거든요. 그들의 책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알려주고 싶어서 ‘그랬구나, 이 남자’ 같은 제목을 지었는데 출판사에서 반대했어요.(웃음) 20~30대 여성 독자들도 호기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요. 이 제목은 편집자분이 정해주신 건데, 제 심정을 함축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년 남성들에게 ‘당신들 이야기야’라는 돌직구를 던지고 싶었어요.

 

실제로 ‘아빠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쓴 리뷰를 봤는데요. 독자들 반응은 느껴지세요?


이번 책은 지인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에요. 특히 제 또래의 중년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완독’이라는 표현을 쓰며 감상평을 전하는 게 참 신기해요.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다, 담배 석대 피우며 다 읽었다, 완독할 만큼 좋은 내용이었다’ 등 마치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들처럼 책 한 권을 다 읽은 것을 굉장히 뿌듯해하더라고요. 사실 중년 남성들에게는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자신들의 이야기이다 보니까 어렵지 않게 후루룩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한 독자층에게서 반응이 있어 더 기뻤어요. 지금까지 책을 내면서 느낄 수 없었던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에요.

 

 

샤이한 어른이 되는 길


우아하게 나이 드는 자세로 ‘샤이(shy)하기’를 이야기했어요.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은 타인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 것 같아요. ‘혹시 나 때문에 누군가가 불편하진 않을까, 내가 폐를 끼치지 않을까’ 생각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비교적 뻔뻔해져서 행동이나 언행이 거침없어지거든요.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을 하거나, 옆에 사람이 가까이 앉아있는 데도 신문을 크게 펼쳐 보는 것 처럼요. 옛날에는 지하철에서 신문 읽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어떤 사람은 양팔을 크게 벌리고 신문을 펼쳐 본다면 어떤 사람은 16분할로 손바닥만하게 접어서 보곤 했어요. 후자가 ‘샤이한 어른’인 거죠. 나이가 들면 이렇게 점유하는 공간을 좀 버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일으키는 소음도 마찬가지고요. 평생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많이 애써왔으니 나이를 먹으면 거꾸로 그 존재감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소심하고, 조금 더 부끄러움을 탄다면 훨씬 우아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나이가 들면서 은연중에 행동이 거침없어졌다고 느낀 적 있으세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목소리가 크냐고 하거나 발자국 소리, 기침소리가 너무 크다고 할 때 놀라곤 해요. 저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느끼나보더라고요. 노화로 인해 청각 능력이 조금씩 떨어지다 보니 소리의 데시벨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TV소리도 점점 커지잖아요.(웃음) 그래서 요즘은 그런 부분에서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신경 쓰고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과연 ‘좋은 아버지’란 무엇일까요?


옛날에 그 질문을 받았다면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 거예요.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잘 들어주고, 아이들의 속도를 잘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요.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모르겠어요.(웃음) ‘과연 좋은 부모라는 것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굳이 부모로 대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늙어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게 맞을 것 같고요. 이 나이쯤 되면 자녀가 보통 20세가 넘기 때문에 부모자식이 아닌 철저히 성인 대 성인으로 아이들과 마주하게 되거든요. 그렇기에 아이들 눈에 비친 내 삶보다 실존적인 ‘나’의 삶이 어떤가가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여전히 ‘부모’라는 틀에만 나를 가둬두기에는 좀 불행한 것 같아서요. 예를 들어 황혼이혼을 하는 부부들이 있잖아요. 이들이 이혼을 하는 건 개인과 개인의 문제예요. 하지만 ‘좋은 부모’라는 틀이 둘 사이에 끼어들면 부부는 절대 이혼하지 못하겠죠. 뒤늦게나마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는 선택이 옳은가, 아니면 좋은 부모의 역할을 하기 위한 선택이 옳은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여야 하죠. 그래서 요즘은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럼 질문을 바꿔볼게요. 좋은 어른이 갖춰야 할 태도가 있다면요?


자기 자신을 계속 돌아보는 거죠.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혹자들은 ‘왜 이렇게 생각이 많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 들수록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불편해질 필요가 있어요. 내가 혹시 나쁜 사람은 아닌가? 내 행동이 좀 후지지 않나? 그렇게 자꾸 생각하고 돌아볼수록 덜 나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도 인상적이었어요. ‘그 어떤 철학이나 사상, 이념, 가치보다 개인의 사소한 사정을 더 중히 여기고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고 싶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203쪽)’고 쓰셨는데, 남녀 갈등이 수면으로 급격히 올라온 이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민서영 작가의  『썅년의 미학』이라는 책을 본 적 있어요. 읽으면서 절반은 통쾌했고 절반은 불편했어요.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하고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로 나를 깨우치는 부분에서 통쾌했다면, 다소 공격적이고 뒤틀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대목에선 불편했었죠. 어쨌든 다 읽은 후 아들 방 책상 위에 이 책을 올려뒀거든요. 아들이 올해 스물한 살인데 책을 보더니 “이걸 왜 가져다 놓으셨냐”고 묻더라고요. 그 질문을 받고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어요. 그 책이 좋든, 불편하든, 그 뜻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상관없이 ‘세상에 이러한 소리가 있다는 것 자체를 들어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고,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네가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판단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지만, 이러한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한 번쯤 충분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보통 나이대에 따라 각기 다른 고민을 하며 살게 되는데요. 50대에 접어들며 자주 하게 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50대를 보편적 수치로 설정할 순 없을 것 같고 ‘2019년을 지나는 50대’의 고민을 이야기해야 맞을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요즘 중년 남성들의 고민은 빠르게 변하는 세대, 문화, 세태 속에서 나름대로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자신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에서 오는 혼란이 가장 클 거예요. 과거에는 50대에 찾아오는 갱년기, 우울증 등의 신체적 변화, 혹은 갑작스러운 명예퇴직 등이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우리와 너무 다른 아랫세대라는 외계적이고 낯선 우주와의 대면에서 찾아오는 당혹감이 마음을 힘들게 하죠. 내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젊은 직원들과 소통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어떤 대화법이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아버지로서 어떤 말을 했는데 자식에게 그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등,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옳음’에 대한 생각이 빠르게 뒤집어진 세대 속에서 느껴지는 혼돈이요.

 

작가님이 겪은 경험이 있다면요?


예를 들어 딸이 혼자 저녁을 먹고 있는 중에 제가 집에 들어왔어요. 그럼 제 생각에는 “아빠 식사하셨어요? 같이 드실래요? 저녁 차려드릴까요?”라고 물어야 맞는 것 같거든요. 제가 컸던 환경에서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딸은 그 말을 안 하는 거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돼서 딸에게 “서운하다”고 얘기하면 딸이 “저녁을 안 드셨으면 아빠가 제게 먼저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반문해요. 막상 그 말을 들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자동적으로 생각의 알고리즘이 바로 전환되진 않죠.(웃음) 제가 성장한 환경에서는 밥을 먹고 있을 때 부모님이 들어오시면 식사를 차려드리고 함께 먹는 게 너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이유야 어찌됐든 딸에게 야단을 맞았잖아요.(웃음) 이런 일이 집안에서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거듭 반복될 때면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라고 주춤거리게 되고, 자신이 없어져요. 눈치를 보게 되고요. ‘아직 그렇게 늙은 건 아닌데, 왜 이런 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혼란스럽죠. 혼돈 속의 고립이라고 할까요. 대부분 이런 혼란스러움을 비밀스럽게 갖고 있을 거예요. 과거에는 가부장적인 힘으로 ‘내가 맞아, 내가 질서야’라며 소리치는 어른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게 통하지 않는 시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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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기’가 아닌 ‘나이 버리기’


다독가이시잖아요. 요즘은 주로 어떤 책을 많이 읽으세요?


잡학스럽게 읽어요. 저는 책 한 권을 진득하게 끝까지 보지 않고 최소 7권~10권을 주변에 두고 그때그때 흥미가 느껴지는 걸 조금씩 읽는 편인데요. 요즘은 미술비평집이나 2019년 트렌드에 관련된 책, 헤밍웨이 단편선 등 다양하게 읽고 있어요. 피아노를 배우면서 독서량이 현저히 줄긴 했지만요.

 

피아노를 배우세요?


비교적 여유가 생기고, 하고 싶은 일을 특별한 목적 없이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글 쓰는 것 말고, 매년 새로운 걸 하나씩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몇 년 전에는 테니스를 배워서 지금까지 치고 있고, 작년에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악보를 보게 됐죠.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 계명창을 하고 싶단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또 나이가 좀 더 들면 음악 봉사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지난해 12월부터 석 달째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요. 매일 연습해야 손이 굳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2~3시간씩 피아노를 치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네요.

 

직접 배워보니 어떠세요?


너무 재밌어요. ‘나 어쩌면 음악천재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들어요.(웃음) 분명 철저히 좌절될 꿈이겠지만, 좌절되기 전까지의 설렘이 있잖아요. 아무도 모르고, 나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나에게 절대음감의 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혼자 상상해요. 어릴 때, ‘나는 하얀 피가 몸에 흐르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을 거야’같은 공상을 했던 것처럼요. 그러니 일상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책을 읽다 보니 명상에도 관심이 가더라고요. 마음이 힘들 때 일상에서 쉽게 명상을 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손바닥 명상이 있어요. 제가 ‘노매드힐링’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에 있는 내용인데요. 사람들에게 테이블 위에 손바닥을 올려두고 손가락 끝 하나하나, 손바닥의 느낌을 관찰해보라고 이야기해요. 그 후 느낌이 어떤지 물으면 “차갑다, 딱딱하다”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오거든요. 그때 다시 물어봐요. “그 딱딱함을 느낄 때 집안의 문제나 통장 잔고, 회사 업무에 대해 생각하셨나요?” 그럼 다들 아니라고 대답하죠. 이게 바로 명상의 핵심 포인트예요. 우리는 한꺼번에 두 가지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되면 저절로 다른 하나의 생각은 끊어지게 되거든요. 이렇게 머리를 비우는 게 바로 명상이죠. 만약 회의를 하고 있는데 앞 사람의 이야기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테이블 위에 손바닥을 올려두고 손의 느낌에 집중해보세요. 그럼 내 감정이 그 사람에게로 끌려가지 않을 거예요. 저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대하고 감정노동을 하는 분들에게 이 명상을 자주 알려드려요. 꼭 산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만 명상인 것은 아니거든요.

 

작가님에게 나이듦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고 하잖아요. 그 표현을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요. 언어를 바꾸면 우리의 인식도 변하니까요. 예를 들어 태어날 때 카드를 85장 가지고 태어나는 거예요. 해가 지날 때마다 우리는 그 카드를 한 장씩 버려야 해요. 그럼 “몇 살이에요?”라고 했을 때 “53살 먹었어요”가 아니라 “53장 버렸어요”라고 해야겠죠. 결국 모든 카드를 다 버리면 내 삶은 끝나는 거예요. 그렇다면 카드 한 장을 내놓을 때마다 얼마나 아깝겠어요.(웃음) ‘먹는다’는 말에는 아까움에 대한 의미가 없잖아요. 배불러서 더 먹기 싫은 데도 꼭 먹어야 하고. 하지만 버린다는 것에는 자기 의지가 들어있어요.

 

나이 들수록 저절로 겸손해지겠네요.(웃음)


그렇죠. 그리고 기꺼이 한 장을 내놓는 힘을 가질 수 있기를, 옳은 판단력을 가질 수 있길 기도하고 바라게 되지 않을까요.

 

말년의 양식을 위한 10개의 자기 수칙 중 첫 번째로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먼저 구상하라고 했어요. 올해 하지 않기로 생각한 것이 있나요?


마음 같아선 술을 끊고 싶은데, 왜 술 체력은 줄어들지 않을까요?(웃음) 지금으로서는 잠을 줄이는 게 제일 현실적인 것 같아요. 잠을 줄여서 아침 시간을 좀 더 유용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2014년경에 MBN의 토크쇼 프로그램 <아빠들의 청춘 블루진>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중년 남성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토크쇼를 만들고 싶다는 기획의도에 반해 출연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방송이 막을 내렸죠. 처음의 기획은 ‘마음 속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자’는 것이었는데, 토요일 8시 40분이라는 골든타임의 주 시청자가 중년여성들인 거예요.(웃음) 그래서 시청자 기호에 맞는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자연스레 프로그램 색이 없어졌어요. 저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아요. 40대 중반에서 60대 중후반을 지나는 중년 남성들도 하고 싶은 말 많거든요. 사회와 가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관심 받아 마땅한데 자꾸 소외되는 것 같아서 속상해요. 이 책은 ‘당신들을 위한 이야기야. 이걸 읽으면 덜 외로울 거야.’라는 말을 중년 남성들에게 꼭 하고 싶어요. 어떤 독자층보다 그분들이 이 책을 몰라서 못 보는 게 더 슬플 것 같거든요.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윤용인 저 | 위즈덤하우스
저무는 세대로 분류되는 이 시대의 희한한 어른들을 위한 공감적 사유물을 만들고 싶었다던 작가는 지나온 50년에 대한 회한보다 앞으로의 50년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자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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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슈퍼오가니즘의 ‘초개체’ 사상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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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출신의 런던 밴드. 다국적 밴드 슈퍼올가니즘은 인터넷 시대의, 인터넷 세대에 의한, 인터넷 세대를 위한 팀으로 2018년 한 해 내내 화제를 모았다. 키치한 인터넷 미학과 자유로운 메시지, 발랄한 음악 색채를 자랑하는 이들은 일상이 된 글로벌과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온라인의 힘을 나른하고도 힘차게 노래한다.

 

1월 27일 예스 24 라이브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밴드를 만나 그들의 '초개체' 사상을 들어봤다. 인터뷰에는 기타리스트 해리(Harry)와 코러스 루비(Ruby), 비(B), 소울(Soul)이 참여했다. 한국인 멤버 소울이 '반갑습니다'라며 우리를 맞아줬다.

 

 

[Live] 두 번째로 만난 슈퍼올가니즘, 짧았던 한국과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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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국 방문이다.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 소감을 부탁한다.


루비 : 한국의 팬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해리 : 항상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정말 오게 될 줄 몰랐다.


: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우리 팀이다 보니 이런 홈커밍 쇼(Homecoming Show)가 더 특별하다. 한국은 소울의 나라 아닌가.


소울 :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많은 팬 분들이 마중을 나와주셨다. 한국 팬들은 최고다!


: 인형, 케이크, 심지어는 양말까지 많은 선물을 준비해오셨다. 한국의 첫 인상이었다.

 

2018년 BBC 'Sound of the Year'에 선정된 이후 정규 앨범 발매와 월드 투어, 방송 출연까지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본다면.


해리 : 빨랐다(Fast). 엄청 빨랐다(웃음). 2년 전 ?Something for your M.I.N.D? 발표 후 각 다른 나라에 살던 멤버들이 한데 모였고, 그 후부턴 눈덩이가 굴러가듯 모든 게 엄청 빨리 진행됐다. 정규 앨범을 냈고 투어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매 공연에서 관객들의 모습을 담을 때마다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국, 멕시코, 싱가폴, 유럽.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 아직도 크레이지(Crazy)하다.


루비 : 쿨하고 놀라운 '블랙홀'같다.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모든 걸 삼켜버리는.


해리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선이 황홀한 별들의 바다를 달려 나가는 장면처럼 말이다!


소울 : 가끔 멤버들과 이 모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항상 웃고, 떠들고, 함께하며 즐겁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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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올가니즘의 해리(Harry)

 


슈퍼올가니즘은 다국적의 멤버들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독특한 구성인데, 팀의 결성과 멤버들의 합류 과정을 말해달라.


해리 : 나는 잉글랜드에서 태어났지만 뉴질랜드에서 오래 살았고, 루비와 비, 소울도 뉴질랜드에서 자랐다. 우리가 모인 곳은 런던이다. 런던은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국제적인 도시 아닌가. 다국적 멤버들이 모였다고 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여기에 인터넷이 큰 역할을 했다. 슈퍼올가니즘을 하기 전에도 어릴 때 소울의 옛 밴드와 함께 공연했던 기억이 난다. 밴드캠프(Bandcamp) 사이트로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


소울 : 인터넷은 재능과 개성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 음반 레이블, 힘 있는 여러 사람들의 여러 제한이 있었다면 지금은 특별한 장면과 음악은 밈(Meme)이 되고 즉각 유행이 된다. 해리의 음악, 오로노의 음악 모두 온라인으로 미리 듣고 공유하며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 즐거웠다.


루비 : 첫 녹음 때 오로노는 미국 메인주에 있었고 소울은 호주에서 살았다. 첫 곡을 작업할 때도 온라인을 통해 작업을 진행했다. 저녁은 호주에서, 아침은 런던에서 먹는 것처럼 국제적이었다.

 

(팀의 배경처럼) 규칙과 공식 대신 자유롭고 무국적의 사운드가 특징이다. 장르에 있어서도 힙합, 일렉트로닉, 록 등 크게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음악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해리 : 다시 한번, 인터넷이다(웃음). 베이스라인, 신시사이저, 기타 리프, 보컬 파트를 인터넷으로 합쳐 공유하고 합쳐나간다. 노이즈, 시끄러운 소리들, 백보컬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형식이고 따로 규칙은 없다.


: 런던에서 합주할 때도 그렇게 모인 파일을 기반으로 음악을 만들어나간다.


해리 : 나는 팀의 기타리스트지만 항상 기타만 치는 건 아니다. 내가 드럼 아이디어를 낼 때도 있고 멤버들이 기타 멜로디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 팀엔 좋은 기타리스트들이 많다. 각자의 아이디어와 개인의 방식을 한 데 모아서 일정한 흐름(Vibe)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소울 : 서로의 사운드 샘플 파일을 공유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사, 사운드 등등 모든 분야에서 멤버들이 자유롭게 얘기를 나눈다.


해리 :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 열정이 바탕이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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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올가니즘의 루비(Ruby)

 


사운드는 발랄한 편이나 'Nobody cares'나 'Everybody wants to be famous', 'The prawn song' 등 의 메시지는 발랄하지 않다. 오히려 시니컬한 편인데.


해리 : 재밌는 질문이다. 사실 두 노래 모두 시니컬한 내용은 아니다. 'Nobody cares'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무도 널 신경 쓰지 않아!'였고, 'Everybody wants to be famous' 역시 '셀카 찍고 SNS 올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를 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다.


소울 : 사람들이 이 노래를 시니컬하게 받아들인다면 시니컬한 것이고, 즐겁게 받아들이면 즐거운 것이다.


루비 : 오로노가 무대 위에서 무뚝뚝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 모두 굉장히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다 잘 될 거다'가 항상 핵심이다.


해리 : 우리 음악이 흑과 백으로 나눠지는 걸 경계한다. 'The prawn song'이 언뜻 인간성을 공격하는 심각한 노래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좋다. 정답과 오답을 나누기보단 각자의 시각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NPR Desk Live나 'Congratulaions Cover' 영상처럼 독특한 소리 (탄산음료 소리 / 물소리 / 사과 먹는 소리) 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사운드 샘플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가.


: 집, 거리 등 다양한 공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흥미로운 소리에 귀를 열고, 찾아서 활용하려 한다.


해리 : 팔레트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짜는 과정과 같다. 섞어서 다양한 색을 만들 수도 있고 단색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런던은 정말 시끄러운 도시고, 흥미로운 소리를 찾아서 음악에 활용하는 작업은 언제나 즐겁다.


루비 : 한국, 호주, 미국 등 각 도시마다 특별한 소리가 있고 그걸 어떻게 우리의 스타일로 재구성할지 많은 이야길 나눈다. 장난감 소리, 자전거 소리 등등 넓은 콜렉션을 만들려 노력한다.


해리 : 비주얼 작업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곳에서부터 가져온 개별 것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엮어내는 과정이다.


: 개별성(Individual)이 정말 중요하다.


루비 : 'Congratulaions'에서 소울의 플루트 연주가 멋졌다.


해리 : 소울이 인터넷 밈(Meme)이 된 다루드(Darude)의 'Sandstorm'을 연주하는 걸 들어봐야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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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올가니즘의 비(B)

 


이즘 이택용 에디터는 슈퍼올가니즘의 음악을 '깜찍한 핑크 플로이드, 발랄한 애니멀 콜렉티브, 친근한 플레이밍 립스'라 설명했다.


멤버 전원 : 세상에! 엄청난 칭찬이다. 너무 감사하다(감탄)


해리 : 소울은 핑크 플로이드를 제일 좋아한다.

소울 :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은 내 인생의 앨범이다.

루비 : 처음 런던에 봤을 때 갔던 공연이 플레이밍 립스 공연이었다.


해리 : 플레이밍 립스 공연 본 적 있나? 정말 대단한 무대다.


소울 : 엄청난 아이디어들이 넘친다. 소리와 비주얼이 한 데 합쳐져서 황홀한 장면을 만든다.


해리 : 세 밴드들로부터 많은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


: 정말 마음에 드는 칭찬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해야겠다 (웃음)

 

우타다 히카루의 'Coriander song', 혁오의 '강강술래'를 커버했고, 일본에서는 밴드 챠이(CHAI)와 함께 투어 하기도 했다. 협업하고 싶은 밴드나 아티스트가 있나.


해리 : 모든 작업이 즐거웠다. 우리는 일본어 중국어를 못하고, 그 아티스트들은 영어를 못하지만 음악만으로 소통하는 과정 자체로 신났다. 신디사이저, 키보드로 잼을 하면서 말하지 않아도 '오 좋은데?'하며 통하는 경험이 특별했다. 앞으로도 어떤 아티스트들과 같이 작업할지 흥미롭다.


소울 : 기회가 되면 항상 협업하고 싶다. BTS 같은 케이팝 밴드, 캬리 파뮤파뮤 같은 일본 밴드도 마찬가지다.


: 슈퍼올가니즘이 지향하는 방향과도 일치한다. 세계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의견을 나누고 노래를 커버하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슈퍼올가니즘이 지향하는 방향과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루비 : '쩌는 뭔가'를 만드는 거다(Making Cool Shit). 이 멋진 지구촌을 슈퍼올가니즘이란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며 세계 곳곳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고 계속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것.


소울 : 팝스타나 아티스트로 다가가는 것도 좋지만 팬들에겐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당당히 표현하고 멋지게 이상화하라.


해리 : 우리도 우리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고, 다양한 피드백과 의견, 창작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서로를 서포트하는 것이다. 팬들에게 감사하다.

 
: 소울의 이모, 삼촌에게도 감사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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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올가니즘의 소울(Soul)

 


인터뷰 : 김도헌, 황선업
사진 : 김만두
통역 : 소니 뮤직 코리아
일정협조 : P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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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지원 “무슨 폰트가 제일 좋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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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 이 네 글자는 내게 인쇄술과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읽힌다. 달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 생각을 강물이라는 종이에 찍고 스크린에 실어 여러 사람에게 전한다. 이것이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글을 더 정련해서 전하고자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또 타이포그래피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사람들이 책과 신문과 잡지를 만들고 인터넷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림과 글자는 한 몸에서 분화했다. 한 폭의 그림 같고 한 수의 시 같은 글자들이 강물에 달 찍히듯 사람의 마음에 찍힌다. 자국으로 남겨지고, 그림으로 그려지고, 기억으로 새겨지고,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살아남아 생명처럼 생생한 심상과 이야기를 이어 간다. (295쪽)

 

타이포그래피 전문가 유지원이 쓴  『글자 풍경』은 보석 같은 책이다. 보석이 다채로운 빛깔을 자랑하듯, 이 책은 글자에 얽힌 다양한 결을 보여준다. 풍성한 내용도 내용인데, 빛의 각도에 따라 반사되는 색이 달라지는 띠지, 부록으로 실린 용어 정리, 이해를 돕는 사진, 본문에 사용된 가독성 높은 폰트가 이 책을 더욱 화사하게 한다.

 

글자는 인간과 늘 함께 산다. 출근하며 읽는 뉴스, 거리의 광고판, 모니터 화면에 띄운 업무 문서들, 점심 시간 식당에서 마주하는 메뉴판 등. 글자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글자가 똑같은 모양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 원활한 소통을 위해 글자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모습을 바꾼다.

 

우리의 일상에 늘 존재해온 글자의 편재성과는 달리 글자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알기 쉽게 풀이해준 책이 드물었다는 점은 다소 의아하다.  『글자 풍경』은 타이포그래피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가 읽어도 재밌고 쉬운 교양서다. 동시에 전문가의 통찰력을 담아, 글자에 담긴 역사적 사회적 함의를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구성됐다. 고대 서양의 로마자에서부터 21세기 최근 모바일 환경에서 변화된 폰트 환경까지 두루 다루면서, 사람과 어우러지는 글자는 어때야 하는지를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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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글자를 둘러싼 모든 활동

 

건축, 미술 작품에 관한 대중 교양서는 많았는데요. 글자에 관한 대중 교양서가 드물었습니다. 이 책을 내기로 한 계기와 책을 엮으면서 든 생각이 궁금합니다.

 

글자에 관한 전문서는 이미 나온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글자는 전문가만의 영역은 아니라서 글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004년 독일로 유학을 갔을 때, 유럽에서는 글자에 대한 경험의 양상이 한국에서와는 여러모로 달랐어요. 그 원인을 관찰하면서 언젠가 이런 시각을 콘텐츠로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사진도 직접 찍고, 때로는 사용권을 구입하는 등 그때그때 이미지 자료들을 아카이빙해 두었어요.

 

그런데 글자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워낙 범위가 넓고 다채로워서, 어디서부터 다뤄야 할지 차근차근 구성을 짜는 것이 제게는 어려운 문제였어요. 그러던 중, 2017년 초에 연재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을유문화사의 편집주간님이 그때 연재를 소개해 주셨지요. 신문의 연재 칼럼에서 마감의 존재는 차곡차곡 이야기를 채우고 쌓아가는 강력한 견인차 역할을 해주더군요. 그렇게 1년 연재한 다음, 책으로 묶어서 낼 수 있게 됐어요. 결정적인 계기는 연재였지만 콘텐츠는 15년 정도 쌓여 있었어요.

 

타이포그래피가 전공자 아닌 사람들에게는 생소한데, 어떤 개념인가요.

 

강연을 하면 가끔 청중들이 타이포그래피가 뭔지 한 줄로 요약해주기를 바란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이 책에는 27가지 챕터가 나와요. 조급하게 정의 내리려 하지 말고 27 챕터를 다 읽어보신 후에, 독자분들이 각자의 견해를 차분히 형성하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편, 전공자들을 위한 대학교의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는 첫날에 타이포그래피란 “글자를 둘러싼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합니다. 글자를 만들고, 이미 만들어진 활자를 배열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더 쉽고 편하게 전달하는 행위 모두를 넓은 의미의 타이포그래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자는 크게 글씨와 활자로 나뉘는데요, 손으로 쓰는 글씨는 서예와 캘리그라피 영역이고, 기계로 쓰는 활자 혹은 폰트가 좁은 의미에서 타이포그래피의 영역이에요.

 

글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선생님의 글씨체는 어떤가요.

 

제 웃음이 답해줄 텐데요. 왜 ‘천재는 악필’이라는 문구가 있잖아요. 한 사람의 특정한 다른 능력과 글씨 잘 쓰는 능력이 반비례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무관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합니다. 타이포그래피가 글자를 다루긴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 듯 손으로 쓰는 글씨 대신 기계를 활용하는 폰트를 다루는 영역이어서요. 모든 타이포그래퍼가 글씨를 잘 쓸 거라고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저는 로마자 글씨는 잘 쓴다는 소리를 듣는데, 한글 글씨는 별로 못씁니다. 아주 어릴 때는 잘 썼는데요, 학창시절 빽빽이 숙제를 만나고 나서 한차례 한차례 무너져갔어요. 특히 ‘국민’학교 3학년과 중학교 2학년 때요. 빽빽이 숙제 때문에 빨리 써야겠다는 조바심이 붙으면서 성장기에 글씨가 망가진 거죠. 빽빽이 숙제는 글씨에 해롭습니다. (웃음) 폰트가 있어 다행이에요.

 

제목이 '글자 풍경'입니다. 책 마지막에서 '월인천강'을 이야기하며 책 제목에 관해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이번 인터뷰 자리를 빌어 제목을 정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연재가 들어왔을 때, 그 순간 떠오른 연재 제목이 ‘글자 풍경’이었어요. 순식간에 떠오른 게 정답일 경우도 많잖아요. 이 제목 덕분에 운신의 폭이 넓어졌어요. 디자인만 다루는 게 아니라 모든 풍경들을 포괄할 수 있었거든요. 예술과 건축 이야기, 과학 이야기, 역사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 글자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요. 입에도 잘 붙어서 기억도 잘 되고요. 책 제목은 최종적으로 출판사에서 확정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사연이 있어요. 연재가 몇 달간 진행되고 나서야 뒤늦게, 역시 타이포그래퍼인 영남대학교 정재완 교수님이 2010년경에 ‘글자 풍경’이라는 제목을 전시를 하셨다는 사실이 기억났어요. 비록 전시와 도서는 영역은 다르지만, 그래도 나중에 책 제목도 ‘글자 풍경’으로 정해지면 그 전에 양해를 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출간을 앞두고 책 제목이 정해지면서 이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만큼 ‘글자 풍경’이라는 제목에 더 책임을 질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서문에도 공개해주셨지만, 선생님의 오늘을 있게 한 사건이 유년시절 서점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 외에도 선생님께서 글자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을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말보다 글이 편했어요. 어린애들은 늘상 궁금한 게 많잖아요. 부모님은 답변 대신 관련된 책을 사주셨어요. 제가 책으로 답을 대신 받고서도 화내지 않고 감사해하면서 좋아하는 성향의 어린이였으니 부모님 입장에선 다행이었겠지요. 어릴 때부터 세상을 통하는 통로가 제게는 주로 책 속의 글이었죠.

 

한편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여러 지역에 발령이 나셨는데요, 가장 친했던 친구들과는 편지로 소통했어요. 말보다 글로 이야기하는 게 어릴 때부터 편했어요.

 

진로에 관해서는 눈 앞에서 뭔가가 만들어지는 걸 보는 게 좋아서, 창작 분야인 디자인을 자발적으로 일찌감치 전공으로 택했어요.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미술과 나란히 마지막까지 고민한 진로가 어문학 계열이었어요. 그림과 글을 모두 좋아했고, 그 접점이 바로 글자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됐습니다. 글자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각 챕터가 서로 연관되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독립된 장이잖아요. 어떤 기준으로 글을 배열했나요?

 

기준은 “독자분들이 심리적으로 어떤 리듬을 타며 반응할까”였어요. 글자에 이전에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분들까지 읽어주시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구성했어요.

 

글자를 당근에 비유하자면요, 당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당근에 관심 없는 사람, 심지어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도, 적어도 몇몇 요리는 맛있고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는 코스라 생각하고 구성했습니다.

 

어떤 요리를 먹고 싶어할지, 독자의 입장에서 늘 생각했어요. 일단 먹고 싶어야 하고, 안 먹던 당근을 갑자기 먹다가 중간에 탈나면 안 되고요, 어떨 때는 부드럽고, 어떨 때는 독특한 식감이 나게 해서, 크고 작은 리듬을 타게 한다는 생각으로 조율했어요. 에피타이저, 본식, 디저트를 고려하듯이 일관성 있게 흐름을 짰죠. 앞 내용을 읽으면 다음 걸 읽고 싶도록, 아늑하면서도 지루해지지 않도록, 이런 부분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골격을 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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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지역성을 존중해야, 하나의 기준은 건강하지 않다

 

글씨체 역사에서 여성이 주도한 사례로 궁서체와 히라가나를 꼽으신 대목과, 판결문에만 쓰이는 판결서체가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습니다. 그밖에도 책에서 소개해주신 사례가 글자의 역사성에 관한 내용인데요. 글자에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보통은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잖아요.

 

대개의 학문들이 학문으로서 정립될 때 그 학문의 역사를 세웁니다. 기존에 나온 글자에 관한 숱한 전문서들도 대체로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서술이 전문가에게는 필요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분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래 고민해왔습니다.

 

이 책에서 역사적인 순서를 물론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왜 글자를 만들어서 더 잘 쓰고자 노력하는지, 왜 소통을 하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뒀습니다. 소통에 대한 욕구, 사람의 상호적인 행동, 글자를 형성하는 도구, 이렇게 더 본질적인 측면을 토대로 그 위에 역사와 지역성, 그리고 글자의 여러 속성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구성을 취했어요.

 

역사성에 관해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서구 역사인 로마자를 중심으로 맞추어져 가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지구상 모든 글자들이 대등한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는 관점에서, 역사성 못지 않게 지역성을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지역 글자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글자의 다양성과 생태계에 대해 언급해주셨습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획일화되지 않음, 다양성 이런 게 글자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평소에 “무슨 폰트가 제일 좋아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꼭 맞는 정답은 아닐지라도 틀릴 확률이 그나마 적은 폰트, 소위 무난하다고 불리는 디폴트 폰트가 몇 개 있긴 합니다. 역사성과 지역성, 그리고 취향이 최소화되어 ‘중립적’이고 ‘기능적’이라고 불리는 폰트들이죠. 그런데 그런 폰트들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오작동하는 일이 생깁니다. 무난하고 안전한 획일성과 표준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글자에는 인류 보편적인 특성도 있지만, 그와 나란히 대체불가능한 지역적 다양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기준만을 강요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습니다.

 

동양의 붓과 서양의 펜이 만든 차이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폰트 디자이너에게만 전가할 것이 아니라, 한글을 사용하는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한글 글자체를 형성하는 붓의 특성을 양(量)적으로 기술하는 일이요. 글자에서 붓의 영향을 배제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 있는데요, 이미 글자의 형태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붓은 우리 문화 속에서 떨어트릴 수 없는 다면적인 각인을 남겨두었습니다. 붓을 극복하고자 하더라도, 제대로 극복하려면 붓을 이해하는 게 순서입니다.

 

서구는 로마자라는 글자체계뿐 아니라 문화 전체가 환원주의적인 시스템에 유리합니다. 단순화가 용이해요. 붓은 그에 비하면 훨씬 복잡합니다. 동양 문화 전체가 전반적으로 복잡하죠. 시스템보다는 개인 역량을 많이 요구하고요. 이런 특성은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화 시대에는 불리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잖아요. 폰트는 기본적으로 체계화와 유형화의 작업이니, 한글에서도 복잡한 인자들을 조심스럽게 분류해내어 알고리즘화 할 수 있어요.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뿐만 아니라 컴퓨터 공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서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적 특성인 복잡함을 억지로 단순하게만 하는 건 자문화 부정 밖에 안 됩니다. 이런 일은 디자이너 선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글자 풍경』은 다른 분야에 이에 대한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호소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전문가가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정리해두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제대로 넘어갈 수 없어요. 서양의 원리를 그대로 이식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본연의 것을 정확히 기술해서 거기에 최적화해서 가야죠. 글자를 쓰는 모든 사람들이 이 점을 의식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도비 프로그램을 쓸 때 한글 폰트가 다소 불편하다는 지적도 하셨죠?

 

저는 어도비의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을 기본적으로 존중합니다. 그런데 서구에서 글자를 둘러싼 기계 환경을 주도하다보니, 글자를 배열하는 소프트웨어들도 주로 서구식 공간 논리로 이루어져 있어요. 서구의 로마자는 균질하게 선형 진행하는 글자체계이고, 동아시아 글자들과 한글은 칸을 먼저 형성한 후 획이 적든 많든 같은 크기와 모양의 칸 안에 낱글자들을 배치하는 글자체계입니다. 공간의 논리가 다릅니다. 따라서 기술 환경은 세계의 어떤 다른 글자들보다 점점 더 로마자에 익숙하게 진화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은 어도비에서도 자각을 해서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습니다.

 

컴퓨터나 여러 디바이스, 문서 등에서 한글 폰트를 쓰면서 “이상하다, 왜 로마자보다 안 예쁘지? 한글이 원래 안 예쁜가?”, 이런 생각들 세종대왕님께 죄송해서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해도 한번씩 갸우뚱하면서 해보잖아요. 그건 로마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디지털 디바이스 환경이 진화해가고 있어서예요. 로마자 아닌 문자권 전문가들이 계속 이런 문제 제기를 하고,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한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고 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책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명조체와 산돌커뮤니케이션의 산돌정체에 관해서 소개해주신 장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글자 풍경』을 만드실 때 책의 폰트에 관해서도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을 해주신 유윤석 디자이너님의 타이포그래피적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어요. 그래픽 혹은 편집 디자이너라면 본문에 무슨 폰트가 사용되었는지 보면 바로 아실 거에요. 그렇지 않은 분들이 일대일로 문의하시면 알려드릴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로는, 마치 그 폰트가 하나의 정답일 듯 여겨질까 봐서요. 문제가 하나 있으면 다양한 해결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상황에서는 이 폰트가 답이 아닐 수 있어요. 둘째로는, 본문 폰트로 쓸 수 있는 한글 폰트 종류에 제한이 있어, 그 제한 속에서 선택된 것이거든요. 꼭 맞는 답을 내려면 책 전용 폰트를 개발해야 할텐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럴 의미도 없지요. 하지만 한글 본문 폰트의 선택지가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은 폰트도 어느 디자이너가 쓰느냐에 따라 인상이 달라집니다. 본문 텍스트가 눈에 쏙쏙 박히게 다루는데 능숙한 유윤석 디자이너님의 손길을 거쳤기에 지금 지면 디자인과 같은 모양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책에서 주로 사용하는 명조체가 모니터나 모바일에서는 어색하게 보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관련해서는 ‘큰 글자는 보기 좋게, 작은 글자는 읽기 좋게’ 챕터에서 다루었어요. 전자책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디자인하는 분들은 꼭 이 장을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책에서 잘 기능하던 폰트가 스크린과 모바일에서 어색하게 보이는 건 사용자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글자는 기술 환경에 반응합니다. 스크린과 모바일은 종이책보다 해상도가 아직 낮아서 명조체의 정교한 형태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지면 아닌 화면에서는 명조체가 정답이 아닌가 하면, 그렇게 단언할 수도 없어요. 기술이 발전하고 화면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화면이 눈에 더 친화적으로 변화해가면 명조체가 스크린에서도 찰떡같이 붙을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단계에서도 명조체를 크게 쓰면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합니다. 또 명조체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화면에 최적화한 명조체들이 최근에 개발되고 있습니다. 본명조가 한 예입니다.

 

뭔가가 어색하다고 느끼신다면, 사용자가 느끼는 것이 답입니다. 피드백을 주고받는 경로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불편을 감지하고 의식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건강한 일입니다. 예의를 갖추어서 피드백한다면, 콘텐츠 서비스 제공자들도 고마워하며 정교하게 원인을 살피고 섬세하게 개선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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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 교수가 말하는 책의 힘, 좋은 글

 

타이포그래피 전문가인 선생님에게는 책이 남다른 의미일 듯합니다. 선생님에게 책이란 무엇인가요?

 

앞날개를 펼치면 저자 소개 첫 줄에 ‘글자와 책을 좋아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라 써 있어요. 저는 세상을 접하는 여러 통로를 가지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책은 세상의 다양하고 멋진 사람들이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되는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은 느낄 거예요. 자신이 책 속에 고도로 정제되고 연마되어 담긴다는 것을. 이런 측면이야말로 어떤 미디어가 부상하더라도 책이 잃지 않을 단단한 힘이라고 생각해요.

 

유튜브가 강력한 플래폼이 되었습니다. 소통의 중심이 영상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보면서 이런 매체 변화를 어떻게 조망하시나요?

 

저는 졸업 후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했다가, 글자체 전반으로 관심을 넓혔어요. 여전히 책과 종이로 하는 소통을 가장 사랑하지만, 이런 관심 확장은 매체 변화에 대한 제 개인의 응답인 것이죠.

 

다른 매체가 나타나면서 책의 입지는 줄어들 겁니다. 그 과정에서 책의 역할과 형식도 어느 정도는 변화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책도 다른 매체와 대화하고 그에 응답하면서 결국 비가역적인 변모를 겪는 걸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통적인 방식의 책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친구들에게 책을 강요하거나 그들을 탓하기보다는, 그 친구들이 더 친근하게 여기는 매체로부터 책에 교두보를 놓는 장치를 책 내부에서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디자이너의 문제해결력이자 창의력이겠지요. 디지털 미디어의 짧은 호흡, 그리고 시선을 끄는 그림과 역동적인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책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을지, 이 질문에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전문가가 대답할 몫이 있다고 봅니다.

 

글자에 관해서는, 인류가 이제 더이상 언어적인 발화에 의존하지 않고 뇌 신호로 소통을 하는 미래가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남아있을 겁니다. 책이 그랬듯, 이미지 영상과 호흡을 함께하는 환경에서 글자 자신을 적절히 진화시켜 가면서요. 미래를 그렇게 예측해본다면, 글자가 아예 없어지는 일은 적어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일어나기 어렵지 않을까요? (웃음)

 

이번 책에서 철학, 역사, 예술이 어우러진 풍성한 글쓰기로 독자를 안내해주셨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어떤 게 좋은가를 미리 정의하지 않으려는 편이에요. 한 사람이 생각하는 건 한계가 있을 텐데, 제가 한정을 지어 두면 다른 사람들이 내놓을 수 있지만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좋은 가능성들을 못 보게 되잖아요.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를 고정하려고는 하지 않아요.

 

다만, 수많은 글을 읽어봤더니 특정한 글이 좋더라는 개인 성향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글은,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을 저자 고유의 관점으로 충분히 숙성해낸 글이에요. 저자의 정신적인 근육이 아주 질긴 글이요. 그 결과로 산뜻하고 가벼운 문체가 나올 수도 있고, 묵직한 문체가 나올 수도 있어요. 정신의 근력이라는 게 곧바로 문체의 성격을 뜻하는 건 아니에요. 여하간 그걸 감지할 때 감탄하고 책을 껴안으며 인류애를 느낍니다.

 

이번 책에 실린 27가지 글 중에서는 어떤 글을 제일 좋아하나요?

 

제가 특정한 글이 좋았다고 하면, 독자 분들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게 될 수도 있어 어쩐지 밝히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각자 어떤 부분이 좋으셨는지 제가 듣고 싶습니다. 한 가지, 본문 독서 들어가기 전에 준비 운동으로 맨 뒤의 ‘용어 정리’부터 읽으면 도움이 될 거에요.

 

다음에는 어떤 책을 기획하시나요.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들을 위한 실용적이고 학술적인 전문서를 집필하고 있고요, 더불어 타이포그래피라는 소통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잘 기능하게 하기 위한 제반 활동을 병행하고 싶습니다.

 

후자에 관해서는, 가령 수포자들에게 수학의 얼굴을 다정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서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려운 지식을 쉽게 가공해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까지 닿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콘텐츠 커뮤니케이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타이포그래피 전문가로서 사회적 역할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특히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하는 일을 담당하고 싶어요.

 

중고등학교에서는 수많은 수포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속상한 일이죠. 그 긴 수학 시간에 그 혈기왕성하고 아까운 10대의 소중한 시간을 들러리 서는 데 보내게 한다는 건요. 이와 관련해서 얼마 전 교육감이 문제의식을 느낀 점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 해결방안이 수학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니요. 수학 여행에서 사고가 났다면, 이후에 안전을 강화해야 할 판에 수학여행을 없앤다는 조치를 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요.

 

우리 인생에서 수학 지식의 가치를 수포자에게까지 연결해주는 것도 타이포그래피, 즉 시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 전문가와 교육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마땅히 그분들이 코어에 있어야 하고, 연결 단계마다 각각의 전문적 역할이 있다는 거지요.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질책 당하지 말고, 자존감 있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에 있어서 수학과 과학을 접하는 일을 더 즐겁고 가치있고 친근하고 아름다운 경험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요. 형편이 부족한 아이들이라고 소외되지 않을 수 있도록요. 이 일에는 수학자와 교육자들에게 소통 전문가와 문화예술가들이 힘을 보탤 수 있어요. 멀리 보면,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글자 풍경유지원 저 | 을유문화사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의 시선으로 낯설게, 인문적 시선으로 통찰력 있게 글자에 아로새겨진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픙경 과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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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혜진 “질문이 계속 나오는 북유럽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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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게, 라곰, 팬츠드렁크.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어본 이 단어들에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문화와 감수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렇다면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크리스티안 크로그, 아나 안셰르는 어떨까?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에는 낯선 화가들의 이름이 가득하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를 화가들이지만, 그림을 보는 순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감정이 마음속에 들어온다.


<여성중앙> <쎄씨> <볼드저널> 등의 잡지에서 에디터로 일해 왔던 최혜진은 스물네 살에 빈센트 반 고흐에 끌린 이후로 미술관 여행자가 되었다. 『명화가 내게 묻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등을 펴낸 그가 이번에는 일하는 틈틈이 북유럽으로 날아가 미술관을 누볐던 지난 3년의 기록을 담았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동반한 채 그림을 본다”는 시리 허스트베트의 말처럼 그림을 보면서 몰랐던 자신 안에 무언가를 꺼내게 되는 경험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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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내가 독대하는 기분


북유럽 작가들 이름이 많이 나와요.

 

처음에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그 지역의 미술관에서 올려놓은 유튜브를 보고 화가 이름의 발음을 그대로 적어서 썼었어요. 외래어표기법에 맞춰서 편집자님이 다 고쳐주셨죠.


북유럽 미술관을 여행한 기록이 담겼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여행을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잡지 기자로 일할 때는 회사와 잘 협상을 해야 했죠. 짧게는 사나흘씩 다녀오고, 휴가를 모아서 일 년에 한 번은 떠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어요.


낯선 북유럽 지역을 다니면서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아요. 


북유럽이 제일 북유럽다울 때를 알고 싶어서 1월에 제일 길게 여행을 떠났었어요. 1월이 비수기잖아요. 핀란드 국립미술관을 찾아갔는데 홈페이지에 아무런 공지 없이 메인 전시 소장품을 닫아버린 거예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던 미술관도 리모델링을 해서 일부 소장품만 볼 수 있었어요. 기대한 만큼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웠죠. 그리고 빌헬름 하메르스회이 무덤은 그렇게 못 찾을 줄 몰랐어요. 거기까지 갔다가 그냥 떠나야 하는 마음이, 발길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하면 허탈하지 않았나요?


허탈하죠. 눈물 날 것 같았고요. 하지만 제가 정신승리를 잘해요. (웃음) 마음대로 안 되는 요인이 있다는 게 여행의 매력이거든요. 처음 여행할 때는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을 짜고 가려는 곳의 구글 스트리트 뷰까지 봐야 안심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투 두 리스트(To do list) 지우듯 이만큼 돈을 들였으니 본전을 뽑으려면 이건 내가 보고 와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생기니까, 제가 몰랐던 걸 보면서 경계가 탁 깨지는 느낌을 받는 데는 방해가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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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당시 적었던 미술관 기록.


 

마음대로 안 되는 면이 있어서 북유럽 화가들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죠. 이름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고, 첫사랑에 빠지듯이 좋아해서 검색하면 영어로 된 검색 결과가 세 개만 나올 때도 있었어요. 떠듬떠듬 알아가야 하는 존재들이어서 더 매력 있었던 것 같아요.

 

빌헬름 하메르스회이를 시작으로 북유럽 작가들을 탐색했어요. 어떤 점에 매혹되었을까요?


처음 느껴보는 색감이었어요. 물감이 침잠하고 스며드는 인상으로 발려 있었어요. 그리고 그림에서 주는 정보가 너무 적어요. 밤낮도 잘 구분이 안 되고 등장 인물이 무엇을 하는지 감춘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있어요. 그냥 넘길 수도 있는데, 화가가 던져준 미끼에 걸리면 계속 생각하게 돼요. ‘이 여자는 누굴까, 여기는 어딜까, 새벽일까 밤일까’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질문이 계속 나오는 그림이었어요.


구글 아트프로젝트로 검색을 많이 했다고요.


인터넷 세상에서 하이퍼링크가 주는 엄청난 장점이 있어요. 구글 아트프로젝트에서 한 작품을 보면 연관된 그림을 추천해주는데, 시각적으로 유사한 그림, 색감, 같은 시대, 같은 재료로 만든 그림 등을 따라가면 또 링크가 나와요. 그러면서 정보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게 되게 즐겁거든요. 모두가 접속 가능한 평등한 공간이고, 너무 예술성 있는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무명의 작품과 유명한 작품이 같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 정보를 배제한 채 이미지와 나하고 둘만 독대하면서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집중할 수 있어요.


“미술 경매 시장보다 구글 아트프로젝트가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구글 아트프로젝트 안에서 맘껏 뛰어놀 때 저를 움직이는 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장은 이 그림이 얼마짜리인지를 말해주는 곳이고요. 저에게는 예술성이 시장이 부여한 가치와 분리되어 있어요. 그래서 훨씬 더 선입견 없이 작품 그 자체로 내 마음에 와닿는 것, 내 마음에 남은 인상이 뭔지 훨씬 더 집중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 화가가 가진 명성, 그 화가의 작품 가격을 미디어에서 소개하면 자기도 모르게 선입견으로 남아요. 그러면 그 작품을 보고 싶다는 동기가 외적인 이유로 나타나거든요.

 

화가를 좋아하면 무덤까지 찾아가는 버릇이 나와요.


디지털 이미지로 보는 것도 좋긴 좋아요. 하지만 그 많은 그림과 화가 중에 무언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저는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요. 존 버거가 “원작에는 그 그림에 대한 어떤 정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없는 침묵과 고요함이 있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화가가 몸을 움직여서 물감을 바를 때 시공간의 고요함이 묻어있다고 표현하거든요. 물성으로서 존재하는 그림, 어떤 한 순간에 어떤 인간이 자신의 몸으로 무언가를 제스처로 느끼면서 만든 물건으로서의 그림을 좋아해요. 그걸 극대화해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화가의 무덤이에요. 박물관에서 봤던 작품들이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고 실제로 이 땅에서 살았던 인간이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낸 물건이라는 게 확 와 닿는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자꾸 무덤에 가나 봐요.

 

 

자발적 마감노동자


북유럽의 위계를 경계하는 태도가 그림을 읽는 태도와도 공통점이 있어요.


어쩌면 위계가 가장 견고한 곳이 미술계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아카데미가 있었고 숙련된 사람들만의 리그가 있고, 평론가와 전문가, 큐레이터들이 선택한 작품만이 예술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는 체계로 몇백 년이 흘렀잖아요. 하지만 북유럽 화가들은 그런 곳에 잘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들 같아요. 서양미술사 중에 가장 권위 있는 책이라고 하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가 될 텐데, 이 책에 소개된 북유럽 화가가 몇 명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뭉크 말고는 없거나 아주 적을 거예요. 지금도 천여 점 소개된 것 중에 여성 화가는 딱 한 점 있어요. 이런 식으로 위계로 돌아가는 장이 저에게 씌워놓은 안경으로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스카겐 화가들의 회화가 ‘지루한 범생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어떤 뜻이었을까요?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가 후기 인상주의와 팝아트가 나오고 점점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갔던 시기예요. 제가 해석하기에 인상주의 시절은 화가가 자기에게 남은 인상이 진실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면서 점점 화가의 자의식이 커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서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지점으로 갔고요. 현대미술은 저에게 ‘느낌이 안 와? 그럼 넌 그냥 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물론 신선한 현대미술이 주는 정수리가 깨지는 듯한 충격을 주는 것도 매력이지만, 제가 느낀 북유럽 이 시대의 화가들은 설명하고 싶어서 애쓰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기가 느낀 감정을 전하고 싶은 건데, 분노를 전하고 싶으면 요즘 방식으로 빨갛게 칠해버려도 되잖아요. 이 사람들은 분노를 잘 전달하고 싶어서 서사가 있는 상태로 전달하는 거예요.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보면 현실을 재현하는 옛날 방식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소통의 측면에서는 이 방식이 유효하고 통속적으로 널리 소통하고 싶어 하는 화가들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지점은 소통하기를 포기하지 않은 그 자세였던 것 같아요.


에디터여서 그렇게 느낀 걸까요? 글 쓰는 모든 종류의 직업 안에서 잡지 에디터는 최대한 소통하는 쪽이잖아요.


그럴 거예요. 통속적이라는 단어가 흉처럼 쓰이지만, 제가 이제까지 속해있던 세상은 통속성을 그렇게 흉처럼 대하지 않는 세상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목표였고요.


저자 소개에 ‘자발적 마감노동자’라고 쓰여 있어요.


10년 동안 월간지 기자로 살면서 글쓰기든 취재든 콘텐츠 만드는 일이 자발성이 떨어지면 너무 지옥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취재하고 싶고 궁금한 대상과 만날 때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데, 때로는 자발성이 떨어지는 글도 써야 할 때가 있잖아요. 자발성을 지키면서 마감 일을 하고 싶다는 방향성이었어요. 노동자라는 말을 넣은 것도, 글 쓰고 창작하는 사람을 향한 왠지 낭만적인 편견이 있어요. 저도 예술가 이미지에 매혹되었던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자기감정에 취해 일한다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싶었어요. 글은 노동이고 매일 해야 하는 일이고, 그걸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힘에서 글을 잘 쓰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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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마음


북유럽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을 것 같아요. 휘게와 소확행을 비교하면서 문화를 설명하기도 했어요.


북유럽 예술을 다룬 한국어 책이 별로 없더라고요. 하지만 객관적인 정보를 실은 건 아니라서, 독자들이 북유럽 책이라고 읽었는데 내용이 없어서 실망하면 어쩌죠? (웃음) 글 쓰는 과정에서 왜 하필 북유럽인가에 대한 답을 저도 찾고 싶었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서유럽 화가와 북유럽 화가가 대체 뭐가 다르길래 나에게 다른 미술관에서 느끼지 못 했던 감정을 주는 걸까? 이런 질문을 계속 하면서 다녀서 저도 모르게 언급이 되긴 했어요.


어린 시절 덴마크와 연관된 경험을 불러오기도 했어요. 어릴 때 생각한 덴마크와, 지금 덴마크를 생각하면 다른 점이 있나요?


덴마크 나라 자체에 대한 동경은 없어요. 담백하게 말하자면 제가 좋아하는 화가들이 많이 살았던 나라일 뿐이에요. 그 화가들이 저에게 준 인상과 감정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당연히 그들이 살았던 토양과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한국적인 부분들을 타자의 시선으로 검증하게 되니까 문화적인 발견이 따라오게 된 것 같아요.

 

여행이 관점의 문제라고 한 적이 있어요. 새로운 관점으로 여행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르는 상태일 때가 주는 마법 같은 게 있어요. 흔히 사람들은 특히 미술에 대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앎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기대가 생기고 목표의식이 생기기 때문에 온전히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집중해서 들여다보지 못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앎을 배제한 상태로 마주쳐보고 인상과 감정을 잘 모아둔 다음 그 다음부터 앎의 영역으로 가는 쪽으로 가는 감상의 방법을 선택하거든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아는 것만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아는 게 많아졌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아는 것만 봐요. 여행자로서 저를 생각해 보면 처음 해외 여행을 파리로 갔었는데, 간판도 너무 예쁘고 지나가는 모든 생명이 저한테 의미로 다가오려는 경험을 했어요. 하지만 이후 프랑스에 살면서 본 파리는 전혀 저한테 다가오지 못했거든요.


결혼 후 3년 동안 파리에서 살았었죠.


파리도 어차피 누군가의 일상 공간인데 왜 나는 간판만 봐도 고양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여행자의 시선이라는 건 결국 순백의 무지 상태로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려고 작정한 상태인 거죠. 나는 지금 여기에 왔고, 여기는 되게 흥미로운 공간이고, 나는 여기서 흥미로운 일과 만날 거라는 극도의 기대감에 차 있어요. 그래서 궁극의 목표는 일상을 그런 시선으로 보면서 사는 사람이 되는 건데, 너무 어려운 일이죠. 그저 지금 안다고 착각하지 않고 모르는 게 되게 많다고 생각하고 처음 만나는 것처럼 봐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처음 만나는 마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게 여행을 새롭게 하는 관점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대입하는 글이 많이 나와요. 여성 화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인생을 반추하기도 했고요.


내면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여성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한국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한 번씩 다 느껴봤을 감정 같아요. 그림을 볼 때 저를 비추지 않고서는 못 봐요. 저는 동일시와 의미 부여로 그림을 보는데, 그림은 결국 다른 사람의 얼굴이고 타자의 얼굴이에요. 그 타자의 얼굴에 제 모습이 비치는 매력 때문에 그림을 보거든요.


인터뷰에서 “그림은 교양이 아니라 관계”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림을 볼 때 단순하게 여기 빨강이 있고 파랑이 있고 얼굴이 있다고 보지 않잖아요. 그림을 보고 제 안의 무언가가 꿈틀꿈틀 자극을 받는 느낌을 받고, 이 감정과 감각의 정체가 무엇일까 알고 싶어지면 그다음에 글을 쓰면서 정체를 알아보고, 그러다 보면 결국 저의 유년기와 만나고 엄마가 해줬던 한마디 말을 만나죠. 그런 식으로 기억에서 잊혔다고 생각했던 것을 재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늘 그림 덕분이었어요.

 
이 개별적인 경험들이 독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요?


걱정이 되는 건 있어요. 제가 쓴 책이 북유럽 미술의 정론인 것처럼 되면 안 되잖아요. 예술사적 배경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저라는 사람이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제 내면에서 벌어진 일을 언어로 기록한 거거든요. 제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제가 이렇게 느꼈어요, 까지에요. 이후 어떻게 해달라고 바라는 건 없어요. 어떤 독자 분에게는 이 이야기를 따라 움직여보고 싶다는 동력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분에게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받는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앞으로 다른 출간 계획이 있을까요?


프랑스 평론가가 쓴 그림책 이론서를 번역하고 있어요. 『유럽의 그림책 작가에게 묻다』를 내고 종종 그림책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불려 다니면서 발언할 기회가 생겼는데, 전문가라는 표현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어느 정도는 지식을 쌓는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최혜진 저 | 은행나무
사는 일이 힘에 부칠 때, 하루분의 울컥도 버거울 때, 쉬이 내 존재가 지워진다 느낄 때, 그리하여 두렵고 먹먹할 때, 북유럽 그림을 통해 모든 불화하던 것을 향해 화해의 악수를 내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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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병성 “뮤지컬은 느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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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뮤지컬 탐독』 의 박병성 저자는 월간 <더뮤지컬>에서 18년 동안 기자로 활동했다. 그 중 12년은 편집장으로 일했다. 보아온 작품도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많았다. 단숨에 책을 써내려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었지만 『뮤지컬 탐독』을 완성하기까지 3년여가 걸렸다. 더 보고 더 알아가며 심사숙고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하나의 관점을 잡아 접근하려고” 애썼다. 작품의 창작 원리에 집중하기 위해 창작자의 고민 과정을 추적하고, “왜 이 장면을 노래로 만들었는지만 잘 살펴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분석했다. 작품을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깊이 있는 비평을 들려주면서도 “뮤지컬을 꼭 공부하듯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단언한다. “뮤지컬의 중요한 감동은 현장에서 직감적으로 얻게 되는 관객들의 몸을 관통하는 에너지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라이온킹>, <렌트>, <노트르담 드 파리> 등 21편의 작품을 다뤘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앤드에 올라간, 지금까지 관객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믿고 봐도 좋을” 작품들이다.

 

박병성 저자는 2001년부터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을 만들고 있다. 한국뮤지컬작가워크숍의 멘토, 창작뮤지컬 <모래시계>의 내부 비평가로 활동했다. 2013년부터 5년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뮤지컬 분석 수업을 강의한 바 있고, 현재 뮤지컬 비평쇼 <스테이지 감동정산>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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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들의 공통점

 

책에 실린 21편의 작품을 선정한 기준은 “기본적으로 작품성”이었다고요.

 

네. 개인적으로도 엄청 좋아하는 작품이고 지금도 계속 공연하는 작품이에요.

 

지금도 공연 중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나요? 왜죠?


영상을 보거나 이 책을 읽고서 작품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공연을 보고 와서 혹은 보러 가기 전에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관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고 실제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공연하지 않는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1950~1960년대 작품들도 지금까지 공연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지속적으로 공연한다는 건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준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런 작품들 위주로 뽑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은 작품들이 작품성이 더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포함시키지 못해서 아쉬운 작품들이 있다면요?


<레미제라블>이나 <캣츠> 같은 작품들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넣고 싶어요. <레미제라블> 같은 경우에는 이 책을 기획했을 당시에는 설명할 자신이 없었어요. 이제는 조금씩 생기는데, 그때만 해도 모르겠는 거예요. 음악도 좋고 다 좋은데, 그냥 음악이 좋다거나 어떻게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이야기만 쓰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뺐어요. <마틸다>, <빌리 엘리어트> 같은 작품들도 좋아하는데, 책을 쓸 때만 해도 자료가 별로 없었어요. <원스> 같은 작품도 너무 좋죠. <지붕 위의 바이올린>도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기회가 되면 추가로 넣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오랫동안 살아남은 작품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일단 창작자들의 컨셉이 되게 명확했고, 그게 뮤지컬로 잘 구현된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감각이 지금 시대의 사람들하고는 조금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작품들은 여전히 혁신적이고 세련되고 모던한 감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오래 됐음에도 계속 사랑받는 것 같아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보면, 1960년대 작품인데 전통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제적으로 올드할 수 있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템포가 굉장히 느리거든요. 지금의 관객들은 훨씬 더 빠른 템포를 원하고 음악도 조금 더 모던한 느낌, 팝적인 느낌을 좋아해요. 그런데 옛날 작품들은 대개 전통 클래식이거나 재즈라서 음악 톤부터 맞지 않는 경우가 있기는 하죠.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굉장히 모던하고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공연되고 있는 것 같고요. <컴퍼니> 같은 작품은 ‘1970년대 작품이 어떻게 저렇게 세련됐지?’ 싶을 정도예요.

 

지금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있나요?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라든가.


<애비뉴 Q> 같은 작품은 너무 좋은데, 우리나라에서 흥행이 크게 안 돼서 계속 공연하지는 않는 것 같고요.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작품 중에는 <해밀턴>이 있어요.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하는 워싱턴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걸 힙합 뮤지컬로 만들었어요. 역사물을 힙합이라는 소재로 기가 막히게 만들어낸 작품이죠. 한국에서 공연을 하든 안 하든 한 번 써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너무 훌륭해요.

 

집필하시기 전에, 이미 출간된 뮤지컬 관련 책들도 보셨죠?


뮤지컬 책이 나오면 거의 보죠. 그게 직업이니까. 관련 책이 그렇게 많지도 않아요. 국내에 출간된 뮤지컬 책은 거의 70~80% 이상은 읽은 것 같아요. 일이니까 당연한 거죠.

 

『뮤지컬 탐독』이 기존의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의 책에 대해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운데, 뮤지컬 책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뮤지컬사(史)를 정리한 책, 연기법에 대해 쓴 책, 에세이 등이 있는데요. 작품만 다룬 책 중에는 정보를 주는 책과 감상을 쓴 책, 크게 두 가지 류가 있어요.  『뮤지컬 탐독』은 에세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더 전문적인 비평이 들어가 있고, 정보를 준다고 하기에는 조금 비평적이에요. 그래서 조금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정보를 담기는 했지만 작품 내적인 정보보다는 작품이 함의하고 있는 문화나 연관된 다른 장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들을 더 담으려고 했어요. 작품이 언제 시작됐고 어느 극장에서 상연됐고 상을 얼마나 받았는지, 그런 것들은 가급적 비중을 높이지 않으려고 했어요.

 

한예종에서 뮤지컬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셨잖아요. ‘창작자의 의도가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는지’ 생각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뮤지컬 분석 수업을 맡아달라고 제안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되게 난감했어요. 수업 이름만 있고 커리큘럼을 제가 다 짜야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영상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뮤지컬 명작들의 영상이 조금 있었거든요. <레미제라블> 콘서트도 있었고 <렌트>도 그랬고, 강의하면서 소스로 쓸 것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영상을 같이 보면서 분석하는 수업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분석을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하기도 했는데, 그 전부터 ‘뮤지컬이 장르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을까, 영화 오페라 연극과 뭐가 다를까’를 많이 고민했거든요. 결국 뮤지컬은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음악이 드라마랑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심이 있었어요. 작품을 볼 때도 그런 걸 중심으로 보려고 했고요. 그런 게 <더뮤지컬> 기자 생활을 10여년 하면서 누적돼 있었고, 이참에 학생들과 같이 나눠보자고 생각했어요. 학생들과 같이 하면서 작업들이 조금 더 디테일해졌죠.

 

“내가 집중하려고 했던 관점은 작품의 창작 원리이다”라고 쓰셨어요.


작품마다 바라본 관점이 다 달라요. 창작자가 누구를 만나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고민 속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집중한 관점도 있고요. 그것도 하나의 창작 원리를 따라가는 관점이죠. 또 하나는 작품 내에서만 찾은 거예요. 알려진 정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사람은 작품에서 뭘 말하려고 했지? 왜 이 장면으로 시작했지? 왜 사회자를 두 명 뒀지?’ 하는 식으로 역추적한 거죠. 사실 창작자는 그런 생각을 안 했을 수도 있는데, 제가 볼 때 어떻게 생각되는지를 학생들과 토론식으로 이야기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합리화시켜 나가고 설득력 있게 다듬어가는 과정들이 있었죠. 접근방식만 다를 뿐이지, 결국에는 창작원리예요.

 


뮤지컬은 느끼는 거죠


『뮤지컬 탐독』을 통해서 작품에 대해 더 알게 된 정보들이 많았어요. <시카고>가 ‘보드빌 쇼’의 형식을 차용한 작품이라는 사실도 그렇고요. 관람할 때는 몰랐거든요.


우리 관객이 알 수가 없어요. <시카고>가 1970년대 작품이거든요. 당시의 미국 관객들이 알아챌 수 있는 거죠. 2010년의 미국 관객도 그걸 모를 거예요. 그런데 ‘보드빌 쇼에 대한 오마주’를 빼더라도 <시카고>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그냥 오마주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풍자하기 위해서 보드빌 쇼를 사용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보드빌 쇼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될 것 같아요. 저도 몰랐어요. 나중에 책을 보고 알게 된 거죠. 저는 <시카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드빌 쇼라는 양식과 드라마를 결합시킨 ‘컨셉’이라고 봤어요. 모든 노래가 보드빌 쇼 형식이거든요. <시카고>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드빌 문화를 몰라도 ‘기존의 뮤지컬 넘버하고는 굉장히 다른데? 왜 저렇게 부르지?’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런 걸 고민한다면 창작자들이 왜 쇼로 만들었는지 느껴질 것 같아요.

 

당시 시대상의 한 편의 쇼처럼 보인다고 풍자한 것 아닌가요?


그렇죠. 창작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책에 쓰신 바와 같이 ‘그 많은 장면 중에서 왜 이 장면을 노래로 만들었을까’, ‘저 멜로디를 여기에서 반복하는 이유가 뭘까’만 생각해 봐도 새로운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건 저보다 음악적인 학습이 된 사람들이 훨씬 더 잘해요. 저는 엄청 반복해서 보고 알아채는 거고요. 책 제목에 ‘탐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저는 뭔가 파고드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은 제가 여러 번 보기도 했지만, 영상을 통해서도 꾸준히 보고 음반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들었어요. ‘이 멜로디 어디에서 들은 것 같은데?’ 하고 찾아보고, 그런 식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있었던 거죠. 관객이 ‘어떤 장면이 왜 노래로 만들어졌는지’만 알아도 작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창작자 입장에서는 ‘어떤 장면을 노래로 만들어야 할지’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수업할 때 그런 내용을 다뤘던 거고요.

 

관객들이 꼭 알아야 하는 사항은 아닌 걸까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너무 그렇게 다 분석할 필요는 없잖아요. 자연스럽게 보면서 학습되면 좋을 것 같아요. 조금 더 듣는 연습을 하면, 아마 애써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 같아요. 굳이 ‘이렇게 들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게 뮤지컬을 감상하는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뮤지컬은 느껴지는 거죠. 공부하듯이 보는 건 연구자나 하면 되지, 관객들은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헤드윅>에서는 「사악한 작은 마을」이라는 넘버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헤드윅과 토미가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는 같지만 가사가 다르고, 토미의 노래를 들은 헤드윅이 “지금 그 자체로도 완전하다는 인정을 받으면서 치유된다”고 보셨죠.


최근의 해석이에요. 예전에는 그냥 「사랑의 기원」이라는 넘버의 관점으로 봤어요. ‘나의 반쪽을 찾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사랑이 모든 걸 넘어선 이야기, 경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지금의 해석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디까지나 저의 해석인 거고, 하나의 해석일 뿐이고, 미첼(존 카메론 미첼)은 그렇게 보는 걸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의 본질은 불안이다. 안정된 젊음은 젊음이 아니다” <렌트>를 말하면서 쓰신 문장이죠.


<렌트>는 약간 마음 가는 대로 썼던 것 같아요. 보면 제가 마음이 혹해서 쓴 느낌이 들어요.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훅 간 느낌이라고 할까요.

 

독자들이  『뮤지컬 탐독』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으시겠어요?


뮤지컬 감상법으로써는, 공연장에서 온전히 느껴지는 것을 느끼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공연장에서 나왔을 때 자신이 느낀 감동을 조금 더 이성적으로 혹은 조금 더 추가적으로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사전 지식을 알고 가면 뮤지컬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뮤지컬 탐독』 은 관람 이후의 즐거움을 위한, 작품에 깊이 파고들고 싶은 분들을 위한 책 같아요. 모든 관람객을 위한 책은 아닌 것 같고요. 그냥 즐기는 걸로 끝나도 그 관람은 온전히 끝났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담긴 많은 내용들을 모르고, 단지 ‘재밌었어’라고만 해도 잘 관람한 걸까요?


그럼요. 아주 잘 관람한 거죠. 내가 좋다는데, 작품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게 뭐가 중요해요. 그런 의미들을 책을 통해서 아는 건 ‘관람’은 아닌 것 같아요. ‘지식’이죠. 그리고 창작자가 의도했다고 해서 모든 관객에게 그렇게 느껴지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이 책은 창작자들이 의도한 바를 사전에 보여주는 거니까, 그걸 알고 작품을 봤을 때 느껴지는 감동이 있기는 할 거예요. 그러기를 바라죠. 음악도 마찬가지잖아요. 이 음악이 록음악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스타일이고... 그런 것보다 내가 듣고 좋으면 되는 거죠. 그 이상 뭐가 더 중요하겠어요?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왜 좋은지 설명해야 되지만,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죠.

 

이 책을 통해서 작품을 더 넓게 보게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뮤지컬 탐독』은 어떤 작품, 장르를 좋아하게 되는 취향을 만들어주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하나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배경 지식들은 가급적 친절하게 넣으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서 <조지와 함께한 일요일 공원에서>라는 작품은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를 가지고 만든 건데, 점묘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하고 보면 훨씬 재밌어요. 신인상주의가 어떤 배경에서 출발했는지 알고 작품을 보면 훨씬 더 이해가 가요. 그리고 작가가 조르주 쇠라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조금 더 잘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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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 시장, 양분된 느낌 있어


<더뮤지컬>의 독자들이 이번 책을 본다면, 온도차를 느끼게 될까요?


일단 분량 면에서 보자면, 한 작품에 대해서 쓴 내용이 잡지 기사보다 더 많고요. 접근 방식 면에서도, 잡지에서는 조금 더 다양하게 소개하려고 해요. 작품의 역사부터 소개하고, 캐스팅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으니까 어떤 배우들이 캐스팅됐는지도 이야기하고요. 그런데 이 책에는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없고요. 캐스팅은 계속 변하는 요소니까요. 작품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 중심으로 이야기했어요. 잡지를 보시는 분들이 이 책을 보시면 조금 다르게 느껴지시지 않을까 싶어요.

 

분량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그러면 기사 쓰실 때 가지고 계셨던 미진함 같은 게 책을 쓰면서 사라지기도 했나요?


미진함이라기보다는, 책을 쓰기 위해서 조금 더 다각도로 바라보게 된 건 있죠. 잡지는 한 달에 한 권씩 나와야 되고 새로운 작품일 경우도 많아서, 하나의 기사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이 책을 쓸 때는 작품들을 또다시 보면서 새롭게 분석하는 시간이 있었고, 또 한예종에서 5년 정도 강의를 하면서 작품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 볼 시간이 있었어요. 뮤지컬 마니아들과 스터디 같은 걸 하면서 보낸 시간도 있었고요. 그런 것들이 다 종합돼서 녹아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을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고요.

 

18년 동안 한국 뮤지컬 시장을 계속 지켜보셨잖아요. 작품의 다양성, 시장의 성장 등과 관련해서 안타까운 부분은 없으세요? 외국 작품의 경우, 늘 똑같은 것만 상연되지 않나요?


<오페라의 유령>이 들어온 이후로, 우리나라만큼 많은 작품이 들어온 나라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시장이 크고 더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일본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시장에 먼저 들어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있고요. 다른 나라 못지않게 들어오고 있어요. 그것보다는, 시장이 과열되다 보니까 작품의 힘보다 배우의 힘으로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 그게 조금 안타까울 때가 있죠. 그리고 너무 양분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소극장 뮤지컬, 대중들이 좋아하는 대극장 뮤지컬, 그렇게 두 가지로만 명확하게 나누어진 시장이 형성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조금 더 과감하고 실험적인 작품들, <스프링어웨크닝>이라든가 <넥스트투노멀>, <원스> 같은 작품들은 사실 우리 시장에서 크게 흥행이 안 되거든요. 작품성이 있는 중극장 정도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안 들어오는데, 그런 작품들도 공연될 수 있는 시장이면 좋을 것 같아요.

 

프롤로그에서 “감각적 교감을 논리적인 수사로 전달하는 것은 가능할까”, “경험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온전히 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쓰셨어요. 사실 ‘그 작품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요. 18년 동안 어떻게 해오셨어요?


서문에 그 부분을 쓰면서 일단 온전히 전달한다는 건 포기한다는 선언을 한 거예요. 저로서는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책에서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고, 그렇지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겠다는 거죠. 감각적인 교감은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책이 해줄 수 있는 역할은 아닌 것 같고요. ‘작품을 조금 더 잘 소개하는 안내자로서 책과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를 생각하다가, 작품에 대한 배경적인 요소나 창작자의 의도, 분석적인 것들을 조금 더 한 거죠. 연극과 비교했을 때 뮤지컬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언어로 설명하기 굉장히 힘든 게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들려주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이상 음악에 대한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영상과 뮤지컬을 결합시킨 활동도 하고 계시죠?


작품에 대해서 해설하는 건데요. 저 혼자 하는 건 아니에요.

 

뮤지컬 비평쇼 <스테이지 감동정산>인가요? 유튜브에 업로드 되고 있죠?


네, 맞아요.

 

프로그램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록키호러쇼>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그 작품은 1970년대에 나온 정말 혁신적인 작품이고, 컬트뮤지컬의 효시예요. 그래서 그때는 송용진 배우와 같이 출연했어요. 배우이기도 하지만 록커이기도 하거든요. <록키호러쇼>는 글램록이 굉장히 중요하게 쓰인 작품이기 때문에, 글램록에 대해서 소개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SF에 대한 오마주가 온통 담겨있는 작품이기도 해서 SF 작가님도 초청했고요. 그렇게 한 작품을 인접 분야의 사람들고 k같이 여러 시각으로 펼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뮤지컬 탐독박병성 저 | 마인드빌딩
18년간 기자로 활동하며 작가, 작곡가, 연출가, 음악감독 등 수많은 스태프들과 뮤지컬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하며 바라본 뮤지컬 탐독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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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원예나 “영어회화는 공부가 아니라 운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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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두 영어 할 수 있어”라는 당찬 광고문구로 주목받기 시작해 현재 70만 명 이상의 수강생을 보유한 영어회화 강의 야나두의 인기 비결은, ‘하루 10분의 짧은 강의’와 ‘영어 왕초보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설명’이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를 배웠지만, 외국인 앞에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이들의 말문을 트여준 이 강의를 개발한 장본인은 야나두의 원예나 강사. 영어로 말하기가 꿈인 어머니를 위해 ‘어떻게 하면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그녀는 야나두 기초영어회화를 만들었고 지난 10년의 노하우를 담아 『야나두 영어회화』 를 펴냈다.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영어를 공부했지만, 왜 여전히 영어로 말하는 게 두려운 걸까. 원예나 강사에 따르면 ‘입으로 말해본 적 없이 책으로만 영어를 접했기 때문’이다. 『야나두 영어회화』 에는 어려운 문법이나 긴 예문은 하나도 없다. 단지 영어의 특성을 쉽게 설명하고, 곧장 응용할 수 있는 패턴 문장으로 영어가 입에 익숙해지도록 할 뿐이다. 이 책을 끝까지 본다고 해서 영어 왕초보자가 하루아침에 영어의 고수가 될 리는 없다. 하지만 영어로 말해야 하는 순간이면 머릿속에 정처 없이 떠다니던 단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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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말하기, 엄마의 오랜 꿈을 이루다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어요.

 

저도 서점에 가봤는데 많은 분들이 책을 봐주셔서 기쁘고 뿌듯했어요. 그동안은 온라인 강의로만 수강생들을 만났는데, 책을 통해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야나두 온라인 강의를 등록하면 트레이닝북을 제공하는데요. 이번에 출간된 단행본과 트레이닝북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사실 야나두 10분 강의는 10년 전에 처음 나왔어요. 탤런트 조정석 씨가 등장하는 광고 덕분에 3년 전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꽤 오래된 영어 강의였죠. 트레이닝북도 그때부터 있었고요. 트레이닝북은 말 그대로 강의 복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100% 예문으로 구성돼 있어요. 하지만 단행본에는 영어공부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나 수강생들이 자주 질문하는 영어에 대한 궁금증, 각 강의 파트에 대한 설명이 함께 담겨 있죠. 트레이닝북에 쓰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는데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단행본을 출간할 수 있었어요. 강의에서 하지 못한 메시지들을 책으로 풀어낼 수 있어 좋았어요.

 

어머니의 영어공부를 돕기 위해 10분 강의를 개발한 것으로 알아요.

 

저희 어머니가 미군부대에서 2년간 피아노 반주를 하셨는데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셨거든요. 매일 미군들과 마주하는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늘 영어를 잘하는 게 꿈이셨죠. 그때 당시 저는 대치동에서 외고 입시 전문 강사로 일했어요. 아이들에게 어려운 입시 영어를 가르치고 돌아와 어머니가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도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배웠고, 팝송도 따라 부르시는데 왜 영어로 말하기는 안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한국인에게 영어회화를 쉽게 가르쳐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입시 영어 강사’에서 ‘말하기 영어 강사’가 된 것은 어머니의 역할이 컸어요. 그렇게 강의를 찍었던 것이 야나두의 시초가 됐고요.

 

어머님은 지금도 영어공부를 하세요?


10년 전부터 제가 찍은 강의를 계속 보여드렸어요. 핸드폰에 영상을 담아드렸더니 화장하면서 듣고, 빨래 개면서 듣고 따라 하셨는데 한 3년쯤 지나니 영어로 말을 하시더라고요. 저희 어머니는 1954년생이시고, 한 번도 외국에 나간 경험이 없으세요. 강의를 보여드린 것 외에 제가 따로 영어를 가르쳐드린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요즘은 “what did you do today? (오늘 뭐 했어요?)”라고 물으면 몇 시에 일어나 교회에 가서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했고, 집에 와서 두 시간 낮잠을 잤고, 강아지 먹이를 줬다는 일상을 술술 이야기하세요. 영어일기도 다섯 권째 쓰고 계시고요.

 

꿈을 이루셨네요.


이 나이에 할 줄 아는 게 하나 더 생겨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며 너무 좋아하세요. 영어를 하게 되는 건 1차원적으로 여행 가서 편하고,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된다는 기쁨 외에도 아주 큰 행복감과 성취감을 주는 것 같아요.

 

 

영어 회화, 습관이 중요하다


초,중,고 12년간 영어를 배우고 취업을 위해 또 영어공부를 하는 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영어로 말하는 게 어려울까요?


시험 영어 강사와 말하기 영어 강사를 모두 해 본 제 경험에 의하면, 시험과 말하기는 아예 별개의 영역이에요. 수능 외국어영역 1등급을 받고 토익시험 만점을 받아도 회화는 못하는 분들 많거든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학교에서 문법과 독해 위주의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영어 지문을 읽는 건 그렇게 떨리지 않을 거예요. 독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문을 마주하는 것 자체로 긴장이 되진 않죠. 그런데 영어로 말하기는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두렵고 긴장되는 거예요. 영어회화는 경험학습이거든요. 악기나 운동처럼 직접 해봐야 익힐 수 있어요. 그래서 몇 개월이나마 어학연수를 다녀오면 사람이 변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전히 영어가 유창하진 않지만 틀린 영어라도 외국인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죠.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아는 거예요. 내가 완벽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소통이 된다는 걸 느꼈으니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영어 실력 향상을 방해하는 수강생들의 공통된 태도나 습관이 있나요?


영어에는 습관 형성 기간이 있어요. 이 기간만 버티면 후에는 순탄하게 흘러가는데 그걸 버티지 못해서 포기하는 분들이 많죠.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헬스장에 등록하면 처음 한두 번은 잘 나가지만, 한 번 빠지다 보면 계속 안 가게 되는 것처럼요. 비행기가 이륙해서 궤도에 오르기까지 10~15분이 걸리는데 이때 전체 연료의 50% 이상을 쓴대요. 이륙하는 데 온 힘을 다 쓰는 거나 마찬가지죠. 영어공부도 똑같아요. 안 하던 것을 습관화시키려면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딱 20일 정도만 매일 강의 듣고, 입으로 따라 하는 연습을 해두면 비행기가 이륙하듯 어느 순간 궤도에 올라 공부를 지속할 수 있는데, 초반 습관 형성 기간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영어회화 초급자가 회화를 어렵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어와 영어의 어순차이일 거예요. 그래서인지 책의 첫 장도 어순차이를 짚어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는데요. 평상시 영어 어순에 익숙해질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나는 예나를 만났어”라고 말하던 사람이 “나는 만났어 예나를”이라고 곧장 이야기해야 하니 당연히 어렵게 느껴질 거예요. 이건 운동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 생각하지 않고도 입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머릿속에서 1,2,3에 익숙한 것을 1,3,2로 바꾸는 건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절대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으니까요. “영어는 언어인데,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분들이 있는데 왕초보자에게 영어는 운동이에요. 직접 몸을 움직여야 근육이 생기듯, 기초적인 영어의 토대가 입에 익어야 추가적인 표현을 생각하며 말할 수 있게 되죠. 이 책에는 영어 어순을 익힐 수 있는 필수적인 패턴이 담겨 있어요. 그걸 계속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영어 어순에 익숙해질 거예요.

 

다른 영어회화책과 야나두 영어회화책의 가장 큰 차이는 ‘느낌동사’ 훈련입니다. 트레이닝북을 부록으로 추가해 심화 연습이 가능하도록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책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영어 어순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잖아요. “너는 뭐 했니?”, “너 먹을 거야?” 정도의 간단한 문장이기 때문에 이걸 익히고 나면 좀더 느낌을 담아 이야기하고 싶어질 거예요. “나 갈 것 같은데”, “갔어야 하는데”, “갈 수 있었을텐데”처럼 풍부한 표현에 대한 갈증이 생기죠. 느낌동사는 말에 더욱 느낌을 넣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첫 번째 파트에서 익혔던 기본 구조의 문장에 느낌을 넣어 훈련하다 보면 영어구조를 탄탄히 하는 동시에 조동사를 넣어 말할 수 있게 되고, 표현이 더 풍부해지죠.

 

‘Can’, ‘Will’, ‘Should’ 등의 조동사를 ‘느낌동사’라 이름 붙인 게 신선했어요. 직접 지은 명칭인가요?


네, 느낌동사라는 이름도 10년 전 강의를 처음 찍을 때 만든 거예요. 그땐 그냥 느낌을 담아 이야기하니 느낌동사라고 했는데, 기발했던 것 같아요.(웃음) 조동사라고 하면 너무 문법 같고 딱딱한 느낌이 들잖아요.

 

영어회화에는 영문법 공부가 필요 없다는 의견들도 있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어공부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있는데, 일정 부분 다 맞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누굴 대상으로 하느냐가 빠져 있는 게 문제죠. 고급자를 상대로 이야기하는 팁을 초급자가 들으면 ‘나도 저렇게 공부해야 하나?’라고 오해할 수 있거든요. 초급자가 문법부터 공부하면 너무 어렵고 지루해서 금방 포기하게 돼요. 또 회화를 할 때 필요한 문법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하지만 외국어이기 때문에 문법 공부를 아예 안하고 실력을 키울 순 없어요. 그래서 제가 강의에 만들어 넣은 게 ‘문장의 패턴’이에요. 예를 들어 “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가워요)”를 문법적으로 접근하면 ‘To meet’은 To부정사의 부사적 용법이라는 설명을 해야 하는데 패턴으로 문장을 익히면 그럴 필요가 없어요. ‘Nice(좋다)’, ‘to meet(만나서)’라는 뜻을 익히며 자연스레 문법을 알게 되니까요. 그럼 활용도 가능해 져요. ‘Nice(좋다)’ 뒤에 ‘to drink(마셔서), to think(생각해서)’ 등 다양한 to부정사를 붙여 말을 만들 수 있거든요. 이 연습이 축적되면 영어의 구조가 보여요. 영어를 잘하기 위해 문법 공부는 필수지만, 문법 자체로 접근하기 보다는 문법이 녹아 있는 패턴을 익히는 연습을 하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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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왕초보 탈출, 그 이후


영어회화를 더욱 두렵게 하는 건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이에요. 듣기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실 영어를 처음 시작하는 왕초보 분들이 ‘듣기’때문에 고민하진 않으시더라고요. 그런데 간단하게나마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면 외국인을 만나거나, 해외에 다녀온 뒤 생각처럼 영어가 들리지 않는 것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건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소리 값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예를 들어 “Did you want extra sauce with that?(소스도 드릴까요?)”이 종이에 써 있으면 다들 잘 읽고 해석하는데, 미드에 나오면 무슨 말인지 모르죠.(웃음) 속도가 빨라서 들리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sauce’가 ‘써-스’, ‘with that’이 ‘윗댓’이라고 발음되는 게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써 있는 문장을 보면 다 아니까 ‘난 이정도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더 높은 수준을 들으려 하죠. 듣기 실력을 키우려면 일단 내 실력부터 점검해야 해요. 나의 듣기 수준이 읽기 수준과 격차가 많이 난다면 2~3단어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부터 자주 들으면 돼요. 아이들을 위한 동화 같은 게 좋아요. 흔히 미드로 귀를 뚫는다고 미드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초급자가 미드부터 접근하면 좌절감만 생기거든요.

 

영어로 말할 때 ‘be동사’와 ‘일반동사’를 혼용해 쓰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곤 해요. “I decided (나는 결심했다)”고 할 것을 “I was decided”라고 말하는 거죠.


습관이 들어서 그래요. 영어의 모든 문장은 be동사 베이스 아니면 일반동사 베이스로 구성돼 있어서 이 두 가지를 가르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한국어에서는 be동사와 일반동사를 구분하지 않으니 헷갈릴 수밖에 없죠. 이 습관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고 싶은 말을 한국어로 생각한 다음, ‘이걸 be동사로 말해야 할까, 일반동사로 말해야 할까’ 생각하는 게 아니라 be동사 예문 100개와 일반동사 예문 100개를 정해 입으로 계속 말하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실패한다”를 말할 때, ‘실패하다’가 일반동사일까 아닐까 생각하지 말고 바로 “I fail.” 이렇게 내뱉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이 연습이 축적되면 어느 순간 be동사와 일반동사를 구분하는 감이 생겨서 툭툭 말할 수 있게 돼요.

 

영어일기를 쓰는 것도 회화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까요?


아주 큰 도움이 돼요. 그런데 왕초보를 벗어난 다음부터 하는 게 좋아요. “이제 어느 정도 영어의 어순도 파악되고, 간단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다음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라고 물을 때 강력 추천하는 게 바로 영어일기 쓰기예요. 영어일기를 쓰면 첫째로 시제와 친해질 수 있고, 둘째로 궁금한 표현을 능동적으로 찾아 써볼 수 있게 돼요. 내 일상을 영어로 차분히 쓰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표현을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되죠. 누가 고쳐주지 않는데 어떡하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틀리게 써도 괜찮아요. 영어일기를 꾸준히 쓰면 1년 전에 쓴 일기를 내가 고칠 수 있게 되거든요. 첨삭 없이도 실력이 느는 거예요. 이 문장이 맞냐 틀리냐를 따지기 보다는, 영어를 능동적으로 대하는 습관을 키운다고 생각하고 영어일기를 써보세요.

 

책을 보며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은 ‘그래서 얼마나 연습해야 내가 영어를 할 수 있을까?’일 거예요.(웃음) 평균적으로 얼마나 연습하면 영어회화에 능숙해질 수 있을까요?


“운동 얼마나 해야 복근이 생기나요? 얼마나 해야 살이 빠지나요?”와 같은 질문일 것 같은데요.(웃음) ‘얼마나’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하느냐’와 ‘내 목표가 무엇이냐’라고 생각해요. 어학연수를 다녀와도 영어가 전혀 늘지 않는 사람들 많거든요. 반면 의지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3개월만에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어요.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 지에 대한 정답은 없고요. 다만 나는 영어를 왜 배우고 싶은지, 내 목표는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자연스레 내가 연습해야 할 양이 나오겠죠. 우선 영어를 입에 붙이는 습관은 하루 한 시간씩 20일 이상 해보시면 차츰 변화가 느껴질 거예요. 저희 어머니께서도 하루 종일 영어공부를 하진 않으셨어요. 평균적으로 하루에 30~40분정도 입으로 영어 문장을 따라 하신 것 같아요. 많이 하는 날은 1~2시간씩 하고, 아예 안 하는 날도 있었을 테고요. 그렇게 3년 정도 하셨더니 일상적인 회화를 술술 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셨어요.

 

 

잊지 않는 사람이 꾸준한 거죠


‘야나두’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요? 정말 ‘야! 나두 영어 할 수 있어’라는 뜻인가요?(웃음)


사실 98년도부터 쓰던 제 개인 아이디였어요.(웃음) 제 이름이 ‘예나’잖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장난처럼 “야~나~”라고 불렀는데, 이걸 아이디로 하기엔 좀 짧아서 고민했더니 친구가 ‘do’를 붙여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만든 아이디예요. 처음 강의 영상을 찍을 때, 실명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안녕하세요. 야나두입니다”라고 소개를 했었는데, 사업화하면서 회사명으로 정착됐죠. 사업 초반에는 이름 때문에 전화도 종종 받았어요. 강의가 너무 좋아 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데 이름이 별로라서 말을 못하겠으니 바꿀 생각 없느냐고요.(웃음)

 

영어 강사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26살에 처음 강사가 됐는데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뭘 할까 고민하던 차에 스타강사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기사를 읽는 순간 저와 딱 맞는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사무직을 할 자신은 없었고, 좀더 열정적이고 내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강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성인어학원에서 일했고 이후에 외고 입시 강사로 근무했죠. 그러다 엄마를 위해 강의를 개발하면서 말하기 영어로 전향하게 된 거예요.

 

그럼 미국에서 영어를 배운 건가요?


대학을 미국으로 가긴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교육을 통해 영어를 배운 건 아니었어요. 알파벳을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배웠으니 오히려 늦은 편이었죠. 하지만 부모님이 영어에 노출을 많이 시켜주셨었어요. 등교하기 전에 30분씩 영어 동화를 들었고, 중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차로 학교에 데려다 주셨는데 차 안에서 계속 영어를 틀어주셨거든요. 그 강제노출 덕분에 유학 가자마자 어느 정도 듣고 말하는 게 가능했어요.(웃음) 언어는 어디에서 공부하느냐 보다 얼마나 자주 접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시중에는 셀 수없이 많은 영어회화 책이 있어요. 그 중에서도 왜 이 책을 선택해야 할까요?


정말 많은 회화책이 있지만, 『야나두 영어회화』 의 커리큘럼이 가장 체계적인 것 같아요.(웃음) 입시강사로 일하면서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를 분석했던 경험을 토대로 ‘왜 한국 사람들은 영어가 반사적으로 나오지 않을까?’를 고민해 만든 강의이기 때문이죠. 우리말과 다른 영어의 어순을 패턴으로 접근해 풀어놓았기 때문에 독자들이 먼 길을 돌아가지 않고,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실제 효과로도 나타나고 있고요. 야나두에서 함께 강의하고 있는 권필 선생님이 살아있는 증거죠.(웃음) 권필 선생님은 외국어영역 1등급을 받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지만, 회화는 전혀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해 영어로 강연을 했잖아요. 언젠가 권필 선생님에게 물어봤어요. “지금 영어회화 실력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야나두 기초회화가 몇 프로를 차지하게 해준 것 같아요?”라고. 권필 선생님이 대답하길 70%를 차지한대요. 결국 뼈대인 거죠. 물론 지금까지 하던 대로 미드 보고, 유튜브 영상 보면서 영어를 공부해도 분명 실력이 늘 거예요. 하지만 뼈대를 잡고 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차이가 있어요. 이 책은 영어의 기초적인 구조를 잡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며 공부할 수 있어요. 지도를 갖고 여행하면 덜 헤맬 수 있는 것처럼요.

 

책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팁이 있다면요?


책을 구입하시면 동영상 강의를 한 달간 무료로 수강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강의만 듣고 끝날 수 있는데 꼭 듣고 입으로 따라 하셔야 해요. 10번 눈으로 읽어도 한 번 따라하지 않으면 절대 실력이 늘지 않거든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영어를 잘하게 되는 건 단순히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편해지는 것을 넘어서 삶의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요. 영어를 통해 얻은 자신감과 성취감은 또 다른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거든요. 영어 때문에 고민인 분들이 계시다면 『야나두 기초회화』로 꾸준히 영어를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서 ‘영어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어도 잘하는 사람’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꾸준히 영어를 공부하는 습관’,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에요.(웃음)


저도 예전에는 매일 일정량을 공부해야 꾸준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영어공부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계속 잡고 있다면 그게 꾸준한 거죠. 성인이 되면 매일 같은 시간에 무언가를 공부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가 바빠졌다거나 혹은 연애를 하게 됐어요. 그럼 잠깐 쉬었다가 여유가 될 때 또 다시 공부하면 돼요. 다만 나는 영어를 잘하고 싶고,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영어 공부하는 걸 새해 계획으로 세워놓고 또 실천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거나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3년 전에도 영어를 공부했고, 지금도 영어책을 펼친다면 꾸준히 영어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분명 쌓일 테니 나에게 영어가 필요할 때, 꼭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야나두 영어회화원예나 저 | 라곰
야나두 대표 강사 원예나의 기초영어회화 강의를 토대로 누구나 읽고 따라하면 말할 수 있는 영어회화 노하우를 담아냈다. 영어회화 공부와 관련된 다양한 Q&A까지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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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한성 “민주주의를 향한 모든 투쟁 앞에 3.1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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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일제의 심각한 조선인 차별과 수탈에 부글부글 끓던 사람들이 조선의 독립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침 제1차 세계대전의 뒤처리를 위해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자 조선인들은 여기서 희망을 본 것이다. 학생들, 노동자들, 어린이와 교사들… 무명의 사람들이 조선독립의 희망을 품고 만세를 불렀다. 거기에 사람들이 있었다. 역사학자이자 조한성은 저서  『만세열전』에 바로 이 이름들을 호명했다. 이들은 역사에 이름 한 줄 새기지 못했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3.1운동의 ‘실행자들’이었다.

 

“희망을 건 사람들은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갔다”고 강조하는 조한성이  『만세열전』을 집필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2016년 촛불 시국 즈음이었다. 광장에 나가는 보통의 사람들을 보면서 100년 전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만세를 불렀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친구의 손을 잡고 거리에 나왔던 사람들.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라고 말한 사람들. 그는 이들을 통해 3.1운동을 “현재와 떼어놓고는 볼 수 없는 역사”라고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운동이 시작되자마자 발행된 지하신문 <조선독립신문>의 제작과 배포를 위험을 무릅쓰고 9호까지 맡아 했던 경성서적조합 서기 장종건, 3월 1일과 5일 시위에 학생들을 참가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 대표 장채극, <각성호회보>를 만들어 배포시킨 경성공업전문학교 학생 양재순과 노끈장수 김호준, 덕수궁파출소에 근무하던 순사보 정호석과 그의 열 살 딸 등 『만세열전』  속 사람들이 이제야 제 모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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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3.1운동과 2016년 촛불


꼭 100년 전 오늘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남달랐어요. 쓰는 기분은 더 그러셨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준비를 오랫동안 했어요. 첫 번째 책 『한국의 레지스탕스』 (2013)와 두 번째 책 『해방 후 3년』 (2015)을 같은 시기에 집필했거든요. 그걸 쓴 후 어떤 것을 쓸지 고민했죠. 그때 큰 사건들에 관심이 갔어요. 거대한 물결에 원치 않게 휘말렸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거리에 나왔고, 싸웠을까 궁금하더라고요. 3.1운동을 전부터 생각하던 터라 자료를 찾다 보니 심문 자료들이 나왔는데요. 거기에는 역사책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거나 이름 정도만 언급되었던 사람들이 훨씬 많았어요. 그 가운데에는 훈장도 못 받은 사람도 많았고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얼핏 보기에도 고된 작업이었을 것 같거든요. 교차 검증도 많이 해야 했죠?


자료량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계속 봤어요. 특이한 말을 한 사람, 특이한 행동을 한 사람, 그런 식으로 메모해서 쓰고 싶은 사람을 정리했는데요. 문제는 이 자료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 였어요. 가령 심문 기록도 왔다 갔다 하거든요. 3월 5일 학생들 시위 때 학생대표인 강기덕과 김원벽이 인력거를 탔다고 하는 내용이 역사책에 나오는데요. 심문 기록으로 보면 불명확해요. 인력거를 탄 사람이 다 다르게 나오죠. 의도적으로 속인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안 잡혔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숨겨주고 싶은 마음도 있던 거고요. 그런 심문 기록을 기존 역사서와 비교해가면서 정리하는 작업이었어요.

 

역사 속에 숨어 있던 보통 사람들을 발견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는데요. 이들에게 시선이 갔던 이유, 이들을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해요.


심문 조서를 읽는데 동질감을 느꼈어요. 자료를 한창 보던 때가 촛불 시기였거든요. 저도 거리에 나갔죠. 또 제가 일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국정교과서 문제로 집회도 많이 해서요. 그 시기에는 매번 나갔는데요. 보면 다양한 사람이 있잖아요. 준비를 많이 해서 시위에 나가겠다, 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시위가 있다더라, 가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또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죠. 그런데 자료를 읽다 보니까 비슷한 사람들이 막 나타나는 거예요. 가령 정호석이라는 순사보는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거리에 나오는데요. 광목을 사서 자신의 피로 ‘대한국 독립만세’라고 적은 후 자신의 딸이 있는 학교로 가요. 그 딸이 10살이었는데요. 같이 나가서 독립만세를 외친 거죠. 그게 촛불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1운동은 2016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시위와 닮았다”(8쪽)고도 하셨죠.


당시 경성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200-300명이 모여서 만세를 부르러 갔어요. 그 학교 위치가 현재의 정독도서관 자리여서 거기서 파고다공원까지 쭉 내려가는데요. 그 중에는 선배가 가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따라갔다가 현장에서 생각이 바뀌는 거죠. 시위에 참가하면서, 또 심문을 받으면서 더 그런 마음이 생기는 거고요. 감옥에 갇혀 얘기를 나누면서 또 마음이 강화됐을 거예요. 가령 심훈(심대섭)이 그랬어요.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있거든요. 당시 감옥은 똑바로 누울 수도 없이 사람이 많아서 3교대, 4교대로 쪽잠을 잤다는 자료도 있을 정도예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 감옥 안에 있는 화장실에 수많은 사람들의 변이 넘쳐나는 상황, 벌레 등에 관한 얘기가 심훈의 편지에 적혀 있는데요. 그렇게 고통스럽지만 아무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런 일을 겪으면서 큰 힘을 느낀 거예요.

 

심대섭은 감옥살이의 힘겨움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그런데 글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의 글은 아픔과 슬픔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의 어딘가에 가닿는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243쪽)

 

이 책을 통해 그런 점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처음부터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는 것. 심훈도 여러 단계가 있어요. 19살밖에 안 된 나이에 갑자기 그런 엄청난 고문을 당하고 혼란 속에서 심문을 받았으니까 진술이 왔다 갔다 하고요. 한편으로는 진술이 거듭될수록 단련되어가는 모습도 보여요. 동시에 젊으니까 숨겨야 하는 진실도 가끔은 확 내지르기도 하죠. 그건 나중에 일기장에 후회했다고 적기도 했는데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구체적인 이야기들


역사책이나 문학작품 등을 보면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많은 사람들의 자각과 각성의 계기가 3.1운동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가 많아요.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투쟁의 앞에 3.1운동이 있다”(8쪽)고 하신 이유도 그런 것이겠죠?


우리 민주주의의 시작은 동학농민운동(1894~1895)이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거기에는 집회가 있어요. 그보다 먼저 임술민란(1862)도 그러했는데요.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농촌 중심이었죠. 도시 시위가 본격화된 건 3.1운동이 처음이고요. 이후는 점점 도시화가 되니까 시위가 도시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도 3.1운동이 중요하고요. 무엇보다 이런 큰일이 한 번 생기면 세대가 생겨요. 3.1운동세대, 4.19세대, 이런 게 생기는 거죠. 당시 일제도 이것을 되게 두려워해요. 이 만세 시위를 경험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생각했을 것이며 얼마나 오랫동안 독립을 생각할 것인지, 이들이 주동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를 두려워하는 거죠. 그런 일제 기록이 있어요. 이게 중요해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잖아요. 3.1운동을 계기로 많은 독립운동가가 양산되었고, 민중들의 태도도 바뀌었어요.


3.1운동의 성과를 대부분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수렴해요. 그것도 맞는데요. 그것만 강조하면 다양한 것을 잃어버려요. 3.1운동을 계기로 다양한 운동이 전개되거든요. 3.1운동세대 일부는 만주로 나가서 독립운동을 하고요. 그 중 일부가 의열단이 돼요. 김원봉이 대표적인 인물이죠. 또 박열 같은 아나키스트, 박헌영 같은 공산주의자가 등장하고요. 책에도 나오는 김사국이라는 걸출한 인물은 바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을 하죠. 이 사람이 서울파 공산당의 대부가 되거든요. 이런 사람들이 다 3.1운동을 통해 나온 거예요. 이런 다양한 운동은 3.1운동이 있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들었다고 봐요. 이런 점을 기억해야 하죠. 또 만만치 않은 조선인들이 생겨나거든요.(웃음) 한 번 뭉쳐서 힘을 느낀 사람들은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기 힘든 거죠.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민족을 실감한 거예요.

 

많은 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랄까, 3.1운동의 의미를 재조명할 필요성이 그 점에서 더 높아지는데요. 이전까지는 민족대표 33인처럼 특정 인물들을 중심으로만 이해해왔으니까요.


일단 3.1운동을 교과서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죠.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고요. 연구도 많이 진행이 돼서 그간 연구 성과도 쌓인 게 많죠. 하지만 그에 비하면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규명은 미흡한 부분이 있어요. 200만이나 참여한, 워낙 큰 사건이다보니 이를 다 아우르는 전체 모습을 그리려는 연구가 진행되어 왔고요. 구체적인 개인에 대한 연구는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자발성 같은 부분도 비교적 최근 연구에서 조명된 것 같은데요. 한계는 있어요. 심문 자료에 개인들의 이야기가 많은데 이걸 어디까지 믿고, 써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요. 그러니까 보조적으로만 사용을 했죠. 3월 5일 시위에 대한 것도 실은 별로 없어요. 논문도 찾으려면 1960년대 논문 같은 걸 찾아야 해요. 다만 최근 들어 그런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올해도 많이 쏟아질 거예요. 여러 역사가 분들이 필요성을 느끼시고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기 위한 작업을 하고 계시는 단계니까요.

 

이번 책 작업을 하시면서는 어떠셨어요? 자료와 자료 사이의 빈 공간 또는 자료의 신빙성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앞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심문 자료가 갖는 한계가 있어요. 피의자 입장에서는 한 것도 안 했다고 하고요. 경찰이나 검사 입장에서는 덮어씌우기 위해 안 한 것도 했다고 써야 하죠. 결국 기록은 일본 쪽에서 했으니까 피고가 안 했던 말을 더 써넣을 수도 있어요. 그 모든 걸 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거죠. 기존에는 그게 어려우니까 최종 판결문만 봤는데요. 그러면 거기까지 온 구체적인 이야기가 빠지는 거예요. 저는 한 사람을 가지고 그 앞부분부터 계속 읽었어요. 중요한 인물은 두 번, 세 번도 보고요. 떠오를 때까지 계속 읽었어요. 계속 보면 이 사람의 말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요. 또 진실이겠다 싶은 말도 보이죠.


나중에는 이게 사실이면 어떻고 거짓이면 어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사실 규명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그 자체를 그대로 기록하기도 했죠. 혼란스럽더라도 그런 기록으로 남았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죠. 그렇게 판단한 경우도 있어요.  

 

그 수많은 자료 가운데 책에는 다 적지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기도 많겠어요.


책에 적지 못한 기록이 훨씬 많아요. 한편 ‘실행자들’부분에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는 최대한 넣으려고 했어요. 짧게라도 최대한 넣으려고 했는데요. 그럼에도 빠진 분들이 훨씬 많죠. 고문이 느껴지는 심문 기록들이 있어요. 앞에서는 계속 부인을 하는데 갑자기 전부 시인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그 직전에 고문이 있었다는 게 보이죠. 정신적인 이상이 보이는 진술도 있고요. 예를 들어 김호준이라는 인물이 있어요. 양재순과 함께 <각성호회보>라는 지하신문을 찍어 배포한 인물인데요. 이들 심문 기록을 보면 경찰과 검찰이 둘을 죄수의 딜레마에 둬요. 막 유도를 하니까 김호준이 배신감을 느끼고 양재순을 나쁘게 말하죠. 그러니까 양재순이 “김호준이 원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사진을 보면 그랬다는 걸 조금은 예측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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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또 정신이 붕괴됐음을 엿볼 수 있는 진술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정말 다 인정해버려요. 자기가 안 했음직한 것도 물어볼 때마다 인정을 하는 거죠. 그런 분들은 고문을 엄청나게 당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죠. 심문 방식이 그랬거든요. 붙잡은 다음 아무 얘기도 없이 계속 구타를 하고, 혼이 빠진 상태에서 심문에 들어가요. 다 인정하도록 말이에요. 그러니까 고문을 염두에 두고 읽을 수밖에 없었지만 책에 다 넣을 수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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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은 물이요, 한강이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당했던 폭력은 더욱 문제적이에요. 신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성폭력까지 당했죠.

 

계속 피의자에게 월경 주기를 물었던 ‘호리 나오요시’라는 판사는 저도 너무 화가 나서 꼭 넣어야 했어요. 그 부분을 읽어보시면 제가 너무 흥분해서(웃음) 과하게 쓴 걸 느끼실 텐데요. 정말 욕을 하면서 썼어요. 의도적으로 월경 주기를 물어서 굴욕감을 주고, 이들이 별 것 아닌 일을 한 것처럼 폄하했던 거죠. 또 3월 5일 시위에 나갔다가 검거된 학생의 진술이 있어요. 그 진술이 선교사의 기록에 남아 있는데요. 재판도 안 받고 풀려날 정도로 단순 가담이었는데도 이 학생이 며칠 동안 당한 폭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해요. 더구나 이 기록 자체가 선교사들이 믿지 못할 기록은 빼고 한 기록이거든요. 그런데도 그 내용이 너무 적나라해요.  

 

“나는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대답할 때마다 얼굴을 한 대씩 얻어맞았다. 그들은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다. ‘이 더러운 창녀야, 너 애 뱄지?’하며 욕했고, 가슴을 드러내 보이라는 명령을 듣지 않자 윗옷을 찢어버리고 몸서리쳐지는 온갖 못된 말을 했다.”(235-236쪽)

 

그 선교사 기록 중 책에 다루지 않은 것이 있어요. 강계 지방의 소년 11명이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에 왔대요. 그 중 두 명이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나와요. 나머지도 상태가 심각한데 한 명은 벌써 엉덩이 괴사가 진행되고 있고요. 다들 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태형을 받은 학생들인 거예요. 이들에게 물었더니 3일에 걸쳐 90대를 맞았대요. ‘조선태형령’에 하루 30대 이상을 때리면 안 되고, 최대 3일 동안 90대를 때릴 수 있다고 나와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어요. 3.1운동 기록을 보면 태형을 받고 불구가 되신 분들이 많아요. 만세 현장에 나간 사람들 중 재판을 받은 사람은 사실 소수고요. 대부분은 태형을 받았던 거예요.

 

또한 인종익이라는 인물이 참 마음에 많이 남아요.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인물이라 더 그렇기도 하고요. 

 
이분은 다 겪은 거예요. 당시 나이가 49살 정도고, 동학농민운동에도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거기서 시작해 천도교까지 오면서 천도교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던 분인 거죠. 믿을 만한 인물이니까 선언서 배포의 책임을 진 건데요. 인종익은 특히 놀라운 인물이에요. 전주와 익산을 거쳐 청주로 갔고, 거기서 붙잡히는데요. 처음에는 전주와 익산 얘기를 안 하고, 2-3일 버틴 후에 얘기를 해요. 선언서가 배포되는 시간을 계산한 거죠. 진술 과정에서도 대단한 말을 많이 하는데요. “인심은 물이요, 한강이오. 아무리 막아도 물은 새어나오게 되지 않겠소?”라거나 “만인이 죽어 백만 인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라는 말에서 그 대단한 신념이 느껴지잖아요. 인종익과 김동혁이라는 인물은 책 작업에서 제일 먼저 쓴, 책의 모델이 되는 인물이었어요.

 

앞서 학생들은 최대한 책에 넣으려 했다고 하셨는데요. 3.1운동 당시 이 시위를 1회로 끝내지 않으려고 기획했던 학생들에 대해 “향후 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110쪽)고도 하셨잖아요. 이들의 자발성이 아주 중요할 것 같거든요.


이 학생분들이 현명하셨던 게 처음 세운 계획에서 독립선언서 발표만 포기를 하고 나머지는 지키신 거예요. 민족대표들이 대부분 종교인들이니까 이들이 시위까지 책임지지는 못할 거란 판단이 있었겠죠. 믿었던 부분도 있었을 거고요. 그러니까 이후 시위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려면 여러 차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간부를 나눴고요. 3월 5일 시위에 모든 역량을 쏟기 위해 3월 1일 시위에는 중등학생들이 나갈 수 있도록 배치를 했죠. 3차 시위, 4차 시위까지 고려해서 1선 간부는 3월 5일 시위에 간 거고, 2선 간부는 3차, 4차를 하겠다고 계획했던 거죠. 하지만 3월 5일 시위를 학생들이 계획했다는 걸 경찰이 알아서 하숙집을 다 뒤져요. 그때 학생들 대부분이 검거가 되고요. 그러나 이 모든 걸 계획했다는 게 대단한 거예요.

 

친일 인물에 대해서는 각주를 꼼꼼하게 달았어요. 작가님의 의도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요.


왜냐하면 알고 있잖아요. 3.1운동 한 사람들 중 친일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이걸 같이 안 써놓으면 좋은 인물로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 책에서만큼은 그런 착각을 하게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표적인 인물이 최린이죠. 3.1운동 당시 멋진 말도 많이 하거든요. 비중이 컸던 인물이고요. 그런데 그만큼 1급 친일을 했단 말이죠. 그때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나 이후에는 아주 기회주의적이었다, 라는 사실을 다 봐야 하는 거예요.

 

3.1운동에 열심히 참여했지만 결국 친일을 한 최린 같은 사람도, 큰 뜻이 없었다가 3.1운동을 거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심훈 같은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해요.


그런데요. 친일하기도 되게 힘들다는 얘기를 하곤 해요. 저희 민족문제연구소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작년 8월에 열었어요. 거기 길목 하나를 한쪽은 친일파, 한쪽은 독립운동가 자료를 구성해놓고 관람객이 그 길에 들어설 때 당시를 살았다면 어느 쪽을 택했을 것 같은지 질문을 하거든요. 독립운동가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차라리 친일을 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하는 분들이 꽤 많은데요. 사실은 친일이 더 힘든 거예요. 조선인으로서 갖고 있는 정체성을 버리고 자신을 속이며 살아야 하잖아요. 최린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매순간 후회와 갈등을 하면서 점점 깊숙이 친일을 했겠죠. 
 


민주주의 운동의 첫 시작에


탁월하고, 기록으로 남은 몇 명의 인물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대중의 관심도 많이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또한 지금의 시대정신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떻게 보세요?

 

세밀하게 가면 그것이 주는 재미가 또 있어요. 저도 그런 사람들에 관심이 쏠리니까 점점 더 그 연구를 하는 거고요. 말씀처럼 사회적 흐름도 있는 것 같아요. 3월 1일이나 3월 5일 시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연구하시는 분들이 있고, 조만간 그 연구결과들이 나온다고 알고 있어요.


이 책도 3.1운동 전체를 다룬 건 아니에요. 서울 중심이라는 한계도 있고요. 처음에는 다 다루고 싶기도 했지만 보통 사람들을 다루겠다고 결심한 후 지금의 책이 됐어요. 200만 명이 참여한 3.1운동 중에 이 책은 극히 일부만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3.1운동 과정에서 제일 아쉬운 장면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소설적 상상이긴 하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싶은 장면이 있을 것 같거든요.


민족대표 33인이 선언서 발표 장소를 파고다공원에서 명월관지점으로 변경하는 순간이죠. 그곳에서 강기덕이 가서 크게 항의도 하는데요.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에요. 3.1운동 전까지 있었던 대중운동을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만민공동회(1898)와 1907년 대한자강회가 했던 시위 등에 정치적 세력이 개입해서 이용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3.1운동에서도 그런 가능성을 생각했을 수 있어요. 학생들이 모이면 과격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던 건데요. 너무 불안감이 앞섰던 거죠. 믿지 못했다는 것, 그 안타까움이 참 큰 것 같아요. 급히 장소를 변경해서 파생되는 문제도 있거든요. 당연히 민족대표 33인이 읽을 거라 생각해서 낭독자를 안 정해놨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읽었는지 지금도 명확하게 모르는 거예요. 해방 후에 정재용이라는 분이 자신이 읽었다고 증언을 하셔서 대체적으로는 그분이 낭독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데요. 정확한 자료로 남아 있지는 않죠.

 

이 책으로 3.1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분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몇 권 추천해주세요.


정병욱 선생님의  『식민지 불온열전』 , 임경석 선생님의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같은 책들은 3.1운동 시기를 다룬 책은 아니지만, 세밀한 개인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함께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100년 전 오늘, 3.1운동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에 대해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3.1운동은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의미가 커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자발성을 발휘해서 전국 각지에서 시위를 했고요. 일제의 통치가 흔들릴 정도로 영향이 컸던 최초의 민주주의 운동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로부터 이 운동이 반복되었죠.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45년 건국운동, 1960년 4.19혁명,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말이에요. 3.1운동은 민주주의를 획득하려는 운동이었고요. 이후 운동은 민주주의가 훼손될 때마다 다시 세우는 운동이었어요. 촛불을 포함에 이 모든 민주주의 운동의 첫 시작에 3.1운동이 있는 거예요. 3.1운동을 통해 100년 전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가치, 획득하려던 가치가 사실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이것은 현재와 떼어놓고는 볼 수 없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만세열전조한성 저 | 생각정원
판사의 심문 과정 등이 생생하게 전개되며,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생동감과 몰입감은, 독자로 하여금 시계를 100년 전으로 돌려 ‘그날’,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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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편해문 “아이에게 진짜 위험한 것은 '부모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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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편해문은 ‘놀이터 디자이너’로 불리는 걸 가장 좋아한다. 서울 사당동 산동네에서 위험천만하게 놀며 한 시절을 보낸 그는 20년 가까이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오고,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를 외치며, 플레이워커, 놀이ㆍ터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는 편해문의 놀이ㆍ놀이터 3부작의 마지막 책. 위험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며, 위험이 어떠한 가치와 쓸모가 있는지를 읽기 쉽게 풀어냈다.

 

혹자는 “어떻게 ‘위험’이 아이를 키울 수 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놀이터 안전검사 합격이 놀이터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아이 곁을 따라다니지 않을 수 있냐고 내 아이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냐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언젠가 편해문은 놀이터에서 아이 곁을 지키고 있던 한 부모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가 참 잘 올라가네요. 조금 떨어져 아이를 보아도 아이들이 잘하더라고요?” 그로서는 용기를 낸 한 마디였는데, 다행히 그 부모는 질문의 본질을 알아채고 답했다. “맞아요. 아이들은 믿고 지켜봐 줄 때 더 열심이더라고요.”

 

“아이는 도전과 위험 속에서 성장한다. 놀다가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부모가 물러나야 아이는 나아간다. 아이들은 놀다가 다칠 수 있고 나아가 다쳐야 배운다.” 이 같은 주장이 더 이상 과격하게 들리지 않는 날을 꿈꾸며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를 쓴 편해문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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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_ 편해문

 

 

아이가 나아가려면 부모는 물러서야 한다

 

경북 안동으로 귀촌하신지 올해로 15년째이세요. 요즘 일상은 어떠신가요?

 

아침저녁으로 아궁이에 불을 넣고,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나무도 하고, 마을 아이들이 놀러 오면 집 앞마당 모험놀이터도 가꾸면서 지냅니다. 두 아이가 학교에 가면 부탁 받은 놀이터 디자인을 아내와 의논하고 작업하면서 하루를 보내죠.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에 이어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 를 쓰셨어요.


앞의 책 두 권을 7년과 4년 터울로 쓰면서, 한국사회에 어린이 놀이와 놀이터를 둘러싼 구체적인 현장과 담론의 변화 추이를 살펴왔어요. 놀이라는 것이 어린이의 성장과 성정에 다 중요하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왜 실제로는 놀이 환경이 나아지지 않는지 그 원인을 놀이 운동 15년 차에 들어서면서 다시 아프게 되물었어요. 그로부터 5년을 더 살피며 쓴 것이 이번 책입니다.

 

첫 책을 쓴 2012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놀이터 문화가 조금은 바뀌었을까요?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면 어린이를 둘러싼 놀이 환경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습니다. 어른들 삶이 점점 더 바빠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린이가 놀 수 없는 상황이 더욱 강제되고 있고 더 나아가 어린이 자신도 논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까지 합니다. “꼭 밖에서 놀아야 해? 안에서도 볼 수 있는 게 많아!”라면서요. 여기에 보호자 또한 “그러면 잘 되었네. 밖에 나가면 번거롭고 시간만 낭비하니 실내에서 간단히 보면서 놀고 공부하면 되잖아!” 아이들의 놀 시간이 이렇듯 허망하게 박탈당합니다. 그에 따른 아이들의 비만, 우울, 시력 저하, 바깥 활동의 두려움, 불안, 무기력이 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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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_ 편해문

 

 

전작을 접하지 못한 부모들은 “어떻게 위험이 아이를 키우나요?”라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한계에 맞닥뜨린 한국의 어린이 놀이와 놀이터 상황을 비껴가지 않고 정면에서 보고 싶었어요. 결론적으로 아이 가까이 있는 부모나 교사가 ‘놀면 다치고 놀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뿌리 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했어요.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튼튼하게 자리잡은 셈이에요. 이것이 일차적으로 어린이 놀이를 막아서고, 놀이터는 안전 합격에만 매달리는 악순환 구조입니다. 이제는 ‘위험’의 건강한 가치를 부모나 교사 모두 눈을 떠야 할 때입니다.

 

위험을 다룰 줄 알아야, 아이가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죠. ‘위험’은 놀이와 놀이터의 가장 중요한 가치예요. 위험은 아이를 키울 뿐 아니라 아이는 위험을 즐겨요. 문만 열고 나가면 세상에 위험이 흔해요. 아이들은 위험을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그 위험을 다룰 줄 알아야 그 위험을 넘어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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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_ 편해문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의 모토는 “스스로 몸을 돌보며 마음껏 뛰어 놀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 옆에 콕 붙어 있습니다. 가끔은 아이들보다 어른이 많은 놀이터도 있지요. 이런 광경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먼저 그럴 수밖에 없는 부모님을 이해해요. 아이들이 다치는 것을 걱정하는 마음도 헤아릴 수 있죠. 하지만 그 보호와 간섭이 한없이 길어지는 것은 문제예요. 아픈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우리 품을 곧 벗어납니다. 그래야 하고요. 우리가 아이 옆에 가까이 있고 싶어도 아이는 곧 뿌리칩니다. 이제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격려해야 해요. 그런데 세상은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도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하죠. 단언컨대 아이가 나아가려면 부모는 물러서야 합니다. 놀이터는 ‘위험’이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에 ‘위험’을 만나고 연습하고 실험하는 장소예요. 아이 스스로 크게 다치지 않고 위험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곳이라야 놀이터라고 부를 수 있어요. 그런 놀이터가 지금 아이들에게 절실하죠.

 

“안전은 철저히 안정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아이들이 모험놀이터에서 놀 때는 더 높은 주의력을 갖기 때문에 사고가 덜한 걸까요?

 

아이들은 대부분 실내에서 다칩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거의 집이죠. 사람은 실내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진화해 왔지요. 모험놀이터처럼 아이나 어른이나 밖으로 나와서 놀면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챙깁니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치는 경우는 매우 적어요.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알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언론 때문입니다. 놀이터에서 어떤 사고가 났을 때, 같은 사고를 다른 여러 언론과 방송에서 되풀이하다 보니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많이 다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여기에 동조하고 싶은 보호자도 많겠죠. 왜냐하면 아이들이 노는 것을 막을 근거로 쓸 수 있으니까요. 사회와 부모, 교사들이 아이들이 노는 것에 대해 불안을 가지고 있는데요. 아이 가까이에 있는 분들이 불안하면 아이들은 놀기 어렵습니다. 위험하기도 하고요. 곁에 있는 사람들이 편안해야 아이들이 놉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놀아야 다치지 않고요. 그래서 안전이 안정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부모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아이로부터 위험을 숨겨 위험과 만날 수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두려워 아이들로부터 놀이를 빼앗으면 아이는 숨이 멎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결코 문학적 수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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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_ 편해문

 

아이에게도 한가한 시간이 필요하다

 

‘플레이워커’라는 직업이 흥미롭습니다.

 

저희 집 앞마당을 동네 아이들 모험놀이터로 개방해 5년째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플레이워커’라고 합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저와 아내는 무급으로 하고 있지만요. (웃음)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에도 플레이워커가 계시지요?

 

‘파크플레이어’로 불리는 3명의 ‘플레이워커’가 있습니다. 작년 1월 정규직에 모두 임용되었고요. 기적의 놀이터의 ‘파크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놀이터에 온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다시 말해 플레이워커는 놀이지도자도 놀이전달자도 아니라는 거죠. 다만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환경을 가꿔주는 것으로 역할이 충분합니다. 여기에 큰 차이가 있는데요. 놀아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 까닭은 놀이가 아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저의 놀이 철학입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모험놀이터만들기협회’를 결성하면서 “생기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을 아프게 하거나(자해 놀이)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늘어(109쪽)”난 배경을 밝혔습니다.

 

자해는 유행이라기보다는 넓고 깊고 꾸준하게 늘고 있어요. 일본에서 모험놀이터를 만든 배경과도 관련이 크죠. 벌써 40년 전 일본에서는 집단 괴롭힘이나 왕따와 같은 일들이 아이들 사이에서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매우 단순하죠. 그래서 모험놀이터의 모토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입니다. 자해라는 것이 어떻게 아이들과 청소년의 놀이가 되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해요. 다음 놀이가 무엇으로 이어질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논다는 것은 하라고 하는 것을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집과 학교에서 철저히 막혀 있으니 아이들은 풀이 죽고 시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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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_ 편해문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유치원생 아들과는 어떻게 노나요?

 

저는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아요. 놀이가 아이 안에 오롯이 있기 때문이죠. 아이들 놀이에 간섭하지 않는 것만으로 부모의 놀이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이들은 도전할 수 있으니까요. 도전에 따른 크고 작은 부상은 예상할 수 있어야 해요. 20년 가까이 ‘하지 마라’ 하다가 세상에 나온 청년에게는 갑자기 ‘도전하라’고 말하니까요. 당사자에게 너무나 당혹스러운 일이죠. ‘하지 마라’와 ‘도전하라’ 사이에 허용이라는 다리를 하나씩 놓아주는 게 부모이고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분들은 스마트폰을 좋아하지 않나요?

 

강연을 가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우리 아들도 스마트폰을 좋아하지요. 제가 놀이 운동을 20년 가까이 했으니까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대해 부정적일 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극단적이 사람이 아닙니다. 균형이 필요하죠. 밖에서도 놀 수 있어야 하고 안에서는 스크린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환경이 아이 가까이 실제로 존재하고 모두 필요하다는 차분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조금 더 보탠다면 부모는 아이들의 ‘디지털 모델’이 된다는 것을 헤아릴 수 있으면 더 좋겠지요. ‘가상과 현실의 균형’을 어릴 때부터 아이 가까이 계신 분들이 또렷이 인식해야 한다는 점, 이 두 가지는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키즈 카페는 매우 편리합니다. 그런데 모험놀이터는 너무 멀리 있고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사실 부모들도 모험놀이터가 좋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데요. 집 앞 놀이터, 또는 집안에서 셀프로 작은 모험놀이터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일단. 더 좋은 놀이터를 소개하자면 하우스와 홈입니다. 대단한 놀이터를 가야 잘 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놀이를 허용하는 마음’이 있느냐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하우스와 홈을 놀이터로 알뜰히 가꾸면 어떨까요? 조금 모자라면 키즈카페도 동네 놀이터도 갈 수 있습니다. 멋진 놀이터가 없어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별거 없는 놀이터나 하우스나 홈이라도 놀이를 허용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곳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작년 겨울에 3년을 시흥시 보건소와 벗들과 공공형 어린이 실내 놀이공간 ‘숨 쉬는 놀이터’를 만들었어요. 아이 키우는 분들이 살고 계신 지자체에 적극적으로 요구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도 비용을 내지 않고도 놀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아이들에게는 왜 한가한 시간이 필요할까요?


놀 궁리를 하고, 안 하던 생각을 하고, ‘태어나길 참 잘했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놀 때, 부모들이 “이런 말은 꼭 좀 안 했으면”하는 말이 있을까요?


“만지지 마! 시끄러워! 어지르지 마!” 놀지 말라는 다른 말이죠?

 

‘진짜 모험놀이터 만들기 시민 모임’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신가요?

 

이제는 정부나 기관에서 만들어 놓거나 만들어준 놀이터에 가서 아이들과 노는 시대가 저무는 것 같아요. 그런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놀이 욕구가 펼쳐지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가 아이와 놀 놀이터는 아이와 우리가 함께 만든다’라는 놀이터 DIY 시대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모험놀이터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지역에서 놀이와 놀이터를 고민하는 개인이나 자조 모임도 부쩍 늘어나고 있어 반가워요. 그분들에게 놀이터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드리고, 만든 이후 어떻게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공부하는 모임으로 꾸려나갈 생각입니다.

 

안전 신화를 외치는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틀림없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일 거예요. 아이가 놀다가 다치면 마음이 얼마나 아픕니까? 그런데 아이는 어디가 아플까요? 부모는 마음이 아프지만 아이는 진짜 아픕니다. 아프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만나는 일이에요. 아이들은 때로 다치면서 자신이 사이보그가 아님을 생생히 깨우치니까요. ‘아!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끼죠. 왜 자해 놀이가 늘어갈까요? 하라는 대로만 살아야 하니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놀다가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저의 주장이 아이 가까이 지내시는 부모와 교사 사이에서 교양과 상식으로 자리잡혔으면 합니다.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편해문 저 | 소나무
놀이는 위험을 다루는 철학이며, 아이들은 다치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이터는 어린이가 ‘도전과 위험’을 만나고 그것을 실험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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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김하나, 오은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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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자리한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에는 빨간색 ‘On air’ 조명이 켜진다. 7.2㎡(2.1평)남짓한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 2017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해 1년 반을 꾸준히 달려오고 있다. 팟캐스트 초보 진행자였던 작가 김하나와 시인 오은. 이제는 <책읽아웃> 네 글자만 나오면, 오프닝 멘트를 줄줄 왼다. 책을 좋아해서 사람을 좋아해서 여기까지 왔다. 각종 SNS에 쏟아지는 폭풍 리뷰. 두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건, 작가들의 숨은 매력을 발견했다는 후기와 영업 당한 책을 샀다는 인증, 그리고 탁월한 팀워크다. 할 수만 있다면 백발이 될 때까지 <책읽아웃>을 진행하고 싶다는 김하나, 오은과 책 수다를 한껏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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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에 관심이 생겼어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 우리는 정말 초보였잖아요?

 

김하나 : (웃음) 그렇죠. 『힘 빼기의 기술』을 써 놓고서는 힘이 빡 들어갔던 진행자였죠.

 

오은 : 저는 <책읽아웃> 게스트로 먼저 출연했었잖아요. 그때는 제가 진행자가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라디오 게스트를 한 지가 벌써 10년이지만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부산에서 1주년 공개방송으로 청취자들을 만났을 때, 두 분의 상기됐던 표정이 생각나요.

 

김하나 :  ‘오은의 옹기종기’는 광화문, 김해 등에서 공개방송을 했지만 저는 청취자들을 대면한 게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놀랍더라고요. 서울에서 이 방송 때문에 부산 여행을 계획한 분들도 많았는데 정말 든든했어요. 1년이 될 때까지는 계속 긴장, 긴장, 긴장 상태였는데 요즘 제가 좀 풀어진 거 같아요. 다시 조여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오은 : 김하나 작가님과 격주로 방송하니까, 한 주는 녹음을 하고 한 주는 모니터링을 하는 셈이에요. ‘김하나의 측면돌파’를 열심히 애청하면서 제가 흡수할 수 있는 것들,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에요.

 

‘김하나의 측면돌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해요?

 

오은 : 김하나 작가님은 호수 같은 방송이에요. 호수는 밀물, 썰물이 없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잖아요. 청취자들이 듣기 정말 편안한 거죠. 방송의 업 앤 다운이 심하면 꾸준히 듣기가 어렵잖아요. ‘측면돌파’는 어떤 작가가 출연해도 편안해요. 우선 진행자가 게스트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니까요. 잘 듣기 때문에 이어지는 질문이 세심하고 배려가 넘쳐요. 어떤 후속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느냐가 진행자의 실력이니까요.

 

‘오은의 옹기종기’만이 갖고 있는 색깔이 있다면요?

 

김하 : 오은 시인은 아이 같아요. (웃음) 천진난만한 매력 때문에 옆에 있으면 저도 덩달아 즐거워져요.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함이랄까요? 서늘한여름밤 작가님이 나오셨을 때, 그 매력이 최상의 빛을 발했죠. 그리고 탁월한 리액션! 오은 시인만의 색깔이 있어요. 정말 옹기종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꾸리는 어떤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 같은 순수함이 무척 부럽습니다.

 

<책읽아웃>을 만들면서 뿌듯한 것 중 하나는 청취자들의 정확하고 빠른 리뷰예요.

 

오은 : 프랑소와 엄님의 아이디어였잖아요. 각종 SNS(트위터, 인스타그램)과 팟빵 댓글, 네이버 오디오클립 댓글까지. 청취자들의 댓글을 소개한 일은 <책읽아웃>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어요. 같이 만드는 방송이라는 느낌을 준 거죠. 몇 달 전 패션지 <마리끌레르> 인터뷰에서 “책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책읽아웃”이라는 소개 문구가 있었는데요. 요즘 생각하는 건, 사람이 나빠도 좋은 책을 쓸 수 있지만 사람이 좋으면 좋은 책을 쓸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책을 쓸 확률이 높은 사람들을 모시려고 노력해요. ‘이런 좋은 사람이 이런 좋은 책을 썼어’라고 깨닫게 해주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거창한 지식을 알려주는 게 아닌, 삶의 소소한 재미를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김하나 : 리뷰는 정말 큰 힘이에요. 저희 <책읽아웃>처럼 각종 리뷰를 다 챙겨보는 팟캐스트는 아마 없지 않나요? (웃음) 진행자까지 매일 해시태그를 검색하니까요.

 

<책읽아웃> 공식 오프닝 멘트가 “해시태그 잊지 마세요”잖아요.

 

오은 : (웃음) 가끔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주변의 문인 친구들을 제외하면 책을 안 읽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오히려 경제경영서, 철학 책만 읽는 친구들이 있는데, 저랑 독서 취향이 다르니까 책으로 나눌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책읽아웃>을 들어주시는 청취자분들은 저희랑 취향이 비슷하잖아요. 진행자로서 정말 뿌듯할 때는 “이번 방송은 참 좋았어”가 아니라 “이 작가의 책에 관심이 생겼다”는 이야기예요. 실제로 읽어보니 책의 이런 부분이 괜찮았다는 리뷰를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해요.

 

김하나 : <책읽아웃>을 듣고 책을 샀다는 이야기만큼 기분 좋은 말은 없어요. 또 “이 작가, 매력 있더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기분이 좋죠. 얼마 전에 <책읽아웃> 몇 분의 팬들이 경기남부지회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트위터에 올리셨더라고요. (웃음) 정말 신기해요. 어떤 책,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 모임이 아니라 한 팟캐스트를 좋아하는 취향이 맞아서 스크리닝이 된다는 거잖아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에요.

 

얼마 전, 김하나 작가님이 하정우의 『걷는 사람』 을 소개한 후, 걷기를 시작했다는 청취자들의 댓글이 많았어요.

 

김하나 :  맞아요!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책을 통해 생각이 열리고 어떤 세계를 볼 수 있는데, 이건 정말 일상에서 직접적인 행동이 일어난 거니까요.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로부터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놀랍고 뿌듯해요. 너무 자화자찬인가요? (웃음)

 

오은 : 어떻게 보면 책은 일종의 취향일 수 있어요. 내가 취미로 삼는 어떤 대상일 수 있는데, <책읽아웃>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 역시 정말 신기해요. 특히 ‘김하나의 측면돌파’는 건강한 유머,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지점이 분명하잖아요. ‘삼천포책방’의 멤버 단호박, 그냥 님과 어울러진 톨콩(김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측면돌파’가 지향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그려지죠.

 

김하나  : 그건 ‘오은의 옹기종기’, ‘어떤, 책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기본적으로 공정함이라는 걸 신경쓰려고 하니까요. 실수를 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 <책읽아웃>이 앞으로도 꼭 지켜가고 싶은 모습이에요.

 

오은 :  ‘자정 작용’이라는 표현, 그 단어 꼭 살려주세요. (웃음)

 

<책읽아웃>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팟빵과 아이튠즈 팟캐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업로드 되고 있어요. <김하나의 측면돌파>에서는 ‘삼천포책방’의 인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오은 : 삼천포책방! 너무 재밌죠. 제가 정말 팬이에요. (웃음) 최근에 그냥 님이 『엄마, 왜 드라마보면서 울어?』를 소개하신 67화를 들으면서 제가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몰라요. 책으로 시작했는데 책 이야기는 별로 안 나오고, <SKY캐슬>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게 너무 웃겨가지고. 정말 혼자 듣기 아까웠어요.

 

김하나 : ‘삼천포책방’은 수다가 더 목적이에요. 말 그대로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 갈지 모르는” 코너죠. “우리는 요즘 이런 책을 읽고 있어’라고 말을 시작하면서 대본 없이 그냥 수다를 떠는 거예요. 일종의 맥거핀 같은 거죠. 그런데 ‘오은의 옹기종기’의 책 소개 코너 ‘어떤, 책임’은 하나의 주제로 3권의 책을 소개하잖아요. 솔직히 책의 퀄리티는 ‘어떤, 책임’이 더 좋아요. 사실 제가 독자로서 더 영업 당하는 코너는 프랑소와 엄님과 캘리님이 출연하는 ‘어떤, 책임’이에요.

 

오은 : 인기는 ‘삼천포책방’이 많고요. (웃음) 저는 단호박님과 그냥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네 친구 만난 느낌이에요. ‘어떤, 책임’은 “책임감을 갖고 어떤 책을 소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리 셋은 정말 웃다가 시작해도 끝은 진지해요. 진행자들의 성격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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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

 

<월간 채널예스>도 <책읽아웃>도 일단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체잖아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오은 :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 궁금해 하고, 상상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결국 마지막 종착역은 자기 자신이에요. 물론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고 바로 느끼는 건 아니에요. 켜켜이 쌓이고 쌓여서 나를 구성하는 거니까요. 결론을 내자면,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 자기 자신을 이해할 준비가 된 사람이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큰 결의, 뚜렷한 목적을 갖고 <책읽아웃>을 시작한 게 아닌데, 어느새 생활의 큰 부분이 됐잖아요. 일단 저는 <책읽아웃> 스튜디오가 있는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을 들어서면 마음이 놓여요. 왜냐면 나의 일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주고 호의적인 동료들과 녹음하기 때문이에요.

 

오은 : 맞아요. 되게 힘든 날이었는데, 스튜디오에서 이지원 PD님, 캘리님, 프랑소와 엄 님이 활짝 웃어주는 거예요.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위로가 됐어요. 이게 진짜 팀워크가 아닌가 확신했어요.

 

<책읽아웃>을 진행하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요?

 

김하나 : 너무 많은데요. 일단 요즘은 어딜 가도 “<책읽아웃>, 잘 듣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어요. 저를 굉장히 친근하게 여기는 모습이 되게 감사해요. 저에게 왠지 모를 호감을 가져주시고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주시는데, 놀랍고 감사하고 뿌듯하고 그렇습니다.

 

오은 : 그동안 시인, 저자로서 북토크 행사를 참여한 적이 많았는데요. 일회성 만남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내가 존재감이 있을까,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1년 남짓 팟캐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방향이 조금 바뀌었어요. ‘어떻게 하면 오늘 모신 게스트를 빛나게 할까’가 저의 가장 큰 목표가 된 거예요. ‘오늘 내가 빛나야 해’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빛나는지 보여줘야 돼’로 방향성이 이동한 거죠. 그리고 후자가 훨씬 더 즐거운 일이라는 걸 1년 동안 <책읽아웃>을 진행하면서 느꼈어요. 게스트가 집에 돌아갈 때 “오늘 즐거웠어요”라고 환하게 웃어줄 때, 더없이 좋더라고요. 내가 빛나고 싶다는 마음에서 누군가를 빛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으로 포지션이 바뀐 것 같아요.

 

김하나 : 정말 백 퍼센트 공감해요. 저는 작가와 제가 이중주를 연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게스트로 나온 작가 옆에서 툭툭 이야기를 건네면서 화답하는 반주를 하는 거죠. 우리가 궁금한 사람을 사석에서 만나면, 의외로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책읽아웃>은 질문지도 있고 마이크도 있으니까 진행자 자격으로 제가 궁금한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있는 거예요. 물론 저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기 때문에 방송이 끝나고 다음에 만나면 굉장히 쑥스럽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죠. (웃음)

 

각각 레전드 편을 꼽아 주시겠어요? 최근에 진행한 에피소드들 중에서요.

 

김하나 : 일단 허지원 교수님 편, 반응이 정말 대단했어요. 아마 최고 순위를 기록한 에피소드였던 것 같은데요. 교수님 특유의 조근조근하면서 특유의 말투가 진짜 매력 있었죠. 방송이 나가고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읽었다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또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를 쓴 노지양 번역가님,  『쾌락독서』의 문유석 판사님 편도 반응이 좋았어요.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는 『이슬아 수필집』의 이슬아 작가님, 가장 최근에 출연하신 『팟캐스터』의 셀럽 맷님 편을 추천하고 싶어요. 저도 모르게 나왔던 환호, 리액션이 가장 많았던 편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두 분 모두 젊은 저자시잖아요. 상대적으로 나이는 적지만 삶의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하신 분들이라서 더욱 존경스러웠고 무한한 응원을 보내고 싶었어요.

 

‘김하나의 측면돌파’와 ‘오은의 옹기종기’는 초대한 게스트를 인터뷰하지만, ‘삼천포책방’과 ‘어떤, 책임’은각각 3명의 진행자가 대놓고 책을 영업하는 시간입니다. “이 책 좋으니까 꼭 사라”고. “안 사면 후회하실지 모른다”고. 실제 영업 당해서 산 책도 많으시죠?

 

오은 : 엄청 많죠. 저는 녹음하고 집에 가는 길에 바로 책을 주문한 적도 많고, 일단 책은 좀 사놓고 보는 편이라. (웃음) 감당하지 못할 만큼 살 때도 있어요.

 

김하나 : 저는 책을 살 땐 신중한 편이에요. 일단 집에 쌓인 책을 다 해결하기도 벅차서요. 요즘엔 전자책을 많이 보려고 해요. 최근에 ‘크레마’를 선물 받았는데 사용감이 굉장히 좋아서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어요.

 

라디오, 팟캐스트를 전혀 안 듣는 독자들과는 사실 접점을 찾기 어려운데요. 책 영업을 하듯이 <책읽아웃>을 영업해보신다면요?

 

김하나 : 일단 한 번이라도 들어보면, 오 새롭네? 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요?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을 수 있는데, 아무리 재밌어도 실제 경험보다 즐거울 수는 없잖아요. 팟캐스트를 듣고 난 뒤든 전이든, 소개한 책과 함께 들으면 재미가 두 배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오은 :  ‘책읽아웃’의 ‘책읽’은 ‘책을 읽다’의 줄임말이잖아요. ‘아웃’은 밖으로 분출하는 어떤 것이고. 책을 읽고 나의 내면이 위로가 됐다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그 책이 좋았다는 걸 발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바로 <책읽아웃>을 만드는 저희들의 정체성이고요. 주변에 추천을 해도 좋고 짧은 리뷰, 감상문을 써도 좋을 것 같아요.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아웃’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런 분들이 <책읽아웃>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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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도 꽤 재밌을 수 있어요


<책읽아웃> 팬들이 특히 오래 기다린 책입니다. 초고 제목도 같았나요?

 

김하나 :  아, 처음엔 정말 제목이 많았어요. ‘동거 혁명’ 같은 후보도 있었고. 황선우 작가와 7분 정도 브레인스토밍을 해서 나온 것들을 출판사에 보내드렸는데, 지금 제목을 골라주셨어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가 가장 직관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같은 집에 살고 있는 황선우 작가와 ‘동거’하게 된 과정이 정말 구체적으로 담겼어요. 굉장히 솔직한 에세이예요.

 

김하나 : 너무 다 보여드린 것 같아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지만 쓰면서 정말 재밌었어요. 책을 쓸 때 보통 외롭잖아요. 물론 제 글을 봐주시는 편집자님이 있지만, ‘이 글이 편집자님한테 보낼 만한 정도의 글인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데, 이번 책은 한집에 같이 사는 사람과 쓴 책이니까요. 한 편 쓰고 보여주고 피드백 받는 과정이 있어서 무척 든든했어요. 이런 식으로 하면, 더 많은 분량의 글도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읽다 보니, 두 분의 글 톤이 상당히 닮아 있더라고요.

 

김하나 : 그런가요? 저는 황선우 작가의 글을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독자이기도 해요. 일단 글의 리듬감이 훌륭해요. 잘 읽히지만 빨리 쓴 글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밋밋하지 않은 글이 되기 위해서 두 번 세 번 머리를 굴리고 고치고 또 고친 글이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글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니까 정말로 그렇더라고요. 되게 많이 놀랐어요.

 

또래 여성이 한 집에서 고양이 네 마리를 키우며 동거한다. ‘ 분자 가족의 탄생’이라고 지칭했어요. 이 책의 독자층을 상상해보면, 일단 현재로서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고, 혼자 살기는 심심하고,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살긴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김하나 : 비슷할 것 같아요. 하지만 꼭 싱글 여성들을 위한 책도 아니에요. 그냥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어떤 타인과 내 삶을 굉장히 가깝게 공유한다는 건, 힘들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혼자 사는 일이 훨씬 가뿐할 수 있는데요. 둘이 사는 삶이 더 재밌고 즐거울 수도 있어요. 무엇이 더 좋다 옳다가 아닌, ‘이렇게도 살 수 있어요’ 정도의 이야기예요.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쓱 보여드린 것만으로도 이 책의 소임을 다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삶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김하나 :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거예요. 지나치게 골똘해지거나 불안에 잠식당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드는 거죠.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 얘기로도 어떤 울적함이 사라질 수 있어요.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어지기도 하고요.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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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고 싶다

 

작년에 두 권의 시집( 『왼손은 마음이 아파』 ,  『나는 이름이 있었다』 )를 거의 동시에 냈어요. 반년이 지난 지금 시집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오은 :  ‘힘든 시기, 아픈 시기를 보냈구나’하는 슬픈 생각과 어떻게든 여기로 건너왔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이 둘 다 들어요. 시집에 대한 평가는 제 몫이 아니지만, 저 두 권의 시집 덕분에 저는 ‘다음에 쓸 시’를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거든요. 제 책장처럼 빼곡한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 갈피를 만들려 애쓴 흔적 같아요. 심호흡 같은, 기지개 같은.

 

일요일에 시를 쓰시잖아요. 요즘은 주로 어떤 시들을 쓰나요?

 

오은 :  고백하자면 작년 두 권의 시집이 출간된 뒤 일요일에 시를 쓰지 못하게 됐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시를 쓰지 않고 있어요. 아버지가 위독한 상태였고,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감정의 진폭이 커졌거든요. 나를 찾는 것, 일상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상태에서 쓰는 시가 좋을 리도 없고요. 요즘은 일상으로 다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시기예요. 올해 안에는 원래의 패턴을 되찾아야겠지요.

 

시인으로서의 오은, 독자로서의 오은이 궁금해요.

 

오은 :  공통점은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시를 읽다 보면 화자에 감정이입이 되잖아요. 시에 등장하는 동식물이나 사물을 응시할 수도 있고 특정 단어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나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는 귀중한 시간이죠. 쓰는 사람으로서는 내가 지나쳤던 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에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 사는 생면부지의 누군가에 대해 시를 써도, 그 안에 어쩔 수 없이 제가 담겨 있더라고요. 그것들은 대부분 들키고 싶지 않은 나, 비루하고 부끄러운 나, 초라한 나인 경우가 많아요. 쓰면서 나를 알아가게 되는 셈이죠.


사람을 좋아하잖아요. 잘 챙기고 잘 나누고. 어떻게 이렇게 손을 잘 내미는 사람일까요? 또한 잘 잡아주나요?

 

오은 :  손을 잘 잡아주는 편이에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힘들고 지쳐 있으면 저 또한 무기력해져요.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제 발걸음도 경쾌해지죠. 그들이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제가 필요하다는 거잖아요. 덥석 잡아야죠. (웃음) 손 내미는 일은 악수를 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너의 순간과 나의 순간을 만나게 하겠다, 마주 잡은 손에 서로의 온기를 전하겠다는 거잖아요. 힘들 때마다 그 손들을 떠올려요. 만날 때 반가워서 맞잡고 헤어질 때 아쉬워서 흔드는, 그 아름다운 손들.

 

만약에 일간지 1면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어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오은 :  보잘것없는 것들, 지나치기 일쑤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고 싶어요.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은 저것들을 들여다보는 데서 발견되거든요. 커다란 꿈과 목표가 사람들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소소한 즐거움이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니까요. 나무 아래 서 있을 때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순간, 배달용 오토바이에 붙어 있는 노란 리본 스티커을 발견하는 순간, 어린아이의 입에서 놀라운 문장이 튀어나오는 순간 같은 거요. 어쩌면 저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은가 봐요.

 

어떤 시인,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묻고 싶어요.

 

오은 :  시가 좋든 나쁘든, 이름을 가리고 읽었을 때 읽는 이들이 ‘오은이 쓴 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 스타일을 공고히 다져야겠지요. 저는 스타일이 ‘지문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고 그림자처럼 신체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거든요. 하나 더 있다면 늘 ‘지금, 여기’를 응시하는 시를 쓰고 싶어요. 사람 오은은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비단 사회문제뿐 아니라 마주한 사람의 예사로운 말 한마디, 낯선 사람이 건넨 따뜻한 인사, 어제와 달라진 거리 풍경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요.

 

다음 시집은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요? 예상하는 시기가 있나요?  

 

오은 :  2022년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작년에 두 권의 시집을 냈잖아요. 울지 않기 위해 썼지만, 그 때문인지 출간 이후에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다음 시집에는 지금껏 오은이 해왔던 것과 새로운 어떤 것이 다 담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찾는 시간도 필요할 거고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실험의 방향도 확실히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좌충우돌하는 시간을, 피하지 않으려고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 공저 | 위즈덤하우스
둘이 살기 시작하면서 겪은 웃픈 에피소드들, 피할 수 없는 골치 아픈 문제와 그 해결 방법 등 결혼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공동체든 한집에 사는 사람들이 겪게 될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담았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오은 저 | 아침달
시인이 제시하는 BGM을 재생하고, 그 리듬까지 독서인 양 읽어 내려가다 보면, 화자의 감정에 동화되고 나아가 그 감정에 눅진하게 녹아드는 경험에 이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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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스가쓰케 마사노부 “인간, 무서울 정도로 안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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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변화하며,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11명의 전문가와 만났다. 서점의 미래라 불리는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에서 1년 동안 이어진 대담이었다. 미디어, 디자인, 건축, 사상, 경제, 문학, 생명, 인류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일본의 프론티어가 초대됐다. 대담을 이끈 이는  『물욕 없는 세계』의 저자 스가쓰케 마사노부. 그는 츠타야 서점의 제안으로 해당 대담을 기획하고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만 초청”했다.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로 유명한 디자이너 하라 켄야,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이토 도요,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약한 연결』의 저자이자 철학자인 아즈마 히로키 등과 마주 앉았다. 스가쓰케 마사노부는 물었다. 그들이 어떤 작업을 이어왔는지, 그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 이야기를 통해 스가쓰케 마사노부는 ‘흐름’을 보여준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조용히 맥락을 짚어준다.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앞으로의 교양』이다.

 

저자 스가쓰케 마사노부는 편집자이자 크리에이티브 컴퍼니 ‘구텐베르크 오케스트라’의 대표 이사다. 잡지계에 입문해 『컴포지트』, 『인비테이션』, 『에코코로』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도요타, 닛산, 소니뮤직 등 기업의 컨설팅 및 플래닝도 담당하고 있다. 『아이디어 잉크』 시리즈, 아트 문고 시리즈 『배가본즈 스탠다트』를 편집했으며, 저서로 『도쿄의 편집』,  『편집의 즐거움』 , 『실속화하는 사회』 등이 있다. 국내에도 출간된  『물욕 없는 세계』는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서 가치를 소비하는 것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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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의 생존? 반신반의 합니다!

 

대담이 이루어진 과정이 궁금합니다. 츠타야 서점으로부터 제안을 받으셨죠?

 

그렇습니다. 예전에 후타고타마가와 츠타야에서 토크 이벤트를 몇 차례 했었는데, 그때 츠타야 관계자가 보고서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에서 정기적으로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뒤부터 대담이 성사됐습니다. 대담의 주제는 저의 주도 하에 츠타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정했고, 각 분야에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며 앞서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골라 대담자로 초청했습니다.

 

‘질문’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대담의 진행자로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지’ 생각했을 텐데요. 어땠나요?


1년 동안 열두 분을 만나 대담했습니다. 그 중 열한 분의 이야기가 이번 책에 실려 있고요. 한 달에 한 분씩 만났기 때문에, 매달 공부하고 인터뷰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대담자가 출간한 책을 다 읽고 자료를 모아서 공부했는데, 한 사람당 큰 박스 하나 정도의 책을 읽었습니다. 1년 동안 수행하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11개 분야 모두 상당히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놀라운 부분이었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알기 위해서 수행하듯이 인터뷰한 것입니다. 수행의 결과입니다. 

 

대담자들이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과 그 속에 담긴 생각, 현재 구상하고 있는 바를 질문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각 분야의 역사, 앞으로의 방향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대담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작업부터 앞으로의 흐름까지 물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라는 것이 큰 주제 의식이었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 책을 두고 “실제로는 질문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 번의 대담을 준비하면서 질문지와 함께 100~200장 정도의 파워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질문의 흐름에 굉장히 주의를 기울였고, 그래서 ‘질문집’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실제로 대담을 할 때는 파워포인트를 아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다채로운 대담이 됐습니다.

 

사사키 노리히코 편집장과의 대담도 실려 있습니다. 스가쓰케 마사노부 저자도 편집장 출신인 만큼, 같은 고민을 나눴을 것 같습니다.


사사키 노리히코 씨는 종이 잡지에서 웹 비즈니스로 옮겨가신 분이고, 현재 <뉴스픽스>라는 인터넷 뉴스 미디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미디어 비즈니스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묻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종이책은 아직 성장 중입니다. 일본에서도 종이책은 살아남을 거라고 봅니다.” 이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식대로만 해서는 살아남기 조금 어렵고, 방식을 바꾸거나 다른 업종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극에 비유하자면, 100년 전에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연극이 없어질 거라고 했습니다. TV가 나왔을 때도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연극은 살아남았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연극도 책도 정점을 찍은 시기는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연극과 책만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는 사장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도 연극처럼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연극의 경우 연출가, 배우, 극본가 같은 사람들이 연극만 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소설도 쓰고 TV와 영화에도 진출해서 살아남았습니다. 연극을 축으로 해서 주변 업계와 협업하면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책도 마찬가지가 될 것 같습니다.

 

‘변화’, ‘콜라보레이션’을 말씀하신 이유군요.


레코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년 전에 처음 레코드가 나왔을 때, 뮤지션들은 ‘이제 사람들이 라이브 공연에 안 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라이브를 들으러 가는 사람도 있고 레코드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책의 경우도 그 범위가 넓어질 뿐이지, 다른 분야와 합쳐진다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일상에는 ‘독’이 필요합니다


예스24의 경우에는 팟캐스트, 유튜브, SNS 등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일본의 출판계에서도 이런 식의 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츠타야 서점은 온라인 관련 활동들을 조금 하는 편입니다만, 온라인 홍보나 SNS 활용에 있어서는 한국이 훨씬 더 앞서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아마존이 진출해 있고 온라인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작은 출판사나 거점들이 대적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출판계 관계자들의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계속 연간 매출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편집자이면서 기업 컨설팅과 플래닝도 하고 계시죠? 두 가지 일이 사뭇 달라 보이는데,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느낍니다. 제가 생각할 때 편집은 기획을 하고, 모객을 하고, 물건을 만드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기업 컨설팅, 플래닝, 마을 조성 등 모든 일에 일관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편집의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실지 궁금한데요. 책에서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 이게 내 일의 기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라는 한 개인의 정체성이나 직업적 규정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계속 변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적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것을 많이 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모르는 것을 먹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장소에 가면서, 새로운 지적 자극을 계속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고 ‘어떻게 하면 모르는 것을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에 집중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대담이 굉장히 즐거우셨겠군요.


무척 힘들고 무척 재밌었습니다. 앞에 쌓여있는 상자들을 빨리 정리하고 싶다고 생각했죠(웃음).

 

대화를 나눌 때 유난히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희열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대화가 가장 즐거웠던 대담자는 누구였나요?


열한 분 다 재미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을 꼽자면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 씨일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철학을 굉장히 숭고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즈마 히로키 씨가 ‘철학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이 필요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제가 구원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와 ‘순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에 비유하셨죠. 굉장히 적은 양으로도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고요.


히라노 게이치로가 에세이 『생명력의 행방』에 썼던 문장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그는 “순문학은 분명 이 사회에 생겨난 0.01퍼센트의 독이다”라고 썼습니다. “독은 극소량으로도 치사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순문학도 사회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훌륭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라면 ‘0.01퍼센트의 독’으로 무엇을 꼽겠습니까?


제가 하는 작업도 전부 다 ‘독’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화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들 대부분이 보통 사람들이 볼 때는 쓸데없는 것, 쓰레기 같은 것으로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영화나 팝뮤직 같은 것도, 그것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보면 다 아무 의미가 없고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느낄 수 있죠. 그런데 사람은 독이나 쓰레기 같은 걸 받아들이지 많으면 정신적으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때때로 독 같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나 차도 그렇죠. 영양분은 없지만, 사람이 밥과 채소만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조금은 있어야 되지 않나요? 만약에 한국에서 막걸리 금지령을 내리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웃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대화할 때, 그것이 기분 좋은 충격을 안겨주는 경우도 있죠. 대담을 하면서 그런 때도 있었나요?


하라 켄야 씨의 사고방식은 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가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저는 하라 켄야 씨가 추구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에서 그렇게 큰 감동을 받지는 못합니다. 하라 켄야 씨는 일본의 미적 본질에 ‘와비사비(わびさび, 일본 미의식의 한 가지로서 일반적으로 꾸밈이 없고 수수하면서 정적인 것을 지칭한다)’라는 개념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것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에는 다른 것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에는 소박함(simplicity)의 미학도 있지만 화려함(extravagant)도 있습니다. 일본어로는 ‘바사라(バサラ, 화려하게 꾸미고 멋 부리는 모양)’라고 하는 미학의 전통도 있는 것인데요. 하라 켄야 씨는 바사라의 미학, 과잉적인 것에 대해서는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그와 대담을 하기 전에 반 년 정도 준비를 했습니다. 저와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언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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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서울 정도로 안 변했습니다


『물욕 없는 세계』 에서 미국, 중국, 일본을 배경으로 ‘물욕 없는 사회로의 변화’를 살펴보셨습니다. 한국에서도 동일한 모습이 관찰되는 것 같습니까?


아직 자세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으로만 봐도 ‘물욕 없는 세계’에 상당히 돌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변화가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선진 도시들의 흐름은 대체로 그런 것 같습니다.

 

“미래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잔뜩 모으고 앞선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극적으로 변하는 대상과 그것의 의미를 알 수 있고, 동시에 무서울 정도로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 보인다”고 쓰셨습니다. 대담을 통해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을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기는 조금 어렵습니다만, 기술과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데 인간은 무서울 정도로 안 변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사랑이나 행복 같은 것들을 느끼는 방법 같은 것들이 그렇죠. 인간이 한편으로는 매우 똑똑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멍청하다는 것 또한 변하지 않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즈마 히로키와의 대담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냉철한 것 같았어요.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고 할까요. 저자의 시각도 비슷한가요?


저는 아즈마 히로키 씨처럼 그렇게 냉철한 타입은 아닙니다만,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시선에는 동감합니다. 아즈마 히로키 씨는 인간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똑똑해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거기에는 동감합니다. 그래도 일부는 인간이 조금 더 현명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크리에이티브를 받아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똑똑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는 어떻게 바뀌며, 우리는 그 속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대담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발견하셨습니까?


어떤 것을 배울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평생학습을 해야 되는 시기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정년 이후의 삶도 길어졌고 평생직업의 개념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평생학습을 할 때는 세상의 사물들을 횡단적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기 분야에서만 협소하게 보지 말고 모든 것들을 종횡무진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면, 앞으로의 인생이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것들을 힘들어하는데, 그럼에도 계속 그런 방식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대담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책 제목에 ‘교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갑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 담겨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요. 이 말을 쓰신 이유가 있나요?


교양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두뇌의 OS(Operating System,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것, 즉 물건을 내놓고 팔리는지 안 팔리는지 반응을 보는 것들이 일인데, 그 일의 텀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짧은 텀으로 즉각적인 반응만 얻고 사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기 때문에, 두뇌의 OS를 향상시키는 것에 교양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일본에서는 작년 3월에 출간됐죠. 독자들의 반응도 보셨습니까?


반응은 아주 다양합니다. 저는 읽기 쉽게 썼다고 생각하는데 어렵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읽기 쉬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여러 분야의 분들과 대담을 했기 때문에 본인이 읽고 싶은 것만 골라서 읽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웬만하면, 두뇌의 OS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의 내용을 많이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야에서 제일 앞서가는 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시면 굉장히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한국 사람들도 바쁜 사회 속에서 눈앞의 성과에 굉장히 쫓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만, 조금 시야를 돌려서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고 지금 이 분야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용도로 이 책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된 키워드가 ‘세계화’와 ‘AI’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현명하게 생각하면서 살 수 있을까’에 중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독자들도 힌트를 얻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같은 책을 보더라도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다른 반응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을 보고 한국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물욕 없는 세계』의 경우에는 SNS를 통해서 일본에서도 독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 책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교양스가쓰케 마사노부 저/현선 역 | 항해
미래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모으고 앞선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극적으로 변하는 세상의 의미를 알 수 있고, 동시에 무서울 정도로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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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나태주 “시 써서 덜 실수하고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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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저렇게 책 읽는 할아버지 보면 참 좋아. 얼마나 예뻐요?”


서점 한 모퉁이에 앉아 책 읽는 노인을 본 나태주 시인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주로 어떤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좋아하는 건 전부 찍지”라며 웃어 보였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나태주 시인의 시는 주로 이렇게 탄생한다. 순간순간 마음을 철렁 움직이는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시로 표현하는 것이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지 10여 년째, 요즘 나태주 시인은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나며 하루를 보낸다. 문학관 주변에 핀 꽃들을 돌보고, 풍금을 연주하며 스스로 ‘자그마한 시인’임을 자처하는 그가 지금껏 받아온 독자의 사랑을 생각하며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를 펴냈다.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일흔다섯의 노시인이 전하는 인생, 사랑,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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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아름다운 당신을 위해 쓴 책


공주에서 올라오는 길이세요?

 

오늘은 대전에 들렀다 왔어요. 동창회가 있는데 계속 안 나갈 수 없어서 얼굴 비추고 밥값만 내고 왔지. 내가 2007년에 정년퇴직하면서 다짐한 게 있어요. ‘동창회 안 나간다, 노인정 안 나간다, 삼락회 안 나간다.’ 전부 과거지향적이잖아요. 만나면 늘 옛날 얘기 하고, 옛 동료 욕이나 하고 그러는 게 싫어요. 그래서 난 들판으로 나가요. 골방에 앉아서 글 쓰고, 서점가고, 강연 요청 오면 사람들 만나러 가고요. 그것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요. 퇴직한 이후에는 내내 그러고 살았어요. 아이고, 말하고 나니 내 또래들에게 좀 미안하네.(웃음)

 

이번 책은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이에요.


모처럼 쓴 산문이에요. 독자들을 향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이제 70대 중반이 되었으니 이런 이야기를 좀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인생, 사랑, 행복의 세 파트로 구성되었어요.


인생도 행복을 위해 있고, 사랑도 행복을 위해 있는 거잖아요.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이 세 가지인 것 같아서 이렇게 구분해보았어요.

 

책에서 젊은이들을 향한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내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어요.‘아이들은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을 보는데/ 자꾸만 노인들이 나를/ 흘낏거린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을 보고/ 젊은이들을 본다. (나태주   『틀렸다』 , ‘늙은 시인’)’ 이게 내 노년의 삶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예쁘지요, 건강하지요, 사랑스럽지요, 시간이 많지요. 나는 그런 젊음이 좋고, 젊은이들의 삶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노년의 내 이야기보다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주로 썼어요. 원래 내 시의 목적은요, 응원과 축복과 기도와 동행이에요. 지금까지 쓰던 내용을 시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산문으로 풀어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만드는 동안 젊은 편집자에게도 배운 게 많았어요. 원래 표지에 꽃잎이 있었는데, 편집자가 별안간 꽃잎을 빼더라고요. 조금 섭섭했어요. 내 눈엔 좋았거든요. 그래도 믿고 놔뒀는데, 꽃잎이 빠지고 나니 훨씬 예쁜 거예요. 시원하고, 심플하잖아요. ‘역시 젊은 감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 ‘좋다’의 구절인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를 제목으로 삼자고 한 것도 편집자의 뜻이었어요.

 

 

고달픈 것이 젊음, 좋은 날 올 거예요


획일화된 삶에 반기를 드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될 말들이 많았어요. ‘오래 전 교직에 있을 때는 “나처럼 해봐라 이렇게”라고 말하며 가르쳤는데 지금은 “너처럼 해봐라 그렇게”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180쪽)’는 구절 등이요.


‘나처럼 해봐라 이렇게’는 일원화잖아요. 그런데 ‘너처럼 해봐라 이렇게’에는 개개인의 개성이 있어요. 우리나라 앞으로 큰일났어요. 그동안 전부 똑같은 교육만 해왔으니까요. 똑같은 거 달달 외워서 학교 들어가고 취직했잖아요. 이제 그러면 안 돼요. 외우지 말고, 읽어야 해요. 외우는 것은 구멍을 아주 작게 파는 거거든요. 송곳으로 뚫는 거지. 그런데 책을 읽는 건 함지박같이, 저수지같이 넓고 깊게 파는 거예요. 그때 창의성이 나와요. 외우는 건 ‘빵틀’일 뿐이야.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 항상 “너 좋아하는 거, 너 잘하는 거 해라”라고 말했어요.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면 시간이 빨리 가거든요. 톨스토이가 말했던 몰입이 일어나기 때문이에요. 몰입이 바로 행복이에요.

 

시인님께서는 60대 초반에 크게 아팠던 것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요.


난 아프고 나서 인생이 달라졌어요. 책에도 썼지만, 살아난다는 보장만 있다면 젊어서 죽을병에 한 번 걸려보고 낫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해요. 물론 병에 걸리는 게 좋다는 말은 못하겠어.(웃음) 하지만 살아난다는 보장이 있고, 젊은 시절에 한 번 아파볼 수 있다면 아마 엄청나게 다른 삶을 살게 될 거예요.

 

‘아픔이 하루를 살게 하는 은인이다(170쪽)’라고 하셨죠.


아픔은 우리를 각성시켜요. 더 잘 살고 싶게 하고,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죠. 감기에 한 번도 안 걸린 사람이 건강에 있어서는 더 불리하다고 해요. 감기를 앓으면서 나쁜 세균에 대한 저항성이 생기거든요. 우리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병, 실패, 시련, 여행이 준다고 봐요. 그런데 병이나 시련, 실패는 위험하잖아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50대 때 외국여행을 처음 했거든요. 여행지에 가서 세계를 돌다 보면, 내가 살던 곳이 그리워져요. 비록 시간 낭비, 돈 낭비 했지만 ‘내 가족, 친구, 베개, 침대, 슬리퍼가 이렇게 소중하구나’ 하고 낡은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단 말이죠. 참 재밌는 건, 우리는 머리로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도 기억한다는 사실이에요. 자기가 매일 덮던 이불 속에 들어가면 기분이 어때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 좋잖아요. 이건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거예요. 여행을 가면 몸이 기억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어요.

 

세상을 앞서 산 선배로서, 어떻게 나이 들어가면 좋을지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런 얘기하면 젊은 사람들이 뭐라고 할 텐데…(웃음). 사실 젊은 시절은 힘들어요. 돈을 쓰고 싶어도 돈이 없고, 자유스럽고 싶어도 자유가 없고,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고 싶어도 주도권이 없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성공할 수 있을까요? 난 아니라고 생각해요. 젊은이에게 주어진 큰 돈은 그 사람의 돈이 아니에요. 분명 남의 돈이거나 부모님 돈일 테지. 그럼 그 돈은 거의 즐기는 데 쓰이지 않을까요? 사실 불편하고, 답답한 것이 젊음이거든요. 그래서 모든 게 주어지면 그 젊음이 유지가 안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젊은이들이 들으면 섭섭하다고 할 테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지금 힘든 것을 참고 싶지 않을 테고, 기다리지 못할 텐데…. 그렇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분명 좋은 날 올 거예요. 지금 돈과 명예와 주도권이 다 주어지면 젊은이 자신이 무너져요. 삶이 고달프고 퍽퍽해도 그것이 젊음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듣고 싶은 답이 안 되지요?(웃음)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어요. 기다리고, 참고, 먼 곳을 보면 거기에 더 좋아진 내가 있을 거예요.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면서 어린 시절에 자기가 꿈꾸었던 자기를 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만나는 사람.(25쪽)’이라고 쓰셨는데, 시인님은 어린 시절 꿈꾸었던 스스로를 만난 것 같으세요?


많이 만났어요. 꿈꾼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나를 만났죠. 난 이렇게 대단한 꿈을 꾼 적이 없어요. 늘 스스로 조그만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점점 바뀌는 내 모습을 만나는 게 신기하죠. 난 내가 산문집을 열 권 넘게 내고, 창작시집을 마흔 권이나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계속 가다보니 이렇게 된 거지요. 그러니 살다보면 나이가 들어서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먼 곳에 가 닿을 수도 있어요. 늙어서 무언가를 이뤄야지 포기하고, 버리고, 양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또, 겸손해지죠. 티베트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뜻을 이루었다면 몸을 낮추고 뜻을 잃었다면 고개를 들어라.’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에요. 뜻을 이루었다고 까불어도 안 되고, 뜻을 잃었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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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는 마음의 빨래예요


일과 중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으세요?


뭐가 있을까? 기침하고, 화장실 가고, 밥 먹는 거.(웃음)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컴퓨터 켜고 시집 원고를 봐요. 오늘 보는 원고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잠들기 전에도 꼭 한 번씩 보고요. 그래서 시집을 계속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벌써 내년에 출간할 시집의 원고들까지 거의 다 써놨어요.

 

40여 권의 창작시집을 펴내셨는데, 계속 시를 쓸 수 있는 영감은 어디에서 받나요?


언젠가 시에도 썼지만, 시 쓰기는 길거리에 버려진 보석들을 줍는 것과 같아요. 이곳 저곳에 보석이 널려 있거든요. 사람, 자연, 세상 어떤 것에서든 영감을 받아요. 예를 들어 이럴 때가 있어요. 내가 아끼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아기 둘을 키우는 엄마예요. 그런데 스마트폰 메신저 알림말이 ‘꽃필 날 있을까’인 거예요. 그걸 보면 가슴이 철렁해요. 그리고 시가 나와요. ‘꽃필 날 있을까, 그렇게 말하지 마라. 꽃은 언제든지 핀다. 문제는 마음 속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이렇게 쓴 시가 있다고 하면 그건 그 아이의 ‘꽃필 날 있을까’라는 문구 하나를 보고 쓴 거죠. 하루는 후배와 일본 여행을 가는데 면세점에 들러 “우리 넥타이 하나 사자”고 말했더니 “이제 정년퇴직하고 집에 있으니까 넥타이 맬 일도 없어요.” 하더라고요. 그 순간 또 가슴이 철렁하지. ‘그렇구나, 넥타이 맬 일도 없구나...’ 그런 생각과 마음들을 쓰는 거예요. 시는 먼 데 있지 않아요. 내 마음을 철렁 움직여서 파문이 지는 건 전부 시가 될 수 있어요.

 

‘시인은 우선 언어 예술가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서비스업자가 되어야 한다.(113쪽)’고요.


난 항상 연애편지 쓰는 마음으로 시를 써요. 연애편지는 소재 자체가 아름답잖아요. 돈 떼먹고, 거짓말하는 걸 연애편지로 쓰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꾀어내고 싶어서 조금 속이는 말을 할 순 있겠지.(웃음) 하지만 그 안에 사기 치는 나쁜 마음은 없어요. 울렁이는 마음, 아름다운 마음, 그리운 마음 같은 것들이 담기지요. 그리고 연애편지는 정성껏 쓰잖아요. 아름답고 좋은 말만 골라 쓰게 되고요. 시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그런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봐요.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쓸 말을 고르듯, 시인도 독자의 마음을 얻고 위로하고 부추겨줄 수 있는 시를 써야죠.

 

책을 읽고, 말씀을 듣다 보니 시인은 결코 나쁜 생각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웃음) 마음에 욕심이나 미움이 생길 땐 어떻게 하세요?


나도 나쁜 생각할 때 많아요. 그런데 만약 시를 안 썼다면 더 나쁜 사람이 됐을 거야. 우리는 몸이 더러워지면 목욕을 하고, 옷이 더러워지면 빨래를 합니다. 그것처럼 나는 마음이 더러워질 때 기도하고, 명상하고, 음악 듣고, 시를 써요. 난 시 쓰기가 마음의 빨래라고 생각해요. 시를 썼기 때문에 그동안 덜 실수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독자에게 가장 사랑을 받은 시는 ‘풀꽃’인데요, 시인님이 제일 좋아하는 본인의 시는 무엇인가요?


‘시’라는 제목의 시예요. 마당을 쓴 것은 미시적 관점에서 본 사실이고, 이로 인해 지구 한모퉁이가 깨끗해진 건 거시적 조망이잖아요. 마당을 쓴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지구 한모퉁이가 깨끗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둘은 달라요. 내 마음에 시가 싹트면, 지구 한모퉁이가 밝아진다는 것도 그렇죠. 시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의가 담긴 시라서 좋아해요.

 


- 나태주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지구 한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풀꽃처럼 조그만 시인으로


71년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며 시인이 되셨는데요, 이 제목을 박목월 시인이 지어준 것이라고 들었어요.

 

그때 내가 스물여섯 살이었어요. 스물여섯 먹은 청년은 ‘대숲 아래서’라는 제목을 절대 못 붙여요. ‘대숲’과 ‘아래’, ‘에서’가 결합된 제목을 붙이려면 그만한 연륜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시를 쓸 때, 처음엔 제목을 대부분 명사나 대명사로 써요. 그러다 조금 더 나가면 동사, 형용사를 쓸 수 있게 되죠. 거기서 좀 더 나가야 부사나 접속사까지도 쓸 수 있거든요. 본래 제목은 ‘소곡풍(小哭風)’이었는데 박목월 선생님이 그걸 보고 쫙 긋더니 ‘대숲아래서’라고 고치시더라고요. 그 시는 박목월 선생님이 들어와서 둘이 쓴 시예요. 나는 적어도 시인이 되었던 그 순간에는 박목월 선생님과 같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대숲아래서’라는 제목은 내가 결코 생각할 수 없었던 제목이에요.

 

등단 이후 5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시인으로서의 삶을 돌아보면 어떠세요?


후회는 전혀 없고, 진짜 행복했어요. 그리고 늙어서 독자들에게 주목 받게 된 것이 너무 좋아요. 내가 젊었을 때 이렇게 사랑을 받았다면 건방졌을 거예요. 젊어서 인기와 돈을 얻었다면, 그 돈을 다 어디에 썼을까요? 아마 날 위해 썼겠죠. 그중에서도 향락하는 데 전부 썼을 거예요. 그런데 신이 그걸 허락하지 않으셨죠. 젊어서는 명성도, 돈도 전혀 주지 않았으니까요. 늙은 뒤에야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지고 나니, 내게 들어오는 것들을 이왕이면 좋은 곳에 쓰고 싶어요.

 

사비를 들여 여러 문학상을 운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요?


젊은 시인들에게 계속 시 쓰라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나도 젊었을 때 문학상 한 번 받아보는 게 꿈이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뭔지 알아요. 지금 풀꽃문학상, 해외풀꽃시인상, 공주문학상을 시상하고 있어요. 공주문학상은 작년부터 사비로 운영하기 시작했죠. 또 내 고향인 서천에서 2년간 1,700여만 원을 들여서 ‘신석초문학상’ 시상을 했는데 이게 반응이 좋았는지 이제 서천군에서 지원을 해주기로 했어요. 1,700만 원이 신석초문학상의 마중물이 된 셈이지. 나는 문학상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단, 상금을 꼭 줘야 하고요. 시인들은 배고프거든요.

 

시인으로 산 세월 가까이 교사로 재직했지만, 정작 교사를 꿈꿨던 건 아니었다고요. 


아버지가 시켜서 억지로 됐어요. 그래서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잘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지낸 덕분에 거짓말 덜 했고, 돈 덜 떼먹었고, 나쁜 짓 덜 하고 살았어요. 물론 아이들에게 벌주고 혼냈던 것은 좀 미안하지만(웃음) 다른 직업보다 훨씬 고마운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나는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교사는 직업이고 시인이 본업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어요. 그래서인지 정년퇴직을 하며 직업이 떨어져나가고 나니 글을 훨씬 더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퇴직 이후에 내 글도, 인생도 좀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요즘도 풀꽃문학관에 계속 나가세요?


매일은 못 가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가요. 나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없으면 실망할 거 아니에요. 오늘 아침에도 관람객이 많이 와서 풍금 치면서 노래 몇 곡 불러주고 왔어요. 사실 문학관 한 번 다녀오면 몸은 힘들고 피곤해요. 그래도 나가야죠. 시인은 세상 사람들을 위한 감정의 서비스맨이거든요. 외롭고, 우울하고, 짜증나고, 서럽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할 의무가 있다고 봐요.

 

이번 책을 읽고, 평생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으셨단 걸 알게 됐어요. 운전이 싫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운전하는 게 싫고 불편해요. 오늘처럼 서울에 올라와야 하는 날, 운전을 하면 낮잠도 못 자잖아요. 나는 되게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그냥 귀찮고 싫어서 차를 안 사는 거지,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는 없어요.(웃음) 이걸 우리 식구들이 받아줘서 다행이지. 운전하는 게 싫기 때문에 나의 즐거운 삶을 위해 선택한 행동 중 하나일 뿐이에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책 마지막 장에 실렸어요. 아내를 위한 선물이었나요.


맞아요. 나로서는 인생, 사랑, 행복의 결론이 우리 아내라고 생각하거든요. 남들 보기엔 별 볼일 없는 결론이죠. 집사람이 올해 일흔 한 살인데, 작년에 나보고 진한 연애편지 하나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못 쓴다고 하다가 마지못해 컴퓨터로 써서 줬어요. 읽어보더니 “이렇게밖에 못 쓰냐”고 핀잔을 주더라고. 더 절절하게 고백해야 된다면서요.(웃음) 그 편지를 책에 넣었어요. 그런데 책에 실린 걸 읽더니 “이만하면 됐다”고 하더라고요. 책으로 보니 또 느낌이 다른가 봐요. 덕분에 합격했어요.(웃음)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편안한 시인, 조그만 시인, 유용한 시인. 멀리 있고 무겁고 깊은 게 아니라 가깝고 조그마하고 손 뻗으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시인. 그거면 충분해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나태주 저 | 서울문화사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한 이야기들이다. 사소한 이야기들이다”라고 말하며, 작지만 따뜻한 위로의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아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풀꽃 같은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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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에어비앤비 슈퍼호스트 한량 “살이 맞닿는, 만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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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작가는 2014년부터 독립출판으로 자신의 책을 꾸준히 펴낸 작가이지만 그 이전에 “더 많은 곳을 보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하기를 주저 않는 정체성 확고한 여행자였다. 세상을 만나기 위해 부러 바깥을 여행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있는 곳에 공간을 만들고 여행자를 불러 모았다. 그러자 세계의 여행자들이 한량 작가의 ‘자기만의 방’에 방문했다.  『원서동, 자기만의 방』은 ‘에버비앤비 슈퍼호스트’ 한량이 여행자의 집을 꾸리게 된 순간과 놀라운 만남의 순간들을 담은 다정한 기록이다. 


자신의 세 번째 책을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하며 “설레고, 기뻤다”고 말한 한량 작가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기쁨에 대해 “주고받는 마음”을 이야기했다. 엄연히 돈이 오고 간 계약 관계임에도 시간을 내 마음을 표시하는 게스트들과 그들에게 더 큰 환대를 보여주고 싶은 호스트의 마음은 무엇일까.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말하는 한량 작가의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힌트는 꾹 눌러쓴 방문 기록, 늦은 밤의 수다, 아기자기하지만 존재감 분명한 작은 선물들에 있을지도 모른다. 


원서동에서 운영하던 ‘자기만의 방’은 이제 삼청동으로 옮겨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한량 작가는 자신의 집 2층 방을 게스트에게 내어주고 “게스트와 더 가깝게,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여행자들과의 만남은 당분간,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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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대 위에 선 등대 같은


작가님 블로그를 보니 이번 책 출간하고 많이 기쁘셨던 것 같더라고요. 원래 독립출판으로 냈던 책인데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을 하신 거잖아요. 느낌이 많이 달랐나요?

 

독립출판 하시는 분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어린 시절부터 가슴 속에 출판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책을 낸다는 것은 내가 동경하던 분들에게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는 느낌이 아닐까 싶은데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설레고, 기뻤어요. 무언가를 계속 써오긴 했고요. 그것을 종이 위에 올려놓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는데요. 독립출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의 통로를 알게 되었던 거예요. 저의 시작은 거기겠죠?


얼마 전에는 북페어에 참가했는데요. 어느 새 테이블 위에 올릴 책이 4권이더라고요. 한 권 들고 설명하면서 사람들을 맞이하던 생각도 많이 났죠.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느리지만 계속 이걸 할 거야’라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다음에 또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저는 계속 만들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창작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작가님이 공들여 선택해온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원래 직장 생활도 하셨었잖아요.


어떤 면에서 에이비앤비 호스트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데요. 동시에 제 시간 활용이 더 유연해지는 측면이 있죠. 손님이 없거나 외출하신 시간에 짬을 내서 글을 쓰는 생활이 저는 좋아요. 그런데 이것을 내가 선택해온 것이라고 말하는 건 꿈보다 해몽 같아요.(웃음) 물론 계속 그렇게 살고 싶긴 하죠.

 

제목  『원서동, 자기만의 방』은 독립출판 하셨던 책과 동일하죠? 이 제목을 유지하고 싶으셨다고요. 이유가 궁금해요.


일단 원서동이 저의 시작점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오마주처럼 그 이름을 꼭 쓰고 싶었어요. ‘원서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낯선 느낌도 좋고요. ‘자기만의 방’은 에어비앤비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정체성이라 다른 제목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출판사 다니는 친구가 있는데요. 제가 이 제목을 그대로 쓰고 싶다고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어련히 출판사에서 알아서 좋은 제목 뽑아줄 텐데 왜 그랬냐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이 제목이 그냥 좋았어요.

 

한편 표지 이미지는 받자마자 마음에 꼭 들었다고요.


디자이너 분께서 작업하신 시안을 전달 받았는데 너무 놀랐어요. 저희 공간에 와보지도 않으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구현하셨지, 하고요. 글과 사진을 보고 이 시안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축대 위에 선 등대 같았다”라고 쓴 부분을 읽고 만드신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게다가 앞표지에 있는 궁궐의 모양도 그렇지만 뒤표지에 묘사해주신 건물들도 정말 좋았어요. 건물 하나, 하나가 어떤 건물인지 다 알 것 같잖아요. 이렇게 섬세하게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래서 바로 다른 말 전혀 없이 무조건 좋다고 했어요.(웃음)

 

 

‘자기만의 방’


무엇보다 “자잘한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52쪽)이 필요하다는 것이 작가님의 중요한 생각인 것 같았어요.


스무 살 때 자취를 시작해서 그때부터 계속 혼자 살아왔는데요. 그 생활이 만족스러웠어요. 부유하거나 호화스러운 생활도 아니고 그냥 자취방에서 적은 살림을 놓고 자취를 하는 건데 그 공간이 정말 좋았어요. 그러면서 제가 계속 그런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걸 느꼈죠. 제가 집의 이름을 ‘자기만의 방’이라고 지은 이유도 그런 공간과 시간을 계속 찾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고요. 그런 사람이 나뿐만 아닐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게다가 여행을 가보면 호텔 같은 숙소도 비싼 곳이 아니면 공간이 다 트여 있잖아요. 그런 곳이 아니라 일부러 문을 닫고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 시간이 고이면 그 안에서 뭔가가 피어날 거라 생각했죠. 저뿐 아니라 이 공간에 머무는 분들에게 그런 시간을 부여해드리고 싶었어요.

 

이 공간으로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간다는 점도 인상적이에요.


예전에 어느 블로그에서 여행을 다니는 이유에 대해 ‘세상이 나에게 와주지 않으니 내가 그곳을 만나러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그게 화두라면 화두랄까요. 더 많은 곳을 보고 싶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힘들게 돈 버는데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써도 된다는 마음으로 몇 달 뒤 떠나는 비행기 표를 끊어두고, 그 힘으로 살아가곤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이런 공간을 만드니까 반대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오는 거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또 다른 여행도 되더라고요. 사람들과 빠르게 친밀해지는 방법이 “나도 그 나라에 다녀왔다”고 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연결이 돼요. 그게 참 좋죠.

 

이곳에서도 여행지에서의 감각을 갖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그분들도 부담이 없을 수 있어요. 우리는 잠깐 만난 호스트이기 때문에 서로를 잘 모르고요. 그렇기 때문에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거든요. 마음의 장벽을 낮추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게 참 신기해요. 제가 아는 정보라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며칠을 묶는지 정도예요. 에어비앤비가 인종이나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도록 계속 캠페인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냥 서로에 대해 아는 것 없는 상태로 만나는데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자신의 직업적 어려움 같은 걸 털어놔요. 집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렇죠. 잠깐 차 한 잔 하기로 하고 마주 앉아서 2-3시간씩 수다를 떨기도 하는 거예요. 재미있죠?

 

말씀을 들으니까 “흔한 일상 속에 비일상의 내가 놓여 있었다”(51쪽)는 말이 실감이 돼요.

 

맞아요, 서울에 사시는 분들조차 궁궐이 있고, 북촌이 있어서 이곳에 놀러 오시긴 하지만 막상 여기서 자보는 경험은 많이 안 하시잖아요. 그런 경험에 대해 신기하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자신에게 일상적인 도시임에도 여행자를 위한 집에서 하루를 자고 간다는 게 다르다고요. 북촌의 아침을 볼 수 있고, 그런 거죠.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 스페인에서의 여름으로까지 가게 되는데요. 이런 공간을 내가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한 달 여행을 가자고 결심을 했어요. 스페인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이스탄불을 갔다가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기착지가 바르셀로나였는데요. 처음에 잡은 숙소가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선택한 10인실 혼숙 도미토리였어요. 10인실이니까 24시간 소음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계속 침대를 오르고, 내리죠. 남자친구가 어느 날 남은 그곳의 일정을 취소하고 가보자면서 에어비앤비를 보여줬어요. 저는 그때 에어비앤비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그곳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묵는 거라고 해서 사실 무섭기도 했는데요. 갔는데 굉장히 신기했어요. 우리가 알던 호스텔, 호텔과 다른 느낌이었어요. 진짜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의 열쇠를 하나 받아들고 그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지내는 거잖아요. 그때 경험이 좋아서 이후 일정은 모두 에어비앤비로 다녔죠.

 

일상을 엿보는 느낌이 있었겠죠?


맞아요. 그때 호스트는 프리랜서 요리사였는데요. 자신의 작은 부엌에서 거침없이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저희도 사용해도 된다면서 낡았지만 정갈한, 손때 묻은 주방 기구들을 보여줬고요. 저희도 돈이 없었으니까 그곳에서 많이 해먹었거든요. 호스트가 알려주는 동네 슈퍼에서 식재료를 사다 먹고, 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게다가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도 신기하잖아요. 그때 이런 방식의 여행에 매력을 많이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어느 도시, 어느 나라를 떠올리면 항상 집들과 호스트들이 떠올라요. 호스트가 직접 맞이해주고, 설명해주고, 시간을 보낸 곳들은 여행 명소, 가볼 만한 곳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함께 떠오르게 해줘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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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는 마음이 좋아서


호스트로 지내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


제가 엄청 무던하기만 하고, ‘이것도 저것도 다 돼, 무조건 좋아’ 이런 사람은 아닌데요. 저는 제가 여행 다녔던 때를 떠올리면 오시는 분들의 실수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매너를 몰라서 실수를 한 적이 나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처음이라 그랬을 거라는 식의 호스트의 멘탈이(웃음) 점점 되어가는 것 같아요. 가령 침구가 더러워질 수 있잖아요. 저도 여자니까 이해하죠. 민망해서 나한테 말 못했을 수 있어, 나 역시 나도 모르게 그런 적이 있지 않을까, 이런 식의 생각을 해요.

 

여행자였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더 있겠네요.


예를 들자면 제게는 이 도시가 익숙하고, 이 길과 교통상황이 너무나 익숙하죠. 게스트에게는 서울에 도착해 택시를 잡아서 여기 집까지 오는 길이 낯설고 무서울 거잖아요. 그러면 제가 시간을 들여 게스트를 데리러 간다고 해도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가 않아요. 그러면서 게스트와 자연스럽게 대화도 되니까요. 그런 시간들이 좋아요, 저는.

 

얘기를 들을수록 공간보다는 관계나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들리거든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규모가 더 크고, 굳은 일을 외부 인력을 동원해서 하는 입장이라면 게스트가 숫자로 보이겠죠. 하지만 여기서는 서로 살이 맞닿는, 만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신기하죠. 이건 제가 자선활동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 공간을 내어주고 환대하는 게 아니라 계약이 존재하는 관계예요. 엄연히 돈이 오고 갔고요. 그런데 언제나 그 이상이 오고 가더라고요. 매번 그랬어요. 한 번 그랬다면 그 게스트가 특별해서 그렇다고 생각했겠지만 이게 반복되니까 여기서 얻는 기쁨이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왜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마음을 표시하고 가는 걸까, 나는 왜 더 하고 싶을까.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그냥 돈이 들어와서 얻는 기쁨과는 분명히 달라요. 그렇게 주고받는 마음이 좋아서 이 일을 계속 하지 않나 싶어요.

 

기상천외한 풍경이 펼쳐지더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현관문을 연다. 그러나 지금껏 아이고아이고 동네 사람들, 이렇게 외칠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게스트들은 설거지도 깨끗하게, 쓰레기 정리도 말끔하게, 그리고 게스트북도 성의껏 써주고 집을 떠났다.(중략) 팁은 아니겠지만, 이국의 동전들이 가지런히 탑처럼 쌓여 있기도 했다.(106-107쪽)

 

한편 여성으로서 한국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듦이 다 있잖아요. 거기에 저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내가 여성이라서 얻는 장점을 호스트를 하면서 느꼈어요. 무엇보다 경계심의 허들이 낮죠. 여성 싱글 여행자는 물론이고요. 바꿔 생각하면 저도 그렇거든요. 호스트가 여자면 저도 머물 때 더 마음이 편하겠죠. 그런 게 느껴져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는지 궁금해요.


캐나다에서 교포 분이 오셨어요. 어느 새 친해져서 그분이 저를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요. 정말 삶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분이 여기 계시는 동안 일간지 인터뷰를 했거든요. 그 인터뷰가 신문 1면에 난 거예요. 그 신문 나온 날이 그분이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이라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요. 그 저녁에 그 신문을 구하기 위해 여정을 떠났죠.(웃음) 편의점에도 신문을 잘 팔지 않더라고요. 결국 신문 배급소에 전화를 해서 겨우 몇 부를 구해왔어요. 재미있는 기억이에요.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원래 무던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셨잖아요. 호스트로 살면서 변했다고 느끼세요?


원래 낯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호스트라는 역할 안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고 싶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열고, 친해지게 돼요. 그게 신기한 거죠. 솔직히 게스트를 만나자마자 서로 마음을 다 열고 친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천천히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바뀌는 거죠.

 

프롤로그 제목이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잖아요. 그냥 읽을 때는 작가님의 애정을 짐작만 했을 뿐이었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썼는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쓰고는 참 거창하게 썼다는 생각도 했어요. 남들이 보면 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하지만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을 방문했던 분들도 서울이라는 도시, 북촌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서 나를 생각해주겠지, 하고 기대도 하고요. 실제로 선물이나 편지를 받으면서 확인을 해요. 저도 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늘 그 바르셀로나의 첫 호스트를 찾아가보고 싶다고 얘기하죠. 아쉽게도 지금은 호스팅을 안 하는 것 같더라고요.

 

“영원성에 대한 갈망”(34쪽) 이야기도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사라지지 않을 곳이기 때문에 정독도서관에 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요. 작가님은 이에 대한 남다른 갈망이 있는 것 같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해운대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바닷가를 가는 아이였죠.(웃음) 그때도 풍경이 바뀌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달맞이 언덕에 5층짜리 주공아파트 단지가 있었어요. 집에서 바닷가로 가려면 그곳을 통과하는 마을버스를 타야 했죠. 거기에는 벚나무가 가득해서 4월에는 벚꽃과 눈을 맞추면서 갔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고, 엄청나게 높은 건물들이 생겼어요. 대학교에 와서는 상수동에서 4년을 살았는데 그곳 역시 바뀌는 걸 많이 봤죠. 하지만 그 파도에 함께 올라타거나 맞서는 걸 저는 못하겠는 거예요. 소시민이니까요. 살아남을 수 있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부서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동네를 찾고 싶다고요. 그래서 궁궐에 생각이 미치게 된 거죠. 이곳은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있어요. 그게 좋아요.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기쁨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안정감 같은 것이기도 하고요. 


맞아요, 바뀌는 것은 계절의 변화 정도고요. 오래 살아남은 것들이 주는 느낌도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항상 이곳을 맴돌죠. 어디서 봤는데 사람이 처음 정착한 범위에서 의외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저희가 2012년에 원서동에서 ‘자기만의 방’을 시작해서 계속 같은 쓰레기봉투를 쓰는(웃음) 지역 안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져요.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살면서 가장 좋은 건 뭐예요?


궁궐을 마주한 원서동 길에 10년째 같은 자리에서 운영 중인 카페가 있어요. 이름도 정겨운 오래된 가게인데요. 연애할 때도 가고, 며칠 전에도 갔던 곳이죠. 저는 전부터 그 가게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직장 다닐 때는 끊임없이 남의 일을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내 일이라는 느낌이 없었는데요. 그 가게를 보면서는 자기 공간에서 자기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꾸려나간다는 점이 멋있더라고요. 물론 거기에 책임과 고충도 엄청나겠지만요. 그러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고 나서는 이게 내 일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어요. 누군가는 남이 쓴 화장실을 뒷정리하는 게 싫을 수도 있는데요. 저는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전혀 힘들지가 않거든요. 행복하고요. 시간을 내가 기획해서 쓸 수 있다는 점이 저를 자유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호스트로서 나의 장점은 뭔가요? 작가님은 빨래를 좋아하신다고요.(웃음)

 

빨래 정말 행복해요.(웃음) 그런 물리적인 것 외에도 제가 피드백에 되게 약한 사람이에요. 칭찬에 정말 약해요. 고맙다는 말이나 그저 집에 도착해서 변화하는 표정만 봐도 두근두근해요. 더 잘해주고 싶고요. 그런 면에서 이 일이 제 자존감에도 도움이 되는 일 같아요.

 

그러면 무리하게 될 때도 있지 않나요?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한 문제겠어요.


맞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선 이걸 롱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것을 위한 제1규칙은 내가 지치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즐겁게 하는 게 가능한 노동 강도를 찾아야 했고요. 저는 손님이 체크아웃을 하면 무조건 그 하루는 비워둬요. 그러면 쫓기지 않아도 되잖아요. 만약 손님이 12시에 나가고, 2시에 새 손님이 온다면 2시간 안에 청소와 정리를 해야 하니까 힘들잖아요. 그러면 저도 앞 손님이 꾸물대는 것 같고, 좋은 얼굴이 안 나올 거예요. 그 사람 잘못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수익을 약간 포기하더라도 제가 만족할 수 있도록 저를 쉬게 하려고 해요. 에어비앤비를 하기 전에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잡지 못해서 제가 많이 힘들었거든요.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요. 

 

작가님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일상의 순간을 묘사해본다면 어떨까요?


바르셀로나의 공기와 햇살, 온도가 너무 좋아요. 그런 곳에서 햇살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는 장면을 생각하면 그것이 제게 완벽한 어떤 한 컷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도 기회가 된다면 저는 게스트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건 제 꿈이기도 해요. 이 책 다음에는 ‘삼청동, 자기만의 방’ 그리고 언젠가는 ‘바르셀로나, 자기만의 방’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중요한 건 제가 행복하게 해야 그 마음이 전달되리라는 점일 거예요.



 

 

원서동, 자기만의 방한 량 저 | 북노마드
누군가의 집으로 색다른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훗날 여행자의 집을 꾸리는 삶을 꿈꾸는 이라면, ‘원서동, 자기만의 방’의 문을 두드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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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시원 “몇 년을 공부했는데 영어가 안 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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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약 5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시원스쿨 기초영어법』과 초보를 위한 『나의 영어 사춘기』, 그리고 일상생활이나 여행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현을 담은 실전편 『나의 영어 사춘기 100시간』까지. 이시원 시원스쿨 대표는 영어 초보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반복과 몰입이라는 학습법을 제시해왔다. 말을 ‘하는’ 것이 영어의 목표라고 말하는 이시원 대표는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영어를 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숫자만 바꿔가면서 덧셈을 연습하고, 덧셈이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했던 것처럼 반사적으로 말이 나올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소리 내 말해보는 것. 이 방식은 어쩌면 훈련에 가까운데 이에 대해 이시원 대표는 영어란 “하나의 스킬 세트(skill set)를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어는 늘 수밖에 없다”는 그의 확신은 수많은 영어 초보들의 입이 트이는 것을 곁에서 목격한 경험 때문이다. 이시원 대표는 영어를 아무리 공부해도 늘지 않는다면 “딱 한 달 동안만” 몰입해보라고 말하며 그 몰입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영어로 곧바로 말할 수 있는지


 

책의 키워드랄까요. ‘익숙해지기’를 영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꼽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영어는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대부분 성인들은 말하기 위해서 배우죠. 말하기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고요. 하나의 기술을 내가 갖는 거예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익히는 것, 김치 담그는 법을 아는 것, 목공 기술 방법 등과 같은 거죠. 이런 기술을 배울 때, 반사적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만큼 숙련도가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에요. 숙련되지 않으면 말이 안 나오잖아요. 그 언어에 내가 얼마나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지에 따라서 긴장의 정도가 달라지는 거고요. 숙련이 될수록 고민을 덜하고 말이 나가게 돼요. 이런 이유로 영어를 반사적으로 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책에 ‘입에서 술술 나오는지 확인하기’ 부분이 있잖아요. 『시원스쿨 기초영어법』에도 ‘1초 만에 해석하기’ ‘1초 만에 영작하기’ 같은 부분을 두었고요. 그런 이유인 거죠.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요. 내가 이 말을 영어로 곧바로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게 영어 능력 테스트에서는 더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영어를 ‘공부’로 접한 사람들은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로 접근하죠. 영작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로 접근을 하는데요. 그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말로 되느냐 안 되느냐로 접근해야 합니다. 

 

마치 피아노 치는 능력처럼 말이죠.


그렇죠.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는 반주를 하기 위해서지 피아노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잖아요. 영어를 배우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소리를 내서 말하라고 하는 건가요?


네, 소리 내서 말하라는 이유도 똑같아요. 예를 들어 요가를 배우고, 테니스를 배우는데 눈으로만 배워서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것과 내가 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다르잖아요. 운동도 우리의 허리와 다리, 팔이 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죠. 물론 어떤 행동을 할 때 분석이 없는 건 없어요. 날아오는 공의 각도를 분석해서 보고 치죠. 하지만 반사적으로 하는 것이 운동이에요. 말 또한 마찬가지고요. 상대가 나한테 던지는 신호를 보고 반응하는 거고, 이것은 손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눈으로 하는 것도 아닌 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으로 소리 내서 말하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말씀 드리는 거예요.

 

보다 훈련 차원의 학습법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영어를 가르친 것은 대학교 때예요. 캐나다로 이민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과외를 했어요. 그 과외의 목표는 영어 시험을 잘 보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게 해주는 것이었죠. 학교에 가야하고, 그곳에서 살기가 불편하니까요. 과외의 목표는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고,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고요. 그때 제가 가르쳤던 분들께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데 말이 안 나온다는 얘기였어요. 거기서 고민이 시작돼 여기까지 오게 됐죠. 

 

영어 공부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였네요. 


수영에 대해 10년을 공부한 사람과 전혀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함께 수영장에 갔다고 해봐요. 누가 수영을 더 잘할까요? 똑같죠.(웃음) 수영을 직접 해봐야 하는 거잖아요. 영어를 말하려고 하면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해요. 중요한 것은 반복인데요. 우리가 덧셈을 곧바로 할 수 있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숫자만 바꿔가면서 덧셈을 꾸준히 계속해서 했기 때문이에요. 덧셈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반복했죠. 덧셈이 익숙해지면 그 다음에야 뺄셈으로 넘어가고요. 그런 방식이 영어에 그대로 적용이 되는 거예요. ‘나는 영어를 말해요’, ‘영어를 좋아해요’, ‘영어를 원해요’, ‘영어를 알아요’, ‘영어를 이해해요’와 같은 말하기를 단어를 계속 바꿔가면서 연습하는 거죠. 핵심은 영어의 구조를 자기화시키는 것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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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시간을 들이자


그래서 “100강을 듣는 것보다 10강을 10번 듣는 게 낫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고요?


정말 그래요. 아는 게 100개인데 익숙한 게 1개인 사람과 아는 게 10개인데 익숙한 게 10개인 사람이 대화를 하면 누가 더 얘기를 잘할까요? 익숙한 게 10개인 사람은 아는 게 별로 없어도 익숙한 것 10개를 다 사용할 수 있잖아요. 강의를 들으면서도 익숙하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그건 반복해야만 가능해지는 거예요.

 

구체적으로는 단어나 문법 위주의 공부가 아니라 동사 위주의 공부라는 특징이 있는데요.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점도 재미있더라고요.


우리가 단어 위주로 공부했던 이유가 있어요. 아기들이 말 배울 때 단어 카드를 놓고 ‘바나나’, ‘호랑이’, ‘원숭이’ 같은 것을 배우잖아요. 이게 모국어 습득 방식이에요. 이때 동사를 가르치진 않죠. ‘놓고 와’, ‘두고 가’를 가르치진 않잖아요. 왜냐하면 그건 아기가 자동으로 아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모국어를 공부하는 책 안에는 온통 단어만 있는 거예요.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배울 때도 영어 언어권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그들의 모국어를 배우는 방식으로 배우면 어떨까요? 동사부분이 너무 취약해져요. 그러니까 간단한 말도 하려고 보면 단어가 생각이 안 나고요. ‘종이를 찢어봐’라든가 ‘책을 펴봐’라고 할 때 ‘펼치다가 뭐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밑줄 그어봐’, ‘종이를 접어봐’라는 말에 멈칫하게 되고요. 저는 많은 분들이 명사는 대강 알면서도 동사를 너무 모르니까 동사 위주로 가자고 얘기해요.

 

완전 초보에서 익숙해지는 단계까지 단계별로 숙련되어야 하는 기술이 있을 텐데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초보 단계를 공부한다는 것은 영어의 구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해요. 왕초보를 끝낸다는 건 현재형, 과거형, 미래형을 헷갈리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것을 하는 데 있어 단어가 부족함을 느낀다면 그때는 단어를 공부해야죠. 현재형, 과거형, 미래형, 의문형, 부정형 등을 완벽하게 다 할 수 있는데 ‘벗겨봐’라는 단어를 모르면 말을 못하잖아요. 전에 출간한 『나의 영어 사춘기』가 영어의 구조를 익히게 하는 책이라면 『나의 영어 사춘기 100시간』은 부족한 단어를 채워주는 책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나의 영어 사춘기 100시간』은 표현 사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워크북도 같이 출간했어요. 역시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텐데요. 왕초보라면, 얼마나 연습을 해야 할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익숙해지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100번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10번만 해도 되기도 할 거예요. 그래서 ‘암기고래 앱’을 만들었어요. 이 어플을 처음 만들었을 때 세상에 단어를 못 외우는 사람은 없다, 주어진 단어에 투자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못 외우는 것이다, 라는 가정이 있었거든요. 피아노 한 곡을 치기 위해서 만약 2시간을 연습해야 한다고 해봐요. 그걸 15분만 연습하고는 안 된다고 돌아서면 안 되겠죠. 하지만 계속 치면 배울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단어를 외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단어가 안 외워지고, 깜빡 잊어버리는 게 아니고요. 한 단어에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않은 거예요. 한 단어에 10분 투자해야 하는 사람이 3분만 투자하고 돌아서서는 단어가 안 외워진다고 하는 셈이죠. 이 어플은 한 단어, 문장을 정한 후 몇 분 동안 반복해서 들을지 설정하게 되어 있어요. 자신의 수준에 맞게 반복해서 들을 수 있고요. 그러면 언젠가는 익숙해져요.

 

동기부여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하면 는다는 감각도 동력이 되잖아요.


영어는 진짜 단계별로 해야 해요. 단계별로 하지 않으면 진짜 공부를 많이 하고도 아무 결과가 없을 수도 있어요. 앞 단계를 확실하게 끝내고 다음 단계로 가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동안 공부한 것이 아무 소용없을 수 있죠. 몇 년을 공부해도 말이에요. 몇 년을 공부했는데 그때와 지금 영어 수준이 비슷한 분들 많을 거예요. 그 이유는 하나를 제대로 끝낸 것이 없어서 그래요. 영어를 단계별로 잘 나눠서 공부하고, 완벽하게 공부한 단계의 팽창을 경험해야 하는데요. 그렇게 하지 않은 거죠. 후루룩 보니까 내가 쓸 수 있는 게 여전히 없는 거예요. 알고 있는 단어는 만 개여도 반사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30개면 소용이 없죠.

 

영어를 아무리 공부해도 늘지 않는다는 말은 잘못된 거겠군요.


그건 전혀 의미 없는 질문이에요. 영어는 늘 수밖에 없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만 주는 영어 공부를 해서 그래요.(웃음) 영어 공부를 한다는 느낌을 주는 공부를 하면 어떻게 해요. 영어 공부를 하는 게 목표는 아니잖아요. 목표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어 영역이 팽창되는 거거든요. 그것을 키우고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해요. 영어를 공부하는데 영어가 안 된다는 것은 그 질문이 안 되고 있는 거예요. 말이 안 되죠.

 

 

몰입해서 공부하기를


측정의 문제기도 한 것 같아요. 시험을 목표로 한다면 결과가 숫자로 확인이 되잖아요. 그런데 말하기는 내가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평가의 문제기도 하죠. 그러니까 이런 책들을 보면 명확히 평가가 되는 거예요. ‘나는 걔가 그녀를 도우면 좋겠어’ 이런 표현을 영어로 해보면 되니까요. ‘나는 그녀가 샐러드를 주문했으면 좋겠어’ 같은 표현을 말로 해보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해보고 되는지 안 되는지 보면 내가 초보구나, 알 수 있겠죠.

 

학교에서의 영어 교육 목표는 회화를 가능하게 하는 데 있지 않았어요. 대표님은 학교 교육 역시 회화를 목표로 두면 누구나 말하기가 가능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학교의 목표가 한 번도 영어를 못하는 학생이 영어를 할 수 있게 만들겠다, 였던 적이 없죠. 만약 중학교 1학년 영어 교육의 목표가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던 학생이었지만 학년이 끝날 때쯤이면 영어를 이 정도는 말할 수 있는 학생으로 만들어야지, 를 목표로 삼았다면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잖아요. 그냥 주어진 교과서를 가르친 거예요. 접근이 다른데 효과가 나올 수가 없죠. 수영 선생님의 목표가 수영을 못하던 학생이 수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수영 책을 떼도록 하는 게 목표인 것은 다르잖아요. 영어 커리큘럼을 짤 때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을 대화가 되도록 만드는 걸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기가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시원스쿨 회원이 150만이에요. 대단한 숫자인데요. 우리는 왜 이렇게 영어를 공부하지만 실패할까요? 대표님은 모두가 영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모두가 영어를 해야 하는 건 아니죠. 그렇다면 모두가 덧셈을 해야 할까요? 계산기가 있는데요?(웃음) 약간 그런 거예요. 모두가 운전을 할 필요는 없죠. 또는 모두가 자전거를 탈 필요는 없어요. 모두가 영어를 해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닌데요. 하면 편해지는 부분이 있는 거죠. 이 편해지는 부분을 위해서 우리가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고요. 또 10년을 공부했는데 덧셈, 뺄셈을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 10년을 공부해놓고 기본적인 대화가 안 된다는 건 말이 된다고 할 수 없잖아요. 그건 아주 비효율적인 공부를 했다는 것뿐이지 이 자체가 너무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가 쉬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과거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영어 공부 평생하려고 하지 마라”라고 하셨거든요. 그 이유도 설명해주세요. 


가끔 “선생님 어떻게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요?”라고 물어요. 못해요. 어떻게 꾸준히 해요? 10명 중 1명이 꾸준히 할까 말까예요. 대부분은 작심삼일이죠. 내가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 건 그저 희망사항이에요.(웃음) 동기가 생겼을 때 진짜 바짝 해야죠. 사람은 내가 한 것에 대한 결과를 볼 때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 영어 공부를 몰입해서 하게 되면 결과가 더 빨리 나오겠죠. 그 결과 때문에 또 하게 되고요. 저는 그래서 몰입해서 공부하기를 권해요.

 

영어 교재를 선택할 때 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으면 그 책은 내려놓으라는 얘기도 하셨잖아요.


자기 수준을 알아야 하거든요. 내가 하는 영역부터 못하는 영역을 하나씩 늘려가는 거예요. 예문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은 앞 단계의 뭔가를 지나치고 넘어왔다는 의미고요. 곱셈과 나눗셈이 이해 안 되는 사람이 방정식을 공부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방정식을 아무리 고민해봤자 안 되잖아요. 절망만 있을 뿐이죠. 또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을 알아듣는 척만 하는 거고요. 곱셈, 나눗셈을 먼저 끝내야 해요. 자기 자신을 속이면 안 돼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단계별로 완벽하게 공부를 해야 해요. 영어는 정말 그래요.

 

대표님도 처음부터 영어를 잘하셨던 건 아니라고요? 


아니었어요. 영어를 잘하지 못한 채로 캐나다에 가게 된 건데요. 단계를 뛰어넘는 것은 젊은 나이에 영어권 나라에 푹 들어가서 살면 가능해요. 하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성인 중 그게 가능한 분이 거의 없잖아요. 또 이 방식이 효율적이기도 해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그만큼 영어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공부하시는 분들께도 시원스쿨을 끝내면 원어민 수업을 가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덧셈, 뺄셈 공부하는 어린이에게 대학교 교수님이 오셔서 가르칠 필요는 없거든요. 비용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들여서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끝내놓고 그 다음 심화해서 공부하라고 얘기하는 거고요. 시원스쿨의 역할은 고급 영어가 아니라 최소한의 비용과 최저의 시간으로 기본적인 것들을 끝내도록 해주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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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달 동안만


지금까지 얘기한 방식의 영어 학습법을 이제는 많은 곳에서 함께 하고 있잖아요. 어떠세요?


이제는 저희를 많이 벤치마킹하고 있죠. 처음 저희가 할 때는 저희뿐이었어요. 재미있어요. 진짜 작게 시작을 했는데 점점 이것이 메이저 교육 방식이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이제 경쟁자들이 많아진 셈이니까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곳에는 없는 차별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핵심은 이거예요. 영어가 안 되는 사람을 되게 만든 적이 있는 사람들이 만든 콘텐츠라는 건데요. 그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그걸 경험하지 않고 따라 하는 것은 차이가 있거든요. 제 강의를 보시면 아실 텐데요. 항상 제 앞에 사람들이 있어요. 이유가 있는데요. 그분들의 변화를 동시에 확인하면서 강의를 하기 때문이에요. 제 다음 멘트는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게 아니고요. 이분들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확인한 뒤에 안 되면 다른 단어를 넣어서 다시 해보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 거예요. 세 번, 다섯 번 시켜보고 안 되면 열 번 시켜보는 거죠. 영어를 못하시는 분들을 앞에 모시고 이분들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확인하는 거니까요. 거기에서 차이가 있다고 봐요.

 

처음 성인 대상의 특강을 맡아서 하던 시절에도 강의록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학습자의 반응을 확인했던 거죠.


저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들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정확하게 알긴 어려워요. 이건 당연히 알겠지 생각하고 넘어가기도 쉽고요. 그래서 반응을 보고 강의를 했죠. 그래서 지금도 그분들이 꼭 필요한 거고요. 왜냐하면 제가 만드는 것은 제가 강의 잘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잖아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영어 하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죠. 그 목표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변화를 제가 확인하면서 강의를 해야 하는 거예요.

 

장년층, 노년층 분들도 많이 수강을 하신다고요.


원래 영어는 50-60대가 배우는 게 아니었죠. 제가 시원스쿨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분들이 영어를 배운다는 생각도 안 했을 때였는데요. 그분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저희도 규모가 커졌어요. 어른들도 할 수 있는 영어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보고요. 반복횟수가 다를 뿐이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하면 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하시는 거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TV 출연도 하시고, 책도 꾸준히 내고 계시잖아요. 그 중 특별히 집중하고 싶은 영역이 있으세요? 


따로는 없어요. 지금 하는 대로 하고 싶어요. 진짜 영어 공부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잘 구축했으면 좋겠죠. 시원스쿨 모델도 오래됐잖아요. 동영상 강의라는 게 벌써 10년이 더 된 얘기니까요. 다음 단계가 있어야겠죠.

 

영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다짐한 초심자 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일단 『나의 영어 사춘기 100시간』을 먼저 사지 마시고요. 『시원스쿨 기초영어법』을 먼저 사세요. 그리고 그 책을 완벽하게 마스터 하세요. 그 다음에 이 책을 보세요. 그러면 좀 다르게 보일 거예요. 이 책을 처음부터 사시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이 책은 앞 단계를 끝냈다는 가정에서 시작하는 거거든요. 『시원스쿨 기초영어법』이 쉬워졌다면 그 다음에 이 책을 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요. 저를 한 번만 믿고 딱 한 달 동안 모든 쉬는 시간이나 이동 시간에 시원스쿨 강의를 외우듯이 들어보세요. 한 달 후 변화가 얼마나 되는지 보세요. 그러면 그 변화에 놀라서 꾸준히 공부하실 수 있게 될 거예요. 한 달만 이렇게 하면 영어가 안 늘 수 없어요. 장담해요.


 

 

나의 영어 사춘기 100시간 이시원 저 | 시원스쿨닷컴
일상생활과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100개의 상황, 그 상황에 맞는 실전영어들만 엄선했다. 왕초보도 할 수 있는 실전 영어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말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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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이 처한 환경은 내가 처하고 싶지 않은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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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마치고 먹먹해지는 가슴을 한참 부여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두 청년에게 따듯하게 손 내밀면서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그러니 얼른 이 시설에서 나와서 좋은 사람들, 좋은 공동체에서 자립 생활을 시작해 보자”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이 사회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15쪽)

 

만인이 만인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게 우리네 삶이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사회다. 동시에 우리는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의 제목처럼 모두 각기 다르게 존재하고, 존엄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현실에서 인간의 존엄함은 자주 무시된다. 특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딪쳐야 하는 벽은 높기만 하다.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는 김예원 장애 인권 변호사가 영화 속 장면으로 현실의 장애를 이야기한 책이다.

 

김예원 변호사는 200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12년 법무법인 태평양 ‘재단법인 동천’의 공익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장애인권법센터’(비영리 법률사무소의 대표 변호사로 활약 중이다.

 

그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즐겨 봤다. 김예원 변호사가 영화를 읽는 방식은 독특하다. 책의 첫 장면에 소개되는 작품은 <주토피아>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나무늘보가 등장하는 장면은 이야기에서 극적 긴장을 늦추고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에피소드다. 그런데 저자는 그 장면에서 장애인 노동을 떠올린다. 장애인 노동은 최저임금 대상이 아니며,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든 현실을 상기시킨다. 이와 같은 낯설게 읽는 방식으로 <애자>에서는 호칭 문제를, <시네마 천국>에서는 장애와 어우러져 지내는 공동체의 모습을, <우리들>에서는 통합 교육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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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보는가를 묻는 물음표

 

일과 육아로 바쁘신 중에 책을 냈습니다.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거창한 건 아니고, 저 일하기 편하려고요. (웃음) 제가 주로 피해자 대리를 많이 하거든요. 하면서 보니까, 법으로 해결 안 되는 억울한 점이 있어요. 그런 부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인식 개선부터 하지 않으면 어렵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저는 15세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성관계는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는 처벌하지 않아요. 이런 구멍이 있고, 이걸 메우려고 입법화하려면 사회적 인식부터 바꿔야 하거든요. 책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으로 이 사회는 장애를 어떻게 보는가 물음표를 던져보고 싶었어요.

 

글 쓰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저는 글로 변론을 하는게 직업이라 그런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법률 서면은 기한 있는 글이고, 서면 쓰는 게 제 일이라서 이 책도 그렇게 기한을 잡고 썼거든요. 다만, 고민은 했어요. 장애를 무겁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잖아요. 장애인과 손도 잡기 싫어하는 사람도 실제로 있거든요. 초등학교에서 그런 장난도 치잖아요. 급우를 괴롭힐 때 장애 학생 책상에 앉혀두고, “너 엉덩이 이제 썩는다.”라고 말해요. 이렇게 장애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야기할까, 장애를 너무 무겁게 바라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이런 고민은 했습니다.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제목이 좋습니다. 책을 낼 때 제목을 짓는 게 고민인데요. 이 제목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편집장님이 잘 지어주신 이름이고요. 이 책에 담고 싶은 메시지를 스스로 물어봤어요. 결국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더라고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할 때의 꽃이라기보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의 꽃에 가깝죠.

 

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든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든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자신이 뿌리 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
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
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 박노해,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중

 

사람 사는 게 이렇거든요. 그런데 고유한 존엄성이 획일적으로 묵살되는 장면을 많이 보죠. 여러 제목을 놓고 고민하다가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로 정하게 된 거예요. 제가 주로 하는 일이 장애다 보니 장애 이야기를 많이 담았는데, 이 책은 인간 보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환경을 바꿔야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 달라져

 

책에서 소개한 영화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지극히 주관적인 제 취향이죠. 저는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스펙트럼이 넓은데요. 누구는 <ET>를 보고 공감할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는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우선 공감이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몰입도 안 되고요. 인생이 담담하게 그려지는 이야기 좋아해요. 내가 영화 속 인물이 되어서 같이 살아가는, 그런 영화를 좋아하죠. 책에 담은 영화가 그런 영화들이고, 그 작품 속 한 장면을 보면서 생각한 사람을 추려서 썼어요.

 

고시 공부 시절 유일한 낙이 영화 보기일 만큼 영화를 좋아하셨다고 했습니다.

 

영화 보기가 유일한 낙은 아닌데요. 이 책이 영화 관련한 이야기라 그렇게 쓰긴 했는데, 운동, 악기 연주도 좋아해요. 특히 기억나는 영화는 <가족의 탄생>이라는 작품입니다. 마침 김태용 감독 GV 때, 자리 끝에 앉아서 봤던 영화이고, 그 당시 제게 되게 충격이었어요.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아도, 영화가 끝나고 나서 1주일, 2주일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어요. 이 사회가 말하는 정상가족이라는 프레임이 뭘까, 거기서 배제되어 있는 사람은 뭘까,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 영화인데요. 울림이 컸어요.
 
영화를 집중적으로 봤던 시기는 중고등학교 영화 동아리 때이고, 대학교랑 고시생일 때도 비디오 빌려서 많이 봤죠. 2차 사법시험 두 달 남겨두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가 개봉했어요. 의료보험제도를 비판한 영화로, 제가 추천하고 싶은 작품인데요. 혼자 신림동에서 코엑스까지 가서 봤던 기억도 나네요. 개봉날 상영관이 거의 없어서 거기까지 갈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징하죠. 지금은 일하느라 시간이 없는데 장거리 출장 갈 때, 스트리밍 서비스로 찍어뒀던 영화를 보곤 하죠.

 

“왜 장애인은 ‘아프니까 도와줘야 하는’ 존재로 취급될까요? 장애 당사자인 제가 보기에, 장애는 아픈 것도 아니고,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57쪽)라는 문장이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태도를 꼬집은 것 같습니다.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기까지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툭하면 “극복했다”고 하는데 뭘 극복했는지 전 잘 모르겠거든요. 며칠 전에 딸과 길을 걷는데 지하철 역 입구에 항상 구걸하시는 장애인을 만났어요. 다리가 없어서 판대기에 바퀴를 달아서 배밀이로 밀고 다니세요. 제 딸에게 돈을 주어 자주 딸이 넣고 오곤 했는데, 딸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엄마, 나는 세상에 장애인이 한 명도 없었으면 좋겠어.”라고요. 그래서 제가 “왜? 엄마도 장애인인데? 그러면 엄마도 없어져야 해?”라고 했더니, “그게 아니고 너무 가엽다”는 거예요. 왜 가엽냐고 하니까, 이렇게 말해요. 늘 구걸하지 않냐고. 딸이 7살인데요. 이게 정답인 거죠. 이 사회의 장애인이 처한 환경이 내가 처하고 싶지 않은 환경인 거예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거죠. 장애인이 장애가 있어도 직장생활 하고 소박하지만 취미 생활 하고 살면, 그 사람에게 불쌍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 생각해요. 훨씬 열악하게 사는 걸 많이 보니까, 으레 불쌍하구나, 나라가 돈 안 주면 굶어 죽겠다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딸의 대답이 우문현답이었구나 싶더라고요.

 

영화 「애자」에서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호칭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일단 지금은 ‘장애인’을 중립적인 용어로 쓰고 있고요. 전세계적으로는 persons with disability가 공식적인 표현입니다. 여기까지 나아가는 데도 오래 걸렸어요. 이전에는 handicapped, disabled person이었죠. 여기서 persons가 앞으로 나온 거예요. 완전한 사람이고, 장애가 있을 뿐이라는 의미죠. 어떤 호칭이 가장 맞을지는 저 자신도 고민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장애우’ 나 ‘장애자’라고 말하는 거 같아요. 장애자가 10년 동안 법률 용어이기도 했고요. 또 ‘좀 불편한 사람’, ‘아픈 사람’이라고 완곡하게 돌려 말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청각 장애인’ ‘시각 장애인’ 이렇게 중립적으로 사용했으면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장애 관련한 혐오 표현이 보입니다. 안타까우시겠어요.

 

안타까움을 넘어서 그건 처벌해야 한다 생각하고요. 혐오 표현, 혐오 범죄에 대해서 어떻게 국가적 차원에서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잖아요. 요즘은 특히 BJ가 일부러 혐오하는 장면을 만들죠. 인기 끌려고 장애인인 척 하면서 극장 가서 할인 받고 “너희는 할인 받아 좋겠다.” 인증샷 올리는 이런 모습들. 굉장히 분노스럽죠. 지금은 법 테두리 안에서 그걸 강제할 만한 게 딱히 없어서 안타까운 1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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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교육, 탈시설에 관해 고민해야

 

영화 「우리들」을 이야기하며, 통합교육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지금 마침 학기 초인데요. 피해 사례를 참 많이 들어요. 이 나라는 물리적 통합만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같아요. 휠체어 타는 장애인인데, 집 근처 초등학교 3~4개 중에서 편도로만 30분 걸리는 곳에 배정합니다. 가보면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교실은 4층이에요. 어떻게 다니라는 말이에요? 학교 다니지 말라는 말이거든요. 이건 말이 안 되잖아요. 담당자에게 따지면 “죄송한데 다니세요.” 이런 식이에요. 이런 것 때문에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도입된 거거든요. 위자료 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차별을 시정하려고 차별금지법이 도입된 것이죠.

 

개개인은 존엄한 사람입니다. 그 상태로 학교 가면 어떤 취급을 당할까요. 물리적 통합만 해버리고 나머진 이 사람이 감내해야 하나요? 분노스럽죠. 아이들 감수성이 예민하거든요. 일단 나보다 다른 건 정확히 파악해요. 어른들처럼 세련되게 표현하지 않고, 대놓고 표현해요. 그걸 다 느끼고 받아들이거든요.

 

그렇게 통합교육을 하고, 나이가 들면 시설로 갑니다. 일부 선진국은 탈시설을 했고, 한국도 탈시설 논의가 있죠?

 

이번 정부의 대표 공약 사항이기도 한데요. 저는 탈시설이라는 말이 빨리 없어지면 좋겠어요. ‘탈시설이 무슨 뜻이에요?’ 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거든요. 어디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묻게 되는데요. 지금은 할 수 있는 사람부터 하려고 하니까, 정량 평가 하느라 돈 쓰고 시간 다 보내고 있죠. 저는 오히려 중증장애인에 맞춰 탈시설 정책을 하면 경증은 자연히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중증 경증 나누고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에 들이는 비용으로 차라리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서 지역사회와 같이 살게 하면 좋겠어요.

 

‘저 사람이 괴물이 아니고 사람이구나.’를 내 삶에서 느껴야 진정한 탈시설이 되는데, 지금은 경증장애인 위주로 선별될 수밖에 없어요. 늘 대기 인원이 정원보다 5배, 6배니까 사실상 중증이면 못 들어가죠. 서비스 제공자가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합당한 사람을 골라요. 말 통하고, 문제 행동 안 일으킬 것 같고, 그런 사람만 뽑아요. 이렇게 되면, 중증이면 못 가는 거죠. 그러면 이 사람은 오로지 집에 있다가 가족들이 돌봄으로 지치고. 결국 시설로 보내지기도 해요. 깨작깨작 될 만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중증부터 탈시설 해보면 어떨까요? 영화 <시네마 천국>에도 나오듯, 우리도 1970~1980년대만 해도 공동체에서 함께 어울려 살았거든요.

 

보통 책에는 들어가는 말, 나가는 말이 있는데요. 이 책에는 나가는 말, 그러니까 끝내는 말이 없었어요.

 

나가는 말, 결론, 맺는 말, 이런 걸 쓰면 논의를 끝내는 기분이잖아요. 저는 이 담론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문만 연 거고, 많은 독자가 이 책을 보고 자신의 생각은 어떤지 들여다 보면 좋겠어요. 제 생각과 달라도,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겠고요. 소통하면 좋겠다 싶어서 마지막에는 마무리 글이 아니라 장애인권법센터가 뭐하는 곳인지를 썼어요. 또, 제가 대단한 작가가 아니라 앞에도 쓰고, 뒤에도 쓰고 하면 오글거리잖아요. (웃음)

 

2018년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어른이 되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등  장애 관련한 책이 나왔고, 많은 독자가 찾았습니다. 출판계 불황 속에서도 이 주제와 관련한 책의 힘이 센 것 같은데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어른이 되면』  그 두 권은 저도 여러 번 읽었어요. 애독자이고요. 소수자를 향한 관심이 많아지는 새로운 사상적 흐름이 있는 거 같아요. 물론 반대편에서는 ‘나만 살 거야, 나 건들지 마!’ 이런 태도도 있는 것 같지만요. 김원영 변호사는 당사자가 겪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을 논문처럼 책을 썼고, 장혜영 PD도 워낙 달변에다 글도 잘 쓰니까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고, 두 책의 힘이 있죠. 저는 빨려 들어가듯 읽었어요. 제가 쓴 책은,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새로운 흐름이라고 평하셨는데요. 얼마 전 인터뷰에서 공익 변호사가 늘어날 거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이제 변호사는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하기 어려운 직업이에요. 너무 힘든 직업이고요. 남의 인생에 참여하기 좋아하고, 사회적 유익을 위해 제도를 바꾸고 싶고, 이런 걸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좋은 직업이에요. 그래서 저는 늘 이쪽 일이 블루오션이라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비웃어요. 진입자가 없는 블루오션이 어딨냐고요. 하지만 공익 변호사가 블루오션이라는 건 제 신념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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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예원 변호사 제공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재밌게 담고파

 

법조인이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게가 한쪽 눈이 없잖아요. 태어날 때 의료사고가 있었고, 2차 의료사고까지 겹치면서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생겼다는 걸 중학교에서야 알았어요. 이미 10년 넘어서,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억울했어요. 어릴 때 놀림 심하게 당했죠. 개눈깔, 소머즈… 소머즈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엄청 힘세고 날아다니는 인조인간인데, 저 보고 인조인간이라고 놀린 거죠. 원망 많이 하다가 어렸을 때는 주로 많이 때리고 다녔고, 철 들고는 이런 피해가 생기면 안 된다, 이런 억울한 일은 사회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법조인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법은 가진 자의 편이라는 인식도 있잖아요. 반면 변호사님은 최소 수혜자의 최대 행복을 위해 일하시는데요.

 

최소수혜자의 행복이라…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제가 행복하려고 하는 거예요. 거대 로펌이나 딱딱한 조직문화 분위기에서 일하면 제 성격과 안 맞아 별로 안 행복할 거 같아요.

 

1회 곽정숙 인권상 등 여러 상을 받으시기도 했잖아요.

 

민망해 죽겠어요. (웃음)

 

장애 인권 전문 변호사로서 다둥이 어머니로서, 많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을 겪으실 듯하고요. 사람이라면 짜증나고 힘들 때도 있지 않나요.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푸시나요.

 

저요? 그냥 그때 그때 시끄럽게 하는데요.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면 모른 척 지나가기 보다는 그냥 이야기해요. 얼마 전, 지하철 역에서 어떤 휠체어 탄 여성을 할아버지가 졸졸 쫓아다니면서 치근덕대더라구요. 여성이 불쾌해 하는데 해꼬지 당할까 봐 말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에요. 그래서 가서 “뭐하시는 거냐?”고 따졌어요. 책에도 쓴 수영장 이야기도, 제 오지랖이죠. 이렇게 하니까 쌓인 스트레스는 적어요. 제가 목소리가 크고 강세가 강한데요. 처음 보는 사람은 제가 싸우는 걸로 잘못 아실 때도 있어요. 기분 좋게 말하고 있는데도요. (웃음)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졸릴 때가 있어요. 아직 막내가 어려서 날밤 새울 때도 간혹 있고 하는데, 이건 차차 괜찮아지겠죠.

 

이번 책은 인권에 관해서였는데, 변호사님의 다른 정체성이 다둥이 워킹맘이잖아요. 이쪽 이야기도 쓸 내용이 많을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쓰고 싶어요. 우선은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책 상황을 보고요. (웃음). 저희 부부가 재밌게 살려고 많이 노력해요. 집에 TV가 없는데, 애들이 지겨워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없어도 그냥 변신하고 춤 춘다든지 하면서 재밌게 노는데요. 모든 게 놀이가 될 수 있어요. 육아도 놀이가 될 수 있고, 집안일도 그렇죠. 좀 조심스런 말이지만, 집안일도 어차피 해야 한다 싶으면 운동처럼 하거든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이런 걸 책에 담으면 ‘말이 되냐, 너무 피곤하다.’ 이런 반응이 있을 수도 있고, 신선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워킹맘의 비애와는 살짝 비껴 있죠. 저는 자영업잖아요. 워킹맘에 비견되는 게 송구스러움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물론 제가 자영업자니까 밤에도 일하고 주말 없이 일하긴 하지만, 낮시간에 애들의 긴요한 요구를 채우는 시간적 여건은 되거든요. 근무시간에 아이들과 철저히 차단되어 있는 워킹맘과는 약간 수월한 면이 있겠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걸 재밌게 담아서 여러 사람에게 힐링이 되는 책을 쓰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김예원 저 | 이후
대놓고 분리하거나 차별하지는 못한다 해도 보이지 않는 구분은 수도 없이 많다. 그것을 인지하고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이 이 사회를 정상 사회로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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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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