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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복 “확인 구매와 발견 구매가 가능한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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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책방 관계자가 쓴 책은 이래야 한다.”

 

일본의 서점인 ‘야마시타 겐지’가 쓴  『서점의 일생』의 카피다. 책 파는 일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을 담은 이 책은 일본의 유명한 서점 가케쇼보(벼랑 책방)를 11년간 운영하면서 펼쳐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번역자 김승복은 일본의 ‘쿠온 출판사’ 대표이자 2015년부터 진보초에서 한국어 책을 파는 북카페 ‘책거리’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인. 한국 독자들이 꾸준히 일본 책방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고  『서점의 일생』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본 교토 여행에서 빼놓지 않고 들렀던 ‘가케쇼보’는 현재 근처로 이동해 ‘책과 잡화와 음악이 있는 선물가게’ 호호호좌로 변신했다. 야마시타 겐지는 이 곳에서 책도 팔고 선물도 판다. 서점인이 쓴 에세이가 줄지어 출간되고 있는 지금,  『서점의 일생』은 왜 특별할까? 번역자 김승복은 “책에 대한, 책을 파는 일을 철저하게 몸으로 체득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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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은 책

 

‘역자 후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서점의 일생』을 직접 번역한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간단히 말해 정말 좋은 책이라서요. 서점을 운영하는 일을 너무 고상하게만 표현한 책이 많은데 『서점의 일생』 굉장히 솔직하게 쓴 책입니다. 실패담도 많고요. 진짜 서점 이야기라고 할까요? 한국에도 동네서점이 많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일본의 서점, 북카페는 어떤지를 궁금해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일본에서는 『가케쇼보의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나와서 이미 인기가 있었던 책인데, 『서점의 일생』 이라는 탁월한 제목을 출판사 대표님이 제안해주셨죠. 한국 독자를 만나게 돼서 참 기뻐요.

 

‘가케쇼보’는 일본에서 서점을 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롤 모델과 같은 공간이었다고요.


책 좀 판다는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서점이었죠. 가케쇼보에서는 늘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어요. 공간이란 책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면, 어떤 지면에 특집을 꾸미는 편집장일 수 있는데요. 야마시타 씨의 특집 페이지는 언제나 새로웠어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빅 아티스트가 출몰하는 곳이기도 했고요.

 

일본 출판 서점 전문 저널리스트인 ‘이시바시 다케후미’ 씨는 “  『서점의 일생』이 세련된 점은 책방의 애수, 괴로움이 가득하면서도 그런 감정에 짓눌리지 않고 책방으로서 살아남는 부분에 있다(23쪽)”고 말했어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지질한 이야기일 수 있고 실패담이 더 많지만 저는  『서점의 일생』을 읽고 위로와 격려를 가장 많이 받았어요. 책방을 잘 운영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통스러울 때 가장 큰 위로는 그 고통을 먼저 겪은 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잖아요. 분명 한국의 많은 책방지기들에게 힘이 될 책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가케쇼보’를 ‘셀렉트숍’이라고 불렀지만 야마시타 겐지 씨는 ‘궁극의 보통 책방’으로 여겼다고요.


한국의 책방도 그렇겠지만 일본의 많은 책방도 콘셉트를 갖고 있어요. 책방지기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죠. 야마시타 씨도 책방 개업 초기에는 자신이 재밌다고 생각한 책들을 마구잡이로 구비했다고 말해요. 하지만 ‘좁고 깊게’라는 광적인 상품 선별로는 인터넷에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죠. 야마시타 씨는 “가케쇼보에 놓인 책들은 나의 취향이 기준이 아니라 고객들의 취향”이라고 분명히 말해요. 그래서 작품보다 상품으로써 종합적인 균형이 맞는 책을 선별했죠.

 

책방지기 후배로서 야마시타 겐지 씨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요?


책에 대해 늘 생각하는 모습을 배웠죠. 야마시타 씨가 ‘확인 구매와 발견 구매’라는 멋진 말을 하잖아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사러 왔다가 그 옆에 놓인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발견해서 사게 되는 일 같은. 책방이라면 잘 팔리는 책을 많이 가져다 놓는 게 기본이지만, 무조건 팔리는 책만 갖다 놓아서는 안 돼요. 책방의 정체성을 알려주기 위한 책도 비치되어 있어야죠. 야마시타 씨가 이런 말을 해요. “안 팔려도 속상한 것만은 아니다.” 못 팔아도 안달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죠.

 

일본의 수많은 서점을 돌아보셨을 텐데요. 잘되는 서점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음식 맛이 좋아야 식당이 잘되는 것처럼, 서점도 마찬가지예요. 상품력이 가장 중요하죠. 그 다음에는 친절해야죠. 또 하나, 책을 파는 사람이 그 책에 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손님이 질문할 때 대답을 잘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일본의 많은 독자들도 SNS를 통해서 책을 접해요. 젊은 층은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지만 일본은 아직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출판사와 북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장점

 

어렸을 때 책벌레셨을 것 같아요.


한강 작가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보면, 책을 너무 좋아해서 낮부터 밤까지 읽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제가 딱 그랬어요. 책을 읽고 있으면 누가 집에 들어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14살 때는 계림문고에서 나오는 책을 그렇게 열심히 봤어요. 시리즈로 나오는 책을 기다리는 맛에 살았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일본 니혼대학 예술학부 문예과를 졸업한 후 일본 광고회사에서 일하셨어요. 출판사는 어떻게 열게 되셨나요?


광고회사를 나와서 웹 에이전시를 차렸는데, 2007년 세계 금융 위기가 오면서 사업이 어려워졌어요. 직원들에게 3개월 임금을 주고 사업을 접었죠. 그리고 출판사를 차린 거예요. 외부 요인에 의해서 흔들리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어요. 쿠온에서 처음 출간한 책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예요. 반응이 좋았고 2016년에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지금까지 1만 부 정도 팔렸어요. 또 2022년까지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박경리의 『토지』 20권을 번역할 계획이에요. 현재는 8권까지 나왔는데요. 7년에 걸쳐 완성할 생각입니다.

 

한국과 일본 출판사들을 오가며 중개 역할도 하신다고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일본에 소개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을 한국 출판사에 연결하기도 해요. 일본에서 한국 문학 시장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올해 목표는 도쿄에서 ‘코리안 북 페스티벌’을 여는 거예요. 일본 출판사가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2015년부터 진보초에서 한국어 책을 파는 북카페 ‘책거리’를 운영하고 계세요.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들이 주로 오나요?


아무래도 한국에 관심이 많은 일본어권 독자들이 와요. 한국어 책만 파는 건 아니에요.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일본어 책도 있어요. 또 저희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도 팔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에세이, 그림책을 즐겨 읽는 분도 많이 오세요.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한국어 책은 무엇인가요?


소설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가 많이 팔렸어요. 작년에만 500권 정도 팔린 것 같아요. 또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일본어판도 인기가 많았어요. 박성우 시인의 『아홉 살 마음 사전』도 반응이 좋고요. 한국어 학습자들이 많이 사는 책 중 하나예요. 그림책 코너도 인기가 많은데요. 안녕달 작가의  『수박 수영장』 , 신선미 작가의  『한밤중 개미 요정』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어요.

 

북카페에서 하루가 멀게 행사를 여신다고요.


1년에 120번 정도 행사를 해요. 3일에 1번 꼴로 하는 셈이죠. 특히 번역에 관한 행사가 인기가 많아요. 저자를 부르긴 어려우니까 책을 번역한 사람을 자주 초대하죠. ‘책거리’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문을 열어요. 요일별로 점장이 있는데요.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세요. 저는 한국뿐 만이 아니라 런던, 타이완 등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서점을 자주 들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책을 파는 일에 열심이지 않은 것 같아요. 손님에게 말도 안 걸고 매대만 정리하고 있어요. 우리는 손님이 오면 손님에게만 집중하려고 해요. 말을 걸지 않는 걸 좋아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말을 걸면 좋아하세요.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다 보면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곤 하죠. 또 ‘책거리’는 일주일에 두 번, 웹진을 발행해요. 점장들의 추천 도서를 소개하죠. 온라인 홍보도 열심히 합니다.

 

일본 서점 투어를 하는 한국 여행객들이 자주 찾아오나요?


네. ‘책거리’는 그렇게 큰 공간이 아닌데도 한국 분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작년에는 방송인 김소영 씨가 남편 오상진 씨와 방문해서 저희 직원이 깜짝 놀랐죠. 김소영 씨의  『진작할 걸 그랬어』 에 저희 북카페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일본에도 책을 보내주셔서 읽었는데 재밌게 보았어요. 저도 정말 북카페를 진작할 걸 그랬어요. (웃음)

 

서점을 너무 하고 싶지만 여력이 안 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선 왜 안 되는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여력이 시간인지 돈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고요. 얼마나 시도를 했는가?도 생각해야죠. 만약에 정말 시도를 다 해봤는데도 어렵다면 그만둬야겠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시도했느냐?예요.

 

서점인으로 잘 버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인데요. 어쩌면 이건 전 인류의 질문이지 않을까요? 어떤 일이든 똑같은 것 같아요. 서점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버텨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버틴다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면 잘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걸려도 열정을 쏟아보는 거예요. 물론 그래도 안된다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분들께는 “정말 많은 시도를 해보셨냐”고 묻고 싶어요. 문제는 전략적 고민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어요. 서점에 책만 있다고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길 바라면 안돼요. 저희가 이벤트를 자주 연다고 했잖아요. 왜 하겠어요.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책을 팔기 위해서죠. 책을 늘 같은 곳에 놓지 말고 위치를 바꿔줄 필요가 있어요. 책도 눈길과 손길을 주면 다 반응해요. 주인을 찾아가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가이코 다케시의 작품을 좋아해요. 이분의 책을 읽으면서 번역하고 싶어요. 지금은 일단 밥벌이를 위한 노동을 해야 하니까요. 이 노동이 끝나면 좋아하는 작품을 마음껏 읽으면서 살고 싶어요.

 


 

 

서점의 일생야마시타 겐지 저 | 유유
현실의 책방은 여전히 어렵고 불합리하기 그지없지만 책방의 존재 의미와 재미를 아는 책방지기들은 꿋꿋하게 책방에서의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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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테라오 겐 “좋아하는 것을 속이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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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는 데도, 형편은 자꾸 뒤처지는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때는 불량한 폭주족이었고, 장래희망을 묻는 설문지에 반발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대학 등록금으로 쓰였어야 마땅한 어머니의 사망 보험금을 경비 삼아 무작정 에스파냐로 여행을 떠났다. 1년 뒤, 일본으로 돌아와 록밴드를 결성했으나 몇 번의 부침을 겪고 뮤지션의 길을 접었다. 그 후 파칭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던 청년 테라오 겐은, 서른 살에 가전제품 회사 ‘발뮤다’를 창업했다. 디자인이나 경영, 전자기술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단지 ‘내가 창조한 것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테라오 겐의 첫 에세이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는 일반적인 성공의 공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 꿈을 이룬 그의 인생이 집약된 책이다. 테라오 겐은 말한다. “나의 오늘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고민 없이 해왔던 결과”라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잘 사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걸까. 발뮤다라는 증거가 자리한 그의 삶에 여전히 의심을 품은 채 여러 질문을 던졌다. 모든 일을 ‘0에서 시작’하는 그에게도, 분명 새로운 선택 앞에 따라오는 걱정과 머뭇거림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테라오 겐의 대답은 계속 예상을 빗나갔다.

 

꿈이 끝났다는 건 가능성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가능성을 잃을 수 없으니까. 꿈은 그것의 주인이 열정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끝을 맞이한다.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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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삶의 태도


한국에서 책을 출간한 소감이 어떤가.

 

기쁘다. 발뮤다의 제품들이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 책을 통해 발뮤다라는 회사가 어떻게 설립됐고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더 많은 한국 분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표지의 반짝이는 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앞서 일본에서 출간된 도서에도 큰 별이 디자인돼 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인가?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그저 내가 별을 좋아할 뿐이다.(웃음)

 

직접 에세이를 쓴 것은 처음이다. 책을 쓰는 경험이 어땠나.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책 한 권을 완성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반 정도 쓸 때까지는 나의 문장 스타일과 리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써내려갔던 것 같다. 생전 처음 해보는 낯선 경험이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일본은 지금 청년들이 힘과 의욕을 잃은 시대다.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책을 썼다. 다수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성공의 비법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글 솜씨에 놀랐다는 독자들이 많다. 어린 시절에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꿈이었다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께서 헤밍웨이의 책을 소개해주셨다. 부모님 덕분에 줄곧 소설이나 문장과 친하게 지내며 성장한 편이다. 스스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초등학교 무렵일 거다. 나는 문장을 쓰고, 공작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 늘 무언가를 만들며 살아온 사람인데, 그중 가장 고도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 역시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부모님께 큰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것 같다. 부모님의 어떤 교육관이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자유롭게 살아라”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항상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보통의 부모에게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내가 대신 젊은 친구들에게 자유롭게 살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대신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다. 그 사건을 통해 인생에는 끝이 있다는 걸 배웠고, 이것은 지금까지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만날 수가 없다. 죽음은 하고 싶은 말과 해주고 싶은 일, 그 모든 것을 무용하게 만든다.
-p. 62

 

지금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언젠가 끝이 난다. 인생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수년 뒤의 멋진 날을 그리거나 장래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이야말로 인생의 축제날이다. 다시 말해 지금이 내 인생의 절정인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든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 p.80

 

 

멋진 인생을 개발할 수만 있다면


발뮤다에는 늘 ‘혁신,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품질이 뛰어나고 디자인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특정한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선풍기 ‘그린팬’은 어린 시절에 느꼈던 산들바람을, 토스트기 ‘더 토스터’는 여행지에서 먹었던 촉촉한 빵 맛을 재현했다. 이렇게 제품 개발에 있어 체험을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물건이 넘쳐난다. 이미 어떤 물건을 가진 사람에게 또 다시 그 물건을 팔고 있는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사람들은 단순히 비슷한 물건이 자꾸 많아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팔 것인가. 더욱 즐거운 체험을 제공하지 않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구현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릴만한 체험을 발견했다. 바로 ‘멋진 인생’이다.

 

듣기만 해도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웃음) 


나도 정말 사고 싶다! 멋진 인생을 개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 세계의 사업가들이 옷을 만들고, 시계를 만들고, 화장품을 만드는 거겠지. 사람마다 인생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인생은 체험의 축적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체험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 체험들 하나하나의 질이 좋아져야, 그것들이 모인 총체적 인생의 모습이 더욱 훌륭해진다. 사업가가 해야 할 일은 그 체험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나 또한 이를 위해 일하고 있다. 발뮤다는 가전이라는 상품을 통해 고객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최종 목표다. 따라서 제품 개발에 있어 체험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자연스레 디자인도 아름다워야 한다. 디자인 또한 체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체험이라도, ‘팔리는 아이템’이 되는 건 다른 문제다.


나는 제품을 판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개발할 때 생각한 것은 딱 두 가지였다. ‘그 제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상황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인가.’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기술 개발에 돌입한다. 토스트기를 예로 들면, 발뮤다는 좋은 토스트기를 소비자에게 제안하지 않는다. 다만 맛있게 빵 굽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게 토스트기라는 제품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좋은 체험을 제공하면 고객의 만족도는 커진다.

 

발뮤다는 아이덴티티가 확고한 회사다. 창업 당시에는 혼자였지만, 현재는 직원이 100여 명에 달하는데 자신의 철학을 직원들과 어떻게 공유하고 소통하는지 궁금하다.


최대한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다 사고방식을 발뮤다스럽게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강 건너편에 좋아하는 사람이 살고 있어서 내가 강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배를 만들어서 갈지, 다리를 건설할지, 수영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배는 침몰할 수 있고, 다리는 무너질 수 있고,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질 수 있다. 모든 방법에는 위험이 따른다. 어쨌든 발뮤다스러운 생각은 어떤 방법을 쓰던, 강을 건너가 그 사람과 만나서 결혼을 한 뒤 다시는 강을 건너지 않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발뮤다가 추구하는 목표는 과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과제 자체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항상 사원들에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목적은 과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행복해지는 것이다”라고.

 

행복하기 위해서, 혹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지키는 습관이 있나.


습관은 없다. 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씩 반드시 복싱을 한다. 물건을 개발하는 건, 머리를 사용하는 일인데 몸과 머리는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몸이 건강해야 생각도 건강할 수 있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최대한 좋은 음식을 먹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해서 피로를 풀고, 정말 피곤한 날은 꼭 깊이 잠들기 위해 노력한다.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건강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일상을 잘 챙겨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진 않다. 오히려 나는 대충 사는 편이다.(웃음) 하지만 최대한 즐겁게 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복싱을 시작한 것도 단지 이 운동이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깅은 재미가 없고, 런닝머신을 뛰는 건 지루하다. 난 팀플레이도 싫어한다. 그러니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복싱뿐이었다.

 

「매거진 B」와 나눈 인터뷰에서 “안정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안정한 상황일수록 일이 잘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편인가.


안정이라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오는 환각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는 게 안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러한 안정은 하루아침에도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불안정하다. 물리적으로 안정은 에너지가 이동하지 않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이에 비유한다면 안정은 곧 죽음이다. 사실 우리는 그 안정으로 가기 싫어서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정은 내 삶과 결코 헤어질 수 없다.

 

안심이 되는 말이다. 


다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을 살면서 안정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안정을 원하는 것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을 계속 갖겠다고 하는 아이의 투정이나 마찬가지다. 오늘과 내일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설사 오늘 갑자기 그렇게 원하던 안정적인 삶을 갖게 되었다 치자. 그 사람은 아마 내일이 또 불안할 거다. 그럼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계속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삶에 안정은 없다는 걸 인정하고 지금을 최대한 즐기며 나답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본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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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


고등학교 2학년 때, ‘희망직업’을 묻는 질문지에 반발해 학교를 자퇴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희망 직업란에 답을 쓰는 것은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미래를 설계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도 어떻게 보면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너 언제까지 학교 다닐 거냐”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웃음)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 듣고 자랐기 때문에 사실 자퇴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남다른 부모님 아래서 자랐는데, 아버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녀 교육 철학이 궁금하다.


내가 부모님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건 어떤 말이나 가르침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삶의 모습을 통해 깨달은 것이 가장 많다. 나와 내 아이들은 성장하는 시대도 다르고, 가정의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내가 부모님께 받은 교육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수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기보다, 지금처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추진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려 한다. 그 뒷모습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퇴부터 1년간의 여행, 록밴드 활동, 창업까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고민 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그 용기의 원천은 어디에 있나.


용기는 필요하지 않다. 하루아침에 음악을 관두고 갑자기 가전제품을 만드는 세계에 뛰어들었던 결단을 돌아보면, 분명 용기와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오히려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아닐까.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실현되지 않는 상황을 걱정해본 적은 있지만,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해본 적은 없다. 단지 꿈이 실현되지 않는 게 너무 싫어서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마음대로 살고 싶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련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그걸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잘 살 수 있다.

 

그럼 지금의 성공은, 그저 하고 싶은 일들을 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타인에게 추천을 받아서 시작했거나, 하기 싫은데 억지로 했던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직업의 종류를 떠나, 일하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태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나는 모든 직업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사원들에게도 자주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냐”고 물어본다. 가족을 위해, 동료를 위해, 회사를 위해 등 답은 여러 가지가 나온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고객’을 위해 일한다. 사실 나는 ‘샐러리맨’이라는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다. 일본에서 샐러리맨은 법적으로 굉장히 탄탄한 보호를 받고 있고, 어떤 일을 하는 대가로 똑같은 양의 보수를 매달 받는 이들을 뜻한다. 그건 프로패셔널이라는 소리인데, 프로가 샐러리맨이 된다는 것이 개념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어느 자리에서건 최대한 프로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하는 건 가능할 것이다. 프로와 프로가 아닌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나를 위해 일하느냐’, ‘상대를 위해 일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록밴드 시절, 소속사에 의해 음악 스타일을 바꾸고 난 뒤 결국 밴드 활동을 그만두게 되면서 ‘예술가라면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절대 속여서는 안 된다.(159쪽)’고 했다. 발뮤다의 현재는 이 깨달음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진다.


발뮤다를 포함해 내 인생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 중 하나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있어서 자신을 속이지 말자’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있어 흔들렸던 경험은 록밴드 당시 앨범을 만들다가 접었던 것 외에는 없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공감을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걸 이루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상대방에 대해 철저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고민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속이지 않고 살기 위해 나는 매일 고객에 대해 생각한다.

 

한국은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나. 


자기 자신을 믿고 창업하라.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실패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리고 부모님께 폐를 끼치자. 부모는 그러기 위해 있는 존재다.(웃음) 최근 한국에 자주 오면서 ‘취업난’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많이 듣는데, 무척 안타깝다. 이 책은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그 안에서도 청년들이 주목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발뮤다는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제품의 퀄리티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건 나, ‘테라오 겐’ 한 사람이 만든 회사다. 그는 17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무작정 에스파냐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록 밴드 활동을 하다가 망했다.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가전제품에 대한 전문 지식은 전무했다. 심지어 어딘가에 취직을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 발뮤다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에 간다는 것, 취직을 한다는 것이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나답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저자가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었다면, 어떤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나.


되도록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 혹은 아직 열일곱 살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성공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내 꿈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다.(291쪽)’라고 했다.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가.


사실 나도 그 꿈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 최대의 꿈을 현재 이뤘나?’라고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발뮤다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상도 못할 만큼 흥분되는 꿈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발뮤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운 꿈이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

 

그런 꿈이 나타나면 당장 발뮤다를 접을 수 있나.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것도 고민 없이 당장에 접을 것이다. 하지만 발뮤다는 내가 만든 무언가로 세상과 교감하고 사회에 깊이 관여하고 싶다는 큰 꿈을 이루게 해준 회사이기 때문에 이 이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 60대까지는 발뮤다라는 꿈으로 최대한 인생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통역 : 남미혜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테라오 겐 저 | arte(아르테)
인생은 짧다고. 지금이 우리 인생의 절정이라고.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든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오늘부터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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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창진 “적극적인 가담자가 될 필요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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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뉴욕 공항에서 비행기를 회항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마카다미아 봉지를 뜯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공기를 유턴해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현아 전 부사장을 비롯해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 조양호 회장, 이명희 등 대한항공에 뿌리 깊게 남아있던 조 씨 재벌가의 갑질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벼락같지만 예견된 일이었다. 하인리히 법칙처럼, 시스템의 재난은 수백 번의 징후와 수십 차례의 작은 사고 이후 일어난다. 박창진 전 사무장이 차가운 공항에 혼자 내려 회사로부터 허위 진술을 강요받고 사무장에서 평사원으로 강등되기까지, 사건 이후에도 징후들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몇 년이 지나고 2019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갑질 뉴스는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 징후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땅콩 회항’이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다.


박창진 전 사무장은 그에게 일어난 재난을 딛고 현재 대한항공 내 직원연대 노조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회항을 뜻하는  『플라이 백』에는 다시 예전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의지와, 그가 속한 대한항공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으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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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낼 수 있는 계기


책을 좋아한다고요.

 

책은 항상 저에게 좋은 친구였어요. 어렸을 때 아버님이 멀리 나가계시고 어머님도 가게를 하셔서 집에 외톨이처럼 있을 때가 많았죠. 승무원이 되고 보니 이 직업 또한 항상 원래 주거지와 다른 곳으로 방랑해야 하는 일이어서 외로움을 안고 가야 하더라고요. 책은 제 외로움을 같이 해주는 동반자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스스로 배우지 않으면 모를 일이 정말 많았어요. 아랍에 가면 왜 차도르를 쓰는지, 인도가 어떻게 독립했는지 알지 못하면 그 고객들의 성향에 맞는 서비스를 줄 수 없으니까요. 책을 좋아하는 데는 직업적 충성도의 이유도 있었을 거예요.

 

책을 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것과 저자가 되는 건 다른 이야기니까요.


『플라이백』 은 일종의 에세이고, 제 이야기를 풀어서 쓰다 보니 소감이 남다르긴 했어요. 감정의 기복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죠. 제 이야기가 또 극명하게 드라마틱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유일했던 난항을 겪은 사람일 텐데(웃음) 그 이야기를 다시 생각할 때 오는 괴로움이나 공황증세가 분명 있었어요. 쓰고 교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제3자 입장에서 사건을 되돌아보는 일종의 치유가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분명 겪었던 일이고 현실에 존재하는 일이었으니 치워야 한다는 기분도 들었고요. 제게는 속살을 드러내는 두려움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용기 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잖아요.


집필은 어느 정도 걸렸나요?


한 6개월 쓴 것 같아요. 당시 직원연대 노조를 갓 만들고 회사로부터 공격을 받던 입장이라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조현아 전 부사장의 복귀 뉴스와 종양이 생겼다는 뉴스가 동시에 나온 적이 있어요. 이번에도 공교롭게 조현아 전 부사장이 뉴스에 오르내릴 동안 출간이 겹쳤고요. 무슨 운명일까 싶어요.


숙명 같아요. 사건 이후 성당에서 묵상하면서 왜 저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어요. 물론 그런 과정에서 제 잘못이 아니었다는 명제도 찾았지만, 어쩌면 신이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자리에 저를 세운 것 같아요. 상황이 너무 교묘하게 잘 맞잖아요. 이건 제가 계획해서 할 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녹취록이 나올 거니까 일주일 전에 내가 책을 내야지’ 이럴 수는 없잖아요. (웃음) 제가 거부할 수 없는 책임이자 의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책이 나오기 전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사람들은 박창진 사무장이 해탈한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해탈이라는 표현까지 가기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평정심을 찾은 거죠. 신앙의 힘이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한 번 폭언과 폭행을 당해 보니까 그게 장애가 되더라고요. 실은 어제도 항공 검색대에 서 어떤 분이 너무 반가운 마음에 저를 뒤에서 잡아당겼는데 너무 놀랐었어요. 요새도 누군가 제 몸에 손을 대면 부지불식간에 저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공포심이 생겨요. 하지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역시 이건 제 잘못이 아니고, 사건은 사건이고 나는 나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물론 피해자가 그렇게 생각하기가 참 어려워요. 너무 크게 사회적인 쟁점이 되고 제가 말하지도 않은 내용이 뉴스에 나가다 보면 저도 헷갈리거든요. ‘이게 나 때문에 일어난 건가?’ 하고요. 피해 사실을 두고 공방이 되는 순간 사건의 본질이 없어지고 피해자가 갈가리 까 내려지는 상황이 오니까요.


모든 종교가 그렇겠지만, 한 번 깨달음이 왔다고 해서 끝나진 않잖아요.


앞으로도 더 깨달아가야 하겠지만, 이 극명함을 통해 저처럼 못 깨닫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용기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거죠.

 

 

한 순간의 감정소모로 끝나지 않기 위해


박창진이 책을 낸다면, 그 책에는 조 씨 일가에 대한 폭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읽어보면 권력자들의 행위보다는 오히려 사회 전반에 대한 내용으로 읽혀요.


폭로하려고 한다면 너무 많죠. 하지만 자제했던 이유는, 그것만으로 끝날 것 같더라고요. 가십거리가 되는 거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에피소드가 아니라 왜 박창진이라는 사람이 이 사회 구조 안에서 나락 한 자가 되고 회복하기가 힘들었는지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한항공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된 사회 구조가 문제였다는 거죠. 이 구조의 피해자는 박창진이 될 수도 있고, 김용균이나 서지현 검사가 될 수도 있었어요. 그 모든 사회 현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은 제가 가질 수 없어요. 그저 제가 경험한 세계를 토대로 왜 강압적인 권력자가 자기 기분에 따라 징계를 남용하는 게 잘못됐는지, 중간에 그걸 견제해야 할 사람조차도 자발적인 감시자와 가해자가 되는 구조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말하는 과정이었어요.


가해자의 입장에 서기 너무 쉬운 구조에요. 개인 입장에서도 실제로 갑질 등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고요.


적어도 저 또한 방관자 입장일 때가 있었어요.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도 노조 창립을 위해서 기금을 마련할 때 회사에서 기금 모금에 참여했는지를 두고 추궁하는 과정에서 묘하게 두 가지를 요구하더라고요. 첫 번째는 돈을 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두 번째는 돈을 낸 사람들을 먼저 고발하면 봐준다는 분위기를 풍겼어요. 실제로 많은 선배가 후자를 택했고요. 단순히 조사에만 응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발자가 되어서 법정에서 사측에 유리한 증언을 했었어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용기 없던 사람인 건 사실이지만 적극적인 가담자가 될 필요는 없었던 거죠. 왜 적극적인 가담을 하는 사람이 나타날까요? 그건 누군가의 살을 도려내서 자기 양식으로 삼겠다는 거예요. 저는 그건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나는 그때 약자였고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고 말하는 건 쉽지만, 적어도 적극적 가담은 선택의 문제라는 거죠. 침묵을 넘어서 적극적 가해자가 되는 건 선택의 문제라고 믿어요.


사건 이후 회사 내부에서 박창진을 비난하거나 직접 해를 가하는 중간 관리자가 끊이지 않았다고요.


이건 그저 조양호나 조현아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발적인 감시자가 되었던 감독자를 비난하기 위해서도 아니에요. 박창진이라는 피해자가 생긴 건 작은 여진이었고, 이 작은 여진이 모여서 큰 지진이 된 거죠. 이 여진은 어떤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구조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사례를 통해 막을 수 있어요. 제가 책을 냈다고 해서 갑자기 해결될 문제는 아니에요. 같이 이야기하고 끊임없이 말해서 바뀌어 나가야 한다는 미래지향형 과제를 던져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적극적인 가해자들에게 화가 나진 않나요?


저도 우매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불이익을 당할 때 억울하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주변의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싸움의 대상으로 삼았겠죠. 단편적으로 저들이 어떤 갑질을 했었는지 폭로하면서 기분을 풀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거예요. 한순간의 감정소모로 끝난다는 거죠. 그래서 항상 품위를 지키려고 하는 편이에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많이 당하는 것 같아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런 일을 당해도 된다는 취급을 받는 거죠. 품위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건 적어도 우리가 서로의 격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겠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의지도 있어요.


승무원을 서비스직으로만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에 직업 자체가 갑질에 노출되기 너무 쉽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뚱맞은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상당히 매력 있어요. 저는 이 직업을 통해 특히 공감력을 많이 배웠어요. 누군가 승무원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저는 늘 하라고 추천할 만큼 자부심 있는 일이에요. 외국 승무원을 만나면 자긍심을 드러내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아시아나 승무원이나 대한항공 승무원에게 물어보면 굶어 죽지 않으면 다른 거 하겠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사회는 많이 바뀌었는데 왜 유달리 승무원이 갑질의 대상이 되고 인권을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가 됐을까요? 그건 국내 항공사가 필수공익사업장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여서 항공운수업 사업권자의 이익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더 공익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송사조차도 필수공익사업장에 들어가 있지 않은데, 우리가 이 정도 국가 수준이 됐으면 고쳐나가야 하는 문제죠.


대한항공만의 문제는 아닐 거예요. 회사 내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은 많고, 자기에게 대입해 읽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제 비행에서 이 책을 사서 봤다는 승무원이 있었어요. 자식이 있는 부모였는데, 자식에게 제 책을 읽으라고 줬대요. 그 친구도 언젠가는 노동자로 살게 될 텐데, 언젠가는 이런 일에 놓이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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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를 기반으로 퍼뜨리는 선한 영향력


항상 피해자의 피해자성은 의심의 대상이에요.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피해자로서 맞나 하는 자기 검열이 있었겠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건 단언하건대 잘못된 거예요. 일례로 땅콩 회항 사건이 처음 나왔을 때 제 외모나 태도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저 사람은 피해자답지 않다, 왜 옷을 저렇게 차려 입고 나오냐 하는 거죠. 하지만 이 옷은 제가 7년째 입은 옷이고, 저는 50년 동안 이렇게 생겼었고, 제 태도는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건데 피해자가 되는 순간 왜곡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거죠. 제가 초라한 옷을 입고 머리를 일주일 동안 안 감고 나왔다면 또 자기가 얼마나 당했다고 저렇게 유세 떠냐고 할 거예요. 도대체 피해자답게 행동하라고 하는 게 뭘까요? 우리 사회에서 너무 흔하게 이야기하는 게, 피해자들에게 “저 사람 살아있네? 아직도 다니네?” 이거예요. 그거만큼 큰 가해가 없다는 걸 세상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피해를 본 경험이 다른 사람의 피해에 더 감응하기 쉽게 만들기도 해요. ‘땅콩 회항 사건’ 전에는 스스로 노동운동과 연관될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하셨을 것 같은데, 사건으로 인해 이게 우리 사회 전반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극명하게 느꼈을 것 같아요.


책에 실으려다 만 비유인데, 인도 뭄바이 빈민가에 자원봉사를 하러 간 적이 있어요. 멀리서 봤을 때는 산 밑에 있는 마을이었어요. 가까이 갈수록 악취가 나서 도착해봤더니 산이 아니라 쓰레기더미였어요. 그 마을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 다 그게 쓰레기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냥 모른 척하는 거예요. 왜, 그래야 위안이 되니까요. 저는 그런 위안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고 누군가가 구제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한 거죠. 그래서 이제 쓰레기를 보면 쓰레기라고 이야기하고 이 냄새는 저 쓰레기에서 납니다, 우리 같이 봅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제가 하는 현실적 연대예요.


직원연대 노조 활동도 하고 계시다고요.


희망을 봤어요. 철저하게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현실 참여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용기 낼 수 없는 구조 때문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모두가 나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체 하는 몇몇 악인도 있었겠지만 사회가 조장해 낸 허수들도 있다는 걸 안 거죠. 조현아 씨도 너무 측은했어요. 왜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선 안 될 일을 하고 있을까, 1차 피해자였던 승무원도 마찬가지로 왜 저런 일을 당해야 할까, 제가 상처받았다고 해서 제 안에 있던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어진 건 아니거든요. 제가 몸을 담은 조직 안에서 쓰레기 산을 애써 외면하는 상황을 바꾸고 싶은 거죠. 그래서 직원연대라는 노조를 기반으로 정말 선한 영향력을 조직 내에서 퍼뜨리고 싶어요.


그중에서도 노조장을 맡고 있어요.


지금은 그 선두에 박창진이라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서 있어요. 아직은 모두가 가면을 벗을 수 없어서 지금 얼굴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밀려서 앞장서게 됐는데, 이후에는 정말 자기 의지와 철학으로 앞장서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과정으로 나아가는데 제가 있다면 거기에는 후회가 없어요.


언제나 활동 영역에서 가장 약자가 가장 먼저 연대하게 되더라고요. 노조가 매우 필요하지만 노조에 가입하는 순간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손을 가장 먼저 내민다는 게 아이러니해요.


말씀하신 것에 공감해요. 동료들에게 따돌림 당할 때도 청소노동자분들에게는 매번 박수를 받았어요. 그분들은 심지어 물 한잔 달라는 이야기에도 잘릴 수 있는 분들인데도요. 지금 직원연대를 같이 하는 분들을 통해서 또 희망을 봐요. 지금 편선화 정지은 님이 직원연대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신데, 그 두 분을 보면서 제가 꿈꿔왔던 게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조 활동을 하면서 오해도 많이 받으셨죠?


제가 많이 받는 비판 중 하나가 이 모든 게 박창진의 욕심이라고 하는 거예요. 물론 욕심 내는 부분이 있죠. 제 인생이 망가졌는데 보상받고자 싶은 마음, 당연히 있어요. 하지만 민중의 투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없어요. 정말 욕심이 있다고 한다면 노조를 하지 말아야죠.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노동 환경 최악의 국가인데요. 쌍용 자동차, KTX 승무원 모두 십몇 년 만에야 겨우 복직이 되는걸요. 오히려 제가 도와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발성이 생기고 저를 도와주면서 힘들지만 나아갈 힘을 주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직원연대 노조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첫 번째로는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저는 비자발적으로 상황에 의해 몰려서 나왔지만 이분들은 자발적으로 나오신 분들이거든요. 저보다는 용기가 백만 배는 높아요. 두 번째로 제 안에 남아있는 에너지가 얼마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나눌 수 있는 만큼은 같이 걸어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끔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싶어요.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안 되네요. ‘조양호 일가를 다 몰아내고 민주 세상을 이룩하자!’ 라고 말하면 멋있을 텐데요. (웃음) 물론 그런 대의명제도 있겠지만, 우리가 바르고 나쁨을 이야기할 때 명제와 구호가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해요. 혼자였다가 누군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어요.

 


 

 

플라이 백박창진 저 | 메디치미디어
회사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부터, 사건 후 갑질로 인해 삶의 항로에서 이탈했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의 인권 신장, 직원들의 연대 방안을 모색하기까지 그의 모든 행보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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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수경 “더 나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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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보장된 가까운 미래에 ‘센터’가 설치된다. 그곳은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이 입소해 전문가의 관리를 받으며 자신이 죽는 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곳이다. “죽음이 필요한, 죽음이 최선인” 사람들이 가는 곳. 어렵게 가족을 설득해 그곳에 입소한 주인공 ‘이서우’는 의사로부터 센터에서 한 달의 기간을 지내면 이후 언제든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처방을 받는다. 하루하루가 무채색의, 고립된 시간이었던 이서우에게 센터에서의 하루는 놀랍게도 “1분 1초가 전부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서우의 룸메이트이자 서우를 사람들과 만나도록 하는 조력자 김태한, 잘 꾸민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한 여사, 반려견의 죽음이라는 큰 상처를 안고 있는 양지, 센터에서 위암이 발병하자 삶을 다시 원하며 퇴소하는 작가 선생까지. 센터의 사람들은 말이 나오지 않아 휴대전화로만 대화를 할 수 있는 이서우를 온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상처처럼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며 조심스럽게 서우에게 조금 다른 세상을 선사한다. 과연 이서우는 죽음을 선택하게 될까.


첫 장편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을 쓰면서 조수경 작가는 서우의 선택을 꽤나 오래 고민했다고 말했다. 구상은 오래, 집필은 빠르게 하던 여느 때의 쓰기와는 달랐던 이유를 묻자 “쓰다보니 붙잡게 됐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이것은 무책임한 희망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하며 작가는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삶을 생각하는 일’(347쪽)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유서를 쓰고,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그로 인해 삶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조수경 작가. “억지로 살아갈 수 없듯이 억지로 죽을 수도 없는 일일 거고, 삶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힘든 것처럼 죽음도 마음처럼 할 수 없다면 힘들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죽음이 삶과 연결된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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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붙잡고 싶어졌어요


첫 장편의 소재로 죽음을 삼으셨어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셨어요? 

 

많이들 죽음을 금기시 하고 부정적인 것, 외면하고 싶은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죽음을 평소에도 많이 생각했어요. 삶에 대해 생각하듯 말이에요. 삶과 죽음을 떨어뜨릴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 역시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겨왔고요. 오래 전부터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안타까웠죠. 그래서 ‘편안하게 떠날 수 있는 어떤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죽음까지 생각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고통스럽게 떠나야한다는 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거든요. 자살 뉴스가 많잖아요. 댓글을 보면 안 좋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게다가 자살 유가족에 대한 편견도 많고요. 그런 게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정말 떠날 수밖에 없다면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곳을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쓰게 됐어요.

 

2007년 습작 시절에 쓴 단편이 시작이었다고 ‘작가의 말’에 쓰셨잖아요.


그때는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벗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썼던 것인데요. 사실 쓰기 쉽지 않은 이야기고,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서 계속 묵혀두다가 이번에 쓰게 됐죠.

 

여러 이유로 조심스러웠던 부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육체적 질병으로 인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정말 100% 동의해요.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이죠. 이건 누군가가 지지할 일도 아니고 반대할 일도 아닌 거예요. 그런데 정신적 질병의 경우 워낙 다양한 각자의 상황이 있잖아요. 100명에게 우울증이 있다면 100개의 이유가 있다고 하니까요. 경제적 이유도 있을 수 있고, 여러 상황이 있을 텐데요. 사실은 저도 그 선택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붙잡고 싶은 마음인 거예요. 처음 이 소설을 구상할 때는 주인공이 죽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는데요. 쓰다보니까 붙잡게 됐어요. 그래서 쓰는 데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타인의 삶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으므로, 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최선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 생의 끈을 놓으려 한다면, 나는 그의 손을 꽉 붙잡을 것이다’(349쪽)라고 했던 말이 그것이죠?


맞아요. 저는 소설을 쓸 때 구상을 많이 하고, 결말도 다 생각해놓은 다음에 써요. 생각을 오래 하고, 빨리 쓰는 편인데요. 이 소설은 쓰면서 결말이 바뀌더라고요. 중간에 크게 한 번 뒤집은 적도 있고 그랬어요. 처음에 구상했을 때는 마음의 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그 생각 자체는 바뀌지 않았는데요. 그냥 주인공을 붙잡고 싶어진 거예요. 무책임한 희망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기본적으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음의 병이 그 이유라면 권리 행사를 좀 미루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 거죠.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삶은 한번 끝내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죽음은 내일, 또 내일로 미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구상했던 것과 다른 결말이었다니 놀랍네요. 


주인공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기보다는요. 어떤 날은 마음이 깊이 가라앉아 버겁기도 하겠지만 또 어떤 날은 테라스에 앉아 햇볕도 쬐고, 바람이 불어오면 ‘좋다’는 생각도 하고, 시원한 밀크티를 마시며 산책도 하고,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화가 날 때는 화도 내고 욕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는 마음의 체급도, 약점도, 살아온 시간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죠. 고통에는 표준이란 게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겐 긍정과 희망이 힘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소설의 결말을 보고 자칫 빤한 희망을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놀라운 반전을 노리고 쓴 얘기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주체적인 삶과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삶도 죽음도 주체적이어야


주체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한 여사’라는 인물은 “생은 내가 어쩌지 못했지만, 마지막은 내 계획대로 이렇게 떠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184쪽)이라고 말하고 죽음을 선택하는데요. 이 부분이 죽음에 대한 작가님의 오랜 생각이 담겨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가만히 생각하면 제가 제일 두려운 건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병으로든 정신적인 이유로든 말이에요. 한 여사는 주체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잖아요. 늙어서, 전처럼 무엇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나의 적당한 때라는 마음이 와서 죽음을 선택하는 건데요. 저는 그런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 그때가 되면 하루하루 미루고 싶어질 수도 있겠죠. 어쨌든 삶도 죽음도 주체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을 다 알 수 없고요. 타인의 삶을, 선택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돼요. 억지로 살아갈 수 없듯이 억지로 죽을 수도 없는 일일 거고, 삶이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 힘든 것처럼 죽음도 마음처럼 할 수 없다면 힘들 거니까요. 한 여사는 파티를 열고 정말 행복하게 떠나잖아요. 그런 죽음, 자기에게 맞는 죽음이라면 정말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요.

 

최근 스위스에서 한국인 2명이 안락사 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했잖아요.


‘더 나은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늘 존재했을 거예요. 최근 <서울신문>에 실린 ‘디그니타스’ 인터뷰 내용과 제 생각, 소설에 쓴 부분들이 상당 부분 겹쳤다는 게 그 증거겠죠. 소설을 쓸 때, 계속해서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는 걸 느꼈거든요. 예전에는 안락사는커녕 존엄사에 대해서도 자살이라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요. 최근 조사 결과를 보니 안락사 찬성 여론이 80%를 넘었더라고요. 이제 우리나라도 존엄사법이 시행됐고요. 외국에서도 심각한 육체적 질병이 아닌 경우나 구달 박사처럼 고령인 경우에도 안락사를 진행한 사례가 있었죠. 그런 걸 보면서 존엄하고 주체적인 죽음을 존중하는 쪽으로 세상이 변해가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물론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악용할 수 없도록 법적 장치가 분명히 있어야 해요. 노인 분들이나 환자 분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사회복지제도가 먼저 마련돼야죠.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구달 박사 뉴스는 저도 기억이 나는데요. 작년 5월에 그 뉴스가 있었으니까 소설을 쓰고 있을 때 뉴스를 보신 거잖아요. 느낌이 남다르셨겠네요.


이 소설의 시작이 된 2007년 당시 단편을 쓸 때는 자살이나 우울증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서 생각을 했던 건데요. 점점 세상이 바뀌는 게 느껴졌고요. 그게 참 반가웠어요. 육체적 질병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닌데, 충분히 살 수 있는데도 죽음을 선택한 분 이야기가 뉴스에도 나오니까 정말 바뀌고 있구나 생각했죠.

 

소설에서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센터’가 들어선 뒤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크게 줄잖아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가 그렇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확신해요. 생각해보면 충동적인 자살도 많을 것 같거든요.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픈데요. 어떤 선택은 조금 미루려면 미룰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때 만약 센터가 있다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더라고요. 오늘 날씨 좋은데 내일로 미룰까, 하는 식으로 바뀔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우선 충동적인 자살은 막을 수 있을 테고요. 설령 진짜로 죽음이 최선인 분들도 조금씩 죽음을 미루다가 생각이 어쩌면 바뀔 수도 있어요. 아니면 한 여사처럼 자기가 원한 방식으로 떠날 수도 있는 거고요. 어느 기사를 봤는데 학자들의 의견도 비슷하더라고요. 아예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실제로 충동적인 자살이 정말 많겠죠.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난 분들이 그 순간 후회했다는 이야기를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다 알 수는 없죠. 언론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이야기를 했을 수 있는데요. 충분히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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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때문에 주인공 ‘이서우’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거예요. 역설적으로 자신의 세상과 관계를 넓혀나가는 곳이 센터였고요. 센터에서는 “1분 1초가 전부 살아 있었다”(146쪽)고 말하잖아요. 자기 방에만 있을 때와 다르게요. 

 

주변에 글 쓰는 친구들 중에 섬세하고 예민해서 우울증 약을 먹는 친구들도 많은데요. 보면 너무나 섬세해서 타인을 더 잘 배려하기도 해요.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요. 센터에 있는 사람들도 다들 비슷하잖아요. 서로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는 사람들인데요. 그러다 보니까 센터에서는 서우도 사는 게, 친구를 만드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하는 사람들만 있는 곳이니까요. 적당한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느낌이에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큰 상처를 안고 있죠. 학교 폭력, 사이버 불링, 성폭력 등 아주 다양한 경우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워낙 죽음을 오랫동안 생각해왔기도 하지만요. 죽음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다보니까 여러 상황을 쓰게 된 것 같아요. 대개는 아픈 죽음이 뉴스가 되지 행복한 죽음이 뉴스화 되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그런 아픈 죽음들을 보면서 왜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을까 혹은 왜 아프게 떠난 사람을 위로는 못할망정 악플을 다는 걸까 생각하면서 쓴 거였어요.


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나다운 것’과 ‘다양성’인데요. 죽음 역시 마찬가지예요. ‘다양성’이라는 말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삶을 마무리하는 방식에도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삶의 계획이 저마다 다르듯, 죽음의 계획도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중 작가님이 제일 마음 쓰였던 인물은 누구였어요?


‘오민아’라는 인물은 고독사가 두려워서 센터에 들어온 인물인데요. 저는 민아가 마음에 남았어요. 요즘은 1인 가구도 정말 많고요. 고독사도 너무 많잖아요. 보통 죽음이라고 하면 가족이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헤어지는 장면을 생각하게 되는데요. 평생을 혼자 외롭게 살았던 사람은 죽음마저 혼자 겪어야 하는 거죠. 사실 죽음의 순간, 숨이 끊어지는 순간은 엄청 힘든 것일 텐데 그걸 혼자 감당하고, 죽은 이후에도 아무도 이 시신을 수습할 수 없어 무명씨로 남는 상황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오민아라는 인물이 제일 마음 아프죠. 어쩌면 오민아는 좋은 누군가를 만났다면 센터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 있거든요.

 

자본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이 부딪치는 장면들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었어요. 주인공 이서우가 들어간 센터는 “중산층을 위한 곳”(75쪽)이죠. 소설에는 빚 때문에 센터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례도 나오고, 센터의 돈벌이에 대한 비판도 나오거든요.


예전에 인도 여행을 갔는데요. 갠지스 강에 화장하는 곳이 있거든요. 정말 충격적이었던 게, 돈이 많은 사람은 장작을 아주 높이 쌓아서 시체가 다 타고 남을 때까지 태울 수 있더라고요. 반면 가난한 사람은 장작을 많이 살 수가 없어서 시체가 덜 탄 상태에서 강에 떠내려보내지고요. 죽음까지도 돈에 영향을 받는구나, 그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서우를 계속 붙잡고 싶은 서우의 엄마도 등장하지만 가족들은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하는 ‘손형’도 있잖아요. 소설에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많이 드러나진 않는데요. 죽음에 있어 가족이라는 문제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는 것도 가족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가족이 반대하는 경우도 많고요. 아니면 환자가 의식이 없으니까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에 동의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아서 연명의료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는 거예요. 가족이라서, 가족이니까 그걸 반대하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요. 가족이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가장 편한 것, 당사자를 가장 위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을 한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쓰면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장면이었나요?


서우의 중학교 시절을 쓸 때 많이 울면서 썼어요. 감정적으로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연수가 서우에게 “왜 나쁜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걸까?”(279쪽)라고 묻잖아요.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서우나 성폭력을 당했던 연수를 보면서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도 많이 하는 생각인데요.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다 내린 결론은 그들은 뻔뻔하기 때문이다, 였어요. 양심이 없으면 살기 쉬운 것 같아요.

 

 

필요할 때 꽉 잡아주는 손이 되어주기를


제목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는 어떻게 정하신 건가요?


소설에 나오는 “우리 집 개를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266쪽)라는 문장에서 단어 하나를 바꾼 건데요. ‘아침’이라는 단어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나 삶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고요. ‘당신’이라는 단어에는 소중한 사람을 포함한 살아갈 다양한 이유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닌 아침을 보는 것의 차이, 당신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 당신을 떠올리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고요. 제목에서 어떤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길 바랐어요.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삶을 생각하는 일’(347쪽)이라는 말을 오래 곱씹게 되는데요. 작가님의 생각이 듣고 싶어요.


누구나 암에 걸리는 게 아니고 누구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게 아닌데도 많은 사람이 보험에 가입하거나 대비를 하잖아요. 그런데 누구나 겪는 죽음이라는 것은 왜 준비를 안 할까, 하는 의문이 있어요. 저는 죽음을 많이 생각했다고 했잖아요. 가령 이런 거예요. 만약 내가 죽으면 가족들이 내 지인들에게 연락을 할 텐데 누구에게 하라고 할까, 생각하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아주 자연스럽게 삶을 생각하는 거예요. 또 죽음을 생각하면 죽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하잖아요. 이건 또 삶으로 연결이 돼요. 정말 그렇거든요. 피할 게 아니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그래도 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긴 하고요.

 

작가님은 매년 유서를 쓰신다고 들었어요.


일 년에 한 번은 여행을 가거든요. 비행기를 타기 전에 꼭 유서를 써요.(웃음) 정리하는 것도 좋아해서 집도 늘 깨끗하게 두는데요. 제가 죽었는데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게 저는 싫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죽었을 때 연락했으면 하는 사람을 메모하고 그랬어요. 유서를 쓰기 시작한 게 십 년도 넘었는데요. 매년 업데이트를 하다 보니까 점점 구체적으로 쓰고 있어요. 연락할 사람들도 적어두고요. 장례식은 안 했으면 한다든가 화장하고 어디에 뿌려줬으면 한다든가 하는 내용들을 다 적었죠. 또 제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우는 건 싫더라고요. 제가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는 웃긴 사람이라(웃음) 그런 기억을 갖고 웃으면서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적어놨어요. 이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내 삶을 일 년에 한 번씩 정리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삶이 정말 선명해져요.

 

『모두가 부서진』출간 당시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저는 사람들이 들여다보기 두려워하는 내면의 지하실 같은 곳에 시선이 머물러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작가님이 이런 곳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모든 감정을 더 깊이 느끼는 사람으로 태어난 게 그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내릴 때처럼 작은 일에도 큰 행복을 느끼는 반면, 안타까운 기사를 보면 오랫동안 앓곤 하거든요. 일상을 ‘밝은 나’가 이끌어간다면, 작가로서의 삶은 ‘어두운 나’가 끌고 가는 것 같아요. 삶의 사각지대라든가 내면의 지하실 같은 곳에서 눈을 떼지 않는 집요함이 소설로 이어지는 것 같고요.

 

그게 참 힘든 일일 텐데 말이에요.


소설을 쓸 때 감정적으로 힘들 때도 많지만요. 어둠이나 우울 역시 잘 활용하면 좋은 에너지가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더 괴로워도 섬세한 심장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첫 소설집 나왔을 때 가족들도 충격을 받았어요.(웃음) 제가 평소에는 밝다고 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방송국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많이 놀라더라고요.

 

라디오 작가로 10년 넘게 지내고 계시잖아요. 라디오 작가와 소설가, 두 정체성 사이에서 작가님은 어떻게 다른가요?


방송 글과 소설 글이 진짜 다르죠. 소설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면 방송은 듣는 분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거니까요. 방송에서도 제가 진짜 관심이 가는 건 청취자의 사연이에요. 심야 방송을 오래 했는데요. 힘든 분들이 너무 많아요. 낮에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분들, 고된 육아로 잠 못 이루는 분들, 병원에서 통증으로 고통 받는 분들,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익명으로 사연 남기는 분들처럼 사연도 다양하고요. 소설가로서 그 사연들에 깊이 빠지는 동시에 라디오 작가로서는 희망을 많이 얘기해요. 위로 하는 글을 많이 쓰죠.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앞으로도 어두운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누군가는 어두운 곳을 바라봐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둠 역시 우리 삶의 일부잖아요. 첫 소설집도, 첫 장편도 같은 ‘어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지만, 그 온도는 달라요. 첫 소설집이 서늘하고, 때론 자기 자신마저도 태워버릴 만큼 뜨거웠다면, 첫 장편은 그럼에도 따스한데요. 앞으로 쓸 소설들은 어떤 온도를 갖게 될 지 저 역시 궁금해요.

 

이 책을 꼭 읽으셨으면 하는 분들이 있나요?


우선 마음을 앓는 분들이 읽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죽음을 생각하셨거나 생각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좋겠는데요. 이 책이 적당한 거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존재가 되어주기를, 필요할 때 꽉 잡아주는 손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거든요. 무책임한 희망을 말하는 책이 아니에요. 적당한 거리에 앉아 있는 온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좋겠다는 마음을 썼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 여러 안타까운 사건 때문에 우울증에 대한 시선이 안 좋은데요. 그로 인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더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개인 성정의 문제가 우울증으로 일반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하고요. 자살 유가족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조수경 저 | 한겨레출판
죽음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은 어떤 것일까? 안락사가 가능하다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삶은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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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바이브 “인간 자체를 닮은 비브라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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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바이브는 비브라폰 연주자다. 비브라폰은 실로폰을 닮은 악기인데 피아노처럼 페달이 있어 음을 길게 늘일 수 있고 무엇보다 영롱한 소리를 낸다. 그는 이 영롱함 속에 삶의 쓸쓸함이 있다고 말한다. 밝음과 어두움의 공존. 즉, 삶의 모습을 닮았다.

 

비브라폰계의 대모란 이름처럼 호기롭게 세상에 나온 정규 1집 <마더바이브>에는 2013년부터 작업한 결과물들이 모여 있다. 딸 아인이를 향한 노래부터, 외로움, 슬픔, 육아의 고충들이 고루 담긴 앨범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또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으로 처음 발매된 음반으로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후보에 올랐다. 솔직하고 진솔했던 그와의 만남을 공개한다.

 
비브라폰에 대한 국내 관심이 그리 크지 않다. 비브라폰이 중심이 된 음반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 하는 게 재미있다. 그래서 시작했다. 정확하게 '앨범을 만들자!' 이렇게 결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2013년 즈음해서 하나 둘씩 곡을 녹음했다. 트랙마다 도와준 연주자들이 다 다른데 그 때문이다.

 

음반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건가?

 

기획을 잡고 준비한 게 아니어서 곡마다 결이 다 달랐다. 주체성이 없는 것 같고, 나만의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발표를 안 하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음악가 정원영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보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금까지 만든 걸 잘 묶어야지, 다음 것도 잘 올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비브라폰을 전공한 것인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클래식 타악기로 방향을 바꿨고, 대학을 다니면서 비브라폰을 처음 접했다. 대학원 졸업 후 버클리 음대에 다시 들어가 악기를 정식으로 배웠고. 어쩌다 보니 대학을 두 번 다니게 됐다... (웃음)

 

학창 시절에 클래식 타악기로 전공을 바꾼 건 어떤 이유 때문인가?


대학에 가려고 했다. 그 당시에는 뭐가 좋은지 잘 몰랐다. 음악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한 거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대학원을 가게 됐고 키스 자렛 카피 공연을 하고, 학교 주변에 자유롭게 퍼져 있는 버스킹을 보면서 듣는 음악으로써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직접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내가 평생 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게 바로 비브라폰이었다.

 

태초의 자립적 음악 선택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비슷한 악기로 마림바도 있지 않은가?


마림바가 한없이 맑게 느껴진다면 비브라폰은 영롱한데 쓸쓸하다. 인간 자체를 닮은 거다. 그리고 또 나는 비브라폰이 중간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악에 비브라폰이 들어가면 천국과 우주 그 어딘가의 몽롱한 세계가 그려진다. 악기 자체가 중간 음역대를 담고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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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닮은 악기란 표현이 참 좋다.


우리 마음이 결코 하나가 아니 듯, 이중적인 면을 지녔다. 아까 말했던 마림바는 공포 영화 사운드 트랙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반면, 비브라폰은 배경음으로 자주 들려오지 않는가. 공포와 대조되는 콘트라스트 덕택이기도 하고... 사실 삶은 누구에게나 순탄하지 못하다. 내가 비브라폰을 정식으로 손에 쥐게 되었을 때, 내 순탄치 못한 삶에 가장 큰 위로를 주는 악기는 바로 비브라폰이었다. 비브라폰은 인간과 닮아있고, 나 스스로에게는 가장 큰 재미를 준다. 물론 그걸 음악적으로 옮기는 것은 어렵지만, 나에게 이 악기는 매력적이고 편한 친구다.

 

그럼 음악적 측면에서 봤을 때 인간 이희경(마더바이브 본명)은 어떤 사람일까?


뭐가 굉장히 많다. 생각이 많고, 고민도 많고.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내려놓으려 한다. 음악적인 중심은 결국 다 아래쪽에서 나오는 건데, 생각이 위로 뻗어나가면 이를 결코 음악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정리하고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 계속 앞으로 갔었다면 이제는 중심을 더 무겁게 다듬어야 오랫동안 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떨쳐버릴 것을 떨쳐내니 이렇게 좋은 것을, 10대 때는 학습과 경쟁만 했으니... 이제는 더 내면을, 중심을 살피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곡을 쓰게 된 것인가?


작곡은 어렸을 때부터 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피아노 앞에서 앉아서 무턱대고 곡을 썼다. 재밌고 즐겁게!

 

이번 정규 1집 <마더바이브>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제일 먼저 만든 곡이 무엇인가.


예전부터 작업한 트랙들을 중심으로 묶어낸 것이기 때문에 녹음하고 앨범에 안 들어간 곡도 많다. 아마 '아인랜드'를 가장 먼저 만들지 않았나 싶다. 최근에 작곡한 건 '여우비가'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반응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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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성이 무엇일까? 요즘 시대에는 특히 그 대중감을 포착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


대답 없는 메아리를 할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감성을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여우비가'처럼 나는 곡이 쉽다고 생각해도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분명 있다. 대중 감성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음악이 워낙 다양해졌으니 무엇을 들어야 할지 모르실 수도 있고. 고착화되지 않고 내 개성과 대중의 감성을 잘 조율하려 한다.

 

'여우비가'를 들어보면 멜로디도 아름답고 맑은 색의 비브라폰 매력이 십분 담겨있다. 그런데 또 마냥 밝지만은 않다.


맞다. 제목 자체는 설화 중에 <여우가 시집가던 날>에서 따왔다. 여우를 사랑하던 구름이 흘린 눈물이 비로 내린다 뭐 그런 내용이다. 현대 미술관을 지나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전시물들 사이로 비가 내리는 게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근데 또 조금 있다가는 해가 쨍하게 비추더라. 그때 감정을 담은 곡이다.

 

반면, 'Paquito'는 무척 활기차다.


색소포니스트 파키토 드리베라의 광팬이다. 그분이 가진 특유의 엄청 밝은 에너지가 있는데 말하자면 신나고 유쾌하다. 그 영향을 받아서 썼다. 한 마디로 파키토 드리베라 트리뷰트 송이다.

 

일반 청중은 잘 알지 못할 개인적인 일화와 감정이 많이 담긴 음반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 워낙 긴 시간동안의 작업물이 담기기도 했고 모든 음악이 그렇겠지만 사실 한 곡 한 곡 다 의미가 있다. '불꽃놀이'는 원래 'Alone at last'란 제목으로 인간은 혼자다, 혼자 있는 시간에 관한 노래였고, 'Every time you call my name'에는 육아의 고충이 표현돼 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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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이 어떻게 남길 바라는가?


현재의 내 생각들과는 조금 다른 곡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사랑과 위로의 곡들이 많다. 내가 이렇게 표현 하겠다 정하고 만들어나가지는 않았지만 이런 감정을 가지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편곡했다. '히피의 아침', 'sLow&Low'는 느리고 평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이 음반으로 어떤 식으로든 위로를 받는다면 그게 정답이다. 내가 원한 전부이기도 하고.

 

다음 앨범을 구상 중인지 궁금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글감이 쌓이면 수도꼭지 틀듯이 적는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음반을 낸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아무 말이나 할 수는 없으니, 허튼 소리 할 수는 없으니, 에너지와 상상들을 잘 모아두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긴 시간을 돌아 앨범을 발매했다.  마더바이브로 말고 이희경으로서 행복한가?


음반을 냈다는 것은 내가 한 계단 올라섰다는 의미이다. 내 이야기, 내 관심, 내 감정들이 잘 녹아 있는 앨범이라 개인적으로 자서전 같기도 하고 만족스럽다. 늘 곁에서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매듭지을 수 있었다. 세상에 대한 내 목소리를 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도 얻었다. 이 정도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모든 준비를 마친 게 아닐까? 행복하다.

 

 

인터뷰 : 김도헌, 박수진, 임진모, 임동엽
사진 : 김도헌
정리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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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주원규 “버닝썬 사태는 포화 상태에 이르러 공론화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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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와 재명은 같이 ‘설계’를 한 적이 있다. 새벽의 가로수길에서 젊은 여성이 구타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두 사람은 가해 남성이 무혐의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범인은 잘나가는 중견기업의 외아들, 피해 여성은 콜걸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민규와 재명은 변호사이고 경찰이다. 민규는 강남 중심부에 자리한 로펌의 변호사이자 ‘설계자’다. “실제 발생한 사건을 고객이 의도하는 상황과 배경에 맞춰 재구성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 재명은 강남경찰서 강력계 형사로, 하우스에서 도박을 하다 거액의 빚을 진다.

 

두 사람은 새로운 사건 앞에서 재회한다. 강남의 한복판, 초고층으로 지어 올린 ‘카르멘 호텔’.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이곳에서 열 명의 남녀가 전라 상태의 시신으로 발견된다. 확인된 신원은 금감원 원장, 유명 가수 등의 남성. 그리고 콜걸들. 의뢰인은 “여자들하고 남자 고객들”을 “꼭 개별 사건으로 처리” 해 달라고 말한다. 민규와 재명은 ‘설계’에 뛰어든다.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의 이야기다.

 

주원규 소설가를 만난 지난 11일, 가수 정준영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불법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지인들에게 공유한 정황이 포착된 것. ‘버닝썬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이었다. 해당 사건은 처음부터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수 최종훈의 음주운전 사건 은폐에 경찰이 개입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소설가 주원규는 “버닝썬 사태도 예전부터 축적돼 왔던 것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공론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의 밤은 (다른 곳보다) 더 천박하고 천민자본주의적”이며, 팩트를 조작하는 경찰과 변호사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메이드 인 강남』을 집필하기에 앞서, 6개월 동안 강남의 호스트바에서 일하며 취재를 이어왔다.

 

2009년 『열외인종 잔혹사』 로 ‘제1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주원규 소설가는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 보였다. 『반인간선언』 ,  『크리스마스 캐럴』 , 『망루』, 『나쁜 하나님』 ,  『시스템』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짚어왔다.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집단의 횡포와 부패까지 날카롭게 비판했다. 드라마 <아르곤>의 극본을 공동 집필한 바 있으며, 현재도 자신의 작품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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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밤, 더 천박하고 더 천민주의적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소설이었는데요. 사실 읽는 동안 힘들었습니다(웃음).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사회파 리얼리즘 소설만 계속 추구했는데, 장르의 외피를 쓴 작품도 써보고 싶었어요. 최근에 제가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대본을 쓰고 계신다고요.


네, 제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 중인 드라마가 있어요. 지금 소설 제목을 말씀드리기는 어렵고(웃음), 드라마 가제는 ‘모두의 거짓말’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 의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계시죠?


감독님과 공동 개발해서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마무리했고요. 투자부, 캐스팅부와 작업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개봉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메이드 인 강남』을 쓰기 전에 호스트바에서 일하면서 취재하셨다고요.


네, 그런데 제가 호스트로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더라고요(웃음). 주로 20대를 많이 찾거든요. 제가 외모가 그렇게 뛰어난 편이 못 되기도 하고(웃음). 그렇다 보니까 저는, 흔히 호스트바라고 알려져 있는, 남자 접대부가 있는 클럽에서 주류 배달원이나 캐셔 아니면 운전을 하는 일을 했습니다.

 

왜 가셨던 거예요?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책을 쓰면서 가출 청소년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했었는데,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소년원 강의를 나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아이들이 ‘강남’이라는 구조를 자꾸 언급하더라고요. ‘거기에 가면 많이 벌 수 있다, 한 탕 할 수 있다’ 그런 말들을 하는 거죠. 아이들을 그렇게 유혹하고 있는 클럽이나 주류 산업의 구조가 뭘까,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강남에 가서 취재를 시작했는데요. 하다 보니까 판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에서요. 음성적인 산업들이 너무 발달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큰 판이었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냥 상상했던, 영화나 소설에서 꾸려볼 수 있는 수준을 많이 넘어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그게 강남이라는 지역과 결탁되니까 더 버릴 수 없는 의혹으로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놓칠 수 없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의혹이요.

 

『메이드 인 강남』과 ‘버닝썬 사건’을 함께 다루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둘 사이에 유사한 모습들이 있죠. 클럽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타락한 성문화가 넘쳐나고... 보면서도 믿기 힘든 이야기인데, 직접 보신 바로는 어땠나요?


소설에 등장하는 살인 사건이나 그것을 위장하는 ‘설계’가 조금 과잉된 면은 분명히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데 저는 경험이 다 되는 것 같았어요. 강남의 밤은, 다른 어떤 지역들의 밤과는 다르게, 더 천박하고 더 천민자본주의적이고 더 끔찍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강남의 6개월은 그랬던 것 같아요.

 

민규라는 인물은 변호사이자 ‘설계자’이잖아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싶어요.


강남에서 생활하면서 그곳의 주류 업계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의 대화나, 흔히 ‘정보원’이라고 불리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소설에 나온 것처럼 조직적으로 설계 일을 하는 건 없을 수 있어도, 개별로 팩트를 조작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일에 종사하는 변호사들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불법 행위를 했는데 전관예우로 무혐의나 집행유예를 받고, 그런 식이죠?


네. 아니면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 단계에서 불기소 처분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더라고요.

 

『메이드 인 강남』의 재명도 돈을 받고 사건 조작에 가담하는 경찰이잖아요.


그렇죠. 경찰 자체에서 의지가 꺾여서 불기소 의견을 내버리면 검찰이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초동 단계에서부터 그런 설계들이 조금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싶고요. 과문하지만, 사실은 버닝썬 사태 같은 것도 예전부터 축적돼 왔던 것들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여론화, 공론화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강남의 유흥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비리 경찰과의 유착’이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것 같아요.


진짜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것도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경찰들 안에서도 ‘어느 구역을 맡느냐’, 그러니까 ‘강남 구역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도 있고요. 희망 근무 지역으로 강남이 꼽히는 것도 그런 유착과 아예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없는 것 같고, 그런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습니다.

 

소설의 첫 장면부터 강렬해요. 민규가 자위를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후에도 성적인 요소가 등장하거든요. 그 부분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 섹슈얼리티를 다루고 싶었던 게, 여성을 대상화하는 부분을 강조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남성들이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게 결국 섹슈얼리티, 섹스로 연결이 되잖아요. 그 끝이 결국에는, 주인공(민규)의 마스터베이션처럼, 성적인 질서가 무성생식화 된다고 해야 될까요. 거의 식물화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환원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쾌락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그 끝에는 결국 모든 것들이 식물화 되고 사물화 된다는 느낌이었어요. 다 죽어있는 형체들이 부유하는 느낌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래서 첫 장면과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을 그렇게 묘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도구처럼 소비되고 버려지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 모습이 가감 없이 담겼더라고요.


네. 그게 오늘날 성을 사고파는, 성문화와 성인식의 극단적인 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쪽에서는 미투 운동을 통해서 성차별을 넘어설 수 있는 성숙한 담론이 일어나고 있는데,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밤문화라고 할 수 있는-자신을 배설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하위 문화에서는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의식이 극단적으로 강화되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대비되는 지점을 묘사해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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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밝은 빛으로 은폐되어 있는 공간


첫 문장이 “밤이 오히려 더 밝은 곳. 그렇다고 밤인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 곳.”이에요. 강남에 대한 묘사인데요. 강남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되세요?


가장 엘리트인 사람들과 가장 좋은 것들이 있는 곳이고, 한국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추구하는 곳임과 동시에, 금권주의가 가장 수월하게 만연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두 가지 양가적인 가치관이 대립되는 곳이 강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으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가장 실천되는 곳도 강남이고요. 반대로 클럽 문화나 주류 문화, 성접대나 성상품화, 변태 성욕이 가장 첨단으로 추구되는 곳도 강남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에도 강남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사람들이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사실 그건 강남이라는 밤문화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했던 말 중에서 가장 떠도는 것들을 제가 잡아서 표현한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여긴…… 강남이니까.” 같은 말이라든지.

 

“‘강남’이란 말만 들으면 떠오르는 건 모든 게 가능하거나 모든 게 불가능하거나 둘 중 하나다.” 같은 문장들도 그렇고요.


네. 그 표현들은 제가 창작한 거라기보다는 그쪽에 계셨던 종사자 분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습니다.

 

강남의 이미지가 검은색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야경을 묘사하는 부분들도 나오고, 민규는 “검은빛”이 자신에게 스며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말하기도 해요.


검은빛이라고 하는 것 안에 상당히 대립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조사를 해보면 강남구의 전력 소비량, 저녁 6시 이후부터 새벽 5시까지 사용하는 전력량이 서울의 모든 구보다 월등히 많아요. 전국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쇼윈도나 야경을 비추는 모든 것들이 가공할 만큼 강렬한 하얀 빛을 쏟아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 빛이 오히려 모든 걸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숨겨야 되는 모든 것들이 오히려 밝은 빛으로 은폐되어 있는 게 결론적으로 검은빛이 아닌가 생각됐어요. 음성적이어야 될 밤의 문화마저도 강남이라는, 금권이 지배하고 있는 구역 안에서는 그냥 다 편하게 용인이 되는 거죠. 그 자체가 검은빛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사회나 여론도 강남이라는 화려함에 취하다 보니까, 그들이 갖고 있는 검은빛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눈감아 주는 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강남은 성공한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라는 ‘동경과 무언의 합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강남의 고등학교 출신들이 가장 SKY에 많이 가고 또 사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쉽게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문화를 동경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검은빛으로 묘사된 것 같습니다.

 

민규와 재명을 둘러싸고 ‘인간적, 비인간적’에 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해요. 집필하는 동안 작가님의 화두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작품만이 아니라, 제가 글을 쓰게 되는 주제와 질문도 그것인 것 같습니다. 과연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이 무엇일까. 우리 시대에서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들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는 부패한 경찰인 재명이 오히려 인간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민규라는 인물은 자기가 가장 도덕적으로 깔끔하고 덕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자기 허위와 착각에 빠져 있는 거고요. 그게 강남이 가지고 있는 ‘허울뿐인 사상누각’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고 재명이 윤리적인 건 아니거든요. 강남이 제공해주는 떡고물을 버리지 못하고 끌려 다니면서도 ‘이게 과연 인간적인 걸까’ 끊임없이 질문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한국 사회를 거미줄처럼 지배하고 있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되더라고요. 제 자신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고요.

 

이 소설에는 순수한 인간, 선한 인간이 없어요. 타락한 인물들만 등장하는데, 이전의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독자들이 알 수 없죠.


이 작품은 제목부터 떠올리고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완전히 식민지화된 부유하는 공간’인 강남, 그 대상과 공간을 생각한 이후부터는 어떤 사회학적인 깨달음이 왔다고 할까요.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든지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들이 거세되는 거예요. 그런 출발점이 있다 보니까 인물을 선한 인간으로 설정하는 것 자체가 어색해지더라고요. 악의적이나 의도적으로 피카레스크한 인물을 먼저 설정한 게 아니라, 제가 느꼈던 강남이라는 사회학적인 공간을 구성하고 보니 ‘그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선의 의지 자체가 거세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구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선함이나 윤리는 왜 거세된 걸까요? 작가님도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까’라는 질문을 품으셨을 것 같아요.


네,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됐을까. 강남이라는 곳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는 땅이기도 하거든요. 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추구하고 있는 스타일도 강남 스타일이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인간다움에 대한 윤리적 질문들이 형편없이 거세됐을까, 그게 여전히 저의 연구 주제예요. 이 소설을 통해서 다 밝히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습니다.

 

민규가 소속된 로펌은 ‘설계’의 대가로 200억이 넘는 돈을 받잖아요. 사건 하나의 수임료가 그만큼인데, 나중에는 실감도 안 나는 금액이 쌓이겠죠. 왜 계속 돈을 모으는 데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걸까요?

 

돈의 논리라는 것은 탐욕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인간 존재의 가치를 완전히 교환해 버린 상태라는 느낌도 들고요. 200여억원이라고 쓴 건, 오히려 낮게 부른 액수였어요. 실제로 제가 들은 성공 보수의 사례는 기본이 거의 500억 단위가 넘어갔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장 자체가 너무 크구나’ 하고 정말 깜짝 놀랐었습니다. 변호사들이 나름의 사건을 조작해서 성공했을 때 받게 되는 수임료라는 건 제가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았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강남이라는 지형학적이고 사회적인 구조가 그렇게 거세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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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질문합니다


작품을 통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계속 이야기해오셨어요. 용산 참사 문제라든지(『망루』), 종교계의 문제들(『나쁜 하나님』 ,  『반인간선언』 )을 날카롭게 비판하셨죠. 이번 소설에는 성범죄, 살인까지 나오고요(웃음).목사로서의 자아와 소설가로서의 자아가 서로 충돌하지는 않나요?


이 질문을 많이 받는데, 충돌되는 건 거의 없고요. 이야기를 쓰는 사람과 목회하는 사람, 그게 꼭 섞여야 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소설을 쓴다고 하면 계몽적인 작품들을 많이 기대하시는데, 오히려 목사는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정확하게, 윤리적이거나 종교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이 더 어두워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웃음). 위장과 가식은 오히려 종교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있는 그대로, 과장하지 않고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계, 특히 한국의 기독교와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건 일종의 내부자 고발이기도 하잖아요.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요. 종교계의 비난이나 반발은 없었나요?


욕을 많이 먹죠(웃음). 저도 정식 교단에 소속된 목사이다 보니까, 일종의 홍보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안타까운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 기독교가 우리 사회의 문화, 경제, 사회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악영향이나 문화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지 못하면 한국 사회가 조금 더 바른 방향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치명적인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에 사랑을 나눠야 될 종교가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드는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발의 형식을 띈 작품들은 계속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교회나 기독교라는 종교 집단은 지금 너무나 기형적으로 비대해졌어요. 그에 비례해서 인간다움이나 인간성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성 상실을 찬양하고 있는 집단화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고요. 그런 일은 꼭 막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성 상실은 찬양한다는 건, 사회적 성공이나 부를 추구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의미인가요?

 

네, 맞습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상위 0.1%의 자리에 올라서야 가난한 사람들이나 안타까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힘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는 논리가 기독교 안에 더 팽배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대담에서 영화 <밀양>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신의 이름으로 인간이 용서를 하고 죄를 사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죠. 그런 목적으로 교회에 모이고 자신들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현실이고요.


그렇습니다. 카르텔을 이야기하셨는데, 강남이라는 사회 구조도 교회라는 사회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면죄부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죠. 신의 이름으로 당신이 용서 받았다, 이렇게 비윤리적인 짓을 해도 나중에 신이 다 용서해주실 거다, 라는 거예요. 신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보험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언급하셨듯이, 규모도 힘도 거대해진 교회들이 있잖아요. 그런 교회를 상대로 내부고발을 하다 보면 좌절감도 느낄 것 같아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거죠. 


그래서 자괴감이 많이 들죠(웃음). 그런데 계몽주의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마음이 조금 편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외치면 저들이 변할 거야’라는 기대를 버리고,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자기 성찰이나 생각이나 폭로의 메시지들을 같이 가져가자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변화냐 변화가 아니냐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자리에서 서서히 한 사람씩 자기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설 쓰기나 문화 공유 같은 나눔이 자기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즐기는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잘 되지 않는 건 현실적인 한계이고요(웃음).

 

‘목회자의 일’과 ‘소설가의 일’이 서로 상반되는 건 아니군요.


네, 조금 뒤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도 ‘내가 가지고 있고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환부’에 대해서 함께 대면하고 의논해 보자는 취지니까요. 그런 맥락이라면 목회와 소설, 소설과 목회가 뒤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절대로 없을 것 같고요.

 

관심사가 굉장히 다양하신 것 같아요. 건축 평론을 하신 적도 있고, 각 소설의 주제와 분위기도 다 달라요. 동화책, 청소년 소설, 청소년 인터뷰집도 내셨고요.


아무래도 기질의 영향이 있나 봐요. 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되게 높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환경과 문화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에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연령대, 다른 환경, 다른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환경과 부딪히면서 자기를 찾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고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질문합니다. 그 질문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호기심을 갖고 찾아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많은 분들에게 혼나기도 했어요. 하나만 해야지, 여러 가지를 하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제가 갖고 있는 호기심과 기질, 제가 좋아하는 방식을 존중하니까 앞으로도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 역시 ‘메이드 인 강남’임을 밝혀야 할 것 같다고 쓰셨어요. “그래야만 오히려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요.


저는 파국의 실제를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본 사회학적인 강남이 대한민국 사회가 잘못 가고 있는 부분의 한 단면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파국의 실제를 똑바로 대면할 때, 다시 새로운 세상 사람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첫 단추를 열게 되지 않을까 싶었고요. 이 소설은 강남이라는 지역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강남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되는, 우리가 억눌려있고 지배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종말이라고 하는 그것으로부터 끝을 고하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행위들도 또 상업주의의 논리 안으로 함몰된다는 거예요. 그게 아이러니하고 슬플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면하는 작업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계속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공멸의 길을 걷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도 쓰셨죠. 이 소설에 담긴 것이 ‘예외적인 사람들, 극소수의 경우, 일부의 지역’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예외적인 경우라고 보기는 조금 어렵다고 봐요. 보편적인 경우이고요. 돈이나 권력을 많이 소유했느냐 적게 소유했느냐의 차이지, 그 높낮이의 카르텔 자체는 보편적으로 응축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결코 심한 이야기나 과장된 이야기라고 보지 않고요. 오히려 현실이 제가 쓴 소설보다 더 잔인하고 대면하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느꼈던 지점들에 대한 충격이 1/10도 표현이 안 된 거거든요. 그런 부분은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민규라는 변호사는 평범한 엘리트 중의 한 명이었을지 모르죠. 재명도 평범한 형사 중 하나였을 수 있고요. 이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저런 선택은 안 해’라고 확언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그렇죠. 통장에 바로 30억이 들어오고, 성공보수가 200억이 넘는 현실 앞에서 과연 우리가 인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생길까요. 그런 딜레마들을 항상 자각하는 게 우리한테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네, 추진 중입니다.

 

『메이드 인 강남』과 관련해서 또 준비하고 계신 일이 있나요?


이 작품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영상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텍스트로 읽고 싶은 마음과 영상으로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이 줄 수 있는 충분한 재미, 느낌, 감동과 그것에 반하거나 넘어서는 영상이 주는 재미, 힘도 같이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 시나리오 완고는 제가 쓰고 있고요. 이후에 리뷰를 받아서 작업을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메이드 인 강남주원규 저 | 네오픽션
우리 사회의 모든 자본과 욕망이 몰리는 강남을 배경으로, 헤어날 수 없는 욕망의 덫에 빠져 좀비처럼 도시를 떠도는 사람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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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양지훈 변호사 “사표는 절대 금지, 회사를 잘 그만두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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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권하는 책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회사를 그만두는 법’을 소개한 책이 나왔다. 현직 변호사 양지훈이 쓴 노동 에세이. ‘우리들의 굴곡진 조직 인생과 실전 노동법’이라는 카피를 단 이 책은 사무직 노동자들의 건강한 직장 생활을 위한 ‘필수 예방 접종’ 같은 책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두 곳의 대기업에서 6년간 일한 양지훈은 아부와 술자리를 생활화 해야 하는 조직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2009년 퇴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기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올해로 8년차 변호사가 된 양지훈은 여전히 회사원 정체성이 강한 자영업자 변호사다.

 

양지훈 변호사는 2016년 <프레시안>에 칼럼(“절대 사표 내지 마라”)를 쓰면서 큰 화제를 모았고, 대중의 시선으로 법조계의 이면을 소개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노동법 대중 강연과 네이버 오디오 클립 ‘회사 인간 퇴사 인간’을 진행하며 회사 밖 노동을 꿈꾸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으며, 단독 저서로는 첫 책  『회사 그만두는 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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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노동법이 필요한 순간

 

제목에 혹해서 읽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회사를 그만두는 법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 때문이었다. 읽어보니 ‘직장인 필독서’라는 느낌이 들더라.

 

제목을 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뭔가 제목으로도 돌직구를 날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유력한 후보 중 하나가 ‘회사를 떠날 수 있을까?’였는데, 너무 연한 느낌이 들었다. 편집자분과 상의 끝에 지금의 제목이 나왔다.

 

공저로 작업한 책이 있지만, 혼자 쓴 책은 처음이다.


10년 전의 내가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의 나에게 하는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대로 좋은 회사를 두 군데 다녔는데 너무 힘들었다. 내가 관료주의 안에서 순응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라는 울타리 밖을 나오는 게 너무 힘들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단 한 명도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회사 밖은 너무 추우니까, 다들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지금은 더 심각하지만 10년 전에도 힘들었다. 당시 응원 받지 못했던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회사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사용하는 메일 주소가 10년 전의 결심을 담은 아이디라고.


2009년에 퇴사 후 로스쿨에 입학했다. ‘새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영문과 숫자 ‘2009’를 붙여서 사용하고 있다.

 

책이 나오고 주변에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더라. 책을 100권 사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웃음)


고분고분한 부하 직원은 아니었지만 일은 잘하는 편이었다. 선배들과도 중립적인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했다. 직장을 다닐 때도 내가 겪는 어려움을 솔직히 말하곤 했는데, 선배들이 감정적으로 많이 지지해줬다. 그때의 나를 아는 분들이 많이 사주는 것 같다.

 

변호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후, 퇴사를 결심했나?


2009년에 로스쿨에 들어갔으니까. 만 3년 조금 넘게 공부하고 로스쿨 1기로 변호사가 됐다. 당시 노동법을 12학점을 들었다. 진짜 이상할 정도로 많이 들은 경우다. 변호사 시험이랑 상관 없이 노동법이 재밌어서 들었다. 지금은 국영수라고 할 수 있는 헌법, 민법, 형법을 많이 해야 한다. 운이 좋았다.

 

노동법 강연은 보통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나?


아무래도 근로자들을 위한 강연을 주로 하는데, 중소기업 대표들을 위한 강의도 종종 한다. 근로자들을 노동법에 맞게 대우해줘야 한다는 내용이 주되지만, 무조건 인권을 강조하는 것도 옳은 방향이 아니다. 지극히 태만한 사람들을 노동법으로 보호하는 건 노동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법적으로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책이 무척 실용적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법도 있지만, 노동법을 잘 활용해서 회사에서 잘 버티는 법도 들어 있다. 현직 회사원 독자로서 가장 눈에 띈 부분은 권고사직을 당한 근로자에게 “절대 사표 내지 말 것”라는 조언이었다.


변호사로서 해줄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조언이다. 회사의 어떤 권유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사직서는 회사가 원하는 대로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사직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사직은 노동자가 스스로 퇴직하는 것이므로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없지만, 해고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그 요건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부당 해고임을 주장할 수 있다.

 

사표를 내지 말고 “해고를 당하라”고 말했다.


부당하게 해고된 경우, 노동자는 법원을 통해 해고 무효 확인의 소를 회사를 상대로 제기할 수 있다.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짧게는 6~8개월, 길면 1년이 넘게 걸릴 수 있다. 승소를 확신하는 노동자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고 여전히 집안일을 할 수 있다. 패소가 걱정되면 단기 근로를 하면서 이직을 준비해도 된다. 소송 중 근로를 통해 얻은 경제적 이익은 승소 후 공제하면 그만이다. 승소 판결을 받게 되면 원직으로 복직되고 실직 기간 미지급된 임금을 받지 못할 뿐이다. 잃을 게 무엇인가. 사실 노동자가 사표를 내지 않으면 회사가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정규직 근로자를 권고사직으로 자르는 경우에는 위법이 많다.

 

근로자들의 너무 이른 패배 의식도 문제가 있지 않나?


근로자가 을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실업 상태의 문제가 있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고 회사의 불합리한 처우를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다. 회사가 위법하게 절차를 무시하고 해고하는 경우 근로자들도 버텨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근로자들에게 이득이다. 해고를 당하고 사회에 나오면 정서적으로 너무 힘들다. 싸울 건 싸우고 나와야 그 싸운 힘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리고 회사는 근로자의 직무에 맞는 업무를 찾아줄 의무가 있다. 저성과자의 경우, 적합한 사직 과정 이전에 다른 직무를 줘야 마땅하다. 영업을 못하는 사람이 기획을 잘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회사에게 요구할 것을 마땅히 요구해야 한다.

 

법률이 정해놓은 합법적 해고는 무엇인가?


노동자의 잘못 혹은 사용자의 합리적인 이유(<근로기준법> 상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해고할 수 있다. 권고사직은 해고도 아니며 법률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쉽게 말하면 징계 해고는 노동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해고다. 징계 해고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취업 규칙상 징계 절차를 지키고 노동자의 잘못, 즉 귀책사유의 예로 상당 기간의 무단결근, 정당한 업무 명령 불이행, 업무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의 비위 행위 등, 절차적 내용적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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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허락 없이 퇴사할 수 있다

 

근로자들이 가장 공포스럽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직장 내 괴롭힘’이다. 옳지 않은 것에 항의했을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전무한 경우가 허다하다. 괴롭힘의 대상이 됐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회사 밖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사소한 듯 보이는 개인적 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로, 사회적 문제로 확대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해자인 상사와 그를 편드는 인사 담당자가 피해자의 근무 태도와 성격적 특이성을 부각시키고 문제를 조용히 덮어 버리거나 심지어 피해자를 전보 배치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조직적 차원으로 문제를 확대시키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폭언은 녹음하라고 조언했다. 녹음은 불법이 아니라고.


괴롭힘 현장을 고스란히 담은 녹음 파일은 그 전후 맥락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서 높은 증명력을 갖을 수 있다. 보통 상대방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일을 모두 위법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현행 <통신 비밀 보호법>은 대화자(가해자, 피해자) 사이의 녹음은 허용하지만, 제3자의 내용을 몰래 녹음하는 경우에는 처벌하고 있다.

 

근로자들이 너무 몰라서 안타까운 지점이 있다면?


퇴사할 때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근로자는 회사를 그만둘 때 회사의 허락을받을 필요가 없다. 퇴직 의사를 굳이 사직서가 아니라 구두로 표현해도 된다. 못 받은 임금이나 퇴직금, 수당 등이 있다면 퇴사 이후 3년까지 청구가 가능하다. 그리고 회사의 인사 정책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합당한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는데 직장 내 집단적 괴롭힘, 교묘한 따돌림을 염려해서 항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징계성 승진 누락 같은 인사 평가의 불이익을 받고, 소송하는 경우는 없나?


있다. 대부분 퇴사한 이후의 소송이 많다. 해고를 당한 기간제 근로자인 경우가 많고. 잘못된 인사평가를 받았을 경우, 반드시 정정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소송을 하기 어려운 것은 회사로부터 찍힐까봐 못하는 것이지, 미지급 임금 청구 소송이나, 평가 무효 확인 소송 등을 진행할 수는 있다.

 

누군가 “회사가 도대체 뭐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근로자를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강제력이 작동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회사가 근로자들을 보호해주는 경우는 정말 희박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회사의 일을 처리했는데, 사건이 터졌을 때 회사는 근로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자본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말 안타깝다. 이 책은 노동법 법리의 100분의 1도 담지 못했다. 기초 중의 기초를 담은 책이다.

 

징계위원회의 구성과 운용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징계처분은 원칙적으로 무효다. 징계위원회위원의 자격은 보통 취업규칙으로 정한다.


징계위원을 사용자측위원만으로 구성하거나 외부인사를 위원으로 위촉하더라도 효력이 있다.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징계위원회를 구성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근로자가 명백하게 현행법이나 취업 규칙을 어겨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경우 징계할 수 있다. 회사의 징계권 행사는 취업 규칙이나 단체 협약 등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내용에 있어서도 징계 처분이 적정해야만 한다.

 

징계 무효가 되는 경우가 있다.


회사가 취업 규칙이나 단체 협약에서 징계 위원회의 구성 방법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규정대로 구성해야 한다. 만약 규정과 달리 징계 위원회가 구성된다면 그에 따른 징계 처분은 당연히 무효다. 예를 들어 징계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징계 위원회에 반드시 외부 위원 1인을 참석시킬 것’을 단체 협약 등이 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촉박한 징계 절차 일정에 따라 내부 징계 위원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했다면 징계 사유가 아무리 엄중하다 하더라도 해당 징계는 무효가 된다.

 

직원이 연봉협상 전에 인사평가표를 확인하고 싶다고 요청하면, 인사팀은 보여줄 의무가 있지 않나?


대부분의 경우 보여줄 의무가 있다. 그래서 근로자들이 취업 규칙을 반드시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밝히지 않고, SNS에 회사의 불합리에 관해 토로할 때,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나?


상황을 정확하게 특정하지 않고 쓴 글의 경우, 회사가 명예훼손으로 승소하기 어렵다. 회사가 근로자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사실 이것 자체로도 뉴스다. 소송하는 경우가 희박하다. 그리고 근로자가 자신의 분노를 SNS에 쏟는 경우를 보면, 회사가 잘못한 상황일 때가 훨씬 많다. 근로자들에게 용감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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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는 ‘작업 중지권’을 주장할 수 있다

 

책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것 중 하나가 회사의 불합리로 인해 우울증을 겪는 회사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해외의 경우, 타인에게 그 화를 푸는데 우리나라 근로자의 경우 스스로에게 화를 푸는 케이스가 훨씬 많다.


사회적 통념과 달리 한국의 사무직 근로자들은 회사 정책이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 질환에 걸리거나 그로 인해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경우가 제법 많다. 물리적인 작업 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책과 악질적인 상사에 의해 우울증에 빠진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조는 “산업 안전, 보건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여 산업 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 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문화된 법률 조항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는 사업주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작업 중지권을 규정하고 있다. 일이 지나치게 많아 매일 밤 야근을 해야 해서 극도로 건강이 나빠지거나, 직장 내 괴롭힙으로 일을 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도 해당 근로자들은 ‘작업 중지권’을 주장할 수 있다.

 

에필로그의 제목이 ‘당신을 응원한다’다. 굉장히 현실적인 위로로 읽혔다.


탈회사한지 올해로 10년이다. 변호사 직함을 갖고 있지만, 나도 근근하게 자영업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회인이다. 회사 밖의 삶이 결코 안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나 역시 사건 수임을 못 받으면 사무실 월세를 걱정해야 한다. 다만 나는 비교적 일찍 결단한 케이스고 순간순간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적당히 잘 살고 있다. 굳은 결심을 하고 회사를 나와서 잘되는 사람도 있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변호사니까 말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봤다. 그래서 퇴사를 권하지는 않는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실체를 보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향해 실존적인 결단을 했으면 좋겠다.

 

2017년 말부터 네이버 오디오 클립 ‘회사인간 퇴사인간’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인간으로 살다가 자신만의 분야에서 회사 밖 인생을 개척한 퇴사 인간의 이야기를 듣는 방송이다. ‘로동여담’ 코너에서는 채용 비리의 문제, 거짓된 구인광고로 채용된 근로자의 임금, 근로자의 이직을 금지하는 약정은 항상 유효한가 등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노동법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보려 한다.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나?


근로자들이 현실적으로 알아야 할 노동법 조항을 정리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법률해설집이지만 핸드북 같은 느낌으로. 왼쪽에는 법조문을 하나 넣고, 오른쪽에는 그 법조문을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실질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우리가 몰라서 당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거 아는가? 근로자가 이직할 때 전 직장에서 일한 자기 이력 사항을 담은 서류를 청구할 수 있는데, 근로자가 원하는 이력의 내용만 넣을 수 있는 법률 조항이 있다. 전직 근로자가 서류 발급 요청을 했을 때, 회사는 거부할 수 없다.

 

아마도 평탄하게 조직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진 않을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는 법』을 읽을 독자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이 책이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기반으로 법 조항을 살펴보고 실제로 활용하게 되는 수단이 된다면 저자로서 바랄 것이 없다. 노동법의 대중화라고 할까? 우리가 정한 볍률이 지상의 낮은 세계로 내려 왔으면 좋겠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결국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자신을 찾는 일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범람하는 자기계발서와 힐링 에세이를 과감하게 버리고 노동법을 읽으면서 조직과의 긴장을 능숙하게 즐기는 주체적 회사원 되기가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 『회사 그만두는 법』  221쪽)

 

 

<채널예스> 독자의 질문

 

Q. 중소기업 취업했다 5일 만에 퇴사했습니다. 사유는 야근 및 주말 근무 시 수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입사 시에는 면접관이 주말 및 야근이 없다고 했지만 3일 일하는 내내 야근이 있었으며(업무는 없었지만 임원의 개입으로 퇴근 불가), 주말에 재고 정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근무를 3시간 이상 한다고 하더군요. 물론 수당에 대한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아마도 무급 근무였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면접 때와는 다른 근무 환경에 처해진다면 노동 법규상 문제가 없는 건지 궁금합니다. 면접관의 설명과 회사 소개서와 실제 근무 환경이 다른 경우에 말입니다.

 

A. (근로계약서나 회사의 관련 규정, 구두 약정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 정확한 법률 상담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원론적인 답변을 드립니다)

 

입사 당시 면접관이 근로자에게 연장근로가 없다는 말이 갖는 법률적 의미가 문제될 수 있으나, 통상적인 야간 근로, 휴일 근로 등의 추가 근로는 법령이 허용하는 한도(사업장에 따라 다르나 주 52시간) 내에 허용 가능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면접 당시 추가 근로가 없을 것이라는 말만으로, 야근과 주말 근무를 시킨 것이 어떤 법률 위반이 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더 구체적인 법률 상담을 위해서는, 근로계약의 내용 및 회사의 취업규칙, 인사규정 등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채용 당시 회사 설명이 근로계약의 내용으로 편입이 되었는지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위와 같이 근로자가 추가 근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게 위법한 행위입니다. 따라서, 근로자는 추가 근로수당을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미지급 임금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정상 양지훈 변호사) 

 

 

 

 

회사 그만두는 법양지훈 저 | 에이도스
두 번 퇴사한 경험을 토대로 회사원들이 알아두면 좋을 노동법과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회사라는 조직의 객관적 실체와 일의 의미, 동시대를 버티고 있는 회사원들의 다양한 사회적 풍경들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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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현준 “시간을 보내야 내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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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라는 말, 당신이 무엇을 입었는지가 곧 당신을 나타낸다는 말처럼 의식주에는 개인의 특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아파트 광고 문구는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규격화되고 브랜드화된 아파트로 사람들을 정의 내리는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는 곳’이 단순히 ‘사는’(buying) 곳이라면 인생이 얼마나 협소해질까. 도시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이다. 그러나 ‘사는 곳’을 단순히 자기가 소유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보낸 모든 공간으로 생각하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119쪽)이 된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 주변의 공간들을 의미가 있는 공간으로 채색해야”(209쪽) 하는 까닭이다.


유현준 건축가의 첫 번째 에세이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에 소개된 121가지 공간은 공항 면세점, 벤치, 빈 예배당, 우산 속 등 누구나 한 번씩 봤을 법한 평범한 장소다. 이 장소에 기억을 덧대자 작은 점이 모여 별자리가 이루어지듯, 공간이 모여 유현준만의 별자리가 되었다.

 

머릿속으로 별자리를 되짚어본다. 나를 형성한 공간은 어디인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공간은 어디인가. 내가 지나온 시가지와 골목과 집은 내가 주인이 아니어도 나에게만 반짝이는 빛이 있다. 당신의 도시 별자리는 무엇인가. (중략) 당신의 도시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 4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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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ove letter to my city


사철제본으로 책이 나왔어요.

 

편집자님이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제본 방식이에요. 책을 폈을 때 일자로 펼쳐지는 느낌이 좋아서 포트폴리오도 이 방식으로 만들고는 해요.


양해철 사진가의 작품이 실렸어요. 사진작가와 협업해서 책을 낸 건 처음이죠?


편집자님이 사진을 꼭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제가 찍은 사진이나 제가 그린 그림으로 하려고 했는데, 가지고 있는 사진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몇 분 후보를 두다 양희철 작가님 사진이 결이 맞는 것 같아서 싣게 되었습니다.


사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갔어요.


책을 쓰긴 했지만 주변인들에게는 권하지 않았어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고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하나 하는 것들까지도 써서요.


에세이를 처음 쓰는 분들은 자기가 솔직하게 드러난다는 걸 불편해하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힘들어하실 때가 많더라고요.


새로운 시도였죠. 솔직하고 시시콜콜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저도 구세대라 그런지 감성적인 걸 드러낸다는 게 힘들었었어요. 일기를 쓰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50년 치의 일기를 쓴 것 같아요. 100세 시대에 전반전을 끝내고 나서 50이 넘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제 삶을 정리하는 타이밍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편안하게 썼습니다.


표지에 ‘a love letter to my city’라는 문구가 있어요.


편집자님에게 처음 제안받았던 제목도 ‘건축연서’였어요. 그래서 일단 제목에 건축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죠. (웃음) 글을 쓰면서도 지금 뭘 쓰는 거지 확신이 없이 썼는데, 이 문구를 보자마자 제 글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목의 의미는 책 마지막에 가서야 나와요. 다른 제목 후보가 있었나요?


없어요. ‘원 앤 온리(one and only)’였던 것 같아요. 에필로그를 쓰다가 머릿속으로 어떤 장소를 말했나 그려보니 별자리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공간은 머릿속에 있다


소개해준 장소를 따라가는 도시 여행 실용서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용도도 있겠지만, 제가 더 기대했던 의도는 저만의 장소를 읽으면서 독자가 자신이 이제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하고자 했던 거였어요. 책을 보시면 여백이 되게 많아요. 예전 제 책들이 계속해서 제 생각을 다른 사람의 머리에 넣으려는 시도였다면, 이 책은 읽고서 독자들이 자기 생각을 더 많이 했으면 하고 바랐던 책이었어요.


모든 꼭지마다 결론은 ‘너의 공간을 찾아라’가 될 것 같은데요. 한편으로 젊은 사람들의 공간은 계속 협소해지고 있어서 자기에게 의미 있는 공간을 찾는 게 더 어려워질 것 같아요.


맞습니다. 요새 시간을 보내는 장소를 생각하면 실제 공간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요. 지금 세대가 흔히 구세대라 불리는 아날로그 세대보다는 실공간과 나 자신을 연결하는 시간과 연습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오히려 게임 캐릭터와 더 밀접한 관계를 느끼더라고요. 제가 봤을 때는 그것도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방법의 하나예요. 어떤 사람에게는 게임 배경 화면이 자기 시대를 반영하는 공간일 수도 있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배경화면이 더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어요. 굳이 건축 공간을 생각하지 않으셔도 좋겠어요. 어찌 됐든 내 삶의 의미를 찾는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될 만한 공간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거죠.


소확행’의 일종이 아닐까요? 물질적인 공간이 없어서 가상 공간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요.


그렇죠. 내 집이 없으니까 인스타그램이라도 꾸며야죠. 어느 시대나 한계는 있었다고 봐요. 특별히 비관적으로 이 세대만 불쌍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원시시대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가 걸어간 거리의 공간만 봤잖아요. 하지만 요즘은 카메라로 전 세계 구석구석을 다 보죠. 지금 자신이 소유하지 못할 뿐이지 즐길 수 있는 공간은 훨씬 더 많아졌어요. 중요한 건 내가 즐기고 소비하는 장소를 얼마나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찍어서 올리는 행위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지만 포켓몬고 캐릭터 잡듯 캡처해서 SNS에 집어넣는 게 이야기를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그 공간으로 인해 내가 만든 역사가 중요해요. 덕수궁 돌담길보다는 누구랑 언제 날씨가 어땠을 때 걸었다는 기억이 중요하죠.


사이버 공간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공간은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거라고 보거든요. 우리는 공간을 바위처럼 하나의 물질적인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머릿속 생각을 따라가요. 제가 옛날에 살던 동네가 다 부서지고 없어질지라도 기억이 남아 그 공간이 제게 의미를 갖는 거니까, 물리적 세계와 사이버 세계가 같은 기준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자기 공간’을 찾으면 좋을까요?


일단은 갔을 때 기분 좋아지는 공간이 어디인지 찾아야죠. 그 공간을 찾으려면 발품을 팔고 시간을 보내야 하고요. 옷을 잘 입는 친구를 보면 일주일에 한 번은 백화점에 가서 옷을 매번 입어보거든요. 공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나를 기분 좋게 만들고 우울할 때 위로를 하는 공간이 어딘지 기억하는 거죠. 저는 직업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기억하려는 습성이 있는데, 다른 분들도 그렇게 하시면 훨씬 더 자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봐요.

 

4차원 공간과 연결되는 말인 것 같아요. 시간이 있어야만 공간이 존재할 수 있어요.


맞아요. 인간은 2차원 망막을 통해 공간을 보기 때문에 시간의 도움 없이는 3차원을 이해할 수 없어요. 공간을 볼 수 있는 건 초당 200여 장으로 망막에 맺힌 이미지를 통해 공간을 인지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당연히 시간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방금 되게 <알쓸신잡>처럼 말한 거 아세요? (웃음) 요즘도 방송의 후광이나 효과가 있나요?


그런가요? 혜택이 없진 않겠죠. 방송을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냈다면 이 정도로 팔리진 않았을 거예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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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역할


공간을 예민하게 파악하는 것 같아요. 건축가의 직업병일까요?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 건축가가 된 것 같아요. 아주 어렸을 때도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스쿨버스에서 조그만 방을 만들어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여러 가지 안심을 주는 공간을 찾아서 다니려고 했던 것 같아요.


건축가로 일하면서 자기 생각과 다른 경험도 많았었죠?


많죠. 예를 들면 지금 공간의 유리창이 밑에까지 내려와 있는데, 저는 이런 공간이 좋아요. 뻥 뚫려있고 커튼으로 개방성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죠. 하지만 건축주분들 중에는 이런 공간을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창문을 조그맣게 뚫으라고 하기도 하고요. 사람마다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모든 건축주가 요구하는 게 다 달라요. 방법을 찾아서 저도 만족하고 의뢰인도 만족하는 제3의 방법을 찾으려고 하죠.


책을 읽다 보면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걸 좋아한다고요. (웃음)


누구나 다 그렇지 않나요? 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사람이 권력을 좋아하지만, 저는 그걸 시각적으로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은 목소리를 높인다거나 비속어를 쓰면서 자기 권력을 표현한다면, 저는 시선 처리에 의한 권력에 민감한 사람이에요.


‘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14쪽)이라는 표현이 들어맞네요. 이런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인 거죠.


그렇죠. 저는 혼자 있고 숨어 있고 훔쳐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거죠. (웃음) 기본적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을 좋아해요. 다만 예전에 제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까 주도적으로 장소를 선택해서 좋아하는 공간에 있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 즉 ‘등잔 밑’ 공간을 찾으라는 조언을 했어요.


사람이 양면성이 있어요. 모여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혼자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이 사회에서 혼자 있으려면 공간을 소유해야만 하는데 그게 점점 더 힘들죠. 등잔 밑 공간은 대개 인구밀도가 낮고 남이 잘 안 가는 곳이에요. 그만큼 공간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혼자 있을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등잔 밑 공간을 찾는 게 꼭 필요해요.


용도가 정해지지 않아 오히려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중요시했어요. 도시에서는 인구밀도가 워낙 높아서 땅을 놀리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는데요.


그게 결국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죠. 민간 시장에만 맡겨두면 한 뼘만 한 공간도 찾아서 개발해 버릴 거예요. 공간을 공공의 목적으로 쓸 수 있게끔 남겨놓는 게 크게 보면 국립공원이고 작게 보면 동네 놀이터가 되는 거죠. 하다못해 가로수도 공공의 의미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 게 많을수록 선진국이라고 생각하고요.


정책론자도 그렇고, 일반 시민들도 ‘노는 땅’이 쓸데없다고 생각해요. 개발돼서 땅값이 비싸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래도 조금은 달라졌을 거예요. 예를 들어 연남동의 ‘연트럴파크’ 공원이 생기면서 주변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어요. 공공 공간 옆에 있으면 혜택을 본다는 걸 깨달을 때가 온 것 같아요. 시민들 입장에서도 그런 걸 요구해야 하거든요. 미국 도시에서는 누구든지 걸어서 10분 이내에 공원을 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도시를 개발하고 있어요. 시민사회에서 공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아는 거죠.


커피숍을 우리의 거실로 만들라는 말이 있었어요. 점점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누리는 게 많아질 텐데, 긍정적으로 보시는 편인가요?


빵집에서는 빵을 먹는 행위를 하면서 부산물로 공간을 쓰고, 카페는 커피를 마시며 공간을 누리죠 그게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인 것 같아요. 뭔가를 소비하면 공간이 따라오는 형태요. 저는 그게 다양해질수록 좋다고 봐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된다면 더 좋고요. 뭔가 사람들을 자꾸 한 공간에 모으는 작업을 사회가 해야 해요.


다음 책 계획이 있나요?


장기 프로젝트 건축을 하면서 부동산 개발업자나 경영하는 사람이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번에 에세이 분야를 썼으니 다음에는 경제경영 분야로 책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요.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유현준 저 | 와이즈베리
유현준을 인간으로서, 건축가로서 성장하게 한 도시의 요소와 장소들을 살펴보는 시간은 독자가 자신과 도시의 관계를 다시금 발견하고,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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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백수린 “여성의 역사에 자리를 만들어주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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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휴학생인 ‘나’는 어느 날 “어차피 넌 할 일도 없잖아”(10쪽) 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 댁에서 할머니를 돌봐드리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교육을 받지 못해 서러웠던 할머니에게 고학력자이자 대학교 교수인 딸은 늘 자랑이고 자부심이었지만, 학사경고를 받고 방황하는 주인공에게 엄마는 늘 비정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이다. 할머니 곁에 머무르는 동안 주인공은 ‘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3대의 시간에 걸쳐 한국 현대사를 잇대어 보고, 삶이 통째로 바뀌는 사건을 통해 엄마와 할머니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신샛별 평론가는 “엄마에게. 이 네 글자를 적은 뒤 다음에 쓸 말을 고르느라 머뭇거려본 이들을 위한 소설”이라는 말로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설명했다. 자기 딸은 자기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마음과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과 엄마처럼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동시에 진 딸의 마음은 두 번씩 곱씹은 ‘친애’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백수린 작가는  『친애하고, 친애하는』이 3대에 걸친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만 읽히기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삶과 죽음, 상처와 용서, 궁극적으로는 다정하고 연약한 인간들을 끝내 살게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147쪽)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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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모녀 관계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책이 나왔어요.

 

시리즈에 참여한 작가 중 장편을 안 쓴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계속 원고지 100매 정도의 단편을 써 왔는데, 이번 소설은 제가 써오던 것의 3배 정도 되는 분량이었어요. 어떻게 서사를 짜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다른 작가들에게 누가 되면 안 된다는 부담이나 마감에 대한 압박도 많았지만, 같이 할 수 있어서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허은경 작가의 그림이 표지에 들어가 있어요. 미메시스의 테이크아웃 시리즈도 그렇고, 요즘 소설과 아트워크를 같이 하려는 트렌드가 생긴 것 같아요.


비슷한 시기에 기획했다고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출판계가 불황이다 보니까 출판사에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다른 틀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단편을 쓸 때와 차이점이 있었다면요?


단편은 압축미와 상징미로 결정되는 장르다 보니 많은 것을 절제하고 특정한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는 기쁨과 압축하고 덜어내야 한다는 힘듦이 동시에 있었어요. 장편은 분량이 더 많고 인물도 여럿 등장시킬 수 있어서 큰 장면을 연결하는 작은 장면들이나 대사로 서사를 만드는 즐거움이 배가 되더라고요. 어떤 인물이 움직일 여지, 바라볼 여지도 많아지는 부분이 숨 쉬는 구멍이 되었어요.


할머니와 엄마, 엄마에서 딸의 고리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예요. 엄마-딸을 넘어 3대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모녀 관계가 시대나 국가를 떠나서 반복적으로 계속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성들 사이의 이 불화와 불통이 어떻게 보면 급변하는 한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라든지 교육 수준에 따라 나타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것들을 보여주려면 단순히 엄마와 딸이 아니라 할머니까지 3대를 보여주는 게 이야기가 확장될 여지를 남길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품뿐만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를 다룬 책이 많이 나오는 추세예요.


엄마와 딸의 관계에 오랫동안 관심이 있었어요. 다른 작품을 읽을 때도 둘의 관계를 관심 있게 보고는 했어요. 하지만 늘 머뭇거리던 주제기도 했어요.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쉽지 않고, 자칫 너무 신파조로 다가갈 위험도 있고요. 기존에 쓰지 않았던 분량을 써야 한다는 부담 앞에서 그냥 제가 제일 관심이 있었던 것, 잘 아는 것부터 써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등단작에서도 엄마-딸의 관계가 조금 나타나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숙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거짓말 연습」에서는 엄마와 딸 관계가 주요한 주제는 아니었어요. 한동안 엄마 얘기를 많이 쓰진 않았는데, 두 번째 소설집 내고 나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이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친애하고, 친애하는』에 실제 어머니나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녹아 있나요?


할머니 집을 묘사하는 부분 같은 건 다 픽션이에요. 모델로 삼았던 동네는 있지만 ㅎ동에 산 적도 없고, 할머니도 픽션으로서의 캐릭터죠. 그런데도 이제까지 쓴 제 소설보다는 사적인 경험이 조금은 더 많이 들어가 있어요. 할머니 캐릭터 중에 이북에서 피난 온 이야기는 저희 할머니의 경험이 들어가 있고, 강화도에서 살았던 이야기는 외할머니가 강화도에 사셨던 적이 있어요. 저랑 저희 가족은 그래도 조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제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간 것 같아요.


글로리아 할머니의 사건을 읽으면서 개인의 경험이 역사를 이룬다는 명확한 메시지가 느껴졌어요.


그렇게 느껴졌다니 기쁘네요. (웃음) 저에게는 목표한 바였어요.


작정하셨구나 싶었어요. (웃음) 4.19혁명이라는 소재가 워낙 크게 느껴지잖아요.


4.19 혁명 에피소드를 처음부터 기획하진 않았어요. 막연히 역사적인 사건을 넣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세미나에서 4.19혁명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린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개했던 부녀자들이 많이 나왔고 여고생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어요. 이걸 쓰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어떠한 혁명일지라도 여성이 늘 있는데 모든 역사는 남성 위주로만 기술이 되니까, 이 소설집에 그런 자리를 꼭 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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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만들어주는 일


주인공이 울면서 “나는 이렇게 엄마를 실망시키는 사람으로 남을 거야”(48쪽)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딸이라는 존재는 늘 엄마를 실망하게 할까 봐 불안해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을 봐도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고 극복하기도 하는 예가 되게 많더라고요. 항상 자신이 엄마에게 불충분하다는 느낌을 받거나, 엄마보다 잘해야 한다거나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해요. 엄마라는 존재가 교육 수준도 다르고, 워킹맘인지, 혹은 전업주부인지 등 모두 상황이 다른데도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DNA 같은 걸까요?


가부장제와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들이 자아실현을 많이 못 하다 보니 자식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려고 할 때가 많았잖아요. 자식이 자기보다 뛰어나야만 자아가 실현된다고 생각해서 자식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고, 어떤 것들을 자식에게 요구하는 일이 많아서 관계에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공부하고 싶었는데 공부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구시대의 인물이었다면, 엄마는 일에서 기쁨을 찾고 상대적으로 자식에게 관심을 쏟지 못한 캐릭터였어요. 반면 주인공은 아이를 키우는 것에서 기쁨을 느껴요. 모성이 구닥다리라는 인식이 있는데, 오히려 맨 마지막 세대가 모성을 찾는 모습이 색달랐어요.


저도 세 번째 딸의 미래를 어떻게 보여줄 지가 이 소설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고민스러운 지점이었죠. 슈퍼히어로 같은 주인공도 아니고, 어떨 때는 ‘쟤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처럼 갈팡질팡하면서 조금씩 뭔가를 향해 가는 인물을 그려주고 싶었어요. 응원해주고 싶은 사람으로요.


주인공의 남편은 매우 좋은 사람으로 그려지면서도 어느 순간 무심하게 상처를 건드리죠.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런 캐릭터를 넣은 건 아니에요. 주인공이 생각했을 때는 남편이 자신과 다르게 너무나도 완벽하고 정상적인 가정 속에서 자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거죠.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큰 메시지와 더불어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행복이라는 건 결국 없다, 우린 다 불완전한 행복 속에서 각자의 몫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너무 빨리 휘발되고 소진되는데, 사건을 이야기로 만드는 순간 시간을 가지고 기억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21세기에 문학의 자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휘발돼 버리는 기억들, 우리가 손쉽게 외면하고 지나갔던 것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더더군다나 제가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여성의 역사에 어느 정도 자리를 만들어주는 작업이 소설 작업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나 단편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서사를 넣어주고 싶었어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


문자로 남기는 기록의 의미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어떤 걸 기억시키는 데 중요한 몫이 있는 것 같아요. 역사책에서는 와 닿지 않는 것들이 소설로 읽으면 그 사람들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고, 그렇게 각인되는 기억은 사실의 암기와는 또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늘날 사람들의 인간관계는 피상적으로 되기 쉬워요. 어떤 사람의 삶을 진득하게 들여다보는 일을 하기가 힘들죠. 문학은 그런 일을 해주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감각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요.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언어로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다는 주제가 드러나요. 불문과 전공이고 외국어를 배웠다는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아무래도 영향을 안 미쳤다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외국어로 소통이 잘 안 됐기 때문에 그런 주제를 쓴다기보다, 외국어를 배우고 나니 한국어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는 걸 오히려 알게 됐어요. 어떤 단어는 한국어로 설명이 안 되는데 불어에 있다거나, 불어를 할 때는 한국어에 있는 단어를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겪은 거죠. 언어라는 것들이 이렇게 교집합처럼 얽히고설킬 때에야 비로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사실상 모든 언어를 배우는 건 불가능해요. 그 말인즉슨 언어는 소통하기에 불완전하다는 거죠.


외국에 갔을 때 소통의 단절을 겪는 경험이 글에 자주 나와요.


그런 장면을 쓰는 걸 좋아해요. 어떻게 보면 모국어로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순간이 매우 많은데,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좋은 장면이 외국어로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장면이거든요.


인터뷰도 언어로 하는 소통이잖아요. 한계가 느껴지진 않나요?


작품활동으로 이야기를 다 한 상태에서 부연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글을 휘발되는 말로 설명하면 작품을 망치는 길이 되지 않을까 늘 두렵고요. 그렇지만 이런 자리는 늘 제 소설이 어떻게 읽혔는지 들을 기회라서, 저에게는 값진 기회예요. 인터뷰를 통해 제 소설을 볼 수 있는 독자분들이 늘어나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과 문지문학상을 받았어요. 기쁨과 무게감이 동시에 느껴질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두 가지 감정이 있었어요. 어쨌든 작업을 좋게 봐주셨다는 거니까 기뻐요. 하지만 왜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어떤 건 상을 받고 어떤 건 안 받고, 왜 이 작품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는지 잘 모르고요. 바꿔 생각하면 제가 상을 받겠다고 노력해서 상을 주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제가 만족하는 작업을 하는 게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물론 받으면 좋죠. 상금이 큰 힘이 돼요. (웃음) 작품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되죠.


주로 언제 글을 쓰시나요?


원래는 낮에 강연하고 밤에 쓰는 패턴이었는데, 학기 중에는 불가피하게 낮밤을 가리지 않고 강연을 하지 않는 순간에 써야 되기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긴 해요. 강의가 없는 날에는 주로 오후에 써요. 아침엔 잘 쓸 수 없더라고요.


앞으로 쓸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지금까지는 단편을 주로 써 왔는데 장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박사 논문을 쓰느라고 장편을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는 논문도 끝났고 장편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는 호흡이 긴 소설을 시작하려고요. 어떤 여성 인물이 등장하고, 그 여성 인물이 세계와 만나면서 자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친애하고, 친애하는백수린 저 | 현대문학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엄마에 대한 마음을 ‘친애하는’에 담은, 누군가의 엄마이거나 혹은 딸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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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이수미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설명을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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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수미는 고향을 노래한다. 파도처럼 철썩이는 얼트 록의 성난 소음을 재료로 해변가에 아련한 모래성을 쌓아 올리는 이들의 음악은 2018년 한국 대중음악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짙은 노스탤지어의 마법은 해외 마니아들의 높은 지지와 더불어 '로켓맨' 엘튼 존의 귀까지 사로잡았다. 광안리의 너른 해변, 남포동의 작은 찻집, 부산대 앞의 에너지를 공통의 향수(鄕愁)로 엮어내는 세이수미. 공연을 위해 상경한 최수미, 하재영(베이스), 김창원(드럼), 김병규(기타)를 2월 18일 홍대 공중캠프에서 만났다. 아, 인터뷰는 부산 사투리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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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최수미(보컬/기타), 하재영, 김병규(기타)

 


2월 17일과 2월 18일, 이틀 연속으로 서울에서 공연을 가졌다.


수미 : 어제(2월 17일) 문화역서울 284에서의 공연은 일본 밴드 카네코 아야노와 함께하는 한일 문화교류의 장이었다. 문화역서울은 처음 가봤는데 건물도 멋졌고 관중도 많아서 재미가 있었다. 오늘(2월 18일)은 홍대 공중캠프에서의 정기 공연 '공중파'의 일곱 번째 공연에 초대를 받았다. 올라오는 김에 날짜를 어제오늘 맞춰서 하게 됐다.

 

내일 다시 부산으로 가는 건가.


수미 : 오늘 늦은 차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간다. 서울은 공연 있을 때만 올라온다.

 

향후 일본과 대만은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를 포함하는 유럽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각 국에서의 현지 반응은 어떤지.


수미 : 나라마다 굉장히 다르다. 영국은 세 번 갔고 이번이 네 번째인데, 아무래도 저희가 영국 레이블 댐나블리(Damnably)로 출발했기에 반응도 제일 좋고 단골 관객들도 있다. 일본 같은 경우는 지난 1월 두 번째로 공연을 갔는데 더 반응이 있었다. 그 호응이 있기에 4월 단독 공연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해외에서 공연하는 기분은 남다를 것 같은데.


재영 : 처음 서울에 공연을 하러 올라왔을 때도 어색했었다. 대도시에서 다 불러주시고 싶었는데… 해외까지 가게 되니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어색한 부분도 있다.


수미 : 즐겁고 재미있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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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김창원(드럼), 최수미(보컬/기타), 하재영, 김병규(기타)

 


세이수미는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출발했다. 결성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준다면.


수미 : 재영과 병규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중학교 때부터 같이 음악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여러 밴드를 거쳐서 활동해왔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맞나?


재영 : 약간 기분 전환 같은 밴드를 시작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병규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했지만 세이수미에 합류하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수미 : 나는 원래 밴드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병규가 하고 있던 밴드 '우주농담'의 공연도 자주 가고, 어울려 놀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나에게 보컬을 해보라고 했다. 나도 음악 좋아하고, 기타 치는 것도 좋아했는데… 밴드 멤버들이 날 키워줬다(웃음) 원래 세이수미에서 베이스를 치던 분은 밴드 '사이코 로켓'에서 드럼을 쳤는데 세이수미에 들어오고 싶어서 베이스를 잡은 케이스였다. 그분이 나가고 재영이 들어왔다. 재영이 합류하고 나서부터 곡도 쓰기 시작했다.


재영 : 다른 밴드 카피하면서 시작하고, 이때쯤 맞물려서 곡을 만들고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주로 어떤 밴드를 커버했나.


수미 : 덴마크의 밴드 레비오네츠(The Raveonettes) 커버를 많이 했다. 다른 밴드는 거의 안 했다.

 

광안리 해변가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라이브 펍이 많다. 밴드 결성 초기 라이브 하는 모습이 일견 상상이 되는데.


수미 : 광안리에서도 많이 했지만 처음에는 주로 부산대 앞 클럽에서 활동을 많이 했다.

 

<Where We Were Together>는 이즘 '2018 올해의 가요 앨범'에 선정됐다. 많은 이들이 이 앨범을 두고 공통적인 정서를 '쓸쓸함'이라 언급한다. 그 쓸쓸함의 근원이 어디 있다고 보나.


재영 : 복합적이다. 그리움이라는 게 꼭 하나 지정해서 그립다기보단 과거가 그리울 수도 있고, 익숙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떠난다거나, 변한다거나… 작업 과정에서 이래저래 그런 쓸쓸한 정서가 커져 있던 상황이었다.

 

광안대교를 타고 가다 보면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쓸쓸한 아파트 단지를 볼 수 있다. 앨범 아트도 이런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있는 것인지.


수미 :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찍은 사진은 아니고 직접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사진이다. 커버를 만들려 다양한 사진을 찍었는데, 저희가 다니는 데가 그 근처다 보니 정규 1집과 같은 곳에서 새 앨범 아트를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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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김창원(드럼), 최수미(보컬/기타), 하재영

 


많은 이들에게 바다는 낭만, 여유, 경쾌함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와 반대로 앨범은 쓸쓸하고 외로운, 노스탤지어적인 경향이 있다. '바다'보다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징이 상당히 많이 묻어나는 앨범이라 본다.


수미 : 우리는 항상 바다를 늘 보고 지내기에 그렇게 특별한 느낌이 들진 않는다. 일상과 굉장히 맞닿아 있지. 매일 날씨가 맑을 수 없으니 성난 파도 등 바다의 여러 모습을 보다 보니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것도 있다. 거기다 앨범 작업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이 겹쳐지며 복합적이고 자연스럽게 그런 정서가 나온 게 아닐까. 그렇다고 우리 노래가 마냥 어두운 건 아니지 않나.

 

드럼을 치던 멤버 세민이 사고를 당한 것도 그 '과정의 일' 중 하나인가.


수미 : 당시엔 그 일이 굉장한 충격이었고 지배적인 사건이었다. 아무래도 그때 감정이 많이 들어갔다.

앞서 말한 대로 'B Lover'나 'Funny and cute' 같은 곡은 발랄하다. 일부러 밝은 이미지를 주고자 했는지.


수미 : 'B lover'는 꽤 오래된 곡이다. 내가 알기로 병규가 다른 로큰롤 밴드에게 주고 싶어서 만든 노래로 안다. 그런 뼈대에 가사를 붙일 땐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을 넣었다. 믹스 앤 매치(Mix & Match)인데, 개인적으로 그런 걸 좋아한다. 'Funny and cute'도 예전에 만든 거 아닌가?


재영 : 한참 전이지. 편곡을 나중에 한 거지.


수미 : 편곡에서 일부러 밝게 한 건가?


재영 : 원래 곡이 좀 더 경쾌했지.


수미 : 편곡을 더 조용하게 했다.

 

부산은 지속적인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나의 유년기 때도 부산의 기억은 '사람들이 떠나간다'  '도시가 정체되고 있다' 등 침체되는 소식이 유독 많았다. 세이수미는 부산을 어떻게 바라보나.


수미 : 늘 애틋한 곳이다. 지금은 살고 있으니 어떤 특별한 감정을 갖기 어려운데, 떠나와서 보니 애틋하고, 좀 더 발전 가능성도 있는 것 같은데 갈수록 수도권과의 격차도 벌어지는 것 같고…


재영 : 부산에 있을 땐 특별한 감정을 갖기 어렵다. 투어를 돌고 해외를 나가게 되면 부산에 있을 때 우리가 제일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걸 보면 역시 고향이다. 마냥 좋았던 일만 있던 건 아니지만, 좋았던 일은 대부분 부산에서 일어났다. 제일 좋았던 일도, 제일 안 좋았던 일도 부산에서 있었으니까.

 

1집과 비교해서 2집이 더 큰 변화가 생겼다. 퍼즈 톤도 더 많이 들어갔고, 긴 러닝 타임의 곡도 수록됐으며 수미의 창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미 : 발전해야 한다. 발전하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내 보컬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고 본다. 내 것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자체 녹음을 했던 1집에 비해 아는 것도 많아져서 그런 것들을 적용하고 싶기도 했다.

 

앨범 이후 공개한 싱글 'Just joking around'는 그런 음악적 변화를 상징하는 곡이다. 6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에 다양한 템포 변화와 변주를 삽입했는데, 왜 정규작에는 들어가지 못했나.

 

수미 : 'Just joking around'는 정규 앨범 녹음을 시작할 때쯤 완성된 노래다. 앨범을 만들 때 당연히 음반 콘셉트를 생각하지 않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봤고,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앨범과 맞지 않았다고 봤다. 이걸 넣는다고 해서 우리 음반 내에서 연결고리가 없진 않지만… 완성되지도 않았고.


창원 : 같이 녹음한 거 아니었어?


수미 : 아 맞다. 녹음 같이 했어요. (웃음) 이래서 혼자 말하면 안 된다니까. 아무튼 앨범 러닝타임이나 다른 기타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싱글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봤다.

 

'B lover'가 B면으로 들어간 이유는?


수미 : 7인치 싱글로 발매하는데 한 곡만 넣긴 좀 그렇고... 처음에는 'Old town'을 넣어볼까 했는데, 'Just jocking around'와 어울리는 건 'B lover'라 생각했다.

 

세이수미의 음악은 노이즈와 퍼즈 톤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다. 매체에서는 서프 록이라 칭하지만, 페이브먼트(Pavement),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 같은 1990년대 얼터너티브의 향수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수미 : 몇 곡을 빼면 서프 록으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서프 록의 여러 요소들이 조금조금씩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부산이라는 이미지와 합쳐져서 고착화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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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규(기타)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대표는 <GQ 매거진>에 세이수미를 소개하며 '해외 시장이 놓치고 있는 인디 록, 인디 팝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평을 남겼다.


수미 : (놀람) 사장님이요?


재영 : 사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웃음)

 

실제로 지난해는 세이수미와 더불어 혁오, 아도이 등 여러 한국 밴드들이 독특한 로컬라이징으로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해였다.


재영 : 딱히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열심히 우리의 것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운때도 잘 맞았고.


수미 : 정말 좋은 밴드들이 많은데 저희는 운이 좋았다. 몇 번 인터뷰에서 언급했는데,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설명을 느낄 때가 있다. 영국에서 공연을 할 때 나이 드신 분들, 예전에 음악을 정말 좋아하셨을 분들이 공연장을 많이 찾아온다.

 

2018년 엘튼 존이 애플 비츠원(Beats 1) 팟캐스트로 세이수미를 언급한 건 유명한데.


수미 : 전체 55분 중 잠깐 나온다. 'Old town'이 좋았나 보더라. 끌리는 점이 있었나 보다.

 

'운'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운도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올라탈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수미 : 우리가 은근히 근면 성실하다. 작년에 처음으로 우리 모두가 전업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다른 일 안 하고 음악에만 집중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Christmas, It's Not a Biggie> EP가 2018년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차기작 준비를 하고 있나.


수미 : 아직 계획은 없다. 정말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이제 슬슬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낼지를 생각하진 않았다.

 

밴드 멤버들에게 세이수미가 갖는 의미를 말해준다면.


창원 : 편안함과 일상. 근처에 항상 가까이 있고, 때로는 뜨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수미 : 내 방 같은 공간, 제일 편한 곳. 같이 있어도 불편할 것도 없고.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재영 : 직장이다. 월급은 안 나오는 자영업.


병규 : 동업자.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세이수미 멤버들의 인생 음반은.


수미 : 페이브먼트의 <Slanted Enchanted>.

병규 : 욜 라 탱고(Yo La Tango)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 ? Out>.

재영 : 블러… 그냥 블러 하겠다. <Blur>.

창원 :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데뷔작 <Rage Against The Machine>.

 

 

인터뷰 : 김도헌, 박수진, 임동엽

사진 : 임동엽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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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마스다 미리, 어른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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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가 『월간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보낸 ‘잘될 거야’ 메시지 카드

 

 

1969년생 만화가 마스다 미리. 그를 소개할 때마다 따라붙는 타이틀은 ‘일본 여성 독자들의 정신적 지주’.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어쩐지 마스다 미리의 작품을 떠올리면 곧장 수긍하고 싶어진다.  『걱정 마, 잘될 거야』를 읽으면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은 세 명의 마리코. 언제까지 신입사원처럼 일할 수 없다고 조바심 내는 2년차 마리코, 직장 내 남성 문화를 보고도 박자를 맞춰주는 자신을 진절머리내는 12년차 마리코, 자신의 입지가 경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로워하는 20년차 마리코. 어쩌면 나의 현실, 주변의 이야기를 눈으로 읽는 느낌이었다.

 

마스다 미리는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 일반 직장에서 근무했다. 여러 작품에 여성 직장인들의 현실적인 이야기가 줄곧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4세, 34세, 42세 같은 이름을 가진 세 명의 마리코는 매일같이 자신의 삶을 고민하면서도 조금씩 앞을 향해 나간다. 지나치게 자족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곁을 살피면서 서서히 자기 생각을 꺼내 놓는다.

 

『걱정 마, 잘될 거야』 를 읽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걱정 마, 잘될 거야.” 그리고 동료에게도 같은 말을 전했다. 좋은 책은 나의 ‘곁’을 살피게 한다. 마스다 미리는 언제나 ‘곁’을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걱정 마, 잘될 거야』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 받을 수 있을까요? 일한다는 건 대체 뭘까요. 마리코들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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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마스다 미리(Miri Masuda)


 

도움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

 

안녕하세요. 마스다 미리 작가님을 인터뷰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일본으로 날라가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이메일 인터뷰도 큰 기쁨입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독자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월간 채널예스』라는 좋은 잡지에서 저를 커버 스토리로 다뤄 주신다니 무척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드디어 봄입니다.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밤에 원고를 쓰기 때문에 오전엔 잠을 잡니다. 낮에는 협의 미팅이 없으면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합니다. 친구와 케이크를 먹으러 가기도 하고요. 일본에서는 겨울부터 봄에 걸쳐 호텔에서 개최하는 ‘딸기 뷔페’가 굉장히 인기입니다. 신선하고 맛있는 딸기 디저트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답니다. 봄에 일본 여행을 한다면, 추천합니다.

 

딸기 디저트는 일본에서도 큰 인기로군요. 저도 딸기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웃음) 주말은 어떻게 보내세요?


짧은 여행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차를 타고 느긋하게. 해외여행도 하고요. 요즘엔 매년 핀란드로 나 홀로 여행을 합니다. 여행을 떠나면, 인생이 한 번뿐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작년, 핀란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밖에서부터 석양이 쏟아져 들어와 가게 안이 오렌지색으로 빛나며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가게 안 모든 사람이 한 장의 그림처럼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토록 아름답지만 여기 있는 우리들에겐 수명이 있다. 언젠간 죽으리란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이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마스다 미리의 작품으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마스다 미리 덕후’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 독자들이 작가님에게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아시는지요?


몰랐어요. 굉장히 기쁘네요. 행복합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 한국에서 열린 이벤트에서 한 독자가 일본어 원서에 사인을 해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원서를 소장하고 있는 독자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출간된  『걱정 마, 잘될 거야』를 보면, ‘열심히 힘들게 산에 올랐는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밋밋한 평지’였다는 대사가 있어요. 성실함의 결론이 나온 셈일까요? 이 작품의 출발점이 궁금해요.


『걱정 마, 잘될 거야』는 회사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세대별로 묘사한 만화예요. 20대, 30대, 40대, 각각의 입장에서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많은 여성을 취재하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점은, 모두 즐겁게 살고 싶다 따위를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열심히 일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하는구나, 였습니다. 그런 그녀들의 강인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지요. 꼭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작가님의 대표작인 ‘수짱 시리즈’가 완결된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던 중에, 작년부터 연재를 시작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38살의 수짱을 만나게 되는 걸까요? 새로운 수짱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신작에서 수짱은 40세입니다. 항상 저는 잡지 등에 연재하지 않고 새로 원고를 썼는데요. 이번에는 겐토샤(幻冬舍)의 문예지 『쇼세쓰겐토(小說幻冬)』에 지금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작년은 나 자신이 40대인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그래, 써보는 거야!”라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5권 구상은 줄곧 생각하고 있었지요. 먹는 것, 사는 것에 관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3년 전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좀더 좀더, 맛있는 음식을 드시게 했었더라면” 돌이켜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나니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짱은 내가 아닌 가공의 인물이지만 길을 걷다가도 수짱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를 생각하곤 합니다. 5권은 올해 안에 완성할 예정입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빨리 선보이고 싶습니다.

 

수짱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물형에 대한 호감이 있으시나요?


저는 수짱을 “강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짱은 울기도 하고, 갈팡질팡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강함을 믿습니다. 수짱에게서 가장 좋아하는 점입니다.

 

‘수짱 시리즈’도 그렇고, 『걱정 마, 잘될 거야』에도 ‘어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인가요?


해서는 안 될 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그런 사람입니다.

 

작가님께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늘어나는 일도 있습니다만 슬픈 이별도 있습니다. 추억 또한 가족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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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답할 수 있는가

 

저는 작가님의 그림체도 좋지만, 글을 더 좋아합니다. 간결하지만, 해야 할 말이 다 들어 있죠.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간결한 대사는 어떻게 나오는 걸까요. 카피라이터로 일하신 경험 때문일까요?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항상 뭔가를 느끼면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했다”라고 머릿속에 문장으로 만들어 생각합니다. 감정을 흘려 버리기 싫은 거지요. 잊어버리지 않도록 휴대폰에 메모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그려온 캐릭터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을 꼽아보신다면요?


아무래도 수짱이 저와 가장 오랫동안 만났기 때문에 애착이 갑니다. 처음에는 그녀와 같은 나이였지만 어느새 내가 열 살 많아졌습니다. 수짱은 말하자면 ‘보통 사람’입니다. 이런 보통의 여자가 주인공인 만화를 과연 읽어줄까? 처음에는 걱정했습니다. 그랬지만 “이것은 내 이야기예요”라며 많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수짱은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졌음을 느꼈습니다. 저자인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수짱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와코 씨도 좋아합니다. 성실하게 꾸준히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신작에서도 큰 역할로 등장합니다. 작가님을 실제로 가장 많이 반영한 인물이 ‘수짱’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지금은 어떤 캐릭터가 선생님과 가장 가까울까요?  『주말엔 숲으로』의 하야카와일까요?


어느 주인공이라도 저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만, 저는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들을 동경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이상하지요.  『주말엔 숲으로』에서 생각해본다면 저는 ‘하야카와’가 아니라 안경 쓴 ‘세스코’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타입입니다. 언젠가 세스코가 주인공인 만화도 그려보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만화를 볼 때마다 유독 반가운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와 디저트 이야기가 등장할 때죠. 특정한 장소와 음식이 작가님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누군가를 만날 때, 함께 뭔가를 먹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먹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요. 가게에 진열된 디저트를 보면서, 멀리 떨어진 고향의 엄마에게 사다 주고 싶단 생각도 종종 합니다. 물론 저 자신을 위해서도 삽니다. 자신을 향한 보상도 중요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일찍부터 ‘욜로’, ‘소확행’의 가치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이 한국 독자에게도 꾸준하게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소중한 사람들이 있고, 일이 있다는 것. 이것이 내게는 행복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답할 수 있는지 여부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2015년 10월에 나온 작품인데요.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 생활』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한국의 많은 출판 관계자들이 좋아하는 만화이기도 한데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편집자들의 특징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각각의 업무 방식이 있으므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이 담긴 편집자에게는 나도 진심을 담아 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기 힘든 말』이라는 작품도 좋았습니다. 작가님은 어렵지만 해야 할 말이 생기면, 어떻게 말하려고 노력하시나요?


어렵네요! 어떡하면 좋을지 나도 알고 싶습니다. 대부분 나중에 이메일로 전합니다.

 

『영원한 외출』에서 “돌아갈 수 있다면 38살 정도가 좋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저는 곧 38살이 되는데요. 정말 38살이 좋은 나이인가요? 어쩌면 5권 수짱의 나이일 수도 있겠네요. (웃음)


네, 아주 멋진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돌아봤을 때, 분명 그러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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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다양한 책을 읽고자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어시스턴트가 있으신가요?


“앞의 컷에 있던 컵이 다음 컷에선 사라졌습니다”라는 말을 편집자에게서 자주 듣습니다. 잊어버리고 쓰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 쓴 후에 체크하고 있습니다만……. 어시스턴트는 없습니다.

 

하하. 네, 사용하는 펜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일본 브랜드인 SAKURA의 PIGMA, 0.05밀리를 애용합니다. 한 자루 200엔 정도입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장점과 단점을 알려주세요. 저는 누구에게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장단점’이 궁금하더라고요.


장점은 마감을 잘 지키고요. 단점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서툰 점이지요.

 

『월간 채널예스』 4월호 특집 주제가 ‘90년대생이 도착했습니다’입니다. 작가님 작품 중에 20대가 보면 좋을 만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선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입니다. 학생 시절 친구와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 20대는 친구에도 변화가 생기는 시기입니다. 친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수짱은 만화에서 분명하게 답합니다.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도 추천합니다. 결혼 스타일엔 여러 가지가 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신혼 초에 읽었던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1,2권은 제 인생 만화입니다.


하하.

 

그런데 요즘도 여러 장소에서 잠입 취재를 하시나요?


아. 예를 들면, 네일 숍에서 손톱 손질을 받을 때 네일 아티스트의 이야기는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질문합니다. 길거리에서 싸우는 연인을 보고 이야기가 떠오를 수도 있고요.

 

패키지 여행을 좋아하시잖아요. 여행 에세이 출간 계획도 있으신가요?


작년엔 캐나다 패키지 여행에 홀로 참가했습니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해서, 작품의 무대가 되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갔었습니다. 실제로 이야기의 장소에 가면 또 새로운 감각으로 『빨간 머리 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수짱』 만화의 무대는 도쿄의 ‘지유가오카’라는 거리를 이미지로 삼았습니다. 겐토샤 출판사 웹진에 연재 중인 에세이에서는, 새로운 핀란드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언젠가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슬럼프가 오면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슬럼프는 오히려 작가가 되기 전인 학생 시절에 있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를 몰랐었기 때문이죠. 만약 지금 슬럼프가 온다면, 좌우지간 다양한 책을 읽고자 합니다.

 

다작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카페에서 느긋하게 있기도 하고. 저는 이런 시간도 스케줄에 넣습니다.

 

독자들의 팬레터를 받고 계실 텐데요.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작가로서 기쁜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기쁩니다. 팬레터는 모두 읽고 있습니다.

 

작가님을 롤 모델로 생각하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무엇을 하고 싶은 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끝까지 인터뷰를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만화가 뭔가 힘이 된다면 영광입니다.


 

마스다 미리(Miri Masuda)

 

1969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이다. 만화 ‘수짱 시리즈’를 비롯해 『오늘의 인생』, 『영원한 외출』, 『사와무라 씨 댁, 오랜만에 여행을 가다』 『주말엔 숲으로』 등을 출간했다. 2014년 제11회 부천만화대상 해외작품상,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걱정 마, 잘될 거야마스다 미리 글그림/오연정 역 | 이봄
마스다 미리는 밋밋한 평지에 서 있는 것 같아 불안해하는 마리코들에게 딛고 있는 땅이 아닌 저 위 멋진 저녁놀을 바라보길 권한다. ‘네가 지금까지 애쓰며 올라온 그곳에서,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걱정 마, 잘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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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정은 “빨리 털고 일어나 다시 달리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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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사람. 상태에 가까운 이 말을  『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의 저자 안정은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작가, 칼럼니스트, 모델, 이벤트 기획자, 사업가이기도 한 그가 이 많은 직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직업을 달리는 사람, 러너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대학에서는 연극을 했고, 졸업 후에는 어렵게 IT 회사의 개발자로 취직했지만 곧 퇴사했다. 애써 준비해 중국항공사에 승무원으로 합격했으나 공교롭게도 사드 문제로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사기 당한 건 아닌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묻는 지인들의 말과 시선에 매일을 눈물로 보내던 안정은은 어느 날 무작정 모자를 눌러쓰고 집 밖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한다.

 

2016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처음 달리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안정은. 그는 이제 스스로를 ‘러닝 전도사’라고 부르며 달리기 문화를 확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눈물이 나서 달리던 그가 순수하게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게 되기까지,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기쁨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 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안정은 작가는 “몸이나 정신이 건강해지는 건 그냥 별책부록 같아요.(웃음)”라며 몸과 마음, 그리고 성격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꿔놓은 달리기의 근사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당신의 ‘러닝포인트’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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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전도사 안정은입니다


작가님의 달리기 일주일 스케줄이 궁금해요.

 

보통 주말에 마라톤 대회가 있어서요. 저는 주말이 훨씬 바빠요. 주말에는 마라톤 대회에 선수로 참여해 뛰기도 하고요. 어떤 대회에서는 시작 전 무대에 서서 스트레칭을 진행하기도 해요. 적게는 5천 명에서 많게는 2-3만 명 앞에서 진행을 하죠. 지역도 여러 군데라 많이 다니게 돼요. 또 인터뷰를 겸할 때도 있는데요. 그러고 나면 오후에는 휴식을 갖는 편이에요. 평일에는 저도 직장인 분들처럼 일을 하고요. 러닝 이벤트를 기획하는 회사도 운영하고 있거든요. 지금은 ‘철인3종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어서요. 주말에 훈련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고, 사진을 정리하는 일 등을 하죠. 그 외에 스포츠 브랜드와 미팅을 진행하기도 하고, 틈틈이 유튜브 영상도 찍고요. 영상은 편집도 제가 직접 하고 있어요.

 

봄이 되면 마라톤 대회가 많아져서 더 바쁘시겠어요.


3월부터 많아져서 바빠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라톤 대회가 ‘서울국제마라톤대회’거든요. 그 대회가 올해는 3월 17일에 시작을 했어요. 그날을 기점으로 거의 매주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거예요. 1년에 대회가 400개 정도 되니까요. 많이 바쁘긴 해요.

 

첫 인사를 “러닝 전도사 안정은입니다”라고 하셨잖아요. 작가님에게는 유튜브, 블로그 등을 통해 알리는 일도 달리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겠네요.


달리기는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진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오프라인 활동이 중요하긴 한데요. 우선 말씀드릴 것은, 제 직업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작가이기도 하고, 칼럼니스트이기도 하고, 모델이나 이벤트 기획자이기도 하죠. 그런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직업은 그냥 달리는 사람, 러너예요. 그게 자연스럽게 홍보로 연결이 되는 것 같고요. 호텔에서 마케터로 일을 한 경험이 있으니까 마케팅이 재미있기도 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흥미를 느껴서 계속 하고 있어요. 이건 일이라기보다 그냥 놀이처럼 재미있게 하는 중이에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55쪽)한 것이 지금의 나에게 모두 가르침이 되었다고 적으셨잖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맞아요, 대학 때는 연극배우 생활을 5년 정도 했어요. 그때는 직장에 다니기 전이니까 덕분에 사회 경험도 많이 쌓고,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 것 같아요. 그것이 지금 모델 생활을 할 때도 도움이 돼요. 당시에는 시간 낭비, 돈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느 하나 도움 안 되는 일이 없더라고요.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울며 달리던 때가 있었는데요. 달리기가 몸뿐 아니라 마음의 근력을 키워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그때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세요.


그때는 정말 매일 울던 때예요. 베개는 늘 젖어 있었고요. 아침에 깨자마자 눈물이 나니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눈을 계속 감고 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매일 울면서 그렇게 1년 정도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혼자 버티는 시기도 지나버리고 주변 사람들, 가장 친한 친구나 친척들까지도 “사기 당한 것 아니야?”, “너 거짓말 하는 거 아냐?”라는 얘기를 했던 때예요. 너무 힘들고, 부모님 얼굴 보기도 민망하고, 가족들과 사이도 조금씩 멀어졌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그냥 울면서 집 밖으로 나간 거예요. 무심코 달려볼까 싶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달리니까 숨이 가빠오고, 머릿속에 떠돌던 나쁜 생각과 잡념이 사라지면서 그 순간만큼은 굉장히 상쾌해지더라고요. 처음 달리기를 했던 그 날은 잠을 잘 잤던 것 같아요. 그 기분 때문에 다음 날도 달렸고요. 5분 달리던 게 7분이 되고, 8분, 10분이 된 거죠. 그게 지금 100㎞ 달리기까지 이어진 거예요.

 

처음 달리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군요.


네, 또렷이 기억이 나요. 2016년 4월인데요. 저는 그 날을 ‘터닝포인트’가 아니라 ‘러닝포인트’라고 말하고 있어요.(웃음)

 

“힘껏 달리고 나면 그 날을 버틸 힘이 생겼고, 원망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용서됐다.”(17쪽)는 문장이 새롭게 느껴졌는데요. 심지어 달리기가 “오히려 좋은 휴식이 된다”(152쪽)고도 했어요.


달리기 하는 분들도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이에요. 누구나 집에서 쉬고 싶을 텐데 회사를 마치고 달리기까지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거죠. 그런데 그분들의 얼굴을 보면 훨씬 밝으세요. 달리기가 휴식이 되는 거예요. 스트레스도 날리고요. 또 술자리도 없으니까 다음 날 개운하게 시작할 수 있잖아요. 몸은 더 가벼워지고요. 진짜 휴식이 돼요.

 

 

‘패배했다’가 아니라 ‘도전을 이뤄냈다’


작가님이 달리기를 하시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뭔가요? 


저더러 포레스트 검프 같다고 하세요.(웃음) 하도 열심히 달리고, 잘 달리니까 ‘러닝 기계’라는 말도 종종 듣고요.

 

그런가 하면 권태기도 있었다고요.

흔히 ‘런태기’라고 하는데요. 사실 좋아 죽을 것 같은 사람과도 권태기는 있잖아요. 일에도 번아웃이 있고요. 당연히 달리기에도 권태기가 와요. 저는 권태기가 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요. ‘해야 하는데’하면 괜히 스트레스만 받거든요.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쉬면 좀 환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것도 안 되면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하러 가면 좋더라고요. 달리지 않아도, 대회장의 분위기만 느껴도 다시 달려볼까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혼자 달리기에 지쳤다면 친구들과 같이 달리는 것도 권태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되죠. 재미있는 건 이 방법이 달리기가 아닌 다른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일이 힘들 때 동료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고요. 다른 사람들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활기를 느낄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달리기를 통해 배운 법칙들이 알고 보면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겠더라고요.

 

기록에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씀도 하셨죠.


패배는 있기 마련이에요. 큰 패배든 작은 패배든 언제나 있고, 그걸 견디는 근력을 쌓기가 힘든 것 같아요. 게다가 생활에서 패배를 하면 알게 모르게 손해가 있죠. 금전적인 손해라든지 커리어에 손해를 입는 경우가 있는데요. 달리기를 하면서 겪는 패배는 나한테 전혀 손해가 아니에요. 제가 좋아하는 분이 해주신 말인데요. 넘어졌을 때 바닥에 있는 예쁜 조약돌을 주워 일어나면 된다, 그러면 네게는 예쁜 조약돌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라고 하셨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까 위로가 많이 되더라고요. 저는 패배가 많아서 예쁜 조약돌이 많아요. 작은 패배를 견디는 힘이 마라톤을 통해 많이 생긴 것 같은데요. 매번 컨디션이 다르니까 좋은 기록이 나올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패배했다’가 아니라 ‘도전을 이뤄냈다’라는 식으로 생각을 전환하면 훨씬 좋더라고요. 그게 다른 일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도전을 이뤄냈다’는 말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기록 도전에는 실패했더라도 말이에요.


결과로만 이해를 하면 안 돼요. 특히 마라톤은 과정이거든요. 네 시간 동안의 과정이고, 한 시간 동안의 흐름이죠. 기록이 좋지 않아도 어쨌든 완주한 사람이에요. 기록이 나쁘고, 다리를 다쳤어도 어쨌든 완주한 영웅이니까 도전한 것 자체에 더 집중하고, 더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거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63쪽)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완주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달리기 하시는 분들로부터 메시지를 많이 받아요. 제가 SNS에 올린 문구에 정말 공감을 많이 하셨다고요.(웃음) 달리다보면 생각도 많이 떠오르고요. 깨달음도 많이 얻는 것 같아요. 거기에 공감하는 러너 분들도 많고요. 그게 참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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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달리면 완주가 힘들어요


책을 쓰는 것도 작가님의 러닝포인트 전후의 일들을 많이 정리하는 과정이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랬어요. 책 쓰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도 많아요. 달리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달리기를 좀 더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어 하시는구나, 많이 생각했어요. 가령 책 중반부에 시각장애인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제가 파트너로 같이 달리던 분이거든요. 거리끼실 수도 있을 텐데 책에 사진이 나가는 것을 흔쾌히 승낙해주셨어요. “정은님이 하시는 일은 뭐든 도와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좀 더 열심히 해서 건강한 달리기 문화를 전도하고 싶다, 전도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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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정은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정말 궁금해지는 거예요. 달리는 분들은 왜 그토록 달리기를 알리고 싶을까, 하고요.


맞아요, 절대 혼자 하려고 하지 않아요.(웃음) 저도 처음에는 달리기를 혼자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하다 보면 달리기 친구들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곁에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들과 함께 해야만 더 멀리 갈 수 있거든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말을 풀코스 달리기를 하면 절실하게 깨닫게 돼요. 어쩌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와 닿지 않는 말일 수 있어요. 10년이 걸려도 모를 수 있는데 풀코스를 달려보면 알게 돼요. 빠르면 4시간, 아니면 5시간 만에 이 문구를 가슴에 담게 되고요. 나아가 주변 분들에게 감사하게 되고, 같이 사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세계 곳곳에서 친구들을 만났다고도 하셨죠.


100㎞를 달리는 건 42.195㎞, 풀코스 달리기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거든요. 10㎞ 달리기와 20㎞ 달리기가 2배 힘든 게 아니고요. 거리가 늘수록 훨씬 더 힘들어져요. 그래서 100㎞는 혼자 달리면 사실 완주가 힘들어요. 언제 포기할까, 어떻게 포기할까, 그런 생각만 하는데요. 좋은 사람들과 같이 달리면 완주하고 뭐 먹을까, 어떻게 결승선에 들어갈까, 그런 생각을 나누면서 훨씬 더 멀리 나갈 수 있어요. 함께 달리는 건 더 많은 도전을 하게 하고요. 더 큰 삶의 활력이 되는 것 같아요.

 

달리기가 단순히 나의 건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자꾸 생각하게 돼요. 흥미로워요.


몸이나 정신이 건강해지는 건 그냥 별책부록 같아요.(웃음) 제가 달리기로 진짜 배운 건 도전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발견하고, 우물 밖을 탐험하려고 하는 마음이거든요. 달리기 전에는 항상 타인과 나를 비교했는데요. 달리고 나서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어제는 10㎞를 달렸으니까 오늘은 한 번 11㎞를 달려볼까, 하면서 나와 비교를 하니까 자존감도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게 됐어요. 성격이 많이 바뀌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달리기가 어떤 해답을 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날 있었던 고민과 잡념을 말끔하게 지워주고, 감내하도록 하는 힘이 달리기에는 있어요. 내일을 다시 달릴 힘이 생기는 거죠. 누구나 넘어지는 경험은 하고요. 그건 잘못된 게 아니에요. 다만 빨리 털고 일어나 다시 달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때 달리기만큼 빠르게 다시 시작할 힘을 주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성격까지 바뀌었나요?


우선 부모님이 이 변화에 놀라시고요. 저를 어렸을 때 봤던 분들이 지금 저를 보시면 이렇게나 바뀌었느냐고 놀라세요. 표정도 밝아지고, 인상도 좋아졌다고요. 굉장히 내성적이었고, 말도 잘 안 하고, 질투도 많고 그런 성격이었거든요. 기본적으로는 생활 습관이 바뀌니까요. 전에는 술자리를 좋아했는데 술을 마시면 다음 날 달리기가 힘드니까 자연스럽게 금주를 하게 됐어요. 건강한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됐고요. 특히 기록을 위해 뛰어보자 생각하는 대회가 있으면 전날 식단 관리를 해요. 고탄수화물, 고단백질 음식을 섭취하죠. 그러다보니까 확실히 운동을 안 하시는 분들보다는 탄탄한 것 같아요. 이건 모든 러너분들의 공통 사항일 거예요.

 

5분, 10분을 달리다가 어떻게 처음 마라톤 대회에 나가게 되신 거예요?


달리기를 시작한지 6개월밖에 안 됐을 때예요. 몸과 마음이 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뛴 거죠. 주변에서 다들 말렸거든요. 그래도 뛰었는데요. 당연히 힘들었죠. 이 힘든 일을 내가 왜 하고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 장애인 마라톤을 처음 봤어요. 시각장애인의 경우 파트너와 끈을 연결해서 동반 주자로 뛰기도 하셨고요. 청각장애인이라 응원 소리도 듣지 못하면서도 42.195㎞를 뛰는 분도 계셨어요. 심지어는 양팔이 없어서 균형 잡기 힘들 텐데도 풀코스를 뛰는 분까지 계시는 거예요. 휠체어 바퀴를 밀면서 뛰는 분도 계셨고요. 저의 첫 마라톤에서 그분들을 보니까 나도 더 열심히 달려서 체력이 좋아지면 꼭 저분들과 동반주자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죠. 그리고 2년 뒤에 똑같은 대회에 동반주자로 뛰었어요. 그때 만난 시각장애인 선생님과 지금도 연락을 하면서 지내요. 앞서 책에 흔쾌히 도움 주셨다고 했던 분이 그분이에요.

 

달리기를 통해 어디에도 없는 귀한 인연을 만난 거예요.


조금만 더 덧붙이면 시각장애인 분들 중에도 잘 뛰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젊은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의 수가 현저히 부족해요. 원래는 시각장애인 한 분 당 동반주자 두 명이 필요한데요. 인원이 부족하니까 1:1밖에 못하고 있어요. 더구나 잘 달리시는 분들은 더 많이 달리고 싶고, 빨리 달리고 싶고, 기록도 갱신하고 싶은 목표가 있는데 그런 분들과 맞는, 같이 달려줄 만한 분이 없는 거예요. 그런 걸 볼 때마다 달리는 분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오늘도 잘 달렸구나


칼럼도 쓰시잖아요. 먼저 잡지사에 기고를 제안하기도 하셨고요. 그것 역시 도전해 본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걸까요?


먼저 문을 두드려도 모두 응답을 받은 건 아니었어요. 열 번 두드리면 한 번 답변이 왔을까요. 그래도 한 번이라도 답이 왔다는 사실이 저는 신이 났어요. 글은 써본 적도 없었지만 달리기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거든요. 그래서 우선 여행 관련 잡지에 실린 칼럼은 다 읽었어요. 끝맺음은 어떻게 할지, 어떤 글이 재미있는지 그 칼럼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알게 됐고요. 사람들이 제 글이 재미있다고 해주시니까 자신이 생기면서 책도 써볼까, 해서 책을 내게 된 거였어요.

 

이 책도 작가님이 먼저 투고하신 거예요?


네,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은데요.(웃음) 마라톤을 하면서 퇴사할 용기가 생겼고, 2018년에 퇴사를 했어요. 그렇지만 가족들을 설득해야 하잖아요. 대기업에 다니던 딸이 퇴사하겠다면 당연히 부모님은 걱정을 하니까요. 그때 1년 동안 달리기 책을 쓰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거죠. 매일 서점과 도서관에 출근해서 달리기 책도 읽고, 책 쓰기 관련 책도 읽었어요. 서서히 목차가 잡히더라고요. 그렇게 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원고를 썼어요. 10달 동안 써서 100%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했죠. 잡지사에 기고 메일을 보냈던 것처럼 그때도 마구잡이로 이메일을 보냈어요.

 

정해진 출판사 없이 쓰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원고 작업이 길어지고, 예정된 출판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힘들긴 했어요. 작년 11월에 싱가포르에 마라톤 참가 일정이 있었는데요. 싱가포르행 비행기에서 쌍무지개를 봤어요. 그걸 보고 싱가포르에 도착하면 무조건 원고를 완성해서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야겠다 다짐을 했죠. 진짜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새벽까지 원고를 쓰고 바로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그랬어요. 그곳은 마라톤을 새벽 3시에 시작하거든요. 너무 더워서요. 새벽까지 원고 쓰고, 잠 한 숨 안 자고 대회에 나간 거죠.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웃음) 투고하고는 한 군데만 연락이 와도 소원이 없겠다 생각했는데 거의 스무 군데 넘는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때도 많이 울었어요.

 

『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라는 제목도 원래 작가님이 정한 거였어요?


제목은 편집자님께서 강력하게 권해주셨어요. 프롤로그 첫 문장이 “오늘은 모리셔스의 태평양 바닷가를 달린다.”거든요. 그걸 보시고 제목은 이걸로 하자고 하셔서 정한 거예요. 여기에도 의미가 몇 개 있는데요. 저는 힘들어서 달리기를 시작한 거잖아요. 시간이 있고, 돈이 있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요. 큰 걸 바란 것도 아니었어요. 오늘 하루만 무사히 넘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모리셔스를 달릴 만큼 인생이 변화했다’라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모리셔스라는 아름다운 곳을 달리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마음을 담고 있기도 해요.

 

달리기는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니까 재미있는 기획도 많이 가능할 것 같아요. 100일 크루즈 달리기도 기획하셨잖아요.


올해 말에도 100일 크루즈 달리기가 예정되어 있어요. 크루즈 내에서는 달리기 강연을 하고요. 데크에서 달리기를 해요. 기항지에 내리면 마라톤 대회에 참여를 하죠. 정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데요. 저는 이미 잘 달리는 분들보다 달리기를 접해보지 않았던 분들을 이끄는 역할을 많이 하고 싶어요. 작년에도 지자체와 ‘런트립’이라고 해서 달리기 여행을 했었거든요. 대전, 부여, 공주, 익산 등 여행 가지 않을 것 같은 곳에 달리기 여행을 가는 거예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석구석을 달리면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정말 좋거든요. 굉장히 매력 있어요.

 

반려견과 함께 달리는 사진도 있었는데요. 반려견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대회도 있나요?


외국에는 대회도 있는데요. 아직 국내에는 대회는 없어요. 이벤트는 있었죠. 책에 실린 건 아식스에서 했던 이벤트였고요. 저도 제가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참가를 했었어요. 강아지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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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정은

 

 

작가님은 달리기를 할 때 어떤 순간을 제일 좋아하세요?


다 달리고 나서 “그만”할 때요.(웃음) 그러면 오늘도 잘 달렸구나, 생각하죠.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달릴 때는 저도 힘들어요.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생각하는데요. 같이 달리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조금 더 참고 뛰는 거죠. 그러고 나면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잘 뛰었다, 내일도 잘 달려야지, 하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오거든요. 그게 정말 좋아요.

 

달리기를 시작해볼까, 하는 분들에게 준비 사항을 조언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준비물은 없어요. 집에 나뒹구는 편한 운동화와 막 입는 티셔츠, 바지만 입고 나오시면 돼요. 혼자 달리셔도 좋은데요. 전국에 달리는 크루들이 엄청 많거든요. 제가 달리기를 전파하듯 그분들도 마찬가지니까요. 열린 마음, 즐기는 마음으로 오시면 이후에 달리는 일은 그분들이 알아서 도와줄 거예요.(웃음)

 

이 책을 어떤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세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학생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처음 제가 달리는 시기와 비슷하기도 하고요. 조금 더 일찍 달리기를 접한다면 인생에도 조금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당연히 넘어지는 날이 있겠지만 다시 일어나는 힘을 달리기를 통해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책 작업도 계속 하시는 거죠?

네, 제가 투고했을 때 연락을 받은 출판사와 다 미팅을 했어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그때 한 곳에서 에세이 제안을 주셔서 쓰고 있고요. 기획서를 쓰고 있는 게 또 있는데요. 여행서예요. 서울 달리기 책을 내고 싶어요. 같이 일하는 러닝 전문 포토그래퍼 분이 계셔서요. 그분과 협업해서 만들어보려고 기획서를 쓰는 중이에요. 되면 좋겠어요.(웃음)



 

 

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안정은 저 | 쌤앤파커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의기소침해진 마음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삶의 장애물을 통과한 그녀의 뜨거운 레이스에 귀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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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준 “아마존 12년 근속 경험이 내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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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답다’라는 수식어는 또 하나의 온라인 서점이 아니라 변해가는 세상 위에서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을 해나가는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 333쪽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를 펴낸 박정준 저자는 아마존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유일한 한국인 목격자다. 평균 근속연수가 1년 남짓인 회사에서, 그는 12년간 근무하며 근속 연수 상위 2%의 사원이 됐다. 이 경험으로 박정준 저자가 얻은 것은 단순히 ‘아마존 출신’이란 번쩍이는 경력이 아닌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얻은 삶의 자유’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옳은 일을 하고, 장기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본질에 집중해 혁신을 일으키는 아마존의 원칙은 곧 박정준 저자의 성장 방식이 되었다. 12년간 체득한 이 성공의 비결을 전하며 그는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 가치를 나누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마존에서 얻은 가장 귀한 결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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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이 정말로 지켜지는 회사, 아마존


집필 과정에서 구성이 바뀐 책이에요. 에필로그에서 책 쓰는 동안의 고민이 묻어나더라고요. 

 

2015년 퇴사 직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아마존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떤 회사인지에 대해 3인칭으로 페이지를 채워나갔어요. 그렇다보니 내용이 마치 기사처럼 딱딱했고, 이미 시중에 있는 아마존 관련 책들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죠. 때마침 출판계약이 이루어졌는데, 출판사에서 제가 직접 겪은 일들을 기록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만 할 수 있는 아마존의 경험을 토대로 내용을 재구성해 처음부터 다시 글을 써서 출간하게 된 책이에요. 아마존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한국인이었고, 덕분에 어마어마한 성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쓰는 작업은 어땠나요?


너무 힘들었고요, 제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다시 보게 됐어요(웃음). 책 한 권에 저자의 인생이 담겼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볼 수가 없겠더라고요. 글을 다듬고 또 다듬어서 책 만드는 과정이 마치 조각을 하는 것 같았어요. 책은 결코 상품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값으로 책정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걸 집필하며 더욱 실감했죠. 

 

입사 당시인 2004년, 아마존이라는 회사에 지원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때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좋은 회사였는데요. 면접을 보러 갔지만 제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면접관이 15분 만에 거절 의사를 밝혔어요(웃음). 이후로도 취직을 위해 계속 회사를 알아보던 중이었고, 아마존은 같은 학교를 다녔던 일본인 친구가 먼저 입사해 다니고 있던 기업이었어요. 그 친구가 추천을 해줘서 전화 인터뷰 후 면접을 보러 가게 됐는데 신기하게도 어려운 문제들을 척척 풀게 되더라고요. 5시간에 걸친 면접을 보는 동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죠. 무조건 아마존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까다로운 면접 과정을 수월하게 거치고 나니 아마존이라는 회사가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나를 위해 준비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힘들어도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죠.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건, 한국과 너무 다른 직장문화였어요.


한국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어서 회사 대 회사로 문화를 비교할 순 없겠지만, 저도 한국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놀라는 일들이 많았어요(웃음). 처음 입사하고는 상사에게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물었을 정도니까요. 한 번은 회의실에 들어갔는데 한 사원과 상사가 앉아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원이 테이블 위에 두 다리를 올린 채로 개를 끌어안고 있었어요. 상사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요(웃음). 너무 쇼킹했죠. 그런데 그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게 더 신기했어요. 직원들의 복장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유롭고요. 또 한국은 프로그래머들이 대체로 젊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관리직으로 가기 마련인데 아마존에는 할아버지 프로그래머가 많은 것도 생소한 풍경이었어요. 실제로 아마존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자로 근무하는 게 일반적이고, 그런 분들이 존경을 받아요. 관리자가 될지, 개발자로 남을지는 철저히 본인의 선택인데 계속 실무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많죠.

 

미국 내 직장의 보편적인 모습인가요, 아니면 아마존의 특징적인 문화인가요? 


일반적인 IT기업들도 대체로 복장 규정이 없고, 오랜 시간 프로그래머로 남는 직원들이 많아요. 그런데 회사에 개를 데리고 출근하는 건 아마존의 특징적인 문화 중 하나예요. 아마존 설립 초기인 스타트업 단계 때 사원 부부가 개를 데리고 오면서부터 그러한 문화가 생겼는데 실제로 수천 마리의 반려견이 주인과 함께 회사에 출근해요. 로비에는 개를 위한 비스킷과 밥그릇이 준비돼 있고, 새 사옥을 지을 때도 개를 산책시킬 공원을 따로 만들었죠.

 

회사가 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가 ‘절약’인 것도 인상 깊었어요. 제프 베조스 회장의 절약정신은 아마존의 혁신과도 연결이 된다고요.

 

아마존의 절약은 단순히 돈을 아끼고, 더 저렴한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낭비를 줄이겠다는 의미예요. 모두 풍족하면 발전적인 게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어 책상을 구입하면 100달러가 들고, 나무판자를 사면 30달러가 들어요. 그럼 그 나무판자에 다리를 붙여서 50달러짜리 책상을 만들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절약정신이 없다면 큰 고민 없이 그냥 100달러짜리 책상을 사서 쓰겠죠. 이처럼 ‘어떻게 하면 낭비를 줄일까,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라는 고민이 혁신과 연결돼요.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게 아니라 시간, 결제 등 모든 비용에서 낭비를 줄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고요. 세계 최초 무인매장인  ‘아마존 고’의 경우가 그렇죠. 물건을 가지고 카운터로 가서 결제하는 과정 자체를 낭비라고 보고, 물건을 집어서 나오기만 해도 자동으로 결제되는 시스템을 도입한 거잖아요.


그리고 절약정신을 강조하다보니 고객의 신뢰도가 높아지기도 했어요. 구글, 페이스북 등의 기업은 최고의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사원에게 정말 좋은 환경과 음식 등을 제공하는데요. 아마존은 반대예요. 직원에게 쓰는 비용을 최소화하죠. 그러다보니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아마존은 낭비하지 않고 그 돈을 고객에게 투자 한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어요. 결국 절약정신이 신뢰로까지 연결된 거예요.

 

지금은 세계 최대의 오픈마켓이 됐지만, 아마존의 시작은 온라인 서점이었어요. 사업의 첫 아이템이 ‘책’이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추측해본다면 아마 회장이 굉장한 독서광이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온라인에서 판매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상품이 책이라고 생각했을 테고요. 실제로 초창기 아마존 서점의 훌륭한 전략 중 하나가 ‘롱테일’이었잖아요. 이전까지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이 추천되고, 진열됐는데 아마존에서는 이 상식을 과감히 깼죠.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좋은 책들, 베스트셀러는 아니자만 누군가는 꼭 찾을 책들을 쉽게 검색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니까요. 그런 혁신 또한 책을 상품으로 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아마존은 원칙이 반드시 지켜지는 회사라고 썼는데요. 제프 베조스 회장의 확고한 철학이 사원들에게 어떻게 공유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진심으로 믿는 건 전달이 되는 것 같아요. 고객중심, 절약, 장기적 관점, 혁신 등의 철학을 회장이 진심으로 믿거든요. 스스로 그걸 실천하고 있고, 그에 따른 좋은 결과가 늘 검증이 됐어요. 이게 쌓이다보니 사원들을 자연스럽게 감화시키는 거죠. 특별히 사원들에게 어떤 코칭을 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제가 아이들에게 TV보지 말라고 이야기해놓고 저는 TV를 보면 아무도 제 말을 안 들을 거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솔선수범하면 아이들도 제 말을 따라주겠죠. 그런 이치인 것 같아요.

 

그럼 실제로 사원들이 회장의 철학을 진심으로 믿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사내에 형성 되어 있는 건가요?


모든 사원이 그렇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중심에 회장이 있고 그 주변을 둘러싼 리더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일단 아마존이 요하는 인재상을 다 갖춘 사람들이에요. 인재상이 멀리 있고, 이상적인 게 아니라 회사가 원하는 캐릭터가 강하면 강할수록 아마존의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거든요. 실제로 회의를 할 때도, 고객의 입장에서 사업을 설명하지 않고 ‘그렇게 하면 회사가 손해를 본다’는 등의 주장을 결코 할 수 없는 분위기예요. 인사고과에도 직접적인 사례를 들어서 이 직원이 얼마나 고객중심적인지 평가를 하도록 되어있고요. 그래서 일단 아마존에 입사해 근무를 하다 보면 회장이 주장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고, 지키게 되는 것 같아요.

 

 

아마존은 목표가 아닌 과정이었다


‘회사는 평생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역설적으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요.


입사 6년차쯤 됐을 때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휴직기간을 가졌거든요. 그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많이 생각했어요. 하루도 더 다니기 힘들 것 같은데,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가족의 생계가 걱정이었으니까요. 그쯤 제프 베조스 회장이 모교 프린스턴 대학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보게 됐는데 아마존 창업기를 이야기하면서 후회 없는 도전을 하라고 조언하는 게 굉장히 모순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정작 회사 곳곳에는 열심히 일하라는 문구가 붙어있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힘들었는데, 아마존의 시간을 도제의 과정으로 보니 문제가 해결되더라고요. 끝까지 있을 곳, 도저히 나갈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여기서 최대한 많은 걸 배워서 나만의 일을 찾아 나갈 거라고 생각하니 편해졌어요. 학교는 돈을 내고 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마존에서는 돈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면면을 지켜볼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죠. 모든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는 걸 자각한 순간, 오히려 회사에 남을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회사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을 힘들게 했나요?


일단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고요. 그만큼 승진은 힘들어요. 분명 제가 더 오래 다녔는데, 나중에 들어온 사원이 먼저 승진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조급해지죠. 그래서 얼른 승진해야겠다는 욕심을 품으면 또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요. 그런데 ‘난 곧 여기를 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개발자를 그만 두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마케팅 경영 분석,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등 다양한 직종을 선택해 부서를 옮겨 다녔어요. 그렇게 아마존의 다양한 사업을 경험하니 회사 생활도 더 재밌고, 열심히 하게 되었죠.

 

‘정글에서 터득한 생존법’ 파트는 일하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업무 효율을 높이는 여러 비결 중,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일을 하면서 늘 영어로 인한 문제에 봉착했거든요. 상대의 말을 100%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질문하지 못하는 상황을 거듭 겪으면서 궁여지책으로 ‘도해 그리기’를 시작했어요. 제가 이해한 내용을 도형, 화살표 등을 활용해 그림으로 나타내는 건데요. 그림을 그리는 동안 스스로 문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또 동료에게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 내용이 맞는지 물어보면, 이해가 동등한 상황에서 정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르는 영역이 나오면 늘 차트든 도표든 그림을 그려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지하철 노선표가 있으면 길을 잃지 않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듯 한 장의 그림이 그런 역할을 하죠.


또 스스로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답을 해보며 일을 해결해가는 방식을 굉장히 추천해요. 저는 구글닥스에 질문과 답을 기록하는데요. 첫 줄은 목표를 쓰고, 그 이후부터 뭘 해야 하는지 하나씩 질문하고 답을 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행계획을 짠다고 하면 목표는 ‘여행을 잘 다녀오는 것’이 될테고, 그 이후부터 여행을 잘 다녀오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하나씩 적어보는 거예요. ‘맨 처음에 뭘 해야 하지? / 날짜부터 정하자. ?월 ?일.’ 이렇게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답을 해보는 과정을 거치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해져요. 제 경험상 한 번에 두 가지 생각을 하면 마음이 복잡하고 일하기 싫어지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한 번에 여러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죠. 기록이 남는다는 것도 굉장히 큰 자산이고요. 저는 이렇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하고자 했던 일을 못했던 경우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높은 업무강도, 치열한 경쟁, 부족한 복지제도 등 아마존이 직원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은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는 아마존에서의 시간을 도제의 과정이라 생각했고, 제 선택에 의해서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 환경을 나쁘게만 생각하진 않아요. 분명 치열하고 힘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랬기에 배운 것도 많거든요. 사실 그런 비판은 아마존이 직원들에게 일을 많이 시켜서라기보다는, 능력 중심으로 업무를 평가하고 업무 상황이 투명하게 공유돼 직원들이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에요. 최고의 성과를 위해서 모두 열심히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나 혼자 불평불만을 늘어놓거나 쉬엄쉬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되니까요.


다만 섭섭한 게 있다면 제가 아마존을 다니면서 아이 셋을 낳았는데, 하루도 유급휴가를 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물론 법적으로 보장하는 무급휴가를 사용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만큼 처우가 좋진 않았어요. 뉴욕타임즈에서도 그 문제를 꼬집은 적이 있고요. 다행히 제가 퇴사한 이후에는 곧바로 시정이 되어서 여자는 3개월, 남자는 1개월까지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제도가 변경됐다고 해요. 이런 부분은 분명 고쳐져야 할 점이죠.

 

그럼 ‘1년’이라는 짧은 근속연수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으로 IT기업의 근속연수 자체가 그렇게 긴 편은 아닌데요. 그중에서도 아마존은 특히 짧은 것으로 유명하죠. 해고되는 직원의 비중도 있을 테지만,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이직을 하거나 다시 학교로 돌아가거나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통 아마존에 오기 전에 다른 회사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그때 당시와 아마존에 다닐 때의 워라밸, 업무 강도 등이 크게 비교가 되니까 그만두곤 하고요. 열정적인 젊은 친구들은 신생 기업에서 꿈을 펼쳐본다는 이유로 퇴사를 하기도 해요. 또 세계의 인재들이 모여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되는 직원들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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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서


퇴사하니 어떤가요?


퇴사한 날 밤에는 아내랑 같이 많이 울었어요. 운동선수들 은퇴할 때 눈물 흘리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아내가 케이크를 준비해줬는데 12년간 고생한 일들이 떠오르며 울컥하더라고요. 그 이후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요(웃음). 진짜 너무너무 좋아요. 그래서 아마존에게 더 고마워요. 아마 다시 가라고 하면 절대 못 갈 거예요. 아마존에 있을 때는 동물원 울타리에 갇힌 것 같았거든요. 살아있긴 하지만,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상태였다면 지금은 정말 자유롭게 살아있다는 걸 느껴요. 지금 퇴사 후 3년 반 정도 지났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존에서 얻은 것들 중, 가장 값지게 느껴지는 게 있다면요.


장기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의 기쁨을 참으면 훗날 더 좋은 걸 받을 수 있다는 마시멜로 이야기는 사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운 거잖아요. 그런데 아마존은 이걸 정말 잘 지키는 기업이에요. 이를 통해 실제로 수많은 성공을 거뒀고요. 그걸 몸소 경험했고, 그 힘과 가치를 목격했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는 시각이 생긴 것 같아요. 또 혼자 무얼 하든 다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어요. 내가 어느 집단에 속하거나 회사의 힘에 기대지 않아도 스스로 내가 가진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줬죠. 분명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줬고요.

 

아마존의 물류센터인 ‘풀필먼트 센터’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로봇을 활용하게 된 사례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작가님의 낙관적 시선이 인상적이었어요. 국내에는 4차산업혁명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데, 세계 최고의 IT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자의 견해가 궁금해요.


저는 혁신을 막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혁신은 악당이 아니라 우리를 더 편리하게 하는 존재죠. 전기, 자동차, 비행기, 인터넷 모두 사람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었잖아요. 하지만 혁신이 생길 때는 늘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에요. 그럼 우리는 수혜자가 되면 되는 거죠. 제가 사는 시애틀의 이민자 역사를 보니, 150년 전에는 이민자들이 거의 통조림 공장에서 일을 했더라고요. 당시엔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깨지지 않는 통조림이 굉장히 큰 혁신이었거든요. 그런데 냉장고가 발명되면서 통조림 공장이 다 망해버린 거예요.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당연히 직장을 잃었겠죠. 그렇다고 해서 냉장고가 발명되지 말았어야 할까요? 그건 아니잖아요. 무작정 두려워하기보다 혁신의 등에 올라타면 된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기존의 일자리 중 사라지는 게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새로 생길테니까요. 사람보다 로봇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특히 저는 하나의 직업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0년 뒤 아마존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물음에 제프 베조스 회장은 “10년 뒤에 아마존이 무얼 할지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지금 없다”고 답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틀에 갇히지 않는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몇 년 전까지 아마존의 직원이었다면, 지금은 아마존에서 유아용 매트를 판매하는 사업자가 됐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저는 아마존의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한국어를 잘하고, 아빠라는 강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의 유아용 매트를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미국에서는 영아가 응급실에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낙상이에요. 아이들을 다 높은 곳에 올려놓거든요. 신발을 신고 다니는 문화 때문에 바닥은 더럽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바닥에 아이를 두지 못해 다치게 한다는 건 굉장한 넌센스예요. 아이들은 바닥에 있어야 제일 안전하잖아요.


아마존의 FBA(Fulfilment By Amazon) 시스템은 판매자에게 굉장히 유용한데요. 상품 등록 후, 물류센터에 물건을 보내주면 아마존에서 주문, 배송, 고객서비스를 모두 담당해요. 세팅만 해 놓으면 판매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거죠(웃음). 이걸 이용해 사업에 도전했어요. 지금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서 제가 매트를 판매하기 시작하며 아마존에 ‘유아용 매트’ 카테고리가 새로 생겼고요,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으로 판매되는 상품이 됐어요.

 

아마존의 근무 경험이 사업의 밑바탕이 되었네요.


사업을 시작하게 했을 뿐 아니라 상품의 정체성을 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어요. 본질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마존의 정신을 체득했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매트의 본질’을 깊이 고민할 수 있었거든요. 결론적으로 나온 생각은 ‘아이가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안전을 지키는 게 매트의 목적일까?’라고 질문해보니 그건 아니더라고요. 안전하려면 움직이지 않으면 되잖아요. 결국 매트는 넘어져도 괜찮은 환경을 만드는 것, 아이를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모험적으로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어요. 그래서 만든 캐치프라이즈가 ‘Every adventure strarts from the safe ground(모든 모험은 안전한 땅에서 시작된다)’였죠.

 

지금은 혼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사업의 규모를 키우고 싶은 욕심은 없나요?


네, 전혀 없어요(웃음). 저는 제프 베조스나 빌게이츠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그냥 자유롭고 싶어요. 아마존이 저를 너무 옥죄었기 때문에 생긴 마음일수도 있지만요(웃음). 그리고 저는 미안해서 사원을 못 쓰겠어요. 그 사람도 자기의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앞으로는 기업이 없는 세상이 올 거라는 전망이 많잖아요.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는 방식이 아예 사라지진 않겠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그게 주류였던 이전과는 많이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좀 더 자유롭고 싶고,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타인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세상이 그렇게 변할 거라고 봐요. 제가 일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문구가 있어요. 아인슈타인이 했던 ‘성공한 사람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에요. 성공이나 도전은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가치는 목표가 될 수 있죠. 제가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매트 사업을 시작했고, 책도 쓸 수 있었거든요. 언젠가 저보다 매트를 더 잘 파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땐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 날이 온다면 저는 또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죠. 그렇게 가치를 추구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미래를 고민하며 일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자신의 커리어가 회사보다 크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책임져줄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는 여기서 많은 걸 배워서 독립할 거야. 내 커리어는 지금 회사보다 훨씬 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회사에 소속되어 있든, 아니든 간에 주체적으로 내 커리어를 생각하며 일하면 본인에게도 좋고 회사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관점일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책을 읽고 아마존에 입사하고 싶어지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가 책을 잘못 쓴 것이고요(웃음). 아마존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가치를 찾아 일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마존이라는 기업의 성장을 목격한 저의 경험담을 통해 ‘나만 할 수 있는 일, 내가 나눌 수 있는 가치’를 고민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거든요. 지금 회사를 다니고 계시든, 퇴사를 했든, 입사를 준비중이든 간에 궁극적으로 자신만 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세상에 나누어주는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훨씬 큰 삶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박정준 저 | 한빛비즈
결과적으로 점점 좁아지는 피라미드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회사 그 이후의 삶을 주도적으로 계획하며 아마존에서 다양한 직종에 도전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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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예지 “청소 일이 나를 영원히 대변하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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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노동자 김예지의 하루는 새벽 5시 15분 기상으로 시작된다. 곧장 출근을 해 오후 4시까지 청소 노동을 한다. 밤 10시-11시에는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다. 한편 일러스트레이터 김예지의 하루는 조금 다르다. 작업실로 출근을 하고, 솔직한 자기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일이 이어진다. 청소 노동자 김예지가 일러스트레이터 김예지를 응원하며 경제적 자립의 발판을 다져주고 있는 것이다. 그게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미대를 졸업하고,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스타일리스트로 일했던 그는 불안장애로 어려움을 겪었고 1년 만에 퇴사를 하게 됐다.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여러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을 맛봤다. 그런 그에게 함께 청소 일을 해보자고 제안을 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엄마였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는 20대의 청소 노동자가 사람들의 시선에 괴로워하면서도 직업과 꿈을 동시에 견인해나가는 고군분투의 과정이 솔직하게 담겨 있는 만화다. 김예지 작가는 그 시간을 몸으로 겪어내면서도 “(남의 시선을) 이겼다기보단 견뎠어요.”라고 말하고, 직업은 도구일 뿐 그것이 자신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도 서서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또 어느 날에는 울컥하고, 어느 날에는 엄마와 연근김밥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다르다는 게 가끔은 행복하지만, 또한 맞는 것일까? 고민하는 순간들도 많았어요”(223쪽)라면서 성실하게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김예지 작가. 이 솔직한 만화를 따라 읽다 보면 이것이 조금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우리의 고민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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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일을 한다


오늘도 청소 일을 하고 오신 건가요? 월, 수, 금 일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목요일도 하는데요. 대신 목요일은 다른 때보다 일찍 끝나요.

 

하루가 엄청 길겠어요.

 

그렇긴 한데요. 남들보다는 빨리 자니까 괜찮아요. 거의 10시, 늦어도 11시 정도에는 자거든요. 이 생활이 많이 익숙해졌는데요. 아침에 일어나는 건 여전히 많이 힘들어요. 밤에는 친구들과 놀다가도 그 시간이 지나면 제가 힘들어 하거든요. 그러면 친구들이 “나이 들었냐”고 하기도 해요.(웃음)

 

『저 청소일 하는데요?』는 먼저 독립출판물로 낸 책이에요. 그때도 책이 많이 팔렸잖아요. 


2,600부 정도 팔렸거든요. 독립출판 치고는 많이 팔렸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 출판사 통해 낸 책도 편집자님 말로는 잘 되고 있는 편이라고 들었는데요. 일단 너무 신기해요. 각자 공감하는 부분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공감할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한편으로는 청소일이라는 게 생소한 일인데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많이 보시더라고요. 그 반응들을 보면서 저도 되게 많이 위로가 됐어요. 생소한 일을 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들의 고민을 같이 하고 있는 평범한 젊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동질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처음 이 책을 쓰실 때는 이 정도로 사람들이 책에 공감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셨나요?


전혀 못했어요. 이건 저의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누군가가 공감을 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예를 들어 친구한테 제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가 “나도 그래”라고 얘기를 하면 공감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위로 받잖아요. 이 책을 통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책 내고 특별히 제일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우선 제 이름으로 무언가 해냈다는 기쁨이 있었어요. 이것을 통해서 작업실도 얻고, 치아 교정도 하게 됐거든요. 이 책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줬다는 게 정말 고마워요. 제가 도전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첫 출발이 되어줘서 정말 고맙죠. 책이 저의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책을 낸 후에 라디오도 처음으로 출연해보고, 이런 인터뷰도 하게 됐잖아요. 책 내기 전에는 전혀 없었던 경험이라 되게 신기하고요. 정말 재미있어요.

 

EBS 다큐도 촬영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촬영 하고 있고요. 4월 18일 저녁에 방송이 된다고 들었어요. <다큐 시선>이라는 프로그램이에요. 이런 경험까지 하게 될 줄은 진짜 상상도 못했어요.(웃음) 진짜 신기해요.

 

앞서 “생소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작가님도 스스로가 생소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갖고 계셨던 거죠?


왜냐하면 일단 제 나이 또래에 이 일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고요. 친구들 반응도 “청소 일을 해?”라며 신기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또 일을 할 때 현장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이 있잖아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생소한 일을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가족들이나 지인들에게는 신기해하는 시선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청소일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일을 하면서 낯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다름을 의식하게 됐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그 이야기를 보는데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맞아요, 가까운 분들에게는 제가 솔직하게 얘기를 하기도 했고요. 그분들은 제가 해나가는 모습을 보니까 이해를 하시잖아요. 저런 생각으로 예지가 자기의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사실을 아니까 청소 일을 하는 게 받아들여졌을 텐데요.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그런 분들은 저의 앞뒤 사정을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현장에 있는 저만을 보는 거니까요. 진짜 예의 없는 사람 중 한 명은 저한테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취직 안 하냐”라고 물어보시기도 했거든요. 겉으로 티는 못 냈지만 속으로는 왜 함부로 남의 인생을 저렇게 판단하면서 얘기할까, 생각했었어요. 무례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죠.

 

 

직업은 일종의 도구일 뿐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문제를 비롯해서 청소 일을 하시면서 고민이 굉장히 많으셨던 것 같았어요. 누구나 하는 노동의 하나로 긍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던 거죠?


지금 와서는 이걸 그냥 노동으로 받아들이게 됐지만 처음에는 직업이 곧 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별 고민 없이 시작을 했다가 사람들의 시선이나 나의 나에 대한 생각 때문에 고민을 계속 한 거죠.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직업이 그냥 제가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전까지는 그에 대한 생각을 못하고 살았어요. 이런 직업을 얻고,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는 경험을 하면서 직업이라는 게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지 그제야 느끼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도 직업과 나를 분리하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그 시간이 꽤 오래 걸렸어요. 어쨌든 내가 이 일을 선택했고, 이 일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 게 나한테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죠.

 

그 고민의 결과는 뭔가요?


이건 그냥 일이다, 이 일이 곧 나라고 생각하지 말자, 였어요. 생계를 해결해준다는 부분에서 이 일이 나에게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일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직업은 직업, 나는 나, 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까요.


저 역시 청소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에는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야였기 때문에 고민이 없었는데요. 청소 일에는 어쨌든 편견이 있잖아요. 저항력도 있고, 비교적 나이 든 분들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왜 대학을 나온 젊은 사람이 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그 일을 선택했느냐, 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왜 청소 일을 선택했는지 저 스스로에게도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또 나는 왜 부끄러워하는지 생각하게 되고요. 이 부끄러움의 근원을 생각하다가 직업이 무엇인가, 까지 가게 된 거예요.

 

편견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직업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더 깊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네요. 

직업이 곧 나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청소 일에 나를 꽂아 넣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선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청소 일이 그런 일만도 아닌데 세상이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에 저를 낮춰 보고, 청소 일을 낮춰 보는 건 아닌 것 같은 거죠. 또 책에도 썼지만 일단 지금의 직업은 내 필요에 의해 지금 선택을 한 것이지 저를 영원히 대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업은 일종의 도구일 뿐인 거죠. 그러니까 내가 좀 더 정확한 명사를 가지고 내가 왜 이 일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청소 일이 나에게 준 장점은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확실히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더 당당할 수 있다면 보는 사람이 저와 다른 의견이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결론 내리게 된 거예요.

 

이런 결론에 다다르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있었나요?


엄마였던 것 같아요. 일을 너 자체로 인식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네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정정당당하게 돈을 버는 것이니까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에만 더 집중하자, 라고 얘기를 해줬고요. 책에 상담 받은 이야기도 있는데요. 상담 선생님도 제가 일을 하기 싫다고 했을 때 “그럼 왜 하세요?”라고 질문을 하셨어요. 그때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엄마, 상담 선생님처럼 제가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 분들이 저에게 해답을 주셨던 것 같아요.

 

엄마가 곁에 있는 존재라면 상담 선생님은 작가님이 찾아가야 했던 거잖아요. 상담을 결심한 순간도 궁금해요.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회사를 바로 들어갔어요. 제가 불안장애가 되게 심했어요. 그래서 사회생활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회사라는 게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하는 일인데 저도 원치 않는 불안이 너무 많이 왔고요. 그게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라는 물음이 그때부터 시작이 됐죠. 그때는 정신과 치료만 받다가요. 상담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가게 된 거예요.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용기가 생겼나요? 아니면 여전히 신경이 쓰이세요?


반반인데요. 전에는 완전히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어느 정도 넘길 수도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피해의식 같은 게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도 나름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꼭 알아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조금 변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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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복은 타고 났다


엄마는 직장 동료이기도 하고, 정신적인 지지자이기도 해요.


엄마가 직장 동료인 것인 일단 엄청 편해요. 맞춰줄 필요도 없고요.(웃음) 그렇잖아요. 사회생활을 하려면 동료 기분도 맞춰야 하고, 거리감도 있어야 하고, 회식도 해야 하고 그런데요. 엄마랑 있으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그게 엄마한테 진짜 고마운 점이에요. 말 그대로 정말 편한 동료인 거죠. 그런데 단점이, 엄마가 지나치게 FM이세요. 완벽주의자라서 잔소리가 많은데요. 어찌 보면 그 덕분에 청소 일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또 엄마는 말을 잘 하시는 편은 아닌데 노력을 많이 하세요. 딸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많이 고민하시고, 노력하시고, 저를 정말 많이 위하시죠. 정말 부모 복은 타고 났다, 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작가님의 직업관에도 엄마가 미친 영향이 크겠네요.


맞아요, 엄마는 돈 받는 일은 약속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시거든요. 네가 돈을 받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뭐든 성실하게 해야 한다고요. 정말 아파 죽겠어도 일을 시키세요.(웃음) 그런데 그 점을 많이 본받고 있어요. 저는 아프면 쉬어버리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저 역시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일을 부탁할 때 잘해주기를 원하잖아요. 또 그런 사람에게 돈을 쓰고 싶고요. 엄마는 그러니까 일을 할 때는 네가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시죠.

 

“나는 엄마에게 남과 비교하지 않기, 자식을 깎아내리지 않기, 항상 나를 생각해주기를 배웠다. 당신이 보여준 이 행동들은 다 자란 나에게도 큰 자양분이 됐다. 미래의 부모가 된다면, 엄마만큼만 해내고 싶다.”(130-131쪽)

 

직장 동료로 지내면서 새롭게 발견한 엄마의 모습도 있나요?


엄마가 생각보다 훨씬 꼼꼼하다는 걸 알게 됐고요.(웃음) 엄마가 엄청나게 긍정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엄마도 고민이 있겠죠. 당연히, 사람이니까 고민은 있을 텐데요. 언제나 좋은 쪽으로 풀어가려고 노력을 많이 하시고요. 생각보다 더 강하고,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함께 일을 하면서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저도 엄마가 짜증날 때가 있어요. 잔소리를 하거나 하면 그렇긴 한데요. 정말로 제 안에 들어 있는 엄마의 모습은 든든하고, 강하고, 긍정적인, 본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원래도 엄마와 사이가 좋았는데요. 일을 함께 하면서 엄마의 그런 면들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과정을 엄마도 곁에서 다 보신 거잖아요. 그때 엄마는 어떠셨어요?


엄마는 한 번도 저한테 “왜 그러냐, 왜 그런 고민을 하느냐”라고 말하거나 야단을 치거나 한 적이 없어요. “사람은 그럴 수도 있어”라고 말해주셨지 탓을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저도 그게 진짜 고맙고 신기해요. 사실 저 같아도 “이제 그만 좀 해라”라고 말할 수도 있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엄마는 저한테 단 한 번도 그렇게 하신 적이 없었어요.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책에 대한 엄마의 반응도 궁금한데요.


아무래도 제일 가까이 있고, 제 이야기를 제일 많이 알고, 현재진행형으로 함께 일을 하고 있으니까 엄마 이야기가 책에 들어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엄마는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다!”(웃음), “한 번 더 읽을 거야!” 매일 그러세요.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을 때는 지금보다 글씨가 더 커서 이 책은 조금 힘들어하시긴 하는데요.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한테 읽힐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도 엄마와 관련된 걸까요?


네, 엄마가 싸준 연근김밥을 제가 진짜 좋아하거든요. 지금도 엄마와 일을 하면서 항상 먹는 것이긴 한데요. 만약에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그 연근김밥이 되게 많이 생각날 것 같고요. 엄마와 저 사이에 있는 기억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장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래는 점심을 사먹었었는데 연근김밥을 싸주신 이후로 저희가 점심을 안 사먹고 도시락을 싸와서 먹고 있거든요. 나중에 제가 자식들한테도 간단하게 싸줄 수 있는 김밥이 될 것 같아서 그 에피소드를 가장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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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들어가면 안 된다


제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고등학생 대상 강연에서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라는 질문에 “이겼다기보단 견뎠어요. 시선 때문에 포기하진 마세요!”(124쪽)라고 답한 부분이었어요.


이길 수 없다는 걸 애초에 알았던 거예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을 때 ‘난 괜찮아’라는 생각보다는 ‘왜 쳐다볼까? 내가 이상한가?’라고 고민하는 순간들이 더 많았거든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안 되겠다, 포기해야지’라고 하진 않았죠. 이런 고민이 들지만 그래도 청소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쭉 해왔는데요. 그것은 견딘 거잖아요. 하지만 이겨내진 못했던 거고요. 그렇게 제가 느꼈던 것을 솔직하게, 그대로 말했던 거예요. 이겨낼 수는 없지만 이 일을 내가 선택했고, 벗어날 수 없는 거라면 견뎌야 했기 때문에요.

 

그리고 이야기는 다양성까지 뻗어나가죠. “그리고 각자 조금은 다르다는 걸,(중략) 이렇게 조금씩 달라야 재밌는 거 아닐까?”(147쪽)라고 하셨는데요. 꼭 그런 이유로 다양한 사람이 세상에는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해요. 이 책은 다른 카테고리를 갖고 있는 거잖아요. 일단 평범한 20대 청년들이 갖는 직업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직업을 선택한 거니까요. 저도 다양하게, 많은 것들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정말 다행인 게, 지금 시대의 젊은 사람들은 다양하게 나아가려고 많이 노력하잖아요. 그렇게 자기만의 색깔이 생기고 자기만의 이야기가 생겨요. 그런 걸 보면서 저도 되게 즐겁고요. 저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또 생기는 것이 즐거워요. 너무 좋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시작이 독립출판이었다는 사실도 아주 절묘한 것 같아요. 원래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원래 좋아하고, 자주 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기존 출판도 좋아했는데요. 독립출판은 기존 출판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좋아했죠. 한편으로는 혼자서 쉽게 낼 수 있다는 장점이 독립출판에 있어서 더 저한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만화를 내고 싶은데 마침 독립출판을 떠올렸고, 이건 제가 조금 더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해보게 됐죠. 제가 이 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독립출판물이 서귤 작가님의 『책낸자』 라는 책이었거든요. 재미있는 독립출판이 많아서 좋아하고 있어요.

 

작가님은 이 책을 “고해성사”라고까지 말씀하셨잖아요. 그만큼 솔직한 이야기인데요.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담은 이유가 궁금했어요.


일단 이 책을 쓴다는 건 내 이야기를 쓴다는 건데 거기에 거짓말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독자로서 거짓말이 들어간 이야기를 읽고 싶진 않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쓴 이야기지만 저도 나중에 또 읽어볼 거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나도 나한테 거짓말을 하다니’라는 느낌이 들면 너무 싫을 것 같았어요. 또 쓸 때만 해도 읽을 사람을 생각하진 않았어요. 누가 봐줄까에 대한 고민은 조금 했지만 일단은 ‘에이,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썼고요. 책이 나온 후에 ‘친구들이 안 봤으면 좋겠다’(웃음) 생각하긴 했죠. 솔직함이 어쩌면 책의 키워드였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조금 덜 솔직하고 싶을 때가 있진 않았을까요?


상담한 내용이나 불안장애가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지금은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요. 약을 먹고 있는 것도 친구들이 다 알고요. 그런데 전에는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나의 일을 밝힐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그 두 개는 그런 고민을 하면서 그린 에피소드예요. 그렇지만 그것이 제가 청소 일을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 이유를 빼고 쓰자니 답답했어요. 취업이 안 됐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불안 증세 때문에 다시 회사를 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안 넣으면 설득력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결국 넣게 됐죠.

 

불안장애에 대해서 책이 나온 후에 조금 편안하게 얘기하게 되신 거군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또 의외로 이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제가 불안장애를 아주 심하게 겪었을 때, 저도 비슷한 사례를 엄청 많이 찾아봤거든요. 관련된 서적도 많이 찾아봤어요. 그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분들이 정말 고마웠어요. 그래서 저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지침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다음 책으로 불안장애를 치료하는 과정에 대해 쓰실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그 이유도 비슷할 것 같네요.

 
어떻게 낫는지 방법도 궁금하실 테고,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도 알고 싶으실 테니까요.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역시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관련해서 표현하고 싶은 게 있고, 분출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보는 일을 꼭 해보시면 좋겠어요. 일기가 됐건 그림이 됐건 영상이 됐건 혹은 그냥 혼자서 쓰는 어떤 매체가 됐건 간에 분출하고, 정리해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면 정말 좋거든요. 더 많은 분들이 오로지 자기가 자기에게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무엇이 됐든 꼭 시도해봤으면 좋겠고요. 막연한 말 같긴 한데요. 시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저 청소일 하는데요?김예지 저 | 21세기북스
내 인생의 책임자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에. 나라는 사람이 누구와도 같지 않은 것처럼, 내가 살아가고 책임지는 인생 역시 누구와도 같을 수 없다. 정해진 길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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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찬재 안경자 “70대인 우리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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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자 작가(왼쪽)과 이찬재 작가

 

 

호기심 많은 안경자 씨와 무뚝뚝한 할아버지 이찬재 씨는 1942년생 동갑내기 부부. 대학CC였던두 사람은 26세 나이로 결혼해 국어 교사, 지학과 교사로 일하다 1981년 브라질 썽빠울로로 이민을 갔다. 연애가 너무 즐거워 결혼했고 신혼 생활이 너무 행복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었던 이들 부부. 안정적이었던 한국 생활을 접고 이민을 결심한 건 “한국에서 40년을 살아봤으니, 좀 다른 세상에서 살아봐도 재밌겠다”는 마음에서다. 브라질에서의 의류 사업은 꽤 잘됐다. 적당히 잘 벌고 잘살았던 부부는 2017년 10월, 손주들의 부름에 36년간의 긴 브라질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아름다운 그림 편지를 담은 에세이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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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재 작가
 

우리 프로젝트의 대장은 ‘아들’

 

‘35만 명 팔로워’를 가진 SNS 인플루언서이세요. 인스타그램을 시작하신 계기는 아들의 설득 때문이라고요.

 

이찬재 : 아들이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손주를 낳아서 보러 갔는데, 제게 인스타그램을 하는 법을 끈질기게 알려줬죠.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라고요. 처음엔 무슨 그림이냐고, 안 한다고 했어요. 그림을 놓은 지도 한참 지났는데, 인스타그램이라니요. (웃음) 그런데 아들이 정말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따님이 갑자기 한국으로 떠나면서 외로움을 느끼셨다고요.

 

안경자 : 남편이 손주들의 등교를 도와줬어요. 차로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이 남편의 주요한 일상이었는데 딸이 한국으로 가면서 우리의 일상이 달라졌죠. 브라질에서 우리는 모든 걸 함께 했거든요. 남편이 쓸쓸해 하니까 아들이 뭔가 취미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남편이 젊었을 때, 아이들에게 그림을 자주 그려주곤 했거든요. 그 때 기억이 났나 봐요.

 

쉽게 설득을 당하셨나요?


안경자 : 전혀 그렇지 않아요. 처음엔 딱 잘라서 안 한다고 했죠. 그런데도 아들이 정말 정성스레 설득했어요. 결국 뉴욕에서 머문 1주일 동안 남편이 인스타그램을 하는 법을 배웠죠. 저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모두 사용해요.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아직도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이 많죠.

 

2015년 4월부터 인스타그램 ‘손자들을 위한 그림(@drawings_for_my_grand children)' 계정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팬이 생겼어요. 책을 기다린 독자들이 많았다고요.

 

이찬재 : 책이 언제 나오냐고 궁금해 한 분들이 축하 댓글을 많이 써주셨죠. 아무래도 한국 독자보다는 외국 분들이 많으세요.

 

안경자 : 남편이 그림을 그리면, 제가 그림에 대한 글을 쓰고, 아들은 영어로 딸은 포르투갈어로 번역해 그림과 글을 올렸어요. 그림마다 'For AAA'라고 서명했는데 'A'는 한국에 있는 두 외손자와 미국에 있는 친손자의 이니셜이에요. 그림이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는 영어로 출판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해외 배송으로 책을 받아 보셨다는 독자 분도 계시고요. 왜 연예인들이 이런 말을 하잖아요. “팬들 덕분이다.” 저희도 그걸 느껴요. 이 분들이 이렇게 우리를 응원해주는구나, 생각해요.

 

아드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을 보았어요. 뭉클하면서 재치가 넘치더라고요. 이찬재 작가님은 무척 무뚝뚝한 아버지시라고, 안경자 작가님은 호기심이 많은 어머니라고 소개했더군요.

 

안경자 : 아들은 우리 프로젝트의 대장이에요.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도 아들 덕분이죠. 한국에서의 우리 일들은 딸아이가 맡고 있어요. 이번에 책 작업을 하게 된 건, 딸 도움이 컸지요. 저희가 오랫동안 브라질에 있었으니까 한국의 흐름을 잘 모르잖아요. 우리보다 일찍 한국에 정착했으니 이제 우리가 자식들의 도움을 받은 거예요.

 

첫 책을 받아봤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이찬재 : 저희가 푸른 색을 좋아해요. 표지 색이 좋았어요.

 

안경자 : 우리가 나이가 들었잖아요. 그래서 활자가 너무 작은 게 아닌가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책을 읽으실 독자층을 생각하면 작은 게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주 독자가 노인은 아니니까요. (웃음)

 

그림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기분이 좋으세요?

 

이찬재 : 글쎄요. 제 그림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추상화도 아니고 상징이나 은유가 있는 그림도 아니고. 그냥 제 눈에 보이는 것, 자주 생각하는 것들을 그리는 거예요.

 

안경자 : 남편의 그림을 보고서 울었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자식들이 후회스럽다는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도 이런 재주가 있었는데 나는 왜 이런 방법을 제안하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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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소재가 다양해요.

 

이찬재 : 처음엔 손주들 크는 모습을 많이 그렸어요. 그러다 브라질에서 본 인상적인 풍경도 그리고, 옛날 한국에서 살았을 때의 모습도 그리게 됐죠.

 

안경자 : 손주들이 20년 후, 30년 후에 이 그림들을 볼 거 아니에요. 애인이 생기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을 때 이 그림들을 보면서 추억했으면 좋겠어요. 살다 보면 언제라도 내 부모는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에요.

 

글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안경자 : 내 표현이 너무 고루하지 않을까, 너무 옛날 감성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걱정됐어요. 브라질에 있을 때 재외동포신문에서 문학상 공모를 하길래 글을 보낸 적이 있어요. 그림 그리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가작으로 당선됐죠. 그래도 읽히는구나, 안심했죠. 브라질에 있을 때도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꼭 구해서 읽었어요.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 . 책 제목이 본문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삶의 여러 과정을 겪은 후에 할 수 있는 말로 읽혔어요.

 

안경자 : 출판사에서 제목을 제안해 주셨는데 처음엔 제가 썼는지도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 같은 느낌이 있어 걱정했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 말 안에 많은 의미가 있을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책을 만들고 보니, 지금까지 살아보니 모든 순간이 찬란했어요. 어떤 때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무척 힘들고 벅찼지만 결국 삶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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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자 작가

 

 

우리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는 일

 

브라질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이찬재 : 좋았어요. 저흰 크게 어려움 없이 잘 적응했습니다. 장인어른이 브라질에서 이미정착하신 후에 저희를 부르셨어요. 그리고 제가 브라질 음식을 참 좋아해요. 한국 음식보다 브라질 음식이 더 좋을 정도인데요. 한국 와서도 브라질 음식점을 몇 번 찾아갔지만 그 맛이 아니더라고요.

 

안경자 : 이민하고 2년 뒤 ‘보찌끼 심포니’라는 옷가게를 열었어요. 장사라는 일이 이렇게 신나다니, 즐겁게 일했어요. 우리는 그저 어제처럼 오늘은 사는 소시민의 근성으로 일했죠. 브라질 교포들은 지금까지도 해마다 이렇게 말해요. “작년만 못해. 큰일이야.” 그럼 브라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좋아질 거야.” 우리고 그렇게 일했어요.

 

한국으로 다시 오실 결심은 손주들 때문이었나요?

 

안경자 :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죠. 그리고 브라질에서 우리가 딸아이에게 의지한 부분도 많았으니까요. 나이가 더 먹고 거동이 어려울 때 움직이는 것보다 지금 가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큰아들이 뉴욕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왜 미국으로 가지 않았냐?”고 묻는대요. 뉴욕으로 가면 재이민이잖아요. 재이민은 싫었어요.

 

26세에 결혼했을 당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셨다면서요.

 

이찬 : 우리끼리 있어도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4년을 보내고 나니 아이가 있어도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하나만 낳자고 해서 첫째를 낳고, 또 4년이 흘렀는데 아이가 둘이면 좋겠더라고요. 첫째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았고요. 크게 계획을 잡고 사는 편이 아니었어요. (웃음)

 

두 자녀분을 어떻게 키우고 싶었나요? 자녀교육 철학이나 신조가 있었나요?

 

안경자 : 딱히 그런 건 없었어요. 교과서처럼 가르치는 것보다 우리의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뭔가를 원하면 할 수 있는 한, 다 해주려고 했어요. 다만 강요하진 않았어요.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지원해주려고 노력했죠. 공부하라는 소리도 안 했어요. 낙제만 하지 말라고 했죠. 브라질 학교에는 낙제가 있어요.

 

이찬재 : 브라질은 가족 중심의 문화가 자연스러운 나라입니다. 저녁에는 보통 가족들이 다같이 식사하죠. 어디를 가든 우리 넷은 함께 다녔습니다.

 

BBC, NBC,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관심을 비롯해서 브라질 텔레비전 채널인 ‘Rede CLOBO’의 인기 프로그램 <판타스티코>에 출연하기도 하셨습니다. 작년에는 브라질대사관 초청으로 한국에서 전시회도 여셨고요.

 

이찬재 : 놀라운 일이죠.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이 이렇게 관심을 받을지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안경자 : 우리의 작업에 관심을 보여주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즐거워요. 남편의 그림처럼 우리는 소박해요. 소소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이 꾸준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따름이에요.

 

또래 노인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안경자 :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아이들이 가르쳐줄 걸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손주들한테 다가가야 한다고요. 아들, 딸은 어려워요. 손주들에게는 가능하죠. 용돈도 주고 말도 걸면서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해요. 100시대라면서 등산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취미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봐야 해요.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아까운 분들이 많아요. 오래 쌓은 전문지식과 경험들을 나누면 모두에게 좋지 않겠어요?

 

이찬재 : 특별한 이야기는 없고요. 자식이 마음을 담아 설득할 땐 넘어가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웃음)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안경자 글/이찬재 그림 | 수오서재
할아버지와 어린 손주가 함께하는 글과 그림에선 형용하기 어려운 뭉클함이 밀려온다. 각 계절 사이사이 할아버지가 그리고 쓴, 할아버지만의 이야기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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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미나토 가나에 “늘 놀라움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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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왕복서간』 ,  『리버스』  등 일상에 숨어 있는 인간의 악의를 집요하게 탐색해 ‘이야미스(읽고 나면 기분이 찝찝해지는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수식이 따르곤 하는 일본 작가 미나토 가나에가 이번에는 특별히 다정하고, 따뜻한 작품으로 독자를 찾았다.  『여자들의 등산일기』 는 결혼 후 시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결혼을 고민하는 리쓰코(「묘코 산(妙高山)」), 결혼 하지 않고 아버지와 산다며 잔소리하는 언니와 등산하게 된 유미(「리시리 산(利尻山)」), 옛 연인과 왔던 트레킹 코스에 혼자서 다시 온 유즈키(「통가리로 (Tongariro)」)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산에 오른다. 이들은 각자의 고민을 가슴에 품고, 산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과 성취감을 만끽하며 조금씩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산에 오르기 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사람들. 미나토 가나에는 “더 많은 여성들이 등산을 하면 좋겠다”며 산이 지저분하고,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다치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없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야마오토코(山男)’라고 하는 표현도 있거든요. 그런데 ‘山女’라는 표현은 없죠. 그러다가 2000년 이후에 ‘마운틴 걸’이라는 표현이 생겼어요. 산에 가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조금 나타난 건데요. 그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걸(girl)’이라는 표현 자체가 여성을 아주 약한 이미지로, 다소 가볍게 보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자신이 산을 즐기기 때문에 산에서 더 많은 여성들을 만나길 바란다는 미나토 가나에는 자신의 소설을 읽은 중년 여성이 산에 오르는 딸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 가장 기뻤다고 말하기도 했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쓰는 작가였으면 좋겠어요”라는 미나토 가나에를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에 서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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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여성들이 등산을 하면 좋겠다


등산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산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일을 하게 되면서 거의 10년 동안 산에 오르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 때문에 힘이 들거나 소설이 막힐 때면 산에 다시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작품 속에 ‘마운틴 걸’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요. 산에 오르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말이거든요. 저도 기회가 닿아 10년 만에, 아주 오랜만에 등산을 하게 됐는데요. 산에 많이들 간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후지산처럼 유명한 산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요. 제가 등산을 하면서는 젊은 여성들을 만날 수는 없었어요. 그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더 많은 여성들이 등산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산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10년 만에 산에 오른 이후에 지금은 가끔씩 등산을 하고 계신 건가요?


맞아요. 집필한 후에도 1년에 두 번 꼴로 꾸준히 등산을 하고 있어요.

 

만약 등산하지 않는 분이라면 취재가 많이 필요했던 작품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작가님의 경우 취재가 많이 필요하진 않으셨겠네요.


책에 등장하는 산에는 제가 거의 다 올랐던 산이에요. 말씀처럼 별도의 취재를 하지는 않았고요. 그보다는 취재를 겸해서 등산을 하곤 했습니다.(웃음)

 

취재 겸 등산을 하시면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야리가타케(槍ヶ岳)’라는 산이 있는데요. 거기서 한국 등산객 20-30명 정도를 마주친 적이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이 산이 외국인에게도 유명한 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더라고요. 특히 야리가타케는 산의 모양새도 예쁘고요. 저도 굉장히 좋아하고, 등산하기를 즐기는 산이거든요. 그곳에서 외국에까지 오셔서 등산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니 무척 반갑고, 기뻤어요.

 

“언니 목적은 생각하기 위해서일지 몰라도 산은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야. 리시리 산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 있을 것 아냐.”(186쪽)라는 대목에서 작가님의 등산 취향이 엿보기이도 하는데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산은 어떤 곳인가요?


저는 산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산에 오르는 과정은 사실 마냥 즐겁지 않죠.(웃음) 그런데 산과 산을 연결해주는 능선 코스를 걸을 때나 주변 경치가 잘 보이는 곳을 걸을 때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잖아요. 그게 정말 좋아요. 바위를 보는 것도 무척 좋아하고 있어요.

 

 

다치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없는 작품


‘이야미스(읽고 나면 기분이 찝찝해지는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수식이 조금 난감할 때가 있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이번 작품은 확실히 다정하고, 따뜻하죠. 미스터리 작품을 쓸 때와 이 작품을 쓸 때 어떻게 달랐나요?


인간의 악의가 테마인 작품을 쓸 때는 아무래도 인간의 숨은 이면을 생각하게 되죠. 이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원인을 깊이 생각하게 되고요. 그러다 보니 쓸 때 무척이나 힘든 게 사실입니다. 『고백』 을 쓸 때도 실은 코피가 났을 정도로 저 자신을 굉장히 몰아세웠어요. 많이 힘이 들지요. 반대로  『여자들의 등산일기』의 경우에는 산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산은 결코 무서운 곳이 아니다, 잘 준비해서 가면 다치지도 않고 안전한 곳이다, 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쓴 것이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응원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에요. 다치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없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특히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경우, 산에 오르면서 자신만의 고민이나 문제를 돌아보고 등산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겪잖아요. 그런 면에서도 역시 지금까지 써왔던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쓰는 동안 작가님도 다른 때보다 편안하셨겠군요.


기존의 작품이 등장인물을 옥죄는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 작품은 인물들을 해방시키고, 풀어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쓰면서 해방감을 많이 느꼈죠. 편안한 기분으로 썼어요.

 

누구도 다치지 않는, 다정한 이야기를 특별히 쓰고 싶으셨던 이유는 뭘까요?


우선은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작품을 읽고 많은 여성들이 산에 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쓴 것인데요. 일본에서 출간된 적이 있는 기존의 산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산은 남자’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있어요. 그러니까 산은 대부분 위험한 곳이고, 조난을 당하거나 위험과 싸우는 이미지가 많은 거죠. 저는 산이라는 공간이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나 일부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산은 모두의 존재이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당신도 가도 되는 곳이고, 당신도 가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런 응원하는, 다정한 책을 쓰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책에도 여성에게 요구되는 전통적인 역할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에 공감할 여성 독자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2000년 이전에는 산은 남자의 것이라는 이미지가 일본 사회에 굉장히 컸어요. ‘야마오토코(山男)’라고 하는 표현도 있거든요. 그런데 ‘山女’라는 표현은 없죠. 그러다가 2000년 이후에 ‘마운틴 걸’이라는 표현이 생겼어요. 산에 가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 조금 나타난 건데요. 그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걸(girl)’이라는 표현 자체가 여성을 아주 약한 이미지로, 다소 가볍게 보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등산 자체를 위험하고, 지저분한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산에 가는 여성을 특이한 존재로 보는 인식이 일본에는 있었는데요. 최근에는 그나마 등산도 하나의 취미로 보는 시선이 많이 생긴 거예요. 전에는 남자가 등산하는 동안 여성은 집에서 기다리거나 산 아래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이미지가 많았지만 점점 그런 편견도 줄어드는 것 같거든요. 이제는 편견 없이 산을 오르는 분위기가 많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삼십 년 동안 줄곧 너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만 들었어요. 그래도 일을 해서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타일렀는데, 정년퇴직을 하더니 지역 등산 모임에 혼자 들어가지 뭐예요. 나도 함께 들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너한테는 무리라는 말만 하고.(중략) 분하고 억울해서 요 한 달 트레이닝에 힘썼어요.”(126-127쪽)

 

관련해서, 이 작품에 대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사인회를 한 적이 있어요. 그곳에 저보다 조금 연령이 높으신 분이 오셨는데요.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기의 세대 때는 산이란 위험하고, 무섭다는 이미지가 컸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딸이 대학교에서 산악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왜 그런 곳에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는 거죠. 아무리 딸과 이야기를 나눠보아도 도대체 이 아이가 왜 등산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여자들의 등산일기』를 읽고 나니 등산을 통한 성장이 있다는 것, 산이라는 곳이 무서운 곳만은 아니라는 것 등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집 근처에 있는 낮은 산부터 시작해 딸과 함께 등산을 해보고 싶다고 제게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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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는 산을 찾게 되기를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작품에 나오는 산은 모두 제가 직접 등산을 해본 곳이라 그런 의미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긴 하는데요. 특히 「시로우마다케(白馬岳)」에는 아이가 등장을 합니다. 이곳은 사실 제가 제 딸과 함께 올랐던 첫 산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제일 좋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딸이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함께 산에 많이 가지는 못하는데요. 3년 전, 그러니까 제 딸이 중학생일 때에는 함께 산에 많이 올랐어요. 아무래도 저는 딸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등산을 해왔기 때문에요. 딸이 사춘기 반항기에 들어섰어도 산에 오를 때면 평소와 달리 말수도 많아지고 대화도 많이 해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로우마다케(白馬岳)」 편에서 엄마는 딸에게 부담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무리 힘들어도 속으로만 삭이고, 딸 걱정을 하는데요. 딸은 의외로 엄마에게 자신이 엄마를 끌어주겠다면서 자신에게 기대라는 말을 해요. 작가님도 딸과 등산을 하면서 딸에게 의지되는 경험을 하셨던 건가요?


네, 「시로우마다케(白馬岳)」에 나온 것과 정말 똑같은 상황을 겪었어요. 산에 오르기 전에는 아무래도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딸에게 의지하면 안 된다, 내가 딸을 리드해야 한다, 는 생각을 많이 했죠. 하지만 막상 산에 올라서 봤더니 다른 거예요. 저는 매일 책상에 앉아 글만 쓰는 운동 부족이었기 때문에(웃음) 체력도 금방 떨어지고, 금방 지치고 말았는데요. 딸은 오히려 체력이 굉장히 좋았어요. 지치지를 않는 거죠. 등산 중에 바람이 아주 강한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는 작품과 똑같이 딸의 허리와 저의 허리를 로프로 묶고 갔거든요. 로프를 묶은 채로 함께 산에 오르다가 나중에는 결국 제 딸이 저를 많이 리드해주었어요. 정말 든든하더라고요.(웃음)

 

“엄마.”
나나카가 걱정스럽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아, 미안. 어쩐지 멍해져서. 참, 로프를 풀어야지.”
(중략)
“풀지 않아도 돼.”
나나카가 허리의 매듭을 두 손으로 쥐고 말했다.
“나나카가 엄마를 끌어줄게. 힘들잖아.”
“그럴 수는…….”
“엄마 어제 한숨도 못 잔 거 아냐? 이를 갈면 어떡하나 하고 줄곧 깨어 있었던 거 아냐?”
(231쪽)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산에 가고 싶어져요.


‘야리가타케(槍ヶ岳)’는 꽤나 높은 산이고요. ‘긴토키 산(金時山)’ 같은 경우는 하루 만에도 다녀올 수 있을 만한 산이에요. 또 뉴질랜드에 있는 ‘통가리로(Tongariro)’ 산도 등장을 하는데요. 다양한 산을 다루고자 했던 이유는 읽는 분들께서 각자 나에게 맞는 산을 찾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등산을 하기에 앞서 어쩌면 주저하거나 망설이면서 결심을 미루는 경우가 있을 테지만요. 그런 분들에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한 걸음을 도울 수 있다면, 스타트를 끊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자가 있었기 때문에


2008년  『고백』으로 데뷔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오셨어요.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말 시간이 빠르군요.(웃음) 10년이라니 정말 빠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10년 전을 생각하면 10년이 아니라 20년이나 30년 전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옛날 일 같아요. 무엇보다 10년 동안 제 책을 읽어주신 많은 독자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분들이 꾸준하게 저를 응원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늘 독자 분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려요. 독자 분들이 저를 이 자리에 데려와주었어요.

 

한국에 있는 작가님의 팬들도 잊지 말아주세요.(웃음)


3년 전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제 사인회에 정말 많은 독자 분들이 와주셨어요. 심지어 3년 전에 왔을 때 오셨던 분 가운데 이번에 또 와주신 분도 계셨죠. 정말 감사하고, 기뻤고요.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솔직히 이야기를 하면 작품을 하나 완성할 때마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웃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한국에 와서 기운을 받아가야겠다,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A4용지 3.5장의 글을 쓰신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이 생활을 계속하고 계신가요? 작가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요즘은 쓰는 시간이 조금 줄었어요. 최근에 노안이 와서 조금 힘들기도 하고요. 쓰는 양은 비슷하지만 새벽 2시 정도에는 잠자리에 들고 있어요. 아이가 가까운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전보다 조금 더 잘 수 있게 됐는데요. 아침 7시 정도에는 일어납니다. 일어나서는 아이 도시락을 챙기고 아이를 등교시키고요. 잠시 쉬기도 하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면서 오전을 보내다가 11시쯤 점심 식사를 준비하죠. 장을 보러 나갈 때도 있고요. 그리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전날 밤에 쓰다가 못 쓴 것을 다시 쓰거나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계약서를 보내거나 하는 사무 업무를 처리하죠. 이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한 후에 다시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쓰는 일과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생활을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하고 계시다니 정말 놀라운데요. 그동안 슬럼프는 없으셨어요?

있었죠, 물론 있었어요.(웃음) 슬럼프는 매 작품마다 있죠. 소설 전개가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요.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있으니까요. 정말이지 작품을 쓸 때마다 이제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최근에는 연재를 조금 줄이고 있긴 한데요.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3-4일 정도 쉴 뿐이니까요. 일주일까지 쉬어본 적은 없었어요.

 

4월 2일부터 작가님의 작품인  『왕복서간』이 연극으로 한국 무대에 올라갑니다. 먼저 축하를 드려요. 작가님은 기분이 어떠셨어요?


일본에서는 연극으로 무대화 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무척 놀랐어요. 저는 어제 가서 연극을 볼 수 있었는데요. 연극을 보기 전에는 TV 드라마 같은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미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보니 연극이란 정해진 공간 안에서 배우들이 서는 것이고, 배우들의 위치에 따른 섬세한 변화들이 보이는 것이더라고요. 또 세트가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드라마와는 무척이나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대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작가님의 작품은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으로 다양하게 소개된 경우가 많잖아요. 작가님께서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먼저 제 작품을 영상으로 보고 싶다고 많은 분들께서 생각해주신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쁩니다. 저는 작품을 쓸 때 머릿속으로 계속 이미지를 생각하거든요. 영상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독자 분들도 제 작품의 영상적인 부분을 잘 파악해주신 것 같고요. 제작자 분들 역시 그런 면에서 영상 제작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해요. 제 작품이 학교를 배경으로 하거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경우가 많잖아요. 인간의 악의를 다루거나 하는 것은 인간이 갖는 공통적인 테마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여러 이유 때문에 영상화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영상화하기 쉽기도 하고요.

 

현재 집필 중인 작품은 무엇인가요?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요. 그 중 바로 다음에 발행 예정인 작품은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작가가 겪게 되는 일을 다루고 있는 내용이에요. 그 작품은 재판이나 사건이 벌어지는 양상들을 그려내고 있고요. 또 하나는 미용에 관한 미스터리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미용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었고요. 따라서 소설로 쓴 적도 없었어요. 이 작품을 쓰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부분들을 생각해보려고 해요.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바라세요?


항상 새로운 작품을 쓰는 작가였으면 좋겠어요.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여자들의 등산일기미나토 가나에 저/심정명 역 | 비채
이별의 슬픔, 사랑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 떨칠 수 없는 열등감 등 다양한 고민을 안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르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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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미 “부당하다는 느낌, 귀하게 다루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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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찜찜해...’ 하고 계속 되뇌게 되는 관계가 있다.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은 기분. 영 낯선 감각은 아니다. 평소에는 연락도 없다가 본인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해 오는 친구, 내가 양보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족, 작은 실수에도 불같이 화를 냈다가 그 순간만 지나면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사람처럼 구는 상사...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왠지 모르게 억울한 기분이 들고 ‘이대로 괜찮은 거야?’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정리’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금까지 함께해 온 시간이 있고, 그동안 쌓아온 감정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리저리 얽혀있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발목을 잡는다.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참고 넘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는 “세상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관계는 없다”고 단언한다. 관계도 택할 수 있으며,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변화가 필요한 관계’는 어떤 모습이고, 우리는 무엇을 함으로써 관계를 선택해 나갈 수 있을까.

 

저자인 성유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다양한 사례를 예로 들어 설명을 이어간다. 그리고 “내가 늘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 나 또한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왔고 그를 이용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점, 그 일말의 여지를 열어놓고 관계의 그래프를 다시 그려보길” 조언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만나며 ‘사람들의 주 관심사는 결국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성유미 저자는, 더 많은 이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에서 주체성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첫 책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를 집필했다. 광화문에 위치한 연세필정신건강의학과의원의 원장으로 진료를 이어가고 있으며, 국제 정신분석가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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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당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진료실을 찾는 분들 대부분이 관계의 문제를 호소한다고요.

 

처음에는 우울이라든지 불면증 같은 증상들을 가지고 오시는데, 더 들어가 보면 사람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특히 직장인들이 많이 오세요. 완전히 사람 관계에서 자유로운 직업은 없잖아요. 여러 증상들이 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들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라는 제목에서 배신감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자기 증상의 이유를 모르고 병원을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지만, 오자마자 배신감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제목처럼 ‘이제껏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 대상이 가족이나 배우자, 연인 등 굉장히 다양하더라고요. 그런 경우에 느끼는 배신감은 그냥 모르는 사람한테 사기를 당한 것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것 같아요. 믿었던 사람에게서 다른 면을 봤을 때,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내가 너무 좋아하고 신뢰하는 대상이었으니까요. 그게 제일 아픈 부분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을 포기하거나 그 사람과 같이 했던 시간을 포기해야 하니까요. 잃어버릴 게 너무 많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나는 도대체 뭘 믿었었나, 왜 이런 지경까지 왔나, 그런 부분들을 보게 되는 건데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아요.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관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보게 되거든요. 사실은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거라는 걸 느끼게 되는데, 그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프롤로그에서 “이용하고 이용당하고, 어느 누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고 물으셨어요.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어떤 변화가 시작되나요?


현실을 보지 않은 채로 계속 가면, 어떤 식으로든 단절을 할 수는 있을 거예요. ‘나는 피해자이고 너는 가해자이니까, 나는 끝까지 복수하면서 살 거야’ 하고 평생 싸우는 거죠. 그러면 관계의 단절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평생 미움에 시달릴 텐데, 자기 인생이 망가지는 거죠. 제가 생각할 때는 관계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면서 빠져나오는 것 같아요. 피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면 일단락이 되거든요. 서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정리를 하면 매듭을 짓는 게 가능해요. 그러기 위해서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고요. 그러지 않고 무조건 미워하다가 지쳐서 끝난다면 답이 나오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봐야 하는 거죠.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한 차례 진통을 겪더라도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갈팡질팡 하는 거죠.


상대와 부딪히는 걸 싫어하거나, 그게 제일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반대로, 한 번 부딪히더라도 매듭을 짓는 게 속 시원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완전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일대일 상황에 맞춰서 솔루션을 찾아가야 돼요. 단순히 이 책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책에서 많은 사례를 다룬 것이고, 당사자가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결말은 열어뒀어요. 중요한 건, 무엇을 선택하든 당신의 권한이라는 거예요. 그것만 알아도 일방적으로 끌려가거나 단절이 되지 않아요. 내가 결정하면 되는 거거든요. 관계를 보류시켜도 되고, 정리해도 되고, 정리했다가 다시 이어가도 돼요. 자신이 자유롭게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는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내 입맛대로 관계를 바꾸는 게 이기적인 건 아닐까, 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죠.


그런 걸 약간 금기시하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많이 있었죠.

 

최근에는 조금 달라진 걸 느낍니다. 출판계의 트렌드를 봐도 ‘이제는 내가 먼저이고 싶다’는 바람이 읽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욕구 충족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자기 주체성에 대한 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아요. ‘내 인생, 내 인간관계에서는 내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반가운 일 같아요.

 

그동안은 그렇게 못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렇죠. 이제야 한 명 한 명이 살아 움직이는 시대가 된 거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떤 면에서 보면, 갈등이 많은 것 자체를 과도기적으로 장려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갈등을 무마시키고 없애는 쪽으로 가면 역사를 거꾸로 가는 거잖아요. 그 동안에는 여러 가지 그럴 듯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개인을 맞추려고 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죠. 한 명 한 명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과정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각각의 요구 사항을 적절하게 듣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사람이 많아지면 더 복잡해지고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한데, 그걸 없애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거죠. 관계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거니까, 훨씬 건강해지고 있다고 생각돼요.

 


부당하다는 느낌, 귀하게 다루세요


관계에서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주고받는 것이 비슷한 수준을 이루는 관계가 좋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공정 무역의 개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 혹은 상대방에 대해서 불만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게 표면으로 잘 보이지 않는 문제라면 정당성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부당하다는 것(unfair)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본능적인 불쾌감 중에 하나거든요.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인데, 그걸 당연하다고 하지 못할 때 스스로 위축이 돼요. 사실은 ‘뭔가 불쾌하기는 한데,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게 맞는 걸까’라는 질문 자체가 이상한 거예요. 불쾌함이 왜 느껴지는지를 봐야 돼요. 부당함을 느꼈다는 건 어떤 불편함이 있는 거거든요. 특히 자기가 평소에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거나 존경하고 싶었던 대상에게서 뭔지 모를 불쾌함을 느꼈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돼요.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한 거거든요. 사람이 부당함을 못 느끼면 살아있는 게 아닌 거예요. 사람이기 때문에 부당함에 대한 걸 느끼는 거예요.

 

‘공감 착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상대가 나에게 공감 받는 시간이나 횟수가, 내가 그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 훨씬 큰 경우 ‘공감 착취’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런 문제 상황을 인지하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저 사람이 나보다 힘든 순간이 더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 이걸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나쁜 사람인 거 아닐까’ 싶은 거죠.


자기가 편협한 사람처럼 느껴지고요.

 

맞아요(웃음).


책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와요. ‘친구인데 그런 거 하나 못 들어주나’, ‘이러고도 내가 친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데요. 일단은 ‘그 사람이 매번 그랬을까’를 질문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사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내 컨디션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런 것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상대가 요구한다면 이상한 거죠. 통곡의 벽이나 다름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통곡의 벽이 아니라 사람이고 내 컨디션이 중요한데,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 좀 들어 봐, 내게 필요한 말을 해 봐, 빨리 조언 좀 해 봐’ 하는 식이라면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그렇죠. 그럴 때는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나’ 싶죠. 이런 감정을 말해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헷갈리고요.


정해진 답이 있다기보다는, 결국 내 컨디션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내 상태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그럴 수 없고 무조건 받아줘야 한다면 이상한 거잖아요.

 

책에서 예로 드신 것처럼 ‘한 시간 정도는 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 하고 알릴 수 있다면 괜찮은 거겠네요.


그렇죠. ‘미안한데, 오늘은 내가 몸이 아파서 혹은 너무 바쁜 일이 있어서 조금 어려울 것 같아’라든지 ‘나도 요새 힘들어서 제대로 들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정도의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야 하죠. 그건 내가 상대한테 양해를 구하는 거거든요. 그걸 받아주는 게 불가능하다면, 그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되는 거죠.

 

공정한 관계가 아닌 거죠.


네. 이상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만 해도 많은 부분이 해소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개는 ‘내가 이상한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할 수 있어요. 주변에 보면 ‘내가 생각하는 건 다 옳고,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네가 이상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게 당연하다고 스스로 도장 찍어주지 못하면, 상대방의 의중에 휩쓸려가게 되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목적을 가지고 상대에게서 뭔가를 뽑아내려고 하기도 하고, 자기 주장이 확고해서 굉장히 정확하게 지시하고 요구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 틈에서 일을 할 때는 부당성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중요해요. 내가 부당함을 느낄 때는 반드시 그 감각을 귀하게 다루어야 돼요.

 

‘공감 착취’와 관련해서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어요. “누군가가 당신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고 있다면 분명히 알아둬라. 그 사람은 당신을 좋은 친구로, 좋은 가족으로, 좋은 동료로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을 쏟아내는 게 아니다. 일종의 공격이다”라고 하셨죠.


사실은 공감을 착취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가능성도 높아요. 특히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죠. 그런데 공감을 필요로 한다는 건 그 사람이 뭔가에 대해서 부당함을 느꼈거나 화가 나 있는 거잖아요. 화라는 것 자체가 공격적인 에너지이고, 어딘가에 발산을 해야 되거든요. 그럴 때 나한테 말과 정서로 쏟아 부은 거니까 자기는 속이 시원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사람도 일시적인 만족이 있을 뿐이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아요.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러면 화나는 일은 또 생길 것이고, 그걸 또 나한테 풀어야 될 거고, 그러면 나는 화를 받아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직장에서 상사의 화를 받아내야 할 때도 많죠(웃음).


맞아요. 대개는 누가 봐도 어이없는 경우인데, 제일 어려운 건 상사가 굉장히 세련되게 하는 경우예요. 그리고 이유 있게 화를 내는 경우에 더 혼돈에 빠지죠. 누가 봐도 명백한 실수를 했을 때, 잘못에 대한 지적이나 수정과 함께 화가 얹혀서 온단 말이에요. 제3자가 팩트만 들었을 때는 ‘그럴 만 했네’라고 반응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당사자는 더 헷갈리죠. 부당한 느낌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어요. 수긍할 수 있는 선이 있을 테고, 그걸 넘어서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라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을 거예요.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붙는다면 부당한 레벨로 왔을 가능성이 높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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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속물성을 탐구하세요


책에 실린 사례처럼, 순간 욱했다가도 나중에 잘해주는 상사도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면 ‘그래, 저 사람도 인간이니까 개인적인 감정을 섞어서 말할 수도 있지’ 싶은 생각도 들죠.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쑥스러워서 더 잘해주나 보다’ 싶기도 하고요.


미화시키는 거죠.

 

그런가요? 피해자 입장에서 왜 미화시키는 걸까요?


나도 그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아마 인정받고 싶을 거예요. 인정이라는 거대한 오아시스를 포기할 수 없는 거죠. 틀림없이 본인 입장에서 달콤한 부분, 좋은 면이 있을 거예요.

 

그렇죠, 화낼 때만 아니면 좋은 사람이겠죠(웃음).


맞아요, 그것만 빼면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자신이 닮고 싶거나 존경하고 싶은 인물일수록 ‘저 사람도 사람인데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어, 내가 한 면만 가지고 너무 비난하는 거 아니야?’ 하고 오히려 자신을 탓해요. 아마 주변에서도 ‘그것쯤은 감수해야지, 네가 얻는 게 많잖아’라고 할 거예요. 그런 말까지 들으면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런 관계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려면, 인정 욕구를 버려야겠네요?


버릴지 말지는 본인이 선택해야죠. 버리고 싶다면 버리면 되지만 ‘굳이 버려야 하는가’도 질문 해봐야죠. 직장 안에서 인정을 바라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순간 욱 했다가도 다시 잘해주는 사람들은 왜 그런 걸까요?


그러면 상대가 다시 다가오니까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관계를 핸들링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거네요?


그걸 의식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다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자신도 모르게 할 가능성이 많죠. 만약 의식적으로 ‘얘는 이렇게 다루면 돼’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말 그대로 ‘착취형’이에요. 대개는 의식하지 못하고 할 가능성이 높아요. 겉으로 볼 때는 실제로 미안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쉽지 않은 거죠. 상대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한테 ‘당신이 다시 친절하게 굴면 내가 또 가까이 다가가니까 그렇게 하는 거죠?’라고 물어보면 어이없어 할 거예요. 아니면 자신이 욱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언제 그랬어? 네가 잘못해서 화냈던 거지, 욱한 거 아닌데?’ 하는 거죠. 잘못했다가는 ‘너 혼자 소설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어요.

 

‘관계를 쉬어가야 할 때’를 알 수 있는 징후 같은 게 있을까요?


부당하다고 느꼈을 때나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래도 그렇지...’ 같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찜찜하다면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되고요. 그런 일이 지금 한 번 일어난 건지, 아니면 생각해 보니까 더 있었는지도 생각해 봐야 돼요. 관계를 쉰다는 건 한 번 생각을 해본다는 거고요. ‘내가 이 관계를 유지해야 될 필요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관계를 정리할지 말지 고민을 해야겠죠. 나한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한 번 더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당장 관계를 끊을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이 관계에서 얻는 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고, 그런데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까 겁이 나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면 어떤 불이익이나 손해를 볼까 봐 유지하는 걸 수도 있고요. 관계에서 자신이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생각해 봐야 돼요.

 

“결혼에 있어서 내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속물적인 요소는 무엇인가?”를 자문해 보라는 말도 하셨어요.


그 말을 하게 된 배경에 있는 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거예요. 책 전반에 걸쳐서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나의 이기적인 속성을 반드시 기억해야 된다는 거죠. 나의 속성을 부정하고 자기를 자꾸 예외로 두면, 거기에서 말썽이 생기거든요.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이잖아요. 나라고 해서 이기적인 마음이 전혀 없는 게 아닌데, 그런 사람으로 계속 몰아가면 나의 현실과 한계를 무시하는 거거든요. 사람이 이기적인 속성을 탐구한다고 해서 이기적으로 되는 게 아니듯이, 속물을 탐구한다고 해서 속물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의 속물성에 대해서 마음껏 탐구하라는 거죠. 그래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요.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조건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하다는 거죠. 이상도 중요하고 현실도 중요한데,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을 보면서도 발은 반드시 땅에 붙이고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상과 현실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그 두 가지가 내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 것 같으세요?


도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요.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경험이 전부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롭다면, 기존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는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관계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죠.


맞아요. 성인이라면 내가 만날 사람을 선택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관계는 바꿀 수밖에 없는 거죠. 직장도 선택하는 거니까, 어렵긴 해도 다시 선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대상을 바꾸는 것만이 선택은 아니거든요. 관계의 성격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그동안은 내가 일방적으로 맞추는 관계였다면 ‘나는 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고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기브앤테이크 관계로 갈 수 있어요. 내가 관계에서 잃는 게 더 많아지는 지점에서 빨리 손을 떼면 돼요.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으면 계속 지속하면 되고요.

 

‘이 관계에서 내가 얻는 것’을 생각해 보면, 피해자라는 느낌도 줄어들 것 같아요.


그렇죠. 그리고 상대방도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면 더 좋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주장의 폭이 넓어지잖아요. ‘나만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었구나, 저 사람도 날 필요로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가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인식하게 되는 거죠. 원래부터 나한테 있었던 힘인데 사용을 안 하고 있었던 거거든요. ‘나만 일방적으로 저 사람을 필요로 해’라는 생각에 매몰돼 있었으니까요.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성유미 저 | 인플루엔셜
너무 사소해 보여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너무 오래돼서 익숙해져버린 관계의 상처를 깨닫고, 그리고 인정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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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데뷔 25주년 인공위성, 키워드는 ‘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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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 발사대에 인공위성 떴다!'.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소리'에 도전했던 인공위성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당시 신문 헤드라인이다. 음악대 중은 서울대학생과 생소한 아카펠라 장르에 먼저 끌렸으나, 이윽고 그 속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생력과 맑은소리에 반했다. 1993년 한 해 40만 장 가까운 판매고를 올린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의 성공으로 인공위성은 가요계에 청량한 추억을 남겼다. 2016년 새 싱글 '아빠의 싱글' 발표를 제외하면 조용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멤버들이 데뷔 25주년을 맞아 이즘 인터뷰 차 함께 자리했다. 데뷔 앨범 멤버 중 테너 고봉준과 카운터테너 박형규는 아쉽게 자리하지 못했지만, 바리톤 양지훈과 카운터테너 이상준, 베이스 조창익과 리더 김형철(바리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인공위성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었다. 여기에는 당시 인공위성의 음반 기획자이자 이즘을 만든 음악평론가 임진모도 참여했다. 3월 23일 홍대 한 펍 레스토랑에서의 오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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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김형철(바리톤), 이상준(카운터테너), 양지훈(바리톤), 조창익(베이스)

 

 

인공위성의 첫 앨범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가 1993년 발매되어 이듬해까지 활동했으니까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황을 들려 달라. 

 

양지훈(이하 지훈) : 인터뷰 공간인 이 펍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동시에 음악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음악 마케터로 10년 넘게 일했는데 40세쯤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을 했죠. 팝송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음반 제작자 한 분과 이야기하다 내린 결정이었어요. 미국에서 음반도 만들고 활동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상준(이하 상준) : 인공위성 앨범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2개월 만에 그룹을 나갔죠. 인생의 꿈을 쫒아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음악은 놓지를 않고 가스펠 앨범 두 장을 냈습니다. 작곡가 이승환과 함께 했는데 1집은 성공했고 2집은 망했어요.^^ 이후 음악은 내 삶이 아닌가 보다 싶어 학원을 운영하다 너무 힘들어 지난해 문을 닫았죠. 

 

조창익(이하 창익) : 인공위성 활동을 마감하고 몇 년 후인 1998년 유학을 떠났습니다. 공부를 마친 건 2003년이고 2002년부터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4년 정도 했어요. 2006년부터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로 14년째 재직 중입니다. 

 

김형철(이하 형철) : 삼성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IT 계열 벤처 그룹들을 많이 돌고 돌았어요. 직장 생활을 16년 하고 나서 사업을 시작했죠. 유무선 광고 마케팅 파트에서 일하기도 했고 기술 쪽에서도 일했습니다. 마케팅과 솔루션 중심이었고 유통 분야도 다뤘지요. 하지만 음악과는 직간접적으로 연을 유지했어요. 

 

1기 멤버 고봉준의 근황은.

 

지훈 : 지금 뉴저지에 살고 있어요. 창익 : 2000년대 미국으로 건너갔고 뉴욕 IBM 왓슨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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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준(카운터 테너)

 

 

인공위성 활동 기간에 멤버 교체가 있어서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지훈 : 1, 2집 그리고 중간의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을 함께 한 멤버는 기존 멤버 6명에 추가 멤버 3명 이현우 곽영빈 권오준으로 총 9명이죠. 이후 3집은 내가 중심에 섰고 후배 멤버들에 백인기, 손창우, 김현기, 김래훈이 합류, 5인조로 활동했습니다. 4집 활동에 참여한 멤버 최협이 가장 막내인 97학번이고 당시 내가 군대에 가야 해서 곽영빈이 새로 들어왔죠. 제작은 형철이 형이 맡았어요. 아, 1997년 유재하 사후 10주년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에서 'Minuet'을 노래한 이력도 있군요. 

 

4집 <We Call It A Capella>를 제작한 이유가 있다면.

 

형철 : 재밌어서도 있고, 그 당시 노래를 다 잘해서 분위기가 좋았어요. 나는 노래엔 전혀 참여하지 않았죠. 당시 활동은 거의 못 했고 홍보는 음반사에서 했습니다. 

 

상훈은 지난 1월 한 종편의 예능 프로그램 <보컬플레이>에 출연하면서 인공위성 멤버들과 거의 25년 만에 재회했는데 기분은 어땠나.

 

지훈 : 내가 (상준형에게) 연락을 했어요. 

 

상준 : 그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이렇게 자리가 마련된 것에 흥분해 '주전자라도 들고 다닐게'라고 말했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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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지훈(바리톤)

 

 

인공위성의 원초적인 출발점을 듣고 싶다.

 

지훈 : '베거스'라는 서울대 합창단 동아리의 별도 소모임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처음 아카펠라를 해보자고 얘기를 꺼낸 건 상준 형이었죠. 

 

상준 : 90학번 동기 모임에서 고봉준과 함께 처음 아카펠라 이야기가 나왔던 거로 기억해요. 지훈이와는 1980년대 팝 이야기를 자주 하며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였고요. 인공위성의 시작은 나, 양지훈, 고봉준 셋이라고 해야겠네요. 

 

당시 아카펠라 유행을 퍼뜨렸다고 할 보이즈 투 멘도 있지만 인공위성은 영국 출신 최고의 아카펠라 그룹 킹스 싱어즈(The King?s Singers)를 롤 모델로 삼지 않았나.

 

지훈 :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가 결정적 영향이 아니라 그전에 킹스 싱어즈 맞아요. 1991년도에 상준 형 집에 놀러 가면 항상 <The Beatles Connection> 앨범을 같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인공위성이 공연할 때 곡 했던 곡이 'Obladi oblada'였지요. 

 

창익은 활동 당시 '프레디 머큐리'를 닮았다고 해서 인기를 끌었다. 

 

지훈 :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녹화를 하는데, 노영심 씨가 창익이 형 옆에 와서 '창익 씨 정말 프레디 머큐리 닮았다!'고 말했더랬죠. 

 

창익 : 정확히는 노영심 씨가 '혹시 누구 닮았다는 얘기 안 들어보셨어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형이 이렇게 대답했어요. '제 모토는 건전한 생활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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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창익(베이스)

 

 

창익은 인공위성을 어떻게 기억하나.

 

창익 : 음반 준비는 93년 여름부터 했고 캐롤 음반까지 한 게 94년 겨울까지었습니다. 공식 활동은 94-95년 1년 6개월로 끝난 거죠. 인공위성의 기억이라... 나는 상준, 지훈, 봉준이 아카펠라를 위해 뭉치고 나서 뒤늦게 들어온 사람이었어요. 학번은 형철과 같지만 나이도 제일 많았고. 우스갯소리 하나 하자면 가끔 아들이 차를 타고 가면서 '나도 연예인 좀 봤으면 좋겠다' 할 때가 있는데 속으로 '내가 연예인이잖아' 하며 '칫', 합니다. (웃음) 

 

인공위성 활동하며 자신의 소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텐데.

 

창익 : 음반으로 들었을 때 블렌딩(섞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카운터테너, 지훈의 파트가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 소리가 두드러진다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특히 내가 리드보컬을 맡은 1집 솔로 곡 '축가'(원곡 송창식)가 아쉬워요. 막상 녹음실에 들어갔을 때가 이상하게 연습할 때와 달라서 제가 표현하려는 느낌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여섯 시간 동안 한 곡을 붙잡고 노래했던 기억이 있죠. 

 

상준 : (창익을 보면서)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부를 때 녹음실 기사님이 '도레미 몰라?' 하면서 나를 다그쳤던 기억이 난다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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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 김형철(바리톤)

 

 

리더 김형철이 없었다면 인공위성은 데뷔하지 못했을 것이다. 형철은 본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하나. 

 

형철 : 어디든 잘 묻어난다고 할까요. 나는 조금씩은 쓸 만해요. (웃음) 각자 멤버들의 보컬 색을 보면 사실 섞이기 힘든 조합인데 다행히 인공위성은 그 단점을 최소화했다고 봐요. 1월 <보컬플레이> 방송 출연했을 때도 각자 목소리를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인공위성 음원을 만들면서 각각 음악적 성취도를 대표하는 곡을 하나씩 뽑아본다면.

 

지훈 : 2집의 '울릉도 트위스트'입니다. 인공위성 1집 프로듀싱을 맡은 권오준이 2집 활동 때 두 카운터테너의 빈자리를 잘 메워주었죠. 창익 : '나뭇잎 사이로'의 카운터테너도 권오준이죠. 나는 1집에서 형철이가 편곡한 '제주도 푸른 밤'을 꼽겠습니다. 

 

상준 : 내가 하려고 했는데 (웃음). 저도 '제주도 푸른 밤'이에요. 형철: 전 1993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급히 제작한 캐럴 앨범을 좋아하는데 수록곡 가운데에서는 'Jingle bell rock'과 'Blue christmas'가 맘에 들어요. 실장님 선곡이죠. 

 

서울대 재학생으로 구성된 아카펠라 그룹이라는 신상명세가 압도해 성공했지 사실 노래는 약했다는 의견이 있다.

 

지훈 : 노래만 잘해서 뜬 그룹은 아니죠. 장르도 특이했고 학벌도 작용했고 잘생긴 멤버들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가 상업적으로 작용한 건 맞습니다. 당시 <별이 빛나는 밤에> 디제이 하던 이문세 씨가 '아카펠라가 노래만 잘해선 절대 안 된다!'라 말해주기도 했던 게 기억나요. 하지만 우리의 핵심은 자생(自生)입니다. 누가 기획한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합창단에 들어가 동아리 아카펠라 팀을 일궈내 그 자생성 그리고 순수성, 우리들의 결속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만들어진 순수성이 아니었지요. 

 

인공위성의 등장으로 가요계에 아카펠라 붐이 야기되어 여러 그룹의 출현이 이어졌다. 인공위성의 위상을 매긴다면.

 

상준 : 인공위성을 그만둔 후 군대를 다녀와서 아카펠라 가스펠 팀에서 활동했어요. 그 기간 동안 항상 동료들에게 존중을 받았습니다. 인공위성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랬죠. 서울대생이라는 배경 때문에 아마추어라는 프레임을 씌워진 것이지 사실 실력이 있었다는 증명 아닌가요. 영향력이 있을 수밖에 없죠. 


인공위성을 좋아한 주된 팬들은 그 시기 대학생이었던 93, 94, 95학번 세대들이다. 지금도 팬들이 존재하나.

 

형철 : 팬들의 실제 느낌은 잘 모르지요. 아직도 연락하는 친구들을 보면 긴 시간 동안 지지하고 사랑을 보내주며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만약 우리들이 오랜만에 모여 25주년이든 30주년이든 무대를 갖게 된다면 팬들이 많이 도와주리라 봅니다. 자기만의 오랜 보물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보컬 플레이>를 통해 오랜만에 인사를 했다. 인공위성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지훈 : 단체 메신저 방에서 공연 이야기를 해요.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아직 있으나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 부분이 좀 있습니다. 팬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기억해주는 사람이 꽤 있고 그 당시 우리를 사랑해준 팬분들을 만나서 과거의 풋풋한 시절을 돌려드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항상 그 생각을 합니다.

 

창익 : 인공위성 활동 시기 내가 연예인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때 팬들이 '저 사람도 인공위성 멤버였어'라고 말해줄 때가 있어요. 정말 감사하지요. 

 

형철 : 인공위성은 내 인생을 사진으로 쭉 늘어놓고 그중에 세 장 정도 뽑아보라고 하면 그중 한 장으로 꼽을 수 있는 기억이지요. 리더로 책임감뿐 아니라 학창 시절 시간도 꽤 투자했고 이후 제 삶의 행보에서 음악이 많이 관계하게끔 됐으니까요. 그 정도로 삶에서 소중한 궤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지훈과 창익의 경우 음악의 세계로 이끈 가수나 앨범을 소개해달라.

 

지훈 : 저는 시카고, 필 콜린스 등의 팝 음악이 충격이었어요. 지금 보니 필 콜린스는 화성이 굉장히 특이한 아티스트였죠. 너무 좋아했어요. 실장님한테는 <Another Day In Paradise>를 많이 얘기했지만 진짜로 제가 좋아하는 필 콜린스의 베스트는 <No Jacket Required> 앨범이에요. 

 

창익 :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방송국 합창단 활동을 했어요. 중학교 때 변성기가 오려고 하니 선생님이 8~9명을 모아 중창단을 만들어주시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도 꾸준히 합창을 했습니다. 당연히 음반으로 합창 음악을 많이 접했죠. 로저 와그너 합창단, 킹스 칼리지 합창단을 특히 많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외국으로 유학 간 뒤에는 음악 듣는 게 너무 많이 줄었어요.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사진 : 임동엽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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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철 “’내일 뭐 먹을까’ 이 질문으로 옥주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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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앞치마를 맨다. 집안 곳곳을 정리하고 가족의 식사를 챙긴다. 잘한다고 말하니 더 잘하고 싶은 요리와 살림. 개그맨 정종철은 요즘 ‘옥주부’라 불린다. SNS 프로필 사진도 앞치마를 매고 고무장갑을 낀 모습. 팔로워의 75% 이상이 여성이라서 놀라우면서 또 즐겁다. 주방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옥주부’ 정종철을 만났다.

 

“초심으로 돌아가 SNS에서 이웃들과 소통하던 때를 떠올렸어요. 제 요리와 저희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최대한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그때처럼, 요리책에도 저의 현실적인 요리를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요리도 사진도 스타일링도 모두 다 제 손으로 진행했어요. 당연히 전문 포토그래퍼와 푸드스타일리스트와 작업하면 책이 훨씬 예뻐질 테니 결정하기까지 고민도 참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저는 살림이 좋아서 요리하는 사람이에요. 요리 덕분에 아내와의 관계도 집안 분위기도 좋아하지는 걸 직접 겪었기 때문에 요리가 얼마나 매력 있는 일인지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 『옥주부의 진짜 쉬운 집밥 레시피』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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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관계 회복을 위해 시작된 ‘요리’

 

오래 전부터 요리책을 내고 싶었다고요.

 

지금 저의 주요한 일상 중 하나가 요리니까요. 평소에도 요리책을 많이 봤어요. 만약에 내가 요리책을 만든다면 정말 쉽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출간 제안을 받은 게 작년 9월 초쯤인데요. 책 만드느라 허리 디스크가 생겼어요.

 

요리를 하느라고요?


주방 앞에 오래 서 있었으니까요. 하루에 10~12시간 정도 음식을 만든 것 같아요. 그동안에도 만들었던 음식이지만 계량을 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만들어 왔으니까요. 계랑스푼, 계량저울을 사용해가면서 레시피화하는 게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요리책을 너무 만들고 싶었는데 동시에 후회도 했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웃음)

 

따로 작업실도 얻었다고요.


하루 종일 집에서 요리만 할 순 없으니까요. 조리대만 설치된 작은 방을 구했어요. 새 주방을 꾸미는 느낌으로 조리 도구도 새로 샀죠. 남자 감성치고는 꽤 괜찮을 거예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어요.

 

레시피도 직접 만들고 요리도 직접 하시고, 사진은 어떻게 찍으셨나요?


제가 구도를 잡고요. 사진은 미대 나오신 출판사 대표님이 찍어주셨어요. (웃음) 매번 촬영 대마다음식을 많이 하니까 남으면 집에 가서 먹으려고 용기도 따로 준비했는데, 사진 찍고 나면 남는 음식이 없었어요. 대표님이 저랑 동고동락하면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기사를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요리를 하게 된 건, 아내 황규림 씨의 편지 한 통 때문이었죠.


맞아요. 저희 부부가 2006년에 결혼했는데, 세 아이를 낳고 식구가 많아지다 보니 저는 가정보다는 일을 좇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가족들에게 소홀해졌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편지 한 통을 줬어요. 편지를 읽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눈물이 줄줄 나왔어요.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뼈아프게 후회했고 반성했죠. 이후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아내랑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몇 년 사이 아내와 대화하는 법을 잊은 거예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내일 뭐 먹을까?”라고 물었는데, 이 질문으로부터 옥주부 인생이 시작됐어요.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면서 차츰차츰 관계가 회복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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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율이 좋은 자신 있는 메뉴만 선별

 

평소 요리책을 즐겨 보셨다고요. 『옥주부의 진짜 쉬운 집밥 레시피』 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초심자들이 봐도 정말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를 담았어요. 정말 이 계량 숫자만 딱 지키면, 이 맛이 안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제가 고집하는 맛의 기본을 지켰고요. 물론 사람에 따라 맛의 기준이 다르니까 ‘어, 나는 맛없는데?’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80% 이상은 맛있다는 평가를 자신해요. 확실히 타율이 좋은 자신 있는 메뉴만 골랐거든요. 그리고 제가 사용하는 재료의 브랜드 도 모두 노출하고 싶었어요. 왜냐면 독자들이 실제로 많이 궁금해 하거든요. 어떤 브랜드의 간장을 쓰냐고 물을 때, 저는 대답해주고 싶은데 책으로 담는 건 어려움이 있어서 못했죠. SNS에서 물어보시면 대부분 대답하려고 해요.

 

공동구매도 하시더라고요?


제가 쓰고 있는 물건 중에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추천해주고 싶은 거예요. 인터넷 최저가보다 싸게 살 수 있으면 너무 좋잖아요.

 

옥주부 레시피를 참고하려면 기본적으로 ‘옥주부표 양념장’을 만들어 놓아야겠더라고요.


요리하는 분들에겐 너무 당연한 건데요. 그만큼 쓸모가 다양해요. 처음 시도하기는 어렵지만 한 달 내내 요리가 쉽고 간단해질 수 있는 노하우예요. 맛간장은 사과, 배, 대파, 양파, 생강, 다시마, 다진 마늘, 간장, 물, 설탕, 매실 진액을 계량대로 섞으면 되는데, 대개 이미 집에 있는 재료들이니까요. 쉽게 만들 수 있어요. 맛간장을 10L 정도로 만들어 놓으라고 한 이유는 맛간장의 소비가 생각보다 빠르기 때문이에요. 4인 가족에겐 1주일이면 바닥을 보이는 용량이에요. 각 가족의 상황에 맞게 양을 조절해서 냉장실에 넣어 보관하면 편해요. 가쓰오부시로 맛을 낸 일본식 간장 ‘옥쯔유’도 만들어놓으면 매우 편리해요. 냉메밀국수, 어묵탕 등 간장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일본 음식과 볶음, 조림을 쉽게 만들 수 있어요.

 

‘옥주부 레시피’가 주부들 사이에서 소문을 탄 계기가 있나요?


지금은 유튜브도 하고 있지만 인스타그램이 먼저였어요. 요리하는 영상이나 사용하는 조리기구, 인테리어 관련해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믿을 수 없겠지만 제 팬클럽이 생겼어요. 이름은 ‘옥벤저스’ 귀엽지 않나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옥주부 레시피 메뉴는 무엇인가요?


햄볶음밥, LA갈비, 달걀장조림, 치킨덮밥, 두툼제육볶음 등 너무 많죠.

 

만약에 반찬가게를 연다면 어떤 메뉴가 자신있나요?


두부조림, 꼬막무침, 장조림? 책에는 ‘후다닥 만들어 먹는 반찬’이라는 타이틀로 메뉴를 소개했는데요. 모두 초보자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요리예요.

 

집에서 요리는 오직 ‘옥주부’ 담당인가요?


아니요. 아내도 많이 해요. 외식도 자주 하고요. 집밥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그리고 주부들이 너무 힘들고요. 저는 집밥을 꼭 먹자는 주의는 아니에요. 다만 편하게 쉽게 만들 수 있는 맛있는 요리를 소개하고 싶은 거예요. 요리는 누가하더라도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 가족들이 먹을 음식이잖아요. 일찍 일어난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죠. 주방에 도마를 두 개 딱 올려 놓으면, 두 사람이 같이 요리할 수 있어요. ‘이걸 누가 하겠지?’, ‘누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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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우선이 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집에서는 항상 앞치마를 매고 계신다고요.


앞치마를 매면 일 모드로 바뀌니까요. 그래서 더 앞치마를 찾게 돼요. 일할 때 편하기도 하고요.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하신 거죠? 편집도 직접 하시나요?

 

모두 직접 합니다. 아이들이 잠을 자면 밤 10시쯤 컴퓨터를 켜요. 그때부터 작업이 시작되는 거죠. 너무 늦게 끝날 때는 늦잠을 자느라, 아이들이 학교 가는 걸 못 볼 때가 있어요.

 

요리와 살림을 하면서 ‘개그맨 정종철’은 어떻게 변했나요?


일단 더 열심히 살게 된 것 같아요. 더 치열하게 살게 되고요. 저는 이 치열함, 열심이 싫지 않아요. 즐거워서 더 열심히 하는 거거든요. 옥동자로 살았을 때, 제게 여성 팬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살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니까 저를 지지해주는 분들의 70% 이상이 여성이에요. 굉장히 놀랍고 감사하죠. 제가 2000년 KBS 15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는데요. 옥동자는 제가 만든 캐릭터인데 ‘옥주부’는 팬분들이 만들어준 이름이에요. 그래서 더 소중해요.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아빠일 것 같아요.


저를 이상적인 아빠로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저도 다른 평범한 아빠들이랑 똑같아요. 화낼 때는 화내고 부족한 모습도 많죠. 다만 조금 노력하려는 것뿐이에요. 왜냐면 아이들이 크면 저랑 시간을 보내는 게 어렵잖아요. 같이 이렇게 밥 먹을 시간도 많지 않을 거예요.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랑 많이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각방이 생기고 나서, “밥 먹자”하고 부르면 다들 자기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아이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 전까지는 가족이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요.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여요.


뭔가를 급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옛날에는 제가 악착 같았거든요? 방송에 나가면 어떻게든 빈 공간에 뛰어들어서 튀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좋게 말하면 열정이 있었던 거고 한편으론 맹랑했는데, 지금은 조바심이 나지 않아요. 경력이 쌓이고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어요. 방송도 그래요. 제가 필요하다면 언젠가 부르지 않겠어요? 안 필요하면 안 부를 거고요. 저는 제 일상을 지키면서 기다리고 싶어요.

 

이런 여유는 어떻게 생긴 걸까요?


내 가족이 있으니까요. 집이 우선이니까요.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안아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제가 알기 때문이에요. 누구에게 욕을 먹든, 댓글 테러를 당하든 내 가족은 내 편이잖아요. 내 편인 가족을 위해서라도 행동을 똑바로 해야 하고요. 왜냐면 나를 믿어주는 가족을 배신할 수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제가 돈을 벌지 못하면 내 가족이 먹고 살기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요즘은 가족이 나를 믿어주니까 내가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순서가 바뀌었어요.

 

‘개그맨’이라는 정체성이 옅어지는 불안감은 없나요?


글쎄요. 저는 지금 기다리고 있는 거라서요. 대중들이 원하는 플랫폼이 나오면 언제든지 나가고 싶고요. 제게 맞는 캐릭터, 어울리는 옷을 입고 싶어요. 기다리면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유튜브로 소통하는 연예인들이 계속 늘고 있는데요. 제작자로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천천히 하고 싶어요. 사실 저도 광고를 돌리고 유명한 사람을 출연시키면 구독자 수를 금방 올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화제가 된다면 다른 채널과 다를 바가 없겠죠. 숫자를 목표로 하고 싶지 않아요. 차곡차곡 제 색깔 안에서 성장하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뚜렷하게 목표를 잡진 못했지만, 소박하게 천천히 간절한 마음으로 팬들을 만나는 게 제 목표예요.

 

 


 

 

옥주부의 진짜 쉬운 집밥 레시피정종철 저 | 라이스메이커
반찬, 국물 요리, 밥 요리, 메인 요리, 분식, 간식, 면 요리 등 옥주부표 다양한 요리를 나누며 가족들과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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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은주 “사랑할 때 적당한 거리는 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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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첫 번째 이야기』 ,  『1cm 』 , 『1cm art』로 이어졌던 이른바 ‘1cm 시리즈’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람과 사랑,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너와 나의 1cm』이다. ‘허깅 에세이’라 이름 붙은 이번 책에 대해 김은주 작가는 “힐링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허깅은 누군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는 말로 그 의미를 밝혔다. 서로를 향해 1cm 더 가까이 다가서면서, 우리는 자신과 상대와 세상에 대해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

 

『너와 나의 1cm』에는 “사랑의 낭만성과 진정성”, “사랑의 속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 “사랑의 민낯을 한층 깊게 들여다보기 위한 시도”가 담겨있다. 이를 통해 “사랑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발견하게 된다. 기존의 ‘1cm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김은주 작가의 글과 양현정 작가의 그림이 만나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사랑의 모습들이 따스한 온도로 그려졌다.

 

 

진정한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4년 만의 신작입니다. 작가님의 소식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았을 텐데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네, 시간이 정말 빨리 흘렀네요. 그 동안 카피라이팅 작업도 종종 하고, 작년에는 예전에 출간했던 에세이 『달팽이 안에 달』을 미국의 유명 사진작가인 ‘에밀리블링코’와 콜라보하여  『기분을 만지다』 라는 제목으로 재출간 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 있었는데요.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힘들고 바쁘지만 뜻깊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더욱 진정한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이전과 달라진 점도 있을까요?


예전에는 낭만적이고 같이 있으면 알콩달콩 행복한 사랑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사랑이 줄 수 있는 위안이라고 할까요, 그런 깊이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아기인 나에게 주었던 위안을 사랑하는 사람한테 또 받을 수 있구나’ 하는 걸 많이 느끼게 됐던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면서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게 진짜 많은 희생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고요. ‘나도 어렸을 때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았겠구나’ 하고 절실하게 느끼기도 했어요(웃음).

 

어린 시절에는 무조건 나를 지지해주는 사랑을 받았는데, 어른이 되니까 그런 사랑을 받는 일이 흔치 않죠.


네, 상황에 따라서 혹은 나의 입장이나 지위에 따라서 사람들의 대우도 바뀔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줄 수 있는 지지나 믿음 같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1cm art』  출간 후 <채널예스>와 인터뷰를 하셨어요. 당시 “아쉽지만 시리즈는 이것으로 끝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는데요. ‘1cm 시리즈’를 다시 이어가게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번 책의 제목은 마지막에 독자님들의 투표로 최종 결정해서 더 의미가 있는데요. ‘1cm 시리즈’를 사랑하고 여전히 다음 시리즈를 기다리고 있다는 많은 독자님들의 의견들이 있었기에, 제목 후보에 출판사에서 제안한  『너와 나의 1cm』 도 넣게 되었어요. 그 제목을 많이 좋아해주셨고요. 또 ‘1cm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작업했던 양현정 작가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도 1cm의 연장선상이라 생각되어서 이어가게 되었어요. 오랜만의 신간인데 독자님들의 제목 투표 참여가 정말 뜨거워서 기쁘고 감사했어요.

 

이번 책은 ‘허깅(hugging) 에세이’예요. 어떤 의미인가요?


단순히 남녀의 낭만적 사랑에 국한되기보다, 결국 사람 사이의 진정한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개인적으로 꼭 한 번 다루고 싶었던 제 버킷리스트이기도 했고요, 사랑이라는 소재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 우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 가짜가 많은 세상에서 진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주제를 ‘허깅 에세이’로 정한 이유는, ‘힐링’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허깅’은 누군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잖아요. 살아가다 보면 타인에게 상처를 받는다던가, 예상치 못한 고난을 맞는다던가 하는 힘든 일들을 종종 겪게 되는데요. 나와 진짜 관계에 있는 누군가의 따뜻한 품에 안기는 것만으로 큰 힘을 얻을 수도 있어요. 저 역시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이겨내는데, 그런 위안을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더불어 사랑과 인생에 대한 따뜻하고 새로운 관점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정의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집필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고민하셨던 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사랑’이라고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이나 낭만성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어느 한 시점과 관점에 국한되지 않고 사랑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다양한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했어요. “사랑의 민낯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의 입술은 여전히 달콤하다”라는 책 속의 한 구절처럼 사랑의 과정과 여러 민낯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결국 어떻게 진정한 관계를 만들고 지속해가며, 그 안에서 우리가 어릴 적 존재자체로 사랑 받았던 기억처럼 얼마나 큰 위안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조명하고 싶었어요.

 


1cm, 우리 사이의 적당한 거리


이번 책에서도 글과 그림의 어우러짐, 시너지가 눈에 띕니다. 양현정 작가님과는 세 번째 작업이시죠? 그만큼 호흡이 잘 맞으셨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양현정 작가님과의 작업과정은 저에게 치유의 과정이기도 해요. 주로 이메일을 통해 작업을 하는데 소소하게 드라마 얘기도 하고, 일상을 나누면서 마치 편지를 주고받는 기분으로 작업해요. 제가 글에 맞는 아이디어를 스케치해 드리면 양현정 작가님이 일러스트로 표현 해주시는데요, 그 일러스트를 볼 때마다 정말 큰 감동과 위안을 받아요. 양현정 작가님은 특히 천부적인 색감을 갖고 계시는데요. 이번 책에서 더욱 완성도 있고 아름다운 색감의 일러스트를 만날 수 있어요. 표지 버전만 수 십 개였답니다. 특히 “사랑은 눈, 코, 입에서 시작되어도 결국 심장으로 옮겨가는 것이므로”라는 글귀에 삽입된 백곰양이 곰군에게 안겨있는 일러스트는 너무나 따뜻한 위로가 되어 처음 봤을 때 눈물이 났어요. 작업하면서 제가 느꼈던 따뜻한 위안을 독자님들도 느끼시리라 믿어요. 작가님의 일러스트로 제 글이 더욱 생명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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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군, 백곰양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1cm 시리즈’ 초창기에 만들어졌는데요. 제가 처음 양현정 작가님을 알게 된 게, 어떤 소품샵에 갔을 때였어요. 앵무새 포스터가 있었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알아봤더니 작가님의 블로그가 있었고, 제가 메일을 보내서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1cm 시리즈’를 함께 만들게 됐고요. 현정 작가님의 블로그에 곰 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그걸 바탕으로 조금 변형시켜서 지금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커플 캐릭터면 좋겠다고 생각돼서 백곰양, 곰군이 탄생하게 됐고요.

 

‘1cm 시리즈’가 선보였던 크리에이티브한 요소들이 이번 책에도 이어지는데요. 다른 책과 차별화되는 또다른 특징이 있을까요?


기존 시리즈보다도 완성도를 높였고요. ‘1cm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책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위트 있는 독자 참여 크리에이티브 장치들도 만나실 수 있어요. “사랑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그 사람의 각도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글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는 실제로 책을 다른 각도로 보게 되면 원이 하트로 변하게 됩니다. 책의 귀퉁이를 접으면 손으로 연인에게 그늘을 가려주는 남자의 모습이 된다든가, “행복은 손안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독자가 책 위에 손을 놓고 따라 그리면 ‘Happiness’라는 단어가 손 안에 들어오는 식으로, 드라마틱하고 크리에이티브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작업할 때 늘 감정의 과잉이 아닌 위트와 공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말씀하신 크리에이티브한 장치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두 작가님이 같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세요?

제가 아이디어를 내고 대략적으로 스케치를 해서 드리면 현정 작가님이 일러스트로 표현해주세요. 사실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것들이 정말 폭이 넓은데, 저는 현정 작가님의 작품을 볼 때마다 감동을 받아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그림으로 매력적으로 표현해주시거든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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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라는 제목의 꼭지가 실려 있어요. 사랑할 때의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적당한 거리는 ‘함께일 때는 따뜻하고 혼자 있을 때에도 외롭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아닐까 싶어요. 아주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누구에게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요. 혼자인 시간을 허락하지만 동시에 책의 한 구절처럼 “예측 가능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언제든 내가 필요할 때 나를 안아주리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거리가 적당한 것 같아요. 아마 1cm 정도 될까요?

 

“멀면 무수한 별이 되고, 가까우면 유일한 달이 된다”는 문장도 있는데, 역시 ‘적당한 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게 ‘거리’인 것 같은데요. 내가 정말 원하거나 필요하거나 힘들 때, 나의 옆에 있어줄 수 있는 거리여야 할 것 같아요. 반짝이는 별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건 나와 멀리 있는 별들이고, 달은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밀물과 썰물의 작용을 하면서 나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잖아요. 다른 별들처럼 반짝거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화학적인 작용을 하고,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줄 수 있고 힘들 때 나를 안아줄 수도 있는 거리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힘든 시기를 겪을 때 남편과 진정한 관계의 친구들로부터 위안을 받고 저 역시 주기도 했는데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진정한 관계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감사하기도 하고요.

 

“그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사랑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불완전한 게 당연하다는 의미일까요?


맞아요. 사랑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상대에게서 나와 다른 부분을 보기도 하잖아요. 그 사람이 악의를 갖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저와 다른 모습이 있을 수도 있는 건데요. 그걸 서로 인정함으로써 사람에 대한 이해도 넓어지는 것 같고, 사랑도 더 깊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만의 세상이 조금 더 확장될 수 있는 것 같고요. 어떻게 보면 조금 더 너른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책에도 그런 내용이 있는데, 사실 저희 남편이 휴대폰을 보면서 제 고민을 들어줄 때가 있거든요(웃음). 그럴 때도 ‘내가 이해를 해야 되겠다’ 싶은 거죠(웃음).

 

그런 실제 사례가 있었군요(웃음). ‘1cm 시리즈’는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전체적인 이미지가 약간 몽글몽글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인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현실적인 사랑의 민낯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모습들을 다양하게 담으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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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

 

『너와 나의 1cm』에 실린 글 중에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을 하나 꼽는다면요? 


맨 마지막 페이지 “낭만의 완성”이라는 글과 그림을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두 명의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은발의 노부부가 서로 손을 꼭 쥔 채 걸어가는 모습인 것 같아요. 인생의 굴곡을 넘어 지속되는 사랑은 그만큼 감동적이고 여전히 낭만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사랑뿐 아니라 인생 전반의 주제도 다루고 있기에 많은 독자님들이 좋아하신 행복에 관한 짧은 글도 같이 소개해드리고 싶은데요. “행복이 가장 싫어하는 세 가지 단어”라는 글이에요.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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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가장 싫어하는 세가지 단어.jpg

 

 

‘일상의 크리에이터’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데요. 평범한 것도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크리에이티브한 것들’을 즐긴다면 조금 더 크리에이티브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상의 다양한 것들을 통해 아이디어와 영감을 받고 있어요. 디자인 서적을 본다든가, 소품샵에 간다든가, 중고서점에서 예상치 못했던 재미있는 책들을 발견한다든가 하는 즐거운 경험들을 통해 시선을 확장하고자 노력해요. 산책처럼 자연과 함께 하는 것도 몸과 마음의 휴식과 함께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일부러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의 날을 세워 세상을 바라보고자 노력하지는 않고 지나칠 수 있는 순간순간 속에서 사물과 사람이 가진 디테일을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입니다.

 

이번 책은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으세요? 독자들로부터 어떤 반응이 돌아오면 가장 기쁠까요?


힘든 하루 끝에 진정한 관계가 주는 따뜻한 위안을 경험하고자 하는 독자들, 요즘 감성이 메말라 크리에이티브한 재미와 힐링을 함께 느끼고 싶은 분들, 또 서로 1cm 더 가까워지고 싶은 커플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두 곰들을 보면 정말 재미있고 힐링된다’고 얘기 해주시더라고요. 가끔 다툴 때 귀여운 백곰양이 북극곰으로 무섭게 변하기도 하지만 또 금방 화해하고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 가는데요. 둘은 결국 관계의 이상향을 의미하는 상징물이에요. 글과 함께 둘의 밀당 없는 에피소드를 보시면서 힘든 일들 가운데 행복을 느끼고, 사랑과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새로운 관점들을 발견하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허깅 에세이’인만큼 독자님들을 따뜻하게 안아드릴 수 있기를 바라고요.

 

이번 책이 4개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미 계약된 곳도 있고, 출간 제안을 받고 진행 중인 곳도 있어요. 대만 출판사를 통해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도 출간이 될 예정이고요.

 

해외에서도 ‘1cm 시리즈’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언어, 문화가 다른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도 그게 너무 신기해요(웃음). 인스타그램에서 일본, 대만 독자 분들이 보내주신 메시지를 많이 받는데요. 서툰 영어, 서툰 한국말로 써서 보내주시는데 볼 때마다 정말 큰 감동을 받아요. ‘1cm 시리즈’를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다는 말씀을 해주시거든요.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의 생각 속으로 들어갈 때 다른 사람과 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사는 곳이 달라도 힘든 일, 즐거운 일이 있기 마련이고 또 공감을 받는 포인트는 같은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그게 신기하게 느껴져요.

 

곰군, 백곰양의 역할도 있지 않을까요.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잖아요(웃음).


백곰양과 곰군한테는 제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로망들을 다 담아놓은 것 같아요. 책 속에 현실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이 아이들을 통해서는 로망을 실현하고 또 그걸 보면서 힐링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커플 정말 예쁘다’ 하고 독자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받을 수 있기를 바라요.

 

인세를 NGO 단체에 기부하신다고요.


책이 가진 여러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을 텐데요. 인세 기부를 통해서 그 책을 읽는 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이상의 가능성과 희망을 더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플랜코리아에 기부되어 재능 있는 아이들이 미래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일에 쓰이는데요. 그 아이들 중 좋은 책을 쓰는 작가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제가 인세를 기부함으로써 독자들은 자동적으로 좋은 일에 동참하게 되니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의 주제처럼 사랑을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안아주는 매개체가 되면 좋겠어요.

 

‘1cm 시리즈’를 벗어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으실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이번 책은 사랑과 관계라는 주제 안에서 이야기를 했다면, 다음 책은 카피라이터로서 보여드릴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데요. 기대해주시는 독자님들께 늘 깊은 감사를 드리고 공감 가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뵐게요. 또 앞으로 강연 등을 통해 독자님들을 직접 만나 크리에이티브한 글쓰기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계획도 있어 만남이 설레고 기대가 됩니다.


 

 

너와 나의 1cm 김은주 저/양현정 그림 | 위즈덤하우스
좀 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로 인해 성장하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1cm 더 사랑하는 만큼 1cm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따뜻하게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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