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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직장에서의 업무를 내 사업이라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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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대행사 이노션의 기업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송창용 국장은 학벌 좋고, 스펙 좋은 신입 사원들이 입사 후 오래지 않아 퇴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웠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회사, 이들은 왜 그토록 빨리 조직을 떠나는 것일까. 송창용 국장은 일과 상사를 내편으로 만들고, 주변의 힘을 이용하는 직장 생활의 방법을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일.상. 내편』은 회사의 원칙을 이해하고, 자신의 강점을 찾아 보여주기 위한 그의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무엇보다 송창용 국장은 회사가 변해야 한다고 투덜대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환경을 나에게 유리하게 만들자고 말한다. “회사는 CEO나 법인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라며 일관되게 동료, 그리고 상사와의 관계를 강조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회사 단위가 아니라 팀 단위로 자신의 직장을 바라보고, 이들과의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해 고민한다면 당신의 직장 생활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일단 여기서 잘하자”라며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라고 조언하는 송창용 국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는 것”이라며 그 고민에 답을 찾으면 지금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하는 이 일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업무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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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란 동료다


책에서 가장 먼저 한 이야기는 다름 아닌 “열심은 기본이다”(18쪽)였어요. 이 말에 찔릴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웃음)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간단해요. 채용을 할 때 회사는 열심히 일하겠다는 사람을 뽑잖아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굉장히 많은 관문을 만들어놓고, 거길 거치도록 하죠. 그러니까 채용이 된 사람은 당연히 열심히 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어요. 저는 이 사람들이 남과 다르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열심’이 통하는 시기가 있죠. 신입 사원 때는 열심히만 하면 돼요. 저도 정말 열심히, 거의 아바타 수준으로 했어요.(웃음) 신입 1년 동안 명절 포함 회사를 안 나간 게 일주일이었거든요. ‘OJT 노트’라고 해서 일 년 동안 노트 한 권을 써서 제출해야 하는데 저는 두 권을 냈을 정도예요.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되죠. 열심에 다른 스킬을 얹어야 해요. 자동차로 따지면 열심은 차체거든요. 거기에 어떤 엔진을 다느냐, 엔진을 얼마나 빨리 다느냐는 이후 문제예요.

 

언제쯤 그 시기가 온다고 보세요?


대리 진급 시기인데요. 그때 많은 분들이 소위 ‘멘붕’을 겪어요. 전과 똑같이 일하는데 예전보다 못하다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왜 그런지를 모르는 거예요. 왜일까요? 시키는 대로만 하기 때문이에요. 달라져야 하는데 말이에요. 
 
열심은 기본이다, 일과 상사를 내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계기도 있었을 텐데요.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해요.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입사한 친구들이 주변에도 많아요. 그런데 얼마 못 다니고 퇴사하는 친구들도 되게 많았고요. 이직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죠. 그게 안타까웠어요. 저는 직장 생활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고, 나를 도드라져 보이도록 하는 데 조금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이 얘기를 제가 술자리에서 하면 꼰대의 잔소리밖에 안 되잖아요.(웃음) 잘 정리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17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느낀 게 많은데요. 그 이야기를 처음에는 에세이로 써볼까도 생각했어요. 약으로 치면 진통제가 되겠죠. 그런데 저는 치료제가 되는 책을 쓰고 싶더라고요. 작지만 효과가 있는 아스피린 같은 책이요. 그래서 이메일 보내는 법, 폴더 관리하는 법 등 사소한 이야기까지 담은 거예요.

 

직장이 무엇인가, 라는 부분부터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안에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정리가 될 테니까요. 


형태야 워낙 다양하지만 직장, 회사라는 곳이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곳이라는 점은 같을 거예요. 그럼 그런 곳에서 원하는 걸 생각해봐야죠. 우선 헌신성은 필수예요. 회사는 회사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같이 해줄 만한 의지가 느껴지는 사람을 원하거든요. 둘째는 긍정적인 태도죠.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어떤 태도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무조건 낙관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을 보면서 어떻게 되도록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게다가 이 태도는 옆에 있는 사람도 움직이게 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조직 안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거고, 결국 조직을 이끌고 가는 거예요. 저는 직급과 관계없이 긍정적인 태도야말로 리더십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은 동료 간의 신뢰예요. 거짓말하지 않는 것, 이 사람이 맡으면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낼 것이라는 믿음을 다 포함하는 이야기고요. 이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개인 차원의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열심히 하는 나를 못 알아보는 회사에 푸념할 것이 아니라 “우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하는 게 먼저”(163쪽)라고 지적했어요. 


회사가 뭘까요? CEO가 회사일까요, 법인이 회사일까요. 회사란 사실 동료예요.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으면 해를 입는 건 CEO가 아니고 동료거든요. 그러니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는 거죠. 반드시 해야 할 일의 특징이 있어요. 늘 기간이 촉박하다는 거잖아요.(웃음) 그 일이 여러 절차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내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그 일이 제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게 기본이고, 첫 번째 덕목이에요.

 

“회사란 동료다”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 것 같네요.


흔히 회사를 멀리 생각해요. 저들만의 세계라고 생각하죠. 물론 사장이나 임원이 의사 결정을 하긴 하죠.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하는 데 있어 회사란 동료예요. 주변 동료와 나의 직속 상사, 그들이 바로 회사죠. 이걸 간과하는 게 문제인데요. 사람들은 회사를 보고 입사하잖아요. 하지만 결국 뛰는 필드는 팀이거든요. 서로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 말이에요. 진짜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과의 환경을 어떻게 잘 만드느냐가 롱런을 하느냐, 못 하느냐를 결정한다고 봐요.

 

 

신입 사원 교육보다 리더 교육


그래서 상사와의 관계가 중요하겠죠. 상사를 같은 직장인으로서 공감하라, 상사는 당신의 미래를 먼저 살고 있는 사람이다, 라는 내용도 흥미로웠는데요.


사실 대부분은 상사를 좋게 생각하지 않죠. ‘내가 미래에 저렇게 된다고?’라고 생각할 텐데요. 저는 굉장히 운이 좋았어요. 신입 때 멘토가 제가 11년 후에 어떻게 살지를 보여주셨죠. 그 덕분에 ‘상사란 내 미래를 먼저 사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거예요. 또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걸 아니까 그분도 본인의 행동도 중요하게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때문에 저는 리더 교육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신입 사원 교육보다 리더 교육이 2배는 더 중요해요. 따라가는 사람들의 문제는 사실 크지 않거든요. 앞서 가는 사람들이 진짜 중요한 거죠. 저도 팀원들과 생활하면서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제 업무가 저보다 직급이 낮은 친구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면 저는 거부할 거거든요. 그렇게 해서는 후배들이 자신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잖아요. 그건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 아니죠. 연봉도 많이 받는데 그만큼 더 책임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 이야기는 리더의 자리에 있는 직장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내용이겠어요.


실은 저도 상사예요. 동시에 아직도 방황하고 있고요. 모든 상사가 마찬가지일 거예요.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래 직원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리더는 앞 사람으로서 방향을 제시할 능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조직에서도 그걸 강요하는데요. 저는 그 강요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스트레스는 크지만요. 리더의 자리에 있는 분들이 후배들의 시선을 생각하고, 책임을 다해야죠. 후배들도 그런 선배를 선별해요. 모든 상사가 그렇진 않으니까요. 저 상사 멋있다, 멘토 삼고 싶다, 라고 할 만한 사람을 알아보잖아요. 그런 점에서 리더의 역할, 리더의 역량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잘 되는 조직의 조건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리더에게 책임을 많이 요구하고, 더 많은 역할을 하도록 하는 조직 말이에요.


그 맥락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요. 상사든, 팀원이든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인데요. 자신의 업무를 내 사업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 일을 내 사업이라고 생각하면 판단이 조금 더 명료해지고, 업무에도 더 애착이 가요. 더 이득을 낼 방법을 고민하게 되죠. 팀원도 그렇지만 40대 중반 정도의, 연차가 쌓인 리더들에게도 고민이 많거든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이후에 어떤 일을 할지 고민을 하는데요. 지금 하는 일을 사업화시키면 어떨까 생각한다면 다를 겁니다. 그러면 회사에서도 그 사람을 놓지 않아요. 대우를 해주고요. 그때부터 선순환이 시작되는 거예요. 직장 생활의 디테일한 스킬을 말하는 책도 많은데요. 아무리 그 스킬을 익혀도 이렇게 마인드가 변하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해요. 다시 제자리죠. 마인드가 바뀌면 사소한 스킬이 없어도 스스로 찾아내게 될 거예요.

 

변화를 원할 때 “힘든 과제 자진해서 맡기”(107쪽)라는 딜을 선택해보라고도 하셨잖아요. 그 이유를 좀 더 설명해주세요.

 

직장인의 가장 큰 축복은 기회를 부여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누군가 평탄하고, 잔잔하게 직장 생활을 해왔다면 그 사람은 기회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예요. 후배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밥 잘 사주고, 집에 일찍 보내주는 상사도 좋은 상사이지만 저는 기회를 주는 상사가 가장 좋은 상사라고 생각하는데요. 힘든 과제를 맡는 것도 사실은 기회예요.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힘든 과제가 주변에 있을 거예요. 하지만 외면하고 있죠. 선뜻 그 일을 맡기가 쉽지 않아요.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걸 위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기회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설령 그 일이 잘 안 된다 하더라도 크게 욕하지 않아요. 힘든 과제라 기대치가 낮거든요. 120% 올리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100%만 해도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걸 맡아서 하면 실패했어도 인정은 받는 거죠.

 

그 과정에서 내가 차별화되는 거고요.


힘든 과제를 맡아서 해보는 것도 정말 큰 도움이 되죠.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말고 실패를 했으나 내가 왜 실패를 했는지 정리해서 주변에 공유를 해보세요. 실패 스토리를 공유하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일하는 과정에서 느낀 문제점, 결정적인 요인 등을 언급해서 회사에 공유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어요. 다음 프로젝트를 맡겨도 되겠다,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상황이 바뀌고, 사람들의 시선이 바뀔 거예요. 이건 아주 간단한 건데 알면서도 인지하지 못해서 못하는 것 같아요. ‘뭐하러 해?’라고 생각해서 안 하는 것들을 하시면, 바뀝니다.

 

그렇다면 내가 상사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까요?


물론이죠. 요즘은 상사들도 아랫사람들을 의식하거든요.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상사도 X세대예요. 세대 차이 얘기를 많이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저도 40대 중반이고 회사 안에서는 어느 정도 위치에 있지만 스타크래프트 되게 많이 했어요.(웃음) 제가 지금 20-30대와 완전히 다르게 생각할까, 하면 아닐 것 같아요. 결국은 세대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예요. 상사와 나는 세대가 다르니까 안 된다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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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와의 관계가 우선


연봉을 중시하는 것에서 조직문화를 중시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기준도 변화해 왔는데요. 좋은 조직 문화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전에 비해 조직 문화라는 말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조직 문화가 HR, 비전, 동기 부여처럼 회사의 기술적 부분에 더 무게가 있었다면 지금은 훨씬 가깝고, 더 세부적인 부분에 무게가 있는 것 같아요. 설문조사에 나왔어요. 직장인들이 좋은 조직이라고 꼽는 것 1위가 복리후생이고요. 2위가 유연한 의사소통이었거든요. 체감적인 요소들이죠. 저는 무엇보다 좋은 조직 문화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상사와 말이 통했으면 좋겠고, 동료를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면 아이디어란 게 창의적일수록 바보 같거든요. 기존의 것을 깨는 게 창의적인 아이디어인데 이 아이디어는 되게 여려요. 살짝만 태클이 들어와도 없어집니다. 결국은 직원들이 말을 하도록 하는 게 좋은 조직 문화예요.  
 
주52시간 근무제가 중요한 화두일 텐데요. 이때도 중요한 것이 관계와 신뢰라고 말하셨죠.


직장인들은 시간이 없어요. 6시면 PC가 꺼지는데 업무량은 똑같아요. 기존에는 늦게까지 일을 해서 어떻게든 일을 마쳤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때문에 점심시간에도 일을 하게 돼요. 아주 큰 문제죠. 이걸 바꾸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거든요. 기존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안 되고, 상사와 협의를 해야 해요. “이건 불필요한 일 같으니 없애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해야 하는데요. 이게 가능하려면 상사와의 관계가 우선 되어야 해요. “그렇게 한 번 해봐”라는 답을 끌어낼 수 있는 게 상사와의 관계잖아요. 주52시간에서도 상사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거죠. 보고를 위한 페이퍼 말고 그냥 문자 좀 드리면 안 되나요? 그걸 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가 상사와의 관계인 거예요.

 

내 말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군요.


내 보이스 파워를 키워야 하거든요. 일 잘하는 사람이 귀한 시대예요. 다 일 잘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특히 주52시간이 되고 나서 일 잘하는 사람이 더 귀해졌어요. 시간 관리가 중요해졌으니까요. 솔직히 말할게요. 무임승차하는 사람들 많아요. 이 사람들은 이제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거예요. 자신이 어떻게 성과를 낼 것인지 시간 내에 증명해야 하니까요. 사회적으로 본 게임이 시작됐다고 보면 돼요.

 

그래서 “때로는 허세도 필요하다”(112쪽)고 말하신 거죠?


당연히 모든 일을 다 잘할 순 없어요. 우선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시켜야죠. 자기가 잘하는 일이 더 도드라져 보이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인데요. 이것은 신입 사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고요. 과장, 차장이 되면 이런 일은 본인 스스로 만들 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일을 잘한다는 평가가 오고 난 뒤에 보세요. 상황이 달라질 거예요. 일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 될 거고, 그러면 그 사람은 보이스 파워를 갖는 거죠.

 

“같은 시간을 투여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닌, 얼마나 남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냈느냐가 관건”(89쪽)이라고 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어요. 


효율성과 효과성을 완전히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얼마나 효율적인가가 얼마나 효과적인가가 될 수도 있거든요. 프로세스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효율성, 시간 대비 얼마나 많은 양을 뽑아낼 것인가 하는 고민은 한계가 있어요. 주52시간이라는 허들이 있고요. 이제는 회사도 직원들한테 일을 더 시키면 결과가 더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효율성을 위한 제도나 시스템도 도입이 되고, ‘챗봇’도 많이 상용화 되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이제 그 일을 하던 사람은 효과적인 일을 하라는 요구를 받겠죠. 이제는 그 준비를 해야 해요. 아무리 절차적인 일을 잘해서 2배의 효과를 낸다고 해도 파급력 있는 일을 해서 10배의 성과를 내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니까요.

 

효과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도 고민을 하게 되네요.


효과적인 일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풋이 필요하거든요. 지식도 해당할 테고요. 누군가와의 만남도 해당할 거예요.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해보는 경험도 필요하겠죠. 그런 것들을 스스로 계속 해줄 필요가 있어요. 회사 내에서는 비록 효율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효과성 있는 일을 해내기 위한 준비를 해줘야 하는 거예요. 거기서 남다름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제가 거듭 배움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도 그것입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아끼는 후배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요?


지금 저와 함께 일하는 친구를 정말 아끼는데요. 그 친구에게 평소에도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괜찮아”예요. 아마 노력하지 않고 있다면 이런 말을 못할 텐데요. 이 친구들은 되게 열심히 노력하거든요. 그런데 조바심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내 눈 앞에 놓인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고요. 그렇게 되면 안타깝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또 다른 곳을 찾게 돼요. 그렇지만 다른 곳을 찾으려고 한들 지금 하고 있던 키워드로 다시 찾게 되죠. 다른 일을 찾기가 힘들거든요.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조바심 낼 필요 없다는 이야기예요. 바른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다면 괜찮다고 얘기를 해주고 싶고요. 바른 방향인지 알기 위해서는 상사와 많이 얘기를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노력하면 자기만의 탁월함이 생겨요.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하든 그 자체가 명함이 될 수 있어요.

 

먼저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현재 속한 회사에서 그 미래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주체적으로 찾아보자”(166쪽)고 하셨죠.


아무 방향도 없이 그냥 일을 해서는 안 돼요. 그러면 이직을 할 때도 그 회사에 3년 있었다, 가 전부가 되거든요. 나만의 특별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내 일의 속성부터 알아야 하는데요. 그걸 인식하지 못하면 안 되는 거죠. 지금 하는 이 일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업무의 핵심은 무엇인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것들을 되게 많이 고민해야 해요. 요즘은 이런 고민에 도움이 되는 강의도 많고요. 유튜브만 찾아보셔도 돼요. 그것들을 통해서 지금 내 일이 이런 맥락에서 역할을 하고 있구나, 알게 되면 더 큰 미래를 그릴 수가 있을 거고요. 그러면 자신의 커리어를 그쪽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겠죠. 지금 눈앞에 있는 것만 보면 안 돼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회사 내에서 그걸 보여주는 것이 상사의 역할이고요. 저도 그런 모습을 후배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곧 신입사원 대상 강의를 앞두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어떤 내용인지 들려주세요.


스킬 부분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신입사원에게 많은 주문을 하는 건 무리가 있고요. 그들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상사가 잘 이끌어줘야 해요. 저는 마인드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신입사원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일을 배우는 사람이에요. 배운다는 자세가 되게 중요하죠. 기본적인 직장 매너만 지킨다면 큰 문제는 사실 없을 거예요. 또 신입사원은 100% 혼납니다.(웃음) 왜냐하면 일을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혼이 나더라도 너무 개의치 말고 빨리 일어서면 좋겠어요. 신입사원의 에너지는 그걸 회복하는 데 사용해야 하고요. 절대 회사 욕은 하면 안 돼요. 회사 욕은 본인을 갉아 먹거든요. 회사 욕을 하는 신입사원은 다시 취준생이 되기 쉽고요. 다른 곳에 가더라도 신입사원 때 느끼는 것은 다르지 않아요. 본인이 선택한 회사고, 열정을 다하겠다고 생각했다면 최소 3년 이상은 있어야죠.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신입사원도 물론이지만 대리급, 과장 초반의 직급에 있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신입사원들은 아직 백지인 상태잖아요. 그 상태에서 일과 상사를 내편으로 만들 방법을 아는 건 강력한 무기를 갖는 것과 같을 거예요. 이 책에 담긴 내용의 10%라도 챙긴다면 직장에서 인재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요. 또 3-4년차가 되면 직장 생활에 회의가 오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내가 왜 이 일을 하나, 생각이 드니까 실제로 주변 환경이 회색으로 보이더라고요. 그때 제가 첫 직장을 퇴사했는데요. 여러분은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그런 마음이 들 때 읽어보세요. 물론 이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본인이 충분히 경력을 쌓았고, 몸값을 올렸다고 여기면 이직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더 좋은 제안이 있으면 가야죠. 그래야 회사도 좋은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민을 하거든요. 하지만 그 준비가 안 됐다면 이 책이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일 상 내편송창용 저 | 새빛
계란으로 태어나서 후라이가 될 것인가, 병아리가 될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후라이팬으로 직행하려는 당신을 건져낼 아주 귀중한 직장인 구원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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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심재광 “소년법 폐지를 말하기 전 알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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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9월, 부산에서 여중생들이 또래 학생을 집단 폭행한 일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15세의 여중생들은 동년배 친구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그 사진을 SNS에 게재해 피해자를 조롱한 사건이었다. 중학생들의 행동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극악함과 가해자 네 명 중, 한 명은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수많은 이가 경악했고, 급기야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27만여 명이 서명했다. 망가진 피해소년의 삶은 누가 구제하는가. 가해자를 교화하는 일이 과연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일보다 앞설 수 있는가. 국민들은 이 지점에서 분노를 쏟아내며 소년법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만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아무리 중한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을까? 현재의 소년법은 심신미약한 소년들을 과잉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는 게 사실일까? 2017년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선발돼 2년간 소년재판을 맡아온 서울가정법원 심재광 판사는 “가해소년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적합한 처벌을 하기 위해 소년법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년법이 정면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펴낸 책  『소년을 위한 재판』 은 그동안 우리가 오해했던 소년법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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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법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어요


소년법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기술된 교양서는 처음입니다.  『소년을 위한 재판』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2017년 9월 발생한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이후, 전국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청소년 집단폭행 사건 보도가 이어지며 소년법과 그 제도에 대한 역할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소년들을 이토록 영악하고, 소년답지 않게 만든 것은 소년법의 과잉보호 때문이니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를 지켜보며 소년보호재판의 실무 최전선에서 일하는 판사로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법을 폐지하는 것은 국민의 합의와 이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을 통해 이루어져야겠지만, 폐지를 할 때 하더라도 소년법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려드린 후에 다시 생각해보는 게 순서이지 않나 싶었어요. 소년법과 제도의 본 모습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서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았거든요. 소년법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실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써내려갔습니다. 

 

출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책을 쓰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쯤이었어요. 하지만 그때 구상을 했던 건 아니고, 2년 전 소년재판을 처음 맡았을 당시부터 꾸준히 해왔던 생각들을 이제야 책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특히 소년법에 대한 여론이 심각해지면서 같이 일하는 판사들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왔거든요. 오랜 기간 실무를 경험하면서 쌓인 생각들을 풀어낸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년보호재판과 형사재판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근본적으로 소년법과 소년재판은 형법과 형사재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 절차를 준용합니다. 다만 소년법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자가 소년이므로, 형벌에 준하는 제제 조치를 소년들에게 가하고 교육을 통해 소년이 다시 범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교화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년재판에는 형사재판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절차가 많아요. 우선 일반 수사 과정에서는 하지 않는 ‘가해자의 성장, 가정환경, 범행에 이르게 된 과정, 현재 상황, 앞으로의 비행 가능성’ 등에 대해 아주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요. 피해자 또한 소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소년을 보호하는 화해권고 등의 절차도 마련돼 있습니다. 가해소년에 대한 보호처분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피해소년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소년법이 형법보다 훨씬 더 피해자를 바라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범죄의 공통점이 있나요?


충동적이고 반복적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특히 스마트기기가 발달하면서 과거보다 이러한 양상이 더욱 짙어진 것 같습니다. 빠르고 직관적인 스마트기기에 익숙한 세대이다 보니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미처 생각하지 않은 채 비행을 하게 되는 것이죠. 또 요즘 일어나는 소년범죄를 보고 “영악하다, 잔혹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자신의 범행을 과감하게 사진, 영상으로 남기고 이를 돌려보거나 SNS에 게재해 피해자를 협박하는 형태가 나타나기 때문일 텐데요. 이 또한 스마트기기와 연관이 있죠. 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를 우리의 윤리의식이 따라가지 못했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거예요. 이건 비단 학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전체적으로 이러한 사회현상이 범죄에 반영되고, 그것이 소년사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년들의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최근 11년간 강력범죄의 수치를 보면 유의미한 변화를 발견하기는 어렵다(46쪽)’고 하셨어요. 하지만 분명 범죄의 양상이 잔인하고, 더욱 다양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소년의 강력범죄 사건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에요. 이건 제 실무경험과 형사재판을 하는 판사님들의 의견, 소년형사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인데요. 수치로만 본다면 청소년 인구가 감소하면서 오히려 사건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사건의 면면이 미디어를 통해 낱낱이 보도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에는 종이신문에 실린 기사를 한 번 보는 것으로 끝났다면 지금은 같은 사건을 여러 언론사의 다양한 기사로 실시간 접하게 되고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다만 질적으로 새로운 범죄의 유형이 등장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범행 장면의 촬영과 공유가 쉬운 세상이 되면서, 사건으로 인한 피해뿐 아니라 심각한 2차피해가 발생해 피해자들이 훨씬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소년법은 가해소년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다


소년법에 있어 국민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은 ‘보호처분’일 것 같습니다. ‘보호’라는 단어의 탓인지 교육 또는 봉사 정도로 처벌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소년보호재판에서 ‘보호’는 가해소년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년에 대해 보호 ‘처분’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년법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가해소년의 교육, 교화가 이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일면에는 사회를 보호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죠. 그러니 용어 자체만으로 단편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소년법에 명시된 보호처분은 1~10호까지 다양합니다. “소년법은 애들 봐주는 법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6~10호까지의 5가지 처분은 시설에 들어가 강제로 수용된다는 점에서 징역형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또 보호처분의 장점은 소년을 한 번 처벌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해진 기간 안에 아이를 계속 관찰해 추가적인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6호처분(6개월간 아동복지시설,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을 받은 소년이 3개월만에 또 범행을 저질렀다면, 다시 재판을 통해 10호처분(2년 이내 장기 소년원 송치)을 내려 소년원에 보낼 수 있습니다. 즉, 당장 처벌을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추후에 잘못을 또 저지르면 훨씬 더 중한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소년의 입장에서는 분명 형사처벌보다 훨씬 무겁고 불편한 부담이죠.

 

죄를 불문하고 형법상 무죄인 ‘촉법소년(만10세 이상~14세 미만)’의 나이 기준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많아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규정을 개정해야 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해요. 저는 실무에서 경험을 해보니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을 기점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참 많더라고요. 흔히 ‘중2병’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가 바로 만13세~14세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같은 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다 다르다 보니, 함께 범행을 저지르고도 어떤 친구는 형사재판을 받고 어떤 친구는 소년보호재판을 받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만약 촉법소년의 연령기준을 낮춘다면 개인적으로 만13세 이상은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하는 것이 국민의 정서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 소년들의 사회적 성숙도를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의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것도 국민의 분노를 사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범죄소년(만14세 이상 ~19세 미만)의 경우, 형사재판을 통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아도 최대 15년형밖에 구형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선 소년법에서는 징역형을 선고하는 경우 최대 10년 이내의 범위에서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요.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의 경우에는 특정강력범죄처벌 특례법에 따라 최대 15년까지 구형을 할 수가 있습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사실 소년범의 사형은 ‘국제아동인권권리협약’에 따라 많은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실무자의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소년들은 처벌이 무섭거나 처벌이 가볍게 느껴져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후에 일어날 일들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비행을 저질러서 더 큰 범행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거든요. 따라서 15년짜리 무기징형을 25년, 30년으로 기간만 늘린다고 해서 과연 범죄가 줄어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책에서 ‘재판절차 이원화’에 대해서 지적하셨어요. 범죄소년에 대한 재판은 형사재판과 소년보호재판으로 나뉘는데, 이렇게 절차가 이원화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범죄소년의 경우, 검사의 선택에 따라 형사재판과 소년보호재판 중 하나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때에 따라 형사재판을 받은 소년은 추후 형사재판부의 판단에 의해 소년재판부로 송치되어 다시 소년재판을 받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아주 극악한 범죄가 아니고서는 굳이 형사재판을 거치지 않고 소년재판을 먼저 시작하는 게 훨씬 신속하고 효과적인 처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년이 형사재판을 받게 되면, 소년분류심사원이 아닌 구치소에 수감되게 되는데요. 최장 7개월간 성인범들과 섞여 지내며 나쁜 범죄를 학습하는 악감화 효과가 생기기도 하고, 교육을 통해 재범을 방지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게 되거든요. 소년보호재판을 받는 소년들은 보호처분이 결정되기 전, 면밀한 조사와 교육이 이루어지는 반면 이들은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것이죠. 따라서 저는 재판을 일원화하거나, 이원화하더라도 절차를 선택하는 재량과 선택은 법원이 먼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소년의 재비행을 막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진짜 교육이 시급한 소년들은 죄질이 중해 형사재판을 받는 아이들인데, 지금의 제도로는 이 아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어요.

 

그럼 일각의 주장대로 소년법이 폐지된다면, 오히려 아이들은 교화의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겠네요.


그렇죠. 물론 형법 내에 소년법의 일부가 어느 정도 반영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소년법이 폐지되어 성인과 같은 기준으로 처벌을 받는다면 지금처럼 소년에게 특화된 처분을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또 ‘형법상 무죄’라는 부분 때문에 촉법소년은 전혀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오히려 소년법이 있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형법으로 이 아이들을 다룬다면, 정말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채 풀려나는 모순된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리고 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대부분 절도, 폭행 등인데요. 이를 성인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요? 대다수가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벌금형을 받는다 해도, 부모가 돈을 내주면 그만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소년에게 주어지는 부담은 아주 미비하죠. 하지만 소년법에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가 없어요. 잘못을 저질렀으면 무조건 법원에 와서 일정 시간 교육을 받고, 남아있는 기간 안에 또 잘못을 하면 그보다 더 중한 처벌을 받게 되고요. 그러니 일부의 흉악한 강력범죄만 볼 게 아니라, 소년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 살펴보고 적합한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법원이 계속 개입을 하기 때문에, 사실 소년법은 아이들 입장에서 훨씬 어렵고 불편한 제도거든요.

 

판사님께서 소년들에게 처분을 내릴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우선 소년이 저지른 잘못이 단순한 절도인지, 강간이나 강도 같은 특수한 범죄인지를 기초로 잘못에 비례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게 가장 기본이고요. 더불어 어떻게 하면 소년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 적절한 처분을 내리는 게 소년부 판사의 역할입니다. 향후 재범가능성을 낮추는 것을 염두에 두고 처분을 생각하다 보면 소년이 지나온 환경, 그리고 이 환경의 개선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게 되죠. 이에 따라 장래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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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위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중한 범죄가 아닐 경우에 한해, 소년범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처분은 무엇인가요?


흔히 “요즘 애들 겁이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지만, 사실 법정에 들어온 아이들은 굉장히 긴장을 많이 합니다. 특히 제 재판은 무섭고 처분이 만만치 않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아이들이 손을 덜덜 떠는 게 보일 정도예요. 이런 소년들이 법정에 와서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임시조치로 소년분류심사원에 들어가는 거예요. 성인범에게 구속이 있다면, 아이들은 내가 심사원에 가느냐 안 가느냐를 놓고 재판 내내 심적인 고통에 시달리죠. 또 한 달간 심사원에 수용되었다가 나온 뒤 보호처분이 내려지는데, 6~10호까지의 보호처분이 나올 경우 대부분의 소년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당장 부모님과 떨어져 시설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특히 10호처분(2년 이내 장기 소년원 송치)은 공포의 끝판왕이에요. 실제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않는 아이들도 있고,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비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럼 소년법에서 개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보호처분 중 ‘9호처분(단기 소년원 송치)’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10호 바로 아래 처분인 만큼 좀더 무거워야 할 필요가 있는데, 소년의 개선 정도에 따라 6개월의 기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임시 퇴원할 수 있는 데다 판사가 보호관찰을 함께 부과할 수 없어 6호처분(6개월간 아동복지시설, 소년보호시설에 감호 위탁)보다 가볍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또 ‘화해권고절차’ 등 피해소년을 보호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 피해를 다 회복하기에는 미흡합니다. 소년법이 가해소년뿐 아니라 피해소년도 건전하게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국가적인 예산을 투입해서 피해소년의 정신적 치료를 보조하거나 상담을 제공하고 가해자의 보복을 막는 구체적 조치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으로써는 가해소년의 부모가 피해를 보상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소년을 도울 방법이 거의 없거든요. 피해소년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보완된다면 소년법이 지금처럼 비판만 받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만약 ‘화해권고절차’에 동의하는지 묻는 연락을 받았다면 진행하는 것이 피해소년에게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말씀하셨어요. 화해권고절차는 어떤 이유에서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도움이 되나요?

 

화해권고절차란 피해소년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변호사, 심리상담사 등의 갈등해결전문가가 투입해 손해를 배상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입니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의 전제는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 때’입니다. 만약 피해소년이 사망을 했거나, 다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다면 단순히 화해권고절차에 피해회복을 기대하면 안 되겠죠. 하지만 학교폭력 등의 일반적인 사건에서는 금전적인 배상뿐 아니라 피해소년의 마음을 치유하고 가해소년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가능해요. 예컨대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가해소년은 이 사건에 대해 발설하지 않는다, 피해 소년과 일정 거리를 두고 지내도록 한다’ 등 피해소년이 원하는 여러 조항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를 회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심리기일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얻는 것’이 있는데요. 이는 피해소년에게 있어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직접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상해주는 건 아니지만, 피해소년이 감정적으로나마 일정 부분 위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해소년이 재판 받는 과정을 직접 보고, 자신의 피해사실을 판사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여서는 안 되죠. 피해소년이 피해감정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가해소년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따라서 피해소년들이 상처로 인해 나쁜 마음을 먹지 않도록 충분히 보듬어줄 수 있는 추가적인 제도가 꼭 필요합니다.

 

 

이 맛에 소년보호재판 한다


2017년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선발돼 소년부 판사가 되셨는데요. 소년보호재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원래 재판이라는 것은 과거의 일을 평가해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본질인데, 소년 재판은 특이하게 장래를 내다봅니다. 과거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소년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연구하고, 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교화되어가는 과정을 본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마침 2016년에 유튜브를 통해 부산지방법원 천종호 판사님의 동영상을 보고 큰 감동을 받기도 했죠. 법정에서는 무섭게 호통을 치고, 저녁에는 청소년회복센터로 찾아가 소년들을 살피는 모습을 보며 ‘판사가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2017년 가사소년전문법관 선발과정에 지원해 소년부 판사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소년부 판사는 일반적인 ‘판사’가 아닌 ‘교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웃음). 소년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시설에 전화를 해본다거나, 호통치고 훈계하는 등 다양한 심리방식을 시도하는 모습이 독특했어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보호 관찰하는 게 소년부 판사의 역할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게 실제로 효과가 있거든요(웃음). 형사재판에서는 처벌이 내려진 직후 범죄자와의 관계가 종료되지만 저희는 처분을 내린 뒤에도 소년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피고 개선되는 과정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요. 실제로 소년부에서 굵직한 판사님들은 보호시설로 퇴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직접 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시는 거죠. 만약 소년에게 재범가능성이 있다면 즉각 다른 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민첩한 대응을 위해서라도 소년부 판사들은 아이들의 상태를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심리방식에 있어 독특한 액션을 취하는 것도 아이들의 교화를 위함이에요. 법정에 서는 것은 소년에게 있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거든요. 법대에 앉은 판사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소년들은 어리기 때문에 감성적인 부분을 다루면 잘못을 개선하는 데 훨씬 도움이 돼요. 그래서 심리를 할 때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수차례 외치게 한다거나, 무섭게 훈계하는 등의 여러 시도를 해보는 것이고요.

 

소년부 판사에게 이러한 역할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저희는 1년에 천 건 이상의 사건을 다루지만, 그 중 일부의 소년들이 재판을 받고 나가 또 다시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이 제도 자체가 무너지잖아요. 그래서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판사, 보호관찰관, 소년조사관, 보호시설 관계자 등 여러 사람이 한 소년을 바라보며 집중관리를 해요. 또 소년들은 성장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모든 부분에 있어 미숙하거든요. 이 시기에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면 그 소년의 삶은 영영 망가질 수도 있죠. 이를 막기 위해 다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요.

 

‘이 맛에 소년보호재판 한다’는 문장도 여러 번 등장하는데요. 실제로 소년보호재판을 받은 이후, 아이들의 변화가 느껴지세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면 가해소년을 너무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정말 많이 바뀌어요. 실무에서 체감하는 바로는 10명 중, 5명 이상은 변하는 것 같습니다. 시설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의욕을 얻어 미래를 생각게 되는 아이들이 많아요. 밖에선 오토바이 훔치고, 술 마시며 비행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시설에 수용된 순간에는 학교와 공부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높아지는 걸 볼 수 있거든요. 책과 담을 쌓고 지내던 아이들이 한 달에 15권 이상씩 책을 읽고 시를 쓰기도 하죠. 또 시설에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서 대학에 합격하는 경우도 있고요. 무엇보다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자기가 상담을 통해 치유되었으니, 같은 아픔이 있는 친구들을 돕고 싶다면서요. 기회가 된다면 이 시설에 상담사로 다시 와서 아이들을 보듬어주고, 좋은 길을 안내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죠. 아이들에게 목표가 생기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된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물론 모든 소년이 그런 건 아니지만, 보호처분을 통해 일부라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이건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소년법에 대해 이것만은 꼭 알리고 싶다’는 내용이 있나요?


얼마 전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사가 실리고 난 뒤 악플이 무척 많이 달렸어요. 그 댓글을 모두 읽었습니다. 소년법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쓴 책이었기 때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질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읽는 동안 마음은 무척 힘들었지만 국민들이 어떤 것을 불안해하시고, 소년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왜 잘못한 아이들을 처벌하지 않고 봐주느냐’, ‘피해소년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두 가지를 가장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소년법은 결코 무르거나 허술한 법이 아니에요. 아이들을 보호하고 처벌을 하지 않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형법보다 더 중한 처분을 할 수 있고요. 형사재판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지속적인 보호관찰과 교육을 진행하기 때문에 범죄를 예방하는 데 훨씬 효과적인 제도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소년을 위한 재판심재광 저 | 공명
소년법과 소년보호제도가 그리 허술하거나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년들을 위한 각종 필요조치가 세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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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재훈 “아들이 읽을 만한 책을 써주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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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자랑이 된 대한민국에서 다른 나라를 지켜보면 부러울 일이 많다. 북유럽의 사회복지제도, 덴마크의 ‘휘게’ 열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부탄, 이미 통일을 이루고 그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독일 등을 공부하면 한국에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힌트를 찾을 수 있을까? 딱딱하고 어려운 문화와 역사를 만화로 공부한다면 어떨까?


김재훈 작가는 만화가이자 저술가, 일러스트레이터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영상디자인과 문화사회학을 공부한 이력으로  『디자인 캐리커처』 ,『라이벌』,  『과학자들』등 을 그리고 썼다. 글과 기호로 이루어진 지식을 직관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만화로 재가공하는 일은 늘 그의 관심사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들만의 행복의 이유를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통해 보여주는 만화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기획은 그에게 도전이자 꿈의 실현이기도 했다.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소유주인 장석대는 어느 날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백범영에게 거액을 약속하며 행복의 비결을 찾아오라 주문한다. 신수길, 홍설록, 강가영 등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행복 찾기 프로젝트에 뛰어든 주인공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삶의 대안을 찾아 나선다. 첫 번째는 덴마크, 두 번째는 부탄이다. 곧 독일 편도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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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만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언뜻 『먼 나라 이웃나라』가 떠오르는 기획이에요.

 

『먼나라 이웃나라』항상 저에게도 롤모델인 학습 만화였는데,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 아이들에게 세계를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과거 역사보다는 현재 이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중점을 둔 만화 콘텐츠가 있었으면 했죠.


취재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한 나라당 보름 이상 머물렀어요. 처음에 출판사에서 경비와 취재 비용을 제공할 테니 덴마크부터 일단 갔다 오라고 했어요. 가기 전 자료를 찾아본다고 하더라도 실제 현지에서의 감성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최소 20년 이상 현지에서 산 코디네이터가 따라붙어 머물렀어요.


덴마크 편은 에밀 라우센 씨가, 부탄 편은 윌리엄 리 씨가 감수를 맡았어요.


처음에는 감수 계획이 없었어요. 부탄 원고까지 해놓은 상황에서 덴마크 편과 부탄 편을 한 번에 출간하려고 일정이 미뤄지면서 출판사에서 감수를 부탁한 거로 알아요. 덴마크 편은 대사관에 원고를 보냈는데, 대사관 직원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감수자를 추천해 주었다고 들었어요.


저스툰 연재를 하면서 출간한 경험은 어땠나요?


선결 조건이 연재였어요. 다분히 경제적인 이유였죠. 책만 써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요. 이제까지는 일러스트와 광고 일을 본업으로 삼은 채로 기회가 되면 책을 내는 식이었어요. 늘 책을 쓰는 데 매진하면 좋겠다는 마음은 굴뚝 같았죠. 2, 3년 눈감고 고생한 채로 책을 내면 선순환 구조가 되겠지만 제 가족이 위험해지는 상황에 부닥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출판사에서 저스툰이라는 플랫폼에서 연재하면서 원고료를 먼저 받고 책 집필에 매진하자고 제안이 온 거죠. 집에 가서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계산을 했어요. 원래 버는 것과 차이가 있긴 했지만, 늘 하고 싶던 일이라 가족의 동의를 얻어 시작했어요. 


리우스의  『만화 마르크스』가 책에 등장해요. 만화로 만드는 지식에 늘 관심을 가지신 것 같아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요. 리우스의  『만화 마르크스』는 교과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최근 나온 만화 중 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시리즈는 래리 고닉의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예요.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철학 사상 등을 만화로 만든 시리즈를 보면서 기가 막히게 좋다고 감탄한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유럽 감성과 우리나라 감성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만 한 채 학습만화를 읽으면 제가 봐도 썩 재밌지는 않더라고요. 한국만의 방식으로 지식을 푸는 만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어요.


만화 작업은 언제 시작했나요?


대학원에 늦게 들어갔어요. 디자인 전공이었는데 어느 날 커뮤니케이션 전공 수업을 들어가게 됐어요. 주로 사회학이나 인류학, 철학 전공하는 사람들이 듣는 수업이었거든요. 당시 교수님이 좋은 점수 욕심내지 않는다면 들어보라 하시더라고요. (웃음) 문제는 발제를 해야 되는데, 너무 창피한 거죠. 이 사람들이 속으로 얼마나 나를 비웃을까, 우습다는 이야기 들을까 봐 곤혹스러웠는데 그때 발제 내용을 만화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프랑스 문학 사회학이라는 내용을 그림과 요약된 텍스트로 만화 비슷하게 발제문을 만들었어요. 교수님도 재밌는데 계속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주심 교수님도 독려해주시고요.


『디자인 캐리커처』 와 『라이벌』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만화로 만들었어요.


본업이 있었으니 다 신문 연재로 진행했어요. 연재 없이 기획만으로 가져가는 건 이 책이 처음이에요. 처음에는 서양 철학사로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철학 관련해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읽힌 책이 이진경 선생의  『철학과 굴뚝청소부』였는데, 그걸 챕터별로 네 페이지씩 만화로 요약한 적이 있어요. 마침 출판사에서도 만화로 만든다는 기획을 가지고 기회가 되어서 요약본을 보낸 적이 있어요. 언젠간 책으로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만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만화를 좋아하니까요. 그 밖의 이유라면 뭐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자기 지식을 만드는 방법이 다양해요. 저는 낙서를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대학 때도 필기를 보면 다 낙서였고, 낙서로부터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게 좋았어요. 저로서는 만화가 지식을 익히는 방법으로 제일 좋더라고요. 서점에도 학습서로 만화가 많이 나오는데, 늘 조금씩 아쉬웠어요. 공장에서 찍어내듯 뿌리면 아이들 입장에서도 만화와 학습 만화가 차이가 없잖아요. 익숙하니까요. 그거보다는 만화는 만화대로 즐겁고 재밌게 보고, 학습 만화나 지식 만화를 볼 때는 조금 다른 감성으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덴마크 취재는 아들과 같이 가셨죠.


제 아들이 조금씩 커서 글 읽고 책을 보는 걸 보면서 나중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읽을만한 책을 써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텍스트로 된 것보다 만화로 만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학계에서도 계속해서 구텐베르크 이후 활자매체가 끝나고 이제는 공감각적 다중매체가 미래 트렌드가 될 거라는 전망이 화두였어요. 만화도 근미래에 지식을 전하는 데 유리한 매체가 되지 않을까요?

 

 

덴마크가 행복한 이유


첫 번째 덴마크 편에서 대한민국 서열 1위 기업 회장인 장석대가 행복의 비결을 찾아오라는 미션을 주죠. 각자 등장인물이 장석대에게 보고서를 내는 콘셉트로 추가 정보를 주고 있어요.


만화로 모든 지식을 다룰 수 없어 나왔던 궁여지책에 가까워요. 처음에 기획했을 때는 엄격하게 지식으로만 가고 싶었는데, 출판사에서 스토리 비중을 더 늘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어요. 사실 한 번 엎어지기도 했어요. 덴마크 갔다 와서 10화까지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는데, 제가 봐도 확신이 없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출판사에서도 편집자님이 우려를 하셨는지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다 엎고 스토리를 다시 만들었어요. 문제는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동시에 지식을 담으려니 책이 두배 세배는 더 두꺼워져야 해서, 챕터 사이에 보고서 형식으로 지식을 보충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교양 만화가 된 것 같아요. 어른들은 글을 읽고 어린 친구들은 만화만 따라가도 되잖아요. 어릴 때 생각해보면 글은 잘 안 읽고 만화만 봤던 기억이 나요. (웃음)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부모들이 먼저 읽고 아이들은 아직 안 읽은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자기들만 보고 ‘아 좋다’ ‘재밌다’ 하고 끝내시는 것 같아요. (웃음)


덴마크의 주제는 ‘교육’인데, 어떻게 보면 한국 상황과 정반대예요.


처음에 출간할 때 분류를 인문이나 역사로 놓을까도 생각했어요. 덴마크 교육은 다 평준화해서 서로 다 사이 좋게 지내자는 취지인데, 모두가 이런 방식이 좋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막상 자기 자식은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하게 되죠.


덴마크의 행복한 이유를 믿음과 신뢰로 꼽았어요. 충격적이었던 건 7학년까지 시험이 없다고요. 직접 덴마크에 가서 조사하면서도 과연 가능할까 스스로 자문하셨을 것 같아요.


희한하게 덴마크에 있으면 가능해요. 아내하고도 이 시스템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온다면 과연 이 체제가 먹힐까 하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제 아내는 상당히 부정적이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에서도 최근 교내에서 시험을 안 보는 실험을 하는 걸로 압니다. 아이들을 그대로 서열을 매기지 않고 키운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덴마크 체제 아래서는 아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되게끔 하기까지 교사들이 가진 막중한 역할이 있어요. 사실 체벌이나 서열화 등 강압적인 지도지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건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경쟁을 통해 성과를 얻는데 익숙한 우리 사회에 어울릴 만한 모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나라마다 행복의 이유로 꼽을 만한 키워드를 뽑았어요. 덴마크에서는 ‘믿음’이 나왔습니다.


제일 스트레스인 부분이었어요. 친구들은 제 돈 안 들이고 공짜로 해외여행 다녀서 좋겠다고 말하는데, 저도 가기 전에는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출판사에서도 최대한 제가 취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제공을 해줬는데, 취재를 하러 간 나라에서 열흘 정도가 지나면 꼭 아파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코디네이터랑 움직이면서 계속 사람들을 만나면서 머릿속에서는 해답을 찾아야 하죠. 여기서 키워드를 뽑아 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출발 전부터 들더라고요. 출발 전에는 미리 자료 정리하고 구상하고 어떤 키워드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는데, 막상 가서 보면 늘 예상 밖이었어요. 이번에 독일을 가면서도, 역사도 다 알고 워낙 유명한 나라라 다 알겠다 싶어서 가면 예상과는 너무 다르고 출발 전 준비했던 사전 키워드가 여지없이 무너져요.


덴마크에서 처음 생각한 키워드는 뭐였나요?


덴마크의 행복은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올 거고, 시스템이 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서 보니까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온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막바지에 한참 끙끙 앓고 있으니까 아내가 이 사람들은 믿음이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해주어서 힌트를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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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한 기운, 부탄


사람들이 부탄에 간다고 했더니 그야말로 ‘어메이징 디스커버리’라고 말했다고요. 부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어떤 분은 차라리 마케팅 문구를 그걸로 뽑으라고 제안하더라고요. 신기하고 궁금해할 거라고요. “하루에 250달러라고?” 라면서요(웃음).

 

덴마크나 독일보다는 생소한 나라였을 텐데요.


의외로 다른 나라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짜인 스케줄대로 다녀야 하고, 워낙 숙련된 가이드와 기사가 붙어 있으니 민망할 정도로 편하게 다닐 수 있었어요.


부탄의 키워드는 ‘화평’과 ‘화목’이었어요.


부탄이 유명해진 건 행복 지수인 GNH 때문이었잖아요. 제 해석이 조금 보수적일 수 있지만 결국 행복이라는 게 왕조의 의지인 것 같아요. 민주화 과정이 무르익은 사회나 나라는 관리체계가 어떻게 그 사회를 만들지 결정하는데, 부탄은 왕조가 가장과 군주의 보살핌으로 나라를 관리하는 것 같았어요. 부모의 역할이 돈을 많이 벌고 애들을 호강시켜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엄마와 아빠가 사이 좋은 거잖아요. 부모가 사이 좋고 화목한 게 아이들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고요. 그 다음으로는 아이들을 포함해 이 가족을 하루하루 어떻게 하면 화평한 가운데 있게 할까, 그게 관건이에요. 부탄의 사회 지도층과 왕가가 부탄이라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런 것 같아요.

 
나라를 설명하면서 가치관이 들어가는 게 한계이자 장점이 될 거예요. 작가님만의 관점이 들어가는 걸 검열하는 순간이 오지 않았나요?


늘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죠. 지식만을 죽 나열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관점이 녹아있어야 책으로서의 가치가 생기니까요. 굳이 다른 책과 변별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까진 아니었어도, 확실한 관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점이 있어야 읽는 맛이 생겨요. 하지만 지나치게 관점이 강화되면 그건 또 보편에서 자꾸 멀어지고 독단이 되어버리니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편집자와 상의하기도 하고, 감수자의 힘을 빌리기도 했죠.


감수자와 다른 의견이 생기기도 했나요?


부탄의 불교를 설명하면서 제가 ‘환각’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어요. 긍정적인 의미로 불교가 부탄 사람들의 생활에 완전히 밀착되어 사는 방식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감수자분도 그렇고 출판사에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초월이라는 단어로 바꾼 적이 있어요.


덴마크에서는 한국의 교육, 부탄에서는 한국의 미세먼지, 독일에서는 통일이 떠올랐어요. 어느 나라든 한국을 비교하면서 보게 되더라고요.


저도 통일 이슈가 중요할 거라고 생각하고 베를린으로 갔어요. 우리는 분단을 겪고 분단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분단을 겪고 나서 통일한 이후를 사는 거잖아요. 독일을 갔을 무렵 한창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로 만났을 때라 더 절절하게 와 닿았어요. 가기 전까지는 순서대로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족이 들어오는 연대기를 쓰려다가 가보니 정말 다르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통일 과정을 쓰는데 거의 절반을 할애했어요.


독일 편이 아마 곧 나올 텐데, 처음 기획하신 대로 10개국을 돌아다니고 만화로 그리려면 꽤 오래 걸리겠어요.


빨리 해야죠. 앞으로 제가 가고 싶은 나라와 출판사에서 원하는 나라 사이에서 씨름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많은 나라를 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사람들이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시리즈를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나요?


늘 어렵게 쓰려는 마음과 싸워요. 이전에  『과학자들』도 자꾸 이야기하고 싶은 걸 모두 다루려다 보니 말이 어려워졌어요. 어렵다는 이야기가 안 들리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덴마크 편에서부터 내가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읽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도 더욱더 쉽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메이징 디스커버리김재훈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먼 나라의 복지제도라고만 여기던 덴마크의 실상을 만화를 통해 접하다 보면 우리 삶에도 적용할 만한 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지금부터 확실한 행복의 나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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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이랑 “식물이 저를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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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랑은 밴드 ‘디어클라우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고 노래를 만드는 음악가이다. 4집 작업 중이던 몇 해 전, 덫에 걸린 기분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는 식물에 깊게 매료되었다. 식물 앞에서만큼은 자신을 소개할 필요도 없고 스스로 치장하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아도 괜찮았다. 애정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자라나는 식물의 건강한 방식이 그를 우울과 무기력에서 해방했다.


화분 개수가 100개가 넘어가면서 양팔이 새까맣게 타고 바쁜 날에는 잠을 줄여야 할 정도지만, 한 번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그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스스로 혐오하는 밤을 견딜 경험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최선을 다해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바뀌게 했다. 물과 흙과 햇빛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바뀌는 식물에 경탄하고, 모두에게 각자 맞는 식물과 키우는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식물의 세계에 들어서면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안전하고 커다란 초록색 원이 생긴다. 그 안에 들어간다. 불안은 나를 쥐고 흔들지만 식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조금씩 평화를 얻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기가 자연스럽게 스르륵 지나간다. 물론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번엔 무사히 지나간다. 지옥을 맛보고 연옥의 문턱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지는 것보다 더 능동적으로 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식물』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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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식물 사진만 올리는 SNS 계정을 운영했었어요. 거기에 식물일기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에게 식물 이야기가 필요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꽤 여러 출판사에서 두세 달 사이에 출판 제안이 왔었어요.


처음에는 흔쾌히 책을 내자고 하진 않았다고요.


음악 하는 사람이고, 식물을 기르는 게 취미인데 이걸 전적으로 계속 홍보하는 게 제게 결국 도움이 되는 일일까 고민했었죠. 결국 그때그때 재밌는 거 하면서 살자는 마음으로 승낙했어요.


‘디어클라우드’의 음악과 100가지 넘는 식물과는 결이 좀 다르죠. (웃음)


제 음악만 들으면 집에 차갑게 돌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죠? 새가 지저귀고 흙이 깔려 있고 햇빛이 들어오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식물 키우기는 개인적인 취미니까요. 밴드의 결과 다르게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직접 찍은 사진으로 표지를 만들었어요.


사진 속 식물은 ‘디온 에둘레’라는 아이예요. 한 줄 나는 데 정말 오래 걸리는 소철 종류죠.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의 가드너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요.


‘이 식물은 뭐예요’ 라고 묻기보다 ‘이 친구는 누구예요’라고 묻게 되네요. 식물마다 이름을 붙이나요?

 

너무 많아서 이름을 붙일 순 없고, 큰 몬스테라 작은 몬스테라 이런 식으로 분류를 하긴 해요. 같은 종이 여러 개 있어서요.


세보진 않았다고 하는데 대략 지금 식물이 어느 정도나 있나요?


정말 세지 않아요. 일부러라도 안 세려고 해요. 만약 190개의 화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191개로 늘리는 게 고민이 될 것 같아요. 친구들이 분갈이해달라고 자기 식물을 맡기는 경우도 많아서 다 제 건 아니고 작게 들여서 크면 방출해요. 친구들이 늘 ‘이 친구는 뭐야?’ 물어보면서 호시탐탐 도사리고 있거든요. 저는 키우는 재미가 더 커서 엄청 많이 곁에 두기보다는 계속 순환을 시키고 있어요.


<빅이슈>에 식물 칼럼을 쓰기도 했죠? 칼럼으로 글 쓰는 연습이 됐나요?


식물에 대해서 글을 처음 쓴 게 <빅이슈> 지면이었어요. 단발성으로 쓰려고 하다가 지금 거의 2년 가까이 쓰고 있어요. 확실히 연습이 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빅이슈>에서 말하는 저의 자아와 <아무튼, 식물>의 자아는 조금 달라요. 빅이슈에서는 훨씬 더 친절하고 경어체를 썼다면 <아무튼, 식물>에서는 편하게 나는 지금 이게 좋다고 말하는 느낌으로 썼어요.


4집 앨범을 준비하면서 힘들 때 식물이 많이 의지가 됐다고요.


돌이켜 보면 정말 심각한 무기력증 상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곡을 지어도 앨범에 실리지 못하고,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계속 기획을 엎다 보니 무기력과 우울함이 같이 왔어요. 뭘 해도 힘들고 어딜 가지도 못하겠고, 원하는 게 없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유독 식물을 만지는 것만이 즐거웠어요. 이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정서적 안정에 식물이 끼친 영향이 컸나 보네요.


이 정도까지 클 줄 몰랐어요. 식물이 그맘때 저를 세상으로 끄집어내주는 역할을 했어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심리치료도 받을 거예요(웃음). 치료를 받으면서 좋아졌다면 더 빨랐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어요.


식물을 키우면서 굳어진 규칙적인 생활이 우울을 떨치는데 도움을 줬을 것 같아요.


뭔가 더 움직이게 되죠. 요새도 오전에 일어나서 움직이려고 해요. 저는 계속 프리랜서로 살아서 사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어요. 하지만 식물에게 빨리 해를 보여줘야 하니까 처음에는 일어나서 문만 열고 자다가, 점점 생활이 바뀌더라고요.


돌봐야 하는 개체수가 늘면서 힘들진 않나요?


삶이 불규칙해서 스케줄이 비어있을 때는 텅텅 비어있고 바쁠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많이 바쁠 때는 힘에 부친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바쁘면 무조건 더 일찍 일어나요. 식물의 사이클을 바꾸는 건 제 리스트에는 없어요. 식물은 식물이 필요한 걸 갖춰야 하고, 그러면 저는 더 일찍 일어나면 돼요.


기존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네요.


다들 깜짝 놀라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도 이렇게까지 식물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화분을 사오는 건 늘 좋아했어요. 스무 살 넘어서 내가 돈을 벌고 직접 뭔가를 살 수 있을 때부터 늘 화분을 사 왔지만, 무조건 사 와서 죽이는 걸 늘 반복했어요. 돌보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 사이에요.

 

 

돌보고 싶은 식물을 돌보고 싶을 때


식물을 기를 게 아니라, 역발상으로 ‘최선을 다해 죽이자’고 하셨어요.


식물들도 저희처럼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잖아요. 1년생도 있고 다년생도 있지만 뭔가가 안 맞으면 쉽게 죽는 게 식물이에요. 어쨌든 제 손안에 온 이상은 죽더라도 최선을 다해 죽이자는 게 목표예요. 언젠가 제 곁을 떠나더라도 죽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돌보고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설렁설렁 죽이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해 죽이는 게 식물 입장에서도 좋겠죠.


“기르기 쉬운 식물은 없다. 천천히 죽는 식물과 빨리 죽는 식물이 있을 뿐”이라고 했어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스투키는 기르기 쉬운 식물이 아니라 천천히 죽는 식물일 뿐이죠.


제가 아는 식물 중에는 스투키가 제일 천천히 죽는 식물인 것 같아요.


다들 바쁘고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르는 걸 주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집에는 잠만 자러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기 때문에요.


저는 거꾸로 집에 있는 시간이 되게 긴 사람이어서 어떤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가더라도 최선을 다해 빠르게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더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게 가능했어요.


<아무튼, OO> 시리즈는 자기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자기에게 맞는 식물과 흙, 키우는 방법이 서로 다르고 키우는 방법에 따라 같은 종이어도 다르게 자란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같은 식물을 사도 친구 집에서 크는 아이와 우리 집 아이가 정말 다르게 자라더라고요. 그런 거로부터 생각이 뻗어 나갔던 것 같아요. 흙을 조금만 다르게 써도, 해를 언제 쪼이고 물을 언제 주느냐에 따라 다 다르게 자라요. 모든 게 다 변수로 존재하는 게 가드닝 같아요.


인터넷에서 식물을 키우는 정보를 찾다가 유용한 식물 카페를 발견했다고요.


제 취미가 쿨한 취미는 아니더라고요. 식물 카페에서는 ‘OO어멈’ 같은 아이디를 쓰는 분들이 정보를 올려주시는데(웃음) 그러면서도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원했던 것들이 다 인터넷에 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말이 통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분들이죠. 정모 사진이 올라오면 등산복 입고 전집에서 전 드시는 사진이에요. 그렇구나, 어르신들 좋은 시간 보내셨구나(웃음) 하고 다른 게시물을 클릭해요.


가드닝이 중년의 취미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었죠. 하지만 몇 년 사이 엄청나게 변했어요.


사실 한국에서는 중년의 취미라고 치부되어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중년의 취미만은 아니었잖아요. 플랜테리어라는 단어도 몇 년 전부터 유행했고요. 개인적으로는 미세먼지가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공기가 정화되니까 들여야지 하다가 돌보는 법을 알게 되고, 차츰차츰 예쁜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이것저것 크게 키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반려 식물’이라는 단어도 생겼어요. 정을 주고 키우고 싶어 하는 대상이 동물에서 식물로 확대되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육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죠. 하지만 제 식물이 꽃이 피고 씨앗을 맺는 거에 너무 감동하고 혼자서 난리였어요.


돌봄 자체가 본성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돌보고 싶은 걸, 제가 돌보고 싶을 때 돌보고 싶어요.


플랜테리어가 유행하면서 소모품으로 식물을 사용하는 카페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껴졌어요.


식물을 사는 건 좋아요. 카페에서도 어쨌든 돌보려고 노력을 할 거예요. 하지만 약간 조화를 섞어서 죽이는 식물의 수를 줄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조금이라도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 보면 절대로 거기서 살 수 없을 만한 장소에 식물이 놓여져 있는 걸 보거든요. 그런 것들은 조화로 대체해도 되지 않나 싶어요. 요새 조화 잘 나와요.


식물을 키우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졌을 것 같아요. 카페에 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거나요.
원래 어떤 카페에 간다고 해서 그 카페에 있는 식물을 걱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어요. (웃음)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어쩌자고 저렇게 빛이 안 드는 곳에 유칼립투스를 심어뒀을까, 2,3주면 죽겠구나’ 싶어서 걱정되고 괜히 미안하게 생각해요.


심지어 영화 속 주인공이 물주는 화분에도 감정 이입을 하셨다고요.


제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생기면서 저 자신이 변하기는 하는데, 제 생각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네요.


1인 가구에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거주 환경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식물을 키울 수 있을까요?


정말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면 집에 식물 등을 들이시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잠깐이라도 켜놓으면 그 차이를 느껴요. 하지만 식물 등까지 들이고 싶진 않은데 식물을 키우고 싶다면 최대한 천천히 죽는 식물로 키우시라고 권해요. 스투키를 정말 많이 추천하는 편이에요. 적어도 3개월은 살아요. 1, 2만 원에 사서 3개월 동안 아름다운 걸 보는 건 대단한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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쁜 걸 같이 보고 싶은 마음


새순의 아름다움이나 잎이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을 음악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움의 색깔이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저에게는 음악이 되게 어두운 아름다움이라면 씨앗이나 새싹은 밝은 색이에요. 그래서 저에게는 밸런스를 맞춰주는 아름다움이에요. 어두운 쪽에 치우쳤던 시간이 길었던 사람인데, 반대쪽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아무튼, 식물』 mf 출간하고 식물 관련 SNS를 운영하는 건, 어떻게 보면 창작자로서 자신의 창작물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SNS는 훨씬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했어요. ‘우리 집 레몬 나무 예쁘니까 너도 한 번 볼래?’ 이런 마음이었죠. 사실 현실 친구 중에는 이런 시시콜콜한 즐거움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같이 공감하는 가드너 친구들이 있죠. 그런 분들과 함께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창작욕이나 과시욕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책은 <빅이슈>에서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식물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오게 됐네요.


가사를 써오기도 했지만, 책을 쓰면서 작가로서 지평이 넓어졌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고맙죠. 안 그래도 저희 팬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는데, 제가 하도 식물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요즘 집에 식물을 들이고 제 덕질에 동참해주는 분이 생기더라고요. 너무 감사해요.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리뷰를 보면 두 부류로 나뉘어요. 하나는 식물에 미쳐있는 사람들, 혹은 식물을 다 죽이는 식물 킬러에게 이 책을 주고 싶대요.


식물을 좋아하는 분들은 많이 공감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새순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식물 킬러 분들이 재밌게 봐주시더라고요. 그런 걸 보고 기분이 좋았어요. 열심히 죽이자고 용기를 얻은 거잖아요. 식물 하나 죽이고 슬퍼하고 실연당한 것처럼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 죽였으면 된 거예요.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작가로서, 뮤지션으로서 둘 다요.


일단 올해는 밴드의 노래하는 친구는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고, 저는 책을 내서 각자 활동하는 시기를 가지기로 했어요. 책을 냈다는 게 너무 새로운 일이라서 책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해야지 싶어요.

 


 

 

아무튼, 식물임이랑 저 | 코난북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다가 겨울을 이겨내고 맺힌 새순을 발견한 호들갑스런 기쁨까지, 식물을, 무언가를 길러본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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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종성 “퇴락일로에 있는 종교의 애잔함에 관심이 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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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들에게 기도는 각별한 것이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물 한 그릇만 있어도 자식과 가족을 위해 비손하려 하지 않았는가. 단군신화를 생각해보면 우린 ‘기도하는 민족’이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디 우리만이 기도하는 사람들이랴마는, 우린 인간이 된 뒤에 기도한 것이 아니라 기도한 뒤에 인간이 된 민족의 후예가 아니던가. 주지하다시피 웅녀는 사람이 되고자 늘 염원했고 그것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을 먹어가면서까지 집중적으로 기도한 끝에 인간이 되었다. 우리는 인간존재(human being)라는 지위를 저절로 얻은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인간되기(being human)에 힘쓴 것이다. 결국 인간이 되기 전부터 힘써 기도한 덕분에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우리네 신화이고, 우리네 존재의 모델인 것이다. (  『한국 종교 문화 횡단기』  202쪽)

 

최종성 서울대 종교학 교수가 쓴  『한국 종교 문화 횡단기』 는 답사기다. 한국 답사기라 하면 으레 궁궐, 사찰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공간을 다루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이 소개하는 장소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다. 화순 해망서원, 창명대, 적조암, 쉰움산 등이 그러하다. 화순 해망서원은 병산서원이나 소수서원처럼 유명한 서원이 아니고, 창명대와 적조암은 동학 역사에서는 중요한 곳이나 관광지로 개발되지 못했고 동학 자체를 향한 관심사가 대중적이지는 않다. 산멕이가 열리는 쉰움산은 민속학에서 주목하지만, 역시 일반인들의 시선으로부터는 벗어나 있다. 다소 주변이라 할 만한 이러한 장소를 소개한 데에는 최종성 교수의 학문적 사명감이 작용했다. 그의 표현처럼 “누군가는 제네시스의 화려함만이 아닌 쓰라린 타나토스도 기록해주고 기억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행로는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는다. 주 관심사인 동학에 관련한 비중이 조금 더 많긴 하지만, 유교와 천주교, 불교, 민간 신앙을 넘나들며 한국인의 종교 문화를 두루 살폈다. 특정 교단, 조직 차원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일상화된 종교 행위에 주목했는데 답사지에 얽힌 최 교수의 자전적 기록도 병렬적으로 서술했다.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세계관과 다양한 인물, 다양한 사건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게 하고, 각자가 소중히 생각하는 공간을 향해 떠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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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시작한 답사

 

주로 학술서를 저술, 번역해오셨습니다.  『한국 종교 문화 횡단기』는 비전공자도 읽을 수 있는 책인 듯한데요.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학술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중서라 하기엔 독자에게 다소 인내를 요구하는, 적당히 딱딱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9월, 고대하던 안식년을 맞았습니다. 흔히 해외에 교환교수로 나가 재충전의 기회를 엿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정상 그럴 수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나름 주제가 있는 행로를 정해서 길을 나서보기로 했습니다. 안식년 이전에 인연이 있어 둘러본 적 있는 몇몇 거점에다 새롭게 접근하고픈 지역을 덧붙이다 보니, 태안에서 태백까지, 서에서 동으로의 길을 내게 되었습니다.

 

태안이 답사의 출발지가 된 것은 고 정주영 회장을 숭의사의 초헌관으로 추천한다는 문서(망기)를 우연히 손에 넣으면서 그곳의 사당을 찾아나선 게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초헌관 노릇을 했던 사당을 추적하다 헛걸음도 했지만 그러면서 배움도 쌓고 행로도 다각화 할 수 있었습니다. 해 지는 서해(태안)에서 시작해 해 뜨는 동해(삼척)로 횡단하며 동진하는 사이 1년이 지났고, 그렇게 1년을 쏘다닌 기록과 어릴 적 기억을 욱여 넣은 한 권의 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답사기에 실린 사진은 어떤 기준으로 넣으셨나요?
 
애초에 준비한 사진도판은 대략 190여 컷이었는데, 책을 엮는 과정에서 1/3 정도인 60 컷 내외로추려냈습니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책의 서술을 보조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기여하는 것들로 모았지만 사진책이 아니다 보니 최소한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사진에 관한 한 문외한이어서, 전문가의 시선에서 보자면 사진의 구도와 앵글, 그리고 색상에 있어 질적으로 한참 모자라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사진 중에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장면들도 여럿 있습니다. 가령, 구암 김연국의 묘지라든가 구암이 해월을 처음 만났던 인제군 무의매리(미매)의 풍경은 사진의 질적인 차원보다는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의해 채택된 것들입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명승지의 사진은 아니지만 지역의 소박한 종교문화로 기억할 만한 또는 기억해야 하는 장면들을 배치하고자 했습니다.

 

제목이 ‘한국 종교문화 황단기’인데요. 책에서 다룬 소재와도 관련한 질문일 텐데, 교수님께서는 보시는 한국 종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한국 종교'라는 특정 교단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종교는 한국의 종교학 내에서 나름 독립성을 인정받은 분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종교는 특정의 지배종교나 대표적인 제도종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해 한국인이 역사적으로 신앙해온 종교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넓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 유교, 기독교 등의 세계종교가 한국인의 삶에 수용되었다면 당연히 한국종교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제도적으로 미약하지만 한국인의 내적이고 장기지속적인 신앙을 보여준 민속종교나 잔존하는 신종교도 당당히 한국종교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에서는 세계종교의 위상을 지닌 종교전통뿐만 아니라 무슨 무슨 종교로 명명하기 곤란하더라도 한국인의 문화에 내재화된, 생활화된, 일상화된, 그래서 우리 문화로 받아들이는 데에 조금의 서슴거림도 없는 종교문화에도 유념하면서 답사의 여정을 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종교, 문화가 자연스럽게 조합되면서 횡단기의 제목으로 구성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 종교문화’를 횡단하면서 종교의 성분을 엄격하게 구별해내기보다는 한국인에게 중층적으로 녹아 있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종교문화의 의미망을 다각적으로 확인해보고자 했습니다. 한국인의 삶에 반영된, 혹은 그 삶을 좌우해온 종교문화의 거대한 의미망을 ‘한국종교’라 하면 어떨까 합니다. 사실, 그러한 한국의 종교문화와 저의 삶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 중간중간에 들어간 제 성장기의 기억들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증언해준다고 봅니다.

 

성장기라고 하신 것처럼, 답사기가 선생님의 자전적 기록과 병행되어 진행되는 독특한 구성입니다.

 

책에서 소개한 곳이 대단한 명승지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곳도 아니었습니다. 한국인의 문화를 온전히 접할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시선에서 비껴 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렇게 낯선 곳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들렀던 경험이 있어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어쩌면 탄탄한 공식이나 다된 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조금은 투박하고 애틋하고 가려진 곳을 즐겨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무튼 초행길에도 뜻 모를 친숙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 저기 다니면서 답사지의 종교문화를 기록하고, 과거 속에 개켜 두었던 옛 경험의 일부를 요 깔듯 펼쳐내면서 관련된 주제 의식을 상기시키고자 했습니다. 그간 학술 논저에선 결코 할 수 없었지만, 답사기에서만큼은 어릴 적 기억과 일상의 삶의 이야기도 배움의 원천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답사기의 서술이 추구하는 주제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기억도 있긴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제 자신의 종교 경험도 정리하고 싶었고, 더 잊혀지기 전에 짝할 수 있는 기록에 부기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논문의 문장과는 다른 문학적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장소를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산과 물이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느껴졌는데요. 교수님의 연구자적 자아가 아니라 문학적 자아가 표출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단언컨대 제게 문학적 소질은 없습니다. (웃음) 학교 다닐 때 그쪽으로 상 받아본 적도 없고, 문학소년이란 얘기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다만, 다년간 공부를 하다 보니까, 그래도 제가 인문학자이고 인문학이 문사철(문학/사학/철학)인데 사철 쪽에만 너무 절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을 의도적으로 거부하진 않았지만 공부의 일부, 글쓰기의 일부로 적극 수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등한히 하다가, 40대 중반 넘어가면서 주말에는 시와 소설에 시간을 할애하며 1주일에 두세 권씩 읽어나가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그러하듯, 예전에는 저 역시 밤늦게까지 연구실에 있었고, 심지어 주말까지 그것을 연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주말이 되면 집 근처 카페에다 나만의 독서 아지트를 찜 해놓고 문학 작품들에 맛을 들이고 있습니다. 답사를 다닐 때에는 현지의 문인들의 시집을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없던 문학적 기질이 살아나는 건 아니지만, 답사기를 쓰면서 예전 어른들의 예스러운 말투, 지역의 색채가 들어간 방언들, 잊혀가는 정감 어린 표현들에 기대어 빈약한 문학성을 감춰보려 했습니다. 대중적인 교양서라 가독성에 신경을 써야 했지만 그래도 낯선 표현들이 종종 들어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소외받는 주변지를 답사한 이유

 

보통 답사기, 하면 궁궐이나 사찰, 명승지를 다루는데, 책이 소개하는 공간은 유명하지 않은 곳입니다.

 

국토예찬이나 명승지를 둘러보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주류적인 전통이나 지배적인 체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수용되거나 기록된 종교문화보다는 기록되지 못하거나 감추어질 수밖에 없었던 민속과 민중의 종교문화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발굴해내고 정리해서 학문의 장으로 초대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왔습니다. 태생적으로 촌놈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신종교를 다루더라도, 창생의 화려함이나 증가일로의 발전모델보다는, 다소 기세가 꺾여서 힘이 부치는 퇴락일로에 있는 종교의 애잔함에 관심이 끌립니다. 왠지 모르게, 시대 정신에 부응하며 창립하거나 부활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침체해가고 명멸해가는 종교의 운명도 지켜봐 주고 기록해줘야 한다는 학문적 사명감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네시스의 화려함만이 아닌 쓰라린 타나토스도 기록해주고 기억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닌 곳이 모두 임종을 맞은 종교문화라는 말은 아닙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문화재거나 명소는 아니지만 쉬이 잊힐 수 없는 소중한 종교적 삶의 원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나쳐온 사당의 제사, 동학의 잔불, 마을의 천제, 성지와 순례지, 산중의 수행처와 기도터 등은 종교적으로는 나름 중심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소외받는 주변지였습니다. 이번 여행기를 통해 저들에게 그 향기와 빛깔에 걸맞은 한국종교의 멤버십을 부여해주고 싶었습니다.

 

가유약, 김충선이나 책에서 소개한 인물은 시대의 주류라기보다는 변방, 주변에 머물던 사람으로 시대와 불화한 사람들이 주였습니다.

 

명나라 출신의 가유약과 왜군 출신인 김충선은 분명 국외자였습니다. 우리에겐 당연히 구별되는 외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중일이 얽힌 국제전이라 할 만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빌미가 되어 그들은 우리사회로 편입되었고 자랑스런 한국인의 일원으로 승인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고 동화되는 과정에서 쉽게 잊힐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을 쉽사리 잊지 못하게 하는 기억의 장치가 당시 유교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 봅니다. 사당이야말로 혈연적 계통과 집안의 자부심을 환기시키는 기억의 장소였고, 사당의 제사는 그 기억을 강화시키는 세련된 문화장치였습니다. 저들은 분명 변방과 주변인으로 출발했지만, 각각 귀화한 소주 가씨와 사성김해 김씨의 시조로서 기억되고 여러 곡절을 겪은 뒤 세대가 거듭되어도 늘 제사를 받을 수 있는 불천위(不遷位)의 권위를 누리게 됩니다. 적어도 그들과 그들의 후손은 더 이상 국외자나 주변인이 아니었습니다. 혈연상의 국적에 관계 없이 조상을 회고하게 하고 저들의 공훈을 되새기게 하는 문화적 장치, 그런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유교 문화가 뒷받침 되었기에 그들은 자랑스런 한국인으로서의 동질감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유교문화가 혈연, 국적과 상관 없이 기억하는 장치가 있었다는 게 새롭습니다. 일부에서는 고대사를 혈연 중심으로 기억하려는 흐름도 있는데요.

 

고대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저의 주제를 넘는 일이지만, 민족이라는 게 혈연, 혈통을 통해 우월성을 확보하려고 한다면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고 봅니다. 앞서 언급했던 가유약, 김충선과 같은 분들은 각각 어지러운 혼돈의 시기에 한반도로 들어온 원군이었고 적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얄궂은 운명은 잠깐이었고, 이들의 후예는 조상의 명예를 존중하며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저들은 이 땅에서 세대를 연속해가며 자신들의 인간적 바람을 실현해나갔고, 여타의 한국인들과 문화를 공유하면서 더불어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갔습니다. 민족을 피의 문제, 즉 혈연의 순수성으로만 보는 것은 그릇된 신화적 사고라고 봅니다. 소주 가씨와 사성김해 김씨의 경우는 그것을 뛰어 넘어 이 땅의 주인으로서 삶의 공동체를 꾸려가며 사회의 일원이 되었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다문화사회로 가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되새겨볼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와 동학이 만난 적조암 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제발, 이웃에 다른 종교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138쪽)라고 하는 표현과 함께 곱씹을 만한 대목이었어요.

 

『삼국유사』에 따르면, 함백산의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토착의 성지(소도) 위에 세운 사찰입니다. 불교 전래 이전의 토착의 문화가 당시 신종교라 할 수 있는 외래의 불교를 품어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12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정암사의 암자인 적조암이 토착의 자생종교인 해월의 동학을 품어주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월이 동학의 운동을 재건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비축하고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적조암에서의 수행이었다고 봅니다. 1873년 당시 해월이 동학의 지도자라고는 하나 늘 산중으로 쫓기는 신세였고, 교조인 수운이 참형을 당한 뒤 동학도들도 좌절 속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전히 교조의 유족이 남아 있는 상태라 종교적 카리스마도 해월에게 곧장 수렴되기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해월은 수행과 기도를 통해서 자신과 교단에 닥친 난제들을 돌파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곳이 피신과 수련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적조암이었습니다. 다행히 적조암의 철수좌 스님은 해월 일행을 관대하게 받아줄 만큼 아량이 있었고, 동학의 종교적 실천을 너그러이 인정해줄 만큼 도량이 깊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종교적 계통을 엄격히 하고 차별성을 극대화하는 종교의 세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동학과 불교의 접점을 잘 보여줍니다. 적조암은 비록 퇴락하여 유허지만을 남겨 놓고 있으나 한 때 어칠비칠하던 동학의 산실로서 불교와 동학의 격조 있는 공존문화를 꽃피워낸 역사적 장소임을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제발, 이웃에 다른 종교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는 표현은 은사이신 정진홍 선생님께서 20여 년 전 동행했던 답사지(계룡산 신원사)의 한 민박집에서, 이웃한 투숙객을 배려하지 않고 밤새 술 마시며 시끄럽게 굴던 젊은이들을 혼내시겠다며 던지신, “제발, 옆방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는 야밤의 발언에서 유추한 것입니다. 종교간의 공존 질서를 만들어보겠다며 새삼스럽게 나설 필요도 없고, 다만 내 옆방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조심하는 일, 내 이웃에 다른 종교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배려하는 일, 그것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함백산 1100미터 고지의 적조암에서 교감했던 철수좌와 해월이 그것을 웅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서술에서 동학에 관해서는 '농민 전쟁' '계급 운동'을 부각하고 영성, 종교성은 다소 빼려고 하지 않습니까. 교수님께서는 “갑오년 동학이 세월에 묻히지 않고 역사와 문학과 예술의 관심을 받은 것이야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농민들의 마음을 자각시키고 하나로 단단하게 묶어주며 새 시대를 대망하게 했던 경신년 동학이 외면받아서는 곤란하다. 그것이 혁명을 지체시킨 천덕꾸러기로, 혹은 합리성을 결여한 미신으로 치부되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81쪽)라고 쓰셨는데요.

 

갑오년(1894년)에 거스를 수 없는 힘의 분출이 일어난 건 당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문학이나 예술 방면에서 갑오년 동학을 풀어내는 작업을 많이 했다고 봅니다. 들판에서 타오른 아우성과 물리적인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러한 힘을 불러일으킨 원천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갑오년의 힘을 발산하기까지 수반되는 이데올로기적 설득과 정서적인 자극은 경신년(1860년)의 동학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갑오년 녹두장군의 동학에 비해 경신년 수운의 동학은 진지하게 성찰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경신년 산중에서 있었던 종교경험이 회전력을 발휘해서 사람들의 마음과 힘을 규합했고, 결국에는 갑오년 들판의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갑오년에 변혁 공동체로 힘을 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경신년의 영적 공동체가 원천이 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문을 읊으며 천주를 모시는 데 몰입하다가 천주를 모시듯 인간을 모시라는 사인여천으로 사고가 전환되면서 동학도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널리 자각해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모시던 공동체가 인간성을 자각하는 변혁의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산중의 기도와 수련에서 비롯된 경신년의 동학과 들판의 함성으로 번져간 갑오년의 동학이 균형 있게 다루어 졌으면 합니다.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했는데요. 동학도 큰 역할을 담당했죠?

 

이 방면에 대해서는 저의 이해가 짧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1905년 12월 1일을 기해 동학은 천도교로 개신되었습니다. 1906년 교단이 설립되면서 동학혁명 실패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다시 종교운동으로 규합되었습니다. 천도교 지도자들은 무력투쟁이나 신비주의에 몰입하지 않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문화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주력합니다. 민족종교 진영에서 사람들을 계몽시키고 교육시키는 데 천도교가 감당한 역할과 공과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주지하는 바대로 천도교는 3.1운동 때에도 구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물론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에 있어 종교적 역량만이 발휘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갑오년의 경험과 애국계몽운동을 거치면서 비축된 동학의 인적, 물적 역량이 3.1운동과 그 이후의 민족운동에 커다란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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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정보화 시대에도 구원을 향한 갈망 여전해

 

이 책의 중심 주제가 죽음, 순교, 순도인데요. 천주교 순교와, 숭의사 5현이라는 존재의 순도 등 믿는 인간, 구도하는 인간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 같습니다.

 

좋은 지적이라고 봅니다. 순교 및 순도라는 주제로 모든 걸 묶어내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에서 다룬 인물들 다수가 종교적, 문화적 격변기에서 소신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펴 나가다 기존 사회의 저항에 부딪쳤던 당사자들입니다. 자신의 소명과 신념을 따르는 데 있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순교나 순도로 이어진 것은 거의 필연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희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이들의 행적을 지속적으로 기억해내려는 의례화 작업이 시도되었다는 점입니다. 가령 정여해가 역사적 불행을 당한 스승(김종직)과 학문적 벗(김굉필, 정여창)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해망단, 정여해의 유지를 받든 후손과 지역의 유림들이 확대시킨 해망서원 숭의사의 오현(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정여해) 제사가 그것입니다. 해망서원이 비록 서원연구에서 주목받을 만한 큰 서원은 아닐지라도 수백 년을 이어온 이러한 의례화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종교적 순례 혹은 학문적 답사에서 만나는 것은 어떤 인물의 의롭고도 성스러운 죽음 그 자체이기보다는 그런 인물과 그들의 숭고한 가치를 기억해내기 위해 후예들이 고안해낸 기억의 구축과 의례화 작업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현대인들은 주로 세속적인 목표를 추구하지 않나요. 100년 사이 우리사회의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게 아닐까요.

 

물질과 자본에 인생의 희망을 다 걸기 하는 풍토가 종종 목도되긴 하지만, 옛날이라고 해서 더 성스럽고 현대라고 해서 더 세속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20세기 중후반까지 세속화 논쟁이 가열될 때마다 종교의 쇠퇴와 약화를 예견하는 의견이 많이 등장했지만, 그 이후 지구화와 정보화 시대에도 여전히 구원을 바라는 기호들이 새롭게 갱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제도화된 교단중심주의, 공동체중심주의, 사제중심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고전적인 모델은 점차 약화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대신 현대의 종교문화에서는 개인적이고 영적이고 만인사제적인 성향들이 점점 더 강조될 것이라 예견해 봅니다. 분명한 것은 종교적 환경이 변한다 해도 그러한 변화된 환경에 걸맞은 핵심적인 표상들이 여전히 주목을 받을 것이고 그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의례화 전략들도 여전히 추구될 것이라 봅니다.

 

교수님의 여러 학문적 관심사 중 하나가 신종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19~20세기가 정말 뜨거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원화된 사회가 허락되다 보니 오히려 그 열기가 식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지금 연구자 입장에서 주목하는 종교 현상이 있나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는 신종교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종교가 전래되면서 이에 자극 받은 토착의 종교적 실험이 동학 이래로 다채롭게 모색되었고, 반대로 전래된 서양종교가 토착의 종교적 기반을 흡수하면서 기독교 계통의 신종교 운동들이 분출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20세기 신종교 운동을 고려할 때에는 이 두 축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동아일보 1923년 12월 18일자 보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 한국은 종교부자의 나라였습니다. 19세기 후반부에 분출했던 동학은 20세기 전반부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종교구매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한편 20세기 전반부에 출발한 증산계열의 종교운동도 민중들로부터 각광을 받으며 다양하게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20세기 후반부에는 전대 동학이 지녔던 종교적 열기를 대체해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에 전래된 외래종교에서 파생된 기독교계통의 신종교운동들입니다. 독특한 메시아 사상을 견지하면서도 한국인의 종교적 맥락을 접목시킨 이들 신종교운동들은 한국종교 연구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사례로 보면 옴진리교 교주가 사형당했고, 유명 헐리우드 배우가 믿는 사이언톨로지도 있잖아요.

 

옴진리교나 사이언톨로지에 대해선 피상적인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일본 옴진리교를 보자면, 일본사회와 종교학계에 던지는 충격이 굉장히 컸습니다. 1995년 옴진리교 지하철 가스테러사건은 종교와 교단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무고한 일반 시민이 희생된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 일본의 신종교연구는 옴진리교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파장이 큰 것이었고 그만큼 지식사회에 던지는 파장도 컸습니다. 일본의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취재한 기록을  『언더그라운드』로 엮어 출간할 정도였고, 그것을 계기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보편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종교가 갖고 있는 조직의 폐쇄성과 신념의 절대화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사회문제에 둔감한 연구자의 중립성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던 것입니다. 종교를 있는 그대로 보는 중립적인 태도야말로 연구자에게 권고되는 윤리적 덕목이었지만, 종교가 초래할지도 모를 사회적 악영향을 애써 외면하거나 판단정지와 중립성에 숨어버리는 태도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옴진리교사건은 일본 사회 내에서 종교연구자가 지녀야 할 사회적 책무를 재고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답사에 관한 질문입니다. 서원 답사하시면서 내삼문이 주로 닫혀 있던 데 대한 아쉬움에 저는 동감했습니다.

 

제가 전문 유교학자는 아니지만 서원이나 사당을 즐겨 찾는 편입니다. 답사를 하는 이상, 가능하면 내삼문 안쪽까지 가보려 노력하지만 막상 사당의 관문 격인 내삼문은 굳건히 닫혀 있기 일쑤였습니다. 앞쪽에 강학을 위한 공간을 배치하고 뒤쪽에 위패를 모신 사당을 배치했다는 전학후묘(前學後廟)를 열심히 설명하면서도 달랑 강학 공간만을 개방할 뿐, 정작 숙연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의례의 중심 사당공간은 닫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관리하는 유교 측의 입장과 어려움을 잘 알 만합니다. 쉬이 범접할 곳이 아닌 신성공간으로서 절기나 제일에 따라 제한적으로 개방하여 소제하고 정성껏 의례를 올리면 그만이지 상시 개방할 필요까진 없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성스러운 제사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현대인에게는 문화재의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종교 문화재가 갖고 있는 가치가 있고, 현대인에게 옛 문화의 경건함을 경험하게 하는 좋은 소재라 생각합니다만, 접근할 수 없는 게 무척 아쉽습니다. 막상 먼지 쌓여 있고 거미줄 쳐져 있고 쥐 똥이 나뒹구는데 범접할 수 없는 신성공간이라며 문 걸어 잠그고 방치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직무유기라고 봅니다.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전통이 있고 가치가 있다면 조심히 드나들게 해서 피가 통하는 공간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잠시 밝혔지만, 접근을 막고 외부 경비 업체에 의존할 폐쇄 공간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웃 일본은 외진 곳 신사라도 개방해서 사람이 드나들게 하고 사람 때를 타게 하면서 성스러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손때 묻고 발길 끊이지 않게 하면서 성스러움도 지키고 문화재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길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봄이라 돌아다니기 좋은 계절입니다. 한국 종교를 보기 위해서는 OO을 가면 된다, 교수님께서 추천하는 장소는 어딜까요?

 

두 군데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민속종교의 현장입니다. 제가 강원도 사람이고, 이 책 마지막 부분에도 기술한 바 있듯이, 삼척과 태백의 권역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곳에 번듯한 제도종교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문화적 자발성과 주체성을 기반으로 예부터 내려오는 민속종교의 전통이 많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산, 강, 바다가 어우러진 그곳의 자연환경도 좋지만 거기에 새겨진 소박한 신앙과 의례도 여행자에게 신선함을 줍니다.

 

다른 하나는 동학의 현장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대전 충청권에 남아 있는 동학의 센터입니다. 특히 이 책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한 충남 청양의 창명대(천진교)에 관심을 가져볼 만합니다. 해월 최시형의 측근이자 핵심 제자였던 구암 김연국의 후예들이 꾸려온 교단으로서 계룡산 신도안을 호령하던 옛 자취와 열기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들이 간직한 동학의 열기와 문헌기록들이 방치되지 않길 기대합니다. 특히 옛 교주들이 남긴 일기자료를 비롯한 문헌들은 종교 이전에 문화재적 가치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쓰실 책은?

 

1년간의 안식년이 있었기에 이번의 답사기가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첫 시도니만큼 모든 게 어려웠지만, 이따금씩 기회가 되면 시도해볼까 합니다. 물론 당장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선 종교학이나 민속학을 전공한 몇몇 동학(同學)들과 함께 민속종교에 관련된 공동의 테마를 공유해서 공저로 묶어내는 데 힘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문헌과 현장을 아우르고, 이론과 실제를 접목시키고, 사건과 해석이 곁들어진 민속의 종교문화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에 중점을 두려 합니다. 일차적인 주제로 선정된 것이 산학(山學)입니다. 한국인 누구에게나 산은 절실하고 중요한 것이어서 민속종교에서 빠트릴 수 없는 주제이자 소재였다고 봅니다. 높이와 넓이에 상관 없이 한국인들은 저마다 명산을 간직하고 있는 듯합니다. 홀로 학술논문을 쓸 때보다 이번 공동작업이 더 긴장되지만 합심해서 공감을 얻는 글을 구성해보고 싶습니다. 산에 대한 공동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한국들의 종교적 일상문화를 응축해온 강, 바다, 하늘, 나무, 조상 등의 테마로도 관심을 확장해볼까 합니다.


 

 

한국 종교문화 횡단기최종성 저 | 이학사
한국의 종교사와 민속사 속에서 잊혀가는 조상들과 그들의 명맥을 이어가는 후손들의 삶과 더불어 곳곳에 서려 있는 한국의 기도 문화 및 그 속에 깃든 정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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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회 “살아서 보게 된 그림책, 버킷리스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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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깜찍한 상상을 만들며, 한껏 즐기는 장난꾸러기처럼 살고 싶었다. 그림책 『방긋 아기씨』 ,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 ,  『마음을 지켜라! 뿅가맨』  등을 만들며 아들 건오와 남편과 순탄하게 살았던 1979년생 작가 윤지회는 2018년 2월,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우주로 간 김땅콩』의 채색 작업만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윤지회 작가는 워낙 일을 좋아했다.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작가로 사는 일이 녹록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견뎠고 즐겁게 일했다. 병원에 입원하고 이틀 만에 수술, 항암 투병을 하면서 붓을 들 힘이 없었다. 10개월간 그림과 담을 쌓고 살았더니 몸과 마음이 무너졌다. 항암 약을 하나 뺀 지난해 겨울부터 아무도 모르게 붓을 들었다. 하루에 30분씩, 다음달은 1시간씩. 그렇게 떨리는 손을 마음으로 잡고  『우주로 간 김땅콩』을 완성했다.  『우주로 간 김땅콩』은 윤지회 작가의 6번째 그림책. 주인공은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엄마 몰래 사라지는 ‘김땅콩’이다. 땅콩이네집은 김땅콩을 찾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고 파출소에 가고 ‘김땅콩 찾기 캠페인 콘서트’까지 연다. 과연 김땅콩은 정말 우주로 간 걸까?

 

윤지회 작가는 “이 책을 만들지 못하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고 했다. 김땅콩이 왜 사라질 생각을 했는지, 얼마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오는 4월 30일부터 6월 9일까지 판교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우주로 간 김땅콩』  원화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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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의 밑바탕은 사랑이에요

 

신작으로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안부가 무척 궁금했어요.

 

지금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게 신기해요. 어제 열이 많이 올라서 응급실에 가야하나 인터뷰를 취소해야 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책이 나온 게 아직까지도 너무 신기하고 너무 감사해요.

 

어렵게 완성한 그림책이에요.


작년 3월 초에 출판사에 원화를 넘기기로 했는데, 2월에 위암 선고를 받았어요. 처음 간 병원에서는 1기라고 했는데 다음 병원에 가보니 2,3기를 예상했고 결국 4기 판정을 받았어요. CT를 찍을 때 안 보인 암들이 있었어요.  『우주로 간 김땅콩』  채색만 남겨 놓은 상태여서, 아픈 와중에도 계속 마음이 걸렸어요. 제 책이니까요. 아프면서도 이걸 못하고 죽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누구한테 맡겨서라도 내달라고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증상이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항상 위염을 달고 있었어요.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지내다가 위염 약을 타러 병원에 갔다가 내시경을 받았어요. 의사 분이 “암”이라고 하는데 그냥 멍해져서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집에 오니까 그때부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가장 먼저 편집장님한테 전화해서 “저, 책 못한다”고 했어요. 위급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수술했어요.

 

『우주로 간 김땅콩』 은 기적처럼 태어난 책이네요.


아무도 제가 책 작업을 하고 있는 줄 몰랐어요. 작년 말에 항암 약을 하나 뺐거든요. 일상 생활을 조금 할 수 있게 되면서 하루에 30분씩, 1시간씩 하다가 12월부터 열심히 작업했어요. 한 장면을 완성하는데 두 달이 걸렸어요. 손이 떨리니까 선도 잘 안 나오고. 찌글찌글하게 선이 나오고. 정말 죽기 전에 꼭 만들고 싶었거든요. 이 책을 만드는 게 제겐 버킷리스트였어요.

 

그림책은 ‘김땅콩’이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서 시작돼요.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상황이죠. 얼른 출근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유치원에 안 간다고 말하면 부모들은 긴장합니다.

제 아들 ‘건오’도 자주 그래요. (웃음)

 

엄마 몰래 유치원에 안 간 ‘김땅콩’은 ‘김땅콩 찾기 캠페인 콘서트’까지 열리자 환호합니다. 모두들 자신(김땅콩)을 보고 싶을 거라 상상하면서 기뻐하죠. 실제 많은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해봤겠죠?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것 같아요. 저 같은 소심쟁이는 실제로 유치원에 안 갈 생각까진 못했지만요. (웃음) 그동안 제가 만든 그림책을 살펴보면  『방긋 아기씨』도 그렇고 밑바탕은 사랑이에요. 저는 항상 사랑 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요. 사랑받고 주목받고 싶고 사랑도 주고 싶은 마음이 다 연결돼서 나온 그림책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제 내면에 원하는 만큼의 사랑이 아직 안 채워졌나봐요.

 

김땅콩을 찾기 위해 엄마아빠는 전단지를 돌려요. 이웃에 사는 한 또래 친구는 “아빠 나도 전단지에 나올래”라고 말하죠.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장면인데요. 아이들의 상상력이 떠올라서 슬며시 웃음짓게 됐습니다.


편집부랑 아이디어를 같이 짜낸 장면이에요. 아이가 전단지에 나온다는 일은 굉장히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봤어요.

 

김땅콩의 견과류 친구들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잣, 밤, 호박씨 등. 주인공을 ‘땅콩’으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 스토리를 풀 때는 사람으로 구성했어요. 그런데 사람으로 끝까지 푸니까 그림이 너무 바글바글해지더라고요. 재미도 없고요. 그러다 편집장님이 캐릭터로 가보면 어떻겠냐고 힌트를 주셨어요. 그러다 땅콩이 떠올랐죠. 아무래도 실제 아이가 사라지는 상황이라면 현실 투사가 돼버리잖아요. 유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의 한계도 있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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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보다가 진짜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 안 가면 어떡하냐”는 리뷰를 보았어요. (웃음) 아마 아이들은 그림책으로 대리만족하지 않을까요? 걱정하는 부모 마음을 알게 되니까 오히려 가출을 꿈꾸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제 바람이에요. (웃음) 어릴 적 제 모습을 떠올려보면 굉장히 소심했어요. 있는듯 없는듯 있는 아이였어요. 선생님이 항상 발표도 안 시켜줬거든요. 하루는 엄마한테 “선생님이 나 발표 안 시켜준다”고 했더니, 엄마가 다음날 음료수를 사서 보내셨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바로 발표를 시켜주더라고요. 아이들도 크면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많이 생각하잖아요. 자신이 주목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요. 저처럼 수줍음이 많은 친구들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한 장면 한 장면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어요. 이웃집에서 하는 김땅콩 이야기, 김땅콩 찾기 캠페인 콘서트 장면은 너무 귀엽고 무척 애틋해요.


몸이 정말 힘들 때 그린 장면이에요. 지금 봐도 감회가 새롭고 그래요. 그림을 30분 그리고 쉬고, 1시간 그리다가 또 쉬고 그랬거든요. 나는 이제 평생 그림을 못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다음에 완성한 그림이라서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숨통이 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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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만 쉬어도 ‘이게 어디야’라고 생각해요

 

항암 일기를 인스타툰 사기병(@sagibyung)으로 연재하고 있어요. 올해 2월 9일부터 시작하셨는데 벌써 6만 독자 분들이 구독하시고 응원을 보내고 있어요.


위암 4기 진단을 받고 SNS에 올렸던 모든 걸 지웠어요.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개인적인 사진이나 자료가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게 싫었어요.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었어요. 그러다 투병 수기를 찾아보았는데 4기 환자의 투병기는 거의 없더라고요.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몰라서 내가 진짜 나을 수만 있다면 항암 일기를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에서 진료 받으면서도 의사 선생님께 “저 계속 항암 일기 쓸 거예요”라고 말했어요. 그러다  『우주로 간 김땅콩』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부터 한 컷씩 올렸어요. 아픈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반응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한 컷 올리다가 두 컷 올리고 세 컷 올리게 됐어요.

 

곧 책으로도 볼 수 있나요?

 

가을에 항암일기 에세이가 나올 거예요. 만화를 기본으로 하지만, 글을 더 쓰고 그림도 더 그리고 있어요.

 

수신지 작가님의  『며느라기』도 인스타툰으로 연재한 작품이잖아요.


수신지 작가님이 많이 도와줬어요. 그림책은 호흡이 길잖아요.. 1년씩 걸리니까요. 그런데 만화나 웹툰은 유행에 빨리 대처해야 하니까 그림책보단 호흡이 짧죠. 저는 웹툰 연재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초반에 올린 그림은 몇 컷 없거든요. 그 때는 몸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많이 올릴 수가 없었어요.

 

항암 일기를 출간하고 싶다고 ‘버킷리스트’에 쓰신 걸 봤어요.


독자 분들이 댓글로 정말 응원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주변을 보면 암 투병 중인 분들이 꼭 있잖아요. 좋은 사례도 많이 알려주셨고요. 제가 치료를 하니까 커피를 거의 못 마셔요. 하루는 큰 마음 먹고 아이스라떼를 마셨는데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때 심정을 그림으로 그렸더니 너무 위안이 됐다는 독자 분의 쪽지를 받았어요. 항암 일기가 나오면  『우주로 간 김땅콩』  출간에 이어 버킷리스트 하나를 더 지울 수 있게 돼요.

 

인스타툰을 보다가 잊히지 않은 문장이 있었어요. “내가 병을 극복한다면 단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을 것이다. 힘 없는 자를 도울 것이고 내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달려갈 것이다. 숨쉬는 이 순간을 감사히 여기도 꼭 극복할 것이다.”


숨도 못 쉬고, 응급실만 계속 왔다 갔다 했을 때 썼던 문장이에요. 몸이 너무 아프니까 자꾸 생사를 생각하게 되잖아요. 사람에겐 누구나 소명이 있을 텐데, 내 소명은 뭘까? 생각해봤어요. 내가 정말 낫는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도 그때그때 생각나는 문장을 메모하고 있어요. 잊으면 안 되니까요.

 

아프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매순간 감사한 것 같아요. 숨만 쉬어도 ‘이게 어디야’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해요.

 

독자들의 응원이 평소보다 더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그렇죠. 너무 그래요. 인스타그램에  『우주로 간 김땅콩』 리뷰를 올려 주시면서 제 이름을 태그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 보라고 저 힘내라고 해주시는 거잖아요. 사실 책 한 권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아이랑 재밌게 읽었다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하고 너무 좋아요.

 

‘김땅콩’은 아들 ‘김건오’이기도 하잖아요. 건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건오를 생각하면서 만든 책이라서요. 건오가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고, 혹시라도 건오가 컸을 때 제가 옆에 없다면 제가 지었던 책들을 보면서 저를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엄마가 너를 정말 사랑했다고, 너를 기억하면서 이 책을 끝까지 완성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우주로 간 김땅콩윤지회 글그림 | 사계절
모두가 자신만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상상에는 세상의 중심에 멋지게 서고 싶은 아이의 천진함이 담겨있습니다. 결말 속, 땅콩이의 당연하고도 깜찍한 욕심에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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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설민석 “나는 역사를 재미있게 전하는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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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강단에서 한국사를 가르쳐 온 설민석 강사의 꿈은 역사 콘텐츠를 대중화하는 일이다. 어떤 공부에서도 ‘재미’가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나이를 떠나 역사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써 ‘만화’에 주목했다. 지난 2017년부터 어린이들을 위해 펴낸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했다. 올해는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세계사로까지 넓혀볼 계획. 4월 줄간한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은 역사라면 고개부터 내젓는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디서부터 세계사를 들여다보아야 할지 모르는 어른들까지 재미있게 세계사를 접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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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시리즈가 굉장히 큰 사랑을 받았어요.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웃음).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독자들의 반응이 느껴지세요?

 

피부로 느껴집니다. 어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분들이 저를 너무 반가워해 주시더라고요. 그동안 나온 대모험 시리즈를 다 봤다면서, 그 책들 덕분에 아이의 질문 수준이 달라지고 엄마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덕분에 감동을 받았습니다(웃음). 

 

이번에는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가 주제입니다.


21세기는 글로벌 시대잖아요. 전 세계가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여있는 현재에는 세계인이 손을 잡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국민들이 열심히 땀 흘려 일한다면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될까요? 미국발 경제 위기 한 번이면 아시아가 도미노처럼 무너지죠. 환경의 경우는 어떤가요? 미세먼지 때문에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리가 고등어 굽지 않고 자동차를 안 타면 공기가 좋아질까요? 이렇게 온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들이 너무 많아요. 결국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여러 국가의 리더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나아가야할 세상인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나라의 문화적 가치, 역사 등을 어린 시절부터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글로벌 감성리더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첫 번째 이야기로 ‘프랑스 대혁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아이들에게는 한국사도 무척 어려울 텐데, 세계사라고 하면 더 멀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쉽고 재미있게 다가가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서는 친숙한 나라의 이야기를 해야 했고요. 가족들과 여행을 가 보았거나, 가볼 가능성이 있는 나라에서 고르기 시작했는데 프랑스 외에도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들이 선상에 올랐었죠.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몇 안 되는 모범국가 중 하나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나누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근대 민주주의의 시발점인 프랑스 대혁명을 주제로 잡게 됐어요.

 


가장 전달하고 싶은 건 의식이에요


대모험 시리즈 덕분에 그동안 어린이 독자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요. 성인 수강생이나 독자들을 만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아요.


사인회나 강연 행사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어린이들을 만나요. 저는 첫인상만 봐도 아이의 특성과 삶이 확 느껴지는데요(웃음). 요즘 어린이들은 정말 예쁘고 똑똑해요. 그런데 단 하나,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천진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아쉬워요. 똑똑함, 영민함이 아이들이 꼭 가져야 할 순진함과 천진함을 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요즘은 한글을 다 떼기도 전에 외국어를 배우고, 학원도 무척 많이 다니잖아요. 지식을 머리에 담는 일은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 하게 될 텐데, 감성이 말랑말랑한 이 시절에는 가슴에 올바른 의식을 담아주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어린이 독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더 많이 하게 됐죠.

 

출간과 함께 책의 OST ‘별리’도 공개되었어요. 직접 작사, 작곡을 맡으셨다고요.


그 곡은 사실 제가 만들었다기보다 신탁을 받았습니다(웃음). 사람이 한 분야에 집중을 오래 하다보면 없던 능력이 생기잖아요. 한참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는데, 꿈에서 시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아랍의 한 곳에서 제가 앉아있더라고요. 둥근 달밤에 파란 모래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순간 어떤 선율이 제 귓가를 때렸죠. 저도 모르게 잠에서 깨 새벽에 휴대폰을 붙잡고 그 선율을 흥얼거리며 녹음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 들어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그 곡에 가사를 붙여서 만들게 됐어요. 가사 또한 저희 집 강아지 로빈이와 산책을 하면서 30분 만에 완성했어요. 지금 다른 테마의 곡들도 제작 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추가적인 OST들을 계속 만나보실 수 있을 거예요.

 

어렵고 방대한 역사를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로 풀어내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팩트와 픽션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부분을 가장 신경 써서 챙겨야 했어요. 스토리만 생각한다면 『드레곤볼』이나  『원피스』보다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짤 수 있을 텐데(웃음) 이 책은 재미만 있어서는 안 되고, 유익함이 함께 곁들여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스토리와 캐릭터는 모두 허구이지만, 이들이 실제 역사적 사실을 넘나들면서 여행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했어요. 주인공 ‘설쌤’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무작정 가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 사람들이 실제로 서역을 방문했다는 증거가 되는 ‘아프라시아브 벽화’에서 개연성을 찾는다던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살았던 시절로 시간여행을 가는 등 팩트와 픽션을 잘 조화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죠. 어렵고 힘들기보다 정교한 작업이었어요.

 

학습만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독자도 있는데요. 이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는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건 선생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난 24년간 어떻게 하면 역사를 더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연구를 해왔어요. 뭐든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만화라는 플랫폼이 어린이들에게 세계사와 한국사를 처음 접하게 하는 데 가교역할을 한다면 분명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거겠죠. 그리고 보통 학습만화라고 하면 글밥을 그림으로만 바꾸어놓았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은 ‘지식을 전달하는 만화’가 아닌 ‘지식도 전달하는 만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은 건 의식이에요. 예컨대 ‘프랑스대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다’는 걸 외우게 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아무리 절대권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군주의 말로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만화를 통해 재미있고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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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기 위해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세계사 대모험』 을 읽을 또래의 어린 시절에, 강사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완전 개구쟁이였어요. 그때는 국민공통교육과정을 통해 국가가 어떤 잣대를 정해놓고, 그 기준에 가까우면 ‘우등생’ 가깝지 않으면 ‘열등생’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어요. 저는 물론 그 기준에 가까운 학생은 아니었죠. 공부를 잘한 건 아니었지만 교우관계는 정말 좋았어요. 초, 중, 고, 대학교 심지어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까지 다 저를 좋아했으니까요. 학교의 명물이었거든요. 나서서 장기자랑하고 친구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착한 개구쟁이였다고 할까요(웃음).

 

어린 시절에는 역사를 무척 싫어했다고요.


너무 싫어했죠. 얼마나 지루한지 역사가 무서울 정도였어요. 어린 시절에는 역사와 담을 쌓고 살다가 27세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된 거예요.

 

왜 갑자기 역사가 좋아졌나요?


사회생활을 하다가 25살에 학교를 들어갔거든요. 부모님께 손 벌릴 수가 없어서 막노동, 식당 서빙, 세차장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시급이 5천 원으로 높은 아르바이트 중 하나가 보습학원에서 중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었거든요. 영어, 수학은 자신이 없지만 역사는 가르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재수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필기노트를 꺼내 공부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워낙 쇼맨십이 좋다 보니 인기가 많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부끄럽더라고요. 선생님 소리를 들으려면 그만큼 역사적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잘하기 위해 뒤늦게 역사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만난 이순신, 세종대왕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죠.


고등학교 때 저는 셰익스피어에 미쳐있었어요.  『햄릿』  , 『오델로』 ,  『맥베스』  등을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아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우연히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고 ‘역사를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구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역사연출가를 꿈꿨죠. 그러던 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순신과 세종대왕을 만난 거예요. 제가 그동안 좋아했던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역사 속 위인들은 실존인물인데도 그 드라마가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보다 훨씬 감동적이었어요. 그때부터 푹 빠져들어서 대학원에 진학해 역사교육학을 전공하고 본격적으로 강사의 길을 걷게 된 거예요.

 

강사님의 강의가 대중의 각광을 받는 건, 인물의 스토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기 때문이에요. 역사 자체보다, ‘사람’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신 것 같아요.


모든 역사를 만들어낸 건 결국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이걸 사건으로 접근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한 명이 죽으면 비극이요, 백만 명이 죽으면 통계다’라는 스탈린의 말처럼 역사가 사건이 되면 그저 남의 이야기로 전락하게 돼요. 그런데 인물에 접근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500년 전 인물이나 1000년 전 인물이나 호모사피엔스의 본성은 동일하잖아요. 그러니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거죠.


연극영화과에서 만난 선후배, 친구들을 만나면 저는 이런 얘길 해요. 다들 나에게 다른 길을 갔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고요. “햄릿, 리어왕, 오델로를 연기하는 대신 나는 이순신에 빙의하고 세종을 표현하고 정조대왕을 연기한다. 내가 서는 무대가 강단으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 제 꿈은 역사콘텐츠를 대중화하는 거예요. 과거에는 연극영화과 출신이라는 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핸디캡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대중의 관심 밖이었던 역사콘텐츠가 지금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그 배경에는 저의 이런 특이한 이력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실제로 2016년 예스24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은 강사님의  조선왕조실록』  이었고, 2018년 ‘올해의 책’은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  였어요. 과거에는 어렵고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역사콘텐츠가 점점 더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유시민 작가님께서 “나는 지식소매상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저도 굉장히 공감하는 말이었어요. 과거에는 지식을 만드는 학자들이 많았잖아요. 하지만 그 지식들은 마치 조선시대의 한자처럼 특정계층에만 머물러 있었죠.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지식들을 잘 골라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지식소매상들이 늘어난 것 같아요. 손님에게 어울릴 것 같은 옷을 고르고 추천해주는 코디네이터처럼, 지식큐레이터들이 점점 더 많은 활동을 한 결과 점점 인문학이 대중화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우리는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할까요?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때 인간은 신의 영역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아요. 이제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데우스의 시대가 온 거죠. 우리가 책에서 보았던 신화 속 신들이 가진 능력보다 인간은 훨씬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신이 바람, 구름, 물을 움직이는데 이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리스로마신화』 에 나오는 신들이 우주를 갈 수 있나요? 인간은 우주를 갈 수 있어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물 위를 걷는 수준을 넘어서 잠수함을 타고 해저탐험도 하죠. 이뿐 아니라 삶과 죽음도 관장해요. 유전자 조작, 인간복제가 가능할 전망이고, 수명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 가는 거잖아요. AI가 악마의 모습일지, 하나님의 모습일지는 우리 손에 달려있어요. 그런데 단순히 지금 당장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문학의 중심인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다면, 지구를 이만큼 정복하고 살아가는 존재로서 너무 무책임한 일 아닐까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과거 선조들의 흔적을 통해 메시지를 얻고, 올바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죠.

 

강의, 강연에 방송과 연구까지 무척 바쁘실 텐데 특별한 시간관리 노하우가 있으세요?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걸 싫어해서 틈나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편이에요. 차 안에서도 문제집을 풀고요. 아마 제 회사 근처에 오시는 분들은 제가 걸어 다니며 양치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짧은 시간들도 아까워서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저는 하루가 24시간이고 제 몸이 하나라는 게 너무 불만이거든요(웃음). 그래서 시간을 과도하게 뺏는 행위들을 아예 안 해요. 골프도 전혀 안 치고요, 대신 1시간을 투자해서 격렬한 운동을 하죠. 술도 안 마셔요. 다음 날까지 숙취가 이어지는 걸 용납할 수가 없거든요.

 

역사 분야 외에, 관심 있게 보는 장르의 책이 있다면요.


미래사회에 대한 이야기에 푹 빠져 있어요.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를 답습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은 『사피엔스』 , 『호모 데우스』  ,  『21세기 자본』  , 『2050 미래사회 보고서』  등을 읽고 있어요. 조만간 이러한 내용과 역사를 접목시켜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미래에 관한 만화도 출간할 예정이에요.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은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이 책은 온 가족이 다 읽는 만화로 기획했어요. 앞서 출간한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이 초등학생에게 최적화 된 단순한 스토리의 만화라면,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은 엄마 아빠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기획했거든요. 이 책을 성인용 소설로 탈바꿈하는 작업도 진행 중에 있어요. 그러니 온 가족이 함께 읽고 프랑스 대혁명과 그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셨으면 좋겠어요.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모험을, 어른들에게는 아이들과 함께 역사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1설민석, 잼스토리 글/박성일 그림 | 단꿈아이
세계사 대모험의 주인공들은 프랑스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성장하고 자라나게 됩니다. 아이들 머리에는 세계사 지식을, 가슴에는 교훈과 올바른 의식을 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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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싱어송라이터 임현정, 청춘의 세포를 간직한 기성세대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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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임현정이 돌아왔다. 1996년 데뷔한 뒤 '첫사랑',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고마워요', '사랑의 향기는 설레임을 타고 온다' 등 애청곡을 내놓았지만 2007년 5집을 끝으로 건강 문제로 무려 11년을 쉬었다. 지난해 '사랑이 온다'와 'God bless you' 그리고 얼마 전 발표한 '청춘'으로 다시 돌아와 본격적인 활동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청춘'은 결코 젊지 않으나 여전히 청춘의 세포를 간직한 기성세대에 대한 위로를 담았다.'음악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그 목소리에는 과거의 지난(至難)을 뚫고 나온 담담함과 의욕이 퍼져있었다. 록과 클래식 등 음악 스타일. 대중 감성과 실험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결정하지 않는 그는 인터뷰도 섬세하고 사려 깊었다. 질문마다 꼼꼼히 추억과 경험을 꺼내 응답했다. 어느덧 데뷔 23주년을 맞은 중견 임현정을 서울시청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긴 공백기에 대한 뒤늦은 인사와 함께 소망과 음악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거리낌 없이 피력했다. 그는 '임현정다운' 음악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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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컴백이다. 얼마 전 발표한 싱글 '청춘' 공개 후 현재 심정은 어떤가.

 

사실 녹음 해 둔 지 1년이 넘은 곡이다. 마스터링을 작년 5월에 끝냈으니까. 그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고 지금은 덤덤하다.

 

발표가 미뤄진 이유는?

 

밀도를 높이고 싶었다. 우선 'God bless you'가 작년 12월에 나왔고, 정규 음반을 올해 하반기쯤 내려는 목표를 세우고 보니 ('청춘' 발표 시점으로) 지금이 가장 적절했다. 'God bless you'와 '청춘'을 비교했을 때 '청춘'이 내용적으로 더 중요했다. 그래서 다듬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고 할 수 있다. 때마침 '첫사랑'이 수록된 정규 2집 앨범 <가위손>의 리마스터링 시기와 겹쳐 여러모로 뒤로 밀렸다.

 

꾸준히 애청 되는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 수록된 정규 4집 <A Year Out..In The Island>이 2003년도에 발매됐다. 인기와 지구력 측면에서 보면 이 음반을 재발매했을 법도 하다.

 

4집 역시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시도는 했는데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쳐서 잘 풀리지 않았다. 현재 음원 사이트에서 정규 1집과 2집이 유통되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가위손> 재발매를 반겨 주실 것 같다.

 

앞서 '청춘'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어떻게 만들어진 곡인가.

 

느지막한 오후에 오피스 단지 근처 선릉의 공원을 걷고 있었다. 평일임에도 직장인들이 많았다. 삶에 지쳐 남의 눈을 피해 쉬고 싶어 하는 피로감이 역력히 느껴졌다. 안쓰러웠다. 부양가족, 아이들 학원비 등이 걸려있으니 기계 바퀴 같은 삶에서 탈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중독에서 조금만 벗어나고 의심을 품어본다면 청춘을 되돌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쓰라림을 담은 곡이다.

 

노랫말은 쓸쓸한데 반해 선율은 재즈 풍으로 풍성한 느낌을 전달한다. 노래가 끝나고 후반부 1분가량 악기 연주를 길게 배치한 편성이 인상적이다.

 

현실을 고민하고 일상에 작은 균열만 내본다면 희망을 볼 수 있다. 가사가 '멍하니 발끝만 본다'로 마무리되고 곡이 끝날 때까지 긴 솔로 연주를 넣었다. 소주라도 한잔 마시러 가서 깊은 절망을 제대로 느껴보자는 의미다. 상념에 잠길 기회를 주고 싶었다.

 

기존의 것을 비틀어 생각하는, 조금은 반항적인 기질이 엿보인다.

 

'나'로 태어나지만 관습, 교육, 재창조를 통해 '이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길러진다. 내 주관이 아니라 사회적 주관을 주입 받는 것이 아닐까. 본질적으로 의심을 해야 한다. 이 생각이 맞는지, 이 경우가 맞는지를 말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특히 요새 매스컴 홍보나 조회 수 등이 그래서 더 못 미덥다. 기존 체계에 묶어 두려 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지양한다.

 

노래나 보컬은 고민의 잔부스러기 없이 깔끔하다.

 

보컬의 힘을 빼야 할 순간들이 있다. 음악에서 빼야 더 강해지는 부분이 있는 거다. 힘이 있어야 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힘을 푸는 게 더 어렵다. 특히 이번 싱글에서는 보컬에 여유를 주고 다른 것들을 더 부각하고 싶었다. 원하는 만큼 잘 반영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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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그랬지만 본인만의 확고한 사고가 느껴진다. 특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라디오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는 말이 깊이 와닿았다.

 

빠르고 바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맞춰서 갈 필요는 없다. 내 길을 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연습도 많이 필요하고, 고민도 많다. 특히 4집부터는 사운드 더빙을 줄이고, 에센스만으로 정면 승부를 보고 싶었다. 녹음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자꾸 제약이 걸린다. 형식이 구조화되고 그 안의 콘텐츠가 좋아져야 하는데 여기서는 구조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스튜디오에서 음악가들이 연주할 기회가 적다 보니 녹음실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반면 외국에서는 각 파트 별 최고만 섭외해 레코딩 할 수 있다. 시간은 많이 걸리나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경험이 많으니까 말이다.

 

느린 속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인가.

 

맞다. 아직 만들어진 것이 적기 때문에 편곡도 최선을 다 하고 무엇보다 느긋하게 가려 한다. 예전에는 결국 제작자가 원하는 것에 다 맞췄다. 그러다 보니 다시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곡들이 많다. 절충이 필요한데 그 무게중심을 잡는 건 어렵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 입맛에만 맞추고 싶지도 않다. 모든 걸 다 쏟아도 부족하다. 그래도 그렇게 만들면 나 스스로 다시 들을 만은 하더라. 그렇게 천천히 다져나가고 있다.

 

그래도 공백기가 너무 길었다.

 

공황장애의 고통도 있었고... 또 음악현실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활동할 당시 '내가 들을 음악을 하자' 다짐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됐다. 어느 순간에는 음악 팬들이 어떤 노래들을 좋아하는지 감이 잘 잡히지도 않았고. 시간이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노래를 듣는 양태도 달라졌다. 듣기 편하고, 즐기기보다는 소비되는 노래들이 대세를 점하는 현실이 된 거다. 그때는 그런 흐름이 아쉬웠는데 이제는 이해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내가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걸 인정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사랑은 봄비처럼..이별은 겨울비처럼' 등 애청곡들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드라마 <이 죽일 놈의 사랑>에 쓰였던 클래시컬한 감성의 곡 '재회'도 생각난다.

 

어린 시절 퀸(Queen)의 열렬한 팬이자 록 키드였다. 이 곡에 기타 솔로가 나오는데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스타일로 쳐달라고 했다. 클래시컬함과 록의 감성을 교배했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 라디오 애청곡이 된 것은 클래시컬한 분위기 때문으로 보고 여기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하지만 록 사운드도 배제하지는 않으려 한다. 사회적 시선들을 록으로 꺼내 들겠다. (웃음)

 

모든 음악이 아티스트의 자기만족으로 출발하는 것이긴 하지만 발매되면 산업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그만큼 대중성을 잡기 어렵고, 그 때문에 록 감성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나는 늘 대중성을 우선에 둬 왔다. '첫사랑', '고마워요',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재회'... 전부 사랑에 쉽게 반응하는 사회에 맞춘 곡들이다. 그런 내 선택들이 지칠 때도 있었고 다소 실험적이더라도 내 취향을 십분 살려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환경 탓에 사회 비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자랐다. 그래서 한때 더 록, 록의 저항성에 끌리기도 했다.

 

그렇게 자라고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문득 이 모든 비난이 사랑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미적 가치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정규 6집은 그런 측면에서 대중성, 록, 개인적인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란 그릇에 묶어 담아 내보려 한다.

 

그렇다면 본인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라... 어렵다. (웃음) 공황장애로 힘들었을 때 옆을 지켜준 남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때 약에 기대지 않고 자연적으로 극복하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남편이 늘 함께하고 힘을 실어줬다. 사랑은 나를 낮추고 버리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작년 에 발표한 '사랑이 온다'가 바로 남편에게 쓴 곡이다. 거기에 사랑이 담겨있다. 사랑은 매번 배우고 있다.

 

공백기가 시작될 즈음 남편을 만난 걸로 안다. 사랑의 감정으로 음악 창작력이 넘쳐났을 거 같은데. 모든 곡을 직접 쓰는 싱어송라이터 아닌가.

 

음악은 처참하고 괴로울 때 더 잘나온다. 처참하고, 괴롭고, 벼랑 끝,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 감정이 오롯이 드러난다. 그 아픔을 곡을 쓰며 치유하는 것이고. 음악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정말 음악 말고는 생존 이유가 없었다.

 

공백기에 창작 활동도 거의 쉬었던 셈인가?

 

곡을 안 쓴 건 아니었다. 쓰긴 했는데 나와 맞지 않아 발매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은 유기농 농사를 지으려고 했다. 일본에서 자연주의 농법을 하는 농장도 다녀오고 오스트리아도 가고... 2008년부터는 한 2년간 제주도를 계속 오갔다. 결과적으로는 실현하지 못했다. 개발이 쉽지 않았다. 결국 고민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생태 환경주의는 무엇일까. 인간이 정말 극한 상황에 빠졌을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환경도 사회도 아닌 사랑이다. 이런 생각들 많이 했다. 결국은 사랑이고... 

 

오랜 음악 활동을 바란다.

 

예전에는 '55살까지 음악 하면 성공한 거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보자 했다. 지금은 다르다. 정해진 일정대로만 어떻게든 맞춰 곡을 내려면 낼 수는 있다. 그렇게 음악 활동을 이어나갈 수는 있는데 요즘 음원 제작 시스템이 따라주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왔다 갔다 하고... 그 틀에만 찍어 내다보면 내가 못 견딜 수준의 결과물이 나올 게 분명하다. 내 호흡대로 끌고 나가며 내 구역을 구축하고 싶다. 오래도록 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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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드는 본인의 앨범은?

 

2집과 4집이다. 2집은 사운드 입체감이 다르다. 그때가 록을 할 때다. 일렉트릭 기타나 신시사이저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 콘솔 72채널을 넘어서 썼고 드럼만 16트랙, 기타만 해도 8개 이상 사용했다. 공간감을 키우려 최선을 다했다.그렇다면 4집은.4집은 변화하고 싶었다. 원하는 보이스 컬러를 만들어내기 위해 담배도 끊고 살도 10kg 정도 찌웠다. 물론 작업이 끝나고 바로 다 뺐다. 그만큼 감정의 우여곡절이 담겨있다. 지금 들어도 이 과도기를 잘 마칠 수 있을까, 발라드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생히 느껴진다. 특히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들어보면 어떤 그루브가 있다. 내 본연의 그루브와 대중이 원하는 그루브 사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곡이다.

 

송 라이팅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곡을 추천해준다면.

 

잘 쓴 곡은 녹음이 잘 안 나와서... 실패다. (웃음)

 

임현정 음악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정체성은 없다. 세포들은 길어야 3개월이면 다 바뀐다. 관념, 추억, 사랑 같은 것들을 빼면 사람은 계속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정의 내릴 수도 없고, 내려서도 안 된다. 다만 흘러가는 대로 내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그게 정답이 아닐까?

 

대중에게 어떤 뮤지션으로 남고 싶은가.

 

삶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그런 모습이 대중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히트곡도 없이 실험적인 곡만 내느냐 불평을 들을 수도 있을 거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내면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진실한 사람다운 곡을 쓰고 싶다.

 

사람다운 곡? 무슨 말인지 조금 쉽게 풀어 달라.

 

거짓 없는 나로 분했을 때 좋은 곡이 나올 수 있다. 내가 의도해서 곡을 쓴 것 같지만 사실 그 이전에 세상이 나에게 던져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풀어서 만들어낸 게 노래고, 음악이다. 결국은 모든 게 사회가 나에게 건네준 것들이다. 그때를 위해 가식을 벗어야 한다. 음악가들이 위기일 때 좋은 노래들을 뽑아내는 건 절박함이 가식을 벗겨내기 때문이다. 꼭 벼랑 끝에 서지 않아도 솔직한 사람다운 곡을 끄집어낼 수 있는 뮤지션, 임현정이 되고 싶다.

 

끝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임현정 인생의 음반 혹은 가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 처음 퀸을 만났을 때가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들려주는 쫀쫀한 기타 솔로와 프레디 머큐리의 카리스마에 반했다. (웃음) 유투의 기타리스트 디 에지(The Edge) 역시 특유의 환상적인 기타 톤이 매력적인 뮤지션이다. 프린스도 좋아했고, 안드레아 보첼리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듣고만 있어도 위안을 받는다. 학생 때 들국화 콘서트에 갔었는데 충격적일 정도로 전인권 선생님께 빠져들었고, 이적 <빨래> 역시 삶에 지칠 때마다 들었다. 이적은 고교 동창이다. 비틀스도 빼면 안 되는데... 특히 나는 존 레논 파였다. (웃음) 

 

 

인터: 임진모, 박수진, 정효범

사진 정효범

정리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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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백희나, 즐겁게 읽어주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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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상한 손님』이 출간됐을 때, 백희나 작가에게 물었다. “그림책 속 등장인물 ‘달록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행복해졌는데, 작가님은 무얼 하면 기분이 좋아지느냐”고. 백희나 작가는 말했다. “그림책 작업이 나에겐 아이스크림이에요.” 이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느낌이라니. 몸은 고되도 마음은 행복하다는 엄마이자 주부인 작가에게 ‘그림책 작업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공간을 선물해 주고 싶은 심정이 됐다.

 

2016년  『이상한 엄마』를 시작으로  『알사탕』 , 『이상한 손님』  그리고  『나는 개다』까지. 4년 연속, 1년에 1권씩 꼬박꼬박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백희나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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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가 없는 유일한 그림책


태국에서 지내고 계시죠? 오랜만에 작업실을 찾은 기분이 어떠세요?

 

익숙한 느낌이죠. 작업실 전구가 나간 걸 이제야 깨닫고요.(웃음) 큰아이 때문에 태국에서 지내고 있는데요. 태국에는 따로 작업실이 없어요. 작은 방에서 온갖 인형을 만들고 그렇게 지냈어요.

 

올해도 봄에 신작이 나왔어요.


매년 봄에 책이 나온다는 기대감이 제게도 독자들께도 있는 것 같아요. 마감을 지키고 싶었어요.

 

트위터에  『나는 개다』의 작업 과정을 올리셔서 더 기다려졌던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백희나 작가의 신작은 사야지”라는 트윗을 봤는데요. 어떤 이야기든 백희나의 작품이라면 우선 사는 독자들이 많아요.

 

저는 신작이 나오면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는지가 너무 궁금해서요. SNS, 블로그, 인터넷 서점 리뷰까지 모두 찾아 읽어요. 컴퓨터 화면을 새로 고치고 또 고치고. 정말 자주 찾아봐요.(웃음)

 

『알사탕』 의 주인공 ‘동동이’와 ‘구슬이’가 다시 등장했어요.  『나는 개다』의 표지로 등장한 구슬이 모습이  『알사탕』에도 나오는데, 이번에는 목줄이 풀린 모습이에요.

 

『알사탕』을 만들 때 구슬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구슬이 표정이 너무 웃긴 거예요. 개의 애환과 마음이 모두 담겨 있어서 다음에 구슬이로 책을 만들어 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찌감치 주제를 구상했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빨랐어요. 작년 여름에 더미 북을 만들었고 인형을 만들기 시작한 건 9월쯤이니까 빨리 작업한 편에 속하죠.

 

『나는 개다』 의 첫 장을 열면 “방울이, 순영이, 구슬이에게”라는 문장이 나와요. 실제 키우셨던 강아지 이름이죠?

 

맞아요. 어렸을 때 키웠던 개들이에요. 키웠던 순서대로고요. 제가 지금 태국에서 살고 있는데요. 개를 데리고 갈 수 없으니까 마당이 있는 친정집에 개를 보냈어요. 개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거예요. 나를 키우던 부모가 다른 집으로 나를 보내버린 거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작품이  『나는 개다』예요.

 

동물이 주인공인 작품이 처음은 아닌데요. 이번 책은 제목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편집장님이 “판타지가 없는 유일한 책”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맞아요. 이 그림책은 개의 시선으로 개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인데요.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지 못해도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 가는 구슬이를 보면서 저도 많이 힘을 얻었어요. 세상이 점점 발전하면서 막을 수 있는 재해가 많아졌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해는 찾아오고요.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싶은 충격적인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묵묵히 살아 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그림의 배경이 모두 달라요.

 

그래서 작업하기가 힘들었어요. 예전에는 조금 각도를 다르게 인형을 세우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나는 개다』는 매 장면마다 새로 만들어야 했어요. 한낮에 해가 안 나서 옥상에 가서 찍은 장면도 있는데, 바람이 강해서 세트가 넘어지고…. 이번 책은 모든 장면이 어려웠어요.

 

구슬이의 엄마 ‘방울이’는 해마다 새끼를 엄청나게 낳았어요. 구슬이의 가계도가 나오는 장면은 독자들의 도움을 받으셨다고요.

 

SNS로 성견(成犬) 정면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어요. 구슬이가 믹스 견이니까 품종 견보다 믹스 견 사진을 골라서 인형을 만들었어요. 실제 개의 이름을 그림책에도 썼고요. 개에게 이름이 있다는 건 특별한 개라는 뜻이잖아요. 한 개에 얽힌 특별한 사연을 읽으니 확실히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강아지가 주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진에도 담겨 있었어요. 믹스 견 사진을 보내 주신 독자들께 책을 보내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어요.

 

구슬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열심히 대답을 해요. 어쩌면 나의 가족일지 모르는 ‘누군가’이기 때문이죠.


연대인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하지만 구슬이의 인간 아빠는 “구슬이 조용”이라고 다그칩니다. 구슬이는 생각하죠. “아부지는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다.”이 이야기를 하는 구슬이의 표정을 보는데 뭔가 찔리더라고요.

 

해석은 독자의 몫인 것 같아요. 스토리에 집착하고 그림의 해석에 골몰하면 그림책의 핵심을 놓치게 돼요. 작품을 할 때마다 주문처럼 외는 건 ‘다섯 살이 읽어도 쉽게 이해하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수백 번 생각하니까 그림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를 수 있어요. 그 점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림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재밌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슬픈 내용이든 즐거운 내용이든 즐거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어요.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미인가요?

 

물론이에요. 책을 만들면서 제가 생각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가가 이 작품을 만들 때 어떤 의미가 깔려 있었다는 사실이 있을 뿐, 그 메시지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가장 큰 목표는 독자가 즐겁게 읽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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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작품이란 건 없어요

 

아버지와 동동이가 나가고, 구슬이는 베란다에 누워 있어요. 아파트 단지의 소음을 들으면서 계속 중얼거립니다. “기다린다.” “기다린다기다린다기다린다.” 그러다 할머니와 산책을 나가게 되자 무척 신이 납니다.

 

구슬이가 달리는 장면이라서 어렵게 만들었어요. 앞발이 들려 있어야 하니까요. 이번에는 스컬피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재료로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는데 어렵더라고요. 마감을 지키려다 보니 다시 스컬피를 쓰게 됐어요.

 

구슬이네 집은 아버지, 할머니, 동동이 이렇게 3인 가족이에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읽혔어요.

 

만약에 누군가가 없는 가정의 아이가 이 그림책을 본다면, ‘나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아버지 안경은 왜 뿌옇게 만들었나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알사탕』에서 동동이도 소통이 어려운 친구였잖아요. 우리가 대화를 하려면 서로 눈을 쳐다봐야 하는데, 눈이 잘 안 보이는 거예요. 렌즈가 뿌여니까요.

 

어릴 적부터 인형을 유달리 좋아하셨는데,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생기면 바비 인형을 사시죠?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위안이 안 돼요.(웃음)

 

어시스트를 두실 생각은 없나요?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해요. 이메일 작업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작가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으로 작업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건 없어요.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이 절실하지만  『구름빵』  작업을 하면서 사람에게 신뢰를 잃은 트라우마가 너무 강해서요. 작가와 출판사의 관계가 아닌 개인적으로 작품을 공유하는 일은 아직 섣불리 용기가 안 나요.

 

독자의 시선, 반응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독자들을 굉장히 많이 의식하고 있어요. 더미북을 만들 때도 독자 입장에서 이 그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오래 생각해요. 충분히 좋다고 느낄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많이 생각해요. 모든 작가가 별세계에서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대중 예술을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나만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없어요.

 

오프라인 공간에서 독자들을 자주 만나시진 않는데요. 이유가 있나요?

 

책을 통해서 만나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독자에게 직접 책을 설명하는 일은 인터뷰 같은 경우와는 조금 다른 문제예요. 책이 독자를 만나는 것이지, 작가가 독자를 만나는 건 아니라는 고지식한 생각이 아직 있는 것 같아요. 오롯이 책과 독자가 만났으면 좋겠어요. 그 사이를 제가 끼어들고 싶진 않아요.

 

그림책 평론도 많이 늘었어요.

 

평론이 나오는 일은 무척 감사하게 생각해요. 우선 그림책 지면이 많지 않고 평론가도 많지 않으니까요. 제 작품이 다뤄진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전문가들이 작품을 분석해서 평을 쓰는 일은 좋다고 생각해요. 가끔 완전히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요. 그럴 땐 ‘좀 물어 보시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실감하시죠?

 

그런 것 같아요. 그림책은 정말 시작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림책을 쉬운 작업으로 보는 시선이 아직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있죠. 제가 긴 공백기를 갖고 1인 출판사를 잠시 했었잖아요. 서점이랑 계약하려고 미팅을 갔는데 공급률을 좀 올려 달라고 하니까 “책에 글도 별로 없는데”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그림책을 소개하는 지면은 많지 않죠. 제가 그림책 작가 소개글에 “작업할 때마다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지만, 그림책 작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위로이자 영광”이라고 쓰는데요. 실제 제 마음이에요. 그림책은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책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요. 동시에 영광이고요. ‘아이를 위한 책이니까’라고 경시하면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거잖아요. 정말 속상하고 창피한 일이죠. 어른을 위한 책보다 더 큰 부담감을 갖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세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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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마음을 지켜야 해요

 

『알사탕』이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와 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일본 그림책상’에서 ‘번역 그림책상’과 ‘독자상’을 동시에 수상했어요. 일본 그림책상은 해마다 지난 연도 10월부터 해당 연도 9월까지 일본에서 출간된 모든 그림책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하는데, 독자상 선정에는 전국의 어린이들도 투표에 참여한다고요.

 

상을 받으러 일본에 갔는데 참 기뻤어요. 무엇보다 독자들이 준 상이라 더 감사했고요.

 

『알사탕』이 일본에서 6쇄를 찍었고, 작년에 일본 하쿠센샤(백천사)에서 주관하는 ‘제11회 MOE 그림책서점대상’도 수상했습니다. 한국 그림책이 10위 안에 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요.

 

‘MOE 그림책서점대상’은 일본 각지의 서점에서 그림책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 3,000여 명이 직접 읽고 ‘가장 팔고 싶은 그림책’에 주는 상이에요.  『알사탕』 은 6위에 랭크됐고요. 『MOE』는 굉장히 오래된 그림책 잡지인데, 저도 즐겨 보는 책이어서 너무 기뻤어요.

 

최근에 인상 깊게 본 한국 그림책이 있나요?


서현 작가님의  『간질간질』 도 좋았고 이수지 작가님의  『강이』도 좋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책은 그림으로 스토리텔링이 되는 작품이에요. 복잡한 것보다 직관적으로 쉽게 흘러가는 책들이 좋아요. 그러면서 참신한 시도, 개성이 있다면 훌륭한 책이죠.

 

후배 작가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늘 빠짐없이 말하는 건 계약을 잘하라는 이야기예요. 신인이더라도 잘 따져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작가가 돼서 일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천시까지는 아니지만, 굉장히 낮은 수준으로 무시를 받는 상황이 종종 찾아올 거예요. 나는 그림책 작업이 너무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굉장히 쉽게 보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는 게 정말 중요해요. 저는 제가 그림책 작가라는 걸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정말로요. 그렇기 때문에 순탄치 못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주변의 반응이 생각보다 못하더라도 그림책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또 마감을 잘 지키면 좋겠어요. 출판사는 작품을 기다리니까요. 프로라면 마감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년 봄에 후속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고 싶어요 . 『구름빵』  저작권과 관련한 재판이 아직 안 끝났기 때문에 그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삶과 죽음, 인간의 선함과 악함,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에게  『나는 개다』를 어떤 목소리로 읽어주면 좋을까요?

 

고어(古語)풍으로 읽어 주면 좋지 않을까요?(웃음) 어르신 말투로 개를 흉내 내서 읽어도 좋을 것 같고요.

 

그림책을 각별히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책이라는 물건이 가성비를 따지면 살 수 없는 상품이잖아요. 스마트폰만 보기도 바쁜 세상에 책을 보고, 또 그림책을 읽어 주는 분들 덕분에 작가들이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백희나 - 2005년 『구름빵』으로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픽션 부문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장수탕 선녀님』으로 한국출판문화상과 창원아동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2017년에는 『알사탕』이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어너리스트(IBBY Honour List)에 선정되었다. 쓰고 그린 작품으로 『나는 개다』 『이상한 손님』 『알사탕』 『이상한 엄마』 『장수탕 선녀님』 등이 있다.

 

 

 

 


 

 

나는 개다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구슬이에게는 어느 쓸쓸한 밤 기꺼이 곁을 내준 인간 가족도 있습니다. 혼자라면 더욱 길었을 밤을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함께 보냈던 기억은 또 다른 밤들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어 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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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리콜이 되나요?』는 현직 변호사가 들려주는 ‘가족법’ 이야기다. ‘가족’과 ‘법’은 멀면 멀수록 좋은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한 마디로 ‘법원에서 가족과 마주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러나 책을 쓴 양지열 변호사는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끌려가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고 말한다. 가족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각각의 구성원이 갖고 있는 권리와 의무를 분명하게 알고서 선택을 하는 것과 ‘원래 이렇게 해야 되는 건가?’ 하고 갸웃거리면서 끌려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가족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 문제가 곪을 대로 곪은 상태가 되어서야 변호사를 찾고 법 조항을 들여다본다. 이에 양지열 변호사는 “미리 법을 조금만 알았다면 이렇게 끝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는 그 결과물이다.

 

책은 결혼과 이혼, 부양, 상속 등 15개의 주제로 가족법의 내용을 살펴본다. 주요 조항들을 소개하고, 이것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다양한 판례를 통해 보여준다. 주택 청약을 위해 미리 혼인신고를 했다가 파혼할 경우, 혼인무효가 가능할까? 배우자 몰래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고 찾아낸 불륜의 증거, 이혼 소송에서 쓸 수 있을까? 줄곧 생사도 몰랐던 부모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부양하라 요구하면, 자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 에서 찾을 수 있다.

 

양지열 저자는 <중앙일보>의 기자로 8년간 일했다. 돈이 없고 마땅한 조언자가 없어 법적 곤란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고, 변호사가 된 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올바르게 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여러 방송 매체에 출현하며 법 해석을 들려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은 책으로 『이야기 형법』, 『이야기 민법』,  『법은 만인에게 평등할까?』 ,  『그림 읽는 변호사』 , 『헌법 다시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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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휴대폰 잠금 몰래 풀면? 불법입니다!

 

책 제목이 되게 강렬하게 다가와요.

 

편집팀에서 붙여준 제목인데요. ‘리콜’이라는 단어가 참 절묘한 것 같아요. 리콜을 하려면 일단 정상적인 상태가 어떤 건지 알아야 되잖아요. 그러면 내 상태가 정상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고, 문제를 고치거나 셀프 리콜을 하는 것도 가능해요.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량 상태가 돼서야 변호사를 찾아가는데요. 가족과 관련한 법률은 문제가 있어서 찾는 것보다 시작하기 전에 알아두면 더 좋은 것 같아요. 가족법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거든요. 범위가 아주 넓지도 않아요. 결국 법이라는 건 최소한의 약속이니까요.

 

첫 부분에 ‘결혼’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요. ‘결혼에 따르는 권리이자 의무’ 네 가지가 있더라고요. 이걸 알고 결혼하는 것과 모르고 결혼하는 것도 사뭇 다를 것 같아요.


동거, 부양, 협조, 정조의 권리ㆍ의무가 있는데요. 실제로 법원에서 나온 판결을 보면, 이혼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거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가 남편에게 손해배상을 해준 경우가 있어요. 물론 두 사람이 합의하에 결혼은 유지하면서 같이 사는 건 싫어할 수도 있는데, 법정에 가면 손해배상 판결을 내줄 만큼 (동거도) 분명한 법적 의무라는 거죠. 부양과 관련해서도, 대부분은 ‘먹여 살리면 되는 거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동등한 정도의 생활수준을 유지해야 된다는 법적인 의무가 있어요. 그걸 지키지 않으면 역시나 법원에 갈 수도 있는 문제인 거죠. 그리고 약혼에 관해서도 손해배상이 되는데, 그 부분을 생각 못 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상대가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했을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거죠?


그렇죠. 그냥 ‘좋아요, 사랑해요’ 하는 것과 ‘같이 삽시다’ 하는 건 다르잖아요. 흔히 결혼 반지가 수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법적으로도 수갑이 되는 거예요.

 

약혼 관계였다는 걸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은 경우도 있나요?


모든 법적인 행위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뜻이 맞았는지’ 보는데요. 외부에 알려져 있느냐도 중요해요. 만약에 두 사람이 손가락 걸고 사랑을 맹세했는데 한 사람이 변심을 했거나 나쁜 짓을 했을 경우, 법정에 가서 ‘우리는 약혼한 사이였어요’라고 말해도 사실인지 알 수가 없잖아요. 증거가 없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외부 사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도 중요해요.

 

상견례가 확실한 증거가 되는 이유죠. 그런데 ‘우리 동거하다가 결혼하자’ 하고 같이 살다가 헤어지면, 이때는 약혼했던 걸로 보지 않는다면서요?


결혼한다고 안 했잖아요. 
 
거의 ‘준 사실혼’ 아닌가요?


많은 분들이 혼동하시는데, 사실혼이 되려면 그냥 둘이 사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결혼은 두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라고 보는 거거든요. 외부에서 인정해주는 관계라는 인식이 있는 거예요. 동거는 그렇지 않잖아요. 캠퍼스 커플이 동거하는 걸 보고 결혼했다고 하지는 않죠.

 

그런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바뀌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북유럽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결혼을 잘 하지 않아요. 그래서 동반자 관계를 따로 인정함으로써 권리를 보호해줘요. 이 책에 나오는 사례 중에도 아파트 청약을 넣기 위해서 혼인신고를 먼저 한 경우가 있는데요. 우리는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이익을 주고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이 언젠가는 정리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유책배우자(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는 사람)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예외가 있더라고요. “누가 봐도 더는 부부로 살기 원하지 않는다는 게 명백한데, 단지 오기나 보복하고 싶은 마음에 이혼해주지 않는다면” 청구가 받아들여진다면서요?


그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굉장히 심각한 상태일 때에만 법원이 청구를 받아줘요. 이혼을 안 해주고 온갖 해코지를 다 하면서 배우자를 구속시킨다거나, 배우자가 다니는 회사에 투서를 던져서 일자리를 잃게 했다거나, 그러면서 끝까지 이혼은 안 해주는 경우가 그렇죠. 단순히 ‘누구 좋으라고 내가 이혼을 해줘’ 하고 생각하는 정도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여주지 않아요. 최대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인 거죠.

 

배우자 몰래 휴대폰 잠금을 풀고 부정 사실을 알게 됐다면, 이렇게 얻은 자료는 법원에서 증거 효력이 없나요?


그게 조금 미묘한 문제인데요. 본인 몰래 휴대폰 잠금을 푼 행위는 불법이에요. 그래서 형사 처벌을 받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서는 자료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법원도 고민스러운 게, 내용을 보니까 진짜 나쁜 짓을 한 게 맞는데 불법적으로 얻은 자료라고 해서 무시하기는 어렵잖아요. 본인이 형사 처벌까지 감수해 가면서 제출한 것인데... 그래서 정도를 보죠. 미행을 붙이거나 위치 추적을 하거나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그냥 잠들었을 때 몰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본 정도면 자료로 인정해줘요. 하지만 명백히 불법 행위라서 상대방이 고소하면 형사 처벌도 감수해야 돼요.

 


사실혼 배우자, 재산분할 되고 상속 안 되는 이유


사실혼의 경우, 상속에 있어서는 완전히 배제되더라고요?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상속의 경우에는 사망 후에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판단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죽은 사람을 불러서 ‘진짜 사실혼 관계였는지’ 확인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극적인 일도 생겨요. 사실혼 관계에 있던 사람이 쓰러졌는데, 나는 법원에 가서 혼인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재산분할 청구를 해야 되는 거죠.


안타깝지만 그 방법밖에 없어요. 쓰러진 사람은 의식이 없는 상황이니까, 그럴 때는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해도 신고가 된 게 아니라고 보거든요. 혼인신고가 의미가 없어요. 이런 부분은 보완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해요.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는데, 상속과 관련된 문제도 그 중 하나에요. 황혼 결혼 같은 경우에 자녀들은 상속이 복잡해질 걸 걱정하죠. 그 고민도 약간은 이해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황혼 결혼을 해서 1년밖에 같이 안 살았는데 부모가 돌아가셨을 경우 자녀인 나보다 (부모와 재혼한 배우자가) 많은 비율로 상속을 받는 거죠.

 

배우자가 50%를 더 상속받나요?


그렇죠. 1.5배니까 50%를 더 받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자녀들이 뭔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죠. 내 재산 내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자녀들 다 키웠잖아요. 요즘처럼 수명이 길어진 시대에는 자녀들이 40~50대가 되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으니까 ‘각자 독립했는데 상속 재산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내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재산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 여러 문제점들이 있는데요. 더 나아가서는 ‘배우자에게 왜 50%만 더 줘?’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평생 같이 산 배우자의 경우, 재산분할을 하면 절반을 주는데 상속을 받으면 자녀들과 나눠가져야 하잖아요. 그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어요.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려 있어서 법을 고치기가 쉽지 않겠네요.


사실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하긴 하지만, 상속도 그렇고 재산분할도 그렇고 다 엮여 있어서 간단하게 말할 수가 없어요. 배우자의 상속 비율을 더 높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도 있었는데 ‘그러면 1~2년 밖에 같이 안 살았던 배우자는 어떻게 해야 되냐’라는 문제가 있거든요. 자식들이 반대할 텐데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현실적으로 봤을 때 동반자 관계를 인정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 ‘증여’한 재산을 두고도 형제들이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할 수 있나요?


네. 어떻게 보면 ‘내 재산을 내 뜻대로 처분하는데 왜 제약을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딸한테는 한 푼도 안 주고 아들한테만 재산을 주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보호해주기 위해서 절반이라도 챙길 수 있게끔 법적인 장치를 만들어 놓은 거예요.

 

유류분 반환 청구를 할 권리는 모든 자녀가 동등하게 갖잖아요.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을 더 많이 부양한 자식한테 재산을 더 주고 싶을 수 있어요. 법원에서도 그런 부분이 인정되나요?


그렇죠. 기여분이 인정돼요. 다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요. 단순히 생계를 도와드린 정도가 아니라, 사업을 같이 일구는 등 특별히 경제활동을 같이 한 정도라면, 그 몫은 따로 떼어놓고 나머지를 가지고 분배를 하죠.

 

나누는 비율은 유가족이 정하고요?


그럴 수도 있고, 법원에서 어느 정도 정해주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내가 편의점을 운영하는데 아들이 취업을 안 하고 같이 일했어요. 그러면 그 편의점 가치의 반은 아들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기여분을 따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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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운 거예요


부양의 의무와 관련해서 충격적인 사례가 있었어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가 찾아와서 먹고살기 힘드니 도와달라고 한 거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버지인데도요. 이 경우에도 자식한테 부양 의무가 있다면서요? 자식이 부양을 거부하면 아버지가 소송을 걸 수도 있나요?


네, 그런 경우가 있어요. 그래도 법원이 자녀에게 부양 의무가 있다고 보는데, 2차적 부양의무라서 큰 책임이 있는 건 아니에요. 아주 형식적으로, 10~20만 원 정도 적은 금액을 주라고 하죠. 그래도 화가 나죠. 하지만 혈연이라고 하는 것을 법이 끊어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인정을 하는 거예요. 그만큼 가족이라는 관계가 무겁다는 거죠. 피의 무게가.

 

이것도 충격적인 이야기였는데요(웃음). 남편이 6년 동안 가출 상태였고, 자신을 찾지 말라는 소식만 간간이 전해왔어요. 그러다 아내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죠. 그런데 유책배우자가 아내라는 판결이 나왔어요. 이 경우에는, 아내가 남편을 데리고 법원에 가서 이혼 절차를 밟을 수 없었잖아요?


방법이 있어요.

 

남편의 주거지가 불분명해도요?


네. 주거지가 불분명한 경우는 공시송달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그러니까 법의 구제를 받아서 정리를 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는 거죠. 이런 경우는 사실혼이었다면 문제가 안 됐을 거예요. 그런데 국가에 자신들이 부부라고 신고를 했고, 부부이기 때문에 국가가 부여하고 인정해준 권리가 있었을 거잖아요. 그러면 부부라는 공적인 관계를 정리한 다음에 시작해야 된다는 거죠.

 

이런 경우에 두 사람이 이혼하는 건 서류적인 절차일 뿐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국가로부터 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부부이기 때문에 받는 이익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1인 가구와 비교해 보면 청약이나 세금이나 보험 같은 부분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죠.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못할 수 있는데, 국가 입장에서는 공식화 시켜놓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단순히 서류에, 가족관계등록부에 한 줄 올리는 일이 아닌 거죠.

 

‘가족관계등록부에 한 줄 올리는 일’이 굉장히 무거운 것은 맞습니다. 입양특례법의 경우만 보더라도,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야 입양을 보낼 수 있는데 그러면 ‘서류’에 흔적이 남으니까, 그걸 피하려다 아이를 유기하는 일도 생기잖아요.


참 고민스러운 부분이죠. 부작용이 있고, 보강해야 될 부분들을 많이 지적해요. 아이를 국가가 관리해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나서 그런 제도를 만들든가 해야 하는데... 만약에 그걸 안 해버리면 태어난 아이 입장에서는 생부모와 완전히 끈이 떨어진다는 부분이 있어요. 찾고 싶어도 못 찾는 부분이 있는 거죠.

 

아이를 위한 거라면, 다른 방법으로 기록을 남길 수는 없나요?


‘다른 방법의 기록’이라는 데에 저도 원칙적으로 동의해요. 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싫어하는 제도 중에 하나가 주민등록 제도거든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사람이 태어날 때 일련번호를 붙이는 게 얼마나 야만적인 행동이에요? 우리한테는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면 기겁을 해요.

 

미국도 ID를 발급하지 않나요?


그건 내가 원했기 때문에 주는 거죠. 사회복지 보장을 받고 싶다거나, 의료보험에 가입한다거나, 자동차 면허를 따면 각각의 ID가 나오는 거예요. 주민등록 제도는 굉장히 기분 나쁜 제도이고, 사실 어마어마하게 큰 이슈예요.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알면 다른 정보를 다 알 수 있으니까 대한민국이 개인정보 보호에 가장 취약한 나라인 거예요. 그래서 중국 해커들이 우리만 집요하게 노리는 거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이게 얼마나 부당한지 생각을 잘 못 하시는 거죠. 그리고 죄도 안 지은 사람의 십지지문을 수집하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이런 말 하면 ‘그러면 범죄자는 어떻게 잡느냐’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다른 나라들도 범죄자를 잡잖아요.

 

입양과 관련해서, 주민등록 제도를 없애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아이를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리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죠. 출생 신고의 목적 자체가 번호 매기기잖아요. 사실 이런 시스템으로 국가가 관리된 지 50년이 되다 보니까, 바꾼다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다른 부분들과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야말로 사람 몸에서 혈관 하나, 신경 하나 뽑아내는 정도의 작업일 거거든요. 그러니까 시스템을 바꾸자고 말하는 게 현실성이 없다는 건 저도 아는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어 있다는 건 알았으면 좋겠어요.

 

한 명의 ‘법.알.못’으로서 이번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어요(웃음).


엊그제 북토크를 하면서 느낀 게 그런 거였어요. 어느새 저도 법조인이 된지 오래 돼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데, 처음 들으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도 있구나’ 싶으신 것 같더라고요.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이런 걸 누가 몰라? 뻔한 이야기인데, 뭘 책으로까지 써?’ 하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사람들과 사회에 필요하구나, 이 작업을 계속 해야 될 필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끌려가는 건 굉장히 다르거든요. 인간은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고 하는데, 가족에 관한 법이 정말 그래요. 일상생활에서 부모 자식 간에, 부부 간에, 심지어 연인 간에도, 알면서 끌려가는 것과 ‘이래야 되는 건가?’ 하고 막연하게 끌려가는 건 너무 다르잖아요. 자유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웃음).


 

 

가족도 리콜이 되나요?양지열 저 | 휴머니스트
낱낱의 사례를 늘어놓기보다 주제별로 이론과 함께 큰 흐름으로 읽을 수 있게 했으며, 사이사이 다양한 실제 사례와 솔루션을 제시해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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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로큰롤 라디오 “음악에 우리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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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잘 만든 음악에 관계자와 평단은 주목한다. 밴드 '로큰롤 라디오'가 6년 만에 들고 온 2집 앨범 <You've Never Had It So Good>은 2019년이 겨우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올해의 음반'이란 찬사를 받는다. 음악적 완성도와 별개로 추세라 할 수 없는 록인데다 소속사 없는 자생(自生) 인디 밴드란 한계, 음반 단위로 청취하지 않으려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꽉 찬 록 앨범을 주조해냈다는 점이 호평을 부르는 것 같다. '모든 트랙에 다 자신이 있다' '막막할 땐 막막할 때만의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로큰롤 라디오를 홍대 빅퍼즐 이즘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규 1집에서 보여주던 댄서블함을 작은 요소로만 간직한 채, 고독 우울함 공허를 사이키델릭하게 풀어낸 소포모어에는 밴드의 고군분투 6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앨범은 우리의 이야기이자 대중의 이야기다. 함께 공감하고 함께 위로 받고 싶다”는 네 멤버들은 “열심히 작업했으니 재미있게 들어달라”고 당부했다. 넷의 서로 다른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동지애가 인터뷰 자리에서도 케미를 퍼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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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이민우(베이스), 김내현(보컬), 최민규(드럼), 김진규(기타)

 

 

6년 만에 정규 2집을 냈다. 공백기 동안 무엇을 했나.

 

김진규 : 앨범 간 시차는 있지만 그렇다고 활동을 쉰 적은 없다. <무의미의 축제>란 EP도 내고 싱글, 컴플레이션 앨범도 냈다. 나름 분주했다. 미국의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WSX) 축제에도 다녀왔고.

 

그래도 6년의 시간차는 크다. 

 

김진규 : 2집을 내려고 계획한 것이 3, 4년 전이었다. 그때 소속사에서 나오고 밴드 내적으로 안 좋은 일도 많았다. 여러 가지 감정들을 작업만하다가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공개한 EP <무의미의 축제>에서 '어제와 다르게', 'America'를 들어보면 이를 갈고 있는 우리를 만날 수 있다. (웃음) '그만큼 하고 싶은 걸 다해보자' 하는 결의가 있었고 그게 이번 2집에는 더 강하게 들어있다. 

 

이민우 : 1집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래서 사이키델릭한 요소도 넣고 우주에 있는 듯한 사운드도 많이 넣었다. 정말 열심히 작업했다.

 

활기찼던 1집에 비하면 이번 음반은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염세적이다. 왜 비참정서인가?

 

김내현 : 밴드 내부 정서가 그랬다. 데뷔 초 어설픈 주목을 받고 이후 6년은 (손으로 라인을 그리며) 지속적으로 하강한 느낌이다. 특히 앞의 3년은 히트 곡을 빨리 내야 하는데 하며 멤버들 모두 굉장히 조급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우리를 보게 되더라. 무엇보다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우리를 표현한 결과물에 더 집중했다. 우리가 만족 못하는데 시간이 지났다고 마구 앨범을 낼 수 있겠는가. 그게 로큰롤 라디오란 밴드의 정체성이고, 그 발로가 이번 음반이다.

 

김진규 : 예전에는 삶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의도적으로 햇빛만 본거다. 이제는 안 좋은 환경도 인정하고 수용한다. 가장 솔직한 지금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사운드케이프는 더 정교해졌다.

 

김내현 : 예전에는 꽉꽉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비워도 되는데 굳이 힘을 많이 줘서 사운드를 겹층으로 쌓았다. 앞서 말한 작년 EP부터는 힘을 빼고 비우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1집이 기타 더빙도 많고 빽빽했다면 이번에는 힘을 좀 풀었다.

 

김진규 : 대표곡 'Shut up and dance'의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사운드를 쌓는 것보다는 일단 호흡을 중심에 놓고 잘 들리는 멜로디컬한 곡들을 만들어보자 했다. 선율이 살려면 가사가 잘 들려야하고 가사가 살려면 편곡이 단순화 되어야 한다. 'Soul'같은 곡을 들어보면 이번 음반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 잘 알 수 있을 거다.

 

가장 신경 쓴 곡이 있다면.

 

김내현 : 'Here comes the sun'이다. 리듬이 있는 곡인데 저음으로 표현해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다. 사실 1집 때는 보컬이 고음도 좀 올리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근데 그게 잘 안 따라주니까 스트레스가 많았고 결과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 반해 지금은 내가 의도하고 내려는 목소리에 훨씬 가까워졌다. 밴드 색깔도 잘 표현한 것 같고.

 

김진규 : 하나만 꼽는 건... 어렵다! (웃음) 더블 타이틀이기도 하지만 모든 트랙이 다 자신 있다. 그래도 하나만 꼽자면 'Sisyphe'.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따온 제목인데 삶의 공허함과 무의미를 표현한 대곡이다. 주제가 음악적으로 잘 구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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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이민우(베이스), 김내현(보컬)

 

 

드럼과 베이스도 궁금하다.

 

최민규 : 나도 'Sisyphe'다. 2집은 내가 튀기보다는 멤버들 연주가 뛰놀 수 있게 바탕을 잡아주려고 했다. 그 흔적이 이 트랙에 녹아있다.

 

이민우 : 데뷔 때부터 늘 리드미컬한 것들을 이끌어 가야 했다. 그래서 드럼 치는 민규와 상의도 많이 했지만 비슷한 라인들이 어쩔 수 없이 생겼다. 이번에는 안 치던 라인들을 의도적으로 더 넣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Take me home'이다. 

 

작업을 끝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인가?

 

김내현 : 음반이 발매된 날 자려고 누웠는데 세삼 너무 편했다. 2집 작업을 시작한 게 2016년 즈음이었고 가사 쓰는 데만 2년 정도가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매일 밤 아, 빨리 작업해야 하는데 하는 초조함이 있었다. 두렵기도 했고. 길고 긴 안달복달이 끝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정말 행복했다. (웃음)

 

그만큼 작품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것 같다.

 

김진규 : 1집이 댄서블한 록 주축이었다면 2집은 더 큰 세계관과 포괄적인 사운드를 내는 록 밴드로 성장했다. 이대로 느껴주시면 더할 나위 없다.

 

1집의 댄서블함은 2000년대 초 개러지록 사운드와 비슷한 지점이 많았다.

 

김진규 : 레퍼런스를 두기 보다는 듣고 자란 것들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보컬 내현이 같은 경우에는 1980년대 토킹 헤즈, 듀란듀란, 디페시 모드 같은 포스트 펑크 그룹을 좋아했고 다른 멤버들은 프란츠 퍼디난드, 스트록스를 비롯한 개러지 록 음악을 즐겨 들어왔다. 각자 취향이 어느 정도 음악에 반영된 것이고 굳이 그런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경계하지는 않았다.

 

밴드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김진규 : 멤버별 캐릭터가 음악에 충분히 녹아있다는 점이다. 우리를 만나지 않아도 음악에 우리의 모든 것이 녹아있고, 녹여내고 있으니 솔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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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규(기타)

 

 

각자 캐릭터에 대해 부연해준다면.

 

김진규 : 민우는 잘 받아준다. 성격도 유순하고 무엇보다 대중적인 감수성이 있는 친구다. 반면 내현이는 한자로 올 '래', 검을 '현'을 쓴다. 이름처럼 속 안에 어둡고 복잡함이 있다. 기질적으로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밀어낸다. 민규는 딱 드럼 치는 사람이다. 뭐든 정확하고 칼 같다. 나는...

 

이민우 : 진규는 여리고 섬세하면서도 뒤에 숨지만은 않는다. 근데 또 부끄럼도 많다. 감성적인 카리스마가 있달까? (웃음) 

 

그룹만의 유쾌함이 있다.

 

최민규 : 즐겁고 행복하다. 한국에서 록으로, 밴드로 살아가는 데 힘든 지점이 물론 있다. 좋기만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막막할 땐 막막할 때만의 매력이 있다.

 

김내현 : 예전에는 늘 에너지 넘쳤다. 그러다 한 3년 전부터는 잡생각이 들더라. 워낙 내부적으로 일들이 많았고 모든 것이 관성적으로 굴러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삐걱거리다가 다시 보니까 그냥 이게 우리더라. 이 자리에 우리가 늘 서 있었으니 여기서 잘 만들어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납득할 만한 결과물이 나오면 다시 또 성장 동력을 얻고. 

 

대중적으로 록이 관심에서 멀어지기는 했지만 록 음악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 

 

김내 : 맞다. 그런데 사실 그 매력보다 밴드가 가진 비효율성이 크니까 신생 그룹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행사에 섭외 된다 쳐도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게 악기를 설치하고 톤을 일일이 다 잡아야 한다. 리허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김진규 : 이제 음악이 그 자체로 소비 된다기보다 흘러가는 역할에 치중된다. 말 그대로 백 그라운드 뮤직(BGM)의 성향이 강하니까 음악의 가치가 낮아지고 시류에 맞지 않는 음악은 더 빨리 도태된다. 상업적으로도 음반보다 싱글이 더 잘 팔리는 시대 아닌가. 그래도 뮤지션이라면 그룹의 가치관과 색을 잘 보여주고 들려줘야 한다. 반응이 좋지 않을 걸 예상했음에도 12트랙 정규 음반으로 찾아온 건 우리만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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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규(드럼)

 

 

음악을 조명하는 방식에 안타까움이 있다면.

 

최민규 : 포크, 이디엠, 록, 팝 등 다양한 음악이 있는데 장르 편향적으로 다뤄진다. 물론 좋은 음악들을 전달해주는 방송도 있지만 양적으로 적으니 대중에게 알려질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

 

실시간 차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진규 : 사실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차트 인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활동을 시작한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년 가까이 됐는데 이제 와서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더 오래도록 음악 활동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 마케팅도 무시 못 할 중요한 요소다.

 

특히나 한국은 록 음악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김내현 : 밴드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 바로 그거다. 우리나라에는 밴드하면 장발에 가죽바지 같은 스테레오 타입을 떠올린다. 록의 원초적인 고정관념이 있는 거다. 시대가 바뀌면서 록과 밴드에 대한 이미지, 정체성, 구현 방식 자체가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막이 있다. 

 

김진규 : 재밌는 게 외국 밴드들을 정형화 하지는 않는다. 외국 록밴드하면 콜드플레이나 마룬 파이브처럼 청바지를 입고 노래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하지 않는가. 2014년도에 사우스 바이 사우스를 갈 때 힘을 잔뜩 주고 갔다. 기죽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했는데 의외로 못하는 팀이 많았다. 홍대 음악씬에 비춰보면 우리가 규모는 작아도 실력은 훨씬 좋구나 깨달았다. 더 많은 밴드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2집이 어떻게 남기를 바라는가. 

 

이민우 : 12트랙에 모든 삶의 정서와 상황이 다 녹아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음악을 듣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들 안의 고민과 힘겨움, 나름의 분투가 담겼지만 이는 곧 대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함께 공감하고 함께 이해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음반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끝으로 어김없이 돌아온 이즘 공식 질문이다. 나를 음악가의 길로 이끈 뮤지션이나 음반이 있다면?

 

이민우 : 기존에 하던 밴드가 깨지고 계속 음악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인생의 전환기 아닌 전환기라고나 할까? 마음이 복잡할 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아보자 했더니 클럽에서 프란츠 퍼디난드의 'Take me out'을 연주했을 때더라. 이때의 마음과 기억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김내현 : 중학교 1학년 때 매트릭스를 보러 갔다. 엔딩 크레딧을 따라 흐르는 노래가 너무 멋있었다. 그대로 레코드샵에 가서 영화 OST 음반을 샀고 '아 음악 해야겠다', '아 기타 쳐야겠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곡이 RATM의 'Wake up'이었다. 메탈 키드로 록을 시작했고 군 제대하고는 데이비드 보위, 조이 디비전에 빠져 음악 취향이 한 번 싹 바뀌었다. 보컬이 강한 건 전자 때문이고 그룹의 댄서블함을 역시 본능적으로 체화한 건 후자 때문이 아닐까? (웃음)

 

최민규 : 드러머로서 멋 부리지 않고 탁탁 꽂히는 8비트의 매력을 알려준 건 폴리스였다. 정확하게는 드럼 치는 스튜어트 코플랜드. 이전에는 화려한 기교가 중점이었다면 그들의 음악을 접한 뒤에는 기본이 가장 중요함을 정통으로 느꼈다. 프랑스 록 밴드 피닉스의 내한 공연에도 영향 받았다. 그 그룹이 가진 감성을 활동할 때 접목 시킨 부분도 많고.

 

김진규 : 영향을 준 뮤지션보다는 같은 방향을 가고 싶은 밴드는 있다. 퀸이다. 다양한 음악을 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이 확실했던 탓에 어떤 노래를 들어도 퀸 음악은 '퀸'스러웠다. 우리도 그렇게 남고 싶다. 뭘 들어도 우리다운, 로큰롤 라디오만의 정체성. 이제껏 달려왔듯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아가겠다. 

 

 

 

터뷰 : 임진모, 임동엽, 박수진

사진 : 임동엽

정리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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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혜란 “젊은 엄마에게 들려주고 싶은 10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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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박혜란의 에세이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를 읽었다. 그간 써온 육아서, 에세이와 다른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책을 읽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 읽은 책인데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게 됐다. 내가 진짜 아이에게 원하는 게 뭘까? 아이에게 무언가를 원하는 게 옳은 일일까? 왜 젊은 엄마들은 옆집 엄마들을 탓하며 사교육 시장에 흠뻑 뛰어들고는 자책하고 두려워할까.

 

‘1946년생 엄마’ 박혜란은 뒤늦게 여성학을 공부한 늦깎이 학생이었다. 아이들은 당연히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스스로를 돌보느라 자신의 공부를 이어가느라 세 아들에게 잔소리할 틈이 없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존중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저절로 잘 자랐다.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잔소리를 안 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기에,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엄마 곁에서 존중감을 느끼며 창의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손주들의 각종 발표회에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는 할머니가 된 박혜란. 젊은 엄마들의 비장함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샘솟는다는 그에게 독자로서 진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유치원생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심정으로 질문했다. 10개의 질문에 심플하게 답한 박혜란. 그의 답신을 한참동안 읽고 또 읽었다. 10개의 해답이 보였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10가지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좀 다른 육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창의적인 아이 키우기’ 라는 주제로 책을 쓰셨어요. 그 전의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이 키우기에 대해서 전에 쓴 두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에서는 저의 육아 경험에 대해서 가감 없이 털어놓았을 뿐, 젊은 부모들에게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았어요. 이번엔 좋게 말하면 메시지를 좀 강하게 전하려 노력한 편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꼰대처럼 잔소리를 쏟아냈죠. 아이들 키우면서도 안 했던 잔소리를 이번 책에서 하게 된 건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젊은 부모들과 아이들이 안쓰러워 보이고, 제한된 조건에서나마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아이에게서 한 발 떨어지도록 노력하십시오

 

이번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생님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낙천적이셨다고요. 자녀의 행복을 위해선 부모의 낙천성이 꽤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낙천적인 성격을 못 가진 부모들은 걱정이 됩니다. 고민 많고 매사 심각한 성격을 가진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 신다면요?

 

살아갈수록 제 어머니로부터 좋은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의 좌우명이 ‘웃으면 집안이 무고하다’였거든요. 걱정거리가 생겨도 일단 웃으셨어요. 많은 부모, 특히 엄마들은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아이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아요. 마치 걱정을 하지 않으면 좋은 엄마 자격을 박탈당하기라고 하는 것처럼. 걱정이 넘치다 보니 성격마저 비관적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걱정이란 건 정말 쓸데없는 거잖아요.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요. 엄마가 걱정이 많으면 아이에게 불안이 전염됩니다.

 

쉽지 않겠지만 도를 닦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달래세요. 아이에게서 한 발 떨어지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아이는 나보다 훨씬 낫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워 보세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아이의 미래를 궁금해 하세요. 엄마의 표정이 달라지면서 아이에게 건네는 말투가 바뀌는 걸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을 하든 우린 네 편이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 말고, 아이 없는 곳에서 부모가 피 터지게 싸워서 하나의 방향성을 정하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자녀교육의 철학 중 이것 만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부모가 아이를 두고 서로 다투는 이유는 결국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대개 한쪽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많이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 사회적으로 성공시켜야 아이가 행복하다고 믿고, 다른 한쪽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걸로 밥을 먹으면 그게 행복이고 성공이라고 믿는 데서 다툼이 일지요. 어느 쪽을 택하든 ‘아이는 믿는 만큼 자라는 신비한 존재’라는 믿음만은 버리지 말고 ‘네가 무엇을 하든 우린 네 편이다’라는 확신을 주십시오.

 

 

네 인생은 네 꺼

 

세 아드님이 선생님께 고마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한 것일까요?

 

공부나 일상 생활에서 잔소리를 하지 않고 키워서 엄마가 자신들을 굉장히 존중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네 꺼’라는 생각을 확실히 심어준 데 대해서도 고마워하는 것 같아요. 비 오는 날 한 번도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매정한 엄마라 섭섭하게 여기기도 했겠지만, ‘내 인생 내가 챙기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라는 일종의 경각심을 갖게 해 자신들을 자립적인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보는 거죠.

 

 

짜증내지 않고 잘 웃은 일

 

지금 돌아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이것만은 잘해준 것 같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스킨십을 많이 한 것.

짜증내지 않고 잘 웃은 것.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것.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아야 해요

 

우리 나라 교육의 상당 부분 문제는 남과 비교하는 것,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비교하려는 마음이 사라질까요?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삶의 기준을 남에게 두었습니다. ‘남 보란 듯이’ 사는 게 인생의 목표였으니까요. 행복도 주관적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남들이 ‘아이구, 넌 돈도 많고 명예도 있으니 참 행복하겠다’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지요. 아이 역시 남들 아이보다 잘 키워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거고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살다 보니 웬만해서는 행복을 느낄 수 없죠. 요즘 너나 없이 불평, 불만이고 너나없이 화가 많잖아요. 행복해지려면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살아야 해요. 더 이상 남을 비교대상으로 삼지 말고 ‘어제의 나’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보세요.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나,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해진 나를 목표로 삼으세요.

 

 

배려심 많은 부모와 좋은 관계 속에서 자란 아이

 

잘 큰 아이들(스스로를 잘 파악하고 행복한 아이)을 보실 때가 있으실 텐데요. 그들의 부모들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던가요? 특별히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잘 큰 아이들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은 부모와 좋은 관계 속에서 자랍니다. 내가 아는 어떤 엄마는 고등학생인 아들이 못 말리는 사고뭉치인 데도 큰 걱정이 없다고 말해요. 아들에게 ‘내 인생은 내 꺼’라는 신념 하나는 확고부동하다면서. 제 생각엔 이렇게 느긋한 엄마 덕분에 아이가 잘 자라준 게 아닌가 싶어요. 때로는 부모들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도 많이 봅니다. 아이들을 보다가 기대를 갖고 그 부모를 보곤 깜짝 놀랄 때도 적지 않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태어나는지 새삼 감탄하게 되지요.

 

 

아이한테 짜증을 쏟아내지 마세요

 

불안한 부모처럼, 아이에게 독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가장 그릇된 부모의 습관적 태도는 무엇인가요?

 

가장 나쁜 건 아이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입니다. 기분 좋을 땐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며 물고 빨다가, 기분이 나쁘면 아주 사소한 잘못에도 지나치게 흥분해서 악담을 퍼붓는 부모 밑에서 큰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요즘 아이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마음속에 화가 가득 차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다섯 살짜리 아이를 나무랄 때도, 별 것 아닌 잘못을 지적할 때도 기본적으로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나오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제발 아이한테 한숨, 불평 불만, 짜증을 쏟아내지 마세요.

 

 

자연을 보여주세요

 

만약 지금 유치원생을 키우는 젊은 엄마 시절로 돌아가신다면요,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해 주시고 싶으신가요?

 

텃밭을 마련해서 아이들과 함께 가꾸고 싶어요.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나는 당연히 알고 있는 꽃, 채소, 과일 이름을 아이들은 마흔이 넘어서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몇 년 전 온 가족이 가파도에 여행 가서 청보리밭 사잇길을 걸었는데 세 아이 모두 푸른 잔디처럼 보이는 것이 청보리라는 걸 몰라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몰라요. 아스팔트킨트로만 자라게 해 자연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게 많이 미안하지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지금은 모두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산다는 게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요.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엄마가 내 행복에 집중하면, 그 모습을 보는 아이도 자기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갈 거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엄마들이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니까, 자꾸 아이들을 들들 볶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현재 행복하신지요? 앞으로의 꿈, 계획이 궁금합니다.

 

모두가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은 저절로 오지 않아요. 행복은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옵니다. 그 능력을 어디서 키우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행복한 사람을 봐야 가능하겠죠. 그래서 전 아이들의 행복을 원한다면 엄마들부터 행복해지라고 누누 이 강조합니다.

 

제가 지금 행복하냐고요? 네, 행복합니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아주 힘들 때도 이만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이 키울 땐 ‘지금처럼 행복한 날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생각엔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솔직히 젊었을 적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노년이 꽤 행복해서 공연히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꿈이요? 하루하루 체력이 떨어지지는 걸 실감하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되도록 많이 돌아다니고, 재미를 추구하고 틈틈이 책 쓰는 것이 꿈입니다.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박혜란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뮤지션, 건축가, 드라마감독으로 세 아들 모두 뛰어난 아티스트로 자라게 한 비결이다.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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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 바넷 “아이들은 지적이고 용감한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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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그림책에 푹 빠져 버린 어른들이 많다. 흥미로운 그림책이 출간되면 서둘러 구입하거나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을 신청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른이 좋아하는 그림책,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사이의 간극이 있다. 그 중심에는 ‘교훈이 쉽게 드러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가 있다. 어른들은 ‘남는’ 이야기를 선호하고, 아이들은 ‘웃기고 재밌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한다. 과연 두 가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책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맥 바넷’이 글을 쓰고 ‘존 클라센’이 그림을 그린 ‘모양’ 3부작 시리즈는 많은 어른 독자에게 호평 받은 그림책 중 하나. 두 사람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 ,  『늑대와 오리와 생쥐』  등을 함께 만들었는데 세 작품은 각각 ‘칼데콧 아너 상’을 비롯한 유수의 그림책 상을 수상했다. 보통 글, 그림을 따로 작업하는 책의 경우 출판사의 편집자가 중간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맥 바넷과 존 클라센은 직접 만나고 통화하고 메일로 소통하며 협업하는 창작자들이다.

 

도형 시리즈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비디오 게임 캐릭터로 만들려다가 탄생한 그림책. 맥 바넷과 존 클라센은 세 가지 모양에 개별적인 성격, 습관을 부여하면서 ‘뾰족뾰족 장난기가 많은 세모’, ‘반듯반듯 각이 진 어리숙한 네모’, ‘둥글둥글 세상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을 이끌어 내는 동그라미’를 탄생시켰다.  『세모』 ,  『네모』에 이어 마지막 시리즈  『동그라미』 를 출간한 맷 바넷이 처음으로 방한했다. 1982년생 작가 맥 바넷은 한눈에도 위트가 넘치는 유쾌한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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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동그라미, 세모, 네모의 이야기

 

첫 방한이다. 엊그제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고 들었다.

 

동네서점과 도서관에서 한국 독자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림책에 관한 뜨거운 관심을 느꼈는데, 그림책에 대한 관심은 아이를 향한 관심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그림책을 잘 이해하는 나라로 미국에서도 인식하고 있다. 한국 작가들의 책은 단순히 좋은 글을 쓰는 것뿐 아니라 북 디자인에 있어서도 매우 완성도가 높다.

 

『세모』 ,  『네모』에 이어 『동그라미』가 출간됐다. 세 권을 모두 읽은 독자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도형’을 리뷰에 남기기도 했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모양은 ‘동그라미’다. 세상을 둥글게 바라보기 때문에. 그러나 세모 모양의 동굴에 사는 ‘세모’, 네모난 돌로 가득한 비밀 동굴에 사는 ‘네모’ 역시 각자의 장단점이 있다. 네모는 어리숙하지만 노력파이고, 세모는 장난기가 많지만 관계를 잘 맺는다. 세 그림책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특성이 달리 보인다는 점이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해왔다. 미국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의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작가란 매일매일 숙제를 안고 있는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내게 소리를 지르며 “안 돼요”라고 외쳤는데, 한국 아이들은 “아, 숙제를 매일 하는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 이 같은 반응에서 문화적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대학 때 4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내게 여전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를 비롯해  『동그라미』 , 『네모』 ,  『세모』에서도 일러스트레이터 존 클라센과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그림 작가와 협업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글쎄.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든 안 하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훌륭한 작가라면 어떤 부분에서 일러스트레이션가 필요한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글, 그림을 모두 하는 데서 얻는 이득도 있겠지만, 글만 작업함으로 인해 얻는 이로움도 있다. 그림에서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내가 볼 수도 있고 그림 작가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 존과 늘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비슷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의견을 자주 나눈다. 존의 그림을 보고 내가 글을 수정할 때도 있고, 내 글을 읽고 존이 그림을 바꿀 때도 있다. 미묘한 차이를 확인하면서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작업 방식에 만족한다.

 

‘좋은 책이 비밀의 문인 이유’라는 제목의 TED 영상을 보았다. 굉장히 유머러스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가 맥 바넷’은 어떤 캐릭터인가?

 

흠. 도형 시리즈 그림책을 예로 든다면, 글을 쓸 때는 ‘세모’가 되는 것 같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네모’에 대한 동경, 좋아함이 있다. 나의 실제 성격은 세모지만 좋아하는 캐릭터는 네모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나의 가치관을 문자로 표현하는 일이니까 때때로 고민이 생긴다.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자신과 비슷한 시선을 가진 작가를 좋아할까?' 아니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흥미로운 시선을 갖고 있는 작가를 좋아할까?' 궁금해진다.

 

도형 시리즈를 예로 들어 본다면.

 

‘세모’는 친구들을 놀리기를 좋아하고 장난을 잘 친다. 이 그림책의 초고를 읽은 편집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세모가 다시는 장난을 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결말에 넣자”고. “네모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필요하다고 내게 말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면 세모라는 캐릭터는 장난을 좋아하는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세모에게는 이 장난이 참회하거나 반성할 만한 일이 아니니까 고치고 싶지 않았다. 독자가 원하는 결말을 전부 알 수 없지만, 나는 온전한 ‘세모’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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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비영리 글쓰기 및 교사 양성소인 ‘826LA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떤 모임인가?

 

아이들의 글쓰기를 가르치는 단체인데, 1일 과정이든 3주 과정이든 마지막에는 아이들이 쓴 글을 출판하는 목적을 갖고 진행하고 있다. 음악 평론을 예로 든다면, 아이들이 직접 음악 잡지를 출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글쓰기 수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독자, 관객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읽는 사람과 상호 작용을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이 글을 읽을 독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점 ‘에코파크 시간여행상점’을 세웠다. 공룡 알을 판다고 들었는데. (웃음) 지금도 운영되고 있나?

 

물론이다. 시간여행상점에서는 공룡 알은 물론 로봇의 기억을 지우는 물체, 로봇의 가슴털 등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도 해외 배송이 가능하니 온라인 주문을 하길 바란다. (웃음) 그리고 이 상점에 들어가면 ‘직원만 출입 가능’이라고 써 있는 문이 있다. 이 문을 통과해야만 아이들은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글쓰기 수업을 하는 교실인가?

 

그렇다. 시간 여행 상점에서 물건을 판매한 수익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파는 물건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인데, 아이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상상의 공간 안에 있다면 좀 더 나은 글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신의 첫 책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이야기도 묻고 싶다. (원제: Billy twitters and his blue whale problem) 처음 이 책을 발견했을 때, 번역서 제목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엄마 말을 안 듣는 ‘빌리’라는 소년이 벌로 흰긴수염고래를 애완동물로 키우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어떻게 구상한 작품인가?

 

아이 그림책에는 거대한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다소 뻔한 클리셰일 수 있기 때문에 큰 동물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미국에 ‘아이들이 어마어마하게 큰 동물을 애완동물처럼 키우면서 모든 세계가 아름다워졌다’는 고전으로 불리는 동화가 있다. 문제는 이 책 이후에 동물의 종만 달라졌을 뿐 비슷한 이야기가 쏟아졌다는 사실이다.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를 보면, 아이들도 어른처럼 너무 힘들게 보낸 하루가 있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소재로 글을 풀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어판의 제목을 나 역시 흥미롭게 읽었는데, “엄마 말 안 들으면…”이라는 말은 어떤 나라의 아이들에게도 너무 친숙한 말이기 때문에 무척 잘 뽑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작품에는 유머가 곳곳에 배어있다. 그림책 작가에게는 유머가 꼭 있어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림책 작가라면 꼭 가져야 할 재능이 있다면 무얼까?

 

일단 유머가 필요하다. 왜냐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담이나 재밋거리가 없어도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 그림책이라는 건 어떤 한 장르가 아니라 책의 형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 작가에게는 아이들이 현재 겪고 있는 일을 세밀하게 볼 수 있는 섬세함, 감수성이 필요하다. 또한 책에 등장하는 사물들이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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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다 훌륭한 독자는 없다

 

초등학생 아이가 “나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먼저는 좋은 작가가 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좋은 작가들의 대부분은 책을 잘 읽는 사람이다. 단순히 그림책만 읽는 게 아니라, 소설, 시, 역사, 논픽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많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라면, 읽는 일과 듣는 일은 마찬가지라서, 잘 쓴다는 것은 곧 잘 읽는 일이다.

 

그림책 작업을 할 때 꼭 염두에 둬야 할 점은?

 

그림책은 시각적으로 텍스트를 풀어내는 과정으로 만들어진다. 일단 자신이 본 것들을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그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알아야 하고, 글이 할 수 없는 것을 그림이 할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역할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당신의 장점에 대해 물어도 될까?

 

하하.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음.. 일단 호기심으로 시작하겠다. 나는 농담을 좋아하고 잘한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 자랑스러운 부분 중 하나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 행동에 관해 알려주는 일도 좋아한다. 나는 그림책 작가라는 직업을 떠나 아이들과 노는 걸 잘한다. 다른 어른들보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최고 장점인데 이유를 따져본다면, 우선 인내심이 있는 편이다. 아이들의 목적에 맞춰서 귀를 기울여준다.

 

우울할 때는 어떻게 하나? 그 감정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나?

 

음. 그럴 땐 가만히 앉아서 우울함을 즐기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카프카는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감정이라도 독자들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해야 한다. 작가는 그 감정을 통과하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릴 땐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잘 알겠다. 또 카프카는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훌륭한 독자”라고 말했는데, 나 역시 동의한다. 아이보다 훌륭한 독자는 없다.

 

2017년에 한국에서 번역된  『규칙이 있는 집』은 매트 마이어스와 함께한 작품이다. 규칙을 꼭 지켜야 하는 동생 ‘이안’과 그런 이안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누나 ‘제니’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 언제나 옳고 좋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안은 규칙이 있으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아이다. 융통성이 없는 아이라서 언제나 옳고 그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명확히 나누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언제나 옳고 그름이 명확할 수 없다. 그 경계가 희미한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림책의 결말을 보면, 언제나 규칙이 좋을 수 없다는 걸 경험한 이안은 좀더 생각하는 아이로 변한다. 도덕성이라는 문제 역시 간단하지 않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그림책에 흥미를 갖는 부모들이 많다. 어른이 읽어도 좋을 그림책을 추천한다면?

 

몇 년 전에 ‘어떻게 하면 좋은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 지’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선언적인 글이었는데, 그 글에서 강조한 이야기 중 하나는 “그림책 작가라면 자신이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쓰고 있고,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림책 작가에게 있어 첫 번째 독자는 어린 아이들이지만, 성인이 봤을 때도 좋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 진짜 훌륭한 그림책이다.

 

 

잘 쓴다는 것은 곧 잘 읽는 일

 

요즘 아이들은 인쇄물보다 영상물을 더 빠르고 가깝게 접한다.

 

내가 어렸을 때를 돌아보면 유튜브는 없었지만, TV와 비디오는 있었다. 나는 책도 좋아했지만 TV와 비디오 게임도 좋아했다. 어른들은 “TV를 보지 말고 책을 보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각자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유튜브가 줄 수 없는 걸 책이 준다는 사실이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일이 지금 어른들의 숙제다.

 

일상에서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나?

 

집 근처에 얕은 언덕이 있는데, 내가 키우는 강아지를 그 언덕에 풀어주고 강아지가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지켜볼 때 가장 행복하다. 나무숲을 잘 기어 다니고 점프도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잘하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지켜볼 때, 더없이 행복하다.

 

앞으로의 꿈 세 가지를 말한다면?

 

일단 첫 번째 소원은 일생 동안 그림책 작업을 하는 것, 두 번째는 지금처럼 좋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TV 시리즈 <데드 후드>의 속편이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인데, 부디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면 한다. (웃음)

 

한 인터뷰에서 “막연하게 긍정적인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그림책을 정의해 본다면?

 

때로는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이 세계에 분명히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 역시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책을 특별히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아이들은 국적을 뛰어넘어 한 문화에 종속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동화책,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문학이라는 것이 일반 문학에 비해 과소 평가되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면 그건 결국 아이가 어른보다 좀더 못한 존재라는 것을 반영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라면 좋은 책, 다양한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을 가질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도형 시리즈'를 아이에게 읽어줄 부모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어떻게 읽어주면 더 재밌을까?

 

그림책을 읽는다는 건 연극을 보는 일과도 같다. 배우들이 신마다 다르게 연기하듯, 마치 연극하듯이 읽어주면 좋지 않을까. 남들이 보면 웃길 수 있겠지만. (웃음) 힘들더라도 다른 목소리로 각각의 캐릭터의 대사를 읽어주면 좋겠다. 비명을 지르는 부분이 많으니까. 도형과 함께 비명을 힘껏 질러도 좋겠다.


 

 

동그라미존 클라센, 맥 바넷 글그림/서남희 역 | 시공주니어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동그라미를 통해 우리는 ‘어둠 속의 공포’도 전복시키는 ‘침착함’과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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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수빈 “연애 상대는 소유의 영역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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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당사자 사이에서 서로 대립하는 의사표시가 내용상 합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법률행위를 계약이라 한다. 쉽게 풀면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표현해서 그 의사가 서로 맞을 때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연애도 계약의 일종이 아닐까? 서로 감정 표시를 하고, 그 감정이 서로 맞을 때 연애가 이루어진다. ‘썸 타기’는 계약 교섭 단계에 비견할 만하며, 사귀기 전에는 등기부등본 열람하듯 상대의 연애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도장을 찍었다고(사귀자고 했다고) 끝이 아니다. 갑에게도 을에게도,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권리가 있다.


모두가 연애를 꿈꾸는 만큼 연애와 관련한 강의는 늘어나지만,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해진 공식은 없다. 데이트 폭력, 불법 촬영, 스토킹 등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잘못된 만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탈연애, 탈결혼’을 외치는 사람마저 나오는 이때, 박수빈 변호사는 연애 당사자들이 원하는 방식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교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수빈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덜 잔인한 사회가 되고,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일에 기여하고자 글을 쓴다. 변호사가 된 첫해에 재단법인 진실의힘에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함께 썼고, <경향신문>에 ‘연애는 계약이다’를 연재하며 연애 관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계약법의 관점에서 조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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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사람마다 달라요

 


계약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요.


최대한 출판부에서도 잘 읽히게 쓰자고 했었어요. 쓴 뒤 교정도 많이 보고요.


이전 책이 공저였다면, 『연애도 계약이다』  는 변호사님 이름을 달고 나온 첫 책이에요.

 

첫 번째로는 나름 변호사인데 연애 책을 써도 될까 하는 심리적 부담감이 있었어요. 두 번째로는 기본적인 법리를 설명하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인데, 이렇게 쉬운 글을 변호사가 써도 되나 싶은 마음이 있었죠.


어려운 걸 쉽게 쓰는 건 더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도 실력이 없어서 저렇게 쉬운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신경이 많이 쓰였어요. 게다가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틀리면 안되잖아요. 칼럼 올릴 때마다 SNS에 올려서 로스쿨 교수님이 ‘좋아요’를 눌러주실 때까지 긴장하기도 했어요. 워낙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쓰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대화도 많이 해주고 제가 벽에 부딪칠 때 다들 자기 사연들 하나씩 풀어주기도 하고요. 이 책을 쓰는데 도와준 친구들만 불러서 출간 파티도 했었어요.


연애에 관심이 많았던 편인가요?


굉장한 관심 주제였죠. (웃음)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친해지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애인이 생기면 그 친구가 좋아하는 취미를 같이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지나고 보면 그렇게 연애를 열심히 하는 기간 동안 늘 배우고 성장했어요. 사람들이 연애를 대수롭지 않은 것, 가벼운 것, 사적인 이슈, 젊은 사람들이 하는 걸로 낮잡아보는데 저는 그런 시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연애에서 상처를 입으면서 성장하는 사람도 있고, 사랑이라는 거대한 감정을 경험해 봄으로서 자신의 내면을 확장하는 사람도 있어요. 심지어 플라톤도 향연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을 통해 사회와 제도에 대한 사랑, 이데아까지 사랑을 확장하는 개념을 이야기하잖아요.


연애 코칭 책은 많이 있지만, 계약법으로 연애 관계를 설명하는 책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도 연애지침서 좋아해서 많이 읽었어요. 보통 성관념을 강화하는 데이트 코칭을 하거나, 핵심 없이 ‘여자/남자가 사랑에 빠질 때’ 라면서 그 사람의 특수성을 보는 게 아니라 선입견과 통념에 비춰서 상대방을 짜맞추는 방법을 제시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는 연애가 성립되지도 않고, 상대방에게 억압이 될 수도 있어요. 계약도 사람들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백이면 백 모든 게 다 다르거든요. 각자의 특수성에 집중하는 연애를 하는 게 요즘 세대에도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계약을 설명하려고 연애를 소재로 쓰셨다고요.


의뢰인을 만나면 대개 계약법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손해를 보거나, 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인데 분쟁할 때가 있어요. 의뢰인에게 계약법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또 공익적 입장에서 다른 분들도 계약 관련 분쟁에 휩싸이지 않도록 제일 쉬운 비유를 찾아봤더니 모두에게 적용될 만한 사례가 연애였던 것 같아요. 연애로 비유하면 계약이 결국 관계라는 게 쉽게 이해되고, 예의에 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다 연애가 주제가 되었어요.


계약법의 이론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에피소드가 들어가는 과정에서 연애 쪽으로 기울게 되더라고요. 저도 페미니스트로서 주변을 보면 생각보다 잘못된 연애와 로맨스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면 다른 연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줄까 하는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연애와 계약, 둘다 친근하지만 어려운 주제에요.


사람들이 계약에 대한 오해와 연애에 대한 선입견이 모두 있어요. 계약을 떠올리면 갑을 관계나 갑질을 생각하고, 연애는 무조건 감정적이고 재지 않고 따지지 않아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해타산적이고, 교류 없고 예의 없이 계약을 하면 결국 감정이 틀어져서 계약이 깨질 때도 되게 많아요. 그래서 두 가지 잘못된 오해를 풀면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까, 그런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쓴 책이에요. (웃음)


처음 쓸 때도 두 가지 목표가 있었나요?


어느 정도는 있었어요. 다른 것보다 동등한 사람끼리 연애를 한다는 주제를 끝까지 가지고 가보고 싶었고, 처음부터 잘 알아보고 연애를 시작하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쓰면 쓸수록 연애는 ‘내 것 네 것’ 하는 관계가 아니라 ‘너랑 나’라는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계약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정확하게 설명이 되더라고요.

 

연애가 소유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법 덕후만 이해하는 농담이지만 “연애는 물권법이 아니라 채권법”이거든요. 저도 연애 상대에 대해 소유의 영역으로 생각하려는 걸 계속 극복해왔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을 꾸며주는 화려한 액세서리처럼 생각하는 거죠. 생각보다 여자분들도 남자에 대해 소유 관점으로 연애를 많이 하는데, 결국 그런 관점을 서로에게 허용하는 순간 여자가 피해자가 된다는 걸 어릴 때는 잘 인식하지 못했어요.

 

변호사님 나이대가 결혼의 ‘프라임 타임’이라고 표현되는 나이잖아요. 스스로 결혼에 대한 압박을 받은 게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연애에 대해 썼다면 두 번째는 결혼에 대해 쓰려고 했어요. 저한테도 중요한 이슈였죠. 우리 사회에서 정상 연애의 결말은 당연하게 결혼으로 귀결되잖아요. 그렇지 않고 연애라는 관계 자체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청소년기가 그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듯이, 연애도 결혼을 위한 과정이 아니고 그 자체로도 조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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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쌍무계약

 


계약의 대전제로 동등한 입장에서의 연애를 설명해주셨어요. 더 사랑하는 쪽이 을의 관계에 있다고 흔히 이야기하는데요, 사랑 안에서 평등이 가능한 걸까요? 누군가 더 자신을 을의 위치에 놓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완전한 동등함은 불가능할 거예요. 어떤 불균등한 위치에서든 계약을 체결할 자유는 있지만, 계약법에서는 그 한계를 정해놓고 있어요. 지나치게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상대방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 계약을 맺어도 안 되죠. 사기를 쳐서 계약을 맺어서도 안 되고요. 마찬가지로 연애에서도 물론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상대방의 기준에 맞추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방이 원하는 걸 다 받아들이는 게 연애는 아니잖아요. 나는 저 사람을 너무 사랑하는데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황에서 맺어진 게 과연 연애일까요? 상대방이 자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걸 알고 그걸 이용하는 관계가 연애일까요? 말로만 우리 사귀는 사이라고 이야기해서 다 내용상 연애는 아니죠.

 

실효성이 있는가 보자는 거군요. (웃음)


그런 연애라면 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하고, 연애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요. 실제로 갑을 관계는 당사자를 이야기할 때 A나 B처럼 호칭의 용어인데 사람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갑질로 바로 연결하고, 을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자신을 권리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계약은 기본적으로 쌍무계약이기 때문에 을이라고 해도 갑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이행이 안 될 때는 계약을 깰 권한이 있고요. 자신이 상대방에게 항상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좋겠어요.

 

실제 위계가 있는 상황에서의 연애도 이야기했어요. 상사나 부하 관계도 그렇고 연상 연하나 경제력 차이 등 우위를 점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에 있는 사람, 권력이 강한 사람은 착각하기 쉬워요. 상대방이 자신의 권력에 의해 예의를 차리는 건지, 호의를 보인 것인지 항상 혼란을 느끼고 자신이 매력이 있어서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게 되더라고요. 연애가 누군가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간택하는 관계가 아니잖아요. 서로 선택하는 관계에서 권력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게끔 매력을 드러낸다면 몰라도, 자기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쟁취하려는 태도로 상대방에게 어필할 때 상대방이 자신을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죠.

 

최근 밝혀진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떠오르네요.


상대방에게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고백을 했을 때 상대방이 거절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말로는 알고 있다고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다른 상황일 수 있어요.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면 고백을 들었을 때 지위적인 문제 때문에 거절을 못하는 상황이 있진 않은가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관심이 없다면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저 고르는 거죠. 만약 권력자를 좋아하게 된 사람이면 본인이 위계를 뚫고 당연히 대시를 하겠죠. 요즘 세상에 누가 좋아하는데 고백을 안 하겠어요. 권력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고백을 기다려야 하는 것 같아요. 상대방이 거절 못 하는 상황이 분명 있을 수 있으니까요.

 

‘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보통 사귀자고 확정하기 전의 모든 단계를 ‘썸’이라고 불러요. 몇 번 만나서 호감이 있는 상황, 데이트 하고 섹스도 했는데도 사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상태, 연애하듯 매일 연락하고 모든 생활을 다 공유하면서도 사귀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관계도 있어요. 연인이 아니라면 다 그 단어로 통칭하는데, 어떻게 보면 단어가 오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계약 교섭 단계로 ‘썸’을 설명하면서 계약 교섭 단계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하셨어요.

 

책임이라고 했지만 보통 사람들이 사회생활 하면서 지키는 예의에 가까워요. 관계가 조금씩 성립되어 가고 어느 정도 생활을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후 어떻게 할 건지 정도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거든요. 너하고 사실 사귈 마음까지는 없다고 이야기한다든지, 조금 더 진지한 관계로 넘어가고 싶은데 급한 것 같으니 차근차근 알아가고 싶다든지, 앞으로도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자든지 하는 합의요. 성관계가 연애의 성립 요소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성관계도 맺고 주변 사람들도 둘이 만나는 걸 알고 제법 오래 만났는데도 단지 사귀자고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연애가 아니라고 말하는 상황은 어느 정도 기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계약법에서도 보면 거기가 책임을 인정하는 지점이에요. ‘썸’이라고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게 아니라, 말만 계약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계약상의 의무가 어느 정도 이행된 상태일 때, 계약이라고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이 전부 없어지진 않는다는 거죠.

 

‘썸’을 탔다고 책임을 지라는 게 아니라는 거죠.

 

사람들이 손해배상 비유가 나왔다고 해서 책임 지라는 거냐, 손해배상 하라는 거냐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그런 맥락은 아니에요. 연애 하자고 말만 안 했지 사실상 사귀는 사이였으면 그에 따른 책임이 분명 있어야 한다는 거고, 이제까지 깊게 만나놓고 ‘너랑 나랑 언제 사귀었어’ 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전부 부정하는 발언으로 상처를 주는 건 비겁하지 않냐는 거죠.


묵시적 합의라는 게 계약에서도 중요시되는데, 연애에서 묵시적 합의의 선이 모두 달라서 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계약에서도 묵시적 합의가 바로 인정되지 않아요. 온갖 정황과 주고받은 내용, 즉 간접 사실을 토대로만 인정이 되죠. 한 쪽은 합의가 되었던 상황이라고 하고, 한 쪽은 아니라고 주장을 할 때 문제인 거잖아요. 연애에서도 누군가 묵시적 합의를 부정했을 때 둘의 관계에서 연애로 볼 만한 충분한 행동들이 있었다면 그게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는 정황적 증거가 되겠죠. 단계는 모두 개인적이지만 어느 정도 관계의 정형성은 있으니까요.

 

연애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문제는 서로 대화를 충분히 하지 않아서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계약도 도장을 찍는 게 끝이 아니라 계약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더 본질에 가깝듯이요.

 

맞아요.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서는 사귀기로 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해줘야 한다는 것처럼 이야기해요. 하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사회적 역할이 다 다르고 요구사항이 다 다르기 때문에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맞추지 않으면 둘의 관계가 같은 목적에 의해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화가 매우 중요하죠.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건 너무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이에요. 상대방이 알아줄 때까지 이야기하지 않고, 상대방이 알아주는 게 의무인 것처럼 구는 건 연애 관계 당사자로서 상대방에게 책임 범위를 넘어가는 요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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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 대한 새로운 매력의 기준을 발견해야

 


마지막 챕터에는 스토킹이나 성폭력 관계에 대해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용 팁이 들어 있어요.

 

부록으로 쓰려고 했던 내용이에요. 주변에서 연애 이야기도 좋지만 변호사로서 들고 다닐만한 법적 실용서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기도 했고요.


실제 소송을 맡기도 하시나요?

 

제게 오는 분들은 가벼운 단계나 소송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선의 상담을 많이 하세요. 그래서 범용으로 미리 알고 있는 정도의 법률을 실었어요. 미리 법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처가 좀 되거든요. 나에게 이런 피해가 생기면 나는 이런 방법을 쓸 거라고 생각만 해도 사람이 기가 있어서 상대방이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해요.

 

불법 촬영이 한창 이슈에요. 실제 피해를 볼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요.


일단 영상의 존재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실체가 있다는 걸 확인한 이후로는 찍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사에 반한 행동이기 때문에 처벌 가능하고, 민사적으로는 유포하지 못하게 가처분을 할 순 있어요. 심증만 가지고서는 대처하기가 조금 어려워요. 결국 법은 예방적인 측면에서 처벌할 거라고 말하는 거지, 어떤 사람이 실제 그 행동을 저지르기 전에 그 사람을 완전히 제압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게 우리 사회가 가진 한계면서도 다른 의미로는 다행스러운 부분이기도 하죠. 범죄가 예상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결박하거나 구속할 수는 없으니까요.


스토킹도 신체적 위해 상황이 아니고서는 처벌할 수가 없다고요.


차라리 협박하거나 범죄적인 행동이 첨가되었다면 다른 범죄와 엮어서 처벌할 수 있는데, 그저 사랑한다면서 쫓아다니는 행위는 경범죄 처벌법으로 벌금 8만 원에 그쳐요. 요즘에는 경각심이 높아져서 신고를 하면 특수 코드를 부여해 순찰을 강화해 준다고 알고 있어요.

 

 ‘탈연애’ ‘탈결혼’이 화두예요. 스토킹과 각종 데이트 폭력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이 연애를 기피하는 풍조인데요.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한다면, 그 연애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애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전에 위험한 행동을 최대한 안 할 것 같은 사람을 고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애초에 조심하라는 말이 그 사람이 소위 페미니즘적인 연애, 대등한 위치의 사람으로 보고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계약적 관점에서 나와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에 대해 물건처럼 휘두르려 하지 않는 사람, 폭력적인 행위를 하려 하지 않는 사람,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이 확인된 사람과 연애를 한다면 그런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겠죠.

 

개인적으로도 위험을 피하고자 했던 경험이 있나요?


어떻게 보면 저는 계약을 배우기 전부터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남성이라든지, 저에 대해 계속 평가하고 판단한다든지 하는 사람을 피하려고 노력해온 것 같아요.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친구들에 비해 안전한 연애를 해왔다고 생각하고, 결국 남성에 대한 새로운 매력의 기준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서 매력적인 사람을 고르면 결국 그 사람이 하는 역할 수행은 사회에서 정해놓은 틀 안에서 하게 되거든요.

 

페미니즘으로 인해 연애 상대에 대한 재고도 시작된 것 같아요.

 

탈연애가 이슈지만 정상 연애의 도식을 벗어나자는 거지 연애나 사랑 자체를 하기 싫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자 독자 분들에게도 생각보다 반응이 있어요. 정말 연애를 하고 싶은데 배운 적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이제까지 우리가 알았던 연애 관계가 동등한 게 아니었을 때, 이제야 동등한 연애 관계 롤모델이 조금씩 보이는 상황에서 시작을 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고요. 연애를 책으로 배운다고 하면 회의적인 시선이 많지만, 성교육도 학교에서 하듯이 법적인 교육이 사회에 부재하기 때문에 일상 생활을 살 때도 사랑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몇 번씩 강조하지만 계약법은 관계 맺기의 형식이거든요. 관계 맺기의 형식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것들이 주먹구구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터져 나왔던 거고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노력한 게 보였어요. 혼전순결주의 대신 혼후관계주의라고 쓴다거나, 연애가 이성 간의 관계만이 아니라고 언급한 부분이라든지요.

 

그 부분은 확실히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연애는 이성 커플의 전유물이 아니잖아요. 성소수자 분들도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을 텐데 연애관계에서 조언을 들을만한 책이 없으니까요. 저 나름대로는 사회 운동적인 관점에서 책을 썼어요. 책을 본 분들이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는 상대를 찾아서 연애를 하고 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꾸려나가는 걸 보면 연애하고 싶은 남성들은 반성을 할 거고, 관계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구나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성 역할에 매몰되어 불만이었지만 뭐가 문제인지 몰랐던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뭐가 문제였는지 깨닫고 조금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면 좋겠죠.

 

법을 소재로 글을 쓰는 데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요. 다음 계획이 있나요?

 

어릴 때부터 작가까지는 아니어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마 소재가 있고 쓸만하면 쓰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가 법조인이 많아지는 것에 비해 아직 법조인의 혜택을 못 누리는 것 같아요. 너무 무거운 내용보다는, 법의 세계와 일상 세계를 잇는 번역가처럼 법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요.

 


 

 

연애도 계약이다박수빈 저 | 창비
연애와 사랑을 뒤집어본다. 그에 더해 변호사답게 데이트폭력, 불법영상물 유포 등의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등의 ‘연애가 아닌 것’에 법적으로 대처하는 방법까지 꼼꼼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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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문보영 시인 “나를 웃기는 데 성공한 인간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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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등단, 2017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 유튜브와 일기 딜리버리를 하고 힙합을 추는 시인. ‘슬픔과 명랑의 시인’문보영은 호기심을 일으킨다. 단조로운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리고, SNS로 독자를 직접 모집해 손으로 쓴 일기를 우편으로 보내고, 힙합을 추고, 시보다 피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 문보영 시인은 자신의 첫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에 대해 “12리터짜리 항아리 안에 든 눈물을 비우던 나날의 일기들”이라고 설명했다. 스무 살 때부터 쓴 비공개 일기들이 언젠가는 터질 것만 같아서, 지난 힘든 시절을 잘 정리해 보내는 마음으로 묶었다고 말했다.


시를 미워하고, 좋아하기만 하던 시인은 등단 후 갑작스런 우울증을 겪었다. 지면을 얻지 못할 거란 불안과 문단에서 겪어야 했던 상처 때문에 일상을 잃게 된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욕망을 상실해버렸다. 우연히 본 누군가의 지루한 브이로그가 다시 일상을 살아보고 싶도록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문보영 시인이 일상을 연습하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다시 시를 미워하고 좋아하기만 했던 때로 돌아가 건강하게 시를 쓰고 싶다는 문보영 시인은 그래서 이 산문집을 “친구집”이라고 말한다.

 

“친구를 묶어 책을 낸 것 같거든요. 문보영을 웃기는 데 성공한 인간들의 기록이 제 일기 같아요. 친구들 덕분에, 친구들을 웃기고 싶어서 계속 글을 쓰기도 하고요. 제가 완벽하게 무너졌을 때 작은 지지대가 되어주기도 한 존재들이에요.”

 

힘든 시간을 통과한 시인은 이제 엄청 지루하고 훌륭한 어떤 것을 쓰고 싶다고 했다. 좋아하는 것을 쓰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는 문보영 시인. 이것이 그가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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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첫 산문집의 가장 첫 문장이 “시를 쓸 때면 삽질하는 기분이 든다.”(5쪽)예요.

 

몰랐어요.(웃음) 어디서 보고 ‘그랬구나’ 했는데요. 제가 일기 딜리버리를 하고 있어요. SNS에 포스터를 만들어 독자를 모집하고, 신청하신 분들에게 일기를 손으로 직접 써서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있거든요. 그때 썼던 원고예요. 그 뒤 어떤 독자 분이 이 글 나중에 산문집에 들어가느냐고, 머리말에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요. 편집자 분이 머리말을 쓰라고 하셨을 때 그냥 이 글이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됐어요. 그나저나 머리말이 천천히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첫 챕터처럼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이번 산문집에 수록된 글들은 시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시는 시를 안 읽는 친구들에게는 보여주기가 어려워요. 가만히 있으면 저를 난해하게는 보지 않을 텐데 시집을 줘서 저를 난해하게 보게 되는(웃음) 상황이 될 때가 있죠. 우선 산문집을 내고 친구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저로서는 블로그에 쌓여 있던 방대한 분량의 원고를 다이어트 하듯 골라내는 기회여서 좋았고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숙제처럼 미뤄뒀던 거거든요. 아픈 기억을 많이 써놔서 다시 읽을 때 제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모두를 한 번 쭉 뽑아서 읽는 계기였어요.

 

“언젠가 한 번 이 방대한 일기를 마주해야 했다”(7쪽)고도 쓰셨는데요. 말씀하신 ‘해야 한다’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요? 왜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는지 궁금해요.


되게 막연한 마음인데요. 이 글이 계속 쌓인 채로 있다가는 폭발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때마침 산문집 제안을 받은 거죠.

 

한 시기를 잘 정리해 보내는 느낌이었군요.


네, 맞아요.

 

보내는 기분은 어떠세요? “이 책은 12리터짜리 항아리 안에 든 눈물을 비우던 나날의 일기들”(8쪽)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시절이 어땠는지, 어떤 것이었기에 이렇게 말했는지 듣고 싶었어요.


홀가분해요. 이제 나가(웃음). 잘 살아줘.


다른 분들의 20대도 힘들겠지만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쳤고, 지금도 그러고 있죠. 특히 우울증이 갑자기 찾아온 기간이 일 년 반 정도 있었는데요. 그건 또 전혀 다른 종류의 힘듦이었어요. 전에는 한 번 슬프면 이제 다른 사람의 슬픔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노래가사도 다 이해되고, 누군가의 아픈 이야기도 다 이해가 되고요. 그런데 다른 종류의 슬픔이 오니까 그건 완전히 새로운 거더라고요. 내가 편협했다는 깨달음이 오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슬픔을 이해하는 범위가 확대되는데, 확대 안 되도 되니까 안 아팠으면 좋겠는 거죠.(웃음) 슬픔이 계속 확대되고, 신기한데 너무 아픈 그런 시절이었어요.

 

오랜 기간 써온 글을 책 한 권으로 묶고 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아주 지루하고 좋은 것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청 지루하고 훌륭한 어떤 것 말이에요. 이 글은 쓰면서 제 주위 지인들에게 줄 수 있어 좋았고요. 어렵다는 말은 적어도 안 들어서 그게 정말 좋았는데요.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이해를 저버리고 쓰는 글은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은 아예 누가 읽든 말든 상관하지 않은 어떤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글은 말하자면 시일까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히 독자를 생각하긴 하거든요. 다만 그 독자가 넓은 범위의 독자는 아닌 거죠. 아주 작은 한 줌의 독자를 생각하고 쓰는데요. 그게 돌파를 하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읽힐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읽을 거라고 생각하고 쓰면 계속 타협하면서 쉽게, 재미있게만 쓰게 되니까 그런 부분을 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작품과 솔직함


이 글들은 일기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다고 하셨어요.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전부 사실은 아니라고 당부하고 싶은 마음이었나요?


제게 일기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글쓰기거든요. 촉발되는 지점은 항상 사실이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방향 혹은 제가 창작에 있어 더 흥미를 느끼는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도 흥미가 있고 그래서요. 일기이기도, 소설이기도 하다는 말은 그래서 쓴 거예요.

 

“나에게 시는 너무 솔직해지지는 않는 연습”(179쪽)이라는 문장이 있었거든요. 솔직함에 대한 시인님의 생각도 궁금해져요.


솔직할 때 과하게 솔직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또 저는 솔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죠. 솔직함이라는 미덕에 너무 취해서 다른 것을 놓칠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솔직하니까 좋은 글이라고 합리화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좋은 작품과 솔직함, 좋은 작품과 진정성을 너무 한 몸으로 보지는 않으려고 해요. 이것들이 정확하게 분리되지는 않는데요. 적어도 이 글은 진정성이 있으니 좋은 글이다, 라는 건 되게 쉬운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가령 무성의하게 썼는데 진정성이 있으니까, 라고 합리화하면서 이걸 좋은 글이라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건 성실하지 않기도 하고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관련한 경험이 있으셨어요?


제가 상처 받을 때는 있었어요. 너무 솔직하게 저를 노출시킨 것을 보고, 친구가 “너를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한 적이 있는데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나를 너무 내동댕이친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너무 독자들에게 다 말해서 나도 모르는 나의 무의식이 상처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그런 적이 있었어요.

 

시를 쓸 때와 이 책에 담은 일기 혹은 소설 같은 글을 쓸 때, 시인님은 어떻게 달랐나요?


시를 쓸 때는 확실히 아무도 고려하지 않고, 시만 고려하고 썼어요. 안 그러면 자꾸 시에서 알랑방귀를 뀌게 되고(웃음)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게 되더라고요. 수학자처럼 명철하게, 삶과 타협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 같은데요. 시를 쓸 때 그래서 힘을 엄청나게 주고 써요. 쓰다가 잠시 긴장을 탁 푼 다음 다시 힘을 꽉 주고 쓰죠. 한편 일기는 그래도 그 공간에서 타인을 호명하기도 하고요. 타인이 내 집안에 들어오기도 해요. 그때마다 견뎌내는 연습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목 역시 시를 설명하는 이야기였잖아요. 이 제목은 어떻게 결정하신 거예요?


몇 가지가 더 있었는데요. 이 제목을 엄마가 제일 좋아했어요. 편집자 분도 이 제목을 강력하게 원하셨고요. 저한테 의미 있는 장면에서 나온 문구이기도 하니까요. 제 등단 소감이거든요. 친구들이 “너는 등단작보다 등단 소감이 좋다”고도 했었어요.(웃음) 그러면 등단 소감 같은 시를 써야겠구나, 재미있고 일기 같은 시를 써야겠다, 해서 일기랑 같이 뒹굴었던 계기가 됐던 장면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곱씹을수록 제가 사람을 미워하는 다정한 방식으로 계속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뭔가를 완벽하게 미워하기가 어렵고, 자꾸 연민과 다정한 감정이 생기는데 다시 미워하는 건 맞고요. 자주 왔다 갔다 하는데 그런 일기들이 이 산문집에 담긴 것 같아서 이 제목으로 결정했어요.

 

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대답을 구하다가, 시는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꼭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 거냐고 다시 묻기에 지나치게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었다고 풀어 설명하고 좀 후회했다.

 

그러더니 누나는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다.(중략) 이 친구가 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딱 봐도 ‘아, 저런 누나랑 결혼은 못하겠구나.’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22쪽)

 

지금 시인의 생각과 가장 맞닿은 글을 꼽는다면요?


가장 마지막에 실린 「사랑하는 것을 너무 미워하지 않으며」 같아요. 시를 쓴 종이가 엉덩이에 붙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대학생 때 이야기예요. 그때는 정말로 시를 좋아하기만 했던 것 같아요. 분명히 싫어하고 괴로웠는데 좋아하기만 했어요. 외부적인 잡다한 이유, 인간관계나 문단의 권력 같은 것들 때문에 때 묻지 않았던 때 같거든요. 분명히 괴롭고, 어른스러웠지만 상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문학 때문에 받은 상처, 시가 안 써져서 받은 상처는 있었겠지만 외부에서 받은 상처는 아니었던 거죠. 당시에는 순수한 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까 진짜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꼰대 같은데요.(웃음) 그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해요. 진짜 시를 좋아하고, 미워하기만 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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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라는 직업


유튜브, 일기 딜리버리 등 재미있는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잖아요. 이 사실만 보면 젊은 시인이 여러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요. 산문을 읽고 나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이런 활동이 시인에게는 ‘나를 연습하는 행위’처럼 느껴졌어요. 


유튜브는 정말 할 생각이 없었는데요. 일상을 연습하려고 시작을 한 거예요. 우울증이 아주 심할 때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봤어요. 너무 지루한데 너무 좋았어요. 왜냐하면 지루하고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일을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브이로그를 보는 게 저한테 엄청 힘이 되는 거죠. 느긋하게 키위에 붙어 있는 상표를 손등에 쓱 붙이고, 키위를 물에 씻고, 깎아서 먹는 단순한 작업을 보니까 그걸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더라고요. 욕망이 사라졌던 때거든요. 그래서 브이로그를 시작했어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요. 여전히 일상만 찍고 있죠. 그런데 하다 보니 일상을 조금은 책임감 있게 살게 된 것 같아요. 그게 결국 글쓰기에도 도움이 됐고요. 너무 우울하면 글이 전혀 안 써졌거든요. 브이로그를 하면서 제 채널을 보고 폭식증을 극복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정말 좋았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요.

 

우울증이 갑자기 왔을 때가 등단 이후였던 거죠?


네, 불안이 크고 위협 같은 것도 많이 느꼈던 때예요. 안 좋은 사건도 있었고요. 등단 이후에 지면 권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누가 청탁을 주는 행위는 아주 일방적이잖아요. 문단이 폐쇄적인 이유, 권력이 생기는 이유가 그런 거겠죠. 이미 등단부터 수직적인 것이고요. 신인 때는 더구나 무대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잖아요. 그때 눈에 안 띄면 영원히 안 띄기 때문에 청탁이 들어오면 잘해야 하는데 그걸 불합리한 이유로 빼앗기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저한테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독자와 직접 만나는 플랫폼이 있어야겠다, 그래야 집중하고 글을 쓸 수 있고 불필요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일기 딜리버리를 시작하면서는 누가 술자리에 나오라고 하거나 불편한 연락을 해왔을 때도 조금은 전보다 쉽게 거절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문예지에서 오는 좋은 청탁도 있지만 이 두 가지가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일기 딜리버리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도 기억나세요?


잇선 만화가와 이슬아 작가가 하는 걸 보고 되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어서 좋다, 그런데 일기로 돈을 버는 건 정말 좋네(웃음) 생각했죠. 그래서 그냥 했어요. 저는 시작은 잘해요. 일은 쉽게 벌이거든요. 그냥 했는데 너무 잘 맞았어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시작해보니 지면에 대해 덜 불안해하게 되고요. 그게 너무 좋아요. 일기 딜리버리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도 안 하게 됐고요. 시인들은 가난하다는 편견도 벗고, 친구들한테 밥도 사줄 수 있으니까요. 더구나 독자들의 피드백도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책에서도 직업으로써의 시를 말씀하셔서 참 좋았어요. “시인이라는 직업”(111쪽)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제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서 “시인입니다”라고 하면 “그럼 직업은 뭐예요?”라는 물음이 다시 돌아와요.(웃음) 시인은 돈이 안 된다고 으레 생각하니까 다른 직업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생계를 시인들이 어떻게 해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이런 고민을 등단 전에는 하지 않으셨나요?


네, 등단 전에는 하지 않았던 고민이에요. 대학원을 계속 다니고 있었고, 그만 뒀고(웃음), 그때부터 하게 됐죠. 진짜 돈이 안 되긴 하는구나, 싶어서 계속 과외를 했거든요. 교사 자격증이 있으니까 임용고사를 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러다가 유튜브, 일기 딜리버리를 하면서 지금에 온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여전히 고민은 있으시겠네요.


이건 제가 운영하는 사업 같은 거잖아요. 정규직도 아니고 그러니까 고민은 계속 갖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뭔가를 해보고, 고민하고, 그럴 것 같아요.

 

 

너무 생산적인 사람


다른 형태의 산문도 쓰고 싶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네, 시와 소설의 경계에 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요. 이번에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다이어트를 한 기분이거든요. 카프카는 일기를 아주 많이 썼는데 그래서 소설이 일기 같지가 않아요. 소설을 쓰려고 일기 다이어트를 하나 봐요.(웃음) 그런데 에르베 기베르는 일기를 안 쓰는 것 같아요. 산문집을 안 내는 대신 작품이 엄청 일기 같죠. 제가 그 중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완전히 일기 같은 산문집을 내고 나니까 시에서는 전혀 일기 같지 않은 문장들이 나오더라고요. 그 새로운 문장에 제가 매료됐고요. 그래서 앞으로 일기 다이어트를 한 작품이라고 하야 할까요. 그런 산문을 쓰고 싶어요.

 

달라서 서로 영향을 주는 쓰기가 있나봐요.


맞아요,  『책기둥』을 쓸 때는 일기를 너무 많이 쓰다가 갑자기 속력이 붙어서 저절로 시가 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런 반면 지금은 일기로 다이어트를 하고 남은, 건조된, 밀도 높은 것들로 시를 쓰는 것 같고요. 그렇게 쓴 다음 다시 일기로 돌아가고 그러는 것 같아요.

 

문보영 시인의 시 활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제 경우 시집이 빨리 나온 편이잖아요. 발표를 별로 안하고 시집이 나왔어요.  『책기둥』에 수록된 50편이 거의 다 신작인 거죠. 숨겨뒀다가 ‘짜잔’하고 보여주는 게 제 입장에서는 너무 산뜻했어요. 보통은 작품을 4-5년에 걸쳐 천천히 발표한 뒤에 그걸 묶어서 내잖아요. 그걸 잘 몰랐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김이 새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웃음) 일단 발표를 하면 시집에는 안 넣고 싶고요. 한편 청탁 속도에 맞추려면 일단 쓴 시를 바로 보낼 수 있어야 하는데요. 저는 시를 장독대 같은 데 묵혀 뒀다가 3개월 후에 다시 봤을 때 첫 인상을 보고 그 시의 운명을 결정하거든요. 청탁에는 그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니까 저로서는 불성실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작년에 좀 그랬던 것 같은데요. 거절은 못하고, 문예지가 시인들의 무대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있는데, 우울증은 있어서 제게 실망스러웠던 한해였어요. 그래서 이제는 좀 조절을 하고 있어요. 산문 청탁은 거절하지 않는데요. 시 청탁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있는 중이에요.

 

2018년이 시인님에게는 많이 힘든 한 해였다는 게 느껴지는데요. 그 와중에 이번 책도 탈고 하시고, 브이로그와 일기 딜리버리도 꾸준히 하셨다는 게 좀 놀랍네요.


그게 저의 비극 같은 건데요. 가장 우울하고 힘들 때 가만히 있는 걸 못해요. 너무 힘들 때는 가만히 쉬어야 할 텐데 저는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거든요. 안 좋은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요. 상어가 부레가 없어서 가만히 있으면 죽는대요. 잘 때조차 계속 돌아다닌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런 인간이어서 아픈 와중에 너무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아프다는 걸 안 믿는 친구들도 있고요. 아주 친한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죠. 그런 게 아닌데 말이에요. 저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비었을 때가 되게 두려워요. 그 빈틈에 우울이 찾아오기도 하고, 공황장애가 오기도 해서 시간을 촘촘히 만들어야 해요. 그런 때였어요. 목표는 성실하고 건강한 건데 그러질 못하고 아프니까 그걸 외면하려고 다른 걸 계속 하게 되고 그랬어요.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좋아하는 걸 쓰고 싶다”고 말씀하신 걸 봤거든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제 알겠어요.


이제는 좀 건강하게, 좋아서 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됐으면 좋겠어요. 좋아하는 걸 쓰고 싶고요. 좋아하는 걸 쓰면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문학을 하다보면 자조적인 것에 많이 노출되는 것 같아요. 무기력을 어필하고,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유치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춤추는 친구들을 만나면 다르거든요. 건강한 걸 좋아하고, 밝은 기운을 서로에게 주죠. 그걸 제가 오랫동안 안 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제는 이 둘 사이에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열심히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좋아요.

 

어떤 한 면만이 전부는 아닌데 말이에요. 시나 문학, 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편견을 갖기가 참 쉬운 것 같아요.


시인은 어때야 한다, 는 생각이 있잖아요.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시인이라고 말 안 해요.(웃음) 되게 오해를 하고요. 저를 어렵게 생각하거나 제가 감상적이고 우울하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시인이라고 말을 안 하니까 나중에 시인이라고 하면 다들 놀라죠.

 

함께 춤추는 분들도 모르세요?


몇 년 동안 감췄어요.(웃음) 아주 소수의 몇 명에게만 말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는데요. 산문집이 나오고 나서 제가 시인인지 모르는 한 친구에게 갑자기 책을 주고 싶어져서 줬어요. 굉장히 놀라더라고요. “왜 네 책이 나와?”라기에 시인이라고 말을 했죠. 그냥 갑자기 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책에는 내가 어느 정도 설명되어 있어, 난 너랑 친해지고 싶어, 라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시집을 줄 때는 오해할까봐 불안한데 산문집을 줄 때는 상대와 약간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그 순간 있었어요. 저 스스로도 신기해하면서 주고, 부끄러워하면서, 연습실을 나왔어요.(웃음)

 

시집만 갖고 있었을 때는 다 설명하지 못하는 아쉬움 같은 게 있었던 걸까요?


어떤 개떡 같은 말을 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독자가 시의 독자들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설명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고, 질려 있잖아요. 내가 누군지 계속 설명해야 하고, 왜 그런지, 왜 힘든지 설명을 요구받는데요. 시는 달라요. 그냥 직관적으로 온 것들을 설명을 경유하지 않고 이미지로 탁 얘기했는데 설명보다 더 잘 받아들여졌어요. 이심전심처럼 말이에요. 저 역시 그런 식으로 시를 접했는데요. 그걸 하기까지는 사실 꽤 많은 시를 읽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처음 시를 읽을 때는 ‘무슨 말이야?’가 먼저였거든요. 친구들이 어떤 시를 읽고 단박에 알아차리는 게 신기했고, 마법 같아서 그 친구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시를 읽은 건데요. 아직 그 과정을 경험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그걸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준비가 됐을 때 찾아서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다음 시집은 언제 나오나요?


두 번째 시집이 나와야 해요. 9월에 ‘핀 시리즈’ 시집이 나올 예정이거든요. 일단은 그걸 잘해야 할 것 같고요. 다음 산문집도 계약을 해둔 상태여서 그것도 준비하고 있어요.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문보영 저 | 쌤앤파커스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보며, 또 글을 읽으며 시인이 힘을 얻었듯이, 자기만의 눈물항아리를 안고 인생의 어떤 구간을 건너가는 이들에게 이 산문집이 다정히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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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랑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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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우유를 생각하면 ‘단지’ 모양 용기가 절로 떠오르고, 민트색 상자를 보면 티파니앤코가 연상된다. 시대를 넘나들며 오래 사랑받는 것들에게는 특별한 이미지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이미지들은 수시로 바뀌는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대를 이어간다.


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비주얼 전략가, 이랑주는 지난 27년간 좋은 제품을 좋아 보이게 하는 일을 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에게 늘 이러한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제품이 오래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오래도록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나요?’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지고 삶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일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십 개의 나라, 수백 개의 기업, 수천 개의 가게를 들여다본 그녀가 발견한 비법은 ‘다른 사람이 가는 길에 한 눈 팔지 않고, 나만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나만의 본질을 찾고, 그 가치를 고객에게 드러낼 수 있을까?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에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법칙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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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 100개 만들고 죽자!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출간 이후 3년 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책을 출간하고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되게 열심히 일했어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소상공인의 자활을 돕는 프로그램인 KTV <으랏차차 잘나가게>를 2년간 진행했거든요. 일주일에 한 편씩 촬영을 했고, 각 점포의 철학에 맞게끔 컨설팅을 해주는 작업이었는데 방송은 한국방송통신대상 우수상을 받았지만 저는 완전히 번아웃이 됐어요. 그동안의 에너지를 전부 쏟아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지난 한 해 동안은 휴식을 취하면서 내가 누군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다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기다운 일을 오래 하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어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을 쓰게 됐죠. 이왕이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을 가지면 더 오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우리나라에는 오랜 기간 같은 가치를 추구해 온 기업이나 브랜드, 노포 등이 무척 적은 편인데요. 왜 이렇게 오래가는 게 힘든 걸까요?


한국에는 100년 이상 된 곳이 8개 정도밖에 없어요. 가까운 일본은 3만 개가 넘거든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생각해봤는데요.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점포들이 사라지는 현실적 문제가 있었고, 무엇보다 애초에 오래가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일을 오래 해 온 사람뿐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트렌드나 타인의 경험을 쫓아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 대부분의 가게와 상품들이 찍어내듯 비슷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이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 바람을 담아서 27년간 쌓아온 제 노하우를 이 책에 다 풀어냈어요. 그러다보니 제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핵심 콘텐츠를 전부 넣어야 해서 처음에는 출판사 대표님께 “이거 다 나가면 전 뭐 먹고 살아요”라며 하소연하기도 했는데(웃음) 생각해보면 제가 배운 것을 타인에게 전해줬을 때, 그게 오히려 저에게 좋은 일로 돌아왔던 것이 그동안의 제 삶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낌없이 모든 노하우를 방출했습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도 100년 가는 것들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에요.

 

신간을 출간할 때마다 반응이 좋아요. 책의 비주얼이나 구성 등의 작업에도 참여를 하는 편인가요?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을 기획할 당시에 출판사 대표님과 함께 책에 등장하는 ‘6가지 질문으로 만드는 개념설계(115쪽)’를 해봤어요. 이게 어떤 일을 구체화시키는 데 정말 도움이 되거든요. ‘1. 이 책은 어떤 책인가? 2. 우리의 독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3. 우리의 독자는 무엇을 불편해하는가? 4. 그럼 우리는 무엇을 책에 담아야 하는가? 5. 그 불편함을 해결하는,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6. 앞으로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라는 6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거쳐 책의 구성을 완성했죠. 그래서 구체적인 저의 노하우를 담을 수밖에 없었어요. 시중에 출간된 수많은 경제경영서에서 ‘공간은 경험을 파는 곳이다’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는 독자의 고민에 대한 답은 빠져있었거든요. 이걸 채워 넣지 않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가 없고, 결국 이랑주다운 책을 만들 수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100년 가는 기업 100개 만들고 죽자!’라고 다짐하면서 책을 썼어요(웃음). 골목골목마다 100년 이상 된 가게들이 있고,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오래가는 것들을 만들어 나가는 풍경을 상상하면서요.

 

 

‘나’를 알아야 오래 갈 수 있어요


나만의 가치를 가지고 오래 성공하는 비법으로 ‘7가지 법칙(1000개를 상상하기, 시간을 빨리 쌓기, 자기를 표현하는 상징 찾기, 무의식까지 설계하기, 내 제품의 고향을 찾기, 처음 본 이들을 환호하게 하기, 촘촘하게 스며들기)’을 공개했는데 이중 가장 강조하고 싶은 법칙이 있다면요?


‘자기를 표현하는 상징 찾기’의 비법인 ‘복숭아에 대해 30초 동안 30가지 말하기’ 부분이에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해 자신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관찰하고 표현하는 동안 뇌가 말랑말랑해지거든요. 그 이후에 자신의 일을 대입해 보고, 그 일에 관련된 언어가 마를 때까지 한 번 적어보세요. 그 과정에서 나와 내 일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고,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돼요.

 

얼마 전에 남편 친구가 시장에 국수가게를 열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는 스타일인 거예요. 국수가게는 꼭두새벽부터 나가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 없이 재료비가 적게 들고 쉽게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만 듣고 쉽게 가게를 차린 거죠(웃음).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채 어떤 일을 시작하면 이런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퇴사를 마음먹었거나,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먼저 이 책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한 다음 앞으로의 길을 계획하는 것과 무작정 새로 시작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사업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가치, 본질은 찾았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데 서툰 이들도 많을 것 같아요. 비주얼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정의하는 가치 그대로를 비주얼로 만들면 쉬워요. 예를 들어 ‘나는 없는 책이 없는 서점을 만들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빈틈없이 책이 빽빽한 풍경을 만들면 되겠죠.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소인 ‘아크앤북’은 아트와 북을 결합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 컨셉에 맞는 고풍스럽고 오래된 서점의 감성이 아치형 북터널이나 짙은 고동색 서고 등의 인테리어에서 드러나고 있어요. 만약 ‘로맨틱한 서점’을 만드는 게 꿈이라면 이런 비주얼로 공간을 구성하는 건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그땐 핑크, 골드, 블링블링한 POP 등을 활용해야겠죠. 이렇게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을 한 줄로 적으면 그게 바로 비주얼과도 연결돼요. 그래서 저는 디자이너들에게 항상 그림을 그리기 전에 쓰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할 때, 핀터레스트 같은 이미지 저장창고에서 예쁘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골라내는 일부터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추구하고자 하는 비주얼을 글로 정의할 수 없다면 결국 유행하는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구체적이고 일관적인 비주얼을 완성하려면 일단 쓰는 작업부터 해야 해요.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어떤 풍의 비주얼이 유행하면 금세 비슷비슷한 모습을 띤 수많은 것들이 생겨나요. 브랜드 이미지, 상품, 공간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죠.


맞아요. 책에도 ‘가짜 빈티지를 만들지 마라(53쪽)’고 쓴 것처럼, 우리는 복고풍까지 흉내를 내죠. 레트로가 각광받는 건 긴 세월 동안 쌓인 그만의 특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에요. 오래된 것들을 아무리 흉내 내서 잘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진정으로 좋은 비주얼은 본질을 드러내는 데서 나오거든요. 그게 사람들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이고요. 외국에 여행을 가면 큰 점포와 작은 점포가 촘촘히 맞물려 하나의 거리가 완성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데 우리나라는 커다란 프랜차이즈만 가득한 곳이 많아요. 큰 인기를 끌었던 가로수길이 이렇게 침체된 것도 그 때문이죠. 기업 운영도 마찬가지예요. CEO가 바뀌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기업의 좋은 역사와 전통까지 싹 바뀌곤 하잖아요. 또 CEO가 조찬모임 등에서 좋은 내용을 듣고 오면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상관없이 직원들에게 이를 적용해보라고 지시하곤 하죠. 그럼 직원들은 혼란스러워져요(웃음). 누군가의 좋은 철학, 방법을 찾아 따라하는 것보다 본인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게 선행되어야 오래갈 수 있어요.

 

직접 컨설팅했던 곳 중, 자신의 가치를 찾아 성공한 변화가 돋보이는 사례가 있나요?


책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꽃집을 운영하는 분이 있었어요. 본인은 프로방스 풍 꽃집을 운영하고 싶은데, 주변의 말에 휩쓸려 정체성을 잃어버린 상태였죠. 요즘 토분이 유행이라고 하니 토분을 몇 개 가져다 놓고, 라탄이 유행이라고 하니 라탄바구니를 몇 개 가져다 놓고 해서 작은 가게 안에 물건은 넘쳐나지만 특색은 전혀 없었어요. 내가 누군지 알고, 추구하고 자 하는 게 명확해지면 주변의 조언에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는 데 ‘어떤 꽃집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거예요. 지금은 프로방스풍의 꽃집으로 완연히 바뀌어서 장사가 아주 잘되고 있어요. 스타일이 확고해졌기 때문에 이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계속해서 가게를 찾아오니까요.

 

실패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무엇인가요?


사실 이 책을 쓰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 친구가 있어요. 작년 10월쯤 큰 박람회가 있어서 몇몇 지인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갔는데, 일행 중 우리와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말 한 마디 없이 늘 구석에 앉아있던 친구였는데, 일정의 마지막 날 펑펑 울면서 “누나 덕분에 내가 실패한 이유를 알았다”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사업을 하다가 퇴직금은 물론이고 결혼자금까지 몽땅 잃은 상태였는데, 그동안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쉽게 돈을 벌려고 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10일간 저와 함께 다니면서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이렇게 사업을 시작해서 실패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덕분에 27년간 쌓인 내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꼭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 친구가 만약 지난 3년간 착실히 사업을 다졌다면 앞으로 30년간 무탈하게 일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3개월도 고민하지 않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됐어요. 결국 자기를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것만이 오래 성공하는 유일한 비법이에요. 초반에 빨리 가려고 하는 건, 오히려 느리게 가는 길인 거죠.

 

당장 장사가 되지 않으면 주변 이야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런 분들에게 조언해 주실 말이 있을까요?


앞서 제가 책을 기획하면서 했던 ‘6가지 질문으로 만드는 개념설계(115쪽)’를 해보시길 추천해요(웃음). 그럼 ‘내가 처음에 이 마음으로 장사를 시작했지’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될 거예요. 오늘 아침에 소상공인들을 돕는 한 센터의 센터장님이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을 읽고 장문의 문자를 주셨어요. 소상공인들에게 빛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20년간 이 일을 했는데, 최근 매너리즘에 빠졌다가 책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드셨대요. 그러면서 소상공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20년간 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도 때로는 흔들려요. 그게 당연한 거예요. 흔들리는 진통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 전통을 낳을 수 있거든요.

 

기억에 남는 독자의 피드백이 있나요?


엄마가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가게를 물려받고 싶은 딸이 보내준 메시지가 있어요. 제 책을 읽고 난 뒤 손님들에게 우리 엄마의 빵집이 얼마나 좋은 빵집인지, 어떤 재료를 쓰고 얼마나 정성껏 만드는 빵인지 알려주는 게 부족했기 때문에 장사가 잘 안 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대요. 그래서 책에 쓰인 노하우를 보며 빵 진열을 바꾸고, 빵에 대해 안내한 메모 등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 보냈더라고요. 그분의 노력이 담긴 사진을 보고 정말 감동받았어요. 책 쓰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어요.

 

요즘은 스스로가 상품이 되어 일하는 ‘1인 기업’이 무척 많은데, 일하는 사람으로서 오래 기억에 남고 강한 인상을 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정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을 손꼽을 때 떠오르는 사람으로 ‘스티브 잡스’나 ‘앙드레 김’이 반드시 순위 안에 있어요.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졌다는 거예요.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고 이를 비주얼로 나타내는 데 전략적이었어요. 스티브 잡스와 앙드레 김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었잖아요. 이렇게 자기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찾았다면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해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컬러나 아이템을 먼저 찾은 뒤, 끊임없이 그걸 노출시키는 거죠. 예를 들어 ‘나는 따뜻한 영업사원이 되겠다’는 포부가 있다면 붉은색을 자신의 명함, 스카프, 고객에게 주는 선물의 리본 등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해 보세요. 그럼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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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여자


취직해 일을 하면서 비주얼머천다이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알고 있어요. VMD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 이랜드에 취직해서 이 분야에 대해 처음 알게 됐는데, 일을 하며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비주얼머천다이징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백화점 하나를 짓고 오픈하는 데 7억여 원이 드는데, 보통 이걸 1년 안에 매출로 만들어야 해요. 그럼 층별, 브랜드별로 달성해야 할 하루 매출이 정해지는데 아무리 해도 매출이 안 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독일의 유명한 비주얼 전략가를 모신 적이 있어요. 그분이 일주일간 백화점을 돌면서 빛의 양을 체크하고, 동선을 파악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 컨설팅을 해주는 데, 그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조언에 따라 조금씩 요소를 바꾸어보니 고객들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매출도 따라서 쑥쑥 올랐고요. 그 광경을 보며 ‘이게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비주얼 전략을 바꾸었을 때 매출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2년간의 테스트를 거쳐 석사논문을 발표했고, 비주얼전략가가 되기 위해 마케팅, 심리, 행동설계 등을 차례차례 공부했어요. 아마 디자이너로서 테크닉적인 부분만 배웠다면 이런 책을 쓰진 못했을 것 같아요.

 

국내 최초 VMD 박사로 업계를 개척해왔는데,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와 현재 시장의 변화를 몸소 느낄 것 같아요.


그럼요. 앞으로의 고객들은 제품 뒤에 숨은 기업의 철학이나 본질에 대해 더욱 관심이 커질 거예요. 결국 이를 비주얼로 잘 표현한 기업만 살아남을 테고요. 이제 제품의 성능 자체는 평준화가 됐거든요. 10만 원짜리 가전제품이나 100만 원짜리 가전제품이나 사용하는 데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에요. 과거에 물건이 ‘사치’였다면 이제 ‘가치’의 시대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옛날에는 명품백을 드는 게 멋스럽고 나를 나타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면, 요즘은 친환경 에코백이나 버려진 소재를 활용해 만드는 가방을 들며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을 표현하는 이들이 늘고 있잖아요. 수많은 물건이 새로 만들어지고 버려지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자정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왕 살 거라면, 더 가치 있고 좋은 의미의 제품을 선택하고 싶은 거죠. 특히 밀레니엄 세대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져요. 마치 기성세대들이 경제적 가치에만 기반해 만든 제품들에 경고를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 변화가 너무 좋고, 앞으로도 이러한 소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이 아닌 개인적으로 물건을 구입하거나 어떤 브랜드를 선택할 때도 신중을 기하는 편인가요?


저 ‘아름다운 가게’ 자주 이용해요(웃음). 어떤 물건이 필요하면 남편과 꼭 이야기를 해서 ‘이게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를 꼼꼼히 따져보고 진짜 있어야 하는 물건일 때만 구입하는 편이고요. 최근에도 아름다운 가게에서 3천 원짜리 스탠드를 사와서 아주 잘 쓰고 있어요. 제가 백화점에서 오래 근무를 했잖아요. 백화점은 8월이면, 매출이 없는 브랜드를 퇴출시키고 새 브랜드가 입점하는 리뉴얼 작업을 하는데요. 그때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해요. 또 3년만 흘러도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비싼 집기와 진열대들을 다 버리죠. 멀쩡하고 좋은 물건들이 쉽게 버려지는 걸 볼 때마다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내 삶에서라도 물건을 오래, 소중히 쓰는 실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물론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과감히 돈을 쓰는 편이에요. 옷이나 가방 같은 브랜드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좋은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아요. 물건보다 경험에 더 소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기업, 소상공인들을 컨설팅 해왔는데,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일지 궁금해요.


요즘 ‘인생에 목표가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목표를 정하니까 그대로 살게 되는 느낌이 들어서요. 예전엔 돈 많이 벌고, 해외여행도 종종 다녀야 행복한 줄 알았는데 그건 사회가 만들어 둔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지난 한 해 동안 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나니 이제 동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일을 크게 키우지 않아도 그냥 이 자리에서 행복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제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지난 2017년도에 제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주변에서 “그렇게 많은 노하우가 있는데, 직접 만들면 더 잘하지 않겠냐”고 하는 말에 저 또한 흔들렸던 거예요(웃음). 그래서 해봤는데 잘할 자신은 있었지만, 그 과정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 그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볼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더라고요. 그걸 알고 흔들리면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정해둔 목표는 없어요. 그저 이 일을 적어도 80세까지는 하면서, 최장기간 비주얼 전략가로 살아가고 싶어요.

 

대표님이 추구하는 일의 가치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요?


전문가로서는 ‘온기 품은 전문가’고요. 직업적으로는 ‘상품의 운명을 바꾸는 여자’요(웃음). 세상이 더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물건을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이랑주 저 | 지와인
남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상징 찾기’에서 어떤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 제품의 뿌리 만들기’까지, 팔리지 않는 시대에 필요한 7가지 방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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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제이클래프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온 이야기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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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클레프는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무대 위에 산다는 듯 / 어필 없이는 못 살고 /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은 / 실존하지 않는' 뮤지션들과 거리가 멀었고, '생각의 고리는 너무 많이 돌아 / 제자리로만 거듭 다시 돌아와'라는 치열한 고민도 깊었다. 인간 허영진의 독백은 비록 어둡고 날이 서 있었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고자 투쟁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불안한 청춘에게 건네는 가장 진실한 위로의 메시지기도 했다. 독자적인 행보로 2018년 힙합 씬에 선명한 족적을 남긴 래퍼, 제이클레프를 4월 2일 연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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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얘기부터 해보자. 콕재즈, 스윔래빗과 함께 크래프트앤준(Craft And Jun)에 합류했다. 

 

크래프트앤준은 회사 미팅을 하면서 유일하게 먼저 들어가고 싶다고 얘기했던 회사였다. 꽤 오랫동안 회사를 찾지 않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편이라 아무 기반 없이 우주를 표류하는 것보다는 우주선을 하나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크래프트앤준에 합류하게 됐다. 

 

회사 합류 외 최근 근황은 어떻게 되나. 

 

새로운 곡에 대한 추상적인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다. 가장 최근의 활동으로는 3월 28일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통해 새로운 라이브 콘텐츠를 공개했다. 

 

작년 10월 클럽 소프(Soap)에서의 무대부터 12월의 단독 콘서트, 네이버 <온스테이지>까지 다채로운 라이브를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실황과 녹음은 확실히 다를 텐데.

 

단독 콘서트를 통해선 편곡 면에서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고 전체적 곡의 전개를 풀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 곡의 예를 들자면 우선 나에게 가장 극적인, 그러니까 영화 같은 곡이라 할 수 있는 'Dive in island'가 있다.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의 경우도 '지구 멸망 1시간 전에 정말 초연할 수 있을까?' 했던 감정,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광경을 슬로우모션으로 천천히 지켜보는 감정, 그런 감정을 라이브로 전달하고 싶었다. 곡을 만들 때의 느낌 대신 완성된 곡을 듣고 받았던 새로운 느낌도 전달하고 싶었고. 

 

그 새로운 감성의 전달은 12월 콘서트 때 구체화된 것인가. 

 

맞다. 크게 결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앨범을 만들 때는 나 자신이 수동적인 주체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트랙을 받고, 편곡을 하고, 아이디어를 추가할 수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제작 과정 전체를 주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밴드 세션과 함께 공연하면서 다이나믹에 대해 더 신경도 쓰게 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을 악기로 채우는 것 또한 좋았다. 2016년에도 일찍이 밴드 세션으로 공연한 바 있어 낯설지 않았다. 

 

향후에도 밴드 사운드를 많이 활용할 예정인지? 

 

조금 더 연구를 하고 '무르익었을 때'(웃음) 한 번 해보고 싶다. 밴드 사운드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최근 많이 들은 밴드 음악이 있나. 

 

예전에 테임 임팔라를 좋아했어서 다시 많이 듣는다.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인터넷(The Internet)은 항상 좋아했고.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Malibu>와 킹 제임스(King James)도 즐겨 듣는다. 재지한 쪽으로는 에이프릴 비스타(April Vista)와 배드 배드 낫 굿(Bad Bad Not Good)도 추천한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이즘 공식 질문인 '인생의 음악'을 질문해도 될까. 

 

20대 초에는 프랭크 오션의 <Channel Orange>, 더 어렸을 때는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의 첫 앨범 <Aijuswanaseing>이었다. 인터넷의 <Ego Death>, 앤더슨 팩의 <Malibu>도 인상적이다. 프랭크 오션의 <Endless>도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Blonde>보다 더 쉽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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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클레프라는 이름을 처음 봤을 땐 푸지스의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을 떠올렸다. 

 

와이클레프 장은 전혀 아니다. 그냥 내 이름이 영진이라서 영진의 제이(J), 음계의 클레프(clef)를 합쳐서 제이클레프다.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결사반대와 여러 상황이 있어 대학교 입학 후에 시작했다. 학내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래퍼는 가사를 써야 하고, 보컬은 커버를 한다'는 규칙이 있어서 보컬로 들어갔지만 래퍼의 길을 걷게 됐다. 

 

공대생이라고 들었다. 음악 하는 데 있어 공대생의 이점이 있다면. 

 

하나도 없다. 방해된다.(웃음) 사람들이 되게 신기해하니 그 반응을 보면 즐겁긴 하다. 아무래도 판에 박힌 그런 삶을 탈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데 그렇게까지 신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전공을 질문한 이유가 있다. 구조적이고 철학적인, 문학적 표현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인문 쪽을 굉장히 존경한다. 나랑 관련 없고 '나는 절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분야였다. 사실 철학적인 내용을 써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랜 기간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그런 내용이 음악에 녹아 나온 것 같다. 

 

본인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선이 흔한 것은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써야만 하는 표현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많이 배제했고, 트랩 계열 비트도 많이 받지 않았다.

 

제이클레프의 첫 정규 앨범은 '흠(flaw)'과 '화'로부터 출발한다. 근간을 이루는 감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만들면서 생각한 건 아닌데, 최근 앨범을 들어보면서 '동행자'의 마지막 구절 '누구나 다치는 걸 원치 않아 / 상처 입을 자신을 감싸며'가 꽤 날카로운 지점이라 느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모습,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갖춘 모습을 바라는 과정에서 균열이 발생한다. 그 흠을 만들게 하는, 그 균열을 결함이라 느끼게 하는 여러 구조나 감정에 대해 일종의 회의적인 시선, 화를 내비친 앨범이다. 그런 걸 흠이라고 한다면, 대체 흠 없는 건 어떤 건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 결함과 분노는 현재 본인의 상태인가, 아니면 음반 만들던 당시의 본인인가. 

 

어느 시점부터는 제 모습 중 하나가 됐다고 생각한다. 23세 24세 이후로는 항상 바탕에 깔려있는 감정 같기도 하다.

 

이와 같은 감정을 문학적 표현으로 풀어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영향을 받은 문학 작품이나 작가가 있다면.

 

신형철 문학 평론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평소 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었다. 갖다 붙인 말이다 하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고 '뭐가 그렇게 명확하지?'하는 의심도 있었다. 신형철의 책을 읽고 많이 변했다. 내가 익히 겪은 감정을 글로 멋지게 표현한다는 점이 멋졌다. 그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No one sees me like you'를 보면 감정은 아니지만, 자신의 영감(inspiration)이라는 추상적 개념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곡은 믹스테잎 <Canyon>에도 수록되어있던 오래된 곡이다. 영감은 신기하다. 마치 사고가 나듯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떠오르고, 그 순간에 대해 집착을 해서 노래가 나오고 글도 나오고 영화도 나오지 않나.

 

영감은 붙잡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나. 이 앨범도 어떻게 보면 제이클레프 영감의 기록인데. 

 

같은 믹스테잎의 수록곡 'Canyon'의 배경도 그렇다. 미국 그랜드 캐니언에 가서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당시 너무 자존감이 낮았고 좋지 않은 일도 겹쳐 있었기에 그 절경이 배신당하고 꺾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신기하다. 정규 앨범도 나중에 들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나의 신기함, 나의 영감,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No one sees me like you'의 'you' 역시 영감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경외감으로 읽을 수도 있다. 

 

믹스테이프의 감정처럼 <flaw, flaw>의 제이클레프는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기존 현실에 갇혀있다는 우울, 갑갑한 심정을 토로한다.

 

인간은 반복되는 무언가가 지속되면 거기에 질려버리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동물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에 가도 분명 무슨 고민이 있을 거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순 없다. 단어 그대로 '이상향'이니까. 하지만 반복되는 현실과 부대끼는 건 또 어렵고. 그런 감정이 들어갔다. 

 

현실에서 다른 세계를 꿈꾸는 누군가가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나 치유받기도 또는 실망하기도 하는 서사를 보면 훨씬 단단해진 모습도 볼 수 있다. 

 

트랙 순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사운드적인 흐름도 신경 썼지만, 제일 많이 신경 쓴 건 서사적인 부분이다. 

 

'주스 온 더 락' 가사를 보면 그 여행의 과정이 마냥 괴롭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주스 온 더 락'도 비판적인 면모가 있다. 겉으로는 칵테일 한 잔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삶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허나 난 뭔가에 취해 생기는 연에 매인 적 없지'에 뜻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술에 취하든 돈에 취하든, 그런 외적인 요소 없이 진지하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를 바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곡 작업도 술 한 잔 못하는 오하이오래빗과 함께 했다. 정말 술 한 잔 못하는 사람과 작업하고 싶었다. 

 

언급한 김에 오하이오래빗을 소개해준다면. 

 

오하이오래빗은 나와 비슷한데 더 슬프다. 많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여러 감정을 설명할 때 애써서, 덧붙여서 다시 말할 때가 있지 않나. 오하이오래빗은 그럴 필요 없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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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클레프의 태도는 '동행자'에서 다시 한번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 곡의 '너'는 동행자보다 제이클레프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노래를 만들 때 항상 '어떻게 서술할 것인지'에 대해 중점을 둔다. '동행자'는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자기표현이다. 동행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물론 그 주인공은 실존 인물로부터 따왔지만 서술 방식은 내가 나 자신과 나누는 대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간접적으로는 세상을 비판하고 싶기도 했고.

 

워낙 앨범이 사회 비판을 많이 한다(웃음). 

 

깔 게 많다. (웃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도 자전적인 이야기가 강조된다. '나는 말하기를 강요받아왔어', '이런 건 대화라 불리면 안 될까' 같은 표현들. 

 

나는 큰 미래를 그리지 않는 성격이다. 연속적인 삶의 결과를 신경 쓰지 큰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숲을 잘 보는 사람은 계획을 잘 세우고 나무를 보는 사람은 섬세하다지 않나(웃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도 이런 느낌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이런저런 코스를 밟아서 이렇게 저렇게 성공했다고 하지 않나. 그런 부분에 대한 회의감이 많았고 지금도 좀 불편한 마음이 있다. 이를테면 '뭐가 될 거냐', '너가 모르면 누가 아느냐' 같은 질문들. 

 

'Dive in Island'는 래퍼 최엘비가 발매한 'Dive Island'를 편곡하여 만든 곡이다. 

 

원래 그 곡의 1절에 내가 참여를 하는 계획이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무산이 되어 아예 새로 만들었다. 프로듀서 낸시 보이(Nancy Boy)가 곡의 뒷부분을 영화처럼 만들어줬고 나를 잘 반영한 스토리를 위에 얹었다. 앨범 발매 후 더 많이 듣는 노래인데, 많은 여운이 남고 짠한 느낌이 온다. '쿵'하고 내려앉는 부분이 있다. 

 

최엘비는 실제로 <오리엔테이션> 앨범을 통해 대학 생활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도 했다. 제이클레프가 보는 최엘비는 어떤 사람인가. 

 

최엘비는 너무 순수하다. 동갑이지만 애기인 친구가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실제 나이와 인상이 다르지 않나. 사람은 훨씬 어른스러울 수 있는데, 굉장히 순수하고 어린아이의 시선을 갖고 있다. 싫은 말을 하는 걸 무서워하는 느낌이랄까. 곡 쓰고 가사 쓰는 것도 신경 써서 보고 있다. 티 없이 맑은 영혼의 소유자! 

 

이런 결함에 대한 고민과 분노는 결국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의 재난과 묵시록으로 마무리가 된다.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누구를 깎아 내리고 비난한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있지 않나. 서로가 서로의 상황으로 살아볼 수도 없는 거고. 그걸 다 터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 우주로부터 운석이 날아오는 극단적인 순간을 빌려서라도. 그 순간에서 지배적인 허무한 감정, '사랑만을 두고 떠나지' 같은 표현처럼 허무한 감정 등을 그려봤다. 2절의 가사는 모든 걸 끝내버리기 전에 세상에 대한 냉소와 일갈을 다 풀어내는 거고. 귀여운 비트와 함께(웃음). 

 

하지만 이어지는 '프리-퀄'은 나름 자전적이고 긍정적인 매조지 아닌가. 

 

시간 순서대로 가자면 '프리-퀄'은 1번 트랙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Flaw, flaw'가 완벽한 1번 트랙이라고 생각했기에, 역설적으로 마지막 트랙에 '프리-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톱 트랙은 아니지만 서사적으로는 맨 처음에 있는 곡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20대 초반 느꼈던 낯선 감정들 - 대학생이 되고, 취업을 준비하는 그런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던 시기의 느낌을 담고 있는 곡. 

 

요약하자면 앨범은 '결함을 의식하면서 불완전의 미학을 깨달아나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엄청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 자신이 그 불완전함을 다 예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크지. 편견 없이 무언가를 보고 노력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지 않나. <Flaw, Flaw>는 나의 취향 혹은 나의 선호를 갖게 해 줬던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향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고, 싫어하는 것도 알게 되는 과정. 결국 '나'에 대해 알아가는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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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w, flaw>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고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음악을 계속해도 될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게 음악이니까 오기를 갖고 열심히 만든 앨범이었고, 많은 분이 인정해주시고 상도 주셔서 감사했다. 음악을 더 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앞으로의 음악 계획이 있다면? 

 

잘 모르겠다. 지금 말하기엔 다 시기상조 같다. 생각은 계속하는 단계다. 

 

앨범 속의 제이클레프는 불안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였고 그 불안정성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렀다. <flaw, flaw>를 만들면서 본인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나.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됐다. 감당하기 힘든 감정으로 만든 앨범이었는데 만들고 나니까 '뭐 어때?' 하게 되더라. 평소 '왜 살지?'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음악을 만들 때도 이게 세상에 가치가 있나, 필요가 있나 하는 고민을 항상 했는데 그 고민에 대한 답이 사랑으로 되돌아왔다. 연애, 사랑, 팬, 인터뷰, 모든 관심이 나에게는 사랑이다.

 

<flaw, flaw>를 이렇게 많이 들어주실 줄 몰랐다. 하지만 지금처럼 평가 받지 못하고 인기가 없었더라도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 소중한 작품이다. 중간에 발매일이 미뤄지기도 했고 슬럼프도 있었지만 발매하고 나니 굉장히 후련했다. 

 

 

인터뷰 : 김도헌

사진 : 박설희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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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효종 “유튜브로 전하는 재밌는 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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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쿠키’는 인문학 수준으로 과학이 대중화되길 꿈꾸는 유튜브 채널이다. ‘대체 하늘은 왜 파란색으로 보이는 걸까?’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이 잘못된 사실이라면?’ ‘힘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과학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을 통해 수업에서 배워온 과학 개념의 탄생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 이중 물리학 부분을 모아 『과학을 쿠키처럼』나왔다.


채널을 운영하는 이효종 저자는 과거 물리 교사였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실 밖에서도 올바르면서도 재밌게 과학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꿈은 그를 선생님에서 '과학 크리에이터'로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운동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클래식 역학’부터 시작해 전자 기학, 열역학, 20세기 최대 업적 ‘양자역학’까지 과학사와 과학자들의 정보를 토대로 교과서처럼 기본을 이야기하지만,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쿠키처럼 가볍게 전하고 싶었다.  


인터뷰 장소 앞에는 자동문이 있었다. ‘자동문은 무슨 원리인가요?’라고 묻는 순간 인터뷰, 아니 즐겁고 가벼운 과학 토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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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과학을 가볍게


이렇게 들어오니 자동문의 원리를 묻고 싶어지네요.

 

자동문, 간단하죠. 실제로 작동하려면 복잡한 공학적 지식이 필요하지만요.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복잡하게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예를 들어 동전을 튕겨서 앞면이 나올까 뒷면이 나올까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면 끝이죠. 이걸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일일이 모든 변수를 다 분석해야 답을 예측할 수 있어요. 복잡한 내용을 간단한 모습으로 만들어 현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게 물리학이라고 생각해요. 간단한 원리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과학쿠키’에서 하는 일도 비슷할 것 같아요. 이름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직관적으로 설명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과학을 생각하면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는 것, 나중에 성공하기 위해 지나쳐야 할 과정을 떠올려요. 그렇게 교육해 오기도 했고요. 과학의 이미지가 딱딱한 것, 절대 문화가 될 수 없는 것이 되면서 거부 반응이 생기는 거죠. 반대로 달달한 쿠키는 생각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식사처럼 무겁지 않고, 언제나 편하게 먹을 수 있고요. 과학에 담긴 무거움을 쿠키에 담긴 가벼움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자 플랫폼이 되고 싶었어요.


민트 초코칩 쿠키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누군가는 좋아하겠지만, 누구나 좋아할 순 없는 쿠키요. (웃음)

 

쉽지 않죠. (웃음) 이게 쿠키냐고 항의하는 댓글이 달린 적도 있어요.


‘과학쿠키’에 올린 과학 영상 콘텐츠를 토대로  『과학을 쿠키처럼』  이 나왔어요.


영상을 올리면서 나중에라도 이 콘텐츠를 한번에 정리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구독자 분들이 영상에 나온 그림을 직접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그동안 정리했던 자료로 만들 수 있었어요.


책을 만들면서 영상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유튜브 스크립트를 짤 때는 생생하게 말하는 내용 그대로 구어체로 하려는 반면, 책으로 가공하려니까 조금 더 명확한 용어를 쓰고 문장의 구성 요소를 바꿔야 했어요. 문어체를 고수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수정을 하다 보니 기존 색과 달라진 점이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주석을 조금 더 확실하게 제공할 걸, 이런 부분은 다르게 풀어볼 걸 하는 후회는 있어요.


물리 교사를 했다고 들었어요.


교직은 2년 6개월 정도 했어요.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물리를 재밌게 전달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과학사로 접근하면 학생들이 물리를 공부로 여기지 않고 하나의 역사나 이야기로 받아들이더라고요. 교육자 입장에서는 30명에게 전달할 뿐이지만, 영상 플랫폼을 이용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교직을 그만두지 않은 상태에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 유튜브와 더 맞닿아 있다고 느껴서 나름 과감하게 그만뒀어요.


다른 계기도 있을까요?


외국에 베리타시움(Veritasium)이라는 과학 크리에이터가 있어요. 일반인이 쉽게 갈 수 없는 연구원도 보여주면서 과학의 업적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분이에요. 너무 부러웠어요. 왜 한국어 쓰는 사람들은 저런 콘텐츠를 누리지 못하지 싶어서 번역을 해볼까 싶다가, 제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굳게 들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퀄리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야지 일반인이 잘 모르는 연구소도 문을 열어줄 테니까요. 제가 하는 일에 분명한 비전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름 공부하고 미디어적 감각도 기르면서 다음 영상을 올리기 전에 조금만, 한 부분이라도 그 전 영상보다 발전한 영상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만들다 보니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영상으로 과학을 푸는 방법


그림으로 과학 이론이나 과학사를 설명할 때가 많아요.


개념을 전달할 때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하더라고요. 화학이나 생물, 지구과학은 모형과 표본 등 보여줄 것이 많은데 물리학은 보여줄 게 없어요. 양자를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그리는 개념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려면 그림이 최고예요. 교사로 판서할 때도 비슷한 스타일로 했었는데, 그리다 보니까 늘었어요.


영상으로 보면 10초면 끝나지만, 그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거의 반나절 걸리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그림도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지 구도배치부터 시작해 고민을 많이 해서 콘티를 짭니다. 처음에는 그림 그리는 게 제일 쉬웠는데,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더라고요.


실제 영상을 올리기까지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해요.


주제 선정은 이미 다 되어 있어요. 채널을 시작하기 전에 1,2개월 정도 주제 선정 작업을 하고 개념도를 그려서 시대순으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정리했어요. 어떤 주제를 이야기할 때가 되면 그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죠. 보통 주제에 관련된 학자들의 배경을 살펴봐요. 그당시 어떤 문화적 배경이 있었고 어떤 서신을 주고받았는지, 과학사적 배경과 주변 발견을 보고 거기서 얼개를 잡은 다음 이야기를 풀죠. 스크립트를 완성하고 나면 어느 부분을 말로 설명하고 어느 부분을 그림으로 할지, 사진이나 동영상 무엇을 보여줄지 분류해요. 말로 하면 좋을 부분이 있고 어떤 건 그림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어요. 그걸 분류해놓고 제일 먼저 녹음을 한 다음, 자막을 다 만들어놓고 블록쌓기처럼 필요한 요소를 촬영해서 넣고 있어요. 그걸 편집하고 배포합니다.


업로드 주기는 어느 정도 되나요?


보통 일주일 정도 됩니다. 하지만 일주일이라고 해서 일주일이 걸리는 건 아니고요, 한 달 걸려요. 일주일 만에 하나를 만들면 오류가 생기거나 할 위험이 있는데, 4주 동안 오래 기획하고 풀어가면서 제작하면 숙성이 된다고 할까요. 조정할 게 눈에 보여요. 그리고 연구원 취재를 가면 업로드 일정과 안 맞을 수도 있어서요. 네 편을 한 달 주기로 연달아 만들어 병렬적으로 일하고 있어요. 약간 헷갈리긴 해도 이 형태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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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달하는 역할'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확성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해요. 유튜브로 전달되는 지식 중에 제대로 된 지식이 아닌 것들, 픽션인데 사실인 것마냥 전달하는 콘텐츠가 있어요. 흥미 위주로 된 콘텐츠가 더 관심을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흥미는 곧 돈이 되고요. 그게 학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배워야 할 것들을 가짜 정보 때문에 못 배우게 되고요. 올바르게 전달하는 채널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악영향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여기까지 오게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과학이 아닌 걸 과학이라고 하는 크리에이터들은 많이 없어졌어요. 올바르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과학 장르가 생겨나고, 그 장르 안에서 정화 작용을 한 것 같아요.


물리 교사 출신으로 다른 비전공 과학 분야를 다루면서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일반론에서는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깊은 부분을 설명하려면 어려운 부분이 있죠. 물리교육을 전공했지만 물리도 마찬가지예요. 한 분야를 정말 깊게 들어가면 더 쉽게 말하기 힘들어지고요. 과학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제 입장은 확실해요. 제가 다 알기 때문에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어려운 지식을 전체적으로 개괄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학습할 만한 형태로 가공해서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해요. 과학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물리학의 본질이 어려운 것들 안에서 간명함을 끄집어내 그 간명함으로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형태잖아요. 여러 사람들의 조언과 감수를 받아 그 본질을 잘 조합하고 배합해서 쉽게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인 거죠.


사람들이 과학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는 과학을 한 게 아니라 과학 교육을 한 거죠. 개념을 알고 외워야지만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만 배웠어요. 인문학은 그래도 언어로 되어 있고, 우리가 충분히 합리적이고 납득이 갈 만한 사고 방식과 대응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데 과학은 그렇지 않거든요. 과학은 명확하게 답이 있는 학문이고 그 답을 진리로 규명해서 배우고 그 진리를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저는 그게 과학을 싫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과학은 물론 답이 있죠. 하지만 답은 현재 절대 다수가 동조하는 이론 체계 아래서의 답이라 언제든 바뀔 수 있어요. 우리가 충분히 관심을 가지고 토론하는 형태의 과학 교육이 있었다면 과학을 문화로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과학을 문화로 즐기기 굉장히 힘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교육을 넘어 과학을 재밌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서양은 과학과 철학을 분리하지 않고 자연철학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중에서 필요한 지식들을 가지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죠. 반면 우리나라는 문제해결력에 집중해요. 제 채널에서만 해도 서로 이제 맞다 틀리다 댓글을 달면서 싸워요. 하지만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진영이 갈려서 대립한다고 하더라도 한 진영만이 맞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사실 과학이 인문학과 그렇게 멀지 않거든요. 과학에도 인문학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못 보는 것 같아요. 과학이 하나의 술안주나 대화의 소재가 될수록 과학 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요? 제가 희망하는 건 답을 모르더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예요. 예를 들어 왜 아메리카노 색깔은 검지? 답은 물론 있겠죠. 하지만 답과 상관없이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잖아요. 과학이 그만큼 멀지 않고 충분히 쉽고 재미있는 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대 정신이 인문에서 과학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과학을 문화로 즐기는 추세 역시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콘텐츠를 만들면서도 변화를 느끼시나요?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해요.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과학 문화가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많은 곳에서 계속해서 과학 문화를 확산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모여서 이렇게 된 건지, 세태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 세대에 우연하게 선택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최근 블랙홀 이야기를 사람들이 즐겨 했어요. 과학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블랙홀의 발견이 광속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참 신기하죠? 사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은 연역법을 이용했거든요. 기존의 체계를 가지고 새로운 결과를 도출했지만, 확장된 게 아니라 전가되는 방식이잖아요. 기존에 있던 수많은 지식을 이용해 유도해 낸 지식이거든요. 기존의 지식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연역적으로 실제로 그런지는 몰라도 간접적으로 예측은 증명됐어요. 중력이라는 게 질량이 있는 물체가 떨어지는 건데, 빛은 질량이 없으니까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 안 돼요. 그게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었죠. 그런데 중력이 매우 강한 태양에 의해 멀리 있는 별빛이 휘었어요. 그걸 실제로 블랙홀을 통해 확인한 거죠. 이번에 블랙홀을 보면서 확실히 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본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과학 같아요. 왜라는 호기심이, 교육과정에서 잘려나간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형태로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누군가 평소에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궁금해진다면, 그걸로 저는 행복해요.


『과학을 쿠키처럼』  이 ‘물리 편’이라고 하셨는데, 시리즈로 다른 내용도 다룰 생각인가요?


화학과 생물학, 지구과학도 다루고 싶은데 궁극적인 목적은 학문의 범주를 다 없애고 싶어요. 나중에 이제까지 나왔던 모든 과학을 한꺼번에 등장시키는 완결편을 쓰고 싶기도 해요. 많은 과학 분야의 사람들이 어떻게 소통해왔는지, 이 과학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책을 어떻게 읽어줬으면 하나요?


책에 공식이 나와요. 공식은 알 필요도 없고요. 알아 봤자 쓸모 없을 수도 있어요. 공식에 연연하지 마시고 내용의 본질에 충실하게 책을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몇몇 분들은 공식만 나오면 이해하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으시더라고요. 그러지 말고 넘어가세요. 이 책은 공부하지 마시고 편하게 읽어주세요(웃음).

 


 

 

과학을 쿠키처럼이효종(과학쿠키) 저 | 청어람e(청어람미디어)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식 너머에 있는 수많은 과학자의 열정과 노력, 즐거움과 감동이 담긴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어느새 과학과 한층 가까워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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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계영 “시를 쓰는 태도가 선명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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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온갖 것들의 낮』  과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에 이어 유계영의 세 번째 시집이 나왔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온갖 것들의 낮」 중)다는 고백은 “과거의 어떤 나로부터 현재의 나에 이르기까지는, 내가 살던 시간 같지 않”(『나는 매번 시쓰기가 재미있다』 중)다는 인식을 거쳐 “내가 나를 지나가버린 것을 끝까지 모른다”(「나는 미사일의 탄두에다 꽃이나 대일밴드, 혹은 관용, 이해 같은 단어를 적어 쏘아올릴 것이다」 중)는 말로 다시 돌아왔다.


시간 속에서 흐르는 ‘나’를 지켜보고 있으면 개를 산책시키다 갑자기 햇빛을 본 것처럼 어질한 기분이 든다. 시인의 말대로 지금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조금 더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게 시라면, 보라색 옷을 입고 나온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는 시적인 시집이다. 읽는 순간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이렇게 긴 오늘”(「자유로」)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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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방귀, 콧노래, 흥, 물고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발표한 지면이 많아서 바쁘게 지내셨구나 싶었어요.


시집이 두 권 몰려나와서 부지런한 사람인 것처럼 되었네요. 특별히 뭔가 바쁘게 하진 않았어요. 시 쓰는 게 바쁜 건 별로 없는데, 수업만 해도 일주일이 그냥 가는 것 같아요. 수업 준비하고, 수업하고, 와서 곯아떨어지고요.


주변에서 시집 반응은 어떤가요?


이번 시집이 제일 낫다고 그래요. 그래서 ‘알아’ 라고 했죠. (웃음) 저는 좋다고 하면 일단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제목부터 독자에게 말을 건네요.


김민정 시인이 제목을 뽑아 주셨어요.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제 시는 이미지나 사유 같은 걸 밀고 나가는 힘보다는 산발적으로 움직이는 에너지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데, 중심에서 그런 파편들을 회전시키는 제목이었어요. 매우 만족하며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표지 색은 편집자님과 상의해서 골랐나요?


어떤 색깔 원하냐고 여쭤보셔서 탁한 보라색이라고만 말씀 드렸어요. 세 가지 시안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이 색이 가장 호응이 뜨거웠어요.


트렌디해요. 톤 다운된 ‘인스타 감성’이 있죠. (웃음)


어떤 사람은 퍼플이라 부르거나, 핑크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다고 들었어요. 뒤에 그림은 사람의 옆모습인데, 이 그림도 다 다르게 대답하더라고요. 콧방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콧노래라 한 사람도 있고, ‘흥’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어요. 물고기라고 한 사람도 있고요.


첫 시집에서 양경언 시인의 작품 해설 제목이 ‘큰 소리로, 훗!’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웃음이 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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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류의 세계


시집에 실린 시는 비슷한 시기에 썼나요?


격차가 있긴 한데 거의 순차적이에요. 첫 시집은 20대 때 썼고, 이 시집에 담긴 시는 전부 30대에 썼어요.


전작을 읽고 보니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죽음이 많이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첫 시집과 핀 시리즈를 묶을 때는 작위를 피하고 싶어서 그냥 시간에 맞춰 집약된 시만 묶었어요. 일말의 기획성도 배제하려고 했다면, 이 시집에서는 나름 소심한 기획으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죽음이 나왔던 게 아닐까요? 우리의 운명이 종국에 가면 죽음이 나오잖아요.


시간을 생각한 계기가 있을까요?


시에 대한 태도나 목적이 내면에서 선명해진 것 같아요. 이전에는 단순히 재밌어서 쓴다는 태도였다면, 우리가 왜 시를 쓰고 읽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 시기가 있었어요. 도대체 이게 뭐라고 내가 밤을 새고 주말도 반납하고 쉬지 않고 시를 쓰지? 하는 질문이었죠.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나요?


이 세계와 질서를 너무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규정된 세계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세계와 조금이라도 다른 질서와 규칙을 가진 세계를 만들어서 거기서 쉬고 있는 거죠. 독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시를 읽는 독자가 있다면, 그분들은 다른 세계의 환기가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 안에서 담담하고 멍하게 늙고 병들고 죽는 게 아니라, 이 시간성을 뒤섞고 블록을 쌓아서 유희해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시에 대한 질문 때문에 시간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유계영의 빌려온 시’ 칼럼을 연재할 때도 시를 정의하려는 시도를 많이 한 걸로 기억해요. 예를 들면, 시는 “손과 발이 부러지도록 존재 바깥으로 나가보는 일”인 거죠.


경계해야 되는 일이기는 한 것 같아요. 시 쓰는 일에 대한 엄숙함이 너무 커지면 아무래도 쓰는 즐거움을 잊어버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시 자체에 대한 생각을 그만해야지 싶어요.


그만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나요? 시인의 업은 시 쓰기라 시에 대한 시를 쓰는, 소재가 시가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잖아요. 메타 형식으로 쓰다 보면 그 안에서만 맴돌게 되는 순간이 있을 거고요.


그런 벽을 감지하기 때문에 너무 형식적인 고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필연적인 측면이 있어요. 많은 지면에서 시론이나 어떻게 시를 쓰는지를 써달라고 하거든요. 그때마다 시가 무엇인지 직면하고, 무정형으로 있던 것들을 하나의 창작으로 체계화시켜야 하니 머릿속에 시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는 거예요. 늘 같은 이야기를 할 순 없으니 매번 새롭게 쓰고 나서는 바로 부숴버리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매번 거짓말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다른 예술 작품에서 단어를 빌려오거나 변용하는 시가 많았어요.


언어가 어떻게 보면 가장 입체적일 수도 있지만, 활자화된다는 건 고정하는 것 같아요. 무언가 생명력을 끊은 느낌? 그래서 영화나 음악, 그림, 사회적인 이슈와 함께 상호적으로 부딪치면서 계속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내는 게 좋았어요.


「치(齒)」는 어느 날 저희가 나눈 대화가 일부 들어가 있어요. 대화에서도 시를 찾게 되나요?


첫 시집은 애틋하기도 하지만 저렇게 자폐적일 수가 있나 싶어서 꼴 보기 싫을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그냥 일상의 피로가 너무 커서 머리로 시를 쓰는 데 많이 골몰했거든요. 그 뒤로 무엇보다 실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는 흐리멍덩하게 있다가 어느 순간 실감을 두드리는 말과 장면을 만나는데, 별거 아니더라도 그런 걸 만나면 메모를 해놔요. 그중 오랫동안 기억해도 여전히 감각을 주는 대목이 있으면 시에 옮기는 것 같아요.


동물이 가끔 등장해요. 요즘 세대 시인의 시에서 동물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어떤 한계를 인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인간다움이 이제 진작에 밑천이 드러난 거죠. 여러 활로를 모색하다 보니 이제 비인간인 존재들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유령이나 그런 다른 몸들이요. 하지만 결국 다른 몸에서도 자꾸 인간을 찾잖아요. 그건 또 어떤 것일까, 궁금해요.


‘떠오르는 루키’라는 수식어가 붙은 적이 있어요. 신예와 중견 중 스스로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핀 시리즈가 가벼운 소시집임에도 불구하고 세 권의 시집이 나왔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중견이라고 놀릴 때가 있어요. 이상하게 발끈하게 되더라고요. ‘아냐, 나 중견 아니야, 아직 10년도 안 됐어’ 하면서요. 아직은 신예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젊은 작가라고 불리면 젊으니까 실수해도 된다는 관대한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부담감도 들 것 같아요.


되도록 오랫동안 젊은 작가 안에 머물고 싶은데요. 물리적인 나이를 이야기하는 건 당연히 아닐 테고, 어떤 변화에 가장 기민한 상태를 이르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혹은 아직 대중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지 못한 가능성의 상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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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적인 마음


여러 번 생활인이 되는 것의 어려움을 이야기했어요. 시인 유계영과 생활인 유계영은 좀 다른가요?


직장인이 되고자 애썼을 때 얻었던 질병들을 생각하면, 달라지고 싶은데 정말 잘 안 되더라고요. 정해진 일과를 기계처럼 반복하는 삶 속에서 나름의 작은 즐거움을 찾는 전환이 쉽지 않았어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서 출퇴근 길에 많이 울고 다녔어요. 살아있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런 고정적인 생활에서 약간 벗어나 있어서 그때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이유가 뭘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요. 뭘 또 죽은 것처럼 느껴졌는지, 엄연히 살아있었는데요. ‘9 to 6’ 생활을 벗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처럼 믿었던 것도 치기가 아니었나 싶죠.


나를 이룩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일을 찾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쨌든, 일을 하며 사는 삶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직업 안에서 분명 성취하고 보람을 느끼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에는 시를 가르치고 수업을 하면서 그 안에서 나름 각각의 인격이 주는 기쁨이 있어요.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로서의 기쁨이지 시를 가르치는 기쁨은 또 아니에요.


시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회의인가요?


‘가르쳐서 뭐 할 것이냐’에 가까워요. 어쨌든 자본주의가 받아들이지 않고 불편해하는 존재들인데, 계속해서 이 사람을 양산하는 게 학생들에게 좋은 일일까 생각하곤 해요. 사회를 계속해서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분명 좋은 일이죠. 하지만 이들에게 고단한 삶을 선물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시 잘 쓰는 애들 있으면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인생이 피곤할 거라고 얘기해요. 계속해서 직업적인 진로를 생각해라, 시만 좋다고 시만 쓰면 이 꼴이 난다, 경고도 하고요.


반면교사인가요. (웃음) 어린 친구들의 시는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확실히 있어요. 나이대가 주는 불안정함도 물론 있겠지만, 희로애락 중 하나의 감정에 안착하지 않고 부유하는 느낌이 있어요. 정서의 명징함이 없는 게 재미있어요. 더 미끈거리고 가볍고 깃털 같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한 감정에 오래 머물지 않아요.


시를 쓰거나 가르치지 않을 때는 뭘 하세요?


강아지 산책시키는 게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예요. 사람들이 개만 끼고 산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억울하지만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어딘가 갔다 오면 아주 오래 누워있어야 해요. 매일 산책하고 두시간 정도 누워있으면 거의 반나절이 지나 있거든요. 나머지는 일하는 시간이고요.


「개와 나의 위생적인 동거」에 등장하는 개죠?


정말 진심으로 쓴 몇 편 안 되는 시예요. 저는 좀 혐오의 감정에 잘 빠지는 사람이라서 싫어하는 게 너무 많아요. 길거리에서 침 뱉는 사람,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싫어요. 다 공해 같아요. 사람을 별로 좋아하는 성품이 아닌데 개를 산책하고 키우면서 모두와 화해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개는 쓰레기더미도, 노상방뇨한 벽도 오랫동안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요. 누가 침을 뱉건 담배꽁초를 버렸건 새로운 냄새면 재미있어 해요. 집에 돌아와서 저랑 안고 자고 뽀뽀도 하거든요. 결국 제가 지저분해 하던 풍경과 같이 같은 침대에서 한 이불 덮고 잠드는 거예요. 너무나 위생적인 마음으로 세상과 포옹하는 느낌이에요.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뭘 했을까요?


뭘 했을까요, 너무 궁금해요. 저는 계획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때그때 손쉽게 열리는 문으로 그냥 들어가는 사람이에요. 지금 상황으로만 생각해보자면, 동물을 곁에 두는 일을 했을 것 같아요. 애견 미용 같은 일이요.


예전 시집에서 ‘나’에 대해 많이 썼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의 ‘나’는 예전과 좀 다른 느낌이에요. 나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게 ‘미 제너레이션’인 세대의 특징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신을 고집하는 일의 피로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요. 취향이나 호오를 고정시켜 놓고 난 이런 건 좋아하지 않아,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하고 배제하기 쉽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늙은이 같지만, 부질없게 느껴지거든요. 나라는 고집스러움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내가 무엇이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나라는 효과가 세상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나는 나일 뿐이잖아요. 계속해서 변하고, 그 변화를 스스로 잘 감지하지도 못하는 ‘나’를 고집하는 게 너무 바보 같은 일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종국에 제 목표는 무아지경이 되고 싶어요. 나라는 울타리가 없어지고 내가 무엇도 될 수 있는 상태를 가장 원해요. 물론 못하기 때문에 이런 욕망을 갖는 거겠죠.


무아지경이 되려면 극에 달해야 하는데, 시를 써서 극에 이르려면 앞으로 60년 정도는 더 써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그래서 진짜 오래 살고 싶어요.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존경하는 나이 많은 시인 선생님이 한 분 계세요. 100세 넘은 어머니와 부인 병시중을 하면서 그분들의 손발이 되어주시는 거예요. 마지막까지 건강한 사람으로 남는 게 제일 슬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이 아프고 병든 것보다 끝까지 혼자 건강하다는 게 너무 숭고해 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최후의 무병 장수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내가 없는 상태라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그것도 지금의 생각인 것 같아요. 막상 닥치게 되면 싫어할 수도, 고단해 할 수도, 마땅한 것처럼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저 | 문학동네
언어와 세계의 흔들림 없는 경직성을 깨고, 생경하고 불가해한 순간을 생경하고 불가해하게,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해 가능한/사회가 공유한 언어체계로 그려내려 애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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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압도적인 죽음 앞에 나머지가 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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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으로 달아올랐던 어느 여름, 열아홉 살이었던 김해언은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당시 사건의 용의자 한만우와 신정준은 풀려나고 사건은 미제로 남지만 비극에 얽힌 사람들의 삶은 달라졌다. 해언의 동생 다언, 사건 당시 같은 학교에 다녔던 상희, 해언과 같은 반이었던 태림 등 애도되지 못한 죽음은 남은 자들을 계속해서 따라다닌다.


2016년 『안녕 주정뱅이』이후 권여선은 단편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수정ㆍ보완해 3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레몬』  을 세상에 내보였다.  『레몬』  속 등장인물들이 17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삶 자체가 유일한 희망이라는 깨달음을 얻듯이, 감당하지 못하는 비극이 레몬빛처럼 눈을 찌를 때, 독자들은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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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만들어진 소설


『오늘 뭐 먹지?』  이후 일 년 만에 소설이 나왔어요. 검은 바탕에 그려진 레몬이 강렬해요.


산문집과 소설은 서로 다른 진도로 쓰고 있었어요. 산문은 써놨던 걸 모아서 내고, 원래 단편집이 나올 예정이었다가 『레몬』이 먼저 나왔죠. 디자인 시안을 메일로 보내주셨는데 하얀 바탕에 레몬 하나, 검은 바탕에 레몬 하나가 왔어요. 실물로는 이렇게 예쁘게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책 내는 작가의 기쁨이죠. 책은 물성을 가지니까요.


제가 쓰긴 썼지만 제가 만든 건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물건이 주는 놀라움이 있죠.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고친 작품으로 들었어요. 기존 작품은 동명의 연극으로도 만들어졌죠?


연극을 보고 깜짝 놀랐죠.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시간이 다 섞인 채 진행되면서 보면 볼수록 낯설더라고요. 주인공이 되는 네 명의 화자 중 태림이 책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은 역할이었는데, 역할을 맡은 우정원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하시기도 했고, 태림이라는 인물이 너무 비극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소설을 수정하는 동안 계속 연극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개작할 때도 조금이라도 태림을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했어요.


연극을 보기 전에도 개작할 생각이었나요?


중편 그대로 단편집에 넣을까도 생각했는데, 단편집에 뭉텅이로 중편이 들어가 있으면 호흡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어요. 분량은 50~60매 정도 늘어나고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수준으로만 고쳤어요. 원래 썼던 감흥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작품을 마구 비틀 수가 없었어요. 최선을 다해 마감을 해버렸는데 다음에 또 하게 되면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기껏해야 토핑 정도를 추가할 수 있지 뼈대를 들어내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금방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죠.


소설로 창작된 이야기가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다시 연극에 영향을 받아 소설이 나오다니, 재밌어요.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가 계간지에 실린 뒤 출판이 되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출판이 됐다면 감흥이 아무리 와도 바꿀 수는 없을 텐데, 운 좋게 단행본으로 나오기 전에 연극으로 만들어져서 완전히 다른 방식의 작품으로 볼 수 있었어요.


한 편의 스릴러처럼 퍼즐을 맞춘다는 리뷰가 있었어요. 비밀이 하나 있고 뒤로 갈수록 비밀이 밝혀지죠. 장르 소설 같기도 해요.


장르 소설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장르야 그럴 텐데, 저로서는 워낙 살해나 죽음, 복수 등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쓰면서도 다른 느낌이었어요. 조금이라도 다르게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작가는 다 있거든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이야기를 짤 수 있을지 시도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장르적인 장치를 도입했었어요.


태림은 누군가한테 말하는 독백으로만 말하고, 상희 언니 관점에서는 해설자 느낌이 나요.


이렇게 훈련하다 보면 다른 분야로 조금은 익숙하게 쓸 수 있겠죠. 그저 열린 마음으로 조금씩 새로운 것들을 소설 안에 들이고 싶어요. 스스로 고인 물이 되면 싫증 나니까요.


“예전에는 내 속에서 쓰고 싶은 것을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요즘에는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쓴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독자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제가 쓸 걸 쓰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문득 제가 만약 독자라면 내 소설을 읽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독자 입장이 되어 보니 제 소설을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은 거예요. 작가와 독자가 교감하는 접점이 많은 글이 좋은 글이잖아요. 글을 쓰면서 저도 마음을 좀 열고, 나의 고민만이 아니라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장치 등 여러모로 시도해보고 싶어요. 힘이 달려도요.


소설 쓰기에도 체력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 특히 장편은 더욱이요.


무엇보다 뭉텅이 시간이 필요해요. 단편은 부스러기 시간이라도 짬을 내서 하면 어떻게든 모아지는데, 장편은 부스러기로는 안 되고 한 달이면 한 달, 소설만 구성해야 하는 시간이 있어요. 무엇이든 같이 하기는 어렵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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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노란색이 있었어요


악한 인물로 그려진 신정준은 소설 속에서 많이 드러나지 않아요.


작가가 인물의 언어를 구사하기 어려우면 그 인물을 은폐시킬 수밖에 없거든요. 개연성 떨어지는 언어를 억지로 만들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섣불리 가해자의 언어를 쓰면 상투적으로밖에 될 수 없어서, 그 언어를 제가 책임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해자가 어떤 사정으로 뭘 했는지 쓰기보다는 불행을 겪은 사람 위주로 이야기를 쓰고 싶기도 했고요.


『토우의 집』  에서 아이가 주인공이었다면, 『레몬』은 어른이 되기 직전의 청소년들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을 맞닥뜨려요.


『토우의 집』  에서 아이들은 가장 무고한 존재잖아요. 가장 죄가 없는 존재에게 벼락처럼 뭔가가 오는데… 인혁당 사건 때 어린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림 받고 폭력을 당했다고 하더라고요. 국가 폭력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아이를 생각하며 마음이 슬퍼졌는데, 『레몬』  도 마찬가지였어요. 꼭 세월호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에요. 그런데도 막 꽃피기 전의 아이들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떠난 아이도 그렇고 남은 아이도 그렇고요.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고등학생을 그린 것 같아요. 노란빛도 황현경 평론가가 평론을 써줘서야 알았거든요. 보니까 정말 곳곳에 노란색이 있는 거예요. 제목이 ‘레몬’으로 바뀐 것도 그 이후였고요.


2014년 이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마음에 노란빛을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작별이나 상실을 떠올리기만 해도 세월호를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게 아닐까요.


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태림은 계속 자신의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을 찾고, 반대로 다언은 신의 무지함을 이야기하죠.


종교와 같이 큰 철학적 주제를 담을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불행이 닥친 사람들을 보면 절대적인 존재에게 어떻게든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받는 것 같아요.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 왜라는 질문의 대상이 신이 되는 거죠.. 자기 자신의 불행과 비극을 묻고 답하는 양상을 보면 굳이 대비하려고 한 것 또한 아니었는데 다언과 태림의 대비가 드러나더라고요. 다언이 절대적인 무신론에 빠졌다고는 볼 수 없어요. 질문했으나 대답하지 않는다는 강한 원망이 있고, 다른 한쪽은 거의 맹신의 지경으로 가죠. 누구나 불행이 다가온 사람들은 신과 관계 맺는 양상이 다양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한편으로 태림은 시를 쓰면서 시마저도 종교처럼 믿게 돼요. 태림의 믿음은 절규나 비명에 가까웠어요.


자신은 평화를 얻었다고 강박적으로 외치는데 오히려 더 지옥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잖아요. 태림은 신을 접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게 아니라 미친 듯 신을 붙들고 있었던 상황이었죠. 그전에 다언이나 상희가 시를 쓴다고 할 때의 그 시와는 약간 다른 걸 거예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게 시라고 보면 태림의 표현과 다언의 표현도 다를 수 있고요. 각자 다른 경로로 인해 어떤 심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결말인 거죠.


다언이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179쪽)라고 말하지만, 막상 다언은 계속 죽음에 붙들려 있어요.


떠난 자는 선을 그어버렸는데 남은 자는 계속 손을 놓지 못해요. 죽은 자와 죽음 너머를 상상할 수 없고, 돌이킬 수도 납득할 수도 없으니까 붙들고 있는 거예요. 해언이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사람이 나머지 존재가 된 것처럼, 너무 압도적인 죽음 앞에서 우리는 나머지들이 될 수밖에 없어요. 다언의 말에 작품의 주제를 담은 건 아니고, 다언이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는 상황 자체를 그리고 싶었어요. 태림의 독백이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 다언도 잠언적인 말을 하죠. 자기가 한 복수로 인해 자기를 고립시켜야 하는 상황을 만든 채로 잠언 풍의 말을 하는 것. 그것이 제가 보고 싶었던 맥락인데 대부분 메시지를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잠언은 힘이 세서 그런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말이 나오면 대개 작가의 메시지처럼 받아들여지죠. 상희가 다언이 말하는 게 어딘가 비틀려 있다는 걸 목격하잖아요. 그 모습을 안쓰럽고 안타깝게 지켜보는 것 자체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누구도 치유 받거나 행복해지지 않았어요. 권선징악도 없고요. 신정준이 괴로워했다고만 나오죠.


그것도 사실 태림의 시각에서 그려져서 실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거죠. 냉혈한인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태림이 스스로 그렇게 봤을 수는 있을 거예요. 태림과 다언 삶 모두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고요.


다언의 복수는 죽음을 죽음으로 갚지 않고 삶으로 갚아요.


그렇게 받아들여 주길 바라고 썼어요. 끝내는 복수가 아니라 자기 삶이 끝날 때까지 데리고 가는 복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예쁜 아이라면 나중에 눈에 띄어서 TV라도 한 번 나오고 어디서든 밝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속편으로 나와도 좋을 것 같아요. 예빈이의 이후 삶에 대해서요.


그건 반응을 봐서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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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보다 울림


『안녕, 주정뱅이』후 이제는 술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레몬』에서는 정말 술 먹는 장면이 없더라고요.


요즘도 늘 말하고 다니고 있어요. 한만우 여동생과 다언이 맥주와 참외 먹는 장면이 『레몬』  에서는 제일 알코올 냄새가 나는데, 아무리 술 한 방울 쓰지 않겠다고 해 봤자 어떤 중요한 장면이 되면 그만큼이라도 술을 등장시켜야 하는 게 제 한계 같아요. 계란 후라이나 참외만 먹고 끝나도 되는데 저는 거기서 끝낼 수 없어요. (웃음)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삶의 반대는 평(平)인 것인가”(202쪽)라고 쓰셨어요.


평한 삶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데, 과하게 굴곡이 지거나 감당할 수 없을 만한 비극이 발생하면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게 평(平)한 일상이잖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유토피아 같은 마음이에요. 어느 순간 평한 상태여도 자신이 유토피아에서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잃고 나면 너무 소중해서 울게 되는 것. 불가능하기 때문에 갈망하지만 막상 존재하지는 않죠.


원래 작가의 말 없이 가려고 했어요. 출판사에서 소설 읽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독자에게 쓴 편지를 작가의 말로 싣게 됐어요. 제가 요새 평한 상태거든요. 이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사실은 평하고 싶은 마음과 평할 수 없어 생기는 의미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글이 나오게 된 거죠.


모순적이기도 해요. 소설은 평한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잖아요. 평평한 이야기는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삶이 다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거겠죠.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평한 삶이 꼭 좋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심리적으로 너무 잔잔하면 안되거든요. 그렇다고 일부러 마음속에 파도를 만들 수도 없고요. 작업하기에는 가장 좋은 조건인데, 과연 소설에도 좋은 조건인지는 모르겠어요.


다언이 삶에 대한 의미를 회의하듯, 의미 없는 삶 속에서 문학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의미라는 건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오늘 기자님과 제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무의미한 작업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흩어져 있는 구름을 어떤 순간 우리가 볼 때 양 떼가 되는 것처럼, 순간 보는 사람에 따라 만들어내는 거죠. 의미라는 말보다 저는 울림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커다란 감동의 물결이 아니라 살짝 흔들리는 정도요. 그 정도는 왜 그런지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마음에서 느끼는 게 있잖아요. 다언도 한만우의 삶을 보면서 느낀 게 있는데, 그게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한만우의 죽음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마음에 울림을 갖게 된 상태 같아요.


누군가 ‘읽으려고 하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의미를 찾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의미도 없을 거예요. 


맞아요. 내가 어떤 의도로 훌륭하게 썼기 때문에 이렇게 읽힐 수밖에 없어, 이런 건 없어요. 읽어주는 사람이 그걸 읽고 각자가 가져가는 무엇인가는 있겠죠. 저도 써놓은 걸 설명하라고 하면 못하겠어요. 제 속에서는 울림이 있고 의미가 만들어지니까 썼겠죠. 하지만 제가 쓴 대로 독자가 그대로 느끼란 법은 없어요.


책이 안 팔린다지만, 사람들은 꾸준하게 이야기를 찾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권여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하나요?


제 소설은 영화 <300>처럼 좁은 층이지만 대신 매니악한 300명 정도의 독자가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을 낼 때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바뀌다 보니까 독자분들 중에는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작품이 좀 더 독하고 섬뜩했으면 좋겠는데, 풀어진 것 같다고요. 아무래도 가장 결정적인 건 『안녕, 주정뱅이』  같아요. 평생에 가장 많이 판 책이었거든요. 지금 『안녕, 주정뱅이』  의 독자분들이 『레몬』  을 사주시는 것 같은데 또 반응이 갈리겠죠. 그렇게 독자들이 변한다는 건 자화자찬하자면 제가 변하고 있어서일 거예요. 조금씩이라도 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독자는 계속 변할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품이 나오게 될까요?


운 좋게도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듯 일 년에 단편 두세 편씩을 쓰고 있어서 2, 3년에 한 번은 단편집을 내고 있어요. 이번에 장편을 천천히 준비해보려고 해요. 글 쓸 분위기를 계속 만들고 있어요. 이번에는 또 어떻게 다르게, 해괴하게 써볼까 싶어요.


지금 쓰는 단편은 어떤 내용인가요?


은퇴생활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은퇴 이후를 매우 걱정하다 의외로 윤택한 노후를 보내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진 부부의 이야기예요. 어떤 면에서는 위선적이고 속물적이지만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부부요.

 


 

 

레몬권여선 저 | 창비
애도되지 못한 죽음이 어떤 파장을 남기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어가며 삶의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읽는 이를 이야기 한가운데로 순식간에 끌어당기는 놀라운 흡인력을 보여주며 장르적 쾌감마저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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