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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희 “이야기처럼 읽히는 에세이를 쓰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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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쪽. 제목은 「맥시팬티의 신세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일러둔다. “경고 : 이 글에는 ‘팬티’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합니다.” 이쯤 되면 풉, 터지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다. ‘아, 시작부터 웃기잖아!’

 

이야기는 이러하다. “팬티라도 편한 걸로 입자”는 생각으로 집어든 맥시팬티가 몸에 딱 맞고, 너무 편하고, 심지어 맵시까지 대단했다는 것. (게다가 일곱 장에 9900원이라니! 가성비도 뛰어나다.) 작가는 “나의 가장 못나고 누추한 부분들마저 지지받는 느낌”을 안겨준 팬티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맥시팬티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것.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를 읽었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수희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고, 어마무시하게 재밌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깔깔대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훅,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무언가와 마주친다. 어떤 문장, 생각, 마음 같은 것들. 이를테면, ‘동네 생활 달리기’를 즐기며 작가는 생각한다.

 

나는 늘 더 뛸 수 있을 것 같을 때, 한 바퀴 정도 더 뛰어도 될 것 같을 때 멈춘다. 어떤 이는 더 뛸 수 없을 것 같을 때 한 바퀴를 더 뛰어야 능력이 향상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나는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려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오래오래, 혼자서, 조금씩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 (53쪽)

 

에세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는 산책을 닮았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고 별다른 곳에 다다르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설렁설렁 걷는다. 평범한 나에게 벌어진 평범한 일들을 곱씹는다. 때로는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고, 어떤 생각들은 찬찬히 되짚어 가지런히 개켜둔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면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이고, 남은 시간을 새로 열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꼭 그러하다.

 

한수희 작가는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 『온전히 나답게』,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  을 썼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잡지사에서 일했으며, 매거진 <AROUND>에 책과 영화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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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편집한다는 것,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번 책은 작가님 특유의 유머 덕분에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괄호 안에 담긴 말들이 너무 재밌어요(웃음).


그렇게 봐주시면 다행이에요. 제가 조금 어수선한 편이라서 그런지(웃음), 글도 그런 같아서 걱정이 됐거든요. 글 쓸 때 약간 자기검열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이상한 쪽으로 가도 다 쓰는 편이에요. 그렇게 버릇이 들어 버렸어요. 그래서 괄호나 어수선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이런 걸 잘 받아들이시는 분도 계시고 아닌 분들도 계시고... 취향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이런 경쾌한 리듬, 분위기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저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너무 재밌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글이 나올 때도 됐는데’ 싶기도 했고요. 원래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작가들의 책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빌 브라이슨이라든지, 헬렌 필딩이라든지. 특히 미국이나 영국의 작가들은 어떤 주제의 글을 써도 유머를 살리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잖아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되는 일도 없는 세상 책 읽으면서라도 웃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웃음), 저는 유머가 있는 책이 좋아요. 김영민 교수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재밌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요. 저도 유머러스한 글을 좋아하다 보니까 책도 그렇게 나온 것 같아요.

 

「맥시팬티의 신세계」는 정말, 읽다가 빵 터졌어요(웃음).


그 글은 거의 마지막에 들어갔어요. 작년 초부터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2주에 두 편씩 편집자한테 보내드렸는데, 반응이 좋으면 ‘더 해볼까? 더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러다가 맥시팬티 이야기까지 나온 거죠(웃음). 저도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처음 보는 편집자였다면 이런 글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는 친해질 대로 친해져서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낸 거였어요. 사실 저는 그런 이야기로 책 한 권을 다 채울 수도 있는데, 초반에 눈치를 많이 봤던 거예요(웃음). 사실은 독자 분들이 맥시팬티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해주실 줄은 상상을 못했는데,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자존감까지 높여주는 팬티라니, 되게 궁금해지던데요(웃음)?


완전 추천해요, 진짜. 다시 태어난 기분, 안 입은 기분이에요(웃음).

 

이전 책들에서도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잖아요. 아무래도 에세이는 작가 개인을 많이 보여줄 수밖에 없고, 자기 검열의 욕구도 생길 텐데요. 어떻게 항상 솔직하실 수 있어요?


자기 검열이 더 어렵지 않나요(웃음). 내가 이런 인간인 걸 나도 알고, 우리 가족도 알고, 내 친구도 아는데, 그걸 꾸민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예를 들어서 공식적인 행사장에 갔을 때, 사실은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은데, 스테이크 썰면서 고상한 척하면 너무 힘들잖아요(웃음). 그런 걸 책 쓰는 기간 동안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 갑갑할 것 같아요. 제 성격이 본래 그런가 봐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를 잘 이해 못하는 편인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도 일종의 꾸밈일 수 있겠죠. 신경을 안 쓴다고 하면서도, 내 모습이 남에게 드러날 걸 다 알고서 행동하는 거잖아요.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봐도 구질구질하고 싫은 나의 모습까지 남한테 보여주지는 않는 거죠.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제 안에 있는 모습 중에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만한 것들만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마치 영화에서의 ‘편집’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사실 저도 영화 작업 중에 제일 재밌었던 게 편집이었거든요. 그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리듬감인데, 어떤 규칙이 있는 게 아니라, ‘여기에서는 조금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건 여기에서 끊어야겠다’ 생각하면서 정리해가는 부분들이 짜릿했어요. 그게 리듬감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쓸 때도 편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는데요. 쓸데없는 말을 두 번 반복한다거나, 횡설수설하다가 갑자기 원래 이야기로 돌아온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은 교정을 볼 때 그 부분에 대해서 편집자가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말하듯이 쓰는 스타일이라서 거기에 다 리듬이 있는 거거든요. 그게 편집이랑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자신을 보여주는 방식도 유사하잖아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감출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거죠.


그렇죠. 그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모든 걸 다 보여줄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랬을 때 너무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내 모든 걸 다른 사람이 받아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건 어린아이가 하는 행동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말씀하신 ‘편집’ 같은 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쁘게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분명 작가님만의 리듬이 있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점, 점 얘기로 돌아가자”라든지 “김치는… 김치는 버려야 한다”고 쓰시는 거죠. 그런 부분을 천편일률적인 편집으로 깎아냈다면, 고유의 맛이 없어졌을 거예요.


그래서 편집자와의 궁합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특히 그런 것 같고, 에세이의 경우에도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랑 성향이 굉장히 다른 분이랑 일을 했을 때 결과가 나빴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랬을 때 나올 수 있는 게 있고, 반대로 저랑 비슷한 분이랑 같이 일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게 또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되게 재밌는 지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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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숨의 길이’에 맞춰서 가는 거죠


얼마 전에 문화사회학자 엄기호가 쓴 『공부 공부』라는 책을 읽다가 나는 ‘숨의 길이’라는 표현을 발견했다. 제주의 해녀들이 물질을 나갈 때 절대로 잊으면 안 되는 것은 자기 숨의 길이다.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알아야,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아야 거친 바다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76~77쪽)

 

“쓸데없이 애쓰지 않는다. 내 한계를 받아들인다. 내 페이스를 유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잖아요. 왠지 힘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게 정답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더 많이 해야 될 수도 있고, 더 달려야 될 수도 있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에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되더라고요. ‘숨의 길이’가 길면 더 빨리 달려도 오랫동안 꾸준히 계속 할 수 있겠지만, 저는 굉장히 숨이 짧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길이를 억지로 늘일 수는 없잖아요. 그럴 때는 자기 숨의 길이에 맞춰서 가는 게 맞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숨의 길이’를 알게 되는 걸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예전에는 몰랐으니까요. 같은 일도 여러 번 경험을 하면 내가 어떤 부분에서 지치고 어떤 부분에서 모자른지, 조금씩 알게 되잖아요. 그렇지만 나이가 50, 60이 돼도 알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는 마흔이 넘은 사람이면 굉장히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진짜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냥 똑같은 상태로 시간이 흘러간 건데, 대신 경험치가 늘어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새로운 일이 닥쳤을 때 예전보다는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뿐이고요. 40대가 되었다고 사고의 폭이나 깊이가 굉장히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요. 똑같이 철없는데 나이만 계속 먹어가는 것 같아요(웃음).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그렇죠. 더 나이 들어서도 모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한 말을 나중에 다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거고요(웃음). 사실 지금 『온전히 나답게』 개정판을 만들면서 원고를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진짜 불태우고 싶었어요(웃음). 힘들게 고치고 있어요(웃음). 불과 2~3년 전에 나온 책인데도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도 어떻게 될지 모르죠.

 

사람마다 할 수 있는 만큼이 다르고 속도도 다르잖아요. 그런데 때로는 ‘내가 너무 천천히 적게 하고 있나? 더 빨리 많이 해야 하나?’ 불안하기도 하고, 죄책감이 들 때도 있어요.


제가 만난 분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단 한 분도 없으셨던 것 같아요. ‘나는 너무나 열심히 살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이제 멈추라고 해’라고 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 ‘내가 느린 것 아닐까, 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게 어디에서 만들어진 기준인지는 모르겠는데,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시간을 더 쪼개서 더 열심히 일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할 수 없더라고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살았을 때 망가지기 시작하는 걸 봤어요. 생활도 엉망이 되고, 가족에게 화를 내뿜고, 일도 엉망진창이 되고,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과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10년, 20년 더 일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천천히 가야지 빠르게 간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튜 끓이는 법」이라는 글이 실려 있죠. 제목 그대로 스튜를 끓이는 방법에 대한, 아주 사소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끝에서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건 확실하다”는 말로 매듭을 짓습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스타일, 메시지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제가 그런 이야기들을 읽는 걸 되게 좋아해요. 그냥 구구절절, 시시콜콜하게 청소하고 요리하는 이야기 같은 거요. 그런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우리를 둘러싼 외부의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별로 없잖아요. 지금 내 몸에서 종양이 자라나고 있을지, 갑자기 미사일이 날아올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날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들이 별로 없는데 그 사실을 점점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스튜를 끓이는 것처럼 사소한 것들은 내 손 안에서 움직이는 세계잖아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거죠. 거기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요. 동시에, 그게 너무 퇴행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퇴행이요?


세상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리고 나의 운명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시시콜콜한 데에 집착하면서 내 삶이 잘 굴러가고 있다고 믿는 게 거짓말 같은 일 아닌가 싶은 거죠.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서문에서 “거대한 것과 시시콜콜한 것을 동시에 바라보며 살고 싶다”고 쓴 것도 그래서예요. 하루하루의 자기 삶을 잘 살아나가는 것도 분명히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개인이 혼자서만 잘한다고 해서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요. 그런 퇴행은 하지 않아야 할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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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처럼 읽히는 에세이를 쓰고 싶었어요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 “나는 원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한다”예요. 공교롭게도 마지막 문장이 “이 책에 쓴 이야기들은 모두 그런 이야기들이다”인데요(웃음).


그러네요. 완벽한 대구를 이루네요(웃음).

 

한편으로는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도 괜찮을까?’ 싶으셨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 하셨나요?


당연히 생각하죠. ‘종이 낭비다, 자연 파괴범이다’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셨어요.


처음에는 그 불안감이 굉장히 컸어요. 누가 읽겠어,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책이 나올 때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내가 영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그냥 믿는 것 같아요. 저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밑줄 그을 문장으로 가득 찬 진지한 책들을 읽을 때도 있지만, 시시콜콜하고 가벼우면서도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읽을 때 더 위안을 받거나 힘이 생기는 경험을 했거든요. 그런 걸 믿고 그냥 가는 거죠.

 

실제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은 1인이 여기 있습니다(웃음).


다른 사람이 망가지는 모습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들이 힘이 되기도 하잖아요. 살다 보면 굉장히 경직돼서 살게 되니까요. 이 길이 아니면 안 될 것 같고,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다가도 시시콜콜하고 가볍고, 때로는 다른 사람이 망가지는 이야기를 봤을 때 환기가 되는 측면이 있잖아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데, 나는 왜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고 살았을까’ 싶은 거죠. 이 책이 그런 책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고,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맞아요. 책에 담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힘을 얻은 이유 중에 하나가 그거였어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은 거죠.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만 이런가?’ 하고 생각하는 게 그냥 하는 말 같지만, 굉장히 구렁텅이에 빠질 방아쇠 같은 말일 수도 있거든요.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말들을 많이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에필로그에 “이번 책에서는 좀 헐거워지고 싶었다”고 쓰셨어요. 바람대로 된 것 같으세요?


네. 예전 책에 비해서는 힘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사실은 걱정도 됐고 강박도 있었어요. 몇 개의 문단을 읽었다면 그 안에는 꼭 밑줄 그을 만한 문장들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처음에 책을 쓸 때 ‘결말이 꼭 있어야 된다, 허망하게 끝내지 마라’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던 게 굉장히 오래 가더라고요. 그게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깨달은 게 얼마 되지 않았어요. 사실 헐겁게 쓰는 게 저한테는 되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랬다가 독자들이 ‘뭐야, 볼 것도 없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 정도가 아니면서도, 독자들에게 막 무언가를 주려고 하지 않는 책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알아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다행히 좋은 분들과 작업을 하다 보니 저도 용기를 많이 얻어서 ‘이렇게 써도 되겠다, 오히려 이렇게 썼을 때 읽는 분들이 부담감을 갖지 않고 편안하게 느끼시지 않을까’ 싶었고요.

 

‘예전 책들보다 더 헐거워지고 싶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뭐였나요?


그 책들은 굉장히 빡빡했어요.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 독자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너무 많은 생각들이나 주장들을 집어넣은 거죠. 지금 보면 ‘자기가 뭐라고 남을 가르치고 난리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웃음). 그게 저 자신한테도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책은, 에세이이지만, 각각의 글이 하나의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야기의 힘이 되게 크잖아요. 굳이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잘 되어 있으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생각들이 읽는 사람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잖아요. 그래서 이야기처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건 내 이야기이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렇기 위해서는 너무 빡빡하지 않게 쓰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한수희 저/서평화 그림 | 휴머니스트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꾸준히 해나가는 것,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오래오래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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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표정훈 “독서는 원래 산만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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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타인이 읽는 책을 엿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집의 표지가 빼꼼히 삐져나온 가방의 한 귀퉁이를 보거나, 친구에게 빌린 책에서 밑줄 친 문장을 발견할 때면 왠지 그 사람과 내가 흠뻑 가까워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출판평론가이자 2만여 권의 책을 소유한 ‘탐서주의자’ 표정훈 작가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명화 속 인물들이 읽고 있는 책에 호기심을 품은 것이다.

 

그는 책이 등장하는 그림을 보며 늘 ‘그림 속 저 책은 무슨 책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고 한다.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상상은 그림이 그려진 역사와 화가의 삶을 관통하며 책을 추정해나간다. 빈틈 없는 근거로 묘한 설득력을 지니는 표정훈 작가의 상상을 통해 책의 정체가 드러나면, 그림은 어느새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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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들어있는 책 이야기


단독 저서로는 6년만의 신작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다른 작가들 책의 서평 쓰고, 칼럼 쓰고, 방송에서 책 소개하면서 출판평론가라는 직함으로 계속 활동하며 지냈어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을 출간한 뒤에도 많은 분들이 여전히 ‘출판평론가 표정훈’이라고 소개를 해주시는데, 이제는 작가로 불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웃음). 부끄럽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작가 표정훈으로 기억되었으면 해요.

 

3년 전, 담당 편집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필이 시작된 책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림 속 저 책은 무슨 책일까?’라는 궁금증을 파헤쳐가는 기획이 흥미롭더라고요.


2000년대 초중반에 <중앙일보>에 ‘그림 속 책’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어요. 원고지 2.5매 분량의 아주 짧은 칼럼을 20회 정도 연재했는데, 그 칼럼의 주제가 이 책의 기획이 되었어요. 책이 등장하는 그림이 굉장히 많은데 그 안에 있는 책이 과연 무엇일까 상상하는 내용의 칼럼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이런 책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3년 전, 편집자님을 만나서 이러한 이야기를 꺼냈고 당시 썼던 칼럼을 보여드렸더니 흔쾌히 한번 해보자고 하셔서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죠.

 

초고는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쳤다고요.


제 성향과 취향대로 샘플 원고를 써서 편집자님께 보여드렸는데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더 많이 담아서 다시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책에 지식을 많이 담으려고 하는 강박이 있나 봐요. 쓰고 나니 역사교양서가 되어버린 거예요(웃음). 처음에는 제 생각과 개성을 담아 쓰는 게 처음에는 굉장히 낯설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편해지더라고요. 이 책은 쉽고 편하게 독자에게 말을 걸 듯 쓴 첫 번째 책이라 제게 더 의미가 있어요. 그동안은 제 글쓰기의 눈높이가 독자보다 위에 있었던 것 같아요. 자꾸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하고, 더 많은 지식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서 같은 눈높이에서 독자와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죠. 역시 좋은 편집자를 만나면 책이 더 새롭게 나온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작가 소개에서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하기, 이야기에서 그림을 상상하기’가 오랜 취미라고 했어요.


그림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외의 유명 미술관을 자주 가고 했던 것은 아니고요. 미술책을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이 많아요. 제가 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보니, 많이 버리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미술책은 버리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왠지 미술 관련 책을 버리면 책만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그림도 버리는 것 같아서 아까워요(웃음). 그래서 미술책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이 화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 속 인물은 어떤 상태이고 왜 여기에 있을까, 그럼 그가 읽고 있는 책은 도대체 뭘까’ 하는 상상을 하고 근거를 찾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어요.

 

 

상상의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들이 있어요

 


귀스타브 쿠르베- 보들레르의 초상.jpg

            <보들레르의 초상>, 귀스타브 쿠르베, 1847년경, 캔버스에 유채
              53?61cm, 프랑스 파브르미술관

 

 

집필 과정이 궁금해요. 그저 그림을 보고 어떤 책일지 상상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림이 그려진 시대, 화가의 사연, 당대 출판문화 등의 정보가 가지처럼 뻗어나간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단순한 상상이라기 보다는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이야기를 완성해나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지역을 찾아요. 그리고 그 시기 즈음에 화제가 되었거나 많이 읽혔던 책들을 추리고, 그 책이 그림 속에서 묘사될만한 연결고리는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는 과정이 이루어졌어요. 그 연결고리는 화가의 삶, 그림 속 인물의 삶 등이 힌트가 될 수 있어요. 그러한 단서들을 모아서 하나의 상상을 완성해나가는 작업이었죠.


책에 나오는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보들레르의 초상’의 경우를 예로 들면 먼저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각 인물들의 사연을 찾아요. 그 과정에서 쿠르베가 보드레르와 친하게 지냈고, 보들레르가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쿠르베의 화실을 도피처로 삼았단 기록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그림의 배경을 쿠르베의 화실일 거라고 추정했죠. 그런데 그 연도 즈음에 보들레르가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에 매료돼 1860년대 중반까지 그의 작품을 번역했다는 자료가 있는 거예요. 그럼 그림 속에서 보들레르가 보고 있는 책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집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들』 중 한 권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웃음).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 하녀.jpg

                                           <하녀>,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 1910년, 캔버스에 유채
                                              75.6?64cm,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

 

 

‘갈 수 없는 나라(110쪽)’에서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의 그림 속 하녀가 읽고 있는 책이 조선에 대한 이야기라는 설정이 재미있더라고요. 이 작품에서는 그림 속 소품이 상상의 힌트가 되었던 건가요?


맞아요. 그림 속에 청화백자, 기모노를 입은 여인, 도자기 등 동아시아의 물건들이 놓여 있잖아요. 또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이 보스턴에 살던 화가이고, 하녀가 있다는 건 무척 부유한 집일 거라는 게 또 다른 단서였죠. 그래서 ‘동아시아에 대한 책이 아닐까’라고 가정했어요. 여기까지 오면 이제 어떤 책인지 확정하는 것이 문제인데, 조선에 대한 내용을 다룬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일 거라 쓴 건 완전한 상상이었어요(웃음). 예전에 읽었던 책이었는데 빨래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었거든요. 빨래는 하녀에게 있어서도 아주 중요하고 힘든 일 중 하나잖아요. 그래서 그 책과 그림을 연결 지어 보았습니다. 단서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쓰면서도 참 기분이 좋았어요.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네요. 맞아떨어지는 단서들을 찾을 때마다 쾌감이 엄청났겠어요.


처음 그림을 볼 땐 참 막연하고 막막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단서를 찾고, 힌트를 얻어 자료를 추적해나가다 보면 ‘혹시 이런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의 실마리가 풀리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렇게 심증으로 굳어지다가 ’맞아 이걸 거야‘라고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확정하게 되면 쾌감이 느껴지죠. 아무리 상상을 바탕으로 했다고 할지라도 근거가 있어야 설득력이 생기니까요. 책을 쓰면서 친분 있는 미술사 선생님께 이런 기획으로 집필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저를 격려하시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책을 쓰지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학자의 입장에서는 확증이 되지 않은 내용을 발표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어 글을 써내려갔습니다(웃음). 저는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으로 이야기를 추정해볼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요.

 

총 38점의 그림이 실렸는데요. 선정 기준이 무엇인가요?


책이 등장하는 그림들 중, 책과 그림을 가장 그럴듯하게 연결 지을 수 있는 것 위주로 선정을 했어요. 이야기가 풍부한 그림, 화가의 사연이나 그림 속 인물의 사연이 깊이 와닿아서 전할 내용이 많은 것들이요.

 

2부 ‘그녀만의 방’을 한 파트로 여성의 이야기를 따로 구성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책이 등장하거나 독서 장면을 묘사한 그림 중, 여성이 책을 읽는 풍경을 그린 게 굉장히 많아요. 인류 역사에서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게 문자를 해독하고 스스로 창작을 하게 된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잖아요. 글쓰기와 책 읽기에도 위계가 있었던 거죠. 남성, 귀족, 부유한 사람, 지식인만이 글을 쓰고 책을 읽었고, 여성에게는 그게 허용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는데 근대 이후, 이러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면서 여성이 책을 읽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죠. 그래서 아예 한 파트를 할애해 여성의 이야기를 다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상상의 시작은 ‘그림 속 저 책은 어떤 책일까?’라는 궁금증이었는데요. 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책은 명확히 어떤 책인지 알아볼 수 있게 그려진 게 드문 것인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에 실린 그림에서도 책 제목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반 고흐의 ‘석고상, 장미꽃, 소설 두 권이 있는 정물’뿐이라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맞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화가들은 책이라는 텍스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그림도 텍스트라고 생각하거든요. 화가는 기본적으로 이미지라는 텍스트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책 또한 자신의 작품을 이루는 이미지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겠죠. 반면 저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미지 텍스트에 있는 문자 텍스트를 궁금해 하는 사람인 거고요(웃음).

 

 

존 프레더릭 피토- 버려진 귀중한 것들.jpg

            <버려진 귀중한 것들>, 존 프레더릭 피토, 1904년경, 캔버스에 유채
              55.88?101.6cm, 미국 스미스칼리지 미술관

 

 

도무지 이야기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그림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 실린 그림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데요. ‘존 프레더릭 피토’의 ‘버려진 귀중한 것들’이에요. 책이 워낙 여러 권 그려져 있어서 보는 순간 무슨 책들일지 상상하기가 어려웠어요. 물론 시기를 추정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억지스러울 것 같아서 포기했어요. 이 그림은 제가 아는 한 책을 묘사한 그림 중, 책이 가장 다양하게 그려진 그림일 거예요. 또 제목이 ‘버려진 귀중한 것들’이잖아요. 좀 서글픈 이야기일 수 있지만, 책은 언젠가 결국 버려지거든요. 그런 책의 운명을 나타낸 거 같아서 너무 좋았는데, 막상 이야기를 구성하려니 막막한 거예요. 그래서 어떤 책들인지 확정하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책의 최종 운명에 관한 내용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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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벌레>, 카를 슈피츠베크, 1850년, 캔버스에 유채
                                        49.5?26.8cm, 독일 게오르크샤퍼박물관

 


글을 쓰고 나서 더 좋아진 그림이 있다면요?


카를 슈피츠베크의 ‘책벌레’라는 작품이요. 전부터 좋아하긴 했는데 글을 쓰면서 그림 속 노인에게 너무 빠져들게 됐어요. 이 그림은 사실 슈피츠베크가 노인을 조롱하는 의미로 그린 거예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세상과 담을 쌓고 전통적인 이야기나 책에만 빠져있는 사람을 조롱하는 작품이었는데, 노인의 입장에서 상상하다 보니 그림이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노인이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차단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책을 읽으며 그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부러웠어요. 지금은 이 그림을 보면서 ‘저 노인 되게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작가님에게 책과 그림은 각각 어떤 의미인가요?


그림은 즐거움이고요. 책은 진지함이에요. 이렇게 나누어 이야기하면 그림을 더 좋아하는 거라고 느껴지실 텐데, 꼭 그런 것은 아니고요. 만약 누가 제게 “그림과 소설 중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저는 소설을 선택할 거예요. 왜냐면 그림은 화집이나 이미지 파일로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원화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원화가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하잖아요. 하지만 소설은 언제 어디서든 책을 펼쳐 볼 수 있죠.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제게 책은 넷플릭스고 그림은 오직 영화관에서만 봐야 하는 영상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책이나 소설을 택하겠지만 내심 속으로는 그림을 보는 것이 더 즐겁죠(웃음). 그림은 나에게 다가오는 반면, 책은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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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더 다가가는 책 읽기


2만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계시다고요. 작가님도 분명 읽지 않은 채 가지고만 있는 책이 있겠죠(웃음)?


엄청나게 많죠(웃음). 그래서 저는 책을 ‘본다’와 ‘읽다’를 구분해요. 표지를 보고, 서문과 목차 정도를 읽었으면 책을 본 거고요, 내용 중 3분의 1 정도 봤다면 읽은 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책을 읽는다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는 걸 떠올리잖아요. 물론 그게 기본이긴 하지만, 세상에 있는 수많은 책 중 그렇게 모든 내용을 정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국 책은 보는 게 중요한 거죠.

 

‘독서 가운데 뜻밖에 보람과 유익이 큰 독서는 바로 ’표지 독서‘다(31쪽)’라는 문구가 생각나네요. 이 부분에서 위안을 느꼈다는 독자들이 많더라고요.


표지에는 제목, 저자 정보, 출판사 등이 쓰여 있고 책의 뒷 표지에는 간단하게나마 그 책의 내용이 인상적으로 소개돼 있어요. 저는 이것만 읽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더 나아가면 ‘책등 독서’가 있는데요. 서가 앞에 서서 꽂혀있는 책의 등을 쓱 한번 읽어보는 거예요. 꼼꼼하게 한 권을 다 읽는 건 그저 독서의 한 부분일 뿐이니까요.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이 한 말 중에 ‘책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건 어려울지라도, 책과 가벼운 인사 정도는 반드시 하고 지낼 일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독서에서는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단 책과 만나서 친숙해지고 인연이 생기면 그 다음엔 깊이 들어가 볼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독서 관련 강연을 하러 가면 많은 분이 “저는 책을 꼼꼼히 읽기가 힘든데 독서력이 떨어지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러면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 독서는 원래 산만한 거다”라고 대답하거든요. 책을 읽을 땐 누구나 딴생각을 하기도 하고, ‘앞부분이 무슨 내용이었지?’라며 되돌아가 읽어보기도 하는 등 뇌를 계속 움직여요. 저는 독자는 ‘주의 깊은 독자’가 아니라 ‘산만한 독자’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인가요?


재즈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이 한 인터뷰에서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대요. “내가 들어서 좋은 음악이 좋아하는 음악입니다.”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지금 나의 상황에 꼭 맞는 책, 지금의 나에게 좋은 책이 결국 좋은 책 아닐까요. 그러니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처지나 상황, 목표 등에 따라 매번 좋은 책의 조건은 달라지겠죠. 그렇게 보면 선물 중에 가장 안 좋은 게 책이에요. 아무리 상대방의 생각과 처지를 아는 것 같아도, 실제로 그 사람의 마음을 100% 알아차릴 순 없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가장 좋은 선물도 책일 수 있어요. 선물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친한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할 때, 포스트잇에 사인을 하고 메시지를 써서 붙여드릴 때가 많아요. 제 책의 운명은 책을 받은 분께 달렸으니, 부담 없이 보시라는 뜻에서요(웃음).

 

책을 굉장히 많이 읽으시잖아요. 종이책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50세가 넘었기 때문에, 제가 종이책에 대해 가지는 감수성과 생각은 젊은 세대와 확연히 다를 거예요. 그래서 감히 예언이나 예측을 할 수는 없지만, 기대 섞인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종이책의 비중이 쉽게 줄어들거나 쇠락하진 않으리라 생각해요. 책은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고, 책장을 넘길 때 소리가 나잖아요. 오감으로 읽는 거죠. 하지만 디지털 매체는 눈과 뇌로만 읽어요. 예를 들어 어느 따뜻한 봄날에 카페에 앉아 어떤 책을 읽었다고 하면, 우리는 단순히 책의 내용만 읽은 게 아니라 봄날, 그 카페에서의 추억을 갖게 돼요. 책의 이러한 물성에서 비롯되는 몸의 기억이 가지는 가치가 결코 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이번 책에는 그림에 대한 작가님의 상상을 뒷받침하는 역사, 예술사 등의 내용이 많이 녹아 있어서 읽으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텐데요. 이 책을 좀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만한 힌트가 될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책을 읽어본 한 지인께서 “이 책은 쉬운 데 어렵기도 하다”는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어떤 부분에선 어려운데, 그래서 어려운 책인가 싶으면 또 어떤 부분은 쉽게 풀리기도 한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정확하게 잘 봤다”고 했어요(웃음). 한걸음, 혹은 반걸음만 깊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림 속에 있는 이 책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상상하고 글로 풀어낸 것은 제가 그림 속으로 한걸음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잖아요. 이건 그림이 저에게 다가온 게 아니라 제가 능동적으로 다가간 거죠. 이처럼 책 속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 본다고 생각하면서 읽어주신다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실 거라 생각해요. 다만 다음에 또 책을 쓴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웃음).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있으세요?


출판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작가와 독자를 만나왔는데, 사람들은 책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은 수험서나 학습서, 학과 교재로도 충분하죠. 오히려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나에게 익숙한 것, 내가 그동안 느껴온 것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다른 언어로 공감해주길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로 나를 가르치고, 배울 게 많은 책보다 저자와 공감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잖아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좀 더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넬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의 책이길 바라나요?


이 책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 스스로 평가할 순 없지만 저는 다른 책을 찾아 읽게 만드는 책이라면 좋은 책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래 좋은 책은 하이퍼링크라고 하잖아요. 책에 그물이 있는 거죠.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에 인용되고 소개된 책이 많은데, 그 책들을 한 번 읽어볼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도 좋겠고요. 꼭 제가 소개한 책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다른 그림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성공일 것 같아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표정훈 저 | 한겨레출판
시대의 흐름, 역사와 문화, 예술의 반영, 동시에 책과 그림을 논하는 인문교양에세이로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을 지켜줄 책이다. 읽는 자들이 들려주는 ‘읽는 기쁨’이 독자에게 행복의 충격으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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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내게는 질문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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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4번째 장편 소설  『사하맨션』 이 출간됐다.  『82년생 김지영』  (2016년 10월 출간) 이후 3년만의 신작.  『사하맨션』은 조남주가 7년 동안 다듬고 다듬어 완성한 소설이다.  『82년생 김지영』이 완성된 직후 편집자는 조남주에게 “다음 작품 하시죠”라고 제안했다. 이때 조남주가 조심스레 꺼내 놓았던 소설이  『사하맨션』이다. 국가 시스템 ‘밖에’ 놓인 난민들의 공동체를 그린 소설. 배경은 가상이지만 ‘사하’라 불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 불안은 지금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것들과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105만 부, 일본에서 13만 부가 팔린  『82년생 김지영』  이후의 첫 장편. 독자들과 출판계는 조남주의 변신, 혹은 꾸준함을 기대하고 있었다. 조남주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2012년 3월이었다. 쓰고 고치는 7년 동안 나를 비롯해 나를 둘러싼 가깝고 먼 세상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며, “『사하맨션』 이 어떻게 읽힐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내가 소설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가 먼저였다”고 밝혔다.

 

5월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조남주 작가는 “간담회 자리가 무척 긴장된다”고 말했지만 조금은 여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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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을 담느냐, 그것이 내게 더 중요하다

 

독자들이 많이 기다렸습니다.  『사하맨션』을 출간한 소감이 어떤가요?


많이 긴장이 됩니다. 소설을 쓰고 처음으로 내보이는 자리라서, 어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솔직하게 잘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목이 독특합니다. ‘사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러시아연방에 소속돼 있는 사하(Sakha) 공화국에서 따왔습니다. 모티프를 사하공화국에서 가져온 건 아니고요. 맨션의 이름을 소설을 쓸 때부터 계속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초원 아파트, 상그릴라 아파트 같은 이름도 있었고요. 사하공화국은 인간이 사는 지역 중에서 최저 기온을 기록한 지역이에요. 최저 기온은 영하 70도까지 내려가고 최고 기온은 30도가 넘습니다. 기온차가 100도가 되는 지역이죠. 반면에 전세계 다이아몬드 매장량의 절반 정도를 보유한 곳으로 짐작되는 곳이에요. 소설의 주제와 상징적으로 어울릴 것 같았어요.

 

『82년생 김지영』보다 먼저 쓰기 시작한 작품이라고요.


초고를 쓰기 시작한 게 2012년 3월이에요.  『82년생 김지영』은 제 나름대로 주제를 잡고 논리적으로 인물들을 설정해서 썼다면, 『사하맨션』은 그때그때 가지게 된 질문들을 담은 소설이에요. 『82년생 김지영』이 밑그림을 다 그려놓고 구석부터 차분하게 색칠한 작품이라면 『사하맨션』은 계속 덧쓰고 지우면서 쓴 소설이라 마지막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어요. 계획하지 않고 쓴 소설에 가까운 것 같아요. 

 

변화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도 있었나요?


그보다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어요. 이 소설은 제게 오답 노트 같은 느낌이에요.

 

이번 작품의 배경은 가상의 공간입니다. 리얼리즘이 강했던 전작과 비교하면 SF적인 요소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사하맨션』에 등장하는 과학, 의학 기술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에는 없지만 이 소설을 SF라고 생각하며 쓰진 않았어요. SF영화에서 많이 다루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있지만, 미래 사회를 상상하며 쓴 소설은 아니에요.  『82년생 김지영』 도 르포나 에세이 같다고 말하신 분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읽히느냐 보다 어떤 내용을 담느냐가 제겐 더 중요했어요.

 

『사하맨션』  을 쓰면서 자주 한 생각이 있나요?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런 질문을 세상에 던지고 싶고, 사람들이 이 질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늘 궁금해요. 이 마음으로부터 글을 쓰게 되고요. 많은 작가가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데, 저는 읽히는 재미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소설에는 밀입국자, 아이,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해요.


처음 이 소설을 쓸 때 ‘과연 이 사회가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가, 그들이 기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해주고 있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2012년부터 한국 사회가 세월호, 메르스, 정권 교체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퇴보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럼에도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을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특별히 애정을 갖고 쓴 인물이 있었나요?


‘우미’라는 인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우미는 체격이 크고 운동 신경이 좋은 친구예요. 제게는 이런 인물에 로망이 있어서 애정을 갖고 본 인물이에요. 또  『사하맨션』에는 아이를 키우는 할머니 이야기가 연달아 나와요. 한 공동체 안에서 여성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의지하고 연대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우리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은 보육 문제를 할머니들이 대신해주고 있는 상황을 담고 싶었어요. 노년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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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줄거리 살펴 보기  

 

21세기의 언어로 그린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두 12장으로 구성된 소설의 주인공은 한 사람만이 아니다. 살인자가 되어 사하맨션에 찾아든 남매가 중심에 있지만 30년 동안 맨션에 세 들어 사는 인생들이 콜라주처럼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추락사를 자살로 둔갑시킨 사장을 죽인 도경과 그 누나, 남매처럼 10년 전 국경을 넘었다는 관리실 영감, 본국에서 낙태 시술을 하다 사고가 발생해 도망쳐 온 꽃님이 할머니,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이 없었던 사라, L2로 태어났지만 보육사의 꿈을 좇았던 은진…… 사하맨션 입주자들의 면면은 그들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고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가 마주한 차별과 혐오의 현상을 돌아보게 한다.”(김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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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소설을 쓰는 엄마’라는 정체성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만 13만 부가 팔렸고 대만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18개국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독자들을 만나기도 하셨는데요.

 

올해 2월에 일본에 다녀왔어요. 일본 방송사에서 한국으로 취재를 오기도 했는데, 일본 여성 독자들이 한국 여성 독자들과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걸 크게 체감했어요. 또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82년생 김지영』 이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힌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서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82년생 김지영』  의 성공으로 ‘페미니즘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에 부담은 없는지요.


부담감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동시에 상관 없다는 마음도 있어요. 결론적으론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는 입장이에요. 제가 지금 관심이 가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비중이 크니까요. 하지만 ‘페미니즘 작가’라는 부담감 이면에 ‘페미니즘 소설을 쓰는 엄마’라는 사실에 관해서는 여러 생각이 들어요. 요즘 청소년 문화를 보면 굉장히 상반된 의견을 가진 친구들이 충돌하는데, 만약 제 아이가 “우리 엄마가  『82년생 김지영』  을 쓴 작가”라고 말했을 때, 일상생활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런 생각은 솔직히 하게 돼요.

 

후속작이 궁금합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청소년 세대에 관심이 생기면서 쓰게 된 소설이에요. 청소년 세대를 위한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부모로서, 부모 세대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미보다 그 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커요.

 

『사하맨션』을 읽어줬으면 하는, 희망하는 독자층이 있나요?


글쎄요. 『82년생 김지영』  이 나오고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 의견을 덧대주시면서 소설이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쾌감 같은 게 있었어요. 『사하맨션』 을 읽고 ‘어떤 생각을 바꿔주세요’ 같은 바람은 당연히 없어요. 제 생각과 경험, 지식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어떤 의견을 보태주심으로 소설 밖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하맨션조남주 저 | 민음사
“신자유주의 디스토피아의 현재와 미래, 삶의 진상(眞相)과 이상(理想)을 동시에 가리켜”(신샛별 문학평론가) 보이는 이 작품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공존시키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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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 “노래와 랩은 수단, 핵심은 나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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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프리티 랩스타3>에서 래퍼로 대중에 짧은 첫선을 보인 케이시는 발라드 트랙 '그때가 좋았어'가 음원 차트 순위권에 입성하며 2019년 스테디셀러 아티스트가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어색한 모습과는 달리 최근 몇 년간 다수의 드라마 OST와 솔로 싱글을 통해 의외의 깊은 감성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왔기에, 케이시의 성공을 '준비된 성공'이라 평해도 이의는 없을 것이다. 날씨 좋은 5월, 홍대로 찾아온 케이시는 '성장하는 모습을 음악으로 보여드리겠다'며 수줍고도 당찬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때가 좋았어'의 성공 이후 바빠지지 않았나. 최근의 하루 일과는.


대학가 축제, 봄 축제 등 행사 시즌이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준비하고 바로 공연을 하러 간다. 먼 지방에 다녀오는 경우엔 일정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에는 겁이 많이 났다. 대학 축제는 밝은 분위기라 흥을 띄워야 하는데, 내 노래는 발라드가 많아서 나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고 호응도 잘해주신다. 다섯 여섯 곡 정도 부르고, 앵콜도 많이 요청해주신다. '그때가 좋았어'는 전주만 들어도 호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언프리티 랩스타 3>이후 다양한 활동을 해왔지만 비교적 짧은 기간에 큰 주목을 받았다.


사실 얼떨떨하다. 늘 꾸준히 음원을 내왔고 활동하던 터에 '그때가 좋았어'가 확 떠오르니까 '우린 하던 대로 했는데?'라는 생각도 들고, 지금까지 한 노력이 이제 빛을 발하나 싶어서 정말 감사하다.

 

첫 싱글 발매가 2015년 8월 25일이니 3~4년만에 반응이 온 셈이다. 무명 시절 힘들지는 않았나.


오히려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고맙고 행복했다. 처음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고, 음악을 하기까지의 과정도 힘들었기에 시작하고 나서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었고 애초에 힘들거나 지칠 틈을 두지 않았다. 버스킹 공연도 자주 하고, 작은 공연과 유튜브 커버, 음원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했다. 아무래도 작곡가 분들이 모여 있는 회사인지라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모님은 어떤 이유에서 가수를 반대하셨나.


아무래도 모든 부모님들이 그런 마음이지 않나 싶다.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시는 것도 있고, 가수라는 직업이 대중 앞에 나서서 평가를 받으니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을까 걱정도 많이 하셨다. 위험한 거 하지 말고 공부 쪽으로 가라는 마음이셨을 거다. 음악 하기 전까지는 정말 말 잘 듣는 예쁜 딸이었는데, 목소리 높여 '나는 음악 할 거야'라고 뜻을 전하니 굉장히 놀라셨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지금 내가 음악하며 행복해하시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열어주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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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언급했으나 케이시를 대중에게 처음 알린 것은 엠넷의 여성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3>다.


<언프리티 랩스타3>는 래퍼로 완성되어 나간 건 아니었다. 랩과 노래를 병행하면서 주위에 도움 받을 래퍼가 없고 영상으로 찾아 보는 데 한계를 느꼈다. '우물 안 개구리'랄까? 회사가 시켜서 나간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나간 것이다. 기회가 생겼을 때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기로 결정했다.

 

미팅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라 정말 여러 번 봤다. 스스로 많은 준비를 하면서 '랩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팅이지만 거의 오디션을 준비하는 수준이었다.

 

<언프리티 랩스타3>에서 케이시가 배운 것은.


처음으로 현장감을 배우게 됐다. 혼자 음악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비트, BPM과 주제로만 랩을 썼는데 경연 프로그램은 무작위로 주제가 정해지다 보니 다시 처음부터 준비해야 하고 어려운 점이 많았다. 주위 여성 래퍼 분들이 랩을 하는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그때가 좋았어'와 '진심이 담긴 노래' 모두 같은 회사 소속 조영수의 작품이다. 조영수가 케이시에게서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면 그건 무엇일까.


작곡은 조영수 선생님이, 작사는 내가 했다. 조영수 선생님의 곡을 들으면 메시지가 그려지고 이미지가 나온다. 나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선생님께서 음악을 하고자 하는 열정이나 목소리, 감정 표현을 특별하게 봐주신 것 같다. 데뷔 후에도 꾸준히 연습하고 레슨을 받으며 노력했다.

 

본인이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 발라드는 일정 수준 가창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장르다. '그때가 좋았어'에서 케이시가 생각하는 본인의 장점은.


'그때가 좋았어'에서 보여준 나의 장점은 감정 표현이다. 이 곡의 포인트는 호흡이다. 노래하기 전 들이마시는 호흡에도 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숨소리에 많이 신경을 썼다. 다이나믹은 부족할 수 있지만 호흡에 신경써서 들어주셨으면 한다. 테이크를 짧게 가지 않고 적어도 1절, 감정이 닿는 곳까지 길게 전개하는 것도 나의 특징이다.

 

케이시는 랩과 노래를 병행한다. 케이시의 롤 모델 가수가 있다면.


윤미래다. 원래 나는 낮은 목소리가 컴플렉스였다. 그런데 윤미래 선배님을 보고 '중저음 목소리가 매력적일 수 있구나'를 느꼈다. 랩으로 표현하는 감정과 보컬로 표현하는 감정이 다른 것도 인상적이었다. '검은 행복'은 듣고 나서 소름이 돋았다. 노래 속에 가정사나 자라온 환경이 담겨있는데, 직접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완전 내 이야기인 것처럼 들리고 뭉클하더라. 노래가 주는 힘을 느꼈다. 'Memories'도 대단했다. 나도 이런 음악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깊게 들었다.

 

2016년 이즘과 지코(Zico)와의 인터뷰를 떠올려본다. 당시 지코는 '나는 힙합 뮤지션이 아니라 뮤지션이다!' 라며 노래에 대한 욕심을 비친 바 있었는데.


'케이시는 어떤 장르를 하는 뮤지션인가요?'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노래와 랩 모두 내가 표현하고 싶은 수단이고 핵심은 나의 감정이라 생각한다.

 

래퍼로 대중에게 인상을 남겼으나 노래로 대중의 호응을 얻은 건 전 시즌 <언프리티 랩스타2> 출신 헤이즈와 닮았다.


헤이즈도 원래 랩과 노래를 같이 한 것으로 안다. 나의 경우는 음악에 있어 두가지 묘기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노래로 표현하는 것의 한계를 랩으로 확장할 수 있다면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것 아닌가. 두 파트를 통해 내 감정을 더 깊게 표현하고 싶다.

 

지금은 조영수와 기타 작곡가들의 곡을 받는 입장이지만 싱어송라이터로 본인의 곡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을 텐데.


회사에서 작곡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준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꾸준히 노력할 것 같다. 악기도 배우고 있고 작곡 작사도 공부하고 있다.

 

화성학도 공부했었나.


물론 배웠지만 너무 공부처럼 음악을 접근하다 보면 틀에 갇히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 때도 있다. 멜로디를 쓰고 코러스 쌓을 때 감으로 쌓아 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싱어송라이터로 '빨리 내 곡을 써야겠다!'는 조바심이 들법도 하다.


굉장히 많이 든다. 내 머리 속에 있는 감정과 생각을 놓치기 싫어서 스스로 메모도 많이 하고, 이런 곡을 써봐야지 생각하면서 계속 노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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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차트 역주행 곡들에 대해 음원 사재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그러나 점차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성공해서 놀랍고 믿기지 않는데 대중도 믿기 어렵지 않겠나. 이와 같은 반응도 자연스럽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2019년의 대성공은 케이시에게 어떤 의미일까.


사실 이렇게 잘 되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때가 좋았어'의 인기는 커다란 파도같은데, 그 다음 후유증도 있을 것 같고 너무 기뻐하다가 이것만 쫓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소소하게 내 노래를 들어주는 팬들이 있고 오랫동안 음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그때가 좋았어'와 '진심이 담긴 노래'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5년 후의 케이시를 상상해본다면.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 상황에 개의치 않고 꾸준히, 꾸밈 없이 순수하게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잘되기 위해서 변화하는 모습보다는 열심히 하는 모습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지금의 이 다짐도 아직은 확실치 않은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어제 느꼈던 기분이 오늘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나. 데뷔곡을 들어보면 목소리나 말투도 미세하게 다르고 그 순간의 감정이 남아있다. 이때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표현을 썼었구나 하는 것을 돌이켜볼 수 있으면 한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장준환, 이홍현
사진 : 김도헌
정리 : 장준환,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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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김창완, 거짓말 싫어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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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방귀를 뀌었다. ‘방이봉방방’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무지개가 방귀를 뀔 수 있을까? 40년 전 일찍이 동요 앨범을 발표했던 ‘산울림’ 김창완이 첫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을 썼다. 오래 전 안다고 생각했던 ‘동심’이 어쩌면 진짜 동심이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김창완은 말했다. “아이가 어른 같고 어른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이 동시집은 아이에게 전하는 어른의 뒤늦은 반성문 같기도 하다. 동요를 부를 시간을, 동시를 읽을 시간을 주지도 않고 ‘동심’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던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묘수일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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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역 같은 책

 

‘무슨 말을 해야 할지......’로 시작하는 서문을 읽고서 ‘김창완의 글이네’ 싶었습니다. 동시에 오늘 인터뷰는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서문을 쓰라고 하는데, 뭔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 말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이 책에 실린 시들은 길어야 10분 정도 걸려서 썼어요. 머릿속에서 너무 오래 생각하면 말들이 윤색돼요. ‘멋있어야 하는데?’ 같은 마음이 고개를 들죠. 이 뱀이 고개를 들기 전에 펜을 놓아야 해요. 스스로를 너무 검열하는 태도는 안 좋아요. 거름망이 생기는 거니까요. 거침이 없어야 자연스러워요. 전 요새 비빔밥, 회덮밥도 잘 안 비벼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맛으로 먹으면 지겹잖아요.

 

덕분일까요? 동시집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보통 책을 내면 종점에 내렸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 책은 출발역 같아요. 여행을 마친 게 아니라 이제 막 짐을 싸는 느낌이에요. 탈고를 하면 집에 돌아간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하기야 제가 동심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51편의 동시를 찬찬히 읽었는데 기분이 좋아졌어요. 저는 성인 독자이지만 어떤 쾌감도 느꼈고요. 김개미, 김용택 시인을 비롯한 6명의 시인이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박철 시인의 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아무려나 김창완은 좋겠다. 본성이 아직 아이라서 쓰면 곧 시가 되니까.” 퍽 긍정이 되더군요.


‘아이 같다’라는 말이 가장 어려운 지점인 것 같아요. 아이가 이럴 것 같다는 것도 어른의 생각이잖아요. 이 선입견이 오히려 동심을 가릴 수 있는 거예요. 동시를 쓰면서 생각한 것은 모든 걸 드러내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숨기고 싶은 것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보자’는 마음. 그런데 아이들이 동시를 보고 ‘이건 우리 마음이 아니에요’라고 할지도 몰라요. (웃음)

 

동시집을 낸 후 아이들을 만나셨나요?


서울과 대구에서 북 토크가 있었는데,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어요. 느낌이 많이 달랐죠. 서울에서 만난 아이들은 굉장히 얌전히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대구의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행사장을 막 돌아다니면서 저를 약 올렸어요. (웃음) 우리는 완전히 소통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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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을 읽고 나서 한번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어요. ‘거짓말을 안 하는 어른이 쓴 동시라서 다행이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동시를 쓰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동시만 안 쓰면 좋은가요? 그런 사람들은 정치도 안 하고 다른 것들도 안 해야죠.

 

그렇네요. 동시까지 쓰면 화가 날 것 같네요.


제가 동심을 느낀 건 나이 오십이 넘어서예요. 제가 뭘 좀 아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죠. 물론 이 생각은 10년 후에 바뀔 수도 있어요. 지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진실이 아닐 수도 있어요.

 

가볍고 유쾌한 시가 있는가 하면 의미를 곱씹을 시도 등장하고요. 이건 어른이 읽어야지 싶은 시도 자주 마주쳤습니다.


기자님이 책에 표시한 시들을 보니까 어른에게 대드는 시를 좋아하시네요. 어른들을 욕 먹이는 시.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욕망이 있었나 봅니다. (웃음)


독자들이 눈치를 채실 지는 모르겠어요.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로 시작하는 긴 제목의 시는 형식으로 내용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재미있대요. 그런데 저는 심오하게 쓴 시예요. (웃음)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생은 뭐냐?”고 물으면 언제 태어났고 어디 학교를 나왔고 무슨 일을 했는지를 말하잖아요? 이것이 자신의 인생 내용이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이게 곧 제목이라는 거예요. 인생 자체는 삶이에요. 각자의 제목이 다를 뿐 삶은 같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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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의 가이드북이길

 

제목 이야기를 해볼까요? 직접 정하셨다고요.


‘방이봉방방’은 개가 뀌는 방귀 소리를 흉내 내는 의성어입니다. 여기서 ‘개’는 동시 「받아쓰기」에 등장하는 무지개죠. 무지개의 방귀는 해소를 의미하고요. 어찌됐거나 아이들에게 해방감을 주고 싶었어요. 숨기고 있는 것을 드러내서 하나의 경계를 허문다면 넓은 의미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어요. 어른이 됐든 아이가 됐든 모두가 유쾌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제목이에요.

 

이 바람은 시인에게도 이뤄졌나요?


글쎄요. 제가 『삶으로서의 은유』라는 책을 좋아해요. 곡을 쓰거나 연기를 하면서 은유 속에 빠지곤 하는데, 그 은유조차도 틀에 갇힌 익숙한 은유일 때가 많아요. 나를 빗대어 이야기하는 모든 은유가 충분히 익숙해졌을 때, 동심, 동시가 비상구처럼 보였어요. 은유의 늪을 빠져나온 거죠. 빠져나오고 보니 은유의 세계가 자유롭고 풍부해요. 그래서 자꾸 동시를 쓰게 됐어요.

 

2013년 「할아버지 불알」 「어떻게 참을까?」 외 3편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에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칸 만들기」로 제3회 ‘동시마중 작품상’을 받으셨다고요.


『동시마중』은 격월로 나오는 잡지인데 내용이 너무 좋아요. 이 잡지를 만드는 분들이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저한테는 영원의 소주 같아요. 꿀 같기도 하고요. 요즘 내가 동시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 이 은혜를 일깨워준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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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만들기」는 형식을 깨는 작품이에요.


이 시로 말하고 싶었던 건,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것은 말로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어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죠. 형식을 깨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이 시도는 앞으로도 하고 싶어요.

 

「나쁜 동시」 이야기도 묻고 싶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잘해 주는 게 좋다 / 더 나빠지면 안 되니까” 굉장히 짧은 시인데 뜨끔하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동시를 안 읽고 가요만 듣잖아요. 이런 현실을 비꼬는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사실 저는 아이들이 동요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말하면 거부감이 너무 크죠. 산울림의 「금지곡」을 들어보시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동요를 부르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말을 어른이 하면 나쁜 말 같으니까요.

 

대기실 풍경을 묘사한 「대본 읽기」에서는 ‘배우 김창완’의 시선이 보입니다.


화자가 되기도 했다가 관찰자가 되기도 하면서 쓴 시예요. 개인적인 경험을 쓴 시죠. 시가 잘 써질 때는 유체 이탈을 했을 때예요. 스스로를 너무 또렷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 때는 동시가 잘 안 나와요. 온갖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는 시인과 그림 작가가 함께 책을 만들어요. 이번 책은 오정택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셨고요.


작가님의 그림이 너무 좋아서 한참을 봤어요. 「밤 잡기」라는 시와 함께 놓인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요. 제 마음속을 보고 그린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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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면 안되요. 안 꾸며도 안되요

 

3년 전 산문집을 출간했을 때, “나는 내 책이 다른 사람에게 요만큼의 영향을 끼치길 원치 않는다. 영향을 끼치길 원하는 마음은 내 욕심일 수 있다”고 말하셨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동시를 통해 동심으로 건너가 보자”는 이야기도 독자에게는 영향일 수 있는데요.


저는 이 책을 ‘동심 가이드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의 동심을 구경하라는 게 아니라, 각자의 동심의 가이드북이길 바라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산울림의 노래 「기타로 오토바이 타자」를  ‘사이버 세상으로 나아갑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데요. 이 노래는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저 ‘각자의 사이버 세상으로 가세요’라는 거예요. 같은 맥락이에요.

 

“왜 이렇게 멋있어지고 싶은지 모르겠어요”라는 말도 기억에 남아요. 이런 마음이 생기면 시를 쓰면 안 될까요?


그럼요. 이미 그른 거죠. 그르다는 말은 아이에게 안 좋은 말이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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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라는 직업은 멋있어져야 하잖아요? 꾸며야 하기도 하고요.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해요. 제가 연기하면서 어떤 주문을 외우냐면 “연기하면 안돼 연기하면 안돼”라는 말이에요. 연기는 곧 꾸미는 일이잖아요. 꾸미면서 연기하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안 꾸미잖아요? 그럼 아무것도 안되요. (웃음) 매우 애매한 거예요. 굉장히 어려워요. 이건 연기뿐이 아니에요. 노래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으로부터 동떨어져서 그야말로 몰입이 됐을 때, 나를 잊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감독이 “컷”을 외치면서 “죽인다”고 할 때는 막상 내가 뭘 했는지를 몰라요. 반면에 내가 속으로 ‘아, 이거 좋은 표정일 텐데’ 생각하면 좋을 수가 없어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잘하는 노래가 아니에요. 그때는 공연장에 온 게 아니라 노래방에 온 거죠.

 

현 시대를 생각해보면 동시는 거짓말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쓰면 안 되는 장르인 것 같기도 해요. 시인은 솔직해지려고 노력해야 할까요?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어른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거짓말을 하죠. 어른들이 가장 자주 하는 거짓말은 ‘아, 진짜 사는 게 고달파’라는 말이에요. 실제로 정말 그런가요? 자문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살다 보면 진짜 고달플 때가 있어요. 하지만 매일 그런가요? 한 끼를 굶었다고 그것이 엄청난 비극일까요? 우리가 인생을 과연 정확하게 보고 있는가,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볼 필요가 있어요.

 

시집은 자주 읽으시나요?


손에 잡히는 대로 닥치는 대로 보고 있어요. 무명 시인이라도 작품이 좋네, 싶으면 읽어요. 예전에는 과학 책을 많이 봤는데 요즘은 TED를 더 많이 봅니다.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컴퓨터 윤리에 관심이 많아요. 자율 자동차 시대가 왔을 때, 사고가 나면 100% 사람의 과실로 판단이 날 거 아니에요? 또 의료 문제도 많아질 거예요. 사람들은 의사를 안 믿겠죠. 이런 여타 문제들이 발생할 때 옳고 그름이 어떻게 판명 날 것인가, 윤리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관심이 가요.

 

이 인터뷰를 아마도 어른들이 보겠죠? 동심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것, 그조차 귀한 생각이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 속에 어른이 있고 어른 속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른 같은 아이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인 어른, 어른인 아이가 한 몸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으로 허리띠를 매줄 테니, ‘어떤 건 어른 모습이고 어떤 건 아이 모습이다’ 이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김창완(가수, 배우, 시인)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 2008년 ‘김창완밴드’를 결성해 40년 넘게 음악 활동을 해 오고 있다. 틈틈이 동요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1997년에는 제10회 대한민국 동요 대상 ‘어린이를 사랑하는 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김창완 글/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8, 90년대를 기억하는 어른들에게는 반갑고, 노래보다 연기로 더 잘 알고 있을 2019년의 어린이들에게도 그의 첫 동시집은 ‘네 맘이 내 맘’을 담당하는 단짝처럼 다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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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나응식 수의사 “굳이, 왜, 산책을 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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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집사들에게 ‘강아지 강씨’ 강형욱 트레이너가 있다면, 반려묘 집사들에게는 ‘나옹이 나씨’ 나응식 수의사가 있다. 행동 전문 수의사인 그는 다수의 강연과 칼럼을 통해 ‘고양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알리는 한편, EBS 프로그램 <고양이를 부탁해>에 출연하면서 더 많은 집사들과 만나고 있다. 문제 행동을 보이는 고양이들의 속사정을 이해해주고 명쾌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동시에, 반려인의 오판이나 실수가 문제 행동의 원인인 경우에는 냉철한 조언도 곁들인다. 고양이 집사들에게 ‘냐옹신’, ‘거대 고양이’라는 애칭을 얻게 된 이유다.

 

제목부터 집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는 나응식 수의사가 쓴 실용 에세이다. 단순히 행동학, 수의학의 A to Z를 정리해 놓은 책이 아니다. 저자가 진료실 안팎에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집사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들을 알려준다. 고양이의 기본적인 습성, 몸짓 언어 읽는 법, 질병과 문제 행동의 증상과 원인, 반려묘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집사가 해야 할 일 등이 빠짐없이 실려 있다. 평범한 한 명의 집사이자 애묘인으로서 들려주는 이야기도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고양이의 온기로 외로움이 채워졌던 순간, 반려묘 ‘아인’이와 함께하는 일상, 때때로 ‘무지개다리’ 앞에 서야하는 현실에 대해 말한다.

 

나응식 수의사를 만나기 위해 3년 경력의 집사가 출동했다.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가 인증한 ‘중급 집사’로서(책의 끝에 ‘집사 역량 테스트’ 시험지가 실려 있다), 초보적인 질문부터 여전히 아리송한 부분들까지 물었다. ‘감자(고양이의 소변을 일컫는 집사들의 은어)는 몇 개가 적당한가요?’, ‘화장실을 놓는 최적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강제급수로 음수량을 채워도 될까요?’, ‘목욕을 안 시켜도 괜찮은 걸까요?’, ‘간식을 랜덤으로 줘도 될까요?’, ‘냥신에게 진료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까지... 고양이 집사들을 위한, 고양이 집사들에 의한, 고양이 집사들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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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왜, 산책을 시키세요?

 

‘거대 고양이’라는 별명이 있으시잖아요. 책에서 반려묘 아인이가 수의사님과 닮았다고 쓰기도 하셨어요(웃음).


아인이랑 저랑 비슷한 게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그 친구가 아홉 살이거든요. 되게 동안이죠. 저도 동안이고(웃음)...

 

아, 동안이시죠(웃음).


많은 분들이 나이를 많이 물어보셔서(웃음)... 그리고 아인이가 조금 시크한 편인데 저도 이미지가 조금 시크한 면이 있잖아요. 저 스스로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보시는 분들은 약간 시크하게 보시더라고요. 표현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다 보니까.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김명철 수의사는 따뜻한 이미지이고 저는 세상 차가운 이미지잖아요(웃음). 그런데 실제 성격은 조금 달라요. 강의할 때는 재밌는 농담도 많이 하고요.

 

김명철 수의사님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으신가 봐요.


엄청 친하죠. 설채현 수의사랑 김명철 수의사랑 셋이 다 친해요. 방송하기 전부터 오래 봐왔거든요. 김명철 수의사는 예전에 가까운 동네에서 병원을 운영했었고, 설채현 수의사는 ‘행동학 연구회’에 같이 소속된 회원이기도 해요. <대화가 필요한 개냥>이라는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고요. 행동학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많이 없다 보니까, 서로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해요. 행동의학이라는 학문적인 측면에서는 강아지도 고양이도 다 같은 바운더리에 있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수의사가 행동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학교 내에 학제가 없죠. 외국에서 공부하고 계신 선생님들도 계신데, 아직 한국에는 커리큘럼이 정착돼 있지는 않죠.

 

행동 전문 수의사이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다면 뭘까요?


행동학은 기본 학문 같아요. 전문 분야라기보다는 기본 소양 과목 같은 느낌이랄까요. 마치 생리학 같은 거죠. 이것만 따로 공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행동학을 이해하고 있어야 보호자와 쉽게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진료를 더 잘 펼칠 수 있는 거예요. 전문적인 것만 알고 아이들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상담을 못 해주면, 보호자들이 신뢰하기 조금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죠.

 

‘의사에게 꼭 전달해야 할 반려묘의 정보’는 어떤 게 있나요?


정보를 주는 것도 중요한데, 준비하는 것도 되게 중요하거든요. 항상 제가 강조하는 게 문제 행동이 있거나 궁금한 게 있다면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으시라는 거예요.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면 수의사의 의견을 듣기가 더 수월하고, 또 말로 하면 서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을 준비해서 병원에 가시는 게 좋고요. 말로써 정보를 얻고 싶으시면 우선순위를 적어서 가시는 게 좋아요. 정해진 상담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수의사가 다른 고양이를 봐야할 수도 있으니까요.

 

앞서 ‘반려묘 아인이와의 공통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시크하다, 동안이다, 그 외에 또 있나요?


외모도 조금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느낌이 비슷하다고. 그런데 아인이가 더 잘생겼죠(웃음). 시크한데 애교도 있고, 귀엽기도 하고(웃음)...

 

그런 게 수의사님 안에 있는 ‘고양이스러움’ 인가요(웃음)?


그렇죠. 신기한 게, 고양이를 진료하고 고양이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이 고양이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일단 시끄러운 데를 싫어하게 돼요. 데시벨이 높은 데는 불편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집에 고양이가 없지만, 대부분 집에 고양이가 있으면 잘 안 나가게 되잖아요. 집순이, 집돌이가 되는 거죠(웃음). 자기 영역 안에만 있으면서 손이 닿는 곳에 필요한 걸 다 배치해 놓고 영화를 본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음악을 듣는다든가 하는데, 그런 삶이 편한 것 같아요. 나와 일정 이상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 만나게 된다든가... 아인이도 그런 편이죠. 고양이니까요. 저는 정말로 고양이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니까 고양이스러워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골든 리트리버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활발하고 사람 좋아하고... 그러셨나 봐요(웃음).


맞아요. 20대 때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그랬죠. 그런데 30대가 되고 임상을 계속 하면서 바뀐 것 같아요.

 

유튜브 채널 ‘냥신TV’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최근에 ‘산책냥’ 관련해서 영상을 올리셨는데, 집사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주제였어요. 업로드하시고 후폭풍은 없었나요?


유튜브 댓글에 악플 같은 건 없었던 것 같고요. 산책에 대한 부분은 고민이 되실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딱 두 마디로 정리가 될 것 같아요. ‘굳이’, ‘왜’, 필요하지 않은데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그 이유를 말해달라고 하면 논문, 객관적인 데이터, 사례들을 제시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걸로 설득이 됐으면 벌써 됐겠죠. 그렇게 안 되니까 강하게 이야기를 했던 건데, 그래서 댓글 중에 좋은 말들이 많았어요. 영상 보고 좋았다, 산책의 마지막은 실종이다, 이런 말들도 있었고요. 엄격하게 이야기하면, 산책과 외출로 분류를 할 수는 있어요. 어떻게 보면, 산책이라는 건 약간 제한적인 거고 외출이라는 건 자유롭게 나가는 건데, 여기에서 간과를 하는 거죠. 산책하는 동안 내가 반려묘를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장담을 못 한다는 거죠. 돌발적인 상황들 때문에 조금 위험하다는 거예요.

 

고양이와 산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마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반려묘가 계속 창밖을 쳐다보고 채터링도 하고 그러니까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싶은 거죠. 그런데 이 책 속에 해답이 있더라고요. “고양이는 사냥감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본능적인 사냥 욕구를 충분히 해소한다”고요.


그렇죠. 고양이가 나가고 싶어 할 거라는 건, 고양이 중심적인 사고가 아니라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분들은 ‘우리 고양이는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이 아이는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라고 하시는데, 전문가가 봤을 때는 ‘이 아이는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은데요’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나가고 싶어 할 수는 있어요. 제가 최근에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산책 고양이와 촬영하면서 그런 말씀을 드렸거든요. 고양이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고,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일 수도 있다고요.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밖을 보는 걸 좋아하고 그 시각적인 자극으로 본능적인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지만, 호기심 때문에 밖이라는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나갔다가 돌발 상황이 발생하거나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고양이한테 호기심은 본능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건 보호자들이 핸들링해야 될 부분들인 거죠.

 

이른바 ‘냥모차’라고 하죠. 유모차처럼 생긴 고양이 전용 이동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거기에 태워서 산책을 나가는 건 어떤가요? 냥모차에서 고양이를 꺼내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다면, 괜찮을까요?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런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양이에게 하네스(가슴줄)를 채워서 데리고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면 고양이가 뛰쳐나갈 수 있거든요. 그런 일들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거죠. ‘고양이가 집안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까, 묘생을 이 작은 공간에서 사는 게 답답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들을 정말 많이 하시는데요. 개와 달리, 고양이는 평면적인 공간이 중요하지 않아요. 3차원적인 공간을 쓰기 때문에 10평 집에 산다고 해서 10평만 쓰는 게 아니에요. 20평, 30평, 40평, 50평까지도 넓게 쓸 수도 있어요. 그런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는 보호자가 해결해야 될 문제인 거죠. 그리고 묘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건, 안심할 수 있는 공간(safe place)이에요. 내가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만큼 확보되어 있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 10평 주어진다면, 그게 제일 좋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가 집에서만 지내는 걸 염려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집 안에서 집사가 해줘야 할 또 다른 것들이 있다면요?


집에서 생활하는 고양이의 경우, 너무 자극이 없으면 수면 시간이 늘고 놀이 시간이 적어질 수 있는데, 그러면 정신적인 정체 같은 것들이 올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보호자들이 계속 자극을 줘야 하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가 방송되면서 산책이라는 게 화두가 됐잖아요. 개는 외출을 해야 하고 노즈워크를 하게 해줘야 된다는 인식이 생겼는데, <고양이를 부탁해>는 수직 공간과 환경 풍부화가 중요하다는 걸 알려드리면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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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배치, 최적의 장소는 이곳!


고양이를 의인화하거나, 개와 비슷할 거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강의 때 항상 하는 이야기가 ‘Cat is not a small dog’, 고양이는 작은 개가 아니라는 거예요. 의인화의 경우에는, 그렇게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건 도움이 될 거예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 연습을 해야겠네요.


화장실 같은 게 대표적인데, 고양이가 화장실 실수를 하면 보호자들은 ‘쟤가 왜 저러지? 나한테 복수하나?’라는 생각을 하세요. 그게 잘못된 의인화예요. 원인은 다 있거든요. 화장실 환경이 안 좋다든가, 위치에 문제가 있다든가, 모래의 재질에 문제가 있다든가, 다묘 가정의 경우에는 화장실이 몰려 있는 경우도 심리적으로 좋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럴 때 제가 ‘본인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입장이라면 어떻겠어요?’라고 물어보면 다들 이해하시거든요. 만약에 내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누가 변기에 물을 안 내린 상태라든가, 아니면 볼일을 보고 있는데 누가 앞에서 쳐다보고 있다면 어떻겠어요. 절대 화장실을 좋아할 수가 없죠. 그러면 참고 참다가 대체품을 찾는 거예요. 그게 이불이 될 수도 있고, 카펫이 될 수도 있고, 욕실 타일이 될 수도 있고요. 또 항상 강조하는 게 고양이의 정서적인 나이가 세 살이라는 거예요. 세 살 아이와 평생 산다는 생각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정서적 나이가 세 살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세 살의 나이에서 보이는 정서가 몇 가지 있는데요. 사랑하는 것, 싫어하는 것, 화내는 것, 질투심 같은 것들이 있어요. 복수심 같은 건 조금 더 나이를 먹어야 가질 수 있는 정서고요(웃음). 그래서 고양이한테는 복수심이 없다는 거예요.

 

‘나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거야?’라는 생각은 잘못됐다는 거군요.


그렇죠. 아마 세 살짜리 조카가 있거나 자녀가 있는 분들은 훨씬 많이 공감하실 텐데요. 그 아이들이 모국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구사하겠어요. 표현을 잘 못하죠. 그러니까 울거나 떼쓰거나 밥을 안 먹거나 하는 거죠. 동생이 생기면 중간에 끼어들거나 물건을 뺏어가기도 하고요. 고양이들도 이런 걸 다 하거든요. 질투심 많은 아이들은 다른 고양이 예뻐하면 끼어들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밥을 안 먹기도 해요. 잠만 자거나 밤새 울기도 하고요. 관심 가져달라고 와서 툭툭 치고 가기도 해요. 그런 것들이 대개 세 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정서와 유사하죠.

 

화장실과 관련해서 많은 집사들이 알고 있는 정보가 있죠. ‘내 반려묘가 원하는 모래를 쓸 것’, ‘화장실 크기는 고양이 몸 길이의 1.5배는 되어야 한다’ 같은 것들인데요. 우리 집에서 화장실을 어디에 놔야 최선인지, 그건 확실히 알기가 어려워요. 한 공간에 화장실이 여러 개 있으면 하나로 인식한다는 말씀도 하셨었는데, 그럼 도대체 어디에 놔야 할지 모르겠어요.


반려묘와 함께 사는 인구의 숫자가 늘어난 게 대부분 2011년부터예요. 노령화, 싱글 가구가 증가면서 고양이 입양 가구의 수도 늘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요. 혼자 서울에 사는 싱글이 얼마나 큰 집에서 살겠어요. 원룸이나 투룸 정도에 사실 텐데, 그러다 보니 화장실 배치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는 거죠. 고양이 한 마리와 생활을 하더라도 화장실은 두 개가 있어야 되는데 대부분 방이 하나잖아요. 그러면 고양이가 먹는 곳과 떨어진 위치, 캣타워 아래가 1번 선택지 정도가 될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는 침대 옆에 놔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화장실 모래 알갱이나 먼지가 날리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 되실 거예요. 그래도 지금은 먼지 날림이 덜한 모래, 사막화 방지 매트(화장실 밖으로 튀어나오는 모래를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가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조금 도움은 될 텐데요. 베스트 장소를 꼽자면 밥그릇과 최대한 멀면서 소음이 나지 않는 곳이 될 것 같아요. 대부분은 캣타워나 캣폴이 있고 그 근처에 배치를 하는 게 그나마 베스트죠.

 

화장실의 형태는 어떤가요?


오픈형이 좋고, 안 되면 후드형도 어쩔 수 없지만, 일단 시야가 확보가 돼야 해요. 개의 경우는 같이 모여서 그룹 사냥을 하지만, 고양이는 혼자서 독립적 사냥을 하는 동물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안전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죠. 오픈형을 추천 드리는 이유도 고양이가 배변을 하는 동안, 자신이 안전에 취약한 상황에서 사방팔방을 다 봐야 하기 때문이에요. 누가 날 덮칠지도 모르니까요. 어디로든 튀어나갈 수 있는 퇴로를 확보해야 되는 거죠. 그런 공간으로써 창가 쪽도 좋고요. 베란다 쪽도 나쁘지 않아요. 세탁기가 없다는 전제 하에요. 세탁기 소리를 싫어할 수 있으니까요. 베란다 쪽에 캣폴이나 캣타워를 놔두고 그 옆에 조금 떨어뜨려 놓아도 좋죠.

 

또 다른 화장실은 어디에 놓을까요?


사막화(화장실 밖으로 모래 알갱이가 튀어나오는 현상)가 괜찮으시다면 입구 쪽 근처에 놓으셔도 좋아요. 많은 분들이 하시는 실수가 사람 화장실 안이나 시끄러운 곳에 두거나, 아니면 한 장소에 여러 개의 화장실을 모아놓는 건데요. 그건 추천하지는 않죠. 사람 화장실 안에 놓는 경우에는 습도가 높아서 모래가 굳을 수 있고, 잘못하면 하수구가 막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화장실 여러 개를 한 군데 모아 두는 건, 한 마리일 경우에는 조금 괜찮은데, 다묘 가정인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요.

 

요즘에는 방 하나를 ‘고양이 방’으로 만들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 안에 캣타워, 숨숨집, 밥그릇, 물그릇, 화장실까지 다 넣어놔도 괜찮은가요?


그건 괜찮은데요. 고양이들은 항상 베이스캠프가 있거든요. 핵심 장소가 있고 그 다음에 노는 장소, 쉬는 장소, 자는 장소 등을 몇 군데 정해놓고 지내요. 만약 하나의 방 안에서 모든 게 이뤄지게 하려면 보호자가 그 공간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야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완전히 고양이만을 위한 공간보다는 사람하고 같이 쓸 수 있게 배치를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서재에 캣타워를 놓고 수직 공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내가 사무를 본다거나, 그렇게 같이 지내는 공간이 좋죠. ‘이 방은 고양이 방이야’ 하면서 고양이는 거기에만 들어가 있으라고 하는 건... 개인적으로는 추천하지 않아요.

 

고양이의 최소 음수량은 1kg 당 50ml 정도인데요. 실제로 그만큼 먹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 대신 감자(고양이 소변을 일컫는 집사들의 은어) 양을 보고 음수량을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가요?


그건 조금 다른 이야기예요. 보통 소변량은 1kg 당 1~2ml 정도거든요. 3kg이라면 3ml, 여기에 24시간을 곱하면 하루에 60~70ml 정도 될 거예요. 물을 많이 먹었다고 해서 그만큼 다 소변으로 나오면 큰일 나죠. 탈수가 와요. 신장 기능이 좋은 아이들은 ‘압축뇨’라고 해서 소변을 압축해서 내보내는데요. 물을 마시는 대로 계속 몸 밖으로 내보낸다면 문제가 있는 거예요. 1kg 당 50ml를 마신다고 해도, 1kg 기준으로 하루에 24~48ml 정도 배출할 거예요. 소변을 자주 보는 건, 물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너무 자주 보는 것도 질병을 의심해볼 수 있어요.

 

하루 2~3번 소변을 봐도 괜찮은 건가요?


괜찮습니다.

 

고양이는 물을 잘 안 마셔서 걱정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강제 급수를 고민하는 집사들도 많아요.

 

그건 약간 강박증 같기도 해요. 물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가 생기는 곳이 신장인데, 신장이 정상이라는 전제가 있다면 물은 자율적으로 먹이면 되거든요. 다음(多飮)을 권하지도 않아요. 신장이 건강하다면요. 신장에 조금 문제가 생기면 물을 많이 마시면 좋겠다고 권장하는 것이지, 억지로 물을 먹여서 아이와의 관계를 안 좋게 만든다거나 아이가 보호자나 그 상황을 싫어하게 된다면, 나중에는 그게 더 안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어요.

 

반려묘가 최소 음수량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강제 급수로 부족한 양을 채우는 건 어떤가요?


그 전에 왜 안 먹을까를 생각해 봐야겠죠. 일차적으로는 환경적인 것부터 체크하면서 고양이한테 선택권을 주는 게 맞죠. 물 마실 장소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 알맞은 재질의 물그릇이 제공되고 있는지, 위치는 적절한지, 그런 것들을 살펴보고요. 그래도 물을 덜 먹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면, 일단 탈수가 왔느냐가 중요해요. 그런데 원래는 탈수가 쉽게 생기지 않아요. 구토나 설사가 있으면 탈수가 올 수 있고요. 사람의 신체든 동물의 신체든 항상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작동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봤을 때는 물을 충분히 먹지 않은 것 같아’라고 잘못된 생각을 해서 고양이와의 관계를 그르치는 상황을 만드는 건 좋지 않다는 거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세 살 아이가 물을 안 마신다고 강제로 먹이는 거예요. 그건 고문이죠.

 

정말 그렇겠네요.


‘너를 위한 거야’라는 전제 하에 아이한테 물을 억지로 먹인다면, 어떤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겠어요. 엄마를 보면 도망가죠. 그런 상황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수의사들도 고양이가 자연스럽게, 스트레스 받지 않게 음수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는데요. 건사료를 먹던 아이라면 습식 사료를 먹게 한다든가, 물그릇의 위치를 늘린다든가, 그 고양이가 좋아하는 형태의 물이 나오게 환경을 만든다든가 하는 거죠. 어떤 아이들은 수반을 좋아하고, 어떤 아이들은 흐르는 물을 좋아하거든요. 싱크대 물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수돗물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어요. 음수에 있어서는 ‘각묘각색’이기 때문에, 잘 살펴보고 내 반려묘한테 맞는 걸 제공해줘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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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보상은 ‘잭팟 교육법’으로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에는 다묘 가정을 위한 팁도 다수 실려 있어요.


가장 핵심적인 건 층간 분리예요. 공간 분리라기보다는 층간 분리가 핵심이죠.

 

수직으로 공간을 나누라는 뜻인가요?


그렇죠. 층간을 분리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고양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곳들을 최대한 멀찍이 떨어뜨려 주는 게 좋아요. 고양이의 특징상 영역 확장을 방사형으로 하기 때문에 접점이 되는 공간들을 만들어주는 게 좋고요.

 

고양이가 평생 동안 목욕을 안 해도 괜찮나요?


저는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털에 뭐가 묻었거나 불가피하게 닦아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목욕을 안 해도 돼요. 저희 아인이도 목욕 잘 안 하는데(웃음)...

 

보통 고양이의 수명이 15~20년 정도인데, 그동안 한 번도 안 한다면.... 괜찮을까요?


평생 동안 본다면 목욕은 서너 번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픈 아이들은 그루밍을 잘 못해요. 기운이 없어서 자기 관리를 잘 못하죠. 털에서 윤기가 흐르는 고양이는 건강한 거예요. 검사를 해서 건강의 지표를 알 수도 있지만, 일단 얼굴이 깨끗하지 않으면 아픈 거예요. 고양이들은 그루밍하는 순서가 있어서 얼굴부터 관리를 하거든요. 만약 얼굴이 초췌하고 눈꼽이 껴 있고 콧물이 나고 입 주변이 정리가 안 돼 있고 털이 푸석푸석하다면, 그 고양이는 100% 아픈 거예요. 그런데 중년묘 이상, 노묘가 되면 기력이 없어서 보호자가 빗질도 대신 해줘야 되고, 눈꼽도 떼어 줘야 되고, 목욕을 하면서 씻겨줘야 될 수도 있어요. 그런 건 필요하겠죠. 평생 목욕을 안 할 수는 없고, 최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선에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고양이한테는 목욕이 필수는 아니니까요.

 

행동 교정을 할 때 보상으로 간식을 주잖아요. 그런데 매번 간식을 주자니 너무 많은 양을 급여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간식을 줬다가 안 줬다가, 랜덤으로 해도 될까요?


그것도 규칙이 있어요. ‘잭팟 교육법’이라고도 하는데요. 랜덤으로 주되, 마지막에는 꼭 보상을 해서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10번 교육을 했다면 1. 3. 7. 8번째 순서에 간식을 주고 마지막 열 번째에는 반드시 주는 거죠. 그리고 1. 3. 7. 8번째에 간식을 줄 때 한 번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줘요.

 

고양이 입장에서는 정말 ‘잭팟’이 터진 거네요(웃음).


로또에 당첨된 것 같겠죠(웃음). 그게 ‘잭팟 교육법’이에요. 많은 분들이 간식을 얼마만큼 줘야 하는지 물어보시는데요. 내 반려묘의 1일 칼로리 소모량의 10% 내외에서 주시면 돼요. 그리고 행동학적으로 교육할 때 주는 저칼로리 간식이 따로 있어요. 저칼로리, 저단백, 저지방이어서 맛은 있지만 살이 많이 안 찌는 제품이에요. 또 말씀드리고 싶은 건, 보상으로 주는 게 꼭 간식이 아니어도 돼요. 대부분 먹을 걸 좋아하기 때문에 간식을 주지만, 보호자가 쓰다듬어주고 스킨십하는 걸 좋아할 수도 있어요. 그건 아이의 성향에 맞춰서 해도 돼요.

 

수의사님께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집사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워낙 바쁜 분이시니까 진료 예약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예약을 한다고 해도 한참 기다려야 차례가 올 것 같기도 하거든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저는 모든 외부활동을 쉬는 시간에 하고 있어요. 진료 시간 외에 하는 거죠. <고양이를 부탁해> 촬영도 그렇고 강연도 쉬는 날 해요. 저도 주5일 근무를 하고,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거든요. 일요일, 월요일에는 진료를 쉬고요. 아마 금요일 토요일에는 예약이 많이 잡혀 있어서 내원하기 힘드실 거예요. 평일 낮에는 비교적 여유로운 것 같고요. 보통 오후 2시부터 9시 반까지 진료를 보고 있어요. 어디까지나 제 본업은 진료 수의사니까요. 언제든지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근간이 수의사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많지 않고요.

 

책 제목이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인데요. 수의사님의 마음이기도 한가요?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다들 ‘고양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제목을 보시고 우스갯소리로 ‘평생 고양이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시고요. 이 책을 보신 분들이 잠시 자기가 고양이가 된 것처럼, 고양이의 생각이나 언어나 기분을 조금 느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제목을 정했어요.

 

수의사님도 ‘평생 고양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적 있나요? 사실, 집고양이 팔자가 최고잖아요(웃음).

최고죠. 고양이가 보통 하루에 15~16시간을 자거든요. 그래서 불면증에 걸리지 않죠(웃음). 그런 편안함도 있지만... 저는 ‘평생 고양이면 좋겠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이유가, 고양이 하면 길고양이 이야기를 빠뜨릴 수가 없어요.

 

그렇죠. 길고양이의 삶은 너무 험난하죠. 만약 수의사님이 잠시 고양이가 된다면, 아인이한테는 하고 싶은 말 없으세요?


그냥 각자도생했을 것 같은데요(웃음). ‘너는 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 나는 내 나름대로의 삶을 살게’ 이런 식이라고 할까요. 아인이가 원래 그래요. 가만 보면 다 친하게 지내지도 않아요. 그런데 저도 그럴 것 같아요. ‘굳이 내가 너랑 같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웃음). 각자 스타일 대로 지내겠죠. 각자의 삶이 중요하니까요. 보호자가 반려묘한테 너무 의존적이 되면, 고양이도 보호자한테 너무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있어서 문제거든요. 보호자가 분리불안증이 오고 고양이도 분리불안증이 오는 거예요. 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감정의 거리든 물리적인 거리든. 그래서 제가 만약 고양이가 된다면, 아인이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친구처럼 지내지 않을까 싶어요. 아인이 나름대로의 묘생을 존중하고 ‘너도 내 묘생을 존중해라’ 하면서요(웃음).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나응식 저/윤파랑 글그림 | 김영사
잠시 고양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양이 마음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나응식 수의사가 각종 일화를 통해 설명하는 고양이의 감정 표현을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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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만화가 이종철 “배송하는 게 무슨 만화가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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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에 출근하면 화물차가 도착해 있고, 밤새 운전해 온 화물 기사가 차 안에서 자고 있다. ‘까대기’는 기사를 깨우고, 화물차의 뒷문이나 옆문을 열어 택배를 내릴 수 있도록 준비한다. 세팅을 마친 후 택배 내리는 작업(하차)을 곧바로 시작한다. 한 대 하차에 40분-1시간이 걸리는데 보통은 4-5대를 작업한다. 오분류된 택배를 다시 차에 싣는 것(상차)까지 마치면 청소 등을 하고 퇴근. 까대기의 일과다.

 

5군데를 옮겨가며 작년 8월까지 6년 동안 까대기 일을 한 이종철 만화가는 늘 “일하는 사람들을 만화로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만화에 대한 열정만 갖고 서울 생활을 시작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아침에 까대기, 오후에 만화가로 사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그곳에서 사람들을 본다. “사람이 좋아서” 이들을 그리겠다고 생각했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까대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까대기가 만화가 되었다.

 

이종철의 만화 『까대기』  는 12시간 이상을 배송하는 택배 기사, 새벽에 졸음을 쫓으며 운전하는 화물 기사, 투잡을 뛰어야아만 하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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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만화가 될까?


제목 부분에 표현된 박스 테이프의 느낌이 재미있어요. 첫 책이잖아요. 책 받고, 어떠셨어요?


박스 테이프 아이디어는 출판사에서 주셨어요. 처음에는 괜찮을까 싶었는데 막상 보신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저도 좋았고요. 책은,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어요. 잘 쓴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제 글이나 만화를 본 적이 없어서 반응을 예상하기 힘들었거든요. 그나마 요즘은 반응이 나오고 해서요. 거의 매일 책을 다시 보는 것 같아요.(웃음) 많이 아쉬웠어요. 6년을 했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한 권으로 엮어내야 해서 뺀 이야기도 많거든요. 특히 택배 기사 이야기요. ‘파손주의’ 편에 나오는 식당을 하다가 망했다는 부부가 있잖아요. 오분류(잘못 분류된 택배)를 챙기러 가면 그분들이 항상 믹스커피를 챙겨주셨어요. 음료수도 던져주시고요. 정말 고마웠어요. 또 명절 때면 직전까지 명절대란이라 바쁘게 일하고 끝나거든요. 기사 분들 중에는 혼자 사시는 분도 꽤 있어요. 그런 분들이 서로 챙기고, 명절 때 서로 만나는 이야기도 원고는 있었는데 책에 못 넣어서 조금 아쉬웠어요.

 

까대기 경험을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맨 처음 생각한 건 언제였어요? 


어린이 만화 『바다 아이 창대』 그림 작업을 할 때도 까대기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다음 만화를 구상하면서 택배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글은 계속 쓰고 있었고, 출판사 분들과도 택배 만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 했었죠. 만화에 이바다가 만화 계약 전화를 받는 장면이 있잖아요. 실제로 저도 작년 1월 물류센터에서 상차 알바를 하던 중에 전화를 받았거든요. 저녁 즈음에 편집자 분께서 전화를 주셔서 준비하고 있던 택배 만화를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하신 거예요. “무조건 하겠습니다” 했어요.(웃음)

 

만화를 그리기 위해 서울에 왔고, 생계를 이어야 하니까 까대기를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만화가 됐어요. 처음에 까대기를 시작하실 때는 이게 만화가 될 거라고 생각 못했을 텐데 놀라운 일이에요.


전혀 생각 못했죠. 그건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의심을 했던 부분이에요. ‘과연 택배가 만화가 될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우선 그런 사례가 제게는 많이 없기도 했고요. 심지어 택배 기사 분들도 “배송하는 게 무슨 만화가 되느냐”는 말들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계속 다른 책들도 찾아보고 그랬어요. 출간 제안 전화를 받았을 때는 ‘준비 됐다’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다만 글은 나와 있는데 구체적인 원고 작업은 못하고 있었어요. 그 시기가 금전적인 어려움이 컸던 때라 그냥 이동하는 중에 휴대폰에 메모만 하고 있었죠. 전화 받고 그제야 부랴부랴 원고를 만들었어요.

 

작가의 말에 까대기 일이 부끄러웠다고도 적으셨는데요. 만화 그리면서 생각이 바뀌었나요?


까대기를 그리려고 까대기를 한 건 아니니까요. 처음 1년은 빨리 관두고 싶은 생각만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처럼 만화나 일러스트로 돈벌이 하면서 지내고 싶고 그랬죠. 까대기 알바를 이렇게 길게 할 거란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한테도 말을 안 했었어요. 나중에는 말씀을 드리니까 그만 두라고 하시더라고요. 택배 뉴스가 많고, 물류 센터에서 사망한 사건도 보고 하시니까요. 하지만 만약 만화를 그린다면 내 본명 쓰고, 사람들한테도 얼굴 보이면서 부딪쳐보자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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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위로하는 게 우선


그런가 하면 주인공은 ‘이바다’예요. 작가님 이름을 쓰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제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 이름을 쓰게 되면 작업에 집중할수록 징징댈 것 같았어요. ‘나 힘들게 살았는데…’하면서요. 이바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거리를 두고 싶었어요. 나만 힘든 거 아니고,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산다, 너무 징징대지 말자, 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서울에 올라오게 된 이야기 같은 건 최대한 뺐고요. 차라리 그 자리에 택배 기사들 이야기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넣자고 생각했어요.

 

이 만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분명히 있었던 거네요.


택배 시스템이 문제라는 이야기는 뉴스 같은 데서도 많이 하죠. 그렇지만 저는 그 전에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어요. 만화를 위해서 기사 분들을 이용한 게 아니고요. “당신들 지금 충분히 고생하고 있고, 좀 더 벌었으면 좋겠다, 힘내라”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비판적인 이야기도 당연히 만들었었거든요. 가령 ‘백마진’ 등에 대해서 조사도 했고요. 그렇지만 시스템을 비판하기 전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게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에서 조사한 내용을 빼기도 했어요.

 

그렇다 해도 워낙 문제가 많은 구조잖아요. 책에 넣지 못해서 아쉬웠던 문제가 있다면요?


더 용기 내서 세게 이야기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죠. 실제로 특수 고용직 문제를 다룬 부분이나 ‘공룡’으로 표현한 대기업 과점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잘못 얘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취재도 많이 하고, 화물이나 택배 기사 분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많이 물어보기도 했어요. 바쁜데 자꾸 전화해서 또 물어본다고 욕도 먹고(웃음) 그랬죠. 왜냐하면 제가 겪은 일은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겠는데 고용 문제나 구조 문제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를 그릴 때도 몇 시간씩 고민하다가 엎기도 하고 그랬어요.

 

등장인물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우 아저씨’인데요. 아저씨와는 연락이 끊겼다고요? 우 아저씨는 이바다의 만화 작업을 응원했던 인물이기도 하죠. 책 출간 소식 알면 좋아하실 텐데, 혹시 우 아저씨가 이 인터뷰를 보신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우 아저씨는 제가 어린이 만화 연재를 한다고 했을 때, 자식이 취직을 한 것 마냥 기뻐하셨어요. “다시는 까대기로 돌아오지 마”라고도 하셨고요. 왜 연락이 끊겼는지 생각을 해보면요. 제가 아저씨에게 이제 만화가로 벌어먹고 산다고 해놓고, 어린이 만화 연재를 시작 했어도 원고료로는 생활이 힘들어서 까대기를 다시 시작했던 거예요. 그런 모습을 아저씨에게 보이고 싶지 않더라고요. 아저씨에게는 1년 같이 까대기 하면서 고생한 녀석이 이제는 만화가로 밥벌이 한다, 고 기억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도 연락을 안 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연락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우 아저씨에게 제일 하고 싶은 말은 괜찮으시면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는 얘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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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168/169쪽

 

 

결국은 택배 기사 책임


표지 그림이 본문에는 없잖아요. 이 장면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여기가 화물차 안이에요. ‘깡통’이라고 부르는데요. 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지 않아서 보통 이 화물칸 안에 앉아서 쉬거나 해요. 짐을 다 내린 후에 다음 차가 오지 않으면 그 안에서 누워 쉬기도 하고요. 까대기들에게는 쉬는 공간이라서 그렸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택배 박스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라 마음에 좀 걸리긴 했어요.(웃음)

 

물건일 뿐이잖아요. 왜 마음에 걸리는 걸까요?


물건 배송에 책임이 있기도 하고요. 잘못 깔고 앉았다가 안에 든 물건이 깨지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까대기 알바를 하는 사람 책임이기도 하지만 택배 기사에게도 책임이 돌아가거든요. 저는 알바인데 괜히 택배 상자에 앉았다가 피해를 줄 수도 있어서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알바가 실수를 해도 택배 기사에게 책임이 가는군요?


본사와 물류 센터, 택배 기사가 30:30:40 정도로 나누긴 하는데요. 책임을 잡아내기가 사실 힘들죠. CCTV를 다 확인해보고, 누가 파손했는지 본다거나 하지만 잡아내기 힘들어요. 그래서 결국은 택배 기사 책임으로 가는 경우가 생겨요. 지점마다 다르긴 한데요.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기사들이 한 달에 얼마씩 돈을 걷거든요. 보험처럼요. 혼자 책임지기에는 부담이 크니까 돈을 모아두는 거죠. 특히 가을철이나 명절 때는 비싼 물건이 많아요. 저는 굴비가 그렇게까지 비싼지 몰랐어요.(웃음) 한우가 들어있거나 하면 혼자 비용을 다 부담하기는 힘드니까 비용을 쌓아둬요.

 

이른바 ‘지점 운영비’라고 하는 것도 그런 거죠? 지점운영비 명목으로 택배 기사 급여에서 따로 돈을 빼고, 거기서 까대기 알바 비용도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었잖아요.


그렇죠. 보험 식으로 돈을 더 걷는 거예요. 지점에서 택배 기사 급여를 정산해서 주잖아요. 거기 내역을 보면 ‘지점 운영비’라고 해서 돈을 제해요. 거기에 까대기 알바비도 들어 있는 거죠. 지점장도 얼마씩 내긴 하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지점마다 다르긴 해요. 지점장이 많이 내는 경우도 있고요. 어쨌든 택배 기사들은 다 내죠.

 

알바를 두지 않고 까대기 작업을 택배 기사들이 직접 하기도 하고요.


90년대에 택배 산업이 점차 확산되었을 때는 물량이 많지 않으니까 하차 작업을 택배 기사가 다 직접 했대요. 그런데 점점 물량이 많아지니까 택배 기사가 하차 작업을 다 하고, 배송까지 나갔다가, 지점에 다시 와서 상차 작업까지 하는 게 너무 힘든 거죠. 그래서 기사들끼리 돈을 모아서 까대기 알바를 쓰기 시작한 거예요. 알바를 못 구했을 때는 지금도 택배 기사들이 돌아가면서 하차를 한다거나 하고요. 그럴 경우 알바비를 커피를 산다거나 물을 사는 데 쓰기도 해요.

 

작가님이 까대기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요? 허리 때문에 고생한 에피소드도 있는데요. 다치진 않으셨어요?


많이 다쳤죠. 지점장이 너무 나쁜 사람이라 관두기도 하고, 만화 원고 때문에 관두기도 하고, 시급이 너무 적어서 관두기도 했는데요. 한 번은 손목 인대를 다쳐서 관둔 적이 있어요. 까대기를 많이 하면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가요. 물건을 내리기도 하지만 바닥에 있는 것을 옆으로 밀기도 하거든요. 레일 위에서 전달을 하니까요. 그러면 계속 손목을 쓰는데 무거운 게 걸려버리면 손목이 나가는 거죠. 하지만 어쨌든 돈이 급하면 하게 돼요. 아침에 까대기를 하고 저녁에 구리 청과물 시장에서 우 아저씨와 함께 일했던 것도 힘들기보다 좋은 기억이 커서 쓴 거예요. 피곤하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힘든 건 모르고 했던 것 같아요. 돈이 없어서 걱정이 컸기 때문에 일 자체가 힘들다는 생각은 많이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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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청이죠


택배 기사의 열악한 노동조건 이야기를 꼭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청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해요. 택배 기사 대부분 개인 사업자거든요. 직영 지점의 경우 본사에서 직접 관리를 하고, 직급 체계도 있어요. 그런데 직영의 숫자가 적어요. 대부분 지점이고, 영업소고요. 기사님한테 “기사님”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소장님”이라고 하기도 하죠. 기사이자 이 영업소에서 일을 하는 사장이기도 한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다치더라도 본인 책임이고요. 기사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알바비를 주는데 심지어 그마저도 조금 큰 업체는 용역을 써요. 또 하청이죠. 물류 센터 사망 사고나 감전 사고가 계속 있잖아요. 그런데 물류 센터는 본사 책임이라고 하고, 본사는 물류 센터에 하청을 줬기 때문에 그곳 책임이라고 해요. 사람은 다쳤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죠. 그러니까 저희 같은 까대기 알바도 각자도생이고요. 그런 시스템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해요.

 

택배 기사 분들이 가장 시급하게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택배 수수료 문제죠. 배송비가 올라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대기업이 들어오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택배 수수료가 계속 낮아졌거든요. 본사에서도 가져가고, 물류 센터에서도 얼마를 가져가니까 기사한테 돌아가는 돈이 건당 천 원이 안 돼요. 일단은 배송비가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야죠. 사실 택배 기사들 수입이 생각보다 적어요. 가난하면 목소리 내기가 힘들어요. 당장 먹고 살기 바쁘니까요. 저도 그랬어요. 저도 비로소 책을 냈으니까 얘기할 수 있는 건데요. 시스템에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었고, 가난하다보니까 말을 못하는 거죠. 저는 그게 너무 속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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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124/125쪽

 

 

책에서 지점장이 “어차피 몇 번 쓰고 버릴 텐데 대충 써”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말이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길 바란다고 이바다가 독백을 하는데요. 정말이지 사람값이 너무 싸요.


작년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사망을 하셨잖아요. 당시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많이 관심을 가졌고, 현장 점검도 하고 그랬는데요. 그걸 보면서 만약 본인들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죽을 수도 있다거나 내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면 현장 점검뿐 아니라 다른 걸 더 하지 않았을까요? 수시로 들여다보고 말이죠. 김용균 씨의 동료들도 사람들 앞에서 말했잖아요. 자신도 늘 그런 두려움을 느낀다고요. 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을 독자가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세요?


시급제 알바에서 이바다 같은 알바가 제일 에이스예요. 왜냐하면 군말 안 하고 묵묵히 일만 잘하는 애거든요. 본사에서 쉬는 시간을 보장해주지 않거나 선풍기 한 대를 놓는 것도 수용이 안 되거나 해도 제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주변 동생들이나 우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조금 부딪쳤어요. 지금 그때의 저와 같은 시급제 알바를 하시거나 까대기 하시는 분들에게는 불합리한 일에 용기 내서 항의도 하라고 하고 싶어요. 특히 저처럼 에이스들이(웃음) 부딪쳐야죠. 그래야 조금 바뀌더라고요. 물 마실 시간을 보장해준다든지 말이에요.


 

 

까대기이종철 글그림 | 보리
실제로 6년 동안 택배 일을 하며 만화를 그린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취재와 인터뷰로는 끌어낼 수 없는 생생한 택배 노동 현장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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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정혜 “내 아이 영어 공부, 언제부터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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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시기를 극복하고 났더니,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찾아오고, 원했던 유치원에 당첨되고 보니 이제는 ‘영어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하나?’가 가장 큰 숙제가 됐다. 영어 못하는 부모들은 매일이 걱정이다. 영어 발음은 3세에 결정이 난다고 하는데, 내 아이는 과연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적기를 놓치면 영영 콩글리시 발음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까?

 

18개월 아이부터 초등 6학년까지, 수많은 아이들의 영어 수업을 지도해온 정정혜 강사. 현재 YBM 커리어캠퍼스 영어지도자 과정 대표 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가  『영어 그림책 공부법』  을 썼다. 영어 리터러시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론인 ‘균형 잡힌 문해법’을 토대로 22년차 어린이 영어 교육으로 얻은 노하우를 ‘영포자’ 부모도 알기 쉽게 정리했다.

 

영어 발음이 좋지 않은 부모도 시도할 수 있는 ‘우리 아이 영어 그림책 공부’. 과연 몇 살부터 언제까지 하는 것이 좋을까? 좋은 영어 그림책을 고르는 방법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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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부터 시작하면 가장 효과적

 

공대에 나와 영어 강사가 됐다. 뒤늦게 영어 수업을 시작했는데.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외벌이로 살 수 없는 서울 생활이라 전공을 살려서 아이들 과학 수업을 하게 됐는데, 아무래도 영어가 수요가 가장 크니까 과목을 바꾸게 됐다. 영어 수업을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다. 우리나라에 막 유아 영어가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함께 일했던 영어 강사들은 지금 다 사라졌다. 영어 수업도 멀티가 되어야 하는데, 한 우물만 판 경우는 오랫동안 일하지 못하더라.

 

멀티가 되어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서 영어 수업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한 편이라,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어떻게 하면 재밌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숙제였다. 그동안 진행한 영어 수업을 살펴보면, 요가 잉글리시, 실험 잉글리시, 노래 잉글리시 등 정말 다양하다.

 

1998년부터 ‘영어 그림책 수업’을 진행했다. 많은 교육법 중에 ‘그림책’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영어를 가르치면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너무 일찍 영어 교육을 시작한 아이들의 경우, 이미 영어에 거부감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의 경우 억지로 영어 수업을 듣곤 하는데, 그림책 수업의 경우 두 달쯤 지나면 슬그머니 영어에 관심을 가졌다. 이런 드라마틱한 변화는 다른 수업에서는 볼 수 없었다. 영어를 좋아하고 글자를 읽고 쓰는데 크게 관심이 있어 학원에 온 아이들을 보면, 영어 그림책을 1년 이상 꾸준히 읽어온 경우가 많았다.

 

영어 발음이 좋지 않은 부모의 경우, 쉽게 시작하기가 어렵다.

 

부모의 영어 발음이 좋고 안 좋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영어 그림책 수업을 하면서 만난 아이들 중 부모의 영어 실력과 관계 없이 뛰어난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엄마표 영어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경우, 영어 실력보다는 열정과 끈기가 훨씬 큰 효과를 보였다. 아이는 영어의 소리를 엄마에게서만 듣는 게 아니므로 엄마의 영어 발음을 따라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것보다 영어 영상 시청, 오디오북을 통해 듣는 양이 훨씬 많아지면 아이의 전체적인 발음은 많이 듣는 소리 쪽으로 가게 된다.

 

영어 그림책 수업은 아이가 몇 살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가?

 

보편적으로는 6세, 7세에 시작하면 적당하다. 1학년 때부터 시작하면 더 편하게 따라올 수 있지만 나는 나중에 손주가 생기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하면 늦을까?

 

정서적으로는 좋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영어 학습에 있어서는 다른 문제다. 이 때는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을 시작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자녀 둘(7세, 초등 2학년)과 같이 공부하려는 경우, 어떤 아이에게 수준을 맞춰야 하나?

 

2학년 아이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게 좋다. 마더구스를 들려주거나 영어 영상을 보여주면서 영어 그림책 공부를 하면 가장 좋다. “하루에 영어 그림책을 10권씩 읽으면 무조건 영어가 는다”는 말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어떤 부모님은 매일 10권씩 그림책을 읽어 주다가 건강만 해치고, 아이는 영어를 싫어하게 됐다. 아이가 어떤 방식의 공부를 좋아하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또 하나, 두 자녀 중 한 명의 영어 실력만 는다고 걱정하면 안 된다. 보통 7세 아이의 영어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는데, 최소한 1년 후를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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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자막을 보여주면 소용없다

 

영어 그림책 공부 초기 단계에는 어떤 그림책을 선택해야 할까?

 

아이가 아직 영어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그림만 봐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게 좋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한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그 책은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으니 과감하게 수준이 맞는 책을 고르는 게 좋다. 아이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줄거리가 있는 책을 선호하니, 조금 늦게 그림책 읽기를 시작한 경우는 단순한 책보다는 짧고 쉽지만 이야깃거리가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Good Night, Gorilla』 , 『That is Not a Good Idea』  ,  『The Chick and the Duckling』 ,  『Five Little Monkeys Sitting in a Tree』  같은 책을 추천한다.

 

부모가 영어 그림책을 읽어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재밌는 책을 고르는 것, 부모가 좋아하는 책을 고르는 것, 미리 연습을 하는 것. 이 세가지에 중점을 두면 좋다. 공부에도 약간의 전략이 필요하다. 부모가 미리 연습을 하면 더 재밌게 읽어줄 수 있다. 문제는 부모가 그림책 읽기를 즐기느냐다. 한 엄마는 그림책 읽기 수업을 8번 정도 받으셨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과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달라서 공부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그림책은 모두 다르다. 픽션을 좋아하는 아이도 논픽션을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골고루 섞는 것이 좋다. 부모 입장에서도 내가 재밌어야 책을 읽는데 영혼이 실릴 수 있다.

 

영어 그림책을 읽은 후, 어떤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좋은가?

 

『Good Night, Gorilla』  를 읽고 북메이킹을 하거나,  『Go Away, Big Green Monster!』를 읽고 클레이로 미술 놀이를 할 수도 있다. 『Five Little Monkeys Sitting in a Tree』  를 읽고 엄마는 악어가 되고 아이는 원숭이가 되는 역할 놀이도 할 수 있다. 또 『A Dragon on the Doorstep』 을 읽고 아이와 집 안을 돌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는 것도 재밌는 독후 활동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은 몸으로 하는 활동을 좋아한다. 그림책을 읽고 간단한 연극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책 읽기에 이어 꼭 ‘학습’을 연계해야 하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길 원한다면 물론이다. 읽기, 듣기, 시청하기. 이 세가지를 함께 해야 아이의 영어가 늘 수 있다. 영어로 말을 잘해도 문장 쓰기는 잘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곧 입력과 출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많이 들은 만큼, 많이 말하고 써야지 영어가 늘 수 있다.

 

영어 쓰기는 언제부터,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영어 쓰기는 한꺼번에 뚝딱 되는 것이 아니므로 아이가 짧은 글이라도 꾸준히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함께 읽기 단계에서부터 따라 쓰기 등 간단한 쓰기 활동을 조금씩 해주면 좋다. 파닉스를 배운다면 단어 쓰기가 시작될 것이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본격적인 쓰기는 유도적 읽기 단계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읽기 수준에 비해 말하기 수준이 낮은 편이라, 아이가 어느 수준의 책을 읽을 때를 기준으로 하기보다 아이가 영어로 말문이 터질 때, 영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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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이 중요, 다른 아이들과 비교는 절대 금물

 

영어 동영상은 어떻게 활용하는 게 가장 적절한가?

 

매일 꾸준히, 오랜 기간 보는 게 좋다. 영어 학습이라는 것이 1,2년에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진행하는 것이 좋다. 우리 딸아이는 엄마표 영어로 공부한 케이스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1학기까지는 매일 영화 한 편을 보여줬다. 한 달에 최소 20편은 본 것 같다. 말문을 틔우는 데는 영상물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때 중요한 건 아이의 연령에 맞는 적절한 시간 배분이다. 아이가 너무 어리다면 긴 영화를 끊어서 보는 게 좋다.

 

아이가 하나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려고 할 때, 보여줘도 괜찮은가?

 

학습에서 반복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다. 아이가 같은 영상을 반복해서 보려 한다면 보여줘도 괜찮고, 반대로 같은 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걸 싫어한다면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통해 큰 틀 안에서라도 반복이 되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한글 자막은 보여줘도 되나?

 

절대 안 된다. 한글 자막을 깔아놓고 영어 영상을 보여주면 아이는 귀를 완전히 닫아버린다. 시작부터 한글 자막은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영어 자막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가장 좋은 건, 자막이 있는 경우가 없는 경우를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다. 자막이 있으면 아이는 듣기보다는 읽기에 집중하게 되어,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그림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TV 시리즈를 보여줘도 될까?

 

물론이다. 주의할 점은 그림책과 영상물의 수준 차이다. 텍스트의 난이도가 정확하게 나와 있는 그림책에 비해 영상물은 상영 시간, 말의 속도 등 난이도의 차이가 크다. 전 세계에 핑크돼지 열풍을 불러일으킨  『페파 피그』  의 경우, 영상은 유아 수준인데 그림책의 글밥과 난이도는 초등 2학년 수준이다. 반대로 『트럭타운』  시리즈는 읽기를 시작하는 7세~ 초등 1학년이 스스로 읽을 수 있을 만큼 책의 내용은 짧고 쉬운데, 영상은 말의 속도도 바쁘고 표현도 다양해서 알아듣기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부모가 미리 시리즈 영상의 1편을 보고 아이 수준에 맞는지 판단하는 게 좋다.

 

아이의 영어 실력이 늘고 있다면, 부모는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하나?

 

아이의 수준과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도록 해야 한다. 아이가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영어책 한 권을 고르기도 낯설겠지만, 진도에 맞게 차근차근 하다 보면 혼자서 즐겁게 책을 읽고 있는 아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넘게 엄마표 영어를 했는데, 실력이 늘지 않으면 학원에 가는 것이 나을까?

 

아이들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꼭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부모가 너무 부담스러우면 굳이 엄마표 영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너무 힘들지 않은 한에서 교육을 하는 게 좋다. 중요한 건, 다른 아이들과 절대 비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파닉스 책을 다섯 권 정도 떼고 나면 영어를 갑자기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건 착시 현상이다. 파닉스 규칙을 금방 이해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1년 후, 2년 후를 보면 중요한 건, 꾸준히 학습을 했느냐의 문제다. 처음 2,3년은 머리 좋은 아이들이 실력이 확 늘지만, 성실하게 오래 공부하는 아이들이 결국엔 더 빛을 발한다. 그 힘을 부모들이 믿어줬으면 좋겠다.

 

영어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재미없어 한다면 그만두는 게 좋은가?

 

몇 달 전, 다섯 살 아이의 엄마가 꼭 같은 질문을 하셨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힘든 거 안 해도 된다”고 말씀 드렸다. 하지만 영어교사로 드릴 수 있는 팁은 약간은 견뎌 보시라는 조언을 드릴 수 있다. 영어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아도 영어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다면, 아이들은 한 두 달 있다가 공부에 재미를 발견한다. 약간 참으면 재미가 따라올 수 있다. 영어는 절대 시간이 비례한다. 오래한 아이들이 잘하게 되어 있다.

 

유아기에 영어를 시작하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사회 행동학적으로 타인을 의식한다. 영어 발음이 좋지 않으면 쉽게 영어를 입 밖으로 못 꺼내게 된다. 물론 언어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도 외국어를 잘 습득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미 밝혔듯 발음에 관해서는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존재한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모의 태도다. 아이에게 너무 부담을 주면, 영어도 못하고 한글도 못하게 된다. 영어 그림책 학습이 좋은 점은 아이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어 그림책 공부법정정혜 저 | 북하우스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싶은 부모들을 위해 22년 영어 수업 노하우를 모조리 담았다. 영어책 한 권 고르기도 낯설고 막막했던 부모들에게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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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실 “외톨이인 나를 위로해 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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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진다. 어디로 도망칠까?’
-30쪽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배운 날, 재일 한인 3세인 박지니는 같은 반 친구에게 ‘조센진’이라는 말을 듣는다. 서서히 따돌림을 당하던 지니는 중학생이 되어 조선학교에 들어간다. 교실 정면에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걸린 풍경에도 지니는 녹아들 수 없었다. 일본과 한국 어느 쪽에나 속하지 못해 도망치듯 미국에 온 지니는 그 시절을 상기하다, 여전히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이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지니의 퍼즐』  은 1950년대 말 재일조선인들의 고향 귀국 운동과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 등 역사적 맥락 아래 박지니의 고독한 혁명을 그린다. 소설가 최실은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세대인 재일 한인 3세로, 실제 경험한 일본 조선학교와 미국 유학 시절을 토대로 픽션을 구성했다. 신인 작가가 쓴 첫 번째 문학 작품이었음에도 군조 신인문학상, 오다사쿠노스케상, 예술선장 신인상 등의 문학상을 받고 아쿠타가와상 최종 후보까지 올라 ‘자이니치’라는 특이성 안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성장 과정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해방과 전쟁을 거친 뒤에도 재일교포는 이념 대립과 각종 사회적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일 한국인은 동포도 일본인도 아닌, 어떤 경계의 자리에 서 있다. 소설가 최실은 어릴 적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세계와 싸워온 시절이 길었으나, “정체성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니 오히려 편해졌다고 밝혔다. 일본과 한국, 북한의 경계를 벗어나 지구인(Earthling)이 되고 싶다는 최실을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행사를 계기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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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생각이 아니었어요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오셨다고 들었어요.


초대받았을 때 너무 기뻤어요. 많은 작가분이 오는 행사에 참여한 게 처음이기도 했고, 다른 나라 작가분들도 있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세계가 좀 넓어지지 않을까 기대해요.


최실이라는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는 별로 없는 이름이거든요.


그런가요? 자이니치계 부모님들이 특히 많이 붙입니다. 열매가 열린다는 뜻이거든요. 일본어로는 ‘미노루’라고 불러요.


『지니의 퍼즐』  이 한국에 소개된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무섭고 반응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어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소설은 정치적인 것에 중점을 두지 않으려고 했지만, 정치적인 어휘와 언어가 많이 들어 있어서 한국에서 불화를 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애초에 한국에서 재일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몰랐고, 한국어 리뷰를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으니까요.


일본에서 군조 신인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어요.


원래 소설을 쓸 생각이 아니었어요. 어느 날 뭔가 써놓은 걸 발견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는데 그게 이 소설이었어요. 그냥 버리기보다 어딘가 응모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죠. 당선됐다고 전화를 받았을 때는 사실 뭘 응모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제가 그때 뭘 썼고 무슨 자료를 읽었는지 그때야 찾아봤어요.


호평이 많았어요. “훌륭한 재능이 드래건처럼 나타났다” “사람들에게 꼭 알리고 싶은 책” 등이요.


거의 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렸어요. (웃음) 현실미가 없었어요. 지금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요. 아마 5년 후에나 현실로 받아들이게 될까요?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반응이 어땠어요?


복잡했어요. 영화 학교를 나온 후로 계속해서 영화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에 책으로 데뷔를 한다고 하니 친구들은 다들 놀랐어요. 가족에게는… 책 이야기는 거의 안 해요. 부모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진심을 듣는 게 무서웠어요. 관계가 가깝다 보니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기뻐해 줬던 친구들은 오히려 약간 거리가 있는 친구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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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어요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지니의 퍼즐’이 지니가 풀어야 할 퍼즐이라고 생각했어요. 읽으면서 독자가 지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푸는 퍼즐이라고 생각했고, 다 읽고 나서는 이 세상에 대해 지니가 독자에게 퍼즐을 던져줬다는 느낌이었어요.


의미는 아주 많아요. 말씀하신 대로 지니가 풀어야 하는 퍼즐도 맞지만, 저에게도 글을 쓸 때 퍼즐 같았던 글쓰기였어요 군조 문학상 기준이 250매였는데(일본은 4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한다) 처음에 썼던 게 350매 정도라 줄여야 했어요. 그래서 퍼즐처럼 많은 내용을 덜어내야 했어요. 신(scene)을 줄이기도 했고, 하나하나를 더 짧게 썼어요.


신(scene)이라고 표현하신 걸 보면, 영화 학교에서의 경험이 책을 쓰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나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글을 쓸 때는 그림을 보는 느낌으로 글을 써요.


작가님도 조선학교를 나왔다고 들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조선학교에 들어갔어요. 굉장한 문화 충격이었죠. 그 전에 다니던 일본학교에서는 집단 따돌림이 심했는데, 조선학교는 다들 반 전체 팀워크가 매우 좋고 하나로 뭉쳐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본 학교에서는 따돌리는 입장에서도 따돌림당하는 입장도 다들 불쌍하게 느껴졌었거든요.


조선학교에서 가장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뭐였나요?


처음에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가는 게 조금 부끄럽고 위화감이 있었어요. 빨간 넥타이도 그렇고요. 걸어갈 때는 행진하는 것처럼 걷는 것도 창피했어요. 하지만 역시나 초상화가 굉장히 이상했어요. 점점 친해지면서 학교생활은 너무 재밌었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학교 가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이 터지면서 환경이 많이 바뀌었어요.


중학교 1학년이면,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거예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변 가족이나 친척들이 언젠가는 통일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한국과 북한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젠가는 통일하게 되겠지?’하는 생각뿐이었어요.


지니는 소설 속에서 김씨 일가의 사진을 던져버려요. 김씨 일가가 문제라고 하기보다 오락실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남성들을 탓하거나, 친구들을 탓하거나 하는 식으로 주변의 인물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문제의 원인을 김씨 일가로 생각한 방향성은 무엇일까요?


지니가 일본 학교에 계속 다녔다면 자기감정을 억눌렀을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역시 조센징이라 그렇다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조선 학교로 가면서 일본 학교에서와는 다르게 자기 자신을 펼치고 폭발적인 힘을 쏟아내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조선학교에 들어가면서 환경이 바뀌고, 지니는 ‘조센징 지니’가 아닌 지니가 되었어요. 지니 입장에서라면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환경에 들어가는 게 일단 기뻤을 거예요. 하지만 대포동 사건과 게임센터에서의 사건을 겪고 학교에 돌아가자 학교에서도 위화감을 느낄만한 분위기가 조성됐잖아요. 교복 대신 체육복을 입으라고 하면서요. 지니라면 다른 친구들이 자기가 겪었던 사건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 자유를 줬던 학교 안에서 뭔가 폭발해 내는 것이 열세 살 지니한테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지니도 조선 학교에 다니는 다른 재일 한국인에게 애정이 있었다는 뜻이겠죠?


한 자이니치 분이 책을 읽고 조선 학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거라며 화를 내는 댓글을 본 적 있어요. 리뷰를 읽었을 때 각오는 했지만 마음이 아팠죠. 이 책을 읽고 조선학교를 싫어할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지니가 폭발할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을 향한 지니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지니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여길 때, 동화 작가인 스테파니가 도움을 줘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동 도서를 좋아해요. 제가 직접 동화를 쓰기도 했어요. 그 동화 제목을 스테파니가 쓴 것처럼 소설에 넣었어요. 어디에도 발표 안 했지만 제 소설 안에서는 칼데콧 상을 받게 했죠. (웃음) 그 상을 동경하고 있어요.


스테파니를 제외한 다른 어른들은 다 차갑게 느껴졌어요.


어렸을 때 어른들의 행동이 너무 싫을 때가 있었어요.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어른들이 도움을 주지 않았던 아픈 기억, 슬픈 기억이 있어요. 주문처럼 난 절대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었죠. 어렸을 때의 기억이 글을 쓰려고 앉는 순간 떠올라서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 10대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영어덜트 소설 같아요. 주인공이 세상과 불화한 뒤 딛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것 같아서요. 의도하신 건가요?


소설을 쓰는 목적은 잘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아요. 제 안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향해 쓰고 있죠. 하지만 그걸 말해버리면 독자들의 길을 제가 뺏는 꼴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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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에게 필요한 것


작가님은 자기 자신을 일본인이나 한국인보다는 지구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요. 이제는 어린 시절의 상처라든지 그때 느꼈던 사회적 모순이 정리된 상태인가요?


그렇습니다. 꽤 정리됐다고 생각해요. 사실 10대나 20대 초반까지는 온갖 일들에 전부 정색을 하고 온몸으로 부딪쳤던 시기였어요. 너무 힘들고 피곤한 시기였죠.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서 부딪치고 열심히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구나 싶었어요. 정체성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20대 중반 남짓 어느 날에 바퀴벌레를 봤는데, 바퀴벌레의 생이 괜찮아 보였어요. 바퀴벌레는 놔두면 혼자 알아서 잘 살잖아요. 저도 바퀴벌레처럼 혼자 알아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도 잠깐 계셨죠. 미국에서는 어땠나요?


미국에서도 다를 건 없었어요. 여전히 차별을 받았죠. 나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외로움 때문에 고등학교 때 한국에 온 적이 있어요. 한국에 오면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와 보니 전 한국인도 아니더라고요. 길거리에서 오뎅 포차 아주머니랑 이야기하는데, 저보고 일본 교과서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재일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해도 아주머니는 재일한국인도 일본인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일이 겹치다 보니 나는 한국인도 아니다 싶었어요.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셨어요?


<오페라의 유령>에 빠져 있을 때였어요. (웃음) 영어로 된 뮤지컬을 몇 번이고 돌려 보고, 대학로에서 하는 뮤지컬도 좋아해서 매일 무대를 보면서 위안을 얻었어요.


이야기가 작가님에게 위안을 주나요?


그런 것 같아요. 위로를 받고 싶을 때는 소설이든 극이든 어떤 작품에 집중하게 돼요.


어렸을 때 경계인으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힘듦이 소설과 이야기를 만드는 원동력이었을까요?


정체성을 생각하기도 전에 유치원 때부터 극이나 연기, 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몰라서 외톨이일 때가 많았는데, 그때 위로해준 게 책이나 이야기, 영화였어요.


외로웠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외로움에 쉽게 공감하는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캐릭터에 이입하는 힘이라든지요.


어렸을 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제 외로움을 밖으로 꺼내고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는 게 어려웠어요. 제가 피에로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즐거워 보이지만 우는 표정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그걸 전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소설의 형식으로 글을 계속 쓸 생각인가요?


네. 이 책을 쓴 게 2016년인데 그 이후로도 계속 쓰고 있어요. 책을 만든 편집자 님과 다음 책은 생명을 다루자고 했었거든요. 공교롭게 편집자 분이 돌아가시고 이후로 저도 병이 생겨서 그 이야기는 중단된 상태예요.


모든 작가에게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잖아요. 두 번째 소설도 잘 돼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요?


모든 작가가 그런 부담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라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멋대로 하잖아요. 결국 자기 멋대로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 소설도 읽어보셨어요?


김연수 소설가의  『원더보이』  를 읽었어요. 문장이 시적이에요. 주인공 남자애가 가족도 없고 외톨이면서 어른들의 세상과 싸워나가는 자세가 지니와 완전히 달랐어요. 강함과 애매모호함이 섞인 캐릭터에 점점 빠져들었어요. 너무 매력적이었죠.


한국 소설과 일본 소설의 차이점을 느낄 때가 있나요?


일본이 훨씬 더 내향적인 것 같아요. 한국 소설이 일본보다 외부를 향해 있는 느낌이 있고, 일본은 좀 어두운 게 많아요. 한국은 북한도 있고 사회적으로 평화롭지 낳은 위태로운 요소들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바깥을 향한 게 아닐까요?


다른 나라를 경험하고 정체성을 고민했던 사람이라 일본을 타자의 위치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분명히 그런 게 있어요. 아마 일본에 사는 재일 한인이라면 누구나 고독함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지니의 퍼즐』  을 읽고 자이니치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한다는 공감대가 있는데, 일본 친구들은 아마 제가 의도한 걸 모두 느끼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본에 남은 10대 자이니치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어른으로서 책임을 느껴요.


한국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도 있을까요?


만약 책을 읽어주셨다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니가 좋을 수도, 싫을 수도 있지만 지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거고, 지니에게 필요한 것은 본인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것일 거예요.


 

 

지니의 퍼즐최실 저/정수윤 역 | 은행나무
‘시간의 조각’이라는 짧은 장에서 이 세계의 구원을 ‘우리의 시(詩)’에서 찾는다. 문학을 읽고 쓰고 만드는 일은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두려움 없는 행위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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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막례 김유라 “성공의 이유? 자기객관화, 의외성, 세대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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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치과 들렀다 시장 갈 때 메이크업’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퍼졌다. “머리카락 묻지 않게 잘 발라주세요” “머리카락 묻으면 그냥 싹싹 문질러 버려 그냥” “주름살이 적어지려면 다시 태어나야 돼” 등 박막례의 가감 없는 말투는 유튜브 시장을 단숨에 뒤흔들어 놓았다. 10대와 20대가 판을 주도하는 유튜브에서 박막례는 ‘팬’을 ‘편’으로, ‘크러쉬’를 ‘후라시’로 발음하면서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60대 이상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줘 그야말로 시청자를 울리고 웃겼다. 이후 유튜브에는 할머니 크리에이터, 할아버지 크리에이터가 늘어났다. 모두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채널 덕분이다.


박막례를 유튜브 대스타로 만든 데는 손녀 김유라의 역할이 컸다. 편(팬)들은 김유라를 ‘천재 PD’라고 일컫는다. 그만큼 박막례의 캐릭터를 이해하고 콘텐츠를 기획할 만한 사람은 없다는 칭찬의 의미다. 모든 연령대에 통하는 김유라 PD의 콘텐츠는 유튜브 사장인 수잔 보이치키와 구글의 CEO인 선다 피차이에게까지 전달되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막례’가 된 한국의 여성,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식당 일을 하며 3남매를 홀로 키운 박막례의 인생은 유튜브를 통해 ‘뒤집어졌다’. 박막례를 추종하는 ‘편’들은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의 표지부터 열광했다. 제2차 세계대전 포스터를 패러디한 이 사진에서, 전쟁같이 살아온 한 사람의 삶과 그를 담아내려 애쓴 손녀의 모습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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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막례 작가의 말은 맞춤법을 따르기보다 입말을 그대로 실었다.)

 

 

뒤집어져도 이렇케롬 뒤집어질 수가 없어

 

책은 오늘 처음 보셨죠?


박막례 : 기왕 책을 찍었은 게 잘 팔려야지, 안 팔리면 어찌까 싶었어요.


혹시 몇 부 팔릴지 생각해 보셨어요?


박막례 : 무조건 많이 팔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개수는 생각 안 했어요. 책 안 냈을 때부터 주변에서 ‘너는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아 할 말이 많으니까 책 내든지 <인간극장> 나가든지 하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어떤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요?


김유라 : 메이크업 영상이 뜨면서부터 책을 내자는 제안이 많이 왔는데, 다들 유튜브 성공기를 강조하고 싶으셔서 내용 면에서 어긋났어요. 유튜브 성공한 사람은 너무 많고, 성공한 방법이 누구에게는 적용되는 건 아니잖아요. 유튜브에 관심 없는 사람도 책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영감을 받고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집필은 얼마나 걸렸죠?


김유라 : 출판사와 계약하고 실제로 책이 나오기까지는 일 년 반 정도 걸렸어요. 책을 쓰면서도 자꾸 새로운 일이 생기는 거예요. 구글 I/O에 초대받고, 수잔(유튜브 CEO 수잔 보이치키)도 만나고 나서 이제 다 되었다 하고 책을 마무리하고 나니 이번에는 구글 CEO(선다 피차이. ‘구글 I/O 2019’에서 선다 피차이가 먼저 만남을 요청했다)를 만나게 됐어요. 미국 갔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원고를 썼어요.


글쓰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SNS에 남겼더라고요.


김유라 : 죽는 줄 알았어요. (웃음) 책은 SNS에 짤막하게 쓰는 것하고는 다르게 긴 호흡으로 써야 하잖아요. 전체관람가니까 수위도 잘 표현해야 하고, 가독성 좋게 정리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책을 쓴 모든 작가를 존경하게 됐어요.


표지 기획이 멋져요. 사진 찍을 때는 어떠셨어요?


박막례 : 정말 책이 나온가,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유라가 ‘할머니 이거 책 표지래, 책 제목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래’라고 해서 나는 만화가치롱 한 몇 장 나오는 줄 알았어. 이렇게 두껍게 나올 줄 상상을 못 했어요.


살아온 인생이 쭉 나와요. 기억을 떠올리는 게 힘들진 않으셨어요?


박막례 : 유라가 내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다 해보라 해서 한다고는 했는데, 살아온 것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잘이나 쓰면 미리 다 써놓으면 되는데, 앉혀 놓고 이야기하니까 돌이켜 보니 어려웠던 내용은 빼먹고 말 안했네 싶더라고. 딸이 그라 안 해도 엄마가 고생한 것은 엄마랑 엄마 자식들만 알고 있지 전세계사람 다 알리냐고 뭐라 했었는디, 굳이 굳이 다 말해야? 그러고 안 한 말도 있었어요.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라 그럴까요? 책에 내기에는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박막례 : 그... 사람이 읎는 것은 죄가 아니잖아. 나중에 우리 애들이 엄마 창피하게 왜 이런 소리까지 했어 이런 말을 하면 어찌까 싶은 마음도 있긴 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어요. 기왕 한 김에 이 말도 해야겠다 싶다가 나중에 말하면 정리하기 복잡해서 못한 게 커요.


김유라 : 이미 충분히 많이 하셨어요.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요. (웃음)


할머니의 인생을 풀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김유라 : 하이라이트만 잡아서 쓰는데도 말도 안 되는 인생을 살아오셨어요.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을 다 이야기해보라고 했는데, 학교도 못 가고 아침에 일어나면 그저 일하는 삶이었던 거예요. 저도 쓰면서 복장이 터지는 일이 너무 많았고 할머니가 그걸 다 견디고 살았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박막례 : 우리 친정집이 나를 안 가르쳐서 그렇지 못 가르칠 정도로 가난하진 않았어요. 생각해 보니까 일꾼도 둘이나 데리고 살았어. 근디 이자 스무 살 때 결혼해서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계속 꼬이더라고. 저녁 끓일 것도 없어서 시어머니가 어디서 바구니로 조금씩 부셔놨어요(‘붓다’의 방언). 처음에는 내가 뭐 퍼내 갈까 봐 의심해 가지고 조금씩 부셔놓나보다 싶었는데 저녁 끓일 것 없으면 넘의 집에 일해준다고 곡식을 가져와서 창피하니까 며느리 모르게 놓은 거야. 근디 시어머니 입장이 어쩌겄어, 나는 괜찮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 며느리가 밥을 해야 하는데 먹을 게 없으면 그 마음의 심정은 어떻겠냐고. 그래서 아들 없었어도 시어머니는 불쌍해서 내가 계속 제사를 지냈어요.


지금은, 뒤집어졌죠.


박막례 : 그러게. 지금은 뒤집어졌어. 뒤집어져도 이렇케롬 뒤집어질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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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들한테 많이 배우네

 

책에서는 인생이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어져요. 전반전이 정말 기구하고 힘든 상황이었다면, 후반부는 손녀와의 호주 여행 이후로 ‘뒤집어진’ 거죠. 뒤집히고 난 인생의 분량이 더 자세해서, 마치 지금 작가님의 인생 같았어요.


박막례 : 나는 살아온 거 그때그때 지나왔으니 모르겠지마는 이렇게 받아쓴 유라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내 인생보다 진짜 우리 손녀가 대단해요.


김유라 : 갑자기요?


손녀 자랑도 많이 하세요(웃음)?


김유라 : 이렇게 카메라 있을 때마다 한 번씩 서비스로 해주세요.


유튜브 계정명이 ‘코리아 그랜마(Korea Grandma)’예요.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보기 쉽겠다 싶었어요.


김유라 : ‘박막례’가 영어로 쓰면 어렵잖아요. 유튜브가 우리나라 기반이 아니다 보니 계정을 한글로 만들면 앞뒤가 바뀌어서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한 번 하면 제대로 해야 하는 성격이어서 신경이 쓰였던 거죠. 외국인이 볼 거라는 생각이나 한국을 대표하는 할머니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던 건 절대 아니고, 그저 영어 이름으로 써야 예쁘게 보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 한 선택인 것 같아요.


계모임 친구들은 영상을 보고 뭐라고 하세요?


박막례 : 사실 그대로 쓰는데 뭐라고 안 하지, 좋아라 하지. 친구들은 은근히 촬영을 좋은 데서 하는 줄 아는데 방에서 하잖아요. 방에서도 촬영 할 수 있냐고 물어봐. 그래서 내가 그냥 틀어놓고 떠들면 되는 거지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


친구들은 영상을 잘 안 보시나 봐요.


박막례 : 나이 먹은 사람들은 내가 (유튜브를) 한다고 하고 보내주니까 보지. 어떤 사람들은 애들보고 깔아달라고 해서 보여주는데, 많이들 못 봐.


작가님도 시청자 반응을 체크하세요?


박막례 : 보기는 해도 체크는 안 해요.


김유라 : 할머니가 인스타그램은 직접 하세요. 유튜브 댓글은 접근이 힘들어서 잘 못 보시는데, 인스타그램은 댓글을 잘 보시는 편이에요. 애들 댓글이 너무 웃긴다고 깔깔 웃으실 때가 있어요.


예전에 인스타그램 올리실 때는 작가님 입말 그대로 썼는데, 점점 맞춤법이 정확해지고 있어요.


박막례 : 맞아요. 하다 보니까 늘었어.


유튜브 시작하면서 배우신 게 많았을 거예요.


박막례 : 가르쳐 주면 좀 알잖아. 우리 딸도 그래요. 이거 쓰면 맞냐 봐라 그럼 엄마 멋대로 쓰랴. 그래서 자존심 다 상해서 모르는 것도 숨길랑게. 나는 항시 발음이 남들하고 달라요. 내 발음대로 쓰니까 팬들이 댓글로 쓰기도 해요. 번역을 다 해주드라고. 이거 엄청 틀렸구나! 그제야 알지. (웃음) 편들한테 많이 배우네.


사람들이 작가님이 말하는 방식을 좋아하더라고요.


박막례 : 우리 딸이 나한테 ‘말 좀 부드럽게 하면 안 돼?’ 했는데 ‘야 나 니 말 안 들어. 우리 편들은 다 엄마 좋아해’ 해요. 내가 항시 말이 쌀쌀맞고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전라도 말이라겨서 말이 좀 뚝뚝해요. 승질나서 이야기하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승질난 줄 알아. 그전에 장사하던 손님들도 아줌마 무서워 죽겠다고 그래요. 왜 무서워 물어보니까 억양이 쎄다고 그래. 나는 무서운 아줌마 아니여요, 말이 좀 세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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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에 사로잡혀서 이상한 걸 찍지 말자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영상을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만들었던 재미 포인트가 있었을 거예요.


김유라 : 할머니의 의외성이었던 것 같아요. 상상할 수 없었던 리액션이 나오니까 너무 재밌었어요. 저는 당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할머니는 당연하게 모르고, 이런 것들이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면서 유튜브 상에서 매력 있는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PD 입장에서는 애써 만든 콘텐츠보다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콘텐츠 조회수가 훨씬 높은 걸 보면 당황스럽지 않나요?


김유라 : 맞아요. 제가 영상 공부했던 사람도 아니고, 유튜브 시장을 분석해서 달려든 사람도 아니라 하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변화에 맞춰가는 과정에서 영상 만드는 사람으로서 깨달은 게 많아요. 정말 힘줘서 찍었는데 조회수가 잘 안 나오면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제가 보여주고 싶은 걸 뚝심 있게 보여줘야 나중에 콘텐츠 하나가 주목받으면 전체적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해줄 기회가 오더라고요.


사람들이 박막례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편집이나 기획 능력도 많이 이야기 해요. 영상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요?


김유라 : 저는 할머니가 너무 웃겨요. 엔터테인먼트 방송보다 더 재미있어서 당당하게 채널의 카테고리를 다큐멘터리, 시사가 아닌 코미디로 해놨어요.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재미인 것 같아요. 저도 재미가 있으니까 만드는 거지 이걸 통해서 사람들을 각성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남들이 봤을 때 누구 하나 불편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최대한 모든 연령의 세대가 재밌게 보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채널이기 때문에 선한 영향력을 줘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죠. 절대 조회수에 사로잡혀서 이상한 걸 찍지 말자, 그것만큼은 제가 중심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채널을 이 정도 키웠으니 이제는 욕심이 생기진 않나요?


김유라 : 넷플릭스 같은 곳에서 할머니가 주인공인 시트콤을 단편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할머니랑 어떤 멋있는 할아버지랑 연애하는 가상의 스토리인 거죠. 아니면 손녀랑 일 못 하겠다면서 독립 레이블로 들어가겠다는 에피소드도 생각해 봤어요. 너무 재밌지 않아요? 아이디어는 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찍는 이야기를 욕심내다가도 유튜브 채널 하나 운영하는 것도 힘드니까, 이거라도 잘하자 하는 마음이에요.


할머니와 찍는 영상 말고, 다른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요?


김유라 : 저는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어서(웃음) 지금은 할머니와 같이 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제 이름을 걸고 유튜브 채널 해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20, 30대 여성분이 하는 유튜브 채널은 너무 많고 저는 경쟁력이 없어요. ‘박막례’만한 콘텐츠가 없으면 못 하겠다 싶어요. 아직 욕심이 없어요.


방송연예과를 졸업했어요. 전공이 도움이 된 게 있을까요?


김유라 : 방송연예과는 대개 연예인 되려고 들어오거든요.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저는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 있어서, 입학하자마자 연예인 깜냥이 아니다 싶었어요. 같이 학교에 들어온 사람들하고 경쟁이 안 되겠더라고요. 무대에 서는 걸 배우는 것과, 실제 카메라 앞에 설 기회를 주는 건 다른 이야기잖아요. 빠르게 욕심을 접고 연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연출에 두던 관심이 영상으로 전환 되면서 공모전에도 많이 나가고요.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긴 했을 거예요.


그리고 취직을 했어요. 할머니와 여행을 가겠다고 ‘눈이 뒤집힌 것처럼’ 사표를 던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진 않으세요?


김유라 : 뭔가에 꽂히면 그것만 하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치매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무섭기도 하고,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인생이 진짜 불공평하구나 싶었어요.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노후에는 치매 걸려서 누리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워서 할 수 있는 게 여행밖에 없었어요. 지금이라도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게요. 연기 강사를 했었는데 회사에서 휴가를 안 내주니까 물불 가리지 않고 그냥 그만뒀던 것 같아요. 다들 어떻게 그랬냐고 물어보지만 그때는 문장 그대로 할머니와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미쳐 있었어요.


“열심히 살아야 해서 열심히 살았는데도 그게 꼭 잘 산 게 아닌 것 같은 상황”(227쪽)이지 않았을까요.


김유라 : 맞아요. 그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나이 든 짱구 같다”(258쪽)는 표현도 있었어요.


김유라 : 할머니가 호기심이 많아서 길 가다가 뚜껑이 있으면 열어봐야 하고, 이상하게 생겼으면 무서워도 도전해보시는 게 순수한 어린아이 같더라고요. 저는 마치 할머니보다 더 나이 든 것처럼 흥미 없고 재미없게 느낄 때마다 할머니는 모든 게 새롭고 재밌다고 느끼시는 거예요. 그래서 ‘못 말린다’고 느꼈어요. ‘못 말리는 짱구’였던 거죠.

 

 

박막례라는 브랜드를 확장하기

 

다이아 티비에 소속되어 있어요. 편집은 어떻게 하세요?


김유라 : 똑같아요. 촬영, 편집, 미팅 혼자 다 하고 있어요. 몸은 망가지고 있어도 (웃음) 누구에게 맡길 수가 없더라고요. 가족을 찍는 거니까 누구에게 맡겼을 때 우리가 의도한 대로 안 나올까 봐 불안해서요. 계약 이후 하나 변한 건, CJ 음원을 쓸 수 있어요. 영상에 가요를 넣으면 저작권 때문에 영상이 내려가더라고요. 좋은 음원을 쓰고 싶어서 계약했어요.


업로드 주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김유라 : 일주일에 두 개, 많으면 세 개도 올리고, 할머니가 바쁘면 한 개만 올릴 때도 있어요. 할머니가 이걸 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삶이 윤택해지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하려고 해요.


총 영상 길이가 5분에서 10분 정도예요. 압축적으로 편집하려는 편인가요?


김유라 : 촬영 자체를 길게 찍지 않아요. 길어야 30분 정도인 것 같아요. 돈 주고 누군가를 출연시킨다면 그렇게 안 찍을 텐데, 제 할머니잖아요. 그리고 입담이 좋으셔서 길게 찍을 이유가 없어요. 한 번 찍고 그대로 가져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노인이 하지 못했거나 노인이 보이지 않았던 영역을 박막례 작가님이 도전하면서 새롭게 느껴진 것 같아요. 의도하신 부분인가요?


김유라 : 거창한 목표를 가진 건 아니었어요. 유튜브 가입했을 때 인기 동영상이 다 메이크업 콘텐츠더라고요. 할머니가 워낙 메이크업을 좋아하시고 세련되게 하니까 해봐야겠다 하고 기존 영상에 나오는 제스처나 촬영 방법을 가져왔는데, 그게 어떤 분들에게는 젊은 사람이 하는 걸 나이 든 사람들이 하면 재밌다고 느껴졌던 것 같아요.


선한 영향력 이야기도 하셨지만, 팬이 늘어나면서 영향력을 고민하실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김유라 :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 사용 영상(“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 편)은 처음으로 영향력을 고민하고 만든 영상이었어요. 뉴스에서 노인들이 키오스크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 할머니는 거기 해당되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할머니도 “맞아, 나 기차표 못 끊어” 하시는 거예요. 생각해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구나 싶었어요.


작가님도 유튜브를 하면서 할머니와 더 친해지고, 할머니 세대를 만나면서 그 세대를 이해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요?


김유라 : 늙어가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했어요. 저도 늙어가는 게 무섭고 도태되는 기분이 싫었거든요. 이 세상은 늘 20대가 주인공인 것 같고 저는 그들의 백그라운드 같은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할머니를 보니까 70대가 되어도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요. 중요한 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을 공유해야 하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 하는 법을 알려드리면 할머니가 볼 수 있는 세상이 많이 달라지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남녀 갈등이나 세대 갈등이 많은데, 이걸 해소하려면 적극적으로 알려줘야 해요. 몰라서 행동을 못 하는 게 많아요. 할머니께서도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뭘 불편해 하는지 아시게 되더라고요. 어떤 부분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 말하면 ‘염병하네’ 하고 무시할 수도 있는데, 조심하고 노력하는 걸 보면 감동적이에요. 이래서 할머니가 사랑받는구나 느끼기도 하고요.

 

우리 이야기가 훗날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쩌면 망할 수도 있겠다. 여기까지만 해도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니까.
- 330쪽

 

‘끝판왕’이었던 구글 CEO 만남 이후, 박막례와 김유라의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김유라 : 저도 잘 모르겠어요. 책이 나오기 전에 구글 CEO와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책 나오고 나서 만났다면 이 역사적인 사건을 영상으로밖에 남길 수 없잖아요. 사실 이 책 이후 더 잘 되길 바랄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후 생각한 걸 말씀해 주신다면.


김유라 : 이 채널의 목표가 할머니의 치매 예방도 있지만, 즐겁게 살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보여주는 채널이잖아요. 할머니의 새로운 직업을 보여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할머니에게 항상 새로운 걸 주고 긴장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도 그 시도 중 하나였어요. 할머니가 작가가 되어보는 경험, 자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호칭을 얻는 것 자체가 멋있기도 하고, 사인회도 할 수 있고요. 그렇게 박막례라는 브랜드를 확장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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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채널 보러가기

 

 

 ‘편’들을 위해 공개합니다. 박막례 작가님의 입담이 돋보이는 인터뷰 뒷이야기!

 

길거리에서도 알아보고 사진 찍으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아요.


박막례 : 기분이, 기분이 하늘로 날아갈 것 같지. 처음에는 쌩상 모르는 사람들이 아는 척 하니까 무서웠지. 근디 지금은 딸네 가게에 편들이 대구에서도 오고 부산에서도 찾아오고. 유튜브를 시작했을 적에 부산에서 일곱 명이 왔더만. 가족이 왔는데 딸이 하도 가자고 하니까 못 견뎌 가지고 가위바위보 해가지고는 이기면 딸이 보러 가는 걸로 하고 딸이 세 판을 내리 이겼댜. 그래서 이자 동네에 있어서 전화 받으면 딸이 “오늘 엄마 편이 온다고 하는데?” 해서 “몇 시에 오냐” 그럼 “글씨 안 물어봤는데, 전번에도 엄마 미국 구글 가가지고 못보고 왔다고” 그래. 근데 그 사람은 결혼했더만.


김유라 : 듣다가 아니다 싶으면 끊어주셔야 해요. 다른 이야기로 빠지면 끝이 없어서....

 

(이후로 박막례 작가는 팬의 동생이 천안에서 부대찌개 집을 하는데 동생도 부대찌개 가게를 닫고 같이 식당에 보러 왔다고 전했다. 천안에서 부대찌개 집 운영하는 편님, 이 인터뷰 보실 수 있으려나요?)

 

 

손녀 분이 오늘은 이거 찍어보자 하면 화내실 때도 있잖아요. 뭐 이런 걸 시키냐면서.


박막례 : 아니 화는 안 내고.


김유라 : 말투가 그래서 그렇지, 이걸 찍는다고? 물어보시는 건데 다른 사람이 보면 역정으로 보이죠. (웃음)


박막례 : 유라가 “할머니 이거 한 번 해볼까?” 하면서 카메라 들고 우물쭈물 한다고. (김유라 : 우물쭈물 한대 (웃음)) 내가 시간 없다고 해서 유라가 “아냐 못가, 이거 찍어야 해” 하면 내가 열불나지. 그러는데 약속 있다고 하면 알았다 하고 할머니 비우를 맞춰갖고 하니까, 유튜브 한 지 2년 됐어도 한 번도 불편한 건 없었어요. 저는 불편하겠지만 나는 안 불편해. 지는 대사 준비해 와가지고 읽으라 하면 나는 요리 듣고 요리 흘르니까, 할머니 나오는 대로 하라고 해요. 나는 나오는 대로 씨부렁대는 거지. 유튜브 안 했을 때도 그랬어. 친구들이 용인에 내 친구가 동갑 딸인데 시장에서 옷을 팔아요. 거기 가면 여자들 모여서 수다 떤다고 수다방이라고 해. 가면 친구들이 왜 막례 안 오냐고, 가서 똑같은 말 해도 내가 하면 재밌다고 해.


김유라 : 갑자기 이 이야기는 왜 나와.


박막례 :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그대로 하는 게 재밌다고 하는 거지. 내 생각에 재밌는지 모르겠는데 편들은 다 재밌다고 하잖아요. 

 

 

작가님은 어떤 영상 찍을 때 제일 재밌어요?


박막례 : 찍을 때는 재밌다고 하고 찍는 게 아니여. 찍고 나서야 보면 재밌었구나 해요.


여행도 가고, 새로운 경험 하는 건 즐거우셨을 것 같아요.


박막례 : 외국 가서 외국 사람들하고 사진 찍고 이러면 새로운 경험이지. 체인 있지?


...구글 직원인 셰인 말씀이시죠?


박막례 : 그래, 체인하고 있을 때 나는 영어도 몰라도 사진도 찍고 다 만나는구나 싶었지.


김유라 : 권상우 씨 만났을 때는 재미 없었어?


박막례 : 아, 권상우는 우리나라 사람이라 말이 통하니까 말할 것도 없고.


김유라 : 재밌었지?


박막례 :  ...어.

 

김유라 : 얼마 전 크러쉬 만난 거 재밌었어 안 재밌었어?


박막례 : 재밌었어. 사람 만나서 찍은 건 다 재밌지.


김유라 : 집에서 지진뱅이 한 것도 재밌었어 안 재밌었어. (“최신곡 들리는대로 부르기ㅋㅋㅋㅋㅋㅋㅋㅋ” 편)


박막례 : 오홋홋홋홋! (폭소)


김유라 : 얘기만 나와도 재밌어하면서 인터뷰에서는 재미없었다고 말하신다니까요. 이러니까 유튜브를 하는 거예요. 기록해 놓으려고.


박막례 : 만나서 재밌게 찍어놓고 나서도 난 생각 안 해. 흘려버려.


카르페 디엠이네요. 행복하려면 그 순간을 즐겨야 하는 거죠.


박막례 : 식당에 가도 식당 일만 하고 집에 와서는 잊어버려. 집안까지 안 가져와요.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박막례, 김유라 저 | 위즈덤하우스
지난 70여 년의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인생 전반전부터, 유튜버로 전직하고 난 뒤 유튜브 CEO, 구글 CEO를 만나기까지 부침개 뒤집듯 뒤집힌, 말도 안 되게 신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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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오혜진 평론가 “한국문학, 걱정보다는 ‘분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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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죽음,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소설이 없어졌다, 문학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아지고,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문학의 사회적 위상, 문학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예전만 못하다는 뜻일 테다. 자연스레 문학 비평의 파급력도 예전만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16년,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이라는 글이 문학 전공자만이 아닌, 상당수의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회자되었다. 표절과 문단 권력 등 예민한 주제에 관해 거침 없이 진단한 오혜진 평론가가 쓴 글이었다.

 

오히려 개탄스러운 현실을 초래한 원인은 이번 문학권력 논쟁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바 있는 퇴행의 양상에서 찾아져야 한다. 그 ‘퇴행’은 오랫동안 한국문학(장)의 지배적 경향성을 형성해왔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한국문학적인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티즘적 계몽주의, 가부장주의, 시장패권주의, 순문학주의와 같은 그 퇴행의 내용들이야말로 지금의 ‘몰락’을 초래한 한국문학의 어떤 ‘체질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92~93쪽)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은 오혜진 평론가가 낸 첫 단독 저서다. 2013년에서부터 여러 매체에 발표한 평론과, 미발표한 글을 묶었다. 책에는 한국문학의 지배적인 경향과 함께 이와 길항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문학 작품을 향한 평론도 실렸다. 평론의 대상은 한국문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26년>과 지슬, 웹툰 <미지의 세계> 등 다양한 콘텐츠를 분석했다. 오혜진 평론가가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지배적 경향과 과제, 평론의 역할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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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정치투쟁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역사적 축적물

 

첫 단독 저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을 내셨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첫 책 출간의 감회를 만끽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제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도록에 글을 한 편 썼는데, 그 핑계로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겠다고 출국 일정을 잡아놨거든요. 그래서 출간과 관련된 언론 인터뷰 일정들을 꽤 급하게 소화해야 했어요. 공항에서 전화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죠.

 

출간은 물론 뜻깊은 일이지만, 그저 쓴 글을 수정해 모으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담담한 편이었는데요. 그래도 첫 책이라고 지인들이 축하와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독자들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이 있는지는 아직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책이 꽤 두꺼우니 완독한 독자들이 나오려면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도 하셨고요.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면, 주로 제 책의 1부와 2부에 관심을 많이 보여주시네요. ‘K문학’이라는 명칭을 비롯해 한국문학의 가부장주의를 비판한 내용,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문학(장)에서 벌어지는 변화와 실험들을 다룬 부분이죠. 그중 제가 악명(?)을 떨치게 된 글이자 표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이라는 글에 대한 질문이 많아요. 그 글은 제대로 읽히기도 전에 신문지상에 선정적으로 보도돼서 저로서는 꽤 부당한 공격도 받았고,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혁신을 꾀하려는 한국문학(장)에서 좀 소비된 면도 있는데요. 그 모든 일들이 제겐 양가적인 의미가 있었죠.

 

이번 책이 문학만 다룬 건 아니고 웹툰, 영화, 드라마 등 다른 대중문화도 다뤘습니다. 그럼에도 제목과 부제에 ‘문학’을 넣은 의도가 있을 듯합니다.

 

제가 한국 근현대문학을 전공했어요. 제가 대학원에 들어간 2000년대 중반은 문학을 일종의 ‘문화’로 보는 관점, 즉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문학 연구에서 ‘문화론적 전회’라는 학문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입니다. 제 지도교수님도 국어국문학과 소속이지만 문화론을 가르치시고, 저도 제 전공을 문화론이라고 생각해왔죠. 이처럼 문화론의 견지에서 문학을 보는 관점이 혹자들에게는 거부감을 주기도 했어요. 문학도 대중영화나 TV드라마, 예능프로그램과 같은 ‘문화’에 속한다는 주장이 문학의 위상을 격하시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하지만 저한테 문화는 공기 같은 것이라서, 문화 아닌 게 없고 어디서든 문화정치의 영역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과 문화를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게 전 더 부자연스럽게 여겨져요.

 

저는 작가론ㆍ작품론만을 유일한 문학 연구 방법으로 간주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문학 역시 일종의 시장ㆍ제도ㆍ미디어로서 사유하도록 훈련받았어요. 어떤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이 실린 매체와 제도의 조건, 정치적 환경 등을 중요한 변수로 생각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문학이 특정 개인의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상상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당대의 정치투쟁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역사적 축적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 익숙해요. 제 석사논문 제목이 「1920~1930년대 자기계발의 문화정치학과 스노비즘적 글쓰기」인데요. 식민지 체제의 조선에서 ‘자조론’이나 ‘입신출세’ 같은 자기계발 담론이 지닌 통치효과를 분석한 논문이에요. 당대의 소설과 문학평론은 물론, 신문ㆍ잡지 기사, 광고, 처세서, 수험서 등 온갖 것들을 분석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제목만 보면 국어국문학과 논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지만, 당시 저희 학교에서는 이런 주제가 그리 낯선 건 아니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물론 저는 문화의 많은 영역들 중에서도 한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한국 근현대문학의 역사와 장르법칙, 생산ㆍ유통ㆍ수용의 조건 및 양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죠.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한국 근현대문학을 전공한 문화연구자’로 설명하는 게 가장 편합니다.

 

제 책에서 문학 외의 다른 장르를 다룬 이유는, 첫째로는 제가 문학 외의 다른 장르와 플랫폼에서 시도되는 서사 전략과 상상력에도 관심이 있기 때문이고요. 둘째로, 전체 서사시장에서 문학이 위치한 좌표를 정교하게 읽기 위해서는 문학 외부의 서사물들을 참조항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볼거리ㆍ읽을거리가 신문과 라디오, 한정된 분야의 책(문학)들만 있던 과거와, 영화ㆍ유튜브ㆍ온라인게임ㆍ웹드라마ㆍ웹소설ㆍ넷플릭스 등이 마구 번성하는 오늘날 ‘문학’이라는 양식이 처한 조건과 위상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오늘날의 문학이 다른 문화장르와 엄격하게 구분돼서 창작되거나 수용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을 구상하고 쓸 때 영화나 TV드라마, 게임 등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설정과 상상력을 차용하기도 하고, 독자 역시 그런 온갖 종류의 서사를 접하는 와중에 문학도 접하는 거죠.

 

웹툰 <미지의 세계>를 다룬 글 「“포스트-아포칼립스”를 향한 미지의 미러링」에는 한국문학을 다룬 글에서보다 호의적인 문장이 많았습니다.

 

‘문학 대 웹툰’이라는 식의 장르 간 대결을 의도한 적은 없고요. 문학을 부정적으로, 비문학을 호의적으로 본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을 비롯해 한국문학의 몇몇 문학적 실험들에 대해서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했어요.

 

<미지의 세계>를 다룬 글에 호의적인 문장들이 많았던 것은 그 작품이 비문학 장르에 속해서가 아니라, 제가 정말 그 작품을 즐겁게 봤기 때문이에요. <미지의 세계>의 여성표상과 상상력은 제게 무척 이채롭게 여겨졌어요. 그간 ‘88원세대’나 ‘N포세대’와 같은 청년담론들은 ‘연애-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생애사 전개를 당연시하면서, 그 과정에서 여성을 ‘정상적’이고 ‘성공적’인 인생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자원이나 트로피 같은 것으로 간주했죠. 이건 사실상 청년의 성별을 ‘이성애자 남성’으로 설정한 것과 다름없어요. <미지의 세계>는 바로 그 청년세대론의 성별정치를 전복하고 미러링하는 전략을 취했죠.

 

웹툰 장르의 주류적 경향이 어떤지는 제가 잘 모르고요. 한국문학에 대한 ‘전적인’ 지지와 비난이 불가능하듯 웹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다만, ‘웹툰’이라는 미디어/장르를 주도하는 주체들이 민주주의를 새롭게 감각하는 젊은 세대이니, 한국문학의 오랜 전통을 통해 축적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상상력과 인식론이 웹툰에서 발견될 수는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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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은 걱정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

 

 “엘리티즘적 계몽주의, 가부장주의, 시장패권주의, 순문학주의 같은 퇴행의 내용들이야말로 지금의 ‘몰락’을 초래한 한국문학의 어떤 ‘체질’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93쪽)이라는 진단이, 해당 글이 발표된 2016년에도, 책이 나온 지금에도 화제인데요.

 

어떤 분들은 제가 한국문학을 “싸잡아” 비난했고, 급기야 한국문학을 증오하거나 저주했다고까지 생각하시던데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한테 문학은 ‘저주’나 ‘증오’ 같은 인격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정치적ㆍ역사적 분석대상이에요.

 

한국문학사를 살펴보면 여성문학ㆍ생태문학ㆍ노동문학ㆍ이주자문학 등 당대 현실에서 변혁과 운동의 기획을 담은 여러 문학운동과 실험들이 있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 우선 한국문학의 지배적 경향, 주류적 흐름에 대해 이야기한 거예요. 특정 작가나 평론가, 출판사를 지시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한국문학(장)에서 전개된 주요 담론과 비평적 화두들을 대상으로 그것들에 투영된 한국문학계 주류의 욕망과 인식론을 검토해본 것입니다.

 

인용하신 내용은 제가 처음 지적한 게 아니라, 현재 독자들이 그동안 한국문학의 특징이라고 언급해온 내용들을 정리한 거예요. 일부는 편견이고, 또 일부는 경험적 사실이겠죠. 다만 저는 특정 작품 분석을 통해 한국문학에 정말 저런 퇴행적 특징들이 있는지 검증하거나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감수성과 기대치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원인과 방향을 읽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글에 대한 반박글 중 대표적인 게 정홍수 평론가의 「당신은 왜 한국문학을 걱정하는가」였습니다.

 

저도 정홍수 선생님의 글을 따라 읽어온 독자이기 때문에 제 글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했어요. 정 선생님의 반박 글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죠. 하지만 아쉽게도 그 글은 제목부터 제게 실망을 줬습니다. 정홍수 선생님의 글 제목이 「당신은 왜 한국문학을 걱정하는가」인데요. 음… 저는 한국문학을 “걱정”한 게 아니에요. 아까 말씀드렸듯, 한국문학은 제게 “걱정” 같은 인격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ㆍ역사적 산물이자 분석 대상이거든요. 한국문학이 무슨 보호가 필요한 취약한 어린아이는 아니잖아요. 가장 기묘했던 건, 마치 한국문학을 걱정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누군가가 따로 있다고 암시하는 듯한 그 제목의 뉘앙스였어요. ‘네가 뭔데, 도대체 누군데?’라며,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공격하는 건 정당한 비판 방식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고요. 또 왜 제가 한국문학에 대해 발언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제가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아서일까요? 몇십년간 출판독서계에 종사해오신 정홍수 선생님보다 한국문학계에 몸담은 시간이 짧아서일까요? 한국문학에 대한 발언권 자체를 제한하는 듯한 그 제목 자체가 제가 지적한 한국문학의 위계와 폐쇄성을 반증하는 듯해 아쉬웠습니다.

 

물론 특정 대상에 대해 발언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책임이 따라야 하죠. 그게 아마 한국문학을 “걱정”(?)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자격 조건일 거예요. 그렇게 본다면, 저는 제가 그 조건을 누락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줄곧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어요. ‘국문학’만 팠죠. (이에 대해서는 가끔 후회합니다만……) 한국비평들이 자주 쓰는 별칭을 따르자면 국문학계의 “서자”나 “이단아” 쪽보다는 “적자”에 가깝달까요? 아, ‘여성’도 ‘적자’의 계보에 끼워준다면 말이에요. 아무튼 저는 국어국문학 전공자로서 제가 연구하는 필드에 대한 제 문제의식을 쓴 거예요. ‘남의 필드’를 ‘침범’한 게 아닙니다. 한국문학이 특정 주인에게 배타적으로 소유ㆍ독점된 ‘영토’가 아니라면 말이죠.

 

제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을 썼을 때 기대한 반론의 내용은 좀 다른 거였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문학의 저항적 실험들에 대해 제가 과소 서술한 것은 사실이니 그 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했고요. 제가 거론했던 한국비평계의 주요 화두들, 이를테면 장편소설론이나 세계 문학상 담론 등에 대한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죠. 문학과 비평을 취향과 연관시켜 언급한 대목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 제가 20~30대 여성주체, 한국문학의 미디어성, ‘정상성’에 대한 통찰, 나아가 87년 체제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문학의 새로운 비전 등의 주제를 내세웠으니 그에 대한 논의가 있길 바랐습니다. 저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지닌 제 또래 (여성) 평론가 및 독자들과의 연대도 기대했고요. 하지만 당시에는 제가 기대한 종류의 반론이나 후속 논의가 전개되지는 않았습니다. “개저씨”라는 용어의 발칙함(?)에 대한 준열한 꾸짖음은 많았네요. 그건 제가 만든 말도 아닐뿐더러, 앞 세대가 주도한 “20대 개새끼론” 같은 논의의 상스러움을 떠올려보면 좀 억울하긴 했습니다만…….

 

문학계의 적자라고 하셨잖아요. 학부부터 박사까지 국문학을 공부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책을 꼽아주신다면?

 

저는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는 식의 드라마틱한 삶을 살지는 않았어요. 전 ‘단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만약 바뀐다면 그건 예외적인 일일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국어국문학을 공부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단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책들’의 역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에요. 저한테 문학은 ‘순정’이나 ‘신앙’, ‘첫사랑’ 같은 건 전혀 아니고요. 오히려, 문학이 탁월한 개인의 대체 불가능한 산물이 아니라는 점, 문학을 창작하고 해석하는 데 소용되는 상상력과 장르 법칙은 일종의 계보와 역사를 가지고 변주되거나 유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문학이 제게 매력적인 대상으로 여겨졌어요. 문학연구가 그저 독후감 쓰기가 아니라 분석을 요하는 정치적ㆍ역사적 행위임을 인지했을 때에야 문학이 학문의 영역으로 생각됐죠. 문학이라는 재현의 체계에 매력을 느꼈던 겁니다.

 

그걸 깨닫게 된 게 학부 1학년 1학기 월요일 1교시 때 들었던 이혜령 선생님의 수업 때였어요. 염상섭의 중편소설 「만세전」(1922)에 대한 강의였는데, 「만세전」 자체도 흥미로운 소설이지만, 그 작품을 분석하는 데 사용되는 언어와 상상력조차도 역사화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건 제가 창작보다 비평에 더 매력을 느낀 이유이기도 하죠. 이러저러한 미적 상상력이 이러저러한 역사적ㆍ정치적 조건에서 가능하거나 혹은 불가능했다는 점을 깨닫게 될 때 공부의 희열이 조금 있었어요.

 

가장 열심히 공부한 텍스트는 염상섭과 그에 대한 평론이었어요. 제가 소명출판에서 총 3권으로 나온 『염상섭 문장 전집』 (한기형ㆍ이혜령 편, 2013~2014)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는데요. 그때 염상섭의 작품들을 한 개인의 산물이라기보다, ‘식민지라는 조건 하에서 가능했던 사상의 형상’으로 보는 관점을 배웠어요. 마찬가지로 어떤 작품이나 문화현상을 2019년 현재 한국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가능한 사상의 형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죠.


장편대망론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장편의 시대’와 ‘이야기꾼’의 우울」에서는 장편대망론의 허구를 지적해주셨어요. 장편소설이 한국문학의 미래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한국문학은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까, 하는 답답함이 들었습니다.

 

질문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장편소설은 한국문학의 미래가 아니다, 다른 답이 있다’라는 주장을 한 건 아니고요.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문학계에서 ‘장편소설’이라는 특정 문학 양식을 의미화해온 방식, 그것에 투영된 정치적 욕망을 질문한 겁니다.
 
한국문학사에서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은 그저 여러 문학 양식들 중 하나인 것이 아니라, 위계화돼 있어요. 시대에 따라 그 위계화의 양상과 논리는 달랐습니다. 식민지기에는 단편소설이야말로 예술적 성취로 여겨졌고, 장편소설은 통속적이고 상업적이며,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매문(賣文)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김남천의 장편소설론이 등장하면서, 장편소설이야말로 세계의 ‘총체성’을 조망할 수 있는 특권적인 장르로 부상하죠. 2000대 중후반부터 전개된 ‘장편소설 대망론’은 과거 김남천이나 게오르그 루카치 등이 주장한 소설미학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장편소설을 옹호합니다. 이때 장편소설은 단편소설보다 영화화될 가능성이 훨씬 높고, 그 때문에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상업적 기대, 세계문학에의 가능성 때문에 주장됐죠.

 

2007년부터 대대적으로 이어진 장편소설론을 보면 ‘이야기가 살아 있다’, ‘서사가 살아 있다’는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해요. 그런데 짧으나 기나 원래 모든 소설은 이야기잖아요? 그럼에도 장편소설이야말로 ‘이야기가 살아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죽어 있는’ 소설도 있다는 뜻이겠죠. 이때 ‘이야기가 없는’ 소설들로 지목된 것이 주로 1990년대 소설들이에요. 신경숙ㆍ은희경ㆍ공지영ㆍ김형경ㆍ양귀자 등 한국문학사에서 여성문학, 내면성, 고백의 양식 등으로 불린 소설들이죠. 이 1990년대 여성소설들은 ‘한국문학의 여성화’라는 비난(결코 칭찬은 아니었죠)을 들으며, 자폐적이고 사소설적이라는 평가를 듣습니다. 나아가 편의점, 고시원, PC방 등을 무대로 88만원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2000년대 소설 또한 자폐적이라고 진단되며, 그 역시 1990년대 소설전통의 해악으로 이야기됐죠.

 

결국, “아저씨 독자”가 떠난 ‘한국문학의 위기’를 강조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살아 있는 장편소설이 나와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진정으로 부정하고 싶은 것은 1990년대 문학과 2000년대 문학이었던 거예요. ‘1990년대 여성문학이 한국문학을 ‘여성화’했고, 그게 2000년대의 ‘자폐적’ 문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1990~2000년대 문학적 경향은 그저 ‘이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뿐, 우리에게는 ‘되살려야 할’ 강력하고도 굵은 ‘남성적’ 이야기들이 있다’라는 주장이죠. 실제로 ‘이야기꾼’이라는 별칭이 한유주나 배수아보다는 황석영, 이문구, 성석제, 천명관, 박민규 등과 같은 특정 스타일을 구사하는 ‘남성’작가들을 지시해온 용례를 볼 때, 저한테 장편소설론은 ‘이야기’, 나아가 한국문학의 전통을 ‘남성’으로 성별화하려는 시도로 이해됐어요.

 

이문구, 황석영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장편대망론에 설득된 적이 있었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문학적인 취향에 관해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이야기꾼으로 호명되는 방식에서 정유정의 예도 들어주셨는데요. 최근에 김언수 작가의  『뜨거운 피』  를 천명관 작가가 감독으로서 영화화한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이야기꾼으로 호명되는 소설가의 작품이 영화 등 다른 매체로 확장력은 있는 듯한데요. 웹툰  『26년』  의 영화화 사례를 분석해주셨는데, 문학 작품의 영화화에 관해서도 선생님의 분석이 궁금합니다.

 

문학작품의 영화화 자체에 대해 긍정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잘라 말할 필요는 없겠죠. 서로 다른 매체가 각자의 장르법칙과 미학의 임계를 시험하고 교란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실험입니다. 다만 제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편소설을 ‘영화화’가 가능한, 즉 대중적 흥행을 위한 양식으로서 ‘도구적’으로 이해한다는 점, 그리고 바로 그런 기대를 충족한 소설만이 ‘한국문학의 나아갈 길’, ‘한국문학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라고 의미화하는 경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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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벨문학상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부터 질문해야

 

시장패권주의와 관련해서는 노벨문학상을 둘러싼 언론 보도나 출판계의 상황이 떠오릅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 발표 때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전 ‘한국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탈 것인가’라는 주제에 큰 관심은 없어요. 일단 거론되는 후보가 늘 같잖아요. 고은, 황석영……. 이건 ‘고은, 황석영 작가가 훌륭하냐 그렇지 않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한국문학은 이미 1970~1980년대 문학정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갱신해왔는데, 여전히 한국문학의 대표이자 첨단으로 그분들이 호명된다는 건 한국문학에 대한 무관심이 아닐까 싶고, 이에 대해 무감각한 한국의 상황도 좀 의아하긴 합니다.

 

한국인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는 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죠. 중요한 건, ‘한국문학계가 노벨문학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이를 통해 한국문학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려 하는가’의 문제죠. ‘왜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안 나오냐, 상을 탈 만한 작가는 누구냐’라며 한국문학을 위계화하는 기준으로 노벨문학상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비롯한 각종 문학제도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말하듯, 노벨문학상의 문화정치는 매우 복합적입니다. 한국어시장이 넓어야 하고, 한국문학의 맥락들을 새롭게 선별하거나 창조해서 ‘번역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각종 외교정치도 필요하죠.

 

제 책 5부에서 영화 <지슬>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음에도, 그 호평의 근거가 한국사회에서 볼 때 지극히 탈정치적인 것이었음을 지적했는데요. 이처럼 한국어문화권에서 제출된 특정 작품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는 그 작품이 다루는 주제의 맥락을 공유한 해당 문화권의 독자들이 가장 잘 알아요. 외부에서 평가기준을 찾는 게 이상하죠.

 

아시아, 특히 식민지 조선에서 노벨문학상 담론이 ‘지방문학’과 ‘국민문학’ 및 ‘세계문학’의 위계를 만들며 식민주의적 열망을 추동해온 역사를 떠올려보면, 현재 한국문학계가 보이는 노벨문학상 집착은 무성찰적이에요. 심지어 신경숙 표절사건 때 특정 출판사가 자본주의에 의해 오염ㆍ타락했다고 주장하며 ‘진보적ㆍ저항적’ 문학정신을 강조한 문학권력론의 논자들 중에서도 신경숙은 세계문학 작가로서 미달이며, ‘노벨문학상을 탈 만한 요즘의 한국문학이 있는가’라고 개탄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심지어 자신은 요즘 소설들은 읽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시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때 정작 질문돼야 했던 건, ‘신경숙이 정말 세계문학 작가로서 자격 미달인가 아닌가, 한국작가들 중에 노벨문학상을 탈 만한 이가 있나 없나’가 아니라, ‘왜 노벨문학상이 기준이어야 하는가’죠.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만 아니라 김연아 선수와 박근혜 대통령이 재현되는 모습을 분석했잖아요. 공인이 여성으로 재현되고 소비되는 지점에 관해서였는데요. “‘싱글여성’에게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탐욕적인 호기심과 관성적인 해석틀을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다.”(230쪽)라고요. 여성평론가로서 직접 느끼시는 건 어떤지요.

 

질문의 의미가 좀 모호합니다만, 그냥 제 나름대로 답해볼게요. 저는 여성주의를 학습하며 비평을 써왔고, 저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있지만, 제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되거나 비난받는 상황이 되면 늘 양가적인 감정을 느껴요. 이를테면 제 책이 출간되자 많은 분들이 일단 ‘여성필자가 단행본을 냈다’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격려해주셨는데요. 특히 여성기자들과 여성독자들이 아주 기뻐해주시더라고요. 이때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올려치기(?) 당해도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지지하는 게 제 생물학적 여성성이 아니라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이라는 걸 알기에 감사했습니다.

 

제가 여성평론가 모두의 입장을 대표할 수는 없고요. 오히려 여성평론가, 혹은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러 연구자들의 관심사와 전략, 목표와 운동방식 등이 각기 다른데, 그 모두가 ‘여성’, ‘페미니스트’라는 집합명사를 경유해서만 호명된다면 각각의 연구자들이 지닌 입장과 전략의 동일성과 차이, 나아가 페미니즘 지식의 스펙트럼이 잘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지금 한국문학장에서 ‘퀴어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소설 「하나코는 없다」를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평하셨잖아요. 텍스트와 해석이 완전히 어긋났는데, 상을 준 평론가들은 당대 최고의 평론가들이었고요.

 

1994년에 발표된 최윤의 단편소설 「하나코는 없다」는 그해 제1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합니다. 저명한 문학상을 받았으니 검증된 ‘걸작’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진 않겠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좀 다른 지점이에요. 『1994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하나코는 없다」에 대한 심사위원 다섯 분의 심사평을 읽어보면, 그분들과 저는 서로 전혀 다른 작품을 읽은 것 같거든요. 물론 1994년에 중년 남성들이 「하나코를 없다」에서 읽은 내용과 2019년에 30대 여성인 제가 그 소설에서 읽어낸 것이 반드시 같아야 할 이유는 없어요. 오히려 다른 게 자연스럽죠. 각 시대마다 동원할 수 있는 지적ㆍ정서적 자원이 다르고, 그로 인해 형성된 ‘해석의 지평’이 다를 테니까요. 제가 흥미를 가진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에요.

 

제가 보기에 「하나코는 없다」는 아무리 봐도 남성 동성사회에 속하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사회(성애적인 것을 포함하는)가 남성에게 끝내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인데,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의 주제를 ‘남자와 여자의 우정은 가능한가’ ‘익명성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경험하는 개인의 소외’라고 파악하셨더라고요. 제 생각에 「하나코는 없다」에 간직된 어떤 결은 1994년 중년 남성들의 해석지에는 결코 포착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작품을 보다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는 해석의 지평이 당시에는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았던 탓이죠.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하나코는 없다」는 ‘저주받은 숙명’을 타고났다고 농담처럼 말해본 거예요. 그럼에도 수상작이 됐으니 꽤 아이러니컬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코는 없다」를 둘러싼 그 현상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이런 겁니다. 혹자는 퀴어문학이 지금 막 유행을 타고 등장한 것 혹은 소재주의의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한국문학에서 ‘퀴어한 것’, 즉 이성애 규범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세계에 대해 질문하는 소설들은 옛날부터 있었다는 것이죠. 유구한 전통이 있어요. 지금 이광수나 손창섭 소설에서도 남성 동성애의 욕망을 발견하는 연구들이 속속 나오고 있거든요.

 

퀴어문학이 지금 돌발적으로 등장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퀴어한 것’을 읽어낼 지적 자원과 해석의 지평이 이제 막 형성ㆍ축적되기 시작했다는 것, 퀴어문학의 문제의식이 이제야 비로소 한국문학계에서 ‘문학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사실에 더 가까워요. ‘이성애자 중년 남성은 절대로 ‘퀴어적인 것’을 읽어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건 절대 아닙니다. 이건 특정 개인의 비평적 무능에 대한 문제가 아니에요. 무엇보다 저는 특정 문제를 해독하는 능력이 나이ㆍ성별ㆍ성적 선호ㆍ교육경험 등에 좌우되는 고정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정 작품이나 현상에서 퀴어의 문제의식을 발명ㆍ발견하는 능력은 해당 사회에 그 문제와 관련된 지식과 정보, 교양과 감수성이 얼마나 축적돼 있는가와 관련됩니다. 그 요소들이 한 사회의 공통감각과 지적 토대, 즉 ‘해석의 지평’을 만드니까요.

 

지금도 여전히 독자나 평론가들에게 미처 감지ㆍ해석되지 않아서 ‘문제화’되지 못한 숱한 텍스트의 결들이 있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이제 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동성애혐오’의 혐의에서 자유로울지 다 깨달은 것처럼 믿고 있지만, 전 그렇지 않을 거라고 봐요. 여전히 의미가 축소되거나 은폐되는 많은 문제의식들이 있을 겁니다. 예컨대 장애, 이주, 인종, 인터섹스와 트랜스정치, 계급투쟁, 환경과 종차별, 신자유주의시대 전쟁과 군사주의, 분단과 식민주의 같은 문제들을 보다 정교하게 질문하고 해석하기 위한 지적 자원들이 한국문학계에 충분히 축적돼 있다고 보기 어려워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 많은 비평적 학습이 필요한 주제들이 있습니다.

 

 

지금 비평의 역할, 지금 한국 문학

 

매체 상황이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잖아요. 평론의 역할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 지금 평론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평론의 역할이라…….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는 아니겠고요. 그저 제가 어떤 평론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평에 대한 세간의 여러 생각이나 입장들 중 저를 가장 갑갑하게 하는 것은 비평을 ‘칭찬’ 아니면 ‘욕’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이에요. 물론 ‘칭찬’이 그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상찬’이 아니라 ‘정확하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비평적 자의식을 설명한 비평가도 있고, 그게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좀 다른 종류의 이야기예요. 비평가가 특정 작품을 ‘칭찬’한다거나 ‘욕’을 한다는 표현 자체가 저한테 비평에 대한 기묘한 상을 각인시켜요. 비평가가 특정 작품이나 현상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그건 즉물적인 감정이 아니죠. 비평은 정치적ㆍ역사적 성찰과 분석이고, 그 결과는 그 작품에 대한 호오를 밝히는 데만 소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갱신할 미적 감각과 상상력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 참조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천명관의 소설들은 천명관의 자의식과 세계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자의식과 세계관은 천명관이 산 시대의 산물이죠. 천명관의 자의식과 세계관을 ‘개성적’이라고 인식하는 오늘날 독자의 감각 또한 역사적으로 구성된 거고요.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최근 ‘여성서사’에 대한 논의가 부상하고 있는데요. 특강을 해보면 청중석에서 ‘여성서사가 무엇인지 정의해달라’, ‘바람직한 여성서사를 추천해달라’라는 질문이 자주 나와요. ‘여성서사’에 대한 간명한 정의와 사례를 접하고 싶은 욕망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여성서사’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을 ‘여성서사’라고 정의할지, 혹은 ‘여성서사’에 투영된 욕망과 전략이 시대마다 달랐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가출과 “불륜”을 다룬 전경린의 1990년대 소설은 페미니즘 문학인가 아닌가’, ‘조선희가 쓴 『세 여자』  의 등장인물들 중 누가 가장 바람직한 페미니스트인가, 끝까지 남편을 기다린 주세죽은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오빠의 밥을 차려주고 싶다고 말하는 유관순 영화는 여성주의적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보다는 ‘왜 그 당시 전경린의 여자들은 집을 나가 낯선 남자를 만나는 걸 ‘해방’으로 생각하게 됐는가, 주세죽에게 남편의 존재는 무엇이었나, 주세죽에게 남편을 기다리는 일은 왜 필요했을까’라는 식의 질문이 당대 역사를 산 여성들의 구체적인 삶과 욕망, 그들이 시도할 수 있었던 전략을 상상하는 데 더 낫다는 거죠. ‘무엇이 가장 페미니즘의 이상에 부합하는가, 누가 가장 페미니스트인가’ 같은 단순비교는 여성의 삶과 욕망이 형성되는 구체적인 조건을 보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여성에 대한 무지를 강화합니다. 특정 여성이 어떤 역사적 조건에서 자기해방을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었는지, 그 맥락에 관심 갖는 게 ‘여성서사’를 이해하기 위한 더 나은 방식이자 비평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스타 작가 못지않게 스타 평론가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요. 스타 평론가로서 오혜진의 가능성을 이번 책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런 질문 처음 들어봐요. (웃음) 아까 노벨 문학상 담론에 대해서도 말했듯, 특정 권위에 기대는 방식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타’나 ‘에이스’ 양성을 통해 해결되는 문제는 없을 거예요. 이게 제 진지한 답변이고요.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해볼 수도 있죠. 이를테면 최근 진행자를 필요로 하는 문학 이벤트들이 많아졌죠. 작가 사인회나 낭독회, 북토크와 같은 오프라인 ‘행사’는 물론, 문학 팟캐스트나 유튜브 같은 매체나 플랫폼들이 생겨났죠. 이때 평론가에게 사회나 진행을 포함해 일종의 엔터테이너 역할을 맡기는 일이 많아졌더라고요. 문학이 팟캐스트나 이벤트의 대상이 되는 현상 자체에 대해 ‘좋다, 나쁘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다만 그 새로운 문학 플랫폼에서 비평가에게 어떤 역할이 요구되는가 생각해볼 수는 있겠죠. 물론 전 그런 행사들에 거의 불리지 않습니다. 직업이 ‘문학평론가’가 아니라 ‘페미니스트’로 인지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중요한 자리에서는 저를 잘 안 부르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또 작품이 좋으면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굉장히 잘 만들 수 있거든요? (웃음)

 

저는 한국문학의 여러 작품을 읽으면서, 20세기에 있었던 계몽주의라든지 엘리트의식은 옅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 소설가, 작품의 경향을 어떻게 보시나요.

 

‘한국문학의 계몽주의’라는 주제는 단지 특정 작품이 지나치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거나, 작가ㆍ비평가가 독자를 가르치려 한다는 차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계몽’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고요. 문학을 ‘계몽’의 주요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아주 오래된 인식을 포함하는 문제죠. 그건 ‘문학하는 행위, 문학하는 사람’에게는 도전받아서는 안 되는, 배타적인 지적ㆍ사회적ㆍ정치적 권위가 있다는 믿음과 관련됩니다. 문학비평은 어중이떠중이들이 해서는 안 되는, 탁월하고 예외적인 지적 훈련과 경험을 축적한 소수의 전유물이라는 뿌리 깊은 생각이 있죠. 요컨대 ‘비평가’와 ‘일반 독자’가 명확히 구분된다는 믿음, 그게 계몽주의를 형성하는 하나의 신념이고, 그건 실제로 계몽이 되고 있는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어요. 이를테면 저는 ‘이 소설은 평론가가 보기에는 좀 부족해도 일반 독자에게는 재밌게 읽힐 수 있지’ 하는 식의 비평들이 굉장히 성의 없고 오만하다고 생각되거든요. 물론 설득력 있는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분명 오랜 지적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게 ‘개나 소나 비평을 하면 안 된다’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건 이상하죠.

 

또 한편으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대놓고 계몽주의를 표방하는 게 힘든 분위기가 됐죠. 그러면 ‘꼰대’라는 비난을 들으니까요. 계몽주의가 최근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명백해진 이후, 한국문학의 전략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평범한 보통 사람’, ‘상식적이고 평균적인 인간’, ‘소시민’ 등으로 정체화하는 겁니다. 1960년에 발표된 최인훈의 『광장』처럼, 20세기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명문대 학생이나 교수, 작가 등 지식인 남성이었어요.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소설의 주인공은 백수나, 편의점 알바 등 ‘보통 사람’을 표방하는 인물입니다. 작가도 스스로를 사회지도층이나 오피니언 리더라기보다 ‘글 쓰는 노동자’로 칭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밥벌이의 숭고’ 같은 말도 등장하고요. ‘보통 사람’이 한국문학의 페르소나가 됐다고 해도 무방한 거죠.


보통 사람은 누구인지 질문해야

 

책 제목과 부제를 활용해서 질문 드리자면, 개인 취향의 정상성을 묻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대중문화를 감상할 때의 자세와 연결될 듯합니다.

 

‘개인적 취향의 정상성’을 물은 게 아니고요. 제 책의 부제가 ‘한국문학의 정상성을 묻다’인데요. 앞의 답변에 이어서 얘기해볼게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문학의 페르소나 혹은 자아상이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 ‘소시민’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의 형상과 감각은 성 중립적이지도 않고 비정치적이거나 탈계급적이지도 않습니다. ‘보통 사람’은 반드시 ‘보통이 아닌 사람’을 상정하죠. 스스로의 ‘특별하지 않음’을 강조할 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존재’로 식별돼 배제되거나 차별을 당하는지 한국문학은 깊이 성찰해보지 않았어요.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다민족적 배경을 지닌 이주자 등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등장하면 반드시 ‘보편/특수’의 구분이나 ‘정체성정치’ 등을 틀을 소환하는 비평이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는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주자들 또한 자신이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사회적ㆍ문화적 발언권을 획득하려 합니다. 이게 바로 켄지 요시노가 말한 ‘커버링’의 압력이죠. 민주화 이후 한국문학이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재현체계로서 정체화할 때, 과연 한국문학은 무엇을 어떻게 ‘정상/비정상’, ‘다수/소수’, ‘보편/특수’ 등의 틀로 인식하고 식별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표상을 선취함으로써 부여되는 발언권, 문학적 시민권에 대해 질문해봐야 해요.

 

끝으로, 요즘 주목하는 문화현상이나 작가, 작품이 있다면 알려주시고 관련하여 집필 계획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이라기보다 늘 주목하는 주제는 ‘페미니즘, 퀴어, 문학사, 고양이’고요. 여전히 문학, 영화, TV, 웹툰, 넷플릭스,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닥치는 대로 보고 듣고 있습니다. 향후 집필 계획은……. 일단 지금 기회가 되는대로 각종 짧고 긴 글을 여기저기에 기고하고 있고요. 작년에 진행한 강좌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총10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이 올해 하반기에 나옵니다. 작년에 출간된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의 ‘문화사’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여성신문’에 연재한 <‘여성-창작’을 말하다> 인터뷰 시리즈를 묶은 책도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근년 내로 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는 것인데, 이건 몇 년 전부터 수없이 말해놓고 지키지 못해서 제 사회적 신용도가 많이 떨어졌네요. 아무튼 저로서는 분발하고 있습니다. (웃음)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오혜진 저 | 오월의봄
한국문학(장)에서 감지되는 바로 그 퇴행의 징후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페미니즘과 소수자정치에 입각해 한국문학의 새로운 기준을 모색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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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혜남 “인간을 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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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고,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말한다. 10년 전, 두 권의 책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와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  로 고민하는 서른들에게 응답했던 저자가 지금도 멈추지 않고 마음의 문제를 말하는 이유다. 이번에는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고 토로하는 이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울’을 들여다보고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말한다. 책을 함께 쓴 박종석 정신과 전문의는 많은 직장인들의 심리 상담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의 또 다른 모습을 이야기한다.

 

지난 6월 6일, 인터뷰를 위해 김혜남 저자를 찾았다. 마주앉고 나서야 2주 전에 작은 부상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는 20년 가까이 파킨슨병을 잘 다스려 오고 있지만, 그날은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는 ‘우울’에 대해 이야기했고 바깥은 비가 내렸다. 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분위기가 그곳에 있었다. “우울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생동감”이라는 사실을, 김혜남 저자는 직접 보여줬다. 말 한 마디 전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유머를 잃지 않았고 “다음에는 더 잘 쓸게요”라는 말로 독자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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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구나

 

정신분석 전문의로 많은 환자들을 만나셨잖아요. 증상과 병명은 다 달라도, 기저에는 항상 우울이 있었을 것 같아요.


모든 문제와 병의 밑바닥에는 항상 우울이 깔려있죠. 그 우울을 어떻게 방어하고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병이 나뉠 수도 있는 거고요. 사실 우울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항상 깔려있으면서도 힘든 감정이거든요. 저는 우울할 수밖에 없을 때 우울하지 못하는 것도 질환이라고 봐요. 누구라도 우울할 수밖에 없을 때 우울을 느끼지 못하는 것, 요즘에는 그게 더 문제죠. ‘나는 울어서는 안 된다, 우울하면 못 쓴다’라는 생각이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더 많은 것 같아요.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이야기하고 손을 뻗으면 누구라도 잡아줄 텐데, 혼자서만 끙끙 앓는 거죠. 밖에 나가서는 웃다가 집에서는 이불 속에서 울고... 그런 것들이 더 문제가 될 수 있죠.

 

이번 책에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상실, 번아웃 증후군, 현실부정, 화병 등 다양한 증상들이 나와요.


우울증의 변형으로 그렇게 표현이 되는 거예요. 옛말에 ‘마음이 울지 못하면 몸이 운다’고 하듯이, 마음이 울지 못하게 억압해 놓으니까 나중에 화병 같은 걸로 발전이 되는 거죠.

 

우울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지 않나요?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 정도로 병원을 가?’라고 생각하면서 치료 시기나 기회를 놓치는 거죠.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해요.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게 무슨 병원에 갈 일이야, 네가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되지’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하거든요. 제가 만났던 환자 중에 한 분은,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기를 병원에 좀 데려다 달라고 남편한테 부탁을 했는데 안 데려다줬어요. 그런데 아이 세 명과 같이 자살을 시도했어요. 아이들은 다 죽고 자기는 살아났어요. 그나마 그 남편이 이건 자기 때문에 그런 거고 병 때문에 그런 거라고, 부인을 버리지 않더라고요. ‘사람이라는 게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싶더라고요.

 

40년 가까이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사셨는데, 아직도 인간에 대해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세요?


인간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게 뭐가 있겠어요. 저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겠죠.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사도 같이 우울해질 것 같아요.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요. 어떤 때는 진료 끝나고 방 안을 뱅뱅 돌아요. ‘세상에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하면서요... 그런데 다음 환자가 들어오면 또 일을 해야 되니까... 그냥 삭히는 거죠.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모든 걸 알지는 못해요. 그걸 해결해주려고 달려들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죠. 환자들이 갖고 있는 어떤 것들에 공감해주는 것에서 끝나야지, 그걸 고쳐주려고 하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각해지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분명히 봐야 돼요.

 

모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위험한 일이겠네요.


그걸 ‘구원 환상(Rescue Fantasy)’이라고 해요. 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다는 생각, 그게 위험해요. 제가 슈퍼비전을 할 때 레지던트들이 와서 ‘선생님, 환자 상태가 좋아졌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좋아져요. 환자가 의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좋아지거든요. 그러면 제가 ‘올라간 비행기는 떨어지는 법’이라고 말해줘요. 정말 다음에는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상태로 와요. 그러면 왜 좋아졌고 왜 나빠졌는지 원인을 같이 분석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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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문제는 죽을 때까지 똑같아요


‘물길’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이 흐르던 길로 계속 흐르려는 속성이 있듯이, 우리 생각도 마찬가지라는 건데요. 우울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 계속 부정적으로 평가하잖아요. 이 생각의 물길을 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인지치료라는 게 있어요. 자기가 표를 만들어서 ‘어떤 생각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체크를 하는 거예요. 생각을 바꿔봤을 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체크해 보고요. 그 연습을 계속 하는 건데요. 예를 들어서 ‘나는 실패자야,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자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아, 내가 또 이런 생각을 하네’ 알아차리고 표에 적는 거예요. ‘아니야, 이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실수야, 이렇게 했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지는 않아’라고 적는 거죠. 그랬을 때 기분이 어떻게 변했는지, 예를 들면 30점에서 60점으로 바뀌었다든지, 그런 걸 적어보는 거예요. 삽을 들고 물길을 파는 거죠. 처음에는 잘 안 되도 계속 물길을 만들면 생각이 그쪽으로 흐를 테니까요.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  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의 독자들이 이제 40대가 되었을 텐데,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사실 그 책을 쓰고 유혹을 많이 받았거든요. 나이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써달라고요. 그런데 저는 다시는 나이에 대해서는 안 쓴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사람의 문제는 나이하고 상관없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똑같거든요. 단지 어떤 발달 단계에 어떤 문제가 두드러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지, 사람의 문제는 결국 비슷한 게 계속 반복돼요. 지금의 40대에게도 30대와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해주겠죠?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어른이 돼도 계속 문제에 부딪히며 사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50대가 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제가 60대가 되었는데, 우리 남편이 부부 싸움할 때면 ‘당신이 쓴 책을 읽어 봐, 책에는 그렇게 좋은 말들을 많이 쓰고 현실에서는 왜 못 그래?’라고 해요. 그러면 제가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내가 현실에서 그럴 수 있으면 책을 왜 써?’라고 해요(웃음). 현실에서 그러지 못하니까,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책도 쓰고 읽고 공부도 하고 그러는 거죠.

 

이 책의 제목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분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건 ‘모든 건 과정이고, 견디면 모든 건 지나가게 돼 있고,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견디고 이겨내라’라는 말을 하는데요. 제일 중요한 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 발병 사실을 아셨을 때는, 앞으로의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거라는 걸 모르셨을 거잖아요.


몰랐죠. 준비가 된 사람은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는데,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기회가 오는 것조차 모르거든요. 그래서 항상 자신을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시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취미나 관심이 될 수도 있는데, 저는 인생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관심은 항상 놓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 뭔가가 보여요. 책에다 썰을 풀어놓을 수도 있고요(웃음).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 글을 쓰시는 이유는 뭔가요?


우선은, 재밌어요. 책을 쓰면 1년 정도는 준비를 해요. 공부도 하고 논문도 찾으면서요. 제가 평상시에는 기운 없이 다니다가, 책을 쓸 시기만 되면 눈이 반짝거리고 사람이 달라진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제가 한 작업을 한두 사람만 읽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처음에 병 때문에 정신분석을 포기할 때는 제가 책을 쓰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한 사람에 대한 정신분석을 포기하고 대중한테 말을 걸기 시작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책을 쓰게 됐죠.

 

정말 열정적인 분이신 것 같아요.


제가 한 열정 하죠(웃음). 지금 이 병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다시 춤을 추기 위해서예요. ‘내가 다시 춤을 추고 만다’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김혜남, 박종석 공저 | 포르체
이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들, 상대방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마주하게 되는 일상 속 모든 고통과 아픔에 대해 내놓는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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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경선 “구원, 이 제목이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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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경선이 열 살이던 때, 외교관 아버지와 어머니는 막내 임경선을 데리고 리스본에서 1년을 살았다. “갓 마흔 살 눈부신 젊은 시절”(11쪽)을 지나던 부모님은 그곳에서 “가장 온화하고 아름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10쪽) 돌이켜 보면 리스본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임경선 작가는 그때의 작가 나이가 된 딸과 함께 리스본에 가기로 결심한다. “아무런 유보 없이 평온하고 행복했던” (10쪽) 그 시절을 오롯이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딸과 12일 동안 보낸 리스본 시절을 담은 책  『다정한 구원』  은 그렇게 쓰였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설명은 “너무 간단한 얘기”라고 말한다. 어째서 구원인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임경선 작가는 극도로 피폐해졌다. 사람에게 상처 받았고, 아주 취약했다. 그런 채로 부모님과 자신의 빛나던 시절을 되짚어보기로 했으므로 리스본행은 결국 그 자체로 애도였던 것. 임경선 작가는 이 시간을 “용서의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리스본에 다녀온 지금, “페이지가 넘어간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다시 만난 리스본은 많이 기억하고, 많이 울고, 마침내 과거와 화해한 “용서의 시간”이었다.

 

“만약 리스본에 가지 않았더라면 끝내 정리되지 않았을 거예요. 주변과 떨어져 있어야 했고, 그러려면 부모님과 셋만 살았던, 가장 행복했던 때에 살았던 장소에 가는 것만이 방법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딸을 생각하면서 어쩌다 가게 됐는데 결과적으로는 가야만 하는 곳에 갔던 거예요. 이 책은 지금 써야만 했던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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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유령과 만난 거예요


리스본에서도 메모를 하신 것 같더라고요. 여행하면서 기록하는 게 힘들진 않으셨어요? 이 여행이 책이 될 거라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요.


출판사 제안이 계기가 되긴 했어요. 작년 8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러고 나서 출판사 분들과 만나 얘기하다 자연스럽게 여행 얘기가 나왔는데 문득 리스본이 떠올랐어요. 마침 딸이 제가 리스본에 있던 때와 같은 나이였고요. 그러면서 구체화가 되더라고요. 하지만 바로 결심이 서진 않았어요. 부담스럽기도 했죠. 심지어 책을 써보겠다 하고는 한 시간 후에 번복한 일도 있었어요. 저는 그런 일이 거의 없거든요. 완전한 확신이 들지 않으면 책 이야기를 안 하는데 이번에는 참 이상했어요. 생각해보면 마음이 워낙 취약했던 때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다 책도 엄청나게 찾아보고, 글을 쓰고 싶은지 엄청 고민을 했고요. 그 시간이 두 달 정도는 된 것 같은데요. 이 과정이 어찌 보면 제게 호기심이나 의욕을 되찾아준 과정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책이 되려고 했나 봐요.


책 중에는 기획한대로 끝까지 가는 책이 있고요. 제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처음 의도와 전혀 다른 쪽으로 알아서 걸어가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은 완전히 후자였어요. 왜냐하면 처음에는 리스본이나 딸이 주연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기대했던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주연이었어요. 결국은 제 상처를 다 풀고 온 거죠. 추억을 되짚어보면서 자기 치유를 했다, 이건 너무 간단한 얘기고요. 제가 부모님께 용서를 빌고, 또 부모님을 용서하는, 용서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을 떠올리는 부분이 저도 좋더라고요. 엄마를 추억하면서 엄마의 좋은 면모도 살피지만 동시에 단점들도 살피면서 솔직하게 기억하는 대목이 있었죠.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러한 정서적 방관 덕분에 나는 자립심, 책임감, 적응력, 추진력, 생활력을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갖추게 되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그 탓에 물이 새는 항아리에 끝없이 물을 길어 날라야 하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고 싶어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커버리고 말았다.(145-146쪽)

 

동시에 이것이 과연 불평할 일인가, 하는 죄책감도 있어요. 엄마는 엄마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데 나는 마음에 안 들었던 거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를 탓할 순 없다, 이런 생각까지 이른 나이에 다 했던 것 같아요. 어린 아이로서 제대로 투정을 한 번도 안 하고 자란 거죠. 너무 조숙했어요. 그런 여러 가지 면에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리스본에서 얻은 가장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선물은 내가 부모님께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는 점인 거죠. 오히려 딸은 나중에 휴지 건네주는 느낌의 역할이었어요.(웃음) 더 이상 세상에 없는 부모님의 유령과 그곳에서 만난 거예요. 그곳에서 내내 그분들과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부모님과 용서의 시간을 보내니까 그제야 비로소 애도가 끝나더라고요. 돌아온 뒤 책을 쓰면서 또 한 번 정리가 되고요.

 

책 나오고 트위터에 “그런 책이 있습니다. 이건 누가 뭐래도 스스로를 살려내기 위해 쓴 이야기구나, 싶은 책이. 이 글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겠다는 절박함이 드는 책이. 말하자면  『다정한 구원』  이 저에겐 그런 책입니다.”라고 쓰셨잖아요. 쓰기까지의 고민과는 달리 결국은 엄청 큰 의미가 된 거네요.


아버지 돌아가신 후 리스본에 가기 전까지 시기적으로 워낙 힘든 때였어요. 그 억눌린 마음이 가득 찬 상태에서 여행을 간 거거든요. 희한한 건 엄마가 돌아가신 건 한참 전 일이고, 아빠가 돌아가신 건데 두 분이 같이 돌아가신 느낌이더라고요. 부모세대가 끝났다는 실감이 왔어요. 리스본은 언니, 오빠 없이 저와 부모님, 셋만 살았던 곳이거든요. 다들 학교를 다녀야 하니까 막내인 저만 데리고 온 거죠. 그게 리스본과 오사카였는데요. 제가 외동딸로 지내던 그 시절이 좋았어요. 그곳에 다시 가서 다행이에요.

 

그런 마음을 독자도 읽었던 것 같아요. “슬픔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dmswls1006)라는 리뷰를 봤거든요. 아마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셨던 것 같고, 하지만 그 슬픔을 외면해왔던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거죠.


원래 블로그 리뷰는 보지만 인터넷 서점 리뷰는 거의 안 봐요. 비판이건 칭찬이건 제게 큰 의미가 없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출판사에서 가제본 리뷰 이벤트를 해서 거의 처음 리뷰를 봤어요. 너무 놀랐어요. 책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책의 주제가 삶과 죽음, 부모와 자식이라는 복잡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그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거든요. 마음이 건드려지면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죠. 바로 그걸 공유해주신 거잖아요. 그래서 저에게도 정말 의미가 깊었어요. 화학적 순환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독자 분들이 다시 저한테 깨달음을 주는 부분이 정말 많았고요. 진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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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이 주는 친절


여행지로써 리스본은 어땠나요?


사람들이 정말 순박해요. 정말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데요. 참 순정해요. 수줍으면서도 친절하고 다정한 기질이 있어요. 오래 지내다 보면 당연히 여러 가지 부딪히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리스본에서는 불쾌한 적도 한 번도 없었고요. 사람들의 배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요.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주는 친절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리스본에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많은데요. 한 번은 자전거 타는 청년이 차를 딱 막아주더니 지나가라는 손짓을 하는 거예요. 그게 전혀 과하지 않고요. 한 인간 대 인간으로 배려해주는 거였어요. 그런 사람들 곁에 있다 보니까 엄청난 위안이 되더라고요. 리스본은 확실히 그런 면이 있어요.

 

짧게 등장하더라도 다정했던 사람들 이야기가 많았어요.


또 그 시절 아빠의 친구였던 소진화 아저씨도 있었고요. 벌써 책을 보내드렸어요. 아저씨가 등장한 대목을 표시해서 보내드리는데 의외로 많더라고요.(웃음) 정말 좋았던 게 한국 와서 책이 나왔다고 아저씨한테 연락을 드리는데요. 부모님 대신 이 책을 받아주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누군가는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부모님은 이 책을 받아주실 수 없잖아요. 대신 받아주실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어요. 거기 그대로 계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게다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여서 진짜 좋았어요.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깊은 아름다움을 감지한다. 모두가 변해간다 해도, 우리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알려주는 것 같아서.”(209쪽)라고도 하셨죠.


돌길 같은 게 그렇죠. 그래서 하이힐 신은 사람들이 없어요. 하지만 그냥 두는 거죠. 호텔 같은 곳에서도 진짜 오랜만에 보는 두툼한 유리로 된 물병과 잔을 봤거든요. 그런 것들이 참 좋더라고요. 때가 되면 변하기도 해야겠지만 변치 않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안도 같은 것이 있죠.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너무 빨리 변하잖아요. 사람은 그렇게 빨리 변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인위적인 요구에 의해서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강박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얕게 변한다고 할까요. 내면 깊은 곳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괴리가 생기고, 여러 갈등이 있는 거죠. 저는 좋은 것들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스본도 예전에 비해서는 변하긴 했어요. 하지만 각자가 자기 속도대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바꿔나가는 것이죠. 그런 곳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있었어요. 리스본은 이제 저에게 그저 ‘살았던 곳’이 아니라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되었어요.

 

 

이 책의 주제는


제목을 ‘다정한 구원’이라고 붙인 이유도 듣고 싶어요.


우선 가제는 그냥 ‘리스본 이야기’였고요. 그런데 쓰고 보니 이 이야기가 그냥 리스본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여러 제목을 고민하다 의견이 ‘다정한 구원’으로 모아졌죠. 처음엔 ‘구원’이라는 말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고민이 되더라고요. 한참 고민을 하는데 출판사 홍보팀에서 이 제목에 대한 너무 좋은 해석을 해주셨어요. 구원이 이 에세이의 핵심단어라고 생각한다면서요. 제가 그 말에 완전히 설득됐어요. 정말 그랬거든요. 이 책의 주제는 이것, 구원인 거죠. 무대만 리스본이었을 뿐 다시 보니까 이 제목이었어야 했더라고요. 너무 희한해요. 다행히 이 제목을 독자 분들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책에 엄마가 작가님에게 롤렉스시계를 풀어주시던 장면이 나오잖아요. 소중한 유산이죠. 한편 작가님이 딸에게 줄 유산은 이 책이 될 거란 생각을 했어요.


삶과 죽음,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순환이니까요. 결국 인생에 관한 이야기죠. 이 책은 사람의 한 인생에 대한 얘기 같아요. 물론 딸은 한참 커야 이해하겠지만요. 저는 정말 딸에게 물려줄 게 책밖에 없잖아요. 얘는 한 마디로 계 탄 거예요.(웃음) 

 

엄마 아빠는 그 시절 행복했었구나. 서투르게나마 나는 사랑받았었구나. 그리고, 나도 앞으로 내 아이를 힘껏 사랑해주어야겠다. 이 이상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이미 이것으로 너무나 충분한 것을.
그러니까 윤서야. 이제는 너의 시대야. 인생의 모든 눈부신 것들을 다 너에게 넘길게.(256-257쪽)

 

무엇보다 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여행이었으니까요. 그 애가 제 어렸을 때와 똑같이 생겼어요. 노는 걸 보면 제가 저를 보고 있는 셈인 거예요. 저의 열 살 때가 고스란히 소환이 돼요. 딸이 바닷가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의 부모님이 또 소환이 되고요. 리스본에서 정말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었어요. 어렸을 때의 나를 다시 만나고, 그때의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었죠. 너 참 씩씩했구나, 잘 놀았구나, 행복했구나, 이런 것을 깨닫는 일이었어요. 또 아이가 옆에 있음으로 인해 갖게 되는 편안함도 컸고요. 딸이 보호자 같았거든요. 감정적으로 아주 취약할 때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도록 잡아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딸이 했던 그 대사 있잖아요.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잖아.”(51쪽) 너무 좋죠. 전날 넘어져서 다치는 바람에 오늘 새로운 일정을 하는 게 자신이 없다고 하는 엄마에게 딸이 한 말이에요.


아이들의 한 마디는 확 잡아끄는 게 있어요. 사람은 아이 때 가장 훌륭한 인격이라고도 하잖아요. 어릴수록 자연에 가까운데 자연에 가깝다는 건 세상의 이치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거예요. 배울 것도 없이 말이죠. 또 제가 엄마 생각을 많이 한 날 자려고 누워서 딸에게 묻잖아요. 내가 너한테 상처 준 적 있느냐고요. 저는 정말 “응”, 이 대답을 상상도 못했어요. 워낙 친하기도 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요. 그 답을 듣고 가슴이 철렁하더라고요. 내가 엄마를 원망했듯 딸도 저한테 상처 받은 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갑자기 아이가 너무 애틋해지기도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음으로써 내가 엄마한테 상처 받은 부분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았어요. 나도 별 거 없구나(웃음), 관계라는 게 그런 거구나, 생각하게 되는 거죠. 
 
지금 작가님 나이가 됐을 딸을 상상하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그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시는지 궁금해요.


사실 딸의 서른 살 이후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뭘 바란 적도 없고요. 굳이 바라는 것이라면 일을 꼭 가졌으면 한다는 거예요. 오래오래 일을 하라고요. 일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니까요. 가족, 사랑 다 중요하지만 우리 일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일이거든요. 일이 좋아야 해요. 나와 잘 맞고, 잘하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이 삶의 질과 행복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요. 일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는 뒤에 올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겠네요.


맞아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부모님과의 관계가 한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잖아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상처 받은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하거나 상처 받기 싫어서 관계를 끊거나 하시고요. 하지만 모든 부모가 인격적으로 성숙한 것도 아니고요. 그들도 자신들의 문제에 힘들어하고, 자식에게 마땅히 베풀어야 할 것을 베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부모에게 사랑 받고 싶은 것은 본능이라 절대 변하지 않을 부모에게 아직도 희망을 못 버리는 건데요. 대부분은 안 바뀌거든요. 마흔 전에는 정리를 해야 해요. 그냥 결핍을 받아들이고, 결핍을 너그럽게 감싸줄 수 있는 다른 것을 찾도록 해야죠.

 

이 말씀을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원래는 서른 전에는 정리를 해야 한다고 얘기했었는데 많이 늦춘 거예요.(웃음) 마흔 이후까지 정리를 못하는 건 적당한 나의 불행에 의존하는 거거든요. 부디 다 떨쳐내시기를, 떨쳐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 책은 제 개인의 경험이긴 하지만 제가 들려주는 것처럼 읽히잖아요. 그러니까 저랑 같이 리스본 여행을 하시면서 가능하다면 마음속에 있는 아직 풀리지 않은 상처나 어려움을 다시 생각해보실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다시 생각하는 것, 그게 스스로에게 해주는 구원이죠.



 

 

다정한 구원임경선 저 | 미디어창비
상실의 아픔을 충분히 돌본 후에야 생(生)에 대한 감사를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자연의 섭리처럼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은 딸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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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데이식스의 지금은 ‘젊음’과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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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넘어 그냥 '좋은 밴드'를 발견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즘이 2017년 '올해의 가요 앨범'으로 데이식스의 <Sunrise>를 선정하며 남긴 평이다. 대형 기획사 출신의 아이돌 밴드는 항상 그 진정성에 물음표가 따라붙지만, 2015년 홍대의 라이브 클럽 데이(Live Club Day)에서 데뷔 쇼케이스를 가진 이래로 데이식스는 여타 밴드가 그러하듯 치열한 노력과 실전으로 그들을 가다듬었다. '믿고 듣는 데이식스'라는 훈장은 결코 쉽게 얻어낸 것이 아니다. 

 

네 장의 미니 앨범과 두 장의 정규 앨범, 데뷔 후 첫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두 번째 대규모 팬 미팅을 앞둔 데이식스를 서교동 빅퍼즐연구소에서 만났다. 성진(기타), Jae(기타), Young K(베이스), 도운(드럼), 원필(건반) 다섯 멤버들은 바쁜 일정 속에도 쾌활한 모습으로 데이식스의 과거와 현재를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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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Young K, 도운, Jae, 원필, 성진

 

 

데이식스는 모든 멤버가 보컬을 담당한다. 작곡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성진 : 대부분 작업 과정은 모두가 함께한다. 리프와 멜로디 등 다양한 부분에서 공동의 의견을 반영하려 노력한다. 물론 개별적으로, 유닛의 형태로 곡을 만들기도 한다. 곡의 '포인트'마다 참여 비중이 달라진다. 

 

작곡에서의 '포인트'를 언급했다. 그 중점은 대중적 히트인가, 혹은 곡의 완성도인가. 

 

성진 : 개별 곡마다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은 그 둘을 함께 고려하고, 각기 다른 멤버들의 취향도 녹여내려 노력한다. 아무래도 각자 좋아하는 장르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함께 작업하고 나면 각자의 색이 다르게 나와서 그것들을 깎아 '다듬어'내는 작업을 중점으로 둔다.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성진 : 모던 락, 브리티시 팝을 좋아한다.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에드 시런... 

 

원필 : 비슷하다. 예전엔 알앤비를 정말 좋아했는데, 지금은 담백한 느낌의 노래, 유행타지 않는 노래를 찾게 된다.

 

Jae : 포크 음악을 좋아한다. 최근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앨범은 제레미 주커(Jeremy Zucker)와 첼시 커틀러(Chelsea Cutler)의 <brent> EP였다. 진심이 담긴 음악을 선호한다.

 

도운 : 트랩부터 퀸 XCII(Queen XCII)까지 다양하게 듣는다. 일렉트로닉을 좋아하고, 과거에는 EDM도 많이 들었다. 

 

Young K : 어린 시절부터 힙합, 펑크 록을 많이 들었고 브릿팝도 많이 들었다. 최근에는 밝은 음악, 틀었을 때 기분 좋고 편안한 음악을 선호한다. 와이 돈 위(Why Don't We) 같은 보이 밴드들로부터 화음을 쌓는 과정을 배우고, 루디멘탈(Rudimental)의 밝은 분위기를 가져오려 한다.

 

멤버들의 취향이 사뭇 다른데, 결성 후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갈등은 없었나.

 

원필 : 많았다. 마음을 맞추는 과정부터가 오래 걸렸다. 멤버마다 서로 다른 음악의 취향, 성향을 갖고 있다 보니 작곡 작사 과정에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런 거 없이 잘 맞는다. 밴드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리 갈등 과정을 겪어서 그런지, 지금은 화목하고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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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 K(베이스, 리드보컬, 메인래퍼)

 

 

데이식스 멤버들이 처음 JYP에 입사했을 땐 밴드 팀이 아닌 댄스팀, 보컬팀이었다. 

 

성진 : 향후 오디션으로 합류한 도운을 제외하면 타 멤버들 모두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했다. 노래가 좋아서 회사에서 연습하다 악기를 배우고, 작사 작곡을 공부하게 됐다. 

 

도운은 팀 내 유일한 음악 전공자다. 

 

도운 : 중2때부터 드럼을 쳤다. 시쳇말로 놀면서 했다(웃음). 잘 치지는 못한 것 같다. 

 

Young K : 데이식스의 유일한 전공자다. 도운이 합류하고 나서 곡 만들어지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기타를 맡은 Jae는 본인의 기타 플레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Jae : 멀리 내다볼수록 부족함을 느낀다.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베이스를 치는 Young K는 어떤가.

 

Young K : 사실 나 자신을 베이시스트로 자각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연습하면서 베이스가 밴드 내에서 갖는 연결의 역할,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는 중요한 역할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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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Young K, 도운(드럼, 보컬)

 

 

2015년 <The Day> EP로 데뷔했으니 벌써 5년 차 밴드다. 두 장의 정규 앨범과 4장의 미니 앨범은 물론, 2017년 에브리 데이식스(Every Day6) 프로젝트로는 25곡의 자작곡을 발표했다. 

 

도운 : 에브리 데이식스 프로젝트는 회사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다. 그전에도 꾸준히 곡을 만들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일련의 결과물을 듣고는 '곡이 좋은데, 매 달 발매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줬다. 

 

성진 : 아무래도 정규작이나 미니 앨범은 많은 곡 중 타이틀곡을 정해야 하지 않나. 공들여 만든 노래들을 한 곡 한 곡 대중에게 들려주고픈 마음도 있었다. 

 

Young K : 여담이지만 우리는 회사 내에서 박진영 PD님과 가장 접점이 적다. 그런데도 회의 때마다 PD님께서 '데이식스 노래 틀 때가 기다려져!'라 말씀해주신다. 감사하다.

 

성진 : '반드시 웃는다'를 PD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데이식스가 꼽는 본인들의 인기곡, 혹은 이만큼의 인기를 예상치 못한 곡이 있다면.

 

성진 : 아무래도 '예뻤어', 'I loved you', '좋아합니다'가 반응이 좋다.

 

Jae : 'I wait'는 후자다. 우리는 좋은 곡이라 생각했지만 이만큼의 인기는 예상치 못했다.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프로젝트를 갈무리하는 2017년 첫 정규 앨범이 <Sunrise>다. 그해 이즘이 '올해의 국내 앨범'으로 선정한 작품이다. 

 

성진 : 프로젝트 동안 공개했던 싱글, 그리고 이전에 작업했던 곡들의 최종 버전을 수록했다. 공들여서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녹음도 새로 하고, 파트도 재정리했다. 데이식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는데,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이즘의 연말 결산 특집과 리뷰를 읽으면서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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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Jae(메인기타, 리드보컬, 래퍼), 원필(건반, 리드보컬)

 

 

과거와 비교하면 그 수가 늘었지만 케이팝 신에서 밴드 활동은 아직도 낯선 느낌이 있다.

 

Jae : 작업 과정에서 그런 배경이나 '아이돌' 개념을 깊이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각 그룹도 그런 점을 자각하진 않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다. 록을 좋아하면 록, 팝을 좋아하면 팝. 

 

실제로 데이식스의 음악에선 록의 터치 아래 아이돌 팝의 면모도 발견되는데. 

 

Jae : 분석의 과정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아이돌 적인 면모, 록적인 면모 이렇게 나누기보다, 기억에 남는 부분을 담고자 여러 음악 스타일로부터 영감을 가져온다. 그렇게 장점을 아울러서 '데이식스의 음악'을 만들고 싶다.

 

가장 최근의 작품은 두 파트로 나눠 발매한 <Youth>다. 강렬한 'Shoot me'와 복고풍 신스팝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등 다양한 음악 시도가 인상적이다.

 

성진 :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이게 끌린다!'라는 직감이 올 때가 있다. 그렇게 소재를 정한 후, 따로 규칙을 두지 않고 데이식스의 색을 입혀 우리만의 시도를 하려 노력한다. 

 

앞서 언급한 와이 돈 위, 파이브 세컨즈 오브 섬머(5 Seconds of Summer) 등 최근의 젊은 밴드들은 팝 펑크보다 신스팝의 논조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Young K : 어떤 장르든 준비는 되어 있다. 확실히 최근 해외 밴드들은 전자음을 많이 쓴다. 반응이 오는 장르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마냥 대세, 유행만 좇아가면 또다시 정체될 것이다. 폭넓은 시도를 통해 밴드의 색을 넓히고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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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원필, 성진(리더, 기타, 메인보컬)

 

 

데이식스의 색을 언급했는데, 20대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풀어내는 가사가 이 팀을 상징하는 메시지라 생각한다. 밴드라면 거대한 메시지, 사회적 의견에도 욕심이 나지 않나.

 

Young K : 데뷔 전에는 큰 담론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실제로 시도도 해봤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렵다면 그것은 실패한 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진영 PD님도 그런 쪽으로 많이 조언해주셨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솔직한 감정을 노래로 담아내고 싶다. 

 

요약하면 밴드의 지금을 '젊음'과 '청춘'으로 대표할 수 있겠다. 데이식스가 생각하는 '청춘', 그리고 이 테마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이 궁금하다.

 

성진 : 청춘은 '열정'이다. 나이 든다고 해서 열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마음 속 열정을 간직해나간다면 언제나 청춘이다. 

 

원필 : 청춘은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다가도 나쁜 일이 일어난다.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견뎌내고 걸어가는 시기라 생각한다.

 

Jae : 성진의 '열정'에 동감한다. (웃음) 덧붙이자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모든 것에 경중을 따지기 어렵다. 모든 게 다 거대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만큼 열심히 해나가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도운 : 청춘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시기'다. 이런 일, 저런 일, 도전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지 않나. 주저하지 않고 일단 해보자! 이런 마음가짐이 청춘이다. 

 

Young K : 청춘은 '성장하는 시기'다. 그래서 정의하기가 어렵다. 청춘이 끝나는 순간은 계속해서 배우려 하지 않고, 더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때라고 본다. 그래서 이 시기를 더욱 잘 살아야 한다.

 

데이식스는 오는 6월 29일 잠실 체육관에서 국내 두 번째 팬 미팅을 개최한다. 2018년 9월 첫 팬 미팅 장소가 고려대 화정 체육관이었으니 두 배 이상의 규모다. 팬덤 마이데이(My Day)와 함께할 시간에 즐거워하는 멤버들의 모습에서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는 젊은 밴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최근 타이틀곡의 제목처럼, 그들은 훗날 이 시기를 돌아보며 '행복했던 날들이었다'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조지현, 임선희

정리 : 김도헌

사진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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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셀럽 강아지 백호 “친근한 이웃집 강아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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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될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은 ‘연예견’에게도 적용된다. 어렸을 때부터 백호는 사람들의 관심이 좋았다. 난생 처음 간 병원에서 무서움 하나 없이 발랄하게 돌아다녔던 백호는 산책을 나갈 때마다 인간을 발견하면 달려가 자신을 만지라고 요구했다. 백호 누나는 SNS를 통해 백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고, 갓 다섯 살이 된 진주 강씨 26대손 강백호는 산책회 공지가 나가면 400명 이상의 산책자들을 동원하는 당당한 셀러브리티 강아지가 되었다.


얼떨결에 백호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한 백호 누나는 출판업계로부터 쏟아지는 러브콜을 받았다. 수익을 내려고 시작한 SNS가 아니어서 정중히 거절했지만, “아마존의 종이가 아깝지 않게 알차게 만들겠다”는 출판사의 설득에 마침내 백호와 함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이웃집의 백호』 에는 백호의 어린 시절 입양 이야기부터 미공개 사진, 견주를 위한 인테리어 조언, 백호의 칫솔질 방법 등 SNS에 담을 수 없었던 자세하고 유익한 이야기를 담았다.


백호는 백호 누나를 만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웰시코기’가 되었고, 백호 누나는 백호를 만나 더 넓은 세상을 알았다. ‘이웃집의 백호’ SNS 계정을 운영하면서 백호 누나는 적극적으로 반려동물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때 귀여운 외모와 특유의 짧은 다리로 유행을 탔던 웰시코기는 하루에 한 마리 이상씩 버려지고 있다. 모든 반려견은 백호만큼 행복해질 수 있었기에, 『이웃집의 백호』  인세 일부는 유기동물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다.


인터뷰 자리에는 백호와 백호 누나가 함께했다. 백호 저자는 성실히 대답하다 (정확히 말하면 원활한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소고기를 맛있게 받아먹고 ‘백호 안녕’에 답하여 크게 세 번 짖었다) 오후 낮잠에 빠져들어 인터뷰는 백호 누나와 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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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일치로 진주 강씨 강백호가 됐어요


출판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출간 제의를 많이 받았는데, 다 거절했었어요. 제가 책을 쓸 만한 사람도 아니고, 굳이 SNS에 있는 이야기를 짜집기한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굳이 저까지 책을 보탤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거절하다 출판사에서 종이가 아깝지 않도록 글자수 제한에 걸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충분히 담겠다고 오랫동안 설득을 해주셨어요.


책을 처음 받아봤을 때는 어땠나요?


너무 꿈같은 느낌이랄까요? 책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오프라인 서점을 가거든요. 항상 다른 분이 쓰신 책을 설레는 마음으로 펴서 저자 소개 글을 보는 걸로 시작하는데, 이 책은 제가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책이잖아요. 책 포장을 뜯는 기분이 정말 오묘하더라고요. 한 이틀 정도는 안 믿겼던 것 같아요.


주변 반응은요?


처음으로 받은 책 서평이 스크롤을 몇 번씩 내려야 할 정도로 장문이었어요. 그걸 읽고 나니 책을 쓸까 말까 고민했던 순간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책을 쓰고 나서도 괜한 일을 한 게 아닐까, 출판사분들에게 폐를 끼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래서 작가님들이 책을 쓰시는구나 싶었어요.


백호의 어린 시절부터 차례대로 소개하는 책이에요.


백호가 처음 왔을 때 몸무게가 650g이었어요.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었거든요. 이제는 온몸으로 안아줘야 하는 크기가 되었는데, 저는 지금이나 그때나 백호가 작아 보여서 크기 차이는 실감을 못 했어요. 출간을 위해 사진을 정리하는 데 어릴 때 사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평소에는 그런 생각 잘 안 했는데, 출판을 계기로 좋은 추억을 남긴 것 같아요.


시추를 키우다가 하늘나라로 보내고 백호를 입양하기까지의 과정이 나와 있어요.


애완견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처음으로 펫샵이 성업하던 때였어요. 맞벌이 부부들이 혼자 있는 자녀들이 안쓰러워 강아지를 펫샵에서 사주는 경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저도 그랬고요. 잘못된 행동인데 그때는 아무도 몰랐죠. 당시에는 강아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해서 사료 선택이 넓지도 않았고, 백호처럼 매일 산책을 시켜준 것도 아니었어요.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이제는 시간도 많아졌고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니 잘 키워줘야지 했는데 그때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가족 모두 펫로스 증후군을 극심하게 겪었죠. 길거리에서 산책하는 시추만 봐도 울었어요. 그러다 한참이 지나 사회생활 연차도 쌓이고 여유도 생길 무렵, 친한 친구가 다시 개를 키우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어요.


알고 보니 친구의 치밀한 계획이었다고요.


친구는 자취방에 살아서 여건이 안 됐는데, 저희 집은 넓고 1층인데다 주변에 좋은 공원도 있어서 잘 키울 것 같으니 당시 자기가 키우고 싶었던 웰시코기 사진을 한 장씩 보내주는 거예요. 그때는 웰시코기가 유행하던 때도 아니었어요. 제가 키우면 자기는 놀러 와서 구경하려고 했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웰시코기라는 종을 알고 공부를 통해 익숙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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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는 어디에서 입양했나요?


가정견이었어요. 백호 엄마는 2014년에 백호를 낳고 바로 중성화를 하고, 백호 형제가 두 마리 있었는데 입양을 갔다 둘 다 파양돼서 백호 엄마네에서 키우세요. 백호가 뱃속에서 제일 끝에 밀려있던 애라 영양분을 거의 못 받아서 몸집이 작았어요. 너무 작다는 이유로 끝까지 분양이 되지 않다가, 제가 보자마자 입양을 결심하고 데리고 와서 이렇게 크게 만들었죠.


백호의 다른 이름 후보도 있었나요?


만화 주인공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에반게리온>의 카오루를 따서 지으려고 했는데 가족들이 세 글자는 이름으로 부르기 너무 어렵다고 했어요. 부모님도 아는 두 글자 이름으로 찾다 보니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떠오르더라고요. 또 제가 강 씨거든요. 어차피 저는 결혼도 안 할 거고 결혼해도 제 성을 물려주진 않으니, 만장일치로 진주 강씨 강백호가 됐어요.


호적부터 정리하고 들어온 거네요.


비공식 호적 5번이에요. (웃음)


가족이 백호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서로 스케줄을 공유한다고 들었어요.


백호를 키우겠다고 결정한 이유이기도 한데, 아버지와 오빠, 제가 모두 각자 개인 사업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직장에 다니는 분들보다는 스케줄 조정이 쉬운 편이에요. 분리불안 훈련은 시키되, 강아지는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짧으니까 언제든 가족 한 명은 같이 있으려고 해요. 개인 사무실에 갈 때는 백호를 데리고 가고, 거래처 분들이 오지 않는 출장에는 전부 백호와 동행해요. 산책도 거르지 않고 누구라도 데리고 나갈 수 있게 하려고 가족끼리 대화를 많이 하죠. 백호가 오기 전에는 가족끼리 단체 카톡 방도 없을 정도로 대화를 많이 할 일이 없었죠.

 
조금 있으면 백호가 사업도 배우지 않을까요? 이미 저서도 한 권 낸 인물… 아니 견물이에요.

 

그래서 백호 굿즈 전용으로 BH(백호) 코퍼레이션이라는 사업체도 만들었어요.


백호 굿즈 사업과 본업을 같이 하려면 힘들진 않나요?


일 년에 두 번 진행하는 거라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제가 이걸 다 팔아서 마진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이면 못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작비도 사비로 다 내고, 다 안 팔려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가족들이 다 프로가 되었어요. 아빠는 박스 접기, 엄마는 에어캡 싸기, 오빠는 전산, 저는 검품 담당으로 일해요. 굿즈가 비록 커피 한 잔 값이지만 학생들은 용돈을 모아서 사는데 얼마나 고마워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질은 높게 돈은 낮게 하고 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백호는 운이 좋네요.


제가 백호를 만났던 것도 운이 좋고 백호가 이런 성격인 것도 운이 좋았어요. 모든 것이 다 운이 좋았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나온 거라고 생각해요. 백호가 산책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파생된 모든 것에 감사해요. 백호를 사랑해주시는 분들께도 항상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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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무서웠던 것


SNS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백호를 데려오는 차 안에서부터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시추를 키울 때는 핸드폰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라 필름 카메라로만 찍었는데, 필름도 이사하면서 사라지고 강아지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데 충격을 먹었거든요. 외장하드도 어느 순간 망가질 수 있으니까 외부 매체에 남겨놓으면 나중에 혹시 사진 자료가 없어지더라도 제가 추억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어요.

 

영향력이 커지면서 힘들진 않았나요? 사람들이 메시지도 많이 보내게 되고요.


제일 무서웠던 건, 백호를 보고 자기도 웰시코기를 키우는데 왜 자신의 강아지는 유명해지지 않냐고 묻는 메시지였어요. 일부러 차를 타고 백호가 산책하는 공원까지 와서 어떻게 SNS를 크게 키울 수 있는지 물어보는 분도 있었어요. 제가 백호 사진을 올리고 굿즈를 만드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돈으로 보이는구나 싶어서 정말 무서웠어요. 사람이야 상처받아도 극복할 수 있다지만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해서 데려왔다 파양당한 개들은 아니잖아요. 자기는 개를 못 키우겠으니까 제가 데려가라고 하는 메시지가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잊을 만하면 와요.


웰시코기도 금방 유행이 지나면서 유기된 개들이 많아졌어요.


지금은 평균 하루에 한 마리 이상 버려져요. 매일 포인핸드(유기동물센터에 들어오는 동물을 모아 보여주는 앱)에 들어가 입양이 안 되는 아이들은 SNS로 홍보하기도 해요. 유기당한 동물도 분명 백호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래서 웰시코기의 좋은 점을 말하기보다는 사고 치고 말썽 부리는 걸 보여줘요. 제가 이웃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산책을 어느 정도나 하는지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귀엽다고 데려오면 생각지 못하게 힘든 점이 너무 많거든요.


SNS로도 밝혀주셨지만, 책에서도 백호가 파괴했던 모든 것들이 상세히 나와 있어요.


아기 때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피해가는 게 아니라 물어서 부수고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워낙 활동량이 많은 친구다 보니까 벽지가 조금이라도 삐져나와 있으면 다 찢어내거든요. 그래서 백호를 데려올 때 가족들에게 백호가 더 이상 집을 물어뜯지 않을 만한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 인테리어를 새로 다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물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부수긴 했죠… 좌탁을 물어서 다리를 다 부숴버렸고, 마호가니로 맞췄던 제 화장대도 끝장냈어요.

 

(백호 누나는 백호를 아련하게 쳐다보았다)


이제는 좀 나아졌나요?


이제는 자기도 벽을 찢으면 크게 혼난다는 걸 알아요. 대신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가방을 열어요. 지퍼 손잡이에 이빨을 걸어서 열고는 중요한 물건을 꺼내는 거예요. 그걸 물고 뛰어가서 발 밑에 놓고 간식을 주지 않으면 없애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는 거죠.

 

그걸 다 받아들여주시잖아요.


이 아이한테는 하나의 놀이라서, 인간이 조심해야죠. 중요한 물건은 알아서 치우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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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를 들여오시기 전에 공부를 많이 했던 건, 예전에 시추를 키웠던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모르고 키우다 보니 못해줬던 것들만 마음에 남는 거예요. 강아지한테는 제가 주는 게 세상의 전부인데, 제가 모르면 해가 되는 일을 그냥 하게 될 수도 있어서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싶었어요. 백호를 데려오기 6개월 전에 입양을 결심하고 용품부터 습성까지 확실히 공부했어요. 그래도 막상 강아지가 오면 또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웰시코기라는 종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공부하면서 꼬리가 있는 웰시코기를 데려오고 싶었는데, 백호는 마지막까지 분양이 안 되어서 단미 수술(꼬리를 자르는 수술)을 이미 끝낸 상황이었어요. 제가 입양을 안 하면 백호는 또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니까 백호를 데려왔어요. 나중에 SNS 계정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계속 웰시코기에 대해 이야기했죠. 많이 짖는다, 운동량이 많다, 털이 많이 빠진다부터 시작해서 원래 웰시코기는 꼬리가 있는데 그저 인간이 귀여워서 꼬리를 자를뿐이다…. 예전에는 웰시코기가 목양견이라 소와 양 사이를 뛰어다닐 때 꼬리를 밟히면 상처에 염증이 생길까 봐 잘랐다고 하는데, 지금 반려견으로 키우는 웰시코기들은 소를 본 적도 없어요. 꼬리를 자를 이유가 전혀 없는 거죠. 제가 아무리 단미한 웰시코기를 키운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할 순 없더라고요. 잘못된 건 계속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처럼 벌어서 개에게 쓴다’는 문장도 있었는데, 백호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항상 강아지를 키우는데 어느 정도의 여유자금이 있어야 하는지 늘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제가 돈이 많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비용이 들어간다는 걸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거든요. 이번에 백호 이빨이 깨져서 400만 원 이상 나왔어요. 모두가 이렇게 하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이번에 백호 치료비는 백호가 치료를 할 수 있는 상태였고 집에서 병원까지 다닐 정도의 거리가 됐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거예요. 여건이 안 되고 상황이 좋지 않아서 치료를 못 해줄 때가 더 많아요. 하지만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아두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정말 치료를 해주고 싶은데 정보가 부족해서 못 했다면 견주분들이 죄책감에 시달리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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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사람들이 귀여워해 준 것과, 산책회에서 실제 사람들을 만난 건 다른 느낌이었을 텐데요.


서울에서 처음 산책회를 했을 때 선물을 200개 준비해 갔는데 300분 넘게 오셨어요. 우리 개를 보러 여기까지 오셨다고 생각하니 너무 놀라웠어요. 그래도 서울이라 이 정도 오시는구나 생각했는데, 부산에서 한 두 번째 산책회에서는 400분 넘게 오셨어요. 어떤 학생은 백호를 보자마자 공중으로 펄쩍펄쩍 뛰고 만세를 부르시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저는 남의 개를 이렇게 사랑해줄 수 있다는 게 놀랍고, 그 개가 제 개라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랜선 누나 형들이 열정이 넘치셔서 이번에는 출판 기념회를 빙자한 저자 구경회를 할 생각이에요.

 
백호도 사람들을 좋아하는 천성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백호가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걸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집 근처에 터미널과 백화점이 있어서 주말에는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백호는 매일같이 번화가를 가자고 그쪽 산책길 앞에 앉아있어요. 광장에 가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반겨주시는데 정말 뿌듯한 표정을 짓고는 한 분 한 분 다 냄새를 맡아요. 그걸 보고 ‘진짜 난 놈이구나’ 싶었어요. 저는 사람 많은 게 너무 싫어서 번화가로는 절대 안 가는데, 백호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거예요. 저는 얼굴이 드러나는 게 싫지만 백호가 좋아하고 백호를 좋아하시는 분이 원하시다 보니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백호는 하이마트 사원증도 받았어요. 어떻게 받게 됐나요?


동네에 있는 하이마트에 백호가 늘 산책하면서 들락날락했어요. 일부 단독형으로 된 매장은 반려견 입장이 가능하대요. 가족도 덩달아 백호 따라서 매일 둘러보다 보니까 직원분들과 너무 친해져서 그 매장의 신입 직원은 모두 백호에 대해 교육을 받으신대요. 매일 매장을 들리는 사진을 올리다 보니 본사에서 백호가 매일 출근하니 명예사원증을 보내주겠다고 하셨어요. 백호는 이제 직원 휴게실도 들어갈 수 있어요. (웃음)

 

자식을 키워놨더니 대기업에 입사했네요. (웃음)


어머니도 역시 애는 키워봐야 아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심지어 관광공사에서 공익광고가 들어와 실제로 백호가 일을 하기도 했어요. 국내에도 강아지 데리고 갈 데가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국을 다 돌았어요. 네이버에서 유기동물보호소로 기부하는 해피빈 이벤트의 광고모델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백호 덕분에 반강제로 붙임성이 좋아지셨다고요.


동네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안 하고 인사도 안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는데, 백호가 매일 카페에 들어가서 엉덩이를 흔드는데 이웃분과 인사를 안 할 수 없었어요. 단골집이 엄청 많아지고, 어딜 가든 백호는 어디 갔냐고 물어보시고, 기부하고 나눔 하려다 보니 다른 분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더라고요. 동네에서 백호 누나 하면 엄청 싹싹한 사람으로 소문이 났는데, 다 백호 덕분이에요. 운동도 엄청 싫어했는데 백호 덕분에 이제는 방구석 곰팡이에서 양지로 나가 강제로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어요.


개가 외과 의사고 고양이가 정신과 의사라는 말도 있잖아요.

 

맞아요. 이제 고양이까지 와서, 이제 저는 과로만 빼면 어떤 병원도 갈 이유가 없어졌어요.

 

(최근 백호네 집에는 고양이 ‘호랑이’가 새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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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랑이네 일상


고양이 ‘호랑이’가 새로운 가족이 되었어요. 백호에게는 동생이 생긴 셈이에요.


호랑이는 양계장에서 태어났어요. 할머니가 고양이들에게 목줄을 해놨는데, 근처 사시던 구조자 분이 우연히 보고 호랑이를 구조해 왔어요. 백호와 색이 똑같아서 유난히 눈길이 가더라고요. 구조자 분이 보내주신 사진이 계속 꿈에 나오는 거예요. 안 데려오면 평생 가슴에 남겠다 싶어서 가족과 협의를 거쳐서 데려왔어요. 또 공부를 엄청 했죠. 방묘문 설치하고 캣타워 설치하고 사료도 종류별로 사놓고요. 백호가 힘들어할까 봐 백호한테도 관심을 평소보다 많이 주고 있어요. 지금은 둘이 장난도 치고 잘 지내요.


가족은 일이 두 배가 되겠네요.


고양이는 혼자 둬도 된다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혼자 있어서 괜찮은 동물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가서 귀찮게 하지 않는 선에서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더욱 바빠졌어요. 부모님이 집에 오시면 서로 바꿔서 저랑 오빠가 백호와 산책을 나가고 있어요.


백호와 호랑이를 합하면 ‘백호랑이’예요.


처음에는 백호니까 ‘주작’과 ‘청룡’을 고민했어요. <슬램덩크>에 나오는 다른 인물도 생각하다가 가족들이 백호도 호랑이니까 그냥 호랑이라고 하자고 했어요. 성을 붙여서 강호랑이라고 불러도 괜찮고요. 아직 이름을 부르면 잘 모르는데 백호가 물먹는 걸 옆에서 봐서 물 하나는 진짜 잘 먹어요. 고양이의 3대 효도 중 하나를 하고 있어요.


한 달 전 시작한 유튜브로 호랑이 소식을 알았어요. 유튜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유튜브 해달라는 요청도 많았었어요. SNS 두 개 운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거절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백호 입양을 권유한 친구의 동생이 영상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그 친구도 저를 너무 잘 알고 평소에도 같이 놀던 사이라 자주 이야기하면서 평소에 하던 대로 영상 찍으면서 부담 없이 하고 있어요.


책과 유튜브까지, 앞으로 할 일이 많으시겠네요. 백호를 사랑하는 랜선 누나와 랜선 형 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다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데 못 키우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편하게 보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 책을 썼어요. 누구든지 강아지 키우시는 분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아닌 분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친근감 느끼실 수 있도록, 우리 이웃집에 이런 강아지가 산다는 걸 편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낮잠 자다 일어난 백호와 막간 포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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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생겼다. 나는 귀엽다. 어서 나를 쓰다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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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누나한테 안겨있을 때가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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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간식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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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됐지? 다 찍었지? 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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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네...

 

 

 



 

 

이웃집의 백호백호 누나, 백호 저 | 위즈덤하우스
백호 누나가 자주 받는 Q&A까지 망라해 백호의 모든 것을 담고 있고 백호 누나의 일상에 뭉클한 감동과 배꼽 잡는 웃음을 더해주는 천방지축 백호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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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유정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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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앞두고 있던 사육사 진이는 사육장 바깥에 있던 보노보 지니를 구조하다 불가사의한 사고로 지니의 몸에 들어가게 된다. 진이는 영상을 보듯 지니의 과거로 빨려 들어가고, 빨리 자신의 몸을 되찾지 않으면 보노보 지니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아버지에게 내쫓긴 채 삶의 의미도 희망도 없이 떠돌던 민주는 우연히 보노보의 몸을 입은 진이를 도와 상황을 돌려놓기 위해 애쓴다.


간호사로 일하던 당시, 정유정 작가가 근무하던 중환자실에 어머니가 내려왔다. 죽음을 맞기까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었던 사흘의 기억이 29년이 지난 어느 날 작가에게 다시 찾아왔다.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 인간의 자유의지로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이야기는 이 기억에서 출발했다.

 
정유정의 이번 소설은 ‘따스하고 다정하다’. 기존 ‘악의 3부작’이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탐사했다면,  『진이, 지니』  는 인간과 영장류의 교감을 통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 위해 독자를 끌고 갈 임무가 있다’라는 작가의 말은 그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은 노련한 이야기꾼임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주의 : 소설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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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자료 조사 끝에 나온 소설


광주에 계신다고 들었어요.


책 나오고 프로모션하기 시작하면 서울에 올라와서 2, 3개월은 독자와 만나고 인터뷰해요. 그 뒤에는 다음 소설을 쓰러 다시 들어가죠.

 

띠지에 ‘따스하고, 다정하고, 뭉클하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심플한 말인데 좋지 않나요? 제가 냉혈한이랑 악당을 다루는 소설을 쓰다 보니 작가도 등장인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새는 어딜 가나 자기소개해달라고 하면 ‘다정한 그녀입니다’라고 하면서 ‘다정 콘셉트’를 밀고 있어요.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있던 3일간의 경험이 이번 소설의 토대가 되었다고요.


어머니가 중환자실과 입원실을 수없이 왔다 갔다 하시다가, 마지막 사흘 동안은 반사 작용이 없었어요. 연명 처치를 안 하겠다고 했어요. 어떤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상황이었죠. 아무런 미동이 없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소설을 구상하던 새벽에도 엄마를 생각하다, 제가 만약 그 순간에 가 있고 신이 죽기 전에 사흘의 시간을 준다면 어디로 갈까 생각했어요.


어딜 가고 싶으셨어요?


당시에도 인류학과 동물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유인원이나 원숭이, 인간으로 분화하기 전 원형 영장류 조상이 살았던 시절에 가 보고 싶었어요. 이 하찮은 생물이 뭘 하고 다녔기에 이렇게 출세해서 지구를 지배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 친구들을 지금 현실로 불러오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침팬지를 지금 현실로 불러오는 상상에까지 미쳤어요.


하지만 소설에는 침팬지가 아니라 보노보가 등장했어요.


막상 자료 조사를 하니까 침팬지 종의 특징이 인간 여자하고는 전혀 안 맞는 거예요. 권력 지향적이고 서열 사회인 데다 수컷끼리 친하고 암컷의 지위가 낮아요. 주인공인 사육사가 여자인데 침팬지는 아니다 싶었어요. 영장류 관련 책을 읽다 보니 보노보가 나왔어요. 보노보는 인간에게 발견된 지 100년밖에 안 됐대요. 암컷 중심의 모계 사회고 감성 지수가 발달해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데 능해요. 상대를 이용할 줄도 알고 심리전도 펼 줄 알고, 싸움보다는 연대에 능한 사회를 이루더라고요. 보노보와 진이를 묶으니 그제야 이야기가 제대로 나왔어요.


보노보가 발견된 지 100년 안 된 걸 저는 처음 알았어요. 모르는 것들을 소설에 넣으려면 그 용기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오래 걸리죠. ‘누가 이걸 알아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모르는 걸 써도 될까 하는 불안함도 있을 거고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일단 우리나라에 나온 책을 다 읽고 서울대공원의 침팬지 전문 사육사인 우경미 사육사를 찾아갔어요. 침팬지 사육사들이 먹이를 꽂아서 낚싯대로 침팬지들을 유혹한다고 하더라고요. 침팬지가 잘 삐지는 성격이라 구조물 꼭대기에 올라가 땡깡을 많이 쓴대요. 그만큼 똑똑한데,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더 말을 잘 알아들어요. 표정과 말투, 목소리에서 감정을 읽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사육사님께 많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답답했죠. 어디서 보노보를 볼 수 있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최재천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는데, 뜻밖에도 제 책을 좋아하셔서 다 읽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나라 보노보 박사 1호인 유흥진 박사님을 소개받아서 왐바의 밀렵꾼 이야기와 보노보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이야기,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등을 듣고 김혜나 박사님과 도쿄 영장류센터로 갔죠. 거기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영장류 학자와 배우는 시간을 가지고 직접 실험에도 참여했어요.  『28』  때도 그렇고 나름대로는 동물을 대하는 자세가 어느 정도는 정립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에서 정말 개안을 했어요. 이제까지 제가 동물 감수성이 너무 없었던 거예요.


어떤 계기로 깨달았나요?


침팬지는 어쩌면 인간보다 영리할지도 몰라요. 눈만 나와 있는 멸균복을 보고도 낯선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특유의 과시 행동을 하더라고요. 강화유리벽을 주먹으로 치는데 실험실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흥분한 채 실험을 하지 않는데, 박사님들이 달래지도 않고 종일 앉아서 그들이 원해서 행동하길 기다려요. 성나있는데 달래서 실험하면 침팬지들을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된대요. 그걸 보면서 동물을 대하는 타당한 자세를 많이 배웠죠.


일본 구마모토의 보노보 생추어리에도 다녀오셨죠?


거기서 보노보를 처음 봤어요.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더 예뻐요. 가운데 가르마 머리에 입술이 빨개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와서 사람의 동공에 초점을 맞추고 눈을 들여다봐요. ‘너 누구야’ 묻는 것처럼 들여다보더라고요. 보자마자 반하게 됐어요.


지니의 눈을 통해 진이가 무의식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그 경험에서 나왔군요?


맞아요. 눈이 제 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라고 할까.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동공의 중심을 맞춰서 쳐다보더라고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과시 행동을 안 한다는 말은 책을 통해 배웠지만 진짜 그 정도로 다가와서 쳐다볼 줄은 몰랐거든요. 보노보가 침팬지에서 분화한 게 300만 년 전이라고 해요. 2,200만 년 전에 원숭이와 영장류가 분화했다면, 800만 년 전에는 인간, 맨 마지막으로 분화한 게 침팬지와 보노보예요. 학자들은 보노보가 분화하기 이전 원형 종과 가장 가까운 외모와 성격을 가졌다고 보더라고요.


이렇게 술술 나올 정도면 자료 조사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소설 준비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이렇게 많이 준비하니까, 정말 소설을 잘 쓸 것 같거든요.(웃음) 자료 조사할 때는 이것도 쓰고 저것도 써야겠다는 야망이 넘치지만 엄청난 소설을 쓰겠다 싶어 앉으면 금세 쪼그라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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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람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들


전 작품이 ‘악의 3부작’으로 묶인다면, 여기에서는 등장인물이 다 선해 보여요.


『진이, 지니』  에 나온 인물은 엄밀히 말하면 성숙한 사람들이에요. 여주인공은 특히 선악을 초월해서 성숙한 인격체여서 한 번은 다루는 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장소설으로 읽히기도 했어요.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나  『내 심장을 쏴라!』  도 성장소설이었죠. 첫 번째는 열다섯 살 소년소녀들이 자유의지가 싹트는 걸 다룬 로드픽션이고,  『내심장을 쏴라!』  는 정신병원에 갇힌 스물다섯 살이 주인공, 『진이, 지니』  는 서른 다섯 살 여성이 죽음 앞에서 인간의 마지막 자유의지를 구현하는 이야기에요. 인간이 과연 죽음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가를 다루려다보니까 성숙한 인격체가 필요했어요. 민주는 미성숙하고 알을 덜 깬 상태에서 진이를 만나 성숙해지는, 삶의 의미를 깨닫는 주체예요. 한심한 캐릭터지만 소설 안에서 성숙해지는 캐릭터를 좋아해요.


실제 생활에서도 미성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을 좋아하나요?


그런 캐릭터가 잘 맞아요. 저도 허술한 데가 많아서 특히 젊은 친구들을 보면 나이를 떠나서 동질감을 느껴요. 엄마 돌아가시고 이제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제 밑으로 동생이 셋 있어서 엄마 노릇을 해야 했어요. 그때는 친구들이랑 커피 한 잔도 못 마시는 삶이었죠. ‘내 인생을 도대체 언제 사나, 빨리 내 앞에 빛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래서 지금 그런 처지에 있는 친구들,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냉정한 말이지만 견디라는 말밖에는 해 줄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책을 쓰면서 민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왜 우리가 살아야 하는지,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선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방조했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받는데, 나쁜 사람들은 잘 살고 있다는 게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러니 악인이 많아지면 이 세상이 버텨 낼 수 없고 인간이 멸종할 수밖에 없는 거죠. 악인들이 다 잡아먹을 테니까요. 저도 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지만 악을 억누르고 사는 인간만이 가지는, 인간을 살게 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의외로 선한 사람이 99명이면 악한 사람은 1명밖에 없어요. 저는 그 99명을 선하다기보다 보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보편적인 사람은 남한테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칠 때 느끼는 죄책감이 당연히 있을 거예요. 타인을 배려하고 연민하는 마음이 사실 공감을 가져오는 거거든요. 공감이 바로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지점이고, 공존을 모색하고 공감하고 연민하는 게 인간의 자질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존엄한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에게 이런 공감 능력이 없고 공존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고 번성할 수 있었을까요?


『28』  에서는 구제역 당시 돼지들을 보고 모티프를 얻으셨다고 했는데, 인간을 향한 관심이 동물로도 넓어지고 있나요?


생명체 자체도 넓혀지는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을 더 알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요. 관심의 중심에는 항상 인간이 있는 거죠. 그리고 문학이 하는 일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동물을 통해 인간을 조명해 보기도 하고, 인간을 통해 동물을 조명해 보기도 하고요.


정여울 평론가는 민주의 ‘세상을 소리로 읽는 재능’을 민주의 능력을 ‘소통의 희망’이라고 표현했어요.


우리가 친구들과 같이 앉아 있으면 남의 말을 백 퍼센트 듣는 사람은 열 명 중에 두 명일 거예요. 다 고개 끄덕이고 딴짓 하거나 자기 할 말만 하거든요. 누군가 고통스러워할 때 누군가 그 말에 진짜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민주한테 그런 재능을 부여했어요.


예전에 감정을 색채로 보는 능력을 쓰려고 하셨죠?


맞아요. 『종의 기원』  에서 주인공에게 쓰려고 했죠. 민주가 비슷한 능력을 가진 거죠. 남들은 별 능력이라고 생각 안하는 능력을 가져다가 큰 역할을 맡기는 걸 좋아해요.


히어로물 써볼 생각은 없으세요?


저는 히어로물이 재미 없더라고요. 거대한 히어로물은 그 인물이 변할 여지가 별로 없어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선택받은 선한 자이자 능력자가 마지막에 가서도 결국 선한 일을 하고 끝나잖아요. 선함에서 선함으로 가는 거죠. 변화해가면서 넓은 폭을 보여주는 게 소설적 인물이고, 소설가는 그런 인물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요.


민주가 다른 소설에서 또 나오게 될까요?


『28』  의 한기준이 여기서 다시 나오는데, 독자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김용이 다시 나올 때도 좋아하시고요. 전 소설에서 나왔던 인물이 다시 나오는 게 독자들에게 주는 서비스 같아요. 한기준도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독자들이 많아서 자기 일 하면서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넣었어요. 그리고 저도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지 않아도 되니까 공력이 덜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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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임무


죽음과 삶을 다루려면 이야기도 무거울 것 같은데, 의외로 웃긴 부분이 있어요.


이야기하는 주제는 작가가 정하는 거고 독자의 눈치를 보면 안 돼요. 대신 쓸 때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해요. 죽음을 다룬다고 비장해지면 누가 읽어 줄까 싶더라고요. 계속 얹어서 무겁게 가야 하는 소설이 있다면, 어떤 소설은 계속 빼면서 가벼운 무게를 유지해야 해요.  『진이, 지니』를 쓰면서 독자들이 헛웃음을 좀 터뜨리게 해야겠다 싶어서 문장도 신경 썼어요. 12장 절정 부분에 가야지만 소설의 주제가 나오기 때문에, 저는 거기까지 독자를 끌고 갈 임무가 있어요. 끌고 가려면 별짓을 다 해 유혹해야 하죠.


파인애플이네요(웃음). 농수산상품권 부분도 웃겼어요.

 

남편도 그 부분을 그렇게 웃더라고요. 그 부분은 사실 웃기려고 쓴 게 아니었거든요. 스쿠터를 빌려야 하는데, 가지고 있는 게 상품권밖에 없잖아요. 민주도 진지하고 저도 진지했어요.


남편분이 소설을 쓰는 동안 읽고 조언해주나요?


초고를 일단 공책에다 쓰고 컴퓨터에 옮겨요. 그걸 남편한테 먼저 보여주죠. 남편은 소설을 즐기는 일반 대중 입장이라 제가 새겨들을 일이 많아요. 끝내고 보여줬더니 남편의 인상이 어둡더라고요. 속으로 벌벌 떨면서 재미없냐고 물어보니까 이건 아닌 것 같대요. 그동안 소설을 쓰면서 절정 부분에서 폭발할 때가 많았어요. 감정, 액션, 모든 게 깨지는 게 절정이었거든요. 그래서  『진이, 지니』  도 스쿠터랑 119 자동차 추격 신을 넣었더니 남편이 마지막에서는 자기 생을 돌아봐야 하는 장인데 액션이 나오면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신경질이 나더라고요. 다 써놨는데! 하지만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종일 생각하니까 그 말이 맞더라고요. 그래서 한 3주는 폐인으로 살았어요. 안 써지니까 매일 술 먹고 남편 욕을 있는 대로 하는(웃음) 그 시간이 지나서야 힌트를 잡았어요. 12장에서 화자의 인칭이 전복되는 시점이 있어요. 진이가 자신이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공감의 순간을 ‘나’라는 호칭으로 만든 거죠. 그럼으로써 진이가 자기 삶을 돌아보고, 죽음 앞에서의 선택을 타당하게 만드는 이유를 찾아내는 걸 써서 남편한테 보여줬어요. 처음 읽을 때와는 달리 눈이 빨개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목멘 소리로 말해서 제가 원하는 반응이 나왔다 싶었죠.


소설에 큰 기여를 하셨네요.


지금까지 생색내요. “내가 일좀 했지?” 이러는 거예요. 그럼 또 신경질이 나요. 고마운 마음보다 다 썼는데 마지막에 마음고생 시킨 게 먼저 생각나서요. (웃음)


노래를 들으면서 소설을 쓰신다고 들었어요. 민주가 부르는 노래를 찾아보니 클리프 리차드의 ‘early in the morning’이에요.


민주가 이른 아침에 떠나잖아요. 구글에 ‘이른 아침에 떠난다’를 검색했더니 그 곡이 뜨더라고요. 쓰기 시작할 때부터 퇴고할 때까지 들었어요. 경쾌한 것 같지만 슬픈 노래예요. 조수미 씨의 ‘나 가거든’도 많이 듣고요.


다 가는 노래네요?


돌아오지 않고 떠나는 소설이라서요.

 

 

독자가 나의 에너지


전작의 줄거리를 보면 한 작품에서 다루는 시간이 짧은 편이에요.  『종의 기원』  도 유진이 눈을 뜬 이후부터 사흘간 벌어진 일을 다뤘어요.


시공간을 최소화하는 게 원칙이에요. 시간도 최소한, 공간도 최소한으로 하는 걸 선호해요. 『28』 은 한 도시를 다루는데, 저한테는 그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었어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되 빠듯하게 꽉 차서 들어가는 공간이죠. 공간이 너무 크면 작가가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아요. 그렇게 해도 공간을 다 장악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더 짧아지면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3박 4일을 좋아해요. 삼각형이 가장 안정적인 도형이라고 하잖아요. 소설 플롯도 삼각형이 제일 편해요. 첫째 날 시작, 둘째 날 전개, 셋째 날 절정, 넷째 날은 에필로그가 되는 식이죠. 4박 5일로 쓰면 이야기가 변주되고 증폭될 뿐이지 같은 성격인 거예요. 3일로 설정하면 독자가 생각지 못하게 이야기가 분절돼요.


바다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다  『진이, 지니』를 쓰는 걸로 뒤집어졌다고요.


바다가 바다인 동시에 죽음인 시간인 SF 판타지적 소설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크루즈가 죽음의 시간에 갇힌 소설을 쓰려고 해양학, 지질학, 천재지변 등을 다룬 책을 읽으면서 자료조사를 6개월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시간에 대한 개념이 서야 하니까 양자 물리학 책이 남았는데,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요,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는 거예요. 이걸 읽고도 기초적인 개념이 안 선다면 시간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책을 폈는데, 거기서 러셀의 말이 나온 거죠.

 

시간의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 버트런드 러셀

 

거기서 딱 걸린 거죠, 넘어진 김에 돈을 줍는다고, 소설을 주웠어요. (웃음)

 

그 소설도 나중에 나오게 될까요?


일단 파일을 열어봐야 해요. 다시 공부한다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요. 2년 정도 견딜 욕망이 느껴지면 쓰는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버려야죠. 신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야기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2, 3년 주기로 꾸준히 쓰고 계신데, 다음 작품은 2년 혹은 3년 후 만나게 되겠네요.


다작을 하고 싶어요. 2년에서 2년 반까지만 하고 3년까지는 안 가고 싶어요. 독자들이 3년째 되니까 책 안내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이번에는 해외 판권이 팔리면서 출장이 많아서 어쩔수 없었어요. 작년 해외 행사가 7번 정도 있어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소설을 썼죠. 내년에는 영미권에서  『7년의 밤』  이 나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3년을 끌면 안 될 것 같아요.


인기가 많아질수록 행사도 많아지고, 소설을 쓰기 더 힘들어지지 않나요?


그래도 독자들을 만나는 게 좋아요. 강연하면 눈이 반짝반짝해서 이야기를 듣고 이런 저런 게 좋았다고 이야기하거든요. 혼자 외롭게 소설을 쓸 때면 독자들이 위로가 돼요. 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깽판치고 세월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거죠. 손 편지도 많이 받아서 울고 싶은 날이면 편지를 읽으면서 울어요. 그럼 다음날이면 또 책상 앞에 앉을 용기가 나요. 그래서 책 나온 뒤로 독자 만나고 인터뷰하는 걸 좋아해요. 나중에 힘이 떨어졌을 때, 하고 싶다는 욕망이 떨어졌을 때 하나씩 빼먹는 제 곶감이에요.
 


 

 

진이, 지니정유정 저 | 은행나무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간다움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삶의 희망으로 치환하는지를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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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국인 최초 '예술 제본 분야' 프랑스 최고 장인으로 선정된 조용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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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예술 제본 분야 프랑스 최고 장인 선정

 

지난 5월 프랑스에서 날아온 기쁜 소식이 하나 있었다. 바로 '프랑스 최고 장인'(Meilleur Ouvrier de FranceㆍMOF)으로 조용덕 씨가 예술 제본 분야에서 한국인 최초로 선정이 된 것이다. MOF는 한 영역의 장인으로 프랑스가 국가로서 인정하는, 프랑스 국가 공인 자격증으로 최고의 가치를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타이틀이다. 이번 MOF에서는 김영훈 씨가 제과 아이스크림 분야에서도 선정이 되어 더욱 화제를 모았다.


MOF는 프랑스 정부 교육부와 노동부의 주최로 4년마다 열리는 국가 주관 콩쿠르로 총 17개 직업군의 200여개 분야에서 절대 평가로 선정한다. MOF는 일반적인 자격 심사들과는 달리 응시자의 학력이나 이미 획득한 자격 유무 상관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나 선정 기준이 매우 높고 까다로운 걸로 알려져 있다. 각각 2년씩 예선과 본선으로 나뉘어 대회가 치뤄지며 절대 평가이다 보니 분야별 수상자가 아예 없거나 여럿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이번 26회 콩쿠르에서 약 20여개 이상의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선이 끝난 이듬해에는 전통에 따라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프랑스 최고 장인 메달과 증명서 수여식이 열리고 대통령 궁에서 수상자들을 위한 리셉션이 열리는데 이번 MOF는 5월 13일에 수여식과 리셉션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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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느 대학에서 MOF 메달을 받은 조용덕 장인

 


이제는 제본이 아닌 제책이라는 말이 쓰였으면


조용덕 장인이 MOF로 선정된 예술 제본은 수작업으로 책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사전적 정의를 한다면  “책을 낱장으로 하나하나 분해 복원해서 새로 꿰매고 가죽이나 천으로 장정을 입히는 일이다. 조용덕 장인은 제본이라는 말 대신 이제는 제책(製冊)이라는 명칭을 썼으면 좋겠다고 한다. 책을 만드는 일 즉 제책이라는 한국어 표현이 있는데, 일본어로 책을 뜻하는 ‘본’을 만든다고 해서 ‘제본’이라는 말을 의식없이 써온 것. 단어가 주는 어감이 강해서 처음엔 좀 어색할 수도 있지만 조금씩 바꾸어 나가기를 바란다고 한다. 조용덕 장인은 제책이라는 일을, 프랑스에서 “우연의 연속”으로 알게 되었다.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으며 배우는 동안이 그렇게 재밌고 행복했었다 한다. “보이지 않는 열정에 이끌리듯 기술을 터득하고 일을 배웠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열정으로 무언가를 배울 기회가 인생에 또 올까 싶습니다. ”

 

5월 13일 시상식 이후 한국에서 온 가족과의 짧은 여행, 친구 지인들, 공방 식구들, 가르치는 학생들과의 축하 모임 등으로 몇 주간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늘 하던 대로 프랑스 공방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조용덕 장인을 이메일과 메신저로 만나보았다. 

 

먼저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전화를 받으셨나요, 아니면 이메일로 받으셨나요?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선생님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당시 상황을 묘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상 소식은 우편으로 개별 통보됩니다. 이미 4년 전 25회 콩쿠르에서 고배를 마시고 와신상담하던 터라 그 불합격 통지서의 첫 문장을 완전히 외우고 있었죠. "귀하는 이번 프랑스 최고 장인 콩쿠르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로 시작하는…. 이번 콩쿠르에 합격한다면 분명 통지서가 다른 문장으로 시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루 하루 통지서만 기다리던 작년 12월 말, 출근하러 나가는 길에 우체통을 들여다보니 콩쿠르위원회 인장이 찍힌 큼지막한 봉투가 있더군요. 말도 못하게 조여오는 가슴을 안고 봉투를 열어 읽기 시작했는데 "귀하는 이번 프랑스 최고 장인 콩쿠르에서 최고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 라는 예전에 보았던 그 통지서와 비슷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또 떨어졌구나’ 했죠. 형식적인 격려 인사 뒤 결국 세 번째 문장에서 ‘합격자’라는 단어가 읽혔습니다. 순간 복받치는 감정에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전했습니다

 

MOF는 심사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어떻게 심사가 이루어지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심사는 분야에 따라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되는데요, en loge 와 sur presentation 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영훈 실장님의 분야같은 제과, 제빵, 조리 등의 분야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본인들이 직접 시험을 치러야 하는 en loge방식이고 세 권의 책을 제본해서 보내야 하는 제본 분야나 보석 세공, 악기제작 등의 분야는 완성작을 제출해서 심사 받는 sur presentation 방식입니다. 제출시부터 신원을 알 수 없게 따로 부여 받은 번호로만 표기되고 실제로 심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불합격자에겐 심사평과 점수가 자세히 적힌 평가지가 불합격 통지서와 함께 발송되고 합격자에겐 합격통지서만 발송됩니다. 따라서 sur presentation 으로 심사 받는 분야의 응시자들은 심사위원들을 대면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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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MOF에 출품한 작품. 위의 사진은 정면에서 촬영한 것. 아래 사진은 위에서 촬영했다. 제일 왼쪽 미색 작품이 한 벌, 가운데 푸른색 세 아이템이 한 벌, 오른쪽 붉은색 두 아이템이 한 벌. 총 세 작품이다. 지금까지 해온 다른 작품들 사진이 궁금하다고 하니, 의뢰인에게 의뢰를 받아 하는 일의 특성상 완성한 작품이 본인의 것이 아니어서 따로 사진으로 남겨두지는 않았다고 한다. 출품된 작품의 사진도 예스24 채널예스의 요청에 의해 찍은 것이라고. 조용덕 장인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좀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부담 그리고 스트레스로 점철된 것은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단다. 흠 없이 작품을 최고로 완성시켜야 한다는 작업에 대한 그의 태도가 MOF 수상으로 결국 발현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책이라는 오브제를 대하는 프랑스인들의 부유함


프랑스에서는 제책 분야 공인 자격증까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종이책을 작품으로서 대하는 프랑스만의 어떤 태도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종이책을 대하는 프랑스인의 태도를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감히 종이책을 대하는 모든 프랑스인의 태도를 논하기엔 너무 주제넘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주변에 있는 프랑스인들만큼은 종이책을 매우 사랑한다고나 할까요. 유유상종이라 해서 제 주변에 저 같은 사람들만 있는 건지 ebook은 정말 구경 한번 못해봤습니다. 문화 자체에 책이라는 오브제가 생활 깊숙히 자리잡은 나라라 그런지 낡고 바랜 가치 없는- 경제적 가치를 말합니다- 책을 들고 와 그 책 가치의 수 배에서 수십 배의 비용을 지불하며 제책을 부탁하는 이들의 모습이 제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누군가에게 물려받고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손때 묻은 책에 이들이 부여하는 엄청난 가치 -감정적 가치- 는 다른 무언가가 대신할 수 없는 또 다른 형태의 부유함이겠지요.

 

자신의 책을 복원시키기 위해 제책을 의뢰하는 문화가 프랑스에 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주 예전부터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 문화일까요?


제본, 제책이 비단 프랑스만의 문화라 할 수는 없죠. 각 나라마다 전통대로 책을 만드는 방법과 기술들이 여러 형태로 변화, 발전 해 왔으니까요. 과거 두루마리 형태였던 책이 기원후 지금 우리가 읽는 형태의 책으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보다 읽기 편리하고 아름다운 책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죠. 특히 중세를 거치며 유럽에선 수많은 필사가와 세밀화가, 제책가들이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책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프랑스의 국왕들과 귀족들은 자신의 전속 제책사들을 두고 서로 경쟁하듯 멋진 책들을 만들도록 격려하고 후원했구요.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책이라는 사물의 보편화가 시작되고 산업 혁명의 결과로 대량생산이 이뤄져 책을 중심으로 하는 직업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다가가기 쉬워지면서 제책 분야도 시간을 거쳐 천천히 대중화 되었다고 봐야할 거 같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아직까지 제책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입니다. 지금도 동네 공방에서, 시립 구립 문화 강좌에서 어렵지 않게 제책 수업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정성껏 만들기 위한 노력이 만드는 사람의 만족과 의뢰인의 만족으로 연결


제책 작업 중에서 특히 선생님의 마음을 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단 누군가 만든 상품을 사다가 되파는 일이 아닌 이상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만든 상품을 직접 전달 받는 고객의 만족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게 그 작업에 대한 제 스스로의 만족도이기도 하구요.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좀 더 정성껏 만들기 위한 노력이 제 만족도를 높이게 되고 결국엔 그게 의뢰인의 만족도로 연결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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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공방에서 작업 중인 조용덕 장인

 

 

기회가 된다면 꼭 만들어보고 싶은 책이 있으실까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이 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 한참 종교에 심취했을 때 막연히 성서 필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장미의 이름』  속 수사들처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내 손으로 정말 아름다운 성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관도 바뀌고 특히 책이라는 사물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바뀌면서 책의 미적 가치에 대해 더 끌리게 됐습니다.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어떤 책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건 아닙니다만 앞으로도 제게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런 책을 꿈꾸고 찾을 날이 오겠지요. 그게 무슨 책이 될진 모르지만 제가 가진 모든 재주를 집약해서 보여 줄 수 있는 멋진 책이길 바랍니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사셨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프랑스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제가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부분만 말씀 드린다면…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우러져 공존하는 나라라고 할까요?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을 간직한 건물과 사물들을 마주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때론 그로 인한 구시대적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현대적이고 개방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한국 작가 중에서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작가가 있으실까요?


한국을 떠난 뒤로 한국 작가 책을 많이 찾아 읽진 않았습니다만 오래전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박완서 님입니다. 어렸을 때도 주변에서 늙은이 같다는 소릴 들어가며 박완서 님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분의 책에 등장하던 제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나 상황에 대한 묘사에서 제 어머니의 세대가 우리나라에서 여성 ? 제가 알고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만의 여성이 아닌 -으로서 살아온 흔적을 읽었다고 해야겠죠. 남자인 저로서는 절대 살아볼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삶의 흔적 말이죠.


선생님께서 요즘 읽으시는 책이 있으신가요? 몇 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근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 의  『속초에서의 겨울 hiver a Sokcho』  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속초에서 프랑스인 작가와 젊은 한국 여성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간결하고 드라이한 문장으로 표현한 짧은 소설인데요, 읽는 내내 춥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지금은 15년 전에 읽었던 가브리엘 루아 Gabrielle Roy 의 『내 생애의 아이들 Ces enfants de ma vie』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실제 교사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과의 만남과 일상을 그려낸 마음이 정말 따뜻해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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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덕 장인이 최근에 읽은 책. 속초에서 프랑스인 작가와 젊은 한국 여성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간결하고 드라이한 문장으로 표현한 소설이다.


 

선생님의 기억 속에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한국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갈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 제가 우리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잘 대변할 것 같습니다.  참 빨리도 변한다는…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도 내가 그리 오래 살던 동네에도 몇달 사이 뭐가 그리 많이도 바뀌었던지. 계속 붙어살면 잘 감지하지 못하던 변화들도 잠깐 떨어져 살다 돌아오면 바로바로 눈에 띄더군요. 쉬지 않고 무언가가 사라지고 새로 생기고 새로 생긴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사라지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다이나믹하다고 해야겠죠. 무언가 시간을 두고 우리 곁에서 서서히 나이들고 천천히 세월의 때를 입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좀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합니다.

 

* 축하 이벤트

 

한국인 최초로 예술 제본 분야에서 프랑스 최고 장인(MOF)으로 선정된 조용덕 장인에게 축하 댓글을 남겨주세요. 정성 어린 댓글을 남겨주신 분 3분에게 예스포인트 만 원을 드립니다.(6월 30일까지. 당첨자 발표 및 포인트 지급일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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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태성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낙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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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사 최태성은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그가 강의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의 한복판에는 늘 ‘사람’이 있다. 단순히 숫자로 치환될 수 없는, 짧은 몇 개의 문장이 다 담아낼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을 들려준다. 연도와 사건을 짝지어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무엇을 꿈꾸면서, 어떤 선택을 하고, 무엇까지 감내했는지’ 이야기한다. 그의 강의를 듣다 보면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께를 훅 치고 올라온다. 수많은 학생들이 ‘랜선 제자’를 자청하면서 ‘큰★별쌤’을 따르는 이유다(‘큰별쌤’은 제자들이 붙여준 애칭으로, 저자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나는 역사에서 답을 찾았다”고 말하는 최태성 저자는, 자신이 역사를 통해 얻은 22가지의 통찰을 모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제목은  『역사의 쓸모』 . 단단하게 버티고 선 다섯 글자가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역사를 배우는가’. 저자 또한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책에 담긴 것은 그가 구한 답일지 모른다. 최태성 저자는 1997년부터 2016년까지 백영고등학교와 대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현재 EBS 교육방송과 이투스교육에서 역사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MBC <무한도전>, KBS <역사저널 그날>, KBS 라디오 <박은영의 FM 대행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면서 ‘조금 더 쉽고 친근하게 한국사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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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얻는 ‘경청의 힘, 겸허의 힘’


‘역시 최태성 강사의 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의를 들을 때처럼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있었거든요. 아마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사람’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온다는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많은 분들이 ‘역사는 사실 대로 암기해서 시험 문제를 푸는 과목’이라고 오해를 하시는데요. 사실은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게 본질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모아놓은 결과물이잖아요. 그러니까 ‘사람 이야기’인 거죠. 사람을 만나야 제대로 된 역사를 만났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자꾸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시험 결과, 점수에만 집착하다 보니까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요. 강의를 할 때도 그랬고, 이 책에서도 본질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역사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거든요.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종착점에 이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참 재미없게 역사를 배웠습니다”라고 쓰셨어요.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시면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나요?


요즘 학생들을 만나보면서 느끼는 게, 많이 외로워하고 지쳐있다는 거예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없다 보니까,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사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한테 진짜 멘토가 될 수 있는 분들이 역사에 너무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단순히 점수를 따기 위한 과목으로만 접근하니까, 역사와 학생의 삶이 따로 있는 거죠. 그 점이 아쉽고 안타까워요. 힘들어하는 청춘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부분들이 역사 속에 많이 있거든요. 그게 모든 걸 다 해결해줄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하루를 조금 더 힘차고 당당하게 버틸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들과 만나는 접점 자체가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안타깝죠.

 

‘정도전’에 대해서 쓰신 부분이 떠오르네요. 정도전도 인생이 참 안 풀렸던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정말 엉망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럼 내가 바꿔볼까?’ 생각하죠.


정도전에 대해 읽으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살기 힘들고 지치면 ‘왜 세상이 이 모양이지?’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나는 안 되는구나’ 하고 자학하면서 무너질 수도 있잖아요. 정도전도 참 꼬이고 안 풀리는 인생이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나한테 세상을 맞춰보자’ 하고 발상의 전환을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세상이 불합리한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다면 내가 세상을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시도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우리에게는 정도전이 갖고 있지 못했던 강력한 무기가 있잖아요. 바로 투표라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소극적인 시도일 수 있겠지만, 저는 투표 용지에 우리 청춘들의 시대 정신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제2의 정도전’, ‘제3의 정도전’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패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어요.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을 예로 드셨죠. 두 사건 모두 후대에 영향을 미치면서 결국 세상을 바꾸는 데 이바지했다고요.


그럼요. 내가 지금 하는 행위가 실패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시도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역사 의식이라는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공부하면, 행위에 대한 결과보다 과정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요. 내가 하는 행위가 역사의 발전에 부합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인식하고, 만약 부합한다면 그 행동의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의 이 행동은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나아가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을 역사를 통해서 미리 학습하는 거죠. 그런 사례가 없으면 힘이 빠지잖아요. ‘실패할 게 뻔한데,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을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훌륭한 성공 사례들을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지금 나도 역사의 진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행위를 하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힘을 비축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서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않는 거죠.

 

‘미투’로 상징되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어요.


요즘 여성 인권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엄청난 저항들도 있잖아요.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엄청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그 본질과 시대정신은 100년 200년 뒤에 너무 당연한 모습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역사는 계속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인지하고서 이런 현상들을 바라보면, 조금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이나 대립들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봐도 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하셨죠. “느닷없이 주장하는 요구도 아닐뿐더러 지금 당장 면피만 하면 조용해질 문제도 아니”라고요.


그게 역사가 주는 힘인 것 같아요. 역사의 맥락 속에서 오늘이 있는 거지, 오늘이라는 게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거든요. 맥락을 쭉 훑어보면서 현재를 바라보면 ‘저 사람들이 왜 저런 주장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폭 자체가 넓어져요.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도 당시에는 소수 의견이었어요. 그게 지금은 다수의 의견이 되어 있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의 소수 의견들도 100년, 200년 뒤에는 너무 당연한 다수의 주류 의견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학습하는 거죠. 그러니까 소수의 의견이 무엇인지 경청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거예요. 저는 역사가 우리에게 경청의 힘, 겸허의 힘을 끊임없이 주는 게 아닌가 생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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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현대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도 하셨는데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저뿐만 아니라,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공통적으로 낙관적이에요. 잠깐만 생각해 봐도, 100여 년 전까지 우리는 신분제 사회에서 살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물론 지금도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점들이 많이 있지만, 앞으로도 우리 사회는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워온 이야기가 역사 속에 너무 많은 거예요. 그 결과물이 지금 우리에게 있고요.

 

책에서 인용하신 나혜석의 글이 있죠. “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소설 「경희」 속의 한 문장인데요. 어떻게 보면 나혜석 이후로 세상이 변한 것도 없는 것 같고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본질적으로는 변한 게 없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씩이나마 시스템들이 바뀌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일 대표적인 게 ‘호주제 폐지’죠. 몇 백 년 동안 내려왔던 제도가 폐지된 거잖아요. 그러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본질적으로 달라져버릴 거라고 생각해요.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게 있잖아요. 물이 끓기까지는 계속 열이 가해져야 하지만, 100도가 되는 시점에는 갑자기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지금도 그런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갈 거라고 생각하고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거죠. 그렇게 바꿔내는 것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믿는 거예요.

 

현대사에 대한 해석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고, 그래서 누구도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에 대한 갈증이나 가려운 부분은 없으세요?


먼저 우리 현대사가 어떤 역사인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진짜 현대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보통 우리가 광복 이후부터 현대사가 시작된다고 보는데, 광복 이후에 우리는 분단됐고 지금까지 분단 체제가 이어지고 있어요. 사실 우리는 분단이라는 왜곡된 상황 때문에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전쟁을 겪었던 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사회잖아요. 그 분들에게 전쟁, 사회주의, 북한 같은 대상을 이성적, 객관적으로 바라봐 달라고 이야기하는 건 무리예요. 그 분들이 겪은 삶이 있기 때문이죠. 그 삶에 대해서 ‘극복하셔야 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너무 가혹한 거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단 체제 속에서 이성적인 판단으로 결론을 내려서 끝장을 보겠다고 하는 건, 그게 오히려 비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대로 된 평가는 통일 이후에나 가능할 수 있겠네요.


남북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 현대사의 첫 페이지가 넘어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까지는 과도한 진영 논리에 빠져서 소모적 갈등을 거듭하는 건 지양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양쪽 진영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거든요. 지금 우리 시대에 해야 할 일은, 그런 것들을 평가하려고 달려드는 것보다는, 그 분들의 행적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들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현대사의 첫 페이지가 되었을 때 빠르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는 거죠. 그게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역사적 평가에 진영 논리가 개입한 사례가 최근에도 있었죠. ‘약산 김원봉’과 관련해서 논란이 있었어요.


지금 우리가 김원봉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오히려 갈등만 더 증폭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분단 체제 속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한계라는 거죠. 사실 김원봉에 대해서는 영화 <암살>이 나오면서부터 조금씩 알기 시작한 거거든요.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김원봉 같은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것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너무 감정을 실어서 함부로 평가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며칠 전에 어느 분께서 김원봉에게 ‘그 놈’이라는 표현을 쓰셨더라고요. 그런 것들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분에 대해서 과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그렇지만, 그렇게 막말을 하는 것도 지양해야죠.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청춘을 바치면서 싸워왔던 분들한테 우리가 감히 ‘그 놈’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런 모습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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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으로 답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이회영 선생의 말인데요. 『역사의 쓸모』에 반복해서 등장해요. 이 말에 큰 영향을 받으셨죠?


어떻게 보면, 제 삶은 이회영 선생의 그 말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에서 정말 중요한 선택을 해야 되는 순간에 그 말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참 바쁘게, 열심히 살아왔어요. 그런데 한 번도 ‘내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지, 이게 ‘한 번의 인생 속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생각해본 적 없는 거예요. 그 문장을 만나는 순간 ‘진짜 딱 한 번이네, 언젠가 나는 점점 작아지고 흙으로 가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살아가는 과정 속으로 끌고 오는 질문이더라고요.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큰 화두를 던져주었던 질문인 것 같고요. 이회영 선생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하셨거든요. 저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에 대한 답은 찾으셨나요?


저도 언젠가 눈을 감을 텐데, 그때 스스로 물어볼 거예요. ‘너는 어떻게 살았어?’라고요. 답은 이미 만들어놨어요. 이회영 선생과 똑같이 ‘일생으로 답했다’라는 건데, 중요한 건 그 말을 할 수 있냐는 거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남은 시간을 살 수 있느냐가 문제인 거예요. 그런 답을 할 수 있도록 저의 남은 삶을 디자인해가고 있다고 생각돼요. 제가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 제일 잘하는 거라면, 역사의 사실과 인물들을 정리하고 거기에 삶의 의미를 잘 첨가해서 콘텐츠로 전달하는 일 같아요. 누구나 무료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이트나 채널을 만드는 게 제 꿈이에요. 대학 시절에 가졌던 부채의식이 있는데, 그걸 제 나름대로 갚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채의식이요?


제가 대학 다닐 때 ‘87항쟁’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었어요. 과 동기들은 거리에 있는데, 그때 저는 도서관에 있었어요. 친구들을 정말 존경했는데 함께할 수는 없었어요. 빨리 직장 구해서 돈 벌어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광장에 나오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 죄스럽고 너무 미안했어요. 그때 다짐한 게 ‘사회에 나가서 자리를 잡으면 저 친구들이 했던 말과 행동을 잊지 말아야지, 나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지’라는 거였어요. 완전 자기합리화죠. 도서관에 앉아있는 게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그걸 상쇄시키기 위한 자기 합리화를 했던 거예요. 그러나 지금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든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시더라고요. 방송사나 학원과 계약하실 때 조건으로 제시하시는 거예요?


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게 나쁜 건 아닌데, 중요한 건 그게 제 궤적에는 들어와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게 돈을 버는 케이스도 많이 있지만, 저와 같은 케이스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양질의 콘텐츠를 접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아직 많이 있거든요. 제 깜냥이 그만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제 궤적은 그렇게 한 번 그려보고 싶어요. 제가 ‘일생으로 답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궤적을 그려놨는데, 거기에는 유료 강의라고 하는 게 들어가 있지는 않은 거예요.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서 유료 강의를 하시면, 어떤 사람들은 ‘변했다’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어요.


강의를 유료 또는 무료로 하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에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겠다는데 누군가 비난을 한다면 ‘왜 비난을 하지?’라고 생각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눈 감을 때, 진짜 딱 한 번의 인생인데 내가 세웠던 중심에서 이탈했다는 걸 스스로 용납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부분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고, 변하고 싶지도 않아요. 오히려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제 의지를 더 굳게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최근에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 출연하셨어요. 방송 중에 ‘큰★별쌤의 랜선 제자 일동’이라는 아이디의 시청자가 1,919만 301원이 기부했어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요.


제 교재를 보시면 특이한 점을 발견하실 텐데요. 책의 앞 페이지가 뒤쪽에 있어요. 뒤쪽에 붙는 광고가 앞 페이지에 있고요. ‘나눔’이라는 광고인데요. 우당 이회영 선생, 거상 김만덕 등 우리 역사의 위인들 중에서 나눔을 실천했던 분들의 이야기가 실려요. 책의 제목보다는 나눔의 이야기를 공유해보자는 차원에서 그렇게 앞뒤를 바꿔놨어요. 그리고 인세의 일부는 좋은 곳에 쓰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저는 되도록 역사와 맥락이 있는 곳에 쓰고 싶고, 그 날 방송에서도 인세가 기부된 거예요. 아이디를 ‘큰★별쌤의 랜선 제자 일동’이라고 했고요. 재작년에는 ‘나눔의 집’과 ‘굿네이버스’에 1억을, 작년에는 탑골공원 주변에 ‘3.1운동길’을 만드는 데 3100만 원을 기부했어요. 저는 그냥 랜선 제자 분들과 약속한 걸 실천으로 옮기는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거고요.

 

 

 

 

*최태성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역사 교사가 되었다. 2008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EBS 역사 자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2001년부터 시작한 EBS 강의로 역사가 외워야 할 것이 많은 골치 아픈 과목이 아니라 웃음과 교훈이 가득한 감동 스토리임을 알리며 전국 학생들에게 ‘믿고 듣는 큰별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MBC 〈무한도전〉, KBS 〈역사저널 그날〉, tvN 〈수업을 바꿔라〉, KBS라디오 〈박은영의 FM 대행진〉 등에 출연하여 일반인에게도 역사 공부의 재미를 전하고 있다.

 

그의 강의는 단편적인 사실 관계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본질을 파고든다. 넘치는 에너지, 균형 잡힌 관점, 그리고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역사가 암기 과목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모든 강의의 1강을 ‘역사는 왜 배우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하는 그는 “역사를 공부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왜’라고 묻고, 그 시대 사람과 가슴으로 대화하며 답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진정성 넘치는 태도로 듣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누구나 쉽고 편하게 역사 강의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2017년 교단을 떠나 무료 온라인 강의 사이트 ‘모두의 별★별 한국사’와 유튜브 무료 강의 채널 ‘별별 히스토리’를 열었다. 역사 대중화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온라인 강의뿐만 아니라 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역사의 쓸모최태성 저 | 다산초당
수백 년 전 이야기로 오늘의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실용적인 역사 사용 설명서다.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역사 앞에서 떳떳한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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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아티스트 방용국, “음악하는 사람이 세상에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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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출간한 아티스트 방용국

 

 

어떻게 보면 이 보다 더 훌륭한 커리어는 없을 것 같다. 방용국 이야기다. 십대 때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랩퍼로 활동을 하다 2012년에 아이돌 그룹 B.A.P.에 리더로 활동 시작했다. B.A.P. 활동 전, 당시 최고 걸그룹 중 하나였던 ‘시크릿’ 멤버 송지은의 <미친거니>에 랩퍼로서, 그리고 배우 박서준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로 계속 언급되고 있는 싱글 <I Remember>으로 먼저 얼굴을 알렸으니 아이돌 지망생들이 부러워할만한 데뷔다. B.A.P.는 음악방송 1위를 하고 해외 투어도 성공적으로 했으니 인기라는 말을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팀이였다. 이 팀에서 리더로 활동하며 작곡과 작사, 음악 프로듀서 작업까지 했다. 그 후 작년 7년 계약이 만료되어 더 이상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솔로로 독립. 혼자 음악 제작과 유통, 뮤직비디오 제작 총괄까지 맡으며 올해 3월 솔로 앨범  <BANGYONGGUK>  을 냈다. 자,어떠한가?

 

그러나 한 발작 더 들어가서 보면 방용국은 ‘아이돌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방용국이 소속되었던 B.A.P.는 약 1년간 활동을 쉰 적이 있다. 기획사와의 소송 때문이다. 계약 해지 후에도 정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갑이 비어 있다. “주변에서 왜 가진 게 없냐고 묻지만, 그걸 다 챙기느니 차라리 마음 편한 빈 지갑이 낫다.”고 말한다. “이가 갈릴 만큼 원수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함께 작업한 스탭들 비용은 당연히 잘 드린다. 혹 비용을 드렸어도 제작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례라고 생각이 들어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든다. “돈이 아깝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작업물을 그대로 써버리는 순간,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방용국은 그게 싫다고 한다. 방용국은 돈 보다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보기 드문 진귀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방용국과 아이돌 전문 기자 박희아가 동네 카페에서 만난다. 둘이 나란히 앉아서 박희아가 “그 때 어땠어?” 라고 질문을 던지고 방용국은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으려 애쓰며 천천히 말한다. 잘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 같은 것은 없다. 원래 그랬다. 숨기거나 과장됨 없이 질문에 대답한다. 그 이야기들을 박희아가 문장으로 만들었다. 맨 얼굴까지 고스란히 드러난 방용국의 사진은 최세중 포토그래퍼가 찍었다. 방용국과 오랫 동안 같이 작업한, 방용국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형이다. 방용국의 포토 에세이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는 그렇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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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준비하며 떠오른 말이 솔직할 수 있는 권리였다. 예전에는 기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아이돌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니까, 솔직할 수 있는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방용국은 충분히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테니. 그리고 그 솔직한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줄 팬들도 있으니까. 인터뷰 후 생각이 달라졌다. 방용국은 원래 꾸밈이 없던 사람이다. 그는 오히려 우리에게 솔직함에 대한 권리를 누리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그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 거라고. 박희아 기자나 최세중 포토그래퍼나 그리고 인터뷰하면서 그를 본 나에게 그 마음이 전달이 되었듯이. 

 

 

출판사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책 내자는 제안을 출판사로부터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방용국 : 출판사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도대체 왜 저를?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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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기획 작가로 참여한 아이돌 전문 기자 박희아. 

『아이돌 메이커』 , 『아이돌의 작업실』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 책이다.


 



박희아 : 출판사에서 작성하신 출판 제안서를 제가 프린트해서 용국 씨를 만났는데 마치 보험 영업자처럼 프린트한 것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설명하던 것이 생각이 나요. 그 때에도 왜 자신의 책을 내고 싶어하는지 계속 물어봤었어요. 그래서  『아이돌의 작업실』  에서 용국 씨가 한 말 중에 “음악에 대답하고 싶은 날이 있거든요.” 라는 말을 보고 마음에 드셨다고,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 같다고 얘기했었죠.

 

방용국 : 아무튼 저는 엄청 영광이었어요. 그런 제안 자체를 받은 것이 무척 영광스럽게 느껴졌어요. 


박희아 : 전 적기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있는 상태에서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솔직함은 지금 이 시기에 뽑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용국 씨 전체 인생에 있어서 2막으로 넘어가는 터닝 포인트를 이 책 작업을 통해 짚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박희아 기자님은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이번 작업에 참여하셨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이번 작업에 응하셨나요?


박희아 : 아이돌의 반짝반짝함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의 모습? 팬들이 보기엔 굉장히 화려해보일 수도 있지만, 기자 일을 하면서 보면 아이돌도 역시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이 작업을 제가 수락을 했던 것이,  『아이돌의 작업실』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그 부분에 있어서 얘기를 길게 해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같은 지점에서 출판사에서도 제안을 주신 거구요. 용국 씨는 그 점에서 굉장히 탐나는 사람이었던 거죠.(웃음)


꾸며내지 않은 진짜 솔직한 모습을 담아낸 거 같아요. 솔직함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궁금해졌어요.


박희아 : 음.. 억지로 노력한 것 하나도 없는 거 같은데..(웃음) 그냥 다 얘기했어요.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얘기하는 것이 맞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연찮게 집이 가깝더라구요. 물어보면 다 얘기해주더라구요. (방용국 씨를 보고) 왜 다 얘기해준거지?


방용국 : 그동안 제 얘기를 하는 방법이 음악 만드는 것 말고는 없었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제 얘기를 구구절절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음악으로만 제 목소리를 담았었는데 이 기회에 책이라는 형태로, 글과 사진으로 제 얘기를 할 기회가 왔으니 이왕 하는 것, 솔직하게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자기 모습이 있었나요? 


방용국 : 나, 엄청 열심히 살아왔구나…! 재미있었어요. 음악을 만드는 작업과는 완전히 달랐죠. (박희아 기자를 보며) 고생 많았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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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내 모습을 꾸몄어야 하지 않았을까


방보살이라는 별명이 있으시기도 하잖아요. 책 첫 페이지 보고 정말 보살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 속에 억울함이 있을 수도 있는데 모든 걸 다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방용국 : 덧없어요.(웃음) 그 페이지에 쓰여 있는 거 진짜에요. 7년 동안 활동하면서 멤버들과 친구들도 얻었지만 금전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거든요. 또 제가 특별히 돈 욕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해요. 


돈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 이런 마음을 얘기하는 것이 쉽지가 않잖아요.


박희아 : 그렇죠. 두 번째로 보는 자리에서 “두 달 후 돈 떨어지니까 편의점에서 알바 해야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제가 당황을 했죠. 그런데 그 얘기 하고 좀 더 친해졌던 거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화가 별로 없어요. 그냥 놔요. 저나 다른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방용국 : 제가 똑같이 덧없다라고 하니까.. 세중이 형이 오히려 받아줘요. “왜 방용국 씨에게 입금하지 않습니까?” 제가 그런 부분에 욕심이 없으니까 주변사람들이, 형들이 불쌍해하고 받아주더라구요.


박희아 : 옆에 있으면 정말로 그렇게 되요. 자기가 너무나 초연하니까. 계속 닦달하게 되고 좀 그런게 있어요.

 

아이돌이 하는 행동과 말은 기획사에 의해 의도되고 정제되었다는 선입관이 대중들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용국 씨에게 그 동안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방용국 : 책을 통해 얘기하기도 했지만 제가 해왔던 아이돌 생활 자체가 마냥 부정적이지 않고 저한테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겠죠. 마냥 좋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 기억이 안좋지는 않아요. B.A.P.라는 팀을 한 시간이요. 책을 만들면서 그 때를 많이 회상했는데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각나더라구요.  B.A.P.를 하면서 제가 꾸며졌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어요. 멤버들과 잘 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많았구요. 저는 꾸미며 살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팬들께서 저의 이런 모습을 안좋아했던 것 같아요.


아.. 오히려요. 


방용국 : 네. 오히려 내 모습을 꾸몄어야 하지 않았을까. 좀 더 노력했어야 하는 부분인데.. 제가 아이돌인 이상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까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아쉬움이 있더라구요. 

 

박희아 : 근데 이런 점은 있는 거 같아요. 그 때도 일부러 꾸민 모습만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만큼 얘기를 해도 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최근에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거기에서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요. 그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그게 아니라 만약에 용국 씨가 정제된 이야기만 하는 아이돌처럼 그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었으면 이 책을 냈을 때, 그 다큐멘터리를 냈을 때 팬들 입장에서는 더 배신감 같은 걸 느낄 수 있어요. 아이돌 활동 했을 때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가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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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앨범 열 개 가진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방용국 씨가 걷는 길이 어떤 모범 사례가 될 거 같기도 해요. 아이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박희아 : 그런데 조금 힘들어보이긴 해요. 너무 인디펜던트라.(웃음)


방용국 : 저 같이 하는 것보다는 좋은 회사 들어가시는 것이….(웃음) 그런데 저는 후회는 안해요. 다시 회사에 들어갔으면 아마 후회했을 거 같아요. 힘들어도 저한테는 이 선택이 맞았을 거 같아요.


29페이지에서 “요즘은 일찍 일어난다”고 하셨잖아요. 건강함을 느꼈어요.


방용국 : 원래 제가 술을 한잔씩 마시고 잠을 자는데, 그것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아침부터 일을 하시고 오전에 중요한 전화가 많이 오는 편이라 전화가 오면 받아야 하는데, 말이 잘 안나와요. 제 패턴대로 생활을 하면 같이 일하시는 분들에게 피해를 주니까 어떻게 해서든 정신 차리려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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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좋아하는 형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행복했다.

 

앨범 혼자 작업하시고.. 다양한 활동을 짧은 시간에 하셨는데.. 하고 싶은 거 다 하셨나요?


방용국 : 다 못했어요. 하나씩 하고 있는데,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는 중이에요. 남은 버킷리스트 중에 세계일주와 우주 여행이 있어요. 또 체 게베라를 좋아해서 체 게베라처럼 남미에서 바이크 타고 여행하고 싶어요. 그리고 정규 앨범을 또 만들고 싶어요. 정규 앨범 열 개 가진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이런 내용 담아서 뿌듯하고 좋다, 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나요?


박희아 : 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파트인데요, 용국 씨에게 이성철 씨라는 친구가 있어요. 그 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아마 그 원고 제목이 <중학생의 음악적 소양>이에요. 중학생 시절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얘기부터 시작해서, 지금 용국 씨가 왜 이 모습이 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파트라고 생각해요.


춤추는 장면이 있잖아요. 너무 행복해 보이더구요.


방용국 : 그 때 아마 삿포로였을 텐데 술을 많이 마셨어요. 한국에서는 밖에서 술을 잘 안마시거든요. 그래서 밖에서 술을 마시면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는데, 그 때가 삿포로에서 일정을 다 끝내고 마지막 밤이었을 거에요. 맛있는 거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던 거 같아요. 


중간 중간 손편지가 있어요. 사실 요즘에는 손글씨 쓸 일이 별로 없어서 손글씨 쓰는 것 자체가 많이 힘들잖아요.


방용국 : 원래 손글씨로 작업 노트를 많이 썼어요. 할아버지에게 글씨를 배웠어요. 할아버지 글씨와 똑같아요. 할아버지 일기장 보면, 제 글씨체가 좀 더 무르익어지면 할아버지 글씨체와 비슷해질 거 같더라구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다 보니 할아버지에게 배운 게 많은 거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절 잘 키워주신 거 같아요.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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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에 주욱 쓴 손편지 네 개가 책에 수록되어 있다.

 


<항상 누군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앞만 보지 말고뒤도 보세요.” 하지만 앞과 뒤만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라는 구절이 있어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방용국 : 지독히 열심히만 살아서 저를 못 돌보고 산 거 같더라구요. 내 자신에게 미안해지는 그런 느낌? 건강도 별로 안좋아지고요. 지독히 열심히만 살았던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나를 아끼지 않고 살아온 거 같아서요. 나를 소중히 하지 못한 제 자신을 이제서야 보게 된 거죠.

 

 

음악하는 사람이 세상에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돌이라는 것이 산업에서 하나의 장르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잖아요. 아이돌로 활동하시면서 경험하실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보셨잖아요. 아이돌에게 조언을 해주실 것이 있으실 거 같아요.


방용국 : 글쎄요. 제가 조언을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다들 굉장히 열심히 사시는 것 같아요. 우선 후회없이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요. 일단 음악이라는 집합으로 모인 친구들 이잖아요. 제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음악적인 측면에서 많이 쌓아갔으면 좋겠어요. 음악에 큰 흥미가 없는 친구들도 아이돌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음악 말고 다른 일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음악이라는 집합으로 모여서 청중들에게 무대를 보여주는 일을 하니까 그 부분에서 소양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족과 팬에게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팬에게 잘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방용국 : 저는 팬을 사랑한다기 보다는 존경해야 한다는 주의인데요. 존경에는 사랑이 포함되어 있는 더 큰 마음 같아요.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고 지지하고 좋아해주는 마음은, 저희가 하는 일에 비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떤 아티스트의 열렬한 팬이기도 해봤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요.


사랑과 존경은 어떻게 다를까요?


박희아 : 존경은 팬들이 열광하고 환호하는 그 마음의 알맹이가 어디서 파생 되었는지를 알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때 그 열정을 존경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아이돌이 별로 없기도 해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팬들도 더 성숙해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모습을 전체적인 큰 상황에서 조망할 수 있을 때, 그렇게 되는 상황에서 비로소 존경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해요. 


음악으로 집합이 되었다고 표현을 하셨어요.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려요.

 

방용국 : 전 꼭 하셨으면 좋겠어요. 음악의 본질은 배우는 것 자체 보다도 음악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흡수하는 거라 생각해서 배우는 것에 돈을 쓸 시간에 악기나 장비에 돈을 투자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꼭 자기가 만든 음악을 세상에 내놔서 평가받았으면 좋겠어요.  혼자 만들어서 혼자 들으면 그거야 말로 덧없으니까. 잘 만들었든, 못 만들었든 세상에 꼭 공개해서 평가를 받아야 또 다른 음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음악 하는 사람이 세상에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더. 늘 그렇게 생각해요.

 

장소 협찬 Dumb N The Studio https://dntstudio.modoo.at/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방용국 저 | 위즈덤하우스
방용국이라는 한 뮤지션의 내밀한 이야기인 동시에, 서른 즈음의 누구나 공감할 만한 청춘의 한 순간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향해 선보이는 ‘청춘’이라는 믹스테이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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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정우성,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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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출간한 에세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 정우성은 인터뷰에 앞서 한 가지를 요청했다. “책과 관련된 질문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배우, 영화에 대한 질문보다는 ‘난민’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되고 2015년 6월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배우 정우성. 그에게 묻고 싶었던 사적인 질문들을 빼야했지만 책을 쓴 의도, 의미를 다시 살피게 됐다. 정우성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평등, 책임감, 존중’ 같은 단어를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온화하고 견결한 말들 속에서 흔한 미사여구는 필요 없었다.

 

 

공감과 이해로 가는 작은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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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가 문을 연 게 2001년. 연예인이 명예사절로 임명된 건, 정우성 씨가 처음이에요. 수락을 굉장히 빠르게 했다고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하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이니까요. 왜 많은 사람을 두고 내게 제안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고민을 길게 하진 않았어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받으셨을 때는요?

 

사실 책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5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요. 활동을 한번 되돌아봐도 좋을 것 같았어요. 백지 상태에서 썼다면 부담이 컸겠지만 유엔난민기구와 활동하며 했던 인터뷰, 기고문 등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새로운 책을 썼다는 느낌은 크지 않아요.

 

만들어진 책을 보니까 어떤가요?

 

쓰길 잘한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고, 난민에 대한 정확한 팩트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루트로 이 책을 접해도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난민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던 사람,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했던 사람,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 등 누구라도 좋으니 한 번쯤 눈길을 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에요.

 

제목을 자꾸 곱씹게 되더라고요. “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뒤의 말이 생략됐겠죠?

 

결국 공감인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과 소통하고 나면,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하지만 경험이 없이는 공감이 어렵죠. 난민에 대해 막연히 멀게만 느끼는 분들을 저는 정말 이해해요. 우리 사회에 가짜 뉴스가 너무 많잖아요.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무작정 이해를 요구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책이 공감과 이해로 가는 작은 통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 5월, 74만 명이 모여 사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 ‘방글라데시 쿠투팔롱’을 방문하셨어요.

 

쿠투팔롱 난민촌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7년 12월이었어요. 그해 8월 폭력 사태의 기억이 생생한 사람들을 만났죠. 워낙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곳이에요. 산 하나를 깎아서 만든 난민촌이라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유엔난민기구와 협력단체,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더라고요. 로힝야 난민들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을 위한 영구적인 해결책이 요원해 보인다는 거예요. 난민촌에서의 생활이 아무리 안정적이라고 해도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니까요. 국제사회가 함께 힘을 합쳐서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의 자발적이고 안전한 귀환의 조건에 합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해요.

 

현장에서 난민을 만날 때,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감정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은 난민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자세히 듣고, 대중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순간순간 어려울 때가 있을 것 같아요.

 

매년 난민 현장을 방문했지만 전혀 훈련이 안 돼요. 2017년 이라크에 갔을 때 얼굴에 화상을 입은 10세 소녀 ‘호다’를 만났어요.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인인 호다는 우릴 보고 웃기만 해죠. 차마 어떻게 다쳤는지를 묻지 못하니까, 옆에 있던 마뇨레가 ‘피융~ 후와’ 하며 포탄이 떨어지는 모습을 흉내 냈어요. 포격으로 얼굴에 상처가 난 걸 이야기해준 거죠. 순간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어요. 위로 한 마디를 못하고 있는데, 호다의 어머니가 오히려 저를 위로해줬어요. 자신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딸을 위해 매일매일 소원을 빈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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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

 

딱 1년 전이죠. 예민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찾아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어요. 당시 제주포럼 ‘길 위의 사람들: 세계 난민 문제의 오늘과 내일’ 대담에 참여하기도 하셨는데요.

 

정말 뜨거운 이슈였잖아요.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바로잡고 싶었어요. 첫째는 전쟁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도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오해가 있는데, 우리에게는 매우 엄격한 난민 심사 과정이 있어요. 여권 확인하고 간단히 면접만 하는 수준이 아니에요. 난민지위협약과 국내 난민법에 따라 국제 기준에 맞춰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걸쳐 진행해요. 난민 신청자는 그 과정에서 자기 신분을 완벽히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범죄자나 테러리스트가 난민 인정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난민이 제3국 정착을 희망한다’는 것도 잘못된 사실이죠.

 

제가 캠프에서 만난 거의 모든 난민들은 고국으로 가길 원했어요. 평화를 되찾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큰 꿈이었죠. 이들은 현재의 상태를 안정된 일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보호국에 머물러도 그곳에서 영구적으로 정착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자녀의 치료나 교육 등의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체류하기를 원하는 경우에 귀화를 신청하기도 하는데요. 귀화 과정 역시 매우 엄격하고, 귀화에 성공했더라도 결국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작년 11월,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지부티’를 방문했을 때, 예멘인을 만나시기도 했어요. 수만 명의 예민인들이 2015년에 발발한 내전을 피해 제일 처음 거쳐간 국가입니다.

 

원래 예멘을 방문하고 싶었어요. 유엔난민기구 측에 예멘 방문을 제안했는데,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어요. 그래서 방문하게 된 지부티는 인구 97만 명의 세계 최빈국 중 하나지만 3만 명 가까운 난민을 최선을 다해 보호하고 있는 관대한 나라였어요. 예멘 난민 4천 5백 명은 수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곳에 머물고 있는데, 나라가 워낙 가난하다 보니 난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죠. 그래서 지부티를 떠나 말레이시아로 가게 됐고, 거기에서도 오래 있을 수 없어 제주도로 오게 된 거였어요. 그곳에서 19살 로자라는 소녀를 만났어요. 한여름이면 기온이 50도까지 오르는 작은 인접국 ‘지부티’가 세상의 전부인 소녀가 제게 말하더라고요. “대한민국은 친절하고 관대한 나라라고 들었다.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예멘을 떠난 게 아니라고. 아저씨가 가서 전해 달라”고.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어요.

 

난민에 관한 가장 큰 편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난민이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성격을 가진 대규모 집단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난민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위험에 봉착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목숨을 위해 도피한 사람들이죠. 우리도 전쟁 앞에서, 박해 앞에서 언제든 갑자기 난민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난민은 각자의 이야기와 서로 다른 성품, 역사, 피신의 이유, 목적과 꿈을 가진 개개인이에요.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서 규정한다면 결코 난민에 대해 이해할 수 없어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으신다고요.

 

한마디로 정리할 순 없어요. 하지만 길가다 넘어진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잖아요. 일으켜 줘야 하는 거잖아요. 언제부턴가 우리 모두가 타인에게 손을 뻗는 일에 의식 검열이 너무 심해진 것 같아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에요. 눈앞에 누군가가 어렵다고 한다면, 큰 도움은 못 돼도 관심을 가져야 하잖아요. 언젠가 ‘난민을 돼 도와야 하죠?”와 같은 질문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날이 온다면, 더 나아가 더 이상 한 명의 난민도 발생하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친선대사로서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이룬 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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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달라지지 않아요

 

5년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면 어떤가요? 개인 정우성이 얻은 것이 있다면요?

 

감사! 감사죠.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게 없다는 걸 알게 해줬으니까요. 제게 정말 소중한 걸 선물했죠.

 

정우성의 주요한 연관 검색어가 ‘난민’이 됐잖아요. 부담감은 없나요?

 

글쎄요. 저는 제가 배우이기 전에 한 시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라서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면 안 되고, 직장인이라서 사회에 대해 발언하지 못한다면 누가 과연 말할 수 있을까요? 정치권에서 시민들에게 “당신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마. 그냥 가만히 있어”라고 한다면 사회가 발전할까요? 이게 진짜 정치일까요? 조금 더 마음이 있는 사람, 여유가 있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발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회가 나아질 수 있으니까요.

 

책임감도 느끼실 것 같아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무일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책임의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일이잖아요. 내가 하는 말에 책임질 만한 생각을 갖고 있어야죠. 마음속에 있는 건 결코 보이지 않아요. 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셨잖아요. “행동하는 양심.” 실천이 중요하죠.

 

마음은 있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좀 기다리면 돼요. 기다리면 기회가 오고 실천하게 돼요. 주변에서 제게 말해요. “활동에 지장 없어? 너 이래도 괜찮아?” (웃음) 저는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가끔 후배들이 “저도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요. 저는 이렇게 말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기가 넘어가면 행동으로 나올 때가 있으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라고요. 꼭 누구처럼 해야 한다는 건 없어요. 마음이 생겼다면 자기답게 하면 돼요.

 

대한민국이 유엔난민기구의 민간 후원금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라고 들었어요. 1위는 스페인이고요.

 

맞아요. 상대적으로 기업의 후원금은 부족한 편이고, 정부의 공여금도 한계가 있지만, 개인 후원 차원에서는 우리가 앞에 서는 나라예요. 대한민국 국민의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후원보다 더 중요한 건 난민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라는 것,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난민 문제를 남의 나라 문제라고 생각하고 외면하지 않는 것, 내가 사는 곳의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국제 사회에까지 넓히는 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한정의 지원이라기보다는 일상의 복원”(125쪽)이라고 하셨어요.


난민들이 언제까지도 난민 캠프에만 머물 수 없으니까요. 전쟁이 끝나 하루 빨리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쟁이 쉽사리 끝나지 않으니까요. 일자리를 얻고 자족할 수 있어야 견딜 수 있어요. 난민들은 지원금보다는 일자리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해요. 수공예품 등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나름의 경제 활동을 해 가려는 난민 커뮤니티도 적지 않아요. 유엔난민기구도 난민들이 캠프 안에 고립되어 살기보다는 레바논에서처럼 가급적 난민 캠프 밖에서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길 바라고 있어요.

 

 

존중하려면 거리감이 필요하죠

 

책에 자주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존중’이에요. 난민과 우리, 다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일상 생활에서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거리감. 거리감을 어떻게 잘 유지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의미에서의 거리감인데요. 상대를 다 안다고 생각하면 오해를 하게 돼요. 내가 당신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착각하게 되죠. 서로를 좀 어렵게 대할 필요가 있어요. 나쁜 어려움이 아니라 배려가 깃든 어려움을 갖는다면, 서로를 존중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멋있는 사람일까요?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 멋지지 않나요? 사심을 버릴 줄 아는 사람도 멋지죠. 우리는 너무 사심에 차 있잖아요.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요?

 

개인적인 꿈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어요.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만족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 그것이 소망이라면 소망일 수 있겠지만요. 배우로서의 꿈은 제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감사하면서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척 흔한 말이지만 맞다고 생각해요. (웃음)

 

두 번째 책을 쓴다면, 배우 정우성의 이야기가 될까요?

 

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면 이번 책도 내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제 이름으로 두 번째 책이 나온다면, 5년 이후의 난민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정우성


배우.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해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똥개>, <강철비>, <증인>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됐고, 2015년 6월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정우성 저 | 원더박스
난민촌에서 난민들을 만나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과 유엔난민기구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라는 그는 자신이 이런 확신을 갖기까지 경험한 것들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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