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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고요한 별들처럼 각자의 삶에도 자기 운행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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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대녕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언제나 헤매는 상태로 독자들과 만났다. 존재의 시원을 찾아 헤매고, 정체성을 앗아가는 시류에 떠밀려 헤매는 그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늘 다음 작품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또 어떤 모습의 나와 마주하게 될까.

『대설주의보』이후 삼년 반 만에 다시 이어진 이야기는 삶의 고통 속에서 헤매는 우리에 대한 것이다. 고통 없는 삶이 없듯이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소설은 없다. 다만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사람마다, 소설마다 다를 뿐이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노래한 시인도 있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통이란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고 가능한 멀리 도망치고 싶은 어떤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달음질쳐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도자기 박물관』에는 바로 그 순간, 그 지점에 서 있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일 것인가. 떨쳐낼 수 없는 고통을 꼬리처럼 매단 채 앞으로 내달릴 것인가, 아니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그것을 마주볼 것인가. 윤대녕과 그의 인물들은 후자를 택했다. 잔인한 형벌과도 같아 보이는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 선택의 필요성에 대해 물었을 때, 소설가 윤대녕은 그것의 필연성을 이야기했다.




고통 받는다는 건 치열하게 삶을 앓고 있다는 거예요

“과거에 받았던 상처라든가 엉켜있던 매듭이 풀어지지 않으면 타인과 더 깊이, 구체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생명인 이상 누구나 고통을 받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에 짓눌려서 계속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타자의 고통을 감지하고 이해함으로 인해서 가까워지고 삶을 이뤄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 소설에 배어있는 고통론은 그런 걸 전제로 한 것이죠.”

『도자기 박물관』에 실린 7개의 단편 속 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대학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선배와 하룻밤을 보낸 뒤 혼자 남겨졌던 기억에 의해 삶이 할퀴어졌다(「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곁으로 떠나간 여인에 대한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문어와 만날 때까지」). 아름다움을 탐하는 데 혼을 빼앗겨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지 못한 이가 있는가 하면(「도자기 박물관」), 자신의 불치병 때문에 평생 함께하자 약속했던 사람을 떠나온 이도 있다(「통영-홍콩 간」). 그들은 죄책감에 몸부림치느라 자기 삶에 스스로 생채기를 냈다.

살아가기 위해, 지독한 통증 뒤에도 이어지는 생을 살아가기 위해, 또 다른 사람과 공간을 찾아 걸어온 삶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 뒤에 버티고 서있는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딛었던 걸음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그들은 어떤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흔적’ 때문에 고통받지만, 그 치명적인 기억의 상흔에 기대어 살아가기도 한다.”(p.295)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고통이란 것이 삶을 견인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일까.

“고통 받는다는 건 삶을 앓는 거잖아요. 그 상황이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간에, 어떤 의미에서는 치열하게 압박해오는 삶을 앓고 있다고 느껴져요. 살아가는 자체가 힘든 일이고 고통스러운 일인데, 그렇다면 그것을 삶의 역동적인 의미나 힘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일 아닌가요? 저는 이 고통이 타자 긍정으로 잘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잘못하면 타자 부정이 되어 버리거든요. 고통을 통해서 짓눌리게 되면 타인의 탓을 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타자를 부정하다 보면 자꾸 왜곡되고, 세상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때때로 나를 잃을 정도로 깊숙이 타인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순간에 그만큼 나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고 내 존재를 뚜렷이 감지했던 경험들이 되풀이됐던 것 같아요. 타인을 나만큼 가깝게 느끼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결국 내 삶이거든요. 나를 위한 삶이고요.”


『도자기 박물관』은 ‘고통’과 ‘관계’ 두 개의 축 위에 쌓아 올린 이야기다. 현실에서의 삶이 그러하듯, 작품 속 인물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연을 쌓고 무너뜨리고 기쁨과 고통의 절정을 맛본다. 그 이후의 삶 역시 그것들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타인으로 인해 주체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윤대녕은 존재가 가장 주체적인 순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주체적이라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받는 순간은, 나를 잊을 만큼 상대한테 몰두하고 상대의 고통이나 상태에 대해서 염려하는 순간이에요. 그렇게 타자한테 깊숙이 개입해 있을 때 ‘내가 굉장히 주체적이었구나, (이 순간이) 내가 이해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구나’ 라는 걸 느낄 때가 상당히 많아요. 그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주체적인 삶은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잘못 이해되면 내 주체를 위해서 주변에서 계속 나를 이해해줘야만 되는 상태가 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삶은 불가능하잖아요, 타자 없는 삶이 불가능하듯이. 그래서 주체라는 건 같이 만들어나가야 되는 것 같아요. 각자의 주체는 서로가 만들어가고 만들어줘야 되는 거죠. 누가 나한테 깊숙이 개입을 해줘야 되고 나도 깊숙이 개입을 해야만 비로소 자기 주체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는 또 다른 의미에서 주체란 고통을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있는 존재임을 지적하면서, 타자를 주체로 만들 정도의 이행력이 있어야만 자기 주체가 발생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자신과 동일한 존재감과 무게감의 삶을 가진 존재로 타인을 대할 때, 그를 통해서 나의 이해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소설이라는 건 사실 주체의 흔들림과 결핍감에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요. 서로가 만나서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서 삶을 재구성하기 위한 방식이 소설 쓰는 행위인 거죠. 소박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것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영원한 만남이 없듯이 영원한 이별도 없는 거예요

이번 소설집을 펴내며 작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사이 내게는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바로 오십대의 나이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그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공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뚜렷이 떠오르는 바가 없다. 다만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았던 것 같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그러한 시간의 집적이자 흔적이 되겠다.(p.316)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 서서 작가는 타인과 삶에 대한 고달픔, 고통, 그리고 그것을 감득하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작가라는 자의식만큼이나 독자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의 자각이 크게 자라났다고 했다. 쉽게 소통하고 스미는 이야기로써 독자와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났다는 이야기였다. 삶에 대한 실제적인 감각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고 생각하면서, 작가는 경계의 시간을 지나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까닭일까. 『도자기 박물관』에는 소설가 윤대녕의 모습이 유독 많이 투영된 듯 보인다. 작가 스스로도 이번 소설은 “문학을 해 온 지난 세월과 삶을 돌아보는 장면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에서 오래전 사랑했던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여인의 입을 빌어, 문득 대상 없이 그리워지는 자신의 마음을 독자들에게 띄워 보냈다. 특히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것에 이끌리며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인 「도자기 박물관」 은 작가가 “심경적으로는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어느 순간 이런 자의식이 생기더라고요. 어쩌면 혹은 실제로, 지금까지 일관되게 내가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살아온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것을 못 보고 가까운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고 살아왔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요. 그런 어쩔 수 없는 회한 같은 것에서 비롯된 인연이 「도자기 박물관」 이죠.

그리고 오랫동안 미감각적인 취향으로 도자기를 쳐다보면서 살았어요. 어느 날 도요지에 가서 불이 타오르는 장면을 봤는데 가슴이 너무 뜨겁게 타오르더라고요. ‘흙이 그릇으로 변할 때까지 그 순간들이 얼마나 뜨거운가’ 생각되면서 ‘매 순간 누구나 자기 삶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 불 속에 앉은 것처럼 뜨겁게 살라는 거겠지’ 싶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도자기 박물관」 은 뒤를 돌아본, 다소 자전적이라고 할 수 소설이고요. 그 즈음에 공허한 의무감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도자기 박물관」 을 쓰고 나니까 다시 삶의 의미를 알겠더라고요. 다시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요. 개인으로서 또 작가로서 자의식이 많이 투영된 소설 같아요.”


고통에 대해 사유하고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통해 인연에 대한 작가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윤대녕의 인물들은 스쳐가는 우연인 듯 보이지만 운명처럼 만나고, 영원히 계속될 듯 보이다가도 홀연 스치고 지나간다. 그들 중 누군가는 끊어진 듯 이어져 있는 인연으로 다시 만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끝내 만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것까지도, 이전의 인물들과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이제 그는 그 사건들을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것에는 거스를 수 없고 불가해한 힘이 작용하지만, 작가는 그 안에 숨어있는 질서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영원한 만남도 없듯이 영원한 이별도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별들의 운행처럼 각자의 삶에도 자기 운행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개는 가까이 있다가 헤어지면서 순환하고, 멀어졌다가도 다시 가까워지는 순환을 되풀이하면서 늘 가까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헤어진 지 오래됐고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계속 나한테 작용하고 내 삶에 개입한다면 헤어진 게 아니죠.”

각자의 삶이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지고 또 헤어지게 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유일한 ‘인연의 이치’일 것이다. 그것을 아는 존재에게는 다른 존재와 가까워지는 일과 멀어지는 일이 서로 다르지 않다. 곁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곁을 떠난다고 해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편지의 수신인-주인공이 사랑했던 옛 남자-이 자신의 아내에게 건네는 말은, 그 사실에 대한 읊조림이라 할 만하다.
그대는 먼 곳에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비록 잠들어 있으나 바로 여기, 지금, 나와 함께 숨쉬고 있습니다. 내 손길이 느껴지지요? 그대는 잠결에 내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꿈에서 나를 보고 있지요? 밖에는 지금 먼 데서 불어온 바람이 우리를 모로 지나쳐 또한 먼 곳으로 불어가고 있습니다. 바람의 소리가 귓전에 들리지요?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p.33~34)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의 두 사람은 절대 헤어진 게 아니에요. (남자가) 자신의 아내에게 했던 말을 편지의 발신인에게 대신 전해준다는 자체가, 내 삶 안에 같이 있다는 의미거든요. 우리는 삶을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리는 질서의 순환 속에서 당신은 거기에서 나는 여기에서 살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계속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거든요.”




가장 현실적이었던 시간은 글을 쓰는 순간이죠

나의 별이 너의 별과 멀리 떨어져 홀로 궤도를 돌고 있을 때, 그 순간 찾아드는 외로움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그리운 너의 곁에 머물 때조차 느껴지는 외로움이 더 지독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모든 존재는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 역시 그러한 전제의 당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아스라이 헤어졌더라도 그를 계속 마음속에 갖고 있다면 가까이 있는 것이므로, 작가에게는 그를 그리워할 이유가 없을 뿐이다. 언제나 자신의 안에서, 그리고 옆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므로.

“예전에는 만나지 못하면 정말 헤어지는 줄 알았어요. 소설도 그렇게 끝났고요. 그 생각이 『대설주의보』즈음부터 변한 것 같아요. 결론도 그렇게 바뀌었죠. 「통영-홍콩 간」 에서처럼 다시 만난 이후의 하루하루가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요. 서로가 타인을 실천해야 되는 일이 안 보는 일보다 더 힘든 거죠. 그런데 이제 저는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게 삶’이라고 해석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 같아요. 만나는 순간에 얼마나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깊이 개입할까에 대한, 상대를 감지하는 것에 대한, 그런 순간이야말로 유일하게 타자가 주는 분리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서로가 타인을 실천해나가는 것이 삶이라는 작가의 말은 그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문학과 한 몸이 되어 걸어온 그의 삶 역시, 끊임없이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이해에 다다르려는 시도들로 채워진 시간이기 때문이다. 윤대녕의 문학은 언제나 조금 더 깊숙이 인간을 이해해가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삶에 대한 본질적인 요소와 그 전제가 되는 것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은 그의 문학을 지탱해 준 뿌리였다. 그는 말한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전제되어 있어야만 삶이 비로소 시작된다고. 그래서 자신은 타자에 대한,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문학을 하면서 꿈을 얻고 삶을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소름끼칠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살아온 게 결국은 다 꿈이었던 게 아닌가, 내가 소설을 쓰는 순간만이 현실이 아니었던가’ 이런 생각도 해요. 그 순간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기억이 몸에 남아있고 의식에도 남아 있지만 거머쥘 수가 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살아온 과정이 다 꿈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글을 쓰는 일은 허구 속을 헤매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실제적인 삶을 갈급하고 느끼고, 그걸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해왔던 일이거든요. 그 글 자체는 현실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저한테는 매우 중요한 대목인데요. 그래서 앞으로도 글을 쓰지 않는 한 많이 허무할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느끼기엔 적어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가장 현실적이었던 시간인 것 같아요.”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을 얻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 삶에서는 많은 것들이 허구화된 것 같은 허망한 자각이 찾아오는 순간들도 있었노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럴 때마다 현실로 남은 작품들을 보면서 문학에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아직까지도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이 더러 찾아오기는 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현존하는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바로 지금 여기의 느낌, 자체의 감각만이 실제 현실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현존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을 공감하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을 이해했다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더 많이 타자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간적으로서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작가로서도 좋은 작가가 되고 싶고요. 앞으로도 독자로 인해서 자꾸 해체되고, 다시 내 삶도 정렬되고,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게 텍스트를 사이에 두고 제가 독자와 맺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관계인 것 같아요.”

작품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완성해주는 사람은 독자일 뿐이라고,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창작자를 배신하길 반복하며 거듭나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 윤대녕. 이제 독자의 손에 넘겨진 그의 또 다른 이야기 『도자기 박물관』은 어떤 의미로 새롭게 탄생하게 될까. 분명한 것은 그 의미들의 색채가 각기 다르더라도, 모두가 그 안에서 작가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보게 되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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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대녕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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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윤대녕 저 | 문학동네
2013년 가을, 윤대녕의 일곱번째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 이 출간되었다.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이십삼 년째, 그간 특유의 여로 형식과 시적인 문장을 통해 인간 존재의 거처를 집요하게 탐색해온 그의 신작 소설집에서 우리는 윤대녕 소설세계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 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깊이를 확보하며 새로운 소설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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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가 최태섭 “왜 대한민국은 잉여사회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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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좇을까, 현실에 순응할까를 묻는 청춘에게 문화비평가 최태섭은 말한다. “어차피 뭘 해도 망하니까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이 같은 자조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잉여사회』의 저자 최태섭이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스며든 잉여라는 존재를 탐구했다. 왜, 잉여들에게도 존재하는 흐릿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잉여로 만들고 있지만, 잉여들은 나가는 문이 없는 자본의 시대에서 그 자본이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있다. 과잉, 각성, 깨달음, 분노, 뒤섞임 등이 그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쟁의 탈락자, 즉 잉여들이 생겨난다. 한 순간 경쟁에서 이겼다고 해도 그들이 잉여로서의 삶과 영원한 이별을 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들이 영원히 잉여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도 확신할 수 없다. 어떤 시대에도 잉여는 존재했지만, 스스로를 잉여라 일컬으며 자조적 고백을 늘여놓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잉여라는 주제가 오늘날의 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하는 저자 최태섭. 88만원 세대, 취업마저 포기한 ‘사포시대’를 논하는 세대 담론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청년들이 잉여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분석하고 잉여들이 유일하게 고개를 들이미는 인터넷 문화 행태를 해부했다. 그는 “잉여가 가진 에너지가 미래의 또 다른 가능성이 되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미한 잠재력을 보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이 약하다. 우리의 20세기를 수놓았던 수많은 가능성들이 힘을 잃고, 일부는 자본의 너른 품에 안겨 우리를 더 큰 절망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편협하고, 미약하고, 쓸모없고, 비루한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가능성의 조각들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뭔가의 번데기들이 부화하여 나비가 될지, 독충이 될지 알지 못한다. 아니 그것이 과연 부화하기는 하는 건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가능성 역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잉여사회』 p.27)


잉여, 시대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2011년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를 집필하고 2년 반만의 저서다.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이 정도는 감수해”라는 노동 착취 행위를 분석했는데 지금도 대한민국 사회는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계속 같은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최근에 이슈가 됐던 <뉴스타파> 인턴 공고 문제도 그렇고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못할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본인들은 먹고 살 것까지는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인턴을 지원해야 하는 사람은 먹고 사는 걱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인턴 3개월 동안 편집, 촬영을 가르쳐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수련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질적으로 인력이 필요해서 모집하면서, 옳은 일을 하는 거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세상의 수많은 노동쟁의가 뭐가 되는 것인가, 싶었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도 많다.

비슷한 경험이라면 무슨 경험인가.

원고 청탁이 들어와서 원고료를 물었더니, 준다고 했다가 안 주는 데도 있었고 턱 없이 짠 원고료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는 마감 압박이라는 것 없이 너무 편하게 지냈지만, 왕왕 어이 없는 일들이 여전히 있다.

자기소개서를 명명한 글이 인상 깊었다. ‘너무 자신만만해도 안 되고, 너무 풀 죽어도 안 되고, 너무 오버해도 안 되고, 너무 건조해도 안 되고, 너무 뻔해도 안 되는’ 적절한 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것이 자기소개라고.

온라인 취업 카페들을 보면 자기소개서를 올리고 서로 봐달라고 한다. 그 때 조언하는 시선들은 다들 면접관의 눈이다. 대부분의 댓글을 살펴보면, 이건 이 기업의 입장에서 메리트가 없고 여기 부분은 이렇게 고치라고 말한다. 이게 참 서글픈 이야기다. 웃긴 이야기다. 자기소개서라면 나를 소개하는 글이어야 하는데,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의 의도에 맞게 쓰는 글이 자기소개서가 되어버렸다. 지원자들이 너무 똑같은 포맷으로 쓰면 기업에서는 또 포맷을 바꾸고, 지원자들은 또 콘셉트를 바꾸고. 그 꼴이 웃긴다. 채용과정 자체가 서바이벌 아닌가. 좀 더 효율적인 절차로 지원자들을 빨리 탈락시켜 최소한의 몇 명을 채용하려는 행위다. 결국 따지고 보면 사람들을 빨리 걸려내려고 하는 거다. 마지막에 시험 잘 보는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고. 그런데 막상 입사를 했는데 일을 못하면 대학에서 잘못 가르쳤다면서 대학을 때려부수고 그런다.

주변에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는 없나.

많지 않다. 내가 학교생활을 제대로 안 했으니 잘 모르는 걸 수도 있고. 다만 아직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친구들이 많고 마음 편히 잘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 또래들을 보면 아직도 불안정하다. 시험 보면서 취업 준비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저자는 『잉여사회』에서 스스로 잉여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진짜 잉여와 가짜 잉여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우리 시대가 더 많은 잉여들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아직도 기성세대는 사람을 두고 ‘잉여’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나.

대학원에서 ‘잉여’를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나이든 교수님들의 반응이 그랬다. 파르르 떠는 분도 있었다. 예전에는 나이 많은 노교수들이 ‘대학생이면 지식인인데 너희가 그러면 쓰겠냐’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어떤 대학생이 지식인이라는 생각을 하나. 이런 생각을 가진 학생이 있으면 주변에서 놀릴 거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잉여사회』를 쓰게 된 계기가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잉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 단어를 듣고 빵 하고 터지는 게 있었다. 내가 잉여가 아니면 뭔가, 라는 지점이 있었다. 진짜 잉여를 가려내는 일은 일종의 불행 경쟁, 혹은 소수자 되기 게임 같은 양상을 동반한다. 지금 이 세계에서 스스로를 잉여라고 자처하는 사람에게 ‘너는 진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윤리적 공격이다. 사람들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데에 힘을 쏟는 이유는 막연한 불안감의 실체를 마주하고 나와 그것 사이의 명확한 선을 긋고자 하는 것이다.

재밌는 것이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를 때는 괜찮지만, 타인에 의해서 ‘잉여’라는 평가를 받으면 멈칫하게 된다. 유희로 사용했던 단어의 실체가 사실로 인정되니까 당황스러운 거다. 자의에 의한 명명은 허용되지만 타의에 의한 명명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잉여라는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놀 때, 다른 하나는 진심으로 욕할 때 경멸하는 의미다. 그런데 이 두 의미가 멀리 떨어진 게 아니다. 어떤 공간에서는 그냥 즐기며 자학하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또 다른 공간에서는 ‘야 잉여들아’라면서 진심으로 욕을 하면서 쓴다. 똑같은 단어를 공간마다 다른 의미로 쓰는 사람이 결국은 한 사람이다. 그러면서 이 사람에게 일종의 불안 같은 게 보일 때가 있다. 진짜 잉여들이 커밍아웃을 할 때다.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잉여라고 말하며 놀던 사람이 갑자기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준다면서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볼 때 사람들은 무서워하고 당황한다. 사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말들이 모두 진짜인지는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숙연해지는 느낌이 있다. 불안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기재가 되는 것이다. 가령 쌍용차 문제도 그렇고, 용산사태를 이야기할 수 없는 핵심에도 이런 종류의 불안이 있지 않나 싶다. 철거 투쟁도 성격이 애매하지 않나. 80년대 상계동 철거하듯 빈민가에서 쫓겨 나는 게 아니고, 상업지구를 철거할 때 그런 것들이 보인다. 이 사람들이 분명히 용산 사태 때는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들인데 자기네들이 비슷한 입장에 서게 되면 용산을 소환한다.

스스로 ‘청년 필자’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언짢음이 있다고 했다.

『88만원 세대』이후 한국사회는 새로운 시선으로 20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불쌍한 20대를 위한 동정 여론과 지원이 일어났고 20대 당사자 운동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생겨났다. 세대론을 표방하는 책들, 언론들은 2030칼럼을 만들어 청년 필자들에게 펜을 쥐어줬다. 하지만 갑자기 불러 나온 청년들은 어른들의 성에 차지 않았고,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제대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어른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리지만 기회를 준다’의 의미인 줄 알았는데, ‘네가 어리니까 네 이야기는 안 듣겠다’라는 의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청년필자라도 자기가 청년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착각이다. 가령 청년필자를 섭외해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할 때, 자기가 아는 청년을 데리고 와서 듣는 거다. 이용 당했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의견이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20대를 불쌍히 여기던 여론이 2008년에는 ‘20대 개새끼론’을 불러왔다. 20대가 과연 선거에 적극적이었다면 세상이 바뀌었을까. 386세대는 20대를 다르게 받아들였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깃발에 20대들이 달려들어 자신들의 대업을 완성시켜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언젠가 그들도 한낱 기성세대가 되어 뒷방으로 밀려나지 않겠나. 지금 시대는 모든 세대가 생존을 위해 달려간다. 20대만 힘들다고 징징댈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한국 노년층의 빈곤율, 비정규직의 비율, 자살률이 세계 최상위권이다. 20대가 실업 문제를 겪는 건 비단 3,4년 안에 생겨난 일이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 아니 더 오래 전부터 시작된 어떤 변화들의 결과다. 오늘날 20대 문제는 몇 년 후 지금의 10대 문제가 될 것이다. 내가 20대 때 ‘열정노동’을 말했고 30대가 된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듯이. 실업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대공황시기의 20대와 지금의 20대는 자라온 환경과 흡수해온 문화적 자양분이 다르다. 결국 다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20대 문제는 오늘날의 20대가 살아온 특수한 환경과 그보다 더 큰 구조적 변화가 겹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베, 과격한 언술을 걷어내면 어떤 상처들이 있다

저자는 잉여의 정서와 문화를 인터넷 문화 속에서 발견했다. 일베를 두고 ‘잉여가 갖고 있는 가능성이 가장 부정적인 방식으로 치닫고 있는 예시’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다소 주춤하지만 최근까지 많은 언론에서 ‘일베 논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당했다.

일베가 본격적으로 광주를 다루면서 언론의 이슈가 됐는데, 사실 이건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 사이에 뭔가 일베에서도 상승 작용이 있었던 거다. 한참 전에 일베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광주를 가지고 모욕적인 사진을 만들어놓은 게시물에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는 댓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다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일들이 생기면서 이런 광주에 대한 표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거다. 내부 결속이 생긴 거다. 일베의 광주 비하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디씨를 비롯해서 많은 사이트에서 훨씬 더 막장 같은 일이 많았다. 일베의 주장들은 지난 10여 년간 인터넷상에서 언제나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들이다. 일베 광주 사건이 이슈가 된 것은 언론이 아는 사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일베의 주장 자체는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일베 사용자들을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이들이 어째서 이런 극단적인 말과 생각들에 빠져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들은 깊은 박탈감에 빠져 있으나,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매우 비겁한 방식으로 해소하는 이들이다.

현대인의 박탈감과 분노, 고독 같은 것들이 잉여문화, 곧 일베와 같은 현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인가.

일베가 잘 알지도 못하는 광주에 대해 악담을 늘어놓게 된 것은 이들에게 광주가 큰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광주를 욕하면 적들이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뛰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금기를 깨자 관심을 받고, 그것을 영향력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일베는 자본주의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비슷한 상황들 중에서도 얌전한 편에 속한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7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테러를 두고 언론은 알카에다의 테러라고 보도를 했지만, 멀쩡해 보이는 백인 청년이 범인이었다. 이 청년은 자문화주의를 반대하고 이슬람을 혐오하는, 여성혐오적 성향, 성적 박탈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테러의 이면에는 최근 유럽과 미국 등지의 신보수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이민자에 대한 불관용의 증대와 같은 배경들이 있지만 범인의 개인적인 프로필을 들여다보면, 결국 그를 테러로 이끈 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박탈감이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는 일베의 발전된 버전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도 있다.

병맛 웹툰, 키보드워리어, 악플러와 어글러 현상에서도 잉여 감성을 찾아볼 수 있다. 자기 비하를 서슴없이 해대는 글들을 보며, 자학하며 즐거워한다. 왜 이런 감성에 쾌락을 느끼는 걸까.

병맛 웹툰의 핵심은 만화가 아니라 병맛이다. 병맛은 ‘쩐다’라는 유행어와 함께 ‘병맛이 쩐다’라는 식으로 많이 사용하게 됐는데 이 말은 분명히 함량 미달에 무식해 보이고, 소위 ‘병맛’ 같은데 뭔가 불가항력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견딜 수 없다는 거다. 법과 상식, 예측 가능성과 뻔함으로 가득 찬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평소 같았으면 혐오해 할만한 이야기에 굴복한다. 사회가 갖고 있는 규범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순간, 이상하고 은밀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주어진 숙제와 경쟁 속에서 10대, 20대 청소년, 청년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자기 비하, 독설, 분노와 답답함을 남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이야기를 통해 기괴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보잘것없고 쓸모 없지만 어쨌거나 동류의식,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병맛 웹툰이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게 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것이 하나의 시대적 감정으로 읽히는 것은 이 세계를 살아가는 자들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일상적인 통찰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점점 독해지고 있다. 병맛 웹툰에도 예전만큼 독자들이 자지러지지 않는다. 뭔가 스스로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웹툰이 장르화되면서 병맛 웹툰이 서서히 줄고 있다. 병맛이라는 단어도 요즘에는 많이 쓰지 않는다. 병맛 웹툰을 볼 필요도 없이 현실 자체를 깨고 논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일베 현상은 언제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나.

지금 언론에서는 많이 다루진 않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갈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일베가 치고 나오면서 분리수거가 된 경향도 있다. 일베 회원이라고 하면 사람을 이상하게 보고 있지 않나. 책에 “알고 보면 일베가 요정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민주주의, 민주화를 이야기하고 광주를 막 수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국방부, 새누리당이 나서서 5.18의 정당성을 인증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으니 얼마나 웃긴가, 코미디다. 일베 사용자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파괴적이지만 저 과격한 언술을 걷어내면 어떤 상처들이 있다. 현실에서는 극도의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면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들도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자 ‘우리 삶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결론이 다소 평이하다. 잉여에게 생존과 성장, 만남을 제안했다. 그냥 살아남는 게 아니라 ‘잘’ 살아남기, 처절한 생존 투쟁 속에서도 성장하기, 타의에 의해 정의되지 않은 자신과 만나기를 권했다. 가장 공감한 부분은 “적어도 스스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 할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에는 가장 기본적인 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기본적인 게 안 되고 있으니까 가장 기본적인 걸로 돌아가보자는 뜻이었다. 빨리 뭘 만들어서 연대를 하려고 88만원세대가 나왔는데, 왜 깨졌는지 살펴보면 자기네들끼리 싸운 결과다. 뒤심이 부족해서다. 누구 하나는 올인해서 가야 하는데, 다들 손해는 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이기적이라는 평가는 알맞지 않다. 그럼 왜 이렇게 됐냐를 물을 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떤 분들은 결론이 좋다고도, 약하다고도 하는데 내가 쓸 수 있는 최대한의 결론이었다. 살아남는 건 중요하다. 지탱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는 비굴한 선택을 해야 하고 불의에 눈을 감기도 하겠지만 이 모든 것이 생존 때문이라고 정당화하지는 말아야 한다. 기억하고, 반성하고, 최소한의 양심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어보자는 작은 다짐 정도는 해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면 우리의 억울함과 자의식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을 거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 같다. 고민하지 않으면 그냥 이 사회가 명명하는 존재로밖에 살 수 없다.

어찌됐든 지금 사회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쓰일 곳을 못 찾고 방황하고 있는데, 개선될 여지가 없다. 사회가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더 많은 기회도 주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돌볼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스스로를 돌보는 삶을 포기하는 순간, 세계는 멸망한다. 삶을 돌본다는 게, 정신 잘 차리고 잘 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다. 세계가 우리를 잉여로 분류했다 쳐도 쓰레기를 모아서 핵융합을 만들 수도 있는 거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 삶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끊임 없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끊임 없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곧 칼럼집 『모서리에서의 사유』 도 출간 예정이다. 군 입대 전 마지막 저서일 텐데.

계간지나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팀블로그 ‘리트머스’ 등에 썼던 5년치 글들을 모았다. 급하게 내는 이유는 아무래도 시효성이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이 때 말했던 것들과 지금을 비교해보았을 때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는 걸 느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도 글쎄, 한국 사회가 많이 달라져있을까에 대한 기대는 솔직히 크진 않다.

군대에서 겪은 일들을 글로 적고 싶다는 생각도 있나.

나이를 먹으면 그래도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군 입대를 미뤄왔는데 30대가 된 지금도 아직 나약한 것 같다. 게다가 군대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암울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은 군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지 않나. 그래도 다녀오면 말할 수 있는 자격? 같은 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관련 기사]

-김난도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열폭이 뭐야? 진짜 청춘이 말하는 세대론 - 한윤형 김류미
-대한민국 20대는 ‘잉여’ 존재로 전락? - 『이것은 청춘이 아닌가』 엄기호
-동물원에 고릴라로 취직한 청년 이야기 - 『굿바이 동물원』
-“죽을 것처럼 2년만 해서 안 되면 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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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사회최태섭 저 | 웅진지식하우스
잉여라고는 하지만 한편으로 청춘인 그들은 왜 인터넷 안에서만 자신을 표출하는가? 그들은 왜 긍정과 도전을 외치는 세상의 부름에 답하지 않고 모니터 앞에 앉게 되었나? 이 책은 댓글놀이, 병맛 웹툰, 키보드워리어와 일베 논란을 들여다보며 잉여들의 심리와 행태를 추적한다. 자기 자신도 ‘잉여’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회학도이자 문화비평가인 최태섭은 어른이나 선생의 눈이 아닌 잉여 스스로의 눈으로 이 현상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무엇보다 《잉여사회》는 잉여를 낳게 된 현대 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는 데 그 의의가 크다. 현대인이 말려들 수밖에 없는 ‘대잉여시대’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허삼관 매혈기』위화 작가 “『제7일』은 허구가 아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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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출간, 위화 작가 내한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 위화가 한국을 방문했다. 최근 배우 하정우가 『허삼관 매혈기』(위화 원작)를 영화화하기로 하면서 위화는 문학 독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번 방한은 『제7일』의 출간과 맞춰 이뤄졌다. 그의 방한을 맞아 국내 인터넷서점 관계자와 함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날 인터뷰는 예스24 채널예스, 교보문고 북뉴스, 인터파크 북&, 반디앤루니스가 참석했다.


 

이미 한국에도 소개되었지만, 그가 소설가가 된 이유는 다소 엉뚱하다. 아버지의 직업이기도 했던 치과의사가 소설가가 되기 이전, 그의 직업이었다. 한국에서 선망받는 직업이다. 하지만 치과의사로써 삶이 그에게 즐겁지 않았고 위화는 놀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이번 인터뷰에서 밝혔듯, 놀기 위해 창작을 한다는 그의 창작관은 지금도 유효하다.

 

경쾌한 창작관과 달리 그가 쓴 글은 가볍지 않다. 신작인 『제7일』은 오히려 묵직하다. 이 소설은 주인공 양페이가 죽은 뒤 7일간 이승을 떠돌며 겪는 사건을 다룬다. 황석영이 쓴 『손님』처럼 망자의 입으로 풀어가는 소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양페이의 죽음 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죽음은 대부분 자연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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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망자의 입으로 중국 자본주의를 말하다

 

중국의 문학평론가 훙즈강 교수는 2005년에 출판된 『위화 평전』에서 1986년에서 1989년에 나온 그의 작품에 자연사가 아닌 방법으로 죽은 인물이 무려 29명이나 나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제7일』은 21세기에 쓴 장편소설이나, 이 작품에도 피냄새가 풍긴다. 자살, 사고사 등 위화가 묘사하는 죽음은 현재 중국사회의 모순과 밀접하다. 『제7일』은 소설로써 현실을 다루겠다는 위화의 창작관이 투영된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사후 세계이나, 『제7일』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뤘다. 사망한 후를 시점으로 택한 이유는 객관적으로 사회를 그릴 수 있어서다. 주인공이 살아 있는 시점에서 썼다면, 단면만 묘사하는 데 그쳤겠으나 망자의 눈으로 묘사함으로써 사건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현재 중국에서는 급속한 경제 발전의 부작용으로 불평등이 드러나고 있다. 불평등을 소설로써 다루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는 불평등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평등을 지향한 소비에트에도 현실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지 않았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로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를 추구하면서 불평등 문제가 심해지고 있다. 경제성장의 혜택이 바다 주변의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도시와 농촌 간 격차가 커졌다. 도시 내에서도 계층 분화는 빨라졌다.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온 농민이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농민공의 등장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부자가 되고 싶은데,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없다. 개방으로 중국사회에도 자본주의적 욕망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욕망이 좌절될 때 사람이 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은 자살이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제7일』에도 이런 유형의 자살이 등장한다. 도시 빈민으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통감하고 고층 건물에서 몸을 던지는 류메이가 바로 그 인물이다. 


류메이는 동거하는 남자 친구에게 아이폰을 선물 받은 뒤, 그것이 짝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홧김에 자살한다. 다소 희극적으로 표현된 이 죽음은 도시에서 하루하루 벌어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빈민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류메이의 죽음 외에도 소설에는 웃기면서 슬픈 사건이 많은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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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작가로서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

 

『제7일』은 (완전히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 바탕을 뒀다. 작가로서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작가들은 대개 현실을 주시한다. 소설로써 실제 현실을 다루는 게 쉽지만은 않다. 지금 중국은 소설보다 실제 모습이 좀 더 황당하다. 현재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이건 현실 이야기이구나 하겠지만, 미래의 독자가 읽는다면 앞 시대 사람들은 이렇게 황당한 시대를 살았구나, 싶을 것이다. 소설이 아무리 황당해도 중국 현실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웃음)”

 

『제7일』에서 그리는 중국의 모습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적인 중국에서 이런 작품을 쓰는 게 위험하지는 않을까. 그에게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느 정도 허용되는지 물었다.

 

“통제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소설은, 일일이 심사받지는 않고 출판사에서 출판할지 안 할지를 결정한다. 소설은 독자들이 찾아서 읽는 것이니 매체보다는 영향력이 낮다. 그러니 매체를 향한 통제보다는 약하다.”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한국을 찾은 감흥을 들었다.

 

“중국과 교역량이 늘면서 양국 간 교류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 면세점을 지나치는데, 10년 전에는 없었던 중국어 간판이 많았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한국은 계속 경제가 성장하는 것 같다. 중국도 한창 경제가 발전하는데, 경제가 성장할 때는 사회 문제도 생긴다. 잘은 모르지만, 한국에도 중국이 겪는 문제가 비슷하게 있을 것 같다.”  

 

1960년생인 위화 작가는 앞으로도 글을 계속 써내려갈 예정이다. 글쓰는 게 여전히 즐겁고,“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계속 쓰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그는 창작의 고통보다는 창작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차기작이, 내년에 영화로 나올 『허삼관 매혈기』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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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대화의 기술에도 역지사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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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시스템이 고도화 되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교류하는 세상이 됐지만, 대부분의 일이 말이라는 수단으로 이뤄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때문에 말을 잘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큰 장점이자 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유창한 화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을 하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하는데 있다. 좀 더 근본적인 목적이라면, 말을 통해 상대방의 동의, 즉 마음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기주 작가는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하나의 우주를 얻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말은 그만큼 어렵고 또 그만큼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과연 일상에서 우리가 쏟아내는 말 중 진심이 담긴 경우는 얼마나 될까? 진심이란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말은, 가식이며 허세에 불과하다. 말에 진심을 담는다는 것은 쉽게 들리지만 꽤 어려운 일이다. 진심이 담긴 말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큰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얼음같이 차가웠던 관계를 부드럽게 할 수도 있고, 삶 속에 직면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쉽게 넘을 수 있게 한다. 이기주 작가는 “사람에게 인품이 있듯, 말에도 언품이 있다”고 했다. 언품이 갖춰진 말, 진심이 담긴 말은 ‘적’의 마음조차 사로잡을 수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말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시간들

이기주 작가를 만났을 때,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듯한 인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말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의 성품은 겉으로 드러나게 마련일까. 작가의 ‘언품’ 역시 곧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말 한 마디, 문장 하나도 허투루 나오는 것이 없이, 하나같이 정제되고 절제된 ‘결’이 느껴진다. 작가가 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략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부터 일간지 경제부와 정치부 기자를 거치며 무수한 말 속에 진심을 찾던 그의 고민은 2010년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연설문 작성자)로 일하게 되며 더욱 깊어졌다. 읽는 글이 아닌 말하는 글을 써야하는 사람으로서 ‘한 마디’의 힘과 무게를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2010년 당시 기자직을 떠나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로 활동하셨는데요. 변화를 시도하셨던 이유가 있을 듯 합니다.

경제부를 거쳐 정치부 기자생활을 7년 정도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기자로서 기사를 쓰는 것도 중요 하지만 조금 다른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연설문에 관심이 생겼죠.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에게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말하고 그런 것이 정책과 맞물려 돌아가는 과정에 참여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기자 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운 좋게도 그 기회가 주어졌죠. 스피치 라이터로서 2010년은 제 인생에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간결하고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작가지만, 실제 스피치 라이터가 되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125대 1, 당시 스피치 라이터를 지망했던 작가에게 무겁게 다가왔던 경쟁률이었다. 배경이나 다른 편법을 통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공채로 뽑혔다는 점은 작가의 자부심이 됐고, 말과 글에 더욱 힘을 싣게 했다.

스피치 라이터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을 듯 한데요.

약간 다른 장르의, 조금 호흡이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죠. 연설문이 중요한 이유는 순수하게 활자인 동시에 사람이 말, 즉 음성기호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전달이 된다는 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부터 더욱 말의 중요성을 고민하게 됐죠.

김대중 정부 시절 스피치 라이터였던 고도원 작가는 당시를 회상할 때 ‘문장 하나하나를 고심했던 스트레스가 대단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셨는지요.

저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던 것 같아요. 일단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6시 30분까지 출근했죠. 연설문은 호흡이 상당히 긴 글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하루에 A4 용지 20~30매 정도를 써야할 때도 있었거든요. 물론 기자시절 빠른 글쓰기에는 익숙했지만, 연설문은 더 나아가서 나름의 깊이도 있어야 했고요. 빨리는 써야 되는데 질도 담보를 해야 되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 제 경우는 조금 다른 시도를 했어요. 당시 저를 포함해 대략 4명 정도의 스피치 라이터가 있었는데, 보통은 책상 앉아 문헌을 근거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저는 기자의 경험을 살려서 직접 현장에 가 취재를 해서 쓰는 버릇이 있었어요. 경춘선이 사라질 당시에도 너무 아쉬운 마음에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만났고, 책상에서 얻지 못하는 생생한 이야기, 경춘선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셨던 분들의 진심어린 마음을 연설문에 담을 수 있었죠. 글을 쓰는데 있어 발품을 팔고 현장에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살아있는 연설문이 나오게 된 셈이에요.

이후 책을 쓰기 시작하셨고, IB컨설팅코리아를 설립하시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스피치 라이터로서의 경험은 이후 이어지는 도전의 시작이 된 듯한데요.

기자 시절에는 단순히 독자에게 읽히는 글이었다면, 스피치 라이터를 하면서 국민에게 들려주는 글을 쓴다는 느낌을 접하니 상당히 새로웠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제 느낌과 생각을 책이라는 형태로 내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1년 남짓 스피치 라이터의 생활을 마치고, 2011년부터 『서울 지엔느』 ,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등 2권의 에세이를 발표했어요. 제 모토 중 하나가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소재, 글감에 천착하는 것이거든요. 이웃의 이야기, 제가 근무했던 건물의 경비 아저씨, 제 어머니의 짧은 말 한 마디에서 글감을 얻곤 했죠. 그러다 이번에 말에 관한 책으로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을 내게 된 거예요. 이를테면, 그동안 말에 대한 고민을 바다처럼 가득 안고만 있다가, 더 큰 바다로 나가기 위해 둑을 허문 셈이죠.
“몇 해 전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암 수술을 받기 위해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했다. 장남인 난 어머니 곁을 지키며 온종일 수발을 들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저마다 목숨을 부여잡기 위해 애쓰는 그곳, 병원이라는 공간에선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醫術)이며 곧 생명이다. …(중략)… 노령환자의 상당수가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라는 말보다 은퇴 전에 사용하던 직함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환자에게 ‘김 선생님’, ‘최 지점장님’, ‘백 부장님’과 같은 호칭을 붙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환자의 상태가 몰라보게 호전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었다. …(중략)… 이때부터 난 말의 중요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적절한 말 한마디가 천 냥 빚만 갚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목숨과 인생을, 조직과 사회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끝 모르는 바다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그 넓고 깊은 고민을 이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관찰자를 넘어 조언자로 나서다

책을 쓴다는 것은 그의 태도가 이전에 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작가 스스로도 “2010년 청와대 스피치 라이터가 된 이후, 생애 두 번 째 변곡점”이라 표현할 정도. 그중에서도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은 그의 세 번째 책이자, 오랫동안 고민했던 말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서울 지엔느』이후 매해 한권씩의 책을 발표하고 계시는데요. 우연은 아닌 듯 합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최인호 선생님께서도 ‘끝까지 작가로 남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듯, 저 역시도 인생에 가장 큰 즐기는 작가에요. 그래서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책을 내자고 결심했죠. 다작을 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저는 제 생각과 느낌을 잘 숙성시켜 내놓는 시간으로 1년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세상을 보면 책의 제목처럼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보다는 ‘적을 만드는 대화법’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 한데요. 그 원인을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일단은 우리 사회가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어떤 회의나 토론, 심지어 2명이 만나는 자리에서도 예외가 없죠.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말을 적게 하면 손해를 본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내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해야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만만하게 보이지 않아 당하지 않는다는, 잠재적인 피해의식 때문인 듯도 해요. 하지만 저는 말을 많이 하려고 하다보니까 실수를 하게 되고, 말의 빈도수가 많아지면 교만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또 중요한 것은 우리말이 갖고 있는 특수성인데, 우리말의 결은 상당히 다채롭거든요. 조사 하나, 억양 하나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뉘앙스가 완전히 천차만별로 달라져요. 우리나라 말의 특수성이 이런데, 말을 더 많이 해버리면 오히려 적게하는 것보다 못한 역효과가 일어난다는 거죠.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식은 다시 서로를 공격하게 하고 있고요.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은 ‘다투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얻는 32가지 대화의 기술’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실제 작가는 책 속에서 막연하게 말의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말의 기술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구체적인 상황과 그에 따른 대화법의 제시는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책을 통해 누구나 한번 쯤 경험하는 대화의 어려움을 디테일하게 짚어내고 해법을 제시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사회생활에서 코드가 맞지 않더라도 적을 만들지 마라는 부분이 와 닿습니다. 그럼에도 소통이 안 되는 상대를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그렇죠. 저도 언론사 생활을 하고, 청와대에서 생활하기도 하면서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어요. 개중에는 그 사람과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던 적도 분명히 있었고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요한 건 나와 불편한 사람 즉, ‘적’도 사람이라는 점이었어요. 죽어있는 생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불편해 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면 관계는 더 멀어지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말을 붙여보고 인사를 먼저 하고 아주 작은 단초부터 시작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하루아침에 불편한 사람과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겠죠. 다만 적도 사람이니까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고 그러면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더군요. 그러다보면 차츰 차츰 마음을 여는 게 또 사람인 것 같아요. 분리된 섬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것은 사실 말 뿐이잖아요?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무인도로 지내야 하는데,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입장에서 과연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는 잘 생각해봐야죠. 작은 교각을 놓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간단하게 날씨를 소재로 한 스몰토크로 말을 건넨다던가, 호칭에 좀 더 신경 써서 얘기하는 식으로 먼저 말을 걸어본다면 상대는 나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남녀 간 대화 방식의 차이, 생각의 차이에 대해서도 짚어주셨는데요. 특히나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요즘 부부나 연인 간의 대화만이 아니라 이성 동료, 직장 선후배 간의 대화법도 중요할 듯 합니다.

책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언어구사 구조의 차이점을 언급 했지만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대할 때 남성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로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여성 상사라고 해서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말투가 배어있다면 상대방은 즉각 알아차립니다. 또 그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고요. 단순하게 양성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여성을 떠나 모두를 똑같이 소중한 동료로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나와 다른 차이가 있다고 해서 이분법적으로 말하는 것은 가장 지양해야 할 화법이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서 대화에 어려움을 갖는 관계 중 심각한 것이 부모와 자녀 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0대 자녀와 대화하고 싶지만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역지사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 딸이, 내 아들이 분명히 대꾸를 하기 싫어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 때 상당수 부모들이 대답을 강요하죠. 말을 강요하는 것만큼 그릇된 교육도 없거든요. ‘너 어디 갔다 왔어? 대답해!’와 같이 단순하게 대답을 강요하는 화법들이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분명히 침묵하고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럴 땐 굳이 말이라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자식 간의 관계를 내려다보고 강요하는 순간 눈높이 대화는 깨지는 것 같아요. 기다리다보면 자녀도 분명히 말을 하고 싶어 할 때가 있어요. 그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훈계도 필요하지만, 훈계로만 끝내지 말고 자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경청하는, 대화의 비율도 중요한 것 같고요. 제가 상담하는 부모님들의 사례를 들어보면 자녀에게 하는 말의 분량이 많아질수록 부담스러워하게 되고 말문을 꽁꽁 닫게 되더군요. 자녀가 벽을 쌓게 하지 않으려면 기다려 줘야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요(웃음).

신구세대간 갈등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는 듯 합니다. 이 역시도 대화와 소통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정치적인 사안 같은 경우도 내가 지지하는 세력의 일은 무조건 옳다. 즉, 남이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잠재해 있는 듯해요. 사실 그런 사고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중도층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말할 권리 같은 것들은 용인했으면 좋겠고 그 사람 입장에서 한 번 이해해 볼 수 있는 열린 태도를 갖는 집단이죠. 하지만 제가 이렇게 얘기해도 요즘은 통용되지 않는 분위기죠. 트위터 등의 SNS를 들여다봐도 정치적 사안, 사회적인 사안을 두고 양극단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어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면 외려 비판을 받는데, 저는 스스로 중도층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30~40대가 일명 낀 세대로 보이기보다는 젊은 세대와 노년층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하는 조력자 역할을 할 수도 있겠죠. 저 역시도 그런 역할을 하려 노력하고 있고요.

앞서 매해 책을 발표하는 결심을 하셨다고 했는데, 이미 다음 책에 대한 계획도 있으실 듯 합니다. 책을 통해 작가님이 이루고 싶으신 비전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지금은 윤곽만 잡고 있는 중이에요. 이제까지 제가 고민했던 것이 말의 무게였다면 다음 책에서 다루고 싶은 것은 말이 갖고 있는 효용성이라 할 수 있어요. 저의 말 한 마디가, 또는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이타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죠. 사람의 말 한마디가 양면성이 있거든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말이죠.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게도 해요. 저는 그런 측면을 경감시키면서 말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영향, 우리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고 서로 도와줄 수 있는 이타적인 효용성을 극대화 시키는 말을 연구해 보고 싶어요. 말 한마디가 갖고 있는 전파성, 민들레홑씨 같은 말이 요소요소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키우는 부분에 주목해서 긍정적인 사례를 찾아보려 해요.

작가 소개말에서 ‘도착지를 정하지 않은 인생의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기자시절 한번쯤은 인터뷰이에게 던지셨을 법도 한 질문인데요. 작가님 인생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활자로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생각할 계기를 제공하는 사람이길 바라요.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강박적인 조언을 남발하죠. 저만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 이름을 걸고 쓰는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상과 세계관을 한 번 재점검하게 만드는 작은 계기를 주고 싶을 뿐이죠. 그 과정을 통해서 저 역시 나름의 구원을 받는 것 같아요. 독자 분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힘을 얻게 되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지는 욕망을 갖게 되거든요. 그래서 인생은 도착지를 정하지 않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제가 가고자하는 지향점은 연구 중이에요. 그리고 그 지향점을 계속 걸어가면서 제 주변, 또는 제가 만난 사람들에게 좋은 소재를 얻을 수 있겠죠. 그렇듯 소소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소재를 글로 만드는 작가, 쉽게 풀어나가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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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이기주 저 | 황소북스
『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대화법』은 정치부,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채로 청와대에 들어가, 스피치 라이터로 활동했던 저자가 수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집필한 대화법 입문서이다. 생생한 사례와 노하우가 들어 있어 실생활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실용적이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하지만 종종 놓치고 있는 대화의 방법과 요령이 담겨 있으며, 직장 ? 가정 등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 소도구와 구체적인 팁도 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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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한성우 “ㅋㅋ ㅠㅠ가 외계어? 한글이 가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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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곧 방언은 사라지고 있는 걸까. 『방언정담』의 저자 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전공) 교수는 “방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방언을 ‘표준어와 다른 말, 시골말, 오래된 말’로 보면 방언이 사라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방언을 ‘한국어를 이루는 하위의 모든 말’로 보면 방언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교통, 통신, 방송, 교육의 발달에 따라 각 지역에서 쓰는 토속적인 말이 표준어로 대치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렇게 변한 말 또한 방언이다. 그리고 세대, 성별, 계층 등의 사회적인 변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말도 모두 한국어를 이루는 방언이다.

남도에서 두만강에 이르기까지, 한성우 교수는 20년 남짓 방언 기행을 이어오고 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영향으로 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대학에서 음운론, 방언학을 전공하게 된 후부터 틈만 나면 방언 조사를 떠날 궁리를 한다. 알 수 없는 부호가 깨알같이 적힌 노트 때문에 서툰 간첩으로 의심을 받기도,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방언 기행이 마냥 즐겁다. 사람들은 방언이 종내 사라질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성우 교수는 “방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시골 사람들만,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만 사투리를 쓰는 게 아니라 서울 사람들도 서울 사투리를 쓴다. 방언에는 우리 삶의 정서와 역사, 사회의 면면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고 말한다. 『방언정담』은 그가 방언 연구를 하며 오간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방언을 통해 바라본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책이다. 방언에 대한 정다운 이야기, ‘방언 인문학’이라는 타이틀답게 글을 읽다 보면 사람이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 버려질 역사가 없듯이, 방언의 정서도 사라질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음까지 통하는 소통 원한다면, 방언 알아야

점점 방언을 듣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촌스러운 말이라 여겨지고요. 국어학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우리가 일상에서 늘 쓰는 말이 곧 방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언을 마치 저 먼 곳에서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죠. 저 먼 곳에 있는 분들은 자신들의 말을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말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 말을 낮춰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우리 모두의 말이 방언인데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결국 방언과 관련된 읽기 쉬운 글을 써서, 잘 모르고 있었거나 무시하고 있었던 우리 모두의 말을 수면 위로 떠오르도록 해 보려 했습니다.

『방언정담』을 읽고 한 편의 단편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개성 넘치는 언변을 가지고 있던데요. 방언은 사람, 사연을 통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투리에 대한 논문이나 연구서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투리와 관련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정말 재미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읽는 사람이 극히 제한이 돼 있는, 연구자들만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방언을 한갓 흥밋거리로 다루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색다른 말을 쓰더라는 단순한 보고가 아닌, 누군가는 이상한 말을 쓰더라는 있는 그대로의 기술이 아닌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삶과 결부된 이야기로 엮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어디에 가나 주인공이 있었고, 눈과 귀와 가슴을 열면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더라도 저의 어머니를 비롯한 방언의 진짜 주인들이 말을 하는 방법이 아니었다면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겁니다. 어머니는 간단한 사안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전후의 맥락이 있는 이야기로 엮고, 주인공들의 직접화법으로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제게 방언을 가르쳐 준 모든 제보자들은 특정한 말에 대한 짤막한 답만을 요구하는 제게 그 말과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셨습니다. 결국 그분들의 이야기를 어머니의 말하기 방식으로 엮어내다 보니 지금과 같은 책이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방언 조사를 하면서, 제보자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신뢰할 만한 제보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었을 텐데요.

우리말을 구성하는 모든 말이 방언이라고 본다면, 방언 사용자를 만나기 어렵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조사방법에 따르면 제보자는 3대 이상 대대로 한 곳에 거주했어야 하고, 3년 이상 타지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으면 안 되고, 학력이 높아서도 안 됩니다. 오늘날처럼 이동이 잦고, 교육수준도 높아진 상황에서 이러한 조건에 맞는 제보자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칠순이 넘은 어르신들도 대부분 일을 하시는 상황이라 이 분들을 몇 날 며칠 붙들고 조사를 할 수도 없습니다. 결국 방언 사용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보자가 없는 것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기존의 조건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방언 연구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환갑만 지났다면 적절한 제보자라고 봤지만, 평균 수명이 늘어난 요즘은 여든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도 달라진 상황을 반영한 것입니다. 따라서 거주 세대와 타지생활 경험 등은 완화를 해야 조사가 쉬워질 듯합니다. 그러나 조사가 아닌 방언을 듣는 것, 혹은 방언 사용자를 만나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 않습니다. 귀를 열고 기울이면 들려오는 모든 말들이 방언입니다.

‘진짜 서울깍쟁이’ 편에 나오는 임귀동 할머니의 사연이 뭉클하더라고요.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무수한 역사가 담겨있지만, 우리가 할머니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소통할 수 없을 텐데요.

임귀동 할머니는 말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서도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사투리가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말과 사람, 말과 삶이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또박또박 조용조용 말씀을 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삶 속에서 조용하지만 뚝심 있게 당신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실현하며 사셨습니다. ‘비가 오신다.’란 말에서 ‘오신다’는 말을 듣지 못하면 간절히 비를 기다리는 옛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없습니다. 총에 맞아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몸을 ‘시체’가 아닌 ‘신체’라고 표현하는 것의 차이를 알지 못하면, 생명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읽어낼 수 없습니다. 사실 ‘오신다’와 ‘신체’는 생소한 말도, 이상한 발음도 아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다만 귀로 들리는 그 소리를 마음으로 받아내지 못하니, 말하는 사람의 참뜻을 잡아내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귀로 들리는 소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방언을 이해할 수 있겠네요.

지역에 따라 다른 말을 쓰거나 세대에 따라 다른 말을 쓰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말은 이상한 말,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되어 버립니다. 이래서는 올바른 소통이 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표준어를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마음까지 통하는 더 깊은 소통을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말인 방언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방언을 잘 알고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중국 단동에서 만난, 따냐 할머니 이야기도 기억에 납니다.

따냐 할머니는 우리 민족의 이산의 아픔과 언어의 통일 문제에 대항 큰 가르침을 주셨어요. 어린 나이에 고향인 평북 의주를 떠나 함북 회령, 러시아, 중앙아시아, 몽골, 중국을 떠돌았던 그 삶은 우리 민족의 이산의 삶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민족의 이산과 말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죠.

방언 기행 중에 두 할머니와 함께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두만강변에서 만난 소녀 소매(小梅)를 꼽고 싶습니다. 소매는 방언조사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불렀던 ‘마음 다리 놓자야’는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네가 오고 내가 가는 마음다리 놓자야’라는 가사는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지역과 세대 등에 의한 언어 차이, 이산과 분단으로 인한 언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해답을 주었습니다. 눈과 귀로는 언어의 차이가 보이고 들릴지는 모르지만 마음의 다리가 놓인다면 그러한 차이는 얼마든지 극복하고 하나 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식, 혹은 연변식 창법에 소박한 가사와 멜로디의 노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을 울리고, 거기에 또랑또랑한 소매의 모습이 겹칩니다.

서울 사람도 서울 사투리를 쓴다고 하죠. 특별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방언은 무엇인가요.

방언을 연구하면서 특정 방언에 대한 호불호를 말하는 게 부적절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울말과 육진말이 제게는 특히 매력적입니다. 서울말은 표준말로서의 서울말이 아니라 사투리로서의 서울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토박이들의 서울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깔끔하면서도 조근조근한 말투, 풍부한 어휘와 표현 등은 배우고 싶고, 또 할 수 만 있다면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함경도말은 거침없는 말투가 좋습니다. 제 고향말인 충청도말은 무언가 뒤로 감추거나 바닥에 깔고 말을 하는데 함경도말은 그런 것 없이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12살 이후 내내 서울에서 살았지만, 간혹 출신지(충남 아산) 말이 습관적으로 나올 때가 있나요?

‘그류, 그려, 기여’ 이 말들은 제 입에 꽤 붙어 있는 충청도 말입니다. 충청도에서 산 기간이 그리 길지 않고, 대학 입학 이후에는 여러 방언을 접하다 보니 고향말을 잘 안 쓰게 되거나, 안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도 일부러 쓰려고 하지 않으면 충청도 말이 입에서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높여서 말할 때는 ‘그류’라고 말하고 그러지 않아도 될 때는 ‘그려, 기여’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진심을 담은 긍정의 답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말을 할 때는 이렇게 말하지 못하지만 이런 사투리들이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표준어가 방언을 밀어내는 상황

23년만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이 되었습니다. 국어학자로서 한글날의 의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언뜻 보기에는 푸근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면을 생각해 보면 서글픈 말입니다. 한가윗날을 뺀 나머지 날은 즐겁지도, 풍요롭지도 않으니 이 날 하루만이라도 기쁘게 보내라는 것이겠지요. 사실 생일을 비롯한 무슨 기념일을 따로 챙기는 것보다는 평소에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 년 내내 관심도 안 가지다가 한글날이 다가오면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넘쳐나는 듯 호들갑을 떠는 게 불만일 뿐입니다. 평소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하니 기념일을 정해서 단 하루만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현실이 된 것이 서글플 따름입니다. 365일을 잘해 주고 생일날 특별히 더 잘 챙겨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더 행복할 듯합니다.

표준어에 대한 시각도 궁금합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표준어는 꼭 필요하지만, 표준어 사용을 강조하면 방언이나 지역문화는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표준말에 대해서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표준말이 널리 보급된 것은 누구와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더 넓게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표준어는 방언과 공존하는 존재가 되어야지 방언 위에 군림하거나 방언을 억압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표준어가 우리말의 전부도 아니고, 방언보다 더 우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표준어 제정과 보급 과정에서 방언이 열등한 말 취급을 받거나 극복해야 하는 말로 대접을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공적인 소통을 위해 표준어는 더 널리 보급이 되어야 하고, 우리말의 소중한 자산의 유지를 위해서 방언도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방언의 미래는 어떻게 보고 있나요? 표준어와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준다는 것을 달리 생각해 보면, 표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의 원활한 소통을 생각한다면 표준어 사용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가뜩이나 남북으로는 휴전선으로 분단이 되고, 동서로는 지역감정으로 반목을 겪는 상황에서 언어적으로나마 소통이 잘 된다면 분단과 반목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표준어가 방언을 밀어내는 상황입니다. 표준어가 보급되면서 방언은 나쁜 것, 오래된 것,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함께 퍼져나가게 됐는데 이러한 시각이 극복되고 표준어와 방언이 공존하게 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의미의 방언 사용자가 줄어들고 방언이 결국 소수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는 염려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언은 점차 잊힐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방언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을 텐데 이에 대한 인위적인 노력은 반대합니다.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에 민속촌에 가둘 수도 없고, 박제해서 전시할 수도 없습니다.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변화라면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 혹은 언어 정책 입안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위치라면 열심히 조사하고 그것을 자료로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글 그리고 우리말에 대해서,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는 무엇일까요.

글과 말에 대해 동시에 물으셨으니 글, 더 정확히는 글자, 더욱 더 정확하게는 한글과 우리말에 대한 구별부터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묘하게도 우리들은 한글과 우리말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은데 글자와 말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인 훈민정음이 창제된 날을 기념하는 한글날에 우리말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합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것은 우리말을 정확히 적을 수 있는 글자이지 우리말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한글날이 되면 잘못된 말, 외래어와 외국어 남용, 젊은이들의 말을 비판하면서 ‘세종대왕께서 통곡하신다.’와 같은 유형의 선정적인 말들을 많이 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말을 잘못하는 것에 대해 세종대왕께서는 별 관심이 없으시고, 당신이 만든 글자로 외래어와 외국어를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실지도 모릅니다.

한글에 대한 과신이나 엄살도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것은 이미 국내외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미 공인된 사실입니다. 그렇더라도 한글을 수출해야 한다든지, 한글을 공용문자로 보급해야 한다든지 하는 주장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한글파괴’라는 식의 엄살도 그만 부려야 합니다. 소위 외계어라 불리는 이상한 표기나, ‘ㅋㅋ, ㅠ.ㅠ’를 보고 한글 파괴 운운하는데 이건 오히려 한글이 가진 장점을 드러내는 것이지 한글을 파괴하는 것은 아닙니다. ‘ㅋㅋ’만으로도 웃음소리를 나타낼 수 있는 것도 한글의 장점이고, 한글 자모의 조형미가 뛰어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한글의 장점입니다.

한자 및 한자어, 일본어, 영어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한자 및 한자어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이 공유하고 있는 방대하고도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것을 우리말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동아시아 전체를 품고 동아시아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불행한 역사 때문에 외래어가 많이 유입되거나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위축되지 않고 포용할 수 있다면 그리 민감한 문제는 아닙니다. 일본말 잔재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고, 영어 간판이 거리에 넘치더라도 우리말이 영어에 밀려날 일은 없습니다. 우리말에 대한 위축된 태도도 극복해야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닌 ‘다른 말’로 받아들인다면

요즘 세대들의 국어 오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여드름과 감기의 비유를 드는 것이 좋겠네요. 사춘기를 보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드름을 경험하는데 이것이 성장 과정의 호르몬 변화에 의한 것이니 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젊은 세대들의 언어 또한 이런 과정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새로운 말, 남들과 다른 말, 자신들끼리의 말, 자극적인 말이 그런 것인데 이러한 말들은 젊은 시절에 잠깐 나타나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말들 또한 세대에 따라 나타나는 방언으로서 우리말의 일부입니다. 세대에 따른 ‘틀린 말’이 아닌 ‘다른 말’로 받아들이면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습니다.

감기의 비유는 어떤 의미인가요?

감기는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고치는 것입니다. 주사와 약이 증세의 호전에 도움을 주기는 해도 근본적인 치료는 하지 못합니다. 언어 문제에 대한 교육과 정책 또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의 말에 문제가 있다고 아무리 지적을 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교육을 하더라도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드름처럼 돋아나는 것이니 막을 수도 없고, 감기와 같은 것이니 이것에 대한 해결은 그것을 쓰는 사람들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젊은 세대들이 의식적, 인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는 언어 자체의 속성과 힘이 있습니다. 오남용으로 보일지라도 언어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언어 자체의 속성입니다.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도 언어 자체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변화, 혹은 새로운 것이 무조건적으로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버릴 것과 살아남을 것이 결정됩니다. 『방언정담』‘옥떨메의 새로운 도전’에도 썼듯이 ‘노찾사, 엄친아’와 같은 것들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에까지 퍼져나갑니다. 반면에 해괴한 외계어, ‘흠좀무, 미지왕’과 같은 것들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결국 언어 자체의 속성과 힘에 기대어 정책을 입안하고 교육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운론, 토박이말에 대한 책을 비롯해 『미래를 준비하는 글쓰기』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이공계 글쓰기』등의 글쓰기에 대한 서적도 출간했는데,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방언정담』속의 ‘샴을 프는 법’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제게도 많은 의미를 주기도 합니다. 샘은 채워지지 않으면 물을 퍼 낼 수 없는 법인데 이번 책은 고인 물 중에서 퍼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소재를 방언에 한정하지 않고 우리말 전체로 확장하면 아직도 쓸 얘기가 꽤 있으니 기회가 되면 엮어 볼 생각입니다. 그동안 책의 집필과 출간에 대한 욕심이 좀 있어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에 담긴 비밀을 소설 형식으로 써 놓은 것이 있는데 좀 더 다듬고 청소년 버전으로도 바꿔 출간을 모색해 볼 생각입니다. 글쓰기 분야에서는 이공계열 글쓰기가 먼저 나왔는데 인문계열 글쓰기, 혹은 모두를 위한 글쓰기 책을 내년 중에 출간할 계획입니다.

방언 조사, 방언 기행도 계속 이어지나요?

물을 퍼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한 조사와 연구도 부지런히 해야 다시 퍼낼 것이 생기겠지요. 국립국어원의 해외동포 언어 실태에 대한 조사를 2012년도에는 했다가 올해는 하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다시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게 책임이 맡겨진 지역인 충청, 경기 등의 중부 방언과 북한 방언에 대한 조사는 조사를 다닐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할 것입니다. 2009년부터 시작한 인천 토박이말 조사, 강화 토박이말 조사, 인천 연안 도서 토박이말 조사와 연구가 올해로 끝납니다.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먼 바다 섬의 조사가 남았는데 어떻게든 기회를 마련해 조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북한 지역에 대한 조사는 통일 이전이라도 조사의 길이 열리게 된다면 가장 먼저 가고 싶습니다.

어떤 독자들이 『방언정담』을 읽으면 좋을까요?

욕심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방언이 우리 모두의 것이고, 그 말의 주인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우리말을 아는 모든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말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쉽고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쓰고자 했지만, 그래도 독자를 몇 유형으로 나눠 책에 담긴 몇 개의 꼭지를 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방언을 통해 말은 물론 사람의 향기까지 맡고 싶은 독자에게는 ‘진짜 서울깍쟁이, 여쁜 아름다움, 말의 화석, 마음의 화석, 세 여인의 향기’ 등을 권하고 싶습니다. 글의 주인공이 우연히 대부분 여자인데 여성들의 감성과도 잘 어울릴 듯합니다. 방언을 통해 우리말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은 독자에게는 ‘뙡밭마을의 비밀, 엄마는 오지 않는다, 국어학자의 직업병, 욕설의 방언학’ 등을 권합니다. 우리말의 표기와 발음, 그리고 어원에 대한 얘기가 재미있게 펼쳐져 있습니다. 새로운 말, 젊은이의 말에 대한 보다 포용력 있는 시각을 갖고자 하는 분들은 ‘된소리 소리의 푸른 바다, 미켈란젤로와 드라이쏠의 대화, ‘옥떨메’의 새로운 도전’ 등을 읽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말들도 나름대로 모두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통일 이후의 언어 문제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 꼭지도 있지요?

‘두만강 작은 매화의 노래, 쌤 아즈바이의 고향, 하늘 가매와 밥 가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2만원, 얼룩말일까? 줄말일까?’ 등을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북한말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언어의 통합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공유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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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정담한성우 저 | 어크로스
누구나 사투리를 쓴다. 시골 사람들만,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만 사투리를 쓰는 게 아니라, 서울 사람들도 서울 사투리를 쓴다. 그 다양한 방언에는 우리 삶의 정서와 역사, 사회의 면면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남도에서 두만강까지, 저자가 방언 연구를 하며 오간 길에서 만난 사람들, 머문 풍경들이 우리 주변의 이런 방언들을 깨운다. 방언학을 쉽게 녹여낸 저자의 이야기들은 그저 흘려들었던 사투리를 다시 듣게 하고, 사투리의 행간에 담긴 더 많은 뜻을 듣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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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많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 박학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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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포크가 박물관 안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달리는 기차 안에 있어야지.” 연한 파스텔 톤의 음악 감성과는 다르게 박학기는 소탈하고도 분명했다. 자신의 음악적 신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확신이 있었고, 가족과 친구를 추억할 때도 막힘이 없었다. 그 말들은 그러나 동시에 딱 그의 음악들처럼 투명했다.

통기타가 젊은이들의 품에 다시 안기고 포크가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의 한 부분으로 부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요즘, 박학기의 존재감은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 포크 역사의 산증인이면서 그처럼 현재를 누비고 있는 뮤지션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10월 26과 27일 이틀간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앞두고 박학기를 만났다. “음악도 스트레칭과 같아요. 계속 해야죠. 쉬면 안 돼요”라는 그에게 비치는 건 포크의 과거가 아닌 포크의 미래였다.




얼마 전 발매한 미니앨범에서 이것만은 보여 주겠다 하는 게 있었다면?

포크 안에서도 대중적인 장르와 아닌 게 있잖아요. 포크라고 하면 (김)광석이나 (안)치환이로 대표되는 대중적인 장르가 보통 먼저 떠오르는데, 사실 저는 퓨전적이면서도 기타의 맛을 내는 노래를 원래부터 하고 싶었어요. 5집의 「나의 길」 처럼요. 그런 게 진보적인 포크라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그런 걸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Yellow fish」 같은 곡도 그렇고 핑거스타일이 강조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핑거스타일을 내걸었는지?

우선은 제가 좋아하니까요. ‘박학기는 지금 이런 걸 좋아하고 있구나’를 보여 주기 위함이 첫째 이유예요. 그리고 사실, 과거에는 선배들이 저더러 ‘기타소리가 달라’라고 그랬어요. 예전에 한창 다운타운에서 노래할 때, 거기서 보사노바 주법을 제가 제일 먼저 했었거든요. 「안토니오 송」 으로 유명한 마이클 프랭크스(Michael Franks)란 가수를 좋아했는데 그가 쓰던 주법이 당시엔 신기한 것이었어요. 재즈에서는 많이 했지만 포크에서는 잘 안 쓰는 주법이었는데, 저는 그걸 나름대로 열심히 했어요. 하모닉스도 많이 했고. 어쩌면 그때 가지고 있던 걸로 지금까지 해 왔는지도 모르죠. 데뷔 전에는 레퍼토리 팝송이 200곡 정도 있었으니까요. 그때 해 놓은 것으로 지금까지 그냥 우려먹었던 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눈을 뜨고 보니까 제가 모르는 게 있더라고요.

변화가 절실했던 거네요.

그러니까 기타를 잘 치고 못 치는 걸 떠나서 어떻게 치는지 모르는 게 있다는 것. 그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기타라는 게 이만큼 있는데 저는 그 일부만 갖고 살았다는 거잖아요. 늘 하던 것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습관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습관! 줄을 다르게 맞추고,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그러니까 또 제가 잊고 있던 열정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런 게 좋아서 이 직업을 택했는데 이걸 안하고 있었구나. 남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러면서 제 자신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목표가 생긴 거죠.

핑거스타일의 매력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든 나 혼자서도 기타 한 대만으로 음악이 해결된다는 느낌이죠. 내가 노래를 만들고 거기에 어울리는 기타를 치면서 그 모든 게 어우러진 걸 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또 비주얼의 시대잖아요. 우리(포크)가 밀리는 게, 보여 주는 게 너무 없어요. 그런데 핑거스타일로 멜로디 잡고 바디도 치고 반대로 튜닝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면 또 비주얼이 괜찮잖아요. ‘포장이 뭐가 중요해’라고도 하는데, 사람 외모도 실은 포장이잖아요. 저는 포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 더 잘 치겠죠? ‘핑거기타를 연주하는 박학기’라고 소개할 때 부끄럽지 않을 때가 오지 않겠어요? 그때 제2의 음악 인생이 올 거 같아요.




올해로 가수 경력 25년의 오랜 커리어를 쌓아 온 입장에서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기능적인 건 아니에요. ‘나가수’적인 노래가 있고 아닌 게 있잖아요. 에릭 클랩튼이 나가수 나가면 단번에 떨어질 거라는 우스개도 하는데, 음정 피치 그런 것보다 그 사람의 개성이랄까. 남들과 비슷하게 그저 잘하는 것보다는 한번 들었을 때 ‘이건 누구야’라는 생각을 줄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raits)나 에릭 클랩튼 노래 대부분이 그래요. 아무나 부를 수 있는 노랜데 다른 사람이 부르면 책 읽는 것 같거든요. 그런 건 자기만이 낼 수 있는 맛이잖아요. 그런 건 타고나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가수에게는 존재감 있는 목소리, 다시 말해 개성.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자신의 노래 중 그런 자기만의 맛이 가장 잘 나타난 노래는 뭐죠?

「향기로는 추억」 이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저만의 스타일이 가장 드러난 것 같아요. 노래 창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호흡을 많이 섞은 소리를 잘 쓰거든요. 그게 잘 나타난 것 같아요.

호흡을 많이 섞는 것도, 기교적인 측면보다는 가진 힘 자체가 있어야 할 것 같네요.

그렇죠. 힘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돼요. 버리는 호흡이 많아서 호흡 자체도 많이 필요하고. 성대가 이만큼 열려 있으면 열린 만큼을 다 써야 해요. 그런데 음악이란 게 결국 들어서 좋아야 하는 거거든요. 거기에 자기 스타일이 있어야 하는 거고. 결국은 내 기분이 우울하면 그런 정서를 나타낼 수 있도록 창법을 가져가야 하는 건데, 저는 입자가 보이는 것처럼 노래하려고 해요. 전 입자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데뷔 때 제가 ‘파스텔 톤 같은 목소리’라고 스스로 얘기한 게 있는데, 어쩌다 수식어가 됐어요.(웃음) 저는 빨간색 파란색의 차원이 아니라 파스텔 톤 같은 목소리이고 싶어요. 은은하고 입자가 있는 것 같은.

관리의 측면에서 박학기의 목소리는 과거와 지금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미성을 간직하는 비결은 뭔지…

먼저 피지컬한 부분을 신경 써요. 호흡도 결국엔 근육을 쓰는 것이라 힘이 달리면 안 되거든요. 달라지지 않으려면 우선 체중이 달라지지 않아야 하죠. 무대에 서는 사람이기 때문에 멋스러워야 하거든요. 옷도 스타일이 나야 하고, 또 스타일을 내려면 체중 유지를 해야 하죠. 저는 노래를 하기 위해 해야 하는 1순위가 체격 관리라고 생각해요. 음. 또 하나는, 어릴 때는 잔소리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근데 나이가 들면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요. 뭔가 잔소리할 만한 게 있어도 나한테 말을 안 해요. 노래는 계속 바뀌고 뭔가가 잔디처럼 계속 생겨나요. 내 상태를 유지하려면 그걸 계속 뽑아줘야 해요. 그러려면 거울을 계속 봐야 하죠. 그런 관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과거에는 노래를 오래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버릇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주위에서 그걸 말을 안 해 줘요. 좋다고만 봐 주고. 그래서 더 자기를 객관적으로 못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노래를 잘 안 믿어요. 마음에 안 들어 하고 늘 불안해해요.

스스로 과거 「자꾸 서성이게 돼」를 부를 때랑 현재 「아직 내 가슴속엔 니가 살아」 같은 신곡을 비교했을 때 가수로서 변했다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똑같겠어요? 하지만 많이 안 변하려 노력해요. 특히나 제가 하는 노래들이 부드럽고 섬세해서 더 그래요. 임지훈 선배는 술을 마셔야 노래가 잘 된대요. 그 노래를 표현하려면 걸걸한 목소리가 어울리니까. 그런데 저는 그 전날 조금만 놀거나 그러면 노래가 안 돼요. 술을 잘 안 먹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다음날 지장이 있기 때문이에요. 필드에 있는 동안은 노래를 하기 위해 그 정도의 생활은 관리하려고 해요.




자신의 음악 중 최고로 꼽는 음반이나 곡이 있다면?

「비타민」 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왜냐면 결과가 중요한 요소지만 음악이라는 건 원초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볼 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고 그 상황을 제대로 표현한 게 비타민이에요. 딸과의 추억이 그대로 담겨서 그 노래를 부를 때면 아직도 기분이 좋아요. 가사를 부를 때마다 그때의 상황이 그대로 기억나거든요. ‘여우비 내리던 여름 하늘을 구르던 너의 웃음’ 같은 가사도, 아이랑 서울랜드 놀러갔을 때 맑은 하늘에 여우비가 내리고,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더해져 파란 하늘에 맑은 구슬이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눈 내리던 겨울 밤 우리가 남겨 놓은 그 발자국’같은 가사도 마찬가지로 일산 살 때 공원에 새벽 3시에 실제로 아이들과 눈 밟고 발자국을 비교한 일을 담았죠. 그 추억들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기억하잖아요. 이게 지나치면 잊어버릴 수도 있는 일인데 그 노래 하나로 나와 딸은 평생 기억을 할 거 아니에요. 아이들이 아빠와의 추억 중 기억에 남는 단어들을 쭉 쓴 것도 그렇고, 비타민은 있는 그대로의 가사를 담았어요. 노래로 사진을 남긴 것이나 다름없죠. 음악을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념이라고 만든 건데 사람들이 다 좋아해 주니 더 좋죠.

그러고 보면 박학기씨의 기력을 회복한 계기도 「비타민」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가 여러모로 고마워요. 경제적으로도 제 노래 중에 인풋 대비 아웃풋이 가장 큰 곡이에요.(웃음) 홍보랄 것도 없었고, <윤도현의 러브레터>한 회 나간 것밖에 없는데 노래가 여러 광고에 쓰이면서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저도 몰랐어요. 내 노래가 포괄하는 세대가 커진 계기도 되었고요.

음악 인생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모멘트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바로 「비타민」 을 부르게 된 그 시기가 음악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화사해지고, 상큼해지고.




박학기하면 오버랩 되는 인물이 어쩔 수 없이 김광석인데 먼저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궁금합니다.

김광석! (한숨을 쉬더니) 그냥 우울하죠. 너무 많은 물음표와 아쉬움과 미안함과 야속함이 다 섞여 있어서 어떤 때는 가끔 떨쳐 내고 싶을 때도 있어요. 박학기 그러면 김광석을 같이 떠올리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고, 그렇다고 그 친구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흘러가는 것도 싫어요. 사실 태어나서 걔만큼 오래된 친구는 없었어요. 세 살 때 옆집에서 만나 놀았던 애가 평생을 같이 가는 게, 보통 인연으로도 쉽지 않잖아요. 게다가 광석이가 가기 전 몇 년은 너무 가까워졌거든요.

같은 음악인으로선 어떻게 보나요?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된 건데, 광석이는 대중을 너무 잘 아는 애였어요. 가장 보편적인 대중의 일반 정서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 그때는 몰랐어요. 그 시절엔 남의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자존심 상해하는 경우도 많았잖아요. 그런데 광석이는 판단이 서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해 버려요. 그런 곡이 지금 같은 반응을 얻고 있고. 걔가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거예요. 가장 보편적인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때는 광석이의 음악보다는 텐션이 많은 스타일 음악에 더 환호하던 때였어요. 광석이 음악이 ‘바게트 빵’ 같은 존재라면 그때는 ‘크림치즈 빵’, ‘소시지 빵’ 같은 걸 더 쳐 줄 때였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바게트 빵이 물리지 않아 이렇게 오래 남은 거 같아요.

김광석이 그 당시 음악적으로 갖고 있던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걔는 노래를 어떻게 하고 기타를 어떻게 가져가지 하는 식의 고민을 잘 안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 것보다는 솔직히 ‘마케팅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죠. 굉장히 ‘디지털한’ 애라니까요. 당시 저랑 CD-롬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얼마나 했었는데요. 그때는 시디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던 때였어요. 저랑 콘서트를 하기로 했었는데, “이번에 콘서트를 하고 그걸 찍어서 사람들이 언제든 볼 수 있게 시디롬으로 내자”라는 약속을 했었죠. ‘얼리 어댑터’였어요.

박학기 인생의 결정적인 음반을 꼽는다면?

‘시인과 촌장’이요. 「사랑일기」 가 담긴 2집이나 「가시나무」 가 있는 3집 <숲>보다는 하덕규 형이 오종수씨와 낸 첫 앨범이요. ‘시인과 촌장’의 전 음악이 저의 가요 감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죠. 특히 (하)덕규 형의 가사는 하나하나가 가슴이 와 닿아요. 가수 데뷔 전 화실에 있을 때 형이었는데 그가 써놓았던 시화(詩畵)는 충격이었지요. 염천교에 살고 있는 거지 부자(父子)에 대한 이야긴데, 표현 하나하나가 절절히 다가오더라고요. ‘시인과 촌장’ 노래의 가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 폭의 그림이 눈앞에 그려져요. 나도 저렇게 노래하면 그림이 그려지도록 하고 싶었죠. 형이 또 기타치고 노래하는 모습도 어린 눈으로 볼 때는 정말 멋있었어요. 기타 하나로 노는 모습이 참 폼 난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사람 또한 (하)덕규 형이었으니까. 외국 가수는 「Longer」 의 댄 포겔버그(Dan Fogelberg)나 케니 로긴스(Kenny Loggins)를 많이 좋아했고, 사이먼 앤 가펑클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앞으로 지향하는 음악은?

이 음악 듣다 보면 이거 해야 할 거 같고 또 저 음악 듣다 보면 저거 해야 될 거 같고 그래요. 요즘 와서는 공간이 많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여백이 있고, 꼭 필요하지 않는 걸 다 빼고 남은 것만 가지고 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기타 하나로도 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인터뷰, 정리 : 윤은지
사진 : 이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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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작가 “지금 안 하면 언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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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웃으면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잠깐의 무표정이 어색하리만큼.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신현림 작가는 가방 속을 뒤적이더니, 웨하스 한 봉지와 자신의 책 두 권을 꺼내놓았다. 등단한 지 23년이 지난 작가가 자신의 책을 선물로 가져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 그것도 신간이 아닌 1년 전 펴낸 책이었다. 신현림 작가는 말을 보탰다. “제가 웨하스를 좋아하거든요. 좀 큰 걸 사오려고 했는데 없더라고요. 오늘은 책 밖에 못 가져왔나? 원래 양말을 싸 들고 다녀요. 길에서 1,2천 원에 살 수 있는 양말 있잖아요. 몇 개씩 사놓고 사람들 만나면 선물해요. 그런 것밖에 못해요. 아, 운 좋으면 커피 같은 것도 줘요. 지난 달에 발리 갔다 오면서 커피를 좀 많이 사왔거든요(웃음).”

13세 사춘기 딸을 둔 엄마 작가에게 ‘귀엽다’고 표현해도 될까 싶지만, 마냥 친근한 느낌. 신현림 작가의 첫인상이다. 준비해놓은 질문들을 꺼내고 대화를 이어가는 도중, 자꾸만 이야기가 곁길로 빠졌지만 작가에게는 무작정 상대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지 3년이 지난 2011년, 작가는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를 쓰면서 회한에 잠겼다. “나는 한 번도 좋은 딸인 적이 없다”고 말했던 작가는 일 년에 예닐곱씩 경기도 의왕에 모신 어머니 산소를 찾으며 어머니를 추억한다. “엄마도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은 존재”라며 엄마만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보라”고 독자들에게 말을 건넸던 신현림 작가. 이제 혼자 남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며, “사랑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추억’이듯, 자식들도 부모에게 ‘추억’을 선물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작가는 지난 겨울, 저렴하게 나온 이탈리아 여행상품을 보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도 같이 가시겠어요?” 머뭇거리는 아버지의 대답을 뒤로 하고, 작가는 덜컥 3명의 상품을 신청했다. 작가와 딸, 아버지와 함께한 삼대의 이탈리아 여행. 아버지는 여행 중 작가에게 말했다. “네 엄마도 살아있을 때 함께 여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의 마음뿐이 아니었다. 작가는 요즘, 좋은 풍경, 맛있는 음식만 보아도 어머니, 아버지가 떠오른다. 이번 주말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티포트를 사가지고 의왕에 내려갈 계획이다. “아빠! 너무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몸 상해요”라고 적힌 경고 문구(?)를 손에 들고서.




엄마, 아빠 책을 쓰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요

“세상의 아빠들, 요즘 너무 외롭잖아요.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를 쓰고 나서, 아빠 이야기도 해달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정말 힘들었어요.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어요. 엄마는 일단 함께했던 기억도 많고 태내에서 있었던 교감 같은 게 많은데, 아빠는 다르잖아요. 남자들도 엄마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 않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아빠에 대해 물어보니까 대부분 머뭇거리고 5분도 이야기를 못하더라고요. 젊은 아빠들은 아이들이랑 교감을 잘하지만, 나이 든 세대일수록 쉽지가 않아요. 가족 간에 있어서 소통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고 또 중요해요.”

『아빠에게 말을 걸다』를 쓰면서 신현림 작가는 많은 가족, 아빠들을 만났다. 아빠를 두고 “집에 두고 나오면 근심덩어리, 밖에 데리고 나오면 짐덩어리, 집에 혼자 두고 나오면 골칫덩어리, 심지어 젖은 낙엽”이라고 말하는 이 시대. 작가는 이토록 쓸쓸한 아빠의 또 다른 이름들에 놀랍고 슬플 따름이었다.

“엄마처럼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였어요. 아빠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는데, 아빠를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 않았어요. 하다못해 나쁜 아빠들도 많았고, 정말 다채로워서 놀랐을 정도에요. 책을 쓰면서, 남자들의 세계, 아빠들을 알았어요. 남자들끼리 만나면 가족 이야기를 정말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친한 사람들 속에서는 하겠지만요.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남자들은 소소한 것보다 굵직한 흐름만 알고 지나가잖아요. 전통적인 관습 때문에 남자가 소탈하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것도 쉽지 않고요. 아빠들이 참 외롭구나, 쓸쓸하구나. 안타까웠어요.”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고 있지만, 작가는 최근 여러 에세이를 집필했다. 『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 이어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그리고 이번에 펴낸 『아빠에게 말을 걸다』까지. 작가에게 에세이는 시만큼 자유롭진 못하지만 배움의 과정을 선물한다. 신현림 작가는 “엄마, 아빠에 대한 책은 스스로도 많은 공부를 하게 된 책”이라고 말했다.

“이번 책을 쓰면서 저도 성장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점점 더 외로워하고 소외되고 있잖아요. 개인주의가 너무 심해지고 이기적이게 되다 보니, 가족 해체가 심각해지고요. 작가로서 책임감이 정말 커요. 최근에 돌아가신 고 김종학 PD 사건을 보더라도, 너무 큰 인재인데 왜 우리 사회가 돌봐주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고. 자살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로서 사랑에 대한 나눔, 실천에 대한 책임을 많이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내 작업에 어떻게 반영할까, 생각하게 되고요.”

『아빠에게 말을 걸다』는 비단 부녀, 부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가장 소박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인 사랑법이 담긴 책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을 때, 관계 맺기가 힘들 때, 한 두 페이지 펴본다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다.




사랑 표현, 미루지 마세요

작가는 몇 달 전, 딸아이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다녀왔다. 아버지의 고향집 이사 날짜와 겹쳐, 단출한 모녀 여행이 되었다. 한가로운 크루즈 여행을 하며, 작가는 아버지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여행서를 준비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떠난 여행이지만, 후회가 되더라고요. 무리를 해서라도 아버지랑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사실 경제적인 문제도 항상 따라 오죠. 그래도 작가에게는 영혼의 재산이 중요하니까, 많이 다니고 견문을 넓히려고 해요. 지난해 아버지를 모시고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정말 좋았거든요. 아버지가 행복해 하시는 걸 눈으로 보고 느끼니까요. 아버지랑 카프리섬에서 레몬소주를 사 가지고 와서 한 잔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여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여행을 가야지,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고요. 요즘 <꽃보다 할배>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랑 또 한 번 여행을 가야지, 싶어요. 아버지가 이순재, 신구 선생님 또래시거든요(웃음).”

신현림 작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 주말 아버지의 고향집으로 내려간다. 늘 손수 밥을 지어주시는 아버지는 대보름 때면 오곡밥을 빼놓지 않는다. 딸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보아도, 마냥 흐뭇한 아버지. 그 마음을 아는 작가는 가장 맛있는 얼굴로 씩씩하게 한 그릇을 비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상대방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너무 중요한데, 그런 걸 깨닫는 시간은 중년이 되어서야 가능해요. 30대까지는 뭔가 자기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렬할 때라서, 부모님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아버지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기란 쉽지 않죠. 독립해서 집을 나와야만 생각하게 돼요. 같이 살면 절대 못 느끼는, 떨어져 있어봐야 애달프고 생각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뒤늦게 깨달아 후회가 되고 그래서 잘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작가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변했음을 느꼈다. 창작만큼이나 힘든 과정이 찾아올 때, 가족끼리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또 배우려고 애쓴다. 무엇보다 사랑의 표현을 미루지 않고 바로 전하려고 노력한다. 신현림 작가는 “너무나 큰 상실을 통해 배운 성장”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댁에 내려가서, ‘우리 아버지, 한 번 안아 드려야지’하고 팔을 내밀면 아버지가 쑥스러우셔서 몸을 저만치 빼세요(웃음). 그래도 저는 끊임없이 해요.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우리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꼭 말하고요. 가끔은 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때도 계시지만요(웃음).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정말 훌륭한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시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자식들한테 민폐를 안 끼치려고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혜로움, 인간적인 세련됨을 느끼고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5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자식들은 혼자 되신 아버지가 적적하실 생각에 함께 살자고 청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고향 집을 떠나기 싫다고 하셨다. 다행히 아버지의 친구들이 고향에 계셔서 외로움이 덜하다고 하시지만, 자식들은 항상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자식들한테 짐이 되기 싫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셔서요. 때로는 너무 걱정돼요. 추석 때 아버지 댁에 내려갔는데, 열이 38도까지 올라가신 적이 있었어요. 이렇게 아프신 걸 보는 게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택시를 불렀더니, 기사님이 119 응급차를 부르라고 하더라고요. 119를 부르는 게 별로 어렵지 않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일부러 응급차를 불렀어요. 가끔 아버지가 건강이 조금이라도 안 좋다는 걸 눈치채면, 바로 식구들한테 문자를 날려요. 아버지가 커피나 녹차, 뜨거운 걸 드시면 안 좋으시대요. 중국 사람들이 차를 많이 마시는데 사망률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식도암이래요. 아버지 식탁에 ‘천천히 식사하세요’라고 써놓았는데, 이번 주말에 내려가서는 ‘뜨거운 음식은 절대 드시지 말라’고 적어놓아야겠어요.”

자식은 자식들대로 부모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부모님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고 괴로운 이야기이지만, 준비할 수 있어야만 현실을 기쁘게 살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하루, 이별의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고 사랑을 전하는 일만큼 소중한 일이 있을까 싶어요. 어머니께서 살아 생전에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사랑을 누려라’라는 말이었어요. 아버지를 떠올리면, ‘나눠줘라. 다 나눠줘라’라는 말이 생각나요. 죽을 때 가져가는 것 하나도 없으니까 있을 때 나눠주라고, 네가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다 나눠주라고.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후배들이 책을 보내주면, 일단 좋은 책이면 웬만하면 페이스북에라도 올려서 홍보를 해주려고 해요. 사진도 찍어서 올려주고 후배들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선배라고 해서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선배라고. 저도 저절로 알게 된 게 아니라, 책을 쓰면서 배우게 된 것들이에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걸 도와주고, 같이 누리고 추억을 쌓는 일만큼 소중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를 닮아 시를 쓰게 된 것일까요

신현림 작가는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내며, 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했다. 어릴 적 문학에 심취했던 남동생에게 칼럼을 써보라고 권했다. 작가와 여섯 살 터울인, 지금은 정신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신동환 원장은 누나의 제안에 아버지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이렇게 제 톤에 맞춰서 써줄 줄은 몰랐어요. 고맙고 놀라웠어요. 그동안 남동생도 참 많이 성장했구나, 느꼈고요. 내가 몰랐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남동생을 통해서 알게 된 경우도 있고,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의 역사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들이 바라보는 아버지, 딸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아버지도 그렇지만 남동생도 책 읽기를 좋아해요. 지금도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밤을 샐 거예요. 매일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어요. 예술 쪽에 취미를 두면 의사로서 생활하기도 훨씬 좋잖아요. 그래서 좋은 전시나 작품이 나오면 남동생에게 알려주려고 해요.”

시를 공부한 남동생과 더불어 작가의 아버지 또한, 고등학생 시절 문청이었다. 신현림 작가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시를 썼다는 사실을 문단에 데뷔한 후에야 알았다. 작가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크게 싸운 날은 어김없이 아버지가 월부로 책을 한꺼번에 사 들고 온 날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책장에는 명서들이 빼곡히 쌓였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며칠 동안 들어야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저를 가장 많이 이해해주셨던 것 같아요. 제 책이 나오면 서점에 가서 꼭 한 두 권씩 사서 읽으시고요. 서예, 도자기, 그림도 좋아하시지만 무엇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셔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혼자 남으셨을 때,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어요. 민추협 사회국장, 의정활동을 하실 때도 그랬지만, 아버지는 행동파이고 실천적인 분이세요. 아버지는 지금도 새벽 4시가 되면 새벽기도를 칼처럼 나가시고 하루를 시작하세요. 여동생이 목사이고 저는 가톨릭, 다른 식구들은 모두 개신교이지만, 신앙이 무르익어지면 타 종교에 대해 인정하면서 같이 가게 되잖아요. 저희는 언제나 화해해요.”

누군가는 『아빠에게 말을 걸다』를 읽고 작가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사랑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하지만 작가가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민주화 운동을 하며 세상사에 더 집중한 탓에, 어머니가 오랫동안 가정형편을 살펴야 했던 시절도 꽤 길었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랑 많이 다퉜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많이 들어주시는 편이었어요. 젊은 사람들 입장을 많이 생각하시려고 했고요. 오히려 그런 면이 너무 강하셔서, 힘들 때도 있었어요. 『아빠에게 말을 걸다』를 쓰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각기 다른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연도 있었어요. 아버지의 외도와 같이 치유 불가능한 사건을 가진 가족들도 많았고요. 책에도 썼지만, 자식들이 먼저 좋은 아들 딸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빠들도 잘해야 해요. 가족 간에도 한 번쯤은 다툼이 필요할 수 있어요. 싸우다 보면 고민을 하게 돼요. 남동생이 한 명언 중에 잊히지 않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싸우지 않고 친해질 수 있냐’는 말이에요. 말다툼이 생기면,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먼저 굽히고 들어가야 해요.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어요. 이럴 때 마음이 고무줄 같은 사람이 먼저 마음을 내려놓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본인도 아마 미안한 일을 했을 거예요.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문제가 풀어져요.”

문득, 인생의 많은 것들이 쏜살같이 흘러갔음을 느낄 때가 있다. 모두 지나간 후, ‘내가 왜 그랬지?’하며 되묻게 되는 슬픈 날이 찾아온다. 작가는 말한다. “모든 일이 슬프게만 흘러가지 않게, 그때 그때 많은 추억을 쌓아놓으라”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어떤 힘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려울 때만 찾는 가족이 아니라, 이 햇살이 찬란한 날에 ‘아빠, 날씨가 좋네요. 우리 어디 놀러 갈까요’라고 말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철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 깨달으면 너무 늦어요. 한이 생겨요. 요즘 노후 준비가 잘 안 되어있는 부모들이 많잖아요. 자식들이 부모가 노후 준비를 할 수 있게끔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사랑도 공짜로는 못 받아요. 부모가 자식한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추억’인데, 자식도 마찬가지에요. 부모한테 추억을 선물해야 해요. 역지사지 정신이 중요한 거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풀지 못할 관계는 없어요.”

작가는 때때로 나이를 먹고 있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나로만 가득 찬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베풀고 있을 때, 비로소 나이 듦에 감사한다. “우리는 왜 나이를 먹는 걸 고통으로만 여길까요. 제가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없이는 어떤 책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또한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거고요. 이건 작가로서의 제 삶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이기도 해요.”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이 먼저 달라지기 바란다는 건, 정말 나태하고 게으른 태도에요. 가족 간에 사랑, 유대감이 없는 것에 대해서 고통스러워만 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해요. 세상의 많은 문제는 ‘나나나 시리즈’로 가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거예요. 나 자신을 가장 밑에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에요. 조금이라도 화해의 가능성이 있다면, 부모 쪽이든 자식 쪽이든 한 번 부딪혀 봐야 해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는 화해할 수 없어요. 자기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해요.”

작가는 종종 사춘기 딸과 카카오톡 대화를 하며 하트 이모티콘과 함께 ‘사랑해’라는 말을 연발한다. 딸아이는 엄마의 부담스러운(?) 애정표현에 “엄마, 왜 이렇게 느끼해? 부담스러워”라고 대꾸한다. 신현림 작가는 몇 달 전과 다른 딸아이의 변화가 새삼스럽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해요?” 표현하면서 살아야 해요.” 언젠가 딸아이는 엄마의 느끼한 사랑표현이 그리워지는 때를 만날 것이다. 표현이 머뭇거려질 때, 신현림 작가의 속삭임을 기억해보자. “지금 안 하면 언제 해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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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 말을 걸다신현림 저 | MY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좋은 딸인 적 없었다”는 신현림의 고백으로 시작한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이 3만 독자와 소통한 데 이어, “하지만 나는 살아계신 나의 아빠에게만은 좋은 딸이고 싶다”는 고백과 함께 《아빠에게 말을 걸다》가 독자를 찾아간다. ‘아버지’의 자리와 존재감을 찾으려는 사회 트렌드가 있다지만, 우리의 접근은 여전히 너무 무겁고 추상적이지 않았을까?! 이 책은 특별히 ‘아버지’가 아닌 ‘아빠’라는 호칭으로 그간 서툴렀던 관계를 밝게 회복하려는 일상적인 시도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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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문 “실리콘밸리와 의 공통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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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기여하며 일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사람들은 길을 걸을 때에도, 이동 중인 버스와 전철 안에서도, 심지어 다른 이들 곁에 머무를 때에도, 손바닥 위에 펼쳐진 인터넷 세상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은 스마트폰을 이용한 고요한 소통, SNS서비스의 시작을 알렸다. 이 모든 변화의 바람이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실리콘밸리 드림’을 꿈꾸게 한다. 그곳에 모여든 수많은 IT 분야의 인재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실리콘밸리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도대체 실리콘밸리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스핀 잇』은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는 실리콘밸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스토리를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도전들을 가능하게 한 숨은 조력자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아울러 IT 기술과 비즈니스가 모두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전망하고, 그 흐름을 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제시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스핀 잇』은 세상을 ‘돌리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창조와 혁신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실리콘밸리는 꿈이 있는 곳

저자 조성문은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 소프트웨어 대기업인 ‘오라클’의 프로덕트매니저로 근무하며, 자신이 직접 보고 들으며 체험한 실리콘밸리의 이야기들을 『스핀 잇』안에 담아냈다. 출간 이전부터 실리콘밸리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사람들과 나누는 데 관심이 많았던 그는, 블로그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와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칼럼을 통해 실리콘밸리를 말해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에 대해 공통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것은 『스핀 잇』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블로그를 통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첫 번째는 ‘실리콘밸리가 뭘 잘 하는지, 뭐가 대단한지’에 대한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나라도 실리콘밸리처럼 됐으면 좋겠는데 뭘 잘하면 될까요’ 하는 질문이고요. 한 마디로 정리해서 대답해드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아마 세 시간 정도는 얘기해야 할 거예요. 제가 순서대로 정리해서 말씀드릴 수도 있지만, 『스핀 잇』을 읽어보시면 스스로 정리가 되실 거라고 생각해요. ‘실리콘밸리는 이런 게 다르구나’하고 알게 되실 테고 ‘한국에서는 이렇게 실천하면 실리콘밸리처럼 될 수 있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으실 거예요. 그걸 목표로 『스핀 잇』을 출간한 거예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찾고자 하는 대답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실리콘밸리를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이곳에서 핵심적으로 창의적인 제품이 많이 나오는 이유를 묻는다. 물론 알려진 대로 인재가 많고, 자본이 많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덕분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 중요한 요소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바로 ‘모든 사람이 기획자가 되어 제품을 만드는 문화’다. (p. 250)
실리콘밸리로 모여드는 각국의 인재들, 언제든지 그들의 아이디어에 투자할 준비가 되어있는 투자자들, ‘창업자가 실패하는 게 아니라 사업이 실패하는 것’이라며 재기의 기회를 주는 문화, 그리고 엔지니어가 제품 개발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문화까지. 실리콘밸리는 이 모두가 한 곳에서 만나는 거의 유일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아이디어와 자본, 재기의 가능성과 엔지니어 중심의 문화가 한 데 어우러지면서 세상을 놀라게 할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있게 한 저력이자,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실리콘밸리만의 비결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실리콘밸리는 꿈이 있는 곳’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리콘밸리는 사람들과 돈이 몰리는 곳인데요. 특히 돈이 몰리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왜 그 지역으로 몰려오냐는 거죠. 그곳의 문을 두드리고 시도한다고 해도 실패하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데 말이에요. 물론 그 중에는 돈만을 좇아서 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꿈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슈퍼스타 K>의 경우만 보더라도 총 상금 3억이라는 돈이 그렇게 큰 건 아닌데, 그걸 이용해서 꿈을 이룰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꿈을 이루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거고요. 그들의 스토리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도 알려지면서, 이젠 외국에서도 <슈퍼스타 K>에 도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오잖아요. <슈퍼스타 K가>꿈을 팔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꿈에 매료된 사람들이 한국을 찾는 거죠. 많은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를 찾아오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자에 말처럼 『스핀 잇』에 소개된 성공스토리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신의 마음을 잡아끄는 무언가를 좇아 실리콘밸리를 찾아온 이들이다. 누군가는 생활 속에서 절감한 필요를, 또 다른 누군가는 어렸을 적부터 꿈꿔온 바를 실현시키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다.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집카(Zipcar)’는 ‘렌터카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시간 단위로 차량을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두 명의 가정주부가 공동 설립한 회사다. 일상 속의 불편함을 해소할 방편을 찾는 과정에서 사업 아이템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10여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하던 집카는 2013년 한 렌터카 회사에 의해 5,500억 원에 인수되었다.

노트 정리 애플리케이션 ‘에버노트’의 창업자이자 CEO인 필 리빈은 어린 때부터 세상의 종말에 대해 고민하던 엉뚱한 아이였다.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던 그는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더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덜 무지해지도록, 그로 인해 인류의 멸망이 늦춰지도록” 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에버노트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엉뚱한 소망에서 시작된 이 소프트웨어는 2,500만 명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었고, 에버노트의 회사 가치는 1조 1천억 원이 되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실리콘밸리로 향하다

저자 조성문의 발길을 실리콘밸리로 이끈 것 역시 돈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찾아 떠난 길 위에서 실리콘밸리와 만났다. 그 길이 처음 시작된 것은 그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컴퓨터와 처음 만나면서 부터였다. 당시 주변의 많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권유로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마치 레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처럼, 코딩을 만들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때의 성취감은 무척이나 짜릿했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언어를 배운 거예요. 극도로 논리적인 연습을 계속 한 거죠. 그러면서 논리력을 정교하게 만들고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데 빠져들 만큼 재밌었어요.”

이후 그는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 진학해 컴퓨터 과학을 공부했다. 코딩을 배우고 게임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끼면서 게임프로그래머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소모임을 만들어서 토요일 아침마다 모여 알고리즘을 연구했어요. 제가 리더를 맡고 있던 터라, 소모임을 대표해서 게임빌(Gamevil)의 송병준 대표와 만났었죠. 그 때가 1999년이었어요. 송병준 대표는 저보다 두 학번 높은 과 선배였죠. 게임회사를 만드는 데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더라고요. 재밌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일을 시작했죠. 그렇게 해서 당시 소모임의 멤버들이 게임빌의 핵심 개발팀을 꾸린 거예요.”

‘게임빌(Gamevil)’은 모바일 게임 ‘프로야구’ 시리즈를 비롯해 ‘놈’ 시리즈와 ‘제노니아’ 등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성문 저자는 송병준 대표와의 인연으로 회사의 창업멤버가 되어, 대학 시절 소모임 멤버들과 함께 7년간 근무했다. 꿈은 이루어졌고, 사업은 성공가도에 올라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MBA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UCLA 앤더슨스쿨에 진학했다.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번 선택의 이유도 돈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완전히 반했어요. 그 전부터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출장 가는 곳마다 눈여겨보기는 했었어요. 그런데 캘리포니아만큼 확신이 들었던 곳은 없었죠. ‘여기에서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물론 게임빌 직원으로 계속 일하면서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왕이면 보통의 캘리포니아 사람들처럼, 그곳에 있는 회사에 취직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배움에 대한 욕구가 유난히 강한 사람 중에 한 명인 것 같아요. 호기심도 많고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요. 배움을 중단하면 즉시 인생에 회의를 느끼는 스타일이에요. 게임빌에 있으면서도 많은 걸 배웠고 재미도 있었지만 더 많이 배우고 싶었어요. 미국 시장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캘리포니아, 특히 실리콘밸리는 당시에도 핫(hot)한 곳이었죠. 그런 곳에서 뭔가 괜찮은 일을 하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 끝에 먼저 학교에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UCLA에서 MBA 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스핀 잇』은 실리콘밸리 진출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저자의 조언도 담고 있다. MBA 과정을 이수한 경험은 그 이야기들 중 하나다. 그는 굳이 MBA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정착해서 살고 싶은 나라에서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이수할 것을 권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에서 학위를 이수할 만큼 유능한 인재가 유입되는 것이니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으로서는 지원자의 능력을 더 쉽게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로써 활용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그는 책 속에서 자신이 MBA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 그리고 MBA를 통해 얻은 것들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MBA에 도전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조건은 영어라고 힘주어 말한다. MBA 과정을 마치고 취업했을 때에도 가장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대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영어 때문에 가장 힘들었지만, 그것을 극복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어 실력이 뒷받침 안 됐으면 지금의 모습은 꿈도 못 꿨을 거예요. 일이라는 게 결국 인풋을 프로세스해서 아웃풋을 내놓는 건데, 영어가 되지 않으면 우선 방대한 정보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죠. 아웃풋을 전달하기도 어렵고요. 저도 MBA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거의 10년 동안 영어 공부를 했었어요. 대학생 때는 방학 때마다 학원을 다녔고,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학원에서 공부했거든요. 영화나 드라마도 영어로 된 것만 봤어요. 그렇게 어느 정도 영어가 가능한 상황에서 MBA를 시작했지만 턱 없이 부족하더라고요. 실리콘밸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에는 회의 시간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정도였어요. 용어들도 생소하고 사람들의 억양도 출신 국가에 따라 제각각이니까요. 회의 내용을 녹음해서 다시 들어봐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죠. 그래서 영어 공부는 끊임없이 계속 했어요. 4년 정도 지나니까 지금은 편해졌죠. 공부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말하고 쓰는 건 기본적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영어를 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형 실리콘밸리를 위한 롤모델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한국과는 다른 실리콘밸리의 문화와 시스템 속에서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을 찾는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건설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실마리를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스핀 잇』을 통해서, 그리고 그보다 앞서 블로그 <조성문의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준 이야기들은 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다. 그 중에서도 그는 ‘실리콘밸리에 처음 진출했을 때 가장 문화적 충격을 안겨 주었던 사건’으로 가족 중심의 문화를 손꼽았다.

“제 경험을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일반적인 케이스로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신생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이 문화를 이끄는 회사들에 있는 사람들의 경험은 저와 다를 거예요. 그래서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한 가지 말씀드린다면 가족에 대한 우선수위가 아주 높다는 거예요. 이건 실리콘밸리의 문화일 수도 있고 미국의 문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한 예로, 제 아내가 임신했을 때 그 사실을 매니저한테 알렸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2주 동안은 자신한테 연락하지 말라고요. 어느 날 연락이 두절되면 아이가 태어난 걸로 생각할 테니까 무조건 아내를 돌봐주고 아이와 첫 2주를 함께 보내라는 거예요. 출산 외에도 아이의 생일이나 학예회처럼, 부모가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행사들이 있을 때는 회사 일 보다도 우선수위를 부여해요.”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우리나라 기업들과는 달리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맡은 일을 탁월하게 해내기만 한다면, 어떤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근무하든지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근무하는 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페이스북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마크 저커버그가 전체 직원과 함께하는 회의가 있다. 어느 날 이 회의에서 마크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데 한 직원이 계속해서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마크가 물었다. “지금 코딩중인가요?” 그 직원은 마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그러자 마크가 대답했다. “아, 그래요? 오케이! 그럼 하던 일을 계속 하세요.” (p.93)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철저하게 보장해주는 만큼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철저하게 묻는 것 또한 그들의 문화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많은 직장인들은 외국계 기업 특유의 조직 문화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실리콘밸리 회사에 입사한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즐거운 비명을 지를 법도 하다. 그러나 저자가 들려주는 ‘현실’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그건 엔지니어들을 귀히 여겨서, 또는 사람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그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일 뿐이죠. 회사를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엔지니어를 우대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거든요. 실리콘밸리에는 주변에 구글, 페이스북 정도의 좋은 회사들이 너무 많아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곳들이죠. 그러니까 엔지니어들을 잘 대해주지 않으면 좋은 엔지니어를 보유할 수 없어요.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회사로 옮겨갈 테니까요.”

때로는 일보다 가족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엔지니어의 자유와 선택을 최대한으로 존중하는 문화는 결과적으로는 인재의 유출을 막는 효과를 가져왔다. 내 삶의 근간이 되는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을 보장해 주고, 직원으로서 나를 믿고 지켜봐주는 회사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데도 불구하고, 왜 한국의 기업들에는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는 걸까. 저자는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같은 잣대로 비교하는 것도, 그리고 무조건 실리콘밸리를 닮으려는 시도도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업이 성장해 온 과정이 다르고 현재 놓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는 지금의 한국식 모델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한국식 모델 중에서 모범이 되지 못할 만한 안 좋은 문화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불필요하게 야근을 하는 것도, 그리고 남의 것을 베껴서 만드는 것도 좋은 문화가 아니죠. 너무 수직 상하 적으로 되어있는 것도 그렇고, 가족을 너무 배려 못 하고 희생시키는 문화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맞고 틀리고를 가려내는 것과 우리가 지금 해야 될 일을 구별하는 건 좀 다른 얘기예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이기적으로 살아야만 했고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해야만 했어요. 자식들 돌보기도 빠듯한 시대였으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됐죠. 그 시대에 어설프게 실리콘밸리를 따라한다고 갑자기 복지제도를 엄청나게 좋게 하고 1년씩 휴가를 보내줬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와서 ‘이제 우리가 경제대국이 됐으니까 실리콘밸리 모델을 흡수해서 미국식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는 실리콘밸리의 자본력을 한국과 비교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 있는 몇 개 회사들의 가치 총합은 한국 상장 회사 전체의 가치를 거의 웃도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리콘밸리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시키려는 것은, 가난한 집에서 부잣집 생활패턴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저는 지금 회사들이 무척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명백하게 안 좋은 문화들은 조금씩 개선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급진적일 필요는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개선해야죠. 그리고 한국 경제는 정부의 주도나 개입이 너무 큰 상태예요. 아직은 한국 경제의 규모가 작고 발전하는 나라다 보니까 그런 것이지만, 점차적으로 정부보다는 민간에 더 많은 돈이 돌도록 바뀌어 나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게 더욱 선진국으로 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고요, 더 큰 발전이자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조성문은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달라진 만큼, 기업 성장과 관련하여 정부의 역할과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민간의 자본력이 약했던 과거에는 정부의 주도로 대기업 육성 위주의 지원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이루어진 재벌 기업의 성장은 경제 규모 크기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다양한 기업들 간의 자유 경쟁이 이루어져도 되는 상황이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어느 한 쪽의 성장을 지원할 필요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부와 대기업, 재벌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 기업의 활성화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기업에 대한 활발한 투자를 성장시키고, 그것이 다시 기업 활동의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선순환 모델에 대한 것이었다.

“저는 한국의 회사들이 국내외 우수한 대기업에 성공적으로 인수되는 사례가 나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이미 그런 사례들이 몇 개 있었고, 앞으로는 글로벌한 성공사례가 더 많아질 거예요. 제가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 사례들이 쌓이면 대기업들이 사고 싶어 하는 회사도 더 많아질 거예요. 그건 피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러한 롤 모델이 더 빨리 나오게 하기 위해서 너무 독촉하면 부작용이 많이 생겨요. 퍼 주기 식 지원을 하면 돈 받지 말아야 되는 회사들한테도 많은 돈이 갈 테고요. 빨리 빨리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잘 될 건데, 반드시 그럴 텐데, 굳이 이래라 저래라 훈계할 필요 없잖아요. 저는 한국 기업들의 저력을 믿거든요. 정부의 지원이나 정책 없이도 훌륭한 회사나 훌륭한 사람이 탄생할 거예요. 골프선수 박세리도 정부의 도움 없이 탄생한 거잖아요. 일단 롤 모델이 탄생하면 그 사람은 도움을 받고 성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얻은 걸 환원하고 싶어 할 거예요. 그런 환원을 통해서 훌륭한 회사와 창업가들이 더 많이 생겨날 거고요.”

『스핀 잇』은 실리콘밸리 대기업의 매니저로 근무하는 한국인의 성공담을 담은 책도, 한국이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따라잡을 수 있는 비결을 들려주는 책도 아니다. 아마도 저자 조성문이 책 속에 감춰놓은 것은 해답지가 아닌, 해답이 담긴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일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실리콘밸리의 사람과 기업들, 그들이 성공에 이른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실리콘밸리의 실체가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형 실리콘밸리에 한 발 더 다가가는 첫 번째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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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 잇 SPIN IT조성문 저 | 알투스
《스핀 잇》은 IT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이 어떻게 전세계 부의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비즈니스의 최전선이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 어떤 꿈을 꾸든 IT세상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왜 저자가 “당신이 이미 IT 전문가라면 실리콘밸리를 향해 눈을 돌려야 하고, 당신이 아직 IT를 잘 모른다면 당장 IT세상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구효서 작가 “소설도 커피 같아요. 쓰더라도 맛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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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책상머리에서만 글을 쓰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면서 또 거리를 거닐면서도 글을 쓴다. 반드시 펜대를 굴려야만, 키보드를 두드려야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1987년 단편 「마디」로 등단해 26년동안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구효서 작가. 그는 글을 기록하지 않을 때, 더 바빠진다. 머릿속이 온통 쓸 거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소설집, 장편소설부터 산문집, 동화에 이르기까지 30여 권의 작품집을 펴낸 그를 두고, 사람들은 ‘버릇처럼 숨처럼, 오로지 소설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잠깐의 외도도 허락하지 않은 채, 자분자분 글로만 이야기해온 작가의 인생. 독자들은 그의 충실한 행보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전업작가’라는 타이틀이 버거울 때는 없었을까, 작가는 답했다. “다른 직업이 없고 전업이니까 작품만 쓰는 게 당연해요. 또 작품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이상할 것 없고 당연한 일이에요. 다만 ‘작가’라는 직업이 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작가를 어찌 ‘괴상한’ 직업으로 느꼈을까. 구효서 작가는 “세상에 없는 걸 말하는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로지 언어, 글자로만 표현해야 하는 글을 만드는 작가. 무형의 실체를 마주할 때마다, 구효서 작가는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작가라는 직업이 오래된 직업이 아니에요. 근대적 직업이에요. 과거에는 돈을 받고 이야기를 파는 전기수가 있었죠. 근대에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상품이 되고, 자기를 알리는 어떤 수단이 되면서 작가가 직업이 됐죠. 죽으나 사나, 글만 써야 하는 이런 괴상한 직업이 생긴 거예요.”현대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직업에 평생 종사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미 가진 직업을 내려놓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 힘든 시대다. 이 직업을 놓으면 당장 굶어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작가는 간혹 책장에 쌓인 자신의 저서들이 끔찍하게 여겨진다. ‘정말 저 많은 책 속에 내가 쓴 글들이 가득할까?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남아 있을까? 펼쳐보면 그냥 하얀 빈 종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연유로 작가는 몇 해 동안 자신의책을 펼쳐보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 전, 모든 책을 택배박스에 넣고 테이프로 꽁꽁 싸맸다. “저 책들을 보면 내가 자의식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럼 작업에 방해가 되니까요.”작가는 언제나 처음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 간다. 이전의 책들은 까맣게 잊은 채 ‘처음 쓴다’를 주문처럼 외면서.

구효서의 여덟 번째 소설집의 표제작은 『별명의 달인』이다. 작가는 별명의 제왕으로 이름 짓고 싶었지만 비슷한 제목이 있어 ‘달인’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썩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제왕은 너무 거대해 보인다. 소소하고 가벼운 느낌의 ‘달인’이 더 알맞지 싶다. 소설의 주인공 라즈니시는 학창시절, 친구들의 특징을 꿰뚫어보는 능력으로 ‘별명의 달인’으로 불렸다. 성적이 뛰어나지도 표창을 받는 일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친구들의 별명을 잘 짓는다는 까닭으로 언제나 존재감을 가졌다. 하지만 라즈니시에게 별명 짓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닌, 불안과 두려움을 모면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규정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고통이 수반된 특기, 행복하지 않은 취미였다. 문득, 작가야말로 ‘별명의 달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세상이 이미 명명한 단어를 새로이 깎고 다듬어 표현한다. 잘 깎이면 기쁘지만 칼날이 무뎌지면 고통스럽기 이를 데 없다. 창작이란 그렇다.




말에 대해서 끝없이 말하고 싶은 욕망

작가의 말에 ‘토리노의 말’을 인용하셨어요. 니체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본 말, 벨라 타르 감독이 만든 영화 <토리노의 말>처럼, “길 위를 내처 걷다가 어느 날인가 주저앉게 될 것”이라고. 작업실이 아닌 도서관에서 글을 쓴 요즘, 어떠셨나요.

무릎도 다치고 작년부터 작업실에 난방 문제도 있고 해서 도서관을 왔다갔다했어요. 노트북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면서. 자전거는 지금도 열심히 타요. ‘토리노의 말’은 글쎄요. 혼자 작품을 쓴다는 게 그런 모양새가 아닐까 싶었어요.

『별명의 달인』은 2008년부터 작년까지, 문예지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모은 소설집인데, 4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아요. 시차를 느끼지 못했어요.

예전 작품들과 비교해도 큰 차별성이 없어요. 기본적인 것은 바뀌지 않았다는 건데, 첫 장편을 썼을 때 가졌던 문제의식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말과 글을 합치면, 언어잖아요. 내가 언어에 대한 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었더군요. 해야겠다가 아니라, 천착할 수밖에 없고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는 게 언어에요. 어쩌면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언어에 대한 천착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별명’이라는 소재도 그렇지만, 유독 이번 소설집에 습관적으로 글을 쓰고 메모를 남기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같은 맥락일까요.

말 못하고 더듬거리는 인물들이 많으니까, 그런 셈이죠. 2년 전에 『동주』라는 장편을 썼는데, 소제목이 모두 말로 끝나요. 첫 챕터 소제목이 ‘더듬는 말’이었는데, 이번 소설집에도 말을 더듬는 사람이 나와요. 말에 대해서 끝없이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나 봐요. 메타픽션이라고 하듯이, 메타 랭귀지. 언어에 대해서 언어로 말하는 거죠. 언어로 말하면서 언어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작가에게는 숙명처럼 느껴져요. 세상에 대한 모든 해석과 이해가 거기에서 나오니까요. 거기에서 소설도 나오고요.

「별명의 달인」에서 라즈니시는 친구들의 특징을 집어내서 별명을 짓는데, 알고 보니 취미가 아니었어요. 고통에 가까운 불안을 몰고 온 일이었죠. 무언가 규정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끼는 라즈니시를 보면서, 무질서한 세계에 공포를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이 겹쳐졌어요.

라즈니시는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하지 않으면 두려워서, 끊임없이 언어적 명명을 통해서 질서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정작 자신은 결혼도 실패하고 선거에도 실패했죠. 라즈니시나 그의 친구인 화자 모두 아내가 떠나갔잖아요. 그들은 아내에 대한 규정을 내리면서 아내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라는 또 다른 세계의 우주는 결국 알아채지 못한 거예요. 세상은 결코 자기가 규정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죠.

라즈니시가 결코 쓰지 않는 두 단어가 있었어요. ‘모른다’와 ‘미안하다’. 친구들이 그에게 거부감을 느낀 이유이기도 하죠. 간혹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하는 단어가 있잖아요. 작가님도 그런 단어가 있나요?

‘절대’라는 말을 안 써요. 말할 때도 글을 쓸 때도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절대’라는 말을 쓰면 귀에 정확히 꽂혀요.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듣고 있지만(웃음). 그런데 ‘절대’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참 많아요. 자기 암시, 최면 같은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절대로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절대 안 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도 ‘절대’라는 말을 잘 쓰는 사람은 신뢰가 안 가요.

문득, 작가님의 별명도 궁금해져요.

지금은 성인이 되고 사회적 자아가 생겨서 말을 하지만, 어렸을 때 자아가 분리되지 않았을 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사람들하고 눈도 못 마주쳤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어디 잔칫집이라고 데리고 가면, 뭘 먹어야 하긴 하는데 쑥스러워서 벽만 바라보고 서 있던 아이였어요. 길에서 아는 사람 만나면 인사하기 싫어서 고개 푹 숙이고 가곤 했던 아이였죠. 말이 없었으니 언어도 없었죠. 사람들이랑 소통하지 못하니 별명을 지어주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했어요. 이렇게 말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질 거라곤 꿈에도 상상을 못했죠. 아버지도 형도 농사꾼이었으니, 나도 농사를 짓겠지 싶었어요. 별명이 없었다는 건, 타인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네요. 어울리지 않았고 혼자였고 별명조차 없었던 아이? 그랬어요.

하지만 지금은 소설 속 인물에게도 사물에게도 수많은 별명을 지어주는 소설가가 되셨네요. 「별명의 달인」을 읽으면서 ‘작가야말로 별명의 달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현실을 언어로 표현하고 있으니, 소설가의 직무는 끝없이 별명을 짓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지하철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지하철이라고 말하지만, 작가는 ‘어두운 굴 속을 지나는 굼벵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은유이지만 곧 별명이고, 표현이고 예술인 거죠. 그런데 이런 작가의 표현 행위에는 양면성이 있어요. 기존에 있던 명명 대신 다른 명명을 쓴다는 건, 얼마든지 이름이 파생될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 방식, 내 취향으로 표현한다는 점이에요. 내 명명이 타인과 나에 대해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글 쓰기는 끝없는 이문파문(以文破文)이에요. 글로서 글을 깨는 것, 파괴하는 것이죠. 글이 글로서 자기 권위를 갖고 정체성을 가지면 위험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지만 또 내가 그 글을 깨야만 하는 거예요.




작가와 독자와의 거리, 생각할수록 너무나 멀지만

「모란꽃」에 등장하는 형제들은 펄 벅의 소설 『모란꽃』에 대해 각기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어요.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책은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셈이었다고 인정해요. 그리고 조금씩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모두 『모란꽃』이었음을 깨달아요.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의 분방한 태도, 작가들도 고려하는 부분이 아닌가요?

모든 작품에 있어서 하나로만 기억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건 억지며, 강제죠.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작가와 독자의 거리는 생각할수록 너무도 멀고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 그런데 그렇다면 암담해져야지 맞는 거잖아요.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 때, 더 소설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에도 겉면과 속면이 있기 때문이에요. 껍질만 먹는 과일이 있듯이, 소설에도 겉면만 먹어도 되는 효용도 있어요. 독자들이 겉면만 읽는 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어요. 물론, 작가로서 독자들이 겉면을 읽고 속면까지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고 인정해요. 왜 어렵냐면, 독자의 언어와 내 언어가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에요.

작가들이 새롭게 창조한 의미들을 독자들이 단번에 이해하긴 어렵다는 뜻일까요.

시인의 언어는 일상 언어, 현실 언어가 아닌 천상의 언어에요. 현실 언어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 시를 이해하려면 언어를 통해서 가는 게 아니라, 시인의 포에지까지 도달한 다음에야 읽혀지는 거예요. 소설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속면을 보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이 어려운 것을 작가들은 왜 쓸까요. 독자에게 도달하기 어려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쓰는 건, 안 쓰면 없는 거잖아요. ‘겉면으로 이해되는 세상만 있는 게 아니라 속면으로 이해되는 세상도 있다’는 걸 어쨌든 작가들은 준비해놓아야 하는 거예요. 누구는 도달하고 누구는 오지 못하겠지만, 독자들이 알아서 도달해야겠지만 작가들은 만들어 놓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독자들을 생각할 때 ‘내가 준비해놓은 걸 이해할까’라는 걱정은 안 해요. 다만 독자들이 속면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화환경이 답답하죠.

상업주의, 공격적인 마케팅에서 오는 악영향이겠지요.

문화라는 걸 너무 상품으로만 몰고 가는 분위기도 그렇고, 베스트셀러, 표피주의, 말초적 흥미만을 추구하는 환경들이 독자들을 방해하고 있어요. 커피에 설탕을 넣으면 커피 맛이 떨어지잖아요. 하지만 진짜 커피 맛을 알려면 쓰더라도 먹어봐야죠. 그런데 자꾸만 설탕을 넣고 시럽을 넣는 그런 환경들이 걱정이 되는 거예요. 독자들이 잘못한 게 아니에요.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걱정인 거예요.

소설의 소재가 되는 것들은 어떻게 찾는 편인가요? 찾나요? 아니면 그냥 만나게 되나요?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메모를 하게 될 때는 어제 봤던 창문을 시간이 지나서 다시 봤는데, 창문이 달리 보일 때, 그럴 때 메모를 해요. 창문뿐만 아니라 거리의 나무나 풍경, 또 사람들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뭐가 변했냐를 보면 그 사물이 변한 게 아니라, 내 관점이나 시각이 변한 거거든요. 이게 왜 변했을까, 생각해봐요. 달리 말하면 탐구? 사유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일상적으로 봐왔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다르게 보일 때, 어떻게 달리 보였는지, 달리 보인 이유가 뭘까에 대해서 생각해요. 그 생각이 소설의 모티프가 되는 셈이죠. 소설로 끌어들이고 난 후, 소재들은 수집하면 되니까, 수집의 대상들을 메모하진 않아요. 다만 어느 날 갑자기 시각이 바뀌어 달리 보이는 현상이나 사물이 있을 때는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를 해요.

언어에 대한 천착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번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글을 삭제해버리곤 해요. 특히 「화양연화」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온 마흔다섯 통의 메일을 제목만 읽고는 지워버렸어요. ‘어떻게 읽지 않고 지울 수가 있을까, 현실의 경우라면 가능할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주인공은 메일을 삭제했을까요.

이런 마음이 있어요.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대상에 대해서 다 알고 싶지 않은 마음. 그건 환멸을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아요. 앎으로 인해 멀어짐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또 하나는 사랑의 감정이라고 말하는 행복, 기쁨 같은 추상적인 언어는 언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손으로 집을 순 없어요. 손으로 집어졌다면 그건 행복도 사랑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달리 말하면 연인들끼리 ‘내가 왜 좋아?’라고 묻잖아요. 그럴 때 ‘글쎄, 모르겠어. 그냥 좋아’가 낫지 이러이러해서 좋다고 말하는 순간, 그건 진짜도 아닐뿐더러 완전히 감정을 깨버리는 거예요. 사랑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은 사진으로도 연결되는데, 저는 정말 필요한 자료사진이 아니라면, 사진을 잘 안 찍어요. 최근에 일본을 다녀왔는데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어요.

사진은 가공한 프레임이니, 사람의 기억이 더 의미가 있다는 뜻이겠죠.

사진이라는 건 한 순간을 정지시키는 거잖아요. 강제로 정지시키는 것은, 그 순간 가짜가 되어버려요. 기억과 기계의 차이는 엄청나요. 사실 사람의 기억보다 기계가 훨씬 더 정확하잖아요. 하지만 왜곡된 기억이 나에게는 더 행복하고 리얼한데, 사진이 그걸 깨버리는 때가 있어요. 내 기억 속에는 이 호수 옆에 분명히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사진으로 보니까 없어요. 그러면 황당한 거예요. 메일로 사랑 고백을 하는 것들도 이런 사진 같아서, 실제 사랑의 본질을 깨는 것 같아요.




소설은 계속 존재하지만 끝없이 변한다

집필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구성을 짜놓고 쓰는 편이신지, 대략적인 줄거리만 정해놓고 쓰시는지 궁금해요.

『별명의 달인』에 들어있는 소설들은 대부분 구성이 많이 완성된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심지어 인물들의 동선, 지도도 그려놓고요. 그런데 이런 창작법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어쨌든 감독이 정해놓은 프레임 안에서 강제 당하고 있잖아요. 프레임 밖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장 뤽 고다르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다가, 카메라를 아무렇게나 돌려요. 프레임을 이탈시키는 거죠. 강제된 프레임에서 벗어난 장면을 찍고 또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촬영기법을 쓰는데, 참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가 이미 가지고 있는 주제, 흥미 이런 것들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주죠. 개연성이 부족해지겠죠. 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현실의 모습이 진짜 현실에 있어서는 이렇게 질서적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의 내 소설 쓰기는 그냥 모티프를 찾은 상태에서 펜을 들고, 그때 그때 써가지 않을까 싶어요.

올해로 등단 26년을 맞이하셨어요. 전업작가로서의 삶. 잠시 잠깐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셨을 법 한데요.

쉰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글 쓰는 행위라는 게, 반드시 글자를 적고 있어야만 쓰고 있는 게 아니에요. 걸으면서, 다니면서도 글은 써요. 머릿속에서 막 쓰다가 신호등을 놓치곤 하니까요. 이럴 때 머리가 더 아파요. 오히려 쓰고 있을 때 더 시원해요. 일단 쓰겠다고 생각하면 돌이킬 수 없고 어쨌든 문장은 나오니까요. 어떻게 보면 쓰지 않을 때가 오히려 더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어요.

오래 전에 한 인터뷰에서 ‘소설은 바람’이라고 말하신 적이 있어요. 기억하시나요?

그랬던 것 같아요. 노래를 인용했던 것 같은데. 아,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형체는 없지만 계속 존재하고, 또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변하고 멈춰있지 않으니까요.

그럼 ‘구효서의 소설’은 바람처럼 변하는 중인가요?

작년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과거에는 일단 서사 중심, 다소 주제 중심이었죠. 어떤 이야기 속에 나의 의도를 싣고 독자가 공감을 얻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거기에 동원되는 제재, 곧 이야깃거리는 주로 현실에서 찾았고요. 전통적인 방식이었던 거죠. 그런데 앞으로 달라질 거예요. 일단 내 소설의 전제로 놓여있던 현실, 일상을 빼버렸어요. 현실 자체를 반영, 모방한 것이 지금까지의 방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현실 자체를 의심하고 부정하거나 믿지 못하니까, 완전히 달라요. 현실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현실 자체를 모방할 수도 반영할 수도 없는, 불명확하고 비정형적인 어떤 형태를 갖지 않은 걸로 그려지기 시작하고 있어요.

어떤 뚜렷한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라기보다, 소설을 쓰는 일이 저한테는 직업이잖아요. 소설을 써서 먹고 사니까 내 직업인데, 소설이 잘 팔리고 돈을 벌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그러면 소설이 나에게 뭘까요. 소설이 내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어야겠죠. 세계와 존재에 대한 탐구가 다른 그 이유에요. 그래야 소설이 있는 거고요. 탐구가 병행되어야만 예술작품이고 문학이에요. 문학을 완전히 상품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즉 소설이 내 생계를 유지해준다는 것과는 별개로 소설이 나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색, 탐구를 제공해줘야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내가 보고 느끼는 현실이 과연 확신할만한 것인가’ 그렇게 파고들어갔더니 소설이 변했어요.

다음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손으로 쓰고 있진 않더라도 머릿속에서는 쓰고 있으시겠죠?

단편 하나를 구상하고 있어요. 기존에 보여줬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위에 픽션을 만들어내는 작품에서 많이 바뀔 거예요. 이제 현실 자체에 의문을 던져요. 그래서 현실을 바라보는 화자, 주인공의 시각이 낯설어요. 그래야만 되고요. 겉모습은 매우 평범한 인물이지만,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마치 화성이나 외계에서 온 듯해요. 우리가 본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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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의 달인구효서 저 | 문학동네
올해로 등단 26년째,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디」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구효서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삶이 깊어갈수록 소설세계 또한 다채로워진 대표적 전업작가.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 신비주의와 낭만주의 등 다양한 문체와 알레고리로 독자를 꾸준히 매혹해온 그다.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 을 잇는 여덟번째 소설집 『별명의 달인』 은 앞선 두 소설집에서 천착한 탄생과 소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삶 그 자체를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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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독설이 정말 사람을 변화시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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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즐겨 하지 않지만 종종 훔쳐보는 파워 트위터리안이 있다. 여타 유명 작가나 종교인, 심리학 박사들의 글과는 달리, 미사여구 하나 없지만 조용히 읽게 되는 140자. 서천석의 트위터(https://twitter.com/suhcs)는 고요하지만,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를 건드린다. 토닥토닥 조심스럽지도 껄렁하지도 않은 서천석의 글. 노련한 상담가라는 인상보다는 쉽지 않은 재주를 가졌다는 느낌이다. 지루하고 팍팍한 일상을 보내다, 통찰력이 가득한 140자를 마주하면 그래도 마음을 추스를 힘이 생긴다. 어린이 그림책 『자라는 몸』『싸우는 몸』『느끼는 몸』을 펴내고, 최근 『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로 육아 멘토로 떠오른 서천석 저자. 이번에는 성인들을 위한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을 펴냈다.

서천석은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강석우입니다>에서 수요일 코너 ‘우리 아이 문제 없어요’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는 MBC 표준FM <서천석의 마음연구소>을 진행하기도 했다. 트위터로 유명세를 탔던 터라 청취율도 좋았지만, 만 1년을 채우지 않고 라디오부스를 떠났다. 이유를 물으니 “매일 칼럼을 하나씩 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1년만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개편이 앞당겨지면서 일찍 그만두게 되었어요. 낮에는 진료를 봐야 하고 저녁에는 꼬박 글을 써야 하니 힘들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일도 못하고요.”그래도 인기를 체감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내가 좋은 걸 해야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반응들을 저는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에요”라고 한다. 반응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타인의 시선, 반응을 괘념치 않는 것.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행복을 쫓는 출발점이다.




상대의 단점을 가볍게 넘기는 능력이 필요해요

두 번째로 뵙네요. 올 봄에 육아 관련 도서를 쓰셨는데 이번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네요. 저자님의 트위터를 팔로우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책일 것 같아요.

트위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진 않았어요. 부모와 아이의 관계,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여러 가지 감정, 생각들에 대한 글을 주로 썼어요. 그런데 팔로우를 하시는 분들 중에 반은 아이를 키우지 않는 분들이세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인들이 겪는 일에 대해 쓰게 됐어요.

채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토닥토닥 위로하는 것도 아닌 글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자꾸만 리트윗을 하고 싶게 만들던데요.

학창시절에 백일장도 나가고, 글 쓰고 책 읽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그래도 내가 문학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아주 잘 쓰는 것 같진 않아요(웃음). 다만, 말이나 글을 쓸 때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좋게 말하고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생각을 최대한 정리하고 속으로 끌어내서 말하는 게 좋죠. 제 글을 보면 대부분 어려운 말이 없어요. 즉각적,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쓰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문학적으로 매력 있는 글은 아닌 거 같아요(웃음). 차라리, 드라마나 동화가 더 맞지 않나 싶어요.

아동들을 위한 그림책도 여러 권 쓰셨잖아요.

그림책을 좋아해요. 그림책에 대한 칼럼도 썼고요. 내가 시나 소설을 쓰기에는 캐릭터가 약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해요(웃음).

트위터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요. 혹시 열독하게 되는 트위터리안이 있나요?

딱 이 사람을 눈 여겨 보고 그러진 않는 것 같고, 가끔 어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트위터에 들어가 30, 40분 계속해서 볼 때가 있어요. 트위터는 기본적으로 노출되어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정제된 글을 올리기도 하고 혼잣말을 쓰는 사람도 있고 한데, 팔로워가 한 명도 없는 계정을 찾아서 보면 재밌어요.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면서 사는지, 자기가 닥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한 사람의 한 두 달치 트윗을 한꺼번에 쭉 보기도 하고. 유명인들의 글보다 한 사람의 글을 긴 호흡으로 보는 게 흥미로워요.

페이스북은 안 하시나요? 요즘은 페이스북으로 많이 이동하는 추세인데요.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꾸미고 화장한 것 같은 얼굴이 보여요. 트위터는 생얼을 노출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좀 더 재밌어요.

최근에 제가 리트윗한 저자님의 글이 있어요. “꼭 필요한 노후 대비 중 하나가 지금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새로운 관계 맺기에 대한 열려 있는 마음,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아닐까 해요. 관계는 맺는 능력과 유지하는 능력이 다른데 유지하는 능력의 핵심은 상대의 단점을 가볍게 넘기는 능력입니다.”매우 동감했는데 정말 쉽지 않은 문제에요.

타고나길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신과도 인간 관찰연구에서 시작되는데, 어떤 사람들이 관계를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는지를 보면, 다른 사람의 단점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에요. 관찰연구를 통한 결과에 의하면, 노력하고 훈련하면 바꿀 수 있어요. 나도 단점이 있고 저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어요. 물론 단점이 더 크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죠. 안 되는 걸 가지고, 버티라는 건 아니에요. 어느 정도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런 걸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중요해요. 아이를 키우면서 소리에 예민한 부모들이 많아요. 아이는 그냥 혼잣말을 하면서 놀고 있는 건데, 부모는 징징댄다고 생각해요. 왜 얘는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고 하죠. 아이한테 개입을 해서 못하게 해야 하니, 힘든 상황이 되는 거예요. 이런 문제에 둔감해질수록 행복은 더 가까워져요. 처음 사랑에 빠질 때는 장점에 빠져들잖아요. 나쁜 건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좋은 건 안 보이고 자꾸만 나쁜 점을 지적하고 바꿔주려고 해요. 그러면 힘들어져요. 나도 내 말을 안 듣는데 남이 어떻게 내 말을 듣겠어요.




말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상대입니다

강연 요청을 많이 받으실 텐데, 강연이랑 상담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이야기이니까 더 조심스러울 수도 있고요. 강연 요청은 대부분 수락하시는 편인가요?

병원 일이 주 업무니까 강연은 한 달에 서너 개 정도 해요. 거의 선착순에 의해 결정이 되곤 하지만, 참신한 곳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가는 경우가 있어요. 몇 달 전에 어떤 아파트주민회에서 요청을 해서 갔는데, 동네 분위기더라고요(웃음). 병원에서 상담을 할 때도 아이 문제로 왔지만 부모와 상담하는 경우가 많아요. 소아정신과도 성인정신과를 전공한 사람이 하게 되어 있고요. 성인을 모르면 소아를 대하기가 쉽지 않아요. 강연과 상담의 차이는 특별히 의식해본 적은 없는데, 개별 상담에 있어서는 내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담을 할 때는 더 많이 생각하고, 어쩌다 한 번 말하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결이 된다는 말도 많이 해요. 진심으로 경청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부모들한테도 항상 이야기하는데, 말의 주인은 자기가 아니라 상대라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말을 하는 거라면, 말을 안 해도 되거든요. 혼자 생각하고 혼잣말을 하면 되죠. 사람들이 말을 하는 이유에 있어서는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어요. 상담에서도 중요한 문제에요. 그 사람이 어떻게 알아들을까,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이 뭘까. 이런 걸 고민해야 해요.

가끔 이런 고민도 하게 돼요. 상대가 위로를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어떤 위로를 원하는지 알지만 그 상대가 원하는 위로를 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상대는 토닥토닥 해주길 원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생산적인 조언을 하고 싶은 거죠. 이럴 때,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게 맞는 거죠?

그럼요. 상대에 맞춰야 해요. 사람이라는 존재는 정말 말을 안 들어요. 성경에도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데, 이건 없다가도 생기고 생겼다가도 사라져요. 어쩌다 가끔 그 변화의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변화가 있기까지의 준비 기간이 정말 길어요. 내가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그 말이 들려오면 변하게 되어 있어요. ‘겨우 이런 말로 변화가 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은 그 순간 귀가 열린 거예요. 정신과의사가 상담할 때도 똑같아요. 상대의 귀가 열리고 있냐에 주목해요. 내가 멋있게 말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상대가 들을 준비가 안 됐는데 말을 하면, 핑계를 대고 다른 이유를 대요. 그럴 땐 기다려야 해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을 버텨주죠.

관계에 있어서도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게 가장 어렵기도 하고요. 이게 ‘그냥’이 아니니까요.

산다는 건 힘겨운 시간을 같이 버티면서 그 시간을 즐기는 거예요.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위로도 하고 뒹굴고 버티는 거예요. 진짜 소중한 건, 한 마디 멋있는 말이 아니라 옆에서 버텨주는 일이에요. 내 옆을 버텨주는 사람을 놓치면 인생에 남는 게 없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버티면서 즐기면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와요. 위로도 마찬가지에요. 상대가 원하지만, 내가 위로할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안 하면 돼요. 이렇게 징징거리는 거 지겹고 짜증나면 위로를 하지 말아요. 그런데 미안한 마음이 드니까 위로를 하고, 또 그 사람이 내 생각대로 변하지 않으면 짜증을 내요. 결국 내 짜증, 내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거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위로도 하지 않는 게 나아요.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자극시키고 꾸짖어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도 있어요. 내 주변 사람들로부터가 아닌 유명인의 강의를 들을 때, 더 센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어요.

최근에 거리에서 어떤 유명한 분의 강연을 우연히 들었어요. 추종자가 생길 만큼 인기를 얻고 있는 분인데,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교주도 아닌데 어떤 분들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좋아하더라고요. 그냥 일문일답 형식으로 질문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강하게 몰아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놀랐어요. 청중들의 사연은 훨씬 복잡하고 각각 사정이 다른데, ‘나는 깨달았는데 너는 왜 못 깨달았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까요. 상담자가 가져야 할 자세는 당신은 잠깐 운이 없어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거고, 나는 운이 좋다는 태도거든요. 그게 진실이고요. 목사님 설교 중에도 여러 패턴이 있어요. 교인을 죄인으로 몰고 가는 설교가 있고, 주체로 서라는 설교도 있고요. 개인이 주체로 서는 걸 존중해야 해요. 그런 능력이 있어서 존중하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되라도 존중하는 거거든요. 우리가 아직은 멀었구나,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변화는 결국 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문제겠죠.

누군가가 나를 강하게 찌르면 움찔하지만, 나를 변화시키는 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쌓아가는 일에 있어요. 독설이 정말 사람을 변화시킬까요? 채찍질은 한계가 있어요. 말을 달리게 하려면 채찍질을 해야 하는데, 인생은 장거리 경주이기 때문에 계속 채찍질을 하면 말은 쓰러지고 상처를 받아요. 사람들은 즉각적인 변화가 좋을 줄 알고 채찍질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 잠깐 정신을 차렸다가 또 원래 모습을 찾아가죠. 어릴 때부터 이런 훈육에 익숙해지면, 자기를 사랑해서 변하는 것보다 야단 맞아서 변하는 습관을 갖게 돼요. 이게 우리 시대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야단을 맞아야만 변하고 또 이것에 익숙해지고. 결국 진짜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죠. 자기를 사랑해서 변할 때 비로소 몸에 남을 수 있어요. 야단 맞아서 변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변화의 동력을 밖으로부터 받아야만 해요. 남에게 의존하면, 계속해서 채찍질을 당하는 것에 기대하는 상황을 가져 와요. 내 삶이 후지다고 느껴지더라도 내 삶의 주체는 자신이어야 해요. 독설가들도 상대를 주체라고 인정을 하면, 그렇게까지 강하게 말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트레스를 푸는 것보다 덜 받는 것이 중요해요

관계 맺기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많아요. 서로의 애정과 관심의 양이 같지 않을 때, 충돌하기도 하고요. 상대가 원한다고 생각하고 호의를 베풀었는데, 상대가 거절하면 상처를 받는 경우도 많아요.

자식 부모의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부모는 잘해주려고 한 건데 자식이 안 따라주면 화를 내요. 그런데 잘해준다는 건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걸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생각할 때 좋은 방향이 상대에겐 다를 수 있어요. 이 사람을 어떻게 바꿔놓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에요. 지나친 개입이죠. 호의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잘해주려고 한 건데, 상대가 거절한다고 생각하니까 그 사람을 미워해요. 미움과 호의가 이렇게 같이 맞물려 가는 경우가 많아요. 내 호의가 괜찮으면 받아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거절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이런 거에 너무 매여서 살면 나만 상처를 받아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오늘도 스트레스 받는다’에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야 좋나요?

푸는 방법을 찾는 것도 좋지만,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게 관건이에요. 어떻게 하면 덜 받는지, 내가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지에 대해서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어요. 직장생활이 육체적으로 힘든 건지, 일에 만족감을 못 느끼는 것인지, 인간관계의 문제인지, 내가 받는 보상과 기대가 다른 건지. 이런 것들을 분석해봐야 해요. 일을 바꾸든지, 내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 문제를 풀었다고 하더라고 인생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일들이 끊임없이 찾아와요. 평탄한 대리석 바닥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풀긴 풀어야 할 텐데요(웃음). 저자님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거 없어요. 그때 그때 내키는 걸 하는 편이에요. 저는 가만히 방에 앉아서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스트레스가 풀려요. 영화도 보고 술도 한 잔 하고, 인터넷도 하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요.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를 하는 게 도움이 되고, 아이들하고 재밌게 노는 것도 좋고, 친구들이랑 만나서 수고 떨고 그런 것도 도움이 돼요.

어떤 분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다른 업계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더라고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를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수 있다고요. 어느 정도 공감이 갔어요.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제 분야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익숙하고 좋은 것 같아요. 익숙하지 않은 걸 할 때는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익숙한 환경에 놓여있을 때, 최종적인 스트레스가 적다고 생각해요. 나를 가장 익숙하게 편안하게 만드는 공간이 좋아요.

부부싸움을 잘 안 하실 것 같긴 한데요. 그래도 싸울 때는 있으시죠?

이런 질문에 대답 잘 안 해요. 재수 없어 보일까 봐요(웃음). 그런데 한 번도 안 싸웠어요. 제 특성도 있겠지만 상대의 특성도 강해서(웃음). 아내가 성격이 좋아요. 옛날에 저도 연애할 때는 싸운 적이 많았는데, 결혼을 해서는 싸운 기억이 없네요.  

작가 분들은 종종 쓰지 않는 말, 싫어하는 단어가 있던데요. 상담을 하면서 쓰지 않으려고 하는 말이 있나요?

그런 건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다만 끊는 대화를 싫어해요. 말은 흘러야 하거든요. 간혹 상대의 말을 자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건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말의 주인은 상대방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말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까 상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관계 속에서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질문을 하는 입장인데도 가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종종 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본인과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는 잘 안 들어주세요(웃음). 자기가 해야 할 말만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거죠. 거꾸로 인터뷰어도 상대가 말하면 듣기만 해야 하는데, 계속 다음 질문을 뭐할지를 고민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저자님은 참 잘 들어주시네요.

듣는 게 직업이니까요(웃음). 또 말의 주인은 상대니까요.

DJ가 꿈이라고 들었어요. 이번 책에 저자 녹음 CD도 들어있더라고요. 음성이 정말 DJ를 하기 안성맞춤인데, 이번에 라디오는 그만두셨잖아요.

DJ는 작가가 써준 원고를 읽으면 되는데, <마음 연구소>는 직접 칼럼을 써야 하니 힘이 들었어요. 주어진 시간이 딱 3분 10초였거든요. 1초도 어긋나면 안 되고, 내용도 기승전결에 맞게 딱딱 써야 하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DJ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라디오키즈이기도 했고, 라디오를 통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여성시대>에서 육아 상담을 하는데, 현장에서 즉석으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게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내 자신을 아는 게 참 중요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하는 것.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에도 나와있지만, 내 마음을 알고 돌볼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해요. 잡스러운 것으로 채우지 말고,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채워야지, 안 그러면 ‘인생이 왜 이렇게 허무하게 갔나’ 생각하게 돼요. 내가 남을 소중하게 여기면 남을 위한 행동을 취하잖아요. 내 자신도 마찬가지에요. 내 영혼이 즐거워할만한, 나를 위해 나한테 좋은 일을 자꾸 해주려고 해요. 조지 베일런트 『행복의 비밀』에도 나와 있듯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랑을 하는 것, 그리고 상대의 사랑을 밀어내지 않는 거예요. 두 가지가 정말 중요해요. 상대의 사랑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여야 해요. 어떻게 그 사랑을 쌓아 나갈까를 고민해야 하는데, 자꾸만 의심하고 경계하면 행복할 수 없어요. 물론 상대는 안 하고 나만 하고 있으면, 헤어져야 해요. 그런 사람은 오래 만나기 어려워요. 사랑한다고 생각만 하면 뭐해요. 표현하고 정성을 쏟아야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과 정성을 들이는 것은 달라요. 강아지도 소중하면 정성을 다해 키우잖아요. 그래야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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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서천석 저 | 김영사
한 편을 읽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110개의 인생 조언이 담긴 《서천석의 마음 읽는 시간》은 우리 각자가 고단한 인생을 살아오며 알게 모르게 생긴 많은 마음속 상처들에 새 살이 돋을 수 있도록 해주는 연고 같은 책이다. 삶의 어려움 극복하기, 행복해지는 기술, 인간관계, 감정의 문제, 하루 일상을 잘 사는 법, 마음의 병에 대한 처방을 주제로 하여 총 6개의 장으로 나눠 묶은 이 이야기들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어려움과 궁금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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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게 ‘행복’ - 크라잉 넛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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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습하는 날인가요? 연습을 자주하나요?

한경록 : 시간이 남으면 하려고 했어요. 모인 김에.
이상면 : 공연이 많을 때는 연주가 잘 돼요. 공연이 없을 때는 일주일에 3일 정도.
박윤식 : 운동 선수가 항상 운동하는 것처럼, 음악하는 사람들도 항상 음악해야죠. 페이스를 유지해야하는 것 같아요.
한경록 : 「말달리자」 나 「밤이 깊었네」 를 수만 번 연주했어도 평소에 엔진이 잘 안 달궈져있으면 당일에 힘들더라고요.

여기서 6집, 7집을 녹음했죠? 오래된 공간이네요.

이상면 : 네. 한 10년 됐나?
한경록 : 군대 제대하고 왔지. 2005년이니까, 8년째. 꽤 됐네요.

예전에는 어디서 녹음했나요. 지금과 차이가 있나요?

이상면 : 일반적인 커머셜 스튜디오에서 했죠. 요즘이야 기술이 발달해서 모든 걸 소프트웨어로 처리하고 시뮬레이션한 가상 악기들도 널리 사용하는 것 같은데 그 때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비싼 곳 갈수록 녹음 퀄리티가 더 좋았어요.
이상혁 : 홈레코딩 장비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돈도 덜 들고.
이상면 : 개인이 작업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거죠.

라이브는 좋은데 레코딩은 아쉽다는 얘기가 있었죠?

이상면 : 예 그랬어요. 그때는 저희 뿐만이 아니라 다른 밴드들도 다 비슷했어요.

이제는 만족할 만 한 지점에 올랐나요?

이상면 : 네. 만족까진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어요.

활동해온 18년 동안 한결같다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부담이 있을 텐데요.

이상혁 : 술 마시는 건 한결같아서 좋아요. (웃음)
한경록 : 좋은 의미로 봐주시는 걸 수도 있고, 한편으론 더 발전해야하지 않나 해서 괜히 뜨끔 하는 것도 있고요. 장점이라면 멤버에 변동이 없었고, 음악이 트렌드를 좇지 않았다는 것이겠죠. 홍대 클럽에서 놀기 좋아하는 것도 한결같고, 그렇게 삶을 유지하는 것도 한결같죠.
이상면 : 한결같다는 데에서 하나 제외시키고 싶은 게 있다면, 1집부터 지금까지 하나로 관통하는 느낌은 있어도 장르는 저희 맘대로 했어요. 그런 게 전 한결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흔히들 한결같다고 말씀해주시면 5명이 교체 없이 그대로 간다는 점인데, 그런 것에 있어서는 부담이 없죠. 정말 고마운 이야기입니다.

멤버들 대부분이 결혼을 했죠. 환경적인 변화도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줄진 않았나요?

이상혁 : 환경은, 그 동북아 국제정세 환경도 많이 바뀌고… (웃음)
이상면 : 바뀌는 것에 대해서 별 생각은 없어요, 사실. 멤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지금도 반은 차지하죠.
한경록 : 어쩔 수 없어요. 환경이 바뀐다는 것보다는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 같아요. 생각도 변화가 있죠. 음악 처음 시작했을 때 했던 펑크 로커처럼 무조건 반항만하고 술 마시고 그랬으면 지금 쯤 아마 죽었을 거예요.




신보 얘기를 조금 해볼게요. 지난 앨범과 달리 가사에서 많이 달라진 모습이 보였어요.

이상면 : 그렇죠. 6집에서 사실 시사나 환경, 뭔가 큰 개념을 그려보려고 시도했는데 정작 발매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무겁지 않나 싶더라고요. 진지했고.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걸 빼고 전처럼 우리 얘기로 돌아 가보자 했어요.
한경록 : 예전에는 반항 내지 청춘의 불안함을 얘기했죠. 지금도 조금 갖고는 있지만.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레고」 같은 경우는 희망을 다루고 있고요. 그런 면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이상면 : 또 모르죠. 8집은 어떻게 변할지. 저희도 몰라요.

이번 앨범에서는 장르 간의 융합도 많았죠. 보컬이 힘들지 않았나요?

박윤식 : 그렇죠. 스타일이 한 가지였다면 물론 한 톤으로 쭉 가면 되겠지만 템포가 느린 것도 있고 빠른 것도 있죠. 예전엔 무조건 질러대고 짖어댔으면 끝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사실 특별히 힘든 건 없었어요. 녹음하기 전에 연습도 많이 해보고 그랬거든요. 「미지의 세계」 같은 경우는 연주 쪽에 치중을 두어서 조금 빼기도 했고요.
이상면 : 언제나 작업을 하면서 제일 힘든 건 빼는 일이에요. 음을 조금 비워야지 집중도가 높아지는데, 크라잉 넛의 장점이자 단점은 많이 집어넣다보니 집중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죠. 보완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약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데서 연륜이 느껴집니다.

이상면 : 약점을 한 순간에 딱 없애버리면 깜짝 놀라실 테니까요. 조금씩 없애가야 그래도 좀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이상혁 : 초반 스킬 트리를 잘 찍어야죠.

신보 공연도 많이 했으니 각곡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요.

한경록 : 반응들이 되게 다양해요. 열 트랙이 각각 다른, 열 개의 장르라고 세부적으로 봐도 되는데 취향이 모두 갈리는 것 같더라고요. 타이틀 곡이 일단은 반응이 좋고, 메탈 같은 노래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어쿠스틱 좋아하시는 분들은 또 상면이형이 만든 노래 좋아하시죠. 「레고」도 방송에는 안 나갔지만 많이 찾아주시고. 다양한 것 같아요.
박윤식 : 레고는 이상하게 일본 분들이 좋아해주시던데. 고레(これ; 이것). 고레와 난데스까.
이상면 : 아 그래서 그런 거야? (웃음) 이거. 이거, 이거.

제대하고 나서부터는 음반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이상면 : 게을러서요. 사실 더 늦게 낼까도 했는데 주위에서 채찍질을 하시더라고요.
한경록 : 앨범이 뜸해진다고 해서 저희 활동이 줄어드는 건 아니에요. 공연을 매번 하니까요. 매체에 많이 안 나갔다 뿐이지, 사실 공연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노래를 대충 만들 수도 없잖아요. 시간이 됐다고 내버리듯 낼 수는 없으니까. 조금 시간이 걸렸죠. 게을렀던 것도 조금은 있었고.
이상면 : 앞으로는 간간히 싱글을 낼까도 생각하고 있어요.

음반 만족도는 어떤가요.

이상면 : 제가 이번에 믹싱을 처음 해봤어요.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았죠. 물론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더 잘 해보고 싶었는데 이만큼만 나왔어도 좋은 것 같아요.
김인수 : 어우, 자랑할 만하죠. 마스터링 해주시는 분도 칭찬을 아끼시지 않았다는.




사실 오늘 인터뷰의 주된 목적은 10월 말에 열리는 <크라잉 넛 쇼-체지방 감량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매번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무대를 뜨겁게 달구기로 유명한 <크라잉 넛 쇼>가 이번에는 특별한 손님을 맞이한다고 일찍이 소식을 알린 바 있었다. 라인업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거 심상치 않다. 가히 전국구급 규모라 할 만 했다. 각지의 밴드들과 신명나게 뛰놀 잔치에 관련해 설명을 조금 더 부탁했다.

이번 인터뷰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죠. <체지방 감량쇼>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한경록 : <크라잉 넛 쇼>에 대해 먼저 말해야겠네요. 우리 이름을 건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물론 드럭 출신이기도 하고 클럽 공연을 좋아하지만요. 제대하고 2005년 12월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자주 이슈도 되었고 홍대에서 자리도 잡았죠.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저희만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홍대에서 자주 만나는 밴드들과 교류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매 공연마다 콘셉트를 잡고 다른 팀들과 계속 공연을 해왔어요. 한 팀 정도는 루키들을 세웠고요. 장르도 막 섞죠. 펑크만 고집하지 않고 이런 저런 음악을 다 섞죠. 지금도 제일 재밌는 공연이에요.

이번에는 다른 지역의 팀들도 초청했다고 들었어요.

한경록 : 네. 사실 예전에 처음 음악을 했을 때는 지방 클럽 공연도 재밌게 다니고 거기 있는 팀들도 만나고 했었거든요. 요즘은 좀 바빠져서 그럴 겨를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만날 기회도 줄어들고. 지방에 보면 그 지역에서 열심히 고군분투하는, 로큰롤을 지켜나가는 밴드들이 많아요. 자기들만의 색깔을 가지고 말이죠. 예를 들어 제주도의 사우스 카니발이라는 팀은 제주 방언으로 노래를 불러요.
이상면 : 가사에 해석이 따로 붙어있어요. 못 알아들어요. (웃음)
한경록 : 정체성이 있고 자부심이 있어요. 제주도의 자연과 평화를 위해 노래하는 밴드죠. 부산의 스톤드라는 팀은 부산 사투리를 쓰면서 노래를 해요. 다들 로컬 문화를 지켜가는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광주도 대전도, 대구에도 그런 팀들이 있죠. 저희가 매번 갈 수는 없어요, 이제는. 그래서 이번에 한 팀 한 팀 초청을 한거죠. 서울 밴드들로도 반을 채웠고요. 그런 과정에서 YB 형들께도 연락드렸더니 좋은 취지라면서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코어매거진, 씨 없는 수박 김대중도 오죠. 또 우리 중에 크레용 팝을 굉장히 좋아하는 멤버가 있어서 인연이 되었거든요. 그쪽에서도 굉장히 좋아해주셔서 이번에 스페셜 게스트로 라이브 무대에 서기로 했습니다.

스케일이 전국적이네요.

한경록 : 서울 클럽에서 열리는 전국적인 페스티벌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로컬 문화를 좋아하시는 분들, 로컬 문화에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분들께서는 분명 좋아하실 거에요.
김인수 : 우리도 서울에서 활동하는 지방 밴드잖아요. 전반적인 모든 것들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고, 수도권의 개념도 자꾸 넓어지고는 있지만 지방에도 훌륭한 로컬 문화가 있고 훌륭한 팀들이 있어요. 팬들도 있고요. 여러 문화를 확인 할 수 있는 무대로 만들고 싶고 저희도 직접 보고 싶죠.
이상혁 : 예전에 비해 록 음악이 활성화되는 분위기가 확실히 있어요. 로컬 문화라는게 조금씩 생길 텐데 약간 맛보기 형식으로 해보자는 거죠.

이 밴드는 기대해도 좋다싶은 팀을 듣고 싶은데요.

이상면 : 부산에서 오는 스톤드는 서울 분들이 보셔도 진짜 재밌을 거예요.
한경록 : 다들 연륜이 있어요. 스톤드는 에전에 런 캐럿이라는 밴드로 1990년대 후반부터 활동했죠.
이상면 :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이주현도 거기 출신이에요.
김인수 : 이주현 들어오기 전에는 현민호가 리더였고.
한경록 : 저는 사우스 카니발을 꼭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10명 정도 되는 스카 팀인데 방언을 재밌게 구사해요. 버닝 햅번이라는 팀도 대전 신을 계속 지켜온 유명한 팀이고요.
김인수 :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팀은 광주의 베티에스라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웃음) 10년 가까이 팀을 해왔는데 저희도 자주 다녀갈 수 없어서 교류가 전무했죠. 그 신을 지금까지 지켜 와주는 것도 되게 고맙고 또 주위에서 추천을 많이 해줬어요. 자기네들은 무등산 폭격기라고 소개하던데…

혹시 이런 계기로 따로 신인을 발굴하거나 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한경록 : 사실 저희 기획사에 한 명 있어요, 유발이의 소풍이라고. 물론 내부적으로도 할 수 있지만 크라잉 넛 쇼를 통해서도 발굴의 의미를 찾고 있거든요. 장기하와 얼굴들, 갤럭시 익스프레스, 국카스텐, 킹스턴 루디스카… 농담 삼아 크라잉 넛 쇼가 등용문이라고도 해요. 나오면 뜬다더라하고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나왔는데 못 떴죠.
이상혁 : 자랑은 아닌데 등용문이라는 얘기가 진짜 있어요.
한경록 : 개런티를 받고 싶어서 공연 하는 게 아니라 놀려고. 그날 놀고 뒤풀이에서 또 놀고. 그런 장소를 만들어서 하는 게 사실 첫 목적이었어요.
이상면 : 윈윈 전략이죠. 내부 커머셜 기획으로 하면 의도 상하고 사이도 틀어지고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잖아요.
김인수 : “야, 놀자!” 하면 “네, 놉시다!”하는 밴드들이 자주 나오죠.
이상면 : 내로라는 밴드들과는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이제 또 발굴해야죠.




홍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인디 밴드들을 이제는 TV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신문에서도 심심찮게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활성화된 지금의 환경을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사실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시선들도 많은 편이다. 인디 1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지금의 인디 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청했다.

전에 방송 출연도 고려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방송 성격을 본다고 하셨죠. 기준이 있나요?

이상면 :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음악 프로는 당연히 나가는 데 뜬금없이 예능을 나갈 수는 없잖아요, 아직. 항상 모여서 회의를 해요. 이거 어떤가, 우리가 나가도 타당한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죠.
박윤식 : 다섯 명 모두 의견이 맞지 않으면, 만장일치가 안 되면 안 나가요.
한경록 : 저희가 가진 예능감이랑도 다른 것 같고, 나가면 좀 어색한 점도 있는 것 같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게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예능이라면 뮤지션의 무언가를 깎아먹는 느낌도 좀 있고요. 사실 되게 조심스러워요.

옛날보다는 담이 허물어진 편 아닌가요?

한경록 : 그렇죠. 좋아요. 그런데 그게 어울리는 팀이 있고 안 어울리는 팀이 있어요. 나간 걸 보면 어색한 팀도 있고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상면 : 많이는 못 봤는데 되게 재밌었어요. 시대를 훅 훑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한경록 : 사실 외국에도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게 있고, 우리도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가 있었잖아요. 생각해보면 다 루트가 있었어요.
이상면 : 그러게 재밌는 소재거리가 어디 있겠어요.
한경록 : 그렇죠. 관심을 끌고 록 음악을 소개하겠다는 목적이 있었을 거예요. 물론 부작용도 조금 있지만, 일단은 기회들이 많이 주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죠.
이상혁 : 신인들이 그런 걸 기회삼고 발판삼아 등장하는 것은 정말 좋은 거예요. 크라잉 넛은 왜 안 나가냐 물어보시면, 저희는 신인이 아니잖아요. 기회를 내줘야죠.
박윤식 :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에요. 아이돌이 무차별적으로 TV를 점거하는 상황에서도 음악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또 그런 팀들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이 만들어 진 거죠.
김인수 : 뜻이 있는 분이 홍대 로얄 럼블 추진했으면 좋겠다.
이상혁 : 사실 처가 쪽에서도 밴드 이야기들이 나왔어요. 밴드 음악 잘 모르시는 분들인데 그 사이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나와서 즐거웠죠. 너희는 왜 안 나가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웃음)

최근 인디 신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신 자체가 많이 활성화 된 상황인데도 말이죠. 인디 신이 흘러가는 쪽은 긍정적인 방향일까요 부정적인 방향일까요?

이상면 : 올라오는 장르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밴드 음악이 많이 소개 되었죠. 바람이라면 다양한 쪽에서 많은 얼굴들을 봤으면 좋겠어요. 음악들이 조금은 유해진 경향이 있죠.
한경록 : 요즘 조그만 오디션에 도움을 주고 있어요. 그런데 팀들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어요. 예를 들자면 실용음악 쪽으로 잘하는 친구들이 있고 정말 특이한 쪽으로 재미있게 잘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다 보면 아직 새싹들이죠. 신이 조금 주춤했다고 해서 사실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조금 기다려보면 그 친구들이 성숙해진 때가 올 거예요.
김인수 : 주춤한다고 보기보다는 요즘 주위에서 공연하는 걸 보면 이제 조금 인디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사실 떴다고 한다면, 방송을 통해서 '홍대 어디 출신 밴드가 갑자기 떴다' 이렇게 얘기되는데,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런 것들보다도 이 신 속에서는 움직임이 정말 많아요. 밴드가 나왔다가 들어가고. 클럽이 열었다가 문을 닫고. 트렌드도 그렇게 바뀌고 있죠. 전에는 클럽에서만 공연을 했지만 요즘에서는 펍이나 그런 분위기가 나는 술집에서도 라이브 공연을 열고 있거든요. 사실 이 바닥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어요.
이상면 : 정작 밴드들은 다들 흘러가고 있죠.
박윤식 : 인디 밴드라고 한다면 사실 인식이 안 좋았잖아요, 벗고 이런 것 때문에. 그런데 요즘에는 홍대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음악, 이런 폐쇄성보다는 방송에도 나가고 하니까 장미여관이 친숙하게 다가오고 로맨틱 펀치가 친숙하게 다가오는 거죠. 저는 주춤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모든 방향으로 다 침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끝으로 드리는 질문입니다. 3년 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내셨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경록 : 꼴리는 대로 살면.
이상면 : 어떻게, 살, 것인가.
이상혁 : 유시민 씨께 여쭤보면…
한경록 : 제가 꼴리는 대로라고 말씀 드렸는데, 조금 더 덧붙이자면 정도가 아닐지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게 행복일 수 있다는 거죠. 사실 저희가 그러고 있거든요. 굳이 스펙 맞춰서 대기업 들어가고 남들 보기에 부러운 인생을 살라는 게 아니라, 조금 연봉이 적더라도 주위 보면 진짜 재미있게 살고 있거든요. 사실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하고 즐거운 것 같아요. 낭만도 있고요.
이상면 : 고등학교 때 공부하는 목적이 취업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저금을 하는 거죠.

(인터뷰 도중 크레용 팝 이야기가 나오자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상면 : 단체복 제작하는 곳이 있는데 크레용 팝이 맞춘 곳이에요. 저도 거기서 맞췄어요. 사실 우리와 비슷한 점이 되게 많아요. 초창기 악성루머에도 시달렸었고, 길거리에 직접 나가서 공연도 했고요. 멤버도 다섯 명인데다가 리더도 없고, 쌍둥이도 있죠. 공감할 게 많아요.
한경록 : 게다가 인간이죠.

인터뷰 : 김반야 신현태 이수호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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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아지 엄마’ 윤승아 씨, 무슨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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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개 엄마 윤승아에요.”『강아지야, 너 무슨 생각해?』출간 기념회에서 만난 윤승아는 ‘배우’라는 이름을 살짝 내려놓고 스스로를 ‘개 엄마’라고 말했다. 가족과도 다름없는 반려견 밤비와 부를 꼭 안고 서있는 윤승아의 모습은 주변 공기마저 따뜻하게 만들었다. “작가라는 이름은 아직 어색해요. 부끄럽고요. 책을 내려고 결심한 건, 초보 개 엄마들에게 좋은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윤승아와 절친인 가수 이효리 역시, 지난해 반려견 순심이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가까이』를 출간했다. 윤승아의 『강아지야, 너 무슨 생각해?』는 에세이에 실용적인 정보까지 더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유용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다.




밤비와 부가 웃을 때, 덩달아 행복해져요

“신기해요. 이게 정말 제 책 맞아요?(웃음) 좋은 작품을 만날 때도 행복하지만, 『강아지야, 너 무슨 생각해?』를 쓰면서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설렜어요. 빨리 완성본을 받아보고 싶었는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펫승아, 애견스타, 동물애호가. 언제부턴가 배우 윤승아 이름 앞에는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가 떠나질 않는다. 트위터(https://twitter.com/bambi0929) 주소뿐 아니라, 프로필 사진 또한 윤승아의 얼굴 대신 밤비와 부의 모습이다. 『강아지야, 너 무슨 생각해?』출간 제의를 받고, 윤승아는 노트북을 꺼내는 대신 필통 속 연필을 꺼내 손 글씨로 글을 썼다. 책 제목도 직접 지었다.

“출판 마지막 단계에서 출판사와 여러 가지 미팅을 하던 중에 떠오른 제목이에요. 우리가 강아지를 키우면 어떤 질문을 가장 하고 싶어할까를 이야기하다가 나왔던 질문이었어요. 가장 기초적인 질문일 수 있지만, 가장 궁금하잖아요. 우리 강아지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지(웃음). 제목을 듣고, 아직까지는 많이들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요. 딱, 윤승아가 지은 제목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시고요.”

윤승아는 엄청난 에너지의 소유자인 다섯 살 웰시코기 ‘밤비’와 섬세하고 예민한 네 살 닥스훈트 ‘부’와 6년째 함께 살고 있다. 『강아지야, 너 무슨 생각해?』의 당당한 두 주인공 ‘밤비’는 작은 몸에 비해 귀가 유독 커서 애니메이션 주인공 이름을 따왔고, ‘부’는 윤승아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의 울보 꼬마 이름을 가져왔다.

“밤비는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매력적이에요. 엉덩이에 반해서 제가 딱 찜 했죠(웃음). 부는 밤비가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분양이 안 된 강아지였어요. 다른 강아지들에 비해서 작고 좀 아파서,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었어요. 덕분에 저를 만나게 됐지만요(웃음).”

밤비를 처음 가족으로 맞이한 날, 윤승아는 온통 ‘밤비’ 생각뿐이었다. 촬영을 하다가도 친구를 만나면서도, 온통 집에서 자신을 기다릴 ‘밤비’ 걱정이었다. 밤비가 가족이 되어 기쁜 반면, 걱정도 늘었다. 많은 강아지들이 주인이 없는 시간에 외로움과 공포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주인이 집을 비우면 신발을 물어뜯고 휴지통을 뒤지고 문제를 일으키는 개들이 있는데, 외로워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밤비 덕분에 외로움이 줄었지만, 밤비는 제가 없는 시간에 더 큰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는 거였어요. 그래서 ‘부’를 둘째로 맞이했어요. 사실 밤비를 키우는 걸로도 벅찼지만, 그 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서 유난히 작고 힘없던 ‘부’. 윤승아는 동물병원에서 부를 볼 때마다 묘하게 끌렸다. 앙증맞은 숏다리와 윤기 흐르는 까만 털. 부는 언제나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부가 윤승아와 밤비의 가족이 되어 집에 들어온 날. 질투가 많은 첫째 밤비지만, 자신의 동생이 온 걸 알았는지, 밤비는 이상하게도 부에게는 경계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각자 영역에서 생활하지만, 간혹 다른 강아지 무리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똘똘 뭉치는 밤비와 부다.

“솔직히 밤비가 이렇게 커질지 몰랐고, 부가 이렇게 계속 작을지 몰랐어요(웃음). 나름대로 강아지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이 많더라고요. 반려견을 키운다는 건 무엇보다 책임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관상용으로 그냥 귀여워서, 나만 즐겁자고 키우는 게 아니니까요.”




배우로서 더 편안해졌어요

밤비와 부의 엄마가 되고 난 후, 윤승아는 외로울 틈이 없다. 그녀가 기분이 좋을 때는 방방 뛰면서 짖어내고, 그녀가 우울한 모습을 보이면 옆에 앉아서는 가만히 온기를 전하는 밤비와 부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제가 눈물을 흘리면, 저한테 다가와 손등을 핥기도 해요. 이럴 땐 정말 가슴이 뭉클해져요. 밤비와 부의 위로 방법인 걸까요? 정말 제 기분을 아는 것 같아요. 사실 배우로 데뷔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휴식을 갖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밤비와 부가 가족이 되면서부터는 일부러라도 아이들을 산책 시켜주러 나가야 하니까요. 자연스럽게 저도 활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주변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가게 됐어요. 스스로 좀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배우에게는 작품이 끝날 때만큼 허전한 때가 없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공허함을 윤승아는 밤비와 부를 만나면서부터 조금씩 덜 느끼고 있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꼬리를 흔들며 그녀를 반겨주는 밤비와 부. 윤승아만이 읽을 수 있는 밤비와 부의 미소는 그녀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밤비와 부를 보다 보면, 웃을 때가 있어요. 미소를 짓는 표정들이 있어요. 그 행복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저도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요(웃음). 언젠가 TV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동물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신기함을 넘어서 부러운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저한테는 그런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더 공부하고 가까워지면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이 책도 쓰게 된 거고요.”

윤승아는 『강아지야, 너 무슨 생각해?』를 통해 강아지를 ‘더 잘’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한편 연예인이 쓴 감성 에세이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 밤비와 부의 주치의인 김건호 치료멍멍동물병원 원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가 6년차 개 엄마지만, 전문가도 아니고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제가 책을 쓴 의도에 벗어나는 일이 되니까, 원장님께 감수를 부탁했어요. 강아지와 더 오래,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들을 정리해주셨는데 몰랐던 사실들도 많아서 큰 도움이 됐어요.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나, 준비 없이 반려견을 만나게 되어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윤승아는 사진작가 김태은, 디자이너 요니P, 스티브J,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가수 이효리와 함께 ‘동사모(동물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다. 동사모 회원들은 주말이 되면 각자의 반려견을 데리고 한강으로 집합한다. 반려견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그들에게도 가장 편한 휴식처다.

“배우라는 직업이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비치는 모습이 중요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스스로를 억압할 때가 많았어요. 너무 힘이 들어 효리 언니에게 이야기했더니, 언니가 그럴 때 보호소를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른 채 그곳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면 느끼는 게 있을 거라고요. 그 때부터 유기견 보호소를 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무거운 마음으로 갔지만 지금은 제 에너지의 원천, 힐링의 장소가 됐어요. 견사를 청소하고 목욕을 시키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는 잊어버린 채 웃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웃음). 아이들을 위한 봉사로 시작했지만 결국 내 자신을 위한 봉사가 되었어요.”

윤승아는 『강아지야, 너 무슨 생각해?』수익금의 일부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를 돕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그녀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제게 준 선물에 비해서는 정말 작아요. 더 큰 행복을 얻었으니까요.”


김건호 원장의 ‘강아지 몸짓언어 읽는 법’

똑바로 시선을 맞춘다

강아지들이 눈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원래 공격 위협, 우위성의 표현, 무언가를 요구하는 상태이지만 주인이나 친한 사이의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반대로 상대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복종 혹은 공포를 나타내는 신호다.

코를 낼름 햛는다

강아지가 긴장하고 있는 상태. 코를 핥아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진정시킨다. 또 자세를 낮추고 앉아 상대가 자신의 냄새를 맡게 허락하거나 상대 개의 코를 자신의 코로 가볍게 건드린다면, 상대의 접근을 허용하고, 상대의 우위를 받아들인다는 표현이다.

배를 보이고 눕는다

배를 보이고 누우면 상대가 다가와도 방어를 할 수 없기에 상대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알거나 상대에게 복종할 때 배를 보인다. 쓰다듬어 달라고 응석 부리는 행동일 수도 있다.

몸을 크게 턴다

몸이 젖은 것이 아닌데 몸을 터는 것은 ‘공격할 의사가 없으니 진정하자’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성견의 경우 스트레스를 떨쳐낼 때 자주 몸을 턴다.

몸을 긁는다

불안감, 불쾌감 등에서 벗어나고자 뒷발로 몸을 긁으며 몸과 마음을 푼다.

혀를 내밀고 있다

강아지들은 혀를 내밀어 침을 증발시켜 체온을 조절한다. 때문에 강아지가 혀를 내밀고 있을 때는 더위를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혀를 내미는 이유가 꼭 체온 때문만은 아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할 때 혀를 내밀고 있기도 한다.

귀가 바짝 서 있거나 귀를 약간 앞으로 기울인다

새로운 것을 보거나 예상 밖의 일이 벌어져 상황에 주목하며 주변 정보를 모으고 있다. 반대로 머리에 가깝게 바짝 귀를 뒤로 엎거나 뒤나 아래로 움직이는 것은 보통 불안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상대를 진정시키려는 복종의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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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야, 너 무슨 생각해?윤승아 저/김건호 감수 | 북노마드
동물애호가라는 수식어를 얻은 배우 윤승아가 전하는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 오랜 시간 반려견 밤비, 부와 함께해온 그녀가 반려견과 교감하여 더 오래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반려견과의 실제 일화들로 구성한 에세이에 수의사의 감수를 더했다. 반려견을 키우는 모든 이들이 겪을 만한 소소한 에피소드는 공감을 자아내고, 전문가의 조언은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밤비와 부에게 받은 사랑을 되갚기 위해 동물보호활동을 시작한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반려견이 삶을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진향, 20대 CEO라는 화려한 이면에 숨겨진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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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드러난 백조의 모습은 우아하지만, 물 속에 있는 백조는 움직일 때 다리를 바쁘게 움직인다. 그래서 ‘백조의 발’은 우아함 뒤에는 숨은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킬 때 쓰이곤 한다. 그런 면에서 『스물여덟, 구두를 고쳐 신을 시간』의 저자 김진향과 ‘백조의 발’이라는 표현은 꽤나 어울린다. 그녀를 위해 ‘백조의 구두’라고 표현해도 될 성 싶다.


김진향. 나이는 스물 여덟. 본업은 수제화 브랜드인 ‘브이너스’ 대표 겸 디자이너. 본업 외에 부업 혹은 특기를 살린 직업으로 모델, 봉사활동가, 라디오 CJ, 가수 등으로 활동 중이다. 비록 처음으로 낸 책이라 출판계에는 생소하나 페이스북에서 그녀의 이름은 유명하다. 1만 명이 넘는 친구가 매일 그녀의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다. 그녀의 이러한 모습은 우아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화려하다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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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른도 넘기지 않은 내가 구두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고, 신사동에 숍이 있다고 말하면 “부모 잘 만나서 어린 나이에 폼 나는 일하며, 그림 그리고 여행 다니는, 별 고민 없는 여자애겠지.”란 반응이 오기도 한다. (중략) 내게 풍족한 자산이 있다면, 그건 내가 겪은 수많은 경험들뿐이다.

나의 아버지는 10여 년 이상을 병상에 누워 계시다 내가 수능시험을 마친 후 이제 가도 되겠다는 듯 돌아가셨다. 엄마는 나와 내 동생들을 키우기 위해 노점에서 분식을 팔았다. 난 학창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왔으며… (중략) 다단계의 유혹에 빠진 적도 있고 2,000만 원이 넘는 사채를 써서 두려움과 눈물의 나날을 보낸 적도 있으며, 살던 집이 무너져 내린 적도 있었다. (프롤로그 중)


책에서 고백했듯, 김진향의 우아함 뒤에는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진 노력이 있었다. (실제로, 눈물이 많은 그녀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글썽였다.) 김진향이 쓰고 그린 첫 번째 책 『스물여덟, 구두를 고쳐 신을 시간』은 그녀가 흘린 눈물, 땀에 관한 기록이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 그녀의 삶에도 행복했던 순간이 있고 슬펐던 시절도 있다. 이에 관한 기록을 블로그에, 페이스북에 차곡차곡 모은 게 어느덧 책이 됐다.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


첫 번째 책 출간을 축하합니다. 책 내고 어떻게 지냈나요?


11월 일정이 꽉 찰 만큼 바쁜데, 재미있죠. 불러주는 곳이 많아 감사하죠. 강의도 많고, 토크 콘서트 같은 행사도 있고요. 책이 나오고 섭외를 위해 연락 주는 분도 있어요.


제목인 ‘스물 여덟, 구두를 고쳐 신을 시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합니다.


스물여덟까지 운동화 끈을 꽉 메고 달려 왔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일을 했고 다른 사람이 본다면 뭔가를 이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요. 제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구두를 고쳐 신겠다, 앞으로 전진하겠다, 이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책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자전적인 이야기잖아요. 아빠, 엄마 이야기도 담았고요. 카페에서 주로 원고를 썼는데, 쓰고 나면 갈색 휴지가 수북이 쌓였죠. 책에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구두와 관련해 쓴 글 외에도 정보도 담았어요. 구두 만들면서 도움 받은 책 목록 같은 코너요. 소설 같은 짧은 글도 실었고요. 의외로 ‘진향이의 연애소설’ 꼭지가 반응이 좋더라고요.


‘구두 제작에 관해 공부할 수 있는 책들’을 보니, 평소에도 책을 꾸준히 읽을 것 같아요.


돈이 안 들게 배우는 걸 좋아해요. 책도 읽게 되죠. 쇼핑몰 만들 때도 따로 돈 들이지 않고 주변에 조언 구하며 만들었거든요. 그래도 모를 때는 책에서 찾고요. 좋아하는 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입니다. 어릴 때 『개미』,『뇌』, 『나무』등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상경, 퇴사 그리고 바이탈 커뮤니케이터


사투리 억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김진향의 목소리에서 그녀의 고향이 울산이라는 사실은 추측하기 어렵다. 사춘기의 마지막을 울산에서 보내던 그녀에게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진향아, 서울로 와”. 이 한 마디에 그녀는 짐을 싼다. 서울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다.


서울로 가야겠다, 이렇게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울산도 좋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서울로 가야겠더군요. 노래, 연기, 모델 쪽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서울에서 회사 생활도 꽤 했잖아요. 보장된 월급을 버리고, 독립을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낮에 모델일 하며 동대문에서 매장 관리도 했고요. 광고 회사 다니다, 토지개발 쪽 총무 비서 일도 하고요. 회사생활을 3~4년 했네요. 회사생활도 좋았으나 울산에서 올라왔을 때 하고 싶었던 꿈이 생각나더라고요. 외부활동을 좋아하는데, 회사 다니면 시간이 안 나니 하기가 쉽지 않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로 출근하는 생활이 안정되고 좋지만, 이런 생활이 원하는 삶은 아니었어요.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의무감에서 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서울 올 때 품었던 꿈을 좇아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회사를 관뒀죠.


바이탈 커뮤니케이터라는 명칭은 어떻게 생겼나요?


직업이 계속 바뀌다 보니,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는 직업과 사람을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고민을 했죠. 마침 브랜딩 전문가 한아타 작가가 ‘바이탈 커뮤니케이터’가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라고요. 제가 하는 일 중에 강연, 노래, 봉사활동 등이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는 행위니까, 활력(vital)으로 소통하는 사람(communicator)이 어떻겠냐고요. 다소 길어서 고민했는데, 뜻이 좋아 쓰기로 결정했죠.


직관적인 김진향닷컴, 김진향닷넷, 이런 이름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진향컴퍼니를 준비 중입니다. (웃음) 제가 하던 활동을 확장해서 문화, 교육, 패션 이 세 분야로써 활력을 나누는 게 목표에요. 1회로 부산에서 바이탈 쇼를 열었고요. 11월 11일, ‘커피 한잔 할래요’와 좀 더 깊게 ‘김진향 쇼’를 기획하고 있어요. 하루 수면 시간이 2~3시간 정도로 거의 안 자는 편인데도, 이제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여러분의 재능 기부가 필요해요. (웃음) ‘나꿈소’라는 강연에서도 말했지만, 최종 목표는 활력이 넘치는 지구 만들기에요. 진향컴퍼니가 잘 되면 확장, 확장해서 최종 목표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아직 20대인데 또래보다 많은 걸 겪으셨잖아요. 회사도 다녔고 창업도 해 봤고, 사채도 써 봤고요. 직접 겪어 보니 한국사회는 어떤가요?


뭔가를 할 때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주변 시선을 의식해요. 저도 많이 그랬고요. 안타깝죠. 외국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즐겁게 하잖아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만들고 싶은 게 꿈이죠.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주변에서 지지하고 응원하면 잘 할 수 있잖아요. 서로 응원해주면 좋겠어요.


라디오 CJ라든지 모델, 노래 이쪽은 연예계와 밀접한 분야잖아요. 연예계에서 활동할 욕심은 없나요?


라디오는 잠시 멈춘 상태고요. 연예 기획사로부터 간혹 제안이 오긴 합니다만, 어디 소속되어 활동하기보다는 혼자 움직이는 게 좋아요. 재밌기도 하고 활동 폭도 넓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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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남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하는 일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나눔은 김진향이 생각하는 주요한 가치 중 하나다.


봉사활동에도 애착이 많잖아요.


기독교가 사랑과 섬김, 나눔을 중요하게 여기니 저를 기독교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종교는 없습니다. 절에도 가고 교회에도 가죠. 어디든 배울 게 있으니까요. 어릴 때 풍족하지 않아서,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나누려고 하는 면도 있고, 나누면 스스로가 치유가 되죠. 그 행동 자체가 매력 있고 뜻 깊어요. 나눔은 남을 위해서 할 수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일 수도 있어요. 행사 기획에 나눔이라는 요소를 꼭 넣으려 해요. 그림을 어릴 때부터 그렸는데요. 컵에 그림을 넣어 판매해서 일정 수익금을 기부한 적이 있어요. 지금도 초상화는 요청이 들어오면 그려 드립니다.


롤 모델은 누구인가요?


책에도 적었듯, 오드리 햅번이에요.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노년에 많이 나눴잖아요. 제가 추구하는 삶이에요.


활력 넘치는 지구가 최종 목표라고 했어요. 이것 외에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어머니께 집을 사 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녀가 잠시 울먹거렸다. 꿈 많고 활력도 많지만, 눈물도 많은 김진향이었다. 끝으로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한 마디를 부탁했다.


“제가 잘난 사람이 아닌 걸 압니다. 『스물여덟, 구두를 고쳐 신을 시간』은 잘난 척 하려고 쓴 책이 아닙니다. 김진향이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걸 보여 주고 드리고 싶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희망을 갖고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다소 생뚱맞지만 글 처음에 꺼냈던 ‘백조 발’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백조는 물에 떠 있기 위해 갈퀴질을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물 위에 떠 있을 때는 부력만으로 가능하다. 갈퀴를 움직일 필요가 없다. 다만,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힘찬 갈퀴질이 필요하다. 그러니 ‘백조의 발’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전진을 상징하는 표현인 셈이다. 구두를 새로 신고 전진을 준비하는 김진향, 그녀의 비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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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동일이 말하는 대박나는 가게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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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던가. 적어도 점심시간과 저녁 회식을 통해 직장인들의 눈에 띄는 거리 곳곳의 점포들은 하나같이 돈을 쓸어 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잘 되는 듯 했던 식당이 1년을 가지 못하고, 어떤 점포는 수시로 개업과 폐업을 반복한다. 경제 호황기에는 그래도 ‘권리금 꽤 받고 나갔나보다’ 싶지만, 요즘같이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치는 마당에 그도 아닐 터, 그렇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창업 시장이 그리 만만한 상황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활기가 넘치는 듯한 거리지만, 그 뒤에는 상인들의 희망과 좌절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 중 아주 극소수는 성공하는 이도 있다. 남들과 다른 그 무엇, 차별화에 성공했거나 놀라운 성실함, 서비스 정신으로 고객의 인정을 받은 가게들이다. 각각의 상황이 다르겠지만, 그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창업을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승부수를 띄웠고, 나름의 장인정신으로 무장 돼 있다는 것 역시 특징이다. 작게는 수억대에서 크게는 몇 백억 대의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그들의 초심은 변하지 않는다. 부자들의 비법을 알고자 프라이빗 뱅커가 됐다는 신동일 저자는 그간 『한국의 슈퍼리치』, 『슈퍼리치의 습관』을 세상에 내 놓으며 자신의 깨달음을 공유했다. 『한국의 장사꾼들』역시 그 취지는 다르지 않지만, 담고 있는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동안 부자의 생각과 노하우에 천착해온 저자가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을 탐구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샐러리맨들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는 비결, 이제부터 알아보자.




성공의 비결을 향한 끝없는 관심

부자들의 비결, 장사꾼들의 성공 방정식을 찾고자 했다는 신동일 저자지만, 사실 그 역시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프라이빗 뱅커다. 수백 수십억의 자산을 가진 부자들은 그와 상담을 하기 위해 KB국민은행 PB센터를 찾는다. 최고의 자산관리 실적을 인정받아 ‘2012년 대한민국 베스트뱅커 PB대상’을 비롯해 KB국민은행 최초로 국은인상을 2회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국민은행장을 목표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노력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목마르다고 말한다.

『한국의 장사꾼들』은 세 번째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슈퍼리치』, 『슈퍼리치의 습관』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을 듯 한데요.

PB된지 이제 8년 정도 됐어요. 은행에 근무하면서 성공에 대한 갈망이 남달랐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성공의 비결을 알아내는 방법 중 가장 빠른 길은 성공한 사람들 만나는 것이었죠. PB가 된 이후 100억대, 1000억대 자산가들 만나다 보니까 역시 비결이 보이더군요. 그러다 책도 쓰게 된 거고요. 그런데 앞선 두 권의 책은 엄청난 자산가를 주제로 삼다보니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독자들에게 좀 더 깊은 성공의 원천을 알려주고 싶었죠. 그 원천을 파고들다보니 결국은 사업이더라고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장사죠.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요식업을 중심으로 성공한 분들을 찾았어요. 결국 그분들이 10년, 20년 후가 됐을 때 제가 PB센터에서 만나는 자산가가 되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저자님 나름의 취재 노하우와 책을 집필하시는 열정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금융인의 삶과는 또 다른 작가의 삶에서 얻는 것이 있다면?

일단은 좋은 분들 많이 만나는 게 최대 장점이었어요. 저 역시 샐러리맨 신분이지만, 그래도 모토는 ‘샐러리맨도 백억 대 부자가 될 수 있다’였거든요. 그런 생각을 전제로 장사꾼들을 만나면서 점차 확신을 굳히게 됐죠. 어떻게 보면 제 일이 금융과 관련된 분들만 상대할 수 있는데, 다른 분야의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어요. 책을 통해 정말 좋은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죠.

보통 저자들은 한권의 책을 완성한다는 것이 매번 쉽지 않다고 하시는데, 저자님의 경우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솔직히 이 책을 쓸 때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웃음). 이번 책에서는 각 파트 말미에 QR코드를 넣고 동영상을 볼 수 있게끔 했거든요. 그러다보니 인터뷰를 3번, 5번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제가 아무리 주말을 활용하고 잠을 줄인다 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래서 더 애착이 가요. 이 책을 통해 만난 분들은 대부분이 아직 성공 직전에 있는 분들이에요. 그분들을 통해 평범한 사람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보람도 있었고요.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를 돌이키시는 분들 중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럴 땐 정말 가슴이 뭉클했죠. 그 분들의 마음을 책에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뿌듯하네요.




장사꾼들의 꿈과 열정을 기록하다
저자는 장사꾼들을 인터뷰하며 종종 아내와 딸을 대동했다고 한다. 가족들과도 벅찬 감동과 희망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그의 생각대로 아내와 아이들은 인터뷰를 보고 들으며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럴수록 저자는 장사꾼들의 꿈과 열정을 더욱 생생하게 책 속으로 녹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렇게 책을 통해 그는 ‘누구나 최고의 장사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장사의 속성 그 말을 뒤집어 보면 ‘누구나 최악의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라고도 하는데, 작가님께서는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성공을 위한 가장 큰 조건은 절박함인 것 같아요. 한번 뿐인 인생을 정말 제대로 살고 싶다는 꿈, 가슴 속 꿈을 현실로 만들어보겠다는 간절한 절박함이 있어야지만 인생을 빛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으로는 인간성이라 생각해요. 요즘은 사회가 각박해서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제가 만난 분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제가 ‘신동일의 꿈발전소’를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우리사회에서 부자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이유는 베풀지 않기 때문이잖아요. 실제로 많은 부자들이 있지만 그들 중 80%는 행복하게 보이지 않거든요. 물론 어렵게 모은 재산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럼에도 그런 부자들이 적지만 존재해요. 금융자산기준으로 10억 이상 되신 분이 대략 16만 명이라 했을 때 그 0.1%에 해당하는 분들이 그렇죠. 제가 꿈발전소를 만든 이유가 그런 분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서예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기꺼이 자기가 돈이나 재능기부를 해서 강의와 1대1 멘토링을 해주고 계세요. 제 목표는 단순히 책에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더 큰 목표는 행복한 부자들이 많아지는 세상, 그들을 통해 뭔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죠.

책 속에 ‘성공의 10계명’을 통해서도 언급하셨지만, 만나본 여러 장사꾼들에게 발견할 수 있었던 공통점이 있을 듯 합니다. 저자님께서는 그중 최고의 가치로 무엇을 꼽으시나요?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님의 ‘고객을 위해서 정말 행복한 종이 되자’는 말이 떠오르네요. 정말 ‘꾼’이 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진심으로 고객을 위할 때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저 역시도 정말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는지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역시 진심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10만원으로 시작한 작은 장사여도 남기겠다는 생각보다 고객을 진심으로 위한다는 생각으로 일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꾼’들의 마음가짐이었어요.




인생의 2번째 도전 늦지 않았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작 작가 본인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그 역시도 누구보다 노력한 삶이었고, 그 덕분에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의 취지를 살짝 벗어나 금융인으로서 그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취재하신 분들 못지않게 저자님 역시 노력하는 삶,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신 듯 한데요. 금융인으로서 작가님의 원칙과 신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마케터에요. 마케터는 장사꾼이 가져야 될 요건 중에 ‘잘 팔아야 한다’는 부분에 특화된 사람이죠. 음식을 잘 팔려면 음식 잘 만들 줄 알아야 하듯, 저도 누구보다 내가 팔려는 상품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어요. 사실 제가 독한 면이 있어요(웃음). 전기도 안들어 오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고, 대한민국 최고의 PB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 왔죠.

그럼에도 장사꾼들과 비교해 자신을 샐러리맨으로 선 그었습니다. 어떤 한계를 절감하셨기 때문인가요?

그렇죠. 물론 제가 책을 쓰면서 만나 뵌 분들 역시 샐러리맨 출신이 많아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유능하고 최고의 샐러리맨이 되도 월급은 정해져 있다는 거죠. 억대 연봉을 10년 받는다고 해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10억 원 정도에요. 또 100세 시대 접어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2모작, 3모작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제가 책을 쓰면서 장사꾼들에게 배운 것은 뭐든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최소 3년, 많게는 10년을 준비하신 분들이 많더군요. 샐러리맨에게 정해진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길게 가야 55세 정도죠.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지금 당장 업무시간에 딴 짓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현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현직에서 최고가 돼야 하고 거기서 최고가 되면 자연히 기회는 온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제가 샐러리맨이라는 한계를 긋는 이유는 저 자신이 더 프로가 되기 위해서예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셈이죠(웃음).

말씀처럼 성공을 향해 달려가기에 앞서 마음가짐이 중요할 듯 한데요. 장사꾼의 꿈을 꾸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여의도떡방의 김옥희 대표님 말처럼 자투리 시간에 노력을 기울이라고 하고 싶어요. 샐러리맨이 보통은 출근 전, 퇴근 후의 시간이 있고 주말이 있는데 대부분은 그 시간을 그냥 보내죠. 그게 너무 아깝지 않나요? 마음만 먹으면 출근 시간 보다 1~2시간 빨리 나와 평소 관심 있는 분야를 경험할 수 있거든요. 김옥희 대표는 그 차이가 성공을 가름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직접 액션플랜을 실행하라는 거예요. 자산관리도 적극적으로 경매를 쫓아다니며 주말에 발품 파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인터넷만 클릭해서 하는 분이 있어요. 분명히 수익률에 차이가 있죠. 마찬가지로 장사나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도 업무시간에 할 수는 없잖아요. 주말에 이틀 중에 하루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관심 있는 분야에 투자를 한다면 분명히 차이가 생겨요.




꿈 기록자를 넘어 꿈 도우미로

앞서 잠시 언급된 ‘신동일 꿈발전소(http://blog.naver.com/worldtoppb)’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단순히 꿈 기록자를 넘어 꿈 도우미로 나서고 있다. 자신의 꿈노트를 보여주며 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단순히 금융인, 저자로만 살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신동일 꿈발전소’를 통해 ‘부자’의 꿈을 꾸는 사람들을 코칭해주는 일도 하고 계신데요.

저는 ‘꿈노트’라는 걸 적어요. 항상 새해가 되면 새로운 꿈을 적고 목표로 삼죠. 늘 가지고 다니며 마음이 약해질 때 꺼내보곤 해요. 의외로 굉장히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더군요. 단순히 적는 것뿐인데도 꽤 많은 꿈이 이뤄졌어요. 꿈발전소는 그런 경험과 책을 쓰며 만난 분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만들어졌어요. 책을 쓰고 나서 이런 구상을 하게 됐고, 지난해부터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꿈발전소는 정말 행복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이 찾아와요. 사실 성공한 슈퍼리치의 80% 이상은 자기 성공을 나누거나 자기 스토리가 알려지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아요. 그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꿈발전소는 조금씩 규모를 늘려가고 있어요.

실제 꿈발전소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 분들이 계시나요?

34세의 피아니스트 한 분이 떠오르네요.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해서 28년간을 피아노를 치며 후회 없이 살아왔는데, 제 책을 접하고 사업가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꿈발전소에 참여하며 실제로 음식점을 창업하기도 했고요.

저자님의 최종 꿈, 목표는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최고의 PB는 되어봤고, 지금은 국민은행장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만약 그 꿈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제 나이는 55세나 60정도 밖에 안되겠죠. 그래도 30년 남아요. 남은 기간은 꿈발전소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나눠주고 싶어요. 그 꿈이 이뤄진 후에 생의 마지막에는 빈손으로 가고 싶어요.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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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사꾼들신동일 저 | 리더스북
바닥에서 자수성가한 대한민국 최고 장사꾼들의 성공 스토리를 한 권에 담았다. ‘월 순수익 1억’을 실현시킨 족발집 사장, 사업가의 꿈을 위해 잘나가던 은행을 그만둔 웨딩쇼핑몰 대표, 젊은 감각과 열정으로 택배기사에서 전국 체인식당 사장이 된 청년, 수차례 절망 끝에 아내의 손맛으로 재기한 50대 칼국숫집 사장, 치밀한 준비로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성공가도를 달려 빌딩부자가 된 반찬가게 아주머니 등, 무에서 유를 이루고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 ‘한국의 장사꾼들’ 17인의 리얼 스토리가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장필순 “7집에서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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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쑥스러워하지만 ‘명반 아티스트’라는 수식은 장필순의 전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1988년 첫 앨범이 나온 이후 그처럼 매번 신보가 나올 때마다 팬들과 음악관계자들의 관심과 성원의 집중세례를 받는 가수는, 특히 여가수는 솔직히 거의 없다. 다시 한 번 정서와 지향 그리고 사운드에 변화를 준 이번 7집에도 전문가들과 마니아들의 숭배에 가까운 찬사가 이어졌다.

현재 거주하는 제주에 직접 내려가 평화로 부근의 한 카페에서 장필순을 만났다. 신보의 녹음도 거기서 했을 만큼 제주는 장필순 음악에 암암리에 작용한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제주의 공기가 지켜주는 것 같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본인도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11년 전 6집이 나왔을 때 인터뷰보다는 한결 환해진 인상이었다. 나른하면서도 격조를 지킨 버스(verse)에 꽤 명랑하고 다채로운 코러스(Chorus)의 대비와 조화가 압권인 신보에 대해 “재미있게 코러스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지난 앨범 활동 당시 홍대에서 만나서 인터뷰할 때는 부쩍 지친 모습이었는데.

6집할 때는 정말 맘고생이 심했던 것 같아요. (음악을 워낙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이자) 재미있게 하지를 못해요. 그냥 태생인 것 같아요. 좋고 나쁘고의 선택이 아니라. (조)동익이 형도 그런 스타일인 것 같고. 어쨌든 둘이 5장의 앨범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이러한 사이클이 맞았던 덕분이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20년 이상 함께 작업 하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6집이 비평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대중적, 상업적 결과가 따라주지 못했다. ‘음악 안한다’는 말이 들릴 만큼 음악에 대한 회의가 든 것 같았다.

그게 다는 아니긴 한데 (그 이유도) 없지는 않았어요. 이게 현실적인 문제라기 보단 심정적인 문제인 거죠. 하면서 재미가 없어진다고 할까. 여태까지 해온 게 음악 듣고 이야기 하고 그런 거였는데. 그래도 만든 음악들에 대해서 좋다고 해주시니까 그 낙에 한 거죠.

당시 음악이 아이돌을 비롯한 비주얼로 무게중심이 완전히 이동했던 때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애써 만든 2003년의 조용필의 18집도 참패하지 않았는가.

흘러가는 그런 걸 잘 모르니까. 항상 하던 대로 저 하는 일만 하는 스타일이잖아요. 환경이란 게 절대적인 게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러한 점도 분명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런 와중에 앨범작업을 다시 시작한 데에는 함춘호씨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다.

제가 예전부터 언젠가 좋은 CCM을 해보고 싶었었는데, 자신도 없었고 어설프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의지가 많이 흐려졌었는데, 뜬금없이 춘호 형이 와서 밀어 붙였죠. 제주도 와서 얘길 하셨는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때도 동익이 형이 힘을 줬죠. 형도 그땐 거의 음악에 손을 안대고 있었는데 의논을 좀 하니까 그러면 정말 100% 네 곡을 가지고 네 음악을 해보라고 하셨죠. CCM이라 조심스러워하는 제게 편하게 하라고, 네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해보라고, 그러면 언젠가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나중에 너에게 크게 다가올 것이라고 격려 해줬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두세 달 만에 10곡을 다 썼었죠. 제주에서 마스터링을 했는데, 동익이 형이 듣더니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철저히 아날로그 음악으로 잘 풀어간 것 같아요. 이틀 녹음 했는데 80% 이상이 동시녹음이었거든요. 노래도 가이드한 걸 다 넣었어요. 터치가 조금 불편한 것이 라이브한 것 같아 더 좋다고 그래서.




앨범에 참여한 면면들을 보니 ‘하나 디아스포라의 부분 집결’ 같은 느낌이다 (앨범은 조동진, 조동익, 함춘호, 박용준, 이규호 등 ‘하나음악’ 식구들이 대거 참여했다)

하나음악과 함께 하기로 계약된 건 5집까지였는데 6집도 하나에서 냈죠. 제가 하나음악을 하면서 좋은 음반들을 만든다고 애썼지만, 아시다시피 대외적으로는 반응이 오질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우린 좋은 음악 한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제 생각에는 10년 동안 신나라 유통도 하나음악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랬는데 결국에는 동익이 형도 저도, 그것에 대해 심적으로 힘들었던 거 같아요.

정규앨범이 11년 만인데, 보컬 부분은 어땠나.

노래 실력은 현저히 떨어졌고요.(웃음) 그 대신 의도하려는 표현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계속 활동하질 않아서 힘이 떨어졌는데도, 정작 녹음할 때는 몇 번 안 불렀어요.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왜 그랬나 생각해보면, 녹음 당일에 목이 좀 잠기거나 상태가 좀 안 좋아서 오히려 최상의 컨디션에서 노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덜 했던 것 같아요. 동익이 형도 전달하는 느낌이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더 이상 좋게 할 필요가 없다면서. 거기서 합의점을 찾았죠.

나른함, 건조감, 윤기 등이 노래에 따라 잘 배분이 되었다.

보이스 톤을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이번 앨범을 하면서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왜 샤우팅을 했느냐,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느냐라는 거였는데 사실 아무 의미 없어요. 편곡하고 불러보고 간주를 만들어 연주한 다음 그걸 같이 듣다가 이쯤에서 질러주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와 한 거지, 특별한 이유가 없죠. 모든 노래의 톤을 다양하게 해야지 이게 아니라, 그 톤이 필요에 의해 딱 정해지는 순간이 생겨요.

음색 자체는 예전보다도 더 좋아진 느낌이 든다. 제주도의 영향인가.(웃음)

영향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톤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첫 곡에서 톤의 변화 없이 부르다가 샤우팅을 하잖아요. 사실 꼭 언젠가 이 노래를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처절한 가사잖아요. 대중, 청자, 그리고 회색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싶었어요. 소리 한번 못 지르는 현대인들을 위해서. 이외수 선생님이 대중예술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나 아픔을 대변해야 되는 책임이 있다고 한 적이 있으신데 굉장히 공감해요. 살면서 평생 그런 것을 표현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럴 때 그런 사람들이 표출하지 않고 가슴에 가라앉혀 거름을 만들게끔 하는 것이 대중예술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사실 (음악 하는 게) 무서운 직업이죠. 어떤 노래 하나로 어떤 이들의 인생이 뒤집어 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 질 수 밖에 없어요. 그래도 어떤 사람의 긍정적인 변화가 나로 인해 생겼다면 그 기운이 다시 저에게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것은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한 곡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앨범 전체적으로 따지면 좀 튀는 곡이긴 하죠. 사실. 5집에는 건반이 없는데, 그 노래 한곡에 건반, 스트링이 있어요. 이게 원래 의도적이었던 게 아닌 게, 마침 용준이가 미국에 가 있길래 괜히 욕심 부리지 말고 올드한 록 사운드 구조로 멋있게 하려고 했던 게 그거였어요, 그런데 동진 형님이 동익아 이 노래 너무 좋다 그러시면서, 그런데 이 노랜 건반을 넣어야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탄생한 노래죠.

전체적으로 신보는 무거운 내용을 코러스로 예쁘게 꾸민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눈부신 세상」 이나 「무중력」 을 들으면 클라이맥스에서 코러스가 강력하게 등장하는데, 그런 것들이 아주 매끈하게 처리된 것 같았다. 오랜 코러스 경험으로 쌓인 내공이 엿보인다고 할까.

코러스를 오래한 경험이 있는데다가 성가대도 알토 파트였었고, 노래를 들으면 어려서부터 음악을 들을 때 멜로디만 듣는 게 아니라 코러스를 듣는 습성이 있었어요. 예전에 김명곤 오빠 같은 경우에는 악보를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제가 코러스를 만들어가야 했어요. 믿어주셨던 거지. 하광훈, 윤상, 김지환씨, 위대한 탄생 (이)호준이 형. 그런 분들 하실 때 한참 막 코러스 하러 다녔었죠. (우)순실이, (신)윤미랑 같이. 악보 보고 몇 년 동안 하다가 점점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하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제가 만들어가게 됐어요. 지금 나한테 결정적인 강점이 된 거죠. 예전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냥 멜로디만 부르는 가수로 남았을지도 몰라요. 그때 시간이 소중했어요.

전자음악적 요소도 두드러지는 부분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렇죠. 6집이 100% 디지털 사운드였다면, 이번에는 음악 자체는 아날로그로 가되 전자음을 필요한 곳에 철저히 집어넣으려 했어요. 그러다 이제 마지막 곡에선 그랜드 피아노랑 트럼펫만 나오거든요. 음반은 하나의 책이나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예전 아날로그 음악과 디지털 음악이 막 섞여 있다가 마지막엔 성당에서 혼자 노래하는 그림을 그리며 이 곡을 만들었어요. 원래 제가 목소리에 리버브와 딜레이를 걸지 않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걸었죠. 그러다가 맨 마지막 잘 들어보시면 딜레이가 싹 빠지는데, 그렇게 음반을 끝내는, 성당 문 닫고 나오는 느낌으로 마무리했어요.




「무중력」 이나 반응이 좋은 「맴맴」 에서 그렇던데, 나이가 드니 오히려 전자음악과 음색의 궁합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동익이 형이 그걸 10년 전부터 얘기했어요. 디지털에 너의 목소리가 잘 맞을 거라고. 그래서 6집을 더욱 디지털 적으로 제작했었죠. 다들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엄청난 조력자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어요, 오랫동안 제 목소리나 음악의 변화를 보고 서포트 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게 제일 큰 재산인가 싶어요.

이 대목에서 조동익씨를 짧게 설명한다면?

글쎄요. 전혀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 같은데 사실 주도면밀하게 잘 알고 있어요. 사회에 대한 시선도 그렇고 굉장히 논리정연해요. 집에 가만히 있는 사람 같은데 항상 한발 앞서 있는 느낌이에요. (조동익이 이미지와 달리 미디 음악에도 능숙하다고 얘기하자) 그런 것과 일맥상통하네요. 새로운 음악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옆에 이런 사람이 있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박용준씨는?

갈수록 보물이 될 친구에요. 용준씨도 대학 다니다가 중퇴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는데, 동익이 형이 먼저 만나고 너무 맘에 들어 하셨어요. 동익이 형 녹음할 때 팀 멤버가 딱 있잖아요. 그런데도 용준이랑 너무 하고 싶었대요. 그래서 일단 열악한 조건에서 할 수 있겠느냐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일단 마스터의 입장이라 멤버가 늘어나면 그 팀 안에서 뭔가가 더 나눠져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용준이가 받아들이면서 같이 하게 되었죠. 예전에는 동익이 형이 녹음하다가 “파 한번 쳐봐” 하면 용준이가 의아하다는 듯이 “엥?”이래요. 그러면 동익이 형이 “에이 일단 쳐보고 들어봐”라고 그러죠. 그래서 녹음한 걸 들어보면 너무 좋은 거지.(웃음) 그런데 요즘은 반대에요. 오히려 동익이 형이 용준이한테 느끼는 게 많죠.

앨범의 첫 곡으로 더할 나위 없는 「눈부신 세상」 은 조동진이 이미 발표했던 한 곡이다. 조동진 선배가 이번 곡을 들었는지.

앨범 나오기 전에 들려드렸죠. 중간에 소리를 막 지르니까 “이런~” 이러시던데요.(웃음) 형수님이 음악을 많이 아시는 분인데, 들으시더니 딱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좋다고. 사실 남편의 곡이잖아요.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 리메이크도 참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어쨌든 노래를 들으니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떠있는 그림이 그려진다고 말씀해 주셔서 황송했지요.




7집을 통해 무엇을 가장 표현하고 싶었나.

‘난 아직 살아있다’라는거? (웃음) 뭐 내가 건재하다 이런 것 보다는, 오랜만에 슬쩍 디밀어 놨는데 그게 멋있길 바랐어요. (이 표현이 너무 멋지다고 하자 활짝 웃었다) 그 안에서 세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고)찬용이나 규호나 오랜 친구지만 처음 혹은 간만에 같이 곡을 작업하기도 했었고, 제주에서 온전히 녹음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하지만 제일 컸던 건 역시 ‘멋있는 것을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었어요. 교만이 아니라, 그렇게 하려면 그만큼 또 열심히 해야 되는 거잖아요. 나이 먹은 값도 하고 싶었고.

그렇다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글쎄요. 그냥 평화로웠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못 견뎌 하는 것 같아요. 평화로운 걸 심심한 것으로 여겨요. 그 심심한 게 얼마나 재밌는 건데, 그 심심함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걸 찾을 수가 있는 건데. 도심에 있으면 선택권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단 말이죠. 쇼핑몰이나 카페, 영화관 정도. 수많은 연극과 영화, 갤러리와 전시회 들이 있는데 대박 나는 건 몇 개 없잖아요. 저 조차도 서울 올라가면 꼭 쇼핑몰 한 번씩 들러요. 그런 단순한 삶의 패턴이 돌아오는 거죠. 그런데 9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여기 있을 때만큼은 도심에 대한 관심이 싹 없어지더라고요. 트렌디한 것에 민감한 제가요. 여기 있을 땐 그냥 장화 신고 텃밭에 가서 일해요. 자연이 많이 저를 변화시켰죠.

취향으로 따지자면, 어느 곡이 제일 좋은가.

참 가혹한 질문인데 굳이 꼽자면 저는 「1동 303호」 랑 마지막 곡 「난 항상 혼자예요」. 사람들이 제 목소리가 쓸쓸하다고 그러는데, 그게 꼭 허스키해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정말 외로움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껴요. 전에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이제는 그걸 어느 순간부턴가 즐기고 있어요. 외로움은 결국 자아를 형성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렇게 남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랫말을 본다면 「너에게 하고 싶은 얘기」 에요. 어쨌든 세상에 대해 조금은 비판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네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인터뷰 : 임진모 황선업
사진 : 황선업
정리 :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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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구모니카 “모든 사람들이 작가로 보여요. 책 한 권 써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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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 올해 마이크임팩트에서는 30대를 준비하는 여성들을 위한 강연 ‘원더우먼 페스티벌’을 열었다. 배우, 작가, 아나운서, 언론인 등 여러 연사가 청중들의 마음을 훔쳤고, 특히 올해로 ‘4’라는 숫자와 친해진 출판인 구모니카의 강연이 큰 호응을 얻었다. 방송사 AD, 잡지사 기자, 출판사 편집자 등을 거쳐 9년 전, 1인출판사 M&K를 설립한 구모니카 대표. 그녀는 30대를 앞둔 후배들에게 “좀 늦게 알게 되더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서른에 들어서도 여전히 예쁘고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고. 일과 사랑, 결혼이라는 큰 선택을 앞둔 그녀들에게 “생각의 틀을 버리고, 나만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라”고 재촉한다.

“30대를 앞둔 후배들이 많이 물어봐요. 30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글쎄요.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라는 에세이, 아세요? 30대에 들어서면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한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죠. 그런데 30대가 된다고 내 삶이 특별하거나 이상하게 변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20대 동생들을 보거나 40대 언니들을 봐도 삶은 그냥 흘러가요. 올해 저는 마흔이 됐어요. 만으로는 아직 서른아홉이죠. 이제 저는 마흔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참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인데, 어른들도 마찬가지에요. 아직도 모르겠다고, 갈피를 못 잡겠다고요. 과연 인생에 답이 있을까요? 자학하고 고민해봤자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이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은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작가로 보여요

어릴 적부터 골목대장을 자처하며 학창시절에도 ‘여자들의 대변인’으로 통했던 구모니카 대표. 여성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호탕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금사빠’, 금방 사랑에 빠져서 큰 일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모든 사람들이 ‘작가’로 보인단다.

“다 끌려요(웃음). 장점이 먼저 보이거든요. 누구든지 자신만의 삶의 철학이 있고 경험이라는 게 있잖아요. 잡지기자 때 습관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의 특성이 아이템인 거예요. 내가 모르는 삶의 방식이니까, ‘아 이런 삶이 있었어?’라고 듣게 되는 거죠. 매력을 먼저 보게 되는 게, 제 본성이자 성격인 것 같아요. 물론 겪다 보면 단점도 보이고 남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이 사람을 파악하죠. 다만, 처음에는 무조건 사랑에 빠져요(웃음).”

2011년 SBS <짝> 13회 ‘노처녀 노총각 특집’ 편에 ‘100번 연애녀’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구모니카 대표. 당시 시청률 경쟁을 하던 <무릎팍도사>가 결방을 하는 바람에 총 4회 분량에 출연했고 시청률도 높았다. 어떻게 연애를 100번이나 할 수 있냐며, 특히 남자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대신 털털하고 소신 있는 성격 때문에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꽤나 응원을 받았다.

“짧게 스친 인연들도 많잖아요. 그런 것들도 일일이 세어보면 그럴 수 있지 않나요? 당시 싱글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있었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연애 과정도 살펴보고 또 어쩌면 내게도 근사한 짝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출연했죠. 제가 독신주의자가 절대 아니거든요(웃음). <짝>에 출연하면서 얻은 장점이요? 음. 결혼을 하고 싶어하고 짝을 정말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진심을 알게 된 것, 아닐까요.”

<짝>에 출연한 뒤 구모니카 대표는 『나는 독한 여자를 연기한다』를 펴냈다. <짝>을 찾겠다고 TV에 출연해놓고 싱글을 예찬하는 책을 썼냐며, 질책을 듣기도 했단다. “그런데 싱글이라고 결혼 안 하겠다는 거 아니잖아요. 잠재적 구혼자인 거죠. 다만 지금 짝이 없을 때도 열심히 살자. 재밌게 살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실패? 상처? 이런 게 다 인생의 ‘소스’에요

일찌감치 1인출판사를 설립한 구모니카 대표는 강의를 나갈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사업, 위험하지 않아요?” “어떻게 시작했어요?” “불안하지 않아요?” 등이다. 구 대표의 대답은 언제나 “힘들지만 후회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젊은 여성들의 큰 고민이 일과 육아를 어떻게 병행할 것인가, 워킹맘을 잘할 수 있을까잖아요.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던 저도 문득, 내가 계속 이렇게 직장인으로만 살 것인가가 고민이더라고요.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니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30대가 되어 보니, ‘왜 사람들은 모두 9 to 6 삶을 사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어떻게 모든 일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사이에 이뤄지겠어요. 그래서 사장님한테 집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 때 출근하면 안 되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럼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하시더라고요. 고민을 좀 했는데 짜증이 확 났어요. 무조건 직장을 다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표를 썼죠.”

경력을 살려 프리랜서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결론은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결심을 굳힌 뒤 바로 아버지의 가게 한편을 빌려 일을 시작했다. 보통 작은 회사의 대표는 ‘실장’으로 명함을 새기지만, 구 대표는 ‘사장’을 택했다. 일을 제대로 한다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표 명함을 건넨다고 저를 어려워하고 그런 일 한 번도 없었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왜 겸손해야 해요.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죠. 대부분 10년 이상 출판 일을 해오신 경력이 많은 분들이 출판사를 차리지만, 저는 그 정도의 경험은 없었잖아요. 주변에서 1,2년 출판 일을 해놓고 무슨 출판사를 차리냐고 말도 많았어요. 그런데 젊으니까 쉽게 시작한 거예요. 시작했다 실패하면 젊어서 접는 게 더 낫잖아요. 젊으니까 더 많이 질러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출판사 대표가 된 후 ‘젊은 사장의 일기’라는 표제로 에세이집 『사장수업』도 펴냈다. 초짜 사장, 젊은 사장으로서 겪는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를 꼼꼼히 기록했다. 책을 보고 찾아온 여러 독자들의 출판사 개업을 직접 돕기도 했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보다는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알아서 하잖아요. 오히려 나이가 있고 경험이 많은 분들이 더 주저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스템을 갖춘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어하시니까요. 가끔 강연을 하면, 진짜 열심히 듣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대부분 소심한 친구들이 더 많이 들으려고 하고, 구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진짜 사업을 저지르는 분들은 행동파인 분들이 많아요. 책, 강의 이런 거 안 듣고 그냥 부딪혀 보는 거죠. 물론 실패도 있고 아픔도 있죠. 그런데 젊으면 확실히 아무는 시간이 더 짧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참 많았거든요. 아버지가 굉장히 엄격하고 칭찬에 인색한데, 사회생활에서 만난 상사나 선배들도 똑같았어요. 그래서 그냥 두려움 없이 일단 하고 보자, 이런 성격이 된 것 같아요.”

현재 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과에서 디지털콘텐츠비즈니스 강의를 하고 있는 구모니카 대표는 전자출판사 디지텔링 대표, KPC(한국출판콘텐츠)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 한국외대에서 문화콘텐츠로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일주일 스케줄이 빼곡하지만 웬만하면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자전거를 탈 때도 한창 페달을 밟다가도 잠깐은 떼어야 하잖아요. 잠깐 쉬는 타임이 있어야 하는데, 제 성격 탓인지 못 쉬겠어요. 이상한 강박이 있어요. 30대 때는 회사도 힘들고 해서 조금 쉴까 했는데, 또 박사 과정에 들어가고. 전문분야에서 연구하는 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거 꼭 받아먹어야 할 것 같고(웃음). 그래서 요즘도 불러주는 곳은 어디든 다 가요. 예전에는 안 불러줘도 잘 갔고요(웃음).”




일기 써보세요. 샌드백 효과 있어요

구모니카 대표는 모든 사람들을 ‘작가’로 보는 까닭에 출판사로 오는 투고도 언제나 꼼꼼히 본다. 처음 출판사를 열었을 때는 모든 투고자를 직접 만났을 정도. 최근 전자책 사업을 시작한 후로는 ‘모든 글이 책이 될 수 있다’고 접근하고 있다. 다만, 필력은 기본으로 본다.

“독자들의 호응이 있을 만한 책 위주로 안 볼 수가 없어요. 필자의 유명세를 떠나서 경력의 특이성, 집필의 특이성을 눈여겨보죠. 샘플 원고를 받고서 저자를 만나 ‘이 책은 전자책으로 접근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대부분 기분 나빠하죠. 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언젠가 정말 꼭 필요한 인쇄물로 봐야 할 책만 만들 세상이 올 거든요. 전자책 시장이 매해 기복이 심한데, 출판인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에요.”

콘텐츠 자체부터 접근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 구 대표의 견해다. 조아라닷컴 등 장르소설사이트가 이미 선점해놓은 전자책 시장을 빼앗아오는 것이 아니라, 상응하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구모니카 대표는 “전자책에서 종이책의 감성을 준다는 관점이 아니라, 전자책만이 줄 수 있는 강점, 새 장르를 구축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 페이스북에 ‘노처녀 희숙 대리’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올리고 있어요. 그 전에는 핸드라이팅 일기를 썼는데 요즘은 페이스북이 소통 수단이잖아요. 짧은 글이지만 올리기 전에 노트북에 한 번 쓰고 나서, 정제된 글을 올려요. 나중에 이게 또 책이 될지 어떻게 알아요. 책으로 내보자는 분들도 계시고요. 페이스북을 홍보를 비롯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분들이 많은데, 메모장이라고 꼭 써보고 올리라고 말해요. 필터링을 한 번 한 글과 안 한 글은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일기를 쓰다 보면 내가 나를 돌아보게 돼요. 어제 쓴 글을 보면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었구나’ 싶기도 하고, 누구랑 싸웠을 때는 ‘내 잘못이었네’ 반성도 하고 그래요. 어차피 본인이 쓴 글이잖아요. 어디든지 충분히 내가 쓴 글들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M&K 출판사는 올해로 9년, 내년이면 10년차 출판사가 된다. 지금까지 펴낸 책은 전자책을 모두 합하면 100여 권. 구모니카 대표는 “창고에 쌓인 책들을 보면 내 새끼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때때로 출판시장이 너무 어려워질 때면, 일찌감치 사장이 된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한다.

“사업의 맹점은 끝낼 수가 없다는 거예요. 창고에 내 새끼 같은 책들이 한 가득 쌓여있는데 지금 그만두면 이 책들을 폐지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한 권 한 권 정말 열심히 만든 책인데 그럴 수야 없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죠. 지금은 직원들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고정 수입은 꼭 따로 있어야 한다고들 하나 봐요. 제가 강의를 하고 또 글을 쓰는 것도 다르지 않고요.”

금방 사랑에 빠지는 구모니카 대표. 어릴 적부터 책과 친했던 까닭인지, 천천히 사랑에 빠진 책과는 이별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언젠가 철학과를 배경으로 시트콤을 한 편 쓰고 싶다는 그는 방송사에서 일반인 개그맨을 모집하면 꼭 지원하고 싶단다. ‘박사 출신 개그우먼’ 멋지지 않냐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해 취업한 친구들한테 말하고 싶어요. 지금 네가 들어간 직장이 평생 직장이 아닐 거라고. 우리는 영원히 꿈을 꾸고 터닝 포인트도 있잖아요. 또 갑자기 도전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마르케스는 할아버지가 돼서도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같은 멋진 책을 썼잖아요. 저도 그런 소설 한 편 쓰는 게 소원이에요. 언젠가 노력하면 이뤄지지 않겠어요?”

프로페셔널, 대량생산, 메가트렌드 다 지나갔어요. 점점 더 아마추어리즘, 다품종소량생산, 마이크로트렌드 시대로 가고 있어요. ‘힘’이 저 멀리 가고 ‘개성’과 ‘다양성’의 시대,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의 시대가 오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쓸 만큼의 돈을 벌고, 그 수준에 만족하는 삶을 살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 거죠. 눈물이 날 것 같은 깨달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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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서툴지만 괜찮은구모니카 외 공저 | 엘도라도
누구나 30대가 가까이 다가오면 한번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아직 젊다고만 치부하기에는 마냥 좋을 수 없는 혼돈의 나이다.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초조함과 결정하기 힘든 망설임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면서도 이제 좀 더 성숙해질 것 같은 설레임이 공존한다. 《스물아홉, 서툴지만 괜찮은》에는 이제 30대를 바로 앞두고 있거나 갓 들어선 이들이 겪고 있는 일상과 미래에 대한 이상이 펼쳐져 있다. 하루하루 익숙하게 생활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하일성 “체육교사에서 야구해설가 변신, 모두 미쳤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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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직면하는 우여곡절과 희비가 녹아있는 스포츠를 꼽으라면 단연 야구가 아닐까? 예측할 수 없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면, 야구 경기 역시 그 못지않은 예측불가의 반전과 역전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가 국민의 스포츠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뿐이 아니다. 또 다른 성공요인은 다름 아닌 맛깔스러운 해설이다. 방송과 라디오 중계를 통해 곁들여진 명쾌한 해설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각국 현대 야구 흥행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구해설가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부터 700만 관중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까지 야구해설자로서 선수를 능가하는 유명인이 된 사람, 바로 하일성이다. 야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을 정도다. 오랜 세월 동안 그는 프로야구해설가 뿐 아니라 다양한 방송에서 입담 좋은 게스트로, 한해 200회 이상의 강연을 소화하는 명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프로야구의 관찰자이자 해설가로 살아오며 깨달은 삶의 교훈을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야구해설가의 책이라고 해서 단순히 야구에 얽힌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삶의 태도와 동기부여의 비결 또한 버무려 책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 그러한 이유로 책의 제목 역시 그가 평소 해설을 통해 종종 탄성처럼 말하곤 했던 문장이 그대로 적용됐다. 바로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다. 평생 야구를 해설해 온 그에게 조차 야구는 확실치 않은 것이었다. 인생 역시도 그렇다. 이를테면 9회말 2아웃의 상황에서 기적 같은 역전이 가능한 것처럼.




인생 9단의 따뜻한 조언

대중들에게 야구해설가로서 언제나 활기 넘치는 모습만을 보여 온 저자지만, 어느새 60대를 훌쩍 넘은 나이가 됐다. 하긴 프로야구 원년부터 해설을 해 왔으니 당연하지만, 여전히 원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덕분에 왠지 그에게는 세월도 빗겨가는 듯하다. 사실 그는 생명을 좌우하는 큰 수술을 몇 차례 경험했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하일성은 또 2006년부터 3년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수상과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을 거친 후 그는 다시금 야구해설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체력적으로도 그 많은 강연과 야구해설을 병행하시는 것이 대단하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데요.

의사들도 저를 보고 불가사의하다고 해요. 세 번이나 수술을 했는데 한해에 중계 80회 소화하고 강연은 보통 200회 정도 하니까요. 의사 선생님이 “나이도 있는데 여전히 술을 좋아하고, 일까지 많이 하면 과로로 쓰러질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솔직히 지금은 돈보다도 일한다는 그 자체가 즐거워서 하는 거예요. 그런 즐거움이 저를 버티게 하는 것 같아요. 예순 다섯이면 적지 않은 나인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한 거죠.

이번 책은 저자님의 강연 내용 중에서 핵심을 추려낸 듯한 느낌이던데요. 오랜만에 책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소감이 남다를 듯 합니다.

과거에 제가 쓴 책은 야구해설가로서 생활에 대해 많이 썼는데, 이번 책은 제 생각을 많이 썼어요. 제 인생의 경험과 야구의 에피소드에 빗대어 삶 속에서 얻은 교훈을 중심으로 쓴 셈이죠. 이제까지 수십억의 큰돈을 잃어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 안주고 살려고 했어요. 그 힘겨움은 가족들도 잘 모르죠(웃음). 그럼에도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경우에도 좌절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야구의 재미와 본질은 역전승에 있거든요. 반대로 역전패도 있을 수 있고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 또한 역전승을 할 수도 있고 역전패도 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다만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제가 볼 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결과를 두려워하다보니까 도전의지가 약한 것 같아요.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가라앉죠. 하지만 제가 겪은 인생은 그게 아니거든요. 좋을 때는 비행기 타고 가다가 때론 걸어갈 때도 있고 또 좀 잘되면 자전거라도 얻어 타서 갈 때도 있고, 택시도 타고 갈 때도 있죠. 인생은 그런 굴곡을 겪으면서 가는 것이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을 보면 박찬호 선수에 대한 글도 눈에 띄는 부분인데요. 최근에는 류현진 선수가 미국 진출에 성공해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고요. 책에서 선수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내용도 적지 않은데요.

왜 그랬냐 하면, 우리나라 선수들이 끈기가 좀 약해요. 예를 들어서 아마추어 때 자기가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다고 해도 프로는 다르거든요. 그런데 2군에 가서 3년, 4년 있다 보면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언젠가 기회는 와요. 중요한 건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준비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 선수들은 기다리는데 익숙지 않아요. 사실 야구의 또 다른 묘미는 기다리는 것이거든요. 투수가 공을 던져야 경기가 시작 되고 타자가 칠 수 있는 거고, 자신에게로 공이 와야 수비를 하는 거잖아요. 그런 참고 기다리는 자세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올 시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눈여겨본 선수가 있으신지요?

LG와 넥센이 4강에 들어 간 것이 이변이었죠. 특히 LG는 11년만이잖아요. 두 팀이 어떻게 4강에 들어갔냐는 것이 중요해요.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해요. 투자를 했거든요. 눈여겨본 선수는 두산의 유희관이라는 투수에요. 사실 저는 그 정도 제구력이나 변화구는 아마추어 시절에나 통하지, 프로에서는 힘들다고 봤거든요. 더구나 유희관 선수의 공은 시속 140km가 안 나와요. 하지만 올 시즌 그는 그런 공을 가지고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거든요. 잠재력이라는 것은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 두 가지가 있어요. 유 선수의 경우 대부분 보이는 면만을 보고 실패한다고 봤는데 저 조차 못 본 또 다른 뭔가가 있더라고요. 그 때마다 ‘야구는 역시 모른다’는 것을 느끼는 거죠. 류현진 선수도 1지명이 안됐던 시절이 있었어요. 오승환 선수도 그랬고요. 선수들은 물론 젊은 세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자기 자신을 낮게 보지 말라’는 거예요. 비록 현재는 힘겨울 지라도 ‘나는 내가 모르는 뭔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난관을 헤쳐 나가기를 바라요.




평생 한결같은 야구 사랑

그가 처음 야구해설가로 나설 당시 대한민국 프로야구 출범은 소문만 무성했다. 선수들의 수준은 물론이고, 야구 행정이나 관련 인프라도 지금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야구해설가 역시 전업은 없었고 겸직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그럼에도 저자가 야구해설가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끝내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야구 사랑과 모든 것을 던진 승부수 덕분이다.

지금은 야구 문외한이라도 야구해설가하면 주저 없이 ‘하일성’을 꼽는데요. 그런 저자께서도 처음에는 적잖은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1979년 TBC에서 처음 야구해설가로 활동을 시작할 당시였죠. 사실 첫 해가 끝나고 당시 TBC 간부진에서 해설을 너무 못하니 경질시키라는 말이 나왔어요. 그런데 같이 일했던 PD와 박정재 아나운서라는 분이 ‘아니다, 이 사람은 옆에서 지켜봤을 때 재능이 있는 사람이니 키워볼만하다’며 설득을 해서 결국 오늘까지 야구해설을 하고 있는 거죠(웃음). 사실 그때 큰 결심을 했어요. 정년이 보장 돼 있는 체육교사를 그만뒀거든요. 모두가 미쳤다고 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나는 야구해설가로서 살아가려면 승부를 걸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갈 곳을 없애고 해설에 집중한 거죠. 배수의 진을 치고 해설에만 집중했어요. 젊은 세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그거에요. 삶 속에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는 거죠. 그런 순간에 안전한 길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살아온 인생보다 살아갈 인생이 짧은 사람이 있고, 살아온 인생보다 살아갈 인생이 긴 사람도 있어요. 그럼 판단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당시 야구해설가를 직업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을 것이다. 나는 해설가로서 겨우 초보 단계를 면한 데다 지명도도 높지 않았다. ‘평생일자리’는 커녕 게임당 돈을 받았다. 해설가는 전속 계약이 없던 시절이었다. 야구 시즌이 끝나면 말 그대로 백수가 되는 것이다. 아직 실력이 모자라 다음 시즌 계약도 장담 못했다. 프로야구는 출범 전이었다. 곧 생긴다고 말만 무성했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교사직을 버리고 해설가란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극한의 모험에 가까웠다. 그때 나의 두 딸은 초등학생이었다. 모험을 하려면 용기를 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꼭 하고 싶었다. 안하면 너무 미련이 남을 것 같았고, 오래오래 후회할 것만 같았다. 더 큰 이유는 모두가 인정하는 정말로 잘하는 해설가가 되고 싶었다.
야구에 있어서 관찰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하셨는데, 선수들을 관찰하는 저자만의 포인트가 있으신가요.

그 노하우를 지난해부터 밝히기 시작했어요(웃음). 저는 그 팀의 주력 선수를 봐요. 오늘은 이 선수가 잘 해야 되겠다 싶은 선수 3~4명을 찍어가지고, 선수들이 가장 잘했을 때 투구 폼과 타격폼 영상을 미리 검토하고 나가죠. 그날 제 눈에 그 폼이 들어오면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은 날이고, 그 폼이 아니면 컨디션이 나쁜 날이거든요. 그 것이 해설에 많은 영향을 끼치죠.

한편으로는 해설가 입장에서는 선수에 대해서 뿐 아니라 해설을 듣는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할 텐데요.

제게 그걸 가르쳐주신 분이 처음 야구해설을 할 때 TBC 중계부장이었던 김재길 PD라는 분이에요. 가수를 예로 들었죠(웃음). 가수에는 2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패티 김 스타일과 이미자 스타일이 있다는 거죠. 패티 김은 마니아 중심이고, 이미자 씨는 대중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게는 이미자 스타일로 가라고 조언하더군요.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해설을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덕분에 야구 외에 강연 요청도 들어오고 인생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저를 많이 찾아주더군요.

그렇게 평생을 바친 야구해설이지만 2006년도부터 3년 정도 떠나계셨잖아요. KBO 사무총장을 지내시면서 대단한 성과를 이뤄내셨는데요.

전 정말 그 기간에 이뤄낸 성취에 대해 자부심이 커요. 사무총장을 맡았을 때가 2006년도 5월인데, 당시 한국 프로야구는 전년 시즌 관중이 320만에 불과했어요. 침체기였죠. 하지만 제 임기 중에 540만 관중까지 끌어올렸어요.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다고 그랬을 때 필사적으로 대안을 찾아 넥센 히어로즈를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고, WBC 결승까지 올라가기도 했고요. 그래서 감히 오늘날 프로야구 700만 관중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자부해요.

조금은 섣부른 전망이지만 현재 한국 프로야구는 1천만 관중 시대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데요. 저자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가능해요. 왜냐하면 광주 야구장이 내년에 개장되거든요. 왜 관중이 빨리 증가하지 못했냐 하면, 이제까지 수용 인원 1만명 정도의 야구장뿐이었다는 거죠. 내년에 광주, 이어 대구에 대형 야구장이 생기면 천만 관중 시대는 곧 온다고 봅니다.

야구 행정가로서 영광의 시간을 보내시고 다시 해설가로 돌아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무총장 시절에 진짜 일이 많긴 했어요(웃음).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죠. 그래도 배짱으로 밀고 나갔어요. 그렇게 3년을 보낸 다음에 ‘내가 할 거 다했다’고 털고 나오면서 문득 남은 인생에서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역시 야구 해설뿐이더군요. 평생의 업이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그거였어요.




이것이 인생이다

하일성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지 않았다. 유년기 부모의 이혼으로 극심한 방황을 해야 했다. 청소년기에는 불량 서클에 몸을 담으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는 일투성이’라고 하는 그지만 돌이켜 보면 그 경험조차 삶의 난관을 헤쳐 나가는데 적잖은 도움이 됐을 터였다. 그의 삶을 엿볼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신의와 믿음으로 이어간 사람들과의 관계다.

성동고 시절, 선수 생활도 하셨는데요. 프로야구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불가능했지만, 한편으로 ‘만약에 선수 생활을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시지는 않았나요?

저를 가르쳤던 스승님들은 제가 야구에 굉장히 재능이 많다고 했어요. 야구 뿐 아니라 둥근 공으로 하는 건 다 잘했죠. 하지만 당시 제 상황은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지금도 제일 가슴 아픈 것이 제가 하도 속을 썩이니까 한번은 어머님이 “내 자식이지만 부모가 떳떳치 못해서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살아가는 심정, 네가 이다음에 자식 낳아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이 평생 가슴에 있어요. 내 마음속에….

저자가 삶을 반추하는 부분을 보면 늘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들이 있었는데요.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겪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듯합니다.

인복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힘들 때 마다 꼭 좋은 사람들이 나타나줬어요. 살면서 인간관계의 폭은 꽤 넓었던 것 같아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서방파 두목 김태촌 역시 저와 제일 친한 친구였어요. 그때 제가 문상하는 것이 뉴스에 나오고 이러다보니까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서 나와 달라고 하더군요. 김태촌과의 관계를 묻기에 “세상 사람들이 다 욕을 해도 김태촌은 나와 가장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라고 했죠. 사실 제 입장에서 그 친구와 안다는 것이 알려져 이득 될 것이 뭐 있겠습니까. 하지만 전 떳떳이 얘기했어요. 친구가 깡패든 도둑놈이든 누구든 나하고 친군데, 그걸 감추고 뒤로 돌아서서 친한 친구인척 하는 인생은 안 사느니 못하다고 생각해요.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의 투병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늘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셨잖아요. 역시 프로정신 덕분인가요?

프로라는 것은 올인하죠. 나를 버리는 거예요. 자신을 내려놔야 돼요. 물론 쉽진 않죠. 얼마 전 친구들과 소주 한 잔을 하는데, 옆에 젊은 사람 서너 명이 한탄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한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됐나 봐요. 그걸 보니 답답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더군요. 술병을 들고 가서 몇 마디 얘기를 나눴죠. 살 길이 막막하다고 하더군요. 할 게 없다고 하는데 대한민국에 왜 할 일이 없겠어요. 저는 그 친구에게 우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라고 했어요. 또 살다보면 나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도 맞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번 시즌에 두산하고 삼성하고 한국시리즈를 봤냐고 물으니 재미있게 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 “누가 봐도 두산이 이기는 상황이었는데 결국은 진 것은 이길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 인생도 마찬가지다”라고 얘기해 줬죠. 살아가며 실패도 있을 수 있어요. 되돌아보면 잘 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놓친 거거든요. 하지만 기회는 살다보면 또 와요. 젊은 세대들이 한 두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기회를 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올인하는 근성이 있어야죠.

야구인의 한사람으로써 팬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도 있으실 듯 한데요. 왜 야구를 알면 삶이 왜 즐거운지 말씀해 주신다면?

야구는 집 밖으로 나가서 1루 베이스, 2루 베이스, 3루 베이스를 밟고 다시 홈으로 오는 과정이 있어요.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거죠. 상대의 실수 때문에 들어올 수도 있고 희생 번트에 올 수도 있고 홈런에 올 수 도 있어요. 어쨌든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집에까지 오는 기회는 얼마 되지 않죠. 그리고 홈런이란 것이 있잖아요. 모든 스포츠는 정규 규격 안에서 일어난 플레이가 인정을 받지만 야구는 경기 펜스를 넘기면 홈런이에요. 바깥으로 가면 모두 파울로 쳐야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똑바로 넘어간 것은 홈런이 되거든요. 이건 인생을 정직하게 정확하게 살아갈 때 파울선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해요. 이게 인생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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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하일성 저 | 동아시아
하일성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하지만 그 간단한 진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그것에 맞게 살지는 못한다. ‘도전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절망의 순간 기회는 찾아온다’ 같은 이야기는 눈이나 귀로는 보고 들을 수 있지만 가슴으로는 와 닿지 않는다. 인생의 멘토로서, 파란만장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저자가 직접 생생하게 전해주는 책의 내용은 그 진실성만큼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책에는 야구공의 108매듭과 인생의 108번뇌 사이에서 발견한 저자의 인생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북칼럼니스트 이동환 “책 읽고 돈 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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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는 젬병인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 대부분 PT와 컨설팅으로 직장생활을 한 이동환 저자는 어쩌다가(?) 북칼럼니스트가 되었을까. 연유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예스24 블로거로 활동했던 때부터 시작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동환 저자는 어릴 적부터 책 벌레,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었지만 마흔이 되던 해, 문득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다. ‘이렇게 책을 많이 읽었는데 왜 나는 세상의 흐름을 바로 읽지 못할까?’ 이 같은 물음에서 과학책을 팠다. 저자는 시시껄렁한 잡담을 썼던 언론사 블로그를 끊고, 책 리뷰를 쓰자는 계획으로 2004년 9월 예스24 블로그를 개설했다. 매일 꾸준히 올린 그의 리뷰는 예스24 블로그 운영자의 눈에 들어왔고 ‘제2회 예스24 블로그축제’ 사회자로 발탁됐다. 2008년에는 예스24 지면광고 모델로 활약하기도 했다.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모습으로. 실제 이동환 저자는 수년간 야학에서 사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한민국에 30명이 채 안 되는 직업 ‘북칼럼니스트’. 더욱이 과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쓰는 과학책 리뷰는 과연 읽을만할까? 이동환의 북 리뷰는 ‘일반인’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인다. 독자의 수준을 일반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친절한 과학책』역시,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무척 친절하고 쉽다. 1등만 모아놓은 팀은 왜 1등을 할 수 없을까? 남자와 여자는 웃음의 동기가 다르다, 식물의 치명적인 사랑 등 과학의 논리로 풀어내는 일상의 재미있는 비밀을 속속 들여다보았다. 이동환 저자는 “과학자들의 위대한 발견 이면에 있는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집필한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을 흠모한다. 빌 브라이슨 역시 과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동환 저자는 “아직 그를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누가 알았나? 저자가 북칼럼니스트가 될 줄을. 요즘 이동환 저자의 친구들은 정년 퇴직을 앞두고 은퇴 설계에 여념이 없지만, 그는 이제 시작이다. 1년에 책 200권을 완독하는, 서재에서 가장 행복한 저자 이동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독서, 세상의 비밀을 알아가는 재미

『친절한 과학책』이 첫 책입니다. 북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많은 출간 제의를 받았을 텐데, 이제야 첫 책을 내셨어요.

‘내 책 내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내고 싶진 않았거든요(웃음). 몇 번 출간 제의를 받았지만 기획안을 내야 해서 조금 망설였는데, 이번에는 제 칼럼 한 꼭지만 본 출판사에서 바로 연락을 줬어요. PDF로 예쁘게 편집해서 보여주셨는데 감동했어요. 편집자 분이 너무 정성스럽게 사진도 찾아주고 꼼꼼히 봐주셔서 고마웠어요.

책을 사는 소비자로 살다가 이제는 책을 만드는 생산자가 된 셈이에요.

책으로 돈을 벌고 있는 내 자신이 신기할 때가 있어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책을 읽고 돈을 번다는 사실이 즐거울 따름이에요.

북 콘서트 사회자로도 인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요즘 스케줄이 궁금합니다.

KBS 포항 <동해안 오늘>에 고정 출연하고 있고, 경영경제 주간지 <한경 비즈니스>에 ‘이동환의 독서 노트’를 연재하고 있어요. 과천정보과학도서관, 인천학나래도서관에서 강의도 하고 있고요. 지난 여름에는 숭실대학교에서 ‘인문학, 영화와 만나다’ 특강을 진행했는데 『총균쇠』와 영화 <미션>, <안나 카레리나>를 연결했죠. 책에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이 나오니까요. 200명 정도 학생들이 강의를 들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웃음). 재밌어요. 책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IT 컨설턴트로 일했는데, 갑자기 ‘북칼럼니스트’로 변신하셨어요. 평소 꿈꿨던 일이었나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진행되었나요?

아마 예스24 블로그를 시작한 게 첫 번째 이유일 거예요. 물론 북칼럼니스트가 되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책을 제대로 한 번 읽어보고 리뷰를 남겨보자고 생각한 게 지금까지 온 거죠. 책은 평생 읽어왔지만 마흔이 되기 전에는 제대로 읽진 못했어요. 그냥 흥미 위주로 읽었죠. 그러다가 내가 세상 돌아가는 흐름에 대해 무지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과학책, 인문학 도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블로그에도 사적인 글 말고 북 리뷰만 쓰기로 마음먹었죠. 아마 월급의 10%는 모두 책 사는 데 썼을 거예요. 집에 책이 3천 권 가량 있는 것 같아요. 전 책은 빌려주지 않아요. 사서 주죠.

어릴 적부터 책벌레였는데 마흔이 되던 해에 비로소 ‘나의 무지를 깨달았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상식이나 문화 소양이 풍부하셨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무계획적인 독서였으니까요.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은 모두 과학과 연결돼요. 과학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라고 하는데, 그걸 막아주는 게 인문학이에요. 과학은 팩트고, 인문학은 가치잖아요. 두 가지를 알면 사회에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 때, 남이 뭐라고 하기 전에 내 자신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어요. 황우석, 광우병, 신종플루 등과 같은 이슈가 터졌을 때, 다른 사람들이 정의해 놓은 대로 우르르 따라가는 게 싫었어요. 그런데 과학책을 보니까 이유가 보여요. 과학은 다수결이 아니거든요.

저자가 생각하는 독서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세상의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재미죠. 과학책을 읽으면 세상의 작동 범위를 알게 돼요. 하루에 8시간 정도 독서에 시간을 투자하는데, 외출을 할 때도 두 권 정도는 꼭 책을 챙겨가요. 운전도 잘 안 해요. 지하철에서 책 읽다가 정거장을 지나치는 일이 일쑤에요(웃음).

1년에 200권을 완독한다고 하셨는데, 과학책은 몇 퍼센트 정도 차지하나요? 책을 선정하는 기준도 궁금합니다.

50% 정도가 과학 관련 도서이고 나머지는 문학, 인문학 책을 많이 읽어요. 요즘은 한국문학을 많이 봅니다. 다음에 펴낼 책과 관련이 있어서요. 책을 고를 때는 일단 만져보고 골라요. 오프라인 서점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고요. 또 다른 기준은 출판사, 그리고 과학책은 번역자가 누군지도 살펴요. 신뢰하지 않는 번역자라면 원서를 보는 게 낫거든요. 과학도서는 출판사가 몇 개 없어요. 어떤 때는 믿을만한 출판사인데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번역을 해놓은 책도 있어요. 그런 책을 볼 때면 씁쓸하죠.

과학책은 어렵다는 관념이 있잖아요. 어떻게 읽어야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무조건 완독해야 해요. 선뜻 과학책에는 손이 가기 어렵거든요. 그래도 눈으로라도, 텍스트만으로도 읽어 봐야 해요. 인문학으로 본다면 『정의란 무엇인가』를 실제로 완독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어렵더라도 이해가 쉽게 가지 않더라도, 자신감을 가지려면 완독을 해야 해요. 저는 책에 낙서도 많이 하고 포스트 잇도 많이 붙여요. 완독한 책은 표시하고 중요한 페이지는 꼭 따로 메모하고요. 빠른 정독을 하는 편이에요. 이해가 안 되면 두 번, 세 번도 읽고요. 서지 정보도 꼭 확인하고 책의 여러 가지 가치를 따지죠. 아마 까다로운 독자일 거예요(웃음).

최근에 읽은 한국 소설 중에는 어떤 책이 인상 깊었나요.

은희경 작가의 『태연한 인생』이 출간됐을 때, 제가 북 콘서트 사회를 봤어요. 첫 장면을 읽고, ‘표현력 정말 좋다.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후속작이 궁금해요. 은희경 작가가 저랑 같은 학번인데, 정말 놀랍지 않아요? 정말 동안이신 것 같아요(웃음). 또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한국소설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이에요.




글쓰기, 무조건 첫 문장에서 놀라게 하라

달변가이세요. 목소리도 좋으시고요. 리뷰어로 활동하다가 북칼럼니스트, 그리고 방송에도 출연 중이신데요. 전업이었던 컨설턴트 일은 아예 접으신 건가요.

북 칼럼을 쓰다 보니까 회사 생활이 재미가 없더라고요. YTN FM <YTN 매거진>, KBS 라디오 <책 읽어 주는 사람>, EBS 라디오 <책으로 만나는 세상>을 동시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매번 회사에 눈치를 보고 나와야 했으니까요. 방송이라는 게 일찍 가서 기다렸다가 녹음을 하잖아요. 직장생활도 오랫동안 했고, 결국엔 북칼럼니스트 활동이 더 재밌었으니까요. 내가 진짜 즐길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만뒀어요. 북 콘서트 같은 행사 사회 출연료는 꽤 수입도 좋아요. 매번 서점에서 사 읽었던 책들을 이제 출판사에서 협찬도 받고, 이게 제일 좋은 것 같네요(웃음).

방송 출연은 적성에 맞나요?

재밌어요. 방송을 하면 가장 재밌는 게 애드리브에요. 진행자하고 게스트랑 친해지면, 원고에 없어도 불쑥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진행자가 ‘이 사람은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요. 저도 처음에는 어설펐어요, 시계도 잘 못 보고. 이제는 방송 시간이 5분 정도 남으면, 시계를 딱 보고 애드리브 하죠. 라디오는 2초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방송사고거든요. 그래서 일단 대답부터 해요. 순발력이 없으면 못하는 게 방송인 것 같아요. 지금 같아서는 한 두 개 방송을 더 하고 싶어요. 방송은 즐거운 긴장이에요. 긴장 안 하면 사고 나니까요. 아, 이제야 내가 천직을 만났나 싶을 정도로 재밌어요.

과학 전공자도 아닌 저자를 많은 방송, 매체에서 선호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과학 분야가 많지만 생물학자는 생물학 밖에 이야기를 못해요. 매번 다른 분야의 전공자를 섭외해야 하니까 힘들죠. 그런데 저는 과학 아카데미즘의 장벽이 없는 사람이잖아요. 두루 아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또 매주 출연이 가능하니까 제가 편한 거죠. 그리고 문과 출신이 이과생보다 쉽게 설명할 수밖에 없잖아요. 상대방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시청자가 내 수준이라고 생각하니까 원점부터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어려운 과학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 언어를 사용하는 점도 장점으로 본 것 같아요. 하나의 배려가 된 거죠.

과학책 칼럼을 쓰다가 실수한 적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크릭이 DNA이중나선구조를 <네이처>에 발표했는데, 제가 DNA구조를 DNA라고 잘못 쓴 적이 있어요. 과학 용어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그 후로는 어떤 책을 읽어도 용어에 주의해서 봐요. 예컨대 생물학에서 게놈은 염색체, 유전자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고 우주를 뜻하는 단어 universe, cosmos, space도 각자 가지고 있는 의미가 조금씩 다르잖아요. 과학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책을 맥락으로 읽지 못하거든요. 용어가 장벽이 될 수 있어요. 이런 장벽을 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지금도 어려운 건 물리학이에요. 양자역학을 파고 있는데 어렵네요(웃음).

컨설턴트로 오래 일하셨으니 말은 훈련이 되었을 테고요. 글 쓰는 법은 따로 배우셨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 정도 배웠어요. 어느 정도 쓰지만 더 잘 쓰기 위해서 배웠죠. 명로진 씨가 운영하는 라이터 교실, 임정섭 소장의 글쓰기 훈련소에서 배웠어요.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 배웠지만 도움이 많이 됐어요. 내가 글을 썼던 한 패턴에서 벗어나 미괄식, 두괄식으로 변화를 주는 등 여러 가지 실험하게 돼서 좋았어요. 글쓰기도 자기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거든요.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리뷰 잘 쓰는 법’이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알겠지만 ‘조사는 되도록 생략. 중복 단어 철저히 방지. 단문으로 쓸 것. 수미상관 고려. 첫 문장에서 놀라게 하는 것’ 정도가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여러 번 읽어 보는 거고요.

출판계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잖아요. 독서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가 책은 한 번 집으면 시간을 오랫동안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거든요. 영화는 재미없더라도 두 시간만 투자했으니 괜찮은데, 책은 아니잖아요. 오랜 시간 쓸쓸하게 혼자 봐야 하고요. 그런데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 이건 중독이에요. 책보다 더 재밌는 세상은 없어요. 책 좀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 책 선수들은 대개 과학책이 가장 재밌다고 말해요.

추후 출간 예정인 책이 있나요.

2008년에 <채널예스>에서 ‘이환의 경계를 허무는 독서’를 연재한 적이 있거든요. 제 닉네임이 이환이에요. 이동환보다 더 멋스러워서(웃음). 『통섭』식으로 인문학, 과학을 연결한 책을 내년에 두 권 정도 낼 계획이에요.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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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환자들과 화투 친 천재 과학자 - 정재승
-최재천, 통섭의 관점에서 향후 10여 년의 사회문화적 경향을 말하다
-“과학은 낭만과 상상을 결코 죽이지 않아요” - 최재천
-여자를 웃긴 남자가 더 매력적인 이유 -이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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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과학책이동환 저 | 꿈결
왜 성공적인 결과물은 노력보다는 운에 좌우되기도 하는 걸까? 나쁜 일은 왜 한꺼번에 닥치는 걸까? 이 책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과학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지극히 사소한 일상 속에 영겁의 시간 동안 온 우주와 자연이 마련해 놓은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 준다. 『친절한 과학책』은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었던 저자가 매년 100권이 넘는 과학책을 10년 넘게 파고들어서 찾아낸 일상과 과학의 연결 고리를 재미있고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과학 전공자로서는 절대로 쓸 수 없는 과학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넓은 의미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다 - 한소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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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인지도는 그리 높지 못했지만, 2008년에 등장한 라운지 성향의 밴드 ‘서드 코스트(Third Coast)’는 5년 동안 꾸준하게 움직이며 생존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팀의 보컬 한소현은 각종 OST와 어쿠스틱 밴드 ‘스탠딩 에그’의 객원 보컬로서 활동을 펼치며 서드 코스트와 본인의 음악 스펙트럼 확장에 힘써왔다. 그는 얼마 전 서드 코스트의 권성민과 함께 공동 프로듀스한 <Oh My Darling>이란 미니 앨범을 통해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의 출발을 알렸다.

독립이라는 수식어보다 새로운 시도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홀로서기다. 서드 코스트의 멤버이자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인 권성민과 함께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처음에는 신인 아티스트처럼 조금은 긴장했지만 이내 편하게 즐겁게 자리를 이끌었다. 한소현은 신보의 다채로운 보컬에 주목해주기를 바라면서 “현재 서드 코스트의 신보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귀뜸했다. 의욕적인 스타트를 응원하기라도 하듯 창밖에는 올해의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라운지 밴드 서드 코스트 출신으로 이미 같은 분야에서 스타덤에 오른 클래지콰이와 자주 비교되는 것이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비교를 많이 해주신 건 사실이지만 서드 코스트라는 이름 이전에도 멤버들과 함께한 시간이 5, 6년일 정도로 오래 되었는데, 그래서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그 당시 녹음된 것이 아니라 발매 이전에 만들었던 것들도 있었어요. 이렇게 모아놓은 노래들을 소속사 싸이더스에 들어가면서, 해왔던 것을 모아놓자는 개념으로 수록한 것이죠. 트렌드에 앞서 나가야한다 생각하다보면 쫓기게 될까봐, 일단은 만들어 놓은 것에 의의를 두자는 생각이었죠. 저희만의 음악이었지, 결코 참고를 한 것은 아니었어요. 클래지콰이와 차이를 물어보신다면 저희 나름대로는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클래지콰이는 알렉스와 호란 두 사람이 노래를 하는 거지만, 저희는 세 멤버 중 하나만 없어도 노래를 만들기가 어렵더라고요. 우리는 미국에 있든 아프리카에 있든 해체될 일이 없겠구나하는 농담도 던지곤 했어요.

그럼에도 당시 서드 코스트의 앨범에 대한 평이 호의적이었는데 널리 알려지진 못했다. 아무래도 타이밍이 문제 아니었을까?

아마 그렇다고 생각해요.

서드 코스트는 프로듀서 권성민, 보컬 한소현, 랩 최지호 씨로 구성된 팀인데 한소현 씨의 솔로 앨범이 나왔습니다. 최지호 씨가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팀 활동은 계획에 없나?

사실 팀 앨범도 이번 겨울에 발표를 앞두고 있어요. 솔로 앨범을 낸 것은 물론 미국에 있는 멤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공연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에요. 팀 활동을 접어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계속 준비하되, 저는 솔로활동을 하면서 대중들과 호흡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의미였죠.

물론 프로듀서가 서드 코스트 멤버인 권성민 씨고, 팀 활동 와중이지만 솔로 활동인 만큼 어느 정도의 차별성은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팀 활동과 솔로 활동, 어떤 음악적 변화를 담았나?

일단은 소소한 이야기까지 다 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팀 활동에서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반면 솔로 활동은 저만의 온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숨을 쉬듯 편안한, 자연스러운 음악을 추구하고 싶었어요. 이번 앨범의 주제인 ‘사랑’도 제가 꼭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이에요. 이젠 좀 편한 걸 듣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서드 코스트의 라운지적인 요소는 여전하다.

제가 작곡을 모두 하지만 프로듀서가 권성민 씨니까요. 사실 다른 프로듀서와 함께할까 생각도 해 봤는데, 제가 10년 동안 손발을 맞춰왔기 때문에 어떤 생각이나 말을 했을 때 가장 빨리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은 역시 권성민 씨 뿐이더라구요. 첫 앨범은 저를 그동안 가장 많이 봐왔던 사람이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시작 단계니까 앞으로의 활동에서는 다양한 프로듀서 분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권성민씨는 프로듀서로서 한소현 씨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권성민)한소현 씨가 연기를 전공하셨는데 그런 점을 음악에서도 많이 느껴요. 노래를 부를 때도 각각의 분위기에 바로 맞춰서, 마치 연기하듯이 부르더라고요. (한소현은 이 대목에서 다양한 색깔을 가지려 노력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드 코스트와 객원보컬로 참여한 스탠딩 에그 때의 보컬을 각각 비교 설명한다면?

모두 다 다른 편이에요. 우선 서드 코스트와 스탠딩 에그의 음악이 너무 달랐어요. 서드 코스트에서는 음악 작업하면서 가이드를 많이 만들어 봐요. 일렉트로니카 라운지 음악이니까 노래 부르는 데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어릴 때는 폭발하는 가창력을 과시하거나 하면 노래를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츰 거리를 두게 되더라고요. 스탠딩 에그는 포크 음악을 주로 하는 팀인데, 자주 듣거나 좋아하는 성향은 아니었어요. 「넌 이별 난 아직」은 뽕끼도 가미된 트랙이라 제가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했고요. 그래도 객원 보컬이기 때문에 그 팀의 음악에 맞추는 방향으로 갔어요. 그런데 대중들은 스탠딩 에그에서의 활동을 훨씬 좋아하시더라고요. 제 마음에선 긴가민가했던 곡들을 대중들은 좋아해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렇다면 솔로 앨범은?

우선 한소현이라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서드 코스트에서는 랩과 연주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을 중시했기 때문에 앞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 활동은 비교적 사운드를 간결하게 하면서 제 목소리를 주로 하도록 했어요.

하긴 다섯 곡이 모두 다르게 들린다. 심지어 「Night and day」는 마치 10대 말의 앙증스러움마저 느껴진다.

그 동안의 다양한 활동을 바탕으로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로 각각의 특징을 드러내도록 했어요. 알려지진 않았지만 OST 활동도 했고, 스탠딩 에그, 그리고 각종 광고 음악도 했기 때문에. 사실 하나의 목소리로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제 스타일은 그것 보다는 곡에 맞춰서 다양한 스타일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말씀한 「Night and day」의 가사를 들으면 좀 오글거리는 내용이 있지만, 여자가 사랑을 하다보면 열아홉이든, 스물이든, 30대든 그걸 대하는 마음은 모두 같더라고요. 다소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수록곡 5곡의 미니 앨범에 대한 미련은 없나?

시간이 급했어요. 전체 앨범을 진행하려니까 시간이 많이 지체되더라고요. 일단 앨범에서는 힘을 좀 빼고, 지속적인 싱글과 앨범 활동을 하자는 생각에서 5곡만 수록하게 되었어요.




「미안해」와 「잘자요」는 윤상의 파트너 작사가 박창학 씨가 가사를 썼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한명이 윤상이에요. 그 가사도 매우 좋아하던 터라 제가 부탁을 드렸어요. 솔로 앨범에 가장 좋은 가사를 쓰고 싶었어요.

기타 세션은 대중들에게도 유명한 샘 리, 시인과 촌장의 함춘호 씨가 맡았는데.

사실 샘 리 씨는 서드 코스트 활동부터 함께한 경험이 있었어요. 솔로 앨범에서는 어떤 느낌을 주실지 의문이 있었는데, 오히려 인간적으로 굉장히 따뜻한 분이셔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요. 함춘호 씨도 마찬가지고요. 안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에 이런 분들과 작업을 하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배웠어요.

이번 앨범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

별로 대중적인 시선을 의식하고 만든 앨범은 아니었어요. 아마 그렇게 생각을 했으면 곡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우선 들었던 생각은 후련한 감정이었고, 그 후에는 나만의 앨범을 가졌다는 생각에 좋았는데, 아무리 100%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고 해도 세션이나 프로듀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도 배우게 되었어요. 앨범이 나왔을 때 그런 아쉬운 점도 느껴졌어요.




나를 가수로 만든 음악은?

사실 좀 의외일 수도 있는데, 저희 팀 (서드 코스트) 음악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을 본 게 서드 코스트가 처음이었거든요. 처음에 제가 음악을 시작했을 때는 휘트니 휴스턴과 같이 뛰어난 가창력을 가지고 싶었고, 화려한 보컬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팀과 함께 음악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 비로소 저만의 음악 스타일이 생기고, 또 지향점도 만들어진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에요. 너무 많지요. 최근에는 재즈 보컬 조시 제임스 (Jose James) < Blackmagic >을 자주 듣습니다.

앨범을 어떻게 들어주기를 바라는지…

이번 앨범은 사랑을 주제로 했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번에는 그게 남녀 간의 사랑으로만 표현되었지만,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들은 그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이에요. 그런 점들을 들을 때 생각해주시면 해요. 강요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편안하게 공감해 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뷰: 임진모 김반야 김도헌
사진: 이한수
정리: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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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에세이는 더 이상 안 쓸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던 김형경 작가. 지난해 봄에 출간된 『천 개의 공감』을 끝으로 그의 에세이집을 보지 못할까, 아쉬운 마음이 있던 차에 『남자를 위하여』출간 소식을 들었다. 독자들은 아직 김형경의 심리 에세이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했나 보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월간중앙>에서 1년간 ‘김형경의 중년남자 탐구’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과 새 글을 모아 책으로 묶었다. 부제는 ‘여자가 알아야 할 남자 이야기’다. 제목은 ‘남자를 위하여’인데, “도대체 어떤 독자를 타깃으로 한 책이냐”고 작가에게 물었다. “여자들이 읽겠죠. 남자들은 이런 책 절대 안 읽어요.”

『사람풍경』 『만 가지 행동』『좋은 이별 『천 개의 공감』에 이은 다섯 번째 심리 에세이집 『남자를 위하여』. 김형경은 남자들의 심리에 대한 책을 쓰기까지 꽤나 주저했다. 남자들은 심리의 시옷 자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이 첫 번째 편견. 두 번째는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 속에 숨겨둔 찌질한 이야기를 들춰내면 남자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결국 분노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김형경 작가의 손에 펜을 쥐게 만든 건 그의 조카들이다. “이미 성격과 생존법이 굳어버린 기성세대야 불편을 참으면서 조금 더 살면 그만이지만, 이제 막 성인으로서 생을 살아가는 젊은 남자들은 자기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김형경의 조카 덕분에 우리는 『남자를 위하여』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남자를 위하여』에는 다양한 남자들의 얼굴이 있다. 가족보다는 취미활동에 올인하는 남자, 여자친구 없이는 한 달도 못 버티는 언제나 연애 중인 남자, 여자의 웃음에 약한 남자 등. 남자의 서툰 감정 표현과 경쟁심, 책임감, 방어기제, 중년 위기를 엿보다 보면 남자들에게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한다. 김형경은 신화와 소설에서 만난 남자, 심리학 책에서 만난 상담 사례, 일상 생활에서 만난 남자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한다.

홍대 인문카페창비에서 김형경 작가를 만났다. 처음 본 사이임이 분명한데 자꾸만 고민을 털어 놓게 되는 건, 비단 필자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토록 편안해 보일 수 있을까. 스트레스가 없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하면 교만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이제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정신분석을 받은 일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김형경 작가. 무작정 질투심이 일었다. 분노하지 않는 마음, 관대해지는 마음이 배우고 싶었다. 우선 남자의 이상한(?) 심리부터 파악해보기로 했다. 남자와 평생 말을 섞기 싫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어두는 것이 현명하다.

너희들이 남몰래 느끼는 그 불편한 감정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야.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잘 알고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야. 자기를 잘 알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할지 선택하는 문제만 남는 셈이지.



여자들이여, 남자를 이해하는 코드를 갖자

인터뷰를 하러 오면서 긴장됐어요. 제 마음을 속속 들여다 보실 까봐. 『남자를 위하여』를 펴내고 남자들이 작가님을 피하면 어쩌지?란 생각도 들었어요.

저도 고민 많이 했어요. 남자 심리를 여자 작가가 쓴다는 것도 그렇고. 제가 혹시 매장 당할 까봐(웃음). 심리 에세이를 맨날 그만 쓴다고 하는데, ‘이번까지만’ 이라면서 쓰게 돼요. ‘나는 소설가니까 그만 써야지’ 싶다가도, 글이라는 게 어쩌면 운명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후속작으로는 늘 소설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이제는 내가 어디까지는 써야 할 이유가 있었나 보다, 그런 생각이에요. 처음에 『사람풍경』을 썼을 때, 지인들이 이러더라고요. ‘이제 김 작가는 상대 마음을 꿰뚫고 있어서 면전에서 이야기를 잘 못 꺼내겠다고,’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들 다 만나요(웃음). 제가 늘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도 아니고요. 현실에서는 구멍이 많은 사람이에요.

매장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책을 쓰신 이유는 독자들의 요구 때문이겠죠?

심리 에세이를 낼 때마다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사람들이 원하는구나’ 싶었어요. 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의문들이잖아요. 나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풀었는데 후배들은 아직 품고 있으니까. 내가 한 번 답만 해주면 되는 거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보니 독서모임을 하시던데요. 멤버가 모두 여자인가요?

이건 그냥 사적으로 혼자 조용히 하는 모임인데요. 독서모임을 해달라는 사람들의 요구에 그냥 거절하지 않고 꾸린 거예요. 모두 여성이고 20대, 30대, 40대 골고루 있어요. 저보다 연장자인 분도 있고요. 인생 전체가 의문 덩어리인 채로 만나는 거예요. 자기 마음과 자기 삶을 통째로 해결하는 과정을 밟고 있어요. 모임을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는데, 막상 독서모임에 들어가서 자기를 보기 시작하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도망치는 경우도 많아요. 나를 들여다본다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여중,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사람들은 남자와 관계 맺는 걸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어요. 작가님도 여중, 여고를 나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저도 대학에 처음 들어와 남자를 봤는데, 너무 이상한 동족인 거예요. 이해가 안 가는 거죠. 이 남자는 왜 이래? 저 남자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의문투성이였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나니까 서서히 이해가 돼요. 남자가 이렇구나, 이해가 되면서 남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겠다는 게 어느 정도 결론이 났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계속 남녀의 불화가 있어요. 제 눈에는 여자가 남자에 대해 너무 모르고 큰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게 보여요. 남자의 본성을 모르니까 계속 기대하고 실망하는 거예요. 남자도 자기 자신이 무엇을 진짜 좋아하는지를 몰라요. 여자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했지만, 남자는 애초부터 사회적으로 안정된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별로 변화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더 노력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래서 여자가 변하는 모습에 불편을 느껴요. 너무하다 싶은 거예요. 남자도 달라져야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건데 말이에요. 우선 여자들이 남자들을 좀 잘 알았으면 좋겠어요. 어쩜 그렇게 엉뚱하게 남자들이 갖고 있지 않을 걸 원하는지.

왜 이렇게 남자답지 못하냐고 그러고, 여성스러우면 너무 섬세해서 피곤하다고 그러고요.

여자들이 남자들을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남자는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마초 같은 존재가 아니에요. 단지 여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여자가 원하니까 힘 있는 척을 하는 거예요. 원래 초식남 같은 존재도 아니에요. 남자의 내면에는 DNA 속에 공격성과 경쟁심이 있어요. 남자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낯선 남자가 들어오면 긴장해요. 그 사람이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도 공포심을 느껴요. 원래부터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본성이 있는 거예요. 남자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가엽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처럼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자의 요구에 늘 맞춰주기도 어렵고. 정말 진퇴양난에 처해버린 거죠. 여자들이 책을 읽고, 남자들을 이해하는 코드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저마다의 생존법을 찾아야겠죠

책을 읽으면서 충격적이었던 게 하나 있었어요. 작가님이 “생애 통틀어 자기 내면을 토로하면서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요.

원래 문인들이 더 말 안 해요(웃음).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는 사람, 남자는 별로 없어요. 심리에 대해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도 대부분 여자고요. 책에도 나오지만, 마지막에 ‘문학이 사람 한 명 살렸다’고 말한 신인작가 한 명이 있었죠.

남자들은 그럼 누구 앞에서 가장 솔직해지나요?

자기를 왕자님처럼 대해주고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주는 여자. 누군지 예상이 가죠? 옛날에는 본처 말고 첩이 있었잖아요. 그렇게 권위적인 남자들도 그녀들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리고 불평 불만을 다 쏟아내고 그랬죠. 그런 여자 상대가 없는 남자들은 운동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을 가고, 친구들끼리 떠들썩하게 놀고 그러죠.

그렇다면 남자 심리를 공부하면서 작가님이 가장 놀랐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가. 여자와 남자의 비율이 9:1. 여자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걸 30대 초반 때 알고서 깜짝 놀랐어요. 진짜 놀랐어요. 그 때부터 주변을 살펴보면서 ‘왜 그러지?’ ‘정말 그런가?’ 살폈는데, 알겠더라고요. 여자들이 아홉을 줄 때, 남자들은 하나밖에 안 준다는 사실을.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하셨잖아요. 여자들처럼 수다를 떨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조금 편해질까요?

그건 남자들이 스스로 자기를 표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는 한 도와줄 수가 없어요. 여자들의 이상형이 대화가 통하는 남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남자는 없어요. 있다고 착각하고 결혼했는데, 실망하고, 실망해서 헤어지고 그러는 거죠.

남자 후배들로부터 간혹 상담 요청을 받으실 것 같아요.

그런 거 받지 않아요. 자꾸만 나를 그런 용도로 쓰려고 하는데, 저는 상담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여성성, 남성성이 모두 있잖아요. 상대적으로 하나의 특성이 조금 더 많이 발현되는 거고요. 저는 어릴 때, 여성성을 너무 강조하는 여자들을 보면 짜증이 났어요. 왜 이렇게 유약한 척 하지? 꼭 그래야 하나? 그런데 나이를 들고 보니, 나도 남자에게 남성성을 원하고 있더라고요. 남자 입장에서는 여성성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 게 당연한 거고요.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저는 원래 여성성만큼 남성성도 많이 발현되는 사람이에요. 혼자 여행을 하는 것도 남성성이 발현되는 요소이고요. 뭔가 자립적이고 일을 할 때도 기획하는 걸 좋아하는 의존적인 면이 많지 않은 여성인 거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런 기대에 부응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죠. 특히 30대 여성에게는 순하고 상냥하길 바라잖아요. 전 그런 걸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남자 선배들 앞에서 지금 저처럼 말했으면, 얼마나 버릇 없다고 여겼겠어요. 마흔이 넘으니까, 이제 내 목소리를 내도 괜찮아요. 마흔이 넘은 여성에게는 그런 걸 기대하지 않으니까요.

나의 본성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

저마다 각자의 생존법을 택해야죠. 몸에 안 맞더라도 열심히 하던가, 아니면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몸에 안 맞는 행동을 할 수 없어서 조용히 있던가. 저는 조용히 구석에 있었던 거고요.




유아기 생존법에서 이제는 벗어나야죠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정신분석을 받은 것이라고 수 차례 말씀하셨는데요. 개인의 삶에서 가장 많이 변한 건 무언가요.

삶에 대한, 기본 기둥을 잡았다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유아기 생존법으로 살았는데, 정신분석을 받고 나서야 비로서 그 생존법을 버릴 수 있었어요. 성인이 됐는데 아직도 유아기 생존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회에 나가서 부장님 말씀을 잘 들어야만 하고,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고 해요. 그런 무의식이 있어요.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보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거예요. 어른답지 않은 삶의 방식이죠. 저는 정신분석을 받고 나서, 비로서 내가 원하는 글을,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됐어요. 다른 사람의 욕구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아요.

진정한 자립을 하신 거네요. 그런데 작가님은 타인의 기대에 맞춰진 삶을 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다른 여성에 비해 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없진 않았어요.

정신분석을 받지 않았다면 작가 김형경의 삶은 달라졌을까요.

아마 계속 작가로 살지 못했을 거예요. 건강하게 살지도 못했을 거고요. 치료적 요소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는.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얼까요. 책임감을 갖는 것? 타인의 영향 없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삶을 사는 것? 자책하지 않는 것? 작가님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금방 스스로를 용서하세요?

자기를 용서하는 건, 정신분석을 받은 직후부터 바로 했어요. 자기성찰과 자기비난은 달라요. 성찰은 꾸준히 하면 좋지만 자기를 책망하는 행동은 좋지 않아요. 저는 정신분석을 받고 나서 자기비난을 바로 중단했어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거든요. 자기를 비난하고 책망하고. 정신분석에 페어런츠 테이프(Parents tape)라는 용어가 있어요. 어렸을 때 부모한테 야단을 많이 맞아서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서 부모 목소리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거죠. ‘그것도 못하니?’ ‘왜 거기서 그렇게 했니?’라고. 가만히 살펴보면 자신을 책망하는 목소리가 어릴 때 부모한테 들은 목소리인 거예요.

타인에게 기대를 갖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성찰, 내면을 돌보는 일이 먼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자기를 돌보지 않은 사람은 마흔을 기점으로 더 심하게 아이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중년의 고비거든요. 중년을 무사히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심하게 겪는 사람이 있죠. 융은 사람들이 내면에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잠재력, 충실히 사용하지 못한 열정이 남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마음을 돌보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겠지만, 다른 방법이 있다면요.

요즘에는 마음 돌보기에 대한 이런 저런 수업들이 많잖아요.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는 것도 효과가 있어요. 책만 읽어서 잘 안 되면, 몸을 움직이는 활동도 좋아요. 무용치료로 효과를 본 친구도 있고요. 꿈 분석을 공부하는 것도 괜찮고. 독서모임 친구들을 보면 고혜경, 고미숙, 강신주, 법륜스님 강의를 다 들어요. 자기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 다니는 거예요.

『남자를 위하여』는 어떤 독자들이 보면 좋을까요?

남자랑 관계 맺는 걸 힘들어하는 여자들이 읽으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남자에 대한 환상, 기대가 많은 여자들이 읽고 환상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거든요. 남자들도 읽으면 좋겠지만, 남자들은 이런 책 안 읽어요. 여자가 사서 읽어보라고 주면, 여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읽는 척은 하겠지만 안 읽을 거예요(웃음)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배반하는 격으로 남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러면 좋겠죠. 근데 안 읽을 거예요.

남녀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각자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숙한 생존법, 성격의 왜곡된 측면을 알아차려 각자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면의 불편이 해소되고 관계가 개선된다. 자기 마음이나 행동은 볼 줄 모르면서 상대방을 원망하던 태도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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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위하여김형경 저 | 창비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포착해온 소설가이자 『사람 풍경』 『천 개의 공감 『만 가지 행동』 등으로 유명한 국내 최고의 심리 에세이스트인 김형경 작가가 이번엔 남자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남자들은 왜 첫사랑을 잊지 못할까? 남자들은 왜 중요한 순간에 여자를 버리고 도망칠까? 남자들은 왜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까? 저자는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날카롭고도 유쾌한 시선으로 주변의 사례와 진솔한 경험담을 나누며, 남자를 알아가려는 노력이 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인 동시에 자신을 들여다보는 의미있는 과정이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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