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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킴 “춤 잘 추려면 ‘자뻑’이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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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는 안 읽어도 돼.” 안무가 리아킴이 지인들에게  『나의 까만 단발머리』  를 보내면서 보탠 말이다. 그는 왜 공들여 쓴 책을 자세히 읽지 말라고 했을까. 이 책은 비단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리아 킴의 (자칭) 찌질했던 흑역사’가 모두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구독자 수 1,600만에 달하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대표 안무가 ‘리아킴’은 이효리, 소녀시대, 트와이스, 원더걸스의 춤 선생으로 트와이스 ‘TT’, 선미 ‘24시간이 모자라’ ‘가시나’의 안무가로 유명한 K팝 대표 춤꾼이다. 2014년 직접 설립한 댄스 기획사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는 현재 K팝 투어 코스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리아킴은 1999년 중학교 3학년 때,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을 TV로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넋 놓고 바라봐야만 했던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Billie Jean)’. 사춘기, 반항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던 리아킴은 아버지를 졸라 안양 청소년문화센터 댄스 교실에 등록한 후 매일 춤을 췄다. 대학 대신 안무팀 ‘위너스’에 들어갔고 2006년 스트리트댄스 세계 대회 로킹 부문 우승, 2007년 세계 대회 팝핀 우승, 로킹 준우승을 했다.

 

“선생님은 타고 나셨죠?”, “재능이 있으니까 그렇게 추죠.”, “전 몸치라서 춤 못 줘요”라는 말을 매일 빠짐 없이 듣는 ‘리아킴’이라서 책을 썼다. “알고 보면 자신은 그저 집요한 노력파”라는 리아킴을 서울 논현동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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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과거는 없어요

 

책을 쓰고 싶으셨다고요.

 

기회가 온다면 써보고 싶었어요. 성공담이 아닌 솔직하게 제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라면, 써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춰서 그런지, 사람들이 저를 오해하는 면이 있거든요. ‘얘는 원래부터 자신감이 많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순탄하게 잘 자랐을 것 같다?’하는 선입견인데요. 사실이 아니니까요. 제게도 찌질하고 힘들었던 시절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목이  『나의 까만 단발머리』  예요. 칼단발은 리아킴의 트레이드 마크죠.

 

6년째 고수하고 있는 스타일이에요. 헤어 스타일을 바꾸고 제 춤 스타일도 달라졌기 때문에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 제목을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50개 정도까지 떠올려 봤는데 그 중 하나가 ‘나의 검정 단발머리’였어요. ‘검정’이라는 단어가 좀 어두운 분위기를 주는 것 같아 ‘까만’으로 바꿨어요.

 

왕따였던 학창 시절부터 부모님 이야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연까지 굉장히 솔직하게 썼어요.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최대한 솔직하고 싶다’였어요.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할까요? 제가 춤에 있어서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지만 지금도 사회성이 부족해요. 새로 알게 된 사람들에게 밥 한 번 먹자는 이야기도 잘 못하고요. 부족한 모습까지 다 보여주려고 했어요.

 

2006년, 23살 때 ‘인세인브레인’이라는 댄스팀을 만들었어요. 이후 서울 신천에 원밀리언의 시초가 된 ‘브레인 댄스 스튜디오’를 여셨고요. 굉장히 빨리 독립하신 것 아닌가요?

 

어릴 때부터 춤을 췄기 때문에 독립은 빠른 편이었죠. 하지만 말이 좋아 팀의 리더였지 돈이 있어서 스튜디오를 차린 건 아니었어요. 100만 원 남짓한 수입의 연습실 월세만 70만 원, 수강생이 10명이 채 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어요. 잠잘 곳이 없어서 차가운 지하 연습실에서 간이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고요. 그땐 온수가 안 나와서 샤워도 제대로 못했어요. 당시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울 게 없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지금의 삶을 꿈도 꾸지 못했던 때였어요.

 

최근 KBS2 <대화의 희열2>에 출연해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어요. 토크쇼에 출연한 건 처음이시죠?

 

예능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었어요. 비 오는 날에 녹화를 했는데 6시간 정도 촬영했던 것 같아요. 촬영 장소가 습해서 에어컨을 세게 틀었더니 너무 추웠어요. 자꾸 커피를 주셔서 마시다 보니까 더 긴장이 되고. 무척 긴장했지만 제겐 특별한 시간이었죠. <대화의 희열2>를 계기로 ‘리아킴’을 좀 알아봐주는 분들이 늘었어요. 옛날에는 춤추는 사람? 선미 춤을 만든 사람? 정도로 인식했다면, 이제 ‘안무가 리아킴’으로 인지해주시는 것 같아요.

 

작년에 방송됐던 10대들의 댄스 오디션 <댄싱 하이>에서 춤 멘토로 활약하기도 했어요. 승부욕이 굉장했던 걸로 기억해요.

 

어릴 때 댄스 대회를 워낙 많이 나가서 이제 승부욕은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웃음) <댄싱 하이>는 팀으로 한 대결이니까요. 제 팀이 된 친구들이 1등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노래나 랩 오디션은 많은데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은 적으니까요. 흔쾌히 출연했어요.

 

2011년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 ‘ 이효리의 춤 선생’ 김혜령으로 참가하셨죠. 그땐 가수 지망생이었어요.

 

독설을 들은 프로그램이었지만 (웃음) 후회는 안 해요. 누구는 부끄러운 흑역사라고 보겠지만 지금의 저를 만든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부끄럽다는 생각 때문에 안 했을 걸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나간 게 더 나았어요. 그래서 책에도 가감 없이 썼어요.

 

과거 펑키리아, 김혜령으로 활동했던 사진을 보면 이미지가 많이 달라요. 6년 전 다이어트를 시작해 한 달 반 동안 10kg를 감량하셨다고요.

 

예전에 그냥 춤추는 여학생 느낌이었죠. 실제로도 그랬고요. 그땐 스트리트 댄서들의 이미지가 다들 비슷했어요. 다이어트를 한 건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예요. 발레 학원에 갔는데 다들 몸에 딱 밀착되는 레오타드를 입고 군살 없이 매끈한 몸으로 서 있는 거예요. 제 배만 볼록했고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이어트를 시작했어요. 사과, 시금치, 당근 같은 채소를 주식으로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먹지 않았어요. 매일 밤 침대 위에서 복근 운동을 200개씩, 아침엔 무조건 한강변을 달렸어요.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어요.

 

지금까지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다이어트를 한 후에 체질이 좀 달라졌어요. 이제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바로 체해요. 다이어트를 할 때 삶은 고기, 삶은 달걀 위주로 먹었기 때문에 기름기가 많고 양념이 많이 든 튀긴 음식을 먹으면 몸에서 안 받아요. 더부룩하게 느껴지고요. 자연스럽게 유지가 되고 있어요. 지금은 PT를 받고 요가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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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대표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원밀리언 유튜브 채널(1MILLION Dance Studio)는 현재 구독자 수가 1,600만 명입니다. 90% 이상이 해외 구독자라고요.

 

원밀리언에서 활동하는 안무가가 프리랜서까지 합해서 30여 명이에요. 수업이 끝나면 매일 영상을 찍어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를 설립할 때 목적이 “백 만 명이 춤추게 하겠다”였어요. 지금은 꿈은 이뤘다고 볼 수 있죠.

 

 

 

 

K팝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댄스 스튜디오를 많이 찾는다고요.

 

현재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수강생의 70%가 외국인이에요. 외국 친구들은 해외에서 펼쳐지는 워크숍에도 ‘원밀리언’이라는 이름을 보고 찾아와요.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를 비롯해 워크숍으로 찾아간 나라만 20여 개가 넘어요. 한번 워크숍이 열리면 평균 500여 명의 사람들이 같이 춤춰요. 스튜디오는 곧 성수동으로 이사할 예정이에요. 비기너 클래스에 좀더 집중할 예정인데요. 춤꾼들만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 춤의 대중화를 이끄는 곳이 되고 싶어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영상 공유의 파급력이 가장 큰 몫을 했어요. 지금처럼 유튜브가 일상화되기 전부터 영상을 찍었거든요. 그리고 또 운이죠. 유튜브라는 시장이 뜨고 있을 때 ‘원밀리언’ 채널을 시작했고, 유튜브 구독자들이 저희 스튜디오까지 찾아오게 됐으니까요. 운에 더불어 저희가 잘한 게 있다면 지속성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을 올리고 있어요. 꾸준함보다 더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유튜브 수익은 많나요?

 

음원 저작권료로 많이 나가기 때문에 유튜브 수익이 높은 편은 아니에요.

 

안무는 어떻게 짜나요?

 

영감을 받기 위해서 평소 다양한 영상 자료를 찾아보고 영화도 즐겨 봐요. 다른 안무가들의 영상을 보면서 공부도 하고요. 안무를 짠다는 건 내 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야 하는 일이라서요.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나와야 하는 일이라서 일단 부담감을 버리고 시작해요. 또 평상시 아티스트의 습관, 매력, 캐릭터를 유심히 관찰해요. 이것들이 안무에 녹아 나면 보는 사람도 표현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기 때문이에요.

 

리아킴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집요함이 아닐까 싶어요. 집요함은 저의 타고난 재능 같아요. 뭔가 꽂히면 그 대상 자체에 집착적으로 매달려요. 가끔 사람들이 ‘너 참 독하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건 게임의 끝판까지 가보고 싶은 욕망이 강해서였던 것 같아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대표 안무가로서 품고 있는 꿈은 무엇인가요?

 

직장인들이 퇴근 시간에 맥주 한잔 하듯이 편안하게 춤 추러 오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춤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즐길 수 있다면 더 재밌게 출 수 있거든요. 저는 몸치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이 있다면요?

 

음.. 다 잘한 것 같아요. 부끄러운 순간, 선택도 있었지만 그 경험들 덕분에 지금까지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고 해도 기분 좋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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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건 축하할 일

 

매력적인 춤꾼이 되려면 어떤 소양이 필요할까요?

 

약간 자뻑이 있어야 해요. 자기가 매력이 있다는 걸 스스로 아는 거죠. 곧 자기 어필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 춤을 잘 춰요. 댄서들을 보면 자뻑이 장난이 아니에요. 거울 앞에 서면 난리가 나죠. 폼을 잡는라. (웃음) 스튜디오에 처음 오는 분들은 전신 거울을 두려워해요. 자기 허벅지만 두꺼운 것 같다고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 춤을 즐겨야 해요. 저는 재밌게 춤을 추는 사람이 춤을 잘 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몸치는 없어요. 즐기는 마음이 있으면 누구라도 춤을 잘 출 수 있어요. 프로 댄서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즐기는 게 가장 먼저예요.

 

K팝 대표 댄서로 책임감도 느끼실 것 같아요. 후배 댄서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댄서’라는 직업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약간 불량하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있기 때문에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예의가 없으면서 스스로 쿨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춤에 끊임없이 흥미를 가져야 하고요.

 

롤 모델이 있나요?

 

예전에는 마이클 잭슨을 좋아했고 선망했는데요. 요즘엔 대중에게 친절한 사람, 거리감을 좁히는 사람들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 같은 분이요. “내가 일류야!”라는 의식을 갖지 않고, 모든 사람을 넓게 아우르는 사람들을 닮고 싶어요. 혼자만 높게 서 있는 게 아니라 대중과 평행선에서 소통하는 사람들이 좋게 다가와요.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던 자녀가 갑자기 댄서가 된다고 걱정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나요?

 

부모가 아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까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 아닐까요?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만 성장하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돼요.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산다면 너무 끔찍하지 않을까요? 춤을 추다가 또 다른 꿈을 발견할 수도 있는 거고요.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있는냐’인 것 같아요. 간혹 부상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있는데요. 춤은 생활 운동 같은 느낌이라서요. 직장 생활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보다 훨씬 건강할 걸요? 아이가 춤을 추고 싶어 한다면, 댄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건 행운을 찾은 거예요. 제가 유경험자니까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건 축하해줄 일이에요.

 

댄서를 꿈꾸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그냥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이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어려운 말일 수 있어요. 춤을 추고 싶은데 지금까지 자기가 쌓아 놓은 커리어를 포기 못해서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요. 아까우니까, 안정적인 지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인데요. 그 길을 한 번 벗어나보면 의외로 삶은 재밌어요. 춤을 추고 싶다면 용기 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의 까만 단발머리리아킴 저 | arte(아르테)
그녀가 춤, 즉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며 겪은 황홀한 성공과 긴 방황,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자기만의 깨달음을 담고 있다. 오롯이 그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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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치과의사 강창용 “절대로, 함부로 충치 치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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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MBC 불만제로>, 2015년 <SBS 스페셜> 등을 통해 치과의 과잉 진료를 고발한 치과의사 강창용이 ‘치과 사용 설명서’인  『치과의 거짓말』  로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냈다. 과잉 진료 사례보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천적으로 환자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지난 몇 년 간 여러 해외 자료를 공부하고, 방법을 찾아왔다. 누적 조회 수 600만 회에 달하는 유튜브, 여러 해외 자료를 찾아 올린 블로그가 스마트폰의 기능 설명서라면 이 책은 스마트폰의 문제 증상과 해결 방법을 다룬 안내서다. 환자를 향해 “절대로, 함부로 충치 치료를 하지 말라” 고 말하는 치과 의사 강창용은 치과를 향해서도 “치료가 아니라 예방으로”(9쪽)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때까지 비전문가인 환자는 적어도 두 곳 이상의 치과를 비교해서 치료를 결정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제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과잉 진료와 싸워온 7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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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비교하는 것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을 꼽는다면 “과잉 진료를 피하는 첫 번째 방법은 절대로, 함부로 충치 치료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두 곳 이상의 치과에서 진단 받기 전에는 치료하지 않아야 합니다.”(135-136쪽)가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유튜브, 블로그를 통해 치과 지식을 전해왔는데요. 그것으로 환자 분들이 충분히 아실 줄 알았어요. 아니었던 거죠. 환자는 의사가 아니잖아요. 문득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알았어요. 사진 보는 법을 알려줄 게 아니라 실천적으로 환자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겠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비교하는 거거든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전문가 A, 전문가 B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고 비교해보는 거예요. 만약 암에 걸렸다고 한다면 어때요? 다른 병원도 가보고, 또 검진을 받아보고, 치료 방법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치과는 어떤가요? 이가 시큰해서 갔는데 “안 아프게 해줄게요”하더니 이를 뚫고는 “50만원입니다”가 되잖아요. 환자는 무슨 치료인지 모르고 치료를 받아요. 심지어 치아는 한 번 깎으면 돌이킬 수 없거든요. 그렇다면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치과에서는 유독 안 되고 있는 거죠.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얼결에 치료까지 받고 온 경험, 많은 분들이 하셨을 거예요.


치료하겠다는 의사에게 “치료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때문에 저는 환자가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곧바로 치료를 하지 않도록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환자가 이런 생각을 갖고 치과에 간다면 “오늘은 검진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니까요. 절대로 충치 치료를 하지 말라고 한 말은 그래서 2가지 의미가 있어요. 지금 상황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할 수 있다는 것과 이 말을 통해 환자가 좀 더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확인하는 절차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환자가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면 과잉 진료를 조금은 덜 걱정해도 될 거예요. 이런 말로 강한 자극을 환자들에게 주고 싶었어요.

 

북유럽 국가들이나 호주 등의 사례를 들면서 국내 치과 치료가 ‘예방 치과’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것이 국민 구강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요. 그런데 현재 한국은 ‘치료’쪽에 중심을 두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작은 것도 빨리 치료해야 돈도 적게 들고, 안 아프다고 얘기를 하죠. 그런데 보세요. 미국 치과 교과서를 보면 초기 충치는 환자가 관리를 잘한다면 지켜보고, 관리를 잘 못하면 불소도포 하는 식이에요. 심지어 조금 진행된 충치더라도 환자가 양치를 잘하면 지켜보고, 아니면 치료하라고 되어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 치과 교과서는 치료를 권장하는 내용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하지 말라는 내용도 없거든요. 더 의사의 자율에 맡기니까 초기에도 치료를 하는 의사가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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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itt's Fundamentals of Operative Dentistry』, 강창용 의사 제공

 

 

아셔야 할 것은, 충치는 구멍 난 것과 아닌 것이 있어요. 구멍 난 건 양치가 안 되니까 진행 속도가 빠르고 이미 깊게 진행됐을 확률이 큰 거예요. 구멍 안 난 건 충치가 깊지 않을 수 있고, 깊다 하더라도 진행 속도가 느린 거죠.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 둘 다 충치로 나올 뿐이잖아요. 2018년에 이 자료들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서 알려야겠다, 생각한 거예요.

 

2018년에서야 아셨다고요?


저는 그전까지는 충치가 멈출지도 모르니 초기 치료는 하지 마세요, 라는 정도였어요. 충치가 조금 있는데도 치료를 하려면 실제로 치아를 많이 파내야 하니까요. 그런데 미국이나 북유럽에서는 이미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거예요. 심지어 스위스는 과잉진료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법랑질 충치까지는 지켜보라고 되어 있죠. 법랑질 충치를 치료하면 과잉진료라고 명시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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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치 진단은 의사마다 다르다?


국내에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왜 없나요?


요리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요리법이 다 있지만 모두가 그 방법대로 하지 않잖아요. 똑같아요. 치과의사도 자신만의 전문영역이 있어서 내 진단, 내 판단으로 치료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가이드라인이 있다면요? 환자가 그 매뉴얼을 들고 온다면요? 그래서 의사들이 매뉴얼 자체를 싫어해요. 그러면서 충치 진단은 의사마다 다른 거라고 말하죠. 물론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충치 진단 개수가 너무 많이 차이 나는 게 문제죠. A의사와 B의사의 진단이 5-6개씩 차이가 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얘기예요.

 

책에서 치과의사들의 “이기적 집단 성향”(102쪽)을 말하기도 하셨는데요. 왜 유독 치과에서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보세요?


간단해요. 전에는 사거리에 보면 내과 한 곳, 이비인후과 한 곳, 치과 한 곳 있었잖아요. 지금은 치과만 세 곳이에요. 단일 과(科)가 이렇게 많은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물론 많아서 좋은 점도 있죠. 환자가 치과 서비스를 더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인데요. 치과 입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지는 거예요. 과연 치과 환자가 국내에 그렇게 많을까요? 과거처럼 안 닦고, 치과 안 가는 시대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데 치과는 많아요. 수익 목표가 있는데 환자가 줄어드니까 수익 목표를 조절하는 게 아니라 수익 낼 방법을 찾아요. 예를 들면 교정을 더 할 수도 있고, 덤핑을 해서 임플란트를 더 할 수도 있고요. 그것마저 안 되면 충치의 진단 기준을 낮추는 거예요. 현재는 과거에 비해 충치 진단 기준이 굉장히 낮아졌어요. 그러면서 합리화를 하죠. 충치가 심해질지도 모르고, 환자가 양치를 잘 안 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외국 사례 보셨잖아요. 진단 기준을 높이고, 지켜보라고 나오잖아요.

 

그래서 충치 치료를 조기에 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문을 하셨잖아요. “충치 조기 치료를 해서 충치 환자가 줄었는지요?”(44쪽)라고요.


북유럽 국가는 지난 30년 동안 예방 교육 쪽으로 접근을 했어요. 그 결과 충치 환자를 90%나 줄였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치료 빨리 해야 한다고 해요. 양치는 예방일 뿐이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치약의 효과는 충치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거예요. 그것 역시 ‘치료’죠. 종양이 있다고 할 때 지켜보기도 하잖아요. 충치도 마찬가지예요. 충치를 무조건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치료예요. 또 우리가 상처에 딱지가 앉은 걸 떼어내지 않잖아요. 충치를 치아가 무기질 성분을 잃어서 푸석푸석해진 뼈라고 한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한 방어막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를 봐야 하고요. 구멍이 없다면 양치질만 잘해도 이 자체가 방어막이 되는 거죠. 

 

치과 치료가 반영구적이지 않다는 점도 중요할 것 같아요. “치과 치료는 평균 8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174쪽)라고 하셨잖아요.


충치가 조금 있다고 파내고, 때우다 보면 다음에는 충치가 더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하게 되겠죠. 사실은 고속도로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치과 재료는 붙이는 재료거든요. 붙인 틈이 뜨면 걷잡을 수 없어요. 또 치과 재료는 한 번 해서 20-30년 쓰는 게 아니에요. 10년 이내로 또 바꾸는데 바꿀 때마다 더 파내야 하죠. 그런 특성 때문에 외국에서는 충치를 최대한 지켜보고, 치료시기를 늦추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관리를 잘하면 충치는 진행이 멈출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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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긴장 관계를 만들자


충격적인 과잉 진료 사례를 많이 봐오셨을 텐데요. 기억나는 사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과잉 신경치료를 당하고서도 소송 당한 분이 있어요. 치과에서 아랫니를 신경치료 하고는 윗니도 하려다가 환자에게 걸린 거죠. 환자가 서울대까지 가서 확인을 해보니까 안 해도 되는 치아였어요. 그제야 아랫니도 의심이 되잖아요. 신경치료를 받은 치과에 가서 따졌더니 아무 말을 못 하더래요. 그래놓고 환자가 과잉진료라고 하니까 고소를 한 상황이에요. 제 유튜브와 블로그에 가면 이 사례가 있어요.

 

너무 어렵네요. 환자가 의사의 치료를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말이죠. 이에 “치과의사와 환자 사이에 이런 팽팽한 긴장 관계가 유지되어야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결과적으로 더 좋은 일이 될 것”(111쪽)이라고 하셨죠.


제가 왜 환자가 의사를 의심하게 만들겠어요. 그게 아니고, 합리적인 긴장 관계를 만들자는 거예요. 의사도 그런 긴장 관계를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면 좋고, 다른 의사는 어떻게 하는지 보면 좋겠어요. 피드백을 의사도 끊임없이 해야죠. 제 진단기준도 틀릴 수 있고, 잘못 판단할 수도 있거든요. 꾸준히 다른 의사의 진단을 보고 제 진단과 비교해봐야죠. 저는 환자가 오면 다른 의사의 진단을 미리 얘기하지 말라고 해요. 먼저 제가 진단을 내리고 비교해 봐요. 제가 틀리면 당연히 창피하죠.(웃음) 하지만 왜 틀렸는지 분석해보면 제게도 도움이 되잖아요. 

 

“과잉 진료와 싸운 7년의 시간은 제게 일상이었습니다”(6쪽)라고 하셨는데요. 선생님 자신에게도 공부가 엄청 많이 된 시간이었겠어요.


의외로 공부 못했어요. 7년 중 5년은 과잉 진료 사례를 알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떤 경우에 과잉 진료가 발생하는지 알리면 고칠 거라 생각했는데요. 해결 방도를 알리지 않고 과잉 진료만 얘기하니까 “거짓 선동”이라는 말까지 들은 거예요. 그래서 외국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앞서 말씀 드린 내용들을 찾게 된 거고요. 본격적으로 외국 교과서를 찾아보고 공부한 건 2018년부터였어요.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을 수도 있다고요?


과잉 진료 사례는 몇 개 보여주면 돼요. 누가 봐도 나쁜 사례니까요. 사람들이 금방 저를 옹호하죠. 그런데 외국 교과서 자료를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요. 외국 책 몇 권 가지고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고 저를 비판해요. 그렇게 치과 의사 100명이 비판을 하면 일반 분들은 제가 오버한다고 생각하겠죠. 지지를 못 받는 거예요. 점점 어려워져요. 하지만 죽을 각오로 하고 있어요. 언제까지 과잉 진료 사례만 얘기하겠어요. 그런다고 해결이 되나요? 수년 동안 문제만 제기하고 대책은 안 내놓을 건가요? 저는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하면 누군가 대책을 내놓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치과 의사들이 욕만 할 뿐 스스로 반성을 안 하는 거죠. 반성을 해야 개선이 될 텐데 말이에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는 거예요.

 

블로그, 유튜브 등에서도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그 이유도 여기 있겠네요. 이번에 책을 쓴 이유도 그렇고요.


제 유튜브에 업로드 한 게 200개가 넘어요.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댓글이 있었어요. 그래서 책으로 정리를 해야겠다, 생각한 거예요. 유튜브가 자세한 설명서라면 이 책은 부록처럼 붙은 문제 해결 방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4년 전에도 출판 제의가 있었지만 그때 내지 않은 게 너무 다행이에요. 그때 책을 썼다면 ‘과잉 진료가 너무 많다’는 얘기가 됐겠죠. 지금은 그동안 공부한 것도 있고, 유튜브도 준비되어 있죠. 책을 보고 구체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다면 유튜브에서 찾아보실 수 있거든요. 유튜브 내용은 책보다는 좀 더 전문적이에요. 지금 블로그에도 치대생들을 위한 포스팅을 계속 하고 있거든요.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내용도 올리고 있어요.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전문 치과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결국 하고 싶은 건 그거예요. 치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 지금 학생들은 책 위주로 배우고 있거든요. 제가 배운 게 그거예요. 그래서 초기 충치는 지켜봐야 한다는 걸 저는 경험으로 익혔어요. 하지만 모든 치과 의사가 경험을 쌓을 때까지 환자가 기다려서는 안 되잖아요. 유튜브, 블로그가 있다면 좀 더 찾아보고 배울 수 있어요. 그게 목적이에요. 유튜브 내용 가운데 정말 치대생들이 봤으면 하는 내용을 블로그로 옮기는 작업을 요즘은 계속 하고 있죠. 환자에게 필요한 게 이 책이라면 좀 더 알고 싶은 분들에게 필요한 게 유튜브, 블로그예요. 

 

독자에게 이것만큼은 꼭 당부하고 싶다, 하는 내용이 있다면요?


늘 안타까운 게 있어요. 저희 치과에 이미 치료를 받고 오시는 거예요. 치료를 받은 다음에 과잉 진료 같다고 하시는데 그러지 마시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방법은 하나, 다른 치과에 가서 다른 의사의 얘기를 들어보고 비교하는 거예요. “다음에 올게요”라는 말 하는 것에 부담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요. 이제는 그러한 풍토가 되어야 해요. 치과에 가시면, 제발 곧바로 치료 받지 마시고요. 적어도 두세 곳 이상의 치과에 가보시고 비교해보세요. 의심하라는 게 아니에요. 비전문가인 환자가 자기 치료를 결정하는 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치과의 거짓말강창용 저 | 소라주
윤리 강령에는 “의사로서 인격이나 자격에 명백한 결함이 있거나, 허위 또는 기만 의료 행위를 자행하는 의사들을 동료 의사가 거침없이 폭로하여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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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넥팅랩 현경민 “블록체인이 살아남는 법? 사용자 입장에서 설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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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자동차가, 20세기에는 인터넷이 있다면 21세기에는 블록체인이 있다.”

- 돈 탭스콧, 『블록체인 혁명』 중. 『블록체인 트렌드 2020』 재인용

  

2009년 배포된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중앙은행 없이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했다. 2010년, 라스즐로 핸예츠가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이용해 피자 두 판을 시켰고, 피자 두 판 값으로 지불한 비트코인 1만 개는 천정부지로 값이 올라 9천억 원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암호화폐를 투기 대상으로 보고 달려드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 또한 늘어났다.


이후 10년이 지났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세계 최고의 IT 기업들이 블록체인에 매달리고 있다. 삼성 사장단은 1년 동안 블록체인 특강을 듣기도 했다. 초국가적 대기업도 블록체인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해 뛰어드는 상황이다. 투기 대상으로 여기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 통신, 포털, 스타트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IT 전문 포럼 커넥팅랩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주제로 여러 차례 세미나를 진행한 결과를  『블록체인 트렌드 2020』  에 모았다. 책 속에 그려진 우리의 모습은 블록체인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금융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저렴한 수수료로 해외 송금이 가능해지고, 유통과 블록체인이 만나면 언제 어디서든 안심하고 식품을 소비할 수 있다. 콘텐츠 창작자는 창작물에 따라 합당한 이익을 얻고, 블록체인으로 인해 공정하고 투명한 언론을 기대할 수 있다. 


 “인터넷이 ‘확장’이었다면 블록체인은 ‘신뢰’입니다.” 커넥팅랩 소속 현경민 저자는 신뢰 관계에 기반한 정보 처리가 블록체인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기존에는 중개자가 신뢰의 역할을 맡았다면, 이제는 블록체인으로 거래 비용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한다. 산업의 분야와 규모에 상관없이 혁신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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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블록체인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다르다


블록체인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특정 데이터가 블록 형태로 담겨 체인으로 길게 연결된 분산 원장을 말합니다. 분산 원장은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거래내역을 다 나눠 갖는 걸 의미하고요. 암호화폐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거래 내역이 담긴 장부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모든 사용자에게 공유되는 형태라면, 다른 블록체인 서비스에서는 블록 안에 거래 내역 외에 다른 데이터를 담는 게 가능합니다.


원장 : 자산이나 부채, 자본의 상태를 표시하는 모든 계정계좌를 대변과 차변으로 나누어 대변과 차변 내용을 전부 기록하는 회계 장부.


블록을 컴퓨터 파일로 생각해도 될까요?


파일이라는 관점은 모호할 수 있어요. 파일보다는 데이터의 형태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쉽게 생각하면 엑셀을 상상해보세요. 처음 셀에 데이터를 채우고, 엔터를 치고 다음 셀에 정보를 기입하는 식으로 하나씩 정보를 연결해놓은 거죠.


커넥팅랩에서는 어떻게 블록체인 자료를 조사했나요?


자체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세미나를 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어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워낙 화두였고, 이야기하면 할수록 생각보다 재미있는 기술이고 유용하겠다 싶더라고요.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정보는 대부분 외서를 번역하거나 암호화폐 관련된 내용에 치우쳐 있어서,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블록체인과 인터넷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블록체인을 보통 신뢰 기반의 인터넷이라고 표현해요. 인터넷이 공유와 소유의 관점을 가져왔다면 블록체인은 거기에 신뢰를 더했다고 볼 수 있어요. 기존 온라인은 연결된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잖아요. 하다못해 중고거래를 할 때도 물건을 가진 사람이 악의적인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못 하는데, 블록체인의 신뢰성을 더하면 인터넷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거래가 일어날 때마다 모든 이의 장부를 확인해야 한다면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블록체인의 차이점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인데요. 큰 관점에서 봤을 때는 퍼블릭 블록체인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있어요. 지금 말씀하신 것과 암호화폐는 퍼블릭 블록체인이어서 누구나 다 동등한 원장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되고,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업들이나 컨소시엄, 지자체가 스스로 운영하기 때문에 퍼블릭 블록체인보다 효율적이죠.


컨소시엄 : 공통의 목적을 위한 협회나 조합.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에 여러 개의 업체가 한 회사의 형태로 참여할 때도 컨소시엄이라고 일컫는다.


비트코인은 탈중앙화가 가장 큰 특징이었는데,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중앙 주체가 있어요.


처음에는 중앙이 가진 문제 때문에 탈중앙화라는 표현이 나왔어요. 거래할 때 수수료가 들어가고 중앙이 승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것들을 중앙의 역할을 스스로 나눠 가져서 효율을 늘리겠다는 거죠. 기업에서 하는 블록체인 서비스는 중앙을 완전히 벗어난다는 개념은 아니지만, 과정을 편의적으로 생략하는 과정이라고 보실 수 있고요. 금융 컨소시엄 블록체인은 금융기관들이 각자 자기 정보를 나누는 형태여서 어떻게 보면 하나의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업계 전체에서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어요.

 

중앙화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블록체인 서비스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개 블록체인 서비스는 신뢰의 관점에서 무언가를 가져오는 서비스에 사용됩니다. 송금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기존의 외환 송금 과정에서는 은행 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에 중간에 중앙 은행이 끼게 돼요. 그러면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수료가 발생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복잡해지죠. 이 과정이 블록체인으로 신뢰를 담보한다면 수수료도 절감되고 처리하는 시간도 빨라질 걸로 기대합니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원장을 나눠 가지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분리된다면 보상은 어떻게 주게 되나요?


퍼블릭 블록체인은 사용자끼리 별도의 작업증명을 하고 리워드를 받는 형태였죠. 채굴을 빼게 되면 퍼블릭은 돌아가지 않아요. 사용자 입장에서 이득이 없는데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반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굳이 채굴하지 않아도 기업이 작업을 인증하면 거래가 성립합니다. 코인 보상이 필요 없는 거죠.


업계에서는 퍼블릭 블록체인보다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도입하려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기업들은 퍼블릿 블록체인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퍼블릭 블록체인 자체가 제도권 화폐와도 문제가 되고요. 대표적으로 명확하게 정부의 규제를 받는 금융 기관이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는 화폐를 공식적으로 유통하는 것 자체가 쉬운 관점은 아니거든요. 기업에서 직접 관리할 만한 환경도 아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필요한 서비스에만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게 훨씬 수익에 도움이 될 거예요. 나중에 서비스를 추가할 때도 프라이빗과 컨소시엄 블록체인이 유리하고요.


신뢰성은 가져가되 단점은 상쇄하겠다는 시도인가요?


기존의 암호화폐는 제도권 안에 포함되기 쉽지 않아요. 현재 금융 서비스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있고 신분증명을 통해서만 계좌를 만들 수 있어요. 개인의 자산을 개인정보와 연결해 놔야 정부에서 돈의 출처를 따질 수 있는데, 초기 블록체인 원장은 개인을 추정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처음에 주목을 받았던 것도 어둠의 마약 거래나 랜섬 웨어를 통한 악의적 해킹을 통한 보상에 사용되었거든요. 미국과 일부 국가에서도 개인과 블록체인을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기존의 퍼블릭 암호화폐의 본질은 사라지죠.


퍼블릭과 프라이빗 블록체인 서비스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만약 신문 기사에 거래소, 암호화폐와 가격 등락이 나온다면 퍼블릭 블록체인, 기업이나 서비스가 언급되면 프라이빗이나 컨소시엄 블록체인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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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에 가까워진 블록체인


책에 농수산물의 유통 과정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예시가 나와 있어요. 이런 경우, 원장은 누가 나눠 가지게 되나요?


유통 업체끼리 연합을 만들 수도 있고, 정부에서 관리할 수도 있을 거고요. 책에 소개된 사례는 월마트와 IBM의 협업이에요. 월마트를 통해 유통하는 제품에 블록체인 기반 원장을 유지해 추적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몇 년 전 중국의 월마트 최고 임원급 사람이 해고 된 적이 있어요. 전세계적으로 중국이 돼지고기를 절반 정도 소비해요. 그만큼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데도 가짜 돼지고기가 유통이 됐기 때문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가짜 돼지고기가 아니라는 신뢰를 얻기 위해 유통과정마다 분산저장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P2P 거래에서도 블록체인으로 신뢰를 보장한다고요.


실생활에서 전력 거래를 하는 나라들이 있어요. 일부 지역에서 테스트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전기에 블록체인 기반 P2P 거래 서비스가 들어간다면 우리는 한전에서 전기를 구매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전력을 퍼올 수 있게 되죠. 여행을 갔을 때 핸드폰을 쓰다 남는 데이터 용량을 블록체인에 올리고 구매하는 방식도 상상할 수 있고요.


P2P : peer to peer. 인터넷에서 개인이 직접 연결되어 무언가 공유하는 서비스를 통칭한다.

 

콘텐츠에 블록체인을 도입한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스팀잇(https://steemit.com)이 있는데요. 예스24에서는 독자들이 직접 콘텐츠를 개발하는 플랫폼으로 세이토큰(https://www.sey.io/)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콘텐츠는 신뢰관계가 복잡해요. 잊을 만 하면 유명한 가수라도 음원 수익이 얼마 안 된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콘텐츠를 가진 제작자들이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제작자가 가져가는 수익이 줄어들어요. 만일 유통 자체가 블록체인화 된다고 하면 작곡가, 작사가, 실연자 등이 지금보다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겠죠. 또 하나의 관점으로는 불법 콘텐츠 유통을 탐색해서 찾아내기 용이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요.


보험업에서 사고 기록을 블록체인에 기록해서 활용할 때, 개인정보가 체인 안에 들어가면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을까요?


기업들이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다른 예시긴 하지만 에스토니아에서 국가적으로 블록체인을 도입해서 이용하는데, 자기 블록체인 아이디를 누가 조회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누가 자기 정보를 사용하는지까지 기록이 되거나, 사용자 입장에서 다른 사용자의 기록을 조회하지 못하게 막거나, 특별한 목적이나 사유가 있을 때만 접근 권한을 주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블록체인을 적극 도입하고 싶어할 것 같기도 해요. 신용카드를 써서 돈의 흐름이 명확히 보인 것처럼, 블록체인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정부에서 모든 돈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으니까요.


지역 화폐의 관점에서도 불법 사용이 끼여들 여지가 상당히 없어지게 되죠. 지역 상품권이나 지역 화폐는 실제 매장에서 사용되기보다는 깡을 한다거나 어둠의 경로로 들어가기 때문에 지자체에 회수되는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요. 지자체에서도 블록체인에 관심을 많이 가질 수밖에요.


국내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예시가 있나요?


대표적인 예로는 삼성SDS와 삼진어묵 업체가 시범 서비스를 한 적이 있어요. 어묵도 생선을 갈아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생선을 갈아서 생선의 생산지가 어딘지 알 수 없으니까 고객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블록체인으로 유통 단계를 증명하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어묵을 사면 QR코드로 어묵의 유통 경로와 어떤 원재료를 사용했나 파악하는 서비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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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을 둘러싼 불안감


JTBC 프로그램 <뉴스룸>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놓고 분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어요.


어느 정도는 저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편이에요.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이사는 암호화폐 관점에서 분리할 수 없다고 했지만, 퍼블릭 블록체인이 아닌 관점에서는 암호화폐가 없어도 서비스를 만들 수 있거든요.


한국 정부는 ICO를 금지했다고요.


고객이 투자해서 암호화폐를 샀는데, 나중에 사기성 코인으로 판명났을 때 정부의 규제가 없으면 결국 피해 보는 건 고객이에요. 신일 코인 사건도 황당하고 말이 안 되는데, 법률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그 업체를 규제할 수 없어요. 흔한 예시로 블록체인이 전기고 암호화폐는 전구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전기가 처음 나오고 전기를 사용한 서비스가 전구밖에 없었던 거죠. 정부에서는 전기 같은 유용한 서비스를 육성하면서도, ICO는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기업과 투자자를 보호하는 대책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ICO를 상용화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ICO : 가상 화폐 공개(Initial coin offering). IPO(Initial Public Offering; 비상장기업이 주식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기업의 주식을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팔고 재무내용을 공시하는 것)처럼 암호화폐를 공개하고 암호화폐의 내용을 공시하지만, 주간사와 감사가 없기 때문에 사기의 가능성이 높아 국가가 금지했다.


신일 코인 사건 :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에 실려 있다고 알려진 금을 담보로 신일골드코인이라는 암호화폐를 발행하겠다고 한 사건. 기본적인 백서도 없었지만 투자자들이 경쟁적으로 몰려 약 90억 원의 피해액을 남겼다.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 ‘암호화폐’가 붙은 서비스는 많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과도기인 것 같아요. 지금은 우리가 인터넷과 모바일을 너무나 당연하게 이용하는데, 인터넷 초창기만 하더라도 인터넷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미심쩍어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기도 했고, 제도적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방법을 만든 상태라 쉽게 이용하는 거죠. 블록체인도 마찬가지 수순을 밟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기술은 없어요. 완벽한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부정이 들어갈 수 있는데, 블록체인은 그런 면에서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하죠.


‘최초의 1마일 문제’의 해결책으로 사물인터넷과 블록체인 연계를 들었는데요.


누군가 사람이 개입하면 신뢰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요. 블록체인도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개입하면 그 정보가 계속 연장되기 때문에 수정도 할 수 없고요. 그걸 해결할 방법이 인간의 개입 과정을 줄이고 기기 사이에서 자동으로 처리하는 걸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1마일 문제 : 계약이 작동하기 위해 인간이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정보를 입력할 때, 초기 정보 자체가 진실한지 보장하지 못하는 문제.


사물인터넷 기기의 활용은 필연적으로 데이터 과부하 무제도 생각하게 되는데요. 블록체인이 상용화되려면 인터넷 망이 필수고, 인터넷에 모든 걸 의탁하는 위험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블록체인이 인터넷 기반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공유되어야 한다는 점은 맞아요. 그러나 서버가 다운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하더라도 분산원장을 여러 군데에 할 수 있으니까 하나가 문제가 되더라도 복사해서 쓸 수 있을 겁니다.

 

블록도 없고 체인도 없는 독일 기업 ‘아이오타’의 사례(278쪽)가 나왔어요. 블록체인인데 블록과 체인을 없애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 이유가 뭘까요?


블록체인 자체도 완전한 기술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컨소시엄 블록체인을 도입했는데 각 기업이 짜고 악의적으로 운영한다면 언제나 오용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비트코인도 반 이상이 합의해야 블록이 생성되는데, 지금은 채굴하는 연합이 다 모이면 과반수인 경우가 생기기도 해요. 블록체인 1세대가 비트코인이었다면 2세대는 이더리움이고, 3세대를 표방하는 서비스도 계속 연구되고 있어요. 아이오타도 블록체인의 개선 방안을 찾아 나선 프로젝트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기업 입장에서는 경쟁이 치열할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누가 더 잘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고 업계의 판도가 바뀔 때인데, 기업인들이 블록체인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까요?


만일 블록체인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철저하게 사용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뢰 구조를 담보로 하기에 수수료가 적게 들거나, 오래 걸렸던 과정이 단축되거나, 편하게 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사용자가 사용하니까요.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만들면서 아직 금융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한 것처럼,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서비스를 가져오는 기업이 블록체인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리브라 : 페이스북이 자체 개발한 암호화폐. 법정화폐와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 코인으로 금융 인프라가 열악한 신흥국을 주 대상으로 개발했다.


제목이 ‘블록체인 트렌드 2020’입니다. 곧 2020년이 올 텐데, 긍정적으로 상황을 전망하시는 편인가요?


낙관적으로 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중립 혹은 좋게 보지는 않는 편인데,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많이 활용될 것 같아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블록체인을 보면 팔짱을 끼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 같아요. 고객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늘어나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기다리면서 서비스를 즐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블록체인 트렌드 2020커넥팅랩 저 | 비즈니스북스
명확한 좌표가 없는 여타 기술서와는 다르게 업계 최신 동향을 생생히 담아내어 블록체인 기술과 기업들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남들보다 먼저 그 미래를 준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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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은재 “왜 학교에서는 빛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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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4~5시간. 그마저도 잠드는 시간은 들쭉날쭉, 정확히 기억할 수도 없다. 책상에 앉아 감기는 눈꺼풀과 씨름하다 잠드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열여섯, 중3의 시간이었다. 주변에는 더 적게 자는 친구들도 많았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니 견제도 불가피했다. 파사삭 부서질 것 같은 마음인데, 편하지 않기는 몸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수행평가, 고등학교 입시 준비에 치이며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사이 “나는 점점 피폐해졌다”고, 은재는 적었다.

 

아이는 용감하게 ‘갭 이어!’를 외쳤다. 갭 이어(Gap Year), 학업을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여행, 봉사, 진로탐색, 교육, 창업 등의 활동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시간. 은재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1년의 반은 세계 여행을 하고, 나머지 6개월은 ‘전적으로 마음대로 짠 계획’에 따라 여행하듯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터키, 이집트를 여행하며 갭 이어의 1학기를 보냈다. 수영을 하고, 수학과 한자를 공부하고,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강연을 들으며 2학기를 마쳤다. 1년이 지난 후, 은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열일곱 은재에게 쉼의 시간이 무엇을 남겼는지, 왜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는지, 모든 이야기가  『딱 일 년만 놀겠습니다』  에 담겼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사실 내 삶은 대한민국 평균 청소년의 것이었다”고 적었던 은재는,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에도 “저는 되게 평범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며 남긴 한 마디는 예사롭지 않았다. 어른들도 쉬어봐야 알 수 있을 거라고, 쉬어본 적이 없어서 아이들을 재촉한다고, 은재는 말했다. 갭 이어는 생각도 못해보고 쫓기듯 어른이 됐더니 ‘좀 쉬어 본’ 열여섯 아이에게 한 방 제대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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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서워서, 일단 미루고 싶었어요


올해 3월부터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네, 힘들었어요. 5월이 제일 힘들었어요. 중간고사를 보고 멘탈이 엄청 흔들렸거든요(웃음). 이제는 약간 적응을 했고, 마음을 비우는 자세를 갖고 있어요(웃음).

 

‘왜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까’ 하는 생각도 했나요?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할 게 너무 많으니까요. 학교에 안 다닐 때는 ‘다시 학교에 가면 예전처럼 진 빼지 말고 재밌게 다녀야지’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요. 정작 학교에 가니까 수행평가 같은 것도 많고, 정신도 없고, 마음가짐이랑 다르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진짜 마음을 비운 것 같아요. ‘어떻게든 되겠지’, ‘되는 만큼만 하지, 뭐’ 하고요. 그냥 웃고 넘어가자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아예 부딪히는 걸 피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어차피 시험이 제 앞에 있으니까 ‘이걸 어떻게 다시 넘어서야 되나’ 고민하게 돼요. 아직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방법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갭 이어를 갖기 전에는 ‘어떻게든 잘 해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맞아요. 하나라도 틀어지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고 강박이 심했어요. 그런데 중간고사 때 조금 무너지고 나니까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웃음).

 

갭 이어를 보내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선행 학습을 했잖아요. 후회되지는 않아요?


뭔가 더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했는데요. 지금은 그냥 ‘지금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학은 혼자 공부하기도 했었고, 특히 한자 공부했던 게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시간을 되게 잘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를 그만두기 전에는 어땠어요? 중3 때였죠?


네.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오히려 고등학교에 온 지금은 괜찮은데,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는 거예요. 고등학교 생활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너희 고등학교 가면 다 큰일 난다, 중학교 때 잘했던 애들도 성적 떨어진다, 선행 학습도 진짜 많이 해야 된다, 다른 애들은 이미 3년치 선행 학습을 끝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는 거죠. 그리고 저는 쌓아놓은 게 없었는데 주위에 보면 텝스가 800점대인 친구들도 있고... 저는 그게 안 되니까 ‘이렇게 가다가는, 고등학교는 이미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학교 때 성적이 좋았잖아요?


중학교에서는 외워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지만 고등학교 때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가면 내 실력이 들통 나겠구나,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싶었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주변에서 계속 ‘이 속도로 가다가는 뒤처질 거야’하고 불안을 부추기니까, 갭 이어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저는 ‘어차피 이렇게 계속 가도 할 수 없을 거야’는 생각이 너무 강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일단은 조금 미루고 싶었어요. 갭 이어를 가지면 남은 시간에 부족한 걸 조금 더 채운다든지,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갭 이어를 가져보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는 누가 먼저 꺼낸 거예요?


아빠가 먼저 말씀하셨어요. 저희 오빠가 엄청 자유로운 영혼인데(웃음),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하반하 세계 여행 학교’를 통해서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아빠가 저한테도 제안을 했었죠. ‘너도 한 번 가볼래?’ 하고요. 그런데 제가 ‘절대로 학교 밖을 나가지 않겠다’고 했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중반쯤 되니까 ‘여행 다녀와 보니까 어땠어?’ 이런 말을 꺼내게 됐죠.

 

부모님이 지지를 많이 해주셨네요. 쉬어가도 된다고 말씀해주시고요.


네, 감사한 거죠. 이렇게 계속 가면 오래 못 간다고, 오히려 추천해주셨어요.

 

가족 외에 주변 사람들 반응은 어땠나요?


반대는 없었어요. 주변 선생님들도 멋있다고, 잘 다녀오라고, 다녀와서 꼭 이야기해달라고 하셨고 지지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친구들은 놀라기도 했는데, 힘들고 쉬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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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에서는 빛나지 않았을까요?


‘하반하 세계 여행 학교’에서는 집단으로 생활했잖아요. 짜여진 시간표에 맞춰서 단체로 움직이고요. 혼자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아쉽지는 않았나요?


정말 아쉬웠어요. 요즘 느끼는 건데, 제가 생각보다 자유로운 것 같아요(웃음). 여행 하면서 구경도 더 많이 하고 싶었고, 만나는 사람들 인터뷰도 더 많이 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직접 계획을 짜는 것도 더 많이 해보고 싶었는데,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그게 안 됐어요.

 

단체 생활을 하면서 좋았던 점도 있었나요?


저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고 생각했는데, 자기주장이 조금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남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래도 내가 맞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고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의심 같은 걸 하게 된 것 같아요. 사소하게는, 집에 있을 때는 제일 맛있는 걸 제가 먹었거든요. 계란후라이도 제일 잘 된 걸 먹고요(웃음). 그런데 공동체 생활에서는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고, 처음에는 그게 되게 서러웠어요(웃음). 그리고 처음에는 제가 진짜 밑바닥이었거든요.

 

공동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었다는 거죠? 못하는 일이 너무 많았고요.


맞아요. 나중에는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동생들도 제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거예요. 학교였으면 다들 그렇게 하자고 따라줬을 텐데, 아무도 따르지 않는 거죠. 말을 하면 공중에 날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제 모든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잘하는 모습을 조금만 보여줘도 될 때는 배려도 할 수 있지만, 전체를 다 보여줄 때는 또 다르잖아요. 그러면서 제가 실제로는 되게 작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제 걸 챙기려고 하고, 더 나누지 못하고, 운동 같은 것도 못하고, 남한테 의지하고...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학교 안에서는 모범생이었는데, 밖으로 나갔을 때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학생이 돼버린 거죠.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네, 충격이 컸어요. 마지막 여행지가 이집트였는데, 제가 거기에서부터 정말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더 친절하게 대해보려고 노력도 하고요. 그리고 원래는 아무데나 잘 앉는데, 그러면 너무 약해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절대 아무데나 앉지 않았고, 짐도 항상 ‘한 사람 몫은 꼭 들자, 절대 맡기지 말자’ 생각하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반대로, 학교에서는 문제아 취급을 받았는데 ‘하반하 여행 학교’에서는 우등생인 친구들도 있었죠?


맞아요. 일을 잘하는 것과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은 또 다른 것 같아요. 하반하에서는 저렇게 빛나는 친구들이 왜 학교에서는 빛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제한적으로만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갭 이어 2학기에는 ‘나다’라는 교육 공동체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어요. 지금의 학교 시스템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던데요.

 

네, 하반하에서는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걸 배웠고 ‘나다’에서는 강의를 들으면서 잘못된 것들이 많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제가 중학교 때 회장을 했었는데 모두가 교복을 입어야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걸 다 지도하고, 규칙을 더 꼼꼼하게 체크해야 완벽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완전히 방향이 잘못된 거더라고요. 애초에 그럴 수가 없는 건데... 화장하는 친구들 볼 때도 예전에는 ‘왜 저러는 거야?’ 하고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 이해가 돼요.

 

여행하는 동안 부모님과 연락은 어떻게 했어요?


2주에 한 번씩 영상통화를 했어요.

 

집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안 했어요?


엄청 많이 했죠. 초반에는 집에 가고 싶어서 많이 울었거든요. 마지막 여행지가 이집트였는데, 솔직히 거기에 갔을 때 제일 잘 적응했고 그 전까지는 정말 힘들었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 매일 운동을 하는데 숨이 차고 죽을 맛이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근육이 생기고, 그게 눈에 보일 때부터 재밌더라고요.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갑자기 돌아가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웃음). 뭔가 실패한 것 같고. 정말 돌아가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게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리고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힘든 과정 속에서도 멋진 풍경을 보면 사르르 녹더라고요. 제가 도시의 분위기를 좋아하고 야경을 좋아하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진짜 힘든데, 이런 것 때문에 여행하는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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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쉬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갭 이어 2학기에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서 보냈어요.


네, 엄청 자유로웠죠(웃음). 한자도 배우고, 수영도 하고,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책도 읽고, ‘나다’에서 수업도 들으면서 지냈어요. 갭 이어를 시작할 때부터 학교에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마냥 놀 수는 없고, 어떻게 하면 의미 있으면서도 학교에서와는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어요.

 

1년 동안 학교를 쉬면서 ‘고등학교 졸업이 필수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요?


많이 했죠. 학교에 안 다니면서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다 너무 좋아 보이고요. 저는 오전에 움직일 수 있는 게 너무 좋았고, 사실 학교를 안 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는데... 결국 돌아왔죠.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어요? 책에 쓰기로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그립고, 불안함도 있었다고 했는데요.

일단 불안함이 컸어요. 만약에 학교를 안 다닌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단 가기로 했죠.

 

예전에 학교에서 쓰던 글은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어요. 이제는 ‘내 마음대로 솔직하게 써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요.


하반하에서 ‘일주일 보고서’라는 걸 썼는데,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지지를 받으니까 용기가 생겼어요. 어떤 일을 할 때도 ‘안 되더라도 일단 해보지, 뭐’ 하고 생각하게 되고 ‘뭘 하든 배우는 게 있을 거고 그걸 글로 쓰면 되지’ 싶더라고요. 제가 단 음식을 좋아하고 도시를 좋아한다고 책에 썼는데, 원래는 이런 이야기를 절대 안 하거든요. 이렇게 솔직하게 글을 써본 게 정말 처음이에요. 엄청나게 먼 나중의 이야기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는 걸 쓰는 건 정말 어려운데, 현재에 대해서 쓰는 건 되게 재밌더라고요. 그냥 싫으면 싫었다고 하고, 그렇게 하는 게 속도 시원하고 좋더라고요.

 

“달콤한 음식을 먹을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죠(웃음). 어머니께서 ‘그럼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해보는 게 어떨지’ 제안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지난 겨울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너무 즐거웠는데요. 지금은 또 모르겠어요. 계속 고민인 것 같아요. 요즘 들어서 제가 사람한테 관심이 많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과 관련된 일이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교육과 관련된 일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요.

 

갭 이어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얻었지만 ‘내가 어떤 순간에 행복한지’를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어요.


네. 요즘에도 운동장 잔디에 누워서 하늘을 보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사막에서 봤던 것만큼은 아니어도 별이 조금 보이거든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험 끝나면 친구랑 같이 누워서 하늘을 보기로 했어요. 마음이 진짜 편안해지고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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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갭 이어를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청소년과 학부모가 많을 것 같아요. 선뜻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한데요. 망설이는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없나요?


일단은, 그냥 쉬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대단한 뭔가를 해야 한다거나 이 시간 안에 꼭 마쳐야 된다고 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해도, 모두가 압박을 느끼는 환경 속에 놓여있는 거잖아요. 그런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바쁜 상태에서는 뭘 보려고 해도 당연히 안 되는 것 같아요. 일단 쉰 다음에 보이는 것 같고요. 그러면 나중에 돌아간 뒤에도 예전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갭 이어 동안에는 ‘학교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걸 봤는데, 막상 돌아오니까 다시 집착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이게 아니라는 걸 배웠었잖아’ 하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쉬어 보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반하 여행 학교’를 다녀온 뒤에, 2018년의 목표로 ‘카르페디엠’, ‘시즈 더 모먼트’를 설정했어요. 올해의 목표는 뭔가요?


‘나누면서 재밌게 공부하자’예요. 중학교 때 너무 머리 싸매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올해는 그러지 말자고 생각하고요. 친구들 견제하지 말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견제하는 사람은, 그게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잖아요. 가까이 대하기도 어렵고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편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려운 것 같아요.

 

경쟁을 부추기는 건 어른들이겠죠.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어요?


어른들도 조금 쉬어야 알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어른들도 그렇게 쉬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자퇴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모든 선생님들이 ‘그 길은 가장 어려운 길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길을 안 가보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런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한테라도 일단 그런 기회를 주면, 다음 세대는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딱 일 년만 놀겠습니다이은재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밀려드는 시험과 수행 평가, 고등학교 선행에 휘둘리며 살던 대한민국 표준 청소년 은재가 일 년 동안 자신을 변화시켜 새로운 자신을 만드는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낸 글은 그 어떤 글보다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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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인욱 “고고학은 가장 미래인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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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스팔트 밑에 몇만 년 전 조상이 묻혀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땅속 유물은 인간이 지구에 생존한 역사의 흔적이자,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 중 하나이다. 고고학은 이러한 유물을 통해 과거 인류의 문화, 사회 조직, 생활 양식 등을 연구한다. 


『강인욱의 고고학 기행』  에서 고고학자 강인욱은 벌교 조개무지부터 카자흐스탄의 황금 인간까지 다양한 고고학의 면면을 다룬다. 깨진 토기 조각을 이어 붙이고 흙으로 뒤덮인 석상의 색을 추론한다. 그릇 바닥에 남아 있는 성분에서 술을 마셨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유물 발굴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다. <인디아나 존스>의 황금 유적도, 어느 민족이 우월하다는 절대적인 증거도 없다. 그저 인류가 지구에 출연한 이후 지속되는 고민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우리는 왜 죽은 사람을 기리는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유물이 발견되는 건 무엇 때문인지, 인류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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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고고학


『유라시아 역사 기행』  이후 4년 만에 낸 책이에요. 이번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2015년  『유라시아 역사 기행』을 낼 당시에는 한국에서 유라시아가 생소한 곳이었어요. 지금은 유라시아 철도 등으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데, 유라시아 다음으로는 ‘고고학이란 무엇인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대중강연을 하면서도 고고학이 무엇인지 가르쳐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할 만한 책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보물찾기나 황금 탐험에 관한 흥미용 인문서는 많았지만, 고고학이 제시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번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무덤, 불, 술, 음악, 색채 등의 소재로 고고학을 엮었어요. 소재 선정 기준이 있었나요?


결국 인간이었습니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제가 느끼는 고고학이기도 했고요. 보통은 우리나라 무덤에서 토양 성질 때문에 인골이 나오지 않아요. 처음 러시아에서 발굴했을 때가 기억이 생생합니다. 무덤에서 유골이 같이 나오는 거예요. 심지어는 인골의 대퇴골 사이에서 아이 뼈가 나온 적이 있어요. 어떤 젊은 여성이 출산 중에 죽었다는 뜻이죠. 결국 제가 보는 유적은 죽은 사람을 보내는 마지막 사랑의 현장이었어요. 제가 보는 모든 유물은 그들의 가장 처절한 감정이 녹아있는 물건이었고요.


생로병사의 ‘사’가 무덤이라면, 희로애락의 ‘락’은 음악이나 술이 되겠네요.


그렇죠. 침이나 문신도 사실은 사람을 고쳐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병’이 될 수 있겠죠. 환각 음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은 그들의 병을 고치는 수단 중 하나였고, 문명의 생존과 멸망은 인간의 ‘생’과 이어져 있어요. 인간의 오감 면에서도, 얼마 전 발해와 부여 유적에서 지금 쓰는 형태와 같은 귀이개가 나오는 걸 보면서 이게 얼마나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했을까 떠오르는 거죠.


개중에는 쓰고 나서 책에 안 실은 부분도 있을 거고요.


이번에는 작정하고 시간을 비운 채 책을 썼어요. 1,500매를 쓰고 편집자님과 왔다 갔다 하면서 절반 이상을 날렸죠. 제가 재미있어서 쓴 글이지만 제삼자가 읽으면 재미없는 내용을 뺐거든요. 처음에는 글을 없애는 과정이 전쟁 같았는데, 결과물로 나온 책이 너무 예뻐서 개인적으로 책의 절반은 편집자님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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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 위대한 이유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하셨죠?


실제 강연이 성사되기까지는 딱 1년 걸렸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고고학 강연을 처음 하기 때문에 제작진분들도 잘 나올지 가늠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직도 고고학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대중에게도 고고학이 민족주의와 결부되었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언론 보도가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보통 언론은 ‘우리나라 최초’ ‘최대’ ‘세계적 기록’ 같은 것만 부각해요. 고고학을 올림픽으로 만들어버리죠. 얼마 전에도 서원 하나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됐어요. 그건 세계인이 우리를 인정해준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문화유산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리는 게 목적입니다. 무조건 타이틀을 땄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고고학이 민족주의라는 탈을 쓰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위대해서 고고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대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밝히기 때문에 고고학이 위대해진다고 생각해요. 민족주의의 탈을 쓰지 않더라도 고고학은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고대부터 한국이 모든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있어요.

 

한국과 유라시아도 평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많은 교류가 있었어요. 하지만 유사하다고 해서 그 땅이 내 땅은 아니에요. 많은 분이 한국과 무엇이 비슷하니 그 땅이 한국 땅이고 우리가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을 하세요. 역사에서만은 이상하게 그런 일탈이 당연시되고 있는 거죠. 히틀러도 고대사를 이용해 아리아 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독일 사람을 하나로 뭉치려고 했거든요. 20세기 초 일본도 위대한 야마토 민족이 열등한 한국과 중국을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우리나라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환단고기』  도 이제까지 일본과 독일에서 발견된 민족주의와 국수주의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조심해야죠.


어떻게 보면 현대 사람의 눈으로 역사를 읽기 때문이 아닐까요? 현재 자민족중심주의가 득세하기 때문에 역사도 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요.


두 가지 측면인 것 같아요. 하나는 말씀하신 대로 자국 중심의 이기주의가 강화되고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지나치게 우리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나온 폐해 같아요. 보통 한국사를 한국사라 부르지 않고 국사라 부르는데, 자신들은 다르다는 거죠. 해방 뒤에도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서 한국사만이 훌륭하다는 역사관이 이어진 것 같아요.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황금이나 보물은 볼 수 없을지라도 저녁에 비싸지는 않으나 맛있는 맥주를 드시게는 할 수 있을 겁니다(70쪽)”라고 하신다고요.


정말 관심이 있는 학생은 일단 삽질을 해보라고 현장에 보내요. 아무리 공부를 하더라도 땅을 직접 긁어보고 토기 한 편 찾을 때의 즐거움을 알고 있으면 그게 더 좋거든요. 물론 책으로서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만, 현장을 느끼는 게 가장 먼저인 것 같아요.


책을 읽어보니 삽질도 고고학에서는 실무 기술이더라고요. (웃음)


러시아에서 저도 삽질을 많이 했는데, 다른 분들 체격이 좋다 보니 제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매일 밤 삽자루를 개량하고 삽날을 갈아서 나름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요즘에는 갈수록 삽질하는 일은 적어지고 있어요. 한국에는 포크레인이 대신하고 있거든요. 여기도 경제논리가 작용하는 것이죠. 인부 삽질보다는 기계가 더 싸니까요.


국내에도 학생들이 체험할 만한 현장이 있나요?


사실 한국은 특이한 경우인데, 국내에서는 현재 대학교 교수들이 발굴하는 걸 금지하고 있어요. 고고학과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 제일 좋을 텐데, 제가 직접 지도하는 학생들은 해외로 데리고 나가 실습합니다.

 

왜 그런 법이 생긴 건가요?


한 마디로 대학 교수들이 공부하고 연구를 해야 하는데 왜 돈을 버냐는 거죠. 구제 발굴과 4대강 사업을 통해 발굴 기관이 난립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인 고고학이 아니라, 공사장에 들어가 구제발굴을 하는 하청업이 대부분이 되었죠. 그래서 고고학 교수가 발굴하면 상업적인 이득을 챙길까 봐 걱정인 거예요. 사실 제자들은 현장에서 많이 고생하거든요. 건설업과 비슷하게 상업적인 업자 취급 받을 때도 많대요. 그래서 이청규 한국고고학회 회장님이 추천사로 “한국의 젊은 고고학도들도 단숨에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고고학 안내서라고 말씀해주셔서 기뻤어요. 지금 고생하는 젊은 고고학자에게 던지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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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로 가는 과정


고고학이 다루는 시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요?


추정치는 다 다르지만 호모 에렉투스부터 전체 인간 역사를 가정하면 대략 190만 년입니다. 인간이 글자를 쓴 건 그중 5천 년이에요. 인류 시간의 99.99%는 고고학이 담당하는 거죠. 시간과 공간 영역에서는 문헌사학보다 훨씬 큰 범위를 다루고 있어요.


작가님도 여러 지역을 다뤘다고 들었어요.


원래 전공은 만주 지역의 고조선이었습니다.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제가 러시아권에서 공부한 거의 최초의 사람이라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고학적 정보와 연구를 거쳐야 했어요. 자연스럽게 중국, 러시아, 몽골 등도 다뤄야 했고요. 심지어 10년 전에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해 지역 발굴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모스크바랑 블라디보스토크는 비행기로 9시간 걸리는데, 같은 나라라고 해서 두만강 유역까지 모스크바를 발굴했던 방법으로 연구했던 거예요. 저는 처음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제자들에게는 누구는 중국, 어떤 학생은 알타이, 다른 학생은 부여 등 세부적으로 연구하라고 나눠주고 미리 외국어를 배우라고 독려하고 있어요. 

 

고고학에서 유물은 퍼즐 조각이 너무 많이 없어진 퍼즐 같아요. 유물의 시간적 차가 너무 크고 합리적으로 추론하려고 해도 함정에 빠지기 쉬울 거고요.


고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예컨대 천문학자들은 몇천 광년 떨어진 거리를 보고, 화성에 가본 적이 없어도 화성을 연구하죠. 모든 학문은 멀리 바라보는 지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자료를 하나하나 맞춰가는 과정은 느리지만, 늘 진리로 가는 과정이라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도 함정에 빠지는 순간이 많았을 텐데요. 어떤 방법으로 고고학적 추론을 만들어내나요?


교차 검증과 함께 언제라도 제 발견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고학은 가장 많은 변화가 있는 미래학문입니다. 어떤 유물이 나오느냐에 따라 매일매일 가설이 바뀔 수 있어요. 그리고 유물을 발굴하는 순간에는 오히려 상상력을 억제하려고 합니다. 유물을 눈앞에 두면 생각지도 않은 게 피어오르거든요. 그걸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하고, 학생들 가르칠 때도 그런 점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상상력을 억제하라는 말은 생소하네요. 보통은 상상력을 펼치라고 할 것 같은데요.


유물이라는 게 보다 보면 별생각이 다 들어요.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이상 상상을 함부로 논문에 넣을 수는 없죠. 논문에 넣을 수 없었던 혼자만의 메모를 한 번쯤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세상에 보내고 싶었어요. 이 책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써본 것 같아요.


두만강 유역의 침통과 침도 처음에는 뼈바늘로 생각하셨다고요.


제가 주장했던 게 10년만 가도 소원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해요. 2년 전에도 제 설을 엎은 적이 있습니다. 비파형 동검을 가지고 한국의 청동기 기원이 기원전 9세기에서 8세기라는 논문을 썼는데, 얼마 전에 그보다 500년 앞선 주거지에서 새로운 청동기 유물이 나왔어요. 유물은 사실이기 때문에 기존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했어요. 오히려 주장을 바꾸는 것보다 새로운 자료가 나왔는데도 귀를 막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죠. 책에 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도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지 않아요. 사실 그가 발굴한 건 트로이 유적이 아니라는 비판이 들어왔을 때 그는 듣지 않았어요. 뒤늦게라도 인정했으면 존경할 수 있었겠죠. 실패를 인정하는 게 진정한 고고학자라고 생각해요.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서 유물 검증 방법도 많이 바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장 현대 학문이라는 거죠. 계속 새로운 방법이 나오거든요. DNA 조사만 하더라도 제가 대학생일 때는 없었어요. 당시 유일한 방법은 사람의 뼈 크기를 재는 거였죠. 모든 방법을 알려면 힘들지 않냐 하시는데, 보통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엔진의 원리까지는 잘 모르잖아요. 운전법을 제대로 알면 돼요. 모든 고고학자가 과학적 방법의 원리를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유물에는 어떤 방법이 좋다는 걸 계속 숙지하고 있어야 하죠. 새로운 방법은 계속 공부해야 하고요.


과학이 인문학이 맡아왔던 질문,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더 많이 답하는 추세예요. 이렇게 간다면 인문학이 좁아지게 될까요?


오히려 파이를 키우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밝혀지는 경우가 있어요. 가족인 줄 알았던 인골이 알고 보니 사촌과 팔촌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토기에서 술의 흔적이나 약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뇌과학도 제가 연구를 하면서 많이 도움이 됐어요. 사후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죽음에 임했을 때의 감정은 전 세계 공통이라는 걸 뇌과학이 밝히거든요. 고대 사람들도 사후세계를 보았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위한 상징물로 무덤을 가득 채웠을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홍산 문화의 나비와 곤충의 형상을 설명할 수 있죠.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문학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팔다리를 붙여주는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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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삽 파면 끝이에요


구제발굴에 대한 문제점도 짚어주셨어요.


고고학은 파괴를 전제로 한 학문이에요. 제일 좋은 발굴은 하지 않은 발굴입니다. 하지만 발굴하지 않으면 가치를 알 수 없어요. 무조건 파괴하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유물이 파괴되는 이유가 경제 발전이라면, 경제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은 국가는 유적 보존을 잘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력이 있기 때문에 유적을 보존할 수 있어요. 무조건 경제 발전을 반대한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구제발굴을 너무 당연시하면 안 된다는 거죠.


경주에서 집을 고치려고만 하면 유물이 나와서 함부로 이사를 못 한다는 ‘웃픈’ 농담을 들은 적이 있어요.


현대인의 삶의 질도 고려해야죠. 유적을 위해서 사람이 희생되어서도 안 돼요. 유적은 사람들과 공존할 때 진정한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있거든요. 한국은 그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경주는 아예 70년대에 다른 도시로 옮겼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경주 자체를 유적 공원으로 만들었으면 어느 나라보다 좋은 유적공원이 되었을 거예요. 지금은 옮길 수도 없고, 유적이 이렇게 많이 나오니 놔둘 수도 없어요. 궁극적인 해결은 이미 좀 어렵지 않나 싶어요.


춘천시의 레고랜드 부지에서는 청동기 시대 유적이 발견됐지만, 경제 논리에 밀려 빠른 속도로 발굴을 마치고 선사 유적 테마파크를 만든다고요.


얼마 전에도 어떤 분이 레고랜드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셔서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화장을 하든 묻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일갈한 적이 있어요. 이미 50년 발굴할 양을 5년 만에 파헤쳤어요. 껍데기밖에 안 남았는데 유적공원 세우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하지만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발굴을 기획하고 허락했는지는 밝혀야죠. 문제 없었다고 하는 분도 있는데, 문제가 없다면 공개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겁니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이런 유적이 나왔다면 50년씩 두고 천천히 발굴했을 거예요. 매우 안타깝죠.


‘불가역성’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해 주셨어요. 고고학 발굴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요.


한 삽 파면 끝이에요. 한 번 파면 없어지는데 신중해야죠. 


 “새로운 것이 나오면 전쟁 같이 소비하는 요즘이라 그런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정 또한 절실해진다(235쪽)”에는 지켜야 할 것에 대해 아쉬움이 드러나기도 했어요.


고고학은 후회의 학문이기도 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르게 팔걸’ 하고 늘 생각하죠. 정말 좋은 유적인데 공사와 주민들 항의 때문에 제대로 발굴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고고학은 파괴지만, 파괴하지 않으면 알아낼 수 없거든요. 저희가 약간 파괴했기 때문에 더 심한 파괴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책에 실린 유물을 보면 감탄이 나와요. 땅에 묻힌 걸 훌륭하게 복원해 냈잖아요.


유물도 자기 운명이 있어요. 고고학자를 잘못 만나면 황당하게 발굴 되기도 하고, 고고학자를 잘 만나면 제대로 복을 받죠.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유물 하나하나는 엄청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고고학자의 피땀이 서려 있어요. 그리고 결국 저도 유물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이 책도 결국 유물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어느덧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을 전하고자 했어요.


책을 읽고 독자들이 고고학을 어떻게 생각했으면 하나요?


고고학은 사람 자체를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의 모든 기억과 추억, 역사는 우리의 죽음과 함께 마무리됩니다. 그 죽음의 봉인을 해지한 게 고고학이에요. 고고학자의 역할은 황금을 캐는 게 아니라 죽어있는 것을 부활 시켜 인간을 밝히는 거예요. 망각된 사람들을 끄집어내서 그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거죠.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강인욱 저 | 흐름출판
흙투성이 유물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읽어내는 현미경이자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마중물로서, 독자를 기꺼이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이제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물 이야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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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애란 “첫 산문집, 독자와 대화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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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7년만이다. 소설가 김애란이 첫 산문집을 내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라고 묻기 전에 “다행스럽다”는 인사부터 하고 싶었다. 천천히 내주어서 독자로서 참 고맙다고, 작은 일도 눙치지 않고 살피어 보듬어줘서 퍽 반갑다고.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300쪽)기에 쓴  『잊기 좋은 이름』 . 이 산문집은 김애란이 독자에게 건네는 “작은 목례”(135쪽)다.

 

인터뷰를 즐겨 하지 않는 김애란. 여전히 약간의 수줍음이 고여 있지만 그의 말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계산없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녹취를 풀다 느꼈다. 김애란의 말에는 뚜렷한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성량이 크지 않아서 더 집중하고 싶었던, 더 귀 기울이고 싶었던 김애란과 사람, 시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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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없어요

 

2002년 등단 후 첫 산문집이에요. 긴 기간 동안 쓴 글들이 묶였어요.

 

기획 산문집이 아니라서 원고를 꾸릴 때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모은다는 의미보다는 좋은 모양, 새 형식으로 꾸렸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야 냈는데, 많이 반가워해 주셔서 기뻐요. 소설은 아무래도 인물 뒤에 숨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산문집은 독자분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만든 세계를 보세요”하고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마주하고 대화하는 기분이에요. 지난 시절을 묶는 의미도 있지만 독자분들께 선물하는 마음으로 낸 책이에요.

 

홀수 제목을 좋아하시는데 이번엔 짝수 제목이네요.

 

선호는 있지만 정답은 없어요. 제목이든 숫자든 작품 성향이든. 제목은 텍스트 안에서 뽑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바깥의 문장들’이라는 후보도 있었는데, 전작이  『바깥은 여름』이었으니까 너무 ‘바깥’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새로운 느낌을 드리고 싶어서 『잊기 좋은 이름』으로 결정했는데요. 선명한 제목은 아닌 것 같아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름’과 ‘여름’의 어감이 비슷해서 두 작품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평소 책으로 묶을 때, 모든 텍스트를 리타이핑 하시잖아요. 이번에도 하셨나요?

 

전부 다 했어요.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썼던 원고 중에 30%는 버린 것 같은데요. 너무 과하게 멋을 부린 문장이나 시의성이 떨어지는 글, 너무 낡은 느낌의 글, 분량 때문에 너무 금방 결론에 착지해버린 듯한 느낌의 글은 뺐어요. 공부가 부족한 상태에서 썼던 리뷰, 편집의 품이 많이 들 것 같은 리뷰도 뺐고요.

 

각각의 글을 쓴 시기(연도)도 표기하셨어요.

 

굳이 연도를 넣은 건, 어떤 시기에 썼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서예요. 자취방 이야기도 있는데 지금 저는 방에 살지 않잖아요. 저를 아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요. 연도가 생략되면, 어떤 면에서 제가 약자의 자리에 앉아버린 게 아닌가?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목소리의 일부를 차지해버리는 게 되지 않을까? 걱정됐어요. 그래서 ‘이 시기에 쓴 글’이라는 표식을 넣었어요.

 

어떤 글은 너무나 또렷하게 장면이 그려져서 반가웠어요.

 

산문이지만 플롯이 있고요. 거짓말은 없어요. (웃음)

 

얼마 전 ‘소설의 자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더라고요. 독자들을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신 걸로 알아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결정하곤 하는데요. 가본적이 없는 곳에서 요청하시면 되도록 참여하려고 해요. 요즘 도서관 사서 분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애정이 많으시더라고요. 작가를 보고 싶어하는 독자 분들의 욕구도 큰 것 같고요. 평소 뵙기 어려우니까요. 저도 인사하는 마음으로 찾아 뵀어요.

 

리뷰는 가끔 찾아보세요?

 

그럼요. 책이 나오면 당연히 찾아 봐요. 인터넷서점에 달린 리뷰는 꼭 챙겨 보려고 하고요.

 

작가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준 듯한 리뷰를 보면, 독자 입장에서도 무척 반가워요.

 

책이라는 형태로 글이 묶이면 완성도와 상관없이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거리감이 안 생기는데요.

독자들의 리뷰를 보면 용기도 나도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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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함은 성정이라기보다 훈련

 

1부 제목이 ‘나를 부른 이름’이에요. 어린 시절, 부모님 이야기가 많은데 특히 어머니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실제로 어머니가 제 글에 많은 영향을 주셨어요. 제가 이제 곧 마흔인데요. 독립 전의 삶과 독립 후의 삶이 햇수로 딱 반으로 나눠져요. 성인이 된 후 독립했고, 독립 후에는 바깥 세계로부터 받은 자극들로 저를 만들어왔을 텐데요. 그것이 저의 몸 상태이든 정서이든,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주신 분은 어머니라고 생각해요. 삶의 방식으로 보여주셨다고 할까요? 굳이 말로 교육하지 않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보고 배운 게 큰 것 같아요. 제 초기작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유머, 건강함 같은 것은 어머니로부터 왔죠.

 

“어머니는 가방끈이 짧았지만 상대에게 의무와 예의를 다하다 누군가 자기 삶을 함부로 오려 가려 할 때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았고, 내가 가진 여성성에 대한 긍정적 상이랄까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주셨다.”(14쪽) 이 문장이 각별하게 눈에 들어왔어요.

 

어머니는 일단 책임감이 굉장히 강하셨어요. 동시에 계획적인 성격이셨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방식은 아니었죠. 어쩌면 자신의 교육 가이드 라인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르는데요. 자신의 몫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식들에게는 강요하지 않았어요. 자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주시면서 선택하면 존중해주셨던 것 같아요.

 

자신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조금은 어른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럴지도요. 이 인터뷰를 보시면 서운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예전에는 지금보다 부모님을 훨씬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 덕분에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다는 부채감? 고마움이 만들어내는 서정성? 약간의 환상이 있었고요. 그 마음이 제 소설 안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어떤 대상을 직접 만나기 전에 우리는 때때로 오해할 수밖에 없잖아요. 어딘가 착지하기 전 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이었구나, 당연한 순서였구나 싶어요. 특히 상경하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공부하면서 느낀 미안함 때문에 더 애틋하게 썼던 것 같고요.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부모님을 한 개인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더 좋아하진 않아도 더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요. 사람에 대한 마음이 한 바퀴를 돌면 이해에서 다른 애정으로 가는 것 같아요.

 

소설가 편혜영, 윤성희, 김연수 등 선배 작가들과 얽힌 에피소드도 재밌었어요.

 

편혜영, 윤성희 선배는 나이 차이는 있지만 활동 시기가 겹쳐서 입사 동기 같은 느낌이 있어요. 책에 성희 선배가 황순원문학상을 탔을 때 썼던 축사를 넣었는데요. 시상식 현장의 웃음 소리, 공기로 그 날을 기억하고 있어요. 혜영 선배 이야기는 책에 실리지 않은 글도 있는데요. 좋아하는 대상에 관해 쓸 때는 너무 정색하지 않으려고 해요. 애정을 너무 드러내면 그 마음이 대상에게도 독자에게도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요. 쑥스럽기도 해서 조금 딴청을 피웠어요. 온도 조절도 했고요.

 

작가들의 사진도 몇 장 넣었는데, 모두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에요. 특별히 뒷모습을 담은 이유가 있을까요?

 

사진을 잘 못 찍기도 하고요. 선배 작가들의 뒷모습을 넣은 건, 저보다 먼저 겪어봤거나 고민했거나 한발 더 나간 사람들이 시간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요. ‘우리 사진 찍자’하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도촬이기 때문에 (웃음) 모두 뒷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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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톨스토이 생가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윤부한 선생과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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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황금소로의 편혜영, 윤성희. 근처에 카프카 집필실이 있다


 

김애란이 끌리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나요?

 

일단 직업적으로는 소설을 쓸 때는 다채로운 군상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판관의 입장보다는 관찰자로서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우리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글쎄요. 어떤 사람이 좋다는 걸 정리해본적은 없지만, 생각이나 시선이 유연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유연함은 성정이라기보다 훈련 같고요. 유머러스한 사람도 좋아하는데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머에도 양면성이 있으니까요. 아, 성실한 사람도 좋고요.

 

수다스러운 사람은 어떤가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 수다스럽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대화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서 접속할 때의 서로의 주파수에 따라 달라져요. 저도 친밀한 사람과 대화할 때는 기꺼이 밤새 이야기할 수 있어요. (웃음) 그리고 조금 큰 자리에 있을 때는 수다스러운 사람이 참 고마운 것 같아요.

 

혹시 부러운 사람이 있나요?

 

저런 모습은 정말 닮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어요. 작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고다이라 나오’가 우리나라 이상화 선수가 출발하는 순간, 일본 응원단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잖아요. 공정한 경기를 위한 행동이었는데, 작은 액션인 동시에 큰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를 하자고 주장하는 손짓은 아니었지만 이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는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운동선수의 품위이기도 하고 한 개인의 품위일 수도 있는데요. 저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온다면, 저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나는 어려울 거야, 안 될 거야’라는 생각도 했고요.

 

쉽지 않은 일이죠. 자신의 이익이 걸린 순간이니까요.

 

한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좋은 환경에 있을 때 드러나는 성격보다 반대인 상황에서 보여주는 성격이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해요. 

 

산문집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자꾸 사람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저는 이번 책에서 약간의 낙관이 읽히기도 했어요. 소설가 김애란은 비관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비관주의자는 아닌데, 비관적인 성격의 소설을 쓴 적은 있어요.  『비행운』을 썼을 당시 사회나 상황이 힘들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 모르고 썼던 부분도 있지 않나 싶어요. 창작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비관을 세련되게 본 시각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 뒤에 진짜 절망 앞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당연하기보다 신기하고 놀라웠던 것 같아요. 더 이상 무엇을 못할 것 같은 상황, 사건 앞에서 한 번 더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끝끝내 뺏어갈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뭘까, 싶었어요. 그래서 비관이나 낙관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어요.

 

김애란의 소설을 따라 읽는 독자들은 아마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요?

 

저의 초기작에 담긴 성정이나 세계관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 시절이라서 가능했던 글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환상 없이 좋아하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상대에게 조금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그렇죠. 사람이 뭐라고 이상화를 시키나 싶은 생각도 들고, 때때로 ‘사람인데 경이롭다’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해요.

 

읽으면서 아팠던 문장이 하나 있어요. 266쪽에 나오는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2012년 겨울, 북콘서트에서 만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씨의 아내 이자영 씨가 한 말이죠.

 

진행자의 질문이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였어요. 저는 당황해서 부끄럽고 두루뭉술한 얘기를 했는데, 이자영 씨께서 누구도 건너본 적 없는 시절로 혼자 돌아가듯 담담하게 말씀하셨어요.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3부 ‘우릴 부른 이름들’에서는 세월호 이야기가 나와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1,2부의 재간스러운 글 뒤에 나란히 실어도 되나? 싶었는데, 이번 기회로 독자분들이 한번 더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잊기 좋은 이름』  은 2011년에 쓴 단편 「물속 골리앗」 작가 노트의 제목이에요.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 글 뒤에 ‘작가의 말’로 산문집이 끝맺어요. 저는 이번 ‘작가의 말’이 한 편의 시로 읽혔어요. 혹시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니요. 시는 지금도 좋아하고 즐겨 읽지만 쓰진 않아요. 제가 어릴 때 슨 것도 시라기보다는 시라고 착각했던 글 덩어리였던 것 같아요. 인쇄물 형태로 남아있지 않아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산문집은 독립적인 단행본 형태로 나온 6번째 책이에요. 전업 작가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이 더 각별해졌는지, 또는 담담해졌는지 궁금해요.

 

각별해진 게 더 큰데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저도 시간이 많아서 누군가 나에게 내주는 시간이 크게 귀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다못해 답문 하나하나, 안부 문자 하나에도 한 사람의 노력과 시간, 에너지, 정성이 들어가잖아요. 하물며 책 한 권을 읽는 사람의 품, 서점에 가는 사람의 품을 생각하면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각별함이 더욱 크게 다가와요. 또 책이 어떤 반응이 있으면 고마운 마음도 더 커지고요. 세상의 변화도 빠르고 시간도 빠르고 때때로 작가들의 문장도 낡잖아요. 낡지 않기 위해 갱신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온 책을 볼 때 반갑고, 그 책을 읽는 상대의 시간도 더 헤아리게 되면서 매번 각별해져요.

 

다음 작품은 장편일까요?

 

일단 순서상으로는 내년에 장편을 내려고 해요. 진도가 많이 안 나가면, 연재 형식으로 일부라도 공개를 하고 싶어요. 최근에 단편을 많이 썼으니까요. 장편으로 독자분들을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예상대로 의지대로 안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요즘은 무엇도 단정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어요. (웃음)


 

 

잊기 좋은 이름김애란 저 | 열림원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한 이야기인 동시에, 잊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김애란은 특유의 섬세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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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모래내시장에서 만든 현실 환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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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햇살이 내려 쬐던 7월 2일 오후, 서대문구 남가좌동 모래내시장 골목은 무지개색 파라솔 아래 알록달록 나른히 빛났다. 그 초입 건물의 좁은 계단을 오르고 철문을 두드리자, <모래내판타지>가 탄생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청록빛 스튜디오가 우리를 반겼다. 밴드의 리더이자 홀로 모래내를 지키고 있는 조웅도 함께였다. 

 

2015년 <썬파워> 발매 후 밴드는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구남의 시작을 조웅과 함께했던 임병학이 팀을 떠났고, 새 드러머 유주현(드럼)은 믹싱 작업 이후 입대했으며 김나언(키보드)은 개인 사정으로 앨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혼란스럽고 고독한 시절을 피해, 관성에 젖어가는 홍대 인디 씬을 피해. 조웅은 '망해가는' 시장에 자리를 잡았고 '망해가는' 현실을 마주하는 환상곡을 신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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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내 시장 한가운데 스튜디오가 있다. 설명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와보니 아늑하다. 

 

2018년 1월부터 3월 초까지 직접 공사해서 만들었다. 원래는 점집이었다는데, 근 10년 동안 비어있던 공간이었다. 요즘 세상에 어떤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뭘 새로 하려고 하겠나. 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전기도 안 들어왔고, 때 벗기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점집 하셨던 보살님도 바로 위층에 계신다. 가끔 무얼 두들기시던데... 나중에 팝업 스토어로 장사를 해보려 한다. 

 

<모래내판타지> 작업을 위해 모래내에 따로 작업실을 꾸민 셈인데.

 

그 전부터 건드리던 곡들도 있었고, 웬만한 곡들은 다 이곳에서 만들었다. 몇 곡은 대만에서 해왔다. 솔로 앨범 작업을 위해 한 달 정도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그때 '무지개', '오 싱가포르', '여름밤'을 만들었다. 

 

확실히 모래내 스튜디오에서 만든 곡 '재개발', '망한 나라'와 앞서 언급한 '무지개', '여름밤'은 바이브의 차이가 있다. 대만에서 작업을 한 이유가 있다면.

 

거기에 가면 현실감이 없다. 휴가 가서 노래를 만드는 느낌이다. 한국에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애도 봐야 하고 바쁘다. 안 그래도 아까 전에 설거지 잔뜩 하고 왔다. (웃음) 타이난, 가오슝 지역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했다. 

 

언론 인터뷰를 보면 이 부근, 서대문구 출신이라는 내용이 있던데.

 

태어난 건 이쪽이 아닌데 서대문구에서 오래 살았다. 결혼 전 꽤 오랜 시간을 남가좌동에서 혼자 보냈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동네다. 홍제천 다리만 건너면 바로 연희동 아닌가. 거기서도 살았고... 아들을 만들었다(웃음).

 

그래도 익숙한 동네라 모래내시장이 낯선 곳은 아닐테다.

 

사실 그렇지가 않다. 이런 풍경 자체가 낯선 건 아닌데, 동네는 또 다르지. 나는 완전히 손님으로 여기 있는 것이다. 시장 상인 분들은 아마 우리 노래 엄청 많이 들으셨을 거다. 다행히 누구도 항의하지 않으셔서 고마웠고, 가끔 가다 어르신들께서 '요즘은 왜 노랫소리 안 들려~'하며 여쭤봐 주시기도 했다. 이런 시장은 또 일찍 문을 닫아서, 밤엔 자유롭게 자유롭게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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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당시 <모래내판타지>는 하반기 발매 예정이었다. 그로부터 발매까지 1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멤버들 개인 사정도 있었고 내 문제도 있었다. 사실 앨범을 아예 내지 않을 생각도 했다. 중간에 크고 작은 일이 자꾸 생겨서 마음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술 마시며 작업물을 듣는데, 같이 있던 친구들이 '야 이걸 안 낸다고?' 하며 아쉬워하더라. 나도 아까웠고. 

 

그래서 나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트랙이 1번 트랙 '물불'에만 있는 건가.

 

그렇다. 거의 없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사실상 조웅의 솔로 프로젝트에 가까워진 모습인데.

 

그래도 <모래내판타지>는 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주현은 같이 믹싱 다 하고 군대 갔다. 나언도 중간 작업 과정에서 이탈하긴 했지만 군데군데 많이 흔적을 남겼다. 

 

기획이나 믹싱 같은 부분에서 오래 걸리진 않았나.

 

믹싱이 힘들었다. 처음으로 혼자 믹싱을 하니 툴 다루는 것도 익숙지 않고, 전화해서 물어보고 하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리더라. 

 

그럼에도 셀프 믹싱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작년 11월 발매를 계획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믹싱을 맡겼다. 그런데 같이 하다 보니까 결국은 내가 원하는, 가믹싱해놓은 쪽으로 마음이 갔다. 지난해 유튜브에 공개된 '여름밤'만 내 믹싱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느낌을 살리기가 참 힘들더라. 레퍼런스가 애매하니 엔지니어들도 어려워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그림도 그려야 하고... 스탠더드한 편곡이 아니다 보니 그냥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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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탄생한 <모래내판타지>는 앨범 리뷰 표현처럼 '강력한 제습'의, 건조한 소리가 두드러진다. 초기 구남을 수식했던 '축축한 목욕탕 사운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공간계 이펙트를 거의 안 쓰고 건조한 느낌을 극대화하려 했다. 구남 시작할 때 '목욕탕'이라 할 정도로 축축한 소리를 섞은 건... 솔직히 말하면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무드로 덮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후 계속 그 습기를 빼는 방향으로 음악을 해왔다. 이 정도로 건조하게 하고 나니 다시 좀 축축하게 해보고 싶기도 하네 (웃음).

 

당시 '목욕탕 사운드'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축축한 느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은 그런 레코딩이 꽤 있지만 그 당시엔 <우리는 깨끗하다>처럼 습기 찬 음악이 많지 않았다. 지금은 기성 가요도 그런 느낌을 내고 있으니.

 

그렇다면 계속해서 건조한 사운드를 추구해온 이유가 있나.

 

좀 더 피지컬적으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다. 노래를 한다면 노래 다이나믹이 공간과 섞이고 이펙트와 섞이고 이런 게 아니라, 목소리 그대로를 픽업해서 생생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날 것의 소리에 비해 노래 가사는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낭만적이다.

 

의도적으로 대비를 둔 건 아니다. 내 가사는 그냥 요즘 나의 느낌, 생각, 고민 그대로다. 점점 더 그렇게 노랫말을 써간다. 자연스러운 노래를 부르려면 아무래도 그 영감을 일상 속에서 받아야 하지 않을까. 딱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다. 앨범 제목은 '판타지'지만 가사는 삶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앨범과 가사의 대비가 두드러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의식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노랫말이 이어진다. '나띵 컴페어 투유'같은 노래를 들어보면 실제 이 공간에서 가사를 썼을 조웅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지금 앉아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가사를 연이어 썼다. 곡을 다 만들어 두고, 노트 하나 펼쳐 놓고 '나띵 컴페어 투유', '무지개', '지워진 자국', '여름밤' 노랫말이 술술 나왔다. '나띵 컴페어 투유'는 비가 오는 아침에 썼나 보지, 뭐 (웃음).

 

'나띵 컴페어 투유'는 1집의 '언더스탠드 케어리슬리'와 제목이나 메시지가 연결되는 인상이 있는데.

 

둘 다 사랑 노랜데, '언더스탠드 케어리슬리'는 그때 당시의 감정이었던 것 같고 '나띵 컴페어 투유'는 지금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고자 했다. 김오키에게 전화 한 통 해서 색소폰 소리도 넣었다. 

 

리프 하나를 만들어두고 반복하던 1집, 2집의 바이브가 다시 느껴진다.

 

원래가 이런 사람인 거고 <썬파워>가 특이한 앨범이었다. 그즈음 유럽, 미주 등 해외 투어를 많이 다니던 시절이었고 주변에 록 음악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록 밴드들을 자주 접했고 그들이 주는 에너지가 좋았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음악을 무대에서 해보고 싶어 기획한 작품이다. 사실 10대 때 건스 앤 로지스, 레드 제플린 많이 좋아했으니까... 로킹한 건 나에게 '영웅'같은 거였다. 더 늦기 전에 해보자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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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도시생활', '남쪽으로 간다', '우주로 가자' 등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자 했다. 모래내에서 노래하는 <모래내판타지>는 다르다. 특히 '망한 나라' 같은 곡 말이다.

 

무언가를 이끄는 것에 내적으로 끌리는 건가 싶다. 그때는 떠나고 싶었던 거다. '망한 나라'는 그룹이 와해되는 과정을 그린 곡이다. 밴드, 팀 작업에 꽤 의미를 두는 편이라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를 두고 멤버 탈퇴, 혼란기를 거치면서 꽤 상심이 컸다.

 

'재개발'도 그런 쓸쓸한 감정이 바탕 아닌가.

 

친한 친구들이 살던 동네는 꼭 재개발이 되어 사라지더라. 앨범 리뷰에는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있던데, 내 딴에는 엄청나게 분노를 한 거다. 단지 지저분한 말을 안 썼을 뿐이지. 

 

대개 재개발 당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찬성 반대가 반반으로 나뉜다.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냥 막연히 있던 게 없어지고, 그 있던 게 그냥 있던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건데 다 사라지고 뻔한 비주얼로 바뀌는 거 아닌가. 내가 살던 어린 동네도 지금은 아파트지만 예전에는 오래된 양옥집이 많았던, 예쁜 골목길이 있었다. 1990년대 적벽돌로 지은 주택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형태를 지닌 집들 말이다. 그냥 두면 박물관인데 저걸 부순다니. 노래 가사처럼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모래내시장 한가운데서 바라본 <모래내판타지>에선 '성숙한 구남'이 느껴진다. 

 

이번에 부산 가서 만난 김일두 형이 똑같은 말을 했다. '너는 성숙이 아니라, 아예 숙성이 됐던데?'(웃음). '고마워...' 하고 인사했다. 

 

홍대에서 오래 음악 한 베테랑 아티스트로서 모래내시장에서 음악 하며 느낀 점이 있나.

 

사실 말하자면 홍대를 피해 온 거다. 인디 씬, 밴드 씬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최근 몇 년 모습에 굉장히 회의적이다. 노래 부르는 방식도 겹치고, 뭔가 상품 같은 느낌이고... 처음에는 요즘 젊은 친구들의 성향이다 싶어 넘어갔는데 그게 점점 시장을 잠식해나가는 걸 바라보다 보니, '난 여기선 못 있겠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씬이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은 대부분 관계자들이 공감하고 지적하는 부분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는 건지가 의문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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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의 음악을 수식할 때 '아시아 바이브'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팝 씬에서도 크루앙빈(Khruangbin),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음악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다.

 

요즘엔 서양의 밴드들도 동양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고 들었다. 나도 기본적으로 아시아 사람이기에 당연히 그런 바이브를 좋아한다. 1970~1980년대 한국 아티스트들이 외국 곡을 번안하거나, 새로 부른 노래들을 들으면 그 특유의 필터가 들어가서 꽤 새롭게 들린다. 

 

아시아 바이브를 생각해서 대만으로 떠난 것도 있다. 원래 회사에선 유럽을 권했는데 내가 대만을 선택했다. 대만 뮤지션들도 만나고, 길거리나 택시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어보면 분명히 어떤 특유의 바이브가 있었다. 그게 나에겐 참 친숙했다. 누군가가 '아시아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내가 했던 대답이 떠오른다. '아시아는 늙고 지쳐 보이지만, 푸근하고 그리운 할머니 같다.'

 

1집의 '오~싱가포르'를 '오 싱가포르'로 재수록했는데. 

 

이 곡도 대만에서 솔로 작업과 함께 현재 피지컬대로 해석해보고 싶었다. 대만에서 작업을 하는데 음악을 처음 시작하던 때의 감정이 들었다. 반가웠다. 특히나 3집은 내가 주로 하던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고 내적으로 소진도 많이 됐다. 그걸 회복한 게 대만 작업이었고 음악의 즐거움, 행복, 재미를 다시 되찾게 해 준 시간들이었다.

 

대만에서 녹음한 조웅의 솔로 앨범은 그런 아시안 바이브를 담고 있나. 

 

'무지개', '여름날', '지워진 날들'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 같다. <모래내판타지>와 모티프는 비슷하고, 형태는 비정형적으로 해보고자 했다. 언젠가 말한 적 있지만 장르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새로운 시도를 자유롭게 버무려 도전하는 게 음악 하는 재미 아니겠나. 현재 해외에서 편곡 작업 중이다. 작업한지는 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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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이자 밴드 아싸(AASSA) 멤버 성기완은 이 앨범을 소개하며 '구남은 망해가는 것들을 보듬어왔다'는 평을 남겼다. 

 

기완 형이 너무 칭찬해줘서 민망하기도 했다 (웃음). 내 성격이 좀 그렇다. 오디션 프로그램, 밴드 경연 등 심사위원으로 몇 번 일한 적이 있는데, 항상 이긴 팀 쪽 아니고 진 팀 뒤풀이에 참여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에게 <모래내판타지>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앨범의 의미를 말해본다면. 

 

이 앨범을 작업하면서 다시 음악 활동하는 게 재밌어졌다. 여태껏 음악 하며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온 건 아닌가 싶었는데, <모래내 판타지>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마음을 열어보게 됐다. 더 오래 음악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앞서 질문처럼 구남은 항상 '떠나자'를 노래했는데, 결국 서울 안 이긴 하지만 모래내시장으로 '떠나온 것' 아닌가.

 

 생각해보니 그렇네 (웃음). 대안의 공간이다. 

 

최근에 즐겨 듣거나 잘 들은 노래가 있다면? 

 

까데호, 멋진 인생, 교정 같은 신예 밴드들의 무대가 인상 깊었다. 내가 기획자라면 꼭 소개하고 싶은 팀이랄까. 대만에 있었을 때는 공연 게스트도 해주고 뮤지션들을 소개해준 데카 조인스(Deca Joins)라는 밴드와 친해졌다. 지금 대만에서 완전 난리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인터뷰 : 김도헌, 박수진, 임동엽

사진 : 임동엽

정리 : 김도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정규 4집 모래내판타지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노래 | 지니뮤직 (genie)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써 팀의 리더인 ‘조웅’이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했으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헤드룸 라커스’ 채널들을 통해서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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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시민 “맥락 있는 여행 에세이,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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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은퇴를 한 이후 출간한 책  『어떻게 살 것인가』  (2013년 3월)에서 유시민은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자유롭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첫번째 여행 에세이를 출간하며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저 팔자 좋지요?”하며 웃고 있다. 그는 지금 사는 것이 참 좋다고 한다. 이런 주제로 이런 책을 쓰면 어떨까, 하고 착수하기 전에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어떤 책이 나올까?’하며 설렌 마음이 든다. 영락 없는 글쟁이, 본인 말로는 지식 소매상, 유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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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 쓰는 과정이 가장 즐거웠어요


여행기를 낼 계획이라는 말씀을 꽤 예전부터 하셨습니다.


출판사에게 처음 제안을 받은 것이 5년 전인 것 같네요. 1권에 나온 도시들 네 곳은 2016년에 여행을 했는데, 글을 쓴 것은 작년이에요. 그렇게 늦어진 이유는, 네 도시만 가서 쓰기가 좀 이상하더라고요. 다른 도시들도 다녀보고 비교해보면서 감이 와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원고를 묵혀 놓고 다른데도 다녀보고 1권 초고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획을 하고 5년 지나서 첫 권이 나온 셈입니다.

 

아내이신 한경혜 선생님이 사진으로 참여하셨어요.


같이 일하러 다닌 거죠. 이 기획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 전 긴가민가했어요. 제가 여행을 많이 다녀본 것도 아니고 여행 에세이를 써본 적도 없어서 할 수 있을까, 이런 것 때문에 망설였는데 제 처가 얘기를 듣더니 좋아하는 거에요. 제 처가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여행 책을 내려면 사진이 필요한데 사진 찍을 분을 따로 구해 동행하면 비용이 많이 들 거 같다. 당신이 사진을 배워서 사진을 찍으면 호텔방 하나만 잡아도 되고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해서 제 처가 사진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한 2년 정도 사진을 배우고 찍을 만하다 싶게 된 2016년 봄부터 다니기 시작한 거죠. 저희는 나이 차이가 3년 있긴 해도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여서 함께 여행 다니는 것 괜찮은 거 같아요.  둘만 다니니까 안좋은 점이 있기는 해요. 밥 먹을 때 시킬 수 있는 메뉴가 많지 않다는 것?(웃음)

 

굉장히 편안하게 읽혔습니다.


여행 에세이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이전 책들은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이런 주제를 가지고 썼으니까 내용에 이론적인 것도 들어가고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에 대한 저의 의견이 안 들어가면 책이 안되지요. 여행은 정답이 없지요. 옳고 그름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취향의 문제여서, 제 취향에 맞는 내용, 제 취향이 비추어 봤을 때 중요한 거, 제 취향으로 볼 때 괜찮았던 것 위주로 글을 쓰니까 쓰는데 부담이 덜했고 독자들도 크게 부담 가지고 읽을 내용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까지 책을 수십 권 써왔는데, 작업하는 과정 자체는 이번 책이 제일 가볍고 즐거웠어요. 스트레스를 거의 안받았습니다.

 

각 도시를 4박 5일 일정으로 다니셨어요.


이 책 기획하면서 유럽 여행에 대한 책을 다 살펴봤어요. 이미 있는 스타일의 책이라면 내가 쓸필요 없다라고 생각했어요. 검토를 하면서 느낀 것이 정보는 많이 들어있는데 맥락이 없어서 잘 읽히지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맥락을 만들어야겠다고 한 편으로 생각했어요. 또 한 편으로는 단기 여행자에게 와 닿는 책을 쓰자는 것. 이스탄불 뒷골목에 지금도 끈을 달아서 쿠키와 차를 올려 보내는 곳이 있어요. 그런데 4박 5일 여행자들이 이런 곳에 가기는 쉽지 않죠. 단기 여행자의 눈높이에 맞게 그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곳,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일정을 짰지요. 그리고 여기에 콘텍스트를 붙여야겠다고 기획을 한 거죠. 여행 에세이의 종 다양성을 확충한 효과는 있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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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출발은 아테네에서 할 수 밖에


아테네가 첫번째 도시입니다. 처음부터 아테네를 첫번째 도시로 염두에 두셨나요?  


유럽의 중요한 도시, 아름다운 도시, 사람들이 자주 가는 도시, 이런 곳을 조사 하다 보니까 결국 출발은 아테네서 할 수밖에 없을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정식으로 아테네를 여행가기 전에 사전답사 느낌으로 미리 갔었어요.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요. 그렇게 다녀오고 이 도시를 제일 먼저 와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해졌어요. 대충 다니면서 봤는데도, 우리가 유럽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아테네서 출발했더라구요. 역시 순서로 보면 여기를 제일 먼저 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맥락에서 로마, 이스탄불, 파리, 이렇게 연결이 된 거에요. 아테네 다음에 유럽의 문화 수도 역할을 했던 도시가 로마이고, 서로마 제국 망하고 나서는 콘스탄티노플 즉 이스탄불이고, 오스만 제국이 말기로 막 갈 때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곳이 파리이지요. 1권은 이렇게 유럽의 중심 도시 별로 했고요, 2권부터는 가까운 곳을 묶어서 쓰려고 합니다.

 

각 도시를 사람으로 비유한 것이 재밌었어요.


아테네는 어제의 미소년이 세상의 풍파를 겪은 주름진 철학자, 로마는 전성기를 다 보낸 은퇴한 사업가로 비유했지요. 파리는 내가 연락 안해도 너무 잘나가는 친구 느낌의 도시에요. 이스탄불은 딱 떨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이스탄불은 약간 억눌린 듯한 도시입니다.

 

아테네 편에 나오는 아스파시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회적 귀속, 계급이, 출신 지역이 뭐든 간에 비전과 재능, 열정을 가진 개인이 제도 속에서 무시당하고 억압당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그런 거에요. 자꾸 눈이 가더라구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이야기를 쓰면서 아스파시아 이야기를 안할 수는 없겠다, 싶더라구요. 스파르타쿠스, 검투사들의 이야기를 로마 편에서 쓰고 싶었는데 분량도 넘치고 해서 못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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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맥락을 찾아보기


케이사르가 어떤 인물인지 이제서야 가늠이 되더라구요. 콘텍스트로 읽기의 힘인가요?(웃음) 


카이사르 초상을 로마에 다니면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이사르를 기념하는, 모시는,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없더라구요. 이 사람은 황제가 안 되었기 때문에 개선문도 없고 아무 것도 없더라구요. 포로 로마노, 거기 가보니까 원로원 건물이 있고 카이사르가 거기서 암살 당한 거잖아요. 2천 5십여 년 전에요. 거기서 감정이입해보는 거죠. 여행은 그런 재미가 있어요. 이 사람 뭐지? 어떻게 이렇게 모순된 삶을 살았지? 황제가 되지 못한 독재자였는데 왜 사람들은 카이사르를 오랬 동안 추앙하고 기억하게 되었을까. 단순히 드라마틱한 사건들 때문일까.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카이사르 얘기는 좀 써야겠다. 그런데 이걸 그냥 쓸 순 없고 어디에서 쓸까 고민하다가 그래, 포로 로마노 원로원 마당 거기 밖에는 없을 거 같다, 생각해서 연결해서 쓴 거죠. 곁까지 얘기인데 그 사람을 생각하며 포로 로마노를 거닐면 느낌이 좀 달라요. 그렇게 안해도 상관 없지만 기왕 멀리 갔는데, 그런 상념이나 감정에 한번쯤 원로원 마당에 서서 젖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하면서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생각해 보고요. 그런 재미죠.

 

스스로 질문하고 맥락을 찾는 선생님의 능력을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그건 제 업이죠. 제 직업이니까, 제가 열심히 잘해야지요. 류현진 선수가 자기 일을 잘 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처럼 저도 제 일을 잘 하려고 노력을 하죠. 류현진 선수가 오늘 보스턴 레드삭스와 했는데 1회에는 수비가 우왕자왕하며 2점 내줬지만 그 뒤로 7회까지 엄청 잘 던졌거든요. 미국 해설자도 어린 선수들이 류현진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논평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류현진 선수가 연봉을 많이 받는 거겠죠. 야구팬들은 류현진 선수를 보면서 아름답다, 멋지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고 어린 야구선수들은 류현진 형이 던지는 것을 보면서 뭔가 얻어갈 수 있겠죠. 저도 지식 유통을 하는 사람으로서 여행 에세이를 통해 그런 일을 좀 더 잘해 봐야지,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류현진 선수가 공을 잘 던지는 것만큼 제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아니에요.(웃음)

 

가장 마음이 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이 참 좋더라고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헵번을 깜짝 놀라게 했던 ‘진실의 입’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벽돌 지붕 위에 나무를 얹어놓은 소박한 성당이고 끊임없이 개보수하며 왔겠죠. 지하에 내려가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이 살았고 나중에 빈민 구호소 역할도 했던 공간이 나오는데 종교가 원래 뭔가, 사람들이 왜 종교를 만들었고 왜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었어요. 저는 무신론자인데 그래도 종교를 가진 분들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면 성스러운 느낌, 경건한 마음이 생기는 공간이었어요.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런 날 저녁이 되어 호텔로 돌아가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요.

 

지금까지 많은 책을 써오셨는데 어떤 전략이 있으신 거였나요?


전략은 없고 제가 쓰고 싶은 걸 써요. 그 시점에서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을 씁니다. 전형적으로 그런 책이 『청춘의 독서』  입니다.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처럼 상황상 저한테 과제가 떨어져서 쓴 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써왔어요. 어떤 제안이 들어와도 내가 쓰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안써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생기고 거기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요새는 책으로 별로 하고 싶은 얘기가 없어요. 역사, 정치, 경제, 별로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데 그래도 유럽 여행은 재밌지요. 여행을 다녀오고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제가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요.

 

예전의 삐딱하고 날 선 모습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약간 아쉬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필자를 찾아야죠. 더 날카롭게 할 수 있는 다른 필자를 찾아야지. 저보고 계속 그렇게 살라고 하면 힘들어요. 총량의 법칙이 있어서요. 지랄 총량이라고 하기도 하고, 열정 총량의 법칙이기도 한대,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죠.


일년에 1권씩 여행 에세이를 내시려면 체력 관리에 힘 쓰셔야 할 거 같아요.


원래 축구를 했는데, 요즘은 헬스를 합니다. 근력을 키워야 하니까요. 하루에 10km 걷는 것은 크게 몸에 부담이 안 올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유럽 도시 기행 1유시민 저 | 생각의길
각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 광장, 박물관과 예술품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에 얽힌 지식과 정보를 그만의 목소리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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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리나쌤 박효영 “필라테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몸을 세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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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박효영은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굶고, 다이어트 약을 먹으며 각종 부작용에 시달렸고 심각한 불면증과 거식증 등을 겪었다. 일상 회복이 간절했던 어느 날 그는 잠을 좀 더 잘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거식증이 없어지고”(18쪽) 밤에는 편안하게 잠을 자게 됐다. 그렇게 필라테스에 입문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은 지 10여 년. ‘리나쌤’이라는 이름으로 필라테스를 가르치고 있는 박효영의  『필라테스 홈 스트레칭』은 남녀노소 누구나 혼자서도 매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동작을 모은 가이드북이다. 필라테스를 “현존하는 운동 중 최고의 운동”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박효영은 부디 건강하고, 안전하게 운동하자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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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만이라도 움직여준다는 생각으로


필라테스가 누구에게나 잘 맞는 운동일까, 궁금해요. 필라테스가 어떤 사람에게 특히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하세요?


필라테스는 어린이부터 60-70대까지도 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요즘 어린이들이 바깥에서 놀지 못하고, 비만인 경우도 많잖아요. 보호자분들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 필라테스를 하러 오시는 경우도 있거든요.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하는 모든 운동은 성장판을 자극시켜서, 하면 다 도움이 되는데요. 필라테스는 실내에서 할 수 있고, 매트나 소도구로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서 보호자분들이 자녀에게 많이 시키는 것 같아요. 사실 필라테스는 높은 집중력이 필요해요. 집중할 수 있는 나이부터 효과는 더 좋겠죠. 15세 미만의 경우 기구 운동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필라테스는 자기 수준에 맞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운동이고요. 나이가 많은 분들도 완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면 본인의 수준에 맞게 할 수 있어요.

 

초보자부터 경력자까지, 자기 수준에 맞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 필라테스의 주요한 특징이겠네요.


필라테스는 움직임이에요. 그런데 평상시에는 하지 않는 움직임이죠. 많은 근육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저항운동이기 때문에 근육의 기능은 살리면서도 근육에 상처가 생기는 일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운동을 해도 안전하게 근육의 기능만 계속 유지시키는 정도로 할 수 있죠. 솔직히 말하면 필라테스는 그룹보다는 1:1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더 좋고요. 그러면 더 안전하게 운동을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책을 보면서 혼자 운동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도 있겠어요.


최대한 그 점을 책에 담아뒀어요. ‘QR코드’가 들어간 동작들 역시 혼자 하기 힘들거나 주의할 동작 위주로 넣었는데요. 필라테스는 혼자 하기보다 누가 내 움직임을 봐주는 게 효과적이기는 하거든요. 그래서 책은 최대한 혼자 하더라도 효과가 좋은 동작들, 크게 위험하지 않은 동작들만 선별해서 넣었어요. 목차도 ‘Energy up’, ‘Power up’ 등으로 나눴잖아요. 앞부분의 ‘Wake up’이나 ‘Balance up’은 완전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고요. 어느 정도 근력이 생긴 후에 할 수 있는 동작은 ‘Energy up’, ‘Power up’에 소개했어요. 책에는 사실 중급 이상의 동작들은 수록되어 있지 않아요. 대신 책에 소개된 동작만 해도 몸이 가벼워지고, 근력이나 유연성이 향상될 수 있어요.

 

“매일 집에서 양치질을 하듯 할 수 있다면”(27쪽) 하는 바람으로 책을 썼다고 적기도 하셨죠.


요즘은 집에서 혼자 운동하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고강도 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유튜브 등을 보고 고강도 운동을 따라 하시기 전과 후에 이 책에 수록된 필라테스 동작을 한두 파트 따라 하시면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부상도 예방할 수 있고, 몸을 풀어주는 데에도 효과가 있어요. 그렇지 않은 분들도 시간이 될 때 5분이나 10분만이라도 움직여준다는 생각으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움직여주시기를 원하는 거예요. 이 책은 시작부터 끝 동작까지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누워서 시작해 엎드려서 끝나는 것까지, 흐름을 짜놓았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하시면 10분 내외로 간단하게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꾸준히 하시면 정말 개운해질 거거든요. 그렇게 개운한 몸으로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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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바르게 세우기


처음 필라테스를 할 때도 마치 나를 위한 운동 같았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점들이 그랬나요?


필라테스가 무척 과학적인 운동이에요. 고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어깨 관절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다 계산해서 만든 운동이에요. 해부학적으로 가능한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움직임을 만든 건데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맞는지도 모르겠고, 그랬는데요. 할수록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오고, 그럴 때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나씩 해나가고, 그러면서 내 몸이 변하는 걸 느꼈고요.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제 몸이 변했다고 말하니까 확신 같은 게 생겼어요. 확실히 다른 운동과는 다른 필라테스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다른 운동과 다른 필라테스만의 매력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필라테스에서는 기본적으로 팔다리는 몸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어깨와 몸통, 엉덩이와 허벅지 안쪽을 한 박스라고 생각하고요. 박스 안 근육에서 팔과 다리로 가지가 뻗어나갔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필라테스에서는 박스(몸통)가 정말 중요해요. 박스가 무너지면 어깨도 말리게 되고, 척추가 다 무너지거든요. 박스만 딱 세울 수 있는 힘이 생기면 팔다리가 아주 가벼워져요. 그래서 필라테스 동작이 길게 뻗어나가는 거예요.

 

요즘은 워낙 실내에서,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다보면 신체의 중심이 무너지기가 쉬운데 이때 필라테스가 적합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요제프 필라테스(Joseph H. Pilates)’가 죽기 전에 “60년 뒤에는 내 운동이 필요한 운동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대요. 점점 사람들의 움직임이 적어질 거라는 것을 예측했겠죠. 실제로 보면 지금 대부분이 그렇잖아요. 따라서 근육을 선명하게 만들고, 몸의 모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가장 중요한 건 몸을 바르게 세우는 거예요. 그 힘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이 필요하거든요. 노인분들이 그 힘이 없는 건데요. 필라테스도 그랬고, 그의 살아있는 제자분들도 연세가 많은데도 자세가 아주 바르시거든요. 서 있든, 앉아 있든, 엎드려 있든 신체의 정렬이 바르게 되어야 하는 건데요. 필라테스를 하면 내가 의식적으로 양쪽 어깨 높이를 맞추고 곧게 서있어야지,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돼요.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뇌가 깨는 것처럼 몸도 깨어 있는 거예요. 필라테스의 목적은 그거예요. 그래서 처음 말씀 드린 것처럼 모두에게 필요하고, 모두가 하면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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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건강하게 운동하세요


작가님은 필라테스를 하기 전과 후, 얼마나 많은 변화를 느끼셨어요?


성격부터 바뀌었어요.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는데요.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해지잖아요. 아픈 데가 없고, 건강하면 뇌도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할까요. 저는 다이어트에 굉장한 노력을 했었어요. 20대 초반부터 살이라는 걸 빼기 위해 안 해본 게 거의 없어요. 한약도 먹어보고, 침도 맞아보고, 웨이트도 해보고, 약도 처방 받아 먹어보고요. 그런데도 진짜 살이 안 빠지는 거예요. 아주 조금 먹고, 운동은 정말 많이 하는데도 살이 안 빠지니까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게다가 그런 생활을 계속 하니까 몸이 아팠어요. 그래선지 성격도 밝지 않았는데요. 필라테스를 하면서 몸이 건강해지고 아픈 데가 없으니까 성격이 바뀌는 거예요. 어쩌면 원래 성격이었을지도 몰라요. 워낙 스트레스가 많고, 몸이 아팠으니까 그렇게 성격이 변했던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을 회복하는 계기였네요.


숫자만 보고 내가 50.9kg인지 50.1kg인지를 중요하게 보지 마시고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하시면 좋겠어요. 체지방에 연연하지 마시고요. 약간 통통해도 정말 매력 있고, 아름다운 분들도 많은데 숫자 때문에 자신을 정신적으로 혹사시키시면 안 돼요. 즐겁고, 건강하게 운동하셨으면 좋겠어요. 살을 빼려고 집에서 런지 같은 고강도 운동을 하다가 십자인대가 끊어졌다는 분들이 많거든요. 허리를 다치기도 하고요.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일인데요. 안전하고 건강하게 운동하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안전 말씀을 하셨는데요. 통증이 있는 상태에서 운동을 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가령 허리가 아플 때 운동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고, 운동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일단 필라테스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운동은 아니고요. 건강한 사람을 꾸준히 건강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에요. 그런데 요즘 워낙 아프고, 불편한 분들이 많잖아요. 저희 스튜디오에 오시는 분 중에도 많은데요. 통증이 미미한 정도, 일상생활에 별로 지장이 없는 정도면 운동을 진행해요.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불편하면 운동을 해도 그 부분은 사용하지 못하거든요. 그 경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서 통증이 없어진 후에 오시라고 하죠. 운동을 하면서 써야 하는 부분을 못 쓰면 다른 데서 힘을 끌어다 쓰게 되고, 제2의 부상이 있을 수 있어요.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는 정도로 통증이 약해졌을 때에 운동을 하는 게 안전해요. 하지만 이것도 스튜디오에 와서 1:1로 운동을 하시는 경우고요. 만약 통증이 있는데 집에서 혼자 하신다고 하면 운동을 중단하는 게 좋아요.

 

통증 관련해서, 책에 수록된 동작 중 주의해야 할 동작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디스크 때문에 아프신 분들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게는 회전 운동은 좋지 않아요. 골프, 테니스, 수영처럼 회전을 이용해서 하는 운동은 피하는 게 좋죠. 책에 있는 동작 중에도 회전이 되는 운동은 피하시는 게 좋고요. 그 외에는 모든 동작을 하셔도 좋은데요. 이 책에 수록된 동작은 출산 전후의 여성 분들도 하실 수 있거든요. 출산 후 2개월 정도 지난 후에 하시면 안전하고요. 출산 전에도 병원에서 아기가 안전하게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면 하셔도 돼요. ‘Power up’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 하실 수 있어요.

 

꼭 해보길 바라는, 추천 동작도 궁금해요.


각 파트마다 하나씩 있어요. ‘Balance up’에서는 6번 동작인데요. 고관절이 유연해질 수 있는 동작이라 여성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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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up’에서는 3번 동작이에요. 발목을 잡고 뒤로 굴러갔다가 오는 건데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이 동작은 자신의 체중으로 내 척추를 마사지 하는 동작이거든요. 이 동작을 하면 척추 사이 사이가 모두 이완되는 효과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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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up’에서는 1번이에요. 복부 힘만으로 올라가는 동작이라 이 동작을 할 때 굉장히 많은 코어 근육을 쓰게 되어 있거든요. 만약 이 책에서 세 가지 동작만 매일 한다면 지금 말한 동작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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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빠도 이 동작만큼은


필라테스를 가르치면서 불면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사례도 많이 봤다고 하셨잖아요. 이건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진짜 신기한 게 몸에도 반영이 되거든요. 일단 몸이 긴장되어 있어요. 몸이 긴장되어 있으면 잠을 못 자고요. 저희 스튜디오는 처음 오신 분들에게 불면증 여부를 확인하는데요. 불면증 있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필라테스를 하면 필요 없는 긴장이 완화돼요. 또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잡념도 조금 줄고요. 해냈을 때의 성취감도 있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거죠. 물론 운동을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누가 끌고 가지 않는 이상은 어렵죠. 하지만 더 이상 고통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운동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니 놀랍네요.


필라테스가 누워서 하는 동작이 많은 이유 중 하나인데요. 사람은 누우면 긴장이 떨어져야 하거든요. 누울 때 신체의 가장 많은 면적이 중력의 영향을 받겠죠. 몸이 엄청나게 무거우니까 누웠으면 중력 때문에 아래로 떨어져야 해요. 그런데 몸이 자연스럽게 떨어지질 못하고 다 들려 있어요. 몸이 갖고 있는 텐션이 중력을 이길 만큼인 거죠.


신체의 모든 부분은 연결되어 있어요. 모든 근육도 연결되어 있고요. 근육은 또 장기와도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몸을 움직이면 뇌가 받는 스트레스가 실제로 감소한다고 해요. 다행히 요즘은 많은 분들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책에 부록으로 아침과 저녁에 하는 ‘5분 스트레칭’ 동작이 있는데요. 따로 챙겨둔 이유가 있나요?


저의 루틴이에요. 아침에 깨면 눈을 감은 상태더라도 근육을 깨워주는 차원에서 하는 스트레칭이고요. 어려운 동작이 하나도 없는데 하고 나면 상쾌해져요. 아무리 바빠도 이 스트레칭은 꼭 하는데요. 척추를 움직였을 때 몸이 깨어난다고 보면 되거든요. 이 ‘5분 스트레칭’에는 척추를 움직이는 모든 동작이 들어 있어서 이 정도 스트레칭만 해줘도 몸이 풀렸다고 느낄 거예요.


 

 

청담동 리나쌤의 필라테스 홈 스트레칭박효영 저 | 북스토리라이프
셀럽들의 시크릿 프로그램인 3가지 버전의 특화되어 있는 10분 ‘필라테스 홈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소개해, 자신의 신체 특성에 맞추어 단 10분의 프로그램으로도 원하는 몸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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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박상영, 페이지터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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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호호 끊임없이 웃으면서 끝날 줄 알았다. 소설가 박상영의 인터뷰.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 짧은 러닝 팬츠, 백팩에 러닝화를 신고 온 그는 갓 튀긴 감자튀김을 맛있게 먹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1988년생 젊은 작가 박상영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 대학원에서는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졸업 후 첫 직장은 잡지사, 이후 광고 회사에서 기획자로, 컨설턴트로도 일했다. 회사에서는 특별한 존재감 없이 조용히 할 일만 하는 캐릭터, 언제나 ‘직장은 부업, 본업은 소설가’라고 생각했다. 박상영의 트위터 계정은 @cityzoo88 인스타그램 계정은 @novelistpark 도시와 소설가, 이 두 단어를 일찍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는 인터뷰 말미에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라는 말했다. 무엇이 박상영을 오직 써야만 하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왜 그는 두 번째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에 사인을 하며 “우주적으로 행복”하라는 말을 남길까. 여름 한낮, 박상영의 하하호호 속 내밀한 속내를 듣고자 귀를 쫑긋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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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순서대로 읽어주세요

 

2018년 9월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내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대도시의 사랑법』이 출간됐어요. 만 1년 사이에 2권의 책을 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첫 책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쓴 것 같아요. 청탁이 오니까 한편 한편씩 쓰는 느낌으로 썼는데, 두 번째 책은 한 권의 모양을 구상하면서 썼어요. 작품의 형태를 생각하면서 썼기 때문에 의미가 좀 남달라요. 첫 책을 쓸 땐 불안이 컸거든요. 인지도도 없는 상태였으니까요.

 

반응이 대단해요. 출간 1주일 만에 4쇄를 찍었죠.

 

첫 책을 읽어주신 분들이 많이 사주셨어요. 출판사에서 힘을 많이 써주셔서 더 많이 팔리길 바라고 있어요. (웃음) 기대보다 못할까 봐 걱정돼요.


최근 출간된 국내 소설 중에 가장 빠른 반응이 아닐까 싶어요.

 

더 많은 반응을 원해요. (웃음) 어느 기자 분께서 ‘박상영의 마지막 청춘 소설’이라고 써주셨던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주제도 그렇고 스토리에 있어서도 그렇고.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사회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차용했으니까요. 이번 소설은 구성할 때부터 촘촘하게 그림을 그렸어요. 그래서 특별히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전투적인 마케팅 덕분에 제 동료들은 이미 제 SNS를 언팔한 것 같아요. (웃음) 

 

‘연작 소설’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셨어요.

 

한 권의 완성된 장편으로 읽힐 수 있도록 처음부터 작정하고 썼거든요. 글을 많이 쓴다고 모든 작가가 성장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전보다 문학적으로 정확한 글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구조적으로 완결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과잉을 많이 줄였어요.

 

표지 그림도 직접 고르셨다고요?

 

편집자 분께 제안을 드렸어요. 동네서점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만들었는데, 제 오랜 친구이기도 한 전나환 작가의 그림 ‘올랜도를 위한 기도’(Pray for Orlando)를 표지로 썼어요. 2016년에 미국 올랜도의 한 클럽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에요.

 

요즘 일상은 어떤가요?

 

인터뷰하러 많이 다니고요. 출간 북 토크도 하고 최근에는 독서클럽 운영도 하게 돼서 좀 바쁘요. 제가 불면증이 심해서 하루에 3,4시간밖에 못 자거든요. 회사를 그만둔 후부터는 버릇을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아직도 새벽 5시가 되면 눈이 떠져요. 그래서 오후엔 아무것도 못하고. 불면증 때문에 오래 깨어 있는 건데, 마치 성실의 화신인 것처럼 인터뷰에 나오더라고요. (웃음) 오해입니다.

 

리뷰를 찾아보니 “작가님, 저랑 사귀어요”라는 글도 보이더라고요. 리뷰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어요.

 

감사하게도.(웃음) 리뷰를 많이 보려고 노력해요. 소설 제목으로 해시태그 검색해서 열심히 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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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4편이 실렸어요. 연작 소설이고요. 작품 발표 시기를 보면 2018년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예요. 4개 문예지(『자음과모음』,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문학동네』에 발표했던 작품이고요.

 

그런데 원고를 많이 고쳤어요. 각자의 작품이 단독적으로 완결성이 있으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니까요. 「우럭 한점 우주의 맛」에 언급된 재희도 많이 달라졌고, 재희의 군생활에 관한 묘사도 완전히 바꿨고요. 이미 잡지에서 발표된 소설을 읽었다고, 안 읽은 작품부터 읽는 독자들이 계시는데 꼭 순서대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마지막 장을 읽을 때 이 소설의 의미를 아실 수 있거든요. 이 책을 가장 재밌게 보는 방법은 순서대로 읽는 거예요. 작가가 의도한 것을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출간 후 인터뷰를 정말 많이 하셨어요. 신기한 기사 제목도 있더라고요?

 

제가 정말 많이 소비됐죠? 음. 기사는 간혹 제가 하지 않은 말이 실리기도 하고. 하면 할수록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아요.

 

‘퀴어’를 빼놓을 수 없고요.

 

포지셔닝이 됐으니까요. 첫 소설집은 퀴어가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있었는데, 모두 퀴어만 말하죠.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이번 책을 쓰고 고치는 1년 남짓 동안 아주 많은 게 바뀌었어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조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져 이제 더 이상 낙태 ‘죄’가 유효하지 않고. HIV prep(프렙: 노출 전 예방요법)을 위한 약물 처방이 식약처의 승인을 받았고, 감염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이 지원되기 시작했죠. 제 책을 읽고 프렙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는 분이 많더라고요.

 

작가의 말(“책에 수록된 네 편의 소설 속 화자인 ‘영’은 모두 같은 존재인 동시에 모든 다른 존재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인 동시에 어쩌면 나와는 아주 동떨어진 인물이고, 당신이 잘 알고 있는 누군가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너무 힘겨워 외면하고 싶었던 당신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때문일까요? 자전적 소설로 받아들인 독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전적 색채가 전혀 없는 소설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자로서는  『대도시의 사랑법』이 2010년대의 통속화처럼 읽히길 바랐어요. 하지만 언론에서 ‘이 소설은 무엇이다’라고 정의해버리면 기정사실화가 되잖아요. 독서의 여지를 닫아버리게 되죠. 저는 한번도 제 성적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는데, 언론에서 단정지어 버리면 작품으로서 해석의 여지가 닫힐까 봐, 그게 계속 우려돼요.

 

책에 실린 강지희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두고 “완벽한 해설”이라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우선 강지희 평론가님의 글은 잘 읽히잖아요. 너무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안 쓰시고요. 저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는지를 해설을 통해 밝히려는 글을 좋아하지 않아요. 강 평론가님 글은 그렇지 않아서 좋고요. 그래서 부탁 드렸어요. 물론 완벽한 해설이란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누구도 할 수 없겠죠. 하지만 주로 퀴어 문학으로서 평가 받았던 제 소설의 지정학적인 요소를 발견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소설에서 규호의 공간이 제주, 인천, 서울, 상해로 넓어지는 것, 모두 의미를 갖고 설정했거든요. 공간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잘 짚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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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요

 

『대도시의 사랑법』  이라는 제목은 일찌감치 정했나요?

 

「재희」는 너무 일반적이고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너무 길고요. 첫 책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가 너무 길고 어려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르게 가고 싶었어요. 네 작품을 포괄할 수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고, 화자의 질병을 마지막에 공개하고 싶었고요.

 

작품 속 화자 ‘영’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박상영의 어린 시절도 궁금해지더라고요.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문예창작으로 대학을 갈 생각도 했는데 일반 대학에 붙어서 서울로 갔죠. 대학 때부터 아카데미를 다녔고, 소설 부문으로 대학 문학상도 받았어요. 27살 때 잡지사 기자를 하다가 때려치웠는데, ‘나는 남의 글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그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어서 문지문화원 사이를 다녔어요. 2012년이었나, 그 때부터 소설을 쓰는 친구들이랑 스터디하면서 소설을 썼죠. 그 때 만난 친구 중 한 명이  『항구의 사랑』  을 쓴 김세희 작가예요. 비슷한 시기에 같이 주목을 받고 있어서 너무 좋아요. 그러다 더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고 그곳에서도 친구들을 많이 만났죠. 최근에  『이를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  라는 소설집을 낸 송지현 작가도 그 중 하나고요. 소설 진짜 좋아요.

 

대구에서 태어나셨고, 대학 때부터 서울에서 쭉 생활하고 있어요. ‘도시’라는 공간에 소설가 박상영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저에게 도시는 또한 아주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자, 사랑을 찾기 쉬운 곳이에요. 동시에 한없이 외로워지기 쉬운 공간이기도 한데요. 모두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뭔가 마이너리티적 요소를 삶에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는 익명으로 숨어버릴 수 있는 공간이자 한없이 나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익명성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나'의 존재도 있고요.  

 

독자의 성비가 남성이 꽤 높다고요.

 

인터넷서점에 책을 검색하면, 책을 구매한 독자들의 성비가 나오잖아요. 다른 소설에 비해 남성 독자가 많은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20,30대 남성 독자가 10%가 넘거든요. 행사에 가도 남성 독자들이 그렇게 적지 않고요. 퀴어 당사자 분들도 많이 봐주시는 것 같고요.

 

첫 소설집이 나오고 “이런 책을 써줘서 고맙다”는 쪽지를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소설을 쓰기 전에는 세상 천지에 나 혼자 남아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누군가 나처럼 세상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큰 위안을 얻었어요. 사실 누군가로부터 이런 리뷰를 듣는 순간을 제외하면 소설을 쓰는 시간은 매우 힘들어요.

 

“규호랑 연애하고 나온 것 같다”는 리뷰도 읽었어요. 주인공 ‘영’의 엄마에 관한 이야기도 많고요.

 

전통적인 모성애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니까요. 퀴어 당사자가 아니라면,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분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소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무리없이 이입하신 분들의 피드백을 들으면, 의도한 바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낙태, 성적 자기 결정권, 종교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도 좋겠고요. 예전에는 소설이 품고 있는 사회적 영향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아주 적은 사람이라도 내 소설을 읽고 뭔가 영향을 받는다면, 책임을 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어요.

 

박상영이 창조한 인물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작가가 인물에게 갖는 과한 연민이 없어서 오히려 독자들이 편안한 것 같아요. 몰입하면서도 살짝 거리감을 두고 지켜보게 돼요.

 

슬플 때 슬프다고 말하는 건 멋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슬플 때 웃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언제나 자기 연민을 피하려고 노력해요. 스무 살 무렵, 상담 치료를 오랫동안 받았어요. 자살 고위험군이었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제가 나름 인싸였거든요? 반장도 하고 친구도 많은 편이었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주변에서는 저를 많이 걱정했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 간다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난 네가 자퇴할 줄 알았다”고 하셨어요.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있었는데, 상담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많이 좋아졌죠. 그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을 쓰는 과정과 치료를 받는 과정이 비슷해요.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내 생각을 읽는 거잖아요. 합평의 과정도 상담과 다르지 않은 거예요.

 

그 때부터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겠네요.

 

자기 연민이라는 감정이 가면이 씌어진 감정일 수 있겠다는 걸 알게 됐죠. 그 때부터 제 내면의 상황, 풍경을 바라보게 됐어요. 아마 웃음이 저의 방어 기제일 거예요. 매일매일 저는 제 머리 위에 카메라가 떠 있는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도 그래요. 내가 실제로 겪지 않았어도 깊이 체험하려고 노력하면서 쓰니까요.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에 쓰면 쓸수록 저도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집필 외의 작가 생활이 저를 정신적으로 쇠약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요. 소설을 쓰면 쓸수록 저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도 상담을 받고 있나요?

 

아니요. 미국 여행을 가기 전까지 했는데요. 몇 달 전에 갔더니 “박상영 씨는 이제 꾼”이라고. 이제 올 필요가 없다고 해서 혼자 해결하고 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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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맛은 내가 느끼는 모든 맛

 

혼자 있을 때, 진짜 내 모습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겉으로 보면 달변가이신데, 혼자 있을 때는 완전히 다를 것 같아요.

 

다르죠.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페르소나가 있고,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모든 게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글을 쓰고 있을 때 한없이 제가 좋거든요. 내가 내 자신이라서 좋아요. 글쓰기가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점점 그 이상이 되고 있어요. 자아실현도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한 지점에 너무 많은 걸 걸어 놓으면 안 되니까요. 최대한 더 많은 걸 걸지 말아야지, 생각해요.

 

매일매일 소설을 쓰나요?

 

그럼요. 등단하고서 연애도 한 번 못하고 친구들도 잘 못 만나고. 인간관계가 점점 더 협소해지고 있어요. 1년 365일 중에 350일을 글을 쓰니까요. 집에서도 쓰고 스타벅스에서도 쓰고, 매일 써요. 저는 좀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진짜 많이 고치거든요. 효율성이 좋은 작가는 아닌데, 다른 작가들을 보면 이틀 만에 막 80매도 쓰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하루에 1장 이상을 잘 못 써요.

 

<한겨레>에 ‘박상영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칼럼을 연재하고 있어요.

 

조만간 연재가 끝나요. 올해 말쯤 산문집으로 묶을 예정이에요. 음식에 관한 이야기지만 직장 생활의 애환을 다룬 에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다이어트에 성공한 서사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대개의 직장인들이 계속 버티면서 직장을 다녀야 하잖아요. 저처럼 박차고 나오는 사람은 소수고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곧 단편을 마감해야 한다고요. 사랑 이야기인가요?

 

가족 이야기에 더 가까워요. 의존에 관한 이야기인데 사랑이 배제될 순 없겠죠. 의존이 제 인생의 어젠다거든요. 중독이 다 의존에서 비롯된 거잖아요. 관계, 음식 같은 것도 모두 의존하기 때문에 중독이 생기는 거니까요.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장편은 올해 말쯤 연재에 들어갈 것 같아요. 10대 이야기인데 IMF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를 표현할 생각이에요. 정신없이 읽다 보면 그 시절을 같이 살아나온 느낌을 주고 싶어요. 전 재밌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더 좋은 페이지터너가 되고 싶은 마음인데요. 잘 읽히는 동시에 기억에 남는 작품을 쓰는 게 목표예요.

 

단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미국 문예지 ‘WWB(World Without Borders)’에 연재됐어요. 이번  『대도시의 사랑법』  도 곧 번역될 예정이라고요.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소속된 ‘Tilted Axis Press’와 계약했어요. 장편으로 소개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전 작품을 번역해준 퀴어 번역가 분이 맡으실 예정이에요. 궁합이 잘 맞았거든요.

 

사인 옆에 “우주적으로 행복하세용”이라는 문구를 적으시잖아요. ‘우주적’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소설에 나온 그대로입니다. 아주 넓고 거대하고 광활한 것이 ‘우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인간도 우주의 일부이므로 결국 우주의 맛은 내가 느끼는 모든 맛이라고 볼 수 있어요. 혹은 내 삶의 맛일 수도 있고요. 우주적으로 행복하라는 것도, 거창하고 거시적이고 대단한 뭔가 이루기 힘들어보이는 행복과 아주 사소한 행복을 동시에 의미하는 말이에요. 우주는 우리 존재이자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니까요.

 

소설의 쓸모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소설, 문학의 거창한 역할이나 기능은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제게 있어서 소설은 천지에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에 사로잡혔을 때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고독을 느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매체죠. 누군가 제 소설을 읽고 그런 기분, 위로 같은 것을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아요.

 

 

*박상영

 

소설가.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두번째 소설집이자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펴냈다. 2019년 「우럭 한점 우주의 맛」으로 제10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도시의 사랑법박상영 저 | 창비
규호와 방콕에서 함께한 찬란했던 한때를 곳곳에서 떠올리는 화자의 발걸음이 중심을 이루는 이 소설은 함께 실린 여타 소설과 다르게 유독 웃음기를 거두고서 상실과 고독의 정서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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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여행작가 환타 “여행은 땅바닥에 발을 대며 시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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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깨는 여행 작가 ‘환타(幻打)’ 전명윤. 그가 쓴 가이드북은 “불편하게 여행지의 속살을 자꾸 후볐”다고, 박찬일 셰프는 말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알지 못했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했을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까닭이다. 두 번째 에세이  『환타지 없는 여행』  에서도 속살을 파고드는 작업이 계속됐다. 인도의 민낯이 보여주는 가난과 계급 차별, 여성 인권의 실태와 변화의 움직임을 말한다. 홍콩에서 ‘범죄인 송환 반대 운동’이 일어난 배경이 무엇인지, 주말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배회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휴양지인 줄로만 알았던 오키나와가 실제로는 “내부 식민지”와 다를 것 없는 슬픈 땅이라는 사실도 들려준다.

 

“결핍이 있는 곳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작가, 환타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는 분명 낯선 것이었다. “일단 떠나요. 그러면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라고 외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여행하는 삶이란, 여행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삶”이라 덤덤하게 말한다. 현지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자, 갑자기 많은 여행객이 몰렸을 때 생길 법한 문제들부터 걱정했다. 만약 여행 에세이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핫스팟, 맛집, 빠른 경로에 대한 정보라면  『환타지 없는 여행』  에서는 조금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이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는가’를 알기 위함이라면, 그 위에 자신의 삶을 겹쳐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과 함께 길을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1996년 인도를 처음 여행하면서 여행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환타 작가는 <딴지일보>의 인도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시사저널>, <세계일보> 등에 여행, 문화, 국제분쟁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다. EBS <세계테마기행>을 비롯해 각종 방송과 팟캐스트에 출연한 바 있다. 현재는 <시사인>에서 ‘소소한 아시아’라는 코너를 연재 중이다.  『프렌즈 홍콩ㆍ마카오』 ,  『프렌즈 베이징』 , 『프렌즈 인도ㆍ네팔』 , 『프렌즈 오키나와』 ,  『상하이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서를 집필했고, 첫 번째 에세이 『생각으로 인도하는 질문여행』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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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내가 먼저 시작하지는 말자’고 생각해요


『환타지 없는 여행』  은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제가 여행 작가로서 되게 이상한 포지션이기는 해요. 흔히 ‘이곳에 가면 꿈과 환상이 펼쳐져요’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요. 가끔은 ‘여행 작가로서 내 취향이 너무 마이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시기를 잘 만난 것 같아요. 이제는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다 보니까, 그 지역의 내밀한 부분이나 그곳 사람들의 디테일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여행’과 ‘환상’은 굉장히 가까운 단어가 아닐까 싶은데요. ‘환상을 타파한다’는 뜻으로 필명을 지으신 이유는 뭔가요?


처음 여행한 곳이 인도였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인도는 깨달음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본 인도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내제된 폭력, 카스트 제도, 여성에 대한 억압이 너무 많더라고요. 실제로 ‘인도라는 정신적 지주’를 만나러 온 여행자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너무 괴로워하는 거예요. 자기가 생각한 인도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고요. 그 분들을 보면서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름을 ‘환타’라고 짓게 된 거죠.

 

어떻게 여행 작가가 되셨어요?


제가 두 번째로 인도 여행을 갈 때, 그 즈음에 한국에서 홈페이지 붐이 일었어요. 당시에는 인도 여행과 관련된 책이나 정보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인도를 알려주마’라는 건방진 이름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하다가 <딴지일보>의 요청을 받아서 처음 글을 썼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인도를 갔는데, 여행자들이 제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정보를 출력해서 들고 다니는 거예요. 일단 되게 신기했어요. 그리고 제가 만든 저작들을 누군가 인쇄해서 가지고 다니는 게 좋더라고요. 이후에 무작정 원고를 만들었어요. 14개월 동안 인도를 취재하고 12개월 동안 책을 써서 출판사에 샘플을 보냈어요. 이후에 책이 나오게 됐고요.

 

‘사람들은 어떤 가이드북을 필요로 할까’, ‘가이드북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무엇을 줘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또 하나 중요한 게, 현지인들에게 최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게 쓰는 거예요. 제가 책에서 소개했던 식당이 옷가게로 바뀐 적이 있었어요.

 

그 이야기가  『환타지 없는 여행』  에도 나오죠. 한국인 손님들이 몰려오니까 단골들은 떠나고, 그런데 한국 여행자들은 여름 겨울 방학 때만 많이 오고, 장사가 꾸준히 안 돼서 업종을 바꾸게 됐죠.


네, 그런 경우들이 되게 많았어요. 모든 행위들이 누군가에게는 이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줄 수 있잖아요. 피해를 주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어려운 이유는 경쟁 때문이죠. 이를테면 인도의 특정 지역이 있는데, 현지인들에게는 성지이기도 하고 나체 수행자들이 많아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면 해괴망측할 수도 있고, 그냥 책에서 보고 호기심에 찾아간 사람들한테는 눈요깃거리 밖에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런 곳은 가급적 소개하지 않는데, 문제는 다른 가이드북에서 먼저 소개하면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소개해야지’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최소한 내가 먼저 시작하지는 말자’라는 게, 저한테는 되게 중요한 가치예요.

 

가이드북을 쓰는 데 있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이 있나요?


일단은, 협찬을 안 받겠다는 거예요.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가이드북은 ‘리뷰의 모음’이잖아요. 그걸 독자들이 돈을 주고 산다는 건, 제가 공정하게 취재했을 거라는 믿음을 거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협찬을 받으면 이중적인 수익을 얻는 게 되죠. 기만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협찬 없이 취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요?


100%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요새는 미식이 유행인데, 미슐랭 쓰리스타 같은 곳을 취재하면 거의 인당 30~40만 원이 나오거든요. 40만 원을 투자해서 책 한 쪽을 쓰는 거죠. 그럴 때는 부득이하게 취재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것도 영 찝찝해서, 요즘은 친구들 서너 명을 모아서 미식단을 꾸려요(웃음). 제가 비싼 식당을 다 예약하고, 같이 가서 요리 설명도 해준 다음에 저만 돈을 안 내는 거죠(웃음).

 

현지 맛집 가이드를 자처하시는 거네요(웃음).


네, 그런데 제 수익은 없어요. 취재비만 빠지는 거죠. 그 대신 제가 사진 찍기 전에는 음식 먹으면 안 된다고 하고요(웃음). 원칙을 지키는 게 조금 힘들기는 해요. 그런데 적은 돈이나마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않고요. 또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그만큼 요구를 하거든요. 공공기관에서 협찬을 받았다고 해도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부분은 조금 크게 실어 달라’는 식으로 요구가 들어와요.

 

또 다른 원칙이 있다면요?


몰래 취재하는 거예요. 제가 취재하러 온 줄 알고 대접이 달라지면 공정하게 취재를 못 하잖아요. 그래서 거의 다 몰래 찍어요. 그냥 여행자처럼 찍고 가능한 시스템을 축소화하려고 하고요. 식당에서 음식을 다 먹고 돈까지 지불하고 나면 그때는 그 집에 대한 저의 평가가 끝난 거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그때 물어봐요. 식당의 경우에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황인종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런 것들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명함부터 내밀면 저한테 되게 잘해줄 거잖아요. 그걸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어요. 음식에 있어서도 ‘그 식당에서 가장 좋은 요리’가 아니라 ‘그 식당에서 늘 내는 요리’가 기준점이 돼야 해요. 그런데 취재를 요청한 경우라면 제일 잘하는 요리를 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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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시민들의 연대, 지금 한국은?


인도에서는 성폭력 이슈가 계속 이어지고 있나요?


음... 인도 사회는 많이 바뀌었어요. 2012년에 성폭행 사건이 있었잖아요. 넷플릭스에서 <델리 크라임>이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사건인데, 사실 인도는 그게 이슈가 되는 나라가 아니에요. 일단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있어요. 도시는 법률의 지배를 받는 지역이지만, 시골 같은 경우는 경찰이나 관료들이 말단까지 파견된 적이 없어요. 지방 말단에는 ‘판차야트’라고 하는 브라만 노인들로 이루어진 의회가 있어요. 그들이 입법, 사법, 행정을 거의 다 맡아서 해요. 동네의 양반 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법률 공부를 한 사람들도 아닌데 판결을 하고요. 그때 기준이 되는 게 ‘마누법전’이에요. 3천 년 전에 만들어진 법전인데, 얼마나 성차별이 심하겠어요. 실제로 ‘여자가 금을 훔치면 윤간을 해야 된다’는 조항이 있어요. 문제는 그런 조항을 지금에 적용시킨다는 거죠. 관련 뉴스도 나왔었어요. 어떤 자매가 ‘윤간형’을 받아서 법원에 제소했다는.

 

그 사건은 어떻게 됐나요?


우리나라 기자들도 인도의 실상을 잘 몰라서 기사가 그렇게 났던 것 같은데, 인도 법률적으로도 ‘윤간형’이라는 건 있을 수 없죠. 마을 의회에서 판결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자매가 굉장히 똑똑해서 고등법원으로 갔어요. 당연히 법률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마을의 아저씨들이 처벌을 받았죠. 그래도 여성들은 그 마을에서 못 살아요. 죽을 수도 있어요.

 

도시에서는 법에 근거해서 판결을 내린다고 하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훨씬 많아요. 영화 <밴디드 퀸> 아세요?

 

네, 그 영화를 보면 매매혼이 이뤄지고 남편이 어린 아내를 성폭행하잖아요.


그게 인도의 시골에서는 되게 흔한 일이에요, 진짜로. 그런데 2012년의 성폭행 사건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이게 보도화, 이슈화가 됐다는 거예요. 인도의 각 미디어에서는 여성 기자들이 데스크와 엄청 많이 싸워요. 그러면서 이 사건도 이슈가 된 거예요. 당시에 제가 시위 현장에 있었는데, 여성 단체와 젊은 층들이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할 때였어요. ‘국가가 무엇을 했느냐’고요. 한편에서는 할아버지들도 시위를 했어요. 국가 편이 아니었고, 미친놈들이 국가의 위신을 망쳤다고 시위를 했어요. 그런데 이 사건에서 인도 시민들이 잘한 면이 있는 게, 양측이 이야기를 해서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국가가 변해야 되는 건 맞다’고 의견을 모은 거예요. 그래서 구호를 세 가지로 통일해서 더 이상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고 연합 집회를 했어요. 쉽게 말해서 어버이연합과 진보진영이 뭉친 거예요.

 

결과는 어땠나요?


인도 정부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죠. 선거를 앞두고 있었거든요. 두 가지가 바뀌었는데, 첫 번째는 형법을 개정한 거예요. 성폭행으로 인해서 사람이 죽을 경우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했어요. 두 번째는 신속 법원을 만든 건데요. 인도는 재판이 진행되는 속도가 되게 느려요. 1심이 3년 걸리고, 3심까지 하면 10년 정도 돼서 그 사이에 증인이 죽는 일도 생겨요. 그런데 성폭행 사건은 1년 안에 1심을 끝내고 3심까지 3년 안에 끝내는 걸로 바뀐 거예요. 저는 이 사건을 가지고 한국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지금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 힘을 합쳐서 싸우지 못하는 게 정말 답답해요. 연대할 수 있는 라인이 되게 많다고 보거든요. 진짜 아쉽죠.

 

프롤로그를 홍콩에서 쓰셨다고요. 한국에는 언제 돌아오셨어요?


6월 29일에 갔다가 7월 3일에 왔어요.

 

지금 홍콩의 상황은 어떤가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한창인 걸로 아는데요.


조금 안 좋은 상황이죠. 시위대 중에 10대, 20대 초반 친구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삼포세대예요. 홍콩은 부동산 값이 비싸서 독립을 하기가 어렵고, 우리나라보다 GNP가 훨씬 높은데도 최저임금이 말도 안 되게 낮아요. 사람들이 살기 힘들죠. 그런 것들이 중국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데, 거기에는 합리적인 면도 있고 비합리적인 면도 있어요. 사실 모든 정책 주장이 다 그렇죠. 대중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공간에서 합리성을 기대하기는 힘든데, 그것이 세상을 바꿔내기도 하잖아요. 홍콩 청년들도 조금 막연하게 중국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게 반중 감정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며칠 전에도 충돌이 있었죠?


시위대가 연락사무소를 공격했어요. 홍콩 정부와 중국 사이를 연락하는 곳인데, 거기는 중국이거든요. 물론 큰 공격은 아니고 중국 국가 문장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하는 정도였는데, 사회주의자 중국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상황인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이럴 경우에는 중국군을 출동시킬 수도 있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는 그러지 못할 거예요. 지금 홍콩에 미국인이 7만 5천 명쯤, 영국인이 4만 명 정도 있거든요.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대피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군이 들어가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그러니까 섣불리 액션을 취하지는 못할 텐데,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는 건 사실이에요.

 

『환타지 없는 여행』  을 읽으면 ‘우리나라에 해외 뉴스가 정확하게, 충분한 양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돼요. 홍콩의 반중 시위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도되는 것 같아요. 한중 관계를 고려해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걸까요?


그것도 그렇고요. 심도 있게 국제 뉴스를 취급하는 채널이 없어요. 사건 자체만 보도를 해버리면 모든 게 다 난데없어지거든요. 홍콩의 경우에도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정도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이 사람들이 언제부터 싸워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어요.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죠. 그리고 한국은 신문에서 국제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적어요. <조선일보> 같은 경우가 2면을 쓰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인도 언론만 하더라도 전체 16~20면 중에서 4면이 국제면이에요. 일본 <아사히신문> 같은 경우에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추적 기사를 정말 많이 써요. 우리는 해설 기사가 없고 사실 보도만 하니까 맥락을 알기가 쉽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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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땅바닥에 발을 대면서 시작하는 것


여행지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심이 많으시죠. 꾸준히 발언도 하시고요. 모든 여행 작가들이 그런 건 아닌데, 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세요?


저도 요즘 생각을 해봤는데, 지역적 결핍이 있는 곳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인도, 중국, 오키나와, 홍콩에 대한 가이드북을 썼는데요. 홍콩이나 오키나와는 성격이 비슷한 ‘내부 식민지’예요.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어요. 인도나 중국에 대해서 썼던 건, 너무 커서 정리가 필요한 나라를 건드렸던 거고요. 가이드북으로 쓸 나라를 정할 때는 ‘내가 이곳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곳에 대해 잘 쓸 수 있을지’를 가지고 판단해요. 어떤 지역을 좋아하게 되는 가장 큰 계기는 그곳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이에요. 단지 에세이에 나오는 무용담이 아니라, 그냥 그게 보여요. 홍콩의 필리핀 노동자들도 그냥 보였어요. ‘저 사람들은 왜 저기에 저렇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 있는데, 저는 다가가서 굳이 물어봐요(웃음). 갑자기 ‘여기도 최저임금이 있나?’ 궁금해지고, 그러면서 진행이 되는 거죠. 저는 이게 여행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여행은 기쁨만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아니다”라고 썼는데, 패키지여행 같은 경우는 좋은 공간에서 개인적인 풍류와 여유와 낭만을 누릴 수 있어요. 그건 되게 예쁜 세계일 뿐이죠. 그런 아름다운 안락함도 있겠지만, 사실 여행은 기본적으로 땅바닥에 발을 대면서 시작하거든요. 버스 위에서 바라보는 삶이 아닌 거예요. 패키지여행은 관광버스 위에서 바라보는 삶이죠. 그러면 그곳의 사람들을 눈 아래로 바라 볼 수밖에 없어요. 눈을 볼 수 없고 머리통밖에 못 봐요. 그런데 길바닥에 서서 땅을 딛고 있으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죠. 그러면서 그 사람들을 알아가는 거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제가 보는 걸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오키나와에 대해 알게 된 사실도 많았는데 ‘집단 자살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일본 군인들이 자살을 종용했던 건가요?


2차 대전 때 일본에서 지상전이 벌어졌던 유일한 곳이 오키나와예요. 그때 섬 인구의 1/3 정도가 죽었어요. 굉장히 끔찍한 일이죠. 일본이 전쟁에서 질 게 뻔한 상황에서 최대한 연합국의 공격을 밀어내야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오키나와에서 지옥을 만들려고 했어요. 섬 주문들을 모두 동원해서 벙커를 파고 그 안에서 민간인을 방패삼았어요. 미군이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진군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놓은 거예요. 오키나와 사람들한테는 ‘미군한테 잡히면 여자는 성폭행한 뒤에 찢어 죽이고, 남자는 산 채로 탱크로 깔아 죽인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비참함을 막기 위해서 자결을 해야 된다고 한 거죠.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고요. 실제 사례를 보면,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은 경우들이 있었어요.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했나요?


전혀 보상도 못 받고 있고요. 당시의 민간인 학살이나 피해에 대해서 국가 차원의 조사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다 오키나와 지역에서 이뤄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례들도 한정적이죠.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민할 법 하네요.


네,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어떤 국가도 우리를 보호해준 적 없다’, ‘어떠한 군대도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되게 많잖아요. 베트남전 때 고엽제를 살포한 B-29 폭격기가 오키나와 기지에서 떴어요. 그래서 당시에 베트남 사람들은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이라 불렀대요. 오키나와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운이 좋아서’ 계속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네,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게 많잖아요.

 

여행하면서 돈도 벌고요(웃음).


그렇죠, 이것도 일인 줄은 모르죠(웃음).

 

여행이 일이 되면, 운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웃음)?


저는 안정적인 소득은 없어요. 정말로 책의 인세로 먹고 살거든요. 그래도 일터가 넓으니까 뭘 해도 일이 돼요. 인도는 대한민국의 33배, 중국은 100배가 되는 땅이잖아요. 어디 가서 밥만 먹어도 그게 일이 되고 정보가 돼요. 물론 스스로 해야 된다는 단점이 있고, 가끔은 화성에 혼자 떨어진 로봇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월-E 같은(웃음). 그래도 저는 제 일터가 넓은 게 좋아요. 많은 걸 볼 수도 있고, 가끔 제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들어주잖아요. 그건 행복한 거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고민은 비슷해도 결은 다 달라요


"누군가 나에게 상하이 여름휴가 티켓을 선물해주었다면 나는 거절했을 것이다"라고 쓰셨어요.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딱 좋은 여행지는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현재는 베트남으로 떠나시는 걸 말리고 싶어요. 일본 불매 운동이 일어나면서, 일본을 가려고 했던 여행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베트남으로 갔거든요. 지금 베트남은 서비스가 아예 안 돌아가는 상황이라, 이번 여름의 휴가지로 베트남은 별로예요. 개인적으로는 몽골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지금 몽골은 시원할 때고요.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어마어마한 별’이죠. 7~8월이 은하수가 가장 많이 필 때예요. 5~10월까지만 은하수가 보이고 이후에는 잘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밀키웨이를 보시기에도 좋고, 바삐 여행하는 게 아니라 편히 쉬고 싶으시다면 몽골이 괜찮아요. 대신 음식은 조금 힘들죠. 다 양고기니까요.

 

‘맛있다’는 평가에 인색하시다면서요? 그래서 ‘환타가 맛있다고 하는 곳은 진짜 맛집’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던데, 추천하실 만한 곳이 있나요?


음... 사람들이 몰릴 지도 모르니까, 문 닫은 곳을 소개할게요. 홍콩에 ‘윙와’라는 식당이 있었어요. 완탕면을 파는 곳인데,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가게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작년 8월에 문을 닫았어요. 집집마다 완탕면 국물을 내는 비법이 다른데 ‘윙와’는 상어 가시를 써요. 면도 직접 대나무 밀대로 만들어서 뽑고요.

 

사람들이 몰릴까 봐 걱정되세요? 왜요?


현지 장사를 하는 집들이 많은데,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가게가 있을 수 있어요. 외국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데 현지인이 보기에는 답답하고, 그러다 보면 불친절한 가게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어요. 그리고 친절한 가게라고 해도, 현지 장사를 하는 집에 외국인이 몰려가면 단골들이 떨어지거든요. 관광지라면 상관이 없는데,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경우에는 그곳 사람들의 식당을 뺏는 일이 되거든요.

 

‘맛집’은 끝내 공개 안 하실 건가요(웃음)?


되게 좋아하는 집이 있는데,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에 있는 ‘아카시 레스토랑’이에요. 아주머니 세 분이 운영하시는 소바 집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오키나와 소바가 정말 맛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 집은 면도 숙성해서 쓰고, 절인 고기를 숯불에 다시 구워서 얹어주는데 고기 익힘 상태가 되게 좋아요. 어느 정도로 인기가 있느냐 하면,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그 시간에 40~50명이 줄을 서있어요. 섬 최북단에 있어서 이시가키 본 섬에서 한 시간을 더 가야 되는 곳이거든요. 주변에 볼거리도 별로 없고요. 그런데 소바를 먹으려고 사람들이 거기까지 가는 거예요. 그 집에서 삼시세끼 국수를 먹으려고 민박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번에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뽑은 일본 오키나와 소바 랭킹에서도 1위를 했더라고요.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한국 밖 어딘가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단점을 넘어서는 이상향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천국이나 이상향 따위는 없었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왜 계속 여행을 하세요?


새로운 걸 보는 거겠죠. 냉정하게 말하면,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그런데 고민은 비슷하게 하지만 그 결들이 달라요. 그 나라가 만들어낸 사회적?정치적 환경에 따라 고민의 결이 달라지겠죠. 약간은 개인적 사명감인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국에 전하고 싶다는 욕망이 되게 강해요. 아직까지 우리는 폐쇄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함부로 남을 평가하고, 이를테면 ‘저 사람들은 그래서 가난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되게 화가 나요. 그렇다고 같이 싸울 수는 없고, 설명을 해서 설득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이드북을 쓰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계속 공부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을 쓴다는 핑계로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책을 봐도 돼요. 이 직업이 제일 좋은 점은 그건 것 같아요. 한 지역만 파고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일과 상관없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세요?


직업병이 정말 무서운 게, 여행을 가면 저도 모르게 취재를 하고 있어요(웃음).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식당 메뉴판 사진을 찍고 있는 거예요(웃음). 신문 읽으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파악하려고 하고요. 책으로 쓰지 않을 뿐이지, 여행간 곳에서 하는 일은 비슷해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환타지 없는 여행전명윤 저 | 사계절
아시아 곳곳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돌고 돌아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말한다. 여행하는 삶이란 여행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삶이라고. 여행은 오직 이 전제 아래에서만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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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튜브 특집] 어느 북튜버의 일주일 – ‘겨울서점’ 김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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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 : 구독자 10만이 넘는 인기 북튜브 <겨울서점>의 주인,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독서의 기쁨』  등을 썼으며 최근엔 ‘보는 사람을 읽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관한 책,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을 출간했다. 

 

 

수요일, 목요일


기획하고 또 기획하기 : 책 읽고 자료조사하고 스크립트짜기까지


어떤 영상을 찍을 지에 관한 러프한 기획은 요일을 정해놓고 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미리 써 놔요. 책 리뷰만 계속해서 올라가면 재미 없으니까 주제별로 분류도 하고 언제 업로드 할지 일정을 짜 놓죠. 만약 이번 주에 책 리뷰를 올린다고 정했으면 수요일이나 목요일 정도부터 세부 기획에 들어가요. 먼저 책을 읽고 자료 조사를 하는데, 우선 책이나 저자에 관한 이슈가 없는지를 살펴요. 혹 이슈가 있다면 영상을 올렸을 때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조사를 한 뒤에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분석으로 넘어가요. 책을 다시 읽고 스크립트에 넣을 메모도 하면서요.


저는 스크립트를 개요만 적는 식으로 써 놓는데, 유튜버에 따라 전체 대본을 쓰는 사람도 있고 아예 안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것 같아요. 책 소개에 관한 스크립트의 경우는 보통 인트로, 작가 소개, 책의 구성 소개, 제가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등 책의 장단점, 그리고 ‘책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은 주의하면 좋겠다’는 첨언과 마무리의 순서로 써요. 책마다 다른데 간단하게 쓰는 거라 분량은 길어봤자 A4 2장이 넘지 않고요. 이 과정을 목요일까진 마무리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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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고를까?


제 경우 소개할 책에 관한 장르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어요.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서, 힐링에세이와 심리에세이는 제외하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런 책에 제가 흥미가 없고 읽지 않아서예요. 이런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책 중에 그때그때 관심이 가는 책들을 읽고 그 중에서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것을 찍는 거죠. 랜덤이에요. 꼭 신간만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구간이나 뜬금없이 아주 오래된 책을 다루기도 하거든요. 채널이 활성화 되면서 요즘엔 출판사에서 꽤 많은 광고 요청이 들어와요. 출판사의 신간을 소개해 달라는 건데, 너무 많이 들어와서 안할 수도 없고 최소한으로 한 달에 한 번 혹은 아예 하지 않거나 해요. 물론 법적으로 고지를 해야하는 상황이라 구독자에게 광고라는 걸 알리지요.

 


기획이 전부랍니다

 

유튜브 방송 뿐만 아니라 콘텐츠 제작 자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기획 단계에서 완성본에 대한구상이 나와야 해요. 책 리뷰를 하겠다고 정했다면 기획 단계에서 이것이 영상으로 어떻게 나가는지에 대한 그림을 그려 둬야하는 거죠. 어떤 것을 찍을 지 어떤 말을 할 지, 책 내용 외에 어떤 내용을 추가할지 기획을 하면서 먼저 결정 해둬야 해요. 그게 없다면 영상을 찍을 때 필요한 소스를 빠뜨리게 되고 후회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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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토요일


촬영하기 : 렌즈를 보고 비문 없이 또박또박 말하기


촬영은 보통 금요일이나, 토요일 중 비는 시간에 해요. 아무리 늦어도 토요일까진 찍어야 하는데,그래야 일요일, 월요일에 편집을 할 수 있으니까요. 촬영 전 준비 사항은 카메라와 조명을 세팅하고, 아이패드에 미리 써놓은 스크립트를 띄우면 끝이에요. 집에서 책장을 배경으로 찍는 게 아이덴티티가 돼서 다른 세팅은 하지 않아요. 다른 곳에서 하면 저도 그렇고 구독자분들도 허전해 하시더라고요. 촬영은 보통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아무래도 NG가 안날 수 없으니까 발음을 잘못하거나 단어를 잘못 썼다 싶으면 끊고 다시 가기를 여러 번 반복하죠. 최대한 바짝 한다고 해도 그 정도는 걸려요. 야외촬영이 있는 경우엔 준비시간이나 촬영시간이 훨씬 길어져서 몇 배 이상 걸리는 건 기본이고요.

 

찍을 때 중요한 건 렌즈를 보는 거예요. 그래야 구독자와 눈을 맞추며 얘기하게 되죠. 흔히 카메라 모니터를 돌려놓고 영상을 확인하는데, 이때 모니터를 보고 얘기를 하면 구독자 입장에선 나를 안보고 옆을 보고 얘기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요즘엔 다른 촬영을 가도 렌즈만 쳐다보는 등 직업병이 돼 버렸는데, 저는 이 눈맞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발음과 문장에 많은 신경을 써요.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잘 전달해야 되니까 이왕이면 비문이 아닌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려고 늘 노력한답니다.

 

 

일요일, 월요일


편집하기 : 채널의 정체성과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들

 

편집은 ‘파이널컷’ 프로그램을 쓰고 있고 독학으로 혼자서 해요. 클릭해 보고 모르는 것 있으면 검색해서 찾아보고 최소한 필요한 정도로만 하는 식이죠. 도저히 시간이 안 날 때 다른 분에게 부탁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별로 없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혼자 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시간은 날 잡고 아침부터 밤까지 하면 하루에도 할 수는 있는데 그러다 허리가 나가서 지금은 그렇게 못하고요. 보통 일요일에서 월요일까지 이틀 정도 잡고 진행하고 있어요. 기본적인 색감 보정과 컷 편집, 자막 등을 위한 자료 수집 같은 것들을 하루 정도 하고 자막 넣고 배경 음악 넣는 등 자잘한 효과를 주는 후반 작업과 섬네일 만드는 것까지 마무리 작업을 월요일 밤까지는 끝내요.


편집 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게 채널의 정체성이에요. 우선 틀린 정보는 빼요. 촬영할 때는 맞다고 생각했는데 편집하다 아닌가 싶어 찾아보면 틀린 것들도 종종 있어서 아쉽지만 단호하게 지워버리죠. 영상을 재미있게 만드느냐 깔끔하게 만드느냐도 늘 고민인데, 사실 유튜브에 프렌들리한 편집은 호흡도 짧고 재미를 위한 다양한 요소들을 집어 넣는 것이거든요. 헌데 그런 건 저와도 맞지 않고 제 채널의 분위기와도 안맞는 거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 단정하고 깔끔하게 하려고 해요. 배경 음악은 주로 스윙재즈나 약간 빠른 블루스, 보사노바나 카페음악 같은 것들을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저작권 문제없는 것들로 틀고 있고 폰트도 요란한 것 보다는 깔끔하고 눈에 잘 들어오는 것으로 하죠. 색감을 정할 때는 그날의 영상 분위기에 맞추거나 소개하는 책 표지의 컬러나 디자인과 맞는 것을 활용해요. 이런 작은 부분이 <겨울서점>의 분위기에 하나하나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인지 컷편집 하는 것보다 이런 요소를 고르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거 같아요.

 

 

화요일 정오


업로드 : 영상 올리고 댓글로 나누기


누가 하라고 한 건 아니지만 저는 화요일 정오로 업로드 시간을 정했어요. 월요일 밤까지 영상을 마무리하면 화요일 정오에 자동으로 업로드 되도록 예약을 해놓죠. 화요일 정오가 되면 올라간 영상을 확인하는데, 만약 영상이 10분짜리라면 그 시간이 지나야 누군가 보는 거잖아요? 때문에 그 시간이 지난 후에 초기 반응을 보고 혹시라도 놓친 건 없는 지 점검한 후에 고정 댓글을 달아요. 고정댓 글은 댓글 상단에 고정할 수 있는 댓글인데 공지사항처럼 영상과 관련해서 알려야 할 내용을 제가 쓸 수 있어요. 초기 반응을 확인하는 건 알람이 제대로 갔는지 살피는 것인데, 유튜브가 가끔 오류가 나서 영상이 올라갔는데도 조회수가 안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걸 확인하는 거예요. 이후엔 다음 영상이 올라갈 때까지 틈틈이 댓글을 보고 필요한 답글도 달고 구독자와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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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원하는 건 사람


저는 구독하는 채널이 100개가 넘어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상도 보고 제가 재밌는 것도 보죠.유튜브라는 영역이 참고할 대상이 없어요.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가르쳐줄 선배가 없다 보니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많은 유튜브를 봐요. 나름의 문법으로 돌아가는 채널들을 관찰하면서 구독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떤 주기로 영상을 올리는지 댓글은 어떻게 다는 지 등을 살펴봐요. 그렇게 보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튜브에서 원하는 건 사람이다.’ 한국 유튜브의 특징인 거 같기도 한데 사람들은 채널 자체도 좋아하지만 그 채널을 만드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유튜버 개인에게 정이 든다고 해야하나? 그런 게 있어요. 어쩌면 이 부분이 기업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특히 출판사 유튜브가 활성화가 잘 안되는 이유일지도 몰라요. 애정을 붙일 대상이 없기 때문이죠. 유튜브 중에서도 북튜브는 좀더 지켜봐야 할 거 같아요. 시간이 더 흘러야 보일 거라 생각해요.


*예스24 북클러버


예스24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독서모임이에요. 3달 동안 3번 만났던 1기가 끝났고요. 지금은 다음 기수에 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어요. 독서모임을 시작한 이유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행사나 강연을 통해 일방적으로 제가 이야기하는 형태가 아니라 책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나누고 싶었어요. 유튜브를 하다 보면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잘 안 들어요. 숫자를 상대는 느낌이죠. 조회수, 구독자 수, 좋아요 수, 다 숫자로 보이거든요. 근데 그런 안되는 거잖아요. 부담도 되고 준비가 쉽지만은 않지만 책에 대해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커요. 앞으로 나눌 이야기가 기대도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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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유튜브 특집] , 어떻게 만들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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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수가 73만 명이 넘는 <유튜브대학 김미경 TV>, 어떤 콘텐츠인가요?


자기계발을 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분들을 위한 콘텐츠예요. 저는 누구나 나이를 막론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성장 안에는 철학이나 역사에 관한 것도 있을 거고  세계 정세에 대한 판단도, 돈이나 직장생활에 관한 것도 있겠죠. 얼마나 다양해요. <김미경 TV>는 이 스펙트럼을 5~6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영상을 올리고 있어요. 처음엔 ‘언니의 따끈따끈한 독설’이라고 ‘따독’ 콘텐츠만 올라갔어요. 한 주 동안 제가 특별히 느낀 것에 관해 언니가 얘기하듯 올리기 시작했죠. 그러던 것이 ‘이런 얘기를 해주세요’라는 사람들의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요일별로 편성이 됐어요.    

 

그 카테고리 안에 책을 소개하는 ‘북드라마’도 담겨 있는데요.


맞아요. 작년 11월부터 시작했으니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당시 제가 유튜브 등 플랫폼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책들을 몇 권 읽는 중이었어요. 그 날은  『유튜브 레볼루션』  을 읽는데 너무 좋아서 머리가 막 흥분되는 거예요. 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러기도 하잖아요.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너무 하고 싶어서 책을 읽다가 새벽에 50쪽 정도 남겨 놓고 혼자서 핸드폰을 들고 찍었어요. 침대에서 잠옷 입은 채로요. 그랬는데 생각지도 않게 그 책이 엄청 팔린 거예요. 스치면서 얘기했던 『에어비앤비 스토리』  까지요. 이후로 읽고서 좋았던 책을 소개해달라는 독자들의 요구가 있었고 북드라마가 시작됐어요.

 

책을 소개하는 코너의 이름을 ‘북드라마’라고 했어요. 왜 드라마라는 단어가 들어갔을까요?


저는 책을 한 번 소화한 후에 알려주는 게 중요해요. 제 3자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내 것이 되는 거죠. “이 책은 나한테 들어와서 나한테 이런 영향을 미쳤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거야” 저는 책이 한 번 제 안에 들어왔다 나가는 걸 드라마라고 봤어요. 저와 책이 맺은 관계를 알려주고 싶었고요.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읽고 어떤 변화가 일어났고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북드라마에서는 책을 소개하고 ‘따독쇼’엔 저자를 초대해 책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책을 선정하기 전까지 두가지 경로가 있어요. 하나는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것인데, 신간도 오고 몇 년 전 출간 된 책이지만 너무 아까운 책들을 편집자들이 가지고 오기도 해요. 일주일에 50권은 되는 것 같아요. 다 훑어봐야 하니까 이젠 책이 오면 한숨부터 나와요. ‘저걸 언제 다보나’하고요.(웃음) 또 하나는 제가 직접 찾아요.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요즘 어떤 책이 뜨고 있나’ 앞으로 나올 책까지 신간 위주로 살펴봐요. 그렇게 고른 것 중에 책이 매력이 있으면 북드라마에 소개하고 저자가 매력 있으면 ‘따독쇼’에 소개하죠. 저자를 모시는 경우는 저자의 매력도 포함되지만 저보다 저자가 직접 얘기하는 게 훨씬 더 독자의 이해를 도울 때 그렇게 해요. 미중관계 이런 주제를 제가 얼마나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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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 담기기 전까지 북드라마에 소개된 책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공정이 한 5단계는 돼요. 우선 직원이 책을 가져오면 3명 정도가 앉아서 분류를 해요. 계속 같은 분야의 책을 소개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데, 그 중에서도 저한테 끌리는 걸로 5권을 선정해서 읽어봐요. 하루이틀 걸려서 쭉쭉 살펴보죠. 그러면서 제목이나 목차까지는 설득했는데 100페이지쯤 읽어보니 얘기가 산으로 간다 그런 것들을 걸러내요.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선택된 책이 있으면 본격적으로 정독을 해요. 30분 동안 제가 강의하는 스타일로 설명을 해야하니까 설명할 내용들을 노트에 적어서 직접 말로 해보고 설득력이 약한 부분들을 고쳐나가죠.

 

직접 리허설을 해보는 거네요.


네. 솔직히 이 과정은 너무 바쁘면 못하고 나갈 때도 있는데 이 과정을 거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차이가 많더라고요. 책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가급적 리허설을 하려고 노력하죠. 그렇게 말한 내용은 녹취를 하고 또 그걸 원고로 풀어서 받아보는데, 제가 그걸 읽어 보면서 완벽히 이해 됐다 싶을 때 영상을 찍어요. 근데 저는 머리에 이해된 걸 가지고 말하지 그 원고를 보고 말하지는 않아요. 중간중간 읽어 줄 내용은 스크립트처럼 다 메모가 돼 있고요. 그렇게 30분간 마음껏 떠든 걸 20분 짜리로 편집을 하는데 이 과정이 또 이틀 정도 걸려요. 여기까지 하면 마지막으로 책임자 몇 명이 모여서 그걸 보고 ‘오케이! 나가도 되겠다’ 결정하면 영상을 올려요.

 

 

 

 

소개하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반응이 뜨거워요. 소감이 어떠세요.


사람들이 책에 대해 연민과 죄책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못 읽어 준 것에 대한 자기 뇌에 대한 죄책감?(웃음) 뭐 이런 거 있잖아요. 또 읽고 싶었는데 적당한 계기가 없었구나라는 생각도 해요. 누구나 ‘책마음’이 있거든요. 누가 그 마음을 건드려주면 얘가 확 움직여서 책을 사고 손에 책도 들리는데, 이 책마음을 건드리는 계기가 별로 없었구나 생각했죠. 특히 <김미경 TV>를 보는 구독자들은 40에서 60대 남녀인데, 바쁘게 애 키우고 직장생활 하면서 살다 보니 책마음이 잘 건드려지지 않았던 거예요. 사실 북드라마를 통해 책을 산 사람들은 책을 늘 샀던 분들은 아닐 거예요. 저는 북드라마가 그동안 책을 사지 않았던 독자들은 끌어 모은 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북드라마의 영상에는 댓글도 엄청나요. 기억나는 반응이 있나요?


56세에 그동안 읽은 책이라고는 잡지가 전부였다는 분이 있었어요. 애들 다 키워 놓고 할 일도 없고 우울증 같은 게 왔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엔 할 일이 책이 된다는 건 상상을 못했는데 우연히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 속에서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를 보게 됐고 그 재미 덕분에 하루 일과에 반드시 책이 들어가고 노트북을 사서 처음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도 써서 SNS에 올려 보기도 했대요. 그러면서 취미 생활도 하기 시작하고, 어학도 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책 한페이지 읽기 시작했을 뿐인데 하루가 채워졌다고 얘기한 글이 기억에 남아요.

 

북드라마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위북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세요.


위북프로젝트는 북드라마에 소개하는 책의 출판사들에 한해 해당 출판사로부터 제작지원금을 받아서 진행하는 다양한 활동이에요. 사실 누군가 잘 써놓은 책을 제가 잘못소개해서도 안되는 거고, 우리가 소개한 책이 어쨌든 출판계에 영향을 미치게 됐잖아요. 그래서 북드라마를 ‘책만 소개한다’라고 생각하지 말자, 위북프로젝트를 크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게 책을 읽는 의미를 담자고 생각했어요. 그 안에 함께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북드라마라는 코너 있고 어려운 도서관에 책을 보내주는 것, 작은 출판사의 책을 소개하는 것, 미혼모 가정을 위한 북바우처도 있는 거죠. 모두 생각이 성장하고 프로젝트가 성장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책에 대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인 것 같아요. 책의 힘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피아노 학원을 하던 제가 저에게 맞는 직업을 찾고 지금껏 할 수 있게 만든 것이 책이었어요.  제가 28살에 피아노 학원을 하다가 우연히 사례 발표 같은 걸 하게 됐어요. 반응이 좋았고 자꾸 강연 문의가 들어왔죠. 헌데 언제까지 제 성공 사례만을 얘기할 순 없잖아요. 좋은 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작정을 하고 빈 책장을 샀어요. 산 책이 아니라 읽은 책으로만 저 책장을 채운다는 결심을 했고 정말 열심히 읽었어요. 책은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또 인생의 조망권을 높여주죠. 책을 읽지 않으면 조망권이 지하에요, 제대로 보이지 않아요. 어느 나이건 좋은 선택을 하고 싶으면 선택의 힘은 책에서 와요. 바쁜 사람들은 많은 선택을 하잖아요. 근데 신기한 건 바쁜 사람들이 더 많은 책을 읽는다는 거예요. 그들은 책의 힘을 알기 때문에 놓지 않아요. 

 

제대로 된 책 읽기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결심이 제일 중요해요. ‘책을 읽지 않으면 죽는다!’ 결심을 딱 해야해요. 그냥 ‘휴가 가서 읽지 뭐’ 이런 생각은 안돼요. 책은 그렇게 한가할 때 읽는 게 아니고 바쁘고 힘들고 외로울 때 읽어야 해요. 책 읽기는 밥 먹듯이 해야하는데, 재밌는 것이 책 읽는 실력도 복리가 붙어서 적금 들듯이 읽다 보면 생각 실력, 책 읽는 실력이 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1주일에 1권이 제일 좋은데 벅차다면 2주일에 1권이라도 주기를 정해놓고 하는 게 좋아요. 또 세 번째는 무조건 사야해요. 사서 바로 보지 않더라도 순간 궁합이 맞을 때 읽게 되곤 하잖아요. 그런 순간이 왔는데 집에 책이 없으면 서점까지 가기 힘들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책을 사서 쟁여 두는 것도 좋은 습관인 거 같아요. 선택까지는 그렇고 읽는 건 책상에서 읽어야 해요. 적어도 어디에 앉아야지 눕는 건 아니라고 봐요. 책이라는 게 누워서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에요. 그래서 독서대 같은 장비가 있어야 해요. 저는 독서에 필요한 장비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좋은 펜과 메모지, 노트 같은 것도 잘 갖춰서 책 읽는 나만의 틀을 마련하는 거예요.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내가 책 읽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림이 딱 나와 줘야 되는 거죠.

 

책을 매개로 하고 싶은 것들이 더 있나요?


‘인문학 MBA’ 같은 이름으로 좀더 어려운 주제들 다루고 싶어요. 출판사들도 나름의 결이 있어서 과학책을 내는 출판사는 그 분야의 책만 내곤 하잖아요. 근데 그런 책은 많이 팔리진 않고요. 그래서 어떤 분야의 책을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와 함께 한 달을 기획해서 특정 주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공부를 해보는 거예요. 또 하나는 제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외국 저자를 초대해 같이 책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거예요. 저는 영화 개봉하면 외국 배우들이 오는 것처럼, 책을 내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걸 하기 위해서 나름 많은 공을 들였고 다음 주에 처음으로 『나는 7년 동안 세계 최고를 만났다』  를 쓴 알렉스 바나얀을 만나기로 했고요, 이후엔 강의 차 가는 뉴욕에서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의 제임스 클리어도 만나기로 했죠. 이런 기획을 실천해 나가면서 천천히 가고 싶어요.


 

 

나는 7년 동안 세계 최고를 만났다알렉스 바나얀 저/김태훈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꿈을 찾고 성공하고 싶으나 방법을 알지 못하는, 자신이 처한 삶의 단계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사명으로 시작된 긴 여정에서 저자가 온갖 장애물을 헤쳐나가며 성장하는 과정이 마치 소설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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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사진가 조세현 “내게 가장 알맞은 수식어는 ‘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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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사진가 조세현은 사진을 “내 인생의 전부”라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사진이 귀하던 중학교 시절부터 찰나를 담아내는 사진이라는 신비에 매료되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사진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 번도 꺾지 않았다. 그렇게 40년. 인물사진의 최정상에서 수많은 스타와 유명 인사들을 만나며 그들의 깊은 내면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왔다. 무엇보다 조세현은 “사람을 찍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잡지사 신입 사진기자 시절,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러 가서도 사람만 찍어서 데스크에게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을 향한 이 지독한 애정의 기원과 현재를 담은 책이 『조세현의 사진의 모험』  이다.

 

눈빛을 담아내는 인물사진, 피사체에 집중하게 하는 흑백사진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온 사진가 조세현은 지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진으로 말을 걸고자 한다. 2012년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설립해 노숙인을 대상으로 사진 교육을 진행하고, 사진으로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의 ‘사진의 모험’이 도착하는 지점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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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찍는 것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알맞은 수식어는 ‘찍사’이다.”(6쪽)라고 하셨죠. 그저 찍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말씀 같아요. 다른 수식어를 두고 자신을 다름 아닌 ‘찍사’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의미를 알고 언어를 사용해야 해요. ‘사진’이라는 말도 일본어죠. 베낀다는 뜻의 ‘사(寫)’를 써서 복사한다는 의미로 만든 말이에요. 이 의미대로라면 진짜를 찍지 않으면 사진이 아니라는 말인데요. 요즘은 거짓말도 사진이거든요. 책에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라는 글도 수록되어 있지만 이렇게 해야 사진의 한계가 넓어지는 거죠. 저는 그러면서 우리말을 생각해본 거예요. 흔히 ‘찍사’를 낮추는 말로 생각하는데요. ‘찍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세요. 도장도 찍고, 인쇄도 찍는 거죠. 뭔가를 증명하는 것. 그러니 찍사라는 말이 얼마나 좋아요? 빛을 찍어내는 거잖아요. 저는 이 말이 참 좋아요.

 

언제부터 찍사라는 말을 사용하셨어요? 


제가 사용하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사진 찍는 사람을 찍사라고 불렀죠. 특히 저는 인물 사진이잖아요. 제가 뭐 그렇게 크리에이티브하다고, 그대로 찍어주면 끝인 거예요. 인쇄처럼 똑바로만 찍어주면 말이에요. 안 그러면 ‘찍는다’는 말을 쓰면 안 되죠. 사진을 ‘촬영한다’, 사진을 ‘만든다’ 등 말이 많은데요. 사진은 찍는다는 말이 가장 쉽고, 최고예요. 저는 이 부분에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요. 이 말을 사람들이 좀 더 부드럽게 인식하면 앞으로는 찍사라는 말이 편해지겠죠. 실은 제목에도 찍사라는 말을 쓰고 싶었는데요. 성사되진 않았어요. 하지만 표지에 이 정도라도 찍사라는 말을 넣어준 것은 출판사에 정말 고마워요. 

 

작가님에게 사진이란 ‘말을 건다’는 행위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찍사로 살아오면서 사진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192쪽)라고도 하셨는데요.


작가니까요. 작가는 당연히 말을 거는 사람이죠. 문학이나 음악이나 그림이나 다 말을 거는 행위이고요. 저는 사진을 가지고 말을 거는 것인데요. 어쨌든 저는 인물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에요. 실제로 말을 안 할 수도 없어요. 침묵의 대화는 없어요. 뭔가 대화를 해야만 하는 거예요. 학생들은 오해하는 게, 모델이 좋으면 누구나 조세현처럼 찍을 수 있다는 말을 해요. 맞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학교에 모델을 데려간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그 앞에서 다 얼어버리더라고요.(웃음) 말 거는 것도 재주거든요. 유명 배우를 열 명의 프로 사진가가 찍으면 열 개 사진이 다 다르죠. 왜 그럴까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모델이 사진가를 보는 감정이 다 달라요. 그게 말 거는 재주예요. 사진가의 개성이 다 다른 거고요. 이게 인물 사진이에요. 말을 잘 걸어야 하죠. 또 좋은 사진으로 대답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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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

 

 

얼굴형이나 주름, 눈빛을 보고 홀딱 반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바로 사진을 찍고 싶어요. 바로 말을 걸고 싶은 거예요. “너무 멋지다”고 대화하고 싶은 거죠. 꼭 멋지고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추구하는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진 찍고 싶어요. 그 충동이 바로 사진으로 말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찍사면 됐다


“사람을 좋게 보려고 마음을 쓴다”(51쪽)고도 하셨잖아요. 사진가로서, 피사체(사람)를 좋아하는 것은 좋은 사진과 얼마나 관련이 깊은 걸까요?


쉽게 말해 감정이 없다든가 혹은 사람을 미워해서는 작품을 찍을 수 없어요. 그러려면 일을 안 하는 게 나아요. 군인으로 치면 기가 꺾인 것, 전쟁터에서 바로 죽는 것이죠. 그러나 기운이 없는데, 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용기를 내서 말을 걸자, 사랑하자, 이건 아니에요. 사람 좋아하기를 타고나야 하는 것 같은데요. 가령 동물 좋아하는 분들 있잖아요. 본능적으로 좋아해요. 마찬가지로 저도 그냥 사람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카메라에 담고 싶고요. 2000년대 초반부터 유독 전화가 많이 온 곳이 사회복지 그룹이었어요. 그 제안을 하나도 거절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거절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십 수년 동안 고아를 찍어왔고, 패럴림픽도 계속 참여하고 있고요. 이건 막연히 사명감 같은 건 아니었고, 좋았던 거죠. 사실 제가 복이 터진 거예요. 어디서 이런 모델을 구해요?

 

상업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안에도 사람에 대한 관심은 계속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감독, 광고회사 대표 제안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그냥 찍사면 됐어요. 물론 고민은 많았죠. 잘나갈 때 더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잖아요. 하지만 당연히 지금도 후회는 안 하고요.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는 건 사진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영화가 소설이라면 사진은 시죠. 우리는 영상의 시인이고요. 저는 시가 좋은 거예요.

 

또한 보는 사람이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 그것을 사진이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사진은 결과적으로는 보는 사람이 평가하는 거거든요.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도 “나도 설득 못 시키는데 어떻게 사진가가 되겠느냐?”인데요. 그렇지만 무조건 보는 사람에게 이끌리는 건 아니죠. 이끌어도 가야 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도 알아야 해요.

 

사진을 혼자 하는, 고독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에게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인물 사진을 하셨으니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요.


사진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작업이 맞아요. 혼자 해야 하죠. 그런데 제가 하는 인물, 특히 광고는 기획 단계부터 예산도 많이 들어가고요. 수십 명의 스태프가 있고, 연기자가 필요하고,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완전히 다른 세계죠. 그런데 이건 사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사진이거든요. 가장 각광 받고요. 이것도 큰 가치가 있는 거죠. 저는 운이 좋았어요. 여러 명과 함께 하는 작업을 해서 공감대가 넓어졌죠. 어떤 작업은 혼자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타협하거나 섞이면 자기 색을 잃어버리죠. 물론 제게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고요. 광고를 하니까 당연히 타협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이 나이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공동 작업에서 타협하지 않기란 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시안이 있잖아요. 천재들이 만든 거예요. 다들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이고, 카피 하나까지도 그들 손을 거친 거죠. 캠페인 하나에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니까요. 그것을 “선생님, 이렇게 찍어주세요” 하고 갖고 와요. 찍을 수는 있겠지만 당연히 내 색깔은 안 나요. 그래서 저는 안 했어요. 자연히 고집 세다는 소문이 났고요. 그렇게 한 4-5년이 지나갔어요. 그땐 저도 힘들었죠. 그런데 다음에 어떻게 된 줄 아세요? “선생님 스타일로 찍어주세요” 하고 오더라고요. 지금은 물론이고요. 무엇보다 사진은 자기의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후배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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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쉽게, 더 단순하게


흑백 사진에 대해 “직설이 아닌 은유라서 좋다”(199쪽)고도 하셨죠. 작가님의 흑백 사진 예찬, 이유를 들려주세요.


흑백이 아니었으면 사진을 안 했을 거란 얘기인데요. 흑백은 마법이죠. 색이 들어감으로써 너무 많은 진실을 잃게 되거든요. 주제를 잃게 돼요. 필요 없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요. “좋은 사진은 한 가지만 보이는 사진”이라고도 썼는데요. 단순함은 제 하나의 이상이에요. 심지어 저는 사람을 찍을 때도 얼굴만 찍어요. 복잡한 건 싫고, 누구나 보기 쉬운 게 좋아요. 그런데 쉽게 찍는다는 게 사실 어려워요. 지금 저를 찍으면 배경까지 다 나오겠죠? 그러니까 자꾸 빼야죠. 더 쉽게, 더 단순하게 하기 위해서요. 주제만 보이면 최고죠. 아기를 안고 있는 스타를 찍을 때도 아기와 스타만 보이면 되는 거예요. 저는 예술작품까진 원하지 않아요. 딱 보고 사람들이 다 누군지 알고, 느낌 좋다, 그러면 저는 돼요.

 

얼굴 가운데서도 눈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시잖아요. “눈은 내 인물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72쪽)라고 말하기도 하셨고요.


얼굴은 즉 ‘얼꼴’, 영혼의 모양이죠. 그 얼꼴이 얼굴 중에서도 눈에서 나오는 거예요. 사실 눈빛은 우리한테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우리가 동물을 부르면 동물이 우리의 눈을 쳐다보잖아요. 개도 그렇고, 새도 그래요. 눈으로 마음을 읽는 거예요.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리 입을 삐죽거려도 모르죠. 나머지를 다 가려도 눈만 보면 슬픈지 화가 났는지 다 알아요. 그게 눈빛이에요. 절대적으로 사진에서는 눈을 담고, 눈에 포커스를 맞춰야 해요. 눈이 온화하거나 눈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촬영할 때 눈빛이 달라지도록 카메라 앵글을 조절하면서 찾아내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말도 걸고, 신뢰를 쌓고요.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 이야기 가운데 법정 스님의 이야기는 울림이 컸어요. 이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스님이 제 사진을 보시더니 “조 작가, 사람의 영혼을 찍으면 어떨까?”라고 하시는 거예요. 쉬운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러면서 영혼이 있는 사진을 생각하게 됐어요. 스님이 제게 영혼이 담긴 사진을 찍으라고 말씀하신 거죠. 그게 많은 교훈이 됐어요. 평소에 사진을 안 찍으시는 분인데 제게는 곁을 주셨죠. 신뢰가 있었을 거예요. 스님의 유언 때문에 그렇지 화보집을 몇 권 내도 될 만큼 사진을 찍었어요. 이것도 하나의 증명이라고 생각하는 건데요.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사진으로 그렇게 다가가면 그런 분의 마음까지도 열 수 있구나, 생각하는 거예요.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책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여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현장으로 가서 사람들을 찍는 일도 계속 진행 중이에요. 작가님께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 지금 집중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사진을 가르치고 있어요. 노숙인, 청소년 등에게 사진을 가르쳐서 직업을 구해주는 일인데요. 지금은 소프트웨어, 빅데이터 시대라 이미지와 영상에서 모든 일이 시작돼요. 사진만 배우면 앞으로 광고, 영화, 디자인 등에서 활동할 수 있잖아요. 기초학문이 된 거죠. 다문화가정, 탈북가정 청소년 등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고 있고요. ‘천사들의 편지’가 2018년에 끝났지만 그것도 계속할 거예요. 무엇보다도 제 개인작업도 중요하죠. ‘어머니 시리즈’를 통해 이 시대의 어머니 모습들을 남겨놓고 싶어요. 이 작업은 약 5년 묵혀둔 거라 멋지게 나올 것 같아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 할 거예요.

 

역시 사람에 대한 관심, 호기심이네요.


머릿속에서 오래 생각을 해야 해요. 갑자기 찍자고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다보니 섬들을 다니게 되고요. 장터를 다니게 됐어요. 전국의 어머니를 다 찍어야 해요.(웃음) 힘들지만 그 즐거움은 말을 못해요. 시간이 지나면 그 어머니들 다 사라지거든요. 마음이 급해요.

 

60대를 가리켜 “세상을 돌아볼 줄 아는 깊이와 여유가 있는 나이”(97쪽)라고 하셨어요. 지금의 나, 60대의 삶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여유가 생겼어요. 한계도 알게 되는 거고요. 욕심이 일을 망치는 게 맞거든요. 그런 면에서 연륜이나 시간이라는 건 의미가 있죠. 나이 들면 지혜롭다고 하잖아요. 그건 정말 맞는 말이에요. 저는 이제 그런 것을 사진으로 보여줘야겠죠. 인간으로서는 시간이란 숙명적인 거예요. 거부할 수 없는 것이고요. 6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의 자서전이죠. 그 말 뒤에 숨은 의미는 사진 찍는 저는 관상쟁이라는 거예요. 제게는 수만 명의 얼굴 데이터가 있어요. 그것도 고급이죠.(웃음) 미래는 모르지만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보여요. 눈 끝, 코끝, 미간, 주름 등에서 보이는 게 있어요. 얼굴에 인생의 소설이 담긴 거예요.

 

학생들, 사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나요?


그냥 사진과 제가 평생 한 인물 사진과는 조금 다른데요. 저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 즉, 대상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해요. 그들이 주인공이잖아요. 그들이 아니면 나는 존재할 수가 없어요. 소나무를 찍는다면 다음날 다시 갈 수 있겠죠. 그런데 사람은 하루가 다르고요. 다음날은 늙어요. 그 순간에 끝내야 한다는 게 정말 중요해요. 재촬영이란 없어요. 찍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그러면 애정과 존경이 필수죠. 친해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건 거짓말이에요. 당장 처음 본 사람과 어떻게 친해지겠어요? 애정과 존경은 상대에게 금방 보이거든요. 또 전체 사진가로 본다면 정말로 ‘다름’이 중요하단 말을 하고 싶죠. 아까 얘기한 스타일인데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해요. 남들과 똑같은 사진 찍지 말고 자기 사진을 찍으면 좋겠어요.


 

 

조세현의 사진의 모험조세현 저 | 김영사
길에서 버려진 필름을 주워들고 마치 원시인이 콜라병을 처음 발견했던 때처럼 낯섦과 알 수 없는 쾌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던 당시를 회상한다. 아직도 찍을 것이 많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고, 이 좋은 ‘놀이’를 널리,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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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지혜 “차별을 거부하는 시민의 저력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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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라

 

 

“당신은 차별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는 “나는 그런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항변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선량한 차별주의자』  라는 제목은 ‘스스로 선량하다 믿는 우리 역시도 차별을 저지를 수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혹시 나는 “차별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외침에 ‘프로불편러’ 딱지를 붙인 적은 없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권리”라고 말하지는 않았나.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물음표로 바뀌는 지점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의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취했던 입장이 결국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차별이라고 말한다. 통계, 사회복지학, 법학 등 저자의 다양한 전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차별은 여러 분야가 충돌하는 복잡한 문제다. 여성, 장애인, 난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슈를 따라가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구성원을 만나고 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다. 단단한 논리로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를 알려주는 김지혜 교수를 서면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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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는 사회가 건강하다는 신호

 

첫 책입니다. 출간 후,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많은 분들이 제 책을 읽어주시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차별이 그렇게 즐거운 주제가 아닐 텐데, 이 여름의 휴가철에 책을 펼쳐주신다는 점에 크게 놀라고 있고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차별의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이야기를 꺼내기는 어려운 주제이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게 되기 쉽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 많은 분들이 더 이상 차별을 그냥 넘기지 않기 때문에 이런 책을 읽어주시는 게 아닐까 해요. 우리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수자와 차별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퀴어문화축제나 동성혼을 비롯한 성소수자 이슈와, 성폭력과 성평등정책을 비롯한 페미니즘 이슈가 사회적으로 논의되다가, 작년에는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큰 격돌이 벌어졌었죠. 서로 다른 이슈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가 어떤 소수자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편견을 만들고 증폭시키면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양상이 굉장히 비슷해 보였어요. 하지만 각 이슈에 따라 사람들은 다른 입장에 서서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쟁점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가 끊임없이 분할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서로 달라 보이는 이슈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소수자 차별에 문제를 제기할 때, 오히려 다수자 집단에서 “이것은 우리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리로 반박할 때가 있어요. 이런 주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기존의 세상이 기울어져 있던 상태에서 차별이 없어지는 건, 소수자에겐 이득이고 다수자에겐 손해인 상황처럼 보일 수 있어요. 상대가 무언가를 얻으면 나는 그만큼 잃는다는 제로섬게임으로 이 상황을 인식하는 거죠. 다수자가 피해를 보는 것 같고, 그래서 역차별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우리의 가치와 목표를 평등에 둔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되거든요. 손실처럼 보이는 경험이 역차별이 아니라 사실은 평등해지는 과정이고 그 진통이라는 걸 이해하면 좋겠어요. 사회가 평등해졌을 때 다수자인 자신의 삶도 나아진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평등한 사회에서는 삶이 덜 불안하고 사회는 더 평화로워지니까요.

 

“희망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스스로가 차별하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도덕적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마음은 두 가지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평등과 차별금지를 사회정의의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죠. 이건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신호이고, 저는 그 점이 아주 희망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 작용은, 차별이 너무 나쁜 것이라 내가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누군가 차별이라고 지적할 때, 그 말을 부정하고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자라나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혹시 나도?’ 하고 의심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유가 무엇인지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는 거죠. 그렇게 나의 사회적 위치, 가치관, 고정관념, 편견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를 수집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수치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토크니즘(역사적으로 차별받는 집단 가운데 소수만을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차별시정정책)’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기존에 여성이 2%이던 회사의 채용 정책을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연구를 소개한 것이 있어요. 여성의 입장에서는 50%로 바뀌는 것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남성의 입장에서는 2%를 유지하는 것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그나마 남성과 여성이 비슷한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성을 10% 채용하는 것이었죠. 토크니즘은 이렇게 실제로는 아직 평등과 먼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평등이 달성되었다고 여기게 되는 착시 현상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비슷한 실험을 하면 어떨까 궁금해요. 이런 심리 상태를 이해하면, 평등을 이루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저항감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결정 장애’처럼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혐오 표현이 있어요. 이 말은 반드시 안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단어나 표현이 있다면요?


사실 항상 조심스러워요. 잘 안 보이고 모르는 게 많거든요. 많은 분들이 제가 제시한 예시 중에 “한국인 다 되었네요”가 어떻게 모욕적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주민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이 자신을 한국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이야기로 들리는 거예요. “한국 살기 좋지요?”라는 말도, 그 배경에 이주민이 떠나온 본국이 상대적으로 살기가 좋지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이 깔려 있으면 이주민은 그걸 감지하는 거죠. 사실 이런 건 입장이 바뀌면 금방 이해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책에도 썼듯이 단순히 쓰지 말아야 할 표현 목록을 나열하는 건 어려워요. 같은 표현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보다는 당사자가 이런 불편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주변 상황을 살피고 경청하는 존중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수자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일은 처음에는 불편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생이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큰 부분들은 우연으로 만들어지잖아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의 어떤 부모에게서 어떤 성별과 신체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하는 이런 중요한 조건들이 나의 선택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주어져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우연히 놓인 이 자리가 다수자의 위치라고 해서 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소수자를 배척하는 것이 정의롭게 보이진 않을 거예요. 우리는 모두 어쩌다 보니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 세계에 태어났고,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건 우리의 조건이죠. 이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연구하고 논의하면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에서 지금 이 시점에 그걸 얼마나 잘 해내느냐는 현재의 우리에게 달린 거겠죠.

 

혐오 표현을 지적하면 “웃자고 하는 소리인데 왜 그러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웃음은 “웃기지 않다”고 말하면 좋겠어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려고 한 말이라면,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배척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유머는 이미 실패한 거죠. 가능하다면 왜 그 말이 문제인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대화할 수 있으면 바람직하겠죠. 말하는 본인이 잘 모르고 그런 말을 할 때가 많을 테니까요. 듣는 사람이 처음엔 당황해도 아주 고마워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 경우도 많을 거예요. 상대가 그런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을 때 적절히 순발력을 발휘하기가 참 쉽지 않아요. 책에도 썼듯이, 유머의 성패는 반응에 달려 있기도 합니다. 말로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면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를 줄 수 있어요. 그런 웃음을 도태시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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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이야기하는 게 먼저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지가 한참인데,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여전히 아쉽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차별금지법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차별금지법은 제정을 방해하는 사람들과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 때문에 본격적인 논의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동성애가 아니에요. 그 핵심은 고용, 교육, 재화와 시설의 이용에서의 온갖 차별을 없애는 거죠. 실제로 우리는 차별을 많이 당해요. 나이, 학력, 성별, 외모, 장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출신 지역, 출신 국가, 가족 상황 등 어떤 이유로든 억울한 경험을 하고, 그걸 만회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고단한 삶을 살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용, 교육, 재화나 시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나 운영하기 쉬운 방향으로 가려고 하겠죠. 차별금지법은 여기에 공공성의 원칙을 세우는 거예요. 최소한 고용, 교육, 재화나 시설의 이용 같은 공적 영역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다양성을 포함하는 평등 사회를 설계하자는 것이죠.

 

이 책의 메시지가 특히 어떤 사람에게 전달되면 좋을까요?


평등과 차별금지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더 많은 책임을 가진 사람들과 이 책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대통령, 국회의원, 공무원, 교사 등 헌법상 의무를 따르고 공공을 위해 헌신하기로 약속한 사람들 말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면 사회는 변화하기 어렵겠죠. 촛불집회 때도 경험했지만 헌법은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소중한 문서잖아요. 지금의 정권도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고요.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는 평등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무심할까요? 이런 분들이 좀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평등과 차별금지에 관해 고민할 수 있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소수자 감수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자신에게 보이는 풍경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당연할 거예요.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그 끝까지 올라간 사람에게는 평생을 바쳐온 계층구조가 없어진다는 게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죠. 그걸 올라오지 못한 사람은 실패자로 보이고, 불평등한 것이 오히려 공정한 것이라고 느껴질 거예요. 경우에 따라서는 평등한 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죠. 사실 그런 사회에서는 소수만 성공하기 때문에 성공의 가능성은 매우 적고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는데도 말이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이야기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사회에서의 평등의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면서 헌법상 평등과 차별금지의 원칙을 우리 삶에 생생하게 살려내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을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면서 자신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닐까 반성한다는 말씀을 해주세요. 공감해 주시니 너무 고마운 말씀이고 같이 성찰할 수 있어 기쁜 일이에요. 이렇게 성찰로 시작된 생각을 일상적이고 사회정치적인 실천으로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책의 뒷부분에서 했어요. 다소 딱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저는 시민의 저력을 믿어요. 지금은 우리 사회에 혐오와 차별이 난무한다고 개탄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어떤 저술 활동을 하실 예정이신지요?


차별은 저의 오랜 고민이고 계속될 과제일 거예요. 이주민과 난민, 성소수자 이슈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것이니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거리가 많죠. 제가 사회복지와 법학을 함께 전공했는데, 사회복지제도가 내재하고 있는 차별과 배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에는 책을 썼지만, 당분간은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주제를 하나씩 깊이 있게 연구하다 보면, 또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가 쌓이겠죠. 그때 다시 대중과 이야기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전에 논문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면 아주 감사한 일일 거예요.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한다.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청소년, 홈리스 등 다양한 소수자 관련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통해 사회에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ㆍ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 전산과학전공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 미국 워싱턴대학교 로스쿨 J.D.(Juris Doctor) 학위를 받았다. 서울특별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 헌법재판소 등 기관에서 일했으며, 다수의 연구논문과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공저) 『인권행정 길라잡이』(공저) 등을 쓰고, 『헌법의 약속』, 『사회보장론 입문』을 번역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저 | 창비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조직해가자고 제안한다. 평범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말하는 도발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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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한 “유튜브에서 중요한 건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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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유튜브 한 번 해볼까?’ 유명 크리에이터가 수억 원의 광고 수익을 올렸다는 소식이 들리면 우리는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1위가 유튜버라는 뉴스가 들린 지도 오래. ‘모든 콘텐츠는 유튜브로 통한다’라는 비유가 어색하지 않은 요즘, 바야흐로 유튜브 전성시대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인터넷 방송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 쉽다. 누구나,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 다만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값비싼 장비부터 사는 것.  『1인 방송 시작하는 법』  의 저자 김기한은 “부담 갖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고 말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으로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1인 방송 시작하는 법』  은 대세에 편승해 무작정 뛰어드는 청소년들을 주목한다. 플랫폼별 특징부터 촬영, 편집, 스마트폰 세팅까지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삼촌’의 언어로 소개한다.

 

삼촌은 최대한 비용부담 없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사양이 떨어지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더라도, 좋은 캠코더나 카메라가 없어도 할 수 있어(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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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진 것으로 시작하기

 

배우, 기자, 마케터, 소셜미디어 기획자까지 이력이 화려하고 의외여서 놀랐습니다. 


실은 책에 기재한 내용보다 더 많은 일을 했어요. 대부분 배우로 일하면서 생계를 위해 했던 일인데 인터넷 방송도 그중 하나에요. 홍대 인디밴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강한 딴따라>를 100회가량 제작했죠. 이 방송을 계기로 인터넷 방송에 재미를 느꼈고 주변에서 방송 기획, 촬영, 편집,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라이브 방송을 해달라는 의뢰도 들어왔고요. 공부하면서 시작했어요. 인터넷 방송을 제대로 공부해 보니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주로 어떤 프로그램을 제작하셨나요?


토크쇼를 만들었어요. 정치 프로그램을 촬영하기도 했고, 지금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형극을 제작하고 있어요. 1인 방송은 아니고 기획과 제작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나중에 직장인들의 퇴근 이후를 담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부제가 ‘청소년을 위한 1인 방송 만들기’에요.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터넷 방송에 관심이 많은데 독자를 청소년으로 특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려는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엄마한테 손 벌리는 거예요. (웃음) ‘누가 별풍선 1,700개를 받았다’ 또는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해볼까?’하고 무작정 덤비는데 잘 모르니까 일단 좋은 기계부터 사려고 해요. 계획도 없고 메시지도 없는데 구독자를 모으기 위해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따라 하는 경우도 많고요. 결국 시작도 못 하거나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두면서 비싸게 산 기기를 중고시장에 내놓게 되죠. 아니면 그걸로 게임만 하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실제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너 게임 방송하고 싶어? 스마트폰으로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죠.

 

유튜브 외에 아프리카, 트위치 등 여러 가지 플랫폼을 소개해 주셨어요. 이 플랫폼들은 어떻게 다른가요?


일단 인터넷 방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지면 유튜브가 부동의 1위예요. 세계적으로는 유튜브와 트위치가 강세고 한국에서는 그 두 개에 아프리카가 더해졌죠. 플랫폼마다 방송자를 부르는 이름도 다른데요. 유튜브에서는 유튜버 또는 크리에이터, 트위치에서는 스트리머, 아프리카에서는 BJ, 카카오에서는 PD로 불러요. 이 모든 걸 통칭하는 게 있다면 ‘브로드캐스터’고요.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플랫폼이 좋을까요?


실시간 방송을 하기에는 유튜브보다 트위치나 아프리카가 좋아요. 반대로 녹화 방송을 하려면 유튜브가 낫고요. 그런데 처음부터 실시간 방송을 하기는 어려우니까 유튜브에서 녹화방송으로 시작하고 나중에 방송이 익숙해지면 실시간 방송으로 넘어가는 게 좋아요. 안정적으로 운영되면 다른 채널도 같이 하면 좋고요. 실제로 유명 크리에이터들이 그렇게 하는데요. 대도서관도 실시간 방송은 트위치에서, 녹화 방송은 유튜브에서 하죠.

 

‘전문성 있는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라고 하셨어요. 일반인 특히 청소년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여기서 말하는 전문성은 대단한 지식이나 정보라기보다 내가 잘하는 것 또는 다른 사람보다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을 뜻해요. 또는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거요. 예를 들어서 이런 방송이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인 유튜버가 본인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인데 사람들이 이 방송을 켜 놓고 같이 공부해요. 특별한 내용이 없어요. 그냥 공부하는 거거든요. 다만 쓱싹쓱싹하는 연필 소리를 조금 극대화한다든지 그런 효과만 주죠. 이 유튜버는 본인이 꾸준히 할 수 있는 거, 잘하는 걸 한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고 먹방하다가 게임 방송하다가 분위기 타서 갑자기 정치 방송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인터넷 방송의 이런 의외성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세상의 모든 게 인터넷 방송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인터넷 방송을 무시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달라졌죠. TV 광고보다 더 큰 수익을 내니까 기업에서도 주목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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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이 재능

 

책 전반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꾸준함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은 해야 해요. 그리고 기간에 대해서는 ‘1년을 해봐야겠다’ 이런 거보다 올릴 수 있을 때까지 올리는 게 좋아요. ‘대중교통공작소’라는 채널이 있는데요. 이 채널의 운영자는 매일 6시에 정확하게 올려요. 내용은 별거 없어요. 지하철 들어오는 거 찍고, 나가는 거 찍고 그게 다예요. 그런데 이걸 3만 명이 봐요. (웃음)

 

횟수나 기간 자체가 중요하기보다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죠. 부담 갖지 말고 내가 원하는 것, 잘하고 좋아하는 걸 찾아서 하면 돼요. 만약 좋아하는 거나 잘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면 자주 하는 일이 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한 번에 여러 개씩 드문드문 올리는 것보다 요일을 정해서 최소 일주일에 하나씩 꾸준히 올리는 게 중요해요. 콘텐츠가 쌓여야 구독자가 온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1년 이상 했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어떡하죠?


물론 그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대체로 그렇지는 않아요. (웃음) 특히 유튜브는 전 세계 사람이 보는 거잖아요. 취향이 다양해서 구독자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사람이 모이는지 보이기 시작해요. 그렇게 3개월, 6개월 하면서 구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반응에 따라 방송 포맷이나 내용도 조금씩 바꿔 가는 거죠. <강한 딴따라들>을 만들면서 저도 그랬어요. 처음에는 아주 진지하게 만들었어요. 게스트도 여러 명이었고요. 그런데 한 명을 깊게 이야기하는 걸 구독자들이 더 좋아해서 바꿨죠. 이렇게 반응에 따라 내용이나 구성, 편집을 다르게 하면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요.

 

시작하기 전에 한 달 치 방송을 미리 찍는 걸 추천한다고요.


닥쳐서 하면 힘들거든요. 일주일에 하나면 총 네 개를 만들어 놓고 날짜를 지정해서 미리 올리는 거죠.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게 매일 하는 건데요. 미리 찍어 놓으면 일정에 쫓기는 일 없이 정해진 시기에 맞춰 방송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초기에 방송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촬영이나 편집이 익숙해지면서 탄력이 붙으면 나중에는 처음보다 수월하게 방송할 수 있어요.

 

한 번에 촬영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제작해야겠어요.


한 주제를 나눠서 찍으면 돼요. 예를 들어서 빵을 만드는 방송이라면 1회차는 반죽, 2회차는 굽기 이런 식으로 구분하면 좋죠.

 

분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최대 10분이요. 인터넷 방송, 특히 유튜브에서는 구독자들이 10분 넘는 영상을 잘 안 봐요. 5분도 길어서 안 보는 사람이 많고요. ‘왜 최대 10분이냐?’ 하면 10분 이상 돼야 광고가 붙거든요.(웃음) 그 10분 동안 구독자들을 잡아둬야 해요. 단,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3분이나 5분 정도로 만드는 걸 추천해요. 어차피 유튜브에서는 처음부터 광고가 붙지 않거든요. 짧은 분량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늘려가는 게 좋아요. 최대 10분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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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을 따라가세요

 

스마트폰 기종은 상관없나요?


HD급 1920X1080 해상도만 지원하면 괜찮아요. 1920X1080 해상도의 동영상이 가장 안정적으로 서비스되고 있어요.

 

편집 점을 잡는 기준이나 노하우가 궁금해요.


자연스러움이요. 방송자의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자르는 편이에요. 약간 재미 요소를 넣고 싶을 때는 ‘이건 헛소리다’는 느낌이 나게 출연자가 “~했습니다” 하면 “~다” 전에 자르는 식으로 편집하기도 하고요. 동작이 바뀌는 부분도 신경 써요. 예를 들어 방송자가 조금 전까지 앉아 있었는데 다음 장면에서 갑자기 서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이럴 때는 중간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모습만 살짝 넣어도 보는 사람이 ‘아 일어났구나’하고 알 수 있죠. 흔히 ‘편집이 널을 뛴다’고 하죠? 이런 걸 방지할 수 있어요. 무료 편집프로그램인 무비 메이커로 충분히 할 수 있죠.

 

‘영상의 임팩트는 배경 음악’이라고 하셨는데 음악은 어디서 찾나요?


저작권 없는 음악 파일을 3천 개 정도 모아놨어요. 여기서 주로 고르는 편이에요. 이런 게 없더라도 유튜브 오디오 라이브러리에서 저작권 없는 음악을 구할 수 있어요.

 

제목 짓는 팁이 있다면요?


단순해요. 하고 싶은 말, 핵심을 앞에 두면 돼요. 예를 들어 ‘일본의 경제 제재에 맞서는 한국, 불매 운동 시작’이라고 했을 때 영상의 주제가 불매운동에 가깝다고 하면 앞에 불매운동이 와야죠. 그리고 제목이 너무 길면 잘리니까 최대 20자면 충분해요. 섬네일도 마찬가지고요.

 

처음에는 구독자를 모으기가 막막하고 어려울 것 같아요.


주변인을 활용하세요.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일단 주변인에게 알리고 공유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죠. 부끄러워서 알리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방송 왜 하냐?”고요.(웃음) 그리고 SNS를 활용하면 좋아요. 가입자가 1만 명 이상인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해서 동영상을 공유하세요.

 

‘섬네일이 동영상의 간판’이라고 하셨는데 이미지는 어떻게 정하시나요?


영상 내용 중에서 섬네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이미지 한 컷을 골라야 해요.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방송의 섬네일을 보면 웃긴 모습을 포착한 이미지가 많아요. 리뷰 방송이면 ‘비교해 본다’는 텍스트가 한눈에 보이거나 비교할 상품 두 개가 보이는 식으로 궁금증을 유발하죠. 이때 쓰이는 폰트는 저작권 무료여야 하고요.

 

 

막막하고 부담된다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방송할 때 주의할 점이 있을까요?


일단 카카오톡 같은 SNS 알림을 꺼놔야 하고요. 방송 중에 전화가 오면 방송이 중단되니까 비행기 모드로 해 놓고 와이파이만 켜놓는 게 좋아요. 깜빡하고 이걸 안 했다가 방송 중에 SNS 메시지나 전화가 오면 사생활이 노출될 뿐만 아니라 흐름이 끊기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신상이 드러나는 게 부담되는 사람들은 방송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얼굴이 보이기 싫은 사람은 목소리만 내면 돼요. 제가 추천한 ‘스푼라디오’가 그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플랫폼이죠. 스푼라디오에서 실시간 방송을 하다가 잘 되고 재밌다 싶으면 오디오 파일만  따로 제작해서 유튜브로 방송할 수도 있어요. 

 

방송하기에 좋은 인터넷 브라우저를 추천한다면요?


크롬이죠. 익스플로러는 너무 무겁고요. 어떤 플랫폼이든 크롬에서 하는 걸 추천해요. 특히 유튜브는 크롬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선배 유튜버들과의 인터뷰가 실렸어요. ‘1인 미디어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 두 번 이상 언급되는데 이런 교육을 추천하시나요?


아예 모르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강의라도 듣는 게 훨씬 낫죠. 그냥 유튜브 보고 배우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유튜버마다 방법이 다르거든요. 무엇보다 직접 강의를 들으면 궁금한 걸 실시간으로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아요. 단,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열리는 강좌는 추천하지 않아요. 차라리 내용 잘 정리된 책을 한 권 사서 보는 게 좋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돼요.


하세요. 스마트폰 가지고 계시잖아요. 기자들이 하는 방송이나 글쓰기 방송도 많아요.(웃음)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시작하세요. 

 


 

 

1인 방송 시작하는 법김기한 저 | 지노
방송 진행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와 윤리의식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 청소년들에게는 물론 관련 분야의 지도교사나 학부모들에게도 더없이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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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영주 “쓸데없는 덕질이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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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가방과 분홍색 문구류, 그리고 분홍색 책 표지. 소지품을 보며 조심스레 추측했다. ‘작가님, 분홍색 좋아하시나 봐요.’ 어떻게 알았냐며 되묻는 작가의 표정에서 의아함과 함께 반색하는 기운이 읽혔다. 다시 한 번 책의 제목에 눈길이 머문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소설가 조영주의 세계를 더없이 잘 드러내는 문장 같았다. 좋아하는 것들에 흠뻑 빠져들었던, 너무도 좋았던 순간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빼곡했다.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칼럼 ‘조영주의 성공한 덕후’를 바탕으로 쓴 ‘덕질 라이프 에세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살아가는 것도 그런 일이 아닐까. 줍고 모으고 쓸 만하게 잘 다듬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 어쩌면 소설가 조영주의 ‘덕질’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으고 잘 다듬어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완성시키는 것. 1년 동안 매일 떡볶이를 먹었다는 작가는 떡볶이에 대한 에세이와 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오래도록 덕질해 온 커피, 카페 홈즈, 추리소설이 한 데 어우러진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소설  『홈즈가 보낸 편지』  로 ‘제6회 디지털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조영주 작가는 ‘제2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예스24와 카카오페이지 등 각종 공모전을 섭렵했다. ‘글 쓰는 바리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다  『붉은 소파』  로 ‘제1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업 소설가가 됐다. 현재 <채널예스>에서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 칼럼을 연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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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파고 들어서 ‘덕후’입니다


첫 번째 에세이입니다. 책에서 “소설을 쓰면서도 소설이 뭔지 잘 모르겠는 나는, 에세이를 쓰자니 에세이도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맞습니다, 굉장히 난감했습니다(웃음). 진짜 책을 내게 될지 몰랐거든요. 처음에 쓰려고 했던 에세이 기획은 있었어요. 제가 카페에서 오래 일했으니까, 커피와 바리스타 이야기를 에세이로 써보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열심히 원고를 준비했는데 출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요. 아까워서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엄지혜 기자님이 그걸 보시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채널예스>에 ‘조영주의 성공한 덕후’ 칼럼을 연재하게 되신 거예요?


나중에 다시 엄지혜 기자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제가 ‘세계문학상’을 수상하고 나서 한 지인이 저한테 ‘너 이제 정말 성덕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거든요. 엄지혜 기자님이 그걸 보시고<채널예스>에 ‘성공한 덕후’ 칼럼을 연재하자고 하신 거예요. 반년 정도 칼럼을 쓰고 나서 언젠가는 책으로 내야지 생각했는데 곧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세계문학상’ 상금을 받은 뒤에 놀면서 지냈죠(웃음). 정말 2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거든요. 상금 다 떨어지니까 다시 글을 쓰더라고요(웃음). 에세이를 내야 될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 칼럼을 봤다면서, 칼럼이랑 블로그에 쓴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내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작년 이맘때 계약을 했어요. 원고가 다 모이는 데 4년 정도 걸린 거죠.

 

세계문학상’ 수상 이후에 놀았다고 하셨는데(웃음), 사람들한테 잊히기 전에 빨리 다음 작품을 내야 된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그랬어야 되는데(웃음)... 정말 우연히 상을 탔던 거라서 아무 계획도 없었고, 책을 계속 써야 되는지도 몰랐어요. 상금 받고서 ‘내 인생에 이렇게 큰 돈을 언제 받아보겠어’ 하고 놀 생각밖에 안 하다가 굉장히 놀랐죠(웃음). 그때 ‘에세이를 써볼까’ 생각은 했었는데, 결국 3년이 걸렸고요(웃음). 올해는 열심히 쓰고 있어요.

 

쓰고 계신 작품은 소설인가요?


올해는 많이 나옵니다. 소설만 2권이 나오는데요. 하나는 ‘혐오자살’(가제)이라고, 혐오 문제에 대해서 쓴 소설이에요. 또 하나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가 끝났는데 『반전이 없다』라는 ‘카페 홈즈’가 배경인 장편소설이에요. 작년에 ‘카페 홈즈’에 단골로 드나들면서 이곳을 배경으로 장편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집필을 시작했고요. 올해 11월에 출간 예정이에요.

 

‘혐오자살’(가제)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2014년부터 썼어요. 당시에 촛불 시위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조명이 안 될 때였는데, 그때 오랜만에 최인훈의  『광장』  을 읽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읽고 나니까 혐오 문제에 대해서 써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계속 공부를 했고요. 올해 초에 계약하고 지금 계속 작업하고 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한 번에 쓰지를 못해요. 도중에 쓰기 싫으면 던져 버리는 스타일이어서. 지금 원고는 세 번째 버전이에요. 앞의 두 개 버전은 쓰다가 버렸는데, 그게 3,000장 정도 돼요.

 

3000매를 버리셨다고요?


네, 저는 소설 쓸 때 보통 3,000매를 버립니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요. 쓰다 보면 앞부분은 마음에 안 들어서 못 봐주겠어요. 그래서 제가 버리자고 하기도 하고, 편집 과정에서 버리기도 해요. 『붉은 소파』  도 두 번 엎었어요. 세 번째 썼던 원고가 가까스로 상까지 탄 거예요. 저는 늘 그래요(웃음). 『흰 바람벽이 있어』  도 지금까지 5,000~6,000장 버린 것 같아요. 제가 20대 때 우울증이 심각했는데,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읽고 깨달음을 얻었어요. 인생은 원래 이런 거구나, 하고. 그때부터 이 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싶었어요. 시에 따라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했는데, 그게 2004년이에요. 아직까지 못 쓰고 있죠. 언젠가는 쓸 겁니다(웃음). 거의 다 된 것 같아요(웃음).

 

요즘 ‘덕질’하고 계신 대상은 뭐예요?


떡볶이입니다. 오직 떡볶이(웃음). 덕후는 한 가지만 파고들기 때문에 덕후예요. 저도 한 번에 하나씩만 팝니다. 2010년에는 해골에 꽂혔었어요. 해골 가디건, 해골 가방, 해골 머리띠, 해골 모자... 해골과 관련된 물건이 되게 많았어요. ‘해골녀’로 TV에 출연할 뻔 한 적도 있고요. 그때는 되게 말랐을 때라 모습도 해골 같았어요. 가끔 스트레스 받으면 온 몸을 해골로 휘감고 외출하고, 그러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그랬죠.

 

해골에 빠지신 건, 어떤 계기가 있었어요?


이유가 없습니다. 늘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집니다. 그 다음에는 리락쿠마에 꽂혔었어요. 한 2년 정도 덕질을 했는데, 당시에 친구들이 해외에 갈 때마다 리락쿠마를 사다 줬어요.

 

보통 ‘덕질’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1~2년 정도 되는 것 같고요. 짧으면 3개월 정도 지나서 끝나는데, 그렇게 짧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작가도 한 명한테 꽂히면 되게 오래 가요. 정유정 작가님 책은 당연히 나올 때마다 다 모으고 있고요. 미야베 미유키 책도 다 모으고 있어요. 저는 서재의 모든 책을 작가별로 꽂아놔요. 마스다 미리 책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고, 미야베 미유키 책만 해도 세 줄이에요. 마쓰모토 세이초, 김영하, 김탁환, 정유정, 헤밍웨이... 다 작가별로 나뉘어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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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기 전에는 글 쓰는 게 재밌었어요


가장 오래 ‘덕질’하신 대상은 ‘책’일까요?


그렇죠. 만화책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해서 여전히 끊임없이 보고 있고요. 이렇게 계속 이어질지 몰랐어요.

 

아버님께서 만화가이시죠?


네, 지금은 안 그리십니다.

 

“빨랫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버지의 만화 원고”가 인생 최초의 기억이라고 하셨어요.


그때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때 저희가 반지하에 살고 있었는데, 밖에서 동네 언니들이 고무줄놀이 하는 소리가 들리고, 빨랫줄에 매달린 원고를 봤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장마철이라 매달아 놨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원고가 잘 안 마르니까요.

 

만화가가 되고 싶지는 않으셨어요?


제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사실 아버지 때문이에요. 여섯 살 때 집에 앉아서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아버지가 보시더니 ‘넌 그림에 소질이 없구나’ 그러시는 거예요(웃음). 그때 저는 되게 진지하게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으니 다른 재주를 찾아야 돼’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러고 나서 1년쯤 지나서 처음으로 시를 썼는데요. 학교에서 시화전을 한다고 한 편씩 내라고 했었어요. 시가 뭔지도 모르고 쓰고 있는데, 아버지가 보시더니 ‘글에는 재능이 있군’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제 꿈은 작가가 된 거죠. ‘내가 글은 잘 쓰나 보다, 그러면 글을 써서 먹고 살아야지’ 하고. 

 

등단 전까지는,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 전까지는 글을 쓰는 게 되게 즐겁고 재밌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작가가 되고 나니까 진짜 싫더라고요(웃음). 이전에는 고치는 일이 없었잖아요. 뭘 쓰든, 내 마음대로 써도 누가 뭐라고 안 하고요. 그런데 돈을 받는 ‘일’이 되니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게 됐어요. 글을 쓰는 게 싫고 재미가 없어지기도 했어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셨죠. 합평회 하면 날 선 비판들이 오고가는데(웃음), 그때는 어떠셨어요?


그때 욕 많이 먹었습니다(웃음). 항상 듣는 말이 있었어요. 너무 대충 쓴다, 성의 없게 쓴다... 그런데 그건 사실이었어요. 그때 저는 고민하는 방법을 아예 몰랐거든요. 사는 데 주제의식이 없었어요. 그냥 써서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할 때였어요. 왜 그렇게 주제의식이 없냐고, 주제의식 좀 가지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잠입 취재도 하게 된 거였어요. 어떻게든 현실 감각을 기르려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잘 안 되더라고요.

 

추리소설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시기 전이었나요?


네. 그래서 다 포기했었는데, 우연히 남산 도서관에 갔다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를 봤어요. 이달의 추천도서로 선정된 책이었는데 한 달 동안 아무도 안 빌려가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해서 빌려봤어요.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는데 100쪽부터 재밌어졌어요. 나머지는 밤을 새면서 읽었죠. 그러고 나서 ‘추리소설이 이런 거라면,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그때는 계속 영화 시나리오를 쓰라고 연락을 받을 때였는데, 제가 단호하게 ‘저는 오늘부터 추리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영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이후부터 추리소설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셨고요.


일단 미야베 미유키 소설들을 다 읽었고, 미야베 미유키가 추천한 책도 다 읽게 됐어요. 마침 미야베 미유키 책만 출간하는 출판사가 있었는데, 그게 북스피어였어요. 출판사 블로그에 추천도서로 올라오는 책은 다 읽었고, 3년 동안 끊임없이 소설을 읽었어요. 처음으로 추리소설을 써서 북스피어에 투고했는데, 일본 소설만 출간하는 곳이다 보니까 출판은 안 됐고요. 그래도 북스피어에서 추천하는 책은 다 사서 읽고, 매일 리뷰를 쓰고, 행사하면 찾아가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상을 타더라고요.

 

대학 졸업 후에는 시나리오를 쓰셨어요?


네, 입봉을 되게 빨리 했거든요. 2002년에 영화 시나리오가 TV 특집극으로 나왔어요. 사실 제가 그 전에 김영하 작가님을 뵀는데, 저희 학교에 특강을 오셨었어요.  『아랑은 왜』   발표하셨을 땐데, 저희한테 숙제를 내주셨어요.  『아랑은 왜』  를 읽고 시나리오로 써오라고요. 저도 열심히 써서 냈는데, 김영하 작가님이 보시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너무 재밌었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잘 썼다는 칭찬을 받은 거였어요. 너무 감동 받아서 약간 울었어요. 저한테 재능이 있다고, 시나리오를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꽂힌 거죠(웃음). 그날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너무 신이 나서 미친 듯이 썼어요. 1년 동안 100편 정도를 썼으니까요. 끊임없이 써서 투고를 했는데,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특집극을 하자는 연락이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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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세 번 거절당한 원고였어요


데뷔작  『홈즈가 보낸 편지』  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장충동 카페에서 일하고 있을 때, 정명섭 작가님이 제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시고 찾아오셨었어요. 그때 작가님은 파주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계셨어요. 나도 일하면서 투고했다고, 내가 볼 때는 네가 글을 잘 쓴다고, 잘 될 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계속 기회를 주셨는데, 제가 인지도가 없으니까 작가님이 소개를 해주셔도 계약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디지털 작가상이라는 게 있는데 한 번 내 봐라,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쓰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잊어버렸어요. 저는 평생 작가 지망생으로 살다가 죽을 줄 알았지, 작가가 될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그 해에 <셜록>이 방영을 했어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셜록> 같은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정말 쓰고 싶은 게 생긴 거죠. 그래서 쓰게 된 게  『홈즈가 보낸 편지』  예요.

 

이 작품으로 ‘제6회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 우수상을 수상하셨죠.


처음에는 ‘웹진 판타스틱’이라는 카페에서 연재를 했어요. 5개월 동안 쓰다 보니까 원고가 600장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글과는 다르게, 뭔가 잘 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정명섭 작가님이 말씀해주셨던 공모전이 생각난 거죠. 찾아봤더니 마침 공모 기간이었어요. 예스24와 매일경제에서 같이 주최를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오더라고요. 제가 상을 탔다고. 그렇게 데뷔한 거예요.

 

‘세계문학상’ 수상 때는 “주최 측의 실수였다고 사과 전화가 오는 상상”을 하셨다고요(웃음).


잘 썼다는 감각이 없었거든요. 그게 출판사에서 계약 파기 당했던 원고였어요. 모 출판사와 계약을 해서 진행을 했었는데, 세 번 원고를 써서 거절당했었어요. 결국 계약을 파기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게 12월 22일이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 날이 ‘세계문학상’ 마감일이었거든요. 출판사에 연락해서 충동적으로 계약 파기하자고 말하고 다음 날 문학상에 투고를 했는데, 당선될 거라는 생각을 하나도 안 했어요. 세 번이나 거절을 당했으니까 자신감이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으니까, 계속 의심이 드는 거죠(웃음). ‘이건 뭔가 잘못된 거다, 조금 있으면 당선이 취소될 거다’(웃음). 시상식 때까지도 그랬어요. 그 다음 날 상금이 입금 된 걸 확인하고 나서야 ‘됐어, 이제 당선이 취소되는 일은 없을 거야’ 하고 그때부터 안심하고 놀았죠(웃음). 아직도 그때 일은 꿈 같아요.

 

“소설을 쓰는 일은 늘 어렵다”, “나는 또 도망치고 싶어진다”고 쓰셨어요. 지금도 그러세요?


맞습니다. 여전히 한 번에 원고가 O.K. 되는 일이 없어요. 단편을 하나 쓰면 최소 두 번은 거절당해요. 단편집  『카페 홈즈에 가면?』  의 원고도 처음 쓴 건 주변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다 엎고 새로 썼어요.

 

그렇게 힘든데 왜 계속 쓰는 걸까요?


아버지가 만화가라서 그런지, 저는 어렸을 때 돈을 벌려면 글을 써야 되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 친구들이 다 만화가니까, 주변에 만화가들밖에 없었던 거예요. 집에 가보면 다 글을 쓰고 있는 거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는 줄 알았어요. 중학교 때 친구 집에 갔다가 ‘왜 너희 아버지는 글 안 써?’ 하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그 친구 아버지는 은행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글을 안 쓰시는 걸 보고 정말 놀랐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글을 써야 돈을 벌 수 있는 줄 알았고, 그래서 계속 글을 썼어요. 고등학생 때도 처음 소설을 써서 교내 문학상을 받고, 덕분에 학비 면제를 받아서 계속 학교를 다녔거든요. 그때 저희 집이 굉장히 어려울 때라서 전화, 전기, 가스가 끊어졌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죠. 글을 쓰면 돈을 준다, 빨리 글을 써야 된다. 이후에 대학에 가서도 글 쓰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10년 넘게 바리스타로 일하셨잖아요. 그래도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돼’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나요?


중간부터 바뀌었어요(웃음). 바리스타 일을 해봤더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딱 제 적성에 맞았어요. 스트레스도 안 받고 행복하더라고요. 계속 바리스타 일을 하려고 했어요. 그때부터 삶을 길게 보게 되고 서서히 주제의식이 생겨났어요. ‘지금부터 조금씩 소설을 쓰다 보면, 인생에 소설 한 편쯤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 4년쯤 지난 후에 추리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삶의 목표가 생겼죠. 그 전까지는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게 목표였지, 위대한 작품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막연하게 ‘나도 헤르만 헤세처럼 되고 싶어’라는 생각은 했지만, 뭘 해야 될지 몰랐어요. 『붉은 소파』  를 쓰고 난 뒤에도 그랬어요. 정말 영혼이 탈수된 기분이었어요. 이제 뭘 써야 될지 모르겠고, 잘 써야 될 것 같은 생각이 강했어요. 그걸 깨는 데 되게 오래 걸렸어요. 무서워서 가명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긴장이 조금씩 풀리면서 작년 초부터 서서히 쓸 수 있게 됐어요.

 

‘덕후’로 사는 것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그게 없으면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 것 같아요. 이건 정말 솔직한 이야기인데, 저는 늘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요. 멍한 상태예요. 그러다가 소설을 써야 되는 상황이 오면 그때부터 고민을 해요. 처음에 쓴 원고는 대부분 거절당하는데, 억지로 써서 그래요. 그런데 한 번 거절당하고 나면 진지해지죠. 계속 그 생각을 해요. 하루에 한 권씩 소설책을 읽고, 넷플릭스도 보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작가마다 타입이 다른데, 저는 한계에 치달을 때까지 뭔가에 푹 빠져있어야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타입인 것 같아요. 제가 고생을 하는 만큼 독자가 재밌다고 느끼는 것 같고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어떻게 아시는지, 제가 대충 쓴 건 다들 재미없다고 해요.

 

‘세상에 쓸데없는 덕질은 없다’고 생각하세요?


네. 제가 최근에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에 직선무늬 떡살에 대한 글을 썼는데요. 『앤티크 수집미학』  이라는 책을 쓰신 박영택 선생님이라고 계세요. 온갖 잡다한 것들을 모으는 수집벽이 있으신 분인데, 자신이 과거에 정말 쓸데없는 물건들을 모아온 이야기를 책에 쓰셨어요. 그러다가 결국 앤티크를 모으게 되셨다고 하고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격하게 감동을 받아서, 직선무늬 떡살을 모으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덕분에 좀비 소설을 쓸 수 있게 됐어요. 좀비 앤솔로지 원고를 마감해야 되는데, 거의 다 썼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서 끝이 안 났었거든요. 그런데 박영택 선생님 이야기 덕분에 ‘앤티크 도끼를 쓰는 좀비’를 등장시키게 됐어요. ‘도끼 자루가 썩을 정도로 오랜 시간 좀비였다면, 앤티크 도끼를 굉장히 아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 날 박영택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러 가지 않았다면 ‘앤티크 도끼를 쓰는 좀비’는 쓸 수 없었을 거예요.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조영주 저 | Lik-it(라이킷)
소소하고 깨알 같은 일상 속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은 별나 보이는 덕후의 삶에 한걸음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동경하고 책을 가까이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온 작가의 진심에 어느덧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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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양승진,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하면 인생이 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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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처럼  『일단, 오늘 1시간만 공부해봅시다』  라고 제안하는 양승진 저자는 자칭 타칭 공부 덕후인데, 특히 어학 공부에 특화된 공부 덕후이다.  A, B, C 알파벳을 중학교 1학년에 처음 접하고, 선행 학습이니 조기 유학이니 같은 말 자체가 없던 시절, 양승진 저자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맨투맨 기본영어』   교재로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영어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서강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니 그때까지 계속 독해와 문법 위주로 영어공부를 해왔는데 수업도 영어로 하고 리포트도 영어로 쓰라고 해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영어 토론 서클에 들어가서 회화를 익히고 군대 시절에는 타임지를 찢어서 주머니에 넣고 볼 만큼 꾸준히 영어를 공부했다. 서강대 교수님의 도움으로 미국 동부의 칼리지에 교환학생을 1년 동안 다녀왔는데,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전체 수석으로 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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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학생으로 가서 룸 메이트가 있었어요. 그러데 그 룸메이트가 제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 거에요. 계속 불을 켜야 하니깐요. 그래서 기숙사 방의 작은 책상을 들고 복도로 나갔어요. 복도에 밤새도록 불을 켜놓잖아요. 복도에 나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책을 읽었는데 1년 내내 그렇게 공부해서 모든 과목을 다 만점 받았어요. 4.0 만점에 4.0을 받았죠. 그게 시험을 한번 쳐서 받는 점수가 아니고요. 과제를 에세이 쓰는 것으로 내는데, 한 학기 내내 에세이 쓰는 과제가 있었거든요. 그걸 다 만점을 받아야지 받는 점수에요. 제가 생각해도 힘든 일이었는데 미국 대학에서 전체 수석을 제가 한 거죠. 그 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공부가 아니면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공부한 거 같아요.”

 

그렇게 “필사적으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왔는데 “너 영어 잘 하니까. 코리아 타임즈 공채 시험에 응시해 봐”라는 친구의 권유에 코리아 타임즈에 입사하여 소위 “영어로 밥을 먹게” 되었다. 그후 영어를 배우며 체득한 공부 기술을 활용해 직장 생활 틈틈히 일본어와 중국어를 공부해 JLPT 일본어능력시험 1급, 신HSK(한오수평고시) 6급에 합격, 본인의 외국어 학습법이 이론적으로 어떤지 확인하고 싶어 숙명여자대학교 테솔 영어교수법 석사과정에 들어가 외국어 습득 이론과 방법론을 배웠다. 그 후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과학저널리즘 석사과정을 밟았고 현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정보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직장인 공부 덕후로 23년차. 내공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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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을 전공했고 영자신문에서 일을 하고 계시니 영어 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거 같아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국문과를 전공한 사람들이 모두 책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영문과를나왔다고 다 영어를 잘하지는 않지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영어 방송을 보고, 영어 활자를 읽으며 매일매일 공부를 해야 해요.


제가 책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가 내가 공부를 잘하고 이만큼 많이 했어,가 아니구요. 암기력이 안좋은 내가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이런 방법들을 찾아냈고, 실제로 해보니까 이만큼 하게 되었어,에요. 제가 직접 만든 단어장을 가져왔는데 노가다로 만든 거에요. 만드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보고 외우고 까먹고 그 과정을 남들보다 더 많이 했어요. 저는 사람 이름도 잘 못 외울 정도로 암기력이 좋지 않아요.


요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스스로 흙수저라고 생각하거든요. 흙수저로  공부를 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 할 수밖에 없는데 조금이라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방법론을 많이 찾아봤어요.


또, 주변에 선배나 아는 사람들 중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직접 연락해서 찾아갔어요.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묻고, 메모했어요. 참고서도 방법이 좋다고 하면, 사서 바로 해봤고요. 방법론을 영어를 처음 배운 대학생 때부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제 자신이 효율이 잘 안 나오니까. 만약 암기를 잘했으면, 이해력이 남들보다 뛰어났으면 그러면 방법론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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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저자가 사용한 공부 도구들. 

(윗줄 제일 왼쪽 )인덱스 카드. 단어를 외우는데 사용했다. (아랫줄 왼쪽에서 두번째) 타이머. 한 시간을 맞추어 사용한다. 한 시간 동안 집중하는데 좋다. (타이머 아래)보스사에서 만든 이어폰. 외부 소음을 완전히 차단해준다.  



 책에서 한 시간 공부 법을 강조하셨습니다. 1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타이머를 활용하고 계시구요.


24시간 중에서 17분만 공부하라고 하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계를 볼 때, 한 시간 단위 내지 30분 단위로 움직이잖아요. 그 단위가 가장 직관적이고, 공부하기 편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 시간 단위는 노력하지 않아도 기준점이 매우 좋은 상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한 시간은 책상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하는 한 시간을 말하는 거에요. 그렇게 한 시간 앉아서 공부를 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카페에 가던지, 아이들을 재우거나 핸드폰을 끄는 노력이 필요해요. 공부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수 밖에 없지요. 그 한 시간을 못 만들고,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소파에 눕는 순간, 공부는 물 건너가는 거지요.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하면 어떤 걸 할 수 있나요?


하루에 한 시간씩이면 1년에 365시간이거든요. 만약 JPT를 준비한다고 하면 그 정도 학습 시간이면 충분히 그 시험에 합격할 수준이 됩니다. 보통 어학적으로 한 단계 뛰는 게 500시간, 1000시간 단위에요. 그니까 1년, 2년 정도 공부하면 웬만한 시험에 도달하는 시간 수가 나온다는 거지요. 제가 예전에 학원에 다녔을 때, 하루에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동안 매일 두 달 동안 공부하니까 입에 언어가 딱 붙었거든요. 언어에 해당되는 발음이나 구성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게 하는 공부 시간이 그 정도 되더라고요. 근데 그게 하루에 한 시간 투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거라서 하루에 5분, 10분이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고, 뭘 준비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입니다.


만약, 타이머를 놓고 1시간 공부를 시작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냐 면요. 단어 정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지났어요. 근데 멈추기가 애매한 거죠. 잠깐 쉬었다가 다 마무리 하다 보면 2시간이 돼요. 좀 더 하다 보면 3시간이 돼요. 그렇게 공부 시간이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있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 시간 공부법이 습관적으로 되거나 나의 루틴이 되는 상황이면 그 공부가 자기 교양을 위한 거든, 체험 또는 승진을 위한 거든 확장 될 수 있다는 거죠. 이동 시에 할 수 있는 공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필기를 한다거나 소리 내서 읽지는 못하죠. 인풋 위주로 밖에 공부를 못하고, 아웃풋도 힘들게 됩니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말하고, 타이핑 치는 작업이 기본 한 시간은 있어야 합니다.  

(->1시간 공부했을 때, 최소한 10분은 학습한 것을 소리내어 말하거나 공책에 적어보는 아웃풋 학습이 학습효과를 좋게한다고 저자는 책 3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웃풋’하자>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직장인들은 일도 많고, 피곤하기도 하니까 자연스럽게 공부를 미루게 되잖아요. 그걸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요?

극복 잘 안되죠. 담배 피는 사람이 담배를 잠시 안 피는 것뿐이지 완전히 끊기가 힘들잖아요. 게을러지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다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미루기 마스터 레벨까지 가봐서 미루기에 대해 잘 알아요. 온갖 종류의 미루기의 이유를 다 댈 수 있어요.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해서 마지막까지 미뤄요. 특히 기자들이 마감이 되기 전까지는 기사 안 써요. 한 달 전에 미리 인터뷰 한 것도 미리 안 쓰고요. 내일이 마감이면 그것도 안 써요. 오늘 4시 마감이면 밥 먹고 뭐 좀 하고 오후에 써야지 할 정도로 미뤄요. 근데 공부는 그러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미루기를 멈출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제가 책에도 쓴 방법인데요. 첫 번째 방법은 제 스스로 강제성을 부여하는 거에요. 대표적인 방법이 돈을 많이 들이거나 약속을 왕창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 학원을 끊는 겁니다. 학원을 끊고 대외적으로 얘기를 하는 거에요. 아내한테나 다른 사람한테 얘기를 하는 거죠. 일곱 시 반에 일본어 학원에 가야 한다 말하고, 6시 땡 하면 진짜 가요. 간다고 했으니까요. 가면 피곤하고 공부하기도 싫지만 커피랑 샌드위치 하나로 저녁을 때우면서 강의를 듣는 거죠. 근데 만약 학원에 안가게 되면 그 시간이 죽은 시간이 되어 버리죠. 피곤하다고 집에 가서 뻗어서 자게 되는데 스스로 푸시해서 억지로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것을 잡아놓는 거죠.

 

학원을 다니기가 어려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건대요. 먼저 해야할 것을 잘게 줄이고 스스로 의욕을 줘야 해요. 이거 10분만 하고 쉬자. 그러다 보면 1시간이 됩니다. 또, 1시간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어느새 공부 시간이 2,3시간이 되어 있어요. ‘시작이 반이다’라는 진부하기 그지 없는 표현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맞는 말 같아요. 또, 제가 서문에도 썼지만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느리더라도 꾸준히 하면 결국 이긴다라는 의미인데 공부 의욕이 떨어지는 날에 떠올리면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문장인거 같아요. 시작이 반이다,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에요. 정말로 책상에 일단 앉으면 공 다 한 거에요.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회사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스트레스 받은 다음에 집에 와서 저녁 먹고, 그나마 한 3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있을 때, 책상에 앉아서 가열차게 공부를 해보자, 그런 사람이 실제로 많지 않아요. 저도 쉬고 싶고 눕고 싶거든요.

하지만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미루기,라는 생각이 아예 없어지니까 할 수 있는 거에요.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자기 전까지 빨리 하고 나머지 시간에 놀아야지 이렇게 될 수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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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진 저자가 사용한 단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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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읽은 원서 새뮤얼 리처드슨의 《클라리사 할로》. "챕터별로 두 번씩 읽기 방법"으로 읽은 흔적이 남아 있다. 첫번째로 읽을 때에는 단어 찾기와  줄거리 파악용으로  읽고 두 번째 읽을 때엔 본격적으로 메모하며 분석적으로 읽는다.   이 읽기 방법은  다른 공부에도 적용해서 큰 도움을 받았다.    

      

 공부법 이전에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요?

제 책 뿐만 아니라 모든 방법론 책이 그렇듯이 읽고서 한 두 개 정도 방법을 건질 수 있으면 성공한 거에요. 예를 들어 인덱스 카드 쓰는 거 같은 거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방법론 책은 공부를 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 거거든요. 동기부여를 해주는 거에요. 여기 나온 내용이 모두 맞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개인적인 차이기 때문에 제가 여기 나온 내용을 독자분들이 100% 다 할것이다,라고 바라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고요. 그냥 여기서 한 두 개 정도 해보고, 해봤더니 안 맞다 그럼 할 필요가 없는 거에요. 그리고 해봤더니 괜찮으면 그렇게 하시면 되는 거고요. 방법론이 중요하긴 하지만 방법론이 여러 개 있다는 걸 안 다음에 직접 해보고 취사선택해서 나한테 맞는 것만 가져가면 되죠.

 

 

 


일단, 오늘 1시간만 공부해봅시다

양승진 저 | 메멘토

15분부터 시작해 1시간까지 공부 시간을 늘리는 방법, 주어진 시간 동안 학습 효율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아웃풋 중심 학습, 자기에게 맞는 공부 시스템을 설계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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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이우 “리듬감에 성공한 시만 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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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우 시인과 인터뷰하는 내내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그 무렵이었다… /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시어들이 첫 번째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  에 모였다.


유이우 시인은 201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도서관에서 기간제로 일하면서 점심시간에 냈던 시가 등단작이 되었다. “수식과 수사의 그늘이 사라진 피부 언어” “상상과 풍경의 드넓은 교호 작용” 등의 평가를 받았던 시인은 “본다. 보고 있던 것을 쓴다. 다만 남다르게”(김소연 시인 추천사 중). ‘리듬’과 ‘마음’에 몸을 맡기자 그의 시가 두둥실 떠올랐다. 시인의 말처럼 시어의 근원을 따져 들어가지 않더라도 “시적인 상태를 스스로 주문하지 않을 때 진짜 시적인 상태가 되고, 시를 찾아내야지 하지 않을 때” 시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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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룬 시집이에요


김소연 시인이 추천사를 썼어요. 어떻게 연이 닿았나요?


2010년 가을에 문지문화원에서 김소연 선생님 수업을 처음 들었어요. 광화문 교보문고에 처음 간 게 스물세 살 때였는데, 시 코너에 저랑 같은 이름의 시인이 있는 거예요. 제 본명이 ‘김소연’이거든요. 관심이 생겨서 검색했더니 마침 시 창작 강의를 하신대요. 두 번째 수업부터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제가 처음 쓴 시를 보시고, 등단하는 과정도 보시고, 문단의 누구보다도 저를 잘 아시고 제 역사를 보신 분이라 추천사를 부탁드렸어요.


프로필 사진을 하시시박 작가님이 찍었어요.


첫 시집이 나오면서 시집에 들어갈 사진이 필요했어요. 하시시박 작가님이 한국에 처음 소개될 때부터 사진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좋아했던 포토그래퍼에게 첫 프로필 사진을 요청하면 저한테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직접 메일을 보냈어요. 다행히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감사하게 찍었어요.


표지 그림은 몸에 새겼다고 들었어요.


카와요니 작가님은 타투이스트에요. 인스타그램에서 그림을 봤는데 특이하고 예술적이더라고요. 드로잉이 제 시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작가님께도 직접 연락했어요. 표지를 맡기게 된다면 그림도 몸에 새기면 재밌겠다 싶었는데 진짜 문신을 하게 됐고요.


첫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작가님이 직접 연락해서 만드신 거네요. 자기 표지를 몸에 가지고 다닌다는 게 정말 멋져요.


꿈을 이룬 시집이에요. (웃음) 보통 표지 그림이나 추천사는 출판사에서 제안을 주셨을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하겠다고 했으니 담당 편집자님도 힘드셨을 거예요.


시집의 물성을 보고 나서는 기분이 어땠어요?


지인들에게 줄 것까지 합해서 한꺼번에 택배로 왔는데, 냉장고 같은 게 거실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었어요. 다음날이 되어서야 저작자가 아닌 독자로서 읽히더라고요. 자기 책이 나오면 보기 싫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저는 아직도 혼자 제 시집을 정독할 정도로 좋아해요.


시를 많이 고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거의 안 고쳐요. 등단 3년, 4년 차까지만 해도 10분 내외로 한 번에 빨리 썼었는데 이후로는 그런 광기가 떨어졌는지 빨리 안 써져요.

 

시집에 실릴 시를 고르는 과정은 어땠어요?


처음에는 시 스타일이 다 비슷하다 보니까 출판사에서 시 구성이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산문시를 몇 개 넣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못 한다고 했죠. 리듬 타면서 쓰는 게 제가 좋아하는 거고 제가 쓸 수 있는 방식이라서요. 그러면 그동안 발표한 시적인 산문이라도 수록하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오래전의 기린」이고요. 초고 단계를 박준 시인님이 봐주시고 1부부터 4부까지 나눠주셨는데, 결론적으로는 부 구분 없이 구성하게 됐어요.


연을 짧게 치는 시가 많더라고요.


빨리 써서 그런 것 같아요. 후루룩 쓰고 막히면 저는 그 시를 버려요. 리듬감에 성공한 시만 살리고요. 「오래전의 기린」이 처음으로 길게 써 봤던 산문이에요.


일본어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어학이나 문학에 관심이 있었나요?


글을 쓰진 않았지만 메모지에 적거나 SNS에 남긴 짤막한 글들이 있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혼자 서너 줄로 정리했던 것도 있고요. 그런 게 다 문학적 행위였던 것 같아요.


음악과 피아노가 연상되는 시도 많았어요.


항상 음악을 들어요. 사람들과 어울릴 때 빼고 혼자 있을 때는 거의 자고 일어나면 음악을 바로 틀어요. 스케줄 없을 때는 누워서 눈 뜬 채로 종일 음악을 들을 때도 많아요. 매일 듣고 싶은 노래도 다르고요. 항상 음악을 듣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리듬감이 있는 것 같아요. 리듬감이 연을 나눌 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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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우라는 필명이 우유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도 하고, 깃털 우(羽) 자를 썼다고 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우유를 좋아해서 우유를 거꾸로 한 게 맞아요. 투고를 매번 다른 이름으로 했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좋아하는 단어로 해보자 해서 넣었는데, 당선되고 나서 한자를 정해야겠다는 생각에 한자 사전을 뒤져가면서 찾았어요. 시에도 허공을 나는 이미지가 많아서 ‘우’자는 한 번에 정했고요. 나머지는 놀 유(遊)를 썼는데, 성씨로 쓰기에는 필명이라는 게 바로 보이잖아요. 환상을 지우지 않기 위해 시집 이름에는 한자 병기를 하지 않았어요.


한 시집으로 묶여 나올 때는 예전에 썼던 것도 들어가게 될 텐데,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나요?


10년 전 싸이월드 일기에 쓴 문장들이 시에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그런 문장들조차 지금 쓰는 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의도나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을 풀어내려고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이 잘 안 변하잖아요. ‘나’를 쓰기 때문에 계속 시가 변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등단 전에는 선생님이 고치면 좋겠다고 해도 시를 고치지 않았다고요.


고집 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웃음) 지적을 받아서 고치면 점점 자기 시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아요. 발전하려면 칭찬을 많이 듣고 자기가 잘하는 걸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못하는 걸 지적받고 계속 고치다 보면 자기 것이 아니게 되잖아요. 좋은 것만,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만 들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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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마음이 전부


시집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꽤 나와요.


이 시집은 유이우라는 시인의 마음과 감정이 전부인 것 같아요. 느끼한 대답이죠? 자기를 삼인칭화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정말 유이우라는 사람의 감정과 마음이 전부인 것 같아요. 그걸로 그냥 온전해요.


어디까지가 자기답게 쓰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집을 읽을 때 그 사람의 시가 좋으면 이게 나인지, 좋아하는 시에 영향을 받은 나인지 모를 때는 없나요?


매번 좋아하는 시인이 바뀌고 특정하게 좋아하는 시인이 없어요. 어떤 시인이나 시를 좋아한다고 해서 문장을 닮진 않게 되더라고요. 마음 안에 있는 시심을 점화시켜줄 순 있어도, 표현을 따라 쓰게 되진 않는 것 같아요.


굳이 비교하자면 머리와 마음 중 마음인 거죠.


시 쓸 때 머리를 전혀 안 쓰니까요. 어떤 분은 제 시가 되게 수학적이고 계산적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게 신기해요. 이우성 시인님이 발문에 정확히 써주신 게, 단어를 그렇게 크게 생각 안 해요. 빠르게 흘러나오는 대로 쓰다 보니까 생각나는 단어를 쉽게 쉽게 쓰고요.

 

어떤 시인의 시집을 읽는 비교적 바람직한 방법 중 하나는 시집의 단어들, 문장들, 그리고 그 작은 시의 집이 의미의 울타리를 밀어서 쓰러뜨리고 어딘가로 가도록 두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잊히고, 그러면 무엇인가 남겠지. 그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겠어?
이우성 「안녕, 단어」,  『내가 정말이라면』  발문 중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어요. 마지막 시라는 느낌으로 썼다고요.


다시는 시를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몸도 마음도 안 좋았거든요. 계속 최종심과 본심에서 떨어져서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두세 달 쉬다 처음으로 쓴 시가 등단작이 되었어요.


일을 하던 때였나요?


딱 그때쯤 도서관에서 기간제로 일을 시작했어요. 도서관 프린트로 시를 뽑아서 점심시간에 달려가 냈었죠. 그때는 될 줄 몰랐어요. 뭘 앞에 내고 뒤에 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등단 전화 받았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유이우라는 이름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전화로 “유이우 씨 맞으세요?” 해서 “네?”하고 되물은 기억이 나요.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건, 되도록 텍스트와 가깝게 지내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요?


회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어요. 성격상 회사원은 못 됐을 것 같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구든 회사원의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다들 그냥 그 시스템에 맞춰진 거죠. 제가 그나마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서가 사이였어요. 생일 때도 도서관에 혼자 가서 서가 사이에 있었어요.


주변에 같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나요?


아는 시인이 별로 없어요. 문단 자리에도 거의 안 가고, 청탁 받을 때도 연락처를 몰라서 연락 못 했다고 하실 때가 많아요. 등단 전부터 만났던 사람들이 등단하게 된 경우가 있는데, 서로 시인이라기보다는 오래 알던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외로울 때가 있진 않나요? 시가 세상에 가 닿고 있는 걸까 불안하기도 하고요.


항상 시를 쓸 때 허공에 대고 지르는 느낌이어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진 않아요. 제가 좋으면 좋은 시고, 리듬 잘 탔네 싶으면 발표하거든요.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사랑을 받으려고 시를 쓰는 게 아니라서 괜찮아요. 그냥 인간이 가진 당연한 삶의 외로움인 거지, 시를 혼자 써서 외로운 건 없어요.


쓰던 글이 시가 된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오나요?


시적인 상태를 스스로 주문하지 않을 때 진짜 시적인 상태가 되고, 시를 찾아내야지 하지 않을 때 시가 오는 것 같아요. 그냥 제 삶을 살다 보면 저다운 문장이 제 앞을 슥 지나가는 거죠. 의도적으로 찾진 않아요.


어떤 식으로 시를 읽나요?


다른 사람의 시나 제 시나 똑같이, 감정에 충실해요. 감정으로 읽고 분석을 절대 하지 않아요. 저는 그게 시에 대한 예의이자 모든 시인에 대한 예의 같아요. 저는 제 시조차도 ‘내 시는 어떤 시야’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저 감정적으로 읽고 마음에 스며들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아요.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나 감정이 올라오면, 그 감정조차 투명하게 통과하는 느낌일까요?


어렵네요. 감정의 진행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디 놀러 가서 좋은 경치를 보면 ‘좋다!’ 하고 끝나는 것 같아요. 왜 태양 빛이 저렇게 좋은지 분석하진 않잖아요. 그거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느끼는 거죠.


시 창작 수업을 듣기 전에는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요. 수업을 듣기 전에도 시와 가까운 기질이었다고 생각하나요?


누군가는 저와 같이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저는 제 생각대로 말할 수밖에 없어요. 시인들은 그냥 태어나는 것 같아요. 이미 시인이 된 사람들은 그게 운명인 것만 같아요.


두 번째 시집은 어떻게 될까요?


이제까지 9년, 10년 걸렸으니 빨리 낼 것 같진 않아요. 그사이에 생기는 취향이 있을 것이고, 그때마다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예요. 시에 대한 계획이나 시인으로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생각은 없어요. 시가 계속 이렇게 써질지, 변할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앞으로 어떤 시를 쓰게 될지 제 미래가 궁금해요.


 

 

내가 정말이라면유이우 저 | 창비
화려한 수사를 앞세워 대상을 직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한발 물러서 세상의 풍경을 관찰하면서 단어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감정을 쏟아내는 그의 시는 신인으로서의 참신함을 넘어서는 견고한 시 정신과 기발한 언어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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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의사 정양수 “먹는 단식 FMD, 한 달에 한 번만 실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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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정양수 의사는 2003년부터 단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단식을 통해 몸을 해독하면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수치로 확인했지만 일상 생활에서 실천할 수 없다는 단점 때문에 체험에 그치기 일쑤였던 정양수 의사. 그는 그 뒤 생활을 유지하되 단식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단식법과 디톡스 프로그램을 찾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의 연구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의 발터 롱고 박사가 내린 결론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FMD란 ‘Fasting Mimicking Diet(단식 모방 다이어트)’의 줄임말로 발터 롱고 박사가 연구한 식이요법이다. FMD는 식사는 하되 단식과 같은 신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결정적인 장점이 있다 . 『먹는 단식 FMD』  에서 정양수 의사는 지중해식 위주의 식단인 FMD를 한국인에게 맞게 변형해 건강한 식사 방법을 제시하는 한국식 FMD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SBS 스페셜-끼니반란>에서 한국식 FMD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한 그는 “질병은 예방하기가 쉽지 더 진행된 상태에서 치료하는 건 힘들다”며 체중,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 어느 하나라도 이상 수치를 갖고 있다면 꼭 FMD를 실천해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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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건강을 말할 때, 흔히 건강한 상태 또는 질병이 있는 상태라는 두 가지로 구분하기 쉬운데 그 사이에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어요.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병원에 가서도 질병이다, 아니다 정도만 확인하죠. 하지  만 실은 회색지대가 있어요. 신호등으로 치면 질병 상태를 빨간색, 건강한 상태를 초록색으로 볼 수 있고요.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노란색에 해당할 수 있겠죠. 이 상태는 곧 빨간색이 되기도 하고, 주의하면 초록색이 되기도 합니다. 노란색인 우리 몸을 잘 관리해서 항상 초록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면 좋겠지만 저도 늘 초록색이지만은 않거든요. 그런데 노란색 상태를 지속하면 암, 혈관질환, 당뇨 등으로 이어지게 돼요. 빨간색이 되는 거죠. 누구에게나 이런 질병이 올 수 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평소에 준비해야 해요. 자신의 상태는 혈액검사, 혈압측정 등으로 확인할 수 있잖아요. 만약 그 결과에 이상소견이 있다면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FMD를 실천해서 건강한 상태로 몸을 돌려놓고, 건강한 상태가 되었다면 두 달이나 세 달에 한 번씩만 FMD를 실천하면 될 거예요.

 

선생님도 늘 초록색(건강한 상태)은 아니시군요.


아니죠, 그런데 관리를 해요. 빨간색을 초록색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거든요. 물론 질병을 극복하는 사람도 있지만 노란색일 때 초록색으로 바꾸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요. 질병은 예방하기가 쉽지 더 진행된 상태에서 치료하는 건 힘들어요.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먹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건강에 이 정도로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평소에는 실감하기가 힘들잖아요. 몸에 좋은 음식을 적게 먹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고요.


자신의 식습관을 잘못 알고 있는 분들도 많고요. 또 한국적인 음식을 다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지 않아요. 한식은 나물 문화고, 채식을 많이 하는 편이죠. 그건 다 괜찮은데요. 우리는 짜게 먹습니다. 염장식들도 많고요. 염장하면서 ‘바이오제닉 아민(Biogenic Amine)’이라는 발암물질이 생성되거든요. 사실 백지 한 장 차이죠. 발효냐 부패냐 경계가 아주 모호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음식은 신선한 상태에서 먹는 것이 좋아요. 또는 김치를 만들더라도 간을 세지 않게 하고, 젓갈을 적게 쓰는 것이 한국 음식에는 꼭 필요해요. 

 

알레르기, 두통, 피로감, 불면증 등도 음식 때문일 수 있다고도 하셨죠.


저는 FMD를 하기 전에 2011년부터 디톡스 프로그램을 진행해왔거든요. 보면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증상이 개선되는 경험을 했어요. 내 몸을 비워내니까 수면 습관도 돌아오고, 염증도 개선이 됐죠. FMD의 핵심은 다이어트가 아니에요.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 FMD의 핵심입니다. 다양한 다이어트 방법이 있는데요. 요즘은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지방이나 단백질 위주로 섭취하는 방법을 많이 얘기하잖아요. 탄수화물을 적당량 먹는 것에는 저도 공감하는데요. 단백질도 인체에 적당량 이상 들어오면 노화라든지 암 등을 일으킬 수 있어요. FMD를 개발한 발터 롱고 박사는 각 영양소에 대해 아주 절묘하게 칼로리를 정해뒀어요. 기존 다이어트나 단식에 비해 FMD가 갖는 장점이 그것이에요.

 

공복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않는 식습관도 지적하셨는데요. 공복이 길어지면 건강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 건가요?


2016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연구 주제가 ‘자가포식(自家捕食, autophagy)’이었어요. 내 몸이 스스로 청소를 한다는, 리뉴얼 한다는 건데요. 희한하게도 그게 굶었을 때, 즉 몸이 비워졌을 때 진행됩니다. 또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주제는 생체시계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생체리듬에 맞지 않은 생활을 하면 몸에 문제가 생기는 거죠. 적어도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는 꼭 자야 하고요. 자는 시간은 최소한 6시간에서 8시간은 확보를 해야 해요.

 

우리 몸은 먹을 게 없는 상태가 되면 대사변화가 일어나면서 이에 적응하고자 한다.(중략) 단식을 하면 처음에는 글리코겐을 다시 포도당으로 분해해 사용하지만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다 소진되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지방을 분해해 케톤체를 만들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즉, 최소 12시간은 음식을 먹지 않아야 복부 지방이 연소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이 고갈되어 포도당에서 지방산으로 대사 스위치가 바뀌면 긍정적인 효과가 시작된다.(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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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FMD


FMD를 만나기 전에도 단식이나 디톡스에 관심을 갖고 계셨잖아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제대로 경험을 한 것은 2011년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해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예요. 그 전부터도 단식이 경험하면서 그게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실천하기는 어려웠죠. 그러다가 3주의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기회가 닿았던 거예요. 해보니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내 몸이 변화되는 것이 수치로도 보였어요. 그때 이것이 일정 기간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단식과 비교했을 때 FMD가 가진 장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제가 해온 디톡스 프로그램도 일상을 하면서 가능하다는 점이 FMD의 장점과 비슷한데요. 단식은 대부분 일상 생활을 끊고 진행을 해야 하죠. 별도의 장소에 가거나 누군가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만큼 일상적인 생활이 어렵습니다. <SBS 스페셜-끼니반란>에서도 물만 먹는 단식을 시도한 참가자는 결국 4일째에 단식을 중단했어요. 그만큼 쉽지 않은 거예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먹으면서 동시에 일상 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다이어트 뒤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했을 때 저는 FMD가 답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선생님은 FMD를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기본적으로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이 생각을 버려야 해요. 식사량은 매일 유동적일 수 있고, 두 끼만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죠. 아침에는 물만 마시고 출근해서 토마토 주스를 마셔요. 수시로 녹차를 마시고요. 카카오 가루는 커피 대용으로 늘 상용합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요. 메인 한 끼는 보통 식사를 해요. 제 경우 병원에서 점심을 함께 만들어 먹죠. 저녁은 집에서 먹을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병원에서 콩을 갈아 먹는다든지 해서 식사를 해결하고 가니까 안 먹을 때도 많아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쭉 공복을 유지합니다. 적어도 12시간은 공복 상태인 거예요.

 

매일 그렇게 하세요?


저도 사회생활을 하니까 아무래도 뭔가를 더 먹게 되죠. 파티음식을 먹을 일도 생기고요. 그때는 최대한 즐깁니다. 좋아하는 막걸리도 마셔야 하잖아요.(웃음) 다만 저녁에 뭔가 먹었다면 이후 12시간 동안은 최소한 안 먹으려고 해요. 동시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비우는 시간, 즉 FMD를 실천하는 시간을 두는 거예요. 물론 평소 건강하고, 혈액 검사나 혈압 검사 등 모든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다면 그대로 생활하면 되죠. 굳이 FMD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FMD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어느 하나는 다 노란색 상태고요.

 

연결해서, FMD가 꼭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들려주세요.


20세 이상 현대인이라면 대부분 체중이나 혈압, 콜레스테롤 등의 문제는 갖고 있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FMD는 필요한 거고요. 알레르기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갖고 있는 분들도 꽤 많거든요. 그런 분들도 해야 해요. 결론적으로 적어도 임산부, 성장기 청소년을 제외하고는 다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장기 청소년이라도 비만하거나 의지가 있으면 해도 되고요.


물론 신장질환이 있는 분은 하시면 안 돼요. 콩팥에 문제가 있어서 채소도 양을 제한해야 하는 분들은 FMD를 못 하죠. 또 저체중이면서 섭식장애가 있는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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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문제를 환경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야


FMD를 할 때, 특별히 직접 먹을 것을 준비하고 만들어서 먹기를 권하는 이유는 뭔가요?


한 달에 한 번, 딱 5일이잖아요. 주말에만 장을 봐오면 되거든요. 5일치 식재료를 사오는 거예요. 양을 가늠하는 건 양손이면 됩니다. 양손바닥과 손가락 부분, 총 네 부분을 채소, 과일, 탄수화물, 단백질의 양으로 보면 돼요. 이렇게 양손을 채워 한 접시인 거죠. 그리고 양손을 모았을 때 사이에 생기는 세모진 공간의 양에 해당하는 것이 기름이고요. 조리에서 시간을 잡아 먹는 건 채소예요. 그러니까 주말에 씻고, 다듬는 작업을 해두자는 거고요. 그렇게 소분해두면 만들기는 아주 쉬워요. 저는 ‘휘리릭 요리법’이라고 부르는데요. 15분 안에 해서 먹을 수 있도록 했어요.

 

책 뒷부분에 메뉴를 아주 다양하게 구성해놓으셨죠.


채식으로만 되어 있는 5일, 해산물이 들어가는 5일, 간편한 식사 5일, 말린 채소로 먹는 5일로 구성을 했어요. 특히 말린 채소는 장점이 많아요. 우선 조리가 간단해요. 2분만 물에 불리면 되거든요. 보관도 쉽고, 겨울에도 먹을 수 있죠. 게다가 말리는 과정에서 비타민D 등 좋은 영양소도 생기니까 추천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먹는 방법으로 해보시면 좋겠어요.

 

FMD를 5일 이상 해도 문제는 없나요?


괜찮습니다. 최소 5일 정도는 유지를 해야 몸이 청소된다는 의미니까요. 냉장고에 비유해볼게요. 그냥 실온에서 당장 쓸 수 있는 식재료를 당이라고 하면 냉장실에 넣어 보관하는 식재료가 글리코겐이죠. 글리코겐은 간이나 근육 등에 저장이 되는데요. 그것마저 남아 돈다면 냉동실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게 지방입니다. 이것을 최소 5일은 해야 냉동실 저 깊숙한 곳에 있는 식재료까지 다 쓸 수 있는 거예요. 평소에도 할 수 있다면 냉동실까지 식재료를 안 넣어두는 게 좋아요. 냉동실을 사용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건강해지는 거예요. 다 채워져 있으면 혈관도 안 좋아지고, 다른 문제도 일으키는 거죠.

 

냉동실에 오래 보관하면(지방이 쌓이면) 결국 탈이 나겠군요.


그렇죠. 다만 한 가지 딜레마는 있어요. 우리 몸에서 몸에 필요한 합성화합물이 저장되는 공간이 지방이거든요. 지방이 없으면 저장될 공간까지 사라져버려요. 따라서 지방도 적절하게 빼야 하는데요. 딜레마죠. 제 잠정적 결론은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자연히 같이 빠진다는 겁니다. 채식 기반의 식사를 하면 있는 것도 함께 빠지고, 적게 들어오기까지 하니까 적당히 빠진다는 걸 확인했어요. 그런데 채소 위주가 아닌 다이어트를 하면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어요.

 

FMD와 조선시대 ‘백성’들의 식습관을 연결시켜본 대목도 흥미로웠어요. FMD가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내용이죠. 설명을 부탁드려요.


못 먹어서 문제였지만 백성들은 쌀도 정제되지 않은 것을 먹었고요. 적게 먹었어요. 잔치 때에나 가끔 고기 먹고요. 그게 맞았던 거예요. 심지어 1970년대에는 당뇨병이 1%도 안 됐거든요. 지금은 거의 16%입니다. 당뇨 전 단계까지 본다면 25%에 달해요. 혈압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문제가 불과 40-50년 사이에 일어났어요. 과거에는 새로운 것을 발명해서 좋아했죠. 플라스틱이 그 예잖아요. 싸고,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어서 좋아했는데 지금은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를 떠돌아 다니고, 그것을 해양동물이 먹게 되었어요. 같은 맥락에서 내 몸 하나 좋겠다고 동물성 단백질들을 무작정 먹으면 결국 지구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해요. 먹는 문제를 환경까지 포함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FMD에 관심이 있지만 실천을 망설이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한 번 해보라는 말인데요. 물론 처음에는 칼로리도 막 나오고, 복잡하죠. 하지만 한 번만 그 과정을 거치면 ‘이렇게도 먹을 수 있다’는 걸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변화도 쉽게 측정할 수 있잖아요. 보건소만 가도 체지방 측정이나 혈압 측정을 할 수 있거든요. 체감을 해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요즘 먹는 게 열풍이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맛있는 것만 추구를 하는데요. 거기서 한 단계 올라가서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한 가지는 큰 주제이지만 인류가 어떤 먹을 것을 선택할 것인지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어떻게 질병이 적은 식습관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저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먹는 단식 FMD정양수 저 | 테이스트북스
'Fasting Mimicking Diet(단식 모방 다이어트)'의 줄임말로, 노화와 비만을 막고 건강 향상을 도와 병에 걸리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주는 식단을 제시한다. 책을 참고하여 누구나 쉽게 성공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실천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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