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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현산, 김민정 시인 “덜 외로워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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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Kim

 

 

Tweet. 작은 새가 우는 소리 ‘짹짹’. 140자로 제한되는 트윗을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각별하게 여겼다. 2014년 11월 8일부터 2018년 6월 25일까지, 총 8,554개의 트윗을 남긴 황현산. 언젠가 김민정 시인은 그에게 물었다. “트위터를 왜 하시는 거예요?” 선생은 답했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2019년 8월 8일. 고 황현산 선생의 1주기를 맞아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가 출간됐다. 문학평론가의 트윗 모음집이라니. 전무후무할 것 같은 이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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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배울 준비로 제 온몸을 열었던 공간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  가 출간된 해가 2016년이죠. 편집자와 저자로 만나기 전에도 인연이 있었나요?

 

첫 만남은 기억이 안 나요. 제가 『문예중앙』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3년 말부터 오가며 뵈었던 것 같은데 메일을 뒤져보니 친근한 편지는 2005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주고 받았더라고요. 그때부터 시집 해설이며 추천사, 문학상 심사 등 많은 일을 함께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 눈으로 제목을 읽었을 뿐인데, 책 한 권을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한 문장으로 한 사람을 파악할 수 있을 때가 있잖아요.

 

원래 제목 짓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편인데요. 이번 책은 너무 힘들었어요. 책 내용이 엄청 방대하면서도 실은 잡다하잖아요. 방향을 잡기 너무 어려운 거예요. 표지로 삼은 팀 아이텔(Tim Eitel)의 그림은 작년부터 정해뒀는데, 7월 초순까지 제목이 안 나왔어요. 어느 토요일 오후엔가 교정을 보다가 너무 답답해서 와인 한 병을 마시고 취해 잤어요. 찔끔찔끔 울다가요. 그렇게 자다 깼는데 어디선가 선생님 말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두리번거렸죠. 당연히 아무도 없었는데 느낌이 이상해요. 교정지를 다시 봤죠. 600쪽 언저리였는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이 문장이 들어차 있었어요. 보고 또 봤는데 안 보이던 문장이 소리로 들려요. 음성 지원되는 느낌이요. 평소 선생님이 자주 하신 말씀인데 제가 잊고 있던 거죠. 이거다 싶어서 밑줄을 긋고, 미국에 있는 선생님의 아들에게도 보냈어요. “딱 아버지 목소리”라고 해요. 선생님이 다녀 가셨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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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5일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호텔에서 받은 꽃을 들고 고대 안암병원으로 갔던 일요일. 사모님이 여보, 들고 한 장 찍어요, 해서 내가 찍어드릴 수 있던 날. 

 

 

암 투병 중에도 완전히 기력을 잃으시기 전까지 트위터에 마음을 많이 쓰신 걸로 알아요.

 

애정이 너무 많으셨어요.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 게 8월 8일이니까 근 한 달만 놓으셨던 거잖아요. 선생님 살아 계실 때 제가 트위터 좀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뜯어말렸나 몰라요. 사실 트윗이라는 글이 140자로 한정되다 보니까 예리하게 깎여서 빗금으로 이해가 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잖아요. 아프셨고, 쉬셨으면 좋겠고 하니 제발 좀 그만 좀 하시라고 해도 말을 안 들으셨어요. 사실 저도 뭐 들여다보면 재밌기도 하고 하니까 저 말의 흥이라는 게 한층 올랐나보다 어느 순간 포기했죠.

 

트위터로 소통도 각별하게 하셨으니까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저 혼자 남아 이 책을 만들다 보니 이제야 알겠어요. 선생님의 이런저런 말씀들이 필요한 순간들 제가 닥치더라고요. 부지불식간에 아무 쪽이나 펼쳤는데, 몰라서 답답했고 막막했던 답이 막 거기 있어요. 밑줄 긋고 휴대폰 메모창에 적어서 갖고 다니면서 봤어요. 선생이었구나, 우리 선생님이. 그렇게 당신이 필요할 때 선생이 되어 주려고 저걸 글쎄 그렇게 붙들고 했구나, 싶었어요.

 

돌아가실 때도 실은 저는 입술 깨물고 별로 안 울었거든요. ‘너 정말 슬퍼서 우는 거냐, 오버인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라’, 저 자신에게 차갑게 되묻고 그러면서요. 그런데 책 만들면서 엄청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나한테 너무 필요한 사람이라서, 근데 없어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트위터에 대한 생각은 선생님의 아들 황일우 교수의 글이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이와 직위에 상관없이 ‘트친’으로 수평적 관계를 맺는 공간이어서 모든 사람에게 배울 준비로 제 온몸을 열었던 공간.”

 

서문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너무 좋은 글이라 여러 번 읽었습니다.

 

유족 가운데 한 사람이 무조건 써야 한다는 생각 속에 있었어요. 특히나 이 책은 가족들이 참 많이 기다렸던 책이기도 했거든요. 당연히 그런 아들이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서문을 받아 읽고는 제가 미친 답장을 보냈죠. “넌 무슨 글을 이렇게 잘 쓰니, 아 눈물 나.” 자신의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나 객관적 거리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글을 써낼 수 있다니, 참고로 황일우 교수는 ‘난다’의 필자이기도 해요. ‘걸어본다 필라델피아’를 쓰자고 계약한 것이 4년쯤 되었네요. 선생님이 목포를, 일우가 필라델피아를 써서 '걸어본다' 부자 특집을 내자고 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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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7일 성북예술창작터에서 열린 성북구 문인사 기획전 황현산 편 『밤이 선생이다』 에서 선생님과 함께.

 

 

우릴 안 흘릴 거라는 믿음

 

1주기에 딱 맞춰 책을 만들었어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평소 저는 이게 맞는지 틀린 건지 사람들에게 잘 물어봐요. 그런데 대답해 줄 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너무 무서운 거예요. 제가 잘못된 길로 갈까 봐, 그것도 모르고 막 갈까 봐, 되돌아올 수 없을까 봐, 선생님을 잘못된 자리에 책으로 앉힐까 봐. 수도 없이 혼잣말로 선생님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알았죠. 앞서 선생님 책( 『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을 만들 때마다 들기름 볶듯 들들 선생님 참 볶아댔다는 걸요. 내 무서움은 내 책임의 비대함에 비례한다는 것도 알았고요.

 

668쪽 환양장본이에요.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인데요. 어떤 꼴을 상상했나요?

 

트윗을 모은 책이니까요. 트위터의 상징성이 스미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트윗은 수정이 불가하잖아요. 트윗을 올린 연월시가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일기를 모은 것이 아니라 트윗을 모은 것이다, 하면 그게 쓰인 해와 달과 요일과 시간이 머리에 오는 게 맡겠다 싶은 거예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 포맷을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기록이니 읽어나가는 데 있어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매달마다 끊어 표제지를 넣었어요. 그 표제지는 제가 그 달에 읽은 것 가운데 되새기고 싶은 것을 표시해 두었다가 넣었고요. 슬픈 것이 그 표제지가 뒤로 갈수록 되게 잦게 등장해요. 선생님 트윗의 수가 점점 줄었다는 얘기는 선생님이 트위터에 들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얘기죠. 마지막 2018년은 표제지가 딱 한 장이어요. 기본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리트윗과 멘션을 빼자 작정을 했는데 그럼에도 분량이 방대했어요. 트위터는 가벼움이 생명인데 종이를 업으려니 양장을 안 할 수는 없고 해서 합지를 700그램짜리 얇은 것으로 댔어요. 어떻게든 무게를 줄이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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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표지도 역시 팀 아이텔(Tim Eitel)의 그림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책과 어울리는 그림을 고를 수 있는지, 항상 놀라워요.

 

선생님 책은 웬만하면 팀 아이텔과의 협업으로 계속 이어 나가자, 작정을 했던 터였어요. 이 합이요, 이 맞아 떨어짐이요, 뭐 어찌할 수가 없더라고요. 1주기를 맞아 복간을 했던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  역시 표지 그림으로 미리 골라두고 있던 참이었어요. 팀 아이텔의 한국 첫 전시 때 도록의 표지 그림이기도 했지요 .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에 쓰인 그림은 ‘블루 백’이라는 제목인데 그림 속 저 어른이, 저 남자가 선생님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가벼워 보여서요. 가뿐해 보여서요. 그런데 아들은 그 그림을 보자마자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가발 쓰고 다닐 때 모습이네. 몇 달 동안 가발 참 애정했는데.” 어떤 식으로든 선생님이라면 그게 맞겠지 않나 했어요. 팀 아이텔에게 너무 고맙기도 해요.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가 많이 회차되기도 했습니다. 편집자님이 가장 좋아하는 트윗 두 개를 꼽아주시고 이유를 말씀해주신다면요?

 

“오늘은 세월호 참사 1주기다. 1년 중에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태극기를 달지 않고,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하루쯤 있어야 한다. 오늘을 그날로 정하는 것이 옳겠다.”

 

세월호의 참사의 비통함과 애통함을 어른의 도리로 오래 아파한 끝에 내놓은 실천적 대안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명랑하기는 성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명랑하기는 윤리이기도 할 것이다. 늘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명랑할 수 있지 않을까.”

 

웃는 척하며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린 어느 날이 있었는데요. 선생님이 이 트윗의 긴 버전의 글을 메일로 주신 적이 있었어요. 한동안 제 이름은 김명랑이야, 하며 뻐기고 다니곤 했어요.

 

2012년 출간됐던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  도 복간했어요. 쌍둥이처럼 두 책이 같은 날 나와서 반가웠어요.

 

출간 당시 제가 밑줄 그어가며 엄청 읽어댔던 평론집이에요. 평론인데 뭐 이렇게 아름답지, 어떻게 이렇게 평론을 쓸 수가 있지. 이번에도 책 만드는데 함께 일하는 후배가 그래요. “교정을 봐야 하는데 텍스트에 매료되어 구절을 그냥 읽고 앉았다”고. “좋아서 미치겠다”고. 선생님의 평론은 그랬어요. 선생님이 다룬 텍스트의 주체들을 어느 순간 다 잊어요. 잊거나 말거나 선생님 글에만 매달려가요. 대롱대롱. 근데 겁이 안 나요. 선생님이 우릴 안 흘릴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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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2일 비 내리던 토요일. 함께 점심을 먹고 포천 작업실로 들어가던 선생님과 나의 뒤를 이원 시인이 봐주었다. 

 

 

넓은 공부와 깊은 유머

 

고 황현산 선생님의 1주기를 두 책의 출간 기념회와 겸해 특별하게 열었어요. 어떤 자리로 만들고 싶었나요?

 

선생님 장례식을 조촐하게 치렀어요. 유족의 뜻이기도 했고 우리도 다 경황이 없었고요. 해서 발인 때 문인들을 위주로 한 아주 작은 추도식을 했는데 그게 두고두고 제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선생님 좋아했던 독자들 많았는데 그들도 와서 가시는 길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마음 끝에 한번 맘껏 열어놔 보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지요. 선생님 스타일이 뭔가 하면 도통 사람을 안 가렸으니까, 그래 내가 그걸 한번 해보자.

 

콘셉트는 ‘봄의 과수원’이었다고요.

 

가장 아름다운 그곳이 봄의 과수원 아니겠나. 선생님이 부디 그런 곳에 계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루미의 시처럼 꽃과 술과 초와 선생님을 대신하는 책이 비벼진 공간으로 사람들을 초대해봤어요. 8월 8일 단 8시간 동안 선생님의 방을 재현해보자, 그리고 8시에 아주 훈훈한 추도식을 해보자. 없던 방을 있던 방으로 만드는 상상 속에 이게 될까 이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선생님이 이걸 시키고 있는 거다, 선생님이 원하는 게 이런 걸 거다, 밑도 끝도 없는 행보로 분주히 움직여봤는데요,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줬어요. 얼굴도 모르는 황현산 선생님을 위해 그의 책을 읽어본 게 다였던 이들이 제 일처럼 새벽부터 뛰어와 황현산의 방을 재현해주었지요. 소나무를 짓이겨 방 안에 향을 풍기게 하는 일로부터 방은 시작되었는데 다른 건 말고라도 헌화용 장미 400송이를 그 아침에 다 다듬었던 일은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아요. 그 장미마다 헌화하는 이의 이름을 써 붙이게 함으로 선생님께 정말 장미를 드리게 되었잖아요. 선생님의 1주기는 선생님에게 장미 줄라고 모인 날, 이렇게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요건 두장을 가로로 한줄로 넣어주세요 (1)-tile.jpg

2019년 8월 8월 황현산 선생님 1주기를 맞아 열린 『황현산의 방, 황현산의 밤』. 정릉과 포천 선생의 서재를 합정동으로 옮겨봤던 8시간이었다.

 

 

편집자와 저자로 만난 인연이 가장 깊잖아요. 저자로서 황현산 선생님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었나요?

 

저한테 도통 뭐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틀려도 괜찮다, 늦어도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네가 옳은 거다, 하여간에 어쩜 저렇게 저런 순간에도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싶게 아주 부드럽게 제 등을 툭툭 치며 저를 일어나서 뛰게 하는 말들을 내뱉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묘하게도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책임감을 절로 입게 됐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달려라 하니처럼 머리에 질끈 끈 묶고 내 발동에 못 이겨서 막 달릴 준비를 하는 거예요.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무한 에너지를 발견하게 만들어주는 저자, 흔치 않지요. 그 태도에 대해서만은 저도 꽤 닮으려 배우려 훔치려 노력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흉내에 불과하지만 뼛속까지는 불가하다는 걸 이미 알기도 알았지만.

 

선생님의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은요?

 

넓은 공부와 깊은 유머요. 제 유머는 지랄 맞은 1차원적인 웃음 유발이라면 선생님 유머는 차원을 가늠할 수 없는 웃음 유발인데 솔직히 유머가 꽈배기 같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배배 꼬인 거 있잖아요. 어묵으로 쳐도 이것저것 많이 꽂혀 있는 그거. 저는 그냥 한 줄짜리 어묵이요. 직선으로 꽂혀 있는 그렇게 누워 있는 막대기 어묵.

 

편집자로서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는 어떤 책으로 기억될까요?

 

황현산 선생님은 1945년에 태어나 굴곡진 한국사를 몸소 겪어낸 특히나 남자인데 이 책을 보면 그런 성을 다분히 초월하거든요. 그러니까 유연성이 있거든요. 하여간에 자유자재로 휘어요. 말하고 있지만 들으려는 자세가 더 다분해요. 사람들이 눈이 아니라 귀를 자주 갖다 대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가까이 하다 보면 정말이지 선생님의 말소리가 들리거든요. 외워서 아는 게 아니라 들려서 기억하게 되는 뉘앙스요. 그러면요? 사는 일에 덜 무서워지고 덜 외로워집니다.

 

어떤 분들께 특히 이 책이 가닿으면 좋을까요?

 

황현산 선생님의 이전 저작들이 어려워서 못 읽었다고 하신 분들이 꽤 계셨어요. 하고 싶은 말의 요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회사로 항의 전화를 해오신 분도 있었고요. 트윗 모음집부터 보면 좀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짧고요, 무엇보다 재밌거든요. 아닌가, 나만 그런가(웃음). 아무튼 전 그 재미 찾느라 여전히 보고 또 봐요. 책이 주는 재미만큼 번짐의 파장이 빠르고 깊은 게 또 있나 싶거든요. 그 재미란 걸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다 보면 좋겠어요.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황현산 저 | 난다
우리만 만져보는 일로 생과 사를 구분하게도 해주는 한 권을 선보인다. 생전에 선생이 애정으로 재미로 책임으로 줄기차게 기록해왔던 트위터의 글들을 모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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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임숙 “부모의 피드백이 마음의 방향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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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방문 앞에서 노크를 해야 할지, 말을 걸어도 될지 서성거리게 된다면? 자녀의 사춘기를 감지한 것이다. 좋은 대화법을 그토록 공부했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내 아이에게는 적용이 안 된다면? 아이의 마음을 여는 대화법을 공부해야 한다.  『엄마의 말 공부』  ,   『따뜻하고 단단한 훈육』  , 『상처 주는 것도 습관이다』  로 유명한 이임숙 맑은숲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아이를 보는 부모의 시각이 달라져야 아이의 행동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보고서’를 보면, 13~18세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공부(47.3%), 외모(13.1%), 직업(12.3%) 순이다. 19~24세로 접어들면 가장 큰 고민은 공부에서 직업 문제(45.1%)로 넘어간다. 이임숙 소장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아이 자신의 마음보다 더 간절할 거라는 생각은 오해”라며, “아이보다 늘 앞서가며 무작정 끌어당겨야 한다고 여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  는 수많은 아동, 청소년을 상담하며 ‘청소년과의 대화는 달라야 한다’는 믿음으로 공들여 쓴 책이다.

 

이임숙 소장과 1년 반 동안 상담한 한 청소년은 말했다. “선생님은 제게 유일하게 혼란을 준 사람이에요.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어요. 제가 힘들다고 하면 선생님은 늘, 다른 걸 생각하게 해주셨어요.” 어떤 대화법을 썼길래 이임숙 소장은 이 청소년의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아이를 인정하고 수용해주고 단단한 진심과 따뜻함으로 들어주고 또한 기다려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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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이들과 대화하려면 일단 멈춰야 해요

 

청소년 대화법에 관한 책은 처음입니다.

 

구상은 오래 전부터 했어요. 좋은 대화법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는 적용이 잘 안 돼요. 따로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출판사에서 제안을 주셔서 쓰게 됐어요.

 

표지에 아이의 방 앞에 앉아서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강의할 때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요. 아이가 사춘기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아이의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세게 할까, 하지 말까 고민된다면 내 아이의 사춘기를 감지한 거예요.

 

프롤로그가 이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만약 열다섯 살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의 부모님께 어떤 도움을 청하고 싶을까?” 부모들이 꼭 한번 자문자답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어릴 때 부모에게 바랐던 것들이 있잖아요. 그 부모의 역할을 10대가 된 우리 아이에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부모님이 제 말에 진심으로 관심을 주길, 조금이라도 노력하고 잘하는 걸 인정해 주길, 공부를 좋아해주는 아이로 키워 주길, 관심 있는 일에 미친 듯이 빠져 보도록 허락해 주기를 바랐거든요.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말리지 않는 것도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요.

 

1장은 ‘사춘기의 이유’, 2장은 ‘부모가 꼭 알아야 할 청소년 심리 5가지’, 3장은 ‘청소년과의 아주 특별한 대화법 5가지’가 실렸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옳은 말만 전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들이 힘을 내서 적용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춘기 아이들과 대화하려면 일단 멈춰야 해요.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하면 1주일은 아무것도 안 해볼 필요가 있어요. 2단계는 같이 웃는 일인데요. 1단계 멈추기, 2단계 함께 웃기를 실천해봐야 그 다음 단계인 ‘믿어 주기, 인정하기, 감사하기’가 가능해요. 한꺼번에 1-5단계 대화법을 다 적용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우선 1단계를 해보시는 게 중요해요.

 

“부모의 피드백이 마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청소년 자녀의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싶다면, 남들과 비교하는 피드백이 아니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요. ‘맞다, 틀리다, 잘했다, 못했다’ 같은 평가하는 피드백은 오히려 아이를 좌절하게 만들죠. 자신이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지, 좀 더 잘하려면 어떤 것이 중요한지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으면 자기효능감이나 학습 흥미를 높일 수 없어요.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효능감이 높은 청소년의 경우, 외부의 피드백보다는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더 신뢰할 수 있겠고요.

 

피드백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이 있어요. 대부분 긍정적 피드백이 부정적 피드백보다 내재적 동기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죠. 하지만 자신감을 주려고 자신의 능력보다 쉬운 과제를 주면 오히려 자기 능력을 스스로 낮게 평가할 수 있어 지속적인 동기 부여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긍정적 피드백이라도 잘해야 한다는 ‘과도한 부담’을 주면 자율성이 오히려 감소해서 도전 의지가 줄어들 수 있고요. 가장 중요한 건, 타인과의 비교보다는 청소년 자신의 점진적인 변화, 과제에 관한 효과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적 피드백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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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어를 쓰지 마세요

 

‘행복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는 “성인기 삶의 만족도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변수는 청소년기의 학업 성취도가 아니라 정서적 건강”(125쪽)이라고 말합니다.

 

기본적인 정서가 탄탄하면 사춘기에도 덜 흔들려요. 똑 같은 자극을 줘도 파르르 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덤덤하게 넘기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상담을 하다 보면, 되게 멋있게 잘 성장하겠다 싶은 아이들이 보여요. 하지만 또 아닐 수도 있어요. 성인기에서 겪는 경험들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죠.

 

책을 보면서 놀란 점 중 하나가 아이들이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럼요. 아이들이 표현을 못할 뿐이지 충분히 자각하고 있어요. 아이가 아무리 짜증이 많거나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도 아이 마음속 진심을 믿는다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해요. 청소년들은 어른이 화를 내거나 윽박지른다고 혹은 어설프게 칭찬한다고 변하지 않아요.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해주는 동시에 자신이 몰랐던 뭔가를 깨닫도록 도와주어야 변화가 시작돼요.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잘 읽는 편이라면, 자녀가 사춘기를 잘 이겨내는 것 같아요.

 

확실히 그렇죠. 문제는 아이가 11살, 12살이 넘어갈 때 생겨요. ‘나 정도면 좋은 부모야.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편이야’라고 생각했던 부모님들이 있는데요.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당황하세요. 당연한 변화인데 그동안 부모로서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고집을 부리시는 거죠. 부모가 지금까지 했던 방식이 사춘기 아이한테는 적용이 안 될 수가 있거든요. 이 점을 아셔야 해요.

 

부모가 자신의 성격을 탓할 때도 있어요. 아이에게 잘 다가가고 싶은데,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어렵다고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성격과 타고난 기질은 다른데요. 우리가 소통할 때는 비언어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이 있어요. 특별히 살가운 말을 하지 않아도 돼요. 엄지 손가락만 올려줘도, 아이의 어깨를 톡톡 쳐주는 것도 아이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표현이에요. 너무 많은 걸 하지 않아도 돼요. 한 가지만 하셔도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을 금방 알아채요.

 

“아이들은 진심이 아닌 것을 가장 싫어한다.”(158쪽) 이 이야기도 기억에 남아요.

 

사춘기 아이에게 말을 건다는 건, 부모의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일이에요. 어르거나 달래는 아동기의 태도로 자녀를 대하면 안됩니다. 어른스럽게 감정을 조절하면서 승낙과 거절의 이유를 진심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아이의 마음 상태를 보고, 말을 거는 지혜도 필요할 텐데요.

 

아이가 엄마 아빠 말에 짜증을 내고 있을 때는 말을 안 거는 게 나아요.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이상적으로 대화해야죠. 아이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려면 우선 지금이 대화가 가능한 때인지 알아채야 해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웃긴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성적이 올랐을 때, 게임을 실컷 하라고 하루 동안 자유를 줬을 때 등이 좋은 타이밍이죠. 또 부모의 마음이 불편할 때는 아이에게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그건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사춘기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명령어를 쓰면 안 좋죠. 부모들이 아이한테 하는 말을 들어보면 거의 명령어예요. 내가 하는 말을 5분만 녹음해서 들어 보세요. 내 말투가 어떤지 파악할 수가 있어요. 상담가는 자신의 말투를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하는데요. 부모의 경우, 아이에게 “숙제 해라, 밥 먹어라, 준비물은 다 챙겨라” 같은 말을 가장 많이 해요. 사람이 이런 말만 듣고 살 수는 없거든요. 우리가 회사에 출근했는데 “보고서 써라. 빨리 써라” 같은 말만 들으면 버틸 수 있을까요? 회사 다니기 싫을 거 아니에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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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신을 분리할 줄 알아요

 

부모의 태도가 아이를 변화시킨 사례가 책에도 많이 나옵니다.

 

상대가 변하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해요. 관계가 좋으면 아이도 부모의 충고를 얼마든지 받아들이는데, 관계가 어설프면 어려워요. 소통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채요.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상황과 타이밍을 잘 읽어야죠.

 

말투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럼요. “밥 먹자”와 “밥 먹어”, “밥 차려 놓았어”가 모두 달라요.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모든 말에 짜증 내요. 밥 먹기 싫은데 자꾸만 먹으려고 하면 화가 나죠. 그럴 때는 “밥 차려 놓았어”라고 말하고, 그냥 방에 들어가 계세요. 5분 정도 지나면 밥 먹는 소리가 나요. 이럴 때 부모님이 나가서 “이렇게 먹을 거 왜 안 먹냐고 했냐” 같은 말을 하면 절대 안 돼요. 그냥 지켜 보는 거예요. 부모님이 이렇게 행동을 바꾸면 아이가 일주일 뒤에 와서 이렇게 말해요. “우리 엄마가 달라졌다”고, “내 마음을 조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이렇게 한 번 성공하고 나면 부모도 아이도 달라질 수 있어요.

 

상담을 하러 오는 아이들은 대개 어떤 부모의 권유로 오나요?

 

다 달라요. 부모가 권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 학교에서 권유를 하기도 하고요. 아이들 스스로 오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부모님과 같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확실히 10년 전, 5년 전을 비교해보면 많이 들었어요. 

 

부모 역할을 잘해내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을까요?

 

아이와 자신을 분리할 줄 알아요. 불안과 욕심나는 마음을 잘 조절하시죠. 이런 역할이 아주 쉽지는 않지만 아이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한다면 조금씩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게 돼요. 아이가 독립심이 있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꼭 필요한 부모 역할이기도 하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늘 하루 우리 아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배려하고, 작은 일에도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면 아이와의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죠.

 

 

한 단계를 꼭 실행하고 성공해보세요

 

마흔이 돼서 아동심리를 공부하셨어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있었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어요. 6개월 정도 가르치면, 아이들의 성적이 대부분 올랐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있던 곳이 조금 가난한 지역이었어요. 아이들이 성적이 오르면 학원을 그만두고, 몇 개월 있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다시 학원에 나오는 거예요. 왜 그럴까 분석해보니 아이들이 책을 안 읽더라고요. 근원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독서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효과를 본 아이도 있는데, 여전히 성적이 안 오르는 애가 있더라고요. 살펴보니 심리적인 문제였어요. 그래서 독서 치료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원에서 아동심리를 공부하게 됐어요.

 

선생님도 두 자녀를 키우셨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같이 있는 시간 동안은 재밌게 놀아주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놀이가 아이에게 발달되는지 공부했으니까요. 정서적인 만족뿐 아니라 인지적인 면에서도 균형적으로 발달 시키려고 노력한 부분이 있죠. 사춘기 때는 저도 쉽지 않았어요. 그동안 공부한 걸로는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다만 주의했던 건 있죠. 아이가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내가 말을 걸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요.

 

아이가 고등학생 때는 어떠셨나요?

 

생각해보면 아이가 고3일 때 저는 특별히 힘들지 않았거든요. 왜 안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니,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을 만든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학원이나 야간자율학습을 안 했거든요. 오후 4시쯤 집에 오면, 저녁 먹기 전까지 저랑 같이 떠들면서 놀았어요. 아이가 뭘 재미있어 할지 미리 생각해두고,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도 찾아 읽어보기도 했고요. 매일 이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수다를 떨다 보면 별 거 아닌 걸로 웃게 되잖아요. 스트레스를 잊게 해주면 아이도 부모도 편할 수 있어요.

 

보통의 부모들은 학습 진도를 확인했을 텐데, 잔소리 대신 웃음을 주신 거네요.

 

부모 역할의 개념을 바꾸면 가능해요.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니거든요. 아이가 잘 웃고 행복해 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에요.

 

독자들에게 꼭 염두에 두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요.

 

한 단계를 성실하게 수행해보시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1단계 ‘멈추기’를 제대로 해보신 후, 아이의 반응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말을 안 거니까 아이가 편안해 하네? 싶을 때, 그 다음 단계로 가시는 게 좋아요. 한 단계를 꼭 실행해보시고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임숙 소장이 제안하는 ‘청소년 자녀와의 대화 십계명’

 

1. 하루 대화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로 충분하다
2. ‘너 때문에’가 아니라 ‘네 덕분에’로 마음과 말을 바꾸자
3. 하루 한 번, 함께 웃을 일을 만들자
4. 실수와 실패를 겪는 아이의 편이 되어 주자
5.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꼭 지켜야 한다
6. 속이 터지겠지만 때로는 심호흡하고 참아야 한다
7. 아이가 동의한 적 없는 것을 하기를 기대하지 말자
8. 아이가 생각지 못한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자
9. 좋은 관계 없이는 영향력도 없다. 부모 자녀 관계를 회복하자
10.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자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이임숙 저 | 창비
까칠하고 예민한 사춘기 아이의 진심을 알고 청소년기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면,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과의 특별한 5단계 대화법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여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접근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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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윤나 “저처럼 사연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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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이 크게 소리 지르고 나면, 내가 조금 질러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들잖아요.” 김윤나 저자는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을 믿어요』  는 소리 높여 전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중에는 7살 때 경험한 부모의 이혼,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성취에만 연연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속으로만 삼키지 않고 세상에 꺼내놓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당신의 상처도 드러낼 수 있기를’, 그럼으로써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직 상처와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독이며 저자는 말한다. “상처보다 크고 아픔보다 강한” 당신을 믿는다고.

 

김윤나 저자는 코칭심리전문가로서 활발한 코칭, 강연,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말 그릇』  을 비롯해  『슬기로운 언어생활』  ,   『자연스러움의 기술』   등을 집필한 그는 “말 잘하는 방법이나 어려운 관계를 해결하는 법을 묻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것이 유난히 버거운 이유를 찾다 보면 또다시 ‘마음’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한다. 현재 ‘THE연결’의 대표로 수많은 기업에 출강하며, 심리상담센터 ‘헬로스마일’ 평촌센터장으로 마음건강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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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뱉어내야 돼요


이전에 쓰신 책들과는 결이 살짝 다른 느낌이에요. 코칭보다 ‘마음’에 더 방점이 찍힌 것 같다고 할까요.


사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거나 활동했던 분야는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그 중에서 한 조각이 ‘말’인데, 그게 저의 아이덴티티처럼 부각되고 있어요. 대화법 코칭 요청도 많았어요. 독자 분들이 책의 내용을 첫 번째로 봐주시기를 바라지만, 그 뒤에 저자를 궁금해 하신다면, 제가 원래 하던 일의 전체 파이를 봐주시면 좋겠어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꼭 제 얘기 같았어요”라고 말하는 독자를 만난 적 있으시다고요. 그때 어떤 마음이 드셨어요?


그때는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 친구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고 저는 이제 한 발 뺀 사람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돌이켜 보면 헛다리짚는 응원들도 많이 들었었거든요. ‘좋은 날 올 거야’ 같은 말 있잖아요. 제가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도망치듯 나왔는데, 집에 가는 길에 굉장히 오래 생각을 했죠.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어떻게 있었지?’ 하는 생각도 하고요. 강연을 다니는 사람의 입장이 되고 보니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싶기도 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던 기억이 나요.

 

당시 경험이 이번 책을 쓰는 데 영향을 미쳤나요?


굉장히 미루어진 거예요. 그때의 장면이 오래 기억나는 데 비해서 원고가 잘 안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미루고 도망 다니다가 우여곡절 끝에 나온 책이에요. 

 

상처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번 책 같은 경우에는, 첫 번째로 저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 끙끙 앓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저도 쓰면서 느낀 건데, 완전히 해소된 이야기들은 쉽게 빨리 써지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글은 묵혀뒀다가 다시 쓰게 됐어요. 아직 나한테 해결이 안 된 문제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두 번째는,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고려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특히 엄마가 그랬고요. 책이 나오기 전에도 소모임이나 강연에서 제 이야기를 일부 했었어요. 그러면 꼭 찾아와서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그런 말을 진짜 많이 들었어요. 그때 느꼈어요. 내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걸요. 옆 사람이 크게 소리 지르고 나면 내가 조금 질러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들잖아요. 그런 마음을 붙잡지 않았으면 이 책을 끝까지 못 썼을 것 같아요.

 

상처는 담아두는 것보다 꺼내놓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꺼내야죠.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한테 계속 사인을 보내요. 상처라는 것 자체가 둥글둥글한 형태가 아니라 뾰족한 형태예요. 계속 우리 안의 어딘가를 맴돌면서 생채기를 내요. 꺼내지 않으면 내 안을 지킬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뱉어내야 돼요. 상처를 가진 사람이 뱉어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까지가 절반의 몫이고요. 나머지 몫은 그런 고백을 받은 누군가의 것이에요. 상대의 상처를 일반화시키거나 ‘오두방정 떨지 말아라’, ‘네가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고 잘 받아줘야 하는 거죠. 이 두 가지가 잘 만나야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책은 첫 번째에 조금 더 많이 방점이 있고요. 언젠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서 마음껏 써보고 싶어요.

 

“I’ve been there”라는 문장이 나오는데요. 아픈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아닐까 싶어요.


꼭 책에 써야지 생각하고 메모해둔 문장이에요. 특히 전하고 싶었던 말은  『당신을 믿어요』  라는 책의 제목인 것 같아요. 이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처음 출판사와 이야기할 때부터 ‘나를 믿지 않으면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결국은 나를 믿어야 한다는 것’, ‘스스로를 믿는 동시에 누군가가 믿어줄 때 그런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말했었어요. 그걸 제목이 다 함의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상처를 감당할 만한 힘을 가졌다고 믿지 못한다”고 하셨죠.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지금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거절이나 불안을 경험한 유년시절이 있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작은 거절에 바르르 떠는 거죠. 그걸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서 ‘아버지의 거절로 인해서 생긴 거야’라고 알게 됐다면, 그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은 다 그런 과거 때문이야’라고 하는 건, 절반의 책임에서 물러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러면 나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요. 두 가지가 같이 만나야 될 것 같아요. 지금의 일들이 다 과거 부모님의 영향으로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면, 부모보다 자신을 더 못 믿는 거잖아요. 나한테 영향을 준 부모가 더 힘이 세다고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거죠. 그럴 때 제일 안타까워요.

 

과거에서 원인을 찾았다면,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뛰어넘어야 하잖아요. 그럴 때 ‘셀프 토크’가 많이 도움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혼잣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셀프 토크라는 개념도 몰랐지만 인형놀이 하듯이, 거울 보듯이, 일기 쓰듯이, 내 안의 두 명을 불러내서 놀이처럼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셀프 토크라는 개념을 배운 다음에는 조금 각색해서 활용하면서 많이 도움이 됐고요. 지금도 엄청 많이 쓰고 있어요. 저희 아이들한테도 알려주고 있고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책에서 몇 가지 예를 드셨어요. “나한테 도움이 되니?”,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있니?”,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뭐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거죠?


저희 첫째 아들이 지금 일곱 살인데, 한창 무서운 꿈을 많이 꿀 때예요. 그래서 드림캐쳐를 사줬는데, 이걸 옆에 두면 무서운 꿈을 안 꾸는 거냐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 안에 두 명의 목소리가 있대요. 한 명은 ‘드림캐쳐가 정말 너의 꿈을 지켜줄 거야’라고 하는데 다른 한 명은 ‘아니야, 저거는 소용없어, 그냥 천일 뿐이야’라고 말해서 둘이 싸운대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너한테 도움을 주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어 봐, 그러다 보면 그 친구가 한 번 이기고, 이길 때마다 힘이 세져서 점점 더 성공 확률이 높아져’라고 했어요. 그런 식으로 계속 믿고 해보는 게 셀프 토크에서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셀프 토크를 한다고 단번에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지만, 결국 한 번은 이기게 되거든요.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그 목소리에 더 자신이 생겨요.

 

셀프 토크를 하다 보면,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감정과 거리를 두고서 자신의 질문을 객관화할 수 있고요.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위에서 바라볼 수 있어요. 조망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런 질문을 하는 게 다 조망 능력을 키우는 거거든요. 잘 안 되도 자꾸 시선을 위로 옮겨서 나를 봐야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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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내면의 알람이 있어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성장한 뒤에도 부모에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녀들이 많은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일단, 아이는 약자예요. 아무리 난장을 피우는 아이라고 해도 결국은 부모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약자, 절대적인 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해야 될 말과 넘지 말아야 될 선을 알게 되고, 내가 어떤 아이가 되어야 하는지 빠르게 알아채죠. 그리고 을은 자기가 원하는 걸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잖아요. 그렇게 한 번 세팅이 되고 나면, 청소년기에 이르러서 그걸 뒤집으려고 전쟁을 하지만, 결국 뒤집어지지 않고 그대로 성인이 되면 더 한 상황인 거죠.

 

아이가 부모에게 양가감정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거예요. 사랑하지만 밉기도 하고, 밉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당신은 부모를 미워해도 되지요. 누구나 그렇죠”라는 말이 “나를 구해냈다”고 쓰셨어요.


그 감정이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저처럼 애어른으로 자라는 자식들은 부모님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자랐고, 그렇게 힘든 와중에 너를 학교까지 보낸 부모님을 거역하면 안 된다는 굉장히 강력한 시선들이 그 아이의 세계를 만들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데 왜 미운 감정이 안 생기겠어요. 특히 을의 입장에서는 더 그렇죠. 그런데 그걸 표현할 수 없고, 표현해도 받아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감추는 거죠.  『말 그릇』  에서도 다뤘지만, 감정은 차별하는 순간 문제가 생겨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대가 부모이든 친구이든, 고스란히 느끼는 게 중요해요. 그러니 힘들어하지 말고 미워해도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사랑받길 원했던 ‘나’를 알게 되거든요. 미워해도 된다고 말해도 쭉 미워만 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진짜 부모를 미워하던 자식도 자기 감정의 바닥까지 가면 보고 싶다고 울어요. 자유를 주면 자기가 알아서 감정들을 다 정리하게 되는 거죠.

 

“부모를 원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아빠를 사랑했던 기억들도 함께 떠올랐다”고 적으신 부분이 떠오르네요.


내 마음이 바닥이 어디인지 몰랐는데, 일단 바닥까지 내려가 봐도 된다고 하니까 ‘아, 바닥이 이렇구나’ 하고 다시 치고 올라온 것 같아요. 상담하면서 아빠를 실컷 원망하기도 하고, 걸러지지 않은 감정들도 다 이야기하고 나니까 ‘왜 미워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은 사랑받고 싶었던 거잖아요. 지점은 하나인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조금 험난한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해서 뭐하냐?’ 싶어서 바닥을 안 가보면 하나의 지점까지도 못 가는 거예요. 그냥 지금 있는 위치에서 사는 건데, 그러면 자신의 삶의 반은 차단하고 사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사는 삶이 충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 감정을 직시하지 않고 기피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아프다’고 하지 않고 ‘이해한다’고 말하고, ‘슬프다’고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책에도 썼는데, 밖에서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제가 뛰어 내려간 적이 있었어요. 정말 어이없는 사건이었어요. 머리 감다 말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달려갔었거든요.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저도 그랬을지 몰라요. ‘그런 장면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렇게 깊게 감정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한테는 그게 내면의 알람이었어요. 어쩌면 제가 내면의 알람을 예민하게 듣는 직업군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봤고, 그런 현상이 저한테 크게 알려준 것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사건 없이 그냥 가는 거죠. ‘지금이 알아봐야 될 때야’라는 알람이 안 울린 거죠. 제가 믿기로는 사람마다 다 그런 알람이 있는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알람이 망가지면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거죠.

 

일찌감치 알람이 울렸던 덕분일까요? 7살 때 헤어졌던 어머니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재회하셨는데, 그때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셨더라고요.


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엄마를 만나면 이렇겠지?’ 하는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만나러 갔었거든요. 계획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강의 준비하느라 책을 읽다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만났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제가 굉장히 당당하게, 꼭 오랫동안 할 말을 준비한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왔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때 이런 말을 할 걸’ 하는 생각이 들지도 않고 ‘그때 이렇게 보여줄 걸’ 같은 생각도 없어요. 후회하지도 않고요. 잘 만났다, 잘 하고 왔다, 그런 생각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부분은 굉장히 빨리 썼어요. ‘그 장면은 내가 참 오랫동안 정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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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못이 아니에요


예전의 저자님은 ‘일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열심히 바쁘게 사셨던 것 같아요.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을까요?


제가 그렇게 병이 깊은지 몰랐어요(웃음).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래서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더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는데, 멈출 줄 모르더라고요.  『말 그릇』  을 내고 난 직후에도 제가 쉬지를 못한다는 걸 느꼈어요. 운 좋게  『말 그릇』  이 생각보다 더 잘됐는데, 그러면 조금 쉬어도 되잖아요. 그런데 못 하더라고요. 이전보다는 많이 괜찮아졌지만 근본적으로 많이 좋아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그나마 많이 바뀐 거예요. 특히 아이 낳으면서 많이 변했어요.

 

‘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랐다면, 인정받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 되기 쉬울까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사랑받고 싶잖아요. 그런데 내가 하나를 내놔야 그 사랑이라는 게 주어진다는 경험을 하면, 그걸 내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기꺼이 감행하겠어요. 저도 그래왔어요. 그러면서 ‘무조건적 존중’,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책들을 읽었는데(웃음), 이게 와 닿지가 않는 거예요. ‘이런 게 있나?’ 싶은 거죠. 그런데 결혼을 해보니까 ‘아, 있구나!’ 싶은 거예요. 저희 신랑이 엄청 좋은 신랑은 아니지만(웃음), 제가 확실히 느낀 건 ‘아, 나 아무것도 안 해도 사랑받을 수 있구나’라는 거였어요. 그걸 신랑한테서 처음 느껴봤어요. 그 사람을 통해서 회복이 많이 됐죠.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조건 없이 사랑을 줘보니까 ‘그런 사랑이 있구나’ 싶은 거예요. 그러면서 이론과 실제가 점점 맞아 들어간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상처를 꺼내놓는 사람의 몫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옆에서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의 몫인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올 수 있는 내가 되어가는 것도 중요해요. 자기만의 세계의 섬이 되는 것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섬이 된다는 건, 혼자서도 설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하나의 섬이 와서 하나의 완전한 세계가 되는 거잖아요. 내가 섬이 안 되어 있으면 이상한 사람만 오는 거예요. 서로 분화 수준이 같은 사람이 연애를 한다고들 하잖아요. 그 말이 맞죠. 나의 몫이 있고 상대의 몫이 있지만, 올바른 상대가 나타나는 것도 내가 제대로 된 섬이 됐을 때 가능한 일이에요. 그런 사람이 왔을 때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도 나의 눈이고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시작은 100이에요.

 

“당신이 겪어온 고통이 당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벌어진 일은 아니듯, 오늘의 소소한 행복 역시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쓰셨는데, 굉장히 힘이 되는 말이었어요.


제가 꼭 강조하고 싶은 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거예요.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내가 조금 더 배운 부모, 조금 더 따뜻한 부모, 조금 더 여유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책임져야 될 시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 앞으로의 시간이에요. 그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책을 읽으시고 ‘내가 그때 이랬구나, 이럴 수 있었구나’ 하고 분석하시는 것도 좋지만, 그러고 나서 꼭 나를 다독여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참 대견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 하고요. 분석에서 끝나지 않고 나와 같은 편에 서서 이 책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지’ 바람을 밝히셨어요.


글을 마무리할 때 추천 대상 세 그룹을 생각했는데요(웃음). 첫 번째로는 저처럼 사연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는 그의 주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쟤는 유별나다, 까다롭고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특히 부모님들이 많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상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 사람을 깊게 이해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주변에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모를 때, 쓱 건네는 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면 좋을 것 같으세요?


슬픈 감정에서 끝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슬픔 끝에 위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책장을 덮었을 때 ‘너무 슬펐다’는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그래, 잘해왔어. 괜찮아’ 하고 나를 다독이는 말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따뜻한 온도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믿어요김윤나 저 | 카시오페아
사람의 마음에 대한 통찰을 밀도 높게 담으며 깊숙이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로 읽는 과정 자체를 진한 공감의 순간으로 만든다. 자신을 향한 의심의 늪에서 빠져나와 본래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조금씩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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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장희 경제학 박사 “포퓰리즘을 강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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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역할보다 민간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대표 경제학자이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동반성장위원장 등 다양한 국가 기관에서 대내외 경제 정책을 수립 및 실행한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예스24 문화웹진 <채널예스>가 만났다. 2008년에 출간된 경제 논평집 『한계선 너머 빛이 보인다』 를 개정한   『경제난 극복을 위한 위시리스트』   출간을 기념해서다. 인터뷰 날짜를 정하기 위해 기자가 교수께 전화를 드렸을 때, 그간 수많은 경력과 학문적 업적에 기자는 다소 위축되어 완고하고 엄격한 느낌의 목소리를 상상했으나, 전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교수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활기찼다.

 

『경제난 극복을 위한 위시리스트』  는 국가 경제에서의 정부 역할, 국제 경제 속에서의 한국 경제, 사회 지도층과 학자들이 좀 더 갖추어야 할 바른 자세, 새시대에 맞는 교육 서비스와 교육 정책 등 그간 교수가 다양한 지면을 통해 얘기해 온 내용들이 2019년 정치 상황과 경제 상황에 맞추어 업데이트되어 담겼다. 어떤 이념이나 주의, 도그마가 아니라 합리주의적 관점에 의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경제학자의 실용주의적 태도가 굉장히 진보적이면서도 젊게 다가온다. 역설적으로 유장희 교수는 1941년생으로 여든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출간하신 책이 『한계선 너머 빛이 보인다』 의 개정판입니다. 새로 개정판을 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마 그 책이 2008년도에 나왔을 거에요. 당시에 꽤 많이 읽혀졌었나 봐요. 당시에 읽은 것을 기억하고 그 때 얘기가 지금과 딱 맞다며 내용을 업데이트한 버전을 새로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아 그런가,하고 제 책을 다시 읽어봤더니 독자들의 견해가 맞더라고요. 2008년 2월에 책이 나오고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까지 약 10년 동안 한국이 할 수 있었던 사항을 정부에서 간과한 것이 많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현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 정책을 다시 들여다 봤는데요, 그랬더니 아, 이거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어떤 사명감 비슷한 걸로 쓰기 시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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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에 영합하는 경제 정책은 곤란하다


서문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 아젠다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 중 하나가 ‘서민 경제 활성화라는 도그마에 빠지지 말 것’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경제 정책 핵심 의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성장 위주로 하는 방식과 분배 위주로 하는 방식입니다. 그때 그때마다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 국내 경제 여건에 따라서 그 기조를 달리해서 정책을 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해하기에는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은 분배 위주 정책입니다. 그간 문재인 정부가 해왔던 발언들을 분석해보면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전 세계에서 12대 경제 강국이 되었다. 전 세계에 약 230여 개의 국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경제 규모로 12위라는 건 굉장히 상위권이다. 이만큼 성장했으니 이제 분배에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어두운 곳, 저소득층이 많이 있다. 그들이 이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배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촛불 집회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제가 파악하는 문재인 정권의 경제 정책 역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는 경제 정책에 대해 ‘그 동안 이만큼 성장을 했으니 이제 분배 중심으로 가기를 원한다’ 라고 얘기해야지 정확하게 전달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득 주도 성장’이라고 했단 말이죠. 얼핏 보면 성장 위주로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소득이 주도한다고 하니까 ‘뭐가 있나보다’ 이렇게 오도되었다고나 할까,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 헷갈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경제 성장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잖아요. 아니, 소득 주도 성장이라면서 왜 떨어져? 이런 반응이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금년도는 2.3%, 2.4% 가기도 힘들다고 봅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이건 소득 주도 성장하겠다고 해놓고는 성장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고, 그렇다고 해서 분배가 잘 되었느냐면 그것도 아니고, 그런 상황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네요.

 

그렇죠. 처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이 아니라 분배 위주 정책이라고 국민들한테 비전을 얘기했으면 국민들도 쉽게 이해하고 정책도 빨리 가지 않았겠느냐,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왜냐하면 공무원들도 다 국가의 구성원인데, ‘아, 문재인 대통령은 분배 중심의 정책을 쓰시는구나. 맞아, 우리에게 그늘진 곳이 많으니까 거기서부터 다져가야겠다.’라고 움직였을 겁니다. 그런데 경제 부처에 있는 수많은 공무원들이 ‘성장해야죠. 무슨 말입니까. 성장은 해야 됩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실무자들도 헷갈리고 있단 말이죠. 거기서부터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그래서 그런 구호 자체를 처음에서부터 잘 설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경제학에서는 분배 중심의 정책이라고 할 때 저소득층이나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살려나가는 정책을 말하거든요. 그런데 정치인들은 그렇게 얘기 안하고 ‘서민 정책’, ‘서민 중심의 정책’ 이렇게 얘기 한단 말이죠. 이것이 사실은 잘못된 용어예요. 경제학원론 어디를 봐도 서민 주도 정책이라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정치인들이 왜 서민이냐는 말을 쓰냐, 표가 많습니다.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당신 서민이요, 아니요?’ 라고 물으면 다 본인은 서민이라고 말하지 ‘나는 부유층이요’ 이럴 사람은 없을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서민 위주의 정책이라고 하면 우선  대다수 국민들이 ‘아, 나를 포함해서 얘기하는 건가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겠지요. 서민이라는 말도 정치인들이 국민을 오도하는 용어입니다. 그게 포퓰리즘, 인기영합주의라고 부르는 거죠. 인기영합주의로 너무 치닫다 보면 브라질 경제 같이 되고 베네수엘라 경제, 혹은 그리스 경제처럼 망해가는 경제가 될 수도 있단 말이죠. 그것은 이 시점에서 아주 강력하게 견제, 경고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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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규제를 푸는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 정책을 말할 때 정부 주도형과 민간 주도형이 있잖아요. 민간 주도형은 규제를 완화하고 최대한 시장과 기업에게 자율을 주자라는 방향이고요. 그런데 한국인들은 기업 특히 대기업을 생각할 때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 정서가 한국인에게 있는데 조선시대 때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부분입니다. 조선시대 때 계급을 사농공상에 맞추어 나누었잖아요. 선비, 농업, 공업, 상업이 제일 밑입니다. 상업이 지금으로 보면 기업인데 제일 밑이란 말이죠. 그래서 기업하는 사람들, 즉 돈 벌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천하게 보는 그런 정서가 남아 있어요. ‘기업하는 사람은 돈벌이하는 사람이고 돈은 비리와 부정과 연결이 돼 있다, ‘정직하게 하면 돈이 안 벌린다, 뭔가 편법을 쓰고 비리를 저질러야지 돈을 벌 수 있다’와 같은 생각인데 아주 잘못 되었다고 봅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으로 건전한 기업들이 박정희 정부 이후에 만들어졌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병철, 정주영, 최종현, 구태회와 같은 당시 기업인들을 불러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마당을 깔아줄 테니까 해 보세요”라고 하여 그때서부터 기업과 기업인들이 육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중소기업은 약 350만 개, 대기업은 약 4,500개에서 6,000개 정도 있는 경제 규모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업이 활성화되어 이만큼 왔다라는 것을 인정을 해야지만 대한민국 현대사가 쓰여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반(反)기업 정서가 굉장히 팽배해 있고, 기업은 무조건 규제의 대상, 비리와 부정, 비자금 조성하는 단체로 오인이 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1995년 이건희 회장이 베이징에서 한국은 "기업은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게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만큼 나라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런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활동을 규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규제를 풀어서 시장 안에서 건강한 경쟁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한국은 금융에 대한 부분이 좀 취약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반인들이 느끼기에는 은행이나 증권사의 문턱이 너무 높은 것 같구요. 금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금융은 자본주의 경제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혈맥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한국은 금융 분야의 경쟁력이 낮습니다. 아마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낮은 축에 속할 거예요. 한국 금융 발전을 상대적으로 더디게 한 요인으로 그 동안 금융기관을 주로 정부가 운영해 왔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한은행, 하나은행과 같은 곳이 민간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은행장 선출하는 과정에서  전부 정부 눈치를 봅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그럴 정도로 아직도 금융은 정부로부터 크게 자유스럽지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발전을 마음껏 못합니다. 선진국의 금융기관들은 AI 금융이라고 치고 나가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것을 규제하고 있지 않습니까? 금융기관에서도 자체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서 내놓으려고 정부에 가서 허가를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정부 관료들은 숨 막히게 돌아가는 세계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아무래도 실무자들보다는 잘 모릅니다. 공무원들이 잘 모를 때는, 허가를 안합니다.(웃음) 그러다 나중에 혹시 잘못되어 책임지게 되는 것을 피하려구요. 계속 반복입니다. 

 

역시 정부 역할을 어떻게 둘 것인가가 중요하군요.

 

정부와 민간의 관계를 얘기할 때 포지티브 시스템과 네거티브 시스템이 있습니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주로 쓰는 것은 주로 네거티브 시스템입니다. 안해야 할 것만 몇 개 정확하게 명시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최대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네거티브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시스템인데, 할 수 있는 것만 몇 개 명시하고 명시되지 않은 것들을 하면 불법입니다. 그러니까 법이 없으면 못하게 돼 있어요. 새로운 게 나올 때마다 대부분 법에 걸립니다. 걸림돌이죠. 빨리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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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조순 서울시장의 요청에 의해 종신 교수직을 버리다


이제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사님은 미국에서 종신 교수로 계시다가 그걸 버리고 한국으로 오신 거잖아요. 어떤 계기로 이렇게 오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종신 교수로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6년 지나면 1년 동안 안식년이 있습니다. 제가 서울대 출신이기도 해서 서울대 경제과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싶어서 초빙교수로 왔었습니다. 그 때가 1988년이었어요. 마침 서울올림픽이 진행되고 있을 때여서 올림픽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웃음)


그 당시에 미국에서 잘 팔린 제가 저자로 참여한 교과서가 있었습니다. 『Macroeconomic Theory』라고요. 이 책의 저자가 영어로 직접 강의한다고 하니까 학생들이 많이 신청을 했더라구요. 큰 강의실이 꽉 찼습니다. 그렇게 1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방에 조순 박사라고 계셨어요. 서울시장을 역임하셨던 분이죠. 제가 초빙교수로 서울대에 와 있을 때 갑자기 부총리가 되시더라고요. 조순 부총리께서 절 불러서 “88 올림픽도 끝났고 지금 우리 정부가 이 여세를 몰아서 전 세계적으로 시장을 좀 개척하고 싶어 하는데 국제 감각이 탁월한 사람을 지금 찾고 있다. 유 교수, 당신 어때? 좀 해 봐.”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여쭤봤더니 “대외경제정책 연구원을 신설하려고 하는데 당신이 책임 좀 맡아줘”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그게 쉬운 결정이 아닌 게, 당연히 안식년을 받은 1년을 넘길 수도 있는 거고, 그렇다면  아내에게 결재도 받아야 될 상황에 있는 거고요.(웃음)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조순 부총리의 요구가 강렬해서 수락을 했고, 그후 대외경제정책 연구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들고 바로 원장을 하기가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부원장으로 실무를 맡고 출범을 했는데 그 다음 다음 해에 원장을 하라고 하대요. 그러다 보니까 미국에 못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웃음)

 

워낙 다방면으로 활동을 하셨는데요, 요즈음은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매일경제신문 상위고문 자격으로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인들과 대화를 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있는데요. 국가 기관이에요. 이곳에서도 한 달에 한 두 번 꼭 회의가 있습니다. 학술적 회의인데 중요하죠. 각 학문 분야가 모두 들어가 있거든요. 제가 속해 있는 건 경영학,경제학 분야여서 경영학, 경제학의 원로들이 모여서 우리나라 경영학, 경제학 방향과 이론 개발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있지요. 그리고 혹시 박찬호 선수를 아세요?

 

우리나라에서 박찬호 선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웃음).

 

박찬호 선수가 만든 재단이 있는데요, 봉사직으로 박찬호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BBB 코리아라는 단체가 있는데, 외국어에 능한 사람들 외국에서 온 손님들이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당할 때 통역을 해주는 등 언어적으로 봉사를 하는 자원 봉사 단체입니다. 4,500명의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제가 그 단체 회장을 7년 동안 했고요, 여전히 영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유장희 박사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경제학 석사, 텍사스 A&M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위를 마치고 미 클라크대, 버지니아주립대(콤몬웰쓰)에서 교편을 잡았고 종신교수직에 올랐다. 그 후 서울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재직했으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연구원장직을 마치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대 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국제전문인력 양성에 진력하였다.


유장희 박사는 학계, 정부, 국제기관, 언론기관 등에서 폭 넓은 경력을 쌓았다. 한국경제학회장, 한국국제경제학회장, 한미경제학회장, 한국 APEC 학회장, 한국 협상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정부에서는 외교통상부 자문위원장을 비롯하여 여러 위원회에서 정책개발과 정책자문에 적극 임했다. 또한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동반성장위원장도 맡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국제적으로는 APEC 저명인사 그룹 한국대표, 한-아세안 저명인사그룹 한국대표, APEC 지식기반추진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했다.


유장희 박사는 경제발전에 있어 민간의 역할을 정부의 역할보다 더 중시하고 있으며 성장 활력의 큰 부분이 경제개방으로부터 온다는 글로벌 개념에 충실한 학자이다. 이화여대 대외부총장을 거쳐 현재는 동교 명예교수로 있으며 매일경제신문 상임고문,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한 위시리스트유장희 저 | 남강기획출판부
경제 성장의 주역은 민간과 기업임을 강조하며 금융부실화를 야기하는 지나친 정부 개입 통제, 인적 자원 양성을 위한 교육개혁,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방법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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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서희 “서로를 일차적인 결핍으로 느끼지 않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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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삶』  ,  『유혹의 학교』  등에서 새로운 만남의 반짝임을 이야기했던 이서희 작가는 이혼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관계와 사랑의 다양한 가능성을 다시 생각했다. 서로를 결핍으로 느끼지 않는 온전한 존재로서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면, 일상에서 “작은 귀여운 행동들”을 통해 구체적인 낭만을 만들어낸다면,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만남들이 가능하다는 것.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정서적 학대, 가족으로부터의 탈출과 결혼, 그리고 이혼까지,  『구체적 사랑』  에서 자신의 아픔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서희 작가는 “내내 누가 알까봐 전전긍긍했”던 자신을 돌아봤다. 이 글들을 쓰며 그는 비로소 자신을 연민하게 되었다고, 다시 조금씩 일상 속 낭만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낭만적 사랑의 신화’와 ‘모범적인 행복’ 바깥에서 각자의 지옥을 숨기고, 견디는 사람들에게 이서희가 보내는 구체적인 사랑의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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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가장 먼저 제목을 묻고 싶었어요. 왜  『구체적 사랑』  인가요? 어떻게 지어진 제목인지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주셨고, 이것이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하게 됐어요. 글을 모으고 보니 관통하는 메시지가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였어요. 사랑에는 두 가지 모습, ‘일상’과 ‘일탈’이 같이 공존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전까지는 새로운 만남이나 첫 만남의 유혹, 관능처럼 당장 반짝이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썼던 것 같아요. 일탈에 대한 이야기죠. 한편 사랑이 일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때문에 어떻게 일상을 끌어안을 것인가를 계속 고민했던 거예요. 낭만적 사랑의 신화가 있잖아요.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이야기에 일상은 빠져 있어요. 일탈이 일상이 되는 순간 끝이 나면서 일상은 지워지는 거죠. 물론 일상은 우연과 낭만, 탈출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와 함께 일상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고요.  『구체적 사랑』  은 그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때 일상은 종종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가족, 과거의 아픈 기억 등을 모두 포함하는 이야기고요.

 

일탈의 사랑보다는 일상의 사랑에 보다 관심을 두고 쓴 글이라는 말씀인데요. 이때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구체적인 실천이 없으면 사랑은 유지될 수 없어요.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어떠한 마음을 보일 것인가가 있어야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고 보여줘야 해요. 제가  『유혹의 학교』에서 유혹은 일종의 협상이라고 말을 했는데요. 협상이 이루어지려면 구체적인 행위와 말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번 책에서 그 이야기를 한 거예요.

 

마크 트웨인의 ‘사랑은 아주 빨라 보이지만, 성장하는 것들 중 가장 느리다’라는 말을 인용하기도 하셨죠. 이를 테면 이서희의 사랑론일 텐데, 사랑에 대한 생각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뀐 건가요?


전부터 견지해온 관점은 있어요. 흔히 아이 키울 때 육아서도 읽고, 사회 생활을 할 때면 자기계발서도 읽으며 공부를 하잖아요. 반면 사랑은 당연히 할 줄 아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사랑이 찾아오면 그 기회를 잡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을 하죠. 이 생각이 강조되면 간과되는 게 많아요. 사랑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해요. 상대에 대한 계속된 호기심이 필요하고요. 이런 생각은 전부터 해왔죠. 한편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지게 된 생각은 사랑에 있어 노력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거였어요. 아이들이라는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가 된 거죠. 계속 이루어지는 힘의 작용을 어떤 식으로 포용하고, 함께 나아갈 것인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자녀와의 사랑에서 사랑이라는 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신 거군요.


관계에 대한 상상력이죠. 저는 일반적으로 모범적이거나 규범적으로 부각되는 관계가 아닌 조금 다른 관계를 보고 자유롭게 적용함으로써 거기서 배우게 되는 상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좀 더 넓은 관계를 생각해요. 결국에는 공동체의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건데요. 어떤 식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가를 단순히 가족이나 개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에만 두지 않아요. 개인 관계를 잘하면 나아가 공동체의 관계에서도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또 공동체의 관계를 개인 관계에서 적용할 수 있고요. 하지만 사회 생활을 잘한다고 가정생활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가정생활만 잘한다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아니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우리는 A라는 곳에서도 B의 관계를 연습하고, B라는 곳에서도 A의 관계를 연습하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아이들과의 관계를 잘 연습하면 다른 관계도 잘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 식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서로를 일차적인 결핍으로 느끼지 않아야


사랑론인 동시에 관계론이기도 하네요. 작가의 말에서도 “세계의 확장은 주어진 안락함과 풍요로움에 의해서가 아니다. 얼마만큼 스스로, 그리고 타인과 연대하며 삶을 개척해 나갔는가에 있다”(346쪽)라고도 하셨잖아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속상했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아주 비슷한 거잖아요. 정상가족, 부모의 사랑,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하고요. 그 한계가 너무 싫었어요. 그러면서도 그 말에 수긍했고,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었죠.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니 자신의 행복이 당연한 사람들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더라고요.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요.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행복을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고통은 빨리 넘겨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사고방식들은 삶의 다른 면을 배제하는 쪽으로 가게 하죠.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가져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구체적 상상을 통해 확장해나가는 거죠.

 

가족 또한 관계죠. 가족이야말로 ‘개인’의 형성이 가장 늦게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관계라는 면에서 작가님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딸들과 떨어져 있을 때 서로 소식도 잘 안 묻거든요. 어느 날 딸에게 물었어요. 떨어져 있으면 엄마가 그립지 않느냐고요. 영어로 ‘miss’는 결핍의 의미가 있어요. 부재를 느끼는 것일 텐데, 딸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왜냐고 물으니까 엄마가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그립지 않다는 거예요. 따로 있지만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아는 충만한 느낌인 거죠. 그 말을 듣고 정말 좋았어요.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서로를 결핍이자 채워야 하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존재로서 생각하는 거니까요. 이것이 건강한 관계란 생각을 했고요. 가족뿐 아니라 많은 관계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서로를 일차적인 결핍으로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나아가 딸의 배신을 응원한다고도 하셨죠.


배신에 관해서는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관계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예요. 제 이혼 과정에서 도움을 많이 줬던 친구가 모든 문제가 해결된 후 제게서 멀어졌거든요. 그때 주변에서는 마치 그 친구가 저를 배신한 것처럼 얘기했어요. 저도 상처를 받긴 했죠. 하지만 이 친구한테는 이 선택이 전혀 배신이 아닐 수 있겠더라고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 친구의 흐름이었던 거죠. 이걸 두고 제 입장에서 어떻게 배신할 수 있느냐고 슬퍼한다면 그것 역시 일종의 폭력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와 멀어진 것이 가슴은 아프지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기로 했는데요. 판단 중지를 하고, 이 단계를 배신과 같은 극단적인 말로 규정짓지 말아야겠다는 거고요. 변화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필요하다면 상황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나 ‘엄마의 딸’로 여겨지고 스스로도 그렇게 부르던 아이가 이제는 나를 향한 가장 날 선 비판을 퍼붓는 상대가 됐다. 당장은 서글프고 고된 날이지만, 딸아이의 거센 반항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수도 없이 다짐한다.(중략) 그녀의 배신과 배반이 온전한 혁명이자 자립이기를 응원한다.(291쪽)

 

이것이 제 사춘기 딸들에 대한 생각이기도 해요. 자신의 세계를 새롭게 확립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을 의심하고 빠져 나오려는 것, 그것이 일종의 배신 행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춘기 딸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응원합니다.

 

책에 딸들과의 대화가 많이 등장하잖아요. 보면 그들이 선생이 되기도 하고, 작가님을 선생으로 만들어주기도 해요. 딸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도 궁금했어요.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불편과 부당을 느끼는 감각을 키워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곧바로 말하는 연습을 시켜주는 것이었죠.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은 참고, 인내하고, 착한 존재가 되도록 키워지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러면서 경계 침입을 당하는 거예요. 착취를 당해도 내 잘못 때문인가, 생각하게 되고요. 저는 부당함에 대한 반응이 자기 검열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어요. 그러다보니 이제는 부당함의 대상이 제가 될 때도 많은데요.(웃음) 온갖 비판으로 저를 쳐내는 게 아프고 충격을 받다가도 잘 키웠구나 생각하죠. 이들은 나를 쳐내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싶어서요.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게 되면 좋은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되니까요.

 

『유혹의 학교』  출간 당시 그 책을 딸들이 꼭 읽어줬으면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번 책은 어떤가요?


딸들이 한국말을 그리 잘하지 못해요. 소통이 잘 안 될 때 느낀 이상한 슬픔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글을 쓴 거예요. 어떻게든 기록을 남겨서 나중이라도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조약돌을 남기겠다는 마음이었던 거죠. 그래서  『유혹의 학교』  를 쓰고 그런 말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어요. 책이 아이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마저도 부질없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요. 안 그래도 돼요. 우리가 지금처럼 건강한 관계를 맺어나가면 상상을 초월한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이 저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다고 믿게 됐거든요. 읽어주면 고맙고, 읽지 않아도 괜찮은 거죠.

 

 

새로운 곳을 발견한 느낌

 

내 인생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것은, 일찍 부모로부터 벗어나 살았다는 것이다. 함께 있는 것이 고통이어서 도망쳤으나 남들보다 조금 일찍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덕분에 부모라는 검열에서 쉽게 풀려났다.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내게 가족이 지옥일 수 있음을 가르쳤고 인생은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67쪽)

 

특히 1부 ‘나와 엄마와 그녀의 둘째 딸인 나’ 부분은 가정 폭력, 정서적 학대 등 아주 내밀한 개인사를 고백했습니다. 쓰면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 반복해서 꾸던 꿈이 있어요. 방을 찾아 헤매는 꿈인데요. 집 안에서 새로운 비밀 통로가 있고 거기 방이 있는 거예요. 그 방은 늘 고즈넉하고요. 아주 덥지도, 춥지도 않아요. 그리고 아무도 없죠.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 이 꿈 얘기를 했어요. 그때 들은 말이 잊히지 않는데 안전함을 찾아 헤맨 게 아니냐는 거예요. 그 말이 저를 탁 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죠. 언제 폭력을 당할지 모르고, 겁이 나니까 자꾸 몸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너무 아팠지만 쓴 이후에 꿈의 방향도 바뀌기 시작했어요. 제 방에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더 이상 방에 숨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발견한 느낌이 되고요. 그게 정말 기뻤어요.

 

이 책으로 아주 중요한 시기를 건너온 셈이네요.


네, 어제 책을 받았는데요. 받고 나서 많이 울었어요.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고요. 상상을 벗어났던 만남이 있었고, 그 만남이 정말 감사했어요.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삶의 힘든 순간을 지나면서 저다운 경쾌함을 많이 잃었던 것 같거든요. 사실 저는 ‘오늘은 무슨 일을 저지를까’ 생각하면서 신나 하는 아이였는데 말이죠. 요즘 그게 다시 돌아왔어요. 오늘 무슨 재미있는 일을 해볼까, 할 때가 가장 나답다고 느껴요. 그때 느끼는 생명력과 생동감이 있거든요. 일종의 작용 반작용인데요. 가령 콘서트장에 있다고 해봐요. 가만히 노래를 듣거나 손만 흔들 수도 있지만 좀 더 움직일 때 아주 기쁠 수 있어요. 누가 보지 않아도 내가 했기 때문에, 그것을 내 안에 이야기로 간직할 수 있기 때문에요. 그게 사진처럼 남아 있는데 저는 그런 순간들을 수집하는 사람 같아요. 삶을 사는 것이 생존일 때는 그 기쁨을 많이 잊게 되는데 요즘은 다시 그게 돌아와서 기뻐요. 일상에서도 일탈을 찾아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낭만도 생겼어요.

 

다시 낭만이군요.


사람에게 유토피아에 대한 향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토피아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지만 그리워한다는 거예요. 낭만적인 사랑의 신화도 마찬가지고요. 인간이 가진 완벽한 관계에 대한 향수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 향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갈망을 일상의 낭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것을 향해 나아가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꿈꾸지 않으면 구체적인 일도 벌어지지 않으니까요. 낭만이나 일탈, 작은 귀여운 행동들을 일상에서 많이 하시길 바라요.

 

『구체적 사랑』  을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이 지금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읽었는데요. 작가님은 이 책을 어떤 분들에게 권하고 싶으세요?


어릴 때 늘 ‘왜 우리 가족은 아무 가족과도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성인이 돼서 보니 모든 가족이 저마다 지옥이었더라고요. 우리는 각자의 지옥을 살면서도 그 지옥을 발설하지 않고 숨겼어요. 모범적인 행복이 너무 세상에 많았으니까요. 저는 각자의 불행, 각자의 지옥이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 불행이 당신을 규정하는 전부가 아니라고요.


 

 

구체적 사랑이서희 저 | 한겨레출판
서투르지만 조금씩, 느리지만 올곧게, 열린 시선과 마음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노력과 애정을 기울이며 삶을 적극 살아내는 저자의 당찬 횡보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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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대수 “대중음악계 'Headless man'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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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사는 한대수다. 대중음악인 가운데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혼돈'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영사기를 통해 투영한다면 바로 그의 삶. 그를 규정하기 위한 노력들로 잉태해낸 수식어들조차 역설적으로 그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다. 

 

정보의 바다 속 자신을 다룬 자료들 대부분이 범람하는 페이크 뉴스라며 통탄하던 그가 지난 6월 에세이집  『나는 매일 뉴욕간다』  를 출간했다. 딸을 위해 되돌아온 고향 뉴욕을 '살아가는 곳'이라기보다 아직 '가고 있는 장소'로 관조하며 40년 뉴요커로서 진솔한 자화상을 담았다. 반세기 이상 찬찬히 쌓아올린 그의 모노리스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으로 뉴욕에서 이틀간 인터뷰를 부탁했다. 진솔한 일대일 대화에 가깝던 인터뷰, 장소는 첫 날 맨해튼 32번가 브로드웨이, 다음 날 퀸즈에 위치한 한대수 자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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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32번가, 브로드웨이에서 한대수를 만나다.

 

뉴욕에 가신지 3년 정도 됐다.  『나는 매일 뉴욕간다』  를 냈는데 뉴욕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전 세계 대도시에 거의 다 거주해봤다. 뉴욕만의 장점은 지금 여기 공원에서 앉아서 우리가 보고 있는 뷰가 말해주듯 세계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저기 누워있는 홈리스들, 벌써 하나, 둘, 셋이 넘지. 반대로 저기 지나가는 억만장자 양복쟁이들. 인종, 나이, 성별, 계층, 계급 구분 없이 다 볼 수 있다. 좋은 건 배우고 나쁜 것에서부터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것. 그리고 뉴욕은 전 세계의 수도다. 슬프게도 암살당했지만 뉴욕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레논, 말년을 소호에서 보낸 데이비드 보위 같은 록스타들도 많이 살았고.

 

단점이 있다면?

 

단점은 너무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주다 보니 생기는 총기사건 등. 무섭지 않나.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총이 문제다. 미국은 총으로 세워진 국가다보니 총을 없앨 수 없는 숙명이지. 또 하나, 너무 노후된 인프라 문제다. 현재가 내가 50년 전에 뉴욕에서 살 때보다 삶의 질이 떨어졌다. 인구 밀도가 급격히 늘어나기도 했고. 그래도 그 때나 지금이나 주위 건물들은 비슷하니 그 추억에 뉴욕에 살아가고. 고향이라 부르는 것이 맞겠다. 인종들 간의 갈등도 트럼프 이후 더 심해진다. 원래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 멜팅 팟(Melting pot)이라고 불렀는데 현재 뉴욕은 이미 끓어 넘쳐 멜티드 오버(Melted over) 된 것 같다. 

 

뉴요커로서 뉴욕의 음악적 스팟을 추천한다면?

 

예를 들어 앨범커버 배경이라던가.밥 딜런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 앨범커버가 웨스트 4번가에서 찍은 것은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애인과 4번가에서 동거하던 시절 쓴 곡 'Positively 4th Street'도 있지 않나. 조니 미첼, 제임스 테일러도 아마 아직 여기 살 것이고, 얼마 전에 작고한 레너드 코헨의 'Chelsea Hotel'이 바로 맨해튼에 있지. 

 

혹자는 한대수를 한국의 밥딜런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뉴요커지만 밥 딜런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닐 영이라 불러주었으면 한다. 30여년 전 라이브를 봤는데 그의 공연의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한 느낌으로 청중에 대한 배려가 덜하다고 느꼈고 이번 노벨상 시상식 불출석 에피소드도 지나친 오만함을 느꼈다. 이런 사람을 자신이 신이 된 마냥 행동하는 갓(God) 콤플렉스를 가졌다고도 한다. 닐 영과 나는 노래하는 스타일이나 삶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비슷하다고 본다. <After The Gold Rush> 앨범은 꼭 듣길.

 

'나만의 장소'가 있다면?

 

나는 상처가 많다. 앨범 <상처>도 있지 않나. 이혼 후 내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진 53번가 근처 파운탱(Fountain) 공원이었다. 음악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스트 빌리지 근처 톰프킨스(Tompkins) 스퀘어 공원도 자주 가는데, 지저분하지만 인간 고통의 냄새가 난다. 반스 앤 노블 같은 책가게에서는 편하게 휴식하며 고통을 치유하는 편이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말했는데 그 종착지가 바로 뉴욕인지.

 

아니다. 뉴욕은 딸을 세계인으로 키우려는 장소이고 나는 여기서 죽을 생각이 없다. 나는 서울이 좋다. 새벽에 값싸게 해장국 먹으러 나가는 낙이 있지 않는가. 한국 사람들의 그 가끔은 지나칠 정도의 정이 항상 그립다. 대중교통도 전 세계 최고고. 가장 중요한 것은, 뉴욕에 비해 서울 생활비가 1/3정도라는 것이다. 딸이 대학교 입학 후 독립하면 다시 한국에 가고 싶다. 그 때까지 살아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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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공연 계획은?

 

뉴욕 뉴저지 코넥티컷 세 개의 주에 한인이 60만명 가량 산다. 워낙 생활력이 뛰어나 거의들 자리 잡았고. 그래서 공연을 하면 6000명은 올 거라 생각했다. 3년 전 뉴욕 도착하자마자 맨해튼에서 규모에 비해 가장 사운드가 좋은 라디오 시티 뮤직홀 디렉터와 대화까지 마쳤다. 문제는 6000명이 모이지가 않는 것, 아니 모일 수가 없는 것. 교포들이 가진 것에 비해 문화생활을 즐기는 분위기가 아닌 환경임을 느꼈다. 보통 7-80년대에 여기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한국에서 공연문화를 접하기 어려웠고, 이민 와서는 워낙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비콘 극장(Beacon Theater) 2500석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워낙 절차가 복잡해서 멈춰있는 상황이다. 

 

예전에 “Art is like a fart”라며 예술은 방귀처럼 갑자기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아까 받은 명함을 보니 직함이 사진가와 저널리스트로 기재했고 뮤지션이 써져있지 않더라. '음악'이라는 예술욕은 현재 참고 있는 것인지. 

 

변명처럼 들릴 수 있지만, 내로라하는 대가들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새로이 대단한 것을 만드는 일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작곡은 영감에서 오는데 그 한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창작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있다고 할까. 새로운 자극을 통해 영감을 받는데 이제 웬만큼 살았다 보니 신선한 자극을 느끼기 힘들다. 

 

한대수하면 보통 포크에 기반을 둔 싱어송라이터로 바라본다. 오히려 훨씬 다양한 장르에 손댄 것 같은데. 흡사 끊임없이 욕망하고 갈망하는 개츠비가 떠오를 정도로.

 

장르라 하니 1989년 3집 <무한대>를 만들 때가 기억난다. 뉴욕에서 겪게 된 이혼의 고통은 상상보다 훨씬 흉악했고 이를 승화한 앨범이다. <무한대>를 녹음할 때, 대중음악인들에 '재즈'를 말하면 보통 떠올리는 장르는 '블루스'였다. 그래서 블루스를 자제한 재즈를 시도했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록이기도 하고. 

 

1990년 4집 <기억상실>은 당대 뉴욕에서 유행하던 최첨단의 시각을 접목한 앨범이다. 팻 매스니, 칙 코리아, 찰스 로이드 같은 뮤지션들을 많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 밖에는 이런 음악도 있고 우리도 이것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소개하고픈 사명감이 넘쳤다. 당시 다행히 잭 리(Jack Lee)라는 재즈 기타리스트가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프리재즈에 가까웠나.

 

그 다음 1992년 5집 <천사들의 담화> 들어봤으면 알겠지만 미니멀리즘 그 자체다. 왜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3,4 집이 영어 가사도 많고 아방가르드적이어서 대중에 외면을 받았다. 5집 찍겠다는 레코드사가 없었고 괴로운 마음에 그냥 뉴욕에서 출퇴근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다 불현듯 욕구가 샘솟고. 어떻게든 풀어야겠기에 피아노 1대와 집에서 녹음했지.

 

보위의 베를린 3부작과 비슷하게 무한대부터의 3부작의 영감 또한 뉴욕이라는 지역이었는지.

 

맞다. 저 시기는 힘든 시기였다. 이후 2000년대 앨범들은 비교적 편하게 작업했지. 2000년 <Eternal Sorrow> 만들 때가 기억난다. 아마 번역하자면 영원한 슬픔 정도로 해두자. 기타리스트 손무현이 프로듀싱을 아주 깔끔하게 했다. 이때는 우리나라 최고 세션들이 모였다. 함춘호, 이우창, 신연아 등. 2004년 작 <상처>도 경희대 녹음실에서 깔끔하게 했고. 그 때도 가장 유명한 세션들을 불렀고 지금은 뭐 이제 대가들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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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스의 저택에서,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

 

2015년 40주년 기념 리메이크 앨범 <Rebirth> 참여진을 잠깐 나열해보자. 조영남 전인권 이선희 신대철 등. 더 말하면 입이 아플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역사다. 

 

그 앨범이 프로듀싱도 잘 되었고 정말 좋은데 특히 10번 트랙 'Run baby run'을 들어보기 바란다. 김목경 신대철 김도균 손무현 이렇게 블루스 기타 잘 치는 사람들이 다 모였다. 이를 4g라 하지. 흥겹게 녹음한 기억이 있고 완성품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 앨범들이 다 지금 LP로 재발매가 되었다. 이를 LP로 들어보았는지?

 

집에 턴테이블이 없어서 LP로 들어보진 못했다. 몇십 년 전에 턴테이블과 LP콜렉션을 다 헐값에 넘겼지. 요새는 음악을 들을 때 거의 CD로 듣는다. 최근에는 딸 양호가 유튜브를 연결해주었는데 디지털 음원에는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이나믹 레인지가 너무 얇다. 다시 말해 음폭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요즘에 자주 듣는 음악은? 감동받은 음악이 있다면.

 

음악이 너무 많다. 예전에는 음악다방에 가야만 DJ가 들려주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릴 때 명륜동에 살았는데 퀸 다방에서 비틀스 애비로드 앨범을 들은 추억이 생각나고. 그게 나의 자양분이다. 요즘 문제는 음식점, 옷가게, 책가게에도 다 음악이 나오는 것. 강요되는 음악들의 과잉이다. 음악 청취의 소중함이 퇴색되니 위대한 음악가보다는 엔터테이너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시대의 조류일 수 있지만. 가끔은 음악이 없었으면 좋겠다. 목소리가 듣기 좋은 사람과의 대화, 그 얼마나 좋은가. 지금 공원의 바람소리는 또 어떻고.

 

어쩌면 음악 과잉의 시대에는 침묵도 음악이 될 수 있겠다. 존 레논 <Mind Games>의 3초 간 침묵하는 곡 'Nutopian International Anthem'처럼.

 

정확한 지적이다. '침묵'도 음악이다. 나에게도 <침묵>이라는 시집과 5집 <천사들의 담화>에 실린 '침묵'이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말 그대로 침묵을 담았다. 침묵과 연관된 곡으로 5집과 묶이는 4집 <기억상실>에서 가장 아끼는 'Headless man'이라는 곡도 있다.

 

 'Headless man'은 어떤 곡인지. 지금 보니 영어 가사가 파격적이다.

 

아포칼립스에 따르면 지구가 멸망할 때 'Headless horseman'이 지구를 누비며 구도한다고 한다. 내가 대중음악계 'Headless man'이 되고 싶은 열망도 담겨있을 것이다. 또 중의적으로 제목을 직역하면 머리 없는 남자, 다시 말해 머리가 빈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다. 가사 중 'Headless man walking down the 5th ave & 53rd st'이 있다. 이 장소는 뉴욕현대미술관 MOMA와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 있는 곳으로 누가 뭐래도 지구의 중심이다. 당시 다니던 직장인 사진스튜디오가 그 근처기도 했고. 

 

예전 인터뷰에서 특별히 아끼는 앨범이나 곡은 없다고 했는데 한대수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 앨범 감상순서를 추천하자면.

 

순수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이 많은 2집 <고무신>으로 시작해 <무한대>, <Eternal Sorrow> 후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정도 듣고 2000년대의 <고민>, <상처> 순으로 가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 의외로 1974년작 1집 <멀고 먼 길>이 가장 어려운 앨범이다.

 

예상과 다르다. 대중들은 오히려 '행복의 나라', '물 좀 주소'로 1집이 가장 익숙할 텐데. 

 

맞다. 45년이나 된 앨범이고. 그러나 1집은 편하게 들을 앨범은 결코 아니다. 오케스트레이션도 별로 없고. 들을수록 색다를 어려운 음악이다. 푹 빠져들어보길 추천한다. <천사들의 담화>와 <욕망>은 내가 생각해도 괴짜다. 특히 <욕망>은 장영규가 프로듀싱 했고 달파란, 방준석 등과 같이 작업한 재밌는 앨범이다. <지렁이>도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만 하고. 정통 록을 들으려면 프로듀서 존 롤로(John Rollo)와 뉴욕에서 작업한 1999년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도 추천한다. 당시 말랑말랑한 록이 유행이었는데 너무 카랑카랑하게 때려버려서 망했지만. 즐겁게 듣기에는 40주년 앨범 <Rebirth>가 좋다. 참여한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특히 이상은과 이현도 리메이크는 듣고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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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국에서 <할리우드와 피터의 늑대>라는 극의 내레이션을 맡았는데.

 

재미있게 했다. 미국 버전에 내레이션은 앨리스 쿠퍼가 맡았다. 앨리스 쿠퍼도 쇼크록을 하고 집안이 목회 쪽이고. 앨리스 쿠퍼는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지만 좋아한다, 나는 유행하는 아티스트들은 거의 다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덜 알려진 뮤지션 중에 추천해주고 싶은 이들이 많다. 

 

가끔은 주류에서 벗어난 이들이 당길 때가 있다.

 

'I put a spell on you'의 주인공 스크리밍 제이호킨스(Screaming Jay Hawkins)를 들어보라. 할리우드 살 때 150명 들어갈 작은 클럽에서 보고 완전히 팬이 되었다. 1929년생 스크리밍 제이호킨스가 2000년에 죽고 자기가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2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유명한 믹재거도 자식이 10명 이하지 않나. 한 수 위인 대단한 아티스트다. 전자음악 계통에서 장 미셸 자르(Jean-Michel Jarre)를 좋아하고 브라이언 이노 솔로 앨범들도 추천한다. 

 

조선일보에서 4년 정도 연재한 칼럼 '사는 게 제기랄' 제목이 인상깊었다.

 

이혼 후 사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죽는 것도 무서웠다.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이지.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뭐 그런 의미다. 원래 제목은 ‘한대수의 바람과 나’였다. 김민기 김광석이 부른 '바람과 나' 작곡한 게 나다. 사실 원하던 제목은 'Life is bitch and then you die'였는데 편집장이 조금 순화했지. 결국 둘 다 조금씩 양보한 셈이다. 조선일보도 나를 칼럼니스트로 쓴 것도 용감했던 것 같다. 칼럼도 다시 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콘서트든 책이던 오퍼만 들어오면 다 할 준비가 되어있다.

 

젊은 시절 뉴욕에서 활동한 징키스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뉴요커들이었지. 다들 투잡 뛰었고. 이삿짐을 나르거나 포르노 배우를 하는 멤버도 있었다. 잘 안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마스터테이프도 소실되었다. 그 때 내가 20대 초반. 더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1년 조금 넘게 하고 빨리 포기했지. 주위에서 블론디, 토킹헤드처럼 같이 공연하던 밴드들은 막 잘나가고. 뉴욕을 주도하는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젊은 음악가들을 밀어주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들이 유대인=돈으로 생각하는데 유대인=돈=예술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지원이 없던 것이 실패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당시 록스타가 되고 싶었다. 충분한 백그라운드가 있었다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실감이 가끔 들었다. 예를 들어 브루스 리가<Enter The Dragon>으로 서양에서 최초로 성공한 동양인이 되었는데, 내가 그 때 음악에만 전념해 첫 번째 동양인 록스타가 되었더라면. 

 

향후 계획이 있다면.

 

이번에 심장 때문에 응급실에 2번 다녀와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왔다. 지금 내 심장에 달려있는 기계를 보라. 장수하고 싶은데 내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연구해본 결과 록스타들은 대개 일찍 죽는다. 27살 아니면 급사. 믹 재거 같은 전설은 아직 살아있지만 그도 최근에 갑작스레 안 좋아진 건강 때문에 투어 스케줄을 통째로 날렸다. 매카트니 정도가 아직 정정하지. 나도 그처럼 몸 상태를 유지해 가능하면 노래도 계속 하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공연하고 싶다. 건강관리에 힘써서 하늘이 허락하는 한 오래 살아보겠다. 

 

마지막으로 좌우명을 말해달라.아까 말하지 않았나.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 하하하. 

 

 

인터뷰 : 이기찬

사진 : 이기찬

정리 : 이기찬


이기찬(Geechan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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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김연수, 쓰고 싶은 걸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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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란, 이야기가 술술 나올 때, 혹은 마음에 드는 문장을 썼을 때라고 지레짐작했다. 김연수에게도 같은 답을 들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사람들과 잘 지낼 때가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후 6시가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 소설가 김연수. 날씨가 좋은 날의 오후 6시, FM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흘러나오면 무조건 행복해진단다. 10년 이상 써온 산문을  『시절일기』  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괴로울 때마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쓴 글들이다. 교정지를 보면서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를 누가 읽어줄까?’ 걱정했다. 하지만 읽고 또 읽다 보니 안간힘 속 작은 빛들이 보였다. 시절을 잘 보내기 위해 쓴 일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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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계속 써야 한다는 마음

 

초고가 원고지 2000매 분량이었다고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쓴 글들이니까요. 발표한 글도 있고 혼자만 읽은 글도 있는데요. 모아놓고 보니 한 시절이 지나갔구나 싶어요. 과거의 생각을 다시 읽어보는 일이 제게 많은 도움을 주더라고요. 사회적인 사건들도 약간 정리가 됐고요. 지금 생각과 다른 부분은 조금 고치기도 했어요. 5부에는 2000년대 초기에 쓴 글도 있으니까요. 순수한 일기라면 시간 순서대로 나눠도 좋았겠지만, 그건 아니니까 주제별로 장을 나눴어요.

 

다음 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천천히 읽어야 하는 글들이 많았어요.

 

요즘 에세이가 많이 나오잖아요. 서점에 가보면 트렌드가 읽히는데, 이번 책을 내고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도 약간은 고민했죠.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나도 가독성 있는 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나라는 사람의 글 쓰는 스타일이 있는데 꼭 트렌드에 따라야 하나?’, ‘내가 잘하는 걸 그냥 해도 괜찮을까?’ 그런데 40대를 지나보니, 시간이 지나면 트렌드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긴 안목으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이 다 바뀌어 버릴 것 같은 불안이 없지 않지만, 믿음을 갖고 쓰는 거죠.

 

신작 소설이 먼저 나올 줄 알았습니다.

 

제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말인데요. (웃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산문에 무게를 안 뒀는데, 산문을 쓰니까 사람들과 소통이 잘되더라고요. 산문이 중요한 장르라는 걸 알게 됐죠. 물론 지금도 소설에 10배, 20배 정도 더 많이 공을 들이고 있어요. 작가 입장에서 보면 소설을 펴내는 게 훨씬 어렵고, 어렵기 때문에 책이 나오면 기쁨이 더 커요. 소설을 빨리 내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네요.

 

사회적 이슈를 다룬 글들이 많아서인지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야 하는 거죠. 힘든 질문도 해야했고요.

 

10년을 돌아보니까 제게 가장 중요했던 사건이 세월호 참사였어요. 저의 40대와 겹쳐지면서 염세적인 태도를 갖게 됐어요. 며칠 전 <채널예스> 기사를 찾아봤더니, 2014년 제 인터뷰 제목이 ‘왜 이렇게 나쁜 세계가 존재하는가’예요. 정말 그랬거든요.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나빠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019년이 된 지금, 돌이켜보면 배운 것도 많아요.

 

단편 「ps 사랑의 단상, 2014년」으로 책이 끝납니다. 이 소설을 마지막 챕터에 넣은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2014년에 쓴 소설이었으니까 공교롭게 들어가게 됐는데요. 어쩌면 이 이야기가 내가 발견한 메시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절일기』  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물음은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예요. 이 책을 내면서 세월호 사건이 나에게 너무 중요했다는 걸 알았어요. 소설을 쓸 때는 몰랐죠.

 

세월호 사건은 ‘조심스럽지만 계속 써야 한다. 작은 환기라도 될 수 있다면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작가들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비슷한 마음이 있으셨을 것 같고요.

 

제가 산문을 많이 쓰는 이유는 소설은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시급하게 써야 할 글들이 때때로 생기는데요. 산문은 모르겠는데 소설은 실패할 가능성이 굉장히 많아요. 감정 과잉이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어쨌든 계속 써야 한다는 마음이 있죠.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잘 써보겠다는 문제가 아니라 한 번이라도 더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마음.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51쪽에 “그러므로 모든 소설가의 데뷔작은 검은색이어야 한다”고 쓰셨어요. 만약 산문집을 색으로 비유한다면, 어떤 색깔이 될까요?

 

무지개색이요. 혼란과 방황, 여러가지 감정이 다 들어 있어서 정리가 잘 안 된 느낌이라. (웃음) 딱 정리가 되면 좋겠는데요. 책으로 묶인 글을 보면 이게 내 모습이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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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계속 없어지는 노력

 

김연수 작가의 책을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산문이 좋아 소설을 찾아 읽는 독자도 생길 거고요. 예전에 한 시인께 질문한 적이 있어요. “시집보다 산문집이 더 인기가 많으면 서운하지 않냐?”고. 시인은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나의 산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 시도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말씀해주신 이야기가 일반적인 반응일 것 같은데요. 시인과 소설가는 약간 달라요. 시인은 시를 쓸 때의 시인과 산문집을 쓸 때의 시인이 같은 사람인데요. 소설가는 소설을 쓸 때의 소설가와 산문을 쓸 때의 소설가가 조금 달라요. 예를 들면  『시절일기』  는 40대 김연수가 들어 있지만 소설은 40대에만 얽매일 수 없죠. 산문집을 계기로 소설을 읽어주시는 분이 있으면 좋겠지만, 아마 이런 식의 불일치는 경험하실 거예요.

 

“나는 다시 태어나도 글을 쓸 것”이라고 말한 기사를 읽었어요. 대개의 작가들은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를 테면 목수, 가수, 음악가 같은.

 

저는 그냥 쓰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 같아요. 출판을 전제로 한 글을 떠나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굉장히 좋아요. 글을 쓸 때 소리가 나잖아요. 키보드를 두들기거나 종이에 연필로 써야 하니까. 이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리듬이 유지되는 것이 되게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태어나도 글을 쓰고 싶어요. 꼭 작가가 아니라도 계속해서 끄적거리는 사람이고 싶은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가가 될 수도 있겠고, 책으로 나오는 일이 너무 괴롭지는 않겠죠.

 

2017년 4월에 쓰신 글인데요. 161쪽에 “처음에는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싫었다”고 쓰셨어요.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판단하는 데 걸리는 이 지체의 시간이 나는 좋다”고 보태셨고요. 나이가 들면 점점 확언, 단언하는 일에 머뭇거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 

 

소설가에게는 테크닉이 하나 필요한데요. 바로 본인이 사라지는 법을 아는 거예요. 왜냐면 소설가가 누군가를 대상으로 글을 쓴다면, 그 대상에게 갖고 있는 선입견을 모두 닫아버려야 하잖아요.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일을 계속 유보해야 하죠. 그래야 대상의 진짜 모습에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나 자신이 계속 없어지는 노력을 해야 해요.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노력은 일단 책을 계속 읽는 거예요. 만약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고 하면, 그녀가 접했을 만한 환경, 정보에 관한 걸 계속 읽거나 그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쓴 글을 계속 읽어요. 이 과정에서 어떠한 판단도 하면 안 되고요. 자동적으로 글이 나올 때까지 계속 읽는 거예요.

 

“겸손이 세계의 실체에 접근하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163쪽) 이 문장과 연결이 되겠네요.

 

책에는 겸손이라고 썼지만, 제 판단을 유보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거예요. 계속 소설을 쓰다 보니까 어쨌든 제가 내성적인 사람이라서 그게 잘 돼요. 하지만 처음 소설가로 데뷔했을 때는 반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네 자아를 펼쳐 보라. 해방 시키라”는 말을 자주 들었죠. 제 경우에는 시를 쓸 때는 이게 잘됐는데, 소설을 쓰니까 당장 반대가 되더라고요. 독자들도 작가의 자아를 통과해서 읽어야 하니까 불편하고요. 몇 번을 쓰고 난 후, 없어지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요. 방법을 찾다가 나를 없애는 기술을 익혔고요. 감각적인 정보를 많이 수집하다 보면 가능해져요. 평상시에도 계속 연습해야 하니까 주장은 계속 약해지죠. 하지만 주장이 약해져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소설을 잘 쓰고 싶으면 계속 연습해야 하죠.

 

『시절일기』  를 보면서 2014년에 출간된  『청춘의 문장들  』  를 다시 읽었어요. 이 에세이는 『청춘의 문장들』  이 나오고 출간 10년을 기념해서 나온 책이라, 김연수 작가의 여전한 생각, 달라진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읽다 보니 궁금해지더라고요. 김연수 작가가 1980년대에 태어난 소설가라면 어땠을까. 굉장히 다른 작품을 썼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상도 못하겠는데요. 어땠을까요? 아마 1980년대에 태어났다면 경험이 완전히 다르겠죠? 저는 1970년대의 기억은 모두 흑백이에요. 1980년대부터는 컬러고요. 우리나라에 컬러TV 방송이 시작된 게 아마 1980년도일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어릴 때는 흑백TV를 봤고 학창시절이 돼서야 컬러TV를 봤기 때문에 옛날 느낌의 한국과 풍요로운 한국의 모습이 혼재된 이미지가 있어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에 소재로 쓰기도 했어요. 약간씩 다른 것들이 합쳐지면 입체가 된다는 이야기인데요. 어쩔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생긴 입체감, 이게 제 정체성인 거예요.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그냥 혼자서 팝송을 듣고 싶은 마음, 그런 거예요.

 

소설가 김연수를 말할 때 항상 따라붙는 단어가 ‘청춘’이었잖아요. 아직도 왠지 ‘중년’은 어색해요.

 

『청춘의 문장들』  이 나온 지 벌써 15년이 넘었는데요. 생각보다 금방 지나간 것 같아요. 오히려 과거에 쓴 글들이 더 노인네 같은 느낌도 들어요. 인생은 이런 거라고, 알려주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저를 보면 큰 차이는 없어요. 나이가 들면서 무뎌지는 것들이 있지만, 경험이 많다고 점점 나아지거나 지혜가 생기진 않아요. 지혜는 개인적인 노력의 결과로 생기는 것 같아요. 다만 노하우 같은 건 있을 텐데요. 대개 사람과의 관계 문제예요. 사람을 대하는 부분에 있어서 좀 더 진지해졌다고 할까요? 능숙해진 건 아니고요. 예전에는 내성적이어서, 젊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몰랐다면, 지금은 좀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예요. 하지만 큰 차이는 없어요. (웃음)

 

잘하게 된 것도 있지 않나요?

 

빨리 반성하고 빨리 사과하는 일, 그건 조금 잘하게 됐어요. 왜냐면 내가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빨리 조치하는 것이 낫다, 그건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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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협조_ 서점, 리스본

 

 

무엇이 중요하지?

 

예전에는 작품만 좋으면 작가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아니에요. 작품 외적인 것들도 좋아야 한 작가, 그의 책을 좋아하게 돼요. 자연스러운 변화이긴 한데, 작가 입장에서는 힘들 수도 있어요. 작품과 완전히 구별되길 바라는 마음도 클 것 같고요.

 

소설은 픽션이잖아요. 창작을 하는 첫 번째 동기가 소설 속으로 도망가는 일이거든요. 제가 1994년에 등단했는데, 그때는 책 날개에 작가 사진도 안 실었어요. 대중적인 소설가들은 사진을 실었지만 대개의 소설가들은 작품 속에 숨어 있었어요. 산문집을 낸 소설가도 많지 않았고요. 작가가 드러나는 걸 작가도 싫어하고 독자도 싫어했죠. 이 사람의 인생을 우리가 알게 뭐야? 였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어서 불가능해요. 숨어서 살 수 없게 됐으니까 작가들이 힘들긴 하죠. 최근에 한 젊은 소설가가 SNS에 올렸더라고요. 자기 말고 소설을 봐달라고.

 

“체력과 정신력이 행복하게 만나는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그 시기를 좀 지났는데,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 소설 출간이 점점 뒤로 밀려가고 있죠. (웃음) 아무튼 여유가 생기긴 했어요. 좋은 의미고요. 체력은 예전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초조해 하지 말고 쓰고 싶은 걸 쓰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중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어요. 후자가 줄어든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간혹 힘들기도 하죠.

 

불안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가 있어요. 무엇이 정답인지 모를 때가 있죠. 하지만 ‘무엇이 중요하지?’라는 질문을 자꾸 하려고 해요. 왜 처음에 글을 쓰려고 했지? 그걸 생각하면, 아닌 건 아닌 게 맞아요.

 

긴장감을 조금 덜 가져도 되는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저는 고민이나 의문이 들어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에요. 만약 고민이 해결돼서 편해지면 글을 안 쓸 것 같아요. 다른 걸로 먹고 살 수 없으면, 쓰긴 하겠지만 그렇게 많이 쓰진 않을 것 같아요. 지금은 여전히 고민이 있고 의문이 있어서 많은 글을 쓰는 상태예요. 만약 해결된다면 팟캐스트를 하겠네요. 말로 할 수 있는 강연을 할 수도 있겠고요.

 

“소설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경험을 해준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산문은 어떤 경험을 줄까요?

 

마찬가지 아닐까요. 글쓰기의 가장 큰 효용이 한 번 더 쓰는 거잖아요. 글을 쓰려면 해석해야 하고요. 제가 영상, 사진은 덜 신뢰하는 이유는 너무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서예요. 같은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이 달라지진 않는 거죠. 그런데 글은 좀 달라요. 글을 쓸 때의 내 상태에 따라 어떤 사람이 좋아졌다가 싫어지기도 하고, 해석이 여러 번 바뀌게 돼요. 역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바라보기 나름인 거예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일어난 일이 다르게 해석돼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저 사람 어떻게 살아?’ 불쌍해 할 수 있지만, 본인은 전혀 다를 수 있거든요. 글쓰기를 통해 가능한 일이죠. 그것이 소설이든 산문이든.

 

페르난도 페소아, 안토니오 타부키, 줌파 라히리 등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도 많이 쓰셨어요. 최근에 발견한 좋은 책, 작가는 누구인가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를 쓴 마쓰이에 마사시의 글이 좋았어요. 작가가 편집자 출신이라서 구체적인 단어를 써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가들은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에요. 명징한 세계를 써서 좋아합니다.

 

또 하나의 시절이 지나 10년 후가 됐다고 가정해 볼게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꿈은 아니고 오래 전부터 갖고 있는 몽상이 하나 있어요. 지방 소도시에 2년 정도 머무르면서 그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거예요. 지자체에서 거처와 약간의 생활을 좀 도와주신다면. (웃음) 동네 아이들에게 소설을 가르쳐보고 싶어요. 생각만 해도 좋네요. 동네 사람들도 잘해주실 것 같고.

 

『시절일기』  로 김연수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독자가 있다면, 다음 책으로는 어떤 작품을 읽으면 좋을까요?

 

이 산문집과 연결 짓는다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으면 좋겠네요.



 

 

시절일기김연수 저 | 레제
그는 끊임없이, 쓰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멈칫거리고 그리고 다시 쓰는 사람이다. 시를 발표하고 장편소설을 펴내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새 이십오 년, 그는 여전히 글쓰기라는 업業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그 질문하는 일이 그에게는 곧 ‘쓰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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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맛은 본능?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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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맛이 없다’, ‘떡볶이는 떡볶이가 아니다’와 같은 도발적인 메시지로 세간의 이목을 끈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행복한 맛여행』 ,   『허기진 도시의 밭은 식탐』   등을 펴내며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소개한 그가 이번에는 본능 너머에 있는 ‘숨은 맛’을 찾아 나섰다.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질문에 기반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치킨, 떡볶이, 삼겹살 등의 한국 음식을 재해석한 결과다. 개인의 입맛을 조종하는 자본과 정치 권력에 주목한 그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할 것을 권한다.

 

이 책은 한국인이 한국 음식에 붙여둔 판타지를 읽어내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 작업의 도구로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였다. 인문학적 상상력이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주제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끝없이 해대는 일이다. 그 “왜?”라는 질문과 그로 인해 얻어내는 대답이라는 것도 결국은 질문자의 욕망이 투사된 판타지일 뿐이다.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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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본능이라는 착각


2년여 만에 나온 책입니다. 이전 책에서 ‘음식은 문화다’라는 식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에서는 이를 전제로 다른 측면의 구체적 사례를 설명하셨어요. 맥락은 같지만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허기진 도시의 밭은 식탐』  이 우리 문화적 측면에 기대어 음식을 소개한 책이라면,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는  “우리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이 진짜 맛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약간 결이 다를 수 있지만 제가 원래 하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띠지에 ‘치킨은 맛이 없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이야기를 한 지 8년 정도 됐고요. ‘떡볶이가 진짜 맛있는 음식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도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다만 이번 책에서 자료를 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죠.

 

‘맛있다’는 감각에 대한 의문인 건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본인의 감각에 따라서 맛을 주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런 생각에 의문을 던지는 거죠. 누군가가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런 생각의 시초는 무엇인가요?


맛을 느끼는 게 본능이라면 인류, 즉 전 세계의 호모 사피엔스들이 똑같은 입맛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미국 사람이나 인도 사람이나 일본 사람이나 같아야죠. 그렇지 않잖아요. 지역이나 민족마다 좋아하는 맛, 싫어하는 맛이 달라요. 맛의 기준은 그 사람이 어느 지역에서 살았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한국인이 김치, 떡볶이, 치킨을 좋아하는 것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죠. 미국인이나 동남아시아인도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다면 한국인의 입맛과 유사해집니다. 그러니까 맛있다, 맛없다는 판단은 본능이 아니죠. 그렇다면 무엇이 내 기호에 관여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인간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많이 주어진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다’(27쪽)는 말과 통하는 이야기네요.


그렇죠. 자신의 미각을 의심하라는 거예요. 동물들은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먹을 수 없는 것인지 본능으로 분별합니다. 인간은 본능을 뛰어넘어요.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인간이 느끼는 맛도 사회적 결과물이죠. 자본과 정치 권력이 산업 국가를 운영하는 데 유리한 음식을 대중에게 제안한, 심하게 말하면 강제한 것일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해야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어요. ‘그냥 내가 맛있어서 먹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계속 그것만 먹겠지만, 사회적으로 주어진 음식 또는 맛이라는 걸 생각하면 ‘내가 왜 이것밖에 먹을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더 양질의 음식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요.

 

인간 집단이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할 것인지 판단하는 데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집단의 구성원에게 넉넉하게 주어질 수 있는 음식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소속 집단에게 많이 주어진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다. 이는 인간의 안정 욕구와 관련이 있다.(고교 사회 시간에 배운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을 떠올려보시길 바란다.) 많이 주어진 음식을 맛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속한 집단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27쪽)

 

사회적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맛이라는 게 존재하나요?


물론 본능적 영역도 있어요. 그러니까 ‘문명의 맛’과 '본능의 맛’이 있고, 인간은 이 두 개가 뒤섞인 상태에서 맛을 느끼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문명의 맛’은 의식하지 않고 여기서 딱 하나만 떼서 ‘본능’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럼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겠네요?


인류 보편적인 일이죠. 사회적 맛이라는 개념을 이해는 게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사회 환경에 의해서 ‘어떤 음식이 맛있다’라고 인간에게 세팅되면 우리 몸은 그걸 본능으로 느껴요. 착각하게 만들죠.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건 커피가 맛있기 때문이지 자본이 값싸게 커피를 사 와서 팔고, 열심히 광고해서 우리가 커피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죠. 이건 황교익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뇌과학, 철학, 인류학에서 이미 논의된 것들이죠. 그런데 이런 학문에서 다루는 내용은 어려워서 대중이 읽기 힘들어요. 서양 음식에 대입해서 우리에게 낯설기도 하고요. 저는 이미 형성된 철학적, 과학적 논의에 우리 일상의 음식을 대입해서 풀어 놓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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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맛을 경계하기

 

저는 카레를 좋아하는데요. ‘그럼 내가 느끼는 카레의 맛이 문명의 맛인가 아니면 본능의 맛인가’하고 생각해 봤어요.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구분하죠?


바로 그거예요. 거기까지만 하면 됩니다. (웃음) 알 수 없어요. 그게 정상이에요. 의심만 하면 돼요. 내 감각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이 단계가 인문학적 사고죠. 답은 없어요. 인문학에 답이 어디 있어요.

 

“치킨은 맛이 없다”,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다”라는 발언도 정답이라기보다 앞서 말씀하신 ‘의심하는 태도’를 권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할 수 있나요?


맞습니다. 그 생각까지 잘 안 가니까 해보라는 거예요. 이 책의 내용을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겠죠. ‘내가 맛있다는데 뭔 소리야?’ 하는 거죠. 우리는 자신이 본능에 의해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자본과 정치 권력이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리고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게, 의심하면 안 되게끔 해 놓았죠. 그래서 자꾸 “왜?”라고 물어야 해요.

 

맛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이 뭔가요?


없어요. 특정한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면 그 외에 다른 것을 아래로 보기 때문이에요.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자주 선택하는 음식은 있을 것 같은데요.


외식공간에서 습관적으로 먹는 음식을 꼽자면 짜장면이에요. 유년 시절의 어떤 기억이 이 기호에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어릴 때 짜장면은 보상의 음식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짜장면을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 먹었잖아요. 제가 뭔가를 잘해서 칭찬받을 때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짜장면이 칭찬, 위로, 사랑과 연결되고 그때의 기억을 호출하는 거죠. 책 뒷면에 쓴 ‘사회적 맛이 개인에게는 추억,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말과 같은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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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푸드는 한식이 아니다

 

‘인간을 시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음식’(109쪽)으로 슬로푸드를 설명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만들었어요. 모든 생각은 사회적 조건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슬로푸드도 마찬가지죠. 1984년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슬로푸드가 처음 생겼어요. 당시 유럽에서는 GATT 체제 안에서 세계화가 진행 중이었고, 유럽 입장에서 세계화는 미국화와 다름없었습니다. 신대륙의 음식은 유럽 사람들이 이주해서 만든 거라 유럽사람들이 먹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았거든요. 유럽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미국의 농산물과 가공품들이 낮은 가격으로 유럽으로 들어오는 거였죠. 그래서 유럽에서 자국의 가공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문화 장벽을 세운 거예요. 세계화를 반대하고 지역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한다는 이데올로기 즉, 슬로푸드를 만들어 낸 거죠.

 

한국에서는 슬로푸드의 의미가 퇴색됐다고요.


우리는 흔히 한식이 슬로푸드라고 생각해요. 슬로푸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패스트푸드가 왜 생겼는지 알아야 해요. 패스트푸드는 노동자가 음식을 먹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생긴 음식이에요. 자본이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해 만든 음식이죠. ‘산업 음식’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해요. 패스트푸드가 생긴 배경이야말로 자본이 어떻게 우리 먹을거리를 강제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고 슬로푸드는 이런 자본의 행태를 거부하는 방식 중 하나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슬로푸드를 단순히 한식, 또는 천천히 조리해 먹는 음식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슬로푸드는 그 제조법의 특징을 분류 기준으로 삼아 만든 단어가 아니다. 사회,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용어이다. 운동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슬로푸드라는 단어에는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지향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반대의 대상은 세계화이고 지향점은 지역적 삶이다. (106쪽)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회주의라는 키워드로 모든 주제가 꿰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사회주의자라고 그랬잖아요. (웃음)

 

한국에서 슬로푸드의 본질이 퇴색된 이유로 ‘슬로푸드를 한국에 이식한 이들은 한국인의 레드 콤플렉스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110쪽)고 하셨는데 이런 점에서 자유로우신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사회주의 혁명을 해서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와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저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글쓰기라는 노동을 팔아서 사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인간이 조금 더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고 하면 긴 흐름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으로 가는 게 맞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는 거죠. 미래를 어떻게 그리는지에 따라서 현재의 방향이 정해지잖아요. ‘더 나은 세상이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데올로기나 이상을 가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 많잖아요. (웃음) 생각의 자유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세상이 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 어렵게 이런 세상을 얻었으니 최대한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야죠

 

 

음식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문화’

 

조선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한희순 씨가 작성한 보고서를 소개(251쪽)하면서 궁중음식이 일본 왕가의 음식이라고 하셨어요.


1970년대에 한희순 씨가 조선 궁중음식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 작성된 보고서를 보면 조선 궁중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음식이 기록돼 있어요. 그중에서도 송이 전골 조리법은 스키야키 조리법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같아요. 원래 문헌에 있던 자료인데 이번에 제가 처음으로 소개한 거예요.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과연 우리가 아는 조선 궁중음식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죠.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는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는 자료예요. 이걸 가지고 토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책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한국 음식 문화가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 음식도 왔다 갔다 해요. 뒤섞이기 마련이죠.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과 일본의 음식이 많이 섞였어요. 김치만큼 많이 먹는 단무지가 그렇고, 빙수, 붕어빵, 단팥빵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일제강점기 자체가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잖아요. 많은 사람이 그 시간 동안 우리 것이 왜곡되고 말살되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혼을 살리기 위해서 조선 시대 음식을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게 한국인이 가지는 한국 음식에 대한 시각이에요. 그래서 한국 전통 음식에 관한 담론을 보면 일제 강점기가 없죠. 다 조선 시대예요. 그런데 문화를 이야기할 때 어떤 특정한 시간만 분리할 수는 없어요. 우리 삶 안에 그 시간이 들어와 있는 거니까. 우리는 일부러 이런 걸 이야기하지 않아요. 치욕스러운 역사를 들추는 거로 생각하고 묻으려고 하죠. 그러면 그때를 살던 민중의 삶이 묻히는 거예요. 

 

뒤섞였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반대로 한국 음식이 일본에 간 경우는 없나요?


많죠. 대표적인 음식이 김치예요. 일본 사람들 일상에 김치가 굉장히 깊이 들어가 있어요. 우리가 분식집에서 단무지 먹는 것처럼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김치를 한국식 김치라고 표시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 ‘화풍 김치’, 즉 일본식 김치라고 표시하기 시작했죠. 지금 우리가 먹는 단무지도 일본의 다꽝이 와서 변한 거잖아요. 김치도 일본에 가서 일본 사람 식성에 맞게 변했어요. 그런데 이런 현상을 민족 감정에 기반해서 “우리 것이 더 우수해서…”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일본에 있는 한국 음식보다 한국에 있는 일본 음식의 종류가 훨씬 많은데요. 다른 나라에서 한국 음식이 번성하는 이유를 ‘한국 음식이 우수해서’로 이해하면 이걸 그대로 받아서 “일본 음식이 우수해서 한국에서 이렇게 번성한 거야”라고 해야 하잖아요. 음식은 문화고 문화에 우열은 없어요. 음식은 그냥 사람 따라 넘나들 뿐이죠.

 

유튜브에서 황교익TV를 방송 중이에요.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시나요?


젊은 애들이 유튜브를 많이 본다고 하니까 젊은 애들한테 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요. 음식과 관련된 거 아무거나요.

 

대본 직접 쓰시나요?


대본 없어요. 원래 대본 없이 합니다. <수요미식회> 촬영할 때도 내가 말하는 순서를 확인하는 용도로 봤었죠. (웃음)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지루하다는 사람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유튜브는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해요. 재미 요소가 중요하죠. 그런데 황교익TV는 재미없어요. 젊은이들이 관심 있어 할 만한 유희적 요소가 없죠. 그래서 제가 재미난 분장을 해서 나가 볼까…(웃음)

 

이후의 출간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가 황교익의 밥상 인문학 1권이에요. 2권에서 일상 음식을 더욱 섬세하게 들여다본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를테면 ‘생일날 왜 미역국을 먹지?’, ‘왜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지?’와 같은 것들이요. 1권과 마찬가지로 ‘왜?’라는 질문에 기반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일상 음식을 탐구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어서 3권에는 평생 먹어온 음식을 미식적 관점에서 소개하는 일종의 연대기를 담을 예정이고요.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황교익 저 | 지식너머
모두 읽고 나면 음식에 대한 판타지가 걷히고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 사회가 나를 추동하고 제어하고 있던 내밀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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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동우, 말하기의 제1법칙 “최대한 말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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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머릿속에서는 완벽하게 정리된 것 같았는데 막상 입을 열자 두서없이 중언부언했던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말하기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말하는 순간이 아니라 말하기 전 준비 과정”이라고 말하는  『나는 심플하게 말한다』  는 ‘말하기의 10가지 법칙’을 알려준다. 심플하게 말하는 방법의 핵심은 세 가지다. “정보를 취합하고, 맥락 속에서 핵심을 찾고, 듣는 사람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요약정리의 고수’라 불리는 이동우 저자는 10분 남짓한 영상 속에 책 한 권의 핵심을 담아 소개하고 있다. 1인 기업 ‘이동우콘텐츠연구소’를 운영하며 만들어낸 북큐레이팅 콘텐츠는 SK, CJ, 한화, 현대모비스, 산업은행 등 50여개 기업에 소개되고 있다. 3년째 네이버 오디오클립 비즈니스 분야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동우의 10분 독서>, KBS 라디오 <생방송 토요일 아침입니다>의 ‘라디오 성공전략’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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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말하지 말 것


책의 구성부터 남다릅니다.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10가지 말하기 법칙’을 1장에서 공개하셨어요.


말하기 책이잖아요. 다른 책이었다면 서사적으로 썼을 텐데, 이건 말하기 책이니까 시작부터 본론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재의 충격』이라는 책을 보면, 지금이 ‘서사가 사라진 시대’라고 이야기해요. 더 이상 사람들은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현재를 즐기기 시작한 거예요. 현재에만 집중하고 현재에서 쾌락적인 걸 찾아서 만족하려고 하는 거죠. 1980~90년대의 팝이나 가요는 반주만 1~2분이었잖아요. 요즘 아이돌 노래는 그렇지 않죠. 짧게 반주가 나오고 바로 가사가 나와요. 미리듣기가 30초인데 1~2분 동안 반주만 나오면 안 되잖아요. 마블의 영화도 시작부터 싸움 장면이 나오고, 스릴러를 봐도 처음에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요. 상대방의 주의를 뺏는 거죠. 시작부터 몰입하게 만드는 거예요. 이 책의 1장에서 ‘10가지 말하기 법칙’을 이야기했는데, 이유가 궁금한 독자들은 뒤에 나오는 2~5장을 읽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첫 번째 말하기 법칙은 “최대한 말하지 말 것”이에요.


예를 들어 10명이 모여서 저녁을 먹는다고 했을 때, 한 사람이 계속 말을 안 하면 나머지 9명이 ‘너 말 좀 해 봐, 우리가 들어줄게’ 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잖아요. 그 한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사실 첫 번째 법칙의 단초는 ‘래리 킹’에서 시작이 됐어요. 래리 킹이 『대화의 신』을 썼을 때 방송을 찾아서 봤는데요. 팔짱 끼고 상대방 말을 듣다가 질문만 하지, 말을 잘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래리 킹이 말을 잘 한다고 하잖아요. 그게 사람들의 인식인 거죠. 그리고 어디에 가서 이야기할 때 ‘최대한 말하지 말자’고 생각하고서 듣고 질문만 하면, 나올 때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아요.

 

심플하게 말하는 것은 ‘상대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일’이라고 하셨죠.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인류가 시간에 대해 연구한 지는 200년도 안 됐어요. 필립 짐바르도의  『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  에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인간은 이성 혁명을 통해서 종교로부터 분리돼 자유를 얻었고, 그 수치는 계속 높아지고 있어요. 자유를 얻기 시작하면서 산업혁명을 만들어냈고, 자본주의가 만들어졌고, 경쟁 문화가 시작됐죠. 그런데 시간은 만들 수가 없어요. 유한한 자원이에요. 그래서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가 문제예요.  『제7의 감각, 초연결지능』  에는 ‘성공하는 모든 플랫폼은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시간을 줄여준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고 중요한 건데,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아요.

 

<이동우의 10분 독서>를 통해서 ‘시간을 줄여주는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기업에 가서도 ‘저는 시간을 줄여주는 일을 합니다’라고 말해요. 책을 요약하고 동영상을 만들고, 그런 게 아니고요. 현대모비스 같은 경우에는 팀장들이 매달 1~2권씩 책을 구매하는데 <이동우의 10분 독서> 리스트에서 선택해요. 그런 점에서 ‘어떤 책을 고를지, 어떤 책을 봐야 되는지, 그 책에서 어떤 내용들을 캐치해야 되는지’를 전달함으로써 시간을 줄여주는 일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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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모아만 놓으면 도움 될까?


말을 잘하기 위해서 해야 일이 세 가지 있다고요. 알고 있는 정보를 요약?정리해야 하고, 맥락을 파악해야 하고, 그것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방해 요소가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어떤 친구들은 하루 중에 카톡으로 보내는 양보다 말하는 양이 더 적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문화가 시작되면서 말이 짧아지기 시작한 거예요. 제 기억으로는 스마트폰을 쓰기 전에는 미디어에서 줄임말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런 것도 우리가 말을 잘하지 못하는 환경인 거죠. 저는 할 수만 있다면 17~18세기에 가서 한 달을 살아보고 싶어요. 그때의 작가들과 음악가들은 뭘 하면서 하루를 보냈을까 궁금해요. 어떻게 살았기에 그렇게 명곡들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뛰어나고 분량도 방대한 소설들을 다 손으로 썼을까 싶어요. 예전 사람들의 지적 소양이나 사색하는 훈련이 지금의 현대인보다 훨씬 더 앞서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를 저장해두기만 하는 것 같아요. 따로 정리하거나 곱씹어보지는 않고요.


그렇죠.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에버노트에 탭을 3천 개 만들어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걸 다 봐요?’ 하고 물어봤어요. 당연히 안 보겠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카피만 해서 모아놓는다면, 그게 지적 노동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요. 자기 손으로 직접 적는 것도 아니고, 카피하면서 자세하게 읽거나 옆에 메모를 하지도 않을 거잖아요. 그냥 카피만 많이 해놓는다고 해서 책을 쓸 수 있는 정도의 사고력과 필력이 있느냐 하면, 그건 다른 문제라는 거죠.

 

어떤 사람이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아는 건 자기 것으로 흡수하고, 그걸 남한테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그렇게 정리가 되어 있으면 자기가 알고 있는 걸 30초나 1분 만에 전달하는 게 가능해요. 한 때 ‘엘리베이터 스피치’, ‘1분 스피치’, ‘1분 보고서’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잖아요. 그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리가 안 되어 있어요. 거기에서 문제가 일어나죠. 카페에 가면 다들 말 잘하잖아요. 그런데 뭘 설명하라고 시키면 말 못하죠. 생각해보지 않았고, 말해보지 않았고, 적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말로 하겠어요.

 

‘심플하게 말하는 기술’만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에요. 후반부에는 ‘단순한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죠. 말하기를 위해 삶의 방식까지 바꾸는 일이 필요할까요?


말이라는 건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걸 자주 느껴요. 자기 안에 갖고 있는 에너지를 고유한 주파수로 밖을 향해 쏘는 거잖아요. 사람이 의도적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첫 번째 눈빛이고 두 번째가 말투예요. 상대가 말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몰라요. 그 사람이 쭉 쌓아온 것, 누적된 에너지를 쏘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말이라는 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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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평가 받는 직원의 말하기


저자님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도 적으셨는데, 놀라운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늘 똑같은 아침 메뉴를 드시고, 똑같은 옷을 입으신다면서요? 오늘도 그런가요?


네, 오늘은 안에 반팔 티셔츠를 입었는데요. 요즘은 흰 셔츠에 재킷을 걸쳐요. 양복은 한 벌이 있고요. 월화수목금 똑같이 생긴 흰 셔츠를 입어요. 신발도 하나를 사면 그 전에 신던 건 버려요. 어느 순간엔가 이게 편해졌어요. 가장 좋은 점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뭐 입지? 뭐 먹지?’ 같은 고민을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고민해야 할 일을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집중해서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라고 하셨죠. 굉장히 인상적인 이야기였어요.


생활이 심플하지 않고 생각이 심플하지 않은데 어떻게 말을 심플하게 하겠어요. 생활도 머릿속도 복잡한 사람이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야기를 간단하게 할 수 있겠냐는 거죠. 저의 기본 전제는 자신의 생활과 생각부터가 정리돼 있어야 말을 잘할 수 있다는 거예요.

 

MBA에서 강의도 하시고 경영자들과 만나시는 일도 많잖아요. 네트워크가 중요할 것 같은데, 역시나 ‘심플’을 추구하시더라고요. SNS도 안 하시고 사람 많은 모임에도 잘 안 가신다고요.


예전에 제가 운영하는 회사가 매우 어려워졌을 때 휴대폰에 있는 연락처를 다 지웠었어요. 가족과 친구들 스무 명 정도만 남기고 3천 명 정도 되는 명단을 다 지웠어요. 왜냐하면, 사람이 나이와 연차가 쌓일 때마다 어떤 지위에서 어떤 실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연락을 안 하거든요. SNS도 중요하기는 하죠. 느슨한 연대, 중요하죠. 그런데 기본 전제는 ‘그 사람이 실력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16년 정도 회사를 운영했는데, 경험칙에 보면, 술 마시며 만난 사람들이나 골프 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도움 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오는 데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술 마시면서 영업하는 게 도움이 된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어떤 사람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팔아야 하고 영업을 해야 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각자의 상황과 호불호의 문제죠.

 

회사를 경영해 보신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말하는 직원이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나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세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게 뭔데?’, ‘어떻게 됐는데?’, ‘우짤낀데?’가 끝이에요. 주제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너의 의견은 무엇인지 묻는 거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자기 의견이 있어야 돼요. 기업의 보고서 형식을 보면, 대부분 번호를 매겨서 쭉 나열해 놓잖아요. 현황에 대해서만 정리해서 갖다 준 거예요. ‘나는 보고서 냈으니까 결정은 네가 해’라는 거죠. 거기에 결론을 쓰는 경우에도 자기의 의중이 들어간 게 없고 ‘~했음’, ‘~임’으로 끝나요. 입장이 곤란하지 않을 만큼 하고 최대한 피해나가는 거죠. 만약에 그걸 풀어서 글로 쓰면 어디에 힘이 실렸는지 알 수 있어요. 제프 베조스가 임원들한테 ‘쉽게 풀어서, 손으로 써서’ 들고 오라고 한다는데, 그 바쁜 기업이 왜 그렇게 하겠어요. 시사하는 바가 큰 거예요.

 

이 책은 어떤 사람들한테 가장 필요할까요?


아마도 첫 번째는 직장인일 것 같고요. 직장인들 중에는 팀장들일 것 같아요. 팀장들부터 깨닫고 문을 열어줘야 팀원들도 따라할 거잖아요. 그 다음에는 취준생도 많이 봤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20~40대 직장인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10가지 말하기 법칙’ 중에 한 가지가 ‘3가지만 강조할 것’이에요.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3가지만 강조하신다면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생각을 많이 하고, 손으로 적어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는 심플하게 말한다이동우 저 | 다산북스
말하기 전에 정보를 취합하고, 맥락 속에서 핵심을 찾고, 듣는 사람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하기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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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명로 “투자가 어렵다면 환율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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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무역 분쟁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인다. 더불어 중국과 미국의 분쟁 등 다양한 외부 환경이 급박하게 바뀌면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한국에 경제 위기가 닥칠 거라는 불안한 예상이 늘어난다. 원 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가거나, 코스피 지수가 2,000포인트 이하로 떨어지는 수치 역시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10만 베스트셀러  『월급쟁이 부자들』  의 작가이자 경제 분야 유튜버인 이명로(필명 ‘상승미소’)는 이럴 때일수록 돈의 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돈의 감각이란 남의 말을 무턱대고 믿는 ‘감’이 아니라, 경제지표를 기준으로 상황을 통찰하는 것을 뜻한다. 경제 위기의 두려움이 팽배한 시기에는 섣부른 투자 테크닉을 따라 하기보다 경제에 대한 기본기를 탄탄히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돈의 감각』  에서 통화량을 통해 경제 흐름을 측정하는 방법을 따라가다 보면 신용 화폐 시스템 속에서 돈이 어떻게 생겨나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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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늘어나는 것에 편승해야 돈을 번다


제목이 ‘돈의 감각’ 입니다.


상당히 광의의 개념이지만, 돈의 흐름을 알아채는 직감을 ‘감각’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했어요. 직감은 생존하고 번식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뜻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생존과 번식을 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죠. 돈을 많이 벌려면 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성격, 돈의 흐름, 방향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요.


‘투자 타이밍을 귀신같이 눈치채는 비결’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요. 다만 무엇에 언제 투자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아요. 


피부에 뭐가 나서 병원에 찾아간다면 연고 발라주고 끝내는 의사 선생님이 있는 반면, 어떤 분은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났는지 원인을 찾아요. 피곤해서 면역력이 줄었다든지, 비타민이 부족했다든지 하는 원인을 찾아서 원인에 대한 처방을 내리죠. 재테크도 마찬가지예요. 돈을 불리려면 어디에 투자하고 뭘 사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먼저 돈의 속성을 알아야 해요. 돈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때 오는지, 어느 상황에서 많아지고 적어지는가를 알아야 더 효과적으로 돈을 굴릴 수 있는 거죠.


돈에 관한 인문서 같은 느낌이었어요.


돈을 생각할 때마다 인간은 기억력이 생각보다 높지 않고, 인간의 본성이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돼요. 돈은 결국 사람이 운영하잖아요. 중앙은행은 돈을 퍼부을 수 있지만, 돈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정치인들이에요. 인간이 원하는 건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정치인들은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정책들을 내놓겠죠.


전작  『월급쟁이 부자들』  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월급쟁이 부자들』  도 어디 투자하고 어떻게 저축하라는 내용보다는 자기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최고의 재테크라는 자기계발 내용을 담았었어요. 자기 능력을 끌어올려서 돈을 벌고 난 다음에야 구체적으로 어디다 투자하라는 책을 보시면 되는데, 이 책은 그 사이 단계로 보셨으면 좋겠어요.


통화량에 빗대어 경제 상황을 주로 설명하시는데요.


예를 들어 아파트 가격을 생각해 볼게요. 아파트가 물건이라면, 짓는 순간 감가상각이 시작되고 가치가 떨어지는 게 정상이에요. 하지만 골동품도 아닌데 오히려 오래될수록 가격이 올라요. 뉴욕이나 도쿄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폐기된 채로 내버려 두고, 또 옆에 새로운 아파트를 지으면서 가격은 계속 올라요. 이게 수요와 공급 문제는 당연히 아닐 거라는 거죠. 그럼 왜 오를까, 그 안을 살펴보니 결국 시중에 돈이 많아져서예요. 돈의 특성을 보면 결국 빚이고요.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이유는 그저 돈의 유통량 때문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투자를 잘하려면 첫 번째로 돈이 많아야 해요. 돈이 많은 도시에 가면 붕어빵 장사를 하더라도 돈을 많이 버는데, 돈이 없는 곳에서는 무엇을 해도 쉽지 않아요. 정부 정책이나 대외 무역으로 돈이 흐를 상황을 먼저 예측한다면 거기서 부동산을 하든 주식을 하든 돈을 벌 수 있게 됩니다.


노력과 상관 없이 부자가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니, 무력감이 들기도 해요.


개인이 노력해봤자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이 시스템 안에서 누가 빚을 많이 낼 수 있는가예요. 통화량이 많이 늘어나는 상태를 빨리 깨닫고 같이 빚을 늘려야 하는데, 은행에서는 빚을 공짜로 빌려주는 게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 빌려주죠. 한국에서 부채가 가장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인데, 삼성전자가 빚이 많다고 해서 문제라는 말은 들리지 않아요. 갚을 능력이 되기 때문이죠. 돈이 어디로 가는지 잘 보면 돈이 많은 곳으로 몰려요. 빚을 내서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는 게 기업이라면, 우리는 기업에 투자할 수도 있겠죠.


어떤 기업에 투자해야 될까요?


수요를 창출하는 기업, 그리고 어떻게 보면 세상에 없는 제품이 나와서 생활을 편리하고 이롭게 하는 기업이겠죠. 단순해 보이지만 10년 전 아마존 주가가 20달러였는데 지금은 2000달러에요. 이때 부자가 된 사람들은 20달러를 투자한 사람들이 아니라, 빚을 잔뜩 내서 이 흐름을 탔던 사람들이에요. 인플레이션이 계속 되어야만 성장이 되고, 성장이 된다는 건 돈이 늘어나는 거예요. 돈이 늘어나는 것에 편승해야 돈을 버는 것이고요. 20년째 부동산 폭락론을 믿고 있던 분들은 이 인플레이션에 못 탔어요. 같은 돈을 저축했어도 투자는 아니었던 거죠. 돈을 벌려면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어서 돈을 많이 빌려야 해요. 이게 상반되거나 모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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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일본, 그 사이 한국


기축통화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어요.


중국으로서는 이 싸움을 함부로 포기할 수 없는 게, 부채 때문에 외환위기가 오는 순간 나라가 거덜나거든요. 중국 시장이 크다 보니 미국도 뭐라고 할 수 없어요. 게다가 중국은 1당 독재라 선거를 걱정할 일도 없죠. 미국, 중국, 한국, 일본, 거기에 홍콩까지 불확실성이 심해지면서 한국 정부는 내수를 조금이라도 키우려고 금리를 내리고 있어요. 우리는 학교에서 금리가 떨어지면 주식시장이 올라가고 경기가 좋아진다고 배웠잖아요. 하지만 돈 빌리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금리를 내리고 있어요. 환율이 올라가면 우리나라는 수출 기업이 대부분이니까 수출이 올라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는 거죠. 환율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안 좋은 상황을 환율을 통해 알 수 있어요. 그렇다면 환율이 올라갔을 때 함부로 집 사고 투자하면 안 된다는 걸 역으로 알아채기도 해야 하죠.


대 일본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은데요.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69%예요. 수출수입이 멈춘다면 우리나라 일자리와 모든 시설의 69%가 없어진다는 의미예요. 모든 이가 실업자가 되겠죠. 일본은 반대로 내수가 72%거든요. 모든 대외사항이 멈춰도 일자리가 72% 남아있어요. 게다가 일본은 기축통화가 있어요. 일본의 지수형 ETF의 70%는 일본 중앙 은행이 가지고 있어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고 그 돈으로 주식을 사서 경제를 부양하는 거예요. 한국이 그걸 흉내내면 바로 외환 위기가 오겠죠. 그렇다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고개를 숙일 수는 없을 거예요. 역사상 최초로 자주적인 결정을 해버렸거든요.


개인 차원에서는 일본 제품을 불매하겠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일본에 종속된 부품을 국내에서도 생산해서 대등한 관계로 싸울 수는 있겠죠. 그러나 무엇보다 경제적 관점에서 대외불확실성을 없애는 게 중요해요. 미국도 현재 모기지 금리, 채권 금리가 최저로 떨어졌는데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아요. 미국과 중국 무역 분쟁 때문에 사람들이 겁을 먹고 일단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내수를 부양하고 싶어도 미국과 중국, 일본이 싸우니까 경제 주체들이 빚을 이연시키고 있잖아요. 그게 또 한국 경제에 영향을 주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은 금리를 낮추는 수밖에요. 불안감을 누를 만큼 금리가 내려갔다고 생각한다면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이 생길 거고요.


외환 보유로 어느 정도는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2, 3년 전만 해도 미국이 본격적으로 금리를 올릴 때 한국 금리가 낮으면 외국 자본이 유출되어서 문제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오래 전부터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는 한 금리 차이는 상관없다고 이야기해 왔어요. 실제로 대만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0.75%예요. 2년 전 미국 10년 만기 국채는 3%였단 말이에요. 하지만 외국 자본이 빠지지 않아요. 20년 내내 대만은 무역 흑자를 내고 있거든요. 이머징 국가는 무역 수지 흑자를 내고 외환보유고를 늘려내는 싸움을 해서 계속 금리를 떨어뜨리는 여력을 내야 해요. 무역 수지 적자가 나버리거나 적자로 인해 외환보유고가 줄어들면 당연히 외국 돈은 빠져나가겠죠. 환율이 오르면 손해니까요. 환율이 본격적으로 많이 올라가면 돈을 잡아두어야 하니 기준 금리가 올라갈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제2의 IMF가 올 거라고 걱정하는데, 경제 위기는 곧 부채 위기고, 부채 위기가 없다면 경제 위기가 아니라 그저 사계절처럼 바이오리듬을 타는 거예요. 우리는 무역 수지만 보면 돼요. 무역 수지가 흑자라면, 금리가 떨어지더라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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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번 돈이라면


한편, 우리나라 부동산은 전세 제도라는 특이성 때문에 다른 나라와 부동산 시장이 다르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돈이 늘어나려면 결국 사람들이 돈을 빌려야 해요.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인구가 늘어나야 하죠.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계속 낮춰서 1인당 더 많은 금액을 빌려가도록 해야 하고요. 빚을 내면 결국 일자리 있는 사람들이 일자리 있는 지역의 집을 사서 아파트 값이 올라가겠죠. 전세는 어떻게 보면 이 성향에 가속도를 주는 거예요. 전세를 끼면 이자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되니 더욱 쉽게 가격이 올라가요. 문제는 가격이 떨어질 경우예요. 아파트 값이 올라갈 때는 전세제도가 촉매 역할을 하지만, 떨어질 때 역시 전세제도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이 떨어져요. 레버리지를 감당하지 못해서 파산하는 게 갭투자였죠. 서울에서 가장 일자리 많은 강남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가격이 올라가지만, 지방 아파트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강남의 수요는 계속될까요?


이 수요도 언젠가는 떨어지겠죠. 인구 자체가 줄고 있으니까요. 떨어질 때는 국가가 전세담보대출을 만들었으니 국가의 채무가 늘어날 테고, 국가가 세금 걷어서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면 환율이 반응할 거예요. 그래서 이도 저도 분석하기 어려우면 환율이 특정 시점으로 올라갈 때부터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요. 환율은 항상 원인이 아니라 결과를 보여주니까요.


“이론적으로 모든 신용화폐 시스템 아래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매년 5퍼센트 이상 통화량이 증가되어야”(307쪽) 한다고 하셨어요. 언젠가는 이 체제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드는데요.


신용화폐 시스템 상에서 위기는 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할 때 일어나요. 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는 건 두 가지죠. 금리가 너무 높아서 이자를 감당 못하고 폭락하는 경우. 그게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1997년 IMF사태였어요. 외국자본이 없으니까 IMF에 돈을 빌리고 IMF의 요구대로 금리를 올렸다가 다 무너진 거죠. 두 번째는 중앙은행에서 금리를 내려줘도 부채를 늘리지 않을 때 위기예요. 유럽의 재정위기도 사람들이 돈을 빌려가지 않아서 벌어지고 있는 거죠.


한국 상황은 어떻게 보시나요?


한국은 현재 기준 금리가 1.5%입니다. 중국과 미국의 상황 때문에 금리를 내리는 건 한계가 있어요. 최근 부동산 상승은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반짝 하고 그칠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다면 금리를 더 내려줘야 하는데, 이미 10년 만기 채권 금리가 1.2%인데 3개월짜리가 1.5%예요. 투자자들도 조만간 금리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고 배팅을 하고 있는 거죠. 이런 상황이면 날이 갈수록 돈을 빌리면 안 된다는 기조가 강해질 거예요.


은행의 예금을 자산 투자 예금과 생산에 투입하는 예금으로 분류해 지급준비율과 예금자 보호 제도를 다르게 해주자는 제언을 남겨 주셨어요.


실제 제도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저만의 사고 실험 같은 제안이에요. 부동산에 많은 돈이 들어가 봤자 수출도 못하고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요. 그럼 은행에서 마중물 자체를 통제하면 어떨까 싶은 거예요. 생산과 관련 없는 분야에 돈이 많이 들어갈 때 버블이 생기거든요. 다들 한탕 챙기려고 덤벼들고 난 뒤 버블 뒤치닥거리는 항상 서민의 몫이에요. 버블의 피해를 줄이려면 터지는 강도를 줄여야 하는데, 은행에서 신용을 창조하는 분야를 구분해서 돈을 지급한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 봤어요.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제안이죠. 통화량이 있어야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오를 테니까요.


하지만 버블을 나쁘게 보진 않으신다고요.


자연에서 버블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과일나무가 한 해 열리면 다음 해는 적게 열려요. 나무가 열매를 지탱하는 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그 다음해는 열매 맺을 힘이 없는 거죠. 투자도 자연과 똑같아요. 한 회사나 한 기술이 발전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특정 섹터에 돈이 몰려야 기술 개발이 이루어져요. 나스닥 버블에서 아마존과 구글, 넷플릭스가 나오고 우리나라도 코스닥 버블 때 다음과 네이버, 리니지가 나왔어요. 문제는 버블에 편승하는 사기꾼들이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에 돈이 몰리면서 버블이 나와야 해요. 누군가는 살아남아서 다른 나라의 기업을 따라잡을 기운을 내는 거죠. 우리가 계속 버블을 이야기하면서 투자를 사리고 있으면 핵심 기술은 모두 다른 나라가 가져갈 거예요. 비관론자들은 경제 위기가 오면 자기는 빚이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경제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일자리가 날아갑니다.


버블의 끝은 누구도 모르지만, 최고점이 오기 전까지 짧은 기간만이라도 이익을 내고 싶어하는 게 사람 심리에요.


말씀하신 대로 버블은 터지기 전에는 버블인지 아닌지 아무도 몰라요. 지금 버블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왔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나만은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역사에서 버블을 피한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환, 주식, 금 등 할 수 있는 투자는 많아요. 돈의 흐름을 보고 상황에 따라 투자 포지션을 조정하는 거고, 조정하고 난 뒤에는 열심히 일하는 게 최고죠.


‘상승미소의 경제와 투자’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세요. 유튜브 강좌를 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사명 의식이에요. 일주일에 세 편씩 찍으려면 찍기 전에 자료 만들고 주제를 생각하는데 한 편당 서너 시간은 걸려요. 수익 대비해서는 차라리 책을 쓰거나 제 일 하는 게 낫겠죠. 하지만 경제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반드시 봐야 하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사명인 거죠. 두 번째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실력이 늘어요. 일주일 내내 생각하는 활동이 저에게 질적인 전환도 되고요.

 

마지막으로 어떤 분한테 책을 권하고 싶나요?


큰 자본은 작은 자본을 이깁니다. 그럼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누구보다 가족을 이끄는 가장 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어요. 아파트 담보 대출 받아서 빚 내고 사업하다 잘못하면 가족의 인생이 날아가잖아요. 잘못 알고 있는 사실로 판단해서 손해보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기초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예요. 장사를 하더라도 경기가 좋아지는 시점에 해야 한다는 거고, 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번 돈이라면 한 번씩 생각하고 투자하셨으면 좋겠어요.


 

 

돈의 감각이명로(상승미소) 저 | 비즈니스북스
경제 흐름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로 통화량(돈의 양)을 꼽았는데, 이로 인한 신용의 수축과 팽창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뒤 다가올 경제위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돈의 감각을 기르는 연습을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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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텐거(TENGGER), 세계가 주목한 가족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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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가족, 자연의 소리. 텐거(TENGGER)의 영적인 여정은 세계로부터의 주목을 받았다. 장엄한 산봉우리와 찬란한 바다, 차분히 흐르는 강과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소리를 체화하여 거대한 순환 속 일부가 되는 것이 그들의 소박한 목표다. 한국인 있다(Itta)와 일본인 마르키도, 아들 라아이(Raai)의 텐거는 지금 이 순간도 푸른 지구의 어딘가에서 자연의 노래를 기록하며 무한한 영감을 기록하고 있다.BBC, 스테레오검, 피치포크 등 다양한 해외 매체에서 호평받는 <Spiritual 2> 발매 후 첫 한국 공연을 앞둔 텐거를 서울 을지로의 한 복합 문화공간에서 만났다. 어린이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 낮 공연 이후의 만남이었다. 수줍고도 화목한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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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거(TENGGER). 좌측부터 있다, 라이, 마르키도.

 

 

음악 팬들에게 텐거를 소개해달라.

 

있다 : 음악을 하는 밴드 이전에 '여행하는 가족'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고유의 문화와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로컬 뮤지션들과 교류, 현지 공연도 하며 체화된 느낌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피드백을 전달한다.

 

텐거(Tengger)라는 이름은 몽골어로 '경계 없이 큰 하늘'이라는 뜻이다.

 

있다 : 2005년 마르키도와 만나 2인조 밴드 텐(10)으로 활동했다. 있다에서 숫자 1을 가져왔고, 마르키도의 '마르'가 일본어로 원과 윤회의 의미가 있어 '0'을 가져와 텐이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이름으로 더욱 확장하고 싶어 여러 이름을 찾다 지금의 단어를 이름으로 삼았다.

 

지금은 공연 일정으로 서울에 있지만 우리는 한국의 밴드도 아니고 일본의 밴드도 아니다. 어디에 있어도 우리의 정체성은 아웃사이더적이다. 그런 경계와 구분 짓기를 없애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주로 지내는 곳은 일본인가.

 

있다 : 텐으로 활동할 땐 집이 없었다. 세계 여러 곳에 투어를 다니고,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하는 식으로 지냈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면서 처음 제주도에 3년 정도 머물렀다. 일본 시코쿠 섬 88개 사찰 순례를 마치고 순례길 중간에 오래된 고민가를 하나 마련하여 작업의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집을 통해 시코쿠를 방문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레지던스의 기회를 주고 있다. 아이가 올해 학교 갈 나이가 되어 일단은 서울에 살기로 했다. 1학년이다.

 

자연 친화적인 삶에 비하면 서울은 크고 복잡한 대도시다. 그런 차이가 음악에 영향을 주지 않나.

 

있다 : 서울과 자연 속을 오가며 다양한 메시지를 얻는다. 젠트리피케이션, 환경 문제에 대해 더욱 와 닿는다.도시의 삶은 아무래도 자연에 비해 각박하고 또 초조할 텐데.있다 : 마르키도는 시골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집에서 음악 만들어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도인 같이 사시는 분이다. (웃음) 반대로 나는 공간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고쿠 갔다 다시 서울로 오면 스트레스 받기도 하고... 공연하며 그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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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시코쿠 섬 일대의 88개 사찰을 순례하며 그 공간의 소리를 담아 앨범을 발표했다.

 

있다 : 마르키도의 고향이 시코쿠다. 불교에 관심이 많아 인도도 다녀왔다. 나는 모태 신앙이 카톨릭인데, 순례길에 대해 알고 나서 마르키도에게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두 살짜리 아이를 업고 순례길에 올라 들르는 사찰마다 고유의 소리를 담아 <Minishiko> 앨범을 발매했다.

 

순례길의 소리를 담아 앨범을 만든 이유가 있다면?

 

있다 : 앞서 말씀해주신 대로 스트레스 받고 힘든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가상의 순례를 가능케 해주고 싶었다. 시코쿠 순례길은 1200년의 역사를 지닌 유명한 순례 코스라 일본에선 순례를 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한 오스나후미(お砂踏み)라는 간이 순례소가 있고, 순례길 중간중간에도 그런 장소가 있다. 시코쿠 전역 곳곳에서,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도 '미니 시코쿠 88개소'라는 순례 체험 코스가 있다. 그것이 <Minishiko>의 콘셉트가 되었다.

 

건장한 성인이 순례를 하면 한 달 반 정도 걸린다. 순례길이 험해서 순례 도중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영적인 순례를 꿈꾸지만 현실의 사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저희의 선물이다.

 

<Spiritual 2>의 앨범 커버 역시 시코쿠의 영산 이시즈치 산을 담고 있다.

 

있다 : 일본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다. 높은 산이지만 주위 산봉우리에 가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앨범 커버 모습은 정상에서 봉우리를 촬영한 모습이다. 그러나 산을 '배경'으로 생각하지 않아주셨으면 한다. 산 자체가 주는 영적인 기운,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상서로운 기운을 담고자 했다.

 

산의 이미지처럼 앨범도 'High', 'Middle', 'Low' 등 수직적 구성이 두드러지는데.

 

있다 : 모두 같은 사운드 소스로 이루어진 곡이다. 산에서 영향을 받은 건 아니고, 크라우트 록 밴드 노이(Neu!)의 <Cassette Music>의 오마쥬다. 워낙 존경하는 뮤지션이라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

 

언급한 대로 <Spiritual> 시리즈는 크라우트 록의 성향이 유독 강한 앨범이기도 하다.

 

있다 : 이 시리즈는 크라우트 록 스타일을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크라우트 록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 영미권의 팝 대신 독일에서 우주, 자연, 환경 등 거대한 서사를 소리로 표현하고자 했던 아티스트들의 노력이 저희의 여행하는 정체성과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1과 2의 차이를 두고자 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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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것이 2005년이니 올해로 14년 동안 같이 음악을 하고 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와 지금의 차이가 있다면.

 

있다 : 처음 텐을 시작할 땐 컬래버레이션의 느낌, 즉흥의 느낌이 강했다. 텐거가 된 후 '밴드'가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르키도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있다 : 마르키도가 월드 투어로 서울에 왔을 때 내가 정기적으로 참여하던 '불가사리'라는 공연에서 처음 만났다.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첫눈에 반했다. 2005년 당시 불가사리 공연을 이끌던 사토 유키에 씨가 공연 비자 없이 유료 공연을 한다는 이유로 해외 추방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마르키도와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열렸던 음악 페스티벌을 계기로 텐을 결성했다.

 

텐 활동 이전 마르키도가 했던 음악을 소개해달라.

 

마르키도 :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하여 밴드를 시작했다. 노이즈, 익스페리멘탈, 드론 사운드를 주로 담았다. 하이노 케이지, 매지컬 파워 마코 같은 일본의 유명 아티스트들과도 협업했다.

 

게임 음악의 요소와 더불어 <Spiritual> 시리즈에는 장난감 소리도 포함되어있다.

 

있다 : 불어서 또는 흔들어서 소리 내는 장난감 소리를 넣었다.

 

텐 활동 이전 있다의 음악 세계도 말해달라.

 

있다 : 건반으로 멜로디를 만들고 시를 쓴 다음 노래를 만든다. 어릴 때 성당에 다니면서 미사 반주하고,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을 자연스레 접했다.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든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2002년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는데, 앨범 패키지를 꾸려 게릴라 형식으로 공연을 하고 여러 퍼포먼스 하는 분들과 콜라보레이션하며 음악 커리어를 이어왔다.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미지센터)에서 프리 뮤직 기획할 때도 참여했다. 정태환, 알프레드 하르트, 김대환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함께했다. 그러면서 사토 유키에의 '불가사리'에 합류하며 익스페리멘탈 씬에 발을 디디게 됐다. 힙합 아티스트들과도 음악을 했다. 이름을 '있다'로 지은 이유가 누구든지 만나고 싶어서였다.

 

음악을 직업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다면.

 

있다 : 고3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노래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밴드 꾸려 음악 했지만, 지방에 있었기에 학교 마치고 서울 올라와서 첫 솔로 앨범을 만들었다. 친구 어머니께서 하시는 가게에서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직업으로 한다'는 염두를 두고 시작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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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 텐거의 음악도 분명 달라졌을 텐데.

 

있다 : 아이가 태어나면 제약이 많이 생기지 않나. 그 전에는 무리한 일정도 많이 잡았는데, 시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여러 한계가 있었다. 출산 후 아이를 돌보느라 음악을 그만둔 친구들도 많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어떤 방법으로 계속 음악을 해나갈지를 고민했다.

 

그래서인지 라아이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매 공연마다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있다 : 라아이의 생일날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르키도와 나의 공연 도중 아이가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를 찾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음악을 연주하면 자연스레 무대에 올라와 춤을 추고 장난감 악기를 연주한다. 뮤직비디오는 아이의 성장을 담는 매개체다. 요즘은 욕심이 생겨서 주인공 할 거라고 말한다(웃음).

 

텐거는 여행하는 가족, 노마드적 삶을 지향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음악 시장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자연스레 각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있다 : 우리가 동양인인 건 분명하지 않나. 자연스럽게 묻어난다고 보고 어느 정도는 이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은 있지만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향후 텐거가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형태의 음악일까.

 

있다 : 앞으로 해봐야 알 것 같다. 이 아이를 데리고 계속 서울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시간과 환경에 반응하며 음악을 만들어 갈 것이다.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영감을 받은 장소가 있다면.

 

있다 : <Spiritual 2>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코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시코쿠의 바다, 산을 바라보며 음악을 만들었다. <SEGYE>의 녹음 장소는 을지로 4가 미싱상가 골목에 위치한 대안 공간 Slow Slow Quick Quick이었다. 한창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를 하던 때라 그 정서가 앨범에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다. . <Spiritual>은 일본의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을 녹음했고, 을지로의 신도시 아래층에 위치한 신도시 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약간의 후반 작업을 거쳤다.

 

이전에도 해외 매체의 주목이 많았지만 이번 앨범은 BBC, 스테레오검, 페이더(Fader) 등 해외 매체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주목이 덜해 아쉽기도 하다.

 

있다 : 어떻게 보도자료를 내고 홍보를 해야 할지 잘 모른다. 밴드캠프에 올린 것이 그나마 홍보라고 생각했다. 보통 다른 밴드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몇 시간 후인 오후 8시, 텐거의 공연이 시작됐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위로 신비로운 소리가 이어지다 끊어지면서, 라아이의 자유로운 몸짓이 어우러지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순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름밤을 수놓은 거대한 자연의 소리와 이를 연주하는 소박한 한 가족의 조화가 바쁜 도시의 하늘에 울려퍼지며,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 탄생했다.

 

 

인터뷰 : 김도헌, 황선업

사진 : 김도헌, 텐거(TENGGER)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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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이형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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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던 시기를 지나다 올해 1월, 43회 이상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큰 격려가 됐다는 윤이형 작가. 그는 책을 한 권 낼 때마다 “여전히 무섭다”면서도 쓰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계속 써야 했다고 말했다. 2015년 겨울부터 2019년 6월까지의 기간에 발표한 작품을 묶은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  에는 대통령 탄핵 집회에 나가려는 기혼 여성(「작은마음동호회」), 아이를 갖고 싶은 레즈비언 여성(「승혜와 미오」),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를 고민하는 여성(「피클」), 트렌스젠더 동생에게 용기 내 다가가려는 여성(「마흔셋」) 이 등장한다. 이들은 방황하고, 오해 받고, 그러나 끝까지 ‘작은마음’을 놓지 않는다. 이 마음이야말로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변하듯 그렇게. 그렇다면 윤이형 작가가 희망하는 것은 “함께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우리가 마지막이 아닐”(353쪽) 것이라는 믿음으로 ‘작은마음동호회’라는 깃발 아래 잠시 틈을 내어 모인 사람들의 연결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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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제목이 정말로 좋았어요.


‘나 좀 소심하다’고 표현할 때 “나 작은마음동호회 회원이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이런 말이 보통명사처럼 있기도 한가 봐요. 친구 유형진 시인의 포스팅에서 빌려온 말인데요. 유형진 시인도 이런 동호회 회원이라고 말하기에(웃음)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블로그 친구들과 자신을 부르는 말이라는 거예요. 무슨 모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고 그렇잖아요. 먼저 집회에 못 나가고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쓰다가 이 사람들을 뭐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까, 했는데 딱 맞는 것 같아서 허락을 받고 제목으로 빌려 왔어요.

 

‘작은마음’이 ‘큰마음’의 반대는 분명히 아니죠. 말하자면 훨씬 세밀한 마음이라고 할까요. 중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부자유해요. 묶여 있는 게 너무 많고요. 사회 참여 같은 것을 하고 싶지만 생각을 하다가도 그만두게 되고, 아예 얘기도 안 꺼내고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하지만 같은 사람이잖아요. 의식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요. 다만 부자유한 상황 때문에 생각조차 잘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또 주인공이 친구 ‘서빈’에게 갖는 복잡하지만 염려하고 좋아하는 그런 마음은, 작은 것이지만 실은 어떤 대의보다 중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죠. 제가 이런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 ‘선한 마음’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수아」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그냥, 선한 인물을 현실에서 보기가 너무 힘들잖아. 소설 속에서만 가끔 볼 수 있잖아. 그게 너무 좋으면서 마음이 힘든 거야.”(327쪽) 또 「이웃의 선한 사람」은 ‘선함’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고요.


선한 마음이 뭔지 저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다만 타자를 적대적인 태도로 막아버리지 않고,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상황이 암울해도 약간의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나를 기준으로, 나만 옳고, 그런 거 말고 저 사람도 옳을 수 있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을 바꿔 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세상을 지속될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태도가 나아가 연대를 가능하게 할 거예요. 「피클」에서도 피해자들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잖아요.


아이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고립돼서 살게 돼요.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 그렇더라고요. 집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너무 바쁘죠. 소통도 거의 못하고요. 그래서인지 제 안에 이어지고 싶은 욕망이 있나 봐요. 그게 본격적인 연대로 가기도 하고, 마음만 가기도 하지만요. 결국 혼자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해서 잘 됐던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그랬어요. 20대 때부터 주로 혼자 있었어요. 그러다 공동체를 만든 것이 가족일 텐데 좋기도 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묶여 있게 되니까 자꾸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고, 문제가 있다면 한 명이라도 더 모아서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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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연대자들의 역할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뭔가요?


그게 「피클」이었던 것 같아요.

 

「피클」을 보면 직장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유정’이라는 인물이 망상이 있다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 받게 되잖아요. 이른바 ‘피해자다움’이죠.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요.


유정이 자신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 것은 사적인 발화와는 구별이 되는 공식적인 발화예요. 보통은 사적인 이야기들과 공적인 피해 사실에 대한 발화가 뒤섞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게다가 요즘은 미디어 환경 때문에 누구나 쉽게 검열할 수 있어요. 모두가 모두를 검열하죠. 특히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그 검열이 너무나 극심해서 조금만 잘못하면 ‘이러는데 네가 무슨 피해자냐’가 되는 거예요. 피해자의 편에 선다는 건 피해자가 하는 일상의 모든 말을 사실로 믿고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고요. 피해자의 피해 사실 발화가 막히지 않도록 길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피해 사실 자체가 투쟁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고요. 때문에 피해 사실이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공동체가 해석을 같이 도와야 해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는 데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서 이것이 사실이라는 걸 세상에 알리는 일이 공동체와 연대자들의 역할이라고 배웠고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특히 타인의 피해 사실로 인해 내가 스스로 잊고 있던 나의 피해를 비로소 얘기하게 된다는 점도 중요할 것 같아요.


저도 여성이니까 당연히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데요. 그것을 말로 하거나 누구에게 알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거죠.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거예요. 피해 사실을 말한 뒤에 펼쳐질 일이나 잃는 것들을 생각하면 너무 벅차니까요. 시간이 많이 지나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요. 주인공 선우도 자신의 생계 수단인 회사의 책임자에게 피해를 입었지만 그런 자기의 어떤 부분을 완전히 부정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생각하면 그런 사람도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 건 다른 피해자를 보고 그에게 공감할 때 비로소 말을 해서 이어질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저도 선우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말이 사랑이었다거나 호감이었다는 식의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는 아주 전복적인 이야기인데요. 이 작품은 진짜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싶더라고요.


다들 “딸 같아서 그랬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도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거거든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 말을 해보고 싶었어요.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


작가님과 2016년 초에  『러브 레플리카』  출간으로 만나 인터뷰 한 적이 있잖아요. 공교롭게도 이후에 한국에 사는 여성으로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됐어요. 작가님 역시 작품 활동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한국의 모든 여성들에게 그 시기가 격변기였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그 중 한 명이에요. ‘강남역 살인사건’ 때부터 생각이 많이 달라졌고요. ‘문단 내 성폭력’ 이슈가 터졌을 때 충격을 굉장히 많이 받았죠. 그때 준거집단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완전히 뒤집어지면서 작품도 변화하게 됐어요.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 게 그 이후였고요. 욕망이 먼저 생겼던 것 같아요. 뭔가 계속 쓰긴 했었는데 성별을 신경 쓰지 않고 쓰거나 오히려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목소리를 사용해서 쓰기도 많이 했던 것 같거든요. 나의 삶임에도 얘기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그것들을 그냥 써보고 싶다는 욕망이 커져서 쓰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것 같아요. 전부 제가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고요. 어쨌든 저 자신이 우선이었던 것 같아요.

 

2015년 겨울부터 2019년 6월까지의 기간에 발표한 작품이 묶였어요. 지금의 작가님이 갖고 있는 고민과 가장 닿아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마흔셋」의 주인공이에요. 늙어가는 여성인데 저와 상태가 되게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40대 중반이 되는데요. 신체적, 정신적으로 늙어가는 게 너무 느껴져요. 늙어가는 것을 계속 느끼고 있고요. 이제는 세상의 주변부에서 젊은 세대를 뒷받침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지금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별로 아닌 것 같고 그렇죠. 저의 감각 같은 것이 낡아가고 있다는 걸 계속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감각이 낡아가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던 건지 궁금하네요.


저는 20대 친구들도 있는데요. 대화를 하면 말이 통하다가도 다른 게 느껴져요. 성장 배경도 다르고 하니까요. 이 친구들은 너무 심한 경쟁 속에 처음부터 놓여 있었고요. 경제적인 환경이나 기타 상황도 너무 안 좋아요. 기성세대로서 나는 참 편하게, 책임을 안 지고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미안할 때가 많고요. 그런 와중에 젊은 분들이 저와 비교했을 때 훨씬 정치적이고 생각도 깊게 하고 뛰어난 면이 많아서 많이 배우기도 하거든요. 그러면서 ‘나는 진짜 이제 낡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말씀처럼 같은 여성이어도 경험치가 워낙 다르죠. 한편 가끔은 너무 큰 차이를 느껴서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 계속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작가님도 그러시겠죠?


저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의제를 공감의 기준으로 삼는 여성들도 있고, 페미니즘 담론에서 소외된 중노년 여성이나 어느 입장에 공감은 해도 몸이 아파 행동에 나설 수 없는 여성, 당면한 삶의 문제 때문에 사회 변화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여성들도 있을 거예요. 저는 소설가로서 오히려 이렇게 담론에 들어오지 못하는 여성들 쪽에 더 관심이 가요. 한편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여성으로서는 우선 각각의 입장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고 느끼죠. 차이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연결되어 같이 가면 좋겠지만 꼭 같이 가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도 있는데요. 서로 가려는 방향이 너무 다르다면, 억지로 연결하는 게 오히려 차이를 뭉개는 일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깊이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역시 답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 같기도 해요.

 

그렇다면 내 공동체 안에 있는 남성에 대한 생각도 묻고 싶어요. 「피클」에서도 주인공 ‘선우’도 남편과는 아예 대화가 안 돼죠. 이런 갈등을 겪는 분들이 실제로도 정말 많을 거예요.


저도 그런 경험이 많지만 정말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사람을 뒤틀어놓기 너무 쉽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이 제도 안에 들어와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또 금방 벗어날 수도 없어요. 제도 개선을 해야 할 텐데 단순히 가사분담 정도로는 안 될 것 같고요. 글쎄요. 그냥 여성들이 더 많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이 육아에도 영향을 주나요?


네, 고민이 많이 돼요.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요. 곧 이성과도 친해질 것이고, 이성을 좋아할지 동성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더 친밀해지는 시기가 올 텐데요. 어떻게 해야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갖지 않고 대하게 할 수 있을지가 저에게 아주 큰 문제예요. 일단 자원이 너무 부족해요. 학교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계셔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거든요. 페미니스트 교사 분들이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고 계신데 학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절실한 문제예요. 게임, 유튜브 등에 여성혐오적인 콘텐츠가 너무나 공기처럼 스며 있잖아요. 그걸 학부모가 다 확인하고 차단할 수 없어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정말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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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문제


보이지 않는 존재들, 용, 로봇처럼 아주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하고 계시잖아요.


문예지에 용을 써서 좀 이상하게 볼 수는 있을 텐데요.(웃음) 그냥 용 얘기를 너무 쓰고 싶었고요. 왜 용을 쓰면 안 되는지 잘 모르겠기에 쓴 거예요. 오히려 저의 고민은 다른 데 있어요.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문제를 다른 것으로 치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었거든요. 책의 앞쪽에 묶은 소설은 그래서 쓴 건데요. 비현실적인 설정을 빌려 얘기하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어요. 무슨 얘긴지 잘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직설법을 좀 많이 쓰는 것 같고요. 그냥 얘기를 해야지 은유를 빌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었죠.

 

「승혜와 미오」, 「마흔셋」 등 소수자의 이야기도 많아요.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서 주류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내면은 주류로서의 정체성이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적응을 못할 때가 더 많고요. 소수자가 주변에도 많고, 많이 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세계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왔어요. 소설에 등장시키는 것도 그냥 제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기 때문이었어요.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혹은 조심하는 부분도 있으신가요?


모든 사람이 자기와 다른 정체성의 사람들을 어느 정도 타자화하죠. 소수자를 소설에 쓰면서 나도 노력을 한다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타자화를 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마흔셋」의 ‘재경’도 그런 인물인데요.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오히려 너무 조심해서 대하는 게 역으로 타자화가 되고요. 그래서 동생 재윤이 오히려 당혹스러워 하잖아요. 그런 부분은 당사자들에게 비판 받으면서 고쳐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소수자도 모두 개별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전형에 맞지 않는 의외의 모습이나 다양한 모습들이 있을 거고요. 그 개별성을 살리면서 대상화, 타자화를 피하는 것이 숙제인 것 같아요.


 

 

작은마음동호회윤이형 저 | 문학동네
일상에서 감내해야 하는 사적이지만 끈질긴 고민부터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의 문제까지, 작가는 지금 우리의 내면을 가장 뜨겁게 울리는 아우성에 귀기울여 정확하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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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평론가 한미화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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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책을 참 좋아해요.” 부모들이 꼭 한 번 하고 싶은 이야기다. 부모는 종일 스마트폰을들고 지내도 내 아이는 책을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 과연 어릴 적 독서 습관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 것일까.  『아홉살 독서 수업』  을 쓴 한미화 어린이책 평론가는 “저학년 때 읽기 훈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 평생 가벼운 읽기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훑어보는데 길들여지면 천천한 사유는 어려워진다는 것. 내 아이를 고급 독자로 키우고 싶다면, 책이 즐거워지는 ‘경험’과 ‘동기’를 선물해야 한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끈기 있게 함께 책을 읽어줄 수 있는 부모라면, 귀 기울여보지.

 

“어릴 때 부모와 아이가 책으로 맺어온 관계는 아이의 읽기가 능숙해지고 스스로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발견할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글을 배우기 시작하는 7~8세 시기는 독서 독립을 준비하는 원년이다. 이때부터 10대 초중반까지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만났고, 책과 어떤 경험을 쌓았는지는 아이의 독서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평생 책 읽는 사람이 될 것이냐, 평생 책과 담을 쌓을 것이냐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아홉살 독서 수업』 , 20쪽)

 

한미화 어린이책 평론가는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하며 25년간 어린이책을 다루어왔다. 독서운동가, 사서, 현직 교사들 사이에서 ‘책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어린이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한겨레>에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를 연재 중이며, 교육지원청, 도서관 등에서 학부모, 사서, 교사를 대상으로 독서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이를 읽는다는 것』 ,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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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에 답이 있다

 

책을 읽고 조금 안심했다. 우선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책이 아니라서 반가웠다.

 

요즘의 독서 교육서들은 조금 세게 말하는 편이다. 독서라는 것이 공교육 안에서 이뤄지지 않고 사교육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인데, 저자가 사교육 현장에서 일하지 않고 평범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엔 ‘초등학교 공부는 독서가 전부’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다.

 

책 카피가 ‘부모가 알아야 할 초등 저학년 독서의 모든 것’이다. ‘아홉 살’은 초등 저학년의 상징적인 의미로 보면 될까.

 

맞다. 어린이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보통 10세가 넘어가면 아이들의 변화가 눈에 띈다. 누구나 그렇지는 않지만 평균적으로 아이가 10세가 되면 부모의 품에서 친구들의 세계, 다시 말하면 독립의 세계로 떠난다. 더 이상 부모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은 세계로 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저학년 때, 부모가 아이의 독서 습관을 이끌어줄 수 있다. 이 시기를 잘 보내면 구태여 고학년이 돼서 억지로 책을 읽고 독서록을 쓸 필요가 없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독서 교육 강의를 꾸준히 하고 있다. 부모들로부터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나?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아이가 갑자기 달라졌다”, “학습 만화만 보고 책 읽기를 힘들어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사실 이런 강의까지 들으러 오는 분은 충분히 잘하고 계시는 거다. 우선 아이들의 독서에 관심을 갖고 계시니까. 그런데 강의 중에 한숨을 쉬고 있는 분들이 많다. 부모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따라오지 못하니까 많이 답답해 하신다.

 

가장 큰 문제는 뭘까?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히기 때문인가?

 

자꾸 엄마가 재밌게 읽은 책, 부모님들이 좋다고 판단하는 책들을 아이에게 추천하는 게 문제다. 내 아이가 어떤 책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그 책을 접을 필요가 있다. 한 학년 아래로 내려가서 책을 골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 학년마다 추천 도서 목록이 나오는데, 꼭 내 아이의 나이에 해당하는 책을 읽힐 필요는 없다. 이웃 아이가 읽는 책, 카페에 놓여진 그런 책들을 반드시 읽는 것보다 내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보통 3,4세때부터 아이에게 책을 적극적으로 읽어주기 시작한다.  『아홉살 독서 수업』에서는 “일곱 살 이전에 글을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17쪽)는  『책 읽는 뇌』  의 저자 매리언 울프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책 읽는 뇌』  는 많은 독서교육 관련자들에게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준 책이다.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는 읽기가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애써 만들어진 능력이고 서서히 발전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아이가 글을 익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적정한 시기가 있다. 특히 만 5세 이전에는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충분하지 않아 스스로 책을 읽을 만큼 뇌가 발달하지 못한다. 7세 이전에 글을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아이들마다 편차가 있지만 두 돌이 지나면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는 우리 유전자 속에 이런 능력이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읽기는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책을 읽기 가장 적당한 때는 언제인가?

 

사실 나는 7세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아이에 따라 다르지만, 언어 능력이 특별하지 않은 아이의 경우는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지, 굳이 글자를 익히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전문가들이 5세에 글을 읽히면 어휘력이 좋아진다고 말하니까, 부모님들이 기를 쓰고 글자를 가르치는데,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이마다 성장의 속도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아이가 글자를 배우는 재미를 느끼면 그때 자연스럽게 가르치면 된다. 아이가 관심이 덜하면? 좀 늦게 가르쳐도 무방하다. 시기가 늦은 대신 더 빠른 속도로 배울 수 있다. 내 아이를 잘 바라봐 주면 좋겠다. 아이 안에 답이 있다.

 

아이가 글을 읽을 줄 알아도 부모가 계속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데.

 

초등학교 이후의 책 읽기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좋다. 적당한 양만 읽어줘도 충분하다. 왜 글을 읽을 줄 아는데도 부모가 읽어주면 좋은가? 답은 꼬리에 꼬리를 문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너 이제 네 방으로 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오늘 있었던 일화를 말하기도 한다. 아이가 10세가 지나면 사춘기로 넘어가지만, 그 전까지는 부모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생각해봐라. 사랑하는 사람이 책을 읽어준다, 누가 싫어할 수 있겠나? 이런 말을 하면 한숨을 쉬는 부모님들도 있다. 그때마다 내가 해드리는 이야기는 “평생 책 읽어달라고 하는 아이는 없다”는 말이다. 그 시기는 금방 끝난다. 아이가 커가는 것과 비례해서 그 시간을 서로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자녀의 청소년기를 지나온 부모들은 모두들 말한다. “책 읽어줄 수 있었을 때가 제일 좋았던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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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훈련이 필요한 이유, 바로 집중력

 

요즘 오디오북으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들도 많은데, 오디오북은 어떤가?

 

10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기계음을 들려주는 건 무조건 반대다. 전자책으로 보여주는 것도 반대다. 너무 강렬하게 반대하기 때문에 책에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10세 이후가 되면 아이의 선택 사항이지만 10세 이전에는 반대다. 인간이 무언가를 배운다고 할 때, 상대의 얼굴, 눈, 촉각과 시각 같은 감각을 통해 배우지 절대 기계로 배우지 않는다. 종이책이 지금도 생명력이 있는 건 손으로 넘기고 감촉을 느끼고 덩어리를 만지는 행위 때문이다. 기계음이라는 건 부모나 교사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럼 어떻게 되나? 아이는 혼자 남는다. 이건 아니라는 거다. 오디오북, 전자책은 10세 이후에 경험해도 충분하다. 책을 같이 보는 게 너무 힘들다면 좀 섞어서 해도 되겠지만, 기계에 의존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 아니다.

 

책을 읽어주기 힘드니까 엄마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파일을 틀어준다는 부모도 있더라. 이건 괜찮은가?

 

추천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빠가 그림책을 읽어주면 재미없어 하지 않나? 왜 그럴까? 바로 기계처럼 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아이들은 부모와 책을 같이 읽으면 상호작용을 하고 싶어 한다. 그림을 보면서 아이와 엄마가 눈을 맞주치거나 대화하면서 얻는 여러 자극이 아이에게는 가장 좋다. 10살 미만의 읽기에는 이런 상호작용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이 상호작용을 ‘공동 관심’이라고 표현하는데, ‘공동 관심’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학습만화는 어떻게 생각하나?

 

독서교육을 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학습만화에 대해서는 입장이 각기 다르다. 금지하라는 입장도 있고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 학습만화라도 읽는다면 그래도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이가 만화만 읽는다면 조금 문제가 될 수 있다. 책을 건성건성 읽는 버릇이 생기기 전에 만화도 읽고 다른 책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들은 만화책에 빠지기도 하다가 과학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충분히 만족되면 다른 세계로 가기도 한다. 그런 과정일 수도 있다. 단 아이가 만화만 본다면, 아이의 일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면 만화를 본다는 건 그 아이에게 휴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이 착각하는 건, 학습만화가 학습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름만 안다고 지식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단편적인 지식을 아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내 안에서 소화된 지식으로는 볼 수 없다.

 

아이가 만화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의 일정에 뭔가를 추가하지 않았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님들이 꼭 염두에 둬야 할 건,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책은 개개인을 상대로 쓰여질 수 없기 때문에 일대일로 적용할 수는 없다. 특별한 상황에 있는 아이도 충분히 있을 것이고. 어떻게 보면 교육 책이야말로 성찰적으로 읽어야 할 책이다.

 

디지털 미디어는 최대한 늦게 접할수록 좋다고 했다. 사실상 지금 아이들은 영상을 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라 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아이가 영상도 보면서 책도 읽고 나가서 잘 뛰어 놀면 상관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 통제력이 없어서 유튜브에 빠지면 나머지 것들을 소외시킨다. 부모들이 잘 지도하면 다행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저학년 때는 부모가 통제하고 고학년이 됐을 때는 아이와 소통하면서 규칙을 정하는 게 좋다. 유튜브는 기본적으로 구어다. 구어에 익숙해지면 문어를 버겁게 여긴다. 읽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게 된다. 부모들이 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나? 이 사회의 엘리트가 되길 바라는 건데, 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인이 있을까? 아이가 스스로 자기통제력을 갖기 전에는 부모가 좀 도와줘야 한다. 독서교육 강연에서 만나는 부모들의 경우(초등학교 2학년 전후) 유튜브를 보여준다는 경우가 평균 10% 정도다. 많아야 20%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읽기 훈련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집중력 때문”(36쪽)이라고 했는데.

 

논리적 구조로 이어진 책을 읽으려면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는 단기 집중만으로 충분하다. 자기통제력이 있는 어른도 스마트폰에 길들여지면 5분을 집중해 책 읽기가 힘들다. 하물며 통제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에게 디지털 기기를 허용하더라도 시간을 제한하는 건 필수다.

 

가장 효과적인 읽기 훈련법은 “먼저 부모가 읽어주는 소리를 듣고 다음에 아이가 소리 내어 읽는 것”(56쪽)이라고.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에게 읽기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는 ‘부모가 읽어줬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먼저 그 책을 읽어 주고 아이가 내용을 이해한 다음, 스스로 읽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읽기 연습을 하면 좋다. 또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기를 해도 좋다. 한 권의 책을 아이와 부모가 번갈아가며 읽는 것이다. 함께 읽기는 아이가 조금 어려운 책을 읽을 경우에도 시도해보면 좋다. 아이가 훨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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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보다는 도서관 나들이가 좋다

 

책 말미에 추천 도서 목록을 정리했다. 어떤 기준이 있었나?

 

좋은 책이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고르려고 했다. 좋은 책들은 사실 너무 많다.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 더 좋아하는 책은 따로 있다. 읽기에 서툰 사람이 독서를 시작하려면, 일단 재밌는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 조금 신기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책, 어려운 분야나 소재라도 어쨌든 재미있는 책을 추천했다.

 

학교나 각종 단체에서 발표하는 권장 도서 목록은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까?

 

권장도서 목록은 한 학년 동안 아이들이 배워야 할 교과 과정과 연계하여 책을 선정한다. 아이가 권장도서를 싫어한다면 부모가 목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이마다 좋아하는 책, 적합한 책이 따로 있다. 원칙적으로 여러 가지 주제를 담은 동화와 논픽션을 고르는 게 좋지만, 아이가 권장도서를 지겨워 한다면 잠시 유예 기간을 갖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다. 이를 테면 담임 교사와 상의해서 당분간 권장도서를 읽지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독서기록장을 써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집은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문제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상당히 많다.

 

사실 전집은 부모들이 편해서 사는 거다. 하나하나 고르기 힘들고, 저렴하고, 아이들 데리고 나가기 힘들어서 사는 것인데 전집의 장점은 구성이 잘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커리큘럼에 맞게 책이 구성되어 있어 고른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어떻게 보면 한국적인 특성에 잘 포지셔닝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자. 전집을 끝까지 다 읽었나? 그렇지 않다. 전집을 사는 부모님들을 보면, 내 아이가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 불안감, 이걸 읽으면 똑똑해지고 성적이 좋아진다는 무의식적인 욕망 때문에 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건 어린이도서연구회, 행복한아침독서 등에서 매년 발표하는 좋은 책 목록을 출력해서 도서관에 가서 아이의 취향에 맞게 한두 권씩 빌려오는 것이다. 아이랑 놀이 삼아 도서관을 다니면서 책을 읽게 하는 것, 이것이 더 효과적이다.

 

집에 책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책을 멀리하는 아이도 있는데.

 

‘책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 중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집 어디에나 책이 있어서 아이가 읽을 수 있게 하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물론 아직도 책이 부족한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지금은 책 과잉이다. 학교에서는 ‘독서 골든벨’하고 하루가 멀게 독서록을 쓰라고 하고, 필독서를 나눠준다. 과연 이런 방법으로 책 읽는 인구가 늘었을까? 그렇지 않다. 때문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가 원하는 방법에 맞춰 부모가 따라가줄 필요도 있는 거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아이가 책을 안 읽겠다고 하면 그냥 내버려 두고 엄마, 아빠가 원하는 책을 읽으시라. 책 읽는 모습이라도 많이 보여주면, 아이는 언젠가 생각하게 된다. ‘아, 우리 엄마는 책을 왜 이렇게 좋아하지? 왜 밥도 안 차려주고 책만 읽지?’ 자연스럽게 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

 

현재 대학생인 저자의 아이가 다시 아홉 살로 돌아간다면, 부모로서 꼭 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아이가 어릴 때 갯벌, 곤충 책을 좋아했다. 좋아하니까 책을 읽어주긴 했는데, 실제로 갯벌에 가거나 곤충을 만져본다는 활동은 많이 못했다. 책으로 접한 지식, 이야기를 실제 체험으로 이어지게 해줬다면 아이가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내내 아쉽다.

 

결국 이 책의 결론은 “부모가 꾸준하게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억지로는 하지 말자. 일단 재밌는책으로 아이의 독서를 시작하자”가 아닐까.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아이들의 읽기는 반드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단 부모님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끌어준다면 아이들은 반드시 성장한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아이들은 모두 성장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면 좋겠다. 모든 아이가 다독을 할 필요는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함께 책을 읽는 일이다. 아주 최소한의 관심일지라도 그것만 놓지 않으면 아이의 읽기는 반드시 성장한다. 내 아이가 책을 덜 읽는 것 같다고 걱정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꾸준히 조금씩 읽어나가면 반드시 성장할 수 있다.

 

 

 

한미화 어린이책 평론가가 추천하는
‘7~9세를 위한 상황별 맞춤 도서 목록’

 

동화를 처음 시작할 때 읽기 좋은 책

『언제나 칭찬』  류호선 글 박정섭 그림   | 사계절
『화해하기 보고서』  심윤경 글, 윤정주 그림  |  사계절
『멋지다 썩은 떡』  송언 글,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잘한다 오광명』  송언 글,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나도 예민할 거야』  유은실 글, 김유대 그림  | 사계절
『쿵푸 아니고 똥푸』 차영아 글, 한지선 그림   |  문학동네어린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화난 책』  세드릭 라마디에 글/뱅상 부르고 그림/조연진 역 | 길벗어린이 |
『블랙 독』  레비 핀폴드 저/천미나 역 | 북스토리아이
『아홉 살 마음 사전』  박성우 글/김효은 그림 | 창비
『나를 표현하는 열두 가지 감정』 임성관 글/강은옥 그림 | 책속물고기
『생쥐 기사 데스페로』 케이트 디카밀로 글/브루스 포스터 그림/김경미 역 | 비룡소

 

 

친구와 잘 지내고 싶을 때

『친구는 좋아! 』 크리스 라쉬카 글그림/이상희 역 | 다산기획 |
『친구를 사귀는 아주 특별한 방법』 노튼 저스터 글/G. 브라이언 카라스 그림/천미나 역 | 책과콩나무
『짝꿍 바꿔 주세요! 』 다케다 미호 글그림/고향옥 역 | 웅진주니어 |
『화요일의 두꺼비』 러셀 에릭슨 글/김종도 그림/햇살과나무꾼 역 | 사계절

 

 

 


 

 

아홉 살 독서 수업한미화 글 | 어크로스
저학년 아이들이 어떻게 읽기를 해야 하는지, 읽기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법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소개해, 책 고르기를 어려워하는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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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다양한 이야기를 접해야 완성된 인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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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문장이다. 페미니스트 소설가인 그의 작품에는 꾸준히 인종, 여성, 이민자가 중요한 주체로 등장한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엄마는 페미니스트』  등 유명한 에세이가 많지만,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페미니즘은 정의 구현 운동”이라는 그의 믿음은 소설에서 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향력 있는 인물,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얼굴, 영미 문학의 차세대 작가….’ 수많은 수식언 중에서 문학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자 페미니스트이기에 기쁜 사람이면서, 문학을 쓰고 읽는 사람이어서 더욱 기쁜 아디치에가 보였다. 2019년 8월  『보라색 히비스커스』  출간을 기념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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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나요?


인상을 갖기에는 너무 짧았죠. 그래도 ‘돌아와 보고 싶다’는 감정이 든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에 갈 때면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는지 아닌지,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쳐다보는지를 의식하게 돼요. 선의의 호기심으로 볼 때가 있고, 적대감이 느껴질 정도로 노려볼 때도 있는데, 서울에 오니 제가 근방에서 유일한 흑인이었음에도 제 존재가 매우 당연한 것처럼 저를 쳐다보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환영해 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한국의 패션을 늘 좋아했어요. 한국 여성들의 스타일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한국 정치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서 산책하면서 거리에 걸린 현수막을 유심히 봤어요.


『보라색 히비스커스』  가 나온 지 15년이 됐습니다. 작품을 지금 보면 어떤가요?


이 질문을 받고 나서야 제가 나이가 들었구나 싶어요. 세월이 지나고 다 큰 자식을 대학에 떠나 보내야 하는 심정이 드네요. 나이지리아를 떠나온 지 4년쯤 된 상태에서 이 소설을 썼는데, 정말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가난한 유학생이어서 집에 갈 수도 없었고 집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었죠. 그러나 여전히  『보라색 히비스커스』  가 제게 소중한 이유는, 그 시절 향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그때 감정이 소중하게 남아 있어요.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독자라면 어느 정도 궁금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 작품에 어느 정도나 작가의 인생이 들어간 건지 궁금해하니까요.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소설을 썼다면, 그건 칭찬으로 받아들여야죠. 그러나 『보라색 히비스커스』  와  『아메리카나』  는 자전적인 소설이 아니고, 내레이터와 저를 동일시하지는 않아요. 일반적으로 나이지리아인이 아닌 사람들이 제 소설을 읽을 때, 나이지리아에 대한 지식이 워낙 없고 자신이 읽는 게 나이지리아의 전부라는 인식을 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기는 거라고 보는데요. 제 인생의 요소가 들어갈 수는 있겠죠. 그러나 저는 아닙니다. 제 인생은 단조로운 편이죠. 소설 속 주인공처럼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진 않았어요.


작가님의 소설로 나이지리아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소설로 인해 나이지리아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는 걸 우려하진 않나요?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책을 쓴 것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픽션을 쓰지만, 진실을 말하기 위해 픽션을 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나이지리아를 긍정적으로만 보이게 하거나 부정적으로만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로지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만 소설을 써요. 이 진실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모두 혼재해 있다고 생각해요. 그중 나쁜 것만 보게 된다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가끔 그런 일이 발생하고는 하죠. 예를 들어 『보라색 히비스커스』  만 읽고 나이지리아의 모든 남성이 다 폭력적이고 약자를 학대한다고 여긴다면, 일반화하려는 독자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어떻게 책 한 권만 읽고 모든 나이지리아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어요?


소설에 나이지리아의 역사와 상황을 언급할 때가 많습니다.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나요?


글을 많이 읽어요.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도 그 시대 배경에 대해 관련된 모든 책은 다 찾아 읽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더해 사람들을 많이 인터뷰했어요. 전쟁이 언제 어떻게 발발했고, 당시 외교 정책이 어땠고 그게 전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책을 통해 알지만, 소설가로서 관심을 갖는 건 전쟁이 발발한 그날, 군인들이 마을에 쳐들어온 날에 이 사람은 아침에 무얼 먹었나, 이런 것들이거든요. 『보라색 히비스커스』  는 제가 나이지리아에 살던 시대를 그리면서도 인터뷰를 통해 제가 기억하는 게 맞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자료 조사를 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끔찍할 정도로 재미없는 작업이죠.(웃음)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의 배경이 된 시기는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역사 시대가 아니에요. 아직도 해석이 분분하고 논쟁이 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제대로 묘사하고 싶었어요. 사실이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으면 책 전체가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열심히 취재를 했죠.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  를 보면서 한국의 ‘대하소설’이 떠올랐어요. 한국에서는 주로 남성 소설가가 대하소설을 쓴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서양 문학에도 그런 편견이 있을까요?


서양에도 대하소설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대개 시리즈로 되어 있는 장편 소설은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거나 SF, 영어덜트 소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신 남성 작가는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룬다는 편견은 있는 것 같아요. 서평만 봐도 작가가 남자면 굉장히 무겁고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고 여기는데, 같은 전쟁이 배경이 된다 하더라도 여성 작가가 쓰면 더 가벼운 주제를 다룬다고 여기는 식이에요. 작가의 성별이 달랐다면 서평도 다르게 나왔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서평을 보고 실망하실 때가 있나요?


다른 책의 서평을 보고 실망할 때가 있어요. 제 책은 리뷰를 보지 않아서요.


리뷰를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화내기 싫어서요.  『보라색 히비스커스』  가 나왔을 때 리뷰 하나를 읽었어요. 칭찬 일색의 리뷰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틀린 말이 한 줄 적혀 있더라고요. 그 한 줄에 제가 너무 집착하게 되고, 쫓아가서 이 말은 틀렸다고 정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작품에 대한 리뷰를 읽는 게 에너지 소모가 심해요. 아무리 칭찬을 받더라도 차기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누군가 저보고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고 한다면, 다음 작품을 쓸 때는 인물 묘사에 좀더 신경을 쓰게 되죠. 그런 영향이 늘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책을 발표하기 전에는 조언을 많이 들으시는 편인가요?


제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 제게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들의 의견은 매우 잘 경청하는 편이에요. 제 소설을 그들의 눈을 통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케냐 작가인 빙야방가 와이나이나(Binyavanga Wainaina)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는데, 몇 달 전에 작고했어요. 차기작을 그분한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단편 소설, 장편 소설을 쓸 때 차이점이 있을까요?


오히려 단편을 쓰는 게 더 오래 걸릴 때가 있어요. 10년 전 시작했지만 아직 끝내지 못한 단편소설도 있거든요. 단편은 쓰다 막히면 묵혀뒀다 다시 꺼내보고는 하지만, 장편 소설은 소설과 제가 같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아요. 소설과 함께 일상을 사는 기분, 소설과 같이 호흡하는 기분이 들죠. 다 쓰고 탈고를 끝내고서도 감정의 잔재가 남아있기도 하고요. 단편은 좀더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 같아요. 끝나면 손 털고, 그럼 정말 끝인 거죠. 소재도 좀 다른 것 같아요. 어떤 목소리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건 장편감이다’ ‘이건 단편감이다’ 하는 생각도 같이 오거든요.


문예창작학과 아프리카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학교에서 배울 때와, 실제로 글을 쓸 때와 차이점도 궁금합니다.


석사 학위 과정을 문예 창작(creative writing)으로 받을 당시 이미 소설로는 데뷔한 상태였어요. 제 이름으로 된 소설책이 나온 상태에서 다음 작품을 쓸 시간과 공간, 환경이 필요해서 학교로 돌아간 건데, 그래서 미움을 받은 것 같기도 해요. 문예창작을 배우려고 온 사람이 이미 소설을 출판했다는 건, 사람들이 지지하고 응원할 만한 스펙은 아니었거든요. 석사 과정은 제게 시간과 여유, 공간을 주었지만, 거기서 배운 것들이 늘 작가로서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특히 미국에서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구조나 프레임에 순응하고 거기 맞춰가는 훈련을 받는 것 같아요. 학교를 나오고 나서는 제가 배운 걸 소설에 실천하기가 싫어지더라고요. 특히 비판을 너무 신중하게 받아들이거나 자신감이 없는 작가들은 문예창작학이 작가로서의 길을 망칠 수도 있어요. 학교에서는 다 같이 품평회를 하면서 동일한 지점에서 렌즈를 끼고 보기 때문에 특정 부분이 모호하거나 논쟁적이라는 문제제기를 하죠. 하지만 그런 걸 다 빼고 나면 글이 다 똑같아지고 밋밋해지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깔끔하다 하더라도 지루한 글이 돼요. 작가라면 논쟁적으로 쓰거나, 애매하게 써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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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지 않은 세계관이 생기려면


<뉴요커> 기사에서 “왜 세계는 지금 아프리카 문학에 열광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첫 번째는 아프리카 작가들이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을, 두 번째는 아프리카인들이 미국인 흑인들처럼 “화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런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첫 번째 이유에는 저도 동의해요. 누군가는 저에게 왜 모국어로 문학을 하지 않고 영어로 소설을 발표하느냐고 묻죠. 영어는 나이지리아의 공용어이고, 학교에서 영어로 모든 것을 배우기 때문에 영어는 나이지리아의 언어예요.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나이지리아를 식민지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영어를 우리 언어로 만들었어요. 두 번째 이유는, 미국계 흑인들이 왜 더 화가 나 있는지도 이해해야 해요. 너무 오랫동안 국가의 인종차별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당연히 화가 나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저도 그런 역사를 접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미국계 흑인들이 덜 객관적이라는 게 아니에요. 객관적인 진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백인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나타나고, 백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미국계 흑인이 쓴 소설이 많이 발표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활동할 때마다 미국계 흑인으로 패싱되거나, 나이지리아인이 아닌 아프리카인으로 통칭해서 불릴 때 피곤하진 않나요?


저를 미국계 흑인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무식한 것이겠죠. 저는 미국에 사는 아프리카인일 뿐이에요. 흑인을 백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보는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일상적으로 겪으면서 살아온 사람과, 대부분 절대다수가 흑인인 사회에서 살아간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인종과 자아에 대한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고요. 가끔 저에게 인종차별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해달라고 초청이 들어올 때가 있어요. 저도 인종차별에 대한 불편은 있지만, 나이지리아에서 자랐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제 일상이 아니었어요.


아프리카인으로 불리는 것은 맥락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요. 아프리카에도 다양성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이해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귀찮아서 저를 아프리카인으로 부른다면, 물론 짜증이 나죠.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저를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일종의 자부심의 발로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보면서 아프리카 인으로서 전세계로 책을 출판할 수 있겠다고 희망을 갖는 건 저에게도 굉장히 희망찬 일이에요.


사람들이 더욱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문학이 조명을 받는다고도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디아스포라 문학이 점차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시는 편인가요?


너무 늦게 찾아온 관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자라면서 러시아 문학, 미국?영국?인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랐어요. 그런 이야기를 사랑했고,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나이지리아같이 세계 경제 지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나라라면 계속해서 외부에서 콘텐츠가 들어오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나라가 전부가 아니고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세계 경제 중심에 있는 나라에서도 문화적 다양성이 계속 흘러야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접해야만 완전한 세계관, 편협하지 않은 세계관이 생기고 완성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엄마는 페미니스트』  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페미니즘 활동가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인식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어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와  『엄마는 페미니스트』  는 얇으니까요. 제 소설은 두껍고요.(웃음) 저는 페미니스트이자 작가이고,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선택한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은 곳에는 이야기꾼이라는 정체성을 더 가까이 여기고 있어요. 

 

하버드 연설에서 “문학은 나의 종교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늘 그래 왔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문학과 소설이 늘 인생의 길라잡이였어요. 많은 것을 소설로부터 배웠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거나 공부를 싫어한 건 아니지만, 인생에 있어서는 학교보다 소설로 더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치관도 소설을 읽으면서 형성됐고, 인생에 교훈을 얻었거나 하는 건 다 소설을 통해서였어요. 소설을 통해 정의와 평등을 믿게 되었고, 소설을 통해 모든 인간은 인격체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걸 믿고 배웠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소설이 제 인생의 스승인 거죠.


도서관에 책을 보내는 재단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보라색 히비스커스 재단(Purple Hibiscus Trust)’에서 그 일을 하고 있어요. 나이지리아 도서관에 책을 채워 넣는 사업을 하고자 합니다. 책을 보내는 운동뿐 아니라 여성들에게 초점을 맞춘, 여성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워크숍이나 행사를 많이 하고 싶어요. 지금 하는 워크숍도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여성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는 워크숍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프리카 문학계에서만 해도 제가 잘 알려진 작가 중 하나지만, 다른 작가들은 거의 다 남성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창작 워크숍으로 여성 작가를 양성해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자신의 의견을 발언하고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해요. 목소리를 낼 환경과 자신감이 없으면 그게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거든요. 문학 작품이 아니더라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원서를 내는 것조차 망설여요. 안 될 거라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는 거죠. 반면 남자들은 “뭐 어때!” 하면서 해버린단 말이에요. 그런 자신감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야망을 가지는 것이 괜찮고, 좋은 일이라는 걸 말하는 워크숍을 하고 싶어요. 시내에 나가면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야심 찬 여성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돈이 없어요. 재단을 통해 사업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는 일도 하고 싶어서 나이지리아 대출제도에 관해 공부하고 있어요.


 


 

 

보라색 히비스커스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저/황가한 역 | 민음사
그녀만의 독특한 건강하고 주체적인 여성적 자아의 에너지가 물씬 풍긴다. 대중적인 플롯과 편안한 문체를 선택해 문학적인 성취와 동시에 세계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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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정명 “재밌는 추리소설로 읽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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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33년의 예루살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의 7일.


소설  『밤의 양들』의 배경이다. 익숙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 예상할 테지만,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소설의 첫 장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은 ‘예수’가 아닌 ‘마티아스’. 구원자로 온 신의 아들이 아니라 ‘도살꾼, 사기꾼, 포주, 검투쟁이, 로마 군졸, 밀정’으로 살아온 사내다.

 

로마인 백부장을 살해한 죄로 수감 중이던 마티아스는 ‘조나단’의 부름을 받고 감옥 밖으로 나온다. 유월절을 일주일 앞둔 예루살렘, 그 성스러운 공간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성전수비대의 대장인 조나단은, 충직한 사냥개를 풀어 사냥을 하듯, 마티아스를 조종해 살인범을 잡아들이려 한다. 로마인 총독 ‘빌라도’ 또한 진실을 쫓을 한 사람을 파견한다. 로마인 현자 ‘테오필로스’,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추적과 해결에 능한 인물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도중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이 벌어지고 마티아스와 테오필로스는 합동 수사를 시작한다. 진실에 다가간다고 느낄수록, 두 사람과 예수 사이의 거리도 좁혀지는 상황. 마티아스, 테오필로스, 그리고 예수. 세 사람의 운명이 얽히기 시작한다.

 

『뿌리 깊은 나무』  ,  『바람의 화원』 ,  『별을 스치는 바람』  등 한국형 팩션의 새 지평을 연 이정명 작가. 그가 12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한 추리소설 『밤의 양들』로 돌아왔다. 탄탄한 역사 철학 종교에 관한 지식, 그 사이를 치밀하게 파고드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성경과 추리소설을 접목시킨 파격적인 시도는 물론이고, 뻔하지도 않고 노골적이지도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놀라움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책이 재밌는 추리소설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오래전의 이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의 우리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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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


A.D. 33년의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의외의 배경에 놀랐다는 독자 반응도 있었어요.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알려진 저의 작품이 주로 우리나라 역사를 배경으로 쓴 것들이기 때문에, 굉장히 멀리 떨어진 시대와 공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저는 이 책을 쓸 때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이 실제로 남아있는 기록의 이면,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이나 기록이 놓친 부분들을 상상의 인물과 사건으로 채워서 진실성을 조금 더 밝혀보는 것이었는데요. 그런 작업의 절차나 방식으로 보면, 이번 책도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생각해요.

 

성경은 여백이 많은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그 여백이 작가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밤의 양들』  은 어떻게 탄생됐나요?


여백이 많은 기록이기도 한데, 성경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성경 이후의 수많은 기록들과 역사에 의해서 그 공백을 채울 수가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공백이 많다고 해서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완벽한 기록으로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은 개개인이 다 다를 수가 있겠죠. 이야기로써 받아들이는 독자의 입장도 있고요. 저는 성경에서 짧게 언급했던 사람들이나 짧은 에피소드 하나로 넘어가는 인물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경에 대해서 읽어보고 공부하게 됐고요. 그러는 과정 속에서 인물들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내가 있었죠. 그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었을지, 궁금해 하셨을 것 같아요. 이번 소설에서 ‘마티아스’로 탄생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상상 속의 인물을 토대로 해서 그 시대를 바라본다거나 기록을 재조명하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그 시대 자체를 충실하게 그림으로써 인물의 개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됐던 것 같아요. 마티아스라는 인물이 왜 살인자로 설정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마티아스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원죄를 받은 인간,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 조건이라는 속성들을 다 가지고 있는 인물이거든요. 마티아스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굴레를 의미하는 거였어요. 마티아스와 대척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로 ‘테오필로스’가 나오는데요. 그리스의 철학과 지식을 배경으로 가진 사람이에요. 마티아스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굉장히 원초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이고 유대인이고요.

 

상반된 배경을 가진 두 인물이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도록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어떤 부분에서는 당시의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적인 배경을 조금 상징한다고 할까요.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적인 신념을 지니고 있었어요. 서구 문화를 지탱하는 문명의 큰 기둥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볼 수 있는데, 테오필로스는 전형적으로 헬레니즘, 로마의 문명을 상징하면서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티아스는 성전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죠. 결국에는 두 인물의 배경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상징하는 것이고요. 그 두 사람이 충돌하고 엇갈리고 협조하면서 사건이 풀려나가는 것이 당시의 예루살렘이라는 공간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예수가 아닌 마티아스의 이야기에서 소설이 시작됩니다. 왜 예수에게 더 중점을 두고 쓰지 않으셨어요?


그 이야기는 지난 2천 년 동안 계속되어 왔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기존에 했던 그런 방식과 시각으로는 굳이 제가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그 시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면, 그 시대를 살았던 예수의 모습이 자연적으로 떠오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부감 효과라고 해야 할까요. 예수를 약간 편광 시켜서 프리즘을 통해서 보면 그 속의 여러 가지 빛깔들이 드러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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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예루살렘에 투영된 지금의 대한민국


마티아스가 ‘밀정’이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밀정으로서 그가 하는 일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말’을 수집하는 거잖아요. 그걸 임의로 가공해서 전달하거나 팔고요. 또 ‘소문’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실을 담거나 왜곡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말’과 ‘진실’에 대해 말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이 소설은 2천 년 전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주 작은 도시의 이야기인데요. 그러한 지리적 시간적 격차나 이격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소설이 한국의 소설가가 쓴 한국적인 작품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독자 분들이 그렇게 받아들여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왜냐하면 (소설 속에서) 사람들이 말과 소문과 진실과 왜곡된 것들을 받아들이는 매커니즘이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목도하고,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것이 오래 전의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2019년의 대한민국을 투영하는 하나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소설에도 얼핏 나오지만 로마의 총독과 로마 세력이 식민지 속주에서 시행하는 세금이나 여러 정책들, 행정적인 행태들이 있는데요. 지금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과정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의 이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의 우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조나단’이라는 인물이 떠오르는데요. 자신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정, 충성도가 엄청난 사람이죠. 그 거대한 이념 때문에 한 인간을 희생시키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요.


조나단은 성전 세력에서 아주 중추적인 인물이에요.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위정자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이것이 국가, 조직, 사회에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독선으로 사회를 끌고나갈 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희생들이 있죠. 그런 것도 복잡한 지금의 현실을 타개해나가는 위정자나 일반 시민들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나단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복합적이지만, 나름대로 자기 논리와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인물이죠. 그 주장이 진짜 사회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마티아스는 “누구든 자신의 형틀은 자기가 메고 가야 한다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인물이 아닌 거죠.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일차적으로는, 소설 속에서의 구도로 봤을 때, 마티아스라는 인물이 주인공이지만 역할은 오히려 안티 히어로 쪽에 가깝지 않나 라는 생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일반적인 죄와 속죄에 대한 관념, 생각들과 배치되는 자기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요. 또 마티아스는 당시의 사회 제도와 배치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거든요.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죄를 지었다면 생명을 바치고 속죄의 제를 지내면 죄가 사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념이었을 텐데, 마티아스는 그것과도 배치되는 자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인간으로서의 굴레를 가지고 있는 안티 히어로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는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시시포스 같은 인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운명을 거스르는, 또는 기존 관념과 충돌하는 자기 생각을 가짐으로써 당시 사람들보다 굉장히 현대적인 생각을 하는 거죠. 한계가 있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아주 인간적인 인물이 마티아스예요.

 

12년 동안 집필하신 작품이에요. 2007년경부터 쓰기 시작하신 건데, 그 시기가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이 소설을 계속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작업도 병행했기 때문에, 12년의 세월을 온전히 이 책에만 전념해서 바친 건 아니에요. 초고가 나왔을 때부터 계속 수정하고 재검토하는 과정이 12년이 걸렸다는 거고요. 그 기간 동안 계속 다른 작품을 하면서도 병행해서 작업을 해왔죠. 2007년이라는 시간과 특별히 연관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작품마다 긴 시간 준비하시고 집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쉬운 길로 가지 않으세요(웃음)?


다른 작가 분들도 다 그러시죠. 작품 하나하나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시죠. 그건 저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왜 고생을 하냐고 물으셨는데(웃음), 저로서는 굉장히 즐거운 고생이죠. 풀리지 않는 부분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방법을 찾고, 그렇게 해서 맺혀있는 부분을 풀어내고, 그런 과정들이 저한테는 오히려 재밌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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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추리소설로 읽혔으면


『밤의 양들』  에는 방대한 지식, 역사적 사실, 추리의 틀이 같이 정교하게 맞물려있어요. 초고를 완성하시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초고를 쓰는 시간은 생각보다는 길지 않아요. 아무리 오래 걸려도 1년 안에 써요. 집필부터 시작되는 시간이 그렇고, 구상 기간을 따지면 12년 이상의 기간이 있는 거겠죠. 어느 날 문득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집필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하면 계속해서 자료를 찾고 수집하고 분류하고 축적하고 검토해요. 그 과정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전체적으로 떠오른다고 할까요. 어느 정도 구상이 끝났을 때 집필로 들어가기 때문에, 막상 집필 과정에서는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어요. 오히려 초고를 작업하고 난 뒤의 과정이 더 힘들다고 할까요. 이야기들 하나하나가 모순이 없도록 맞춰야 되니까요. 그래서 편집자분들이 엄청 고생을 하실 거예요(웃음). 수정 과정이 마지막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편집자 분들, 디자이너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시죠.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까지 팩션을 써오시면서 ‘소설은 소설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오해할까 봐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해오셨는데요. 이번 작품은 종교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조금 더 조심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소설 속의 어떤 문장을 보고 ‘이게 신과 종교에 대한 작가의 해석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우려 때문에 12년 동안 계속 붙잡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죠. 어차피 저는 쓰는 사람이고, 이 책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읽는 분들 각각의 입장이나 생각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저로서는 제가 쓸 수 있는 한도에서 그 시대의 모습을 충실하게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주인공들이 각각의 상황에서 개연성 있게, 모순 없이 그려지도록 했고요. 그런 과정들이 조금 길어진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종교적인 색채라든가 속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밌는 추리소설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계속 빛의 조도를 조금씩 높여가다 보면 어느 순간 벽에 있는 벽화가 드러나면서 부감이 되는 식으로, 사건을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독자들이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면 좋겠다는 게 가장 바라는 바인데요. 독자 분들은 어떻게 읽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이기도 하고, 여러 세력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서 충돌하고 엇갈리는 과정에는 정치소설의 성격도 일정 부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종교소설의 속성도 분명히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는 이 이야기가 재밌는 추리소설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처음부터 장르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게 아니었죠?


결심을 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저에게 익숙한 방법이었던 것 같고요. 저는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쓰는 글을 많이 써왔잖아요. 기록이라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저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써온 거죠. 그렇게 해서 이면의 것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메시지, 이야기, 대상에 대해서 정말 논리적으로 접근해 나가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아주 허황된 이야기가 되거나 앞뒤가 안 맞는 중구난방의 이야기가 되죠. 추리라는 기법이 하나하나 논리를 세워나가고, 그것들을 계속 강화해 나가고, 결국은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종착점까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끌고 갈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 때문에 그 방법을 쓰는 것 같아요.

 

굳이 율법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누가 봐도 마티아스는 죄 많은 인간이에요.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인간에게서 성스러움이 발견되는 순간도 있을까’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성스러운 순간이라고 표현해야 될지 아니면 그 표현이 정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사건이 끝났을 때 마티아스의 고뇌와 내적인 긴장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건이 끝났지만, 그러면 모든 게 풀려야 되지만, 마티아스의 갈등과 내면적인 고민은 그때부터 아주 격렬하게 시작되는 거예요. 자신이 윤리적인 선택을 해야 되는 거죠. 진실을 묻으면 자신은 어느 정도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고, 묻어버리지 않으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그것은 종교적인 선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아주 윤리적인 선택이죠. ‘진실을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라는 고민이 사건이 다 해결된 후에 다시 시작돼요. 마티아스가 어떤 선택을 할지 갈림길에 선 그 장면이 마티아스로서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어요. 성스럽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지만 저로서는 마티아스의 가장 진실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밤의 양들이정명 저 | 은행나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예루살렘이라는 성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그 당시 예수와 그의 진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재조명된다. 성경과 추리소설과의 만남이란 형식 또한 파격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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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은령 편집장 “책에 관한 책은 무조건 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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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잡지를 만들었다. 틈틈이 번역하고 수시로 책을 읽었다. 월간  『럭셔리』  편집장이자 『침묵의 봄』 ,  『설득의 심리학 3』  (공저) 등을 번역한 김은령. 사회인으로 자리 잡고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어서 기뻤던 30대를 지나 40대에 당도한 그는 답 없는 고민을 마주하며 불안할 때마다 책을 펼쳤다. 책은 40대를 잘 지나갈 수 있게 도와준 가벼운 예방 주사이자 적절한 영양제(9쪽)가 되어 주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당연히 내 차지라고 생각하던 것들과 작별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언제까지 지금처럼 일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여러 가지 고민을 익숙한 친구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녀야 할 것이다. (중략) 그래도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딱히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하던 대로 책이나 읽자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길게, 오래 해왔고 그나마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6쪽)

 

『밥보다 책』  은 김은령 저자가 일, 건강, 가족, 노후 등의 고민으로 가득했던 시기를 통과하면서 읽은 책을 소개한 에세이다. 일도 사랑도 취미도 모두 책으로 배웠다는 그에게 ‘좋은 책’은 따로 없다. 어떤 책이 재미없었다면 그건 책과 나의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  『맥베스』 ,  『노인과 바다』  같은 고전부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며느라기』  와 같은 신작까지 다양한 책이 실린  『밥보다 책』  에는 김은령 저자의 편식 없는 취향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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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끝도 ‘잡지’

 

잡지 만드는 사람들은 9월에 제일 바쁘다고 들었어요.


3, 4월에 S/S 시즌이 시작되고 9, 10월에 F/W 시즌이 시작돼요. 시즌이 시작되는 만큼 새로운 제품이 많다 보니 이슈도 많고 광고나 부록도 많아서 볼륨이 늘어요. 3월호나 9월호가 창간기념호인 잡지가 많거든요. 그래서 9월에 더 바쁘기도 하고요. 일이 많은 만큼 돈을 많이 버는 달이죠.

 

20년 넘게 한 곳에서 잡지를 만드셨어요. 비결이 뭔가요?


어렸을 때부터 잡지를 좋아했어요. 늘 잡지를 품에 끼고 다녔죠.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오락거리가 많지 않으니까 잡지에서 즐거움을 찾았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소년중앙』이나 『소녀시대』 같은 어린이 잡지를 봤고,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인 고등학교 때는 몰래 들어온 일본 잡지를 보기도 했고요.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외국 패션 잡지를 보기 시작했죠.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오히려 빨리 지치거나 실망하는 경우도 많아요.


다행히 잡지 일이 성격에 맞았어요. 지구력이 없는 스타일인데 잡지는 호흡이 짧아서 지겨울 만하면 한 달이 끝나잖아요.(웃음) 이번 달에 기사를 잘 못 써서 마음에 안 들면 ‘다음 달에 잘하면 돼’라고 할 수 있어서 좋았죠. 잡지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재미있기도 했고요.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돈까지 주네?’ 싶었어요.

 

틈틈이 번역도 하셨어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번역도 잡지로 시작했어요. NBA 팬이었는데 과거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잖아요. NBA 소식을 빨리 알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제가 NBA 팬인 걸 아는 지인이 “농구 잡지를 만들려고 하는데 기사 번역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원고료가 적었지만, 농구 소식을 빨리 알 수 있으니까 바로 수락했죠. 짧은 농구 기사만 번역하다가 회사에서 미국 잡지인 『워킹우먼』과 제휴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번역을 하게 됐어요. 외부에 기사 번역을 맡겼는데 담당 기자인 제가 한 번 더 정리해야 하니까 시간도 걸리고 여러모로 불편하더라고요. ‘이럴 거면 내가 하자’ 싶어서 편집장님에게 말씀드리고 시작했죠. 출판사를 차린 동료가 단행본 번역을 제안해서 책 번역까지 하게 됐고요.

 

활자에 둘러싸여 있는데 지겹지는 않으세요?


가끔은 벌 받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웃음) 전생에 공부를 정말 안 했거나 책이나 문자를 함부로 다룬 게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세 가지 모두 좋아해서 시작했고, 좋아서 지금까지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볼거리가 많아서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책이 제일 좋은 오락거리였잖아요. 그때 책을 접한 저는 지금까지 책이 재미있는 거고요.

 

잡지를 안 만들었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요?


수의사요. 동물을 좋아하거든요. ‘왜 수의사를 떠올리지 못했지?’라고 생각한 적 있어요. 다른 하나는 다리 만드는 일이요. 다리를 되게 좋아해서 여행 가면 다리를 많이 찾아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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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책’은 무조건 사요

 

책이 왜 좋은가요?


왜 좋은지 모르겠어요. ‘기본 사양’ 같아요. 어떤 일이든 싫은 이유는 설명할 수 있는데 좋은 이유는 설명 못 하겠더라고요. 다른 재능이 없기도 하고, 읽고 쓰는 게 제일 익숙한 일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책 읽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웃음)

 

책에 관한 책을 처음 쓰셨어요.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미 좋은 책들이 많기도 했고요. 동경하는 대상이었죠. 읽은 책을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민망하더라고요. 속옷 차림을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처음 제안을 받고 좋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내가 책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밥 먹는 이야기는 안 되나?’ 싶었죠. 자신 없었고 지금도 사실 자신 없어요.

 

속옷 차림을 보이는 느낌이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요?


잡지를 만들고 사업을 책임지는 제가 있고 집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책 보는 또 다른 제가 있잖아요.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후자의 모습을 알 수 없죠. 책을 쓰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속옷은 나만 볼 수 있잖아요. 꺼내 놓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꼭 속옷 차림으로 나서는 것처럼 부끄럽더라고요.

 

책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잖아요. 사람들이 왜 볼까요?


책이 엄청 많잖아요. 그 책들을 다 읽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한데 신뢰하는 누군가가 읽어보고 ‘이 책은 이랬어’라고 말해주면 한 번 정리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책 좋아한다고 하면 고루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까 봐 쉽게 말 못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 안심이 되더라고요. ‘아, 이 사람도 책 사느라고 돈을 이렇게 쓰는구나!’ 하면서 동질감을 느끼면서 안심도 되고 기분도 좋고요.

 

제목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인데 이 사실을 아는 편집자가 책과 밥을 생각하자마자 제가 떠올랐다고, ‘밥보다 책’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들고 싶은데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사실 밥보다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긴 하니까 그러자고 했죠.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서민 교수님의  『밥보다 일기』  와 시리즈처럼 기획된 책이기도 하고요. 편집자 말로는 나이가 늘어날수록 기초대사량이 낮아서 군살이 늘어나는데 ‘군살을 만드는 밥보다 익숙함을 벗어나게 해주는 책이 밥보다 더 쓸모 있지 않겠냐’는 의미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먹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소셜미디어에 음식 콘텐츠를 자주 올리는데 『밥보다 책』  이라는 이름의 책을 내니까 창피하더라고요. 남들이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하겠다고 편집자랑 농담하고 그랬어요.  

 

소개하는 책이 다양해요. 밥에 비유하면 한정식 같아요.


일, 건강, 노후, 등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40대가 되고 여러 고민을 하면서 읽었던 책, 예전에 읽었는데 다시 생각난 책들을 모았죠. 고민을 먼저 떠올렸어요. 그러고 나서 어떤 책이 좋은지 편집자와 이야기하면서 진행했죠. 책을 쓰면서 과거에 했던 고민과 이전에 읽었던 책들을 함께 정리하다 보니 인생을 중간정산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유독 좋아하는 책이 있나요?


특별히 좋아하는 책은 없고요. 책에 관한 책은 나오면 다 사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너무 궁금하거든요. 책이 이렇게 많은데 다 읽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일단 책에 관한 책은 다 사서 읽어 보고 거기서 좋다고 하는 책들은 보려고 해요. 이외에는 주로 대형 서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재미있게 보이는 책 있으면 사서 보고, 마감하면서 원고 기다릴 때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사고요.

 

결혼하고 이사하면서 책을 고르느라 고생하셨다고요. 그때 선택된 책들의 기준이 있나요?


가장 먼저 고른 건 잡지와 책에 관한 책이었어요. 제가 책에서 ‘일도 책으로 배웠다’고 했잖아요. 생각보다 빨리 편집장이 됐는데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잡지 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데가 없었어요. ‘어떻게 해야 잡지를 더 잘 만들 수 있을지’ 하는 고민을 항상 했죠. 아마존에서 잡지, 에디팅 이런 키워드로 검색해서 나오는 책을 다 샀어요. 이때 산 잡지에 관한 책들은 일하면서 참고해야 할 것 같아서 1순위고 골랐고, 다음으로 책에 관한 책을 가져왔죠. 그리고 먹는 걸 좋아해서 요리책도 많이 가지고 왔고요.

 

추천사를 쓰신 김연수, 서민 작가님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김연수 작가님과는 과거에 동료이셨다고요.


김연수 작가와 아주 오래전에 같이 일했어요. 짧았지만 재미있게 일했죠. 김연수 작가의 책이 나오면 꼭 사서 보고 잡지에 소개하기도 해요.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멀리서 응원하고 있죠. 서민 작가님과는 인연이 없어요. 책을 많이 읽는 분이 써주시면 좋겠다 싶어서 서민 작가님을 떠올렸는데 다짜고짜 추천사를 써달라고 하기 민망하더라고요. 부탁을 못 하는 성격이거든요. 김연수 작가에게도 마찬가지였고요. 평소에 연락도 안 하다가 책 나왔다고 부탁하기가….. (웃음). 다행히 능력 있는 편집자가 나서서 대신 말해줬고 두 분 다 기꺼이 해주셔서 받을 수 있었죠. 서민 작가님은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서 흔쾌히 써 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감사하죠. 두 분 다 작가로서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라 추천사를 받고 ‘성덕’이라고 자랑하고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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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책과 나의 타이밍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읽히는 책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책인가요?


『노인과 바다』  가 특히 그랬어요. 학창 시절에 영어 공부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노인과 바다』  였거든요. 그때는 정말 지겹고 이 책이 왜 노벨상 수상작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살았죠. 그런데 이번에 바다에 관해 쓰고 싶어서 책을 찾다가 다시 읽었는데 ‘그래 이거였어’ 싶더라고요. 정말 좋아서 여섯 번을 읽었어요. 바다를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낚은 건 없고 그냥 돌아가야 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오래 일한 직장인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어려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죽느냐 사느냐 고민하는 햄릿의 우유부단함도, 거짓말에 넘어가 아내를 제 손으로 죽이고 마는 오델로의 질투도 어느새인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아내는 돈키호테의 무모함에도 공감하게 되었다. 좋은 것과 싫은 것, 절대적으로 옮은 것과 그른 것 사이에 경계가 확실히 나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시대에 따라 새로 해석되는 고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145쪽)

 

다시 읽은 책도 있고 새로 읽은 책도 있다고요.


고전들은 책을 쓰면서 전부 다시 읽었어요. 새로 읽은 책도 많은데 『어른이 되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원래 다른 사람한테 책을 잘 권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많이 추천하고 다녔죠.

 

‘꼰대가 되기 싫어서 책을 읽는다’는 말도 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떨 때 이런 생각을 하시나요?


늘 그런 것 같아요. 20, 30대 때는 모든 트렌드와 현상의 중심에 있잖아요.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지위를 얻을 수 있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그렇지 않아요. 노력해야 가까스로 꼰대를 면할 수 있을까 말까 하고요. (웃음) 그래서 일할 때도 ‘나는 재미있는데 젊은 친구들은 재미있나?’하고 생각해요. 만약 저와 젊은 친구들이 다르게 느끼면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걸 선택해요.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요.

 

고전만큼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나  『며느라기』 ,  『걷는 사람 하정우』  등 최근에 출간된 책들도 많아요. 


의도적으로 고전과 최근에 출간된 책을 배치한 건 아니고, 고민과 맞닿는 책이면 무엇이든 포함했어요. 현재의 시점에서 마흔 언저리에서 했던 고민을 떠올리면서 쓴 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슬아 작가를 예전에 어떤 행사에서 봤는데 너무 충격이었어요. 정말 반짝거리는 젊음을 보는 것 같아서요. 『럭셔리』  에서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인터뷰는 아닌 것 같다’고 거절당했죠. (웃음) 말이 안 되는 거죠. 학자금 대출 갚으려고 글 쓰는 사람인데  『럭셔리』  에서 인터뷰하자고 하니까요.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저처럼 자책하고 고민하고 미래는 안 보이고 이제 주인공은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낯선 30, 40대분들이요. 요즘은 특히 이런 느낌을 빨리 받는 것 같은데 ‘그게 맞아. 맞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책이나 읽자’ 이런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보면 사업 계획은 잘 세우는데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40대 중반부터 약간 다운됐었죠. ‘헛살았어’ 하면서요. 이때 책 읽고 메모한 내용을 돌이켜 보면서 책을 썼고 위로받았어요. 글로 쓰니까 부유하던 고민, 생각들이 정리되고 선명해지더라고요.

 

요즘은 읽는 책은 뭔가요?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 비평집  『경계의 음악』  과 글항아리에서 나온 『힙합의 시학』을 읽고 있어요. 에드워드 사이드가 음악광이면서 클래식을 사랑했다고 하더라고요. 들어야 아는 음악을 어떻게 글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지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힙합의 시학』  은 랩 가사가 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흥미로워요.


 

 

밥보다 책김은령 역 | 책밥상
독서를 그야말로 ‘밥 먹듯이’ 해온 다독가의 단단한 생각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낮아지는 기초 대사량으로 군살을 만드는 ‘밥’보다, 익숙한 세상을 자꾸 흔들어 그 속에 나를 세우는 ‘책’의 쓸모가 더 유용함을 온몸으로 절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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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창근 “포크는 제게 자신감 있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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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송 가수, 통기타와 하모니카라는 어쿠스틱 음악이 전하는 향기와 힘에 대한 기억을 저버리지 않는 가수. 결코 대중적 이름이 아닌 가수 박창근은 저 1980-90년대를 감쌌던, 지금의 인디 일각에서 실험되는 얼터너티브 포크와는 다른, 이른바 '정통'포크를 고수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포크를 '자신에게 맞는 옷'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음악정체성의 으뜸으로 창작자의 메시지를 꼽았다. 처녀작을 1999년에 냈으니 어느덧 그것을 염두에 둔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또한 박창근은 고 김광석을 추억하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을 현재의 존재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김광석이었다고 한다. 수년전 그의 음악으로 엮은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주연을 맡아 노래는 물론 연기한 바도 있다. “솔직히 그분의 페르소나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럼에도 그렇게 봐주신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는 포크로 내달려온 20년을 '안하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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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현실과 관련해서 박창근씨 음악의 장르규정을 피할 수 없을 거 같다. 이른바 포크음악이라는 어휘는 현실적으로 유리된 음악이 아닌가. 지금 세대는 포크를 듣지 않는다. 1999년에 1집을 냈으니 20년간 지속적으로 활동했지만 포크음악의 현실은 20년 동안 더 열악해졌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사실 활동을 해보면 보통 아웃사이더와 메이저로 나누어지잖아요. 포크음악을 하는 분들을 대표해서 제가 얘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저런 행사나 초청공연을 하러 갈 때 보면 저 같은 음악으로 무대에 오르는 가수는 극히 드문 것 같더라고요. 자기가 추구하는 노래가 포크지만 막상 다른 장르로 알려졌다는 분도 계시고... 힘든 상황이죠.

 

실제로 관객이 적은가.

 

뮤지컬 이외에 규모를 크게 해본 적은 없어요. 그리고 합동공연이나 행사 때는 1~2천 명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관객들을 만날 때는 100석 이하 소극장 공연이죠. 포크음악을 향한 대중적 반응이 따뜻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이 음악을 불평 없이 해 오고 있는 이유는.

 

솔직히 회의도 들긴 해요. 특히 선배들 만나다 보면 생존을 위해 다른 장르를 취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얘기하죠. 그렇지만 제가 감동을 느꼈고, 또 다른 이도 감동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자신감 있는 음악'이 포크였고 그게 제 옷이라는 생각을 대학교 때부터 했죠. 그 마음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어요.

 

박창근씨가 이해하고 정의하는 포크음악은? 하모니카,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목소리 이 세 가지로 이뤄진 음악?

 

잘은 모르지만, 편곡이란 숙제도 있긴 하지만, 근원적으로 들어갔을 때는 포크의 정서의 1차는 창작자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관객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거예요. 외적인 흥을 줄 수 있는 무대 퍼포먼스는 부차적인 거죠.

 

가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최우선적이라고 한다면 방탄소년단의 '봄날', '피 땀 눈물'도 강렬한 메시지를 갖고 있고 그 메시지 이상으로 막강 댄스 퍼포먼스와 비주얼이 동반된다. 포크는 동반되는 것 없이 거의 메시지만으로 승부를 건다는 게 맞지 않을까.

 

적절한 표현이네요. 그리고 시대적 발전 이전에 포크 음악 자체, 본래적 의미는 그게 맞지 않나 싶어요.

 

포크 음악이 맞는 옷이긴 하지만 그래도 음악을 하면서 언제든 고통스러운 순간은 있을 것 같다.

 

콘서트를 하고 싶지만 했을 때 '얼마나 손실이 날까?' 이런 걱정을 할 때죠. 팬 층을 확보한 기획사 소속의 다른 유명한 가수들은 콘서트로 수입이 된다고 알고 있어요. 근데 제 경우 콘서트는 제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콘서트가 수익 창출로 연결될 수는 없는 거죠. 사실 200석도 소규모잖아요. 거기를 다 채워도 대관료, 세션 비용 등이 계산이 안 되니까요. 그런 것들로 인해 더 옛날 포크 가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그 때문에 옛날 포크 가수 이미지가 고정될 수밖에 없다는 건가.

 

혼자 기타치고 하모니카 연주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20년을 버티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정말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혼자 앞가림은 할 정도죠. 진짜 감사하게도. (20년을 축하한다고 하자) 20년…아…네…미친 거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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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창근이란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게 아니어도 이 분야에선 나름 지분이 있다. 그래서 통기타 하모니카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 가운데 사정이 좋은 것 아닌가.

 

저는 많이 부끄럽지만 음악 하는 선배님들, 평론가 선생님들, 기획하시는 분들께 그래도 좀 열심히 한다는 인상을 드린 것 같아요. 다른 거 없이 '공연해주세요' 하고 연락 받을 수 있다는 게 저의 유일한 무기 같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피드백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부분이 좀 안타깝죠. 만날 기회가 잘 없으니까요.

 

지금까지 낸 앨범들이 어떻게 되나. 4집인가 <바람의 기억>은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데..

 

공식적인 정규 앨범은 바로 그 4집까지 나왔어요. 1집 만들고 나서는 '가객'이라는 밴드를 1~2년 정도 했어요. 노찾사, 신촌블루스 출신 연주자들이 그때 대구에 있었는데 제가 제안을 받아서 하게 된 거죠. 그 이후에는 2집과 3집을 냈고요. 그런지(Grunge) 장르도 좋아해서 중간에 <None Grunge>라는 음반도 냈어요. 그 앨범을 내고 4집 <바람의 기억>이 나온 거죠. 그러고 나서 박강수라는 여성 포크가수랑 <듀엣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듀엣 음반 이후로는 디지털 음원으로만 인사드리고 있고, 지금은 앞서 낸 노래들을 좀 다듬어서 내려고 계획 중입니다.

 

20년이란 긴 세월을 견디게 한 힘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안 하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이 있어요. 저는 개인적인 시간을 음악적 구상을 하고, 연주하고, 고민하면서 보내요. 음반으로 발표하지 못한 200~300곡들이 있어요. 이게 제 취미가 된 거죠.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되어버린 것 같다고 할까요. 그리고 다른 거는 할 줄 모르겠고... 사회가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사람들하고 어떤 이익에 의해 만나게 되는 그런 것들이 제가 감당해 낼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요.

 

또 김광석과 분리되기 어려운 이름이 된 게 사실이다. 포크음악을 한다는 공유지점 때문이겠지만, 왜 김광석과 이름이 붙게 됐다고 보는가.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때문인 거 같아요. 의욕이 넘쳤던 무명작가 겸 제작자가 뮤지컬을 시작하기 5년 전, 그러니까 2007년에 영화를 하자고 제안을 해왔어요. 그때는 고사했죠. 무모한 거 같기도 하고, 저를 찾아온다는 것도 말이 안 됐고요.

 

1999년이 첫 앨범이었으니 2007년이면 2집 앨범이 나온 때가 아닌가.

 

네, 그때가 2집 음반 나올 때였어요. 2집이 생명과 환경을 다룬 음반이라 그런지 평론가 추천 음반상을 받았죠. 타이틀은 따로 없었지만 모던 포크 계열로 주목 받았던 곡이 '이런 생각 한번 어때요?'라는 노래였어요. 도살되는 가축들을 무심하게 학대하는 것이 우리가 평화를 주장하고 반전을 얘기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냐는 걸 한번 생각해보자는 메시지가 담긴 곡이었죠.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그분이) 다르게 느끼셨나 봐요.

 

기본적으로 김광석의 음악과 지향점도 같고 외부인이 볼 때는 출신이 대구라는 점도 같지 않나. 그런 점이 작용해서 섭외가 왔을 텐데 거절했다가 나중 승낙하게 된 이유가 뭔가.

 

제작자가 굉장히 집요했어요. 계속 연락도 하고, 공연 때 찾아오기도 하고. 최종적으로 찾아온 게 2011년 말이었는데요. 그때 제가 대구 최초로 15일 장기 소극장 콘서트를 혼자 했어요. '아트팩토리 청춘'이라는 곳에서 했죠. 그때 '매일' 무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그때 여러 상황에 의해 영화에서 뮤지컬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영화는 제 외모나 뭐 내세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뮤지컬이라면 노래만 잘하면 되겠다' 싶어서 하게 됐죠.

 

김광석을 무대에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그 제작자도 집요했다.

 

너무 부끄럽네요. 제작자가 고집이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김광석에 푹 빠져있는 친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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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딱 김광석 이미지 아니었나. 객석과 유기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그때 보고 박창근이 뜨겠구나 싶었는데 뮤지컬은 몇 년 정도 한 건가.

 

원년멤버이기도 했고 햇수로는 5년 했습니다. 보통 월요일 빼고 매일 하다가 더블 캐스팅 없이 원 캐스팅으로 할 때는 월요일이랑 목요일 빼고 했어요.

 

언론이 그 뮤지컬에 주목하지 않았나. 인터뷰도 많았던 것 같고. 막상 벌이는 괜찮았나.

 

뮤지컬에 집중해야 해서 오히려 제 단독공연을 할 수 없었죠. KBS에서 <세상을 잇는 담쟁이>라는 프로그램 하나 하고. 벌이는 별로였어요.

 

대학생 때 포크음악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그전에는 인연이 없었나.

 

이전에는 산울림, 이선희 노래를 들었죠. 그때는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불러다 노래시키고, 소풍 때 노래하는 그 정도였어요.

 

포크와 연을 맺게 된 결정적 계기가 뭐였나.

 

대학교에 아무것도 모르고 딱 갔더니 운동권 단체가 있었어요. 그 당시 서로 싸우고 이념 투쟁하고 그랬죠. 거기서 후배가 들어오면 장기가 뭐냐고 물어보고 시켰어요. 제가 노래를 하니까 노래패로 시작하게 됐죠. 그러면서 노래패 출신들을 알게 됐고 김광석 노래를 알게 됐어요. 그때 정태춘 선배님 공연에도 빠지게 됐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그럼 주로 불렀던 노래가 무엇이었나.

 

노찾사, 정태춘 선배님 노래를 너무 좋아했어요. '아, 대한민국...' 이 노래는 교수님들도 제게 불러보라 하실 정도였죠.

 

김광석과 연결이 된 건 어디가 시작이었나.

 

우연히 김광석 콘서트 포스터를 보게 됐어요. 동물원의 감성과 노찾사를 더한 인물이 김광석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문구가 멋있었죠.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찬사를 하는 건가 싶었죠. 공연을 본 건 1992년쯤이었는데 무대에서 느낌이 달랐어요. 너무 커 보였어요. 그때 하모니카, 통기타가 멋지다는 걸 알았어요.

 

김광석과 개인적인 교류는 없었나.

 

그저 꿈만 꿨죠. 공연만 다니다 군대에 갔어요. 군대 가서 그분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죠. 군대에 가서도 노래를 했기 때문에 선임이 알고 달려와서 저에게 전해줬어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박창근씨는 미성이지만 발성이 좋아 강력한 미성이라고 생각한다. 김광석과 비교했을 때 장단점을 따진다면.

 

닐 영(Neil Young)이 떠올랐는데, 닐 영이 고독한 늑대잖아요. 김광석이 늑대라면 저는 여우가 아닐까. (웃음) 어떤 분들은 김광석 테이프를 빨리 돌린 것 같다고도 해요. 사실 저는 터프한 걸 좋아했었죠. 미성 얘기를 하셨는데 여성적이라는 느낌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었어요.

 

김광석 노래 중에서 본인에게 잘 맞았던 곡이 뭔가.

 

'내가 필요한 거야'라는 노래가 저에게 잘 붙었어요. (김광석도) 생전엔 부르고 다니지 않은 것으로 알아요. 그게 사후에 만든 음반에 수록된 곡이죠. 듣기로는 녹음을 해놓고 발표를 못했다 하더라고요. 그 노래가 좋아서 뮤지컬<바람이 불어오는 곳> 할 때 넣었죠.

 

알려진 노래 중에서는.

 

거의 다 좋긴 하지만 '기다려줘'도 있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노래도 김광석다운 곡이라 좋았어요. '너 하나뿐임을' 이 곡도 그렇고요. 대부분 다 불러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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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노래가 갖는 매력을 표현한다면.

 

호흡이 달라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노래할 때는 사투리가 덜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김광석의 노래를) 한마디 한마디씩 소리 나는 대로 적었어요. 사투리를 없애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죠.

 

김광석은 김광석만의 독특한 호흡이 있다.

 

그렇죠. 그래서인지 다른 가수들이 부르면 감동이 덜 오더라고요.

 

작년 12월 단독 콘서트에 김광석의 친형을 초청했다고.

 

뮤지컬 때도 인사드렸지만 그 후로도 공연할 때 잠시 보고 가시기도 했죠. 그렇게 길게 광복이 형님과 함께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1월은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달이다. 그와 친분도 없는데 사후에 음악적으로 김광석의 삶을 이어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에게 빚지는 삶을 사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 그분의 페르소나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럼에도 그렇게 봐주신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결론하면 음악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감사한 선배님이죠. 너무 좋은 선배. 그래서 광복이 형님도 뵙고 싶었던 거고요.

 

커리어 20년을 맞은 2019년 활동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우선은 제가 느낀 봄의 정서를 곡으로 써서 발표하려고 합니다. 감성적인, 좀 깊은(deep) 노래가 될 것 같아요. 발표는 3월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내 인생의 음반은 무엇인가.

 

1장은 딱 나와요. 닐 영의 <Harvest>이고... (고민을 한 후) 닐 영의 다른 음반 중에서는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그리고 2002년에 발표한 <Are You Passionate?>가 있어요. 국내 음반 중에서는 '비둘기에게', '매', '떠나가지마 비둘기' 등이 수록된 시인과 촌장의 <푸른 돛>이랑 김창완의 <기타가 있는 수필>입니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정효범

사진 : 김도헌

정리 :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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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은희경, 자신도 오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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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은 8번째 장편 소설 『빛의 과거』  를 두고 “너무 오랫동안 썼다”고 말했다. 10년 전 실패하지 않았다면 6번째 장편이 됐을지 모르는 소설.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버리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지만 “과거의 나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없다면 현재의 내 삶에 어떤 새로움이 있겠어”라고 자문한 시간이었다.  『빛의 과거』  는 중년이 된 주인공 ‘유경’이 1977년 여자대학교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 ‘희진’의 소설을 읽게 되며 시작된다. 서로를 좋아하지도 절친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40년간 친구로 관계 맺은 두 사람. 그들은 같은 시공간을 경험했지만 너무도 다른 기억을 갖고 있었다. 소설을 찬찬히 읽고 나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심오보다는 ‘묘’에 가까운 감정인데, 누군가에게 편집 당했을 나를 떠올리고 누군가를 재편했을 나를 돌이키게 된다. 과거, 기억, 오해, 해석, 유기, 회피와 같은 단어들이 은희경의 정확한 문장들로부터 숨어 있었다가 툭툭 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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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물에 내가 있는 것 같다

 

‘장편’소설은 7년 만이에요. <문학과 사회>에 2017년에 연재했던 작품인데, 꽤 늦게 나왔어요.


너무 오래 걸렸어요. 연재할 때는 원고가 훨씬 많았는데, 이건 재료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나 문장은 뺐어요. 원래는 ‘유경’의 이야기만 쓰려고 했던 소설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왜 쓰는지, 확신이 안 서는 거예요. 그래서 희진의 이야기를 같이 했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양쪽에 놓으니까, 이 사이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활기가 생기더라고요. 소설을 끝내고 나니까 후련하고 뿌듯하기도 한데, 그동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구나 싶어요.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가제는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였어요. 연재를 준비하면서 지금 제목을 붙였는데요. 빛이라는 게 오래 전에 출발해서 지금 여기에 닿은 거잖아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무언가를 생각했죠.

 

작품의 주요 배경이 1970년대 말 한 여자대학교의 기숙사입니다. 당시 사회상이 많이 반영된 작품이지만 세태소설로만 읽히진 않았어요.


세태소설만도 아니고 성장소설만도 아니고 청춘소설만도 아니에요. 어떤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저의 어떤 객관적인 균형이 필요해서 작품이 오래 걸린 게 아닐까도 싶어요.

 

주인공 ‘유경’은 희진의 소설(「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을 통해 미처 몰랐던 자신의 이면을 발견합니다. ‘희진’이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지만, 아마도 독자들은 ‘유경’의 모습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경을 비롯한 인물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우선 ‘유경’은 머릿속에 쉽게 찾아왔어요. 다른 인물을 만들면서는 어떤 캐릭터를 구현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이 이야기 안에서 역할을 해낼 인물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와 부딪히는 인물, 계급적인 편견에 부딪히는 인물, 연애 같은 세속적인 가치에 휘둘리는 인물 등을 그리려고  했기 때문에 의도 안에서 인물을 만들어갔죠. 또 제가 실제로 기숙사 생활을 했잖아요. 당시에 만났던 떠오르는 사람들을 쭉 그리고, 지금 제가 아는 인물을 섞어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어, 내 이야기 아니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어요.


평소 제가 새 소설을 쓰면, 친구들이 “혹시 나랑 비슷한 사람도 있냐?”고 물어와요. 그런데 오늘 친구 한 명이 『빛의 과거』  를 읽었다면서 메시지를 보냈어요. “예전에는 그냥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이제는 모든 인물에 내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제 안에 있는 유경, 희진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 같아요. 두 주인공 외에 특히 애착을 가졌던 인물이 있나요?


‘오현수’에게 마음이 좀 가요. 1977년도는 아직 개인이 존중 받지 못한 때잖아요. 하지만 그 시기에도 어떤 부류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 스스로를 자각한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는 걸 ‘오현수’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현수는 1990년대식으로 말하면 쿨한 인물이에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생각하고, 경쟁 대열에 끼지 않고 자기 나름의 취향을 갖고 자기 인생을 개인화하는 캐릭터. 이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큰 역할을 하는 인물은 아닐지라도 개인 취향이랄지, 사적인 존재랄지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궁극적으로 여성 악역은 없어야 했다”고 생각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악역을 잘 안 그려요. 왜냐면 한 사람의 마음에 선과 악이 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선과 악 안에서 갈등하면서 조금 더 좋은 존재가 되려고 하는 게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제 소설에는 선과 악이 대립하는 극적인 장면이 없어서 이야기가 좀 심심해요. 하지만 저는 이게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특히  『빛의 과거』  는 여러 가지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약자로서의 여성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이런 존재를 악역으로 만드는 게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모든 약자가 선한 것은 아니죠. 하지만 1970년대 후반의 희진 같은 인물도 자기에게 주어진 사회적 조건, 시대적인 요건에서 자신의 꿈을 갖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악역으로 만들 순 없었어요.

 

유경은 희진에 비하면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자신의 뚜렷한 생각이 있지만, 타인에게 맞추는 편이죠. 어떻게 보면 수동적인 캐릭터인데요. 왜 유경은 성인이 돼서도 희진에게 끌려갔을까요? 굳이 그래야 할 상황이 아닌데 말이죠.


비슷한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유경의 행동이 굉장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왜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까칠한 마음이 있지만 권력 구조에 약한 사람. 나이브하다고 할까요? 회피한다고 볼 수도 있고요. 자신이 뭔가 바른 것을 구현하기에는 힘이 달리니까 한 발자국 물러서 버리는 인물. 언뜻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런 개연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유경이 희진을 보면서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또 다른 생의 긴 알리바이를 보았던 것”이라고 말하잖아요. 희진이 자신을 이끌고 가는 것에 유경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느꼈던 거죠. 유경이 피하고자 했던 것들이 결국 희진으로부터 파장이 일었고 유경은 그걸 지켜보게 된 거예요.

 

희진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저의 주변 인물을 발견하게 됐어요. 희진은 ‘남과 비교해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지금은 멀어졌지만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했던 친구가 떠올랐는데요. 희진의 서사가 나올 때마다 비슷한 묘사가 유독 많이 등장해요.


제가 희진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건, 희진도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소설 후반부에 희진이 자기 삶을 되돌아보잖아요. 희진은 약자, 피해자로서의 당위적인 도덕성을 갖고, 세상의 권력, 부조리에 비판적인 사람인데 사실은 그녀도 권력을 갖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공평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이 그 권력 안에 있는 사람이고 싶은 거죠. 저는 주변에서 이런 희진의 모습을 너무 많이 봐요. 물론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습이죠. 스스로는 정의를 외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권력에 대한 의지였던 여러 행동들. 부조리한 것을 비판한 게 아니라 사실은 권력을 갖고 싶었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학생운동을 적극적으로 했던 최성옥, 연애를 좋아하는 미워할 수 없는 양애란, 어딘지 슬퍼 보이는 송선미, 교회 오빠만 많은 곽주아, 호기심은 많지만 눈치는 없는 이재숙 등. 유경이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들을 보는 재미도 특별합니다. 꼭 이들이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대생은 아닐지라도요. 세월이 지난 지금, 대학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냥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싶어요. 그 시기의 대학생들을 유형화하지 않고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면서 우리들의 삶이 각자 달랐고, 모두가 고유한 삶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현재도 가치가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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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면 자꾸 나쁜 인간이 돼요

 

“작가란 모든 감각을 열어두어야 하기 때문에 생애가 근무기간으로 느껴지지만. 덕분에 일상 속에서 많은 소재를 포착할 수 있다.”(15쪽) 이 문장을 읽으며 소설가 은희경의 일상을 떠올려 봤어요.  『빛의 과거』  의 전작이 2016년에 나온 단편소설집  『중국식 룰렛』  이니까 3년간 책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소설가의 시간이 늦게 흘렀을까. 그건 아닐 것 같아요.


희진의 그 장면은 저의 작가적인 모습이죠. 어디에서 소재를 만날지 모르니까, 어떤 것에 꽂히게 될지 모르니까 소설가로 살고 있는 시간이 더 클지도 몰라요. 자연인으로 사는 것보다.

 

112쪽 나오는 문장도 기억에 남습니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라는 문장을 읽으니, 어떤 위로도 들더군요.

 

최근에 인권의식이 많이 좋아졌잖아요. 자연스럽게 장애나 우울증에 관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그냥 다른 조건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왜 자꾸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려고 하는지, 왜 그냥 다른 것을 두고 위아래도 구분해서 받아들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누군가의 조건을 편견으로 바라볼 때, 화가 나요. 일상에서 자주 분노하죠. 좀 다른 예지만, 제가 이번에 책을 내면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어요. 저에게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개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개 골랐죠. 하지만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고,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왜냐면 저는 제 사진을 볼 때, 저의 약점만 봐요. 내가 싫어하는 부분이 커버가 잘 됐냐만 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이 사진을 보고 호의를 가질지 판단할 수가 없어요. 즉 남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데, 자기만 스스로의 약점에 되게 예민하잖아요. 누구에게나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희진에게 “그까짓 걸 갖고 약점이라고 하냐”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또 하나의 문장을 언급하고 싶어요. 소설가 희진이 쓴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죠. “회피야말로 가장 비겁한 악이다. 애매함과 유보와 방관은 전 세계의 소통에 폐를 끼친다. 게다가 그녀는 적에게조차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한다. 모두에게 맞춰주면서 우월감을 확인하는 것이다.”(171쪽)


이것도 우리 사회의 산물이에요. 선택을 강요 받는 사회에서 애매하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들이 많죠. 왜 여성에게는 적당한 ‘내숭’이 강요되는 부분도 있잖아요. 자기 의견을 확실히 말하면 안 되는 분위기도 많고. 자기 의견을 확실히 말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좋은 것인데,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요. 언젠가 제가 해외 여행을 갔는데 “이거 하실래요? 저거 하실래요?”라는 물음에 “전 해도 되고 안 해도 돼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순간 ‘아, 내가 애매하게 말해서 전세계에 폐를 끼쳤구나’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 문장이 제 머릿속에 있었어요. 자기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괴로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누구에게 비난 받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고. 저를 비롯해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문장이에요.

 

작가님은 후회하는 일이 있나요?


글쎄요. 일상적인 후회는 많겠지만 큰 후회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저라는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저는 좀 성실한 편이고, 나도 존중 받고 싶기 때문에 타인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그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요. 그냥 더 좋은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할까요. ‘더 좋은 인간’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을 수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자꾸 나쁜 인간이 돼요. 그래서 나를 경계하면서 나쁘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어요.

 

나쁘지 않은 인간이 되려면, 스스로를 계속 성찰해야 할 텐데요. 그러려면 내 과거를 해석하는 일도 필요할 것 같아요.


필수는 아니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죠. 우리는 남도 오해하지만, 나도 오해하거든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요. “나는 누구로 알고 살아가는 걸까?” 이 소설에서 희진이 한 정치인의 자서전을 대필해준 적이 있잖아요. 개인의 출세 욕망을 좇아 성공한 정치인을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한 것으로 묘사하죠. 희진도 어떻게 보면 그 정치인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하나의 환경을 만들어준 걸 수도 있어요. 회피라는 선택을 통해서요.

 

출간 후 진행한 여러 인터뷰에서 “정확하고 건조한 문장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셨어요. 요즘 젊은 독자들은 직설적이고 읽기 쉽게 쓰여진 문장을 선호한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문장을 두고 고민한 부분도 있었는지 묻고 싶어요.


그런 고민은 없어요. 제 리듬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떤 건 만연체로 쓰고 싶고, 어떤 건 간결하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각각의 작품에 맞는 문장의 리듬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해요. 물론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힐지도 의식하죠. 발표하는 글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학적 장치도 중요해요. 의식은 하지만 제 리듬 안에서의 의식이에요. 지금의 트렌드는 사라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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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있어야 성실할 수도 있어요

 

요즘 인기가 많은 소설은 ‘동네서점 에디션’이 따로 제작됩니다.  『빛의 과거』 도 두 가지 표지를 입고 세상에 나왔어요. 두 가지 버전을 모두 사는 독자도 꽤 많더라고요.


2년 전에 일산의 한 동네서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낭독회를 했어요. 13번을 했으니까 1년을 조금 넘겼죠. 제 단편소설 한 편을 낭독하는 시간이었는데요. 꾸준히 와주시는 분이 계셨고 제게도 무척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책이라는 건 단순히 기능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성이라는 것도 있고. 어떤 관계라고 할까요? 컴퓨터 파일 속에서만 존재하는 책은 상상할 수 없어요. 동네서점이 많이 생긴다는 건, 작가로서도 무척 반가운 일이에요.

 

소설을 쓰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좋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시작할 때는 언제나 고통스럽고요. 마감했을 때 행복하죠. 가장 설레는 순간은 초고를 끝냈을 때예요. 이 소설을 어떤 모양으로 빚을까, 상상하는 순간이 좋죠. 초고를 완성하고 나면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여겨져요. 술 마실 자격도 있는 것 같고 조금 놀아도 될 것 같고, 그렇죠. (웃음)

 

『빛의 과거』  가 출간 3주만에 8쇄를 찍었어요. 은희경의 신작을 기다린 독자들이 참 많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작가의 말’에서 “책의 저자가 되는 일에 의욕을 잃은 것이 더 큰 실패였다”(341쪽)고 쓰셨습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슬럼프라기보다는 책이 팔리고 독자를 만나는 일에 대해 조금 의기소침했었어요. 과연 내가 소설을 냈을 때 누가 관심이라도 가질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어요. 그러다가도 독자들이 “장편 소설이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면 용기를 얻기도 했고요. 출판사에서 이런 소식을 전해준 날이면 오늘은 좀 더 써봐야지, 그렇게 용기를 얻었어요.

 

좀 놀라운데요. 은희경 작가님이 이런 생각을 하셨다는 사실이.


전반적으로 사회가 책을 많이 안 보잖아요. 책을 보긴 해도 그것이 내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정보가 되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있으면 눈총을 줘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자격증 시험, 취업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할 수 없어요. 생존 조건이 중요한 거니까요. 다만 좀 낙심했었어요. 이런 상황이 싫다는 마음보다는 ‘어떻게 하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는지’ 낙백한 기분이었어요. 이랬던 마음에 비하면 지금 저는 열심히 하고 있죠. (웃음)

 

인터뷰를 준비하며 독자 리뷰를 찾아봤는데 “은희경의 신작이라서 무조건 샀다”는 글이 많더라고요. 1995년 등단 후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성실함 때문일까요?

 

운이 좋은 거죠. 작가에게 지면이 없으면 독자를 만날 수 없잖아요. 독자들이 내 작품을 읽어주지 않으면 지면이 생길 수 없고요. 저는 그래서 운이 좋은 편이에요. 성실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까요. 누군들 성실하고 싶지 않겠어요. 기회가 있어야 성실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후속작은 몸에 관한 이야기라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몸에 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몸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다가 결국 쇠락하는지. 죽음에 이르는 건 시간의 역정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몸과 인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직 쓰진 않았고요. 이제 슬슬 시작해야죠.

 

아직  『빛의 과거』  를 읽지 않은 독자들도 이 인터뷰를 읽을 거예요. 이 소설을 어떤 마음으로 펼치면 좋을까요?


섬세한 마음으로 읽어주면 좋겠어요. 타인에 대해서도 너무 유형화해서 생각하지 말고요. 물론 자신에 관해서도요. 일상에서 섬세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 은희경


소설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이중주』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장편 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등을 썼다. 문학동네소설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빛의 과거은희경 저 | 문학과지성사
무엇보다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하여 담담하게 토로하는 내밀한 문장들은, 삶에 놓인 인간으로서 품는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독자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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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세윤, 유민하 “그냥 이렇게 놀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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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쓰거나 짧게 써도 상관없지만 진짜 마음이어야 한다.’ 아들 유민하 군과  『오늘의 퀴즈』  를 시작하면서 유세윤은 이렇게 당부했다. 하나뿐인 유민하 군의 주의사항과 달리 그가 지켜야 할 사항은 많았다. ‘창의적인 대답을 원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의 동의 없이는 공개하지 않는다’ 등 일곱 개의 주의사항을 보면서 오래 생각하고 신중히 단어를 고르던 유세윤의 모습이 떠올랐다.

 

둘만의 놀이였던  『오늘의 퀴즈』  가 SBS <집사부일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후, 사람들은 ‘좋은 교육법’이라며 박수를 보냈지만 유세윤은 ‘교육이 아닌 놀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부모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상찬 앞에서는 “아이가 하자는 걸 그냥 하면 된다”고 무심히 답했다. 굳어 있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보고 당황할 스텝을 동시에 살피며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라고 말하던 15년 차 방송인 유세윤. 공동 저자로 아들과 함께 하는 인터뷰에서 그는 입담과 재치를 뽐내던 화면 속 모습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이가 최고의 교육이다’라는 말은 참 별로다.

놀이가 교육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너랑 놀아 준 거였다고 생각해 봐.

뭔가 속는 느낌 아니냐.

 

- 『 오늘의 퀴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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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대로 던진 질문들

 

아들과 책을 내셨어요. 흔치 않은 경험인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행복한 일이죠. 둘의 일상과 마음이 담긴 책이잖아요. 책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와 상관없이 공동 저자가 되어 책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행복해요.

 

민하 저자님은 기분이 어떤가요?

유민하 : 좋아요.

 

책의 배경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아들을 위해 퀴즈를 내기 시작하셨다고요.


맞아요. 그런데 민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조심스러워요. 민하가 ‘나랑 놀려고 시작한 게 아니라 일기 대신이었어요?’라고 생각할까 봐요. 책을 낸 후에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는 약간 실망하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 그렇게 시작한 건 맞지만, 지금은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거라고 말해 줘요.

 

주로 언제 퀴즈를 내셨어요?


민하가 학교 마치고 태권도 배우고 집에 왔을 즈음에 냈어요. 퀴즈를 보고 안 풀 때도 있었고, 못 보고 지나갈 때도 있었는데 꼭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원래 취지에서 멀어질 것 같아서요. 

 

퀴즈를 내려면 아이디어가 필요하잖아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셨나요?


일단 제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많이 물어봤고요. 민하의 일상에 관한 내용도 많이 물어봤어요. 예를 들어서 ‘친구가 화났을 때 화를 풀어주는 방법’은 제가 궁금하기도 했고 민하가 친구랑 다퉜을 때 어떻게 화해하는지 알고 싶어서 낸 퀴즈였어요. 당시에 자연스럽게 떠오르거나 생각나는 것들을 냈고 창의적이고 대단한 질문을 내려고 일부러 노력하지는 않았어요.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났을 것 같아요.


많이 생각났죠. 어렸을 때 제가 생각한 것들과 비슷한 답도 있었고, ‘나도 이런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어떤 어린이였나요?


민하랑 비슷해요. 재미있게 지내고 싶고 신나게 놀고 싶은 어린이였고 사람들한테 주목받는 걸 쑥스러워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주목받는 삶을 살고 계시잖아요.


어느 지점에서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렸을 때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게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얻어낸 주목이 아니라 부모님이 만들어낸 주목이랄까요. 아니면 내가 워낙 이상하니까 사람들이 날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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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틀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여자라면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226쪽)라고 묻고 다음 장에서 “최악의 질문”(227쪽)이라고 하셨더라고요. 그런데도 책에서 빼지 않으셨고요.


민하가 “수학자”라고 답했는데 결과적으로 성별과 관계없이 똑같은 답을 쓴 거예요. 원래 민하가 수학, 태권도에 관심이 있거든요. 답을 보자마자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했지?’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가 한심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이런 과정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그동안 잘못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뉘우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요. 아빠의 생각이 다 옳은 건 아니고 잘못된 생각도 있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가르쳐 주면 배울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나 봐요.

 

유민하 : 아빠 지금 생각했죠?

 

유세윤 : 응 맞아. 조금 멋있게 얘기하려고 그러다가……딱 걸렸네? (웃음)

 

질문이 무색한 답을 하셨네요.


그런 답들을 되게 많이 줘요.

 

또 뭐가 있을까요?


“허무함이란 무엇입니까?”(38쪽) 라는 질문에 “허무함은 허무함입니다”라고 적었더라고요. 저한테 허무함을 느껴보라고……(웃음)

 

“만약 내일부터 말을 못 하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192쪽)처럼 ‘마지막’에 관한 퀴즈가 많더라고요.


아, 그렇네요. 무엇이든지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잘 모르겠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끝과 이별에 대해서 의식하고 있나 봐요. 그래서 하루하루 더 재미있게 놀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민하 저자에게 마지막으로 퀴즈를 낼 수 있다면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음…….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혹시 민하 저자에게 ‘이것만은 꼭 했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을까요?


봉사활동이요. 저는 많이 못 했지만, 민하는 많이 다녀봤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제야 조금 나누는 기쁨을 알기 시작했는데 민하는 조금 더 일찍 이런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민하 저자 친구들에게도 책을 선물했나요?


유세윤 : 민하 뜻에 맡겼어요. 민하가 필요한 수량만큼 달라고 하면…. 누구한테 선물했지?

 

유민하 : 친구한테 선물한 건 한 권이고요. 사범님하고 선생님께도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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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

 

‘의외의 모습이다’라는 반응도 있어요.


그렇죠. 저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의외도 아니고 가면을 썼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저조차도 어떤 인물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이 ‘아그럴수도있겠당’이잖아요. 전작인  『겉, 짓, 말』에서도 이 말이 언급되고, 광고회사 ‘쿠드비’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고 들었어요. 중요한 말인 것 같더라고요.


고민과 부침이 많은 시기가 있었는데 어떤 현상이나 고민의 끝은 결국 받아들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 풀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마음먹었고, 이렇게 마음을 바꾸니까 정말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특별한 계기가 생각나지는 않고요. 제가 가진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오갈 때 이런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생각하지’에서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로 이동한 거죠. 언젠가 동엽이 형이 제일 괴로운 게 사회에 삐지는 거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이 굉장히 와닿았어요. 내가 사회에 조금 삐져있었나보다 싶더라고요. 철이 없었고, 멘탈이 건강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최근에  『인간 본성의 법칙』  이라는 책을 조금 읽기 시작했는데 이성과 비이성의 이야기가 나와요. 이성은 기수고 비이성은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기수인 이성이 비이성인 말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삶이라는 경기를 다르게 운영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저는 아예 기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예전 모습을 보면…. 이래서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 그렇구나’ 싶었어요.

 

개그를 짤 때 중시하는 게 있나요?


이 개그가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그런 걸 많이 놓쳤어요. 과거에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 다 취향 차이지’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거 때문에 내 창의성이 막혀야 해?’라고 싶기도 했고요. 지금은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아팠을 수 있겠다’ 싶어요. 그냥 불쾌하고 불편했던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아팠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요즘에는 덜 재밌어도 누구도 아프지 않은 콘텐츠였음 좋겠더라고요.

 

요즘에는 유튜브를 안 하기 힘든 시대잖아요. 유튜브에서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한테는 굉장히 좋은 기회죠. 개인적으로 부담 없이 하는 편이고요.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로 인정받고 수입도 만들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유튜브 체계 자체는 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유튜브하시잖아요. 개인적으로 하시나요 아니면 소속에서 팀을 짜서 하시나요?


개인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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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다 알거든요

 

출간 제의를 받고 어떠셨나요? 바로 수락하셨나요?


처음에는 육아법, 창의력 키우기 같은 방향의 책을 제안하셨어요. 부담스럽더라고요. 제가 말하는 게 정답은 아니니까 그건 부담스럽다고 말씀드렸죠. 다만 만약  『오늘의 퀴즈』  라를 소스를 가지고 에세이를 낼 수 있다면 그건 하고 싶다고 했어요. 사실 이 책이 매출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형식이잖아요. 띠지에도 자극적인 카피, 이를테면 ‘집사부일체에서 극찬한….’ 이런 문구가 있으면 파는 데 더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자신에게 떳떳한지 모르겠더라고요. 무엇보다 민하가 이게 순수한 놀이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책을 본 촬영 감독님께서 『오늘의 퀴즈』  를 보고 ‘아빠들의 필독서’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아이가 하자는 걸 그냥 하면 되는데 부모들이 그렇게 못하는 것 같아요. “배틀그라운드 해요” 하면 같이 하면 되는데 “아니야 그건 폭력적이니까 우리 공놀이할까?” 하는 식으로 조금이라도 본인이 편하거나 교육적인 방향으로 트는 거죠. 그런데 아이들이 그걸 알거든요. 그리고 같이 노는 게 정말 좋은 게…. 저도 민하가 하고 싶어 하는 걸 같이 하면서부터 민하랑 친해졌거든요. 게임을 하자고 하면 게임하고, ‘물 뿌리기’ 하자고 하면 한겨울에 밖에 나가서 둘이 낄낄거리면서 물 뿌리고 놀았어요. 이렇게 하니까 아이가 말을 하더라고요. 같이 놀면 그냥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게 돼요. “아빠 있잖아요. 오늘 학교에서~~” 이러면서 게임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술술 하는 거죠. 그런데 그냥 아이를 붙들고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고 하면 “네? 좋았어요~~`”라고 하고 끝이에요. 절대 말 안 하죠.

 

자기 전에 같이 이야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그것도 실은 민하가 자꾸 잠자리에 안 들려고 하니까 “11시 전에 자리에 누우면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시작한 거예요. 제가 먼저 저의 이야기를 하니까 아이도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보통 재밌는 이야기를 세 개 정도 해주고 잠이 드는데 얘기가 민하의 성에 차지 않으면 “이건 개수로 안 칠게요”라고 아주 친절히 말해 준다. (웃을랑 말랑 정도.) 가끔은 민하의 이야기도 듣는다. 오늘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 중에 가장 황당했던 이야기를 할까? 내가 세 개 해줄게. 넌 하나만 해줘. 나는 아이와 함께 천장을 바라보고 그제서야 내가 몰랐던 내 아들을 알기 시작했다. (148쪽)

 

책을 내고 나서 대중들이 실체보다 나를 좋게 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은 없으세요?


저보다는 민하에 대한 걱정인데요. 책을 보신 분들이 ‘아 이런 식으로 자라면 분명 훌륭한 어른이 될 거야’ 또는 “정말 창의력이 넘치는 어른이 될 거야’라고 생각하실지 몰라요. 하지만 이 아이도 평범하게 자랄 거고 무수히 많은 잘못을 하고 반성도 하면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어떤 어른이 될 텐데… 어떤 경우든 비춰보겠죠. 어떤 일을 인과관계로 보려는 경향이 있잖아요. ‘이렇게 교육했지만 저렇게 자랐구나’ 혹은 ‘저런 일이 있구나’하는 식의 생각을 할까 봐 우려되지만, 그 우려 자체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요.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요. 다만 민하가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얘기를 많이 해주려고 하죠. “꼭 창의력 넘치고 훌륭한 아이로 커야 할 필요가 없다”고요.

 

20년 후에 두 분은 어떤 모습일까요?


유세윤 : 너는 왠지 여행 가 있을 것 같아. 나 안 데리고… (웃음)

 

유민하 : 아빠는 칠순 잔치 기대하고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의 퀴즈』  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유세윤 : 민하가 ‘아빠 이제 그만 해요’라고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안 오면 좋겠지만, 그런 날이 온다면 더 재미있는 걸 생각해 봐야죠.

 

유민하 : 대학교 때까지!

 

유세윤 : 오 진짜?

 

아이한테는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누구나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시기가 오잖아요. 그럴 때 기억나세요? 처음으로 ‘난 왜 태어난 거지?’, ‘나는 왜 존재하는 거지?’ 하고 생각했던 시기요. 저는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런 의문이 들었을 때부터 삶이 괴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민하가 그냥 “밥 주세요” 또는 “게임해도 돼요?”라고 하는 게 전부인데 물음표가 없는 이런 시기가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고민하게 되겠지만요.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이 책은 절대 육아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빠로서 느낀 점들을 일기처럼 적어놓은 책일 뿐이고 거기에 민하의 생각도 적혀 있죠.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은 공감하셨으면 좋겠고 공감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공감하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환경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그냥 이런 삶도 있고 이런 기록도 있구나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걸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고 읽으시는 분들이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면 더 기분 좋은 일이고요.


 

 

오늘의 퀴즈유세윤, 유민하 저 | 미메시스
4학년 때(현재 아들과 같은 나이)의 일기를 보고, 그때 자신의 마음과 추억을 기분 좋고 재미있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나만의 콘텐츠는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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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2천년 전 로마법, 일상에도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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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로마법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단지 현재 법의 원천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로마법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바뀌지 않는 환경과 존재의 태도를 돌아보고, 법을 통해 역사를 인식하고자 함이지요. 법을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집행하려는 로마인들의 노력이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그런 이상 자체를 서구 문명에 도입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201쪽)

 

한동일은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다. 화려한 이력의 그는 그러나 자신을 그저 “제안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자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베스트셀러 『라틴어수업』에서 이미 삶을 성찰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고 깊이 고민하게 했던 한동일은  『로마법 수업』에서 다시 로마법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인간 삶의 의미를 탐색하게 한다. 왜 로마법인가, 라는 질문에 한동일은 “2천년 전의 로마법이 현재 우리 일상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인터뷰 말미에서 “비록 내가 보잘것없다 느껴지더라도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존재”라고 말한 한동일은 자신이 바라는 한 가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제안하는 사람 한동일은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사 중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티렌티우스의 희극 대사를 강조하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질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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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천년 전의 로마법인가


무엇보다 ‘왜 지금 로마법을 알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를 것 같은데요. 책을 읽고 나면 로마법을 안다는 것이 지금의 우리를 아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돼요.


로마제국 패망 후 교회가 로마법을 받아들인 것이 교회법이 되는데요. 오늘날 우리나라가 쓰고 있는 민사소송법이 교회법이에요. 원고는 무엇이고, 피고는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하나까지 다 교회법, 로마법에서 나온 것이죠. 구조와 절차 자체가 로마법에서 이어온 교회법을 그대로 받은 것이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이기 때문에 2천 년 전의 로마법이 현재 우리 일상에도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저는 우리 일상을 규제하는 룰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왜 그들은 그런 룰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하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고민을 하다 보면 현재 지금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대학원에서 같은 제목의 강의를 하셨던 것이 바탕이 된 책인데요. 대학원 강의와 비교한다면 책은 더 넓은 대상을 가정해야 하잖아요. 어떤 내용을 얼마나 담을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저는 공부하는 입장에서 공부하려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책을 쓰는 사람인데요. 그렇게 쓰는 책이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죠. 그러다 생각의 전환이 있었어요. 방학 때면 외국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는데요. 수업을 듣기 위해 오가는 시간에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이 든 거예요. ‘내가 구사하는 언어가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때부터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님과 상의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걷어낸 내용도 많고요. 대신 조금 더 들어가고 싶은 독자 분들을 위해서는 뒷부분에 부록으로 내용을 담았어요.

 

강의를 하실 때도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저녁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 흥미를 끌 수 있는 강의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바로 ‘질문’으로 수업을 끝내는 것이었고요.


최고의 수업은 듣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수업 내용은 생각하고, 질문할 자료를 주는 것이어야 하죠.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나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가 되어야 해요. 수업 마지막을 질문으로 끝내는 것은 애초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방식인데요. 그분의 저술 방식 하나는 ‘내가 아는 것의 3분의 1만 쓴다’였고요. 다른 하나가 ‘마지막은 꼭 질문을 한다’였어요. 저도 그 내용에 충분히 공감을 했던 거예요. 제 역할은 답을 주는 ‘선생’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을 하는 사람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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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으로 다시 지금의 현실을


『로마법 수업』  은 특정 법 조항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 ‘노예’, ‘여성’, ‘결혼’처럼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에요.


일단 정통으로 로마법을 배우려면 이렇게 주제를 잡아선 안 되고 ‘사람, 물건, 소송’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잡아야 해요. 첫째, 사람의 신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죠. 신분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지니까요. 둘째, 물건은 오늘날 민사소송에 영향을 미치는데요. 빚을 졌을 때, 물건을 절도 했을 때,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다뤄야 해요. 마지막으로 어떤 절차로 소송을 할 것인가를 얘기하죠. 이걸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요. 힘들죠. 어차피 한 학기 안에 그 방대한 주제를 다룰 수도 없고요.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들만 선정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가령 자유인을 어떤 등급으로 나누는지, 노예는 어떻게 처분 받았는지를 다루면서 질문을 던진 거죠. 만약 고대 로마인들이 지금 서울 땅에 오면 우리를 어떻게 느낄까, 하고요.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과연 이 헌법정신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55쪽)

 

로마인 입장에서는 “너희들은 다 평등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죠. 그때 과연 우리는 그 질문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이 불평등의 문제는 무엇일까, 그 밑바탕에 내재한 것들은 무엇일까, 그런 것들을 함께 생각해보자고요. 그렇게 진행했어요.

 

그 중 ‘여성’이라는 주제는 특히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데요.


‘인간’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낙태’, ‘간음’, 이혼’ 등을 다뤘던 이유가 있어요. 로마법이 실로 엄청난 보편적 가치를 우리에게 남겼지만 한 가지, 로마법에도 아쉬운 점이 있거든요. 그것이 바로 여성이에요. 로마라는 사회 자체가 철저히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시작했고요. ‘가장’은 지금의 개념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개념이었어요. 씨족장의 개념으로, 당시 가장의 권한은 절대적이었거든요. 이 문화 안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하잘것없는 존재였던 거예요. 당연히 어린이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 로마법의 취약함을 통해 다시 지금의 현실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로마법보다도 취약한 지금의 인식까지도 생각하게 하는데요. 가령 유배 가운데 가장 엄중한 영구 추방에 처해지는 경우가 “재판관이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금전을 수수하고 판결을 조작하는 경우, 그리고 성욕이나 연정을 일으키는 사랑의 묘약이나 낙태약을 제공하거나 사용한 경우”(38-39쪽)예요. 너무나 현재적인 항목이죠. 


맞아요. 그러니까 과거의 부족한 점을 통해 오늘을 봐야 할 것도 있고요. 과거를 통해 지금을 반성해야 할 것도 있는 거예요.

 

어떤 주제를 강의할 때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는지도 궁금하네요.


강연 요청이 많지만 제가 응하는 곳은 두 군데, 법 기관과 대학교인데요. 사실 법조인 대상 강연에서 나온 질의응답에서 이 책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한 고위 법관이 “법원에 오는 다툼 중 가장 어려운 문제가 조망권에 관한 문제”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그 문제는 이미 로마시대에도 있었다”고 말하니까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또 헌법재판소 분들을 만났을 때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가 이야기됐어요. 우선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용어보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라는 용어가 더 합당할 수 있다”고 말했죠. 양심적 병역 거부라고 하면 병역을 한 사람은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한편 이것은 중세시대 천주교 신부들이 군복무를 할 수 없어 나온 개념이거든요. 이걸 알면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를 어떻게 판결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요. 낙태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식으로 법을 판단하는 분들을 우선 만나고 싶었고, 그게 책이 된 셈이에요.

 

대학교 강연에 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 제자에게 “선생님, 터널의 끝이 있을까요?”라고 메시지가 왔는데요. 고민하다가 “터널의 끝은 있다. 단, 끝까지 간 사람에 한해서.”라고 답을 했어요. 저는 대학교 강연에서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 책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삶의 요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었고요. 법을 아는 것을 통해 나를 좀 덜 괴롭히고 삶의 다른 면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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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념과 가치관의 노예다


책에서 선생님 개인의 생각을 밝히신 부분도 곳곳에 있어요. 내 목소리를 어느 정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정말 고민 많았어요. 제가 아직은 어딘가에 속한 몸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요. 다만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특히 ‘이혼’을 다룬 부분이었는데요. 아마도 예수는 당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결혼과 이혼제도를 보았기 때문에 ‘이혼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해석하셨잖아요. 그 대목을 읽으면서 여러 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생각했어요.

 

여성이 혼인할 때 가져가는 결혼지참금이란 것도 부유한 집안에서나 가능하지, 대다수의 가난한 집 여인들은 소나 양 몇 마리에 팔려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가난한 집 여인이 이혼당하면 남편의 집을 떠날 때 가지고 나올 재산도 거의 없었지요. (중략) 당시의 이혼제도하에서 철저히 약자의 입장이었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예수가 이혼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135쪽)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예수의 족보를 얘기해요. 그 집안이 정말 형편없었다는 거죠. 어떤 교육 받지 못한 젊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젊은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게 당시 엘리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 의사한테 가지 않고, 문제가 생겼을 때 법조인에게 가지 않고 예수한테 갔어요. 이유는 하나였을 거예요. 저 사람한테 가면 최소한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거예요. 바로 그런 사람이 생각한 거 아니겠어요? 여성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을 봤겠죠. 그것을 보고 이혼하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그 말만 남은 게 아닐까요. 그걸 한 번 생각해보자고 하고 싶었어요.

 

기원전부터 중세시대까지 긴 시간 동안 로마법도 수정의 과정을 거쳤잖아요. 법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도 사회의 진보에 대한 의미를 따져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인간은 신념과 가치관의 노예”라고요. 어떤 사회에서는 아주 쉽게 가능한 것이 다른 사회에서는 투쟁이 되어야 하죠. 예를 들어 이슬람의 여성이 히잡을 안 쓰고 활보하는 것은 엄청난 투쟁이지만 서구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동성혼을 최초로 합법화한 국가가 네덜란드인데요. 이는 혼인에 대한 권리가 교회에 있지 않고 시민과 개인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한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는 로마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혼인한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배제된다는 의미였는데 그랬어요. 그래서 법관들을 만나면 네덜란드의 법을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말해요. 그것을 통해 미래의 입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종교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도 법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것이 법과 종교의 차이예요.

 

만약  『로마법 수업』  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더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으세요?


민회, 즉 국회를 다뤄보고 싶어요. 민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민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살펴보는 거죠. 그런데 어려운 점이 있어요. 앞서 조망권 말씀도 드렸는데요. 그것을 살펴보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조망권에 관한 법조문은 있는데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는 없기 때문이에요. 만약 한다면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겠죠. 또 노예에 대해서도 깊이 다뤄보고 싶은데요. 노예도 다 같은 노예가 아니었거든요. 상급 노예에는 의사, 교사 등이 있었고요. 가장 하위에는 유명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그런 노예가 있었어요. 그런 것을 살펴봄으로써 많은 것을 고민할 수 있겠죠.

 

시작하는 글에서 이 책이 “이 사회에 큰 충격과 전환을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가슴에 작은 파동은 일으킬 수 있기를”, “그 일렁거림이 ‘세계의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지길”(12쪽) 소망한다고 적으셨잖아요. 선생님이 바라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 그 외에는 없어요.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이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의 질문이었어요.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으세요?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사 중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티렌티우스의 희극 대사를 책에 인용했는데요. 그 맥락에서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책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여기 다룬 이야기들은 인간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건네는 이야기이니까요.


 

 

로마법 수업한동일 저 | 문학동네
로마시대와 현재를 부단히 오가며, 변치 않는 인간의 속성과 사람 사이의 끝없는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여준다. 혼돈과 대립의 시대에 나답게,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힌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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