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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선 “나도 너를 버리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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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순대, 군밤, 쌈, 망고, 안주. 일곱 마리의 아이들과 살고 있다. 작가 구혜선의 이야기다. 한 권의 책에 담긴 이들의 순간에는  『나는 너의 반려동물』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말했다. “나 또한 너의 반려동물이 되리라 약속한다.” 그러니 책의 제목이 전하는 건 일곱 반려동물의 목소리이자, 한 인간의 목소리다. 너희는 네 발 달린, 나는 두 발 달린, 우리는 서로의 ‘반려’.

 

반려동물로 함께 산다는 건 어떤 걸까. 구혜선 작가와의 인터뷰는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내가 너를 돌보듯 너도 나를 돌봐주는 것, 서로 몸을 기댄 채 잠들며 ‘오늘도 덕분에 잘 지냈다’ 고마워하는 시간, 때로는 끝을 가늠하며 씁쓸함에 휩싸이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화는 점점, 동심원을 그리듯 번져나가, 배우로서 작가로서 영화감독으로서 화가로서 ‘구혜선’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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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를 버리지 않을게

 

반려동물 이름이 다 음식과 관련돼 있어요. 오래 살라고 그렇게 지으신 거예요? ‘음식 이름으로 지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이 있잖아요.


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지었어요. 어머니 집의 아이들 이름은 꽁치, 밥, 만두, 땅콩이에요.

 

슬픈 이야기라 꺼내기 조심스럽지만, 올해 ‘짱아’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들었어요.


사실 저는 아직도 현실감이 없어요. 잠깐 어디에 맡긴 것 같아요. 꿈인 것 같고...

 

책에서도 “너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어”,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시간이 불안하다”, “네가 나보다 수명이 짧아서” 등의 표현이 눈에 띄었어요. ‘짱아’와의 이별이 영향을 미친 걸까요?


그런 것도 있고요. 실제로도 아이들의 수명이 짧잖아요. 오래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10년이 금방 가더라고요. 아이들이 자주 아프면 더 체감하게 되고요. 그런데 일이 바쁘다 보니까 아이들이 아플 때 제가 못 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죄책감이 크죠. 그렇다고 단체로 일을 하는데 가볼 수도 없고... 가족이 아프면 모르겠는데, 반려동물은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저희 개가 아파서 가야 될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럴 때 속앓이를 하죠.

 

「집」이라는 제목의 글로 시작해서 「집으로」라는 글로 끝나는 책이에요. ‘반려동물’과 ‘집’ 사이에 닮은 점이 있는 걸까요?


순서는 편집자님이 정해주신 건데요(웃음). 집에 가면 항상 반려동물이 있고, 집이라는 건 우리의 공간이고, 그래서 항상 ‘우리만의 집’을 꿈꾸는 것 같아요.

 

책의 제목이  『나는 너의 반려동물』  입니다. 프롤로그에서 “나 또한 너의 반려동물이 되리라 약속한다”고 쓰셨어요. 서로가 서로의 반려동물이라는 의미겠죠? 제목을 이렇게 지으신 이유가 있나요?


그냥... 서로 버리지 않고, 배신하지 않고, 공존하고, 그렇게 같이 가는 유일한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지금의 상황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엄청 힘들 때가 있었는데요. 이 아이들한테는 내가 무엇이어도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냥 나여서 사랑하는 거고, 나여서 떠나지 않는 거고... 그래서 이런 제목을 지었어요. 반려동물은 사람하고 정말 다른 것 같아요. 물론 먹을 것 앞에서는 배신을 하기는 하는데(웃음), 그건 본능인 거고요. 그래도 스스로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존재예요. 예전에 제가 힘들었을 때 약속을 했어요. ‘너도 나를 버리지 않았으니까, 나도 너를 버리지 않을게.’ 그래서 결혼하고도 여러 차례 힘든 과정 때문에 ‘반려동물을 다른 데로 보내야 된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 강력하게 반대했어요.

 

생애 처음으로 만난 반려동물이 ‘짱아’였죠? 그때가 언제였나요?


제가 스물한 살 때였어요. 그 전에는 반려동물과 같이 산 적이 없어서, 그때는 모르는 게 많았어요. 실수도 많이 했고, 그래서 ‘짱아’한테 제일 미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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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아’가 가르쳐준 사랑이 좋았기 때문에 지금의 ‘다둥이 엄마’가 되신 거겠죠(웃음)?


맞아요. ‘짱아’가 있으니까 일단 술을 안 먹더라고요(웃음). 술을 엄청 많이 마실 때였는데 ‘짱아’가 있으니까 집에 와서 밥을 줘야 되잖아요. 그러면서 제 생활 패턴이 바뀌더라고요. ‘짱아’가 집에 있으니까 빨리 가야 되고, 웬만한 일은 집에서 해결하게 되고, 외로움도 없어지고요. 독립한 다음에는 혼자 집에 있으면 무서울 때도 있었는데 그 한 마리가 뭐라고, 하나도 안 무서운 거예요.

 

또 다른 변화도 있었나요?


전에는 불면증이 굉장히 심했거든요. 지금도 사실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잘 못 자요. 그런데 강아지들은 하루에 16시간씩 자잖아요. 그 시간 동안 같이 자요. 16시간을 다 자는 건 아니고, 눈 뜨고 서너 시간 있다가 두 시간 잠들고 또 깨서 있고 그래요. 저야말로 진짜 백수라서 아이들 자는 시간에 맞춰서 자요(웃음).

 

백수라뇨(웃음). 책 쓰고, 그림 그리고, 영화 찍고, 연기하고, 정말 많은 활동들을 하시잖아요.


일할 때는 잠이 안 와요. 약간 집요함이 있어서(웃음), 끝날 때까지 밥도 안 먹고 잠도 못 자고 그래요. 연기할 때 빼고는 작가주의적인 작업이라서, 영감이 오면 이런 방식으로도 해보고 싶고 저런 방식으로도 해보고 싶고 섞어서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냥 가만히 있다가 생각나는 건 아니고요. 그 분이 오셔야 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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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전시회 ‘니가 없는 세상, 나에겐 적막’이 몇 달 전에 끝났어요. 굉장히 바쁘셨죠?


전시는 손이 진짜 많이 가요.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작게 해서 크게 무리는 안 했고, 팀워크도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영화 작업은 늘 같이 일하는 팀과 함께 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항상 했던 사람들하고 같이 해요. 저의 스타일을 이해해줄 만한 스텝들이고, 저의 대충대충함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스텝들이에요(웃음). 작업할 때는 혼자 하는 게 편한데, 많은 일을 할 때는 팀이 있으면 정말 좋아요. 혼자서는 다 못 해요. 팀이 있어서 진짜 많은 도움을 받아요. 저는 게으른 감독이라서 글만 써서 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하는 식이거든요(웃음).

 

심하게 깐깐한 감독보다는 좋지 않을까요(웃음)?


너무 제 뜻대로만 하려고 하면, 스텝들이 일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를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냥 맡겨두고요. 예를 들면 ‘저는 이걸 빨강색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정도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그걸 빨강색으로 바꿔줄 수 있어요?’ 하는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더 이상은 터치하지 않아요.

 

한동안 영화 작업을 안 하셔서, 팀원들과도 못 만나셨겠어요.


네, 보고 싶어요. 곧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너의 반려동물』  을 중편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구체적인 계획도 갖고 계세요?


일단 투자가 돼야(웃음)... 시나리오는 써놨는데, 투자가 돼야 될 것 같아요(웃음). 크게 돈이 드는 영화는 아닌데, 그래도 수익을 창출해야 된다는 부담감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품 활동을 통해서 수익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네, 그런데 이제 자본의 현실을 알게 돼서(웃음)... 나이 서른여섯에 너무 늦게 알았어요. 이제는 노후 관리를 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고(웃음)... 조금은 빨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것도 있고 너무 느린 것도 있어요. 중간이 없어요.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직업적인 고민과도 닿아있을 것 같아요. 방송계, 영화계에서 어린 여배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 현실 속에서 고민하시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배우는 확실히 슬럼프가 오는 것 같아요. 정말 20대가 꽃이고, 그 이후에는 슬럼프를 겪고 나서 조금 더 중후한 이미지로 돌아오거나 하는 것 같은데요. 이 때가 되게 애매한 시기잖아요. 조금 어려움이 있는 나이인 것 같아요.  『나는 너의 반려동물』  을 영화로 만들면 제가 연기하려고 해요(웃음).

 

애매한 나이인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그만큼 30~40대 여성들의 이야기가 없다는 의미겠죠. 그러니까 그 나이대의 여성 배우들이 맡을 역할이 없어서 고민을 하는 걸 테고요.


대부분 감독님들이 남자 분이시고, 스텝들도 그렇고요. 거의 90%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에게 공감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쓰지, 여자 이야기를 쓰지는 않는 것 같아요. 투자사에서도 그렇게 흥미를 갖지 않고요.

 

앞서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것도 있고 너무 느린 것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빨랐던 건 뭐였나요?


너무 빨리 영화감독을 했고, 너무 빨리 작가 생활을 한 것 같아요.

 

빨리 시작하면 좋지 않나요? 아쉽게 느껴지세요?


음... 인정받기 힘들었어요. 지금 보면 제가 만든 영화 중에서 어렸을 때 만든 영화가 가장 좋은데 인정받기가 힘들었어요.

 

같은 영화를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만들었다면, 반응이 조금 달랐을까요?


음... 제가 중후했을 때 만들었으면 달랐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생각할 때,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자와 덜 산 자가 만든 영화는... 다르지 않을까요?

 

첫 번째 영화가 <유쾌한 도우미>라는 단편이었어죠. 그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드세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에요. 저도 무슨 생각으로 그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답을 내놓기가 어려워요(웃음). 그런데 답이 없는 영화, 질문이 많은 영화여서 조금 흥미가 있어요.

 

20대가 그런 시기잖아요. ‘답은 모르겠지만 내 안에 질문은 너무 많은 때’라고 할까요.


네. 사실 제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가 답을 주는 영화거든요. 교훈을 남기는 영화를 보면서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요. 답은 관객들이 내는 거잖아요. 첫 번째 영화는 질문이 많은 영화였어요.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영화.

 

『나는 너의 반려동물』  은 어떤 영화로 만들어질까요?

 

조금 씁쓸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스토리가 씁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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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옷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잖아요. 취향까지도 ‘기꺼이’ 바꾸는데, 정말 큰 사랑이 아닐 수 없어요.


제가 니트를 많이 입기는 하는데, 밖에 나가 있을 때는 입지만 집에서는 안 입어요. 아이들 발톱에 걸려서 옷이 다 상하거든요(웃음). 아이들이 다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요. 주로 회색 옷, 털이 묻어도 티가 안 나는 회색의 옷을 많이 입고요. 가구의 경우에도 아이들이 영역 표시했을 때 냄새를 다 없앨 수 있는 것들로 골라요. 바닥에 물건을 두지 않고요. 모든 것이 다 개 위주로 돌아가는 거죠. 그런데 이제 고양이도 키우니까 바닥뿐만 아니라 위에도 치워야 돼요(웃음).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는 건, 저는 권하지는 않아요(웃음).

 

「옷을 고르는 기준」

털이 잘 달라붙는 소재는 안 돼요

 검은색은 안 돼요

니트는 안 돼요
아이의 발톱이 끼어
니트도 아프고
나도 아프고
아이도 아파서 안 돼요

짧은 길이는 안 돼요
긁히고 상처가 나서 안 돼요

 ( 『나는 너의 반려동물』  76쪽)


그동안 소설, 극본집, 악보집 등 많은 책을 쓰셨지만 에세이는 처음이에요.


에세이는 제가 죽기 전에 딱 한 권 쓰려고 했어요. 제가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번 책은 ‘개 에세이’이더라고요(웃음). 아이들이 죽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남기는 에세이.

 

‘개의 에세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구혜선의 에세이’는 언제 나올까요?


제가 노년까지 산다면, 멋있게 백발이 되었을 때... 그때는 편하게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그게 중요했지만, 그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에 출연하셨을 때가 기억나요.  『구혜선 악보집』  을 출간하신 후였죠. 공개방송 자리이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많이 긴장하신 모습이라 조금 놀랐어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익숙하실 줄 알았거든요.


무대 울렁증이 있어요. 연기할 때는 안 그런데, 대중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연기할 때의 나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때는 그렇게 떨리지 않아요. 실수를 해도 내가 아니니까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고요. 그런데 제 이야기를 할 때는 온전히 저 자신이니까, 많이 떨리죠. 예전에는 제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의식하니까 이런 직업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사람들을 의식 안 하면 이 직업을 갖지 못할 것 같고요. 사실은... 제가 쌓아둔 어떤 것들이 올해에 되게 많이 망가졌어요. 뭐라고 해야 하죠, 제가 탑을 쌓아놨다면 그게 많이 무너졌다고 해야 되나요. 그런 한 해였는데, 다시 쌓아야죠...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책읽아웃> 녹음 때 인상적이었던 모습이 또 있었어요. 매니저 없이 혼자 오셨었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셨던 걸로 기억해요. 평소에도 대중교통을 잘 이용한다고 하시면서요.


네, 대중교통 자주 타요. 매니저가 있으면 편하기는 엄청 편한데요. 이렇게도 다니고 저렇게도 다니고, 혼자 다닐 만한 데는 혼자 다녀요.

 

대중들에게는 ‘감독 구혜선’, ‘작가 구혜선’ 보다 ‘여배우 구혜선’으로 먼저 알려졌어요. 그게 좋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선입견을 갖고, 작품을 제대로 봐주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았나요?


늙으면 봐주겠죠(웃음). 예술은 늙을수록 그 가치가 더 올라가고 더 새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게 너무 신기한 것 같아요. 제 나이가 60이 되고 70이 됐을 때는 지금하고는 분명히 다른 선을 그릴 거고, 또 계속 진화하겠죠. 조금 더 진화할 것 같아요. 글도 생각도 조금 더 달라질 거고요. 그때까지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배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거잖아요. 거기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죠. 그것도 무시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배우를 하고 나서 시작한 일들이고, 배우이기 때문에 관심을 받았고, 사실은 덕을 본 거죠.

 

‘다 유명세 이용해서 하는 일들이지’라고 생각하면서, 작품을 평가절하 하는 경우도 있었을 텐데요. 서운하지는 않았나요?


유명세를 이용하기도 했죠. 그렇기 때문에 평가절하 당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거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글을 쓴 지도 10년이 됐고, 그림을 대중 앞에 발표한 지도 10년이 됐는데요.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일단은 꾸준히 계속 하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또 10년이 지난 후에는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그동안 계속 하려면 유명해져야죠(웃음).


 

 

나는 너의 반려동물구혜선 저 | 꼼지락
위안, 돌봄, 공존 등 내 곁의 소중한 존재들에게 느끼는 감동은 물론 노환, 죽음 등 언젠가 맞이해야 할 끝에 대한 이야기까지, 구혜선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문체로 풀어낸다. 시종 따뜻하고 더없이 애정 깊은 시선이 느껴져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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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재덕 “요리사는 '성공'보다 '도덕성'을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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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틴조선호텔 서울 총괄 조리팀장, 대한제국 황실 한식 연회음식 재현 헤드 셰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담당 헤드 셰프, 청와대 국민 연회담당. 화려한 호텔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유재덕 셰프는 27년 전, 처음 요리의 꿈을 꾸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호텔에 사무직으로 입사했던 그는 업무로 오가던 호텔 주방에서 음식 만들기에 몰두하는 요리사들을 보았다. 희고 높은 토크(Toque)를 머리에 쓰고 춤을 추듯 음식을 만들어내는 그 모습을 보며  “저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유재덕 셰프는 이제 “좋은 요리사란 진정성을 가지고 먹는 그 사람에게 맞는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파블루머(pabulum-er, 음식가)’가 되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온 사람에게 아무리 정찬을 갖다 준다 한들 그에게는 좋은 요리가 아니죠. 그 사람의 상태를 보고 서로 교감하면서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요리사예요. 그래서 요리에는 정답이 없어요.”

 

『독서주방』  은 유재덕 셰프가 지난 4년 동안 혼자가 되는 일상의 틈에 책을 펼쳐 들면서 쌓은 생각을 적어 내려간 글이다. 소설가의 음식 에세이를 보면서 한여름 불 앞에서 소스를 끓이는 요리사의 일상을 떠올리고, 음식의 문화사를 다룬 책을 보며 역사성을 담은 나만의 요리를 꿈꾸기도 한다. 책이 중년의 요리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책을 읽는 행위와 음식을 만드는 행위는 얼마나 닮아 있는지 담담하게 말하는 글이 새로운 공명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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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요리를 고민하는 ‘음식가’


30년 가까이 명절을 가족과 보내지 못하셨다고요. 요즘도 무척 바쁘시죠?


10월부터 12월이 제일 바쁜 시기예요. 가을부터 모임이 많아지니까 가장 바쁘고요. 신학기 때도 바쁘죠. 옷 만드는 디자이너분들도 마찬가지지만 저희는 계절을 앞서서 메뉴를 내야 하기 때문에 계절이 오기 직전이 항상 바빠요. 

 

소개글에 ‘셰프’라는 호칭보다 ‘음식가’, ‘파블루머’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고 적어놓으셨는데요.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파블루머는 음식과 요리를 고민하는 음식가라는 의미예요. 호텔 주방에서 27년 동안 일을 했고,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요. 20년쯤 지나니까 문득 ‘최고의 요리란 대체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꽤 깊게 그 생각에 매달렸던 것 같아요. 매너리즘에도 빠졌고요. 그러다 ‘요리’와 구별되는 ‘음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죠. 요리는 맛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음식은 생명을 위하는 것이지 않나 생각하게 된 거예요. 이런 고민을 하면서 친구인 김성신 평론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얼마 뒤 친구가 이 말을 선물로 줬어요. 라틴어에서 ‘pabulum’이라는 단어가 음식이고, 숙어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을 할 때 사용한다면서 여기에 영어식으로 ‘-er’을 붙여 파불루머라고 하자고요.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고, 친구의 마음이 무척 고마워서 그때부터 사용하고 있어요.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이 책의 기획자로도 이름을 올렸잖아요. 두 분의 인연과 처음 책을 기획하던 때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고요. 36년 만에 동창회에서 다시 만났어요.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오래 나눴는데 그 친구가 제 생각을 글로 쓰면 좋겠다는 거예요. ‘너처럼 건강한 생각을 하는 중년 남자를 본 적이 없다’면서요.(웃음) 처음엔 사양을 했는데 며칠 후에는 책을 잔뜩 가지고 왔어요. 무조건 읽기만 하라고요. 그런데 그 책들이 새로웠어요. 여태껏 요리 관련 전문 서적만 봐왔거든요. 친구가 준 책은 음식에 관한 인문학이나 요리를 모티프로 한 에세이, 식재료를 다룬 사회학처럼 아주 다양했죠. 요리나 음식에 관한 책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우선 놀라웠고요. 모든 책이 흥미진진했어요. 한마디로 신세계가 열렸던 거예요. 그렇게 꼬박 1년을 책만 읽었어요.

 

1년을 읽고 글을 쓰신 거예요? 그 전까지 글을 써본 적은 없으셨던 거죠?


보고서 정도나 써봤죠.(웃음) 책을 읽기 시작한지 일 년 정도 지났을 때 김성신 평론가가 <스포츠경향>에서 지면을 내주기로 했으니 칼럼을 써야 한다고 했어요. 겁이 나더라고요. 부끄럽기도 하고요. 과연 내 글을 사람들이 읽을까, 망설여지기도 했는데요. 친구가 많이 도와줬어요. 글을 써서 보여주면 논술수업 하듯이 첨삭하며 가르쳐 주기도 했죠. 그렇게 한 달에 한 편 글을 써나가니까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제 이름으로 글이 세상에 나가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김성신 평론가는 지금도 제 칼럼에 대해 조언해주고 있어요. 4년 동안 칼럼을 썼고, 그것을 모아 책으로 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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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꾸는 사람


읽고, 쓰는 생활을 뒤늦게 하면서 변한 것도 많았을 것 같아요.


다시 꿈꾸는 사람이 된 것이 제일 크게 바뀐 점이에요. 책을 통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 훨씬 크고 멋진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중년의 나이지만 책을 읽으니까 저도 새로운 꿈을 꾸게 되더라고요. 처음 품었던 꿈도 떠올랐고, 그렇다면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읽고 쓰기 전에도 꿈이 없진 않았을 텐데 신기하죠. 어떤 차이가 꿈을 더 선명하게 했나요?


30여 년 동안 요리사로 살면서 꿈을 꾸는 건 잡생각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꿈이 있다고 해도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보진 않았죠. 요리사로서 직업적인 부분에만 몰두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진짜 파김치가 돼서 집에 들어오고, 가족들과 잠깐 이야기 나누다 잠 자기 바빴고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책 속에는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수없이 등장하더라고요. 자꾸 자극을 받았어요. 그것을 보면서 나는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반성하게 됐어요.

 

여러 대목에서 요리를 시작했을 때의 ‘초심’을 깊이 생각하더라고요. 초심을 재차 떠올리는 이유도 있었겠죠?


한참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도 그랬어요. 과연 내가 초심을 가지고 있나 싶더라고요. 처음에 가졌던 마음대로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너무 바쁘니까요. 저희들은 누구나 고객을 위해서 최고의 음식, 깨끗하고 정성스런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때로는 잊히니까 초심을 자꾸 생각해보려고 하는 거죠.

 

책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더 많이 상기하게 되던가요?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네? 나는 뭐지?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는데 나는 어떻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있고요. 그럴 때마다 초심을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 자신의 직업이 가지는 목적을 질문하면 악당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세상에 악당이 많아진 이유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초심을 자주 떠올리고 생각하라는 것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요. 이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결심이기도 한 것 같아요. 사람이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것은 식재료가 요리되지 않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고인 물처럼 썩는 것이고, 그건 부도덕이에요.

 

일상의 많은 순간 책을 손에 들어요. 셰프님은 책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화장실에서(웃음) 읽어요.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도 읽고요. 단 20분이라도 짬을 내서 많이 읽어요. 습관이 되지 않았을 때는 어려웠어요. 특히 인문학 서적 같은 어려운 책은 읽기 힘들었죠. 너무 두꺼운 책은 그래서 그냥 베고 잤어요.(웃음)

 

그 두꺼운 책은 무슨 책이었나요?(웃음)


제목도 기억이 안 나요.(웃음) 그 책을 선물한 김성신 평론가한테 전화를 해서 도저히 못 읽겠다고 했어요. 글은 읽는데 머리에 전혀 안 들어오니까요. 그랬더니 그러면 다른 책을 먼저 읽으라고 하더라고요. 즐기면서 읽어야지 책에 얽매여서 읽을 필요 없다고요. 거기서 마음의 짐을 덜고 눈에 들어오는 책, 편한 책 위주로 읽었어요. 그러면서 독서에 재미를 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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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는 연예인이 아니다


마음의 양식인 음식을 만드는 ‘음식가’로서 갖고 있는 요리에 대한 철학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데요. 창조적인 동시에 우직해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맞아요, 창조와 우직이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둘 다 필요해요. 우직함은 끈기가 있다는 의미인데요. 그래야만 새벽부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일을 해낼 수가 있고요. 매번 같은 것을 드릴 수는 없으니까 새로운 것을 계속 개발해야 하는 창조성도 필요하죠. 더구나 요리사는 타인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거잖아요.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서 싸구려 재료를 쓴다거나 다른 것과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요리사는 타인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도덕적인 직업”(207쪽)이라고 하신 부분이죠?


음식이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거든요. 그런 사람이 도덕적이지 못하면 진짜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요. 음식은 1차원적으로는 맛이라는 감각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다음 차원에서는 타인의 건강과 생명에도 관여하는 것이니까요. 최종적 차원에서는 누군가의 마음과 영혼에도 영향을 미치죠. 저는 요리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바로 도덕성이라고 생각하고요. 돈이나 명예,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요리사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도덕적 감수성은 초보 요리사들을 가르칠 때 제일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기도 해요.

 

요리를 얼마나 공부했고, 얼마나 잘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이 도덕성이라고요.


얼마나 공부했고, 잘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사람의 태도, 진정성 그리고 도덕성이 중요하죠. 아무리 똑똑하고 잘하는 사람들도 순간 반짝이는 거라면 의미가 없잖아요. 친구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어요. 처음 요리를 배웠을 때나 이름을 날리면서 대가로 인정 받는 지금이나 한결 같아요.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엄청난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은 오너 셰프로 지내고 있거든요. 그런 것만 봐도 진정성과 끈기, 우직함은 셰프의 필수 요건이라고 생각해요. 간혹 강연할 기회가 있는데요. 그때도 꼭 하는 얘기는 셰프는 연예인이 아니다, 라는 말이에요. 정말 요리를 좋아하고, 평생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선택하라고 말하죠. 화려함만 따라서 하게 되면 금방 지치는 일이에요. 요리는 꾸준히 해야 나중에 결과가 나오는 일이니까요.

 

셰프님의 경우 언제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순간을 기억하세요?


지금도 생생하죠. 베이커리 쪽 주방이었어요.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서 봤는데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후광이 보였을 정도예요. 나도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내놓는 일을 하면 정말 좋겠다,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곧바로 담당자 분에게 가서 요리사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씨도 안 먹히죠.(웃음) 그래도 계속 찾아 갔어요. 그랬더니 6개월 안에 자격증을 따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이 된 거예요.

 

 

음식을 먹고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


요리사의 삶에는 남다른 희열도, 남다른 힘듦도 존재할 것 같아요. 언제 가장 기뻤는지, 언제 힘든지 듣고 싶어요.


손님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가 가장 기쁘죠. 저는 칭찬의 말보다 손님의 표정을 좋아해요. 표정이 훨씬 정확하게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의사인 친구 말이, 자기는 맨날 아픈 사람을 봐야 해서 진료를 보고 나면 자기도 아픈 것 같대요. 제가 부럽다는 거죠. 실제로 제가 만나는 분들은 대부분 웃으면서 음식을 먹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시거든요. 병을 고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정성을 다해 음식을 드리고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힘들 때는 별로 없어요. 초보 요리사 시절엔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3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은 별로 힘들지 않고요. 글 쓸 때가 가장 힘들어요.(웃음)

 

여전히 요리가 어려우신가요? 셰프님이 ‘요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지금도 던지고 살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요리를 하면 할수록 모르겠어요. 남보다 스프도 잘 끓이고, 맛도 잘 낸다고 해도 요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말문이 막혀요. 가장 좋은 소설, 가장 좋은 그림 같은 게 존재하지 않듯이 요리도 그런 것 같아요. 답이 없는 질문을 끝없이 던져야 하는 일이라 어렵고요. 다만 힘들다고 질문을 멈추는 순간 나의 직업적 정체성도 끝난다고 생각해서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독서와 요리의 닮은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오히려 닮지 않은 점을 찾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좋은 책은 또 다른 책을 읽고 싶도록 만들잖아요. 좋은 요리도 그래요. 또 먹고 싶게 만든다는 것도 닮았죠. 사람의 마음과 진정성이 가장 정확하게 전달되는 매체라는 측면에서도 독서와 요리는 닮은 것 같아요.

 

앞서 구체적인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그 꿈이 어떤 것인지 들려주실 수 있으세요?


삶은 유한한 거니까 은퇴를 한다면 이후에 남은 시간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저는 요리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카데미든 학교든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싶은데요. 그걸 그냥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보자고 해서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독서 주방유재덕 저 | 나무발전소
‘파타고니아 이빨고기’가 ‘칠레산 농어’로 이름을 바꾸고 판매량이 10배 늘었다든지, 요리의 맛은 식재료의 질에 달려 있을 뿐 요리사의 역할은 얼마 안 된다는 것 등등 미식의 안목을 키울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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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초엽 “다만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성을 찾을 것인지 궁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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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 바이오센서를 만들던 생화학 대학원생이 소설가가 되었다. 「관내분실」과 함께 필명으로 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한국과학문학상을 타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김초엽은 ‘한국 SF의 우아한 계보’라 불리며 첫 번째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을 펴냈다. 할머니 과학자가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마지막 생까지 최선을 다하고(「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촉망받는 연구자였던 생화학자는 사고로 태양계를 떠돌다 처음으로 외계 지성체와 만나 완전한 타자를 이해해보려 애쓴다((「스펙트럼」).


과학의 한계 안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안에서 김초엽 작가는 SF 소설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는 “불가능성을 껴안는 것”(인아영 평론 중)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김초엽의 소설은 “잠정적 진실을 끊임없이 세워나가”며 진실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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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적인 관심사가 하나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어요.


SF가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다 보니까 소소하게 읽히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많은 분이 읽어주셨어요. 책이 나오고 독자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소설가란 자의식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책을 내기 전에는 소설가라는 의식이 약한 편이었어요?


문예지나 잡지에 글을 실으면 아무래도 단행본보다 독자분들이 덜 보시거든요. 쓰면서도 제 글을 어떤 사람들이 볼까 감이 안 생기기도 했고요. 피드백을 받더라도 지인과 작가님들만 있었는데, 독자 피드백을 많이 받은 게 의미 있었어요.


인터뷰도 꽤 많이 나왔어요. 매체의 관심과 독자의 관심을 둘 다 받은 셈이에요.


독자들 반응과 매체에서 주목하는 게 조금씩 포인트가 다르기는 해요. 보통 독자분들은 재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잘 읽히고 쉽게 읽히는 게 이유가 아니었나 싶고요. 매체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메시지나 주제의식인데,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다 보니까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쓰면서 고민하게 되잖아요.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데, 메시지만 이야기하면 선언이 되고, 재미를 붙이자니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고요.


쉽지 않은 일이에요. 메시지를 우선으로 내세우면 글이 교훈적이거나 재미가 없게 되기 쉬워서 쓸 때는 최대한 재미에 중점을 두고 써요. 쓰다 보면 평소에 생각하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 같아요. 


김원영 변호사님과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칼럼을 연재했어요. 소설의 주제 의식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아요.


칼럼으로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소설에서 담아내는 메시지가 상통하는 측면이 있어요.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데, 논픽션을 쓸 때는 메시지를 조금 더 선명하게 하려는 편이에요. 소설에서는 선명하지 않더라도 맥락적으로 파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메시지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정소연 작가님 작품을 읽고 ‘SF가 타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르’라고 깨달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전에도 SF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어요. 과학을 접한 계기 자체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학책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외국 저자들이 과학 책을 쓰면 SF를 레퍼런스로 많이 언급하더라고요. 과학을 좋아하면 SF 읽을 때도 재미있거든요. 처음에는 흥미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크면서 SF에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관심사를 주요하게 다룬다는 걸 알게 됐고, 결국 산발적인 관심사가 하나로 묶이게 됐어요.


SF 습작의 계기도 궁금해요.


한동안 문학을 거의 안 읽다가 학교를 졸업할 때쯤 소설을 다시 읽고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해진 루틴을 따라서 글을 쓰면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작법서가 많이 나와 있잖아요. 대단한 글을 쓰겠다는 생각보다 그런 작법서를 읽으면서 저도 한 편의 글을 완성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첫 작품은 무슨 내용이었어요?


학교에서 소설 특강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완전한 단편을 썼던 거로 기억해요. SF는 아니었고 연필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흑연과 흑연을 둘러싼 나무 심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단편이었어요(웃음). 둘 다 깎여나가지만 흑연은 자신이 깎여서 뭔가를 만드는데 나무 심은 그냥 깎여나가기만 한단 말이에요. 연필이 하나의 존재가 아니고 분리된 입장이 있는 게 아닐까 보여주는 거였죠. 그러다가 학교 SF 공모전에서 처음으로 SF를 썼어요.


음악가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가 있는 가정환경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향이 있죠. 가정 환경 때문에 책을 많이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글을 직업으로 삼기보다 다른 일을 하면서 글을 쓰면 좋을 거라고 권유하셨어요. 글을 계속 쓰되 직업을 다른 걸로 찾아봐야겠다 하고 찾아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요.

 

대학원 졸업 전에는 소설이 직업이 될 거라 생각한 적이 있나요?


작년까지는 직업으로 삼겠다는 마음보다 한동안 글에만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앞으로도 잘 모르겠어요. 내년까지 집필 일정이 잡혀 있어서 이 삶을 살고는 있지만(웃음) 앞으로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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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재해석하기


“SF같지 않아 좋다”는 리뷰가 있었어요. 좋은 말이지만, SF 작가 입장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들 것 같아요.


과도기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다양한 SF를 접한 분들이 많지 않아요. 대부분 SF를 상업 영화로 접하다 보니까 남성중심적이고, 최첨단 과학이 나와야 할 것 같고, 인간의 이야기보다는 기술에 집중한다는 대중적 이미지가 있어요. 대중 인식과 실제 작품을 맞춰가다 보면 자연히 해결될 일이 아닐까 싶어요. SF에 여러 가지 갈래가 있고, 저랑 비슷한 결의 작품들도 많이 있거든요.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요.


등장인물 간의 감정을 묘사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나요?


등장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읽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등장인물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상황에 감응할 수 있잖아요. 감정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어요. 그게 꼭 등장인물이 울거나 웃는 게 아니더라도 이런 상황 자체가 뭔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우리는 거기서 괴롭지만 그보다 더 행복할 거야”라는 메시지가 있었어요.


그런 모순적인 부분을 좋아해요. 특정한 것이 아름답기만 하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프면서 아름다울 수 있고, 불행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다면성이요.


작품에 무엇인가를 외로워하거나 그리워하는 등장인물이 많이 나와요.


쓰고 난 다음에야 제 작품에 상실을 겪은 인물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어릴 때부터 상실을 경험한 인물들이 상실 안에서 유의미한 것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도 좋아하는 책인데, 상실에서 이야기가 출발하거든요. 끝에 그 상실이 회복되는 건 아니에요. 상실을 주인공이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좋아해요.


「감정의 물성」은 물성을 가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건드렸어요. 스스로 물건에 욕심이 있는 편인가요?


그런 편이 아니어서 물질을 소유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썼었어요. 책도 의외로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많이 사는 편이에요. 반응이 갈리더라고요. 물건을 모으는데 이입한 분도 있고 주인공 정아의 입장에서 읽었다는 분도 있고요.


「스펙트럼」에서는 할머니가 루이를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이해하려고 해요. 끝내 이해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노력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불가능성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죠. 타인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계속해서 이 상태로 놔둘 건지, 그럼에도 이 간격을 좁힐 건지 선택하는 문제죠. 과학에서 배운 태도가 있다면, 과학에는 절대적인 지식이 없어요. 모든 게 다 잠정적인 진실이에요. 알고 있는 게 진실이 아닐 수도 있고 자세히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태도가 이 잠정적 진실을 실제적 진실에 가깝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꼭 과학에서뿐만 아니라 불가해한 다른 존재들을 이해할 때에도 잠정적 진실을 끊임없이 세워나가면서 가까워가려고 시도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어떤 존재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히려 폭력이 될 수 있어요.


미래 사회에 대해서 낙관적이지는 않다고 말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이야기하는 힘이 있다면요?


얼마 전에 유토피아에 대한 강연을 준비하면서 유토피아가 거의 모든 사상에 의해 쓰였다는 걸 알고 흥미로웠어요. 페미니즘적, 남성 중심적, 사회주의적, 종교적 유토피아가 모두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유토피아인 사회가 다른 사람에게는 디스토피아가 되는 거죠. 낙관적인 답도 하나가 아니고 각자가 낙관적인 방법을 각자의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해요. 다만 억압받은 대상들이 비관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패배주의에 빠지면 내가 억압받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잖아요.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성을 찾을 것인가 궁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교조적인 메시지로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능성은 이런 거라고 제시하는 거죠. 소설이 하는 역할 중 하나가 다양한 종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게 아닐까요? 단순히 질문만 던져 놓고 질문에 대해 비관적인 답을 내놓는 게 아니고, 비관적인 현실을 보여주더라도 결국은 여기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적어도 실마리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가족이 있는 행성을 향해 수만 광년을 가로지르는 안나는 실패가 예정되어 있어요. 하지만 출발한 채로 여지를 남겨놓죠.


저는 주로 그 가능성의 목격자를 쓰거나, 아니면 미래 세대에서 답을 찾는 것 같아요. 앞선 세대의 실패가 실패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의 가능성이 될 수 있는 것들에 주목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지켜보는 사람이 있잖아요. 지켜보는 사람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실패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는 미래 세대에 대한 가능성이 제일 크게 보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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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쓰자


등장인물에 한국인 이름을 쓸 때와 다른 이름을 쓸 때 차이가 있나요?


대개 서구권 작품이 SF의 기준이 되다 보니까 읽다 보면 한국 정서와 조금 다른 측면이 있어요. 반드시 한국을 배경으로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어울리는 걸 찾은 것 같아요. 「순례자들」은 이국적인 게 어울려서 배경을 그렇게 잡았고, 최근에 쓰는 작품은 무국적인 작품이 많아요. 한국인 이름을 쓰면서도 국적이 모호한 이름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한국인으로 묶이는 이름을 넣으면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고, 어떤 국적으로 흐릿하게 만들면 나름대로의 효과가 있어요.

 

한국이 우주 기술과는 맞지 않는다는 자기 안의 검열 때문에 쓰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세계에서 외계인과 최초로 만나는 국가가 한국이라고 한다면 어색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보다 앞세대 작가가 계속해서 한국에 UFO가 들어오고 한국인들이 우주에 나가서 사는 사건을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작업을 해 왔어요. 지금은 이야기 안에서 어느 정도 한국도 SF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무래도 최첨단 이야기보다는 어느 정도 보편이 된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니까, 한국인이 주인공이 되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거예요.


소수자를 소설에 쓰면서 ‘내가 너무 한국인만 쓰나? 여성만 쓰나?’ 하고 스스로 제약을 걸 때는 없나요?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쓰던 중에 남자주인공을 한 명 정도 넣어야 하나 생각하긴 했어요. 남성이 너무 없으면 현실과 괴리가 있을 테니까요. 여성들은 조금 더 자기 작품에 대해 정치적으로 옳아야 할 것 같고, 비판 받는 부분이 적어야 할 것 같고, 상황적으로 그런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저도 고민하다가 지금은 일부러 자유롭게 쓰려고 해요. 물론 고민이 작품을 좋게 만든다는 장점도 있지만, 오히려 쓰고 싶은 이야기를 못 쓰게 되는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쓰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SF는 사고실험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변인을 통제하는 과정이 과학 실험이라면, SF를 쓰면서 통제하는 변인은 뭘까요?


한 가지 사건이라도 굉장히 복합적인 여러 가지 면이 있어요. SF에서는 사건이나 설정을 통해 특정 측면을 극대화하죠. 예를 들어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디스토피아는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제한 설정을 통해 인간성의 어떤 측면을 강조해요. 「관내분실」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는 리뷰가 많았는데, 상황을 한정시킨 세트 안에서는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파악하기 힘든 부분들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단편은 상대적으로 일부분에 집중하기 쉽지만, 장편은 또 다른 것 같아요. 장편을 쓰고 나서 다시 고쳐 쓰고 있다고 들었어요.


확실히 단편과 장편은 다른 장르인 것 같아요. 단편에서는 어느 하나의 감정에, 어느 짜릿한 순간에 집중할 수 있어요. 물론 그 순간이 담는 감정은 복합적일 수 있겠죠. 하지만 장편은 곁가지가 중요하고 하나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기보다, 여러 개의 절정이 있고 그것들이 마지막에 갈무리되는 것 같아요. 쓰면서 차이를 알아가고 있어요.


소설 아이디어를 얻는 곳이 있나요?


주로 과학 논픽션이나 과학 기사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뭔가 독특해 보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삶에서 오는 이야기와 결합해요. 아니면 클리셰를 변용하거나요. SF는 사이보그라든지 하는 클리셰가 계속 변용되는 장르다 보니까 앞의 작품을 분석하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독특한 소재 중에 써보고 싶은 것들은 많이 있는데, 이야기가 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어떤 건 2주 만에 떠올라서 쓰는 소설도 있고, 재미있어 보여서 메모했는데 아주 나중에 써먹는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소재 두 개를 생각했는데, 하나는 혀 미각세포가 남보다 훨씬 많고 뛰어난 초미각자였어요. 재미있는 소재라고 생각만 하다가 계속 못 쓰다가 얼마 전에 썼어요. 한 번은 세 번째 팔을 기계 팔로 단 행위 예술 아티스트가 있었어요. 이것도 되게 옛날에 본 소재였는데 최근에 썼어요. 언제 무엇이 소설이 될지 모르니까 일단 메모를 하고 보는 편이에요.


요즘 쓰는 건 어때요? ‘괴롭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한 상태인가요?


힘들게 쓰는 편이고, 쓰고 나서는 되게 기분 좋아요. 완성하고 나서 읽을 때는 좋은데, 쓸 때는 마감 때문에 힘들고요.


주로 언제 쓰는 편이에요?


정해진 시간은 없어요. 낮에 놀았다 싶으면 밤에 쓰고 낮에 좀 열심히 썼다 싶으면 밤에 쉬는 편인데……. 보통 미루고 미뤄서 새벽이 될 때 많이 작업하죠.


다음 소설은 어떻게 만나게 될까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이보그가 되다’ 칼럼을 책으로 묶어 내려고 하고 있고, 장편 초고가 하나 있는데 다시 쓰고 있어요. 마감을 지키다 보면 단편집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저 | 허블
자신만이 그려낼 수 있는 김초엽 특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순진하지만은 않은,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근사한 세계를 손에 잡힐 듯 이야기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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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돌봄이 가져다 준 빛나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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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이라는 단어 앞에 ‘우연하고 뒤늦은’이라는 수식어를 써놓은 편집자 김희진은 ‘늦깎이 워킹맘’이다. 내년이면 책밥을 먹고 산지 딱 20년. 누군가의 이름으로 나오는 수백 권의 책을 만들었지만 저자로 참여한 책은 『돌봄 인문학 수업』  이 처음이다. 2015년 초, 직장맘지원센터의 커뮤니티지원사업에 ‘인문학 독서 모임’ 사업계획서를 낸 것이 이 책의 씨앗이 됐다. 실용적인 육아서가 아닌 인문서를 읽는 엄마들의 모임. 전사회적으로 독해력이 낮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 모임만큼은 달랐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 중 하나는, ‘돌봄’이 인간의 성장, 자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매력적인 일임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제껏 나만 모르고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존재할,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돌봄’의 어려움, 특히 그것이 성역할로 강제되는 상황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우리 사회는 더 활짝 귀를 열고, 더 쫑긋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족하거나 왜곡된 정보로 ‘돌봄’을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을 참여시키려면 당근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 글이 정직하게 맛있는 당근 역할도 담당해볼 수 있기를 꿈꾼다.”( 『돌봄 인문학 수업』 ,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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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알릴 언어가 필요하다

 

독서 모임이 시작이 돼서 책이 나왔어요. 어떻게 구성된 모임인가요?


사업계획서가 채택된 후에 지역 맘 카페에 ‘인문학 독서 모임’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어요. 정말 순식간에 마감이 되더라고요. 그 후 5년 동안 다양한 기관들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가늘고 길게 모임을 유지해오고 있어요. 처음엔 아이들도 같이 모여서 엄마들이 책 읽는 동안 아이들은 숲 체험도 하고 자기들끼리 놀기도 했고요. 모임 시작 때는 아이가 하나였는데 지금은 둘, 셋인 분들도 있고요. 제 딸도 4살부터 모임에 참여했는데 지금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모임 운영의 특별한 원칙이 있다고요.


양육에 관한 책을 읽되 실용서가 아닌 인문서를 읽는 것이고요. 모임 멤버가 만드는 책을 고르진 않아요. 가능하면 책을 구입해서 읽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금방 읽고 버릴 책을 선정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이 모임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연초에 그해 읽을 두꺼운 인문서 6~7권을 한꺼번에 단체로 구입했어요. 책값이 10만 원도 훌쩍 넘었었는데 그렇게 책을 사서 읽을 의향이 있는 분들만을 대상으로 모집을 했고요. 덕분에 초기에 좀 집중력이 생겼던 것 같아요.

 

육아를 하다 보면 혼자서 책을 읽는 일이 버겁잖아요. 함께 읽으면 확실히 동력이 생길 것 같아요.


요즘은 책을 가볍게, 얇게,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엄마들과 책을 읽으면서 놀란 점은 읽어야 할 목적이 분명하다면 사실 텍스트의 난이도나 빡빡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오랫동안 인문 사회 분야의 책을 읽지 않았던 독자들이라도 적절한 가이드와 동기부여가 있으면 충분히 읽어내시더라고요. 올해는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  ,  『다시 책으로』  ,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을 읽었고 꽂힌 김에 연말까지 계속해서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대한 책들을 읽을 생각이에요. 

 

20개의 장으로 글이 나눠져 있어요.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돌봄 인문학 워크북(아이를 돌볼 때 더오르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도 실렸고요. 사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를 너무 따라간 것 아닌가 싶었거든요.


저도 처음에 제목안을 받고 놀랐어요. 뭔가 에세이 풍의 긴 제목을 생각했거든요. ‘아이를 키우며 겨우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뭐 이런 문장을 생각했는데요. 원고의 소재는 실용서에 가까운데 방법론은 인문서에 가깝고, 글쓰기는 에세이에 가까우면서 또 엄마들이라는 특수한 독자층을 향하고 있어서 출판사에서도 고민이 많으셨으리라고 짐작해요. 놀라긴 했지만 되돌아보니, 책 내용에 가장 충실한 제목인 것 같아요. 읽어보신 분들은 유행 때문이 아니라 정말 책 내용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지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프롤로그 제목이 ‘우리에게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알릴 언어가 필요하다’입니다. ‘돌봄’이라는 개념에 굉장히 집중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책을 내고 나서야 ‘돌봄’이라는 말에 대한 요즈음의 보편적인 인식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어요. 20년 사이에 ‘양육’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공적 개입에 ‘돌봄’이라는 말이 들어가게 되었더라고요. ‘돌봄’이라는 말이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뭔가 관스러운, 재미없는 뉘앙스를 갖게 된 것 같아요. 그 말의 원래 의미를 회복하게 만드는 것도 이 책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글을 쓸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나요?


평소에 너무 솔직하게 쓰는 편이라 조심을 좀 했어요. 아무래도 개인적인 경험을 많이 쓰다 보니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포함이 되니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읽힐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요. 그래도 여전히 라쇼몽스러운 지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도 보였어요.


제 성격이 좀 그런 것 같아요. 사각지대라고 해야 할까요, 맹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제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도 최대한 보고 싶어하는 편이긴 한데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글이 점점 허공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럼 그걸 또 잡아 끌어내려서 경험에 최대한 충실하려고 하고. 이런 균형을 잡는 데 애를 많이 썼어요.

 

추천사를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소설가 조남주 작가님이 써주셨어요. 재밌게도 두 분의 추천사에 ‘동지’라는 표현이 들어 있어요.


‘동지’라는 표현은 이 책을 엮어준 최연진 편집자님이 알려주셔서 알게 됐어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실제로 이 책뿐 아니라, 저의 육아 과정이, 그리고 나아가 제 삶 전체가 그런 자매애(sisterhood)로 지탱되어온 면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어요. 실제로는 여자 형제도 이모도 없지만요. 하지만, 나이에 상관 없이, 혼인과 출산 여부에 상관 없이, 직업 유무에 상관 없이 존재하는 여성들 사이의 근본적인 연대감은 저를 이만큼 키워주고 지켜준 힘이에요. 심지어 저와 딸 사이에도 그런 연대감이 흐르고 있어서 서로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양육이 힘에 부칠 때 아동학대에 대한 기사나 여러 사정으로 힘들어하는 엄마들의 사연들을 찾아 읽으면서 에너지를 보충하곤 했어요. 물론 너무 분노만을 연료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요.

 

두 분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조한혜정 선생님은 제가 대학, 대학원 다니던 시절에 ‘돌봄’에 대해서 참 많이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땐 왜 그러시나 했는데, 이 책 쓰면서 당시의 몰이해에 대해 사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추천사를 부탁드렸고요.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돌봄’ 때문에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독립된 여성의 여행기”라고 써주신 대목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또 조남주 작가님은 이 책을 가장 잘 이해해주실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단 예민하고 똑똑한 딸을 키우시는 것 같았어요. 근거는 없지만 저만의 추측, 혹은 촉이랄까요. 엄마들이 처한 말도 안 되도록 부당한 상황에 대한 소설을 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왠지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추천사 받고 보니 심지어 작가님도 저처럼 “억울했던 딸”이라고 하셔서 더더욱 공감했죠.

 

조남주 작가님의 추천사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아동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던 시절에 자랐으며 자녀의 마음 읽기가 최우선 과제인 세대. 자유와 방임 사이에 아슬아슬 자랐으나 자녀의 안전과 성장을 온전히 책임지는 세대.” 정말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


저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던 책의 핵심을 짚어 주신 문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돌봄과 호혜의 기운을 갉아먹고 없애고 있는 건 엄마들, 여성들이 아닌데, 그 책임은 고스란히 엄마들,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상황. 그것이 현대의 엄마들이 처한 근본적인 문제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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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숙한 인간이 되면, 다 해결된다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나의 돌봄은 어떤 서사를 갖고 있을까’ 물어보게 되면서, 돌봄을 하는 주체, 돌봄을 당하는 타자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뒤표지에 실린 “돌봄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가져다주는 빛나는 통찰”, 이 문장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데요. 누군가 “왜 육아는 빛나는 통찰을 허락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열심히, 진심을 담아서 할 수밖에 없는 활동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너무 뻔한가요? 잘하냐 못하냐와 별개로 진심을 담아서 하는 모든 활동은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또 현대인들이 다른 존재와 이렇게 격렬하게 만날(대면할) 일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책 속에서도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를 인용했어요.(121쪽) 모든 것을 사물화, 도구화하는 시대에 그래도 돌보는 일만큼은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더라도) 진심을 담아서 그 사람과 만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230쪽에 “내 아이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관한 이야기하셨어요. 육아를 잘하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부모들이 자주 빠지는 오류인데요. 어떻게 해야, 부모들이 덜 착각할 수 있을까요?


저도 곧잘 착각하는 엄마라, 제가 답을 드릴 입장은 아닌데요. 책에도 썼지만, 양육은 ‘투사’를 주고받는 과정인 것 같기는 해요. “프로이트는 너무나 감동적인 동시에 본질적으로 너무나 유치하다는 점에서, 부모의 사랑은 마치 자신이 다시 태어난 듯 느끼는 부모의 자기도취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  의 문장을 책 본문 224쪽에인용하기도 했는데요. 아무튼 객관적이기 어려운 관계라는 거죠. 이런 점을 의식화 하려고 노력하면 좀 낫지 않을까요? 인간이 내가 다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이런 사실을 의식화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그런데 솔직히 또 ‘아이를 전혀 모르겠다. 아이가 나와 너무 달라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이런 상황도 좋은 건 아니잖아요. 이거야말로 투사니까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내 소유가 아님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출발이 아닐까 싶어요.


어렵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긴 해요. 내가 성숙한 인간이 되면, 다 해결되는 것 같기는 해요. 내가 내 문제를 정정당당하게 다 해결해서 딱히 아이를 나와 혼동하며 도취되거나 아이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투사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말하고 보니 말도 안되게 어려운데요. (웃음) 그래도 아이를 키우니까 최소한 이런 지향점은 생기는 것 같아요. 막 살지 않고 내 문제를 덮어두지 않는 일에 있어서는요.

 

책을 읽으면서 크게 울컥했던 문장이 있거든요. 54쪽에 “모든 워킹맘을 응원하고 전업맘은 무조건 존경한다”고 쓰셨어요. 왜 전업맘은 무조건 존경하시나요?

 

진짜 중요한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사실 전업맘들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우리 아이가 이렇게 멀쩡히 자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동네 전업맘들이 한번씩 우리 아이를 봐준다거나 그런 적극적인 활동 때문이 아니라, 그냥 동네 어머님들이 놀이터에서 아이 옷 매무새라도 한 번 더 만져주고, 물이라도 한 모금 더 먹이고,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한 번 더 불러주고, 눈이라도 한번 더 맞춰주고, 아니 그냥 거기 존재하고 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기여를 하거든요. 이게 계량 및 측정 불가능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가까이서 관찰해보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자기 부인이 집에서 노는 줄 아는 남편들도 많다고 하잖아요.

 

전업맘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을 텐데요.


그렇죠. 직업은 없지만 뭔가 자기만의 작업을 열심히 하는 분도 계실 테고, 정말로 ‘자기’를 없애고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등의 일에만 헌신하는 분도 계실 테고요. 무늬는 전업맘인데 누구보다 투철한 직업인의 마인드로 육아를 담당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이런 분들은 사실 전업맘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애매하긴 해요. 아무튼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다른 경제적 보상이 따르는 일을 포기하거나 거부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층위가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이분들이 만들어내는 비슷한 분위기가 있거든요. 저는 본능적으로 그걸 느껴요. 아이들도 그럴 거예요. 뭔가 시간이 길게 늘어나게 만들면서 따뜻하게 감싸 안는 듯한 분위기요. 책에서는 이런 분산된 정신의 은은한 보호를 받을 때 한 사람의 정신이 집중력, 창의력을 최고로 발현시킬 수 있다고 쓰기도 했어요. 사실 이런 분위기야말로 사회적 안전망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환산과 보상은 기술적으로 어렵더라도요.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인들의 몫일 텐데요. 최소한 합당한 사회적 존중은 받아야 하는데. 맘충이니, 팔자 늘어졌다느니, 그런 얘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게 참 야만적이죠.

 

‘보조양육자에 관한 글’도 매우 인상 깊었어요. 워킹맘이라는 상황 때문에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보조양육자의 도움을 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계신데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조양육자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조양육자라는 개념이 저도 참 부자연스러웠어요. 내가 내 손으로 안 키운 새끼를 내 새끼라고 할 수 있나,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사실 보조양육자는 역사적으로도 항상 존재해왔었고, 앞으로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어떤 보조양육자가 좋은 보조양육자냐?’는 건 제가 조언하기 어렵겠지만요. 이건 말씀 드리고 싶어요.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을 같이 나눠야 하는 사람들이니 사업장에서 직원을 뽑는 것과는 좀 다른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이분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해줄 어떤 지표도 없다는 사실을 우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길 바라고요. 심지어 이 부분을 나라에서 검증해서 A급 얼마, B급 얼마, C급 얼마, 이렇게 임금 체계까지 세팅해주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시험으로 등급을 나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내 계획대로 채용이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고, 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수용하시길 바라고요. 내가 요구할 부분 요구하고 맞출 부분 맞추고 포기할 부분 포기하고. 사업장에서도 이 정도는 하잖아요.

 

너무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운이 더 클지도 몰라요. 좋은 보조양육자를 만난다는 건, 내가 어떻게 열심히 해서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요. 그냥 운이에요. 어쩌면 아이의 복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내가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면 좋은 보조양육자를 만나 오래 오래 잘 지낼 수 있다’는 마음은 버리시길 조언해요. 그냥 평소에 아이 복을 위해 기도하시고, 좋은 분 만나면 감사히 여기시고, 잘 안 되어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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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업한 책의 작가들 다 좋아해요

 

베테랑 편집자가 쓴 책입니다. 저자가 되어 보니 어떤가요?


편집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았어요. 저도 그렇고 많은 편집자들이 책을 만들 때 약간 ‘빙의’의 경험을 하거든요. 저자의 책이 곧 내 책이죠. 말, 생각, 느낌처럼 중요한 것을 뒤섞어 공유한다는 건 엄청난 교류예요. 그래서 누군가 텍스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거나, 책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뉘앙스로 얘기하면 기분 상하고 그 책이 안 팔리면 또 기분 상하고. (웃음) 조금 부담스럽고 식상한 비유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편집자는 ‘보조양육자’와 비슷한 존재인 것 같아요.

 

일하는 방식에 관한 고민도 했을 것 같아요.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특히 제가 일해온 방식이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했어요. 저자와 가까워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독자와 멀어지면서까지 그러면 안 되는 거라서요. 그 거리 조절과 균형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해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양육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사랑하고 아끼니까 분리가 안 되는 어떤 관계라는 측면에서요.


맞아요. 양육의 최종 목표는 아이의 고유한 타자성을 수용하고,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훌훌 날아가게 해주는 일이잖아요. ‘편집’이라는 일에서도 너무 빙의 상태에만 몰입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번 작업에서 제가 편집자에게 지나친 영향을 행사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어요.

 

대학에서 영문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셨어요. 현재 민음사의 브랜드인 ‘반비’ 편집장으로 일하고 계시고요. 어떻게 편집자의 길에 접어들게 되셨나요?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출판학교나, 출판 과정 전반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그래서 정말 편집자가 뭐 하는 건지도 모르고 무식하게 뛰어들었어요. 공부가 재미있기는 했지만, 독립적으로 살자는 게 제 청년기 삶의 모토였는데, 학생으로 살면서 독립적이기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야 했어요. 사교육 시장이 인문계 학생들을 지원하는 기능을 한다는 걸 몸소 경험했죠. 제가 아르바이트도 참 열심히 잘해서 사교육 시장에 잡혀서 눌러앉을 뻔했어요. 차라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걸 포기하고 직업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당시 제가 열심히 읽고 공부하던 책들을 내는 출판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 출판사 주간님이 저더러 “아마 너는(너도?) 금방 다시 공부한다고 학교로 갈 것이다”라는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을 하다 보니, 20년 가까이 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린 걸까요?

 

(웃음) 글이 굉장히 역동적이라고 할까요? 생동감이 넘쳐서 쓱쓱 잘 읽혀요. 평소 어떤 문장을 선호하는지도 궁금합니다.


프리모 레비부터 다이앤 애커먼, 리베카 솔닛까지, 제가 작업한 책의 작가들 다 좋아해요. 책에서 많이 언급한 앤드루 솔로몬도 좋아하고요. 그러고 보니 책에 인용된 작가들 중에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네요. 팔리 모왓은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에게 추천하고요. 좋아하는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는 없는데, 특별히 유형을 찾아보자면, 영국 작가들의 유머러스하면서 재치 넘치는 문장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인 오스틴의 섬세한 관찰과 유머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고요. 더글러스 애덤스, 닉 혼비 같은 작가들 좋아했고요. 너무 옛스러운 이름들만 있는 것 같아 요즘 사람들의 이름을 추가해보자면 요 라인에 김혼비 작가님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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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줄 알게 된 것이 가장 좋은 점

 

젊은 부모들이 이 책을 가장 흥미롭게 볼 것 같지만, 연령대와 무관하게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을 즐겁게 읽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두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부모와 다른 아이들』  이나  『아동의 탄생』  은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독서모임에서 어머님들한테 반응이 좋았던 책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이었어요. 주변의 엄마들, 딸들이 어떤 여신들의 힘의 영향하에 있는지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서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게 되고 더 친해진 계기가 되었어요. 얼마 전에 페터 한트케가 ‘2019 노벨문학상’을 받았잖아요. 『소망 없는 불행』  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 돌봄 인문학 독서모임에서도 꼭 같이 읽고 싶었던 책인데, 하필 민음사 책이라 못 읽었어요. (웃음) ‘돌봄’과 ‘양육’과 ‘성장’에 대해서 중요한 통찰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기회에 스웨덴 한림원의 안목을 믿고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한국사회에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부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노산 워킹맘 선배로서요.

 

이 질문은 진짜 어렵네요. 인생에 선배는 없는 것 같아요. 다 각자 다른 조건에서 출발해서 다른 소망을 가지고 저마다의 길을 가기 때문에 앞서 다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줄 수 있는 조언들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서요. 이미 결정을 마치신 분들은 다른 이야기는 듣지 마시길 바라고요. 혹시 아직 결정을 앞두고 있거나 고민중인 분들에게 뻔한 이야기지만 한번 해보자면, 정말로 자신이, 그리고 부부가 원하는 결정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경제적인 조건,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타협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심리적으로도 다른 이슈들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을 하시길 바라요. 이전에는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주변의 기대 때문에 아이를 낳는 분들이 훨씬 많았을 텐데요. 지금은 또 거꾸로 주변의 걱정이나 막연한 불안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수유’ 챕터에서 쓴 이야기가 이것과 비슷한데, 아무튼 정답이 없는 문제인 만큼 어떤 프로파간다나 외부의 협박에 휘둘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질문을 드릴까 말까 망설여졌지만 묻고 싶어요. 나름 육아를 잘한다고 자신하는 아빠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나름’이 아니라 정말 잘하는 아빠들도 많다는 것을 물론 인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전까지는 육아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아빠들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로 저보다 나은 아빠들도 보이는 것 같고요. 회사에서도 정말로 살림이나 육아에 재능도 있고 재미도 느끼고, 의미도 찾는 분들이 많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좀 뻔뻔하게 조언을 드리자면, 설거지를 한 번 더 하는 것만큼이나 반려자를 돌보는 마음? 이런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남자 형제들에 비해 그다지 사랑받으며 자라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도 더 인정받으며 살아온 것도 아닌 엄마들이 화수분일 리가 없잖아요.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통으로 사랑을 짜내서 아이들에게 줘야 하는 경우들 많거든요. 그러다 번아웃이 안 되면 그게 이상한 거죠. 반려자를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아빠들이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부분이나 살림이나 육아야 뭐 둘이 잘 나눠서 하는 게 기본이고, 그 외에도 이런 역할도 본인의 역할로 좀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밑줄을 긋고 싶은 이야기네요. 대화를 하다 보니 자꾸 질문이 늘어요. 현재 유치원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라고 조언하고 싶나요?

 

만일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저는 과감히 휴직을 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멀리 놀러 가서 ‘한달 살이’ 하는 것 말고요. 바로 내가 있는 곳에서, 동네 공원, 동네 도서관, 동네 서점, 동네 시장, 동네 놀이터, 하다 못해 동네의 음흉하고 위험한 장소들까지. 그렇게 동네를 열심히 탐험하러 다니고 싶어요. 일상을 좀 단단하게 만들어보고 뿌리내려보는 시간을 아이들도 엄마들도 충분히 만끽해 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저 역시 때때로 괴롭고 힘들지만 육아를 통해 빛나는 통찰을 얻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엄마가 되어, 부모가 되어,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감사할 줄 알게 된 것이 가장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매일 아침 아이가 눈을 뜰 때마다 그게 그렇게 기적이 일어난 듯 감사해요. 제가 언젠가 이렇게 고백했더니 친구가 그건 네가 평소에 너무나 근심이 많은 엄마라는 반증이 아니냐며 촌철살인 뼈 때린 적이 있는데요. 그게 설사 제 병적인 불안의 반영이더라도, 제 걱정과 근심의 반영이더라도, 그렇게 매일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그리고 제 책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초반부와 후반부가 조금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요. 실제로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 저는 지금의 제가 꽤 마음에 들어요.


 

 

돌봄 인문학 수업김희진 저 | 위즈덤하우스
돌봄을 공부하는 것은, 한때 아이였던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며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일과 사랑, 성취와 돌봄이 양립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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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동진 “평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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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페이지 수 944쪽. 겉표지를 벗기면 사철 제본을 한 책등에 크게 ‘2019-1999’라고 적혀 있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야기다. 묵직한 분량 안에 1999년 개봉한 <벨벳 골드마인>부터 2019년 개봉한 <기생충>까지,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총 214편의 영화에 관해 쓴 208편의 평론이 실렸다. 이 숫자에는 이동진의 20년 역사뿐만 아니라 영화계의 역사, 독자들의 개별적인 역사가 모두 녹아 있다. “그가 추천하는 영화를 함께 보고 설명을 듣고 대화를 나눠본 관객에게 이동진은 차라리 일종의 영화관”이라는 박찬욱 영화감독의 추천사처럼, 이동진은 국내 영화평론계에 굳게 선 스타다.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안경을 쓰고 그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활동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결과물을 토대로 관객과 독자는 한층 새롭게 영화와 책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극장 밖에서 다시 시작되는 영화처럼,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는 이동진의 노력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신비를 손에 쥐어보려고 다시 시작하다가 아득해’진, ‘영상을 문자로 바꾸어 짚어내려고 무망한 투망질을 되풀이’(5쪽) 한 시도가 있었기에 오늘의 이동진이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동진의 눈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가 다시 한번 시작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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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의 다양한 형식


블로그에 ‘과격한(?) 분량’이라고 책을 소개했어요. 20년간 쓴 글이 모였으니 당연한 일인데, 실제로 보니 과격하긴 하더라고요. (웃음)


지난 20년간 쓴 제 영화평론을 모두 모은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추릴 수가 없었어요. 줄이고 줄여서 만든 게 이 정도예요. 숫자 강박도 조금 있었어요. ‘2019-1999’ 하면 그럴듯해 보이잖아요. 20세기의 첫 20년이자 20세기의 맨 마지막이기도 하고요. 책이 운때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줄인 기준이 있나요?


영화보다는 글로 골랐던 것 같아요. 앞부분에는 글이 심할 정도로 길고, 뒷부분에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 짧은 글들은 빼게 되더라고요. 지난 20년간 영화 글을 발표해온 매체와 환경, 혹은 저라는 사람이 살아온 궤적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 같아요. 일간지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사람이고, 일간지에는 아무리 영화평을 길게 써봤자 책으로는 두 페이지에서 세 페이지 분량이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이렇게 모아 놓은 게 저뿐만 아니라 읽는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겠죠.


양에 대한 욕심이 있다고 하셨어요. 이제까지 쓴 글을 다 모아놓고 싶다는 마음이었을까요?


타고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무엇이든 못 버리고 평생 수집하는 스타일인데, 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남들이 읽어서 유익할 수 있는 글만 모은다는 원칙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질보다 양이라고 생각해요. 넓이가 없는 깊이라는 건 불가능하지만, 깊이가 없는 넓이는 가능할 수도 있죠. 그런 점에서 깊이의 전제조건이 넓이라는 생각으로 양을 많이 쌓으면 언젠가는 그 양의 끝에서 질적인 도약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양질전환의 법칙처럼요.


책은 언제, 어떻게 기획하셨어요?


이런 책을 내겠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어요. 김중혁 작가처럼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같이 쫓기고 쫓기다가 하는 사람이 있는 법인데요. 제 책 치고는 빨리 냈어요. (웃음) 편집자님께서 고생 많이 하셨죠. 기본적으로 평론집은 대부분 발표한 글을 모아서 내게 되는데, 저는 비교적 호흡이 짧은 쪽에서 많이 일하다 보니 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어요. 이번 기회에 새로 긴 글을 쓸 수 있게 되어서 좋더라고요. 평을 쓴다는 게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라는 걸 오랜만에 새로 깨달았어요. 어떻게 보면 평문의 다양한 방식이 여기에 녹아있다고도 볼 수 있어요. 어떤 글은 극도로 스포일러를 조심하면서 안내에 충실하기도 했고, 어떤 글은 상대적으로 글 자체의 완성도에 치중한 면도 있어요. 그 영화 자체를 깊게 파고든 글, 심지어 유머 글도 있어요. 평론가로서 썼던 다양한 형식이 모여있으면 좋겠다는 게 애초의 목적이었어요.


20년 전 쓴 글을 보면 부끄러움이 가장 먼저 들기도 하죠. 많이 고치지 않고 내는 데까지는 용기가 있었을 거예요.


첫 번째 이유로는, 고치기 시작하면 이 책은 2029년에 나왔을 거예요. 짧은 글이라고 해서 그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다시 고쳐 쓰다 보면 책이 5000페이지까지도 나왔을 거예요. 불가능한 일이죠. 저는 인생에서 최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쪽이고, 차선만 되어도 너무 감사하고 차악만 모아도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비관적인 사람인데, 이 책은 차선은 된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사실 90년대 초반부터 비디오 잡지에 필명으로 영화 글을 썼어요. 그 글들은 지금 제 기준으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에요. 그나마 보아줄 수 있는 게 1999년도부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느 순간부터 부끄럽진 않아요. ‘내 글이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세계 최고의 평론가야’ 이런 건 아니지만, 자부심도 있어요.


그 정도의 자부심은 있어야 20년간 이 정도의 글을 써올 수 있지 않을까요?


스스로 최소한의 믿음이 없으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특히 글은 블로그나 SNS를 통해서 누구나 쓰잖아요. 일대일로 손쉽게 비교가 되고, 이 사람이 얼마나 잘 쓰는지 보여요. 그런 상황에서 글쟁이로서 글을 쓰는 데 자신의 성실함이든 재능이든 최소한의 믿음이 없으면 직업적인 글을 쓸 수 없어요. 그런 면에서 저한테 재능이 없더라도 있는 것처럼 믿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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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영화평을 올린 블로그 제목이 ‘Life isn’t cool’이에요.


인생이 ‘쿨’하지 않잖아요. 예전에 사인할 때 ‘흘리지 않는 1인분의 삶’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어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평 중의 일부였죠. 그게 소극적 의미로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해요. 민폐를 끼치는 삶을 싫어하고, 대부분 ‘쿨’하고 싶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반면 ‘Life is cool’이라는 코너도 있어요.


사람이 조가 있으면 울도 있죠. ‘Life isn’t cool’에 글이 더 많지만, ‘Life is cool’에도 꽤 많아요. 역시 ‘생은 쿨하지 않지만, 가끔 쿨이기도 하구나’ 싶어요.


은근히 말장난이나 언어유희가 많았어요. ‘<밤에 혼자>에는 혼자 있는 장면이 없다’, 책 출간 소식을 알리면서 쓴 ‘영화뿐만 아니라, 책 역시 두 번 출간된다’ 같은 문장이오.


기본적으로 책을 내는 사람의 도구는 글이죠. 대장장이에 비유한다면 그 사람이 무얼 만들든 만드는 도구에 대한 능숙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능숙함이 없는 하한선으로는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책을 쓰는 사람의 도구는 언어가 될 거예요. 보통 가장 언어적 예술의 정점이 시라고 하잖아요. 모든 존재하는 예술의 최고 단계에서는 음악적인 부분이 있을 거예요. 언어를 다루는 직업이라면 사운드의 말맛, 모음에 따라 변화가 생기기도 하는 말놀이, 유희, 혹은 ‘드립’ 등 언어의 추상적인 특성을 구사할 수밖에 없어요. 말씀해주신 예 중 두 번째는 완전히 장난이었다면, 첫 번째는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핵심을 일반적인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언어가 가진 말맛을 잘 살려서 표현하는 게 제가 바라는 영화평의 이상이에요.


‘그러니까’라는 단어가 자주 보였어요. 논리성을 가져가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작법 수업을 들으면 형용사와 부사를 빼라고 하죠.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고 했고 저도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하지만 과연 모든 경우에 그런가요? 형용사와 부사를 잔뜩 넣어 충분히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정유정 작가의 작품은 노작(勞作)이라는 느낌이 들죠. 왜냐하면 접속 부사가 하나도 없어요. 하드보일드하게 뼈만 남은 문장을 구사해서 스릴러에 맞는 글을 쓰죠. 반면 오히려 접속 부사를 많이 써서 말맛이나 리듬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일반적으로 ‘그러니까’는 앞말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저는 ‘그러니까’를 영화평의 첫 단어로 많이 써요. 접속해야 할 앞 절이 없음에도 그 말을 처음에 쓸 때 주는 강렬한 긴장감과 생략의 맛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도 많이 쓴다고 들었어요.


책에서는 그 단어를 많이 뺐어요. 1000페이지 교정을 보다 보니 제 말 버릇, 글 버릇이 다 나오더라고요. ‘고스란히’라는 말도 많이 썼어요. 그런 말버릇도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제 인생관이자 세계관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평론의 중도를 지키려는 태도라고 보더라고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기본적으로 평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라고 생각해요. 앞의 전제에 대해 인정하거나 인지한다는 걸 전제하잖아요. 그게 작품과 평론가의 관계 아닐까요? 어떤 평론은 작품 자체를 완전히 깔아뭉개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 영화가 한 말은 들은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말을 쓰는 거죠. 사람이 다 자기 사연이 있고 할 말이 있어요. 아무리 이상한 사람도 그렇게 행동할 최소한의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 ‘너도 옳고 나도 옳으니까 여기서 끝내자’라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상대방을 인정하고 들어준다는 전제 아래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거죠.


책에도 이런 관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영화에 내레이션이 많으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영화적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시각적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그 말도 맞는데, 어떤 영화는 그것 때문에 특별해지기도 해요. <친절한 금자씨>에서 내레이션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브레송 영화에 내레이션이 없다면요? 영화 글밥을 먹으면서 느낀 건 세상에는 딱 그래야 할 단 하나의 논리도, ‘이즘’도, 영화적인 방법도 없다는 거였어요. 세상에 관한 것이든 문장에 관한 것이든, 단 하나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아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경계하는 사람은 단 하나의 원칙을 믿는 사람들이에요.


연극과 소설, 모든 텍스트 중에 영화 평론가가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 서문에도 썼지만, 제가 영화를 찾아간 게 아니라 영화가 저를 찾아왔어요. 지금은 당연히 영화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이자 가장 큰 쾌락이자 고통이에요. 하지만 영화만이 유일한 것이고 꼭 그랬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영화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문학을 읽고 음악을 들어요. 살면서 수많은 경험이 있는데 영화평론을 한다고 영화만으로 세상을 보고 싶진 않아요.


영화를 볼 시간, 책을 읽을 시간, 음악을 들을 시간은 어떻게 내나요?


음악은 늘 멀티 태스킹으로 들어요. 초집중해서 무언가 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음악을 틀어놓고, CD를 하루에 다섯 장은 듣는 것 같아요. 책은 어떻게 보면 가장 덜 지겨운, 권태가 없는 오락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한 번 시계부를 쓸 필요가 있어요.


시계부요?


가계부처럼요. 바쁘지만 누구나 여가를 보내는 시간이 있어요. 하다못해 왕복 출퇴근하는 시간에 웹툰을 볼 것인가, 쇼핑할 것인가, ASMR 틀어놓고 잘 것인가, 여러 가지 선택 중에서 그 순간 쇼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책 읽기보다 쇼핑을 좋아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돈이 있고 시간이 있더라도 여행을 가지 않아요. 사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거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 인생이 안 좋은 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책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훨씬 지혜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겠죠. 어떤 사람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건 그냥 다른 일보다 책 읽기를 덜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최근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종료됐어요. 오랫동안 많은 책을 소개해 온 대표적인 도서 팟캐스트였죠. 방송이 남긴 게 있다면요.


이것저것 했던 모든 방송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고르라면 <이동진의 빨간책방>일 것 같아요. 시작할 때는 몰랐지만 너무나 얻은 게 많고, 특히 누군지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청취자와의 유대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별 볼 일 없고 시간 없어서 쩔쩔매는 사람이 매 순간 차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책을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어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죠. 사람도 그렇듯이, 제가 누군가와 멀어진다 해서 반드시 떼어 먹힌 돈이 있어서 싸우고 그런 건 아니에요. 좋은 사람이어도 헤어질 때가 있죠. 그런 측면에서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일단 여기까지구나 생각하죠. 그게 꼭 슬픈 일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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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지 않으면 평론은 불가능하다


이제까지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 이동진의 평은 한줄평이라고 생각해요. 분량에 따라 글 쓰는 방법이 달라지나요?


한줄평이 가진 강력한 효용이 있어요. 가장 중요한 특징을 가장 제한된 언어로 쓰는 게 한줄평일 거예요.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전하고 다른 한 줄을 쓰면서 각 영화의 특성을 반영해야 해요. 사람들은 쉽게 쓴다고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셈이죠. 반면 <버닝>처럼 80매 원고를 쓴다면 훨씬 분석적이면서도 파고 들어가는 스타일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잖아요. 80매 평론이 한줄평보다 반드시 모든 면에서 위대하고 우수한 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한줄평이 가장 상업적인 글인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글의 형식과 글을 누가 읽는가에 맞춰 쓰는 게 맞죠.


같은 영화를 두 번 볼 때가 거의 없다고 하셨어요. 평론을 쓸 때, 영화를 어떻게 복기하시나요?


영화는 생각보다 언어가 구조화되어 있고, 처음 5분을 보면 짐작하는 수준을 대부분 맞출 수 있어요. 그건 제가 천재여서 보이는 게 아니라, 영화에 쏟아부은 시간이 많기 때문이에요. 영화 언어에 상대적으로 익숙할 수밖에 없죠. 다른 쪽으로는 어제저녁, 오늘 점심에 뭐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요. 평생 시간을 그렇게 썼으니까요. 아버지가 밤마다 형과 함께 내기 바둑을 두곤 하셨어요. 옆에서 보면 우리 아버지와 형이 천재 같은 거예요. 바둑 한판을 두고 순서대로 다시 보면서 복기한단 말이죠. 확률 문제로 계산하면 어마하게 복잡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바둑을 만 판 둬서 그렇더라고요. 당연히 두 번 보면 물론 좋겠죠. 하지만 인간의 삶은 항상 유한하고 최선은 없어요. 순간순간을 타협하는 거죠.

 

수많은 영화와 책 중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일에 탈력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작가님은 그런 적 없으신가요?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애드 아스트라>가 훌륭한 이유는 무의미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의 문제를 SF를 빌려서 뛰어나게 묘사하기 때문일 거예요. 뇌가 진공 상태를 견디지 못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일 텐데, 우리는 의미가 없는 걸 견디지 못해서 의미를 발명하기도 해요. 우리 삶이 의미로 가득 찼다는 것은 의미 없음을 견딜 수 없어서 그렇게 믿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의미를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무의미를 견디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평론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어떤가요?


평론이 의미를 찾아갈 때가 있죠. 그러나 의미를 재구조하거나, 의미를 발명해내기도 해요. 평론은 감독의 의도를 찾아서 옮겨주지 않아요. 감독이 모르는 의도를 알아채거나, 감독이 만들어내지 않았지만 이미지나 말이 서로를 부추겨 세우면서 저절로 생겨난 의미를 잡아낼 수도 있어요. 소설은 소설가만의 것이지만 영화는 배우의 몫, 시나리오 작가의 몫, 촬영 감독의 몫 등이 있어요. 반드시 감독 머릿속에서만 완전한 의미가 있지 않을 때가 있죠. 어떤 의미에서 평론가는 주어진 영화 재료를 가지고 자기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을 거예요.


나이트 샤말란 3부작 평 중 ‘질문이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평론하는 사람에게도 해당하는 말일 텐데, 평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은 다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글을 밀고 나갈 힘이 있어야 하는데, 글을 추동하는 건 질문이에요. 영화를 보면서 모든 장면에 고개를 끄덕이면 영화평을 쓸 수 없어요. 왜 저랬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해요. 왜 저 영화는 시간순으로 진행하지 않고 마지막에 나올 걸 처음에 넣어서 줄거리를 꼬았는가, 왜 저 영화는 배우가 정면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가, 왜 저기서는 모두 여자만 죽는가… 질문하지 않으면 평론은 불가능해져요. 그런 면에서 질문하는 사람은 괴로워요. 질문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어 있고 자신이 디디고 선 기반을 스스로 삽으로 파내는 행위잖아요. 그렇지 않고 글을 쓸 방법을 저는 몰라요. 그러니까 괴롭죠.


마지막 작가의 말은 ‘나는 영화를 만져보고 싶다’로 끝나요. 어떤 뜻일까요?


1 다음 2가 오고 차례대로 3과 4가 오는 걸 논리적인 글이라고 한다면, 예술적인 글에는 반드시 비약이 있어요. 1, 2, 3, 4 하다가 갑자기 17이 오죠. 이런 비약을 함부로 만들면 글이 황당해져요. 마지막 문장은 앞 문장과 이어지지 않으니 비약이 맞는데, 앞 문장과 내적으로 희미하게 연결이 되거든요. 저는 서문에 이 비약이 차선적으로 적절했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지금 제 영화에 대한 가장 절실한 마음이에요.

 

영화를 내 삶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극적인 순간 같은 것은 내 어린 날들에 없었다. 그렇지만 영화는 내게 정확히 찾아왔고 나는 그런 영화와 오랜 세월 곡진하게 동행했다. 나는 삶을 살고, 영화로 삶을 다시 한번 산다. 나는 영화를 만져보고 싶다.
- 5쪽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이동진 저 | 위즈덤하우스
지난 20년간 발표해온 평론과 이 책을 위해 새롭게 쓴 평론을 합해 총 208편을 모아 엮었다. 2019년부터 1999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세 가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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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송승언 시인 “내게 시는 생각의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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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던 덤불을 들고/나였던 불 앞에 서서/잠시 무엇이었던 내가/나 아닌 무엇이 될 때까지//나였던 것들에 가까워졌다가/나 아닌 모든 것이 될’(「나 아닌 모든」 일부)

 

송승언 시인이  『철과 오크』 이후 4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  『사랑과 교육』  을 쓰며 생각했던 것은 “죽음 이후”였다. 시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종결이 아니라 연결이었고, “뭔가가 계속되”(「이후에」)는 일이었다. “이후의 죽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죽음의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몇 년 전, 장례식 있었던 무렵쯤」)고 말하는 시인은 “우리가 우리의 조상”(「인챈트」)이며 우리는 “우리보다 오래 남아 우리들의 꿈을 꾸고 있다.”(「모닥불의 꿈」)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송승언 시인은 “죽고 싶을 때 이 시를 읽고 살 독자가 딱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어하는 이에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건네는 것은 미안한 일이더라도. 그것이 시인이 자서에서 “죽고 싶어하는 당신이 살았으면 한다. 미안하게도.”라고 적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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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신이 있다면


「사랑과 교육」이라는 시를 표제시로 결정한 이유가 뭔가요?


저는 제목을 정할 때 주변에 의견을 많이 묻는 편이거든요. 가장 저항 없는 제목이 이거였어요. 몇 가지 다른 안이 있었는데요. 주변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했어요.

 

첫 번째 시집  『철과 오크』  라는 제목과 느낌이 완전히 달라서 재미있었어요. 물론 「사랑과 교육」을 읽어보면 이것이 어떤 사랑과 어떤 교육인지 알게 될 테지만 제목만 봤을 때는 비교적 부드러운 이미지잖아요.


맞아요, 첫 시집의 딱딱한 부분, 이번 시집의 부드러워진 느낌과도 닿아 있죠. 그런데 제게 나쁜 버릇이 있어요. 시 표면에 감싸고 있는 정서는 부드럽게 하면서도 내용은 잔인하거나 무섭게 하려고 많이 하거든요. 「액자소설」도 그렇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이제 모든 일이 시작될 거라고/말해 주었다/다정하게’라는 마지막 연에서 ‘다정하게’는 사랑이 넘치는, 친절한 다정함이 아니잖아요. 뭔가 뒤에서 싸하게 하는 다정함인데요.(웃음) 「사랑과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사랑’과 ‘교육’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기대하는 바가 있을 텐데요. 그건 인간의 관점이니까요. 만약 신이 있다면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은 인간을 다 데려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또 이 세상을 교육하는 방법은 인간이 남긴 것들을 불태워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죠.

 

아무도 없는 거리/모두 사라진 거리를 산책하며 쏟아지는/이상한 빛을 바라본다는 것/빛의 좋음 때문에/더는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휘감기고 있다면//그것은 신의 사랑일 것이다/불타는 이 도시의 꼴이 신의 교육이듯이
(「사랑과 교육」 일부)

 

그래도 이 시의 발단은 인간을 사랑해서였던 건 맞아요. 특히 앞부분 내용은 제 경험이죠. 첫 시집에서는 경험을 거의 안 썼는데요. 이번 시집에는 경험이 많이 있어요. 아침에 여자친구를 어디 데려다 주는 날이었는데요.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하더라고요. 그땐 듣고 흘렸는데 며칠 지나서 그 말이 생각났어요. 그 친구와 산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은 그 친구가 곁에 없는 상태를 실감한 동시에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나보다, 생각했죠.

 

이번 시집에 시인의 경험을 더 많이 담게 된 이유도 궁금하네요.


반발적이었던 것 같아요. 첫 시집과 똑같이 하면 안 되니까요. 일단 제가 지루하고요. 첫 번째 시집이 저라는 것을 완전히 덜어내고, 시 속에 있는 다른 나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면 이번 시집은 실제 나와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모든 것이 다 경험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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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문제


첫 시집 이후 4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시집이에요. 첫 시집과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첫 번째 시집도 주제 같은 것은 제가 다루고 싶은 것이긴 했지만요. 제가 말하고 싶은 내용보다는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을 더 중심에 두고 전개했어요. 두 번째 시집은 기술적이거나 딱딱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조금 물렁물렁하게 만들고, 하고 싶은 얘기를 더 많이 넣었죠.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이 죽는 문제에 많은 질문을 던져왔어요. 글쎄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대여섯 살 때부터 그 문제에 시달렸는데요. 이상하잖아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진다는 것이 어릴 때부터 납득하기 힘들었다고 할까요. 그 문제를 계속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내가 사라진 다음의 문제들 같은 것이죠.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있을 테니까요. 그런 얘기를 한 거예요. 여전히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요.

 

죽음이라는 게 워낙 거대하고 어려운 질문이긴 하지만, 이런 시들을 써낸 지금의 송승언 시인이 도달한 답은 어떤 것인지도 묻고 싶어요.


일단 죽음이라는 것은 교육되지 않는 것이고, 잘 모르겠지만요. 내 생각이나 정신 혹은 영혼 같은 것들이 있다고 믿고, 그것이 소멸되거나 육신을 떠나거나 다른 세상으로 간다거나 하는 생각 안에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죽음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요. 영혼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는 다른 상관물이나 기억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나를 누군가의 기억이라거나 내가 만졌던 물건이라거나 한다면요. 그렇다면 내가 죽은 후에도 남아있을 수 있잖아요. 또 그러고자 하는 집념이 강할수록 오래 어떤 것들이 남을 테고요. 이런 식으로 지금은 나의 죽음 이후에 나의 관여물을 어떻게 남길 수 있는지, 생각이나 마음을 어떻게 그대로 전송시킬 수 있는지에 관해 고민 중인 것 같아요.

 

시집이 흥미로웠던 부분이 바로 그거였어요.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굉장히 많은데 여기서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연결인 거예요. 「몇 년 전, 장례식 있었던 무렵쯤」에도 ‘이후의 죽음을 생각할 게 아니라 죽음의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오죠. 죽음을 얼마나 오래 생각해왔는지 알 수 있어요.


그냥 어릴 때부터 제가 죽는다는 사실도 괴롭지만 이런 생각을 끊어낼 수 없다는 게 너무 괴로웠는데요. 안 할 수는 없었죠. 생각은 나와 상관없이 계속 이어지는 거니까요.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몇 년 전, 장례식이 있었던 무렵쯤」은 말하자면 제 안에서 제가 묻고 답하는 내용이에요. 제가 죽을 때 제가 장례식에 남긴 이야기들을 생각해본 거죠. 물론 죽음은 여전히 불쾌하고 찝찝한 것이고요. 저는 죽음을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저는 그 방편을 택하는 사람이지만 이제 그것 때문에 몸서리치거나 두려워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 지난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이 시를 쓰게 한 데에도 영향을 끼쳤을까요? 시인이 되는 데 죽음에 관한 생각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굳이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쓴 건 아니었어요. 제가 갖고 있는 시에 대한 관점 중 하나는 시가 생각의 피라는 거예요. 여기서 피는 머릿속에 고여 있는 피죠. 고여 있으면 썩잖아요. 병도 들고요. 마찬가지로 생각도 머릿속에 고여 있고, 바깥으로 빼내지 않으면 안에서 썩고, 병 들어버리겠죠. 그래서 어느 정도는 자가치유적인 방법으로, 발버둥으로 시를 전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쁜 생각들을 빼내서 저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대신 이것은 나의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이니까 누가 읽으면 감염될 가능성이 있어서 미안한 일이긴 하죠.(웃음) 제게 시 쓰기나 문학은 일단 제 자신을 회복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거창하게 구원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자기 구원과 비슷한 느낌의 수단이었던 것 같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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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들과 연결된 존재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이 타자와의 연대로까지 나아가는 것처럼 읽히거든요. 「나 아닌 모든」 같은 시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최근 4-5년 사이에 더 많이 하게 된 생각이에요. 점점 더 제 자신이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어릴 때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고, 내가 존재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정확히 내 것이 있고 그것이 나라는 생각은 덜하게 됐어요. 오히려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입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죠. 너무 당연하게 생각이 이렇게 흘러갔어요. 나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생각이나 시각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존재고 나아가 자연이나 내가 관여하고 돌보고, 망치는 많은 것들과 연결된 존재인 거죠.

 

최근 4-5년 사이에 생각을 바꾸도록 한 어떤 계기라도 있었던 걸까요?


사회적인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거죠. 첫 시집을 쓰기 전부터 지속된 것이긴 한데요.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저한테는 되게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직접적으로는 모르는 3인칭의 죽음이 슬픈 거죠. 보통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슬퍼도 거리가 멀어질수록 덜 슬프잖아요. 크게 비통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지지자도 아닌데 가까운 사람이 죽은 것처럼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사회가 그 죽음을 겪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진통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왜 이 죽음은 내 옆의 죽음처럼 가깝게 느껴졌을까 계속 생각했어요. 이후 세월호라든지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구조적인 문제로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 일이 점점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좀 나에게서 물러나게 된 것 같고요. 삶의 문제가 좀 더 같이 사는 것으로 가려면 결국은 바깥을 생각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생각을 하게 되겠죠. 

 

같은 제목의 시가 몇 개 수록되어 있어요. 먼저 「커대버」인데요. 두 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해요. 같은 시기에 쓴 시인가요?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썼어요. 이명박 정권 때 독립문 근처에서 모여서 시위를 하던 시기의 정황을 담고 있는데요. 그때 자리에 앉아서 오랜 시간 있었거든요. 우연히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이 인상에 오랫동안 남더라고요.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들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거기서 처음 만난 것이고, 이후로 다시는 못 만났는데 그 사람을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커대버」는 그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 하나는 운문으로, 하나는 산문으로 쓴 거예요. 그렇게 쓸 때 끝은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서 쓴 시죠. 그래서 운문으로 쓴 「커대버」는 규칙도 있어요. 과거형과 현재형이 교차하고요. 산문은 그냥 흘러가듯 썼어요. 같은 내용이고, 핵심 표현은 비슷하지만 완성된 시는 읽는 사람에게 다른 감각으로 그려지게 되는 거죠.

 

「인챈트」도 두 편이에요.


시집의 구성적인 부분 때문에 그렇게 했어요. 시의 제목을 포함해서 시집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을 다 음악적인 리듬으로 생각하는데요. 그런 이유였죠. 사실 발표할 때는 다른 제목의 시였는데 시집을 묶으면서 제목을 바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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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되지 않는 책


제목부터 시의 구성까지, 시집을 한 권 묶는 일이 정말 많은 고민을 담고 있는 거죠.


그런 셈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시인선 형태로 시집을 묶는 건 안 하려고요. 시만 묶어서 시집을 낸다는 게 갑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번 시집으로 시로 하고 싶었던 것을 어느 정도 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내 관념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시만한 것이 없겠지만 이야기하고, 바깥에 전하는 면에서는 많이 한계가 있는 장르란 생각이 들거든요. 또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면을 시로 다 담아낼 수는 없으니까요.

 

의외의 얘기인데요. 그렇다면 어떤 형태를 생각하고 계세요?


다음 시집이라고 볼 수 있는 형태의 어떤 것을 낼 때는 시집으로는 안 낼 것 같아요. 시도 들어가겠지만 시의 비중이 엄청 많지는 않을 거고요. 시가 중간 중간에 배치되면서 생각도 적고, 픽션도 적는 형태일 텐데요. 시집이라거나 소설집, 에세이, 하는 식으로 분류되지 않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분야가 아니라 그냥 책 자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이 안 해봤던 형식 실험을 할 수도 있을 거고요. 어디에나 시적인 부분은 담을 수 있는 거니까요.

 

그것이 시의 영역을 확장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시의 영역을 벗어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시의 확장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저는 시는 그냥 시인 것 같아요. 시 장르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고, 한계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시적이라는 것은 글자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만화를 보면서도, 그림을 보면서도 시적인 것을 다 느끼니까요. 저도 시 자체보다는 그런 것들에 좀 더 끌리고요. 시적인 것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시니까 그걸 해왔는데요. 그 외의 것에도 더 관심이 생겼고, 살면서 말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이제는 말에 좀 더 무게를 두겠다는 것이죠.

 

앞서 “바깥을 생각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말씀하셨는데 그것과 같은 맥락인 건가요?


맞아요, 말은 어쨌든 전해야 하는 거니까요. 전해지기 위해서, 좀 더 선명하게 닿기 위해서는 시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시를 덜 읽기도 하고요. 읽는 걸 힘들어하기도 하고, 혹은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르기도 하잖아요. 물론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른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가령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면 가끔은 시라는 장르로 그것을 에두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랑과 교육송승언 저 | 민음사
시인은 “인간의 운명으로는 감당치 못”하는 기계장치의 세계 혹은 나라는 주체가 제거된 세계에서의 없는 것들의 정체를 그려 낸다. 이 “창백한 가능성의 공터”(황인찬)에서 없음은 반복되고, 이 반복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당신의 (없는) 영혼에게 나직이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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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선영 “청소년 소설을 쓴다는 건, 내 10대를 기억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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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상점』  출간 이후, 강연회에서 만난 독자들은 이렇게 물었다. “시간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나요?”, “온조는 어떻게 되나요?”. 흘려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질문을 떠올리며 답을 찾고 있었다는 김선영 작가. 머릿속에 떠다니던 생각들이 뚜렷해질 무렵, 그는 시간을 파는 상점 속 아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시간을 파는 상점 2』  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김선영 작가의 응답이다.

 

주인공 온조가 홀로 운영했던 ‘시간을 파는 상점’은  『시간을 파는 상점 2』  에서 시간을 사고팔 수 있는 ‘시간 공유 플랫폼’으로 진화한다. 전편에서 양면성을 가진 시간의 개념을 이야기한 김선영 작가는 속편에서 시간을 파는 상점을 통해 학교 지킴이 아저씨의 복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나를 위한 시간은 곧 너를 위한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시간을 사고파는 범위가 넓어지는 거라고 보면 돼. 누구는 시간을 사기도 누구는 시간을 팔기도. 우린 그걸 조율해 주면 되는 거야. 시간 중개업자. 타임 브로커, 타임 세일러 등등 부르는 거야 뭐, 정하면 되는 거고. 일테면 그런 개념이라는 거지.” 온조는 소름이 돋았다. 어깨를 문지르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을 이었다. “시간 공유 제도 개념인 거네.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또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내놓는 거. 이렇게 되면 말 그대로 시간이 매개가 되어 사고파는 것이 되는 거잖아.”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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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려 듣지 않았나 봐요

 

8년 만에 나온 속편입니다. 처음에는 계획이 없으셨다고요.


강연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  『시간을 파는 상점 2』  를 쓸 생각이 없냐”라는 거였어요. 1편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가 많았죠. 그럴 때마다 2권을 생각하고 쓴 게 아니라고 답하면서 넘겼는데 허투루 들은 게 아니었나 봐요. 1권 이후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더라고요. 작년 즈음부터는 이 정도로 생각이 익었다면 아이들을 불러내서 다시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 “8년이 지났는데 아이들은 그대로”라는 리뷰를 보고 내가 1권 속에 오래 머물러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시간을 사고파는 플랫폼으로 운영 방식이 달라졌어요. 이유가 있나요?


“시간을 어떻게 팔아요?”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거든요. 이것도 그냥 흘리지 않았나 봐요. ‘시간을 사고팔 수 있다는 걸 한 번 증명해봐?’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2권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1권에서 시간의 개념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2권에서 또 그럴 수는 없잖아요. 식상하니까요. 다른 해석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죠. 1권에서 아이들이 시간의 개념을 공부했으니까 2권에서는 아이들이 시간을 사고파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쓰고 싶었어요. 어떤 형식으로 보여줘야 할지 많이 고민했죠.

 

해고된 지킴이 아저씨의 복직 시위를 한 고양국제고 학생들의 사례가 모티프가 됐어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1권을 쓰고 나서 “요즘 고등학생의 현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온조나 이현 같은 시각을 가진 고등학생이 어디 있냐는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요. 아이들을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신문에서 고양국제고 학생들의 기사를 보고 ‘그래 이거다’ 싶었어요. “봐라, 이렇게 훌륭한 아이들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죠. 어른들은 계속 차별을 양산하는데 아이들은 이의를 제기하잖아요. 훈민정음해례본 반환 서명운동을 벌인 고등학생들 이야기도 아시죠? 이런 훌륭한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도 내가 할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시간을 파는 상점을 꾸리는 아이들이 이렇게 훌륭한 아이들일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동화 같은 느낌도 있어요.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못된 애들도 있죠. 그런데 인간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 어렵잖아요.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원인이 있기 마련이고요. 대체로 작가들은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그 상황이나 인물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하기보다 저 사람에게 어떤 곡절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 같아요. 그게   작가적 호기심이고 상상력 아닐까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어떤 인물을 특별히 선하거나 악하게 그리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게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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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 속 비범함에 대해

 

1권에서 끝내 강토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잖아요. 일종의 장치였나요?


강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현대의 익명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신원을 밝히지 않아도 서로의 삶에 개입할 수 있어요. 한편으로는 굉장히 투명한 사회이기도 하죠. SNS, 휴대폰, 카드 명세서만 보면 사생활을 다 알 수 있으니까요. 현대의 익명성이 가지는 이런 특징이 흥미로웠어요. 익명이라는 게 때로는 위험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설렘의 조건이 되잖아요.

 

2권에서 강토의 정체가 밝혀져서 후련했어요.


1권에서 나온 인물이 2권에도 나오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원래는 강토를 계속 익명의 존재로 설정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독자들에게 욕먹을 것 같더라고요. (웃음) ‘강토라는 인물이 실재하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죠.

 

강토와 함께 새로운 인물이 아주 흐릿하게 등장하면서 온조가 실망하잖아요. 저도 아쉽더라고요. 


글쎄요. 과연 온조가 생각하는 게 맞을까요? (웃음) 온조의 오해일 수도 있죠. 알 수 없는 거예요.

 

온조의 모델이 따님이셨다고요.


딸이 고3이었을 때 1권을 썼어요. 쓰기 전에 딸한테 부모님은 이혼하고, 할머니랑 둘이 사는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생각 중이라고 했더니 “그런 이야기 좀 쓰지 말라”면서 “작가들은 왜 그렇게 쉬운 선택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조금 특별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더니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이야기할 수는 없냐”고 하는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우리는 모두 고유한 존재잖아요. 저도 어릴 때 누가 저보고 평범하다고 하면 싫었는데 요즘 아이들도 그럴 것 같아요.

 

따님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으신 거네요.


아이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혜지도 아들 덕분에 생긴 인물이에요. 아들한테 “반에서 특별한 애 있어?”라고 물었더니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사교성도 없는 애가 있는데 메탈리카를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시간을 파는 상점에 친구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혜지의 이야기를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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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순간이 과정이다

 

애착 가는 장면이 있나요?


이현이 숲속의 비단과 만나는 장면이요. 많은 분이 숲속의 비단을 통해 제가 안락사 문제를 이야기하는 줄 아시더라고요. 그건 아니에요. 단지 ‘어느 순간 우리가 이렇게 멈춰 버릴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지금 내가 맞이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중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었죠.

 

숲속의 비단이 꼽은 가장 빛나던 시절도 고등학교 때였어요.


친정어머니와의 일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친정어머니가 올 6월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많이 대화하고 싶어서 질문을 자주 했거든요. “어디서 살 때 가장 행복했냐”고 물었더니 10대 때 살았던 공간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의외였어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무수히 많은 공간을 거치잖아요. 그런데도 10대 때 살았던 공간을 떠올리시는 걸 보면서 ‘대체 인간에게 10대는 뭘까’하고 생각했죠.

 

정말 10대는 인간에게 뭘까요? 인생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영향력이 너무 크잖아요.


사회적 잣대와 상관없이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때가 10대인 것 같아요. 스무 살부터는 사회적 잣대가 인생에 들어오잖아요. 그렇지만 10대는 내 존재가 벅차고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시기라 가정과 사회에서 역할을 많이 주지 않아요. 대신 온전히 자신으로 꽉 차는 시기죠. 그래서 인간에게 더 의미 있는 게 아닐까요? 숲속의 비단 아저씨도 10대인 이현을 보면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을 것 같아요.

 

작가님과 닮은 캐릭터를 꼽는다면요?


온조 엄마나 온조에 가까워요. 평범했거든요. 나서는 거 안 좋아하고 어디 가도 항상 구석에 앉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나서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나는 너와 같지 않아’ 또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아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용히 뭔가를 하는 아이였죠. ‘어른들은 왜 나를 존중해 주지 않지?’, ‘왜 쉽게 나를 판단하지?’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요. 큰 불만이었어요. 나한테는 당신 이상의 생각이 있고,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올 거라고 여겼죠. 요즘 아이들도 그럴 거예요.
 
그런 생각들이 청소년 소설 작가가 되게 한 걸까요?


그렇겠죠.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해요. “작가님은 청소년도 아니고, 이제 청소년을 키우는 엄마도 아닌데 어떻게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쓰냐”고요. “얘들아 나도 청소년이었어”, “나는 그때의 나를 잊지 않아”라고 답했더니 아이들이 손뼉을 치더라고요. 이런 말을 못 들어 본 거예요. 누구나 청소년이었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청소년 시절을 잊어버리거나 청소년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굴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하고 부딪히는 거죠.

 

어른이 되는 과정으로만 청소년 시기를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인생에서 과정 아닌 시기가 있나요? 노인으로 사는 시간도 과정이에요. 완성도 미완성도 없죠. 10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이때의 시간을 함부로 쓰는 청소년들이 많거든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인데 그렇게 여기지 않죠. 이런 마음을 먹는 순간 함부로 대하게 되고요. 다른 인식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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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상을 더 사랑하게 하는 것

 

꾸준히 청소년들을 만나셨잖아요. 8년 전과 지금 다른 게 있을까요?


일단 언어가 달라요. 신조어가 출현하고 사라지는 속도가 정말 빠르고요. 현장에서 느끼는 선생님의 정서가 가장 다른데요. 많은 선생님이 ‘아이들이 무섭다’라고 하세요.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한 반에 학생이 67명이었거든요? 한 명 한 명의 존재감이 미미했죠. 요즘은 한 반에 20명 정도인데 선생님들은 200명 가르치는 것 같대요. 요즘 아이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고 불공정한 일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하니까 67명 중 한 명이었던 선생님은 200명 가르치는 것처럼 힘든 거죠.

 

아이들이 목소리를 낸다는 건 좋은 현상 아닌가요?


좋은 일이죠. 그런데 선생님 입장에서는 어렵죠. 선생님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거든요. 실수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부딪히는 게 당연해요. 아이들은 변했는데 어른들은 여전히 “나 때는 말이야”로 대화를 시작하니까요. 아이와 부모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도 이런 태도 때문이고요. 아이들의 눈높이로 봐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새로운 세대가 출몰했으니 공부해야 해요. 아이들이 무얼 좋아하고 분노하는지 알아야죠.

 

청소년 시기에 읽은 인상적인 책이 있다면요?


일단 제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단행본이 많지 않았어요. 청소년 소설은 전무하다시피 했죠.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세계 문학을 많이 읽었고  『제인 에어』  를 특히 좋아했어요. 제 멘토였죠. 당차고 멋진 태도가 좋았거든요. 

 

살아내는 것과 살아가는 것의 차이로 호기심을 말씀하셨어요. 호기심이 강한 편인가요?


굉장히 강해요. 지역, 공간, 사람, 자연에도 관심이 많고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하고요. 가끔 ‘내가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세상을 이렇게 사랑했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 보고 느끼는 게 모두 저의 자양분이 되어서 글을 쓰니까 더 관심이 커지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주제들을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요즘 화두는 뭔가요?


관계를 많이 생각해요. 혈연으로 이뤄지지 않은 관계, 제도로 이뤄진 관계는 어떻게 잘 만들어 가야 하나 하고요. 딸이 내년에 결혼하거든요. 새로운 친구를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어요. ‘사랑만이 남는다’라는 문장이 맴돌더라고요. 결국에는 사랑만 남겠다는 생각이요.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지만, 사랑은 가져갈 수 있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뻔한 얘기죠. 가장 중요하면서도 간과하기 쉬운 주제이기도 하고요. 


 

 

시간을 파는 상점 2김선영 저 | 자음과모음
멤버들은 시간을 매개로 움직이며 협업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시간을 사고파는 것일까, 끝없이 질문하며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유용하게 쓰고, 또 남은 시간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기꺼이 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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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류랑도 “직장은 시장, 팀장은 고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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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250개의 문답을 담았다. 그래서 책의 제목은  『일문일답』  . 이름에 걸맞게 ‘하나의 질문, 하나의 답변’으로 구성했다. 성과창출 전문가 류랑도 저자가 23년 동안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듣고 답한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다. 일, 성과, 전략, 성과코칭, 권한위임, 역량, 평가 등 10개의 주제에 따라 명쾌한 해답을 들려준다. 부제가 말해주듯 ‘일 잘하는 방법에 관해 직장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250문 250답’을 보여주는 것.

 

‘주 52시간 시대’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업무 생산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지금, 류량도 저자는 “‘상사 중심의 관리의 시대’가 끝나고 ‘실무자 중심의 자율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핵심도구로 ‘역할과 책임 중심의 자율적인 성과관리 방식’을 꼽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원칙이  『일문일답』   안에 담겨있다.

 

류랑도 저자는 유수의 기업과 기관, 대학교 등에서 성과코칭 강연을 이어가면서 ‘직장인들의 일 멘토’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  『제대로 시켜라』  , 『성과중심으로 일하는 방식』  ,  『딥 이노베이션』  등 30여 권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했고 현재 ㈜성과코칭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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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도 나의 고객입니다


책에 실린 첫 번째 질문이 “일을 잘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입니다. 일을 많이 안다는 것, 많이 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이겠죠?


일을 잘한다는 것과 일을 많이 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 그 차이가 굉장히 큰 것 같아요. 일을 잘 안다는 것은 일의 내용, 규정, 스킬을 아는 것이죠. 일을 잘한다는 것은 수요자, 즉 일을 시킨 사람이 원하는 결과물을 잘 만들어내는 거예요. 일을 잘 알지 못해서 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잘 앎에도 불구하고 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스타일로 치부하죠. ‘이 일은 내가 잘 아는데, 저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저렇게 하지?’라고 하는 거예요. 그건 실무자가 자신에게 일을 시킨 사람을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죠. 고객이 나보다 잘 모른다고 생각되더라도 내 일의 가치는 고객이 판단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고객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실적’이라면, 고객을 얼마나 만족시켰느냐를 나타내는 건 ‘성과’라고 하셨죠?


그렇죠. ‘성과’는 고객의 니즈(needs)와 원츠(wants)를 사전에 합의하고, 그것을 통해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사전에 정의하고 합의를 이루는 거죠. 흔히 ‘과정이 어떻게 됐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주의’인 것이고 ‘성과주의’와는 다르죠. ‘성과’에서는 항상 ‘수요자’, ‘사전 합의’라는 개념이 중요해요.

 

‘일 잘하는 팀원’과 ‘일 잘하는 팀장’의 의미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일 잘하는 팀장이기는 하지만, 팀원이 하는 일을 팀장이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팀원은, 일을 잘 알지 못하면 잘 할 수도 없어요. 일을 잘 아는 것은 ‘능력’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일을 잘하는 것은 ‘역량’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팀원들은 ‘능력’도 있어야 되고 ‘역량’도 있어야 돼요. 일 잘하는 사람은 일을 하기 전에 수요자가 원하는 기준이 뭔지를 생각하고 기획해요.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고민해서 계획을 세우고요. 일이 끝나고 나면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평가하고, 그 일을 시킨 사람에게 부족한 점들을 리포트하고 피드백 해줘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잘하는 사람이 ‘역량’ 있는 사람이죠.

 

팀장도 여러 유형이 있죠. 하나부터 열까지 보고 받으려는 팀장이 있는가 하면 ‘시시콜콜하게 보고할 필요 없고, 결과 나오면 가지고 와’라고 말하는 팀장도 있어요.


대개 팀장의 유형을 보면 ‘상사형 팀장’이 있고 ‘리더형 팀장’이 있어요. ‘상사형 팀장’은 자신의 과거 경험과 지식, 책이나 유튜브 등 어디에서 들은 풍월을 바탕으로 해서 의사 결정을 하고 가치 판단을 해요. 항상 자기 기준으로 상대방의 일을 바라보죠. ‘리더형 팀장’은 경험과 지식도 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현장, 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권한위임을 하고 코칭을 하는 게 주특기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주 보고를 받으려는 팀장도 있고, 일이 다 끝나면 보고하라고 하는 팀장도 있는데요. 전자는 지시?통제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방임하는 사람이에요. 둘 다 옳은 유형은 아니에요. 그걸 뛰어넘는 게 권한위임인데, 권한위임에는 델리게이션(Delegation)과 임파워먼트(Empowerment)가 있어요. 임파워먼트를 역할위임, 델리게이션을 책임위임이라고 하는데요. ‘리더형 팀장’은 주로 이 두 가지를 잘해요. 그런데 ‘상사형 팀장’은 지시ㆍ통제하거나 아예 방임하는 걸 권한위임 한다고 생각해요.

 

프롤로그에서 말씀하시길,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팀장이나 임원이 간섭하고 관리할 시간 자체가 없어졌다고 하셨어요.


엄밀히 말하면 ‘주 40시간’이라고 할 수 있죠.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 이상 일을 시키려고 하면 12시간 이내에서 시켜야 되고 보상을 해줘야 되잖아요. 한 마디로 ‘관리의 시대’가 가고 ‘자율의 시대’가 온 거죠. 지금까지 기업에서 성과를 내는 방법은 다단계 관리자를 두어서 조직 관리를 하고 그걸 통해서 성과를 내는, 소위 사람 중심 상사 중심의 관리 방법이 대세였어요. 이제는 그렇게 관리를 할 시간 자체가 없어요. 실행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완결적으로 조직에서 원하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가야 되는 거죠. 그러려면 두 가지가 변해야 해요. 하나는, 팀장이나 임원 같은 관리자들이 ‘상사형 팀장’이 되어서는 안 되고 ‘리더형 팀장’, ‘리더형 인물’로 바뀌어야 된다는 거예요. 권한위임과 성과 코칭을 잘 해줘야 되고요. 또 하나는, 실무 당사자도 변해야 돼요. 지금까지는 언제까지 일을 마치라고 지시를 받고 일 중심으로 일했는데, 이제는 본인 스스로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돼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지 1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변화는 어떻게 보시나요?


기업들이 제도적인 장치들은 많이 마련했어요. 예를 들면 오후 6시에 무조건 일을 끝내야 한다든지, 집중 근무제를 시행한다든지, 원페이지 보고서를 내야 된다든지, 회의는 30분을 넘기지 않는다든지... 그런데 이건 다 형식적인 것이지, 본질은 건드리지 못했어요. 본질은, 줄어든 근무시간을 감안하면서도 올해 목표를 달성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져야 해요. 상사 중심에서 실무자 중심으로, 과제 중심에서 목표 중심으로, 완전히 달라져야 하죠. 이걸 훈련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지금은 훈련은 안 됐는데 제도부터 도입이 됐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혼란스러운 거죠. 당장은 ‘주 52시간 시대’가 기업이나 개인에게 어려움을 주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기업이나 기관들에서 일하는 방법을 바꿔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굉장히 좋은 배수의 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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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은 ‘시장’이다


팀장과의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팀장의 말이 자꾸 바뀐다거나, 지시사항을 두루뭉술하게 말해주는 건데요. 지시사항을 문서화해서 주고받으라고 조언하셨죠?


그렇죠.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정기적으로는 일일 업무나 주간 업무에 대해서 해야 될 일, 결과물에 대해 매주 초에 팀장과 합의하는 거예요. 주말에는 서로 합의한 결과물을 어떻게 완성했는지 조금 더 근거 있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고요. 예정되어 있지 않은데 수시로 시키는 업무들도 있잖아요. 스팟 잡, 부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업무들인데요. 그런 경우는 말로만 알겠다고 할 게 아니라 ‘스케치 페이퍼’ 혹은 ‘R&R 합의서(역할과 책임 합의서)’를 써서 팀장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원하는 결과물, 실행 방법, 지원 요청 사항을 적어서 보여주고 사전 합의를 하는 거죠. 사실 이게 델리게이션(책임위임)을 위한 사전장치거든요. 어떤 업무에 대해서 책임을 권한위임 받아서 실행방법에 대한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하려면 ‘스케치 페이퍼’나 ‘R&R 합의서’ 같은 걸 작성에서 사전에 합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스킬이에요.

 

그런 작업이 실제로 이뤄지는 경우는 적을 것 같아요. 이유가 뭘까요?


대부분 잘 안 하죠. 왜냐하면 ‘내가 이미 잘 알아들었는데, 바보도 아니고 뭐 하러 또 물어봐?’, ‘왜 사전에 보고를 해? 내가 종이야?’ 같은 생각들을 하는 거예요. 많은 직장인들이 팀장과 팀원의 관계를 상하 관계, 계층적 관계로 생각하고 ‘거래 관계’로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직장의 본질을 ‘시장’이라고 봐요. 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거래되는 곳이잖아요. 직장에서는 시킨 일과 결과물이 거래가 돼요. 직장에서는 급여를 주고, 고용된 사람은 결과물을 내야 되죠. 성과와 급여가 맞교환되는 거예요. 이 거래 관계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1년에 한 번씩 평가하는 작업이 ‘인사평가’예요. 이 관계를 계속 지속할 것인지 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승진심사’고요.

 

평가와 관련해서 “절대평가 방식을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쓰셨어요.


과거처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꿔야죠. 그 사람의 역할과 책임을 기준으로 얼마나 잘했는지를 평가해야 된다는 거예요. ‘영업 분야에서 일하는 직원이 총 28명인데, 그 중에서 네가 두 번째야’ 이거는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서열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역할과 책임을 했는지 평가해주는 게 중요한 거예요. 이제는 평가도 집단식으로 하면 안 돼요. 개인 중심으로 평가하고,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비교해서 얼마나 그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평가하는 방식으로 가야죠.

 

팀장이 자신에 대해 평가했을 때, 그 결과에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아요(웃음).


많이 없죠. 가장 큰 이유는, 팀장이 평가하고자 하는 기준을 사전에 평가대상자에게 잘 알려주지 않아서 그래요. 두 번째 이유는 제도적인 모순인데요. 절대평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등급을 매기는 것은 상대반영을 해요. 각각 자기 부서에서는 정말 일 잘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같이 모여서 경쟁을 하니까 상대적인 서열이 생기는 거예요.

 

직장 내 관계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우리는 사람과 관계 중심으로 조직을 관리했어요.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역할과 책임 중심으로 관리해야죠. ‘밀레니얼 세대와 일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보다 나이 많은 팀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우리가 친목회 하러 회사에 온 거 아니잖아요. 관계를 맺으러 온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핵심은 역할과 책임이에요. 그 사람이 나이가 많든 적든, 직급이 높든 낮든, 나와 관계가 좋든 아니든, 그 사람이 해야 될 일을 정확하게 주면 되는 거예요. 호칭이나 대화의 기법이 예의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죠. 직장 내에서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자꾸 관계나 사람 중심으로 모색하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후배 코칭,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도 실려 있는데요. 후배와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이것이 아닐까 싶어요. 일일이 가르쳐주자니 내 업무시간이 부족해지고, ‘그냥 내가 할게’라고 말하자니 후배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 같은 거죠.


기본적으로 후임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니에요. 후임과 팀장의 문제예요. 내가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나와 후임은 동등한 관계예요. 후임은 팀장의 매니지먼트 대상이지, 나의 매니지먼트 대상이 아닌 거죠. 만약에 팀장이 ‘네가 멘토 역할을 하면서 후임이 일하는 것을 봐줘라’라고 말할 경우, 일의 지시를 팀장이 하는지 내가 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요. 내가 일을 지시할 수 있다면,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후임 스스로 고민하도록 코칭하면 돼요.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우선 후임의 능력을 진단해봐야 하고요. 팀장이나 파트장 같은 중간 관리자로부터 위임을 받아서 후배에게 일을 시키면서 ‘이런 것까지 내가 설명해줘야 되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일을 시키는 방법을 잘못 훈련받은 거예요. 그런 식으로 일을 시키면 안 되죠. 앞서 이야기한 ‘스케치 페이퍼’나 ‘R&R 합의서’ 같은 걸 당사자한테 주고 체계적으로 일을 시켜야죠. 중간 관리자도 마찬가지예요. 밑도 끝도 없이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 사람의 역할과 책임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해요. 책에서도 계속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인사평가 결과가 발표되는 시기입니다. 결과에 만족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반응하는 게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까요?


일단은 평가결과를 받아들었을 때, 인정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 다음에 팀장하게 간단하게 ‘제가 다음번에도 동일한 결과를 받지 않으려면 개선해야 될 게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나중에 지금의 팀장이 다음 팀장한테 인수인계를 할 때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텐데, 그때 ‘저 친구는 발전적이야, 결과에 대해서 수용해,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야’라고 말하면 나한테 좋은 거잖아요.

 


 

 

일문일답류랑도 저 | 트로이목마
철저하게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때로는 냉철하고,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단호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성과창출을 위해 제대로 일하는 방식’은 누구나 훈련하고 반복함으로써 실천 가능한 솔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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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병률 “혼자인 사람에게 가장 맞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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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이관형

 

 

시인 이병률이 오랜만에 산문집을 엮었다.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의 여행 3부작( 『끌림』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내 옆에 있는 사람』 ) 이후 5년 만이다. 시인, 여행작가, 출판인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들어온 시간들 속에서 ‘혼자’ 마주했던 풍경을 그러모았다. “왜 쓰냐고 물으시면 혼자니까 쓴다고 대답하리라”며, “우리에겐 필요한 순간에 길을 바꿀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이병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는 시인의 말에 결국은 ‘혼자’인 우리도 ‘혼자’라서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닐까, 짐짓 추측해본다. 이병률은  『혼자가 혼자에게』  는 “혼자인 사람에게 가장 맞는 책”이라고 말했다. 명사이면서 부사인 ‘혼자’. 이 단어가 품고 있는 여러 함의를 생각하게 되는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  를 두고 이병률 시인과 서면으로 만났다.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어서기도 하는 반복만이 당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혼자가 혼자에게』 ,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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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나은, 괜찮은 형태의 나 자신

 

요즘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나요? 올해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여행은 계속되고 있어요. 이젠 좀 덜 다니지 않을까 싶지만 여전한 건 그래도 계속하고 싶다는 고집 같은 게 있어요. 다른 공기가 주는 자극을 따라다니다 보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차곡차곡 채워지는 게 있는 것 같아서요. 그게 뭔지는 구체적으로 정확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살고 있으니 이젠 그걸 즐긴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올해 절반은 느린 속도이긴 했지만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  를 준비하느라 썼네요.

 

‘여행 3부작 이후 5년 만에 신작 산문집을 내셨어요. 이번 테마는 ‘여행’ 대신 ‘혼자’인데요. 지난 5년은 작가님에게 어떤 시간이었나요?
 
이렇다 할 뭔가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10년 전에도 또 5년 전에도 비슷한 패턴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글 쓰고 일하고 사람 만나는 일. 그러다 혼자 여행하는 일 등등이 저를 지금까지 데리고 왔겠지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예전에는 싫었는데 지금은 그 말이 참 좋습니다. 
 
『혼자가 혼자에게』  라는 제목과 빈 의자가 그려진 표지가 인상 깊었어요. 여기서 대상이 되는 ‘혼자’는 혼자인 나 자신인가요, 아니면 타인을 말하는 것인가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이에요. 우선은 내가 나에게 중얼거리는 무엇, 내가 나를 가꾸려는 무엇, 내가 나를 데리고 사는 것 같은 무엇의 의미가 제목에 포함돼 있어요. 좀더 들어가보면 제목 앞에 있는 혼자는 나 자신이고 두번째 나오는 혼자는 조금 나은, 괜찮은 형태의 나 자신이기도 해요. 당장 자기 자신한테 점수를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혼자를 대면하게 된다면 조금 나아지고 괜찮아진 형태의 자신을 만나지 않을까 싶은 ‘성숙한 혼자’의 의미가 들어 있어요. 둘 다 혼자로서의 자기 자신은 맞지만, 상태로 볼 때는 조금은 다른, 달라진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 시집  『바다는 잘 있습니다』  도 표지가 파란색이었죠? 이번 산문집의 표지도 비슷합니다. 저자로서 달 출판사 대표로서, 이번 산문집의 디자인은 어디에 초점을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청색 계열을 좋아하나 봅니다. 셔츠가 거의 청색 계열이라서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도 있어서 그때 알았어요. 아, 나는 청색 계열의 셔츠만 사는구나, 하고요. 이번 책 『혼자가 혼자에게』는 최정윤 북디자이너 작품이에요. 옆에서 저를 많이 읽고 이해하려는 성의 같은 것들이 표지나 본문 모두에 드러나 있는데, 작업하면서 몇 가지 이상의 많은 디자인 제안들을 해주었어요. 제가 한 일이라곤 방향을 선명하게 잡아나가는 역할을 하는 정도였지요. 혼자라는 타이틀과 어울리는 사물로는 뭐가 좋을까 하다가 의자가 떠올랐고 의자의 이미지를 배치해보자고 했어요. 의자 위에 제 옷이나 제가 가끔 쓰는 앞치마 같은 게 쓸쓸하게 걸쳐 있어도 좋겠다고 했고요. 금방 손볼 데가 없는 표지가 탄생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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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이병률


 

앞치마 이야기를 하셨는데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허기를 달래주는 계란말이, 모여 앉아 빚는 만두, 함께 나눠 먹는 도시락 등 온기가 느껴지는데요. 작가님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인가요?
 
잘 먹는 사람 앞에서는 제가 축복받는다는 기분이 들어요. 왠지 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 넘겨지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허기를 가끔은 즐기기도 하지만 허기를 평균적인 기준치보다 못 참는 사람이어서이기도 할 거예요. 여행 가면 혼자 즐기면서 먹을 일이 덜 해서이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랑 식사 시간을 즐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고 그에 대해 민감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음식을 매개로 하는 사람들과의 자리를 그리워하는 내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런 결핍의 요소들이 저에게 직접 요리를 하게도 하지요. 일단 몇 미터 거리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이 배고플 것 같으면 제 기분이 안 좋아져요. 
 
“우리가 한때 같이 지낸 사람들과의 좋았던 시절은 그저 여행뽕이거나 사람뽕에 취한 상태에 불과한 건 아니었나”(206쪽)하고 쓰셨어요. 여행과 사람을 사랑하시는 작가님의 모습을 알기에 조금 의외인데요. (웃음) 여행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 건가요?
 
모든 것은 시간을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옅어지기 마련인 것처럼 웬만한 것들은 지나고 보면 내가 좀 과하게 매달렸던 대상과 시간이 되어버리지 않나요? 모든 경험들은 거의 그렇게 되겠지요. 하지만 지금 제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막강한 여행중에 있다면 그걸 뽕 상태라고 인지하지 않고 당장은 무조건 빠져들 것 같아요. 그 둘의 시간은, 분명 우리를 견인해주는 힘이 있고 저는 당장 그 힘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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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이관형

 

 

조용해지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들고 있어요

 

시인님은 사람을 좋아하시죠. 나이가 들면,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떤가요? 예전엔 이런 사람이 좋았지만, 요즘엔 이런 사람과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같은 경우가 있을까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생활 앞에서 엄살이 심한 사람은 안 친하고 싶어요. 생활을 어떤 경우든 맛있게 발라먹는 사람이 좋지요.
 
시인님을 말할 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죠.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인기척”(239쪽)이라는 구절이 좋다고 하는 독자분들이 많았어요. 시인님은 인기척을 잘 내는 사람인가요?
 
잘 내는 편, 아닌가요? (웃음) 많이 냈으니 이제는 좀 저를 거두고 참으려고도 해요.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에는 조용해지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들고 있으니까. 고요하다는 말은, 쉽지 않은 말이지만 고요한 일상이나 시간은 분명히 나한테 잘 해주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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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이병률


 
‘시간이 잘 해준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시간을 함부로 쓰지 않게 되는 것, 그러면서 시간이 단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입체적으로 보이면서 그 시간 안에 내가 할일들을 채워나가게 되는 것, 그런 거요.

 

말씀대로, 16쪽에 나오는 이야기(“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이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시도 산문도 혼자 있을 때만 쓸 수 있는 것이잖아요. 시인님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시간에 딸려 가지 않고 내가 주도해야 좋은데,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시간 안에 줄 세워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걸 바라보거나 좋아하는 걸로 시간을 쓸 때 우린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잖아요. 그럴 수 있을 때 그 시간이 아깝지 않고 어떤 의미를 갖게 되잖아요. 시간을 흘러가지 않아요. 시간은 사용되지요. 영화를 볼 때 단지 시간을 때우려고 보는 것과 뭔가 강렬함을 느끼려고 보는 것의 차이일 수도 있고, 여행을 갈 때가 되었으니 가보자 해서 가는 것과 갈급한 상태에서 뭔가를 채우고 싶다는 상태에서 떠나는 것, 그 둘의 차이로 굵직하게나마 설명할 수 있을 듯하네요.
 
책에서 ‘자신을 지키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7가지를 말하셨어요.(273쪽) 실제로 필요한 건 “오만 가지도 넘는다”고 하셨는데요. 현재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가을을 즐기는 것이요. 가을은 ‘자유’라는 말이랑 가장 많이 닮은 계절이잖아요. 많이 걷고 많이 생각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마구 그리워하면서 지내는 거죠. 가끔은 혼자 잎들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서 중얼거리는, 지나가는 ‘혼자’도 구경하면서요. 
 
요즘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후배들을 특별히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아서요. 책에도 후배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고요.
 
후배들만 좋아해요, 저는. (웃음) 그만큼 그들의 시간을 살았을 때 저는 분명 부족했거든요. 채우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킬 수 있는 정도의 만남이죠. 주로 하는 말들은 “이십대에는 빚을 많이 지고 나중에 갚아라. 그 빚은 마흔 전에는 다 갚게 된다” 같은 것들입니다. 
 
지금 출판계를 보면, 여행산문집이 예전만큼은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유행이 지난 걸까요? 타인의 여행기를 많이 보지 않는 시대가 된 걸까요?

 

이미 독자들이 지친 듯합니다. 남의 여행 이야기를 읽는 시대가 아니라 직접 여행을 하는 시대로 접어든 지 꽤 되었으니까요. 남의 여행 이야기에서 뭔가를 얻기보다 직접 그 바람을 그 냄새를 느끼고 싶은 거지요. 그런 여행쯤은 이제 나도 할 수 있어, 하는 일종의 선언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가끔 예전에 쓴 책을 보시나요? 아, 이 문장은 안 썼어야 해!라고 후회하는 것도 혹시 있나요?
 
저는 안 봅니다. 많은 작가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펴낸 책을 읽기보다는 그 시간이 있다면 앞으로 쓸 뭔가를 생각하느라 쓰겠지요. 물론 이렇게 저렇게 부분적으로 제가 쓴 글을 대하게 될 때가 있는데 역시나 후회스러운, 뭐 저런 글을 썼나 싶은 일이 있지요. 왜 없겠습니까? 누굴 그토록 사랑해도 사랑이 끝나고 난 후에 찜찜함은 고스란히 남는 법인데요. (웃음)
 
요즘도 당연히 시를 쓰고 계시겠죠? 후속 시집은 언제쯤 나올 것 같나요?
 
침대 밑에 빈 깡통 하나를 두고 동전을 모으듯 시를 모으고 있으니까 새 시집 출간은 1년 뒤로 잡고 있습니다. 지금 40여 편의 시가 있으니 이제 좀 들여다보고 해야지요. 시집 준비도 준비겠지만 우선은 ‘시가 어렵다는 시대에 과연 내가 쓰는 시는?’이라는 질문을 저 스스로에게 하는 시기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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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이병률


 
요즘 볼거리가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꾸준히 읽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병률 산문집’이니까 묻거나 따지지 않고 사보는 독자들도 있고요. 독자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아, 그건 매우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웃음) 굳이 어떤 말을 해야 한다면 제 책 그만 읽으시고 만나서 이야기 좀 합시다, 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러다 만나게 되는 우연이나 인연 같은 것들, 또 의미들이 있다면 그게 행운이겠죠. 
 
그래서 요즘 독자 만나는 일에 성의를 다하시는군요. 여러 작은 책방 방문은 물론이고, 같이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SNS에 올린 것들을 포함해서요.
 
음, 그러네요. 맞아요. 독자분들하고 아이슬란드 여행을 가려고요. 
 
여행까지요? 독자분들의 면면이 궁금하기도 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요?
 
네, 정말 그래요. 읽으시는 분들은 과연 어떤 분들인지 단순한 궁금증은 물론이고요. 책이라는 매개 말고 과연 ‘나’라는 이상한 사람하곤 어느 정도로 친해질 수 있는 분들인지… 저는 그런 것도 궁금해요.
 
만약  『혼자가 혼자에게』  가 수중에 딱 1권이 있어요. 어떤 분에게 선물하고 싶나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취업에 실패한 20대한테도, 또 짝사랑을 포기한 30대 남자에게도 어울릴 책이란 생각이에요.

 

그래도 혼자인 사람에게 제일 맞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더 철저한 혼자의 맛을 보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평화로워질 테니까요. 물론 지금 혼자인 사람이 더 혼자로 짙어질 가능성도 있고요. 그건 어떤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그렇게 그대로 혼자일 거란 생각에서예요. 혼자의 ‘급수’도 여럿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인생은 그걸 하나만 넘느냐 아니면 영영 그 하나의 선도 넘지 못하느냐로 나뉠 듯해요. 그렇게나 ‘우린 누구나 혼자’라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잘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혼자가 혼자에게이병률 저 | 달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대신, 새로운 곳을 향한 사색을 시작한다. 작가가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것이자, 그리고 깊이 아는 대상인 바로 ’혼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은 오직 혼자여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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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진영 “이 소설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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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4일 월요일. 일기에 ‘끔찍한’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적었다. ‘그날’의 제야는 당숙에게 강간을 당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간들이 시작됐다. 소설은 일기의 형식을 빌려 제야의 내면을 보여주고, 삼인칭 시점으로 아이에게 쏟아지는 ‘가해의 말들’을 조명한다. 지극히 평범한 유년을 지나던 소녀가, 찢어내고 싶은 순간을 맞닥뜨리고 자신이 찢기는 경험을 하면서, 그럼에도 이어지는 삶 앞에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소설가 최진영은 ‘이번 소설을 쓰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그런 일을 겪으신 분들이 있는데, 그걸 쓰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제야가 ‘그날’을 뒤로 하고 다시 설 수 있을까?’ 의심하는 이들을 향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일어나는 분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진영 소설가는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끝나지 않는 노래』 ,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 『해가 지는 곳으로』  와 소설집 『팽이』  를 썼다.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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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으로 가득한 글을 쓴다는 것

 

<문학3>에 연재할 때와 달리 소설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 들었어요.


거의 새로 썼어요. 2017년에 연재를 했는데요. 그때는 300매 분량이었고, 웹에 연재하는 형식이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원고를 넘겨야 했어요. 연재를 끝내고 나니까 다시 써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이제야’라는 인물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라는 인물과 친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서, 책으로 낼 때는 완전히 새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의 말에 “2017년에 나는 제야를 잘 알지 못했다”고 쓰셨죠.


네. 뭔가 더 말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연재 당시에는 사건 이후의 제야의 심정이 많이 표현되어 있었는데, 사건 이전도 많이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제야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건 전의 제야의 모습을 많이 쓰게 됐죠. 그리고 연재할 때는 편지글의 형식이어서, 아무래도 이야기를 하는 데 조금 한계를 느꼈어요. 개작할 때는 제야의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들려주기 위해서 일기 형식을 가져오게 됐죠.

 

사건 자체도 끔찍한데, 그 이야기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하는 일은 더 힘들겠죠. 제야에게 몰입하는 동안 우울하셨을 것 같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아요.


쓰면서 힘들었겠다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게 힘든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런 일을 겪은 분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을 겪으신 분들이 있는데, 그걸 쓰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야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쓸 때는 오히려 통쾌한 면들이 있었어요. 이런 걸 문장으로 쓸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통쾌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두세 달 정도 개작을 하면서, 그 시간은 하루 종일 성범죄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조금 피폐해진 건 있었어요.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많았죠. 그런데 써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고 하셨는데, 나름의 답을 내리셨나요?


네. 그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생겨나는데, 그게 고통스럽다고 해서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지 않더라도 써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죠. 단지 고통만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혹은 바람도 있었어요. 물론 고통이 있지만 공감과 이해와 위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했죠.

 

제야의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드러낼 것인지, 많이 고민하셨겠어요.


되게 조심스러웠는데요. 이 책을 쓰기 전에 록산 게이의  『헝거』  를 읽었어요. 록산 게이도 성범죄 피해자, 생존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쓴 건데 그 책을 읽고 나서 조금 중심이 잡혔어요. ‘제야의 고통을 쓰는 것에 대해서 겁내는 대신 조금 더 진솔하게 표현한다면 사람들이 진심을 느끼지 않을까’, ‘내가 충분히 제야를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면 알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야 했죠. 성범죄 피해자가 지독한 자기혐오과 자기 파괴적인 것에 시달린다는 것을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쓰기를 주저한 부분이 있었어요. ‘내가 쓰는 것이 2차 가해가 되거나 사람들의 상처를 더 헤집어 놓는 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었는데요.  『헝거』  를 읽고 성범죄를 당한 사람이 자기혐오나 자기 파괴적인 것을 느끼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라는 게 마음으로 이해가 됐어요.

 

“인물이 내게 먼저 다가올 때가 있다”고 하셨는데, 제야도 그랬나요?


네, 뭔가 써야만 한다는 당위로 다가왔어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 중에 하나가 아니고 ‘이제는 쓸 때가 됐잖아?’라고 말을 거는 느낌으로 다가온 거죠.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성범죄 뉴스들을 보면서 ‘오늘도 이런 기사가 있네’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너무 끔찍했어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잖아요. 그것에 반발하는 남자들의 태도를 보면서 ‘이것이 남자들이 화를 낼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더 늦기 전에 써야겠다’ 싶었어요.

 

다행히 제야의 곁에는 기다려주고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이 없었다면 제야가 소설과는 다른 모습이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실제로 북 토크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작가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야 내면에 강함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하셨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피해자는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 인생은 끝났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 피해자도 자기 자신을 더 잘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자살을 하든가 미치든가 한다’고 생각하는 게, 그것도 어느 순간 분하더라고요. 그렇게 틀을 지어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일어나는 분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가해의 언어들을 쓰면서 ‘그것도 내 안의 어딘가에 있다가 나온 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놀라고 반성하셨다고요.


저도... 싫더라고요, 제가.

 

우리가 가해의 언어들을 학습했듯, 피해자들도 우리가 무심코 말하는 ‘피해자다움’에 길들여질 것 같아요.


내면화되는 게 많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알고 하는 말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지속적으로 들어오던 말이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관습적으로 하는 말이 많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런 말 자체가 가해자 편을 들고 가해자를 정당화시키는 말이라는 걸 모르고 하니까 갑갑했죠. ‘왜 가해자 입장을 옹호하지?’라는 의문을 안 가질 수가 없죠. 그런 게 한 번 보이기 시작하면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죠. ‘그냥 말한 건데 뭘 그렇게까지 따지냐,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하고요. 어느 순간 저도 예민한 사람이라는 굴레가 씌워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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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우뚝 선 이제야를 생각했어요


“단어들은 너무 납작하고 단순해서 진짜 감정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끔찍한’이란 글자를 백배 천배 부풀리고 진하게 두껍게, 종이가 찢어질 만큼 칠해도 그때의 감정을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부분이 있어요. 작가님도 집필 내내 ‘단어의 한계’에 대해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글자는 정말 얄팍해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도 계속 사전을 찾아보면서 써요. 그렇지만 사전적 의미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고, 막 묘사를 하기에도 내키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붙잡는 건 사람들의 공감력과 경험과 상상력이에요. 그걸 믿자고 생각해요. ‘내가 모든 걸 다 이야기하려고 하지 말자, 내가 이 단어를 썼어도 읽는 사람은 더 깊은 곳을 느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야는 강한 아이라고 생각돼요. 그래서 기특하다가도 ‘너 참 강한 아이구나, 대견해’라고 생각하는 게 미안해져요.


저도 그렇지만 제야한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아요. 제야한테 건네는 말이 모두 상처가 될 것 같은 거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너 참 강한 아이구나’라는 말도, 제야는 무너지면 안 될 것 같고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잖아요. 그래서 스스로의 고통을 더 눌러야 될 것 같고요.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라’라는 말도 너무 고통일 것 같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떳떳하지 못한 사람인가?’라고 다시 질문하게 될 거잖아요. 그 어떤 말도 힘들더라고요. 저도 그런 지점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일인칭으로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함으로써 더 큰 공감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세요?


네, 제가 제야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으니까요. 소설에서 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는 지점들도 있고 전부 다 일인칭으로 쓰지는 않았는데요. ‘이건 제야가 말하지 못할 것 같은데’ 혹은 ‘이건 일기에도 쓰지 못할 것 같은데’ 하고 느껴지는 부분들은 삼인칭으로 쓰기도 했어요. 앞부분에 제야, 제니, 승호가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내는 부분은 삼인칭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썼고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야는 내면에 강함이 있는 아이예요. 홀로 설 수 있는 아이죠. 그런데도 제니, 승호, 강릉 이모 같은 인물들을 곁에 놔주셨어요. 이유가 뭔가요?


그런 고민도 있었어요. 이런 사건일수록 혼자 외롭고 괴롭고 아픈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내가 쓰는 이야기라고 해서 그 사람을 위로하는 주변 인물들을 그려도 되는 걸까. 그러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까. 더 쓸쓸해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굉장히 컸어요. 그럼에도 썼던 이유는, 일단 사람들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제니와 승호와 이모의 인간됨을 보고 ‘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배우는 심정으로 썼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썼어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피해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강릉 이모가 대단한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제야와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너무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야 자체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 그냥 나온다고 생각해요. 제야에게 있었던 일을 부정하지도 않고 ‘별 일 아니야’라고 이야기하지도 않고 ‘괜찮아’라고 말하지도 않고 ‘네가 그런 큰일을 겪었구나’ 하면서 대하지도 않고요. 그냥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이죠. 내가 너한테 너무 미안하다고요. 제야한테 뭔가를 하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내가 미안하고, 내가 마음이 아프다’라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이모인 거죠.

 

그런 이모의 모습은 제야 엄마가 보인 반응과는 많이 다른데, 어쩌면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맞아요. 이모는 단절되었던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야도 조금 더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요. 엄마나 제니를 보면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나 때문에,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은 거죠. 내 고통과 불행만으로 너무 힘든데, 엄마와 제니를 보면 나만 괜찮아지면 괜찮을 것 같고, 그런데 나는 괜찮아지지 못하고 이 모습이고... 너무 복잡할 것 같아요.

 

‘그날’의 일은 제니와 승후에게도 영향을 미쳤어요. 삶의 일부가 망가졌다고 할까요.


망가졌죠. 그렇지만 가해자는 잘 살고 있죠. 소설에도 나오듯 법적 처벌도 물론 중요해요. 그렇지만 제야가 진짜 원하는 건 그 사람이 자기 죄를 제대로 아는 것, 인정하는 것, 내가 나를 혐오하는 것만큼 그 사람이 스스로를 혐오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죠.

 

결말에 대한 고민이 정말 크셨을 것 같아요. 제야에게 마냥 힘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아이한테 비극적인 결말을 주고 싶지도 않으셨을 테죠.


연재를 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오직 이제야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소설은 이제야 혼자 우뚝 서 있는 장면을 계속 생각하면서 썼거든요. 절대 비극적인 결말은 생각하지 않았고요. 이제야의 삶을 통째로 보여줄 수는 없지만, 제야가 어떻게 일어서는지 거기까지는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이후의 삶은 독자 분들이 만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했고, 제야가 잘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도 변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야가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가요?


많이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에서 경찰이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진짜 그런 일을 겪은 애들은 골방에 처박혀서 미치지, 너처럼 그렇게는 못 한다고요. 그런데 제야는 방에 갇혀있지 않을 뿐이지, 이 사회라는 곳에 갇혀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골방에 갇힌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야는 이미 많은 타인의 시선과 자기혐오와 편견과 고정관념에 갇혀 있기 때문에 더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을 넘어서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을 느끼면서 조금 더 경험하는 장면들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마지막에 제니한테 쓴 편지를 보면 ‘나는 이제 누구하고 있든 어디에 있든 늘 무서울 거야, 비로소 그걸 이해했어’라고 하잖아요. 그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고, 무서워하는 자기를 부정하지 말고, ‘나는 무서워하고 있구나’라고 받아들이는 부분이요. 그러면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무서운데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자꾸 도망가고 피하려다 보면 거기에 갇혀있을 것 같았거든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조금씩 알아가는 지점까지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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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마주친 기분이에요


처음부터 계속 ‘제야’라고 나오다가 중반부 이후에 ‘이제야’라고 나와요. 그 순간 책의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되더군요.

 

‘이제야’라는 이름을 제일 먼저 지었어요. ‘이제서야’라는 의미도 있지만, 부모님이 제야라고 이름을 지어줬던 이유는 한 해가 넘어가는 제야의 순간에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제야는 점점 어두워지는 시간이 아니잖아요. 제야가 넘어가면 밝아지고 새벽이 오잖아요. 어둠은 다 끝나고 이제는 점점 밝아오기만 기다리는, 그 의미도 좋았어요.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자.

 

제야 자신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이야기니까 제목을 ‘이제야 언니가’로 정했을 법도 한데요. 왜  『이제야 언니에게』  라고 지으셨어요?


편집부에서 지어준 제목이에요. 저는 이제야만 생각하면서 썼고, 그래서 파일명도 ‘이제야’라고 했어요. 초고를 넘길 때도 그랬고요. 그런데 편집부 회의에서  『이제야 언니에게』  라고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저도 수긍이 됐어요. 소설 마지막에 제니가 제야에게 쓰는 편지가 들어가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되게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고, 그 편지를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못 쓰겠더라고요.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제야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니가 제야에게 쓰는 편지는 독자 분들에게 맡겨두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독자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이나 건네고 싶은 말이 결국 제야한테 쓰는 편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독자 분들의 마음속에 드는 감정이나 질문들이다 편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을 다 읽었음에도 제야를 이해한다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문득문득 제야를 떠올리면서, 조금씩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제야가 소설 속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냥 현실에 있는 것들을 가져와서 썼을 뿐이지, 인물을 만들고 플롯을 짜고 그렇게 소설을 썼다는 느낌이 아니에요. 저 혼자 쓴 소설 같지도 않고요. 저도 쓰면서 제야한테 많이 의지를 했어요. 지금도 이제야라는 인물에게 마음으로 많이 의지하는 부분이 있어요. 문득문득 ‘제야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어요.

 

소설을 쓰실 때도 그랬나요? ‘제야야, 너는 여기에서 뭘 느꼈어? 무슨 말이 하고 싶어? 무슨 생각을 했어?’ 이렇게 물으셨나요?


계속 마음으로 말을 거는 거죠. 이게 되게 조심스러운 작업이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2차 가해가 되고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순간마다 이제야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괜찮겠지?’라고 계속 말을 걸고 의지를 많이 했어요.

 

이제는 제야를 많이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세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눈을 마주친 기분이에요. 잘 알지는 못하죠. 저는 저 자신도 잘 모르는데요. 그런데 그냥, 한 번은 제야랑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해봤다는 느낌이에요.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느낌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소설이 불편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 번쯤은 제야에 대해서, 제야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책이라는 것은 영화나 음악이나 미술과 달라서 의지를 가지고 읽어야 되잖아요. 자기 시간과 의지를 가지고 읽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고통스럽지만 끝까지 읽으신다는 것은, 제야에게 마음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제야와 마음을 나누고자 애를 쓰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애를 쓰시면 좋겠어요.


 

 

이제야 언니에게최진영 저 | 창비
삶을 계속 살아나가야 하는 여성이자 피해생존자의 언어를 생생하게 옮겨오는 동안, 그 고통들을 자신의 것으로 감당했을 최진영의 끈기는 작가와 문학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용기 있는 질문이자 위로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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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수역 4번출구 방향, 조금 한적한 거리에 배우 박정민이 운영하는 서점이 있다. 오후 2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을 여는 ‘책과 밤낮’. 늦은 밤 자유롭게 책을 보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꾸린 서점이다. 2016년 10월, 박정민은 첫 에세이  『쓸 만한 인간』  을 썼다. 그리고 3년 만에 개정증보판을 냈다. 디자인을 바꾸려고, 더 많이 팔아보려는 마음 때문이 아니다. 조금 경솔했던 표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던 말을 고치고 싶었다. 박정민은 요즘도 일기를 쓴다. 물론 혼자 보는 글이다. 작가를 꿈꾸지 않았지만 책을 쓴 저자가 됐고, 책방지기를 상상하지 못했지만 서점 주인이 된 박정민. 어쩌면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가능했던 그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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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한 마음을 전하는 게 더 먼저

 

어제도 서점에 사람이 많았다고요.


원래 밤 12시까지 영업하는데요. 정리하다 보니 새벽 1시가 됐어요.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책 팔고 커피 만들고 하다 보면, 밤이에요.

 

입간판이 없는 서점이에요. 2층이고요.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우연히 발견하긴 힘든 곳입니다.


입간판을 세우면 구청에서 가져간다고 하더라고요. 불법은 저지르면 안 되기에. (웃음) 요 며칠은 연휴가 있어서 그런지 손님들이 많았어요. 20, 30분씩 기다려서 책을 사가지고 가셔서 너무 죄송했어요.

 

『쓸 만한 인간』  이 3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나왔어요. 꽤 빨리 개정판을 낸 셈인데요.


사실 처음 책을 냈을 때 특별한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써놓은 글이 있으니까 묶어서 내면 되겠지, 생각한 거라 3년 동안 리뷰도 거의 찾아보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가끔씩 리뷰를 봤는데,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불편해 했더라고요. 글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불쾌한 단어와 문장과 문단을 삭제했어요. 괜한 짓일까 생각도 했지만 그저 사과를 하고 싶었고요. 해보고 싶었어요.

 

잡지에 글을 연재하다가 책을 내게 된 거죠?


4년간 월간지 <topclass>에서 글을 연재했어요. 그땐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언희(言喜)라는 필명으로 썼고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한 개인의 마음으로 쓴 글이었지만, 연재할 수 있었던 건 제가 연예인이기 때문이었을 거고요. 연재를 하면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몇 번 받았었는데 계속 거절하다가 상상출판에서 냈는데요. 책으로 묶을 분량을 딱 채웠을 타이밍에 연락을 주셨어요. 실은 저라는 사람 자체가 서점에 갔을 때 연예인이 쓴 책이라고 하면 잘 안 사거든요. 내가 굳이 이 책을 읽어야 하나? 생각하는 편이라 고민을 꽤 했어요. 많이 팔릴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고요. 일단 글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낸 책이었어요.

 

그런데 책이 많이 팔렸어요. 초판이 3만 부, 개정증보판도 벌써 1만 5천 부가 팔렸다고요. 연예인이 쓴 에세이가 최근에 많지 않았거든요.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본업이 작가가 아니잖아요. 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없었고요. 누군가는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하고 계시겠지만, 저는 책을 상상해보지 않았던 사람이라서 책이 나왔을 때도 ‘내 책 나왔어!’ 이런 감정이 없었어요. 개정판도 비슷해요. 죄송한 마음을 전하는 게 더 먼저였어요. 재미나 글맛을 줄이더라도 진중하게 다가가는 책이었으면 하는데요. 누군가 저를 기억한다면 ‘반성하는 인간인 것 같다’고 생각해주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것 같아요.

 

새로 쓴 글들은 무게가 느껴졌어요.


확실히 뒤의 글은 좀 우울하죠. 왜일까, 따져보면 일의 영향을 받는 것일 수도 있겠고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이런 게 글에서 나오는 것 같아서 잡지 연재도 그만뒀어요. 저보다 훨씬 글을 잘 쓰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그 분들의 글을 읽는 게 좋잖아요.

 

4년이라는 기간이 짧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47개월이었어요. 영화를 찍다 보면 원고를 까먹거든요. 시간이 갈수록 스트레스더라고요. 마감을 지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한 시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 산문집을 읽은 독자를 만나면 숨고 싶다”고.


숨고 싶죠. (웃음) 초판본이 나왔을 때는 정말 숨고 싶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 그런 생각이 강했어요. ‘배우 박정민’이라는 사람을 모르고 책을 통해서 ‘박정민’을 알게 된 사람도 꽤 많았거든요. 되게 부끄럽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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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저질러요

 

평소 서점을 열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죠? ‘책과 밤낮’은 어떻게 열게 됐나요?


올해 4월 초에 6평짜리 작은 공간으로 시작했어요. 지금 서점이 있는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일주일간 손님이 한 명도 안 왔어요. 간판이랑 주소 등록만 해놓고 특별히 알리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당연했죠.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안 오나, 신기하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백은하 영화기자님이 SNS에 서점 사진을 하나 올리셨는데, 제가 쓰는 LP 플레이어가 찍힌 거예요. 설마 박정민? 하고 찾아오신 분들이 있었고, 소문이 나서 알음알음 오시는 손님이 생겼는데 서점이 너무 좁아서 수용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옮기게 됐어요.

 

원래 이 공간은 LP바였다고요. 인테리어는 직접 하셨나요?


여긴 좀 넓어서 맡겼고요. 예전 서점은 저랑 친구랑 페인트까지 직접 했어요. LP바였던 곳이라 구조가 독특해요. 책장도 그렇고 바 테이블도 있고요. ‘책과 밤낮’을 만들 때, 먼저는 책을 읽고 가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커피를 팔지만 수다를 떠는 곳이 아니거든요. 독서대도 빌려 드리고 읽던 책을 맡기고 갈 수도 있어요. 다음에 올 때 그 책을 찾아서 다시 읽는 거예요. 술을 마시다 킵하듯이 책을 맡겨 놓는 거예요. 요즘엔 책을 맡겨 놓고 안 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어요.

 

서점에 항상 있으세요?


촬영이 끝나서 요즘은 계속 있었고요.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한 서점으로 출근해요. 아르바이트생이 계속 상주하고요. 저는 책도 팔고 사인도 하고 사진도 찍어 드리죠.

 

책방이 ‘낮밤’이 아니라 ‘밤낮’이에요. 자정까지 여는 서점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요.


주요한 목적은 동네 사람들이 밤늦게 나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데 있었어요. 요즘은 밖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드물잖아요. 북카페가 많아졌지만 대개 시끄럽고 문도 일찍 닫고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면서 여유 있게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배우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잖아요. 이럴 때, 내 직업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악용은 아닌 것 같아요. (웃음)

 

중고등학생은 책을 10% 할인해주던데요.


제가 학창시절에 책을 정말 안 읽었거든요. 너무 공부만 해서 당시 유행했던 문화를 전혀 몰라요. 그래서 학창시절이 늘 아쉬워요. 공부 외의 다른 것을 좀 해볼 걸, 하는 후회가 있어서요.

 

어떤 독자가 블로그에 “박정민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서 부럽다”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웃음)


아, 사실이라서 할말이 없긴 해요. 하고 싶은 거를 하면서 사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물론 저도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건 아니에요. 남들보다는 조금 하고 있는 편인 거죠.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은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 “당신들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고 말하기도 뭐해요. 저는 그냥 재밌어서 좋아서 하는 일이거든요. 어쨌든 제 본업은 배우이잖아요. 연기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여러 가지를 하는 거예요.

 

부러운 시선만큼 때때로 따가운 시선을 주기도 하죠. 


연예인이니까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게 기분이 나쁘진 않아요. 남들이 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생각 많고 고민 많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한데요. 저는 반면에 굉장히 충동적인 인간이에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저질러요. 그리고 나서 ‘이게 무슨 의미지? 내가 어떻게 해나가야 하지?’ 생각하고 그때부터 고민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한 다음에 시도하면 실수가 적을 텐데, 전 일단 해버린 다음에 실수를 수습해요. 이런 성격이 고치긴 힘들 거에요.

 

연예인이 서점을 열면 일단 대중들은 환영하죠. 그런데 1,2년 있다가 문을 닫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어요. 꾸준했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일까요?


실은 저도 몇 년 동안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이 공간은 1년만 계약했어요. 지금은 서점이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오지만, 본업이 배우니까요. 누군가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야 하는 입장이라서 ‘과연 이 서점을 운영하는 일이 동료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도움이 안 될 일이라면요?


제가 이 공간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있잖아요. 성격 자체가 솔직한 편이라 가식 같은 걸 못 보여주니까요. 서점을 운영하다가 말을 잘못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요. 필터 없이 말이 나올 때가 있어서, 그게 고민이에요. 저는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이 공간을 만들었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니까요. 얼마 동안 운영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 물론 제가 없이도 이 공간이 정체성을 찾아서 운영된다면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3년, 5년, 10년을 열어도 좋겠죠. 그런데 아직은 정체성을 차지 못한 것 같아요.

 

서점을 열고 언제 가장 기분이 좋았나요?


정신없이 사람들이 몰려 왔다가 싹 빠지고, 숨을 돌릴 때가 있어요. 이제 나도 책 좀 봐야지 생각하면서 서점을 쫙 둘러보는데, 손님들이 조용히 다 책을 읽고 계실 때, 너무 뿌듯해요. 약간의 쾌감이라고 할까요? 20명 남짓한 분이 모두 책을 좋아하진 않을 거란 말이에요. 아, 그래도 서점에 왔으니까 책 한 권 볼까? 하고 꺼냈는데 그 책에 집중하고 계실 때, 너무 기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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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이 있을 때 나오는 여유가 있잖아요

 

최근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이 개봉했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도 촬영을 시작했어요. 요즘은 책을 볼 여유가 많지 않았겠어요.


원래 영화를 준비하거나 촬영할 때 책을 안 봐요. 영화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차라리 시나리오를 더 보죠. 그런데 <타짜>를 찍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경주에서 쉬는 날이 있었어요. 뭘 할까? 고민하다가 대형서점에 가서 책을 한 보따리 사왔어요. 이틀 동안 책만 봤는데, 오히려 책만 보니까 리프레쉬가 되더라고요. 영화 생각이 안 나니까요. (웃음) 요즘은 소설도 보고 에세이도 읽고 그래요.

 

『쓸 만한 인간』  에 이준익 감독님이 하신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과정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 배우 박정민도 비슷한 생각으로 영화 작업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죠. 제가 배우로서 크게 내세울 게 없어요. 재능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건 제가 해온 작품이죠. <파수꾼>이 2만 명, <동주>가 120만 명, <사바하>가 240만 명이 본 영화예요. 안 본 사람이 더 많은 영화죠. 하지만 저는 이 작품들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물론 저도 천만 관객이 보는 영화를 해보고 싶죠. 하지만 그건 내 욕심대로 되는 일은 아니에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잘할 수 있는 영화를 하다 보면 되는 것이지 ‘천만 영화 할 거야”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책과 밤낮’에 김영하 작가의 컬렉션이 있더군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좋아하는 문장가도 좋고요.


너무 많은데요. ‘어떤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박민규 작가님을 좋아해요. 문장이 좋은 것도 있지만, 생각의 방향이 좋아요. 책을 읽다 보면 ‘이게 가능하다고?’ 싶은 문장을 볼 때가 있거든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제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게 대학 때였잖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 면접을 떨어진 후, 책을 몰아서 봤던 이력이 있으시죠. “책을 왜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나요?


저는 “책을 꼭 읽으세요”라고 말하진 않아요. 다만 책을 읽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죠. “읽어보면 좋아”, “읽어봐라”,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사실 경험치 같은 거라서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제대로 책을 읽었는데, 10년을 꾸준히 읽어보니 이제야 조금 책을 깊이 볼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산문집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하나 있어요. “아직도 집중 받는 걸 극히 혐오하고, 사람이 많은 공간에선 숨조차 제대로 못 쉬는 인간이 연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서 연기를 합니다.”(67쪽) 이 글의 제목은 ‘찌질이’예요.


(웃음) 아시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이 직업은 저랑 잘 안 맞아요. 배우는 전면에 나서야 하는 사람인데, 저는 나서는 일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가장 잘한 선택이 있다면, 배우를 포기하고 싶었을 때 포기하지 않은 일이에요. 연기가 너무 좋아서 영화를 잘하고 싶어서 직업으로 배우를 선택했지만, 자연인 박정민이 감당하기 벅찬 직업일 때가 있어요. 하지만 연기를 좋아하니까요. 포기하지 않는 것 또한 제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좀 웃기죠?

 

(웃음) 어떤 사람을 볼 때, 멋있다고 생각하나요?


스스로 당당해서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부럽고 존경스러워요. 자기의 신념이 있을 때 나오는 여유가 있잖아요. 고수들만이 보일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면 권해효 선배님 같은 분들이 그렇죠. 본인의 연기를 믿고 있을 때 나오는 여유, 그 여유를 저도 갖고 싶어요.

 

산문집에 실린 글을 쓴 시기가 2013년부터예요. 벌써 6년이 지났는데요. 10년 전으로 돌아가본다고 가정해 본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열심히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무턱대고 열심히 하면 나만 힘든 것 같아요. 열심히는 누구든 하거든요. 잘하는 게 문제지.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한 일에 관해 계속 되돌아보고 ‘잘했는가’를 생각해보는 일이에요. 쉽게 말하면 기준을 높여야 해요. 눈이 낮으면 그 이상은 못 가니까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의미가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를 하고 싶어서 전 너무 쓸데없는 걸 많이 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놀 걸, 하는 후회가 있어요.

 

책 제목이  『쓸 만한 인간』  이잖아요. 중의적인 표현으로 읽히는데요. 어떤 독자는 이 책을 읽고 ‘어쩌면 나도 (글을) 쓸 만한 인간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이 제목은 출판사에서 지어줬어요. 책에 실린 모든 글은 제가 썼는데, 유일하게 제가 쓰지 않은 문장이 바로 책이에요. 가끔 희한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이 제목으로 책을 기억하잖아요. 내가 쓰지 않은 문장으로 내 책을 기억해준다는 사실이 참 재밌기도 하고 신기해요. 아시다시피  『쓸 만한 인간』  은 어려운 글이 전혀 없는 책이에요. 문장도 단순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에세이예요. 많은 분이 ‘이 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네’ 생각하셨을 것 같고,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누구나 작가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자주 추천하거든요. 왜냐면 내 삶이 정리가 돼요. 배우로 살고 있지만 촬영이 끝나면 영화에 관해 자주 까먹는데, 때마다 인터뷰를 하면 정리가 잘 돼요. 말하면서 정리가 되는 것처럼 글도 비슷해요. 다만 상태가 좋을 때, 쓰는 글이 좋아요.

 

 

 

박정민 배우. 1987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2005년 고려대학교 인문학부에 입학했으나 연기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자퇴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고 2011년 독립영화 <파수꾼>으로 데뷔했다.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동주>, <변산>, <사바하>, <그것만이 내 세상> 등에 출연했다.

 


 

 

쓸 만한 인간박정민 저 | 상상출판
박정민이 직접 쓰고 그린 일러스트와 손글씨가 추가됐다는 점이다. ‘글을 말로 옮기는 일을 하다가 말을 글로 옮기고 싶어졌다’고 말했던 그가 이번에는 일러스트까지 더해 좀 더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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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희정 아나운서 “부모는 슬픔이고 원망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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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일찍 취업을 하고, 다시 아나운서를 꿈꾸고, 좌절하고, 끝내 아나운서가 됐지만 부모라는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공사현장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의 직업을 ‘건축업’이라고 적으면서, “부모님은 어느 대학을 나오셨나?”라는 질문에 입을 닫으면서, 가족여행 다녀왔다는 친구의 말을 부러워하면서 부모라는 질문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그래서 썼다. 쓸 때마다 아팠다. 가난한 부모의 노동과 부모에 대한 평생의 의문들, 그리고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는 고백을 써 내려갈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는 임희정 아나운서는 “글을 쓸 때마다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이 치유해주었다. 부모의 가난을 정확히 응시하자 부모의 큰 사랑과 전적인 믿음, 그 성실한 삶이 얼마나 큰 유산인지 거듭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이 비로소 그를 부모의 과거와 화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쓸 때마다 아팠고, 쓸 때마다 건강해졌다”는 임희정 아나운서.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는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임동명과 조순덕의 딸’ 임희정의 눈물과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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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부모는


책 나오고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어떤 반응이셨는지 궁금했어요.


엄마는 책 띠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오메. 춥겄다, 춥겄어.”라고 하시더라고요. 독자 입장이 아닌 거예요.(웃음) 책 내용이 중요하지 않고, 당신 딸 사진이 먼저 들어온 거죠. 정말이지 처음 들어본 서평이었어요. 아빠는 책을 곰곰이 살펴보시더니 “긍까, 니가 이 책을 잘 팔아야 용돈이라도 벌 것 아니냐. 뭐, 이제 책 팔러 다녀야 되냐?” 하셨어요.(웃음) 그 반응을 보면서 아, 우리 엄마고 우리 아빠다, 생각했어요.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글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을 때도 그랬죠. 부모님 얘기를 썼는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괜찮아! 암시롱 안 해! 올려!”라고 말했잖아요.


(웃음)그게 저희 부모님의 가장 큰 매력 같아요.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셨다고요. 글을 써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직장 생활로 너무 바쁘다보니 쓸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제주MBC>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온 2016년이 넘어가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삶의 여유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여유가 생기자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이 글쓰기였어요. 그동안 일도 바빴지만 마음도 여유가 없었거든요.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도 많았고요. 무엇을 진득이 사유한다거나 생각해보는 걸 잘 못했죠. 하지만 그동안 생각은 많이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제 경우 그게 부모님이었고요. 은유 작가님의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 읽고, 칼럼까지 다 챙겨 읽었을 정도거든요.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어가서 챙겨보고요. 그러다 2017년 가을에 은유 작가님의 ‘감응의 글쓰기’ 수업 오픈 소식을 듣고 바로 신청을 했죠.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쓰지 못했을 것 같아요. 

 

책에도 30년을 넘게 골몰한 문제가 부모님에 관한 것이었다고 하셨잖아요. 그토록 부모님 생각에 골몰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어릴 땐 마냥 투정 같은 것이었죠. 사달라는 것, 해달라는 것을 내 부모가 못해주는 것에 대한 투정인데요. 시간이 지나면서는 다른 사람의 부모와 비교를 하면서 질문하게 된 것 같아요. 친구네 아빠는 정장 입고 출근하는데 왜 우리 아빠는 후줄근한 작업복을 입고 출근할까? 퇴근한 아빠는 왜 저렇게 지쳐서 잠만 잘까? 왜 우리 부모는 한글을 잘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계속 했던 거죠. 특히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갖게 된 후에는 이 직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식이에요. “임 아나운서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우신 부모님은 어느 대학을 나오셨나?”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는 거예요. 거기에 저희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셨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니 시간이 지나도 계속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군요.


우선 그것을 부끄러워했던 제 잘못이 제일 커요. 그렇지만 그런 시선도 잘못되었던 거죠. 아빠는 평생 노동자로 살았는데요. 그래서 남은 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열심히 노동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왔는데 자식인 제가 보기에는 마냥 애처롭더라고요. 늙은 몸밖에 남지 않은 것 같고요. 친구들 부모님은 월급이 오르고, 직급이 오르고, 임원이 되는데 똑같이 50년을 일한 우리 부모님에게는 남은 게 없는 것 같은 거예요. 화가 났고, 뭐가 문제인지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처음 글을 쓸 때는 글에 화가 되게 많았어요.(웃음)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부모님의 삶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고요. 쓰면서는 부모님을 지긋이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쓸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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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마다 아프고


쓸 때 고민도 많았을 것 같아요. 너무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잖아요. 어떤 것이 제일 고민이었나요?


하물며 내 얘기를 써도 고민일 텐데 부모님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라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쓰면서도 계속 생각한 거지만 저는 되게 행복하고, 복 받은 자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마다 삶의 배경이나 살아온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부모님에 관해 아픔과 슬픔을 겪은 분들도 굉장히 많고요. 그런 분들께 제 글이 행여 상처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 표현 하나까지 너무나 조심스러웠죠. 그래서 퇴고를 정말 많이 했어요. 퇴고만 8개월을 한 것 같아요. 편집자님과 주고 받은 메일만 100통이 되더라고요. 세어봤어요.(웃음)

 

말씀처럼 아주 다양한 상황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 고민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하거든요.


우선 제가 인정하기로 했어요. 나는 행복했고,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였다는 전제에서 글을 썼죠. 각자의 사정이 다 다른데 그걸 전부 헤아릴 수는 없고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라는 존재와 자식이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마음을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은유 작가님의 말 중에서 마음에 새겼던 말이 ‘작가도 독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거든요. 그 말에 공감을 많이 했고요. 그렇다고 해서 이해하는 분만 읽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상황까지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 한계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의외로 많은 분들이 제 글을 공감해주셔서 조금은 안심했어요. 처음에 글을 쓸 때는 의구심이 정말 컸어요. 그런데 제 얘기를 했을 뿐인데도 정말 많은 독자 분들이 “제 이야기 같아요”라고 해주셨어요. 배경이나 경험이 달라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삶의 결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궁극적으로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글을 쓸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고 하셨잖아요.


은유 작가님 수업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썼는데요. 그날 밤새 한 숨도 못 잤어요. 처음으로 제대로 아버지의 나날을 돌아보게 된 거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을 나서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현장에서 종일 몸을 써 일하고, 지쳐서 돌아왔을 하루를 곱씹으며 글로 쓰니까 너무 괴롭고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잠을 못 자고, 다음날 몸살이 오고 일주일을 앓았죠. 또 글을 쓸 때 몸을 엄청 떨었어요. 얼마나 내 속에 부모에 대한 생각이 곪아 있었으면 그랬을까 싶죠. 글을 쓴 게 아니라 토한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차차 나아졌어요. 처음에 일주일 몸살을 앓았다면 다음부터는 기간이 조금씩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써도 아프지 않아요. 쓸 때마다 아프고, 쓸 때마다 건강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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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의 부모가 막노동을 한다


고백에 가까운 공감 리뷰가 많아요. 느낌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소위 사회에서 성공이라 말하는 척도가 있잖아요. 돈, 명예, 학벌, 타이틀 같은 것. 그것으로 평가하고, 재단하죠. 그런데 부모님이 저를 키우며 해온 노동, 헌신, 사랑, 믿음 같은 가치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그 앞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사실을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알고는 있지만 자꾸 잊는 것 같아요. 숫자로 표현되지 못하고, 보여지지 않는 것들이니까요. 그러다보니 돈이나 명예를 더 중요한 것처럼 생각하게 됐던 것 같고요. 저는 그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는데요. 독자 분들도 그것을 읽어주셨다고 생각해요.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가장 많이 받은 내용이 부모님 직업에 대한 고백이었어요. 저희 아버지와 비슷한 일을 하시는 분들의 자녀 분들이 그렇게 메일로 “저도 부끄러워하며 살았어요. 작가님 글 보고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용기를 얻게 됐어요.”라고 보내주시더라고요. 이건 너무 놀라운 일 같거든요. 알게 모르게 저처럼 부모를 부끄러워한 자식들이 많았던 거죠. 우리가 갖고 있던 너무 큰 편견이고, 잘못된 생각들인데요. 그것을 깨는 데 어쩌면 조금 매개체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아버지의 노동뿐 아니라 어머니의 노동에 대해서도 같은 무게로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저도 몰랐었죠.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동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말이에요. 사회에 나와 돈을 벌어보고 매일의 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거고요. 결혼을 하고 쌀을 씻어보니 삼시세끼 밥을 챙기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알게 된 거예요.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가장 강력한 방법 같아요. 또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면 글이나 영화 등 간접 경험을 함으로써 이해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가 더 많이 쓰이고 말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나운서의 부모가 막노동을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었잖아요. 제가 글을 씀으로써 ‘그럴 수 있지’로 이해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 같고요. 그것이 선순환이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제목에 들어간 ‘겨우’는 어떤 의미인가, 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겨우 자식이 되어가는 걸까요?


저도 ‘겨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보통 “겨우 이것밖에 못했어.”라고 할 때 ‘겨우’는 미미하고, 부족한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못하나요. ‘겨우’라도 쌓을 수 있으면 그것도 가치 있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자식이라는 존재는 저절로 얻어진 위치 같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자라는 동안 받은 보살핌과 사랑, 희생과 시간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이죠. 자식이니까 받아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쓰면서 했고요. 그러니까 자식도 ‘겨우’ 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껏 나를 키운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부모님을 보살펴도 부족한 것 같고요. ‘겨우’인 거죠. 그래도 그 ‘겨우’라도 해야 하는 거고요. 이것은 부모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바라고 희망하는 것이 있다면 ‘겨우’ 얻은 것이라도 마땅히 칭찬 받고, 존중 받아야 할 거예요.

 

무엇보다 부모님의 우직한 태도, 삶에 대한 성실한 자세가 참 값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난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성실과 근면을 가르쳐요. 본인들이 그렇게 살 뿐이고, 자식들은 그걸 저절로 보고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매일 노동을 하고, 자식들을 살뜰히 챙기죠. 그런 것들은 의식적으로 배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체득되는 것 같아요. 또 부모님이 제게 해주신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암시롱 안 해”거든요.(웃음)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도 그것일지 몰라요. 부모님은 제가 뭘 한다고 했을 때도, 뭘 안 한다고 했을 때도 그 말을 했어요. 믿음이죠. 저는 그 믿음을 받고 뭐든 했고, 뭐든 안 했어요. 저는 그 마음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는 마음, 암시롱 안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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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부모가 슬프지 않다


삶에서 여유를 되찾았을 때 제일 먼저 글쓰기가 떠올랐던 이유도 궁금하네요.


일단 글쓰기는 응시하고, 사유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제 경우 글쓰기를 처음에는 화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의 시간을 거쳤어요. 차츰 화가 누그러지고 궁극적으로는 인정과 기쁨으로 바뀌었죠. 책을 쓰는 내내 제게 부모는 슬픔이고 원망이었는데요.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아요. 어떤 슬픔은 이해의 시간을 거치면 기쁨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쓰면서 그걸 많이 경험했어요.

 

쓰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막연히 상상하곤 하는데 방금 말씀이 정말 좋네요.


더 이상 부모를 보면 슬프지 않아요. 사실 과거에 부모를 보고 슬프다 느꼈던 것도 좁은 생각이었죠. 부모님의 삶에 슬픔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걸 저는 슬펐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거예요. 힘들고, 가난한 삶을 살았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쓰다보니 부모님 삶에 있던 다양한 감정을 인정하게 됐고,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어요. 전에는 ‘엄마’, ‘아빠’ 같은 단어만 들어도 울었지만 이제는 안 그래요. 부모님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요.

 

계속 쓰는 사람이고 싶다고 하셨어요. 부모에 대한 이토록 솔직한 이야기를 쓴 분이 쓰게 될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해요. 에필로그의 제목이 ‘한 경계를 지났다. 꽃이 피었다’거든요.


첫 번째 책을 낸 분들의 공통된 생각일 텐데요. 과연 다음 책을 쓸 수 있을까(웃음) 생각도 들어요. 많이 비워냈으니 다시 채워야겠죠. 지금 생각 같아서는 다시는 부모님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기도 해요. 이 책을 쓰면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너무 많이 슬펐고, 너무 많이 괴로웠기 때문에 다음에 쓰는 이야기는 좀 더 가벼운 이야기였으면 해요. 다른 장르의 글도 써보고 싶고요. 오랫동안 아나운서로서 말을 하는 사람으로 살았는데요. 앞으로는 쓰는 사람으로 오래 살아가고 싶어요. 말과 글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하며 살고 싶죠.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임희정 저 | 수오서재
한 자식의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세상 모든 아들과 딸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아버지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 자식의 마음, 결국 모두의 이야기다.글을 읽지 못하는 부모에게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따뜻한 음성 편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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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악동뮤지션 이찬혁 “소설과 앨범은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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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뮤(악동뮤지션) 이찬혁이 3집 앨범 <항해> 발매와 함께 소설  『물 만난 물고기』  를 출간했다. 작가로서는 첫 작품. 이찬혁은 올해 5월, 해병대를 제대하면서 앨범을 구상하는 동시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악뮤의 세 번째 앨범 <항해>를 해설하는 소설은 아니다. 노래를 만들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을 소설 형식으로 담았고, 공유해도 좋을 것 같아 책으로 엮었다. 악뮤 이수현은 “오빠의 책은 이번 악뮤 앨범과 같은 세계관을 갖고 있다.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오빠가 갖고 있는 생각, 메시지들이 많이 녹여져 있다. 소설을 읽고 나서 노래를 들으면, 소설 속 장면들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눈물이 날 정도로 몰입하면서 읽은 책”이라고 밝혔다.

 

『물 만난 물고기』  는 주인공 ‘선’이 ‘예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떠난 여행으로 시작된다. ‘항해’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Freedom’, ‘달’ 그리고 ‘항해’로 끝난다. 이찬혁이  『물 만난 물고기』  로 독자들을 처음으로 만난 10월의 금요일 저녁. 처음이자 마지막인 북 토크를 시작하기 직전, 잠깐 동안 <채널예스>를 만나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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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고 싶은 작품은 아니다

 

앨범 발매와 함께 소설을 펴냈다. 작업 시기가 비슷했나?

 

앨범 구성이 완료된 상태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시기는 작년 6월, 7월 정도다. 앨범을 조금 더 재밌고 자세히 설명하는 매체로 소설을 선택했다. 앨범 수록곡과 소설 목차만 봐도 비슷한 제목이 많은데, 하나의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는 작업물이라 같이 보면 시너지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세트성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쌍둥이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 모습은 다르지만, 말하는 바가 비슷한 작품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에세이를 비롯해 여러 장르로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소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2014년에 에세이를 낸 적이 있다.  『목소리를 높여 high!』  라는 제목이었는데 인터뷰 형식으로 만든 책이라 내가 직접 책을 썼다고 하긴 어려웠다. 소설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과제로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서 언젠가 제대로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악뮤 활동을 하면서 가수로서의 꿈도 있지만 언제나 예술적인 욕심이 더 크다. 소설은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쓰여진 도구다.

 

소설도 상품이다. 이 책을 사서 읽을 독자도 염두에 두었는지?

 

글쎄. 내 입장에서만 말한다면, 독자들을 먼저 생각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이 책을 구매했으면 좋겠다는 의도는 없었고, 그냥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이건 공유를 해도 괜찮겠다 싶어서 책으로 묶게 된 것이라 사실 소설로써 사람들이 좋아할까? 라는 고민은 하지 못했다.

 

리뷰를 좀 찾아 봤는지?

 

처음 쓴 책이다 보니 많이 궁금하더라. 앨범 리뷰보다 더 많이 찾아본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리뷰는 “좋은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로만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고 보니 예술적인 가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도전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이 리뷰를 읽고서, “이거야!” 싶었다. 딱 좋았다. (웃음)

 

『물 만난 물고기』  를 읽어 보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많이 한다. 군에 있으면서 더 많이 한 것 같고. 첫 번째, 두 번째 악뮤 정규 앨범을 냈을 때도 동일하게 했던 고민이다. 가수라는 직업은 음악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연예인이라고 불려지는 직업 아닌가? 방송에도 나와야 하는 직업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음악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람들이 무얼 좋아할까?’를 고민해야 했는데, 이번은 좀 달랐다. ‘어떻게 하면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을 예술가로서 잘 풀어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고 작업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앨범과 책 디자인이 비슷하게 이어진다. 책의 만듦새는 만족하는지?

 

완전 만족한다. (웃음)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됐는데, 특히 앨범과 책의 표지에 들어간 작품이 내가 몽골에 살 때 알고 지냈던 동갑내기 친구의 그림이다.

 

올해 5월에 해병대를 제대했다. 바다와 가깝게 보낸 시간들이 작품 속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

 

아무래도 환경이 주는 영감들이 크니까. 그래서 이번 앨범 제목이 <항해>이기도 하고. 바다가 주는 위압감과 거대함이 무척 크게 다가왔다. 군함을 탄 기억은 아마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주인공 ‘선’은 뮤지션이다. 동료들과 음악 작업을 하던 중 ‘예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품고 여행을 떠났다가 ‘해야’를 만나게 된다. 주인공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자연스레 ‘이찬혁’을 상상한다.

 

모든 등장인물에 내 모습이 내포되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들을 분배해서 만들어 놓은 캐릭터라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나의 많은 인격일 수도 있겠다.

 

퇴고 과정은 어땠나?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썼다. 왜냐면 초고를 쓸 때 굉장히 복잡한 문장을 썼다. 평소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책을 많이 찾아 읽었는데, 단문으로 구성된 소설이 많더라. 문장을 좀 짧게 고쳤고 다른 건 크게 바꾸지 않았다.

 

뚜렷한 메시지보다는 여백이 많은 소설이다.

 

일단 소설이나 음악이나 모두 매체라고 생각한다. 말을 이루는 것, 즉 메시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승전결 같은 구성보다는 여운이 있는 몰입도가 높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쭉쭉 이어지는 느낌보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책을 쓰고 싶었다.

 

쓰면서 가장 만족했던 부분이 있나?

 

97쪽에 실린 ‘보배’ 파트를 읽고 스스로 감탄했다. (웃음) 사실 이번 앨범과 책 모두 설명하고 싶은 작품이 아니라서 고민을 많이 했다. 작가가 숨긴 것에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줄거리를 막 설명해 드리는 것보다 최대한 여러 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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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인생에 적정기가 있는 게 아닐까.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는지?

 

독서를 많이 한다고 볼 순 없는데, 군대에 있을 때 많이 읽었다. 눈에 보이는 게 책이라서 틈날 때마다 책을 봤다. 국내 작가의 로맨스 소설도 읽었는데, 재밌게 읽었다. 분홍색 표지였는데 제목이 갑자기 기억이 안 난다. 후임이 읽다가 울었던 책이다. (웃음)

 

군 생활은 어땠나?

 

힘든 점도 있었지만 도움이 된 점도 많다. 우선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게, 내 인생에서 좋은 시간이었다. 사회에서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서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많이 받았다. 좋지 않은 인연일지라도 반드시 배울 것은 있더라.

 

동생 수현 씨는 소설을 읽고 어떻게 말했나?

 

눈물 날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고 했다. (웃음) 군에 있으면서 수현이의 활동을 지켜봤는데 예상보다 너무 잘해서 놀랐다. 자기 분야를 확장하는 모습도 대단했고. 나의 빈자리를 메꿔주는 모습이 기특했다.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지만, ‘다 컸네’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출판 일을 하신 적이 있다. 이번 소설을 각별하게 읽으셨을 것 같은데.

 

큰 기대감이 없으셨는지,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엄청 감탄하셨다. 몇 시간 동안 아버지가 책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셨는데 일단 아마추어 같지 않고 “책답게 글을 썼다”고 말씀해주셨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 있다. 옛날에는 부모님의 칭찬과 조언으로 기운을 많이 얻었는데 워낙 칭찬을 많이 해주시니까 이제는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피드백을 받는다. (웃음)

 

직접 곡을 쓰고 만든다. ‘천재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인데, 부담은 없나?

 

천재라는 걸, 믿지 않는다. 천재는 상대적이다. 어떤 미지의 나라에서는 흔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만 천재로 여겨질 수도 있고 또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천재라는 단어를 악뮤 앞에 붙인다면, 당연히 부정하고 싶다. 별로 어울리는 호칭도 아니고. 사람에게는 자신이 잘하는 걸 찾을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우리는 그걸 조금 빨리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인생에 적정기가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도 책을 낼 생각이 있는지?

 

물론이다. 아이디어를 찾고 있는데 아직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이번에 소설을 낸 것도 앨범이랑 같이 내는 굿즈 형태로 생각한 게 아니었다. 예술적인 할동으로써 소설을 쓸 계획이다.

 

『물 만난 물고기』  를 딱 한 명의 독자에게 선물한다면, 어떤 사람에게 주고 싶나?

 

준비된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을 보고 당신의 길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1%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읽으면 자극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물 만난 물고기이찬혁 저 | 수카
상상을 뒤집는 강렬한 스토리, 탄탄한 구성력을 동원해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자유와 통제의 대비, 사랑의 환희와 상실의 상흔, 삶의 의미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마음껏 소설 속을 유영하며 깊이 호흡하고, 한편 각자의 삶을 묻고 답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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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권김현영 “구체적인 행동을 문제 삼는 용어가 더 많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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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이 새 책을 출간했다. ‘기다리던 단독 저서’라는 수식어와 함께 나온 책의 제목은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선언, 다짐, 격려, 경고. 여러 종류의 목소리로 들리는 이 문장에는 권김현영이 독자들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압축돼 있다. 세상은 달라졌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며 우리는 계속 진화한다는 것. 페미니즘은 언제나 모순과 역설 속에서 어떻게든 길을 찾아냈고(12쪽) 그렇게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는 권김현영이 지난 20여 년간 활동하며 쓴 글을 모은 책이자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 독자들에게 건네는 용기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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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페미니스트란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 알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8쪽)

 


증언처럼 전하는 말 “나아졌고 나아질 것” 

 

첫 단독 저서입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출판사에서 ‘기다리던 권김현영의 단독 저서’라는 표현을 써서 마케팅 하는 걸 보고 정말 고마웠어요.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잖아요. 단독 저서라고 뭐가 다르겠나 했는데 혼자 책임져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확실히 더 부담되더라고요.

 

‘스스로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라고 하셨는데 읽으면서 저도 응원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단독 저서를 쓰는 일이 무서웠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지 일단 해보자’ 싶었어요. 페미니즘 분야에 한국 여성의 단독 저서가 많지 않거든요. 로컬에서 한국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오려면 독자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그런 환경이 조금이나마 만들어졌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독자와 응원을 주고받는 환경에서 책이 나오게 된 것 같아서 좋아요.

 

한 발을 내디딘다는 생각으로 책을 내셨다고 했어요. 페미니즘적 실천과 관련해서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고요.


어떤 부족함과 실수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늘 모르는 게 있잖아요. 과거에도 실수했고, 지금도 실수하고 앞으로도 실수할 수 있고요. 실수하더라도 더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몰랐던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마음의 무늬를 조금 바꿨으면 좋겠어요. 알고 나서 바뀐 나를 응원하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마음이랄까요?

 

된장녀부터 개똥녀, 강남역 살인 사건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어요. 그간 정말 많은 일을 겪어왔구나 싶더라고요. 왜 진화하는 페미니즘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알 것 같았고요.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 안 좋아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여기서 운동해봐서 아는 데 나아질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20년 전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폭력적이었거든요. 요즘은 비슷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해?’라는 반응이 있잖아요. 확실히 변했어요. 변화의 중앙에 있어서 못 느끼는 것일 뿐 세상은 나아지고 있죠. 이렇게 “지난 20년간 큰 변화가 있었다”고 증언자처럼 말하고 싶었어요.

 

SNS에 남긴 영화 <82년생 김지영> 리뷰가 인상적이었어요. ‘0점 테러’ 같은 부정적 반응에 주목하기보다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셨더라고요.


그렇게 굴곡 없는 영화가 이렇게 대중적인 반응을 얻기 어렵잖아요. <침묵에 대한 의문>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분노한 여성이 누군가를 죽이는 영화인데 아무도 이해를 못하지만 영화를 본 여성들은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영화죠. <82년생 김지영>도 그런 영화같아요. 이 영화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 다들 알잖아요. 사회적 맥락이 만들어진 거예요. 정말 큰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제목이 선언 같아요. 다짐, 격려, 경고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어떻게 지어졌나요?


페미니즘을 흔히 빨간약에 비유하잖아요. 페미니즘을 안 이후로 예민해져서 모든 게 다 재미가 없어졌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해서 없었던 일로 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느냐? 안 되잖아요. 보이는데 어떡해요. (웃음) 돌아가면 더 고통스럽죠. 알게 된 걸 모르는 척까지 해야 하니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다음’ 뿐이에요. 이중의 고통을 겪느니 돌아가지 않기를 결심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어요.

 

세미콜론과 괄호가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정답이 없는 페미니즘을 표현하는 표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의견을 강조할 때 따옴표를 쓰고, 잠정적인 의견을 표현할 때는 세미콜론이나 괄호를 넣잖아요. 이렇게 괄호 안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세미콜론 안에 있기도 한 게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어요. 출판사에서 전혀 다른 느낌의 표지 시안을 다섯 개 주셨는데 이 표지가 가장 맘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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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규제하는 표현이 필요하다

 

서문에서 ‘한남’이라는 용어를 해석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대항발화로써 효과를 얻을 수 없는 말이라고 하셨는데 자세히 듣고 싶어요.


‘한남’이라는 말은 어떤 측면의 규제적 효과도 일으키지 않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말하면 쾌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백래시가 더 강해지고 그들끼리 연대하게 만들고, 달라지고 싶은 남자들끼리도 편을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표현보다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하는 남자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이와 반대편에 있는 남자들을 도태시키는 말들, 구체적인 행동을 문제 삼는 용어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테면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오빠가~”라고 말하는 남성들 많잖아요. 이런 사람들을 ‘빠가남’이라고 한대요. 그동안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얼마나 이상한지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던 남성들이 ‘빠가남’에는 반응해요. 수업 중에 학생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빠가남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한 남학생이 다시는 “오빠가”라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대요. 굉장히 훌륭한 언어적인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설명해도 바뀌지 않던 남성들이 ‘빠가남’이라는 말 한마디에 행동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싸튀충, 성매수충 같은 말도 마찬가지예요. 문제 행동 자체를 지적하는 말들은 규제적 효과를 발생시켜요. 

 

여성들이 ‘한남’이라는 표현에서 효과를 얻지 못하는 데 반해 남성들은 된장녀, 맘충같이 행동을 규제하는 표현을 많이 만들어 내고 효과를 봤잖아요. 이런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이건 문제 있는 행동이잖아’라고 공유하는 문화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이다혜 기자님 책을 봤는데 ‘GV 빌런’이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GV에서 이상한 질문을 해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이런 말들이 만들어지면 규제적 효과가 있어요. 어떤 행동을 관찰하고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어야 이게 가능한데요. 여성들 사이에서 이런 문화가 시작되는 단계에서 한남이라는 너무 큰 표현이 탄생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규제적 효과가 있는 말들이 굉장히 많이 발명됐는데 한남이라는 말에 묻히기도 했고요.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목소리를 낸다는 건 인신공격에 계속 노출된다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실제로 인신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공격받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괜찮았다”라고 하셨던데 이제는 공격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잖아요. 요즘은 어떠세요?


정말 흥미로운 게…. 사람들은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말할 때 크게 화를 내지만,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별로 화내지 않아요. (웃음) 그러니까 이건 진짜 권력 문제예요. 이제 저도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생겨서인지 저한테 직접 화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냥 걸러질 뿐이죠. 예를 들면 제가 <82년생 김지영>를 봤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고 공격받지 않아요. 어떤 내용에 대해 언쟁하려고 하지도 않고요. 그들도 피곤하거든요.

 

그럴 것 같아요. (웃음) 언쟁 자체가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도 하고요.  


많은 남성이 페미니즘을 잘못 알고 있어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만 거두면 토론 가능해지거든요. 자신이 아는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만 알면 토론 가능한 상태가 되는데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오해를 풀 생각이 없는 사람과 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요?


자기 주변에 있는 여성과 인격적 관계를 맺어 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자기 누나든 여자친구든 동료든 여성과 인격적 관계를 맺어본 남성들은 여자를 폭력적으로 소비하거나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만 이야기하면 바뀔 가능성이 있는데 인격적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거나 남성 사회에 너무 익숙하거나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잘 안 바뀌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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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관한 글을 보면서 故 설리 씨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2008년에 쓰인 글을 보면서 2019년에 일어난 일이 오버랩 된다는 사실이 씁쓸하더라고요. 악플 문제로만 축소해서 보는 경향도 있고요.


악플도 문제인데 악플을 쉽게 달게 만든 환경을 이야기해야 해요. 악플 달기 쉬운 환경에 두고 사람들한테 “악플 달지 말라”고만 하면 너무 어렵거든요. 포털에 있는 실시간 검색어, 댓글 없애야죠. 환경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을 너무 오래 방치했어요. 사실 언론사나 기업들이 그걸로 돈을 벌어왔던 거예요. 댓글 뉴스를 통해서 조회수를 올리고, 댓글이 많이 달린 뉴스를 먼저 보게 하면서 적극적으로 악플을 콘텐츠의 일부로 만든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보게 만든 거죠. 뉴스를 오염시켰어요. 이런 방식으로 뉴스가 타락하게 만든 포털에도 책임을 물어야 해요.

 

여자 연예인에게 유독 엄중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있어요.


여자 연예인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걸 이렇게까지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있는 거죠. 여자 팬들이 남자 아이돌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반면 왜 남자 팬들을 여자 아이돌을 보호하지 않는 걸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를 지키는 게 아니라 스타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방식의 여자 아이돌의 팬덤 문화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서로 믿을 수 있게 연예인과 팬과의 관계도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른바 삼촌 팬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지키기 위해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목소리를 낸 여자 연예인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건가 싶어요. 페미니즘에 닿아 있는 어떤 것을 조금이라도 얘기하면 난리가 났잖아요. 다르게 생각하면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자각하고 있는 거고요.

 

방송 출연을 반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1999년인가 2000년 즈음에 몇 번 방송에 출연했어요. 20대였는데 공격을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모르는 사람이 집에 찾아오고 그랬죠. 이런 경험을 통해 메시지보다 외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문화에서 방송 출연이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좋은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출연을 꺼렸죠.

 

그런데도 최근에 고 설리 씨와 관련한 방송에는 출연하셨어요. 의무감 같은 것 때문이었을까요?


더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안하기도 했고요. 더 열심히 나서서 지지했어야 했는데… 악플에 시달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설리 씨에게 많이 미안했어요.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걸그룹의 최정점을 찍고 연기자로 이동한 그 시점이 제일 취약한 시기거든요. 유명한데 기획사는 도와주지 않고 혼자 이미지 관리하기 힘들죠. 그런데 그 시기에 설리 씨가 혼자 너무 많은 걸 감당했어요. 그야말로 물어뜯김을 당했을 때 더 열심히 나서서 ‘이런 건 아니지’라고 말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여전히 방송이 싫지만 출연했고요. 

 

오래 전부터 학생들을 만나오셨잖아요. 과거와 지금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요?


외모의 변화죠. 2003~2005년 때만 해도 학생들이 성형수술을 반대했어요. 부모가 주신 소중한 몸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였거든요. 그러다가 2009년, 2010년 되면 아무도 성형수술을 반대하지 않아요.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금은 탈색 머리가 유행하잖아요? 당시에는 탈색 머리는커녕 긴 머리에 되게 비슷한 형태의 아웃룩이었어요. 2003년부터 몇 년간 이랬죠. 그런데 페미니즘이 부활하면서부터 확실히 학생들의 외모가 다양해지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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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내딛기 위해서는

 

따뜻한 문장도 많았어요. ‘분노로 인해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뿌리가 단단해야 한다’고 했는데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요?


이 사회가 사람들을 너무 쉽게 불안하게 만들잖아요. 이럴 때 필요한 건 하나하나의 실감을 느끼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것, 통제할 수 있는 것, 내 몸을 움직여보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음악 등을 떠올리고 손에 꼽아보는 거죠. 이런 실감을 느낄 때 불안이 잦아드니까 이걸 느끼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리고 요즘 데이트 폭력도 심하고 묻지 마 폭행 같은 여성 혐오 범죄가 발생하니까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기엔 너무 외롭잖아요. 사랑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사랑을 급진적으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연애는 하지 않되 사랑은 포기할 수 없죠.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내가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불안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사랑이 주어지는 위치가 나한테 오니까 불행할 이유가 없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가가 중요할 뿐이고요. 상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지금까지 여성에게 주어진 자리였다면 이제는 다른 자리에서 사랑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내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사랑에 더 가능성을 두고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사랑을 재발명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 재발명이 필요해요. 연애를 일종의 프로젝트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 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장해 가는 거로 여겼으면 좋겠어요. 내 인생에 타인을 받아들인다는 경험, 이런 기적 같은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죠.

 

지금 이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논의해야 할 것은 뭘까요?


추상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구체적인 이야기인데요. 페미니즘이 서로의 흠을 찾아내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고 나아짐을 축하하는 방식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가면 결국 한 사람만 이겨요. 제일 올바른 한 사람이요. 그렇지만 나아진 사람으로서 함께 있는 그림을 그리며 나아가면 우리를 연결해 주고 더 강하게 만들죠. 예를 들면 더 많은 여성이 정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완벽한 사람은 없거든요. 그러니 “어떤 면에서 부족하긴 하지만 의미 있어”라고 여기고 밀어주는 문화가 필요해요. 어떤 건 괄호 안에 넣고, 또 다른 건 따옴표 안에 넣어서 강조하기도 하면서요. 그냥 다 묻고 가자는 게 아니에요. 이만큼의 용기를 가지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남성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작은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 나아갔다면 응원 받아야 해요. 이렇게 서로 응원하는 길로 가야 함께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응원 받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는 걸 볼 때 뒤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나도 나가봐야겠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과거에 쓴 글을 보면 고치고 싶은 욕망이 생기잖아요. 고친 글도 있나요?


문장을 고친 것도 있고 내용을 덧붙인 것도 있어요. 남성성에 관해 쓴 후반부의 글들은 아주 오래전에 쓴 거라 최근의 이야기를 붙여서 수정했어요. 고치고 싶은 게 엄청 많았는데 참느라고 힘들었어요. 글 자체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게 역사이기도 하니까…꾹 참았죠. 어쨌든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요.

 

벌써 후속작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연구서라고 들었는데 출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이 책을 내기 전에 휴머니스트에 원고 뭉치를 두 개 드렸어요. 긴 글 모음과 짧은 글 모음이요. 짧은 글 모임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가 되었고 긴 글 모음이 내년 상반기에 나올 연구서예요. 편집자랑 어떤 책을 먼저 낼지 의논하다가 이 책을 먼저 냈죠.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이렇게 싸워봤자 세상이 안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무기력한 사람들한테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 큰 바람이에요.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권김현영 저 | 휴머니스트
지난 20여 년 동안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로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여성과 연대해온 권김현영의 첫 단독 저서. 낯설지만 통렬한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지금-여기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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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그림책작가 강경수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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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묻는다. 설레는 마음을 전하던 순간부터, 발그레 물든 볼로 대답을 대신하고 다른 공간 속에서도 서로를 떠올리면서, 마침내 둘만의 세계에서 함께 춤을 추는 순간까지, 사랑만이 우리를 휘감았던 때를 보여준다. 소녀와 소년의 입을 빌려, 김경수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저 넓은 우주에서 빙글빙글 춤을 출 거예요.” 그와 함께 여섯 권의 책을 만들며 지음(知音)이 된 편집자가 속뜻을 놓쳤을 리 없다. 겉표지의 출판사 로고도, 속표지 지면도, 과감하게 생략했다. “이 아이들의 감정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둘만의 춤을 췄던 시절, 그때의 사랑을 기억하느냐고 『처음, 사랑』이 물었다.

 

강경수는 명료한 주제, 다양한 그림 스타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다. ‘2011년 볼로냐아동도서전’ 논픽션 부문 라가치상 우수상을 받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  를 비롯해  『나의 엄마』 , 『나의 아버지』등 뭉클하고 묵직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커다란 방귀』 ,  『배고픈 거미』  , 『꽃을 선물하게』  같은 아기자기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품은 이야기를 다수 선보였다. 판타지 첩보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코드네임』   시리즈는 어린이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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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첫사랑’이라는 흔한 말 대신  『처음, 사랑』이라는 제목을 붙이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변별력을 주려는 의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사랑은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거니까, 이미지가 집중적이지 않고 많이 공유돼 있잖아요. 좁혀진 게 아니라 굉장히 넓은 의미처럼 돼버리는 느낌이더라고요. 그걸 피하려고 제목을  『처음, 사랑』 이라고 짓게 됐어요.

 

뒤표지에는 “어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두근대는 우리 심장을”이라고 쓰여 있죠.


이야기의 처음에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한테 편지를 주는데, 원래는 그 편지를 책 뒤에 넣으려고 했었어요. ‘너와 사귀게 된다면 나는 하늘을 날고 우주를 날 거야’라는 내용이 있었고요. 이미 책에서 두 사람이 함께 겪었던 일인데, 소년이 편지를 쓸 때는 ‘이런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쓴 거예요. 그 편지에 있던 또 다른 구절이 “어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두근대는 우리 심장을”이었어요.

 

『춤을 출 거예요』  의 주인공과 이번 책의 소녀가 동일 인물이죠?


네, 똑같은 아이예요. 『춤을 출 거예요』  와 『처음, 사랑』의 원본 같은 더미북이 한 권 있어요. 예전에 만든 책인데  『처음, 사랑』  과 흡사해요. 야구부 소년에게 생일 초대 카드를 받은 소녀가 좋아서 춤을 추면서 날아가는 이야기예요. 그 책은 출간은 되지 않았는데, 소녀의 이미지를 계속 가지고 있다가 만든 책이  『춤을 출 거예요』  였어요.  당시에 ‘아이들이 꿈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걸 열정적으로 찾아보고, 그 여정이 힘들지라도 그걸 고통이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꿈을 찾아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그때 저희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춤을 출 거예요』  를 만들면서 사랑 이야기를 한 번 전개시켜 보자고 생각해서  『처음, 사랑』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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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랑』에서 화면을 상하로 분할해서 두 개의 장면을 동시에 보여주셨어요. 평소 영화를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에서 힌트를 얻으신 건가요?


그렇죠. 머릿속에서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연출이 떠오르는 경우들이 많이 있어요. 카메라 워크나 교차 연출에 감명을 받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처음, 사랑』  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작품에서는 위아래로 프레임을 나눠서 마치 화면 두 개가 동시에 진행되는 느낌을 줬는데, 영화나 뮤직비디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연출이죠. 어떻게 보면  『나의 아버지』  의 발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의 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멀티비전처럼 네 개의 화면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있잖아요. 칸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네 개의 장면을 그려놨어요. 흡사 CCTV 화면처럼 보이는데, 그런 부분을 통해서도 아버지라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어요. 거기에서 조금 더 디테일하게 발전해서 들어간 게  『처음, 사랑』  이라고 볼 수 있어요. 완전히 독립된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것이 합쳐지고 벌어지고 다시 합쳐지는 식이죠.

 

새로운 시도를 하신 건데, 그 과정은 어땠나요?


되게 재밌었어요. 남들이 해보지 않았거나 내가 처음 해보는 것들에 도전할 때 항상 신나거든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과 비슷하거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내가 설계했던 감정이나 생각을 비슷하게 느끼게 되면, 작가한테는 굉장히 큰 기쁨이 있죠.

 

『나의 엄마』  에도 카메라 워크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었어요.


네, 뒷부분에 보면 카메라가 움직이듯이 그려진 장면이 있죠. 영화에서 롱테이크라고 하는 기법을 접목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는 화면이 움직이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림책은 장의 연출로 승부가 나니까, 그림책에서 영화적인 연출을 활용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영화에도 스토리보드라는 게 있잖아요. 그림을 그려서 연출하는 거니까 충분히 가능한 것 같아요. 최근에는 그림책 연출과 영화적인 기법을 접목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 같은데요. 그림책의 독자층이 계속 화장되는 추세니까 조금 더 어른들을 위한 연출법, 이야기, 주제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돼요.

 

『처음, 사랑』에서 소녀와 소년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해요. 분위기도 사뭇 다르고요.

 

분위기는 다른데 타임라인은 같아요. 같은 시간대의 다른 상황에 있는 거죠. 각자 다른 공간에서 상대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표현한 거예요. 둘이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는 게 뒤로 갈수록 조금 더 확실해지는 거죠. 그리고 분위기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고 싶었어요. 여자 아이의 이야기는 판타지스러운 분위기라고 할 수 있고, 남자 아이 쪽은 굉장히 현실적인 분위기인데요. 아직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의 판타지 세계만큼 들어가지 못한 거예요. 그런데 둘이 만나는 접점이 생겨버리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같은 공간, 같은 생각 속에 있게 되는 거죠. 그 부분이 서로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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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림책이 좋아서


『거짓말 같은 이야기』  는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인데요. 출간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이야기 자체에 조금 무거운 부분이 있다 보니까 많이 반려를 당했어요. 저는 그 책이 좋다고 생각했고 금방 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림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도 많이 했었어요. 당시에는 내 이름으로 된 그림책을 내는 게 인생 목표였어요.  『거짓말 같은 이야기』  말고도 여러 권의 더미북을 만들었는데, 잔뜩 싸들고 출판사에 찾아가서 보여드리고 반려당하고 했죠. 그러다 결국 책으로 나오게 됐는데 그때는 책이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던 시절이었어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으니까요.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굉장히 흥분해있던 상태였어요.

 

10년 이상 만화를 그리셨죠?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30대에 접어든 후였고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제가 만화가로 잘 풀렸으면 그런 생각을 아예 안 했을 텐데, 어떻게 보면 만화가로 실패를 한 거였거든요. 격주간지 만화 잡지에 연재를 했었는데, 2년 반 정도 하다가 중단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 실패를 돌이켜 보게 됐죠. 인생의 큰 변곡점 같은 게 온 거예요.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갑자기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 기분을 이겨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다시 만화를 그린다고 해도 그 기분을 또 한 번 느낄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때 나를 포기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계속 그림 그리는 일을 해야 될 것 같기는 해서, 학습지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는데요. 솔직히 그때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삽화를 계속 그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예전에 그림 그리던 때가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그게 꿈틀꿈틀 댈 때 그림책을 만난 거죠. 그냥 그림책이 좋아서 간 거예요. 만화 그리던 때를 완전히 막 내리고 2막으로 넘어간 거죠.

 

작품마다 그림체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시기도 하고요.


다양한 걸 시도하고 변화를 주는 걸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고요. 한 때 책을 굉장히 많이 냈었는데, 어느 순간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강경수라는 작가가 어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지, 독자들이 알고 그 스타일을 좋아해서 믿고 볼 때는 물론 좋은 점도 있어요. 분명히 안정감은 있어요. 그런데 저는 새롭고 참신한 걸 계속 보여드려야겠다는 압박감 같은 게 있었어요. 스스로도 다양하게 시도해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책의 컨셉에 최대한 맞는 방향을 찾아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죠. 현재 그림책의 흐름도 계속 살펴보고, 시대에 발맞춰 가는 것도 고민을 하고요. 낙서를 하더라도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스타일에 대한 여지를 항상 열어두고 있는 거예요. 어떤 날은 컴퓨터로도 그려보고, 어떤 날을 수채화로 해보고, 또 어떤 날은 오일 파스텔을 써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워밍업을 계속 해놓고 있다가 책에 맞는 스타일을 찾으면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요.

 

아무래도 익숙한 방식을 반복하는 편이 덜 힘들 텐데요.


힘들기는 하죠(웃음). 왜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그런데 해내고 나면 나름의 성취감이 있어요. 책이 한 권 나올 때마다 ‘지난 번 책과는 조금이라도 다르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구나’, ‘이야기의 스타일, 연출법, 주제를 이런 식으로도 한 번 해봤구나’ 하는 성취감이 있으니까요. 그게 작가한테는 보상 같은 거죠. 책이 많이 팔리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때 다음 책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도전이죠. 내가 이걸 해내느냐 못 해내느냐, 계속 시험해 보는 것 같아요.

 

『처음, 사랑』  에서도 여러 기법을 사용하셨죠?


그렇죠. 콩테로 그리기도 했고요. 흑연으로 만든 고체 물감 같은 게 있어요. 물에 개어서 쓰는데 수채화처럼 농담을 표현할 수 있어요. 그걸 이용해서 그린 부분도 있고요. 평소에 재료에도 관심이 있어서 눈 여겨 봤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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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재밌어하니까 열심히 안 할 수 없잖아요


『나의 엄마』  는 중국, 칠레, 멕시코, 대만, 일본 5개국에 수출됐어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많은 여성 독자들이 공감한 작품인데요. 책을 쓸 때, 아내 분의 영향을 받기도 하셨나요?


그렇죠. 아내가 아이를 대하는 감정을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했으니까요. 아이한테 쏟는 애정을 보면서 엄마는 저렇게 한다는 걸 간접적으로 느꼈고요.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조금 더 디테일하게 공부하게 됐어요. 그 부분에서는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죠. 그리고 아내를 보면서 여성이 어떻게 엄마가 되어가는지 많이 느끼게 됐어요.  『나의 아버지』  에서는 내가 아버지가 되는 순간을 그렸죠. 제가 아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을 그리고, 또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이렇게 했겠구나’라는 걸 예상하면서 만든 책이에요.  『나의 아버지』  ,  『나의 엄마』  두 책 모두 계속 순환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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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  에서는 ‘엄마’라는 한 글자만 반복되는데, 그것만으로도 이야기가 구성된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런데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봐도 문장이 굉장히 간결해요. 많이 정제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아무래도 그림책은 그림과 글이 같이 가는 거잖아요. 제가 봤을 때는 다 설명을 해주면 재미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림이 충분히 설명을 보충해줄 수 있다고 믿어요. 마치 서커스처럼, 이쪽에서 뭘 하나 던져주면 다른 쪽에서 받고 또 던져주고, 그런 식인 거예요. 서로 보완하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하면서 계속 가는 거죠. 어떤 때는 그림이 필요 없을 수도 있고, 또 글이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런 걸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야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더 리드미컬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하려고 계속 노력하죠.

 

올해  『코드네임 H』 ,  『코드네임 I』  ,  『처음, 사랑』  까지 총 세 권이 출간됐어요. 너무 바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그림책 같은 경우는 동시에 진행을 하지 않고요. 『처음, 사랑』도 거의 1년 정도 전에 만들어뒀던 이야기를 차근차근 수정하면서 나온 책이에요. 『코드네임』시리즈는 작업 시간이 6개월 정도 걸려요. 출간 몇 주 전까지도 작업을 해요. 저도 왜 그렇게 힘들어졌는지 원인은 모르겠는데(웃음), 아이들이 재밌어하니까 열심히 안 할 수 없잖아요.

 

『코드네임』 시리즈가 3년째 이어지고 있는데요. 계속 더 재밌어야 된다는 부담감을 느끼실 법도 해요.


처음 3~4권을 만들 때까지는 그런 두려움이 없었어요. 이야기할 것도 많았고, 생각해 놓은 인물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4권 이후부터는 약간 겁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이런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전 책에서 만들어 놓은 이야기와 캐릭터와 스토리, 개그 코드 같은 것들이 많아서 ‘이것보다 낫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죠, 그건 작가가 가지고 가야 할 부담감이니까요. 독자들이 재미없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달게 받아들여야죠.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재밌게 만들어야죠.

 

다음 작품이 궁금합니다.


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커다란 방귀』  같은 책이 나오는 건가요(웃음)?


아마 비슷한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더미북은 다 만들었고, 내년 3월쯤 나오지 않을까 싶고요. 그 다음에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독자들이 조금 더 책을 만끽했으면 좋겠어요. 제 이야기가 들어가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을 보고 독자들이 더 많은 이야기와 장면을 상상할 수도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제가 이 책은 어떤 책이라고 이야기를 해버리면 한계나 규격이 생겨버리는 것 같거든요. 그냥 저는 첫사랑에 관한 풋풋한 책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처음, 사랑강경수 글그림 | 그림책공작소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서툴고 어리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첫 두근거림!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까? 지금 두근대는 아이들의 처음 사랑, 어쩌면 한때 두근거렸던 우리 모두의 처음 사랑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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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상훈 “야구는 행위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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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일본으로, 이어 2000년 미국으로 진출했던 이상훈이 4년 반 만에 다시 한국행을 결심했을 때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야구하자!”였다. 팀에서 맡게 될 막중한 책임,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 등 고민할 것이 많았지만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로지 야구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밖에”(187쪽) 없었던 것이다. 이후 2004년,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하고 록밴드 리더로 변신, 다시 야구인으로 돌아오기까지 『야구하자 이상훈』  은 ‘야구하는’ 이상훈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모두 담아냈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  『시민을 위한 도시스토리텔링』  을 쓴 김태훈 작가는 “이상훈 선수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 때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야구하자 이상훈』  은 “결과물이라기보다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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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드와 홈 사이의 거리, 18.44


부제에 ‘18.44미터의 약속’이라고 되어 있죠. 18.44라는 숫자는 이상훈 선수가 사인에도 기재하는 숫자인데요. 여기에 담긴 생각을 들려주세요.


이상훈 : 그냥 제 닉네임이나 마찬가지예요. 주로 자기 팀 이름을 쓰거나 하는데요. 저는 마운드와 홈 사이의 거리인 18.44를 쓰게 된 거죠. 그것이 제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거예요.


김태훈 : 2002년 이상훈 선수가 한국에 돌아올 때 홈페이지에 썼던 글이 있어요. “18.44미터를 못 던질 때까지 마운드에 오르겠다.” 그때 LG팬들이 감동을 많이 받았고, 복귀전 때도 팬카드에 그 숫자를 써서 응원하고 그랬거든요. 18.44라고 하면 마운드과 홈의 거리지만 그때부터 LG팬들은 이상훈 선수를 떠올리게 됐죠.

 

이상훈 선수에 대해 쓰기로 했을 때의 일화가 흥미로워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신문 지면을 받고, 이상훈 선수에 대해 쓰기로 결정한 후 지인이 이상훈 선수와 연결해주겠다고 해요. 그리고 다음날 곧바로 이상훈 선수에게서 전화가 왔잖아요.


김태훈 : 이상훈 선수와 연락할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신문사에서도 잘 못 찾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이상훈 선수의 부인 분과 잘 아시는 지인께서 이 이야기를 전해주셨던가봐요. 근데 그 얘기를 듣고 이상훈 선수가 제게 바로 전화를 한 거예요. 이상훈 선수 입장에서는 ‘전화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웃음) 너무 간단한 거죠.

 

이상훈 선수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 전부터 갖고 있었나요?


이상훈 : 없었어요.

 

그렇다면 신문 인터뷰나 책 출간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어요?


이상훈 : 인터뷰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고요. 책은 고민을 조금 했어요. 나에 대한 것을 책으로 남기는 것이기 때문에요. 인터뷰도 그렇지만 책은 더 진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고, 무게감이 조금 달랐죠.

 

김태훈 작가님은 책 쓴 소감을 “행복했다”고 제일 앞에 밝히셨어요. 왜일까요?


김태훈 :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는 캐릭터를 쓴다는 게 굉장히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구성하는 거잖아요. 오해 받고 있는 부분도 있고, 덜 알려진 부분도 있고, 바로잡을 부분도 있으니까요. 가령 2002년 플레이오프 때, 추운데도 이상훈 선수가 반팔을 입고 경기를 했잖아요. 당시 기사는 그냥 반팔 입고 경기했다는 식으로 나왔었거든요. 그걸 정확하게 “언더셔츠의 소매를 잘라 반소매 차림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수정했죠. 전체적으로 책 내용에 대해서 이상훈 선수도 마음에 들어 해서 기분 좋게 책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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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상훈 선수, 김태훈 작가

 

 

그 이상훈은 지금도 그대로 이상훈


서술 방식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은 소설처럼 읽히기도 하거든요.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텔링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김태훈 : 이 사람이 그때 왜 그런 말을 했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가 쉽게 취할 수 있는 건 ‘그 사람 원래 그래’ 같아요. 낙인을 찍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꼬리표가 붙어버린 상황에서는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어요. 저는 왜 이상훈이라는 사람이 중요한 기로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치 영화 <조커>에서 그 조커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조커가 됐는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이 몇 번 있었거든요. 2002년에 준우승을 하고도 이후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부분이나 2003년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광환 감독이 경질된 부분이 같은 것이 그렇죠. 물론 프로는 구단의 결정에 따라야 해요. 그렇지만 과정에 있어서 최소한의 납득이 되는 의사소통이 없었잖아요. 그런 부분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2004년 당시에 마운드를 떠날 결심을 하면서 사흘을 앓았다는 대목이 나와요. 당시 은퇴를 만류하기 위해 암 투병 중인 팬 분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고 하고요.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는 상황들이 있었어요.


이상훈 : 문 열어주기 싫었어요. 아무리 팬 분이라도 오셔서 저를 달랜다고 될 일이겠어요? 한 사람의 인생이 좌우되는 결정인데요. 그래도 결국 집 안으로 모셔서 그분과 얘기를 했고요. 오히려 제가 납득을 시키고 보내드렸죠. 그런 상황이 힘들었어요.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든 일들이 자꾸 온 거예요. 다른 사람들을 제가 설득을 시키고, 납득시켜야 했죠. 저는 그만둘 때 이미 여태껏 야구를 하면서 겪은 것보다 지금 그만두면서 겪는 것이 더 힘들겠다, 그런 생각했었거든요. 이미 각오를 하고, 은퇴를 결심한 거였어요. 그 결정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서 겪어야 했던 힘든 과정 중 하나였던 거예요. 


김태훈 : 그 상황에서 야구계 쪽으로 조금만 오면 더 혼란스러울 거잖아요. 미안하기도 하고요. 특히 SK쪽 팬들이나 감독, 선수들에게는 미안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팠는데요. 당시 조범현 감독이 이상훈 선수를 따로 불러서 “차라리 (시즌 끝나고) 나와 함께 그만두자”고까지 말씀을 하셨대요. 그렇게 어렵게 한 결정이니까 이후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수 없었던 거죠.

 

그럼에도 은퇴를 결심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상훈 : 그동안 많이 해온 이야기인데요. 저 나름대로 너무 많은 고통이 있는 상태에서 LG에서 SK로 넘어왔고요. SK에서 야구를 하는데 야구선수 같지가 않았어요. 야구공을 던지는데 야구선수 같지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연봉을 받으면서, 또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에요. 이건 그 사람들을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그래서 그만뒀어요.

 

책에 이상훈 선수가 은퇴한 2004년부터 2012년까지의 이야기를 상세히 기술하려고 했다고 밝히셨잖아요. 이유도 들려주세요.


김태훈 : 그 시기는 알려진 게 드물어요. 개인 레슨장도 운영했고, 여자야구팀 감독도 했는데요. 팬이나 이상훈 선수를 좋아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그 기간이 일종의 블랙박스이기 때문에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이상훈 선수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 때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이상훈은 지금도 그대로 이상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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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은 팬들이에요


2011년 만난 여자야구팀 ‘떳다볼’의 감독 시절을 책에는 “치유의 시간”(273쪽)이라고 밝히고 있어요.


김태훈 : 이상훈 선수가 떳다볼 이야기를 참 길게 했어요. 저도 그 이야기가 인상 깊어서 떳다볼 팀 선수들을 따로 만나 인터뷰 하기도 했죠.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선수들이 들려준 이야기예요. 선수들도 말해요. 2012년 ‘익산시장기 전국여자야구대회’에서 대단한 팀워크와 야구에 대한 희열을 느꼈다고요.


이상훈 : 저와 성별이 다른 사람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보는데 색달랐어요. 제게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는데요. 야구는 다 똑같다고 얘기하지만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차원도 다를 수 있고, 대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지금 생각나는 건데요.

 

연습을 거의 실내에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한 번은 야구장을 빌렸어요. 근처에서 밤에 술을 먹고 있는데 눈이 오는 거예요. 아침까지 오면 쌓이겠더라고요. 그때 ‘눈이 오면 선수들이 무슨 마음으로 야구장에 올까’ 싶어서 같이 술 먹던 동생과 야구장 옆에 차를 세워두고 잔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 야구장에 쌓인 눈을 다 치웠어요. 거의 내야 뒤쪽까지요. 그렇게 제 마음을 보여준 거예요.

 

그토록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떳다볼 선수들도 그렇고, 고양 원더스 투수코치 시절 만난 선수들도 그렇고요. 이상훈 선수도 마찬가지죠.


김태훈 : 이상훈 선수와 인터뷰를 할 때 제일 먼저 들려준 이야기가 조상진 감독님 이야기였어요. 이상훈이라는 사람을 볼 때 그 부분이 아주 중요한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야겠다거나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거나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야구를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야구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거죠. 그 마음이 떳다볼 선수들을 만나면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나 싶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어린이들도 그런 야구를 즐겨야 하지 않아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야구를 접했기 때문에 이상훈이 다른 선수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프로는 물론 돈을 받고 하는 거지만 돈을 받았으니까 하는 것 이상이 있잖아요. 돈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요. 그때 팬들은 그 선수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죠.

 

만약 조상진 감독과 야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상훈 : 모르죠. 그렇지만 학교에서 야구를 하는 선수와 저희 분위기가 다르긴 했어요. 제가 그 팀에 있어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게임을 해보면 알잖아요. 우리는 자유로웠고요. 게다가 감독이라는 사람이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팀 성적이 아니었어요. 우승도 해봤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우연한 재미였고요. 산에 가서 김치찌개 끓여 먹고, 도룡뇽 알도 잡아먹고, 홀딱 벗고 수영하던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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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행위예술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셨는데요. 이상훈 선수가 생각하는 야구의 예술적인 면은 어떤 건가요?


이상훈 : 본인 것을 갖고 있어야 해요. 자기만의 어떤 것. 전체적으로 보면 옛날에는 예술인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최근에는 그냥 틀에 박혀서 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무한한 연습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나오는 게 야구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순간적인 것이 자기도 모르게 나올 때가 있거든요. 그런 게 옛날에는 많았다고 봐요. 투박하지만 말이죠. 옛날에는 야구를 했고, 지금은 게임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런 식으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 내막이 있는 거죠.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도 좋고, 공 회전수가 전광판에 찍히는 것도 좋아요. 선수의 행위가 숫자로 구분되어서 연봉과 연결되잖아요. 프로는 나를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긴 한데요. 점점 그 쪽으로만 간다는 게 조금 아쉬울 뿐이에요.


김태훈 : 이상훈 선수의 야구 해설을 들어보시면 조금 달라요. 보통 해설자 분들은 어떤 상황이 오면 그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한 매뉴얼을 말씀하시죠. 요즘 워낙 ‘데이터야구’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상훈 선수는 투수가 마운드에 서서 하는 행동 얘기도 많이 해요. 결정적인 안타를 맞았거나 실투를 한 다음에 투수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를 많이 보거든요. 사실 그것이 선수 입장에서는 더 중요할 수 있는 거죠.


이상훈 : 예전에도 데이터야구를 했었는데요.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었어요. 참고는 되는데요. 결국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만약 이 투수가 바깥쪽 다음 몸쪽을 던졌다가 바깥쪽 나가는 공을 던지면 헛스윙 삼진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헛스윙이 안 될 수도 있고, 안타가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또 저는 반대 투구도 되게 좋아하는데요. 반대 투구를 던졌을 때 어떻게 던졌느냐에 따라 사실 안 맞을 가능성이 훨씬 많아요. 그런데 반대 투구를 해서 맞잖아요? 그러면 아주 큰 실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분명한 건 이 투수는 반대 투구로 승리를 거뒀던 경험이 있다는 거예요. 또 정말 중요한 것은 팬들이에요. 팬은 치킨에 맥주 마시면서 선수들이 치고, 달리고, 뛰는 걸 원하잖아요. 기록에 관심 두는 팬도 있겠지만 그 비율은 인간적인 것보다 낮다고 생각해요.

 

이상훈 선수가 후배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은 무엇인가요?


김태훈 : “공을 던져라”라는 말일 거예요. 간단한 말이지만 많은 의미가 있죠. 또 처음 만나서 들은 얘기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이 ‘유니폼 입은 사람’이라는 말이었어요. 유니폼을 입었을 때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이상훈 선수에게는 정확하게 있는 거죠. 유니폼 입은 사람의 대척에 있는 것이 ‘넥타이 맨 사람’이고요.

 

공을 던지는 상황은 천차만별이다.(중략) 요컨대 위기 상황에 볼 카운트가 몰려 있어도 투수가 위축되지 않고 원하는 공을 던질 때 비로소 ‘공을 던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299-300쪽)

 

이 책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도 묻고 싶어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으면 하나요?


김태훈 : 이 책은 결과물이라기보다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을 통해 과거 이상훈 선수에게 감동했던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이상훈을 만나보면 좋겠어요. 기억을 제대로 해주는 거죠. 그게 제대로 된다면 다음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서로 소통하면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상훈 : 그냥 있는 그대로 읽어주시면 돼요. 있는 그대로 쓴 거니까요.

 


 

 

야구하자, 이상훈김태훈 저 | 소동
이상훈은 불꽃같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뒤처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대했다. 최고의 자리를 추구했지만, 낙오자도 자기 존엄을 지키며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따뜻한 리더십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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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장 “애매하지 않은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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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장(본명 장성은)은 다양한 언어로 자신을 소개한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선보인 6개 국어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다채롭다. 프랑스에서의 유학 경험으로 처음 알려졌던 그는 데뷔 EP <Colors>에선 통통 튀는 매력으로 노래와 랩을 오가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에선 월요병이 두려운 직장인들의 마음을 읽었다. 에드 시런이 활용하던 루프 스테이션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급기야는 인디 싱어송라이터들과 함께 세기말 콘셉트의 걸그룹 '치스비치'를 조직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바삐 움직이게 하는 걸까.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스텔라장은 이 다양한 팔레트의 비결을 '자연스러움'이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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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근황은 어떤가.

 

작업 및 스케줄 소화 중이다. 최근엔 치스비치 겨울 싱글을 작업하고 있다.

 

치스비치는 치즈, 스텔라장, 러비, 박문치가 모여 결성한 걸 그룹이다. 9월 프로젝트 싱글 'Summer love'를 발표했는데.

 

단기 프로젝트였는데 하다 보니 다들 너무 재미있어했다. 본업 할 때와 다른 에너지도 신난다.

 

지난 8월 치스비치의 막내 박문치와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누가 먼저 제안한 프로젝트인가.

 

5월 말쯤이었나. 알지도 못하는 러비에게 '언니, 걸그룹 하실래요?'라는 문자가 왔다. 그게 치스비치의 시작이다. 러비와 나는 달총과 친분이 있었고, 일단 셋이 모이고 나자 문치와 같이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생겼다. 문치는 사실 최근 알게 된 동생이다.

 

프로듀서 박문치가 처음 모은 프로젝트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문치는 처음에 뮤직비디오, 사진 촬영 등 아무것도 몰랐다. 언니들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싶었는데 어느 순간 커버를 찍고 있던 거지 (웃음).

 

인디 싱어송라이터들이 치스비치처럼 명확한 콘셉트 아래 걸그룹으로 활동한 것이 흔치 않다. 작업 과정은 어땠나.

 

이 프로젝트가 각자의 이름을 걸고 멋지게 해 보자는 취지였다면 어려웠을 거라 본다. 각자 모두가 정말 재밌자고 모인 터라 작업 과정에서 장애물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많이 의견을 낸 멤버는 누군가.

 

의견은 다 많이 냈는데 콘셉트가 달랐다. 나는 아무 말이나 다 하는 타입. 드립 욕심도 많고 아이디어도 막 냈다. 달총이 그 생각을 정제해서 조율하고, 러비가 현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았다. 문치는 묵묵히 편곡. 하루 만에 편곡 과정을 마무리해야 해서 부담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노래'에 모두가 만족했다.

 

실제로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등에서 치스비치에 대한 팬들의 애정이 상당하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우선 곡을 낼 때마다 리더를 바꿔 시즌제로 간다. 지금 리더는 치즈고 다음 싱글이 나오면 내가 리더다. 그다음 싱글은 러비, 마지막은 박문치... 이렇게 한 바퀴는 돌아야겠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1년에 두 곡을 발표하기로 했다. 여담으로 1대 리더인 치즈는 본인이 리더라는 사실을 자주 잊더라 (웃음).

 

치스비치는 핑클, SES 등 1990년대 말 걸그룹의 콘셉트가 확실한데, 스텔라장이 생각했을 때 가장 콘셉트에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멤버는 누구인가.

 

주변에서 듣기로는 '이 사람 진짜 옛날 사람 같다'는 멤버가 한 명 있다는데, 그게 나다(웃음). 혼자 그렇게 입고 다니기 부끄러운 콘셉트인데도 모이면 좀 덜 부끄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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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이 나올 때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최근 들어 유튜브를 중심으로 '온라인 탑골공원'이 화제 아닌가. '가요톱텐'과 '인기가요'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인지 뮤직비디오에 정말 웃긴 댓글이 많다. 정말 예전에 있던 그룹이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계시고, '전설의 가요톱텐 1위 곡'이다, '치스비치 해체할 때 울고불고 난리였다.' 등등...

 

이런 복고 흐름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을 테다. 온라인 탑골공원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아무래도 문화를 주도하는 세대가 2~30대 아닌가. 정신없이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세대인 만큼 어떤 하나가 유행으로 떠오르면 확 끌리는 경향이 보인다. 사실 '온라인 탑골공원'과 '치스비치'가 완벽히 우리가 겪었던 문화는 아니다. 살짝 위, 문치는 아예 갓난아이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어 치스비치가 이만큼 많이 관심을 받는 것 같다.

 

스텔라장이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1990년대 노래보다는 2000년대 초반 음악을 많이 들었다. 동방신기, 신화, 주얼리, SS501... 제일 좋아한 팀은 지오디다. 태어나서 제일 처음으로 산 CD가 지오디의 앨범이다. 여담으로 치스비치의 치즈가 지오디 팬클럽 '팬지(Fan god)'였더라.

 

치스비치 프로젝트 이전에도 옛 가요의 느낌을 내려 노력했다.

 

20대부터 1990년대 한국 가요,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을 거의 숭배하듯 들었다. 토이, 이승환, 김경록, 김동률... 신기하게도 예전엔 토이가 유희열의 프로젝트 이름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외국 유학 시절 입시 공부로 힘들 때 <유희열의 스케치북> 프로그램으로 처음 접한 인물이었고, 그의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토이의 음악을 가장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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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을 소원으로 꼽기도 했는데 정말 출연하게 됐다.

 

멍했다. 엄청 좋거나 들뜨지 않았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 나는 보통 말하는 대로 잘 이뤄지는 편인데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됐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후 윤상도 만나고 이적도 만났다. 물론 자연히 '그렇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도 따라왔는데, 그로부터 여러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나만을 위해 해온 음악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또 위로를 얻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당시 그 회차에서 노래했던 '뜨거운 안녕'의 6개 국어 버전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였다.

 

뜻깊었다. 다만 어느 정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날 2018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이 있던 날이었다. 중계 관계로 원래 시간에 방영되어야 할 프로그램이 한 시간 늦게 나갔다. 때마침 축구도 이겨서 사람들이 계속 TV를 틀어뒀고, 내가 노래하는 모습이 더 화제가 되지 않았을까. 아이디어를 내주신 프로그램 작가님에게 감사했다.

 

6개 국어 아이디어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작가의 작품인 건 몰랐다.

 

tvN <문제적 남자>에서 6개 국어 구사자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는데 작가님이 그걸 보고 제안을 주셨다. 처음엔 다른 노래를 준비했는데, '본인이 유희열의 팬이시니 토이 노래를 하시는 게 어떨까요?'라고도 말씀해주셨다. 토이 메들리를 만들었더니 너무 복잡해서 고민하다가 나온 게 '뜨거운 안녕'이다. 마지막 6개 국어로 인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더라.

 

'뜨거운 안녕' 이전에도 네이버 뮤직의 '디깅 클럽 서울' 프로젝트 싱글 '아름다워' 뮤직비디오 역시 유튜브에서 소소한 화제를 모았다.

 

뮤직비디오로 주목받기 쉽지 않은데 레트로적인 요소들이 잘 묻어난 것 같다. 보통 이런 프로젝트가 처음에 잘 되기 쉽지 않다. 아무래도 대중은 프로젝트, 참여 같은 경우 아티스트의 커리어로 포함하지 않더라. '아름다워'도 처음부터 잘 된 게 아니라, 야금야금 잘 된 스테디셀러같은 곡이다.

 

윤수일 밴드의 '아름다워'를 젊은 뮤지션 스텔라장이 선택한 것도 의외다.

 

온스테이지 담당자가 메일로 10곡 정도의 후보곡을 보내줬다. '아름다워'는 그중 포함돼 있었던 곡이다. 최종적으로는 '단발머리'와 '아름다워' 중 고민했는데, '단발머리'는 이미 많이 커버된 곡이라 '아름다워'를 골랐다. 윤수일 밴드의 음악을 잘 알진 못했지만 계속 영상을 보며 어떤 느낌을 내야 할지 연구했다.

 

젊은 음악 마니아들이 오래된 레코드 판을 구입하고 옛 노래를 듣는 등 레트로의 경향이 선명히 드러나는 요즘이다.

 

LP를 직접 사진 않지만 집에 판은 많다. 퀸, 비틀즈, 이문세... 가끔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 신기한 느낌을 받는다. 집에 있는 턴테이블이 USB 형식으로 전원이 공급되는데, 보조배터리를 연결해서 정말 옛날에 나온 LP를 재생하고 있노라면 '이게 무슨 시대의 산물이지?' 싶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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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스텔라장은 가요계에서 최신의 장비 루프 스테이션을 수준급으로 활용하는 아티스트기도 하다.

 

회사 동료가 라이브 무대에서 오토튠을 활용하기 위해 구입한 기기로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를 커버한 것이 처음이다. 한 번 해보니 기계가 성에 안 차더라. 루프가 ABC 밖에 없고 기능도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 루프가 다섯 개인 새 장비를 사서 활용 중이다. 이렇게까지 잘 쓸 줄은 몰랐다.

 

에드 시런은 루프 스테이션이라는 기기를 대중에게 처음 알린 아티스트 아닌가.

 

에드 시런을 좋아하긴 하는데 'Shape of you'가 최고의 곡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인기 있는 곡이라 선택했는데, 당시엔 에드 시런이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한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 주한 프랑스 문화원이 개최했던 '프랑코포니 음악 투어 <마르스앙 폴리>' 무대에서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했을 때 반응이 좋았다. 함께 공연했던 스위스 출신 아티스트 파네드폴 역시 루프를 잘 다룬다.

 

<문제적 남자> 출연 후 스텔라장을 수식하는 단어는 '학구파'였다. 음악보다 외적인 요소로 알려져 속상하지 않았나.'

 

저렇게 공부해서 왜 음악 하냐'는 댓글이 정말 많았다. 우선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극복하고 음악으로 인정받는 것 또한 나의 몫이라고 여겼다. 또 하나 기억나는 댓글은 '어차피 음악으로 성공하긴 힘들 것 같음'이었다. 그 댓글을 캡처해뒀다. 출신 대학, 유학 경험 대신 당당히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과거도 지금도 '넘어야 할 산'으로 생각하는지.

 

한때는 과거를 부정하려고도 해봤다. 지금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이것도 나를 구성하는 희소가치 아닌가. 내 자아의 굉장히 큰 부분을 구석으로 밀어 숨겨 둔 느낌이었다. 역으로 '왜 불어로 노래할 생각을 안 했지?'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어린 왕자>를 불어로 읽은 영상이 인기를 얻는 걸 보고 더 그런 마음을 굳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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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유학 경험을 가리고 보면 스텔라장의 노랫말은 상당히 한국 청년들의 생활을 잘 묘사하고 있다.

 

생활 밀착형이라기보다는 '생활 밀착형 노래’가 잘 돼서 그런 인식이 생긴 것 같다. 순간순간에 느낀 감정을 담아내려 한다. 우울할 땐 뭘 안 해서 우울한 노래가 별로 없다. 오히려 우울 후에 찾아오는 분노, 다짐 등의 내용이 많다. '어제 차이고'도 그렇고, '환승입니다'도 그렇고. 그런데 요즘 그때 썼던 노랫말을 다시 보는데... 지금은 못 할 날 것의 감정이라 좀 놀랐다(웃음).

 

최근 스텔라장의 감성을 담은 작품으로는 올해 3월 발표한 <유해물질> EP를 찾으면 되나.

 

'어떻게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는 그렇다. '일산화탄소', '알콜맨'은 과거 써 둔 노래다. 여담으로 <유해물질>을 발표하면서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Colors>,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을 발표할 땐 그만큼의 감정은 없었다. 특히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을 낼 땐 그런 이미지로 내가 굳어지는 게 염려되기도 했다.그런데 싱글 'Yolo'를 보니 대중은 내가 밝은 노래를 할 때 더 좋아해 주시더라. 밝고 맑은, '미세먼지 한 번 먹지 않은 목소리'라는...(웃음).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꿈과 희망보다 현실을 믿고 사는 사람인데.

 

'어제 차이고', '환승입니다' 등에서 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랩에 대한 애정은 여전한가.

 

이미 많이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 흐름을 못 따라가겠다.(웃음) 날 것의 감정을 표현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 예전인 패기도 넘쳤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 멀리 가버리게 되면 나중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그래도 여타 아티스트들에 비해 아직은 내가, 날 것의 감정을 좀 더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평소의 모습이나 무대, 인터뷰할 때의 내 자아가 분리되지 않는다. 스텔라장이어야 하는데 장성은이 자꾸 튀어나온달까. 아티스트로의 자아가 평소에 등장할 때도 있고, 평소의 자아가 아티스트일 때의 나에게 나타나기도 한다.

 

스텔라장은 본인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아티스트의 인스타그램, 브이 라이브(Vlive),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로 공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냐는 질문을 건네자 '루프 스테이션 튜토리얼, 불어로 시 읽기, 곡 작업기, 6개 국어 노래하기' 등 셀 수 없이 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영상 편집이 서툴러도 본인이 직접 해보는 것이 좋다는 그의 모습에선 감출 수 없는 끼와 재능이 선명했다.

 

'유튜브로 팬이 유입될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꿈이 있다면 외국 곡 커버 영상을 올려서 해외 팬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 소박한 바람은 곧 현실이 됐다. 10월 18일 스텔라장이 유튜브에 업로드한 픽사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의 OST 'Le festin' 커버 영상은 11월 7일 현재 기준 93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8만 6천 개의 '좋아요'와 더불어 댓글 난에는 3200개에 달하는 세계 각국 음악 팬들의 메시지가 달렸다. 스텔라장의 꿈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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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음악이 있다면.

 

브루노 메이저(Bruno Major)의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 음악 중에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속물들> 음악을 최근 많이 들었다.

 

인디 팝, 랩, 루프 스테이션, 걸그룹 등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는 스텔라장이다. 향후 해보고 싶은 음악적 시도는?

 

오케스트라가 가미된 대곡이다. 전조가 많고 화려한 스타일, 뮤지컬, 디즈니 OST 풍의 노래를 좋아한다. 워낙 제작 과정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섣불리 시도하기가 어렵다. 트렌드에 맞지도 않다. 다행히 기회가 되어 폴킴, 멜로망스의 정동환과 함께 '보통날의 기적'을 작업했다. 불어로도 노래 불러보고 싶다. 영어보다 불어를 더 잘한다(웃음).

 

마지막으로 스텔라장이 대중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러 가지를 하지만, 애매하지 않은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다.

 

 

 

인터뷰 : 김도헌, 장준환, 조지현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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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랑 "번뜩이는 순간이 하루를 버티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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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은 노래와 글과 영화를 만든다. 만화를 그리고 책을 펴낸다.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라는 프로젝트로 암에 걸린 친구의 치료비를 보태는 프로젝트도 기획했다. 요즘은 때에 따라 뮤지션으로, 작가와 감독으로 소개하는 이름 앞에 ‘자영업자’라는 말이 추가되었다. 창작도 그에게는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일에 대한 대가를 조금 더 명확하게 요구하기 위해서다. 


그런 이랑이 처음으로 소설집을 냈다. 제목은 『오리 이름 정하기』  .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을 것만 같은 사람이지만 작가의 말에는 이야기를 만드는 직업인으로서 겁에 질리는 순간에 대해 말했다.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자주 듣는 한국의 여성 창작자는 종종, 아니 자주 자신의 결과물에 자신감을 잃는다. 그래서 더욱 무기력을 이겨내고 소설을 썼다. 겁에 질리지 않고 쓰기 위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존중할 수”(266쪽)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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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가치를 믿기까지


SNS에 ‘섭외 환영, 인터뷰 환영, 도움 환영!’이라고 썼어요. 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어요.


물건을 만들었으면 팔아야죠. 책 파는 기간이에요. (웃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이후로 인터뷰 제안이 많았었죠. 인터뷰에 대해서 대가 없이 노동하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인터뷰할 때마다 매체에 비용을 요청하고 있어요. 보통은 돈 이야기가 오갈 때 메일만 주고받아도 많은 걸 알게 되잖아요. 다짜고짜 돈 달라고 하는 건 아니고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차근차근 말씀드려요. 집필비에 대해서는 가격 측정이 되어 있지만, 홍보로 인터뷰를 할지라도 홍보 활동을 하는 노동력에 대해서 가격 책정을 해 달라고 말씀드리는 거죠.


이메일 담당자를 따로 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메일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서 작업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더라고요. 이미 정해진 일뿐만 아니라 거절해야 할 일과 미뤄야 할 일도 이메일로 답장해야 하니까요. 몇 년 동안 혼자 해 오다가 올해부터 다른 분께 맡기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영업자’라고 표현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좋아하는 일이라면 돈을 안 줘도 된다는 인식 때문에 돈을 못 받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때부터 다른 표현을 찾았어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때도 있었고, 이야기 제조업자라고 말할 때도 있었고요. 예전에는 아티스트라는 말을 고집할 때가 있었어요. 예술가가 다른 직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나중에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예술가라고 우월감을 가지는 분위기에 동조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반대로 예술가라고 하면 비용을 주지 않고 후려치거나, 여러 가지 사회적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해주기도 해요. 아티스트라는 말 안에 너무 많은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많이 쓰죠. 자영업자라고 하면 조금 더 직업에 가깝다는 느낌이 있어요.


맞아요. 그래서 보통 작업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업무 중이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토크 행사에서 시간이 끝나고 말을 걸면 농담처럼 셔터 내렸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작가의 말에 ‘김경형 이야기책’을 기다린다고 쓰셨어요. 김경형은 어머니 이름이에요. 어머니가 겁에 질리지 않았다면 세상에 더 많은 ‘김경형 이야기책’이 있을 거라고요.


작가의 말에 뭘 써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편집자님께서는 어떤 독자들에게 읽히면 좋겠는지 생각하고 쓰면 된다고 하셨는데, 뭔가 만들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걸 봐야만 하고 사야만 한다고 말하기에는 항상 부끄럽거든요. 계속 결과물을 내면서 이게 가치가 있는지 물어보면 한 번도 확신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박강아름 감독님이 자신이 한 작업을 두고 너무 가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아직 잘 믿진 못하지만 가치가 있다고 믿어 보자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텐데, 우리가 한 명 한 명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믿어주면, 좀 더 편하게 글도 쓰고 창작을 즐거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새 책이 나오는 날, 작가의 말을 SNS에 올렸어요.


설리 씨 사망 기사가 나온 날이었어요. 그날 전에도 설리 씨 SNS 라이브 방송을 본 적이 있거든요. 많은 사람이 실시간 댓글을 달고 있는데, 그 분이 말 한마디 없이 댓글을 보는 표정만 몇 분 동안 나오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방송을 껐어요. 그분도 그렇고 여러 사람이 자기 삶에서 하는 일들이 가치 있다고 믿으면 좋겠는데, 겁을 먹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많아요. 하고 싶은 걸 했을 때 칭찬보다는 공격 한 줄이 평생 기억에 남게 되기도 하고요. 작가의 말에 썼던 엄마의 삶에도 분명 그럴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자기 기록을 다 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 작품을 보면서 힘이 되었다는 분도 많을 거예요.


먼저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믿어야죠. 저 역시 하고 싶은 걸 하면 안 된다는 환경에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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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행위가 주는 쾌감


대본, 독백, 대화 등 다양한 형식이 녹아 있어요.


소설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대본 형식은 익숙한데, 소설처럼 보이게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다른 분들 소설을 읽었어요. 말 따옴표를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하고 다들 다양하게 쓰더라고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구나 싶었어요.


벌어질 법한 상황을 이야기로 썼어요. 이야기 안에 현실에 있는 장면을 담았을 때의 효과는 무엇일까요?


「이따 오세요」와 「섹스와 코미디」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아마 현실에서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행동을 할 수는 없겠죠. 그때 작은 복수라도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시원함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따 오세요」에서 세탁기 호스를 자르는 장면에서는 원초적인 후련함이 느껴졌어요.


누군가 주인공이 왜 호스를 잘랐는지 너무 궁금하다면서 새벽에 DM을 보낸 적이 있어요. 자취를 해보셨다면 세탁기 호스를 다시 사러 철물점에 가야 하고, 수도랑 호스랑 맞게 설치하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알 텐데 물어보시더라고요.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주로 책에 썼는데, 예술 하는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신기하거나 낯선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상상해서 쓰는 걸 잘 못 해서, 경험해보지 않은 이야기를 써보고는 싶어요. 제가 잘 모르는 상황을 쓰면 재미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차라리 더 황당하게 신들이 나오는 회의장을 그리는 거죠.


앨범 <신의 놀이> 때도 그렇고, 신을 자주 불러내요. 삶에 대해서 신에게 ‘나는 왜 살죠?’ 질문하면 끝이 없잖아요. 빠질수록 답도 없고 허무감만 드는데,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는 굴레에서는 어떻게 벗어나고 있나요?


아직 못 벗어난 것 같아요. 그 질문은 너무 무겁고 저를 매일매일 따라다녀요. 매일 살아있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힘들거든요. 다만 다들 이유도 모른 채 괴롭게 사는 가운데 가장 공통화된 코드로 농담을 할 때, 권력이나 돈, 신이나 부자를 뒤집어서 개그로 쓰면 짜릿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사람들과 이야기로 같이 대화하고 상상하는 행위가 주는 쾌감이 커요. 재미있고 신기하고 번뜩이는 순간으로 그날 하루를 살아나가는 것 같아요.


「똥손 좀비」는 드라마 촬영 현장이 배경이에요. 당한 사람은 많지만 정작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없어 보여요.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까’라는 대사처럼요.


기업은 얼굴이 없어요. 돈과 권력이라는 이미지만 있죠. 비슷하게나마 회사를 대표하는 담당자는 있겠지만, 그 사람이 기업은 아니에요. 영화나 드라마, 방송 촬영장에는 행복한 사람이 없어요. 드라마에서는 오늘도 여전히 스텝들이 과로사 하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현장에서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는 거예요. 너무 싫지만 허겁지겁 일을 끝내야 하니까 썩은 얼굴로 일하는 거죠. 일손을 멈추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도 그걸 못해요. 재난 상황이 되거나 멸망하거나, 좀비 떼가 나타나는 상황이 되어서야 멈추죠. 멈추지 못하는 건 모두 개인의 선택일 텐데, 모두가 멈추자고 선택하면 좋겠다는 희망만 가지고 있어요.

 

「하나 둘 셋」은 좀비 이야기로 시작해요. ‘좀비가 되자!’고 말하면서도, 막상 세상이 멸망한다면 정말 열심히 살아남을 것 같다는 생각할 때가 있어요. 어쩌면 ‘죽어 버리자’는 말이 살고 싶다는 뜻처럼 비치기도 하고요.


「하나 둘 셋」에서는 죽고 싶다는 문제보다는 왜 항상 인간의 관점으로 그리는지가 가장 큰 질문이었어요. 외계인 침공 영화나 귀신 영화를 보면 기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무서운 일을 저지를 거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는 영웅이 나타나서 다 이기고 인간이 최고라고 하죠. ‘이쪽 입장은 왜 안 들어?’라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사회에서도 자기가 모르고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존재가 나타났을 때, 예를 들어 성소수자가 나타난다면 난 모르겠고 무서우니까 꺼지라고 하잖아요. 사람들이 쉽게 자기가 알고 있는 개념을 벗어난다 싶으면 그걸 공격하는 행태가 항상 불편했어요. 그걸 어떻게 하면 이야기에 버무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외면으로 표현할지, 글로 할지, 발언으로 할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도구에는 구애받지 않는 것 같아요. 글이든, 음악이든, 영상이든요.

사실 말만 하면 제일 좋아요. 음악이나 글은 다듬어야 하잖아요.


퇴고를 많이 했나요?


엄청 많이 했어요. 편집자님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거의 교정지 전쟁을 벌였죠. 소설집을 처음 내보는 거라, 이야기 흐름 전체를 뒤흔드는 코멘트를 받으면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몰랐었어요. 편집자님이 제시한 방향을 그대로 쓰면 그분 글이 된다고 생각해서, 조언을 듣고 난 뒤에 저만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장한 느낌이었나요?


괴로우면서 재밌었어요. 평소에도 일하면 타협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해서 저도 당연히 제 이유가 있지만, 상대방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또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서 고쳐나가는 과정이 재밌어져요. 낯선 것들을 대할 때 이 방식을 취하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생각하는 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제일 큰 능력인 것 같아요. 이런 걸 사람들과 같이하고 싶어요.


「깃발」의 마지막에서는 주인공이 예술이라고 적힌 깃발을 꽂아요. 예술이 종교와 믿음의 자리를 대체한 것 같았어요.


종교가 믿음을 근거로 해온 일들을 다 후려치고 싶은 마음 반, 그리고 그 믿음이 진짜일 수도 있다는 마음 반이 섞여서 썼어요. 진짜라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거 진짜야’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잖아요. 신도 마찬가지에요. 신이 진짜라 할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계신다고 표시한 건물 안에서 모이는 것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우습고 장난 같으면서도 제가 그걸 진짜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섞어서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쓰려고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걸 조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글쓴이가 역시 예술의 힘을 믿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창작을 하면서 몰입하는 경험을 할 때도 있나요? 종교적 경험처럼요.


그런 거 없어요. 과몰입해서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일하지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장난을 많이 칠 수 있어요. 집중하지 않는다고 비난받을 때도 있는데, 어떻게 몰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성정 같기도 해요. 몰입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거죠.


춤을 추거나 할 때도 기능으로서의 춤을 추는 편이에요. 보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선이 길어 보일지, 어떤 효과가 날지 생각하는 반면에, 빠져들어서 추는 사람도 있잖아요. 항상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신기해요. 요즘은 협업 하면서 동료 뮤지션들이 순간적으로 확 몰입해서 감정을 끌어올리는 걸 지켜볼 때, 뭔가 못 느껴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제 친구 표현으로는 작두를 못 탄다고 하더라고요.


뮤지션 이랑은, 작두를 타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을 연습하는 사람일까요?


공연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사람을 건드려야 하는 순간은 계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해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되게 몰입해서 힘든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감동하거든요. 이건 일이고 연기하는 거라고 하면 실망하시기도 하는데, 제 역할은 사람들이 돈 주고 보러 왔을 때 자기가 상상한 느낌을 주는 역할이니까요. 술 취해서 컨디션 조절 못 한 채 비틀거리는 게 아니라 관객이 원하는 걸 예상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끌어올려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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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노래를 만드는 방식과 소설을 쓰는 방식이 다른가요?


어떻게 쓰는 걸까요? 매일 제가 쓴 글을 보면, 제가 쓴 노래를 들으면 신기한데요.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쓰는 방법은 있을 거예요. 시작은 메모인 것 같아요. 다양한 매체로 메모를 해요. 영상, 음성, 사진, 글, 종이에 쓰는 메모… 제가 저한테 문자 보내는 방식도 자주 써요. 「섹스와 코미디」도 ‘고치지 못한 바이브레이터를 들고 돌아다니는 이야기’라는 메모 한 줄이 이야기의 발단이었더라고요. 메모 전에 중요한 건 사실 수다예요. 혼자서 공상할 때는 많지 않고, 오히려 수다 떨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정리해요. 대화를 따 놓고 쓰기도 하고요.


20대의 결과물과 30대의 결과물이 달라지기도 했을까요?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이와도 관련 있겠고, 제가 알게 된 여러 가지 인식이나 지식하고도 연관이 있겠죠. 이제는 젊은 여자로서 대상화 되기 쉬운 방식으로 인정받는 것에 급급했던 행동을 안 해도 되는 게 가장 큰 이유지 않을까요. 하지만 20대 때는 이 이야기를 들었어도 아마 괜히 밉게 말했을 거예요. 내가 잘 나가서, 질투해서 저렇게 말하는 거라고 여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알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프로젝트도 이제 막바지죠. 창작자 30명이 모여서 친구의 치료비를 모으는 프로젝트였어요.

프리랜서 창작자를 위한 느슨한 치료비 도움 계 같은 걸 만들고 싶었었어요.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인세가 너무 적어지면서 작가분들에게 계속하자고 하기가 미안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끌어보려고 겪었던 과정이 공부가 많이 됐어요.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지만 자기 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을 알게 되는 경험이 확장됐고요. 제 시야 안에 있는 사람들을 넘어서 사람들이 연결되는 지점이 알리바바 프로젝트로 생겼을 때 기뻤어요.


일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 편이에요?


집에서는 누워 있고 눈뜨면 나와서 바로 일을 하고, 끝나면 집에 가서 누워 있어요. 일어났을 때 바로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불안증이 심해져요. 밥 먹는 것 자체도 귀찮고 시간 쏟는 걸 싫어해서 자꾸 몸과 정신이 안 좋아지는 방향으로 일을 하니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 생각은 하는데…


생각하면서 여전히 그러고 있죠?


그러고 있어요. 친구들도 암묵적이나마 어쨌든 일주일에 하루는 쉬라고 많이 말하더라고요. 프리랜서 시간이 다 비어있다고 일을 내내 하면 안 된다고요. 느낌상 쉰다고는 하고 작업실 나와서 업무가 아닌 느낌의 일을 한다든지 그래요. 업무 종류도 너무 다양해지다 보니 사실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음악, 글, 엑셀…… 일본어로 소통할 일도 많고, 정신이 없어요.


매일 일하기 싫어서 우는데, 돌아보면 작업물은 많이 쌓여 있어요. 일을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돈 벌어야 돼서요. 정말 돈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일을 할지 정한다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궁금해요. 그럴 때 노래하면 무슨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쉬면 어떨지 상상할 수가 없어요. 한국 사람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웃음)


마지막으로 김경형 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음… “일기 쓰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 엄마를 만나면 일기장을 사줘야겠어요. 금박으로 연도가 표시된 가죽 표지의 A4 크기 다이어리로요. 그게 진짜 많이 있었는데, 같은 걸 사주면 좋을 것 같아요.

 


 

 

오리 이름 정하기이랑 저 | 위즈덤하우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라고 물었던 이랑 작가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사회에서 끄트머리로 밀려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의 삶을 주연으로 끌어와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보편적 인식에 균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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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혜진 “일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훼손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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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장편  『딸에 대하여』  를 새벽 6시 40분, 지하철 5호선에서 읽는 70대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었다. 굽은 등, 왜소한 체격의 할머니가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 곁에 서 있던 나는 묻고 싶었다. “어떤 사연으로 이 책을 읽으시냐?”고. 7개월 전, 그 때의 장면을 김혜진 작가에게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9번의 일』  이 출간되자마자 재빠르게 읽은 건  『딸에 대하여』  를 쓴 소설가 김혜진의 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움이 가셨고 동료들에 대한 서운함도 옅어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자신에 대한 의구심과 자괴감 따위의 감정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그는 누구에게도 이런 원색적인 비난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서운함과 불편함은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졌다. 그는 믿을 만한 동료들과 일했고 동료들은 그를 믿었다. 믿음은 하루가 가고, 계절이 쌓이고, 서로의 표정과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버릇과 습관 같은 것들에 길들여지고. 그런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난 다음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는 그토록 어렵게 생겨난 것들이 이처럼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 『9번의 일』 ,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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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기대를 비켜나는 ‘일’

 

일에 관한 소설을 쓰셨어요.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요?

 

2016년 가을에 통신회사 노동조합을 취재했어요. 당시 제가 경복궁 근처에 살고 있었거든요. 곳곳에서 시위가 있었는데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현실이 다르더라고요. 노조에 계신 분들도 만나보고 하루 종일 쫓아다녔어요. 당시에는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라 취재를 해놓고도 잊고 있었는데, 올 여름에 본격적으로 쓰게 됐어요. 소설로 완성될 이야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소설 제목이  『9번의 일』  입니다. 주인공이 ‘78구역 1조’에서 ‘9번’이라는 이름으로 일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목만 읽은 독자들은 대개 횟수의 ‘9’를 상상하시더라고요.

 

처음 제가 제안한 제목은 ‘철탑을 오르는 사람’이었어요. 출판사에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면서(웃음) 몇 개의 후보를 주셨어요. 그 중에서 고른 제목이에요.

 

주인공은 통신회사에서 설치 기사로 26년간 일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러나 장기 근속 끝에 남은 건 ‘저성과자 관리 대상’이라는 이름이죠. 주인공은 회사로부터 지속적인 퇴직 권유를 받지만 끝까지 버팁니다. 하지만 상품 판매직으로 발령을 받고 정식 업무가 주어지지 않아요. 현실에서도 매우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 쓴웃음이 나왔어요.

 

통신회사를 배경으로 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보편적인 노동 이야기예요. 오랫동안 한 직장에 일한 사람이 점점 밀려나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를 상상해봤어요. 사실 책을 내면서 고민이 좀 있었어요. 요즘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누가 읽을까? 한 직장에 오래 있는 경우가 드문, 젊은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이야기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슬프게 읽혔어요. 굉장히 담담한 문체로 쓰인 소설이라 더 슬프더라고요.

 

평소 인물에 거리를 두고 쓰려는 편이기도 하고, 3인칭 소설이니까요. 인물과의 거리를 잘 조정하고 싶었어요. 인물과 작가의 거리가 8이라면, 그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작가의 말’에 “일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둘 사이를 채운 어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257쪽)라고 쓰셨습니다.

 

일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훼손 시킨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어떤 체념의 정서라든가 허무의 정서? 슬픔의 정서?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어요.

 

노조를 취재했을 때는 어땠나요? 흔쾌히 수락하셨나요?

 

흔쾌히 오라고 하셨어요. 노조를 취재하는 것이 약간의 정치적 성향이 담긴 일이잖아요. 그분들을 만나면서 제 마음속에 ‘내가 이 분들을 대변하는 소설을 쓰려는 건 아닌데, 나중에 실망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어요. 책이 나오고 취재를 도와주신 선생님께 보내 드렸거든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소설은 아닐 거라고, 팩트를 바탕으로 했지만 픽션”이라는 말과 함께요. 소설을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답장이 오진 않았어요.

 

직장인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켜봤을 거예요. 저부터도 그랬거든요. ‘나는 끈질기게 퇴직을 권하는 회사로부터 버텼을까?’, 전 못했을 것 같거든요.

 

주인공이 일을 그만두지 못한 건, 100% 경제적인 상황 때문은 아니에요. 그만두지 않는 이유를 말할 때, 경제적인 상황을 동원시키는 거죠. 실제로 자신도 왜 회사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몰라요. 오히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웠다면 버티지 않았을 거예요. 빨리 나와서 뭔가를 더 해야 했을 테니까요.

 

주인공은 자신이 빨리 회사에서 나가길 바라는 사람들로부터 서운함과 불편함을 느끼다가 그것 마저 익숙해져요. 자신에 대한 의구심, 자괴감 마저 옅어지는 일. 그것이 더 큰 파국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소설을 쓸 때, 회사가 ‘절대 악’이고 주인공이 ‘절대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인공이 9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일이 비극이라면, 이 일이 벌어지기까지는 회사의 탓도 있겠지만 주인공의 판단과 선택도 영향이 있었겠죠. 마지막에는 본인도 이 사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떤 독자가 주인공을 두고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고 리뷰를 썼더라고요.

 

주인공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변한 걸 잘 모르는 상태잖아요. 만약 훗날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면, 괴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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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2016년에 출간된 소설집 『어비』도 ‘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호기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편집자를 떠올리면,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일 외에도 많은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실제 하고 있는 일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어떤 물건을 쓰는지,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제 일을 생각할 때도 그래요. 외부에서 보면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이 있잖아요.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일이 그렇겠네요.

 

처음에는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 성격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인데, 제가 너무 어려워하니까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그것도 네 일이다”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수월해지더라고요.

 

지금은 전업작가시죠?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교정교열 보는 일도 했고, 도서관에서도 잠깐 일하고 구청 민원실, 엑스트라, 피자집, 패스트푸드점, 레스토랑에서도 일했고요. 200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4,5년 동안 등단을 준비했어요. 20대 후반에 굉장히 힘들었는데, 부모님이 다시 대구로 내려오라고 하셨어요. 2012년이 마지노선이었는데 그때 데뷔를 하게 됐죠.

 

2017년에 출간된 장편  『딸에 대하여』  가 큰 사랑을 받았어요. 퀴어를 소재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이야기한 소설인데, 이 작품으로 작가님을 알게 된 독자들이 꽤 많아요.

 

『딸에 대하여』  가 나온 이후 독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예전에는 독자라고 하면 추상적인 개념이었는데 실제로 독자들을 만나 이야기하게 되는 상황이 저에게 좀 놀라웠어요. 좋기도 무섭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소설을 쓸 때 독자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거든요. 두려울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걱정이 되는 점도 있어 부담이 생기기도 해요.

 

『딸에 대하여』  가 6만 부가 넘게 팔렸죠? 영화 판권도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이 영화화가 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절대 영화화를 할 수 없는 소설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영화는 부지영 감독님이 연출하신다고 들었어요. 소설을 바탕으로 하지만, 영화는 또 하나의 창작물이니까요. 기대하고 있어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 소설에 구체적인 지명을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능한 한 사람들이 각자 생각할 수 있는 구체성을 획득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어요.

 

작가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쓰는 것을 노동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능한 예술적인 의미나 작가라는 자의식을 갖지 않으려고 하는데, 소설을 쓰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 이상의 의미가 있긴 해요. 저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하는 게 항상 즐겁지 않거든요. 모든 일은 사람을 훼손시킨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흔히 둥글둥글해진다고 말하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었던 모서리가 깎여서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지는데, 무엇을 배우고 성장하는 면도 있는 반면에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이런 걸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할 말이 생기면 거리로 나오잖아요. 외국도 그런가? 우리나라만 그런가? 대규모로 일어나는 행동들에 관해 자주 생각해요. 흔한 일이면서도 약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어떤 이야기를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나요?

 

『중앙역』  도  『딸에 대하여』  도 두세 계절의 이야기거든요. 이번 소설은 조금 늘어났지만, 좀 더 긴 시간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9번의 일』  을 읽으려고 책장을 펼친 독자가 눈앞에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니까, 결국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게 있을 텐데요. 그 일이 자신의 기대를 반드시 비켜나가게 되거든요. 막상 일을 하게 되면 스스로가 예상한 것들이 다 무너지는 것이 일이라는 것. 좀 체념적인 말일 수 있지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9번의 일김혜진 저 | 한겨레출판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통신회사 설치 기사로 일하는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평온한 삶의 근간을 갉아가는 ‘일’의 실체를 담담하면서도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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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병철 “가짜 정보에 속지 않고 내 아이 키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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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보면 두려운 게 많아진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부분에서 혹시 아이에게 해가 되는 건 아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돌아보고 살피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더 잘 키우기 위해 온갖 정보를 찾다 보면 더 큰 두려움에 맞닥뜨린다. 해열제와 항생제는 몸에 좋지 않고, 예방접종은 부작용이 많단다. 챙겨 먹여야 한다는 영양제만 두 손가락 가득. 도무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미신과 상업주의의 덫에서 허우적대는 부모를 위해 강병철 소아과전문의가 『툭하면 아픈 아이 흔들리지 않고 키우기』  를 펴냈다. 해열제, 항생제, 예방접종, 비타민 등 아이 건강에 대한 오해와 진실부터 감기, 변비, 비만, 성조숙증 등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궁금해할만한 부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담았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기준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지 혼란스러운 부모라면 꼭 곁에 두고 봐야 할 지침서가 되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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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정보의 기준은 과학에 있다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육아의 정석」 칼럼 일부가 묶인 책입니다. 부모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싶으셨다고요.


서민 교수와 함께 쓴 책 『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  출간 후 인터뷰를 하면서 칼럼 연재 제의를 받았어요. 당시에는 자신이 없어 거절했고, 저는 원래 살고 있는 캐나다로 돌아갔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사태가 터진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아이들이 피해를 입은 모습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특히 동료 의사들에게 화가 났어요. 이런 사람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데 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 싶어서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의사들은 바쁘잖아요. 자기 일과를 소화하고 그런 일까지 에너지를 쏟을 여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이라도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를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기본’이 정리된 책이라 좋았어요. 비단 건강뿐 아니라 육아를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도요.

 

아이를 키울 때 필요한 건 ‘육아법’이 아니라 ‘생각법’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요즘은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에요. 책뿐 아니라 유튜브, SNS 등을 통해 온갖 정보가 순식간에 전달되죠. 그러다 보니 좋은 책을 낸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정보를 담아도 독자들이 책의 존재를 모르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이제 출판은 발견의 문제가 됐어요. 그래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들어요.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 이목을 끄는 데 집중하다 보니 자꾸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중 하나가 권위에 싸움을 거는 거죠. 그럼 주목받기 쉽거든요. 그러면서 ‘의사들이 하는 말은 다 틀렸어’ ‘제약회사가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예방주사를 맞히는 거야’ 같은 거짓말까지 하기에 이른 거예요. 사실 진실은 너무 단순해요. 건강하려면 음식 골고루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 적게 받고 예방접종 하면 끝이에요.(웃음) 그 이상 할 말도 없고, 아주 특별한 비밀 같은 건 없어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나쁜 정보에게 밀려요. 그래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글을 쓸 때 가장 큰 고민이었고요. 기존에 나온 육아서들보다 더 기본적인 것, 어떤 기준으로 우리 아이를 위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육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매 편마다 담으려 노력했어요.

 

책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의사’라는 저자 소개를 내세우고 홍보를 하는 책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독자들은 의사들이 하는 말이니까 쉽게 책의 내용을 믿게 됩니다. 어떤 기준으로 올바른 정보를 가려내야 할까요?


중요한 기준은 과학에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과학이 다 옳으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건 학창시절에 배운 과목으로서의 과학을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여기에서 과학은 누군가가 나에게 들려주는 정보가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 관점에서 보면 답이 나옵니다. 일단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근거가 너무 개인적이에요. 근거에도 품질이 있는데 가장 낮은 질의 근거가 ‘경험’이에요. 인간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 누군가에게는 잘 들어맞았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걸 치료의 기준으로 삼을 순 없죠. 일화적 경험을 모은다고 데이터가 되진 않는다고 하잖아요. 반면 과학은 객관적 데이터를 모아서 우리가 선택한 길의 한계와 능력을 정확히 아는 거예요.

 

기존의 정설과 다른 정보를 말하고 있다면,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네요.


우리가 어떤 정보를 들으면 일차적으로 그 정보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생각하잖아요. 한 책에서 해열제를 먹으면 면역력이 떨어지니 먹지 말고 버텨야 한다고 해서 무수한 갑론을박이 이어졌잖아요? 이런 정보가 있으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매몰되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왜 이 이야기를 지금하지?’라는 걸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열이 날 때 해열제 먹는 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육아법이잖아요. 그런데 그 문제를 왜 들고 나왔는지 생각해보시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보일 거예요.

 

그리고 민감한 이야기이지만, 외국에서 자격을 따서 '내세우는' 사람은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학에서 어떤 과정을 마쳤다면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이 수료한 과정을 보면 돈을 내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교육 과정인 경우가 많죠. 외국에서 수료한 어떤 자격을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 특히 책을 내거나 사설 치료센터를 차리는 경우에는 반드시 권위 있는 기관에서 검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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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건강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엉덩이 주사의 유일한 효능은 엉덩이가 아프다는 것(31쪽)’이라고요.


백신, 성장호르몬 등 근육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흔한 질병으로 맞는 엉덩이주사는 아무 효과가 없어요. 제가 서귀포에서 병원을 운영했을 때, 부모님께서 일을 하니 보통 할머니들이 아이를 데려오셨거든요. 엉덩이 주사를 안 놔주면 절대로 안 가세요.(웃음) 그래서 맞으면 안 된다고 설득하는 데 30분씩 걸렸어요. 그런데 제 말을 믿고 그냥 가셔도 아이가 낫거든요. 그런 분들이 점점 늘면서 병원 환자들 사이에 주사를 안 맞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일단 주사를 많이 놓게 된 데는 일차적으로 의사들의 책임이 있어요. 잘 설명하고 안 놔야죠.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환자가 계속 놔달라고 요청할 경우에는 끝까지 거부할 재간이 없거든요. 설득할 시간도 없고 자칫하면 싸움이 되니까 그냥 놔주게 되는 거예요. 엉덩이 주사를 없애려면 환자와 의사 양쪽이 다 노력해야 하죠.

 

그럼 효과도 없는 주사가 왜 처방되었던 건가요?


첫째는 자꾸 비과학적인 사고를 해서 그래요. 우리는 많은 희생을 치르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일단 보호자들이 주사 맞기를 선호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이 생기게 된 연원을 추적해 올라가면 재미있는 역사가 있어요. 아주 옛날에는 주사기 한 대가 현재 가치로 천만 원가량 했어요. 2개 이상 가진 병원이 드물 정도로 굉장히 비싼 의료장비였죠. 그 당시 결핵을 치료하는 스트랩토마이신이 개발됐는데, 먹는 약이 없어서 주사로 맞아야 했거든요. 결핵으로 다 죽어가는 환자가 주사만 맞으면 살아나는 거예요. 주사기는 엄청난 귀물이고요. 그러다 보니 ‘주사를 맞으면 산다’는 개념이 생겨버렸죠.

 

두 번째는 제가 초등학교 때 병원을 딱 한 번밖에 못 가봤거든요. 너무 비싸서요. 1974년도에 진료비가 만 원이었으니, 지금 가치로는 몇 십만 원일 거예요. 그 비싼 돈을 내고 병원을 갔는데 천 원 받는 약국과 똑같은 진료를 하니 환자들의 불만이 많아지잖아요. 결국 약국과 차별화되는 병원만의 특별한 치료는 주사이니까 주사를 놓게 됐고, 아프면 주사맞아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내려온 거죠.

 

영유아에게 열이 나면 해열제 대신 해열주사를 놔주는 경우를 보았어요. 해열주사가 더 효과적이라며 선호하는 부모들도 있고요. 해열주사도 효과가 없는 건가요?


제가 병원을 운영할 때 하루 평균 300명 가까이 되는 환자를 봤지만, 열이 난다고 해열주사를 놔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건 위험해요. 해열주사는 맞으면 안 됩니다. 해열제를 먹이는 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에요.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예방접종 스케줄을 꼼꼼히 체크할 텐데요.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에 포함되지 않는 선택접종은 생략하는 경우가 있어요. 선택접종 중 꼭 맞아야 하는 게 있다면요.


전부 다 맞아야 해요. 선택접종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가에서 지원할 예산이 없어서 선택접종이라고 하는 거예요. 실제로 저는 백신이란 백신은 다 맞아요. 우리 아이들한테도 다 맞추고요. 그게 제일 값싸고 확실한 질병 예방법이거든요.

 

만약 접종 시기를 놓쳤다면 늦게 병원을 찾아도 괜찮은가요?


상관없습니다. 바쁘다보면 아이 접종 스케줄을 놓칠 수도 있고, 접종에 대한 괴담 때문에 께름칙해서 시기를 지난 경우도 있을 텐데 어떤 경우든 의사와 상의하시면 됩니다. 접종이 늦었을 때 맞히는 방법이 있거든요. 새로운 스케줄에 맞춰 다시 접종하면 아무 문제없어요.

 

책에도 쓰셨지만 특히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은 특히 괴담이 많아요.


사실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백신보다 더 끔찍한 백신은 DPT(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백신이었어요. 이 백신을 맞고 죽은 사람도 많고요. 그런데 자궁경부암 백신이 이렇게 화제인 이유는 포스트인터넷시대에 출현했기 때문이에요. 괴담이 눈덩이 구르듯 마구 불어나며 확산될 수 있으니까요. 앞서 말했듯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권위를 공격하기 위해서 의사는 다 나쁘고, 제약회사가 돈 때문에 백신을 놓는 거라 주장하는데요. 물론 의사들 잘못하는 거 많고 제약회사가 돈 때문에 파렴치한 행동을 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약회사를 응징하기 위해 백신을 안 맞히겠다’고 해버리면 섞일 수 없는 개념들이 섞여요. 자신의 신념과 일치한다고 해서 비과학적인 말을 믿고 따르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의사나 제약회사가  손해를 보나요? 아니요. 우리 아이가 아파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는 방법만 찾으면 돼요.

 

실제로 호주에서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남녀 모두에게 접종해왔고, 현재 자궁경부암이 거의 사라졌어요. 2030년까지 자궁경부암을 완전히 퇴치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고요. 인류가 백신으로 지구상에서 멸종시킨 병이 천연두가 있죠. 적어도 호주에서는 자궁경부암도 완전히 사라지는 병이 될 거예요.

 

현재 우리나라는 만 12세 여아에게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지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필수예방접종이 아니다 보니 남자 아이들도 맞아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당연히 남자 아이들도 다 맞아야 하는 백신이에요. 궁극적으로는 국가에서 남자 아이들까지 지원하는 쪽으로 가야겠죠. 다만 처음 그 백신의 가시적 효과가 자궁경부암 예방이고, 자궁경부암은 여성의 병이니 여자 아이들에게만 접종이 이루어졌던 건데요. 국가 예산을 바꿔야 하는 일이라 쉽진 않겠지만 몇 년 내에는 백신 스케줄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남녀 간 성 접촉으로 옮기는 병이라, 남자도 맞아야 한다는 지식이 주목받고 있으니까요.

 

항생제도 내 아이에게 먹이기 두려운 것 중 하나입니다. 내성이 생길까봐 상태가 호전되면 남은 항생제는 버리곤 했는데, 끝까지 다 먹지 않으면 오히려 내성균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에 놀랐어요.


균은 세대가 이어지는 기간이 엄청나게 짧아서 하루가 지나면 70대손이 나와요. 느리게 분열하는 균이 20분에 한 번, 빨리 분열하는 균은 6분 30초에 한 번씩 분열하거든요. 우리가 항생제를 개발하는 시간이 균의 분열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또 아무리 강한 슈퍼항생제를 개발해도 균은 버티고 살아남는 법을 금방 알아내서 그 방향으로 진화하죠. 예를 들어 1만 마리 균에게 항생제를 쓰면, 그 공격을 받은 균은 모두 항생제를 이겨낼 궁리를 하거든요. 그때 그 균을 다 죽이면 문제가 안 생겨요. 그런데 10번 먹어야 하는 항생제를 5번만 먹고 끊어서 1만 마리가 거의 다 죽고 10마리만 살아남았어요. 이 균들은 또 순식간에 분열하거든요. 그럼 그 안에서 항생제를 이길 균주가 나올 가능성이 커요. 물론 항생제를 다 먹지 않아도 병은 나아요. 1만 마리였던 균이 10마리로 줄었고, 그건 우리 면역계가 잡아먹으니까요. 그런데 남은 균을 가지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서 놀잖아요. 재채기도 하고, 장난감도 만지며 놀아요. 그렇게 균을 옮기게 되고, 그 균은 금방 새끼를 쳐서 내성균을 만들죠. 이런 식의 패턴이 반복됐기 때문에 이제 페니실린이 더 이상 듣지 않는 거예요. 일단 항생제의 맛을 본 균은 그걸 피하는 법을 알기 전에 다 죽여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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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길은 아주 평범한 데 있어요


엄마들은 아이의 영양이 부족할까봐 비타민이나 보약 등을 챙겨주게 되는데, 사실 꼭 먹이지 않아도 된다고요. 


물론 모자라면 채워줘야겠죠. 그런데 과하면 탈이 날 수 있어요. 비타민을 먹어서 더 건강해졌다거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증거가 확실한 연구결과도 없고요. 무엇보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비타민과 합성 비타민제로 섭취하는 비타민은 달라요. 비타민을 고르고 사 먹일 정성과 비용이면 균형 잡힌 식단을 고민하는 게 더 좋죠.

 

유산균은 면역력을 위해 꼭 먹이는 엄마들이 많아요. 특히 아이가 집단생활을 하면 반드시 먹여야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어요.


제가 면역에 관해 거의 책의 한 파트를 할애해서 썼는데, 면역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단순히 뭘 먹는다고 면역이 강화되지 않아요. 건강기능식품이 주장하는 바를 보면 어디를 어떻게 강화시킨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요. 또 면역계는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힘이 너무 세요. 예를 들어 면역세포 중에는 B세포와 T세포가 있는데 B세포는 적이 침입하면 12시간 만에 1개가 2만 개로 늘어나요. 그리고 항체라는 무기를 초당 2천 개씩 쏩니다. 삽시간에 쑥대밭이 돼요. T세포는 주로 암세포와 싸우는데 T세포 하나가 10만 개의 암세포를 죽여요. 우리 면역계는 힘이 세서 문제예요. 강화시키는 것보다 조절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니까 결국 ‘면역을 강화시킨다’는 말은 허구이고요.

 

우리 몸에 사는 균이 면역계와 연관이 있는 건 확실해요. 그런데 이 미생물들 중 어떤 것이 우리 몸의 어느 기관에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요. 우리 장 속에는 미생물이 몇 천 종류가 있는데, 그럼 대체 뭘 먹겠다는 건가요?(웃음) 그리고 설사 A라는 미생물이 면역과 관계가 있다는 게 확실시된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다 써도 되는지,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요. 미생물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거든요.

 

균주를 골고루 유지하기 위해 유산균을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먹여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전부 상술이었네요.


당연하죠. 아무 것도 모르고 파는 거예요. 누가 먹어도 문제가 안 될 만큼 아주 조금만 넣으니 허가가 나오는 거고요. 약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정말 힘들거든요. 임상시험은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고, 시간도 몇 년씩 걸려요. 그걸 다 통과해서 이게 인간에게 비교적 안전하고, 목표로 하는 병을 치료하는 데 써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돼야 허가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건강기능식품은 허가가 쉬워요. 예를 들어 500ml를 넣으면 약 허가를 받아야하는 성분을 100ml만 넣으면 건강기능식품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죠. 그렇게 해서 파는 거예요. 함량이 적으니 만드는 비용 덜 들고, 허가는 쉽게 받고, 제일 중요한 건 비싸게 팔 수 있어요. 그리고 잘 팔려요. ‘이건 약이 아니라 식품이니 먹어도 돼’라면서 사람들이 사먹거든요.

 

변비 등에 보조적 도움을 받는 것도 효과가 없나요? 


유산균 말고도 이미 알려진 방법이 많잖아요. 섬유소가 많이 든 채소와 과일 먹고 운동하고 물 많이 먹으면 돼요. 굳이 비싼 돈 주고 그런 제품을 사 먹일 필요가 없어요.

 

그럼 수족구, 구내염 등의 유행성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은 역시 손을 잘 씻고 개인위생을 깨끗이 하는 것일까요?


맞아요. 아주 놀라운 방법을 알려드리면 좋겠지만, 올바른 길은 아주 평범한 데 있어요.(웃음) 사실 아이들이 유행성 질병에 자꾸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집단생활을 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중이염이 잘 생기는 아이들의 경우 예방접종을 할 수도 있고, 귀에 튜브를 넣는 수술을 할 수도 있는데, 이도저도 안 되고 계속 재발하면 어린이집을 3개월 정도 쉴 것을 조심스럽게 권하기도 해요. 돌봐줄 사람이 정 없다면 규모가 작은 곳으로 옮기는 게 좋고요. 그러면 정말 씻은 듯이 낫는 경우가 많아요. 어쨌든 지금은 아이들이 집단생활을 안 할 수가 없는 환경이잖아요. 그러니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손 잘 씻고, 개인위생에 신경 쓰는 것밖에 없죠. 면역력을 키우면 병에 안 걸린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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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늦게 움직여도 돼요


세 딸의 아버지이신데요. 자녀를 키우며 꼭 지키는 육아 원칙이 있나요.


‘모든 사람은 다르다’ ‘모든 사람은 존귀하다’에서 육아가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모든 사람’에는 내 자식도 들어가죠. 결국 자식은 내 삶에 들어온 손님일 뿐이니 아이의 삶을 기획하지 않으려 해요. 이걸 둘째아이 초등학생 무렵에 깨달았어요. 아이의 키가 크지 않아서 성장호르몬을 맞히느냐 마느냐를 놓고 한 달을 고민했거든요. 당시 소아과를 하고 있었으니 언제라도 약을 살 수 있고, 주사를 놓을 수 있고 부작용도 모니터링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의 키가 크면 좋은가?’ ‘키 작은 사람보다 행복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아이의 삶에 내가 의학적으로 개입한다면 이 아이의 다른 측면이 내 성에 차지 않을 때도 전부 개입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건 아이가 아이의 삶을 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때부터 모든 걸 내려놨어요. ‘아이에게 잘해준다’는 게 뭔지부터 다시 생각했죠. 

 

사실 그걸 알면서도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문득 불안해지는 게 부모인 것 같아요.


그렇죠. 특히 우리나라는 기준이라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잖아요. 그런데 사회적 기준은 전부 남이 만든 거예요. 그걸 만족시키려고 애쓰면 그렇지 못했을 때 자꾸 밀려나는 기분이 들어요. 어떤 기준에 맞춰 완벽한 아이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생기는 순간 불안하고 절박해지죠. 그럼 ‘이렇게 하면 아이 키가 클 거야’ ‘이렇게 하면 똑똑해질 거야’ 같은 말에 자꾸 속아요.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딱 한 마디만 해요. 남의 욕망을 욕망하지 말라고요. 뭘 원하는지는 스스로 깨달아야 하고, 그건 엄마아빠가 찾아줄 수 없다고 말하죠. 부모는 아이가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돼요. 안전한 범위 내에서 아이가 최대한의 경험을 할 수 있게 울타리를 넓게 쳐줄수록 더 좋은 부모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부모는 자책하게 돼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들려줄 말씀이 있을까요.


저는 육아에서 가장 나쁜 감정이 죄책감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본인에게도 해롭지만 아이에게도 해로워요. 아이는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크지 않아요. 아이의 삶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적고요.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 때문에 울었다』는 책을 보면 간디 자식도 형편없었대요.(웃음) 그러니 본인이 아이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며 죄책감 느낄 필요도 없고요. 다만 아이가 커가면서 맞닥뜨리는 사회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으니, 환경과 사회의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자식만 바라본다고 내 자식이 잘 되는 게 아니니까요. 남녀가 평등한 세상, 빈부격차가 적은 세상, 미세먼지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가 자란다면 훨씬 행복하고 훌륭하게 자라지 않겠어요? 그러니 좋은 육아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바꾸는 데 동참하는 젊은 부모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요.


유연하게 생각하시길 바라요. 예를 들어 ‘항생제는 나쁜 것이다’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칼도 강도짓을 할 땐 나쁘게 쓰이지만, 외과의사의 손에서는 생명을 구하잖아요. 맥락이 중요하지 어떤 것 자체가 좋고 나쁜 건 없어요. 실제로 항생제를 발견하고 나서 인류의 수명이 배가 늘었잖아요. 이분법적 사고로 ‘이건 나쁘니 안 해야지’라고 하면 손해는 다 본인에게 와요.


마지막으로 한 발짝 늦게 움직여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소아과 의사들 사이에 ‘새로운 약이 나오면 제일 먼저 쓰는 의사가 되지 말고, 가장 마지막으로 쓰는 의사도 되지 말라’는 말이 전해 내려와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약을 파는 사람의 말만 믿고 연약한 아이에게 약을 써서는 안 되고, 이미 안전성이 다 검증 되었는데도 옛 치료방식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가 접하는 지식도 마찬가지예요. 요즘은 유튜브만 켜도 온갖 건강정보가 쏟아져 나오잖아요. ‘천연비타민이 좋다’ ‘노니비누를 써야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한 번 생각해보세요. 노니비누 같은 거 옛날엔 안 썼던 거잖아요. 그럼 몇 년 기다리세요. 그래도 전혀 손해 보지 않아요. 지금까지 그게 없어도 아무 문제없이 살았다면, 새로 나오는 걸 열심히 쫓아갈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돼요. 내가 못 쫓아가서 우리 아이가 손해 보면 어떡하냐고요? 대신 그동안 맘 편히 살았잖아요.(웃음)


 

 

툭하면 아픈 아이, 흔들리지 않고 키우기강병철 저 | 김영사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데 전문지식은 없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지식을 습득할 여유도, 시간도 없는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과학적 지식과 확고한 육아 철학을 전하는 필독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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