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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상 “이상한 서브컬처의 세계, 맛보면 중독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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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처는 주류문화와는 다른 형태의 문화, 특정 커뮤니티에서만 발전한 문화를 뜻했다. 한국에서는 흔히 만화와 라이트노벨을 향유하는 문화를 ‘서브컬처’라는 단어로 표현하지만, 광의의 의미로 확장하면 한국의 서브컬처는 이제 대부분의 팝 컬처와 구분이 불분명하다. 인터넷과 SNS가 전 세계의 문화를 폭발적으로 교류시키면서 누구나 관심을 가지면 다른 취향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빨리 사라지고 왜곡되는 탓에 서브컬처 세계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은 어지럼증을 느낀다. 이 세계는 너무 이상해 보이기 때문에 서브컬처 향유자를 ‘오타쿠’ ‘오덕’이라 부르며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SF소설가이자 비평가, 작법가인 손지상 저자는 『서브컬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에서 서브컬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전기적 상상력과 상호텍스트성을 토대로 문화가 서로 섞이고 영향을 주는 길을 쫓아다녔다. ‘전기물’로 정리한 일본의 서브컬처 계보부터 무협, 홍콩 액션 영화, 케이팝까지 장르와 세계를 넘나드는 이 안내서에는 여행 가이드북에 흔히 보이는 ‘꼭 들러야 할 맛집’이나 ‘상세 지도’는 없다. 서브컬처 세계를 헤매봤던 사람의 끝도 없는 방랑 기록을 읽고 “찰나의 번뜩임이 가득 모여 찬란한 덕질의 빛으로 빛나기”(554쪽)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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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체험’, 서브컬처를 즐기는 방법


책에서 ‘나는 설명충이다’라는 언급이 있어요. TMI(Too much information)가 ‘박찬호 급’이라고요.


그보다 더할 수도 있어요. 그분은 본인 체험만 이야기하지만 저는 남의 체험까지 이야기하니까요. 어릴 때부터 위키피디아 같은 대화에만 반응하는 편이었어요. 백과사전을 외운다든지 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죠.


그래서인지 책이 꽤 두툼하게 나왔어요.


일상적인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떠드는 편이에요. 주변 사람들이 말로만 풀지 말고 문서화시키는 게 낫겠다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저야 아무 자각 없이 생각나는 걸 이야기하지만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영감이 될 만한 정보도 있을 거라고요. 원래 구상은 에세이 형식으로 짧고 간결하게 어떤 걸 좋아했는지 풀어놓고, 반응이 좋으면 여러 권을 내보겠다는 기획이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첫 번째 시리즈 책이 생각보다 많은 내용으로 나왔네요.


처음에 원고를 받은 편집자의 반응이 궁금해요.


처음에는 당황해 하셨고 다음으로는 이래서 원고를 부탁하셨다고 했어요. 생각했던 양식이 아니었지만, 기획 방향은 맞았던 거죠. 원래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개념을 주제별로 나눠서 설명하지 않더라도 모든 문화가 얽히고설킨다는 걸 계속 쓰게 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전기, 홍콩 영화나 무협, 프로 레슬링 이야기를 각자 하나의 작은 파트로 다루려 했는데, 쓰다 보니 이론적으로 다 묶이더라고요.


제목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문화 사이를 여행하겠다는 주제와 맞닿아 있기도 하고, 패러디한 원제목의 소설이 원체 양이 많은 소설이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오는 가이드북 형식대로 쪼개서 내려고 했어요. 원래 책의 제목이 아니라 시리즈명의 제목으로 가려던 패러디였는데, 편집자님도 끝까지 고민하시다 결국 책 제목이 되었어요.


서브컬처는 만화나 라이트노벨을 즐기는 문화를 일컫는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한국의 서브컬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포괄하는 걸까요?


원래 ‘컬처’는 구성원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거든요. 중심에서 벗어난 지역에서 로컬 집단을 가르치기 위한 게 ‘서브컬처’였을 텐데, 우리나라에는 기록으로 남은 자생한 서브컬처가 많이 없어요. 지금 서브컬처라 불리는 것들은 작은 커뮤니티들이 애초에 자생적으로 생겨나지 않고 결과물만 외국에서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사실 팝 컬처에 가까워요. 우리나라에는 이 구분이 가시적이지 않았다가 이제야 눈에 보이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서브컬처의 범위를 이야기하자고 하면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통해 접근하는 팝 컬처는 다 서브컬처인 셈이죠. 서브컬처가 없으니까요.


모든 문화는 서브컬처의 면모가 있다는 건가요?


맥락을 잃은 것들은 대개 다 서브컬처화해요. 다른 나라에서 넘어오거나 맥락 없이 따라 하고 발전한 문화를 서브컬처라 한다면 우리나라의 문화는 모두 서브컬처예요. 심지어 학계에서도 외국 서적을 무분별하게 수입해 와서 이론을 만든다거나, 주류 문화 자체가 서브컬처화 되어서 들어온 게 많죠. 그러다 보니 오해가 생기고 오해 때문에 이상한 계보를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서브컬처는 이미 날조된 문화이기 때문에 오해가 오히려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하죠. 그렇지만 그걸 다시 역순으로 따라가면서 잘못된 진리에 이르면 책에서 표현했던 사이비 역사학이나 옴진리교까지 갈 수 있어요. 이미 그럴 소지가 다분하고요.


서브컬처를 즐기면서 ‘재미만 있으면 되지 않냐’는 말이 위험하다고 했어요.


예를 들면 아버지나 저나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는데, 아버지께서는 격투기 전문가이기도 하세요. 어떻게 하면 진짜로 다치게 하는 것처럼 퍼포먼스를 보일 것인가 연구하면서 프로레슬링 문화가 생긴 건데, 어떻게 하면 사람을 이기느냐가 아니라 이기는 척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재밌어 하는 거죠. 그 문화를 수행하려면 격투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해요. 재미를 좇는 것 자체는 전혀 잘못된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냥 재미있다고만 하면 사람 때려눕히는 것에만 공감해서 약한 사람을 때려눕혀도 아무렇지 않고 통쾌하다고만 보게 돼요. 그 관점에서는 프로레슬링이란 그저 짜고 치는 가짜일 뿐이죠. 그저 이기기 위해서, 골을 성취하기 위해 최적화하는 건 게임의 방식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그냥 재밌으면 되지’는 이미 문화의 재미가 아니에요. 이기기 위한 최적화 방식이 ‘재미있다’라고 표현되는 거예요. 많이 팔리는 게 재미있는 게 되고요.


편협하게 문화를 즐기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한 다른 예시가 있을까요?


최근 들어 케이팝을 듣기 시작했어요. 이제까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은 펑크예요. 수십 대 악기가 자기 마음대로 리듬을 치면서 다양한 복잡함이 거대한 그루브라는 직관적인 체감으로 통합되는 건데, 그저 재미있게 고개를 끄덕이고 춤을 출 수 있지만 일일이 하나의 악기를 따지고 들어도 좋거든요. 케이팝을 귀 기울여 들으면 펑크처럼 복잡도가 높더라고요. 그냥 들어도 귀에 들어오고 재밌죠. 그런데 제작을 하는 사람들이 듣는 사람에게만 맞춰서, 의식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범위만 남긴다면 굳이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 거 없다는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에요. 그러면 다양성은 사라지고 향유자들은 금방 질려서 ‘그 밥에 그 나물이잖아’ 하게 되는 거죠. 그럼 그 산업 자체가 망해요. 이런 일이 여러 장르 여러 매체에서 일어났어요.


제작자뿐만 아니라 향유자들도 언제나 자기 문화에 대해서 자각을 하고 있어야 할까요?


그렇죠. 수요가 없는데 공급이 나올 수는 없어요. 대량 생산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재미만 좇으면 언제나 파국이 옵니다. 이야기 작법에서도 주인공과 라이벌만 있으면 절대 굴러가지 않아요. 그런데 누군가 제3의 축을 담당했을 때에는 다른 이야기로 전개할 수 있어요. 반대로 제3의 축도 그냥 놔두면 최적화되어서 보지 않아도 이야기할 만해지면 다시 그 문화는 사장되니, 계속 재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아하! 체험’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와요. 서브컬처에 내포된 강력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고요.


SF를 정의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 중에 경이감이라는 말이 있어요. 단순히 놀라는 게 아니라 자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식의 경계선이 넓어졌음을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건데, 제가 바라는 ‘아하! 체험’은 결국 경이감이에요. 취향이 넓어지는 거죠. 아이돌 음악에는 관심이 없다가 펑크랑 비슷한 점이 있다고 깨달은 순간부터 멤버들의 이름을 다 알게 되고, 각 파트에 배치된 이유가 보이면서 그냥 들을 뿐만 아니라 하나씩 뜯어보는 재미가 생겼어요. 지각이 넓어졌다는 건 그만큼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넓어진다는 거고, 사고가 넓어진다는 것 자체가 생리적으로 엄청난 쾌감이거든요. 그 쾌락에 중독되다 보면 서브컬처 특유의 기기괴괴한 취향까지 진화하는 거죠. 그걸 맛보고 난 뒤라면 재미만 있으면 된다고 말해도 문제가 없어요. 자기만의 재미를 찾을 테니까요.


공산화된 재미가 아니라요.


대량 생산된 재미는 사실 다양성을 풍부하게 해 줘요. 케이팝은 대량생산하기 때문에 뻔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대량생산을 하면서도 다양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형식이 고정되는 거지 그 형식에 맞는 재료들은 다양해져요. 다만 그걸 공산품으로 만든다면 다양성도 일원화시키게 되죠. 모든 문화에서 최적화를 좇으면 공산화돼요. 그걸 막기 위한 가장 큰 미끼가 ‘아하! 체험’이라는 거죠. 이 체험이 우리 삶에 큰 효용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 체험들이 개인을 굉장히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거죠. 잠깐의 쾌락을 위해서는 들여야 할 노력이 있어요. 그걸 노력으로 생각하느냐 재미로 느끼느냐의 차이일 거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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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적 상상력 그 이후


2부에서는 전기 소설을 설명하고 있어요. 표현에 따르면 전기적 상상력은 서브컬처만의 상상력이라고요.


서브컬처‘만’의 상상력은 아니에요. 일반 문화에서 소외된 것이 서브컬처라면, 소외된 사람들이 상상으로나마 소외된 걸 전복하려는 일종의 르상티망(원한)이 전기적 상상력이거든요. 그건 꼭 문화 영역이 아니더라도 존재하잖아요. 다만 남들과 공유할 수 있게끔 만든 전기적 결과물은 대부분 서브컬처에서 나왔어요.

 

예를 들어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에 자동차 튜닝 문화가 많이 남아있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차를 고쳐서 타는 능력과 재료, 자본이 생긴 사람들이 차를 고치고 고치다 보니까 특정한 취향으로 수렴이 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어요. 로라이더는 자동차를 빨리 달리게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잖아요. 돈이 없는 젊은이들이 자의식과 미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가짜로 꾸미는 전기적 상상력이 발현되고, 이게 서브컬처가 되는 거죠.


책에 소개된 『지상 최강의 남자 류』는 ‘질러라!’ 밈의 원전이기도 하죠. 무슨 이야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도 없이 가버린 이야기였어요. 이것이 전기적 상상력이라면 즐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작품을 누구나 즐기진 않아요. 그런데 작품을 즐긴 사람이 분명 존재해요. 현실에서 권위적이고 중심에 있는 존재들이 전부 뒤집힌 세계였잖아요. 불상이 쪼개지고 지구도 반으로 쪼개졌죠. 기껏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소환했는데 이소룡이랑 미야모토 무사시를 섞어놓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밈이 나오고요. 최강의 남자를 묘사하면서 이소룡 사진을 트레이싱한 흔적이 되게 많이 보이는데, 작품 중에 이소룡이 나오기도 해요. 그거 자체가 전기적 상상력이라는 거죠. 그렇지만 이 상태를 옹호하진 않아요. 윤리적인 제3의 인식이 들어가지 않으면 전기적 상상력은 무조건 폭주합니다. 서브컬처적 상상력은 기존에 있던 걸 뒤집고 난 뒤 대안이 없는 상태예요. 일단 뒤집고 보자인 거예요. 『지상 최강의 남자 류』처럼 현실을 뒤집는 작품들은 자기 파멸을 하거나 세계를 파멸시키거나, 계속 팽창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게 문화로 남고 커리큘럼이 생기기 위해서는 전기적으로 뒤집고 끝나기만 해서는 안 돼요.


전기물의 추상도가 높아지면서 최근 세카이계 라이트노벨은 세계 설정의 디테일을 소녀가 남자아이에게 의존적일 거라는 생각, 즉 ‘소녀 환상’에서 찾는다고 분석했어요. 어떤 의미로는 단순한 마초이즘보다 더 나쁘다고 우려했는데요.


전기적 상상력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국한되어 있어요. 본인이 느낀 소외감을 뒤집은 거고, 그걸 공감해주는 사람이 모여서 문화가 되는 거죠. 하지만 공적인 작품을 만든다는 건 완전히 주관적인 각자의 체험과는 다르게 선험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아니면 안 돼요. 중앙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예요. 무엇이 도그마가 되고 패러다임이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때일수록 서브컬처가 단순히 중심을 뒤집는 레벨에서 더 나아가 온갖 가능성을 내보자는 거예요. 단순하게 『북두의 권』 에 나온 캐릭터 모두를 여자로 바꾸는 정도로는 더 이상 그 이야기 그대로 진행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만일 여성이 북두의 권 세계에 뚝 떨어졌고 전부 권법가라면, 그때도 가부장제적인 체계로 권법을 가르치고 일차전승이 될까?’ 하는 상상을 할 수는 있게 돼요.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아직 합의가 안 되어 있어요. 각자가 원래 재미있던 거, 원래 하던 걸 해버리면 다음 논의가 진행되지 않죠. 다음 윤리를 위해 일단 폭발적으로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시도가 의도적이나마 필요해요.


최근 한국에서도 주요 웹툰과 스토리 플랫폼에서 비슷한 포맷의 일진물이 범람한다는 지적이 있어요.


현실에 일진이 있고 찐따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순 없어요. 하지만 이 목적은 유통기한이 있어요. 현실을 반영한다는 일진물 작품이 왜 위험한지는 알아야 하죠. 현재 실제로 따돌림을 당하는 10대 청소년이 대리만족하거나 재밌어서 보는 목적은 이룰 거예요. 재미있다고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진을 하면 안 된다는 계몽 만화를 만들어도 의미가 없어요.


재미가 없을 테니까요.


그게 문화 향유자들의 욕망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예를 들어 일진들이 나와서 동네를 주름잡는 걸 말도 안 되는 판타지로 승화시켜서 개그처럼 만들어놓을 수는 있어요. 그러려면 여러 가지 재료들이 필요하니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다 나와야 하는 거죠. 다양성이 없으면 기존 작품을 필사하듯이 조금만 변형해서 만든 작품이 범람하고, 그럼 일진물이라고 하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야기만 나올 거예요.


책의 마지막에서 일본의 예를 들었어요. 제이 컬처와 제이 팝으로 한때 융성했으나 지금은 쇠락한 이유로 일본 내에서 갇힌 상호작용과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꼽았어요.


일본은 외부 유입 없이 자기 피드백에만 최적화된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80년대 버블을 겪으면서 돈은 많고 즐길 게 많으니까 머리로만 상상했던 이야기를 눈앞에서 현실로 구현해놓기도 했죠. 새로운 상상력 없이 기존에 있는 걸 계속 변주만 하면 필연적으로 쇠락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윤리를 따지지 않은 채 전기적으로 뒤집어놓은 세상을 향유하기만 했던 영수증이 지금 돌아오고 있어요. 사람들의 취향은 남아있는데 돈과 상상력이 없어지니 점점 기괴한 것이 더 늘어나는 거죠.


한국도 일본과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고요.


봉준호 감독이 상을 받고 BTS가 잘 나가고 있을 때 지금 한국 문화가 제일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던 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죠. 각자 서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다양성을 만들기도 하고, 문화 내부에서 커리큘럼이나 체제를 구축하는 게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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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장르에 뛰어들어 보세요


어쩌다 보니 서브컬처 세계에 당도한 사람도 있고, 작정하고 뛰어든 사람도 있을 텐데요. 양쪽에게 이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을 조언해주신다면요.


기존에 관심이 있던 분야에서 시작해서 관련성이 보이면 뛰어들 필요가 있어요. 보그 댄스를 보다가 홍콩영화를 발견한다든가, 흑인 문화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이소룡을 발견하는 체험인 거죠. 좋아하던 장르가 있다면, 자기 장르를 전부 부정하는 느낌으로 생소한 장르에 뛰어들어 보세요. 모르면 그냥 보지만 알고 보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돼요. 자랑도 더 할 수 있고요. 내가 남보다 잘났다고 하는 유치한 경쟁의식이 서브컬처를 즐기는 마음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거든요. 과시를 하려면 일단 다양한 장르에 뛰어들어 봐야 해요. 그래야 내 장르면 최고고 남 장르는 꽝이라는 말을 안 하게 되니까요. (웃음) 무작위로 뛰어들기에는 준비된 게 없으니, 저는 이런 식으로 뛰어들었다는 기록을 남겨놓는 거죠.


‘프로레슬링 사랑에 대해서 떠들고 싶지만 2권을 향해 남겨둔다’라고요. 후속편이 나오게 될까요?


애초에 희망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희망보다는 개인적인 비전이에요.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쏟아놓을 준비는 되어 있어요.


희망이 없지만 첫 번째 책을 내게 된 건, 같이 ‘아하! 체험’을 하고 싶다는 마음일까요?


세를 늘리겠다는 비전이죠. 어떤 분야든 즐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에요. 어떤 분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했으면 좋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이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누군가 이 책처럼 게임 세계를 하염없이 여행하는 책이 나왔으면 하시는 거죠. 케이팝 쪽에서도 산업적인 분석을 하는 책은 나오는데, 가볍게 여행하는 내용의 책이 더 나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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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작법 강사 등 직업에서 가장 크게 두는 직업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두는 직업은 소설가인데, 다른 소설가와 같은 마음으로 소설을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문학을 좋아하는 건 맞는데, 사랑하진 않아요. 따지자면 ‘올 팬’이지 개인 팬은 아닐 거예요.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정보를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비평가라기에는 아카데믹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정제된 수사를 구사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소설 쓰는 사람은 어떻게 소설을 쓰고 리얼리티를 구현해내는 건지 궁금해 했던 오타쿠 청년이 가장 어울릴 거예요.


지금 저술하는 작품이 있나요?


크툴루 신화를 바탕으로 한 단편집을 준비하고, 씨름에 관련한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 최근 씨름 붐이 일고 있잖아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기술이 화려하고 선수들 몸도 좋고요. 전문가가 알만한 구체적인 정보는 모르지만, 기존에 쌓아왔던 근육이나 기술 관련해서 아마추어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내러티브를 제공할 만한 재미를 주고 싶어요.

 


 

 

서브컬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손지상 저 | 워크라이프
컬처와 교양, 기성세대의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구성원들 간에 전파되는지, 그리고 무엇이 다르기에 서브 또는 하위 문화라고 불리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식으로 퍼졌는지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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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선우정아 “내 자체를 그대로 담은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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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우정아의 음악적 역량은 넓다. 그는 감정의 폭을 노래로 정확히 그려내는 보컬리스트이자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자기 것을 진두지휘 하는 것에서 나아가 대중 가수와의 협업도 많다. 투애니원, 아이유, 토이 등과 함께 작업했고 최근에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놀면 뭐하니>, <사운드 오브 뮤직 : 음악의 탄생>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고 있다.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는 결코 대중에게서 멀어진 적이 없다. 음악에 담긴 솔직함 덕택이다. 연일 바쁘게 작업실과 공연장을 오가는 와중 얼마 전 그의 정규 3집 <Serenade>가 발매됐다. 대외적인 성공과 별개로 음반의 속내를 열어보니 짙고 어두운, 때로는 외롭기까지 한 그의 현재가 담겨 있었다. 유난히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 17일. 홍대의 이즘 사무실에서 그에게 그 감정들의 원인을 물었다. 답변은 '나'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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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이즘 인터뷰 이후 3년 반 만에 다시 만났다. 바뀐 게 있다면?

 

방송을 많이 하게 됐고 주류 미디어에 노출도 많이 됐다. (원치 않았는데 생긴 것도 있느냐 물으니) 감사하게도 많지 않은 거 같다. 단순하고 금방 사라진 불만들은 조금 있지만 오래 붙잡아두고 아파할 고민들이 (지금 당장은) 없다. 감사할 일이다.

 

요즘 활동 궤적만 놓고 보면 완전한 상승세다. 그런데 발매된 음반<Serenade>는 주저하고 아파하는 선우정아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욕심 때문인 것 같다. (웃음) 나도 내가 왜 이런 걸까 스스로에게 많이 질문한다. 일도 잘 되고 좋은 무대에도 자주 서는데 왜 이렇게 불만이 많고 불안한 걸까? 고민을 곱씹어 보며 내가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을 계속 꿈꾸고 있기 때문이란 결론을 내렸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여기서 오는 마찰도 종종 느낀다.

 

그런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정규 2집 <It's Okay Dear>의 밝은 분위기와 상당히 대조되기도 하는데.

 

시쳇말로 이번 작품에 더 꼬여있는 내가 담겨 있다. 원래 앨범 제목도 세레나데가 아니었다. 음반 작업을 시작하면서 내 안에 얽히고설켜있는 복잡한 감정들을 많이 느꼈고 그런 쪽의 우울한 모습을 숨김없이 표현하려고 했었다. 그러던 중 'Serenade'를 완성했다. 이 곡을 다 만들고 가사, 멜로디 등을 보니 오히려 새롭게 환기시킬 지점들이 보이더라. 그래서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조금 더 밝게 끌어왔다. 결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밝고 어두움의 균형을 맞췄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에 돌입한 시기는 언제인가?

 

'쌤쌤'을 쓰면서부터였으니 2019년 1월쯤이다. 그 노래를 만들고 '이제 정규 3집을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사실 내게 미발매 곡들이 정말 많다. '배신', '생애' 등은 20대 초, 중반에 적은 노래다. 그렇게 일기장 쓰듯 쌓인 것들이 많았고 아까 말했듯 그 안에는 정말 개인적인 아프고 외로운 소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작품은 '나', '선우정아'에서 출발해 결국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으로 향했다. 발매 과정이 아니라 '과정을 발매'한 거다.

 

수록곡이 많은 이유는 뭔가?

 

이번 음반의 첫 번째 규율은 '수록곡을 많이 넣자' 였다. 내가 내 곡에 대한 집착이 좀 있다. (웃음) 내 노래들을 내가 너무 사랑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활동하는데 있어서 선우정아의 것에 역으로 갇히는 경우도 있고 한계에 젖어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아웃풋이 있어야 새로운 인풋도 생기지 않나. 나의 일부를 털어내고 싶었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해소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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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얘기를 해보자. 사람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곡을 하나만 뽑는다면?

 

'Serenade'다. 음반에서 유일하게 남을 위해 썼다. (웃음) 30대가 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제까지만 해도 비슷한 위치에 있던 친구들과 서 있는 계단, 활동하는 공간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누군가에 비해 빨리 조명을 받은 것도 있고 또 그러다 보니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네기 힘든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사람도 “그냥 모두 다 잘 잤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았다.

 

반대로 완전히 개인적인 곡도 궁금하다.

 

살면서 아주 가끔씩 빠져나올 수 없게 우울해질 때가 있다. 그날이 딱 그랬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긴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잠도 못 자고 마음도 푸석한 게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정말 횡설수설 하다가 끝이 났다. 근데 또 역설적으로 그 인터뷰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차라리 내 꾸며진 모습을 대중이 좋아해줬다면 심적으로 편했을 텐데 나의 꺼내고 싶지 않은 빈틈이 보여 졌을 때 누군가가 열광한다는 게 솔직히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Interview'에 그때 느낀 감정이 잘 정리되어 있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어려서부터 늘 자존감이 낮았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죽어라고 열심히 했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려 하려 했고 '저 다 잘해요' 하며 칭찬을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갈구했다. (웃음) 특히 20대 때 그런 나쁜 열정이 정점을 찍었는데 그래서 힘든 것도 있었고 또 그래서 성장한 부분도 있었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보면 될까?

 

나쁘게 표현하면 회피형 인간이다. (웃음) (이유를 묻자) 내가 겁이 많다. 'To zero'를 들어보면 안다. 살다 보면 상처와 잡음들을 우리가 껴안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이고 져야 할 때가 있다. 그건 싫은데 그렇다고 만남을 그르칠 수도 없고 그냥 우리 서로의 좋은 점만 기억하며 헤어지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건 어떨까 상상하다가 그 노래를 썼다.

 

콜라보도 회피한 건가?

 

대중 활동이 많아졌으니 자연스레 한 두 곡쯤 피처링을 쓸 줄 알았다.내가 음악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특히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게 너무 힘들다. 차라리 내가 힘든 건 참을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실례가 되는 건 견딜 수 없다. 내가 미련한 거다. 하하하. 그래도 꼭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넣었을 꺼다. 다만 이번 음반은 시작점 자체가 내 내면의 깊은 한 구석에 찍혀있어 단독으로 가는 게 나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완전 내 이야기, 해보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를 실컷 해보자 하며 혼자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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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안에 담긴 자신 만의 이야기. 바로 거기에서 대중들이 열광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다. 내 큰 욕심 중 하나도 이와 비슷하다.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 전하기. 감사하게도 공연을 하면 다양한 나이대의 분들이 현장을 찾아와 준다. 얼마 전에는 바이올린을 공부하는 10대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오기도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있었고. 그럴 때면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런 사랑을 받나 싶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더 진실 되게 노래를 쓰고 부르려 노력 중이다.

 

작곡가로서의 행보도 놓칠 수 없다. 최근 아이유를 필두로 이문세, 박정현 등 다른 뮤지션들에게 곡을 많이 주고 있는데 내 곡과 타인의 곡을 나누는 기준이 있다면.

 

솔직함의 정도 차에 따라 나뉘는 것 같다. 정규 1집 <Masstige>를 발매하고 본격적으로 내 생각들을 곡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언제나 솔직하게, 부끄러움까지 솔직하게 적자는 것이었다. 노래를 완성해보면 '아 이건 100% 선우정아의 스토리다' 혹은 아니다 하는 게 느껴진다. 내 연대기에서 비켜나가는 건 내가 직접 불러도 맛이 살지 않는다. 그럴 때는 다른 적임자에 양보한다. 때로는 포기의 미덕도 필요하니까.

 

어떻게 보면 데뷔 작 <Masstige>에 가장 선우정아 색이 없다.

 

1집을 발매했을 때가 21살 22살 즈음이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 앨범을 내자고 하니까 일단 시작했고 그러면서 휘뚜루마뚜루 휩쓸린 것도 많았다. 그 앨범을 내고 7년 정도 (웃으며) 수행을 했다. 크고 작은 공연도 많이 하고 다채로운 음악도 많이 시도했다. 어떻게 보면 그 긴 무명의 시간이 오늘 내 음악의 가장 큰 자양분이 됐다.

 

그렇게 이번 정규 3집까지 왔다. 음악적 지향점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나?

 

앞으로 내가 어떤 음악을 하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잘 가고 있는 지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거다. 한 가지, 감사한 상황인 건 확실하다. 이번  <Serenade>만 보더라도 작업적인 것에서의 아쉬움이 (당연히) 있다. 언제나 최상의 완벽함은 불가능하지 않나. 하지만 2019년의 선우정아 그 자체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뿌듯하다. 재밌었고 즐거웠고 시원했다. 내가 이 음반으로 받은 위로가 음악을 듣는 여러분들에게도 잘 전해진다면 더 바랄게 없다.

 

2020년의 선우정아는?

 

대중 예술은 늘 어렵다. 돈을 받고 음악을 만든다. 혹은 음악을 만들고 돈을 번다는 구조 자체에서 어떤 딜레마를 느낀다. 그래도 내 작품을 통해 선우정아라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흔들리며 살고 있구나 보여주며 위로를 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받아왔으니 주는 방법도 내게 온 것처럼 나갈 수밖에 없다. 재밌는 프로젝트들을 많이 준비 중이다. 녹슬지 않고 자주 찾아 오겠다. (웃음)

 

 


 

 

선우정아 3집 - Serenade선우정아 노래 | 비스킷 사운드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올해 총 세 번에 나누어 3집을 발매하고 있는 선우정아, 그 완전체 정규 3집 앨범이 올 연말 발매됩니다. 이번 정규 3집은 기존 EP 발매곡에서 6트랙의 신곡이 추가 수록되어 총 16개 트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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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영준 “성공은 복제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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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학을 전공하고, 은행에서 근무하던 김영준은 2007년부터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 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에 대한 글을 써왔다. 2017년 첫 책 『골목의 전쟁』에서 자영업의 위기와 실패를 다뤘던 저자는 두 번째 책에서는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자고 생각했다. 금융시장을 관심 있게 지켜본 덕에 사회가 말하는 ‘성공’에 대해서도 금융시장에서 말하는 ‘다요인’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고 『멀티팩터』 를 썼다. 『멀티팩터』 는 노력해서 성공했다, 운칠기삼이다, 라는 말에 가린 진짜 성공을 제대로 살펴본 책으로 성공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 즉 ‘멀티팩터(Multi Factor)’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멀티팩터』 는 세계의 ‘불확실성’이라는 요소를 함께 봐야만 성공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2000년대 이후에 등장해 소기업에서 규모를 갖춘 중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을 분석하고, 성공이라는 결과에 기반한 과정 평가, 즉 ‘후광효과’를 경계하기 위해서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자원에 초점을 맞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성공은 단순한 이유로 이뤄지지 않는다, 성공에는 재현불가능한 복잡한 요인이 있다고 말하는 김영준. 그렇다면 후발주자들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힌트는 가까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경영을 전쟁에 많이 비유해요. 장군의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병사의 숫자, 병사의 수준, 보급 현황, 전장의 지형 등을 확보해야 하죠. 유능한 장군은 이 중 강점인 것을 파악해서 승부를 봐요. 탁월한 전략은 결국 자기가 가진 강점 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승부를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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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서두에 이 책이 ‘영원불멸의 성공공식’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거든요. 성공에 관한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것을 책의 목적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이야기인가요?


성공에 관해 얘기하는 콘텐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의 공통점을 찾고, 이대로 하면 성공한다고 얘기하는 콘텐츠가 있고요.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풀어내는 콘텐츠가 있죠. 여기서 본질적인 의문이 생겨요. 과연 그것을 따라 하면 성공할 것인가, 하는 건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기존의 성공은 대부분 재현 가능하지 않아요. 똑같이 따라 해도 같은 결과를 내기는 힘들죠. 이 책은 그 점에 접근해 시작한 책이에요.

 

성공의 재현가능성이라는 말이 흥미롭네요.


아시다시피 선택이나 전략은 아무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택하는 것이 아니에요. 환경이나 자원이라는 제약 상황 하에서 최적의 수를 선택하는 거거든요. 때문에 사람 혹은 기업이 가진 자원이나 당시 시대 배경 등을 모두 고려해야 제대로 성공을 이해할 수 있어요. 바로 그 이유로 그때의 성공이 재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고요. 최근 뉴스인데요. 코로나19가 설 전에는 이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잖아요. 어떤 사람이 설이 끝나자마자 바로 마스크 공장에 달려갔대요. 이 사람은 기존의 성공 공식에서 말하는 기회를 포착하는 시선과 빠른 행동력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었죠. 결론을 얘기하면 이 사람은 실패했습니다. 엄청난 빚을 졌어요. 마스크 가격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올랐거든요. 계약한 공장에서 다른 곳에 더 비싸게 판 거죠. 위약금을 물더라도 이득이니까요. 성공하려면 어떤 기질이 필요하다, 무엇이 필요하다, 많이 얘기하는데요. 단지 그것만으로 성공을 얘기할 수는 없는 거예요.

 

책에서 제일 처음 스타벅스 사례를 언급했잖아요. 가령 ‘사이렌오더’를 스타벅스의 성공 요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이는 결과가 만든 서비스다, 라고 분석했어요. 이것을 구분해서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스타벅스가 왜 성공했는지, 여러 요인을 얘기하죠. 하지만 따져 보면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할 당시나 지금이나 스타벅스는 모든 요소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몇 가지 요소는 경쟁사도 만만치 않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종합적으로 본다면 결국 스타벅스가 가장 우위였어요. 더구나 진출 당시 시장은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상황이었고요. 후발주자로서는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요소가 없었어요. 스타벅스의 성공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과 경쟁 우위를 종합적으로 찾아봐야 하는 거예요.

 

그밖에 기업의 성공을 다면적으로 따져본 것이 2장에 해당하는 내용이거든요. 공차, 프릳츠 커피, 스타일난다, 무신사 등의 사례를 분석했어요.


스타일난다 사례도 그렇거든요. 자료를 찾을수록 김소희 대표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보통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팔 것인지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을 팔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데 김소희 대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소비자를 리드할 만한 감각과 센스도 있었죠. 그걸 재능이라고 하는데요. 다만 그 재능마저도 운이 필요했다는 거예요. 원래 김소희 대표는 옷 가게를 열고 싶어했어요. 어머니의 반대로 매장은 열지 못했지만 우연히 자신의 옷을 중고로라도 사고 싶다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팔기 시작했던 거죠. 여기에는 90년대 후반 IT붐으로 인한 온라인 쇼핑몰 인프라 구축과 동대문의 ‘밀리오레’ 같은 대형 소매시장의 형성이라는 환경 요소가 있었어요. 이것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만약 김소희 대표가 10년 전이나 10년 후에 사업을 시작했다면, 성공의 규모는 훨씬 더 작은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라고도 하셨죠.


1995년이었다면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을 거예요. 오프라인에 옷 가게를 열고 장사를 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이루기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봐요. 또 2015년에 했더라도 안 됐을 거라 보는 이유는 그 시대에 통하는 감각이었다는 점인데요. 실제로 2010년대 중반 즈음 스타일난다의 코스메틱브랜드 ‘3CE’ 등이 안착되면서 김소희 대표가 자신이 운영하는 별도의 브랜드를 론칭한 적이 있어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어요. 과거 방식이 더 이상 안 통했다는 거예요. 이미 시장 흐름이 변화한 상태였던 거죠. 김소희 대표의 성공은 시대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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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성공에서 많이 얘기하는 ‘노력’이나 ‘더 나은 서비스’ 등을 “최소한의 조건”(106쪽)이라고 말했어요. 이것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는 것이죠. 따라서 ‘멀티팩터’를 찾아야 한다는 거고요. 


성공에서 재능이나 노력을 되게 많이 얘기해요.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부각이 되는 것이기도 한데요. 노력은 당연히 해야죠. 그건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어요. 노력은 숫자로 계량화할 수 없기 때문에 노력에 초점을 맞추면 결과에 따라서만 노력을 판단하게 되거든요. 잘못된 거죠. 성공에서는 자본의 규모도 중요하고요. 인적 네트워크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신의 영향력, 경험치, 때로는 운 자체도 아주 중요해요. 이 다양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해요. 결국 자신이 가진 것을 분석하고, 그 전부를 활용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멀티팩터’라는 이야기를 한 거예요.

 

책에서 다룬 ‘마태효과’도 아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좋은 횟집은 회전율이 높은 횟집이에요. 회전이 빠르니 그만큼 신선한 횟감을 쓸 수 있고, 가격 협상력도 좋아지죠. 잘 되기 때문에 더 잘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것이 마태효과인데요. 멀티팩터 측면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어느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면 그로부터 얻는 경험과 명성, 영향력, 인적 네트워크 등이 있잖아요. 내가 투입할 수 있는 노력은 한계가 있어요. 재능도 마찬가지고요. 이것은 중첩되지 않지만 경험, 명성 등은 중첩이 됩니다. 덕분에 이후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고, 실패를 하더라도 이 요소들을 잃는 것을 최소화해야 하는 거예요. 실패에서는 반드시 경험이나 인적 네트워크 등 얻는 것이 있어야 해요. 그냥 날리는 건 완벽한 실패일 뿐입니다. 또 돈을 벌었어도 명성, 네트워크를 잃는다면 절반 이상 실패로 볼 수 있는 거예요. 

 

경쟁에서 승리하고 성공하는 방식은 가까이 있는 경쟁에서부터 이기는 것이다”(325쪽)라고 한 부분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당장 거대 기업과 경쟁하진 않거든요.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조금씩 이기고, 거기서 우위를 하나씩 점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만약 동네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면 스타벅스와 경쟁할 수는 없어요. 스타벅스와 경쟁할 것이 아니라 동네에 있는 다른 카페와 경쟁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내가 가진 강점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고요. 승리의 경험을 얻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추가적인 자원 등 새로 갖게 된 강점을 바탕으로 나의 우위를 점점 더 확장을 해나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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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과 불확실성의 세계


지금 사회의 불확실성과 확률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셨어요. 성공을 이야기할 때 이것 역시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사는 세계가 확률과 불확실성의 세계니까요. 최선의 선택이 최대의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게 확률과 불확실성의 기본 원리인데요. 성공 90%의 확률은 실패할 확률 10%가 있단 얘기죠. 70%는 30%의 실패 확률이 있다는 거고요. 그걸 머리로는 알아도 막상 실패를 경험하면 내가 10% 또는 30%에 놓였다는 점에 화를 내게 돼요. 더구나 현실은 확률에 더불어 확률 자체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라는 것의 지배를 받아요. 달리 말하면 우연성, 또는 운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요. 이걸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우연성, 통제불가능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는 이야기를 한 거예요.

 

우연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나요? 


최대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시행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성공을 거둘 확률이 10%라고 할 때 운이 좋으면 첫 번째 시도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겠지만 평균적으로는 10번 시도해야 한 번쯤 성공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운이 안 좋으면 10번 넘게 시도해야 하고요. 그러니 계속 시도하는 수밖에요. 어느 정도 높은 확률의 방법을 택하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멀티팩터 측면의 자원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많이 시도하는 거죠. 그게 핵심이라고 봐요.

 

자원을 최소한으로 잃는 실패, 가까운 경쟁에서의 승리, 강점의 확보 등 지금까지 얘기한 것들이 결국 많이 시도하기 위해서 염두에 둬야 하는 것들이겠네요.


네, 그래서 책 후반부에는 이런 확률적이고, 불확실성이 큰 세상을 설명하려고 애썼어요. ‘A라는 행동을 하면 B라는 결과가 기대된다’고 했을 때 반드시 B가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거고요. 전반부에서 얘기한 다양한 성공 요소를 갖춘다 하더라도 실제 결과는 확률과 불확실성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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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에필로그에 저자의 전작 『골목의 전쟁』이 어떻게 10쇄를 찍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앞서 얘기한 방법론으로 분석을 해놓았어요. 흥미로웠어요.


오늘 인터뷰도 그 책이 어느 정도 결과가 나왔으니까 얻은 기회라고 보는데요.(웃음) 『골목의 전쟁』이 출간됐을 당시는 최저임금이 2년 연속 높게 오르면서 당시 자영업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을 때예요.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 이슈가 거의 전국적인 이슈였던 때죠. 하지만 제가 알고 썼겠습니까. 우연히 그런 상황을 만났을 뿐이에요. 제 나름의 자원, 블로그 독자 등이 있었지만 거기에 당시 상황이라는 운까지 더해져서 더 널리 다뤄질 수 있었던 거예요. 『멀티팩터』 가 나온 지금, 첫 책보다 블로그 구독자도 늘었고 제게 관심을 갖는 분도 많아졌다는 점은 멀티팩터 요소죠.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운적인 요소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잖아요. 이것이 소매시장뿐 아니라 출판시장에도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은 저 역시 책을 쓰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책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제가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긴 합니다.(웃음)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건 언제나 큰 위협 요소로 볼 수 있겠어요.


흔히 불확실성이나 운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게 ‘노력하면 운이 따라온다’는 이야기인데 그건 사실 착각이에요. 운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운, 확률의 특징은 평균적 예측은 가능하지만 1회의 결과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에요. 그것 때문에 어떤 선택을 내리기가 무척 힘들어지고, 실제 환경에서는 확률 자체도 알지 못하니 그것이 큰 위협이 되죠. 결국 통제불가능을 인정하자는 건데 이것은 패배주의적 관점이 아니에요. 우연성을 인정한 후 그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자는 거예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움직일 경우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큰 타격을 입을 테니까요. 자신의 성공에 운이 개입되었다는 점을 인지하면 그 다음에는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자기 자원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게 이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일차적으로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는 분들이겠죠. 아마 그분들은 이 책을 싫어할 가능성이 높아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저는 그래서 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계발서를 따라가는 것은 그 성공을 복제해서 나에게 적용하고 싶기 때문인데요. 복제되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냉정히 볼 필요가 있고요. 자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현실을 냉정히 파악한 뒤 대응책을 세워야 해요. 그런 측면에서 스타트업 등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업력이 많이 쌓이신 분들은 아마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실 테고, 막 사업을 시작하신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죠.

 

책 속에 다른 책들도 많이 언급하고 계신데요.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도 추천해주시면 좋겠어요.


확률 개념이 실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면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추천하고요. 불확실성에 관해서는 바라바시의 『포뮬러』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마이클 모부신 운과 실력의 성공 방정식』 은 투자 관점에서 읽으면 좋을 책이고요. 

 

 

 

 


 

 

멀티팩터김영준 저 | 스마트북스
시장과 비즈니스를 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사무실에서, 골목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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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대근 “에세이를 쓰면, 풀어지는 마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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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에 적힌 어떤 기억들을 SNS에 올려 작가가 되었다. 첫 책 『웃음이 예쁘고 마음이 근사한 사람』 으로 섬세한 위로를 전했던 안대근 작가. 그가 에세이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 을 펴냈다. 눈금이 새겨진 줄자 위를 걷는 기분이 들 때마다,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할 때마다 그를 다시 서게 한 존재는 언제나 가까운 타인들이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준 힘으로 잘 자랄 수 있었던(88쪽)’소년은 ‘접힌 마음의 자국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66쪽)’어른이 됐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남기고 간 흔적은 글이 됐다.


인터뷰 중간, 안대근 작가가 일기장을 펼쳐 보였다. 자신의 에세이는 대개 일기장에서 시작한다고 말하면서. 날짜마다 빽빽이 적힌 수많은 이야기들. 그의 사려 깊은 글은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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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써내려 간 이야기


첫 인터뷰라고 들었어요.


서면 인터뷰는 종종 했는데, 이렇게 대면해서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긴장하면서 왔어요.(웃음)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 은 두 번째 책인데요. 첫 책이 나왔을 때와는 느낌이 무척 다를 것 같아요.


제가 책을 두 권이나 내게 될 줄 몰랐어요. 계속 글을 쓸 수 있고, 그걸 누군가 읽어준다는 게 너무 좋아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매일매일 감사한 일이에요. 사실 첫 책 『웃음이 예쁘고 마음이 근사한 사람』 은 운 좋게도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서 우연히 내게 된 책이었거든요. 그래서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움도 많았어요. 만약 다시 책을 쓴다면, 처음의 부끄러움을 덜어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호흡이 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또 첫 책은 제목과 내용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독자분들께 실망을 드리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이번에는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웃음) 편집자님께도 고맙고, 저 스스로도 떳떳한 기분이에요. 

 

신청자에게 매일 에세이를 한 편씩 보내주는 서비스였던 ‘매일메일근’의 원고 일부가 묶였다고요.


네. 같은 형태의 구독 서비스를 이슬아 작가님이 먼저 시작했잖아요. 그걸 보고 깊이 감명받았거든요. 꾸준히 글을 쓰는 계기가 필요한데 구독자들과 약속하면 강제적으로라도 글을 쓰게 될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한 5개월 정도 진행했는데, 그때의 글들이 책에 많이 담겼어요.

 

매일 에세이를 쓴다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힘든 것보다 아쉬움이 더 컸어요. 미리 원고를 작성해놓았다면, 계속 보완해서 더 좋은 글을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요. 처음에는 미리 써놓은 원고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일에 쫓기듯 쓴 글들도 많았거든요. 제 생각이 내용에 잘 담기지 않은 글을 보낼 때도 있었기 때문에 너무 아쉬웠어요. 그런 글들은 많이 다듬어서 책에 넣었어요.

 

김연수 소설가가 추천사를 썼어요. ‘몇 년 전, 혼자 만든 시집을 내게 선물했던 이가 이렇게 책을 펴냈다’라고 시작해요.


대학교 때 시 창작 수업을 들었는데, 매주 시를 쓰는 게 과제였어요. 그러다 보니 종강 때는 20편 정도의 시가 모였거든요. 그냥 흘려버리긴 아까워서 그 시들을 모아 시집을 만들었어요. 독립출판도 아니고 직접 프린트해서 오려 붙여가지고 가내수공업으로요.(웃음) 60권 정도 만들어 아는 사람들에게 팔고, 수익금을 기부했는데 김연수 작가님께도 드리고 싶어서 사인회 때 가지고 갔었어요. 사인을 받으면서 책을 드릴 땐 그냥 감사하다고 말씀하시고 가져가셨는데, 그때가 김연수 작가님이 『소설가의 일』을 연재하고 계실 때였거든요. 제가 시집을 만들어 드린 이야기를 문학동네 카페에 올렸더니 김연수 작가님께 메일이 왔더라고요. 독자에게 3가지 질문을 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제게 질문을 하고 싶다면서요. 그때 하신 질문 중 하나가 “당신이 김연수 작가라면 지금 뭘 하고 싶은가”였는데 “제 핸드폰 번호를 저장하고 싶다”고 답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작가님이 번호를 저장해주신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연락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고, 종종 제가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정도였는데 이번에 추천사를 써주셨어요.

 

김연수 소설가를 제일 좋아한다고 공공연히 말씀하셨잖아요. 선물 받은 기분이었겠네요.


네, 상상도 못 했는데 진짜 좋았어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표지의 그림이 독특해요.


해석이 다양하다고 들었는데요. 이 그림을 마음과 꽃으로 볼 수도 있고, 구름과 마음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이라는 제목을 한 줄로 표현한 것 같아서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요. 단순하면서도 오래 봐도 질리지 않을 듯한 표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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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아요


엄마와 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건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61쪽)’라고요.


저에게는 가족이 마음의 짐이면서도, 꼭 챙겨줘야 하는 존재거든요. 나를 힘들게 하지만, 반대로 위로가 되는 존재요. 어릴 때는 엄마와 형을 많이 원망했어요. ‘왜 남들처럼 잘해주지 않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걸 하나씩 글로 쓰다 보면 풀어지는 마음들이 있어요. 제가 그때의 엄마만큼 나이를 먹기도 했고, 그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고, 이해되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옛날에는 미움만 가득했다면 지금은 그 미움을 좀 덜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엄마를 오해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많아요. 어머니와 저는 스물세 살 차이가 나거든요. 제가 초등학생 때 엄마는 겨우 30대였던 거죠. 그때의 엄마와 지금의 제가 동갑인데요. 엄마도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또 저는 크면서 엄마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다른 엄마들과 비교해봤을 때 그렇지 않아 보였으니까요. 보통은 엄마가 아들과 아들 친구를 비교하는데, 저는 제가 엄마와 친구의 엄마를 비교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지금의 저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형과 저를 혼자 책임져야 했던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져요. 엄청나게 좋은 걸 해주지 않아도, 그저 부모로서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경제적인 고민과 걱정을 나눈 글들도 좋았어요. 경제적 결핍이 확 와닿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 많이 주저하고 고민하는 이유는 그 책임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좀 여유가 있는 친구들을 보면 그 책임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범위가 넓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당장 회사를 관두면 생활이 안 되는데, 친구들은 비교적 쉽게 그만 두고 당분간 부모님께 의지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볼 때 그렇죠. 그런데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다 비슷한 고민은 하고 살 것 같아요.

 

작가님 글에는 대부분 가족, 친구, 연인 등 ‘가까운 타인’이 들어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가져와 쓸 수밖에 없잖아요. 친구들은 “친구 팔아 글 쓴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웃음)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그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느낌,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발견하는 무언가를 통해 순간순간 어떤 감상이 떠오르고 그걸 자주 글로 쓰게 돼요.

 

등장인물에게 미리 글을 보여주기도 하나요?


미리 보여준 적은 없어요. 책이 나오기 전에는 엄마에게도 글을 안 보여드렸어요.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줬거든요. 그 편지의 내용을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렸는데, 친구에게 연락이 온 거예요. 나에게 쓴 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안 보여줬으면 좋겠다고요. 그때 정신을 차렸어요.(웃음) 제 글에 친구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흐릿하게 써요. 100% 사실만 담는 건 아니고, 부드럽게 풀어 쓰거나, 그게 누가 되어도 상관 없도록 조금씩 바꾸기도 하죠.

 

수많은 경험 중 글로 쓸 것과 쓰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면요.


정말 부끄러운 건 못 쓰겠어요. 제가 책에서 말하는 가치관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순간도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쓸 때는 망설이게 돼요. 또 내가 너무 드러나는 글도 쓰기가 어려워요.


굉장히 솔직하게 쓰신다고 생각했는데요.(웃음)


종종 들었어요.(웃음) 저는 늘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쓰거든요. 제 입장과 독자의 시선은 좀 다른가 봐요. 저에게는 거리낌 없는 이야기들도 읽는 사람에 따라 개인적인 부분을 많이 오픈했다고 느끼시는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를 ‘닮고 싶다’고 쓴 문장이 이따금씩 보였어요. 타인의 어떤 모습에서 닮고 싶은 면을 발견하나요?


욕심 없는 사람이 좋아요. 구김 없는 사람도 닮고 싶고요. 누군가를 많이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산 사람들이 있잖아요.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면을 바라보지 않고 살아온 이들이 가진 에너지에 많이 끌려요. 물론 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자발적 긍정이라고 할까요. 그걸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더 확장됐어요. 나와 닮은 사람들이 어긋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너무 닮고 싶어요. 

 

이번 책에서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다면요.


‘그런 사람과의 한강’이라는 꼭지요. 어느 날 친구와 한강에 갔는데, 야경이 너무 아름답고 좋으면서도 함께 보이는 고층 아파트들이 야속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좀 투덜댔어요. “이 비싼 아파트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겠지. 나도 강아지 키우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는데, 여긴 강아지 키우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 다들 저 아파트에 살면서 강아지 산책시키러 나온 거겠지”라고 했더니 친구가 다들 한강에 대한 로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처럼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와서 강아지 산책시키는 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장난스러운 대답이었지만 그게 위로가 됐어요. 그 친구는 저처럼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같은 상황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사람인 거잖아요.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되게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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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이타적인 사람이었으면


‘안대근 작가’라고 하면 연필로 쓴 손글씨 이미지를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거예요. 언제부터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나요?

 

처음에는 2014~2015년경에 페이스북을 시작했고, 이후에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어요. 페이스북은 주로 지인들이 제 피드를 보는데, 인스타그램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글을 읽어주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이걸 올려서 누군가가 읽게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은 아니었고, 일기장에 썼던 글을 한 번씩 종이에 옮겨 적어서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어요.

 

연필을 쓰는 이유가 뭔가요?


연필은 쓰다 보면 닳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기억에 남는 독자 리뷰가 있나요?


20살이 되고 처음 번 돈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 을 샀다는 분이 있어요. 저도 첫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샀던 옷이나 물건을 버리지 다 가지고 있거든요. 처음 번 돈으로 제 책을 사주셨다고 해서 정말 감사했어요.

 

일기 쓰는 걸 좋아하신다고요. 어릴 때부터 일기 쓰는 습관이 있었나요?


네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초등학생 때는 일기를 쓰면 선생님이 답변을 달아주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아쉽게도 그때 일기장은 가지고 있는 게 없는데 고등학교 때 쓴 일기장들은 보관하고 있어요. 일기를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트레스가 풀려서 계속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청소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얼마나 했는지 결과가 바로 보이는 일이니까요. 일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내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걸 느꼈고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스스로 계속 적는 것 같아요. 그럼 다음에 일기장을 다시 읽을 때, 내가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위안을 받을 때가 많거든요. 물론 일기장에는 정말 그날의 일정이나 생각을 편하게 막 적어요. 그런데 후에 읽다 보면 ‘이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도 좋겠다’는 일들이 있어요. 그걸 가져와서 글로 써요.

 

주로 언제 글을 쓰나요?


기쁠 때보단 울적할 때 쓰는 것 같아요. 마음이 복잡해서 정리가 필요할 때 글을 쓰면 마음이 풀어지고 괜찮아 지거든요. 제 글은 주로 일기장에서 나오잖아요. 일기도 스트레스가 많을 때 자주 쓰기 때문에 제 글에 밝은 내용이 적은 것 같아요.

 

‘이것만은 지키며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있나요?


저는 선하다는 걸 되게 중요시하거든요. ‘착하다’는 것과는 다른 ‘선하다’에 담긴 감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선한 사람이 되고 싶고, 주변에서 선한 사람들을 보는 것도 큰 행복이에요. 학창시절에 친구들한테 ‘착한 척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한 때는 그게 콤플렉스였을 정도로요. 변명을 하자면 착한 척을 한 건 아니었고, 눈치를 많이 보고 속이 좁은 사람이라 하고 싶은 행동이 있어도 쉽게 못할 때가 많았던 거예요. 예를 들어 쓰레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보면 너무 줍고 싶은데, 그걸 줍는 게 눈치 보여서 사람들이 없을 때 몰래 줍고 그랬거든요.(웃음) 그래도 선한 행동을 반복한다면, 언젠가는 ‘착한 척’이 아니라 정말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주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저는 최대한 이타적인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한 사람, 선한 행동, 선한 가치관들을 보면 계속 살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그럼 블로그 제목인 ‘이기심의 없음’도 비슷한 의미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사실 이타심에서 하는 행동들도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잖아요. 내가 그걸 하면 기분이 좋고,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거라서 모든 이타적 행동은 이기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이기심은 존재하지 않는 거죠. 이기적으로 산다고 해도, 마음이 선하다면 그게 결국은 이타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이기심은 없을 거라는 의미예요.

 

블로그에 쓴 2020년 다짐에 ‘세 번째 책을 내는 것’이 있었어요. 어떤 책을 쓰고 싶으세요?


이번에도 에세이가 될 것 같고, 지금까지 쓴 책과 크게 결은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얼마 전에 출판사와 미팅을 했거든요. 그때 편집자님께서 책을 읽고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런 글들을 많이 담아서 좀 더 좋은 사람, 이타적이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다짐 중에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는 게시글 올리지 않기’도 눈에 띄었는데요.(웃음)


사실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당당해요. 자랑 많이 안 하거든요.(웃음)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제가 낙담했던 적들이 있어서, 그 기분을 제 인스타그램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안 느끼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음가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사진을 찍어서 보정을 하고, 업로드 할 순간을 추려내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좋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더라도, 나 혼자 행복할 수 있는 순간들을 많이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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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직접 추천한다면 어떤 사람에게 권하고 싶나요? 


자신이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거나, 열심히 잘 살아왔는데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책 속에 있는 글 중에 ‘닮은 우리가 최선’이라는 글이 있어요. 저는 항상 나와 닮은 사람들이 잘 되는 걸 보면 행복해요. 어린 시절, 같은 추억을 겪은 친구들이 잘 되는 걸 보면 즐겁듯이 마음과 감성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나와 감성의 결이 같은 사람들이 잘 되고 단단해지는 걸 보면 도리어 제가 위로를 받기 때문에 저와 닮은 분들, 매사에 조금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고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특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책이 출간되고 나서는 보고 싶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고 살아요. 독자 리뷰를 보면 ‘책 제목처럼 지내고 싶다’는 글이 많은데요. 정작 제가 그걸 실천 못하면 안 된다는 어떤 책임감이 느껴져서 책 핑계로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연락이 오래 끊긴 사람에게도 먼저 연락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잘하려고 하고요. 또 안 보고 싶은 사람은 안 보고 살아요.(웃음) 요즘은 정말 책 제목처럼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안대근 저 | 달
삶 가까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좀더 내밀하고 섬세하게 기록했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이러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저자를 좀더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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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양준일 “Maybe, 시작일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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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방송으로 신드롬을 만들었다. 가수 양준일. 그가 책을 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초판 6만 부가 팔렸고, 팬들은 모든 인터넷서점에서 『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을 베스트셀러 1위로 만들었다. 19년 만에 팬들의 소환으로 활동을 재개한 양준일은 2019년 12월 31일, 생애 첫 대규모 팬미팅을 시작으로 방송, 광고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인터뷰를 즐기지 않는 그이지만 팬들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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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라이프 워커(Life walker)

 

가수가 아닌 저자로서 첫 인터뷰다. 어제 가제본을 보았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


첫 책을 손에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기쁨이다. 책이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다른 느낌이다.

 

보통의 사진 에세이는 큰 판형으로 나오는데, 일반 책보다 크기가 작다.


휴대성이 좋은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하철에서도 보고 회사에서도 보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그냥 건네줄 수도 있도록 가방에 쉽게 들어가는 크기를 원했다.

 

오랜 친구 ‘아이스크림’과 함께 쓴 책이다.


아이스크림이 없었으면 나올 수 없었던 책이다. JTBC <슈가맨>을 촬영하고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왔을 때, 아이스크림이 “그동안 오빠가 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어, 그래? That’s Ok.” 이렇게 시작된 책이다.

 

제목( 『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처럼 단어(암호말)로 엮은 책이다. ‘외로움’에서 시작돼 ‘균형’으로 끝난다.


그동안 살면서 해왔던 생각들을 모았다. 한국에 돌아와 잠깐 동안 생각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책을 내자고 했을 때 바로 승낙한 건, 내 이야기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아이스크림의 말 때문이었다. 출판사에서 이 책에 어떤 책이 됐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정리가 되지 않는 책”이라고 대답했다. 아무 쪽이나 펼쳐봐도 되는, 앞에서부터 읽어도 되고 뒤에서부터 봐도 무방한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오늘 내가 느끼는 것과 내일 느끼는 것은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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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BE’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maybe this is not everything, maybe there’s more.” 이게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젊었을 때는 ‘maybe’(아마도)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내 인생이 ‘이게 다’라면 너무 속상한 거다. 내가 겪은 실패, 어두움을 ‘maybe’로 본다면 ‘빛’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놓인 상황을 ‘maybe’라는 렌즈를 통해 본다면 다르게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즉 내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니라 시각을 바꾸는 일이다.

 

팬들로부터 ‘소환’ 당해 한국 활동을 재개했다. 인기를 실감하는가?


처음에는 놀라웠고 지금은 하루하루 기쁨이고 감사다. 팬미팅을 준비할 때만해도 한국에서 다시 활동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부담이나 책임감도 생길 것 같다.


일단 나는 기뻤으면 좋겠다. 실질적으로 상황은 언제나 바뀐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내 마음이 바뀌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그때그때 즐기고 나누고 싶다. 많은 사람의 집중을 받고 있을 때, 우리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Selfless(이타심)을 가져야 한다. 맛있는 음식이 내 앞에 있을 때, 그것을 혼자 먹으면 어떤가? 맛있을 수 있지만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그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10대부터 장년층까지 팬 층이 폭넓다. 양준일을 ‘가수’로서도 좋아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응원하는 사람도 많더라. 특히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 많다.


내가 하는 말에 관심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분들의 마음이 이미 말랑말랑한, 부드러운 상태라는증거다. 내 말의 울림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나도 말할 수 있다. 팬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깊다. 그래서 내가 존재할 수 있다.

 

161쪽의 암호말을 ‘말’이다. “’무얼 말하는가’보다 ‘누가 말하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대부분 세상에 이미 있던 이야기인데도 새삼스레 주목 받는 것처럼.”이라고 썼다.


사실이다. 우리는 일단 익어야 한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모두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성숙은 다르다. Physical world(물리적인 세계) 안에서만 인생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내 아이가 올해로 6살이 됐다. 지금은 내가 아이의 보호자이지만 아이는 곧 나보다 더 성숙한 인간으로 자랄 것이다. “밥 먹었어? 숙제했어?” 같은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나이가 되면, 그 말을 그쳐야 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가 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를 의지하게 된다. 그럴 때는 말보다는 손을 잡는 일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같은 이야기를 ‘언제’ 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건 성숙의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자’라는 별명이 생겼다. 하지만 ‘라이프 워커(Life walker)’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지 않나? 알고 보면 모두가 시간 위를 걷듯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 내가 바라는 건, 이 걸음이 단순해지는 일이다. 복잡함을 버리고 싶다. 심플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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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100점을 주고 시작하는 관계

 

만약 지난해 <슈가맨 3> 출연 요청을 거절했다면, 어땠을까?


글쎄. 지금처럼 한국에 있지는 않겠지만 크게 다른 인생을 살진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 서빙을 하면서도 나는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슈가맨3> 출연 이후 훨씬 많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사람들이 주는 관심과 사랑이 감정적으로 행복하고 즐겁지만 내 삶 자체는 똑같았을 것이다.

 

지금 당신의 화두는 무엇인가?


사람들과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이 나의 화두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 상황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Physical world가 전부가 아닌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은가? 그런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 개개인을 잘 들여다보면 영적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을 서로가 잘 바라봐 줄 수 있다면 덜 싸우고, 덜 스트레스 받으며 살 수 있다.

 

20대의 양준일과 50대의 양준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무래도 20대 때는 Physical world가 내 인생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20대 때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수였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반대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퍼센트가 더 커졌다. 50대가 된 지금은 내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 중심을 정확히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다.

 

새 앨범을 만들 계획이 있나?


음악은 언제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들은 정치, 경제, 사회만이 아니다. 바로 문화, 그것이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다. 영화든 음악이든 방송이든 사람들에게 퍼지는 문화적인 메시지의 영향은 매우 크다. 좋은 에너지와 메시지를 주는 음악을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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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가 아닌 다른 분야의 책을 낼 생각도 있는지?


확실히 있다. 아직 계획한 건 없지만 내 안에서 느끼는 것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시점이 되면 다시 책을 쓰고 싶다.

 

팬들을 굉장히 아낀다.


나의 팬들로부터 얻는 에너지가 굉장히 크다. 나는 팬들을 Queens, Kings 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종인가? 아니다. 우리는 친구다. 팬들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딱 그 사람 한 명으로 대한다. 한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돼야 우리는 진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꼭 스타여야만 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두가 가능하다.

 

좋은 관계는 어떻게 맺을 수 있나?


상대에게 100점을 주고 시작하면 된다. 나는 누굴 만나도 100점을 준다. 그 사람을 알다 보면 점수가 내려갈 수도 더 높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려가는 것에 마음을 쏟기보다 그 사람의 영원한 영혼을 바라보면 내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려면 사과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책을 내고 북 콘서트를 하겠다고 공지를 올렸다가 몇 시간 만에 글을 내렸다. 곧바로 사과했다. 우리의 생각이 짧았던 거니까 사과를 하는 게 맞았다. 친구에게 사과할 수 있으면, 이 관계는 오래갈 수 있다. 우리가 언제나 동등한 관계라는 것, 이 사실을 기억하면 좋은 관계는 어렵지 않다.

 

유튜브로 팬들과 소통할 계획이라고.


사진을 찍고 방송을 촬영해도 10%만 공개된다. 그 과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촬영하는 동안 친한 스태프들과 농담하며 장난치는 일이다. 이런 뒷모습, 작은 에피소드를 놓치고 싶지 않다. 유튜브에 올리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으니까, 좋은 채널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나?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다. 나를 좋아해주는 팬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내가 했다”가 아니라 “팬들이” 나를 높여줘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가 됐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의 팬들이 만들어준 일이다. 살아오면서 아픔이 많았다. 하지만 그 아픔을 나눠서 얻은 기쁨이 있다. 팬들이 내게 준 기쁨을 나 역시 나누고 싶다. 그것이 어떠한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하는 일들을 찾아보고 싶다.

 

 


 

 

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양준일, 아이스크림 저 | 모비딕북스
양준일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양준일이 세상에 건네는 위로와 희망 그리고 진심. 어둠 속에서도 늘 빛을 향하는 그의 생각. 표정과 몸의 선으로 마음을 전하는 사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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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문경연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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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쓴 편지, 부드럽게 굴러가는 펜 하나에 마음이 가는 사람. 문구 브랜드 ‘아날로그 키퍼’를 운영하는 문경연 디자이너의 첫인상이다. 36색 크레파스와 다이어리를 사랑했던 아이는 문방구 주인이 되고 싶었다. 취업, 학자금, 아르바이트로 치열하게 살던 20대,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세계의 문구를 탐방하러 여행을 떠났다.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의 문구 여행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자신을 ‘아날로그 키퍼의 디자이너’라 소개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문경연 저자와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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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쁨과 슬픔

 

브랜드 ‘아날로그 키퍼’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요.


고생한 만큼 좋아해 주셔서 기뻐요. 지금은 다이어리 출시를 앞두고 있어요. 제작부터 배송까지 직접 하기 때문에, 거의 작업실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웃음)

 

학창 시절 필통을 세 개씩 들고 다닐 정도로 문구를 좋아했다고요.


손으로 기록하는 게 좋아서, 문구를 하나둘 모으게 됐어요. 고등학생 시절, 단짝 친구랑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어요. 화장실에 같이 가자는 말부터 고민 상담까지 다 쪽지로 했죠. 어느 날, 친구가 템플스테이에 가서, 돌아오는 날 주려고 하루에 한 장씩 편지를 썼거든요. 그런데 친구도 저처럼 매일 편지를 쓴 거예요. 마음이 통한 거죠. 그때 무언가를 기록하고 주고받는 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문구 여행이라니 콘셉트가 독특해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었어요. 일과 학업을 병행했는데, 아이디어를 갉아먹으면서 디자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지 아무것도 정의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항공권을 검색했는데 너무 저렴한 거예요. 일단 티켓을 사고 나서 의미를 찾기 시작했어요. 이왕이면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의미를 만들고 싶어서 문구를 테마로 정했고요.

 

처음에는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고요.


한창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철없어 보일 것 같았어요. 도피하는 게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가족한테도 문구 여행이라 하지 않고 디자인을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어요. (웃음) 파리, 베를린, 런던 등 다양한 도시의 문방구를 탐방했어요. 좋아하는 것을 과연 어디까지 좋아할 수 있는지 실험해본 여행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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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는 보통 즐거웠던 순간을 부각하잖아요. 그런데 실망했던 문방구, 불안했던 심정도 같이 실으셨어요.


굉장히 불안하고 힘들었던 여행인 건 사실이었거든요. 좋다고만 쓰면 거짓말이 되잖아요. 차라리 실망했던 건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어요. 느낀 그대로 ‘좋지 않다’고 말하는 걸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더라고요. 문방구를 소개하는 책인데 내용이 어두워질까 봐 걱정도 했어요. 그래도 책의 마지막에는 용기를 내는 장면이 나오니까 있는 그대로 쓰자고 결심했죠.
 
도시마다 문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요.


가장 독특했던 곳은 상해예요. 문구를 소모품처럼 빠르게 소비하는 곳이었죠. 노트 여러 권을 그램 수로 판매하거나 다양한 연필을 한꺼번에 묶어 팔기도 하고요. 상해 사람들에게 문구는 생필품처럼 막 쓰고 다시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뉴욕이나 도쿄 사람들은 노트 한 권도 고심해서 고르고 오랫동안 간직해요. 상해에서 문구는 가볍게 즐기면서 사용하는 도구라면, 미국과 일본 사람들에게는 개인 소장품 같은 거죠.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문방구가 있었나요?


먼지 하나 없었던 런던의 문방구가 기억에 남아요. 굉장히 많은 문구가 진열돼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너무 깨끗한 거예요. 주인이 매일 청소하고 이상한 제품이 있으면 바로 교체했기 때문이죠. 문구 하나하나에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한국에 돌아와서 작업실을 준비하다 보니, 새삼 정말 대단한 공간이었구나 하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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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이야말로 용기

 

여행을 돌아온 직후, 문구 브랜드를 만드셨어요.


원래 6개월만 하고 관두려고 했어요. 그 이상 끌고 갈 수익도 자신감도 없었거든요. 애써 취업을 위한 일시적인 프로젝트라고 합리화했죠. 취업과 브랜드 중 선택하기 힘들어서 무작정 취업한 친구들을 찾아갔어요. 제품을 보여주고 ‘나 취업할까. 문구 브랜드 할까’ 하고 물어봤죠. 친구들은 제가 당연히 문구 디자인을 계속할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이 일을 할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게 용기가 됐어요.

 

브랜드가 자리잡은 요즘에도 여전히 불안한가요?


한번 결정한 뒤에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안함도 자연히 줄어들었죠. 물론 지금도 전혀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충무로 인쇄소에 가서 출력을 맡기고 대기하고 있으면, 점심시간에 직장인분들이 지나가요. 저는 돈을 아끼려고 가장 싼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계속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그러면 ‘모아둔 돈을 깎아가면서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웃음)

 

좋아하는 취미를 일로 해보니 어때요?


너무 좋아요. 제 삶을 보드게임 ‘젠가’로 비유한다면, 블록을 손수 다 쌓아서 올리는 느낌이 들어요. 잘하고 싶은 일이니까 더 고심해서 결과물을 내고 싶어지더라고요. 누군가 툭 건드려도 이건 절대 안 무너질 거라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어려움도 많지만, 제가 주체적으로 삶을 걸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문구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입문하는 법을 소개해주세요.


마음에 드는 펜을 찾는 거요! 나에게 맞는 펜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요. 저는 글씨가 작고 날카롭게 글을 쓰는 편이라, 굵기 0.25mm의 날카로운 유성펜을 사용해요. 반대로, 글씨가 크고 빠르게 쓰는 분들은 볼이 부드럽게 굴러가는 펜이 적합하거든요. 일단 마음에 드는 펜이 있으면, 거기에 맞는 다른 문구를 찾는 식으로 연쇄 반응이 생겨요.

 

요즘에는 어떤 문구에 빠져 있나요?


연필 끝의 지우개를 교체할 수 있는 블랙윙 연필을 모으고 있어요. 보통 연필은 취향대로 바꿀 수 없잖아요. 그런데 이 연필은 지우개를 빼서 리필할 수 있어요. 지우개의 색깔도 다양해서,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바꿔 끼우기도 해요. 작은 차이지만 사용자에게 기쁨을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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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좋아하는 것을 하는 용기’라는 부제가 누군가에는 폭력적으로 느껴지면 어쩌지 걱정도 했어요. 용기를 낼 수 없는 상황인 분들도 있잖아요. 다만, 직업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말하는 것만으로도 용기라고 생각해요. 저도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문구를 좋아하는 문경연입니다’라고 말할 때 훨씬 뿌듯하더라고요. 용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의 문구 여행기문경연 저 | 뜨인돌
미국, 유럽, 일본, 중국까지 7개 도시 27곳의 문방구와 문구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작가가 여행에서 만난 문구 사진들이 풍성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문구 여행 중에 쓴 일기와 메모 등 작가의 손 글씨로 가득한 기록도 책 속에 그대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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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규항 "왜 변화가 필요한지 질문하는 게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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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선생님 (1) 뮤인_정(사용가능, 크레딧 표기_ⓒ 이승택).jpg
ⓒ 이승택


사회문화 비평가인 김규항은 계속해서 계급과 시스템의 본질을 말해왔다. 『예수전』이후 오랜만에 낸 저작 『혁명노트』 에서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계급을 다시 불러내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언제 끝날지 모를 ‘전망 없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보이는 일시적 병증이 아니라 그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누릴 자유를 더 많이 주는 행동은 모두 혁명이 된다. 더 예쁜 상품, 5분이라도 더 빨리 배달해주는 서비스, 직접 고용 대신 간접 고용으로 비용을 줄인 회사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가져간다. 혁명은 일상이 되는 동시에 일상에서 멀어진다. 과거에 급진적이었던 사람들은 체제에 순응하고, 급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소수가 되었다. 영원할 것 같은 신자본주의가 혁명을 맞게 된다면, 그 혁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김규항은 특정한 방식을 이야기하는 대신, 마르크스의 『자본』을 토대로 근본적인 질문을 끄집어낸다. “변화는 ‘질문의 재개’로 시작한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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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은 물신성이 지배하는 사회


칼럼집이나 아포리즘 책은 많이 내셨지만 저작으로는 『예수전』 이후 11년 만입니다. 과작한다는 표현을 많이 들으실 것 같아요.


작가로서 정체성이나 자의식이 별로 없어서요.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할 이야기를 하는 정도이지 전업으로 글을 쓰는 분들과 저를 비교하는 건 미안한 일일 수 있죠.


어떻게 기획한 책인가요?


지금 책 내용은 재작년 정도부터 썼던 것 같아요. 원래 쓰던 걸 엎고 새로운 내용으로 썼습니다.


원래 기획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지난 이야기지만 2000년 중반부터 꽤 오랫동안 ‘386 진보’에 대한 비판을 했어요. 386 진보는 실은 우파 자유주의 세력이고, 그들이 진보라고 말하는 건 시민 혹은 인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였죠. 칼럼에 그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동어반복이 일어나서 짜임새 있게 논거를 가진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정리할수록 제가 오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민들은 가짜 진보에 기만당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최선의 진보를 선택하고 있었어요. 이 합리성을 만들어내는 힘이 무엇인가 질문하게 되었죠. 지금까지 현실을 피상적으로 봤다는 걸 인정하고 시스템의 본질과 구조를 보려고 노력했죠. 『자본』도 다시 정독하기 시작했어요.


제목은 ‘혁명 노트’지만 담긴 내용은 ‘마르크스의 자본 쉽게 읽기’ 같았어요.


『자본』을 읽다가 많은 사람이 포기하는 1권 앞부분 내용을 요약하고, 책 전체의 논거로 사용하면서 현실에 비추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죠. 제목은 혁명노트지만 막 ‘혁명을 하자!’ 이런 내용은 아니죠. (웃음) 혁명이라는 말은 양분되어 있어요. 한 편에서는 순치되어 스스럼없이 쓰이죠. 패션 광고에서도, 연예 산업에서도 혁명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는데, 그에 반해 진짜 사회 시스템 혁명을 이야기하는 건 예전보다 몇 배로 저어하죠.


어렵게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되도록 쉽게 쓰는 게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쉽게 쓸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문장과 불필요한 개념어를 남발하고 그걸 세련된 것인 양 여기는 건 지식인들의 병이 분명하죠. 하지만 ‘도리 없는 난해함’은 있습니다. 기존의 사고 틀을 새로운 사고 틀로 바꾸는 통과의례에서 수반하는 통증 같은 것이죠. 마르크스의 『자본』, 특히 1권의 가치 이론 부분은 대표적인 사례라 생각합니다. 마르크스 문장이 매우 난삽한 편이기도 하지만, ‘상품’이라는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것을 다시 낱낱이 뜯어보고 질문하여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 어렵다고 느끼는 겁니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요.


학술적인 문장은 피했지만 학술적 논거는 엄정하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새로운 해석이나 기존 진보나 좌파가 부딪힌 벽 같은 것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많아서 더욱더 그래야만 했죠. 분량이 적은데 내용이 많아서 문장도 함축적인 편이고요. 부드러운 형태를 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되도록 천천히, 현실 상황에 비추어가면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물신성이 책 곳곳에 등장합니다. 체제로 이끄는 힘이 물신성이라고 보신 건가요?


자본주의 사회, 혹은 자본주의적 형태의 근대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요. 적어도 이전 사회의 야만하고는 다르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시스템에 복속되어서 살아가는 이유는 대개 이데올로기라 설명됩니다. 국가, 교육, 언론 등을 통해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거나 내면화해서 순응하게 한다는 거죠. 그러나 앞서 말했듯 오늘 시민이 시스템의 한정된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 건 이데올로기의 기만이나 허위의식이 아니라, 상품에 들어 있는 물신성이 새로운 합리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 삶과 관련한 모든 것, 인간 노동력까지 상품이라서 이 문제를 벗어날 수 없죠.


상품이 아닌 것들이 상품으로 되었다는 뜻일까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물신성의 강도는 다 다른데, 모든 게 상품인 사회,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사회에서 가장 극단적이에요. 한국은 구제금융 사태로 그렇게 되는데,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어요. 교육을 예로 들면 아이가 얼마짜리가 될 것인가에만 집중하게 되었죠.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아이의 인격적 면모나 개성 등은 상품으로서 부차적일 뿐이에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물신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게 현재 한국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 봅니다. 하지만 힘듦의 원인 역시 또 물신성으로 해석되죠. 임금이나 빈부격차 등 경제적 차원으로만 설명이 되는 거죠. 그러나 물신이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삶을 잃을 수밖에 없죠. 한국이 헬조선이 된 건 30여 년 전보다 빈곤해져서는 아닙니다.


『자본』에서도 물신성이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고요.


특히 쉽게 설명하려고 할 때 물신성이 피상적으로 다뤄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론의 한계를 넘어서 물신성을 발견했고 『자본』 앞부분에 기술하지만, 분량도 매우 적고 다른 주제들처럼 풍부한 현실 분석이 이루어지진 않죠. 당시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의 관습이나 습속들이 여전해서, 역설적이게도 물신성을 억지하는 상태였습니다. 그가 현재 자본주의를 봤다면 물론 훨씬 더 많은 분량과 비중으로 다루었을 겁니다. 

 

 

자본가들이 말하는 혁명


롤스의 『정의론』을 언급하면서 ‘피시 쇼 PC show’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정체성 문제에 조금 더 집중하는 분들에게는 당연히 유쾌하진 않을 언급일 겁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본디 의미를 벗어나 도구화한 PC에 대해서는 오히려 저보다 더 비판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구화된 PC와 PC의 본디 의미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말씀하신 ‘PC 쇼’란 도구화된 PC를 말하는 것일까요?


주류 진보 지배 세력이 기득권을 한껏 구가하면서도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PC를 이용하는 거죠. 전통적으로 보수 우파 지배 세력은 기득권을 가지는 대가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존경받진 못했어요. 그런데 대등한 수준의 기득권을 가지면서도 정의롭고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새로운 지배세력이 나타난 거죠. 미국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와 사회주의를 말하는 버니 샌더스의 약진은 바로 그것에 대한 반발입니다. 한국은 근래 위선적 진보에 대한 반감은 팽배한 반면 그 너머를 생각하는 경향은 미약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완전히 덮을 수 있는 쇼는 없는 법이고, 머지않아 변화가 생겨날 겁니다.


미국에서 젊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냉소와 체념이 더 팽배해 있잖아요. 지금 청년 세대의 과반수가 체념과 냉소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이 과연 희망적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대론 자체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케인스주의 종식 후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노동에 대한 공격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수십 년 동안 진행되었고 결국 불안정 비정규, 저임금 노동이 보편적 형태가 되었죠. 그 현실에 전면적으로 맞닥뜨린 첫 번째 노동자들이 지금 청년이죠. 그러므로 이것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고 노동의 문제입니다. 중년 노동자들이 지금도 고임금에 고용안정을 가지는 이유는 그들이 옛날에 이미 강력하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나 자본도 현대차나 중공업 같은 대공장 노동조합을 바로 깨기는 어려워요. 대신 신규 고용을 비정규직이나 하청으로 돌린 지 오래죠. 만약 중년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면 제일 먼저 당했을 겁니다.


IT분야의 슈퍼 자본가들이 혁명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지금 현실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부터 사회 운동은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것들에 집중해왔죠. 변혁과 혁명을 말하는 건 옛날식이고 교조적인 태도라 여겨지고요. 변혁과 혁명을 말하는 건 오히려 자본가들입니다. 슈퍼 자본가들은 말끝마다 자신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해요. 그걸 견제해야 할 인문학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봉사하고요. 이렇게 전도된 세상이 다수에게 좋은 세상이긴 어렵겠죠. 


다들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인간의 노동을 질문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운동은 당연히 거시적인 운동과 미시적인 운동이 있어야 해요. 관념 속에서 편의적으로 두 개를 나눠서 사고할 뿐이죠. 논의하기 위해서 ‘이제는 물질 노동의 시대가 아니라 비물질 노동의 시대다’ ‘산업 노동의 시대를 떠나서 이제는 어떻다’ 하는 질문의 개념을 정하는 건 의미 있겠지만, 문제는 인텔리들이 관념화된 걸 그대로 현실로 치환해 버려서 바보 같은 소리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자본은 물질 노동인가 비물질 노동인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들의 이윤과 축적 활동에 필요한지만 따져요. 이윤이 된다면 당장 매뉴팩처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인공지능 시대이니 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말들은 자본의 이윤 추구 활동에 의한 산업 형태의 변화를 마치 보편적인 문명 변화인 것처럼 전제하고 있죠. 애석하게도 좌파도 그렇습니다. 그런 변화가 왜 필요한지 그 실체는 무엇인지부터 질문하는 게 순서죠.

 

변화는 ‘질문의 재개’로 시작한다. 예컨대 다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맞아…’라 말할 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인간이 그것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것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질문이다. (중략) 물신세계에서 인간은 모든 ‘첫 질문’을 잊는다. 자식 교육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부모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잊고, 집을 사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고 저축하는 사람은 ‘집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잊는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갈수록 삶의 의미도 사라져간다. 첫 질문의 재개를 통해 개인은 시스템 속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 234쪽

 

인문학이 상품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부자들끼리 하는 소규모 고액강연 같은 건 천박하다는 비판을 꽤 받더라고요. 그러나 더 중요한 부분은 오히려 미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한 총체적 사유라고 할 수 있고, 자본주의 물신성과는 대립하는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죠. 인문학은 더 비싼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되는 게 아니라, 인간은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 깊이 천착하니까요. CEO 인문학이니 인문학으로 광고하기니 하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죠. 이런 기본 상식조차 없는 인문학 운동들이 많습니다. 


인문학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라고 하는 이름부터 자유주의적이지 않습니까?


이놈의 자유가 늘 문제인데요. 말씀하신 대로 자유는 근대의 기본 이상이에요. 이전 한국 사회의 자유는 반공주의를 의미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유방임적 시장주의를 의미했고요. 하지만 현재 자유주의는 미국의 민주당처럼 국가가 시장에 개입도 하는 수정된 것이죠. 마르크스는 개인의 자유가 생략된 집단적인 이상 사회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그의 관심은 철저하게 개인이었죠.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임금노예이자 하나의 상품일 뿐이어서 개인이 제 개성과 창조성을 자유롭게 발현되는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봤죠. 결국 자유는 아직 제대로 구현된 적이 없습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질문이 필요합니다.

 

 

지식인은 편향되어야죠


신자유주의 비판과 함께 혁명을 이야기할 때, 생태주의나 페미니즘 등 다른 운동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시스템의 골간에 대한 운동은 수많은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한 사람이 그 균형을 적절하게 가지려 애쓸 필요는 없어요. 어떤 사람은 페미니즘에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일상에서의 실천에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재벌 사회화 같은 거대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겠죠. 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 강연에서 물었어요.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 구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고 둘이 싸우기도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 다 변해야죠’라고 말하더라고요. 이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잊곤 합니다.


‘투쟁들 간의 상호존중을 통한 연결’(246쪽)이라고 표현해주셨어요.


운동은 대의가 있지만 운동하는 인간은 역시 인간이거든요. 실망도 하고 상처도 받고 질투나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원한 같은 걸 갖기도 해요. 치열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일수록 늘 상황이 어렵고 곤란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런 정서에 노출되기 더 쉬운 면도 있죠. 인간사는 어디에나 다 같아요. 제 생각엔 그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운동의 대의나 다른 운동에 대한 존중과 연결을 인정할 수 있고, 시스템을 제대로 타격할 수 있는 거죠.


1998년부터 쓴 글이 ‘규항넷’에 모여 있어요. 선생님의 역사가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전작으로 쓴 『예수전』『혁명노트』 는 출판 계약상 올리기 어렵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올렸어요.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계속 올리다 보니 지금은 긴 기간 동안 꽤 양이 많은 데이터가 되었어요.


예전 저작이나 활동을 봤을 때 편향적으로 생각했다고 새로 깨달았던 적은 없나요?


피상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는 반성은 한 적이 있는데, 편향에 빠졌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대로 된 편향을 갖지 못한 거겠죠. 지식인은 편향되어야죠. 편향의 다양성 속에서 토론도 일어나고 사회적 진전이 있는 것이지, 사실은 다 비슷한데 갈등을 벌이고 조국 사태처럼 기껏해야 누가 더 도둑놈인지 싸우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념이 분화되지 않고 정념만 잔뜩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두 거대 정치 세력이 이념적으로는 비슷해요. 30, 40년 전 이쪽은 잡아가고 이쪽은 잡혀갔다는 추억만 다르죠. 이념이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영의 이해관계로만 싸우는 건데, 오히려 더 과열되고 인격화됩니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이념 갈등을 넘어 사회가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회는 적절히 분화되어야 하죠. 5천만 명이 다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제 방식대로 삶을 사는 게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해요.


개인주의를 중요시하시는군요.


한국은 여전히 우편향 사회이고 그나마 글 쓰고 책 내는 사람 중에는 제가 꽤 왼편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좌파 이미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개인주의자였고 지금도 그래요. 80년대 선배들이 협동 농장과 집단 생활을 하는 공동체 같은 걸 이상적인 사회로 이야기할 때 어린 마음에 고민이 많았어요. 혼자 생각했죠. ‘그런 세상을 만드는 투쟁에는 열심히 참여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세상이 오면 난 숙청당하겠지. 할 수 없는 일이지.’ (웃음)


미술 협업 과정을 하고 있다고요. 지금 계획하는 협업이나 다음 저작 계획이 잡힌 게 있나요?


작가, 큐레이터와 셋이서 『혁명 노트』렉쳐 퍼포먼스와 오디오 주석을 준비하고 있는데, 코로나 19 상황 때문에 오디오 주석이 먼저 나올 것 같군요. 『혁명 노트』를 집필하면서 지면 칼럼 쓰는 것은 중단했는데 앞으로도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쓰지 않고, 책을 쓰려고 해요. 오래전 계약하고 미뤄 둔 교육 관련 책 등 몇 가지가 있습니다.

 

 

 


 


 

 

혁명노트김규항 저 | 알마
개인적 층위에서 영성의 혁명을 넘어, 개인들의 총합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사회 시스템을 관통한다. “인류 역사는 계급의 역사다. 인류는 계급이 만들어질 조건이 되는 한, 마치 본능의 발현인 듯 어김없이, 계급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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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손희정 “여성이 쓴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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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전후로 새롭게 일어난 페미니즘 붐을 『페미니즘 리부트』 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던 저자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소라넷부터 변희수 하사 사건까지, 쓰고 또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시공간”으로써 이 세계를 끌어안기 위해 노력하고 싸워온 시간이었다. 그동안 써 온 글들을 한 데 엮은 책에는 다시, 쓰는, 세계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지난 4년의 페미니즘 이슈들을 되짚는다. 때로는 성큼 한 발 나아간 듯 했고 때로는 반 보 물러선 것 같았던 사건들, 탄식은 길었고 웃음은 짧았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저자는 “의외로 낙관적이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남긴 족적을 되돌아보면서, 그것들을 기록하면서, 외려 낙관하게 되었다고. 책장을 덮으며, 그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다시, 쓰는, 세계를 관통한 뒤 ‘다음’을 고민하게 된 까닭이다.

 

‘페미니스트 크리틱’ 손희정은 『페미니즘 리부트』 『성평등』을 썼다. 『을들의 당나귀 귀』『그런 남자는 없다』 를 책임 편집했고 『대한민국 넷페미史』 , 『페미니스트 모먼트』 , 『그럼에도 페미니즘』 , 『소녀들』 ,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등을 함께 썼다.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서 <손희정의 TMI>를 진행하고 있으며 팟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 <혼밥 생활자의 책장>, KBS 라디오 <정용실의 뉴스브런치>에도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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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쓴다는 것, 늘 용기를 내야 되는 일


최근의 기사들을 보니, 숙명여대 A씨 사건과 관련해서 인터뷰를 많이 하셨더라고요.


네, 요청이 들어오면 다 하고 있어요.

 

책임감 때문인가요?


그렇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제가 『다크룸』이라는 책을 번역했을 즈음에 『맨 얼라이브』라는 트랜스젠더 남성에 대한 책도 나왔고, 변희수 하사 커밍아웃도 있었고, 숙대 사건도 있었어요. 여러 사건을 보면서 지금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 담론이 티핑 포인트를 찍은 것이 아닌가, 좋은 담론이 더 풍부하게 나와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숙명여대 A씨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건이고 정말 고통스러운 사건이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더 풍부한 담론들이 나오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마이크가 주어진 스피커로서 쥐고 있는 책임과 소명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거기에 잘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건이 한국사회의 소수자 혐오가 드러난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혐오가 포장되는 사건이기도 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로서의 책임감도 조금 있었던 것 같고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나온 두 번째 책인데 제목이 다시, 쓰는, 세계예요. 함의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아요.


다시, 쓰는, 세계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쓴 칼럼들을 모은 책이에요. 2016년에 <경향신문>에서 ‘청춘 직설’이라는 코너를 시작했어요. 중간에 ‘직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요. 처음으로 쓴 원고가 소라넷에 대한 거였어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성범죄를 비판하는 글을 썼었고요. ‘직설’ 코너를 마무리하고 현재는 ‘지금/여기’라는 지면을 받아서 쓰고 있는데 첫 칼럼이 변희수 하사에 대한 글이었어요.

 

말씀하신 두 편의 글 모두 이번 책에 실려 있죠.


네. ‘직설’의 첫 글이 소라넷이었고 ‘지금/여기’의 첫 글이 변희수 하사에 대한 글이었다는 게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어떤 흐름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운 건, 그렇다고 해서 소라넷 사건이 해결된 게 아니거든요. 거기에 ‘다시’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과 차별을 해결해야 되는 조건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타자들을 쉽게 지우려고 하는 포퓰리즘적인 반동이 등장하게 되고, 페미니즘이 이 모든 걸 이야기하면서 갈 수밖에 없는 더 복잡한 운동으로 대중에게 다가고 있는 거죠. 이 책이 2015년 이후 한국 페미니즘의 어떤 흐름을 짚고 있다면, 그 지점에서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에다시, 쓰는, 세계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다시’의 의미와, 너무 쉽게 사회가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힘이 얽혀있는 공간에 대한 글쓰기라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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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로서 내가 계속 쓰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고민을 하셨던 것 같아요.


여자가 쓴다는 게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왜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여성이 쓴다는 것의 문턱은 굉장히 낮아졌고 누구나 쓸 수 있는데 왜 아직도 이것은 정치적인 행위인지 생각해 보면, 일단 여성에게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온 가부장제의 역사가 우리들의 DNA 안에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쓴다는 건 늘 용기를 내야 되는 일인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 떠올랐던 사건이 있었는데 2012년, 2013년 즈음에 어느 날 제가 신문을 봤는데 여성 필자가 너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트친들한테 ‘여성 필자 풀(pool)을 모아서 신문사에 제안을 하자, 누구를 추천할 수 있을까?’라고 글을 남겼어요. 그때 정희진, 권김현영, 전희경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사건이 떠오르더라고요.

 

왜요?


여성들이 글을 쓸 수 있는 문턱은 낮아졌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서 권위 있다고 말해지는 지면에는 여성들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잘 허락되지 않았고, 그런 지면에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건 언제나 사적 글쓰기로 사소화 됐던 역사가 최근까지도 있었던 거죠. 여성에게는 쓴다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편협하게 허락되어 있었던 것 아닌가 싶고, 그렇다면 저한테 글을 쓴다는 건 여성일 뿐만 아니라 소수자로서 허락돼 있는 굉장히 협소한 세계를 확장하는 작업인 거죠. 그 자체가 세계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바꿔내는 작업과 연결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들에게 허락되어 있지 않은 작은 지면을 하나 받으면 악착같이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더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지난 4년간 쓴 글들을 엮으면서 나는 의외로 낙관적이 되었다”고 쓰셨죠. 지금 시점에 다시, 쓰는, 세계를 출간하신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한국사회가 너무 다이나믹해서 매일 매일 사건이 터지잖아요.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일희일비하게 되거든요. 낙태죄 폐지됐다고 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가, 다음 날 다른 뉴스를 보면 다 망한 것 같고. 그런데 역사를 놓고 보면, 여성들의 버텨온 이야기들을 보면,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시간 속에 쌓여온 이야기들을 계속 드러내는 것, 그래서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걸 나누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존경하는 여성노동운동가 선생님이 얼마 전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시간이 정말 무서운 거라서, 그 시간 안에서 반드시 풍화되는 것과 반드시 더 빛나는 것이 있다고요. 저한테는 그런 믿음이 있는 거죠. 우리의 운동과 우리의 글쓰기는 시간 속에서 빛나는 순간이 올 거다.

 

표지를 보면, 레인보우를 연상시키는 컬러로 채워져 있어요.


운동은 언제나 플러스의 운동이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마이너스의 운동이면 안 될 것 같아요. 이것 안 되고, 저것 안 되고, 하면서 가장 견고한 결정체로 굳어서 운신의 폭을 줄이는 운동은 결국 운동일 수 없지 않을까 싶고 플러스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페미니즘을 더욱 확장시킬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레인보우는 저한테 페미니즘 색깔이거든요. 아마 디자이너님도 그런 고려를 다 해주셨던 것 같아요. 표지 디자인을 빼고 이 책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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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의미


작가님에게 ‘세계’는 어떤 의미인가요? 페미니스트로서 세계에 넌덜머리가 나기도 할 것 같은데요(웃음).


최근에 제일 많이 떠올린 단어는 ‘지긋지긋’인 것 같은데요. 지긋지긋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열심히 살까 생각해 보면 함께 계속 잘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 때문이구나 싶어요. 결국 나를 움직이는 건 증오라기보다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너무 진부한데 그걸 부정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주목을 많이 받는 글 쓰는 사람 중에 한 명이고, 무슨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이 페북이든 어디든 와서 손희정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본단 말이에요. 그럴 때 한 마디를 하는 게 되게 큰 부담이거든요. 너무 크게 해석되거나 너무 크게 왜곡당하거나 때로는 너무 크게 실제로 영향을 미쳐요.

 

그런 부담감은 어떻게 견디세요?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계속 배우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많은 신뢰할 만한 페미니스트 동료들이 있고, 내가 말실수를 하면 이 동료들이 바로잡아줄 것이고, 이 동료들이 힘에 부칠 때 내가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원을 이제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페미니스트 비평이 단일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각보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각각의 다른 의견들이 패치처럼 이어져나가면서 점점 확대되는 거죠. 페미니즘 내에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근본적으로 싸우고 싶은 건 단 한 가지인 것 같아요. 마이너스가 되게 하는 목소리. 다른 여러 가지 색깔들을 지우겠다고 말하는 목소리. 그것 하나한테는 단호하게 당신이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의 페미니즘 이슈 중에 우리를 기쁘게 했던 것들도 있었죠. 낙태죄 폐지를 이끌어낸 게 대표적일 텐데요. 이런 몇몇 사건에 너무 도취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게 4부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의 주요 내용인데요. 혁명적인 순간은 너무 좋죠. 이미지화하기도 좋고, 팔기도 좋고, 언론에서 되게 즐거워하기도 좋고. 그런데 실은 혁명이 가능하기까지의 시간은 너무 지난하고 혁명 이후의 성과를 탈취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굉장히 지난한 것 아닌가 싶어요. 『백래시』 를 쓴 수전 팔루디와 이메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수전 팔루디가 재차 강조했던 게 있었어요. 언론이 너무 신나게 ‘여성들이 승리했다, 여성의 세기가 열릴 거다’라고 치어링(cheering)하는 것을 경계해야 된다는 거였어요. 언론은 이게 팔리는 뉴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한편으로는 여성을 비롯해서 소수자들은 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들리기 시작하면 되게 크게 들리거든요. 또 언론은 그걸 과장하는 걸 좋아하고요. 우리가 ‘그렇지, 이렇게 달라졌지’ 하는 순간 백래시는 굉장히 빠르게 크게 닥쳐오기 때문에 사실은 혁명 이후의 시간들을 어떻게 쌓는가가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지나치게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 이야말로 야기되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다”라고 쓰셨어요. 두려움이 사슬이 될 수도 있다고요.


너무 어려운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음... 정희진 선생님이 어떤 글에서 ‘가부장제가 여성들에게 유일하게 허락한 자리가 피해자의 자리였다’고 쓰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정체성으로 신나게 달려가면 그것은 우리의 운신의 폭을 얼마나 줄이는 일인지,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양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전에는 저 사람이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지나가는 일들이 있었던 거잖아요. 성희롱이나 언어폭력을 당해도 ‘그럴 수 있지’ 하고. 그게 폭력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사회 변화를 위해서도 나의 건강이나 입지를 위해서도 너무 중요한 일이지만, 그걸 바꿔낼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얼마나 믿는가라는 질문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한테 페미니즘은 이것이 단순히 나를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라, 이것이 불의이고 부당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공포, 두려움 같은 것들만 강조되는 측면이 있죠.


공포와 두려움은 나를 지키는 감정이기 때문에 너무 중요한데, 모든 것이 공포와 두려움으로만 귀결되면 나를 갉아먹는 감정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개개인마다 다른 경험들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너무 어려워요. 공포와 두려움으로 못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그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세요’ 이런 이야기로 들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운동 전반으로 봤을 때는 공포라는 감정을 어떻게 우리의 힘으로 가지고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언제쯤 세상이 바뀔까?’ 하고 생각해 보면 아득해질 때가 있어요.


제가 2012~2013년 즈음에 박사 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정말로 행려병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공유했었어요.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드니까요.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아요. 어쨌든 저한테 지면이 온다는 건, 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역시 변했다는 거거든요. 2014년과 2020년의 신문 지면을 비교해 보면 필자의 성별이나 다양성은 비교할 수가 없어요. 이건 확실히 지난 5년간 페미니즘이 바꾼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 여자들만 챙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한국사회의 소수자 의제가 훨씬 더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었던 데에는 페미니스트들의 역할 역시 있었다고 보거든요. 물론 페미니즘 운동과 다른 소수자 운동이 특히 인식론의 차원에서 그렇게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요. 어쨌거나 다른 소수자 운동이 페미니즘 운동을 확장시켜준 것만큼이나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겠죠. 그것이 연대가 하는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다양한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제가 영화 관계자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스웨덴, 호주, 영국 등 성평등 영화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가 있어요. 예컨대 국가에서 제작비나 배급비 등을 지원해줄 때 감독, 촬영 등 키 스태프 안에 여성 비율이 몇 퍼센트인지, 배우는 얼마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기용되는지 등을 기준으로 지원을 하는 거죠. 가까운 선배인 조혜영 영화평론가가 이런 성평등 영화 정책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남녀동수제와 같은 성평등 영화정책을 논의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결국 인종, 성적지향, 신체조건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소수자를 위한 다양성 영화정책으로 확대된다고요. 페미니즘과 여성이라고 하는 이슈는 어쨌든 인구의 절반이기 때문에 굉장히 파워가 있고, 그래서 성평등 영화 정책이 힘을 가지고 끌고 가기 시작하면 다른 소수자 의제가 같이 온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연대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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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움직임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하다”고 쓰셨어요. “그건 이 망가진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체성”이라고요.


남성 페미니스트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페미니즘이 우리를 옥죄고 있는 성적 질서 자체와 싸우는 거라면, 남자가 이 질서의 수혜를 더 많이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 전부가 동질적인 계급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안에 차이가 굉장히 많고, 가부장제가 마치 남성들에게 수혜를 주는 것처럼 하면서 남성들을 더 착취하는 부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당연히 남성들도 페미니스트가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믿지 않는 남성 페미니스트는 ‘내가 너희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서 페미니스트가 되어 줄게’라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당신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제대로 이 사회를 분석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지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경향신문> 칼럼에 그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이런 댓글이 있었어요. ‘아줌마, 그 좋은 거 너나 해.’ 이때의 ‘아줌마’는 멸칭인 거죠. 멸칭으로 깎아내려서 조롱함으로써 자기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 댓글을 캡쳐해서 강의에 활용했어요. ‘이런 것이 여성혐오입니다’라고 말씀드렸죠(웃음).

 

한국사회가 규정한 ‘남성다움’에 부합하지 않는 남성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남성들이 자각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성별 고정관념이 너무 세다는 거예요. 이 성별 고정관념을 어떻게 깨야 될까가 요즘 저의 고민인데요. 사람은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남자들은 여러 가지 정체성 중에서도 ‘남자’에 제일 먼저 클릭되는 것 같아요. 그건 여성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제가 종종 비교하는 사례가 있어요.

 

어떤 건가요?


청년 여성들이 양진호 웹하드 카르텔의 문제를 계속 이야기했을 때 한국사회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양진호가 남성 노동자를 때리는 동영상이 풀리면서 반응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위력에 의한 갑질, 폭력이라는 거에 되게 빠르게 반응한 거죠. 그 그림을 보면 빠르게 노동자에게 동일시하는데, 똑같은 사례라고 볼 수 없지만 비교해 볼 만한 사례는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이었다고 생각해요. 위력에 의한 폭력인데 이게 성폭력이 되었을 때는 노동자로서 김지은과 동일시하지 않아요. 저는 남자들이 새벽 2시에 담배를 사서 상사한테 가야 되는 상황을 분명히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들도 당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게 성폭력의 문제가 되어버리면 빠르게 안희정이랑 동일시하는 거죠.

 

자신도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요.


당신들은 안희정이 아니고, 기득권들이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성별 고정관념이라는 걸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보고 노동자로서 손잡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기가 훨씬 더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곳으로 빨리 위치를 바꾸는 게 되게 기만적인 이중 잣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성별 고정관념의 연장선상에서 또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는 거죠.

 

책 말미에 「돼지를 그대 품 안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어요. 마리아 미즈가 쓴 책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속의 ‘어머니와 암퇘지’ 일화와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 내린 광장의 폐허를 돌아보며 세상이 망했다고 한탄하면서 시류에 떠밀려가는 것은 언제나 쉽다. 무엇보다 어렵지만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은 당장 잡아먹어도 부족할 돼지를 부득부득 먹이고 키워내는 일이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혁명 이후를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과를 이뤄내고 그것을 나의 자원으로 가져가는 건 너무 중요하지만, 그것과 더불어서 일상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노력들이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리아 미즈가 돼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비교하는 게 그런 거였어요. 남성 철학자들이 파국을 이야기하고 세계가 망했다고 울부짖으면서 땅을 뒹굴고 있을 때,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하루하루 먹을 것을 키워내는 농부의 노동이고 여성의 노동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움직임들은 뭘까, 미운 사람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움직임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계속 드는 거죠.

 

장혜영 감독의 영화 <어른이 되면>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죠.


그 일상이라는 말을 구체화시키려고 이야기했던 게 <어른이 되면>이었던 거죠. 같이 사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뭘 준비해야 되는가 생각해 보면, 저는 ‘정성’이라는 말을 되게 좋아하는데, 뭐든 정성을 들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아직 다시, 쓰는, 세계를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딱 한 편의 글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글을 고르시겠어요?


하나만 읽어본다고 하시면, 역시 소라넷에 대해 쓴 글인 것 같아요(「괴물은 침묵을 먹고 자란다」). 아니면 유튜브에 있는 여혐 시장에 대해 쓴 「백래시와 여혐 시장」이요. 그 글 한 편을 쓰려고 정말 리서치를 많이 했거든요. 그 사람들의 유튜버 계정을 다 들어가 보고... 그건 정말 극한직업이었어요. 봐줄 수가 없더라고요. 이야기와 이미지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여성성과 남성성의 신화 구축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가 사실 저의 전문분야예요. 그 글들이 제 작업의 성격을 제일 잘 보여주지 않나 싶어서 권해드립니다. 

 


 

 

다시, 쓰는, 세계손희정 저 | 오월의봄
그는 새삼 스스로에게 ‘쓰는 행위’란 무엇인지 성찰한다. “정의롭지 않고 불평등한 세계를 다시 쓰기 위해 쉬지 않고 반복해서 쓰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혐오와 배제로 가득한 이 세계의 이야기를 페미니스트 지혜와 상상력으로 다시 쓰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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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더글라스 케네디 “아이의 눈으로 어른 세상을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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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귀재 더글라스 케네디가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동화로 돌아왔다. 산문집 『빅 퀘스천』에서 ‘우리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던 저자는 이번에는 작심하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11살 아이 오로르에게는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남들과 다른 오로르에게 사람들은 ‘자폐아’라며 조롱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오로르의 눈에는 솔직한 마음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행해 보일 뿐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오로르의 모습은 프랑스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조안 스파르의 그림과 만나 마법 같은 이야기로 탄생했다. 스릴러의 제왕이 창조한 동화 세계가 궁금하다면, 더글러스 케네디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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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작업으로 탄생한 빛의 아이

 

『오로르』 는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동화입니다. 지금껏 써 오신 긴장감 넘치는 소설과 다르다는 점에서, 특별한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아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쓰기로 한 계기가 있나요?


어른들 세계의 문제를 아이의 시각으로 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가정 문제, 학교 문제, 다른 사람들의 악한 행동, 집단 괴롭힘이 피해자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또 가해자들도 역시 자신의 행동으로 스스로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 엄마와 아빠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는 꿈이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등 많은 아이들이 겪는 일들을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쓰고 싶었죠. 그러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문제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누구나 문제를 겪으며 삽니다! 우리 주위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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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 2019 by Joann Sfar

 

 

항상 한 가지 주제에 질문을 던져놓고 소설을 쓰시는 것 같아요. 이번 『오로르』 를 통해, 어떤 주제를 탐색하셨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자랐어요. 그래서 작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두 아이, 맥스와 아멜리아도 아주 특별하고 독창적이죠. (네, 저는 자부심 넘치는 아버지입니다.) 그래도 제 아이들은 세상 사람들 눈에 다르게 비춰졌어요. 오로르도 세상 사람들과 아주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신비한 능력을 갖고 있죠. 그러므로 이 소설에 숨어 있는 진짜 요점은 ‘다른 것은 특별하다!’입니다.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 조안 스파르와의 협업은 어땠나요? 공동 작업의 묘미를 전해주세요.

 

조안 스파르는 천재예요. 아주 재미있고 특별한 사람입니다. 파리의 카페에서 작업 때문에 처음 만났어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줄거리를 들려주세요.” 제가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조안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협업의 시작이었죠. 우리가 정한 규칙은 단순합니다. 제가 글을 쓰고, 조안이 그림을 그린다. 그게 작업의 규칙이었어요! 처음부터 서로를 신뢰했습니다. 조안은 저한테 인물이나 장소를 저의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건 피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그 제안을 존중했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안이 만들어 낸 세상의 모습에 감탄하고 매료됐죠. 조안이 오로르를 그리기 전까지는 저도 오로르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도 못 했어요. 조안이 그린 오로르를 보자마자 저는 생각했어요. ’바로 이 아이야!’ 그러면서 이렇게 뛰어나고 휴머니즘적인 세계관을 지닌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작업할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인공 ‘오로르’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상하게 된 과정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소설가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먹고 삽니다. 들려주는 사람이죠. 언제나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씁니다. 사람들의 눈을 통해 읽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오로르처럼요.


‘문제 많은 어른 세계’에서는 장애가 있는 이들한테 편견을 갖게 되기가 쉽죠. 장애를 “멋지게 활용할 줄 아는” 오로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제 아들 맥스는 자폐증을 갖고 있습니다. 맥스가 5살 때, 병원에서는 맥스가 평범한 삶을 살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22년 뒤, 맥스는 런던 대학교 석사 학위를 땄고, 완전히 독립된 젊은이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 그렇게 되기까지 몹시 힘들었죠. 그렇지만 너무나도 특별한 아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봐왔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인생을 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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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 2019 by Joann Sfar

 

 

인생의 핵심은 ‘끈기와 유연성’

 

오로르의 가족은 보통 동화에 나오고는 하는 ‘정상 가족’은 아니에요. 오로르의 엄마, 아빠는 이혼했지만, 질투, 우정 등 복합적인 감정을 나누는데요. 어떤 가족을 오로르에게 만들어주고 싶으셨나요?

 

제 부모님은 늘 심하게 싸웠습니다. 끔찍하고 볼썽사나운 이혼 과정을 겪어야 했죠. 그래서 오로르의 부모는 이혼으로 상처받고 약해지긴 했어도 서로에게 화내거나 적대적이지는 않게 그리고 싶었어요. 오로르의 부모는 맞지 않음을 알고 헤어졌지만, 한때 사랑하고 함께 아이들을 만들고 키운 사람들인 만큼 결혼 생활이 깨어진 것에 조용히 후회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각자의 삶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와 맞닥뜨려 당황하고 있죠. 이건 저한테 중요한 주제입니다. 부모와 형제자매가 각자 자신의 문제로 힘들 때도 있으며, 그건 절대로 아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었죠.


저는 성장기 때 부모가 심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장남인 저한테 제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아주 미성숙한 태도였죠. 그런 경험이 저한테는 나쁜 기억으로 남았어요. 그리고 제 소설 어디에나 있는 죄책감의 씨가 됐죠. (그렇지만 죄책감을 제 소설들에서 잘 이용할 수 있었죠!) 그래도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저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키울 때 아주 확실하게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의 불행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확고하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죠.


산문집 『빅 퀘스천』에서는 ‘우리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위기와 동행하며 본질적으로 비극일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반면, 오로르는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작가님의 인생관에 변화가 있었나요? 아니면, 삶의 비극성에도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신 것인지요?

 

아주 좋은 질문이군요! 저는 인생이 경이로우면서도 비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화책에 비극을 넣고 싶지는 않았어요. 누구나 어느 시점에서는 비극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지만, 고난과 슬픔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어른을 상대로 말할 때와 어린이를 상대로 말할 때 분명 달라져야 합니다. 오로르는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에서 살기도 하지만, ‘지금 여기’ 하루하루의 현실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죠. 저는 끈기와 유연성이 인생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힘든 일 뒤에는 좋은 일이 온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새기고요. 그게 이 책의 바탕입니다.


꾸준히 뛰어난 장편소설들을 써 오셨어요. 성공한 작가가 되려면 20년은 투자해야 한다고 하셨고요. 지치지 않고 글쓰기를 이어온 비결이 있다면요?

 

일주일에 엿새는 글을 씁니다. 매일 일정한 양을 씁니다. 작가로 살아가려면, 창의력에 대한 의심, 자신에 대한 의심이 언제나 따라다닌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건 작가로서 살아가는 일부죠. 그 과정에서 거절, 실망, 좌절을 수없이 겪는다는 점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역경에 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해요! 이제 저는 22편의 작품을 발표했고, 각각 나름대로 즐거움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를 타이릅니다. ‘네가 발표한 소설들을 세계 각국의 독자들이 읽고 있어. 너는 행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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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 ⓒ 2019 by Joann Sfar

 

 

소설 이외에 최근의 관심사가 궁금합니다.

 

클래식 음악, 재즈, 영화, 연극을 아주 좋아합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정기 관람권을 끊습니다. 1년에 영화 100편, 연극 100편을 봅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재즈 클럽에 갑니다. 문화에 푹 젖어서 지내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작년에 본 최고의 영화는 한국 영화입니다. <기생충>은 걸작이에요.


한국 독자들이 작가님의 신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향후 집필 계획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신작 소설 『오후의 이자벨』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미국 남자와 연상의 프랑스 여자가 30년에 걸쳐서 밀회를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 말에 파리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만남을 이어갑니다. 성적인 열정과 성애를 다룬 소설이며,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살지 않는다면 과연 열정은 더 뜨겁게 불탈까 하는 문제도 다룹니다. 또 ‘한 명의 상대에게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부일처제가 과연 정말 필요할까?’ 하는 문제도 제기합니다. 이 소설은 『오로르』 처럼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죠. 어쨌든 『오로르』  2편은 프랑스에서 이미 출간됐어요! 곧 한국에서도 출간되기를 기대합니다.

 

 

 

* 더글라스 케네디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다. 1955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런던, 파리, 베를린, 몰타 섬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다수의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했다. 조국인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작가로 유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특히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프랑스문화원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고, 2009년에는 프랑스의 유명 신문 <르 피가로> 지에서 주는 그랑프리상을 받았다.


한때 극단을 운영하며 직접 희곡을 쓰기도 했고, 이야기체의 여행 책자를 쓰다가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부터 시작해 파타고니아, 서사모아, 베트남,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세계 2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풍부한 여행 경험이 작가적 바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장인물에 대한 완벽한 탐구, 치밀한 구성,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스토리가 발군인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은 현재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간되고 있다. 2009년 국내에서 첫 출간된 『빅 픽처』는 최고의 화제를 이끌어내며 현재까지 국내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 등재되어 있다.

 

 

 

 


 

 

오로르더글라스 케네디 저/조안 스파르 그림/조동섭 역 | 밝은세상
더글라스가 쓴 최초의 전체연령가(?) 소설이자 클라스가 다른 힐링 소설 『오로르』. 스스로를 위한 아름다운 이야기 한 조각을 음미해 보기를, 평생 함께하고픈 이들과 나눌 이야기를 구해 가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진보 “음악보다 더 큰 표현을 하는 사람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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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6년 만의 정규 앨범 <Don't Think Too Much>를 발표한 진보는 갓 맞이한 2020년의 시작을 바삐 보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신보를 소개하는 방법으로 성수동의 뿐또 블루(Punto Blue)에서의 '전시회'를 기획하고, 1월 17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대중에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으레 하는 공연이나 쇼케이스 대신 예술 작품과 쇼케이스, 설명회를 통해 충실한 앨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전시회를 감상하며, 긴 공백기 동안 오래 축적된 아티스트의 표현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전시회 이후 21일 진보의 한남동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넓은 스튜디오에는 닥스킴(Docskim)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듀서들과 작곡가들이 작업을 위해 분주히 오가는 중이었다. 치열하고도 여유로운, 묘한 분위기의 스튜디오에서 피처링, 콜라보레이션, 작곡가 크레디트의 진보 대신 인간 한주현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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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Fantasy> 이후 6년 만에 앨범을 발매했다. 공백기가 길었다.

 

심리적 문제가 컸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과욕이 됐다. 하루는 고민하다 뮤직비디오를 같이 찍던 박재범에게 대놓고 이렇게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잘돼요?”. 그러니 이렇게 대답하더라. “좀, 담백하게 내야 할 거 같아요. 너무 힘을 줘서 내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한 방을 노리는 게 아니라 잽 날리듯 가볍게, 부담 없는 자세가 필요했던 것인가.

 

(자세를 취하며) 너무 이렇게, 힘주고 있었던 거다(웃음). 3년에 한 번쯤 도끼(Dok2)를 찾아가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도 박재범과 비슷한 조언을 해줬다.

 

도끼와 박재범 모두 진보보다 어린 뮤지션이다. 개방적인 성격이 인상적이다.

 

본성이 그런 게 8이라면 일하다 보니 생긴 성격이 2다. 퀸시 존스, 퍼렐 윌리엄스 등 내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면, 그들은 꾸준히 자신을 물갈이하며 롱런의 초석을 닦는다. 항상 새로운 인물과 친분을 쌓으며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것은 잃지 않는다. 나에겐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꾸준한 신진대사 활동과 같다.

 

여러 조언에도 불구하고 <Don't Think Too Much> 발표가 늦어진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KRNB> 두 번째 파트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원래는 앨범 한 장으로 발표하고자 했는데, 싱글로 나눠 발표하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렸다.

 

실제로 단일 앨범으로 발표됐던 2012년 <KRNB>와 달리, 이번 두 번째 시리즈는 싱글 단위로 공개 중이다. 한 작품이 진행되는 가운데 새 단독작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엔 <Don't Think Too Much>를 믹스테이프로 기획했다. 10월쯤에는 앨범의 90%가 완성된 상황이었다. 과거 만들어 둔 곡이 많다. 'Don't think too much'는 2012년에 스케치를 마쳤고, 'Coolest fire ever'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곡이다. OST를 염두로 만든 곡, 시대를 앞서간 곡, 기획사에 보냈던 곡 등... '갈 곳 없는 친구들이 모인 앨범'이다(웃음).

 

<Don't Think Too Much>의 핵심은 무엇인가.

 

음악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하다. '너무 생각하지 말자. 그냥 하자. 그냥 해! 실패해도 돼. 안 좋아도 뭐 어때.'다. 오늘 입고 온 나이키처럼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다(웃음).

 

지난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타인을 너무 많이 의식해왔다. 후배 뮤지션 누구는 이렇게 잘하는데, 존경받는 선배라면 더 멋진 걸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떨쳐내자는 의지가 앨범의 주제다. 전시회에서 전시한 '숙변'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기억이 난다. 이 앨범은 나에게 '숙변' 같았다. 그 묵은 변을 시원하게 '플러쉬(Flush)'한 작품이다.

 

방금 언급한 대로 1월 17일과 18일, 성수동에서 전시회 형태로 앨범을 소개했다.

 

보다 많은 분들께 내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고자 했다. 앨범을 소개하는 매거진 형식의 설명서도 만들었고, 정규 앨범 트랙리스트를 살짝 바꾼 음반도 수록했다. 솔직한 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예전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다.

 

진보는 힙합 알앤비 씬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침과 동시에 2012년 소녀시대의 'Gee'를 리메이크한 'Damn'을 시작으로 SM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협업해왔다. 소속사를 대표하는 샤이니, 에프엑스, 레드벨벳의 노래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방탄소년단의 'Pied piper', 'Anpanman'은 물론 멤버 제이홉의 'Chicken noodle soup' 역시 진보의 작품이다. 당시 메이저 시장과의 교류가 드물던 언더그라운드에서 진보의 콜라보레이션은 분명 독특한 행보였다. 현재도 그는 청담과 홍대, 이태원을 바삐 오가며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를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다.

 

진보는 “처음 대형 기획사와의 협업할 땐 나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30대 중반이 되고 나서, '나는 안 바뀌는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후배 뮤지션들에게 메이저 시장으로의 접점을 넓힐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센스의 <The Anecdote>를 프로듀싱한 덴마크 프로듀서 오비(Daniel Obi Klein)의 격려를 소개하면서, “수익원을 다각화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방탄소년단과의 작업이 신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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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스타일이 종합된 <Don't Think Too Much>에서 가장 새로웠던 도전이 있다면?

 

발라드 곡 '눈을 감아도'다. 한국 사람들에게 노래방에서, 대학가에서, 술집에서 익숙하게 들려오는 멜로디, 정서 아닌가(웃음).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그 느낌을 피하려 노력해왔는데, 이번 앨범에서 '힘을 빼자'는 마음을 가지며 새로운 시도를 더해보고자 했다. 평소 음악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기타리스트 김승현이 곡을 만들고 많이 격려해줬다. 전시회에 방문하신 어머니께서도 '눈을 감아도'에 대해 코멘트를 더해주셨다.

 

평가는 어땠나.

 

'아쉽다'였다. “더 풍부한 해석과 감성을 담아야 한다.”라고 뼈 있는 조언을 해주셨다. 칭찬 좀 해주시지...(웃음)

 

지금까지 진보는 <KRNB> 시리즈를 통해 과거 한국 가요에서의 '한국 정서'를 자신의 스타일로 정제해왔다. '눈을 감아도'는 본인의 스타일로 한국 정서를 담고자 노력한, 반대 지점에 있는 곡이다.

 

과거 '내가 덜 한국적이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기에 '눈을 감아도'를 마주하기 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많은 발라드 가수들과 비교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다. 지금은 훨씬 여유도 생겼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 무서웠던 걸 해낼 때의 뿌듯함이 있다.

 

유부남에 대한 찬가 'Baby'에서도 한결 여유로워진 진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Baby'는 <쇼미 더 머니> 시즌 4 우승자 베이식(Basick)의 의뢰로 만든 곡이다. 베이식도 유부남이다. 이후 일본의 그룹 에그자일(EXILE)에게 노래를 보내는 과정에서 뼈대에 살을 붙였고, 출산과 육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담아 곡을 완성했다. 이런 얘기를 '유부 Flow' 팔로알토에게 들려주며 '유부남의 사랑을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유로운 트랙이 변화를 상징한다면 'Coolest fire ever'는 젊은 힙합 팬들에게 화제다. 스윙스, 저스디스, 쿤디 판다 등 다양한 래퍼들의 단체곡이다.

 

LA에 유학할 때 친해진 친구들이 있다. 한 명은 <Fantasy> 앨범에 참여한 래퍼 젯투(Jet2), 그리고 또 한 명은 션 '스파이더맨'이었다. 당시 학교에서 가장 '쿨'했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만든 곡이 바로 'Coolest fire ever'다. 스케이트보드 바퀴 소리를 비트로 삼았고, 2000년대 힙합의 바이브를 의도했다. 젬(GEM), 심바 제이(Symba J)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도 소개하고 싶었다.

 

언급한 것처럼 최근 2020년대를 맞아 2000년대 초 스타일이 상당 부분 돌아오고 있음을 체감한다. 이모 코어, 엔이알디(N.E.R.D.)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음악이 다시 유행으로 자리하는 모습인데.

 

다양한 부분에서 유행이 돌고 돈다는 걸 확인하고 있다. 이펙트를 예로 들자면, 한동안은 리버브 강한 웻(Wet)한 느낌이 강세였으나 최근엔 드라이(Dry)한 사운드로 가는 추세다. 멜로디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아주 단순한 진행의 선율이 대세였으나 한계에 부닥친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우울했던 곡 분위기 역시 달리지고 있다. 여러 단서를 통해 2000년대의 유행을 체감한다.

 

터너티브 록이 힙합의 영역으로 들어온 '사랑꾼'에서도 그 무드를 확인할 수 있다.

 

'사랑꾼'은 2014년경 밴드 워크맨십(WRKMS)의 프로젝트로부터 출발했다. 당시 워크맨십이 “모스 데프(Mos Def)를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형이 필요해”라며 피처링을 부탁한 곡인데,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내가 갖고 있던 곡이다.

 

<Don't Think Too Much>에는 국내 아티스트들은 물론 다양한 해외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간 타 아티스트 작품에 참여한 경력은 많지만, 진보가 자신의 작품에 타 아티스트들과 이처럼 많은 협력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진보는 앨범에 참여한 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며 “이 친구들은 나에게 단순한 피처링 가수들이 아니라, 정말로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동시에 그는 이와 같은 행보가 자신이 설립한 슈퍼프릭레코드(Superfreak Records)의 국제적인 지향점과 일치함을 강조했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전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공조를 이루고 싶다”는 계획은 상세하고도 구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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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프릭레코드 설립 후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처음 제작사를 설립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한다면.

 

슈퍼프릭레코드의 핵심 가치가 있다. 첫째는 진보적인 스탠스다.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사일리(Sailli), 다울(Daul), 비앙(Viann) 등이 2010년대 꽤 성과를 낸 영역이다. 두 번째는 국제주의다. 그간 도달하기 힘든 부분이었는데, 지난해 찰리 태프트(Charli Taft)가 함께한 다울의 <In Touch> 앨범과 이번 <Don't Think Too Much>로 청사진을 제시했다. 세 번째는 낭만주의다. 음악을 할 때 차가운 무드, 실리주의적인 모습보단 따뜻한 성격의 음악을 추구한다. 뷰티풀 디스코(Beautiful Disco)가 음악으로 이런 온기를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번 앨범으로 '인터내셔널'의 초석을 닦은 셈이다. 작품에 참여한 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해달라.

 

'Bed shaker'에 참여한 런던 출신 피닉스 트로이(Phoenix Troy)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보다도 낮은 목소리를 가졌다. 2009년경 마이스페이스(Myspace)를 통해 만난 친구인데, 그가 추천해주는 노래는 정확히 내 취향을 겨냥한다. 지난 10년 동안 '무드 뮤직 프릭스(Mood Music Freaks)'라는 유닛을 계획하며 협업을 의논해왔는데 이제야 함께하게 됐다.

 

'해주면 돼'의 파리 출신 누누 패리스(Nounou Paris)는 한국 알앤비와 가요에 관심이 많다. 돈을 모아 파리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고, 한국에서 프로듀서로 성공하고자 분주히 노력하는 아티스트다. 피닉스 트로이와 함께 나의 '소울 프렌드'다.

 

'갈매기'에 함께한 LA 출신 디지털 대브(Digital Dav)는 '3년 안에 무조건 뜬다(Im'ma blow up in 3 years)'는 자신만의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미국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꼭 이 한마디를 빼놓지 않는다. 미국적인 정서, 한국적인 정서 모두 잘 맞는 친구다.

 

'잊어버려'의 킨타로(Kintaro)는 더 인터넷(The Internet)의 전 멤버다. 형이 썬더캣(Thundercat)이고 아버지도 유명한 재즈 뮤지션인 천재 집안이다. 이 친구와는 '특이한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통한다. 평범한 진행을 싫어하고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한다. 킨타로의 '이상한' 음악을 듣다 보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화려하고 대담하지만 진지하다.

 

진보는 일찍이 고교 재학 중 자신의 아티스트 이름을 정했다. 이후 그는 끊임없이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는 괴짜(Freak)로 혁신을 만들어왔다. “2005년 데뷔할 때 사람들은 '한국말로 알앤비를 할 수 없어'라 말했다. 2012년 <KRNB>를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한국 가요는 세련되지 않아'라 여겼다.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는 섞일 수 없어'라는 고정관념에 맞서 협업을 진행했다.”. 다사다난했던 커리어에 대한 진보의 회고다.

 

“앞으로 10년은 음악보다 더 큰 표현을 하는 사람, 자유로운 존재를 지향할 것이다. '지금까지 진보는 뮤지션인 줄 알았는데, 진보가 표현하고자 하는 영역은 훨씬 깊고 넓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고 싶다.”. 진보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었고 또한 여유로웠다. 새삼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가 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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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최근 즐겨 들었던 음악, 관심 있는 장르는?

 

친한 친구가 소개해준 정보에 의하면 최근 뉴욕의 트렌드는 하우스 음악, 그중에서도 백인이 아닌 흑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하우스 음악이라 한다. 최근 UFC 선수 코너 맥그레거가 올린 영상을 보면 그가 직접 고용한 디제이들이 트는 음악이 모두 그런 블랙 하우스 음악이다. 관심 있게 듣고 있고, 탐구할 생각에 설렌다. 또 인상 깊게 들은 아티스트는 영국 싱어송라이트 라브린느(Labrinth)다. 음악에 대한 레벨을 한 단계 높였다. 요즘 아프리카 아티스트들의 음악도 즐겨 듣는다. 비욘세의 <The Lion King : The Gift> 앨범에 참여한 버나 보이(Burna Boy)를 중심으로 찾아 듣고 있다.

 

튼튼하고도 다양한 시도를 지속하며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아 올린 진보다. 끝으로 <Don't Think Too Much>의 새 출발을 통해, 진보의 세계를 가요계에 어떻게 각인하고 싶나.

 

사람들이 '진보'라는 단어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진보는 말 그대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뒤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퇴보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전진하고 발전하며 나아가고 싶다. '진보'라는 단어를 상징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고, 진보라는 단어를 재정의하고 싶다. “너 진보? 나 보수”하는 진보가 아니라(웃음).둘째로는 표현주의자로 새겨지고 싶다. 아티스트, 뮤지션 등 다양한 직함이 있지만 그 이름에 나를 다 담을 수 없다고 본다. 내가 존경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커리어 초기엔 자신을 작곡가로 인식했다. 끊임없이 의문하고 시도하며 부수는 사람, 그것을 전시회, 앨범 등으로 다채롭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한다. 정력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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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민식 PD “책은 사람을 바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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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딴따라’ PD가 ‘파업 요정’이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김민식 MBC 드라마 PD의 이야기다. 시트콤과 드라마를 만드는 일이 천직이었던 그는 2012년 노조부위원장을 맡았다가 정직 6개월 징계를 받고, 길고 긴 파업 동안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다. 대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책을 썼다. 평소 열독가, 책벌레로 살아온 이력이 빛을 발했고, 드라마 PD로 복귀한 후 또 한 권의 책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를 썼다.

 

“버틸 것인가, 싸울 것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누구와 무엇을 하며 버틸 것인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맛난 것 먹고 즐거운 일을 하며 버틴다.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한, 버틴다. (중략) 힘든 시간, 조금이라도 즐겁게 버텼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 하루하루를 축제처럼 즐기고 싶었다. 징벌의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우며 살았다. 그 즐거움의 힘으로 언젠가 싸울 수 있기를!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193-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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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를 소망하는 분들께


2017년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를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책을 쓰고 계세요. 이번 책은 좀 다릅니다. MBC 파업 이야기를 다루셨어요.

 

힘든 시절의 기억을 떠나 보내는 일종의 의식이었어요. 힘든 기억이지만 기록으로 남긴다면 의미가 있을 거라 믿고 썼습니다. 처음엔 가버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했는데요. 퇴고하고 보니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를 위한 글이더군요. 누군가 싸워야 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이기를 바랍니다.

 

책 카피가 ‘퇴진 요정 김민식 PD의 웃음 터지는 싸움 노하우’입니다. 발랄한 카피지만 사실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많이 담긴 책입니다.

 

이 책을 써야겠다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진 않았어요. 그런데 바로 전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를 쓰는데, 자꾸 파업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편집자께서 “이건 따로 써야 할 이야기”라고 제안해주셨어요. 처음엔 책을 써야할지 망설였어요. 그런데 써야겠더라고요.

 

집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작년 6월 말부터 초고를 쓰기 시작해서 11월 중순에 출판사에 원고를 드렸으니, 다섯 달 정도가 걸렸네요.

 

굉장히 짧은 기간에 쓰셨네요.


오랫동안 쓰고 있는 제 블로그에 ‘2012 MBC 파업일지’라는 카테고리가 있는데요. 오랜 세월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글이 모여 있어요. 블로그라는 아카이브 덕분에 글감을 모으기 쉬웠어요. 매일 기록하는 습관 덕분에 매년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어요. 일이 잘 되면 성취의 기록을 남기고, 일이 안 되면 고난의 기록을 남깁니다. 전자는 독자에게 영감을 주고, 후자는 위로를 주지요.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일이 안 풀린다고 좌절할 이유가 없어요. 그 또한 좋은 글감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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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셨어요?

 

책의 초고를 쓸 때, 머릿속에 질문을 띄워 둡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를 쓸 때는 ‘영어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아침 써봤니?』 의 경우는 ‘직장인 저자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는 ‘삶이 힘들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요?’ 각각의 질문에 대한 답이 한 권씩 책이 됐어요. 이번 책의 질문은 나 스스로를 향한 것이에요. 삶을 가볍고 즐겁게 살고 싶었던 코미디 PD가 어쩌다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게 되었을까? 이 질문이 책의 가제였어요. ‘딴따라는 어쩌다 투사가 되었나?’

 

파업을 함께 한 고 이용마 MBC 기자님 이야기가 프롤로그에 나옵니다.

 

이용마 기자와 보낸 시간을 떠올릴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현재, 경재, 이용마의 두 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쌍둥이를 앞에 앉혀두고, 말하듯 썼어요. ‘아저씨가 본 아빠의 모습은 말이야.’ 글을 쓰기 힘들 땐, 누구를 위해 그 글을 쓰는가, 그 대상을 떠올리고 그에게 이야기하듯 쓰면 좀 낫더라고요.


이용마 기자님도 파업을 하시면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를 쓰셨죠.

 

용마 기자의 책은 ‘세상을 왜 바꿔야하는지’를 이야기해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요. 저는 세상을 바꿀 용기는 없고요. 다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나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이번에 쓴 책은 그 고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MBC가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선택했어요. 나가는 게 모든 사람에게 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안에서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어요. 괴로움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옵니다. 오지 않는 세상을 갈망하며 사는 건 괴롭지요. 때로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즐거워야,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고요. 언젠가 싸울 기회도 찾아옵니다. 그냥 달아나버리는 게 답은 아니니까요.


어떤 독자를 상상하하셨나요?

 

제가 원래 좀 보수적인 사람이었거든요. 대학에 입학한 게 1987년도인데, 동기들이 다 ‘양키고홈’ 외칠 때 혼자 영어 공부하고 춤추러 다녔고요. MBC 입사한 게 1996년인데 동기들이 노조활동 할 때, 저는 파업에 빠지고 노조 비판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어요. 스스로 합리적 보수주의자라 생각했는데,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어요. SNS에 올리는 짧은 글로 사람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지만, 책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회사를 만들고, 나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를 소망하는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김민식 글쓰기’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즐거움이지요. 쓰는 제가 즐거워야, 읽는 사람도 즐거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트콤을 연출하면서 생긴 습관인데요. 촬영장에서 많이 웃습니다. 내가 웃지 않는데 시청자를 웃기기는 어려우니까요. 글을 쓸 때도, 쓰는 즐거움에 우선 집중합니다. 초고는 되게 유치한데요. 둘 중 하나에요. 자랑질 아니면 뒷담화. ‘나, 이렇게 잘 났거든? 흥칫뿡.’ 혹은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말이지요, 메롱~’ 재미삼아 가볍게 초고를 쓰고요, 발행하기 전에 오랜 시간을 두고 끊임없이 글을 다듬습니다. 교만을 지우고, 겸손을 더하고요. 조롱을 빼고, 합리적 비판을 담으려고 합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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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좋은 길 = 독서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았던 파업이었습니다. 얼결에 노조부위원장이 되어 파업을 주도했던 일이, 페이스북 생중계를 통해 파업의 불씨를 다시 지피신 일을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후회는 잘 안 하는 편입니다. 일에 성과가 나지 않으면 후회를 하는 대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거든요. 영어 공부할 때도 그랬어요. 오랜 세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남기지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좋은 길은 역시 독서고요. 괴로운 시간이 찾아오면 항상 책으로 도망갑니다. 책을 읽으며 위로를 얻기도 하고, 다시 싸울 용기를 얻기도 하고, 또는 새로운 싸움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해요. 책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지는 싸움에서 더 크게 얻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매일 밤 같은 시간에 방송하는 미니시리즈를 연출할 때, 3편의 드라마가 붙으면 반드시 1등과 꼴찌가 나옵니다. PD로 오래 일하다보면 시청률이 망할 때도 있는데요. 그때마다 너무 괴로워하면 일이 힘들지요. 그래서 저는 매번 이기기를 바라는 대신, 질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쌓고 연출로서 성장하길 소망합니다. 실패에서도 배우겠다는 자세로 덤비면 도전이 쉽고 즐거워집니다. 파업에도 그런 자세로 임했어요. ‘이기면 좋겠지만,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싸워야 할 때 달아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는 싸움에서 배우겠다는 자세로 싸운다.’ 그런 생각입니다.

 

앞에서 앞장서진 않아도, 옆에서 “네가 옳다”라고 말해주는 동료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싸우고 싶지만, 나서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앞장서서 싸우는 건 힘듭니다. 반드시 내가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 싸울 때,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것도 싸움입니다. 그 시절에 저는 타인에게 받은 응원의 힘으로 버텼거든요. 싸우는 사람이 외롭게 버티다 혼자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지요. 인터넷의 시대,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온라인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도 큰 힘이 됩니다. 내가 나서기 어렵다면, 나서서 싸우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성원해주면 어떨까요?

 

24쪽에 “방송사 PD는 진실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쓰셨어요. 드라마, 다큐, 시사 등 모든 PD에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요. PD로서, 꼭 갖고 있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민감, 공감, 영감, 세 가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진실에 민감해야 해요.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넘기기보다, 과연 저게 옳은 일일까? 예민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약자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요. 드라마 연출은 감정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는 연습이 필요하지요.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영감이에요. 머리에 떠오르는 영감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이 연출의 일이니까요.

 

한 조직에서 잘 버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일과 관계없이 누리는 즐거움이 있어야 해요. 내가 만나는 사람이 일에 관계된 사람뿐이라면, 그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인간관계도 함께 망가지거든요. 일과 별도로 취미를 만들고, 사람을 만나야 해요. 버티는 건 힘든 일인데요. 일상에서 즐거움을 누려야 버티는 힘도 생깁니다.

 

현재 조직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요. 투쟁 선배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가, 나는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한가;’. 둘 다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고요. 편하지 않은 사람과 억지로 좋은 관계를 맺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착취입니다. 다 잘 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좋아하고, 의미있다고 믿는 일만 해내도 됩니다. 사람도 다 좋아할 필요는 없어요.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챙기기도 바쁜 인생인데요.

 

이 책을 쓰면서, 특별히 도움을 받은 책이 있나요?


앞장서서 싸우는 분들의 책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노동운동가 하종강 선생님의 책이나 박창진 사무장의 『플라이 백』도 좋았고요. 이용마 기자의 책도 여러 번 다시 읽었습니다. 싸움의 기록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어요. 힘든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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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몰입할 대상이 있다면

 

지금은 드라마국에 계시죠?

 

MBC 드라마 본부에서 PD로 일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고 만화를 보며 드라마 원작이 될 이야기를 찾기도 하고요. 조만간 재미난 드라마로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요.

 

PD님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독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외로운 순간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보면, 교황이 “I have been alone, but never lonely.”’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는 건 무슨 뜻일까 생각해봤어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냅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건 무언가 몰입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죠. 현업에서 쫓겨나거나, 대기발령을 받고 징계를 받았을 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외롭지는 않았어요. 책 덕분이지요.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외롭지 않아요.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데 감사하게 되지요. 제가 그랬어요. 2015년 가을에 드라마 현업에서 쫓겨났는데요. 2016년 한 해 동안 250권의 책을 읽고, 한 권의 책을 썼어요. 그 책이 15만 부가 넘게 팔린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고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게 보내는 것, 그게 제게는 놀이이자 공부입니다. 아니 어쩜 일이기도 하고요.


틈만 나면 책을 읽고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독서 일기를 쓰고 계세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제작진이 만든 유튜브 채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독>도 진행하고 계시고요. 독서가 질릴 때는 없나요?


책은 질리려야 질릴 틈이 없습니다. 매번 새로운 책이 나오고요. 제가 좋아하는 저자들은 다 부지런한 분들이라, 그분들의 새 책만 찾아 읽는 것도 바쁜데요. 그 와중에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거든요. 책벌레는 질릴 틈이 없습니다. (웃음)

 

작가로서 앞으로 계획하신 일이 있나요?

 

작가로서 계획은 없고요. 독자로서 소망이 있어요. 매년 200권 이상 꾸준히 책을 읽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무언가 고인다면, 책을 한 권씩 써도 좋겠지요. 저자로 산다는 건, 책을 사주는 독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 그 독자의 수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게 제 계획이자 소망입니다. 아마 그 노력의 대부분은 다시 독서가 될 것 같고요.


지금 조직에서 고군분투하며 투쟁하고 있는 수많은 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혼자이실지라도 외롭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몰입할 대상이 있다면 외로움은 잊을 수 있어요. 몰입의 즐거움으로 스스로를 잘 지켜 내시길 소망합니다.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김민식 저 | 푸른숲
김민식 피디가 직장에서 받은 온갖 괴롭힘과 주변의 냉소, 이사진을 상대로 한 철옹성 같은 싸움을 버텨낸 7년의 투쟁을 담았다.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 도망가거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선 김민식 피디와 동료들의 웃음 터지는 싸움을 마치 한 편의 시트콤처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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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황혜원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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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헬스장마다 요가 수업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연예인들이 요가를 하는 모습도 곳곳에 보인다. 유연성, 다이어트, 스트레칭, 힐링, 건강, 명상…… 요가 수련자가 많은 만큼 요가의 장점에 대해 말하는 글도 많다. 현대미술을 전공한 5년 차 요가 강사 황혜원은 ‘요르가즘’이라는 말로 요가를 권한다. ‘요가 오르가슴’에서 출발한 언어유희를 넘어 요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느낀 보람과, 재미있으면 계속하는 삶의 태도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요르가즘』은 아쉬탕가 요가 동작을 그린 그림과 설명, 요가 강사의 매일 좌충우돌하는 삶이 ‘단짠단짠’으로 펼쳐지는 책이다. 요가를 하고 싶은데 나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어깨에 힘을 빼고 책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 보자. 어려운 상황일수록 자기 몸을 챙기는 유쾌한 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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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을 외우려 그린 그림


인스타그램에 ‘요르가즘’이라는 이름으로 요가 자세를 그린 그림을 올렸어요. 계정을 만든 계기가 있나요?


처음 아쉬탕가 요가를 배울 때, 동작 이름들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자세랑 이름을 다 외우고 싶어서 종이 앞뒤에다가 연필로 자세 그림과 이름을 붙인 카드를 만든 게 시작이었어요. SNS 계정은 만화가인 남자친구 영향이 컸어요. 예전부터 ‘요르가즘’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그 이름으로 그림을 올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줬어요. 처음에는 고양이와 같이 요가 자세를 그렸거든요. 많은 분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그림체를 한 번씩 바꿨더라고요. 처음에는 색칠한 동물을 함께 그리다가, 나중에는 자세를 취하는 사람의 몸만 나와요. 사람은 누드체로 그렸고요.


대학교에서 크로키 수업을 받으면서 누드 작가를 해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누드 드로잉을 좋아했어요. 색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두 색을 쓰더라도 채도나 명도가 안 어울리면 계속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동물 그림에도 색을 많이 쓰진 않았어요. 요가 자세 이름이 동물 이름에서 따온 게 많아서 그걸 보여주려고 그린 거였는데, 동물을 빼고 나니까 인체 드로잉은 흑백만으로도 충분했어요.


글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스물 네 살 때 독립출판으로 ‘24시간 살아보기’라는 책을 낸 적이 있어요. 나중에 보니 너무 감성적이더라고요. 당시 막 학교를 졸업한 상태였고, 사회생활을 안 해보고 쓴 거라 조금 더 살아보고 많이 읽은 다음에 책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블로그에 이틀에 한 번은 꾸준히 글을 썼던 것 같아요.


현대미술을 전공했어요. 표현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글로 이어진 것 같아요.


맞아요, 대학 때 선생님도 글을 계속 써보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때는 그냥 표현하는 게 재밌어서 쓴 거였는데, 아마 선생님 말씀에서도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로 연재를 시작했어요. 책을 내게 된 건 출판사 제안이었나요?


제가 출판사에 먼저 제안했어요. 연재한 걸 책으로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크라우드 펀딩 했던 페이지를 그대로 보냈는데, 출판사에서 수필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다르게 제안해 주셨어요. 몇 달 정도는 고민하면서 계속 썼던 것 같아요. 요가 관련된 수필을 쓰는 게 조금 부담스럽더라고요.


부담스러웠던 이유는 뭘까요?


너무 힘들었는데 요가를 수련했더니 좋았다는 레퍼토리는 흔한 편이잖아요. 요가가 힐링에만 국한되어 보일까 걱정하기도 했고, 요가 선생님이라는 위치에서 보여주면 안 되는 면들이 있는데 그런 걸 드러내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아요.


책 잘 봤다고 인사를 건네는 수강생을 만나면 기분이 어떤가요?


처음에는 사실 회원님들에게 숨기고 싶었어요. 어쩌다가 일대일로 수업을 하다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물어봐서 요르가즘 계정을 운영한다고 했더니, 팔로잉 하고 있다면서 되게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책이 나오기 전에는 ‘인스타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가 인사말이었는데, 이제는 다 책 이야기를 하세요.


어떤 리뷰가 있었나요?


이번 기회에 요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내적으로 킬킬댔다’였어요. 웃었다는 이야기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는 말씀도 좋았어요.


작가님만의 농담 코드가 있더라고요.


친구가 제 농담 방식에 대해 연구를 해서 들려준 적이 있어요. 자기만 혼자 웃긴 상태랄까요? 길가다 보면 어떤 사람이 막 웃고 있을 때가 있잖아요? 잘 모르는데 보면 약간 실소가 나오는 유머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욕이냐고 물어봤어요. (웃음)


스스로 글을 보면 마음에 드나요?


제가 쓰면서 소리 내서 웃어요. (웃음)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책을 읽고 다시 읽을 때도 웃었어요.


그 정도면 잘 쓴 거예요. 보통은 자기 글에 만족 못하잖아요.


만족 못하는 시기도 있었어요. 퇴고할 때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가 쓴 글이 아니고 남이 쓴 글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많이 보면 객관화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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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하게 강해진 느낌


요가를 수련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는 유연성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덤볐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아쉬탕가 요가를 접했는데 완전히 신세계더라고요. 운동 강도가 높아서 수련하고 나면 거의 2박3일 전지훈련 갔다 온 느낌을 받아요. 마약 같죠. 중독되는 지점이 있어요.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느낌이 드니까 확실히 다른 운동 할 때와 느낌이 달랐던 것 같아요. 근육을 조금씩 더 만들수록 할 수 있는 자세가 더 견고해지는 거예요. 유연성으로는 할 수 없던 자세까지 나중에는 해낼 수 있게 되고요. 3개월 정도 지나면 힘들었던 자세가 별로 힘들지 않고, 몸이 좀더 가벼워지고 전신에 힘을 주던 걸 코어에만 집중하니까 팔다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어요.


요가 수업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선생님의 요가 강의를 들으러 가는 열성적인 모습이 있었어요. 반면 ‘안 되면 다음 생에 해야지’라는 문구도 있고요.


그림이나 글에 큰 흥미와 욕구가 없었다면 이것보다 훨씬 열심히 했을 텐데, 한정된 시간 속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다 하기에는 그만큼까지 요가를 원하진 않아요. 작업할 수 있을 만큼만 유연하고 체력이 받쳐주면 되거든요. 다른 사람이 묘기를 부리는데 자기가 못하면 상대적으로 욕심을 내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요? 요기이기 때문에 몸이 망가지더라도 계속 다음 단계로 수련을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면, 요가를 종교처럼 섬기게 될 것 같아요.


요가의 육체적인 장점은 약장수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신적인 이점은 ‘시를 설명해주는 기분’이라고 썼어요. 시를 설명해주는 기분으로, 요가의 정신적 이점은 무엇일까요?


‘요르가즘’이라는 말과도 연관이 좀 있는데, 예를 들어 ‘오르가즘을 어떻게 느끼시나요?’라고 물어보면 말하기 묘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잖아요. 정신적인 이점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수련을 다 하고 사바사나 자세를 하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사랑 받는 느낌이 들어요. 저 자신이 말랑말랑해진 것 같으면서도 조금 더 강해진 느낌? 딱딱하고 견고하게 강한 게 아니라 말랑하게 강해진 느낌이에요. 수련 전후를 비교하자면,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에요. 감정을 느끼는 걸 멈출 수는 없지만, 감정 사이에서 몸을 맡기고 파도를 타는 방법을 요가 수련 덕분에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런데 꾸준히 주기적으로 안 하면 또 까먹고 휘둘리죠. 계속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요.


‘생활 수련기’라는 홍보 문구가 있었어요. 생활을 드러내는 게 불안하진 않았나요?


블로그에는 계속 일상적인 내용을 올렸는데, 쓰다보니 혼자 <트루먼쇼> 같은 걸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현대 미술에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바깥에서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처럼 나 자신을 볼 때가 있어요. 책에 나온 이야기는 과거가 됐고 저는 미래로 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다른 음식을 먹거나 다른 운동을 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더욱 책에 쓰인 자신과 지금 저 자신을 별개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책으로 썼기 때문에 더 변화하고 싶다는 감정을 많이 느끼기도 하고요. 소설을 써도 내 캐릭터를 넣고 내 상상을 넣다 보면 소설 속 캐릭터가 나인지 내가 아닌지 모르게 되잖아요. 수필을 쓸 때도 소설 쓸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썼던 것 같아요.


‘작업과 수련을 통해 똘끼와 공생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9쪽)는 문장이 재밌었어요.


부제는 ‘똘끼 충만한 미술 전공 요가 강사의 일상 쾌락’이라고 되어 있죠. 출판사 대표님이 붙이셨는데, 제가 ‘충만한 똘끼’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충만하다고 써 주시니 안전한 느낌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읽고 나서 ‘에이, 그 정도는 아니네’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수련으로 어떻게 ‘똘끼’와 공생할 수 있나요?


대학 다닐 때는 예술의 끼라고 하면 주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유흥을 즐기는 것이기 쉽죠. 저도 어릴 때 해봤는데, 그런 유흥과 방탕함은 자신을 어느 정도 앗아가면서 예술을 하게 만들잖아요. 어느 부분을 잘라내고 몸이 상하는 게 별로 안 좋더라고요. 수련을 하게 되면 오히려 더 맑은 정신으로 작업을 하고, ‘똘끼’를 더 건강한 에너지와 참신한 기운으로 바꾸게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끼를 글이나 그림으로 승화시킬 수 없다면, 수련과 끼의 관계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예술 트렌드는 ‘맨정신’인 것 같아요. 술먹고 객기 부리는 게 예술인의 알리바이였다면, 요즘은 몸을 가꾸고 맨정신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해요. 20대는 적당히 흐릿해져 봐야 맑은 정신이 뭔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명암도 한 번 진하게 칠해봐야 조절을 하잖아요. 맑은 정신일 때 취해서 하는 흥을 넘어서야 작업에 효용이 있을 텐데, 방탕해 본 적이 없으면서 맑은 정신만 추구한다고 하면 또 너무 치우친 인간이 될 것 같아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강의를 나가고 있어요. 지금은 주로 어떻게 본인을 소개하나요?


이 질문이 제일 어렵네요. 누구의 딸, 무슨 선생님, 누구 여자친구로 정의를 내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지금은 작가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글을 써도 작가고 그림을 그려도 작가라 불리니까요.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조금 부담스러워요. 가르치는 사람(teacher)보다 안내자(instructor)라는 위치가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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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하는 자세부터 꾸준히


서울에 사는 30대 여성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밤 길거리에서 괴한을 만난 이야기도 있었고요. ‘커터칼을 손에 쥔 요가 강사’로 길을 나서기도 해요.


그때는 무서웠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열쇠를 거꾸로 꽂은 게 웃기더라고요. 공감을 바라고 쓴 건 아니었어요.


20대와 비교했을 때 30대가 된 지금은 어떤가요?


20대 때는 하고 싶은 거에만 휩쓸리면서 살아왔어요. 가족 중에서 저만 유일하게 하고 싶은 걸 막 하고 살아온 애라서 방치하기도 했고요. 그때는 헛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쌓여서 저한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에도 힘들거나 두렵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썼지만, 그게 싫다는 생각은 없어요. 만약 20대 때 대기업에 들어가서 하루하루 피폐하게 살아 노후를 대비했다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을 테죠. 하고 싶은 걸 하는 만큼 얻지 못하는 게 있고, 안정된 생활을 얻은 만큼 내가 잃은 게 얼마나 많은지 알고 선택하는 거잖아요. 앞으로 10년만 더 살겠다고 생각하면 원하는 방식으로 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작가님은 요가를 하고 오래 건강하게 살지 않을까요?


점을 보러 가도 장수할 거라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시더라고요.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웃음) 타고나게 건강한 몸은 아니거든요. 한의사 선생님이 동물로 치자면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약한 체질이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요. 수련의 강도를 조금 높이고 변화를 많이 주면 몸살 기운이 바로 와요. 조절을 잘 해야 하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 것 같나요?


지금은 글 쓰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 쓰고 있어요. 경험한 걸 표현하기에 좋은 장르인 것 같아요. 만약 기회가 되고 또 새로운 걸 배우면 그쪽으로 갈 수도 있겠죠. 예전부터 ‘딜레탕트’라는 개념을 좋아했었어요. 직업이 아니더라도 문화를 향유하고 예술을 즐기는 상태로 계속 살 것 같아요.


새로 연재하는 내용은 무슨 내용인가요?


지금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일을 못하는 상황이라 처음으로 휴가가 생겼거든요. 수업을 하면서 한 번도 휴가를 받은 적이 없어요. 지금은 긴 휴가 기간 동안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이런저런 수필을 쓰는데, 재미있어요. 『요르가즘』은 요가 이야기를 어떻게든 넣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좀 힘들었거든요. 울타리를 없애니까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책을 보시는 분들 중에는 요가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고, 요가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어주었으면 하는 게 있나요?


만약 이제 막 시작하신 분들이라면 책에 실린 자세를 봤을 때 ‘이게 된다고?’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책을 보고 시도할 마음이 드셨다면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아도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서서 하는 자세를 꾸준히 해보세요. 서서 하는 자세가 안 잡히면 앉아서 하는 자세도 소용이 없어요. 등이 굽은 상태에서 계속 굽게 되니까요. 할 수 있는 자세는 해보고 안 되면 그냥 보세요. 인간의 몸이 여기까지 갈수 있구나 인지만 해도 나쁠 건 없고요. 요가 한다고 상 받는 건 아니니까요. (웃음)

 


 

 

요르가즘황혜원 저 | 마음산책
‘요르가즘(yorgasm)’이란 조어는 ‘요가 오르가슴’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단순히 요가 수련을 통한 몸과 마음의 전율이라는 뜻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언어유희를 넘어 요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느낀 보람과 쾌감, 한발 더 나아가 저자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정신을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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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하림 “밴드를 넘어 공연 콘텐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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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을 만난 날은 설 연휴 마지막 대체 공휴일이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서인지 거리는 여느 때보다 휑했지만, 그를 맞을 마음은 분주했다. 월드 뮤직 아티스트로의 하림, 과거 싱어송라이터로의 하림을 모두 아울러 담고자 하다 보니 준비할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지구가 멸망하는 것보다 느릴 것 같은' 세 번째 정규 앨범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직접 만나는 내가 이럴진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하림의 디스코그래피는 2004년 2집 <Whistle In A Maze> 에서 멈춰있다. 그러나 대중은 여전히 '출국', '사람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여기보다 어딘가에'를 기억한다. '초콜릿 이야기', '위로', '그런 너 그런 나' 역시 라디오의 단골 리퀘스트 송으로 꾸준히 인기를 누린다. 동시에 우리는 알앤비 아티스트가 아닌, 세계 각지의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월드 뮤직 아티스트로 활약하는 오늘날의 하림 역시 익숙하다. 기성과 마이너리티의 경계선에서 독특하고도 진솔한 음악을 펼쳐 보이는 하림의 음악 세계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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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tle In A Maze> 앨범부터 아일랜드 풍의 월드 뮤직 사운드가 두드러졌다. 월드 뮤직과 다양한 악기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있었나.

 

2집은 스팅(Sting)의 <Mercury Falling>, <Ten Summoner's Tales> 앨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작품이다. 월드 뮤직과 악기에 대한 관심은 아주 처음부터 있었지만, 두 번째 앨범 이후 한국에서 가요 활동을 중지한 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본격적으로 월드 뮤직 엑스포, 워크샵 등 다양한 자리에 참석하며 음악관이 많이 변했다.

 

변화의 과정을 소개해달라.

 

굉장히 많은 단계를 거쳤다. 첫째는 2집 내기 전 아일랜드 여행을 떠났을 때다. 길거리에서 피리를 불며 버스킹을 하는 학생과 친해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거리 연주를 수입의 수단이 아니라 연습의 기회로 생각하는 데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이후 지금은 수 노래방이 있는 홍대 사거리에서 드렐라이어(Drehleier)를 들고 길거리 공연을 펼쳤다. 너무 재밌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당시 공연 제의를 대부분 거절한 것이다. 많은 제안이 있었지만 뭐랄까... 지금 편하게 생각해보면 콤플렉스나 트라우마가 컸던 것 같다. 특히 '출국', '난치병' 등 내 노래를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 “길에서 시작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 진짜 내 음악이다!”라는 가치관이 있었다.

 

셋째는 앨범 발매 전, 내가 데뷔하던 시기 싱어송라이터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다. 군대를 갔다 오니 김동률, 이적, 윤종신 등 함께 음악 하던 선배들이 모두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 형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싱어송라이터 그룹'의 끝물에 위치해있었고, 때문에 당시 “안타깝다”는 충고를 많이 해줬다. 이후 많은 고민을 했다.

 

이상의 가치관 변화가 바로 세 번째 정규 앨범 발매를 막은 원인 아닌가.

 

맞다. 가요계 활동을 중단한 후 음반 작업, 음원 발매 등 다양한 활동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대놓고 뒤돌아선 건 아니다. 앨범만 내지 않았다 뿐, 음악 산업에 한 발을 들여놓고, 내가 원하는 월드 뮤직과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노래하는 가수보다 뮤지션들 사이에서 세션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더불어 홍대 곳곳에서 공연도 만들고, 악기 연주회도 가지며 계속 바쁜 나날을 보냈다.

 

분주히 노력하며 음악 세계를 개척해 온 하림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2019년 5월 24일, 2년 간의 연애 끝에 폴란드에서 화촉을 밝힌 것. 방랑 뮤지션의 이미지와 달리 그는“늘 결혼을 하고 싶었다”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동시에“결혼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보진 않는다. 평화로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 '정지된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소신을 밝혔다. 미지의 뮤지션에 대한 환상과 이미지는 하림 스스로가 아닌, 재능 있는 아티스트를 기다려온 대중의 갈증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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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하림의 3집에 대한 기다림이 크다. 자그마치 16년 동안 후속작을 내지 않았다. 이제 그만 기다리게 해 달라, 이런 말 들어본 적 없나.

 

매년 3집 계획은 있었다. 그러나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밴드 공연을 하다 보면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아랍과 중앙아시아의 음악을 다루는 블루 카멜 앙상블, 집시 음악을 추구하는 집시의 테이블, 아프리카의 음악을 연주하는 아프리카 오버랜드 활동을 함께 병행했다. 음반 없이 공연을 하는 위치라 앨범 작업에만 매진할 수 없었다.

 

네오 소울 스타일의 1집과 월드 뮤직이 첨가된 2집 모두 훌륭한 완성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때문에 이후 후속작이 발매되지 않은 것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동료들도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앞서 언급한 블루 카멜 앙상블, 집시의 테이블, 아프리카 오버랜드 모두 10년 이상 꾸준히 공연을 이어온 팀들이다. 하림의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내진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림은 이런 다채로운 성격의 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공개하는 것이었다. 밴드를 넘어 공연 콘텐츠로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대표적인 활동을 소개해달라.

 

집시의 테이블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본 음악극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월드 뮤직 갈라쇼'다. 아프리카 오버랜드는 극단 '푸른 달'과 함께한 음악 인형극 '해지는 아프리카'를 선보였다. 블루 카멜 앙상블은 국립극장에서 '먼 아리랑'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펼쳤다. 스토리가 있지만 대사보다 음악이 많은 공연을 추구한다.

 

최근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매체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하림의 '콘텐츠 다변화'가 어쩌면 새로운 성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최근엔 관객들에게 정식 발매되지 않은 노래를 부르기 전 '유튜브에 검색해보세요!'하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대박을 바라고 음악을 하진 않는다. 스타가 되려고 음악을 시작하면 너무 힘들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만큼 이를 기록으로 남겨 발표하고 싶은 욕구도 분명 있을 텐데.

 

'어떻게 앨범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느냐'라는 생각이 컸다. 그래도 최근에는 음원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오버랜드의 곡은 모두 창작곡이라, 꼭 기록하고 싶다.

 

프로젝트 음악, 콘텐츠 다변화의 노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하림의 솔로 앨범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 존재한다.

 

지금은 아프리카 오버랜드가 우선이다. 회사에서도 3집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한다. 하지만 솔로 3집을 꾸준히 생각하고 있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한다. 1998년 처음 쓴 계약서에 '기간 4년, 앨범 3장'이 명시되어 있었고,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3집을 녹음한 후에 회사와 재계약하겠다”라는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도 차기작을 위해 만든 곡들도 있다.

 

그 곡들은 어떻게 됐나.

 

내가 만들었던 노래를 주변에서 많이 가져갔다(웃음). 그러다 보니 대중음악은 남지 않고, 월드 뮤직만 남았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의 목표는 베일에 싸여있던 세 번째 정규 앨범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다. 허나 차츰 인터뷰를 진행하며 '성공'을 바라보는 하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한국 대중음악계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지만 그간 하림은 본인의 지향과 타인의 시선 사이 고뇌하며 음악으로 방랑해왔다.

 

“'음악은 1위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 꺼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대중음악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죠. 훌쩍 여행을 떠나고, 주위에 있으려고 했던 것도 모두 콤플렉스에서 나온 거였더라고요.”라 과거를 회고한 하림은 “그 모든 감정을 일기장에 기록했죠. 이제는 자유롭게,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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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앨범이 미뤄지는 데 있어 앞서 언급했던, 대중음악계를 꺼리는 심리적 요인도 분명 존재할 텐데.

 

과거의 경우 '출국' 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월드 뮤직을 더 불렀을 것이고... 지금은 마음의 화가 풀렸다. JTBC <비긴 어게인> 출연 후 많이 변했는데, '음악은 보편적이면서 특수하다'는 가치관을 갖게 됐다. 귀를 막지 않고선 음악을 듣지 않을 수 없기에 보편성을 갖지만, 스피커나 라이브 등 청취의 방법이 서로 다르기에 듣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매체다. 그래서 음악가는 내가 부르고 싶다, 부르기 싫다가 문제가 아니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원할 때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고 본다. 세 번째 앨범을 꼭 발표할 것이다.

 

3집의 방향을 미리 정해두었나.

 

포크 음악을 계획 중이다. 가사 노트도 빼곡하다. 주제는 먼저 말한 대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다양한 주제를 다뤄보고도 싶고, 월드 뮤직과 더불어 1집에서의 소울 스타일도 가미하고 싶다. 데뷔 당시 사람들은 네오 소울 스타일을 '이상한 음악'이라 여겼다. 다시 한번 다뤄보고 싶다.

 

지난 10년 간 하림은 한국예술원, 동덕여자대학교, 상명대학교 대학원 등 실용음악과 교편을 잡아왔다. 수강생들에게 음악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가사 쓰기를 강조한다. '자기 이야기를 쓰라'를 자주 언급한다. 남의 이야기를 쓰면 표현이 상투적이다.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특히 이 부분은 싱어송라이터 지망생들에게 강조하는 지점이다. 노래에 대해선 발음을 강조했다. 말은 패션이 아니다. 발음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음악을 포괄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실용음악과에 처음 들어온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만을 음악의 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음악의 길은 다양하고, 새로운 방법을 택하더라도 그 또한 음악이다. 상업적인 프레임에 갇히면 형식적인 결과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월드 뮤직에 관심 있는 친구들에게 특히 팝 음악의 문법 대신 새로운 아이디어, 상상력을 요구한다. “음악을 도구로 보지 말자. 음악은 평생 곁에 두는 친구다!”

 

하림이 지향하는, 음악가 중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스팅의 광팬이었다. 건강하고 히트곡도 많고, 후배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다. 나도 스팅처럼 본인 소유의 성에서 녹음을 해보고 싶다(웃음).

 

하림이 사랑하는 음악도 소개해달라.

 

스팅의 <Mercury Falling>은 팝에 월드 뮤직을 접목한 앨범이다.<Whistle In A Maze> 앨범에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소울 음악으로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를 언급하고 싶다. 어릴 때 하모니카를 불며 그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맥스웰(Maxwell), 디안젤로(D'angelo) 등 네오 소울 뮤지션들의 음악도 자주 듣고 조 카커(Joe Cocker), 홀 앤 오츠(Hall and Oates) 등 블루 아이드 소울 음악도 좋아한다.

 

하림의 음악 여정도 어느덧 20년을 넘겨 항해 중이다. 긴 음악 활동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듣고 싶다.

 

안타깝지만 1, 2집 땐 없는 것 같다. 2018년 블루 카멜 앙상블과 국립극장에서 진행했던 여우락 페스티벌 '먼 아리랑' 공연이 기억이 난다. 그동안 월드 뮤직을 해왔던 나의 감정, 유랑하는 뮤지션으로의 삶을 '아리랑'과 접목하여 진행한 공연이다. 익숙하지 않은 악기의 소리와 함께 극의 이야기를 따라오는 관객들의 표정을 보며 굉장히 뿌듯하고, 행복했다.

 

 


 

 

하림 2집 - Whistle In A Maze하림 노래 | 뮤직앤뉴 / 티엔터테인먼트
총 13곡이 수록 되었는데 모든 곡을 하림이 직접 작곡 하여 작곡가 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아일랜드 민속악기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며,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은 무료한 일상을 떠나서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라는 메시지와 이국적인 악기들의 조화로 흥겨운 느낌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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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권여선, 언어가 언제나 나를 이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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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은 4년 만의 신작 소설집을 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앞으로 책을 몇 권이나 더 낼지 모르니까, 최선을 다하자고. 인터뷰 요청이 오면 가능한 한 다 받아들이려고 했다. 『아직 멀었다는 말』 이 출간된 건 2월 14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지역사회감염으로 확대되는 시점이었다. 거리는 한산하니 서점에도 사람이 없었다. 낭독회, 강연회는 모두 취소됐고 인터뷰 요청은 딱 두 곳에서 왔다. 권여선의 오랜 독자들의 일찌감치 그의 소설집을 예약해 받았지만 대면할 수 있는 기회는 잃었다. “제가 나이도 있고 얼마나 책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권여선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소설가로 잊히는 일은 “아직 멀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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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기의 흥건함이 사라진 자리

 

카메라 앞에서 너무 자연스러우셔서 놀랐어요. 아마도 『Axt』커버 촬영 이후 가장 사진을 많이 찍은 오늘 아닌가요?


『Axt』 인터뷰 때 생전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을 일은 다시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촬영도 만만치 않네요. 그래도 이번에는 실내 촬영이라서 심신이 좀 편했어요. 사진 촬영은 항상 긴장되고 힘들지만, 사진을 찍는 분의 말씀만 잘 들으면 시간이 단축된다는 걸 아니까요. 제가 매우 협조적으로.

 

촬영이 끝나고 나니 무척 좋아하셨어요.


네, 후련하고요. (웃음)

 

출간 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평소라면 지금이 가장 바쁘셨을 텐데요.


3월에 글 좀 열심히 써보려고 토지문화관에 입주신청을 했는데 연기됐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출간 행사도 모두 취소됐고요. 그래서 붕 뜬 상태로, 일도 안 하고 글도 안 쓰고, 불안에 떨면서 놀고 먹고 지내요. 잠시 멈춤 운동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요즘 사람들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를 많이 읽는다고 해요. 최근 TV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고요. 소설가들은 어떤가요? 전염병이 돌면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즉각적으로 소설에 반영하는 민첩성이 없기 때문에 그저 하루하루 자가격리 상태를 충실히, 곰곰이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그래도 문득 드는 생각은 있는데,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재난이 스펙타클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 저 또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 제 속의 악마와 야만을 만나는 느낌이 듭니다. 인간의 정신이 이렇게 생겨 먹었다면, 지구의 종말이 와도 인간은 어느 구석에서든 유희의 기쁨을 찾아내겠구나 경탄스럽기도 하고요. 또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데, 예전에는 엘리베이터 탈 때 사람들이 꽉 차 있는데도 안 기다리고 어떻게든 끼어 타려고 하고, 카페나 식당 문에서 들고날 때 동선이 꼬이면 막 밀어붙이는 사람들도 많고, 줄 서면 숨결이 느껴지게 바짝 붙어서거나 등을 밀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은 안 그러더라고요. 서로 거리를 두니까 숨통도 트이고, 본의 아니게 서로 삼가는 태도를 보이는 듯해서 예의 바른 느낌도 들고요.

 

『아직 멀었다는 말』 이 소설집으로는 4년 만이지만, 작년 4월에 장편 소설 『레몬』이 나왔어요. 원래는 이번 소설집이 더 빨리 나올 계획이었다고요.


단편이 모여 책 한 권 분량이 된 게 작년 초였으니까 그때 바로 묶어냈으면 『레몬』보다 빨리 나왔을 거예요. 그런데 일정이 바뀌었죠. 아마 단편집을 연달아 내기보다 단편집-장편-단편집 이런 식으로 리듬을 타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2016년에 출간된 『안녕 주정뱅이』 가 정말 큰 사랑을 받았어요. ‘주류(酒類) 문학의 위엄`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고요. 이번 작품집은 보다 침잠한 느낌이 들었어요. ‘술’이 등장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고요.


글쎄요. 두 작품집의 차이를 뚜렷하게 말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작가는 쓰는 과정 중에 있으니까, 변화하려는 의지는 충만해도 그 결과인 작품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명료하게 인식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누가 봐도 명백한 차이가 있다면, 술기운이 쏙 빠졌다 하는 정도? 그런데 침잠의 느낌이 드신다니, 그건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취기의 흥건함이 사라진 자리에 모래 같은 울화들이 가라앉아 있어서 그럴까요? 슬픔의 물결이 분노와 무력감의 응결로 바뀌어서 그럴까요? 제가 나이가 들어서 좀 침잠 스타일로 바뀐 건지, 잘 모르겠네요.

 

『아직 멀었다는 말』 에는 8편의 작품이 실렸어요. 2016년부터 2018년에 발표한 소설인데 작품이 실린 순서가 참 적절하다고 느껴졌어요. 표지가 환한 파스텔 톤이라서 그런지 무거운 이야기도 조금은 경쾌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이 소설집의 목차는 편집계의 금손이신 김내리 씨께서 해주셨는데요. 그 구성이 교묘한 게, 전체 단편들 중에서 가장 경쾌하다고 할 수 있는 「모르는 영역」과 「전갱이의 맛」이 소설의 입구와 출구에 놓여 있고, 그 중간에 어두운 침잠 계열의 소설들이 지하계단 내려가듯이 배치되어 있어요. 그래서 아마 전체적인 느낌은 어두운데,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햇살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으셨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제 맘대로 침잠과 경쾌의 조화라고, 나아가 융화라고 받아들이고 기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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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힘을 빼면 안 됩니다

 

소설가를 인터뷰할 때, 사실 고민이 많이 들거든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텐데, 너무 친절하게 작품을 해석해버리면 좋은 감상을 이끌어낼 수 없지 않나? 싶어요. 작가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일 수 있고요.


맞아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건 사진 촬영 다음으로 곤욕스러워요. 사후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자괴감도 들고요. 사실 자기가 쓴 글이라고 해서 작가가 그 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지는 않아요. 독자들이 책을 읽고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책은 완성되지요. 작가가 나서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설명하는 게 오히려 감상을 방해하기도 해요. 하지만 또 책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더 듣고 싶고 알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진 독자들도 계시니까,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 곤욕스러움도 이겨낼 만하죠. 아주 열심히는 못해도 최소한의 서비스는 해드리려고 하는 편이에요.

 

소설집에는 장편과 달리 정말 많은 인물이 등장하잖아요. 특별히 잊히지 않는 인물이 있나요? 저는 「손톱」의 ‘소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갚아야 할 빚이 많아 백 원 단위까지 돈을 계산해야 하는 소희를 오래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도 소희예요. 「손톱」을 쓸 때 저하고 소희의 나이 차이가 31년쯤 났어요. 지금은 35년쯤 나고요. 오래 고민했고 쓰면서도 계속 고민했던 인물입니다. 소희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제가 느꼈던 안타까운 감각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제가 쓰는 소설 속 인물들을 최대한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 책에서는 소희만큼 조심조심 마음이 쓰인 경우가 없었던 것 같아요.

 

「모르는 영역」에서 주인공 ‘명덕’은 자신의 페인팅을 보며 “더는 세지지 말자. 그런 생각. 조금 연해도 된다고, 묽어도 된다고, 빛나지 않아도, 선연하지 않아도, 쨍하지 않아도, 지워질 듯 아슬해도 괜찮다(10쪽)고 생각합니다. 작가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짐작해보았어요. 


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잘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죠. 세지자는 결심보다 세지지 말자는 결심을 지키기가 더 힘듭니다.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도 잘 알 수 없고요. 힘을 주는 일은 죽어라 힘을 주면 되는데, 힘을 빼는 건 죽어라 힘을 빼면 안 됩니다. 단번에 확 빼도 안 되고 적당히 살살 정교하게 빼야 해요. 조금 연해지는 일도, 관건은 ‘조금’입니다. 이 ‘적당히’나 ‘조금’이 바로 어떤 미묘한 심미적 경험을 낳는 토대가 되거든요. 이건 룰이 아니라 감이니까 매번 작품 쓸 때마다 달라져요. 그래서 적당히가 안 되면 힘을 못 빼고 차라리 센 척하고 쓰게 되죠. 아마 평생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쓰게 되지 싶어요. 

 

「모르는 영역」과 함께 「너머」도 특별히 좋았습니다. 「너머」는 가장 현실적인 소설이 아닐까 싶었어요. 기간제교사인 주인공 ‘N’은 ‘Neutrality(중립)’의 N일 것 같기도 했고요.


맞아요. 그 N을 떠올리고 명명을 했습니다. 중립적이라는 건, 성별에서도, 직업에서도, 연령에서도 아무 소속감을 갖지 못한, 경계의 영역에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 소설에서 N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성별은 드러나지 않았고, 직업은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이고, 나이는 헬스장에서 나오는 젊은이들과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 사이에 걸쳐 있죠. 이런 삶의 고단함을 세밀하게 드러내려니 리얼리즘 스타일로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N이 절망의 벼랑에서 순식간에 끝장을 보려는 사나운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신경향파 소설에 가깝기까지 하죠. 그러나 끝내 살인이나 방화는 저지르지 않고, N은 세상에 끝내 버릴 수 없는 게 있다고 다시 마음을 돌리는데, 사실 그 마음 한 끗 돌리는 일이 N에게는 지구를 거꾸로 돌리는 일보다 더 어려웠을 거예요. 마음을 지옥에서 현실로 건져 올리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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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마음」에는 레즈비언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한국 소설에서 이런 캐릭터를 본 것은 저는 처음입니다.


결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근래에 포괄적 가족형태를 인정하는 법제정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제 생각에 그런 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요원해 보입니다. 그야말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법제화 문제를 다루려고 한 건 아니고, 아예 그런 꿈조차 꾸지 못했던, 늙은 레즈비언 커플의 꿈과 무의식과 두려움과 분노를 그리고자 했어요. 자신들이 왜 그렇게 아득한 공포 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급급하면서 살아야 했는지, 왜 꿈속에서까지 타인들의 개입과 추궁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이미 지나왔지만 격렬한 회한을 남기는 과거에 대해서 집요하게 반추하는 이야기를요.

 

일곱 번째 순서로 실린 「재」가 발표한지 가장 오래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안녕 주정뱅이』를 내고 처음 쓴 단편인데요, 일단 술을 안 먹이자 결심하면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재>의 주인공은 저의 방심과 태만으로 여러 번 술을 먹을 뻔한 위기에 빠졌고 극적으로 제가 정신을 차리고 구출해내긴 했는데 마지막에 보면 자기는 안 마시지만 옆자리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있어요. 거기까지는 제가 미처 관리를 못했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술을 안 먹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쓰는 내내 캐릭터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겐 다소 알레고리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집 제목  『아직 멀었다는 말』 은 「손톱」에서 따온 말입니다. 어떤 의미로 제목이 되었나요?


‘아직 멀었다’는 말은 요원하다 또는 가망이 없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흔히 쓰입니다. 넌 안 돼, 아직 멀었어, 뭐 그런 절망적인 진단의 의미를 가진 말이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중에 누군가 빨리 도착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거나 안달을 할 때 조금만 더 지긋이 기다리라는 말로도 쓰입니다. 주로 안달이 난 쪽은 아이들이고 ‘아직 멀었다’는 말을 하는 쪽은 어른들이죠. 그럴 때 이 말은 요원하거나 도착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전혀 없고, 우리가 가고 있으니, 끝내 가긴 갈 테니 조금만 참아보자는 격려, 조바심을 잠재우는 위로의 뜻이 담겨 있죠. 저는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두 가지 뉘앙스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독자들이 어느 쪽으로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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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대로 쓰는 것을 경계한다

 

이번에도 ‘작가의 말’은 쓰고 싶지 않으셨다고요.


소설 말고 다른 글을 쓰는 일이 점점 싫어집니다. 에세이도, 추천사도, 심사평도 그렇습니다. 그 중에 가장 싫은 게 작가의 말인데, 소설로 진을 다 뺐는데 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싶어요. 흔히들 작가의 말은 소설과 달리 진솔한, 작가의 민낯을 보여주는 그런 걸로 알고 있지만, 제 생각에 작가의 말이야말로 허구 중의 허구 같아요. 그것도 한 톨 의미도 없는 허구… 아니, 다른 작가들의 말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제 경우엔 그렇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아무튼 이번 ‘작가의 말’로 저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쓰자 하고 썼는데, 마지막 문장을 한 호흡에 토해 놓고 놀랄 만큼 위로를 받았어요. 그 문장 속에서, 제 독자들이 제 임종을 지켜주는 기이한 환상을 체험했거든요. 아울러 아직은 제 손도 따뜻합니다.

 

독자들도 작가님과 손을 잡은 느낌을 받았을 거예요.


코로나19가 지나가면 제 손이 따뜻할 때 독자들의 따뜻한 손과 맞잡고 싶네요.

 

김애란 작가님이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추천사를 쓰셨어요. 소설을 쓰는 작가는 어떤가요?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줄 때 좋은가요?


다 읽고 났을 때 독자들이 제가 그 소설을 쓸 때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된다면 가장 좋겠어요. 이건 제 의도대로 읽어 달라는 뜻이 아니고, 마음의 온도, 마음의 흔들림, 마음의 질감이 그 글을 쓸 때의 저와 닮아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에요.

 

이번 작품집을 읽으면서 “권여선 작가님은 모르는 영역에 관해 말하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아는 척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저도 곧잘 아는 척을 합니다. 아는 척을 해줘야 할 때 하지 않고 머뭇거리다 보면 ‘나’라는 주체가 희미해지고 와해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럴 때면 무리수를 두는 걸 알면서도 아는 척을 하거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게 됩니다. 지금 이러니 저러니 떠들고 있는 것도 좀 그렇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아는 척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지만, 이게 삶의 스타일이 되어버리면 무척 역겹겠다, 경계하자, 그런 생각이지요.

 

최근 저작권 양도 문제로 이상문학상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윤이형 작가님은 ‘작가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수십 명의 작가들이 문학사상사의 청탁에 응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작가님도 연대의 뜻을 밝히셨어요.


한번 터질 게 터졌구나. 터지긴 터졌는데, 잘못한 쪽보다 잘못을 당한 쪽 피해가 더 크고, 잘못이 쉽게 고쳐지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상징적 효과는 있다고 봐요. 관행이네 뭐네 하면서 비슷한 류의 잘못들을 버젓이 저지르는 게 예전만큼 쉽지 않아졌으니까요.

 

『Axt』  18호 인터뷰에서 “작가들이 등단하면 시상식이 아니라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 오리엔테이션에 작가님을 강사로 초빙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특히 여성작가들에게요.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이 드러난 후 저는 소위 문단이라는 곳에 입문하는 신인작가들이 그동안 얼마나 위태로운 먹잇감으로 존재했는지를 알게 됐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가슴 설레며 등단한 신인작가들에게 성적, 경제적, 인격적 희생과 협박을 일삼는 문인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예술가들은 원래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심리적으로 취약하지요. 그런 취약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보다 약하고 힘없고 물정 모르는 신인작가들에게 몹쓸 권력을 행사하면서 해결하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다른 데서는 멀쩡한 꼴을 하고 있어서 잘 몰라요. 그런 인간들을 구별해내는 법을 알려주고 싶고, 믿을 만한 작가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하는 걸 권하고 싶고, 부당하고 모욕적인 요구를 거절하는 법, 문단 내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에 대응하는 법. 아, 정말 제가 해주고 싶은 얘기도 많고 다른 작가들에게서 듣고 싶은 얘기도 많아요. 문단은 결코 상명하복의 문화가 통하는 곳이 아니며 통해서도 안됩니다. 유명작가나 선배문인의 요구라고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가 없어요. 나이와 경력을 떠나서 모든 문인들은 서로 동등하다는 것, 최소한의 존중과 동료의식만 갖추고 대하면 된다는 것, 신인작가라고 절대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 이런 걸 아주 암기를 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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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경계하는 것이 있나요?


제 의도대로 쓰는 것을 경계해요. 제 계획이나 구상 그대로, 의도를 거의 배반하지 않는 글쓰기, 그건 실패, 완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요. 언어가 언제나 저를 이겨주기를 바라면서 씁니다.

 

소설가 권여선이 갖고 싶은 능력은 무엇인가요? 인간 권여선은요?


소설가 권여선이라면 당연히 소설 잘 쓰는 능력을 갖고 싶겠지만, 그건 너무 무책임하고 얄팍한 소원 같고, 현실적으로 필요한 능력은 인내입니다. 꾸준히 쓸 수 있는, 그게 언제가 됐든 쓰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쓸 수 있는 인내. 인간 권여선이 갖고 싶은 능력은, 관대함입니다. 제가 속이 좁아서 파르르 끓을 때가 많은데, 나이도 있으니 좀 넓은 품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둔감해지면 안 되고, 이 밀도로 공간만 넓게. 음… 어렵네요. 그저 더 퇴행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죠.

 

작가라서 좋은 때는 언제인가요?


이렇게 책을 내고 독자가 말을 걸어올 때요. 쓸 때는 혼자니까 고독하고 답답하고 뭐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의기소침하다가 자화자찬하다가, 거의 숨이 넘어가게 혼란스러운데, 책이 나오고 누가 제 소설을 읽고 이런 저런 생각이나 감정을 제가 느낄 수 있게 표현해놓은 걸 보면, 아 이런 게 기적이구나 싶어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독자들이 전생에 아주 가깝고 그리웠던 지인들처럼 여겨지는 게, 참 신비롭고 좋습니다. 물론 독자들 중에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은 전생에 저와 별로 안 친했던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전생에 뭐 백 프로 좋은 관계만 맺고 살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웃음)


 
 

 

아직 멀었다는 말권여선 저 | 문학동네
소설집의 제목인 ‘아직 멀었다는 말’은 「손톱」 속의 “문득 소희는 새처럼 목을 빼고 어디까지 왔나 확인하듯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할머니가 아흐 어하 소리를 내며 하품을 한다. 그건 아직 멀었다 소희야, 하는 말 같다”라는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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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여경, 이봉섭 “디자인, 새로운 일상을 여는 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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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이봉섭 저자

 


디자인은 전문가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윤여경, 이봉섭 저자와 작은 소품부터 카페 로고까지 주변에서 디자인을 발견했다. 작은 놀이가 끝나자 묻고 싶어졌다.“디자인이 뭐예요?” 이 단순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정보그래픽 디자이너인 윤여경 저자가 글을 쓰고, 제품디자인을 전공한 이봉섭 저자가 그림을 그린 디자인 입문서가 탄생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는 디자인을 알고자 하는 모든 독자에게 ‘개념’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책이다. 두 저자는 디자인을 아는 것은 일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갖는 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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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저자

 

 

두 디자이너의 문제의식이 만나다 


디자인 입문서이자 그래픽노블이에요. 처음부터 공동 작업을 생각하셨나요?


윤여경 공동 작업은 이숲 출판사 대표님이 먼저 제안하셨어요. 디자인에 대한 책이니 그래픽노블 형식이 어떻겠냐고요. 섭외하던 중, 그래픽노블을 출간한 이봉섭 작가님을 만났어요. 마침 디자인의 개념을 소개하는 이론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고 계셨더라고요. 이분이다 싶었죠.

 

제목이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디자인에 대해 가르쳐주는 형식을 택하셨는데요.
윤여경 부모부터 아이까지 전연령대가 이 책을 읽어줬으면 했어요. ‘아빠’라고 시작하면 아빠들이 주목하고, ‘디자인이 뭐예요?’라고 질문하면 아이들도 관심을 보이겠죠. 실제로 저자 둘 다 아빠이기도 하고요. (웃음) 디자인을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죠.

 

글을 그림으로 옮기는 데 1년 이상이 걸리셨다고요.


이봉섭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설명하는 만화이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자칫하면 딱딱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재미를 더할 수 있을까 신경을 많이 썼죠. 작업 기간이 길어졌지만, 모든 장면이 마음에 들 정도로 결과물에 만족해요.

 

협업 과정에서 내용도 많이 바뀌었나요?


윤여경 산업 디자인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그린 디자인’ 내용이 추가됐어요. 처음에는 디자인의 부정적인 면까지 담을 생각은 못 했거든요. 그런데 이봉섭 작가님이 먼저 환경 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제안하시더라고요. 속으로 놀랐죠. 제 전공이 ‘그린 디자인’이거든요. 반가운 마음에 신나게 내용을 추가했어요. 결과적으로 디자인의 좋은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 다루는 균형 잡힌 책이 됐죠.

 

디자인 관련 입문서는 많지만, 개념에 집중한 책은 새로워요.


윤여경 시시각각 변하는 디자인 개념을 정리해서 알리고 싶었어요. 시중의 디자인 책은 실무 중심이거나 역사를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정작 디자인을 개념부터 사유하는 책은 없었죠. 이제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디자인 내부에서도 도구는 빠르게 변하는데, 정작 내용은 텅 빈 게 아닌지 반성하는 움직임이 있거든요.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질문하려면, 개념부터 알아야 하는 거죠.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이 왜 개념을 알아야 하냐 되물을 수도 있겠어요.


윤여경 디자인을 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요. 현대인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아가잖아요. 사용하는 물건이 곧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되죠. 이때 물건은 자연물이 아니라 디자인을 거친 인공물이고요. 사용하는 물건이 어떤 디자인의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알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거죠. ‘나’의 근원을 알고,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라도 디자인의 개념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디자인되는 것’과 ‘디자인하는 것’을 구분하셨어요.


이봉섭 ‘디자인되는 것’이 주어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디자인하는 것’은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거예요.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디자이너가 될 수 있어요. 다양한 취향이 있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쉽게 물건을 만들 수 있죠. 현대인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취향을 만들어가는 사용자로 거듭나고 있어요. 디자인을 잘 다룰 줄 알면, 훨씬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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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섭 저자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디자인

 

디자인은 소비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지만, 잘 활용하면 사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요.


이봉섭 디자인의 핵심인 ‘문제 해결 능력’을 사회 문제에 적용할 수 있어요. 좋은 디자인은 디자이너와 사용자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요. 문고리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라도 형태만 보고 직관적으로 그것을 돌려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요. 디자이너는 늘 사용자와 소통 방식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도 도움이 되는 거죠.

 

윤여경 그동안 디자이너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하우를 축적했지만, 타 분야에는 적용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최근에는 디자인의 방법을 사회, 정치 분야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요. 실제로 북유럽에서는 전문 디자이너들이 사회 문제의 해결사가 되기도 해요. 디자인의 방식을 공동체에 적용하는 거죠.

 

윤여경 저자님은 디자인 대안 학교를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디자인 교육을 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윤여경 수업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이요. 모든 것을 디자인 문제로 보면, 얼마든지 새롭게 바꿀 여지가 생겨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소통 방식, 시공간 등을 실험해보는 거죠. 디자인 대안 학교에서는 선생과 수강생 간에 반말을 하기도 하고, 공간을 바꿔 보기도 해요. 보통 대학 강의는 모든 수강생들이 마지막에 결과물을 내야 하거든요. 대안 학교에서는 매 순간 과제를 수행하고 그 과정을 더 중시해요.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거죠. 능동적으로 디자인하는 자세를 길러주는 것이 목표예요.

 

디자인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 일상에서 디자인을 실천할 방법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이봉섭 주변의 사물을 낯설게 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우리가 생각하는 냉장고는 늘 흰색이잖아요. 왜 하필 그런 색과 형태여야 하지 질문을 던져 보는 거예요. 그저 받아들였던 것을 새롭게 봄으로써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뒤집어 생각하기도 하고요. 익숙한 것에 물음표를 던지는 연습을 하면, 디자인할 때도 도움이 돼요.

 

윤여경 글자를 마치 그림 보듯이 관찰해보세요. ‘타이포그라피’라는 분야가 있듯이, 글자에도 디자인이 숨어 있어요. 보통 우리는 글자가 보이면 의미를 파악하잖아요. 디자이너들은 단어 하나에 여러 가지 디자인을 적용해요. 숨어있는 디자인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달라 보여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고민할수록 일상의 시각 문화가 아름다워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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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나요?


이봉섭 기업의 CEO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디자인을 알면, 디자이너들도 소통하기 편해지죠.

 

윤여경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려면, 입시 미술을 거쳐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시간과 돈이 많이 들죠. 원하는 교육을 받지 못할 때도 있고요.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화로 된 디자인 입문서를 만든 거예요. 어느 날 아이가 디자인이 하고 싶다고 하면, 우선 그것이 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럴 때, 부모님이 이 책을 읽고 개념부터 설명해준다면 뿌듯할 것 같아요.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윤여경 저/이봉섭 그림 | 이숲
사람들은 디자인 개념을 모호하게 이해하고 각기 다르게 해석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쓰였다. 상징, 소통, 기능, 경영, 성찰, 환경, 사회, 디자인, 모두 8가지 디자인 관련 대표 주제를 역사적으로 살피며 그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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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동화작가 홍민정 “모든 길고양이들이 ‘깜냥’의 모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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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어느 밤, 아파트 경비실 앞에 펭귄처럼 생긴 까만 고양이 ‘깜냥’이 찾아온다. 자기 몸집만 한 여행 가방을 들고, 점잖게 뒷짐까지 진 고양이 ‘깜냥’은 경비실에서 하룻밤만 자겠다며 씩씩하게 인사한다. 난처해하는 경비원 할아버지는 아랑곳 하지도 않고 할아버지의 라면을 얻어먹던 ‘깜냥’은 곧이어 할아버지가 순찰을 도는 사이 경비실 인터폰을 통해 들어온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하나씩 해결해나간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 은 새침하지만 사려 깊고, 건강하고 다정한 길고양이 ‘깜냥’이 이웃의 민원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동화다. 책 읽기 싫어하는 어린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어린이가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는 홍민정 작가는 시리즈로 이어질 ‘깜냥’의 다음 이야기 역시 아파트 같은 우리 주변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깜냥’의 다정함이 듬뿍 담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 가지 밝히는 사실. 『고양이 해결사 깜냥』 의 작가 홍민정은 ‘집사’가 아니다.

 

“만약 고양이를 키웠다면 제 고양이의 캐릭터를 상상하거나 해서 ‘깜냥’의 캐릭터를 제한적으로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오히려 안 키우니까 더 자유롭게 생각했던 것 같고요. 사실 고양이를 원래 무서워했는데요. 개를 키우면서 모든 동물에 대한 경계가 풀려버린 느낌이에요. 나와 사는 개와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똑같이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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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아파트 경비실 문 앞에 선 순간


제24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수상 소식이 사실 안 믿겼어요. 전화를 받고 “저 맞아요?”라고 재차 물어보기도 했죠. 나중에는 울컥하기도 했어요. 작가들이 많이 꿈꾸는 일이기도 하고요. 특히 저는 창비 ‘좋은 어린이책’에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소식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이 작품을 준비하시면서 수상 예감이 전혀 없었나요?


예감은 없었는데요. 이전에 다른 공모전에 응모했을 때와 『고양이 해결사 깜냥』 을 응모했을 때의 기분은 조금 달랐어요. 이번에는 시원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잘 썼다, 잘 썼으니까 잘 되겠지, 하는 생각 같은 건데요. 보통은 공모전 마감일에 임박해서 우편을 보내요. 고칠 수 있을 때까지 고치기도 하고, 끝까지 끌고 가는 버릇이 있어서요. 그런데 이번에는 2주 정도 일찍 우편 발송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다른 거 써야지’ 생각했어요. 그것 말고는 될 거라는 예감이나 그런 건 없었어요.

 

『고양이 해결사 깜냥』 을 처음 구상한 것이 언제였어요?


응모할 때 제목은 ‘고양이 경비원 깜냥’이었거든요. 이 제목이 머릿속에 아주 오래 있었어요. 여러 해 제목을 갖고 있으면서 아울러 여러 버전으로 시도를 해왔죠. 지금과는 다른 도입부도 여러 개가 있고요. 한편 이 말은 다른 버전의 이야기들이 잘 안 풀렸다는 이야기잖아요. 중간까지 가다 만 버전도 있고, 이야기가 슬프게 흐른 것들도 많았어요. 길고양이가 주인공이니까 그랬던 것 같은데요. 주인공 ‘깜냥’에게 캐리어를 들려서 아파트 경비실 문 앞에 세운 순간, 그 다음부터는 이야기가 그냥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것이 아마 원고를 투고하고 ‘이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는 느낌을 갖게 한 이유일 거예요.

 

처음에는 시리즈로 기획하신 것이 아니었군요?


시리즈 기획을 응모할 때부터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수상작으로 이 작품을 선정하고, ‘깜냥’을 예쁘게 보신 것 같아요. 얘가 경비원만 하기는 아까운 인재다(웃음) 해서 제목도 ‘고양이 경비원 깜냥’에서 ‘해결사’로 바뀌었고요. 덩달아 저도 할 일이 많아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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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고양이 ‘깜냥’


고양이 ‘깜냥’의 이름은 어떻게 떠올리신 건가요? 이름도 처음부터 왔었나요?


글을 쓸 때 주인공 이름을 굉장히 많이 고민해요. 동화에 맞는 이름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캐릭터에 맞는 이름, 입에 붙는 이름을 많이 고민하거든요. 가령 주요한 등장인물이 2-3명 있다면 제 경우, 받침이 있는 이름과 없는 이름을 섞어서 써요. 읽었을 때 헷갈리지 않았으면 해서요. 깜냥은 의미도 좋고, 예쁜 순우리말이라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요. 까만 고양이니까 ‘깜냥’이라는 이름이 좋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다른 작품에 비하면 이름 고민은 적었던 편이죠. 그냥 얘는 ‘깜냥’이었어요. 다른 이름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랬어요.

 

너무나 절묘한 이름이잖아요. ‘스스로 일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와 주인공 ‘깜냥’의 태도, 성격도 정말 잘 맞아요.


만약 깜냥이라는 순우리말 보통 명사가 없었다면 조금 달랐겠죠. 덕분에 조금 더 깊이 있는 의미가 생기고, 캐릭터가 선명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단어로부터 캐릭터의 구체적인 면들이 나온 부분도 있나요? ‘깜냥’의 나이, 성격 등이 아주 구체적인데 이 캐릭터의 모델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깜냥이라는 낱말에 이런 의미가 있으니 그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자,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에요. 이름은 자연스레 떠올랐지만 뜻 때문에 이야기 설정을 의도적으로 가져가거나 하진 않았고요. 반려견이 있어 산책을 많이 하는데요. 아파트 단지에 길고양이들이 워낙 많아요. 어느 날 산책길에 고양이들을 보다가 문득 ‘저 고양이들은 자기들이 이 아파트를 지킨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예요.(웃음)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도 저들끼리 아파트를 돌아다니면서 ‘거기 무슨 일 없어?’라고 하거나 회의를 하기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고양이 해결사 깜냥』 의 시작이었어요. 딱히 어떤 고양이 한 마리가 모델은 아니었고요. 어떻게 보면 모든 길고양이들이 모델인 셈이에요.

 

‘깜냥’은 늘 당당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고양이죠. 이 이야기를 읽는 어린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면모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깜냥’은 새침하고, 도도한 고양이들의 성격에 더해 후천적으로 습득된 성격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길고양이로 살았으니까요. 필요에 따라서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했을 것 같았죠. 그렇지만 캐릭터를 정해두고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깜냥’의 당차고, 씩씩하고, 기 죽지 않는 모습도 좋은데요. 저는 그런 긍정적이고 당당한 ‘깜냥’의 태도에 감춰진 따뜻한 마음을 어린이 독자들이 읽어주면 좋겠어요.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어른 없이 집에 남겨진 형제들을 보고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거고요. 오디션을 준비하는 친구의 긴장감과 걱정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파트에 매일 드나들지만 공동체의 일원은 아닌 사람이 택배 기사 분인데요. 이분을 돕는 일도 ‘깜냥’의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깜냥’의 행동도 행동이지만 그 따뜻한 마음을 어린이들이 읽어내고, 닮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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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보는 마음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아주세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깜냥’이 캐리어를 들고 경비실 앞에 서서 경비원 할아버지를 마주했을 때를 제일 좋아해요. “이제 제가 보이세요?” 하는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요. 그 장면이 만들어지면서 뒷 이야기가 만들어졌거든요. 마지막 부분에 가면 ‘깜냥’이 자다가 토스트 냄새가 나서 일어나고, 경비원으로 일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런 에피소드가 다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에요. 첫 장면이 나오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의미가 큰 거고요. 지금 보니 그 장면이 이 시리즈의 시작을 만들어준 장면이기도 하더라고요.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말까지 하는 이상한 고양이가 내가 사는 아파트 안에 발을 들여놓는 장면이라 참 좋아해요.

 

걸어 다니고 말까지 하는 고양이 ‘깜냥’이 아파트 안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데 사람들도 이 고양이를 동네에 사는 어린이처럼 자연스럽게 대하잖아요. “어떻게 이런 고양이가 있어?” 라는 반응이 전혀 없어요. 그게 참 좋더라고요.


역시 첫 장면의 효과라고 생각해요. 만약 경비원 할아버지부터 “왜 고양이가 말을 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면 달랐겠죠. 할아버지가 먼저 ‘깜냥’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머지 등장인물들도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 또 ‘깜냥’이 자기 집으로 온 연결 통로가 인터폰이잖아요. 만약 ‘깜냥’이 먼저 집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다면 집집마다 ‘깜냥’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이유들이 필요했을 거예요. 그러나 주민들은 인터폰을 통해 깜냥을 만났기 때문에 완전히 낯선 존재는 아니었던 거고요. 물론 아이들이 “고양이다!” 하면서 신기해하긴 하지만 그건 인터폰으로 장난을 쳤을 때 야단을 치러 온 어른이 아닌 다른 존재가 왔을 때의 신기함에 가깝죠.

 

김재희 작가님의 그림도 정말 귀엽거든요. 작품을 쓸 때 상상한 ‘깜냥’의 이미지와 닮았나요?


처음 캐릭터 시안을 보내주셨을 때 저는 조금 날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생각보다 토실토실하더라고요.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친근감을 주기에는 훨씬 좋은 것 같아요. 게다가 보면 볼수록 귀엽잖아요. 춤추는 동작이라든가 모습이 귀엽게 나와서 좋죠. 보통의 길고양이라면 마르고, 야윈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깜냥’은 잘 얻어먹고 다니는 고양이어서(웃음) 지금의 모습이 가장 사랑 받기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깜냥의 노래도 있잖아요. 뮤직비디오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들었는데요. 기분이 어떠세요?


제 생각보다 일이 커지고 있어요.(웃음) 이 작품은 순수하게 투고한 원고에 불과하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했어요. 상금이 있는 공모와 출판이 100% 확실한 공모가 있다면 후자 쪽을 택할 만큼 내 이야기가 독자와 만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 이후에 다른 일들이 더 생긴 거잖아요. 시리즈로 만들게 됐고, 노래가 만들어지고, 인형까지 만들었어요. 당황스러움이 제일 크지만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죠. 출판사에서 노래를 보내주셨을 때 듣자마자 실은 울었어요. 더구나 노래를 만드신 이승윤 님이 핵심을 정말 잘 짚어주셨어요.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제가 생각한 ‘깜냥’의 캐릭터가 점점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함께 하시는 분들이 ‘깜냥’을 다들 좋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어린이들만 좋아해주면 돼요.(웃음)

 

깜냥은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까요? 경비원 생활은 끝나는 건가요?


마지막 장면이 경비원 옷을 예쁘게 개어두고 떠나는 장면이에요. 그러니까 아마 떠나겠죠?(웃음)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는 동화니까요. 익숙한 공간이 될 거예요.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것도 어린이들에게 아주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이었어요. 굳이 이곳은 이렇게 생긴 곳이야, 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공간보다 ‘깜냥’을 먼저 들여다보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고요. 다음 이야기도 그런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 될 것 같아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거든요. 뒷문으로 들어가 보니 이렇게 일하고 계셨구나, 라는 느낌을 전할 수 있는 곳이면 해요.

 

『고양이 해결사 깜냥』 , 구체적으로 어떤 독자가 읽기를 바라세요?


무엇보다 책 읽기 싫어하는 어린이에게 권하고 싶어요. “재미있네?” 하면서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글밥이 그렇게 많지 않고, 중간에 ‘깜냥’ 그림도 한 번씩 나오고 애교도 떨어주니까 책에 흥미 없던 어린이가 읽으면 제일 좋겠죠. 그래서 다른 책도 더불어 읽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개를 키우면서 다른 동물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처럼 길고양이를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 모든 동물을 다르게 보고,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관심 가질 거라고 생각해요. 학대 받는 동물들, 번식장의 개들, 동물원의 동물들에 대해 조금 다르게 보는 마음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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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고양이 해결사 ‘깜냥’ 인터뷰


떠돌이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


정확히 언제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나중에 들려줄 기회가 있을 거야. 하지만 다른 길고양이들보다는 조금 일찍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만 알아둬.

 

떠돌이 생활 중 겪은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뭐야? 


음, 어려운 질문이네. 내가 “힘든 시간을 이겨 내면 반드시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생기거든”(79쪽)이라고 말했지? 사실 그 힘든 시간도 다 기억에 남아. 그렇지만 역시 홍민정 작가님을 만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야. 내가 홍민정 작가님 눈에 띈 덕분에 책의 주인공도 됐으니까.(솔직히 내가 워낙 매력이 있잖아!)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길고양이에게 너희들이 먹는 음식을 아무거나 주면 안 돼. 특히 짜고, 기름기 있는 음식은 절대 주면 안 되지. 꼭 주고 싶다면 고양이 사료를 주는 게 제일 좋아. 안 그러면 고양이가 아프고, 병에 걸리니까. 나는 참치도 먹고, 새우 과자도 먹었지만 그건 내가 특별한 고양이라서 그런 거란다! 요즘은 고양이 급식소가 많으니까 그곳에 사료를 기증하는 방법도 있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야?


당연히 햇빛이 따뜻할 때지! 해가 가장 오래 많이 드는 곳을 찾아 누워 쉴 때가 제일 행복해. 너희들이 잠자는 동안에 키가 자라는 것처럼 나도 낮잠을 자는 동안 길고양이로서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저장하지. 그만큼 소중한 시간이야. 그러니 방해하지 말아줘.

 

너는 어떤 친구들을 좋아해?


나는 무례한 사람한테는 친절을 베풀지 않아. 예의 바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너희들이 “우와! ‘깜냥’이 이것까지 하다니!”라고 할 만한 일! 아무리 ‘깜냥’이지만 설마 고양이가 이걸 할 수 있겠어, 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바로 그걸 해보고 싶어. 그게 무엇이든 말이지. 하하.

 

 

 


 

 

고양이 해결사 깜냥 1홍민정 글/김재희 그림 | 창비
떠돌이 고양이 깜냥이 경비원이 되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유쾌하고 흥미롭게 펼쳐진다. 고양이 깜냥이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시리즈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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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우 강석우 “클래식? 경험해야 좋아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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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전도사’로 알려진 배우 강석우. 클래식과 친해지는 방법으로 그는 ‘익숙함’을 꼽았다.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는 그가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가곡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익숙함’ 덕분이다. 특별한 일을 기념하는 날부터 가장 평범한 일상의 순간까지, 강석우가 있는 곳에는 항상 클래식이 흐른다.


고향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음악 때문에 울기도 하고, 음악 때문에 가슴이 저리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명절을 맞으면 고향에 가지만 오늘 이 시간에도 갈 수 없는 고향이 있는 분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갈 이유가 없는 고향이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러시아 작곡가의 음악을 듣다보면 알 수 없는 향수를 느낍니다.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특별히 마음을 크게 흔들고 향수를 많이 느끼게 하는 곡이 있는데 그 곡에 대한 감정은 저만의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 깊은 향수 같은 걸 느끼지 않나요?(97쪽)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는 CBS 음악 FM <강석우의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토요일 코너  ‘강석우의 플레이스트’의 원고를 묶은 책이다. 2017년에 나온 뒤 절판된 『강석우의 청춘 클래식』에 2017년 이후의 글을 모은 한 권을 더해 총 두 권으로 새로 제작됐다. 배우, 아버지, 아들, 남편으로 살아가는 강석우의 진솔한 이야기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강석우의 플레이리스트’는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청취율 1위를 자랑하는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인기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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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앞둔 작가의 심정으로

 

CBS 음악 FM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토요일 코너 ‘강석우의 플레이리스트’가 모여 책이 됐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뿌듯하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요. 오탈자가 있을까 걱정되고 무엇보다 이 책이 읽을거리가 될까 싶어서 조심스럽고요. 기왕 낸 거 출판사가 손해 보면 안 되니까요.

 

원래 6개월 정도만 할 생각으로 ‘강석우의 플레이리스트’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계속됐다고요. 애정이 남다를 것 같아요.


애정이 남다른 게 아니라 너무 힘들어요. (웃음) 일주일에 원고 하나 쓰는 게 쉽지 않아요. 더군다나 많이 돌아다니거나 여러 사람을 만나는 스타일이 아니라 더 어렵죠. 드라마틱한 일이 없거든요.

 

드라마틱한 일이 없어서 쓰기 힘들다고 하셨지만 청취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요.


걱정과 달리 소소한 이야기라서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지난주 방송에서도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가족들하고 밥 먹은 이야기를 했어요. 아들의 여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었는데 “아휴 30년이 정말 빠르구나”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라고요.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보기 좋았다”라고 했죠.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누구나 겪는 감정을 음악과 함께 이야기하는 건데 청취자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쓰시는 줄 몰랐어요. 원고 쓰는 노하우가 있나요?


내 이름 걸고 하는데 당연히 직접 쓰죠. (태블릿PC 화면을 보여주며) 그동안 썼던 원고 168개가 여기 다 있어요. 청취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어린 시절과 현재 이야기를 적절히 안배해야 해요. 2주 전에는 오래전 이야기, 지난주는 최근 이야기를 했죠.

 

마감을 앞둔 작가의 심정을 잘 아시겠네요. (웃음)


그럼요. 초조해요. ‘강석우의 플레이리스트’를 금요일에 녹음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늦어도 목요일 밤에는 원고를 써야 하는데 수요일까지는 일부러 생각 안 해요. 목요일 되면 그때부터 생각합니다. 미리 생각하면 너무 힘드니까… 목요일 밤 11시에 쓸 때도 있어요. 겨우 써서 자정 넘겨 마무리하는 거죠. 그래서 중간에 6개월 정도 쉬었어요.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했죠. 그랬는데 당시 피디가 “이건 꼭 하셔야 한다”고 해서 다시 시작한 거예요.

 

어떨 때 청취자들의 반응이 가장 좋은가요?


실수하는 거. 내가 실수하는 걸 제일 좋아해요. 어제 퀴즈를 내다가 나도 모르게 정답을 말했어요. 정답이 ‘미완성’이었는데 ‘인생은 OOO’이라고 해야 하는데 곡을 흥얼거리다가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다 말한 거죠. 문자 엄청나게 왔어요. 너무 재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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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 할 테니 듣기만 하세요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가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청취율 1위라고요. 비결이 뭘까요?


쉽게 설명해줘서 아닐까 싶어요. <강석우의 아름다운 그대에게>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게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 거였어요. 클래식 음악을 클래식하게 들으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죠. 집에서 양복 입고 넥타이 맨 상태로 음악 듣지 않잖아요. 가요나 팝송을 들을 때는 안 그러는데 클래식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준이 엄격한 거예요. 어떤 음악이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고 편하게 들어야 좋다는 게 내 지론이에요.

 

일단 듣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그럼요. 안 듣고 어떻게 알겠어요. 1~2년만 들으면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레파토리를 알게 돼요. 물론 음악의 배경을 알면 더 좋겠죠. 그런데 모든 분이 그걸 다 알면 제가 할 일이 없잖아요. (웃음)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 편히 듣기만 하세요.
 
실제로 쉽게 설명해줘서 좋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없거든. 쉽게 하는 게 설명이지 어렵게 하는 건 설명이 아니잖아요. 일반인이 클래식 전공자들이 배우는 걸 알려고 하니까 어렵죠. 예를 들어 평범한 운전자가 자동차 엔진 만드는 걸 알아서 무슨 소용 있겠어요. 엔진 만드는 법이 아니라 주행 매뉴얼을 익혀야죠. 그런 걸 하는 거예요. 물론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저는 끊임 없이 공부해요. 방송 끝나고 집에 가면 거의 종일 음악 들어요. 책상에 앉아서 자료 보고 정리하고요. (직접 정리한 음악 자료를 보여주며) 이거 보세요. 다 정리돼 있잖아요. 예를 들어 ‘바흐’를 치면 바흐에 관한 정보가 쫙 나와요. 베토벤도 마찬가지고요. 현악 4중주, 초기, 중기, 후기 등 주제별로 찾아볼 수 있어요. 

 

양이 상당하네요. 학생의 필기 노트 같아요.


학생처럼 공부하니까요. 종류도 다양해요. 오케스트라의 역대 지휘자부터 독일 지도까지 있어요. ‘감성적인 곡’, ‘쉬고 싶을 때 듣는 곡’으로 분류하기도 하고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 별 표시 보이죠? 별이 많은 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곡이에요. 급하게 선곡해야 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3분, 5분 등 시간별로 정리해 놓은 것도 있어요. 

 

느린 악장을 좋아하신다고요. 이유가 있나요?


성향이에요. 시력이 나빠서인지 귀가 예민해요. 오케스트라 들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못 듣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요. 그러다 보니 빠르고 힘 있는 곡은 강한 자극이 돼요. 느린 악장은 비교적 편하니까 자주 듣게 되고요. 방송에서 느린 악장을 연달아 틀면 청취자들이 지루해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꼭 설명하죠. 

 

매일 10시에 가곡을 트는 게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의 특징이에요. 직접 제안하셨다고요.


당시 피디한테 매일 가곡을 틀자고 했는데 표정이 이상해지더라고. “그러지 말고 한 번 틀어봐” 했죠.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틀었어요. 내가 틀자고 하면 그때 겨우 한 번 틀더라고. (웃음) 그러다 청취자들 반응이 오니까 일주일에 한 번에서 사나흘에 한 번으로 바뀌었고요. 그래도 아쉬워서 어느 날 내가 생방송에서 얘기해 버렸어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아름다운 한국 가곡이 매일 한두 곡씩 나갑니다”라고. 담당 피디가 처음에는 놀라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시간을 ‘10시’로 고정하더라고요. 그래서 ‘10시 가곡’이 됐어요. ‘10시 가곡’으로 만든 건 피디의 역량이죠.

 

반응이 좋더라고요. 나중에 가곡을 직접 쓰기도 하셨죠?


가곡이 나오면 청취자들이 ‘10시구나’ 해요. 우리 방송에서 가곡이 나간 뒤로 다른 방송사에서도 가곡을 많이 틀었어요. 그래서 ‘그럼 내가 직접 가곡을 만들어서 선물해보자’ 싶어서 곡을 만들기 시작했죠. 

 

처음 쓸 때 어렵진 않았나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는지 궁금해요.


느낌이 오는 날이 있어요. 첫 번째 곡 ‘그리움조차’를 쓸 때도 그랬어요. 집에 가자마자 옷만 벗고 침대에 앉아서 30분 만에 가사를 썼어요. 나중에 드라마 촬영장에서 가사 보고 입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휴대폰에 녹음했죠. 곡의 틀을 만드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 이후에 가사와 멜로디를 수정하는 과정이 6개월 정도 걸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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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사랑은 자연스러운 흐름

 

교회 주일학교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음악에 눈을 뜨게 해 준 시간이었다고요. 


어린 시절 교회에서 성가대 하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알게 됐어요. 우리 때만 해도 피아노 있는 집이 없었으니까. 교회에 피아노 한 대, 학교에 풍금 한 대가. 교회나 학교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거죠. 특히 찬송가 중에는 모차르트나 하이든같이 유명한 음악가들의 곡이 많아요. 주일학교에서 성가대 했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어쩌면 거의 전부죠.

 

누군가 ‘왜 클래식이 좋냐’고 물어본다면요?


자연스러운 흐름이죠. 음악도 습관이거든요. 경험이 있어야 좋아할 수 있잖아요. 클래식이 왜 어렵냐? 익숙하지 않거든요. 익숙하지 않으면 어렵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음악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워요.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에서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내 인생을 한 곡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곡이 좋을까요?


글쎄요. 피아노나 바이올린이 있는 협주곡이겠죠? (잠시 고민하다) 책에 있는 곡인데 브람스 인터메조 118번의 2악장이에요.

 

어떤 곡인가요? 


음악을 들으면 이유를 알 거예요. 잠깐만요. (음악을 재생하며) 영화배우 에단 호크의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에 이 곡이 나와요. 세이모어 번스타인이 이 곡을 두고 ‘눈물 속에서 웃음 짓는 감정’이라고 표현하는데 인생이 그런 거 아닌가 싶어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채플린의 말도 있잖아요? 사는 동안은 눈물을 흘리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미소가 지어지듯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이 곡이 그래요.

 

* 인터메조 Op. 118(brahms: intermezzo op. 118 no.2 a major) 요하네스 브람스
19세기 신고전주의 작곡가 브람스의 생애 마지막 작품.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느낀 감정을 시적으로 표현한 곡으로 잔잔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영화 <색,계>에서 양조위와 탕웨이가 처음 만나는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나왔고, 드라마 <밀회>에서 유아인과 김희애가 연주해 유명해졌다. (‘인터메조’는 두 악곡 사이에 끼워 연주하는 짧은 기악곡을 뜻함.)


청취자들과 가곡 7개를 쓰기로 약속했다고요. 현재까지 4곡을 썼으니 이제 3곡이 남았는데 계획이 있나요?


아이디어만 있어요. 일단 재미있는 곡을 하나 쓰고 싶어요. 나머지 두 곡은 자장가와 세월호 이야기를 담은 곡이고요. 그런데 아내가 세월호 곡은 완성하지 말래요. 너무 슬프다고. 피아노 치면서 들려줬거든요. 바닷가에 서 있는 엄마의 마음을 썼는데… 아마 이건 완성 못 할 것 같아요.

 

내용이 다양하네요. 자장가가 눈에 띄어요.


자장가는 우리 아들이 장가가서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나오겠죠.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우리 아기 잘 자라’하는 내용의 자장가는 아니에요. 손주를 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장난스러운 곡인데 ‘자니?’, ‘자는구나’, ‘지금도 자니? 언제 깰 거야?’ 하는 마음을 담은 곡을 만들고 싶어요. 재밌지 않나요? 이게 진짜 할아버지 마음이거든. (웃음) 아이를 위한 자장가가 아니라 할아버지를 위한 자장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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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안 마시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림도 그리시죠. 음악부터 미술, 글쓰기까지 활동 범위가 굉장히 넓은 것 같아요.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잖아요. 나는 그걸 할 수 있고, 하는 것뿐이에요. 어릴 때의 환경과 타고난 성향도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술을 안 마시면 돼요. 술만 안 마셔도 다 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아내와 함께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같이 연주회도 자주 가신다고요.


무슨 일이든 아내와 합니다. 내 베스트 프렌드예요. 사실 아내가 처음부터 음악을 좋아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미술을 전공해서 예술적 감성은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게 되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매일 아침 2시간씩 <강석우의 아름다운 그대에게> 듣죠. 집에서는 항상 클래식 음악이 나오죠. 익숙해지니까 들리는 거예요. 들리니까 좋아지고요. 이제는 나보다 더 잘 알아요. 예전에는 아내랑만 다닌다고 싫은 소리 많이 들었어요. 술도 안 먹고, 일 끝나면 바로 집에 가고, 어디든 와이프랑 다니니까. 한 마디로 ‘찌질남’으로 봤었죠.

 

요즘은 달라지지 않았나요? 찌질하게 보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내가 선구자라니까. (웃음) 이번에 책을 내면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나처럼 살아도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제도 밤 11시 즈음에 음악 들으면서 아들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하기로 했으면 평생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내 삶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요. 아내와 함께 하는 게 내 삶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해요. 하나가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둘이지만 서로 바라보면서 가라는 거죠. 

 

주례 듣는 것 같아요. (웃음)


가끔 목사님같이 말한다는 분들도 있는데… 방향을 설정하고 살자는 거죠.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고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알아야 해요.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청취자들도 많아요. 그래서 평소에 더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죠. 예를 들어 누구랑 다투고 아이들하고 격한 감정을 주고받은 다음에 방송하면 어떻겠어요. 그대로 전달될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사람 많은 곳에 잘 가지 않고 고요하게 살려고 해요. 책임감 있게 방송하려는 거죠.

 

SNS 아이디가 river_stone-rain이에요. 반응이 좋은데 알고 계시나요?


자주 들어요. 직접 지은 거예요. 나 아이디어 많은 사람이라니까. (웃음) 우리 아이들도 재밌어해요.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를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가정을 이루려는 젊은 남자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결혼하면 남편, 아버지가 되는데 다 초보거든요. 면허증 없는 운전사나 마찬가지죠. 결국 내 아버지와 주변의 아버지를 보고 따라 살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을 보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식은 어떤 존재인지 등을요. 음악은 물론이죠.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1강석우 저 | 싱긋
청춘스타 출신의 배우라는 무게감을 내려놓고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을 헤쳐 나오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아들, 남편이자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냄으로써 공감을 자아낸다. 그 ‘강석우의 플레이리스트’를 책으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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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성광 “삶과 삶 사이에도 균형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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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김성광 저자는 12년 차 서점 직원이다. 회사에서는 매일 거래처를 상대하며 출판 동향을 살피고, 회사 일이 끝나면 아이와 놀아주고 교감하기 위해 정시 퇴근을 고집한다. 집안일과 육아로 저녁 시간을 채우면 ‘나’에게 남는 시간이 없다. 일도, 관계도, 취미도 잘 하고 싶지만 통째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서점 직원으로서 잘하고 싶은 마음, 육아를 잘 하고 싶은 마음,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를 고민하는 마음은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한다.


같은 회사를 다니며 출근길에 만날 때마다 김성광 저자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하루 30분 책 읽는 시간이 절실해 점심 시간을 줄이고 잠을 자는 시간을 쪼개 책을 읽었다. “매일 허덕이면서도 잘하고 싶은 일은 많다.” 지각할까 봐 헐레벌떡 뛰어가는 사람의 눈에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항상 모자란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보듬고 가족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에는 늘 시간이 없었다.


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여러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매일의 아쉬움을 딛고 조각 시간을 모으는 방법, 시간을 온전히 들여 아이를 돌보는 기술, 나 자신에게만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엿보게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워라밸’을 넘어, 여러 조각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고민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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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내마음’인 제목


제목에 공감한 분들이 많았어요.


원고를 쓰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각 원고를 어떤 흐름으로 배치할 지 정하는 일도 어려웠어요. 하고 싶은 얘기를 잘 전달하려면 원고 배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원고를 쓰는 와중에도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편집자님이 서문을 먼저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서문을 먼저 쓰면서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마음이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하게 정리를 하게 되었고, 이후에 원고 배치도 자연스럽게 풀렸어요. 바로 그 서문의 가제가 ‘시간은 없습니다만 잘하고 싶습니다’ 였어요. 최근 에세이 제목으로 아주 많은 형태죠. (웃음) 가제를 조금 수정해보면서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라라밸’이나 ‘라이프 밸런스’ 같은 말을 활용해 제목에서부터 어떤 메시지를 전달 하고픈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공감대를 형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최종적으로 제목을 지었어요. 다행히 제목만 보고도 ‘딱 내마음’이라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적절하게 균형을 잡았다고 생각했어요. 육아 이야기와 출판업계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간을 활용하는 자기계발로 읽히기도 하고요.


책이 육아 에세이가 될 것이냐,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의 에세이가 될 것이냐 했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저라는 사람을 육아 카테고리로만 묶고 싶지도 않고,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만으로 소개하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다른 한편으로 책은 여러 이야기를 묶는 것보다 일목요연할 때 잘 전달된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쓰다 보니 제 원고를 육아나 서점으로 딱 부러지게 나눌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쓰는 글은 저라는 사람을 반영할 수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시간’과 ‘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편집자님의 조언이 있었다고 서문에 썼는데, 어떤 조언이었나요?


처음에는 <채널예스>에 연재한 ‘아이가 잠든 새벽에’ 원고를 보고 책을 내자는 제안을 주셨어요. 자세한 가이드를 주시기보다 자유롭게 일상에 대해 써보라고 하셨죠. 어느 정도의 원고가 쌓이고 나서는 원고에 살을 붙이는 방향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연재 분량이 책 한 꼭지의 분량보다는 좀 적었거든요. 조언에 따라 살을 붙여 나가면서 제 안에 있는지 몰랐던 여러 기억과 생각을 꺼낼 수 있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만드는 팁이 많이 녹아나면 좋겠다는 조언이 가장 중요했던 거 같아요. 그런 팁일랄까, 시간을 만드려는 제 노력을 담은 원고들이 책의 앞부분(1부 ‘자고 싶지만 자고 싶지 않은 밤들’)에 배치되었는데요. 이런 식으로 초반부 원고의 방향을 잡아주시니까 이후에 잘 풀렸던 거 같아요. 독자 분들도 앞부분의 원고를 읽으시고 ‘나도 이렇게 해볼걸’ 같은 공감을 많이 표해주시더라고요.


이런 내용의 책을 쓰게 되리라고 상상한 적이 있나요?


늘 읽는 데만 관심 있지 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입사하고 나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쓸 때도 책의 내용을 알린다는 감각이었지, 글을 쓰고 있다는 감각으로 하진 않았거든요. 책을 팔면서 언젠가 책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건 그야말로 막연한 생각일 뿐이었고요.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너무 바쁘고 피곤한데도 너무 좋은 순간이 많더라고요.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일기를 쓰게 됐는데, SNS에 글을 올리면 보신 분들이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 칭찬이 글을 써보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고요. 그러면서 비로소 책을 써보고 싶단 생각도 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글을 많이 쓰셨을 거라 생각했어요. 많이 읽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문장이 단단했고요.


글에 대한 관심은 최근의 일이었고요. 제가 쓰는 표현이 다 이제까지 읽어왔던 책에서 왔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러고 보면 책에서 받은 영향은 부정할 수 없는 거 같아요.


서점 직원의 입장에서 자신이 쓴 책에는 객관적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자아 성찰도 많이 하셨을 것 같고요.


책을 쓰는 동안엔 그저 제 생각이 잘 드러나도록 쓸 수만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팔리는 건 염두에 두지 말고 완성만 잘 하자, 그런 생각이었죠. 그런데 내놓고 나니 욕심이 나는 거죠. (웃음) MD는 한주에 몇백 부 이상 나가는 책을 늘 보고 있기 때문에 은연중에 눈높이가 좀 높게 형성되거든요. 물론 스스로 제 책을 많이 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나름의 객관화를 했지만, 제가 늘 봐오던 책과 제가 쓴 책 격차를 눈으로 실감하는 일은 솔직히 씁쓸했어요. 지금은 좋은 공부라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 작가님이나 출판사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겠죠.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온라인의 판매 흐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오프라인 시장은 그만큼 잘 알지 못하거든요. 책을 내고, 책의 판매 추이를 살피면서 조금은 시야가 더 넓어진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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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족, 일, 사회


시간을 10분씩 떼어서 어떻게든 활용하는 시도가 나와요. 지하철에서 책 읽기가 대표적인 게 될 테고요.


예전에는 한 시간, 두 시간 정도는 시간이 있어야 운동 시간으로 썼어요. 이제는 30분만 나도 운동을 한다는 식으로 생각을 바꿨어요. 사실 운동 효과가 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론 그 정도 시간 내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지금은 10분, 20분 단위의 시간에도 계획을 짜요. 이번 주말에 뭐할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10분이 빌 것 같은 시간을 확인하고 그 시간에 주말 계획을 짜기로 계획하는 거죠.


계획을 짜는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군요.


계획 짜는 시간을 남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균형 있게 하기 위해서는 계획이 치밀해야 하거든요. 치밀하게 계획하려면 시간이 걸리고요. 저는 계획을 세울 때 항상 두 가지 시간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가 계획을 짜기 위한 시간이고, ‘멍 때리는 시간’이 그다음이에요. 계획을 못 지켜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 아니고, 여유를 부릴 시간도 포함해야 계획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은 없지만, 잘하고는 싶’은 일에는 무엇이 있나요?


계획을 짤 때 항상 네 개의 카테고리를 염두에 둬요. 나, 가족, 일, 사회, 이 네 가지가 가장 잘하고 싶어하는 일이에요. ‘나’ 영역은 책 읽을 시간을 조금 만들어주면 대부분 충족돼요. ‘일’에서는 항상 여러 권의 책을 연결해서 읽는 형태로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분명히 한 권을 읽을 때와는 다른 세계가 열리거든요. 하지만 책 한 권을 소개하기도 어려운데 여러 권을 묶어서 소개한다는 게 쉽진 않죠. ‘가족’에서는 아이를 잘 키우면서도 아내와 같이 균형을 잡았으면 해요. 저만 시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내가 시간을 만들어서 스스로 목표하는 것에 충분하게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몫을 하고 싶은 거죠. 아내가 하는 일에 피드백해줄 만큼 아내의 일에 관심을 깊게 쏟을 시간을 내고 싶고요. ‘사회’ 영역은 시사 이슈를 살펴보고 제 생각을 꾸준히 업데이트 하는 것도 있고요. 간단하게는 분리수거하는 데 시간을 조금 더 갖고 싶다거나 하는 일이에요. 집에서 정리할 시간이 너무 없는데, 분리수거를 잘하려면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하잖아요.


‘나’의 시간과 ‘사회’의 시간이 많이 떨어져 있을 것 같진 않아요. 나를 위한 시간을 쓰더라도, 내가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는가와 연관이 있잖아요.


그렇긴 해요. 어떤 일을 하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행위를 할 때 사회에 큰 도움은 안 될지라도 세상이 굴러가야 할 방향의 반대쪽으로 영향을 미치고 싶진 않아요. 그러려면 잘 굴러가는 방향이 어딘지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하죠. 개인으로든, 서점원으로든, 가족의 일원으로든 다 그런 생각 아래서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기사든 책이든 여러 자료를 살피고 깊이 생각하며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늘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게 고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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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어서 시간을 잘 쓰는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었을 거예요.


정확히 따지면 ‘이런 방법도 있어’보다 ‘이렇게 해도 불가능하다’는 마음을 더 나누고 싶어요. 조각 시간을 아무리 만들어 써도 잘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잘하는 기분이 들지 않아요.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견히 여기고, 언젠가는 잘하게 될 거라 막연히 기대할 뿐이죠. 그래서 개개인이 시간을 짜내서 활용하는 거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라는 걸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주 52시간 근로시간도 많이 줄어든 거지만, 이것만으로는 삶이 요구하는 것들을 챙기기에는 많이 부족해요. 저는 칼퇴근이 가능한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적극적으로 돌봐 주시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신데도 힘든 거잖아요. 개인이 이 안에서 최선을 다하긴 해야 하지만, 개인 보다는 사회의 시간 배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이 훨씬 더 줄어들고도 유지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겠죠. 그런 문제에 대해 계속 관심 가지려 해요.


‘워라밸이 아닌 라라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서점 직원으로 일하다 보면 라이프가 워크가 되는 순간이 있고, 워크가 라이프가 되는 순간이 있어요. 워크랑 라이프 사이에 밸런스를 잡는 게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각각 놓인 상황에 따라 워크와 라이프는 하나가 될 수도 있고 하나가 될 수 없기도 해요. 혼자 살 때는 퇴근하면 책 읽고, 읽은 책을 바탕으로 회사에 써먹는 식으로 일과 삶이 하나였어요. 그리고 그 삶이 좋았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확실히 일과 구분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퇴근 후엔 집안일과 아이와 노는 일에 시간을 거의 다 할애해요. 집안일과 육아도 일과 연결지으려면 쉽지 않죠. 이 책에서는 균형을 이야기했지만, 만일 일을 잘하고 싶어서 회사 바깥에서도 계속 일에 집중 한다면, 그래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일과 자기 삶의 궁합이 좋은 것도 행운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여러 영역을 동시에 유지하며 균형을 꾀하는 삶이 제게 잘 맞는 거 같아요. 책에도 썼지만 어느 하나를 대단히 잘 하고 싶은 마음보다, 어느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을 때 더 만족스러운 거죠. 물론 인생이 흘러가고 아이가 크고 나면 다시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날 순간이 올 수도 있겠죠.


남성 양육자로서 양육을 하는 것을 칭찬하는 리뷰도 있더라고요. 아직 여성 양육자가 주양육자가 되기 쉬운 사회여서 그런 리뷰가 있었던 거겠죠?


SNS에 양육 일기를 올리면 ‘좋은 글이지만 아내한테는 안 보여줄 거다’라는 남성들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어요. 동시에 독자리뷰에는 ‘우리 남편 보여줘야겠어요’, ‘남자가 쓴 책이라니 놀라워요’ 같은 반응도 많고요. 육아에 동참하는 남성들이 많이 늘고 아빠 육아 에세이도 굉장히 흔해졌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남성들은 여성들만큼 양육 책임을 자기 것으로 무겁게 느끼진 않는 것 같아요. 아이는 함께 낳는 거니까, 부모가 아이에게 해야할 역할과 책임은 당연히 공동의 것이죠. 이런 논리적 명제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라 생각해요. 다만 그 명제를 삶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겠죠. 생각과 삶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는 마음의 역할도 컸어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육아는 같이 하는 게 옳은 거지’ 하고 생각만 했다면, 아이가 생기자 아이가 정말 나랑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고, 아이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챙기고 돌보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더라고요.


육아 분담이 화제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남의 육아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도 있고요. 남의 시선이 육아를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주변 의견이 많으면 신경이 쓰이고 에너지가 드니까,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을 해요. 기존 성별 분업에 따라서는 하지 않겠다는 큰 원칙 정도만 세우고 사는데, 살다 보면 성별 분업을 거스르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없어져야 하지만 개인의 범위 안에서는 개인이 너무 힘들 정도로 노력하진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넘어설 부분은 넘어서고, 넘어서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드는 부분에서는 굳이 넘어서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균형을 만들어가려고 하고요. 물론 ‘넘어서지 않아도 된다’를 핑계나 합리화의 근거로 삼아선 곤란하겠죠.


잘하는 사람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분업화가 되는 경우가 많죠.


사실 육아가 효율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우리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요리는 아내가 잘 해서 아내가 더 하게 되고, 쓰레기 정리는 제가 더 잘하고 때로 무거운 경우도 많아서 제가 전담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순간을 아이가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효율만 따지면 안 되고, 아이가 어떤 걸 당연하게 여기고 어떤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과정을 부모가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회니까요. 우리 역시 성별분업 사회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야죠.


딸인 지안이가 커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어떨까요?


네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잘 남지 않잖아요. 지안이와 같이 있었던 에피소드가 꽤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기록을 남긴 게 제일 뿌듯했어요. 아마 커서 읽으면, 더 이상 기억에 없는 자신을 읽으며 좋아하지 않을까요. 주말이나 평일 밤에 아빠 글 써야 되니까 나갔다 온다고 하면 별로 안 좋아했는데, 지안이 이야기 쓰러 가는 거라고 하면 좋아하더라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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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잘 아는 사람으로 일하고 싶다


저도 그렇지만, 회사 근무 시간이 한 시간 단축됐어요. 지금은 줄어든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항상 딸하고 노는 시간이 모자랐거든요. 퇴근해서 씻고 밥 먹고 집안일 조금 하면 금방 재워야 할 시간이에요. 딸은 더 놀자고 하면서 밤 열두 시까지 안 자고는 했어요. 근무시간이 줄어들고 나서는 그래도 조금 일찍 재울 수도 있고, 조금 더 놀아줄 수도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물론 지금도 계속 더 놀고 싶다고는 하지만요.


저희도 계속 놀고 싶잖아요. (웃음)


그렇죠. 자기 전에 매일 “그럼 내일 만나”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딸은 “아빠, 내일 저녁에 만나요”라고 답하죠. 아이에게 아빠는 저녁에야 만나는 사람인 거예요. 그런데 아이는 저와 노는 시간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짠한 마음이 있어요.


지안이에게는 이 질문이 자주 돌아오겠지만, 작가님의 장래희망은 무엇인가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직장에 오래 다닌다기보다 책을 매우 잘 아는 사람으로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게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지 알 수 없는 게 어렵고, 또 절대적인 양으로는 지금까지도 꽤 많이 읽은 것 같은데 책을 어떤 식으로 읽어야 내가 책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직 그 길을 알 수 없어서 어려워요.


MD 일을 거쳐 지금은 법인서비스 업무를 하고 계시다고요.


이제는 책을 추천한다기보다, 이미 구매 리스트를 제시받고 거기에 맞게 책을 공급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기존의 일반 고객만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학교나 기업, 도서관, 책방 등 제가 그동안 상대하지 않았던 출판 시장을 상대하는 거죠. 독자 분들이 얼마나 좋은 책을 알아봐 주시는가도 출판업계에 중요한 일인데, 동시에 출판사가 제작한 책이 마지막에 독자한테 도착하기까지는 굉장히 다양한 유통과정을 거치거든요. 유통과정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출판사나 여러 형태의 서점에 고루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요즘 많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동네책방과도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배우게 된 부분이죠. 온라인 서점은 시장의 일부이고, 그 바깥에도 책이 오가는 넓은 시장이 있거든요. 그동안 전체의 일부분만 보고 일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다시 시작하고 배우는 느낌이 있어요.


MD는 출판사 분들이 찾아와서 가장 빠르게 신간 소개를 받는 업종이잖아요. 지금은 간접적으로 신간을 만나게 되고요. 아쉬움은 없나요?


그래서 매일 아침 급한 주문을 처리하고 나면 새로 등록된 신간을 쭉 훑어요. 그러니 정보 면에서는 늦지 않는데, 아무래도 책을 처음 만져보는 손맛의 아쉬움이 있죠. MD 일을 하면서 사전정보 없이 눈으로 간단히 살펴본 기억과 손으로 한 번 잡아본 기억을 가지고 이 책이 될 것 같다는 감이 올 때가 있고, 실제로 책을 홍보했을 때 독자들 반응이 오는 경험이 좋은 에너지로 남아있거든요. 책을 추천하는 기분을 못 느끼는 아쉬움은 있죠.


 ‘출퇴근독서’라는 이름의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읽는 책을 올리고 있어요. 출퇴근 때 읽는 책 기준이 있나요?


읽고 싶은 책을 고를 때도 아까 말한 네 개의 카테고리를 활용해요. 그리고 1분기는 가족, 2분기는사회, 3분기는 나, 4분기는 일… 이런 테마로 각각 한 분기용 독서 목록을 만들어요. 그런데 서점에 있으니까 계속 신간이 보이잖아요. 계속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기죠. 그래서 한 분기에 30, 40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20권은 미리 지정된 주제로 채워놓고 나머지 책은 그때그때 눈에 보이는 걸 골라요. 올해 1분기엔 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어요. 2분기는 가족과 육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을 생각입니다. 따지면 저는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정상 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여기에 안주하면 내 가족의 이미지만 가족으로 보고 살 것 같아서 바깥의 형태를 많이 보고 싶어요.


최근 소개한 책 중 한 권을 말씀해주세요.


윤이형 작가님의 『붕대감기』 가 좋았어요. 서점에서 봐도 페미니즘이 큰 이슈가 되고 정치 의제화도 되고 있는데, 지금의 페미니즘이 흘러가는 지점에 대해 작가님이 이 책에서 짚으신 부분이, 저는 중요하다 생각되었어요. 어떤 오류를 바탕으로 전체를 부정하려는 사람들과, 옳은 것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모두에게 ‘100%의 옳음’을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류를 혹은 부족함을 간직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오늘 퇴근길 독서도 정해져 있나요?


오늘은 『페스트』입니다. TV에서 소개한 책은 굳이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없었는데, 『페스트』는 왜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나 싶더라고요. 코로나19를 둘러싼 현실을 보면서 『페스트』『콜레라 시대의 사랑』같은 고전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김성광 저 | 푸른숲
늘 시간에 쫓기면서도 잘하고 싶은 건 많은 현대인, 워라밸이 중요한 현대인, 오롯이 자기에게 집중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 책을 읽고 싶지만 틈을 내기 어려운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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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기타리스트 박주원, 최고의 연주자로 투쟁해왔던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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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가락 끝에서 기타는 구슬피 운다. 블루스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낀다(While my guitar gently weeps)'면, 방랑하는 집시의 기타는 굽이치고 소용돌이치며 격렬히 감정을 뒤흔들어놓는다. 2009년 <집시의 시간>으로 솔로 데뷔한 지 어언 10주년, 지난 5일 홍대 빅퍼즐문화연구소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박주원은 담담했다. "나의 것, 나의 음악을 성실히 해왔다."는 명료한 대답은 애써 다시 묻지 않아도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

 

박주원은 2월 29일 서울 롯데 콘서트 홀에서 '박주원 10주년 기타 콘서트 with Strings'를 통해 자신의 10주년을 기념했다. 20인조 스트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이루어지고 최백호, 말로, 고상지 등 그의 음악에 목소리와 연주를 보태온 뮤지션들이 집시 기타리스트를 기념하러 출연한다. 척박한 음악 시장, 그중 아직까지도 인식이 낮은 연주 음악 신에서 꿋꿋이 다섯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대중에게 집시의 기타 선율을 알려온 박주원. 그는 투철한 연주자, 연구하는 뮤지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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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9일 열렸던 콘서트에 대해 소개해달라.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보통 서울에서 공연을 하면 다음 앨범 발매 전까지 후속 공연을 거른다. 2018년 11월 24일 <The Last Rumba> 앨범 발매 콘서트 후 1년 조금 더 넘게 지난 셈인데, 10주년을 기념하여 이번 공연은 특별히 하게 됐다.

 

10주년을 맞은 소회가 어떤가.


많은 분들이 내가 하고 싶은 나의 음악을 들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1집 <집시의 시간>이 오래도록 꿈꿨던 나의 음악 세계를 펼친 앨범이었다면, 이후 작품들은 팬분들의 응원과 기대, 나의 의지가 부지런히 소통하며 균형을 맞춘 결과물이다.

 

음악을 함에 있어 '나의 의지'를 언급했는데, 팬들의 기대와 그 의지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음악은 100% 내 생각대로 진행하고, 이후 이주엽 대표님이 대중적 시각에서 조언을 해주신다. 대표적인 예로 2집 <슬픔의 피에스타>의 대표곡 '슬픔의 피에스타' 같은 경우는 원래 나오지 않았을 곡이다. 녹음 당시 9곡을 완성해서 대표님께 들려드렸는데 “뭔가 심심하다”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전체적으로 좋은데 강력한 타격감, 결정타 격의 트랙이 필요하다는 조언이었다. 이후 고민하다 어느 날 새벽에 곡을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2011년 발표한 정규 2집 <슬픔의 피에스타>부터 박주원의 이름이 대중 매체 곳곳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기 음악에 비해 최근 발표한 앨범들은 다소 어렵다는 인상도 있었는데.


'어렵다' 보단 '깊어졌다'고 말하고 싶다(웃음). 그렇지만 난해한 결과물은 결코 아니다. 대중적 코드를 맞춘 트랙, 나의 테크닉을 선보인 트랙 모두 균형을 맞춰 만든 앨범이다.

 

<슬픔의 피에스타>와 <캡틴> , <The Gypsy Cinema> 이후 <The Last Rumba>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여파도 있을까.


10년 전부터 2년에 한 번 정규작을 발표할 계획을 세웠다. <슬픔의 피에스타>, <캡틴> , <The Gypsy Cinema> 모두 그렇게 지켜왔는데, <The Last Rumba>는 이례적으로 1년을 더 쉬어 3년 만에 발표한 정규작이다. 오랜만에 내는 앨범에 박주원이라는 기타리스트가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머무르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다음 작품은 청자들에게 좀 더 친숙한 결과물을 선보이도록 하겠다.

 

국악기와 판소리, 소울 등 다양한 실험이 가미된 <The Last Rumba>에서 대중적으로 접근한 곡이 있다면?


윤시내 선배님께서 참여하신 '10월 아침', 그리고 '청춘 II'를 꼽고 싶다. 'The last rumba'도 나의 빠른 핑거링과 리듬 스타일을 잘 살리며 친근하게 다가간 곡이라 생각한다.

 

언급한 대로 타이틀곡 'The last rumba'의 곡 길이는 3분 46초로 짧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곡이 굉장히 화려하다.


곡을 만들 때 러닝타임을 신경 써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The last rumba' 녹음을 끝낸 후 곡 길이를 확인해보니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나 자신도 놀랐다.

 

월드 뮤직의 팬이라면 집시 기타리스트, 집시 기타는 어디선가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시 음악'이라면 생소하다. 전 유럽을 방랑하며 떠돌던 집시들의 고유한 음계를 유럽의 재즈 아티스트들과 연주자들이 20세기 초 서구 재즈의 문법과 결합하여 '집시 재즈'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것은 확실하나, '집시 음악'을 특정 음악 장르로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박주원 역시 본인의 집시 음악을 확고히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을 직접 언급하며, "스페인의 비센테 아미고(Vicente Amigo), 벨기에의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 등 전설적인 집시 기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며 고유의 스타일로 그들의 느낌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박주원의 '집시 음악'입니다."라 정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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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많은 음악 세계 중 집시 기타에 빠졌나.


어린 시절 클래식 기타를 먼저 접했다. 드럼을 치셨던 아버지, 음악을 좋아하셨던 어머니께서 아들이 기타를 친다고 하니 여러 유명 연주자들의 판을 구해 주셨다. 당시엔 그게 어떤 음악인지도 모르고 나르시소 예페스(Narciso Yepes), 로스 로메로스(Ros Romeros) 등 스페인 기타리스트들의 노래를 즐겨 들으며 집시 기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뮤지션, 혹은 작품이 있다면.


부모님께서 처음 사주신 앨범은 프랑스의 뉴에이지 기타리스트 니콜라스 드 안젤리스(Nicolas De Angelis)와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리처드 클레이더만(Richard Clayderman)의 1989년 앨범 <Ballad For Adeline>이다. 오직 음반으로만 기타 소리를 접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 '기타 소리는 이렇게 나야 하는구나'라는 기준을 정해준 작품이다. 동시에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 같은 스페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많이 듣고, 또 연습했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 록에 빠지면서 일렉트릭 기타를 손에 잡았고 대학 진학 후 재즈 코드워크와 화성을 배워나갔는데, 헝가리의 집시 기타리스트 페렝 스넷버거(Ferenc Snetberger)의 라이브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내가 그려온 음악 세계를 실제로 펼쳐 보이고 있었다. 유년기부터 연습해온 클래식 기타를 재즈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깨달았다.

 

집시 음악의 가장 강렬한 매력은 무엇인가.


멜로디컬 한 빠른 연주 속 의미 없이 음을 낭비하지 않는 것, 화려한 리듬 아래 구슬픈 멜로디가 매력적이다.

 

상당한 고난도의 음악이다. 곡을 음반에 담을 때도 어려움이 있을 텐데.


노래에 따라 다르다. 빠르게 녹음을 끝내는 곡도 있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곡도 있다. 테크닉을 요하는 'The last rumba' 같은 곡은 오래 걸린다. 보통 재즈 뮤지션들은 앨범 녹음하기 전 클럽에서 몇 번 라이브 무대를 통해 곡을 손에 익게 하는데, 나는 성격이 급해서 (웃음) 빨리 만들어두고자 한다.

 

박주원이 꼽는 핑거링의 매력은 무엇인가.


신체와 줄이 맞닿는 연주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피크로 연주하는 것과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의 울림은 전혀 다르다. 듣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 그 차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기본기와 숙련도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하는 주법이다.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나에게 가장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아티스트는?


앞서 언급한 대로 페렝 스넷버거는 내게 충격을 안겨줬다. 비센테 아미고에게선 플레이적인 면모와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점을 많이 배웠다.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들의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다.

 

박주원의 음악 인생은 <집시의 시간>과 <슬픔의 피에스타>의 성공 이후로도 쉽지 않았다. 연이어 발표한 <캡틴>과 <The Gypsy Cinema> 이후에도 여전히 그를 '슬픔의 피에스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에 박주원은 "1, 2집 이후 나를 잊으신 분들이 많다. 2011년 <슬픔의 피에스타>까지는 그래도 CD를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2013년<캡틴> 이후 시장이 아예 무너져버리면서 대중의 관심도 한 풀 꺾였다. 운이 좋아 공연도 많이 하고, 방송도 출연했음에도“1, 2집 많이 들었어요!”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이 날 박주원은 계속하여 '배운다'를 강조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뮤지션들의 이름이 등장했고, 유년기 자신의 삶을 결정지은 앨범을 이야기할 때는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동료에게 헌사를 바치는 듯했다. 최백호, 윤시내, 정엽, 말로, 개그우먼 신보라 등 다양한 가수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새로운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그는 데뷔 10년 차 베테랑 기타리스트임에도 열정적이었고 철두철미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영원한 불황'인 한국 음악 시장에서 박주원이 어떻게 고고한 예술가, 최고의 연주자로 지난 10년을 투쟁해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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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 특별히 힘을 싣고 싶은 앨범, 레퍼토리가 있다면.


앨범 한 장당 팬분들이 많이 찾으시는, 대중이 선호하는 3~4곡을 선정하여 공연을 채울 계획이다. 많은 분들이 찾는 1집 <집시의 시간>과 2집 <슬픔의 피에스타>에서 많은 곡을 가져왔다. 2012년 영화 <러브 픽션>의 OST로 사랑받은 '러브픽션'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볼레로', '슬픔의 피에스타' 등 대표곡들을 20인조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계획이다.

 

라이브 무대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곡은 무엇인가.


축구선수 박지성에게 헌사한 'Captain no.7'이다. 축구 경기하듯 빠른 핑거링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곡이다. 원래 관객은 연주자의 고통을 즐기지 않나 (웃음). 농담이다.

 

지금까지 작업 및 공연하며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매번 앨범이 처음 발매됐을 때가 좋았다. 솔로 데뷔 앨범은 첫 앨범이라 좋고, 두 번째 앨범은 '내가 또 해냈구나' 싶어 좋고...(웃음). 힘든 마스터 과정을 거치는 보람이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박주원을 음악으로 이끈 앨범을 소개해달라.


에릭 클랩튼의 <Unplugged>. 에릭 클랩튼이 치는 클래식 기타는 클래식 기타 주자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와 전혀 달랐고, 그 점이 나에겐 정말 새로웠다. '클래식 기타를 이렇게 칠 수도 있네'하며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많이 깨준 앨범이다. 즉흥 연주의 개념을 처음 알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비센테 아미고의 파세오 데 그라시아 <Paseo De Gracia> 앨범은 플라멩코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앨범이라 많이 들었다. 팻 메스니(Pat Methney)의 음악도 많이 들었다. 국내 가요로는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집에서 들었던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이정석의 '사랑하기에'가 기억난다. 타 연주자들에 비해 멜로디 부분에서 강점을 만들어준 노래들이다.

 

 

 


 

 

박주원 3집 - 캡틴박주원 연주 | Universal / JNH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캡틴 NO. 7'은 축구선수 박지성을 위한 곡이라 의미가 각별하다.박지성의 도전과 열정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이 곡은, 마치 그라운드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강렬한 멜로디를 들려주며 "역시 박주원"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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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금이 “사진 신부를 봤을 때 이야기가 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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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일제강점기의 조선. 김해의 작은 마을 ‘어진말’에 살던 열여덟 살 소녀 세 명이 하와이로 건너간다. 버들, 홍주, 송화. 세 사람은 바다 건너 전해진 남편 될 사람의 사진 한 장과 결혼 지참금을 들고 고향을 떠난다. ‘이곳’과 달리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그곳’, 큰돈을 벌어 친정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그곳’을 그리면서. 역사는 이들을 ‘사진 신부’로 기억한다.


우리는 ‘사탕수수 밭의 노동자’로 하와이 이민 1세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남성 서사로 점철된 그 이미지  안에 여성들의 모습은 지워지고 없다. 이민 1세대 남성과 그 자녀들의 가족 구성원이었을 여성들. 분명 역사를 함께했을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갔을까. 그들에게 하와이는, 그곳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이금이 작가는 재외 동포에 관한 책 속에서 세 명의 ‘사진 신부’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면서 버들과 홍주와 송화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낯선 땅에서 세 사람이 마주했던 녹록치 않은 현실과 그 속에서도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삶, 그 모두를 가능하게 했던 여성들의 연대와 새로운 가족 탄생의 모습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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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사진 신부’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이야기예요. 처음 사진을 보신 건 언제였나요?


다른 작품의 자료 조사차 재외 동포에 관한 책들을 보다가 발견했는데, 그 책이 처음 나왔을 때가 2007년이더라고요. 책 속에 하와이 이주민에 대한 자료들이 있었고 ‘사진 신부’에 대한 사진들도 있었어요. 그 중에 하나가 이번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부채와 양산, 꽃을 든 세 명의 여성이 찍힌 사진이었어요. 그걸 보는데 저한테 이야기가 확 들어온 거죠. 그 옛날에 어떻게 그렇게 먼 하와이에 갈 생각을 했을까...

 

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궁금해지셨군요.


그렇죠. 그 책에 보면 ‘사진 신부’로 하와이에 간 여성들이 고생했던 이야기,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이 노동자로 일하며 고생한 이야기와 관련 자료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준비할 때라 마음 한 구석에 놔두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자료 조사차 요코하마 항에 갔었는데 이민사 박물관이 있는 거예요. 당시에 우리나라 노동자 7천여 명이 하와이에 갔는데, 일본은 20만 명이 갔어요. 그들이 먼저 ‘사진 결혼’을 했어요. 우리나라의 ‘사진 신부’는 천 명 정도가 갔고요. 이 이야기는 빨리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07년부터 생각해 오셨던 이야기인 거네요.


앞서 말했던 그 사진 한 장이 계속 마음속에 들어 있어서, 그러면 그 세 명을 주인공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진으로 남은 그 인물들한테 생명을 넣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마음속에서 구상을 한 거죠.

 

작품을 다 쓰신 후에 하와이에 가셨다고 들었어요. 느낌이 어떠셨어요?


감회가 새로웠죠. 사실 하와이를 여러 번 가서 취재를 할 수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한 번밖에 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가면 현재의 하와이를 보는 거잖아요. 나는 백 년 전의 하와이를 그려야 하는데. 현재의 하와이를 보고 나면 상상력에 방해를 받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자료를 통해서 백 년 전의 풍경들을 보면서, 구글맵을 활용해서 동선을 짜면서(웃음), 소설을 먼저 다 써놨어요. 나중에 하와이에 간 건 내가 쓴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자료에서는 느낄 수 없는 햇살이나 바람, 풍광 같은 걸 보고 싶어서였어요. 하와이에 딱 내렸는데, 낯선 곳에 생전 처음 간 건데도 너무 낯익은 거예요. 전생에 많이 와본 곳인 것처럼(웃음). 이 글을 쓰면서 너무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작품에 나오는 지명들, 거리들을 다니면서 주인공이 경험했던 곳을 내가 가서 확인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게 되게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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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조사에 많은 공을 들이셨을 것 같은데, 책에 실린 참고문헌 목록이 짧아서 놀랐어요. ‘분명 이것보다 더 많은 자료를 보셨을 텐데’ 싶었어요.


그런데 자료가 이것 이상으로 있지가 않아요. 저도 놀란 게, 그렇게 자료가 많지가 않아요.

 

하와이 이주민이라고 하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가 떠오르는데요. 그들 가족의 일원이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요.


물론 처음 하와이에 간 1세대 이민자들도 되게 용기 있었지만, 여성들도 그게 대단한 모험이잖아요. 알 수 없는 곳에 미래를 걸고 떠난 거니까요. 또 남성들의 이야기는 더러 나온 것들이 있잖아요. 어쨌든 저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런 작품들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 소설도 쓰게 된 것 같아요. 실제로 자료들을 보면 사진 신부’들이 하와이에 가서 결혼을 하면서 하와이 미주 동포 사회가 안정됐다고 해요. 독신 남성들만 있을 때는 술 먹고 도박하고 문제들이 많았다는데 여성들이 와서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면서 교육열도 생기고, 그러면서 동포 사회가 안정되면서 독립 자금을 후원할 수 있는 첫 기틀이 마련됐다고 하더라고요.

 

독립운동사도 남성 중심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짙죠.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는 하와이 이주민 여성들의 독립운동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여성들의 단체도 엄청 많았어요. 만들어졌다가 다시 나뉘었다가 하면서요. 미국이 배경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조선보다는 가부장적 분위기가 덜했던 것 같고요. 여성도 같이 일을 했기 때문에 조선에서보다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조선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조국이 독립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더 알았던 것 같고요. 그렇게 해서 여성들이 되게 열심히 활발히 독립운동을 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가슴이 막 뜨거워졌어요. 제가 본 자료 중에 독립운동 후원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후원 금액이 기록된 부분이 있었는데, 거기 보면 여성들 이름도 되게 많이 나와요.

 

말씀하신 것처럼, 소설 속 여성들이 하와이에 간 뒤에는 조선에 있을 때보다 비교적 지위가 높아져요.


네, 남성과의 관계에서 거의 동등해지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조선에서는 여자들이 집안일만 했지만 거기에서는 실질적인 경제 활동을 했어요. 독신자들을 위해서 빨래와 밥을 해주고 돈을 벌거나, 아니면 밭에 나가서 일을 했어요. 똑같이 밭에서 일해도 여성이나 아이들은 남성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았지만, 그렇더라도 똑같이 일을 하고 경제활동을 했어요. 그래도 남성들의 삶보다는 힘들었겠죠. 여전히 가부장적인 생각을 가지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도 되게 많았어요.

 

여성들의 ‘연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작품이에요. 버들, 홍주, 송화가 친구이자 가족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데요. 이들의 ‘연대’는 처음부터 생각하셨던 건가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 마을에서 살던 세 명이 같이 낯선 곳에 간 거잖아요. 우리가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말을 하는데, 외국에서는 얼마나 더하겠어요. 지금처럼 외국을 많이 나가는 시대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그들이 처음부터 갈등 없이 자매애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에는 버들이도 홍주를 조금 질투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송화를 약간 무시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했다가 다시 더 깊이 우정을 느끼게 되죠. 저는 그런 인간적인 감정을 우선시해서 충분하게 그런 토대를 쌓고 결국은 자매애로 나아가는 걸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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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룬 게 없어도 박수 받을 수 있는 삶


버들, 홍주, 송화는 각자의 아이들을 데리고 하나의 공동체로써 같이 살아가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보여주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성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그런데도 여전히 4인 가족을 정상으로 보는 시각들이 존재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대안 가족이 ‘정상 가족’이라고 일컫는 가족보다 못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점에 주력해서 쓴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의도는 했죠.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마음을 내어주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싶어요.


다른 나라라는 환경이 그렇게 해준 것 같기도 해요. 서로가 아니면 기댈 사람이 없는 거잖아요. 만약 조선이었다면 내 부모가 있고, 내 가족이 있고, 각자의 울타리가 있는데 하와이에서는 오롯이 자기 혼자인 거잖아요. 거기다 남편들도 다 떠나고, 죽고, 버리고, 그런 상황에서 그들 셋만큼 가까운 존재가 또 어디 있겠어요. 소설에 ‘반얀트리’의 이미지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 나무를 보면 서로 엉켜서 어떤 게 이 나무의 뿌리이고 어떤 게 저 나무의 가지인지 모르잖아요. 그런 것처럼 버들과 홍주와 송화가, 비단 그 세 명뿐만 아니라 ‘무지개회’의 인물들이 혈연 관계처럼 된 거죠. 그들은 조선에서 같이 배를 타고 떠나온 존재들이기도 하고 같은 ‘사진 신부’ 출신이기도 하잖아요. 그럼으로써 끈끈한 자매애를 깨달은 거죠. 환경이 힘들었던 만큼 저 아이가 없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더 끈끈해지는 거죠.

 

오랫동안 여성의 서사를 써오셨는데요. 작품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나 독자들의 반응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글쎄요. 작가와 독자들은 같이 나가는 것 같아요. 제가 쓴 책으로 인해서 독자들이 ‘아, 이런 여성들의 서사가 있구나’ 하고 알기도 하지만, 더 앞서나가면서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독자들에 의해서 작가들이 자극을 받고 쓰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요즘 들어서 달라졌다는 생각보다는 늘 있어왔던 이야기인 것 같아요.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시면서 여성의 서사에 더 깊이 천착하게 되셨다고요.


맞아요. 저는 대학을 다닌 게 아니라서 여성 문제 같은 것을 새롭게 생각할 계기가 거의 없었어요. 또 제가 장녀에다 맏며느리여서 전통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게다가 약간 착한 여자 콤플렉스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통적인 방식의 여성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결혼해서 딸을 낳으면서 그 전에 내가 받았던 차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전에는 그게 차별이라는 생각도 못 했던 거예요. 내가 경험할 때는 아무 문제의식도 못 느꼈지만, 그런 게 내 딸한테 올 때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제가 결혼해서 살던 곳이 시골이었는데, 그곳에 살면서 여성민우회에 가입을 했어요. 거기 주부 연극 동아리가 있었어요. 시골에 살고 아이들이 있으니까 문화생활을 할 수가 없었는데 연극반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해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입을 했죠.

 

당시의 활동이 많은 영향을 미쳤나요?


거기 가입을 하면 여성학 강의를 기본으로 들어야 했어요. 공부를 하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 딸을 키우면서 느꼈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죠. 그리고 우리가 했던 연극들도 다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였어요. 그런 걸 하면서 뒤늦게 페미니즘 같은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된 거예요, 깊게는 아니더라도. 제일 처음에 여성에 관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면서 썼던 작품이 『너도 하늘말나리야』 거든요.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을 쓸 때만 해도, 그 작품 속의 팥쥐 엄마에 대한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는데, 그렇게 분명한 의식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런데 『너도 하늘말나리야』 를 쓰면서 조금 더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쓰게 됐죠.

 

『알로하, 나의 엄마들』『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보면, 역사에 기록된 사람들보다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아요.


관심도 가질뿐더러, 저는 우리 사회가 너무 성공 지향적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들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거나 하지 않으면, 그가 성공적인 살았다거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의 수남이도 그냥 그가 살아낸 삶만으로 충분히 존중 받고 잘 살았다고 박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 이룬 게 하나도 없어도요. 저는 거기에 중점을 뒀던 거예요. 그 작품을 읽는 청소년들에게도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아, 꼭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좋은 곳에 취직하지 않아도 그냥 너의 본성대로 사는 것만으로도 너는 너무나 훌륭한 일을 한 거야’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수남이가 더 큰 일을 해내기를 바란 독자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삶을 고민했었어요. 성노예 할머니들의 대모를 할까, 아니면 사업적으로 아주 성공한 여장부로 할까, 온갖 고민을 다 했어요. 제일 많이 고민한 게 수님이의 마지막이었어요. 그러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결국 그렇게 썼어요. 이번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분들 중에 이름 있는 독립운동가, 우리가 들으면 알 수 있는 독립운동가가 몇 명이나 돼요. 그런데 그 분들 뿐일까요? 소설에도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 나오지만, 꼭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았어도 독립에 이바지한 거죠. 그런 사람이 더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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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문학가의 특권


그동안 아동청소년 소설을 써오셨지만, 이번 작품은 청소년 소설로 한정 지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저는 평생을 아동청소년 문학을 하면서 산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의 첫 번째 독자는 늘 어린이나 청소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책도 처음에는 청소년 문고로 내려고 했어요. 그리고 어른들도 같이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저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아동청소년 문학의 결이나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오랫동안 아동청소년 문학을 써 온 사람으로서. 그런데 너무 고맙게도 이번 소설을 성인본으로 내자는 결정이 났는데, 애초에 저는 청소년 문학으로 쓴 거예요. 그리고 이 소설이 이방인, 경계인의 이야기인데 사실 청소년들도 그렇잖아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고. 그들의 존재가 성적이나 대학으로 인정받거나 평가되고. 어떤 면에서는 이방인들의 삶이 청소년들의 삶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역사를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작품 활동을 쉬지 않으시잖아요. 항상 작가님의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작가로 느껴지는데요. 1984년에 등단하셨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정도예요. 작가님의 첫 작품부터 읽은 독자들은 이제 40대가 되었을 텐데요. 느낌이 어떠세요?


되게 큰 힘이 돼요. 가끔 블로그에 신작 소식을 올리면 와서 댓글을 달아주시는데 ‘어릴 때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랐다, 성인이 되면서 청소년 책과 멀어졌는데 작가님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이런 글을 쓰고 계신다는 게 뭉클하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초등학생 때 작가님한테 메일을 보내서 답장을 받았었다, 이제 선생님이 돼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작가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글을 써주기도 하세요. 독자들이 성장하는 걸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아동청소년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특권인 것 같아요. 예전에 ‘언제까지 글 쓰실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런 말을 했었거든요. 여러분이 자라서 부모님이 됐을 때 서점에 가서 ‘이 작가님이 지금도 글을 쓰시네?’ 하고 책을 사다가 자녀와 같이 읽을 수 있도록, 그때까지 쓰고 싶다고 했는데요. 어느덧 그렇게 되고 있어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제목에 있는 ‘알로하’라는 말의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와요. 세 명의 주인공이 삶 속에서 그 정신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겠죠.


네. 알로하가 담고 있는 정신을 하와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갖고 있다면, 세상이 정말로 평화롭고 살기 기쁜 곳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서 찾다가 알로하의 뜻을 알게 됐지만, 되게 의미 있는 이야기더라고요.

 

‘레이’가 함의하고 있는 바도 큰 것 같습니다. 버들이가 처음 하와이에 왔을 때, 레이에 마음을 뺏기기도 하죠.


그럴 것 같아요. 저도 네팔을 여러 번 갔었는데요. 거기에서는 금잔화 꽃을 엮어서 목에 걸어줘요. 레이라고 부르지는 않고요. 처음 공항에서 나와서 그 꽃목걸이를 받았을 때 정말 환대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시의 자료들을 보면, 부둣가에 큰 배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다 마중을 나왔고 레이를 파는 장수들이 엄청 많았다고 해요. 거기에서 레이를 사서 걸어주는 거죠. 버들이 처음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불안함이 있었을 텐데 그럴 때 남편이 꽃목걸이를 걸어줬다면 얼마나 행복했겠어요. 그런 안타까움도 있었어요. 그리고 저도 레이가 단순한 환영의 꽃목걸이인 줄 알았는데 레이에도 여러 의미가 있더라고요. 끝과 끝이 이어져 있으니까 꼭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도 있고, 목에 걸었을 때 두 팔로 안은 것 같다는 의미도 있다고 해요. 하와이에서는 환영, 위로, 이별, 축하 등 일상의 모든 순간에 레이가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레이라는 형태로 마음을 전하는 거죠.

 

작가의 말에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주 여성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어요. 백 년 전에 조선을 떠났던 세 여성들의 상황과 지금 그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맞아요. 자료 조사하면서 저 스스로도 굉장히 놀랐어요. 지금의 사회 현상과 너무 흡사한 거예요.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게 될 때, 맥 빠지지 않으세요?


맥은 빠지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지 않아요? 맥 빠지고 절망적으로 생각한다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해 봤자 또 이럴 건데, 하면서요. 제가 이 글을 하나 쓴 걸로 세상이 바뀌는 건 전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예요. 그게 티끌만한 점 하나 찍는 것일지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잖아요. 그러면서 세상은 조금씩 변화되고, 그러다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대단한 무언가를 바라는 건 아니고요.

 

낯선 곳으로 이주를 결심하는 여성들의 이유도 백 년 전과 지금이 다르지 않은 것 같고,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의 하와이는 무지개가 상징적인 것이더라고요. 단지 자연현상이 아니라, 그렇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도시가 된 거예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서로 어우러져서 살아가더라고요. 백 년 전에 그렸던 미래가 지금의 모습인 거죠. 우리는 지금이 과도기인 것 같아요. 우리 일상 속에서 외국인들을 익숙하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게 계속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백 년 전의 하와이에서 있었던 현상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읽는 사람마다 자 자기 감정대로 읽고, 그러면서 이 책이 계속 새로운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현재의 우리 삶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는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금이 저 | 창비
사진 한 장에 평생의 운명을 걸고 하와이로 떠난 열여덟 살 주인공 버들과 친구들의 삶을 그렸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하와이라는 신선하고 새로운 공간을 배경으로, 이민 1세대 재외동포와 혼인을 올리고 생활을 꾸려 가는 강인하고 개성 강한 여성들의 특별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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