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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핑크, 이리 “삼국지는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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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메신저라는 설정을 역사에 가져와 사랑 받은 『조선왕조실톡』 의 무적핑크 작가가 SNS ‘인수다구래문’을 통해 유비와 관우가 만나고, ‘국울’로 정보를 검색하고, ‘톡’으로 대화를 하는 삼국지 삼국지톡』를 만든 것은 단연 ‘재미’를 위해서였다. “여자든 남자든 어린이든 성인이든 삼국지를 알든 모르든 무조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예요. 진짜 재미있는데 착한 삼국지, 딸에게도 읽힐 수 있는 삼국지고요. 무엇보다 정확하게 만든 삼국지예요.”라는 작가는 그래서 이 작업을“삼국지의 패러디가 아니라 번역작업”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설정은 키치한 장치이긴 하지만 인물들이 티셔츠를 입고, 스마트폰을 하는 게 지금 독자가 1800년 전 인물이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좋은 선택이었다고 봐요. 저는 실제로 살았던 역사적 인물 유비, 조조, 손권의 궤적을 좇은 다음 그들 인생에서 가장 울림을 주는 순간을 포착해 현대적으로 묘사했어요. 600년 전에 나관중이 했듯이요.”

 

무적핑크 작가의 2020년 버전 삼국지에 힘을 싣는 것은 이리 작가의 그림이다. 학습만화로 기획한 것을 지금과 같은 액션개그만화로 수정하면서 시각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리 작가와의 협업을 선택한 무적핑크 작가는 자신의 첫 스토리 장편 작업 도전이 이리 작가 덕분에 더 좋은 결과로 나올 수 있었다며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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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신나고, 안전한 ‘삼국지’


책 뒷부분에 작업할 때의 책상 사진을 실어두셨어요. 고지도, 병법서, 논문까지 방대한 자료를 살펴봐야 하는 작업이었는데요. 힘들진 않으셨어요?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이나 『세계사톡』을 할 때 늘 했던 작업이어서 오히려 삼국지톡』 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한자를 읽는 것도 그렇고, 명나라 시대의 기록이라 해도 쫄지 않고(웃음) 봤죠. 속된 말로 ‘짬’이 있어서 삼국지톡』은 진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지금은 『조선왕조실톡』 을 잠시 쉬고 있는데요. 다시 하게 되면 그 작업도 수월하게 할 것 같아요.

 

삼국지톡』을 기획하셨을 때의 이야기도 재미있죠. 5년 전, 지인들에게 ‘삼국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서 고민도 시작되었잖아요.


무적핑크: 『조선왕조실톡』 연재 직후 삼국지톡』 알파버전 작업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학습만화 포맷에 가까웠고, 메시지도 지금과는 달랐어요. 당시 신문에 ‘십상시’니 ‘비선실세’니 하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요. 정작 ‘십상시’가 누군지는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정치 비판적인 내용으로, 대상연령도 조금 높은 형태로 진행하려고 했어요. 그러는 중에 지인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크게 한 방 먹은 거죠. 역사를 가르치는 남자 지인은 삼국지가 유해하다면서 아들에게도 절대 읽히지 않겠다고, 왜 삼국지여야 하느냐고 되물었어요. 반박할 수 없었어요. 또 학생들에게 물어도 관심도 없고, 내용도 몰라요. 사람들이 당연히 삼국지를 알고, 좋아한다는 전제로 시작하려던 거였는데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중단시켜뒀는데요. 시간이 좀 지나서 급히 2달 안에 신작 웹툰을 연재해야 할 상황이 닥쳤어요. 삼국지톡』 은 거의 시놉까지 나온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급히 꺼냈고, 이리 작가님과 함께 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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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획은 학습만화였는데 어떻게 지금과 같은 액션개그만화가 된 건가요?


무적핑크: 알파 기획 때 충분히 고통을 겪었으니까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삼국지를 싫어하는 것에 내가 억울함을 느낀다면 그걸 변호할 만큼 새로운, 재미있고 신나고 무엇보다 안전한 삼국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렇다면 반드시 필요한 게 시각적 쾌락이라고 판단했고, 이리 작가님과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저는 정말 그림 그리는 게 고통스러워요.(웃음) 스토리 위주로 작업을 하니까 머릿속에는 이미 내용이 다 있는데 이걸 나의 똥손으로 재현해서 열화된 이미지로 보여주는 게 너무 고통스럽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그림 작가 분을 구하자는 생각을 했었고요. 워낙 시간이 촉박해서 뵌 적도 없는 이리 작가님에게 대뜸 메일로 “저는 무적핑크라는 웹툰 작가입니다”라면서 작업 요청을 한 거죠.

 

이리 작가님은 메일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이리: 메일 제목에 ‘무적핑크’라고 되어 있어서 우선 너무 놀랐어요. 유명하신 분이 무슨 일이지(웃음) 하면서요. 제 경우 게임회사에서 5년 정도 일을 했기 때문에 촉박한 일정은 익숙했어요. 하루에 일러스트를 두세 장씩 쳐낸 적도 있으니까 급한 일정은 큰 문제가 안 됐고, 스토리가 많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준비하고 있던 개인작업을 다 접고 이 작업을 함께 하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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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찐팬’이 생긴 적은


두 분의 작업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무적핑크: 일단 제가 이야기를 표로 정리해두죠. 주요한 사건, 인물의 관계도를 적는데요. 삼국지는 인물 간 케미가 중요해요. 처음에는 적이었다가 친구가 되거나 하는 교합이 중요해서 인물 중심의 내용을 자세히 적었어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 회씩 소재를 짜고요. 워낙 사건이 많아서 시즌으로 묶었어요. 가령 ‘십상시의 난’이라는 중요한 사건 안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하는 식으로요. 보통 시즌 하나에 30-50화가 들어가는데요. 주 2회 연재하면 1년에 약 100화를 연재할 수 있고요. 그 안에서 한 시즌을 3개월 정도 연재하고 싶다고 하면 그에 맞게 에피소드를 나누는 거죠. 그런 다음 제가 핵심스케치를 미리 그려요. 이 시즌에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라는 것도 이리 작가님과 편집자 님, 디자이너 분께 공유하고요. 콘티도 짜서 보내드리고 있어요.


이리: 처음 시작할 때는 완성된 콘티를 보내주셔서 작업했는데요. 점점 바빠지다보니까 지금은 콘티가 몇 컷만 올라와도 일단 작업에 들어가고 있어요. 어느 때는 뒷부분 먼저 올려주셔서 그것부터 작업하기도 하고요. 게임회사를 다닐 때는 원화와 일러스트를 그렸었는데요. 그때는 기획서를 받으면 저 혼자 그리고, 공유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됐어요. 원화를 다 그리면 다른 작업에 관여하기는 힘들거든요. 지금 같은 라이브 작업이 처음이라 재미있죠. 가령 무적핑크 작가님이 “얘는 지금 노란색 옷을 입었지만 눈을 빨간색으로 해서 나중에 조조 진영으로 넘어가는 걸 보여준다”고 의견을 주시면 제가 “그럼 옷은 이런 디자인을 입히면 좋겠다”고 의견을 전하기도 해요. 그밖에 얼굴의 세세한 표현은 제가 할 수밖에 없어서 배우 얼굴도 찾아보는 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공동 작업이라 재미있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요.


무적핑크: 이리 작가님은 마감을 반드시 지키시고, 저는 마감을 반드시 안 지키는 타입이에요.(웃음) 그래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자는 게 목표예요. 처음부터 고민한 게 이리 작가님의 작업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였거든요. 다행히 ‘톡’이니까 대화로 채우거나 할 부분이 있어서 어떻게든 작화 분량을 깎고 깎는 거죠. 놀라운 건 그렇게 정해진 분량 안에서 발버둥을 치니까 더 나아지는 거예요. 저도 스토리 작가로 장편 작업을 하는 게 처음인데요. 재미있는 작품은 쓸데없는 대사 안 넣고, 힘 줄 데 힘 주면 된다는 걸 실감하게 됐어요. 정말 저 혼자 했다면 이렇게 좋은 작품이 되긴 힘들었을 거예요.


이리: 호흡이 잘 맞아요. 콘티를 보내주시면 ‘이런 부분에 힘을 줘야겠구나’가 느껴지거든요. 굳이 그걸 글로 안 쓰셔도 알겠더라고요. 또 저는 워낙 혼자 두면 작업을 안 하는 타입이에요. 동료 기획자 오빠가 “너는 가둬놓고 일을 시켜야겠다”고 했을 정도예요. 지금 작업은 제가 그림을 못 뽑아내면 죽는다(웃음)는 생각이 드니까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워낙 저희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도 많으니까 기다리시지 않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도 생각하는데 그런 식의 생각도 도움이 많이 되고요. 생각보다 제가 그리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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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이잖아요. 기억 나는 댓글이 있다면요?


무적핑크: 독자 분들이 이 작품을 진짜 좋아하세요. 『조선왕조실톡』 으로도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공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찐팬’이 생긴 적은 처음이에요. 2차 창작을 하시거나 코스튬플레이를 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기존 삼국지라는 견고한 벽이 있잖아요. 그걸 무너뜨리는 게 너무 힘들었고, 반발도 컸는데요. 이 이야기를 밀고 나간 게 통했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유비가 소매치기만 해도 싫어하셨는데 이제는 유비가 사람을 죽여도 유비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군, 하며 받아들이죠. 더 삼국지를 즐기게 되고, 삼국지톡』을 보면서 정사를 읽게 됐다는 분도 나타났어요. 덕분에 저도 더 용기가 생겼어요.


이리: 10대 여성 분들이 이렇게 좋아해주실 줄 몰랐어요. 삼국지톡』은 남성과 여성 비율이 7대 3정도 되거든요. 다른 삼국지 작품들은 거의 9대 1일이에요. 제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너무 오래 되기도 했고, 내 그림이 너무 올드한 게 아닌가 생각도 했었는데요. 10대 독자 분들의 댓글이 낯설고 반가웠어요. 의도를 갖고 그린 것이 독자에게 통했을 때 정말 기쁘고요. 한 인물이 엄청난 비장미를 갖고 죽음을 맞거나 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그걸 본 분들이 “울었다”는 말을 할 때 희열을 느껴요.

 

두 분이 삼국지톡 1』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을 꼽아주세요.


이리: 유비와 장비가 처음 관우를 만나는 부분이요. 83쪽 이미지는 원래 반짝이 효과가 이보다 덜 들어갔었어요. 무적핑크 작가님이 반짝이를 더 넣어달라고(웃음), 더 넣어야 한다고 해서 완성된 이미지예요. 이 장면에서 관우 얼굴을 진짜 공들여 그렸어요. 지금도 이 느낌은 그림을 보지 않고는 그릴 수가 없어서 관우를 그릴 때는 언제나 별도의 폴더에 넣어둔 이 그림을 꺼내서 보고 그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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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핑크: 누구나 연재 초반에는 헤매요. 9화에서 원소가 거만하게 앉아 폰을 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말풍선이 쭉 뻗은 다리를 가린 거예요. 아니된다! 원소는 픽셀 하나까지 잘생겨야지! 하며 수정했죠.(웃음) 실제로 원소는 정말 잘생겼고, 품격을 중시했다 하거든요. 그때 깨달았어요. 전투보다 인물묘사에, 일대일 싸움보다 감정변화에 주목하자고요. ‘잘생긴 삼국지’라는 미덕도 추구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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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오답노트다


삼국지라는 기존의 견고한 벽이 신경 쓰이진 않으셨어요? 워낙 팬도 많고, 오래 이야기 되어온 콘텐츠잖아요.


무적핑크: 1940년대 미국에서 나온 세제 광고 포스터를 본 적이 있어요. 깨끗하게 잘 빨래가 된다는 걸 광고하기 위해 흑인 아기를 그 세제로 씻기고 있더라고요. 그것만 해도 겨우 80년 전 콘텐츠인데 삼국지는 자그마치 1800년 전 이야기잖아요(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600년). 그걸 원전 그대로 소비하면 안되죠. 삼국지는 역사지만, 삼국지연의는 콘텐츠예요.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 사실 후한시대엔 없던 무기인 것 아세요? 이순신 장군이 왜구에게 샷건 쏜 셈이거든요. 나관중도 고증오류라고 악플 받았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재미있잖아요. 삼국지톡』은 삼국지 패러디가 아니라 “현대어 번역판”이에요. 2020년 버전 연의인거죠.

 

앞서 “안전한 삼국지”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닿아 있는 얘기 같아요. 또 이것은삼국지톡』이 10대 여성 분들도 좋아하는 삼국지가 된 이유기도 할 것 같고요.


무적핑크: 유비가 조자룡을 위해 아기를 던지는 장면, 악명 높죠. 10대 소녀 초선이 동탁과 여포를 유혹하는 장면도 현대에는 지탄 받아요. 하지만 둘 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삼국지연의』의 창작이에요. 나관중은 유비 안티였나요? 싸이코패스라 아기를 내동댕이쳤을까요? 아니죠. 600년 전에는 ‘충효’가 대단히 중요했고, 가정보다 충신을 대우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넣은 거죠. 사람들이 유비를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넣은 장면인데 지금 그걸 보면 아동학대란 말이에요. 초선 이야기 역시 여성도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일했다는 점을 드러내려고 한, 당시로써는 여성주의적인 표현일 수 있어요. 지금 보면 크리피하기 짝이 없지만요. 그런 대목들을 안전하게 만들려고 고민했고요. 그래서 삼국지톡』을 삼국지를 현대버전으로 번역을 하는 작업이라고 말한 거예요. 진짜 힘든데, 진짜 재미있어요.

 

그렇다면 삼국지라는 콘텐츠의 매력은 뭘까요?


무적핑크: 삼국지를 인물들의 성공담이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저는 삼국지가 사람들의 50가지 실패담(웃음) 같은 느낌이에요. 끊임없이 실패하고, 실패하는 방식도 너무 다양하죠. 친구에게 배신 당하기도 하고, 어찌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를 만나기도 하고, 하늘이 안 도와주기도 하고,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 병에 걸리기도 해요. 이때 실패로 좌절하는 사람은 죽어요. 여포를 만나면 죽거나요.(웃음) 한편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일어나는 사람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그런 식으로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조조와 유비, 손 씨 일가인데요. 보고 있으면 용기가 생겨요. 유비도 취업을 못했는데 내가 취업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 인물도 실패를 하는데 내 실패는 당연하다, 생각하게 되는 거죠. 삼국지는 오답노트 같거든요. 그래서 이걸 꼭 많은 분들이 봤으면 싶어요.

 

독자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삼국지톡』만의 디테일도 있을 것 같아요.


이리: 다른 캐릭터는 끈이 있는 구두를 많이 신겼지만 원소는 끈 없는 구두를 신겼어요. 끈 없는 구두는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안 신는다고 하거든요. 원소는 사실 천한 출신이에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모습으로 있지만 구두는 다르게, 약간은 느슨한 면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유비 신발은 저희 집에 있는 만 원짜리 운동화고요.(웃음) 여포 손을 그릴 때는 집에 있는 3G폰을 들고 그걸 보고 그려요. 손이 큰 걸 표현하려고요.


무적핑크: 원소가 진짜 중요한 캐릭터예요. 삼국지를 상, 하로 나눈다면 상의 주인공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고, 조조를 자기 발가락처럼 부린 인물이에요. 원소는 병으로 죽었는데요. 다른 말로 하면 누구도 원소를 죽이지 못한 거예요. 하늘이 원소를 죽인 거죠. 삼국지톡』으로 원소를 발견한 건 정말 큰 수확이었어요. 디테일이라면 원소의 점이에요. 목에 있는 점은 부귀영화를 의미하고요. 눈 옆의 점은 자식 때문에 운다는 의미예요. 최초 공개한 내용이에요.(웃음)

 

 


 

 

삼국지톡 1무적핑크(변지민) 글/이리 그림/YLAB 기획 | 문학동네
「삼국지」가 재미없다는 주변의 혹평을 듣고 처음 기획을 싹 뜯어고쳤다는 무적핑크 작가는 「삼국지」를 액션과 개그가 넘치는 인간 드라마로 재해석하여 「삼국지톡」의 스토리를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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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코로나 사태, 전염병은 결국 ‘도시’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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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지 3개월이 지났다. 신규 확진자 수가 점차 감소함에 따라 정부는 조심스럽게 생활방역 체계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코로나19의 유행이 장기간 이어질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방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앞으로의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전염병의 발생 원인이 무엇이고,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체계를 갖추어 야 하는가. 『팬데믹』 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이자 세계보건기구(WHO)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홍윤철 저자는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3년 동안 바이러스에 관해 연구했다. 그 결과 완성된 『팬데믹』 은 전염병과 질병이 ‘도시’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인류의 생존은 개인이 아닌 공공의 문제라고 말한다. 공공의 면역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의료 체계를 바꾸고 글로벌 연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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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도시’의 문제다


3년 동안 바이러스를 연구하셨다고요.


2018년 1월부터 준비했어요. 그때도 신종 감염병이 출현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측됐고, 그에 대비하기 위한 의료 시스템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으로 연구를 시작한 거죠.

 

메르스 사태를 경험하신 뒤였죠?


그때 의료계가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환자가 주로 병원에서 생겼죠. 그리고 열심히 역학조사랑 다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의료계가 잘못했다 이렇게 됐죠. 열심히 했던 분들도 징계를 받기도 했고요. 그래서 다음 신종 감염병의 대응 체계를 잘 갖추는 게 좋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때 실제로 이루어진 건 많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연구를 하는 데 어떤 시작이 되었다고 할까요.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은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만, 2000년대 들어서는 더 잦아진 느낌이 들어요.


그렇죠. 지금 이렇게 바이러스가 오고 퍼지는 문제가 왜 생기는지 이 책에 쓰려고 했어요. 그래서 역사를 다시 한 번 정리하면서 보게 됐는데, 결국은 도시의 문제라는 게 제가 내린 결론이에요. 전염병의 시작부터가 도시의 문제예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상당한 주거 집단을 형성했고, 또 초기의 도시는 가축하고 같이 살면서 농경을 했잖아요. 그런 도시화의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최초의 도시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우르크였는데, 저는 우르크 이전에는 전염병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모여 살면서 전염병이라고 하는 게 생긴 거죠. 병이 전염되기 좋은 조건을 도시가 형성하기 때문에. 그러면서 그리스 로마 때 전염병이 크게 돌죠. 로마 시대 때 천연두가 문제였어요. 물론 천연두는 20세기 초까지 문제가 됐지만요. 그 뒤에는 페스트가 있었고. 사실 전염병이 확산되는 데에는 로마가 역할을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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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도로를 잘 구축해 놓았잖아요. 사통팔달이 이루어졌다고 할까요.


그렇죠. 사실 이번에도 보면 이탈리아, 뉴욕, 우한의 공통점이 교통의 중심지라는 거예요. 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도시죠. 그 점이 전염병의 확산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대비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는 흔히 바이러스를 막는 방법으로 백신과 치료제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백신과 치료제는 바이러스가 온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고, 그 사이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죽어요. 다음번에 새로운 전염병이 와도 똑같습니다. 백신과 치료제는 미리 만들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끝나지 않는 사건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전염병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전염병의 시작은 결국 도시화의 문제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새로운 의료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지금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의료 체계를 바꿔야 해요. 현재는 3일 동안 열이 나면 환자가 전화를 해서 병원에 가잖아요. 본인이 열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내 증상이 코로나가 맞는지 판단하고 전화를 하는 거예요. 우선 시간이 많이 걸리죠. 그 사이에 전파되는 경우도 많고요. 특히 코로나19는 초기에 전염이 됐어요. 결국은 지금의 의료 시스템, 또 백신과 치료제를 중심에 놓는 방법으로는 앞으로 다른 전염병이 와도 대응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생각을 메르스 때부터 했어요.

 

그렇다면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전염병은 퍼져나가는 게 문제잖아요. 환자가 증상이 생겼을 때 그것을 아주 초기에 발견하고 그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의사가 관리하는 지역에 500명 정도가 있고, 그 사람들의 체온 정보를 의사가 알 수 있다면, 체온이 높아지거나 보통 때와 다른 패턴을 보이는 걸 파악할 수 있죠. 그 사람을 모니터링 하다가 문제가 되면 바로 관리할 수 있고요. 그렇게 되면 아주 초기부터 관리가 되는 거죠.

 

정보기술을 활용해서 모니터링을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사실 체온을 확인하는 건 굉장히 간단한 기술이에요. 지금도 몸에 붙이는 체온계가 있고, 스마트폰으로 바로 체온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해요. 그런 의료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반드시 의사가 판단할 수 있게 하자는 거죠. 체온뿐 아니라 심장 모니터링, 혈압, 더 나아가서는 혈액, 소변이나 대변에 있는 생물학적인 지표들을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다면 거의 종합검진을 받는 것처럼 매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고, 책에서는 ‘플랫폼 의료’라고 표현했어요. 전염병만이 아니라 모든 질병을 그렇게 관리하면, 환자 스스로 자신의 몸 상태를 판단해서 병원을 가는 게 아니라 내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의료가 해결해주는 시스템이 되는 거죠. 그러면 안전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질병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쓰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책의 3부에서 의료가 사회의 중심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번에 우리가 코로나를 통해서 사회의 중심이 건강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의료만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질병 중심의 의료에서 사람 중심의 의료로 바뀌면 교육이라든지 여러 사회 시스템도 다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거예요.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는 그럴 필요가 있어요. 젊은 사람과 달리 노인은 병 관리와 사회생활의 모든 것을 자신이 알아서 하기 참 어렵거든요.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미래에는 그런 서비스들이 다 사람을 중심으로 와야 해요. 그리고 그런 조건을 만드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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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공동체가 책임 나눠가져야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전염병을 개인의 질병이라고 볼 수 있느냐, 그 책임이 사회에 있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질병에서 관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저는 그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스웨덴이 집단 면역 이야기를 했잖아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국가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생각인 거죠. 프랑스에서는 한 변호사가 한국은 통제된 사회이고 프랑스는 자유 사회라는 식의 이야기를 썼다고도 하는데요. 그렇게 자유 사회를 이야기했던 국가들이 거꾸로 봉쇄를 취하고 있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하다가 도저히 안 되니까 완전히 반대로 가는 거죠.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조금 제한하지만 공동체와 개인의 자유라는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갔고요. 결국 개인과 공동체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책임도 나눠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그런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논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스, 메르스, 코로나의 공통점 중 하나가 ‘인수공통 감염’이 된다는 건데요. 우리가 환경을 파괴한 결과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인류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할까요.


우리가 자초했죠.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왔으니까요. 개발에 있어서 도시화와 세계화라고 하는 큰 축이 있는데, 그 추세를 되돌리기는 참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도시화와 세계화가 생태계의 희생을 요구하는 거잖아요.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존재 기반이 없어져가는 거죠. 특히 박쥐는 다른 동물들하고는 조금 달라요. 가축화되지 않았고, 고립되어 생활하기 때문에 박쥐 간에도 소통이 별로 없고, 체온도 다른 포유류랑 다르고, 말하자면 바이러스 입장에서 박쥐는 살기 좋고 안전한 곳이에요. 그런데 박쥐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대상이 생긴 거죠. 그게 사람인 거예요. 심지어 박쥐를 잡아먹기도 하잖아요. 바이러스 입장에서는 자기 집이 없어지는 거고 그러니까 새집을 찾을 생각을 하죠.

 

숙주를 바꾸게 되는 거군요.


그렇죠. 대개는 한 번에 사람으로 가지는 않아요. 사향고양이를 통해서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옮겨진 게 사스이고, 낙타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게 메르스인 것처럼, 중간에 한 동물을 거쳐서 사람에게 전염돼요. 코로나19는 천산갑을 통해서 전염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직접 인간에게 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어쨌든 박쥐의 문제인 거죠. 박쥐의 생태계가 위협 받기 때문에 인간에게 바이러스가 옮겨지는 경우가 많아진 거예요. 게다가 지금은 사람 사이에 전파가 잘 될 수 있는 여건이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는 상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예요. 되돌리기 참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메르스 때 이미 전문가들은 다 (신종 전염병이) 다시 온다고 했었어요.

 

우리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바이러스도 생존하기 위해 우리 몸에 적응해야 하고 우리 몸도 바이러스가 있는 상태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균형을 찾게 된다고요. 그러면 몸에 항체가 생기나요?


균형을 찾는다는 건 여러 면이 있어요. 몸에 항체가 생겨서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것도 균형이에요. 완전히 방어가 형성돼서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는 거죠. 또 다른 균형은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같이 살면서 병을 안 일으키는 거예요. 그런 경우도 많아요. 감기 바이러스 같은 거죠. 우리 몸에 감기 바이러스가 있거든요. 그러다 컨디션이 나쁘면 감기에 걸리는 거죠. 헤르페스도 마찬가지고요. 평상시에는 병을 안 일으키다가 컨디션이 나쁘면 나오잖아요. 그렇게 되면 위협적이지 않죠. 바이러스와 같이 사는 거예요. 그런 점에 도달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코로나도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될까요?


그건 아무도 모르고요. 거기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적어도 몇 백 년.

 

코로나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는 의학계에서도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름이 지나면 따뜻해지니까 수그러들 거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북반구와 남반구가 있잖아요. 지금은 수평적으로 전염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수직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지면 그건 끝이 없죠.

 

지금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잖아요.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버넌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가 단위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안 돼요. 그러니까 거버넌스로 해야 된다는 건데, 지금 실질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WHO(세계보건기구)가 거버넌스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걸 강화시키는 쪽으로 가야 되는데 지금 거꾸로 약화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이건 더 나쁜 쪽으로 가는 거거든요.

 

세계보건기구가 많이 간섭하면 안 된다는 방침으로 가고 있는 건가요?


네, 그렇게 가면 안 되고 충분히 관리의 역할을 해줘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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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참여의 힘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후의 우리 일상은 예전과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최근 ‘생활방역위원회’에 참석하기도 하셨는데요. 거기에서는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나요?


현재의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가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바꾸자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면서 거리두기는 계속 유지하자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고난도 과제이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는 않고요. 이걸 실천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이해와 참여의 문제거든요. 지시와 집행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바라보는 게 유럽 사람들의 시각인데, 프랑스나 유럽 사람들은 국가 기관을 지시와 집행을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국가 기관이나 권력 기관이 국민들의 이해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역할도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우리가 그런 이해와 참여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다면 그게 지속가능한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생각하고요. 우리나라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시면서 확신이 드셨나요?


확실히 그랬어요. 정부가 잘했다거나 의료계가 잘했다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결국은 국민들이 잘한 거죠. 마스크를 착용하기도 하고 사재기 같은 큰 혼란도 없었고, 국민들이 참여를 잘 한 거죠.

 

의료계 종사자 분들의 희생정신도 빛났죠. 덕분에 큰 혼란 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아마 모든 시민이 그럴 거예요.


요즘 그런 이야기를 꽤 많이 듣는데요. 처음에 서울대병원에 환자가 들어오기 전부터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선별진료소가 만들어졌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병원은 계속 응급상황이에요. 의사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 직원들이 굉장히 많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야말로 이해와 참여의 힘이죠. 지시와 통제의 힘이 아니잖아요.


그럼요, 아니죠. 의사와 간호사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그건 이미 매스컴에 많이 부각이 됐는데, 병원의 행정 직원들도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어요. 예를 들어서 선별진료소 안내하는 일도 간단한 것 같지만 환자들을 직접 대면해야 되는 거거든요. 상당히 노력을 많이 했죠.

 

질병이 없는 이상적인 도시로 ‘하이게이아’를 말씀하셨어요. 1800년대에 벤저민 리처드슨이 처음 이야기한 개념이라고요.


‘하이게이아’를 끄집어낸 것은, 도시라고 하는 것이 건강 때문에 계획된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던 거예요. 실제로 그랬거든요.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 전에 공동체의 이익인 무엇이냐를 이야기해야 되는데, 거기에 핵심적인 사람이 있어요. 공리주의를 만든 벤담입니다. 결국 벤담이 고민했던 건 ‘어떻게 하면 사회가 가장 큰 수혜를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죠. 그의 조수가 에드윈 채드윅이에요. 채드윅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많이 공부했고, 그걸 실현하려고 했어요. 그때 런던에서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어요. 세계를 이끄는 도시였죠. 어느 도시도 런던을 따라갈 수 없었던 때에요. 그런데 몇 년 동안 런던에 콜레라가 유행하면서, 1852년에는 한 해에 만 명이 죽었어요. 아마 그때 런던의 인구가 100만 명이 안 됐을 거예요.

 

사회적으로 엄청난 사건이었겠네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시작했어요. 채드윅은 ‘도시가 깨끗해져야 전염병이 없어지는구나, 도시를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도시보건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상하수도 문제, 폐기물 처리의 문제 등을 처리합니다. 채드윅의 제자였던 벤저민 리처드슨은 그걸 보고 배우면서 ‘아예 도시를 새롭게 만들자’는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글로 이상 도시를 그린 거예요. 그게 ‘하이게이아’예요. 위생의 여신 ‘하이지아’의 이름에서 따와서 도시 이름을 지었어요.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하이게이아’의 의미는 1800년대와 다를 것 같아요.


리처드신이 ‘하이게이아’를 이야기한 게 거의 150년쯤 전이니까, 그때의 ‘하이게이아’를 지금 만들겠다는 건 아니죠. 건강하고 안전한 곳의 의미로써 도시를 만들자는 뜻에서 ‘하이게이아’를 이야기한 거고요. 건강이라고 하는 것이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사회적 건강도 중요하다는 게 제 이야기예요. 결국은 정의로운 사회가 돼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책에서 ‘새로운 의료 체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셨는데요.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긍정적으로 보십니까?


앞서 코로나 이후의 우리 일상이 예전과 많이 다를 것 같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 새로운 방식으로 코로나에 대응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가격리 앱으로 자가격리자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요. 자가격리 손목 밴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잖아요. 모니터링 시스템을 다 갖추고 있는 거죠. 원격 의료의 경우도, 이번에 서울대병원에서 문경의 치료센터에 있는 환자들을 진료했거든요. 현재 상황은 이미 기술은 다 있고, 우리가 경험해봤는데 나쁘지 않고 좋았던 거예요. 그러면 조금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보자고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팬데믹홍윤철 저 | 포르체
글로벌 연대는 발전된 의료 기술, 공중 보건, 건강한 도시 개혁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이 책에 나오는 건강 도시 ‘하이게이아’ 모델은 존속을 위협받은 인류의 희망이자 지속가능한 경제사회를 위한 생존 인류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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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명훈 “SF비평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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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은 작가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SF 작가다. 사람들은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한다는 작가를 이 세상에서 만나면 신기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한 달에 얼마 버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작업실은 있는지, ‘통통 튀는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실존하는 SF작가에게는 ‘SF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또한 잊지 않고 돌아온다. 배명훈은 2009년 『타워』출간 이후로 성실하게 이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맡았다. 데뷔 15년 만의 첫 에세이 『SF 작가입니다』 는 그동안의 질문에 대한 FAQ가 담겼다. “한국 현대소설이라는 거리의 어느 모퉁이를 돌다 보면” (12쪽) SF를 빈번히 맞닥뜨리게 될 테니, 배명훈의 삶과 글쓰기, 그리고 작업 현장 근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미리 대비하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SF란 무엇인가


띠지에 ‘데뷔 15년 만의 첫 에세이’라고 적혀 있어요.


이런저런 칼럼을 쓰기는 했는데, 에세이 쓰는 걸 무서워했어요.


왜요?


에세이를 써서 좋은 방향으로 유명해질 가능성은 별로 없는데, 한 방에 훅 갈 가능성은 항상 있어서요. 『타워』가 데뷔작으로 알려진 이후로 칼럼 요청이 들어오면 에세이가 아니라 주장이 담긴 논설문을 원할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무서웠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작가로 오래 활동했는데 한 권 정도는 실수 안 하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새로 썼어요. 에세이를 쓰면 어떤 내용이 좋을까 싶었는데, 아직 SF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으니 SF가 어떤 건지 보여주는 글을 쓰면 좋을 것 같았어요. 문단과 장르 둘 다 활동했던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 있겠더라고요. 


성실하고 꾸준하게 ‘SF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해왔어요. 책은 이제까지 해왔던 답변의 FAQ라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은 SF 작가가 많아져서 질문도 다양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매체마다 SF에 대한 질문이 비슷비슷했어요. 저도 계속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니 답이 쌓여 있는 상태였어요. 편집자님과 기획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키워드를 40개 정도 뽑았는데, 키워드 하나마다 누군가 이 키워드로 질문하면 바로 답이 나올만한 주제였어요.


‘섹스 로봇’ ‘소백산 천문대’ 등이 기획안 안에 있었죠. ‘지면은 수면’이라는 목차가 있었는데, 이건 어떤 내용이었나요?


빙산의 일각처럼, 작가의 작품은 지면에 수록된 것만 보이잖아요. 제 작품 중에서는 뭔가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글이 주로 지면에 실리지만,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거든요. 시간 순서도 달라서 작가가 나중에 쓴 게 먼저 발표될 때도 있고요. 처음 소설집을 낼 때부터 모아둔 단편소설 전부를 수록하는 게 아니라 그중 일부가 수록되고, 다음 소설집에서 예전에 쓴 글이 실리기도 해서, 저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실 지면이 선택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싶어요.


이번 에세이에 대해 ‘작가님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소설보다 재미있다’라는 리뷰도 있었어요.


 ‘장편이 단편보다 낫다’ ‘단편을 더 잘 쓰네’ 이런 리뷰는 항상 있는 것 같아요. 리뷰에 일일이 반응하지는 않아요. 독자들도 리뷰를 쓸 자유가 있고요. 저도 제가 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니터링 차원에서 자주 보죠. 제 소설 중에 단편을 더 좋아하는 분들은 장편소설에서 결말을 못 찾을 때가 많아요. 그런 걸 보면서 독자들이 제 소설에서 무엇을 볼 수 있고 무엇을 못 보는지 아는 거죠.


에세이를 읽을 거라고 상상한 독자층도 있나요?


편집자님이 오랫동안 SF 작가지망생 이야기를 했어요. 문학과지성사에 소설 투고들이 들어오는데 그중 SF 원고가 거진 절반이래요. 처음에는 넘겼는데 몇 년 지나고 나니 편집위원분들도 그렇고 뭔가 있는데 우리가 못 알아보는 건가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SF 쓰려고 하시는 분이 독자가 될 수도 있고, 그 소재를 보고 잘 모르지만 이게 대세인가 생각하는 분들, 기준점을 잡고 싶은 분들이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는 ‘암흑물질 독자’라고 이름붙인 독자층이 있다고요. 좀처럼 검출되지 않는 독자들이요.


이번에 에세이 내면서 ‘제가 그 암흑물질 독자예요’ 하면서 독자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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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SF를 쓴다는 것에 대하여


책 나오고 나서는 어떻게 지냈어요?


최근 밀리의 서재에서 『빙글빙글 우주군』이 나오기도 해서, 작년 연말부터 책 작업을 되게 많이 했어요. 번역 작업까지 치면 세 권 분량 작업을 한 느낌이에요. 이걸 끝나면 올해는 뭔가 해야겠다 싶었어요. 3월까지 책이 세 권 나왔으면 올해의 할 일은 다 했다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놀거나 배우는 걸 전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생활이 원재료가 되어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즘은 원자재 수급이 어렵겠어요. (웃음)


집에 갇힌 상황 자체가 원자재가 되니 상관없긴 하죠. 아마 지금 사태가 지나가면 전세계적으로 이야기가 쏟아질 것 같아요. 특이한 상황인데다 SF적으로 직접 와 닿는 환경이잖아요. 어디선가 들어본 외계 바이러스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는데, 차이가 있다면 예전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사건의 중심 무대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죠. 전세계적 문제가 해결되는 선봉에 한국인이 선다는 이야기를 보면 오글거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한국 작가들도 영감을 많이 받게 될 것 같아요.


창작론에 대한 내용이 나와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야기를 살짝 붙여놓는다고 했는데, 어떤 식인가요?

 
몇 년 전에 크루즈를 탔어요. 대피경로를 알려주면서 비상상황이 되면 특정 장소로 오면 된다고 행동요령을 가르쳐 줘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대로 놔두는 게 아니라 상황을 붙여놓는 거죠. 핸드폰을 못 쓰게 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몰래 핸드폰을 보고 있다든지 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붙여 놓으면 나중에 핸드폰 관련한 에피소드가 생겼을 때 얽을 수 있고요. 이런 소재가 SF를 쓰기에 되게 좋은 소재 같아요. 예를 들어 크루즈 형태의 행성간 우주선에서도 아마 비상사태에 집결장소가 지정되어 있을 테고요. 저장해두었다 글을 쓸 때 머릿속에서 소재가 튀어나오는 거죠.


머릿속 구획이 잘 되어 있는 편인가요? 뭔가 튀어나오려면 정리가 잘 되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게요. 그 부분을 정리해서 제가 강연을 할 수 있으면 정말 큰돈을 벌 텐데(웃음)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타워』 복간 소식을 반기는 분이 많았어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국 SF를 읽기 시작한 독자들이 많은데, 출간 당시를 돌이켜보면 한국 SF 작가와 독자층의 분기점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으로 인해 지형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도 당시에는 몰랐고 나중에 그랬다고 들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타워』를 썼을 때는 다시 취직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문학계나 출판계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좀 아쉬워요. 그때는 화제가 될 줄 몰랐으니까요.


문장을 많이 고쳐서 냈다고요. 형식적인 부분인가요, 아니면 정치적 올바름에 부합하기 위한 내용 부분을 고친 건가요?


후자가 더 많았어요. 특히나 여성들을 다루는 부분에서요. 제가 그렇게 개념 없는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10년 전과 지금이 완전히 달라서 다시 손을 봐야 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문장도 물론 많이 다듬었어요. 2009년 쓴 문장은 술술 읽으면 웃기긴 한데, 자세히 읽으면 고칠 데가 많더라고요.


인터넷 기반으로 쓰인 소설의 속도가 있죠.


그런 것 같아요. 결국은 문장력이 부족했던 거죠. 리듬 따라서 쭉 잘 읽히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굳이 문장의 밀도를 높이려고 애쓰지는 않았어요.


10년 전 다시 원고를 보면 생경한 기분일 거예요.


두려워요. 작가들은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다시 돌아본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업이에요. 거의 모든 문장에 손을 댄 것 같아요. 『타워』번역판이 올해 영국에서 출간될 예정이거든요. 작년 연말부터 번역자 선생님과 수정하는 작업을 했고요. 번역 수정 작업을 바탕으로 한국어판도 개작에 들어갔어요. 첫 번째는 외국어로 번역했을 때 이 글이 어떻게 보일까, 두 번째는 2020년 한국에서 2009년 쓴 글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봤어요. 힘들었지만 동시에 해서 참 좋았어요. 독자들이 보고 뭘 고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제가 잘한 걸 거예요.


항상 번역본을 보면 타국에서 원 문화가 이해될까 싶어요. 외국에서 한국 관료제의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2009년에는 모두들 『타워』가 너무 한국적인 이야기라고 했거든요. 한국적인 이야기도 맞지만, 한국 자체는 무척 평균적인 나라예요. 전통을 다 없애고 아예 처음부터 만든 나라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면이 많아요. 심지어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역사도 크게 보면 다 패턴이에요. 예전에 체코 박물관에서 벨벳 혁명 당시 경찰들이 시민들을 잡는 영상을 봤는데, 백골단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더라고요.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시대의 보편성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쓰면 어느 누구라도 자기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거라 생각해요.


SF를 정의하는 고전적인 방법이 ‘경이감’이잖아요. 인식이 넓어지는 경험은 대부분의 문학에서도 일어나는데, 장르별로 나눠보자면 SF의 경이감은 어떤 느낌일까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SF가 추상적인 장르 같지만, 구체적인 잡지와 글을 통해서 정의했던 선례가 이미 있고 이것은 미국이 선진국이 되었던 맥락과 관련이 깊어요. 미국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통해 강대국이 되고 세계를 바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과 19세기 때까지 영국 사람들이 자기가 문명을 완성했다는 느낌은 다를 것 같아요. 과학이나 기술을 도구로 해서 인간의 인식을 넓히는 것과, 인문학을 공부해서 인식이 넓어진 느낌이 다를 수 있죠. 물론 SF 초기에는 그런 느낌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 뒤로 백 년 정도가 흘렀으니 이제는 많은 게 덧붙여졌어요. 다른 장르에서도 경이감이 들었다면 SF의 경이감과 충분히 연결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SF독자층도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SF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있긴 한데, 독자의 인식도 축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타워』를 내고 받았던 반응이 ‘SF인데 따뜻하고 감성적이다’였거든요. 그사이 10년이 흘렀는데 김초엽 작가님 작품 반응도 딱 그래요. 따뜻하다고 느꼈다면, SF의 원래 성격이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 말로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쓰게 된 이유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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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작가여, 연대합시다


SF 소설을 읽는 것보다 쓰는 걸 더 좋아하는 스타일 같아요.


그렇죠. 예전에는 직업이 분화가 안 되어 있었어요. 사람이 몇 명 없으니까 번역하는 사람이 작가도 하는 형태였죠. 지금은 역할을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은데, 저는 처음부터 쓰는 사람에 가장 가까웠어요. 보통은 SF 팬이고 독자여서 많이 읽다가 자연스레 쓰게 되잖아요. 제 출발은 그런 식은 아닌 것 같아요. 쓰는 게 좋아서 쓰고, 쓰는 데 필요해서 읽는 거죠. 큐레이션하거나 비평하는 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본업으로 비평을 하려면 제대로 공부해서 그것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작가를 하긴 힘들 것 같거든요.


SF비평이 부족하다는 말도 많이 했어요. SF전문잡지 『오늘의 SF』 가 창간되었고, 비평 지면이 새로 생기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특히 작가들은 SF비평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이제까지 SF 평론이나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SF를 이야기하면 담론은 많은데 현장 비평이 별로 없었어요. 지금 나와 있는 글을 보고 이게 뭔지 이야기하는 시도가 적었던 거죠. 『타워』이후로 11년 동안 작품을 써왔는데 아직도 저를 처음 보는 작가처럼 다루는 느낌이 분명 있어요. 작품만으로는 축적이 안 되더라고요. 다른 작가분들도 같은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어서, 비평이 정말 필요하다고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어요.


SF비평장이 넓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작품을 바탕으로 구축한 비평의 계보를 소화하고 한국 SF를 다뤄야 해서 일이 많아요. 한국에서 아예 이론을 구축하면 좋은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미국 비평을 참고해서 한국 작품을 비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자생적으로 독자가 리뷰를 통해서 비평까지 도달하기보다는, 비평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분들이 쓰는 게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요.


SF 작가 생태계에 관심이 있고 건강하게 가꾸려고 노력하기도 하죠. 적극적으로 발언할 때도 많고요.


그래서 사랑을 많이 못 받는 것 같기도 해요.


적극적으로 발언해서요?


SF 작가로 오래 활동했는데 이 분야가 저를 중요한 작가로 다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기존의 SF 마니아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한국 작가가 쓰는 SF는 SF가 아니라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왔던 터라 한국작가들이 많이 지워진 면이 있어요. 저도 대표적으로 SF가 아니라고 분류된 작가고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활동을 하고 있죠. 1기 임원진을 맡기도 했고요. 작가 연대에 관해 오랫동안 토론했다고 썼는데, 어떤 고민을 했었나요?


처음에 작가들 프로필을 받는 작업을 했는데, 보다 보면 다들 자신을 SF작가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없었어요. 아닐 것 같지만 사실 저도 그랬고요. ‘우리가 왜 SF 작가라고 말을 못하지?’ ‘왜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이 SF 작가인지 아닌지를 결정하지’ 같은 의문이 먼저 들었어요. 다른 고민은, 작가들의 노조는 아니어도 모일 수 있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면 취약해지는데, 별거 아닌 일인데도 다들 떨어져 있으니까 문제에 대응을 못하고 문제가 커지고 나서 불만을 터뜨리게 되고요. 그냥 보기에는 SF계가 문제가 적고 잘 된 것 같지만 문제가 없진 않아요. 다만 작가연대 활동으로 좋은 면이 더 크게 보이게 만들고 무게중심을 옮겨놓았을 뿐이죠. 작은 출판사에서 생기는 문제일수록 정보를 교환하고, 우리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느낌이 중요해요.


단체의 설립 목적 중에는 단체 내외의 인권 문제도 있어요. 단체뿐만 아니라 외부의 인권 문제도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 SF 작가들의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활동하시는 분도 많고, 글에 사회 반영도 하고요.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활동을 해오시던 분들이 있어서 힘을 받는 것 같아요.


 

 

SF 작가입니다배명훈 저 | 문학과지성사
그동안 가상의 세계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 삶의 진실을 포착해온 배명훈이 ‘SF 작가’로서 자신의 삶과 글쓰기 그리고 작업 현장 근처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써내려간 에세이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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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펭수는 왜 성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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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온 EBS 연습생 ‘펭수’가 대한민국을 떠들썩 하게 만든 지 벌써 1년. 유튜브 구독 자는 현재 214만 명(2020년 4월 22일 기준), 이제 ‘펭 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 아 이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콘텐츠로 찾아갈까 고민하다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펭수’. 남극 ‘펭’ 씨에 ‘빼어날 수’ 를 쓰는 펭수의 연습생 데뷔 1주년을 맞아 소속사 EBS 가 『펭수, 디 오리지널』 을 출간했다. 유튜브 채널을 이끄는 이슬예나 책임PD와 염문경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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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존재감 ‘펭수’가 탄생하기까지

 

펭수를 꼭 만나고 싶었는데.

 

이슬예나 인터뷰 요청이 많지만 펭수의 본업인 출연에 충실하려다 보니 쉽지 않다.

 

지난해 말,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에세이 다이어리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에 이어 두 번째 책 『펭수, 디 오리지널』 이 나왔다. 이번에는 데뷔 1주년 기념 화보집이다. 촬영 현장 사진은 물론 펭클럽 백일장, 제작진 이야기도 실려 흥미롭다.

 

염문경 EBS에서 직접 기획한 책이다 보니 아무래도 제작진 의견이 많이 들어갔다. 펭수를 사랑하는 찐 팬들이 읽을 책이라 여러모로 공을 들였다.

 

EBS 의 역사를 빼곡히 담았다. 2019년 3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4월에 첫 번째 에피소드 ‘관종 펭귄, 초등학교 습격? 펭수, 학교 가다’가 공개됐다. 는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슬예나 2018년 가을 유아ㆍ어린이TF팀에 발령이 났다. 레거시 미디어가 위기인 상황에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 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모바일 플랫폼 사용자가 점 점 늘고 있는데, EBS는 모바일 플랫폼에 최적화된 방송 사가 아니라서 의견이 분분했다. 아무리 기획안이 훌륭해도 결국 평가를 받는 건 아웃풋이니까, 좋은 제작진을 꾸리려고 노력했고 ‘펭수’를 만났다.

 

방송 초기에는 몇 명으로 시작했나?

 

염문경 PD 둘, 작가 둘 그리고 촬영감독님. 1회를 촬영할 때는 총 10명이 안 됐다. 첫 에피소드는 지금 봐도 재밌다. 열 살인 펭수가 초등 학교에서 데뷔를 한 셈이다.

 

이슬예나 아끼는 영상 중 하나다. 이때 아이디어 회의를 엄청나게 많이 했다. <자이언트 펭TV>는 즉흥성에서 많은 걸 얻는 프로그램이다. 우선 초등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전학생이라는 콘셉트로 일산초등학교를 갔 는데, 뭔가 표정이 뚱한 친구가 한 명 있더라. 우리를 딱 쳐다보더니 신발주머니를 던지고.(웃음) 펭수의 첫 친구 ‘근원이’를 봤을 때 느낌이 딱 왔다. 촬영감독님한테 잘 잡아달라고 했다. 예사롭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면 촉이 온다.

 

대본은 어떻게 쓰나? 펭수의 애드리브가 많은 것 같은데.

 

염문경 최대한 펭수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구성한다. 제작진이 길잡이가 되어주되 펭수가 자기 언어로 소화할 수 있도록 옵션을 둔다.

 

펭수를 연습생으로 발탁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슬예나 우선 펭귄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족보행을 하는 동물이 많지 않으니까,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 출 수 있으면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어서 좋았다. 또한 ‘뽀로로’ 선배를 넘어서겠다는 패기!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나?(웃음)

 

방송 1달여 만에 구독자 1만 명을 돌파하고, EBS 초등 기본서 『만점왕』표지 모델로 선정됐다. 이후 첫 팬 사인회를 개최했다. 사인회를 열기엔 좀 이른 시기 아니었나?

 

이슬예나 사실 웃기려고 했다. 팬 사인회를 열었는데 사람들이 거의 안 온 상황을 예상했는데, 300여 명이 펭수를 환대했다. 당시 제작진이 정말 놀랐다. 번호표 못 받아서 우는 아이들도 있었고 지방에서 하루 전날 올라 온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펭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어, 펭귄이 사인을 해?”라며 이상한 눈으로 보기도 했다.

 

EBS 사내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이슬예나 1, 2편의 평가가 나쁘지 않아서 회사에서 기대가 컸다. 선배들한테 전화가 많이 왔는데, 점점 시간이 갈 수록 부담감이 커졌다.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왜 아직 구독자가 1만 명이냐?”는 이야기도 듣고.(웃음) “한 학 기를 지켜봤는데 대박이 나긴 역시 힘든가?”라는 말도 들으면서 ‘우리가 타깃층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나’ 고민도 했지만 첫 사인회를 통해서 힘을 얻었다. 이미 코어 팬덤이 존재했기 때문에 무언가 하나만 터지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육대(EBS 아이돌 육상대회) 에피소드를 기획 한 건가?

 

이슬예나 그렇다. 일단 그림 자체가 너무 웃길 것 같았다. 2주 만에 급하게 EBS의 대표 캐릭터 번개맨, 뚝딱이, 방귀대장 뿡뿡이, 뽀로로 등을 섭외했다. 촬영하면서 이번 편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적중했다. ‘이육대’가 공개된 지 1주일 만에 구독자 5만 명을 돌파했고, 4일이 더 지나고 10만 구독자가 생겼다. 중요한 건 이육대 이후 검색어에 ‘펭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채널뿐 아니라 펭수에게도 관심이 생기면서 프로그램이 알려졌다.

 

펭수의 가장 큰 매력이 뭘까?

 

염문경 강할 땐 강하고 약할 때 약한 것. 펭수가 늘 거침 없이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잘 들여다보면 약자 입 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항상 조심스럽고 정중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재미를 유발하는 데 급급해서 선을 넘고 막 나가는 크리에이터가 아닌 것이다. 균형을 잘 잡고 따뜻하다는 점, 바로 내가 보는 펭수의 장점이다.

 

이슬예나 펭수의 자유롭고 당당한 모습이 좋다. 펭수는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거나 세상을 구하거나 하는 대의 가 아니라 인기 스타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 자기 표현에 대한 욕구를 가진 펭귄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생긴 그대로 사랑한다. 덩치가 굉장히 크고, 다른 펭귄들과는 좀 다르지만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나 거리낌이 없다. 직설적이고 할 말 다 하는데, 그게 누구든 상관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대하기 때문에 큰 사랑을 받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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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직접 소통할 때, 펭수의 찐 매력

 

퇴사자이자 전 매니저 ‘전원배’를 비롯해 박재영 PD 등 제작진이 많이 등장한다. 처음부터 의도한 콘셉트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이슬예나 펭수가 몸집이 크니까 혼자 움직이기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제작진이 매니저로 등장하게 됐는데, 특별 한 케미가 보이더라. 제작진이 나오는 편을 좋아하는 팬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에피소드마다 조금씩 다르다.

 

현재 제작팀이 총 몇 팀인가?

 

염문경 4개 제작팀이 동시에 콘텐츠를 만든다. 1주일에 본편을 두 편 만드는 시스템이라 한 팀이 4주에 2편을 만든다. 이 외에도 모바일에만 올라가는 콘텐츠를 만드는 팀이 있다. 썸네일, 영상 제목은 어떻게 정하나? 이슬예나 각 제작팀에서 의논한다. PD, 편집감독, 작가들 과 모두 상의한다. 각자 의견이 다르지만 전체적인 통 일성을 고려한다. 썸네일에 ‘펭수’ 이름을 넣느냐 안 넣느냐도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다. 원칙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팀원들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눈다.

 

유튜브 콘텐츠는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편집도 굉장히 중요하다.

 

염문경 편집감독님의 드립력이 굉장히 좋다. 음악 선정을 비롯해 자막 센스가 대단하다. 보통 1차본에서 넣고 싶은 자막을 힌트처럼 주시는데, 그걸 보고 작가와 PD들 이 상의한 뒤 최종 영상을 만든다.

 

‘펭수’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 나는 에피소드를 추천한다면?

 

염문경 ‘고민상담소’ 편을 좋아한다. 피상적인 말밖에 해 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펭수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은 팬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자이언트 펭TV>가 EBS에서 만드는 콘텐츠인 만큼, 방향성에 관해 고민이 많았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팬들에게 직접적인 위로를 해준 것 같아 제작진으로서 뿌듯했다.

 

이슬예나 ‘펭수, 힐링 한강’ 편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템마다 어그러져서 ‘모르겠다, 한강이나 가자’ 하고 갔는데, 의외로 재밌는 영상이 나왔다. 첫 라이브를 하느라 엉성한 것도 많았지만, 힐링도 됐고 구독자들과 소통도 하고. 펭수가 좋아하는 셀럽도 만났다. 정말 우연히 현장에서 만난 상황이라 너무 놀랐다. 그리고 ‘시골 손주 펭수’ 편도 좋아한다. 펭수를 시골로 한번 보내고 싶었는데 꿈을 이뤘다.(웃음) 펭수의 찐 매력은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때 나오는 것 같다.

 

이제는 우주 대스타가 돼서 소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염문경 아무래도 사고가 생길 수도 있고 민폐가 될 수도 있으니까. 예전에는 거리에 나가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서 웃겼는데, 이제는 안전 사고가 생길까봐 선뜻 나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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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제작자에게 꼭 필요한 ‘자기객관화’

 

『펭수, 디 오리지널』 에 김명중 EBS 사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구독자가 1만 명 정도 됐을 즈음 간부 회의에서 “지금부터 이슬예나 PD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은 펭수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는데.

 

이슬예나 우리 제작진이 젊은 편이다. 가장 어린 친구가 스물네 살이다. 의 시청자는 모든 연령 대다.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인 만큼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시청자가 “EBS의 최대 복지는 펭수”라는 댓글을 썼 는데, 2000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더라.

 

염문경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주신 게 아닐까.

 

이슬예나 유튜브는 정말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우리 가 할 수 있는 건 엄청나게 화려한 영상이나 스토리가 아니다. 다만 얼마나 진정성 있게 소통하는가, 그 점에 서 생명력이 생긴다. 책에도 나오지만 펭수는 펭클럽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자이언트 펭TV 브랜드 스튜디오가 설립됐고, 펭수는 비타500, 붕어싸만코, 정관장, KB카드, 동원참치 등의 모델로 발탁됐다. 사업화 모델에 관한 고민도 클 것 같다.

 

이슬예나 큰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튜브 조회수로는 운영이 힘들다. 브랜딩 콘텐츠를 제작할 때는 ‘열살 펭수에게 어울리는 콘텐츠인가?’를 염두에 둔다. 제작진의 기획력을 믿고 맡겨주면 좋은 콘텐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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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 있나? 또는 제작진 입 장에서 초대하고 싶은 게스트는 누군가?

 

이슬예나 진짜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출연하면 재밌을 것 같다. 펭수가 연습생이니까.(웃음)

 

콘텐츠 제작자가 꼭 가져야 할 마인드는 무엇일까?

 

염문경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는 영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을 종종 만나는데, 의 장점으로 모두들 ‘불호’가 없는 점을 꼽더라. 펭수는 펭귄이라는 것, EBS에서 만드는 콘텐츠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극단적인 캐릭터성을 갖는데, 이 두 개성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좋 은 팀워크를 갖고 가야 확장성이 생긴다. VJ 한 명에게 의존하면 수명이 짧다.

 

이슬예나 자기객관화가 정말 중요하다. 스스로 재밌다고 생각해도 남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빠르게 접을 수 있어야 한다. 콘텐츠는 유행이 정말 빠르고 도태도 쉽다. 콘텐츠를 잘 만드는 내공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객관화가 뚜렷하다.

 

앞으로의 목표는?

 

이슬예나 롱런하고 싶다. 유튜브에서 오래 살아남는 일이 정말 어렵지만, 가능한 한 독립성을 갖고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제작진의 공이 크다. 우리는 회의 때 ‘죽상’을 하고 만난 적이 없다. 만드는 사람이 힘들면 그 마음이 묘하게 콘텐츠에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행복과 재미도 놓치지 않으면서 오래오래 펭수와 함께 하고 싶다.

 

문경 펭수가 사랑스러운 펭귄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좋겠다.

 

 

 


 

 

펭수, 디 오리지널EBS 저 | 한국교육방송공사
특별 촬영한 ‘펭수의 은밀한 사생활’ 화보와, 펭수 인터뷰 및 미발표 자작시 포함! 1년 간 펭수를 아껴 준 팬들에게 EBS가 ’펭수와 관련한 단 한 권의 책‘을 바친다는 마음으로 제작한 본 화보매거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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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희문 “민요는 내 무기이자 필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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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문은 '국악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우리 소리에 외국 음악 장르를 뒤섞어 독특한 무대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27살의 나이로 뒤늦게 '민요'에 입문 했지만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경기민요를 이수했고 출전한 대회에서 온갖 상을 휩쓰는가 하면 2017년에는 프로젝트 그룹 '씽씽'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국내보다 국외에서 먼저 반응했다. '민요'라는 구성진 가락을 록, 댄스와 결합해 펼쳐냈고 무엇보다 차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형형색색의 가발과 짙은 화장 그리고 구두. 이를 두고 그는 “제2의 자아를 장착”한다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한 시대를 풍미한 소리꾼 고주랑이다. 하지만 그는 어려서 대중 가수를 꿈꿨다. 마돈나를 듣고 마이클 잭슨을 팠으며 민해경의 파워풀한 목소리에 열광했다. 기획사에 들어가 혹한의 연습생 시절을 견디기도 했다. 미래는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와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고 음악의 대안으로 뮤직비디오 감독을 택했다. 실제로 몇 작품에서 조감독으로 활약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대신 채웠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국악인 이춘희 선생님의 제안으로 다시 소리를 시작하던 때를 그는 “더 이상 갈 데도,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었다. 절박했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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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는 내 역사, 주눅 들고 싶진 않다

 

며칠 전 공연을 끝낸 걸로 안다. 컨디션은 괜찮나?

이 시국에 당장 어제도 곱창전골(홍대의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왔다.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취소하려 했는데 단골손님들이 꽤 자리를 채워줬다. 얼마 전까지 2016년부터 매년 진행 중인 경기 민요 무대에 서기도 했다. 새해부터 바쁘다.

 

경기 민요 무대는 무엇인가?

어머니가 소리를 하셨기 때문에 내 역사를 이야기 하다 보면 그 중심에 민요가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지금은 민요, 특히 내가 전공한 '경기 민요'에 대한 관심이 많이 적어지지 않았나. 개인적인 역사와 민요의 역사를 정리하고 싶었다. 2016년 공연이 시작이었고 이번에는 지난 3년간 진행했던 무대를 종합하는 느낌으로 일주일간 막을 올렸다. 민요 아카이브 정도로 보면 된다.

 

매진됐다고 들었다.

매진 됐'었'다. (웃음) 그래도 생각보다 빈자리가 많진 않았다. 한 명만 와도 준비한 시리즈를 완주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나갔는데 잘한 일 같다. 코로나를 뚫고 와준 거 아닌가. 어찌나 고맙던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감사의 큰절을 올렸다.

 

주 관객층은 어떻게 되나?

중년 여성분들이 제일 많다. 요즘에는 남성분들도 꽤 오시고. 20-30대는 간혹 온다.

 

젊은 층을 포섭하고 싶지는 않나?

10대 20대가 오면 일단 기분이 좋다. 민요에 관심이 없는 연령층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어떻게 그 세대의 공감을 사고 만족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염두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 타겟을 만들어 놓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라면 나 같은 사람은 그 반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되 운 좋게 그게 대중의 눈에 들어가면 땡큐다.

 

위의 공연 중 일부에서 여자 소리꾼의 삶을 다루고 있고 과거 어머니인 고주랑 선생님의 일대기를 그린 극을 올리기도 했다. 꾸준히 여성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냥 내 일부였던 거다. 또한 민요가 부흥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 중심에 여성이 있다. 여성이 내는 소리였고 그래서 인간문화재도 다 여자 선생님들이시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여성 중심의 장르인 민요를 하고 있고 과거부터 그 안에서 자라난 것이다.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하다.

 

남성 소리꾼으로서 드는 책임도 있을 것 같다.


책임감 보다는 어디 가서 민요를 한다고 할 때 주눅 들지 않는 장르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춘희 선생님의 제안으로 뒤늦게 소리판에 들어왔는데 막상 겪어보니 우리만의 리그 같았다. 걸쇠를 풀어야 밖으로 나가는데 계속해서 안에서만 머무는 느낌이랄까? 1년 한 번씩은 무조건 내 작업을 보여주며 판을 넓히자 다짐했다. 그렇게 10년을 버티니 뭔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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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씽(SsingSsing)으로 만든 전환점

 

프로젝트 그룹 씽씽도 그 변화의 일부인가?


맞다. 씽씽은 내가 처음으로 만든 밴드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베이스)와 이철희(드럼), 이태원(기타, 키보드)이 연주했고 신승태, 추다혜 그리고 내가 보컬을 맡았다. 2014년도에 나 혼자 진행하던 '快(쾌)'라는 작품을 통해 이 그룹을 만들었다. 당시 박수무당의 이미지를 구현하려 하이힐도 신고 망사도 입었던 건데 그런 비쥬얼적 요소가 이후 내 커리어에서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미국에서 먼저 주목했고 이후 국내에도 많이 알려졌다.

지금도 어디 댓글을 보면 씽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파급력이 강했다. 운 좋게 미국의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 NPR의 전파를 탔고 그게 추진력이 되어 이름을 많이 알렸다. 외국에서 보기에 사운드는 자신들이 듣던 것과 비슷한데 창법은 동양적이고 무엇보다 비쥬얼이 쇼킹하니 눈에 띄었을 꺼다.

 

씽씽 활동이 음악 여정의 전환점 혹은 기폭제가 된 건가?

전통 음악은 확실히 벽이 두껍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가 있어야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고 또 그래야 그런 현상에 관심 갖는 '사람(대중)'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미완의 불씨라도 지펴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기존에 없던 활동 만들고 시작점을 찍었으니까 말이다.

 

작년에는 유아인 도올 김용옥과 함께 <도올아인 오방간다>(이하 오방간다)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해외 공연을 끝으로 씽씽 활동을 마무리하던 차에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방송에 욕심도 없었고 무엇보다 씽씽으로 출연 제의가 왔던 건데 당시 우리는 해체 과정을 밟고 있었으니 나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부탁을 하길래 내 마음대로 판을 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면 출연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알겠다더라. 그렇게 나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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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그룹 오방신과, 라이브로 승부수

 

최근 발매한 음반 < 오방神과 >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 오방간다 >에서 한 회에 3-4곡 정도를 들려줘야 했다.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한국남자'라는 그룹을 하고 있었기에 그 노래들로 한 달 치 분량을 짰고 남은 기간은 '오방신과'라는 새 팀을 만들어서 채워나갔다. 레게를 주로 다루는 뮤지션 노선택의 도움이 컸다.

 

앨범 소개에 '뽕삘 나는 댄스 음악을 들려주겠다'더니 타이틀 '허송세월말어라'에서 제대로 판을 벌렸다.


사실 음반에서 유일하게 그 곡만 < 오방간다 > 녹화 때 만든 노래가 아니다. 소스를 계속 바꾸는데 딱 마음에 꽂히는 한 방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은하(1980년대 인기 있던 디스코 가수 ?편집자)의 '네가 좋아'를 다시 들었는데 바로 이거였다. (웃음) '사랑가'라는 경기 민요를 펑키한 디스코 곡으로 탈바꿈 시켰다. 마음에 든다. 하하하.

 

반면 타이틀을 제외한 곡들은 록 베이스, 재즈 그리고 무엇보다 레게의 향취가 짙다.


총괄 프로듀서가 노선택이었으니 그의 색이 많이 들어갔다.

 

불만은 없었나?


음반만 들으면 생각보다 '정적인데?'라고 느낄 수도 있을 꺼다. 라이브에서는 다르다. 씽씽 때는 방송에서 노래를 틀 것이다 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그대로 녹여냈다. 곡 길이를 늘렸고 욕심껏 담았다. 반면 이번 작품은 싱글에서 중심만 집고 실제 라이브에서 승부수를 띄운다. 나는 춤추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같은 곡을 공연장에서 보면 완전 다른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웃음)

 

이희문의 색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곡을 고른다면?


'노래, 가락'이다. 원곡은 '노랫가락'인데 이는 '창부타령'과 함께 손꼽히는 경기 민요의 백미다. 재즈와 레게를 섞어 빠른 비트를 만들고 보컬에 욕심을 좀 냈다. 국악 용어로 말하자면 시김새, 즉 테크닉에 힘을 준 거다. 부를 때 발음을 어떻게 씹느냐에 따라서 듣는 맛이 다르다. 그걸 찾아내려고 무진장 애썼고 그걸 구현 했을 쾌감이 끝내줬다. 문제는 그 차이를 나만 안다는 거다. (일동 웃음)

 

대중적인 멜로디로 각색한 '바람이 분다' 같은 곡은 10-20대도 즐기기 좋아 보인다.


어릴 때 팝, 가요와 민요를 동시에 들었다. 내 안에는 그것들이 다 체화되어 있다. 이걸 어떤 식으로 포장했을 때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질까 하는 그런 기획적인 측면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고 직접 소비를 해야지만 길이 열린다. 모두가 전통만 지킬 게 아니고 누구는 부수고 누구는 깨기도 해야지만 알맹이를 보존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든 작품에는 만족하나?


씽씽은 장영규와 한국남자는 프렐류드의 최진배와 놀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아마 완성도만 따졌다면 앨범을 못 냈을 거다. 내겐 작품이 가진 완벽함보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의미가 더 중요하다. 특히나 예전에는 내가 막 혼자 부산스레 무언가를 준비했다면 이번에는 디자이너 박승건 등의 합류로 더 뜻깊었다. 커버 사진을 보면 내가 초록색 머리를 하고 있는데 그게 젊음, 반항의 키워드를 담고 있다더라. 승건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접근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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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극복한 결핍, 좋은 무기가 되다

 

민요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이 지점에서 회의감이 들진 않았나?


전혀. 오히려 전통 소리를 배우고 부르는 게 좋아 주겠는데 이를 어떻게 알려야 할까 하는 측면에서의 고민이 더 컸다.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 본인의 길에 확신이 있어 보인다. 성장 동력이 있다면?


어머니다. 어려서부터 유독 어머니를 따랐고 지금도 늘 그의 영향 아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소리를 하시던 시절에는 음악이 곧장 생계와 연결됐다. 나는 여기서 조금 더 자유로웠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경제적 후원이 있으니까. 이 외에도 내게 소리 공부를 제안해준 이춘희 선생님, 지금의 내 퍼포먼스를 완성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안무가 안은미 선생님까지. 나는 복이 많다.

 

음악이란 어떤 존재인가?


좋은 무기와 같다. 나는 콤플렉스도 많고 결핍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문제를 풀 수 있게끔 도와준 게 민요였고 그렇기 때문에 민요가 내 무기이자 필살기가 된 거다. 이게 없었다면 꼬인 마음들을 어떻게 풀고 살았을까. 분명 음악이 엉킨 것들을 잘라줬기 때문에 이정도로나마 사람이 된 거다. (웃음)

 

끝으로 학창시절에 어떤 음악을 들었나?


한 곡을 질릴 때까지 듣는 타입이다. 그래도 민해경 노래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었던 것 같다. '그대 모습은 장미', '보고 싶은 얼굴',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 또 마이클 잭슨을 좋아했고 마돈나 무대는 언제 봐도 끝내준다. 일본 유학하면서는 미스터 칠드런을 많이 들었는데 .... 더 말해도 되는 건가? (웃음)

 


이희문이 보내온 '젊은 세대를 위한 민요 추천곡'


1. 노들강변 (신민요)


어릴 적 어머니의 LP로 자주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던 곡. 세상의 한을 물에 띄워 보내고 싶어 하는 심경을 담고 있다. 1930년대 새로 등장한 민요인 신민요의 하나로 그 당시 인기 있던 대중 히트곡이다.

 

2. 긴아리랑 (경기민요)


소리꾼이 된 계기가 되었던 곡. 내게 소리 공부를 제안해준 스승 이춘희 명창 앞에서 처음 부른 곡이기도 하다. '아리랑' 가운데 가장 길고 폭 넓은 음계를 소화해야하는 곡이며 특유의 비장미가 매력적이다.

 

3. 청춘가 (경기민요)


흔히 경기민요는 '잘 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르기 어려운 축에 속한다. 특히 이 곡은 소리의 제대로 된 맛을 내기 가장 어렵다. 흔히 있는 후렴 대신 한 소절의 가사를 빠른 리듬 안에서 주고받아야하기 때문. 조선 말기 '이팔 청춘가'로 불리던 곡이 지금의 '청춘가'가 되었다.

 

4. 창부타령 (경기민요)


'노랫가락'과 함께 경기민요의 백미로 꼽히는 곡. 전통음악의 근간이 되는 무속 음악의 장단이 대두되는 곡이기도 한데 그래서 가사의 내용과 길이가 불규칙하다는 특징이 있다. 곡 자체의 난이도도 굉장히 높으며 그만큼 부르는 소리꾼마다의 개성을 잘 느낄 수 있다.

 

5. 맹꽁이타령 (휘몰이잡가)


내 18번이다. 스승님이 '이 노래는 네 노래다'라고 인정해주기도 했다. 민요가 아닌 잡가에 속한 곡이며 가사를 빠른 템포로 엮어가는 지금의 랩과 비슷한 장르라고 보면 된다. 맹꽁이를 사람에 빗대어 사회상을 고발하고 풍자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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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양 고전학자 김헌 “질문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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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서양 고전학자 김헌 교수가 수업할 때 꼭 던지는 질문이다.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답이 아닌 질문. 스스로 묻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길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 행위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 내가 바라는 삶을 사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질문인 거예요. 또한 이런 질문들은 그 영역이 점점 확장되기 마련입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람은 꼭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거든요.(52쪽)

 

『천년의 수업』은 김헌 교수의 강의와 글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좋은 질문은 무엇인가’로 시작해 ‘나는 누구인가’, ‘죽음은 정말 끝인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와 같은 인류의 근원적 질문을 서양 고전에 비춰 새롭게 이야기한다. 김헌 교수는 ‘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를 바꾼 강의’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린 후, <차이나는 클라스>,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등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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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요

 

서울대에서 한 서양 고전 강의의 인기가 대단했다고요.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생각하죠. 두 가지 때문 아닌가 싶은데요. 일단 글을 많이 쓰게 했어요. 책 읽고 마음을 울리는 구절을 하나 꼽아서 쓰라고 했죠.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말하면 ‘인생 구절’을 꼽는 거예요. 그리고 그 문장이 왜 인상적이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쓰라고 했어요. 마지막에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보라고 미션을 줬고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은유로써 신화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걸 이야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글쓰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셈이네요.


무작정 쓰려면 막막하잖아요. 이렇게 하면 책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도 쓸 수 있거든요. 한 문장만 고르면 되니까요. 글쓰기 싫어하는 학생이 많으니까 포기하는 사람도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한 학기 지나고 다음 학기 되니까 학생 수가 늘어나는 거예요. 원래 정원이 20명이었는데 30명 되고 50명 되고 80명 되는 식으로요. 글쓰기가 막연하지 않다는 걸 학생들이 경험한 거죠.

 

‘도서관 대출 순위를 바꾼 강의’라는 말도 있더라고요.


그게 어떻게 알려졌냐 하면요. 어느 날부터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희극 같은 책이 도서관 대출 순위 10위권에 올라간 거예요. 에우리피데스 비극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희극같이 일부러 읽으려 하지 않으면 읽지 않을 책들이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도대체 『총, 균, 쇠』를 어떻게 밀어냈냐’하는 반응이 생긴 거죠. (웃음) 이 현상을 의아하게 생각한 모 일간지에서 제 실명을 거론해 기사를 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고요. 어느 국회의원은 ‘서울대 학생들의 독서 편식이 심해서 문제’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더라고요. 기사가 나가고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주목받았고 많은 기회가 생겼죠. 운이 좋았어요. 

 

대학뿐만 아니라 중학교부터 공공도서관까지 다양한 곳에서 강의하시더라고요. 최근에는 TV로도 진출하셨죠?  


새로운 사람은 만나는 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요. 제가 가진 생각을 여러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요. 이런 일에 대한 도전정신이 있는 거 같아요. 거창하게 말하면 사명 같고요.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최대한 많이 가는 게 제가 월급 받고 생활을 보장받는 대가라고 생각해서 어디든 가는 편이에요.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시라고요.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10년가량 교사로 일했어요. 한 반에 4~50명 정도 있었는데 성적도 다르고 성격도 천차만별이잖아요. 저마다 다른 학생들을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때 경험이 지금 대학 강의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강연을 하게 하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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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가지고 갈 굵직한 질문이 있어야

 

직선주로였던 삶이 망망대로임을 깨달을 때 질문한다(10쪽)고 했는데 언제 처음으로 망망대로임을 느꼈나요?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 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인생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끝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살아 있다는 게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공부하고 대학에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싶어서 방황하다가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겨우 마음을 잡았어요. 이때가 처음이었죠. 두 번째는 유학을 다녀와서였어요. 교사로 일하다 유학을 결심하고 사표를 냈는데 모든 게 정리되는 순간 막막하더라고요.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 있는 것 같았어요. 유학 가서 박사학위 받고 오면 교수 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거든요. 유학 끝내고 돌아왔는데 그야말로 학위증 있는 거지더라고요.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아이는 넷인데 수입은 적으니까 어머니 집에서 커튼 치고 방을 만들어서 살 정도였어요. 시간 강사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하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요. 정말 죽겠더라고요. (웃음) 제가 오십에 정규직이 됐거든요? 공부하기로 하고 외길을 갔지만, 앞만 보고 간 게 아니라 망망대해 속을 헤집고 다닌 거예요. 당시에 너무 힘들어서 저를 가르쳤던 프랑스 선생님께 ‘전망도 안 보이고 힘들다’고 ‘이렇게 살다 죽을 것 같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딱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책을 보라”고요. 

 

아…너무 모범 답안 아닌가요. 힘이 될 것 같지 않은데요. (웃음)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해봤어요. 결국 책 읽고 공부하는 과정이 강의나 기고를 준비하는 건데요.  책 읽고 공부하고 글 쓰는 일에 푹 빠지니까 일단 빠져있는 시간에는 다른 생각 안 하게 되더라고요. 운이 좋을 때는 내 문제에 관한 답이나 힌트를 찾을 수도 있었고요.

 

그때도 주로 서양 고전을 읽으셨겠네요.


그렇죠. 제 일이니까요. 그 프랑스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는 건 다시 말해 죽을 각오로 공부하라는 거였어요. 그 길밖에 없다고 하신 거죠. 다른 길을 찾으려 들면 못 찾는다고요. 공부하는 사람들이 묘한 구석이 있는데요. 특히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필사적으로 공부하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요. 플라톤을 가르친 선생님도 ‘죽을 각오로 공부하라’는 말을 자주 하셨거든요. 

 

질문을 많이 하기보다 평생 붙들 굵직한 질문이 있는 게 중요하다고요. 교수님의 굵직한 질문은 뭔가요?


타인에게 행복을 주고, 느끼는지 자주 질문해요. 행복이 가장 큰 가치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공감하는데요. 행복한 관계만 갖고 불행한 관계는 피하겠다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가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찾으려는 태도를 말해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하고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가 행복한 관계 속에서 살면 그게 가장 좋은 삶이 아닌가 싶고요.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해요.


‘행복을 주고받고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포함되기 마련인데요. 이 역시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할 굵직한 질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 어떤 답을 제시하기보다 계속 품고 살아갈 질문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만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행복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거죠.

 

계속 안고 갈 굵직한 질문이군요.


라틴어에는 영어 much에 해당하는 말이 단수형(multum)과 복수형(multa) 두 가지가 있어요. 희한하죠? 많다는 뜻이니까 복수형만 가능할 것 같은데 단수형이 있는 거예요. ‘책을 많이(multa) 읽기보다 여러 번(multum) 깊게 읽는 게 중요하다’고 할 때 쓰여요. 질문이나 생각에 관해 말할 때도 적용되는데요. 쉽게 답을 얻고 끝내는 얄팍한 질문이 아니라 끝까지 가지고 가야 할 질문을 하라는 거예요. 살다 보면 그런 질문이 추려지거든요. 답은 잘못될 수 있어요. 어느 순간에는 폐기해야 할 답이 있을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질문의 가치는 손상되지 않아요.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질문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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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의심하지 않죠?

 

최근에 들은 가장 인상적인 질문이 있다면요?


어려운데요. (웃음) 잘 생각나지 않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에 질문이 많지 않다는 방증인 것 같아요. 가끔 학생들한테 이런 문제를 내요. 어떤 구절을 하나 주고 이 구절로 문제를 만들라고요. 그리고 그 문제를 풀어보라고 하죠.

 

어렵네요.


그렇죠? ‘괜찮다’ 싶은 질문이 안 나와요. 뻔한 것들만 물을 때가 많죠. 그렇다고 뻔한 질문이 가치 없다는 건 아니고요.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 귀하다는 거죠. 아, 최근에 EBS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철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는데요. 여기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 중에 인상적인 게 많아요.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벌거벗은 임금님>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아이가 ‘임금님은 왜 사람들의 거짓말에 계속 속을까요?’라고 묻더라고요. 재봉사 말을 왜 그대로 믿냐는 거예요. 보통은 ‘거짓말하는 사람’에 집중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너 이거 거짓말이지?’라고 한마디만 하면 달라질 수 있는데 임금님은 왜  의심하지 않고 안 보이는 데도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 모습이 보여요. 사회가 정해 놓은 가치들이 있잖아요. 좋은 대학을 가야 출세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요. 철저히 그 가치를 따라 살아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패배감을 가지고요. 마치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옷이야’라고 했을 때 ‘그게 진짜야?’라고 의심하고 물어보지 않는 것처럼요.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쪽을 선택하게 되는 거 같아요.


뻔한 질문에 묻어가는 거죠. 가끔 기발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런 질문이 나오면 텍스트를 새롭게 읽는 길이 열려요. 일례로 <토끼와 거북이>에서 우리가 얻는 익숙한 교훈이 있잖아요. ‘못난 사람도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어’와 같은…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거북이는 왜 그 경주에 응하지?’라고 질문하는 거죠. 거북이가 경주에 참여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 경주가 이상한지 아닌지 묻지 말고 일단 시작해’라든가 ‘토끼가 빠르지만, 거북이 네가 열심히 하면 이길 수 있어’라는 말은 아이들을 속이는 이야기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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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이 신화를 만든 이유

 

오뒷세우스가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고통이 있는 인간의 삶을 선택했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어요.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출판사에서 홍보용으로 만든 SNS 콘텐츠가 있어요. ‘세상을 아름답게 보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더라고요. 이건 문제가 있는데 싶어서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네가 교수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버스비가 없어서 걸어 다니면 세상이 더 아름다울 거다’ 등의 날 선 댓글이 많더라고요.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노력 자체에 반감을 갖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생각과 별개로 ‘사실 내가 그렇게 쉽게 산 사람은 아니거든?’ 하는 마음도..(웃음)

 

망망대해에 있었는데…(웃음)


그러니까요. ‘나도 망망대해에 있었는데 내 길을 찾아왔고 다행히 지금에 이른 거야’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웃음) 결국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삶을 사는 거 같아요.

 

희망에 차서 ‘삶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담담히 ‘삶의 조건’이라고 말하는 거 같았어요. 이래서 고전을 읽는구나 싶었고요.


그리스인이 오뒷세우스 이야기를 왜 만들었을까요? 사실 세상에 낙원이 없잖아요. 모든 인생은 저마다의 이유로 고단하고요. 그리스인들도 그걸 안 거죠. 오뒷세우스의 병사가 외눈박이 거인(폴리페모스)한테 씹어 먹히잖아요. 그런 일도 결국 지금 일어나는 일과 다르지 않거든요. 친구가 노동 현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었는데 아무 보상도 못 받아요. 이게 외눈박이 거인이 씹어먹는 거랑 뭐가 달라요. 어쩌면 더 잔혹하죠.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욕만 할 수는 없잖아요. 이겨내는 힘을 길러야죠. 그래서 그리스인들이 오뒷세우스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누구의 인생도 줄곧 평탄하지는 않습니다. 저에게도 때때로 견디기 힘든 고비가 찾아왔어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아무리 나아가도 빛 한 줄기 보이지 않을 때면 마음이 무너지고는 했습니다. 나의 노력과 가족들의 고생마저 물거품이 되면 어떡하나 덜컥 겁이 났지요. 그럴 때면 저는 『오뒷세이아』를 꺼내들었습니다. 오뒷세우스는 영원하고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아프면서 고통스럽고 시시각각 고민에 휩싸이는 인간의 삶을 향해 스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마저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지금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더욱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지요.(132쪽)

 

햄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를 ‘있느냐 없느냐’로 재해석한 대목도 좋았어요. tvN <책 읽어드립니다>에서도 언급하셨는데 결국 ‘있음’과 ‘없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일단 진위를 살펴봐야 해요. 햄릿의 고민은 이거였어요.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서 삼촌 클로우디스에게 복수하고 싶은데 삼촌이 지금 회개 기도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죽이면 천당 갈 것 같은 거예요. 자기 아버지는 죄가 많은 상태로 독살당해서 혼령이 되어 지옥 부근을 돌고 있는데 삼촌이 천국 가면 그건 복수가 아니잖아요. 삼촌이 죄를 짓고 그 죄를 씻을 수 없는 순간에 죽여야 한다고 결심해요. 이런 고민을 하면서 던지는 질문이 ‘있음이냐 없음이냐(to be or not to be)’예요. 햄릿의 아버지는 혼령이잖아요. 죽었으나 어떤 상태로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으면 정말 없어지는 건가?’ ‘그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있다면 복수가 달라져야 하는데?’ 하고 고민한 거죠. 여기서 우리는 선택하기 전에 존재하는 게 무엇이고, 산다는 게 무엇인지, 죽으면 정말 없어지는 건지 등을 질문하게 되고요.

 

오이디푸스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선택의 문제로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오이디푸스 이야기였어요. 오이디푸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거라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잖아요. 학생들에게 오이디푸스를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어요. 한 마디로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지, 아니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건지 물은 거죠. 한 학생이 오이디푸스는 결국 운명에 따라 살았지만 피하려고 노력했다는 거예요.

 

운명을 대하는 태도, 방식을 선택했다는 거죠?


그렇죠. 그 친구의 결론은 ‘운명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운명을 대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 운명을 대하는 방식에서 인간은 한없이 자유롭다. 멋있죠? 제자한테 한 수 배웠어요.

 

흔히 ‘이성’이나 ‘사유’를 인간의 조건이라고 하는데 이게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이 지점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생각하게 돼요. 이런 질문에 대한 힌트도 고전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맞아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두고 우리는 ‘인간답다’라고 하죠.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지점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생각해볼 문제예요. 심각한 지적 장애가 있거나 식물인간이 된 사람은 인간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데… 답을 가진 고전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다움을 물었던 책을 찾아야겠죠. 고전이 고전이라 불리는 이유도 질문 때문이에요.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가’이고요. 답은 틀릴 수 있지만, 질문은 틀리지 않거든요.
 

 

 

 


 

 

천년의 수업김헌 저 | 다산초당
‘나는 누구인가’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있을까’ 등 9가지 거대한 문을 통과하여 일상의 새로운 발견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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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미경 “단단하게 쌓아올린 일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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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히 묶은 스카프와 바른 자세. 신미경 작가의 첫인상은 ‘잘 정돈된 사람’이었다. 한때 쇼퍼홀릭이었던 그는 너무 많이 소유해서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고, 미니멀 라이프로 방향을 틀었다. 7년간 일상을 바꾼 끝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를 통해, 그는 좋아하는 것만 남은 ‘최소 생활’에 대해 말한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 오래됐지만 편안한 니트, 가벼운 식사. 신미경 작가는 이 모든 사소한 선택들이 ‘진짜 나로 살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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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가뿐한 삶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에서 비우는 삶을 말하셨다면, 이번엔 ‘취향’에 대한 이야기예요. 출간 후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완료 보고서를 제출하는 기분이었어요. (웃음) 그간 미니멀 라이프 주제로 책을 써왔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싶었거든요. 이번 책을 완성하고, 이제 더 비울 건 없겠구나 했어요. ‘어떻게 살까’ 하는 고민은 끝난 거죠.

 

표지가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것이 다 들어가 있다고요.


표지 일러스트를 보고 놀랐어요. 디자이너분과 상의하지 않았는데도, 너무 제 모습과 비슷한 거예요. 자세히 보시면, 이불, 책, 잠옷까지 제 취향의 것들이 다 들어가 있어요. 심지어 겨우 내 회색 양말을 신고 살았는데, 캐릭터도 같은 것을 신고 있어요. 우연의 일치가 참 재미있었죠.

 

7년 동안 미니멀리스트 생활로 바꿔오셨어요. 어떤 변화를 체감하세요?


막연한 불안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에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푸는 방법은 몰라 물건 사는 것으로 해소했거든요. 생활을 조금씩 비워나가다 보니 이제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어요.

 

원래 구두만 100켤레 넘게 가지고 있었던 쇼퍼홀릭이셨다고요.


예전에는 쇼핑을 통해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문득 공허한 마음이 찾아오더라고요.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다르게 사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적게 소유하는 삶을 권하는 책을 많이 읽었고, 어렵지만 조금씩 실천하기 시작했죠. 지금 갖고 있는 대부분이 7년 전 그대로예요. 제게 필요한 것만 남게 된 거죠.

 

“산다는 건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셨어요. ‘균형’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균형이 깨진 삶을 살아봤기 때문 아닐까요? (웃음) 예전에는 일이 1순위였어요. 잠을 줄여가며 일했고, 나머지 생활은 전부 희생했죠. 그러다 삶이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을 했어요. 실제로 몸이 아프고, 통장에 구멍이 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때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생활, 건강, 일, 지성, 감성 5가지를 모두 챙기려고 해요. 이 요소들을 다 챙겨야 생활이 잘 굴러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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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에 대한 책이면 물건에서 시작할 것 같은데, 생활 중에서도 기본인 ‘잠’에서 시작해요.


숙면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하는 것이 ‘잠’이거든요. 옛날에는 중요성을 몰랐어요. 덜 자더라도,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지 생각했죠. 그런데 잠을 줄이면 오히려 낮 동안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잠을 충분히 자고, 집중해서 일을 하면 충분히 결과물이 괜찮은 거예요. 그걸 알고 나서부터 숙면을 챙기게 됐어요.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와요. 한때 구두에 대한 책을 내실 정도로 유행에 민감하셨는데요.


지금은 유행보다는 ‘나에게 편한 것’을 우선시해요. 패션을 전공했고 유행에 민감한 직업군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패션 아이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때는 스스로를 포장해서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내적 자신감이 없으니 겉모습을 꾸몄던 거죠.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게 더 좋아요. 옷도 결국 몸에 편한 걸 찾게 돼요. 많은 걸 사기보다 잘 관리하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입을 수 있는 걸 선택하고요.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서, 이 사람처럼 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없어요.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이 있으니까요. 제 의도도 ‘나처럼 살아라’라는 게 아니라,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전부 참고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시기보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예전에는 미니멀 라이프 책들을 읽으며 ‘나는 이렇게 못 살 거야’ 생각했어요. 참고할 만한 팁을 취사 선택해서 천천히 바꾼 끝에, 최적화된 삶의 형태를 발견하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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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솔직함

 

블로그와 에세이를 통해 일상을 세세하게 기록하는데, 주로 언제 글을 쓰시나요?


매일 아침, 습관처럼 써요. 회사원일 때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했어요. 전작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는 회사를 다니면서 쓴 책이에요. 아침에는 휴대폰 메모장에 구성을 잡고, 밤에는 살을 입히고 글을 다듬었죠. 하루에 한 편이라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그게 습관이 되자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었어요. 프리랜서가 된 지금은, 오전 2시간을 집필 시간으로 정했어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끈기로 쓰는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닐 때는 왜 글을 쓰셨나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썼어요. 회사원은 일할 때는 감정을 숨겨야 하잖아요. 남한테 시시콜콜 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그래서 하루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결국, 제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쓴 거죠.

 

무엇을 쓸 지는 그날 정하시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정해놓은 목차를 따라 글을 써 나가요. 글이 도저히 안 써질 때도 글감을 찾거나 관련 자료를 수집해요. 가장 중요한 건 매일 쓰는 거예요. 글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오늘 썼다는 것 자체가 다음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지만, 작심삼일로 끝나요.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팁을 주신다면요?


사소한 것도 기록하는 걸 추천해요. 저 역시 작심삼일형 인간이라 늘 미루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기록으로 남기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돼서 꾸준히 하게 돼요. 습관으로 만들고픈 행동을 적고 오늘도 잘 했는지 표에 체크해요. 그렇게 매일 하다 보면, 저항감이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하는 단계가 와요. 오히려 안 하면 뭔가 빠진 느낌이 드는 거죠. 기록의 또 다른 장점은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거예요. 스스로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고 목표를 설정할 수도 있고요. 보통 회사 업무는 표로 정리하고 로드맵도 만들잖아요. 회사에서 배운 방법을 저의 일상에도 적용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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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솔직함’이에요. 꾸미거나 숨기려 하면, 글이 재미없어지더라고요. 억지로 포장한 글은 읽는 사람도 알아봐요. 반대로 즐겁게 쓴 글은 다른 사람이 봐도 좋다고 해요. 그런 글은 다시 읽어도 재미있죠. 예전에 쓴 글을 제가 쓴 것인지도 모르고 푹 빠져 읽을 때가 있어요. ‘진짜 내가 쓴 거야?’ 놀라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정말 신나죠.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신미경 저 | 상상출판
베스트셀러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신미경 작가의 신작. 전작에서 건강하고 심플한 일상으로 ‘단단한 나’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최소한의 규모로 ‘적지만 바르게’ 꾸리는 최소 취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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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연준 시인 “읽는 사람이 잘 따라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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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산문집을 동시 출간했다. 『모월모일』 은 신작, 『소란』은 6년만의 개정판. “다소 바쁜 시간을 보냈겠다”고 물으니, 박연준 시인은 책을 만든 편집자에게 공을 돌렸다. 시인은 산문을 쓸 때 독자를 의식한다. “잘 보이고 싶은, 모르는 사람”을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쓴다. 잘 보이고 싶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풀고, 모르는 사람이기에 이야기를 비약하거나 넘겨짚는 실수를 덜한다. 작가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독자’가 많이 언급된 건, 박연준 시인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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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들어있는 평범한 이야기

 

『소란』 이야기부터 여쭐게요. 굉장히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이잖아요. 계약 기간이 끝나고 잠시 절판된 후 새 표지로 나왔어요. 오래 전 쓴 글을 다시 읽은 기분이 어땠나요?

 

햇수로는 7년 전, 아니 더 오래된 글들도 많아서 다시 들여다보니 부끄럽더라고요. 미숙한 생각들도 보이고, 문장도 마음에 안 들고. ‘왜 이런 얘기까지 했을까!’ 혼자 진땀을 흘리기도 했어요. ‘난다’의 김민정 시인, 유성원 편집자와 상의해서 제가 빼고 싶은 글들은 빼고, 다듬어서 내놓았어요. 오래 전에 낸 책을 다시 보는 건 늘 곤혹스러워요. 작가도 계속 자라거든요. 꾸준히 성장해요. 이전에 썼던 말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말하는 방식이나 세상을 보는 태도 등이 계속 달라지는 거죠. 결과적으로 두 권 다 마음에 들게 잘 나왔어요.

 

『모월모일』 은 근 2년간 연재하며 써온 산문이에요.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가 워낙 꼼꼼하게 일하는 분이라 저는 시키는 대로 착착 일을 하면 됐어요.

 

새 책이 나면 꼭 하는 의식 같은 건 없나요?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일 같은.

 

딱히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새 책이 왔으니 만져보고 냄새 맡고, 살펴보죠. 예쁘게 나왔는지, 잘못 된 건 없는지. 출간 파티 같은 것도 안 해요. 쓴 책은 다시 읽어보지 않기 때문에 처음 받은 날은 표1부터 표4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만져본 후, 일독을 해요. 그 다음 SNS에 올려 독자들에게 선보이죠.  

 

『소란』 개정판의 ‘작가의 말’을 읽다가 밑줄을 굵게 그은 문장이 있어요. “당시 겨우 시집 두 권을 낸, 무지렁이가 쓴 글을 사랑해준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분들께 코가 무릎에 닿도록 허리를 구부려 인사드립니다. 당신들의 우정,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이 저를 쓰는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코가 무릎에 닿도록”이라니요! 시인님의 진심을 알기에, 무척 감동했어요.

 

정말이에요. “코가 무릎에 닿도록” 공손히, 마음을 다해 인사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야겠네요? (웃음) 『소란』은 제가 시집 두 권을 낸 신인 때 처음 낸 책이에요. 그때까지 저는 등단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낭독회 한 번 한 적이 없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어요. 친하게 지내는 시인도 많지 않았고요. 물론 작품 발표는 활발히 했기 때문에, 소수의 독자들이 제 시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경우가 왕왕 있었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시인은 아니였죠. 2007년에 첫 시집이 나오고 <중앙일보>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는데, 그것도 거절했을 정도로 활동을 안 했어요.

 

정말요? 대개 거절하는 경우가 없을 텐데요. (웃음)

 

부끄러움이 많았고 저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2014년에 『소란』이 나왔을 때 그냥 조용히 지나갈 줄 알았는데, 아주 느린 속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있었어요. 책이 조용히, 5년 동안 꾸준히 팔렸어요. 어떤 홍보도 안 했는데, 독자들이 다른 독자에게 소문을 내주더라고요. 많은 분들이『소란』을 좋아해주셨어요. 제게 만약 인지도가 있다면, ‘테트리스’처럼 쌓아온 인지도라고 생각해요. 순전히 독자들이 만들어준 거고, 그들이 저를 호명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독자들에게 깊은 우정을 느끼는데, 특히 『소란』 독자들은 제게 (실제로) 특별한 이야기를 많이 해준 분들이에요.

 

박연준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마치 잘 깎인 연필로 쓴 글 같거든요? 날카로운 펜촉은 아니죠. 하지만 뭉툭한 연필은 아니고요. 산문을 쓸 때 어떤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나요?

 

하나마나한 이야기, 피상적인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산문을 쓸 땐 생각을 많이 해요. 저쪽에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건네 줄까, 고민하죠. 무엇이든 줘야하는데 평범한 이야기라도 뭐가 들어있는 걸 주고 싶다고 생각하죠. 문장을 아주 많이 고치는데, 그건 독자들을 피로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예요. 빛나는 문장을 써야한다는 욕심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한 표현, 견고한 문장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아무튼 계속 밖을 주시해요. 읽는 사람이 잘 따라오는지. 시 쓰기와는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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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밖에 두는 글쓰기


『모월모일』 은 직접 제목을 지으셨다고요.

 

이 원고를 기획할 때 가능한 작은 이야기, 누구나 겪는 이야기,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쓰려고 작정을 했었어요. 그때 노트를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있네요. 저는 책을 쓰기 전에 늘 혼자 이미지를 생각하고 기획해요. “작고, 깊고, 따뜻한 일상을 쓸 것. 단단하게 쓸 것. 동시에 말랑하며 가볍고, 머무르게 할 것. 평범할 것! 특별할 것!” 노트에 쓰고 싶은 소재를 가득 적어 놓았죠. 겨울밤, 식물과의 대화, 시 창작 수업에서 우리가 나누는 것, 두통과 명상, 싸운 친구에게 문자하기 등등… 저는 언제나 쓸 수 없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일’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해요. 『모월모일』 은 어떤 날들, 평범한 나날에 우리가 겪는 일들의 귀함을 생각하며 쓴 글이에요. 남편과 책 제목을 상의하다 『모월모일』 이 좋겠다고 같이 결정했어요.

 

『월간 채널예스』에서 ‘박연준의 특별한 평범함’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이 많이 들어갔어요. 이 코너가 첫 연재셨다고요. 

 

이따금 산문 청탁은 있었지만, ‘연재’는 정말 처음이었어요. 『월간 채널예스』에서 첫 연재를 하게 되어 얼마나 떨리는 마음으로 행복해하며 썼는지! 1년 반 동안 격주로 연재하며, 후반부엔 조금 지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행복했어요. 첫 연재라서 잘하고 싶었고, 또 제가 팟캐스트 <책읽아웃> 열혈 팬인데 『월간 채널예스』도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잡지잖아요. 잡지와 팟캐스트를 만드시는 분들도 같고. 연재 목록 쌓일 때마다 애정을 갖고 사이트 들어가서 보고 또 보고 했어요. 신기한 게 『월간 채널예스』에 연재한 뒤로, 산문 연재를 제안하는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이게 다 『월간 채널예스』로 스타트를 잘 끊어서라고 생각해요. 글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잘 알거든요. 잘 써야 ‘다음’이 있다는 걸요. 그걸 알기에 늘 노력해요.

 

두 산문집을 함께 읽으면, 『모월모일』 이 조금 명랑한 느낌이 들어요.

 

아마 자라서일 거예요. 성장해서요. 성장은 어떤 식으로든 ‘여유’를 갖게 하잖아요. 저는 원래 명랑한 기운을 가진 사람인데, 20대 때는 여러 가지로 여유가 없어서 ‘명랑’을 사용할 기회가 없었어요. 특히 글에서는요. 제가 ‘소란’의 개정판 서문에도 썼는데, 『소란』을 쓰고 난 이후에 삶을 더 긍정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많이 바뀌었죠.

 

『모월모일』  177쪽에 ‘새로 갖고 싶은 취미’가 나오는데,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추려서 인물 사진을 찍고 싶으시다고요. 왜 일까요?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아시면서!

 

알죠. (웃음)

 

우리가 정과 사랑이 많은 만큼 까칠함도 꽤나 지니지 않았습니까? (웃음) 싫어하는 타입, 싫어하는 사람 많아요. 좋은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싫은 데도 이유가 없죠. 언제 인물 사진만, 한 몇 달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의 얼굴을 찍고 바라보면, 내가 이 사람을 왜 좋아하고 왜 싫어하는지 보일 것 같기도 하고요. 사진을 찍고 나서, 마음이 이리저리 바뀔 것도 같고요.

 

저도 그 취미를 언젠가 따라해보고 싶네요. 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어요. 스승님께서 “시를 빤스처럼 항상 입고 있어야 돼”라고 말씀하셨다고요. 아,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 것 같은데요. (웃음)

 

김사인 시인께서 10여 년 전 불쑥 전화해서 한 말씀이었는데요. 사실 속으로는 “자꾸 노팬티가 되는 걸 어떡해요!” 투덜거리기도 했어요. 시가 미치도록 좋다가, 또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거든요. 꼭 부부 같아요. 다른 시인들도 대체로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시적 자아라…. 글쎄요, 시는 제 성격인 것 같아요. 저랑 잘 맞아요. 다르게 보고 다르게 말하고 싶어 하는 심리, 비유 속으로 숨기, 설명하지 않으면서 표현하기, 이런 방식이 즐거워요. 좋은 시를 한 편 썼을 때, ‘그와 비슷한 정도의 황홀감’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 같아요. 그 자체로 충만해서, 정말 부자가 된 것 같아요.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기분 같달까. 뭔가 약장수 같은 표현이네요? (웃음) 산문을 아무리 멋지게 쓴다 해도 느낄 수 없는 기분이에요. 

 

『소란』  61쪽에 “실제로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럼요, 시시때때로 불안하죠. 어떤 균열, 틈, 메울 수 없는 허기 같은 걸 수시로 느끼는데 그걸 표현하기엔 ‘시’라는 장르가 알맞죠. 시를 쓰고 나면, 그 불안이 가라앉아요. 메꿔지진 않는데 고요해지죠.

 

독자들의 리뷰를 찾아 보시나요?

 

부러 검색해서 찾아 읽어요. 제 책을 누가 읽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거든요. 리뷰 내용에 일희일비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담담히 읽어내요. 그런데 얼마 전 어떤 리뷰를 읽는데, ‘소란’에서 파닥이고 슬퍼했던 작가가 성장해서 『모월모일』 처럼 단단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니 뭉클했다는 내용을 보았어요. 그때 저도 새삼 울컥하더라고요. 독자들과 같이 성장하고, 나이 든다고 생각해요.

 

시인님은 내향형 인간인가요?

 

맞아요. 사람을 만나고 나면 피로해서 쉬어야 하고, 낯선 사람과 만나야 할 일이 있을 땐 긴장해요. 나서거나 주목받는 일을 싫어하고, 단체 활동을 안 좋아해요.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일도 거의 없고요. 북 토크나 강연 자리에 설 때면 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걸 느껴요. 그런데 또 친한 사람들 앞에선 까불고, 장난치고, 명랑하거든요? 어떤 일을 곱씹어 생각하거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쌓아두며 기억하는 성격은 또 아니예요. 화가 나면 불 같이 화를 내고, 그 다음날 쉽게 잊어요. 몇 년 지나면 잘 기억도 못하고요. 그럴 땐 단순한 바보인가 생각도 하죠. 저도 저를 모르겠네요. (웃음) 분명한 건 부끄러움이 많다는 거예요.

 

예전에 글쓰기 수업을 가르치신 적이 있으시잖아요. 좋은 산문을 쓰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좋은 산문은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을 갖게 만드는 산문 같아요. 글의 내용이나 수준에 상관 없이요. 그래서 저는 독자를 ‘잘보이고 싶은, 모르는 사람’으로 상정하고 글을 써요. 잘보이고 싶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풀어놓게 되고, 모르는 사람이기에 이야기를 비약하거나 넘겨짚는 실수를 덜 할 수 있겠죠. 매력을 유지하면서 친절해지려는 거죠. 달콤한 친절을 이야기하는 건 아녜요. 저는 습작생들에게 모호한 이야기, 겉멋이나 분위기를 피우는 문체를 지양하라고 말해요. 분위기는 쓰고 나서 (저절로) 생기는 거지,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초심자들에게 권하는 산문 쓰기 방식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쓸 것, 과거의 어떤 시점을 쓴다면 ‘한번 다시 살아보듯’ 생생하게 쓸 것, 중심을 내가 아니라 밖(독자)에 두고 쓰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자의적인 글이 되지 않거든요. 매끄럽게 읽힐 때까지 문장을 여러 번 고쳐야 하고, 고칠 때 소리 내서 읽어봐야 하죠. 사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독서를 많이 한다면 저절로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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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잘 듣는 일’

 

글쓰기에 관한 책을 종종 읽으시나요?

 

아주 좋아하고, 자주 읽어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 <파리 리뷰>, 『작가란 무엇인가』이 세 권을 추천해요.

 

올해 들어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던 책은 무엇인가요?

 

미국 시인 ‘도널드 홀’의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여든 이후에 쓴 시인의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정말 좋은 책입니다.

 

책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꾸준히 그리고 더 많이 읽는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사고의 폭이 넓고요.

 

저는 독서를 ‘잘 듣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관심을 갖고 들어보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잖아요. 인간은 자기 생각만으로 성장할 수 없는 존재이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선 타인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볼 필요가 있죠. 책을 읽는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재미있잖아요. 책을 읽는 즐거움은 내밀한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이에요. 특별하죠. 

 

먼 훗날, 꼭 쓰고 싶은 책이 있나요?

 

여든이 넘었을 때 ‘짧고 진한’ 연애소설을 한 권 쓰고 싶어요. 아주 야하고, 아주 슬프게 쓸 거예요.

 

취미로 발레를 하시잖아요. 발레에 관한 에세이를 써볼 생각은 없나요?

 

몇몇 편집자분이 제안을 주시기도 했는데요. 발레하는 제 모습, 소소한 생각들을 산문집에 여러 번 쓰긴 했거든요. 책 한 권 분량을 쓸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만약 쓴다면, 아마도 시론처럼 쓰고 싶을 것 같아요. 설명하는 글이 아닌, 시적인 글이 될 텐데 아마 팔리진 않겠죠? (웃음) 아무튼 발레는 시와 결이 같아요.

 

박연준 시인의 산문을 읽으면, “따뜻하고 여리지만 어떤 면에서는 단호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시인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요? 『소란』  94쪽에 나오는 손해 보는 사람들, 좀 느린 사람일까요?

 

제가 생각해도 제게 좀 단호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화가 나면 ‘폭발’한답니다. 펑! 어리버리하고 부끄러움도 많고 허당인데, 직설적인 데가 있거든요. 호불호가 강하고, 할 말은 앞에서 하는 편이고요. 그러니 실수도 많겠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패배를 아는 사람들 같아요. 어디 다쳐본 사람, 마음 기우뚱한 구석이 있는 사. 그렇지만 꼬인 사람은 싫어요. 음지에 있어본 사람… 이를 바득바득 갈며 덤비면 이기는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굳이 안 그러고 지는 사람이 좋아요. 제가 어딘가에 썼듯이 “순하게 빛나는 사람”이요. 저는 어려움을 겪고 독해지는 사람, 인색해지는 사람이 되는 걸 경계해요. 어릴 때부터 경계했어요. 순해져야 시를 쓸 수 있거든요.

 

“순해져야 시를 쓸 수 있다”는 말, 너무 좋네요. 독자 입장에서 그런 시를 읽고 싶기도 하고요. 남편인 장석주 시인님과 2015년에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를 함께 쓰셨어요. 시인으로는 굉장히 선배시죠? 두 분은 닮은 부분이 많나요?

 

아니요. (웃음) 저희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다른 성격의 사람인데요. 다른 부부들과 사는 모습은 비슷할 거예요. 그런데 저희 남편이 몇 년 전, 쓴 책의 수가 100권을 넘겼거든요. 제가 말했죠. “여보, 한 사람이 살면서 ‘좋지 않은 책’을 100권 쓰는 일도 어려워. 그런데 당신은 (내 기준에서) 좋은 책을 100권 넘게 쓴 사람이잖아. 고생 많았어요.” 이렇게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15살 때부터 50년 동안 읽고 써온 사람을 옆에서 보는 일은 좀 숙연해지는 데가 있어요. 배우죠. 그 사람은 무언가를 불평하는 법이 없어요. 농부가 씨를 뿌리듯 글을 써요. 팔리든 안 팔리든, 계산하지 않아요. 저는 그게 좋더라고요. 단단한 사람이지만, 속은 여리고 순한 사람인데 사실 저도 그걸 2,3년 전에야 안 것 같아요. 이 사람의 순함을요. 안다고 했지만 ‘이해’는 또 어려운 일이겠죠. 그냥 옆에서 같이 살면서,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가 좋은 것 같아요. 사람을 오래 보고 사랑하는 일이 ‘큰 공부’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 질문과 영 다른 대답을 한 것 같네요? (웃음) 저, 왜 이럴까요?

 

하하, 그것이 매력이죠. 박연준 시인의 매력!


(웃음)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되기가 참 힘들어요.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시인’의 정체성으로 사는 작가의 산문집이 시집보다 더 인기를 얻으면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해요.

 

속상하다기보다 안타까울 땐 있어요. 그런데 시라는 장르가 ‘대중성’을 갖기 어렵잖아요. 소수의 스타 시인이 탄생할 순 있어도, 몇 만 부 이상 팔리는 시집을 가진 인기 시인이 한 시대에 수두룩이 존재할 순 없거든요. 오죽하면 조지 오웰이 농담조로 이렇게 썼어요.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가장 빨리 해산시키려면 시를 읽어주면 된다고요. 시는 어려운 장르거든요. 발레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 수가 적듯이, 시를 읽고 향유하는 수도 적을 수밖에 없어요. 시는 소수의 고급 독자들을 위한 장르니까요. 저도 이해해요. 그러나 독자 분들이 부디 ‘한국시’를 관심과 사랑으로 들여다 봐주면 좋겠어요.

 

지금 시에 관한 산문을 쓰고 계시죠? 어떤 글인가요?

 

시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으므로 ‘시에 관한 우아한 실용서’를 쓰고 있어요. 반 즈음 쓴 것 같아요. 시를 전공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적인 책이 아니고, 시론서도 아니에요. 시를 모르지만 궁금증은 갖고 있는 사람들, 궁금하지만 선뜻 읽어보거나 써보는 일은 어려워하는 사람을 위한 글이 될 거예요.

 

시인님은 갖고 싶은 게 있나요? 물건 말고 기질이라든지, 능력이라든지.

 

음, 자신감이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두려움을 느껴요.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고요.  일단 시작을 하면, 의지를 갖고 계속 해나가는데 시작이 어려워요. 그래서 훈련해요. 내 안에 힘이 있고, 그걸 글 속에서 발휘할 수 있다, 믿어야 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죠.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 이 생각나네요? (웃음) 가질 수 있다면 자신감, 그리고 긍정하는 마음을 갖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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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은 이거예요. 『소란』  139쪽에 나오는 문장 “끝내 시 속에서 인생을 탕진하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같나요?

 

네, 그럼요. 지금도 유효해요. 그건 제 목표이기도 해요. 언젠가 두려워져서 시 밖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제가 스스로에게 엄포를 놓듯, 주문을 걸어놓은 문장이거든요.

 

 

 

 

 


 

 

모월모일박연준 저 | 문학동네
끔찍한 날도 좋은 날도, 찬란한 날도 울적한 날도,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도 모두 ‘모월모일’이 아닐지. “빛나고 싶은 적 많았으나 빛나지 못한 순간들, 그 시간에 깃든 범상한 일들과 마음의 무늬”가 시인 특유의 깊고 섬세한 관찰을 통해 새로이 발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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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현아 “그림책 읽기는 들숨, 표현은 날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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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이현아 저자는 6년간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이어오며 학생들과 200여 권의 창작 그림책을 탄생시켰다. 『그림책 한 권의 힘』에는 이들이 걸어온 길을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는지, 그것을 끄집어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그림책 수업 매뉴얼이 담겨있다.

 

그림책을 창작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이현아 저자는 ‘자기표현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림책 수업에 있어 읽기가 들숨이라면, 표현은 날숨이다. 읽다 보면 내 안에 피어오른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어진다. 읽기와 쓰기가 들숨과 날숨처럼 건강하게 선순환 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읽기와 쓰기가 선순환 하면서 창작을 향할 때 새로운 것이 들어오고 쌓인 것은 흘러 나간다. 성장은 그 사이에서 일어난다.”

                                                                

자기표현의 경험이 어떻게 아이들을 성장시키는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현아 저자는 11년차 교사로 현재 서울홍릉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2018년에 ‘학교독서교육분야 교육부장관상’과 ‘제5회 미래교육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아이스크림 원격교육연수원에서 직무연수 강좌 ‘읽고 쓰는 만드는 그림책 수업’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강연을 통해 선생님들과 만나고 있다. EBS <미래교육 플러스>, <교육현장 속으로> 등의 프로그램에서 독서 교육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좋아서 하는 그림책 연구회’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한 달에 한 권씩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예스24 어른의 그림책장’ 코너에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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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이들 안에 이야기가 있어요


처음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아이들의 말, 글, 그림이 사라져버리는 게 안타까우셨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아이들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 같아요. 자신이 어제 썼던 글, 그렸던 그림에 미련을 갖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것들이 그냥 사라지는 게 되게 안타까웠어요. 저는 그걸 붙잡고 싶었고, 잘 모아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어떤 맥락이 있는데? 엮으면 하나의 작품이 되겠는데?’ 하는 아이디어가 생겨났고요. 우리가 좋은 영화나 책을 보면 같이 보자고 알려주고 싶잖아요. 저도 주변의 누구나 붙잡고 아이들이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림책이 작은 미술관이라고 생각해요. 이 안에 글과 그림이 다 들어가고, 움직일 수 있잖아요.

 

수업 시간 외에도 아이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글과 그림을 보여줬다면서요?


조금만 관심을 보여줘도 아이들이 계속 가지고 와요. 그리고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터는 빨리 책을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계속 가지고 오고요. 아이들이 온라인 카페 같은 데에 자신의 진짜 마음을 담아서 글을 쓴다고 하는데, 교실에서는 으레 국어시간에 쓸 법한 글만 쓰고 있는 거예요

 

‘학교용’ 글이 따로 있는 거죠.


그렇죠. ‘누가 수업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써요’라는 말을 듣기도 하면서, 학교에서도 솔직한 마음을 담아서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가 그런 경험을 했겠지만, 학교에서는 8시부터 2시 반까지 ‘학교 모드’로 경직돼 있다가 그 이후에 내 세계를 찾잖아요. 12년을 그렇게 살아야 되니까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저도 괴리된 느낌이 너무 심했어요. ‘어떻게 하면 그걸 교실로 가져오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아이들 마음에 있는 ‘진짜’ 이야기가 마냥 아름답고 귀엽기만 한 건 아니었죠?


맞아요. 그게 의외였어요. 처음에 만든 그림책이 『여우의 꿈』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나온 것도 너무 신기하고 벅찼어요. 그런데 제가 학교를 옮기고 5학년 아이들을 만나면서 기대한 바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던 거예요. 세 번째로 만든 책이 『학사모의 질문』이었는데 사포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저한테도 되게 의미가 큰 작품이었고 ‘내가 아이들에 대해서 잘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사포 세대라는 단어도 모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미 저보다 많이 자료를 접하고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고, 온도차를 느끼고 있는 거예요. 그 단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저도 온도차를 가지고 아이들을 바라봤던 거죠. 『학사모의 질문』을 만들면서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굉장히 많이 달라졌어요. 한 명 한 명 발견하는 기쁨과 놀라움이 되게 컸었어요.

 

그 책들이 또 다른 창작을 이끌어내기도 했어요.


만약에 『여우의 꿈』을 샘플로 제시했으면 아이들이 동화 비슷한 걸 만들어냈을 거예요. 그런데 『학사모의 질문』, 『솎아내기』 같은 작품들이나, 또는 본받을 만한 어른의 얼굴이 없어서 얼굴 없는 아이에 대해서 쓴 이야기를 보여주니까 ‘저런 걸 써도 되나?’ 하면서 그냥 생각만 하고 말 법한 이야기도 가지고 와서 나누게 되는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게 나오는 게 아니라 징검다리처럼 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있던 사례들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갖고 있던 세계들이 점점 연결되면서 ‘여기에서 내 이야기를 해도 이상한 아이 취급 당하지 않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기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다양한 책의 형태 중에서 ‘그림책’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그림책이라는 장르의 매력에 눈뜨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저도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많은 이야기를 함축해서 하나의 장면에 담아야 되더라고요. 글로 쓰면 입체감이 살아나지 않고 밋밋하고 싱거워지는 느낌이었어요. ‘글과 그림이 서로 주고받는 의미를 잘 살리면 훨씬 더 입체적으로 살아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막연히 했어요. 그렇지만 처음에는 엄두를 못 냈죠. 아이들이 그림책을 쓴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여우의 꿈』을 만들면서 ‘이미 아이들 안에 이야기가 있구나’ 싶었어요. 제가 뭘 가르쳐서 서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부분이 크다기보다는, 이미 아이들 안에 있는 것들이 종이 위에 담기는 느낌이었어요.

 

첫 창작 그림책 『여우의 꿈』의 경우, 아이들과 점심시간에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만드셨다고요.


아이들과 그림 그리는 일에 재미가 붙었을 때였어요.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일과 교실이 분리돼 있던 때도 있었는데요. 책을 읽다가 ‘내 집 앞마당 텃밭을 쑥대밭으로 두고서, 뒤뜰에서 가꾸는 장미 한 송이를 애지중지하는 삶’에 대한 구절을 봤어요. 앞마당의 텃밭이 내 생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중요한 건데, 그걸 더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걸 교실로 가지고 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과 캔버스에 그림 그리기를 해본 거예요. 유화 물감은 마르기 어려우니까 아크릴 물감으로 해보고, 나이프가 없으니까 아이스크림 막대로 해보고요. 제가 좋아하는 걸 수업에 접목해서 하니까 제 눈빛도 달라지고, 아이들도 너무 즐겁게 참여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알아가게 됐어요.

 

많은 활동 중에 하나가 그림이었나요?


제가 배웠던 플루트를 가지고 오기도 했고요. 아이들이 자기가 연주할 수 있는 리코더나 플루트를 가지고 와서 쉬운 동요부터 같이 연주해보고 그랬어요. 그런 재미에 빠져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림이었어요. 그림 좋아하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림책을 보고 그리기 시작했는데, 결국 자기만의 색이 있으니까 그리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거예요. ‘선생님, 이 여우는 산을 찾아가는 여우예요’ 하면 제가 ‘왜 산을 찾아가는데?’ 하고 묻고, 아이가 그리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미 아이 안에 서사가 있고 이야기 한 편이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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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먼저 해야 돼요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는 같이 그림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나요?


맞아요. 제가 아이스크림 연수원에서 직무연수를 하면서도 말씀드렸던 게, 절반은 감상 활동이라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림책 한 권의 힘』 의 2장에 나오는 활동들이 있어요. ‘오늘 너는 무슨 색이니?’라고 묻기도 하고 ‘쫌 이상한 자기소개’를 하기도 해요.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 중에 『그거 알아? 너만 그런 건 아냐!』가 있는데, 사실 그런 그림책 창작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열된 거거든요. 하나의 활동을 가지고 소소한 결과물로 엮어본 거예요. 먼저 다양한 활동을 충분히 해보는 게 정말 정말 중요해요. 그래야 아이들이 감각과 피부로 그림책이 어떤 건지를 느낀단 말이에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창작까지 연결돼요. 그래서 1학기 동안 감상 활동에만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을 따라서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해봤는데, 생각처럼 안 돼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아이들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온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제가 하고 있는 활동의 근간이 되는 것이 ‘은유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거예요. 그 활동이 정말 중요해요. 그 과정이 없이 진행하면 우리가 흔히 ‘그림책 써야지’ 하고 생각했을 때 나오는 서사를 아이들이 쓰거든요. ‘은유 거울’을 통해서 나를 하나의 사물에 빗대어 보는 활동을 충분히 해야 돼요. 그리고 교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돼요. 선생님이 먼저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슬금 슬금 자기 이야기를 꺼내거든요. 예를 들어 자신을 ‘솎아내지는 작은 새싹’에 비유한 아이가 있으면 ‘나는 솎아내어질까 봐 불안한 작은 새싹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빙산의 한 조각만을 이야기한 거예요. 그 밑에 더 많은 이야기가 이미 담겨 있거든요. 그걸 어떻게 글과 그림으로 풀어낼 것인지, 한 사람 한 사람 짚어내 가면서 나아가야 돼요. 아무 이유도 없이 수많은 사물 중에서 한 사물에 자신을 비추어서 이야기하지는 않거든요.

 

그림에 자신이 없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그림책을 만들자고 하면 선뜻 나서지 않을 텐데, 선생님은 ‘그림을 못 그려도, 그림을 안 그려도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자유롭게 도구나 재료를 선택하게 하시고요.


제가 나이프로 유화를 그리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도구를 바꾸니까 안 되는 게 되는구나’였어요. ‘왜 꼭 붓으로 해야 하지? 나이프로 해도 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아이들한테도 ‘왜 꼭 그려야 돼? 오려 붙이는 건 할 수 있잖아, 사진을 찍을 수도 있잖아’라고 해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가 닿는가의 문제이지, 그림을 매끈하게 잘 그리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그림보다 더 좋고 쉬운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쓸 수 있는 거죠. 저는 아직도 ‘어떻게 하면 그림에 자신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독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가’가 큰 고민이고 화두예요. 그림에 자신감이 없다고 해서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눈에 안 보이는 이야기를 어떻게 형상화해서 독자에게 가 닿게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그게 꼭 수채화 붓이나 연필로 그리는 그림일 필요는 없는 거죠.

 

아이들이 창작한 그림책에 고유한 도서번호(ISBN)을 부여해주시잖아요. 어엿한 ‘어린이작가’로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거죠?


지금은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없는데, 초반에는 그림책을 가지고 학교 안팎을 다니면서 ‘학교에서 창작 교육이 되나요? 그런 게 있나요?’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어요. ‘학교에 기대가 없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창작의 주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수용자로만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작해 놓은 것을 그냥 집어넣어주면 배우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저는 교육 자체가 아이들 안에 있는 걸 꺼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미 아이들 안에 있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아, 창문을 열고 내가 바깥에 외치지 않으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건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책이라는 그릇이 굉장히 유연하니까, 어떻게든 이 그릇에 잘 담아서 창문을 열고 세상에 흘려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창문을 열고 외치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실제로 그걸 보고 너무 놀라워하시고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나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고 하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고생했던 게 눈 녹듯이 씻어지죠. 이게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의미 부여가 내 안에 생기면 멈추지 않고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통로 현아쌤’으로 불리시잖아요. 아이들에게 책을 만들어주시는 출판사의 이름도 ‘교육미술관 통로’예요. 같은 이름의 사이트에서 아이들의 그림책을 전시하고 계시고요. ‘통로’는 어떤 의미인가요?


ISBN을 등록하러 구청에 갔더니 출판사 이름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순간에 이름을 묻는 걸 처음 경험했어요. 항상 ‘5학년 5반 선생님’, ‘2학년 3반 선생님’으로 이름이 정해져 있었고 다른 이름이 필요하거나 누가 물어보지 않았거든요. 그때 이름의 부재를 처음 깨달은 거예요. 일단 ‘도서출판 Lee’로 쓰고 돌아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교육 철학이 없는 사람인가?’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있었는데 한 번도 그걸 정돈해서 자리매김할 계기가 없었던 것 같았어요. 그걸 이 기회에 해보자, 해서 이름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학교가 작은 유리온실 같다’는 생각이 드신 거예요?


학교 안과 밖의 온도차가 있고 가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8시 반부터 2시 반까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여주는 임시적인 모습만 만나고, 그 이후의 유리 벽 바깥에 있는 진짜 삶에 있어서는 제일 먼 사람인 것 같았어요. 매일 아이들을 만나는데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그 아이러니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소통하다 보면 ‘그건 책 속에나 있는 이야기잖아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거든요. ‘그림책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저한테 되게 큰 화두 중에 하나였어요. 책으로 아이들 삶에 가 닿을 수 없다면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건 뭐지? 아이의 삶은 요동치는 데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유리 덮개 안에 들어있는 느낌이었어요.

 

유리 온실을 ‘통로’로 바꾸고 싶으셨겠네요.


저는 ‘통로’라고 하면 위아래를 연결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요. ‘내가 뚜껑을 열면 이걸 흘러가게 하는 통로의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 도구가 뭘까, 무엇을 통해서 이 뚜껑을 열면 아이들한테 흘러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때 제가 잡은 것이 ‘자기표현’이었죠. 그림책도 좋아하지만 사실 그림책은 딛고 가는 거고, 자기표현을 하고 싶은 거거든요. 텍스트는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소설, 시가 될 수도 있고 되게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그림책이 너무 좋은 그릇이고 많은 걸 담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에 지금 많이 쓰는 거고요. 제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 다 자기표현이에요. 자기표현을 통해서 나의 언어로 나를 표현하고 들여다보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나를 만나서 그 경험을 한 해라도 할 수 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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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표현의 경험


학교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림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고요.


그림책 안에는 너무나 고결하고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가 담겨 있는데, 아이들의 실상적인 속마음을 들으면 ‘이게 가 닿을까’ 싶은 거예요. 그냥 허공에 흩어져버리는 말로 끝나버리는 거예요. 유리 벽에 창문이 닫힌 느낌이라고 할까요. 실제와는 괴리된. 그렇지만 콩나물 시루에 물이 다 흘러나간다고 해서 그 물의 힘을 믿지 않으면 아이가 자랄 수 없잖아요. 흘러나가는 그 물을 가지고 콩나물이 자라잖아요. 물을 안 주면 말라 죽잖아요. 저는 그걸 항상 떠올리거든요. 이게 다 흘러나가는 것 같고 소용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을 내가 믿어야 한다, 그래야 밀고 나갈 수 있다’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지로 붓고 또 붓는 거예요. 이게 소용없는 것 같아도 단 한 명이라도 여기에서 통찰을 얻고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걸, 내가 스스로 믿고 나아가야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지치지 않게끔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더라고요. 아이들이 마음을 보여주고 조금씩 변화되는 순간들이. 그걸 믿고 가는 거죠.

 

‘자기표현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세요?


생의 주기에 따라서 중학교에 가야 되니까 가고, 대학교에 가야 되니까 가고, 결혼해야 되니까 하고... 그러면서 내 서사가 없이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가운데에서 내가 나를 표현하는 활동을 끊임없이 하면 나만의 서사를 갖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학창시절에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서 마음껏 자기표현을 해도 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한번이라도 자기표현을 해본 아이들은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경험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의 삶의 재미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재미가 다를 거잖아요.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한테 가 닿고, 거기에서 울림이 일어나는 걸 경험해본 아이는, 어떤 직업을 갖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살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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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을 읽고서 마음에 남았던 단어 중에 하나가 ‘선순환’이었어요. 그림책을 완성했다고 해서 창작 활동이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친구들과 감상을 나누고, 그 이야기가 또 책이 되고, 만들어진 책들이 학교 도서관이나 지역 도서관에 비치되면서, 계속 선순환이 일어나던데요?


맞아요. 그림책 한 권을 만드는 것도 너무 귀한데, 만든 책을 어떻게든 많은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거예요. 어른들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재밌는 게, 같이 나누면 기가 막힌 감상 시가 많이 나와요. 그걸 저 혼자 보기가 너무 벅차서 학부모님께 카톡으로 다 보내드려요. 또 이게 너무 좋은 수업 자료라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면 보여주는데 2차 3차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소개하지 않고는 혼자 감당하기 너무 아깝고 벅차서, 흘러 넘쳐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해요. 그리고 그림책을 만든 아이들과도 지금까지 계속 연락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과의 관계도 선순환인 거예요. 이 작품이 없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시, 그림이 계속 나온다는 것도 너무 경이롭고 재밌는 것 같아요.

 

실제 그림책 창작 수업에서 아이들과 같이 읽으셨던 책의 리스트가 실려 있습니다. 어떤 책부터 읽기 시작하면 좋을까요?


많은 책들이 있지만 한 권만 꼽는다면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표현한 책이거든요. 학생 작가가 쓴 책이기도 하고요. 제가 아이들한테 꼭 읽어주는 책이기도 해요. 아이들이 ‘저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구나’,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사람이 저렇게 그림책을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어요. 그리고 『소년의 마음』도 꼭 같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림책 한 권의 힘이현아 저 | 카시오페아
지난 6년간 공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아이들과 소통하며 그림책 창작 수업을 진행해온 현직 교사가 감상부터 창작에 이르는 그림책 수업의 전 과정과 자신만의 수업 노하우를 오롯이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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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미옥 시인 “내 안의 검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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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첫 시집 『온』을 내면서 ‘마음’이라는 단어가 시에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던 안미옥 시인은 3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힌트 없음』 에 ‘사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다시 발견했다.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감각하면서 썼구나” 생각했다는 안미옥 시인은 이 연결이 “아름답고, 우아한 것이 아니라 처절하고, 상처 받는 일”이라고 말한다. 무섭지만 따뜻한 연결, 각자의 처절함을 겪어낸 후에야 가능한 연결에 대해 시인은 ‘구름이 커지고 빗소리가 거세지듯이 오해가 번져가는 것을 나는 그대로 둔다’(「훼방」), ‘너는 아무도 네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파이프가 시작되는 곳」) 라고 말하며 독자의 마음 속에 마찰음을 만들어낸다. 

첫 시집을 출간하고 “공감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라는 독자의 반응에 무척 놀랐다는 그는 이토록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실은 모두가 쉽게 하지 못했던, 그러나 품고 있던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두 번째 시집에서도 힘을 냈다. 조금 더 편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 에 실린 이 말, “책에는 편향과 열정이, 그리고 저자의 결함이 담긴다”는 말에 기대어. 

“문장이 놀라운 게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와 실제로 시 안에 문장을 들여놓고 읽을 때가 달라요. 저도 독자로서 읽으면서 그 문장에 영향을 받게 돼요. 첫 시집도 그랬는데요. 시를 쓸 당시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차이가 있어요. 다른 시집을 읽을 때처럼 제 시집을 읽을 때도 그럴 수 있다는 게 놀랍죠. 물론 그 시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편안하게 읽히면 좋겠다


첫 시집 『온』이 많은 사랑을 받아서 두 번째 시집에 대해 부담이 있었을 것 같아요. 시집 준비하면서 어떤 고민을 가장 많이 했나요? 

원래 시를 쓸 때도 부담을 많이 갖는 편이긴 해요. 이번 시집은 ‘핀 시리즈’로 기존 시집보다 볼륨이 크지 않아서 힘이 덜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준비를 하다 보니 힘이 더 들어가는 거예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서 좀 힘들었어요. 어떤 것을 싣고 어떤 것을 뺄 것인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온』은 등단 이후부터 시집을 내기 직전까지 5-6년 발표한 시를 전부 모아 뺄 건 뺀 뒤 묶는 작업이었거든요.  『힌트 없음』 에는 총 23편이 실렸는데요. 첫 시집 낸 후 3년여 시간 동안 쓴 시 중에서 무엇을 빼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혼란스러웠어요.(웃음)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첫 시집을 사랑했던 분들에게 어떤 시를 보여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첫 시집 냈을 때, 시를 쓰면서 머뭇거리고 망설이며 쓴 시간들까지 시 안에 다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간까지 읽힐 텐데 그것이 독자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은 거예요. 생략된 행간까지도 독자들은 읽잖아요. 그래서 이번 시집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읽히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첫 시집과는 다른 시집, 다른 언어를 쓰는 시집을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요. 첫 시집에 썼던 것을 또 쓰고 싶지는 않고, 좀 재미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죠. 사람이 확 변하는 건 아니라 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처럼 끙끙대며 멈칫하고, 생략하는 방식으로 쓰진 않았고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운동성을 가진 언어로 써보려고 했어요. 


첫 시집의 시를 쓸 때 망설이고, 멈칫했던 이유는 뭐였어요? 

검열이 되게 심했어요. ‘이런 것은 시에 쓰면 안 되지 않나?’ 같은 생각이 많았죠. 시 한 편 한 편의 밀도가 높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에요. 어떤 문장을 쓴 뒤에 이게 너무 날것 같다, 더 조탁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이 있었는데요.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그 생각을 덜어내려고 했어요. 쓰는 사람이 편하게 쓰니까 읽는 사람도 조금은 편안하게 읽은 게 아닐까 생각도 드는데요. 친구가 “이번 시집 보니까 말이 많아졌네?”라고 했어요.(웃음) 예전 같았으면 지웠을 문장을 그대로 두기도 했고요. 한 편의 시는 모르겠지만 한 권의 시집 안에는 들쑥날쑥한 리듬감이 있는 게 좋았어요. 책 내면서 많이 배웠죠. 생각도 많이 달라졌고요. 



첫 번째 시집에서 ‘마음’을 많이 이야기 했잖아요. 이번 시집은 어떤가요?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시인마다 다른데요. 저는 시집에 어떤 이야기를 담겠다는 생각으로 쓰는 편은 아니에요. 그냥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요. 나중에 봤을 때 공통된 것이 보이는 것 같아요. 쓸 때는 설명되지 않는 감각의 언어로 쓰고, 무언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쓰진 않으니까요. 『온』도 ‘마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묶을 때 알게 됐어요. 『힌트 없음』 의 경우 역시 묶으면서 ‘사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걸 알았는데요. 이전에 내 안의 마음, 내 안의 상태, 감정적인 것에 더 집중했다면 이제는 ‘나’ 그만 생각하고 싶다, 벗어나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사람’이란 단어 안에는 복수가 포함되잖아요. 그렇듯 복수의 사람들 안에 담긴 마음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시집 뒤에 실린 에세이에서 “가지를 뻗어나가는 나무의 방식으로”(107쪽) 시를 쓰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 맥락의 이야기 같아요. 

비슷한 이야기예요. 최근 여러 사건들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실은 다 연결되어 있고, 나 홀로 유아독존 할 수는 없는 거란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유아독존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되죠. 두 번째 시집 묶인 걸 보면서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감각하면서 썼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지는 써나가는 과정 같고요. 적어도 그 질문을 놓치지는 말아야겠다, 시적인 언어를 재미있게 운용하는 데에만 집중해 쓰지는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구나’와 ‘그렇지만’


이번 시집을 읽는 내내 결코 가 닿지 못하는, 연결 불가능한 타인에 대한 감각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타인뿐 아니라 저는 제 마음을 들여다볼 때도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완전하게 닿을 수 없는 불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는데요. 생각해보니까 제 시에는 ‘그렇구나’와 ‘그렇지만’이라는 두 가지 결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하면서 덤덤히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하면서 뒤를 생략하는 결이 섞여 있는데요. 그런 생각이 시에도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랫동안」이라는 시도 ‘믿었다’고 하면서 내가 믿어온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것을 독자 분들이 ‘지금도 믿고 있다(그렇구나)’라고 읽으실지 ‘과거엔 믿었지만 지금은 못 믿어(그렇지만)’라고 읽으실지 궁금하긴 해요. 그런 식으로 믿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을 계속 마주하는 화자가 있고, 그 화자는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것을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화자이기도 하죠.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믿었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내 얼굴이라는 것을 // 낮에는 낮 / 밤에는 밤의 속도로 시간이 자란다는 것을 // 쇠못으로 그림자를 떼어낼 수 있다는 것을 / 빛을 꺾어 땅속에 묻으면 / 뿌리를 내린 빛으로 땅 밑이 환해진다는 것을 // 천사가 있다는 것을 // 천사의 손금은 깊고 복잡하다는 것을 / 크게 웃는 사람의 침대는 슬픔으로 푹신하다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일부)


「아주 오랫동안」의 마지막에 ‘사람이 사람을 낫게 한다는 말을’이라는 말이 있어요. 저희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사람이 사람을 제일 병들게 한다(웃음)는 말이거든요. 사람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게 없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요. 그 말도 맞지만 계속 그 언어를 붙잡고 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제 안에 있는 거죠. 그런 생각들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힌트 없음」이 표제시가 된 이유가 궁금해요. 

『온』도 그렇고, 뭘 말하고 싶은지를 독자들이 궁금해하게 하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제목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번 시집 제목은 「힌트 없음」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간명하고, 덤덤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목을 하고 싶었고, 「힌트 없음」의 마지막 구절 ‘겪어야 할 일이면 겪어야 한다’도 제가 좋아해요.(웃음) 이 시집을 통틀어 얘기하고 싶은 한 구절을 꼽는다면 그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다행히 친구들이나 출판사에서도 괜찮다고 하셔서 결정하게 됐어요. 힌트 없음, 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했지만 각자 자기만의 힌트를 찾아보게 되는 시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까 말씀하신 리듬감이 「힌트 없음」이라는 시 한 편에도 들어 있잖아요. 

이 시는 『온』을 내고 얼마 안 돼서 쓴 시였어요. 그때 내 안의 검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원래 부제를 ‘익명으로 질문해서 익명으로 답하기’라고 했다 바꾼 건데요. 질의응답 같지만 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껏 질문하고 하고 싶은 말로 마음껏 답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질문하고 답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 생각하고 썼던 시였고요. 이 시를 쓰고 나서 조금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시 「조망」과 마지막 시 「미래의 시」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나는 이제 꺼내놓을 것들을 / 꺼내놓는다’와 ‘거기엔 뭐가 있는지 앞으로 뭐가 필요한지 / 너희에게 이야기해줄게’ 같은 구절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시집의 입구와 출구로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첫 시와 끝 시를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조망」은 『온』이 나오기 직전에 쓴 시예요. 쓰면서 이 시가 두 번째 시집의 첫 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미래의 시」를 첫 시로 할까 너무 고민이 되더라고요. 만약 그랬다면 시집이 완전히 달랐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미래의 시」가 제일 마지막에 쓴 시이기도 하고요. 지금의 고민이기도 해서 결국 마지막 시로 결정을 했죠. 




어떤 일상은 시가 된다


시에 가장 많은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고정되어 있진 않은데요. 시란 무엇일까, 시는 어때야 하는 걸까, 이번에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 걸까, 같이 시에 대한 생각이 가장 들끓을 때는 다른 시를 읽을 때예요. 또 시인 친구들과 시 이야기를 할 때죠. 나눈 이야기가 그대로 시가 되진 않지만 그 에너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가끔은 그게 분노일 때도 있고요.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같은 생각 있잖아요. 왜 시를 저렇게 생각하지, 하면서 드는 자극들이 시를 쓰게 해요. 「해운대」라는 시는 몇 년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쓴 건데요. 태풍이 왔었거든요. 태풍이 오는 바다를 보는데 신기하더라고요. 그때 본 장면, 당시의 심정 같은 걸 시로 썼죠. 그야말로 해운대에서 「해운대」를 쓴 거예요. 모든 일상이 시가 되진 않는데 어떤 일상은 이상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게 시가 될 때가 많아요. 


그런 시가 또 있나요? 

「공 던지는 사람들」에 나오는 미로 이야기는 남편이 한 얘기예요. 그냥 “나 이런 것도 알아”(웃음) 하면서 미로를 빠져 나오려면 한쪽 벽에 손을 두고 계속 가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 말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얼마 뒤에 책상에 앉았는데 그 말이 떠오르면서 이 시를 쓰게 됐어요. 


에세이에서 “돌리면 무언가 반드시 나온다는 것에 위안을 받던 시기”(96쪽), “내가 지나온 한 시절이 떠올라 드는 슬픔”(101쪽) 같은 문장을 쓰셨잖아요.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마련이기도 한 삶의 굴곡진 순간을 통과한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겠죠. 지금의 시인은 과거의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고, 무엇을 취사선택할 것인지에 따라 이후가 달라지잖아요. 저는 내가 전부라고 믿었던 것,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내가 만든 테두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부수거나 넘어서야 다음이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지금 그때의 제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역시 「힌트 없음」의 마지막 구절, ‘겪어야 할 일이면 겪어야 한다’예요. 당시에도 그 생각으로 그 시간을 통과해온 것 같고요. 그 문장을 쓰고 나서 해방감을 느꼈어요. 삶이란 결국 무언가를 겪어나가는 것이고, 그건 꼭 필요한 겪음이라는 말은 지금의 저한테도 계속 하는 말이기도 해요. 바깥을 인식하지 않고 살다 보면 더 힘든 것 같거든요. 다만 바깥은 안을 들여다보는 힘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이고요. 안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정확히 바라보는 것이 뭔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내 안은 허허벌판인데 밖에 나간다고 바깥이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에세이는 조금 다른 글이었는데요. 시만큼이나 좋더라고요. 

“가장 불행했던 시기를 돌아보면 그때 내 생각의 중심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라는 문장을 쓰는데 너무 부끄러웠어요.(웃음) 내가 그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요. 사람들의 평가를 완전히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예전에는 그 생각이 진짜 심했던 것 같거든요. 그게 너무 두려웠어요. 나를 어떻게 볼까, 내 시를 어떻게 읽을까, 다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때문이었죠. 중심이 정말이지 바깥에 있었던 거예요. 그런 상태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중심을 조금씩 옮기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제게 있었고, 그걸 써내고 싶었던 건데요. 다만 그걸 써내는 것이 부끄럽고, 힘들었어요. 


앞으로 산문 계획도 있나요? 

알마 출판사의 ‘활자에 잠긴 시’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긴 한데요. 시와는 너무 달라서 고민이에요. 저는 문장을 쓰면서 비약을 하고 싶은데 산문은 그보다 사려 깊게 안내를 해야 하는 느낌이잖아요. 그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원래는 진작 나왔어야 하는데 자꾸 늦어지고 있어요. 게다가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쓰고 있거든요. 워낙 방대한 작업을 하시고, 사회 운동에도 관심이 많으시고, 음악가로서 참여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서 정말 좋아하는 분이에요. 롤모델로 삼고 싶은 느낌인데요. 그래서 더 안 써지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힌트 없음
힌트 없음
안미옥 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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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정 “이것만은 모든 사람들에게 통한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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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은 실제의 '균형'을 원한다. 가수에게 필요한 대중적 인기도 분명 인식하지만 스스로 곡 쓰고 자신의 것을 축조하는 '자주'도 요구하고 있다. “하고 싶어서 음악을 한다!!” 선우정아가 곡을 쓴 인디 감성의 신곡 '화분'은 솔직히 아이돌 가수와 쉬 부합하지 않는다. 모험을 할 줄 아는 이런 약간의 도발이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세정이 아닌 '솔로 세정'의 입지를 확장해주고 있다.


인터뷰 중에 그가 주로 동원한 어휘는 솔직함, 진심, 공감 그리고 자기 위로였다. 이번 미니앨범은 '힐링 뮤지션'의 본격 시작점. 대화 시간 내내, 자신의 음악과 닮아서 미디어가 붙여준 수식 '힐링 웃음'은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



다섯 곡의 미니 앨범이지만 내용은 실하다. 작업과정을 알려 달라


제일 처음 만든 곡은 '오늘은 괜찮아'에요. 재작년 말부터 작년 초에 만들었으니 꽤 오래 걸렸죠. 태연 선배님의 'U R'처럼 잔잔하고 예쁜,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의 수록곡을 생각했어요. 이 곡을 타이틀로 가자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답니다. 하지만 제 기준으로 이 노래는 수록곡이라고 봤어요.


타이틀 욕심이 없었나


모르겠어요. 확 성이 차지 않았다고 할까? 예술성의 측면에서 완벽하지 않다고도 봤고, 타이틀 곡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이어서 만든 곡이 'SKYLINE'과 '오리발'이에요.


'화분'을 제외한 모든 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오늘은 괜찮아' 한 곡만 자작곡으로 수록하고 나머지 노래들은 다른 분들께 받을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이 곡을 타이틀로 하자는 얘기를 듣고 나니, 멍해지더라고요. “이대로 있지 말자. 더 좋은 곡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더 많이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SKYLINE', '오리발', '꿈속에서 널' 세 곡은 동시에 작업한 곡이에요. '오리발'의 1절까지 써놓은 상태에서 작업을 미루게 됐습니다. 이후 객관적인 시각으로 작업을 돌아볼 수 있었고 다시 준비해서 앨범 < 화분 > 을 완성했어요. 정말이지 자작곡이 모두 수록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웃음)


'화분'은 선우정아가 곡을 만들고 바버레츠의 안신애와 함께 노랫말을 썼다. 타이틀곡도 욕심을 냈을 법한데..


작업을 하며 전문가의 터치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내심 타이틀곡만은 전문가에게 받았으면 했죠. 그러던 중에 회사 A&R 팀에서 먼저 관심있는 아티스트가 있냐며 제안을 주셨어요.


일부에선 타이틀곡 '화분' 대신 'SKYLINE'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도 있던데 들어봤나


'SKYLINE'을 계속 끌고 갈까 고민도 했어요. 회사에선 '화분'을 밀었어요. 타 솔로가수와 차별화되는 지점도 있고, 좀 더 세정다운 색이 '화분'에 담겨있다고 본 것 같아요.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고요. 'SKYLINE'이 보다 대중적인 건 맞아요. 웅장하고 벅차오르는 느낌도 있죠. 다만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찡한 감정은 '화분'이 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와 회사 모두 '화분'이 주는 주제와 느낌, 봄이라는 계절감, 시작의 의미 모두가 하나로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더라도 노랫말은 세정이 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선우정아님께서 곡을 쓰실 때 세세히 정확하게 계획을 세워두셨더라고요. '여기에는 이 음이 들어가고, 이 가사가 들어가야 하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기다.' 모든 게 이미 짜여 있었죠. 제가 이 곡의 가사를 수정하거나 멜로디를 만지게 되면 전체적인 의도와 내용을 오히려 흐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에도 '화분'은 도식적인 다른 발라드들과 다른, 조금은 도발적 터치가 있다.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지금까지 솔로 활동과 견줄 때 새롭다. 사실 이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인데..


회사는 '꽃길', '터널' 그리고, '화분'으로 이어지는 '굳히기'의 의도로 '화분'을 제안한 것 같아요. 사실 '터널'까지만 이런 위로의 이미지와 주제를 가져가려 했는데, 아직 '세정의 노래는 이거다'라는 대중의 인식이 약하지 않냐는 의견을 주셨죠. 저도 앨범 단위의 작품은 또 없었기 때문에 수긍했고요.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활동과 달리 세정의 솔로 커리어는 발라드 장르로 진행되고 있다.


틀에 갇히고 싶진 않아요. 제가 판단하기에 제 목소리의 장점은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노래를 할지가 연상되는 개성보단, 각 장르에 맞춰 다양하게 부를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해요. '세정의 음악', '세정의 노래'가 사람들 사이서 감이 잡히게 되면, 빨리 장르를 넓히고 싶어요.

 


2018년 작사 작곡의 의사를 처음 내비쳤던 한 매거진과의 인터뷰를 기억한다. 왜 작사 작곡을 하려고 한 것인가


처음에 벽을 너무 높게 잡아서 시작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미디도 다룰 수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믹싱도 제가 할 줄 알아야 될 것 같았죠. 그렇다고 어설프게 시작하고 싶진 않았어요. 할 거면 제대로 배우고 싶었죠.


2년 전쯤 회사 내부에 저만의 자그마한 공간이 생기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어요. 작가님들께 부탁해서 장비를 구하고, 프로그램 세팅을 부탁드렸죠. 처음에는 다른 가수분들의 모르는 곡의 인스트루멘탈(연주 대목)에 제 멜로디를 얹으면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혼자 신나서 몇 곡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작가분들께 들려주니 세상에 괜찮다는 거예요, 참… 그리고 나서 회사 내 송캠프 시스템을 추천 받아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됐죠. 심장이 뛰고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웃음). 그렇게 만든 첫 곡이 '오늘은 괜찮아'였어요.


'꽃길', '터널', '화분' 모두 위로의 주제를 담고 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자기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 부르고 작곡하는 것 같다.


어릴 때 저는 진짜 제 상태를 모르고 살아왔던 거 같아요. 모든 걸 다 긍정적으로, “뭐든 이겨낼 수 있어, 해낼 수 있어!”라 받아들였죠. 그러다 보니 가슴 한 켠에 이상한 무언가가 생겨났어요.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좋은 부분만 보려고 한 거에요. 그 닫힌 부분을 확인한 게 스물 두 살 때였을 거예요.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픈 부분은 치유해야 하구나, 외면하면 병이 나는구나…'. 그러면서 나에 대한 위로, 공감에 시선을 두게 됐어요. 그렇게 저의 솔직한 진심을 마주하고 나니, 이것만은 모든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솔직하게 제가 느낀 점을 말하고, 진심을 전하면 공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모든 걸 음악에 담고 싶었고요.


앨범 속지 속 수록곡 옆에 직접 쓴 에세이를 담고,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동봉한 것도 그런 의도에서인가.


곡을 만들며 가사로 풀어내기 힘든 생각을 담았죠. 왜 제가 이 곡을 쓰게 됐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항상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회사에서 편지 아이디어를 줬어요. 글을 통해 제 진심을 더 느껴주셨으면 해요. 솔직한 진심이요.



< 화분 > 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오늘은 괜찮아'는 후반부 진한 가성이 잘 안 나와서 힘들었어요. 'SKYLINE'은 작업 과정에서 편곡을 많이 바꿔서 그 점이 어려웠고요.


아이오아이와 구구단 활동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랑의 소중함을 배웠어요. 아이오아이를 하면서는 사람들이 왜 저를 좋아해 주시는지, 어떤 점에서 제가 대중성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됐죠. '항상 긍정적이고 밝아야 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했지만요 (웃음). 구구단을 하면서는 더 노력하게 됐어요.


가수로서 세정의 롤모델은 누구인가.


늘 아이유 선배님이에요. 어렸을 적에는 인순이 선배님. 인순이 선배님처럼 오랜 시간 음악하고 싶다는 마음을 아주 오래 갖고 있었어요. '오리발'이 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사람들이 미니 앨범 < 화분 > 을 어떻게 들어줬으면 하나.


취향 따라 골라 듣는 '위로의 뷔페'? 꼭 전곡을 다 안 들어도 돼요. 오늘은 이런 위로의 메시지가, 내일은 저런 위로의 메시지가 필요할 수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세정이 자주 들었던, 세정의 인생에서 중요한 노래들을 꼽아달라.


폴 뷰캐넌(Paul Buchanan)의 'Mid air'는 가장 좋아하고 많이 본 영화 중 하나인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이 처음 사랑에 빠질 때 나오는 노래에요. 이 노래를 들으면 마치 내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 시간 속에 그 사람과 단둘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요.


린의 '…사랑했잖아…'는 중 2때 운동장에서 연습했던 저의 첫 곡이에요. 이 때 '제대로 실용음악 학원을 다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옥상달빛의 '괜찮습니다'도 추천해요. 옥상달빛은 저에게 인디라는 장르를 눈 뜨게 해주신 분들이자, 인디 음악을 어색하게 느꼈던 저에게 인디의 담백하고 솔직함을 깨닫게 해주신 분들이에요.

 



세정 - 미니앨범 1집 : 화분
세정 - 미니앨범 1집 : 화분
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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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의사 이경제 “귀를 뚫으면 생리통이 줄어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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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염으로 고생하던 학생이 한의사가 됐다. 수술하고 좋은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비염을 치료하기 위해 안 해 본 게 없다는 한의사 이경제. 이른바 ‘용하다’는 분을 찾아다닌 끝에 알게 된 이침(耳鍼)은 그를 단숨에 매료시켰다.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한 이침(耳鍼)은 우리 몸의 리모컨. 이경제 원장이 지난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귀를 강조하는 이유다. 

1992년 한의원을 개원하면서부터 꾸준히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왔는데 환자들에게 귀 침을 놓으면 즉각적인 반응이 온다는 것을 느꼈다. 놓는 순간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굳이 말이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귀 침에는 즉각적인 치료 효과가 있다. 또한 탁월한 효능을 보이며,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10쪽)



요즘 두 딸한테 사과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인터뷰를 많이 안 하셨더라고요. 일부러 고사하는 건가요?

직업이 10개예요. 일이 너무 많은데 굳이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일에 관한 인터뷰는 사양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사생활에는 관심 없고요. 결과, 프로덕트에만 관심 있어요. 

이 자리가 마련된 것도 ‘프로덕트’이기 때문이군요. 

책에 관한 이야기이고 책 이야기하면서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이야기 할 수 있잖아요. 그 정도는 오픈해도 괜찮죠. 가수는 노래를 잘하면 되고 개그맨은 웃겨야 하고 의사는 병을 잘 고쳐야 하고 건강식품은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 외의 영역에는 무관심한 편이에요. 드라마도 잘 안 봅니다. 다큐멘터리 좋아하고요. 

사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나 봐요. 

팩트를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감정을 봉인한 채로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심리 상담받고 있어요. 20년간 봉인해 온 감정을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요즘 자주 울어요. 심리 상담받으면서 제가 가족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두 딸한테 요즘 사과하고 있어요. (웃음)

뜻밖의 이야기네요. 감정을 살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요?

있죠. 큰딸이 시카고 미대를 다니는데 유학생 우울증에 걸렸어요. 힘들어하길래 친한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 줬어요. 증상은 금방 잡혔는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심리 상담센터를 찾아서 한 달 정도 보냈는데 딸이 좋아졌어요. 그걸 보고 ‘나도 받아야겠다’ 싶었죠. 제가 불 체질이에요. 분노 조절이 안 되거든요. 항상 궁금했어요. ‘나는 지난 30년 동안 정신세계에 관심을 두고 공부도 했는데 왜 다른 사람보다 감정 조절을 못 할까’하고요. 그래서 상담하러 갔더니 굉장한 팁을 주더라고요. 

어떤 팁인가요?

뒤에 카메라가 있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나와의 거리가 생기잖아요. 분노가 생겼을 때도 분노와의 거리가 생기니까 해결되더라고요. 3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걸 뒤에 카메라 하나 두고 해결했어요.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렇죠. 사회적 거리를 두듯이…내 감정에 빠지지 않고 거리를 두니까 분노가 시시하게 느껴지면서 조절되더라고요. 뒤에서 카메라가 날 본다는 생각이 획기적이었어요. 열다섯 번 정도 심리 상담하면서 분노 조절이 취미 생활이 됐어요. (웃음) 항상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이 저인데 그 갑옷을 집에서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요즘 그 갑옷 벗는 훈련을 하고, 봉인된 감정을 끄집어내서 쓰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아요. 새롭고요. 그렇게 잘살고 있어요. 



경락은 우리 몸의 ‘위도’와 ‘경도’ 

책 이야기를 해볼게요. 『귀 잡고 병 잡고』는 2001년에 출간한 『이경제의 이침(耳鍼)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책이에요. 우리 몸을 12개 zone(이경혈도)로 구분했는데요. 경혈이 정확히 뭔가요?

지구에 위도와 경도가 있잖아요. 우리 몸의 위도와 경도가 ‘경’과 ‘락’이에요. 위도가 경이고 경도가 락이죠. 경락의 에너지 포인트를 혈이라 하고요. 위도와 경도처럼 우리 몸에도 기가 흐르는 노선이 있어요. 침놓는 자리를 혈 자리라고 하는데 경혈과 같은 말이에요. 혈이 구멍이라는 뜻이잖아요. 버스 정류장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노선이 경락이고 버스정류장이 경혈입니다.  

여러 개의 버스 노선을 12개 구역으로 나눈 거군요. 

우리 몸에 대략 1,000개의 혈이 있는데 이걸 다 외울 수 없으니까 구역을 나누고 싶었어요. 오장육부와 연결된 12 경락과 기경팔맥이 노선이에요. 정규노선이 있고 비정규 노선이 있는 거죠. 처음에 『이경제의 이침(耳鍼)이야기』를 출간할 때는 이걸 10개로 나눴어요. 식도에서 위장, 소장, 대장, 십이지장은 ‘소화계’, 심장, 폐는 ‘호흡계’ 이런 식으로요. 

『귀 잡고 병 잡고』에서 호르몬계와 스트레스계를 세분화하면서 10개에서 12개 zone으로 늘어났어요. 이유가 있나요?   

『이경제의 이침(耳鍼)이야기』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역을 더 세분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새 책 낼 시간이 없어서 이제야 추가하게 됐죠. 호르몬과 스트레스가 중요한데 홀대받는다고 생각해요. 

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신경성 위염이라고 하면 꾀병 같은데 위염 맞거든요. 음식을 먹어서 위장에 문제가 생기는 거랑 스트레스받아서 아픈 거랑 같아요. 위장에 병이 난 거니까. 그런데 신경성 위염은 뇌에서 비롯된 거니까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을 고치면 돼’ 하는 거죠. 이것도 치료해야 해요. 그냥 ‘마음을 편히 먹어’라든가 ‘극복해’라는 식의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알레르기도 같은 이유로 추가한 건가요? 

알레르기도 중요하잖아요. 복숭아나 땅콩 샌드위치 먹고 죽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요. 그런데 알레르기는 건강검진에는 안 나와요. 염증이 아니니까. 염증 위주로 진행되는 건강검진 외에 기능이 저하된 부분과 정신적인 영역, 알레르기를 체크할 수 있는 건강검진이 따로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귀로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요. 

귀가 셀프 건강검진 포인트예요. 발목을 삐잖아요. 그럼 귀의 발목 포인트가 아파요. 신기하죠? 혹시 귀걸이 했더니 생리통이 좋아졌다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혈 자리를 뚫은 거예요. 귀 위쪽이 난소 자리거든요. 거길 뚫으니까 생리통이 없어지는 거죠. 그리고 (귀를 가리키며) 동그랗게 튀어나온 이 부분, 여기가 머리랑 연결되는 곳이에요. 여길 뒤로 뚫으면 후두통, 앞으로 뚫으면 전두통이 좋아집니다. 그러니까 귀를 뚫거나 피어싱을 해서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죠. 

그럼 귀를 많이 뚫을수록 좋은가요?

3개요. 그 이상으로 하면 자극이 분산돼요. 침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강한 힘이 한군데로 압축되기 때문이거든요. 뾰족해서 포인트가 좁아지니까요. 볼록 렌즈로 종이를 태울 때와 같아요. 빛을 한군데로 모아서 열을 만들고 그 열로 종이를 태우는 거잖아요. 이침(耳鍼)도 마찬가지예요. 2~3개 이상 하지 않는 게 효과적입니다. 과학적 근거는 없어요. 다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확인한 거예요.

지압 스티커를 3개 이상 하지 말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겠네요.

정말 몸이 안 좋아서 많이 하고 싶다면 5개까지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은 의미가 없어요. 차라리 귀 전체를 만져주는 게 좋을 거예요.



부분이 전체를 반영한다 

비염을 해결하고 싶어서 한의사가 되셨다고요. ‘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비염 때문인가요? 

중학교 2학년 때 즈음인가 갑자기 TV 소리가 안 들리더라고요. 비염이 심해지니까 압력이 상승해서 귀가 막힌 거예요. 몇 년을 치료해도 낫지 않아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세브란스병원에서 코뼈 깎는 수술을 했어요. 코 위쪽을 들어내서 염증을 긁어내는 수술이었는데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었죠. 그런데 수술해도 낫지 않는 거예요. 의사한테 비염 수술했는데 왜 안 낫느냐고 물어봤어요. 감기 걸린 거래요. 화가 나더라고요. 의사가 환자의 의견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가 그때 생겼어요. 

아, 그때부터 분노가..(웃음)

그러고 보니 이때부터 분노가 있었네요? (웃음) 증상은 여전한데 의사는 나았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한의대 가서 병을 직접 고쳐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한의대 교수님들이 처방해준 약을 먹어도 안 낫는 거예요. 그러다 제 스승이신 금오 선생님 만나서 조금 좋아지고 한태영 선생님께 사상의학 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그렇게 10년 동안 연구하면서 완치된 거예요. 별거 다 했어요. 얼굴에 뜸 뜨다 물집 생기기도 하고 장침을 코에 넣어서 빼는 치료도 해봤죠. 

그 원리가 이침(耳鍼)이랑 연결되나요?

비염 때문에 이침(耳鍼)을 알게 된 건 아니에요. 한 마디로 용하다는 분들에게 배움을 청하러 다니다가 알게 된 거죠. 어떻게 된 거냐면 아는 작곡가 한 분이 속리산에 용한 분이 하나 있다는 거예요. 귀에다 침을 놓는대요. 그때만 해도 귀에 놓는 침이 없었어요. 금연침, 금주침, 다이어트 정도만 유명했죠. 그런데 귀에 침을 귀에 놓는다니까 얼마나 놀라워요. 속리산에서 천막치고 양봉하는 분인데 중국 남경에서 침구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한국에서는 중국 침구사 자격증을 인정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무면허 진료인데…

무면허 진료…괜찮은 건가요?

치료비 안 받으면 괜찮아요. 수지침도 치료비 안 받으면 불법은 아니거든요. 그분이 양봉하면서 치료비를 안 받고 취미처럼 환자를 봤는데 진찰이 아주 정확했어요. 귀 몇 군데 눌러보고 어디가 아픈지 다 맞히더라고요. 진단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때 매료된 거예요. 이침 (耳鍼)은 진단이 명쾌하고 안전해요. 효과가 바로 오고요. 자연스럽게 이침(耳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비염 치료도 마무리했어요. 그분한테 중국의 장침부터 여러 가지를 배웠으니까 침의 사부님이죠. 이침(耳鍼)뿐만 아니라 다른 침도 다 거기서 배웠어요. 

귀에 자극을 주어 치료하는 방법이 서양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새로웠어요.

사실 이침(耳鍼)은 프랑스 침이에요. 유래가 재미있는데요. 신경외과 의사이면서 침구사 자격증을 가진 폴 노지에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한테 어떤 환자가 왔는데 환자 귀에 불로 지진 자국이 있는 거예요. 집시 여인들이 많이 하는 소작법이죠. 그런데 이 환자가 허리디스크가 안 나아서 힘들었는데 이 방법으로 치료하고 허리가 하나도 안 아프다는 거예요. 폴 노지에가 이 말을 듣고 엄청나게 놀라요. 왜냐하면 중국 경혈에는 귀 혈 자리가 없거든요. 귀 주변에만 6개 있고요. 폴 노지에 입장에서는 전혀 모르는 메커니즘인 거죠. 그 뒤로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고민하다 꿈에 태아가 거꾸로 있는 모양을 보고 그게 귀와 모양이 똑같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뱀 여섯 마리가 엉켜 있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벤젠고리’처럼요. 

가설인가요?

그 뒤로 ‘휴먼 버디’라는 가설을 세우죠. 그리고 귀에 음파를 쏘고 음파에 따라 반응하는 장기를 찾는 방법으로 증명해요. 어군탐지기 같은 거죠. 귀 어느 자리에 5Hz를 쏘니까 위장이 반응하고, 다른 자리에 또 쏘니까 간이 반응하고 이런 식으로요. 배 속의 아이가 있는 설계도를 그려놓고 이렇게 찾은 거예요. 폴 노지에가 처음 이걸 발표했을 때 중국 침구학계가 발칵 뒤집혔어요. 황제내경에도 없는 게 나왔으니까. 나중에 중국에서도 이걸 받아들였고 그 뒤로 12 경락, 기경팔맥 같은 해석이 나왔죠.

이때 이후로 중국에서 이침이 자리 잡았나요?

완전히 자리 잡았죠. 이침은 100년 이내에 나온 최신 침이에요. 안침도 마찬가지고 문화혁명 때 나온 두침도 그렇고요. 이외에 우리나라에 있는 수지침, 반사구 등이 모두 100년 이내에 나온 최신 침이에요. 

100년 이내에 나온 최신 침이 많네요. 

이렇게 사과의 단면으로 전체를 추론하는 걸 홀로그램적 사고라고 해요. ‘부분이 전체를 반영한다’는 거죠. 리모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귀 말고 다른 부분도 리모컨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럼요. 손의 앞면이 우리 몸의 앞면이에요. 뒷면은 몸의 뒷면이고요. (손을 보여주면서) 여기가 생식기, 여기는 항문이고요. 오장육부가 여기 다 모여 있어요. 눌러봐서 아프면 그 위치에 해당하는 장기가 안 좋은 거예요. 실제로 수지침을 놓아 보면 검은 피가 나오는 데가 있어요. 그쪽이 체했거나 염증이 있거나 기능이 떨어지는 거예요. 

체할 때 손 따는 것과 같은 원리이군요. 

오장이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손을 다 따보면 특별히 물총처럼 피가 많이 나오는 데가 있어요. 혈관을 잘못 건드려서 그런 게 아니라 그쪽이 울체(鬱滯)되고 막힌 거예요. 술 많이 먹은 날은 새끼손가락에서 많이 나와요. 감기 걸렸을 때는 엄지손가락에서 많이 나오고요. 

그러면 귀, 손, 발을 동시에 하면 더 효과가 좋을까요?

제가 다 해봤습니다. (웃음) 해봤는데 몸이 너무 힘들어요. 하루에 운동을 여러 가지 하면 힘들지 않을까요? 적당한 자극을 주는 게 중요해요. 건강 상태에 따라 해야 하고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 아니고 경험적으로 아는 거예요. 다 해봤기 때문에 잘 알아요. 



알아차리면 좋아져요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귀를 자극하는 게 좋은가요? 아니면 적정 시간이 있나요?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누르면 며칠 눌러야 해요. 만성이라면요. 간단한 건 조금만 자극하면 없어집니다. 손 줘보세요. (손의 혈 자리를 짚으며) 여기를 합곡이라고 하거든요? 여기를 누르면 다른 곳이랑 느낌이 다를 거예요. 여기가 혈이에요. 

아, 정말 아프네요. 

거기가 혈이에요. 세게 눌러서 아픈 게 아니라 기가 느껴지는 거예요. 그 느낌이 혈이고요. 그러니까 혈 자리는 처음에 촉진을 잘해야 해요. 거기 누르면 시원하죠. 그런데 계속 누르면 어떨까요? 스트레스받겠죠? 그래서 지압은 너무 오래 누르지 말고 5초씩 해서 10번 정도가 좋아요. 인내심 있는 사람이라면 30번 정도 하시고요. 안 아플 때까지 누른다? 그건 이상적인 이야기죠. 매일 조금씩 해서 안 아파지면 좋죠. 그런데 온종일 하다가는 몸 축나요. 

귀 마사지와 귀 패치를 연달아 할 때는 어떤 걸 먼저 하는 게 좋나요?

마사지 먼저 해야죠.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하니까요. 알아차리면 좋아지거든요. 만약 내가 (목을 짚으며) 여기가 아프다고 해보세요. 그런데 약이 없어요. 그러면 여기에 스카치테이프만 붙여도 좋아져요. 

스카치테이프요?

자극이 가니까요. 그러면 뇌가 관심을 가져요. ‘여기 뭐 있니?’ 하는 거죠. 뇌가 관심을 가지면 회복되는 거예요. 마사지를 먼저 해야 하는 이유도 같아요. 그리고 혈 자리를 정확히 알고 붙이면 기대하는 마음이 생겨요.  상승효과가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침 놓을 때 반드시 이야기합니다. 말해서 알아차리면 효과가 커지니까요. 

좋은 생활 습관도 소개했는데요. 좋은 걸 하는 것과 나쁜 것을 하지 않는 것 중 무엇이 우선인가요?

나쁜 걸 하지 말아야죠. 그래야 나빠지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나쁜 걸 안 한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에요. 나빠지지 않을 뿐이죠. 술을 끊었는데 건강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어요. 당연한 거예요. 30분 정도는 운동해야 좋아지죠. 나쁜 걸 안 했다고 좋아지길 바라지 마세요. 더 나빠지지 않을 뿐이에요. 좋은 걸 해야 좋아집니다.

 

허준 선생도 링거를 알았다면 처방했을 거예요

유튜브 ‘이경제TV’를 운영 중이에요. 방송 활동을 오래 했지만 유튜브는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방송을 20년 넘게 했어요. 그래서 시청자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요. 방송으로는 한의학계의 신동엽이라고 보시면 돼요. (웃음) 그런데 아직 유튜브는 잘 모르겠어요. 지난 5년간 유튜브를 매일 3시간씩 봤는데 100%는 모르겠어요. 한 50% 정도 알 것 같아요. 아직 공부 중이에요. 

『귀 잡고 병 잡고』를 소개하면서 의학서라기보다 건강서로 이해해달라고 거듭 강조하시더라고요. 

공격하는 세력이 많아서요. 과학적인 근거가 있냐는 말 많이 들어요. 먼저 얘기하죠. 과학적인 근거 전혀 없고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라고요. 그리고 홈쇼핑 방송에 나가면 그거 약이냐고 묻는 사람도 많아요.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의약품 아닙니다. 보양식입니다”라고요. 한계를 설정해 놓는 거죠.  

침뿐만 아니라 양방 치료도 자주 권하시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으면 하고 못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좋은 병원을 소개해 줘요. 예전에 어떤 건강 프로를 할 때 한 작가가 “두릅을 먹으면 무릎이 좋아지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그랬죠. 두릅은 맛으로 먹으라고. 두릅 1톤을 먹어도 관절에는 도움 안 된다고 했어요. 병은 약으로 고쳐야죠. 저는 오늘도 링거 맞고 왔거든요. 회의도 있고 인터뷰도 있는데 어제 술을 먹어서요. 링거 맞으면 바로 좋아져요. 간에 있는 2차선 도로를 16차선으로 만들어 주니까요. 허준 선생이 링거를 모르니까 안 했지, 있었으면 처방에 올리셨을 거예요. 

실용성을 중시하시는 것 같아요. 

중요하니까요. 2000년도에 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하는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제마 선생님 이름을 따서 ‘제마 스터디’라고. 그때 공부하면서 한의학이 너무 번거롭다고 생각했죠. 

한의학이 번거롭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당시에 개그맨 정준하 씨가 하는 야구단의 팀 닥터를 했어요. 경기 때마다 침, 뜸 다 챙겨갔죠. 그런데 경기 중에 다쳐서 아픈 사람한테 언제 침놓고 뜸을 떠요. 파스 스프레이 뿌려야죠. 그때 한의학이 응급에 너무 약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실용성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후로 한의학을 실용적으로 하려면 양방과 손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요즘은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다 바늘로 침놨는데 요즘에는 무통 사혈침 많이 쓰잖아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요. 두통이 있으면 두통 편만 찾아보면 돼요. 다 읽을 필요 없어요. 

실용적이네요. 

내 몸 사용 설명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품설명서 공부하지 않잖아요. 다 읽지도 않고요. 설명하다 막혔을 때 보듯이 살다가 막혔을 때 보시면 돼요. 

    


이경제 원장의 귀 잡고 병 잡고
이경제 원장의 귀 잡고 병 잡고
이경제 저
도서출판그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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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지돈 “결말을 모르고 소설을 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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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의도가 뭐예요?” 일상에서 ‘농담을 다큐로 받지 말라’고 하지만, 유독 소설 앞에서는 늘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소설에 기대하는 재미를 한정해온 건 아닐까? 정지돈의 짧은 소설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독자를 예상치 못한 결말에 던져넣는 책이다. 베니스의 거리를 누비다 정신을 차리면 기괴한 클럽 안이고, 실화라 믿고 따라가면 결국 허구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간 사람들은 정지돈에게 무거운 질문들을 해왔다. “무슨 실험을 하려고 했죠? 이것도 소설인가요?”당신이 농담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잠시 그런 질문은 멈추자. 그저 책을 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길 때다. 

소설가 정지돈은 201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눈먼 부엉이」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로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창백한 말」로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과 사회』에서 장편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와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서울과 파리 산책기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연재하고 있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월간 채널예스> 짧은 소설 코너에 연재되었던 작품들이에요. 매달 돌아오는 마감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분량이 짧은 소설이다 보니, 힘들지는 않았어요. 쓰는 내내 즐거웠죠. 

최근 초단편소설, 경장편소설 등 짧은 소설이 많아지고 있어요. 다양한 형식의 글 청탁도 늘어났고요.

글의 분량이 다양해지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에요. 작가는 쓸 때마다 자기만의 분량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보통 80~100매 정도의 단편소설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쓰는 방식도 그 분량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죠. 요즘은 다양한 형식과 분량의 글을 청탁받고 있어요. 

분량이 짧다고 해서, 쉽게 쓰시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원래는 느리게 쓰는 편인데, 짧은 소설만은 빠르고 경쾌하게 써보려고 했어요. 하나의 아이디어를 직관적으로 포착해서 순식간에 완성하는 식으로요. 흔히 독자들이 읽는 속도는 작가가 쓴 시간에 비례한다고 하더라고요. 빠르게 쓴 글은 그만큼 속도감 있게 읽히니까요.

쓰는 동안, 결말이 여러 번 바뀌기도 했나요?

아예 결말을 생각을 안 하고 썼으니 바뀔 수도 없는 거죠. 물론 실패한 소설도 나왔지만, 쓰다 보니 단련되었는지 나중에는 한 번에 쓸 수 있게 됐어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소설이 나오는 걸 보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독자 반응에 민감하지 않은 이미지인데, 독자 후기를 찾아보셨나요? 

독자 반응에 민감하지 않은 작가는 없습니다. 다 찾아보죠. 

상처받으실 때도 있나요?

분노, 체념… (웃음) 농담입니다.

순수하게 재미있다는 평이 많았어요. 

독자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게 즐거워요. 처음 발표하는 글 형식이라 어떻게 읽어주실지 궁금했거든요. 독자마다 좋아하는 부분이 다른 것 같아요. 1부는 외국 배경에 역사적인 인물을 다루는 내용이 많아서 어려운데, 2부는 동시대 한국의 이야기라 쉽게 읽힌다는 평도 있고요. 제 어머니도 왜 소설에 외국 이름이 자꾸 나오냐고 하시기도 해요. (웃음) 그런 다양한 반응들이 재미있죠.

윤예지 작가의 일러스트가 눈길을 끌어요.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작가님만의 참신한 해석이 돋보였어요.

소설을 한 컷 안에 어떻게 표현할지 고심한 흔적이 보여 좋았어요. 사실 책에 일러스트를 넣는 것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특별한 의도 없이 그림이 그저 글을 해설하기 위해 들어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윤예지 작가님은 자신의 방식으로 소설을 해석하시더라고요. 소설을 읽고 그림을 보시면, 분명히 느끼실 거예요.

제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을 법한 책인데, 왜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냐고요.

문득 떠오른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소설집 제목으로 어울리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등장인물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당사자는 진지한데 보는 사람은 웃긴 거죠. 블랙 코미디처럼,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는 걸 좋아해요. 

‘작가의 말’에 언급하신 다닐 하름스도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인가요?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런 요소가 있죠. 다닐 하름스는 제가 좋아하는 농담을 하는 작가예요. 보통 문학의 유머나 농담 하면, 풍자나 해학처럼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그건 농담의 영역을 너무 한정하는 것 아닐까요? 다닐 하름스의 작품은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황을 던져 줘요. 독자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기이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도대체 뭐지, 하면 끝나버려요. 뭔지 알 수 없지만, 상황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고요.



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연약하다

서평은 원래 사적인 정보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관습이 있잖아요. 「서평가의 최후」에서 주인공은 그걸 뒤집고, 자기 이야기를 써버려요.

정해진 형식이 주는 편안함이 있죠. 그렇지만, 진짜 재미는 주류적인 형식이 엎어지고 어긋날 때 생겨나는 것 같아요. 소위 ‘관습’이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같은 것을 반복하게 되니까요. 새로운 형식이 굳어지기 직전의 과정을 보는 게 좋아요. 무엇 보다 웃기잖아요.

형식을 전복하는 것에 끌리는 거군요.

그렇죠. 그런데 ‘예술이라면 그래야 해!’ 하고 의도성을 내세우는 것과는 달라요. 그저 지금까지 속한 세계를 못 견뎌서 즐거운 것을 찾다 보니, 형식을 벗어나게 되는 거죠. 「서평가의 최후」에서도 주인공은 더 이상 쓸 말도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다가 새로운 서평을 쓰게 된 거잖아요. 특이한 실험을 하겠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니까 벗어나려고 하다가요. 소위 ‘관습의 탈피’는 그런 자연스러운 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영화감독 ‘장 팽르베’처럼 우리가 공식처럼 외우는 사조로 해석되지 않는 인물들이 나와요. 이런 인물들에 매력을 느끼시나요?

특정 사조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 평가를 제대로 못 받는 사람들에 눈길이 가요. ‘불능’과 ‘무능’을 나눠서 말해 볼게요.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을 ‘무능’하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규정들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높이 평가받는 것일 수 있죠. 그걸 고쳐서 ‘불능’이라 표현하고 싶어요. 오히려 사회에서 주류인 사람들보다,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시대나 인간성을 잘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프로필에서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여행지가 나오는 소설이 많아요. 전부 상상인가요?

도쿄, 베니스 두 곳 다 실제로 갔어요. 소설 배경인 베니스의 클럽 ‘피콜로 몬도‘는 실재하지는 않지만, 같은 이름의 장소가 있죠. 베니스에 가시게 된다면, 그 클럽을 추천합니다. 소설처럼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다니…(웃음)

소설이 허구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거 진짜야, 거짓말이야” 묻고는 하잖아요. 이런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의미는 없죠. 소설이 허구적 창작물이라 해도, 전부 거짓말일 수는 없거든요. 작가가 경험했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참조한 것 등이 들어가게 되니까요. 어디까지 사실이고 거짓말인지 나누는 건 불가능해요. 우리는 진실 여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죠. 실존 인물이나 지명이 나오면 전부 사실로 믿고 명예훼손까지 생각하는데, 가명이나 가상의 공간을 쓰면 안심하고요. 그런데 사실을 다 가져와 놓고 이름만 바꾸면 괜찮아지는 걸까요?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기준이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보이지 않는」은 유명 작가 폴 오스터, 에드워드 사이드, 장 주네의 만남을 다룬 소설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들만 존재할 뿐 무엇이 정확한 진실인지 알 수 없죠. 결국, 절대적인 진실은 없는 걸까요?

절대적인 진실은 있죠. 다만, 거기에 접근할 수 없을 뿐. 과거사를 규명하는 건 필요하지만, 일상에서는 ‘진실’을 안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 많은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처럼 개인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때로는 ‘감정적 진실’이 사실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죠.



차기작은 『아이스크림과 세계문학』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벤엔제리 아이스크림’과 어울리는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요?

벤엔제리는 모든 문학작품과 어울려요. 단점은 있습니다. 배가 나와요. (웃음) 중요한 건 소설의 내용 보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세계문학을 보는 상황 자체가 아닐까요.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결국 영화관에서 콜라를 마시며 감상하는 행위가 만족감을 주는 것처럼요. 영화는 아무거나 봐도 상관없는 거죠. 우리는 내용을 좋아하는 게 진심이라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허례허식이라 말하곤 하지만, 오히려 그 나머지가 감상을 풍족하게 해요. 뭔가를 좋아하는 건 대상이 좋다기보다 그 의식 자체가 즐거운 것일 수 있죠. 『아이스크림과 세계문학』도 작품의 내용보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는 독서가 좋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왔어요.

최근 소설 외의 관심사가 있나요?

소설 말고는 관심사가 없습니다. (웃음) 과학책을 많이 읽기는 해요. 그렇지만 소설 때문에 읽는 것이기는 하죠. 제 삶의 관심사가 결국 소설로 이어지니까요.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정지돈 저 | 윤예지 그림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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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소연 “일잘러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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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주변은 없지만 실력으로 승부할게요.” 당신의 부하 직원이 이같이 말했다면 칭찬할 것인가? 아니면 “일의 언어를 배우는 것도 실력”이라고 답할 것인가?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를 쓴 박소연 작가는 분명 후자의 답을 들려줄 것이다. ‘일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달라 외국어를 배우듯이 새로 배워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 조금 배우기만 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의 언어’의 핵심은 “단순하게, 상대방 중심으로 말하기”에있다.

박소연 작가는 대기업, 공공기관, 지자체와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각 조직의 상위 0.1% 인재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게 됐다. ‘탁월한 언어 감각’이야말로 그들의 핵심 경쟁력임을 발견하고, 그 노하우와 비결을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에 담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졸업, 경제단체에 입사하여 후진타오 주석, 조지 부시 대통령 등이 참석한 국제행사(APEC CEO SUMMIT)와 대통령 해외순방 경제사절단 총괄 등을 맡으며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2015년 최연소 팀장으로 임명된 후 팀장 첫 해 23개 팀 중 최고 고과를 받았고 큰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2019년 3월 두 번째 책『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상대방이 가장 관심 있는 건 ‘자기 자신’

전작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에서 딱 한 글자 ‘말’을 보태 신간을 쓰셨습니다.

강연을 다녀보니 ‘말’에 이야기에 반응이 가장 뜨겁더라고요. 제가 12년 정도 기업에서 근무를 하면서 정말 많은 팀장, 임원을 만났거든요. 실무자일 때는 ‘문서의 신’으로 불리며 정말 일을 잘하셨던 분들이 임원이 되고 나서는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경영자 회의에 가면 말을 짧게 해야 하거든요. CEO는 여러 임원의 보고를 받아야 하니까요. 핵심을 갖고 재치 있게 바로바로 예시를 들어가며 말해야 하는데, 그런 분들이 흔치 않죠. 하지만 리더가 됐을 때, 실력이 드러나는 분들이 있었어요. 바로 단순하게 말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머릿속 생각을 혼선 없이 명확하게 전달하고, 논리와 감성을 적절히 활용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써보고 싶었어요. 

‘말하기’에 관한 책이 은근히 많습니다. 차별점이 있다면요?

구체적인 팁을 많이 담았어요. 저도 ‘말’에 대한 책을 참 많이 읽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는 많지 않아요. “말의 주인공은 상대방이 되게 하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막막한 거예요. 시사점을 주는 것 이상의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썼어요. 

자기계발서로 나온 ‘말하기’ 책들은 대개 프리젠테이션, 토론 등에 적합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는 일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맞아요. 보통의 화술 책은 ‘발표’를 중심으로 한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직장 생활은 발표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어요. 또 하나, 상사와 말할 때 토론처럼 반론을 제시하기 어렵단 말이죠. 일의 언어에 힌트를 주는 책은 많지만, 실생활에는 적용하기 힘든 부분이 많죠. 

대기업, 공공기관, 지자체와 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상위 0.1% 인재들의 일 잘하는 방법을 발견하셨어요. 작가님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에서 최연소 팀장으로 발탁되어 미래산업팀을 3년간 이끄셨고요. 어떤 팀장이셨나요?

제 목표는 지도교수 같은 팀장이었어요. 팀원들이 각자 맡은 프로젝트가 있잖아요. 말을 대충 전하는 지도교수가 아니라, 이 학생의 논문이 통과될 수 있도록 목차를 같이 짜주고, 참고 문헌도 알려주는 지도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팀장이 되면 각 분기마다 집중 관리 팀원이 생겨요. 그러면 이 팀원이 맡은 프로젝트가 잘되게 엄청 밀어주는 거예요. 저희 팀원들은 거의 다 상을 받았어요. 물론 “저 팀장은 얘를 더 예뻐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제가 목표로 했던 건 가능한 정확하고 친절한 지도교수였어요. “이 보고서 읽어 와”라고 말하지 않고 꼼꼼하게 멘토링 해주는 교수요.

요즘 밀레니얼 세대들이 상사에게 가장 원하는 건 ‘정확한 지시’가 아닌가 싶어요. 대충 전달하는 상사를 가장 싫어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 ‘돈’인 세상이니까요. 최대한 시간을 아껴서 일할 수 있도록 지시하는 것도 상사가 해야 할 역할이죠. 예전에는 야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부하 직원이 상사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야근으로 업무를 처리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야근을 안 하죠. 너무 당연한 말이기도 해요. 상사는 부서원이 존중받고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언어를 구사해야 해요. 그래야 조직에서 원하는 것을 좀더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정확한 소통의 세 가지 요소로 ‘상대방 중심, 단순한 형태, 말 센스’를 꼽으셨어요. 언뜻 보면 간단해보이지만, 훈련이 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일의 언어는 ‘상대방’ 중심이 돼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상대의 기본적인 성향을 이해하고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야죠. 피터 드러커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보고의 언어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줘야 해요. 상대방이 가장 관심 있는 건 ‘자기 자신’이에요. 이를 테면, 혼자 일을 하기 벅차서 팀장에게 임시 직원을 뽑아야 한다고 말할 때, “제가 너무 일이 많이 힘들다”는 표현보다는 “작업량을 보니 지금 상태로는 예정된 데드라인에 맞추기 어렵다”고 말하는 게 좋죠. 직원이 힘들고 지치는 건 상사의 문제가 아니지만, 데드라인을 맞추지 못해 클라이언트와 문제가 생기는 건 팀장의 문제니까요. 항상 말할 때, ‘이게 왜 상대방에게 의미가 있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안심 첫 문장’이라는 팁이 있어요.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내고 큰 기업에 강연을 많이 갔어요. ‘언어’ 이야기를 하면 임원들이 유독 박수를 크게 쳐요. 임원들은 직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를 찾아오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거든요. ‘얘가 또 무슨 사고를 쳤나?’ 싶어서요. 내 말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은 최악을 상상하게 되는 법이에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표현보다는 “간단한 현황 보고입니다”라는 첫 마디로 상대를 안심시키는 게 좋죠.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30초 두괄식(안심 첫문장 주요 내용)으로 말하는 게 좋아요. 자세한 내용은 그 뒤에 천천히 설명하면 돼요. 예측 가능한 보고만큼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것이 없습니다. 



경직된 태도와 프로페셔널함은 다르다

요즘은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도 메신저나 메일로 소통하는 부분이 훨씬 큽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더욱 심해졌죠. 요즘은 고객과 직원 중에 콜 포비아(Call phobia, 전화 공포증) 증상이 있는 사람도 많아 이메일을 가장 선호해요. 커뮤니케이션도 언택트 시대가 온 거죠.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은 더 단순하고 정확해야 해요.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시차를 고려해서 완결형으로 말하는 것이 좋아요. 메신저로 “바쁘세요?”라고 묻는 것보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해 문의하는 내용까지 한번에 말하는 게 좋아요. 수신자가 언제 메시지를 확인할지, 발신자는 모르잖아요. 서로 몇 시간에 한 번씩 답변해도 문제가 없도록 완결형으로 말하는 게 좋습니다. 

책의 7장 ‘협력의 언어’에서는 “정중한 요청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소통의 센스라고 할 수 있는데요. “경직된 태도와 프로페셔널함은 다르다”는 말은 직장인들이 꼭 새겨야 할 말이 아닐까 싶어요. 

어느 조직이든지 직급과 연차가 낮을수록 요청 사항을 말할 때, 딱딱하고 명령조의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어요.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나서도 자기 주장만 고집하고요. 부끄럽지만 저도 1,2년차에는 다르지 않았어요. 하지만 무례하게 군다고 말에 힘이 생기지 않아요. 오히려 기분이 상한 상대방은 도와줄 마음이 사라져서 일이 몇 배로 힘들죠. 정중하게 이야기해도 얼마든지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딱딱한 말투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요청하는 거죠. 첫째는 요청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둘째는 상대방의 도움을 갚아줄 호의를 약속하고, 셋째는 도움을 받고 나서는 꼭 감사 인사를 하는 거예요. 가끔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요청하는 걸 업무 노하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나는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하는 것이 원하는 걸 더 쉽게 얻는 지름길입니다.

작가님의 강연 영상을 보았는데, 정말 말씀을 잘하시더라고요. 호감이 가는 말하기 방식이라고 느꼈어요. 

저도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말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회사에 들어오니 제 말이 ‘장황하다’는 거죠. (웃음) 비서실에서 오늘의 안건을 보고하는데, 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그래서?”라는 말이 나왔어요. 저도 고치려고 글쓰기 강좌도 듣고 책도 많이 봤어요. 그리고 가장 컸던 건, 말을 잘하는 임원, 팀장들을 관찰한 거예요. 큰 프로젝트가 있을 경우, 실무자들도 배석을 하잖아요. 평소에는 대충 말했던 임원들이 이런 자리에서는 정말 촌철살인으로 말을 잘해요. 경영자 회의, 클라이언트 회의에서는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그때 많이 배웠어요. 



이번 책의 주효한 타깃 독자는 누구인가요?

엄밀히 말하면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헌정 책인데요. 첫째는 사회초년생들이에요. 직장에 처음 들어오면 언어의 화법이 완전히 바뀌잖아요. 일도 잘하고 싶고, 상사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데 자꾸 혼나고 깨지죠. 그런 친구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고요. 둘째는 주니어 레벨에 올라온 직장인이에요. 예전에는 팀장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된 거죠. 여러 사람과 일을 조율할 때, 커뮤니케이션은 너무나 중요하죠. 그리고 마지막은 리더들이에요. 실무자 때는 일을 잘하기로 유명했어도 리더가 되면 그때부터는 경영진이 강하게 대하거든요. 부하 직원과 경영진 사이에서 욕받이가 돼서 너무 괴로운 분들, 소통의 감이 잘 안 잡히는 분들이 읽고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국무총리상을 수상할 만큼 기업에서 일의 성과를 꾸준히 인정받았는데, 작가로 전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파이어족’이 생겼잖아요. 죽을 때까지는 아니지만, 예전만큼의 수입이 없어도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됐어요. 뭘 해도 최소한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가를 택했고요. 

후속작은 어떤 내용인가요?

문제해결에 관한 책을 쓰고 있어요. 모든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책인데요. 지금 하고 있는 강연과도 엮어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또 회사 소설을 쓰고 싶어요. 작년에 장류진 작가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작가님만큼은 못 쓰겠지만, 한번 도전해보려고요. 



상사에게 잘 질문하는 법

1. 지시받을 때 질문합니다

잘 모르는 상태로 일단 “네”하고 돌아서면 일이 커집니다. 하다못해 커피 몇 잔을 사오더라도 손님용인지, 팀 회의용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일에 필요한지(why), 원하는 결과물과 가장 비슷한 표본(how)은 어떤 건지, 언제까지(when) 필요한지는 기본적으로 물어보시는 게 좋습니다. 처음 지시받는 시점에 말이죠.

2. ‘이런 방향인가요”라고 초안 상태에서 점검합니다

지시한 상사도 머릿속에 완벽한 결과물이 있다기보다는 어렴풋한 그림 정도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초안이라도 봐야 아는 거죠. 핀터레스트 이미지 검색이나 구글링 등을 통해 담당자가 생각하는 후보군 두세 개를 뽑아서 이 중 무엇에 가까운지 물어보세요. 기획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이에 한 페이지짜리 조감도(문제, 프로젝트명, 주요 과제 등)을 그려서 상의하세요. 그래야 두 번 일하지 않습니다.

3. 질문은 모아서, 가능한 한 객관식 또는 OX로 합니다

‘이런 것까지 질문해도 되나?’라고 고민하는 분이 많아요. 묻고 싶지만 질문하긴 좀 유치해 보이는 거죠. 상사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말도 안 하고 사고 치는 것보다 낫습니다. 다만 좀 모아서 해주세요. 하나 물어보고, 또 5분 있다가, 또 10분 후에 이런 식이면 방해가 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객관식으로 묻는 것이 좋습니다. ‘어떻게 할까요?’라는 열린 주관식보다 ‘A,B,C 안 중에 어떤 게 좋을까요?’라는 선택형 질문이 훨씬 좋습니다. 설령 상사가 담당자의 제안이 아닌 ‘D’라는 대답을 하더라도 말이죠.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96-97쪽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
박소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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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송은주 교사 “정년까지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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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금융 위기를 몸으로 겪는 부모 세대를 보며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게 되고, 일과 생활이 균형 잡힌 워라밸을 꿈꾸었던 밀레니얼 세대에게 교사는 최고의 직업처럼 보였다. 정년이 보장되고, 공무원으로써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 혜택도 많고, 출퇴근 시간이 사기업에 비해 잘 지켜진다고 하니까. 그런데 학교는 자기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답답한 곳이었다. 수많은 행정업무, 견고한 연공서열, 교사 개인에게 자율권을 주지 않는 환경 등이 밀레니얼 세대를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다.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의 저자 송은주 교사는 10년 차 초등교사다. 2011년 발령을 받았고, 두 번 6학년을 졸업시키고, 석사 학위를 받고, 다른 지역에서 임용시험에 한 번 더 합격했다. 그렇지만 “초등교사라는 직업을 잘 모르고 선택했다”는 그는 생각처럼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인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교대생부터 임용고시 준비생, 초년생 교사부터 20년 차 교사까지 약 100여 명의 교사를 인터뷰하면서 왜 정년을 채우는 교사가 1%에 그치는지,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동료 교사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떤 의미를 찾다가 학교를 떠날 것인가, 그 이후에는 어떤 인생을 만들어갈 것인가”가 교사로서 자신의 가장 큰 고민이라는 송은주 교사는 밀레니얼 세대가 갖는 가치가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이 글을 쓰는 나의 개인적인 목표는 ‘변화의 시작’이다. 관례를 따르지 않는 과감한 발걸음이, 획일화를 거부하는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의 목소리가 변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경력에 상관없이 교사들의 의견이 평등한 협의거리가 되고 좋은 의견은 학교교육에 적용되기를 바란다.(64-65쪽)


 

교장 선생님이 무단횡단 하는 걸 봤다?

교사는 “직업이 삶 자체가 되는 사람”(136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교사 개인이 갖는 고됨도 엿보이고요. 

책무성이 많은 직업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교사는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가르치는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일 텐데요. 이것이 인간적인 솔직함과 대립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이런 거예요. 많이 들어온 얘기가 “교장 선생님이 무단횡단 하는 걸 봤다”(웃음) 같은 거죠. 그런 말을 워낙 많이 듣다 보니 늘 인식하게 돼요. 교사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선생님이 어디서 무얼 하는 것을 봤다, 같은 이야기가 나의 평판을 깎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데서 오는 무게감 같은 게 있어요. 

교사에게도 사생활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만약 교사가 클럽에 갔다고 했을 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실을 교사에 대한 신뢰도와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기도 하죠. 

그런 것 같아요. 타투에 대해서도 교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끔 질문이 올라와요. ‘하고 싶은데 어떻게 보일까요’ 같은 내용인데요. 그러면 댓글에 ‘어디서 어떤 선생님이 타투를 했는데 신문고에도 올라갔다’고 달리는 식이에요. 

최근에 교사의 개인 전화번호를 공개하기 때문에 평일 밤이나 주말에도 학부모의 연락을 받곤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어요. 실제로 저자가 겪은 고충도 많겠죠? 책에도 다양한 황당 사례가 등장하긴 해요. 

워낙 많아요. 많으니까 점점 더 지치죠. 심지어 몇 년 전에 가르쳤던 학생의 부모님이 전화를 하셔서 지금 담임선생님과의 관계 같은 것을 상담할 때가 있거든요. 인간적으로 감사했던 기억과, 한 번 학생은 끝까지 내 학생이라는 마음 때문에 그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도 없어요. 충분히 그 입장이 이해도 되고요. 그러다 보면 밤 10시-12시까지 몇 시간씩 통화를 하는 거죠. 이건 누가 봐도 워라밸과는 동떨어진 일이잖아요. 자신이 포기한 것, 애쓰는 것이 많은데 학교 외부에서는 교사를 많이 믿지 않는 것 같으니 더 지치는 거죠.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아요.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선생님들이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온라인은 대면 교육일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차단되거든요. 외부에서는 이해하지 못하죠. 그런 데서 오는 심리적인 박탈감이 교사들에게 많은 것 같아요. 

대면으로 가능한 교육이란 어떤 것일까요?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즉각성이죠. 같은 말이라도 영상은 학생한테 전달이 되고 끝이에요. 학생의 반응, 눈빛에서 느껴지는 피드백을 교사는 받아볼 수 없잖아요. 피드백이 오고 가면서 발전하는 교육적 효과라는 게 있는데 그게 원천 차단 되니까 선생님이 의도한 게 제대로 가지 않아요. 인터뷰 오기 전에 동료 교사들에게 요즘 뭐가 가장 힘든지 물었어요. 한 분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교사로서의 생존을 많이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사람들이 원하는 게 학습이라면 온라인으로 훌륭하신 선생님 몇 분이 수업 영상을 찍어서 올리면 되겠죠. 하지만 대면 교육에서 가능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이 있잖아요. 선생님들이 진짜로 할 일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수업이에요. 학생 특성에 따라 교육 방식이나 하다 못해 언어의 표현도 다르게 해야 하거든요. 그만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분명히 가지고 학생을 만나야 하고요. 학생들도 그런 교사에게 교육을 받아야 해요.

그렇다면 교사가 되는 과정에 대한 저자의 문제 의식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저자의 경우 임용고시에 두 번 합격한 비결이 역설적으로 ‘통암기’ 방식의 시험 준비가 5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잖아요. 아직도 너무나 과거의 방식인 거죠. 

인터뷰 했던 20년 차 선생님 한 분은 요즘 젊은 선생님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학교에 왔기 때문에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사실 학생과 만나는 과정에서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학습한 것이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렇게 보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예비 교사가 길러야 하는 것과 현장에서 인간을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게 완전히 다른 거죠. 

 


정년이 안 보인다

밀레니얼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나’잖아요. 직장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세대 교사들이라면 지금 학교의 분위기와 부딪치는 부분이 더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제 또래 교사들은 어떤 게 내게 좋은 선택인지 더 많이 고민하는 것 같거든요. 무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선택인가를 많이 고민해요. 교직을 유지할 것인지 다른 진로를 찾을 것인지부터 대학원을 갈 것인지 휴직을 할 것인지까지 말이죠. 특히 10년 차에서 15년 정도의 교사들은 이제 승진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니까요. 승진을 하겠다고 선택할 경우 인간적인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많거든요. 승진 점수를 받는 것들은 알아서 찾아 가야 하고, 지역마다 다르지만 지역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학교들은 경쟁도 있어요. 경쟁 방식 중에는 관리자와의 관계라는 것도 있으니까 진짜 워라밸은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 물론 지금 승진한 분들이 이런 걸 다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특히 밀레니얼 세대라면 워라밸을 포기하면서까지 꼭 승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이시죠. 

네, 남자 교사들의 경우도 그래요. 워낙 승진은 남자 교사가 하는 거라는 분위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 세대는 남자들 역시 꼭 승진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죠. 그럼에도 환경적으로는 계속해서 승진할 것을 요구하고, 끌어주겠다는 식으로 하잖아요. 그런 괴리가 있어요. 

학교 내부에서도 밀레니얼 세대 교사들이 기존의 교사들과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공감대가 많이 있나요? 

선배들을 인터뷰했을 때는 세대 차이라고 하기는 거창하다는 반응들도 물론 있었어요. 초등교사의 경우 개인 교실이 있어서 서로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하기도 하고요. 한편 확실히 체감하는 것은 밀레니얼 교사들이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더라, 라는 거였어요. 급작스럽게 당일에 회의를 해야 하니 야근을 하라고 하면 거기에 “싫다”고 말하는 경우 같은 거죠. 과거에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지금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게 다른 것 같아요. 

문제는 교사 진로를 20살에 결정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진정한 나다움을 충분히 살피기는 이른 시기잖아요. 그런데 교사라는 길을 선택한 뒤부터는 진로를 바꾸기도 쉽지 않고요. 

심지어 교대 입시 성적도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죠. 만약 학창시절부터 자신을 탐색할 기회가 많았다면 20살도 충분히 진로 결정이 가능한 나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밀레니얼 세대는 공부만 했던 거예요. 탐색할 기회는 없었는데 20살부터 다른 대학생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길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자유인이 되었을 때 너무 큰 틀에 갇혀버리는 거예요. 그때가 돼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고민을 시작한다면 너무 돌아 가는 셈이고, 그렇다고 승진을 하고 싶지는 않고, 이렇게 되면 진짜 무기력증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워요. 

저자도 프롤로그에서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정년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7쪽)라고 했어요.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직업을 가진 분들 입장에서는 정년 있으면 좋지, 지금 충실히 살면 되지, 라고 생각하시겠지만요. 현실적으로는 진짜 이대로 있는다고 정년까지 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마음도 있어요. 계속해서 침해를 받는 것 같고, 일에 대한 자존감과 자신감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62세까지 되는 대로 버티는 게 가능할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되니까요. 



교사도 실패할 기회가 있었으면

자료 조사도 많이 하고, 학교에 대한 비판도 많이 했는데요. 조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나요?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고요. 교원 정책 등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을 많이 안 했어요. 그간 생각해왔던 것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흔히 교사는 너무 튀면 안 되고, 국가의 녹을 먹는 입장에서 국가 정책에 너무 반해도 안 된다는 압박이 있어요. 이런 걸 교대에서부터 체득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저와 생각이 다른 분도 있겠죠. 심지어 최근에는 ‘안 그래도 교사가 욕을 많이 먹는데 굳이 이런 내용까지 말을 해서 더 말을 듣게 하느냐’는 반응도 봤거든요. 저는 오히려 안타까웠어요. 얼마나 많은 말에 시달렸으면 조용히,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 더 좋다고 느끼는 걸까요. 

교대에서부터 그런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나요? 

‘교대에서 이런 커리큘럼은 당연히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어’라는 식의 체념이 있죠. 초등학생을 가르칠 거니까 이런 것을 하고, 학교가 작으니까 짜인 대로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주인 의식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4년을 이렇게 살다가 학교에 나와서 갑자기 뭔가를 바꿀 수 있을까요? 게다가 학교라는 곳은 아주 다양한 연령대의 선생님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오히려 더 연공서열이랄까, 하는 게 확실한 관료제인데 말이에요. 

학교 현장이 경직된 조직이라는 이미지가 있죠. 교사가 해야 하는 각종 행정업무도 문제고요. 교사나 학교에 대한 평가가 외부에 있는 것도 교사의 자율성을 많이 위축시키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 저자는 “교사도 실패할 기회가 있었으면”(168쪽)좋겠다고 했어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도 학생들을 훈육하거나 교육하다 말 실수를 한 적이 있어요. 아찔했던 순간들도 있고요. 한 번은 수업 준비를 너무 열심히 해서 준비해 간 교구에 신경 쓰다가 내용을 완전히 반대로 가르친 거예요. 수업 도중에 그걸 깨닫고 “얘들아, 미안해. 이게 아니었어.”(웃음)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괜찮아요, 선생님도 처음인데 그럴 수도 있죠.”라는 거예요. 지금도 그 순간이 떠오르는데요. 요즘은 그런 과정을 이해하지 않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더 선을 긋고, 형식적으로 대하기를 바라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죠. 

꽉 짜인 성취기준, 교과서와 학교의 교육계획 안에서, 교사가 자기답고 우리 반다운 수업을 깊이 고민하며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할 여유를 찾기는 참 어렵다.(중략) 교권을 바로 세우고 싶으면 교사 한 명 한 명의 수업권과 평가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교육청과 학교는 개별 교사의 자기다움을, 각 교사들은 서로의 자기다움을 수업과 평가에서 인정해주어야 그 땅을 밟고 교권이 바로 선다.(168쪽)



학교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을 교대에서 경험하는 정도의 실습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 부분도 의미가 컸어요. 실습 시간을 더 확장해야 한다는 거였죠. 

교사는 현장 실무자인데 대학교에서는 그걸 글로만 배워요. 현장 경험이 있는 교수님들도 있지만 많은 교수님들이 학자고요. 심지어 학부 때 어느 교수님은“교수는 선생이 아니고 학자다. 그러니까 교사로서의 것을 내게 요구하지 말라.”라고 하더라고요. 교대에서 교사를 길러내는 사람의 마인드는 아니지 않나, 의문이 들었는데요. 임용고시생, 교대생들을 인터뷰하면서 지금도 그렇다는 걸 알았거든요. 교수님들이 가르치는 것, 학생들이 기대하는 것, 실제로 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이 다 다른 거죠. 교사들 각자 현장에서 부딪혀 알아야 하는 게 너무 많아요. 올해 발령을 받은 친구들도 벌써 ‘현타’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제일 뜨겁고 즐거울 시기인데 말이에요. 실습할 때는 이런 걸 알 수 없어요. 학교 생리의 10%도 경험하지 못하죠. 실습 기간을 지금보다 훨씬 늘리고, 실제로 인턴 하듯이 똑같이 해야 해요. 

소위 ‘안정적인 직장’으로써 교사의 사정이 사회 평균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못하도록 하고, 그래서 이 목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건강한 사회라면 좋은 복지를 가지고 있는 직업을 깎아 내리는 게 아니고 우리도 이렇게 가자고 말을 해야 하는 건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오히려 좋은 여건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사람들한테 침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욕을 먹을 줄 알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쓴 이유는 일단 저희 아이 세대도 이런 침묵을 학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요. 제자 중에는 20살이 된 친구들도 있는데 제자들을 생각하면 할 말은 하겠다(웃음)는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
송은주 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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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쓰는 것과 사는 것을 순환하게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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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소설가는 첫 작품 이래 계속 사랑을 말해왔다. 그의 소설 속에서 ‘나’는 스스로 게이로 정체화하기 전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재회하고, 학교에서 만난 선배에게 빠져들었다 그가 휘두르는 폭력에 상처 입는다. 오래 사귀었던 남자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계절은 속절없이 흐른다. 커밍아웃한 게이 소설가로 사랑하듯 쓰는 그의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읽으면 “소설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어떠한 사건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하는 것”(85쪽)이라는 말에 소설 대신 사랑을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의 순환이 주는 의미

전작 『여름, 스피드』 표지가 바다에 앉은 남자의 뒷모습이었다면, 이번 소설집의 표지는 신록 속에서 셔츠를 입은 남자가 등을 보인 채 있어요.

사실 그림의 제목은 ‘Leafy, June’이어서 6월 초여름이긴 하지만, 한여름처럼 ‘한봄’이라는 느낌을 환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종이 질감이나 후가공은 편집부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어요. 무척 마음에 들었고 상상한 것 이상으로 좋게 나왔어요.

책에 실린 「마이 리틀 러버」의 중제목도 계절을 표현하는 단어였죠. 계절이 소설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창작 수업에서 문체나 플롯 못지않게 소설을 쓰는 데 날씨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생각해 보니 저는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더라고요. 계절의 순환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계절감이 있는 걸 발견하려고 하다 보니, 점점 더 계절을 많이 고려하게 된 것 같아요. 계절이 유비하는 것들도 있고요. 봄은 겨울을 품고 있기도 하고 다가올 여름을 품고 있기도 해서 생각보다 이채로운 계절이에요. 

이번 소설은 어떤 사랑의 처음과 끝을 다루는 느낌이었어요. 일 년이 지나 계절이 다시 돌아오듯이요.

이번 소설에서 그린 봄은 한 계절을 다시 돌아서 온 봄이라기보다 『여름, 스피드』 이전의 봄이었어요. 과거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거든요. 

「마이 리틀 러버」에서 ‘H’와 ‘나’는 헤어질 듯 말 듯 계속되는 관계 안에 있어요.

등단작에서 그렸던 ‘형섭’이라는 인물이 이번 작품의 ‘H’가 될 거예요. 어떻게 보면 형섭 연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제 실제 연인으로서의 시간과 상상으로 써본 관계가 담겼어요. 「엔드 게임」은 오토 픽션으로 쓴 소설이에요. 있는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고,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제가 가진 경험과 상상력과 어쩌면 그랬을지 모를 기원 같은 것, 과거의 상상력, 모든 것을 담아서 끝을 내고 싶었어요.

자기 생활을 많이 집어넣을수록 공력도 많이 들 텐데요.

어떤 사람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에 힘듦이 있는 것 같아요. 똑같이 힘든데 노력을 들이는 방향이 다른 거죠. 저는 있는 그대로를 가져와서 쓰는 일 자체는 그렇게 힘이 드는 편은 아니에요. 단지 내외부적으로 조율해야 할 것들에 힘을 많이 들이는 편이에요. 화자와 나 관계의 거리감을 조정한다든지요. 

내외부의 조율해야 할 것에는 어떤 게 있나요?

실제 인물에게 허락을 구하는 부분도 있고, 현실을 변형하거나 가공할 때 오는 제 불만족도 있고요. 쓰는 것과 사는 것을 순환하게끔 쓰려는 저로서는 글쓰기에 대한 죄책과 부차적인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겠죠.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면서 당시 생각했던 일들이 다시금 재정의되기도 하나요? 그때 생각했던 감정들이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든지요.

「데이 포 나이트」를 쓰면서 그 생각을 제일 많이 했어요. 결론을 내지 못한 소설 중 하나거든요. 소설을 쓰면 뭔가 해소될 줄 알았는데, 쓰고도 해소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어요. 현실에서도 소설에서도 종결짓지 못하고 여전히 의문을 품고 가야 하는 게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랑이 그런 것 같아요. 특히 20대와 30대의 사랑이 다르기 때문에 뒤돌아보면 이해하지 못하죠.

후회가 있죠. 자신을 지키는 쪽으로 정신승리를 하게 되기도 하고요.

지금 작가님의 사랑은 어떤가요?

그렇게 크게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예전 사랑도 생활에 가까운 사랑을 좋아했어요. 동거 애호가들이 있잖아요. 사랑하면 동거하는 편이었고, 지금 애인과도 같이 살고 있어요. 누군가는 저에게 생활로 묶이지 말라고 하지만 저에게 사랑은 생활로 서로 겹쳐지는 것들이에요. 때로는 멀어졌다 집에 가면 다시 만나고 가족이 되는 연애를 예전에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지시하기

브랜드나 지명, 인명에 실제 이름을 쓸 때가 많아요.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업소명을 드러내는 걸 꺼리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게이 커뮤니티 내에서도 데이팅 앱을 통한 아웃팅 등 많은 사건이 있지만, 정확한 명칭을 적시하는 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적시했을 때 위축되는 사회가 잘못된 거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줘도 문제가 없는 세상을 꿈꾸기에 그렇게 쓰게 된 것 같아요.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갈등하고 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만한 문제예요.

실제하는 것들이 나올 때 독자들이 순식간에 현실로 느끼는 효과도 있겠죠.

실감을 확 느낄 수도 있고, 모르기 때문에 배척될 수도 있죠. 다른 집착은 없는데 어떤 것이 흘러 감정까지 가는 걸 정확하게 말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종일 알맞은 단어를 찾을 때도 있고요. 있는 그대로 지시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감정을 표현하는 말도 정확한 단어를 찾는다는 거군요. 

끝까지 찾아지지 않는 감정도 있는 것 같아요. 짧은 외국어로 찾아보면 호환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다른 단어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라 집어 말할 순 없어도 최소한 정확한 단어를 말하려고 노력하는 게 저의 문학관이자 소설 쓰는 방식이지 않을까요? 

다른 작가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환경을 묘사한다면, 작가님은 느낌을 직접 설명하는 방식을 택해요.

한창 제가 글을 배우고 쓸 무렵에는 말하기보다 보여주는 게 훨씬 좋다는 우위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의 근사함은 알고 있지만, 외로움을 외롭다고 말하면 되는데 왜 에둘러서 그림으로 보여줘야 할까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지시하면서 정확히 말해서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것들을 원했어요.

 “모든 것을 말하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325쪽)는 문장이 있었어요. 소설을 쓰면서 점점 더 그 생각이 강해지나요?

첫 소설집은 정말 멋모르고 쓴 게 많아요.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조율하고 정리하는 데 신경을 썼다면, 이제는 소설론이나 작법으로서도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이 생겼어요. 둘러봐야 할 주변 상황들도 생기고요.  



완전한 픽션과 완전한 에세이 사이 

써야 할 내용보다는 소설을 쓰고 싶은 기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요즘도 여전히 그래요. 이상하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기분이 출근길에 많이 들어요. 아주 옅은 비감 같은 게 동반되는 것인데,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이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게 어떻게 보면 제가 소설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출근길에는 비감이 들죠.

다들 슬프잖아요(웃음). 그런데 옅게 슬퍼요. 출근하면 싹 다 잊어버리고, 쓰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요.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출근길에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잖아요. 음악이 기분을 환기해서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무엇을 쓸지 정하고 책상 앞에 앉는 편인가요? 아니면 일단 책상 앞에 앉나요?

쓰고 싶은 게 없이는 앉지도 않아요. 쓰고 싶었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고 비로소 그 기분과 어떤 이야기가 접합되었을 때 앉아서 쓰기 시작하는지라, 굉장히 늦게 자리에 앉고 금방 쓰는 편이에요. 쓰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될 것인지 수없이 연결하면서 생각하다 나오는 문장들이 있기 때문에 쓰지 않지만 또 쓰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일본 문학의 영향을 받은 듯한 부분이 있어요.

날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일본 문학이나 애니메이션, 문화에서 주는 서정성을 좋아해요. 일본적인 면이 제 유년 시절의 모습과 닿아있어서 더 애호하게 되는지도 모르고요. 일본 문화에서 그리는 장르적 특성의 가짜 계절감조차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이 서정을 풀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문장에 붙임표를 쓰기도 해요. ‘흘렀다’가 아니라 ‘흘-렀-다’가 되는 거죠. 

일본어에서 강조하는 느낌의 연극적인 말투이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문장의 리듬감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영화적 기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고요. 읽는 사람마다 읽는 속도도 다 다르겠지만 작가가 어느 정도 지시를 해서 같은 마음과 속도로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때때로 쉼표나 붙임표를 이용해 말미를 주기도 해요. 

붙임표가 나오는 순간 속도가 달라지더라고요.

가독성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속도를 바꾸기도 하는 거죠. 쉼표를 많이 쓰는 편인데, 한창 습작하던 시절에 이인성 선생님 소설을 많이 읽었고 거기서 오는 리듬감이 좋아서 쓰고 있어요.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는 형식에 더 끌리는 이유로 정체성을 들어주셨는데, 왜 그런 걸까요?

제 기질과도 닮아있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오픈리 게이로 살아왔기 때문에 제 정체성을 말해왔고, 문학에서도 일관되게 퀴어 정체성을 말하면서 글을 써왔어요. 퀴어 정체성을 가졌다고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쓸 필요는 없겠죠. 더 멀리 가버릴 수도 있지만, 게이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할 기회도 사실 없잖아요.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 게이예요”라고 말할 수도 없고요. 제가 쥐고 있는, 제가 쓰는 소설에서만큼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실제 생활에서 그런 기회가 덜하기 때문에 더 말하고 싶은 거죠.

어떻게 보면 커밍아웃의 일환이 될 텐데, 커밍아웃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하죠. 문학 속에서 경험을 들이고 쓰면서 자기 자신이 소진되는 느낌도 있을 거예요. 

저 역시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창 소설을 쓰면서 소진된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하지만 쓰면서 쓰일 수 있는 ‘나’와 말하고 싶은 ‘나’가 다 줄어들고 나서도 여전히 할 말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축복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런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싶고, 어떻게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쓰이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작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여성 소설가가 꼽히고, 박상영 작가님과 김봉곤 작가님이 그중에 꼽히죠. 페미니즘과 퀴어의 대표성을 띠게 되는 것 같아요.

대표성을 띠는 사람이라고도 알고 있고 의식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때는 그걸 버리고 써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요. 

대표성을 의식하면 프로파간다가 될 테니까요.

그렇죠.

박상영 작가님과는 데뷔 이래 계속 같은 자리에 불리게 되는 때가 많죠? 두 분 다 퀴어 문학을 이야기하지만, 방식은 사뭇 달라요. 작품 세계를 다르게 가져가야겠다는 의도도 있나요?

단군 이래 최대 커플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의도적으로 멀어지자, 달라지자는 생각은 없어요. 아마 박상영 작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처음 썼을 때부터 타고난 기질이 달랐다고 생각하고 그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해요. 다만 각자 맡은 역할을 의식하고 있을 테고, 박상영 작가의 페이소스가 조금 더 사회적이라면 저는 내밀하고 서정적인 감정의 결을 쓰는 작가로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감정을 소설로 풀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설이 주는 자유로움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해요. 에세이에서 상상력은 현실에 얽매일 수밖에 없죠. 현실이 너무 강렬해서 재해석할 여지 없이 튕겨 나가고요. 하지만 이것을 소설로 생각한다면 제가 개입할 여지와 상상해볼 여지, 다른 사람이 될 여지도 생기는 자유로움의 매력이 있어요. 완전한 픽션과 완전한 에세이 사이 어딘가에서 제일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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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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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강화길, 소설로 발언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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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경쾌한 발걸음이었다. 크로스백의 줄을 살짝 잡은 채로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두 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White Horse)』를 막 퇴고한 강화길은 ‘작가의 말’을 평소대로 한 문장으로 정리할지, 길게 쓸지 고민 중이었다. 작가는 구구절절 말을 길게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날렵하고 명쾌한 글을 선호하기에 이번에도 장문의 해설을 보태지 않으려 하지만, 한번쯤 긴 글을 써볼까도 싶다. 며칠 후 완성된 ‘작가의 말’을 전해 받았다. 글의 마지막 두 문장은 바로 “다시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길게 쓰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소설로 충분하다.”였다. 



나 자신을 위해 쓴 작품

이번 소설집 『화이트 호스(White Horse)』는 전작들과 살짝 분위기가 달라요. 우선 표지 느낌부터요. 

『괜찮은 사람』, 『다른 사람』이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표지 사진을 찍은 작가가 같은 사람이에요. 저도 나중에 발견했어요. 신기했죠. 이번 소설집의 표제작이 「화이트 호스」인데 「오물자의 출현」과 고민 끝에 결정했어요. 표제작이라는 건 이 작품집을 소개하는 인트로의 인상이 있잖아요. 「오물자의 출현」은 조금 매니악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 「화이트 호스」로 정했어요. 이 작품을 쓰고 제가 약간은 자유로워졌거든요. 평소 제목을 나중에 짓는 편인데 「화이트 호스」는 제목을 먼저 정하고 쓴 소설이에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 새로웠어요. 

두 번째 단편소설집이라 첫 소설집과의 차별성을 고민했을 것 같아요. 

많이 했죠. 아마 「서우」를 읽고 「화이트 호스」를 읽으신 분들은 굉장히 상반된 기분을 느끼실지도 모르겠어요. 『괜찮은 사람』의 연장선으로 기본적인 「손」과 「서우」를 썼는데 계속 이 기조로 쓸 순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자들은 다양한 작품을 원할 것이고 저 역시 그러하니까요. 서스펜스가 강한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지만, 색깔적으로 변별력이 있는 작품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쓴 작품이 「화이트 호스」예요. 

「화이트 호스」라는 제목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동명의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어요. 소설에서는 시어로도 등장하죠. “하늘에서 내려온 영적 존재, 혹은 구원이나 선물”(202쪽). 이 작품은 어떻게 출발한 소설인가요? 

3년 전에 가족들과 미국 시애틀로 여행을 갔어요. 어머니랑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거든요. 그때 기억이 참 좋았어요. 어머니 친구분이 미국인과 결혼을 하셨는데, 그 분이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저도 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이런 저런 노래를 들려주셨는데, 영어로 대화를 했으니 제대로는 못 알아들었죠. 그러다 음악을 잘 아는 친구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테일러 스위프트는‘화이트 호스’를 밥 딜런과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고요. 아, 그때 미국인 아저씨가 해준 말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되면서, 이 제목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가지 의미로 변주되지만, 자기만의 ‘화이트 호스’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삶에 대해서요. ‘소재를 잡고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이런 것도 얼마든지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화이트 호스」의 주인공은 ‘소설가’입니다.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이야기가 잔뜩 나와요. 

실제로 이 소설을 쓸 때 이런저런 비평에 시달릴 때라서 여러 가지 감정이 혼재된 상태였어요. 평가를 받는 일에 계속 시달리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비평적 언어와 내가 가진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쓴 소설을 보호하고 싶기도 했고요. 개인적인 경험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지만 쓰는 과정에서 깨달은 건, 저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어요. 여성작가들이 여성문제를 다루면 유독 혹독한 비평에 시달려요. 결국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요. 결국 글쓰기란 무엇인가?, 계속 평가를 받는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소설을 완성하고 나니, 이런 물음이 생겼어요. ‘비단 소설가뿐만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이렇게 살고 있지 않나?’ 저 자신을 위해 쓴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목만 읽고 소설로 들어갔을 때,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 들어요. 

좀 추상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의미가 전달이 된다면 명확한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바로 뒤이어 쓰신 작품이 「오물자의 출현」이에요. ‘오물자’는 전라도 말로 ‘인형’이란 뜻이고요. 

소설을 쓸 때 영감이 되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전주 출신이거든요. 휴일에 집에 내려가서 TV를 보는데 너무 귀여운 아이들이 나오는 거예요. “엄마, 애들 너무 귀엽지 않아?”라고 했더니, 엄마가 “그렇네, 진짜 오물자처럼 생겼네”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니, 엄마는 어떻게 애한테 이런 말을 하냐”고 했더니 ‘오물자’의 뜻이 ‘인형’이라는 거죠.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까 정말 맞더라고요. 예전에는 인형을 헝겊 같은 걸로 오므려서 만들었잖아요. 어원을 찾아보니 흥미로웠어요. 이질감도 느껴지고요. 내가 생각하는 어떤 인물이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 받지만, 또 다른 누구에는 반대인 경우가 있잖아요. 「오물자의 출현」도 「화이트 호스」처럼 제목에 먼저 영감을 받은 소설이에요. 



풍부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소설 

『문학동네 2019년 가을호에 발표한 「음복(飮福)」으로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2017년에도 「호수―다른 사람」으로 본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지만 ‘대상’은 더 기뻤을 텐데요. 

‘젊은작가상’이 등단 10년 이하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주는 상이잖아요. 곧 등단 10년이 되기도 하고, 작년 즈음부터 상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거든요.. 2017년에 상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못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도 충분히 좋았거든요. 그런데 대상을 받으니까, 좋긴 좋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상에 대한 마음, 어떤 기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소설을 쓰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음복」은 한 집안의 ‘제사’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음복은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을 뜻해요.

예전부터 제사라는 소재로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어릴 때 친가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까지그 풍경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당시 저는 소도시에서 살았는데 제사를 드리러 간 큰집은 시골이었어요. 한옥이었고요. 제가 경험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기억이었는데, 막상 소설로 쓰기가 쉽진 않았어요. 가족사 소설은 아무래도 거리 두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쓸 때마다 못 쓰지 않을까? 안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했어요. 

주인공은 ‘세나’라는 여성입니다. 시댁에 제사를 지내려고 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시댁에는 비밀이 하나 있어요. 하지만 남편 ‘정우’는 모릅니다. 시어머니가 남편에게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고요. 세나, 시어머니, 고모, 이 세 명의 여성 캐릭터는 굉장히 입체적입니다. 

「음복」은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에 인물이 가장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100매 안에서 써야 했는데, 세나가 고모와 시어머니를 통해 자기 남편을 보잖아요. 두 사람이 가장 중요했어요. 시아버지의 분량은 이 정도가 딱 옳았다고 생각해요. 집안에서 시아버지의 역할이 딱 그만큼이었으니까요. 시아버지나 남편의 서사가 적은 건, 이 가족의 지분을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퇴고 과정에서 오랫동안 생각한 부분이고요.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이 문장으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세나의 독백이죠. 섬뜩한 이 문장은세나의 캐릭터를 잘 보여줍니다. 

퇴고하면서 나온 문장이에요. 초고와 비교하면 많이 다른 결말이 나왔죠. ‘세나’라는 인물은 적당히 통찰력이 있는 것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본인의 경험을 통해 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세나예요. 세나는 다정하고 해맑은 남자를 좋아할 거라고 상상했어요. 쉽게 말하면 심각한 고민이 없고 부정적이지 않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정우’였고요. 캐릭터를 만들 때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들을 고려했어요.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라고 표현하더군요. 

사실 『괜찮은 사람』을 썼을 때부터 스릴러 장르를 의식하고 쓴 건 맞아요. 「음복」도 스릴러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서스펜스가 깊은 작품을 좋아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어떤 가족 안에 있는 비밀이 폭발함으로 피가 흐르는 호러보다 더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한국 가족들을 볼 때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세나가 나중에 자신의 아이를 상상해보잖아요.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가족사의 역사에 대한 주름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 시댁의 비밀을 아들이 아닌 며느리가 알아야 하는가? 그런데 ‘세나’는 자신, 그리고 남편의 행복을 위해 비밀을 말하지 않아요. 

이런 소설을 쓰는 건 저도 세나와 다르지 않다는 인정이 있어서이기도 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말하게 될 거예요. 남편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언젠간 터지겠죠. 다만 「음복」이 첫인상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에 지금의 세나는 남편을 많이 사랑하니까요. 비밀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도 평화를 가져다 줄 거라는 순간적인 생각이 있었겠죠. 

「서우」는 2018년 1월에 발표한 작품이에요. 괴담의 진원지인 ‘주현동’에 사는 주인공이 여성 운전자가 모는 택시를 타며 소설이 시작돼요. 

「서우」는 「손」 다음으로 쓴 소설이에요. 「손」을 쓰면서 만족스러웠거든요. 하지만 「손」 같은 톤으로 계속 쓸 순 없지 않나? 고민했어요. 그러다 이왕 스릴러를 쓸 거면 쫀쫀하게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진짜 살인 사건도 나오고 등장인물은 다 여성으로 하고,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가장 서스텐스가 높은 걸 써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굉장히 몰입해서 쓴 소설이고, 맥락을 이해해야 나올 수 있는 제목이 「서우」였어요.

「화이트 호스」에 “타인에 대한 판단을 끝낸 사람에게는 이런저런 설명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는 문장이 나와요. 그리고 「서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한번 생기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문장이 저는 크게 와닿더라고요. 두 작품 모두 2018년에 발표된 소설이니 이 시기에 작가님이 많이 생각한 문제가 아니었나? 싶었어요. 

제 삶에 대한 고민이었을 거예요. 여성들만 유독 처해지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제가 관심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성들에게 갖는 편견이 너무나 부조리해서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요즘은 나이를 잘 먹는 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진짜 어른이라면, 내 생각이 틀렸을 때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어떤 태도들을 배울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 아닌가? 싶어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생각보다 어른이 많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기회를 못 갖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단편집을 읽을 때, 유독 기억에 남는 인물이 한둘은 꼭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음복」의 ‘세나’, 「화이트 호스」의 주인공 ‘나’, 「오물자의 출현」의 ‘김미진’. 이 세 명에 가장 이입이 많이 됐어요. 인물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나요? 조심하고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 것도 같고요. 

최대한 입체적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인물에 꽂히면 마음을 주게 되니까요.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는 풍부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인물을 만드는 일이에요. 제 소설을 읽은 분들은 “여성의 입장이 정말 다양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음복」을 발표했을 때, 세나의 남편 ‘정우’를 굉장히 싫어하는 독자들이 많았죠. (웃음) 싫어하는 농도가 많이 달라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애착이 많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항상 마지막에 쓴 작품이에요. 지금은 「가원(佳園)」이요.



다양한 언어로 말하는 일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기자를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보다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정보가 많았다면 문예창작학과를 가야했는데 글을 좋아하니까 고전적으로 (웃음) 국문과를 간 거예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3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울에 가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졸업 후 한예종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와보니 뛰어난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대학문학상에 후보로 올라도 최종심에서 떨어지고 하다 보니, 될만한 재능은 아닌가? 싶더라고요. 한예종에 입학하긴 했지만 등단은 전혀 다른 문제였어요. 글을 잘 쓰는 애들 사이에서 위축이 많이 됐죠. 등단이 안 됐으면 취직하려고 했는데 덜컥 된 거예요. 준비도 없이 정말 덜컥. 이후에 청탁이 없는 시기가 있었는데, 저 스스로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니까요. 등단 이후에 방황을 좀 했죠. 

그런데 서사창작 석사를 마치고, 동국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까지 수료하셨어요. 

대학원을 마칠 때쯤 취직과 공부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데, 부모님이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박사까지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서울에 와서 고생하면서 등단까지 했는데 그만하라고 하기가 좀 그러셨나 봐요. (웃음) 동국대학교에서는 현대문학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1년 후에 문예창작과 합평 수업에 들어가서 박상영, 송지현 작가를 만나 친해졌죠. 

올해부터 『Axt』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단편 발표도 했던 잡지라 내적으로 친밀했어요. 제안을 해주시니 좋았죠. 잡지를 만들어본 경험이 한번도 없어서 배워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손보미, 김유진 작가님과 함께 1월부터 함께 하고 있어요. 

최근 출간된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에 「선베드」를 수록하셨어요.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도 그렇고 앤솔로지 참여를 활발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기획이 되게 많아졌거든요. 청탁이 많이 들어와요. 짧은 소설도 그렇고요. 「선베드」는 예전에 <웹진 비유>에서 발표했던 소설인데 좀 아쉬웠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쭉 써왔던 소설과는 많이 달라요. 『괜찮은 사람』에 수록된 「당신을 닮은 노래」와 가장 가까운 톤인데, 좋은 기획을 제안해주셔서 분량을 좀 늘려서 써봤어요. 

소설가로서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해서 잘 쓴다는 말이 제일 좋아요. 이 작가는 글을 참 잘 쓴다, 이보다 더 큰 응원이 없는 것 같아요. 작가가 잘 쓰지 못하면 소설을 계속 쓸 수 없으니까요. 가장 기분이 좋은 말이죠. 

그럼 반대로 못 견디는 상황이 있나요? 싫은 말이나 힘들어하는 사람이나.

그건 그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제가 좋고 싫은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사람은 변할 수 있고 적응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누군가를 배려하게 되고요. 저는 어떤 상황에 대해 단언하는 걸 안 좋아해요. 소설을 볼 때도 그래요. 이건 촌스럽다, 세련됐다 이런 평가를 좋아하지 않아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소설도 다양할 수 있으니까요. 소설을 쓰는 친구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참 많은데요. 다양한 삶을 읽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미학적인 기준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양한 언어로 말하는 일이에요. 

전작 장편소설 『다른 사람』의 띠지 카피가 “영페미의 최전선”이었어요. 곧 등단 10년차가 되니 이제 이런 타이틀로 불리진 않을 거예요. 대신 책임감이 더 커질 거고요.

의식을 전혀 안 한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다만 각자 활동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활동가 성격이 강한 사람은 나서서 페미니즘을 말할 것이고,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작품으로 말하겠죠. 저는 소설로 발언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어떤 기조의 소설을 쓰는 일이 저에게도 의미가 있고, 누군가에게도 의미가 있었으면 해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요?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그건 저도 모르는 것 같아요. 『화이트 호스』에 실린 소설들도 이렇게 나올지 몰랐거든요. 제가 상상했던 형태로 썼을 뿐이라서 “다음에 제가 쓰는 걸 봐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게 가장 정직한 것 같아요. 



화이트 호스
화이트 호스
강화길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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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진아 “상실은 매번 다르게 겪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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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환상 속의 그대>를 연출한 강진아 감독이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죽음과 상실의 문제를 고민해온 그가 이번에는 ‘엄마와의 작별’을 이야기한다. 『오늘의 엄마』의 주인공 정아는 남자 친구의 세 번째 기일에 엄마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는다. 한 번의 죽음에 익숙해질 새도 없이, 지지부진한 간병 생활이 시작된다. 그동안 우리는 상실의 흔적을 너무 쉽게 지워온 게 아닐까? 새로운 이별 앞에서 매번 당황하고 마는 이에게, 강진아의 소설은 아픔을 정직하게 되풀이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소설로만 할 수 있었던 이야기

영화감독이 아닌, 소설가로서 첫 책을 출간하셨어요. 

출판사 투고를 거쳐 나오게 된 소설이에요. 시나리오를 쓸 때, 등장인물에 깊이 못 들어간 걸 반성했거든요. 인물의 속마음을 자세히 쓰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소설 형태가 됐어요. 완성본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투고란이 있더라고요. 무작정 원고를 보냈고 출간을 해보자는 연락을 받았죠.

특이한 출발이네요.

편집자의 연락을 받고 놀랐어요. ‘어떻게 내 이야기를 끝까지 읽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과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거든요. (웃음)

처음 소설을 구상하셨을 때,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나요?

누군가에게 공백기로 보일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영화 활동을 잠시 멈추었던 시기와 엄마를 간병하는 동안, 사회적으로 단절됐지만 저는 매일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요즘 뭐해?’ 물으면, 노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다시 사회로 나왔을 때, 저조차도 기억을 지워버리려 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분명 그 시기에 저는 누구보다 애쓰고 있었는데 말이죠. 

‘오늘의 엄마’라는 제목만 봐도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아요. 

‘엄마’라는 단어를 이길 수가 없어요. (웃음) 엄마를 떠나보낸 뒤에도, 주인공 정아의 삶에 늘 ‘오늘의 엄마’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원래 제목은 ‘엄마의 엄마’였어요. 엄마의 입장에서 본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소설을 진행할수록 핵심이 외할머니가 아닌, 엄마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외할머니 부분을 덜어내고 엄마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죠. 그래서 제목도 ‘오늘의 엄마’가 된 거예요. 

영화 <환상 속의 그대>부터 죽음의 문제를 다뤄오셨어요. 『오늘의 엄마』에서 정아는 남자 친구인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는데, 엄마의 암 선고 소식을 듣게 되고요. 

죽는 게 무섭지 않으세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컸어요. 평소에 죽는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요. 주변에서 죽음을 경험하면서 느낀 건, 결코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예요. 죽음의 여러 가지 모습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남자 친구인 ‘그’의 죽음을 넣은 건, 정아가 바로 엄마의 상실을 맞닥뜨리면 너무 혼란스러울 것 같았어요. 대면하기 힘들어서, 엄마와 시간을 많이 못 보냈을 수도 있고요. 



엄마와의 이별을 앞둔 주인공 정아는 서른 살이 되기 직전의 나이예요. 

제일 부침이 강한 시기 같아요. 20대가 될 때는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서 홀가분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데 스물아홉 살은 기존의 세계와 작별하기도 어렵고, 책임감은 늘어나는 시기죠. 아직 서툴지만 다 짊어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픈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정아가 서른을 앞둔 나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간병기 하면 주인공이 성숙해지거나 가족끼리 끈끈해지는 소설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지 않아 신선했어요. 언니와 다투기도 하고, 간병 생활이 끝난 후에도 삶은 그대로 이어지죠. 

완전한 성숙은 없는 것 같아요. 인간은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도 많잖아요. 저는 중학교 때 문제점을 지금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해요. 나이를 먹으면 성숙해질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오히려 반드시 나아져야 한다고 집착하면, 괴로움만 늘어나는 것 같아요. 상실을 겪어보았으니 이제 괜찮지 않냐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상실은 한번 경험했다고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매번 다르게 겪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단절된 시간을 긍정할 수 있기를

정아는 엄마를 관찰하면서 공통점을 찾아요. “엄마의 이런 취향을 뒤늦게 배우면서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게 되었다”(132쪽)고 하죠.

실제로 닮아서 그런 걸까요? 엄마가 아프니까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고 싶었을 거예요. 분명 과거의 정아는 엄마를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런데 이별을 앞두자 “우리는 끊어져서는 안 돼”하고 엄마를 붙잡는 거죠. 엄마와 이별하는 동안에는 비슷한 점만 보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정아와 정미 자매의 성격이 굉장히 달라요. 정아가 감성적이라면, 언니 정미는 이성적이고요.

자매의 관계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언니와는 실제로 뒷이야기가 있어요.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언니한테 따진 적이 있어요. 제 방식이 아니라, 첫째인 언니의 방식대로 엄마와 이별했다는 생각에 억울하더라고요. 그런데 언니 입장에서는 사과를 못 하겠다는 거예요. 언니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최선을 다했는데, 제게 사과하면 그 시간을 부정하는 셈이 되니까요. 그때 언니의 입장을 생각하게 됐어요. 같은 상황이라도 엄마와의 이별 방식은 저와 언니가 달랐던 거죠. 그 차이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어요.

언니도 소설을 읽었나요?

계속 망설이다 출간 직전에 원고를 보여줬어요. 언니의 첫 반응이 “이거 나 아닌데”였어요. 실제 인물을 모델로 쓰면 정작 당사자는 못 알아본다던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웃음) 언니는 등장인물 정미가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엄마의 간병을 정미만큼 꿋꿋하게 해내지 못했다고요.

선배 고호민은 정아의 곁에서 웃음을 주는 인물이에요. 연애인 듯 아닌 듯 현실적인 관계죠. 상실을 겪는 정아 곁에 바깥의 누군가를 두고 싶었나요? 

정아가 마주하는 여러 관계를 다채롭게 그리고 싶었어요. 인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사람이 달라지잖아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다시 보게 되기도 하죠. 좋은 시절에 기쁨을 나누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힘든 시기에 조력자가 되어주는 사람도 있어요.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히려 상처를 줄 때도 있고, 의외의 인물이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해주기도 하고요. 그중, 고호민은 정아의 힘든 시절을 함께 하는 사람인 거죠. 

투고 후 혹독한 편집 과정을 거치셨다고 들었어요.

온통 빨간펜이 그어진 교정지를 받아들고 완전 충격받았죠! (웃음) 처음부터 다시 원고를 고치면서 비로소 독자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초고를 쓸 당시에는 여유가 없었거든요. 여러 버전의 원고를 가져가서 장면을 넣고 빼기도 하고,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은 고쳐 썼어요. 그렇게 열심히 다듬은 끝에, 완전한 소설의 형태가 된 거예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책 한 권이 나오는구나 절실히 느낀 시간이었어요.

‘작가의 말’을 안 쓰시려 했다고요. 왜 그랬나요?

아직 작가라는 자각이 희미해서 쓸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편집자님이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자리라고 해서 고민 끝에 부랴부랴 쓰게 됐죠.



어린 시절, 등굣길에 우연히 마주친 낯선 개와 이별하는 장면을 쓰셨어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개의 눈빛을 선명하게 기억하신다고요.

평소에도 스쳐 지나간 관계를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 사람은 그때 왜 그랬을까’ 계속 질문하기도 하고요. 비록 관계는 끊어졌지만, 한 사람이 준 영향은 남아서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저를 따라왔던 개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은 곁에 있지 않더라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거죠. 한때는 과거를 놓지 못하는 성격을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계속 담아둔 것이 이야기의 형태로 나오는 것 같아요.

소설이 어떤 독자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나요?

지금도 병원에서 가족의 상실을 견디고 있는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간병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그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가족 중 누군가 세상을 떠나는 경험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겪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죠. 단절된 시간이 개인의 몫으로만 남는 것 같아요. 한 세계와 이별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시기인데 말이에요. 상실을 온몸으로 견디는 주인공 정아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긍정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의 엄마
오늘의 엄마
강진아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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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성원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은 돌,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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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寶石). 본질은 땅속에서 파낸 돌이지만, 그 귀중함에 따라 보석은 인류사마다 등장해 인간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큰 진주를 식초에 타서 마셨다는 클레오파트라, 약혼반지로 만들어 ‘결혼반지=다이아몬드’라는 인식을 만든 최초의 다이아몬드 반지, 무굴 제국의 부흥과 쇠락을 함께 한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과 영국을 맞붙게 한 신대륙의 진주와 에메랄드, 보석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드는 연애시…. 『세계를 움직인 돌』은 고대 이집트의 끝자락부터 러시아 혁명까지 약 2천 년간 역사의 전환점에서 보석이 등장한 중요한 순간을 다룬다.

책을 쓴 윤성원 교수는 뉴욕의 GIA(미보석감정원)에서 공부한 것을 시작으로 주얼리 컨설턴트와 주얼리 칼럼니스트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보석학적 정보와 역사, 트렌드, 디자인, 마케팅 등 보석의 모든 분야를 다양하게 다룬 경험을 바탕으로 한양대학교 보석학 전공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보석업계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사람과 자연의 협업

『잇 주얼리』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등의 책을 써왔어요. 기존 책과 이번 『세계를 움직인 돌』이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잇 주얼리』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은 실용서였고,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는 역사 인문서였는데요. 이 책은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변이 넓으면서 깊이도 있는 책을 만들자는 각오로 뉴욕에서 한 달 동안 박물관을 다니면서 자료조사를 했어요. 

도판이 많이 들어갔어요.

이전 책에도 주얼리 사진은 많이 넣은 편이에요. 보석 사진은 이제 저작권을 협의하는 게 익숙해져서 요청하기가 한결 수월했어요. 보석을 다룬 명화들은 저작권이 풀린 게 많이 있어서 더 쉬웠고요. 고를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책 후가공도 공을 들이셨더라고요.

편집자님이랑 영혼을 갈아넣은 책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공을 들였어요. 자세히 보시면 꼼꼼하게 준비했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보석마다 어울리는 그림을 찾는 과정은 어땠나요?

지난 십 년 동안 소더비 경매를 많이 나갔었어요. 특정 보석을 이야기할 때 어떤 그림을 예시로 들면 좋을지 그동안 미리 노트에 체크를 해뒀어요. 모자란 부분은 저작권을 가진 회사에 요청하기도 하고요. 

돌’을 공부하면서 점점 디자인에 흥미를 갖게 됐고, 나중에는 재밌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요. 일반인 대상으로 보석을 알리고 싶은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보석의 매력에 빠져들어서 공부하다 보니 우리가 평소에 보석에 대한 편견이 강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보석이 사치품 중에서도 대표로 꼽히는 건 사실이지만, 과거의 보석을 파헤쳐 보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 역시도 몇 년씩 공부하면서 스스로 생각이 변하기도 했고요. 보석은 사람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존재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지구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게다가 보석은 사람들의 몸에 지닐 수 있잖아요. 사람들이 모으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 보석은 그 어떤 물질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특징과 매력이 있어요. 원시시대 사람들도 조개껍데기 등을 모아서 목에 걸기도 하고, 땅에서 나온 어떤 물건을 몸에 지님으로 자기의 소원을 이루려고 했었죠. 보석을 통해서 우리가 인류의 발자취까지 돌아보고, 어떻게 세상을 바꾸게 됐는지 돌아보자는 취지였어요. 책 제목도 그래서 정했고요. 

어릴 때 예쁜 돌을 보면 본능적으로 주워서 애지중지하죠. ‘예쁜 돌’을 좋아하는 DNA가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주워서 점점 다듬는 방법을 배웠어요. 주얼리는 어떻게 보면 사람과 자연의 협업이 아닐까요? 원석만으로는 장신구로 만들 수 없어요. 장인이 연마하고, 또 다른 금속을 입혀서 착용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거죠. 어떤 분들이 이 책이 또 하나의 미시 세계사 책이 아니냐 하시기도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패션은 시즌마다 변하지만, 주얼리는 패션보다 느리게 변화해요. 패션은 섬유가 삭으면 쓸 수 없지만, 보석은 몇백 년이 지나도 그 특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죠.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이 바뀌기도 하고요. 



오해가 쌓인 보석

서양에는 보석에 대한 일화와 역사가 잘 남아있지만, 동양의 보석 역사는 잘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요. 책에는 비취와 중국의 역사, 무굴, 중동 영역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말씀하신 대로 서유럽과 동유럽 중심의 책이긴 해요. 보석의 역사 자체가 서양에 치중되어 있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동서양이 보석을 인식하는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쇄국 시기와 일본 강점기를 거치면서 보석을 누릴 여유가 없었던 영향이 강하죠. 주얼리 역사 자체가 서양 역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틀을 확 벗어나진 못했어요. 제가 나중에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석이 박힌 장신구가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요. 

‘백의민족’이라는 말처럼, 한국에서는 색을 즐기는 문화가 적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억상 문화 때문에 만들고 파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것도 있고요. 소수의 부유층만 누리다가 1970년대 이후에 잘살게 되면서 보석을 누리려고 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 오해하게 된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보석은 일단 사기를 조심해야 하고, 사기일 수 있으니까 가격을 깎아야 한다는 인식이 먼저였죠. 조상에게서 계속 보석을 물려받아 온 문화였다면 보석에 감성적인 의미도 부여했을 테지만, 서양 문화가 갑자기 들어오면서 피해의식이 생기고, 나라에서도 사치품으로 보고 세금을 많이 물리기도 하죠. 

유색 보석을 기피하는 문화도 있어요. 

여러 이유가 있었어요. 예전 빨강 파랑 초록 보석의 디자인이 너무 촌스러웠던 문제도 있을 거예요. 튀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성도 있고, 파티 문화가 아닌 상황에서 주얼리가 생겨도 자랑할 데가 없었잖아요. 그리고 유색 보석의 도매 가격은 다이아몬드만큼 뚜렷한 기준이 매겨져 있지 않아요. 미묘한 색 차이로, 원산지로 가격이 달라지죠. 일반 소비자가 보면 처리를 한 건지 아닌지 육안으로 보기 힘들어요. 오로지 전문 보석상만 해석하다 보니 오해가 많이 쌓였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어떤가요? 

최근에는 많이 바뀌고 있어요. 남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비싸진 않더라도 다양한 색 중 원하는 색의 보석을 사서 착용한다거나, 소셜미디어 문화를 통해 보여줄 곳이 생겨서 노출도 많이 하고요. 지난 5년 동안에만 해도 많이 변하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지금 20대~30대는 전 세대에 비해 가격과 브랜드를 덜 중시하고 나에게 맞는 걸 찾겠다는 의지가 강하죠. 모조 보석을 이용하는 층도 많고요. 

자기 개성에 맞는 주얼리를 고르다 보니까 가격대가 다양해졌고, 모조 보석도 큰 시장을 이루고 있어요. 주얼리 시장 자체가 활성화되었다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죠. 다양한 색의 보석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에 다양한 스톤이 유통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유색 보석은 외국보다 제한적이에요. 그렇지만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 발달로 외국의 딜러와 직접 거래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그러다 보니 종류가 늘어난 것 같아요. 저는 긍정적으로 봐요. 하늘색, 분홍색, 무늬가 있는 보석 등 다양한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자기와 어울리는지, 자신이 어떤 보석을 좋아하는지 20대 때 파악하면 나이가 들수록 더 고급스럽게 자기 개성을 나타내는 주얼리를 즐길 수 있게 될 거고요. 

탄생석 마케팅이 유행했던 기억이 있어요. 1990년대 이후로 보석 마케팅도 활성화된 것 같아요.

15년 전쯤만 해도 보석업계 사람들이 탄생석에 주로 쓰이는 하늘색 보석이나 자주색 보석을 ‘잡석’이라고 표현했어요. 제 귀를 의심했었죠.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가 아닌 ‘semi-precious’를 잡석이라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잡’이라는 의미가 상당히 부정적이잖아요. 그 보석들도 다 땅속에서 우리 인류보다 훨씬 오래 살았고, 어떻게 보면 지구의 장인 정신이 깃든 존재인데 이걸 자질구레하다고 일컫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사실 ‘semi-precious’라는 표현도 요즘에는 잘 안 씁니다. 귀하다고 부르는 기준이 이제는 달라졌다는 거죠. 탄생석은 결국 자기가 태어난 달을 상징하는 보석을 몸에 지니면 행운이 온다는 마케팅이잖아요. 마케팅인 건 다들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잖아요. 나와 관련이 있다고 믿으면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다이아몬드보다 가치가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보석은 무엇인가요?

블루 사파이어를 좋아해요. 그다음으로는 투르말린 중에 파라이바 투르말린을 좋아해요. 지역의 이름을 딴 보석인데, 형광을 띈 파란색이죠. 실제 착용하고 햇빛에 나가면 마치 제가 수영장 안에 햇빛이 내리비칠 때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시원하고 아름답고 청량감이 들어요. 시원한 색에서 주로 마음의 정화를 얻는 것 같아요.




감성으로 다가가야 한다

책에서 유대인이 운영하는 보석샵에 가서 무작정 부딪친 에피소드도 나와요. 대개 외부인에게는 잘 보여주려 하지 않을 텐데요.

뉴욕의 유대인 보석샵은 우리나라의 종로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지하부터 위층까지 이중 삼중 문으로 보안을 하는 건물이 늘어서 있고, 도매 업자와 커팅사, 세공사가 다 모여있죠. 보통은 도매를 하는데 가끔 소매도 하기 때문에 소매 고객이 왔다고 내쫓지는 않아요. 저는 갈 때마다 GIA 학생이라는 걸 밝히고 가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배웠던 귀한 보석을 실제로 보기 위해 가기도 했고요. 

유명 브랜드의 보석샵도 많이 참고하셨다고요.

5번가의 티파니 매장에서는 세팅된 주얼리의 형태를 본다거나, 47번가 다이아몬드 가에서는 다이아몬드 세팅을 보는 식이죠. 티파니나 백화점에 입점한 주얼리 브랜드는 이미 검증된 세련된 디자인이기 때문에 디자인이 되었을 때 보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수 있었고요. 세계적 경매장인 소더비나 크리스티도 많이 참고했어요. 경매장은 모두가 구매 가능한 사람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희소한 유물을 제외하고 몇억 대까지는 웬만하면 시착이 가능해요. ‘이걸 언제 껴보겠나?’ 하면서 다 시도해봤던 것 같아요. (웃음) 경매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오늘날 이런 책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제가 평생 다시 보지 못할 보석들을 경매에서 보면서 역사를 배웠거든요. 

보석을 배우러 유학을 하러 갈 당시 동급생들은 대개 보석을 가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요. 아무 연고가 없었을 텐데, 어려움을 딛고 계속 보석을 공부하고 알리는 원동력이 있다면 뭘까요? 

GIA도 원동력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아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죠. 이후 한국에 들어와서 보석 소비자를 경험하고, 디자인도 같이하게 되면서 전반적인 주얼리업계를 다 경험하게 된 것 같아요. 사업을 하면서도 사업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무언가 알리고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칼럼니스트로 진로를 틀었는데, 다양한 면을 경험한 이력을 보고 대학에서 불러주셔서 보석학 융합 수업도 하게 된 것 같아요. 

강의에서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학교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강의를 많이 했는데요. 요즘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매니저 교육과 소비자 대상 강연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한 게, 방패와 창이거든요. 보석을 파는 사람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보석을 사는 사람을 가르쳐야 하죠. 그래도 특장점을 잘 살려서 팔 때는 어떤 포인트로 다가가야 하는지, 살 때는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나름 차이를 두면서 진행하면서 보람을 느껴요. 없었던 분야를 새로 하는 거니까요. 

보석학 대학원생을 가르칠 때와, 일반인 대상으로 가르칠 때 차이를 두는 게 있나요?

일반인은 최대한 쉬운 용어로 설명하고 있어요. 보석학과 학생들은 할 수 있는 한 깊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죠. 일반 소비자에게 강의하는 게 더 쉽진 않아요. 보석을 업으로 해야겠다거나, 관심이 많아서 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보석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더 많은 에피소드를 섞고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만큼 보석을 스토리로 풀어가는 데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예측이 많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보석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글로벌 차원에서 주얼리 시장이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어요. 특히 미국 시장에서 샵 자체를 열지 못해서 백화점은 거의 파산 상태예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온라인 쪽으로 바뀌는 추세는 확실할 거예요. 힘들다고 해서 사람들이 주얼리를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도 사람들은 보석을 찾아왔어요. 다만 구매하는 방법이나 경험하는 채널은 확실히 달라질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스토리텔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몇억짜리 보석이라 할지라도 결국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건 어떤 감성이거든요. 그게 주얼리의 특징이죠. 결국 소비자가 경험하는 체험으로 보석의 가치가 달라지는데, 비대면으로 보석을 알려야 한다면 남들이 다 아는 평범한 등급이나 경도 같은 정보로는 안 될 거예요. 사람들마다 특화된 스토리를 찾아내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짝이는 무언가가 사람들에게 위로도 되고, 힘을 주기도 해요.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것도 주얼리가 부피 대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요.



 

책을 쓰면서 바라는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책은 정말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초등학생 6학년 남학생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 나이대 분들도 열심히 읽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남녀노소 읽을 수 있는 책이길 바라요. 이 책을 통해서 보석을 사라고 하는 메시지는 전혀 아니에요. 그저 보석이 가진 편견을 깨고 보석을 가지고 토론하는 문화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세계사 속에서 보석이 어떻게 역할을 해왔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세계를 움직인 돌
세계를 움직인 돌
윤성원 저
모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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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유지원 “’뉴턴의 아틀리에'적인 친구들을 위해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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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좋아하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와 물리를 좋아하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픽 연구자 유지원 작가가 『뉴턴의 아틀리에』를 펴냈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과학자는 예술적으로, 예술가는 과학적으로로 써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저자가 속한 과학기술인 단체에서 ‘미술관 데이트’를 기획했는데, 유독 김상욱 교수와 유지원 작가가 미술 작품을 보는 관점이 특별히 비슷했다. ‘어떻게’를 시작으로, ‘왜’ 그렇게 했는지 작가의 상황과 의도를 파악하며 작품을 감상한 두 사람은 독일 ‘작센’에서 공부한 공통점이 있었다. 우연히 관람한 살바도르 달리의 특별전에서 숨이 멎는 경험을 한 김상욱 교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를 각별히 좋아하는 유지원 작가.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만들어간 『뉴턴의 아틀리에』는 어떤 책일까?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자리한 과학책방 ‘갈다’에서 김상욱 교수, 유지원 작가를 만났다. 



독자의 신체와 반응하는 책 

제목이 흥미롭다. 물리학자 ‘뉴턴’의 작업실이라니. 

김상욱 말 그대로다. 뉴턴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이고, 아틀리에는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다. “과학자가 그림을 그리면, 또는 과학자가 미술가의 공간을 가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이것이 이 책의 출발이다. 26가지 주제를 유지원 작가와 번갈아 가면서 선정했고, 하나의 주제를 두 개의 시각으로 표현했다. 책을 읽다 보면 ‘이게 누구의 글이지?’ 감이 안 올 수도 있다. 완전히 별개의 평행선을 걷지 않도록, 가급적 상대방의 자리에 들어가서 글을 쓴 책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와 예술가의 소통’이라는 측면으로 이 책을 바라봐도 될까?

유지원소통은 좋다. 하지만 융합, 통섭 같은 단어는 피하고 싶다. 융합과 통섭이라는 단어가 개념으로는 맞을 수 있지만 지나치게 사업화가 되면서 실망스러운 결과들을 많이 보여줬다. 책 제목만 보면, 과학자와 예술가가 만나서 쓴 글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게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학 속에 이미 예술이 포함돼 있고 예술 속이 과학이 이미 들어가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어떤 일정한 현상이 미술 영역이기도 하고 과학 영역이기도 하지 않나? 

책 날개에 저자 사진이 실렸는데, 김상욱 교수는 보라색 실을, 유지원 작가는 하늘색 실을 들고 있다.

유지원 책 디자인을 내가 직접 했다. 책의 물성을 이용해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책의 물리적인 육신을 이루는 두 재료가 바로 종이와 실 아닌가? 실제본을 하진 않았지만, 실을 그래픽 요소로 사용해보고 싶었다. 김 교수님은 보라색, 나는 하늘색을 골랐다.

각자의 글에 사용한 서체도 다르다.

유지원 김상욱 교수님의 글은 본명조체, 나는 아리따부리체를 사용했다. 각자의 서체가 각자의 다른 색깔 실로 엮어진다. 어느 색실이 씨줄이고 어느 색실이 날줄인지는 모른다. 씨줄과 날줄이 역할을 교차하며 직조되는 이 세계 전체를‘뉴턴의 아틀리에’로 볼 수 있다.

정말 흥미롭다. 김상욱 교수는 유지원 작가가 디자인한 책을 어떻게 보았나?

김상욱 무척 마음에 든다. 유지원 작가님이 공동 집필을 한 사람에게 도장을 만들어 주시는데, 나도 이번에 멋진 도장을 선물 받았다. 사람들이 되게 부러워한다. 감사하고 기쁘다. (웃음) 



유지원 (웃음) 정말 신경 써서 만든 책이다. ‘뉴턴의 아틀리에적’이라는 말을 해놓고 디자인으로도 실천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 아닌가? 이번 책은 촉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표지에 유광 라미레이팅을 했고, 레자크지를 써서 질감 대비를 강조했다. 표지를 무광으로 하면 책을 들었을 때 마찰력이 부족해서 미끄러진다. 반면 유광은 반짝반짝하면서 끈적임이 있어 마찰이 생긴다. 이 물리적인 성격이 독자의 신체와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책등도 재밌다. 영문 제목이 두 실로 묶여 있다.

유지원 유머 감각을 넣었다. 보라색 실은 김상욱 교수님, 하늘색 실은 나인 셈인데, 책날개를 펼치면 두 사람이 각자의 실을 들고 있다. 쇄가 거듭될 때마다 이 실들이 많이 빠져나와서 본문 속으로 실이 더 길게 투입되는 게, 저자로서의 욕심이다. (웃음)

레이아웃도 독특하다. 우선 가독성도 매우 좋고, 그림이 많이 실렸지만 텍스트 중심의 책으로 읽힌다.

유지원 알아봐 주니 정말 고맙다. (웃음) 책 읽기가 점점 디지털 시대로 가고 있지 않나? 보통 그림이 먼저 나와 텍스트를 몰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뉴턴의 아틀리에』는 텍스트에서 그림을 언급하면, 그 자리에 그림을 넣었다. 블로그 편집이랑 비슷한 방식이다. 저자는 글을 쓸 때, 이미 머릿속에 그림이 연상되지 않나? 하지만 독자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를 읽기까지 시차가 생긴다. 그 시차를 두지 않고 바로바로 입력될 수 있게 저자와 독자를 동기화하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보면 경계는 없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경향신문>에 동명의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함께 글을 써본 경험은 어땠나?

김상욱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평소 미술을 좋아하니까 미술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엄두가 안 났다. 그러던 차에 제안을 받은 거라, 너무 좋았다. 만약 단독으로 이런 책을 제안 받았으면 쓰지 못했을 거다. 유지원 작가님이 워낙 과학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글이 어울릴 거라 예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같은 주제로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걱정을 안 해서인지 잘 어울리는 글이 나왔다.

유지원 글을 쓰는 과정은 내 예상과 거의 같았다. 나는 오히려 독자들이 같은 느낌의 글을 두 번 읽는 느낌이 들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공동 집필이라고 해도 키워드에 관한 합의를 했을 뿐, 각자 글을 썼기 때문에 단독 집필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글에 대해 1차 검증을 해줄 사람이 존재하니까 든든한 면이 있었다. 



유지원 작가는 왜 물리에 관심을 갖게 됐나? 그리고 김상욱 교수에게 연재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인가?

유지원 2017년이 내가 딱 마흔이 되는 해였다. 마흔을 앞두고 내 인생에서 무엇을 더 배우면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물리학이 떠올랐다. 2015년에 물리를 배우려고 결심했다가 못 배운 한이 있었다. (웃음) 고등학교를 예고로 진학했기 때문에 물리학을 배우지 못한 게 늘 아쉬웠는데, 대학에 가보니 디자인과 물리는 너무 긴밀한 학문이었다. 고전 물리학 책을 찾아보다가 김상욱 교수님이 쓴 『과학하고 앉아있네3 –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를 읽었는데 뭔가 서술이 독특했다. 물리학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물리학 옆에 찰싹 붙어서 현장 중계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때 팬이 됐다. 이후 ESC(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모임에서 회원들과 미술관을 종종 갔는데, 미술에 관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되는 분 중 한 분이 바로 김상욱 교수님이었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됐다. 1장의 제목은 ‘관계맺고 연결된다는 것’이라는 주제 아래 이야기, 소통, 유머, 편지, 시 등을 다뤘다. 어떤 글이 특히 기억에 남나?

김상욱 ‘편지’ 챕터에 쓴 ‘친애하는 마그리트 작가님께’라는 글이 떠오른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작가 아닌가? 마그리트 작품은 양자역학의 중요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그리트에게 편지를 썼다. 살바도르 달리는 「기억의 지속」이라는 그림에 녹아내리는 시계를 그렸다. 많은 사람이 상대성이론과의 관계를 생각했지만 달리는 극구 부인했다. 단지 치즈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얻은 영감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예술을 보면 과학에서 영감을 얻는 일이 흔하지만, 1931년에 달리가 그 그림을 그렸을 때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영향을 받는다. 1920년대 유럽이라는 시공간은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를 동시에 탄생시켰으니까. 어떤 사고방식의 헤게모니가 바뀌면 미술, 음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쓴 글이다.

유지원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마지막 5장 ‘물질의 세계와 창작’에 실린 ‘도구’, ‘복잡함’을 주제로 쓴 글이다. 이번 책은 굉장히 공을 들여 구조를 짰다. 첫째는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 두 번째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 세 번째는 인간이라는 공동체를 인문학과 사회학을 통해 바라보기, 네 번째는 수학, 다섯 번째가 물리학이다. 사실 뒤로 갈수록 조금 어렵게 읽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책이랑 빨리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에는 비교적 쉽고 재밌는 글을 배치했다. 



17쪽에 김상욱 교수의 그림이 실렸다. 26개 키워드와 김상욱, 유지원, 뉴턴, 아틀리에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유지원 작가의 제안이었다고.

유지원 물리학자를 활용해 디자인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시도에서 나온 그림이다. 처음에는 절대 안 하겠다고 빼시길래 ‘스피드 퀴즈’라고 임기응변하며 그림당 1분의 시간을 드렸다. 교수님이 계속 그림을 밋밋하게 그리시길래 “좀 귀엽게 그려 달라”고 했더니 눈, 코, 입을 계속 그리더라. 그림을 보면 웃긴 게 ‘인공지능’ 같은 경우, 그림을 그리다 보니 눈과 코, 입을 그릴 공간이 없는 거다. 결국 교수님이 ‘귀여움’이라는 글자를 적으셨다. (웃음) 

김상욱 교수는 그간 물리를 비롯한 과학 도서를 주로 집필했다. 예술을 다룬 책을 쓰는 것에 관해 부담감은 없었는지? 

김상욱 아무래도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 몇 마디를 쓰더라도 책을 다시 보고 확인해야 하니까. 그리고 미술 작품은 실제로 가서 본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이 확연히 다르지 않나? 직접 전시회에 가서 본 경우와 책으로 볼 때의 감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고민이 되더라. 책으로 본 그림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써도 될지? 걱정했는데, 그래도 전문가인 유지원 작가님이 옆에 계시니까 믿고 썼다.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할 일이 많아진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는 게 많아지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것처럼 책도 그런 것 같다. 미술 책을 쓰고 보니 미술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지고, 알아야 할 것들이 더 많아져서 좋다. 

분야를 넘나드는 저자들을 볼 때,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쪽도 있다. 물론 전자가 더 많지만. 

김상욱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왜 본인의 전문 분야만 파지 않고 옆길로 새냐?”는 이야기였는데, 내가 연구하는 분야만 계속하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 분야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 아닌가? 여기 이 공간에서 ‘물리’라고 써 있는 물건이 있나? 이 물컵에 든 물이 ‘음식’이라고 써 있나? 그렇지 않지 않나? 물은 화학적인 물질인 동시에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생물학적인 물질이 된다. 글자도 그렇다. 이 글자로 시를 쓰면 시가 되는 것이고, 논문을 쓰면 논문이 된다. 어느 순간 꼬리표가 붙이기 시작한 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학문 때문이다. 사실 정확히 보면 경계는 없다. 과학자도 그렇다. 나는 물리학자지만 내 관심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생물학에 와 있다. 나는 의식하지 않고 다니는데 사람들은 자꾸 넘어다닌다고 말한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보다 “왜 나는 저 사람이 어떤 경계를 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생각한 저 경계가 왜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를 질문해보면 어떨까 싶다. 



충분히 좋아한다면 글로 남겨도 아름다운 일

김상욱 교수는 이번 책에서 유독 시를 많이 인용했다. 특히 김소연 시인의 시가 많이 등장한다.

김상욱김소연 시인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 사실 내가 문학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다. 시를 다 음미할 정도의 내공은 없지만, 좋은 문장을 건지는 것만으로도 시 읽기는 내게 충만한 시간이다. 좋은 문장을 하나 읽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때가 있으니까.

리뷰를 조금 들었는지?

김상욱 조금씩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실 이 책의 형식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다. 두 사람이 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책은 많으니까. 다만 『뉴턴의 아틀리에』를 쓸 때, 우리가 집중했던 건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나눠 놓은 것, 즉 인위성을 좀 벗어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뉴턴의 아틀리에』는 책이기도 하면서 우리의 행위다. 이 책이 하나의 동기가 돼서 다른 분야에서도 경계를 넘는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편견을 깨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유지원맞다. 예술을 하는 사람도 논리적이다. 가끔 과학계 강연을 가면 주최 측에서 “촉촉한 감성을 준비해두고 있겠습니다”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런 거 준비하고 계시면 무섭습니다”라고.

(웃음) 과학자들은 어떤가?

김상욱 과학 하는 사람도 감성적이다. 과학자들은 모두 이성적이고 논리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무척 흔한 오해다. 물론 과학자와 예술가들의 성격을 평균으로 측정해보면 차이가 전혀 없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 안에서 감성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스펙트럼과 변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미 평균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변이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어떤 책을 즐겨 읽나?

유지원문학을 좋아한다. 무엇을 쓰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다. 어떤 글을 쓰다가 잘 안 풀리면 문학을 읽는다. 그러면 머릿속에 고체처럼 있었던 개념이 살살 녹는 느낌이 든다. 내가 말이 빨라진다 싶으면 느린 템포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읽고, 반대로 리듬을 위한 글을 찾아 읽기도 한다. 이제니 시인, 파스칼 키냐르를 좋아하고, 묵직한 문장을 구사하고 싶을 때는 『음예 예찬』을 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글을 읽는다. 문학 작품은 하루에 두세 시간씩은 꼬박 읽고 있다. 

김상욱 한번 꽂히면 계속 파생되어가면서 책을 읽는 스타일이다. 인터넷서점에서 매해 연말이 되면 내가 구입한 책의 통계를 내주지 않나? 최근 몇 년간은 미술책을 가장 많이 샀더라. 물론 과학 책도 많이 보는데,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니까 물리 외의 다른 분야의 책을 더 읽으려고 한다. 최근에는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읽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마네가 인상깊어서 『마네의 회화』를 찾아 읽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공부를 하고 싶나?

김상욱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

유지원 나는 『뉴턴의 아틀리에』를 쓸 거다. (웃음) 

두 작가의 글이 좋아서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고 있는, 또는 읽을 예정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지원 예전에 과학영재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때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저는 수학. 과학도 계속하고 싶고 미술 창작도 하고 싶은데 어느 과로 진학하는 것이 좋겠냐”고. 한참 고민했는데 한국에서는 대답해줄 과가 없었다. 너무 안타깝더라.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기 어려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름이 없다고 해서 재능이 없는 게 아닌데, 이렇게 묻히는 것은 사회적인 낭비 같다. 이들이 가진 재능을 『뉴턴의 아틀리에』가 이름을 붙여줬으면 좋겠고, 재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의 재능을 인식하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교육자들은 이들을 응원해주고 제도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김상욱 이전에 쓴 책들은 “사람들에게 꼭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썼다. 과학적 태도, 과학적 사고방식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 책은 좀 다르다.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너무 좋아서 (웃음) 기분 좋게 쓴 글이다. 분야를 넘나들었다는 평가를 해주는 분들이 있는데, 의도치 않았지만 이런 넘나듦을 보고 많은 분들이 용기를 얻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면 좋겠다. 사실 꼭 자기 분야에만 갇혀서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충분히 좋아한다면 전문가 못지않은 애정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것을 글로 남기는 것도 아름다운 일 아닐까? 싶다. 


뉴턴의 아틀리에
뉴턴의 아틀리에
김상욱,유지원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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