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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리 “사교육 끊고 투자를 해야 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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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문맹에서 벗어나야 경제독립이 가능하다.”『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문장이다. 우리가 돈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배우지 않고,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금융문맹’이 되어버렸다는 의미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잘못된 라이프스타일을 경제독립을 위한 라이프스타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존 리 (John Lee,이정복)는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짚으며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돈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라’고 조언한다. 사교육에 지출하는 돈을 투자로 전환해 노후 자금을 마련하고, 매일 1만 원씩 여유자금을 만들어 투자하고, 연금저축펀드를 활용하고,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서 장기 투자하라는 구체적인 팁도 제시한다. 이른바 ‘경제독립 액션 플랜’이다.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은 출간 6개월 만에 10만 부가 판매되며 큰 주목을 받았고, 존리 저자의 주장은 최근 일어난 ‘동학개미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존리는 1980년대 초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자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가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며 월가의 스타 펀드매니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4년 귀국해 현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금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버스 투어를 진행하고, 강의와 유튜브 채널 ‘존리라이프스타일 주식’을 통해 금융문맹 탈피를 설파하고 있다. 저서로 『왜 주식인가』, 『엄마, 주식 사주세요』가 있다. 



‘나는 중산층’이라는 착각

10만부 판매 기념으로 리커버 한정판이 출간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게요. 저도 놀랐어요.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조금 신기했던 게, 이 책을 내고 나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말을 세게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거기에 너무 놀랐어요. 제가 사교육 하지 말고 자동차 사지 말라고 했는데, 한국 사람들한테 굉장히 하기 힘든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게 부자가 될 수 없는 습관인데 사람들이 인식을 못하는 거예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하셨었죠.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회사에서 차량을 제공할 법도 하고 ‘시간이 곧 돈’이라고 생각하실 법도 한데요. 

그게 생각의 차이죠. 뉴욕에서도 차 가지고 다니는 사람 없어요. 대중교통이 훨씬 빠르니까요. 지하철이 얼마나 빨라요? 그게 왜 놀랄 일인지 모르겠어요. 부자가 되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미국에서 보셨던 부자들과 한국에 오셔서 본 부자들의 모습이 많이 다른가요?

미국에서는 누가 부자인지 몰라요. 옷도 똑같이 입고 다니고, 명품백 안 사고, 지하철 타고, 그러니까 모르죠. 한국에서는 그 사람이 몰고 있는 차를 통해서 ‘저 사람이 부자구나’ 하고 알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부자가 아닌 거예요. 억지로 부자처럼 보이려고 비싼 차를 사다 보니까 가난하게 되는 거죠. 

책에서 ‘금융문맹’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한국 사람들이 금융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도 적고 감도 없고... 그런 경향이 있나요?

최악이죠. 전 세계에서 딱 두 나라가 최악이에요. 한국하고 일본.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굉장히 비참한 미래가 기다리죠.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착각을 해요. 

실제 중산층의 숫자보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은 거죠?

당연하죠. 대부분은 하층이에요. 그런데 중산층이라고 착각을 해요.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내가 하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준비를 너무 안 한 거예요. 

현실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고, 노인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데, 대부분 노후 자금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아무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안 해주고 있잖아요. 한국이 고령화 사회가 될 거고 일본처럼 될 거라는 걸. 너무 신기하게도 그런 이야기를 안 해요. 노후 준비가 안 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사교육이에요. 사교육비만 투자로 바꿔도 노후 준비는 전혀 문제 안 돼요. 사교육에 쓰는 돈을 투자했을 때 30년 후면 그 돈이 크게 불어날 텐데, 그때부터 놀러 다니라는 거죠. 아이가 공부 못하면 어때요. 아이의 이름으로 투자를 해주면 그 아이는 부자가 될 텐데요. 간단한 건데 그렇게 하지 않죠. 그걸 금융문맹의 전염성이라고 해요. 

금융문맹은 ‘전염병’이라고 쓰셨죠. 

네, 질병이자 전염병이에요. 그래서 심각한 거죠. 한국이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결단이 필요하고 교육제도를 바꿔야 돼요.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는데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동산과 예금에 자산을 묻어두는 공통점이 있다는 거죠?

둘 다 일을 안 하는 돈이에요. 

부동산과 예금에 투자하는 건 원금 손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책에서 “원금보장의 늪”이라는 표현도 하셨는데,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교육을 시켜야 되는 거죠. 강제를 해야 되는 거고. 한국에 좋은 연금 제도가 있는데 정부도 가만히 있고 퇴직 연금에 가입한 사람도 가만히 있어요. 자기 퇴직 연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정급여형(DB)인지 확정기여형(DB)인지도 몰라요. 굉장히 심각해요. 그래서 지금부터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서 부자가 돼야 된다고 말하는 거예요. 신혼여행도 가지 말고 커피도 사먹지 말라고 하는 이유예요. 지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에요. 어떤 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그 사람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예요. 돈 없으면서 여행가고, 돈 없으면서 사교육 시키고, 돈 없으면서 비싼 가방 사고, 당신이 더 이상한 사람이라는 거죠. 

원금 손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식 투자는 생각도 안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길게 투자하면 번다고 가르쳐주는데, 가르쳐줘도 안 하잖아요. 이런 거나 마찬가지예요. 물에 빠질 확률이 있다고 배 안 타요? 직장에 가다가 차에 치어 죽을 확률도 있는데, 그렇다고 직장에 안 나가요? 그게 이해가 안 가는 거죠. 



주식 투자, 도박처럼 해선 안 돼

주식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편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어요.

주식을 산다는 건 내가 그 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거잖아요. 너무 멋있는 거 아니에요? 나는 창업은 안 했지만 삼성전자의 주식을 사는 순간 삼성전자의 지분을 취득한 거잖아요. 내가 지분을 취득하면 돈을 버는 행위는 누가 해요? 직원들이 하잖아요. 열심히 일 해주는 건 그 사람들이고, 나는 주식을 사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죠. 그게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하죠. 자기가 주식을 샀다가 팔았다가 하죠. 자신이 돈을 벌려고 하잖아요. 

‘주식은 쌀 때 사서 오르면 팔아야 된다, 그걸 잘해야 돈을 번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은 주식으로 돈 벌기 힘들다’라는 생각도 보편적인 것 같아요.

그렇죠. 그건 도박장에 가는 거죠. 그게 금융문맹이에요. 한국에는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일본도 그렇고. 그걸 장기투자로 유도해야 돼요. 그건 정부가 할 일인데 정부도 금융문맹이거든요. 관료들도 금융문맹이고 정치가도 금융문맹이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제가 이야기는 거에 대해서 ‘이런 논리도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주식에 투자하면 깔고 앉아라’라고 말하는데, 대부분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 거예요. 

장기투자를 하면 원금 손실이 없다는 건 경험을 통해 알게 되셨나요?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 나라는 자본주의가 아닌 나라예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면 하면 안 돼요. 그리고 미국은 왜 저렇게 강대국이 됐을까 생각해 보면 영리한 거예요. 월급쟁이들이 주식시장에 들어오게 하고 거기에 돈이 넘쳐나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새로운 기업이 나오죠. 자라나는 환경이 되니까. 그러니까 교육 시스템도 바꾸게 되고, 새로운 기업이 나오게 되고, 우리 아이들이 창업하게 된 거죠. 한국하고 일본은 그 씨를 말려버린 거예요. 돈이 부동산에만 들어가는데 부동산에서 아무런 부가가치가 생기지 않는 거예요. 

주식 투자는 부동산보다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죠. 환금성도 더 좋고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빚을 내면서까지 부동산에 투자하는 걸까요?

왜냐하면 주위에서 주식으로 부자 되는 사람을 못 보는 거예요. 왜 못 봤을까요? 다 샀다 팔았다 했기 때문이죠. 주식 투자를 도박처럼 했기 때문에. 도박장에 가서 돈 번 사람 없죠? 그걸 누군가가 이야기해줘야 되는데, 너무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사람들이 이야기를 안 한 거예요. 

이런 생각도 널리 퍼져있어요. ‘주식시장에서 개미 투자자가 어떻게 이득을 볼 수 있겠느냐, 거대 자본을 가지고 들어오는 투자자들과 상대가 안 된다’라는 거죠.

아주 잘못된 오해죠. 개인 투자자가 기관 투자자보다 더 똑똑할 수 있어요. 재테크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라이프스타일이에요. 훈련이에요. ‘월급의 10%는 주식시장에 넣어야 되겠다’, ‘나는 주식은 잘 모르니까 펀드를 해야 되겠다’, ‘한국에 연금저축펀드라는 좋은 제도가 있구나, 이걸 이용해야겠다’, ‘30년 후에 퇴직할 거니까 그 전에 돈이 일하게 해야겠구나’, ‘퇴직 연금은 무조건 주식에 투자해야겠구나’ 그런 간단한 몇 가지 하고 그것만 지키면 노후 준비가 걱정이 안 돼요. 그런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엉터리예요. TV에 보면 전문가들이 주식 그래프를 그리고 하는데, 주식이라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주식이라는 건 내가 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개미이기 때문에 못 한다’는 건 천만의 말씀이에요. 저도 그런 전문가이고 그런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에서 강조하신 게 ‘좋은 기업을 찾아서 장기투자를 하라’는 거였죠?

물론이죠. 동업하는 것과 똑같아요. 동업하게 되면 동업자가 어떤 사람인지 연구를 하잖아요. 예를 들어서 친구랑 커피숍을 차린다고 하면 골목의 상권이 어떤지, 월세가 얼마인지, 커피값으로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엄청나게 연구하죠? 주식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 기업이 뭘 만들고 있는지, 무엇으로 매출이 일어났는지, 매출 성장률은 어떻게 되는지... 그런데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그래프를 봐요. 가격을 맞추려고 해요. 그러니까 자신이 개미라고 해서 스스로 과소평가하지 말고 지금부터 그런 습관을 기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투자하는 사람들은 희망이 생기게 돼요. 나도 노후 준비를 할 수 있구나, 부자가 될 수 있구나. 그러면 라이프가 바뀌게 돼요. 안 놀러가게 되고, 커피 안 사먹게 되고, 명품백 안 사게 되죠. 

좋은 기업을 알아보려면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영업보고서 등을 살펴보라고 하셨어요. 그 과정이 자신 없으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펀드 하라고 하는 거죠(웃음). 연금저축펀드는 세액공제 혜택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건 다 안 들여다보죠. 

이미 분석이 끝난 기업들-삼성, 엘지, 구글 같은 대기업의 주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더 나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못 하죠. 개인적으로 너무 돈이 없죠. 그러니까 펀드를 해야죠. 

펀드에 가입할 때 유의할 사항은 없나요?

펀드 매니저가 막 샀다가 팔았다가 하지는 않는지, 회사가 장기투자 철학이 있는지 잘 봐야 돼요. 



부채를 사지 말고 자산을 사라

자녀들에게 어떻게 경제 교육을 시키셨을지 궁금해요.

그렇게 거창하게 한 건 없어요. 그냥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랐고요. 아이들은 부모님을 통해서 경제 교육을 받아요. 

어렸을 때 주식이나 펀드를 경험하게 하셨나요?

아니요. 그런 건 안 하고 투자는 해줬죠. 대신에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고, 경제적으로 ‘너 주식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는 안 했어요. 일단 돈을 함부로 쓰지 말고 아끼고, 돈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교육을 했죠. 그게 더 중요하죠. 돈을 함부로 쓰지 말고 그걸로 투자를 하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된다고 가르쳐주는 게. 

‘돈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라’라고 가르치신 건, 저자님의 예전 경험과 관련이 있나요? 

그런 게 아니고 미국에서는 당연히 이렇게 하는데 왜 한국은 이렇게 안 할까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한국에 와서 깜짝 놀란 거예요. 미국은 월급이 1억인 사람과 20억인 사람의 차이가 별로 없어요. 20억 있는 사람은 조금 좋은 집에 살겠지만 그것 빼고는 없어요. 그런데 한국은 부자인 걸 나타내고 싶어서 난리예요. SNS에 올리고 와인도 몇 십만 원짜리 먹고... 그게 하나도 즐겁지 않아야 되거든요.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왜 그런 죄책감(guilty)을 안 느끼고, 나는 돈이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할까... 그리고 갑질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운전기사한테 함부로 한다든가. 돈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 배운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부자에 대해서 증오를 하게 돼요. 그러면 그 나라의 자본주의는 건강하지 않은 거예요. 

어린 시절에 아버님의 사업이 힘들어졌고, 이후부터 돈의 소중함을 알게 되셨다면서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도 소개됐던 이야기인데요. 당시 경험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계실까요?

그건 모르죠. 그것과 별개로 미국에서 많이 배웠어요. 미국은 진짜 터프하거든요. 적당히 살아가지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죠. 대신에 부자가 될 수도 있죠. 다 양면이 있죠. 그래서 한국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은 건 ‘다 부자가 될 수 있다,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생각을 바꿔야 된다, 어렸을 때부터 창업할 준비를 하고 취직할 준비하지 마라, 사교육하지 마라’ 그런 거예요. 공부 못해도 괜찮아요. 오히려 공부 못하는 걸 더 좋아해야 돼요. 부자 될 확률이 커지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안 믿어요. 조선시대 교육을 너무 깊게 받아서 공부 못하면 루저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잘못된 교육이에요. 주위의 부자들을 보세요. 월급쟁이들이 있나. 공무원 중에서 부자가 있는지,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 중에 부자가 있는지 보세요. 다 나타나 있는 건데 아직도 옛날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50~60대의 독자들도 지금부터 시작해서 10~20년 장기투자를 하면, 도움이 될까요?

도움이 되죠. 당연히 해야 되고요. 아이들한테도 가르쳐줘야 돼요. 나 혼자만 잘 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잘 돼야 나도 잘 돼요. 만약 나는 잘 됐는데 아이가 잘 안 되면 돈 다 뺏겨요. 그러니까 온 가족이 해야 돼요. 지금부터는 완전히 정신을 차려야 되고 과감해야 돼요. 과외도 끊고, 자동차가 2대면 1대로 줄이고, 쓸데없이 돈 쓰는 게 있으면 투자로 바꾸고. 그러면 전혀 문제가 안 되죠. 

먼저 부채를 정리한 다음에 투자를 시작해야 되는 거죠?

네. 그런데 부채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집을 사는 과정에서 부채가 생겼다면 그건 나쁜 부채가 아니죠. 내가 살기 위한 집이니까. 그런데 신용카드나 백화점으로 인해서 생긴 부채는 다 없애버려야 돼요. 백화점 자체를 가면 안 돼요. 아직도 자기가 중산층이라는 생각이 남아있는 거예요. 중산층 아니에요. 월급쟁이는 하층이 될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내가 사장이라면, 이만큼만 월급을 줘도 계속 일하는데 왜 많이 주겠어요? 그러니까 사장, 주인이 되려고 노력해야 돼요. 

주식을 사면 노동자인 동시에 주주로서 자본가가 될 수 있고요.

그렇죠. 그러니까 주식을 사라고 하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잖아요. ‘앞으로 너도 자본가가 돼야 된다, 아니면 노후 준비가 안 된다’는 걸 끊임없이 설명해주는 거예요.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기업은 전 세계에 직원이 있잖아요. 직원들한테 주식을 20% 싸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줘요. 예를 들어 지금 애플의 주식이 1000불이라면 800불에 살 권리를 줘요. 전 세계 직원들이 그걸 사는데 한국만 안 사요. 너무 마음이 아프죠. 그 돈으로 가방을 사고 놀러 가는데. 



한국인들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면서 가방을 사고 놀러 가는데 돈을 쓴다는 건 아이러니예요.

나는 어차피 부자가 안 될 거라고 미리 결정을 한 거죠. 그럴 바에야 다 쓰고 죽자고 생각하는 거예요. 욜로라는 아주 나쁜 마케팅에 넘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는 거예요. 샤넬 백을 만드는 사람은 엄청나게 부자인데 샤넬 백을 사는 사람은 가난하죠. 부채를 사는 걸 즐거워하지 말고 자산을 사는 걸 즐거워해야 돼요. 가난한 사람들의 아주 전형적인 모습이 대부분 부채를 사는 걸 즐거워하는 거죠. 가방을 사면서 즐거워하잖아요. 그거 말고 주식, 펀드를 사면서 즐거워해야죠. 

다음 책을 집필 중이시라고요.

한 달 정도 뒤에 나올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 더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고 용어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기도 해서, 조금 쉽게 어떻게 주식에 입문하고 투자하는지 쓰고 있어요. 제목이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이에요.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길 것 같아요. 왜 연금저축펀드를 가입해야 되는지도 설명하고요.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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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손원평,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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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인터뷰는 몹시 쓰기가 어려웠다. 솔직한 작가들을 숱하게 만났지만, 압도적으로 솔직했다. 꾸미는 말들은 소설로, 영화로 보여주었으니 현실의 말들은 채색하지 않았다. 거침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될 거 같은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속내를 감출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2017년 3월 출간된 『아몬드』의 92쇄본과 곧 출간될 세 번째 장편 『프리즘』 가제본을 들고 만났다. 영화 일을 시작한 지 19년 만에 메가폰을 든 첫 장편영화는 코로나19로 개봉이 계속 미뤄졌다. 무거운 마음을 비추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기분 좋은 솔직함을 지닌 작가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작가와 인물의 상성은 별개 

세 번째 장편이에요. 격월간지에 ‘일종의 연애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소설입니다. 『아몬드』를 읽은 독자라면 굉장히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되게 잔잔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두 달에 한 번씩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읽을 수 있는 3인칭의 다소 느린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아몬드』『서른의 반격』은 사건이 조금 강한 느낌이잖아요. 『프리즘』 은 마음에서 일어난 사건에 집중해서 굉장히 느리고, 아주 잔잔하게 써보자는 마음으로 출발한 소설이에요.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연재할 때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특별한 반응은 없었어요.(웃음) 아무래도 격월로 연재하는 작품이다 보니 저도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잊곤 했어요. 연재를 마친 다른 작가들 인터뷰도 찾아봤는데, 연재 중 반응이 없었다는 글이 종종 보여 그런가 보다 했어요.(웃음) 사실 연재에 자신이 없었거든요. 분절해서 작업하는 것보다 한 번에 끝내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서요. 그런데 돌아보면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 둘, 남자 둘. 네 명의 사랑 이야기예요. 누군가의 사생활을 전하고 관계가 얽히지만 극적인 사건은 등장하지 않아요. 다만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죠. 결국 모든 인물이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과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랑을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프리즘』이라는 제목이 나왔고요. 캐릭터를 만들 때, 현실에서라면 그다지 친해지지 않았을 인물들로 만드셨다고요. 멀쩡한 사회 구성원 같지만 어딘가 결함이 있고, 깊이 알면 오히려 실망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예진, 도원, 재인, 호계를 보면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이기도 해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주변 인물을 소설에 쓰지 않아요. 제 이야기도 쓰지 않고요. 이건 제가 쓰는 소설의 가장 큰 원칙인데요. 주변의 일, 사람이 단초가 될 순 있겠죠. 그럴 땐 성별을 바꾸거나 나이, 외모에 큰 차이를 두고 그런 단초를 집어넣어요. 그리고 그 캐릭터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현실과 전혀 다른 독자적인 캐릭터가 나오죠. 또 캐릭터마다 차이를 두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반대되는 지점들을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몬드』의 윤재와 곤이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던 것처럼요. 

주인공들은 결국 조금씩 성장해요. 사랑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는 결말보다 어쩌면 더 큰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인물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어른이라고 평가받지만, 속으로는 모두 방황하고 있어요. 바쁘게 사는 현대인도 스스로를 대면할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사랑을 곁들여 썼지만, 보통의 연애소설과 다르게 쓰고 싶었던 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얼마나 반추할 수 있는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일이었어요. 

‘호계’라는 인물의 성장 과정에서 『아몬드』가 떠올랐어요. 

속과 겉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있잖아요. 겉보기에는 무난하게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속을 보면 많이 다른.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굉장히 유순하게 보였던 친구가 어느 날 선생님한테 대들고, 모범생 친구가 갑자기 위태로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요.

‘예진’은 연인 사이였던 ‘한철’을 제멋대로 평가하고, ‘도원’에게는 유치한 질투심을 감추지 못하고, ‘호계’를 입이 가벼운 사람으로 만들어요. 결국 “이런 눈물을 흘리기엔 자신은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눈물을 흘리는 건 생에 있어서 마지막일 것이었다. 이것은 어른의 눈물이 아니니까”(216쪽)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요. 

20대 후반이라는 나이는 되게 불안한 시기인 것 같아요. 서른이 넘으면 약간 체념을 하는데, 20대 후반은 가능성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좀 어정쩡해요.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많은 것도 아니고. 나이브한 실수를 거듭하고 방황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장하고 싶어하는 불안한 청춘을 그리고 싶었어요.

『프리즘』의 인물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조금 친해질 수 있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쓸 때 일단 대략의 인물을 설정하고 상상을 보태가며 캐릭터가 발전해요. 그러다 보면 제가 알거나 친하거나 친숙한 인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이 탄생하곤 해요. 저 자신의 호불호나 주변에서 본 인물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쓴 작품 속 인물들을 쭉 반추하며 생각해봤는데요. 이번 작품뿐 아니라 다른 작품의 등장인물들도 제가 현실에서 직접 만나면 개인적인 상성이 맞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작업이라는 건 작가와 인물의 상성과는 별개인 것 같아요. 작가란 다양한 사람을 그려내고, 최대한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또 다른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려 애쓰는 작업자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가 등장하기 전의 이야기예요. 만약 이후에 쓴 소설이라면 조금 달랐을까요? 

달랐을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 이후 많은 작가가 소설을 쓰지 못했잖아요. 작가라는 사람은 현실을 가공하고 생각과 사유의 단초를 제공해야 하는데, 현실의 사건들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었으니까요. 마치 장르영화 안에 들어온 것처럼요. 코로나19 이전에 쓴 이야기를 코로나19 이후에 발표하게 됐을 때, 섣부르게 현실을 소설에 반영한다면 오히려 더 가짜 같지 않을까 싶었어요. 논픽션이 아니니까요. 다들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마음먹으면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 외에 강연이나 행사를 많이 하지 않으세요. 작품으로만 독자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인가요? 

그러고 싶어요. 저는 사람 만나는 일은 좋아해요.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과는 별개지만. 가끔 강연을 하면 떨거나 긴장하는 편은 아니에요. 무대공포증도 없고요. 소설을 내고 초반에는 강연도 몇 번 했는데, 지금은 덜하려고 하는 이유는 책으로 저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소설에 집중하는 일이 오랫동안 작품을 쓸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쓰는 일 자체가 정말 큰 에너지를 요구하잖아요. 다른 일로 분산되면 소모될 것 같아요.

“혼자 있는 낮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육아를 하는 모든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싶은데, 『아몬드』는 딸아이가 무척 어릴 때 쓰신 작품이잖아요. 보통 소설은 어느 틈에 쓰시나요? 

낮이고 밤이고 시간과 무관하게 써요. 제가 1999년도부터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기 시작해서 데뷔하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거든요. 아이를 낳은 해에도 정말 많이 썼어요. 사실 저는 마음먹으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마음먹기가 너무 싫어요.(웃음)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인터뷰는 참 즐겁지만 녹취를 풀어 기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은 기분. 

솔직히 말해서 매일 글을 쓰지 못해요. 소설은 제게 일이거든요. 일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지만, 일을 시작하기까지 너무 괴롭잖아요. 정말 똑같아요. 소설을 구상할 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러프하게 글을 쓸 때는 어떤 상황에도 쓸 수 있어요. 옆에서 아이가 노래 부르면서 놀 때도요. 데뷔하기 전에는 아이가 잠에서 깨기 전, 괴로움을 참으면서 쓰곤 했어요. 물론 가장 좋은 건 혼자 있을 때죠. 하지만 혼자 있으면 또 게으름을 피우죠.(웃음)

『아몬드』를 쓰게 된 동기로 ‘아이를 낳은 일’을 꼽으셨어요. 이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됐는데, 어떤가요? 부모로서의 성장도 체감하시나요? 

글쎄요. 몇 년 전, 문학 교사이면서 부모인 독자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부모도 커가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되게 와닿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몰랐던 세상들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있으니까요. 엄마로서의 성장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작가로서의 삶에 다채로움을 주긴 해요. 

첫 장편영화 개봉에 관한 소감도 듣고 싶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완성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요.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어요. 물론 좋은 배우와 좋은 스태프들과 일했지만, 현장에서 100명 이상의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아요. 다들 입장이 다르니까요. 전투적이고 뒤로 갈수록 체력은 바닥이 나고. 영화가 마무리됐을 때,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했던 것 같아요. 물론 스코어도 확인했죠. 하지만 촬영과 편집이 모두 끝났을 때, 진짜 너무 좋았어요.(웃음) 그때부터는 마음이 굉장히 편안했어요. 

『아몬드』도 습작을 시작하고 굉장히 오랜 시간 후에 출간됐어요. 국내를 비롯해 ‘일본서점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현재까지 누리고 있는데요. 큰 위로가 됐을 것 같아요. 

물론 좋죠. 그런데 작품이 출간되자마자 커다란 반응이 나온 건 아니었어요.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며 기쁜 소식이 더해졌죠. 제 생활 자체에는 변화가 거의 없어요. 대표작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감사하죠. 

영화감독과 소설가, 두 정체성을 어떻게 품고 계신지 궁금해요. 

대중에게 더 노출되는 건 아무래도 영화감독 쪽이에요. 영화 채널에서는 인터뷰를 안 할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작품 수를 봤을 때, 더 많은 일을 하는 쪽은 글이에요. 영화는 너무 힘들지만 동시에 너무 매력적이고 재밌는 작업이에요. 가장 힘든 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고요. 반면에 소설은 창작자로서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는 과정이에요.



글을 쓰기 싫어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소설가를 꿈꾸셨나요? 

초등학생 때 작가를 꿈꾸긴 했어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기도 했고요. 글을 쓰는 일은 유일하게 쭉 이어진 장래 희망이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문예창작학과를 갈 생각은 안 했어요. 글쓰기를 어딘가에서 배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대학 때 사회학을 전공한 건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당연히 문과, 인문 계열을 생각했었어요.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글쓰기는 직업이에요. 물론 우리가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기도 하죠. 하지만 수많은 일 중 하필 그 직업을 갖게 된 건 조금이라도 자신의 성향이나 목표에 맞는 면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긴 습작 기간과 보상 없는 실패의 기간을 거치면서도 저는 글쓰는 것이 그만둬지지 않았어요. 제가 하고 싶고 저와 가장 맞는 일이기 때문이었겠죠. 그렇지만 여전히 일이기 때문에 하기 싫어요. 직업 생활도 고단하면서도 가끔 보람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겠죠. 월급날이 그런 경우 일 수도 있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글쓰는 순간은 너무 싫은데 다 쓰고 나면 보람과 기쁨이 몰려와요. 제겐 월급날이 ‘작업을 완성한 날’인 거죠.(웃음) 그 순간을 느끼기 위해 계속 작업하는 것 같아요.

영화 평론, 시나리오,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하고 계세요. 어떤 문장을 쓰고 싶으신가요? 

‘정확한’ 문장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여기서 정확하다는 건 사전적인 의미에 충실한 정확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아주 주관적인 정확성이죠. 풀어서 설명하면 ‘표현이 독창적이면서도 캐릭터와 이야기에 명쾌하게 복무하는’이라는 뜻이에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독창적이면서도 딱 떨어지는. 틀에 박히지 않았지만 아주 분명한. 독창성과 명확성은 언뜻 보면 합치되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이지만, 운 좋게 둘이 잘 어우러지면 우아하고 간결한 결과가 나와요.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면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중요하게 생각할 뿐 제가 이뤄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모토와 목표로 삼고 있을 뿐이죠. 

오랫동안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많은 작가가 보통 체력이라고 말씀하시던데, 저는 한자리에 오래 앉아 엉덩이로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체력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5분마다 일어나서 딴짓을 하고, 게다가 매일 일정량을 쓰는 모범생과도 아니거든요. 물론 나이가 들어서까지 글을 쓰려면 건강과 체력은 기본이겠지만, 그건 소설뿐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거든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세상에 대한 관찰력, 편향되지 않은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 그리고 필요한 순간에 발휘되는 집중력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후속작은 단편 소설집인가요? 

우선 올해 말은 동화를 쓰려고 해요. 유일하게 재밌게 쓰는 글이 동화예요. 동화를 쓰다 보면 글쓰기를 좋아했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계속 쓰고 싶은 건 어린이 문학이에요. 소설집은 단편들이 모아지면 나올 것 같고요. 장편은 독특한 남자 어른이 나오는 소설을 구상하고 있어요. 그리고 행복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행복이요? 

평소에 ‘행복이 뭐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평온한 시기일지라도요. 누구나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개념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지, 여러 가지 키워드로 풀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몬드』 의 ‘작가의 말’에서 낙관주의가 읽히기도 했어요. 

기본적인 성향은 낙관적이긴 한데, 그 안에 또 투덜이 있었죠. 어릴 때는 괜히 염세적인 척하고 그러잖아요. 낙관주의자는 아닌데 그렇다고 비관주의자도 아니에요.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지금 전 세계가 너무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더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으니까요. 제가 인생을 바라보는 성향인 것 같아요. 



생활인 손원평으로 지낼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가장 좋아요. 특히 작업을 끝내놓고, ‘결과물은 있으나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그 평화의 순간. 그럴 때 혼자 마시는 한낮의 시원한 커피 한잔!(웃음) 그런 순간을 위해 일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는 여느 직업을 가진 이들과 마찬가지겠죠? 또 이것도 아주 중요한데,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아주 큰 감사함과 행복감을 느껴요. 

예스24 독자들이 선정하는 ‘2020년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로 뽑히셨어요. 독자들이 직접 투표하는 상이라 의미가 큽니다. 마지막으로 소감을 여쭙고 싶어요. 

사실 작품을 낸 지 오래라 후보에 들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깜짝 놀랐고요.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청소년이나 서점 관계자, 독자가 힘을 실어주는 상이 권위 있는 심사위원에게 받는 상보다 더 특별하고 감사하게 느껴져서요. 더 열심히 작업해야겠다는 의지 와 책임감이 생겨요. 어수선한 시국에 독자분들도 모두 건강히, 최소한의 일상을 즐기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감사의 마음과 함께, 모두 끝까지 잘 견디고 힘내자는 말씀도 조심스럽게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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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현 “아크앤북의 성공? 스몰브랜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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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빅투스몰(FROM BIG TO SMALL)』을 펴낸 ㈜오티디코퍼레이션(이하 OTD) 손창현 대표는 버려진 공간을 특색 있게 탈바꿈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한다. 건축공학과를 졸업해 10여 년간 회사원으로 지낸 그가 창업을 결심한 건 ‘직접 해보고 싶은 유혹’을 참지 못했기 때문.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 사업을 시작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아크앤북’ ‘성수연방’ ‘띵굴시장’ 등은 모두 손창현 대표가 만든 결과물이다. 아무도 입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텅 빈 채 방치됐던 공간들이 OTD의 손을 거치면 줄이 길게 늘어서는 핫플레이스가 된다. 손창현 대표는 이 모든 성공이 ‘스몰브랜드의 힘’이라고 말했다.



빅브랜드의 시대는 갔다

1년여간 준비한 책이라고요. 어떻게 기획한 건가요? 

네, 사실 그동안은 OTD에 대한 강연을 주로 했었어요.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은 대개 외국에서 성공한 사례를 한국화 한 경우가 많은데요. 저희는 드물게 자생적인 회사이고, 글로벌 관점에서도 프런티어인 셈이라 우리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너희는 무슨 회사니?”라고 물었을 때, 외국의 사례를 가져온 기업이라면 “우리는 한국의 ○○예요.”라고 설명하면 쉽지만, OTD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고, 어떤 생각으로 사업을 꾸려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한두 번 강연을 하다 보니, 점점 더 OTD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고, 그러면서 데이터가 쌓이고 강연을 위해 쓴 글이 모여 자연스레 책을 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첫 책을 펴낸 소감이 어떤가요? 

책은 OTD가 하는 사업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할 수 있는 좋온 매개체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책을 쓰는 게 힘들거나 어렵진 않았어요. 출간된 이후에 저도 독자의 마음으로 책을 다시 읽었는데, 좋더라고요.(웃음) 시장의 트렌드, 대중의 취향 등에 대한 이야기가 한데 잘 정리돼 있어서 다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봤어요. 

10년간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직접 해보고 싶은 유혹을 참지 못하고” 회사를 시작했다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갈증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이건 우리나라 대기업의 한계점이기도 한데요. 무모한 도전을 피하려고 하다 보니 혁신적인 일을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면 꼭 비슷한 성공 사례가 있어야 하거든요. ‘퍼스트무버(first mover)’라기 보다는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인 셈이죠. 그래서 회사를 다니는 내내 아쉬움이 있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구현해보고 싶은데 어떤 기획을 해도 늘 중간에서 막히다 보니, 어느 순간 ‘설사 실패하더라도 혼자 해보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더 나이 먹고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30대 후반에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샌프란시스코에 1년 남짓 살면서 ‘공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이해하게 됐다고요.

당시 샌프란시스코 페리터미널에 가면 마켓이 열렸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지금은 주류가 된 킨포크 같은 문화들을 볼 수 있었죠. 로컬, 도시재생 등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던 시점이었는데 항만을 리모델링 해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식료품점으로 운영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또 넓은 광장이 주말이면 파머스마켓으로 바뀌는 거예요. 인근에 사는 농부들이 재배한 아주 신선한 농산물들을 즉석에서 살 수 있었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파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어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서울이 바뀌어 나가야 할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오직 스몰브랜드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부터 스몰브랜드에 주목하게 됐나요? 

애경그룹 산하 기업에서 근무할 당시, AK플라자 쇼핑몰을 새로 리노베이션 하는 업무를 맡게 됐어요. 애경이라는 회사가 그룹 자체는 크지만, 유통 빅3라 불리는 신세계, 현대, 롯데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회사거든요. 바잉 파워가 밀리다 보니, 브랜드 유치가 쉽지 않았어요. 고급 브랜드를 유치하는 건 더 어려웠고요. 

그래서 반대로 SPA브랜드와 다양한 F&B(food and beverage)의 입점을 제안하는 것으로 리노베이션의 방향을 잡았어요. 그때 유니클로를 비롯해 당시 홍대와 강남 등에서 유행하던 크라제버거, 스무디킹 등을 들여왔죠. 그런데 유니클로 개장 첫날, 고객이 너무 많이 몰려서 길게 줄이 늘어선 거예요. 그때 스몰브랜드의 힘을 처음 느꼈어요. ‘거대한 자본’ 혹은 ‘마켓 파워’를 가지지 못한 마이너한 플레이어도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트렌드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형 프렌차이즈가 아닌 스몰브랜드가 주목받을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주로 스몰브랜드를 찾아다니시겠어요. 

사업 초기에는 늘 무언가를 찾아다녔죠. 특히 블로그가 SNS의 중심일 때만 해도 직접 발품을 팔아 돌아다녀야 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시장조사를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SNS의 판이 바뀌면서부터는 방에 앉아서도 직접 가본 것 같은 간접체험을 할 수 있더라고요. 정말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고 느껴요

한국은 트렌드가 정말 빠르게 변하잖아요. 어떤 브랜드 혹은 제품이 유행하면 비슷한 것들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금세 사라지곤 하죠.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고,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얼리어답터 기질이 다분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본은 아직도 팩스와 CD를 사용하고, 크리스피 도넛을 줄 서서 사 먹어요.(웃음) 그 차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게 나오면 흡수를 잘 하니까, 그만큼 혁신이 잘 일어나고 빠르게 변하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취향이 까다롭기 때문에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입장에 도달했죠. 

물론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많아요. 도시재생 관점에서 보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등을 야기시키니까요. 그런데 저는 스몰브랜드가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아주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반짝하고 유행하는 것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가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하나를 깊이 고민한다면 누구나 스몰브랜드를 만들 수 있거든요. 제가 강연에 가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남들 다 하는 사업 하지 말라”고요. 마라탕이 유행한다고 해서 똑같이 마라탕 가게를 열면 안 돼요.(웃음) 어떤 스몰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시장의 생태계도 좋아질 테고요. 

창업 후 처음 연 공간은 건대 스타시티 건물에 오픈한 셀렉트 다이닝 숍 ‘오버더디쉬’였어요. 지금은 지역의 유명 맛집을 한데 모은 공간이 흔하지만, 당시에는 낯선 기획이었는데요. 퇴사 후,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꺼내 놓은 기분이 어땠나요? 

오버더디쉬를 오픈하고 3주 동안은 사람이 아예 없었어요.(웃음)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 가만히 앉아있어도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평소 같았으면 땀을 닦았을 텐데, 그땐 그럴 정신조차 없었어요. 손님 하나 없는 텅 빈 홀을 보고 있으니까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큰 사고를 친 건가’ 하고요.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이러다가는 큰일나겠다 싶어서 직접 전단지도 돌리러 다니고, 열심히 홍보를 했는데 오픈 4주차쯤 됐을 때부터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짜릿했겠네요.(웃음)

아니에요. 3주 동안 바닥을 치고 겨우 올라온 거잖아요. 그래서 마냥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짜릿하거나 기쁜 감정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웃음) 



그동안 OTD가 기획한 공간들은 큰 주목을 받았어요. 첫 도전이었던 ‘오버더디쉬’부터 광화문 디타워의 ‘파워플랜트’, 서점 ‘아크앤북’, 플리마켓 ‘띵굴시장’ 등 다양한 브랜드가 줄곧 성공을 거뒀는데요. 그 비결은 역시 스몰브랜드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네. 저는 오직 스몰브랜드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아크앤북도 단기간에 엄청난 브랜딩이 이루어졌거든요. 그런데 이건 아크앤북 자체의 힘이라기 보다, 기존의 서점과 다른 면을 소비자들이 알아봐주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지금까지의 서점들은 콘텐츠를 왜곡한 상태였다고 생각해요. 대형 서점에 가면 몇 개의 책만 유난히 눈에 띄도록 배치해놨잖아요. 베스트셀러 혹은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쓴 책들이죠. 

그런데 아크앤북은 마케팅비가 아예 책정돼 있지 않아요. 오직 북 큐레이터들이 좋은 콘텐츠를 큐레이션 할 뿐이죠. 좋은 콘텐츠를 찾아서 보여주니, 그러한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덕분에 창작자는 다시 창작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어요. 저는 아크앤북이 이러한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생각해요. 하루는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 『골목길 자본론』 등을 펴내신 모종린 교수님께서 저에게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대형 서점보다 아크앤북에서 본인의 책이 훨씬 많이 팔린다고 말씀하시면서요. 사실 지점 개수로 따지면 저희는 대형 서점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적잖아요. 그런데 아크앤북에서 특히 많이 팔리는 책들이 있어요. 저는 이런 사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들의 취향이 점점 더 개성을 띄고, 남과 다르길 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잖아요. 게다가 그 취향을 혼자 간직하는 게 아니라 SNS로 누군가와 공유하길 원하죠. 그 중심에 스몰브랜드가 있어요. 앞으로는 스몰브랜드를 다룬 부티크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날 거예요. OTD가 만든 공간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런 트렌드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공간을 기획하면서 ‘서점’에 주목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셀렉트 다이닝 숍을 만들었던 회사에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서점을 만든 게 독특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하고,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할 때는 피곤하면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자다 왔거든요. 실제로 테이블에 엎드려 쪽잠을 자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수 있나요? 부끄럽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카페에서 조차도 공부를 해야 해요.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면 좀 눈치 보이고.(웃음) 

그런데 사람들이 서점에서는 의자에 기대 낮잠을 자더라고요. 실제로 아크앤북을 구상할 때, 조사를 하다 보니 각 서점마다 낮잠 자는 고객을 깨우기 위해 고용한 인력들도 있었어요. 서점에서는 책도 보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는 거죠. 서점에 있으면 아무 것도 안 해도 괜히 시간을 알차게 보낸 느낌이 있잖아요.(웃음) 서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별한 해방감을 주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정말 매력적이더라고요. 

저도 반나절 이상을 서점에서 보낼 때가 많아요. 해외 여행을 가도 서점은 꼭 들르고요. 그런데 한국 서점은 여행에서 만난 서점들과 느낌이 달랐어요. 그래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죠. 사실 창업을 시작했을 때 제일 처음으로 만들고 싶은 게 서점이었어요. 그런데 작은 규모의 회사가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라서, OTD가 어느 정도 성장을 할 때까지 기다렸던 거예요. 

아크앤북을 유명하게 만든 데는 ‘책 터널’도 한 몫을 하죠. OTD는 버려진 공간을 활용하는 회사잖아요. 아크앤북 시청점이 위치한 지하도 버려진 공간이었어요. 책 터널이 있는 길은 공간이 두 갈래로 나뉘는 지점이고, 엘리베이터가 자리하고 있죠.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는 오로지 건물의 사무실을 이용하는 분들만 쓸 수 있어서 저희에게는 쓸모 없는 공간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또 층고가 낮아서 인테리어적인 관점으로도 굉장히 좋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죠. 

그렇다고 밋밋하게 엘리베이터 홀로 방치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서점의 어느 한 곳에 ‘아크앤북은 이렇게 멋진 곳이다’라는 은유적 이미지를 가진 공간을 구축하고 싶었어요. 사진 한 장만으로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도록 말이죠. 때마침 그곳에 책 터널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제가 예전에 책으로 동굴이나 벽 등을 만든 이미지를 본 적이 있는데 재밌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줄 몰랐어요. 작년에는 인스타그램의 유명한 인플루언서 로렌 불렌(@lauren bullen)이 와서 사진을 찍고 갔더라고요.(웃음)



스몰브랜드의 새로운 생태계가 탄생할 것

책에는 미처 싣지 못했지만, 요즘 주목하는 스몰브랜드가 있을까요? 

지난 달, 저희 회사에서 온라인 ‘띵굴푸드마켓’을 새롭게 시작했는데요. 여기서 ‘식부관’이라는 브랜드의 식빵을 조만간 판매할 예정이에요. 식부관은 압구정 프렌치 레스토랑 김대철 셰프가 만든 식빵 브랜드예요.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식전빵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국내에는 마음에 드는 퀄리티를 가진 빵이 없어서, 김대철 셰프가 직접 빵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주변에서도 주문이 쇄도하다 보니 브랜드까지 만들게 된 거죠. 

이 식빵은 최상급 재료를 사용해 만들고요. 정말 맛있어요. 그리고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아서 유통기한이 3일도 채 되지 않죠. 빵 생산량이 워낙 적기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에 직접 가도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희와 손을 잡고 온라인에 최초로 런칭을 하게 됐어요. 요즘 코로나19로 자영업하시는 분들이 정말 어려운데, 김대철 셰프님도 시장이 온라인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동네 빵집의 생태계를 온라인으로 바꾸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는 이유로 저희의 손을 잡아주셨어요. 물론 물량이 많지 않아서 매일 품절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 예상되는데요. 만약 띵굴푸드마켓이 잘 운영된다면, 앞으로 생산량을 점점 늘려나가기로 의기투합을 한 상태예요. 

저희에게는 이런 스몰브랜드가 정말 큰 힘이에요. 대기업이 해외 스몰브랜드를 국내로 들여오는 일에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붓곤 하는데, 저는 그런 걸 보면 견딜 수가 없어요. 꼭 식부관 같은 브랜드들이 잘돼서, 해외 브랜드들을 뛰어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유통기한이 그렇게 짧은 식빵을 온라인 마켓에서 판매할 수 있는 비결이 있나요?  

그래서 ‘새벽배송 0.5’라는 시스템을 시작했어요. 보통 새벽배송은 큰 물류센터와 배송인력을 갖춰야만 가능한 시스템이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 정도의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라서, 소비자 주변에 있는 전통시장, 특화시장 등을 물류거점으로 활용해 공유물류 운영 업체와 손잡고 새벽배송을 실시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고기는 마장동 축산시장, 과일은 가락동 농수산시장, 반찬과 먹거리는 광장시장과 망원시장에서 바로 배달이 되죠. 물류센터가 없으니, 소비자가 한우를 주문하면 그날 저녁에 바로 발육을 해서 냉장상태로 배달을 하는 거예요. 아무리 신선식품이라고 해도, 보통은 물류센터에서 2~3일은 머물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물류센터를 지을 돈이 없는 바람에(웃음) 초신선 식품을 배달할 수 있게 된 거죠. 

식부관이나 태극당 같은 유명 브랜드들의 빵도 이렇게 물류센터 없이 직배송 될 예정이에요. 사실 두 브랜드 모두 온라인에서는 한 번도 판매된 적이 없어요. 물량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공장도 없고, 며칠씩 물류센터에 보관했다가 배송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띵굴푸드마켓이 이 두 가지의 문제를 모두 해결한 셈이에요. 만약 이 시스템이 커진다면 ‘배달의 민족’이 아닌 완전히 또 다른 생태계가 탄생할 거라고 생각해요. 치킨, 피자, 김밥 등을 배달하는 생태계가 아니라 동네 맛집에서 만든 음식을 소비자가 새벽배송으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자리하게 되는 거죠. 

OTD를 소개할 때 항상 “작은 것을 담아내는 큰 그릇”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함께할 작은 브랜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을 딱 하나만 꼽는다면요. 

특별한 개성이요. 사람들의 취향을 길게 늘어뜨렸을 때, 가장 많은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가운데에 위치한 브랜드가 아니라 양 끝단에 위치한 느낌이 든다면 너무 좋죠. 

스몰브랜드가 유명해지면 언젠가는 빅브랜드가 되기도 하잖아요.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요? 

띵굴시장에 참여한 브랜드들 중에 실제로 큰 회사가 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부담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보람인 것 같아요. 특히 아크앤북의 지점이 많아지고, 좋아하는 대중들이 많아지는 건 저도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너무 기뻐요. 왜냐면 제가 아크앤북에서 책 사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웃음) 특히 성수연방점은 공간이 작아서 좀더 깊이 있는 큐레이션이 돼 있어요. 얼마 전에는 성수연방점에서 『침착하지만 단호하게 진상을 대처하는 기술』이라는 책을 발견하기도 했어요.(웃음) 저는 이런 게 너무 좋아요. 제가 스몰브랜드를 보고 영감을 받고, 즐거운 것처럼 『프롬빅투스몰』을 읽는 독자들이 위안과 도움을 받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프라인 공간이 중심이 된 회사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고민도 많을 것 같아요. 

온라인 띵굴푸드마켓이 오프라인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으면 해요. 요즘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굉장히 힘들거든요. 기존 이커머스 업체에서는 음식점에서 만든 제품을 판매할 수가 없어요. 법적으로 인증 받은 공장이 있는 업체의 제품만 팔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띵굴푸드마켓은 직배송 시스템이기 때문에 판매가 가능해요. 각 음식점들은 온라인 판로를 개척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소비자는 대기업 온라인몰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스몰브랜드의 좋은 제품을 새벽배송으로 받을 수 있으니 좋겠죠. 이 생태계가 커지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오프라인 매장의 생존에도 OTD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에너지가 소진됐다고 느낄 때, 뭘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책을 잔뜩 사서 혼자 여행을 가요. 그리고 숙소에 틀어박혀 온종일 책 읽으며 놀고 먹고 해요.(웃음) 일할 때 너무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니까 쉴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못 가서, 앞으로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2014년 OTD를 창립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난 날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매 순간 힘든 건 똑같지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는 게 너무 좋아요. 옛날에는 아크앤북을 만들고, 띵굴푸드마켓을 여는 건 꿈만 꿨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들이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 아이디어가 있을 때, 그걸 시도해보고 잘 되게 노력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게 좋죠. 특히 태극당이나 식부관 같은 멋진 브랜드와 협업할 수 있는 것도 뿌듯하고요. 사업 초창기에는 브랜드들을 찾아가면 사기꾼 취급을 받기도 했어요. 어떤 브랜드에서는 2~3번 가량 퇴짜를 맞은 적도 있죠. 미팅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부동산 업자인 줄 알았는지 담당자가 약속 장소에 안 나왔어요.(웃음)

그 브랜드는 지금 후회하고 있겠네요.(웃음) 

아마 그때 만나자고 한 사람이 저라는 걸 모를 거예요.(웃음) 

파트3에서는 ‘상생’에 대해 특히 강조했어요. “함께 가면 서로에게 자극이 되기보다 위안이 됩니다.(246쪽)”라고 했는데요.

저는 욕심이 많거든요. 디자이너나 건축가들은 대부분 그럴 텐데, 특히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회사가 작아도, 결과물만큼은 대기업에 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그런데 당장은 돈도 없고, 직원도 없고, 힘도 없잖아요. 이렇게 부족한 게 많은 상황에서도 엄청나게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탐닉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면 되는 거예요. 

또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만 잘 되려고 아등바등 하는 게 내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아니더라고요. 창업을 하기 전에, 부동산 관련 일을 하면서 부동산 계의 엄청난 거물들을 뵐 기회가 있었거든요. 웬만한 재벌보다 훨씬 자산이 많은 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은 협상을 할 때 굉장히 너그럽더라고요. 손해보지 않으려는 데 집착하기 보다는 에이전시의 입장도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에게만 좋은 협상은 꼭 탈이 난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어요. 저도 이 생각에 동의해요. 혼자만 잘 살려는 생각으로 일을 하면, 처음에는 잘 될지 몰라도 곧 실패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새로 시작하는 창업가들을 향한 염려의 마음도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너무 고생을 해서요.(웃음) 물론 아직도 고생하고 있지만, 저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그래도 지금은 생태계가 많이 좋아졌는데, 제가 처음 회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정말 힘들었거든요. 

이 책을 직접 권한다면,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SNS에서 특별한 공간이나 남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들을 찾아보길 좋아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나는 왜 자꾸 이걸 찾아보게 되지? 이런 게 왜 끌리지?’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혹은 그런 특별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분들께도 권하고 싶고요. 

제가 책에 ‘프로슈머(prosumer,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라고 표현했는데요. 과거에는 어떤 제품을 생산하고, 브랜드를 만든다는 게 몇 개의 큰 기업 혹은 자산이 많은 자본가에게만 가능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좋은 기획력만 있다면 누구나 자기 브랜드를 가질 수 있게 됐어요. 너무 좋은 세상인 거죠. 자기만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은 꿈을 가진 분들이 편안하게 읽어보신다면, 본격적으로 도전해 볼 용기가 나지 않을까 싶어요.



From Big To Small (프롬 빅 투 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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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현 저
넥서스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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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강양구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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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말,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를 찾아왔다. 경제가 주춤하고 일상이 변화했다. 최신 과학 기술도 소용없는 최악의 보건 위기.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분주히 손가락을 옮기는 사이, 우리 사회의 가장 낮고 약한 곳이 무너져 내렸다. 벌써 9개월째,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알고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놓친 것들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재갑 교수와 강양구 기자. 알쓸신잡 코로나19 편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바이러스부터 공공의료, 혐오, 방역, 정치, 언택트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우리가 선 자리를 짚어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깊으면서도 친근했다. 코로나19라는 주제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오래 들어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바이러스는 정치적이지 않거든요 

<알쓸신잡> 코로나19편을 보는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이재갑 교수의 단독 저서로 기획됐다고요.

강양구:책을 써보시라고 제안한 게 저였어요. 메르스 때 처음 이재갑 교수님을 알았는데요. 전문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동시에 갖춘 한국의 감염내과 전문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재갑 교수님의 이야기를 나 혼자 듣고 끝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내보시라”라고 했죠. 그런데 교수님께서 “나만 고생하라는 거냐”라면서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돕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어요. 이 책의 주인공은 계속해서 감염병과 싸워 온 이재갑 교수님이고 저는 숟가락을 살짝 얹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갑 교수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네요. (웃음)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땠나요?

이재갑: 자신 없었어요. 감염학 교과서의 일부를 쓴 적은 있지만, 책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써 본 적은 없거든요. 혼자 쓰면 내용이 의료 쪽에 치우칠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고요. 그러면 재미도 없고 생각을 확장하기 어렵잖아요. 예를 들어 저는 책 후반부에 나오는 ‘기본 소득’ 이야기를 생각은 해도 풀어나갈 재간이 없거든요. 강양구 기자님과 다른 부분이 많지만, 감염병과 관련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상할 정도로 일치해요. 메르스 때부터 이런 느낌을 받았고, 같이 작업하면 내용이 더 풍성해질 것 같았어요.

의외의 조합이라는 반응이 많아요. 이런 시선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강양구:전혀 없었어요. 서로 다른 정치 성향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제가 아는 이재갑 교수님은 정치적 편향과는 거리가 멀어요. 환자, 감염병, 공동체의 안전,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문가고요.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떤 정부든 자기 역할을 하는 분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라는 세간의 오해로부터 교수님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안에 대해 의견이 일치할 수 없잖아요. 이재갑 교수님과 특정 사안에 대한 정치적 견해는 다르지만, 감염병에 대해서는 일치하는 면이 많아요. 

이재갑:마찬가지예요. 강양구 기자님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코로나19와 관련해서 한국을 바라보는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편했어요. 물론 현 정권을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달라요. 저보다 비판적이시죠. (웃음)

강양구: 저보다 애정이 조금 더 있으시고요. (웃음)



실제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장면은 없더라고요. 

이재갑:코로나바이러스는 정치적이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코로나 방역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게 작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너무 양분화되어 있어요. 실제로 강양구 기자님과 저는 4월 전까지 정부의 입장을 지지했고요. 지금은 3단계로 올려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강양구:감염병을 취재하고 공부하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요. 방역에서 제일 중요한 건 유연성이더라고요. 맥락이나 상황 혹은 주어지는 정보가 계속 업데이트되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맞춰서 기존의 것들을 반성하면서 바꿔가야 하는 게 방역이고 그래야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어요. 신념이라든가 이념, 정치적 입장만 고수하면 기민하게 반응할 수 없고, 공동체의 생명과 안전에 피해를 주는 상황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위기 상황일수록 열린 태도와 수평적이면서도 편견 없는 토론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책에서도 협력과 연대를 강조했는데요. 두 분이 책에서 몸소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양구: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두 사람이 감염병 유행으로부터 공동체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협력하고 연대한 이야기이자 몸부림친 기록으로 봐주셨으면 해요. 작업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 이런 점을 확인했어요. 특히 저희 두 사람에게 편견이 있는 분들이 이 책을 통해서 ‘아, 이런 식으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게 필요한 일이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재갑:사실 제가 지금보다 더 많이 활동했던 건 메르스 때거든요. 메르스 전에 있었던 에볼라 방역도 박근혜 정부 때였고요. 그러니까 감염병에 관해서는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아요. 만약 다른 정권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다면 제가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두 분의 조합만큼이나 의외였던 게 김혼비 작가의 추천사였어요. 어떤 인연인가요? 

강양구: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에 김혼비 작가님이 고정 패널이 되면서 친해졌어요. 처음부터 추천사를 부탁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이재갑 교수님과 대담 중에 김혼비 작가와의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그걸 들은 편집자가 추천사를 받아보자고 해서 부탁했죠. 

반응은 어땠나요?

강양구:처음에는 뜻밖이라는 반응이었고요. 원고를 읽고 난 다음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써주셨는데 독특하게 잘 써줘서 감사했어요.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부인권’을 드렸거든요. 저와의 친분을 부인할 수 있는 권리를요. 같이 팟캐스트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써 준거고 사실 그렇게 친하지 않다고 얘기해도 상처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제 추천사까지 써서 어쩔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이상한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가 뭘까요? 


책이 나올 즈음 ‘사랑제일교회’발 대유행이 시작됐어요. 소식을 듣고 어땠나요?

이재갑:올 게 왔다는 생각이었어요. 4, 5월에 사랑제일교회가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염병 전문가들이 다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당시에는 지역 사회 감염이 줄어든 상태였고 전파 속도가 낮아서 발생하지 않은 건데 결국 터진 거죠.   

강양구:예견된 결과였어요. 7월 24일 6시부터 교회 소모임 금지가 풀렸는데요. 그때도 교회에서의 집단 감염이 끊이지 않던 상황이었어요. 거기에 장마까지 시작됐죠. 그러면 다들 실내활동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공교롭게 7, 8월은 교회 행사도 많은 시기고요. 5월부터 바짝 노력해서 잡고 있던 것들이 터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8월 들어서 지역 발생 환자가 조금씩 늘어나다가 8월 13일, 14, 15일을 기점으로 빵 터졌죠. 그때가 딱 이 책이 나올 때였어요.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신천지와 달리 사랑제일교회는 약간 특수하지 않나요?

이재갑:신천지랑 똑같아요. 7월 24일에 교회 소모임 금지가 해제됐을 때 제가 난리 쳤거든요. 그러면 안 된다고요. 그런데 확진자 수가 줄어들고 있으니까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웃음) 6, 7월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느슨해지고 장마철, 휴가철이 겹치면서 실내활동이 늘고, 조금씩 확진자가 축적되면서 지역사회 감염이 늘다가 그중 한두 명이 폐쇄된 집단에 들어가서 뻥하고 폭발한 거예요. 

그러고 보면 청도대남병원부터 이태원, 신천지, 사랑제일교회까지 우리 사회의 ‘음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대유행이 시작됐어요.

이재갑:그렇죠. 종교만 봐도 그래요. 자세히 보면 기존 종교랑 다른 색을 가진, 약간 비딱한 곳에서 대유행이 생기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생기는 이유가 뭘까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 사람들이 갑자기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주류라고 하는 곳에서 그런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튕겨 나가는 거죠. 튕겨 나갔으니까 기존 사회랑 다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더 똘똘 뭉치는 거고요. 심지어 사랑제일교회는 정치적인 부분과 결탁해서 아주 이상한 형태의 종교적 모습을 보이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혐오는 공동체의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202p)고도 하셨죠. 

강양구:방역에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은 감염자가 “나 감염된 것 같다”고 밝히는 거거든요. 그래야 빠르게 조치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혐오나 낙인이 생기면 감염자는 자신을 밝히기를 주저하겠죠. 주저하는 환자가 많을수록 공동체는 위험해지는 거고요. 혐오는 바이러스만큼이나 위험해요. 

이재갑:바이러스는 그냥 자기 할 일을 해요. 감염될 만한 사람을 찾아서 감염시키는 거죠. 그런데 감염될 만한 사람들이 누구냐면 취약한 곳 또는 정치적, 성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처럼 우리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어떤 일이 발생한 배경에는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잖아요. 그런데 문제를 제대로 알려고 하기보다 부각되는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혐오하는 쉬운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혐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이재갑: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분노의 대상을 만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상한 사회가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욕하면서 후련해하고 저 사람 때문에 나한테 문제가 생겼어, 저 인간만 없어지면 나는 잘살 수 있어 하는 식으로 희망을 분노로 느끼는 상황이 된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런 혐오 감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요. 

강양구:위기 상황이 되면 그 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게 어떤 양상으로 얼마나 공격적으로 나오는지가 그 사회가 가진 건강함 또는 회복 탄력성의 척도가 될 텐데요. 이번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른바 문명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도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게 아닐까 싶은데 혐오가 선택적으로 일어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선택적 혐오요?

강양구: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성 소수자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안 되지, 무턱대고 탓하는 건 혐오라고 했던 분들이 신천지나 사랑제일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똑같이 말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방역에 피해를 주거나 협조하지 않은 것은 그것대로 비판하되 그게 그 집단이기 때문에 혐오를 덧씌우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이나 혹은 그런 것들에 대한 경계심이 있는 분들조차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그 제어의 문턱을 쉽게 넘는 느낌이 들어서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고 안타까워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리셋하지 않으면 

감염병이 5년을 주기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나요?

강양구:우연이죠. 

이재갑:바이러스가 일정한 주기로 찾아오지는 않아요. 다만 주기가 빨라지고 있는 건 확실해요. 

강양구: 20세기에 유행한 전염병이라고 하면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이거든요. 21세기 들어 2003년, 2009년 그리고 2020년 이렇게 세 번 일어났고요. 20세기에 100년 동안 있었던 일이 지금 21세기 초반에만 세 번 일어난 거예요. 그만큼 자연이 훼손됐다는 증거고,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바이러스가 유출되는 일이 계속 많아지고 있거든요. 앞으로 더 많아질 거라고 봐요. 

거리 두기의 강도에 대해서 의견이 갈려요. 누군가는 지나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부족하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타협할 수 있을까요?

이재갑:감염병 전문가들은 3단계로 올려서 짧고 굵게 끝내자는 입장이에요. 발병자를 빨리 줄인 다음 경제를 여는 게 유리하다고 이야기하고요. 정부에서는 3단계로 올리면 경제적 압력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죠.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는 걸 용인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2.5단계가 생겼는데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만약 전문가들이 3단계로 올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으면 과연 정부가 2.5단계로 올렸을까요? 전문가와 정부의 균형이 이렇게 이뤄진다고 봐요.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전문가들한테 2.5단계 올리는 것에 대한 명분을 얻고, 전문가들은 머뭇거리는 정부를 위해 더 강하게 얘기하는 거죠. 비록 3단계가 되지 못하더라도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발휘되게 하는 거예요. 

강양구:많은 분이 경제와 방역을 대립해서 생각하잖아요. 이것도 편견이 아닐까 싶어요. 방역을 잘해야 경제도 좋아져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락다운 하자는 거냐”고 받아들여요. 그게 아니라 락다운 하지 않도록 방역을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거든요. 락다운 해도 경제는 살아나지 않아요.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요. 스웨덴이랑 덴마크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두 나라가 이웃 나라잖아요. 그런데 정반대의 조치를 했어요. 스웨덴은 락다운을 전혀 하지 않았고 덴마크는 유럽 중에서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락다운을 했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땠냐? 두 나라의 GDP가 모두 하락했어요.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는 말이 자주 떠올랐어요. 바이러스도 결국 환경 문제와 연결되더라고요.

강양구: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지 않으면 지난 20년 동안 겪은 팬데믹이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커요. 최재천 교수님이 ‘생태 백신’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코로나 사태의 핵심을 요약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 공동체가 고생할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거고요. 

동물이든 사람이든 다양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재갑:전 세계적으로 수가 늘어나는 건 인간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인간하고 인간이 키우는 가축 말고 다 줄어든다고요. 다르게 이야기하면 바이러스가 거주할 숙주가 줄어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축에서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점점 더 자주 오게 되는 거고요. 이번 위기가 자기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바이러스를 두고 양쪽에서 싸우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이유도 이런 점 때문인데요. 바이러스는 공평해요. 모두의 삶이 똑같이 바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서로 싸우고 집착하기보다 바이러스가 주는 교훈을 같이 생각하면서 조금씩 바뀌어야 해요. 



그런데 문제가 뭔지는 알겠는데 다 너무 큰 이야기 들이라 어떤 것부터 해결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요. 일상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요? 

강양구: (잠시 침묵) 일단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를 읽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웃음)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바이러스와 동거하는 건 우리 세대에서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재갑: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만 봐도 그래요. 2009년에 신종 플루가 유행했는데 지금도 있잖아요. 2009년 새로운 바이러스로 우리 삶에 들어와서 지금 우리와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2009년에 느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을 지금도 똑같이 느끼진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코로나19도 언젠가는 토착화돼서 겨울마다 유행하는 바이러스로 남을 거예요. 인플루엔자보다 더 무서워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겠네요.

이재갑:겨울마다 유행하는 바이러스처럼 남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 변화에 따라 우리 삶도 바뀌게 될 거고요. 그러다 또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지도 몰라요. 그러면 우리는 또 그에 맞춰서 적응하는 거고요. 그동안 인류가 못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잖아요. 과학만능주의로요. 그런데 박쥐라는 작은 동물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하나에 전 세계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어요. 이 현실을 목도하고 경험하면서 인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에 대해서도 한 번 더 고민해야 하고요. 

강양구:생각해 보면 얼마나 웃기는 일이에요. 최첨단 과학 기술이 있는 21세기에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낼 가장 좋은 방법이 백신도 아니고 1m 이상 거리 두고 마스크 착용하는 거라는 사실이요. 마스크는 100년 전에도 있었잖아요. 이런 걸 보면 이재갑 교수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인류가 온 세상을 다 좌지우지하고, 생명도 창조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르는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코로나19가 알려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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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강양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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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혜림 “사랑, 여전히 배워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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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찾는 중이에요.” 무대 위에서 빛나는 아이돌, 4개 국어를 하는 통번역가, 7년의 장기연애를 지켜온 사랑꾼 혜림이 에세이집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을 출간했다. 모든 것을 갖춘 듯한 혜림이지만, 아직 헤맨다고 말한다. 흔한 겸손 아닐까? 조금 더 다가가 보니, 작가 우혜림은 한 자 한 자 진심을 눌러 적고 있었다. 4점을 넘었던 학점이 조금 떨어졌다며 웃으며 말하고, 사랑하는 이와 보내는 일상이 행복하다는 혜림. 차분히 대화를 이어가며 느꼈다. 단단한 중심이 있으니까 불안도 방황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구나. “당신의 불완전한 모습도 껴안아 줄게요”하고 위로할 수 있는 거구나. 오래 생각한 마음을 다 털어놓고도 “참, 어려워요”라고 덧붙이는 귀여운 사람. 에세이도 이 대화도 참 혜림답다.

우혜림은 원더걸스 혜림으로 데뷔하여 <2 Different Tears><Why So Lonely>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통번역을 전공하며,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를 담은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선하다고 믿는다』를 번역했다. 현재는 학업을 병행하며, 유튜브 채널 <Lim’s Diary>를 통해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글쓰기는 나만의 힐링 방법

혜림의 섬세한 글과 석윤이의 북디자인, 편집자의 수고가 만나 멋진 책이 탄생했어요. 처음 책을 받아보니 어땠어요?

와, 정말 뿌듯했어요. 저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기만 했으니 결과물이 상상이 안 됐거든요. 궁금해하다가 마침내 완성된 결과물을 보니 기뻤죠. 누군가 책은 작가를 닮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닮은 책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언제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연습생 시절, 힘들 때도 글을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했고요. 저만의 힐링 방법이었죠. 자연히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는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루게 될 줄은 몰랐어요. 꿈 같아요. (웃음)

혜림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핵심 주제는 ‘사랑’이에요. 어떻게 정했나요?

처음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편집자님이 “혜림 씨는 사랑에 대한 글을 잘 쓰실 것 같아요”라고 하셨고, 마침 결혼도 했으니 제 시기에 딱 맞는 주제였죠. 또,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연예계 활동과 대학 생활까지 바빴을 텐데, 집필 기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여러 활동을 병행하며 쓰느라 1년 넘게 걸렸어요. 심심할 틈이 없었어요.(웃음)

무대 위의 혜림이 익숙해서인지, 글 쓰는 모습을 상상해보고 싶어요. 주로 언제 글을 쓰나요?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로 글로 옮기는 편이에요. 일단 기록해 놓고 집에 가서 문장을 다듬는 식으로요.



시력 검사를 하러 갔는데 적색과 녹색 빛을 보여주더라. 적색과 녹색의 갈림길을 오가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너와 가까울 때든 멀어질 때든 나는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야. 적색이든 녹색이든 마음이 다하는 날까지 너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거야.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138쪽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제 삶에 대해 쓰다 보니 이 문장으로 결론이 나더라고요. 늘 열심히 헤엄치는 중이라고 느껴요. 정해진 건 없지만 무언가를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혜림의 삶을 표현한 말이네요.

네, 늘 진행 중이죠. 우연의 일치인데, 제가 낸 책에 둘다 ‘여전히’라는 말이 들어가더라고요. 첫 번역서 제목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선하다고 믿는다』예요.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을 좋아하나 봐요.

연예인이 쓴 글이면 화려할 것 같았는데, 솔직해서 공감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요즘 위로받을 곳이 흔치 않잖아요. 이 책을 통해서만이라도 힐링이 됐으면 했어요. 마치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는 것처럼요. 



1등, 2등이 아닌, 3등이 되고 싶다

혜림은 1, 2등도 아닌 3등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과 달라서 의외였어요.

스스로를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저는 경쟁하는 상황이 오면 힘들어하는 사람이에요. 차라리 남에게 1, 2등을 주고 3등을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해요. 

연예계는 1등을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이 힘들 때도 있었죠. 매일 얼굴을 보는 친한 동료여도 비교당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저는 경쟁이 어울리지 않아요. 심리 테스트를 해도 매번 ‘평화주의자’라고 나와요. (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혜림다운 것’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요?

계속 찾고 있는 중이지만, 화려함보다 소박한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요. 제 책이 겉표지는 화려하지만, 안의 내용은 차분하고 따뜻한 것처럼요. 예전에는 제가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변화가 많은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잔잔한 게 잘 맞더라고요. 

7년간의 장기연애 끝에 최근 결혼식을 올렸어요. 결혼 생활은 어떤가요?

연애 기간이 길다 보니, 몰랐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는 건 없어요. 연애할 때도 크게 숨기지 않았거든요. 달라진 게 있다면, 생활에 안정감이 생겼어요. 이 사람인지 아닌지 고민을 더 안 해도 되고 함께여서 좋은 순간들이 많아요. 같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때, 결혼을 잘했다고 느끼죠.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가족끼리 잘 아는 사이였다고요. 부모님에게 오픈해서 하는 연애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어요.

너무 편했어요. 부모님과 남자친구가 함께 밥을 먹고 여행하는 것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인 걸 알고 놀랐어요. 저희는 상견례도 안 했거든요. 매일 같이 밥 먹었는데, 갑자기 차려입고 인사하는 게 낯간지러운 거죠. (웃음)

유튜브 채널 <Lim’s Diary>로 결혼식 현장을 공개했죠. 핫펠트의 축가와 태권도 공연까지 너무 재밌더라고요. 당일 떨리진 않았어요?

저도 그게 궁금했거든요. 내가 결혼식 날 많이 떨릴까? 펑펑 울 수도 있으니 당일에 부모님 눈 마주치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 긴장이 안 되고 굉장히 덤덤한 마음으로 마쳤던 기억이 나요.

원더걸스 멤버들이 브라이덜 샤워를 열어 줬어요. 원더걸스는 혜림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소중한 한 시기를 함께했던 사람들! 예쁜 청춘 시절을 같이 보냈으니까 이해하는 것도 많고, 그래서 서로를 잘 응원할 수도 있어요. 완전히 만들어지기 전의 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니 정말 각별하죠.


다르니까 완벽한 짝이 될 수 있어요

고백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건넸죠.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는데 그가 거절하는 것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한 것에 성공한 것”(121쪽)이라고요.

사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건 당연해요. 저도 좋아하는 상대에게 표현하기 전에 두 번, 세 번 고민해요. 결국에는 후회하더라도 해보고 실패하는 게 낫지 하면서 말을 건네죠. 그러면 걱정하는 것만큼 큰 일이 아니었구나 알게 돼요. 일단 용기를 내서 표현하면 내 할 일은 다 한 거고 성공한 거죠. 주저하는 친구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요.

누구나 연애할 때, 완벽하지 않잖아요. 혜림은 연애 초반에는 애정결핍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어요. 장기 연애를 하며, 달라진 점이 있나요?

한결같이 가족처럼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되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한국에는 가까운 가족이 없었는데, 민철 오빠가 부모님, 친구, 연인 역할을 다 해줬어요. 오빠도 처음에는 애정결핍인가 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더라고요. 

연인에게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어떻게 확신했어?”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혹시 본인이 그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해줄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있는 그대로 이해해줄 때,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살다 보면, 저도 안 좋은 상황에 놓일 수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도, 나를 포용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뒷모습에선 한 사람의 긴 여정이 보이는 것 같아.

뒷모습에선 직위도, 외모도, 경력도 아무것도 없어.

뒷모습은 거짓말하지 않아.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52쪽 


민철 님과 MBTI 성격테스트를 하니 정반대의 성향으로 나왔다고요. 혜림은 INFJ(선의의 옹호자)인데, 민철 님은 ENTJ(대담한 통솔자)예요. 

저희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맞아 하기보다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간다고 생각해요. 다르기 때문에 더 완벽한 짝이 될 수 있어요. 마음의 태도가 중요한 거죠. 예를 들면, 오빠는 직설적이고 저는 심사숙고하는 편이거든요. 제가 속마음을 담아두고 있으면 오빠가 속 시원하게 말하라 하고, 오빠에게는 제가 ‘그렇게 말하지 말고 좀 더 부드럽게 말해 봐’ 조언해요.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사이예요.(웃음)

민철 님은 이번 책을 읽었나요?

네, 원래 웹툰 아니면 책을 안 읽는 사람인데, 정말 열심히 읽더라고요.(웃음) 이번 생일에 오빠가 제 책을 100권 사줬어요. 최고의 선물이었죠. 

이 책을 읽는 독자를 상상한 적이 있나요?

굉장히 설레는 질문이네요. 제 또래의 20~30대 여성분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그중에서도 마음이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제가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따뜻한 글을 건넬 수는 있으니까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천천히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글은 짧지만 생각할 것이 많거든요. 하나하나 글자를 음미하며 읽으면 조금은 힐링이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어요. 혜림이 생각하는 사랑은?

가장 순수한 ‘나’로 돌아가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한없이 귀여워지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10년 뒤에는 또 달라지겠죠? 여전히 배워가고 있으니까요.(웃음)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여전히 헤엄치는 중이지만
우혜림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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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우 감독 “생존자의 기억은 가장 강력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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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강상우 감독은 한 연극의 제작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조선대학교병원 근처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주옥 씨는 당시 만난 광주 시민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5년 5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문을 열었다. 그곳을 찾은 주옥 씨는 강상우 감독과의 통화에서 시민군의 사진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고 말했다. “동네에서 ‘김군’으로 불린 넝마주이 청년”이라는 것.

바로 그 사진이, 비슷한 시기에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 업로드됐다. 1980년 5월에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투입됐고, 사진 속 청년(주옥 씨가 김군으로 기억하는 청년)이 2010년 평양에서 촬영된 사진 속의 인물과 동일인인 북한특수군이라는 주장이었다. 한 달 뒤, 우익 논객 지만원 씨는 일베에서 제기한 사진적 유사성이 ‘5.18 북한특수군 개입설’의 결정적 증거라고 말했다. 

강상우 감독은 “사진 속 얼굴에 제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거창한 문제의식이나 사명감보다는, 그저 궁금했다. “그는 왜 총을 들었을까. 그리고 어쩌다 항쟁의 선봉에 서게 됐을까.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김군 찾기’는 5년 여간 이어졌다. 100여 명의 생존자를 만나 200회 이상 인터뷰를 했고, 그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을 완성했다. 85분의 러닝타임이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은 책 『김군을 찾아서』에 기록됐다. 오월의 광주, 그곳에 존재했으나 알려지지 않은 이들과 기록되지 않거나 삭제된 서사들을 실증적으로 쫓았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다

프롤로그에서 말씀하시길 “강소영 편집자님의 제안으로 책을 썼다”고 하셨어요.

네, 편집자님께서 제안을 주셔서 쓰게 된 거예요. 영화가 나오고 나서 ‘전쟁없는세상’의 이용석 활동가에게 번호를 물어 연락을 주셨어요. 책을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저희가 100여 명의 생존자 분들을 인터뷰했는데 영화에서는 스무 분 정도의 말씀밖에 못 담았어요.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작업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적기에 제안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영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책에 담겼겠어요. 

영화는 85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김군 한 분을 추적하는 이야기가 주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순간순간 벗어나는 부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담지 못해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넝마주이와 관련된 증언들 같은 거예요. 처음 영화 편집본을 만들었을 때는 넝마주이 분량이 되게 많았어요. 당시에 있었던 하층 계급의 강제 수용과 관련된 역사들까지 다룰 수밖에 없어서, 사실은 5.18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것들도 많았거든요. 영화 <김군> 같은 경우는 항쟁에 참여했던 시민군 김군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수많은 생존자들, 그리고 생존하지 못하신 수많은 희생자 분들의 존재를 알리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저희가 선택을 했어야 됐어요. 책에서는 한 챕터 안에 저희가 들었던 넝마주이, 고아, 구두닦이와 관련된 증언들을 최대한 담았어요. 



4부의 제목 자체가 ‘넝마주이’죠. 이들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루신 이유가 있나요?

예를 들어서 무등갱생원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5.18 연구자 분들 사이에서도 이 분들이 항쟁 때 다 돌아가셨다는 게 정설로 굳어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저희가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거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공유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항쟁의 선두에 섰던 넝마주이와 구두닦이 분들이 이후에 이야기되는 방식을 보면, 계엄군의 학살에 의해서 사라진 하층계급들에 대한 죄책감을 자극하는 서사로써만 소비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실제로 만났던 무등갱생원의 여성 시민군 선생님은 그런 소문들에 대해서 ‘나쁜 소문’이라고 일축하시면서 당시의 경험들을 말씀해주시기도 했어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넝마주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김군처럼 이름이 남지 않은 분들 중에는, 넝마주이 분들과 비슷한 서사를 가진 분들도 있었겠죠. 

취재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금남로 근처의 황금동에 계셨던 성노동자 분들이 당시에 헌혈이라든지 시신 관리를 할 때 많이 참여하셨다고요. 김지은 선생님의 미투 이후에 처음으로 5.18 여성 시민군 선생님이 계엄군 성폭력 증언을 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전혀 부끄러워할 피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30여 년이 지나서야 증언을 하셨잖아요. 그런데 성노동자 분들은 광주 안에서도 생존자로서 (항쟁에) 참여했다는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는 게 되게 안타깝고... 그런 부분에서는 더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만 못 담았던 부분들이 많아요. 앞으로 누군가 계속 발굴해주거나, 당사자의 삶에 피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기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에필로그에서 “많은 경우 기록은 가해자의 편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 <김군>과 책 『김군을 찾아서』와 같은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5.18 항쟁도 그렇고, 운동의 최전선에서 제일 고생하고 희생하셨던 분들이 그 운동으로 빚어진 긍정적인 결과의 혜택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때때로 되게 엉뚱한 사람이 그 운동에 대한 발언의 권력을 얻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사실은 저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게, 저는 저널리스트가 아니고 그런 책무감이나 의무감도 없거든요. 누가 어깨에 힘주고 정의로운 척하는 걸 꼴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고(웃음), 구석에서 투덜대면서 쭈그려있는 게 제일 편한 사람인데(웃음). 사실 지금도 되게 불편해요. 책임감 때문에 시작한 작품도 아니고 호기심 때문에 시작했고, 하고 보니까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거든요. 이 책을 냄으로써 그런 걸 조금 털고 싶어서 다 정리를 한 거예요.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은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잖아요. 중간에 ‘길을 잃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나요?

항상 그렇죠. 대화를 나눌 때도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달리 상대방이 전혀 딴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예전에 극영화를 만들 때도 계속 어딘가로 미끄러지는 방식의 이야기가 되게 재밌었어요. 영화 <김군>에도 보면, 김용균 선생님이 김군과 닮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때 뜬금없이 (그때) 자신이 이뻤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어이가 없으면서도 되게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거든요. 필요하고 해야 되는 이야기를 할 때도 중요하지만, 사실 제 마음이 동할 때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였어요. 뜬금없이 자신의 청년 시절, 정말 아름답던 시절의 회한이나 감정들을 노출할 때. 저한테는 되게 울컥하게 만든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미끄러지는 순간들을 되게 좋아하는데, 촬영할 때는 좋았지만 편집할 때는 되게 고생했죠(웃음). 

이 부분을 어느 지점에 붙여야 하나, 고민되셨나요? 

김군을 찾아가는 이야기이지만, 뿐만 아니라 5.18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관객들이 봤을 때도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5.18의 본질에 대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는 서사를 만드는 게 목표였거든요. 애초에 총을 든 무장 시민군의 사진에서 출발한 건데 사실은 순결한 피해자, 무고한 피해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되게 무섭고 험악하고 총을 든 군인 같은 남자의 이미지잖아요. 저한테는 그것이 주는 여러 가지 이상함들, 질문들이 있었어요. 답이 쉽게 나오는 이미지가 아니어서 ‘왜 이 사람이 총을 들 수밖에 없었고, 어떤 상황에서 군복처럼 보이는 옷차림에 기관총처럼 보이는 총을 들고 있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당시의 수많은 광주 시민들이 왜 시민군으로 활동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됐어요. 김군 한 분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필요했는데, 100여 분의 목소리를 다 채집하고 나서 ‘어떻게 기승전결로 구성할까’를 생각했을 때는 고민이 너무 많았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올 때 (관객이 느끼는) 피로감도 있으니까,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영화적인 고민도 해야 했고요. 



생존자의 기억은 가장 강력한 증거

첫 번째 김군 후보였던 오기철 씨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난 오늘도 자네한테 이런 얘기하고 나면 잠 못 자. 왜? 잠 재웠던 거 또 깨우니까 못 자.” 그런 힘듦을 이유로 만남이나 진술을 거부하신 분들도 계셨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현재의 삶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요. 광주 안에서 생존자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은 저희 작업과 관련해서 딱히 요청을 드리지 않아도 자주 연락을 주시고 만나자고 하시고 ‘이런 제보가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하시면서 소개를 시켜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사실은 오기철 선생님도 제일 많이 도와주신 분들 중에 한 분이세요. 본인이 활동가로 오래 활동하셔서 진실을 알려야 된다는 책임감이 있고, 동시에 증언을 했을 때의 고통도 있고, 두 가지가 딜레마처럼 계속 공존하는 분이셨던 것 같아요. 어쨌든 광주 안에서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동료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편하신데요. 광주 바깥에서 동료들과의 교류 없이 혼자 섬처럼 사시는 분들의 경우는 저희가 연락을 드렸을 때 5.18과 관련해서 증언하는 걸 꺼리시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기억나는 분들이 있나요?

마지막 증언자이신 최진수 선생님도 그런 분 중에 한 분이었고요. 또 만나보고 싶었던 분이 계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넝마주이 청년들과 같이 월산동에서 많이 생활하셨던 분이었어요. 김태일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오월애>에도 출연하셨던 선생님인데, 저희가 연락드렸을 때 이제는 (항쟁을)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더 연락드리지 않았어요. 딱히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5.18 관련자 혹은 희생자로서 정체화 돼서 공개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인터뷰를 허락하셨다고 해도 말하고 싶어 하시지 않는 부분들이 있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분들 본인의 피해에 대해 묻지 않았어요. 최진수 선생님처럼 피해 증언 자체가 김군을 찾는 데 중요해서 들어야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저희는 그냥 김군과 관련된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아는 단서들이 있는지 여쭤봤고요. 본인들이 원하실 때만 목격담을 말씀하셨어요. 

‘생존자의 기억은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쓰셨는데요. 법정에서도 기억이 강력한 증거로 채택되나요? 예를 들면 지만원 씨나 일베는 사진 속의 시민군이 ‘광수’라고 주장하는데요. 실제 주인공들이 법정에서 ‘내가 사진 속의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당시 기억을 증언하면, 진실로 받아들여지나요?

성폭력 사건 같은 경우도 증언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 증언이 일관되고 있다거나, 여러 가지 주변 환경과 맥락을 고려했을 때 (사실이라고 판단되면), 피해의 물리적인 증거가 없다고 해도 증언만으로 유죄가 선고되는 경우들이 많아요. 지만원 씨 사건과 관련해서는 1980년 당시에 찍은 사진만 제출해서 증명이 되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5.18과 관련된 기록물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런 기록물들에 정리된 사실과 증언을 대조했을 때 증언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다고 전문가들이 판별할 수 있으면 되는 건데요. 단순히 피해자라고 주장해서 그걸 다 팩트로 믿는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세워놓은 여러 기준과 정황들, 맥락들에 기반 해서 ‘이 증언은 사실일 확률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있다고 생각해요. 

생존자 분들을 인터뷰하실 때도 그 부분을 염두에 두셨겠어요.

5.18 관련해서는 시기별로 수천 명의 증언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있어서, 저희는 선생님들이 말씀하신다고 다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대조 작업을 거쳤어요. 영화에서는 한 분 한 분의 목소리만 나오지만 사실이 아닌 이야기는 항상 그 뒤에 다른 분들이 반박하신 내용을 담았고요. 많은 근거들로 이 증언이 사실일 거라고 생각한 경우에는 영화에 담았거든요. 어쨌든, 법적으로나 실제로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증언만으로 판별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믿는 편이에요.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또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진술이 있죠. 그럴 때 증언은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고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이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발견하면서 믿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날짜나 시간대나 몇 명이 있었는지 같은 내용들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지만 감정과 결부된 기억 같은 경우는 오래 기억에 남는 편이고요. 

책을 읽으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두 번째 김군 후보였던 이강갑 씨의 경우 ‘진짜 김군을 찾은 것 아닐까’ 싶어서 흥분이 고조됐는데요. 촬영하면서 그렇게 짜릿했던 순간은 없었나요?

이강갑 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랬던 건 있었죠. 정말 찾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뭔가 짜릿하다기보다는 긴가민가했던 순간들이 되게 길었던 것 같아요. 짜릿했던 순간은 누군가 제보를 해주실 때, 그런 전화를 받을 때였던 것 같아요. 한창 편집을 하고 있던 2017년에도 전화를 받고 혼자 광주까지 내려갔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김군이) 아니었어요. 그런 일들이 되게 많아서 긴장된 순간도 굉장히 많았는데요. 김군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분을 찾아가는 실패의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생존자 분들의 목소리를 담는 게 저희한테 중요했어요. 그런 분들 중에 저희한테 좋은 감흥의 순간들을 말씀해주신 김용균 선생님, 오기철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실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고요. 나중에 가서는 책임감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김군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모두 다 김군이었다’라는 식의 결론은 내고 싶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김군을 찾아서』에서 5.18 관련 사진 자료도 볼 수 있었어요. 수집하고 정리하시는 데 공을 많이 들이신 것 같아요. 

강소영 편집자님, 신덕호 디자이너님께서 정말 심혈을 기울이셨어요. 영화에서 보여지지 않은 사진 속의 디테일을 날짜, 시간, 순서에 따라 분석하는 작업을 굉장히 열심히 하셨어요. 그걸 시각화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셨고요. 굳이 5.18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아니더라도, 사진 이미지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김군 찾기,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 <김군>이 상영될 때,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실패를 하더라도 좋은 실패를 하고 싶었다’고요. 영화 <김군>과 책 『김군을 찾아서』는 좋은 실패인가요?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선 저는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영화는 결국 관객이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책도 독자가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실패와 성공은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그냥 미지근한 체험이 될 수도 있고요. 한 분 한 분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는 제가 단정 지을 수 없는 것 같은데, 작업을 한 개인으로서 저에게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영화를 만들고 나서 되게 흥미로웠던 게, 보신 분들 각자가 ‘김군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맥락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같은 영화를 보고도 누구는 ‘김군을 찾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고, 누구는 ‘김군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죠. 

실제로 살아있는 분을 만나는 게 찾은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었고, 죽음을 확인한 것이 찾은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최진수 선생님의 기억만으로 (김군의) 죽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저널리즘적인 교차검증이 되지 못한 거라 확실하지는 않다고 결론내신 분들도 있고, 그런 저널리즘적인 것과 상관없이 수많은 생존자들이 김군이라는 시민군의 경험을 증언해줬기 때문에 찾은 거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관객 분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찾았다, 성공했다, 실패했다, 라는 말의 의미가 저한테 되게 풍성하게 다가와서 그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최진수 씨는 김군을 기억하고 있고, 자신의 기억을 공동의 기억으로 남기려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잖아요. 죽은 사람은 물질이 아닌 남은 사람의 기억으로써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김군 찾기’는 성공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최진수 선생님은 지금도 김군의 시신을 찾을 수 있기를 애타게 원하시거든요. 사실 김군의 시신을 찾는다는 건 되게 안티고네적인 작업이라고도 생각해요. 시신을 찾더라도 사진 속 인물의 것인지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기술이 발달해서 사진 속 인물의 골격과 대조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에 유족인 어머니와 DNA를 대조해서 망월동 묘역에 묻혀 있던 시민군 청년의 신원을 찾은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김군은 신원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시신을 찾더라도 친족이 DNA로 증명을 할 수가 없어서 불가능한 작업인데요. 최진수 선생님이 그 불가능한 일을 실현시켜야 된다고 계속 주장하시는 게 저한테는 큰 자극이었어요. 영화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기억 속에서 김군이 계속 살아남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조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김군>은 ‘5.18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담은 5.18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만약 감독님이 5.18을 경험한 세대였다면, 작품이 지금의 모습과는 달랐을까요?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요. 당시에 항쟁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현장에는 없었지만 동시대에 항쟁에 대해 접했던 사람들이 있잖아요.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경험의 결들이 너무 다르고, 같은 연령대라 하더라도 계급과 성별 등의 차이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개의 존재에 따른 차이가 계통의 차이를 압도하는 경우도 많이 보는데, 저는 개체를 보는 게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고요. 세대나 개체의 평균치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저한테는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고,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저한테는 세대나 시대를 막론하고 ‘잼’과 ‘노잼’으로 구분되는 것 같아요(웃음). 어떤 영화든 어떤 글이든 재밌게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요. 언제 어디서나 개인들, 개체들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감독님을 ‘정치적인 이야기를 영화에 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정치적으로 특정 진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요. 영화 <김군>이나 책 『김군을 찾아서』가 창작자로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정당 정치의 맥락에서 어느 진영을 택하는 문제라면 너무 싫지만, 삶의 모든 행위가 정치적이고 모든 영화는 다 정치적이라고 생각해요. 장르를 불문하고 재밌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가 있고, 자극을 주는 영화와 자극을 주지 않는 영화가 있는 거죠. 저는 생존자들, 실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촬영하는 본격적인 작업을 <김군>을 통해서 처음 해봤고, 그것이 얼마나 그분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큰 트라우마를 안기는 작업인지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에, 트라우마적인 사건의 생존자들의 실제 삶을 다루는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애초에 이 작업을 시작할 때 ‘5.18 이야기를 할 거야’ 해서 시작한 게 아니고 되게 작고 사소한 곳에서 출발했고요. 

굉장히 솔직한 답변인 것 같아요. 

저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 소수자적인 이슈들에도 관심이 있지만,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했을 때는 그런 이슈에서 출발했을 때는 작업 안에서 제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아지고 답이 뻔히 나오는 작업으로 귀결되는 위험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그런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과 고민이 있어요. 이번에도 똑같았고요. 저한테 재밌느냐 재밌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 같고, 그것만으로도 고민이 큰 것 같습니다. 



김군을 찾아서
김군을 찾아서
강상우 저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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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진 “콘텐츠를 만드는 건, 내 관점을 갖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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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코디네이터’ 황효진은 매일 무언가를 만든다. 책, 잡지, 팟캐스트, 워크숍 프로그램 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콘텐츠가 되기도 하고, 여전히 미완의 존재로 남기도 한다. 때로는 성공하고, 이따금 실패하지만 그래도 계속한다. 콘텐츠를 만들면서 스스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여러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한 그의 노하우가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에 담겼다. 이 책을 읽을 땐 노트와 펜이 꼭 필요하다. 분명 책을 덮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까.

콘텐츠를 만들든 즐기든, 이 콘텐츠가 지금 세상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떤 브랜드가 되기보다 다른 사람의 관점과 경험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도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기획, 좋은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160쪽)

 


이게 정답은 아니에요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 만드는 법을 한데 모아 정리한 책이에요. 

엔터테인먼트 매체인 <텐아시아> <ize> 기자로 6~7년간 일하면서, 자연스레 콘텐츠를 기획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제 안에 쌓였어요. 하지만 이걸 정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요. ‘사적인 서점’의 정지혜 북디렉터가 제 책 『아무튼 잡지』를 읽고, 잡지 만드는 방법에 대한 워크숍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그때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내가 이러한 프로세스로 일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 자료들을 모아 정리해두면 앞으로 일할 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유유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잡지 만드는 법’에 관한 책이었던 걸로 알아요. 

맞아요. 201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사적인 서점에서 ‘나의 사적인 잡지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는데요. 출판사에서 그 워크숍을 보고 연락을 주셨던 터라, 처음에는 잡지 만들기에 관한 원고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콘텐츠 기획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잡지’라는 매체는 너무 만들기 어려운 분야더라고요. 기획할 것도 많고, 제작비도 많이 드니까요. 게다가 저도 종이잡지를 전문적으로 만들었던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에 관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출간 계약 후 1년쯤 지났을 때 전체적인 내용을 완전히 바꾸었죠. 

출간되기까지 기간이 꽤 오래 걸린 편이네요.  

중간에 기획이 달라지기도 했고, 제가 밀레니얼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에 취직하면서 계속 마감이 미뤄졌어요. 그래서 작년 말에 탈고하고, 그 이후에는 교정 보는 과정을 거쳐서 이제야 출간될 수 있었어요(웃음). 

언제부터 ‘내 콘텐츠 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사실 저는 <ize>를 그만두면서, 기획하고 글 쓰는 일은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생활에 지쳐서 퇴사를 했으니까요. 매체에서 일하는 게 재밌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너무 버거웠거든요. 인터뷰를 무척 깊게 해야 쓸 수 있는 기획기사를 여러 개 담당해 몇 년째 진행하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그때는 ‘이렇게 강제로 마감을 하는 게 옳은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동시에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매체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고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커리어를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했어요. 

그런데 퇴사 후, 계획 없이 프리랜서가 되고 나니 불안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팀을 꾸려서 뭔가 해보자고 의기투합을 했어요. 다들 배운 게 콘텐츠 기획이고, 글 쓰는 일이다 보니 ‘4인용 테이블’이라는 프로젝트팀을 꾸려서 『일하는 여자들』이라는 책을 출간했죠. 그때 처음으로 회사 바깥에서도 이렇게 기획하고,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회사 밖에서 콘텐츠 제작을 해보니 어땠나요?  

제일 달랐던 건, 콘텐츠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었어요. 사실 매체에서 일할 땐 나아갈 방향이 정해져 있으니 그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기획하면 됐거든요.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대한 합의가 되어 있는 상태애서 기자로서 글을 쓰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퇴사를 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건 ‘우리가 뭘 할까?’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정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빌라선샤인의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고, 콘텐츠팀 ‘헤이메이트’에서 활동하며 여성의 시각으로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와 함께 ‘헤이메이트’로 활동하는 윤이나 작가가 팀을 처음 만들 때 “효진 씨는 다양한 매체에 맞게, 기획을 여러 형태로 잘 하니까 ‘콘텐츠 코디네이터’라는 직함으로 일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어요. 당시에 들었을 땐 그저 ‘좋다!’ 라고 생각만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저를 정말 잘 설명해주는 명칭인 것 같아요. 빌라선샤인에서 하는 프로그램 기획이든, 헤이메이트의 일이든 ‘콘텐츠 코디네이터’라는 단어 하나로 제가 하는 일을 모두 꿰어서 설명할 수 있더라고요. 

콘텐츠를 만드는 기획자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어요. 이 책은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본 콘텐츠 기획자의 캐릭터(42쪽)”로 썼다고요. 

사실 콘텐츠 기획이라는 게, 어떤 정석의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것저것 만들어봤다고 해서 “콘텐츠 기획은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이게 정답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기획하는 방법을 실험한 사람이 전해주는 팁이라고 생각했죠. 사실 제가 만든 것들도 잘된 게 있는가 하면, 잘 안 된 것들도 많거든요. 나름대로 시행착오를 겪어본 끝에 ‘콘텐츠 기획을 이렇게 해보니까 괜찮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하는 건 별로인 것 같아요’ 정도의 느낌으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캐릭터를 설정했어요.


 

한 사람을 생각하고 만들어요

“내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접할 사람의 얼굴을 가능한 섬세하게 그려 봅시다.(47쪽)”라고 했어요. 실제로 콘텐츠를 만들 때, 독자를 뾰족하게 설정하는 편인가요? 

사실 저도 연습을 하는 과정에 있어요. 언젠가 뉴스레터 ‘뉴닉’을 만드는 분들의 인터뷰를 봤는데, 독자의 이름까지 지어서 페르소나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운영하는 팟캐스트 ‘시스터후드’ 같은 경우는 그렇게까지 청취자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빌라선샤인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한 사람을 떠올리고 하는 기획’이 무척 중요하다는 걸 느꼈고, 요즘은 최대한 독자를 뾰족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게 생각보다 무척 어렵더라고요(웃음). 하지만 독자를 뾰족하게 설정하면 할수록 기획의 기준이 명확해지고, 그에 맞춰 다듬을 수 있는 여지가 더 많기 때문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쓰면서 독자를 위해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예시를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고 했어요. 이론적인 방법만 나열하는 건 지루하니까요. 그리고 교정교열 과정에서 좋아진 부분이 있어요. 저는 콘텐츠 기획을 업으로 하고 있다 보니 ‘기획’, ‘아이템’, ‘형식’ 같은 단어들을 여기저기에 섞어서 사용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담당해주신 전은재 편집자님께서,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헷갈릴 수 있다는 말씀해주셨어요. 각기 다른 맥락에서 같은 단어가 사용되니까, 콘텐츠 기획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아깐 이게 아이템이라고 했는데, 왜 여기서는 이게 아이템이라고 하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걸 편집자님께서 싹 통일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덕분에 훨씬 쉽고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꼼꼼한 기획만큼 중요한 건 ‘꾸준함’이죠. 중간에 흐지부지 되지 않고, 끝까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함께하는 동료가 있어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저도 책을 쓰는 것 외에는 혼자서 만든 콘텐츠가 없어요. 다 팀으로 만들었죠. 일단 팀을 이루면, 진지한 일이 되기 때문에 계속 만들 수밖에 없거든요(웃음). 예를 들어 팟캐스트 ‘시스터후드’ 같은 경우도 방송을 업로드해야 하는 요일이 정해져 있으니까 매주 마감을 해야 하잖아요. 이렇게 함께 약속을 지키는 동료가 있다는 게 저의 가장 큰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마감을 만드는 게 중요하군요(웃음). 

맞아요. 저도 혼자 한다면, 어려울 것 같아요. 책을 쓸 때는 출판사와 마감을 약속 해놓고도 못 지켜서 이렇게 늦게 나왔잖아요(웃음).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도, 생업이 바쁘면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인데요.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세요?

표면적인 일의 형태를 말씀드리면, 저의 경우 빌라선샤인은 풀타임 정규직이고 헤이메이트는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월급을 받는 빌라선샤인의 업무가 당연히 가장 우선이긴 한데요. 다만 헤이메이트의 일은 이제 루틴이 정해져 있어서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일주일 중 팟캐스트 녹음 한 시간, 대본 작성 한 시간, 편집하는 데 한 시간으로 총 3~5시간 정도를 투입한다고 생각하고 스케줄을 정리하거든요. 사이드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일을 배분하는 게 중요해요. 

좋은 감상자로 남아도 괜찮아요

콘텐츠 만드는 법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있나요? 

콘텐츠 기획이 무엇인지 하나도 몰라서 오시는 분들은 사실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어렴풋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는데, 다만 혼자 시작하기가 어려워서 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주로 여성분들과 워크숍을 많이 했는데요. 이분들이 자신의 콘텐츠 만드는 걸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의 비슷하더라고요. ‘나는 이 기획이 되게 좋은데, 이게 세상에 나가도 그럴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콘텐츠가 어떻게 보일까?’라는 걸 너무 신경 써서 머뭇거리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디어를 검증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워크숍을 찾아오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저를 비롯해서 함께 워크숍에 참가한 다른 분들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내 기획이 괜찮다’고 안심하며 돌아가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워크숍에 참여한 이후, 실제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 활동하는 사례도 있을까요?

올해 초, 빌라선샤인에서 진행한 워크숍에 참여한 분이 있는데요. 친구와 뉴스레터를 함께 만들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오신 분이 계셨어요. 당시에는 느슨히 ‘뉴스레터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워크숍 이후에 ‘슬점(슬기로운 점심시간)’이라는 뉴스레터를 만들었더라고요. 직장인들이 회사 동료들과 그렇게 친하거나 가깝지 않잖아요. 그런데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어려운 거예요. 여기서 착안한 아이디어로,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나눌 수 있을만한 흥미로운 뉴스를 모아 알려주고, 점심 메뉴를 추천하는 뉴스레터예요. 되게 재밌어요. 그걸 보고 정말 보람을 느꼈어요. 

맺음말에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기획자나 생산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좋은 감상자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160쪽)”라고 했는데요. 콘텐츠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책에서 “감상자로 남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만나니 왠지 위안이 됐어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많이 했던 생각이에요.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저는 그것보다 콘텐츠를 제대로 볼 줄 아는 관점을 가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잘 보고, 자기만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콘텐츠를 만들 때의 기준을 정립할 수 있으니까요. 책에도 썼듯이, 저는 기획이 ‘나의 관점을 찾고 다듬어 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콘텐츠 기획에 대한 워크숍을 하다 보면, 만들고 싶은 게 뚜렷해서 찾아오신 분도 있지만 “요즘 다 자기 콘텐츠 만든다고 하니까 저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저는 모두가 자기 콘텐츠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단 다른 사람이 만든 걸 잘 보고, 그 콘텐츠를 통해 내가 뭘 느꼈는지 깊이 생각하는 ‘좋은 감상자’로서의 연습을 하는 게 훨씬 중요하죠. 그러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을 때 콘텐츠를 기획한다면 훨씬 더 좋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관점이 반영된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자신의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를 ‘자기 브랜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158쪽)”라는 문장에도 깊이 공감했어요.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공개하는 세상이 되면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특히 많은 것 같아요. 

지금 일하고 있는 빌라선샤인이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일하는 여성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요. 그분들의 고민도 비슷해요. ‘평생 회사를 다닐 수는 없는데, 회사 바깥에서도 계속 일을 이어 나가려면 내가 브랜드가 되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죠. 그러다 보니 나는 남들과 다르고, 남들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는 걸 콘텐츠를 통해서든, 무언가를 통해서든 계속 증명해야 하는 거예요. 아마 이건 모든 직장인의 고민일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노동시장의 냉혹함을 너무 나이브하게 보는 건가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브랜드가 되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사람은 파는 무언가가 아닌데, ‘퍼스널 브랜딩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 마지막 부분에는 ‘기획에 힌트를 줄 콘텐츠’가 실렸어요.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책을 보다가 생각지도 않게 콘텐츠 기획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체크해 뒀던 책들 위주로 모았고요. 「포파이」 같은 일본 잡지는 기자로 일할 때부터 재미있는 기획이 있으면 스크랩 해두면서 자주 찾아본 것들이에요. 

그 중 가장 특이했던 건 ‘앱스토어’의 ‘투데이’란이었어요. 책을 읽고 들어가 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에디터들이 쓴 카피도 좋고요. 

맞아요. 언젠가 앱 다운로드를 받으려고 들어갔다가 우연히 살펴보게 됐는데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앱 소개를 단순하게 하지 않고, 인물을 인터뷰 한다거나 시의성에 맞게 큐레이션 해서 보여주거든요. 요즘도 심심하면 종종 앱스토어를 들어가서 봐요. 

콘텐츠를 기획할 때,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보는 편인가요? 

많이 보는 편이긴 한데, 마음 먹고 ‘지금부터는 레퍼런스를 모아야지!’ 라고 하진 않고요. 기자로 일하면서 평소에 참고할 만한 것들을 강박적으로 체크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재미있는 기획을 보면 잘 적어 두는 편이에요. 그리고 다음에 무언가를 만들 일이 있을 때 참고로 삼는 정도죠. 

메모는 어떤 식으로 하세요?

보통은 휴대폰 메모장을 쓰고요. 아이패드로 디지털판 잡지를 많이 보는 편이라, 잡지 지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땐 캡처해서 따로 저장을 해요. 또 일에 관련된 메모는 몰스킨 노트에 적고 있어요. 

콘텐츠를 만들면서, 더 나은 사람이 돼요 

보통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가나요?

빌라선샤인은 일, 월요일이 휴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월요일에 주로 시스터후드 녹음과 편집을 마쳐요. 화요일부터는 빌라선샤인에 출근에서 일주일간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 세우고, 동료들과 회의를 하면서 하루가 시작 되죠. 토요일에는 보통 회사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걸 운영하는 업무가 많아요. 일주일이 일로 꽉 찬 셈이에요(웃음). 

콘텐츠팀 ‘헤이메이트’를 만들어 활동한지 2년이 됐어요. 그동안 독립출판, 팟캐스트 제작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왔는데, 계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나요? 

헤이메이트에서 만드는 콘텐츠는 영화 또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여성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일이거든요. 덕분에 좋은 감상자로서의 연습을 계속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세상을 보는 관점이 점점 넓어진다고 할까요? 창작자로서든, 감상자로서든 내가 조금 더 나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제작한 콘텐츠를 접하는 분들이 “덕분에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는 말씀을 많이 들려주시거든요. 그런 피드백도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죠. ‘내가 다른 여성들과 좋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구나’라는 걸 확인하게 되니까요.


 

리뷰도 다 찾아 보시죠? 

하루 종일 봐요(웃음).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의 리뷰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요. 같이 일했던 분께서 “이건 콘텐츠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기획안을 써야 하는 분들이 봐도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제가 예상치 못했던 포인트라 기억에 남았고, 너무 좋은 말이라서 홍보에 써먹고 있는 중입니다. 모든 신입 사원들이 봐야 한다고요(웃음). 또 하나는, 이 책을 읽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기획안을 써봤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바라는 바였기 때문에 그런 리뷰가 너무 좋더라고요. 

“무엇이든 미쳐서 하기 보다 너무 뜨겁지 않은 온도로 미지근하게 꾸준히 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166쪽)”이라고요. 스스로 너무 평범해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문장이에요.

의욕에 불타올라서 일을 빠르게 추진하고, 무언가 하나에 깊은 관심이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거든요. 그래도 미지근한 채로 계속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끔 이런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 ‘나는 미지근한 사람이라 콘텐츠로 엄청난 돈을 벌진 못할 수도 있겠다(웃음).’ 사실 콘텐츠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분들은 제 이야기가 크게 와 닿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무언가 해보고 싶은 게 있고,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고 계신 분이라면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미지근해도 괜찮으니까, 그 온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계속 해 나가는 게 훨씬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지만, 막연히 고민 중인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일단 이 책을 읽으시고요(웃음). 제일 먼저 기획안을 써보시길 권해요. 저도 기획을 할 때 자주 부딪히는 문제인데, 어떤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있을 땐 정말 좋아보이거든요. 그런데 문서로 정리하면 빈틈이 보여요. 글로 쓴 뒤에야 채워지는 내용들도 있고요. 기획안을 한번 써보시면,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야 할지 감이 올 거예요. 

더불어 콘텐츠를 만드는 건 나와 비슷한 관심사와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아주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그러니 나의 콘텐츠를 한번 만들어 보시고, 이를 통해 넓은 의미에서의 ‘동료’를 만나는 기쁨을 느끼실 수 있길 바랍니다.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황효진 저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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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교수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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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도 높은’ 글을 쓰는 정치학자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세 번째 책을 출간했다. 『공부란 무엇인가』. 2018년 <경향신문>에 기고해 큰 화제를 모았던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칼럼이 연상되는 제목이다. 미취학 아동 시절과 군 복무, 유학을 앞둔 낭인 시절을 제외하고는 학교를 떠난 적이 없었던 김영민 교수. 취업난에 몰린 학생들을 보며 “젊은 날 공부할 기회를 박탈하는 건, 그 화려한 시간에 대한 모욕 아닌가?” 질문한다. “생각할 수 있는 근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김영민 교수는 이번 책을 펴내며, 자신의 서명 옆에 “배우는 사람은 자포자기하지 않는다”고 썼다. 

“공부에 매진해본 사람만이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듯이, 공부라는 긴장을 해본 사람만 이 휴식이라는 이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공부를 안 해서 제대로 못 쉬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쉬는 일은 쉬워집니다.”  -「에필로그」 중에서




해야 하는 말은 아직도 많이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학업도 어렵게 하고 있다. 교수의 일상은 어떤가?

평소처럼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살아간다. 책이 나왔으니, 출판사가 진행하는 후반 작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이것저것 노력 중이다. 이와 같은 인터뷰도 한 예이고. 신간 일부 내용을 낭독하는 파일을 최근에 만들었다. 

학교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상황에 맞추어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을 일정 비율로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이번 학기는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빨리 대면 수업이 가능해져서, 학생들과 함께 정신적 필라테스 수업을 하고 싶다. 

작년 말,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출간한 후 세 번째 책이다. 김영민 교수의 정체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책이 아닐까 싶은데. 독자로서는 접근성이 용이한 주제이기도 하고. 

내가 오랫동안 학생이었고, 또 교직에 몸담아왔다는 점에서는 『공부란 무엇인가』가 내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복수의 정체성이 있지 않은가. 접근성에 관해서는 글쎄. 한국 사람들이 늘 공부하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온, 공부에 살짝 미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니 좀 찔리더라. 그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했던 말과 글들이 떠올라서. 이 같은 독자의 반응을 읽으면 저자로서 어떤가? 

“찔린다”는 것은 분명한 반응의 일종이니까 반갑다. 저자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무반응 아닐까. 자신의 생각을 책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는데, 아무 반응도 없다면 맥이 좀 빠질 것 같다. 반응 중에서는 당연히 긍정적인 반응이 좋을 텐데, “찔린다”는 것은 “가렵다”나 “느끼하다”보다는 긍정적인 반응인 것 같다. 

“저자들은 대개 관심종자(143쪽)”라고 썼다. 굉장히 동의한다. 그리고 “진짜 관심종자는 드러내기보다는 숨긴다”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김영민 교수는 ‘진짜 관심종자’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부란 무엇인가』에는 저자의 진심이 어느 정도 투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하나?

명시적으로 서술한 부분에서 제 진심을 숨긴 부분은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공부에 관한 모든 사항들을 다 썼다고는 할 수 없다. 읽기, 쓰기, 말하기, 생각하기에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말, 해야 하는 말은 아직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할 기회가 오면, 누가 아나? 후속편이 나올지.

유학 생활에서 느낀 다양한 장단점을 솔직하게 밝혔다. 해외에서 공부한 이력이 무엇을 확장시켰나?

유학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처지와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도 혹은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해도 해외 경험을 하기 어려웠다.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그보다 나중 일이다. 그러다 보니, 유학은 제게 해외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활짝 열어준 셈이었다. 학생들에게 유학을 꼭 권하지는 않지만, 해외 경험은 많이 갖기를 권한다. 실제로 학생들과 함께 해외 답사를 많이 다니기도 했고. 국내에만 있다 보면, 아무래도 자신을 객관화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물론 해외에 나간다고 저절로 자기 객관화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승에 관한 이야기는 특별히 없더라. 학창 시절 좋은 학습 기회를 마련해준 스승이 있었나?

중학교 때 선생님들로부터 배움에 관련해 여러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첫 부임한 젊은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은 뭔가 해보고자 하는 에너지가 충만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너제틱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 한 분이 이영희 선생님의 『우상과 이성』을 권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선생님의 대학 시절 독서가 미친 영향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어쨌거나 어려운 책을 권해주는 선생님들이 계셨던 것은 제게 도움이 됐다. 

대학 시절에는? 

문학평론가 김우창 선생님과 김인환 선생님의 강의로부터 많이 배웠다. 그분들이 문학평론가이기는 하셨으나, 수업 내용은 사상에 대한 논의로 가득했다. 김우창 선생님의 경우는, 당시 대학 영어 시간에 플라톤이나 야스퍼스의 저작을 읽히곤 했다. 김인환 선생님의 경우는, 문학작품 중에서도 사상의 깊이가 있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권했다. 김인환 선생님은 올해 봄에 에세이집 『타인의 자유』를 쓰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



쉬운 글이 곧 재미있는 글은 아니다

첫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후 많은 출간 제안을 받았을 것 같다. 이색적인 주제가 있었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여기저기 훌륭한 디저트 가게를 다니면서 음미하고 글을 쓰자는 제안이었다. 목전에 해야 할 일이 많아 응하지는 못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잡지에 연재해도 좋을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또 언젠가 내가 흥미롭게 읽은 만화책의 열전을 써보고 싶기도 하다. 세상에는 형편없는 만화도 많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한 만화들도 많다. 그에 대해 좀더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과 국내외 답사를 많이 다니기 때문에, 그 연장선에서 여행 에세이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다. 먼저 해야 할 다른 심각한 프로젝트들이 기다리고 있다. 

“해상도가 높은 글을 써야 한다”고 항상 강조해왔다. 이번 책의 해상도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스스로 평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글을 쓸 때, 스스로가 즐겁기를 바란다. 그리고 독자들도 즐겁기를 바란다. 맛없는 디저트를 먹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듯이, 지루한 글을 쓰고 읽고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 글이 피상적으로 재미있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재미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을 거다. 독자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로든 재미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쉬운 글이 곧 재미있는 글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쉽지만 지루한 글이 얼마나 많은가? 동시에 어렵지만 재밌는 글도 있을 수 있다. 사람 사귈 때도 그렇지 않나? 상대가 너무 이해가 잘 되어서 “쉽다”고 느껴질 정도라면, 다음에 또 만날 만한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오히려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그저 쉽기만 한 글은, 자신이 이미 아는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글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심화시키려면, 쉽고 지루한 글보다는, 어느 정도 어렵지만 재밌는 글을 찾아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로서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최상이다. 

“현재 한국어로 통용되는 글 다수에 ‘깊은 빡침’이 있다”고 말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글은 어떤 글인가?

다른 걸 다 떠나서 일단 비문이 적길 바란다. 그 정도는 노력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낼 수 있다. 비문이 적으면, 일단 참고 읽을 수 있다.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 즐겁나? 

세상에는 말수가 너무 적어서 답답한 사람도 있고, 영원히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자들도 있다. 나는 말이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사람과 대화할 때가 즐겁다. 그리고 말을 리드미컬하게 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좋다. 한없이 만연체로 말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졸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권위적인 사람과는 대화는커녕 한 공간에 있고 싶지도 않다. 의외로 잘 씻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잘 씻고 다니는 사람과 대화할 때가 즐겁다. 그리고 어딘가 뒤틀려버린 사람, 주화입마에 빠진 사람, 의제를 숨겨놓고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힘이 든다. 

평소 정면 사진을 찍지 않는다. 인터뷰 때도 옆모습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능하면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은데, 매체에서는 늘 사진을 원한다. 옆모습을 찍게 되는 것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은 제 마음과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매체의 마음이 타협한 결과다. 특별한 미남이 아닌 한, 나 같은 한국 중년 남자의 얼굴 사진은 민폐가 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장 홈페이지에도 내 사진을 올려 놓지 않았다. 사진으로 인해, 혹시라도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저를 알아보게라도 되면 그것도 불편한 일이다. 세간에 돌아다니는 정면 사진은 꽤 오래 전에 찍은 사진이라서 지금의 면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올 여름에 가장 기억 나는 디저트가 있나? 또는 그밖에 누리는 작은 사치들에 관해 이야기해준다면. 

올 여름 최고의 디저트라면, 부암동에서 먹은 빙수를 들 수 있다. 서울 시내 최고의 빙수가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 밖에, 청운문학도서관이 있는 부암동 자락에는 좋은 볼 것, 먹을 것들이 많다.


 

'먹물 느와르' 연재할 예정

후속작은 한국어판 중국 정치 사상사인가? 논어 에세이 2권은 언제 출간될 예정인가? 

올해 안에 출간을 목표로 하는 다음 책은 한국어판 중국 정치 사상사다. 몇 년 전에 영어책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를 출간한 바 있다. 지금 준비 중인 한국어판 중국정치사상사는 그 영어책의 단순한 번역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확장되고 풍부하게 서술된 책이다. 따라서 실제 나와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1000쪽이 넘는 소위 벽돌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책 출간이 마무리되고 나면, 내년 중에 논어 관련 저서를 낼 계획이다. 논어 에세이의 2탄이 아니라, 논어를 주석하고 해설한 책의 1탄이다. 논어 프로젝트는 장기 프로젝트이고, 매해 1권씩 꾸준히 낼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올해 말 창간 예정인 계간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SRB, Seoul Review of Books)에 단편소설을 실을 예정이라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여러 분들과 준비하고 있는 <SRB>는 서평지다. 하지만 서평만 싣지는 않는다. 중심이 되는 서평 이외에도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글들을 싣고자 하는 것이 편집진의 뜻이다. 창간호에서 서평이 아니라 소설을 싣게 되는데, 내가 소설을 통해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내 전공인 정치사상사 영역에서는 정치사상을 문학적 양식을 활용해서 전달하는 전통이 존재한다. 나도 그와 같은 작업을 시도해 볼 생각이 있다. 일단 <SRB> 창간호에 싣는 단편소설은 그러한 정치사상의 본격적 시도는 아직 아니다. 창간호에서는 내가 “먹물 느와르”라고 부르는 특정 장르의 소설을 개척하고자 한다. 소설에 말 그대로 배운 먹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사랑, 배신, 죽음, 고뇌가 담긴다. 만약 내 에세이집에 실린 에필로그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께 특히 권하고 싶다. 

김영민 교수가 쓴 책을 모두 읽은 예비 대학생 독자가 “대학 생활을 알차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어차피 들어야 하는 수업인데, 수업을 잘 골라 들으라고 하고 싶다. 같은 대학의 수업이라고 해도 수업의 질은 천차만별이고, 또 자신에게 맞는 수업도 다 다를 거다. 너무 수월하다고 해서 좋은 수업도 아니고, 너무 어렵다고 해서 좋은 수업도 아니고, 학점을 잘 준다고 해서 좋은 수업도 아니고,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해서 꼭 좋은 수업도 아니다. 대면 수업이 가능해진다면, 인터넷 강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업을 하는 수업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많이 읽히고, 많이 쓰게 하고, 토론이 있고, 또 기말과제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는 수업이 좋은 수업일 가능성이 높다. 지식의 전달 뿐 아니라, 영감을 주는 수업을 찾아내기 바란다. 

시간 활용도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학생들에게 운동을 하길 권한다. 예전 대학 신입생들은 술독에 빠져서 지냈던 것 같다. 요즘 대학생들은 그만큼 술을 마시거나 하지는 않아도, 건강에 각별한 신경을 쓰진 않을 거다. 정성들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도 대체로 건강이 유지되는 세대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가능하면 일찍 운동을 생활의 일부로 만들기를 권한다. 학창 시절 그러지 못했던 것이 나는 후회스럽다. 딱히 운동할 기회가 없다면, 플랭크나 스쿼트라도 꾸준히 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산책과 달리기도 좋다. 산책과 달리기는 몸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곧 추석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명 칼럼을 쓴 필자로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추석은 어떻게 보내야 좋을까?

올해 추석의 특징이라면 보통 사람의 해외 여행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사실, 추석 연휴를 여행의 기회로 삼았던 젊은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말이다. 어디 멀리 갈 수 없으니, 자신만의 다락방을 찾아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기를 권한다. 독서도 일종의 여행이다. 책은 어떻게 읽는 게 좋냐고 질문한다면, 이 또한 『공부란 무엇인가』에 답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저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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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ㆍ김유라 “요리책 낸 이유요? 편들이 원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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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김유라

할머니 박막례는 요리를 했고, 손녀 김유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해온 일은 다르지만, 두 삶이 만나 특별한 요리책 『박막례시피』가 탄생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나훈아 콘서트에 다녀와 나란히 먹은 비빔국수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더니, 할머니의 비빔국수 시리즈가 ‘집콕’ 기간 중 가장 주목받는 영상이 된 것. 복잡한 지시사항 따위 없다. 계량컵 대신 “닐 만치 녀”, “요리는 늭김이야.”부담은 내려놓고 즐기는 62개의 박막례 표 레시피 이번에도 ‘편’(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와 김유라PD는 유튜브 채널 「Korea Grandma」로 국내는 물론, 해외의 주목을 받는 인플루언서가 됐다. 할머니가 치매 위험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 직후, 손녀 김유라 PD가 퇴사를 하고 호주로 떠나 찍은 영상이 100만 뷰를 넘기면서, 박막례 할머니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할머니가 즐거울 것’이라는 원칙을 지키며 만든 영상은 올리는 것마다 큰 사랑을 받았고, 유튜브 CEO 수잔 워치스키와 구글 CEO 선다 피차이를 만나며 영향력을 다시금 입증했다. 할머니의 특기인 요리 실력을 발휘하여 집필한 『박막례시피』는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후 박막례 할머니의 또 다른 ‘편’서비스다.




맛의 비법은 대충

베스트셀러가 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후 두 번째는 요리책이에요. 출간되자마자 반응이 뜨거워요. 

김유라: 솔직히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어요. 첫 책을 낼 때도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무엇보다 할머니의 레시피는 영상에서 출발했으니 과연 책이 필요할까 고민했죠. 

박막례:처음 요리책을 낸다고 했을 때, 과연 ‘편’들이 좋아할까 싶더라고. 나는 전통음식은 잘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모르니까. 그래도 요즘에는 밥을 사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책을 보면서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 

늘 먹던 집밥이 화제의 콘텐츠가 됐어요. 

김유라:어릴 적 할머니 댁 놀러 가면 매일 먹었던 음식이어서 제게는 특별하지 않은데 맛있게 먹었다는 댓글이 달리니까 신기하더라고요. 혼자 사는 분들한테는 할머니의 레시피가 새로웠나 봐요.

박막례: 전혀 예상 못했지. 나훈아 콘서트 갔다 왔는데 유라 혼자 밥을 안 먹은 거여. 집에 밥이 없어서 간단하게 국수를 만들어서 유라랑 맛있게 먹었어. 그런데 편들이 좋아하더라고. 나는 원래 뭐든지 맛있게 먹어요. 편들도 그럴 거여. 저 할머니는 저렇게 맛있게 먹는데 맨날 말로만 살 뺀다 한다고. (웃음)

이미 요리 콘텐츠가 많으니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민했겠어요.

김유라: 맞아요. 이미 레시피북과 영상이 넘쳐나니까요. 그래서 단순히 요리법만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할머니 댁에 가서 집밥을 먹는 느낌이 들도록 구성했어요. 할머니의 말투로 요리 팁을 적고, 할머니가 시골에 사셨으니 밭을 배경으로 찍은 화보도 넣었어요. 결과적으로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책이 된 것 같아요. 

계량 방식도 다른 요리책과 다르죠. 밥숟가락 하나 들고 “닐 만치 녀”라고요.

박막례:요리를 오래 한 사람은 눈짐작으로 넣어도 정확해. 화보 촬영할 때도, 자꾸 손으로 집으려 하면 스태프들이 “할머니, 숟가락이요!”해서 혼났어.(웃음) 연습해서 다음에는 더 잘하려고 백화점 가서 커다란 계량컵을 샀지. 

김유라: 주방에서 생전 처음 보는 숫자가 적힌 유리컵을 꺼내시더라고요. 계량하려면 정확히 재야하는데, 할머니는 바가지처럼 “한가득 넣어라” 하세요. 의미가 없는 거죠.(웃음)


박막례 김유라


43년간 식당 문을 연 마음

레시피를 되살리면서 옛날 생각도 났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 PD님이 본 할머니의 요리하는 모습은 어땠나요?

김유라:요리가 아니라 불 앞에서 전투하는 모습에 가까웠어요. 식당을 운영하셨으니까 계속 밀려드는 손님을 먹이는 데 집중하셨죠. 지금은 즐기면서 하시지만, 당시에는 전사 같았어요.

주방을 보면 할머니의 깔끔한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댓글이 많았어요. 

박막례:주방이 깨끗한 건 내 자부심이여. 식당 할 때도, 주방이 항시 깨끗해서, 배달하는 아저씨가 식당 다 돌아봐도 여기만큼 깨끗한 곳은 없다 했어. 손님들이 반찬 가지러 부엌에 들어와도 떳떳한 거야.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었어.

애지중지 운영한 식당을 접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박막례:무척 서운했지. “나한테는 식당 하나밖에 없다. 이것으로 돈 못 벌면 죽는다” 하고 시작했거든. 77세까지 해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문을 닫게 된 거여. 

눈 뜨면 매일 어떤 반찬을 할지 고민하셨다고요.

박막례:백반집이라 반찬을 삼시 세끼 바꿔줘야 했어. 아침에는 된장국, 점심에는 생선찌개, 저녁에는 닭도리탕. 똑같은 반찬이 다음날 나가면 바로 불만이 나와. 그래서 백반 장사가 제일 힘들어. 늘 머리가 아팠으니까, 딸한테는 반찬을 바꿔줄 필요가 없는 쌈밥 장사를 하라고 했지.

식당을 그만둔 다음날부터 반찬 걱정을 안 하게 되셨겠네요.

박막례: 그 걱정은 이제 안 해. 지금은 딸이 장사를 잘 해야 할 텐데 새로운 걱정이 들어.

긴 세월 동안 단골 손님도 많았다고요.

박막례:매일 같이 식당에 온 손님도 있었어요. 먹다 보면 질릴 때도 있을 텐데, 반찬 투정 안 하고 불평 없이 먹어 주더라고. 나들이 간다고 하면, 밥 잘 챙겨줘서 고맙다고 봉투에 용돈을 넣어서 건네주고. 요즘에도 잠이 안 올 때, 누워 있으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인심을 안 잃고 좋게 끝난 식당이었어.

요리나 집안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할머니에게는 평생 해온 직업이었죠. 

김유라:레시피북 만들면서 요리하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어요. 할머니는 레시피 필요 없이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요리하시거든요. 한 분야에 도가 텄다는 건 이런 거구나 새삼 느꼈죠. 할머니뿐만 아니라, 집에서 요리하는 분들도 자기만의 레시피가 있잖아요. 알고 보면 정말 대단하죠. 


박막례


확장하는 박막례의 세계

2017년 유튜브 ‘박막례’ 채널을 시작한 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직업이 됐죠. 

김유라: 취미로 할 때는 누구도 의식 안 하고 편하게 올렸는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저희 콘텐츠를 기다리고 있어요. 저희 콘텐츠에 대해 사람들이 토론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편집 시간보다 올리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 같아요. 어제도 30분간 한 장면을 두고 고민했어요. 사람들이 우리 의도와 다르게 보면 어쩌지 늘 생각하죠.

사람들의 기대치도 높아졌는데 부담도 느끼시나요?

김유라:아니요.(웃음) 어차피 사람들의 기대에 늘 부응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레시피 영상도 이렇게 좋아해 주실 줄 예측한 것도 아니고요. 모르니까 맞출 수가 없는 거죠.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고 결심했어요. 3년이 넘었고 유튜브 환경도 많이 바뀌었으니 ‘시니어 유튜버’라는 이유만으로 신선하다고 할 단계는 지났잖아요. 한 채널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행보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간 유튜브 생태계도 많이 바뀌었어요. 어떤 변화를 느끼나요?

김유라:예전에는 트렌드를 물으면 답이 나왔는데, 지금은 너무 세분화되어서 한 마디로 말할 수 없게 됐어요. 뉴스, 음악, 정치 등 모든 콘텐츠를 유튜브로 보죠. 선택지가 많아졌으니까, 사람들도 이름난 인플루언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유튜버를 찾아 봐요. 마치 넷플릭스처럼요. 

콘텐츠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롱런하는 콘텐츠의 비결은 뭘까요?

김유라:정보성 콘텐츠라는 점이죠. ‘박막례’ 채널도 요리 영상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힘들었을 거예요. 물론 예능 콘텐츠도 좋지만, 프로 예능인이 아닌 이상 저희보다 재미있는 영상은 많거든요. 단발성 재미가 아니라 ‘유튜버 박막례’가 매력 있어서 보는 채널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시청자가 자발적으로 보도록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게 필요해요. 콘텐츠의 생명력을 좌우하는 건 결국 정보예요.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타입이라 했는데, 현재 본인의 위치를 판단한다면요?

김유라: 앞으로 유튜브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위해, 정보를 제공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처음PD 타이틀을 달 때는 그저 할머니와 좋은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목표만 있었어요. 지금은 저희 채널을 참고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도 늘었죠. 실제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구체적인 정보를 알고 싶은데 유튜브 PD로 활동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요. 앞으로는 유튜브 PD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직업인으로서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유튜브를 하려고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해주신다면요? 

김유라: 6개월 정도 채널을 꾸미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해요. 회사는 한 달 지나면 월급이 나오지만, 유튜브는 들인 노력에 비해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어요. 피드백이 오지 않더라도 콘텐츠 만드는 걸 즐길 수 있고 트렌드에 대한 감이 있다면, 저는 무조건 해보라고 말해요. 다만, 초반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바라면 힘들 수 있죠.



두 분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박막례: 흰 쌀밥! 밥보다 더 좋은 게 어딨어. 배추김치랑 밥 먹으면 제일 행복하지.

김유라: 치킨이요. 돈 쓰고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맛있는 게 오잖아요. 이것저것 고민하기 싫을 땐 배달! 

박막례: 그래, 딱 니 스타일이야! 

마지막으로 ‘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요?

김유라: 『박막례시피』를 시작으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에요. 할머니의 인생이 영화로도 나올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박막례:나는 편들이 항시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첫째는 밥이야. 세 끼 잘 챙겨 먹고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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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장강명 “책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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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수

소설가 장강명의 두 번째 산문집 『책, 이게 뭐라고』는 그가 2017년부터 2년간 진행했던 동명의 팟캐스트 이름이다. 출판사 21세기북스에서 제작하고 뮤지션 요조와 함께 진행했던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프로그램을 맡았지만, 책에 대해 말하는 일 이상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작가이기 전에 많은 책을 탐독하는 독서가이기 때문이다. 2011년 장편 소설 『표백』으로 데뷔한 장강명은 이제 10년차 중견 작가가 됐다. ‘미감’은 부족하지만, 이제 자신의 책 표지에 의견을 내기도 한다. 물론 매우 조심스럽게. 『책, 이게 뭐라고』는 경쾌한 표지와는 달리 묵직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책, 이게 뭐라고~’를 읊조릴 수밖에 없다. 장강명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그는 “아직도 책을 진지하게 읽는 독자 분들께 이 책이 어떤 위로로 다가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읽고 쓰면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실제로는 편리한 면죄부로 쓰이는 것 아닐까 의심한다. 힘들게 행동하지 않으면서, 읽고 쓴다는 쉽고 재미있는 일만으로 자신이 좋은 인간이 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책, 이게 뭐라고』, 156쪽




책에 관한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

두 번째 에세이를 출간하셨어요. 『5년 만에 신혼여행』과 표지 색깔이 같네요? 우연일까요? 일러스트 작가님이 같은 분인가요?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에세이도 흰 바탕에 파란 선 일러스트였네요. 말씀 주시기 전까지 몰랐어요(제가 이렇게 둔합니다). 일러스트 작가님은 다른 분이세요. 이번 일러스트는 오혜진 작가님께서 정말 고생해 주셨어요.

부제가 “읽고 쓰는 인간”입니다. 47쪽에 나오는 표현이기도 한데요. 제목 아래 부제를 적은 건, 출판사의 의견이었나요? 책을 다 읽고는 이 부제가 더욱 책과 밀접하다고 느꼈어요.

예리하십니다. 사실 책 제목으로 ‘읽고 쓰는 인간’과 『책, 이게 뭐라고』, 이렇게 두 가지를 검토했어요. 출판사에서도 내부에서 의견이 갈렸고, 저도 결정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읽고 쓰는 인간’은 내용과 썩 어울리는데 에세이보다는 인문서처럼 무거운 느낌이고, ‘책, 이게 뭐라고’는 제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이름과 겹쳐서 헷갈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다 제목의 느낌이 약간 가볍지 않나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결국 ‘책, 이게 뭐라고’를 낙점하면서 ‘읽고 쓰는 인간’도 아까워서 그렇게 표지에 넣게 되었어요. 

만약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없었을까요? 

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팟캐스트를 몇 회 진행했을 때부터 제가 무척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이미 ‘언젠가는 이 이야기로 책을 한 권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무슨 내용을 쓸지는 몰랐어요. 그러다가 1년여가 지난 다음에 팟캐스트 경험을 바탕으로 ‘읽고 쓰는 세계’와 ‘말하고 듣는 세계’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재처를 찾고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단행본으로 나온 글은 그때 연재 글들을 좀 고치고, 독서에 대해 틈틈이 썼던 기고문 등을 더한 거예요.

벌써 10권 이상의 책을 쓰셨어요. 이제 중견 작가라고 할 수 있잖아요? 스스로 “미감이 부족하다”고 하셨지만, 이제는 책에 관해 의견을 종종 내시는 것 같아요.

사실 책이 한 권 만들어지기까지 작가뿐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이 협업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책의 디자인 같은 문제에 대해 작가가 얼마나 의견을 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처음 책을 낼 때에는 아예 제 의견을 전달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조금 전달했어요. 출판사에서 저에게 단계마다 의견을 구하며 배려도 많이 해줬고요. 이번에 제가 의견을 전한 것 중 하나가 표지 일러스트의 제 얼굴에 대한 수정 요청이었어요. 초안 속 제 얼굴이 너무 똘똘하게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똘똘하게 생기지 않았다’고 눈을 좀 더 작고 처지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최종 결과물을 본 지인들이 “이건 장강명 그 자체”라고 말씀을 전해주시더라고요.

하하하! 똘똘하신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책을 다 읽고 나니, 왜 이 제목을 고집하셨는지 알겠더군요. 정말 “책, 이게 뭐라고?!”를 마음에 품고 사시는 것 같아요.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보니 묵직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출판계를 바라보는 시선, 전자책 이야기와 예의와 윤리 등이요.

책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는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다 담아보고 싶었어요. 실제로 제가 책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그렇게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요. 어떤 때에는 부담 없는 오락거리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인생을 걸 만한 무언가이기도 하고요. 전체적으로 앞부분은 다소 가볍고 뒤는 제법 심각해졌는데, 쓰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원고를 쓸 때에는 독자를 너무 생각하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신나게 풀었네요.

신나신 것 같았어요. (웃음) 그리고 팟캐스트 팀에서 사진을 찍어주고는 팀원들이 내내 놀렸다는 사진이 있잖아요. 다시 한번 공개가 가능할까요?

바로 이 사진입니다. 하하. 



작가님을 보면, 농담의 주인공이 되는 걸, 꺼려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맞나요? 물론 그것에 애정과 신뢰에서 발현될 때 말이죠. 

저도 사람이니까 놀림거리가 되는 일을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일 같지는 않네요. 그리고 놀림거리가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얼마나 어른스러운지가 드러나는 거 같아요. 그나저나 ‘캘리포니아 쌍둥이 사진’은 뭐라 반박할 말이 없는 완벽한 놀림감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

49쪽에 ‘진지충’을 이야기하면서 작가님의 방어 전략은 “시니컬해지는 일”이라고요. 그 시니컬한성격이 발목을 잡을 때는 없나요? 또는 시니컬이 내 전략인데, 너무 착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에게 도저히 시키컬하기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사실 그 시니컬함이 발목을 굉장히 많이 잡는 거 같습니다. 저는 성격이 좀 내성적이고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려는 성향이거든요. 시니컬함도 아마 그런 성향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보니 늘 다른 사람과 일정 거리를 두게 되는데, 그래서 친한 친구도 많이 없고, 다른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저에게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몹시 서툴게 대하게 되고요. 상대가 저에게 호감을 품고 잘해주는데 저는 요령이 없어 쩔쩔 맬 때 미안하다는 마음마저 들어요. 이제는 그런 성격을 고치기에도 나이가 들어서,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책에 "지인이 내 책의 사인본을 중고서점에 팔아도 화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작가님의 SNS에 책을 살 것처럼, 또는 산 것처럼 써놓고 책을 빌려 읽거나 안 사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감정이 없나요? 서운하거나 또는 굳이 왜 거짓말을 하냐는 등의 마음이요. 

네, 괜찮습니다. 사실 작가들에게는 덕담으로 “책 사서 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독자들께서 그런 부분들을 너무 짐스럽게 느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역시 중견 작가의 태도입니다. 이번 에세이의 테마는 책, 읽기, 쓰기, 작가일 텐데요. 또 다른 키워드는 ‘예의’와 ‘윤리’로 읽혔어요. 작가님이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라고 느꼈습니다만. 

예의, 윤리, 의미라는 키워드는 저도 이 책 원고를 쓰면서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에 대해서 오래 고민하게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듭니다. 제가 딱히 종교적인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매달리게 되는 거 같아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고, 세계나 다른 사람과 옳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예의는 분명히 사람들 간의 일이고, 의미는 아마 저와 세계 사이의 일인 것 같고, 윤리는 글쎄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더 고민해보려 합니다.

매월 고정적인 인세가 확보된다면, 강연 및 방송도 안 하고 싶은 게 모든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요? 물론 그 안에서 즐거움과 배움도 있겠지만요! ‘소설가 장강명’이 바라는 ‘작가 장강명’의 최고 컨디션은 어떤 상태일까요? 

몇 년 전, 베트남의 나트랑이라는 휴양지 호텔에서 아내와 며칠간 머문 적이 있어요. 한번만 비용을 내면 뷔페식당이나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호텔 시설을 추가 비용을 낼 필요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무척 즐겁게 휴가를 즐겼습니다. 그런 곳에서 두세 달 머물며 판타지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실제로 그런 일을 시도할지, 그렇게 했을 때 글이 잘 써질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얻은 게 많은 것처럼 방송을 하면서 배운 점도 많고, 독자와의 만남도 하고 나서 뭉클하게 힐링된 것 같은 때가 자주 있어요.

최근에 네이버웹툰 매니지먼트 소속으로 들어가셨더라고요. 계기가 있을까요? 

2차 저작권 시장이 커지면서 판권 관련 문제가 굉장히 복잡해졌어요. 계약 내용을 제대로 제가 이해하는 것인지도 자신이 없어졌고요. 기존에는 한 작가가 신뢰하는 출판사 한 곳에서 계속 책을 내면서 그 출판사가 그런 업무들을 대신해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그런 모습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로 고민거리였는데 마침 좋은 제안이 왔기에 저는 글 쓰는 일에 집중하면서 다른 문제들은 회사의 힘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작가 에이전시 업체도 점점 생겨나는 추세라고 들었습니다.

에세이집에서도 밝혀 주신 『책, 한번 써봅시다』는 언제 출간 예정인가요? 

지금 원고를 95% 이상 썼고, 11월에 출간 예정입니다. 앞으로 출간 계획은 마음속에는 대강 있지만 제가 자꾸 스스로 정해놓은 마감을 어기는 바람에 밖으로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요. 당장 집중하는 원고는 『재수사』라고 가제를 정한 범죄소설인데, 현재 책 두 권 분량만큼의 원고를 쓴 상태입니다. 열심히 써야 합니다.

아내 분이 강력 추천하셨던 책 『좋았던 7년』은 읽으셨나요? 에세이집에 상당히 많은 책이 등장하는데, 이 책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아직 못 읽었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서 ‘읽어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있네요. 아시다시피 ‘읽지 않은 책들의 왕국’은 점점 커져만 가기에.


©방문수


책을 읽으면서 ‘회색 인간’이 되었다

192쪽에 “에세이는 세계와 맞선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고 쓰셨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한 소설가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 맞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위로보다는 도전이라고 할까요?

저한테는 너무 진지한 소재이자 주제인 책에 대해서 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어떤 각오를 내비칠 수밖에 없더라고요. 또 책을 둘러싼 환경이 워낙 나날이 어려워져가니까, ‘이대로 죽지 않겠다!’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드러난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쓰다가 몇 번 『소설가의 각오』를 쓴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생각나서 속으로 웃었어요.

그렇다면 이 에세이의 목적성은 무엇일까요? 

사실 제가 원고를 쓸 때에는 구체적인 목적을 지녔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대로 썼는데요, 아직도 책을 진지하게 읽는 독자 분들께 어떤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제 처지도 전하고, 책 얘기 이런 건 어때요, 하고 수다거리도 제안해보고요.

『책, 이게 뭐라고』의 주 타깃 독자는 누가 될까요? 

읽고 쓰는 일을 진지하게 사랑하는 저의 동족들이요.

작가님이 이 책의 마케터가 되었다고 가정을 해볼게요. 주어진 마케팅 비용은 약 1천만 원. 어떤 이벤트를 하고 싶나요?

저자를 협박해서 한국의 모든 독서 팟캐스트에 강제로 출연시키겠습니다. 1천만 원은 마케터와 저자가 적당히 나눠 갖는 것으로!

좋은 방법입니다. 도서 팟캐스트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지만요! 우선 <책읽아웃> 출연부터 해야겠죠? 

그럼요. 하하. 

성실한 작가라는 인상을 꾸준히 느낍니다. 성실함에 무언가를 플러스 한다면, 어떤 특징을 갖고 싶으신가요? 

요 몇 달 너무 게으르게 보낸지라 ‘성실한 작가’라는 말을 듣기가 부끄러워요. 지금은 빨리 성실해져야 하고요,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날카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저는 작가로서 어떤 날카로움이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무뎌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성실함과 날카로움을 놓지 않고 꾸준히 작가 생활을 하면 뭔가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책을 통해, 인간 장강명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회색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단순하게, 흑과 백의 이분법으로 보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흑백을 자세히 보고 음영을 비교하면 검은 것도 완전히 검지 않고 흰 것도 완전히 희지 않다는 사실을 겨우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 음영을 설명하는 것은 긴 언어로만 가능하고, 그게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신가요? 지향점 같은 것이 있나요? 상투적인 질문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여쭙니다. 

언젠가 꼭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설, 읽고 잊을 수 없는 소설, 소일거리가 되지 않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이런 소망을 꿈꾼다고 이룰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여전히 책을 진지하게 탐독하는 독자들에게 ‘더욱 진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저는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점점 더 파편화된 ‘스낵 정보’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허황된 공상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시대일수록 가야 할 길은 긴 사연을 읽고 균형 있게 쓰는 일에 있다고 느껴요. 그 일을 지키는 우리가 시대의 희망입니다. 진지하게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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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고정순 “사람을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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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사라져 가는 소년이 있다. 왁자지껄한 군중 속에서 홀로 희미한 배경이 되어 가는 소년의 곁으로 귀신이 찾아와 속삭인다. “나랑 놀래? 귀신이 되는 법을 알려 줄게.” 소년은 자신에게 손 내밀어 준 유일한 존재인 귀신으로 인해 눈부신 변화를 맞이한다.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나는 귀신』은 포개지다 마침내 번져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는 이 책을 두고 “‘어둠의 그림책’ 또는 ‘변증적 그림책’이라는 방향에서 고정순 작가가 하나의 길을 열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혼자였던 소년이 둘이 되고, 그 둘이 셋이 되고, 마침내 모두가 되어 활짝 웃는 장면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린이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2016년 펴낸 산문집 『안녕하다』에서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한 ‘나만의 그림책’ 만들기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봤어요. “모두 나를 싫어해요. 그래서 난 귀신이 되었어요(169쪽)”라는 그림을 그린 ‘형준이’의 사연이 이 책의 모티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요.  

맞아요. 제가 2018년에 펴낸 『철사코끼리』를 제주도에 가서 만들었는데요. 그 책을 만들러 제주도로 떠나기 바로 전 날, 불광출판사 편집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같이 그림책을 작업하고 싶은데, 만나서 상의를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제주도에 갔다 와서 뵙기로 일정을 잡고, 『철사코끼리』 작업을 마무리 지은 뒤 만나게 됐어요. 편집자님이 『안녕하다』에 나온 형준이의 이야기가 좋았다고, 그림책으로 만들어보자고 하셨어요. 그게 이 책의 시작이에요.  

출판사에서 먼저 내용을 기획했던 책이네요. 

네, 보통은 제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더미북을 출판사에 보내는 과정으로 출간 계약이 이루어지는데 『나는 귀신』과 지난 6월 펴낸 『시소』는 처음으로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만든 책이었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생긴 궁금증이 풀렸어요. 유일하게 두 책은 기존 작품들과 분위기가 달라서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아마 편집자가 제안해서 만든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두 책이 연작 느낌이 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예요. 덕분에 제 작업 스타일을 한번 바꿔볼 수 있었어요. 제가 저를 흔드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언젠가 외부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였죠. 물론 협업을 하다 보면, 편집자의 조언이 100% 납득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래서 ‘작가로서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그림책에서 내가 끝까지 지켜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게 된 작업이었어요. 

책의 주인공이 된 형준이는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해요. 

목사님 내외분이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가 있는데, 제가 거기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어요. 형준이는 그 공부방에서 만난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에요. 가정폭력 피해 아동이었고, 또래보다 체구가 작았어요. 그래서인지 늘 총, 칼 같은 그림만 그리더라고요. 아마 그게 자신이 강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매일 총, 칼 그리기에만 집착을 해서 다른 걸 그리게 해주고 싶었는데, 마지막 수업 때 형준이가 그린 그림이 귀신 이야기였어요. 

그 친구의 그림은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귀신이 되는 나라에서 사는 주인공이 다시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내용이었어요. 무리에서 소외된 아이였고,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음에도 이 아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원하고, 나아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자기가 구하고 싶다는 걸로 이야기를 마치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나요. 

이번 책 작업을 하면서 형준이를 찾아보고 싶었는데 그 센터가 폐쇄돼서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종종 문화예술인협동조합 친구들과 자선 공연을 다닐 때 형준이가 생각나요. 형준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가 너무 많거든요. 아동폭력 피해자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혹시 내가 아는 아이들이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는데 형준이는 그럴 때 항상 떠오르는 아이예요. 

그 이야기로 그림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놀라셨겠어요. 

네 너무 놀라웠고, 그 내용으로 제안을 주신다는 게 신선했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죠. 사실『안녕하다』가 참 안 팔렸는데, 그 책을 잘 봐주시는 편집자가 종종 있더라고요(웃음). 산문집 안에서 그림책 소재를 찾는 분이 있다는 게 저에게는 뜻밖이었는데, 지난해에 만난 한 기자분이 들려주신 말씀이 있어요. “『안녕하다』는 고정순 작가가 앞으로 낼 그림책의 기획서에 해당한다”고요. 돌이켜 보니 정말 그 책에 쓴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그림책으로 풀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완성까지 2년 넘게 걸린 책이라고요. 작업 과정이 궁금해요.

출판사의 제안으로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건 처음이라 좀 낯설었어요. 초반 작업을 해보니, 자꾸 어른 취향의 그림책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보편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담기 보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에 집중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내용이 어른스럽고, 난해하다는 게 편집부의 지적이었고 제가 보기에도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책에서는 기존에 제가 하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서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새로운 걸 시도하다 보니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원래 제가 가지고 있던 스타일을 바꾸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어떤 변화를 주고 싶었나요?

제 전작들은 그림이 좀 무겁잖아요. 이번만큼은 어린이 독자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드로잉 재료를 주로 사용해서 경쾌함을 주고,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 친숙한 그림을 넣으려고 시도했는데, 여전히 제가 가진 무거움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크레파스, 색연필 등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재료로 그림을 그리셨던 거예요? 

네, 아이들을 좀 꼬셔보려고요(웃음). 저는 어린이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사실 『가드를 올리고』를 만들 때,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린이들의 손을 놓았거든요. 그림책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책은 여러 번 인생의 파고를 만난 어른들에게 주는 이야기였지, 아이들을 위한 건 아니었어요. 실제로 『가드를 올리고』를 이해하고, 감응하는 아이가 있다면 슬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림책이 가진 독자에 범주에 아이들을 꼭 포함해야 하지 않나’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이런 제안을 주셨을 때, 반가웠어요. ‘이 참에 아이들을 한 번 꼬셔봐야겠다’고 생각했죠(웃음). 『나는 귀신』은 아이들을 가장 많이 생각하며 만든 책이에요. 


고정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 곁에 있고 싶어요

다양한 귀신들의 모습이 재밌었어요. 귀신을 그릴 때 참고한 자료가 있나요? 

일본 애니메이션도 많이 봤고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중에 <신비아파트>라는 만화가 있더라고요. 그것도 봤어요. 제일 많이 참고한 건 <이웃집 토토로>였어요. 거기서는 조그만 먼지들도 생명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 게 재밌더라고요. 

최대한 아이들이 봤을 때, 즉각적으로 무슨 귀신인지 알 수 있는 익숙한 모습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어린 조카들에게 알고 있는 귀신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죠. 오로지 주인공 귀신만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제가 생각했던 귀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어요. 그동안 만든 책은 제 안에서 나오는 걸로 이루어진 내용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아이들이 많이 알 것 같은 요소를 넣으려고 애썼죠.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주인공 친구가 혼자 덩그러니 있고, “나는 점점 사라져”라고 쓴 부분이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제일 먼저 그린 그림인데요. 아이의 앞머리를 길게 내린 게 마음에 들었어요.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 이 아이가 후반부로 가면서 눈이 보이게 설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와 이거 심오한데?’하고 혼자 좋아했어요(웃음).


잘 안 풀려서 작업이 어려웠던 그림은요? 

아이들이 다 같이 놀기 직전의 장면을 그릴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친구가 된 두 아이가 재미있게 놀고 있고, 나머지가 이를 바라보면서 모두 함께 놀기 직전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어떻게 노는지도 고민해야 했고요. 제가 어릴 때 놀았던 방식과 요즘 아이들이 노는 방식은 다르잖아요. 또 저는 어릴 때 주로 혼자 놀았거든요. 벌레를 구경한다거나 하면서(웃음). 그걸 그려 넣을 수는 없으니 뭘 그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우산 위에 인형을 태우고 노는 모습이 귀엽더라고요(웃음). 

실제로 제가 알고 있는 9살짜리 아이의 애착인형들을 보고 그린 거예요. 책 나오니까 아이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작가님에게도 이 책에 나오는 ‘귀신’과 같은 존재가 있을까요. 

실존하는 친구들이요. 그 중에서도 한 친구가 떠올라요. 제 그림책 중 『점복이 깜정이』가 있는데, 거기서 깜정이를 따라다니는 점복이가 제 친구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강아지 깜정이는 저예요.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몸이 불편한데, 그럼 사는 것도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별로 안 불편한 거예요(웃음).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친구가 보이지 않게 저를 계속 배려해줬기 때문이었어요. 그 책을 만든 것도,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요. 제가 작업을 하며 지내다 보니 외부와 접촉이 많지 않고, 외로움을 타고난 면이 있는데 그 친구가 저의 그런 부분을 많이 돌봐준 것 같아요.  

책에 미처 싣지 못한 작가의 말에 “슬픈 세상에서 사랑만이 구원이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라고 썼어요. 

앞서 말한 그 친구와의 이야기에서 나온 문장이에요. 친구와의 어떤 일화에서 받은 느낌을 페이스북에 썼는데, 편집자님이 그 글을 다듬어 주셨어요. 세상에 단 한 명만이라도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에 정말 동의하거든요. 이렇게 각박한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관심과 사랑밖에 없는 것 같아요. 

편집자님께 “그 글을 보도자료에 써도 되냐”는 질문을 받고, 사실 처음에는 좀 쑥스러웠어요. 너무 멋있는 척 하면서 쓴 말 같아서요(웃음). 그리고 보도자료를 쓰기 전에, 편집자님이 저에게 카톡을 하나 보내셨거든요. “작가님이 슬픈 건, 세상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어서 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카톡을 공방 가는 지하철 안에서 봤는데요. 너무 커다란 말이라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살면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쨌든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저를 좋게 봐줬고, 그 내용을 토대로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뻐요. 

작가의 말의 또 다른 문장은 “단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있다면, 그것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였어요. 『나는 귀신』을 보여주고 싶었던 단 한 사람이 있다면요? 

아마 불특정 다수일 텐데요. 형준이와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이었으면 해요. 제가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을 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그림책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냐”는 거예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보여주는 수업자료가 있어요.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한 장면인데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위해서 셔츠 주머니에 카메라를 넣고 다니면서 자기가 걷는 세상을 보여주거든요.

이렇게 단 한 사람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있다면, 저는 그게 좋은 소재라고 생각해요. 흔히 독자를 고려하고, 더 많은 독자를 품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물론 그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에요. 대중에게 다가가는 건, 무척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소수가 있거든요. 저는 개인의 소수성에도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행복해서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옆에 있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게 아마 제가 그림책을 만드는 이유의 절반쯤은 해당하지 않나 싶어요.

 

그림책은 저의 또 다른 언어인 거죠

다발성통증증후군을 앓고 계시다고 알고 있어요. 요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아주 좋지는 않아요. 지병이 생긴 지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합병증이 많이 생겼거든요. 대부분 난치성 질환이에요. 뭐든 하나라도 낫거나 멈춰야 할 텐데 쉽지 않네요. 또 제가 몸을 살뜰히 돌보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요즘 좀 빨간 불이 켜진 것 같아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하루가 어떻게 흐르나요?

제 별명이 ‘칸트’예요(웃음).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자고, 몇 시부터 청소하고, 작업하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어요. 

집을 보고 짐작했어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해서요(웃음). 

맞아요(웃음). 경미한 결벽증도 있고, 루틴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작업량이 많아서 종일 일을 하죠. 주로 오전에 글을 쓰고 밤 늦게 그림을 그려요. 교대 없이 돌아가죠(웃음). 저는 하루에 2~3시간 밖에 잠을 안 자거든요. 언제부터인가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혼재되어 흘러가는 느낌이에요. 

제가 작가가 되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어요. 스물 여섯 살에 그림책 작업을 시작해서 서른 아홉 살에 첫 책이 나왔으니까요. 그 사이에 무척 힘들었고, 중간에 계약이 엎어져서 마음 고생을 한 적도 많아요. 어렵게 작가가 되었다는 연민이 있다 보니, 스스로 작업에 좀 매달리는 편이에요. 지금도 “당신 책은 출간할 수 없다”며 어떤 출판사에서도 제 원고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걱정될 때가 많아요. 

아직도 그런 불안이 있으세요?

네 불안감이 크죠. ‘앞으로 더 이상 출간 기회를 얻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가끔 편집자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이 얘기를 하면 다들 놀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지금은 너희들이 나를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 시들 거 아니야(웃음)!”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막막해지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빈 도화지를 볼 때도 그렇고, 워드 창을 켜놓고 컴퓨터 커서가 깜빡이는 것만 봐도 두려울 때가 많죠. 제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인터넷 서점 판매지수 검색하는 거예요(웃음). 불도 켜지 않고 그거부터 검색해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저와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낸 다른 작가 것도 찾아보죠(웃음). 가끔 주변에서 “이렇게 어두운 책 만들면서 팔리길 바라냐”고 하는데요. 그만큼 독자들의 반응에 민감해요. 판매 부수는 무척 신경 쓰는데, 어떻게 해야 잘 팔리는 지는 모르겠어요. 

그럼 리뷰도 자주 찾아보시겠네요. 

네 많이 봐요. 『나는 귀신』의 경우에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책이다”라는 리뷰는 여전히 찾기가 힘들었는데요(웃음). 그래도 인상적인 이야기가 두 가지 있었어요. 하나는 제가 아는 친구인데,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해서 이 책이 자기 이야기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 글을 읽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또 하나는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께서 SNS에 남겨 주신 서평이에요. 이 책을 읽고 “주먹 울음을 울었다”고 쓰신 대목에서 정말 감격했어요. ‘아 내 그림책으로 김지은 선생님을 울렸구나’하면서(웃음). 

저도 트위터에서 그 서평을 봤어요. <채널예스>의 칼럼 ‘김지은의 모두 함께 읽는 책’에서 작가님의 『엄마 왜 안 와』를 추천해주시기도 했는데요. 

네, 봤어요. 그 책은 김지은 선생님이 페미니즘 관련 수업을 할 때 참고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평론가라는 아우라가 있어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하나에 긴장하게 될 때가 있는데 리뷰를 보고 너무 좋았어요.

그동안 강연으로 독자를 가까이에서 만나셨잖아요. 기억에 남는 독자의 반응이 있을까요?

두 분 정도가 떠올라요. 한 분은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딸을 키우는 어머니였어요. 딸이 새끼 손가락 하나로 글을 쓰는데, 제 책 『가드를 올리고』 『철사코끼리』를 보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철사코끼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종이 울리거든요. 그 장면을 보고 “우리 딸도 언젠가는 사람들을 울리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전 『시소』 출간 기념 강연에서, 편집자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실망했다는 분이 계셨어요. 작가가 다 만든 게 아니라는 이유로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글, 그림 모두 내가 완성한 책들도 편집자 없이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편집자는 작가와 협업하는 존재다”라고 말씀 드렸어요. 실제로 저는 편집자 의존도가 높은 작가예요. 편집자 없이는 절대 책을 못 만들죠. 사실 ‘이게 실망스러운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 독자들이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잘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을 너무 멀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천재이거나 대단한 사람, 신의 영역에 가까이 있는 사람만 한다고 여기니까요. 그게 저는 별로 좋지 않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예술가가 돈 얘기를 하면 ‘작가가 왜 돈을 밝히지?’라고 생각하잖아요. 원래 금융가들이 모이면 그림 얘기하고, 작가들이 모이면 돈 얘기 하는 건데(웃음). 예술을 신성시 하는 게, 예술이 대우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게 아니라 마치 이 세계에 없는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처럼 이물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림책을 만드는 행위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저도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요. 단순히 작가가 되고 싶어서 직업적으로 접근을 했다면 다른 일도 충분히 많았을 텐데, 왜 하필 그림책 작가에 그렇게 매달렸을까? 싶어요. 아마 저의 욕구겠죠. 글, 그림을 함께 하는 작업이라는 매력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매체니까요. 하고 싶은 말이 좀 줄어들어야 작품을 덜 만들 텐데, 해가 거듭할수록 하고 싶은 말이 더 생기더라고요(웃음). 내 안에 있는 말들을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그림책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어린 시절이 좀 남달랐거든요. 이 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사람들에게 이해 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난독증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학습장애를 겪었고요. 모든 게 평범한 기준에서 조금 떨어지다 보니, 제가 가진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랐던 시간이 꽤 길었어요. 그때 쌓인 것들이 그림책으로 풀어지는 것 같아요. 그림책은 저의 또 다른 언어인 거죠.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이 있나요? 

장기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요즘 사회 현상 중, 제가 신기하게 보고 있는 게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이에요. 어떤 사안이 있으면 온라인 상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 융단폭격을 가하고 오잖아요. 그런데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아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우화로 풀어보려고요. 최근 ‘조국 사태’나 ‘박원순 시장 사건’ 등을 보면서 사람들의 모습이 좀 놀라웠거든요. 사건의 원인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걸 풀어가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나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이야기의 구성은 성경책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제가 종교는 없지만, 종교에 대한 관심은 많거든요. 특히 작가가 된 이후로 성경책을 읽으며 가끔 그림책에 대한 소스를 얻는 편인데, 괜찮게 생각했던 몇몇 이야기를 사회 현상과 묶어서 우화집 같은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가까운 미래에 출간될 작품이 있을까요?

곧 나올 책들이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청소년 노동자의 죽음에 관한 그림책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때 직업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에도 실습 현장에서 죽은 친구들이 있었어요. 계속 반복되는 현실에 대해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으로 그린 책 작업이 거의 끝나서 내년쯤 나올 예정이고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 초기작의 삽화를 그렸는데, 곧 출간될 것 같아요.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아이들이 서로 끌어안고 고난을 이겨나가는 내용으로, 코로나 시대에 힘이 될 책일 거예요. 

마지막으로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라는 책이 나올 텐데요. 아픈 산양이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내용으로, 저를 많이 투영했어요. 죽음에 대해 유쾌하게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웃음).

앞으로 『나는 귀신』을 보게 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쑥스럽다고 말하면서도, 독자들을 만나면 이 책에 ‘슬픈 세상에 사랑만이 구원이다’라고 사인을 해요. 이 말이 제일 하고 싶어요. 아무리 여유가 없어도, 사람이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주변에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들을 품고, 도와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가 지역아동센터에서 형준이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과 그림책 수업을 할 때도, “요즘 굶는 사람이 어딨어” 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하루에 한 끼도 못 먹고 굶는 사람들 있고요. 매 맞고 자라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늘 속에서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번쯤 떠올려 주셨으면 해요.



나는 귀신
나는 귀신
고정순 글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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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오건영 “반드시 찾아올 경제 위기, 대비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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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영


모두가 부동산과 주식투자에 열을 올리는 이때, 달러와 금 투자를 권하는 이가 있다. 인기 유튜브 <삼프로TV_경제의 신과 함께>에 출연해 이름을 알린 오건영 신한은행 IPS본부 부부장. 미래를 전망하지는 않는다. ‘포트폴리오의 보험’과도 같은 달러와 금으로 언젠가 찾아올 경제 위기를 대비하라고 말할 뿐이다. 페이스북과 네이버 카페 등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오건영 저자는 어려운 경제를 쉽게 설명하기로 알려져 있다. 전작 『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에서 금리와 환율로 세계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짚은 그가 이번에는 달러와 금으로 세계 경제를 설명한다. 『부의 대이동』은 무제한적 돈 풀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예상하는 오건영 저자 특유의 친절한 설명과 남다른 인사이트가 돋보이는 책이다. 

"급격한 변화가 자주 찾아오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그때그때 시장 상황을 판단해서 귀신같이 적절한 자산을 사고 판다 일까요? 어지간한 전문가들도 이런 식의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할 겁니다. 이 책을 읽는 개인투자자들은 이런 식의 비현실적 가정보다는 급격한 변화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촘촘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관점으로, 그 일환으로 금과 달러를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이 책을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348쪽)




어려운 경제, 쉽게 설명하는 비결은

책이 친절하다. 쉽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다행이다. 경제가 어렵지 않나. 그렇지만 중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쓰려고 노력했다. 

자산운용사에서 은행으로 이동했다고 들었다.  

원래 은행에 있었다. 잠깐 계열사로 나갔다가 복귀했고 자산관리 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환경이 달라져서 더 바쁠 것 같은데.

옛날 일에 다시 적응하고 바뀐 자산 시장에 대응하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하다. 복귀하고 한두 달 정도 빡빡하게 지냈다. 

그 와중에도 페이스북에 경제 에세이를 꾸준히 올렸다. 

영어 공부랑 비슷한 것 같다. 마켓을 일주일만 보지 않아도 흐름이 끊긴다. 흐름을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다행인 건 15년간 매일 반복했더니 습관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켓을 보고 그날의 상황을 글로 정리한다. 평일에는 주로 새벽에 쓰고 토요일, 일요일 중 하루는 종일 시간을 내서 공부하고 쓴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 준다는 평이 많다. 비결이 있다면?

이해력이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자신에게 설명하듯이 이해하는 습관을 들였다. 배운 내용을 말로 풀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설명하는 거다. 또 다른 비결이 있다면 학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 고등학교 때 단과 학원에 다녔는데 선생님들이 강의를 너무 잘했다. 똑같은 내용을 쉽게 가르쳐 주는 모습이 멋있어서 감동했고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수업은 안 듣고 그분들이 쓰는 말투나 손짓,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 같은 것들을 보면서 따라 했다. 

경제 초보자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다. 잘 모르는 개념이 나와서 더 읽기 싫어질 때쯤 ‘중요하지 않으니 가볍게 읽고 넘기시라’고 짚어줘서 계속 읽을 수 있었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 금융 공부할 때 용어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항상 반문이 들었다. 책에서 ‘~해서 달러가 오를 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다르게 될 수도 있잖아?’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하듯이 쓰는 게 습관이 됐고 자연스럽게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 ‘이런 반문을 하실 수 있는데요?’ 또는 ‘너무 어려우면 넘어가세요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쓰게 됐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고. 경제 전공자가 아니라고 해서 의외였다.  

사회과학을 좋아했다. 경제 공부라고는 IT 버블 때 주식 투자하는 친구들 사이에 껴서 경제 기사나 책을 조금씩 보는 게 전부였는데 어쩌다 보니 은행에 들어갔다. 손님 중에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았고 VIP 창구에서 자산관리도 했는데 그때 많이 공부했다. 공부하면서 과거에 친구들한테 무시당하기 싫어서 봤던 경제 기사나 책에서 본 이야기가 이거였구나 하고 깨달았고 정말 재밌었다. 지금 경제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도 비전공자로서 밑바닥에서부터 하나씩 천천히 공부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튜브 <삼프로TV>에 출연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삼프로TV> 김동환 소장님과 페이스북 친구다. 김동환 소장님은 삼프로 티비에 재야의 인물도 출연시키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날 한 번 나와서 이야기해 달라고 하더라. 아마 그간 내가 페이스북에 쓴 에세이를 보신 것 같다. 첫 출연에서 경제 위기의 역사를 설명했고 그 뒤로도 몇 번 더 출연했다. 나중에는 판서도 하고 싶다고 했는데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하더라. 내가 강사 꿈나무라고 하지 않았나. 편하게 판서하면서 했는데 시청자들이 그 모습을 신선하게 받아들이신 것 같다. 

경제 정보가 민감하지 않나. 인지도가 늘어난 만큼 부담도 커질 것 같은데 

당연하다. 가끔 지인들이 걱정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할 때 두세 번 생각하고 한다. 그리고 부담을 느끼는 만큼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한다. 부담이라는 건 나에 대한 기대를 얼마나 채울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인 것 같다. 


오건영


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존경하는 투자자로 레이 달리오를 꼽았다. 

아침에 리서치할 때마다 구글에서 레이 달리오를 검색한다. 달리오는 실전 투자 경험이 많을 뿐 아니라 인사이트가 많은 사람이다. 팩트나 역사, 기사를 읽고 공통점을 발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금융 위기의 역사를 분석할 때도 선진국뿐만 아니라 폴란드 같은 작은 나라까지 비교해 공통점을 뽑아내고, 어떤 상태에서 경제 위기가 찾아오는지 분석해 자료로 만든다. 인사이트가 있고 충분히 트레이닝 된 사람이라 가능한 일이다. 나중에 투자 경륜이 쌓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투자자가 생기 마련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투자자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좋다. 

모두가 경제 위기를 말한다. 얼마나 가까이 왔다고 보나?

시기를 예단하는 건 의미 없다. 100% 틀린다. 다만 한 번 정도는 반드시 온다. 사람이 개인적으로도 위기를 겪지 않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부채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빚이 없는 상황에서 실직하면 일단 모아 놓은 돈을 쓰다가 새로 직장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빚이 어마어마한데 모아 놓은 돈도 없는 상태에서 실직을 당하면 상황이 심각하다.

금융 시장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 빚이 워낙 많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금융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위기가 언제 올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한 차례 무섭게 흔들리는 그림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위기를 대비하는 자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거다. 항상 오르는 시장, 항상 오르는 자산은 없다.  

천성이 낙관론자라고. 무역 전쟁이 해소되면서 글로벌 경제가 성장하는 낙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하기도 했는데 얼마나 가능한 이야기인가? 

물론 지금은 가능성 없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거다. 시장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있어야 성장한다. 수요가 줄면 가격이 하락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디플레이션 공포가 찾아오면서 공황이 오는데 그러면 공멸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무슨 이야기냐면 지금까지는 미국이 성장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사면서 시장이 성장했는데 이제 옛날만큼 못 사주는 거다. 그러면 미국을 대신해서 누군가 사줘야 하는데 유럽도 일본도 그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중국뿐이다. 

중국이 답이라고 보는 이유는?

물론 중국도 문제가 많다. 다만 소비 성장이 일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나라가 중국이 아닐까 싶은 거다. 물론 중국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미국에 좋은 일을 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다 망하니까 방법이 없는 거다. 

일단 살기 위해서 미국과 손을 잡는다는 건가?

치킨 게임이다. A하고 B가 절대 악수하지 않을 사이라고 생각하지만 둘 다 죽을 것 같으면 죽기 싫어서라도 악수하지 않겠나. 그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말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낙관론자라서 그런지 가능할 것 같고, 그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제를 공부하는 비전공자에게 팁을 준다면?

일단 전공을 불문하고 경제와 금융은 꼭 알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2003~2004년도만 해도 가계 부채가 350조 정도였다. 지금은 1,700조에 달한다. 마이너스 통장이 없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아마 1,700조도 빠르게 넘어갈 거다. 부채라는 건 결국 미래의 소득을 미리 가져와서 소비한다는 뜻이다. 결국 가계 부채가 1,700조라는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금융과 연관돼 있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2003~2004년도만 해도 한국은행에서 기준 금리를 인상 또는 인하한다고 발표해도 손님들이 별로 관심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그만큼 세상이 달라졌다.

일단 금융이 내 삶과 연관돼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나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있어야 흥미가 생긴다. 그리고 흥미가 생기면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쉽게 느껴질 수 있고 거기서 깨달음과 성취감이 온다. 정리하면 첫 번째로 계기가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호기심, 마지막으로 성취감이 들어오면 금융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을 거다. 전공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떤 뉴스나 사안을 보고 의사결정을 내릴 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과거보다 정보가 많아졌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펀드나 주식에 가입하는 등 계기를 만드는 게 가장 좋다. 적은 돈이라도 내 자산이 움직이는 게 보이면 달라진다. 어제는 왜 올랐는지, 왜 떨어졌는지 궁금해지고, 궁금하니까 뉴스를 찾아본다. 이게 반복되면 나중에는 예측까지 하게 되는데 거의 틀린다. (웃음) 그러면 또 생각하는 거다. ‘왜 틀렸지?’하고. 이런 경험이 쌓여서 실력이 생기지 묘수는 없다.


오건영


달러와 금은 포트폴리오의 ‘마스크’  

코로나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주식 시장이 뜨겁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나?

코로나 팬데믹은 눈보라와 같다. 지금 눈보라가 몰아치니까 다들 집에 숨어 있는 거다. 이 눈보라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면서. 중앙은행이나 정책 위정자들은 이 눈보라가 지나갔을 때 숨어 있던 사람들이 나와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 한 마디로 시간을 끌어주면 되는 거다.

눈보라가 지나갈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문제는 숨어 있는 사람들이 빚이 많다는 거다. 이자를 내야 하는데 일을 못 하니까 이자 지급을 유예해 준다든지 금리를 낮춰준다든지 자금을 지원하면서 경기 부양책을 편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생각보다 길어진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니까 시장에서는 돈을 더 많이 뿌려 줄 거라는 기대를 하는 거다. 그러면 돈의 힘으로 자산 시장이 밀려 올라가는 일이 벌어진다. 예전에는 돈이 풀리면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투자를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부동산을 사거나 주식을 산다. 고용이 창출되고 소비가 촉진되지 않는 거다. 

결국 돈이 풀리지만 실물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 건가.

예를 들면 이렇다. 열다섯 살 아이가 밥을 많이 먹으면 키가 크지만, 마흔 살 아저씨가 밥을 먹으면 살만 찐다. 코로나 팬데믹 하의 경제를 보면 이와 비슷하다. 자산 가격이 너무 많이 뛰면서 실물 경기와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는 거다. 이 격차를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가격이 내려오는 것, 두 번째는 실물 경기가 올라오는 것.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건 실물 경기가 올라오는 게 바람직하다는 거다. 

유동성이 큰데 정책에 묶여 부동산에 투자를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주식 시장이 더 과열되는 측면이 있지 않나.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단어 중에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단어가 있다. 나만 소외된다는 두려움을 뜻하는 말이다. 또 하나는 TINA(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단어로 대안이 없다는 뜻인데 이 두 단어가 붙으면 개인들의 엄청난 주식, 부동산 투자를 몰고 온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최근에 화제였던 SK바이오팜이나 카카오게임즈 상장주였다. 요즘 주식은 영원히 오르는 자산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과도한 낙관인데 이렇게 되면 포트폴리오가 깨지면서 한쪽으로 쏠린다. 자산 시장과 실물 경제의 괴리도 문제지만 이런 상황에서 포트폴리오가 한쪽으로 쏠리는 문제도 경계해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트폴리오에 금과 달러를 포함해야 한다고 추천하는 건가?

그렇다. 달러나 금의 미래를 전망하지는 않는다. 다만 달러, 금이라는 자산이 가지는 보험으로서의 특성을 설명했다. 보험 팔이냐고 물어볼지 모르겠는데(웃음) 많은 사람이 늘리는 자산에는 관심이 많지만 지키는 자산에는 관심이 없다. 모든 자산이 다 죽을 때 혼자 살아서 뛰는 자산이 있어야 한다.  

마스크에 비유하기도 했다.  

가지고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기가 안 좋아지면 부양책을 펼 수밖에 없다. 경기가 올라오는 그 순간까지. 그러면 그런 상황이 됐을 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특색이 있는 자산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나온 답이 금이라는 자산이다. 



달러와 금은 주식이나 채권보다 더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이유가 뭘까? 

일단 자료가 부족하다. 그리고 개인이 접근하기 힘든 영역이라는 인식이 있다. 만약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했다면 삼성전자만 분석하면 되는데 환율은 그렇지 않다. 환율은 다른 나라 통화와 내 나라 통화의 상대 가치다. 즉, 달러,원 환율이라 하면 미국 통화와 한국 통화의 교환 비율이다.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를 둘 다 알아야 하고 심지어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환율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개인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금도 비슷하다. 주식은 평범한 개인들 사이에서도 ‘어느 종목이 좋다’라는 이야기를 흔히 할 정도로 쉽게 접근하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달러나 금은 생소한 자산,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 관점에서는 달러와 금이 필요하다. 

달러와 금이 왜 필요하냐는 물음에 답한다면?

위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물 화폐인 금과 종이 화폐인 달러는 대척점에 있다. 달러의 매력이 낮아지는 시기에는 금의 가치가 상승했고 반대로 달러가 주목받는 시기에는 금의 가치가 하락했다. 달러와 금 투자가 포트폴리오의 보험 역할을 한 거다. 특히 금은 화폐 가치가 하락했을 때 포트폴리오를 지킬 수 있는 자산이다. 단, 전체 투자 자산의 일부로서 금과 달러를 포함하라는 이야기이지 빚을 내서 달러 초강세, 금 가격 강세에 투자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궁금한 게 달러와 금의 비중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가다. 

정확한 수치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달러와 금을 보험이라고 하지 않았나. 월급의 전체를 보험비로 내는 사람은 없다. 월수입의 10~20% 정도씩 적립식으로 꾸준히 모으면 나중에 위기 상황에서 나머지 포트폴리오를 방어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금 투자법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특별히 초보 투자자에게 더 추천하는 투자법이 있다면?

투자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증권사나 은행 중, 더 자주 거래하는 곳에서 시작하라. 은행과 자주 거래한다면 금 통장을 개설하는 게 좋고, 증권사를 자주 이용하면 ETF도 좋다. ETF는 증권사에서 거래하기가 훨씬 편하다. 다만 ETF라는 상품은 다른 요소 때문에 금 가격의 움직임을 제대로 못 따라갈 수 있는데 초보가 그런 상황을 다 고려해서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초보자라면 대부분 소액으로 할 텐데 그러면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가장 편한 방법으로 시작하고 나중에 노하우가 쌓이면 그때 다양한 방법을 찾아라. 


부의 대이동
부의 대이동
오건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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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단 불꽃 “N번방 이야기를 넘어, 책을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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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대한민국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분노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 여성들을 상대로 한 성착취 영상이 수십 개의 채팅방에 유포되고 있었다. N번방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고 경찰에 제보한 사람은 바로 <추적단 불꽃>의 불과 단이었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기자 지망생이었던 두 사람은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 응모하기로 하고 평소 관심을 가졌던 ‘불법 촬영’을 주제로 취재를 시작했다. ‘불꽃’이라는 이름을 정하고 당연한 순서였던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구글에서 검색 10분 만에 ‘와치맨’이 운영하는 구글 블로그 ‘AV-SNOOP’을 발견한다. 이 블로그에서 N번방의 존재를 알게 된다. 

공모전을 위해 취재를 시작했지만 텔레그램 대화방을 목격한 후, 취재만 할 수 없었다. N번방 입장과 동시에 보게 된 디지털 성범죄의 실체. 영상을 본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N번방이라는 감옥에 갇힌 피해자들을 구해야만 했다. 이들은 수집한 자료를 갖고 경찰청 본청 사이버안전국에 문을 두드렸고, 아동 청소년 수십 명을 대상으로 성착취 영상을 제작한 가해자를 신고했다. 

르포 에세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는 N번방 추적기와 ‘추적단 불꽃’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끔찍했던 취재와 수사 협조, 평범한 두 사람의 일상은 결코 평범할 수 없었지만 경찰은 박사, 갓갓 등 주요 운영진을 포함해 총 664명을 검거했고 이 중 68명이 구속됐다. (2020년 5월 27일 기준) <추적단 불꽃>은 공로를 인정 받아 제3회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6월 민주상 특별상, 2020년 9월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 2020년 9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올해의 보이스 수상, 제 22회 국제엠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 제2회 뉴스통신진흥회 탐사심층르포 공모전 특별상, 제355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얼굴을 공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N번방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끝까지 취재를 놓지 않았고, 현재도 디지털 성범죄의 실태를 밝혀 나가고 있는 <추적단 불꽃>의 불과 단을 만났다. 




‘우리’라고 호칭할 때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간 출간 제안이 많았을 텐데. 

불: 총 아홉 군데에서 연락이 왔는데 대부분 르포르타주 형식의 책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피해자 대응, 언론 인터뷰만으로도 힘든 상황이라 여유가 없었지만,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하면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언론 기사만으로 시민들이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원고 작업은 어땠나? 심리 상담도 받았다고 들었다. 

단: 책을 쓰기 시작한 게 5월인데, 심리 상담을 4월부터 7월 초까지 받았다. 책을 쓰면서 내 트라우마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심리 상담을 받은 덕분에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원고 마감을 한 다음에 번아웃이 왔는데,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특히 N번방 추적기를 다룬 1부를 쓸 때는.

불: 쉽지 않았다. N번방 사건이 터지고 많은 언론에서 다뤄졌지만 하나의 큰 맥락으로 이 사건을 접근하는 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유, 배경, 문제점 등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뒀다. 

단: 2부를 쓸 때도 마음이 어려웠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우리가 겪었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상기해야 하니까, 대한민국 여성으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하는 일이 괴롭기도 했다.

제목에 ‘우리’라는 단어가 총 세 번 들어간다.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읽힌다. 

단: 책에 나오는 문장을 읽고 책을 기획해 주신 편집자님이 주신 의견이다. 불과 단이 각자 개인으로 생활하다가 ‘우리’라고 부르는 순간이 있고, 또 우리가 다른 활동가들과 있을 때 ‘우리’라고 부를 때가 있다. 서로를 ‘우리’라고 호칭할 때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고 생각했다. 우리끼리는 ‘우 3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 가 세 번 들어가서. (웃음)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 후, 많은 언론과 인터뷰했다. 끼니도 거른 채 하루에 수십 개 언론을 만난 적도 있다.

불: 그때는 정말 인터뷰 외의 시간에는 아예 말을 하지 않고 보냈다. 너무 힘들었지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지면이라도 이 사건의 전후를 보도해줄 매체가 필요했다. 

당시 N번방 불법 영상물 관련하여 많은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불: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이 뭐였냐?”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모든 장면이 충격적이어서 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나 작가나 PD는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한 장면만 소개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고 싶었다. 지금 피해자의 일상은 어떤지, 정부에서 피해자 보호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필요한 입법은 무엇인지. 하지만 언론들은 대개 ‘충격적인 장면’을 물었다. 기사를 자극적으로 쓰면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어려웠다. 

피해자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불: 3월에 처음 연락을 주셨던 분이 있었다. 인터뷰 하고 한동안 연락이 안 닿다가 얼마 전에 무지개 사진을 보내주셨다. 엄청 선명하고 예쁜 무지개였다. 고맙다는 메시지였는데, 우리 역시 피해자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그분들로부터 받는 위로와 격려가 무척 크다. 책을 쓰면서 피해자들의 일화를 싣고자 일일이 허락을 구했는데, 모두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다 괜찮다고 해주셔서 큰 힘을 얻었다. 우리 두 사람은 여전히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분노하고 행동함으로 우리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책 3부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피해자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피해자들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당신의 친구가 될 수도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사건을 기억하고 대해줬으면 좋겠다. 

추적단 불꽃의 불과 단(왼쪽부터)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인식 전환

지난 5월, 20대 국회에서 일명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 포함됐다. 

불,단:디지털 성범죄를 감당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스토킹방지법, 그루밍처벌법, 디지털 성범죄 함정수사 법제화 등이 필요하다.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의 공범 중에도 스토킹을 일삼은 사람이 있었다. 사건을 접하면서 스토킹방지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1999년 처음 스토킹방지법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있다. 2018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스토킹은 행위 유형이 다양하고 단순한 애정 표현이나 구애와 구분하기 어려우며, 심각한 스토킹은 형법상 폭행죄, 협박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어 별도 법률을 신중해야 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여기서 ‘단순한 애정 표현과 구애’의 주체는 가해자다. 가해자의 입장이 반영된 해석이다. 피해자가 상대방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스토킹이 분명한데도, 여전히 국회의원 다수는 남성주의적인 시각에서 범죄를 바라보는 것이다. 

불,단:해외에서는 이미 영국와 호주 등 63개국이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을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성착취 범죄가 그루밍으로 시작되기에 아동, 청소년이 성착취를 당하기 전에, 가해자의 유인 행위와 같은 ‘접근’ 자체를 처벌해야 한다. 

1년 넘게 익명으로 활동했다. 연대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웠겠다.

불,단:그래서 책을 썼다. 책에서만큼은 ‘우리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터놓고 싶었다. 우리의 공통점은 여성, 20대 중반, 같은 대학과 전공, 자매가 있다는 정도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의 차이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20대 여성으로서 겹치는 경험은 무척 많았다. 살아온 환경, 살아온 방법, 살아온 시간이 달라도,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연대는 시작된다.

이수정 범죄심리학자를 비롯해 작가, 국회의원, 기자, 영화감독 등 여성 25명의 추천사를 받았다. 

불: 최종 원고를 보고 있을 때, 편집자님이 힘내라고 글을 보내 주셨다. 너무 울컥했다. 한분 한분 써주신 글들을 읽는데, 모두 연대의 마음, 정성이 담겨 있었다.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글들이 많아서 두 시간 정도는 그 감성에 젖어 있었다. N번방을 추적할 때,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을 목격했음에도 바로 도움을 주지 못해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이 책으로 인해 우리의 연대를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추적단 불꽃>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운영하고 있다. 

불: 잘못된 정보들이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바로잡고 싶었다. 한번은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는데 사실 관계가 달라서 경찰이 수사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일도 있었다. 우리가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책임감 때문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피해자가 일탈계 등을 통해 성착취 빌미를 제공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완벽한 피해자일 때만 보호하겠다는 사회 인식을 바꿔야 한다. 피해자가 지금까지 사회에 쉽게 나갈 수 없었던 건 바로 이런 인식 때문이다. 대국민적인 인식 전환이 있어야 성범죄는 줄어들 수 있다. 

개인 후원을 하고 싶어 하는 구독자들도 많다.

단: 개인 후원을 받으면 본격적인 액션을 취해야 하는데, 유튜브에 매진을 할 순 없는 상황이라 감사한 마음이지만 거절하고 있다. 우리가 해왔던 활동이 돈이 크게 필요한 일은 아니고, 지금 하는 일로도 조금 벅차기도 하다. 마음만으로도 무척 감사하다.

불법 영상물과 관련한 자료를 채집할 때, 노하우가 있을까?

불:텔레그램 대화의 경우 짧은 시간에 많은 글이 오가니까 화면 녹화를 하는 것이 좋다. 또한 날짜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까 미리미리 정리해놓는 것이 좋고, 채증을 하고 보관을 하고 있으면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바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제재해달라고 신고하는 것이 좋다. 

공모전 준비를 하다가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하고 책까지 내게 되었다. 무척 의미 있는 일이지만 개인으로서는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6개월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불: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사회에 취약한 면, 악의 뿌리를 봐서 그것들이 트라우마가 되었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변화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더 우선이었으니까, 장점이 훨씬 크다. 앞으로 언론사에 들어가 기자 활동을 할지, 다른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개인으로서도 언제나 연대하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단:책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취업 준비생이다 보니 어려운 마음이 많았다. 취업은 경쟁이니까,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는데, 오히려 N번방을 추적하면서 이 사건에만 매몰되어 있어서 일상과의 경계가 허물어진 느낌이 들었다. 이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책을 쓸 수 있었고, 책을 쓰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지만, 나중에 이 책을 보면 어떤 성장으로 읽힐 것 같다. 




“그거 범죄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 현장’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어떤 이야기를 강조하나?

: 피해자를 상담할 때, “왜 일탈계(일부 청소년들이 자유분방한 내용의 사진과 글을 올리는 별도의 SNS 계정)를 했니?”라는 질문은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말한다. 일탈계를 해서 피해를 입은 거라고 피해자를 탓하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모두 고유하다. 상황이 다 다른데, 몇몇의 예를 들어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일탈계를 했다는 등의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한다. 피해자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희생양이 되었는지, 우리는 더욱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기자의 꿈은 유효한가?

: 나는 신문기자를 꿈꿨고 불은 특파원을 꿈꿨다. N번방 사건을 취재하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언론사 기자가 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은데, 힘들게 들어가서 원하는 기사를 쓰지 못하고 조직이 원하는 기사를 쓰면 너무 힘들 것 같다. 독립 언론에서 일한다고 해도 쉽지는 않을 것이고, 우선 주어진 일을 하면서 더 고민해보려고 한다. 



시민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단:예를 들어 성매매 반대 캠페인을 하고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중요한 건 인권 침해인데, 대단한 일만 침해가 아니다. 단체 톡방에서 누군가 불법영상물을 올리거나 다른 사람의 사진을 공유하는 등의 일을 하면 “이거 범죄다”라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너무 정색하면서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반응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너 이렇게 말하면 신고한다”는 말은 지인 사이에 하기 힘든 말이다. 그래서 캠페인이 있어야 한다.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불:아직까지 해외 기반 성인 사이트를 통해 많은 피해 영상들이 유포되고 있다. 이런 사이트를 보게 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센터에 신고를 꼭 해줬으면 좋겠다. 

단: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피해자와 연대하고 가해자 엄벌 메시지를 일상 곳곳에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를 추진한 단체 <프로젝트 리셋>의 경우 다양한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에 동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프로젝트 리셋>은 피해자와 연대하고 가해자의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과 해시태그를 포스트잇에 적어 공공장소에 붙인 후, SNS에 올리는 릴레이 서명 운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 위원회에서는 언론 기사 제보하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피해를 특정하거나, 가해자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기사를 항의하고 있다. 그리고 관련 재판 방청 연대도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되시는 분은 참석할 수 있고, 시민들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보낼 수 있다. 

불,단: 다시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일상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반드시 해서는 안 될 일이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영상을 희회화하고 사소화하는 사람들, 영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그거 범죄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추적단 불꽃 저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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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장기하 “제가 책 써도 상관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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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


술술 읽혔다. 걸려 넘어질만한 돌부리가 없었다. 리듬이 있었다. 경쾌하고 기분 좋은 운율. 적당히 가느다란 소면을 후루룩 넘기는 기분이랄까? 가수 장기하의 첫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은 소감이다. 책을 좋아하지만 ‘잘’ 읽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장기하는 ‘책’을 쓰기로 했다.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토로할 마음은 애당초 없었다. 무심코 지나치긴 아쉬운 어떤 마음, 감정, 생각을 기록했을 뿐이다. 장기하에게 “평소 어떤 사람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담백한 사람, 자격지심이 없고 군더더기가 없는 사람,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혹시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닌가? 되묻고 싶을 정도로 비슷하게 읽혔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도 써도 되는 책 

기분이 좋아 보여요. (웃음) 

생각했던 것보다 책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놀랍고 기쁜 나날이거든요. 마음 한켠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요. “들뜨지 마라, 나대지 마라.” 그럼 또 반대편에선 “뭐 한 며칠 들떠도 상관없는 거 아니냐? 뭘 그리 빡빡하게 구냐?” 이래요. (웃음) 앨범에 대해서도, “책 냈으니까 이제 얼른 노래 만들어야지 뭐하고 있냐” 하는 소리가 마음 속에서 들리다가도, “책 낸 김에 사람들도 좀 만나고 좀 쉬엄쉬엄 해도 되는 거 아니냐?” 해요.

출판사에 먼저 책을 제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작년 봄쯤인가 책을 써보고 싶더라고요. 전에도 제안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땐 책을 낼 생각이 전혀 없어서 다 거절했었죠. 어느 출판사에 연락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동네 친구인 가수 오지은 씨한테 조언을 구했어요. 다행히 출판사에서도 반겨주셨고요.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동기가 있었나요?

특정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일단 제가 10년 동안 밴드를 했고 작년 초부터 조금 쉬면서 여행을 다녔거든요. 그동안 듣지 않았던 장르의 음악도 듣고, 최대한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딴청을 피우는 와중에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말이 굉장히 느려서 그런지, 대화를 하다 보면 답답한 거예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데 표현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단순히 이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원래는 ‘나 따위가 무슨 책을 쓰냐?’, ‘내가 하는 잡생각이 책으로 출간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았는데, 그러다가도 ‘꼭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책을 써도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죠. 대단하다는 의미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요.

저라는 사람이 40년 가까이 살면서 어떤 형태를 갖추게 됐는데, 그게 부족하든 아니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장기하

 

작년 봄에 결심하고 올해 여름에 책이 나온 거면, 원고를 꽤 빨리 쓰셨네요.

제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계약을 한 다음이에요.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귀찮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계약한 뒤에 딱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일주일에 한 꼭지씩 글을 써서 편집자님께 드렸어요. 저는 글이 되게 안 써진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자님은 이 정도면 잘 써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피드백도 많이 받았나요?

처음에는 글이 좋다는 말만 계속 하셔서 ‘괜찮은 걸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몇 가지 예리한 코멘트를 듣고 난 다음에는 ‘글이 좋다는 말씀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생각했어요. “어떤 글은 너무 갑자기 끝나는 것 같다”, “저자를 잘 아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셔서 작업하면서 큰 신뢰를 갖게 됐죠. 

제목을 정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고요. 

맨 처음에 프롤로그를 쓰면서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가제로 정했는데요. 원고가 완성된 후에 이런저런 다른 의견도 많이 나왔어요. ‘상관없다’는 말은 꼭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상관없는, 인생의 하루’가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죠. 하지만 결국 원래대로 『상관없는 거 아닌가?』로 결정했어요. 

책을 읽는 내내 장기하와 얼굴들이 2018년에 발표한 곡 「그건 니 생각이고」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라는 가사도 떠올랐고요.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노래가 사랑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어디에도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말이잖아요. 어떤 경우에 내가 곤란한 지, “그건 네 생각이야”라고 말하고 싶은지. 그런 생각을 한창 많이 했을 때, 지은 곡이에요. 

한 독자가 장기하의 책을 읽고 “그건 니 생각이고”라고 말한다면,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답하실까요?

(웃음) 정확합니다.



장기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피하고 싶다

프롤로그 제목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인데, 첫 문장이 “나는 책을 잘 못 읽는다”로 시작돼요. 책을 쓴 사람들이 보통 “책을 잘 못 읽는다”고 말하진 않잖아요. 되게 재밌었어요. 

(웃음) 실제로 그러니까요. 저는 책 읽는 속도가 아주 느려요.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몇 줄 읽다가 딴생각에 빠지기 일쑤죠. 하지만 책 읽는 걸 좋아하긴 해요. 최근에 내린 결론이긴 한데, “책을 좋아하냐?”는 물음에는 긍정하기로 했어요. 이 결심까지 20년 정도 걸렸고요. 

어떤 글을 쓰고 싶다, 하는 기준이 있었나요?

욕심부리지 말자, 거창한 이야기하지 말자, 내가 확실히 경험하고 느낀 내 일상에 가까이 있는 것들을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거창한 이야기를 조금 해도 될 텐데요. 

관심이 없어요. 제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아요. 실제로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약해요. 뉴스를 업데이트도 잘 못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아는 편이 아니에요. 책을 쓰면서 많이 한 생각은 최대한 솔직하게 쓰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피하고 싶다는 점이었어요. 만약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된 분이 있다면 미리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추측하건대 제 삶의 방식을 어느 정도 편안하게 읽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책을 쓰면서 만족스러웠거나 즐거웠던 주제는 무엇인가요? 

노래 만들 때도 그러긴 했는데, 저는 보통 가장 최근에 쓴 게 제일 맘에 드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오늘의 나에 가장 가까운 내용이니까요. 이번 책에선 「아무래도 뾰족한 수는」이 가장 마지막에 쓴 꼭지인데, 참 마음에 들어요.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러웠던 말들을 글의 형태로 쓰는 과정에서 뭐랄까,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행복 앞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내용의 글이니 좀 역설적이기도 하죠?

요리, 음식에 관한 글도 많이 쓰셨는데 「인생 최고의 라면」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라면’을 주제로 이렇게 길게 글을 쓰실 줄이야! 

출간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쓰지 않았을 글인 것 같아요. 이번주엔 뭘 쓰지, 하면서 라면을 끓여먹던 중이었는데, 식사가 너무 만족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이런 걸 가지고도 쓸 수 있나, 하고 한번 써봤죠. 정말로 라면을 먹듯 후루룩 썼고, 읽어보니 은근히 나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다른 글들과는 좀 달리 마냥 즐겁기만 한 글쓰기였어요. 

추천사를 배두나 배우와 이슬아 작가가 쓰셨어요. 큰 응원이 됐을 것 같아요. 

뭉쿨했어요. 내가 이 멋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지지를 받고 있구나 싶어서요. 사실 배두나 씨와는 친분이 있었지만 감히 부탁할 생각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편집자님이 부탁을 해보자고 제안을 주셔서 이야기를 했더니 두말 않고 써주겠다는 거예요. 처음 버전은 책 뒷면에 실린 것보다 더 길었어요. 성심성의껏 써주셔서 정말 고마웠죠. 이슬아 씨의 경우는 제가 책을 다 쓰고 나서 『깨끗한 존경』을 읽었거든요. ‘인터뷰가 정말 좋다, 나도 이런 사람이 인터뷰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편집자님이 이슬아 작가님께 추천사를 부탁해서 수락을 받았다는 거예요. 제 인터뷰도 요청하셨다고 하고요. 물론 저도 바로 수락했죠. 과연 추천사도 인터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어요. 

최근에 김초엽 작가의 소설들을 흥미롭게 읽었다고요. 또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나요?

가장 근래에 읽은 건 『몽테뉴 수상록』이에요. 이번 책의 편집자님이 몽테뉴 평전 『위로하는 정신』을 주셨는데요. 제 책을 편집하다가 몽테뉴 생각이 났대요. 그래서 몽테뉴에게 갑자기 감정이입이 돼서 『몽테뉴 수상록』을 읽었어요. 

오디오북 작업을 꽤 많이 하셨죠? 

제 직업이 목소리로 뭔가를 표현하는 일이잖아요. 제 본업과 비슷한 결인 동시에 조금 다른 작업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배우는 것도 많아 재밌어요. 제가 오디오북 녹음을 꽤 잘해요.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저와 같이 작업하신 분들의 이야기인데요. 예상 시간을 두 시간으로 잡아 놓으면 한 시간 만에 끝난다고. 이런 칭찬을 매번 듣습니다. (웃음) 

말소리에 관심이 많나 봐요.

음악이 되기 전의 말소리에 관심이 많아요. 이 말소리를 살려서 그 안에 있는 음악성을 발견하는 일에 관심이 많고요. 오디오북의 경우, 저자가 쓴 글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느끼는 감정이 조금 다를 수 있잖아요? 그게 재밌어요. 오디오북 작업이 지금 저의 작곡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아직 발표를 한 곡은 아니지만 드문드문 영향이 있다고 느껴요.

“한국말스러움을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는 데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영어권 노래를 들으면 굉장히 영어답거든요? 노래마다 운율을 만드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왜 영어스럽지 않게 썼지? 그런 건 없어요. 영어라는 언어가 갖고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일 텐데요. 우리말은 세계적으로 그만큼의 권력을 가진 언어는 아니지만, 저는 그와는 별개로 그냥 우리말다운 가사를 만들고 싶어요. 영어권 뮤지션들이 그들의 언어를 가지고 하는 것처럼요.

책에 「싸구려 커피」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장기하와 얼굴들의 대표곡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곡이 있는데요. 

저도 쓰고 나서 놀랐어요. 다 쓰고 나니 이 노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5집까지 냈으니까 다른 노래로 예를 들 수도 있는데, 실제로 몇 개는 바꾸려는 시도를 했지만 「싸구려 커피」 아니면 안 되겠더라고요. 지금도 이 노래가 참 나다운 노래라고 생각해요. 음악이 직업이 되기 전에 만든 노래거든요. 뭔가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노래가 아니라서요. 그렇기 때문에 「싸구려 커피」보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요. 오그라드는 표현이지만, 저에게는 북극성 같은? 가장 밝은 그런 노래가 아닌가 싶어요. 

좋아하는 가사의 특징이 있나요? 어떤 가사를 쓰고 싶다거나.

쓸데없는 구절이 없는 곡이 좋아요. 괜히 멋 부리는 가사는 싫고요. 가사를 쓰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멋’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때로 감정이 과잉되기도 해요. 저는 과잉을 싫어해서 ‘할말만 하고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가사를 씁니다.

“고기를 먹었을 때는 내 위가 음식물을 상대로 이종격투기 경기를 벌이는 듯하고, 채식을 했을 때는 위가 음식물과 커플 체조를 하는 느낌(76쪽)”이라고 하셨는데, 가사와 책을 쓸 때도 비유를 해주시다면요?

(웃음) 어려운데요. 가사를 쓸 때는 스노보드를 타는 느낌이라면, 책을 쓸 때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느낌? 그 정도로 서로 비슷하고 다르지 않나 싶어요. 둘 다 딱히 타보진 않았습니다.



장기하


군더더기 없는 사람이 좋다

‘서울대학교 출신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에 관한 이야기도 책에 나와요. 솔직한 입장을 밝히셨고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학벌을 중시한다는 걸 충분히 체감했던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 입시공부를 열심히 한 타입인데,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학벌이 뭐가 중요해”라고 말하지만, 저는 제가 서울대 출신이라서 원래 가진 가치보다 더 높이 평가 받은 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만난 멋진 사람들 중에서 저처럼 입시공부를 열심히 안 한 분들도 정말 많았어요. 대학 문턱에도 가지 않은 분들도 많고요. 간혹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그냥 서로 다른 각자의 갈 길이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 모범답안만 있는 건 아니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장기하와 얼굴들로 활동할 때는 마포에 사셨죠? 파주로 이사를 온 건,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평생 서울 안에서 살았는데 밴드를 마무리하면서 주위를 환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친숙한 동네, 친한 사람들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면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어느 정도 편의성도 있고 거리감도 있는 파주로 가게 됐어요. 

최근에 <요트원정대>에 출연 중이신데 잘 어울리는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어요. 촬영은 어땠나요? 

바다에 나가 있을 때는 꽤나 힘들었어요. 원체 방송 울렁증도 있는 성격인 데다 거센 파도 위에 며칠 동안 계속 떠있다는 게 육체적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근데 지나고 보니 그 경험이 제 삶에 참 괜찮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녀와서 사람이 살짝 더 밝아지고, 살짝 더 부지런해졌어요. 확실히 삶엔 가끔씩 좀 빡센 자극이 필요한 거구나 싶어요.

평소 방송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프로그램이면 괜찮아요. 제가 방송 울렁증이 심해요. 무대에서는 괜찮고, 연기를 하는 것도 괜찮은데 리얼리티 예능은 힘들어요. 왜냐면 그건 가짜도 아니고 진짜도 아니니까요. 섭외가 왔을 때 승낙하는 기준은 ‘내가 몰입해서 경험할 수 있는 뭔가가 있는가’예요. 방송이라는 것을 잊고 몰입할 수 있어야 제작진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저도 괴롭지 않으니까요.

살면서 경계하는 일이 있나요? 

남에게 피해주지 말자죠. 거의 불가능한 목표이긴 하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줄이자, 그러면서 재밌게 살자. 그게 제 삶의 방향성이에요. 요즘 많이 생각하는 건, 싫어해야 마땅할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나랑 잘 안 맞아서 불편할 수는 있을지언정, 싫은 마음을 갖는 건 상대방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저도 가끔은 ‘아, 이 사람 정말 싫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 사람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싫어하냐? 난들 뭐 얼마나 완벽한 사람이냐?’, 이런 생각을 하곤 해요. 책에서도 드러났겠지만 저는 일신상의 편안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가수라는 직업을 갖고 살면서 제 의도와는 다르게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도 많이 경험했지만, 이제는 좀 컨트롤을 할 수 있어요. 

책을 쓰면서 인간 장기하를 더 긍정하게 되었나요? 독자로서는 그렇게 느껴졌어요.

네,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확실히 마음이 좀 더 편해졌어요.

왠지 두 번째 책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생각은 안 해봤지만 책을 쓰는 일이 재밌더라고요. 정신을 필라테스 하는 느낌이랄까요? 내 마음의 체형을 가다듬는 느낌이 들면서 앞으로도 글을 계속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이라는 게, 지금의 저를 포착한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일과 비슷한데, 조금 더 자세하게 표현한다고 할까요? 그렇게 본다면, 이번 책은 작년 이맘때부터 최근까지 1년 동안의 저를 자세히 담은 셀카예요. 몇 년 후에 다시 책을 낸다면, 또 조금 달라진 모습이 담기겠죠. 그렇게 세월이 가져다 주는 변화를 포착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해요.



상관없는 거 아닌가?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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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재범 “유튜브 과학적 지식 아닌 과학적 태도 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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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1분 과학>은 구독자 70만, 총 조회수 6천만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1등 과학 유튜브로 떠올랐다. 2016년부터 채널을 운영 중인 이재범 저자는 “과학자들, 전공자들만 알고 있기에는 과학적 지식이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1분 과학>을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저자 역시 과학자나 과학 관련 전공자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쉽고 재밌게 과학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유머와 스토리텔링, 랩을 하듯 빠르게 말하는 내레이션으로 차별화된 과학 콘텐츠를 선보인 것. 실제로 <1분 과학>의 구독자들은 “과학에 1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채널을 만난 후 좀 관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과학이 왜 중요하고 재미있는지” 일깨워주는 <1분 과학>의 이야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에피소드 14편이 책에 담겼다. 단행본 『1분 과학』은 기존 영상을 만화로 풀어냄으로써 또 다른 읽는 재미를 만들어냈다. ‘우유는 정말 좋을까?’, ‘스트레스는 나쁘기만 한 것일까?’ 같은 질문부터 ‘창백한 푸른 점 지구’와 ‘시간이 흐른다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통해 과학 지식뿐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안겨준다. 

이재범 저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에서 공부했다. 당시 우울증을 앓다가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상태가 호전되는 경험을 하게 됐고, 이후 과학의 경이로움에 빠져들었다. <1분 과학> 채널을 개설한 이후 사람들에게 과학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과학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YTN Science>의 ‘수상한 비디오 크레이지 S’, 팟캐스트 <매불쇼>와 <과장창> 등에 과학 게스트로 출연했다. 





과학은 진리를 찾는 도구

유튜브 영상이 만화에 담겼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재미가 있던데요. 어떠셨나요?

저는 되게 좋았어요. 만화로 어떻게 표현이 가능할까 걱정도 많이 됐는데 영상으로 보는 거랑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색다른 재미가 있어요. 영상을 바탕으로 만화로 재창작하다 보면 왜곡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림을 그려주신 최준석 작가님이 내용을 100% 이해하신 것 같아요. 왜곡이 하나도 없고 너무 만화스럽게 재밌게 잘 만드셨더라고요. 

처음 <1분 과학> 채널을 개설했을 때는 구독자가 별로 없었다고요. 1~2년 사이에 구독자 수가 확 늘어났나요? 

네, 엄청 는 거죠. 그때까지만 해도 10만 명 정도 됐을 거예요. 

구독자 수는 매일 확인하세요?

매일은 안 하는데 예전에 급격하게 증가할 때는 조금 확인했었어요. 그런 말이 있어요. 구독자 백 명을 만드는 것보다 백 명에서 천 명 만드는 게 더 빠르고, 백 명에서 천 명 만드는 것보다 천 명에서 만 명 만드는 게 더 빠르다고.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처음 6개월 정도는 구독자가 50명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어떤 영상이 뜬 다음에 천 명이 넘게 된 거예요. 순식간에 만 명이 넘더라고요. 운도 필요한 것 같아요. 

어제 기준으로 구독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아세요?

72만 1000명 정도인 걸로 알아요. 

유튜브 과학 채널 중에서 구독자가 제일 많다고 들었어요. 

네, 제일 많아요. 그리고 제일 처음에 시작하기도 했어요. 제가 시작할 때 유튜브에 과학 채널이 없었거든요. <YTN Science> 같은 채널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과학 채널은 하나도 없었어요. 보통 과학 채널은 과학 지식을 다루려고 하다 보니까 조금 전문적으로 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이미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보고 과학에 관심 없는 사람은 안 볼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1분 과학>은 과학 지식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과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서 과학 지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재밌게 과학을 해석하는 거죠.


 

<1분 과학>의 매력이자 차별점인 것 같아요.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든 거죠. 

맞아요. 콘셉트가 ‘1분 과학’이잖아요. 처음에는 배경음악을 깔고 랩 하듯 엄청 빠르게 말해서 2분이 넘지 않는 영상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과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지루하지 않게 생각하도록 만들자는 목표로 시작한 건데요. 과학 지식을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고 인문학적으로 다루고, 과학이 나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가르쳐주려고 한 것 같아요. 단순히 과학 지식만 알려주면 이미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안 볼 거거든요. 그건 과학 대중화에 많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과학에 관심 없는 사람도 봤을 때 재밌어야 과학 대중화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원래는 과학에 관심이 없으셨다면서요? 항우울제의 효과를 경험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셨다고요?

네, 맞아요. 저도 진짜 과학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과학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과학이 되게 멀게 느껴졌었어요. 그러다가 과학의 산물인 항우울제가 나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걸 직접적으로 느낀 거예요. ‘이게 뭐지?’ 싶어서 그때부터 항우울제를 엄청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과학이 나와 엄청 연관이 많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도 인문학적, 철학적 질문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정신적, 환경적 요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실제로는 알약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인간에게 즐거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떠오르고요. 

그래서 제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맨날 하는 것 같아요. 그게 <1분 과학> 영상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거든요.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게 궁금했어요. 나는 왜 이 세상에 있고, 이 세상은 무엇이고... 그런 본질적인 질문 있잖아요. 예전부터 궁금해 하다가 항우울제를 먹으면서 조금 더 그런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과학을 하기 위해서 과학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나’가 궁금하고 이 세상이 궁금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를 찾고 싶은데, 그걸 찾기 위해서 과학이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유튜브) 영상도 과학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것 같아요. 

같은 궁금증을 가진 구독자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이야기를 했을 때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보통 오프라인에서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못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좋아하는 친구들도 엄청 많고 아예 관심 없는 사람도 진짜 많아요. 과학 관련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눈에서 생명의 빛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더 인터넷을 사용한 이유도 있어요. 나만 이런 거에 관심 있는 것 같아서 뭔가 너무 외로우니까.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요.

지금 우리는 과학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가잖아요. 그런데도 과학 이야기는 어렵고, 관심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고, 내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알기도 힘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게 과학을 가르치시는 분들의 잘못도 조금 있는 것 같아요. 보수적이신 분들은 ‘과학은 절대 틀린 걸 말하지 않아야 되고 절대 추측성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잡혀진 틀이 있는데, 그런 걸 지키려면 딱딱하게 말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딱딱하게만 말하면 사람들이 안 듣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저 말고도 유튜브에 과학 채널이 많아지면서 그런 경향도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을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지칭하던데,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많아지면서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많아지는 것 같고 분위기가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과학 커뮤니케이터’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스스로를 유튜버로 규정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렇죠. 일단 유튜버라는 말을 듣는 게 되게 손발이 오그라들고...

왜요?

모르겠어요. 인스타그램 같은 데에서도 유명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보고 ‘인스타 스타’라고 하면 되게 부끄러워할 것 같은데, 저도 그런 느낌이에요. 유튜버라고 하면 되게 기분이 이상하고요. 저 자체도 유튜버가 되기 위해서 유튜브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과학 소통을 계속 하고 싶은 거거든요. 나중에는 과학 스탠드업 코미디도 하고 싶은데,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과학 소통을 하고 싶은 거예요. 지금은 사용하는 도구가 유튜브인 거고요. 

이번 책에 <1분 과학>의 14개 에피소드가 실려 있습니다. ‘우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신’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는데요. 의도하신 구성인가요?

제가 의도한 건 아니고 출판사에서 의도하신 것 같은데, 좋은 것 같아요. 가벼운 것에서 진지한 것으로 넘어가는 게. <1분 과학>의 성격도 그렇거든요. 진지한 내용을 다룬 영상이라도 처음에는 항상 유머로 시작해요. 그 다음에 조금씩 진지해지는데,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똑같은 내용이라도 유머가 들어가냐 안 들어가냐가 내용의 레벨을 엄청나게 다르게 하거든요. 유머의 유무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에피소드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라고 들었어요. 이번 책에도 실려 있죠. 

그건 정말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유튜브 영상의 제목에도 ‘꼭 보세요’라고 썼는데요.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제가 유튜브를 통해서 사람들한테 전하고 싶은 건 과학적 지식이 아니에요. 과학적 태도를 갖게 하고 싶은 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과학적 태도라고 생각해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빅히스토리라는 장르가 있어요. 인간의 역사를 다루는 게 아니라 우주의 역사를 다루는 건데 빅뱅에서 시작해서 원자 형성, 별의 형성, 행성의 형성 같은 우주의 역사를 다뤄요. 이걸 한 번에 볼 때 시각이 되게 달라져요. ‘우주 역사에서 나는 찰나의 순간에 살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돼요. 

공간적으로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겠죠. ‘창백한 푸른 점’을 볼 때처럼요. 

굉장히 멀리서 지구를 바라봤을 때, 말로만 들었을 때랑 사진과 영상으로 봤을 때랑 느낌이 되게 다르단 말이에요. 그렇게 공간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정말 조그만 점에 불과하다는 걸 봤을 때, 그때도 세상을 보는 시각이 굉장히 달라져요. 그러면서 태도도 달라지고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통해서 그런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게이에 대한 내용(「인류에게 동성애자가 필요했던 이유」)도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진짜 잘못된 선입견을 많이 갖고 있거든요.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동성애자 유전자가 있다는 게 밝혀진 게 아니니까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인터넷에도 아무 근거 없는 이상한 내용들이 되게 많아요. 그 시각을 많이 바꾸게 해주니까 그 에피소드도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동성애자의 특성이 공동체가 유지, 존속되는 데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면서요? 그를 뒷받침 할 과학적 연구 결과가 있고요. 

네, 그냥 사는 방식이 다른 거죠. 그게 틀린 방식이 전혀 아니니까. 

25명 중의 2명 정도의 확률로 동성애자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동성애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겠죠.

그렇죠. 절대적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거예요. 사실 게이를 비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출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난하는 거라면 출산하지 않는 이성애자들도 같이 비난해야죠. 애널 섹스를 해서 에이즈 같은 게 많이 퍼진다면, 이성애자 중에서 애널 섹스하는 사람들도 비난해야 하고요. 그러니까 게이를 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보고 나서 현자타임이 왔대요.

에피소드의 주제는 어떻게 정하시나요?

원래는 ‘이번에는 이 주제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과학책 읽고 학자들의 강연 보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그러면서 발견한 재밌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메모 해놔요. 그런 다음에 다른 책을 읽다 보면 뭔가 커넥션이 이루어질 때가 있어요. 수직적으로 작업하는 게 아니라 수평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여러 주제를 조금씩 나눠서 준비하다가 먼저 완성되는 것부터 하는 거예요. ‘이 주제로 해야지’ 하고 공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영상 한 편을 만드는 데 더 오래 걸렸어요.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은 조금 자세가 달라지면서 조금 수직적으로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까지 아주 많은 양의 자료를 보실 것 같아요.

네. 하다 보면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건지, 논문을 쓰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틀릴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방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하는 거죠. 방대한 자료를 볼수록 밀도 높은 좋은 내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고요. 그리고 스스로도 궁금해서 많이 찾아보는 것 같아요. 

한동안 유튜브 뒷광고 논란이 있었죠. <1분 과학>은 최근에야 광고를 받기 시작했더라고요.

네, 원래는 하나도 안 받았었어요. 

처음 채널을 개설할 때부터 유튜브로 돈을 벌 생각은 없으셨던 거예요?

아뇨, 돈 벌 생각이 있었는데 돈을 많이 벌 생각이 다른 사람보다 적었던 것 같아요. 광고를 받지 않아도 나는 유튜브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생각한 건 구독자 수, 뷰(view) 수가 어느 정도 됐을 때였나요?

유튜브에서 구독자 수 10만 명을 기준으로 잡더라고요. 10만 명 정도 되면 일주일에 영상 몇 개만 올려도 수익이 잘 나오니까요. 그런데 저는 70만 명이 넘는데 일주일에 몇 개는커녕 한 달에 한 개도 안 올린 적이 있으니까 수익이 적었어요. 그래도 구독자가 많으니까 어느 정도 수익이 나서 괜찮았는데요.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이 많이 바뀌면서 이제는 조회수로 먹고 살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광고를 받기 시작했어요. 예전에 광고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광고를 받아서 그 내용으로 영상을 만들면 일단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또 하다 보면 일이 될 것 같았고요. 저는 일하기 싫은데(웃음). 일이 될 것 같으면 하기 싫어서 광고를 안 했었어요. 



과학에 대해 더 알게 된 후에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엄청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내가 아는 게 다야’라고 생각하고 세상을 보고 함부로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과학을 알면 알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 내가 아는 게 정말 엄청 적어서 다 모른다고 봐도 될 정도라고 생각돼요. 과학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더 호기심 있게 보고, 함부로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아를 막 내세우는 게 없어진 것 같아요. 자아가 너무 강하면 세상을 왜곡적인 시선으로 보게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과학을 하게 되면서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자아가 강해져서 내가 틀린 건데도 안 틀린 것처럼 보는 경우들이. 

앞서 말씀하셨듯이, 과학적 태도라는 건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할 수 있고 모를 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네. 그럴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메타인지적으로 자아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그러려면 자아가 강하면 안 돼요. <1분 과학>의 댓글 중에 ‘보고 나서 현자타임 와요’라는 반응이 많아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도 그렇고요. 일부러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현자타임이 와야 나를 다시 보게 되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되면서 세상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자타임이 오면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이지?’ 하면서 멘붕에 빠지는데, 그 기간을 거치고 잘 이겨내면 완전 성숙한 인간이 된단 말이에요. 제가 개인적으로 그런 경험을 해서 같은 경험을 하도록 해주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음...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 해주세요(웃음).




*이재범

한국 유튜브의 대표 과학 채널 ‘1분과학’을 운영 중인 과학 크리에이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에서 공부하던 때 우울증을 앓다가 처방받은 항우울제로 곧 상태가 호전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후 과학의 경이로움에 푹 빠져들었고, 2016년 1분과학 채널을 개설해 대중들에게 과학의 재미와 즐거움을 알리기 시작했다. 어려운 과학 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과학 전달자’가 되고자, 2020년 구독자가 70만여 명을 넘어선 1분과학 채널 운영 외에도 ‘YTN Science 수상한 비디오 크레이지 S’, 팟캐스트 ‘매불쇼’, ‘과장창’ 등 다양한 채널에 과학 게스트로 출연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1분 과학
1분 과학
이재범 저 | 최준석 그림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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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 “그림자까지 안고 갈 힘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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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인생이었다. KBS 간판 아나운서에서 여행가, 편집인, 사업가까지 앞만 보고 달렸다. 작은 일부터 인생 계획까지 철저히 설계하고 실행해야 편안함을 느꼈다는 손미나. 특유의 성실함과 계획성은 사회인으로서의 성취감을 안겨줬지만, 인간 손미나의 내면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휴가로 떠난 태국 여행에서 ‘행복하지 않다’라는 마음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그는 열심히 살아온 줄 알았는데, 사실은 열심히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는 손미나 작가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심리 에세이다.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온 후, 비로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를 만났다.

넘치는 행복감을 만끽할 줄 알았던 그 순간, 털끝만큼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들이 간혹 유체이탈을 경험했다는 증언을 하지 않던가. 바로 그렇게 마치 남의 방 안을 들여다보듯, 제삼자의 눈으로 내 무의식의 세계를 목격한 것이다. 적막함으로 가득한 그곳에는 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24쪽)




‘여행’ 이야기 아니에요 

책에 사진이 없어요. 이름도 잘 눈에 띄지 않고요. ‘손미나’라는 사람을 부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느낌인데 의도한 건가요?

일부러 다 뺐어요. 이게 열두 번째 책인데요. 그동안 낸 책 중에 반은 여행기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여전히 여행가 이미지가 강해요. 그게 나쁜 건 아니고,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마음의 변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었어요. 혹시라도 제 얼굴이 부각되면 내용을 보기도 전에 또 여행서가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손미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 선입견을 배제하고 글로써 다가가고 싶었어요. 

제목도 이전과는 달라요. 의외라는 반응이 많죠? 

놀라는 분들이 있죠. (웃음) 당차고 자유로운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책을 내서 불행하다고 하니까 당황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모습도 저고, 이 책에 쓴 모습들도 전부 내 모습이니까요. 

불행이라는 말 자체를 터부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더 놀라는 것 같아요. 

휴가로 떠난 태국 여행에서 느낀 행복하지 않다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너무 길잖아요. 그래서 불행이라고 표현한 건데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필요한 거 다 가졌는데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말하는 불행은 ‘번아웃’에 가까워요.  

이번 책을 출간하면서 또 다른 이미지에 갇히지는 않을까 하는 부담은 없었나요?

쓸 때는 전혀 없었는데 물어보는 분들이 있어서 생각해 봤어요.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완벽한 사람은 없고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는데 타인에 대해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많은 걸 가지면 걱정도 많아지고, 많이 활동하고 열정적으로 살수록 그림자가 큰 건 당연하지 않나 싶어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면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까요. 오히려 전혀 그런 게 없다는 게 가식이고 거짓 아닐까요? 아니 그렇다기보다 두려워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나는 어떻게 그런 두려움이 없었을까?’하고 생각해보면 이번 치유 여정에서 상담과 글쓰기를 하면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와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쓰면서 완전히 빠져나온 건가요?

태국에서 구루(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교육자)를 만나고 글을 쓰기 전에는 힘들어도 다른 사람한테 잘 이야기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거나 부각될까 봐 무서워서요. 공과 사를 구별하고, 나를 되도록 보여주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바뀐 거죠. 계속 어두운 터널에 있었다면 이 세상이 다 어둡고 두려웠을 텐데 터널 밖으로 나오니까 찬란한 햇빛이 비치잖아요. 그러니까 그 어둠이 그림자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아, 여전히 어두움은 있지만 내가 달라진 거군요. 

그림자까지 끌어안고 갈 힘이 생긴 거죠. 예전에 알았다고 믿었는데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아니었다고 생각되는 게 하나 있는데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정말 사랑하지 못했더라고요. 이제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고 할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이런 모습도 나고, 저런 모습도 나라는 생각으로요. 

이번 치유 여정의 가장 큰 수확이네요.

그렇죠. 그리고 이제 나이도 먹고 사람도 많이 만나서 여러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것 같아요. 아무리 잘나고 화려하고, 멋있고, 강한 사람도 이면이 있고 여러 자아가 있다는 걸요. 아주 멋있는 사람을 봐도 그만한 크기의 힘든 점이 있다는 게 보이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아요.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태도가 생긴 것 같아요.  




차분하고 다정한 사람이 좋아요

이번 책이 나오고 나서 괜찮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요. 

옛날 같으면 발끈했을 것 같아요. ‘제가 어때서요?’ 또는 ‘괜찮은데요?’ 하고요. 이것도 두려움이거든요. 내가 남한테 어떻게 보일까 하는 두려움이요. 책에 요가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잘 따라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웃을까 봐 걱정하는 일화를 썼잖아요. 그때 정말 큰 깨달음이 있었어요. 이런 과정을 겪어서 그런지 저런 말들이 저를 타격하지 않아요. “괜찮아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오늘 조금 우울해요”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도 너무 놀라운데요. 그런 힘이 생겼어요. 

항상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 불행해지는 아이러니가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막상 행복을 이야기하면 또 사치라고 해요.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용기는 없고요. 설문 조사하면 대한민국 10명 중 7명이 불행하다고 답하는 일이 생기는 거죠.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들이 굉장히 비밀이 많아요. 비밀이 많으면 행복할 수가 없거든요. 코스타리카는 경제 지수가 낮은데 행복 지수가 높대요. 그렇다고 우리가 행복 지수를 이야기할 때 흔히 말하는 방글라데시처럼 모두 가난해서 비교 대상이 없느냐? 그런 것도 아니에요. 잘 살아요. 그러면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가 뭔가 해서 봤더니 한국과 조건이 거의 반대예요. 

어떤 조건들이요?

일단 인구 밀도가 낮고요. 우기가 있지만 1년 내내 한국의 가을 날씨예요. 중립국이라 정치적 대립이 없어서 군대도 안 가고요. 사회적 긴장이 낮고 국민적 트라우마도 없는 거예요. 여기서 절약된 비용이 복지와 교육에 쓰이는 거죠.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먹고사는 데 문제없는 환경이 되고 그러니까 경쟁이 심하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우리가 생각했을 때 치부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다 해요. 처음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집주인이 주책인 줄 알았는데 그분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 물론 이게 다 좋다는 건 아닌데요. 우리하고 참 다르잖아요. 우리는 ‘이거 말하지 마’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약점이 될까 봐 그럴 때가 많죠.

공포가 있는 거예요. 긴장을 풀어도 될 것 같아요. 결국에는 사는 일이 다 비슷해서 어떤 게 더 좋다고 하기가 어렵고 자기 몫의 행복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물론 이론은 쉽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외부 세계에 있는 것들을 컨트롤할 수 없다면 내 안의 관점과 내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훈련은 할 수 있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주변과의 관계가 탄탄해야 할 것 같아요. 이를 위해서 특별히 노력하는 게 있나요?

맞아요. 스페인 친구들을 보면 어렸을 때 친구랑 거의 평생을 만나더라고요. 물론 우리 사회에서는 쉽지 않죠.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 소홀하기 쉬운 것 같아요. 네트워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데 그보다 가족처럼 나의 영원한 지지자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요. 예전에는 저한테 서운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소홀해서요?

네.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 와서야 ‘아, 내가 예전에 저랬구나’ 싶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우선순위를 두고 힘들었을 때 함께 해줬던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해요. 아무리 바빠도요. 예전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는데 흥미로운 일이 생기면 일이 먼저였거든요. 이제는 반대가 됐어요. 그리고 누군가와 시간을 보낼 때는 멀티태스킹을 금하고 디지털 디톡스를 하려고 하죠. 

특별히 멀티태스킹을 금하는 이유는요?

누구보다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이 저였어요. 그게 자랑인 줄 알았는데 그만큼 자신을 괴롭히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았던 거죠. 그리고 멀티태스킹 하면서 그쪽에 에너지를 다 소비하니까 다른 데에 세심하게 에너지를 쓸 수 없고, 제 마음을 돌볼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일단 멀티태스킹 하면 현재에 대한 퀄리티가 떨어져요.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는 거죠. 그래서 가족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 보낼 때 무조건 전화 꺼요. 주말에 누가 일 관련 문의하면 답변 잘 안 하고요. 자기만의 룰을 정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식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어려워한다고요.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과 어려워하는 유형의 사람이 있나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화려하고 강하고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일로 만난 관계에서는 그런 편인데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너무 에너지가 많고 저돌적인 사람들을 힘들어해요. 차분한 사람과 잘 맞고요. 그런데 안 그럴 것 같다면서요? (웃음) 

그렇다기보다 차분한 사람을 좋아할 줄은 몰랐어요. 재미없어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유머 감각은 매우 중요한데요. 어떤 일을 할 때 속도가 너무 빠른 사람과는 관계 맺기 힘들더라고요. 아니면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사람도 어렵고요.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사람들하고 속닥속닥하는 걸 좋아해요. 




행복은 마음, 정신, 몸의 균형을 이루는 것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어떤 점 때문에 가장 힘들었던 것 같나요?

결국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그 두려움의 원천은 지나친 책임감이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성숙한 어린이였어요. 맏이라고 집에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맏며느리이셨고 할머니가 오래 편찮으셨는데 사촌 중에 제가 제일 나이가 많았거든요. 중간에 엄마도 돕고 할머니고 도우려면 내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들이 저를 기특해했어요. 

애어른이었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강박이나 부담을 느낀 어린이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이답게 놀아야 하는데 다른 애들 술래잡기하고 놀 때 할머니 옆에서 책 읽어 드리고 그랬대요. 초등학교 때 반에 소아마비랑 지적장애가 같이 있는 친구가 있었어요. 반 친구들이 그 아이를 다 피했거든요. 근데 제가 단짝 하겠다고 자원해서 팔짱 끼고 같이 등하교하고 노트 필기해주고 그랬어요. 초등학교 1~2학년 때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게 있었는데 아나운서도 부담스러운 직업이잖아요. 그리고 저는 당시에 골든벨 진행하면서 큰 사랑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 받은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태국에서 만난 구루 ‘루드라’와의 상담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요. 같이 상담받는 기분이었어요. 

읽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과감히 모든 이야기를 오픈했어요. 정말 좋지 않나요? 

정신, 마음, 몸이 균형을 잘 이뤄야 한다고요.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하고 있나요?

처음에 어떻게 했는지부터 말씀드리고 싶어요. 너무 오랫동안 마음을 돌보지 않아서 마음이 묵비권을 행사했어요. 정작 사람들한테 가슴의 소리를 들으라고 강의하고 다닐 때는 몰랐죠. 말만 했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은 적은 없는 거예요.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 상태에 있는데 루드라가 마음에 말을 걸라고 숙제를 내준 거군요.

그러니까요. 마음이 얘기를 안 할 수밖에요.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버킷리스트로 시작했는데요. 버킷리스트가 없거나 그걸 당장 실천할 수 없는 분들은 그냥 자기 마음하고 대화를 나누면 돼요. 마음하고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각자 다를 텐데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사진을 찍거나 일기를 쓸 수도 있어요. 계속 걸을 수도 있고요. 저는 일기를 썼어요. 일기 쓰기는 저에게 가장 편한 메디테이션이에요. 어느 날 보니까 불행했던 시간 동안에는 글쓰기도 멈춰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팬데믹이 기회예요. 친구도 못 만나고 괴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와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명상은 어떻게 하나요?

명상을 어렵게 생각하지만 쉬워요. 침대에 누워서도 할 수 있고요. 편한 자세로 눈을 감고 몸을 느끼는 거예요. ‘오늘은 뭘 해야지’, ‘왜 이런 생각이 들지?’가 아니고 ‘햇살이 좋구나’, ;이런 소리가 들리는구나’하고 느끼는 거죠. 처음에는 이런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데 하다 보면 달려 나가는 정신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마음을 들여다보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하는 것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저처럼 춤을 좋아한다면 그냥 음악 틀어놓고 추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예전에는 정신이 춤추고 싶다는 마음을 가로채서 학원을 등록하고 수업을 들으면서 일로 만들어 버렸어요. 정신이 저를 지배한 거죠. 이제는 그냥 좋아하는 걸 일주일에 한 번씩 10분만 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마음과 정신을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해서인지 표정이 밝아요. (웃음)

표정이 밝아졌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예전에 한창 힘들게 사업했을 때 찍은 사진이 있어요. 지금 보면 다른 사람 같아요. 그때도 중요한 행사라서 미용실 가서 머리하고 화장하고 준비하고 찍은 사진이거든요. 이제 보면 내가 이럴 표정일 때가 있었구나 싶은데 그때는 몰랐죠.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에 비에 행복의 정체가 모호한 것 같아요.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원하는 느낌이랄까요. 손미나 작가가 정의하는 행복은 어떤 건가요?

정말 의미 있는 질문이에요. 행복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예전에는 익사이팅한 일이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 기쁜 일이 이어지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여정을 거치고 나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경험하고 행복이라는 게 격양된 감정이 아니라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한 상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내린 결론, 새로운 정의는 그래요.

다시 찾은 행복인 건가요?

태국에서 불행하다고 느꼈던 건 마음과 정신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행복이 없었는데 이제야 찾은 게 아니고 그때도 있었는데 찾지 못했던 것뿐이죠. 무언가를 해야지 행복이 생기는 게 아니라 지금 상태에서 어떻게 내 마음의 균형을 잡을 것인가를 배우면 그대로 행복할 수 있어요.  



*손미나

前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서울 교장, 前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편집인, 前 KBS 아나운서, 손미나앤컴퍼니 대표, 여행 작가, 소설 작가. 저자는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다재다능한 여성 리더다. 2004년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서른을 앞두고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안정적인 직장에서 휴직을 감행,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전공했던 스페인어와 언론학을 공부했다.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유학생활의 경험과 여행 이야기를 담은 첫 책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출간하고,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후,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여행 작가’로 인생 제2막을 시작했다.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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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베스트셀러 대신 ‘북텐더’가 있는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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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 버텨서 ‘동네 서점의 레전드’가 되고 싶다는 사회학자 노명우. 과연 그의 꿈은 이뤄질까? 2018년 4월, 페이스북에 ‘좋아요’ 수가 500개를 돌파하면 서점을 열겠다는 글을 포스팅하고, 738개의 ‘좋아요’를 받아 5개월 후 서울 은평구 연신내의 작은 골목에 ‘니은서점’을 차린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그는 2년 전 이 서점을 열며 “지속가능한 적자를 지향한다”고 말했고 현실이 됐다.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던 ‘흑자’, 하지만 책이 단 한 권도 팔리지 않는 ‘빵권 데이’는 탄생했고 이제는 이 ‘빵권 데이’를 피하고자 손님이 없을 것 같은 날에는 직접 책을 사기도 한다.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은 노명우 교수가 캠퍼스를 벗어나 자영업의 세계로 뛰어든 과정을 담은 에세이다. 망하지 않으려고 책 파는 기술을 연마하고, SNS를 하고, 유튜브까지 하게 됐지만 커피는 팔지 않는 ‘니은서점’. 하지만 손님들에게 책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북텐더(booktender)’, 마스터 북텐더의 솔직한 감상이 적힌 ‘공유서재’가 있다. 니은서점의 문 앞에는 ‘베스트셀러는 안 파는 책장’, ‘진지한 손님들의 만남의 장’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실제로 인터넷서점 베스트셀러들은 판매하지 않는다.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의 책들을 신중하게 선별해 소개하는 ‘니은서점’은 어떻게 2년을 생존할 수 있었을까. 서점인 노명우를 니은서점에서 만났다. 




주민들이 반복적으로 책을 살 수 있는 정책

‘니은서점’을 연지 딱 2년 만에 나온 책입니다.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언제나 그렇지만 책을 쓰는 동안에는 즐겁지만 막상 책이 출간되면 불안감과 약간의 우울감을 느끼곤 합니다. 책을 쓰는 동안엔 책에 대한 반응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고 오로지 나와 원고 사이의 관계만 신경쓰면 되는데, 그 원고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면 원고가 글 쓴 사람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이죠. 책이 나오면 책을 쓰는 동안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독자들의 반응을 걱정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전 책보다 못하다고 실망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앞서는 것이죠. 이런 생각이 시작되면 저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불안감이 싹터요. 그리고 우울한 감정도 생기는데요. 이 우울함은 불안감이 생기는 이유와는 조금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책을 쓰는 동안은 오로지 책의 출간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만 열심히 뛰었는데, 책이 출간되면 갑자기 뛰어가야 하는 목표점이 사라진 느낌이거든요. 갑자기 목표를 상실한 느낌 때문에 보통 저는 책이 나오고 나면 한동안은 살짝 우울합니다. 이 우울함에 대해서는 한 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는데,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출간 이후엔 그 어떤 때보다 강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책이 쓰인 배경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엔 제가 2년 동안 가장 몰입했던 서점을 만들고 가꾸어가는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우울하네요. 

책이 ‘빵권 데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이 단 한 권도 안 팔리는 날을 지칭하는 이야기인데요. 요즘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빵권 데이’에 대한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다들 ‘빵권 데이’라는 표현을 재미있어 하시더라고요. 1년 차엔 ‘빵권 데이’가 정말 많았습니다. 점차 ‘빵권 데이’는 줄어드는 추세였어요. ‘빵권 데이’가 줄어든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서점의 단골손님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빵권 데이’의 위험이 줄어든 것이고요, 두 번째는 ’빵권 데이’를 적지 않게 겪고 난 후에 아주 자연스럽게 ‘빵권 데이’에 대한 이른바 ‘촉’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가 아주 심한 날, 비가 많이 오는 날, 혹은 날씨가 너무 좋은 날. ’빵권 데이’에 대한 ‘촉’이 발동하죠. 그러면 제가 책을 사버립니다. ‘빵권 데이’에 대한 두려움을 제가 책을 사는 것으로 막는 거죠.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의 목표 판매 부수가 1만 권이라고 책이 밝히셨어요. 그래도 스테디셀러를 집필한 저자로서, 조금 약한 기대 아닐까요? 

서점을 하기 전까지는 책을 판매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서점을 하면서부터 책 판매에 대한 목표가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쪼그라들었어요. “1만 권이 팔리면 좋겠지만 그건 언감생심”이라고 썼던 건 저의 겸손함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을 고백한 거예요. 물론 1만 권 팔아서 인세 1,500만 원이 생기면 서점 2년치 월세를 충당할 수 있으니 정말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은 있죠. 그렇지만 간절함과 실제 달성 가능한 목표 사이에는 늘 차이가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1만 권이 팔리면 좋겠지만 그건 언감생심”이라고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책 팔아서 월세에 보탬이 되고 싶기에 책 판매에 대한 절실함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자신감은 줄었어요. 

2년 동안 서점 주변의 핫도그 가게, 반찬 가게, 통닭집이 차례로 없어졌는데 ‘니은서점’만 살아남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월세가 안 올라서 일까요? 애초에 큰 매출 기대는 없어서일까요? 

저의 다른 수입으로 서점의 적자를 메꾸는 방식으로 운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서점 주변 골목에서 2년 사이에 거의 모든 가게가 바뀌었어요. 책으로만 알았던 위기의 영세 자영업의 생생한 현장을 목격한 셈이죠. 저는 그래도 월급, 인세, 강연 수입 등을 서점 적자를 메꾸는 데 사용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점 적자를 메꾸는데 가장 기여를 많이 한 제 수입이 강연 수입인데요.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모든 강연이 취소되면서 2020년 봄 이후로는 강연 수입으로 서점의 적자를 메꾸는 방식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죠. 

서점에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출근하나요? 

특별한 외부 일정이 없으면 서점으로 갑니다. 일요일엔 거의 항상 있는 편이죠. 주중은 제 일정에 따라 다릅니다. 코로나 이전엔 외부 강연 수입으로 서점 적자를 메꾸는 방법으로 유지해왔기에 외부 강연 요청이 있는 날은 제가 서점에 있지 못하고 서점 월세를 벌러 외부로 가기 때문이에요. 외부 강연이 있는 날, 그날의 당번인 북텐더에게 이렇게 말하곤 하지요. “서점 월세 벌러 000에 갔다 올게요”라고요. 

니은서점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모두 10% 할인 가격으로 판매됩니다. 이 정책은 계속 유지할 생각이신가요? 책을 할인 판매하는 동네서점은 많지 않은데, 다른 서점들로부터 질타 어린 시선을 받아본 적은 없나요?

질타보다는 걱정 어린 시선을 많이 받았습니다. 책 한권을 판매해서 실현할 수 있는 이윤의 폭이 얼마나 작은지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그 어느 분들보다 더 잘 알고 계시니까요. 그래서 독립서점, 작은 서점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간절한 소원이 완전도서정가제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할인 정책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행 도서정가제 범위 내에서 가능한 10%의 할인 정책을 채택한 가장 큰 이유는 지역 주민들 때문입니다. 책을 많이 사시는 분들에게 10% 할인은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기에 지역 주민들이 반복적으로 책을 구매하실 수 있도록 하려면 가격 경쟁력이 필수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물론 할인 정책을 도입하는 서점도 있고 아닌 서점도 있기 때문에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뭔가 갈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갈등보다 오히려 완전 도서정가제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대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세대 간 경험의 차이가 있는 서점

90년대생 북텐더들이 있습니다. 니은서점의 큰 장점인데요. 자랑을 해주신다면? 

90년대생 북텐더들은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채는 감각이 있어요. 저는 60년대생이고 나이 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을 관찰할 때 제 눈에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가 자연인으로써 갖고 있는 관심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 눈에 유독 잘 포착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제가 놓치고 있는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되는데요, 그걸 니은서점의 90년대생 북텐더들이 제어해주고 있습니다. 

니은서점의 90년대생 북텐더들은 60년대생인 제가 생물학적인 연령 탓으로 둔감해졌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이슈와 변화를 그들만의 감각으로 포착해내는 ‘감각’이 뛰어납니다. 30여 년의 세월 차이가 니은서점의 북텐더에 스며들어 있는 것인데요. 저는 이 점이 니은서점의 가장 큰 장점이나 특이점이 아닐까 싶어요. 세대 간 경험의 차이, 관점의 차이, 감각의 차이가 교차하는 공간, 세대 간 교차를 통해 만들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니은서점이 정말 내세울 수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건 제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90년대생 북텐더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90년대생 북텐더가 없었다면 니은서점 고유의 분위기도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책 입고는 북텐더들과 함께 결정하나요?

각 북텐더는 입고할 책을 선정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니은서점만의 고유한 정체성 유지를 위해서 입고할 책을 추천할 자격은 모든 북텐더에게 있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합의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각 북텐더가 입고할 책을 추천할 때 지켜지기를 기대하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소문이나 외부의 평이 아니라 북텐더가 직접 읽고 추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추천하자는 원칙입니다. 

제가 알고 있지 못했고 읽지 않았기에 입고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인 경우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입고를 추천하는 북텐더가 소문이 아니라 자신의 독서를 통해 판단한 경우라면 북텐더를 신뢰하고 입고를 결정합니다. 물론 북텐더가 입고를 희망하는데 제가 읽었고 니은서점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린 경우라면 저는 분명히 반대의사를 밝힙니다. 

‘하이엔드 북토크’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초대하는 저자를 선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선별’이라기보다 상호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읽고 난 후에 “아 이 분은 모셔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면 북토크를 타진합니다. 그런데, 니은서점은 북토크를 별도의 참가비를 받지 않고 진행하기 때문에 작가님에게 별도의 수고료를 드리지 못해요. 그리고 니은서점에서 북토크를 했다고 해서 그 책이 수백 권, 수천 권 팔릴 수 있는 나비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는 편이에요. 제가 모시고 싶은 작가님에게 이런 사정을 말씀 드립니다. 처음엔 니은서점이 선택했지만 그 다음엔 작가님이 니은서점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해주셔야 북토크가 성사됩니다. 


(왼쪽부터) 노명우 마스터 북텐더와 이동근 북텐터


북토크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고 들었습니다.

니은서점의 북토크의 장점은 작은 서점 공간이라는 공간적 제약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 역설입니다. 굉장한 몰입감이 생깁니다. 작가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지요. 저도 책을 출간하고 대형 행사를 하면 집에 돌아갈 때 약간 쓸쓸하기도 해요. 독자를 만났다는 느낌보다 쇼를 하고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서예요. 독자를 만났다기보다 독자에게 나를 보여줬다는 느낌, 역으로 독자는 작가를 만났다는 느낌보다 구경했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그런데 니은서점의 북토크는 공간이 작기에 몰입감을 주고 그 몰입감은 독자는 작가를 구경한게 아니라 만났다는 느낌, 작가 역시 독자 앞에서 쇼를 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독자를 실제로 만났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생기는 만족감 그건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함인데요, 니은서점의 북토크를 선택해주셨던 작가님들은 대부분 북토크가 끝나고 나면 그 어떤 북토크보다 가장 만족스러웠다고 말씀해주시고 다음에 책이 또 나오면 니은서점에 기꺼이 와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서점을 열기까지 제자들의 도움도 많았습니다. 항상 책에서 제자들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던 걸로기억하는데요. 제자와 가깝게 지내는 교수들이 흔치 않은데, 비결이 있나요?

글쎄요. 비결이라기보다 천성인 것 같습니다. 권위를 부리는 사람 즐기는 사람을 제가 아주 싫어하고, 싫어하다보니 저도 그런 사람이 절대 되지 않으려고 하지요. 권위를 억지로 지키려고 하거나 고집하지 않는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위 차이, 나이 차이는 참고 자료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니은서점을 10년 이상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어요. 2021년 월 순수익 목표는 얼마인가요? 또는 매출 목표가 있다면요? 

현재의 상황에서는 2021년 목표를 설정할 수가 없습니다. 목표 설정을 무의미하게 하는 두 가지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첫 번째 불확실성은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불확실성은 도서정가제의 향방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21년 목표를 설정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니은서점 운영 2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는 무엇인가요? 

몇 권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니은서점을 낳은 책 『인생극장』입니다. 니은서점을 만든 자금은 『인생극장』의 인세, 그리고 강연 수입 또한 『인생극장』으로 받은 전숙희 문학상의 상금 2천만 원이었거든요. 『김지은입니다』 역시 빼 놓을 수 없는 니은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의 하나입니다. 북텐더 추천세트로 추천했던 『민주주의는 없다』 역시 북텐더들도 매우 놀라는 판매 반응이 있었던 책입니다. 

서점에 오는 사람들이 꼭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서점은 상점입니다. 서점은 도서관이 아니지요. 서점에 전시된 책은 판매용입니다. 책을 함부로 보시면 판매할 수 없게 되요. 책을 조심스럽게 다뤄주세요. 서점에 오시는 분은 고요함을 좋아하십니다. 너무 큰 소리로 나누는 대화는 다른 분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나누어야 가치가 생긴다

사회학자로서 니은서점을 운영해서 얻는 이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를 물고기에 비유하면 사회는 사회학자가 떠날 수 없는 물과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서점 앞을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 서점 앞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 “싱싱한 생선이 왔어요”를 외치는 트럭 생선장사의 목소리, 싸우는 소리, 술에 취해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 제가 서점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 생생한 현장을 보고 느낄 수 있었겠어요.

누군가 니은서점에 지속적인 투자금을 댄다면, 꼭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특정 책이 지지하는 삶의 가치는 그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질 때 힘을 얻을 수 있고 비로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책에서 남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을 발견했을 때 그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합니다. 물론 선물하는 대상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에 국한됩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 책을 선물하고, 책 선물을 통해 내가 지지하는 가치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니까요. 

<경향신문>에 이태리의 나폴리 카페에서 시작된 소스페소라는 제도를 칼럼에 쓴 적이 있습니다.이 방식을 책에 적용하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소스페소란 카페에 온 손님이 누군지 모르는 다음 사람을 위해 미리 커피 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수증을 카페에 남겨두고 갑니다. 후에 그 카페에 들린 사람은 만약 돈이 부족하다면 자신이 커피값을 지불하는 대신 어떤 사람이 먼저 지불하고 남겨둔 커피 영수증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제도입니다. 

멋진 제도군요. 

아주 많은 투자금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투자금보다는 오히려 이 프로젝트는 책을 통한 가치의 확산이 필요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프로젝트라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몇 사람이 모이면 투자금이 없어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희망사항이 있다면요?

지속적인 투자금이 만약 생긴다면 니은서점의 공유서재를 공간적으로 실현하고 싶습니다. 지식은 나누어야 가치가 생긴다는 니은서점의 모토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제가 갖고 있는 책은 1만권은 넘는 것 같은데 그 책은 학교, 집 그리고 니은서점에 공유서재로 분산되어 있습니다. 그 책을 모두 한 곳에 모으면 꽤나 괜찮은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문 서재가 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지속적인 투자금이 생긴다면 창작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문 서가가 있는 서재를 만들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죠. 그렇다 보니 카페를 떠도는 카공족이 이 도시 곳곳에 있는게 아닐까 싶은데요, 니은서점과 나란히 니은서재를 만들어서 니은서재가 자신만의 서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농담처럼 책에 로또가 당첨되는 백일몽을 꾼다고 썼는데, 지속적인 투자금이 생긴다면 로또 당첨이 안되어도 백일몽이 실현될 수 있겠지요.  

의외의 독자에게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을 추천한다면, 어떤 독자가 꼭 읽으면 좋을까요?

물론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분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혼자 막연하게 생각했던 부제가 “익명의 독서 중독자에게 마스터 북텐더가 보내는 편지”였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책을 전혀 안 읽던 분들에게도 뭔가 독서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는 친근한 책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서술체가 아니라 이야기체로 책을 쓴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책 따위는 읽지 않아?!”라고 강력한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과 제가 마주한 상황, 그 분에게 제가 자랐고 거주하고 있는 독서의 세계를 소개한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 책을 썼어요. 그 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의외의 독자, 바로 그런 분입니다. 책을 싫어하는 분이요. 

사회학자로서 요즘 대한민국의 많은 현상 중에 가장 눈여겨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회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부족주의’ 현상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정 집단 내에서만 수용되고 유통되는 진리, 진리가 보편성을 상실하고 부족 간 옳고 그름을 판단으로 사용되는 현상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뼈아픈 현실이고 코로나19로 인해 더 가속화되고 있는 사회 불평등 현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에 관해서는 책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후속작도 궁금합니다.

올해 안에 마틴 제이의 『계몽의 변증법』 번역판이 나올 예정입니다. 번역 이외에 11월에 또 다른 단독 저서가 출간될 예정인데요, 예술-인간의 도시 여행이 주제입니다. 준비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들어갔고 쓰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무엇보다도 블록 버스터급 제작비(여행 경비)가 들어간 책입니다. 20대 후반에 처음 유럽 여행을 했고, 젊은 시절을 독일 유학으로 세월을 보냈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 다시 젊은 시절 여행했던 유럽의 도시를 ‘예술-인간’이라는 코스모폴리탄의 관점에서 돌아본 여행기이자 예술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이자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예술사적인 시각에서 조망한 사회학 저서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 작업을 시작하게 될 텐데요. 『한 줄 사회학』이라는 사회학 입문 책,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 어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전 작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 두 작업 모두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라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됩니다. 새로운 길을 걸을 때마다 전율을 느낍니다. 




*노명우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대학교수보다는 사회학자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캠퍼스에 갇혀 있는 교수보다는 평범한 삶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대리하는 헤르메스이고 싶기 때문이다. 평범한 골목길에 작은 서점을 차렸고 책상도 옮겼다. 서점 안에서 저는 사회학자인 동시에 책을 매개로 세상 사람과 만나고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북텐더이다.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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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금희 “읽고 나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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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기만 할 줄 알았던 제주가 문득 애틋하게 느껴졌다. 소설가 김금희의 두 번째 장편 『복자에게』를 읽고 든 생각이다. 제주 ‘고고리섬’에서 유년을 함께 보낸 주인공 이영초롱과 고복자는 사소한 이유로 우정을 등졌다가, 제주의 한 의료원 산재 사건을 계기로 성인이 되어 재회한다. 다시 이어질 것 같았던 인연의 끈은 놓쳐 버렸지만, 그럼에도 슬프지만은 않은 건 실패를 긍정하는 작가의 시선 덕분. “쓸 수 없을 듯했던 소설”이 이야기를 품은 지 2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제주 속담에 ‘속상한 일이 있으면 친정에 가느니 바다로 간다’는 말이 있다. 복자네 할망에게 들었지.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그렇게 매번 세상의 시원을 만졌다가 고개를 들고 물밖으로 나와 깊은 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 잘 되지 않겠니?’ -189쪽





복자에게, 나를 살린 소설

두 번째 장편이 출간됐어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예정된 마감들이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카페를 거의 못 나갔어요. 저는 주로 카페에서 작업을 하는 편이라 반 강제로 쉬었는데요. 쉬니까 좋더라고요. 일을 안 하니까 사람이 너무 맑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하는 거예요.(웃음) 『복자에게』를 끝내고는 한동안 계속 휴식을 취했어요. 

2018년, 제주에서 머물며 구상한 소설이라고요. 가파도 문화예술창작공간 ‘가파도 에어’에서 지냈던 걸로 알아요. 

맞아요. 오래 전부터 제주도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인터뷰 등을 통해 “다음 소설은 제주를 배경으로 쓰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는데, 가파도 에어에서 제안이 왔어요. 너무 좋아서 당장 간다고 했죠.(웃음) 3개월간 머물면서 본섬 스케치도 하고, 이야깃거리를 찾는 시간을 보냈어요.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한 건 올해 1월부터예요. 이야기를 제 안에 담고 있었던 기간은 길지만, 집필은 올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의 현재가 들어가 있는 작품이 되었어요.



올해 1월은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잖아요. 작업은 괜찮으셨어요? 

괜찮지 않았어요.(웃음) 한동안 일에 환멸이 찾아와서 힘들었죠. 심지어 그때 단편 마감도 있었거든요. 부산비엔날레에 발표한 「크리스마스에는」이라는 소설인데 제가 쓴 것 중 가장 웃긴 단편이 나왔어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나 봐요.(웃음)

『복자에게』가 나오고 나서, 저희 아빠는 “한동안 네가 글을 못 쓸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려운 일을 겪고도 작품을 완성했다는 데 안도하시는 모습이었어요. 사실 저는 이 작업이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작업하는 동안에는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으니까, 오히려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복자에게』는 저를 살린 소설이에요.

책이 출간되기 전, 오디오북으로 먼저 연재가 되었는데요. 새로운 연재 방식이 어땠나요?

오디오북 녹음은 처음이었는데, 무척 어려웠어요. 생각보다 신체적으로 많은 기능을 써야 하더라고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글을 정확하게 읽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가는게 느껴졌어요. 녹음을 마치고 나면 몸이 아플 정도로요. 또 감정의 과잉이 되어도 안 되고, 또 너무 기계적으로 읽어도 안 되잖아요. 하지만 제가 쓴 텍스트이다 보니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울컥할 때가 있는데, 그 감정을 눌러야 해서 어려웠어요. 녹음을 할 때마다 어느 정도의 감정으로 읽어야 할지 늘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소설을 소리내 읽어본 경험은 어땠을 지 궁금해요. 

사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굉장히 여러 번 고치고, 묵독을 하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가면 힘을 들이지 않고도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는데요. 독자는 처음 보는 글을 읽는 것이니까, 마치 제가 소리내서 읽는 정도의 에너지를 써서 제 글을 읽어주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제 소설의 온전한 독자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오디오북 녹음하며 반성을 많이 했어요. ‘문장을 이렇게 쓰면 안 되는구나’ 싶어서요.(웃음) 읽는 사람을 위해서는, 호흡을 그렇게까지 가져가면 안 되겠더라고요.

독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항상 라이브 방송 중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웃음) 연재가 되는 동안은 하루도 안 빼놓고 파일이 업로드되자마자 다 들었어요. 그리고 독자들이 댓글을 남겨주면 안심하고 잠들었죠. 사실 처음에는 소통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니까 못 하겠더라고요. 감상을 흐트러뜨릴 것 같아서요. 독자들이 소설의 인물들을 너무 좋아해 주시는데, 뒷장에는 슬픈 이야기도 등장하니까 마치 제가 잔인한 창조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웃음) 그래서 답글을 하나도 못 달았죠. 소설이 연재되는 중간에 독자와 소통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주,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

해녀, 의사, 판사, 간호사, 기자 등 다양한 일하는 여성들이 등장해요. 여성의 이야기로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있나요? 

내가 쓸 수 있는 제주의 이야기를 찾아야 했거든요. 역사적인 맥락의 이야기는 선배 작가들이 많이 했으니, 나는 현재 제주에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 세대가 하는 고민을 담겠다는 생각으로 취재를 시작했어요. 저는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길 좋아하는데요. 사실 제주도 그런 공간이 되어줄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는데, 지내다 보니 일하는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앞서 해녀 세대가 있었다면, 그 아래 세대의 아이들은 도시에 나가기도 할 것이고 돌아오기도 할 텐데 그들의 고민과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제주에서 지내는 동안 많이 했었죠.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189쪽).”이라는 문장이 생각나요.  

실제로 여성들이 일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해녀들은 당연히 여성이고, 마을을 구성하는 일의 주체가 대부분 여성이었어요. 그분들의 강한 생활력과 당당함 같은 것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꼭 ‘여성이 중심이 된 소설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닌데, 제주에 있으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보건소에도 여자 의사가 있었거든요. 제주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소설로 옮겨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여자들의 연대, 우정 같은 게 생생히 느껴졌어요. 

여자 친구들의 관계는 모세혈관 같은 만남이잖아요. (양손을 깍지 끼며) 이렇게 만나잖아요.(웃음) 덕분에 전달받을 수 있는 좋은 느낌이 많지만, 반대로 너무 여려서 상처를 받기도 해요. 그렇기에 더 진정성 있는 관계라고 느껴져요. 저는 자매만 있는 집에서 자랐고 여중, 여고를 나왔어요. 남자보다 여자인 친구들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요. 여자 친구들과는 마음을 헤아리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훨씬 많은 공을 들이게 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어렵지만 반대로 그래서 참 좋아요. 

이 책을 읽는 여성 독자라면 누구나 생각나는 친구가 한 명쯤 있을 거예요.

맞아요. 저도 사소한 오해들을 이기지 못하고 멀어진 친구가 많아요. 아마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대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까 작은 밀침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가 없는 거죠. 소설의 구조를 짜면서 그 친구들을 많이 생각했어요. 

『복자에게』에는 수많은 ‘엄마’가 등장해요. 의료원 산재 사건의 피해자인 주인공 복자 또한 엄마죠. 전작 『경애의 마음』에서도 경애의 엄마가 건네는 말들이 인상깊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엄마란 어떤 존재일지 궁금해요.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허리를 완전히 펴고 선 사람이 떠올라요. 아주 튼튼하고, 꼿꼿하죠. 세상의 어느 한 부분도 엄마라는 존재의 손이 가 닿지 않는 곳이 없잖아요. 그런데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이제 엄마들이 사회의 한 직업인으로도 서 있게 되었어요. 그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직장에 다닐 때, 엄마인 동료들이 많았거든요. 회사 휴게실이 잘 갖춰지지 않아서 화장실에 유축하러 가는 모습을 종종 봤어요. 당시 제가 20대 초반이었는데요. ‘저렇게 힘든 걸 감내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게 엄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저희 엄마도 평생 일을 하셨거든요. 사실 어릴 땐 저와 놀아주지 않는다고 원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 덕분에 가려져 있던 엄마의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엄마도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는 삶을 살았겠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한 마디로 말하면 엄마는 ‘세상을 핸들링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주에서 만난 수많은 엄마들도 그랬죠. 아이를 위해 법적 투쟁을 하신 제주의료원 간호사 분들도 실제로 승소를 하셨잖아요.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하고, 핸들링하는 사람이 엄마인 거죠. 저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그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경애의 마음』에서도 그렇고, 『복자에게』에 나오는 엄마들도 그렇게 꼿꼿이 허리를 펴고 서있어요.

제주의 여러 풍경 중 소설에 꼭 담고 싶었던 모습이 있나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 좋았어요. 예를 들면 해녀분들이 물질하는 도구를 유모차에 넣고 다니시거든요. 아침 해안가에 유모차가 일렬로 쫙 서있으면 물질을 나가신 거예요.(웃음) 도시로 치면 60~70대는 왕성하게 일할 나이가 아닌데, 해녀 분들이 어려운 일을 끊임없이 해 나가는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또 가파도에서는 담장을 뿔소라 껍데기로 장식해 놓은 걸 볼 수 있어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걸 생활에 옮겨온 감성이랄까. 또 주민들의 집은 물론이고 섬도 정말 깨끗하거든요. 제가 풍경 묘사를 할 때 ‘폐비닐’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폐비닐 없었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섬 곳곳이 깔끔 그 자체였어요. 공간을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이 많을 때,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가파도에 지내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파도는 평지 섬이라서 빛이 그대로 떨어지거든요. 그럼 풍경의 색이 너무 선명해요. 처음 갔을 때 마치 세트장에 있는 줄 알았어요. 빛이 달라지니까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죠. 그런 느낌을 풍경에 많이 녹이고 싶었어요. 

딱 표지 같은 색감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편집자께서 이 사진을 발견하고, 표지로 하면 좋겠다고 보여주셨는데, 저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단번에 정해졌어요. 다른 걸 더 볼 필요도 없겠더라고요.(웃음) 

제주어를 공부하는 건 어땠나요?

재밌었어요. 제주어 사전이나 문법책 등을 보며 작업을 했는데요. 제주어가 얼마나 생활과 밀접하냐면 해녀가 일을 하다가 낳은 갓난아기를 부르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예요. 섬에 있는 모든 걸 하나하나 다 지시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의 분화가 정말 잘 돼 있어요. 그래서 정말 재밌더라고요. 

일단 제가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대사를 쓰면, 편집부에 계신 제주 출신 직원들이 알맞게 쓰였는지 체크를 해주셨어요. 오디오북 녹음을 하기 전에는 문학동네 사무실에 가서 실제 억양을 배우고 연습도 했죠.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억양을 실제로 들으니 정말 좋더라고요. 긴 대사는 한 번에 내뱉을 자신이 없어서, 배운 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현장에서 계속 들으면서 오디오북 녹음을 했어요. 한 마디씩 녹음한 걸, 후에 다 이어서 붙인 거예요.(웃음)




실패는 무시로 찾아오잖아요

작가의 말에서 “본섬에서의 취재를 다 마치고 나서도 나는 내가 여기서 본 것들을 쓸 날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쓰지 않겠다기보다는 쓸 수 없을 듯 했다.”라고 했어요. 

소설을 쓰려면 그 이야기가 내가 하는 고민과 맞닿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2018년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제주의 풍광은 분명 특별하지만, 나와의 연관점을 발견하기가 어려웠거든요. 같이 가슴 아파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이 뭐가 있을지 찾지 못한 채 돌아왔죠. 그런데 다음 해에 영초롱의 직업을 판사로 정하고 나니까 모든 궤가 맞춰지더라고요. 노동하는 인간으로 살고 싶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만 살면 일을 그르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딜레마에 빠진 주인공을 설정하니까 그간 했던 고민이 모두 해결되는 느낌이었어요. 

영초롱의 직업이 판사가 된 건, 법원에서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계기가 되었다고요.

질의응답 시간에 강연에 참여한 판사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때 직업으로 인해 인간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죠. 판사는 제시된 증거나 문서로 사건을 판단하는 사람인데,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하잖아요. 아무리 안타까운 사정이 있어도 그분들에게 법률적인 도움이나 조언의 말을 해줄 수 없다는 데서 괴로움을 느끼시더라고요.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 맴돌고, 화가 난다는 거예요. 그때 그 말씀을 하시는 판사님 표정에 실제로 화가 나 있었어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일반적으로 비춰지는 판사의 이미지와 질의응답 시간에 “괴롭다”고 토로하는 한 사람의 얼굴은 많이 달랐거든요. 그런 고민을 안고 있는 주인공을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어요? 

자고 일어났는데 문득 생각났어요.(웃음) ‘다음 장편 제목은 복자에게다!’라고요. 복자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가 있잖아요. 종교에서 ‘복자’라는 명칭은 현재적인 어려움을 무릅쓴 자들에 대한 존중과 경외가 담겨 있어요. 실제로 주변에 이런 이름을 가진 분들이 한 두 명은 있고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이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첫 장편 『경애의 마음』에도 주인공 이름이 들어가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는데 이 외에 다른 제목은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결국 ‘이번까지만 이렇게 가자’고 생각했죠.(웃음)

작가님이 생각하는 소설 속 명장면을 뽑는다면요?

영초롱과 영웅이가 아빠가 관리하는 자판기에서 돈을 꺼내러 갔다가 만난 청년에게 욕을 한 마디 하고 돌아서서 올 때가 기억나요. 영웅이는 자기가 누나를 돕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괜히 “아까 그 새끼 좀 때려줄 걸 그랬나?”라며 허세를 부리는데, 영초롱은 현실적으로 “때리면 치료비 나간다”고 대꾸하잖아요. 무심한 듯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영초롱은 영웅이가 든 가방에서 동전이 차락차락하는 소리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세상을 산다는 건, 많은 감정을 넘어야 하는 거구나’라고요.  

또 하나는 영초롱의 고모가 친구 규정의 면회를 갔다가,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냥 돌아내려오면서 고등어를 사는 장면이요. 삶이라는 건 때때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냥 빠져나오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견디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걸, 파리떼가 생선에 달라붙었다 다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느끼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의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실패를 미워했어’라는 말을 선택하고 싶다”고 했어요. 작가님도 실패를 미워했던 시절이 있나요? 

실패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0대 초반에 임용고시를 봤다가 떨어진 적이 있어요. 임용고시 응시생은 합격을 하지 못해도 자기 점수를 확인할 수가 있는데, 확인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게 제가 한 인생의 실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비록 합격을 못했더라도, 커트라인에서 몇 점이 부족해서 떨어진 건지 궁금해야 하잖아요. 저는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서 결과를 대면하지 않고 바로 취직했어요.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것도 인생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까지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독자를 위로하고 싶은 걸까요? “끊이지 않고 흐르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는 문장이 힘이 되더라고요. 

우리 삶에서 실패는 무시로 일어나잖아요. 저의 20대 때를 돌아보면, 사실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용기내서 살 수가 없어요. 실패는 언제든 예고 없이 들이 닥칠 테니까요.“실패하는 건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고, 우리 모두에게 찾아 드는 순간이야. 그러니 괜찮아.” 소설이 그 정도의 말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이 소설의 문장을 하나 고른다면 “복자야. 우체통은 시청역 4번출구 앞에 정말 있어. 거기에 그게 있다는 건 누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실이야.”(237쪽)를 택하고 싶어요.

저도 쓰면서 울컥했던 문장이에요. 복자와 영초롱의 관계가 비록 현실에서는 멈췄지만,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영초롱이 그 여지를 남기는 말이자, 영초롱의 성장이 담긴 말이라고 생각해요.




독자와 협업하는 느낌이에요

마감 후에도 소설에서 오래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복자에게』는 어떤가요?

지난주까지는 심각했는데, 이제 조금 괜찮아졌어요. 장편을 마치고 나면 소설의 어떤 장면이나 대사가 머리에 계속 맴돌아서 갑자기 울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기도 하거든요. 마지막까지 생각났던 건 고모의 “규정아 건강하니?”라는 대사였어요. 버스를 타도, 길을 걸어도 그 말이 계속 맴도는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마감이 잡혀 있던 에세이 하나를 얼른 쓰고 나니까 많이 나아졌어요. 빨리 새로운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편은 후유증이 정말 심각해요.(웃음) 

장편을 쓰는 것과 단편을 쓰는 건, 여러 의미에서 정말 다른 작업일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장편을 쓰는 게 더 재밌어요. 단편을 쓸 땐 압축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아서, 다 쓰고 나면 너무 힘들거든요. 하지만 장편은 분량적으로도 자유롭고, 어떤 미적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보다 인물들이 가진 사연을 잘 전달해야겠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단편은 짧은 분량 안에도 선명한 주제가 있고, 그걸 잘 담아야 하니 뇌를 많이 쓰게 돼요. 단편 너무 어려워요. 이제 많이 안 쓰려고요.

정말요? 리뷰나 기사 댓글을 보면 “김금희 작가는 단편이 진짜 최고다”라는 내용이 정말 많은데요.(웃음)

그런가요?(웃음) 단편 너무 어려워요. 뇌가 막 트위스트 하는 느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꼭 단편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편을 쓰면 기량을 갈고 닦을 수밖에 없거든요. 쓸 땐 너무 괴롭지만, 하나 쓰고 나면 제가 확 성장해 있는 걸 금방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러니 안 쓸 수도 없고, 쓰면 괴롭고, 어쩌죠. (웃음) 

작가님 소설의 등장인물은 대체로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지만, 심지가 곧은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절로 마음이 가는 유형의 사람이 있나요? 

자기 세상이 있는 사람이요. 좋아하는 게 있고, 만들고 싶은 세상이 있고, 지키고 싶은 기준이 있는 사람을 좋아해요. 예를 들면, 제가 며칠 전에 화원에 갔는데 주인 아저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를 보고 살짝 놀라시더니 “지금 음료수가 없다”면서 생수를 꺼내주시는 거예요.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그런 대접을 받은 게 처음이라 너무 신선했어요.(웃음) 그런데 그 아저씨가 식물들을 막 설명하면서 “이건 바나나 나무예요. 아 근데 잎이 좀 상했네.” 이러시는 거예요. 사실 정말 상했더라도,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해야 화분을 팔 수 있을 텐데, 자기가 가진 성격 그대로를 드러내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인물을 만나면 자극을 받고, 그 성격을 간직하고 싶어요. 사실 아저씨의 행동은 현실의 기준에서는 불필요한 것이지만, 가게의 주인을 떠나 한 사람으로 행동하면서, 저를 집에 온 손님처럼 대해주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좋아요. 

정말 매력적인 분이네요.(웃음)

대반전은 그 아저씨가 화원 주인이 아니었어요.(웃음) 가족이 하는 가게에 잠깐 와 계신 거였죠.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더니 카드 리더기를 쓸 줄 모르시더라고요. 저한테 식물 이름을 하나하나 다 알려주셨는데, 그냥 식물 덕후였던 거예요.(웃음) 집에 오면서 정말 신선한 만남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 활기를 얻어요. ‘세상에 아직도 독특한 사람이 많아!’ 하면서요.

“예약 주문 오픈하자마자 샀는데 받고 보니 2쇄다”라는 리뷰를 봤어요.(웃음) 이제 ‘김금희’라는 이름만으로도 책을 사는 독자들이 정말 많아요. 

첫 장편을 쓸 때는 작업 자체가 힘들어서 반응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됐어요. 저도 리뷰를 하나 봤는데요. 『경애의 마음』을 재미있게 읽고, 이번에 『복자에게』를 봤는데 괜찮아서 다행이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독자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어요. 작품을 하나하나 펴내고,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게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독자와 협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새 작품이 나왔을 때, 기쁨보다 안도하는 독자들을 보면서 ‘내가 누군가의 이런 마음을 받아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죠. 

이외에도 인상적이었던 반응이 있을까요? 

각자 마음 속에 있는 제주를 환기시키면서 ‘책을 읽고 나니까 제주도 가고 싶다’고 쓴 리뷰들을 보면 너무 좋아요. 잠시나마 그리운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제주라는 낯설고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공간을 써낸 보람이 있어요. 

제주는 ‘제주’라는 것만으로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공간뿐 아니라 제주 사람들에게도 힘이 느껴져요. 그리고 자부가 대단하죠. 제가 지낸 가파도 주민분들도 자부심이 정말 컸어요. 소설에도 썼지만 “본섬에서 잡은 물고기는 맛 없어서 못 먹는다”고 말씀하실 때의 표정이 생생해요. 가파도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섬은 모래가 많아서 물고기가 모래를 먹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거예요.(웃음) 도시에서 만난 제주 친구들도 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제주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풍요롭고요. 코로나19가 잦아들면 꼭 제주에 가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읽고 나면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을 거예요. 그 얼굴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오후 정도를 보낼 수 있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그런 그리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소설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금희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인하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이 있다. 2015년, 2017년 젊은작가상,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우현예술상, 2020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애니멀호더에게 방치되어 사람과 멀어지고 야생화된 개 ‘코코’와 일대일 결연을 맺었다.



복자에게
복자에게
김금희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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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은성 “언택트 시대는 눈치와 센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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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하나가 세상을 바꿨다.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던 기본소득이 논의되고, 사무실을 떠나 일하는 리모트워크가 일상이 된 사회. 인생의 기쁘고 슬픈 일이 생겼을 때도, 만나지 않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슬픈 현실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하나가 가져온 변화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관계 맺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까. 

KBS 뉴스특보 앵커로서 코로나19 소식을 최전선에서 전하고, 기업의 CEO와 임원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는 김은성 저자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들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언택트 시대에 사람들과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의 책 『사장을 위한 언택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은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다. 책에는 김은성 저자가 좌충우돌하며 겪은 언택트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기술을 담았다. 마스크 너머로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팁부터 영상으로 소통하는 법, 실시간 영상 회의와 재택근무를 잘 할 수 있는 방법 등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업무적 기술이다. 




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빠른 시일 내에 완성된 책이었을 것 같아요. 

온전히 책을 쓰는 작업은 3주 정도가 걸렸어요. 하지만 원고를 다 썼다고 해서 책이 바로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출간까지는 시간이 걸렸는데, 좀 더 빨리 나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요.(웃음)

어떤 고민에 맞닥뜨려 책을 쓰게 됐나요? 

출발하게 된 질문은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제가 코칭했던 임원 분들이 코로나19 이후로 급변하는 비즈니스 분위기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셨고요. 다른 하나는 제 개인적인 경험 덕분이었어요. 제가 올해부터 언론정보대학원의 객원교수로 강의를 하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연초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공교롭게도 줌(ZOOM)으로 처음 강의를 하게 된 거죠. 2006년에 스피치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0년 넘게 여러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나름대로 일타강사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줌으로 하는 수업은 기존의 강의와 너무 달라서 충격적이었어요. 아무리 유머를 던져도 참여자들이 웃지 않고, 강의 또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를 않더라고요. 그때 ‘이제는 다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언택트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SERI CEO’에서 강의를 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더라고요. 더 많은 분들께 이 기술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강의 내용을 구체화시켜 출판을 하게 됐죠. 

책을 쓰면서 특히 신경을 쓴 점은 무엇인가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책은 시중에 많잖아요. 저는 트렌드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명확한 솔루션을 드리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언택트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그 기술을 전달하는 데 방점을 찍었죠. 실제로 책을 읽은 독자들이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좋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KBS 뉴스특보 앵커로서, 코로나19 소식을 최전선에서 전하고 계시잖아요. 처음 특보를 전하던 순간이 여전히 생생할 것 같아요. 

제가 앵커 경력만 20년이고, 특히 뉴스특보를 많이 담당했는데요. 처음에는 중국의 우한이라는 도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나왔으니, 우한을 방문하는 국민들에게 조심하라는 당부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도였어요. 그후로 이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심상치 않아 보였는데 3월 4일 경부터 코로나19 통합뉴스로 체제가 바뀌었던 기억이 납니다. 앵커 3명이 돌아가면서 오전, 낮, 저녁 시간에 코로나19 특보를 담당했죠. 저는 사스와 메르스 특보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 달이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요. 처음 특보를 담당했던 세 명의 앵커 중 두 명은 이제 각자의 프로그램으로 복귀를 했지만, 저는 여전히 특보를 전하고 있는 마지막 앵커입니다.(웃음) 오늘도 중대본 발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30분 특보를 마친 뒤에 인터뷰하러 온 거예요. 

작가님도 일상의 변화가 많으시죠? 

방송은 늘 하던 일이라 비슷한데, 강연에서 변화가 많아요. 일단 언택트에 관련된 강연 요청이 좀 많아졌죠. 그래도 작년 달력과 올해 달력을 펼쳐 놓고 비교하면 일이 많이 줄어서 마음이 아픕니다.(웃음) 대신 저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평소에는 잘 못 했던 산책도 하고, 읽고 싶었던 책도 찾아 읽고, 이렇게 새 책도 쓰게 되었고요.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시대의 언어를 한 발짝 앞서 배워 둘 시간인 거죠. 




언택트 시대의 필수 스킬, 센스와 눈치

CEO와 임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자주 하시잖아요. 기업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제가 조만간 한 대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줌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요.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질문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첫째, 회의에서 심도 깊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실시간 영상으로 하다 보니 ‘아무 말 대잔치’가 되는 느낌이다. 둘째, 리모트 워크를 할 때, 리더로서 어떻게 포지셔닝하고 구성원들에게 일을 분배해야 할 지 고민이 된다. 셋째, 다양한 언택트 비즈니스 관련 플랫폼이 생기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넷째, 지점 혹은 대리점 등을 관리해야 하는 직종의 경우, 자주 만날 수 없다 보니 관계가 서먹서먹해지는 것 같다’였어요.

CEO와 임원들도 코로나19로 인한 변화에 굉장히 당혹스러워하고 있어요. 또 전염병이 사라진다고 해서 다시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느끼다 보니까,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요. 

책에서 언택트 시대에 꼭 필요한 건 센스와 눈치라고 강조했어요. 

오늘 저와 처음 만났을 때, 기자님이 “마스크를 벗고 인터뷰해도 괜찮을까요?”라고 물어보셨잖아요. 만나자마자 서로 눈치를 본 거죠.(웃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마스크를 벗고 싶었고 기자님도 그러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벗고 하자고 답했어요. 이게 센스인 거죠.(웃음) 

실시간 영상으로 소통하든, 만나든 이 모든 걸 관통하는 건 센스라고 생각해요. 책에도 언급했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만찬을 열었는데 거기에 참석한 외국 사신이 핑거볼에 든 손 씻는 물을 마셔버렸어요. 그러자 빅토리아 여왕이 그를 따라 같이 핑거볼의 물을 마셨죠. 이건 굉장한 센스잖아요. 눈치가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고 매너 있게 행동해요. 만약 함께 있는 사람이 마스크를 벗기 싫은 것 같다면, 이를 재빨리 캐치해서 함께 쓰고 있는 것도 요즘 같은 시대의 매너죠. 우리는 ‘눈치’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눈치를 보는 건 공간을 읽는 거라고 생각해요. 언택트 만남이든, 대면 만남이든 이제 상대방의 모습, 위치, 표정 등을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자주 만나지 못하는 대신, 한 번 만났을 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방법이겠네요.

맞아요. 앞으로는 누군가를 만날 때 눈치와 센스를 바탕으로 명확하게 만나야 할 거예요. 그러니 첫 만남에 호감을 주는 게 중요해요. 매너 있게 상대방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수 있겠죠. 

“예전에는 프리젠테이션이나 스피치 기술에 대한 코칭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해 얼마 전부터는 ‘테드형 스피치’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1/11쪽)고 하셨어요. 왜 그럴까요?

이제 구성원들이 프리젠테이션 형식의 스피치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채널도 이미 영상으로 흐름이 바뀌었잖아요. 유튜브, 테드(TED) 등을 보면 일상적이고 쉬운 언어로 내용을 전달해요. 반면 딱딱한 프리젠테이션은 구성원에게 반응이 없으니, 기업 입장에서도 프리젠테이션을 꾸미는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거죠.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의 경우에는 딱딱하게 프리젠테이션을 하지 않잖아요. B급 감성이나 재미있는 영상으로 무언가를 접하고, 설명하길 좋아하죠. 이러한 추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 가속화될 거예요. 

영상 활용이나 언택트 비즈니스를 잘 하고 있는 국내 CEO의 사례가 있을까요? 

최근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SK 공식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서 호평을 받았어요. 편안한 차림으로 영상에 나온 최 회장은 ‘유튜브 꿈나무’로 소개되며 재미있는 모습을 연출했죠. 본격적으로 영상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한 사례는 아니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사실 CEO와 임원들에게 이 흐름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고요. 시도를 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거 TV 프로그램을 보면 연예인들이 축하 영상 같은 걸 찍어서 보여주곤 했잖아요. 당시에는 영상이 유명한 이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고 봐요. 테드, 유튜브의 언어와 문법이 보편화되는 거죠. 

이제 영상과 친해지는 연습이 필요하겠네요. 

그렇죠. 어색하더라도 찍어보고 또 찍어보는 방법밖엔 없어요.(웃음)

처음 줌 강의를 했을 때 무척 어색했다고요. 어떤 경험이었을지 궁금해요. 

제가 대면강의를 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어요. 어떤 강연 기법을 동원해도 반응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줌으로 했던 대학원 강의가 그 이상의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오프라인에서 쌓인 강의 스킬만 믿고 자신만만하게 들어갔는데요. 제 나름대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어떤 유머를 던져도 반응이 안 오는 거예요. 그리고 참가자가 다 오디오를 켜고 있으니 잡음이 계속 들어왔어요. 한참 강의하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엄마~”하는 소리가 들리고, 기침소리 나고.(웃음) 강의에서는 흐름이 중요한데, 그러다 보니 흐름이 자꾸 뚝뚝 끊기더라고요. 그날 1시간 30분짜리 강의를 끝내고 나니까 온 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팠어요. 형편없는 강의를 했다는 좌절감까지 들더라고요. 

이제 새로운 기술을 쌓아가고 계시겠어요.(웃음)

그렇죠. 책에도 썼듯이, 실시간 영상커뮤니케이션은 소통이 어렵고, 청중이 소극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때 리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참여자들에게 매뉴얼을 알려주는 거예요. 회의 내용에 따라 진행자 외의 참가자는 오디오를 모두 끄고 브리핑을 들은 다음, 이후에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거나 하는 등 대략적인 매뉴얼을 참여자들에게 안내하는 거죠. 마치 생방송을 진행하듯이 큐시트를 짜서 이 흐름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또 안내해야 해요. 그리고 사전 자료를 미리 제공해서 내용을 숙지한 후 회의 또는 강의에 참여하도록 하면 훨씬 좋아요. 유머는 가급적 쓰면 안 되고요.(웃음)

실제로 화상 회의를 해보니까, 언제 말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하더라고요. 고민 끝에 한 마디 꺼냈는데 누군가와 동시에 말을 시작해서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하고요.(웃음)

맞아요. 그래서 온라인으로 회의를 할 땐, 리더가 발언의 순번을 정해주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면 “오늘의 회의 주제는 이것이고, 발표는 두 분이 하겠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마지막에 질문을 해주세요.”라고 전달한 후 회의를 시작하는 거죠. 회의의 마지막 즈음에는 텍스트로 각자 코멘트를 쓸 수 있도록 하면 더 풍성한 시간이 되겠죠. 

대면 강의보다 실시간 영상 강의가 훨씬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네, 훨씬 어려워요. 저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죠. 그래도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고 생각해요.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은 만남을 통해 선순환 할수록 좋아지거든요. 오늘은 조금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다음엔 이렇게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적용하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게 보이죠. ‘나는 영상으로 무언가를 하는 건 어려워, 잘 못 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한 번 해볼까?’라는 도전 정신이 필요할 때인 것 같아요. 

대면 강의는 어느 순간 청중의 이목이 확 집중될 때, 강연자가 희열을 느끼잖아요. 실시간 영상 강의에서도 그러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나요? 

얼마 전에 유튜브 강의를 했는데요. 시작하면서 “제 강의가 재미있으면 ‘ㅋㅋㅋ’를 써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한두 명씩 ‘ㅋㅋㅋ’를 썼는데 강의가 다 끝나고 나니 댓글창에 ‘ㅋㅋㅋ’가 주르륵 올라가더라고요. 그때 정말 뿌듯했어요. 

또 한 공공기관에서 종사하는 박사님들을 대상으로 줌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줌은 강사와 청중이 얼굴을 보고 진행할 수 있는 플랫폼인데도 다들 어색한지 카메라를 끄고 제 강의를 들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만약 제 강의가 재미있었거나, 감동을 받았거나, 무언가 하나라도 얻을 게 있었다면 마지막에 카메라를 켜주세요. 이 화면이 여러분의 얼굴로 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강의가 끝나고 25명 중 23명이 영상을 켜주셨어요. 두 분은 아마 듣다가 도망가신 것 같아요.(웃음) 참여하신 분들의 얼굴이 화면에 주르륵 뜨는데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가 아닌 ‘코로나를 계기로’ 

코로나 시대의 비즈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리모트워크예요. 하지만 재택근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염려하는 CEO도 많은 것 같아요. 

이제 재택근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예요.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돼 상용화 된다면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언택트의 거대한 흐름은 결코 되돌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죠. 

그리고 실제로 한 컨설팅 업체에서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비대면 업무가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왔다는 답변이 많았어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사무실, 회의실에 갇혀서 일을 하는 것보다 창의적의고 동기 부여가 가능한 환경에서 집중을 잘하는 경향이 있어요. 따라서 100%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재택근무와 대면근무의 비율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꼭 필요하죠. 대신 이때도 규칙이 중요해요. “이 안건에 대한 회신은 언제까지 줬으면 한다” “메신저의 응답 속도는 최대 몇 분을 넘기지 않는다” 등의 새로운 업무 규칙을 정해서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CEO라면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구성원의 결속력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것 같아요. 이를 해결할 방법도 있을까요?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회의실, 흡연실, 카페 등에서 동료들끼리 뒷담화를 하는 게 가능했어요. 함께 술 마시며 회식도 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게 차단되었잖아요. 저는 그래서 디지털 상에도 카페와 흡연실 개념의 방을 하나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직급끼리 모아서 소회의실을 열어주거나, 랜선 회식을 하게 하는 거죠. 업무적인 영상으로만 서로를 만나면 정보에서 소외되고 외롭잖아요. 실제로 한 대기업에서는 각자의 집에서 아이들을 안고 온라인에서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예전처럼 회식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동료들끼리 얼굴을 보는 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실제로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언택트와 컨택트를 어떻게 조화롭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때예요. 하이브리드 만남인 거죠.(웃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조직의 리더가 반드시 갖춰야 할 태도가 있다면요. 

미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죠. 과거에는 길을 찾을 때 전국 도로지도를 봤잖아요. 실시간 내비게이션이 나와서 길을 안내하고, 막히는 길을 알려줄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웃음) 이렇게 완전히 새로워질 세상을 받아들이고 예측하려는 능력이 필요해요. 

또 하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언어를 익히고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어요. MZ세대는 자기 자신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재미를 추구하죠. 그들을 위해 짧고 명료하고 센스 있게 말하는 것 또한 리더가 준비하고 장착해야 할 중요한 능력이에요. 

제가 특강을 할 때 이런 말씀을 꼭 드리거든요. 줌이든,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스(Teams)든 영상 제작이든, CEO가 어린 직원들의 실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요. 그러니까 일단 무엇이든 시도를 해보시고요. 하다가 안 되면 어린 직원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럼 도움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라포를 형성할 수 있거든요. 이제는 ‘내가 몇 년 차인데 이런 걸 물어보나’ 같은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택트는 MZ 세대에게 최적화된 유형이거든요. 언택트에 익숙하고, 훨씬 쉽게 적응하는 그들에게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건 리더에게도 좋은 일이에요. 오히려 쿨해 보일 수도 있고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라떼는 말이야”라는 유행어가 생각나네요.(웃음)

리더 입장에서는 그들과 소통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잘 통하지 않죠. MZ 세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서 뭐? 노잼은 용서 못 해!’라고 생각하잖아요.(웃음) 또 ‘내 자리는 내가 정한다’는 특성이 있죠. 젊은 직원들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아요. 그걸 리더가 잘 파악하고,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공감은 어려운 게 아니에요. 상대의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게 공감이죠. 예를 들어 유튜브는 일상의 언어를 쓰잖아요.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채널이면 그들의 은어를 쓰고, B급 감성을 콘셉트로 하면 B급 언어를 써요. 이렇게 내가 만나는 사람의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가 아니라 ‘코로나를 계기로’라는 사고 방식이 필요한 때”(237쪽)라고 했어요. 

시대의 변화는 막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이제는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로 인해 지구가 건강해졌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4차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있어요. 물론 스마트팩토리, AI 등은 이전에도 미래의 추세였지만, 기업에서 훨씬 더 속도감 있게 준비하고 있죠. 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더불어 저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관점에서 ‘관계 다이어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며 신경 쓰고 살았어요. 이제 내 주변의 관계에 대해서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제목은 『사장을 위한 언택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이지만, 사장이 아닌 누구나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고, 언택트의 흐름은 모두에게 평등하니까요.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트렌드를 앞서 나가려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술을 담은 책이기 때문에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 나에게 필요한 내용, 궁금한 내용만 뽑아서 보셔도 충분히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에 앞장서서 소통하고, 언택트 시대의 관계 맺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썼으니 부담 갖지 말고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김은성

국내 1호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박사. 현 KBS 앵커 겸 아나운서.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에서 기업의 CEO와 임원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고 있다. 스피치, 프레젠테이션, 대화법, 조직 소통, 수사학, 눈치, 언택트 등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최근 ‘언택트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한 6회분 강의는 역대급 조회수와 평점을 얻기도 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강사임을 입증하는 SERI CEO에서도 11년 연속 베테랑 강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각계 CEO와 임원들의 일대일 코칭도 함께 진행한다. 기업의 신제품이 출시될 때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을 때 CEO의 메시지를 더 명확하고 매력적으로 전달하도록 돕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특히 최근 언택트 시대를 맞아, 한 편의 공연과도 같은 테드(TED)형 스피치를 기획하고 연출하고 있으며, 실시간 영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노하우도 전하고 있다. 




사장을 위한 언택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사장을 위한 언택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김은성 저
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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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여행작가 노중훈 “할머니 식당이라는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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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노중훈에게는 소사(小事)가 대사(大事)다. 간판 없는 작고 허름한 가게를 찾아다니는 것도, 그곳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것도, 라디오를 좋아하며 사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작은 것을 귀히 여기는 마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만나 새 책 『할매, 밥 됩니까』를 만들었다.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 아닌 ‘노동기’로 읽히기 바란다는 노중훈 작가. 그와 서울 숭인동의 작은 슈퍼에서 만나 막걸리와 김치전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김제동과의 ‘썰’이 모여 탄생한 책

인터뷰 장소를 고심하셨다고요.  

피해가 갈까 봐요. 여기 슈퍼 어머니가 놀라실까 봐 그런거고 장소를 엄선한 건 아니에요. 혹시 쫓겨나면 골목에 가서 해야겠다 하고 왔죠. 

한동안 금주하셨다고 들었는데 오늘 술 괜찮으신가요?

최근에 건강 때문에 조심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촬영도 해야 하고…콘셉트죠. 그래야 푸근한 작가로 나올 거 아니에요. (웃음) 

오래전부터 할머니 식당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 인터뷰 기사나 유튜브 <할매와 밥상>을 보면 그런 마음에 대한 단서들이 나오더라고요. 언제부터 할머니 식당에 주목한 건가요? 

찾아다닌 지는 오래됐어요. 제가 누구한테든 잘 물어보거든요. 어르신들하고 잘 이야기하는 편이고 넉살도 좋고요. 그래서 할머니가 하는 식당에 가면 편해요. 요즘 음식이나 식당을 다루는 콘텐츠가 많잖아요. 여행작가로서 잘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런 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할머니 식당 이야기를 하자 싶었죠. 

할머니 식당이라는 주제로 차별화하고 싶었다는 말인가요?

그런 셈이죠. 그리고 음식을 잘 몰라요. 잘 먹고 음식을 편견 없이 보지만, 어떤 음식에 뭐가 들어가고 맛이 어떻고 이런 걸 잘 몰라요. 예를 들면 절대 미각자들 있잖아요. 한 번 보면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사람들. 나는 그런 건 모르니까 사람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할머니 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요? 

결정적인 계기는 라디오예요. 여행작가로 라디오에 오래 출연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그동안은 할머니 식당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받아줄 디제이가 없었어요. 그런데 김제동 씨가 나타난 거죠. 김제동 씨는 시골에서 자라서 할머니 식당의 정서를 잘 알아요. 제동 씨한테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죠. 대본이 없었어요. 다른 프로그램도 거의 대본 없이 하지만, 제동   씨랑 한 프로그램은 정말 작가들이 딱 식당 이름 한 줄만 보내요. 그러면 그거 가지고 저랑 제동 씨랑 둘이 썰을 풀고요. 그렇게 했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래서인지 라디오 사연 같은 느낌이 있어요.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회의감도 들었어요. 이런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요. 식당 할머니가 반영구 눈썹 문신한 이야기를 내가 왜 쓸까……(웃음) 사소한 이야기잖아요. 누가 라디오에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냐고 면박을 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서 위축되기도 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나중에는 이게 나만의 장르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밀어붙였고요.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김제동 씨가 지어준 제목이에요. 요란한 걸 안 좋아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처음에는 ‘할머니 밥상 이야기’처럼 평이한 제목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동 씨가 듣고 재미없다고 ‘할매, 밥 됩니까’로 하라고 추천하더라고요. 제동 씨 고향이 경북 영천이거든요. 사투리로 해야 맛이 살아요. 아침 먹을 때였는데 같이 먹던 피디, 작가가 듣고 다 손뼉 쳤어요. 이 제목이 정해지면서 막연하게 출간의 실마리가 잡히는 것 같았고, 책을 진짜 내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도 생겼고요.

식당은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요?

특별히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굳이 꼽자면 지역이 고르게 들어가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많이 듣고, 메모를 많이 한 곳, 최근에 다녀온 곳 위주로 골랐고요. 

사진이 적재적소에 등장해서 더 재밌게 읽었어요. 직접 찍으셨다고요.

이 책의 가장 큰 난관은 사진이었어요. 밥 먹으러 가서 요란하게 사진 찍는 걸 싫어해요. 책을 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사진이 더 없었고요. 그리고 작업용 카메라가 아니라 핸드폰으로 찍어서 편집자가 사진 때문에 정말 고생 많이 했죠. 아마 디자인하시는 분도 이 사람은 여행작가 겸 사진가라고 하는데 사진이 이렇게 없나 싶었을 거예요.  

어쩐지 사진이 친근하더라고요. (웃음) 먹기 전 사진, 먹은 후 사진 이런 것들도 있고요.  

편집자가 처음에 사진이 이게 다냐고 그러는데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각 잡고 찍은 사진들이 아니니까 그럴싸한 사진이 없어요.

 



식당 찾는 방법? 좋아하면 보여요 

이런 식당들을 어떻게 찾는지가 가장 궁금했어요.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 같아요. 좋아하면 보여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일거수일투족이 얼마나 잘 보여요. 뚜렷하고 기억에 오래 남고요. 다른 답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니까요. 만약 이 책의 후속편을 내면 여기 ‘금릉 슈퍼’도 소개하고 싶어요. 북 콘서트도 여기서 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7~8명 정도 모여서 전세 내고, 먹고 싶은 대로 꺼내 먹고, 과자 집어 먹으면서요.  

그럼 평소에 걸어 다니면서도 습관적으로 작은 가게들을 보나요?

그럼요. 평일 낮에 모르는 동네 걸어 다니는 게 제일 좋아요. 서울이든 지방이든 상관 없이요. 그러다 좋은 곳 발견하면 구경도 하고 적기도 해요. 유일하게 메모하는 게 그런 것들이에요. 꼭 가봐야겠다 싶은 곳들. 이 책에 담긴 내용도 핸드폰에 다 들어 있어요. 녹취를 안 하니까 빨리 듣고 화장실 가서 메모하고, 버스 타서 적는 거죠. 틀리면 안 되니까요. 물론 틀린 것도 많아요. 

녹취를 전혀 안 하나요?

딱 두 번 했어요. 그것도 극히 일부만요. 그래서 어디 갔다 오면 빨리 적어야 해요. 사라지니까. 마음에 드는 곳에 가면 그만큼 메모도 많아져요. 그리고 다음에 또 가죠. 

하정민 피디가 추천사에서 쓴 것처럼 묘사가 아주 디테일해요. 

제가 자신 있어 하는 것 중 하나가 말주변이고, 또 다른 하나가 기억력이에요. 사소한 것에 대한 기억력이 좋아요. 타고난 것 같아요. 내추럴 본. (웃음) 

장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아요. 이유가 있나요?

이런 곳에 오면 대부분 제가 막내거든요. 그래서인지 마음의 경계가 쉽게 풀어지는 것 같아요. 긴장할 필요가 없고, 응석 부리거나 어리광을 피워도 용서되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곳에 가면 거의 고참이거든요. 특히 여행 작가나 잡지 기자들 사이에서는 왕고참이니까 거기서는 절대 그럴 수 없죠. 그런데 여기는 그래도 되니까 애착이 가요.  

식당에 갈 때 꼭 선물을 사가더라고요. 전략인가요?

기름칠하는 거예요. 

주로 빵을 사는 이유가 있다면요?

어머니들이 양식을 잘 안 접하시니까요. 한식 위주로 드시니까 빵을 사는 거고 실제로 이런 작은 선물이 징검다리 역할을 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기도 하고요. 직접 가보시면 알 거예요. 음식이 저렴하고 맛있으니까 뭔가를 해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서울에서부터 선물을 사갈 수는 없잖아요. 어떤 할머니를 만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너무 오버해서 비싼 걸 사도 부담스럽고 제 스타일에도 맞지 않으니까 동네에 있는 허름한 빵집에서 빵을 사서 표현하는 거죠. 

할머니들의 마음이 그러데이션처럼 천천히 열리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제일 대화하기 어려웠던 할머니가 있었나요?

다 조금씩 벽이 있었어요. 첫 장면이 따뜻했던 대전 ‘테미 주막’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신분을 숨기고 사는 요원 같은 느낌이 있었죠. 그래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그날 같이 간 친구 중에 대전 토박이가 있었어요. 그 동네를 잘 아니까 어머니와 접점이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고, 술 마시다 보니 어머니도 흥겨워서 마음이 풀린 것 같아요. 

벽을 허무는 노하우가 있나요?

본인의 이야기가 구차하고 누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벽을 치는데 그러면 저는 굳이 안 넘으려고 해요. 넘어서 뭐 하겠어요. 싫다고 하면 안 해야죠. 그리고 이건 제일 중요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여우 같은 건데 어머니들의 심기를 잘 살펴야 해요. 이것까지 물어봐도 되겠다, 안 되겠다를 잘 알아야죠.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니까 그분들의 정신적, 육체적 컨디션을 살피는 게 중요해요. 오래된 식당이라고 해서 다 퍼주고 인심 좋은 게 아니에요.

그런 환상이 있죠. 오래된 식당이나 할머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대한. 

예를 들어서 오늘 어머니가 엄청 피곤한데 처음 가는 손님이 문 닫을 시간 즈음에 가서 다짜고짜 ‘국수 하나 주세요’ 이러면 꼴 보기 싫죠. 유명한 레스토랑에 가면 테이블 매너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사실 제일 매너가 필요한 게 할머니 식당이에요. 그분들의 컨디션을 잘 파악해야 해요. 그래야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니까요.  

그럼 할머니 식당에서 지켜야 할 매너를 정해준다면요?

편한 마음으로 있는 건 좋지만, 얕잡아 본다거나 요란하게 행동하면 안 되고요. 하여튼 말을 들어야 해요. 안 된다고 하면 군소리 달지 말고요. 몇 번 가서 얼굴을 익힌 사람이면 메뉴판에 없는 것도 해주지만, 블로그에서 특수한 사례를 보고 가서 ‘누구는 해줬다던데 그거 한 번 해주세요’ 이런 거 하지 말아야죠. 그리고 평가하지 말고요.  

현장에서 맛을 평가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제일 싫어하는 게 음식 먹고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자기가 하늘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에요. 보기 싫잖아요.  

맛집 콘텐츠나 SNS가 발달하면서 그런 태도가 더 습관화된 것 같기도 해요. 

평가할 수는 있는데 그걸 과신하거나 너무 잘난척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태도가 정말 중요하죠. 평가하는 태도요.  




라디오 좋아하는, 라디오 같은 사람 

라디오 애청자분들하고 투어를 하신다고요. 지금은 중단된 건가요?

코로나 때문에요. 지금까지 열다섯 번 정도 했거든요. 지방 출장 갈 때마다 SNS에 올려요. 여기 사는 청취자분 중에 저녁 드실 분 만나자고요. 그러면 항상 몇 분씩 나오세요. 라디오의 힘이죠. 

주로 어떤 분들인가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이는데요. 라디오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비슷해요. 자잘한 것 좋아하고, 쓸데없는 거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에요. 한 명 나온 적 한 번 있었고, 아무도 안 나온 적도 있었어요. 충남 아산에서. 

한 명 나왔을 때의 풍경이 궁금하네요. 

전라북도 익산이었어요. 남자분이었는데 순대집 가서 둘이서 막창 구이에 술 먹었죠. 재밌었어요. 

처음 만난 청취자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제한이 없어요. 정말 웃겨요. 그분들은 저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있잖아요. 라디오를 들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저한테 별 이야기를 다 해요. 남편이랑 싸운 이야기, 자식 이야기까지요.  처음 봤는데도 그런다니까요. 희한해요. (웃음) 택시 운전하는 분, 학생 가르치는 분 등등 직업도 다양해요. 그분들 일 이야기 듣는 것도 재밌고, 배우는 것도 많아요. 대부분 그 지역에 사는 분들이니까 좋은 정보원이 되어 주시고요. 

모임이 라디오 같네요. 

한 번도 안 좋았던 적이 없어요. 라디오 밖에서 라디오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고, 만나면 진솔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사실 요즘 라디오가 마음에 안 들거든요. 너무 시끄러워요. 초대 손님 불러서 신변잡기하고 떠드는 게 다수고, 예전처럼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사연 읽고 대화하는 프로그램이 없어요. 매체로서 힘을 잃으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TV 예능과 비슷한 분위기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저도 거기에 일조하고 있어서 창피하죠. 그래서 이건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한데요. 게스트로 나갔을 때는 그 프로그램의 포맷에 맞춰 주는 게 의무이기도 하니까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어요. 이런 아쉬움 때문에 라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프라인으로 더 만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김제동 씨가 추천사를 썼어요. 넉살은 좋은데 부탁을 어려워한다고요. 

베푼 적이 없기 때문에 베풂을 받는 게 부끄러운 거죠. 그리고 원래 먼저 연락을 잘 안 해요. 제동 씨한테도 전화한 게 아니라, 하정민 피디를 따라가서 말했어요. 다른 친구들한테도 마찬가지인데 먼저 연락해 본 적이 없어요.  

왜 안 하세요? 쑥스러워서요?

그것도 그렇고요. 부담을 느낄까 봐요. 점점 후배들이 많아지는데 저는 선배니까 후배들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잖아요. 반갑지 않은데 반가운 척하면서 전화 받아야 하는 그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어요. 명절이라고 굳이 인사하고 싶지 않은데 인사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걸 잘 못 해요. 그래서 제동 씨한테도 진짜 어렵게 부탁했어요. 



음, 작가님 MBTI가 궁금해지네요. (웃음)

안 해봤지만 제일 소심한 게 나오겠죠.

그런데 그만큼 다른 사람을 섬세하게 살피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할머니 이야기도 쓰셨을 테고요. 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완급 조절을 잘하시더라고요.   

그런 게 있겠죠. 적나라하게 이야기한 것도 있지만, 감춘 것도 많아요. 사실 꼭 어떤 이야기를 듣는 게 목적이 아니기도 했고요. 시답지 않는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여쭤보면 나중에는 어머니들이 그만 듣고 싶을 정도로 이야기하세요. 귀에서 피가 난다니까요. (웃음) 어머니들이 적막하고 외로워하세요.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자식이랑 같이 사는 분도 없고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가서 많이 팔아주고 현금 내고, 이야기 들어주니까 신나죠. 가만히 들어보면 할머니 중에 달변가들이 참 많아요. 기억력도 좋고요. 물론 왜곡과 과장의 함정이 있지만요. (웃음)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작가가 한곳에 오래 머문 식당을 유독 좋아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의미심장했어요.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질문에 답이 있는 것 같아요. 정착하지 않는 직업이잖아요. 그러니까 반대급부로 한곳에 오래 머문 식당에 끌리는 거겠죠. 자연스럽게요. 그리고 대단하잖아요. 생각보다 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장소를 찾기가 어려워요. 특히 우리나라가 그래요. 누각이나 궁이나 터를 다 보수하잖아요. 보존 안 하고요. 최근 들어 복고, 레트로 바람이 불어서 오래된 곳 찾아다니고 부각되어서 그렇지 실제로 거의 보존된 곳이 없어요. 버려지죠. 제가 잘 안 바뀌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노중훈

여행작가로, 20년째 여행 중이다. ‘몇 개 국 몇 개 도시를 다녔다’는 말을 싫어한다. 모래성 같은 미식 풍경 속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며 우리 이웃의 끼니를 돌봐온, 허름하고 정겨운 ‘풀뿌리 식당’을 기꺼이 찾아 쏘다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고, 낡고, 허름한 식당들을 모아 『식당 골라주는 남자』를 펴냈고 『백년식당』과 『노포의 장사법』의 사진으로 참여했다. 돌아다니고 많이 먹는 것 이외에 줄기차게 해온 일로는 라디오 출연이 있다. MBC 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과 유튜브 채널 펀플렉스 [노중훈의 할매와 밥상]의 진행자로 여행의 ‘참맛’을 설파하고 있다. 



할매, 밥 됩니까
할매, 밥 됩니까
노중훈 저
중앙북스(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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