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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장예원 “사표를 던진 진짜 마음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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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빛날 때, 주저 없이 사표를 던진 마음이 궁금했다. 지난 8년간 방송인 장예원의 활약은 언제나 눈부셨다. 당시 최연소 아나운서로 커리어를 시작하여,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프리뷰쇼, 한밤의 TV연예 진행, 라디오 씨네타운 DJ 등 어떤 역할이든 ‘장예원’의 색깔로 소화해왔다. 

그런 그가 왜 사표를 던졌을까? 한 권의 책이 힌트가 될 것이다.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에서 그는 숨 가쁜 아나운서 생활에 쉼표를 찍고, 장예원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미쳤지, 내가 퇴사를 왜 해서!” 웃으며 말하면서도, 자신의 생활을 돌보고 원하는 것을 향해 직진하는 그. ‘클로징 멘트’를 한 후, 작가로 돌아온 장예원을 서면으로 만났다.

장예원은 전 SBS 아나운서, 방송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스물셋, 누구보다 빨리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해 <TV 동물농장>과 <장예원의 씨네타운> 등 교양과 예능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방송을 진행하다 2020년 독립을 선언했다.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인간관계와 꿈에 대해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다. 서른의 문턱을 넘으면서 직장 생활을 하며 느꼈던 고민이나 직접 부딪히며 깨달았던 것들을 나누고 싶어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퇴사 후 일상, 매일이 설렌다

SBS를 퇴사하고 ‘프리 선언’을 하셨어요. 요즘 일상은 어떤가요?

회사를 그만둘 무렵에는 휴식에 대한 마음이 간절했는데요, 너무나 감사하게도 불러주시는 곳이 많아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방송국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형식의 예능이나 오디션 프로그램 MC도 맡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방송을 진행한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설레더라고요. 그래도 회사에 있을 때보다는 여유가 생겨서 반려견 여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8년간 몸담으신 회사를 떠나셨어요. 퇴사 직전의 심정은 어땠나요?

사실 퇴사를 고민한 지는 꽤 오래됐었어요. 책에도 쓴 것처럼 고민하던 와중에 우연히 손미나 선배님의 책을 읽고 더 확신이 들었죠. 지금 내가 행복한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는데, 불행하진 않았지만 더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 일을 정말 좋아하고, 배울 점이 많은 선후배들과 함께하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일만 하다 보니 조금 지쳐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취미도 일, 특기도 일이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많이 없더라고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같은 것들이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서 일상을 환기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책을 내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해요. 먼저 출판사에 문을 두드리셨다고요. 

예전에 몇 번 출판사에서 먼저 책을 내자고 제안해온 적이 있어요. 그때마다 아직 글을 쓸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거절했어요. 어떤 주제로 쓸지도 막막했고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많이 두려웠어요. 그러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주변에 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는데, 의외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공감해주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사회초년생들이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직장에 더 수월하게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되었어요. 

퇴사 시기와 출간 시기가 맞물려서 급하게 짠! 하고 책을 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나름대로 1년 가까이 글을 쓰고 수없이 고치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물론 책을 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요. 책을 내고 난 후에는 세상의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하게 됐어요.(웃음) 지금도 ‘작가님’이라는 호칭은 어쩐지 너무 어색해서 들을 때마다 숨고 싶은 기분이에요.

겉으로 볼 땐 ‘인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싸’ 같은 아보카도 같은 사람이라고 본인을 표현하셨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성격은 어떤가요?

얼굴이 알려지는 직업을 갖고 있는 데다 방송할 때는 늘 즐겁다 보니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은 제 성격이 굉장히 활발할 거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낯선 사람, 낯선 장소를 상당히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일할 때는 괜찮지만 개인적으로는 낯선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해요. 일이 끝나고 집에 가면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깐이라도 차에서 혼자 휴식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요. 쉬는 날에도 거의 집에만 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야 에너지가 보충되거든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는 정반대예요. 누구보다 말이 많아지고 신이 나서 들떠 있어요. 말하고 보니 기본적인 기질은 ‘아싸’이지만 때로는 ‘인싸’ 같은 면이 있는 것 같네요.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빛났던 순간, 언제였나요?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기보다 그래도 8년 동안 직장생활을 잘 해왔다고 느낀 순간은 있어요. <동물농장> 마지막 녹화날에 저보다 선희 언니나 작가진이 더 많이 울더라고요. 녹화가 끝날 무렵에는 서프라이즈로 함께했던 광고팀에서도 온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 동엽 오빠가 “너 진짜 잘 살았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워낙 끈끈한 팀이기도 하고 7년을 함께했으니 가족이나 다름없죠. 회사를 나온 후에도 여전히 얼굴을 보며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에요.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악플이 돌아오기도 했어요. 그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어떻게 마음을 다져갔는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악플을 봤을 때는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내가 진짜로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괜히 움츠러들어 말하면서 멈칫할 때가 많았어요. 다행히 연예면 기사 댓글이 중지되면서 지금은 직접적으로 공격받는 댓글을 예전만큼 자주 보지는 않아요.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사회 초년생이어서 더 마음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잘못은 제가 아니라 모니터 뒤에 숨어 단순히 제 외모나 이미지만을 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했더라고요. 책에도 썼지만 이제는 ‘남의 시선에 사로잡히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내는 일’에 더 힘쓰고 있어요. 



나의 비결은 ‘사랑’

8년간 아나운서로서, 또 직장인으로서 일을 해오셨어요. 사회생활에도 많이 단련되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아나운서와 직장인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일지 말씀해주세요. 

방송국에 있을 때는 ‘아나운서’라는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직장인’이라는 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아나운서는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연예인과 일반인의 중간쯤에 서 있는 위치잖아요. 그렇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저희도 방송이 없을 때는 9 to 6를 꼬박꼬박 채우고 직장인으로서 지켜야 하는 회사 내부 절차나 문서들도 많아요. 직장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라면 음… 성실하고 묵묵하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 때문에 나중에는 조금 버거운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지 않나요?

구분하기 쉽진 않지만 그래도 나눠서 이야기하자면 아나운서로 촬영을 할 때는 프로그램마다 잘 녹아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각각의 프로그램 성격이 잘 드러나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뉴스에서의 장예원과 예능에서의 장예원이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지금도 치열하게 도전하고 있을 ‘아나운서 지망생’들에게 조언 하나를 해주신다면요?

‘사랑하세요!’(웃음) 단순히 연애를 많이 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물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사랑을 경험해보는 건 중요하지만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 잘 아실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멋있어 보일지, 장점을 어필할 수 있을지, 매력적으로 보일지를 노력하는 순간들이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치열하게 준비하는 분들도 같은 마음이 필요해요. 심사위원과 방송국에 어떻게 해야 내 매력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민해야 하죠. 스스로 자신의 매력이나 장점에 자신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그 모습을 발견해줄 수 없어요. ‘나는 아나운서로서 뛰어난 자질과 강점이 있다!’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에게도 나만의 매력이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유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해보니, 기존 지상파 방송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가실 계획인지도 궁금합니다. 

유튜브 운영의 가장 재미있는 점은 기획도, 진행도, 완성도 저 혼자서 해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영상 편집만큼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만 그때도 어떤 식으로 편집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회사에 속한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반복되는 삶에서 살짝 벗어나는 일탈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저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소통 창구로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네요. 혼자서 하는 만큼 자유로운 면이 많지만 콘텐츠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저에게 있다는 건 가끔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구독자분들이 달아주신 댓글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면서 반영해야 할 점을 체크하고, 뭐가 가장 나다운 콘텐츠일지 고민하기도 하죠. 

최근 유튜브와 관련해 아쉬운 점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새롭게 시작한 일이 많아 오히려 유튜브에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있어요. 아직 초보 프리랜서라서 워라밸을 맞추기가 쉽지 않지만, 앞으로는 일과 휴식의 밸런스를 잘 맞춰 틈틈이 유튜브도 잘 운영해보려고 해요. 회사 밖 장예원의 모습, 많이 기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서른 하나, 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이라고 하셨어요. 앞으로 ‘장예원’의 인생을 어떤 색깔로 칠해가고 싶나요? 앞으로의 계획과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앞으로 제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어떤 색이 칠해질지 저도 설레고 궁금해요. 지금은 하나의 색을 정해놓고 그림을 완성하기보다 다양한 색으로 채워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그러니까 아마도 무지개색 아닐까요? 실제로 안 해보던 것들도 도전해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요즘이라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색들이 칠해지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순간순간 나만의 속도를 잃지 않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내가 행복한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유일한 계획입니다.



*장예원 

전 SBS 아나운서, 방송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스물 셋, 누구보다 빨리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해 <TV 동물농장>과 <장예원의 씨네타운> 등 교양과 예능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방송을 진행하다 2020년 독립을 선언했다.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인간 관계와 꿈에 대해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다. 서른의 문턱을 넘으면서 직장 생활을 하며 느꼈던 고민이나 직접 부딪히며 깨달았던 것들을 나누고 싶어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
클로징 멘트를 했다고 끝은 아니니까
장예원 저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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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향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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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부터 줄곧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정지향은 2014년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에 장편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가 선정되며 문단에 데뷔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미월 소설가는 “이 분 십오 초”만에 만장일치로 수상작이 결정된 과정을 전하며, 정지향이라는 이름을 회상했다. 2008년 청소년 잡지에 실린 단편에 반해 유심히 들여다보았던 이름을 6년 뒤 심사하게 된 일. 그로부터 다시 6년이 흐른 지금, 필연처럼 정지향의 단편소설집 『토요일의 특별활동』이 출간됐다. 작가가 “육 년간 느리게 쓴 소설”에는 10대~20대 여성의 삶과 고민이 녹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관계, 사랑, 폭력, 상실 같은 것들이 솔직하고 진득하게. 



일상 속 특별활동 같은 순간들

2014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 이후 펴낸 첫 책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대학생 때 등단을 해서, 아무래도 단편집을 엮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아요. 그 사이에 학교도 졸업하고 어떤 이야기들을 쓸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꾸준히 발표한 작품들이 이렇게 모였네요. 오래 준비한 책이라, 기쁘고 좋아요. (웃음)

여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에게 여름은 어떤 일들이 생겨나는 계절인 것 같아요. 들뜨고, 덥고, 활기찬 여름의 분위기가 있잖아요. 낮이 길고, 그래서 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종잡을 수 없는 계절의 분위기 속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는 게 좋아요. 또 소설 속 등장인물이 대부분 10대 후반~20대 초반인데요. 나에게 일어난 일이 당시에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지만,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풋풋한 그 시기가 여름이라는 계절과 잘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올해 여름은 줄곧 이 책 작업을 하며 보냈겠어요. 

맞아요. 늦봄부터 시작해서 여름 내내 책 작업을 했어요. 올해는 계속 마스크를 끼고 다녔고, 비가 많이 와서 여름을 체감할 새가 없이 훅 지나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여름에 책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제껏 지나온 많은 여름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한 곳에 모으고 있다는 느낌이 직관적으로 들었거든요. 사실 책에 묶인 것보다 더 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중에서 어떤 단편들을 함께 묶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다듬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로 어떤 고민이 있었어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단편을 썼는데, 그 사이에 제가 많이 변했거든요. 단편집을 만들면서 주저함이 있었다면, 그런 부분이었어요.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이전에 쓴 이야기와 이후에 쓴 이야기가 한 자리에 묶여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좀 더 깊게는 ‘그렇다면 내가 변해가는 방향은 어떤 곳일까. 이전보다 나은 방향이 맞을까?’하는 고민도 있었고요. 과거에 쓴 작품들을 보면 삶에 대한 열정도 훨씬 많고, 더 많은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가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반면 지금 쓰는 이야기들은 ‘과연 그런가?’하면서 되묻는 순간이 많아요. 가볍지 않은 고민을 안고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래도 책이 예쁜 옷을 입고 나와서 위로가 되었어요. 

표지가 산뜻하고 귀여웠어요. 

보자마자 바로 마음에 들었던 표지예요. 디자이너님이 들려주신 설명이 정말 좋았거든요. 달콤한 이야기들인데, 마냥 예쁘고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소설인 것 같아서 이런 디자인을 생각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말이 너무 좋아서 당장 이걸로 하겠다고 했어요. (웃음) 제가 쓴 소설보다 훨씬 따뜻하게 해석해주신 것 같아요. 

표제작은 2016년 발표한 「토요일의 특별활동」이에요.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기에 실린 단편들은 일상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소설 속 순간들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 특별한 순간들이잖아요. ‘특별활동’이라는 단어가 가진 느낌이 그걸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단편 「토요일의 특별활동」은 관계를 발견하는 이야기인데요. 이 소설에 전반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들 또한 관계를 재발견하는 순간들이라서, 한데 묶는다면 가장 적합한 제목이 아닐까 싶었어요.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 

토요일의 특별활동에는 두 여중생 ‘나’와 ‘정민’이 등장합니다. 특별활동 ‘적성연구부’에서 만난 둘은 우정인 듯, 사랑인 듯한 관계를 이어가는데, ‘적성연구부’라는 명칭이 절묘해요. 

실제로 제가 학창시절에 그런 부서를 했거든요. 정확히 ‘적성연구부’라는 이름은 아니더라도, 자기 적성을 탐구하고 개발하는 부서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 시절을 떠올리며 썼어요. 어릴 때부터 관심분야가 정확히 있어서 좋아하는 특별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저는 왜 하필 그런 부서에 들어갔을지 생각해보는 거죠.(웃음)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를 돌아보면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고, 설명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이었거든요. 타인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구별하고 싶은 욕구가 많았던 것 같아요. 

단짝 친구인 동시에 첫사랑 같기도 한 나와 정민의 관계가 잔잔하게 드러나서 여중, 여고를 나온 독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동성 친구 사이에서 모호한 호감을 느끼는 감정은 실제로 많이 존재하는데, 밖으로 말해지지 않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후 김세희 작가님의 『항구의 사랑』 같은 작품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긴 했지만, 제가 이 단편을 쓸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과거를 스케치하는 정도의 짧은 소설이지만, 세상에 잘 이야기되지 않은 소녀들의 일상을 쓰고 싶었어요. 

2018년 발표한 「한나」의 주인공 ‘진아’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진아는 대학교 문예창작과 창작 수업에서 과거 온라인 문학회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던 한나를 다시 만나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진아는 한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뒤늦게 알아차려요. 

문학을 공부하는 그룹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난 기운이 있어요. 서로 응원하고,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 사이지만, 동시에 나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친구를 볼 때 말 못 할 질투와 선망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글을 함께 읽는 사이라서, 상대의 생각과 경험을 아주 깊숙이 알 수 있게 되고요. 문학을 함께 공부한다는 건 마냥 애정도 아니고 시기도 아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모종의 감정이 생겨나기 좋은 조건인 것 같아요. 

특히 「한나」를 쓸 때는 ‘이게 퀴어 서사인지, 우정에 머무는 이야기인지 굳이 결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성과의 만남에서도 오롯이 사랑 혹은 우정 한 가지만 있진 않으니까요. 크고 작게 뒤섞이는 감정이 생기는 건, 사람의 관계에서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나」를 읽으면서 2017년에 일어난 ‘#문단_내_성폭력’ 운동이 생각났어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예술고를 나왔고,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해서 당시 불거진 문제들을 전혀 몰랐던 건 아닌데요. 이러한 일들을 세상에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자 친구들끼리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깥에 이야기했을 때 이 정도의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일인 줄은 모른 채 살았던 거죠. 동시에 우리가 인식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이 만연하다는 것도 몰랐어요. 대부분의 여성 그리고 한국문학을 사랑해주신 독자 분들이 그랬듯이, 저도 그 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어렴풋이 느꼈던 기분 나쁜 감정, 내 친구들이 겪은 일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2019년에 발표한 「베이비 그루피」의 ‘나’가 떠오르네요.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나’는 친구 ‘초’와 한 밴드의 공연장에서 만난 뮤지션에게 그루밍 성범죄를 당하는데, ‘베이비 그루피’라는 언어를 찾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당한 게 폭력이었다는 걸 깨닫잖아요. 

그렇죠. 「베이비 그루피」는 페미니즘 앤솔로지 『새벽의 방문자들』 청탁을 받고 쓰게 된 소설인데요. 페미니즘을 주제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소설로 많이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 뭘지 고민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실제로 ‘그루피’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는데 해외에서는 “이 단어가 가진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내용의 반성적인 기사가 많이 뜨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이야기더라고요. 그러다가 한 블로그를 찾았는데 그루피에 대한 편견이 적혀 있었어요. “가수 혹은 유명인을 쫓아다니면서 몸을 주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옆에 있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라고 비하하는 내용이었죠. 그걸 보고, 한번 다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슷한 일을 겪은 ‘나’와 ‘초’가 다시 만나 그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좋더라고요. 

처음 소설을 구상했을 때부터 꼭 두 명의 소녀를 등장시키고 싶었어요.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끼리 만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지점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트위터의 해시태그 운동이나 미투 운동 등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그게 다시 이야기되었을 때 비로소 세상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문제들이 있잖아요.  

2017년에 쓴 「아일랜드 페스티벌」은 호텔을 주제로 한 앤솔로지 『호텔 프린스』에 실린 단편이에요. 호텔에 마련된 집필 공간에 투숙하며 소설을 썼다고요. 

호텔 체인 회사인 ‘호텔 프린스’에서 처음으로 레지던시 사업을 시작하면서, 작가들에게 룸을 작업실로 빌려 주는 지원을 했거든요. 그때 1기 작가로 합류하게 돼 지원을 받았는데요. 호텔 측이 소유한 제주 별장과 명동의 레지던스 호텔 중 머물 곳을 정할 수 있어서, 저는 제주로 내려가서 지냈어요. 「아일랜드 페스티벌」은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 엉망진창이 된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잖아요. 실제로 제가 이렇게 엉망이 된 페스티벌을 경험했던 적이 있어서 언젠가 꼭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소재예요. 

태국 성관광에 대해 다룬 「리틀 선샤인」도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인가요? 신인 작가인 주인공 ‘나’와 작가님의 모습이 겹쳐 보였어요.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관심이 많은 주제였어요. 새로운 세대의 성 관광에 대해 써보고 싶었거든요. 이전 세대의 성 관광이 가이드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자유여행의 형태이고 성을 사는 관광객의 연령도 무척 낮아요. 일상화되어 있고요. 「한나」에 쓴 문장처럼 “소문이 이렇게나 넉넉히 흘러다니는데 어떻게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51쪽)” 싶었어요. 단단한 막이 있어서 그 이야기가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조사를 해봤는데, 성매매에 대한 정보를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게 끔찍했어요. “형이 어떻게 하는지 알려 줄게”라는 식으로 버젓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실제로 방콕에 머물면서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많이 간다는 클럽과 업소를 투어하기도 했는데요. 이 이야기는 꼭 긴 이야기로 다시 써보고 싶어요. 

단편이 실린 순서도 기억에 남아요. 「토요일의 특별활동」을 시작으로 「휴가」에 다다르면서 점차 성장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모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한나」와 「아일랜드 페스티벌」, 「알레르기」 같은 작품이 관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라고 한다면 「베이비 그루피」와 「휴가」 등은 좀 더 먼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해석해보려는 시도가 있으니까요.



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번 단편집에는 재회하는 인물이 많았어요. 지나간 시절을 자주 되새기는 편인가요?

그러네요. 제가 좀 질척거리는 사람인가 봐요. (웃음) 특히 10대, 20대 초반의 시절들이 그럴 텐데요. 이렇게 미성숙한 시기에 겪은 일들은 지나고 나서야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는 일이 참 많은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들이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아무리 과거를 그리워해도 거의 못 만나잖아요. 혼자 묻어둘 수밖에 없고요. 

만약 다시 1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으세요? 

네, 다시 가고 싶어요. 그 당시에는 너무 바쁘고, 생각할 게 많았어요. 내 생각에만 깊이 빠져 있느라 주변을 살피거나 폭넓게 이해하지도 못했던 게 아쉬워요.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더 잘할 거 같진 않은데요.(웃음) 그래도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나요? 

「베이비 그루피」요. 쓰면서 많이 배웠어요. 저를 극복하는 느낌이 들었죠.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안 자꾸 자기검열을 했거든요. 그루밍 성범죄를 당하는 10대 소녀를 그리면서 ‘이렇게 계속 뮤지션을 만나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이 아이에게도 잘못이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하지만 다 쓰고 난 뒤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린 여성을 상대로 교묘하게 감정을 이용하고, 연애와 관련된 환상을 팔아가며 성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이건 엄연한 범죄잖아요. 그런데도 ‘이 아이가 좀 더 똑똑하게 대처해야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제 자신을 극복하는 게 좋더라고요. 제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좋아하는 인물이 있다면요. 

「알레르기」의 ‘수주’요. 해명할 수 없는 울음을 몰래 우는 수주가 안쓰럽고 마음에 남아요. 「한나」의 ‘한나’도 너무 좋죠. 역시 말을 아끼는 주인공이니까요.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서 마음이 쓰이는 인물들이에요. 

2018년 발표한 「알레르기」는 권태로워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예요. 주인공 ‘댄’의 인스타그램 클립에 적힌 문구 “people are getting old with inexplicable tears.(해명할 수 없는 울음을 울 때 사람은 조금씩 늙는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어린 시절의 치열한 관계 속에서는 우는 이유를 설명할 때 주저함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느 시점을 지나면 「알레르기」의 권태로운 연인 ‘댄’과 ‘수주’처럼 되어버리곤 하는 것 같아요. 서로 사랑하고, 아끼지만 더 이상 자기의 울음이나 감정을 해명할 힘은 남아있지 않은 거죠. 하지만 그럴수록 그 관계와 자신을 망치게 된다고 생각해요. 분명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울음에 대해서, 스스로에게든 상대에게든 적극적인 해명을 하며 살아갈 텐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조로(早老)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관계가 빨리 늙어버릴 수도 있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을 전공하고, 줄곧 작가를 꿈꾸며 성인이 되셨잖아요. 이제 작가라는 호칭을 갖게 되었는데 어떤가요? 

그저 신기해요.(웃음) 중학교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고 문학을 공부하며 소설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계속 공부를 하는 와중에 데뷔를 했는데 꾸준히 단편을 발표하다 보니 어느새 단편집까지 내게 되었어요. 제 앞에 계단이 계속 나타나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등학교 때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면 문예창작과를 가지 않았을 테고, 문예창작과를 갔더라도 데뷔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으면 대학소설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우연과 노력이 절묘하게 만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 같아요. 

소설을 쓰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했을까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이제 겨우 다른 사람의 표정을 제 것인 양 흉내내지 않을 수 있게 된 것도 같다”고 했어요.

데뷔를 하고 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그게 있을까, 나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라고요. 이건 제가 20대 내내 했던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지?’ 라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요. 막연하게나마 답을 찾은 것 같아요. ‘아직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나 표정, 할 말을 내 것인 양 따라하지는 않게 된 것 같아.’ 딱 이 정도의 심정이에요. 제가 어떤 작가가 되어야 하는지 깨달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 목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주인공이 모두 10대~20대 초반의 여성이에요. 작가님의 고민이 맞닿아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일까요? 

맞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일들에 대한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서른을 넘기지 않고 이 단편들을 한데 묶게 돼 좋아요. 제가 20대 내내 했던 고민들이 다 녹아있거든요. 물론 30대가 되었다고 해서 그동안 했던 생각들이 무 자르듯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여성 청년의 이야기로 더 늦기 전에 소설집을 낼 수 있었던 게 의미 있는 일이에요.

요즘 자주 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제일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베이비 그루피」처럼, 일상에 만연하지만 겉으로 이야기되지 않은 이슈들에 대해 좀 더 써보고 싶어요. 또 20~3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뉴스가 자주 보이더라고요. 청년 자살, 그리고 이후에 남겨진 친구들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 생각이에요. 자살 이후의 이야기는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이에 대해 소설로 써보려고요. 관련된 단행본 출간 계획도 있어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수많은 책 중 「토요일의 특별활동」을 만나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날은 되새기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다시 그 시절로 기꺼이 돌아가서 뭔가를 말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이 책을 읽으신다면 우리가 겪은 가장 치열했던 시간, 고되게 관계를 배우고 나를 알아갔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정지향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명지대 문예창작과에 재학중이다. 2014년 장편소설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가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우수 어린 감수성으로 동시대 젊은이들의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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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김초엽, 2020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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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에게 “한국문학에 쏟아진 ‘벼락’ 같은 축복” 이라는 찬사가 보내졌던 때를 기억한다. 2001년이었고 동인문학상 심사평에서였다. 첫 작품으로 독자와 문학 관계자 모두를 매료시킨 작가가 등장한 상황에 관한 말이었다. 그 찬사는 이제 김초엽의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대상과 가작을 동시 수상했다는 놀라움, 첫 단독 저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출간 1년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다는 소식,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 및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으로 문학계 안팎으로 인정받았다는 흐뭇함. 이 모든 것이 불과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 올려졌다. 무엇보다 그는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갖춘 작품을 끊임없이 발표하는 필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내고 있다. 2020년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작가, 김초엽이다.

 


작가로 보낸 3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작품집>이 2018년 2월에 출간되었어요. 작가로 활동한 지 이제 만 3년이 되셨는데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어떤가요?  스스로 좀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합니다. 

그 3년이 뭔가 우당탕탕 지났다는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글을 쓸 때 예전에 비해서 조금 확신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나에게 재밌는 글이면 독자분들도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는, 그 정도의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처음으로 청탁을 받고 쓴 작품은 어떤 거였나요? 

「감정의 물성」과 『원통 안의 소녀』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의뢰받았어요. 쓸 때도 거의 비슷하게 썼는데, 『원통 안의 소녀』를 먼저 쓰고 「감정의 물성」을 썼어요. 제가 『원통 안의 소녀』를 쓸 때 엄청 부담을 느꼈어요. 「관내 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이미 심사 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거잖아요. 새로 쓴 작품 이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 쓰고 망했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웃음) 편집부에 원고를 드렸는데 재밌게 읽었다고 피드백을 주시더라고요. 긴 감상은 아니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안심이 됐어요. 지금도 비슷해요. 다 쓰고 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원고를 보내면 편집자께서 짧게 코멘트를 주세요. 그 코멘트를 보고 글이 재밌게 쓰였구나 하고 비로소 안심해요. 

그동안 끊임없이 작품을 쓰셨습니다. 

사실 제가 생산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에요. SF소설에서의 상상력은 작가의 엄청난 창의성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조합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에 예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있다기보다 기존에 반복되던 모티브들을 재해석해 표현한다고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기존 SF 작품들을 분석하고 해온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두 작품 동시 수상이 여전히 회자됩니다. 

두 작품 모두 본명으로 냈는데, 이름을 가리고 하는 블라인드 심사였어요. 나중에 신상 정보를 받아 보니 같은 작가였던 거죠. 심사위원도 놀라셨고, 저도 놀랐어요.(웃음)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 ‘중복 투고는 가능하지만 상은 하나만 준다’와 같은 조항이 있는데, 아마 당시에는 그런 부분을 생각 못 하셨던 거 같아요. 

그럼 상금도 각각 받으신 거죠? 

네, 각각 받았어요. 꽃다발도 두 개 받았어요.(웃음) 

하나의 공모전에 두 작품을 내신 거잖아요. 당시 마음이 어떠셨나요? 

둘 중 하나는 가작은 되겠지, 그런 생각이었어요.(웃음) 

공모전에서 수상하게 되면 소설가가 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건가요? 

한 번도 전업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전업을 한다면 SF뿐만 아니라 웹소설이나 다른 쪽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겸업을 하면서 SF도 쓰고, 이런 식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공모전 당선이 화제가 되면서 일이 조금씩 들어오는 거예요.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일이 들어오니까 1년 동안 글만 써보자 결심한 것이 이렇게 이어져 왔어요. 

만약 웹소설을 쓴다면 판타지 소설을 생각하신 건가요? 

게임 판타지에 좀비 아포칼립스 설정을 섞은 작품이나, 로맨스 판타지에서 끊임없이 타임슬립을 반복하는 ‘루프물’ 작품을 재미있게 봤어요. 판타지로 분류되지만 SF 요소들을 넣은 작품이 꽤 많아요. 그런데 도전해보기 전에 중단편 작가로 먼저 경력을 시작하게 된 거죠. 웹소설은 긴 분량을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쓰는 끈기가 필요한데, 저는 한 편의 글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타입이라 잘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 처음 가지게 됐나요? 

어릴 적에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까 프롤로그 1편은 써봤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에는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대학에 갔고 교내 공모전이 있었어요. SF소설만 제출하는 것은 아니었고 과학과 관련된 콘텐츠 중에 과학소설도 제출할 수 있는 공모전이었어요. 그게 아마 소설을 완성한 첫 계기였던 거 같아요.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싶다는 마음! 한번 해 보니까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에 엄청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작법서들을 찾아 읽으면서 공부를 해서 쓸 수 있겠구나 했죠. 스토리텔링의 재능은 아니지만 배운 것들을 다시 옮기는 작업을 훈련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20대입니다. 빠르게 주목받는 작가가 되셨는데, 주변의 시선이나 평가에 신경이 쓰이지는 않나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별로 신경 쓰진 않아요. 쓰긴 써야겠죠?(웃음) 하지만 그것 때문에 글을 못 쓴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글을 쓸 때는 외부 평가와 완전히 멀어져야 소설을 완성할 수 있거든요. 소설을 쓰는 것은 다른 이들의 평가에서 완전히 떨어져서 다른 세계에 몰입하는 경험이에요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올해 「인지 공간」, 「캐빈 방정식」, 「최후의 라이오니」, 세 작품을 발표하셨어요. 특히 「인지 공간」과 「캐빈 방정식」 에는 장애를 가진 인물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처음부터 장애를 다뤄야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에요. 제가 요즘 김원영 변호사와 함께 연재한 『사이보그가 되 다』라는 책을 쓰고 있는데요, 올해 내내 붙잡고 있어요. 장애와 기술을 다룬 글인데, 장애학에서는 몸의 손상이 장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상과 상호 작용하는 사회 구조가 장애를 만든다고 해요. 아무래도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야기를 구상하다 보면 무의식에 있는 것들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인지 공간」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세계의 구조가 개인의 손상과 상호 작용하는 관계에 대한 고민은,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좀 더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걸까요? 

물론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언제나 있어요. 다만 글을 쓸 때는 제가 가진 생각과 쓸 수 있는 생각을 어느 정도 구분하려고 해요. 소설에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고 하고요. 『사이보그가 되다』는 제가 어떤 답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아직 한국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싶다,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주로 간접 경험이다 보니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하되 너무 많은 ‘주장’을 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관내분실」이나 「인지 공간」과 같은 단편을 보면 타인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장면이 나와요. 「인지 공간」에서는 이브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했던 인지 공간 밖으로 걸어 나오는 제나의 모습을 그리셨습니다. 특히 「관내분실」에서 주인공이 “엄마를 이해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에 많은 독자들이 뭉클해 하셨을 거 같아요.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걸 중시하는 건 맞지만 주제를 미리 정하고 쓰지는 않아요. 읽은 뒤에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마음을 움직이는 방향이 여러 가지 있잖아요. 부정적으로 여운이 남을 수도 있고, 어떤 소설은 읽은 후 허무함이 남기도 하고요. 또 어떤 소설은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냉소나 씁쓸함 같은 것이 남아요. 저는 아무래도 긍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이해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시도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나 봐요. 이해에 도달하는 이야기보다는 다른 지점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한 번 교차했다가 다시 흩어지는 이야기요. 한 번 교차하고 헤어지면 어차피 이해하지 못했잖아, 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교차의 순간이 중요하니까요. 

평소에 감수성이 예민한 편인가요? 

저 많이 둔감해요.(웃음) 소설 쓸 때도 인물들이 저보다 예민하기 때문에 몰입하는 과정이 길어야 해요. 

저희 집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은 초등학교 5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있는데, 모두 「공생 가설」이 제일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공생 가설」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가장 먼저 떠올린 아이디어는 ‘신생아들의 울음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의미가 있다면 어떨까?’였어요. 어디선가 동물들의 말을 해석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연상작용으로 떠올린 것 같아요. 다음으로는 아기들에게 외계 생명체가 기생하고 있어서 그런 거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왜 지금 성장한 우리는 그 생명체의 존재를 모르는 걸까, 하고 질문을 거듭하면서 이야기의 전체 틀을 완성했어요.



「공생가설」에서 인간의 이타성이 외부에서 왔다는 설정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전제들을 비틀어보는 것에서 쾌감이 느껴졌어요.

비인간 존재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클리셰에 다소 불만이 있어요. 인간성에 과한 찬사를 보내거나, 인간이 가장 훌륭한 생명체라거나 하는 것들이요. 현대 SF에서는 어차피 잘 안 쓰이는 클리셰이긴 한데, 대중적으로는 아직‘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물론 「공생 가설」을 구상하던 초기부터 의도적으로 인간은 대단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한 건 아니었는데요. 쓰다 보니 평소 하던 생각이 들어갔나 봐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주인공이 할머니였다는 것에 놀라는 독자가 많았어요.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것을 비틀면서 허를 찌르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제가 글을 쓰는 방식이나 글에 사용하는 아이디어들이 SF 장르에서 그렇게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인물의 성별을 드러내지 않거나 모호하게 서술하는 건 국내 SF 작가들도 많이 쓰는 기법이고, 관습적으로 남성 인물에게 주어질 법한 특성들을 여성 인물에게 대입하는 것도 현재 대중문화에서 자주 시도되는 일 같아요.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잘 기억했다가 나도 써먹어야지’ 하죠. 대부분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배운 것들이에요. 

발표한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을까요? 

특별히 그런 것은 없고요.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단편 중에서는 「최후의 라이오니」 가 최근작이고 독자들도 많이 좋아해 주시는 작품인데, 다른 작품을 쓰게 되면 그 작품을 더 많이 좋아하겠죠.(웃음) 

포스텍에서 공부하셨는데,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셨나요?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중3 때 화학에 관심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과학을 직업으로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겠더라고요. 그런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과학이 재밌어지고, 과학책을 많이 읽었어요. 중학생 때 도서관에 가서 출간된 과학 분야 책들을 대부분 찾아 읽은 거 같아요. 특히 칼 세이건을 좋아했고, 생물학책도 많이 읽었어요.

칼 세이건 책의 어떤 부분이 좋았나요? 

칼 세이건은 인류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사실로부터 도출해내는 낙관을 이야기해요. 비관과 냉소 대신 합리주의와 과학이 인류에게 어둠 속 촛불이 되어줄 거라고 했고요. 물론 지금은 칼 세이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세계를 성실하게 탐구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낙관주의를 지금도 좋아하는데, 아마 어릴 적 읽은 칼 세이건의 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편집자는 늘 고마운 존재 

연말이에요. 특히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조유나 편집자님이요. 처음 원고에서 내용을 많이 쳐내셨거든요.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어요. 덕분에 독자에게 좀 더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글이 된 거 같아요. 

특히 「관내분실」을 많이 수정하셨다고요. 

문장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고가 처음과 많이 달라졌어요. 원래 엄마와의 갈등을 좀 더 극적으로 그렸는데, 그렇게 하니까 엄마 개인의 문제로 해석되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 쓰려고 한 의도에서 엇나갔다는 생각이 들었고, 편집자님도 너무 날카로운 부분을 쳐내면 보편적인 서사가 될 수 있겠다고 하셔서요. 그래서 많이 고쳤죠.

작가님을 보면서 SF소설 쓰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아질 거 같아요. 그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SF소설 쓰기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대신 기존 SF소설을 읽으면 도움이 돼요. 소재를 과학에서 가져오기보다는 SF장르 내에서 반복된 모티브, 클리셰를 쓰는 것이 SF소설 쓰기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과학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SF를 많이 읽고 공부하는 것이 자산이 되죠. 

SF소설 중 한 작품을 추천한다면요? 

한 작품을 추천하기는 정말 어렵고 작가를 추천한다면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이요!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들은 문화적, 인류학적 사고 실험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제가 SF를 잘 몰랐던 초보 작가이자 초보 독자였던 시절, 어슐러 K. 르 귄을 읽으며 제가 가지고 있던 SF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깨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SF에서는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거나 사회상,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리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거나 하는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됐어요. 만약 SF를 쓰고 싶지만 아직 충분히 읽어보지 못한 분이라면,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을 보면서 SF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해 보셨으면 해요.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무엇인가요? 

아직은 글쓰기가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고민해 보지 않은 것 같아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생각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심각해지는 무언가라고 해야 할까요. 원래는 사고의 도구, 나의 ‘외장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생계가 되어버렸어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글쓰기가 있을까요? 

우선은 지금 쓰고 있는 논픽션을 마무리하고 생각해야 할 거 같아요. 이번에 쓰는 논픽션은 에세이 성격이 있긴 하지만 인문 논픽션에 더 가까운 글이거든요. 개인적인 것을 드러내는 글보다는 뭔가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과정을 담은 글을 쓰는 것에 재미를 느껴요. 일단 이 책을 마무리하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특정한 주제를 다룬 논픽션을 써보고 싶어요. 언제든지 관심 주제가 생기면 써볼 거예요. 

본인을 표현하는 말 중 소설가와 SF 작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요? 

SF 작가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SF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즐거움이 있거든요. 세계를 만든다는 것, 현실을 그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는 것, 현실의 제약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SF의 한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한테는 이것이 가능성으로 다가와요. 

SF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요. 일상과 다른 낯선 것,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그 낯선 자리에서 나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잖아요. SF가 줄 수 있는 경험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실 공부보다 모니터 속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상상을 해 보는 일이 좀 더 즐겁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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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 “『장애의 역사』 사적인 욕심으로 번역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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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사회에 청인이 있다면 장애를 가진 이는 누가 될까? 의존적이고 손상된 사람은 장애인, 독립적이고 결함이 없는 사람은 비장애인이라는 고정된 인식이 있지만, 장애의 기준은 사회에 따라 변화했다. 킴 닐슨의 『장애의 역사』는 그 변화의 과정을 미국 역사를 기준으로 정리한 책이다. 1492년 이전 북아메리카의 토착민들이 있던 시절부터 1968년 이후의 미국 사회의 모습을 통해 장애와 시민, 정상성의 정의를 돌아보는 한편 ‘의존’, ‘독립’과 같은 현재의 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쓰고 사회적 약자의 건강과 몸을 연구해 온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장애의 역사』 역자로 만난 그는 “연구자로서의 사적인 욕망 때문에 이 책을 번역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를 연구한 그가 인간의 경계를 생각하며 ‘장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일 터. 김승섭 교수를 만나 『장애의 역사』를 번역한 이유, 번역하며 보낸 시간에 대해 물었다.    



사심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인터뷰를 많이 안 하셨더라고요. 

원래 인터뷰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요. 요즘 몸을 움츠리고 힘을 모으고 있어요. 강연도 잘 안 하려고 하고요. 

소수자를 이야기하면서 유명 인사가 되는 게 부담스럽다고도 하셨던데 이런 이유도 있나요?

그럼요.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주제가 소수자와 관련 있는 것뿐이고요. 직업인으로서 열심히 하는 건데 그 이상으로 무언가가 오는 걸 경계해야죠. 

첫 번역서예요. 이 책을 번역한 이유가 있다고요. 

‘이 책을 번역하면 내가 더 나은 학자가 될까’라는 연구자로서의 사적인 욕심에서 시작했어요. 책이나 칼럼을 쓸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이타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심을 따라 움직여요. 이를테면 한국사에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물론 이 두 가지를 완벽히 구분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사적인 욕망이 없으면 하지 않죠. 

어떤 욕망인가요?  

사회 역학자로 공부하면서 인간의 경계를 생각하게 됐어요. 이른바 ‘능력 있는 몸’, ‘대우받는 몸’, ‘시민의 경계’에 대한 질문인데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폭침 이후에 군대로 돌아간 후에 ‘너랑 같이 배를 타기 꺼림칙하다’, ‘너는 패잔병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해요. 이 중에 상당수가 전업 군인을 희망하는 분들이었는데 사건 이후 군인으로서 능력 있는 몸으로부터 배제되고, 오염된 사람이 된 거죠. 특히 군대는 능력 있는 몸이라는 게 중요한 곳이잖아요. 한 마디로 ‘Disabled’ 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거예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도 마찬가지고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도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제일 힘들게 한 것도 ‘네가 무능해서 잘린 거야’, ‘네가 우리만큼 충분히 능력 있는 몸이 아니어서 잘린 거야’와 같은 말이에요. 이런 사회적 맥락을 모아 보면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경계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역사는 실제 있었던 일이잖아요. 사람들이 쌓아 온 실패와 성공의 시간으로 그 질문에 부딪혀 보는 게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장애의 역사』가 강력한 무기로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 건가요? 

인간의 경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깊고 물질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장애’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장애의 역사’로 이걸 이야기한다는 건 이념이 아니라 근육과 뼈와 살로 하는 느낌이에요. 구체적인 삶을 가진 존재들의 이야기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장애의 역사』는 오래 기다렸던 책이에요.

번역하고 나서 사적인 욕망은 많이 충족되셨나요?

네. 잘한 것 같아요. 20년 후 즈음에 연구자로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다면 이 책을 번역하기 잘했다고 생각할 것 같고요. 만약 내가 꾸준히 공부한다면 이 책은 좋은 씨앗이 되어 줄 거라고 믿어요. 그 씨앗을 어떻게 키워나가는가는 저의 몫일 거고요. 사실 번역하면서 많이 힘들었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다른 의견에 납득될 때 희열을 느껴요

저자인 킴 닐슨 교수와 만났다고요. 

직접 본 건 아니고요. 화상으로 여러 번 소통했어요. 번역을 끝낸 후에 열댓 개의 애매한 부분을 싹 모아서 킴 닐슨 교수와 화상회의를 했죠. 그 과정에서 원작에 있던 오류 몇 개도 잡아내고요. 저만큼 책을 꼼꼼하게 읽은 사람이 없을 거 아니에요. (웃음) 킴 닐슨 교수가 나중에 너한테 정말 많이 배운다고 메일을 주셨어요.

노들장애인야학의 김도현 선생과의 만남은 어땠나요?

대학생 때 장애 운동을 하다가 몇 번 연행된 적 있긴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은 장애 운동과 전혀 상관없이 살았어요.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감히 이 책을 번역한 거잖아요. 그래서 김도현 선생님께 내가 이 책을 번역해도 되는 사람이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어요. 노들야학에서 강연하게 해달라고요.  

반응은요?

다행히 허락해 주셨고, 강연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용어를 확인받기도 했는데요. Deafness와 blind를 ‘농’, ‘맹’으로 번역해도 되는지, ‘천치’ 같은 당대에 쓰인 비하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게 옳은 것 같은데 괜찮은지 물어봤어요. 혹시나 의도치 않게 책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비하하는 용어들을 쓸까 봐요. 

철저한 검토 끝에 나온 표현들이네요. 

영문학자 윤조원 교수님의 도움도 컸어요. 실력 차이라는 게 이렇게 클 수 있구나 싶었는데요. 뛰어난 화가가 열심히 하는 초보 화가 옆에 와서 붓칠 한 번 해주면 그림이 달라지는 것처럼, 엄청난 도움이었어요. 윤조원 교수님은 제가 놀라는 걸 보면서 더 놀라시더라고요. 언어의 세계에서 내공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웃음) 

기억에 남는 표현이 있다면요?

가장 놀라웠던 건데요. ‘Distracted’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를 놓고서 1년 넘게 신음했거든요. 정신이상에 해당하는 단어인데 정신이상은 너무 근대적 용어인 거예요. 당신에 썼을 용어 같지 않잖아요. 그래서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해결이 안 됐어요. 나중에 윤조원 교수님께 보여드렸더니 ‘실성’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한 인간이 꾸준히 공부했을 때 가게 되는 경지를 보는 것 같았고요. 중간에 나오는 시 번역도 도와주셨는데 정말 감탄의 연속이었죠. 

번역이 힘들었다고 하셨지만, 협업하는 과정에서 즐거움도 많이 느끼신 것 같아요. 

그런 장면을 좋아해요. 나와 생각이 다른데 상대방의 말이 합리적으로 맞는 장면이요. 다른 사람의 말이 옳고, 내가 그걸 납득할 때 오는 희열이 있어요. 

마지막까지 고민한 문장이나 표현이 있나요?

책의 맨 앞에 나오는 시 ‘장애라는 나라’요. 정말 아름다운 시라 잘 번역하고 싶었어요. 마지막까지 고민한 것 같아요. 이 책은 이 시로 시작하고 끝나요. 그러니까 킴 닐슨에게는 ‘장애라는 나라’가 필살기였던 거죠. 킴 닐슨이 이 시를 마음에 품고 이 책을 쓴 거니까 역자인 나도 그 사람 몸에 들어가 있어야 하잖아요. 끝까지 고민했고 어려웠죠.  



그들의 모순, 한계, 좌절을 인정하기

더 나은 번역을 위해서 책에 나오는 장소를 방문하셨다고요.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나요?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가 다녔던 ‘퍼킨스 맹인학교’요. 장애 언론 <비마이너>에 ‘『장애의 역사』와 함께하는 미국 탐방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성공할지 모르지만,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된 사람들의 다층적인 모습을 쓰려고 하거든요. 고아로 자란 앤 설리번은 헬렌 켈러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었어요. 우리가 아는 ‘미라클 워커’ 이미지와는 다른 면이죠. 그런가 하면 헬렌 켈러는 장애인 인권운동가이면서 우생학을 지지한 사람이었고요. 

장애인 인권운동가이면서 우생학 지지자라니, 모순적이네요.

이 모순이 중요해요. 그게 인간 사회의 본질인 것 같아요. 세계 최초 농인 고등교육기관인 갈로뎁 대학교도 방문했는데요. 갈로뎁 대학은 수어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교내 서점 한 편에는 인공 와우 이식술에 관한 책이 있어요. 이상하죠? 그러면 안 될 것 같잖아요. 구어주의와 계속 싸워왔고, 수어에 자부심이 있는 농인 대학에서요. 그런데 사람한테는 항상 이런 모순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헬렌 켈러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존재로서의 헬렌 켈러가 아니라 그 시대를 몸으로 겪으면서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 모순, 욕망, 좌절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그들의 존엄을 찾는 투쟁을 함께 할 수 있는 기본이니까요.

제목이 달랐다면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요. 제목에 대한 다른 생각은 없었나요? 

양보하고 싶지 않았어요. 거기서까지 물러서고 싶지 않더라고요. 책은 기본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니까 마케팅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긴 해요. 그런데 이 제목과 이런 내용으로 세상에 나올 때는 이 책에 부딪히는 모든 싸움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싸움에서 쉽게 물러서고 싶지 않았어요. 

이 싸움에서 2쇄를 찍었으니 소정의 성과를 거두셨네요. (웃음)

아직 아니죠. 2쇄를 찍었을 뿐, 아직 다 팔린 건 아니니까요. 제가 2쇄까지의 모든 인세를 <비마이너>에 기부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일단 2쇄가 팔려야 기부를 할 텐데 큰일이에요. 기부하겠다고 해놓고 못 하면 안 되잖아요. (웃음) 

역사 속에서 ‘장애’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책이에요. 비장애인에게도 필요하지만, 장애 당사자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과거에는 흑인은 무조건 장애인이어야 했고 여성은 장애인일 수가 없었어요. 장애의 정의 자체가 노동 능력의 부재였는데 백인 중산층 여성의 경우는 노동을 처음부터 할 수 없었죠. 노동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부재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거예요. 이런 장면들은 실제로 장애나 능력 있는 몸이라는 개념이 역사의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언제, 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몸을 재교정하고, 침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최근 들어 장애나 질병 서사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이런 논의가 활발해지는 시점이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보세요?

맞아요. 확장되고 있는 것 같아요. ‘매드 프라이드’ 같은 행사도 나오잖아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나 『어쩌면 이상한 몸』같이 자신의 몸으로 오랫동안 느꼈던 사회적 긴장과 고민을 아슬아슬한 경계의 끝까지 공부해 밀어붙이는 놀라운 책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 

『장애의 역사』를 번역하면서 얻은 경험을 강조했는데 그 경험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요?

그러면 망하는 거예요. (웃음) 제가 20대 초반에 대학에서 학술 토론하면 책에서 본 문장을 외우거나 뛰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말하곤 했거든요. 논쟁에서 이기고 싶어서요. 그렇게 하면 제가 이긴 줄 알았던 거죠. 그런데 그건 제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게 부질없다는 걸 알고 난 뒤로는 책을 읽고 나서 모든 명제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써요. 대신 책과 열심히 대화하고 헤어지면 몸 안에 어떤 에너지의 형태로 남게 하고요. 그렇게 했을 때 명제나 문장이 아니라 경험과 에너지 형태로 남는데요. 그 경험을 신뢰하고 있어요. 열심히 읽었으니까 내가 문장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내 몸 어딘가에 들어가 있을 거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언어로 나오겠지 하고요.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사람들한테 흉내 내지 않는 문장을 쓰는 것 같아요. 

아, 섣불리 명제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군요. 

왜냐하면 인간의 사고가 그렇게 흐르는 것 같지 않아요. 제가 공부하는 방식이 그렇기도 하고요. 지난 1년 6개월간 이 책을 번역하면서 열심히 생각하고 부딪혔으니까 제 몸 어딘가에 들어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긴장을 유지하면서 계속 공부한다면 비록 초라하더라도 내 언어로 무언가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올 거라고 믿고 버티고 있어요. 서문 마지막에 ‘이 대화에 당신을 초대한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쓴 거예요. ‘무언가를 배웠다’가 아니라 ‘이 책과 함께 열심히 경험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훌륭한 사람 취급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번역하면서 떠올린 사람이 있다면요?

어쩌자고 역사학자도, 장애 학자도 아닌 내가 이 책을 번역할 생각을 했는지 싶은데요. 20대 초반에 여러 차례 만났고, 혹은 멀리 있지만 그 자리를 꾸준히 지켜온 장애 인권 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분들이 계속 세상과 부딪히고 상처받고 주면서 시간이 지금까지 흐르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이 책을 번역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을까 싶어요. 아니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정 부분 그분들에게 의탁하고 있어요. 

사회 역학이라는 쉽지 않은 공부를 계속하게 하는 교수님의 동력은 뭔가요?

자주 듣는데요. 항상 답을 잘 못 하겠어요. 좋아서 하는 거예요. 좋다는 게 복합적이고, 여러 층위가 있는 말이라 어렵지만, 그 이상의 말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좋아서 한다 또는 좋으니까 한다고 말해요. 그리고 그 이상의 말은 가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또 어떻게 보면 제 입장에서는 매번 어떤 선택을 했을 뿐인데 밖에서 보면 일관되게 원래 그런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결국은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한 사람을 이루는 것 아닌가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죠. 흔쾌히 선택한 게 아니라, ‘아니 왜’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걸 수도 있는데,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성숙하게 하나하나 이뤄낸 사람처럼 보니까 당황스럽기도 하죠. 진심으로 저를 훌륭한 사람 취급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절실히 바라는 건데요. 훌륭한 사람 취급하는 건 저한테도 도움 안 되고, 한국 사회에도 도움이 안 돼요. 피차 망하는 길이죠. 저를 그냥 직업윤리를 성실히 지키는 학자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경계해도 ‘아차’하면 자신에게 취하는 게 사람이잖아요. 그럴 때는 없나요?

자주 취하죠. 그래서 안 그러려고 발악하는 거예요.  흔히 말하는 존경할만한 사람이 속칭 전혀 그렇지 못한 존재, 사회의 지탄을 받는 존재가 되는 건 사람이 변해서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이죠. 누구나 언제든 그럴 수 있어요. 강연이나 방송을 하지 않고, 칼럼이나 기고를 사양하는 것도 그래서예요. 저라는 사람의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 아니까, 세상에 폐가 안 되려고 부단히 애쓰는 거고요. 




*김승섭

보건과학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강사로 일했으며, 2013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와 동 대학원 보건과학과에서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고려대학교 최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2018년에는 최우수 연구상인 석탑연구상을 수상했다.
천안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일한 이후, 재소자 인권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구금시설 건강권 실태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회역학자로서, 차별경험과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비정규직 노동자나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2014년 ‘인턴?레지던트 근무환경 연구’, 2015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 국가인권위원회의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6년 ‘한국 성인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 세월호 특조위의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 2017년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2018년 ‘천안함 생존자 건강 연구’,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 연구’를 책임연구원으로 진행했다. 현재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레인보우커넥션 프로젝트’의 책임연구원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동성결혼 소송,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소송, 군형법 위헌 소송에서 법정 증언을 하거나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하며 참여한 바 있다. 



장애의 역사
장애의 역사
킴 닐슨 저 | 김승섭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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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민정 “, 시인들이 매우 반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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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시인들의 첫 시집을 새롭게 펴내는 복간 시집 시리즈 ‘문학동네포에지’가 출간됐다. 1996년 11월 ‘포에지 2000’ 시리즈의 펴낸 바 있는 문학동네는 근 24년이 흐른 지금, 첫 행보의 정신을 놓치 않고 새로운 시집으로 독자들을 찾는다. 

10권이 포함된 1차분에는 김언희 시인의 첫 시집 『트렁크』를 필두로 김사인의 『밤에 쓰는 편지』, 이수명의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성석제의 『낯선 길에 묻다』, 성미정의 『대머리와의 사랑』, 함민복의 『우울씨의 일일』, 진수미의 『달의 코르크 마개가 열릴 때까지』, 박정대의 『단편들』, 유형진의 『피터래빗 저격사건』, 박상수의 『후르츠 캔디 버스』가 포함됐다. 2차분에는 김옥영, 이문재, 염명순, 안도현, 정은숙, 조연호, 김민정, 최갑수, 이영주, 이현승 시인의 첫 시집을 선보일 예정이다. 

‘문학동네포에지’ 출간을 총괄한 김민정 시인과 서면으로 만났다. 



피고 난 뒤 지고 없는 꽃을 기억하는 마음

1996년에 ‘포에지 2000 시리즈가 이미 출간된 바 있습니다. 다시 출발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2011년 문학동네에서 시인들의 신간 시집 시리즈인 ‘문학동네시인선’을 시작하면서 앞서 출간되었던 구간 시집들을 한 시리즈로 다시 묶어 정리를 해야지 마음은 먹었던 참이었어요. 그 이전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시집들이 꽤 되었거든요. 권수가 꽤 되어요. 포에지 2000은 그와 또 별개로 한 시절 세상에 선을 보였다가 사라진 절판 시집들을 모아 묶은 시리즈였는데 계속 이어지지가 않았었죠. 현재가 오늘 바로 여기라 할 때 문학동네시인선이 미래로 나아가는 시인선이라 한다면 과거로 돌아가는 시인선도 필요하겠구나, 그렇게 한 궤가 나란히 꿰일 때 역사가 되겠구나, 하여 ‘문학동네포에지’라는 이름으로 복간 시집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어요.

출간하는 시집의 범위가 넓어진 것 같아요. 

처음 포에지 2000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비단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시집뿐만 아니라 그 범위를 확 늘렸어요. 보고 싶고 봐야 하는데 볼 수 없는 우리 시집들을 되찾는 마음에서 속속들이 세상에 있었는데 세상에 없어진 시집들을 리스트에 찾아 넣고 있는 게 ‘문학동네포에지’의 오늘이에요.포에지(Poesie)는 프랑스어로 ‘시’라는 뜻입니다. 첫 복간 시리즈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어요. 

시를 뜻하는 말이지만 크게는 ‘시, 라는 정신, 시, 하는 태도’까지 어떤 정취로 그만의 격으로 느껴지고 보이길 바랐어요. 곧 피려는 꽃이고 막 피어난 꽃을 보려 함이 아니라, 피고 난 뒤 지고 없는 꽃을 기억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두고두고 추억하는 것이 시심이라는 포에지가 아니려나, 감히 그런 생각 속에 내내 작업했던 것 같아요.

신작 시집을 출간하는 ‘문학동네시인선’은 예쁜 디자인으로도 유명합니다. ‘문학동네포에지’는 어떤 차별성을 두고 작업하셨나요?

‘문학동네시인선’처럼 컬러를 일단 디자인의 중심 근간으로 두었어요. 시인과 시집 제목과 시리즈 이름이 뼈대를 단단히 곧추세워야 한다는 것도 디자인에 있어 기저였고요. 군더더기 없이 활자로만 디자인을 꾸리다보니 행간 자간이 어마무시하게 중요해지더라고요. 특히나 ‘문학동네포에지’는 시인 외에 다른 어떤 이의 글도 보태지지 않아요. 그 흔한 해설도 없고 그 참한 추천사도 없죠. 

대신 표4에 시인의 시 한 편을 써놓았습니다.

네. 시인의 대표작이라기보다 한 권의 시집을 여는 열쇠라고나 할까요, 시 안으로 일단 안도하며 인도하게 하는 표지판이라고나 할까요, 시집에 있어 군더더기라면 그 정도라고나 할까요. 기획의 말 역시 본문 종이에 인쇄하지 않고 삽지로 넣은 연유가 그래서였어요. 

판형은 ‘문학동네시인선’과 같더라고요. 

몇번의 고민을 거듭한 결과 최종으로는 문학동네시인선과 같은 사이즈로 맞췄어요. 한데 섞여도 전혀 어울림에 어색함이 없어야 한다는 거, 그렇게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는 거, 아무래도 그걸 보이는 게 시집 디자인의 우선 같더라고요. 대신 컬러는 4도를 쓰는 문학동네시인선과 달리 파스텔 톤의 별색과 기본 뼈대인 먹만을 써서 시각의 온도를 달리 가져갔어요. 지나온 시간만큼 물을 더 탔다고나 할까, 이상하게 물 생각이 많이 난 거예요. 표지 종이로 쓴 스타드림이라는 친환경 종이도 물기를 참 많이 껴안은 채라서 제작에는 어려움이 많은데…… 어쩌겠어요, 그거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것을요.



시집에 있어 편식은 아주 건강한 것

시인들은 복간을 물론 환영했겠죠? 시인들과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주세요.

너무너무 반겨했지요. 고마워했지요. 특히나 1차분은 시인들의 첫 시집으로만 꾸렸기 때문에 만드는 저희들은 조심스러웠고 받아들게 된 시인들은 뭐랄까, 좀 알쏭달쏭한 기분이셨던 것도 같아요. 그 시집이 쓰인 그 시절로 거슬러 가본다고는 해도 그 시절의 몸과 정신이 되는 건 아니니까 나름 교정을 보는 일에 손보다도 마음이 쓰이는 순간 많으셨던 것 같아요. 고쳤다가 그대로 뒀다가 그대로 뒀다가 또 고쳤다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바뀌는 과정을 두고 보는 일에 시가 대체 뭔가, 뭘까,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것도 같아요. 특히나 성석제 선생님은 원래 시인으로 먼저 활동을 하셨고 이참에 앞서 나온 두 권의 시집을 한데 묶으시게 되었던 건데 뭐랄까, 겸연쩍어하심이 느껴졌지만 순수하고 풋풋함이 첫 시집의 진정한 ‘첫’ 같기도 했어요. 1차분 열 분 저마다 개성이 제각각이고 시 세계도 따로 달리 도는 행성이라 말을 하자고 보면 한도 끝도 없을 듯해요. 그 다름으로 말미암아 ‘문학동네포에지’의 내연과 외연이 탄력 있게 확장될 수 있던 것도 같고요. 시리즈에 리스트가 채워지면서 그 반경은 더 넓어질 거라 봐요. 그걸 잘 유지시키는 것이 시리즈의 책임이라 하겠지요. 

초판의 ‘시인의 말’을 읽는 재미도 큽니다. 개정판의 ‘시인의 말’ 변화도 재밌고요. 편집자로서 시인의 말들을 읽으면서, 그 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공통점이라면 모두들 개정판 시인의 말을 쓰기 너무나 힘들어하셨다는 거, 그거요. 그 숙제가 남았군요, 말씀하시던 거, 그거요. 나이가 들어 지나온 자신을 돌아보며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 자화자찬으로 저 자신의 훌륭함을 뽐내는 이가 있기도 또 있겠으나 시인들 대부분은 지독한 자기반성 뒤에 자기 연민도 아주 조금 갖는 사람들이다보니 뒷걸음질 속에 회상하여 풀어놓는 말들에 과장과 포장의 제스처가 없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다 싶었어요. 뱉은 말보다 삼킨 말이 그래서 더 궁금해지기도 하였고요. 

시인들의 첫 시집을 1차본에 복간합니다. 두 번째 시집 등은 추후 복간될 계획이 없나요? 

아마 한 4~5차분까지는 시인들의 첫 시집으로만 시리즈가 꾸려질 것 같고요, 이후부터는 첫 시집 아닌 시집들도 뒤섞어서 여러분들에게 선을 보일 것 같아요. 여성 시인이 시리즈의 1번을 단 만큼 숨어 있고 숨겨져 있던 여성 시인들의 목소리, 시대를 앞서 묵묵히 제 시의 발성으로 온몸을 써왔던 여성 시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고 손을 내밀 참이기도 해요.

독자들이 어떻게 ‘문학동네포에지’를 환대하면 좋을까요? 시집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팁을 주신다면요. 

제목을 읽고, 표4에 실린 시를 읽고, 목차를 읽고, 스르륵 시집 전체를 훑다가 탁 하고 나를 붙잡는 시나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붙잡히는 거죠. 그렇게 해서 잡게 되는 시집이 있고 그렇게 해서 놓게 되는 시집이 있을 거예요. 다는 못 잡아요. 안 잡히죠. 어떻게 다 움켜쥘 수가 있겠어요. 그렇게 나를 붙든 시들, 시집들, 시인들, 거기서 자신만의 취향이 드러나게 되는데, 저는 그렇게 해서 잡게 되는 ‘문학동네포에지’의 시집과 시인의 이름을 메모해두었다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력을 따라 읽어가면 나만의 시 읽기 맵이 아주 탄탄하게 만들어진다고 봐요. 시집에 있어 편식, 그 치우침이야말로 저는 아주 건강한 것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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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준 “부부가 둘다 놀아서, 더 재밌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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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들여다보는데 고수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두 사람이 편안하게 누워 있는데 한 사람은 꽃을 들고, 한 사람은 책을 들고 있다. 꽃과 책, 무용한 듯 보이지만 무용하지 않은 것들. 꽃과 책을 좋아하는 부부의 이야기로구나, 생각했다. 편성준은 20년간 광고회사에서 일한 카피라이터다. 지금은 프리랜서이자 작가.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는 출판기획자인 아내와 결혼 후, 어떻게 잘 놀고 있는지를 시원하게 공개한 책이다. 두 부부의 꿈은 앞으로도 ‘쉬지 않고 노는 일’. “돈이 많은 중년이라서 가능한 일 아니에요?”라고 질문하는 독자가 있다면, 우선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 보자. 



숨기기 시작하면 글이 애매해진다 

책 제목을 보고 안 읽을 수가 없더라고요.

(웃음) 초고는 “늦은 연애는 없다”였어요. 우리 부부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했는지, 그런 내용이 책에 다 나오잖아요. ‘늦은 나이에 연애를 해도 괜찮다’, 그런 마음이 책을 읽고 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원고를 읽어 본 출판사 대표님이 지금의 제목을 제안하셨어요. 정규적으로 하는 일이 없으니까 맞는 말이었죠. 

프롤로그를 읽다가 뭉클했어요. 자존심이 심하게 상하는 일을 겪은 다음 날 새벽, 과감하게 사표를 낼 결심을 하셨고, 아내는 흔쾌히 “그래. 잘 생각했어. 결심하느라 애썼겠네.(15쪽)”라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어려운 일이죠. 정말 고마웠어요. 아내도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직접 출판 기획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별다른 수입이 없었을 때였거든요. 그런데도 저의 무모한 결정을 태연하게 받아줬어요.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생활비를 생각하면 꾸역꾸역 다니는 게 옳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제가 꿈꿨던 삶에 더 가까운 생활을 하고 싶었어요. 이왕 넘어진 거, 쉬어 가자고 생각했죠.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한 달간 혼자 지내면서 글을 썼어요. 회사를 다닐 때는 할 수 없었던 생각들을 썼죠. 브런치에 ‘아내 없이 제주에서 한달 살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했고, 제법 반응이 좋아서 아내의 글과 함께 전자책으로 출간했어요. 브런치를 시작으로 인터넷 포털에 짧은 글쓰기 칼럼도 연재하면서, 광고 일을 할 때는 못 썼던 글들을 쓰게 됐어요. 

책 첫 장에 짧은 자기소개글이 실렸어요. 세번째 문장이 “나는 초혼, 아내는 재혼이었다.”입니다. 요즘 솔직한 에세이가 많이 나오지만, 압도적으로 솔직한 책이 아닌가, 싶었어요. 

숨기기 시작하면 글이 애매해지더라고요. 블러 처리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사람이 그렇게 쓴 글을 읽는 걸 싫어해서 솔직하게 썼어요. SNS를 하는 사람들의 이중적인 마음이 있잖아요.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싶으면서 동시에 자기를 내보이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요. ‘좋아요’를 누를 때도 그때뿐이에요. 돌아서면 잊죠. 편집자님이 초고를 읽고는 “너무 센 거 아니냐”며 오히려 덜어낸 이야기도 있어요. 

책을 계약했을 때보다 추천사 수락을 받고는 가장 기뻤다고요.

정말 좋았어요. 김탁환 선생님은 소설이 아니면 추천사를 잘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원고를 읽고 흔쾌히 수락하셨어요. 장석주 시인님 같은 경우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쓰셨을 때 제가 북 콘서트를 갔어요. 그때 질문지를 길게 써갔는데 행사를 진행하셨던 김민정 시인님이 무대 위로 불러서 제가 주책을 좀 떤 적이 있어요. 워낙 좋아하는 작가라서 부탁을 드렸어요. 심리기획자인 이명수 선생님도 각별하게 좋아하는 분이에요. 모두들 원고를 두 번씩 읽으시고 추천사를 써주셨어요. 너무 좋았죠. 

이 책을 시작으로 인생 후반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가 꾼 꿈들이 무작정 허황된 것만은 아니었구나, 생각했어요. 내가 책을 써도 되나?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저는 어려운 글을 못 써요. 그래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어렵게 쓰는 글을 싫어하더라고요. 단칼에 쓰는 글보다는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면

카피라이터들이 책을 쓰면 광고 이야기가 많은데, 이 책에는 광고 이야기가 적어요. 

광고인 출신으로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했다는 이야기 같은 건, 별로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보다는 “나는 광고로 재미를 별로 못 봐서 다른 길로 가고 싶어서, 지금이라도 간 거야.” 같은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도 20년을 광고를 만들었으니 물론 유명한 캠페인도 했죠. 하지만 캠페인은 유명하지만 카피는 유명하지 않고, 또 반대인 것도 많아요. 일단 이 책은 광고인이라는 타이틀로 쓴 게 아니기도 하고요. 

광고 일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대학교 4학년 때, 홍대에 있는 통기타 서클에 들어갔어요. 미대생도 많고 광고,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되게 좋아 보였어요. 광고 촬영장에 놀러간 적도 있는데 그때 감독님이 “너도 카피라이터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카피라이터 학원도 찾아다니고 공모전에도 참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광고 쪽으로 가게 됐어요. 아주 잘하진 못하는데 성향은 맞고. 그렇다고 너무 좋지도 않은 게 광고였어요. 시인들이 그러잖아요. 시를 쓰는 건 힘들고 나머지는 다 좋다. 저에게도 광고는 그랬던 것 같아요. 

아내와 함께 토요일마다 독서 모임도 하신다고요. 이름이 ‘독하다 토요일’.

벌써 시즌5가 됐어요. 6개월 단위로 멤버들을 모집하는데 지금 11명이 모임을 하고 있어요. 6개월 동안 매월 한 권씩 한국 소설을 읽어요. 최근에는 최진영 작가님의 『해가 지는 곳으로』, 김연수 작가님의 『일곱 해의 마지막』,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을 읽었어요. 굉장히 재밌어요. 멤버 중에 소설가 지망생이 있는데 리뷰를 굉장히 잘 써요. 그 친구가 어떻게 읽었는지를 모두가 궁금해요. 



지금까지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결혼이죠. 아내를 만나고 나서 바뀐 게 많으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마이너한 삶을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나는 메이저로 가야지’ 같은 생각이 없었어요. 늦게 결혼한 편이지만 그래서 더 편한 것도 많아요. 아내가 저를 두고 “NO!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요. 아내가 연극 티켓을 끊고 놓고 “같이 가자”고 말하면 저는 흔쾌히 따라가요. 계획에 없었던 일이지만 같이 하면 또 즐거워요. 

작가님 부부가 불안을 해소하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이제 어떻게 살지?” 고민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남들이 사는 모습과 비교하는 건 없어요. “사람 구실을 못하고 살면 어떡하지?”, “까불더니 꼴 좋다” 같은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할 텐데, 생각할 뿐이죠. 둘 다 프리랜서니까 수입이 불규칙해요. 지금 저희가 도시형한옥에서 사는데, 리모델링을 하면서 빚도 생겼어요. 하지만 이제는 저희가 원하는 일을 선택해서 하니까요. 

오로지 월급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회사를 안 다닐 때의 자기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할 수 없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그 할 수 있는 일을 위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가? 그걸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요. 저는 요즘 서울시청에서 공공근로를 해요. 직장에 다닐 때보다 수입이 줄었으니 생활비가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집 근처 고등학교에 가서 방역 업무를 해요. 학생들의 손이 닿을 만한 곳을 거즈로 닦고 걸레질을 해요. 최저 시급이에요. 하지만 오전 7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해 11시 30분이면 업무가 끝나요. 일을 마치고 오면 얼추 1만 보 이상을 걷더라고요. 어려운 일은 아니니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거예요. 만약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고민을 해봐야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내가 이 정도는 벌어야지’ 생각한다면, 못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10년 전 또는 20년 전의 편성준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요?

조금 더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광고회사에 다닐 때 ‘나는 왜 일을 못할까, 왜 더딜까’ 계속 괴로워했거든요. 이것저것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니까요.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내랑 자주 이야기하는데요. 우리가 좀더 젊어서 더 생산적으로 놀고, 하고 싶은 일에 더 초점을 두고 살았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았을 것 같아요. 새로운 일을 더 하고 싶어도 체력이 부족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으니까요.


 

독자들이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를 어떤 마음으로 읽으면 좋을까요?

글쎄요. 책을 읽다가 ‘논다는 의미가 이런 의미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드셨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고 읽으세요”의 의미는 아니고요. ‘논다’라는 말의 숨은 뜻을 발견하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놀고 있다고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시키는 걸 하지 않고, 놀듯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획하면서 사는 삶은 정말 재밌으니까요.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편성준 저
몽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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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아이는 천 번, 만 번 ‘좋은 말’로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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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랑은 일방통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출산 후 깨달았다. 아이를 낳는 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기는 일이라는 걸.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사랑한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자꾸 부딪히고 어긋날 때가 많다. 이 반복되는 현실을 개선하고 싶다면 오은영 박사는 부모의 말을 먼저 바꾸라고 조언한다. 

부모의 실천을 강조한 육아서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에는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130가지 부모의 말을 담았다. 오은영 박사는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태도로, 부모의 말을 매일 연습하면 분명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가르쳐준 것을 가장 잘 해내는 사람들이 바로 ‘부모’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고치려고 가장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부모’예요. 보통 누군가에게 “이렇게 바꿔봅시다!”라고 제안하면 자신에게 생길 이익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단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해요. 그래서 저는 부모만큼 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7쪽)



육아 회화, 연습하면 실력이 는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는 ‘부모의 말’에 대한 책이에요.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죠. 아이를 정말 잘 키우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육아 현장은 늘 어려워요. 육아를 떠나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람과 대화할 때 많은 문제가 생기죠. 이 상황에서 조금 편해지려면 변화가 필요한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바꿀 수가 없으니 ‘말’을 한 번 바꿔 보자는 이야기예요. 우리는 말로 사랑도 전하고, 위로도 하고, 화도 내고, 교육도 하니까요. 이 책은 말의 기술을 알려주는 게 아니고요. 각각의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실제적인 표현을 담았어요.

‘육아회화’라는 표현이 직관적으로 와 닿았어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외국어를 배울 땐 다 초보자로 시작하잖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어를 듣고 따라하듯이 아이를 향한 말도 그렇게 연습해보자는 의미예요. 모든 부모는 자식을 목숨 바쳐 사랑하지만, 이 마음을 잘 전달하지 않으면 때로 아이들은 상처를 받기도 해요. 우리는 태어나서 걸음마도 배우고, 말도 배우고, 숟가락질도 배우고, 공부도 배웠어요. 세상살이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배우는데 육아는 배운 적이 없죠. 하지만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변화가 필요해요. 그러려면 연습을 해야 하고요. 그래서 실천적 노력과 훈련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어요. 

아이에게 하는 말도 외국어처럼 따라하고, 연습해야 실력이 향상된다는 거죠. 

맞아요. 물론 “사랑해. 네가 내 아이라서 정말 행복해” 같은 말을 건네는 게 처음에는 오글거릴 거예요. 어색하더라도 영어회화를 하듯이 그냥 따라하다 보면 말이 자연스레 몸에 배요. 그럼 그게 생활이 되고, 더 나아가면 내 삶과 가치관이 되죠. 이 습관이 쌓이면 나중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잘 대하는 노하우가 생길 거예요. 그래서 책의 맨 첫 장에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위해 나는 ‘부모의 말’을 꾸준히 연습해보겠습니다’라는 다짐을 적도록 했는데요.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이 책에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아이는 끊임없이 가르칠 대상이다 

중요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지시는 ’10 단어’를 넘지 않는 게 좋고, 훈육도 최대한 간결하게 해야 한다고요. 훈육 상황에서 말을 아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훈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원칙과 지침을 알려주는 거예요. 옳고 그름, 해도 되는 행동과 안 되는 행동, 생활의 질서는 아이가 꼭 배워야 하거든요. 이건 개인의 선택, 선호도, 기분 등과 상관이 없어요. 예를 들어 컨디션이 안 좋다고 신호등을 무시할 순 없잖아요(웃음). 그런데 옳고 그름을 가르칠 때, 너무 많은 감정이 들어가면 이게 ‘콘텐츠(Contents)’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필링(Feeling)’으로 받아들여져서 기분이 상해요. 인간관계는 기분 나쁜 순간 꼬이거든요(웃음). 맞는 말이라도, 기분이 나쁘면 따르기 싫죠. 자존심 상하거든요. 예를 들어 “그렇게 하면 안 돼” 하고 끝날 이야기가 “너는 꼭 그러더라,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니?”라고 끝나면 모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중요한 원칙과 지침을 가르칠 땐 최대한 간결하게 말해야 해요. 10 단어는 대략 30음절이거든요. 아이를 혼내기 전에 미리 이 정도로 문장을 정리해서 말하는 연습을 해보는 게 좋죠. 

간결하게 말할수록 아이가 더 잘 알아듣는 효과도 있나요? 

그렇죠. 간결하게 말해야 전달이 잘 돼요. 무엇보다 말을 많이 하면 주제가 바뀌어버릴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어제도 장난감을 샀어요. 또 사주는 건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다면 “오늘은 사줄 수 없어”라고 이야기하면 끝이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돈 없어, 지갑 안 가져왔어”라며 다른 말을 해요. 그럼 아이가 엄마 가방을 뒤져서 지갑을 찾죠. 졸지에 엄마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리고, “네가 말을 안 들으니까 장난감 안 사주는 거야”라는 식의 결론에 도달해요. 가르치려고 한 건 매일 장난감을 사줄 수 없다는 원칙인데 주제가 달라지니까 아이들은 헷갈리죠. 

“안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면, 아이가 떼를 써도 그걸로 끝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론은 알지만, 계속 떼쓰는 아이를 보면 언성이 높아지기 마련이에요. 

아이에게 안 된다고 말했을 때, 곧바로 “네, 엄마. 앞으로 안 할게요”라고 하는 아이는 거의 없어요(웃음). 징징대고 발을 구르고 나름대로 자기의 기분 나쁨을 표현하죠. 이건 아이가 안 된다는 말을 못 알아들은 걸까요? 아니죠. 알아들었지만 따르기 싫은 거예요. 그러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부터는 이해력이 아니라 감정의 문제거든요.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가요?(웃음) 아이가 떼를 쓰고, 짜증을 부리면 그냥 마음을 다독여주면 돼요. 따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은 아이거든요. 마음을 해결해주려고 하지 마세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가 너무 난리를 쳐서 다칠 것 같은 상황이라면 붙잡고 훈육을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징징거리고 우는 정도라면 스스로 진정할 수 있도록 기다리면 돼요. “엄마가 여기 앉아서 기다릴 테니까 네가 괜찮아지면 와”라고 말하고 아이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가만히 있는 거죠. 마음을 잘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정서적 안정성을 찾아가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경험을 하게 하지 않고, 우리는 늘 두 가지 방법을 써요. 아이의 뜻을 들어주거나, 윽박질러서 못 울게 하는 거죠. 사실 이건 아이가 우는 상황을 내가 못 견딘 거거든요. 그러니까 부모는 부모의 마음을 스스로 잘 다스리고, 아이 또한 혼자서 정서적 안정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기다리는 것과 우는 아이를 그냥 놔두는 건 다른 의미죠? 

맞아요. 저는 자리도 뜨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는데요. 아이가 우는 동안 부모가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건 “나는 너의 마음을 존중해. 나는 너를 보호해. 너를 기다릴 거야”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거든요. 물론 처음에는 오래 걸려요. 하지만 한두 번 하다 보면 금방 배우죠. 내가 울면 엄마가 나를 기다려주고, 아무 일도 안 생긴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아이도 감정에 여유가 생겨야 엄마 말을 들을 수 있어요. 대신 이때 째려보거나 한숨을 쉬면 안 됩니다. 답답한 상황에서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리는 건 우리 삶에서 너무 익숙한 행동이잖아요. 그래서 바꿔야겠다고 인식하지 않으면 바꾸기가 쉽지 않아요. 어떨 때는 제가 부모님들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에요.  

워킹맘은 특히 육아에 고민이 많습니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경우, 어떻게 마음을 다독여주면 좋을까요?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엄마도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 사랑해”라고 계속 말해주는 수밖에 없어요. 만약 아이가 너무 힘들어 한다면 엄마 사진을 뽑아서 펜던트 목걸이 같은 걸 걸어주면 좋아요. 허락이 된다면 중간에 영상통화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24개월 이상의 아이라면 엄마가 일하는 곳에 한 번 데리고 오는 것도 효과가 있을 거예요. 엄마가 매일 말하는 회사가 어디인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 조금 더 안심을 하거든요. 

제가 워킹맘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이를 일찍 떼어 놓고 일을 나갔다고 해서 아이 인생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건 아이가 겪어나갈 수밖에 없는 결핍이고, 결핍은 잘 겪어 나가면 성장의 발판이 되거든요. 저도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속상한 마음은 백 번 이해하지만, 결핍 없는 완벽한 삶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니까 마음을 조금 편하게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훈육할 때 꼭 기억해야 할 태도가 있을까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이면 절대 안 돼요. 아이는 끊임없이 가르칠 대상이지, 싸울 대상이 아니에요. 싸워서 이길 대상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래서 내 마음 안에 화가 많거나, 격분할 것 같은 날에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두는 게 더 나아요. 그러다 아이가 삐뚤어지면 어떡하냐고요? 내일 또 가르치세요(웃음). 반드시 오늘 가르쳐야 하는 건 없습니다. 물론 그때그때 훈육하는 게 가장 좋지만, 내 마음에 분노와 노여움이 많으면 아이를 공격하게 돼요. 이게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어요.


 

억울하면 소통할 수 없어요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아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자연스레 아이의 미디어 시청으로 고민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어떻게 습관을 잡아줘야 할까요? 

이때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건, 미디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21세기에 사는 아이들은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를 멀리할 수가 없어요. 이미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미디어를 보는 걸로 아이를 혼내면 아이는 헷갈려요. 공부도 미디어로 하는데, 쉴 때 미디어를 접하면 나쁜 거라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먼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고요. 아이와 의논해서 하루에 미디어 시청을 허용할 시간을 정해보세요. 단, 반드시 아이와 대화를 통해 협의해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더 보고 싶어 한다면, 앞서 이야기했듯 안 된다는 지침을 알려주시면 돼요. 여기서 “너 엄마랑 약속했잖아”라고 혼을 내면 안 돼요. 약속이라는 대전제에는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거든요. 약속은 안 지킨 사람이 나쁜 사람이니까요(웃음). 계속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걸 강조해서 혼을 내면, 문제가 미디어 시청이 아니라 약속을 어긴 걸로 바뀌어 버립니다. “한 번에 하나만 가르친다”는 것을 꼭 명심하셨으면 해요.

아이에게 놀이동산에 가자고 약속을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지키지 못하게 되었어요.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하는데도 아이는 울고 떼를 쓴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약속은 지키는 게 맞지만, 살다 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런데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사회적 상황에서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떼를 써도 ‘아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유연하게 받아들이시는 게 좋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내가 타당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해요. “오늘 무척 기대했을 텐데, 약속을 못 지킨 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야. 정말 미안하다. 대신 다음에 꼭 갈 가자. 얼마나 속상하겠니. 네 마음 다 알아”라고 다독여줘야 해요. 특히 나중에 꼭 갈 거라고 이야기해주세요. 부모님들은 아이가 울면 “너 자꾸 그러면 안 간다”고 윽박을 질러요. 그러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끊임없이 변명한다고 느끼는 거예요.

억울하겠네요. 

정확해요. 아이들은 억울합니다. 억울하면 소통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부모의 말을 바꿔보자는 거예요(웃음).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대화 자체를 어렵게 느끼곤 해요. 사춘기 자녀와 대화할 때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을 한 가지만 꼽아주신다면요. 

사춘기 혹은 사춘기 이후의 자녀에게 가장 편하고, 도움이 되는 부모는 ‘대화를 통해 의논할 수 있는 부모’예요. 문제를 해결해주는 부모가 아니죠.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훈계를 해요. 예를 들어 아이가 친구 생일 파티에 갔어요. 밤 10시까지 들어오기로 했는데 11시가 되어도 오지 않고 전화도 안 받는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12시쯤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많은 부모님들이 “너 이렇게 네 마음대로 살 거면 집 나가”라고 하죠(웃음). 그럼 아이는 “친구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같이 찾아주다가 늦었다”고 변명을 해요. 이 말이 빌미가 되어서 또 혼나는 거예요. “네가 걔 휴대폰 찾는 걸 왜 참견하니. 너나 잘 해”라는 식으로요. 물론 통금시간을 어긴 건 잘못이지만, 친구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혼자 쌩 하고 오는 건 오히려 사회생활을 못 하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말 없이 늦게 들어온 건 분명 잘못한 일인데요.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듣다 보면 부분적으로 타당한 점이 있거든요.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그 정당성을 인정해줘야 해요. “그래, 친구가 핸드폰을 잃어버렸는데 혼자 오는 건 의리가 없는 거지.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면 전화를 해. 우리가 뭐라고 하는 건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걱정해서야.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으니 걱정되잖아”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이에게 가르칠 건 ‘무슨 일이 생기면 부모님께 연락을 한다’인데, “너 나가”라고 해버리면 아이는 이제 자기의 신상을 부모와 의논하지 않으려 하죠. 그러니 대화하려고 하면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며 벽을 치는 거예요. 어른은 꼰대이고 “알지도 못하면서 훈계질”하는 사람이 되는 거고요. 

자녀의 학업 또한 부모들의 큰 고민 중 하나예요. 공부하라는 말을 반복하면 잔소리가 되는데 아이의 자존감은 지키면서, 공부를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공부를 잘하는 건 재능이에요.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잖아요. 스케이트를 배운다고 다 김연아 선수가 되는 게 아니듯 말이죠. 모든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서, 다 성적이 좋은 건 아니라는 걸 먼저 편안하게 받아들이셔야 해요. 공부의 목표는 첫째로 대뇌를 발달시키는 거고, 둘째로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는 경험을 배우는 거예요. 아이가 물 흐르듯 하루를 잘 보내면서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학원에 결석하지 않으면 공부를 잘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지도할 때, 성적에 포커스를 맞춰서 ‘우리 아이는 공부를 안 해’라고 단정하지 마시고요. 아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한 과정을 칭찬해주세요.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중요해. 그걸로 충분한 거야”라고요.


 
육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 

매일 책에 있는 말들을 연습하면 정말 나아질까요? 

그럼요. 많은 부모님들이 “이렇게 하면 진짜 좋아지는 게 맞냐”고 물으시는데요. 정말 좋아져요. 조금이라도 바뀝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모든 게 다시 시작되죠. 서너 번 헤봤는데 변화가 없다고요? 자녀는 서너 번이 아니라 천 번, 만 번을 가르치는 거예요. 좋은 말로요. 이건 아이의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을 윽박지르고, 비난하며 하지 않는 겁니다. 

부모의 역할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웃음).

어렵죠. 지금까지 해본 일 중에 제일 어려울 거예요(웃음). 하지만 제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오은영TV’에 이어서 ‘오은영의 버킷리스트’ 유튜브 채널도 시작하셨어요. 

소소한 바람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2008년에 많이 아팠거든요. 그 이후로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이 참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새로운 채널을 개설했어요. 그리고 제가 올해 56살이거든요. 오십이 훌쩍 넘은 아줌마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선생님이 저렇게 못하는 데도 끝까지 노력하는 구나. 나도 한 번 뭐라도 해볼까?’라는 마음이 들었으면 싶었어요. 

7시간 동안 발레를 배워서 1분 공연을 한 장면이 정말 유쾌했어요. 버킷리스트를 보면 박사님이 친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날 발레를 배우고 나서, 선생님이 분명 다음 날 몸이 아플 테니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푹 자고 나니까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웃음). 버킷리스트는 찍는 저도 정말 즐거워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제일 먼저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나요? 

버킷리스트 채널에 나왔던 분들께 밥 한끼 사고 싶어요. 바쁜 와중에도 저를 도와주려고 시간을 내주신 게 너무 감사해요. 또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 식구들이 아직 한 번도 회식을 못 했거든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우리 금쪽 식구들에게도 밥을 사는 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에요. 

2006년 방영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체벌 대신 ‘생각하는 의자’를 권장해 큰 주목을 받으셨는데요. 이제 ‘사랑의 매’는 없다고 인식하는 부모가 실제로 많아졌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의 모습도 진화하고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저도 그런 변화를 부쩍 느낍니다. 그동안 써 온 책들도 이와 맥을 같이 해요. ‘이 시대의 부모님들께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던 것들이 전부 책으로 묶였거든요. 그래서 아이에게 건네는 말을 알려주는 이번 책은 저에게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 저는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육아를 하다 보면 때로는 눈물 나고, 후회 되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 싶어서 막막한 순간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자녀를 끝까지 사랑으로 키워낼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뿐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고귀한 가치를 마음에 단단히 새기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힘들 때, 제 책이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별빛으로 여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보며 ‘힘들지만 저 별빛이 있는 방향으로 가 보자’라고 생각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오은영 저 | 차상미 그림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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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재 “, 이번에는 한국의 미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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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부터 미술을 즐기고, 작품이 건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희열을 느꼈다는 조원재. 10년 이상 미술을 즐겨오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까지 달라졌다는 그는 미술을 즐기면서 갖게 된 통찰력과 직관력으로 작가들과 자신 사이에 작품을 두고 ‘대화’를 나눈다. 하나의 작품에서 작가의 감정을 느끼고, 작가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한다. 미술의 희열이라면 이런 것. 

2018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방구석 미술관』을 쓴 조원재 저자는 두 번째 책을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미술가들을 떠올렸다. 한국 미술에 내재되어 있는 연결성과 예술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중섭, 나혜석, 장욱진, 김환기 등 20세기 초에 활동한 작가부터 생존해 있는 작가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10인을 소개하는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은 작가들의 삶과 그들이 살았던 사회의 풍경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즐기도록 돕는다. 조원재 저자는 “이 책을 미술에 관한 지식을 알려준다는 생각으로만 접근하지 않기를”바란다며 미술이 주는 희열을 더 많은 사람이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물질로 토해내는 게 미술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는 이성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 감각적인 것, 감성적인 것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요. 특히 이성적인 논리가 주를 이뤘던 서구 미술과는 달리 한국의 작가들은 내면의 보이지 않는 창작열, 감각할 수밖에 없고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든 자신의 시각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했어요.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라고 봤고요. 독자 분들이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이들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우리가 갖고 있던 정신적 유산

한국의 현대미술가 10명을 소개하고 있어요. 10명을 고르는 데 고민은 없었나요?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제 나름의 우선순위 같은 것도 있었고요. 20세기에서 21세기까지 나열했을 때 가장 한국 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당연히 더 많은, 좋은 작가들이 있고, 그분들의 우열을 가릴 수도 없어요. 그래도 일반적으로 많이 다뤄져 왔고, 많이 알려져 온 작가들을 소개하려고 했어요. 그런 작가들이 다른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부분도 많이 있으니까요. 

책의 들어가는 글에서 독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인만이 가진 고유의 예술혼을 체감하길”(7쪽) 바란다는 말씀을 하는데요.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삶의 궤적을 갖고 있으나 동시에 이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면이 있을 거예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작가님께 직접 듣고 싶었어요. 

한국의 20세기 역사를 보면, 서구 주도로 인한 근대화가 이루어졌어요. 우리 스스로 사회적 문화나 경제, 정치 체제를 만들어가지 못한 면이 있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 퇴색된 것들이 많고요. 우리의 역사를 잊은 면이 있는데요. 많은 미술가가 그랬어요. 서구에서 들어온 ‘근대주의’ 자체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탈피해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정신이기도 해서 우리 유산을 전위적인 마인드로 ‘지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미술가들이 많았죠. 그런데 이 책에 소개한 한국 현대미술가들은 우리 고유의 것을 잊지 않고 끌어 오면서도 서구에서 들어온 것을 조화롭게 섞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은 모두 ‘우리’를 고민했고요. 우리가 갖고 있던 무한한 역량과 정신적 유산을 길어오려고 했어요. 그것이 정말 특이한 점이에요. 

이번 책에서 서구 문물의 유입,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커다란 단절에도 불구하고 한국 미술에 분명한 계보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군요. 

그걸 꼭 담고 싶었어요. 『이기적 유전자』의 마지막에 ‘문화적 유전자’라는 개념이 나오는데요. 굳이 그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느끼고 있죠. 분명히 민족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정신적, 문화적 유산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배우지 않아도 갖고 있는, 각인 되어 있는 문화적 유전자가 있을 텐데요. 이 책에 소개한 예술가들은 그것을 예민하게 감각했고, 내 안에 담긴 문화적 유전자를 계속해서 고민한 사람들이에요. 서양에서 들어온 붓, 유화 물감, 캔버스, 사조를 따라가고 공부할 뿐 아니라 내 과거, 내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계속 추측해왔던 게 무엇인가를 숙고했어요. 그것이 작품에 발현이 된 거죠. 

그래서 장욱진과 김홍도의 공통점을 발견한다든지 이중섭과 고려 상감기법을 연결해서 관찰했는데요. 그런 부분들이 흥미로웠어요. 

그랬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 김홍도나 겸재 정선을 함께 담은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 책을 쓰면서 최대한 담고 싶었던 것은 한국인들이 만들어온 문화적, 예술적 역량이었죠. 왜냐하면 보통 20세기 한국 미술가들을 얘기할 때 서양의 표현주의나,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하곤 하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당연히 그런 면도 있지만 다른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과거부터 존재한 미술이에요. 심지어 무속까지도요. 많이 잊혀졌지만 무교는 고조선부터 계속 있어왔던 우리 핵심적 토속신앙이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흥이 다 거기서 나온 거고요. 제가 보기에는 BTS가 하는 것, 그 안에 자연스럽게 담긴 것도 흥이라고 생각해요. 다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예술가들이 그것들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을 최대한 이번 책에 녹이려고 했어요. 

반 고흐는 알지만 김환기는 모르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에 더해 한국 미술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연결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겠네요. 

자연스럽게 책임감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첫 책을 내고, 당연히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노트에 ‘목표는 10만부’라고 적고 그랬어요.(웃음) 기쁘게도 실현이 됐고요. 지금까지는 그 이상이 판매가 되고, 읽혔죠. 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느낀 건 책임감이었어요. 저의 글이 많은 분들한테 읽혔고, 그만큼 이 텍스트가 영향력이 생긴 것인데 그렇다면 그만큼의 책임감을 갖고 글을 써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책을 고민할 때 자연스럽게 한국의 미술을 선택해 쓰게 된 거죠. 이번 책에서는 조금 더 저의 주관적인 생각과 예술관을 써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삶 안에서 예술이 탄생한다

무엇보다 20세기라는 시대 상황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특히 이 작가들의 젊은 시절 작품들이 굉장히 많이 유실되었다는 점이 무척 안타까워요. 

작품이 유실된 경우도 많고, 전쟁으로 인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한 작가들도 많죠. 대표적인 작가가 이중섭이고요. 그는 살아 있었다면 정말 혁신적인 작품을 낼 수 있던 작가거든요. 이번 책에 다루지 않은 임용련과 백남순의 경우도 그래요. 이들은 나혜석과 함께 1세대 서양화가로 기록되긴 하는데 당시 작품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분들에게 어떤 화업이 있었는지 추적이 전혀 안 됐어요. 앞서 얘기한 것이 정신적인 단절에 관한 것이라면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물리적인 단절, 물리적인 소실이 될 거예요. 한국 미술 연구하시는 분들도 아마 그게 가장 어려운 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해나갈 노력도 필요할 거고요. 

특히 작가님이 유독 안타깝게 느끼는 장면은 뭔가요?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하고 생각하는 미술가는 누구일지 궁금해요. 

이중섭을 꼽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요. 스스로 예술적 연구를 할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너무나 부족한 상황에 놓였던 사람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소>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어요. 이것은 존재하지 않던 소의 형상을 창조해낸 거거든요.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서예의 기법과 원리를 가져와서 그것을 유화로 표현해냈다는 것이 놀랍죠. 그것만 봐도 이중섭은 자신의 메시지와 자신의 느낌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은 거예요. 그 정도의 역량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안타깝죠. 한국전쟁 이후에 그가 맞닥뜨린 시련만 이겨냈다면, 생존했다면 엄청난 화업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나혜석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껴졌어요. 

나혜석이 프랑스 파리로 갈까 고민을 했잖아요. 결국 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스스로가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추측해보면요. 한국에 자신의 아이들이 있는데 파리에 가면 그들을 영영 보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있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아이들을 만나지 못해 나혜석이 평생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잖아요. 결국 나혜석은 파리행을 선택하지 못했는데요. 그때 만약 파리로 갔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그랬다면 그곳에서 다시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삶을 아주 다르게 살아낼 수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의 불굴의 의지를 생각하면 분명 파리에서 기회를 찾을 수도 있었을 거고요. 가령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이성자 화백 같은 경우 한국을 떠나 파리로 갔거든요.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었는데 파리에서부터 유화를 시작했어요. 작품도 정말 좋고요. 그런 생각을 하면 나혜석이 오버랩 되면서 만약, 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거죠. 나혜석의 당시 선택이 그로서는 최선이었겠지만요. 

작가들이 살았던 상황과 삶을 자세히 보여주었잖아요. 그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도움을 주는 걸까요?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는 미술에 본질적인 부분이 있다는 저의 통찰을 반복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미술가의 삶 안에서 예술이 탄생한다는 건데요. 저는 미술에 처음 접근하거나 미술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단 한 가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면 그것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안타까웠어요. 미술을 미술로 보지 못하고 외면에 있는 지식적인 측면만을 보는 것 말이에요. 저는 그것이 미술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양 미술사, 미학, 철학 같은 것으로 미술에 접근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미술사나 미학이 미술이라고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관습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안타깝죠. 모네의 작품이 가진 색채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거나 어떤 붓질을 여기서 왜 했는지에 집중하지 않고 “인상주의네, 나 알아.” 하고 사진 찍고 끝나잖아요. 그건 작품을 안 본 거죠. 

내가 가진 지식과 작품을 맞춰보는 것에 불과하겠죠. 

맞아요. 기존의 지식으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작품을 접하는 건 작품을 제대로 만나고 즐겼다고 볼 수 없죠. 내 인생에 반영되는 것이 거의 없는 거예요. 미술은 내가 작품을 만나서 내 감각으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 자체에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게 미술은 가지고 노는 장난감, 나의 지적 장난감이에요. 제가 하듯 다른 분들도 작품에 깊이 들어가서 작품을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고요. 그렇게 되면 인생이 아주 다채로워질 거예요. 다시 말해 지적 호기심으로 작품을 만나고, 그러다가 작가에 관심이 생겨서 그의 삶을 알아보고, 그렇게 작품이 다시 보이는 과정이 중요해요. 반드시 예술가의 삶으로 접근해서 작품을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어느 관점에만 치우쳐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오롯이 그 작품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렇게 되면 세상을 한 가지 시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시각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거예요.  



지적 세계가 엄청나게 넓어지는

앞서 장난감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작품을 가지고 논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미술은 다른 얘기를 해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게 대개 정해져 있죠,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다르게 느끼려면 내 삶을 회의해보고, 비판해볼 수 있어야 해요. 비판하는 사람들이 곧 철학자고요. 사람들 스스로가 철학자가 되어 볼 필요가 있어요. 미술은 그냥 ‘다른 생각’을 하고, 벗어난 얘기를 하거든요. 미술관에 가서 작품들을 만나면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 다른 느낌과 다른 감각을 얘기해줘요. 그렇게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저는 현대미술관과 비엔날레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하거든요. 여행을 가지 못하고, 언어가 달라 대화하지 못해도 비엔날레에 가면 전 세계에 있는, 그것도 전혀 다른 생각과 전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막 떠드는 걸 들을 수 있어요. 그들의 언어를 몰라도 그들과 얘기를 할 수가 있죠. 지적 세계가 엄청나게 넓어지는 거예요. 

책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와요. 작가님은 작품과 “대화한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미술을 즐기면서 통찰력과 직관력이 굉장히 발달했다고 느껴요. 미술가는 자기만의 세계관을 갖고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물체로 토해낸 거잖아요. 때문에 처음에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죠. 더구나 작가의 말을 다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는 거죠. 저는 작품을 보면 저에게 작가의 감정까지 툭툭 들어오는 걸 느껴요. 물체를 보는데 그 작가의 인간성까지 느껴지죠. 이것은 미술을 수없이 즐기면서 제게 생긴 통찰력 같아요. 10년을 넘게 봤으니까요. 

미술 작품을 보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때도 역시 그런 때겠죠? 진짜 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네, 그래서 저는 난해한 사물을 보는 게 되게 좋아요. 와인을 마시다 보면 더 좋은 와인을 찾게 되잖아요. 감각이 발달하는 건데요. 어떤 미술을 볼 때도 마찬가지 같아요. 나의 사고력, 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감정들로 알맹이를 추출해내는 능력이 발달하게 되면 난이도 높은 작품을 보고 싶어지죠. 한편 좋은 작가일수록 작품에서 그런 것을 숨기잖아요. 숨기는지도 모르게 숨긴 것들을 발견해내는 게 저는 정말 좋아요. 지적인 쾌감이 대단하죠. 

특별히 그런 쾌감을 주었던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김환기요. 그분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기가 쭉쭉 빨려요. 에너지가 너무 순수해서요. 작품마다 나오는 에너지가 다르고, 하는 말이 다르고, 부르는 노래가 다르고, 추는 춤이 다른데요. 김환기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에요. 깊은 산 속, 누구도 가보지 않은 옹달샘에 갔더니 물이 쫄쫄 흐르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옹달샘 물을 한 모금 마셨을 때, 그럴 때 느낄 법한 기분이 확 와요. 볼 때마다 그래요. 그게 정말 좋아요. 몸이 붕붕 뜨는 느낌이죠. 저는 이 책을 보시는 독자 분들도 이런 쾌감을 느껴보시길 바라요. 눈으로, 머리로 보는 그림이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하며 예술을 온몸으로 만끽하시기를요.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계셔서 많이 답답하실 텐데 방구석에서 이 책과 함께 소소한 예술적 즐거움을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조원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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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작가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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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 왜 마스다 미리의 만화로 보면 다르게 보일까? 마스다 미리가 『오늘의 인생 2 - 세계가 아무리 변해도』로 한국 독자를 찾아왔다. 일본의 출판사 웹진에 인기리에 연재 중인 <오늘의 인생>은 일본에서 7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수짱 시리즈>에 이어 가족 만화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 시리즈』 등으로 50, 60대 독자들에게도 사랑 받고 있는 마스다 미리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제대로 알고 쫓는 사람이다.  

『오늘의 인생 1』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인생 2 - 세계가 아무리 변해도』에도 백 개의 손글씨가 실렸다. 한국 독자들이 직접 쓴 백 개의 손글씨는, 우리 각자에게 존재하는 백 가지의 “오늘의 인생”을 뜻한다. 여전히 디저트를 즐기고 사소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마스다 미리와 짧은 이메일 인터뷰를 나눴다. 



요즘 근황을 알려 주세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외출이 어려우실 텐데요. 일본은 어떤가요?

항상 집에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제 생활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머니가 영상 통화하는 법을 배우셔서 가끔 스마트폰으로 통화하고 있는데요. 올해 1월 이후 뵙지 못해서 쓸쓸한 기분입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전 세계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오늘의 인생 2』의 부제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인생 1』을 썼을 때와 『오늘의 인생 2』를 썼을 때의 작가님의 마음은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요? 어떤가요?

항상 같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의식하지 못했어요. <오늘의 인생>은 출판사 웹진에 연재중인데요, 꾸밈없이 일기를 쓴다는 감각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번 『오늘의 인생 2』 표지 그림은 핑크색으로 해보았어요. 봄에 벚꽃을 보고 용기를 얻었는데, 그와 같은 밝은 색으로 해보고 싶었답니다. 매우 귀여운 책이 만들어졌어요. 

이번 책에는 우연히 듣게 된 타인의 말에 관한 에피소드가 유독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유독 더 잘 듣게 되는 누군가의 이야기, 소재도 좋고요.

만화로 그릴 생각으로 일부러 타인의 말을 듣는 건 아닌데, 그냥 자연스럽게 들린답니다. 즐겁게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달까요. 지금은 해외여행을 갈 수 없으니 최근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여행 유튜브를 보고 있습니다. 저는 디저트를 좋아해서 해외 디저트를 먹고 있는 사람의 동영상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 한국 포장마차 요리를 소개하는 유튜브도 보고 있어요. 매우 맛있어 보여요.

평소 작가님은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하고 좋나요?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즐거워요. “맛있는 커피집을 찾았어”라든가, “비 온 뒤에 무지개를 봤어”라든가. 작은 일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더라고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를 만날 수 없지만요.

일상 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무엇인가요?

하기 싫은 일은 운동입니다(웃음). 그래도 체력은 필요하니까 매일 스쿼트만은 하고 있어요. 오늘은 20번 했습니다.



 

연재 중인데,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작가님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문장이 잘 다듬어지지 않을 때는 있지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많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일과 관련 없는 책을 읽어봅니다. 식물에 대한 책, 요리책 등 다양해요. 읽다 보면 의외로 힌트를 찾기도 한답니다. 최근에는 일요일에 바빠도 일을 하지 않아요. 휴일에는 몸과 마음 둘 다 소중하기에.

최근 꽂힌 디저트가 있으신가요? 음료도 좋고요!

『오늘의 인생 2』에도 썼는데요, 스타벅스의 ‘스팀 소이밀크’가 너무 좋아요. 꼭 시도해보세요. 맛있어요. 그리고 올해는 과일 샌드위치를 먹어봤어요. 가게에서 사거나 직접 만들어 먹거나 해요. 과일 샌드위치는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디저트랍니다.


©Miri Masuda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마음 편하게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만약 작가님께 일본 여행 투어 2박 3일 패키지를 구성해달라고 한다면, (한국 독자들을 위해) 꼭 포함시키실 여행지 또는 명소는 어디인가요? 맛집도 좋고요.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일 수도 있는데요. 야마구치현에 긴타이쿄(錦?橋)라는 목조다리가 있어요. 아치형 다리 5개가 연속으로 이어진 모습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옛날 우키요에(일본 무라마치 시대부터 에도시대 말기에 사회풍속이나 인간 묘사 등을 주제로 삼은 목판화)에도 자주 나오는 다리랍니다. 로프웨이를 타면 산성인 이와쿠니성이 나오고, 그곳에서 경치도 즐길 수 있습니다. 오사카나 교토에서 출발하면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서 추천합니다.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나요?

한 가지 일에서 실패해도 나라는 사람이 모든 면에서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작가 지망생이 작가님께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나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한 가지 일에서 실패해도 나라는 사람이 모든 면에서 쓸모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오늘의 인생 2 - 세계가 아무리 변해도』를 읽을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이 책은 어느 페이지에서 시작하든 상관없이 즐길 수 있어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조금씩 읽기에도 좋아요. 하루의 긴장을 풀고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이 인터뷰 질문에 답변을 한 ‘오늘의 인생’은 어떠셨나요?

디저트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기자님도 디저트를 좋아하시나? 하며 기쁜 마음이 들었던 ‘오늘의 인생’.


오늘의 인생 2
오늘의 인생 2
마스다 미리 글그림 | 이소담 역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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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은봉 “누구나 아플 수 있듯이 누구나 나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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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 불가피한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지라도, 스스로 만들어 쏘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치유 일기』에는 두 번째 화살이 자신을 관통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9년 전 ‘그날’의 사건을 떠올리며 “철저히 박살이 났다”고 썼다. 첫 번째 화살이었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쏘아진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날’의 일보다 ‘그날’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이었고, 그 시간 동안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일이었다. 빛 속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 간절함으로 긴 터널을 지나왔다. 곁에서 힘이 되어준 것은, 자신처럼 마음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덕분에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울 수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안과 희망을 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박은봉 저자는 “역사를 알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왔다. 『한국사 편지』로 제45회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엄마의 역사 편지』『한국사 100장면』『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계사』 등을 발표했다. 쉰 살의 어느 날 ‘한순간에 삶 전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됐고, 그것을 재건하는 이야기를 담아 심리치유 에세이 『치유 일기』를 썼다. 



간절한 마음을 붙들고

10년 만에 출간된 신작입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생각보다는 담담하고요. 조금 걱정된다고 할까요(웃음). 제가 써왔던 책들과는 다르니까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기도 하고. 책을 못 쓰게 된지 너무 오래됐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쓰게 된 것이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요. 그런데 의외로 담담해서 저도 놀랐어요(웃음). 막 좋거나 그래야 되는데 그냥 잔잔한 수면 같아요. 

그동안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처음으로 내밀한 개인의 이야기를 쓰셨어요. 긴장되실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에세이를 쓰는 것도 처음이라서 저로서는 새로운 글쓰기를 해본 건데요. 이 책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저와 비슷한 마음의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저의 경험 이야기를 통해서. 그래서 가능한 한 솔직하게 쓰자고 생각했어요. 치유 과정에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 제 마음이 변해가는 과정이나 부침을 겪은 과정들을 자세히 쓰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요. 담담하고 솔직하게 쓰되 많은 정보를 담아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심리상담, 정신과 치료, 자기치유의 과정을 가감 없이 들려주셨어요. 

정신과 약도 그렇고 심리상담도 그렇고 상승했다가 서서히 종결로 가거든요. 그런데 보통은 그런 이야기 잘 안 하고 그냥 약 다 먹었다, 상담이 다 끝났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리고 대체로 거기에서 이야기들이 끝나요.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그게 끝이 아니더라고요. 언제든지 다시 재발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 주변에서 보면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우울증 약 같은 경우는 먹다가 중단했다가 또 먹는 걸 반복하는 사람이 많고, 심리상담도 종결했다가 다시 찾아가는 경우를 많이 보거든요. 저도 자기치유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그랬을 거예요. 사실 제 책의 절반은 그 앞부분(심리상담, 정신과 치료)의 이야기이고, 절반은 그 뒤에 제가 스스로를 치유해나가는 이야기예요. 그런 의도와 마음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때로는 한순간에 삶 전체가 무너지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라는 구절로 시작돼요. ‘그날’ 이후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깨어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그렇죠. 책에도 실려 있듯이, 당시에 쓴 일기에 “박살이 났다”고 표현을 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한 거예요. 박살이 났구나. 누구나 그렇듯이, 쉰이 될 때까지 나름대로 이루어왔던 게 있지 않겠어요? 그것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갔다는 생각이 드니까, 뭐랄까요, 처음에는 멍하고요. 그 다음엔 ‘진짜 박살이 났구나,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때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죠. 어떻게 그렇게 순간적으로 무너질 수가 있는지, 저도 신기해요. 살면서 힘든 일 어려운 일 많이 겪었지만 멘탈이 붕괴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하루아침에 붕괴되더라고요. 스스로도 놀랐죠. 사실 사건사고라는 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멘탈이 붕괴되는 건 아니고, 저도 여태까지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는 왜 멘탈이 무너졌을까요?

그게 저의 화두였어요. 거기에서는 왜 그랬을까. 그걸 계속 찾아가는 거예요. ‘어떤 일이 일어났든 내가 이겨내면 되는데, 왜 무너지나’, ‘여태까지 더 힘든 일도 이겨내 왔는데 왜 여기서는 이렇게 무너지나’ 하는 의문이 컸어요, 그러니까 이건 나의 문제라고 생각한 거죠. 결국엔 내 안의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무너진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어요. 어떻게든 일으켜서 병원으로 이끌고, 상담을 받고, 심리학 공부를 하셨죠. 내면에 강인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요. 제가 특별하게 강한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하고요. 당시에 제가 갖고 있던 간절함, 저 빛 속으로 나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를 붙들고 간 거죠. 그 간절함이 계속 뭔가를 찾아다니게 하고 집 밖으로 끌어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라도 그런 상황에 처해있으면 저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살려고 발버둥 치잖아요. 저도 처음에는 ‘내가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정말 한치 앞이 안 보였거든요. 자신이 없어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 생각도 굉장히 여러 번 했어요. 

그럴 때 힘이 되어준 것은 무엇이었나요?

다른 사람들이 나은 이야기였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도 이 사람처럼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누군가가 한 일이라면 또 다른 누군가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내가 그 또 다른 누군가가 될 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하게 되었던 거죠. 저는 극복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누구나 아플 수 있듯이 누구나 나을 수 있어요. 희망만 잃지 않으면. 

매일 밤 죽음을 생각할 때 “나를 붙잡아 준 내 안의 무엇”이 있었다고 하셨어요. 희망이었나요?

간절함이었어요.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간절함을 조금 더 분석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여기에서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 여기에서 그만두기에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고지가 저기인데 여기서 죽으면 억울하지 않냐고. 사실 그때 매일 밤 내일 아침에 눈뜨지 않기를 소망했어요. 너무 아프니까. 내일 아침에 눈뜨면 다시 아플 거잖아요. 그게 너무 싫으니까 아침에 눈 안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번 잠이 들었어요. 잠도 잘 못 자지만. 의사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저도 그 자리에서 웃었어요. ‘맞아요, 억울하죠’ 하면서. 그런 마음도 있었고요. 그 순간에도 여러 얼굴들이 떠오르죠.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 떠오르니까 뒷걸음질 치는 거죠.



근본 원인은 내 안에 있어요

‘그날’의 일이 있기 전부터 일기를 써오셨던 것 같아요. 

맞아요. 매일은 아니고 간간이, 속상하고 화날 때마다 썼어요. 일기에는 그냥 하고 싶은 말 막 쓰잖아요. 아무한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도 써도 되고. 제 속에 담긴 것들을 토로하는 거니까 좋을 때는 별로 안 쓰게 되고 화날 때, 속상할 때, 안 좋을 때 주로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간간이 썼었는데, 마음이 아프고 나서는 매일 들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쓴 거죠. 

처음 7개월 정도는 전혀 못 쓰셨다고요.

아무것도 없죠.

그때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너무 힘드셨죠?

기억도 잘 안 나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고...

그때는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한 30분 이야기하면 ‘가주세요, 저 드러누워야 돼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느닷없이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어요.

그만큼 상태가 좋아진 거죠. 아마도 정신과 약을 거의 끊을 무렵이었을 거예요. 정신과 약이라는 게 처음에 약하게 시작했다가 점차 최고 강도로 높이다가, 의사가 판단해서 끊어야겠다 싶으면 서서히 줄여나가거든요. 그때는 약을 점점 줄이던 시점의 어느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문득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9년 동안 명상, 심리상담, 걷기 등 치유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요. 일기 쓰기는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었나요?

감정과 생각이 내 안에 있을 때는 계속 맴돌면서 자신을 괴롭히거든요. 객관화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밖으로 끄집어내는 순간 치유가 일어나요. 일기는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밖으로 끄집어내놓는 거예요. 매체가 무엇이든, 글이든 말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그걸 통해서 자기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감정이나 생각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거리두기가 되고 ‘아, 내 감정/생각이 이렇구나’ 하고 바라보게 돼요. 그 순간부터 객관화가 이루어지고, 그게 치유의 첫걸음인 거죠. 

책 속에 당시의 일기가 실려 있는데요. 힘들었던 시기에 쓰신 글이잖아요. 다시 읽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책을 쓸 때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옛날 일기를 다시 보는 거였어요. 물론 지금 저한테는 거의 객관화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기억이 떠오르죠. ‘그때 내가 이랬구나, 이렇게 힘들었구나’ 하면서 눈이 조금 촉촉해지죠. 그러면서 나의 상태를 다시 보게 되고요. 또 하나는, 그 시절을 다시 보게 돼요. 재해석 내지 재조명한다고 할까요. 그때 알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보면서 ‘사실은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닫는 것도 많고요. 마치 역사책을 쓸 때 사료를 보면서 어떻게든 재해석을 하게 되는 것과 같아요. 그 시절의 모습을 하나의 텍스트로 보면서 다시 이해하고 계속 재해석하는 시간을 갖게 돼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심리학 공부도 시작하셨는데요. 이전과 달리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것,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측면이 있었나요?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제가 쉰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을 새로 들어가서 심리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동기는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어요. 인간의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마음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발현되는지, 내 마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그런 구체적인 질문이 있었어요.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게 저의 공부였고요. 그래서 많은 도움이 되었죠. 

그 결과 “내게 일어난 사건은 ‘방아쇠’였을 뿐 무너진 근본 이유는 내 안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셨죠.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적인 문제나 상처는 사실 내 안에 근본 원인이 있어요. 내가 피해자라고 한다면 가해 행위를 한 누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의 행위는 방아쇠인 것이지 그로 인해 무너지고 안 무너지고는 나의 문제인 거예요. 그러면 상대방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냐? 아뇨,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예요. 나쁜 짓을 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죠. 그런데 그로 인해서 내가 상처를 받지 않아야 되는 거예요. 상처를 받더라도 삶이 무너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주저앉아 버렸다면, 어떻게 보면 스스로에게 두 번째 화살을 왕창 쏜 거예요.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양가감정이 들고는 하잖아요. ‘내 잘못인가?’ 싶으면서도 ‘그래도 저 사람이 방아쇠를 당기면 안 되는 거지’ 싶고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죄책감을 느끼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내 마음의 어떤 요소가 작동을 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거죠. 어떤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과 죄의식을 가져요. 그것 자체가 두 번째 화살이에요. 아주 심각한. 상대가 나한테 잘못한 건데 나는 왜 그 사건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건 내 안의 어떤 요소가 죄책감을 느끼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뭔지를 알아내서 치유해주어야 해요. 옆에 있는 사람들은 ‘네가 착해서 그래’라고 말하죠.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어떤 요소가 있는 거예요. 그걸 알아내야 돼요. 그것이 치유의 중요한 과정이예요. 

방아쇠를 당긴 사람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기란 너무 힘든 일인데요. 어떻게 떨쳐내셨어요? 

정말 힘들었죠. 제일 힘든 게 분노였어요. 그 분노가 한 번 몸을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온 몸이 활활 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활활 타요. 시쳇말로 뚜껑이 열린다고 하죠? 그 정도가 아니라 정말 활화산이 된 것 같아요. 한 번씩 그러고 나면 완전히 지쳐요. 태우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했으니까. 분노가 가장 강렬한 감정 중에 하나일 거예요. 그러니까 몸을 힘들게 하는 거죠. 그런데 감정은 밖에 내놓으면 사라져요. 내 안에 있으면 나를 태워요. 바이러스가 숙주를 떠나면 오래 못 가서 죽듯이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어떻게 밖으로 내놓을 수 있을까요. 그걸 훈련하고 연습하는 게 필요한 거예요. 

책에서 말씀하신 ‘감정 바라보기’, ‘일기 쓰기’도 그런 연습 중에 하나겠네요.

그렇죠. 밖으로 꺼내놓는 방법은 각자한테 맞는 걸 찾아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노래를 부르거나 걷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자기한테 잘 맞는 게 있어요. 그걸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치유 과정이에요. 찾아서 자꾸 바깥으로 내놓는 거예요. 밖으로 내놓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 막 쏟아내는 게 아니고요. 바깥으로 내놓으면서 객관화시키는 연습을 해야 돼요. 

감정을 꽁꽁 싸매는 게 가장 안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불길이 잦아들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럼요. 그리고 안에 쌓아놓은 감정은 언젠가 터져요. 반드시. 오래되면 될수록 나중에 크게 터지죠.



하루씩 살기

“오래전부터 뱃속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것 같았다”고 하셨는데요. 외로움, 혼자가 될까 두려운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그게 근본적인 문제였죠. 내 안이 뻥 뚫려 있었기 때문에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냥 무너져버린 거죠. 그 뻥 뚫림이 치유가 돼야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치유가 됐어요. 놀랍게도. 그것도 정말 순간적인 일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뻥 뚫림을 전혀 느끼지 않아요. 그 이야기를 하면 무슨 신비체험처럼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던데 그건 아니고요(웃음). 어떤 것을 계속 추구해나가다 보면 얻게 되는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아요. 그 뻥 뚫려있음이 물리적으로도 느껴지고, 심리적으로는 외로움이라는 것으로 다가오고, 아주 심해졌을 때는 공포가 됐었어요. 그 공포는 정말, 뭐라고 할까요, 세포 하나하나가 떨리는 거예요. 그래서 불안증이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되는데, 달리 표현할 수가 없어요.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떨리는데 진짜... 괴로웠죠. 

“외로움이 두려워 스스로 저지른 우(愚)의 결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낯설지 않은 이야기예요. 혼자되는 게 겁나서 관계에서 실수를 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렇죠. 저의 실수가 그거였거든요. 제 안의 뻥 뚫림이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했잖아요. 그 뻥 뚫림과 외로움이 싫고 무서우니까 그냥 관계를 좋게 좋게 맺는 거예요. 관계가 잘못 될까 봐, 떨어져나가게 될까 봐, 멀어질까 봐, 그래서 혼자 남을까 봐, 잘못도 눈 감도 안 좋은 일도 눈 감고 (상대가) 잘못해도 ‘그래, 내가 참아주지’ 하면서 또 넘어가고 넘어가고... 그러다 해결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빙산처럼 점점 커지는 거예요. 이걸 끊지 않으면 남은 인생에서 계속 반복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태까지 해온 만남에서 일종의 패턴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관계가 잘못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머지를 다 희생시키는 걸 반복하고 있더라고요. 나의 만남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꿔야지, 생각한다고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죠. 내 안의 어떤 공허함이 유발하는 거니까 그 공허함이 메워지면 저절로 관계 맺는 방식이 바뀌지 않겠어요? 그래서 공허함에 초점을 맞췄던 거예요.

“우울에 빠진 이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만약 상대가 잡기를 거부한다면, 잡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면 좋겠다. 아직 잡을 힘조차 없어서 그러는 것일지 모르니”라고 쓰셨어요. 아직 손잡을 힘을 내지 못하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정말 힘들 때는요, 아무것도 못해요.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숨 쉬기도 힘이 들어요. 그럴 때는 뭘 하려고 억지로 애쓰는 것보다는 그냥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뭐라도 좋아요. 화분에 물을 준다든지, 뭐든지 좋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루에 한 가지는 꼭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정말 힘들 때 한 게 ‘하루씩 살기’였어요. 오늘 하루만 사는 거예요. 내일이나 모레나 한 달, 일 년 뒤는 정말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내일 하루 잘 살기’를 하는 거죠. 

해야 할 일들을 메모하면서요?

정말 시시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병원 가기, 문구점에 가서 볼펜 사기... 그것도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굉장한 일이에요. 그걸 한다는 건. 안 하고 싶거든요. 할 기운도 없고 못 하겠고, 그런데 하는 거죠. 하고 났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렇게 하루씩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집 밖으로 나와 있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건 ‘나도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포기하지 않는 것. 길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리고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누군가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면 한 번 해봐야죠.


 

가족이나 친구가 마음의 고통을 앓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힘들 때는 옆에서 손을 내밀어줘도 못 잡아요. 그리고 싫어요. 귀찮게 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고 짜증내고 화내죠. 그럴 때는 그냥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게 제일 좋아요. 힘내라는 말도 되게 화나요. 지금 힘이 안 나서 죽겠는데 힘을 내라니까 짜증나요. 힘내라는 말 듣기 싫어서 사람을 안 만나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같이 있어주는 게 제일 큰 도움이 돼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복장이 터지거든요(웃음). 같이 병날 것 같죠. 그걸 사랑과 관심으로 해야 돼요. 가만히 지켜봐주다가 당사자가 움직이면 그때 얼른 같이 손 잡아주고, 그러면 조금 나아져요. 그렇게 조금씩 가는 거예요.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존재가 옆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회복될 수 있어요. 

역사를 공부하셨는데, 그 경험이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일에도 도움이 됐나요?

음... 그에 대한 답을 제 나름대로 모색하는 게 다음 책의 내용이 될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의문이었거든요. 내 마음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 역사가 나한테 도움이 되었는가. 역사는 나한테 무슨 말을 했나. 어떻게 보면 질문하신 내용이 다음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 다음 책은 다시 역사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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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김수정 "여성은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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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포스트코리아

디지털 성범죄, 낙태죄 폐지 및 개정 논의 등 여성 인권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요즘, 중요한 참조점이 될 책이 나왔다. 바로 20여 년 간, 여성 및 아동 인권 관련 변론을 적극적으로 맡아온 김수정 변호사의 『아주 오래된 유죄』다. 그가 기록하는 ‘대한민국 여성의 법적 투쟁사’는 낙태죄, 호주제 폐지, 이주 여성, 미혼모 등 다양한 이슈를 포괄한다. 그만큼 성차별의 문제가 사회 곳곳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다. 안타깝게도 여성들이 짊어진 ‘아주 오래된 유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말한다. “같은 싸움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같은 싸움은 없다. 포기하지 않은 싸움에는 늘 한발 전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법이 여성을 외면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김수정 변호사를 서면으로 만났다.




세상을 바꿔온 여성들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작가님. 20여 년간 여성의 인권 관련 사건을 많이 맡아 오셨는데요. 여성, 아동 인권분야의 변호사가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사실 여성 아동인권 분야의 변호사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온 건 맞지만, 일상적으로는 작은 로펌에서 일반적인 변호사 업무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20년 동안 여성, 아동 인권 분야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해왔거나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분야의 변호사라고 한다면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여성으로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엄마나 주변의 여성들의 삶을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런 생각이 이어져 ‘잘못된 뭔가’를 바로 잡고 싶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변호사 활동을 막 시작하신 2001년과 2020년 현재를 비교하면, 어떤 차이를 느끼시나요? 그동안 호주제 폐지부터 최근의 미투 운동까지 여성운동사에 남을 많은 일들이 지나갔고, 현재 진행형입니다. 체감하시는 변화가 있다면요.

너무 비관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은데 실은 솔직히 체감하는 변화를 잘 모르겠어요. 소소한 제도 변화로 분명 나아진 부분이 많이 있죠. 호주제 폐지 이후 호적 개편으로 호적의 기록으로 인한 불이익이 많이 해소된 것처럼요. 그런데 어쩐지 더 힘들어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려요. 왜일까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는 것,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일까요. 과거에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여성의 사회 진출, 대학 진학률 등 양적 변화는 일어난 것 같은데 성차별해소에서 질적인 변화가 받쳐주질 못하니 여성의 삶이 더욱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프롤로그에서, 책을 쓰는 데 망설임의 시간이 있었고 집필에도 2년이 걸렸다고 하셨어요. 어떤 마음에서 기록을 시작하셨나요? 

프롤로그에 썼다시피, 처음에는 글쓰기를 거절했습니다. 법정 서면 쓰기에 익숙한 사람이 책을 쓴다는 것도 자신 없었지만, 하나하나 사건에 담긴 여성들의 서사를 제대로 담아낼 자신은 더더욱 없었거든요. 결국 그들을 변호한 변호사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공유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변론이라는 생각에 집필을 수락하게 되었죠.

책을 읽으며, 많은 여성들이 왜 당연히 보장 받아야 할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지 분노할 것 같아요. 당연히 지켜져야 할 일들이 그동안 법정에서는 왜 외면받아왔을까요?

제가 보기엔 너무나 당연한 권리보장이고 구제인데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결국 그만큼 여전히 세상이 성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면 전혀 문제가 없거나 미비할 뿐이거든요. 성희롱 좀 당했다고 죽냐고 할 수 있어요. 근데, 당하는 여성 입장에서는 일회적인 성희롱 하나가 아니라 일상이고 당면한 문화적 환경이거든요. 그런걸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젠더적 관점이 아직 부족한 거죠.

현재의 ‘페미니즘 리부트’가 가능하기까지, 과거의 많은 여성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현재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과거의 장면 하나를 꼽아주신다면요? 

하나를 뽑기는 너무 어렵고 뽑을 수가 없어요. 장면 장면 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꼭 뽑아야 한다면, 가장 최근 진행되고 있는 장면을 뽑겠습니다. 56년 만에 재심청구를 하신 최말자 할머니께서 재심청구를 하던 장면입니다. 56년 전에 성폭행을 피하려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는데,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고 중상해로 처벌된 사건이에요. 

당시 판결문을 보면 처녀가 낯선 남자를 따라간 것을 탓하는 대목도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이었죠. 18세 소녀가 70대 노인이 되어 평생 한으로 안고 사시다가 미투 운동을 보시고 재심으로 본인의 억울함을 이제라도 풀어보겠다고 나선 거에요. 지금 열심히 싸우고 있는 중인데요. 이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내는 분들이 있어 오늘이 있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만일 재심 개시가 되고 승소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엄청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승리할 수는 없어도 ‘연대’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여성’ 개개인은 각자 다른 상황에 서 있지만, 다름아닌 여성이라는 사실이 또 다른 여성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변론을 해오시면서 기억에 남는 연대의 장면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제 책에는 성폭력 관련 사건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건들이 나와요. 그 다양한 내용들이 다 성차별이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죠. 고속도로 요금수납원 노동자들의 상의 탈의 투쟁을 보면서 수지 김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죠. 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연대에 대한 믿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연대에 대한 많은 기억이 있지만, 하나를 이야기하라면, 낙태죄 위헌 소송을 할 때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였지만 실은 그것을 이끌어 낸 것은 법정 바깥에서 연대하여 싸운 여성들과 연대자들의 힘이었거든요. 엄청났습니다. 호주제 위헌 소송 때도 그랬고요. 특히 제가 법률 전문가이다 보니 전문직 여성간의 연대가 기억에 남아요. 낙태죄 위헌 소송 시 의사선생님들께서 연대를 많이 해주셨어요. 의료 현장에서 임신, 임신중지, 출산을 둘러싸고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몸소 체험해오신 여성 의료인들의 생생한 증언과 의학적 지식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요. 연대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여성의 투쟁이 남녀 모두에게 전해지길

n번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합니다. 최근 n번방 조주빈이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는데요. 이 판결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고, 디지털 성범죄를 줄여나갈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이라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책에서도 좀 언급한 내용이 있는데요. 저는 원래 강한 처벌을 대책으로 내세우는 걸 좀 싫어하는 입장입니다. 성범죄나 성차별 문제에서 가장 손쉽게 돈 안들이고 여론도 무마시킬 수 있는 것이 처벌위주 대책이거든요. 그런데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는 심해도 너무 심해요 피해자들은 죽어나갈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처벌은 정말 솜방망이 보다도 못한 수준이었죠. 

그래서 책에서 제가 그랬어요. 안되겠다, 이건 강한 처벌이라도 먼저하자 강한 처벌로 응보하고 위하(겁주기)효과라도 주자고. 그 시작으로 조주빈이 과거와 달리 강한 처벌을 받았죠. 무기징역을 받아야 한다는 분들도 있지만, 선례를 생각해보면 이것도 참 많이 나간 것이죠. 많은 피해자들의 피눈물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강한 처벌이 제일 쉬운 대책이에요. 성차별, 성폭력을 없앨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사회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요. 어릴 때부터 교육이 중요한데, 지금 보세요. 2016년도에 엄청난 비판을 받은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 이후 아직도 못 만들고 있어요. 돈도 안쓰고, 능력 있는 사람을 쓰지도 못하고 있는 거죠. 아니 안 하고 있는 거죠.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뭘까 참 어려운데요. 교육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되고요. 교육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주요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이 매우 중요해요. 40대 이상의 남성들이 독점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혁명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하죠.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 모두가 한 성별의 일정 연령대에 집중되어 있어 따르는 폐해는 이미 오래 지켜봐 왔으므로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고요. 교육이든 뭐든 위와 같은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제대로 시행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낙태죄 위헌소송 대리인단의 일원으로 ‘낙태죄 위헌’을 이끌어내신 변호사로서, 현재 낙태죄 개정안 이슈에 대한 입장이 궁금합니다

우선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고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새로운 입법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에 대해 엄청나게 실망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외국의 입법례를 들면서 2020년 대한민국의 입법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너무 낡았습니다.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 구도라는 아주 낡은 대립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낙태죄 유지로 여성을 통제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여성으로 폄하하는 것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 제가 책에서도 경고(?)했듯이 이렇게 여성을 푸대접하면 ‘인구절멸’의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비혼 출산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기 위해, 법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이미 현실에서 가족 형태는 많이 변하고 있어요. 일인가족이 크게 증가하고, 법률혼 없이 동거하는 가정, 동성 가정. 한부모 가정, 무자녀 가정 증가 등등 혈연기반 없는 다양한 생활동반자 가정이 있어요. 혈연을 기반으로 한, 법률혼을 기반으로 한 소위 정상가정 위주의 현행법만으로는 현실을 따라 갈 수 없어요. 혈연과 법률혼을 중심으로만 인정되어온 ‘가족구성’의 권리는 이제는 낡은 것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법이 인정하고, 이들에게도 다양한 권리와 의무가 주어질 수 있는 법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법에서 소외된 사람이 많은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책의 사례들처럼, 여성들의 투쟁은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기도 합니다. 아직도 남성중심적인 구조는 견고한데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변론을 해나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특별한 게 없어요. 그저 제게 맡겨진 일, 해야 할 역할을 피하지 말자는 단순한 생각입니다. 가끔은 타인의 삶의 무게, 사회적 책임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하는 이 일이 힘들어서 피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저 단순한 생각을 유지하면서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프롤로그에서 “계속 글을 써달라고 했던 젊은 남성 독자”를 언급하셨지요. 앞으로 이 책을 집어들 남성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남녀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건 불변의 진리잖아요.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싸워온 여성들의 기록이 아니고요, 스스로를 구원하면서도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자신을 바쳐 싸워온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남녀 모두의 이야기로요.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구성원 변호사. 두 딸의 모자란 엄마로 주업은 작은 로펌의 월급쟁이. 호주제 및 낙태죄 위헌 소송의 대리인,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으로 20여 년간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이주여성 등에 대한 법률 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 곁에서 손잡아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자 했고, 앞으로도 되고 싶은 열혈 변호사. 지은 책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공저)가 있다. 



아주 오래된 유죄
아주 오래된 유죄
김수정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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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재영 “여행을 못 가면, 여행 준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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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아니라 ‘여행 준비’의 기술이라니. 제목에서 궁금증이 생겼다가, 프롤로그를 보고 단숨에 책을 다 읽었다. 그동안 여행 준비를 취미로 삼을 생각은 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걸까? 의사이자 작가이고, 책 이야기를 하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진행자인 저자 박재영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데 즐거운 게 있었던가?”라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시험, 회의, 대회 등 어떤 일을 준비하는 과정은 대체로 괴롭지만, 여행 준비만큼은 설레고 즐겁다는 의미다. 그래서 여행이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코로나 시대에 이 책을 썼다. 여행을 가는 건 어려워도, 여행 준비는 언제든지 할 수 있기 때문. 올해 한 번도 여행을 가지 못해 우울한 기분이 든다면, 저자의 여행 준비 기행문을 읽어 보시길. 떠나지 않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여행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취미는 ‘여행 준비’입니다 

여행 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이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10년도 넘었다.(6쪽)”고요.

서른 살 쯤까지는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마땅히 할 말이 없었어요. ‘나는 취미도 없는 인간인가’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걸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행 준비더라고요.(웃음) 실제로 여행 준비를 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고 있고요. 가고 싶은 장소를 찾아보고, 여행에 관련된 자료들을 자주 보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많아졌어요. 준비를 많이 하고 가니 여행지에서도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죠. 자연스레 지인들과 술 마시고 놀 때, 여행 얘기를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여행 준비를 키워드로 책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묵혀 두었던 이야기가 코로나 시대에 책으로 출간되었네요. 

갑자기 여행을 못 가는 순간이 오니까 우울하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사실 더 좋아하는 건 여행 준비인데 이건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도 할 수 있잖아?’ 그래서 10년 전부터 쓰려고 했던 책을 지금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여행 준비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네가 술집에서 매일 하던 얘기 쓰면 되겠다”고 바람을 넣었어요.(웃음) 어차피 코로나로 약속이나 출장도 다 취소돼서 원고 쓰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목도 10년 전에 지으신 거라고요. 다른 후보는 없었나요? 

코로나가 들어가는 제목이 몇 가지 있었어요. 거의 다 잊어버렸는데, 어쨌든 여러 후보를 놓고 출판사에서 고심하다가 다시 처음 제목으로 돌아갔죠.(웃음) 이 제목이 별로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반대로 매우 좋다는 의견도 있었거든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에서 장강명 작가님이 “제목 좋다”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맞아요. 최고의 제목인데 왜 고민하냐고 하더라고요.(웃음) 

8명의 추천사가 실렸어요. 팟캐스트에서 만난 인연인가요? 

장강명, 김혼비 작가는 그렇고요. 떠오르는 분들께 원고를 보내면서 “읽고 별로면 그냥 버리시고, 재미있으면 원고지 한 장만 써주세요”라고 했더니 다들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추천사로 맺어진 재미있는 인연이 있는데요. SBS <최영아의 책하고 놀자> PD가 책걸상 애청자여서 밥 한번 먹자는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약속을 못 잡고 있던 차에 책이 출간돼서 “추천사도 쓰고 밥도 먹자”고 연락했더니 그 사이에 PD가 바뀌었다는 거예요.(웃음) ‘전 PD의 추천사’라고 싣기는 좀 이상할 것 같아서 현재 PD한테 연락을 해봤는데, 마침 책걸상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인데 흔쾌히 써주셨어요. 조만간 전 PD, 현 PD와 같이 만나려고요.(웃음)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여행 좋아하는 선배에게 술자리에서 여행 얘기 듣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쉽고 재미있게 쓰기 위해서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아요. 

오랫동안 칼럼을 쓴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칼럼 쓸 때 중요한 건 리듬감이잖아요. 긴 글에서도 그 리듬감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이건 저의 글 쓰는 습관인데, 꼭지의 분량을 다 비슷하게 맞추는 걸 좋아해요. 설계도를 미리 그려 놓고 책을 써서 23꼭지의 분량을 거의 다 비슷하게 맞췄어요. 제일 신경 쓴 건 ‘웃겨야 한다’는 거였어요. 여행은 즐겁자고 하는 거고, 여행 준비도 즐거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니까요. ‘코로나 우울증 극복을 위한 최고의 명약’이라고 해놓고 지루하면 안 되니까 유머코드를 다양하게 넣었죠. 그런데 쓰다 보니 ‘아, 너무 재수 없어 보이는 거 아닐까?’하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허세 고백서가 되어 가서 걱정(38쪽)”이라고 하셨죠.(웃음)

결국 먹고 놀았다는 이야기잖아요. 물론 많은 사람이 여행을 가지만, 어느 누구나 여행을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건 아니고 누구나 비싼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혹시 읽으면서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책 쓰라고 바람 넣은 지인들이 “요즘은 플렉스(FLEX)의 시대이고, 책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너 돈 없는 거 우리가 다 안다. 괜찮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태도를 바꾸면 여행이 훨씬 즐겁다 

“여행 준비는 사실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던 취미.(26쪽)”라고요. 여행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셨다고 했는데,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나요? 

지금 막 떠오르는 건 용인 민속촌에 갔던 날이에요. 추운 겨울이었는데, 민속촌에 얼음판 같은 게 있어서 스케이트 타고 그랬던 게 즐거웠어요.(웃음) 울진 성류굴에 갔을 때는 너무 추워서 ‘왜 이렇게 추운 날, 여기를 왔나’하고 아버지를 원망했던 기억도 나고요. 밀양 표충사에 갔을 땐 계곡에서 장난치며 돌다리를 건너다가 물에 빠졌어요. 그래서 온몸이 흠뻑 젖었던 일들… 이런 소소한 추억들이 기억나네요. 

아버지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셨나 봐요.

어려웠던 시절이라 지금처럼 자주 여행을 다닌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시장만 따라가도 즐거웠어요.(웃음) 책에도 썼듯이 『월간 시각표』라는 잡지가 있는 집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땐 차가 없었던 때라, 아버지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가족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셨어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몇 시에 버스를 타고, 어디서 갈아타서 절에 가고 이런 계획을 잡지에 적힌 대중교통 출도착 시간을 보고 세우셨던 거예요. 요즘은 다 차를 몰고 다니니까, 이제 외국 여행을 준비할 때만 할 수 있는 경험이죠. 

가고 싶은 장소를 찾고, 구체적인 일정을 짜고, 짐을 싸는 등 여행 준비에도 여러 단계가 있잖아요. 어떤 순간이 제일 즐겁나요? 

우연히 멋진 곳을 발견했을 때가 제일 좋아요. 적극적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있을 땐 상대적으로 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오는데, 그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 중 책을 읽다가 멋있는 장소를 발견하거나 친구에게 여행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몰랐던 곳을 알게 된다거나 할 때요. “어? 그런 데가 있었어?”하고 찾아봤는데, 정말 멋있는 공간일 때 제일 즐거워요. 그 순간에는 거길 정말 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곳을 발견했다는 기쁨이 크니까요. 구글 지도에 별 찍어 두는 재미도 있고요.(웃음) 

그리고 해외에서 렌터카로 여행을 할 예정일 때, 동선 짜는 게 괴로우면서도 제일 재밌어요.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은데 이동시간이 너무 길면 고민하게 되는 거죠. 여길 갈까 말까, 중간에 들를 곳은 없을까? 하는 걸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그럴 땐 보통 어떤 결론이 나나요? 

한 장소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대부분 안 가요. 이제 가봐도 별 거 없다는 걸 알거든요. 차라리 근처의 뒷골목을 산책하는 걸 택하죠. 하나를 더 본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같은 건 없어요. 

여행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보통 두 부류로 나뉘더라고요.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거나, 특별한 계획을 짜지 않거나. 작가님은 어느 쪽이세요? 

저는 섞는 쪽이요.(웃음) 일단 가기 전에 시간 단위로 일정표를 짜요. 공항 도착, 호텔 체크인, 일정 출발 시간 등을 꼼꼼히 계획하죠. 만약 일정표에 미술관 관람이 있다면 몇 시간을 머물고 밥은 몇 시에 먹을 건지 등도 다 적어요. 그런데 전체 일정표 중 비어있는 블록을 꼭 만들어요. 예를 들어 어느 날은 오후 일정을 통째로 비우는 거죠. 그 시간에는 호텔에서 책을 읽거나, 시내를 구경하거나 하는 등 자유로운 일정을 보내요. 그런데 일정표를 이렇게 꼼꼼히 세워서 가도 실제로 여행지에 도착하면 많이 바꿔요. 일정표대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숙제하는 기분이잖아요. 도착해서 현지 지도를 보면 또 가고 싶은 곳이 생기기도 하고요. 즐겁기 위해서 간 여행이니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거죠. 

계획에는 없었는데 우연히 간 장소 중, 정말 좋았던 곳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책에 등장하는 스위스의 에멘탈 치즈 공장이요. 스위스 여행 중에 아내가 장모님께 전화를 해서 드시고 싶은 거 없는지 여쭤봤더니 에멘탈 치즈를 사오라고 하셨어요. 물론 근처 슈퍼마켓에서도 치즈를 살 수 있겠지만, 그동안 여행 준비한 가닥이 있으니 검색을 해봤죠. 특별한 장소가 있을 것 같아서요. 마침 ‘에멘탈러’라는 치즈 공장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동선을 살짝 수정해 거기를 갔는데 의외로 재밌었어요. 책에 썼듯이 파리를 쫓으며 식사를 했던 추억도 남고요. 이런 건 계획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늘 의외의 장소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요즘은 SNS에 정보가 워낙 많아서, 여행을 가면 영상에서 본 걸 실제로 재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제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그거였어요. 여행은 조금만 태도를 바꿔도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거든요. 특히 여행 준비를 여러 번 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알 수 있어서 훨씬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저는 LA에 2년간 살았는데도 레이건 라이브러리가 LA에 있는 줄 몰랐어요.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지인이 출장을 와서 만났더니 거길 간다고 하는 거예요. 왜 가냐고 물어보니까 레이건이 역대 대통령 중,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잘했던 사람으로 유명한데, 도서관에 쓰여있는 말들을 보면 일과 연결해서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궁금해서 가봤는데 정말 괜찮았어요. 우연히 가게 된 장소 중 좋은 곳이 많아요

독서를 통해 여행 준비를 더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독서, 최고의 여행 준비’ 파트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기준도 있으세요? 

보통 술술 잘 읽히는 책을 가져가요. 또 팟캐스트 때문에 책 읽는 게 일이기도 해서, 일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들을 많이 들고 가죠. 특히 여행지와 관련 있는 책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제일 먼저 챙기는데요. 일본 갈 때는 일본 소설을 하나 반드시 챙기고, 노르웨이를 간다면 노르웨이 작가 소설을 하나쯤은 넣는 식이에요. 현지와 관련된 책을 가지고 가면 책으로 인해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방금 다녀온 장소를 책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거든요.


 

일상을 여행처럼, 인생은 관광객 모드로 

여행 기록은 어떻게 하세요? 

언제, 어디를 갔고 뭘 먹었다 정도만 짧게 기록해요. 일기를 여행 중에만 쓰는 거죠. 이것만 기록해도 충분해요. 종종 아내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때 그 식당에 언제 갔지?” 이런 얘기가 나오면 한 번씩 찾아보는데요. 추억을 되새기는 재미가 있어요. 

관광지에서 가져온 소품으로 냉장고 자석을 만드는 게 꿀팁이었어요. 

냉장고 자석을 여행 기념품으로 모으는데, 기억하고 싶은 모든 장소에서 자석을 파는 건 아니라서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책에 자석 사진을 넣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말로 설명해야 의미가 살아날 거 같아서 넣지 않았죠. 

책에 소개해주셨지만, 특히 재미있는 자석이 있다면요. 

이케아 연필로도 만들었고요. 일본 하코네의 돈가스 집 ‘리큐’의 성냥이나 캘리포니아의 ‘프렌치 론드리’에서 기념품으로 준 쿠키 상자의 뚜껑도 있죠. 중요한 건 다 책에 썼네요.(웃음) 사실 자석은 원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늘릴 수 있어요. 스타벅스에서도 각 도시 이름이 적힌 카드를 팔잖아요. 오키나와에 갔을 때 벚꽃 시즌에만 파는 카드가 있었는데, 그것도 자석이 돼서 벽에 붙어 있어요. 국립공원 입장권 같은 것도 자석으로 만들기 좋죠.  

책의 마지막 장에는 ‘가보니 참 좋았다’ ‘가서 먹으니 참 좋았다’ ‘가보면 참 좋겠다’로 나누어 각 7개씩 장소를 소개하셨어요. 소개하고 싶은 곳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추렸나요?

조금이라도 책에 언급된 장소는 제외했고요. 친한 친구가 여행 가는데 정보 좀 달라고 물어봤을 때 기꺼이 알려주고 싶은 곳,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장소를 골랐어요. 덴마크 포레스트 타워는 작년에 새로 생긴 전망대고, 일본 나오시마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지 몇 년 안 된 여행지거든요. 주변 사람들에게 평소에 가보라고 말하는 장소들이에요. 

의료 전문 주간지 ‘청년의사’의 편집주간을 맡고 계세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진행자이기도 하시고요. 의사이지만 해오신 일들은 저널리스트에 가까운데요. 원래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셨어요?

문과형 인간인데 고등학교 때 수학을 잘하는 바람에 이과에 갔어요. 그때만 해도 남학생이 수학을 잘하면서 문과에 간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고 하던 시절이거든요. 문제는 과학을 안 좋아해요. 수학도 고등학교 학업까지는 잘 마쳤을지 모르지만, 더 깊이 들어가는 건 자신이 없었어요. 기계도 싫어하고 컴퓨터도 잘 못하고. 그러다 보니 전공할 게 없는 거예요.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그나마 이과계열 중 문과에 가장 가까운 게 의대거든요. 세부전공에 따라서 예방의학, 윤리학, 정신의학 등을 전공할 수 있어서 의대에 진학했어요. 한 번도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안 맞는 거죠. 그러다가 선배들을 따라 신문 만드는 일에 관여하게 됐고, 우연히 책도 쓰게 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어요.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 시즌3가 시작되었어요. 펀딩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하셨더라고요. 

지금까지 강양구 기자와 3년 반 동안 방송을 했는데, 저희 방송이 순위가 어마어마하게 높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다른 프로그램들과 구별되는 매력이 있는지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책걸상’은 대본이 하나도 없거든요. 단지 책만 다 읽었을 뿐 아무 준비 없이 녹음을 해요. 편집도 거의 안 하고요. 날 것인 방송에 매력을 느끼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그런데 돈이 안 되잖아요. 제작비 후원을 일부 받긴 하지만, 사실 팟캐스트는 강양구 기자와 제가 하는 일 중에 생산성이 가장 낮은 일이에요. 솔직히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요. 막상 그만하려니 느슨한 독서공동체를 없애기 아쉬웠던 거죠. 그래서 펀딩을 시도했고, 3일 만에 목표 금액인 천만 원이 다 모였어요. 처음에는 ‘그게 되겠어?’ 했는데 금액이 쭉 올라가는 걸 보고 ‘아 더 높게 잡을 걸’ 싶었죠.(웃음) 

애청자들의 마음을 느끼셨겠네요. 

펀딩 기간도 짧고, 멋있는 굿즈도 없고, 홍보도 안 했는데 그렇게 참여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더 감동적인 건 펀딩 기간을 놓쳤는데 제작비를 보태고 싶다고 따로 연락해 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그 중 몇 분은 해외에 계신 청취자였고요. 그래서 시즌3 제작비는 달러도 있고, 엔화도 있고, 포르투갈에서도 돈이 들어왔어요.(웃음) 무슨 매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고, 앞으로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코로나가 사라지면 첫 여행으로 어디를 가고 싶으세요? 

솔직히 말하면 일본을 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동안 힘들었으니까요. 멀리 가서 고생하고 싶은 마음보다 ‘내가 드디어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는 느낌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쿄에 친구도 있고, 맛집도 많으니까 훌쩍 다녀오고 싶어요. 사실 어디를 가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 같아요.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쁠 테니까요. 

맞아요. 어딜 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여권에 도장 찍는 행위 자체가 즐겁겠죠.(웃음) 저희 집에서 10초 거리에 공항버스 정류소가 있거든요. 저는 아침에 출근하다가 공항버스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고 한두 달 지나니 정류소에 ‘운행을 축소한다’는 안내문이 붙었어요. 그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완전히 중단한다는 안내가 다시 붙었죠. 그때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지금도 오며 가며 정류소에 붙은 안내문을 보면 슬퍼요. 그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이 책을 썼고, 쓰는 동안 여행을 가는 것만큼 즐거웠어요. 독자 분들께도 그런 책이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책이 출간되고 사람들에게 사인해서 드릴 일이 생겼을 때, 어떤 문구를 적어드리면 좋을지 고민을 오래 했어요. 진작 떠올랐다면 책에 썼을 만한 문장이 인쇄되는 동안 떠올랐네요.(웃음) 

‘일상을 여행처럼. 인생은 관광객 모드로’라는 문장인데요. 여행을 가면 평소와 좀 다르게 살잖아요. 부지런해지고 호기심도 많아지고, 인생에 대해서도 성찰하고요.(웃음) 여행지에서 하던 이 수많은 일들을 일상에서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여행지에서 남은 하루를 아까워하듯, 인생의 하루하루를 뜻깊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박재영

의사 출신의 21년차 저널리스트이자 ‘여행준비러’. 책 팟캐스트 의 진행자이며, 여행준비와 요리, 책 읽기가 취미다. 장편소설 『종합병원2.0』, 한국의료 해설서 『개념의료』, 평론집 『한국의료, 모든 변화는 진보다』 등 7권의 저서를 펴냈고, 『청진기가 사라진다』(공역), 『환자의 경험이 혁신이다』(공역), 『차가운 의학, 따뜻한 의사』 등 8권의 책을 번역했다. 여러 일간지 및 주간지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으며, 팟캐스트 및 유튜브 <나는의사다> 프로듀서 겸 진행자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의료법윤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3년 동안 공중보건의사로 일했고,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을 지냈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신문 청년의사 편집국장으로, 그 후에는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 객원교수로, 인문사회의학 관련 내용을 강의하고 있다. 그 외에 한국의료 현안, 헬스케어의 미래, 병원 경영, 글쓰기/커뮤니케이션, 의료 인문학 등의 주제로, 병원, 기업, 학회/협회, 학교 등에서 다수의 강연을 했다. 현재 한국의료윤리학회 상임이사, 인권의학연구소 이사다. 



여행준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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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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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코로나 시대, 아이와 함께 고립된 여성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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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노력할수록 딸의 세계를 좁게 만드는 현실. 이런 모순이 힘들어 자주 답답함을 느꼈다는 최은미 작가. 이 답답함을 소설로 쓰고 싶었지만, 잘 진행되지 않았다는 그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사회적 맥락을 만난 후 다시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봄, 코로나 팬데믹이 극강으로 치닫던 시기.  『여기 우리 마주』는 격리와 배제가 일상이 된 이때를 통과하는 40대 기혼 여성 ‘나리’와 ‘수미’의 이야기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의 현실이다. 

물줄기가 터져나오려는 호스의 입구를 한 손으로 틀어막고 한 여자가 서 있다. 다른 한 손으론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여자는 휘청거린다. 호스에 장전된 것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호스가 튕겨져 나가버릴 테니까. 물줄기가 요동을 치면서 가장 가까운 곳을, 가장 약한 것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찌를 테니까. 머리 위에 찬물을 끼얹고 자신의 뺨을 내리치면서라도 이 분노를, 이것을, 정확한 곳으로 겨냥하려고, 제대로 가누려고, 겨누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날은 그냥 호스를 놓쳐버린다. (39쪽)



최은미 작가의  『여기 우리 마주』는 2021년 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이다. 2019년 겨울호부터 2020년 가을호 계간지에 실린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가 진행됐다. 수상 소설집에는 수상작 <여기 우리 마주> 외에 김병운 <한밤에 두고 온 것>, 임솔아 <단영>, 천희란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등 후보작이 실렸다. 



답답함과 절실함이 쓰게 한 소설 

소설과 분위기가 달라서 의외예요. 무겁고 어두운 글을 주로 쓰는데 다정하게 말씀하셔서요. 이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나요? 

종종 들어요. “그렇게 독한 글 안 쓸 것 같다”고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어떤가요?

소설하고 똑같다는 말보다는 좋아요. (웃음) 사실 어떤 이야기를 듣던 다 좋은데요. 가끔 지인들과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해요. 현실 자아일 때 표출되지 않는 것들이 글에 더 반영되지 않느냐고요. 누구나 사회적 얼굴이 있잖아요.  

제66회 현대문학상을 받았어요. 수상이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새로울 것 같은데 소식 듣고 어땠나요?

올여름에  『여기 우리 마주』를 마감하고 나서 이 인물들 이야기를 계속 더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 중에 수상 소식을 듣고는 정말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단편소설은 발표하고 책으로 묶여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크고 작은 피드백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데요. 작가에게 상은 큰 호응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데 확실히 동력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여자아이를 양육하는 40대 기혼 여성 ‘수미’와 ‘나리’의 이야기예요. 어떻게 시작됐나요?

기혼 여성이 느끼는 고립감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은 생각이 계속 있었는데요, 팬데믹이 그 상황을 더 증폭시키는 걸 겪으면서 이 인물들의 시간을 2020년으로 가져오게 됐어요. 저도 초등학생 아이가 있고 일을 하고 있어서  『여기 우리 마주』에 제가 실감하는 현실이 많이 반영됐어요. 아이와의 고립감뿐 아니라 여성들끼리의 고립감에 대해서도 다뤄보고 싶었어요. 분명히 함께 마주 앉아 있는데도 각자 고립돼 있는 것 같은 그 이상한 느낌에 대해서요. 

마주하고 있어도 느껴지는 고립감이라니, 자세히 듣고 싶어요. 

정상가족 규범이 여성과 아이에게 부과하는 틀이 있잖아요. 아이를 매개로 기혼 여성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그 틀을 벗어나서 자신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일로 관계를 맺을 때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실력을 어필해야 할 때 주부로서의 노동을 비가시화하는 건 기혼 여성에겐 익숙한 상황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연대가 필요한 순간, 가장 핵심적인 고난과 고통 앞에선 오히려 고립이 되죠. 그건 가부장제가 바라는 바이기도 해요. 저는 기혼 여성들이 서로 어디까지 맞닿을 수 있는지 소설 속에서 계속 타진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기혼 여성의 현실은 작가님의 현실과 아주 가까운 이야기라 더 쓰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쓰면서도 정말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다음 날엔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양쪽 마음을 오가면서 썼던 것 같아요. 

2020년 봄에 대한 언급이 많더라고요. 당시의 마음 상태가 소설에 많이 반영된다고요. 『여기 우리 마주』를 쓸 때의 마음은 어땠나요? 

지금도 2020년 봄의 감정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5월에 한 일간지 칼럼에서 불과 두 달간의 멈춤이 여성의 성 역할을 50년 이전으로 퇴행시켰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2020년 봄은 거기에 더해 그동안 계속돼온 여성 대상 성착취 범죄가 대대적으로 세상에 드러난 때이기도 하죠. 어느 때보다도 강화된 성 역할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큰 트라우마를 불러오는 성범죄를 마주해야 했던 때였어요. 그런 현실 속에서 공적 공간이 모두 막힌 채로 딸의 양육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딸이 단순한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확고한 자아를 가지고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나이라면. 저한테도 이런 현실이 매일매일의 당면한 문제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혼란을 붙잡고 썼던 것 같아요. 2020년 봄을 지나면서 공황장애가 오고만 여성들, 삶을 놓은 여성들, 어떻게 버티는지도 모르는 채로 하루를 간신히 넘기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 계속 생각해요. 드러난 것보다, 그리고 짐작하는 것보다 2020년이 여성들에게 남긴 외상은 클 거라고 생각하고요. 

코로나 팬데믹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시의성 있는 소설’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진행 중인 상황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이 많이 있었어요. 쓰면서도 어쩌면 몇 계절 후에야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요. 근래에는 소설을 쓰면서 '다른 걸 쓸 수 없는 상태'를 계속 만나는 것 같아요. 지금 나를 압도하고 있는 감정이 너무 커서 이걸 쓰기도 힘들지만 안 쓰기도 힘든 상태요. 어떤 작품이 시의성이 있다고 할 때 사실 작가는 그 작품을 오래전부터 써오고 있었던 경우가 많아요.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 비로소 사회적 맥락을 만나 세상과 닿는 거죠.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맥락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딸의 세계를 좁히는 ‘좋은 엄마’라는 모순

소설 속 화자 이름이 ‘나리’인데 이전에 <나리 이야기>라는 단편도 쓰셨더라고요. 나리라는 이름에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나리 이야기>의 나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에요. 소설을 쓸 때 인물에 맞는 이름을 찾지 않으면 소설이 진행이 안되는 편인데요. 다른 이름들을 전전하다 '나리'와 '수미'가 되자 소설이 써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나리가 수미의 경직성을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는 인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하면서도 일정정도의 오지랖과 따뜻함과 솔직함을 가진 인물이요. 소설에서 '나리공방'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느낌, 수미가 나리를 부를 때의 느낌이 이름으로 더 잘 전달되기를 바랐어요.  

‘수미’와 ‘나리’의 모델이 있었나요?

특별히 모델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수미'와 '나리'의 상황을 설정하면서 정식으로 직장에 출퇴근하는 여성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일을 하는 여성들의 상황을 그리고 싶었어요. 수입이 불안정해서 가사와 육아 분담에 직장 여성만큼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고, 시간 운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서 결국 내 시간을 더 쪼개는 걸로 결론을 내며 일하는 여성들이요. 무엇보다 저는 이 소설 속에서 여성들이 모이는 공간과 나리의 일터가 사회에서 흔히 비생산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만드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게는 나리가 집을 떠나 상가로 나갔다는 설정 또한 무척 중요했는데요. 소설을 다 쓰고 났을 때 저는 이 기본적인 설정이 어쩌면 이 소설이 제게 준 가장 핵심적인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홈 공방을 운영하던 ‘나리’가 상가 건물로 진출할 때 이에 대한 남편의 미지근한 반응이 인상적이었어요. 이기호 소설가가 ‘선의를 가장한 배제’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나리의 남편은 나름대로 애도 쓰고 나름대로 가족 걱정도 하지만 기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움직이는 인물이에요. 소설 속에서 나리 남편이 하는 말들은 어떻게 보면 가부장제의 설계를 대변하는 말들이죠. 

그런 식의 배제가 항상 ‘선의’로 이뤄진다는 점이 가장 답답한 지점인 것 같아요. 

기혼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울분의 원인이기도 하고요. 결혼을 하면 남성은 일단 가장이 돼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은 성범죄의 감형 사유도 될 수 있는 지위지만 가장의 배우자는 '주부취미'라는 말 앞에서도 가장 먼저 자기혐오를 만나야 되죠. 우린 사실 다 알고 있잖아요. '주부취미'라는 말 속에 깔려 있는 복잡한 혐오의 냄새에 대해서요.

엄마로서의 답답함도 느껴졌어요. 

사회가 바라는 좋은 엄마 역할을 수행하려다보면 오히려 아이를 자신의 모습으로 설 수 없게 하는 모순적인 상황과 만나게 돼요. 이 가족 체계 안에서는 각자가 애를 쓰지만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는 거죠. 정상성의 막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상황이 펼쳐져요. 이 집단적인 거짓말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여기 우리 마주』  속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과 분노는 자신 또한 그 체계 안에서 딸의 세계를 좁게 만드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전가하게 된다는 것, 그러고 있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는 없다는 안간힘 사이에서 오는 부분이 커요. 

‘나리’가 슬래시(/)를 사용해서 할 일을 정리하는 설정이 재밌어요. 반복되는 슬래시가 나리의 마음 상태나 숨 가쁜 일상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더라고요.   

사실 저도 슬래시를 많이 쓰거든요. (웃음) '나리'라는 인물을 설정하면서 '슬래시'와 '느낌표'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대화의 끝에 빠짐없이 느낌표를 붙이는 인물이자 머릿속으로 쉼없이 슬래시를 돌리는 인물이요.  『여기 우리 마주』에 쓰진 않았지만 나리가 이런 대사를 하기도 해요. “하루라도 느낌표와 슬래시가 없는 세상에서 쉬고 싶다.” 남편한테 “이제 넌 내 슬래시에도 안 끼워줄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슬래시는 나리의 안중을 뜻하는 기호일 수도 있는데요. 언젠가는 나리가 슬래시 안에 해야 할 일보다 하고싶은 일을 더 많이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소설에서 ‘나리’와 ‘수미’의 분노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쓰는 사람이 느끼는 긴장은 더 클 것 같은데요. 평소에 쓰기에서 오는 긴장을 어떻게 해소하나요?

잠을 자거나 운전을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스트레스나 긴장이 풀리는 편인데요, 운전할 때는 휴대폰을 볼 수도 없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더라도 사진을 찍을 수 없잖아요. 오직 운전만 해야 되기 때문에 머리를 비우기에 좋은 것 같아요.



분노라는 감정을 잘 다뤄보고 싶어요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 있다고요. 가장 최근에 읽은 ‘쓰고 싶게 만드는 글’이 있다면요?

요즘에는 동시대의 한국 작가들 글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아요. 내 작품 속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건너가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소설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요, 수상작품집에 함께 실려 있는 임솔아 작가의 <단영>도 그랬어요.  『여기 우리 마주』에서 나리와 수미가 딸들을 사찰로 보내는데 저는 서하와 은채가 떠나온 곳도, 가게된 곳도 <단영>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해요. 어머니를 살해하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천희란 작가의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도 제 인물들이 언제든 건너갈 수 있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고요. 쓰고 싶은 용기와 욕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에요.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은 아니네요.

다른 장르의 글에서도 자극을 많이 받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받는 정서적인 자극이 가장 크죠. 좋은 소설을 읽고 났을 때의 충족감만큼 나를 소설 앞으로 다시 끌어오는 건 없으니까요.  

소설가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나요?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보다 훨씬 제 자신을 모른척하고 살았을 거예요. 적어도 지금은 모른척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글로써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 나아간다는 게 부럽기도 해요. 힘들겠지만요. 

나아갈 때도 있지만, 주저앉는 느낌이 들 때도 많아요. 그런데도 소설을 쓰는 건 그게 나를 풀어내는 장이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완전히 익명으로 숨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그 장이 저와 바깥 세계를 연결해 주니까 그런 면에서는 좋아요. 언어화할 수 있는 지면과 능력이 있다는 건 힘이 되는 자산이라고 생각하고요. 

 어떤 독자를 만날 때 유독 반가운가요?

인물에 잘 이입해 주는 독자가 반갑죠. 이를테면 리뷰에 ‘나 이 인물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다’고 하는 독자들이요.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소설을 쓰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다음 소설에 대한 약속이 되어준다고요.  『여기 우리 마주』를 쓰면서 일어난 일들은 어떤 소설에 대한 약속이 되어줄까요?

2020년 봄을 지나면서, 그리고  『여기 우리 마주』 를 쓰고 나서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더 제대로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 안에 너무도 또렷하게 서 있는 이 감정에 소설가로서의 나는 어떤 형식을 줄 수 있는지,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최은미

1978년 강원 인제에서 태어났다. 2008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단편소설 「울고 간다」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중편소설 『어제는 봄』,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등이 있다. 2014년, 2015년, 2017년 젊은작가상과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여기 우리 마주
여기 우리 마주
최은미 등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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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애리 “살아내는 사람 앞에서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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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배우로 살아온 정애리가 에세이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에 담은 것은 생활인 정애리로서 보고 느낀 일상의 순간에 대한 단상과 직접 찍은 사진이었다. 작게 핀 들꽃, 떨어진 낙엽, 아름다운 노을과 세상을 떠난 엄마의 손글씨가 모두 글이 됐다. 정애리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작은 힘이나마 낼 수 있다면 그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상처도 얼마든지 내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산책을 하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강아지 똥 치우는 일”인 보통의 사람이 보통의 이야기를 하면서 ‘괜찮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요’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는 정애리는 “갈 길이 멀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이 이 책을 읽으시면 조금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심스레 말했다.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더라고요. 그래도 여기 있잖아요. 살아내고 있는 거잖아요. 또 살면 되죠. 조금 힘들어도 말이에요. 여기 있다면, 또 저기도 가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 도처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참여하고, 나눔을 아끼지 않는 배우 정애리. 이번 책 역시 수익금 전액을 기부할 예정이다. 정애리는 “여러분이 책을 한 권 사서 읽는 것만으로도 나눔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다 보통의 사람들

7년 만에 나온 새 책이에요. 지난 책의 제목은 『축복』이었는데요. 이번 책의 제목에도 ‘축복’이 들어간 것을 보고 이 단어에 대해 각별한 마음이 있으시겠구나 했어요. 

가장 먼저 생각했던 제목은 ‘괜찮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요’였는데요. 그 말은 띠지에 담았어요. 제가 축복이라는 말을 워낙 좋아하기는 해요. 축복이란 복을 빌어준다는 의미의 말이잖아요. 복 받으세요, 라는 말은 정말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책을 보면서도 단어 하나, 감정 하나에 마음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글이 많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행간에도 말이 있잖아요. 그것까지 읽힌다면 정말 기쁘겠다고 생각하며 썼어요. 어떤 때는 더 많은 말을 하고 싶다가도 그냥 행간에 의미를 담고 다른 말을 쓰기도 했거든요. 그래도 왠지 읽는 분들이 행간을 다 읽어주실 것 같았어요. 

그 외에 글을 쓸 때 해야겠다거나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기준이 있었다면요? 

가령 “대중이 늘 진실은 아닐 수도 있고 소수가 늘 소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136쪽) 같은 내용을 쓸 때는 조심하려고 했죠. 받아들이는 마음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너무 누군가를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건 아무도 말할 수가 없는 것이잖아요. 그 정도는 조심하려고 했어요. 한편 “과정도 중요합니다”(77쪽) 같은 말은 아주 많은 것을 담고 있죠. 그 마음을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그런데 막상 책을 내기로 결정하고 나서도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미 충분히 좋고 유익한 책들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 보태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 힘들었습니다”(11쪽)라고 적었는데요. 어떤 마음이 있었던 건가요? 

처음에는 그냥 따뜻한 책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책 계약을 했죠.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정말 좋은 책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책을 내는 것이 혹시 누군가를 피로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다 보통의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보통의 이야기를 해보자 싶더라고요. 더구나 보통이 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냥 쓰자, 마음을 먹었죠. 첫 번째 책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의 경우 제가 봉사 현장에서 느낀 것들을 썼고, 나의 이야기를 담지는 않았어요. 그와 비교하면 이번 책에는 보통의 이야기를 쓰되 조금은 나의 이야기를 버무렸던 것 같아요. 



이 얘기도 지금쯤은 쓰자

책은 감정이 크게 오르내리지 않고 담담한 가운데에도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을 줘요. 그 느낌이 어쩌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 오는 부담도 있었을 것 같아요. 특히 2017년 1월 26일에 찍은 사진과 함께 난소암 치료 경험을 고백하기도 하셨는데요. 

그건 사실 많이 망설였어요. 방송에서도 크게 얘기한 적이 없었고요. 배우에게 아프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어쨌든 영향이 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게다가 저는 그런 것을 굉장히 조심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요. 치료 당시에는 치료되는 것만으로 너무 감사해서 누군가 아픈 사람이 제 흉터를 보고 힘을 얻는다면 정말 배에 난 수술 자국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아무리 제가 배우라고 해도 말이죠. 물론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 구태여 그 얘기를 꺼내 보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요. ‘맞다, 그걸 보여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시작했지, 그렇다면 이 얘기도 지금쯤은 쓰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 이야기를 보고 누군가가 힘을 얻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나무 탁자의 옹이를 보면서도 왠지 안쓰러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은 비바람을 견딘 결과라는 점도 분명히 말하잖아요. 같은 맥락일 것 같아요. 

올해 특히 많이 들었던 말이 “힘들다”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올해 초에 막을 내린 EBS FM <정애리의 시콘서트>를 진행하면서도 애청자들이 다 너무 힘들어하시는 걸 봤어요. 힘들어 하는 분들을 많이 보면서 했던 생각이기도 한데요. 힘들다는 것은 저마다 옹이를 갖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탁자는 옹이 때문에 새롭게 보이기도, 멋지게 보이기도 해요. 사실 그 순간은 당연히 힘들죠. 지나고 보니 그렇다는 건데요. 그 말은 곧 지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 돼요. 올해 초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글에는 담담하게 썼지만 엄마가 써둔 글씨를 보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픈 것도 결국은 지나갈 거라는 걸 알아요. 이런 생각을 나누고 싶었어요. 

‘이다지도 선명한 생’이라는 글에서는 인도에 깔린 벽돌 사이에 돋은 이끼를 보고 “무시해도 좋을 생명은 없다”(186쪽)고 해요. 이런 장면은 사실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요. 

정말 자세히 보면요, 다 모양이 있어요. 저는 그런 게 정말 잘 보여요. 글쎄요, 저로서는 보이니까 보는 것뿐이에요.(웃음) 보면 정말 생명이라는 게, 삶이라는 게 이렇게나 선명한데 어떤 것 하나라도 무시할 수 있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많거든요. 얇은 이파리 하나까지도요. 어느 카페에 들어가다가도 구석에 놓인 자그마한 인형이 보여요. 그런 것들에 대한 사랑이 제게 있는 것 같아요.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어떻게,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요? 

아마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거예요. 다양한 사람을 만났거든요. 어린이들, 노숙인들, 어르신들, 다른 나라 국가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시작됐다고 느끼는데요. 사실 대충 사는 사람이 없어요. 쉽게 어떤 사람들을 “대충 살아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은 너무나 열심히 사는데 안 되는 거예요. 아마 그런 것들이 제 눈에 보이기 시작했겠죠. 그때부터 작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매운맛을 알려주고 뱉어버리고 싶을 만큼 쓴맛을 주기도 하고 이 정도면이야, 라며 견딜 만큼 알싸한 맛을 안겨주기도 하고 달달한 맛도 신맛도 준 사람들이 내게도 얼마나 많은지요…. 새삼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이만큼이라도 살아내고 있습니다.”(37쪽)라고도 쓴 부분이 있어요. ‘덕분에’라는 마음은 어떤 건지 조금 더 들려주세요. 

어쨌거나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힘겹던 시간들을 다 통과했기 때문이에요. 좋은 시간들만 갖고 있었다면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가 있지 않을까요. 그때는 나를 힘들게 했던 일조차도 전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이고요. 그러니까 ‘덕분에’라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늘 ‘반성은 하되 후회는 안 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결코 후회한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후회가 나를 갉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이중, 삼중 손해보고 싶진 않은 거죠.(웃음) 

그렇다 해도 막상 ‘매운맛’을 느끼는 순간에는 덕분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럴 수 없죠. 지나야 알죠. 지금 모두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사람들을 만나서 밥 먹고, 얘기하고, 차 마시는 이 모든 것들이 예전에는 그냥 일상이었잖아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이제야 알게 된 거예요.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등지를 가보면 너무나 다른 환경,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위험한 환경을 보게 돼요. 그곳에 있다가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절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와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일상이 흐트러지면 아는 거죠. 덕분에, 라는 생각도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아주 옛날에 썼던 메모를 보면 맨날 ‘힘들다’고 썼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젊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 것 충분히 이해해요. 우리가 젊을 때보다 능력도 훨씬 좋고, 더 많이 노력해요. 그런데 발휘할 데가 없죠. 그런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하지만 그조차도 의미가 없진 않아요. 

이번 책은 삶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혔는데요. 살아간다는 것은 또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잖아요.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하세요? 

전 진짜 잘 나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백발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난다는 것은 겪어보니, 많이 부딪혀보니, 내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과 꽤 닿아 있더라고요. 내가 너에게 뭐라 하고 싶다가도 그 뒤에 내가 알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는 것이 나중에는 보인다는 거죠. 그런 경험들이 쌓이니까 “그래” 하고 넘어가는 거예요. 이런 말들 하잖아요. 어른들은 입을 닫고, 주머니를 열라고.(웃음) 그 말이 상당 부분 옳아요. 그래서 나이 들수록 눈도 나빠지고, 좀 덜 들리게 되는 것도 다 섭리라고 생각해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선생 아닐까요. 나이를 먹으면 두 부류로 나뉜대요. 첫 번째, 포용할 줄 아는 여유가 생기는 사람과 두 번째, 내가 옳고 내가 답이라는 노욕老慾이 생기는 사람. 답은 정해져 있네요. 당연히 첫 번째.(중략) 백발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106쪽)


물처럼만 살면 좋겠다는 말도 했어요. 

물은 자기가 목적하는 쪽으로 끝없이 가요. 벽에 부딪혀도 돌아서 가고, 수증기로도 가잖아요. 게다가 뭔가를 거부하지도 않고, 어느 때는 모든 것을 다 받아주면서 가죠. 너무나 큰 거예요.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저런 칭찬 받을 일을 하는데’ 같은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건 아니죠.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진 않아요. 그저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물처럼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내가 먼저 좀 하면 어때요.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오해한 것이 내 잘못이려니 생각하면서 큰 물줄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하지만 너무 어려워요.(웃음) 



오래된 것에 대한 사랑

“낙엽들이 모여 살아온 얘기들을 하고 있나요. 누가 누가 더 치열하게 살아냈나 내기하고 있나요. 너나없이 빠알갛게 태웠습니다.”(158쪽) 같은 글은 그대로 시로 읽혀요. 책에 여러 시를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시의 즐거움, 시적인 것의 즐거움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하고 있죠. 흔히 시를 시인의 생각으로 읽어야 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문제에 답을 맞히는 방식으로 시를 배웠기 때문인데요. 그거 아니잖아요. 내 식으로 읽어도 충분히 괜찮은 거고요. 지금은 그런 것들이 보여서 시가 좋은 것 같아요. 그냥 읽으면 되니까요. 제가 <정애리의 시콘서트>를 진행하면서도 그런 오해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더 시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시를 좋아하게 되고, 연기를 하다가 배운 금속공예를 계속 해나가고, 촬영에서 만난 어린이들과의 인연을 촬영 후에도 이어나가는 등 남다른 꾸준함이 사람 정애리에게는 있는 것 같아요. 

광고 모델도 한 브랜드를 18년 정도를 계속 하고 있긴 한데요.(웃음) 저는 오래된 것을 좋아하고요. 무엇보다 관계를 아주 소중히 여기는 편인 것 같아요. 일로 만난 관계라도 어느 순간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 자체의 관계로 생각을 해요.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의 친선대사로도 오래 활동을 하셨죠. 

우선은 제가 좋아하니까 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아이들이 있으니까 하죠. 살아내는 아이들이 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잠깐 힘든 거예요. 살아내는 사람 앞에서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제 눈으로 봤고, 도움을 건넸을 때 그들이 변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영양실조로 죽어가던 아이들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는 것을 보거든요. 그 이상의 기적이 어디 있겠어요. 

봉사활동을 계속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제게는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요. 내가 가서 활동할 수 있다면 그저 감사한 거예요. 현장에서 기쁨들을 받으니까요. 그만큼 더 가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요. 요즘 같은 때 봉사가 쉽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각자가 좋아하시는 것, 잘하는 것을 하시면 좋겠어요. 봉사는 억지로는 오래 못해요. 봉사가 어렵다면 기부라도 나중에 돈 모아서 하겠다는 생각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어디든 시작을 해보시면 좋겠어요.


 


*정애리

1960년 8월11일 출생. 1978년 KBS 신인 탤런트 모집에 특선으로 데뷔한 이래 35년 동안 수십 편의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아우르며 활약하고 있다. 절정의 연기력으로 백상예술연기상, MBC 방송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서울연극제 최우수연기상, MBC 연기대상 중견부문 황금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힌 천생 연기인. 1989년부터 2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노량진 ‘성로원’을 시작으로 나눔과 사회봉사의 인생을 살고 있다. 국제NGO 월드비전 친선대사를 비롯해 연탄은행, 생명의 전화, 아프리카 미래재단,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안양 샘병원 등의 홍보대사 및 케냐 지라니합창단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행정자치부 선정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2003년 문화일보 ‘평화 캠페인-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제28회 세종문화상 통일외교부문상, 대한민국 나눔대상, MBC 감동대상 등을 수상하며 남다른 소신을 인정받았다. 외롭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지칠 줄 모른는 행보로 위로와 희망 나눔, 그 삶의 드라마를 그려가고 있는 행복한 연기인이다.
저서로 에세이집 『사람은 버리는게 아니잖아요』가 있다.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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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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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훈 “커피를 좋아해서 생긴 가장 좋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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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1세대인 박이추 선생의 제자 최영숙 점장이 운영하는 ‘보헤미안’에서 커피를 배우던 서필훈 대표는 5년이라는 시간을 오로지 커피에 쏟았고, 이후 ‘커피리브레’를 설립했다. 그의 커피 사랑은 지독해서 좋은 원두를 구매하기 위해 1년에 100일은 산지를 찾아 다니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저렴한 원두를 대량으로 납품하는 사업적인 선택들에 대한 유혹도 많았지만 “흔들리면서도 아주 어렵게 또 거절을” 하고 나면 다시 확신이 생겼다. 좋은 커피를 찾아 제 값을 주고 구매하는 것, 그 특별한 커피를 소비자에게 소개하고 그 한 잔에 담긴 수많은 ‘얼굴’을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역할이라는 사실에 대해. 따라서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은 서필훈 대표가 커피에 미쳐 지냈던 16년의 시간 동안 그가 만난 존경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 즉 “얼굴 있는 커피”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커피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어요. 모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하죠. 내 이익을 조금만 양보하면 할 수 있거든요. 돈이 안 되지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이 있잖아요. 농장을 구매한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남들은 멍청한 선택이라고 하겠지만 저는 아주 만족해요.”



마법이라고 할 만큼 매력적인, 커피

처음 ‘보헤미안’에서 커피를 배우던 5년에 대해 “커피에 미쳐 지냈다”(28쪽)고 적었어요. 

그 5년을 포함해 이후 5-6년까지는 제가 생각해도 미쳐서 지냈던 것 같아요. 살면서 그 정도로 집착을 했던 일이 없었죠.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하루 종일 커피 생각만 했으니까요.  어떤 것이라도 대개는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게 마련이잖아요. 처음에 아무리 좋았어도 말이죠. 그런데 커피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최근에야 조금 진정된(웃음) 느낌인데요. 3-4년 전까지도 매일 퇴근을 자정이 넘어서 했어요. 그 전에 퇴근하면 조퇴하는 것 같고, 나태해진 것 같고, 커피한테 못할 짓을 한 것 같았어요. 미쳤던 거죠. 

도대체 커피의 어떤 매력에 그렇게나 몰입하고, 빠졌던 걸까요? 

마법이라고 할 만큼 매력적이었어요. 뭐든 그렇지만 자세히 보고, 깊이 보면 몰랐던 면면이 보이잖아요. 지식의 섬이 커질수록 신비의 해안이 길어진다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상품이고, 산업이라는 면도 있지만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관능적인 변화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원리들이잖아요. 게다가 감각적으로 사람들이 커피를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죠. 그 이전에 커피는 농작물이니까 어떻게 생장하고, 어떻게 자연 환경에 영향 받는지도 알아야 했고요. 그러니까 공부할 것이 아주 많았어요. 욕심이 많아서 그랬을 텐데, 커피가 갖고 있는 복합적인 면들이 제게는 큰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커피리브레’로 독립했을 때를 생각하면, 당시는 스페셜티커피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지 않았던 때잖아요. 그래서 겪는 어려움도 많았던 것 같거든요.  

사실 사업하는 사람 누구나 어렵죠. 어떤 일이 닥칠지 항상 걱정하고, 항상 돈 걱정을 해야 하는데요. 그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 시간이 오래 되면 쉽지 않아요. 스페셜티커피를 하려고 했던 마음 자체, 커피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혹시 다 잘못된 건지 의심하게 돼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갖고 있던 믿음, 확신이 조금씩 침식되는 거죠.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확신, 커피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 

특급호텔의 납품 제안에도 저렴한 커피로 타협하지 않고 스페셜티커피를 계속 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 즈음은 커피에 대한 확신이 다시 섰을 때였나요? 

그런 것 같아요. 그 일뿐만은 아니었지만요. 왜 주변의 유혹들 있잖아요. 그냥 싼 거 로스팅해서 납품하면 먹고 살만 하다, 왜 그렇게 고집 피우느냐, 장사는 그런 거 아니다, 이런 얘기들이 많았어요. 흔들리죠, 당연히. 직원들에게 월급 줄 돈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흔들리면서도 아주 어렵게 또 거절을 하는 거예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이었어요. 힘들지만 거절을 하고 나면 그 거절 자체가 또 힘이 되어서 제게 돌아왔어요.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또 하나의 고개를 넘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조금 더 버티고, 또 조금 버티고 했던 것 같아요.  

버티던 것이 역시 옳았구나, 느낀 순간도 있었겠죠? 

사람들이 제 커피를 좋아해주고, 서서히 매출도 올랐어요. 그것이 저로서는 ‘그래도 좋아해주시는구나, 옳았다’라고 느끼게 해준 것 같아요. 결국 장사가 잘 돼서(웃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거죠. 

사람들의 반응이야말로 정직한 거니까요. 

시장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홍보 반짝 할 수 있지만 꾸준히 오래 사랑 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죠.

 


얼굴 있는 커피

그래서일까요. 대표님은 자신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메신저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요. 

산지에 갔더니 그곳 사람들이 자기 커피가 어느 나라에 팔렸는지, 누구한테 팔렸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커피를 마시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더라고요.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예요. 커피는 그냥 커피일 뿐이잖아요. 내가 마시는 커피가 어디에서 왔는지 지식이 거의 없죠. 이런 단절이 있다고 생각을 했고요. 제가 잇는 역할을 한다면 의미 있겠다 싶었어요. 생산자도 길러서 파는 게 끝인 것과 이걸 사람들이 어떻게 마셨는지, 이 품질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다를 거잖아요. 마시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커피는 공산품이 아니니까요. 맥주나 초콜릿 등도 요즘은 자신이 먹는 것에 대한 사연, 얼굴, 이야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커피 역시 그런 면들이 있는데 제가 그것을 발굴하고 보여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른바 “얼굴 있는 커피”(94쪽)인데요. 커피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기억하려고 하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아요. 

공산품도 사람이 만들긴 하지만 농산물은 조금 다른 면모가 있는 것 같아요. 1년 동안 한 사람의 농부가 계속 쓰다듬고, 가지치기 하고, 비료를 주면서 공들여 기르잖아요. 기여도는 사실 생산자에게 거의 대부분 있죠. 그 외에 가공, 운송 등의 과정에 다른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지는 건데요. 그렇다면 생산자가 어떻게 커피를 길렀고, 어떤 즐거움과 어려움을 겪었고, 커피에 어떤 희망을 갖고 있었는지, 이들의 가족은 어떻게 사는지 등의 구체성이나 정체성을 알고 싶었어요. 그걸 ‘얼굴’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그냥 커피가 아니라 어느 지역에서 누가 생산한 어떤 커피라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알 수 있다면 커피를 더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생산자의 다양한 이야기를 알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커피를 좋아하는 소비자들도 생산자를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렇죠, 소비자가 소비하는 게 큰 힘이잖아요.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지속가능성과 환경, 생산자의 건강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된 의미로써 커피의 품질을 즐기고 소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커피는 큰 산업이에요. 그런데 보면 소위 말하는 개발도상국들이 생산국이고요. 이 나라들이 제국주의국가들의 식민지였을 때 커피를 기르기 시작했어요.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어도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예속 상태였는데요. 거래 구조나 구매상 등은 기존 제국주의국가들 위주였던 상황에서 정당한 가격을 받지 못했죠. 그리고 40년 동안 커피 거래 가격은 오르지 않았어요. 커피 한 잔 값의 1% 정도가 생산자에게 가는 형편인데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커피 생산지를 황폐화시키고 생산자의 삶을 가난하게 만들고, 결국은 커피 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들도 알리고 싶었어요.  

수해를 입은 ‘놈브레 데 디오스(Nombre de Dios)’ 농장의 마리아에게 조금 품질이 떨어지는 커피를 기존 가격보다 5% 높게 구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사업만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거든요. 

그냥 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당연히 사업이니까 이번에 이렇게 구매하면 그 다음에 더 좋은 품질의 커피를 많이 생산하고, 그것을 내가 구매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있었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았고요.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은 결정이 나중에 돌아보면 다행스럽게도 비즈니스에 아주 큰 도움이 됐어요. 관계가 돈독해지고, 신뢰가 쌓이면서 내가 떼쓰지 않아도(웃음) 생산자는 제일 좋은 품질의 커피를 보내줬죠. 저는 소규모농장과 거래할 때 품질이 좋으면 가격 흥정을 거의 하지 않는데요. 그러다 보면 알아서 좋은 커피를 보내주더라고요. 덕분에 소비자도 더 좋아하고, 장사도 잘 되는 선순환이 지금까지는 있었어요. 

생산자의 수입 증대와 지역 발전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인 거죠? 

좋은 커피를 제 값 주고 사는 것, 저는 그게 공정 거래라고 생각해요. 품질에 비해 낮은 가격을 지불하려고 값을 깎고, 다그치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생산지에 가면 저희 같은 구매자들이 갑이거든요. 그런데 저처럼 다른 구매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생산자들에게 큰 놀라움이기도 한 거죠. 그 과정이 신뢰가 생기는 계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너무 돈 따지지 않고, 생산자에게 갑질하지 않고도 사업적인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운이 좋기도 했지만 더 잘하고 싶고,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돼요. 

알면 알수록 커피를 단순한 음료로만 생각할 수가 없어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생산자들의 사례를 보면서는 또한 자연스럽게 환경문제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도시에 살면서는 그게 피부에 닿지 않아요. 이번 여름 진짜 덥다, 하고 에어컨 틀면 되니까요. 하지만 농작물을 기르는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커피 나무가 워낙 온도, 기후에 민감한 작물이라 비가 꼭 적정량 와야 하고, 와야 할 때 오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고 열매도 열리지 않아요. 기온이 적정 온도보다 조금만 높아져도 병충해가 심해지고요. 여러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조금 지나면 커피 못 마실 것 같다는 내용이에요.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약간 골치 아프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냥 ‘나 커피 좋아’ 라고 하는 건 제 기준에서는 별로 좋아하는 거 아닌 것 같아요. 선택은 각자 하는 것이지만 정말 몰라서 그럴 수도 있는 거라 제가 알리는 역할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돌려주는 게 옳다

이 책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커피 관련한 지식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책이 있잖아요. 내가 글을 쓴다면 내가 만난 사람들과 더불어 커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제가 역사를 전공했고, 그 중에서도 구술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산지에 다니면서도 사람들 인터뷰를 따고 그랬거든요.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그들의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보고 글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아니고요.(웃음) 어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존경스럽고,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워낙 많았거든요. 

책에 소개된, 커피 농사에 대한 철학은 있지만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 좋은 기회를 만나 삶이 달라지고 나아가 지역 경제가 달라지는 장면들이 떠오르네요. 

특히 온두라스 차기테 마을처럼 극도로 가난했던 곳은 1년만 지나서 봐도 낯빛이 달라져 있어요. 저는 당연히 그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하고요. 작게나마 내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아요. 물론 그것 역시 소비자들이 찾아준 덕이고요. 

“내가 가진 가장 큰 꿈은, 우리가 커피를 통해 얻는 행복과 이윤의 일부를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30쪽)이라고 밝혔잖아요. 

회사의 수익과 불가피하게 제가 받은 관심은 오로지 저로부터 나온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커피를 구매해준 소비자 역할도 있었던 것이고, 그 전에 좋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해준 생산자 역할도 컸던 거죠. 원래는 유통과정 자체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이익이 배분됐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했으니까 저희가 받은 것 중 아주 일부지만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돌려주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도 인도 구호단체 ‘난디’를 통해 400명을 후원하고 있는데요. 제게는 그게 정말 큰 행복이에요. 앞서 얘기했던, 커피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 제게 용기를 준 가장 큰 힘 중 하나도 이들이었어요. 

아이들 부모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농사를 짓는데 특히 커피 생산자가 많단다. 지난 며칠 동안 커핑했던 커피를 재배한 농부들의 딸들이라고 생각하니 더 각별했다. 커피리브레에서 구매하는 커피가 이 아이들과 나를 연결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중략) 나는 아라쿠에서 귀국하자마자 방문했던 여학교를 운영하는 난디 기금에 서른 명의 학비와 기숙사비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매년 그 수가 늘어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약 사백 명의 아이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아라쿠 커피의 최대 구매업체가 되었다.(202-203쪽)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중 가장 좋았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많은 사람들을 만났잖아요. 아마 계속 공부를 했다면 지금 만난 사람들의 10분의 1도 안 만났을 거예요.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히 비교하게 되고,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돼요. 많이 생각하고, 배우죠. 편견이나 여러 가치관이 변화한 것 같아요. 사람이 그냥 태어난 대로 사는 건 너무 슬픈 일 같아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어쩌면 인생의 유일한 과제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저는 커피를 하며 만난 사람들로 인해서 저 자신을 더 많이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제게는 커피를 좋아하면서 생긴 가장 좋은 일이에요. 




*서필훈

커피리브레 대표. 스페셜티커피를 발견하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 고려대학교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쿠바여성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 선정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한국인 최초로 획득했으며, 2012년과 2013년에 월드로스터스컵에서 우승했다.
안암동 보헤미안에서 처음 바리스타와 로스터 일을 시작했다. 2009년 커피리브레를 설립, 2012년 연남동 동진시장 골목에 첫 매장을 냈다. 돈이 없어서 인테리어를 하지 못하고 버려진 자개 테이블을 주워다 다리만 붙여 갖다놓았는데, 독특한 개성의 분위기와 섬세한 커피 맛으로 금세 커피마니아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이후 명동성당점,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강남 신세계 파미에스트리트점을 차례로 오픈했으며, 2017년 과테말라점에 이어 2020년 상하이점을 오픈했다. 일 년 중 삼분의 일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등 커피 산지에서 보낸다. 현재 세계 12개국 100여 개 농장과 거래한다. 연간 800톤의 커피 생두를 들여와 판매 및 로스팅하고, 이를 국내 400여 개 카페에 보낸다. 한 잔의 커피 뒤에 숨은,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감수한 책으로 『에티오피아』가 있다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서필훈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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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튜버 김시선 “영화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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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하고 쓰고 편집하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사람, 김시선. 그는 1세대 영화 유튜버이자 100만 구독자의 ‘영화 친구’이고, 영화 GV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팟캐스트와 라디오를 통해 영화를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와 함께한 자신의 순간들을 담아 책을 썼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는 일은 대개 비슷하다. 대상에 집중하고, 보고 또 보고, 자꾸 생각하고, 탐구하고, 계속 이야기하고, 어떤 방법으로든 기록을 남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도 그렇다. 김시선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마침내, 『오늘의 시선』이 세상에 나왔다.

“책에는 그동안 제가 겪은 영화판 이야기, 영화 뒤에 존재하는 사람들, 그리고 제 시선들이 담겨있습니다.” 출간 뒤 김시선이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그가 『오늘의 시선』에 담아낸 것은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는 고백이고, 영화에 애정을 쏟는 이들에게 보내는 마음이고, 언젠가 ‘영화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꿈이다.

2014년 유튜브 채널 ‘시선 플레이’로 1세대 영화 유튜버 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현재 ‘김시선’ 채널을 운영하며 100만 구독자와 만나고 있다. 1세대 독립영화잡지 <시선일삼>을 발간했고, KBS2 라디오 <음악이 있는 풍경 이정민입니다>와 한국영상자료원 등 다양한 곳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KBS 라디오 <김태훈의 시대음감>에서 ‘시선의 시선’의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고 있다. 팟캐스트 <김시선의 영화코멘터리>의 운영자, 그리고 넷플릭스와 왓챠의 공식 리뷰어로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마찬가지잖아요

‘영화 보기’가 취미이자 특기이자 직업이에요. 이른바 ‘덕업 일치’가 이루어진 건데요(웃음).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고 나면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나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지인들이 깜짝 놀라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제 일 다 했으니까 영화 보면서 쉬어야겠다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당연히 일로써 봐야 되는 영화들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쉴 때도 영화를 봐요. 쉬기 위해 보는 영화들이 따로 있어요. 좋아하는 게 일과 연관되면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생긴다고 하잖아요. 저도 똑같아요. 그런데 굉장히 긍정적인 스트레스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스트레스요?

영화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영화에 흠이 되는 요소도 알게 되고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요소들하고 부딪히게 될 텐데, 그런 것들을 영화와 가까워지기 위해서 해나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스트레스로 받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그 사람의 좋은 면만 보고 계속 좋아하지는 않잖아요. 가까이 가다 보면 분명히 싫은 면도 발견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부분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또는 싫은 면보다 좋은 면이 훨씬 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 발전적인 관계를 맺게 되잖아요. 저한테는 영화도 그런 것 같아요.

책의 첫 문장에서 ‘사랑 고백’을 하셨는데, 지금도 연애에 비유해 주시니까 단번에 이해가 되네요(웃음). 


가끔은 영화를 생명체처럼 느낄 때가 있어요. 나한테 뭘 알려주는 선생님인 것 같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서 힘들 때는 <빌리 엘리어트>라든가 아이가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보면 ‘나도 무언가를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멜로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 것 같다고 추억할 수도 있는 거고요. 때에 따라서, 내 감정에 따라서, 영화가 생명체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영화가 생명체라고 생각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걸 전제하다 보니까 질릴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일들은 다 금방 질리는데 영화는 수 년 동안 해오고 있지만 질리지 않아요. 질리면 딴 걸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질리지 않은 건 영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유튜브에서는 영상으로, 라디오와 팟캐스트에서는 말로, 이번에는 글로써 이야기하셨는데요. 더 익숙하거나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방식이 있나요?

요즘 저를 소개할 때 ‘영화를 말하고 쓰고 편집하는 김시선’이라고 하거든요. 어떤 방식이 좋다기보다, 그냥 좋은 영화가 있으면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라요. 그 영화의 좋은 부분들을 막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럴 때 어떤 도구를 통해서 전달하는 게 효과적일지, 그걸 고민하는 거죠. 지금은 영상을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오디오나 글 역시 영화를 소개하기에 정말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오리지널 매체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킬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영상보다는 글이나 오디오가 더 맞다고 생각해요. 영상은 어쩔 수 없이 편집이라는 가공이 일어나기 때문에 제대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때가 많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제가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채우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2014년부터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셨어요. 당시에 <시선일삼>이라는 독립잡지도 같이 만드셨죠?

네, 맞아요.

직장을 그만두셨을 때였나요?

아니에요, 직장은 그보다 몇 년 전에 그만뒀고요. 그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계시는 실버 극장에서 GV를 진행했었어요.

그때도 영화 관련 일을 하셨군요. 

네, 국가에서 운영하는 동네 극장 같은 곳에서 GV를 하기도 했고요. 독립잡지는 책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어요. <시선일삼> 1호가 만들어질 즈음에 독립잡지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서점들도 많아지고 독립영화잡지들도 나와서, 저도 재밌어하면서 직접 만들었어요. 그런데 ‘역시 책 만드는 건 다른 (전문가) 분들이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에서 멈췄고요. 그 즈음에 유튜브를 개설한 이유는, 제가 블루레이 컬렉터인데, 외국에는 블루레이를 언박싱하면서 소개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나라에는 왜 없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그걸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영상을 길게 찍었는데 올릴 공간이 없잖아요. 그때 저한테 유튜브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신 분이 계셨어요.

지금처럼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였죠?

맞아요. 그때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는데, 어느 날 한 형이 만나고 싶다고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 ‘빨강도깨비’라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인데, 그때는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거든요. 유튜브에서 제 영상을 보고 연락을 해온 거예요.

그래서 만나셨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시던가요?

유튜브라는 건 공존 시스템이기 때문에 나 혼자 잘 되는 게 아니라 같이 잘 돼야 한다면서 유튜브를 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어요. 듣고 나니까 뭔가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내가 지금 뭔가를 해야 되나 보다 싶고요. 그 분이 말씀하셨던 건 ‘당신은 영화를 되게 좋아하고 영화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지 않냐, 나는 대중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 건데 당신은 전문 영역을 담당하는 콘텐츠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러면 서로 호합이 되잖아요. 어차피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고 하니까, 이 참에 편집도 더 많이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어요.



영화 뒤에 존재하는 사람들

‘나는 영화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은 언제 생겼나요?

사실은 지금도 없어요(웃음). 요즘 부캐가 유행하는데, 그 사람을 부르는 칭호가 상황이나 공간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도 플랫폼 관련해서 강연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콘텐츠 제작자’죠. 그러면 철저하게 기획자의 입장이 되는 거예요. 시사회를 가거나 영화제에 가거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될 때는 평론가라고 불리고요. 지금처럼 인터뷰를 할 때는 저한테 작가라고 하시잖아요. 하는 일은 영화 보고 쓰고 말하고 편집하는 사람인데 상황에 따라서 다른 직함으로 불리는 것 같아요. 저는 끊임없이 더 좋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만나게 될 꿈의 영화, ‘이 정도 봤으면 이제 영화 일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를 보기 위해서 계속해서 일하는 것 같아요.

그런 영화가 있을 것 같으세요?

없을 것 같아요. 질리지가 않아서(웃음). 그래서 어제도 영화 보고, 오늘도 영화 보고, 내일도 영화 보고, 계속 그러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 보고 글을 써달라고 하면 글을 써드리고,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영상을 만들어드리고, 말을 해달라고 하면 말을 해드리고요.

왜 영화는 질리지 않을까, 이유를 생각해 보셨어요?

이유는 생각 안 해봤는데요. 어떤 영화를 보고 감탄을 할 때가 있어요. ‘와, 이걸 왜 이제야 봤지? 이런 영화가 있었어?’ 싶으면서 반성하게 되는 거예요. 영화제에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너무 좋은 영화를 발견했을 때도 그래요. 이를테면 ‘타이카 와이티티’라는 감독이 있는데요. <토르:라그나로크>와 <조조 래빗>을 연출한 감독이에요. 그 분이 201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는데, 그때 보고서 ‘저 감독은 정말 특이한 유머 감각을 지녔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감독을 발견할 때 ‘이렇게 좋은 감독이 있다는 걸 빨리 알려줘야 되는데?’.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나왔는데, 빨리 소개해야 되는데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까 질리지도 않고, 질릴 수도 없고, 계속해서 그런 작업들을 해나가는 것 같아요.

구독자들을 ‘영화 친구’라고 부르시죠. 영화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할 누군가가 있다는 건 굉장히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이 영화 좋았어’ 하고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렇게도 볼 수 있네’라고 말해주는 영화 친구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시선』이라는 책을 낼 수가 없었겠죠. 그 분들 한 분 한 분의 도움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책에도 나오는 문장인데, 최근에 사인할 때 그런 문구를 적어요. “영화는 나눌수록 더 커집니다”라고요.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고, 실제로 영화는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스크린에 투사된 영화의 이미지는 그 순간에서 끝나버리지만 사람을 통해서 (극장) 바깥으로 퍼져 나오는 거거든요.

“영화는 영감을 심어둔 바이러스다”, “바이러스에게 알맞은 숙주가 필요하듯, 영화에게는 좋은 영화를 알아봐주는 관객이 꼭 필요하다”고 쓰셨죠. 

맞아요. 그리고 실제로 감독님들을 만나 봐도 그것에 대해서 되게 감사해 하세요. ‘내 영화를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시고, 그럴 때마다 기분 좋아하세요. 어떤 감독님들은 ‘아, 그렇게도 볼 수 있어요? 너무 멋있다! 저도 다른 데 가면 그렇게 말해야겠어요’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요. 관객 분들이 기분 좋은 숙주가 돼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퍼트리는 건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에게 다 도움이 돼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김초희 감독과 인터뷰하셨던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요.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어요. 관객 상훈이 형, 영화 수입하는 박 대표 아저씨, 극장 프로그래머 휘병 씨 같은 분들이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 뒤에 존재하는 사람들’인데요. 이 분들의 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신 이유가 있나요?

영화에 여러 장르가 있지만, 저한테 보면 볼수록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장르는 다큐멘터리 같아요. 대부분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특별해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보다 보면 특별해지는’ 사람들이잖아요. 제가 만약 다큐멘터리 같은 글을 쓴다면 이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관객들은 극장 스크린에서 영화를 소비하고 나오면 끝인데, 스크린 뒤에는 그 영화를 걸기 위해 노력하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잖아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면 영화가 조금 더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박 대표 아저씨가 수입한 영화가 이 영화구나, 휘병 씨가 일하는 곳이 이런 극장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의 느낌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다큐멘터리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마지막 꼭지의 제목은 “코로나19가 만든 끔찍하지만 설레는 극장 풍경”이에요. 최근 영화계 종사자들이 아주 힘든 상황을 보내고 있죠. 

지금 극장의 많은 인력들이 감축되고 있는 상황인 건 맞아요. 사실 코로나 이야기를 쓰려고 했을 때 주변에서도 반대를 많이 했어요. 에세이를 통해서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싶어 하는 독자 분들이 많을 텐데 코로나 이야기가 들어가는 건 조금 그렇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코로나19로 인한 영화판의 이야기는 꼭 쓰고 싶었어요. 지금의 상황이 분명히 안 좋은 건 맞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분들이 노력을 하고 계시고, 또 관객 분들이 찾아주시거든요. 사실 영화를 개봉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고 극장에도 남는 장사가 아니에요. 관객이 떨어져 앉아야 하니까 전체 객석 가운데 절반은 못 쓰거든요. 영화를 개봉하는 것 자체가 적자가 돼버리는 상황이에요. 그런데도 이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응원하겠다는 마음으로 오시는 관객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 분들과 현장의 상황들을 글로 꼭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훗날 누군가 이 책을 봤을 때 ‘맞아, 2020년의 영화판에서는 코로나로 인해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고생을 했지. 나도 그때 극장을 잘 못 갔던 것 같아. 그 분들의 버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극장에서 좋은 영화들을 보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그런 로망을 꿈꾸면서 썼던 것 같아요.



‘영화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

책을 읽고 나니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 추가할 작품들이 늘어났어요. 

이 책으로 인해서 어떤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체크해 놓으셨다는 분들의 후기를 볼 때마다 쾌감이 있더라고요. 제 책을 읽고 자신의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 어떤 작품이 추가했다는 건데, 저에게는 그것보다 좋은 상은 없는 것 같아요. 원래 그걸 하고 싶어서 (영화 관련) 일을 했던 사람이니까요. 조금이나마 좋은 영화들을 소개해드릴 수 있다는 게 굉장한 행복인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내가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가 됐으면 좋겠다’, ‘독자들이 책을 읽고 각자 의 시선을 가졌으면 좋겠다’고요. 

영화의 경유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건 맛만 보게 해주겠다는 의미예요. 이 영화의 진짜 묘미는 내 입으로 표현해낼 수 없으니 직접 확인을 해봐야 된다는 거죠. 실제로 경유지가 되기를 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댓글은 ‘일단 여기에서 영상 멈추고, 영화 보고 다시 올게요’라는 거예요. 영화를 보러 가셨다는 건 이미 그 영화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것이잖아요. 그 순간부터는, 영화가 좋든 싫든 간에, 그건 온전히 자기 것이 된 거거든요. 그 영화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직접 봤을 때 생기는 거잖아요. 그걸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댓글들이 되게 좋아요.

영화 유튜버들 중에는 특정 작품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들려주는 데 중점을 두는 이들도 있어요. 작가님은 그렇지 않으신 것 같아요. 

제가 ‘시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잖아요. 그건 제 시선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시선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김시선은 이렇게 영화를 봤고 이런 설명을 해주네, 그러면 내 시선에 이 영화는 어떻게 보일까?’ 그런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계속 (영상을) 만든 것 같아요. 때로는 작품을 보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최대한 압축해서 보여드리기도 해요. <퀸스 갬빗> 같은 경우는 제가 실제로 체스 선생님들을 만나서 체스에 대해 배우고 경기도 해보면서 2주 가량 준비했어요. 그래서 체스에 관한 문화, 경기 규칙, 왜 영화에 그런 이야기들이 들어갔는지를 녹여서 전달하는 역할도 됐을 거예요. 또 어떤 때는 과감하게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 봤는데, 영화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도 해요. 저의 생각에 동의든 반박이든 하려면 직접 영화를 봐야겠죠. 그렇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저라는 존재가 없는 게 제일 좋죠.

작가님을 거치지 말고 영화와 직접 만나라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그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됐을 때는 모두가 각자의 시선을 가질 때겠죠. 물론 지금은 같이 도와주면서 영화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게 서로 재밌지만, 언젠가 그런 시기가 오면 저는 또 다른 역할을 해야겠죠.

‘내가 만든 콘텐츠를 통해서 어떤 작품을 함부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자기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생 영화’로 <체리 향기>를 꼽으셨어요. 주인공과 비슷했던 작가님의 어느 시절이 떠오르셨다고요. 영화와 관객 사이에도 사연이 있으면 끈끈한 인연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책에서 말씀하신 ‘영화 인연설’도 떠오르고요. 

맞아요. 저는 ‘영화 인연설’을 만들고 주창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이상하게 자꾸 내 눈에 띄거나, 자꾸만 나를 봐달라고 말을 거는 것 같은 영화들이 생겨요. 어떤 영화들은 너무 보고 싶은데도 만날 일이 없고요. 그럴 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보려고 하는 습성이 있거든요. 그러지 말고 못 보는 영화들은 과감하게 놔주자는 거예요. 사람 관계도 똑같잖아요. 인연이 아닌데 억지로 붙잡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놔줄 영화는 놔주고, 나한테 다가오는 영화는 기쁘게 맞이하자는 게 ‘영화 인연설’이에요. <체리 향기>는 저한테 그런 영화였어요.

“세상 모든 영화에서 장점을 찾아내 칭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라고 쓰셨습니다. 영화 리뷰를 하거나 GV 진행을 하실 때, 칭찬하기 어려워서 힘드실 때는 없으세요(웃음)? 

사실 저도 영화의 빛보다는 흠을 찾는 게 익숙했어요. 비평이라는 게 빛보다 흠을 찾는 게 더 쉽고, 재밌고, 빠르게 퍼트릴 수 있잖아요. 뉴스를 생각해 보면 좋은 이야기는 퍼지지 않고 나쁜 이야기가 퍼지잖아요. 저도 그런 걸 좋아했죠. 그런데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됐어요. 어떤 영화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소개를 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들이 ‘그 영화 정말 좋았어요, 시선 님 때문에 그 영화를 알게 됐어요’라는 거예요.

그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제가 너무 오만방자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별로일 수도 있고, 별로였다는 걸 피력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영화의 좋은 부분들이 보였을 거라는 생각을 제가 못했던 것 같아요. 물론 정말 좋고 잘 만들어진 영화들은 더 칭찬하고 더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영화라 하더라도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거든요. 누군가의 삶에서는 그 영화가 정말 특별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웬만하면 편견을 안 두려고 해요. 정말 재밌는데 단점이 많다면 ‘이런 부분들이 조금 아쉬웠지만 저런 부분들이 굉장히 좋았다, 좋을 것이다, 어떠어떠한 이유로 인해서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것 같다’ 하고 말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영화를 보는 시선 자체도 조금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영화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되는 게 꿈이라고요. 

그런 할아버지가 돼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마블 영화가 고전 명작이 돼있을 수도 있어요. 또는 <체리 향기> 같은 영화가 보존이 안 돼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겠죠. 그러면 영화를 찍고 영상을 만드는 젊은 친구들에게 <체리 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고, ‘그때는 이런 이유들로 이런 영화들이 나왔고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어’, ‘지금 그런 영화들이 나오면 어떨까’ 이런 조언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영감의 소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제가 실버 극장에서 GV를 했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때의 저는 조금 착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영화는 20~30대가 좋아하는 거잖아, 타깃이 거기에만 맞춰져 있잖아’라고요. 그런데 실버 극장을 돌아다니면서 누구보다도 영화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그 분들과 영화 이야기도 나누셨나요?

영화 시작 전에 옆에 앉으신 할머니 분들이 영화를 추천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뭔가 뭉클한 게 있었어요. ‘정말 영화를 좋아하시는구나’, ‘그런데 영화 관객으로서 이 분들은 약간 소외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 산업은 그 분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런 점에서 보면 그 분들은 영화를 짝사랑하고 계신 거잖아요.

그렇죠, 영화를 짝사랑하면서 보러 오신 거죠. 그 분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할아버지가 될 테고 내 영화 친구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텐데, 그때도 같이 즐겁게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노후를 영화로 마무리하는 것도 참 좋은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가끔 상상해 봐요. 제가 지팡이를 짚고 무대 앞으로 나와서 ‘다들 오랜만이네, 오늘 영화는...’ 하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요. 그럴 수 있으면 되게 인생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오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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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선 저 | 이동명 그림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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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감사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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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평생을 따라붙는 목소리가 있다. 이것은 그만하자고, 저것을 시작해보자고,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고,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존재가 있다. ‘내 안의 또다른 나’라 불러도 좋고 ‘진짜 나’라고 이름 붙여도 좋다. 이석원 작가는 ‘2인조’라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라고. 

한 팀을 이루었는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마음이, 몸이, 삶이. 그런 시간이 작가에게도 찾아왔다. “내 안의 무언가가 과열되다 끝내 임계점을 넘어버려서 뭔가 아주 중요한 게 작동을 멈춰버린” 상태였다. 몸과 마음이 무너진 자신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 올려야 했다. 25년 만에 다시 마음의 치료를 시작했고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보다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를 살리기 위한 지침’을 세우고 “의심 없이 몰두하고 권태 없이 지속적으로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보낸 1년의 시간이 『2인조』에 담겼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살기 위해 애쓴 시기였어요

지난 1년의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작가님 스스로는 어떤 시기를 지나왔다고 생각하시는지, 그 시간들이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살기 위해 참 무던히도 애쓴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까운 형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제게 언젠가 말씀하시길 자기는 석원 씨처럼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마음속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달고 살았던지라 듣는 저도 의아했고 제 주변 다른 사람들도 별로 공감하지 못한 말이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분이 저도 모르는 제 무언가를 본 것 같아요. 한마디로 스스로 저의 생존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확인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우리는 모두 내 안에 또다른 나를 하나씩 갖고 있다”고 쓰셨어요. 『2인조』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를 짐작케 하는데요. 생각해 보면 내 안의 ‘나’가 말을 걸어올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지난 1년을 보내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어떠셨나요?

안 그래도 평소에 혼잣말을 잘하는데, 거의 제가 저한테 말을 거는 식으로 대화를 하거든요. 그런데 지난 일 년은 그 대화를 거의 작정하고 한 느낌이었어요. 절 다그치고... 달래고... 도대체 왜 그러느냐 화도 내보고... 명백하게 스스로를 타자화해서 오가는 대화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 자연스러워서 놀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한 지침 다섯 가지’를 정하셨는데,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나요? 가장 잘 지키고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새롭게 추가 된 지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안 되고 있는 것은 역시 마지막 ‘잘 쉬기-취미 생활을 갖기’입니다. 여전히 취미를 찾지 못했고 쉬는 시간이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고 있어요. 그렇지만 다른 네 가지는 잘 지키고 있거나 지키도록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선물해주기는 매일 저녁... 몸에 안 좋은 것들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보상해주려 하고 있고... 어떤 결과가 주어졌을 때 제가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상기하며 제 탓을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고... 여전히 매일 그 날의 할 일을 일일이 적어가며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추가된 지침이라기보다는 이 다섯 가지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거절하는 연습’도 많이 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여전히 저보다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서요.

“일로써의 글쓰기”에 대해서 오랫동안 깊이 생각해 오신 것 같아요. 결국 어떤 결론에 다다랐다고 생각하세요?

저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일이고 생계 수단이라는 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제가 쓰고 싶은 것, 완벽하게 세상 눈치 보지 않는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점이겠지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이 저와 제 부모님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절박성을 가지고 매달릴 수 있는 것이어서, 과연 생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글쓰기가 정말로 저를 해방시켜 줄까, 그때야말로 진짜로 소위 말하는 ‘제 글’이라는 게 나올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론에 다다랐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제게 글쓰기가 여전히 살아 있는 일로 오래 함께 할 수 있으려면 어떡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모색하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책이 거두는 성적에 초연해지신 것 같으세요? 독자들의 리뷰는 찾아 읽지 않으세요?

책의 상업적 성과에 대해서는 초연하기가 불가능하겠죠. 저와 제 부모님의 밥줄이 달린 문제니까요. 다만 판매 순위에는 잘 신경 쓰지 않습니다. 즉, 저는 살아남기 위해 책을 팔아야 하지만 그 기준을 다른 작가들과의 경쟁에 두지 않겠다는 제 의지의 반영입니다.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도달하려 애쓰고, 도달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독자들의 리뷰는 여전히 종종 찾아봅니다.



감사하다는 말

“내겐 음악과 글이 서로에게 출구와 도피처가 되어주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글’ 이외의 출구, 도피처를 찾으셨나요? “부질없지 않은 무언가”는 찾으셨어요?

여전히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아직은 찾지 못했다는 얘기도 되겠네요.

첫 책 『보통의 존재』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작가로서 이석원의 글, 쓰는 행위도 달라졌을까요? 

글을 쓰는 행위가 제게 더 소중해진 것 같습니다. 저는 저를 하대하는 편이어서, 늘 저를 규정하기를 ‘너는 그냥 뭘 하든 밥이나 벌어먹고 살면 그 뿐이고 따라서 네게 가치 있거나 애정하는 일은 존재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글쓰기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좀 의미가 달라져 버린 것 같아요. 이 일을 지키고 싶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일로써 소모시키고 싶지 않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작가님을 둘러싼 독자와 사회는 어떻게 달라진 것 같으세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텍스트를 읽는 일이 여전히 제게 가장 중요하고 즐거운 순간이라는 점이고 그렇게 접한 세상은 십일 년 전과는 무척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출판 생태계도 그렇고요. 경쟁이 너무나 더 치열해졌고 책의 어떤 성적에 대한 결론이 무섭도록 빨리 나 버려서... 이 점은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보통의 존재』는 한번도, 막 일등하고 그런 책이 아니라 십년에 걸쳐 꾸준히 독자의 선택을 받은 책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긴 호흡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책들이 존재할 환경 자체가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쉽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방법”과 “솔직함”에 대해 쓰셨습니다. 지금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편인가요? 그 결과 예전보다 자신을 더 사랑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점점 더 솔직해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노력을 하시나요?

정확하세요. 솔직하기 위해, 저를 더 위해주고 사랑해주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평생 동안 그러지 않아 왔기 때문에 몸에 배인 습관처럼 저를 사랑할 줄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속 노력해야 언젠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저를 사랑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저는 세상에서 감사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그걸 매일 실천하며 살고 있어요. 어제도 서점에 가서 고맙다는 말을 백번 넘게 쓰고 왔는데 단 한번 기계적으로 그 말을 뱉게 되지 않아요. 저를 작가로서 존재 가능하게 해주고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분들에게 여전히 항상 뜨겁게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드리고 싶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석원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른여덟이 되던 해 첫 책을 낸 이후로 지금까지 모두 다섯 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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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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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소설가 백수린이 아주 좋아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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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하다”, “걱정이 많다” 백수린 작가가 인터뷰 때 자주 한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과감’하다. 지금처럼 홈 베이킹이 흔하지 않던 1996년, 작가가 고등학생 때 학교 근처 상가 안 서점에서 베이킹 책을 사서 직접 시도할 만큼. 소설 속 한 장면이 마음에 들게 써지지 않아 민폐를 끼칠 걸 알면서도 펑크를 내야겠다고 결심할 만큼. “보통은 소심한데 아주 좋아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결단력이 있을 때가 있어요”라고 작가는 말했다. “고생이 많았다는 생각도 들고, 제 성격에 도망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아 저 스스로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10년을 소설가로 보낸 백수린과의 인터뷰는 그를 과감하게 만드는 아주 좋아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온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첫 산문집입니다. 연재했을 때와 글이 많이 달라졌어요.

신문 칼럼은 분량 제한이 있다 보니 조금이라도 길면 다 잘렸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있어도 충분히 말을 못 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산문집 작업을 하면서는 분량 제한이 없어졌기 때문에 원래 더 넣고 싶었던 말들을 추가했고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산문을 쓴다는 것이 자유로움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재미있게 읽을까 걱정도 있었을 거 같아요.

아주 많았어요.(웃음) 산문은 소설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썼거든요. 제가 주로 작업해온 단편소설은 아무래도 완성하기까지 미학적으로 고려할 것이 많은 장르인데 반해 산문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글이다 보니 소설보다 더 빨리 더 즐겁게 썼어요. 그런데 묶을 때가 되니까 다른 종류의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원래 소설을 출간할 때도 책 내기 전에 우울해지고 내고 난 후에 더 우울해지는데 이번 책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심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니까 제 자신이 덜 드러나는데 산문은 저라는 사람이 많이 노출되잖아요. 글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걱정과 함께 저라는 사람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어요.

책을 출간하면 홀가분함, 긴장, 기대감 같은 감정들이 생길 것 같은데, 우울함을 느끼시네요. 그 우울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요?

글쎄요. 여러 가지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 같아요. 가장 마음이 힘든 것은, 아주 오랜 시간 저의 전부를 쏟아부어 만든 무언가가 그냥 ‘책’이라는 단순한 하나의 사물로 축소되어,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 던져진다는 것이 주는 허탈감에서 기인하는 듯해요.

홈 베이킹이 흔하지 않던 고등학생 때 베이킹 책을 사서 시작하셨어요.

먹을 것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남다른 아이였고, 오븐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어요. 어릴 때 읽은 동화책을 보면 오븐으로 요리하는 장면이 많잖아요. 오븐으로 칠면조나 파이를 굽는 이야기들이 자주 나오고, 또 그런 것이 즐거운 장면과 연결되어 있고요. 그래서 오븐이란 뭘까?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오븐에 뭘 넣으면 뭐가 된다는데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고 싶고 주변에서 아무도 모르니까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진열장에서 보는 케이크를 집에서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그래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을 실행에 옮긴 과감한 학생이었네요.

보통은 소심한데 아주 가끔은 결단력이 있을 때가 있어요.(웃음) 아주 좋아하는 일과 관련해서는요.

루틴이 있나요? 기분이 안 좋을 때 이것을 굽는다 같은.

소설이 잘 안 풀릴 때 베이킹을 해요. 그런데 그때 정해져 있는 건 ‘세상 간단한 것을 굽는다’예요. 복잡한 걸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을 때도 있지만 소설이 안 써질 때 베이킹 을 하는 이유는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거든요. 그래서 아무렇게나 배합해도 먹을 만하게 나오는 걸 주로 해요.

가장 최근에 한 베이킹은 어떤 거예요?

한 달 전쯤 만들었는데 초콜릿 밤 케이크요.(웃음) 밤크림과 초콜릿이 굉장히 잘 어울려요.

제목이 『다정한 매일매일』이에요. ‘다정함’이라는 말이 좋았습니다.

편집자님과 함께 제목 고민을 많이 했어요. 칼럼 제목이 「책 굽는 오븐」이어서 처음에는 그걸 제목으로 쓰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는데, 점점 추상적인 제목이 나오더라고요. 이 책을 통해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어떤 온기를 전달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정하다’라는 형용사가 나왔어요.

“이십대 초반의 쉽게 움츠러들던 나 자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 스스로를 충만히 사랑해야만 한다”라고 썼어요. 스스로를 충만히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자기 자신을 충만히 사랑하는 방법 같아요. 우리는 특히 외부적인 것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잘 안 되어 있잖아요. ‘이건 부족해, 잘못됐어. 변화해야 해. 발전해야 해.’ 이렇게 외부 기준에 맞추어 자기를 평가하는 것은 자신을 충만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닌 거 같아요. 저도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제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데,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매일매일 노력해요.

작가님이 드디어 받아들이게 된 자신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받아들이게 된 건 거의 없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만 너무 많은 거 같네요.(웃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외향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거? 늘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제가 원하는 정도의 외향성을 지닌 사람은 영영 될 수 없다는 걸 예전보다는 조금 받아들인 것 같아요. 가끔은 실패해서 자책을 할 때도 있지만요. 



이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지난해 여름 출간된 『여름의 빌라』에 실린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마지막 문장이 “한순간이지만 엄마가 자신을 완벽히 잊을 수 있음을 알아버려 한나절 만에 조숙해진 둘째 아이만이 엄마의 평상시와 다른 아름다움이 낯설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입니다. 아이의 시선으로 마무리된 문장으로 소설 속 장면을 굉장히 특별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성으로서 아이 낳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여성들은 일찍부터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만약 아이를 낳게 되면 나의 일정 부분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하는. 포기하는 건 너무 고통스런 일인데도요. 그런데 또 자식 입장에서는 엄마가 자신을 위해 포기해주는 것을 기대하고, 포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마음도 있고 엄마가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한테 희생을 안해? 그런 마음도 있잖아요. 그런 이중적인 마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에서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많은 걸 체념하는 엄마죠. 그런데 그러던 엄마가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는 순간을 아이가 본 거잖아요. 욕망을 발견한 엄마의 모습이 아이에게는 굉장히 낯설 것이고, 그 낯선 것은 아이에게는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는 무언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문장을 썼어요. 아이 입장에서는 그러는 게 당연한 거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었고, 아이는 울지 언정 그녀가 그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간직하는 채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각 소설마다 장면들이 선명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소설 쓸 때 장면의 묘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것이 슬픔이다, 질투다, 분노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려고 애를 많이 써요. 제 소설은 대부분 장면에서 시작해요. 작가마다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저는 어떤 장면을 쓰고 싶어 시작하는 경우 가 대부분이에요.

「여름의 빌라」는 어떤 장면에서 시작됐나요?

「여름의 빌라」는 그 장면이 결국 소설엔 들어가지 않았어요. 제가 쓰고 싶었던 장면은 지호가 독일인 부부와 싸우고 난 다음, 창 밖으로 선베드가 나뒹굴고 하는 황량한 장면을 내려다보는 거였어요. 그 장면을 배치해야 하는 소설의 뒷부분까지 왔고 창밖을 바라보며 끝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려니까 소설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고, 이야기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제 안에 계속 있었어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고 작품이 이상하다는 생각만 계속들어서, 이 작품을 펑크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마감 기한을 늦춰서 날짜를 더 달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못 쓰겠다, 미안하다’라는 메일을 편집자님에게 쓴 후 임시 저장을 하고 내일 아침에 보내야지 하고 자려고 누웠는데 그래도 계속 소설 생각이 나잖아요. 그때가 새벽이었어요. 침대에 누워서 계속 생각하는데 갑자기 레오니가 웃는 장면이 떠오른 거예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 그래서 침대로 노트북을 가져와 완성했어요.

소설집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단편들의 장면 중 가장 공들여 묘사한 장면이 궁금해요.

다 공들였지만, 쓰면서 풀리지 않아 힘들다가 결과적으로 만족한 장면은 「흑설탕 캔디」에 실린 각설탕을 쌓는 장면이에요. 그 장면이 잘 써지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다 쓰고 원했던 그림이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왜 풀리지 않았을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교감하는 행복함을 그리고 싶다는 정도만 머릿속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그려야 아름답고,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장면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어떻게 해도 제가 원하는 감정이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더 많이 표현되거나, 혹은 아예 전달되지 않거나. 적절한 장면을 만드는 것이 계속 풀리지 않아 이야기를 다 만들어놓고도 원고를 보내지 못한 채 마감을 한 달이나 못 지켰어요. 그 한 장면 때문에요. 고민 끝에 소설에 쓴 그 장면이 떠올라 넘길 수 있었어요. 그렇게 오래 생각해서라도 제가 원했던 장면이 나오면 너무 좋죠. 

「흑설탕 캔디」를 제일 아낀다고 작가의 말에 쓰셨어요.

‘난실’이 제가 만든 캐릭터 중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캐릭터인 거 같아요. 할머니 캐릭터가 좋았고, 그래서 만드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아까 말씀드린 장면을 쓸 때는 고통스럽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썼어요. 어떻게 보면 그 소설은 손녀딸이 할머니의 사연을 일기 속의 단편적인 정보를 가지고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잖아요. 저한테는 소설 쓰기가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가로서 제가 하는 작업을 약간 보여드리는 소설이기도 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소설이 좋더라고요.

『다정한 매일매일』에도 할머니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실 할머니가 저를 키우셨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소설가가 된 후까지 같이 살았고, 첫 소설집이 나온 후 돌아가셨어요. 할머니와 굉장히 친밀했죠. 저희 할머니는 난실 할머니와 완전히 달라요. 「흑설탕 캔디」 보시고 인터뷰할때마다 할머니가 고학력자였는지 질문을 많이 하시는 편인데 저희 할머니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할머니의 사랑, 할머니의 친밀함 같은 정서적인 부분은 제 경험이 들어갔어요.



자기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찾는 것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 생겼을까요?

글을 쓰고 싶다,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그땐 소설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동화작가 같은 걸 생각했어요. 중·고등학생 때 소설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지만 그게 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 하늘을 날고 싶다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소설가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고 그래서 소설을 쓰고 싶 은 마음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노력하지 않았고, 늘 ‘헛된 마음’으로부터 도망가려고 애쓰면서 대학 시절을 많이 낭비했어요. 그러다가 졸업할 때가 되어서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 하면서도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이건 써보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문예창작과 대학원을 간 것이 아니어서 학업으로 인해 소설을 못쓰게 되었고, 석사를 마치고 못 참겠다 싶어 습작을 시작했죠.

등단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오늘이 며칠이죠?

12월 15일이에요.

한창 맘 졸이고 있겠네요. 등단하기 전까지는 불안했던 걸로 기억해서 습작생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있어요. 어떨 때는 등단한 사람들의 말이 와닿지 않을 수도 있어서 사실 습작생에게 조언 같은 걸 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굳이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면 “휘둘리지 않고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써 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작품을 발표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라고 늘 말하고 있어요. 휘둘리지 않는 것 그리고 자기가 정말 쓰고 싶은 걸 찾는 것. 그게 어려운 거 같아요. 낙담하면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걸 잃게 되니까.

지금까지 계속 쓰고 싶어 하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늘 변하는 존재니까, 제가 가장 쓰고 싶은 것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바뀌어왔어요. 자기가 정말 쓰고 싶은 걸 찾는다는 것이 어떤 유일무이한 주제를 찾아서 쓰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외부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이 있는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의미지요. 습작기가 길어질수록 외부의 영향에 휘둘리는 걸 많이 봤거든요. 저는 습작 때부터 계속 사람과 사람 사이엔 왜 몰이해밖에 없는가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데뷔 초기에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고요. 지금은 완벽한 이해와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불완전한도구인 언어로 어떻게 일상의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글에 대한 확신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확실한 것은, 등단하고 나서도 그런 확신은 갖기 어려운 거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저는 소심하고 자기 확신이 정말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등단하고 나서도 이게 맞나? 이게 맞나? 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이제 좀 덜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두 번째 소설집을 낸 후예요. 오랫동안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운이 좋았죠. 휘둘리고 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지면이 계속 있었고, 책이 나왔고 그래서 독자님들과 만났으니까요. 이런 것들을 통해 제가 해온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구나, 라고 확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니까요. 아주 운이 좋았던 편이죠.

소설 쓰는 거, 어때요?

어려워요. 매번 어려운 거 같아요. 10년 동안 해왔는데 이렇게 익숙해지지 않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매번 낯설고, 어떻게 하는지 까먹는 것이 소설 쓰기인 거 같아요. 그런데 소설 쓰는 날이 한 달이라고 하면 30일 중에서 28일, 29일은 힘들고 하루만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그 하루가 너무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계속 쓰는 거 같아요.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요?

가족들이 고마워요. 2020년에는 제가 책을 많이 냈는데, 작업을 하면 가족들에게 굉장히 소흘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서운했을 거예요. 소설을 쓴다는 것이 저한테는 의미가 있겠지만, 가족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잖아요. 가족들에게는 물리적으로 같이 있어주거나 그런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양해해주는 가족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2021년, ‘소설가 백수린’이 갖고 싶은 능력은 무엇일까요?

밤에 숙면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능력. 노트북을 켜면 딴짓하지 않고 바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 그런데 이런 것도 능력이라고 할 수 있나요?(웃음)

드디어 마스크를 쓰지 않고 편하게 얘기해도 되는 때가 왔을 때, 뭘 가장 하고 싶으세요?

그리운 사람을 보러 가고 싶어요.



*백수린 

1982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과 Lyon 2 대학에서 불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짧은소설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번역서 『문맹』을 출간했다. 2015년, 2017년, 2019년, 2020년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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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인 “『비밀을 말할 시간』, 어른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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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기분이 없는 기분』으로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구정인 작가가 신작 『비밀을 말할 시간』을 출간했다. 아버지의 고독사를 다뤘던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 ‘은서’가 어린 시절 겪은 성추행 사건을 스스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만화는 은서가 친구들과 즐겁게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며 시작된다. 9년간 친구들, 선생님에게도 쉽게 고백하지 못했던 사건. 은서는 복수를 꿈꾸지만 가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오랜 고민 끝에 은서는 가장 친한 친구 ‘지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당연한 분노를 표출하는 친구로부터 은서는 용기를 얻고 스스로 상처를 극복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고 잘못되지도 않았다는 걸. 나는 괜찮다.”

지난해 겨울,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구정인 작가와 이메일로 만났다. 


보시는 분들이 괴롭지 않았으면 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주 생활도 궁금합니다. 

저 역시 다른 분들처럼 집에 있습니다. 『비밀을 말할 시간』 원고를 마친 뒤로는 한가해서 잠을 많이 자고 있어요.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고 아이와 부루마블 게임을 하고요. 그래도 저희 동네는 한적한 시골 바닷가 마을이라서 사람이 없는 바닷가나 시골길을 산책하곤 합니다. 

어린이책 디자인 작업도 꾸준히 하고 계신가요?

어린이책 디자인은 띄엄띄엄 꾸준히 계속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제주도에 이사 온 이유는 그냥 제주도에 살고 싶어서입니다. 서울에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와이낫? 하며 큰 고민 없이 왔는데 와 보니 역시 좋군요.

제주에 오고 나서, 변화가 있을까요? 

마음에 더 여유가 생겼습니다. 느긋해지고 걱정도 덜 하고요. 남편도 아이도 더 예뻐 보이고요. 높은 건물이 없어 넓은 하늘과 바다를 매일 보고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때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바닷가를 걸었어요. 이제는 좀 무뎌지긴 했지만요.

이번 작품은 최은미 작가님의 단편 「눈으로 만든 사람」 영향을 받으셨다고 밝히셨어요. 이 소설을 읽은 후, 이 작품이 출발된 건가요?

네. 처음에 구상한 이야기는 소설을 좋아하는 주인공이 「눈으로 만든 사람」을 읽은 뒤 어린 시절 성추행 사건을 떠올리고 후유증을 걱정하게 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였어요. 점점 다듬어지다 보니 「눈으로 만든 사람」은 빠지고 지하철 성추행 사건이 발단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지만요.

은서라는 인물을 만들 때, 염두에 두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평범한 중학생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특별히 잘나거나 모난 데가 없는 평범한 아이. 그래서 독자들이 주인공을 자기 자신 또는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도 흔한 이름으로 지었어요. 전작 『기분이 없는 기분』의 주인공도 30대 여성에게 흔한 이름 ‘혜진’으로 지었거든요. 은서를 그리면서 저의 청소년기를 많이 돌아보았어요. 집에서는 걱정 안 끼치는 딸이었고 학교에서는 명랑한 친구였지만 속으로는 이런저런 고민으로 많이 우울하고 기댈 곳이 간절히 필요했거든요. 

마지막 장면의 대사,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잘못하지 않았고 잘못되지도 않았다는 걸. 나는 괜찮다.”라는 대사가 작품의 메시지를 집약하고 있다고 느꼈는데요. 은서와 비슷한 일을 겪은, 혹은 보고 들은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친구 지윤의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살면서 성추행 안 당해 본 게 더 신기하다”는 말 역시 그랬는데요, 여성들의 연대가 담겨 있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친구 지윤이와의 에피소드를 그리면서 어떤 점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내가 지윤이라면 은서에게 뭐라고 말해 줘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위로를 해 주기는 하지만, 너무 큰일로 느껴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고, 동정하거나 대상화하지도 않고, ‘우리의 일이니 함께 해결하자!’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당신의 부탁」이라는 영화를 보면 임신한 여자 고등학생이 나오는데, 이 아이에게 친구가 “우리 이제 어떡하냐”라고 하거든요. 그 말을 듣고 여자아이가 고맙다고 해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은서가 과거 사건을 회상하는 장면은 그리시는 데에 더욱 조심스러우셨을 것 같은데요, 텅 빈 놀이터 장면이 많은 것을 압축하는 시퀀스처럼 느껴져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은서가 과거 사건을 회상하는 장면들에서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으셨을까요?

보시는 분들이 괴롭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리는 저도 괴롭지 않아야 했고요.


비난하는 말들을 귀담아듣지 마시라 

제목이 전작과 글자 수가 같아요! 『기분이 없는 기분』 『비밀을 말할 시간』 의미가 있을까요? 또한 비밀을 ‘말한’이 아닌 ‘말할’이라고 제목을 지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딱히 글자 수를 맞춘 것은 아닌데 세트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이번 제목은 창비 출판사에서 지어 주셨는데 듣자마자 딱 마음에 들었어요. 

요일로 목차를 꾸린 이유도 궁금합니다.

화가 났다 슬펐다, 원망했다 자책했다… 결국은 벌떡 일어나 출구를 찾는 은서 마음의 변화를 잘 보여 주려면 감정이 하루씩 달라지게 구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의 후유증이 더 걱정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혹시 비슷한 일로 마음의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비난하는 말들을 귀담아듣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비난은 다른 사람의 말일 수도 있고 자신의 목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가해자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어른이 주변에 있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른이 되면 세상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말이야, 쯧쯧’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이렇게 된 데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은서 엄마에게 혹시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은서 엄마는 은서를 자식이라기보다는 동지처럼 여기는 인물로 그렸어요. 살기가 힘든데 은서가 잘 커 주니 돌보아야 할 어린아이가 아니라 함께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게 된 거죠. 그래서 은서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가게에 갔을 때도 학교에서 별일 없었냐 묻지 않고 오늘 장사가 힘들었다는 얘기만 해요. 은서 엄마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긴 하지만, 저는 사실 은서 엄마한테는 마음이 덜 쓰여요. 그래서 은서 엄마에게 은서는 아직 아이니까 은서 마음을 더 돌봐 주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비밀을 말할 시간』을 특별히 읽었으면 하는 독자층이 있을까요? 

청소년들을 주 독자층으로 생각하고 썼지만 어른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 기댈 곳이 필요한 아이들을 발견해 주길 바랍니다.

작가님의 2020년 올해의 책 1권이 궁금해요.

다드래기 작가님의 만화 『안녕 커뮤니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버무린 이야기는 어떻게 만드는 거죠? ‘나도 이런 만화를 만들고 싶다!’라고 부러워하며 읽었습니다.

후속작이 어떤 이야기일까요? 

요즘 꿈을 꾸면 꿈속에서도 ‘앗, 이 이야기 소재로 써야 해! 기억해 두자.’라는 생각을 해요. 깨고 보면 그냥 황당하고 별거 아닌 이야기지만. 꿈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걱정이 되긴 하나 봐요.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어요. 그렇지만 이러다 또 뭔가 이야기가 찾아오겠죠.



*구정인

어린이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하다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기분이 없는 기분』은 첫 만화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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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연구가 정옥희 “사연을 알면, 춤이 더욱 재밌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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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도 ‘운명’이 있다면 어떨까? 마치 사람처럼 탄생하고 커리어를 쌓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춤들. 무용연구가 정옥희는 첫 저서 『이 춤의 운명은』에서 무용수나 창작자가 아닌, ‘춤’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우리에게 익숙한 <백조의 호수>는 남성 무용수들이 우아함을 뽐내는 무대가 되고, 파리지앵을 사로잡은 <뱀춤>은 검은 깃발이 휘날리는 현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대체 이들은 무슨 사연들이 있길래?

정옥희 저자는 2년 동안 작품을 선정하고 글을 썼고, 사진 자료를 한데 모았다. 춤을 잘 모르는 독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배려다. 춤의 역사를 안다면, 무대 위의 춤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마치 한 사람이 품은 사연을 듣고 친구가 되듯, 현재의 춤은 더욱 친밀하고 빛나 보일 것이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중국 광저우시립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했고,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에서 무용학을 가르치는 정옥희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2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 멋진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검은 깃발이 휘날리는 표지부터 참 멋진데요. 책을 받고 기분이 어떠셨나요?

코로나 상황 때문에 표지 시안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이미지파일만 보고 결정했고 서점에 입고되고 며칠 후에야 책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저의 첫 단독 저서라 마치 아홉 달 품고 있던 아이를 낳았을 때처럼 낯설고도 친숙한 느낌이 신기해 자꾸 들여다보았습니다. 표지의 경우 좀 더 대중적인 시안도 있었지만 결국은 제 마음에 든 이미지를 골랐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책들은 대개 멋지게 포즈 잡거나 뛰어오르는 무용수 사진을 표지에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관습에서 벗어나 왜 휘날리는 깃발로 춤을 얘기하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처음 구상 단계에서 어떤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은 월간지 <객석>에 연재했던 글을 모으고 확장한 것입니다. <객석>은 음악이 중심이기에춤에는 덜 익숙한 독자에게 대표적인 춤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첫 목표였습니다. 책으로 발전시키며 목표했던 것은 ‘<해설이 있는 발레> 다음 단계의 책이 되겠다’라는 것입니다.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는 발레를 쉽고 친근하게 설명한 무용계의 대표적인 기획 공연입니다. 책으로 치자면 춤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입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다음 단계의 책, 그러니까 일반인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전공자의 관점을 녹여낸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독자들을 춤계에서 멀찍이 떼어놓고 춤에 대한 상식을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춤계 내부의 고민과 논쟁에 참여시키고자 했습니다.

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현재의 무대를 즐기면 되지 춤의 역사를 배워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춤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와,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무용수들은 공연이나 영상기록을 많이 안 봅니다. 좀 쑤시게 앉아서 남을 보는 것보다 자기가 춤추는 게 더 중요하고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무용수일 때의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오고 나자 좀 다른 것들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혼자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 같아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영향받으며 살아가듯 작품도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품의 겉모습만 보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맥락을 알게 된다면 보다 풍성하고 섬세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예술은 과거의 것들을 인용하고, 비틀고, 뒤집으며 놉니다. 따라서 그 재료를 모른다면 예술가가 건넨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농담은 고도로 지적인 유희이지요. 어리둥절하지 않고 함께 폭소를 터뜨리려면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책의 표지로도 사용된 윌리엄 포사이스의 〈검은 깃발〉. 로이 풀러의 「뱀춤」의 핵심인 운동성을 이어받아 커다란 천이 끊임없이 휘날린다. 2014. pp.94-95.

다채로운 사진 및 그림이 수록되어 책이 더욱 풍성해요. 저작권을 해결하고 자료를 한데 모으느라 긴 시간을 들이셨다고요. 그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있나요?

2020년 1월부터 11월 말까지 꾸준히, 그리고 집요하게 사진을 모았습니다.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외국 기관이나 예술가들이 연락이 잘 안 되었고, 직업을 잃게 생겼는데 한가하게 사진을 부탁한다며 언짢아한 작가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유럽이 심각해졌을 때 두어 달 이메일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사우스랜드> 원작사진의 경우 학술논문에 실린 오래된 사진을 얻기 위해 저자, 학술지, 무용잡지, 다른 학자, 다른 무용단, 무용수의 딸 등 숱한 시도 끝에 막판에 허락받았습니다. 물론 백방으로 연락했지만 결국 포기한 사진이 더 많습니다. <학춤>의 경우 사진 소장자가 허락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다가 선배 언니가 소장한 오래된 책에서 사진을 찾아내 쓴 것도 있습니다. 유료 사진들의 경우 사용료가 너무 비싸 이 책이 상업서적이되 상업성이 참으로 없다는 걸 설득해 할인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격려와 도움을 많이 받았고, 예전 발레단 동료를 만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원작자나 무용수가 아닌 ‘춤의 생애사’라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원작자의 손을 떠난 후, 춤은 오해도 받고 변형도 되면서 마치 사람처럼 고유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데요. 이런 관점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학생일 때 무용사 책을 지루하게 읽었던 이유는 춤 작품들이 거대한 기념비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초연이 그 춤의 본질로 박제되고 나면 이후엔 먼지만 쌓여갈 뿐인 거죠. ‘또 <백조의 호수>라니 지겹다’ 이런 생각만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저는 한 작품을 고정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 작품이 쌓아온 독특한 커리어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춤을 볼 때 초연만 고집하거나 걸작이라 경외하지 않고 우리처럼, 그리고 우리와 함께 변화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면 다른 게 보입니다. 우리가 제각각 살 듯 춤도 제각각 산다고 이해할 수도 있고, 혹은 춤들이 이렇게 다르게 살아간다면 우리가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관조하며,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상이 나의 인생이든 춤 작품의 인생이든요.

예술춤을 잘 모르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작가님만의 위트가 곳곳에 숨어 있어요. 스타 발레리나의 탄생 비화를 ‘아이돌 만들기’로, 작품 <불새>를 만든 발레단을 ‘스타트업’에 비유하신 게 너무 재밌었는데요. 춤의 세계를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 특히 노력하신 부분이 있다면요?

저는 미술 작품을 해설한 책들을 재미있게 읽어왔는데 상대적으로 춤에 대해선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춤을 만들거나 감상하는 것이 전공자들끼리의 놀이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무언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여 낯선 표면 아래의 친숙한 논리나 상황을 끌어내려 노력했습니다. 발레 뤼스라 하면 와 닿지 않지만 스타트업은 와 닿을 테니까요.  


로이 풀러의 「뱀춤」을 구성하는 풍성하고도 생생한 실크 천의 움직임. 풀러는 여성 무용수의 몸매나 성적 매력, 기교에 대한 관습을 거부하고 움직임 자체에 주목했다. 1902. p.85.

‘명작’들을 숭고한 것으로만 그리지 않으려는 태도도 느껴졌습니다. <뱀춤>, <학춤> 등 다양한 작품을 조명하시고, 신화화보다 당대의 맥락과 변화 과정에 집중하셨는데요. 이런 관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용사 책은 명작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좋은 작품들이고 하나하나 의미 있는 성취를 한 작품이지요. 하지만 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외우다 보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와 연결시키긴 어렵습니다. 위인에게 감정이입하긴 어려운 법이니까요. ‘마리우스 프티파의 3대 발레’를 줄줄 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작품들이 맞닥뜨린 난제나 의문을 이해하고 이를 내 곁으로 끌고 오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뱀춤>의 경우 무용전공자들도 모던댄스의 초기작으로 외우고 지나치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테일러 스위프트의 고민이나 윌리엄 포사이드의 최신작과 연결된다면 동일선상에서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타인과 관계 맺을 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듯 춤 작품에 대해서도 때론 낯설게, 때론 가깝게 조절하며 바라볼 때 나의 경험과 연결되며 보다 깊은 이해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발레는 동경의 대상인 만큼, 오해받아온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직접 춤을 전공하시면서 느끼셨던, 발레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소개해주신다면요? 

발레만큼 동경과 폄하, 찬사와 오해를 한꺼번에 받는 장르 혹은 직업군이 있나 싶어요. 여러 춤 장르 중에서도 발레는, 이제는 충분히 대중화되었음에도 여전히 대상화됩니다. 사람들은 발레를 특정한 모습으로만 소비하려 하지 그 안의 다양성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합니다. ‘발레리나들은 새모이만큼 먹지요? 발레는 예쁜 척하는 거 아닌가요?’ 전공자들은 평생 이런 시선을 겪어냅니다. 때론 이런 대상화에 스스로 갇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바라보는 발레는 훨씬 건조하고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영역입니다. 발레무용수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단련된 이들입니다. 또한 발레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안엔 다양한 모습이 공존합니다. 어처구니없이 성차별적이거나 인종차별적이기도 하고, 냉철하고 철학적이기도 하며, 세상을 바꾸어놓기도 합니다. 전공자로서 저의 역할은 이러한 다양한 모습을 끌어내서 발레가 살아있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빔 벤더스의 영화 「피나」에 삽입된 넬켄라인. 피나 바우슈의 「넬켄」 속 마지막 ‘사계 행진’을 모티프로 한 넬켄라인은 모든 이를 행진에 초대한다. 2011. pp.222-223.

발레가 대중화된 한편으로, 고전적인 발레가 선호하는 여성성, 마른 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의견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발레의 다채로운 모습을 잘 아실 작가님의 의견이 궁금했습니다. 

요즘은 여성 발레무용수를 지칭할 때 이름 뒤에 ‘~리나’를 붙이는 게 유행이지만 저는 발레리나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레리나는 아름답고 우아하고 무엇보다도 깡마른 여성으로 정형화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바뀌는데 우리나라 발레계는 유독 마른 몸을 선호하고 강요합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교수법이 체계화되면서 발레무용수에 대한 잣대가 더욱 높아져만 가는 데다 우리나라 발레무용수들이 세계적으로 활약하다 보니 내적 성찰도 더딥니다. 저는 우리나라 발레가 이제껏 발레 종주국을 따라잡느라 노력했으니 이제는 그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 내부의 다양한 주체들을 포용해가며 폭을 넓혀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단지 체형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매우 이질적이고 괴이하며 불편한 발레가 나타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풍부한 사진 자료를 수록했다

마지막으로 예술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춤 공연을 즐기는 팁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예술춤을 즐기는 법은 단박에 이해하리라는 기대를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어려운 가곡을 이해할 수 없듯 몸을 가졌다고 해서 춤을 즉각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결국 오랫동안 쌓아 올린 장르적 규칙과 변형 속에서 노는 것입니다. 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눅 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춤 안에서 나에게 흥미로운 점을 찾아내고 즐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언니와 컨템퍼러리댄스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추상적이고 조금 지루하여 걱정했는데 공연이 끝나자 언니가 “네온 핫팬츠가 신나게 춤추니 멋지더군”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옥희

춤과 춤이 아닌 것, 무용수와 무용수가 아닌 이의 경계에 대해 탐구한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중국 광저우시립발레단의 정단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초빙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공역서로 『발레 페다고지』(2017), 『미디어 시대의 춤』(2016)이 있고, 『월간 객석』과 『조선일보』 ‘일사일언’ 코너 등의 매체에 기고했다.




이 춤의 운명은
이 춤의 운명은
정옥희 저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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