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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김현지 “나는 환자를 잘 죽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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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시절부터 보건의료정책에 관심이 많아 전공의 때 ‘대학전공의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전문의 취득 후에는 대부분이 밟는 전임의 과정을 선택하는 대신 병원 밖에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고,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직접 출마도 했던 의사 김현지.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낙관적으로 정책을 하는 게 아니라 상당히 비관적이고 회의적인데 끈을 못 놓고 하는 정책가”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책하는 의사로 살겠다고 다짐한 데에는 오직 한 가지,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을 위하여”라는 바람이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는 그런 그가 정책하는 의사로 활동하며 경험한 이야기들을 담은, 누구나 쉽게 보건의료정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보건의료정책 입문서’다. 정책의 부조리, 제도의 부재와 차별로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보며 의사로서 느낀 고민을 담았다. 누구든 더 쉽게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도 이 고민을 하는 의사 김현지는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또 책상 밖으로 나와 정책과 제도를 바로잡는 일을 계속 해나가며 누구든 더 쉽게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밝힌다. 김현지는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보건의료정책 입문서

제목을 여러 번 보게 되더라고요. ‘포기할 수 없는’에 방점을 두느냐, ‘아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리 익히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제목에 저자의 어떤 생각 담은 건가요? 

‘포기할 수 없는’에 의미를 둔 건데요.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환자가 치료비 부담으로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하면 아무리 해도 그 환자를 설득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선배나 동기들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에요. 체계나 제도를 바꾸면 환자를 도울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 명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제목에 담은 거예요. 

정책하는 의사를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고 활동을 해왔잖아요. 그러다 번아웃을 경험하고, 그간 써온 일기를 꺼내 들어 보면서 책을 써야겠다, 생각했다고 밝혔어요. 

의대생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어요. 일기장이 제게는 환기창 같은 곳이었어요. 그때는 공부에 대한 고민,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고민 등을 썼죠. 전공의 때는 워낙 장시간 근무를 하니까 그때 느낀 스트레스도 털어놓았고요. 비서관으로 일할 때는 체계나 제도를 바꾸는 게 너무 어려워서 그런 고민도 아주 상세하게 써왔어요. 제가 비서관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심한 번아웃에 시달렸는데요. 역시 환기를 하고 싶어 일기장을 폈다가 문득 이 내용을 엮어서 책으로 쓰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보건의료정책 입문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의사들조차도 법, 정책을 너무 딱딱하고 지겹게 여겨요. 그러니 다른 분들은 오죽하겠어요. 하지만 보건의료정책은 생각보다 훨씬 개인의 삶에 가깝게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보건의료정책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썼어요.

개인 개인이 보건의료정책을 아는 것이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세요? 

국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거든요. 또 정부 부처도 꾸준히 민원을 받아요. 소통 창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흔히 ‘나는 의료인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인데 정책이나 행정에 내 아이디어를 어떻게 반영시킬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의외로 굉장히 쉽게 반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목소리를 낼 권리가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현재 소아 중환자실이 많이 부족한데요. 막상 소아 중환자의 가족들은 환자를 돌보느라 이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지 못해요. 저는 이 책을 읽은 분 중 소아 중환자의 가족이나 관련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적극적으로 입법 기관이나 정부 부처에 민원을 제기하시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책의 사례들을 보면서 ‘나의 이야기였는데 알고 보니 이런 부조리함이 있구나, 이건 고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환자 분, 곧 돌아가실 거예요

“나는 환자를 잘 죽이고 싶다”(22쪽)는 말을 해요. 여기서 ‘잘 죽이고 싶다’는 것은 어떤 마음인가요? 

요즘 ‘웰다잉’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환자 입장에서 표현하면 웰다잉이고요. 보건의료 입장에서 말하면 잘 죽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결국 환자가 웰다잉을 맞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 그것이 잘 죽이는 의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잘 죽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바람일 텐데요. 쉽지가 않아요. 책에서도 중환자실에서 일하던 때의 경험들을 소개하면서 잘 죽는 것이 힘든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전공의를 하던 때만 해도 ‘연명의료결정법’이 없었어요. 더구나 ‘보라매병원 사건’ 때 연명의료를 중단했던 의사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서 의료인들이 굉장히 위축됐거든요. 환자, 보호자와 주치의가 연명의료에 대해 터놓고 논의하기 무척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였죠. 연명의료법이 도입이 된 후부터는 어떻게 환자분을 편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까지는 가능하게 됐는데요. 그럼에도 아직 환자 본인한테 이런 내용을 직접 이야기하는 걸 많이들 꺼리죠. 환자의 심적 부담을 우려하기 때문이에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고요. 좀 더 편하게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명의료 등에 대해 편하게 논의하는 분위기를 가로막는 것은 뭐라고 보세요? 

한국 특유의 정서 같아요. 환자가 심적 충격을 받으면 예후가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환자한테는 직접 말하지 말고, 환자의 가족들이 결정하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거든요. 의료인들 입장에서도 환자의 면전에 “환자 분, 곧 돌아가실 거예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같은 얘기하기는 엄청 부담스럽죠. 학생 때 이런 부분을 교육받기는 하지만 쉽지 않아요. 의료인도 환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환자나 보호자들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더 형성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밖에 환자에게 어떤 결정권이 있는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연명의료는 꼭 해야 되는 것도 아니지만 꼭 안 해야 되는 것도 아니에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죠. 그 가운데 연명의료를 안 하게 됐을 때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가 있고요. 예를 들면 대부분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니까 진통제를 충분히 받는다든가 각종 기회 감염에 노출됐을 때 환자가 가장 덜 고통스러운 치료 방법만 선택한다든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그때그때 상황에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호스피스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호스피스를 위해서는 무조건 병원에 계셔야 했어요. 아니면 집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거나 제대로 케어를 받지를 못했죠. 아직 시범사업 단계지만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이 도입이 됐고요. 이건 환자의 집에서 보건의료인들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시범사업 단계라 혜택을 누리고 계신 분들이 너무 적어요. 빨리 본사업이 되어서 집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선택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가 같이 끌어안아야 된다

“가난한 사람은 죽을 때조차 남들보다 더 지난하고, 괴로워야 했다”(60쪽)는 문장이 마음에 많이 남았어요. 당장 꼭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도 너무 제자리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요? 

가난한 환자는 만성질환 관리가 너무 안 돼요. 당뇨, 고혈압은 약만 잘 챙겨 먹어도 조절이 되는 병인데 관리가 안 돼서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런 분들은 합병증 때문에 근로 능력을 상실하고, 그러다 더 가난해지고, 그래서 더 만성질환 관리가 안 되는 악순환에 빠지거든요. 이 부분을 진짜 많이 고민했는데요. 사회 구조의 변화가 필요한데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더구나 전공의를 시작했던 10년 전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악화됐다고 느끼거든요. 빈부 격차는 점점 커지는데 보건의료 차원의 지원은 10년 동안 늘지 않은 거죠. 그러다 보니 격차가 더 벌어지는 느낌이에요.

관련해서 간병 노동을 공식화하고, 급여화해야 한다, “간병인이라는 직업을 보건의료 영역의 중요한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96쪽)고 주장한 부분도 중요하게 들렸어요. 

책에는 너무 무거워질까봐 적지 않았는데요. 2018년 국정감사 때 <서울신문>과 손을 잡고 질의한 내용이 ‘간병 살인’이었어요. 간병 살인이 이전까지 통계가 없거든요. <서울신문> 팀이 거의 10년간 발생한 간병 살인 판례를 직접 법원에 가서 다 찾고, 외워서 나왔어요.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취재해 책으로도 냈고요. 비서관으로 있을 때 저희가 복지부에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간병은 엄청난 부담이에요.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인데 사회는 그 부담을 개인에게만 지우니까 결국 간병 살인 같이 끔찍한 결과가 난다고 생각해요. 정작 그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은 너무 바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목소리를 내지를 못하니까 그런 분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개인 간병을 더 이상 개인의 부담으로 줄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같이 끌어안아야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뭔가요? 

일단 가족 중에 누가 아파도 아무도 일을 그만둘 필요가 없죠. 지금은 간병인을 고용할 정도의 경제력이 없으면 가족 중 한 명, 대부분은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간병하게 되거든요. 그게 사회적 단절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가정 경제도 파탄이 나는 수순이에요. 하지만 간병노동이 급여화 되면 그런 상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죠. 가족이 아파도 정부에서 지원하고, 간병인도 고용해줄 테니까요. 더구나 그렇게 되면 의료인들도 훨씬 수월해져요. 숙련된 간병인이 환자를 케어하고, 병원은 그걸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의료인은 환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지금은 사실 보건의료인들, 특히 간호사들이 간병인의 역할 부담도 같이 지고 있어요. 그런 부담을 덜어내고 본인의 업무에만 집중하게 될 거예요. 

‘콧줄’ 사례에서도 생각이 많아지죠. 병원도 조직이고, 수익이 나야 하니까 온전히 환자만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거잖아요. 의사로서도 고민일 것 같아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병원에 지원 삭감을 하는 기준이 사실 들쭉날쭉해요. 그래서 서울대학교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은 병원 내에 자체적으로 보험심사팀 같은 걸 둬요. 심평원이 삭감할 것 같은 것을 병원이 먼저 막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원 재정이 감당이 안 되니까요. 사실 저는 병원의 보험심사팀이랑 싸우는 게 주업무 중 하나였어요. 교과서적인 근거에 따라 약을 처방했는데 심사팀에서 “선생님, 그 약을 쓰면 지원이 전액 삭감되기 때문에 병원 측이 부담해야 됩니다. 그 비용을 병원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라고 얘기하면 엄청 화가 나는 거죠. 이런 일이 정말 많아요. 그 중 하나가 책에 소개한 콧줄이고요. 그럴 때 의사로서의 결정을 수호하는 해내는 것도 지치죠. 사실 보험심사팀은 무슨 죄가 있나요. 불필요한 감정 다툼이잖아요.

어디서부터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될지 고민이네요. 

병원은 일단 수가가 아니면 장례식장, 카페테리아, 식당 같은 임대 사업에서 부수적인 수익을 만들어 적자를 채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의사가 환자한테만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거든요. 일단 수가가 정상화되어야 하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소아 중환자실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수가를 높여도 환자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병원이 운영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이건 수가와 별개로 지원을 해야죠. 결국은 예산의 문제입니다. 한국이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요. 의료비를 상당 부분을 사용하는 분들은 사실 노동 인구가 아니다 보니까 이분들이 건강하게 치료받으려면 노동 인구가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해요. 어쩔 수 없이 보험료는 인상해야 하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이제는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전 국민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진보성을 믿고 버텼다. 무턱대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현실적인 낙관성은 항상 유지했다”(15쪽)고 했잖아요. 그럼에도 이렇듯 당장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할 때 무력감이 들기도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정책하시는 분들이 다 얘기해요. 뭐가 문제인지도 알고, 뭘 바꿔야 되는지도 아는데 안 바뀐다, 그게 너무 지친다, 라고요. 그게 정책하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되는 점인 것 같은데요. 그래도 목소리를 내면 10개 중 1개는 반드시 바뀌거든요. 거기에 감사하고, 그걸 많이 기억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제가 비서관으로 처음 참여했던 법안이 올해 초에 나온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법적 근거로 쓰였어요. 출근하는 길에 그 기사를 보는데 굉장히 뿌듯했어요.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잖아요. 선언적인 조항이지만 그 하나가 들어간 것만으로 복지부 사업의 근거를 만들어줬고요. 그 사업은 몇 년에 거쳐 전 국민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저는 아니까요. 그런 기쁨이 있어요.

‘경계’ 챕터에는 의사의 근무 현실이라든지 번아웃 문제를 저자의 경험을 기초로 적었는데요. 무엇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환자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될 것 같아요. 

의사에게도 너무 치명적인 상황이고요. 환자에게도 정말 위험한 부분이에요. 제 생각에는 조용히 넘어가는 의료 사고가 굉장히 많을 것 같거든요. 의료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보건의료인들이 적정 시간 근무하고, 너무 지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저자가 지금 가장 관심 갖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의료 전달 체계’예요. 간단히 말하면 누구나 아플 때 꼭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거거든요. 그게 가능하려면 주치의도 있어야 되고요. 1차 의원부터 2차 병원, 3차 병원 각각의 역할이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어 각자의 역할을 해줘야 해요. 지금은 감기 환자 한 명을 놓고 동네 의원이랑 서울대학교 병원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죠. 환자한테는 선택지가 많아서 좋아 보일 수 있는데요. 감기나 당뇨 같이 간단한 경증 질환 환자들도 상급 병원으로 오니까 역설적으로 많이 아픈 환자들은 정작 꼭 필요할 때 진료를 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해서 치료 예후가 나빠지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요. 주치의제도가 있고,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 의료 전달 체계라고 볼 수 있는데 그걸 개선하는 게 현재는 가장 큰 관심사예요.




*김현지

서울대학교병원 권역응급센터 진료교수.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내과 전문의이자 우리 모두의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해 보건의료정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인턴 때부터 전문의가 된 지금까지 요양병원, 중환자실, 응급실, 암 병동 등 다양한 병원을 두루 거치며 수없이 많은 죽음과 마주했고, 다양한 환자들과 만났다. 어떤 이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했고, 또 어떤 이는 그리 힘들게 살려놓았는데도 자살 시도 끝에 차디찬 몸으로 되돌아왔다. 누군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가난한 탓에, 정책과 제도가 미비한 탓에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인간답게 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사그라드는 생명 뒤에는 정책의 부조리, 제도의 부재,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의사가 병원 안에서 사람을 살리려 애쓴들 사람들은 병원 밖에서 죽어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사회를 살리기 위해 병원 밖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의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함으로써 보다 많은 이들을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도록 보건의료 정책을 보완하고, 또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금은 잠시 임상 현장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녀의 이상과 목표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을 위하여.’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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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저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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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소설가 이서영, 하나가 되어 우주로 날아가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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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이해하고 싶고, 한 편이 되어 싸워주고 싶다. 이서영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유미의 연인』이 ‘사회파 로맨스 SF’가 된 건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가 아닐까? 김보영 소설가가 추천사에서 말했듯, 이서영 작가는 현재 한국 사회파 SF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작가다. 소설의 배경도 우리의 현실만큼이나 문제가 많다. 배달노동자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가게는 하루 아침에 철거된다. 그럼에도 소설은 무겁게 가라앉는 대신, 사랑의 힘을 믿고 행동하는 등장인물을 그린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달달한 ‘로맨스’다.

이서영 작가는 예술고등학교에서 글쓰기로 상을 받던 ‘백일장 키드’였다.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을 하며 데모 현장을 다녔고, SF소설의 매력에 빠졌다. “제가 다닌 대학교가 공대에 특화된 곳이었어요. 교양 과목으로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를 수강했는데 과학 기술에 대한 글을 과제로 제출하면서 처음 SF소설을 썼어요. 너무 재밌어서 작품을 찾아 읽다가 한국 SF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럼 나도 써보자 하고 여기까지 온 거죠.”



‘사랑’은 그의 첫 소설집 『악어의 맛』부터 이어져 온 키워드다. 어떻게 써도 결국 로맨스가 된다는 그는 사랑이야말로 이해와 해결의 가능성처럼 보였다고 했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잖아요. 누군가를 이해하고 함께하겠다는 건 알고 보면 참 이상한 행동이니까요.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이 기꺼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이 사랑 같아요.”

소설에서 사랑을 지닌 인물들은 기술에 소외되고 약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이지만,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동시에 비열한 면도 있는 보통의 존재다. “배제된 사람을 굳이 그리려 했다기 보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사람들을 살면서 조금 더 많이 봤기 때문에 소설로 나오는 것 같아요.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복합적인 존재잖아요. 가난한 사람이 곧 착한 사람은 아니죠. 그럼에도 배제의 경계에서 확률적으로 더 보여지는 비열의 양상은 있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사람이 재벌 같은 비열함을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꼬리에는 뼈가 있어」에서 장애를 가진 예린이도 뾰족한 면이 있고, 명훈이도 그 나이대 남자애 같은 나쁜 면이 있죠. 복합적인 양상 안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심이 있어요.”

첫 소설집 후기에서 작가는 ‘세상을 총체적으로 사랑하는 일’에 대해 썼다. 하지만 세상은 좋은 면 만큼이나 나쁜 면이 공존한다. 어떻게 전체를 사랑하면서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하지 않을 방법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싫어하는 면이 있다고 해서 그 부분만 따로 떼어놓을 수 없으니까요. 늘 제가 사랑하는 면은 싫어하는 면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아침마다 돈 때문에 싸우는 앞집 부부의 목소리에 잠을 깼어요. 그 소리를 들으며 ‘아, 아침이구나’ 하면서 일어나곤 했는데요.(웃음) 그게 불편했지만, 동시에 저는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이 서로 삶에 개입하면서 살아가는 풍경을 사랑하기도 했거든요. 제가 그 풍경을 사랑한다면, 아침의 고성은 거기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뭔가를 총체적으로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 전체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도 없지 않나요? 사랑하는 면과 싫어하는 면은 반드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세상을 총체적으로 사랑하려는 작가의 복합적인 얼굴을 담았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기술에 의해 소외되지만, 역으로 그 기술을 활용하여 가능성을 찾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엄마는 센서가 인식되지 않는 약점을 이용해 시스템을 파괴하려 하고(「센서티브」), 개발자는 노동자를 통제하는 알고리즘을 역으로 작동시켜 전태일을 현재에 불러온다. (「전체의 일부인」) “나쁘게 사용되는 기술을 역으로 활용한다면? 하는 질문을 자주 던져요. 기술도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죠. 특히, 인간관계에 기술을 활용한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 지 이야기하고 싶어요.”

기술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의 말에서 그는 ‘우리는 이해할 능력도 없지만, 오해라도 해야 부대끼며 살 힘이 생긴다. 수년간 오해와 이해의 사이에 기술이 환상처럼 비집고 들어가는 소설을 써왔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타인과 나의 생각을 생물학적으로 연결하면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SF적인 상상을 많이 했어요. 현재로서 도달한 결론은 ‘이해할 수 없다’인데요. 그럼에도 그 꿈이 예쁘고 쓸모 없는 꼬리뼈처럼 환상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의 판타지니까 소설로 나오는 것 아닐까요?”



「유미의 연인」에서 서로를 깊이 사랑한 연인은 기술을 이용해서 생각을 완벽히 결합시킨 채 우주로 날아간다.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꿈이 환상처럼 펼쳐지는 장면이다. 작가는 거기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덧붙인다.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꿈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장소제공: 컴즈커피)




*이서영

SF와 판타지를 쓴다. 사회 문제와 맞닿아 있는 SF를 발표해왔고, 소설 외에도 노동과 젠더가 밀접하게 뒤얽히는 지점들을 파고드는 글을 자주 쓰고 있다. 도시 빈민의 삶을 짊어지고 이십대 내내 시위를 하다 보니 빈곤과 노동에 심하게 집착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여러 시공간에서 데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썼다. 기술이 어떤 인간을 배제하고 또 어떤 인간을 위해 일하는지, 혹은 기술을 통해 배제된 바로 그 인간이 기술을 거꾸로 쥐고 싸울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여성의 경제적 위치를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유미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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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육 전문가 임영주 “감정, 통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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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어린 애랑 뭐 하는 거지?’ 아이와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부모는 자괴감에 빠진다. 책에서 배운 대로 가르치고 싶지만, 훈육으로 시작했다 화풀이로 끝나기 일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내고 돌아서면 남는 건 후회와 자책뿐, 훈육은커녕 부모와 아이 모두 불편한 감정을 풀지 못한 채로 어영부영 상황은 종료된다. 

화풀이는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 부모가 하는 가장 쉬운 선택이다. 부모 교육 전문가 임영주는 “화풀이는 아이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부모가 아이에게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역할이, 어른에게는 어른의 역할이 있는 법. 충동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은 아이 하나로 충분하다. 어른이라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화내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부모들에게 임영주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감정의 발화점’ 찾기. 내 감정을 알아야 아이 감정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어쩌지 못해 힘들어하는 부모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이 책을 읽는다’는 후기를 봤어요. 

정확하게 읽으신 것 같아요. 저자의 의도를 꿰뚫은 후기네요. 그간 낸 책이 ‘어떻게 아이를 변화시킬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솔루션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부모를 위한 책이에요. 물론 육아 잘하는 법을 소개하는 책도 궁극적으로 부모를 위한 책이지만 목적이 달라요. 

말씀하신 대로 아이가 아닌 부모의 감정에 집중한 책인데요. 어떻게 쓰게 됐나요? 

지난 몇 년간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무료 전화 상담을 했는데요. 상담한 내용을 쭉 모아보니 모든 사연의 핵심이 부모의 감정에 있더라고요. 감정을 어떻게 하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이 많았어요. 아이를 제대로 훈육하지 못해서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아이한테 모진 말을 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제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엄마인 지인한테 책 제목이 흥미롭다고 소개했더니 ‘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하더라고요. ‘내가 지금 아이랑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자괴감 들 때가 있다면서요.

엄마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내가 이렇지 않았는데 아이 키우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때가 많다는 거예요. 엄마인 내가 아이 같고, 어떨 때는 아이만도 못하다고요. 그만큼 육아가 힘들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계속 위로만 할 수는 없잖아요. 이 책에는 위로도 있고 쓴소리도 있어요. 

쓴소리가 있다고 했는데 그 쓴소리를 압축한 게 제목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뜻인가요?

제가 ‘부모는 어른이다’라는 말을 좋아해요. 이 말의 연장선에 있는 내용인데요. 부모님들 상담하다 보면 어릴 때 받은 상처를 많이 이야기하거든요. 들어보면 대부분 부모님이 어른답지 않게 행동했을 때 받은 상처예요. 어른이라면 내 말, 행동이 불러올 영향을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유독 자녀한테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해요. 왜냐하면 그래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모는 모든 면에서 아이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24쪽),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의 생존권을 쥔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과 연결되는 말이네요.  

부모는 아이한테 절대적인 존재예요. 부모도 이걸 알아요. 무의식 깊은 곳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휴화산처럼 있다가 어느 날 화를 분출하는데 그 이면에는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해도 네가 어떻게 할 거야?’ 하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내 아이가 아니라 상사나 상사의 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화난다고 마음대로 화낼 수 있나요? 그러니까 사실 감정을 통제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죠. 

무의식은 나도 모르게 생기잖아요. 그래서 더 무섭구나 싶었어요.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맞아요. 그것만 인지해도 괜찮은 어른, 부모 아닌가 싶어요. 좋은 질문 하나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런 질문을 드리는 거예요. 이 책에 답은 없어요. 다만 부모인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얼 원하는지를 찾아보라고 질문하는 거죠. 

육아법만큼이나 부모인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육아를 흔히 전쟁에 비유하잖아요. 전쟁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뭐죠?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에요. 나를 알고 아이를 알아야 육아 전쟁을 할 수 있는데 많은 부모님이 아이도 모르고 자기도 몰라요. 그런데 아이는 바꾸고 싶으니까 힘든 거죠. 쓴소리를 안 할 수는 없어요. 원래 자기를 대면하는 일이 어렵잖아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써요.



내 감정 알아야 아이 감정을 알 수 있어요

부모에게 감정을 물어보면 대부분 감정이 아닌 상황을 설명한다고요.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게 그만큼 서툴다는 이야기인데요. 부모가 왜 자기감정을 잘 살펴야 하냐고 묻는다면요? 

내 감정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감정도 알 수 있거든요. 많은 부모가 다 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어떨 때 화가 나는지, 어떨 때 기쁜지 그리고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제대로 아는 분이 많지 않아요. 본인 감정에 대해 잘 모르니까 아이들한테 물어볼 때도 뭉뚱그려서 물어보고요. 아이가 울면 무조건 ”슬프구나?” 하는 식이죠. 그런데 사람이 꼭 슬플 때만 우는 건 아니잖아요. 억울해서 우는 아이도 있고, 신발이 안 신겨져서 우는 아이도 있고요. 

그래서 감정을 세분화하고 ‘감정의 발화점’과 ‘초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어요. 

초감정이라는 건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거거든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아는 건데 아이들은 몰라요. 아이들은 초인지, 초감정이 약하거든요. 그런데 어른은 내가 지금 남편이랑 다퉈서 화가 나는 건지, 아이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지 ‘감정의 발화점’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잘 모르니까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일을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아이를 혼내는 거예요. 감정을 정확히 알아야 화도 정확하게 낼 수 있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정확하고 건강하게 낼 수 있을까요?

일단 내가 무엇 또는 누구 때문에 화났는지 대상을 명확히 알아야 하고요. 만약 아이가 잘못해서 화났을 때는 분명하게 “그건 안 되는 행동이야”라고 해야 해요. 그럴 때 “아이들이 엄마 화났어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데요. 그러면 “응, 엄마 화났어. 왜냐하면 네가 잘못된 행동 해서 화났어”라고 하는 거죠.

화난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 줘야 하는 거네요? 

그럼요. 그래야 아이가 알잖아요. “엄마 지금 소리 지르고 너 많이 혼내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야”, “이렇게 말해도 네가 알아들을 거로 생각해”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 아이한테 보여주는 거예요. ‘엄마도 소리 지르고 싶은데 참는구나’ 하고. 누구에게나 감정은 있지만, 그 감정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게요. 

훈육과 화풀이의 가장 큰 차이로 ‘대안’을 꼽았어요.

그래야 아이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니까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화풀이만 하면 아이는 또 말 안 들어요. 배운 게 없잖아요. 선생님이 계속 화내면서 가르쳐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하라는 거지?’ 싶잖아요. 훈육은 굉장한 인내가 필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힘든 걸 부모가 안 하면 누가 우리 아이한테 해주겠어요.

훈육으로 시작했다가 화풀이로 끝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만큼 훈육이 어렵다는 뜻이겠죠. 

사실 그게 사랑이거든요. 부모니까 화가 나는 거예요. 내 아이가 아니면 그렇게 속상하지도 않죠. 그런데 그 사랑이 아이한테는 너무 뜨거워요. 화상 입는 거죠. 우리의 사랑이 그래요.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해 해줘야 하는 쉽지 않죠. 제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한 고등학생이 좋은 부모를 묻는 말에 ‘자녀가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부모’라 썼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만큼 사랑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이 중요하고 어렵다는 말인 것 같네요.

맞아요. 이런 말을 고등학생이 하다니 싶어서 놀랐어요.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죠. 모든 관계는 배워야 하잖아요. 부모와 아이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사랑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은 누구나 배워야 해요. 



아이가 왜 어른스러워야 하죠?

‘어른스럽다’, ‘의젓하다’는 표현은 칭찬이 아니라고(43쪽)요. ‘부모화된 아이’가 될 수 있다고 했어요.

부모가 말하는 ‘어른스럽다’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 아이한테 ‘어른스럽다’라고 하나요? 어른스럽다는 말은 수십 년 전부터 사용된 말인데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노동력이었잖아요. 그래서 빨리 자라기를 바랐어요. 어른이 할 일을 아이가 나눠서 해야 했던 시절이었죠. 실제로 학교 다녀와서 소 꼴 베고, 첫째가 막내 업어 키우고 했잖아요. 아이들이 어른스러워야 했어요. 

정말 그러네요. 

그런 시대에 생긴 말들이 지금까지 쓰이는 거예요. 이제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어른과 아이의 분업화가 이뤄졌어요. 아이는 발달 단계에 맞게 커야 하고, 그 시절에 누려야 할 것을 누려야 해요. 그런데 ‘어른스럽다’는 칭찬은 아이가 자기 욕구를 감춘 채로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능가하는 행동을 하게 만들어요. 굴레를 씌우는 말이거든요. 아이가 아이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시절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아이를 억압해서 ‘어른아이’로 만드는 거죠. 

그러면 ‘어른스럽다’는 말을 어떤 표현으로 대체하는 게 좋을까요? 

구체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 좋아요. ‘상황 중계 칭찬’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성과나 결과로 칭찬하지 말고 과정을 칭찬하라는 말 있잖아요. 예를 들어 간식을 들고 방에 갔는데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럼 엄마가 ‘오 우리 아들 공부하네?’라고만 해도 충분해요. 이게 인정해 주는 거거든요. 아이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할 때 그 행위를 편하고 거부감 없이 인정해 주면 돼요. 

아이 앞에서 습관적으로 돈타령하는 행위에 대해 부모는 ‘돈을 아껴 쓰라는 말이었다’라고 변명하지만 아이에게는 ‘네게 돈을 쓰는 게 아깝다’라는 말로 들린다(70쪽)고 해서 놀랐어요. 부모는 그냥 푸념하는 거겠지만, 아이 입장에서 이렇게 들릴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물론 부모는 그럴 의도가 없죠. 그런데 아이 앞에서 푸념하면 아이로서는 ‘내가 엄마, 아빠한테 폐 끼치나?’, ‘내가 자발적으로 안 해야 하는 건가?’ 생각할 수 있어요. 아이 앞에서 경제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우리 상황이 어떤지 알려줄 수는 있죠. 그런데 그걸 한숨을 섞어서 푸념처럼 하는 것과는 달라요.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런 말도 아이 앞에서는 조심해야 한다는 거예요. 

태도,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관건이네요. 

맞아요. 어투, 눈빛, 한숨 이게 다 태도예요. 엄마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해도 아이들은 큰 영향을 받는 거죠. 특히 예민한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크게 상처받을 수 있어요. ‘나한테 돈을 쓰는 게 아깝나?’라는 생각을 넘어서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하고 생각하는 아이도 있어요. 

아이한테 물어보는 게 중요한데 잘 물어봐야 한다는 말도 좋았어요.

아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 정작 당사자인 아이는 배제하고 어른들끼리 할 때가 많아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애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다섯 살짜리 아이도 질문하면서 스스로 알 수 있어요. 그러니 궁금하면 아이한테 먼저 물어봐야죠.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를요?

네. 예를 들어 왜 장난감을 던졌는지,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거예요.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한테 질문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예를 들면 “화난다고 장난감 던지면 될까?”라고 물어야 한다는 건 아는 거죠.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은 아이가 왜 그랬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잖아요. 답을 알려주려고 형식적으로 질문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른들도 형식적인 질문, 의도가 있는 질문 받으면 답하기 싫지 않나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이 사람이 진짜 내가 왜 그랬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지 답 정해놓고 알려주려고 하는 건지 다 알거든요. 

생각해보니 아이 마음을 진심으로 궁금해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해석해 주려고 하거나, 빨리 답을 주려고만 하고요. 그런데 물어봐도 아이들이 대답을 안 하면요?

실제로 “물어봐도 말을 안 해요”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엄마가 원하는 게 뭔지 아니까 아이가 말 안 하는 거예요. 아이가 마음을 열 수 있게 물어봐야 하는데 부모는 가르쳐주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답정너’로 물어보니까요. ‘엄마는 네 마음이 진짜 궁금해’라는 마음으로 “왜?”라고 해야 하는데 대체로 그렇지 않죠. 그리고 “왜”라는 질문이 아주 위험한 질문이에요. 

위험하다고요? 왜요? (웃음) 

똑같은 ‘왜’라는 질문도 어떤 톤이나 억양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르잖아요. 방금 저한테 물어보신 건 진짜 궁금해서 한 “왜”인데 그게 아니라 ‘너 왜 그랬어?’라는 느낌의 ‘왜’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한테 “왜”라고 물어볼 때 잘해야 한다고 강조해요. 궁금해서 물어보는 ‘왜’인가, 다그침을 위해서 물어보는 ‘왜’인가 알아야 한다는 거죠. 아이들의 대답을 듣는 건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우리 아이한테 시간 내서 아이 말에 귀 기울이겠어요. 부모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부모가 아이 말을 더 안 들어요. 



아이한테 ‘내 마음 알아달라’는 거예요

아이한테 사과할 때도 아이 감정을 통제하려고 하는 부모가 많다고요. 

요즘은 엄마들이 교육을 받아서 아이한테 사과하는 것까지는 하세요. 그런데 엄마가 어렵게 아이한테 사과했는데 아이가 안 받아주는 거예요. (웃음) 그러면 엄마도 기분 상하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내가 사과했는데 왜 안 받아주냐’면서 아이를 2차 통제해요. 이게 사실은 엄마가 아이한테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는 거거든요. 아이는 아직 준비가 안 됐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엄마 혼자 ‘내가 어른답게 사과해야지’ 해놓고 안 알아준다고 하는 거죠. 이렇게 사과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나아요.

결국 아이 감정을 먼저 살피는 게 핵심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기 위해 끓어오르는 내 감정을 먼저 살펴야 하잖아요. 팁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자기도 모르게 아이한테 큰소리 냈으면 바로 “미안, 엄마가 큰 소리를 냈네. 이따 이야기하자”고 브레이크 걸 수 있어요. 아니면 “엄마가 지금 실수할 것 같거든? 이따 이야기하자” 또는 “잠깐 물 좀 마시고 올게” 하는 거예요. 내 차 브레이크는 내가 잡아야 하잖아요. 자기만의 방법이 있어야 해요. 이렇게 할 때 아이들이 느낄 거에요. ‘우리 엄마 어른답다’고요.

그걸 아이가 그대로 배우는 거고요?

그렇죠. 사례가 있는데요. 어떤 어머니가 강연을 듣고 변해야겠다 싶어서 화났을 때 “엄마 지금 마음이 안 좋으니까 이따 말하자” 했더니 초등학생 아이가 “엄마 평소대로 해”하더래요. 

간신히 잠재운 화가 다시 끓어오르겠는데요. (웃음)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래서 또 한 번 화가 났는데…(웃음) 진정하고 물었대요. “엄마가 옛날처럼 말했으면 좋겠어?”라고요. 아이가 아무 말 없이 생각하더래요. 아이는 어색했던 거예요. 엄마가 안 하던 행동을 하니까. 그런데 나중에 남편하고 언쟁하고 있는데 아이가 슬그머니 와서 엄마 손을 만지더니 “엄마 아빠랑 조금 이따가 이야기하면 안 돼?”하더라는 거예요. 보고 배우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는 예전에 그렇게 했던 엄마 모습이 좋았던 거죠. 

분노에 브레이크를 거는 장치로 녹음을 추천했어요. 자기를 객관화해보라는 거죠? 

네.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것도 자주 권해요. 몸도 말을 하잖아요. 아이 앞에서 걷는 거, 말하는 거 다 보는 거예요. 혹시 손가락질하지 않는지, 아이를 무시하는 눈빛을 보내지는 않는지 알 수 있어요. 

비슷한 방법으로 이두자검(以豆自檢, 콩으로 자신을 점검한다)을 소개하기도 했어요. 분노의 습관화를 막으려는 노력을 가시화하라는 말인데요. 

검은콩, 하얀 콩 준비해 놓고 좋은 말 했을 때 또는 어른답게 했을 때마다 하얀 콩을 옮기는 거예요. 반대일 때는 검은콩을 놓고요.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 놓고 밤에 꺼내 보면 좋아요. 아이들한테 주는 ‘칭찬 스티커’랑 비슷한 거죠. 

이야기 나누다 보니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하려는 노력과 부모가 아이한테 가르치는 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칭찬 스티커처럼요. 

맞아요. 부모가 어른으로서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먼저 하면 돼요. 부모는 아이한테 좋은 것만 요구하잖아요. 엄선된 것만 요구하거든요. 그걸 부모 자신한테 적용하면 돼요. 그런데 엄마는 필라테스 6개월 끊어 놓고 한 달도 안 다니면서 애가 학원 한 달 다니면 사생결단을 내잖아요. (웃음)

실제로 자녀들이 “엄마도 못 하면서 왜 나한테 하라 그래?”라는 말을 할 때가 있잖아요. 무척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이럴 때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까요?

그럴 때 “뭐? 엄마가 뭘 못해?” 이렇게 하면 아이 수준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마음이 쓰라려도 아이 말에 귀 기울여야죠. “그랬어? 엄마가 그렇게 못했나?”라고 물어보세요. 그러고 나서 “그렇구나 엄마가 못하는 게 많네. 그래도 해줘. 엄마도 할게” 정도로 반응하는 거예요. 물론 이렇게 하고 돌아서서는 ‘저게 벌써 컸다고…,,’ 하겠죠. (웃음) 그런데 아이 키울 때 비장하면 안 돼요. 아이가 ‘팩트 폭행’ 하면 그대로 맞지 말고 방패 써야죠. 공이 오면 튕겨내지 말고 한 번 흡수한 다음에 다시 아이한테 주는 거예요. 어른이니까 여유 있고, 유머 있게요.




*임영주

대한민국 최고 부모교육 전문가이자 소통 강사로, 학부모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멘토,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한 부모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부모교육전문가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모토 아래 부모가 정서적으로 아이들한테서 독립하여 건강한 미래를 설계하도록 돕고 있다. EBS [부모], KBS [아침마당] 등을 통해 훈육을 힘들어 하는 부모들에게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여 큰 공감을 얻은 바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네이버 TV, 유튜브를 기반으로 다양한 부모교육 콘텐츠를 공유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부모와 아이 중 한 사람은 어른이어야 한다
임영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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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해피엔딩이라는 틀에 갇히지만은 않았으면 – 소설가 장류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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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류진 소설가와 엄윤미 인터뷰어

장류진 소설가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누군가 보내준 링크를 통해서였습니다. 2018년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 이 공개된 창비 웹 사이트의 서버를 다운시키던 무렵이었어요. 모니터 화면으로 글을 읽으며 그 신선함에 감탄했습니다. 이후 ‘ㅇㅇ의 기쁨과 슬픔’ 이라는 말을 종종 변주하여 따라 씁니다. ㅇㅇ 에 어떤 단어를 넣든, 그에 대한 현실적이고 균형감 있는 시선을 갖게 됩니다. 일하는 일상에서 유지하고 싶은 태도이기도 합니다. 

장류진 소설가는 같은 제목의 단편집을 출간한 직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1년여 만에 첫 장편 『달까지 가자』 를 발표한 장류진 소설가를 두번째 작업실 인터뷰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용에 소설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멀리 가지 않는 상상’이 빚어내는 이야기  

장류진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감탄합니다. 스토리는 오늘의 현실에 단단히 바탕을 두고 있으나 뻔하지 않은데 (신작 『달까지 가자』 에 등장하는 은상 언니가 주인공 다해에게 “넌 내가 그렇게 뻔한 소리를 할 것 같니?”라고 할 때,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달까지 가자』 47쪽) 그 스토리를 끌고 가는 개별 장면의 디테일한 묘사는 극히 사실적이기 때문이죠. 

이 기발한 이야기를 만드는 영감을 어디서 얻는가, 사소하고 놀라운 디테일을 어떻게 수집하고 기록하는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2019년 말 출연한 팟캐스트 <듣똑라>에서 진행자들이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때 장류진 작가는 머릿속에 남는 이미지 장면의 파편들에서 영감을 얻고, 메모는 잘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회사를 떠나 전업 작가로 1년 이상을 보낸 지금은 달라진 점이 있을지, 다시 첫 질문으로 건네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여전히 메모나 기록은 하지 않으시나요? 

여전히 메모는 잘 안 씁니다. 일기도 써 본 적이 없고 블로그도 안 해요.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이루어져요. SNS 계정은 있지만 일상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거나 하지는 않고요, 머릿속에서 혼자 SNS를 하는 것 같아요. (웃음) 멍 때리면서 쓸데없는 생각, 잡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 계속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어요. 왜 자꾸 생각이 날까, 자꾸 떠오를까,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거죠.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아이들이 인형 놀이할 때, 얘는 이런 애래, 오늘은 뭐했대, 하고 설정하듯이, 마인드맵 그리는 것처럼 생각을 이어 가요.

SNS에 순간순간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생각이 멈추거나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스토리로까지 길게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이야기를 만들 때, 멀리 가지 않는 상상을 합니다. 누가 나한테 100만 원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달까지 가자』 로 발전했다면,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여행을 간 후쿠오카의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을 보면서 상상이 시작되었어요. 후쿠오카는 여행지보다 살기에 좋은 도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여기에 사는 제 또래 한국 여자를 떠올렸어요. 그 여자는 왜 도쿄도 아니고 후쿠오카에 살까? 누구랑 살까? 혼자 살까? 결혼을 했나? 생각하다 보니 주인공은 엉뚱하게 남편이 죽었다는 설정이 되었죠. 또 외국에 살면 지인들을 놀러오라고 초대하잖아요. 그럼 이 사람도 친구들을 초대할까? 누굴 초대할까? 이렇게 생각이 뻗어갔던 거예요. 세계 자체는 일상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지만, 처음 생각의 시작에서는 멀리 간 거죠.

호기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기록은 하지 않지만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관찰하시는 거군요. 결국 관찰과 호기심이 출발점이고, 거기에 끝을 맺는 힘이 더해질 때 무언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써낸 첫 두 권의 책엔 작가님이 IT 기획자로 일하실 때의 일상이 녹아 있어서 신선했고요. 이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시면서 일상이 바뀌었는데, 앞으로는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일상도 달라질까요?

아직 모르겠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소설집 출간 관련 일정을 정신없이 다녔고 또 바로 장편을 쓰기 시작해서 그동안은 달라진 것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어요. 물론 달라지긴 달라졌겠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크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장류진 소설가

안락한 세계, 낭떠러지 위에 선 사람들 

“평생을 저 작은 돌멩이처럼 아슬아슬한 감각으로 살아왔다. 언제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달까지 가자』 330쪽) 

“야! 니가 그럴 자격이 왜 없냐? 그럴 자격 있다. 누구든 좋은 걸, 더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194쪽) 

『달까지 가자』의 세 주인공 은상, 다해, 지송은 스스로를 ‘우리 같은 애들’ 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 같은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 다른 세계를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달까지 가자』 104쪽) 안락한 세상을 넘보지 못할 것으로 여기지만, 잠깐 열린 이더리움이라는 기회에 올라탄 덕분에 안락한 세상의 한 부분을 처음으로 경험합니다. 다해가 인피니티풀에서 인피니티라는 단어에 대해, 더 좋은 것에 대한 욕망을 생각할 때, 그리고 학자금을 갚고 대출잔금: 0 이라는 숫자를 오래도록 내려다보다 ‘애초부터 이런 기분으로, 이렇게 홀가분한 발걸음이 기본인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170쪽) 사람들의 삶을 상상할 때, 주인공들은 바로 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같은 사람들이 됩니다. 

첫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실린 『도움의 손길』의 주인공 ‘나’는 비교적 안정적인 세계에 진입해서도 항상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드디어 갖게 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거실에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듯’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기도 하고요. (『일의 기쁨과 슬픔』 142쪽) 

안락한 세계, 낭떠러지 끝에 선 불안감이라는 맥락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느 일간지와 인터뷰할 때, 작가님은 좋은 대학 나오고 취직도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 같은데 뭐가 그리 힘드셨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등 교육을 받았고, 정규직 직장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등 교육 받고 정규직으로 일했다고 해서 모두가 단일한 경험을 하는건 아니잖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를 막아줄 네트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이후 계속 그런 감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많이들 그랬듯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영향이 컸죠.

그래서일까요. 기댈 곳 없이 언제든 떨어져 내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달까지 가자』 의 세 여성은 달달한 결말을 맞습니다. 한편, 은상이 큰 돈을 벌어 퇴사한다는 소문을 들은 다해의 팀장은 인생 삼불행 이야길하죠.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나는 것, 부모형제의 권세가 대단한 것, 어린나이에 출세하는 것이 인생의 세가지 불행이며, 은상은 그중에서도 가장 불행할 수 있는 어린 나이의 출세를 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게 부럽나? 그게 좋을 것 같아?”로 시작하는 긴 독백은 무려 두페이지를 넘겨 이어집니다. (288-290쪽) 

팀장이 길게 늘어놓는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이야기였어요. 그 많이 들어본 이야기에선 주인공들이 그러다 결국 불행해졌다고 결론이 났을 것 같고요.  『달까지 가자』의 결말은 그와 달랐는데도 팀장의 말에 제법 긴 지면을 할애하신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길게 쓸 생각은 처음엔 없었어요. 소년등과일불행만 알고 있었는데,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나머지 두가지가 너무 좋은 것들이고, 그래서 웃긴 거예요. 이게 왜 불행이야, 최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보통 죄를 받으면서 끝나잖아요. 재물을 탐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욕망한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으면서 끝나죠. 그런데 왜 그래야 되지? 누군가에겐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을 바랬다고 죄를 받아야 되나? 내 소설이니까 나는 그렇게 안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애초부터 설탕에 굴린 이야기를 쓸 생각이기도 했고요.

살면서 ‘너한테 그정도면 충분하다’ 는 말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 세 명이 모두 좋아하는 것을 얻는 결말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다해는 결국 회사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조직에 어떻게든 남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왔으니까, 계속 있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요소는 아니었고요.

다해는 정말 말도 안되게 적당한 시기에 빠져 나와서 돈을 벌고, 책 한 권 분량을 난리난리를 치고 나왔는 데도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잖아요. 이제 빚이 없고, 집도 방 하나 큰 걸로 갔고,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죠. 하지만 난리를 치고 3억이란 돈이 생겨도 삶이 크게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겐 그냥 주어지는 것을 왜 다해는 이 난리를 치며 모든 걸 걸어야만 얻을 수 있느냐는 생각을 했거든요. 반대로 이 돈이 만약에 없었으면? 소설에선 돈을 주잖아요. 그래서 다해도 이제 좀 회사 다닐 맛이 난다고 할 만큼 숨통이 트이지만, 그 돈이 없었으면 다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 것도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결말이 너무 드라마틱해 버리면 이런 생각들을 해보긴 어렵겠네요. 

껍데기는 해피엔딩이지만, 이 소설이 완벽한 해피엔딩일까 생각해 보기도 해요. 이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를 생각하면 찝찝하죠. 설탕이나 단 걸 많이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하잖아요. 그것도 소설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은상 언니가 다해에게 집을 사라고 조언하는데 다해는 안 샀고, 주인공 셋은 200만 원대에 팔고 나와서 돈을 벌었지만 이더리움은 지금 가격이 훨씬 더 올랐어요.이렇게 생각하면 누군가에겐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해피엔딩이라는 틀에 갇히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왼쪽부터) 장류진 소설가와 엄윤미 인터뷰이

작업이 시작된 순간들, 그리고 작업이 직업이 될 때  

작가님도 소설 속 인물들처럼 불안함을 안고 안락한 세계로 진입해 가던 직장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에게는 소설이 있었다’고, 『일의 기쁨과 슬픔』 작가의 말에 쓰셨죠. 안나에게 조성진이, 거북이알 에게 거북이가, 장류진 작가님껜 소설이. 작가님의 일상에 소설은 언제, 어떻게 등장했나요?

생각을 글로 정리하거나 글로 쓰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저는 일기도 안쓰니까,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쓸 일이 없는 거예요. 대학 다니면서는 전공이 사회학과다 보니 내내 글을 썼는데 IT 업계에 들어와서는 글을 쓸 일이 없으니까,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열망은 있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문화센터 강좌를 둘러봤더니 수필 쓰기, 시 쓰기 … 여러가지가 있었어요. 한창 한국 단편 소설에 빠져 있을 때라 그 중 소설 쓰기가 끌렸어요. 

작가님의 재능과 결심이 가장 중요했지만, 그 시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때 젊은 작가들이 활발하게 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수필이나 시를 쓰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럴수도 있어요. 그때가 젊은작가상 1,2 회가 시작되던 시절이었어요. 김애란 작가님 대상 타셨을 때. 그때 한국 단편 소설을 정말 많이 찾아 읽었어요.

판교에서 일하면서 강북에 위치한 한겨레문화센터를 꾸준히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집에서도 거리가 멀긴 했죠. 하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토요일마다 수업을 들었는데 일주일 동안 그날만 기다렸어요. 처음엔 3개월 강좌를 한번 듣고 소설 한편 가져올 생각이었는데 강좌에 가보니 사람들이 서로 다 아는 사이더라고요. 등록하고 끝나면 또 등록하고, 그렇게 계속 다닌 사람들이라서요. 처음엔 저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 다 알지 그랬는데 저도 나중에 그 중 한 명이 되어 있었고(웃음). 처음에 두 번 연달아 듣고, 이후로는 한 번 듣고, 한 번 쉬고 하면서 들었어요. 지금은 문화센터에 플랜카드가 걸려 있어요.(웃음) 

그렇게 강좌를 듣던 회사원이었는데, 이제 전업 작가가 되셨습니다. 전업 작가가 되신 후 1-2년 정도 흘렀으니 작업이 직업이 된 이후의 변화에 대해 다시 여쭤보고 싶어요. 전환을 결정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명확해요. 복수의 출판사와 복수의 책 계약이 있었다는 것. 『일의 기쁨과 슬픔』 을 내면서 그만두었는데, 복수의 계약이 있으니 할 일이 없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책 잘될 것 같다고 하니까 잘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리고 그중 하나가 장편이라는 것. 장편은 회사다니면서는 아무래도 어렵겠더라고요. 회사 생활을 좋아했었고,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면 계속 다녔을 거예요. 둘 다 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이라 결정할 수 있었죠. 정말 갖기 힘든 기회를 잡은 거잖아요.

지금 내가 손에 쥔 가능성이 얼마나 얻기 힘든 기회인가를 알면 용감해지는 것 같아요. 전환 이후 일상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일어나자마자 첫 일과를 글쓰는 것으로 하려고 하고, 그건 잘 지키고 있는 편이에요. 따로 작업실이 있진 않고 집에서 작업하는데, 출근 준비하듯이 일어나서 샤워하고 옷도 나름의 분류에 따라 츄리닝에서 다른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웃음) 커피 마시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요. 9시 반에서 10시 사이.

딱 출근하시는 거네요!

네, 회사 다닐 때도 그 시간쯤 출근했으니까 비슷하죠. 그렇게 시작해서 배고플 때까지 써요. 1~2시 정도까지 쓰고, 밥 차려 먹고 나면 오후엔 잘 안쓰고요. 회사를 안 다니는데 이정도 여유는 가져야겠다, 매일매일 반차같은 느낌으로 살자, 그렇게 생각해요.

매일이 반차라니! 예술가들이 파격적이고,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는 상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직업인으로서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이제 프리랜서가 된 거니까요. 일이란 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기획자로 일할 때도 업무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좋아하는 업무가 있고 그냥 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는데, 소설가도 그런 것 같아요. 소설 쓰는 일만 하는 건 또 아니니까요. 메일 답장도 하고 거절도 해야 하고, 책이 나오면 홍보도 해야 하고요. 

기획자로 일할 때 저는 시나리오 그리는 걸 제일 좋아했어요. IT 서비스 화면의 플로우를 그리는 거예요. 싫어하는 사람은 똑같은 걸 몇 백장 그린다고 싫어하는데 저는 좋아했어요. 이걸 누르면 여기로 가겠지, 이 경우엔 여기로 보내 볼까? 사람들이 이 버튼을 눌러보고 싶겠지? 생각하는 알고리즘이 소설이랑 비슷한 면이 있어요. 음, 그리고 제일 싫어하는 건, 내가 하겠다고 한 일도 아닌데 설득 논리를 만들어야 하는 종류의 일이었어요.

지금은 제일 싫어하시던 종류의 일은 안하셔도 되겠네요.

맞아요. 그리고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기도 해요. 출판계에서는 저자를 (손을 높이며) 이렇게 (존중) 해주시더라고요. 처음엔 선생님, 하고 부르시는 것도 너무 놀랐는데, 출판계에선 자연스러운 호칭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쿠션 덕분에 일하면서 기분 나쁘게 대하는 사람은 없는데, 아직도 적응이 완전히 되지는 않았어요.

작가님은 IT 회사의 천재 개발자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제품을 직접 만들어 내는 분.  

(웃음)


장류진 소설가

모든 작업이 직업이 되진 않지만 

작가님은 ‘사회학을 공부하고 IT 회사에서 일하면서 글을 쓰다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다 보니 어린시절의 이야긴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엔 뭔가 주어지면 잘 쓴다는 말은 들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에 관한 숙제는 재밌게 했고요.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엔 외향적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학기 초에 교과서를 받으면 국어책과 사회책은 다 읽어보는 아이. 박완서 선생님의 『그 여자의 집은 하이라이트 부분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그걸 읽곤 전체 소설을 찾아 봤지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은 하이라이트도 아니고 전개만 실려 있었는데, 너무 궁금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여기서 끊는다고? 말도 안돼! 하고 서점으로 달려가 어린이용 책을 사와서 정신 없이 읽던 기억이 있어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소설을 탐독했던 강렬한 경험이었죠.

이야기와 서사를 좋아하는 어린이였군요.

맞아요. 지금도 기억나는 책이 있는데, 지경사에서 낸 아동 소설 시리즈예요.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어린이와 청소년 중간 쯤의 아이들이 읽기 좋은 창작 소설들인데 제 책장 한칸 가득 꽂혀 있었어요. 스토리가 재밌어서 많이 읽었는데, 아마 제 나이 또래고 책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공유하는 시리즈일 거예요. 이야기도 좋아했지만, 활자 중독이었던 것 같아요. 아침밥 먹으면서 조간 신문을 넘기고, 소설도 좋아했지만 뭐든 그냥 다 읽었어요.

그런 특징이 미래로 연결된다는 생각을 해보시진 않았나요? 

신문 읽는 걸 좋아하니까 기자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은 했었죠. 6학년 특별 활동으로 문예반을 하면서 MBC 에서 개최한 ‘소리글짓기’ 에 공모할 소설을 쓴 것이 인생 최초의 소설이기도 했는데, 소설을 쓰는 미래를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모든 작업이 직업이 되진 않지만, 작업 없이 직업이 시작될 순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인터뷰를 하고 계신 ‘스토리 스튜디오’ 에 오는 청소년들은 글쓰기, 영상 찍기, 만들기, 그리기  같은 좋아하는 작업을 하러 여기에 오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해 해요. 내가 지금 이걸 해도 되는건가 하는 죄책감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은 편이고요.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이 좋아하는 일이 꼭 내 직업이 될지는 모르겠는 청소년들에게, 뭐라고 조언해 주시겠어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늦게 깨달은 편이라 그런지, 자기 자신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일찍 깨달은 10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런 사람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고등래퍼>도 정말 열심히 보거든요. 하지만 해주고 싶은 말은 -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니까요 - 비겁할 수 있지만, 마음의 분배, 라고 할까요. 무언가가 너무 좋아도 그것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만족할 만한 걸 만들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의 실패라거나, 이것만 바라봤는데 잘 안 되다니 나는 망했어, 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걸 하지 않을 때, 손에서 놓고 있을 때의 나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쥐고 있지 않을 때의 나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내 맘대로 될수 있는 일이 아닌데 안 되었을 때 상처받는 것이 너무 속상하니까. 그리고 더 건강하기도 하고요. 그것을 하지 않을 때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마음의 분배. 적절하게 와 닿는 말이네요. 

그런가요?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전부 쏟지 말고 다른 곳에 분배해 두라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반대로, 좋아하는 일에 일부 마음을 분배해 둬도 괜찮아, 라는 말이 될 것 같아요. 


엄윤미 인터뷰어

“넌 내가 그렇게 뻔한 얘길 할 것 같니?”

일찍 성공하면 불행하다. 더 많은 것을 탐하면 벌을 받는다.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꿈을 쫓아 뛰어들어라. 그동안 여러 차례 들어온 충고와 조언들이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기준과 격려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찍 성공한 것이, 더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이 왜 불행이죠? 하고 되묻는 목소리가 반가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결말을 선물해 준 소설이,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전부 쏟지는 말고 마음을 분배해 두라고 조언하는 장류진 작가의 말이 그 누군가에겐 다른 곳에서 듣지 못한 위로와 격려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1990년대 말 경제 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은상이와 지송이, 다해들이 자랐습니다. 2010년을 지나며 경쾌하게 등장한 젊은 작가들 덕분에 장류진이라는 회사원이 소설을 다시 발견했고, 마침 열린 소설 강좌에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누군가 장류진 작가의 소설을, 그의 말을 읽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어떤 문장이 가 닿을지, 어떤 말에 밑줄을 긋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다시 어떤 영향을 남기며 살아간다는 것.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듯하지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들은 그만큼 다양한가요. 

뻔하지 않은 이야기들, 조금은 의외의 대답들을 더 많이 들어 보고 싶습니다. 



*장류진(소설가)

1986년에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 국문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18년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등이 있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제7회 심훈문학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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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그림책은 저의 종착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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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지고 놀던 로보트가 시시해지고, 달콤한 아이스크림도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은 날. 아이는 싱숭생숭한 마음에 의문을 품는다. ‘마음이 이상해. 내 마음에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림책 『내 마음 ㅅㅅㅎ』은 변덕스러운 유아 사춘기 시절 아이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아이는 갑자기 찾아온 기묘한 감정을 골똘히 들여다보며 “ㅅㅅㅎ”으로 시작하는 마음의 말을 되뇌고, 곧 싱숭한 마음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내 마음 ㅅㅅㅎ』은 사계절출판사에서 주최한 ‘제1회 사계절그림책상’의 대상 수상작이다. 책을 쓰고 그린 김지영 작가는 2019 나미콩쿠르 그린아일랜드상을 수상했고, 그림책 『사막의 아이 닌네』 이상한 꾀임에 빠진 앨리스』를 출간했다. 



사계절그림책상, 생일 선물 받은 기분이었어요

지난해 7월, 사계절그림책상 수상작 발표가 있었어요. 299편의 응모작 중 대상을 받으셨는데요. 수상 소식을 듣고 어떠셨어요? 

제 생일이 7월이라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웃음). 창작하는 사람들은 늘 이런 기회를 노리잖아요. 저 또한 새로운 공모전이 뜨면 으레 참여하곤 하는 편이거든요. 워낙 출중한 작가분들이 많아서,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대상이라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죠(웃음). 너무 좋았어요. 

어떻게 작업하게 된 그림책인가요?

두 딸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들이 3~4살 무렵에 한동안 “시시해” “심심해” 같은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자아가 크면서 스스로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서 감정이 요동치는 ‘유춘기(유아 사춘기)’ 시절을 아이들과 함께 겪으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언젠가 한 번쯤은 언어를 재미있게 풀어보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시시해, 심심해”의 초성을 따서 ‘ㅅㅅㅎ’를 반복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그동안 모았던 아이디어를 토대로 2019년에 첫 더미를 만들었어요. 

이번 그림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나요? 

아이들에게는 심심하고, 시시한 순간이 왔을 때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자기만의 세상을 충분히 만끽해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요. 이 책을 함께 볼 부모님들께는 유춘기를 겪는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그 시기를 잘 기다려준다면 금세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큰 기쁨을 느끼고 굉장히 좋아하는데, 어느 순간 또 모든 게 다 싫다고 하는 날이 오더라고요. 제가 초보 엄마일 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의 마음이 자라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그림책에서도 주인공이 마음껏 상상을 하며 자신의 세계를 키우고 나서는 시시했던 마음이 생생하고, 쌩쌩해지잖아요. 아이들은 요절복통한 마음의 혼란을 겪고 나면 훌쩍 크더라고요.


 

초성 ‘ㅅㅅㅎ’로 시작하는 다양한 말들이 실렸어요. 

모두 사전에 있는 단어로만 구성했어요. 후반부에 나오는 “냠냠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는 말이죠. 그림책에는 빠졌지만, 처음 응모한 더미에는 그림 아래에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함께 적었었어요.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단어의 뜻을 함께 읽으면서 ‘내 감정이 이렇구나’ 하고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아깝게 탈락한 단어들도 있나요? 

개인적으로 제일 아까운 건 “수술해”였어요(웃음). 초기 더미에는 ‘내 마음이 이상한 건 누군가 몰래 마음을 수술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그 외에도 좋은 단어들이 많았죠. “순수해”도 있었고, “쉬쉬해”도 재미있었어요. 가족들이 나만 빼고 쉬쉬해서 화가 났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책 작업을 하면서 앞 부분의 비중을 줄이느라 빠졌어요. 

응모한 작품과 그림책을 비교하면 어떤 부분이 가장 달라졌어요? 

내용이 더 확장됐어요. 심심해하던 아이가 중간에 상상으로 빠져드는 쪽으로 이야기가 수정되면서 더욱 다채로운 작품이 되었죠. 가장 많이 바뀐 건, 전면을 채우는 그림이 추가된 거예요.더미작에서는 글, 그림이 한 면씩 자리하고 있었거든요. 출판사에서 아이들이 상상에 빠지며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처럼, 책 속의 그림도 넓어지는 형태로 가보자는 제안을 주셔서 후반부는 수정을 많이 했어요. 덕분에 내용이 훨씬 풍부해졌다고 생각해요. 



상상으로 넓어지는 자기 세계

판화 느낌의 그림이 인상적이에요. 

판화과를 졸업해서 늘 판화의 느낌을 동경하거든요(웃음). 그림책에 실린 그림이 실제 판화는 아니고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판화 소스를 찍고, 콜라주 작업을 했어요. 여러 색과 이미지가 겹치고, 때로는 핀트가 안 맞는 판화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부 때는 핀트가 어긋나게 작업하면 교수님들께 혼났는데(웃음) 그림책에서는 재미있는 요소로 보이는 것 같아요. 

사용된 색상이 적은데, 그림은 굉장히 화려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색감을 통일하고 싶어서, 어떤 색을 사용할지 신경을 많이 썼어요. 책에는 주로 3가지 색이 나오는데요. 다양한 색상을 사용할 때보다, 최소한의 색으로 작업을 했을 때 훨씬 더 강렬한 표현이 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여러 색상 중 어떤 것들이 어울릴지 찾아보고 핑크와 파랑, 주황을 선택했어요.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그런데 혼자 노니까 너무 심심해” 부분이요. 주인공이 너무 심심한 나머지, 텅 빈 방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잖아요. 그 장난스러운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가장 아이다운 사랑스러움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을 지나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고요.

 


ㅅㅅㅎ의 초성이 돌아가고, 더해지는 등 변주되어 등장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처음 아이디어 스케치를 할 때, 여러 시도를 해봤어요. 시옷이 꼭 눈썹 모양 같아서 아이 얼굴에도 넣어봤고요. 시옷을 한자 人(사람인)처럼 쓸 수도 있고, 도형처럼 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초성을 돌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죠. ㅅㅅㅎ을 돌리면 ㄱㄱㅎ, ㄴㄴㅎ로 바뀌니 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작업하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아이들이 나의 상상력을 따라와줄까?’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아이들이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에요(웃음). 

상상 속 세계에 등장하는 외계인, 우주 괴물들도 독특하더라고요. 

남자 아이인 주인공이 좋아할 법한 것들을 많이 가져왔어요. 아이들이 공룡, 우주 같은 걸 많이 좋아하잖아요. 여기서 외계인은 아이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에요. 방에 있던 장난감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해서 나타나 있기도 하죠.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으면서 엄마, 아빠, 동생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한번 찾아보시면 재미있을 거예요(웃음). 

이 책의 이야기는 아이가 가족에게 서운함을 느끼면서 시작되잖아요. 상상 속 세계에서는 그 섭섭한 마음이 외계인으로 표출되는 거예요. 가족 외의 다른 외계인들도 아이가 좋아하는 로봇, 공룡 등으로 표현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들이 상상에서는 조력자가 되어서 아이를 도와주는 거죠.


 

외계인으로 변한 엄마는 우주에서도 계속 잔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여요(웃음). 

맞아요(웃음). 주변의 존재들이 상상으로 펼쳐지면서 아이의 세계가 더 풍성해지죠. 내 방에 있던 물건들이 상상에서는 놀이동산이 되기도 하고, 내가 좋아했던 음식들이 쏟아지는 등 또 하나의 환상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현실에서는 아이가 부모님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상상 속에서 같이 어울리면서 마음을 풀어가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이번 그림책 작업을 하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작년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한동안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지 못했어요. 사회적으로 코로나에 대한 공포감이 심할 때였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지내며 작업을 했어요. 아이들이 놀거나 잘 때 틈틈이 작업을 하느라 너무 힘들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작업한 그림책 중 가장 마음에 들어요(웃음). 집에서 쓰는 컴퓨터를 가지고 갈 수가 없으니, 노트북 하나로 작업을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만든 그림책인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게 신기해요. 작업할 시간이 주어졌을 때,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림책은 저에게 종착지 같아요

아이들로부터 그림책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인가요?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책으로 만들 때가 많았죠. 물론 아이들이 하는 재미있는 말과 행동, 그림 같은 것들이 아이디어가 될 때도 있지만, 책으로 이어지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내 마음 ㅅㅅㅎ』는 유일하게 아이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책이에요. 동시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이 담을 수 있었고요. 

그림책을 만들 때 이야기에 비중을 많이 싣는 편이에요. 첫 책 『사막의 아이 닌네』도 동화 같은 이야기였고, 『이상한 꾀임에 빠진 앨리스』도 설명적으로 풀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이야기보다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작업했어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서사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더 느끼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사계절그림책상 심사위원님들도 그 부분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보편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다른 그릇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두 딸이 이번 그림책을 보고 들려준 이야기가 있나요? 

요즘 초성놀이를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책을 보자마자 ㅅㅅㅎ에 맞는 단어들을 딱딱 맞추더라고요. 작업하면서 ‘어린이 독자들이 이걸 좋아해줄까?’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작가의 의도를 잘 알아주는 것 같아요.

전작 『이상한 꾀임에 빠진 앨리스』 작가 소개에 “그림책의 이상한 꾀임에 빠져서 몇 년째 그림책 만들기에 빠져 살고 있다”고 썼어요. 어떤 꾀임이었나요?(웃음)

그림책은 저에게 종착역 같은 존재예요. 그림 그리고,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면 그 끝에는 늘 그림책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저는 주로 일러스트 작업을 많이 했는데요. 이런 저런 그림 작업을 하다 보니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아이디어를 계속 모으고, 더미 작업을 했어요. 빠져나갈 수 없는 그림책의 굴레에 들어간 거죠(웃음). 

두 딸에게 보여주는 그림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줘요. 물론 제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할 때가 많지만요(웃음). 보통 저처럼 작업하는 입장에서는 창작 그림책을 좋아하잖아요. 작가들이 그걸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아이들이 그걸 보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를 바라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의 기준은 다르더라고요. 제가 볼 때는 이야기가 탄탄하지 않고, 그림이 썩 괜찮지 않아도 아이들이 사랑하는 책들이 있어요. 그 선택을 존중하는 편이에요.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으세요? 

처음 그림책을 만들 때는 독자에 대한 생각을 잘 못했어요. 그저 그림책 만드는 게 즐거워서 했던 일인데,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아이들이 정말 즐겁게 읽는 그림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저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에게 재미있는 그림책은 어른에게도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보편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요.


 

오늘의 인터뷰 소감을 ‘ㅅㅅㅎ’으로 표현해주신다면요? 

세심해! 책 내용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던지는 질문을 받으니, 잠시 잊고 있던 순간들이 다시 떠올랐어요. 덕분에 이번 책 작업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웃음). 



*김지영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일러스트레이터와 글, 그림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막의 아이 닌네>를 출간하여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그 외 작품으로 <어린이 탈무드>, <초등 교과서 국어>, <나리 노리 시리즈>, <마지막 잎새>, <아모스 이야기> 등 다수 그림책과 문고 책이 있습니다.



내 마음 ㅅㅅㅎ
내 마음 ㅅㅅㅎ
김지영 글그림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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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94세 화가 김두엽 “여든 셋에 시작한 그림, 인생에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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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지와 물감을 벗삼아 매일 그림을 그리는 노모와 택배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화가 아들이 있다. 2019년 KBS <인간극장>에 방영된 두 사람의 애틋한 일상은 수많은 시청자를 감동케 했다. 홀로 우두커니 앉아 아들을 기다리던 김두엽 할머니 삶에 생기를 더해준 건, 여든이 넘어 시작한 그림이었다. 재미삼아 달력 뒷장에 그린 사과 한 알을 보고 “잘 그렸다”고 칭찬한 아들의 한 마디에 그는 꽃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고, 살아온 인생을 그리다 어느덧 십여 차례의 전시회를 연 화가가 되었다. 

올해 나이 아흔 넷, 늦깎이 화가의 삶이 책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로 출간됐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만 300여 점. 그중에서 작가에게 의미가 있는 110여 점의 작품을 책에 함께 담았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며느리가 그 말을 받아 적어 완성한 책이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일우스페이스’에서 <우리 생애의 첫 봄> 모자전(母子展)을 개최하고 있는 김두엽 작가를 만났다. 인터뷰 자리에는 김두엽 작가의 막내 아들이자 그의 타고난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화가 선배, 이현영 작가도 함께했다. 


동네 드라이브(34.5x25cm, Acrylic of paper, 2019)

칭찬에 춤추듯 그림을 그렸어요

83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어느덧 화가이자 작가가 되셨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김두엽: 좋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요.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서울에서 전시회를 한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안 오려고 하다가 그래도 한번 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올라왔어요. 서울 도착한 첫 날은 힘들었는데 하루 쉬고 나니까 이제 좀 괜찮네요. 가족들이 전시회에 다 찾아와서 축하해주고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이현영:예전에는 저 혼자 전시를 하러 다녔는데, 지금은 어머니의 작품을 함께 걸 수 있어서 좋아요. 아들로서 뿌듯하죠. 많은 분이 전시를 보러 와 주셔서 그 관심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림 그릴 때 제일 행복하다”고 하셨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은가요?

김두엽: 그림 그릴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나거든요. 물감 칠하면서 스케치북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름이 다 없어져요. 그림 그릴 때가 제일 행복해요. 시간도 아주 잘 가고요.  

그림은 주로 언제 그리세요? 

김두엽: 아침 먹고 앉아있다가 한 10시쯤부터 그려요. 그쯤 되면 ‘그림이나 한번 그려볼까’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한번 앉아서 그리기 시작하면 5~6시간은 꼬박 앉아서 그릴 때가 많죠.

여든이 넘어 그림을 시작하셨어요. 첫 작품은 달력 뒷장에 그린 사과 그림이었다고요. 

김두엽: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어요. 낮에 매일 혼자 있으니까 심심해서 집에 굴러다니는 연필을 주워 가지고 달력 뒷장에 사과 하나를 그렸는데 아들이 집에 와서 “엄마 이거 누가 그렸어?”하고 물었어요. “내가 그렸지, 누가 또 그릴 사람이 있느냐” 하니까 “우리 엄마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하더라고요.

이현영: 어머니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과의 근육이나 꼭지 같은 걸 섬세하게 잘 표현하셨거든요. 계속 그림을 그리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색연필을 가져다 드렸는데, 색채 감각이 정말 좋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물감을 드렸어요. 물감을 사용하니 색채가 더욱 밝아지면서 어머니 그림만의 독특한 느낌이 나왔죠. 저는 어머니께 그림을 가르쳐드린 적이 없어요. 물감을 혼합해서 새로운 색상을 만드는 방법 같은 것도 일러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는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시거든요. 그래서 물감 튜브에서 나온 색상을 그대로 사용할 때가 많은데요. 원색을 마구 칠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림 속 색채가 조화로워요. 다양한 색이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지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계속 잘한다고 말씀을 드리니 꼭 춤을 추듯이 기뻐하면서 새로운 그림들을 매일 그리셨어요.

아들의 칭찬을 받고 어떠셨어요? 

김두엽: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그런가? 내가 잘 그리나?’ 싶었지요(웃음). 칭찬을 받으니까 신이 나서 그 뒤로 달력 뒷장에 매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읍내에 나가서 스케치북을 두 개 사가지고 왔어요. 읍내 초등학교 앞에 문구점이 하나 있거든요. 그때부터 종일 앉아서 한복 입고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그리고, 짧은 양장 치마 입고 춤추는 모습도 그리고 그랬죠. 다 그린 그림은 벽에 붙여놨는데 교회 목사님이 우리 집에 와서 보시고는 잘 그렸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들 잘한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또 그리고, 또 그리고 했지요(웃음).


춤추는 소녀들(32x24.2cm, Acrylic on paper, 2018)

배움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타고난 손재주가 있으신 것 같아요.

이현영:맞아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짜깁기도 아주 잘하셨어요. 

김두엽: 10년 여간 세탁소를 운영했거든요. 쉰 살까지는 계속 농사를 짓다가, 그 후에 세탁 기술을 배워서 여수로 갔어요. 거기서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얻어 세탁소를 했는데 솜씨가 좋다고 소문이 나서 손님이 많았어요. 그때 짜깁기를 많이 했지요. 

일상에서 보는 사물부터 기억 속 한 장면까지, 다양한 풍경이 작품에 등장하는데요. 소재는 어떻게 정하세요? 

김두엽: 그냥 주변에 있는 것을 그리기도 하고요. 가만히 앉아서 ‘뭘 그릴까?’ 고민해도 아무 생각이 안 나면 TV를 봐요. TV에 재미있고 예쁜 게 많이 나오니까 ‘아 저걸 그릴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얼마 전에는 TV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축구선수 박주호네 삼남매를 그렸어요. 어떤 날에는 책을 보기도 해요. 책을 이리저리 들춰보면 또 그리고 싶은 게 생각나거든요. 

이현영: 동화책이나 곤충과 식물 사진이 많은 자연 백과 같은 것들을 어머니가 주로 계시는 테이블 옆에 가져다 놨거든요. 심심하면 한 번씩 책을 펼쳐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으시는 것 같아요. 

작가님 작품에는 꽃 그림이 정말 많더라고요.

김두엽:꽃은 보면 예쁘니까 그려요. 알록달록하니까 그림을 그려도 예쁘더라고요. 우리집 마당에 아들이 꽃을 많이 심어줘서 보고 그릴 꽃이 많아요. 수선화도 그리고, 개나리도 그리고, 코스모스도 그리죠. 


노란 꽃(21x34cm, Acrylic on paper, 2016)

책 표지의 제목을 직접 손 글씨로 쓰셨죠. 70살이 넘어서 한글을 배우셨다고 들었어요.

김두엽: 사느라 바빠서 한글을 배울 시간이 없었어요. 60살쯤 되었을 무렵에 막내아들이 “어머니 한글 배우세요”라고 권했지만 이 나이에 해봤자 뭐하나 싶어서 거절을 했어요. 배운다고 잘 할 자신도 없었고, 이제 와서 배워봤자 얼마나 더 사나 생각했지요. 

그러다 72살에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데 글을 모르니까 답답한 거예요. 목사님이 성경책과 찬송가 책을 선물로 주셨는데, 예배 때 “마태복음 1장을 펴세요”라고 해도 어디를 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옆 사람 보고 따라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한글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은 찬송가도 정확한 가사를 몰라서 얼버무리며 불렀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성경책을 찾아보셔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기도를 했어요. “제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하고요. 그날 이후로 복잡한 글자들은 막내 아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해서 천천히 배웠고, 단순한 글자들은 주기도문을 외우고 찬송가를 부르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어요. 이제는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어요. 한글을 배우고 난 뒤에는 은행에서 통장도 만들고 돈도 찾을 수 있어서 좋아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내 그림에 사인할 수 있다는 거죠. 뭘 배우는 데 나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림이 준 행복이 얼마나 큰 지 몰라요

작가님의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김두엽: 저는 1928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어요. 너무 가난한 시절을 살았죠. 학교에 다닌 적도 없고 공부라는 게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에요. 더군다나 나는 여자였잖아요. 지금은 여자들이 공부도 하고 돈도 벌지만 그때는 그런 걸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그때 내 꿈이 무엇이었을까… 꿈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굶지 않고 사는 것, 아이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것, 남편과 다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가 나의 꿈이라면 꿈이었지요. 


시집가는 날(32x24.3cm, Acrylic on paper, 2019)

지금은 꿈이 생기셨을까요? 

김두엽: 언제까지 시간이 허락될 지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면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은 게 꿈이에요. 여든 살 넘어서 우연히 그린 그림이 나에게 가져다 준 행복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해요. 

아들 이현영 작가님의 꿈은 “예술의 전당 같은 큰 장소에서 어머니 전시회를 열어드리는 것(112쪽)”이라고요. 

이현영:처음 어머님 그림을 봤을 때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이 그림을 나만 보기가 아까워서 첫 전시를 시작하게 되었죠. 그후로 어머니의 그림을 보신 분들이 하나같이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려주세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기쁨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셔서 쭉 그림을 그리신다면 언젠가는 예술의 전당처럼 큰 장소에서도 전시를 했으면 하는 마음인 거죠. 

김두엽:나는 뭘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림도 재미있으니 그렸지 다른 건 하나도 몰라요. 화가가 되겠다거나 그림으로 뭘 해보겠다는 마음은 가져본 적도 없지요. 그냥 하다 보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네요(웃음). 

이번 전시 제목이 ‘우리 생애의 첫 봄’이에요. 어떤 의미인가요?  

이현영:올해는 어머니와 제 인생의 첫 번째 봄이 온 것 같아요. 그동안 어머니가 제 결혼을 무척 바라셨는데, 작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거든요. 어머니와 아내, 저 세 사람이 함께 사는 첫 봄을 맞이했다는 의미로 전시 제목을 그렇게 정했습니다. 

책 작업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을 것 같아요.

이현영: 맞아요. 대부분의 이야기는 함께 살면서 자주 들려주셨던 옛날 이야기가 많았는데요. 그 외에도 제가 몰랐던 어머니의 모습을 알게 됐죠. 처음 시집 가서 고생했던 내용이나, 어머니 작품 ‘꽃밤 데이트’에 등장하는 첫 사랑에 관한 애틋한 사연 등은 책을 쓰면서 자세히 알게 됐어요.

김두엽: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 18살이 되어서야 한국에 왔거든요. 옛날 사람들은 다 고생하고 살았어요. 지금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생은 고생도 아니에요(웃음). 가난해서 밥 굶는 날이 허다했고, 시집 가는 날짜도 모르는 채 처음 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지요. 젊어서 아이들 키울 때에는 먹을 게 없어서 메뚜기도 많이 잡아먹었어요. 그래도 자식들은 고생 안 시키려고 애를 쓰며 살았어요. 


꽃밤 데이트(51x36cm, Acrylic on paper, 2019)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김두엽: 아무 것도 아닌 저의 이야기를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그림을 그릴 거예요.

이현영:<인간극장>에 저희 모자의 이야기가 방영된 이후로 어머니 작품을 보고싶어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이 책에는 어머니의 그림이 110점 정도 담겼습니다. 책으로나마 그림을 감상하시면서 독자분들이 잔잔한 행복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두엽

94세 할머니. 그리고 12년 차 화가. 83세의 어느 날, 빈 종이에 사과 하나를 그려놓은 것이 계기가 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인 막내아들이 건넨 칭찬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 예쁜 말이 계속 듣고 싶어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덧 화가가 되었다.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저
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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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세구 “주식투자, 벼락부자를 만드는 게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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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삼보증권을 시작으로 증권업에 40년을 종사하고, <SBS CNBC(현 SBS Biz)>의 앵커로도 활동하며 ‘증권쟁이’의 삶을 살아온 『주식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의 저자 한세구는 개인투자자들에게 ‘멘탈 관리’를 강조한다. 주식투자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라는 것이다. 탐욕과 미련을 주식투자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 한세구는 개인들에게 자신만의 적정한 기대수익을 정해야 한다, 욕심과 탐욕의 경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주식투자를 큰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가 제안한 것은 적금처럼 주식하기다. 

“적금을 주식으로 해본다고 생각해보세요. 눈에 불을 켜고 매일 들여다볼 필요 없이 조금 긴 호흡으로 좋은 종목을 매달 얼마씩 사가는 방법처럼 생활 속 주식투자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명품 주식은 기다리면 다 오릅니다. 가능하면 좋은 주식을 사서 2년마다 재조정을 하는 방식으로 투자하시면 좋겠죠.”



나만의 기대수익을 정하라

유튜브 채널 ‘백만개미’를 운영하고 계시죠.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코로나19 직후 주가가 급락을 했죠. 그때 초보 주식투자자들이 엄청나게 시장에 입문을 했어요. 외국인 투자자, 기관 투자자가 매도하는 물량을 다 받으면서요. 직업인으로 40년 넘게 증권계에 있었으니까 습관처럼 매일 주식시장을 보는데요. 당시 유튜브나 방송에서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개인 투자자에게 “이러다 큰일난다. 지금 주식 사지 마라”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그때가 손꼽을 만한 기회였거든요. ‘지금 사야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지금도 그렇고 증권쟁이라는 직업을 사랑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유튜브 채널 ‘백만개미’를 개설해서 얘기를 시작한 거예요. 

그간 출간 제안을 많이 받아왔지만 거절을 했다고요?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기본적으로 주식투자로 부자되는 법을 책으로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런 책을 씀으로써 오히려 부자되는 법을 잘못 전달할 가능성이 크거든요. 주식시장이 그런 데가 아니니까요. 출판사에서 유튜브 댓글로 출간 제안을 해와서 미팅을 할 때도 저는 “난 책을 안 내겠다”고 얘기했어요. 주식투자로 부자되는 방법을 나는 여태 찾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이 더 무섭다고요. 그건 신부 생활을 몇 십 년 했다고 예수를 논하는 것과 같잖아요. 그런 짓은 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뜻밖에 출판사도 그런 책을 낼 생각은 없다고 했어요.(웃음) 주식투자를 처음 하는 분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같은 것을 써보자고요. 그건 가능하겠다 생각했죠. 주식투자라는 게 무엇인지, 시장을 어떤 각도로 봐야 하는지, 시장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책에 담으려고 했어요. 

여러 번 주식투자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라고 당부했어요. 타인의 결과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요. 주식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세운 기준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죠? 

욕심이 탐욕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있어요. 그 경계가 명확하진 않지만 우리는 느낄 수 있어요. 주식투자의 큰 문제가 탐욕과 미련인데요. 이것을 발생시키는 근본적 이유가 상대평가예요. 흔히 ‘친구랑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쟤는 차를 바꾸고, 나는 왜 이러지’부터 시작하잖아요. 그 다음부터는 작은 이익에 감사하는 법을 잊어요. 계속 욕심을 부리죠. 그게 투자를 망치게 되는 건데요. 현실적으로 자기만의 기대수익을 정하고, 남보다 더 버는 게 아니라 남들만큼만 벌자고 생각하면 탐욕으로 넘어가는 것을 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주식 투자는 벼락부자를 만드는 게임이 아니”(32쪽)라고 했죠. 투자를 투기와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주식은 사실 오르거나 떨어지거나죠. 홀 아니면 짝이에요. 그러니 자기가 정한 기대수익이 없으면 그때부터는 ‘홀짝 게임’이에요. 초보 분들이 제게 첫 번째로 하는 질문이 “뭐 사요?”예요. 두 번째 질문은 “지금 사요? 언제 사요?”죠. 백이면 백 그렇게 물어요. 이 두 질문에 내포된 것은 ‘사자마자 기가 막히게 오를 종목이 무엇인가’잖아요. 그건 주식시장에 발을 들일 때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안 돼 있다는 의미예요. 당연히 투자 결과가 좋을 수 없죠. 사실 주식에 약간의 투기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요. 주식투자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추측이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투자를 하려면 타당성 있는 근거가 바탕에 있어야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기대를 갖고 이 주식을 사는 것인가, 예요.

 역시 절대평가에 관한 얘기네요. 

일단 이 주식을 사서 1년 후에 주식의 가치가 어디까지 오를 것인지를 여러 데이터를 근거로 상상해봐야죠. 거기서부터 자신의 기대수익을 할인하는 거예요. 그걸 계산해서 시점을 지금으로 가져오면 투자학에서 말하는 ‘현가(present value)’고요. 현가와 마켓 가격의 차이를 봐서 마켓 가격이 싸면 사는 거고, 비싸면 안 사는 거예요. 이게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건데요. 이런 설명을 하면 다들 골치 아프다고 해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각자가 정한 기대수익이 없으면 할인을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해오는 웃긴 상황이 된다는 거예요. 귀동냥을 해서 남의 기준으로 투자를 하고, 돈 벌기를 기대하고요. 그건 처음부터 잘못된 거예요. 큰 금액도 아닌데 주식투자 조금 하려고 너무 어려운 내용을 다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우선은 주식투자라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



긴 호흡으로 볼 필요가 있다

주식에서 매매 타이밍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종목인가, 라고도 했죠. 

모든 개인 투자자가 주식투자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잖아요. 주식투자로 돈을 벌려면 내가 산 기업이 잘 돼야 해요. 그렇다면 그 기업은 어떤 일이 벌어져야 잘 될까요? 이걸 생각해봐야죠.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요. 하나는 지금 돈 잘 벌고 있느냐예요. 이걸 확인했더니 지금은 잘 못 벌지만 앞으로 뭐가 되면 잘 벌 거다, 라고 나온다면 조금 의심해야 해요. 프로가 아닌 개인들은 그 ‘앞으로’에 너무 기대하면 안 돼요. 지금 잘 벌고 있어야죠. 두 번째는 계속 잘 버느냐죠. 주도산업이라는 게 있잖아요. 예전에는 면방직 같은 거였는데 지금은 이게 아주 빨리 바뀌어서 IT, 플랫폼 기업 등이 거론되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주도산업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거든요. 그 기준에 따라 이 기업이 앞으로도 얼마나 돈을 잘 벌지가 확인되어야 해요. 지금만 잘 벌고 내년부터 빠질지도 모르잖아요. 결국 지금 잘 버냐, 앞으로 잘 벌 수 있냐, 이 두 가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직장인 초보 투자자에게는 투자금액을 연봉 수준 내로 하라고 조언했어요. 이유가 뭘까요? 

리스크를 많이 걸면 리턴도 클 수 있죠. 하지만 잘못하면 리스크만 떠 안고 나가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소위 ‘영끌’, 최대한 빚을 끌어다 투자하는 것을 저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하되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하면 리스크가 돌아올 때의 충격 때문에 진짜 큰일나요. 그런 경우 많이 봤어요. 이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 얼마일까요? 그것을 저는 직장인의 경우 연봉 수준이라고 말한 거예요. 그 정도는 까먹어도 인생 재수한다 생각하고 어떻게든 되는데 그걸 넘어가면 안 되더라는 거죠. 경험으로 봤을 때 그랬어요. 

소위 ‘매매중독’에 대해서도 경고를 했어요. 특히 생계형 투자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라고요? 

예를 들어 오늘 시장이 여의치 않아 하루 종일, 또는 일주일 동안 매매를 안 할 수 있는데요. 그랬을 때 아무것도 안 한 것을 놀았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축구로 말하자면 90분 내내 뛰기만 하고 볼은 한 번도 못 잡으면 안 되잖아요. 기회라고 생각했을 때 뛰어야죠. 주식투자도 마찬가지거든요. 아침에 시장이 열리면 마치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는 것처럼 괜히 매매를 하는데요. 시장이 안 좋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도 투자예요. 진짜 매매중독이라 하나라도 사고 팔지 않으면 안 되는 분들 계시는데요. 긴 호흡으로 볼 필요도 있어요. 

주식투자를 할 때 새로운 것 받아들이기를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식시장은 낙관론자가 만든 게 분명해요.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행위가 주식이잖아요. 기본적으로 미래는 지금보다 가격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굴곡은 있겠지만 말이에요. 그러니까 주식시장에서는 새로운 것을 접할 때 거부감이 없어야 해요. 트렌드에 밝아야죠. 시장을 주도하는 주력주라는 게 과거에는 30년 간격으로 바뀌곤 했는데요. 지금은 몇 년 사이에도 확확 바뀌어요. 새로운 용어도 많이 나오고요. 앞으로는 더 빠르게 바뀔 텐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식시장에서는 필패예요. 주식시장에서는 유행의 첨단을 걸어야 해요. 새로운 게 있으면 다 관심을 가져야죠. 

저자가 요즘 인상적으로 지켜본 새로운 뉴스는 뭔가요? 

시대의 흐름이 요구하는 것이 있고, 단기적으로 관심을 가질 이슈가 있어요. 가령 경부선 지하화 뉴스가 나왔는데요. 거기서 ‘건설’이라는 생각을 빨리 해내야 해요. 건설, 철근, 시멘트, 이런 생각이 딱 나야죠. 이렇게 해석하는 방법도 있고요. 한편 코로나19 이후에 생활 양식이 달라졌잖아요. 이 양식이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달라질까요? 저는 아닐 것 같아요. 문 앞에 택배가 배달되는 일은 계속될 것 같거든요. 그런 서비스가 줄어들 것 같지 않아요. 더 쉽게, 더 편하게 변화할 거예요. 이런 시대의 흐름이 요구하는 트렌드를 봐야죠. 이런 식으로 첨단을 걸으려면 계속 보고 있어야 해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코로나19 상황에서 주식시장에 개인투자자가 급증한 것에 대해 '기분 좋은 사건'이라 말했는데요. 그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뭘까요?

자본주의 사회가 부의 균분을 위해 만들 수 있는 그나마 지금까지의 최고의 방법은 매개체를 주식으로 삼는 거예요. 주식을 통해 수익을 공유하는 거죠. 다시 말해 국민이 주요한 기업에 주주가 되는 거예요. 경제적 용어로는 ‘증권자본주의’라는 건데요. 그동안은 주식시장에 사람들이 왔다가도 모르겠어, 하고 떠나는 식이어서 주식시장의 중요성을 잘 몰랐었지만요. 다행히 코로나19로 주식시장이 가라앉으니까 개인들이, 그것도 젊은 세대가 들어온 거예요. 더구나 이 사람들은 좋은 종목,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종목만 사요. 주식이라는 매개체로 균분하는 기본적인 틀을 짠 거죠. 사실은 이렇게 발전해야 해요. 심지어 외국인 투자자가 그렇게 파는데도 다 받아냈잖아요. 그게 우리에게도 좋은 거죠. 이 영역이 탄탄해져야 증권자본주의의 완성으로 갈 수 있어요. 다시 빠져나가시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웃음) 

젊은 세대의 주식투자가 많아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성향이 달라졌다는 점도 국내 주식시장의 흐름을 많이 변화시킨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전부 귀동냥이었죠. 다만 국민 전체로 보면 많은 비율이 주식투자를 한 건 아닌데요.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가 많아졌잖아요. 특히 20-30대 젊은 분들이 많이 주식투자를 하기 시작했어요. 또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많이 사라졌죠. 여전히 기관 투자가나 외국인 투자가보다 정보가 비대칭적이긴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인터넷 덕분이죠. 미국의 리포트도 직접 보고 그러잖아요. 이제는 내용을 좀 알고 투자를 하는 거예요.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보의 해석 능력에는 아직도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이것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자신이 가진 주식 위주로 생각해요. 그래서 실수를 좀 하시는데요.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해요. 

나 역시 헛발질의 명수였다고 고백했어요. 가장 뼈아픈,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실패 경험담을 들려주세요. 

엄청나게 많아요. 저도 한계기업에 투자한 적이 있어요. 이게 살아나면 아주 짜릿하거든요. 현역에 있을 때는 직접 투자하지 못하니까 투자자 분들에게 조언해서 투자했다가 그분들까지 다 주저 앉은 적이 있죠. 상장폐지, 그냥 휴지가 된 거예요. 그때 이후로는 절대 그런 투자는 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실 주식시장에서는 실수를 두려워하면 안 돼요. 실수보다 성공하는 확률을 늘리면 되죠. 중요한 건 실수를 왜 했는지 보는 거예요. 그냥 운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면 또 깨져요. 여기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뭘 간과했는지 짚어보고 그 다음부터는 그걸 안 하면 돼요. 그렇게 투자 노하우가 생기는 거죠. 한 번 실수했다고 낙담하지 마세요. 어떻게 할 때마다 돈을 벌겠어요.(웃음) 

소위 ‘물렸다’고 말하는 분들 요즘 많을 텐데요. 그런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요?

물린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어느 순간, 무엇을 잘못해서 물렸는지를 파악해야 해요. 고점에 못 팔았던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더 오를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때부터 탐욕의 영역으로 갔던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죠. 빠졌다가 잠깐 오르길래 얼른 들어가서 샀더니 다시 빠졌다고 하면 미련 때문인 거고요. 그것을 복기하지 않으면 그 다음 매매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 결국 주식투자는 상식선에서만 하면 돼요. 이상한 짓 하지 말고요. 남들이 가지 않는 뒷길에 꽃길이 있다고 하지만 뒷길이 낭떠러지예요. 남들이 가는 대로 가야 해요. 주식시장이 이상한 시장인 것은 내 돈 내고 사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내 돈 내고 남들이 좋아하는 걸 사는 시장이거든요. 남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보고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주식을 사야 됩니다. 



주식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왕초보에게 꼭 한 가지 강조한다면요?

모의투자요. 한 번 해보는 것과 안 해보는 것은 달라요. 건성으로 하지 말고요. 진짜 투자하듯이 기록해가면서 해보는 거예요. 오늘 이 주식을 사야겠다, 정해서 천 만원 넣었다고 생각해보는 거죠. 기대수익만큼 수익이 났다면 팔아도 보고요. 한 번 해보세요. 한 3개월만 해보면 대충 ‘이렇게 하는 거구나’ 감이 올 거예요. 모의투자라고 막 하면 아무 의미가 없고요. 모의를 실전처럼 해보세요. 




*한세구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삼보증권에 입사하며 증권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쌍용투자증권, 동양증권, SK증권 임원과 골든힐 투자자문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40년 가까이 증권업에 종사했다. 1986년 KBS1의 ‘가정저널’에 출연하며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그 이후 KBS를 비롯하여 MBC, SBS의 증권 전문 패널로 활동했으며, 2010년부터 2년간 SBS CNBC(현 SBS Biz)의 앵커로 ‘클로징 벨’을 진행했다. 은퇴 이후, 증권쟁이로 살아온 경력을 바탕으로 동학 개미들을 위해 유튜브 채널 ‘백만개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채널을 통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장에 뛰어든 사람, 흔들리는 시장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 등 수많은 투자자가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백만개미 구독자들이 자주 묻는 것, 유튜브에서 더 자세히 소개하지 못한 멘탈 관리법, 투자의 비기를 모아서 낸 첫 책이다.



주식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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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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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매일 출퇴근 하듯이 사랑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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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딘지 부담스러운 데가 있다.’ 정지우 작가의 새 책 『너는 나의 시절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부담을 고백하고 시작하는 사랑 에세이라니, 그 겸손함에 어쩐지 믿음이 갔다. 사랑을 말하는 화려한 이야기들과 달리 그가 말하는 사랑의 핵심은 다름 아닌 성실함. 사랑을 계속할 때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사랑은 아주 특별하고 강렬한 무엇이 아니라 매일의 삶과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오래전부터 사랑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는 정지우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이제 사랑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랑 에세이입니다. 전작들과는 다른 내용의 책인데요. 어떻게 쓰게 됐나요? 

사랑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다만, 내가 사랑을 이야기해도 되는 사람인지 계속 고민했어요. 청춘 시절에 하는 사랑은 실패하거나 이별로 귀결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조금씩 사랑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제 써도 좋다고 제가 자신에게 허락해준 느낌이랄까요. 조금씩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쓴 글을 모았습니다.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다정함’ 아닐까 싶어요. 다정함을 중요하게 여기고, 오랜 기간 사유한 것 같은데요. “다정함이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요?  

살아갈수록 남는 건 다정함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끼리 만나서 누가 더 옳은지, 더 잘났는지, 더 매력적인지 은근히 경쟁하거나 다투잖아요. 이겼다 싶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건 잠깐의 쾌감일 뿐 지나고 보면 의미도, 남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반면 다정했던 사람이나 기억은 인생 내내 우리를 지켜주는 느낌이 들고요. 그리고 사람은 피곤하거나, 힘들면 가장 먼저 다정함을 잃기도 하잖아요.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 내고 괜히 누군가를 미워하고요. 그런 걸 보면 다정함은 강한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의식적인 태도 같아요. 그래서 삶에서 다정함을 지켜내는 일이 좋지 않나 싶고요. 

작가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성실함입니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충실함(162쪽)’, ‘사랑은 선언적인 것(130)’, ‘의지’, ‘의무감’, ‘노력’, ‘지향성’ 등 사랑을 설명하는 말들에서 사랑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성실하다고 생각했어요.  

스무 살 무렵 때만 해도 성실한 인상이랄까 스타일을 싫어했어요. 섹시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성실함보다는 어떤 영감이 쏟아지는 순간이라든지, 갑자기 찾아오는 창조의 경험이라든지, 다소 충동적인 마음을 쫓아가는 게 더 매력적이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성실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노오오력'이나 하며 사는 재미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아마 별수 없을 것 같아서 앞으로도 성실히, 노오력하며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사랑을 ‘달리기’에 비유하면서 별도의 실체가 있는 게 아닌, 말하고 반복함으로써 사랑이 되어가는 일만 있을 것(131쪽)이라고 했는데요. 더 설명한다면요? 

흔히 사랑을 생겼다가 없어지고, 왔다가 떠나가는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랑이 왔어'라든지 '이제 사랑이 없어졌어'와 같은 표현을 쓰면서요. 그런데 사랑은 그런 실체가 아닌 것 같아요. 오늘 사랑하면 사랑하는 것이고, 오늘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은 것뿐이죠. 우리가 숨 쉬고 있어야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사랑을 계속할 때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명사를 붙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는 동사, 그런 동사만이 존재하는 거죠.



완전한 사랑이 있을 거라는 착각 

관계에서 중요한 것 진심으로 좋아하느냐 아니냐보다, 서로 좋아한다고 상상하고 믿느냐 아니냐일 수도 있다(123p)는 말이 좋았습니다. 이 문장 다음에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고 믿는 습관이 있었다고 했는데요. 부정적이었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만나면 서로 호의를 확인하게 되고, 먼저 연락받고 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 근거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결국 내가 '미움받는다'라는 게 일종의 머릿속 문제였다면, 내가 '미움받지 않는다'라는 건 경험과 감각, 생활의 문제였던 셈이죠. 제 삶이 관념에서 실생활로 조금씩 이동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인간 내면이 치유되는 과정이 대개 이렇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지난 사랑을 돌이켜볼 때 후회되는 것이나 아쉬운 게 있다면요?  

지난 사랑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과거 연인에 대한 것, 또 다른 하나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과의 과거인데요. 과거 연인에 대해서 아쉬운 건 없어요. 지나간 인연과 시절일 뿐이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당시에는 몰랐거나 이해하지 못했거나 부족한 면들이 있었겠죠. 이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든지 고치지 못한 문제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은 평생의 과제로 계속 주어지는 것 같아요. 완벽한 시절은 없을 테죠. 계속 나아지려고 애썼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무엇인가요? 

완전한 사랑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요. 사랑 혹은 사랑의 관계란 ‘모든 것’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속에는 당연히 완전한 순간도 있겠지만, 반대로 결핍된 순간도 있겠죠.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럽고, 짜증스럽고, 화가 나고, 미움이 들어차고, 못마땅한 순간들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이런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사랑이 없어서 그래’ 혹은 ‘이제 사랑이 끝났구나’라고 생각한다면, 평생 사랑을 찾아다녀야 할 것 같아요. 

과거와 지금 사랑에 관한 생각이 변한 게 있다면요?  

사랑이 아주 특별하고 강렬한 무언가라기보다는, 매일의 삶과 가까운 것 같아요. 해외 여행지보다 동네 산책에 더 가깝다고 할까요. 물론 사랑이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매일 사서 꽃병에 넣는 생화 같은 느낌에 더 가깝고,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매일 출퇴근 하듯이 사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첫 문장이 떠오르면 간절히 쓰고 싶어져요

예리하지만 예민하지 않고, 차분하고 다정한 것이 작가님 글의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칭찬 감사합니다. 사실 제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냉소적인 글을 쓴 것 같은데, 읽는 사람은 따뜻하다고 할 때가 있죠. 혹은 날카롭게 쓴 것 같은데, 다정하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고요. 그렇게 보면 글쓰기에서 내가 지향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쓰는 마음과 읽히는 느낌은 다른 것 같아서요. 그런데도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삶에 이로운 글쓰기예요. 글쓰기 때문에 삶이 파괴되거나 증오에 사로잡히거나 나쁜 욕망에 더 집착하게 된다면, 관두는 게 낫죠. 삶과 내 곁의 사람을 더 사랑하고, 긍정하게 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건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거나 감정적 격동이 느껴지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자신과 자기 일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런 태도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좋아했던 작가들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빠져들었던 작가가 헤르만 헤세였는데, 헤세의 글을 보면 대개 삶을 관조하고자 하는 태도가 드러나죠.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필립 로스 등 삶을 정제된 자세로 바라보는 작가들을 좋아했고,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글쓰기로 해결하고 있다(152쪽)고요. 작가님처럼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는 많은 일이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들이잖아요. 가령 저는 처음 연애할 때 여자친구랑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혹은 친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며 몇 시간씩 수다를 떨어야 하는지 몰랐죠.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서로 즐거운지 알게 되고 수다 떠는 일이 좋아졌거든요. 글쓰기도 마찬가지겠죠. 무슨 이야기이든 친구와 수다 떨듯 매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웬만한 친구보다 백지가 더 가깝고 친근해질 것 같아요.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쓰시는데 주로 어떨 때,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고, 글이 쓰고 싶어지는지 궁금해요.  

대개 첫 문장이 떠오르면 간절히 쓰고 싶어져요. 첫 문장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거든요. 하루에 그런 문장이 하나둘 떠오르는데 그러면 묵혀두었다가 시간이 있을 때 재빨리 써요. 각자 일하거나 공부하느라고 떨어져 있던 두 연인이 밤에 전화기를 붙잡으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나 했던 생각을 이야기하기 바쁘잖아요. 비슷한 것 같아요. 저에게 글쓰기란 밤에 연인에게 전화 걸기 위해 붙잡는 휴대폰 같아요. 

김혼비 작가가 추천사를 썼어요. 어떤 인연인가요? 

김혼비 작가님과는 ‘에세이 배송’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7명의 작가가 모여 ‘책장 위 고양이’라는 이름의 에세이 배송 프로젝트를 했는데, 당시 함께 글을 쓰면서 알게 됐죠. 멋진 글을 쓰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제 글을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걸 알고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나요. 

최근에 변호사로 새 출발을 하셨다고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보니 신입사원처럼 지내고 있어요. 어디에서든 한 사람 몫을 하며, 제가 속한 곳에 누를 끼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애쓰고 있고요. 출퇴근과 육아로 정신없는 나날이지만, 새로운 일을 알아가고 배워간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글을 쓰게 되는데, 이것도 나름 새로운 경험인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나요? 

사랑에 무심한 사람을 설득할 재주는 없고, 이미 잘 사랑하고 있는 분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느껴요. 다만 저처럼 매일 바쁘게 살면서 ‘어떻게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할까’와 같은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하루 나아가는 분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어요. 그런 분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은 모임 공간 같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지우

87년생. 밀레니얼 세대의 작가이자 문화평론가. 고려대학교 및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생이던 때, 당시 기성세대가 주도하던 ‘청춘 담론’이 정작 청춘의 실제 삶을 겉돌고 있다는 생각에서 『청춘인문학』을 출간하며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삶으로부터의 혁명』(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서 청춘, 사랑, 죽음의 문제를 다루며 우리 사회문화 전반으로 담론을 확장했다. 특히 한국 사회의 특징을 분노로 규정하고 이를 철학적으로 탐구한 『분노사회』를 내놓으며 독창적인 신예 저술가로 주목받았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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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은 "나는 조금 더 힘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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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강주은을 ‘배우 최민수의 아내’로 먼저 인식하겠지만 사실 그는 꾸준히 일을 해왔던 사람이다. 주부로 산 10년의 시간, 서울외국인학교 대외협력 이사로 산 13년의 시간, 그리고 홈쇼핑 <강주은의 굿라이프> 진행자로 산 4년의 시간. 강주은은 자신의 두 번째 책 『강주은이 소통하는 법』에 일에 관한 그만의 철학 열 가지를 담았다. 꾸준함을 자신이 늘 꿈꾸는 모습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길 바란다고 말하는, 그는 일이 개인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원동력인지 아는 사람이다. 



이 순간에 내 자신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항상 재요

2016년에 13년을 근무한 서울외국인학교를 나온 뒤 2017년에 첫 책 『내가 말해 줄게요』가 나왔는데요. 그 해에 또 홈쇼핑에서 <강주은의 굿라이프> 메인 호스트로 완전히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어요. 2017년이 강주은이라는 사람에게 아주 큰 전환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맞아요, 의미 있는 해였죠. 남편과 결혼한 것이 제 인생의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는데요.(웃음) 두 번째로 무서운 경험이 홈쇼핑이었어요. 그 정도로 큰 도전이었죠. ‘무섭다’는 표현은 큰 리스크를 안고 한 인생의 결정이라는 의미예요. 홈쇼핑은 라이브로 진행이 되고, 소비자를 향해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개인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닌데다 여러 관계자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해서 부담이 많았어요. 과연 할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죠. 그럼에도 내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 그것이 제 삶의 아주 큰 사건이었어요. 

그로부터 4년이 흘렀어요. 언제부터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생각하신 건가요? 

서울외국인학교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는 10년간 주부로 생활을 했잖아요. 그 경험도 아주 자랑스러운데요. 그러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자리를 갖게 됐죠. 서울외국인학교 대외협력 이사와 부총감으로 일했고요. 처음엔 인턴 한 명으로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부서가 7명 규모로 커졌어요. 어려운 것이 사람 관리잖아요. 저는 주부일 때도 배우인 남편과의 소통을 늘 맡아 했기 때문에 그 경험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예전부터 일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요. 이제는 얘깃거리가 더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주부로 10년, 직장인으로 13년, 홈쇼핑 진행자 4년. 각각의 시간이 언뜻 달라 보이지만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 같네요. 

소통이 중요했어요. 서울외국인학교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도 그랬죠. 저는 일을 모르니까 배우는 입장이었는데요. 인턴 분이 저보다 3개월 먼저 근무를 하고 계셨거든요. 저는 그 인턴 분께 “나를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한국 문화에서 더 높은 직급으로 들어온 사람이 인턴에게 그렇게는 말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저는 인턴 분이 저보다 경력이 3개월 더 많으니까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홈쇼핑 대본 작가에게 방송할 제품을 사용해보고 대본을 쓸 수 있도록 해당 제품을 직접 구매해서 선물했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흔히 하지는 않는 모습들이죠. 

‘백 명이 다 하는 반응을 하지 않고 싶다’는 자세가 저의 욕심 중 하나예요. 의도적으로 ‘나는 다르게 할 거야’가 아니고요. 내가 편하게 하는 게 있다면 일단 의심을 한다는 거예요. 

편안하면 의심을 한다고요? 

‘이거 너무 편안하다’ 하면 나는 조금 더 힘들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그게 나를 더 성장시킬 거라고 믿어요. 조금 더 힘들어도, 때로 자존심이 상해도 이것을 확실히 배우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갈 거라고 말이에요. 그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언제 그 단계가 올지는 모르지만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순간에 내 자신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항상 재고 있어요. 

새로운 일을 할 때 “또다른 도전이 내 앞에 왔다”(44쪽)고 생각한다고도 했죠. 

낯선 상황은 누구나 피하고 싶잖아요. 도전하는 걸 많이들 싫어해요. 대개는 편안한 것을 찾아요.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편안함을 위해서, 이 고정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싸움도 엄청나죠. 아무리 노력해도 방향이 자꾸 달라지거든요. 그럴 때 내가 너무 굳어져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어요. 저는 너무 고정되어 있지 말고, 좀 더 열려 있고 싶어요. 창을 하나 열어 두자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 도전할 용기가 나고 ‘불편하더라도 경험해보자’는 마음이 생겨요.


 

실패했다는 건 시작했다는 것이죠

도전이 어려운 데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자리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 저자의 명언이 나옵니다.(웃음) “실패를 했다는 것은 시작했다는 것”(54쪽)이라고요. 

사회가 실패는 나쁜 것, 성공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공을 따라가려고 해요. 그런데 성공이 뭐예요? 성공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명확히 말할 수 없어요. 성공은 너무나 다양한 면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오렌지인데 다들 사과가 되어야 한다고 하니까 나도 사과가 되려고 해보세요. 내 껍질을 벗겨가면서 사과처럼 보이려고 빨갛게 색칠하겠죠. 그런 식으로 우리가 다양성을 놓치고 있어요. 다양한 것이 인간이에요. 우리는 로봇이 아니잖아요. 같은 의미로 실패 역시 사회에서 말하는 실패죠. 저는 거기에 빠지고 싶지 않아요. 사회에서 말하는 실패의 예시들을 믿지 않아요. 제 삶만 봐도 그래요. 흔히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지금 보면 그런 순간 안에서도 대단한 열매들을 찾았거든요. 아주 힘든 일, 실패라고 느끼는 일에서도 우리는 열매를 찾아낼 수 있어요. 

실패나 실수를 한 순간에 쓸모없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이야기도 좋았어요. 

한국 사회는 뒤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의식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쓸모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데요. 사실 이때 해야 하는 생각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오케이, 그 다음으로 가자”예요.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씨앗을 심어서 열매를 얻는 것과 같이 모든 일, 심지어 실패의 경험도 씨앗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좀 멀리, 열매를 생각해야죠. 오히려 제 생각에는 힘든 일을 경험할 것을 기대해도 좋겠어요. 

누군가의 불편한 모습을 봤을 때 재빨리 “나도 저런 순간이 있겠지?”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의미가 큰데요. 타인을 흉만 보고 마는 게 아니라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태도는 일이나 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본 모습은 그가 살아온 어느 과정, 한 시점이고요. 나 역시 그런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저런 입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겸손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절대로 내가 누구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나도 잘못하면 저렇게 할 수 있거든요. 

사과하는 것을 “상대에게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표현할 기회”(203쪽)라고 표현했는데요. 특히 일을 할 때 사과를 정확하게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세요? 

사과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상황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겠죠? 그런데 사과는 정말로 중요해요. 사과하는 행동 하나로도 함께 일하는 분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사과를 저희 아이들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이건 정말 잘못했다, 어른이지만 엄마도 실수할 때가 있다, 내 실수를 이해해줘서 정말 고맙다,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될 수 있어요. 

진행 중인 홈쇼핑 <강주은의 굿라이프> 스태프들을 1년에 두 번 집으로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시잖아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어떤 마음인가요? 

한 번은 PD님이 웃으면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떤 ‘셀럽 호스트’가 자신의 집에 스태프를 초청해서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느냐고요.(웃음) 저는 그 말 듣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었어요. 서울외국인학교에서 근무할 때도 매해 함께 일하는 분들을 집에 초청해서 식사하고 그랬거든요. 뿐만 아니라 캐나다상공회의소, 동호회 등에서 만나는 분들을 자주 초청해서 식사해왔어요. 워낙 그런 것을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특히 <굿라이프> 팀을 위해서는 정말 하고 싶었고요. 코로나19 전까지는 6월과 10월에 챙겨서 했어요.

그만큼 내가 당신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다는 표현이기도 할 거예요. 

홈쇼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더라고요. 제 역할은 방송을 하는 거죠. 미팅 때는 업계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잘 이해를 못했고요. 말하는 내용도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이 팀을 집으로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내가 할 줄 아는 일이라는 거였어요. 그렇게 제 손으로 만든 음식을 나누면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사람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일은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주는 것 같아요. 내가 나 자신을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잖아요. 어떤 하나의 그룹을 위해서 나를 쓰고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도 아주 중요한 것 같거든요. 여기서 ‘일’이란 봉사활동이든 가정 내의 일이든 다 포함이 돼요.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있잖아요. 그것을 나누는 활동을 꾸준히 하면 좋겠어요.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결혼했을 때 남편은 한국의 국민배우였어요. 저는 감히 그걸 뛰어넘을 수 없겠다 싶었죠. 그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한계라고 생각했는데요. 꾸준히 일을 하고 보니 갑자기 나도 가장이 됐어요. 정말 보람을 느끼는 것이 남편에게 “내가 알아서 할게. 자기는 이제 좀 쉬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거거든요. 많은 여성 분들께 당신도 충분히 가장이 될 수 있고, 남편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는 여자가 될 수 있다(웃음)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강주은

1970년 캐나다 토론토 출생.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1993년 미스코리아 캐나다 진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이때 배우 최민수를 만나 1994년에 결혼했다. 2003년부터 서울외국인학교에서 대외 협력 이사와 부총감으로 13년을 근무하면서 코리아 외국인 학교 재단 사무 총장, 미국 상공 회의소 이사로 일했으며, 서울외국인학교를 떠난 뒤 2017년 전혀 다른 분야인 홈 쇼핑 「강주은의 굿라이프」의 메인 호스트로 발탁되어 현재까지 쇼를 진행하고 있다. 30~40대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던 첫 책 『내가 말해 줄게요』(2017)가 가족 간의 소통을 다뤘다면, 그녀의 두 번째 책 『강주은이 소통하는 법』에는 가족뿐 아니라 동료와 상사를 비롯해 국내외 기업, 교육 기관, 정부 기관과 일하면서 터득한 〈소통〉에 관한 생각과 방법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일하는 여성들에게 소통에 대한 지혜와 영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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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울고 있는 인간이 억지로 만세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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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기 소설가가 네 번째 장편 『인간만세』로 돌아왔다. ‘오한기 소설’인 만큼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흐릿하다. 답십리 도서관에 상주 작가로 머물렀던 경험을 토대로 썼지만 이야기는 모두 허구다. 그럼에도 중간 중간 작가의 실제 경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오한기 소설’인 까닭이다. 주인공 ‘나’는 답십리 도서관에 상주 작가로 있으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탁을 받는다. 소설을 구상하며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화들을 떠올리던 중 강연용 마이크를 분실하게 되고, 계속 ‘똥!’이라는 외침을 듣게 된다. 이야기는 결말만을 향해 내달리지 않는다. 마치 공을 튀기듯 사건은 이곳저곳으로 종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데,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소설가 오한기는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기존 소설의 관습과 문법을 비트는’ 작가로 손꼽혀왔다. 그의 소설에는 색다른 재미,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는 뜻이다. 『인간만세』도 그러하다. 

소설가 오한기는 ‘2012년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의인법』과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나는 자급자족한다』『가정법』 등이 있다. ‘201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쓸 때 욕심이 없어졌어요

답십리 도서관에는 언제 계셨던 거예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쓰실 때였어요?

네, 거기에서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썼어요. 2017년부터 2018년까지였던 것 같아요. 

이번 소설은 언제 집필하신 거예요?

작년 초부터 써서 12월에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어요. 1년 동안 매진한 건 아니고 다른 거랑 병행하면서 썼어요. 

동시에 여러 작품을 쓰세요?

네. 동시에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인간만세』의 도입부를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출판사에) 소설은 드려야 되는데 잘 안 써져서 고민했었어요. 『인간만세』의 처음에 나오는 「상담」이 박완서 추모 앤솔로지 『멜랑콜리 해피엔딩』에 발표했던 소설인데, 예상과 달리 재밌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주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어? 진짜 재밌나?’ 하고 읽어보고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소설이 조금 풀렸던 것 같아요. 

결말은 정해놓고 쓰셨어요?

보통 안 정해놓고 쓰죠. 저는 중후반부 쓸 때쯤 정해지는 것 같아요. 그때 결말이 떠오르면 결말부터 쓰고 가운데를 메우는데, 이번 소설도 그랬어요.

쓰시는 동안 결말이 바뀌겠네요?

그렇죠. 특히 이번 소설은 뭔가 촘촘하게 계획해놓고 쓴 소설은 아니다 보니까 가볍게 썼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주인공 ‘나’의 에세이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죠. 

쓰실 때는 어떤 느낌이셨어요?

다른 사람들이 제 소설을 읽었을 때는 (등장인물이) 저라고 상상되는 부분이 많을 거예요. 그런데, 뭐라고 할까요, 이제는 소설을 쓸 때 욕심 같은 게 약간 없어졌어요. 소설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게 없어져서... 예전에 데뷔하고 나서 처음 인터뷰하고 그랬을 때는 소설을 써서 이 세상에 균열을 내겠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웃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웃음), 그런 느낌은 사라진 것 같아요. 시도는 해봤는데 제 소설이 그런 것 같지도 않고요. 이거는 자학하는 게 아니고, 생각 자체가 ‘조금 편하게 쓰자’고 바뀐 것 같아요. 내가 편하게 쓰자. 

부담감을 떨친다는 의미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항상 독자를 상정해서 쓰잖아요. 저는 그런 게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요새는 거의 읽는 사람을 상상하지 않고 쓰고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읽는 사람을 상정하고 ‘사람들이 내 소설을 읽을 때 메시지가 무엇일지, 주제는 무엇일지’ 혹은 ‘이걸 오해하면 어쩌지?’, ‘이 캐릭터는 이렇게 읽혔으면 좋겠다’ 하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요새는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쓰고 있어요. 

그 변화로 인해서 조금 더 편해지셨나요?

네, 지금은 되게 편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고 편한 느낌이에요. 예를 들면, 제가 소설을 쓸 때 조금 과장되게 쓰는 부분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읽었을 때 작위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이런 게 어딨어? 황당한 상황이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요새는 ‘그렇게 느껴도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문청 시절에는 어떠셨어요? 독자를 상정하고 쓰셨나요?

대학교 때부터 정지돈 작가와 소설을 주고받았고, 그가 독자였어요. 아니면, 등단하려고 썼죠. 심사위원들한테 어떻게 읽히면 등단할 수 있을까(웃음). 데뷔하고 나서는 독자들한테 어떻게 읽힐까 생각하면서 썼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보다도 지금 더 편안해지신 거네요.

네, 소설을 쓰는 데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 



소설에 목숨을 거는 소설

작가님 소설에는 글 쓰는 사람이 등장할 때가 많고, 소설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해요. 작품과 작가를 겹쳐서 보는 경우도 있을 텐데, 작가로서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부분이 조금 있었는데요. 제가 어느 정도 헷갈리게 쓰고 있잖아요. 저는 그런 작업이 재밌어요. 주인공이 다른 직업이라면 제가 하는 일이 아니니까 조사도 해야 되고 감정 이입도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는데, 제가 잘할 수 없는 부분이고 재미도 없는 부분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어요. 

『인간만세』의 ‘나’는 소설가인데요. 주변에서 리얼리즘에 대한 압박, 요구를 받는 듯 보입니다. 

제가 진짜 많이 듣는 말이거든요. 지인이나 친구들, 부모님이 ‘조금 현실적인 걸 써라, 붕 뜨지 않는 소설을 써봐라’라는 말을 해요. 아, ‘이게 말이 되냐’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조금 황당무계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고요. 그것에 대한 저의 마음이랄까요, 그런 게 이 소설에 조금 녹아난 것 같아요. 저는 이게 내가 겪고 있는 세계이고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하고 쓰는데 사람들은 그냥 황당무계하다고만 읽는 상황이 재밌어요. 예전에는 조금 불만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재밌어요. 

『가정법』에도 ‘진진’이라는 인물이 나왔었는데, 이번 작품에도 등장합니다. ‘진진’을 왜 이렇게 좋아하세요? (웃음)

모르겠어요(웃음). 제 와이프 이름이 ‘진’으로 끝나는데 그래서 그렇게 지었는지, 아니면 다른 소설에서 따왔는지, 지금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둘 중 하나일 거예요. ‘진’이라고 하면 재미없으니까 ‘진진’이라고 했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왜 계속 같은 이름을 쓰세요?

다른 소설에 ‘진진’이 나오면, 아예 다른 소설인데 이 소설에도 ‘진진’이 나오면, 둘이 같은 인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게 재밌어요. 

‘진진’과 ‘나’의 관계가 흥미로웠어요. ‘진진’이 재능보다 열정이 더 큰 사람이라면 ‘나’는 그 반대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죠. 제가 볼라뇨의 『야만스런 탐정들』을 좋아하는데, 진진은 약간 그 소설에 나오는 문청들 같죠. 거기에서도 문청들이 비평가랑 결투를 벌이고 그러거든요. 그리고 『야만스런 탐정들』의 주인공이 샤워하면서 책을 읽는 장면이 있어요. 문학을 너무 좋아해서 샤워하면서도 놓지 못하고 물 맞으면서 책을 읽는 거예요. 그런 장면들을 되게 좋아하는데, 진진은 그런 쪽의 캐릭터죠. 주인공은 거기에서 한 단계 벗어나 있죠. 쉬운 말로 철이 들었다고 하나요, 현실적으로 뭔가 깨달은 인물이죠. 저의 입장에서 보면 정상인의 범주에서의 작가라고 할까요(웃음). 뭔가 소설에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거는 소설을 읽으면 되게 좋아요. 물론 현실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겠지만(웃음), 텍스트를 통해서 접하면 되게 좋고 가슴이 뛰는 부분이 있어요. 

작가님은 전통적인 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 작품, 이를테면 실험적인 작품을 읽을 때 어디에서 즐거움을 느끼세요? 

약간 ‘아, 이렇게 비틀었네?’ 싶은 부분인 것 같아요. ‘전통적인 소설을 이렇게 비틀었네?’ 혹은 ‘체질적으로 이 사람은 전통적인 소설을 못 쓰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그렇게 쓴 거거든요.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쓰자, 독자들한테 읽는 재미를 주자, 라는 생각으로 쓴 건데 친구들한테 물어보니까 무슨 소리냐고, 이게 무슨 전통적인 서사냐고 그러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말하는 걸 봐서 현재로서는 사실 그런 부분은 포기했고, 그냥 내가 즐거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고 있어요.


 

나는 왜 쓰고 있지?

『인간만세』의 주인공은 “도무지 행복은 글로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고 말해요.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자신은 그게 안 된다고요. 작가님은 어떠세요?

정확한 제 마음입니다. 저도 진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은데, 진짜 안 써지더라고요. 쓰려고 시도도 해봤는데 시니컬해지고, 자기 비하를 하거나 우스꽝스럽게 상황을 만들어 극한으로 몰아가거나 그래야만 저도 쓰는 게 재밌더라고요. 행복한 것, 아름다운 것을 쓰려고 하면 제 자신이 못 견디는 측면이 있어요.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에 대한 정의는 다 다르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평범한 심미안을 갖춘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우는 되게 평범해요. 되게 도덕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아름다움, 일드 속의 아름다움 있잖아요. 정석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되게 좋아해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일드를 찾아봐요. ‘인간이라면 이래야 돼’ 이런 거 있잖아요. 저는 그런 걸 쓰고 싶은데 잘 안 되더라고요.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홍학이 된 사나이』를 쓴 건 일생일대 실수였다!” 혹시, 이 문장을 쓰면서 통쾌하셨을까요(웃음).

쾌감이 있죠(웃음). 왜냐하면, 솔직히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내가 왜 그렇게 괴짜처럼 보였을까. 그 소설을 보면 되게 괴짜 같잖아요. 물론 주위에서는 괴짜가 맞다고 하지만... 왜 그렇게 독자들과 멀어지는 소설을 썼을까, 이런 생각에 조금 후회는 돼요(웃음).

이 문장을 쓰실 때도 쾌감이 있으셨을까요? ‘나’가 하는 말인데 “솔직히 저 역시 문학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문학의 의미, 소설의 가치 따위는 당연히 모르죠. 그러니 저에게 묻지 마세요”라고 하잖아요.

그런 부분은 다 쾌감이죠. 소설이니까 다른 데서 보고 읽고 인용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는데 어떡하겠어요(웃음). 화자의 입을 빌려서 제 속마음을 솔직하게 밝힌 거니까 쾌감이 느껴졌죠. 

실제로 이런 질문을 받으시죠? 문학과 소설의 의미, 가치를 묻는 질문이요.

저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독자들과도 만날 기회는 별로 없어서 많이 안 받았던 것 같아요. 받아도 답할 자신도 없고요(웃음).

질문을 받는다면 ‘나’처럼 답할 수는 없겠죠?

저는 그렇게 말할 것 같은데요. 물어보면 ‘모르겠습니다’라고 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스스로한테도 질문하실 것 같아요. ‘나는 이것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데, 이 일을 왜 할까?’라고요.

글 쓸 때마다 끊임없이 질문해요. ‘나는 지금 왜 쓰고 있지?’ 그러다가 ‘때려 치자’라는 생각도 하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 또 쓰고 있더라고요. 질문은 끊임없이 하는 편인데 답은 아직 못 구했어요. 

답은 모르는데 어느새 다시 글을 쓰고 있고, 그러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죠?

네. 저한테 와이프도 맨날 왜 그렇게 해서 건강을 해치냐고 그래요. 글 쓸 때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고 날이 서 있으니까요. 편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곁에서 보기엔 여전히 그런가 봐요. 왜 그만 못 두냐고 하는데, 할 말이 없어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울고 있는 인간이 만세하는 느낌

‘인간만세’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제목을 떠올리고 썼으면 모르겠는데, 예를 들어 『나는 자급자족한다』 같은 경우는 제목을 먼저 떠올리고 거기에 맞춰서 썼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은 거의 다 쓰고 나서 제목을 정한 거라, 저한테는 어떤 느낌만 있어요. 울고 있는 인간이 억지로 만세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억지로 살아가고 있는, 살아가야 한다면 만세하는... 만세가 긍정적인 포즈잖아요. 하지만 손을 들어야 되니까 힘들기도 하고(웃음). 그런 느낌, 이미지만 가지고 지었던 것 같아요. 

‘작가의 말’이 소설의 형식과 비슷해서 놀랐는데요. 『마름모 브라우니』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재 집필 중이세요?

네. 『인간만세』를 쓰다가 ‘다른 거 쓸까?’ 해서 『마름모 브라우니』를 쓰다가 다시 『인간만세』로 돌아간 거예요. 그 정도까지 완성이 된 거고, 나중에 더 쓸 일이 있으면 써야죠. 

동시에 여러 작품을 쓴다고 하셨는데 『마름모 브라우니』도 마찬가지네요.

그 작품도 그렇고 <현대문학> 5월호에 실린 「산책하기 좋은 날」도 동시에 썼어요.

“『마름모 브라우니』를 쓰고 나자 『인간만세』가 비로소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고 쓰셨는데, 이러실 때가 많은가요?

되게 많죠. 항상 그런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거 별로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라는 괜한 걱정일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딴 걸 쓰다가 이게 더 별로니까, (먼저 쓰던 작품으로) 돌아왔을 때 객관적으로 보면 ‘아, 그래도 이것보다는 낫다, 나한테는 선택이 없다, 여기에 집중하자’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해설을 쓴 강보원 평론가는 “오한기가 바로 뒷걸음질의 전문가”라고 했는데요. 오히려 치밀하게 계산을 해서 소설을 쓰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예전에는 되게 치밀하게 썼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눈치를 못 챘고 제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친구들이 비웃었는데요(웃음). 요새는 안 그래요. 조금 자유롭게 쓰는 부분이 있어요.

이번 소설에서도 치밀함이 엿보이던데요?

그건 조금 체화된 것 같아요. 예전에 훈련된 방법이 체화돼서 그렇게 나오는 것 같아요. 

『홍학이 된 사나이』부터 『나는 자급자족한다』『가정법』『인간만세』까지 네 권의 장편 소설이 출간되는 동안 소설집은 나오지 않았는데요.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겨울에 출판될 예정이고, 아마 소설집도 (단편) 한 편 정도만 더 발표하면 나올 거예요. 단편집을 2015년에 내고 6년 만에 내네요. 벌써 6년이 지났네요. 




*오한기

1985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2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파라솔이 접힌 오후」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의인법』(2015, 현대문학)과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 『나는 자급자족한다』 『가정법』 그리고 『인간만세』 등이 있다. 201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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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고단한 얼굴을 가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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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에세이를 상상하며 책을 펼쳤다가 통쾌한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어설픈 꾸밈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글. 거침없이 솔직한 글이 주는 쾌감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솔직함은 글을 업으로 삼지 않는 내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했다. 그의 첫 에세이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에는 빛나는 연주자 조진주가 아닌, 무대 아래 인간 조진주의 ‘혼란과 욕망’, 때때로 ‘옹졸해지는 마음’, ‘분노’와 같은 숨기고 싶은 감정들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누구보다 테크닉이 뛰어나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매일 “연습 좀 안 해도 원하는 소리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잘 나가는 누군가를 보며 불쑥 타오르는 질투심에 울고, 음악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조진주의 이야기는 일을 잘하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모든 직업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솔직함, 최소한의 예의였다 

강력한 질투는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처럼 아프다. 그런데 이 불은 오로지 내 안의 것만 태운다. 나의 능력, 나의 가능성, 나의 미래. (56쪽)

읽는 내내 ‘정말 솔직한 에세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쓰려고 했어요. 독자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제가 겪은 일이 모두의 사실은 아니잖아요. 음악계에 대해 제가 느낀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그게 일반적인 사실은 아니라는 걸 알아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망설임없이 다 쓸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솔직하게 쓰는 건, 제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죠. 

독자에 대한 예의요?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계신 분들에 대한 예의요. 저는 음악하는 사람이잖아요. 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제가 책을 펴내려면, 솔직하게 쓰는 것만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그것마저 하지 못한다면 너무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작가님들에게 도리를 다하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다 보니 솔직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아요.  



수시로 찾아오는 열등감에 대해 쓴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에서 솔직함이 특히 더 돋보였어요. 

제가 정말 싫어하는 제 모습이에요.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그런 감정이 계속 올라오는 걸요(웃음). 

그럴 땐 어떻게 이겨내세요?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이 찾아올 때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떨어질 때거든요. 체력이든, 마음이든 어딘가가 소진된 거죠. 그래서 그냥 기다리면서 채우려고 노력해요. 또 앞으로 계속 찾아올 감정이라는 걸 인정하면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나는 원래 질투심이 많은 사람인 걸 어쩌나. 그냥 이대로 사는 수밖에’ 하고 인정해버리면 어느 순간 잊게 되더라고요(웃음). 

“열심히만 하면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를 조정하는 건 참 아픈 일이었다(55쪽)”는 문장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 하죠. 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아요. 이미 반짝이는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커리어에는 중독성이 있잖아요. 내가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느낌이 들면 ‘그래, 나 잘했어. 정말 대단해’라고 생각하기 보다 ‘이 다음은 뭐지?’ 하고 스스로를 자꾸 채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지 않은 생각인 걸 알지만, 자꾸 그렇게 되죠. 아마 누구나 이런 마음을 느낄 거예요. 저 또한 여전히 어릴 때 동경했던 연주자, 지휘자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 지금도 무던히 노력하는 중이니까요.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20대 때는 계속 성취하지 못하는 게 분하고 초조했어요. 지금은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어디까지 가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니까요. 클래식 분야의 커리어는 연예계와 비슷해요. 실력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하고, 매력도 있어야 하고 여러 요소의 꼭지점이 맞아야 스파크가 튀거든요. 여기서 제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그저 좋은 연주를 위해 노력하는 것 뿐이에요. 좋은 자세로 충실히 연주에 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할 뿐이죠. 

첫 페이지, 첫 문장에 밑줄을 그은 책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연습을 제대로 하려면 이름도 책임도 없는 느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5쪽)’는 문장이었죠. 

그 문장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웃음). 큰 고민없이 툭 나왔는데 저도 마음에 들어요. 지금은 스케줄이 많아서 오롯이 연습만 할 수 있는 하루가 정말 귀해요. 그래서 연습에 집중해야 하는 날은 마음가짐이 좀 다르거든요. 저에게 특별한 그날의 감각을 언어로 묘사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온 문장이었어요. 

처음에는 매거진 <객석>에 쓴 칼럼을 모으려던 작업이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들었어요. 

어린시절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책을 워낙 좋아해서, 내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는데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을 보고 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지금껏 연재했던 칼럼들을 모아서 조금 수정하면 되겠다고 아주 심플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큰 고민 없이 한다고 했는데, 프롤로그를 쓰면서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기고했던 글과는 너무 결이 다른 글이 나왔거든요. 첫 꼭지를 쓰는 과정에서 ‘이 순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전부 다시 쓸 수밖에 없었죠(웃음). 자가격리를 많이 한 덕분에 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책 작업에는 도움이 되었군요(웃음). 

네, 캐나다에 머물면서 쓴 글이 많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 하고 커피 마시고, 책 좀 읽다가 음악 들으면서 원고를 쓰곤 했는데, 그 감각이 너무 좋더라고요. 

책을 쓰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상실의 단계’라는 글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험을 썼거든요. 그걸 쓰면서 ‘이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본 게 처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가족과 친구들이 슬퍼할까봐 아예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였어요. 아마 글로 쓰지 않았다면 평생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1년쯤 되었는데 그 상실의 의미가 뭔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죠. 그 글을 쓸 때 많이 울었어요. 읽는 것조차 힘들어서 다 쓰고 최종 탈고까지 마친 뒤에는 한 번도 다시 읽지 않았어요.


 

음악이 삶에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워야 했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무슨 뜻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때로 많은 아픔을 동반했다. (19쪽) 

“나는 바이올린도, 음악도 선택하지 않았다. 아니,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39쪽)”고 했어요. 엄마의 선택으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더라고요. 

바이올린뿐 아니라, 사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죠(웃음). 

그럼 바이올린에 재미를 느낀 건 언제부터였어요? 

처음 자의로 열심히 바이올린을 했던 건, 16살쯤이에요. 아스펜국제음악제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음악을 배우고, 매년 같은 국제 콩쿠르에 나갔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그러면서 엄마와 사이가 많이 틀어졌죠. 16세가 되면 혼자 기숙사에 들어가 생활을 할 수가 있는데요. 당시만 해도 엄마는 저를 혼자 놔두는 게 불안해서 함께 갈 생각이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싸움이 잦아지니까 ‘이제 너를 위해 희생하는 건 더 이상 못 하겠다’면서 저를 혼자 아스펜에 보내셨어요. 그리고 그 해에 우승을 했죠. 콩쿠르에 나가기 위해 연습을 하면서 처음으로 음악에 대한 쾌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떤 쾌감이었나요? 

아마 태어나서 바이올린을 제일 열심히 한 순간이었을 거예요. 어린 마음에,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제가 좋은 성취를 하면 그 공이 다 엄마한테 돌아갈까봐 분했던 것 같아요. 이번 기회에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온종일 연주 연습만 했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제 자의로 연습에 임했고, 곡을 완벽히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동안 음악적으로 들리지 않았던 게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음악이 가진 건축성, 연결성, 서사의 매력을 맛보았던 거죠. 그때 처음으로 ‘와 이거 되게 재미있구나. 나에게 잘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 나아가 내 직업을 사랑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17쪽)”고요. 

음악을 평생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건 20대 중반쯤 부터였어요. 그전까지는 ‘연주를 하고, 음악을 만들어가는 게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아무리 고민해도 도무지 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한동안 방황을 했었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쓴 꼭지 ‘상실의 단계’에 그 고민이 가장 많이 드러났던 것 같아요. “삶과 죽음에 정말 필요한 게 음악이 아니라면, 나는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소멸되고 나 혼자 남았는데 이제 나는 누가 돼야 하지. 뭘로 살아가야 하지. 질문은 많았지만 답은 없었다(167쪽)”고요. 

어느 한 순간은 아니었고, 여러 경험이 쌓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던 것 같아요. 특히 독립해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생계를 꾸려갈 때 많은 걸 느꼈죠. 내가 하는 일을 음악이나 연주, 악기 등으로 좁게 생각하지 않고 ‘문화예술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문화예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니 너무 비참할 것 같은 거예요. 어쩌면 이런 슬픔을 위로하는 게 문화예술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러면서 서서히 의미를 찾게 되었어요. 

방황했던 과거의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는 후배를 만난다면,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제 경험은 그들의 경험과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단언하긴 어려운데요. “언젠가는 찾게 되겠지”라고 말해줄 것 같아요. 만약 이 일을 해야 할 사람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를 깨닫게 될 거라고요. 만약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다면 그만둬야죠. 21세기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의미도 없이 바이올린만 붙잡고 있는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어린시절, 경쟁과 폭력의 환경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도 공감하며 읽었어요. “우리는 너무 어릴 때 실패를 경험했고 모두 함께 패배자가 됐다(33쪽)”고 했죠.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는데, 올바른 스승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생각이 많을 것 같아요.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인데요. 혹평은 연주자에게 분명 도움이 돼요. 다만 그게 담당선생님의 역할은 아니죠. 스승이라면, 아이가 프로의 세계에서 받고 온 혹평을 어떻게 하면 인생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을지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며칠 전 어느 자리에서 “다들 좋은 소리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건 옳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럼 평론가가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비평을 하는 게 평론가의 직업인데 저희가 그걸 건드리면 안 되죠. 다만 나를 믿고, 인생을 맡긴 아이에게 스승으로서 혹평을 하는 건 올바른 일이 아니에요. 

아마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실 텐데요. 음악계에서 일하는 저희가 받는 비평의 양은, 보통 회사에서 받는 피드백의 100배 이상이 될 거예요. 저희는 매일 평가에 노출된 삶을 살아요. 그래서 강해야 하죠. 다양한 평가들을 견딜 수 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만들어주는 게 스승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혹평도 긍정적인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고, 만약 어떤 평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 가차없이 무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저의 역할이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참 어려워요. 

연주와 교육 중 무엇이 더 어렵게 느껴지나요? 

서로 다르게 어려워요. 연주는 너무 떨리고, 압박감이 진짜 심해요. 저는 연주를 앞두고 있으면 화장실을 스무 번씩 갈 때도 있어요. 동시에 한편으로는 ‘나 혼자 창피한 일이니까, 그냥 한번 창피하고 말자. 한 시간만 참고 내려오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런데 가르치는 건 아이의 인생이 걸린 일이잖아요. 특히 선생님의 역할이 그 아이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죠. 

그래서 제가 쓸 수 있는 한 가장 많은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으려고 노력해요. 꼭 레슨이 아니라, 그 아이의 음악이 가야할 방향, 나와 함께하는 5~6년의 시간이 이 아이에게 어떤 힘으로 작용할 것인지 등을 충분히 고민하죠. 그게 모든 걸 아우른다고 생각해요. 그 마음가짐만 있으면, 다른 태도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아요.


 

고단한 얼굴을 가지고 싶다 

이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그 말을 믿기 시작한다. 나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슬금슬금 스며들기 시작하면 슬프고 서럽다. 그리고 분노한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 이 모든 분노를 녹여 창작하는 것이다. (141쪽) 

동양인 여성 연주자로서 수많은 편견에 시달리고, 무례한 평가를 받기도 하잖아요. 거기에 전복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멋지더라고요. ”성공의 어머니는 아마 분노일 것이다(142쪽)”라고 썼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투지가 막 생겨요. 분하잖아요. 그 사람이 틀렸는데 왜 내가 움츠러들어야 하죠?(웃음)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비열한 말을 하는 네가 틀렸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그저 상대에게 실망스러울 뿐이죠. 특히 대내외적으로 제가 존경했던 사람이 편견에 휩싸인 발언이나 무례한 평을 하는 걸 볼 땐 너무 실망스러워서 긴 시간 동안 우울해요. 

음악계에 자리한 성차별에 대해서도 종종 목소리를 내시잖아요. 사회적으로 들려오는 평가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부담은 없고, 민망해요(웃음). 제가 무슨 여성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말 한마디 할 뿐이니까요. 다만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저는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계신 중년 여성들을 보면 그냥 다 좋아요. 오래 일을 해 온 여성들의 얼굴에서 나오는 고단함이 있어요. 여자 얼굴에 고생한 티가 난다는 걸 보통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만큼 전투적이고 강하게 살아왔다는 뜻이거든요. 저도 그 고단한 얼굴을 가지고 싶어요. 우리 모두 다같이 고단했으면 좋겠어요(웃음). 

바이올린을 시작한 건 나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에는 수많은 자신의 선택이 있었을 텐데요.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맨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이게 나에게 이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만, 그걸 뛰어 넘어서 ‘이게 아름다운 선택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이걸 수락했을 때 다른 누군가를 짓밟게 되지 않나, 세상에 피해를 주지 않나, 내 인생 전반에서 아름다울 수 있는 일인가 등이요. 

학생들에게 감각적 연주를 가르치고, 매년 여름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비영리단체 ‘앙코르 챔버 음악 캠프(ENCORE Chamber Music Institute)’를 설립한 것도 그 아름다운 선택의 일환이겠네요. 

어쩌다보니 하게 되었어요(웃음).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 업계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음악을 가르치고 콘서트를 여는 게 지금과 같은 방식밖에 없나?’라는 의문에서 시작했어요. 막상 해보니 업계에 충분한 지원이 없고, 음악가들도 콘텐츠 개발에 소홀했다는 등 수많은 이면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연주자가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힘들긴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하고 싶은 바가 명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무얼 하고 싶은가요? 

여러 방면에서 자극이 많은 문화예술 이벤트를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이 작곡가가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었으니 우리 음악회 보러 오세요”라고 하는 건 부족해요. 그 곡이 연주를 하는 우리에게는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관객에게는 그렇지 않잖아요. 작곡가의 명성에 기대지 말고, 연주자로서 곡을 더 빛나게 만들 수 있는 나의 책임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더불어 어떻게 하면 재미와 의미를 다 잡은 공연을 만들 수 있을지, 문화적 콘텐츠로서의 연주는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죠. 

클래식은 어렵다는 생각에 대한 아쉬움도 있나요? 

그렇진 않아요. 클래식은 어려운 게 맞아요(웃음). 저는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국악이 어렵거든요. 뭐든 순서가 있는 것 같아요. 저처럼 국악에 관심 없던 사람이 ‘이날치밴드’의 공연을 본 뒤 관심을 갖고 민요를 찾아 들어보게 되는 것처럼 어떤 장르든 레벨이 있는 거죠. 모든 전문 분야의 심화 과정은 원래 어려워요. 저는 클래식이 쉽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클래식에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를 만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그럴 기회를 제공하는 게 저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죠. 관객들에게 “클래식은 어렵지 않으니까 들어주세요”라고 하는 건 치사한 일이에요. 말도 안 되고요. 

유튜브를 하고, 글도 쓰는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거침없이 도전하는 편이죠?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는 것 같아요. 저는 겁없이 저질러요. 재미있을 것 같으면 일단 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기가 막히죠. ‘내가 이걸 왜 했지?’하고(웃음). 일단 시작했으니 끝은 내야 하니까, “와 미쳤다. 미쳤어”하면서 끝마치죠. 그런데 막상 또 새로운 걸 시작할 땐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책을 쓸 때도 그랬나요? 

엄청나게 그랬죠(웃음). 계약금 돌려주고 그만 둘까? 칼럼이나 몇 개 쓰고 말 걸. 오늘은 꼭 전화를 해야지. 이런 생각 엄청했어요(웃음). 시간은 없는데 좋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니까 힘들더라고요. 또 글쓰기는 제 업이 아니잖아요.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한 편을 쓰려면 엄청난 집중을 해야 해요. 온전히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책에 실린 글들을 쓴 건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하고 싶은 말은 책에 다 쓴 것 같아요(웃음). 제 이야기가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지만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조진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만 17세에 이례적으로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고, 201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1위와 오케스트라상, 2011년 윤이상 국제 콩쿠르 2위, 2012년 앨리스 숀펠트 국제콩쿠르 1위 등 연달아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 지난 2014년에는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굿바이 콩쿠르”를 선언하고 연주, 창작,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앙코르 챔버 뮤직 캠프를 설립했고,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언젠가 반짝일 수 있을까
조진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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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미술사학자 최열 “헌책방에서 우연히 본 제주 그림,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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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의 역사』, 『이중섭 평전』 등을 쓴 미술사학자 최열 저자는 2020년에 출간한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서 “나는 자꾸만 옛 그림을 들여다보며 내가 사는 이 도시의 모습을 생각했다”고 쓴다. 옛 그림 속 풍경은 대개 달라져 있었고,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풍경들은 안타까웠다. 다만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 이어 또 한 번의 방대한 작업인 『옛 그림으로 본 제주』를 펴내면서 그는 다시 한 번 “남아 있는 아름다움이 점차 더 말라가고”있다고 적는다. 제주의 풍경이 옛 그림에서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특히 “제주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길 바란다”는 저자는 이 책으로 “제주도를 단순히 관광하는 곳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장소의 내력과 특징,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역사적인 아픔 등을 돌아봤으면 한다. 이 책을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제주 사람들이 이 책과 함께 제주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곳인지 외부에 많이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림부터 꼼꼼히 한 번 보세요. 책 판형도 크고 도판이 좋거든요. 자세히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일 거예요. 한라산 그림도 확대해서 보면요. 그 안에 흰 사슴도 있고, 사냥꾼이 활로 사슴을 잡으려는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보고 있으면 아주 재미있어요.”


 

‘여기는 다르구나’를 본능적으로 느끼죠

18세기 제주 화가 김남길의 <탐라순력도>를 보고 옛 그림을 중심으로 한 제주에 관해 책을 써보자고 결심한 것이 20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제주 그림들이 그렇게 있는지 몰랐죠. 사실은 2002년보다도 더 전인데요. 우연히 헌책방에서 큰 화첩으로 만든 <탐라순력도>를 발견했어요. 아주 낡은 책이었어요.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실경이라면 흔히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의 작품들을 떠올리는데요. 실경을 이런 식으로도 그린다는 걸 책 속의 그림을 보고 알게 된 거예요. 너무 달랐어요. 또 40점이나 되니까 이 그림들로 제주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그림들이 ‘다르다’고 느낀 이유는 뭘까요? 

채색법, 구도, 사물 하나 하나를 형상화하는 방식 등 모든 것들이 달랐는데요. 기존에 알고 있던 전통적인 실경의 묘사 양식과 너무 다른 거죠. 가령 언어에서, 서울 중앙의 양식을 기준으로 표준어가 있고 사투리가 있잖아요. 사투리 가운데 전라도 사투리나 경상도 사투리는 어느 정도 익숙해요. 한편 제주도 사투리는 알아 듣질 못하잖아요. 외국어처럼 느낄 만큼 말이에요. 그림도 그랬던 것 같아요. 지방 양식 중에서도 제주 그림은 아주 특별했어요. 

“제주를 그린 지도야말로 제주의 풍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경도였던 게다”(6쪽)라고 했어요. 지금 제주는 그림 속 제주와 너무 다르죠. 

모든 실경이 그렇죠. 관동8경만 해도, 우리가 갈 수 있는 곳들에 가 보면 풍경이 싹 바뀌어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지형이야 갑자기 바뀔 리는 없지만 설치 시설처럼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부분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서울은 뭐, 완벽하게 바뀌었죠. 명소, 관광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등의 이유로 그런 거고요. 말하자면 인간의 욕망이 모든 것을 바꿔요. 제주 역시 그림을 들고 가면 거의 못 찾죠. 옛 지도를 들고 찾아가는 것과 같은 일인데요. 다만 그림에 나온 이곳이 어느 곳인지를 더듬어 가며 찾아가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제주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거예요. 그 인상들이 책을 보면서 점차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선생님도 그림을 알고 난 뒤 제주가 다르게 다가왔나요? 

육지 사람들은 제주에 도착하는 순간 ‘여기는 다르구나’를 본능적으로 느끼죠. 정확히 언제 제주도를 처음 갔는지는 모르지만 저 역시 도착하자마자 다른 나라에 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림도 마찬가지인데요. 사실은 제주 그림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겸재 정선이 ‘성류굴’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요. 그림을 보고 실제 풍경을 마주하면 정말 달라요. 그래도 한참 동안 관찰하고 살피다가 돌아와서 후에 생각하면 그림처럼 생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제주도도 그래요. <탐라순력도> 같은 그림과 실제 풍경을 연결해보면 같지 않는 느낌이 드는 곳도 있는데 결국에는 그림처럼 생겼다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물론 도시처럼 확 바뀐 곳은 그럴 수가 없고요. 어느 정도 원형이 유지된 자연 풍경은 그런 느낌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이 그랬나요? 

이질감과 동질감을 시차를 두고 느꼈던 곳이 산방산과 성산이에요. 그림을 보세요. 실제 모습과 너무 다르잖아요? 이렇게 안 생겼어요. 두 곳 모두 실제 장소를 먼저 가봤고, 그림을 나중에 봤는데요. 그림이 너무나 이질적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림을 보고 다시 또 제주도에 갔을 때 느낀 것은 궁극적으로는 그림처럼 생긴 게 맞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신기했죠. 독자 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그 느낌을 느껴보면 좋겠어요. 그림을 보고 풍경을 보면, 진짜로 풍경이 그림처럼 변형되어서 보이는 느낌을 받게 돼요. 


‘김남길, <탐라순력도> 중 <성산관일>,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김남길, <탐라순력도> 중 <산방배작>,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억센 힘으로 가득 찬 신의 땅

물리적인 단절 때문일까요. 언어는 물론이고 그림까지도 제주만의 독특한 색이 구축되어 온 셈인데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게 돼요. 

예술은 실제 사물을 인간이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표출하느냐의 과정인 건데 제주는 무엇보다도 자연 풍토가 다르고요.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문명이 다르죠. 교통이나 항해가 발달되기 전, 제주는 독립된 왕국이었잖아요. 독자적인 자신만의 문명과 공동체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언어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고유성과 원형을 갖고 있었던 셈이에요. 신라, 고구려, 백제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하죠. 이후 조선시대에 아무리 유가 문명권으로 정치, 경제, 문화가 통일이 되었다 해도 자신들만의 고유성은 사라지지 않은 거죠. 그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고유함이 있다고 봐요. 

제주를 "두려울 만큼 아름답고 억센 힘으로 가득 찬 신의 땅"(94쪽)이라고 했는데요. 신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점도 제주의 특별한 지점이에요. 

육지에도 유가 문명권에 편입되기 이전의 고유성이 있었을 거예요.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그것이 시각 조형으로 형상이 남아 있죠. 한편 제주에는 보편 문명 이전의 신앙, 신, 신화 같은 것들이 보편 문명 아래에서도 강렬하게 남아 있던 거예요. <탐라순력도>의 <건포배은>이라는 그림을 보면 신당을 불태우는 장면이 있거든요. 외래의 신(유교)이 토착신을 철거하는 거죠. 그럼에도 제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저항이 강하고, 억압은 덜했던 거예요. 바다로 인해 통제 수단이 아무래도 약하니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토속 신앙이 더 잘 지켜질 수 있었겠죠. 또 한 가지, 천지개벽 신화가 제주도에 있다는 점도 중요해요. 세계적으로 천지창조 신화를 갖고 있는 종족공동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요. 제주도는 갖고 있어요. 그것이 암시하는 것은 자신들의 고유성, 정체성이 아주 강하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신화들이 강렬하게 지속되어 왔고, 지금까지도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화가 김남길의 작업이 아주 중요한 허리예요. 이 화가가 더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반드시 그렇다기보다 김남길만 이름이 남이 있으니까요. 물론 추사 김정희, 윤제홍, 정재민 등 이름이 있는 분들도 있지만 나머지는 이름이 없어요. 사실 김남길도 정말 제주 사람인지,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데리고 온 사람인지 정확히는 모르는데요. 그림에서 여러 풍경을 해석한 것을 보면 제주 사람이라는 심증은 있고요. 그래서 이 사람이 중요하죠. 그렇지만 알리고 싶어도 정보가 너무 없어요. 

표지 이미지이기도 한 <제주삼현 오름도>를 보면 제주도의 위아래가 반대로 되어 있어요. 그림 방향이 한양에서 보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건데, 흥미로운 부분이죠. 

육지의 시선인 거죠. 육지 사람이 보는 방향으로 그렸다는 걸 알고 봐야 해요. 한양을 그린 그림 중에도 그런 것이 있어요. 보통은 지금 북한산, 청와대 쪽 방향을 상단에 그리고 남산을 하단에 그리는데요. 거꾸로 된 도성도가 있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어람용이었던 거죠. 왕이 보도록 그린 그림인 거예요. 별도로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모르지만 주체의 시선,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늘 중요하게 배치하죠. 너희들이 갖고 있는 것 중 나한테 귀한 것을 부각시켜요. 그래서 침략자의 시선은 항만, 도로 등 교통 수단을 아주 신경 써서 그렸어요. 지도가 갖고 있는 패러다임이 그런 건데요. 제주를 그린 그림에서도 여지없이 그런 면이 관찰돼요. 

중앙 중심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담긴 그림도 있는가 하면 그런 면이 거의 엿보이지 않는 그림도 있잖아요. 

주문 주체, 제작 주체의 필요나 시선이 작용하는 거겠죠. <탐라순력도> 41점은 동그라미가 많잖아요. 이게 다 군부대거든요. 외지에서 부임한 이형상 목사가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점검한 것이기 때문에 <탐라순력도> 전체에 이런 정보가 중요하게 담긴 거예요. 철저하게 군사, 정치, 문화적으로 조선의 통치 이념을 부여해야겠다는 의지가 드러나요. 한편 <제주십경도>, <제주십이경도> 같은 그림들을 보면, 군부대가 크게 그려진 그림이 있긴 해도 다 그렇진 않죠. 좀 더 풀어진 시선을 느낄 수가 있어요. 훨씬 이완되고, 더 느긋해요. 풍경을 중시했고요. 그림이 말하는 이야기가 달라진 거예요. 서민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있거든요. 민가도 촘촘하게 그려놓고 말이죠. 그런 각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달라진 풍경이 워낙 많아

‘제주’와 ‘그림’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면 추사 김정희나 이중섭 등 굵직한 인물들이 자연히 연상되는데요. 제주는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특징적인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을까요? 

분명히 제주의 공간이 주는 남다름이 있는 것 같아요. 추사도 제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완성되었다고 보거든요. 제주에서 추사의 예술이 용광로처럼 끓어 비로소 추사체가 꽃을 피웠어요. 제주 이전에는 사실 추사체가 아니죠. 추사가 55세에 제주도로 유배를 떠났는데요. 그 전까지는 추사체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8년 정도 살다가 나오면서부터 그 서체가 나와요. 꽃을 활짝 피우죠. 참 신기해요. 이중섭의 경우 제주도 안에서 흔히 말하는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온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제주도에서 무르익은 거죠. 발가벗은 어린 아이들, 가족 등을 그려내면서 서서히 꽃을 피울 수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 확실히 제주도라는 곳이 예술가들에게 어떤 상상력을 열어주는 공간인 것 같기도 해요. 

앞서 나눈 이야기와 연결해보면, 제주만이 가진 고유성과 정체성이 외지에서 온 예술가들에게 훨씬 더 이질적이고 자극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기도 해요. 

그렇죠, 충분히 그럴 거예요. 

한편 훼손되고 있는 제주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도 곳곳에 드러나거든요. "아름다움이 점차 말라가고 있다"(5쪽)고 했어요. 

서울은 포기했어요.(웃음)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는 그래서 분노만 적어둔 거고요. 이 책에 안타까움을 그나마 표시한 것은 서울보다는 제주도가 덜 개발되었기 때문이에요. 이 글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로 적어본 것이죠. 비자림숲을 훼손하고,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하는 소식들을 들으면 너무나 안타까움을 많이 느껴요. 




이곳만큼은 특별히 꼭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나요? 

하나같이 다 그렇죠.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곳은 전부 이미 손을 댔거든요. 사실 제주뿐 아니라 전 국토가 그래요. 포천에 산정호수가 있어요. 가 보면 호수 둘레에 산책로를 만들어놓았어요. 그건 호수가 사라진 것이라고 봐야겠죠. 산책로를 설치하지 않고, 몇 군데 접근할 수 있는 곳을 두어서 어렵게 접근하도록 하고, 그 자체를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제주도를 담은 옛 그림 역시 보면 이미 달라진 풍경이 워낙 많아서요. 어느 한 곳을 특정하기는 어려워요. 그나마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를 하니까 다행인데요. 그렇지 않은 곳들이 걱정이죠. 

그림만 봐서는 알지 못하는 그림의 맥락이 있잖아요.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신화와 역사적인 맥락도 꼼꼼하게 밝혀주셨는데요. 자료가 부족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관심 갖는 범위의 기록들은 굉장히 많았어요. 오히려 다 못 본 게 아쉬워요. 책에 더 담지 못해 아쉽죠. 책 뒤에 참고문헌으로 담아둔 것은 극히 일부고요. 제가 찾아본 자료는 훨씬 더 많았어요. 제주 무가 연구나 민요 연구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제주의 향토사학자 분들이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특히 <매화도>와 <석국>을 그리신 김석익 선생이 향토사학자예요. 이분을 비롯한 제자, 후예들이 탐라에 대해 방대하게 조사해둔 것들도 많고요. 그 외에 조선 시대 김상헌의 『남사록』 같은 자료도 있어서 밖에서 본 시선, 안에서 본 시선들이 다양하게 남아 있었어요. 포구 기행 같은 것도 아름답고요. 곳곳에 중요한 책들이 많았죠. 



이 책을 시작으로, 좀 더 많은 제주의 역사나 신화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평론 하시는 김유정 평론가의 『제주 돌담』이 좋을 것 같아요. 김유정 평론가는 제주도 내에서 일종의 문화해설사로서 강의도 많이 하고 있어요.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거예요. 




*최열

1956년생. 미술사학자이다.
“그의 이름을 빼고 한국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 그의 책들은 한 권 빠짐없이 한국미술사의 자양분이다.”
한국근대미술사에 누구도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때 최열은 직접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연구의 터를 만들었다. 그는 개척자인 동시에 실행자였다. 그는 또한 당연히 매우 치열한 학자다. 그가 펴낸 책들은 출간 이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참고문헌이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인물미술사학회 회장, 정관 김복진 미술이론상과 석남 이경성 미술이론상 그리고 정현웅기념사업회 운영위원, 월간 『가나아트』 편집장과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의 이력이 그의 족적을 설명한다.



옛 그림으로 본 제주
옛 그림으로 본 제주
최열 저
혜화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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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반유화 “결국 선택은 내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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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직장 상사에게 실망했어요, 거절을 못 하겠어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일상이 불편해졌어요.” 이 주제들에 전혀 해당이 안 되는 대한민국 여성이 있을까?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쓴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은 여자라서 겪어야 하는 일들에 마음이 자주 지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12년간 1천여 명의 내담자를 만나온 저자는 진료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했고 열두 가지의 고민을 토대로 여성들의 마음속 근원을 파헤친다. 

“자신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귀찮게 하고, 분노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진정으로 불행하게 하거나 나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246쪽)”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묻는 일

제목을 보고 책이 궁금해졌다. 굉장히 큰 주제라고 생각했다.

제목이 정해지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아무래도 20,30대 여성들이 주로 하는 고민을 주제로 글을 썼기 때문에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을 선택했다.

여성학을 공부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정신과의사로 일하면서 여성들이 지닌 다양한 상처에 사회 환경 및 젠더 이슈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연은 다 제각각이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고 느꼈다. 페미니즘 이슈를 직접 갖고 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기처럼 페미니즘 이슈가 베어 있었다. 성역할을 강요 받는 데서 느끼는 불편함이 남성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존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있었다. 진료실에 찾아오는 분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세계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고통이 발생하는지, 그 고통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탐색해야 했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여성학을 공부했다. 

진료에도 영향을 미쳤나?

물론이다. 새로운 생각들이 생긴 건 아니지만, 비언어적인 형태로 막혀 있었던 부분이 깨끗하게 설명됐다. 이를 테면 대상화, 감정노동, 교차성, 가부장적 배당금 등의 개념들이다. 정신의학(특히 정신분석)과 여성학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 사회에서 미덕으로 여기는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왜 그런 마음이 들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일은 자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다. 

첫 번째로 다룬 주제가 ‘결혼’이다. 결혼을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인생의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를 파악하려면 ‘세분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상은 보통 개인이 할 일들을 패키지로 제안하지만 그것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결혼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안에는 너무 많은 의미가 들어 있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고 싫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누군가 함께 사는 것이 싫은 건지, 되돌리기 어려운 계약을 하기 싫은 건지, 책임이 늘어나는 것이 싫은지, 누군가가 내게 의존하는 것이 싫은지, 결혼한 여성에게 기대하는 성 역할이 싫은 건지. 결혼이라는 단어를 잘게 나눠 따로따로 생각하면 내가 원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들이 선명해진다. 과거에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취할 것은 취하고 거부할 것은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있다. 

주변으로부터 지나친 조언을 들어야 할 때, 곤혹스럽기도 하다.

자신은 결혼을 했으면서 ‘결혼하면 끝장이야’라는 사람도 있고, 아무것도 책임져줄 수 없으면서 ‘결혼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의 생각이 아니고 나의 선택이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사람도 내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결국 모든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 이 사실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여성들은 관계로부터 얻는 스트레스가 많다. 특히 갈등을 많이 두려워하는 경우,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사실 갈등을 줄이는 능력, 즉 다른 이의 마음을 짐작하는 능력과 인내심은 아무나 갖추기 어려운 귀한 역량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자신에게 소중한 자원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과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무조건 참으면 겉으로는 갈등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마음속에는 여전히 갈등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거절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이 거절을 편안하게 여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절하고 거절을 받을 때, 여기에 수반되는 긴장감, 서운한 감정은 반드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이 데미지를 없애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데미지를 갖고 가는 게 중요하다. 원초적으로 버림받는 것에 관한 공포, 소멸되는 공포가 큰 사람들에게는 안심시켜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다. 그리고 이 상황에 처한 것은 내 탓이 아니라는 것, 내 탓은 아니지만 선택은 내가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감수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거절을 한다고 이 관계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괜찮다.”(92쪽)고 했다. 

어떤 선택이든 다 거기서 거기라는 뜻은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삶은 계속되고, 내 앞에는 또 다른 새로운 기회들이 주어진다는 의미다. 선택의 결과물이 처참한 크기로 삶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 믿음을 키워간다면 신경증적 갈등으로 겪는 고통을 줄 일 수 있다. 그리고 속상한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을 미워하기보다는 일단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그 이후에 나 자신과 긴밀히 대화하고 대책을 의논하는 것이 현명하다. 

열한 번째 주제는 ‘남자친구의 질투’다. 먼저 직장인이 된 여자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자의 연애. 의존과 열등감 사이에서 관계가 틀어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볼 문제는 무엇일까?

나의 기분, 마음을 존중하는 일이다. 이 연애에서의 나 자신이 마음에 드는가?를 떠올려봐야 한다. 상대가 열등감을 느낀다는 건, 그 사람에게 발생한 감정이다. 나의 성취가 상대에게 미안한 일이 될 필요는 없다. 또한 건강한 갈등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갈등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 잘 맞는지가 연인 관계를 결정한다. 겉으로 갈등이 없다는 건, 어쩌면 한쪽이 무언가를 감내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관계에서 상대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조마조마해하거나, 떠날까 봐 자신의 진심을 숨겨야 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관계에서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보다는 “나를 제대로 잘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가 전제여야 한다. 

가혹한 가족 안에서 자랐지만, 양육자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여성들도 많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하는 것이 현명할까?

일단 죄책감을 느끼는 건, 실제 죄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죄책감은 명시적인 명령이나 억압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면서 은밀하게 사람을 조종하기 때문에, 이 감정을 잘 살펴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상대가 의도적으로 죄책감을 유발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는 갖지 않아도 되는 죄책감이 우리를 움직이게 그냥 둔다면, 하지 않아도 되는 희생과 불필요한 자기 처벌, 그리고 그것에 대한 새로운 분노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자신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분노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진정으로 불행하게 하거나 나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주는 것이 좋다. 이 과정이 어렵고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면 이 불편함을 중요한 주제로 삼아 시간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또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가정 환경에 놓인 경우라면, 가족에게 받는 대우와 자신의 가치를 분리하기 위해 안전을 확보하고, 심리적, 경제적, 관계적 자원을 키울 필요가 있다. 

덜 예민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 있다면?

내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을 일부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감정이 부끄럽고 별로이고 뭔가 찝찝하고 불편하고 이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는 훈련을 하면 좋다. 뭔가 오글거리는 이 감정, 2차적으로 따라오는 내 감정들을 바라봐야지 원인을 알 수 있다. 요령은 없다. 상담을 받는 일이 아닌 이상, 나만의 시간을 가진 상태에서 고요하게 내 감정을 써보거나 정리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중복돼서 찾아오는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타인과 비교를 많이 하는 사람의 경우, 행복감을 누리기가 어렵다.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만 중요한 건, 내 안의 경쟁, 질투심 같은 감정을 제대로 봐주고 인정해주는 일이다. 비교하는 마음이 들어오면 누구나 속상하다. 하지만 이 부정적인 마음들을 덜 미워하는 사람은 좀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식이 있다면?

상대의 상황에 깊이 공감하되, 뭔가를 더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된다. 심리적으로 충분히 공감해주고 ‘네가 힘들 때 나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사인만 줘도 상대는 큰 위로를 느낀다. 지나친 감정이입과 동일시는 진정한 공감과 다르다. 상대가 경험하고 느껴야 하는 몫이 있는데, 그 몫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자기 자신을 너무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에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아서 의아했다. 많은 심리서가 자존감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러 안 쓰려고 노력했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너무 고정관념으로 익숙해진 나머지 그 이상의 생각으로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 학술서가 아니기 때문에 꼭 써야 할 경우에는 자신감으로 대체했다. 

인생 신조가 있나?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을 대비하라”는 말을 좋아한다. 마음껏 소망하되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 책이 굉장히 잘되기를 희망하는데 또 그렇지 않아도 하나의 에피소드이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처받기가 두려워서 소망을 안 하는 건, 즐거운 삶이 아닌 것 같다. ‘이번 일이 잘되지 않으면 끝장이야’ 같은 마음을 갖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기 자신을 너무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의심하는 역량을 자신에 대해서 순수하게 호기심을 갖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약간 틀면 어떨까 싶다. 의심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의심을 물음표로 바꿔서 자신에게 던지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부속 의료원에서 수련했다. 12년간 1천여 명이 넘는 내담자를 만났고, 여성들이 지닌 다양한 상처에 사회 환경 및 젠더 이슈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다. 이 문제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에서 석사를 수료했다. 현재 광화문에 있는 병원에서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위주로 진료하면서, 내담자들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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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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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학교에 가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아이들 마음부터 챙깁니다』는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마음의 문제를 겪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정신과 의사 하지현이 보내는 위급 신호다. 학교에 가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아했던 아이들이 “차라리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아이들 마음에 생긴 빈틈을 발견했다는 하지현 교수. 그는 학습 공백만큼 중요한 마음 공백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실물, 현실 공간에의 접촉은 필수적입니다. 온라인, 더 나아가 버추얼 리얼리티로 구현한다 해도 그것은 재현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이버가 아닌, 물리적으로 확보된 공간에서 아이들은 모여서 놀고 공부하고 떠들고 또 혼도 나고 괴롭힘도 살짝 당하면서 경험을 쌓아 갑니다. 지식을 쌓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경험의 축적입니다. (44쪽)



‘차라리 학교 가고 싶다’는 아이들 

지금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어요. 언제부터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작년 11월 즈음이요. 계속하던 생각이라 쓰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어요. 현상을 짚어주는 책이라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많은 분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밀도를 낮추려고 노력했어요. 

제목 보고 ‘아차’하는 부모님들이 많지 않을까 싶었어요. 코로나 19가 시작되고 학습에만 신경 쓰느라 아이들의 마음은 어떤지 살피지 못한 것 같아요.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것 같아요. 아이들 마음의 구멍이 뚫리고 있다는 걸 조금씩 알기 시작했거든요. 작년까지만 해도 교육청에서도 아이들의 학력 격차만 신경 쓰는 분위기였잖아요. 그런데 이제 학습뿐만 아니라 아이들 마음이 어떤지를 봐야하지 않나 싶었어요. 

진료실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면서 위기를 감지하셨다고요. 

코로나 시국 초반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진료실에 새로운 멤버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한동안 진료받으러 오지 않았는데 3년 만에 오는 아이도 있었고요. 학교에 못 가게 되면서 생활 리듬이 무너진 아이들이 10월 초 즈음에 한꺼번에 와서 대동소이한 이야기들을 하는 걸 보면서 느꼈죠. 

코로나 초반에는 학교에 가지 않아서 좋아했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차라리 가고 싶다”고 했다고요. 

코로나 초기에는 저도 아이들을 대하기 편했어요. 저한테 오는 아이들은 대개 예민하고 인간관계를 힘들어하거든요. 친구들이 자기를 안 좋게 볼까 봐 두려워서 학교 가기 싫어하고요. 그래서 학교에 보내는 게 제 일이었어요. 그런데 공식적으로 학교에 안 가도 되니까 아이들도 저도 편해진 거죠. 그렇게 편하게 1학기를 지내는구나 싶었는데 코로나 시국이 점점 길어지고, 아이들이 집에 계속 머물면서 힘들어지니까 차라리 학교 가고 싶다는 거에요. 친구들 만나는 기회가 줄어드니까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모르더라고요. 기존의 방법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거죠. 

정말 그렇겠네요.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으니까요. 

예전 같으면 학교 끝나고 같이 집에 가면서 친해지고, 가는 길에 간식 사 먹고 하면서 관계를 이어 나가는데 지금은 하기 힘들어졌잖아요.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면서 집의 밀도가 높아지니까 부모님들도 예민해지고요. 그리고 실제로 사회, 경제적인 여건이 안 좋아진 집도 얼마나 많아요. 이렇게 상황이 힘들어지면 부모님들이 날카로워지고 아이들한테 영향을 미치죠. 

학교가 학습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맞아요. 학교에 가면 환대해 주는 선생님이 있고 따듯한 밥 한 끼를 먹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은 안전하죠. 부모님들도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안심할 수 있고요. 학교가 학습뿐만 아니라 돌봄 기능도 하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아이들이 사회성을 익힐 기회가 배제된다는 거예요. 학교에 가서 또래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자극도 받고, 사회성도 길러야 하는데 전혀 할 수 없잖아요.

 


포스트 코로나, 경험할 기회가 점점 사라진다     

학교의 역할을 가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요. 가정 내에서 규칙을 정해서 실행하게 하면 도움이 될까요? 

물론이죠. 대단한 규칙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잘 때 자고, 먹을 때 잘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가능하면 학교 다닐 때와 같은 리듬으로 하면 좋고요. ‘나는 야행성이야’ 하면서 남들 잘 때 게임하고 부모님 출근하면 자다가 일어나서 밥 먹고 이러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고 가급적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야외활동을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가까운 곳이라도 가는 거죠. 자전거를 타든, 줄넘기하든 집에만 있지 말고 최소한 등하교 하는 거리 만큼은 움직여야 해요. 

듣고 보니 정신 건강을 위해 성인에게 권하는 것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뻔한 이야기죠. 그런데 잘 안 지켜요. 코로나 시국에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 가정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사소한 규칙들을 잘 지키고 있어요. 규칙이라는 건 결국 일종의 프레임을 만들어주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딱딱한 물건은 아무 포장지에 싸서 줘도 돼요. 쉽게 깨지거나 흐트러지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두부같이 부드럽고 약한 건 단단하게 포장해야 으깨지지 않잖아요. 마찬가지예요. 멘탈이 단단하면 규칙이 없어도 별일 없겠죠. 그런데 아이들의 멘탈은 단단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짜인 틀을 줘야 해요. 

책에서 ‘선을 지키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줘야 해요. 규칙이 주는 힘이 분명히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기본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기본을 지켜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진료실에 오는 부모님과 아이들에게도 기본을 강조할 때가 많은데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세요. (웃음)

운동회, 수련회, 졸업식 같은 리추얼도 중요하다고요.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학교에서만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을 어떻게 대체하고 보상해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도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소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작은 규모로 하더라도 리추얼들을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 리추얼을 ‘기억의 핀포인트’라고 표현하기도 했어요. 기억의 핀포인트가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요? 

기억의 핀포인트는 시간의 연속성에서 중요한 점들을 만들어 주거든요. 그 점이 얼마나 촘촘한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을수록 시간이 길게 흐르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첫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에 앨범 한 권을 만들었거든요. 다 새로우니까 사진 찍을 일도 많은 거예요. 둘째 아이 때는 안 그랬어요. (웃음) 연세 있는 분들이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비슷해요. 새로운 게 없으니까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가서 기억도 안 나죠. 쌓인 경험과 시간이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나를 구성한다면 인생의 적재적소에 핀포인트들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생일이나 기념일이 있는 거고요. 특히 경험을 공유하고, 공통의 리듬을 만들 수 있는 운동회, 수련회 같은 행사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공부를 학습과 경험으로 나눠서 설명했어요. 경험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요. 

예전에 연애 강의하시는 김지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이곳저곳 연애 특강을 다니면 제일 재밌게 듣는 사람들이 판, 검사들이래요. 그분들한테는 김지윤 선생님이 알려주는 내용이 금과옥조 같은 거예요. 비교적 공부만 열심히 하신 분들이 많으니까, 재밌는 거죠. 그런데 대형마트 같은 곳에 가서 강의하면 ‘뭐, 이런 걸 강의하냐’는 반응이 많다는 거예요.

다 아는 내용이라는 거죠? (웃음) 

그렇죠. 연애는 사실 경험의 영역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공부보다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일, 연애 같은 게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자원인데 지금 아이들이 그런 걸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공부에는 두 가지 영역이 있는데 하나가 밖에 있는 지식을 가져오는 것, 수학 문제를 푼다든지 물리 법칙을 공부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에요. 

그렇게 중요한 경험의 기회가 지금 줄어들고 있는 거고요. 

자전거 타는 법을 아무리 공부해도 타보지 않으면 소용없잖아요. 요리도 그렇고요. 사회성, 타인과 관계 맺는 일, 감정 읽기 다 마찬가지예요. 감정에 대한 책 얼마나 많아요. 그렇지만 그거 본다고 다 감정을 잘 다루는 거 아니잖아요. 실제로 느껴봐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학교와 같은 공간에서 타인과 만나면서 경험할 수밖에 없어요. 

집에서 아이들과 말할 때 또박또박 천천히 이야기하라고 강조하기도 하셨죠.  

요즘 아이들 말이 늦대요. 원래 입 모양을 보면서 말을 배우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친구들하고 마스크 쓴 채로 소통하니까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비슷한 언어 수준을 가진 친구들하고 대화할 때 말이 느는 건데 그게 안 되니까 느릴 수밖에요. 그래서 마스크 벗고 지내는 집에서라도 최대한 아이와 얼굴 보면서 이야기하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면서 입 모양을 보여주라고 강조해요. 

몇 없는 ‘휴먼 터치’의 기회를 제대로 쓰라는 말이네요. 

그렇죠. 안전한 공간에서는 안전하게 최대한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공부 잘해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나갈 거예요 

자녀의 실패 공포는 부모의 실패 공포에서 기인한다고요. 결국 아이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하기 전에 자신을 잘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죠.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도 같이 성숙한다고 하잖아요. 아이한테 자꾸 뭔가를 시키는 건 결국 부모 자신이 불안해서 그런 거예요. 자기 불안을 견디지 못하니까 조바심을 내고 아이한테 자꾸 뭘 시키는데 그렇게 하면 나는 덜 불안해져요. 뭔가를 했으니까. 

아이한테 무언가를 시키면서 덜 불안해진다는 건가요?

악순환이에요. 부모는 자기가 불안하니까 아이한테 자꾸 뭔가를 시키고, 아이는 그걸 고스란히 받아서 감당하는 거예요. 조바심을 내는 부모는 아이와 같이 뛰어요. 자기가 선수나 코치가 되어서 아이랑 모든 걸 같이 하는 거죠. 아니면 아이가 자기 작전대로 살게 하는 감독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부모는 응원단이 되어야 해요. 시합에 나갈 수 있게 준비하는 것까지는 해줘야 하지만, 일단 나갔으면 응원만 해주는 거죠. 아이를 키울 때는 점점 힘을 빼는 기술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점점 내 비중을 줄여가면서 다소 부족하고 불안해 보여도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교육 방식이 필요하다고요.   

앞으로 웬만한 일은 인간보다 AI가 더 뛰어날 거라고 하잖아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지금처럼 다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그중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던 시대는 지나간다는 거죠. 그러면 AI랑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결국 ‘휴면 터치’거든요. AI에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게 감각, 감정, 유연성 같은 것들이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할 수 있는 것들이요. 앞으로는 이런 능력이 중요하다는 거죠. 

<놀면 뭐하니>를 예로 들어 변화할 미래를 설명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소수의 정규직과 다수의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사회를 예상하셨죠. 

유재석 씨를 비롯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모두 고정이었잖아요. 이른바 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놀면 뭐하니>를 보면 유재석 씨만 고정인 상태로 멤버가 계속 바뀌어요. 얼마 전에 <놀면 뭐하니>에 박명수, 정준하 씨가 게스트로 나오면서 그런 것에 대해 서운함을 비치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놀면 뭐하니>가 앞으로 변화할 사회를 선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지금도 ‘긱 노동자(gig worker)’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앞으로는 중간 단계가 없어지고 가장 위에 있는 그룹과 유동적인 그룹만 존재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중요해질 능력으로 리터러시, 에디팅 능력을 꼽았어요. 읽으면서 이 두 가지를 모두 훈련할 수 있는 건 결국 책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럼요. 결국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인데 요즘에 ‘5분 순삭’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스낵 같은 지식이 인기잖아요.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는 일도 해야겠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걸 복잡하고 어렵게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 과정이 생각의 깊이를 만들기도 하고, 그게 바로 인간이 고유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학교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리얼리티 자체가 귀해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SNS가 더 활발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이들의 SNS 이용도 훨씬 빨라지는 것 같은데 아이들이 일찍 SNS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판단적 근거보다는 존재하는 현상으로 보는 게 맞고요. 다만 적절한 수준에서 할 수 있도록 조절할 필요는 있죠. SNS 하는 걸 막을 순 없지만, 하면서 지켜야 할 행동, 하면 안 되는 행동, 흔히 디지털 리터러시라고 하는 디지털 세계의 문법, 예의와 도덕을 알려줘야 해요. 그리고 SNS에 쓰는 건 영원히 남는다, 10년 후 너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고 주의도 줘야 하고요. (웃음)  

K방역 현상에서 순응을 잘하는 한국인의 특징을 발견하셨더라고요. 

장점이기도 하고 아쉬운 점이기도 하죠. 우리 사회가 오래전부터 규범적이고 순응적인 성향을 바꾸자는 노력을 해왔고,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원점으로 돌아갔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이 방역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잖아요. 순응 잘하고 규범적인 나라들이라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도 한동안은 이런 태도가 계속 유지될 것 같은데요. 그러면 그간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바꾸려고 했던 것들, 이를테면 창의성을 키우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워지겠죠. 어떤 일을 제안할 때도 새로운 사람을 찾기보다는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보장된 사람을 찾을 거고요. 이미 자리 잡은 사람한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시작하는 사람들은 힘들어지겠죠.



예측 불가능한 코로나 시대를 잘 사는 비법으로 1주일, 1개월로 분절해서 작은 계획을 세우라고 했어요. 교수님의 계획은 어떤가요?

일단 새 책 나왔으니까 홍보해야죠. 6월 말에는 출간 관련 일정이 있어서 부산에 가는데 간 김에 짧은 여행을 하고 올 생각이에요. 그리고 다음 주에는 종로에 있는 ‘보안 스테이’에 가요. 그 공간을 에어비앤비로 운영한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 이용해 보려고요.




*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병원과 학교에서 상담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했고, 2008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심야 치유 식당』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공부 중독』(공저) 『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 『불안 위에서 서핑하기』 『고민이 고민입니다』 『정신과 의사의 서재』 등을 썼다.




포스트 코로나, 아이들 마음부터 챙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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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벌레 먹고 짓무른 복숭아 같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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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어떤 순간은 시가 된다. 비가 많이 오던 지난여름, 신미나 시인은 불어난 홍제천을 보며 복숭아를 먹었다. 우연히 벌레가 잘 익은 과육을 파먹다 알을 낳고 죽은 걸 발견했다. 벌레에게 ‘높이’는 복숭아라고 생각하며 쓴 문장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시인은 벌레의 일생을 떠올리며 짓무르고 아픈 삶을 응시한다. 모두가 긴 불안을 통과하는 지금, 신미나 시인과 묵묵히 삶을 견디는 일에 대해 말했다.

신미나 시인은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로 전통적 서정과 현대적 감성이 어우러진 시세계를 선보였다. 그는 ‘싱고’라는 이름으로 시와 웹툰을 결합한 ‘시툰’을 그려 독자들에게 시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는 시인이 7년 만에 내놓은 시집으로, 사라진 존재들을 조용히 복기하며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담겼다.



아픈 진실을 외면하면 기만이 될 수 있다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이후 7년 만에 시집을 내셨습니다. 두 번째 시집인 만큼 또 다른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나’라는 테두리를 많이 깨고 싶었어요. 자의식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첫 번째 시집의 마지막 시가 「무르다는 말」인데요. 홀로 서서 꺾은 꽃이 미지근해져서 무를 때까지 쥐고 있는 구절이 나와요. 그게 첫 시집의 인상이었어요. 내 감정을 정확히 들여다보기 위한 작업. 그런데 두 번째 시집은 ‘나’를 깨고 나와 타인에게 열려 있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대상을 너무 꽉 껴안지도 않고, 느슨하게 포옹하는 느낌이 된 것 같아요.

첫 시집에 비해, 언어가 단순해지고 가라앉은 느낌도 들어요. 

제 시는 더하기보다 ‘빼기’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30편 정도 덜어내면서 너무 욕심내지 말고 알맞게만 담아내자 했어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한쪽에 납을 끼우는 구식 저울로 콩 무게를 달았거든요. 저도 그렇게 시를 쓸 때 감당할 수 있는 언어인가를 재보는 것 같아요. 풍부하게 쓰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소화할 수 있는 것만 가져오자 하면서요. 

시집 전반에 상실과 죽음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산다는 게 산낙지 한 마리를 받은 것 같을 때가 있잖아요. 삶이 주는 당혹감, 낯섦, 기이함. 산낙지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라는 종도 기이하죠. 결국 우리는 죽은 것을 먹으며 살려고 애쓰니까요. 죽음을 밟고 살아가는 생을 떠올렸어요. 이 시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지만, 저는 그런 걸 느끼면서 사는 것도 좋더라고요.

“노래를 쓰고 싶었는데, 쓰고 나니 기도가 됐다.”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열린 낭독회에서 하신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삶과 함께 가는 시를 쓰겠다고 들여다보니, 인간종의 삶이 너무 아름답고 잔인한 거예요.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고, 겨우 버티기도 하고, 어떤 삶은 죽음 앞에 서 있기도 하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진심은 자기가 믿고자 하는 심정에 가까운데, 진실은 사실에 가깝다. 저는 진심을 노래하고 싶었던 건데, 제가 본 건 사실에 가까워서 기도가 된 게 아닐까요. 아픈 진실을 외면하면 기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지켜보고 옆에 있는 거죠. 그래서 벌레도 먹고 짓무른 복숭아 같은 시집이 된 것 같아요. 마냥 예쁘지 않지만, 애벌레에게 높이가 되어 주는 복숭아.



다들 각자의 높이를 갖고 있는 거예요

제목의 ‘높이’라는 단어가 시집을 덮을 때까지 긴 인상을 주더라고요. ‘시인의 말’에서 쓰셨죠. “맨바닥에서/제 무게를 이고 있는 그릇의 굽//그 높이를/당신이라 불러도 좋겠습니까.”

시집을 묶으면서 계속 ‘높이’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침상에 누워 생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셨거든요. 그때 어머니의 눈높이가 달라지더라고요. 더 이상 일어서서 걸을 때와 다른 시야를 갖게 된 거죠. 할 수 있다면, 어머니의 높이를 넓혀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높이’가 다시 보였어요. 그릇에도 아주 작지만 요 만큼 굽이 있잖아요. 다들 각자의 높이를 갖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는 「복숭아가 있는 정물」의 한 구절이기도 해요.

작년에 비가 많이 왔잖아요. 집 앞 홍제천에 물이 불어난 걸 보면서 복숭아를 먹었는데, 그 안에벌레가 복숭아를 파먹다 죽어 있는 거예요. 애벌레에게 복숭아는 높이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다가 그 구절이 나온 거예요. 결국, 벌레는 죽었지만 알을 남기고 생명으로 이어지잖아요. 예전에는 삶과 죽음이 멀리 있는 것 같았어요. 요즘엔 결국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할머니와 어머니의 존재가 자주 등장해요. 할머니는 탱화의 천수관음이기도 하고 설화 속 마고할미로 나타나기도 하죠.

사실 할머니는 어머니이기도 해요. 돌아가신 할머니를 잘 보내드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를 이상화된 신화적 존재로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제가 상상한 할머니라는 상징은 오롯이 개인으로서의 삶이에요. 제가 할머니에게 “잘 살다 가세요”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할머니도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숨 붙은 한, 어찌 됐건 이 삶을 잘 이고 갑시다’하며 힘이 되는 거고요. 주변에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 지인이 있었는데요. ‘살아 있는 동안 잘 살아 보자. 이대로도 괜찮으니 같이 잘 살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히로시마 단풍 만주」, 「거인」 같은 3부의 시를 읽을 때, 현실의 사건이 연상되기도 했어요.

세상의 폭력을 안 볼 수는 없었어요. 삶을 충만한 자리로 끌어올려 주는 시도 있겠지만, 다른 면은 덮어버리고 한순간의 충만만을 이야기하는 건 같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세월호 같은 사건들 앞에서 다들 이렇게나 아픈데요. 물론 직접적인 사건을 끌어와서 윤리적인 해답을 제시하려 했던 건 아니에요. 그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최소한의 언어로 쓰고 싶었어요. 알레고리를 이용해서 고통을 보여주는 쪽으로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존재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자연히 7년 간 일어난 일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고통스러워서 똑바로 직시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있죠.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참으로 막막해지기도 하고요. 참 우리에게 잔인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앞에서 시가 무슨 힘이 있나 싶고요. 그렇지만 누군가는 바라보고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집을 끝까지 읽으면 ‘눈물 없이 우는’(「사랑의 순서」) 담담한 표정이 떠오릅니다. 시에서 담고자 하는 태도가 있나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묵묵히 견디는 삶이 눈에 들어와요. 해설에서 양경언 평론가가 ‘세상의 시작이 아니라 세상의 지속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고 써 주기도 했는데요. 비가 많이 왔을 때, 홍제천에서 물풀이 물살에 휩쓸려서 한쪽으로 휘는 걸 봤어요. 물풀이 센 물살을 거스를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버티는 거죠. 주변을 보면, 대개의 삶이 그런 것 같아요. 수동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선택한 삶의 자세일 수도 있죠. 하루하루 견디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내 삶의 내용이 시와 함께 갔으면 좋겠다

첫 시집과 마찬가지로, 설화나 고유명사의 질감이 옛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현대적인 것과 옛스러운 정서’를 조합한다는 말도 많이 들으셨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옛스러운 것과 가까웠어요. 마을에서 굿을 보면서 자라기도 했고요. 체득된 것이니 자연스럽게 시로 나오는 것 같아요. 근데 농촌이나 변두리의 소재가 정말 옛날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엄연히 같이 사는 삶인데 뒤처지고 과거의 것으로 보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시골 가서 그렇게 잘 놀면서 왜 이 소재는 낡은 것이라 보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오히려 저는 다시 보고 싶어요. 옛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재에 섞여서 같이 살고 있는 모습이요. 

시 쓰는 마음을 어떻게 예열하시나요?

오히려 저는 예열보다 가열된 마음을 식히는 편이에요. 어떤 일은 잔상이 오래 남아서 복기할 때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열을 좀 뺀 뒤에 쓰려고 하죠. 시 쓰는 동안에는 음악은 잘 안 들어요. 음악은 너무 감정에 빨리 끌어올려서 반칙 같은 기분이 들어요.(웃음) 대신 그림을 보죠.


케테 콜비츠,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1903)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화가 ‘케테 콜비츠’의 그림을 자주 떠올리셨다고요. 

예전에 인사동에서 전시를 보다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전쟁으로 아이를 잃고 그린 자전적인 작품이 있는데요. 단색으로 된 투박한 판화인데, 정말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예요. 묵묵히 삶을 이끌어가는 존재들을 영웅처럼 그리지 않고 최소한의 재료로 표현했어요. 그 화가는 삶의 내용이 그림이 된 거죠. 저도 욕심이지만 ‘내 삶의 내용이 시와 함께 갔으면 좋겠다, 시를 너무 높은 곳에 두지 말고, 주변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삶과 함께 가는 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굉장히 무서운 일이기도 하죠. 삶을 시로 쓴다는 건 때로는 잔인한 일이잖아요. 어차피 다 실패해요.(웃음) 그렇지만 해보고 싶어요. 



독자들이 시집을 어떻게 읽어주었으면 하나요?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과거와 함께하죠. 길을 가다가도 모래에 박힌 사금파리처럼 옛날 기억들이 떠올라 같이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이 시집에도 예전의 기억들이 현재에 드문드문 섞여 있어요. 혹시라도 상실을 경험해야 했던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떠올리면서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미나(싱고)

1978년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를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이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시툰 『詩누이』 『안녕, 해태』(전3권) 등이 있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신미나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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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우리들 속으로 훅 들어온, 건축가 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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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출연해 인지도를 얻은 지식인은 꾸준히 있었지만 유현준 건축가만큼 정치, 경제, 문화 다방면에서 언급되며 우리들의 구체적인 생활 안으로 훅 들어온 사람이 있을까 싶다. 우리가 매일 지내는 집, 학교, 회사 같은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파트, 사무실, 학교를 그렇게 만든 국가와 인간에게도 그의 시선이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공간의 미래』를 출간한 그는, 정치가의 위선에 속으면 안된다고 경고하며 정부의 바보 같은 정책 일부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살아야 할 공간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강하게 역설한다. 어느덧 그냥 뛰어난 건축가가 아니라 ‘우리들의 건축가’가 된 유현준 홍익대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그가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도산공원과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됐다.



욕을 먹더라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지난해 펴낸 『공간이 만든 공간』 이후, 다음 책은 영화 이야기가 될 거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코로나 시대 이후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의 미래』가 나왔습니다. 

지난 1년간 제게 질문하는 분들 대부분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건축 공간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물었어요. 거기에 대해 답변도 하고 칼럼도 쓰면서,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주제로 글이 많이 모여서 이걸 먼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까 이미지 저작권이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웃음) 이번 책에도 영화 장면을 사진이 아니라 삽화로 넣은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쓴 책들이 주로 현상에 대한 분석과 정리였다면, 이번 책은 앞으로의 전망과 주장까지 있어서 읽는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쓰면서는 어떠셨나요? 

집이나 교회, 학교처럼 이야기 소재는 예전과 같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 달랐습니다. 특히 후반부는 지금 정부의 정책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조금 부담이 되긴 했어요. 건축과 사회를 얘기해야 하는데 너무 정치적인 것으로 비치면 불필요한 논쟁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조심스러웠죠. 색깔을 좀 빼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건축 이야기나 집 얘기를 하다 보면 부동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정치인들이 주의 깊게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강의를 해달라거나 만나자는 요청도 많을 것 같습니다. 

보통 순수한 목적으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가요.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있을 때에는 안 가죠. 최근에도 함께 사진 찍자, 유튜브에 같이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는데 가급적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유시민 작가님이 정치인과 거리를 두는 게 좋다고 조언하신 적이 있는데,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1장이 ‘마당 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입니다. 독자들이 관심을 갖게 하려고 친숙한 주제를 1장으로 배치하죠. 보통 학교나 거리를 1장으로 두는데 이번에는 아파트를 가장 먼저 이야기했어요. 아파트를 주제로 제가 기획하고 있는 다른 것도 있어요. <아파트의 미래>라는 다큐멘터리 기획서를 넷플릭스에 제안해서 내년에 만들어볼까 해요.

발코니가 왜 필요한가요? 

발코니가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이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아요. 자연을 사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우선 현대 도시에서는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공적인 공간 밖에 없으니까 불편하죠. 옷 차려입고 나가야 하고 멀리 있으면 더 안 가게 되고요.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발코니가 있으면 단독주택의 장점과 아파트의 장점을 다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로 설계에 참여하신 ‘아페르 한강’을 소개했어요. 

높은 분양가에도 매진됐다고 들었어요. 우리나라에 부자가 많더라고요. 사실 그렇게 비싸게 분양할 줄 몰랐어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30% 정도는 더 비싸게 분양한 것 같은데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합니다. 저는 그 아파트의 모습이 우리나라 중산층들이 살 수 있는 아파트여야 한다고 보거든요. 어려운 문제가 아니에요. 건축 법규를 조금만 바꿔주면 알아서 그렇게 아파트를 지을 거라고 봅니다. 공사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요. 



9장 ‘청년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월세를 21세기 소작농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이런 표현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을 안 사는 라이프가 맞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우리 큰아들도 별로 야심이 없어요. 젊은 세대 일부의 모습이기도 한 거 같아요. 집을 사는 것이 자기에게 짐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결혼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고요.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있으니까 전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들이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지금 20대의 선택이 40, 50대에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명한 건 그 선택이 지구상에서 본인이 마음대로 하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자본을 포기하는 것이며 그만큼 자기의 권력이 낮아지는 것이고, 또 그 권력을 찾기 위해 다른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의존적이 되어야 하는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 문제를 장밋빛으로 포장하고 그것을 자기가 해결해줄 것처럼 떠드는 정치인들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걸 누군가는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아무도 그런 얘기를 대놓고 안했던 거 같아요. 말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고요. 제가 책에서 목사의 권력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쓰기도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의 큰 흐름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욕을 먹더라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정신 차리라고요.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죠. 하지만 아닐 거라고 봐요.(웃음)

집을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집을 산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누구라도 집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게끔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구 자체를 안 하는 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정치가를 움직이는 사람은 시민이에요. 시민들의 투표죠. 시민들이 건축을 보는 눈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정치계도 바뀌고 행정계도 바뀌고 다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출 규제 등으로 예전보다 집 사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에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해요. 대출을 풀어주면 집값이 오를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을 압력밥솥에 자주 비유하곤 하죠.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고, 압력을 빼버리면 밥이 안 지어지니까요. 투 트랙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한쪽에서는 공급을 계속 늘리면서 가격이 떨어질 때 대출도 풀어주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지금 쓸 수 있는 카드가 대출 규제 밖에 없는가. 그것은 지난 10년간 공급을 안 해서 그래요. 인구가 줄 것이기 때문에 집을 더 지을 필요가 없다고 예측해서 집을 안지었단 말이죠. 10년 동안 안 지은 집을 하루아침에 지을 수는 없으니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대출 규제밖에 없는 거고요. 지금이라도 공급을 늘리면서 대출을 서서히 풀어주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합니다.

건물 짓는 데 예전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세상 사람들을 규칙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규칙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저는 후자에 속할 것 같아요. 무정부 상태로 가자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는 규제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뭘 보고 알 수 있냐 하면 건물 하나 짓는데, 너무 많은 공무원의 도장을 받아야 해요. 거짓말 안 하고 행정 프로세스가 두 배 이상 늘었어요. 예전에는 몇 달이면 끝날 것이 지금은 7, 8개월 걸려요. 숟가락 얻는 사람이 많아진 거라고 볼 수 있죠. 공무원들이 월급 받고 권력을 키우기 위해서 또 다른 루트를 만들고, 면피를 하기 위해 또 만들어요. 사회가 점점 비효율적이 되는 거예요. 그런 걸 과감하게 없애고 앞단계로 진화하는 사회적 발전이 필요한데 그게 아직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가는 거 같아요. 

직설적으로 얘기하시는 편인 것 같아요. 

직설적인 편이에요. 안티들도 있겠죠. 예전에는 이런 얘기들을 가급적 안 하려고 했어요. 욕먹기 싫으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고 저 역시도 그래요. 하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자꾸 엮이게 되는 것 같아요. 말을 괜히 시작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후 바뀐 인생

2018년부터 매년 책을 내고 계십니다. 전업작가들도 그렇게 하기 힘든데, 비결이 있나요? 

쓰는 것 자체에 대한 즐거움이 큰 거 같아요. 건축 일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거든요.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안 되는 부분에 대한 울분을 책에 토해놓는 거예요.(웃음) 글의 제일 좋은 점은 아무런 법규도 없고 제 생각을 찬찬히 들어주는 독자가 계시면 계속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심지어 독자가 없어도 글은 쓸 수 있는 거고요. 그런 것이 글쓰기의 장점인 것 같아요. 

을유문화사에서 계속 책을 내고 계십니다. 

인세를 안 밀리고 잘 주세요.(웃음) 을유문화사에 감사한 점이 지금의 유현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주셨어요. 처음 저한테 오셔서 이런 책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 전혀 공감하지 못했거든요. 저보고 인문적인 건축 이야기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저와는 거리가 굉장히 멀다고 생각했고요. 낯간지럽지만 인문건축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셨고, 그래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나왔어요. 그 책 이후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뀐 것 같아요.

어떤 점들이 바뀌었나요? 

그전에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건축 하나였어요. 그런데 건축물은 짓기까지 너무 힘들고 기회는 없고, 공모전 나가면 자꾸 떨어지는 상황이었는데 ‘뭔가 세상에 나의 생각을 표현 하는 것이 건축물 말고 또 있구나, 그들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노인이 될수록 자기 얘기 들어주는 사람이 좋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큰 행복인 거 같아요. 예전에 가까운 친구가 제 생각이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으니까 다른 곳에서는 얘기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어요. 사회를 보는 시각이 너무 급진적이고 그래서 세상이 저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본 것 같아요. 그때는 내가 좀 유별난가 했는데 의외로 아니더라고요. 동조해주는 분들도 계시고요. 껍 질을 깬 느낌이 들어요.

어떤 것을 설명할 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곳을 짚어가며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그 과정 속에서 굉장히 독창적인 이야기가 나오고요. 통섭적인 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의 특징 때문인 것 같아요. 저와 같은 사고 패턴은 제가 건축학과를 졸업해서 가능한 거 같아요. 건축학이라는 것이 문과, 이과, 예체능이 다 포함되어 있거든요. 제가 연세대 건축학과를 나온 걸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교수님들이 본인들 생각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교수님이 강압적이지 않으시니까 학생들끼리 수평적으로 논쟁하고 토론하는 분위기였어요. 자기가 찾아서 알아서 배워야 하고요. 예를 들어 자신이 디자인을 하면 왜 이렇게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 최근에 읽은 책들 등 온갖 걸 다 끌어다 쓰는 거예요. 누구는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누구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저마다 각도가 다르게 나오죠. 제 지론은 건축 책은 읽지 말 자였어요. 건축 책을 읽어서 그 건축가의 생각을 수용하면 나는 그 사람의 아류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온갖 것을 쓸어 합리화하는 과정 속에 저만의 이론을 만드는 거라서 그게 10 년은 힘들고, 20년이 되니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30년째가 되니까 저만의 관점이 생기는 거 같아요.



방송도 많이 하는데, 재미를 느끼시나요? 

방송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 새로운 생각들이 떠올라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요. 만약 제가 학교에 없었다면 책을 못 썼을 거예요.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다 보니까 생각이 정리가 되고 그러면서 좀 더 뭔가 설명을 쉽게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거죠. 그렇게 쌓여서 책으로 정리하고요. 마찬가지로 방송에 나가서 그분들이 저한테 특이한 질문을 하고 거기에 대해 답변하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그런데 이제 자제하려고요. 이미지가 소비된다고 자주 나가지 말라고 주변에서 조언을 해요. 앞으로는 유튜브를 하려고요. 채널을 하나 만들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PD들과 협업하면 또 다른 새로운 가치들이 나오는 장점이 있어요. 그런데 협업만 하면 제 본연의 색깔을 잃어 버릴 수 있고, 원치 않는 걸 할 때도 있잖아요. 지난해 <밀어서 무장해제>라는 프로그램을 했는데 PD님도 좋고 함께 출연한 도티, 이승윤 씨도 너무 좋은데 촬영장에 가면 뭔가 제가 하기 싫은 개그 예능 분위기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좀 어색한 부분이 있어요.

방송 출연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건 언제인가요? 

다른 것보다 대한민국 국민이 건축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부분이에요. 건축가라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이야기가 들을 가치가 있다고 알아주시는 것이 좋아요. 그만큼 우리나라가 성숙해진 것 같고요. 사실 옛날에는 건축이 노가다인 줄 아셨거든요.

그런 정서 때문에 설계비에 인색한 게 아닐까 해요. 

건축가로서 저의 가장 큰 소명은 설계비를 올리는 거예요. 요즘은 세게 부르고 있어요. 그러면 반 이상은 떨어져나가요. 떨어져나간 사람들이 ‘아, 설계비는 비싼 거구나’라고 느낀다면 절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건축 왜 이렇게 후져요”라고 얘기하면 “당신이 설계비를 적게 내서 그래요”라고 대답합니다. 대리석만 바르면 뭐 하냐고요. 건축의 의사결정을 건설회사 상무나 마케팅 분양 담당자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건축을 좋게 만드는 사람이 건축가들이고, 그들이 창의 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좋은 건축물이 나오는 거예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게 서포트할 수 있어야 하고요. 좋은 사람들이 건축으로 모이게끔 설계비를 지불해야 하는 거죠.

건축 설계 하다가 전업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아요. 

함께 일했던 직원 중에 해외로 간 직원이 꽤 있고요. 업종을 바꾸는 경우도 있는데 부동산 소개업을 하거나 심지어 농사 지으러 간 사람도 있고 가구 제작자로 가는 사람도 있어요.



나한테 가장 큰 가치는 자유 

건축으로 상도 많이 타고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고, 왠지 실패의 경험이 없으실 거 같아요. 

너무 많아요. 마흔여덟 살까지 제가 계획한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단적으로 공모전에서 너무 많이 떨어졌어요. 당시에 저만큼 공모전에 많이 낸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서른다섯 살까지 오십 몇 번, 마흔 살까지는 육십 번 정도 낸 것 같은데 그 중에서 사십 번 이상 떨어졌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다 실패죠. 그리고 사실 저는 연세대 교수로 가고 싶었어요. 은사님이 오라고도 했는데 다른 교수님의 반대로 못 갔죠. 저한테는 큰 좌절이었어요. 그래서 홍익대로 가게 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저한테는 너무 잘된 거였어요. 만약 그때 연세대 교수로 갔으면 건축사사무소도 못 열고 책도 출간 못 하고 방송도 못 했을 거 같아요.

인스타그램을 아기자기하게 운영하세요. 

제가 약간 관종이에요.(웃음) 누가 봐주면 좋아하고요. 그러니까 방송을 하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신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할 때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거 같아요. 저한테 가장 큰 가치는 자유입니다. 제가 돈을 버는 이유도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예요. 유명해지고 싶은 것도 유명해지면 돈을 더 잘 벌 수 있고, 그만큼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급적 옷을 벗는 거 같아요. 그럴수록 더 가벼워지니까요. 가급적이면 많은 것을 오픈하고 공론화하고 싶습니다. 

내년 이맘때에도 책을 출간할 계획이신가요? 

지난해 출간한 『공간이 만든 공간』도 다 안 읽었는데 이번에 또 무슨 책을 냈냐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요.(웃음) 내후년에 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빅히스토리 느낌의 책이에요. 예전에 김영하 작가님이 책은 2년마다 한 번씩 내는 것이 좋다고 하셨어요. 3년 넘어가기 시작하면 독자들에게 잊혀지고, 1년 만에 내면, 앞의 책도 안 읽었는데 또 나왔다고 싫어한대요.(웃음) 2년 간격이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및 (주)유현준건축사사무소(Hyunjoon Yoo Architects) 대표 건축사, 미국 건축사. 하버드 대학교, MIT, 연세대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하버드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 후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하였다. MIT 건축연구소 연구원 및 MIT 교환교수(2010)로 있었다. 2013 올해의 건축 Best 7, 2013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CNN이 선정한 15 Seoul’s Architectural Wonders, 2010 건축문화공간대상 대통령상, 2009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제 현상 설계에서 다섯 차례 수상하였다. 2011 한국현대건축작가 16인 아시아전 요코하마 전시, 2010 한국현대건축작가 17인 아시아전 상하이 전시, 2015 멜버른 대학교 한국현대건축작가 초청 전시를 가졌다.

또한 청와대 리모델링 자문과 대한민국 건축대전 심사위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부커미셔너를 비롯한 각종 위원을 역임했다. 재미 시절 작품으로는 『165 Charles Street Apartments, New York』 등이 있고, 2005년 귀국 후 주요 작품으로는 『청운대학교 도서관』, 『테마동물원 ZooZoo』, 『강북삼성병원 종합검진센터』, 『고리원자력 발전소 신사옥』, 『플로팅 하우스』, 『머그학동』, 『쌍달리 주택』, 『청년 일자리 허브/사회적기업 개발센터』 등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공간이 만든 공간』 등이 있다.




공간의 미래
공간의 미래
유현준 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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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맹장미 “용감하고 호쾌한, 결혼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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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한 사람이 결혼으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을 쓴 에세이 『결혼 탈출』을 읽고, 독자들은 맹장미 작가의 안부를 궁금해했다. 행복의 필터를 씌운 결혼 이야기는 많지만, 이혼 후 나답게 일상을 이어가는 이야기는 흔치 않기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작가는 두 마리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며, 주말에는 친구들과 ‘소맥’을 마시는 지극히 ‘맹장미스러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유쾌함 속에서 우리는 ‘결혼 탈출기’를 이야기했다.



톡톡 튀는 표지, 솔직한 작가의 입담. 독자는 그간 어둡기만 했던 ‘이혼’의 이미지를 깨고 이야기에 빠져든다. ‘결혼 탈출’이라는 호쾌한 이름이 붙은 기획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처음부터 탈혼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이혼한 여성의 이야기가 드물고, ‘이혼녀’의 딱지가 붙은 사연이 많잖아요. 그보다는 자신의 선택으로서 뚜벅뚜벅 걸어 나왔기 때문에 해방감마저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또, 이혼이 겪어 보니 결코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탈출’했다는 뜻도 있죠.”

작가는 스스로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롭다고 믿었다. 부케 대신 돈다발을 던지는 독특한 결혼식을 했고, 아내와 며느리 역할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결혼 후,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견고한 거푸집에 몸이 싸인 느낌이 드는 거예요. 아무도 제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기대에 맞춰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고요. 주변에서도 조금 지나면 괜찮아져 하니까 자책을 했어요. 근데 우린 모두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가잖아요. 왜 결혼만은 늘 같은 모습으로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의문이 들었죠.” 

‘결혼은 여자를 최하층 자리로 내몬다’ 그는 결혼 후 이 말을 실감했다. 며느리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 ‘쿨한’ 시어머니를 만났지만, 역할 기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얼른 숟가락을 놓고 부엌으로 가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고, 남 앞에서만큼은 좋은 며느리처럼 행동하게 됐다. “머리로는 얽매이지 않겠어 하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자기모순이 있었어요. 시어머니에게는 늘 복합적인 마음이 있죠. 원래 소주 한잔 하면서 고민도 나누는 사이였는데 결혼 생활에 진입하면서 어려워졌거든요. 이혼 후 찾아오셔서 미안하다고 하신 걸 끝으로 못 보는 사이가 됐는데요. 멋진 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 생활 동안 큰 상처를 남긴 건, 전남편이 가해자가 되고, 친구가 피해자가 되는 일이었다. 그 사이에서 그는 한동안 떳떳하지 않은 마음과 자기혐오에 시달리기도 했다. “한옥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겪고 나서 뉴스를 못 보겠더라고요. 뉴스에는 항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비슷한 처지가 되니까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아팠겠다’ 그걸 처음 깨달았어요. 너무 가까운 사람이 가해자가 되면, 분리가 안 돼서 내가 저지른 일처럼 느껴지거든요. 죄인처럼 입을 닫고 고개를 숙이게 되고요. ‘그럴 필요 없다, 그런 사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결혼의 불합리는, 입구는 화려하지만 출구는 감춰져 있고 낙인이 기다린다는 것.’이혼이 진정한 ‘탈출’이 되기까지 그는 이 생각에 오래 머물렀다. 면접에서 결혼 유무를 묻는 회사, 아직까지는 이혼이 ‘흠’이 되는 분위기에서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친구들 덕분에 과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혼식 축사를 부탁받았을 때, 그는 친구의 뜻을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기꺼이 축사를 맡았다. 



인터뷰에 앞서 작가는 두 사람의 기획으로 책이 출발했음을 밝혔다. 같은 시기에 ‘탈혼’한 친구와 번갈아 가며 글을 쓰다가, 사정상 혼자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개인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결국 다른 버전의 ‘탈출 경험담’이 무수히 존재하는 셈이다. 맹장미 작가는 용기를 내어 본인만의 색깔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 사람의 용기는 다음 사람의 용기가 될 것이다. 다채로운 ‘탈출 경험담’이 터져나올 때까지.




*맹장미

1983년생. 탈혼 5년 차. 2013년 결혼, 2017년 이혼.



결혼 탈출
결혼 탈출
맹장미 저
봄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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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하는 힘을 줍니다 – 유튜버 티키틱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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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크리에이터 '티키틱'의 멤버
(왼쪽부터) 오세진, 김은택, 이신혁, 추지웅, 엄윤미 인터뷰어

티키틱은 이신혁 (신혁 - 음악 제작, 연출), 오세진 (세진 - 연기), 추지웅 (추추 - 조명), 김은택 (은택 - 디자인) 이 모여 만든 크리에이티브 팀입니다. 영상의 기획, 연출부터 작곡, 작사, 노래, 연기, 촬영, 디자인, 편집까지 네 명이 모두 해냅니다. 노래 한 곡, 2-3분 길이의 영상 안에 일상의 스토리가 기발하게 담기죠. 다른 어떤 크리에이터와도 다른 티키틱스러움이 가득한 유튜브 채널 <티키틱>에는 2021년 6월 현재, 58만 5천 명의 구독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티키틱이 올리는 영상은 크게 두 가지, 본영상과 매끈한 본영상 뒤에 가려진 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입니다. 그리고 올해 봄 책  『오늘이 무대, 지금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영상 하나하나의 뒷이야기와 고민을 담은 것이 메이킹 필름이라면, 그 모든 것을 만드는 창작자 티키틱의 마음 속 이야기를 담아낸 책입니다. 



 오늘이 무대 지금의 노래: 티키틱이라는 장르

“언젠가 티키틱이라는 장르가 많은 이들이 따라하며 즐거워하는 굵직한 역사가 되는 미래를 꿈꿔본다.” (234쪽, 추추) 

티키틱은 ‘일상 뮤지컬’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장르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일인가요? 

신혁: 저희가 드문 장르를 하고 있긴 한데 없는 장르를 하고 있진 않아요. 애초에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있고, 저희가 웹 환경에 걸맞게 분량 등을 바꿔서 영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거죠. 그래도 유튜브 안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브이로그, 먹방, ASMR, 영화 리뷰 같은 장르를 만드는 분들은 커뮤니티가 있고 서로 소통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희는 그런 커뮤니티가 없다 보니 외롭긴 하죠. 그래서 넷이 서로 고민을 계속하면서 만들고 있어요. 

뮤지컬이라는 무대는 오프라인 예술 중에서도 다양한 재능이 가장 화려하게 집결된 무대라고 생각해요. 그 무대를 영상에 담아 낸다니, 너무 2021년이네요. 

너무 2021년이죠. (웃음)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뿌듯함도 있을 것 같아요. 

은택:누군가한테 설명할 때 딱 떨어지진 않는데, 처음 보여줬을 때 그 사람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는 건 즐겁더라고요. 다들 해석하는 방법들이 달라요. 어떤 친구는 ‘뮤직비디오 같은데 완전 다른 뮤직비디오’ 라고 하고, ‘뮤지컬 같은데 뮤지컬이랑은 다르다’, ‘웹드라마 단편 같은데 또 새롭다’ 같은 식이에요. 웹에서 단편 만드는 것도 기존에 있는 거고 뮤지컬도 기존에 있는 건데 우리가 그 사이 어딘가 세부 장르를 개척한 게 아닐까? 그 정도가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그래서 뿌듯할 수 있는 거고요. 

신혁: 저희가 시청자분들과 여러가지 소통을 하다 보니까 팬덤이 끈끈한 편이거든요. 시청자분들이 다시 찾아주시는 횟수도 많고요. 저희 네 명 다 영상 하나 올라가면 댓글을 일일이 확인해요. 저희 영상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든지, 청소년분들이 우리 영상 보시고 뭔가를 찾은 것 같다, 그런 이야길 해주실 때 뿌듯해요. 저희가 영상 한편 한편을 만들 때 메시지가 엄청나게 심오하거나 강하지 않거든요. 그냥 상황 자체를 보여주는데 받아들이는 분들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는 것도 신기하고, 아직까지는 대부분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아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입장에선 그게 가장 뿌듯합니다. 

팬덤이 끈끈하다고 하셨는데, 특히 팬들과 노래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영상이 인상적이었어요. 팬들이 보낸 노래 장르와 톤에 맞춰 완벽하게 화답하는 재치있는 소통 방식이 티키틱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혁: 처음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해 본 거였어요. 이렇게까지 수준 높은 질문들이 오리라고 생각 못하고 한번 해보자고 모집했는데, 처음부터 완전 놀란 거죠. ‘그티그팬’ (그 티키틱에 그 팬) 이라는 저희만의 밈 같은 말이 있는데, 정말 그랬어요. 작년 말 2편을 냈을 때는 팬들과 경쟁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누가 더 잘하나, 너네 한번 받아쳐 봐라, 이런 느낌으로 보내신 것 같아서 굉장히 기분 좋았어요. 

그리고 책이 나왔습니다. 책을 통해 만나는 팬들은 영상으로 만나온 팬과 다른가요? 

신혁:아무래도 책 한 권을 읽는데 드는 시간이 훨씬 길고 몰입도가 있다 보니, 더 깊게 접점을 맺어 주신다는 느낌을 받아요. 피드백을 듣거나 SNS에서 책 후기를 보면 저희에 대해 좀더 깊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영상에서 저희 네명은 이야기꾼인데, 책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거니까, 읽어주신 분들이 저희의 뒷모습이나 마음에 대해 좀더 알아 주시는구나 싶어요. 다시 한번 독자님들께 존중받은 것 같아서 감사하죠. 

은택:저희가 발행하는 영상 콘텐츠는 집중하고 숙고하는 기간이 2-3주 정도 호흡이에요. 그런데 책은 거의 1년 정도 쓰고, 돌아보면서 고쳐 쓰기도 하고 뺄까 더할까 고민하니까 호흡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시청자분들이 영상에는 재치 있는 댓글로 받아치는 경우가 많은데, 책은 즉각적으로 바로 피드백이 꽂히지는 않지만 대신 찾아보면 긴 리뷰를 써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편지글 정도 분량을 받아보는 거잖아요. 새롭더라고요. 저희가 쓴 글 일부를 발췌해서 생각을 말씀해 주시기도 하는데, 그 문장만 덜어내서 고정해 둔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바뀌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추추: 리뷰에 이 책이 ‘티키틱의 메이킹 필름’ 이라고 적어주신 분이 계셨어요. 평소 메이킹필름에서는 우리가 이번 작품에서 뭘 고려했고 뭘 생각했는가를 이야기했다면, 책을 쓰면서는 저희 자체를 담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세진:제가 살아온 날이 드라마틱했던 것도 아니고, 지금 제 모습이 책을 쓸 정도로 뭐 되는 사람인가, 진짜 괜찮은건가 생각이 들어서, 처음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온 날은 엄청 겁이 났어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 제 이야기에 공감해 주신다는 것이 저에게는 특별했어요. 저희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의 (연기하는) 제가 아니라 제가 진짜 살았던 이야기도 공감해 주신 분이 계시구나 싶어서 안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밴드를 만들자: 티키틱이라는 팀

밴드를 만들자. (22쪽, 신혁)

꿈을 포기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팀’ 이 없어서였기 때문이었다 (46쪽, 세진)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티키틱이 우리 네 사람 모두의 브랜드라는 점이다 (71쪽, 은택) 

시간을 두고 바라보며 기다리니 어느 순간부터는 각자의 색 사이에서 구분선이 그어질 곳은 그어지고, 화합이 이뤄져야 할 부분에선 또 자연스럽게 섞여들어 독특하면서 그럴듯한 조화를 이루게 됐다. (83쪽, 신혁) 

티키틱이라는 ‘밴드’가 결성되는 과정을 책에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 주셨죠. 확실한 자기 분야를 가진 세 분이 각자 커리어를 쌓아갈 기회가 있다는 걸 알면서 팀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기까지 리더 신혁님은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신혁:입대했을 때 팀을 처음 구상하기 시작했었어요. 입대 전까지는 기존에 하던 SH라는 브랜드를 그냥 이어가면 되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입대한 이후엔 오히려 생각할 여유가 생겼어요. 11년 정도 인터넷 상에서 창작을 했던 입장에서, 입대하고 창작물을 계속 만들 수 없는 상황에 놓이니 잊히기 싫다는 불안이나 오기 같은 것이 생겼어요. 잊히더라도 삶을 유지할 순 있겠지만, 아이디어나 정체성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 그러다 보니 혼자 힘으로 안되겠다 싶어서 팀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팀을 만든다는 건 리스크가 크거든요. 한 명이 문제를 일으키면 네 명 전부에게 피해가 가는 거고, 중간에 한두 명이 변해 버리면 팀의 방향성 자체도 크게 달라져 버리는 거니까. 서로 케미가 맞는 팀을 찾는데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인 건, 이 세명 이외의 다른 후보들이 거의 없다시피 했었는데 처음 섭외한 친구들이 다들 팀을 하겠다고 해 준 거예요. 제 입장에선 정말 감사했고요.

세 분이 모두 팀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 진짜 기쁘셨겠어요. 말하자면 비틀즈 멤버들을 모으신 건데요. 

(일동) 비틀즈는 많이 싸웠죠.

그게 바로 다음 질문인데요,  유명한 밴드들은 각각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달랐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티키틱은 의견 충돌이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시나요? 

신혁:밴드가 되자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나서 케이스 스터디를 했어요.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하고 물어 물어서 활동하고 계시는 밴드들의 이야기를 많이 참고했는데, 겹치는 게 정말 하나도 없더라고요. 본인들이 편한 방식을 택하면 된다는 거였어요. 팀이 안정적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게 하는 불문율 같은 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고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진짜 없구나 싶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신혁:시간이 지나면서 저희만의 특색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의견 충돌이 없진 않습니다. 고집도 있고 개성도 있어야 각자의 스타일이 나오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때 그때 어, 설득됐어, 하는 말로 해결해요. 제가 연출이나 작곡처럼 뼈대가 되는 일을 맡고 있다 보니 고집도 세고 완벽주의도 가장 세요. 그래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피드백이나 반론을 들을 때는 들어 보고 생각해 봐요. 싫어, 이게 맞는 것 같아, 할 때도 있고 생각해 봤는데 맞는 말이네? 하고 받아들일 때도 있죠. 최근에는 더 쿨하게 인정하는 편이에요. 

세진: 리더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저희가 각자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연출하는 사람과 연기하는 사람이 서로 계속 설득해 나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 설득되는 부분에선 잘 받아들여주고요. 애초에 요구하는 것이나 의도하는 게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일적인 부분에서 논쟁이 크게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신혁: 대학 에다닐 때 디자인과 수업을 들었는데, 어떤 색을 쓰고 어떤 선의 굵기를 쓰고 하는 것들의 의도가 설명이 안 되면 소통이 불가능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저는 하나하나의 의도를 가지고 전체를 설계하려고 해요. 영상도 그렇거든요. 마음 가는 대로 찍어도 되지만 ‘이 장면에서는 감정의 변화가 생겼어. 배우의 얼굴로 보여줘야 돼.’ 하는 경우는 카메라를 타이트하게 잡고, 클로즈업으로 가고. 뜯어보면 그런 법칙들이 존재해요. 어떤 공기를 전달하고 싶느냐에 따라 달라지고요. 겉으로 보기엔 취향의 영역일 수 있지만 뜯어가 보면 잘 설계된 의도를 전달해 주는 거죠. 저는 항상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해요.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같이 해상도를 높여 가고요.

추추: 모두 색깔이 다르긴 한데, 의견이 부딪힌 일은 3년 가까이 활동하는 동안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세세한 의견 충돌, 충돌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정도인데, 갈등이 거의 없다시피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서로의 영역을 완전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예요. 신혁이가 이렇게 하고자 하는 이유를 제가 지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신혁이는 분명 (결과물로) 나중에 저를 이해시켜 줍니다. 세진 형이 하는 연기나 은택이가 하는 디자인을 제가 당장 이해하지 못해도 형이라서, 은택이라서 믿을 수 있는 거예요. 저 부분에 대해 덜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엄청나게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서로의 영역에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거죠. 그런 점이 저희 팀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갈등을 조율하는 법을 이야기 나눴는데, 창작자인 개인이 만들고 싶은 것과 티키틱이라는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 사이에 충돌이 생길 땐 어떻게 하시나요? 

신혁:처음에는 제가 썼던 노래들이 거의 다 티키틱에 어울리는 얘기였어요. 그런데 티키틱은 제 채널이 아니고 모두의 채널이잖아요. 모두 함께 만들다 보니까, 그리고 시청자들과 소통도 계속하다 보니까, 제가 쓸 수 있는 노래와 티키틱에 어울리는 노래가 천천히 나눠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저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신혁: 유튜브는 개인 채널을 팔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오래 가는 밴드들은 개인적 갈증들을 풀 수 있는 창구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이제는 떠오르는 영감들을 티키틱으로 다 푸는 건 개인적인 독단이 되는 것이라, 개인 채널로 부족한 것들을 많이 풀려고 해요. 티키틱과 개인 창작자로서 하고 싶은 일의 교집합이 클수록 즐거운 거냐고 질문 주셨는데, 오히려 개인적인 창작의 욕구를 풀어주면 풀어줄수록 돌아와서 더 재미있게 활동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팀을 시작할 때부터 각자의 일탈을 터치하지 말자고 합의를 봤는데, 각자 자기 방식으로 풀더라고요. 세진이형은 다른 채널 가서 잠깐 (연기)하다 오고, 추추 형은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 촬영 감독을 해 주신다던가. 각자가 티키틱 외에 다른 방식으로 풀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 있다는 걸 슬슬  깨닫는 것 같아요.


(왼쪽부터) 이신혁, 김은택, 추지웅, 오세진
 

좋아하는 일을 찾은 순간

“돌이키면 늘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8쪽, 신혁) 

“시청자의 자리에 있을 때는 지겨움과 지루함 밖에 없었지만, 영상의 구성과 흐름, 그리고 합을 생각하는 제작자의 자리에서는 열정 가득한 내 모습이 있다는 사실”  (55쪽, 추추) 

“지금 보면 다소 조악한 결과물들이지만 그때 분명하게 느꼈던 것 같다. ‘아, 내 손으로 뚝딱뚝딱 무언가를 표현해낸다는 게 참 즐거운 거구나.” (64쪽, 은택)

모두 20대이신데, 좋아하는 일을 상대적으로 빨리 찾으신 거잖아요.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된 요인, 기회나 환경이 있었나요? 

세진: 중학교 음악시간에 일 년 내내 뮤지컬을 하나 만들어서 올려야 되는 과제가 있었어요. 예술 중학교도 아니고 일반 중학교였는데, 선생님이 특이한 분이셨어요. 작가 하고 싶은 사람, 미술팀 하고 싶은 사람 다 뽑고 마지막에 연기하고 싶은 사람 손 들라고 하셨는데 항상 구석에만 있던 제가 손을 든 거죠. 내성적인데 네가 연기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가족들조차 의아해할 정도였는데 저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애가 신나가지고 연기하는 모습을 선생님이 좋게 보셔서, 원래 작은 역할이었는데 주연으로 바꿔주시고 단편영화도 출품하게 도와주시고 연기 레슨도 몇번 받게 도와주셨어요. 저한텐 은인이시죠. 

세진:그 선생님이 저한테 ‘너 연기 욕심 있지?’ 그러셨거든요. 욕심이 있는데, 내성적이라 친구들 앞에서 말을 못 했어요. 근데 선생님이 너 욕심 있잖아, 이렇게 얘기해 버리시니까 예 맞아요, 대답할 수 있었어요. 무대에서 처음 연기를 한건데, 몇 백 명이 보고 있는 무대에서 떨리지 않고 너무 신이 나는 걸 느끼면서, 진짜 더 욕심을 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추추 님은 처음으로 창작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을 책에 쓰셨는데요. 그 기회를 얻은 것도 학교였네요?

추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공간은 학교였는데, 책에 썼던 그날, 제가 진짜 늦게 들어갔어요. 집에 가는 길 내내 설렘인지 떨림인지 모를 감정이 들었고, 엄청 상기되어 있었나 봐요. 통금을 넘겼는데 아버지께서 혼내지 않고 ‘그게 그렇게 재밌냐? 해라 그럼.’ 하셨어요. 부모님은 엄하다면 엄하셨는데, 제가 ‘뭘 해 주세요’ 가 아니라 ‘이거 하고 싶어요’ 라고 한 것은 모두 그래, 해라 라고 하셨어요. 세진이 형 이야기처럼, 사실 스스로는 잘 몰라요. 이게 내가 진짜 맞는 걸까? 왜 내가 이렇게 좋아할까? 왜 평소랑은 다른 모습으로 보일까? 고민하는 사이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 모습을 알아보고 말해주면서 스스로도 확신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그 감정이 뭔지 잘 몰랐을 거예요. 

은택: 제가 창작이라는 기호를 발견한 건 결핍 덕분인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생 때 주목받는 아이는 아니었거든요. 축구를 잘하거나 말을 재미있게 해서 주목받는 애들이 부럽고, 저도 주목받고 싶은데 그런 재능은 없었어요. 그런데 혼자 조용히 낙서하고 있으면 갑자기 몇 명이 와서 나도 그려달라고 하는 걸 보고 ‘아 내가 이런 걸 하면 다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구나’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더 눈을 돌린 것 같아요. 학교에서 영상을 만들어서 뭔가 하니까 선생님들도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인터넷에서도 ‘좋아요’ 도 받고 하다 보니까 또. 

그런데 창작 중에서도 인터넷 영상을 창작하는 길로 오게 된 건 이 길을 먼저 간 선배들 덕분이에요.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길은 전통적인 PD 나 영화감독이었는데, 그 일들이 제가 하고 싶은 걸 완전히 대변해 주진 못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자기 브랜드를 가지고 창작을 해 오던 고등학생 형들을 본거죠. ‘아 저런 분이 있구나. 저게 직업이 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저도 더 용기 있게 뛰어들 수 있었어요.

그 형들이 지금 같이 티키틱을 하고 있는 이 형들인 거군요. 

은택:  맞아요. 이 형들이죠 (웃음)

신혁: RPG 게임을 하면 직업이 많잖아요. 저는 모든 직업을 초반 정도까지 모두 맛보고 나서 제대로 하나 잡고 키워요. 그런 성향이 제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연습장에 그리기 시작해서 세 권짜리 책으로 반에 유통시켜 돌려보고, 게임도 만들어보고, 이것저것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다 해봤었는데 영상도 그 중 하나였어요. 영상에도 종류가 많이 있잖아요. 지상파 방송에 작가로 참여해보기도 하고 뮤직비디오 촬영에 가보기도 하고 단편 영화도 만들어보기도 하고, 하나하나 겪고 나서 가장 맞는 걸 찾은 것 같아요. 그래야 미련이 없을 것 같았고, 지금 미련도 불안함도 없어요.  

신혁:이런 것들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제가 금수저라거나 하는 게 아니예요. 하나하나 거창하게 하는 게 아니거든요. 만화도 연습장에 그린 거고 게임도 그냥 기존 툴을 가지고 느낌을 본 거고. 저는 이걸 '시도의 근육'이라고 불러요. 한 번에 큰 도전을 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갑자기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하려고 하면 근육통이 오거든요. 조금 적은 중량으로 하나씩 해보고, 조금 더 하고, 그러면 부작용이 덜하더라고요. 그런 원칙으로 살아왔고, 티키틱도 그렇게 만든 팀입니다. 제 성격에 가장 잘 맞는 인생의 패턴인 것 같아요.

시도의 근육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었나요?

신혁:오히려 제한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3년 동안 했거든요. 기숙사에서 12시까지 공부를 시켰어요. 개인 자유 시간도 적고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진로 강연을 가면 제가 가장 조심하는 것도 얘가 시간이 많아서 이런 걸 할 수 있었겠지, 여유로워서 할 수 있었겠지, 하는 오해를 피하는 거예요. 틈틈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저는 정말 틈틈이 했거든요. 영상 하나 만들 때도 점심 시간, 쉬는 시간 10분 동안 찍고 붙이고 한거죠. 그러니까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틈틈이, 가볍게 근육을 키울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무거운 마음 먹지 말고 그냥 맛만이라도 보자, 재밌자고 하는 거잖아, 얘기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 모든 것들을 버리고 떠나라, 도전해라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게 저에겐 중요했던 것 같아요.



티키틱이 창작하는 마음

“이미 괜찮아 보이는 작품에 작은 디테일이라도 하나 더 얹으려는 건, 그만큼 ‘우리 것’ 을 만든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77쪽, 신혁) 

“5년, 10년 후에도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유통기한이 길어서 쉽게 상하지 않는 건강한 콘텐츠였으면 한다.(……)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것은 악의를 갖지 않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을 주는지 이해하는 영역의 문제다.” (118-120쪽, 은택) 

“결국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기준’ 은 콘텐츠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 중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이것만큼은 포기 못 해! 라고 할만한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218쪽, 추추) 

책에서 강조하신 창작자로서의 자세가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디테일 하나라도 더하려는 태도, 그리고 ‘해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 해치지 않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태만하지 않아야 한다는 은택님의 생각이 좋았는데,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나 과정이 있었나요?

은택: 사실 조심스럽게 쓴 부분이에요.  저희 주변에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나쁜 사람이 아닌데, 선한 의도로 만든 것인데 잘 알지 못했던 이슈에 접해 있고 문제가 되어서 결과적으로 상처를 주는 경우들을 보게 됐어요. 그래서 아, 이게 좋은 사람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내가 모르는 이슈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신혁: 하지만 클린한 콘텐츠, 모두에게 불편하지 않은 영상을 만들겠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말인 걸 알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거든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 경계를 계속하려고 해요. 저희는 댓글도 다 보고 ‘에고 서치’ 라고, 스스로를 검색해 보는 것도 많이 해요. 부정적인 피드백이 있으면 저희끼리 바로 바로 나누고요. 하지만 우리가 깨끗하게 하고 있다고 자랑하거나 브랜딩 요소로 쓰는 건 싫고 부담스러워요. 책에 저희가 적은 선까지가 딱 저희의 마지노선인 것 같아요. 해치지 않고 싶은 마음으로 노력하지만 ‘우리는 해치지 않아요’ 라고 단정짓는 것이야말로 경계하고 싶다는 것.  

회사 일로 영상을 찍는데, 감독님이 물잔 놓는 자리를 10분 동안 잡으시는 걸 봤어요. 영상을 볼 땐 물잔이 있는지 보지도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을텐데 대단한 디테일이구나, 감탄했었는데요. 티키틱이 메이킹 필름 영상을 만드는 건 이렇게 시청자들의 눈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일까요? 

은택:그 마음이 굉장히 컸죠. 현장에서 보면 신기한 방식으로 영상을 구현해내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반적인 촬영 현장에서 쓰지 않는 각자의 요령을 보는 것도 재밌고요. 그냥 영상 작품만 볼 때보다 이런 것들을 알고 볼 때 더 재미있을 테니까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단순히 작품을 만드는 뒷배경을 좀 더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도 퍼포먼스고 이 자체도 무대라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네 명 다 영상에 안 나오는 순간에도 모두 어떤 방면으론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 같아요. 티키틱이란 팀은 감독 네 명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줄 수 있는 채널이라서 재미있고 독특하다고 생각합니다.

추추: 저는 디테일을 더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원인이 팬분들께 있는 것 같고요. 저희가 신경 쓴 디테일을 메이킹 필름이 나오기도 전에 알아봐 주시는 팬분들이 많아졌어요. 신혁이는 음악을 만들 때 조그마한 소리로 가사가 스르륵 지나간다거나 하는 재미 요소를 넣어두는 경우가 많고, 은택이는 디자인에 굳이 멈추면서 보면 보이는 신경 쓴 디테일들을 넣거든요. 저희가 메이킹 영상을 만들어서 그런 것들을 설명하기도 전에 팬분들께서 본 영상 댓글에 좌표를 찍어가지고 ‘여기 봐 굉장해’ 라고 하세요. 그런 팬분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에 저희도 그 반응을 보면서 더욱더 디테일을 챙기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태해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요.

추추:약간 질 수 없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은택: 어떤 장면은 그런 의도로 만든 게 아니었는데 의도를 해석해 주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럼 일단 재미있고요,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고.

신혁: 그럼 그냥 맞아요, 어떻게 아셨지? 해야죠. 그 경우는 저희가 진 겁니다. (웃음)

콜라보도 많이 하시던데, 협업을 통해 뭘 얻고 싶으셨는지 궁금해요. 원하던 걸 얻으셨나요? 

신혁: 조회수가 많이 나오겠다는 기대보다 그럼 이 사람이랑 나중에 밥 한번 먹을 수 있겠다, 술 한 잔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커요.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들하고 같이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성덕이 되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영상을 같이 찍을 수 있는 건 평생 안 바뀔 기쁨인 것 같고요. 이번에 누구랑 (콜라보) 하게 될 것 같다고 얘기했을 때 멤버들이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는 걸 보는 재미도 있어요. 팬 분들도 같이 기뻐해 주시고요. 그게 정말 다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연이 맺어질 수 있다는 것. 저는 창작을 하기 이전에, 그리고 지금도 덕후거든요. 제가 창작자이고 예전에 비해서는 어느정도 알려진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알고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내 존재를 안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스럽죠. 적응이 안 돼요.

그럼 티키틱이 콜라보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티키틱이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신혁: 그렇죠. 제안이 많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저희는 좋아하는 분들, 실제로 팬이었던 분들과 합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하고요. 복에 겨웠다고 항상 얘기해요. 우리 복에 겨웠어.

저도 이 인터뷰를 같은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웃음) 팬심과 덕심으로 하는 일이 지속하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신혁: 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죠.  

티키틱은 먼 다음을 계획해 놓으시는 스타일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지막 질문에선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티키틱의다음 챕터를 위해서 준비하고 계신 게 있다면? 

신혁: 정확하게 짚어 주셨는데, 딱히 명확한 게 있진 않고요. 자유롭게 구애 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직까지 엄청 신나거든요. 이렇게 저희 의견 자유롭게 내서 창작물을 만드는 삶을 사는 걸 최대한 오래 지속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저희가 온라인, 유튜브 채널이나 SNS 상에서 활동하는 팀인데 그 울타리를 넘어서 다른 영역에서도 창작해 볼 수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이 책을 쓸 때도 가졌던 생각인데, 이제 책 이외에도 언젠가 다른 무대가 생긴다면 - 정말 말 그대로 무대일 수도 있고요 –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신혁:하지만 일단 올해까지는 다들 힘든 시기이기도 하니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힘든 시기 안에서도 팀이 잘 성장해 왔다는 데 만족하고 있고요. 지금 남은 올해 목표라고 하면 협업 정도? 어려운 상황들 때문에 실제 꺼내지 못한 건들도 많은데 남은 한 해 동안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즐거운 고민을 하는 게 소박한 계획입니다.




준비해 둔 진짜 마지막 질문은 “티키틱이 창작자로서 지속하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였는데, 인터뷰 도중 답을 얻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즐겁게 만든 창작물을 알아봐 주는 팬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 

인터뷰 동안 웃으면서 몇 번 주고 받은 말이 있습니다. “너무 2021년이네요.” 라는 말이었어요. 새로운 매체를 자유롭게 다루고, 힙하다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어서만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길을 열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함께 할 팀을 만나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협업을 하고, 그 창작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경쟁하듯 디테일을 더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일을 시작하고 펼쳐 가는 새로운 기준점을 본 것 같았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출발점이 되어 뻗어나가며 서로를 만나는 세계.  

티키틱은 티키틱이라는 장르를 만듭니다. 티키틱의 방식으로.

 


*티키틱

이신혁(음악 제작, 연출), 오세진(연기), 추지웅(조명), 김은택(디자인), 네 명이 모여 만들어낸 크리에이티브 팀. 2018년 유튜브에서 첫 작품 〈제가 왜 늦었냐면요〉로 이름을 알린 후 신선하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56만 구독자를 돌파한 채널로 성장했다. 디테일이 살아 있어 짧지만 중독성 강한 작품을 제작하여 ‘티키틱은 한 번만 볼 영상을 만들지 않는다’ ‘우연히 한 편 보게 됐다가 밤새 정주행 중이다’라는 평을 들으며 두터운 팬층을 유지 중이다. 새로운 영상이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지는 유튜브 시장에서 단단하고 확실한 공감을 선사하는 이들은 유명 크리에이터 및 기업들과 협업을 이어가며 기반을 넓히고 있다. 



 
        오늘이 무대, 지금의 노래     
      
오늘이 무대, 지금의 노래
        
티키틱 저
        
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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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북스타그래머 최초딩 “책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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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Yes’를 외치는 이가 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서점 직원에서 출판사 마케터를 거쳐 작가가 된 최원석. 폐인처럼 지내던 시절, 우연한 기회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고백하는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다른 사람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인스타그램에서 책을 소개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책을 선물한다. 언제든 선물할 수 있도록, 비상약처럼 책을 가지고 다니는 그가 요즘 가장 많이 선물하는 책은 다름 아닌 본인의 첫 에세이. 『잠깐 선 좀 넘겠습니다』는 팔로워 1.8만 명을 보유한 북스타그래머 ‘최초딩’, 최원석이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초딩시선’이라는 이름으로 쓴 글을 묶은 책이다. ‘오지랖인 거 압니다만’이라는 부제를 달고 세상에 나온 이 책에는 조심스로운 태도로 타인의 안부를 살피는 ‘샤이관종’의 면모가 드러나는 최초딩의 일상이 담겼다. 



책 파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책을 파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됐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동네서점과 대형서점을 거쳐 출판사 직원으로 일했어요. 지금은 책을 쓰는 사람이 됐고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마케터로 일할 때는 제가 담당하는 책을 읽는 독자를 보면 뿌듯하기만 했거든요. ‘내가 그 책 담당하는 마케터다’ 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저자가 되니까 민망하기도 하고 독자분들이 어떻게 읽으실지 걱정도 되고 그래요. 

조심스러운 마음이 느껴져요.  

아무래도 그렇죠. 나를 드러내는 책이니까요. 요즘 버릇처럼 해시태그로 책 이름을 검색해서 후기를 보는데 다행히 아직 나쁜 평이 없더라고요. 서점 리뷰도 그렇고요. 다행이다 싶어요. 

하루에 몇 번 정도 보세요? 작가님들이 생각보다 리뷰를 자주 검색하시더라고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시작에서 눈 감을 때까지 수시로 봐요. 첫 책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인상적인 후기가 있었나요?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읽고 예전 일이 떠올라서 울었다는 후기가 기억에 남아요. 사유의 깊이가 얕지는 않은데, 짧아서 읽기 좋다는 말도 있었는데요. 예스24 독자 리뷰에 있더라고요. (웃음)

마케터에서 저자로 변신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아무리 많이 써도 뺄 건 빼야 한다는 거, 꼭 넣고 싶은 글이 안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았고요. 무엇보다 책을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죠. (웃음)

저자의 고충을 느낀 건가요? (웃음)

그렇죠. 출판사에서 신간이 나오면 저자 친필 사인본 이벤트 같은 걸 많이 하잖아요. 문학동네에서 박준 시인님의 산문집을 담당했을 때 작가님께 사인본 3천 부를 부탁했거든요. 당시에는 ‘3천 부 정도 그냥 하시겠지’ 싶었는데 이번에 해보니까 많이 요청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책에 사인하고 다음 날 한의원 가서 침 맞았어요. (웃음) 난생처음 부항 떴는데 피가 그렇게 까만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초딩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글을 묶은 책이에요. 연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계기가 없으니까 쓰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때 즈음 이슬아 작가님이 구독자 모집을 하고 계셨을 거예요. ‘나도 해볼까?’ 싶었죠. 글 쓰는 루틴을 만들어야겠다 싶었고, 한 분이라도 신청해 주시면 열심히 쓰겠다는 마음으로 모집 글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신청해 주셔서 용기를 얻고 계속 썼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글을 연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일주일에 세 편 써서 보냈는데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그만해야 하나 싶었는데 마침 그때 즈음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져서 병원비를 월급으로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연재를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어요. 생계형 연재였죠. 그게 이어져서 책이 나왔네요. 

구독자들의 피드백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슬아 작가님이 구독자에게 받는 피드백에 관해 얘기하신 적 있잖아요. 예를 들어 지각하면 쓴소리하는 분이 있다든지, 글을 평가한다든지요. 

다행히 안 좋은 피드백은 없었어요. 아버지 간호 때문에 늦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일부러 발송 요일을 지정하지 않았거든요. 토요일에 두 편 보내기도 하고, 월, 수, 금요일에 보낸 적도 있어요. 그래서 수월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구독자분들이 대부분 오래 알고 지낸 인스타그램 친구여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고요. 지난 몇 년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고 지내면서 함께 성장했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이슬아 작가님만큼 구독자가 많지 않기도 하고요. (웃음)



관심이 필요하지만 부끄러운 ‘샤이관종’

꼭 넣고 싶었는데 싣지 못한 글이 있었다고요. 어떤 글이었나요?

예전에 쓴 글 중에 시대가 바뀌면서 민감해진 내용도 있고, 마케터로 일할 때 작가와의 만남에서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겪은 일을 썼는데 작가님에게 문제가 생겼다든지 이슈가 생길만한 글들이었어요. 지나치게 감정적인 글도 빠졌고요. 책에 넣고 싶어서 출판사에 세 번 여쭤본 글이 있었는데 세 번 거절하시더라고요. 출판사에서 세 번 거절할 정도면 넣지 않는 게 맞겠다 싶어서 ‘알겠습니다’ 했죠. 

관계에 대한 단상이 많더라고요.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관계’가 아닐까 싶은데요. 관계를 맺고 유지할 때 특별히 조심하거나 신경 쓰는 게 있다면요?

말을 조심하려고 해요. 친해지면 필터가 사라질 때가 있잖아요.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나오는 것 같은 때요. 상대에게 상처 주는 날카로운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문학동네에서 일하면서 썼던 명함 뒷면에 노석미 작가의 『매우 초록』에서 발췌한 글을 넣은 것도 그래서예요. (‘누구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고, 그 적당한 거리가 편안함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누군가와 너무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게 간격을 조정하려고 해요. 

휴대폰 요금이 한 달 평균 20만 원 나온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만큼 마음을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도 비슷한가요?

요즘도 그래요. 제가 카카오톡 기프티콘 선물을 많이 받거든요. 열심히 썼는데도 지금 6~70개 정도 남았을 거예요. 사람들한테 이렇게 마음을 받으니까 나도 마음을 써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카카오톡에 ‘오늘 생일인 친구’ 목록을 보고 선물을 보내요. 생일 축하 인사 건네면서 오랜만에 안부 전하고 싶은 사람한테 연락하는 거죠. 

그러면 ‘오늘 생일인 친구’ 확인하고 선물 보내는 게 하루 루틴이 될 것 같아요. 혹시 카카오톡 친구가 몇 명인가요?

지금 확인해 보니 989명인데 다 연락하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최근에 한 번 정리하긴 했는데 일하면서 알게 된 분들이 있고 해서 점점 늘어나는 거 같아요. 오늘은 다행히 생일자가 없더라고요. (웃음) 가끔 너무 많을 때가 있거든요. 어제는 7명이 생일이라고 떴는데 그중에서 줘야 할 사람이 3명이었어요. 

‘샤이 관종’이라는 말이 나와요. 그런데 ‘관종’과 ‘샤이’라는 말이 상반되잖아요. 관심이 필요하지만, 쑥스럽고 부담스럽기도 한 평범한 사람의 모순이 엿보여서 동질감이 느껴졌어요. 책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나를 너무 좋게 보거나, 안 좋게 보는 반응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드러내는 게 두렵기는 하죠. 그런데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나를 솔직하게 내보였을 때 좋아하는 분들은 좋아해 주시고, 아닌 분들은 팔로워 끊으시는 것 같아요. 저에 대한 호오는 괜찮은데 특별히 신경 쓰이는 건 주변 사람들이죠. 확실히 관종병은 있는데 ‘샤이 관종’이라 지금도 쑥스러워요. 그나마 글을 쓸 때는 조금 낫고요. 

가까운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한테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쑥스럽잖아요. 책 나오고 나서 어땠나요?  

그래서 지금 친구들 안 만나고 있어요. (웃음)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도 많이 나와서 어떻게 보실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머니가 ‘솔직하게 잘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가장 많이 고민한 건 회사였어요. 책 내고 문학동네에 가면 벌거벗은 느낌으로 다니는 느낌일 것 같더라고요. 제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거든요. 책을 본 누군가가 “쟤는 저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라고 볼까 봐 걱정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책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해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네요.  

실제로 만나 보니까 ‘초딩’의 이미지를 찾기 어려운데요. ‘최초딩’이라는 닉네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세요. (웃음) 예전에 싸이월드, 버디버디를 쓸 때 제 아이디가 ‘나는야 초딩’이었어요. 어느 날 등교하는데 셔틀버스에 탄 초등학생들이 차 유리에 붙어서 일제히 가운뎃 손가락을 들고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거예요.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땐 저도 학생이었으니까 왠지 모르게 열이 받아서 버스를 따라갔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버스를 따라가는 제 모습이 초딩 같은 거예요. 그때부터 닉네임을 ‘나는야 초딩’이라고 썼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제 성인 ‘최’를 붙여서 ‘최초딩’이라고 썼는데 어감이 나쁘지 않아서 계속 쓰게 됐죠. 

제목은 처음부터 ‘잠깐 선 좀 넘겠습니다’였나요?

처음에는 아니었어요. 문학 출판사에서 일해서 그런지 제가 생각한 제목들은 문학적이었어요.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처럼요. 그런데 편집자님이 단호하게 “작가님 그건 아닙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출판사에서는 처음에 ‘샤이 관종’ 같은 제목을 제안하셨고요. 그 이후로 여러 번 의견을 주고받다가 출판사 의견을 따라서 지금 제목으로 정했는데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편집자님이 그때 제 의지를 꺾어주셔서요. (웃음) 



표현에 서툴러서 글에 더 매달리나 봐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었다고요. 주로 어떤 순간에 글이 쓰고 싶나요? 

매 순간 쓰고 싶어요. 아까 인터뷰하러 오면서도 쓰고 싶었거든요. 책 나오고 처음 하는 인터뷰니까 설레잖아요. 그런 처음의 설렘, 흥분 같은 감정이 글의 재료가 돼요. 운전할 때 하는 생각도 그렇고요. 생각이 너무 많은데 글로 쓰지 않으면 사라지잖아요. 기억해야지 다짐해도 시간 지나면 잊히고요. 그런 게 아쉽고, 스치는 생각이 아까워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글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서 하루에 세 번 이상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웃음)

모든 순간에 쓰고 싶다니, ‘나는 언제나 목마르다’라고 하는 운동선수의 고백 같네요. (웃음) 

제가 말을 잘 못 해요. 감정 표현도 서투르고요. 그래서 더 글쓰기에 매달리는 것 같기도 한데요. 예전에 출판사 ‘난다’ 김민정 대표님이 표지 시안이 예쁘다면서 저한테 보여주신 적이 있거든요. 저도 마음에 들어서 “너무 예쁘다”라고 했는데 대표님이 웃으면서 “너 마음에 안 들지?” 하시더라고요. 저는 진심이었거든요. 예뻐서 예쁘다고 한 건데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은 거죠. 물론 대표님도 장난하신 거지만, 이렇게 표현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 더 글에 매달리는 것 같기도 해요.

좋아하는 글의 특징이 있나요? 

한 번 읽고 잊히는 글이 아니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 좋아요. 특히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을 좋아하는 데요. 책 내용 중에 ‘우리는 이미 고아이거나 고아가 되고 있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얼마 전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영정을 보면서 절을 하거나 헌화하는 조문객들을 보는 중에 이 문장이 떠오르더라고요.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시지만, 나도 조금 더 있으면 고아가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아버지에 관한 글이 많더라고요. 책이 나오기 직전에 돌아가셨다고요. 

아버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울컥해요. 가장 아쉬운 건 아버지가 책을 못 보고 가신 거예요. 아버지를 위해서 책을 쓴 것이기도 하거든요. 모든 부모님이 그렇겠지만 병원에 계시면서 아들 자랑을 많이 하셨대요. 제 캐릭터로 만든 티셔츠가 있는데 병실에서 그 티만 입으실 정도로 저를 예뻐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쓴 책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했는데 인쇄 감리하는 날 저녁에 돌아가셔서 끝내 못 보셨죠. 3일만 더 계셨어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싶어서 아쉽죠. 

마지막 장에 있는 문답에서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고, 내가 증인이라고 했어요. 어떤 책인가요?

원래 책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공고와 공대를 나오고, 책이랑 담을 쌓은 사람이었는데 책을 읽게 된 계기가 있어요. 예전에 제가 폐인처럼 지낸 적이 있었거든요. 어느 정도였냐면 온종일 밥 안 먹다 어쩌다 한 끼 먹으면 술이고, 하루에 담배 2~3갑씩 피고 그랬어요. 그러다 우연히 눈앞에 보인 책을 읽었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때 읽은 책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에요. 서른 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반복해서 책을 읽다 보니 술을 안 마시게 되고, 흡연량도 줄어들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까 나중에는 몸이 좋아졌고요. 그때부터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볼까?’ 싶었어요. 

정말 달라진 게 많았네요. 

아마 그때 책을 읽지 않았으면 지금도 책을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책을 읽지 않는 서점 직원으로 월급 받으면서 살았겠죠. 그런데 책이 좋아지니까 다른 사람들도 책을 좋아해 줬으면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했어요. 팔로워가 많아지면서, 이후에 문학동네 입사 제안을 받고 마케터로 일하게 됐고, 지금은 책까지 쓰게 됐고요. 

최근에 품은 글이나 문장이 있다면요?

최근에는 글을 하나도 못 읽었는데요. 지금 생각나는 건 박준 시인의 <마음 한 철>이라는 시에서 본 문장이에요. 맨 끝에 ‘한 철 머무르는 마음에 서로에게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진짜 좋아하거든요.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 나오는 ‘넌 늘 춘향 같은 마음.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라는 문장도 좋아하고요. 좋아하는 문장이 많은데 지금 떠오르는 건 그 둘이네요. 

가방에 항상 책을 두세 권씩 넣고 다니신다고요. 지금 들어 있는 책은 뭔가요? 

예전에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다 보면 알아보는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때마다 가방에 있는 책을 선물로 드렸어요. 요즘은 거의 제 책을 선물하고요. (웃음) 이제는 차를 타고 다녀서 가방 대신 차에 책을 싣고 다니는데요. 아마 트렁크에 책이 2~300권 정도 있을 거예요. 지금 가지고 온 가방에는 최근에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께 선물 받은 『나의 차례가 왔습니다』와 심너울 작가님의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를 써볼까』가 있네요. 요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책을 거의 못 읽었거든요. 인터뷰 끝나고 카페 가서 읽으려고요.  



앞으로 두 권 정도 더 쓰고 싶다고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냈던 이야기를 써보고 싶고요. 또 다른 하나는 아버지를 돌보면서 느꼈던 것들과 간병 팁을 담은 책이에요. 아버지 아프고 난 다음부터 돌아가시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많이 기록해 놨더라고요. 그걸 모아 보고 싶어요. 개인적인 내용이나 감정보다 요양병원 정보라던가 사망신고 하는 법 같은 실용적인 정보 위주로요. 




*최원석

언젠가 어버이날에 태어났다. 일기 쓰는 것을 싫어하지만, 삶을 기록하고 그 삶에 응원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기장이라는 은밀한 공간을 벗어나 SNS에 꾸준히 일상을 기록한다. 책을 좋아하지 않은 채로 서점 직원이 되었다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거쳐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choi_choding



잠깐 선 좀 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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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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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 교수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같이 살아도 문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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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르는 대상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어떤 존재이든 물질이든 현상이든,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기는 쉽다. 두려움이 깊어지면 차별과 배제를 낳는다. 조현병은 어떤가. 뉴스 속에서 조현병 환자는 ‘언제 어떤 (끔찍한)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병과 환자, 그 가족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조현병의 모든 것』에 따르면 조현병은 뇌의 질병이고, 100명 중 1명이 평생에 한 번 정도 걸리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전혀 위험하지 않으며 치료를 통해 환자의 75%가 개선된다.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발병 원인이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해에 걸쳐 재발과 완화가 거듭되며, 약물 치료로 완치는 안 되더라도 대체로 통제는 잘 되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조현병과 그 환자들을 두려워한다. 

“조현병 환자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는 사실은 조현병을 그만큼 더 큰 재앙으로 만든다.” 『조현병의 모든 것』의 저자 E. 풀러 토리는 말한다. 정신의학자이자 조현병 연구의 대가인 그는 조현병의 원인, 진단과 증상, 치료, 예후에 관한 연구, 그리고 자신이 상담한 환자들의 사례를 총망라해 『조현병의 모든 것』을 펴냈다. 1983년에 처음 출간한 이후 현재까지 7판을 거듭하며, 35년간 축적된 상담 사례와 조현병에 관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담았다. 

책의 감수를 맡은 권준수 교수(서울대학교 정신과학•뇌인지과학과)는 “국내에서 오래전에 번역이 되었어야 하는 책이 이제나마 소개되는 것은 크나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책처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조현병과 강박증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세계적인 뇌의학자인 권준수 교수는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왔다. 저서로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가 있다. 그는 『조현병의 모든 것』의 감수를 맡아 국내 실정에 맞게 일부 내용을 추가하고, 국내 조현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보완했다. 권준수 교수와 만나 『조현병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00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정도 걸려요

우리 사회에서 조현병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 같으세요?

현재는 굉장히 문제가 많죠.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그냥 범죄자 또는 중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 이렇게 생각하고 낙인을 찍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문제가 있고요. 사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일부예요. 대다수는 괜찮고 아주 일부만 문제를 일으키는 건데, 그 문제가 언론에 계속 나오니까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거죠. 그 부분에 문제가 있죠. 

조현병이 굉장히 희귀한 질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요. “100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비교적 흔한 정신질환”이라면서요?

전 세계적으로 평생 유병률이 100명 중에 1명이에요. 역학(epidemiology)에서는 되게 유명한 이야기예요. 역학이라는 게 발생률이 얼마나 되는지, 위험 요인이 어떻게 되는지, 그런 걸 연구하는 분야거든요. 그런데 조현병을 조사해봤더니,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로 확인됐어요. 100명 중에 1명은 평생에 한 번 정도 걸려요. 

그런데 우리는 왜 조현병이 드물다고 오해할까요? ‘낙인’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감추고 있기 때문이겠죠?

겉으로 안 드러나죠. 드러나면 낙인 찍히고 이상하게 보니까,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아요. (증상이) 아주 심하면 누가 보더라도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기도 하고, 또는 급성기에 아주 심하게 증상이 나타난다면 누가 보더라도 아는데요. 그렇지 않고 (증상이) 조금 좋아진 상태에서 후유증이 약간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냥 봐서는 몰라요. 다 보통 사람이에요. 우리 학생들이 실습 나와서 정신과 병동에 가면, 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이상한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들어가서 보면 똑같은 사람이에요. 오히려 주치의들한테 ‘아니, 저 환자분은 괜찮은데 왜 입원해 있어요?’ 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만큼 이제는 약도 좋아졌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죠. 

낙인을 찍을수록 우리 사회가 위험해지는 것 아닐까요? 환자들이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지 않을 테니까요.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시나요? 치료 시기가 늦어져서 안타까운 경우가 있나요? 

그런 경우는 굉장히 많죠. 특히 조현병은 증상이 굉장히 복잡해요. 크게 나누면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이 있는데요. 양성 증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에요. 환청, 망상, 말과 행동이 조리가 없고 충동적이고, 그런 것들이 양성 증상이에요. 음성 증상으로는 말이 없어지고요. 어떤 자극이 들어왔을 때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게 둔화돼요. 그게 아주 심해지면 감정이 그냥 납작해져요(flat). 아무런 감동이 없고 즐거움이 없어요. 대인관계가 없어지고요. 양성 증상이 나타나면 알 수가 있는데, 음성 증상은 가족들도 그냥 ‘쟤가 원래 성격이 저래, 그게 조금 심해졌어’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병원을 굉장히 늦게 오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는 양성 증상과 음성 증상이 섞여 있는데, 음성 증상이 주된 증상일 때는 조금 늦게 병원에 와요. 양성 증상이 있더라도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늦게 오는 경우가 많고요. 

치료를 빨리 시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요. 

연구를 해보면, 증상이 나타나고 치료를 시작할 때까지의 기간이 길수록 예후나 경과가 안 좋아요. 치료 받지 않은 기간을 DUP(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라고 하는데,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 기간이 짧을수록 예후가 좋아요. 그래서 『조현병의 모든 것』 같은 책이나 그런 걸 통해서 일반인들이 빨리 알아야 돼요. 알아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 예후가 좋거든요.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고 자꾸 낙인이 찍히니까 문제죠. 낙인이 찍히면 숨잖아요. 병원에 빨리 와야 되는데도 ‘병원 가면 정신질환 낙인 찍히니까... (병원에 안 가도) 좋아지겠지’ 생각하고 말거나, 또는 많은 사람들이 ‘그건 네가 조금만 마음을 굳게 먹으면 좋아지는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가족들도 그래요. 아이들이 힘들어서 병원 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도 ‘네가 이겨내야지, 네가 약해서 그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병원에 몰래 오는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인식이 중요하죠. 

책의 초반에 “조현병 환자가 어떤 일을 겪는지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뒤이어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들이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어떤 괴로움을 토로하나요?

많죠. 환청 같은 게 대표적인 거고요. 우리 몸에 다섯 가지 감각이 있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이 감각들에 자극이 있어야 느껴요.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은 자극이 없는데 자극을 느끼는 거예요. 그게 환각이죠. 환각 중에 제일 많은 게 환청이에요. 청각이 예민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조현병 환자분들이 측두엽에 이상이 많아요. 초기에 청각이 예민해지는데, 요새 많이 주장하는 건 윗집에서 너무 시끄럽게 한다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괜찮은데 예민한 거예요. 청각이 예민해져서 그런 거죠. 그게 심해지면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고 저런다’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피해망상 같은 거죠. 그리고 자기를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증상도 있어요. 그런 게 대표적인 거고, 그 외에도 증상들은 무지 많죠. 

‘조현병의 10년 후 경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려 있는데, 치료율이 꽤 높은 것 같더라고요.

대개 1/3로 생각을 해요. 1/3은 예후가 좋아서 약을 끊을 수도 있고, 1/3은 약을 끊으면 자꾸 재발하고 약간 문제가 있고, 1/3은 조금 문제가 많은 것으로 어림잡아서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약이 좋고 여러 가지 치료법이 있으니까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옮겨가 있죠. 이 책에서는 25%로 이야기를 하잖아요. 25%는 약을 끊을 수 있고, 25%는 약간의 힘듦이 있지만 비교적 경과가 좋고, 25%는 조금 더 주의를 요하고 약간 후유증이 있거나 대인관계가 조금 힘들고, 나머지 25% 중에서 15%는 치료가 잘 안 된다고 봐요. 100% 중에서 15% 내외가 치료가 좀 안 되는 걸로 보는 거죠. 그리고 10%는 결국 자살이나 사고로 사망한다고 통계적으로 나오는데요. 조현병 환자분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예측하기 어려워요. 우울증 환자가 자살하는 건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데, 조현병 환자의 자살은 예측하기 쉽지 않아요. 굉장히 충동적이에요. 그래서 막기가 쉽지 않아요. 



주로 10대와 20대에 증상 나타나

이 책은 ‘조현병은 뇌 질환’이라고 말하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살면서 경험한 어떤 일들 때문에 정신 질환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조현병은 뇌의 질환이기도 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하죠. 둘 다 관련이 있어요. 뇌의 문제, 생물학적인 문제가 60~70% 정도를 차지하고 30% 정도는 외부의 환경 문제가 동반돼야 하는 거예요. 모든 질환이 다 그래요. 문제는 뇌를 무시하고 환경과 사회 문제만 이야기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100% 환자의 뇌 문제라고 할 수는 없어요. 뇌라는 게 동전의 앞뒤면 같아요. 한쪽에서 보면 물질이잖아요. 신경세포 같은. 다른 쪽에서 보면 마음, 정신, 행동 같은 게 나타나죠. 이게 같은 거라고요. 한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연히 다른 쪽이 바뀌죠. 우리가 우울하면 뇌가 바뀐다고요. 그리고 뇌 기능이 바뀌면 우울해져요. 둘 다 같은 현상이에요. 단지 아직 과학이 덜 발달돼서 신경세포 같은 물질적인 연결성에서 어떻게 추상적인 마음이나 정신이 나오는지 아직 모르는 거죠. 

조현병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이 병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되는 증상도 없고요.

정신질환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데요. 일단 유전적인 영향을 받아요. 임신이 1~3기로 나눠지는데, 1기는 주로 큰 장기가 발달하는 시기예요. 2기는 주로 뇌가 많이 발달하는 시기고요. 크게 보면, 보통 사람들은 1기와 2기에 뇌가 정상적으로 발달을 해요. 신경 세포가 이동을 하고 서로 연결하고 시냅스를 형성하는 게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요.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은 시냅스 연결이 조금 엉성하게 되는 거예요.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신경 세포의 이동이 잘 안 돼요. 그렇게 됨으로써 뇌 발달에 약간 문제가 있는 거예요. 특히 뇌의 앞뒤를 볼 때 중간에 관련된 부분의 발달이 조금 문제가 있죠. 소위 말하는 외부 환경에 쉽게 손상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어떤가요? 

대부분은 태어나도 크게 문제가 없어요. 문제없이 그냥 자라요. 그러다가 사춘기가 되면, 그러니까 10대 후반에서 20대 길게는 30대 초반까지, 뇌가 급격하게 바뀌는 시기예요. 호르몬의 변화도 있고, 상당히 인지 기능이 많이 필요한 시기예요. 그 전까지는 뇌가 단순한 기능만 하다가 그때가 되면 추상적인 사고를 하게 돼요. 보통 사춘기가 되면 갑자기 철학적인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고민도 하고요. 그때 뇌가 ‘가지치기(pruning)’를 해요. 그 전까지는 신경 세포를 막 연결을 하다가, 그때가 되면 필요 없는 연결을 가지치기하는 거예요. 가위로 자르는 것과 똑같아요. 나무가 겨울을 나려면 쓸데없이 영양분을 사용하는 걸 잘라야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필요 없는 걸 잘라주는 거예요. 그런데 조현병 환자들은 그때 과도하게 가지치기를 한 거예요. 연구를 해보면 필요한 것도 가지치기하는 현상이 나타나요. 뇌는 취약한데 스트레스나 인지 기능은 늘어나고, 막 가지를 쳐서 엉성하게 돼 있고, 일종의 이완(loosening)이 되면서 연결이 느슨해지고, 그러니까 견디지 못하고 병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10대 20대에 많이 발병하는군요. 

네. 어릴 때는 잘 생기지 않고 나이 든 사람도 잘 생기지 않아요. 그때(발병 시기)를 잘 넘기면 소위 말하는 조금 약한 뇌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병에 안 걸리고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현병은 외부 환경과 뇌가 둘 다 관련이 있는 거죠. 그래서 증상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거예요. 뇌가 여러 군데 다 관련돼 있고 이완(loosening)돼 있으니까 증상도 다양한 거죠.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아무런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 책을 보면 환자가 아닌 사람들과 똑같이 노동을 하고, 결혼 생활을 하고, 심지어 연구 활동도 하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적지 않은 거죠?

있죠. 제 환자분들 중에도 당연히 회사 다니는 분들도 많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외국의 경우에는 유명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낙인을 없애는데 도움이 되죠. 한 교수는 TED 같은 강연에 나와서 조현병을 앓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계속 교수 생활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언론에서 조현병 환자와 관련된 뉴스를 다룰 때, 아쉬움이 느껴지지는 않으세요? 보도 방식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까요? 

그건 언론에서 이미 다 알고 있죠. 예를 들면 자살한 사람을 보도할 때의 지침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지침을 따라서 자살이라는 말을 안 쓰잖아요. 방식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고요. 그런 것처럼 조현병과 관련해서도 약간의 지침이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죠. 언론은 당연히 이슈가 되는 걸 다루고 싶겠지만, 그런 것 말고 다른 것도 언론에 낼 수 있거든요. 조금 다른 것을 다뤄야 되고, 다루더라도 조현병을 사건 사고와 동일시하면 안 되죠. 대개 약을 안 먹고 재발했을 때 사고가 생기는 거고, 또 재발을 하더라도 막을 수가 있는데 지금은 그걸 막지 못하는 시스템인 거거든요. 그런 게 문제인데 마친 그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보도하는 건 문제가 있죠. 뉴스를 보면 경찰에 몇 번이나 연락을 해서 왔는데도 사고를 못 막은 경우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경찰에 문제가 있는 거죠. 그리고 그걸 다루는 법이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 걸 다뤄줘야 되는데, 그런 건 놔두고 마치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그건 문제가 있는 거죠. 

이 책에 보면 ‘피의자’가 조현병 환자일 때는 그 점을 밝히면서 ‘피해자’일 때는 굳이 밝히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돼요.

그렇죠. 맞아요. 

실제로 조현병 환자가 강도, 강간 등의 범죄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면서요?

그렇죠. 사고가 많이 날 수 있죠. 



같이 살아가는 데 문제 없어요

예전에는 이 병의 이름이 ‘정신분열병’이었죠?

이 병 자체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옛날부터 이 병이 어떤 병인지 (관찰한) 역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의 큰 역사적인 게 오이겐 블로일러(Eugen Bleuler, 스위스 정신의학자)가 schizophrenia라는 병명을 만든 거예요. schizo라는 게 찢어진다, 분열된다(splitting)는 뜻이에요. phrenia는 횡경막(diaphragm)이고요. 옛날에는 정신이 심장이나 간 같은 횡경막 근처에 있다고 생각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인 거예요. schizophrenia, 정신이 분열되는 찢어지는 병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했냐 하면 조리가 없거든요.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분열돼 있어요. 생각은 이렇게 하는데 행동은 다르게 하고, 생각은 이런데 감정은 다르고. 기쁜 일이 있는데 슬퍼하거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히죽히죽 웃는 식이에요. 분열돼 있는 거죠. 그래서 schizophrenia라고 이름 붙였고, 그걸 일본 사람이 그대로 번역해서 정신분열병이라고 한 뒤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그 병명을 사용했어요. 

지금의 병명으로 바꾸는 데 많은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바꾸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정신이 분열된다’라는 게 보통 말이 아니잖아요. 낙인을 찍는 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을 할 때, 당시는 대한정신분열병학회죠, 그때 병명개정위원회를 만들었어요. 환자 보호자, 변호사, 언론인, 정신과 의원, 임상심리학자, 사회사업가 등이 모여서 몇 년 동안 작업을 했죠. 이미 일본은 ‘통합실조증(Integration Disorder)’으로 병명을 바꾼 뒤였어요. 사고와 감정이 통합이 잘 안 되는 병이라는 뜻이에요. 그때 여러 논의를 해서 결국 바꾼 이름이 ‘조현병’이에요. 조현(調絃)이라는 게 거문고나 기타의 줄을 튜닝하는 건데, 그게 잘 돼야 옳은 소리가 나잖아요. 우리 뇌도 신경 세포가 연결이 잘 돼야 하는데 엉성하게 연결되면 문제가 생기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했어요. 그리고 옛날부터 연상이완(loosening of association)을 정신분열병의 핵심적인 하나의 현상으로 관찰했거든요. 말을 하는데 조리가 없고 생각의 연결이 이완돼 있는 걸 관찰해서 굉장히 중요한 현상이라고 봤어요. 그러니까 ‘조현’이라는 말이 둘 다를 설명하는 거죠. 현상학적으로도 엉성한 걸 설명해주고, 실제로 뇌의 어떤 이유도 설명하고요.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이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거고요.

가족의 지원이 굉장히 중요해요. 조현병 환자분들한테도 가족들이 중요하고, 그 가족들의 스트레스나 정신건강도 중요해요. 가족들도 굉장히 힘들거든요. 무조건 가족들이 환자한테 어떻게 해야 된다고 말하는 건 맞지 않아요. 그 분들도 환자로 인한 스트레스가 무지 많아요. 그것도 다뤄줘야 돼요.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면, 병이 잘 치료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도와줄 건 도와주고 지원을 해줘야죠. 너무 간섭해서 ‘너 이렇게 해야지, 왜 그렇게 못 하냐, 약 계속 먹어야지’ 계속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요. 그런 것보다는 약간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힘든 걸 도와주고 혼자 하는 걸 지켜봐 줄 수 있는 여유를 조금 가져야죠. 그래야 가족들도 스트레스가 덜해요. 요새는 연세 드신 보호자 분들이 많아지니까 본인이 죽고 난 다음에 환자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야기를 많이 해요. 지금은 보호자가 돌보고 있지만 보호자가 죽고 나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이 없는지, 그런 것도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봤어요. 만약 내 가족 중에 조현병 환자가 있다면 어떨까. ‘너희 가족이 다 떠안고 가족 안에서 해결하라’고 한다면, 너무 외롭고 절망적일 것 같아요. 사회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가 현재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소위 국가책임제 비슷하게 돼 있는데요. 정신건강복지법에 보면 보호자의 의무 비슷한 게 나와 있어요. 이런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보호자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건데, 강제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걸 (보호자가) 책임지는 것처럼 되어 있다고요. 모든 걸 다 보호자한테 떠넘기고 있는 거예요.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도 보호자가 책임을 져야 되고, 그래서 보호자가 부담이 많은 거예요. 문제가 있죠. 이 결정을 국가가 하라고 요구하는 게 ‘사법입원제도’예요. 보호자에 의한 ‘비자의 입원’이 아니고, 국가가 보고 입원 치료가 필요하면 결정하라는 거죠. 그걸 안 하고 자꾸 보호자한테 떠넘기다 보니까 나중에 보호자한테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의사도 문제가 생기고, 다 문제인 거예요. 그런데 국가가 손 놓고 있는 거예요. 보호자가 늙고 세상을 떠난 다음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런 문제도 공공의료에서 책임지라는 거예요. 그걸 지금 못하고 있는 거예요.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요. 합의해야 할 많은 문제들 중에 하나는 ‘조현병 환자들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일 거예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죠. 

네,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데요. 기본적으로, 병의 증상으로 인한 행동이라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조현병 환자가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원인이 굉장히 다양해요. 예를 들면 ‘저 사람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구나’라는 피해망상이 있어서 굉장히 불안해하고, 그래서 자기가 먼저 공격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경우는 병의 증상 때문에 한 행동이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 어려워요. 그건 거의 심신상실, 심신미약이죠.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죠. 똑같이 보는 거예요. 그런데 조현병 환자가 증상이 다 좋아졌는데, 부모하고 이야기하다가 화가 나서 어떤 일을 저질렀다면 그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죠. 병하고 관계없이 한 일이니까요. 또 술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죠. 



『조현병의 모든 것』을 읽으면 이 병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될 텐데요. 그 결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좋을 것 같으세요?

지금 조현병 환자의 대부분은, 어떻게 보면 약간 내성적이고 대인관계에서 조금 힘들어하고 자신 없어 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오히려 착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로 우리하고 같이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 분들이 약을 잘 먹도록 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면 많은 문제를 막을 수 있어요. 물론 약만 먹는다고 해결은 안 되죠. 그렇지만 약이 재발을 막는 데 가장 중요해요. 지금 사고를 일으키는 아주 일부의 환자들이 약을 안 먹어서 병이 재발하고 증상이 나타나서 문제를 일으키는 거거든요. 그리고 같이 잘 살아가면 낙인도 덜하고 환자분들도 겉으로 드러낼 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약도 꾸준히 먹을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사건 사고도 줄어들고 치료받는 것도 자유롭게 되니까 선순환으로 갈 수 있어요. 그게 안 되고 낙인이 찍히니까 자꾸 숨고, 자신이 환자라는 걸 드러내기 어려우니까 약 먹는 걸 꺼리고, 악순환으로 가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도 조현병에 대해 조금 이해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요새 조현병이라고 하면 마치 괴물처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실제로 보통 사람하고 똑같다니까요. 그런 걸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거죠. 



 
*권준수

서울대학교 정신과학·뇌인지과학과 교수이자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현병과 강박증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이자 세계적인 뇌의학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1998년,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에서 뇌 영상술을 이용한 정신질환의 기전을 연구했고, 이를 계기로 현재까지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서울대학교병원에 강박증 클리닉을 열어 전문적인 치료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지난 30년간 연구자이자 치료자로서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왔다. 특히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신분열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줄이기 위해 조현병(調絃病)으로 병명을 변경하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조현병의 모든 것
조현병의 모든 것
E. 풀러 토리 저 | 정지인 역 | 권준수 감수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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