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채널예스 : 만나고 싶었어요!
Viewing all 8510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음악평론가 김영대 “K-Pop이라는 말은 사라질 거예요”

$
0
0


BTS가 빌보드 1위에 오른 2021년에도 ‘아이돌은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다. 만들어진 가수, 어리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 만들고 즐기는 음악이라는 편견은 아이돌 음악을 예술 바깥에 두고 ‘스킵’하게 만든다. 음악평론가 김영대의 새 책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는 아이돌 음악을 낮춰 보거나 아이돌 가십에는 열광하면서 음악은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K-Pop의 현재를 잘 표현하는 가수 열 팀을 소개함으로써 ‘아이돌은 아티스트’라는 말을 입증하는 책이다. BTS, 아이유, 블랙핑크, 태민, 태연, NCT, 레드벨벳, 데이식스, 이달의 소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음악과 이를 설명하는 김영대의 평론이 영양소를 고르게 갖춘 밥상처럼 잘 차려져 있다. 이 밥상을 받아 맛있게 먹고 소화하는 건 독자의 몫.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김영대 평론가는 “글을 읽으면 음악이 들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돌 음악이 우월하다는 건 아니에요

<주간문학동네>에 연재할 때 해외 팬들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어요. 번역해서 읽을 정도였다고요. 

역대급 조회 수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해외 팬들이 관심 있어 할 줄은 알았는데 그 정도일지 몰랐어요. 제가 트위터에서 K-Pop 이야기를 한 지 4~5년 정도 됐는데요. 해외 팬들이 항상 K-Pop 담론에 목말라하는 것 같았어요. 미국 언론에서 다루는 K-Pop 기사로는 충족되지 않았나 봐요. 그러니 미국에서 한국 음악 평론을 오래 한 제 이야기가 흥미로웠겠죠. 

문예지에 실리는 K-Pop 평론이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처음 제안받고 어땠나요? 

뜻밖이었죠. ‘문학동네’ 하면 연상되는 문인들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하고 같은 라인업에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까 상당히 부담스럽더라고요. 아마 글 쓴 이래로 가장 어렵게 쓴 글이 아니었나 싶어요. 부끄럽지 않게 연재를 마치고 싶었고, <주간문학동네>라는 사이트의 정체성에 어울리는 미문을 쓰고 싶었는데 공부를 오래 해서 딱딱한 글이 나올까 봐 두려웠어요. 그래서인지 나중에 쓴 글일수록 더 부드러운 것 같아요. 

아이돌 열 팀이 등장하는데요. 열 팀을 먼저 선정하고 연재를 시작한 건가요? 

네. 먼저 정했어요. 밝힐 수는 없지만, 중간에 한두 팀이 바뀌기도 했고요. 

열 팀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다른 가수보다 훌륭해서는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선정한 건 맞아요. 다만 1위부터 10위까지 줄을 세운 건 아니라는 거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아티스트 열 팀을 꼽았어요. 글이 게재될 당시에 앨범을 낸 아티스트를 우선으로 했고, 남녀, 솔로와 그룹 비율도 맞추려고 했고요. 이렇게 여러 가지를 고려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열 팀의 아이돌이 K-Pop의 한 측면을 대표했으면 좋겠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면 순서도 전략적으로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랬죠. 왜 NCT로 연재를 시작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철저하게 제 생각이었어요. 문학동네에서는 비교적 더 알려진 BTS나 아이유를 쓰는 게 낫지 않겠냐면서 의아해했죠.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NCT를 처음에 소개함으로써 이 연재는 우리가 흔히 봐온 아이돌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거든요. 더 정확히는 NCT의 <일곱 번째 감각>이라는 노래로 글을 열고 싶었고요. 

임팩트를 주고 싶었던 건가요? 기선 제압하는 느낌으로... (웃음) 

맞아요. 기선 제압하고 싶었어요. (웃음) 영화도 첫 장면이 중요하잖아요. 이 연재가 하나의 쇼라면 <일곱 번째 감각>으로 쇼를 시작함으로써 독자들이 ‘아이돌 음악 보통 아니구나’, ‘얕볼 수 없는 거구나’하고 느끼길 바란 거죠. 김영대라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분석하는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여러 반응을 의도했어요.

성공한 전략인 것 같아요. (웃음) <일곱 번째 감각>을 듣고 조금 놀랐거든요. ‘이게 아이돌 음악인가?’ 싶어서요. 엄청 웅장하더라고요. 

다행이에요. 만약 <빨간 맛>으로 시작했으면 분위기가 달랐을 거예요.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이잖아요. 아이돌 음악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임팩트를 줘서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른 팀과는 달리 BTS는 멤버별로 썼는데요. 이유가 있나요?

다른 아티스트 팬들이 왜 BTS만 특별 대우하냐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확실히 눈에 띄었어요. BTS가 연재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웃음)

사실 BTS 글을 못 쓸 뻔했어요. 나름 BTS 전문가라고 불리고, BTS 관련 책도 낸 사람인데 도무지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접근법이 없을까 하고요. 전작에 대해 받은 피드백이 생각났어요. BTS 멤버 개인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써봐야겠다 싶었어요. 조금 아쉽기도 해요. 이 책을 통해 BTS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일반론이 없는 것 같아서요.

책을 쓰기 전 또는 후에 가장 많이 들은 오해나 질문이 있다면요?

책을 보고 아이돌이 다른 가수보다 더 우월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었는데요. 아이돌이 우월하다고 말하려는 게 절대 아니에요. 아이돌의 음악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로 보지 않으니까 알리고 싶었을 뿐이죠. 음악에서의 우열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걸그룹보다 보이밴드를 더 혐오하는 이유 

‘아이돌은 아티스트다’라는 말로 글이 시작되는데요. ‘선언’처럼 들렸어요.

‘아이돌은 아티스트다’라는 말은 ‘여자도 사람이다’,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말과 비슷해요. 당연하다는 거죠. 이 말이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은 그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많은 분이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이분법적 구도로 봐요. 오죽하면 RM이 노래에서 ‘You can call me IDOL, You can call me artist’라고 했겠어요. 우리가 누군가를 ‘남자 작가’라고 부를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잖아요. 남자는 성별이고 작가는 직업이니까요.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말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돌은 산업적 포맷이고 아티스트는 예술가를 뜻할 뿐이죠.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로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꼽으셨더라고요. 

아이돌이라고 하면 영혼 없는 꼭두각시, 시키는 대로 부르는 피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이돌 산업을 조금만 알아도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산업 내에서 충분히 창의적인 판단을 내리거든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의 몸으로 어떤 메시지를 표현하는데 그게 예술이죠. 대중들은 어떤 음악이 만들어지기까지 고뇌하는 과정만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거죠. 음악을 들어보고,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를 보고 판단했으면 좋겠어요. 경험하고도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요. 

아이돌에 대한 편견 속에 ‘청소년 혐오’가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린 사람들이 만들고, 소비하는 음악이라는 면에서 낮춰보는 분위기가 있죠.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여성 혐오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하기엔 남자 아이돌도 많지 않나요? 

그 남자를 좋아하는 게 여자잖아요. 미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는데요. 미국 보이밴드나 걸그룹이 한국의 아이돌 같은 존재거든요. 그런데 같은 아이돌이어도 걸그룹을 혐오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대부분 보이밴드를 혐오하고요.

아티스트나 음악 자체보다 그걸 소비하는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거네요.  

보이밴드 팬에 대한 편견이 있어요. 음악도 모르면서 그저 멋있다고 소리 지르는 젊은 여성이라는 생각이요. 그러니까 그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신뢰하지 않는 거예요. 여기에는 여성 혐오뿐만 아니라 록 음악 우월주의도 있는데요. 서구에서 록 음악은 주류, 백인, 식자층들이 즐기는 음악이거든요. 그래서 록 음악의 위상이 높아요. 반면 오래전부터 흑인들이 즐기는 흑인 음악은 저열하다는 인식이 있었고요. 저스틴 비버, 듀란듀란 틴팝도 마찬가지예요. 젊은 사람, 특히 젊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 수준이 낮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람이 하는 일이라 당연한 거겠지만, 음악의 지형에도 권력 관계가 반영된다는 게 신기하네요. 

당연한 거죠. 모든 인간사의 현상은 인간 사회를 모방하는 거니까요. 이를테면 팝 음악 중에서도 디스코에 대한 평가가 낮은데 그 기저에는 게이 혐오가 있어요.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선호하는 장르가 디스코거든요. 생각보다 더 복합적이에요. 

K-Pop은 미국의 버블검 팝(Bubblegum pop)’이나 일본의 팝과는 다르다고요. 문학적 세련미와 정교함이 K-Pop만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K-Pop에서만 이런 특징이 발현되는 배경이 궁금해요. 

그걸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는데요. 한국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가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면서도 정교함을 높이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거예요. 워낙 경쟁이 심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 가령 일본에서 아이돌 음악은 서브 문화거든요. 미국의 보이 밴드와 걸 그룹도 음악 산업 내에 존재하는 작은 시장에 불과해요. 그런데 한국에서 아이돌 음악은 그렇지 않잖아요. 엄청나게 큰 시장이고 경쟁이 심해요. 그러다 보니 서로 더 잘하려고 애쓰게 되고, 보통의 완성도로는 경쟁이 안 되는 거죠. 이 과정에서 음악의 전반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포지션도 생기는 것 같아요. 뭐든지 발전하면 다양해지잖아요. 같은 원리라고 생각해요. 미국과 일본에서 ‘아이돌’이라는 포맷을 가져왔는데 경쟁이 심하다 보니 한국만의 정교함이 발달하면서, 우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진화한 거죠. 

* Bubblegum pop: 1960년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밝은 사운드의 청소년 용으로 제작된 팝 음악. 



영국 음악을 B-Pop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K-Pop이라는 이름 미국에 의해 지어졌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어요. 생각해 보니 우리는 K-Pop이라는 말을 잘 안 쓰는구나 싶더라고요. 

우리는 굳이 K-Pop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거든요. K-Pop은 미국에 의해 타자화된 이름이에요. J-Pop처럼요. 제가 최근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는데요. “대체 K-Pop이 뭐냐?”는 거예요. “BTS는 K-Pop이냐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거든요. 그럴 때마다 되묻고 싶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K-Pop이 뭐냐”고요. 저마다 K-Pop에 대한 이미지가 다르거든요. 

저는 ‘K-Pop’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돌이 떠올라요.  

아이돌 음악으로 한국 음악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K-Pop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으니 우리가 K-Pop이라고 할 때는 암묵적으로 아이돌을 뜻할 때가 많죠. K-Pop이 한국의 모든 대중음악을 뜻한다고 하기엔 인디 가수나 힙합 가수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K-Pop이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K-Pop은 다 아이돌 음악이냐? 그건 아니에요. 가령 대중들은 헤이즈를 아이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K-Pop의 범주에 넣거든요.  

그런 걸 보면 K-Pop이냐 아니냐를 결정 짓는 요소는 ‘아이돌이냐 아니냐’보다 ‘외국에서 소비되는지 아닌지’인 것 같네요.  

맞아요. 그러니까 ‘K-Pop’이라는 말에는 외부자의 관점이 들어가 있는 거죠. 글로벌의 관점이 있어요. 국내에서 소비되는 음악에는 K-Pop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주류 음악 또는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되는 음악, 아이돌 음악 정도로 뭉뚱그려서 K-Pop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앞으로 K-Pop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달라지는 게 아니라 큰 의미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는 K-Pop이라는 카테고리제이션이 상업적으로 봤을 때 좋은 전략이었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누가 어떤 가수한테 ‘너 누구야?’라고 물었을 때 ‘나 K-Pop이야’라고 하면 쉬운 거죠. 그런데 우리가 영국 음악을 B-Pop이라고 하고, 미국 음악을 ‘A-Pop’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아, 지금보다 더 주류가 되면 굳이 K-Pop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군요. 

그렇죠. 글로벌화하면 할수록 아티스트 단위로 판단하게 될 거예요. 예를 들어 슈가가 음반을 내면 지금은 K-Pop 차트에 올라간 다음에 다시 힙합이라는 장르로 구분되는데요. BTS가 빌보드 1위 하는 시대잖아요.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앞으로는 한국 음악도 K-Pop이라는 이름을 떼고 미국 힙합 아티스트랑 경쟁할 수 있다는 거죠. 

‘아이돌’이라는 말은 어떨까요?

아이돌 음악을 파는 사람이나 저널리즘을 하는 사람들이 ‘아이돌’이라는 말을 쓰면 편하니까 쓰기 시작했을 텐데요. ‘아이돌’이라는 말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을 뿐 음악의 공식적인 구분은 아니에요. 음악 산업에 있는 포맷 중 하나이기 때문에 K-Pop과 달리 앞으로도 쓰일 가능성은 있죠. 



글에서 음악이 들려야 좋은 평론

평론도 예술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음악을 표현하는 말들이 적확하게 느껴져서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표현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직업이긴 하지만, 언어화하는 일이 항상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려움에 봉착할 때 어떻게 하나요?

답은 없죠. 음악이라는 게 추상적인 언어잖아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만든 사람의 생각이 담겨 있고요. 저는 그 과정을 생각이 음으로 인코딩된다고 표현하거든요. 청자들에게 음악을 해석할 지식이나 가이드가 없으니까 평론가가 음악을 글로 다시 인코딩하는 거고요. 저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글을 읽고 어떤 음악인지 알 수 있어야 좋은 평론이라고 생각해요. 글에서 음악이 들려야죠. 이 책을 쓰는 동안은 음악이 들리는 글을 쓰기 위해 자신과 싸우는 시간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찰진 표현을 쓰고 또 그걸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아티스트마다 고유한 표현을 쓸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고요. 

대중이 잘 모르는 가수보다 잘 알려진 가수에 관해 쓰는 일이 어려울 것 같아요. 어떤가요?

훨씬 어렵죠. 대중이 잘 모르는 가수에 대해서는 모르는 걸 알려주면 되는데 이미 잘 알려진 가수는 그렇지 않잖아요.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니까요. 이 책에 나오는 아티스트 중에서도 태연, 태민, 아이유에 대한 글쓰기는 정말 어려웠어요. 

‘팬하고 경쟁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표현하기도 하셨더라고요. 

팬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걸 ‘팬하고 경쟁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표현한 거고요. 유명한 가수들은 아무래도 커리어가 길잖아요. 할 수 있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그런데 다른 가수들과 똑같이 3,000자 내외로 써야 하니까 쉽지 않죠. 

평론의 대상이 바뀌면서 평론가에 대한 인상도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대중들이 연예 프로그램에서만 평론가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평론가들이 팬들하고 직접 소통하잖아요. 그런 변화의 중심에 계신 거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과거의 평론가는 소위 말하는 선생님 같은 느낌이었죠. 저는 원래 그런 이미지도 아니고, 평론가라는 포지션을 고집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어요. 편의상 평론가라고 불리고, 부르고 있지만요. 정확히 말하면 저는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이야기하는 방식은 글이나 방송이 될 수도 있고, 인터뷰가 될 수도 있고요. 제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이동진 평론가의 원칙이 ‘영화계에서의 우정은 불가하다고 생각하자’라고 하더라고요. 평론가의 숙명, 비애를 표현하는 말 같아서 기억에 남았는데요. 음악평론가로서 지키고 싶은 원칙이 있을까요? 

부탁이나 인정, 돈에 의해 리뷰를 쓰지 않는 건 당연하고요. 그 외에 지키고 싶은 태도가 있다면 기계적인 평가를 하지 말자는 거예요. 관점이 있는 비평을 해야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함정에 빠져서 하나 마나 한 비평을 하고 싶지 않아요. 이를테면 좋은 점 세 가지와 나쁜 세 가지를 쓰고 총평을 쓰는 식으로 제품 리뷰하듯이 하지 말자는 거죠. 음악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평론과 평론가에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고요. 

대중 입장에서 음악은 불친절해요. 3~4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해석해야 하는 메시지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평론가는 아티스트와 대중 사이를 중재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어려운 메시지를 텍스로 번역한다는 의미에서 번역가라고 할 수도 있고요. 이 책의 취지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돌의 음악을 잘 번역에서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김영대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2007년부터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면서 10년 넘게 미국팝 시장의 흐름과 K팝의 동향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 필명인 ‘투째지toojazzy’로 음악평론을 시작해 <음악취향Y> 등 다양한 온라인 매체에서 대중음악 칼럼을 써왔다. 2007년 가슴네트워크와 <경향신문>이 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2018년 <한겨레신문>과 멜론이 공동 기획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기획에 각각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재 <한겨레신문> 등 국내 언론과 뉴욕 매거진 <벌처vulture>, MTV 등 외국 언론에도 음악평론을 싣고 있으며, 2017년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BTS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K팝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쓴 책으로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미국 대중음악》이 있다.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
김영대 저
문학동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최은영 “소설가가 돼서 다행이에요”

$
0
0


인터뷰하는 대상이 결정되면 최소 2박 3일은 짝사랑하는 기분으로 산다. 인터뷰이의 근황을 샅샅이 살피고 비교적 최근에 했던 인터뷰를 모두 찾아 읽는다. 소설가 최은영은 인터뷰하기 5일 전 제주의 한 도서관에서 온라인 북 토크를 했다. 그의 첫 장편 소설 『밝은 밤』이 출간되었을 것을 예상하고 잡았던 행사. 하지만 출간이 조금 늦어지면서 행사 제목만 ‘밝은 밤’인 행사가 됐다. 최은영이 쓴 그간의 작품들은 익히 읽어 왔다. 팟캐스트에 출연했을 때 음성도 들었으니 말투도 파악, 홀로 친근한 마음을 갖고 질문지를 만드는 데 뾰족한 질문들이 나오지 않았다. 마흔 다섯 개 정도의 질문을 만들었지만 왠지 최은영의 답은 길지 않을 것 같았다. 예상은 조금 맞고 조금 틀렸다. 



답을 주는 건 이상한 일

첫 질문은 뻔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첫 장편을 출간한 소감을 물었다. 

“예전에는 출간 후 반응이 걱정됐는데 이제는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아요. 한동안 글을 못 쓰다가 썼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보상 받은 기분이고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100% 만족스럽기 때문에 이 소설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나오든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책이 나온 것 자체로 기쁘고요. 장편을 썼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이 커요.”

서른에 등단한 최은영은 두 권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을 쓰는 내내 ‘나는 왜 더 잘 쓰지 못하지’를 곱씹었다. 이민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정도였다. 세 번째 책 『밝은 밤』은 2019년 말부터 쓰기 시작해 1년간 계간지 『문학동네』에 연재하고 올해 초 완성한 최은영의 첫 장편. 3년 만에 나온 책이지만 3년간 쓴 소설은 아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1년을 글을 못 쓰다가 다시 쓰기 시작해서 완성한 소설이 『밝은 밤』이에요. 그래서 많이 각별하고요. 원래 작년에 나왔어야 하는 책인데 미뤄졌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냥 내가 약간 느리게 쓴다, 느리게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마무리를 했어요.”

소재는 2016년에 떠올렸다.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여자들의 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단편도 중편도 구상을 크게 안 하고 쓰는 스타일. 장편 역시 구상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사분의 삼 정도를 달리다 보니 글이 막혔다. 이래서 구상을 하고 소설을 써야 하나 싶었지만, 원래 스타일대로 썼다. 

“처음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썼어요. PC실에서.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해지면서 도서관이 문을 닫아서 집에서도 쓰고, 독서실을 끊어서 쓰다가 또 문을 닫아서 다시 집에서 썼어요. 그래도 가장 많이 쓴 공간은 독서실일 거예요. 2시쯤 가서 10시까지 쓰기도 하고 11시까지 있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하고 놀고 또 자고 그러다가 마감이 있으니까 또 쓰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어요.”

『밝은 밤』은 증조모에서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기록한 소설이다. 주인공 ‘지연’이 이혼 후 정착한 도시 ‘희령’에서 할머니와 재회하고 할머니를 통해 증조모가 살아온 역사를 듣게 된다. 100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이 어릴 적 희령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었듯 최은영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삼천’과 ‘새비’라는 생소한 이름의 인물과도 금세 친밀해지지 않을까. 

“소설을 쓸 때 어떤 성격의 인물을 쓰겠다는 의도 같은 건 거의 생각하지 않아요. 소설을 생각하다 보면 인물이 떠오르니까요. 만든다기보다는 인물이 나온다는 의미가 더 맞을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 주셨던 때가 있어요.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고 쓴 소설이라서 할머니의 캐릭터가 많은 인물에 반영이 됐어요. 저는 작품을 무의식적으로 쓰는 것 같아요. 뭘 넣어야지, 그런 건 거의 없어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읽어 보면 ‘내가 이래서 썼구나’ 하는 게 있겠지만, 살면서 느꼈던 화나고 억울하고 슬프고 그런 감정들을 풀려고 쓴 건,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한 날은 소설이 출간되기 일주일 전이었다. PDF로 받은 소설을 읽으며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옮겨 적다 보니 다섯 장이 훌쩍 넘어갔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얼까, 작품 속에서 깊이 배어있는 정서는 무엇일까 헤아려 보려다 생각을 고쳤다. 읽자마자 마음에 흡수된 이야기의 탄생기를 요모조모 따지며 작가에게 묻고 싶지 않았다. 

“소설은 답이 없잖아요. 정답이 없잖아요. 어떤 인물에 대해 쓰다가도 많은 이야기를 삭제하게 되는데, 그건 읽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자 하는 거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때 그 사람은 왜 그랬냐? 이유가 뭐냐?’ 그런 걸 물어보시거든요. 이 구절의 의미는 뭐냐? 라는 질문도 받거든요. 아마 학창시절 국어 교육의 영향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자기 경험과 생각에 따라 해석하는 게 소설이기 때문에 답을 물어보면 답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답하면 ‘저 작가는 생각도 안 하고 썼네?’라고 하는데 저도 물론 생각이 있죠. 하지만 답을 주는 건 이상한 일인 것 같아요.”

『밝은 밤』은 밤 같은 시절을 견뎌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끊임 없이 공격을 받아야 했던 삼천, 삼천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새비, 그리고 그들의 딸들, 또 딸들의 딸들. 

“인물들이 살아낸 시대를 밖에서 보면 어둡고 힘들어요.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서 보면 이들이 살기 위해 애썼던 행동들은 어둡지만은 않아요. 자신을 믿어야만 버틸 수 있었던, 힘든 가운에서도 피어난 우정들을 생각해보면 ‘밝은 밤’ 같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 같아요. 인생이 불쌍하다, 팔자가 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분명히 좋은 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남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행복도 느꼈을 거고요. 저희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봐도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좋은 순간들을 많이 기억하시더라고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살기 위해 했던 선택들에 대해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고 자기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은영에게 『밝은 밤』의 모든 인물은 각별하다. 다만 지연은 작가와 가장 닮은 인물이라서 초고를 다 쓰고 개고하는 과정에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제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그 인물의 감정을 제가 다 느낄 수밖에 없어서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연이가 살아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자체로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힘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지연이를 응원하는 게 결국 저를 응원하는 일이 되더라고요. 쉽게 극복하고 나아지고 치유되는 인물이었다면 이런 기분을 못 느꼈을 것 같아요.”

최은영은 등단 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펴내며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이 다짐은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이어 『밝은 밤』에서도 지켜졌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는 일

최은영은 2018년 단편소설 『몫』을 출간하면서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솔직할 것, 나의 가장 더러운 부분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까운 사람들의 상처를 함부로 재현하지 않는 것,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하지 않는 것, 아는 척 잘난 척. 내가 뭐라고 되는 척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추가된 것이 있냐고 물었다. 

“인물들에 관해 너무 비참하게 쓰지는 말자고 생각해요. 문학이라는 것이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니지만 극도로 비참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그의 소설을 읽어온 사람들이라면 그의 성정을 눈치챘을 것이다. 감정이 많은 사람, 마음이 약해 자주 다치는 사람. 『밝은 밤』을 쓰기 전까지 최은영은 “누가 툭 치면 쏟아져내릴 물주머니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소설을 쓰며 회복할 수 있었다.

“슬픈 일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감정이 많아서 항상 힘들어요. 남들이 ‘왜 이런 것 갖고 힘드냐?’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잘 안 돼요. 몸이 막 반응을 하니까요. 몇 년 전에 상담을 받았었는데 선생님이 선교사로 이민을 가시면서 끝났어요. 화상통화도 했지만 그걸로는 안 되더라고요. 제가 갖고 있는 문제는 항상 똑같았어요. 스스로에게 너무 못되게 굴고 너무 뭐라고 한다. 마치 옆에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따라다니면서 저한테 계속 뭐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다행히 상담을 받으며 많이 편안해졌다. 힘든 일이 생기면 나중에 이 문제를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에 언제나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으니까. 

최은영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영어 과외도 했고 고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도 했다. 그러다 책이 나왔고 전업작가가 됐다. 다양한 일을 해본 경험이 창작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물었다. 

“그냥 드는 생각은 소설을 쓰는 일이 제 적성에 다는 거예요. 예전에 다른 일을 했다면 몰랐겠지만, 이것저것 해봤으니까요. 소설이 나한테는 맞는 일이구나, 그래서 만족하게 돼요.”

등단 초기 최은영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너무 평범한 이야기를 쓴다”, “문장이 평이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얼마간은 고치려고 노력도 했지만 지금은 장점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장점을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장점과 단점은 동전 앞 뒷면 같은 거예요. 평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때 특별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이 평이한 이야기와 평범한 문체가 제 장점이더라고요. 있는 그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더 나은 방법 같아요. 내 마음이 안 든다고 고치는 것보다 자기확신을 갖는 게 중요해요. 고치려고 하면 이도 저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최은영은 자주 생각한다. “남의 말은 3일 간다”, “어차피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체념적인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를 지키는 말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랑이 있길 바라는 사람

최은영은 소재를 생각하고 글을 구상하는 편이 아니다. “어떤 소재의 글을 쓰고 싶냐?”는 질문을종종 받지만 뚜렷한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래도 분명한 건 앞으로도 여성의 이야기, 노인이나 아동의 이야기를 비롯해 저평가되어온 관계들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을 많이 생각한다. 최은영이 대학을 다녔던 시절이 19년 전인데 그때도 소수자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는 다른 일들이 해결된 후 ‘나중에’ 하자”는 반론을 들었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아직도 ‘나중에’를 말하고 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말했던 ‘나중에’가 이미 도래했는데도 또 ‘나중에’라고 해요. 그 사실이 저를 너무 화나게 해요.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하지만 소수자 혐오는 더 광범위하게 퍼졌고 이제 어떤 사람들은 그걸 레저처럼 여기기도 해요. 사회가 점점 더 잔인해지고 있다고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자주 생각하는 사회문제 중 하나는 지금 20대들의 고통이죠. 기성세대들이 사다리를 다 걷어차버려서 직장을 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에 진입하는 것조차도 어렵게 되어버렸잖아요. 제가 20대였을 때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20대들의 고통에 책임이 있어요.”

최은영은 대학 시절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었다. 2년 동안 잡지를 만들었던 시간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원래도 예민한 성격이었지만 언어에 더 예민해졌고 스스로와  타인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접근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저 개인적으로는 동물들에 대해서도 더 가까이 느끼게 됐어요. 교지를 시작한 대학교 1학년 겨울에 정희진 선생님이 학교에 강연을 오셨어요. 그때 제 세상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어요.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더라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라는 선생님의 책도 찾아 읽었고 시야가 넓어지고 확장되는, 이상할 만큼 가슴 아픈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를 지나지 않았으면 글도 쓰지 않았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어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최은영. 언제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은영. 그가 갖고 싶은 재능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했다. 창작으로써의 재능이 아닌 관계에 있어서의 재능.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 수도 있는데요. 항상 바라는 건 저에게 더 많은 사랑이 있길 바라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호구 같다고, 멍청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이 많은 사람 같아요. 용기가 있다고 할까요? 타인과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저는 그 사랑이 부족한 상태로 오래 살았거든요. 아직도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무서워하는 것이 있지만 두려움을 좀 줄이고 사랑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해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 수 있으려면 마음의 힘이 세야 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추구하지도 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차선을 택했던 것들이 요즘은 후회가 많이 돼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최소한의 믿음을 지켜준다면 고마운 일 아닐까. 사람을 대할 때 두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 일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소설가는 나의 천직

요즘 최은영은 피아노를 배우고 전화영어를 하고 요가를 한다. 모두 이틀 간격으로 오전에 하는 일들이다. 정해진 일을 마친 다음에는 점심을 먹고 반려묘의 똥을 치우고 두세 시쯤 독서실에 가서 인터넷 서핑을 한다. 놀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걸 눈치채면 글을 쓴다. 다작하고 싶은 욕망은 처음부터 없었다. 천천히 조금 쓰더라도 괜찮은 원고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마감은 웬만하면 지키려고 해요. 며칠 더 잡고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있겠지만, 조금 후지게 발표해도 약속은 지키자, 생각해요. 단행본을 낼 때 고칠 수 있으니까요. 소설을 배울 때, 결국 마지막에 남는 첫 문장은 초고의 첫 문장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일단 쓰다 보면 손이 풀리고 두 장쯤 쓰다가 제대로 시작할 수 있거든요. 습작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너무 겁먹고 쓰지 않는 게 좋아요. 『쇼쿄의 미소』의 첫 문장도 초고의 스물 여섯 번째 페이지에 나온 문장이거든요.”

어릴 적 최은영에게 독서는 놀이였다. 소설가가 된 지금의 독서는 공부가 될 때가 많다. 작가가 되기까지 영향을 미친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에세이 『인생 수업』.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 베스트셀러라서 읽지 않으려다가 중고서점에서 발견해 읽은 책이다. 

“그때 박사학위를 빨리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거든요. 논문을 쓰는데 재미도 없고 괴롭고 왜 살았나 싶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어요. 저자가 정신의학자인데 호스피스병동에서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을 만나요. 그리고 사람들이 죽기 전에 그동안 꿈꿨던 일을 못한 걸 가장 후회한다는 사실을 발견해요. 더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인 업적을 쌓아야 했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해요. 그때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내가 원하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소설을 쓰는 삶을 살게 되며 최은영은 먼 미래는 잘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가까운 미래조차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이라고 생각하고 하루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 저는 살아 숨을 쉬고 있지만 내일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 사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 하루가 더 소중해요.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저는 꿈이 없어요. 그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고, 글을 즐겁게 쓰고, 쓰는 순간 몰입하고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순간순간 쓰는 것. 쓰고 싶은 것이 있지만 ‘나중에’ 쓰자, 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미루지 않고 자기 두려움에 도전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 그 정도를 바라는 것 같아요.”

『밝은 밤』을 두고 최은영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열심히 썼던 기억이 소중하니까, 전작들을쓰면서 했던 ‘나 왜 이렇게 못 쓰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요즘 자주 생각하는 건 독자들에 대한 고마움.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다는 것,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일인지 틈틈이 곱씹는다.

“천직이라는 말이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가로 살고 보니 소설가가 저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과 직업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겹쳐 있다고 해야 할까요. 일이 일 자체로서의 보상을 주고 제 삶에 숨을 불어넣어주더라고요. 일을 통해, 일을 수단 삼아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때 그 일 자체로 만족하게 되는 마음이 들어서 정말 제가 작가로 살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한 마음을 느껴요. 늘 마음에 허함이 있는데 소설 쓰기는 그 허함을 채워주는 몇 안 되는 일이고,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이 일로만 채워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허기를 계속 느끼며 살아갔으리라고 생각해요. 소설가가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행복하다, 라고 자주 생각해요.”

연재 마감을 앞두고 초조한 마음으로 독서실에 들어가 바로 원고를 쓰지 못하고 이것저것 인터넷 서핑을 하는 최은영의 모습을 상상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은 무척 좌절했을 테고 진도가 많이 나간 날에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문득 아포리즘 같은 문장이 써졌을 때는 기어이 삭제했을 테고 인물이 너무 비참하다고 느껴지면 방향을 조금 틀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초고를 여러 번 개고하고 최종고를 완성했을 때, 얼마나 행복했을까. 최은영은 『밝은 밤』 작가의 말에 “소설이 책이라는 몸을 입을 때 나는 늘 이별하는 기분을 느낀다. 책은 책의 운명을 살 것이다.”라고 썼다. 『밝은 밤』은 이제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 향한다. 소설은 작가의 기획 의도가 없는 작품. 해석과 감상은 모두 독자의 몫이다. 최은영은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것은 늘 과정일 뿐이고, 결과로서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어쩌면 작가는 독자보다 뒤늦게 이 소설을 써야 했던, 쓰게 했던 이유를 알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또 도전할 것이다. 나중에 쓰자고 미루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의 글을 쓰면서, 그 과정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최은영(소설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제5회, 제8회, 제1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밝은 밤
밝은 밤
최은영 저
문학동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손희정, 여성이 바라보면 우주가 탄생한다

$
0
0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2015년, 영화연구자 손희정은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대중문화와 SNS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들었고, 새로운 흐름을 ‘페미니즘 리부트’라 명명했다. 달라진 세상만큼이나 영화관의 풍경도 바뀌었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여성 영화감독들이 등장했고, 관객들은 기꺼이 스크린 앞에 모였다. 그리고 2021년, 손희정은 13인의 감독들을 만나 고유한 우주를 들여다본다. 팬데믹으로 영화관이 닫히고 광장에서 어떤 말들은 지워지지만, 손희정은 여전히 ‘우리’를 말하는 유니버스의 중심에 있다.

손희정은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대중문화와 한국사회를 비평하는 영화연구자다. 첫 영화책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는 『페미니즘 리부트』 『성평등』 『다시, 쓰는, 세계』 이후 네 번째 단독 저서다. 공저로 『21세기 한국영화』 『대한민국 넷페미사史』 『을들의 당나귀 귀』 『원본 없는 판타지』 등이 있고, 역서에 『여성 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다크룸』 등이 있다.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과 함께 <권손징악>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

영화에 대한 첫 단독저서입니다. 작가님의 본업은 영화연구자인데, 여성학을 전공한 여성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많은 분들이 저를 1990년대 페미니즘 운동을 했던 ‘영 페미니스트’ 출신인 줄 아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지금의 동료들이 광장에 모일 때 극장에 가고 영퀴(영화퀴즈)를 풀던 시네필이었거든요.(웃음)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까 여성영화를 많이 봤고, 『씨네21』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접했죠.

책 앞날개의 자기소개가 꽤나 디테일했어요. <E.T>, <아마데우스> 등 영화에 대한 애정을 밝히셨더라고요.

처음 본 영화가 <E.T.>였는데요, 깜깜한 극장 안에서 스크린을 보고 경이감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나요. 영화에 푹 빠진 건 역시 이야기가 좋아서예요. 제 전공이 한국사였는데, 그중에서도 고대사를 좋아했거든요. 고대사는 돌덩어리 하나 보고 우주를 상상하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상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역사가 재밌었던 거죠. 영화도 상상력의 세계여서 푹 빠졌던 것 같아요.

영화를 완전히 다르게 보게 된 계기가 아녜스 바르다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였다고요.

그 영화를 처음 볼 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원래 영화학과를 들어가기 전에 <예술영화TV>라는 케이블 방송국에서 1년 정도 일을 했어요. 외화 판권을 사서 TV에 거는 부서에 있었는데, 팀장님이 아녜스 바르다가 한국의 여성영화제에 방문하면서 본인의 영화를 한국 에이전시에 판매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 미팅에 가면서 저를 데리고 가셨어요. 굉장히 유명한 페미니스트 감독이라고 하면서.(웃음) 실제로 아녜스 바르다를 그의 호텔방에서 만났는데, 그땐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몰랐어요. 그 후에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봤고, 완전히 다른 세계였던 거죠. 회사를 그만둔 후에 영화 공부를 하면서 에세이를 아녜스 바르다로 썼어요. 그때 주진숙 교수님이 저를 눈여겨 보셨고, 석사 논문 주제를 고민하니까 “너 페미니즘 한다고 해서 뽑았는데. 안 할 거니?”라고 하셨죠. 그게 시작이었어요.(웃음)



이번 책은 비평가 손희정이 여성영화감독 13인을 만나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획이에요. 인터뷰와 평론의 중간인데요. 어떻게 기획이 시작됐나요?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새로운 여성영화의 물결이라는 주제로 강의한 적이 있었어요. 2019년은 참 특이한 해였어요. 김보라의 <벌새>, 윤가은의 <우리집>, 유은정의 <밤의 문이 열린다> 등 여성 감독의 영화가 쏟아져 나왔고, 인디스페이스에서 이 새로운 경향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어준 거예요. 거기서 인디스페이스 관장님과 마음산책 출판사 대표님 사이에 이야기가 오갔고, 기획이 시작됐어요. 인터뷰 형식이 된 건, ‘감독과의 대화’ 행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에요. 제 본업 중 하나가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거든요.

인터뷰할 감독을 정하는 데 고심했을 것 같아요.

좋은 감독이 많아서 13인만 뽑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웃음) 제일 중요한 기준은 2019~2020년,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로 포착할 수 있는 젊고 새로운 감독인가였어요. 그리고 이 흐름을 맨 앞에서 이끌어가는 사람이 이경미 감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경미 감독은 상업 영화를 찍어 오기도 했고, 1990년부터 봤을 때 분기점에 놓을 수 있는 인물이니까요. 

개성이 뚜렷한 감독들을 ‘여성영화’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겠어요.

‘여성영화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어떤 경향으로 묶는 게 감독들에게는 족쇄일 수 있잖아요. 13인 모두 개성이 달라서 이 다양한 세계를 여성영화 하나로 꿰는 게 괜찮을까 계속 생각했죠. 근데 어느 한 분도 왜 나를 여성 감독이라 묶느냐고 안 하셨어요. 이건 새로운 현상이기도 해요. 예전에는 ‘나는 여성 감독이 아니라 감독일 뿐이다’라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 2019년에 등장한 김보라, 이옥섭, 윤가은 등의 감독들은 서로를 여성 감독이라 부르면서 같이 행사도 하고 연대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여성 감독이라는 말을 쓰는 게 덜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해석이 빗나가는 곳에 영화가 있다

영화 하나를 깊게 다루려고 하다가 감독의 고유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작업이 확장됐다고 하셨어요.

지금까지 제 입장은 감독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영화 강의할 때도 늘 “감독은 천재가 아니다. 그보다는 작품의 사회적 맥락이나 효과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거든요. 근데 영화를 만든 사람을 앞에 놓고 대화해보니 ‘당신은 사회의 결과다’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20년간 해온 생각이 많이 깨지면서 지금껏 편협하게 작품을 읽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동안 여성 감독들이 길고 성실하게 작업해온 덕분이기도 해요. 한 작가를 논하려면, 여러 작품이 필요하잖아요. 지금까지 작업해온 시간 속에서 여성 감독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거죠. 천재여서 훌륭한 작품이 나온 게 아니라,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면서 작가가 된 과정을 포착하는 게 굉장히 즐겁더라고요. 

계속 영화를 찍어온 감독들이 있어서 가능한 거군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 감독이 장편을 만드는 게 아직은 힘든 일이잖아요. 장편 영화까지 간 감독들은 엄청난 뚝심을 갖고 자기 이야기를 해온 사람들이더라고요.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전 영화에서도 드러나는 거예요. 김보라 감독의 초기 단편 <리코더 시험>이 <벌새>로 이어지고, 차성덕 감독의 단편이 장편으로 확장되는 것처럼요.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더라도 일관된 관심사가 있었어요. 그걸 발견하는 게 재밌었죠. 

감독의 말 앞에서 평론가의 해석이 빗나갈 때도 있잖아요. 이번 책에서는 그런 순간도 그대로 담아내셨어요. 

사실 비평가로서 인터뷰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인터뷰라고 해도 내 비평글이라는 자의식이 컸던 것 같아요. 감독의 의견보다는 이 작품을 내가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예전 영화를 다 찾아보고 인터뷰를 할수록 그게 아닌 거예요. 결국 ‘감독과의 대화’ 행사와 똑같이 저는 관객과 감독을 잘 연결하는 매개가 되어야 했던 거죠. 그게 인터뷰를 하는 비평가의 태도고 임무구나 싶었어요. 글을 쓸수록 감독의 작품 세계를 잘 전하려면, 나는 어떤 장을 깔아야 하나 고민이 들었죠.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로 시작하는 김초희 감독에 대한 글이 그랬죠. 질문을 던지면 감독님은 매번 다른 대답을 내놓아요.(웃음)

김초희 감독과의 대화는 예상이 번번이 빗나가서 너무 즐거웠어요.(웃음) 종이 한가득 질문을 써 갔는데 다 아닌 거예요. 이렇게 해석했는데 맞냐 물으면, 감독님은 “제작비 없어서 그랬는데?” 하시고. 근데 저는 제약 속에서 선택한 전부가 영화 같아요. 제 해석에서 영화 속 찬실이네 집이 중요했거든요. 집주인 할머니 방, 딸의 영화 아카이브 방, 장국영의 방 모두 하나의 공간에 있어요. 감독님한테 공간 구조가 특이하다, 이런 집은 어떻게 구했냐 했더니 사실은 다 개별 공간이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도 재밌어하셨어요.

김도영 감독의 <82년생 김지영>을 ‘참여형 영화’로 조명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조조 관람 시간에 여성 관객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울기도 하면서 영화를 함께 봤죠.

사실 <82년생 김지영>은 제가 비판하는 칼럼도 썼던 작품이에요.(웃음) 근데 한국 영화계에 큰 의미를 던진 작품이니까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죠. 섭외해놓고 김도영 감독의 이전 영화들을 보는데 감독의 세계가 너무 좋고 더 알고 싶은 거예요. 굉장한 호의를 갖고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감독님은 제 비판글을 보고 정말 뭐가 부족했는지 궁금해서 나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은 <82년생 김지영>이 출발점이고 이제 어디로 나아갈지 고민하고 계셨어요.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자신의 시간을 사는 여성들

‘느슨한 연결’이라 했지만, 13인의 영화 감독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면요?

여자들이 자신의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간 한국 영화에서 시간은 남성만이 사는 거였어요. 남자 주인공이 성장을 해서 이 사회가 원하는 아버지가 되거나, 도달하지 못하면 죽거나 했죠. 반대로, 여성들의 현실에서는 시간은 여자 편이 아니었죠. 예전에는 여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가격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곤 했거든요. 근데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터져 나온 여성영화에서는 여성 주인공이 자신만의 시간을 살면서 성장하는 이야기가 등장해요. 이건 여성 감독들에게도 마찬가지죠. 10년 전만 해도 경력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여성 감독들이 버텨서 대중과 교감하기 시작했어요.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전후로 여성 관객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죠. 영화 <걸캅스> 개봉 당시, 티켓을 여러 번 사서 객석을 채우는 ‘영혼 보내기’ 운동을 하기도 했고요.

맞아요. 그동안은 여성영화를 만들어주세요 하면, 한국 영화계의 반응이 ‘만들어 봐야 흥행이 안 된다’였거든요. 그러자 관객들이 ‘안 봐서 안 만들면 우리가 보자’고 응답하게 된 거죠. 그게 <걸캅스>와 <정직한 후보>, <82년생 김지영> 같은 영화로 이어진 거고요. 

“여성영화는 한마디로 규정될 수 없고, 정답을 줄 수도 없다”(235쪽)고 쓰셨습니다.

‘여성서사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떠올라요. 남성들만 나오는 영화에서여성이 주인공이고 탈코르셋을 하고 연애를 하지 않는 ‘페미니즘 영화’까지 줄을 세운 온라인 밈인데요. 저는 이런 줄 세우기가 마이너스 담론처럼 느껴졌어요. 이런 식으로 다 배제했을 때, 마지막에 남는 게 과연 여성서사일까. 제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건 여성서사를 풍부한 결을 포토샵 레이어를 씌우듯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이것만이 여성서사라고 결론짓는 것이 아니라요.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으로 영화를 본다는 건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비평가의 임무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에요. 여성영화가 무엇인지 답을 내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고, 이제껏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찾아내는 거죠. 페미니즘 비평의 핵심도 그런 것 같아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현상에 질문을 던지고, 그 다음을 생각하는 일이요. 13인의 감독과 만나면서 좋은 질문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질문이 독자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네요. 



*손희정

손희정은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대중문화와 한국사회를 비평하는 영화연구자다. 첫 영화책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는 『페미니즘 리부트』 『성평등』 『다시, 쓰는, 세계』 이후 네 번째 단독 저서다. 공저로 『21세기 한국영화』 『대한민국 넷페미사史』 『을들의 당나귀 귀』 『원본 없는 판타지』 등이 있고, 역서에 『여성 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다크룸』 등이 있다.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과 함께 <권손징악>을 진행하고 있다.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손희정 저
마음산책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홍민지 “망한 주식 이야기가 책이 됐어요”

$
0
0


올해 2월, 출판사 ‘드렁큰에디터’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주식 에세이 원고를 공개 모집한다는 포스팅을 보았다. SNS로 단행본 저자를 찾는 방식도 신선했지만, 특히 흥미로웠던 건 주식을 에세이로 풀어낸 기획이었다. 주식만큼 감정의 파고가 큰 경험도 드문데, 왜 이 이야기는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겼던 걸까. 기대에 부풀어 책을 기다렸고, 평범한 개미의 일상이 담긴 『일희일비의 맛』이 출간됐다. 

홍민지 저자는 자칭 “10년차 주린이”다. 회사 선배들을 따라 얼떨결에 주식에 발을 들인 지는 꽤 되었지만 지난 투자 인생은 대체로 “망하고 물린”시행착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원고 모집 공고를 보고 그가 처음 한 생각은 ‘다른 건 진짜 잘 쓸 수 있는데, 왜 하필 주식이야?’였다고.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아 마음을 접었지만, 사흘 밤낮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른채 주식에 뛰어들었던 날처럼 대책 없이 원고를 써서 보냈고, 마침내 저자로 선정됐다. 그는 책을 쓰면서 “인생에 허튼 삽질이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독자로서 『일희일비의 맛』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도 그렇다. 주식 이야기가 궁금해 펼쳤다가 인생을 생각하게 되는 책. 개미가 아니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주식 에세이다. 

홍민지 저자는 광고회사 ‘이노션’의 광고기획자를 거쳐 현재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햇수로 10년차 개미가 되었지만 투자보다 쇼핑을 사랑한 기간이 더 길다. 주식도 쇼핑하듯, 다양한 종목을 사고 판 경험으로 첫 책을 출간했다. 



주식을 잘해서 쓴 건 아니에요 

드렁큰에디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원고를 공개 모집하고 책이 출간되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어떻게 응모를 하셨나요? 

평소 좋아하던 출판사라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원고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어요. 보자마자 ‘딱 날 위한 기회다!’ 생각하며 내용을 읽어 내려갔더니 하필 주제가 주식이더라고요(웃음). 제가 쓸 수 없는 영역인 것 같아 아쉽게 넘길 수밖에 없었죠. 그때만 해도 주식에 대해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흘려버리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고민할 시간에 뭐라도 해보고 결정하자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일주일 정도 샘플 원고를 쓰고, 짤막한 기획안과 가목차를 작성해 보냈죠. 전문성이 필요한 주식 이야기는 제 영역이 아니라서 ‘전직 맥시멀리스트 쇼핑왕의 주식매매일지’를 콘셉트로 출간기획서를 작성했어요. 

어떤 원고를 써서 보내셨어요? 

‘봉준호 테마주와 샤넬백’ 원고였어요.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수상을 앞두었을 때, 제가 봉준호 테마주를 매수해서 일주일간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탔거든요(웃음). 제 주식 인생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라 그런지 후루룩 써졌어요. 드렁큰에디터 대표님께 연락이 왔을 때도 “봉준호 에피소드 재미있게 봤어요”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저의 오디션 곡이나 마찬가지인 원고죠. 

첫 미팅 후 한 달만에 탈고를 하셨다고요. 집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정확히는 초고를 한 달만에 썼어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으니 성격상 얼른 기획 잡고 스케줄에 맞춰 원고를 써야 하는데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솔직히 공포감에 가까운 느낌이었어요(웃음). 뭘 써야 할지 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 먼저 엑셀 시트를 하나 만들고,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하나씩 채워봤어요. 어떤 종목을 어떤 타이틀로 쓸지, 순서와 분량은 어떻게 할지 스스로 가늠을 해본 거죠. 

편집자님께서 원고에 대해 들려준 피드백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지속적으로 해주셨고요. 수익률과 매수가, 매도가를 공개하면 어떠냐고 제안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나처럼 소소한 개미의 수익률을 사람들이 궁금해할까?’ 싶었는데,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편집자님도 주식하는 개미 중 한 사람으로서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포인트를 잘 짚어주셨다는 걸요. 

또 무엇보다 개미들의 공감대를 얻는 게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가급적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썼으면 좋겠다는 가이드를 받았어요. 원래 남이 돈 잃은 얘기가 더 재미있는 법이라면서요(웃음). 덕분에 저의 투자 원금과 삽질 스토리가 책에 적나라하게 담기게 됐죠. 다시 과거로 돌아가 수치들을 복기하니, 집필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손해를 본 날의 회한과 슬픔, 울분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떠올랐거든요(웃음).

주식 이야기는 보통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주식 에세이를 출간하고 주변의 반응이 어땠어요? 

가까운 지인들에게 출간 소식을 알리면서 어떤 장르의 책일지 맞춰보라고 했는데 단 한 명도 맞추지 못했어요. 나중에 주식 에세이라는 걸 알고는 심지어 “너 주식해?”라며 다소 충격을 받은 듯한 지인들까지 있었죠(웃음). 반면 “네가 쓴 주식 책이라면 나도 읽어보고 싶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제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아니까 딱딱한 주식 책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독자분들 중에도 실제로 주식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일희일비의 맛』은 만만함이 장점인 것 같아요(웃음). 저도 주식을 잘해서 쓴 게 아니니까요. 주식에 대해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난 저의 감정과 에피소드로 채운 책이기 때문에 주식에 관심이 없어도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쇼핑은 일시불, 주식은 할부!

코로나가 터지기 2개월 전, 근 10년을 쉬었던 주식을 공교롭게도 다시 시작했다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보통 새해를 앞두면 큼지막한 쇼핑을 하거나,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그때는 이상하게 재테크가 하고 싶더라고요. ‘새해를 맞이했으니 이제 건실하게 자산을 굴려보자’고 포부를 다지며 주식 투자를 다시 시작했는데 곧 코로나가 터져서 장이 폭락했어요(웃음). 투자에는 워낙 소질이 없었고, 소비지향적인 삶에 충실했던 사람이라 큰 충격을 받진 않았지만 헛웃음이 나더라고요. 다시 주식 시작한다고 나름대로 공부해서 삼성전자를 매수했는데 역병이 터지다니… 저는 운명론자에 가까운데요. 그때 뜬금없이 주식이 하고 싶었던 건 책을 쓰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투자 일지를 쓰세요? 수년 전 매수한 종목에 대해서도 세세히 기억하고 계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꼼꼼하게 투자일지를 쓰는 성실한 투자자였다면 아마 이 책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겠죠?(웃음) 어떤 이야기를 쓸지 엑셀 시트를 하나씩 채워가며 기억을 더듬다 보니 제가 꽤 많은 종목을 사고 팔았더라고요. 잊고 지냈던 전 직장의 우리사주(근로자가 취득한 자기 회사의 주식)도 그 과정에서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럴 때마다 주식 앱에 들어가서 10년 전 데이터를 다시 검색해봤어요. 얼마에 사고팔았고, 얼마나 잃었는지 따지면서 유적 발굴하듯 종목을 하나하나 건져 올린 거죠(웃음). 다시 보니 너무 일찍 팔았거나, 고점에 물렸던 종목이 대부분이라 가슴 한편이 아렸는데요. 집필 자체가 즐거운 과정이었기 때문에 쓰라린 에피소드를 찾으면 쾌감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 이 감정을 풀면 되겠다’ 라며 마치 에피소드 사냥꾼처럼 저의 지난 주식 역사를 곱씹었어요. 

10여년의 주식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종목은 무엇인가요? 

이 책의 시작과도 같았던 봉준호 테마주 ‘바른손이엔에이’요. 그 경험이 없었다면 책상에 앉아 원고를 써볼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거예요. 주가가 쭉쭉 오르는 걸 보며 욕심내서 시드 머니를 늘렸고, 이후로도 주가가 계속 전고점을 갱신해서 매일 흥분상태였는데 순간적인 매도 타이밍을 놓치니까 수익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저의 개미라이프 시즌2를 열었던 기점이기도 하고, 본격적으로 주식에 재미를 붙이게 된 순간이라 특히 기억에 남아요. 이후 이어진 두툼한 삽질의 역사로 책을 한 권 채웠으니 저에게는 가장 특별한 종목이죠. 

여러 번 실패의 맛을 경험한 결과, 현재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하고 계시는 듯 보여요. 지난 경험을 발판 삼아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투자 원칙’이 있다면요. 

쇼핑은 일시불, 주식은 할부! 입니다. 제가 들어간 구간이 희대의 저점일지, 다시 오지 않을 고점일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과거의 저는 주식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고, 사고 싶으면 고민 없이 턱턱 일시불로 매수를 했어요. 이 버릇 때문에 자꾸 고점에 물린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분할 매수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노력해요. ‘주식은 대응’이라는 생각으로 정해진 예산 내에서 차근차근 몇 주씩 사 모으는 방식을 고수하면, 최소한 복구 불가의 내상을 입을 정도로 손해를 볼 확률은 줄어드는 것 같아요. 시장은 늘 변하는 유기체니까요. 

애써 모은 돈을 한 번에 잃기도 하는 게 주식입니다. 그럼에도 계속하게 되는 매력은요? 

자본주의 시장에서 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 같아요. 주식에 한번 발을 들이면, 마음고생하는 날이 많지만 원금을 그냥 계좌에 두고 0에 수렴하는 것보다 내 돈이 플러스, 마이너스되는 과정을 보는 자체가 주는 역설적인 안도감이 있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데, 내 돈은 계좌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안 되지 않나?’ 라는 경계심이 들기도 했던 것 같고요. 주식 자체가 주는 재미도 있지만, 돈도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했던 거죠.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10여 년간 소비지향적인 소유의 삶을 추구해 온 스스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한몫을 했을 거예요.


 

모두 개미가 될 필요는 없다 

투자에 관한 에세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거나 염려스러운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에세이는 저자의 생각과 관점을 비롯해 감정과 말투까지 글에 비추는 투명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게 독자들이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일 테고요. 그런데 여기에 숫자와 돈이 얽히니 제 감정과 에피소드뿐 아니라 잔고 사정, 투자 히스토리가 낱낱이 공개되더라고요. 투명하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아지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책에 “주식 쇼핑은 아주 고독하고 은밀한 솔플(솔로 플레이)의 세계(88쪽)”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어요. 보통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야 투자 수익률까지 솔직히 이야기하진 않잖아요. 손해를 보고, 마음 아팠던 이야기를 하는 게 처음에는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몇 번 구체적인 이야기를 글로 풀어가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한두 편씩 글이 쌓이다 보니 솔직하게 쓰는 것만이 독자를 몰입시키는 방향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실 주식 에세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없으니, 그저 이 길이 맞는 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재미있게 작업을 했죠. 

‘내가 주식을 할 상인가’ 꼭지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주식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지만,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다독이는 내용이 좋더라고요.

주식이 또 하나의 인생 과제이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수 스텝처럼 되어버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나만 안 하는 것 같고, 혼자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주식을 시작하지는 않아도 된다고요. 저는 소비하는 걸 좋아하고, 돈이 허락하는 다양한 선택지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어요. 주식으로 수익을 내든, 손해를 보든 그 과정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같은 돈으로 맛있는 식사를 하며 기쁨을 느낄 수도 있고, 차곡차곡 모으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강아지 간식을 사주면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죠.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주식 열풍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실제로 제 주위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이 있어요. ‘나만 주식 안 하나? 다들 주식 얘기하는데 대화에 끼지도 못하겠네. 지금이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혼자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감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10년차 주린이로서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작정하고 공부한 뒤에 달려들어도 돈 잃고 마음고생하는 게 주식이라는 거예요. 남들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꼭 투자에 쓰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개인적인 행복에 집중해도 충분히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리뷰 중에 이 책을 읽고 ‘역시 주식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을 얻으신 분들을 봐요. 이건 제 책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해요. 미리 겪어본 남의 이야기, 경험담을 통해 자신의 기회비용을 아낄 수 있잖아요. 

책을 쓰고 난 뒤, 주식에 대해 달라진 생각이 있을지 궁금해요.

저에게는 주식이라는 존재 자체가 10년짜리 저평가 우량주 같아요. 속상한 날도 많았지만 망한 주식 이야기로 책을 낼 수 있었으니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투자가 아니었나 싶습니다(웃음).


 

주식도, 인생도 결국은 우상향 

“평범한 일상이 완전히 뒤바뀐 것처럼 돈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 역시 이전과는 달라질 거라는 그런 예감(71쪽)”이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어요.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 돈에 대해 어떤 생각이 달라졌나요?

관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돈을 잘 쓸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이 돈을 어떻게 불려서, 언제 어디에 쓰면 좋을까?’를 먼저 생각해요. 돈의 가치를 좀 더 장기적으로 바라보게 된 거죠. 저는 원래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하루라도 빨리 사서 한 번이라도 더 써야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인데요. 요즘은 ‘그 돈으로 주식을 매수하면 수익이 날 테니, 두 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또 유동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각이 조금 넓어지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본업 이외의 것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주식을 하면서 저와 상관없는 듯 보이는 정치, 경제, 세계 이슈들도 찾아보게 됐어요. 제 잔고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모든 리뷰를 다 보신다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리뷰가 무엇이었나요? 

저는 “글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서, 글이 좋다는 리뷰를 기다리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의외로 “재밌다”는 피드백이 좋더라고요. 저도 이 책을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어떤 에피소드들은 탈고를 하며 수십 번 읽어도, ‘내가 썼지만 참 재밌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는데, 독자분들이 밑줄 쳐주신 부분과 겹쳐서 신기했어요. 주식을 해본 사람, 하려는 사람, 절대 안 할 사람 등 각자의 상황은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재밌다’는 한 줄의 감상을 들려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생각보다 인생에서 재미있는 순간을 만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다음 책을 쓰고 싶은 계획도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으신가요?

원래 제 꿈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책을 내는 거였어요. 저를 스친 찰나의 생각이나 좋아하는 것들, ‘일’과 ‘관계’에 대해 가졌던 삐딱한 생각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이고 공감가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첫 책을 주식 에세이로 출간하게 되어서 용기가 생겼어요. 주식 얘기도 했는데, 뭐든 다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들더라고요(웃음). 요즘 저의 가장 큰 위시리스트가 부동산이거든요. 이번 책을 집필하면서 “다음 책은 내집 마련기로 부동산 에세이를 쓰는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는데요. 빠른 시일 내에 두 번째 책에 대한 소재를 모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작가님의 인생은 차트의 어느 시점에 와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난한 눌림목을 지나 이제 막 상승 구간에 접어들었다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주제로 책을 출간했으니까요. 덕분에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즐겁고 다양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때론 조정을 맞기도 하고, 굴곡이 있기도 하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더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한 우상향이다’라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어요. 제 인생의 향후 목표 주가를 다소 상향해서 리포트를 제출하고 싶네요(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찰나의 재미든, 위안과 공감이든, ‘아 난 저렇게 주식하면 안되겠다’라는 타산지석이든 이 책이 독자분들 인생에 1g이라도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요. 어찌 보면 평범한 개미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공감해주신 독자분들의 에너지 덕분에 요즘 너무 행복해요. 인터넷 쇼핑으로 잘 건진 물건도 후기 하나 쓰려면 그렇게 귀찮은데, 책 읽고 리뷰 남겨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 책에 사인을 할 때, 쓰는 멘트가 하나 있는데요. 인터뷰를 읽어주신 분들께도 그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인생도, 주식도 성투하세요!”  




*홍민지

사회초년생 시절 선배들을 따라 얼떨결에 주식에 발을 들였고 햇수론 10년 차 개미가 되었다. 인생 전반에 호기심이 많고 강한 추진력을 타고났다. 단타 테마주부터 우량주, 엔터주, 정책주, 배당주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며 주식도 쇼핑하듯 사고팔았다. 주식으로 인생 역전, 파이어족 대열 합류 같은 트로피는 아직이다만 화려한 시행착오와 삽질의 역사는 꽤 두툼한 편. 때론 고점에 물려 심장이 덜컹하는 날도, 버팀의 미학으로 익절 엔딩을 맞는 날도 있다. 인간 내면의 디테일한 욕망을 발견하고 자극하는 일과 이를 아이디어나 콘텐츠로 연결하기 좋아하는 부가적인 기능을 갖췄다. 다행히도 그 재능을 밥벌이까지 연결시키는 데 성공, 광고기획자를 거쳐 현재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일희일비의 맛
일희일비의 맛
홍민지 저
드렁큰에디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설가 박민정 “실패를 예감하고도 한다”

$
0
0


“제 소설을 읽었던 분들만큼이나 제 소설을 전혀 읽지 않았던 분들이 이 산문을 읽고 ‘이렇게 소설 쓰기가 자신에게 중요했다고 얘기하는 사람의 작품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마치 하이퍼링크처럼 지금까지 썼던 소설과 이 글이 그런 식으로 조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내들의 학교』『미스 플라이트』『서독이모』 등 다양한 여성들의 복잡한 삶을 직시하는 소설을 발표해온 박민정 소설가는 첫 번째 산문집 앞에서 깊이 고민하고, 크게 용기내야 했다. “특출나지도 않고, 허약하고, 용기도 없던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용기 내서 소설을 발표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그 자신이 겪어내야 했던 일들에 대한 고백, 소설가로서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창작의 고민들을 모두 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침내 『잊지 않음』이라는 책을 세상에 낸다. “백 가지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이 글들이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 소설을 읽는 사람, 소설가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느낌

첫 산문집이에요. '들어가며'에서 "작가에게 산문집이라는 형식은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7쪽)라고 쓰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용기를 내야 했던 걸까요? 

소설을 발표할 때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얘기는 해왔던 것 같아요. 소설을 발표해올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친한 소설가들과 하곤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고, 발표해온 것은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느낌과 같았죠. 또 산문보다는 소설로 먼저 독자 분들께 인사를 드려왔기 때문에 산문집을 내는 데 여러 차원의 용기가 필요했어요. 제 소설에 드러난 화자의 욕망이나 트라우마가 작가인 나 자신의 못남으로 읽힐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고요. 작가와 화자가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한 모토로 삼고 작품을 쓰고 있는데요. 산문을 통해서 소설적인 역량 부족이 나라는 사람의 역량 부족과 연결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소설가가 쓴 산문이라는 점에서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산문집을 출간했어요. 출간을 결심했던 마음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한 번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다양한 매체에 글을 발표하면서 글이 쌓이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이 글들이 나의 글이라는 것 외에 어떤 주제로 관통될 수 있을지 고민이 있었거든요. 지금이야 편집부에서 구성을 잘 해주셨지만, 보시면 아시듯 책이나 영화에 대한 글, 인터뷰 등 아주 다양한 글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박민정이 쓴 글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같은 두려움과 그로 인해 필요한 용기가 저에게 있었어요. 그 외에도 백 가지 고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짧은 기간 쓰인 글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시간의 두께가 느껴지기도 했고요. 방금 이야기한 ‘용기’라는 점과 함께 생각한다면 그렇게 출간된 산문집을 품에 안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이 책은 저의 자전적 요소들을 많이 밝힌 글들이고, 그 부분에서 걱정이 컸는데요. 생각보다 책을 받아보니 좋았어요. 작업할 때는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는(웃음) 문서들이 책으로 묶이니까 다시 보이더라고요. 내용만큼이나 물성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책이 나오고 나면 이건 정말 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거든요. 많은 분들이 책을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돼요. 덕분에 박민정이 여기저기 썼던 글이 누구에게 읽힐까, 했던 그 걱정이 책의 물리적인 형태를 보고 조금 해결되기도 했어요. 앞으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는 산문집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작가님은 소설을 쓸 때도 제목을 먼저 정해두고 쓰는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번 산문집 제목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이번에는 제목이 늦게 나왔어요. 편집부에서는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라는 제목을 추천했었는데요. 저는 제목이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어떤 분이 블로그에 제 소설에 대한 리뷰를 올리신 걸 봤어요. 그 분께서 이 인터뷰를 보시고 제가 그 글에 영감을 받아 만든 제목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는데요.(웃음) 리뷰에 ‘잊지 않는 글들’이라고 쓰셨더라고요. 그걸 보고 『잊지 않음』이라는 제목이 됐어요. 거의 출간 직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실패를 예감하고도 한다

첫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어요. 먼저 박서원 시인이죠. 산문집을 어떻게 묶을지 고민할 때 다른 누구도 아닌 그를 가장 앞에 배치한 데에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산문집을 기획하면서 제일 공들여 쓴 글이기도 하고, 첫 부분에 배치되면 좋겠다고 의견을 드렸던 것이기도 해요. 저는 박서원 시인의 산문집을 시집보다 먼저 봤는데요. 여성 작가에게 부여되는 이미지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걸 뒤에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나는 작품을 쓰는 작가로서 어떤 식으로 나 자신을 독자에게 어필할 것인가 생각할 때 박서원 시인의 『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라는 책을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박서원 시인의 시들은 시 자체로 정말 훌륭한 작품임에도 이 사람의 불행이 지나치게 그의 작품을 먹어버리는 느낌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어떤 선언처럼 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같은 글에서 최은영 소설가와의 남다른 인연도 등장하는데요. 

최은영 작가는 그런 박서원 시인의 시를 제게 알려준 사람이니까요.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글을 썼던 친구이자 저보다 2년 먼저 대학생활을 시작한 언니예요. 제가 대학에 가니까 기숙사에 책을 상자로 보내줬어요. 거기 박서원 시인의 시집도 있었죠. 그런 마음이 이후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언니들이 책을 엄청나게 보내준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박서원 시인 산문집을 얘기하면서 최은영 작가 이야기를 한 것은 한 부분도 빠짐없이 제게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들이었어요. 이 글의 제목이 ‘여성시라는 장르규칙’이잖아요. 약간 비꼰 제목이기도 하거든요. 수업에서 독해했던 것처럼 여성 시인의 시를 그 사람의 삶에 어떤 폭력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게 과연 여성시의 장르규칙일까, 하고 되물었던 과정들이 제게 있었던 거죠. 이 글이 책의 첫 부분에 배치됨으로써 『잊지 않음』이라는 산문집이 새롭게 옷을 입은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소설가 박민정에 대한 궁금증들이 생기는 문장들이 많았어요. "내게 글쓰기는 실패를 예감하고도 수행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57쪽)라는 문장이 있거든요. 

저는 대체적으로 모든 일에 대해 잘 될 거라는 낙관을 하지는 않는 편이긴 해요. ‘실패를 예감하고도 한다’는 것은 글쓰기뿐 아니라 아주 많은 일들에 붙이는 수식인 것 같고요. 특히 글쓰기가 그렇죠. 사실은 2014년에 책 출간을 한 뒤로 쭉 내가 내 작품의 부족한 면을 알고 있더라도 부족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작품을 사서 보는 독자가 있는데 생산자로서 할 말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조금 더 갔으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들. 하지만 잘될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보다 이쪽이 제게는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작가라는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는 일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 막막한 미래를 향해서 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 마음을 담아 쓴 문장이었어요. 

기존에 발표한 소설 바깥의 이야기들도 많이 등장해요. 작가님들은 워낙 소설의 의도나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많이 질문 받으시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저는 소설을 쓸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다른 작가 분들도 요즘은 작가노트를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요. 저에게는 이것이 너무 재미있는 과정이에요. ‘이런 생각으로 썼어. 이걸 알아줘’가 아니라 별개의 스토리로 작업하는 것 같거든요. 영화 같은 장르에서도 외전이나 프리퀄처럼 작품의 유니버스를 보여주는 콘텐츠가 많잖아요. 마찬가지로, 말하자면 미국식(웃음) 재미일 수 있는 거죠. 저작권에 대한 각성이기도 하지만요. 내 작품을 가지고 이리저리 놀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작가들의 시도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들어가며’에서 “다 까발려 보여주지만은 않겠다”고 한 것은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지, 작품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매번 그 작품의 작가노트를 마련해왔어요. 다 가지고 있어요. 

작품을 발표하면 그 작품이 닫힌 채로 있는 게 아니라 열린 상태로, 발표 이후에 덧씌울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문학을 공부하면서도 왜 문학은 인터랙티브가 안 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연극은 관객이 무대에 올라가서 극의 내용을 바꿔버리기도 하잖아요. 베르톨트 브레히트나 귄터 그라스 같은 작가들이 놀라운 게,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작품만으로도 굉장한 감동과 몰입의 차원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거든요. 흔히 사회적 발언이 센 작품은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 지점을 돌파한 작가들인 거죠. 저도 내가 주장하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동시에 작품성을 훼손하지 않는 작품을 쓰는 게 관건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문학에서는 그 작업이 다른 장르보다 어려울 것 같다는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요. 작품활동을 하는 지난 10년의 변화를 보면서 생각을 많이 바꾸기도 했어요. 뉴미디어가 등장해서 독자와 창작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도 있게 됐으니까요.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소설가로 10년 이상 작품활동을 하면서 어떤 고민은 해결됐을 테고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도 있을 텐데요. 가령, “여성작가로서 쓸데없이 가져야 하는 압박과 죄책감으로부터는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204쪽)고 하신 부분이 있거든요. 이 문제는 해결이 됐나요? 

현실에는 수많은 여성이 존재하잖아요. 여자들의 싸움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가요. 엄마와 딸의 관계만 해도 너무나 넓은 스펙트럼이 있죠. 그런데 너무 단순하게 읽히곤 해요. 소설 속 어떤 인물은 폭력적이고, 어떤 인물은 어리석죠. 이에 대해 ‘여성작가이면서 여성을 어떻게 그렇게 그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올바른 여성만을 등장시키는 게 소설일까, 하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다른 사람의 삶을 건드리고, 누군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쓰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평생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여성 인물을 어떤 식으로 그려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면 그것은 벗어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주변 인물이나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들을 소설에 변용했을 때 갖게 되는 걱정도 솔직하게 담으셨잖아요. 소설가로서 갖고 있는 망설임이랄까, 경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책에 친구 ‘정희기’, 동생 ‘박민지’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죠. 제가 계속해서 괜찮은지를 묻잖아요. 저한테는 너무 미안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어쨌든 제가 쓴 소설의 내용을 모델이 된 사람에게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은 정말 중요했고요. 그 과정이 제게도 좋았던 것 같아요. 윤리의 문제를 넘어서 그것 역시 작품 활동의 일환으로까지 느껴지더라고요. 묻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당신에게서 따온 모티브니까 직접 보라고 확인하는 과정이 말이에요. 다행히 그동안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는데요. 그 과정이 정말 의미 있었어요. 그래서 실명을 다 언급하고, 실제 일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코멘트 하는 식으로 소설집의 작가의 말에 싣기도 했었죠. 지금은 현실의 일을 쓴다는 것이 더욱 복잡하고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이번 산문집에 등장하는 글도 모두 등장한 분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인데요. 누군가를 찬사하고, 칭찬하는 글이라도 상대에게 확인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쓰는 모든 소설이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항상 뒤늦게 슬퍼진다.(165쪽)"라는 문장도 날카롭거든요. 

사실은 저도 제가 쓴 문장에 상처를 받거든요. 첫 책을 냈을 때는 길을 가다가도 한번씩 멈춰서 숨을 골라야 했어요. 내가 쓴 문장이 너무 폭력적이어서요. 내가 쓴 문장에도 내가 상처를 받는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은 너무 당연한 거죠. 더구나 ‘이게 나인 것 같아’라고까지 느낀다면 상처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 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 순간을 폭력적으로 박제해버리는 일이 아닐까 하는데요. 사진 너머에 아주 많은 맥락이 있을 수 있는데 한 장의 프레임으로 남겨버리면 몇 십 년 후에는 그렇게 편집된 장면 하나만 남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소설도 현실을 박제하고, 편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아무리 해도 매우 폭력적인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는 내가 하는 일이 그만큼 정의롭고, 진정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복하고 건강해야 글을 쓴다

한편으로는 “많은 선배들이 불행은 네 글의 재산이 되어줄 것이라고 했”(234쪽)다던 말도 생각하게 되네요. 

그런 말을 듣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저 역시 너무 오랫동안 행복한 사람은 글을 못 쓸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삶이 편안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 것에 대해서 부채감을 느끼는 작가들을 봐왔고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문학을 하기 때문에 불행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행복하고 건강해야 글을 쓴다는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불행이나 폭력의 경험은 그 자체로 없어야 하는 일들이었고, 일어났다면 그것을 작품으로 변주해서 극복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품을 위해 그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게다가 오랫동안 소설을 쓰는 선배 작가님들을 보면 다들 운동 많이 하시고(웃음) 좋은 것 챙겨 먹으시잖아요. 그게 왜 그렇게 금기였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나의 오랜 친구 민정이’라는 최은영 소설가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잖아요. 인터뷰 초반에 작가님은 최은영 작가님이 준 영향이 이후의 자신을 쓰게 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최은영 작가님은 박민정 작가님의 행보를 보고 “내 마음속에서 오래 숨죽이고 있던 목소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227쪽)고 썼거든요. 이 글을 받고 어떠셨어요? 

원래 발문을 실을 계획이 없었는데요. 예전에 허수경 시인의 시집에 신경숙 소설가가 발문을 쓴 적이 있어요. 싸우기도 하고, 함께 시래깃국 끓여 먹으며 화해하는, 너무나 소소한 두 사람의 이야기였는데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면서 은영 언니에게 청탁을 한 거죠. 정말 금방 써서 글을 보내줬어요. 너무 고맙죠. 지금은 많은 분들이 최은영 소설을 좋아하시잖아요. 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데요. 글에는 제 싸이월드 글을 보고 가진 생각들을 적어줬지만 저 역시 언니의 글을 보면서 ‘어떻게 한 줄을 써도 울컥하게 만들까’ 생각하곤 했어요. 은영 언니는 진짜 자기 자신 같은 글을 써요. 그에게는 변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 있고요. 이 사람의 너무나 진정한 마음,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행동과 일치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제게는 당연하게 느껴지죠. 이번에 언니의 글을 보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있고요. 역시 산문의 매력은 말 못했던 것을 고백하는 것이구나(웃음) 생각했어요. 

'나가며'에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233쪽)라는 문장이 등장해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작가인 친구들 중에 재능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천희란 작가는 노래를 정말 잘해요. 거의 가수 수준이거든요.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도 꽤 많고요. 운동을 정말 잘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맨날 친구들한테 말해요. “나는 이거 아니었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라고요. 정말 떠오르는 게 없어요.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지만 저 스스로는 진짜 글이라도 썼으니까 이렇게 살았지,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몇 년 전에 내가 절대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영과 운전에 도전했어요. 남들은 아주 쉽게 하는 것조차 잘 못해서 일찍 포기해왔거든요. 안 될 걸 알면서도 했던 건 오직 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전을 했던 건데요. 지금은 운전은 하게 됐어요.(웃음) 




*박민정

1985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창과와 동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졸업.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 소설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서독 이모』가 있다. 2015년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실, 주희』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잊지 않음
잊지 않음
박민정 저
작가정신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오늘의 작가] 소설가 하승민, 소설 기계의 등장

$
0
0


직장을 그만둔 한 사람의 집에서 알람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오후 1시에 한번, 3시에 한번, 9시에 한번, 12시에 한번. 반복되는 루틴은 주말에도, 모두가 알람을 끄고 느긋하게 잠드는 공휴일에도 멈추지 않는다. 무슨 일을 꾸미는 걸까? 

스릴러 소설의 도입부 같지만, 이건 하승민 소설가의 소설 쓰는 방식이다. 13년을 IT, 금융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으로 살다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마치 출퇴근을 하고 회사의 연간 계획을 짜듯이 일상을 설계한다. “회사 생활한 경험이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돼요. 장편소설을 쓰려면 긴 루틴을 버텨야 하거든요. 하루에 목표를 정해두고, 알람을 맞춰 놨어요. 기상 시간에 한 번, 글쓰기 시간에 한 번, 식사 시간에 한 번, 운동할 때, 한 번, 독서 시간에 한 번. 단 하루도 쉬지 않고요.(웃음)”



꽉 짜여진 일상의 목표는 하나다. 1년에 장편소설 한 편씩은 낼 것. 정확히 그 계획대로 데뷔작 『콘크리트』 이후 1년 만에 신작 장편 스릴러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이 나왔다. 이 정도면 ‘소설 기계’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강한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 소설은 1980년 광주에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지아가 제2의 인격인 혜수를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몸과 정신을 혜수에게 장악당하고 19년 만에 깨어난 지아는 어느 산 속에 삽을 든 채 젊은 여자의 시체를 파묻는 자신을 발견한다. 왜 하필 19년일까?

“사실 19년은 제가 서울에 있던 기간이에요. 2000년에 서울에 올라왔고 회사를 그만둔 게 2019년이니까요. 첫 장편소설로 데뷔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게 됐는데, 직장인으로 산 나는 나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거예요. 그게 이번 장편소설의 시작이었어요.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19년을 살면 어떤 기분일까. 거기서 출발해서 이야기를 증폭시킨 거예요.”

이중인격 중 하나인 혜수는 쇠락한 항구도시 묵진으로 떠나 19년 간 다른 인생을 산다. 여러 캐릭터와 사건이 얽혀 퍼즐처럼 짜 맞춰지는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인물 설정부터 공간, 사건 전개까지 정말 치밀하게 짜요. 엑셀 시트가 3개 있었어요. 주인공이 74년생, 76년생, 79년생인 3가지 버전 스토리를 다 한 번씩은 써본 거죠. 날짜를 쓰고, 그 해에 모든 캐릭터들이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는지 촘촘하게 정리하는 거예요. 심지어 거리를 계산해서 두 인물이 스쳐 지나가는 동선까지 맞는지 확인할 정도였어요.(웃음)” 



주인공 ‘지아’가 이중인격 ‘혜수’에게 몸과 마음을 장악당하는 장면은 강렬하다. 뉴밀레니얼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고 새로운 시대로 갈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한 순간, 지아의 삶은 본격적인 전락으로 향한다. “제가 기억하는 뉴밀레니얼은 많은 사람들이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제로 변한 건 없고 불안감만 가득했던 해였어요. 사실은 IMF 이후 힘든 시기였고 새천년의 희망보다는 세기말의 분위기가 강했죠. 그래서 제 소설에서도 뉴밀레니얼이 밝고 희망찬 시간은 아니에요. 오히려 지아는 또 다른 인격인 혜수가 되면서, 중심지를 벗어나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하는 묵진으로 가요. 그렇게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아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혜수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몰락한 묵진 사람들의 삶이 촘촘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금융권에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이트칼라인데,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제2금융권, 제3금융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들의 일상을 굉장히 많이 보게 돼요. 휴대폰 통신비를 내지 못해서 빚을 지는 사람들이요. 우리가 잘 모르지만,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도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물론 단순한 유희거리로 그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조사를 많이 하죠.”



증폭되는 사건은 나락에 떨어진 인물들의 욕망을 드러낸다. 복수와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들이 ‘절대악’으로 보일 법도 한데, 소설은 이해의 여지를 남겨 둔다. “절대악이 아니라 만들어진 악에 대해 그리고 싶었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많은 날 중에 단 하루가 잘못된 것뿐이었다. 그 하루가 인생을 뒤집어놓았다. 누군가의 결정이 너무 많은 사람의 인생을 헤집었다.’ 다르게 살 수 있었는데, 지아와 혜수는 분열되고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던 거예요. 사랑받고 싶었던 인격체였는데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뉘어진 거죠. 지금 한국사회를 은유하는 알레고리이기도 하고요.”

작가는 계획대로라면 매년 한 편씩 10년간 10권의 장편소설을 내놓을 것이다. 왜 스릴러였냐는 질문에,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스릴러 장르에 맞았고, 이후 다른 장르도 도전해볼 것이라 답했다. 안개로 자욱한 묵진의 세계를 만들어낸 그는 어디로 갈까? 새롭게 등장한 ‘소설 기계’의 차기작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하승민

댄서를 꿈꿨고 때때로 락밴드를 했다. 극단을 어슬렁거렸으나 공연기획자로서의 삶은 길지 않았다. 돈은 필요한데 정장을 입는 건 싫어서 IT 회사를 다녔다. 『콘크리트』는 세상에 내놓은 첫 소설책이다. 20세기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 살고 있다. IT와 금융업에 종사하다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는 건 이제껏 거쳐 온 많은 취미 중에 건져 올린, 유일하게 쓸 만한 직업이다. 코미디언과 격투기 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접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하고 싶다 해도 재능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음악만큼은 놓지를 못해 간헐적으로 밴드에서 곡을 쓰고 노래를 한다. 단편소설 「우주를 가로질러」로 제11회 심산 문학상 최우수상, 단편소설 「사람의 얼굴」로 뉴 러브 공모전 당선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뉴 러브』에 「사람의 얼굴」을 수록했다. 또 다른 소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을 냈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하승민 저
황금가지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슬릭, 이랑 “들어줄 누군가가 있어 위로가 됐어요”

$
0
0


복잡한 서울 하늘 아래, 뮤지션 이랑과 슬릭은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때로는 전염병 시대를 함께 헤쳐가는 여성 예술가로, 때로는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랑이’와 ‘김령화’로. 모두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슬릭은 종종 ‘공부하러 가겠습니다’로 끝을 맺었고, 이랑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두 사람은 웃음과 진심을 『괄호가 많은 편지』에 정성껏 담았고, 들어줄 누군가가 있어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한 흔적은 남아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이랑이 슬릭에게, 슬릭이 이랑에게 그랬듯이.



‘랑이’와 ‘령화’의 시간

<주간 문학동네> 연재 당시부터, 뮤지션 슬릭과 이랑의 조합을 반긴 독자들이 많았어요. 특히 제목 ‘괄호[과:로]가 많은 편지’가 눈길을 끌었죠. 어떻게 정해졌나요?

슬릭: 프롤로그부터 괄호가 많죠.(웃음) 누군가 편지에 괄호가 많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그러고 보니 괄호가 ‘과로’로도 읽히더라고요. ‘어, 그거 너무 좋다!’ 하면서 완성된 아이디어예요. 

이랑:괄호를 많이 쓰는 게 재밌더라고요. 본문에 담기에는 애매한 내용도 담을 수 있고. 예를 들면, ‘제가 대학생 때, 전자음악 동아리(ㅋㅋㅋ)에 가입했습니다.’ 이렇게 쓰는 거죠. 하하. 

통하는 것도 많은 두 분은 언제 처음 만났나요?

슬릭: 우와, 기억나세요. 랑쌤? 저는 편지에도 쓴 것처럼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때였을 거예요. 멀리서 수상 트로피를 판매하는 퍼포먼스를 보면서 말했죠. 와 짱이다! 완전 힙하다! 저 사람 분명히 망원 살면서 고양이 키울 거야! 

이랑: 하하하. 아마 만나서 대화 나눈 건 한강에서 야외에서 열린 여성주의 페스티벌 킥이었죠?

슬릭:맞아요. 그때 공연 대기실에서 만나서 놀고 재밌었는데. 그날 라인업 진짜 좋았죠. 페미 행사 4대 천왕 총출동!(웃음)

“대재난 시대에 살고 있는 두 여성 예술가”(22쪽)로서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근데 아직도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요. 

슬릭: 첫 번째 편지 제목인 ‘이 시국에 안부를 묻는 건 실례일까요’라는 문장이 아직도 유효해요. 여성 인디 창작자에게 지금 안부를 묻는 건 실례이긴 하죠. 안 그래도 죽겠는데 잘 지내냐고 물으면, ‘응’이라고 대답해야 하잖아요. 뮤지션은 저작권료가 적어서 행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행사가 취소되니까 타격이 크거든요. 지금은 공연 대신, 글쓰기나 영화 관련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랑: 저는 잘 지낸다고 대답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살아만 있습니다’ 하는 식으로 바꿔가면서 대답해요. 저는 가계부를 열심히 쓰는 사람이라 2019년과 2020년의 수입을 비교해봤거든요. 근데 공연 행사가 사라지니까 금액이 정말 많이 줄어든 거예요. 타격이 커서 작년에 연재처도 많이 찾고 출간 계약도 해서 올해 한, 일 합쳐서 5권의 책이 나와요. 슬릭과의 편지 연재도 그때 시작된 거죠. 

슬릭: 글 연재가 처음이었는데 랑쌤과 함께해서 너무 든든했어요. 먼저 책도 많이 쓰셨고 출판사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도 다 아시더라고요. 저는 무조건 ‘넵!’만 외쳤거든요.(웃음) 배운 게 많아요. 



편지에서 뮤지션 슬릭과 이랑이 아닌, ‘랑이’와 ‘령화’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랑 작가님은 본명으로 활동하는 고충을 말하기도 했는데요. “언젠가부터 이름 뒤에 붙는 호칭들에 위화감을 느낀 지 조금 되었”(25쪽)다고요. 

이랑: 저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본명 ‘이랑’을 활동명으로 써 왔어요. 보통 한국에서는 이름이 세 글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닉네임인 줄 알고 ‘이랑’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그게 저한테는 어린 시절에 ‘이랑!’하고 혼나는 것처럼 들려서 피로감이 심했죠. 그래서 친구들한테는 일부러 ‘랑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어요. 그래야 제 이름이 다정하게 들리고, 이랑의 시간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슬릭: 이름이 외자여서 그런 일이 생겨버렸네요. 저는 한 번도 ‘김령화’ 세 글자로 불려본 적이 없고 그냥 ‘슬릭’과 ‘령화’였거든요. ‘김령화 씨!’ 하면 혼나는 기분이 들겠지만, 누가 ‘슬릭!’ 하면 바로 ‘네, 슬릭입니다.’ 하죠. 하하. 

두 분의 대학 시절도 엿볼 수 있었어요. 이랑 작가님은 동아리방에서 생활하셨고, 슬릭 작가님은 수업보다는 힙합에 매진했다고요.(웃음) 

슬릭: 맞아요. 늘 부모님들이 대학 가면 원하는 거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진짜 마음대로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배우고 싶었는데, 대학에 가자마자 고삐가 풀린 거죠. 학교는 음악을 방해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수업은 열심히 안 들었어요. 근데 학점 망해도 잘 살아요. 하하. (이랑: 끄덕끄덕) 랑쌤은 어때요? 편지에도 많이 나와서 재밌었는데. 

이랑: 저는 휴학도 많이 해서 7년 정도 학교를 다녔어요. 살 곳이 없는데 기숙사는 배정을 못 받았거든요. 그래서 동아리방에 고양이 준이치와 함께 살림을 차린 거죠. 학교 건물이니까 전기세도 안 내도 되고 공간도 넓고 정말 풍족하게 살았어요. 동아리방에 고양이가 있다는 소식이 학교에 퍼져서, 학생들한테는 고양이 구경 시켜주면서 친해지고,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와도 잘 지내고. 돈이 떨어지면 학교에서 장터도 열고, 노래를 불렀어요. 제가 나름 장사에 철학이 있어서 옷 같은 건 미술원 친구들한테 팔고, 잡동사니는 영상원에 가서 팔고.(웃음) 그때는 정말 부끄럽다는 생각 하나도 안 하고 즐겁게 지냈어요. 

슬릭: 학교 시설을 정말 잘 활용하셨군요. 최고다. 저는 학교 가면 맨날 집에 갈 생각밖에 안했는데. 하하.



답장을 받으면 바로 이해가 됐어요

편지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리뷰가 많더라고요. 

슬릭: 편지를 쓰는 저희도 위로가 됐어요. 심리치료 받는 느낌!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고, 느끼는 감정도 공통점이 많으니까요. 편지를 읽었을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첫 글이었는데도, 마감이 두렵지 않았어요. 답장이 오면, ‘이번엔 뭐라고 써 있을까’ 두근거리면서 편지를 열어봤던 기억이 나요. 

이랑: 정기적으로 말할 상대가 있다는 게 되게 안심되더라고요. 말로 하는 대화는 기억하기 쉽지 않은데, 편지는 다 남잖아요. 함께 쌓아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그리고 편지가 다른 작업에 비해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에요. 과로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다른 일 때문에 늘 과로 상태였지만. 하하.

두 분은 ‘여성예술가’로서 입장을 표명할 때, 부당한 비난을 들은 경험도 공유했어요. 슬릭 작가님은 의견이 다른 상대방과 대화도 시도한다고 했고요. 

슬릭: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듣고 배우는 것도 많아서, 대화를 하는 편이에요. 사실 상상의 나래를 이만큼 펼칠 수 있는데 일부러 한쪽 면만 봐야지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최근에 너무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지치긴 했는데요. 이렇게 대화가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에, 저희에게 편지가 더 소중했던 것 같아요. 무슨 내용을 써도 내 입장에서 이해하고 답장이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비슷한 일을 겪어도 다른 관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위로가 됐고요. 점점 정보의 분량이 짧아지고 있으니까, 이렇게 긴 분량의 감정과 이야기가 오가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더 사랑하고, 더 공부하기 위해

연재 당시, 낙태죄 폐지 운동이 뜨거웠어요. 이랑 작가님은 여성으로서 겪은 폭력을 이번 편지를 통해 나누기도 했어요.

이랑: 제 경험을 원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싶었고, 그게 슬릭한테 보내는 편지였어요. 앞서 트위터에도 짧게 임신 중지 경험을 남겼는데, 직후에 온갖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당장 나와서 너의 경험을 말해라’는 식이었고, 그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안 나가겠다고 하면 무서운 반응이 돌아오고요. 안전한 공간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말할 기회를 스스로 찾겠다고 말했고, 슬릭한테 보내는 편지에 쓴 거죠. 

슬릭: 저는 그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머릿속에 다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편지가 좋은 게 공백이 있잖아요. 메신저는 바로 답장해야 하는데, 편지는 상대의 말을 곱씹어 보고 고민할 시간이 있으니까 좋았어요. 결국 답장은 속초에 다녀와서 썼어요. 익숙한 곳에서 멀어지니까 써지더라고요.

이랑 작가님은 답장을 특별히 고심했던 편지가 있었나요?

이랑: 마지막 편지가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령화가 슬릭이라는 이름을 짓는 날’을 상상해서 썼어요. 슬릭이 학교 메일을 써서 답장에 ‘정경대학 미디어학과 김령화’라고 뜨거든요. 제 취미가 남의 인생을 상상하는 거니까 령화는 어떻게 이름을 짓게 됐을까 생각해봤어요.

슬릭:정작 저는 아무 고민 없이 지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슬릭 괜찮은 것 같은데. 슬릭으로 갑시다’ 이렇게.(웃음) 그 뒤로 이름 설정할 때마다 ‘슬릭’으로 썼어요. 그때는 발표한 노래도 없고 가수도 아니어서 언제든지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여기까지 온 거죠. 이제 못 바꿔요. 

이랑 작가님은 고양이 ‘준이치’, 슬릭 작가님은 ‘또둑이’의 집사예요. 슬릭 작가님은 또둑이를 잃어버렸을 때의 경험을 편지에 쓰기도 했어요. 

슬릭: 또둑이를 잃어버렸을 때, 정말 ‘동물권’이 절실하게 와 닿더라고요. 제 가족을 잃은 경험이었으니까요. 사람도 살기 힘든 동네에서 또둑이를 잃어버려서 찾는 데도 애를 먹었는데요. 그때 동물이 살기 어려운 시대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비인간종의 삶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됐어요. 

이랑 작가님은 준이치를 간병하고 있죠. 

이랑: 준이치가 아프고 나서 너무 많은 게 바뀌었어요. 옆에서 돌봐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 보고 있으면 더 사랑스러운 것을 왜 나는 맨날 일만 했지 싶더라고요. 원래 전 일 중독이어서, 일어나자마자 작업실 나가서 일하고 밤늦게 돌아와서 지쳐서 자는 생활을 16년간 했어요. 그렇게 일했기 때문에 지금 준이치 치료비에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거지만, 스킨십도 더 많이 하고 좀더 붙어 지낼 걸 지난날이 아쉽긴 해요. 



곧 3집 앨범이 나온다고요.

이랑:제목은 <늑대가 나타났다>입니다. 저는 스스로 ‘사랑이 가득한 혁명가’를 만드는 펑크 락커라 생각해서 ‘혁명’ 컨셉을 의도하면서 만들고 있어요. 이전 앨범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제가 화자가 아닌 곡이 많아졌어요.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줬으면 하나요?

슬릭: 긴 호흡으로 대화하면서 위로를 받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랬거든요.

이랑: 책을 낼 때마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음, 편집자님이 저는 편지에 ‘사랑’, 슬릭은 ‘공부’라는 말을 많이 쓴다고 한 게 떠오르네요. 저는 스스로 이성적인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슬릭: 칸트세요?) 하하하. 알고 보면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 마음을 편지에 풀어낸 것 같아요. 독자분들도 편지를 읽다 보면 각자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




*슬릭 (Sleeq)

경기도 구리 출생 뮤지션. 본명은 ‘김령화’이다. 정규앨범 〈COLOSSUS〉 〈LIFE MINUS F IS LIE〉를 발표했다.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스트리트 출신 고양이 또둑이, 인생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이랑 (李瀧)

1986년 서울 출생. ‘한 가지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 한국과 일본을 무대로 가수이자 작가, 영상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미술학원을 열심히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으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했다, 대학 생활 중 취미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해 결국 영화와 음악, 그림 그리는 일을 전부 직업으로 삼고 있다. 2011년 싱글 앨범 [잘 알지도 못하면서]로 데뷔, 2012년 정규앨범 1집 [욘욘슨]을 발표했고, 2016년 정규 앨범 2집 [신의 놀이]를 발표했다. 저서로는 『이랑 네컷 만화』(2013), 『내가 30代가 됐다』(2015), 『MY BIG DATA』(2016),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등이 있다. 단편 영화 『변해야 한다』(2011), 『유도리』(2012)를 발표했고, 뮤직비디오, 웹드라마 감독으로도 일하고 있다. 2019년 첫 소설집 『오리 이름 정하기』를 발표했다. 이랑은 본명이다.



괄호가 많은 편지
괄호가 많은 편지
슬릭,이랑 공저
문학동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설가 강화길 “사람의 복잡함을 항상 생각해요”

$
0
0


소문, 오래된 건물, 소설가, 가상의 도시 ‘안진’. 강화길의 소설에는 반복해 등장하는 배경과 소재가 있다. ‘강화길의 조각’이라고도 불리는 이 요소들은 강화길의 여러 소설에서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로 등장해 강화길식 ‘고딕 스릴러’를 구축한다. 흩어진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게 강화길 소설을 읽는 재미라면, 두 번째 장편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을 읽는 독자들은 최대의 재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대불호텔의 유령』은 1950년대 인천에 실재했던 한국 최초의 서구식 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자 강화길 작가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넣고, 신나게 쓴 작품’이다.



저한테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긴장하면서 읽었어요. ‘내용보다 감정의 결말을 중시한다’고 했는데 정말 감정이 또렷하게 남더라고요. 

이번 작품의 결말은 조금 닫히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까지 쓴 다른 작품들보다는요. 딱 떨어지는 결말은 아니지만, 블록이 맞춰지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게 저한테 찾아온 변화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왜 변했을까요? 

이 작품의 특성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300매짜리 단편이었잖아요. 2부에서 결말이 났어요. 장편으로 개고하면서 2부를 중심에 놓고 1부와 3부를 덧붙인 건데 이야기를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원래 스타일대로 결말을 내는 건 납득되지 않더라고요. 화자와 청자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테니 그 관계를 이야기해야겠다 싶었고, 그게 3부의 주안점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마무리됐고요. 

대불호텔이 인천에 실재했던 공간이라고요. 이곳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인천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요. 오래전에 무너뜨려서 지금은 유구만 있는데요. 유구만 있는 상태로 오래 방치돼 있었는데 인천시에서 대불호텔 전시관을 세웠어요. 전시관에서 대불호텔의 역사를 보는데 흥미롭더라고요. 일본사람이 만든 서양식 호텔이고, 서양에서 온 외교관이나 선교사를 위한 공간이었는데 철도가 생기면서 망했거든요. 이후에는 중국집이 됐고요. 소설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대불호텔이라는 공간에 흘러 들어왔는지만 봐도 이야기가 되겠다 싶어서 쓰게 됐죠. 

대불호텔을 떠나고 싶어 하는 두 여성 ‘고연주’와 ‘지영현’이 등장해요. 어떤 공간에 갇힌 여성이 있고,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설정은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데요. 두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고연주와 지영현은 제 소설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인 것 같아요. 서로 의존하고 마음을 주기도 하지만,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끝내 상처를 주고받고 와해하는 여성들이죠. 제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어떤 특징을 집대성한 인물인데 그만큼 저한테 익숙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소설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재나 상황이 있어요. 팬들은 ‘강화길의 조각’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빨간 벽돌 건물’이나 ‘소설가’ 같은 것들이요. 이번 소설에도 많이 들어가 있는데요.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건 아닐 것 같은데 왜 반복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이전 작품에서 만족할 만큼 쓰지 못해서 다음에 또 나오는 것 같아요. 제 소설의 배경이기도 하고요. 가상의 도시 ‘안진’처럼요. 조각이라는 표현이 재밌는데요. 그런 조각들을 제가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거겠죠. 모양은 똑같은데 색깔이 다르게 나오기도 하고, 색깔은 같은데 모양이 다르게 나오기도 하면서 소설에 계속 등장하고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제목을 나중에 짓는 편이라고요. 이번에는 어땠나요?

처음부터 ‘대불호텔의 유령’이었어요. 대불호텔 전시관에 갔을 때 “셜리 잭슨이 이 호텔에 왔다 돌아가서 『힐 하우스의 유령』을 썼다는 소설을 쓰면 어떨까?”라고 농담했는데 같이 간 사람이 재밌겠다면서 진지하게 반응하더라고요. 한껏 고무돼서 “진짜 그럴까?” 하면서 “그럼 제목을 대불호텔의 유령으로 해야겠다”라고 했는데 동행이 또 “너무 좋은데?”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목부터 짓게 됐죠. 

화자가 소설가인 게 작가님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한데요. 이번에도 주인공이 소설가예요. 

독자들이 처음에는 작가가 화자라고 생각했다가 읽으면서 실은 그게 아니라 작가가 장난치는 거고, 이 소설은 완전한 픽션이라는 걸 알았으면 했어요. 작가 본인도 하나의 소재일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소설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문학3>에 연재할 때 쓴 ‘작가의 말’에서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많이 넣어서 쓰고 싶었다’고 했어요. 원하는 만큼 다 넣어서 썼나요?

다 넣었고요. 신나게 썼어요. 셜리 잭슨에 대한 오마주가 깔린 작품이잖아요. 셜리 잭슨 소설의 유명한 장면을 제 방식으로 뒤트는 트리뷰트 자체가 저한테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간 단편에서는 분량 때문에 절제하고 정돈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이 소설은 장편이라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넣고, 장면을 길게 쓸 수도 있었고요. 



신뢰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연재 당시에 독자들을 초대해서 낭독회를 했다고요. 어땠나요?

처음이었는데 재미있었어요. 드디어 낭독회를 해보는구나 싶어서 신나기도 했고요. 연재된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했는데요. 지금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건 읽는 사람에 따라 톤, 말투, 캐릭터가 다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읽는 분들이 각자 나름대로 읽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캐릭터를 해석하는 거죠. 

『화이트 호스』를 쓰고 나서 비평에서 더 자유로워졌다고 했는데요. 이 소설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쓰셨나요?

정말 재밌게 썼어요. 나를 위해서 쓴 부분도 많고요. 악의에 대해 골몰했던 시기였는데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살면서 악의를 그렇게 많이 생각한 날들이 또 올까 싶어요. 장편이라 많이 생각할 수 있었거든요. 내가 굉장히 무서운 감정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어서 어렵기도 했는데요.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떤 주제나 소재에 대해서 평생 할 생각을 특정 시기에 압축해서 하는 기회인 것 같아요. 

평생 생각할 양의 ‘악의’를 생각하면서 쓴 건데 그러면 이제 악의에 대해서는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게 됐나요? 

여전히 악의에 시달리지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3부에서 그리고 싶었거든요. 골몰했던 만큼 악의를 대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독자분들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작가님 작품의 특징이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등장한다는 거잖아요. 이번 소설에도 등장하는데요. 혼란스러움을 위한 장치인 건가요?

작법적으로는 그렇고요. 사람을 보는 제 관점이 그런 것 같아요. 사람한테는 A라는 측면과 A’라는 측면이 동시에 있고, 그런 면들이 사람을 입체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흥미를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어요. 

사람한테 여러 가지 면이 있다는 사실이요?

네. 어떤 상황에서 신뢰할 수 없는 말을 하는 화자가 저한테 매력적인 캐릭터로 느껴졌어요. 이를테면 일기에도 거짓말을 쓸 때가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데도요. 사람의 이런 복잡 미묘함이 재미있어요. 

최근에 느낀 나의 A와 A’ 같은 혼란스러운 면모가 있다면요? 

자주 있어요. 워낙 변덕스러워서… (웃음) 아침에 뭘 해 먹어야지 싶다가도 점심이 되면 싫어지기도 하고, 내가 나한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삶이 익숙해요.  

A와 A’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함과 약속을 하고 지키는 일은 다르지 않나요?

내 머릿속에서 ‘약속하는 나’와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가 다르잖아요. 약속을 지키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하나의 ‘상’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그러니 사실 그건 내가 아니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내키는 대로 하는 게 나인데 나 자신을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 두 개를 합치려고 노력하는 게 사람의 삶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입체적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일관된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요. 

작가의 말을 짧게 쓰셨더라고요. 바로 전에 『화이트 호스』를 쓰고 ‘다시는 작가의 말을 이렇게 길게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혹시 이 말을 의식하신 건가 싶었어요.  

안 쓰겠다고 했으니까요. (웃음)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니지만, 생각하긴 했어요. 『화이트 호스』이후에 한참 있다 나온 책도 아니고, 바로 나온 책이잖아요. 에필로그가 작가의 말을 어느 정도 대신한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쓸 생각이 없기도 했고요. 사실 관계만 명확하게 밝히는 게 독자들이 픽션과 사실의 경계에서 이 소설을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답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쓰는 것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에게 직접 묻고 싶을 때가 많아요. 이 장면에서 이 인물은 왜 이런 행동을 한 건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같은 것들을요. 그런데 정답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더라고요.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저한테 물어보셔도 답할 수 없을 거예요. (웃음) 저도 어떤 확신을 가지고 쓰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사람에게는 다양한 측면이 있잖아요. 어떤 행동을 하나의 이유로 해석할 수 없고요. 기본적으로 쓰여진 장면을 해석하는 건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해석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읽으면서 무언가를 느꼈다면 그게 가장 진실된 감정이죠. 

책 내고 나면 쓰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괴리를 느낀다고요. 설명하기 어려운 간극이라고 했는데 자세히 듣고 싶어요. 

소설을 다 쓰고 나면 그 소설은 저한테 과거예요. 어느 정도는 저한테서 끝나는 거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때부터 시작되잖아요. 여기서 발생하는 간극인 것 같아요. 그 이전의 나는 사라져버린 것 같은데 다시 불러와야 하니까요. (웃음) 지금처럼 인터뷰할 때 생각을 많이 해요. 질문받으면 ‘내가 소설 쓸 때 어땠지?’하고 생각하고 답하는 거죠. 옛날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요. 최근에 생각하게 됐어요. ‘이 간극 뭘까’ 하고요. 

소설가 강화길과 생활인 강화길을 잘 분리하는 편인가요? 

잘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둘 사이에서 오는 간극을 크게 느끼나 봐요. 어떤 작가들은 작품에 몰입한 다음 빠져나오기 힘들어한다던데 저는 빨리 빠져나오려고 많이 노력해요. 한 작품에 계속 매달려 있으면 다음 작품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해서요. 

소설 강의 많이 하시잖아요. 강의할 때 강조하는 게 있다면요?

자기가 쓰고 싶은 걸 꼭 찾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게 소설을 쓰는 동안 저의 화두였거든요. 남들처럼 쓰지 말고 내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죠. 왜냐하면 작법적으로 미숙한 건 당연한 거거든요. 처음부터 완성도 있는 작품을 쓸 수 없어요. 하지만 개성은 처음 배울 때가 아니면 다듬을 수 없어요. 사실 소설 쓰는 사람들의 고민은 대개 비슷하거든요. ‘내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어떻게 쓰고 싶은가예요’. 소설을 쓴다는 건 소설 자체에 진지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소설을 쓴 사람으로서 나는 소설에 대한 진지함을 어떻게 확장해 갔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하죠.

여성 3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가족사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어요.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서’라고 밝혔는데 이 소설이 가족사 소설의 출발인 셈이잖아요. 어떤가요? 쓰고 나서 알게 된 게 있나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쓸 때는 알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는데 쓰고 나면 쉽게 잊혀요. 늦게 깨닫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작업을 계속하는 것 자체가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소설을 다시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 늘 0이 되는 느낌이거든요.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안 나요. 

알 것도 같고, 신기하기도 해요. 이 많은 소설을 다 쓰셨는데…(웃음)

저도 신기해요. 예전에 제가 쓴 소설을 읽어 보면 ‘이걸 어떻게 썼지?’ 싶거든요. (웃음) 마감 잘 안 되면 예전에 쓴 소설을 괜히 읽어보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그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특히 단편집 묶을 때요. 생각이나 작법의 변화가 느껴지는데 그럴 때 내가 이렇게 변해왔고, 사람은 조금씩 변한다는 걸 느끼죠. 책을 쓰고 나면 무언가가 남긴 남겠지만, 그게 큰 깨달음이나 계기, 압도적 경험은 아니고 흔적처럼 남아서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스며드는 것 같아요. 그러니 명확하게 무엇을 알게 됐고, 무엇이 남았다고 하기 어렵고요.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나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도 여성 3대 이야기잖아요. 독자로서 여성 작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것에 주목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성 3대를 이야기하는 건 필연적인 흐름이나 자연스러운 반응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했잖아요. 『괜찮은 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쓸 때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에도 벅찼던 것 같아요.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내가 왜 그런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했지?’를 생각하고, 그런 생각들이 소설 속 인물에 대한 관점으로 이어지거든요. 이를테면 『다른 사람』에서 ‘진영’이 왜 호수에 따라갔는지를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제는 소설을 쓰고 스며들듯이 어느 정도 자신을 받아들이게 됐고,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 저변에 있는 것들이 궁금해지는 거죠.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에게서 여성 3대로 시선이 확장하는 거네요.

그렇죠. 나를 알기 위해 엄마와 나의 관계에 주목하다가 엄마의 엄마에게로 관심이 커지는 거예요.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그 엄마가 나의 엄마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 영향이 나한테까지 왔다는 걸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게 되니까요. 어떤 상황에 있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1대와 2대, 그전에 있었던 여성들의 삶을 모두 다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작가님들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비슷한 작업을 하시는 걸 보면 이유는 달라도 ‘나’라는 여성의 저변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여성 3대 소설의 첫 번째 책이 나왔고, 다음으로 <음복>을 장편으로 쓰고 싶다고 했어요. 워낙 주목받은 작품이라 기대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사실 <음복>의 서사가 처음에 장편으로 쓰려고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게 나왔어요. 가족 이야기이고, 가족 안에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을 마지막 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는 2세대 어머니의 태도 같은 핵심은 같지만, 단편에서는 아주 압축됐거든요. 그래서 음복의 장편은 사실 단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배경이나 인물 설정까지요. 단편에 너무 집착하면 장편으로 못 쓸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웃음) 




*강화길

1986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2017년 젊은작가상, 2020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장편소설 『다른 사람』, 중편소설 『다정한 유전』 등을 썼다.
 



대불호텔의 유령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저
문학동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만화가 d몬 “만화는 독자의 평가로 완성된다”

$
0
0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졌던 작품 『데이빗』을 시작으로 ‘사람 3부작’의 연재를 시작한 작가 ‘d몬’. 그의 두 번째 작품 『에리타』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이번 작품은 멸망한 지구에 남겨진 존재들을 통해 사람과 비(非)사람의 경계에 대해 묻는다. 

인류의 탐욕이 만들어낸 물질 ‘포루딘’에 의해 파괴된 지구, 그곳에 홀로 남은 인류 ‘에리타’가 있다. 인공지능 ‘가온’은 에리타를 지키며,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존재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이 만난 또 다른 존재 ‘김가온’은 정신은 인간이지만 육신은 프로그래밍된 기계다. 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독자들은 자문한다. ‘육체와 정신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인간인가?’,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기계가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는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 

『데이빗』과 마찬가지로 네이버 웹툰에 연재됐던 『에리타』는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대대적인 수정을 거쳤다. 기존의 스크롤 연출을 가로 연출에 맞게 전면 재구성했고, 번외 에피소드를 특별 추가했다. d몬 작가는 2020년 데뷔작 『데이빗』을 발표하며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갖춘 명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에리타』 <브랜든>으로 이어지는 ‘사람 3부작’을 선보였다. 지난 7월 완결된 <브랜든>은 단행본 출간을 준비 중이다.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자신 있게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얼마 전에 <브랜든>의 연재가 종료됐습니다. 이로써 ‘사람 3부작’이 완결되었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먼저 ‘사람 3부작’을 연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준 네이버 웹툰에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날로 커져가는 웹툰 시장에서 보다 다양한 작품들이 연재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 주는 국내 최대의 플랫폼이 있다는 건 웹툰 작가로서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람 3부작’은 아마추어 만화가로서 처음 선보이고자 했던 시리즈였습니다. 첫 작품인 『데이빗』을 선보인 후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랑을 받아 운 좋게 프로 만화가로서 남은 작품들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되어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험을 동시에 해본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3부작의 첫 작품인 『데이빗』을 구상하게 된 건 어릴 적 돼지와 인간의 장기가 매우 흡사하다는 이야기를 접한 이후입니다. ‘돼지와 인간의 다른 점이 비단 거죽 한 꺼풀인 외형뿐이고 그 안의 모든 게 인간과 같다면 그 돼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부터 『데이빗』과 ‘사람 3부작’의 기획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주제가 작가님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으로 대우받고 그것을 당연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스스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볼 기회가 박탈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데이빗』을 구상하게 되었던 시절부터 쭉 해왔습니다. 그렇기에 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람’에 대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보고 자유로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를 발전시켜 나갔고, 더욱이 삶의 경험들을 토대로 스스로를 돌이켜 보며 ‘과연 나는 어떠한 존재이며 과연 자신 있게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를 곱씹은 적이 많습니다. ‘사람 3부작’으로 독자 분들과 함께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답은 얻지 못해 조금 더 살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데이빗』에 이어 『에리타』가 단행본으로 출간됐습니다. 웹툰 연재 때와는 달리, 물성을 지닌 책으로 작품을 손에 쥐게 되셨는데요. 느낌이 어떠셨어요? 

‘사람 3부작’ 출판을 맡아주신 푸른숲에서 질 좋은 책을 엮어주셔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또한 어릴 적 웹툰이란 콘텐츠가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아 만화라고 하면 단행본이 당연하던 때에 나도 언젠가 나만의 만화책을 내고 싶어 했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라 더욱 기뻤습니다.

단행본 작업을 하시면서 원작(웹툰)을 수정, 추가하신 부분이 있죠? 

원래 3부작 첫 작품인 『데이빗』은 출판만화 형식을 기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출판만화 형식을 토대로 웹툰식 스크롤 연출을 접합시켜보고자 만들어진 게 카툰 연재 갤러리에 연재되었던 <데이빗>이었고, 이후 네이버 웹툰에 정식 연재를 시작하면서 보다 웹툰 형식에 맞게 전체적 수정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 작품이자 사실상 첫 웹툰 형식 제작이었던 『에리타』는 출판만화 형식보단 웹툰식 스크롤 연출에 비중을 더 많이 두었고 이로 인해 단행본 작업에 있어 『데이빗』보다 더 많은 수정이 들어간, 『데이빗』과 완전히 정반대의 수정 작업을 거쳤습니다. 전반적인 수정점은 세로로 나열된 컷 배열을 단행본 형식에 맞추어 재조정하고 스크롤 형식을 이용한 연출들을 양면 페이지에 담아내었습니다.

작품을 웹으로 선보일 때와 종이(책)로 선보일 때, 각각의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출판 형식과 웹툰 형식 모두를 경험해 보았기에 두 매체의 확실한 장점과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출판 형식은 역사가 긴 매체다 보니 보다 대중적인 친숙함이 있고, 한 페이지에 여러 컷을 넣어 내용 전달에 용이하고, 특히 양면 페이지를 통한 연출의 임팩트는 오직 출판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웹툰 형식은 보다 간편하고 빠르게 작품을 접할 수 있으며, 한 페이지 안에 여러 컷의 정보를 제공하는 단행본과 달리 한 컷 한 컷 개별적인 정보 제공으로 보다 한 장면에 몰입감을 높일 수 있고, 다음 장면에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재미와 더불어 그에 맞춘 다양한 연출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점과 차이들로 단행본이 잘 가꾸어진 정원을 천천히 감상하는 거라면 웹툰은 앞에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수풀을 헤치며 탐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화는 독자의 평가로 완성된다

『데이빗』의 첫 장에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이 물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라고 쓰셨어요. 『에리타』도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됐나요? 

『에리타』의 경우는 사람의 존재를 주제로 하여 ‘지금은 그 누구도 우리 스스로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지만 만약 지구상에 현생 인류를 증명해 줄 그 무엇도 남지 않았을 때 과연 어떤 것을 사람의 존재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이야기를 그려나갔습니다.

물음에 대한 나름의 답도 갖고 계셨는지, 그 답이 작품을 연재하는 동안 바뀌기도 했는지 궁금합니다.

네이버 웹툰에 정식 연재를 준비하던 단계에서 담당자님과 논의하여 보다 사람이란 주제에 걸맞은 주제들을 검토하였고, 그렇게 3부작의 주제들이 확실하게 정립된 후에 시작과 결말을 모두 구상하고 연재를 하였기에 작품에 따른 답은 준비가 되어있었고, 연재 중에 바뀌었던 적은 없습니다.

‘사람 3부작’에는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을 ‘무엇’으로 정하고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데이빗(『데이빗』의 주인공)’의 경우 돼지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심플한 이미지 그대로 디자인했습니다. 작중 데이빗은 시작부터 끝까지 의류를 걸치지 않는데 이는 데이빗의 육신이 돼지라는 것을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사람이 나체로 돌아다니면 제지를 받지만 데이빗은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집단 내에서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활보하여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 받지 않는 아이러니함과 종극에 ‘캐서린’과의 육체적 한계를 암시합니다. 『에리타』에 등장하는 ‘가온’의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형태를 흉내 낸 듯하나, 플라즈마로 구현되는 부분을 제외한 본체는 아주 심플하고 기계적으로 디자인했는데, 작중 가온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효율적인 구조의 극치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자유롭게 변형되는 플라즈마 설정으로 본체의 차갑고 기계적인 디자인을 상황에 따라 ‘에리타’가 그토록 기다리던 천사의 형상으로도 보이게 하는 아이러니함을 의도했습니다.

 <브랜든>의 ‘올미어’와 ‘라키모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올미어’의 처음 디자인은 굉장히 복잡한 구조의 초고도 문명을 상징하는 모습이었지만, 되려 ‘현대 인류의 문명 따윈 먼지처럼 보이는 고생물체들이라면 불필요한 복잡함 없이 필요성에 의한 심플함이 돋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현재의 디자인이 정립되었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면서, 완벽한 구체 형태의 정수와 그 아래로 또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곡선의 몸체까지 완전하면서, 그러기에 더욱 이질감이 드는 인상을 주길 바랐습니다. 그와 반대로 ‘라키모아’는 우리 인류와 비슷하면서 보다 포근하고 정감 가는 모습으로 디자인하였는데, 이는 네이버 웹툰 담당자님께서 올미어와 상반되게 친숙하면서도 귀여운 디자인이 어떻겠냐는 피드백을 주셨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하시는데요.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신상 노출을 원하지 않는 주의이기도 하고 작품적으로 독자 분들께 온전히 작품 그 자체로만 다가갈 수 있게 작가 본인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사람 3부작’에 별도의 후기가 없는 것 역시 독자 분들께서 작품을 보고 개개인이 가졌을 생각과 감상을 작가의 개입으로 희석시킬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브랜든>의 작가 후기에 “저는 생각한 이야기를 독자 분들께 들려드리고 독자 분들께선 각자의 생각을 주고받는 것으로 작품을 함께 완성시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쓰셨어요. 독자 댓글을 많이 보시나요? 작품에 대한 독자들이 해석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만화라는 콘텐츠는 결국 독자 분들의 평가로 완성된다 생각합니다. 작가 스스로 작품에 아무리 의미를 담고 재미가 있다 생각하여도 독자 분들이 읽어주시고 본인만의 생각으로 평가해 주시지 않는다면 ‘만화’로서의 생명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독자 분들의 다양 각색 의견과 해석들을 보며, 제가 생각한 부분과 같은 해석엔 ‘이만큼 내 작품을 깊게 이해하고 있구나’ 감사함을 느끼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엔 ‘하나의 주제라도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 비칠 수 있구나’ 감탄을 하게 됩니다.

준비하고 계신 다음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사람 3부작’처럼 긴 호흡으로 이어가실 계획인지, 언제쯤 연재가 시작될지 궁금합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제를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 확실히 이렇다 할 답변은 드리기 어렵지만, 이번에는 시리즈물이 아닌 한 편의 작품으로 길게 연재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데이빗』 『에리타』에 이어 <브랜든>도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인가요?  

‘사람 3부작’ 모두 푸른숲 출판사와 함께 출간 계획을 잡았기에 <브랜든> 역시 단행본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출간 예정입니다. 『데이빗』 『에리타』처럼 웹툰 형식을 단행본에 맞게 전체적인 수정과 부록 페이지 등 추가 작업들이 있어 웹툰으로 접하셨던 독자 분들도 단행본만의 새로움을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




*d몬

2020년 네이버 웹툰 『데이빗』으로 데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독창적으로 구축한 세계에서 풀어내고 있다. 『데이빗』 『에리타』에 이어 2021년 『브랜든』으로 ‘사람 3부작’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에리타 1
에리타 1
d몬 글그림
푸른숲
에리타 2
에리타 2
d몬 글그림
푸른숲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자신이 원하는 리듬으로 사는 사람 – 이연 작가

$
0
0


이연 작가는 “그림 유튜버”, 또는 “그림을 매개로 생각을 전하는 유튜버”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영상 속에서 그는 연필 한 자루를 쥐고 사각사각 그림을 그리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림 그리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좋아하는 도구에 대해, 말하기에 대해, 안목에 대해, 열등감에 대해,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연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흑백의 그림은 어느새 멋지게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나눠 온 이야기들의 정수를 모은 책,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출간한 이연 작가를 만났습니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읽다가 “아니, 이 책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법에 대한 책이 아니라 창작의 태도, 전반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책이던데요.   

맞아요. 그림 그리는 스킬을 알려주는 것보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림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매개일 뿐입니다.  

영상을 찍기 시작하신 계기가 있나요?

2016년쯤 인스타그램에 라이브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관심 있게 팔로우하던 분이 라이브하는 걸 보고 저도 라이브를 켜 봤어요. 길게 그림 그리면서 사람들이랑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독적인 경험이었어요. 

대화를 유튜브에 백업해서 올려달라는 요청도 받고, 저도 유튜브를 재미있게 보다 보니까 한번 해볼까 하고 제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됐죠. 인터넷에 뭔가를 올리는 걸 어려워하지 않으니까 나 자신에 대한 아카이빙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했어요. 그리는 장면에 대한 아카이빙이기도 하고요. 제 그림은 그리는 과정이 있을 때 더 매력적이거든요. 스케치 없이 한 선으로 빠르게 그린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시니까.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말하는 것은 저에게 익숙한 행위였어요. 미술 학원에서도 친구들이랑 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많이 떠들었거든요. 그러고도 저는 그림을 끝내는데 친구들은 못 끝내서 학원에서 저를 격리시키기도 하셨어요 (웃음). 드로잉하면서 말한다는 게 저한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재능의 발견이었죠. 

영상에서도 창작의 기술보다 태도, 마음가짐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계시죠. 한 영상에서 “막상 미대에 가보니 그림 그리는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쳐 주진 않았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의외로 뭘 알려주지는 않는’ 대학 시절을 지나는 동안 창작의 태도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생겼던 걸까요? 

대학 덕분에 고민할 기회가 생겼다기보다는, 학교에서 느낀 답답함에서 벗어 나려고 노력하는 동안 얻게 된 것 같아요. 대학에 돈과 시간을 들인 것에 비해 무엇을 얻었나 생각하면 아쉬움이 있어요. 대학 교육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미대에서 그래도 배웠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아무거나 다 해도 된다’는 태도인데, 그건 수강생에게 즉각적인 결과를 주어야 하는 학원에선 가르칠 수 없는 것이죠. 4년 동안 근본적인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니까요. 그림뿐만 아니라 삶을 사는 데도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 또한 얻으려고 하는 사람만 얻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아쉽죠. 



선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 

지금 이연 채널엔 58만 명의 팔로어가 있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분들이신가요? 

10대, 20대가 각각 30% 정도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정말 다양한 연령대 분들이세요. 그리고 성향으로 보면 저와 반대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선명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림도 흑백이잖아요. 그런데 창작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라데이션으로 세상을 느끼는, 여러가지 결을 세밀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제가  “매력적이고 싶으면 고독을 만드세요!” 라고 선명하게 말하는 것이 시원하게 와 닿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선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의견이 정답이 아니라 많은 의견 중의 하나, 그저 제 의견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예요. 제 의견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면 독선이 될 텐데, 그건 경계하는 태도고요.  

들어주시는 분들이 그 결을 읽어 주신다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다행한 건 저를 좋아해 주시는 그라데이션 성향의 분들은 제 말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 주신다는 거예요. 서로에게 좋은 상호 작용이 되죠. 제 영상을 보고 댓글로 제 의견이 아닌 자신의 생각, 다른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고, 그런 커뮤니티가 열리는 것이 좋아요. 그런데 칭찬은 내용이 비슷하다 보니 계속 듣다 보면 무뎌 지는데 종종 보이는 악플들은 개성이 넘쳐요. (웃음) 오래 담아두지 않으려고 바로 지워 버리지만 좋지 않은 기분이 오래 남아요. 악플도 들어야 할 조언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요.

생산적인 조언과 악플은 다르잖아요. 정말 조언하려고 했다면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겠죠.

조언을 가장하는 경우가 많죠. 보통은 유해한 오지랖 같아요. 저는 유튜브가 댓글 차단 및 삭제 기능을 만든 건 선택권을 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유튜버나 창작자가 크게 상처받으면서 활동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 기능을 잘 쓰는 것이 만든 사람에게도 기쁜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적극 활용하고 있죠.



고유한 리듬을 찾아서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 특히 좋았던 부분 중 하나가 쉽고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재치있게 조합하시는 것이었어요. 책이나 영상에서나 언어를 다루시는 감각이 인상적이어서 많이 읽고 쓰시는 분일 거라 생각했는데, 책 추천 영상이 있더라고요. 두 개의 영상에서 다섯 권의 책을 추천하셨죠. (『훔쳐라 아티스트처럼』, 오스틴 클레온 / 『빅매직』, 엘리자베스 길버트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아널드 베넷  / 『타이탄의 도구들』, 팀 페리스 / 『부의 추월차선』, 엠제이 드마코) 

『훔쳐라 아티스트처럼』『빅매직』『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는 창작의 태도에 관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책들인데, 나머지 세 권의 자기계발서는 의외여서 흥미로웠어요. 작가님의 글과 영상에서 느껴지는 현실적인 균형감각이 여기서 온 걸까 싶었고요.

필요한 질문이 있거나 답이 있는 책을 좋아해요. 창작 실용서나 자기계발서, 어떨 때는 시집이 그런 책이 되기도 합니다. 필요한 주어를 넣어서 무엇이든 적용해도 말이 되는 큼직한 이야기들을 좋아해요.『타이탄의 도구들』 이나 『부의 추월차선』 모두 그런 책이예요.

제가 가장 아끼는 책은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예요. 우울했을 때 괜찮다고 다독이는 책은 위로가 되지 않았는데, ‘네가 행복하지 않은 건 시간을 행복하게 쓰지 않기 때문이야’ 라는 선명한 조언이 가장 유용한 위로가 되었어요. 모든 것이 모호하고 막막한 상황에서는 힘주어 말하는 대답들이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에요. 행복은 네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은 제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었던 거죠. ‘네가 하루를 쓰는 것을 점검하면 네가 원하는 삶을 사는 법을 알 수 있어. 그게 네가 행복해지는 방법이야.’ 간단한 인사이트지만, 그 인사이트가 나오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작년에 퇴사하신 이후론 하루 24시간을 스스로 관리하고 계시잖아요. 지금은 시간을 어떻게 쓰고 계세요? 

오랫동안 알람을 맞추는 삶을 살아왔는데, 저는 알람이 필요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았어요. 알람이 없어도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더라고요. 24시간을 제 마음대로 살아보면서 계속 저를 발견하고 있어요. 나의 고유한 리듬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제일 좋은 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부자가 되거나 대단하게 성공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때 미술관에 가고 평일 한낮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는 거예요. 그게 가능하다면 부자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알았고, 그럴 수 있는 지금의 삶에 감사하고 있어요. 꿈을 이루고 나면 무뎌 진다고 하는데, 너무 간절히 바랐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라 감사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아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자기가 원하는 리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한번이라도 맛보아야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재수하지 않고 바로 대학에 가고, 대학 졸업 전에 취업을 했고, 첫 회사를 3년 다니다 퇴사하고 1년 동안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제 시간을 살아봤어요. 처음 자율적으로 살아보니까, 이후 재취업을 한 후에도 나의 리듬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목표가 있으니까 회사도 열심히 다니고, 유튜브도 열심히 하면서 퇴사 준비를 했던 거고요. 목표가 없고 지금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걸 모르면 바뀌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한번쯤은 나라는 인간이 무엇에 맞는지 고민해보고 의심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대부분 고유한 리듬을 생각할 겨를이 없죠. 내내 자진모리 장단이 휘몰아치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웃음) 그런데 옆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두 배 빠른 속도로 치고 있는 것 같고. 

저는 보편적인 리듬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해 내는 모범생이었고, 거기서 자부심을 느꼈는데, 나중에 그게 내 리듬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정말 열심히 몰입했던 삶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닌 것을 굉장히 열심히 해온 것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의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 리듬을 찾고 싶어진 거죠. 

그 모범생 시절에 내 리듬을 찾는 순간 쓸 수 있는 카드를 모으기도 했을 거예요. 인생의 모든 시절에 나의 리듬대로만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언제 멈추고 내 것으로 옮겨 타는가가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범생으로 살면서 배운 스킬을 내가 원하는 일에 사용하는 건 효과적이죠. 남에게 맞춰본 경험이 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스토리도 생기는 것 같아요. 회사를 다녀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고, 업무 메일을 쓴다거나 할 때도 도움이 되고요. 

저의 그라데이션적 해석이었습니다. (웃음) 



원하는 것을 뜻대로 펼치는 삶  

작가님은 나만의 리듬을 비교적 빨리 찾으신 셈인데, 그건 행복한 일일 것 같아요.  

막연히 40대가 되면, 하고 생각했는데 30대에 초과 달성한 셈이죠. 요즘은 너무 좋아요. 고유의 저를 계속 발견하는 것 같아서, 고유의 제가 앞으로 살아갈 일이 기대가 되거든요. '이연'이라는 이름은 펼 연(演))을 쓰는데, 원하는 것을 뜻대로 펼치는 인간으로 살 거라는 것을 과거의 저는 이미 알았던 것 같아요. 연기, 연출에도 같은 연(演)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분은 제 유튜브가 연극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카메라 한대, 연필, 종이, 손 만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이 믿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연극적이라고요. 제가 원하는 삶을 연출하고 연기하면서 살 거라고 짐작해 온 내 자신을 서른에 확인할 수 있어서 너무 좋고, 앞으로 더 많이 확인하고 싶어졌어요.  

이런 기운으로 서른을 지나는 어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연 채널을 보는 청소년들에게도 용기가 될 것 같아요. 

10대 친구들에게도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막연한 느낌은 있을 텐데, 아직 눈으로 확인한 것은 없는 상태라서 막막할 거예요. 막막하지만 자꾸 기록해서 남겨두고, 나는 이렇게 될 거라고 말해 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나 말고는 아무도 그 말을 해 주지 않을 거니까요. 

제가 밀고 있는 것 중에 게임 캐릭터 이론이 있어요. 마법사, 검사, 도적, 메딕 같은 게임 캐릭터들에게 각각의 성향이나 속성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속성이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모두를 공부시켜서 검사로 키우려고 하지만, 사실 나는 전혀 다른 캐릭터일 수도 있는 거죠. 내가 어떤 캐릭터인가를 빨리 발견하고 그 캐릭터로서의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멋진 인간으로 완성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캐릭터는 어떻게 발견하게 되는 걸까요?

부딪힐 때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해리포터도 1편에서 친척 가족에게 구박 받던 시기가 있었잖아요. 너 또 이상한 마법을 쓰는구나, 너희 부모는 끔찍하고 이상한 사람들이야,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학교에 가서 고유한 자신이 되었죠. 

내가 가장 많이 지적 받는 모습이 사실은 내 모습일 거예요. 저도 회사에서 신입이 대리같이 군다, 디자인이 너무 심플하니까 뭔가 더해 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귀엽기보다는 생각이 많고, 애늙은이 같고, 심플한 걸 좋아하는 제 모습대로 지금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기도 해요. 주변 누구도 해 주지 않는 말이지만, 책을 쓴 사람들은 너의 고유한 것을 찾으라고 말해 주거든요. 

운 좋은 누군가는 넌 이걸 참 잘하는구나, 하고 칭찬받으면서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부딪히면서 발견한다는 거죠.

대개는 부딪혀요. 멋진 일이라면 더욱. 그렇게 생각하며 제 책에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멋진 일은 대개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 여정은 험난하다. 그럴 때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지금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이 사실을 계속 떠올려야 한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24-25쪽)

이 구절이 이렇게 연결되는 거군요. 부딪힐 만큼 일단 뭔가를 해봐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맞아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성비 넘치게 살려고 해요. 군더더기 없이, 실패 하나, 방황 하나 없이 말끔하게 성공을 이루려고 하죠. 그런데 실패나 방황은 너무 중요한 재료잖아요. 깨지고 찢어져 봐야 중요한 것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방황을 운동한 후의 근육통 같은 것, 강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겁을 덜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연 작가는 인터뷰 장소에 애착 만년필 두 자루를 가져왔습니다. 이 만년필을 좋아하는 이유, 나만의 만년필을 갖는다는 것, 가장 비싼 만년필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만년필을 쓰는 일에 대해 두 자루의 만년필로 번갈아 선을 그으며 한참이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익숙한 장면이라고 생각하셨나요? 푸른빛 잉크로 선을 그으며 대화 나누는 동안, 저도 이연 작가의 영상 안에 함께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나만의 리듬, 고유한 나의 캐릭터, 내가 가장 원하는 것. 어떤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든, 결국은 ‘나’ 를 중심에 두고 기준선을 잡는 대화로 돌아왔습니다. 나의 것,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흑백의 말은 날 세워 공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모두에게 맞는 말이 되길 바라며 둥글리는 대신 나의 생각을 선명하게 드러낼 때 깊이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연 작가의 단호한 문장이 여러 차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저 역시 그라데이션 사람입니다.




*이연(작가, 유튜버)

펼 연(演) 자를 쓴다. 이름처럼 사는 삶을 꿈꾼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조형예술학과와 시각디자인과를 복수전공했다. 두 개의 졸업장을 받고 나서야 그리고 싶은 그림은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5평 방의 월세 45만 원을 내기 위해 6년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퇴근 후에는 혼자 그림을 그렸고 비싼 미술도구가 부담스러워 주로 네임펜과 매직을 썼다. 부모님이 투자한 미술 교육비가 아까워 유튜브를 시작했다. 2년 만에 독보적인 미술 크리에이터로 성장하여 53만 유튜버가 되었다.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 강연자로 살고 있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이연 저
미술문화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소호 “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의도였다”

$
0
0


“시를 쓰고자 한 뒤 오직 첫 시집만 생각했었다”는 이소호 시인은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아득한 마음으로 1년을 쓰지 못하고 시를 쓰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내 시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자신이 처음 시를 쓰고자 했던 시절, 뉴욕에서 지내던 그때였다. 그곳에서 많은 미술관에 다녔던 그는 전시를 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떠올리며 두 번째 시집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캣콜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이소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는 ‘인스톨레이션’, ‘데페이즈망’과 같은 미술용어들이 시 안으로 들어와 시와 절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장면을 독자가 ‘보게’ 하는 시집이다. 사진 한 장으로도, 흰 글씨로도 시가 되었으므로 이는 읽는 시가 아니라 경험하는 시. 이소호 시인은 “이 시집은 경험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소호의 첫 번째 전시 도록

‘NEW MUSEUM’이라는 전시회의 전시 작품을 실은 한 권의 도록처럼 구성한, 콘셉트가 아주 명확한 시집이에요. 그리고 첫 부분에 '관람 시 유의사항'을 적었죠. 이렇게 지침을 내리는 시집이라니, 놀랐어요. 의도대로 읽힐 가능성과 오독의 우려가 동시에 있었을 텐데 어떤 마음이었나요? 

일단 저는 욕심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독자가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작품을 대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큐레이터이자 도슨트로서 최소한의 안내는 하려고 한 거고요. 나머지는 오독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시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이 시들이 읽히는 것이라면 두려웠겠지만, 경험하게 하고 싶었던 시집이라는 점이 유일한 저의 의도였기 때문에 그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어떠한 오독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읽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앞에 밝힌 유의사항도 경험의 지침이지 읽기의 지침은 아니에요. 시를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였어요. 미술 작품을 사진 찍으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 담긴 시집도 마찬가지예요. 경험을 위해서 촬영을 자제해주셨으면 했어요. 

수록된 시에는 각주가 아주 많잖아요. 각주라는 것은 작가가 텍스트에 의미를 더하는 장치인데, 이 양식을 마음껏 활용한 한편으로 어떠한 오독도 상관없다고 하시는 말씀이 재미있게 들려요. 

각주 역시 대부분은 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 정도만 담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관람 시 유의사항’에 “각주 따위 무시하시고 읽으셔도 무방”하다고 썼어요.(웃음) 

표제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에 달린 각주를 보면 "첫 번째 시집이 나온 뒤 소호는 침대에 누워 매일매일 이 말을 중얼거렸다."(65쪽)고 쓰여 있어요. 그런데 ‘이 말’은 지워져 있죠. 두 번째 시집을 만들면서 어떤 고민이 있었던 건가요? 

시집 한 권을 낸 뒤에 ‘이제 뭘 쓰지?’ 싶더라고요. 아득해서 1년을 누워 쓰지 못했어요. 그런데 독자와의 만남 같은 것을 하면 제가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문학에 엄청난 뜻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문학에 정진할 것처럼 저를 소개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게 너무 슬펐어요. 첫 책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두 번째 시집의 고민이었고요. 그래서 실은 계약이 먼저 된 시집을 미루고 이 시집을 두 번째 시집으로 출간한 거예요. 제일 처음 시를 쓰고자 했을 때가 뉴욕에 있을 때고, 뉴욕의 미술관에서 개념 미술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있으니까 그것을 해봐야지, 하고 생각했죠. 그 가운데 화두를 찾는 것도 시간이 걸렸고요. 결국 『캣콜링』이 제 속의 것을 토해내는 느낌이었다면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는 처음 시를 쓰고자 한 마음을 되짚어본 시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말씀을 들으니 첫 번째 시집만큼이나 의미가 큰 시집 같아요. 

네, 그래서 이번 시집에 대해 얘기할 때 꼭 ‘첫 번째 전시 도록’이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어요. 저한테는 이것이 또 다른 첫 시집이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종이가 비좁다는 생각

보도자료에 “‘읽는’ 시에서 나아가, 심리적인 이미지 등을 차용한 ‘보는’ 시로의 변화를 꾀하며 여러 실험적 기법들을 선보인다”는 문장이 있어요. 이 시들을 만나는 독자도 무척 놀라겠지만요. 시를 쓴 시인에게도 이것은 아주 도전적인 작업이었을 것 같거든요. 

처음 뉴욕의 미술관에 갔을 때, 충격이었어요. 글씨가 적힌 종이를 액자에 넣어 전시하고 있는 미술 작품들을 보고서요. 현대미술의 이상함을 느꼈던 거죠. 그러면서 ‘나도 미술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 전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전시가 제 꿈이었거든요. 그러다 뒤샹(Marcel Duchamp) 전시관을 갔어요. 뒤샹이 2차대전 터진 후에 자신의 작품이 다 사라질 것을 걱정해서 작품의 미니어처를 만들어 ‘여행가방 속 상자’라는 작품 시리즈를 만들었거든요. 그걸 본 거죠. 두 번째 시집을 작업할 때 그것을 떠올리고, 전시관의 미니어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만든 것이 이 시집이었어요.  

전시가 꿈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꿈은 왜, 언제 시작된 거예요? 

2008년일까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종이가 항상 비좁다고 생각했어요. 늘 시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전시를 하고 싶었던 건데요. 설치미술이 부러웠던 것은 그것을 관람하고 나면 여행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을 주기 때문이었어요. 그런 미술 작품을 관람할 때 사람들은 어떤 세계를 체험하고 오잖아요. 그러니까 시가 체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거예요. 

체험하는 시, 보는 시의 대표적인 작품이 「판의 공식」이나 「존경하는 판사님께」가 아닐까 싶어요. 

「존경하는 판사님께」는 편집자 님이 두 페이지에 걸쳐 수록해주신 거예요. 저도 이것을 한 페이지에만 채우는 게 아쉬웠거든요. 빽빽하고, 무섭고, 끔찍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이렇게 표현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존경하는 판사님께」는 일부러 ‘깜지’처럼 썼어요. 쓰면서 오히려 하나도 안 죄송하다는 느낌을 저 스스로 체험하게 됐죠. 그러니 어째서 이 방법으로 감형이 될까, 싶더라고요. 그 바로 앞에 수록된 시가 「판의 공식」이잖아요. 거기에 루트를 씌웠거든요. 감형을 간단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수학공식을 응용하면 될 것 같았고요. 그래서 앞의 시에는 공식을 쓰고, 다음 페이지에 진짜 깜지를 써서 실은 거예요. 

이 두 편의 시가 연결이 되어 있는 거군요. 

그 두 편은 한 번에 쓰였어요. 그리고 저는 항상 시를 쌍으로 써요. 

그렇다면 이 시집이야말로 수록된 순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도슨트이자 큐레이터의 역할을 자처한 거예요. 큐레이터가 전시의 순서를 정하잖아요. 이 시집은 시를 순서대로 읽어야 시의 경험이 훨씬 배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첫 번째 시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데요. 「하양 위의 하양」은 오직 각주로만 이루어진 시예요. 

충격적이죠?(웃음) 그래서 출판사에 절대로 온라인서점에 ‘미리보기’를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하양 위의 하양」이 이 시집을 다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야 하지만 이것을 미리보기 하는 순간 별점 테러를 당할 것이고, 또한 제가 이렇게 쓴 이유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 시를 보면 제 작품 전체를 들킨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고요. 

저는 「하양 위의 하양」을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한 시처럼 읽었거든요. 이 시를 구상하고, 쓸 때의 생각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얼마 전에 이 시의 낭독회를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했어요. 녹취되지 않는 한에서 이 시를 매번 새롭게 낭독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11시 30분부터 낭독회를 하겠다고 알리고는 그때부터 시를 썼죠. 이유가 있어요.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겠지만 저는 내 시가 촌스러우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 생각 끝에 아예 쓰이지 않은 시를 발표하고, 매번 새롭게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아무것도 쓰지 않고, 지금 내가 접한 세계를 낭독하자고요. 그러려면 적히되 적히지 않아야 했어요. 마침 말레비치(Kasimir Malevitch)의 그림들을 보면서 이해하게 됐죠.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데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을까, 하고요. 그렇게 쓰게 된 시라 각주에도 “이 시는 흰 종이 위의 흰 글씨로 쓰였다. 그러므로 이 시를 읽고자 한다면, 시인을 만나 들어야만 한다”고 적은 거예요.  




‘소호’와 ‘경진’이라는 오브제

「소호의 호소」의 초고 과정을 유튜브에 <소호의 호소 초고>라는 영상으로도 남겼잖아요. 텍스트 바깥으로 독자를 이끄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더라고요. 

이 시는 휴대폰 다다이즘 시 쓰기를 한 거예요. 휴대전화의 자동완성 기능을 활성화하면 제가 많이 쓰는 단어들이 나오거든요. 제가 많이 쓰는 단어들 안에서 나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작업들이 재미있었는데요. 앞서 종이가 좁다는 말씀을 드렸잖아요. 종이 밖으로 나가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많나요. 그래서 제 유튜브에 매일 글 쓰는 것을 촬영하기도 했어요. 작가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궁금해한다면 이런 영상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걸 찍어야 하니까 울면서 쓰게 되기도 했고요.(웃음) 

「공존 화장실」은 사진과 각주로 이루어진 시인데요. 여성 독자라면 여기 실린 공중 화장실 내부의 구멍 뚫린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시인의 하고자 하는 말을 단번에 이해할 거예요. 

뜻밖에 이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게 진짜 힘들었어요. 얼마나 많은 화장실을 다녔는지 몰라요. 더 구멍이 많은 곳을 찾으려고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더구나 사진을 찍을 때 소리가 나잖아요. 제가 찍을 때 사람들이 오해할 것 같아서 아주 조심하면서 사진을 찍는데 나 스스로가 이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피해자가 어떤 느낌인지 알리기 위해서 가해자가 되는 것 같은, 너무나 제 시와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라 힘들었죠.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이 사진을 남성들에게 보여줬을 때 아무도 이게 뭔지 모른다는 점이었어요. 그 차이를 말하고 싶었어요. 

연결해서, 「위대한 퇴폐 예술전」은 한자 단어 중 ‘女’ 자를 변으로 갖고 있는 것들을 모아 구성했고요. 「누구나의 어제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은 2020년 2월 한 달 동안 일어난 여성 대상 범죄 기사를 모아 재구성한 시예요. 모두 너무 강렬한 시였어요. 

시를 쉽게 썼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요. 「위대한 퇴폐 예술전」을 위해서는 단어 2,000개를 넘게 찾아봤어요. 「누구나의 어제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도 마찬가지예요. ‘여성 범죄’로 검색하면 기사가 500개까지밖에 안 나와요. 그 다음은 날짜를 바꿔서 찾아야 해요. 그만큼 많더라고요. 정말로 이 두 시를 쓸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이 시를 쓰기 위해서 저 스스로를 진창에 빠트려야 했던 셈이에요. 

『캣콜링』에 그랬듯 이번 시집에도 시 안에 '소호'와 '경진'이라는 시인 본인의 이름이 등장해요. 이 때문에 독자는 시적 화자를 시인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시의 화자가 곧 시인은 아니잖아요. 

일단 저는 구분하지 않길 바라요. 그 자체가 저의 의도예요. 화자는 시인인 저이면서 제가 아닌데요. 독자 분들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그래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그게 재미있어요. 원래 비밀이 많을수록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잖아요. 저는 독자와 오래 함께 하고 싶으니까 그런 식으로 비밀을 유지하고 싶은 거예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진짜가 아닌지는 비밀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는 그 사람을 의뭉스럽게 만들면 어떤 말도 의심스러울 것이고, 저는 그 의심이 좋아요. 텍스트가 비밀인 게 아니라 화자나 시인 자체를 비밀로 만들어버린 거죠. 

그렇다면 시의 화자를 사람 이소호라고 이해하는 독자가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세요? 

네, 상관없어요. 저는요, 엄마랑 동생이 진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착각할 때가 제일 재미있어요.(웃음) 저는 가족도 속여요. 그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었어요.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엇과 무언가 있어야 하는 곳에 없는 것」에는 “이소호는 끝났다. 작품 전체를 이끄는 오브제가 자기 자신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99쪽)라는 시구가 등장해요. 

작가에게는 다 ‘나’라는 오브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통해서 느낀 무엇을 보는 것이잖아요. 거리가 좀 머냐 가깝냐 차이죠. 특히 시에서는 그게 더 드러난다고 봐요. 그저 저는 그것을 ‘소호’, ‘경진’이라고 쓸 뿐이에요. 그러니까 ‘소호’나 ‘경진’은 동시대 여성의 오브제 중 하나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한편으로 저는 저라는 오브제가 끝났으면 좋겠거든요. 괴로워서 쓰는 거니까요. 저라는 오브제가 끝났다는 것은 제가 행복해졌다는 얘기일 테고요. 오브제로서의 제가 소비가 끝나면 진심으로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끝나지 못하겠죠. 저는 어떤 지점에서는 언제나 테러와 조롱을 당하고 있고요. 여성의 이야기로 장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어요.


 

끝에 실린 에세이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진짜 아름다운 시를 쓰겠다고 말하고,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문장으로 끝이 나요. 글의 제목도 ‘완벽한 실패’거든요. 어떤 실패일까요? 

저는 미문을 쓰는 작가가 꿈이었어요. 매번 미문을 연습했어요. 2008년의 나는 그런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등단을 한 뒤 주목받은 것은 ‘너도 중절 수술한 적 있지’ 같은 시구였잖아요. 너무 완벽하게 실패한 거죠. 하지만 완벽했어요, 그 실패가. 그것으로 저라는 사람이 주목을 받았으니까요. 




*이소호

1988년 여의도에서 연년생 장녀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적응할 때쯤만 되면 운명의 장난처럼 부산, 무주로 이주하여 학창시절을 났으며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미디어창작학부를 동기도 교수님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다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쩌다 동국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석사를 수료했다. 석사 4학기 재학 중 이경진에서 이소호로 개명까지 한 후, 눈물겨운 투고 끝에 월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2018년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늘의 나는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의 저자로 시와 산문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이소호 저
현대문학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치료감호소 주치의 차승민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덜 무서워했으면”

$
0
0


“내 환자들은 정신질환자이자 범죄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차승민의 일터는 국립법무병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감호소’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국립법무병원은 정신질환 범법자의 전문 치료와 재활을 위해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정신과 병원이다. 치료감호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교도소 대신 이곳에 수용되어 치료를 받는다. 법원, 검찰, 경찰 등은 국립법무병원에 정신감정을 의뢰하기도 한다.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진주 방화사건 피의자 안인득 등이 이곳에서 정신감정을 받았다. 

차승민 전문의는 지난 4년간 국립법무병원에서 일하며 직접 만났거나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누군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의 목록에서 지우거나, 덮어놓고 미친 사람으로 매도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정신질환 범법자를 치료하는 사람으로서,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질문들과 논쟁적 테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그의 말은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추천사를 쓴 이다혜 기자는 “이 책은 범죄자를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뜻에서 쓰이지 않았다. 이 책의 진정한 힘은, 범죄에 대한 처벌과 그 사람이 앓는 질병에 대한 치료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차분한 설득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차승민 저자는 충남대학교 병원에서 노인정신건강의학 전임의를 지냈다. 이후 국립법무병원으로 이직, 현재까지 범법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주치의로 일하고 있다.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은 국립법무병원의 내부 이야기를 담은 첫 대중서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정확한 원인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나는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생활형 정신과 의사다” 라고 쓰셨어요. “아마 내가 애초에 사명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더 지쳐서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고 하셨고요.

처음에는 정신과 의사로서 나한테 맞는,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롱런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병원의 수익에서 조금 자유롭고 야간에 불려나가지 않을 병원을 찾고 싶었어요. 직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돈을 1순위로 생각했으면 다른 병원을 알아봤겠지만, 당시에 저는 시간적 여유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어쨌든 국립법무병원은 공무원 조직이다 보니까 공무원 복무 시스템 안에서 제가 지킬 부분만 지키면 간섭이 없어요. 연가병가를 쓰고 싶을 때 쓰면 되고요. 여러 명의 의사들이 근무하고 있고 또 외래 환자가 많이 기다리고 있는 병원이 아니라서,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선생님이 백업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그걸 되게 크게 봤죠. 왜냐하면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급한 집안일이 생기면 뛰어가야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면을 보다 보니까 국립법무병원을 선택했고, 아직까지 일하고 있는 이유는 그게 만족되기 때문이에요. 

'워라밸'이 괜찮은 편인가요? 

그렇죠. 좋지는 않지만 제가 원하는 수준으로 맞는 것 같아요. 시간을 돈 주고 산 느낌이라고 할까요. 급여는 많지 않지만, 그만큼 저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주는 곳이니까요. 그 외에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부분들은 처음에는 저의 1순위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이게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국립법무병원이 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매력을 느끼는 병원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요. 

의사들조차도 국립법무병원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처음 이직을 고려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법무부는) 병원 시스템을 잘 모르니까 의사 말을 더 경청해주지 않을까, 그런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웃음) 그렇지는 않았고요. (웃음) 저는 환자들이 무서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무섭기로 치면 일반 정신과 환자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어차피 증상들은 다 있는 거니까요. 전공의 수련할 때도 환자가 무섭게 느껴진 적이 있었는데, 정신과 의사들은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그런 정도이겠거니 생각을 했지, 더 무섭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가끔 그런 생각은 들죠. '만약에 국립법무병원이 관리가 안 되면 심란하기는 하겠구나.' 이곳에 있는 환자들은 이미 범죄를 저질렀으니까, 만약 이 병원이 문을 닫게 되면 교도소로 가겠죠. 그러면 과연 치료가 될까, 케어가 될까... 그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조금 심란해지기는 하죠. 

책을 읽어 보니, 국립법무병원의 근무 환경이 굉장히 열악하더라고요. 

어쨌든 의사도 먹고살아야 하고, 또 자기가 투자한 시간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병원들과) 급여가 너무 차이 나니까 남자 외벌이 선생님이 오시기에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 있어요. 혼자 가계를 책임지셔야 되니까요. 사실 지금도 원장님을 제외하고는 다 여자 선생님이에요. 파트타임 선생님이 아닌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전문의들은 다 아기 엄마예요. (워킹맘은) 연가병가에 대한 아쉬움을 알기 때문이죠. 아이 방학 때는 하루라도 더 쉬고 싶고, 또 그게 필요하니까요. 의사들의 급여를 올리려고 노력은 하지만, 어쨌든 공무원의 임금 체계나 처우 체계에 묶여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의사) 구인 공고를 많이 내지만 안 오죠. 

“정신건강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정신과 병원의 의사 일인당 적정 환자 수는 60명” 이라고 하는데, 국립법무병원에서는 3배 정도 많은 환자를 담당하죠? 

네. 말씀하신 대로 규정에는 일인당 60명까지 진료를 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민간병원들은 50명 정도로 맞추는 추세예요. 외래 환자도 봐야 되고, 의사들이 너무 많은 환자를 보면 진료의 질이 떨어지니까요. 그런데 국립법무병원에 와서 보니까 담당 환자 수가 너무 많더라고요. 제가 입사하고 초반에만 해도 지금보다 의사들이 조금 더 많아서, 의사 일인당 환자 수가 80명 정도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요. 점점 늘어나더니, 정말 많을 때는 거의 190~200명이 된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퇴원한 환자들도 많아서 16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많으셨다고요. 

어쨌든 수용돼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 입장에서는 환자들이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내부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조직에 문제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어요. 그런 여러 가지 고민들이 있었죠. 사실 처음에는 엄청난 걸 해보자는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이곳을 너무 모르는 것에 대한 갑갑함이 있었어요. 제가 언제까지 여기에서 일할지는 모르지만, 있는 동안에 기록으로 한번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목에 '애처로운'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는데, 누군가는 책을 읽기 전에 오해할 수 있겠어요. '아무튼 범죄자 아니냐'고 생각하는 거죠. 

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혹시 그들을 두둔하는 것으로 오인되지 않을까’ 걱정되셨을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있죠.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왜 이들이 이런 행동을 했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게 핵심이었어요. 일례로, 안인득의 재판이 진행될 때 그 사람의 극악무도함만 보도가 되고 그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다뤄졌잖아요. 정신과 의사라면 누가 봐도 치료를 안 받고 제때 약을 먹지 않아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건데, 우리 사회는 자꾸 결과만 보고 이 사람을 나쁜 놈 만들면 끝나는 게 돼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제2, 제3의 안인득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알려주고 싶은 거죠. 지금의 상황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잘못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걸. 그거에 대해서 정신과 의사들은 계속 경고를 해왔는데,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니까 다들 보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무조건 심신미약은 아니에요

안인득의 경우는 동료 의사가 정신감정을 했죠?

저는 조금 속상했던 게, 저희 의료부장님이 안인득의 정신감정을 하셔서 재판에 증인으로 가셨었어요. 그런데 검사님이 구형을 하면서 감정이입을 하셔서 막 우셨다는 거예요. 물론 저희도 피해자들이 안 됐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렇게 감정으로 흘러갈 일이 아니거든요. 사실 제가 안인득을 직접 면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는 그냥 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저희 의료부장님은 계속 안인득이 되게 안타깝다고 하세요. 감정을 하면서 그 사람을 속속들이 알고 난 후라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게 되게 짠한 거예요. 제가 책에서 김성수에 대해 약간 애잔한 마음으로 썼듯이. 안인득이 한 행동은 나쁘죠. 하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 만들고 끝내면 뭐해요. 또 비슷한 일들은 계속 벌어질 텐데. 그러니까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그거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어요. 

'안인득이 안타깝다', '김성수를 만나보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어요.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거죠. 

서사 부여라고 하는 게, 그 사람한테 어떤 변명거리를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김성수는 (정신과 의사들이) 다들 심신건재 판정을 낼 거고, 저도 그렇게 냈어요. 안인득의 경우에는 심신미약이 나왔고요. 그러니까 정신감정을 하는 저희는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게 된 원인이 뭘까'를 생각하는 거거든요. 안인득처럼 정신병적 증상이 매우 심한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세상에 살고 있는 거예요. 김성수는 그런 정신적 증상은 없었어요. 정신감정을 할 때 병이 있다고 무조건 심신미약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조현병이라고 해도 약물치료를 받았거나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정신병적 증상이 나아졌을 때 범죄를 저질렀다면 심신건재로 봐요. 

정신질환자의 경우와 달리, 사이코패스는 판단과 의사 결정 능력에 문제가 없잖아요. 그런데도 범죄를 저지른 거니까 서사를 부여하면 안 되겠죠. 

사이코패스 같은 경우에는, 본인의 이득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는 게 너무 명확하게 보이다 보니까, 절대 서사를 부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나하나 사람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게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김성수는 심신건재이기는 하지만, 저는 조금 마음이 갔던 이유가, 어린 시절에 그런 상황에 처한 건 그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일이었잖아요. 자신의 의지랑 상관없이 벌어진 상황에 있었던 거죠. 

김성수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심각한 폭력에 노출됐다고요. 

네. 그리고 같은 의사들도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약을 먹지 않은 것부터 그 사람의 책임이 아니냐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약을 먹지 않은 것부터가 증상이거든요. 약을 안 먹고 증상이 악화된 건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병 때문에 생긴 상황이에요. 물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부분은 의사도 사람인지라 이야기를 듣고 나면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 안인득을 감정하셨던 저희 의료부장님도 너무 안타까우니까 안인득은 원래는 착한 사람이라고 하시는데, 저희가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오해 받아요'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런데 안인득의 경우는, 감정하면서 약물 치료를 같이 했는데, 약을 먹고 났더니 눈빛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약물 치료를 계속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치료감호형을 받지 못해서 국립법무병원에 오지는 못하고 계속 교도소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안인득은 심신미약이 인정됐는데도 치료감호형을 받지 못했나요? 

심신미약이라고 무조건 다 치료감호형을 받는 건 아니에요. 판사님이 치료감호형을 내릴 때만 국립법무병원에 올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교도소에 엄청나게 많은 정신질환자들이 있고, 그것 때문에 교도관님들이 되게 힘들어 하세요. '법무샘'이라는 법무부 인트라넷이 있는데, 거기 있는 게시판에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냐는 하소연 글이 엄청 많이 올라와요. 교도관님들이 많이 답답하시겠죠. 일반 수용자만 보기에도 과밀화 돼있고 힘든데 행동 조절이 안 되는 사람들까지 보려니 이해도 안 가시고 너무 힘드실 거예요. 최근에는 어떤 교도관님이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셨는데, 교도관들이 제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을 해주셨더라고요. 그 분은 수형자가 제 책을 읽는 걸 우연히 보시고 빌려 읽게 되셨대요. 그 글을 보고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교도소 안에서는 약물 치료나 상담이 잘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그러면 증상이 더 악화된 상태로 출소하게 될 텐데, 환자 본인에게도 공동체에도 위험한 일이에요.

네, 그냥 출소시키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여력이 없어요. 진주 교도소라고 정신질환자들을 모아놓은 교도소가 있는데, 거기도 포화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정신과 의사들이 저희 병원에도 취직을 안 하는데 교정기관은 더 그래요. 병원이 아니다 보니까, 의사들이 자신이 충분히 진료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취업을 잘 안 하는 실정이에요. 그래서 외부에서 촉탁의 시스템으로 오거나 화상 진료를 하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의사가 상주해서 봐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안 돼요. 실제 저희 환자들의 병력이나 과거력을 보면 한두 번의 전과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건이 점점 커져서 결국에는 큰 사건이 돼서 와요. 그런 점이 많이 우려돼요. 



사법입원제도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

최근 정신과 병원의 입원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추세인가요? 

점점 퇴원이 빨라지고 있기는 해요. 제가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로 수련을 받을 때는 대학병원에서도 두세 달씩 입원 치료를 많이 했는데, 지금 수련하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달이면 길게 있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급한 증상만 빨리 치료하고 퇴원시키는 게 맞기는 한데, 그러다 보면 분명히 관리가 안 되는 환자들이 있을 거거든요. 그에 대한 대책이 너무 없지 않은가 생각돼요. 저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에 대해서 항상 경각심을 갖고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제 책을 읽고 변호사님이 메일을 보내주셨어요. 한 지방법원에서 국선 변호사로 일하시는 분인데, 국선 형사 사건을 맡으면서 '왜 자꾸 나한테만 정신질환자들의 사건을 맡기지? 일부러 몰아주나?' 하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런데 이야기를 해보면 실제로 사건 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는 거예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정신보건법이 개정된 후에 조현병 환자들이 국립법무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증가했나요?

실제로 점점 환자 수가 늘었어요. 10년 전만 해도 600명 정도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매해 조금씩 늘어서 지금은 900~1000명 정도가 있어요.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민간병원에 입원하기가 까다로워졌어요. 입원을 연장하는 것도 그렇고요. 예전에는 6개월에 한 번씩 입원 연장 심사가 있었는데 그 기간이 3개월로 줄었어요. 여러 가지 사회 시스템이 바뀌면서 병원 밖으로 나오게 된 환자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물론 환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사는 게 최종 목표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준비가 됐을 때 나와야 되거든요. 그냥 나오면 지금처럼 재활 공간이라든지 그룹홈 같은 것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들을 다 소화하지 못하니까 결국에는 그냥 집에 있게 되고요. 또 가족들은 생업이 있으니까 24시간 붙어있지 못하잖아요. 그러면서 가족이나 주변인들이 피해자가 되기도 해요. 

정신질환을 초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범죄 가능성은 현격히 낮아지잖아요. 입원이 어려워지면 사회적으로 큰 난관이 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이유로 정신과 전문의들이 '사법입원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거죠?

임세원 교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윤일규 전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서울 시내의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환자 칼레 찔려 죽었다니, 너무 끔찍하고 공포스럽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정신과 의사들은 '결국 터질 게 터졌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윤일규 전 의원님과 사법입원제도 도입을 추진했던 건데, 결국 도입되지는 않았죠. 그런데 미국, 일본, 호주 같은 곳에서도 오롯이 정신과 의사와 보호자만 입원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사법제도 안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해요. 그러면 보호자나 의사의 부담이 조금 덜어지니까요. 

국립법무병원의 환자들은 사법부의 결정으로 입원한 거잖아요. 그래서 의사나 보호자에 대한 원망이 덜하다고 하셨는데, 사법입원제도가 필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환자들이 자꾸 보호자한테 꽂히거든요. '나는 약 먹기 싫고 입원하기 싫은데 엄마가 또 나를 입원시키지 않을까' 하면서 엄마한테 피해망상이 생기기도 해요. 그런데 엄마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아픈데 입원을 안 시킬 수 없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자꾸 보호자들의 부담감이 커지게 되고, 보호자가 피해자가 되거나 환자가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요. 의사들도 타깃이 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되게 커요. 외래 환자를 볼 때 '나한테 왜 입원하라고 해, 나를 가두려고 그러는 거지?' 이런 반응들을 보거든요. 그런데 국립법무병원에 와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입원시킨 게 아니고, 판사님이 여기에 오라고 했잖아요'라고 말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판사에 대한 원망은 안 해요. 재판이라는 과정이 명확한 실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판사님은 익명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 판사님한테 피해망상이 생기는 경우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법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좀 도와줘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자의로 입원하는 환자가 많아지는 게 제일 좋기는 하지만 병의 특성상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정신질환자의 경우 병식(病識, 병에 걸려 있다는 환자 스스로의 깨달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네. 그리고 입원을 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다면 나라가 조금 더 시스템을 만들어줘서 보호자도 덜 힘들고 정신과 의사도 덜 힘들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는 데에도 예산이 들고 판사도 더 많은 수를 뽑아야 되니까 분명히 어려움이 있겠죠. 그래도 어쨌든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는 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덜 무서워했으면 좋겠어요

조두순 사건 발생 10년 후인 2018년에 형법 제10조 1항이 바뀌었습니다. '심신미약을 인정받으면 형을 감경한다'에서 '감경할 수 있다'로 바뀌었는데, 시민들의 분노와 이의 제기가 영향을 미친 걸까요? 

그렇죠. 당시 판결한 판사님이 되게 억울해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법 조항이 '감경한다'로 되어 있어서 자신은 어떻게 하지 못하고 법에 따른 거라고요. 지금은 '감경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감경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사실 저희가 심신미약으로 감정해도 판사님들이 심신미약이 아니라고 판결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는 법원에서 정신감정을 신청하니까 저희 의견을 보내는 거고, 법정에서는 많은 증거들 중 하나로 여겨져요. 제가 논문을 쓰면서 실제 판결문이랑 정신감정서를 대조해봤는데, 알코올 중독 같은 애매한 부분들의 경우, 정신과 의사들은 심신미약으로 봤던 걸 판사님은 심신미약이 아니라고 판결하신 경우도 상당수 있었어요. 자신이 술을 먹고 한 짓이니까 책임을 져야 된다는 거죠. 

지금은 정신과 의사들이 음주를 심신미약으로 보지 않죠? 

네,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시죠. 실제로 법정신의학 교과서에서도 '자발적으로 한 약물 중독이나 음주로 일어난 일들은 심신미약으로 보면 안 된다'고 쓰여 있어요. 

흔히 '화학적 거세'로 알려져 있는 '성충동 약물 치료'의 경우, 현재까지 재범률이 0% 라고 하셨어요.

성충동 약물 치료를 받는 기간에는 재범률이 없어요. 그런데 평생 하는 치료는 아니니까, 치료가 끝나고 나면 호르몬 수치가 다시 돌아와요. 이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성조숙증 치료에 쓰이는 것과 똑같아요. 성호르몬을 억제하는 거예요. 자궁내막증, 전립선암이 있는 사람들한테 쓰기도 해요. 높아진 성호르몬을 낮추는 역할을 하니까요. 3년 동안 치료를 하고 끝내면 한두 달이 지난 후에 다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가요. 그런 경우에는, 아직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재범률이 거의 없다고 보지만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약물 치료를 아예 안 하고 출소하는 것보다는 3년 동안이라도 재범률을 낮추면 그 기간 동안 피해자를 안 만드는 거니까요. 

정신질환 범죄자의 경우, 일단 치료를 받아야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도 지고 반성도 할 수 있겠죠?

그렇죠. 일단 뭘 알아야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 거 아니에요. 치료가 안 되면 계속 딴소리를 해요. 아직도 증상이 많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재판 자체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아예 인정을 안 하면 어떻게 반성을 하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정신과 의사들조차도 국립법무병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환자들이 이곳에 어떻게 오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정신과 의사들이 한 번쯤 관심을 가지면 좋겠고, 그러면서 이곳에 조금 더 많은 의사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국립법무병원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놀란 표정으로 보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책이 작은 변화를 일으키면 좋겠다는 바람은 없으신가요?

그건 너무 큰 바람 같아요.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덜 무서워했으면 좋겠고요. 치료만 잘 받으면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자꾸 무서워하니까 편견이 생겨서 더 병원에 못 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정신과 병동이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거든요. 정신과 외래도 그렇고요. 우울증부터 시작해서 더 심한 정신질환까지 치료를 받아야 되는 병이고, 쉽게 병원에 갔으면 좋겠어요.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도 국립법무병원에 투자를 좀 했으면 좋겠고요. (웃음) 저희 병원뿐만 아니라 교정시설에 수용되고 있는 정신질환 범죄자들에게도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차승민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충남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충남대학교 병원에서 노인정신건강의학 전임의를 지냈으며 돈보다 시간이 중요한 워킹맘으로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국립법무병원으로 이직, ‘공무원’ 의사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워라밸을 누리며 살 줄 알았던 국립법무병원에서 매일 170명에 육박하는 범법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주치의로 지금까지 4년간 일했다. 이 책은 ‘치료감호소’로 널리 알려진 국립법무병원의 내부 이야기를 담은 첫 대중서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정신질환과 범죄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차승민 저
아몬드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과학탐험가 문경수 “지구에서 시작해 미래의 우주로 끝나는 책”

$
0
0


1969년 7월 20일, 인류가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만든 기적. 아폴로 계획의 성공은 우주 개발이 단순한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했다. 어느덧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지 5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 화성에는 탐사 로봇과 탐사선이 착륙해 인간의 새로운 영토가 될 지도 모르는 지역을 탐험하고 있고, 민간 우주 기업에서는 수억 원의 우주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이제 우주는 미지의 세계가 아닌, 머지 않아 도래할 현실이다.

NASA 우주생물학그룹과 과학탐사에 참여하고, 화성탐사연구기지(MDRS)에서 유인 탐사 실험에 참가하는 등 우주를 가까이에서 경험한 문경수 과학탐험가는 빠르게 발전하는 우주산업의 변화가 경이롭다고 말했다. 최초의 달 착륙을 넘어,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가 되기까지. 문경수 탐험가는 인간의 우주 탐사 여정을 『창문을 열면, 우주』에 담았다. 창문을 열면 저 멀리 별과 달이 보이듯, 이제 우주라는 환상은 일상의 한편으로 자리하고 있다. 



노래를 들으며 읽어주세요

『창문을 열면, 우주』라는 제목이 독특했어요.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우주는 나와 상관 없는 곳, 아주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관점을 달리해보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창문만 열면 우주가 보여요. 하늘에 뜬 해와 달, 별도 우주의 일부분이니까요. 독자들이 우주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제목을 붙였어요. 

KBS1 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목요일 코너 ‘우주로 가는 밤’에서 나눈 이야기가 책으로 묶였습니다. 어떻게 출간으로 이어진 건가요? 

라디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그 주의 우주 관련 뉴스 중, 흥미로운 것들을 소개했는데요. 한정된 시간 안에 이야기를 끝마쳐야 한다는 점이 늘 아쉬웠어요. 과거에는 우주 소식이 아주 가끔 찾아오는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은 하루에도 수백 건의 우주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거든요. 지구에서 약 5억만km 떨어진 행성에 탐사로봇을 보내고 그 로봇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서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뉴스가 매일 같이 들려오는 걸 보면서 우리의 현실이 SF보다 더 SF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이렇게 급변하는 우주 관련 이야기들을 책으로 잘 정리해서 더 많은 분들에게 우주 탐사의 흐름을 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2년간 진행된 코너였기 때문에 쌓인 이야기가 상당했을 텐데요.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을지 궁금해요. 

그동안 라디오에서 나눈 이야기를 모았더니 80꼭지에 달했어요. 그 주제들을 쫙 펼쳐두고 교집합을 잦았죠. 보통 천문학에 관한 책을 보면, 곧장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사실 인간이 우주 탐사를 하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다양한 경험과 연구를 진행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 책은 지구로부터 출발해요. 과학자들이 우주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지구’, 인간이 첫 발을 디딘 행성인 ‘달’, 앞으로 가게 될 ‘화성’ 그리고 ‘미래의 우주’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묶었어요. 각 주제들은 라디오에서 소개한 것이지만, 원고는 완전히 새로 썼죠.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라디오처럼 선곡을 한 것이 흥미로웠어요. 

라디오 코너에서도 직접 선곡을 했거든요. 노래라는 장르가 낯선 분야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실제로 매주 라디오에서 들려드릴 노래를 고르면서 우주에 관련된 가요가 굉장히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뮤지션이 우주적 사실에서 받은 영감을 일상의 언어로 표현해서 만든 게 노래이기 때문에, 우주를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마지막 선곡은 심규선의 <창백한 푸른 점>이었어요. 

원래 심규선이라는 가수를 좋아하기도 하고,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동명의 책이 있기 때문에 궁금해서 들어봤어요. 그런데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을 통해 인류에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잘 표현한 노래더라고요. 

1990년 나사(NASA)의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에 칼 세이건이 한 가지 제안을 했거든요. “태양계 행성들의 가족사진을 찍자”고요. 날고 있는 우주선을 돌려 사진을 찍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사에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해서 촬영을 하죠. 거기에는 지구도 찍혔는데요. 커다란 행성들 사이에 먼지 한 톨보다 작은 점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이 사진을 보고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을 썼고, 광활한 우주에 떠있는 점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어요.

이 책의 마침표도 결국 그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단순히 아시아, 한국, 서울에 사는 게 아니라 거대한 지구 속에 같이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이 그리는 코스모스는 어떤 세계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죠. 이 노래를 무한반복해서 들으며 에필로그를 썼어요.


 

고개를 살짝 들면 우주가 보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우주를 좋아합니다(324쪽)”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왜 끊임없이 우주 탐사를갈망하는 걸까요? 

아마 제가 탐험가를 꿈꿨던 계기와도 맞닿아 있을 것 같아요. 제 인생의 첫 번째 우주는 유년기였어요. 시골에서 자라며 매일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별은 왜 빛날까? 달은 왜 모양이 바뀔까?” 같은 공상을 많이 했죠.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유독 밤하늘에 눈이 계속 갔던 것 같아요. 어쩌면 본능적으로 ‘인간은 모두 우주의 먼지로부터 왔다’는 사실이 우리 DNA에 각인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수평적인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고개를 살짝 들었더니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는 건 마법 같은 일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는 누구나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이 발전할수록 윤리적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데요. 우주 탐사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과학계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요. 책에서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셨죠.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화성은 그들의 것입니다. 화성인이 비록 미생물일지라도 말입니다(163쪽).”라고요. 

우주탐사라고 하면 흔히 과학자들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나사(NASA) 컨퍼런스에 가면 철학자, 인문학자들이 많이 참여해요. ‘지구인이 생각하는 생명체의 모습과 정의가 우주에서도 통용될까?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첫 마디를 건네야 할까?’ 같은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논의를 치열하게 하죠. 

이처럼 우주 개발에도 인문학적인 접근이 더해지면서, 흐름이 바뀌고 있어요. 인간이 아무리 좋은 취지로 우주에 갔다 하더라도 그곳을 오염시키거나 해치면 안 된다는 의식이 생긴 거죠. 과거에는 탐사선이 착륙에 실패해 폭파하더라도 그걸로 끝이었거든요. 지금은 탐사선에 묻은 지구의 오염물질이 화성에 확산되면 어떤 피해를 줄지 모르기 때문에 표면을 멸균 소독해서 보내기도 해요. 탐사 시작 단계에서부터 윤리적인 측면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거죠. 그래야 우주 탐사가 자유로운 세상이 왔을 때, 불현듯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지금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언젠가는 우주여행도 보편적인 일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우주 산업의 흐름이 10여 년 전,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와 똑같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컴퓨터 같은 핸드폰이 개발된다는 걸 누구나 귀동냥으로 들었지만, 막연한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스마트폰이 나왔고, 지금은 일상이 되었죠. 우주여행도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될 거라 생각해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우주에 가는 건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실제로 우주 여행이 추진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최근에는 영국의 민간 우주 관광 기업 ‘버진갤럭틱’에서 80km 상공까지 올라가 무중력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여행 티켓을 20만~25만 달러(2억 3천만 원~2억 9천만 원)에 사전 출시했는데, 600개 전량 예약이 끝났어요. 앞으로 민간투자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비용은 점차 떨어질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멀리 여행을 가는 정도의 비용으로도 우주 여행이 충분히 가능해지겠죠.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겠네요. 

그렇죠. 이미 지구에도 문제가 많은데, 우주 탐사에 왜 그렇게 큰 지원을 하냐고 말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제프베조스, 일론머스크 등 우주 개발 사업의 프론티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지구가 유한한 행성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물리적으로 자원을 채굴해서 에너지로 바꾸고, 그 과정에서 환경문제가 발생하잖아요. 우리가 언제까지 지구에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실제로 북극에 탐험을 가보면 빙하가 없거든요. 빙하가 있어야 태양빛을 반사해 냉각시켜 지구의 온도를 적당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지구의 온도는 계속 높아질 거예요. 자원은 고갈될 테고요. 화성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막연한 꿈 같지만, 실제로 지구에 살기 어려워졌을 때 대안이 없으면 인류는 사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도 우주 탐사는 중요하죠. 

만약 당장 화성에 갈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마 저는 못 갈 거예요. 국제 우주정거장까지 다녀오는 짧은 거리의 비행을 할 때도 생물학적인 나이 제한이 있거든요. 어떤 외부 변수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사람을 선발하기 때문에 저는 생물학적인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요(웃음). 그리고 지금 당장 화성에 간다는 건, 그만큼 우주 탐사 개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을 짊어지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당연하게도 과학, 공학 등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하죠. 이런 이유들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지금은 못 갈 텐데요.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현재 스페이스X 같은 회사가 앞으로 몇 십 년 안에 화성에 주거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잖아요. 실제로 그런 시점이 오면 분명히 선발대가 필요할 거예요. 그때는 이론적 지식도 중요하겠지만 낯선 환경에서 생존해 본 경험이 많은 사람을 원할 가능성이 높죠. 그쯤 기회가 온다면 꼭 가보고 싶어요.


 

팀장님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일론머스크, 제프베조스 두 사람의 인생을 돌아보면 우주에 대한 열망을 지펴준 이들이 존재했습니다(225쪽).”라고 하셨어요. 작가님에게 우주에 대한 열망을 지펴준 존재는 무엇인가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저희 할아버지가 대목장(大木匠)이셔서 몇 달간 전국을 돌며 일하시다가 반 년만에 집에 오곤 하셨어요.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만나면 무척 좋았죠. 어떤 집을 짓고 있는지 그림을 그려주시고, 그걸 장난감처럼 만들어주곤 하셨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당시 금성사(현 LG)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셨어요. 그러다보니 장난감이 늘 업그레이드 되는 거예요. 이를 테면 할아버지가 나무로 만들어주신 배에 아버지가 모터를 달아주는 식으로요(웃음). 덕분에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경험이 과학 탐험가로 살아가는 씨앗이 된 거죠. 우주 탐사도 마찬가지잖아요. 지구와 전혀 다른 시공간에 사람을 보낸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서호주의 오지전문 여행사에서 일하다가 도서관에서 ‘마틴 밴 크라넨동크’ 박사의 책 『태초 지구로의 탐험』을 발견했고,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신 것이 탐험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에게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던 용기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두말 할 것 없이 팬심이었죠(웃음). 저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을 좋아해서 다큐멘터리를 굉장히 많이 봤어요. 당시 구할 수 있는 모든 과학 관련 다큐멘터리를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안에 항상 ‘마틴 밴 크라넨동크(Martin van Kranendonk)’ 박사님이 등장하셨어요. 저에게는 마치 BTS같은 존재였죠(웃음). 그분께서 제가 머물고 있는 지역의 서호주지질조사국으로 파견을 나오셨다는 소식을 알게 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더듬더듬 메일을 보냈는데 흔쾌히 인터뷰를 하자는 답장이 왔죠. 그분을 만나는 건 마치 제가 좋아하던 다큐멘터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마틴 박사로부터 나사와 서호주지질조사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우주생물학 탐사에 합류라는 제안을 받으셨잖아요. 탐험을 함께하자는 말을 듣는 순간 어떠셨어요? 

1초의 고민도 없이 “Sure(물론이죠)”라고 대답했는데 그 1초가 우주의 나이만큼 길게 느껴졌어요(웃음). 어린 시절부터 제가 살아온 역사가 머릿속에 쫙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마틴 박사님을 만나기 위해 작은 용기를 냈던 일에 저의 평생 운을 거의 다 쓴 것 같아요.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탐험을 함께하길 제안하셨고, 덕분에 제가 탐험가로 살 수 있었으니까요. 만약 그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과학탐험가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다수의 인터뷰에서 “가장 의미 있는 탐험”을 묻는 질문에 특별한 어느 곳이 아닌 “일상”이라고 답하셨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언젠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과학 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화산지형을 탐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당연히 산으로 탐험을 갈 줄 알았더니 고풍스러운 유럽 골목을 지나 한 교회 앞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고요. 그 교회를 만든 벽돌이 화산암이었거든요. 그 경험을 통해 ‘탐험이 우리 삶과 별개가 아니구나’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어요. 

실제로 탐험을 하고 돌아오면 지인들이 “별 보고, 빙하 보고, 오로라 보다가 여기 오면 심심하지 않냐”고 물어봐요.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느끼기도 했지만, 탐험가로 17년 이상 살다 보니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일상에서는 도드라지는 무언가를 느끼기 쉽거든요. 예를 들어 매일 지나는 퇴근길에 어느 날 누군가가 버스킹을 하고 있다면, 자연스레 눈길이 가겠죠. 색다른 모습이니까요. 이렇게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일상에서 도드라지는 것들을 찾을 수 있어요. 사막에서 별을 바라보는 감동도 크지만, 일상의 사소한 변화와 아름다움을 찾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되는 거죠. 

책을 읽으며 우주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가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작가님도 에필로그에서 “우주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구에 사는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일인 듯 합니다(328쪽)”라고 쓰셨어요. 

아폴로 11호의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가 그 말을 처음으로 했는데요. 1969년 달 착륙 당시, 아폴로 11호에 3명이 타고 있었는데 사령관 ‘닐 암스트롱’과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은 달 표면에 내렸지만 마이클 콜린스는 도킹을 하기 위해 혼자 사령선을 타고 달의 궤도를 돌았어요. 지구로 돌아왔을 때 수많은 기자들이 마이클에게 “달까지 갔는데 아쉽지 않냐”고 물었죠. 하지만 그는 홀로 달 주위를 돌면서 “이곳을 아는 존재는 오직 신과 나 뿐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마이클 콜린스는 나머지 두 비행사가 보지 못한 달의 뒷면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 된 거죠.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을 막느라 너덜너덜해진 달의 뒷면을 보며 마이클 콜린스는 “우리가 지구에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라고 말했어요. 저 또한 지구에 사는 인간은 정말 축복받은 생명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이 『창문을 열면, 우주』를 읽으면 좋을까요? 

모든 사람이 읽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콕 집어 말씀을 드린다면 조직의 팀장님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우주 탐사가 성공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현재의 40대 팀장님들 같은 분들이 계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날 갑자기 대표가 “내년까지 달에 갈 거니까 준비해”라고 말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잖아요(웃음). 그럼에도 인류는 레퍼런스 하나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스마트폰보다 처리 능력이 떨어지는 컴퓨터를 가지고 쇳덩이에 사람을 태워서 달에 보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주개발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해요. 경제경영서를 보며 리더십, 조직관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우주 탐사 역사의 고난과 역경이야 말로 경영의 바이블이죠. 심지어 지구라는 시공간이 아닌 다른 행성에 가기 위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 이야기인데, 이만한 구루가 어디있겠어요. 조직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팀장님들이 우주 탐사 스토리를 보며 위안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칼 세이건이 보이저호를 계획하고 우주로 보내면서 ‘보이저 골든레코드’를 탑재했어요. 우주의 다른 생명체가 보이저호를 발견한다면 레코드에 기록된 지구인의 노래, 언어, 소리 등을 통해서 우리의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이처럼 노래는 낯선 분야를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읽으실 때도 한 꼭지를 다 읽고 마지막에 추천한 노래를 같이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불현듯 우주가 궁금해질 때 그 노래를 떠올리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경수

과학탐험가. 197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프로그래머를 거쳐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과학과 절교를 선언했지만 서른이 다 되어서 과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 10년간 과학을 주제로 한 탐험에 매료돼 서호주, 몽골, 고비사막, 하와이 빅아일랜드, 알래스카 같은 지질학적 명소들을 탐험했다. 2010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NASA 우주생물학그룹과 함께 과학탐사를 다녀왔으며, 화성협회에서 운영하는 화성탐사연구기지 모의실험에 참여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 개발 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어쩌다 어른] [효리네 민박] [갈릴레오: 깨어난 우주] [세계 테마 기행] [아주 각별한 기행] [다큐온: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 및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지은 책으로는 『외계생명체 탐사기』(공저), 『35억 년 전 세상 그대로』, 『어쩌다 어른 2』(공저),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등이 있다. 



창문을 열면, 우주
창문을 열면, 우주
문경수 저
시공사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우 송선미를 포함한 여성 작가 그룹 D,D 인터뷰

$
0
0

(왼쪽부터) 권현실, 송선미, 조은경 저자

‘나는 누구지?’. 엄마라는 옷을 입고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새 희미해진 나를 마주한다. 2019년 5월, 공동육아를 하는 여섯 명의 여성이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을 품은 채 한자리에 모였고,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으며 나를 돌보는 동시에 타인을 돌보게 되는 ‘돌봄의 선순환’. 이 진귀한 경험을 나누고 싶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고, 글과 그림으로 표현된 여섯 명의 이야기는 동화에세이 『어쩌면 너의 이야기』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배우 송선미를 포함한 여성 작가 그룹 D,D가 전하는 그들의 고유한 이야기이자 ‘어쩌면 나의 이야기’다. 



나를 알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책으로 

여섯 명의 작가님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동화 에세이에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처음 만났다고요.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송선미:어린이집에서 부모님들 대상으로 여러 가지 교육을 해요. 그중에 출판사 핌 대표님이 재능기부 차원에서 ‘나를 스토리텔링 하는 글쓰기 워크숍’을 열었고, 저희 여섯 명이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만나게 됐죠. 

조은경: 책을 쓰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요. 쓰다 보니 글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책으로 만들어 보자는 말이 나왔어요. 출판사 대표님 덕분에 나오게 됐고요. 처음부터 계획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표지가 나왔다거나 인쇄가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와 정말 책이 되는 건가?’ 하면서 다들 신기해했죠. 베스트셀러가 된 걸 보고는 ‘이거 실화냐’고 감격하고요. (웃음) 

출판사에서 ‘지구 최초 작가 걸그룹 D,D’라고 소개했는데요. D,D라는 이름에 뜻이 없다고 했지만, 지어진 계기나 배경은 있을 것 같아요. 

권현실:처음에는 ‘미미걸즈’로 하려고 했는데 이미 있더라고요. 어떻게 할까하다가 ‘미미’에서 한 발 나아가 ‘D,D’가 된 거죠. ‘D,D’라는 이름을 먼저 만들고, 거기에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붙였는데 다 좋은 거예요. ‘될 대로 돼라’, ‘덤비면 디진다’ 처럼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름이에요. (웃음) 

송선미:블로그 리뷰를 봤는데요. 어떤 독자분은 ‘D,D’를 ‘Do Dream’으로 받아들이셨더라고요. 정해진 뜻이 없는 만큼, 이렇게 본인에게 와닿는 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아요. 

동화에세이라는 장르는 처음인 것 같아요. 동화에세이를 설명한다면요?  

송선미:책 소개 중에 ‘자신의 이야기에 동화의 옷을 입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이 문장 그대로 ‘동화’라는 형식을 사용한 에세이에요. 동화라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100% 실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허구는 아니고요. 현실의 인물과 사건을 동화라는 장치를 통해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권현실: 동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각자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동화에세이의 장점인 것 같아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일반 에세이와 달리 나만의 관점으로 동화 속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캐릭터를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동시에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송선미 작가님의 따님이 <아리코>의 그림 작가로 참여했어요. 책을 본 따님의 반응은 어떤가요? 

송선미: 아이 이름이 고아리인데 자기도 ‘고작가’가 됐다면서 좋아해요. 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딸한테 크게 감동한 일이 있는데요. 화장실에 있다 나왔는데 아리가 아이패드의 녹음 버튼을 누르더니 “엄마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해줄게” 하더니 이 책을 읽어주더라고요. 우울하거나 슬플 때 들으라면서요. 

동화 속에서 딸 리코가 “용기, 용기, 용기”를 외치면서 공주에게 용기를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실제 경험에서 나온 장면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송선미: 맞아요. 아이가 저한테 그렇게 해줘요. 제가 가끔 장난처럼 “엄마 너무 무서워”하면 “엄마 내가 용기 줄게”하고는 용기를 연거푸 외치면서 힘을 주는 거죠. 자기가 용기 없다고 느낄 때는 자신한테 하기도 하고요. 

리코의 투명한 머리카락이 무지갯빛으로 바뀌는 설정도 좋았어요. 이런 설정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아요. 

송선미: 딸이 무지개를 좋아하기도 하고, 무지개가 다양함을 의미하잖아요.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는 투명한 머리카락이 무지개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면서 여러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투명한 머리카락이 특이하지만, 잘못된 게 아니라 다른 것뿐이라는 말도 하고 싶었고요.  


(왼쪽부터) 조은경, 송선미, 권현실 저자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었어요 

<거북이가 되고 싶은 아이>에는 골칫덩어리로 취급받는 아이 ‘기찬’과 2년 차 교사가 등장해요.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요?

권현실:처음에는 저의 어린 시절과 엄마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제 안에서 여러 감정이 솟아나니까 그걸 못 받아들이겠더라고요. <기획자의 말>에 이야기를 썼다가 엎었다가 갑자기 강원도로 떠난 사람이 있었다고 쓰여 있잖아요. 그 사람이 저예요. (웃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한 번에 다 하려고 하면 안 되겠다 싶었고, 그래서 기찬이라는 아이를 등장시켰어요. 기찬이는 여러 사람이 투영된 인물이에요. 저의 어릴 적 모습이기도 하고, 제가 상담하면서 만났던 아이, 교직에 있으면서 만났던 아이이기도 하고요. 많은 것을 응축한 인물이죠. 

다 읽고 나니 상담받은 느낌이 들었는데요. 작가님이 작가 소개글에 심리 상담에서 소명을 찾았다고 쓰신 걸 보고 놀랐어요.  

권현실: 상담이 저에게 미친 영향이 커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과거에 상담을 오래 받으면서 제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거든요.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 상담사라는 정체성을 잘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꼭 벗어야 하나요? 

권현실: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앞으로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상담이라는 경험에 갇히지 않고,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자칫하면 모범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이야기만 하게 될 것 같아서요. 

송선미: 상담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상담사들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기보다 해석하고 정리해 주잖아요. 그런데 사람에게 오는 울림이나 감동은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올 때가 많고요. 그런 의미에서 상담이라는 경험을 넘어서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권현실:맞아요. 송선미 작가의 말처럼 날 것 그대로 내 안에 있는 걸 쏟아내 보고 싶어요. 

<거북이가 되고 싶은 아이>의 그림도 직접 그리셨어요. 글쓰기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권현실: 정말 좋은 경험이었는데 아주 어려웠어요. 내가 뭘 그릴 수 있는지,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별걸 다 해봤어요. 양파랑 양배추를 잘라서 물감 묻혀서 종이에 찍어보고, 머리빗을 두드려서 작업하는가 하면 음악 크게 틀어놓고 그리기도 하면서요. 엄청나게 몰입했죠.  

바로 전에 이야기한 글쓰기로 하지 못한 행위를 그림을 그리면서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작업을요. 

권현실: 돌아보니 그런 것 같아요.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이야기 끝에서 주인공이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조은경: 원화를 보정해서 책에 넣는 작업을 제가 했는데요. 그림을 보자마자 권현실 작가님의 마음,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글보다 그림에서 작가님의 마음이 더 잘 드러나더라고요. 

송선미:동료로서 옆에서 지켜보면서 권현실 작가에게 그림 작업이 꼭 필요한 일이었구나 싶었어요. 그동안 육아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마음이나 이야기를 다 묻어 놓고 사셨거든요. 

조은경: 권현실 작가님 그림 보자마자 저희가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어?” 했다니까요. (웃음)


조은경 작가

완벽히 극복하지 않아도 변할 수 있다 

<나는 하늘을 날고 싶었어 그래서 날아올랐지>에는 하늘을 날고 싶은 아이가 등장해요. 원하는 대로 날아오르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고요. 

조은경: 처음에는 제가 어려운 시절을 극복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구름과 안개를 뒤집어쓴 아이가 이걸 벗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하다 결국 벗는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왠지 모르게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왜 꼭 벗어야 하지?’ 싶었어요. 안개와 구름 속을 걷는 과정에 있을 수도 있는 건데 그 과정은 무시하고 구름과 안개를 벗는 데만 집중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가 구름과 안개를 벗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다르게 보게 된 거네요. 

조은경: 이 워크숍의 목적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까 진행이 안 됐던 것 같아요. 

용기, 실패, 희망이라는 키워드가 연상 작용처럼 떠오르기도 했어요. 

조은경: 제가 어떤 도전을 하다 크게 좌절하고, 좌절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는데요. 일어서는 과정이 쉽지 않았거든요. 일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완벽히 일어난 게 아니라 계속 일어서는 과정에 있구나 싶었고요. 그래서 꼭 완벽히 일어서지 않아도 된다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내가 변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게 잘 전해졌다면 정말 다행이에요. 

작가님의 그림 작업은 어땠나요?

조은경: 구름을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관건이어서 구름만 수백 개를 그린 것 같아요. (웃음) 신기했던 게 처음에는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슬픈 구름이나 왠지 모르게 쳐져 있는 구름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그리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발랄한 구름만 나오는 거예요. 어떤 구름을 그려도 컬러풀하더라고요. 나중에는 ‘밝은 게 어때서?’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내 모습이구나 싶었어요. 내가 발랄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그 뒤로는 편하게 그렸죠. 

그림 비중이 가장 큰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요. 글과 그림 중 어떤 작업을 먼저 하셨나요? 

조은경:그림 콘티 짜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어요. 이번에 작업하면서 알았는데 제가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그렇더라고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거기에 글을 첨가하는 느낌으로 작업했어요. 

쓰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가장 많이 고친 게 있다면요? 

조은경:출판사 대표님이 제가 쓴 에세이를 보고 처음부터 다시 쓰자고 한 적이 있어요. A4 기준 6~7장을 썼는데 수정하고 나서 8줄이 됐죠. 처음에는 어른의 시점에서 써서 설명하는 말이 많았던 것 같아요. 미문을 쓰고 싶은 마음에 미사여구도 많았고요. 대표님 조언을 듣고 간추리다 보니 꼭 필요한 것만 남았고, 지금처럼 줄었는데 덕분에 메시지가 명확해졌죠. 

권현실: 저도 중간에 수정했는데요. 처음에는 기찬이가 아니라 거북이가 주인공이었어요. 거북이가 바닷속에 들어가 집 짓고 사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경험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더라고요. 거북이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내가 경험한 것보다 멋있을 수 있지만, 내 이야기는 아닌 거죠. 지켜보던 대표님이 “겪은 만큼만 쓰면 된다”라고 조언해주셔서 멋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편하게 내 이야기를 썼어요. 


권현실 작가
우리는 모두 아픈 존재, 돌봄의 선순환이 일어났으면 

글쓰기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함께 쓸 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 있었을 것 같아요. 

송선미: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들이 있었어요. 설문이나 문장완성검사 같은 것들을 하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동시에 서로를 알아갔고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은 알지 못했던 각자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서 그 사람에게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요. 돌봄의 선순환이 일어난 거죠.

<추천의 말>에 나오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남을 돌볼 수 있고, 남을 돌보는 사람만이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말이 좋았어요. 이 책을 ‘돌보는 사람들의 작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보는 경험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송선미: 사실 이 책은 저희를 위한 책이에요. 자신을 더 많이 알고 사랑하기 위한 작업 과정을 정리한 책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를 위해 시작한 작업이 보는 사람들에게도 위안과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죠. 

권현실: 모든 사람에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담을 그릇은 없는 것 같아요. 책 마지막 장에 ‘모두의 마음에 나만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자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요. 

조은경: 글을 쓰면서 글쓰기가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알게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글쓰기 워크숍이 활성화되어서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조은경: 한 번만 내고 끝내기는 아쉬워서 이 멤버 그대로 2권을 준비하고 있어요. 원래 1년에 한 권씩 내자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나중에 돌아보면 저희가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고요.


송선미 배우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송선미:‘왜 나만 힘들까’라는 생각을 할 때 사람이 가장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나만 힘든 거 아니잖아요. 작든 크든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닫고, 용기를 주고받았으면 좋겠어요. <아리코>에서 리코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용기, 용기, 용기!’라고 외치면서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요. 




*송선미
20대에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30대에 결혼을 하고 늦은 나이에 딸을 낳았다. 육아를 하며 좋은 엄마,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오달빛
현 반포고등학교 교사. 칠판에 글씨 쓰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 교사가 되었다. 매번 수업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을 한 번은 웃기고 나와야지’ 결심한다. 분별없이 현존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구본순
수어 통역사이자 풍경놀이터 대표. 수어동아리에서 만난 청각장애인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을 하면서 내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든 농인들과 함께할 것이라 직감했다. 풍경놀이터에서 예술교육을 기획·진행한다.

*송현정
써먹을 수 있는 학문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중앙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배운 것에 못 배운 것까지 더해 유용하게 써먹으며 6년 꾹 채워 돈을 벌었다. 임신을 핑계로 일터에서 탈출한 후, 육아를 핑계로 소박한 자유를 즐기는 중이다.

*권현실
아버지에 언니들까지 줄줄이 교사인 집에서 자연스럽게 서울교대에 들어가 2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지리산, 안나푸르나, 수녀원을 헤매며 ‘내가 누구인지’ 치열하게 바라보다가 심리상담을 접하고 소명을 깨달았다. 지금은 자신의 길을 찾아 행복하게 직진 중이다.

*조은경
어릴 적부터 글과 그림을 좋아했다.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지금은 캘리그래피 작가로 활동 중이다. 이번 생에 소원은 아이와 세계 여행을 하는 것!



어쩌면 너의 이야기
어쩌면 너의 이야기
송선미,오달빛,구본순,송현정,권현실,조은경 공저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만화가 소복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

$
0
0


소복이 작가는 자신이 쓴 첫 에세이 『만화 그리는 법』을 읽고는 “어? 이거 사랑 이야기잖아?”라고 생각했다. 유유출판사의 땅콩문고 시리즈를 좋아해 단번에 출간 제안을 수락한 실용 에세이. 쓰면서는 고되기도 했지만 15년째 만화를 그리는 이유를 깨닫게 한 책이다. 만화, 친구, 가족에 관한 사랑이 담긴 『만화 그리는 법』은 만화가를 꿈꾸지 않는 사람도 왠지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든다. 



일기를 쓰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책에 이런 챕터가 있죠. “그림이랑 똑같이 생겼네요!” 와, 정말 책에서 나오신 줄 알았어요. 

(웃음) 자주 들어요. 하지만 찬찬히 보면 달라요. 제가 그린 만화 속 제 모습이 저와 똑같이 보이는 건 제가 정말 그렇게 생겨서가 아닐 거예요. 만화 속 제 캐릭터가 제 삶을 개성 있게 살아주고 있어서죠. 

작년에 『만화 그리는 법』 출간 제안을 받고 반가워하셨다고요.

네, 너무 좋았죠. 사공영 편집자님이 제안해주셨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좀 헤맸거든요. 실용적인 책을 써야 하는데 초고를 너무 에세이 느낌으로 써서 중간에 다시 썼어요. 편집자님이 틈틈이 만화에 관한 궁금한 점을 질문해 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만화로 일기 쓰는 만화가”라고 스스로를 설명하셨어요. 만화가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림일기를 쓰는 일이라고요.

제가 성인이 돼서 그림일기를 처음 쓴 건 2003년 6월이에요. 몇 년 후면 20년도 더 된 일이죠. 지금까지 1,085편의 그림일기가 모였어요. 만화가가 되고 싶은 분들께 그림일기를 쓰라는 이유를 하는 건, 매일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게 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 책,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또 웃기는 사건을 그리고 우울한 감정을 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정리돼요. 만화 속 내 모습을 보는 일로 나의 다른 가능성도 찾을 수 있고요. 저 역시 그림일기를 통해 첫 그림 일이 들어왔어요. 

첫 작품이 2007년 새만화책에서 나온 『시간이 좀 걸리는 두 번째 비법』이에요. 출판사에서 만화를 그리는 법을 배우셨다고요.

새만화책 출판사는 조금 독특한 곳이었어요. 만화가 지망생들을 교육해서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저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장래희망이 만화가도 아니었어요. 당시 남자친구가 만화가여서 만화를 접하게 된 경우인데,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화가가 안 됐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만화를 특별하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림을 좋아한다고 하기도 애매했거든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만화가가 되셨어요. 그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졸업할 무렵에는 벤처 회사가 유행했어요. 컴퓨터 관련된 회사를 세 군데 다니다가 첫 책을 내고부터 전업작가가 된 셈이에요. 직장인에서 작가가 되니까 좋더라고요.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회사까지 달리기를 안 해도 되고 싫어하는 사람이랑 점심을 안 먹어도 되고. (웃음) 그림을 그려주면 쌀도 받고 돈도 벌고요.



힘을 보태고 싶은 작업들

월간지 『우리농』 소식지에는 15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요. 장기 연재의 비결이 궁금해요. 

직장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무언가를 꼬박꼬박 해내는 일에 익숙한 것 같아요. 마감을 딱딱 잘 지키는 건 아니지만 해야 되는 것들은 해내는 거예요. 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사회』에는 ‘이럴 줄 몰랐지’라는 두 쪽짜리 일상 만화를 연재하는데 올해로 벌써 4년이 됐어요. 이런 단체에서 만드는 책들은 아무래도 생각이 잘 통하니까요.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부담이 없고 쉬운 편이에요. 연재는 아무래도 마감이 제일 중요해요. 이 마감일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아오니까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은데 저도 잘 못해요. (웃음) 

『고래가 그랬어』에서도 두 번의 긴 연재를 했어요. 어린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얼마전 성미산마을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요. 나무를 깎는 일을 하는 남편이 동네 아이들과 워크숍을 하는데, 한 아이가 “소복이 작가가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더래요. (웃음) 아, 『고래가 그랬어』 를 읽은 독자가 여기에 있구나 싶어서 반가웠죠. 

어린이 만화를 그릴 때는 특별히 염두에 두시는 것이 있나요?

『고래가 그랬어』를 만드는 김규항 발행인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나는데요. 어린이 만화를 그린다고 특별히 다르게 그리지 말라고, 아무것도 제한하지 말고 그리고 싶은 만화를 재밌게 그리라고 했어요. 주인공만 성인에서 아이로 바뀌는 정도이지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없어요. 

연재를 수락하는 기준이 있다면요? 

원고가 있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는 책인 경우에 원고가 너무 좋으면 일단 해요. 작년에 나온 『어린이 마음 시툰 : 우리 둘이라면 문제 없지』는 너무 즐겁게 만든 책이에요. 김용택 시인이 뽑은 다양한 동시들을 한 편당 16컷 정도의 만화로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이 책을 만들다 시를 사랑하게 됐어요. 『흥미진진 핵의 세계사는 핵무기에 관한 책인데 이 책도 원고를 받자마자 하고 싶었어요. 만화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잘 떠오르진 않았지만 세상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이야기에는 기회가 닿는 한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책 표지에 그 '앗! 만화가인데 굶어 죽지 않았다니!’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다양한 컷 중에 이 그림을 실은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가면 꼭 듣는 질문이 “얼마 버냐?”는 말이에요. 그러면 저는 “많이 번다”고 해요. 만화가, 예술가들이 돈을 벌지 못한다는 시각이 어릴 때부터 있다는 게 좀 싫어요. 제가 벌만큼 번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놀라요. 책에도 썼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고 해봤더니 굶어 죽지 않았어요. (웃음) 

강연 요청을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읽고 놀랐어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찾아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출간된 책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으로 하고 있어요. 저는 강연비를 무조건 여행비로 써요. 지방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아이랑 남편이랑 갈 때도 있고 친구랑 갈 때도 있어요. 친구한테 “강연 시간에 아이만 봐줘라, 그러면 내가 여행 경비 다 낼게”라고 말하고 가요. (웃음)



일단 그리면 잘 그리는 거다

하루에 3시간 집중해서 일하는 게 목표라고 쓰셨어요. 작업이 좀처럼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책상 한쪽에 재밌는 책을 여러 권 올려 놓고 손이 가는 대로 읽어요. 책을 읽다 보면 작업에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해요. 친구한테도 아이한테도 자주 물어보는 성격인데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스스로에게도 계속 질문해요. 그러다 보면 실마리가 풀려요. 

어두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 속에서도 약간의 낙관성이 느껴져요. 작가님의 성격이 반영된 걸까요?

글쎄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마냥 낙천적이거나 그렇지 않아요. 때때로 회의감이 생기고 우울하기도 한데, 이런 불안과 우울이 심해질 때는 감당할 수 없는 영화나 책을 보지 못해요. 그래서 어두운 소재의 이야기를 할 때 너무 심하게 우울하게 그리진 않으려고 해요. 저 같은 사람도 볼 수 있으면 해서요. 그리고 전 스스로에게 관대한 편이에요. 한 페이지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넘어가지 못하는 작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는데, 전 후자예요. 만화가가 되어야지 하는 큰 열망이 없는 상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편안한 것 같아요. 

2017년에 출간된 『소년의 마음』으로 부천만화대상 어린이만화상을 수상하셨어요. 성인 독자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 남동생에 관한 이야기라고요.

어릴 적 작은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어요. 방이 없는 동생은 거실 한쪽에 작은 상을 펴 놓고 그림을 그렸죠. 그때 우리들은 각자의 힘든 마음을 안고 살기 버거웠어요. 어느 가족 누구도 가장 어린 사람의 마음을 감싸 주지 못했죠. 『소년의 마음』 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년의 이야기인데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렸어요. 

『만화 그리는 법』으로 소복이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독자라면 다음 책으로는 어떤 작품을 읽으면 좋을까요?

글이 많지 않은『소년의 마음』 도 편하게 읽으실 것 같고 작년에 나온『구백구 상담소』를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에는 몇 년간의 제 삶이 다 들어간 만화라서요. 



만화가를 꿈꾸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예전에 제가 친구한테 “그림에는 그린 그림과 안 그린 그림이 있다. 그리면 잘 그리는 거다”라는 말을 했대요.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처음부터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매일 꾸준히 그리는 게 중요해요. 기술적으로 잘 그리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버리고 못 그린 그림이라도 매력 있는 그림을 그려보세요.



* 소복이(만화가)

동시에 빠져들어 시를 쓰듯 만화를 그려 보고 싶은 만화가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지금은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독특하고 깊이가 느껴지는 그림에 인문적 감수성을 더해 내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 환경 운동 단체인 ‘녹색연합’ 등에 만화를 연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소년의 마음』, 『애쓰지 말고, 어쨌든 해결 1, 2』, 『구백구 상담소』, 『어린이 마음 시툰, 우리 둘이라면 문제없지』, 『이백오 상담소』, 『두 번째 비법』 등이 있고, 『우리집 물 도둑을 잡아라』, 『인권도 난민도 평화도 환경도 NGO가 달려가 해결해 줄게』 등에 그림을 그렸다.



만화 그리는 법
만화 그리는 법
소복이 저
유유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새소년 황소윤, 단순하고 유연한 열정

$
0
0


밴드 새소년의 프론트퍼슨, 젊은 감각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오늘의 황소윤을 설명하는 말은 많지만, 정작 궁금했던 건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에너지였다. 한낮의 무대 위에서 기타 피크를 물고 신나게 공연을 하다가도, 밤이 되면 내밀한 마음을 글로 쓰는 사람.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곡을 쓰면서도 ‘우리’를 위로하는 사람. 뭐든 즐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예술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 뭘 기대하든 번번이 어긋났다면 우리가 붙여온 수식어를 내려놓자. 황소윤은 어떤 규정도 가볍게 뛰어넘어 단순하고 유연하게 나아가고 있으니까. 오직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며. 지금 여기를 자유롭게.



독서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

오늘은 뮤지션이 아니라, 서울국제도서전의 홍보대사로 만났어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어 재밌겠는데?” 하면서 수락했어요. “왜 나를?” 하는 생각도 조금 했지만. 하하.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이미지가 있나 봐요.(웃음)

책을 찾아 읽긴 하지만, 사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너무 필요해서 읽는 것에 가깝거든요. 제게 독서는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그냥 양치하는 것, 밥 먹는 것과 같은 거죠. 그렇지 않으면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잘 안 들더라고요. 무언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걸 충족해줄 만한 책을 찾아 읽어요.

서울국제도서전의 테마 ‘긋닛’(끊어지고 이어지다)과 어울리는 책으로 이오덕 선생님의 거꾸로 사는 재미를 골랐어요.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책인데요. 생태와 자유가 마침 제가 찾고 있던 주제였어요. 당시 제 안의 가치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앞으로 찾아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실마리가 됐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황소윤은 책을 많이 읽었나요? 

아니요.(웃음)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주위 친구들만큼 다독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요. 책을 찾게 된 건 성인이 된 이후인데요. 스스로 납작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마다 충동적으로 서점에 가요.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책을 고르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어요.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책을 고르는 행위가 제게는 큰 기쁨이죠. 

SNS에 지난해 읽은 책 목록을 공개했어요. 소설부터 사회 과학까지 분야가 다양하더라고요. 

지난해는 유독 새로운 주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 공부하듯이 책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 사회심리학이나 환경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거든요.(웃음) 나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면서 점점 관심을 갖게 됐죠. 

음악을 시대와 장르 가리지 않고 폭넓게 듣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책 취향도 그런가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갖고 있다는 말에서 클래식한 취향이 엿보이기도 했는데.

제가 그런 이야기까지 했었나요? 하하. 기본적으로 옛것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학습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서양고전문학 수업을 들었는데요. 군주론일리아스 같은 어려운 고전을 매주 1권씩 읽고 서평을 썼어요. 당시엔 정말 고통스러웠는데 지나고 나니 너무 귀중한 거예요.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진 못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배울 수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관심 분야의 책을 그때그때 찾아 읽지만 고전에 대한 지향은 늘 있어요.



내 목소리와 감각에 집중해요

초, 중, 고교 모두 대안학교를 다닌 이력이 주목을 받았죠. 일반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더 특별하고 자유분방할 거라는 사람들의 환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제 경험이 엄청나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창 시절을 통해 저를 유추하는 것보다 지금의 황소윤을 보는 게 나을 거예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경험했는지 나열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저를 만들어온 타임라인일 뿐이니까요. 한 사람이 그 경험을 어떻게 소화해왔는지, 과거에서 배운 것들로 현재를 어떻게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가 더 중요하죠. 

학창 시절의 경험에서 무엇을 얻었나요?

폭풍우가 치는 날씨에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 아주 궂은 날씨에도 행복한 여행을 만들 수 있는 힘 같은 거요.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건 살아왔던 것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예요. 가끔은 그게 음악을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달라진 면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열아홉 살 때, 밴드 ‘새소년’을 결성하고 프론트 퍼슨으로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쳤죠. 두 번째 앨범 <비적응> 발매 당시에는 사회적 자아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음악으로 나왔다고 했고요.

첫번째 앨범 <여름깃>을 낼 때만 해도 오로지 내 세상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어요. 정말 새싹 같은 마음이었는데.(웃음) 그 새싹이 자라나면서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됐고, 세상을 바라보는 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 게 2집 <비적응>이었어요. 당시에는 그 위에서 헤엄치듯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보니까 충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온 세계와, 사회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세계가 충돌하면서 균열을 일으켰던 거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래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해요. 

스스로 적응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비적응> 다음에, 이번 싱글 ‘자유’가 나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비적응> 앨범에서 제 불안을 다 쏟아냈다면,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해소할지가 다음 과제였어요. 필사적으로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어요. 마침 코로나19로 저를 살아있게 했던 활동을 못 하게 됐고 집에서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그러다 ‘자유’라는 단어가 나온 거예요.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기록하기도 하나요?

가끔 SNS에 올리는 글은 대부분 그날 써서 그날 올리는 거예요. 오래된 기록이 아니라, 그때그때 했던 생각을 적은 거죠.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너무 답답해서였어요. 가사를 쓸 때는 효소를 담그듯이 오래 숙성하고 응축해서 내놓는 느낌이거든요. 근데 가사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많은 감정이 있어서 글로 써보기 시작했어요. 저는 글을 쓸 때만큼은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아요. 누군가 글을 읽고 재밌다고 해주면 그게 신기하고 특별하고요.

처음에는 음악이 그런 행위 아니었나요?

맞아요. 근데 직업이 되니까 더는 가볍게 생각할 수 없잖아요. 제 음악이 더 가치 있었으면 좋겠고, ‘새소년’도 있고 지켜야 할 게 많고.(웃음) 글쓰기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황소윤 개인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기는 하죠. 그러나 그게 글을 쓰는 이유가 되지는 않아요. 글쓰기는 제게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니까요. 

황소윤의 가사를 보면 문학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일상적이기도 해요. 그런데 참조하는 구체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가사를 쓰는 비결이 더 궁금해요.

저는 고집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고집을 아집처럼 느끼지 않게 하려면 제 생각을 잘 정리해서 상대에게 전달해야 해요. 그래서 말솜씨를 잘 가다듬으려고 하죠. 내 안의 목소리와 욕망, 감각에 집중해서 단어를 찾고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노력이 가사를 잘 쓰기 위한 건 아니에요.

목표가 멋진 가사를 쓰는 게 아닌 거네요.

어떻게 보면 저는 그냥 한량인 거죠. 하하. 물론 야망은 있어요. 사람은 욕심이 있어야 건강하고 잘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없어요. 그게 제가 가진 큰 마음인 것 같아요. 

뚜렷한 목적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해요. 

결국 ‘선행되어야 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저는 확실히 스스로에게 초집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저 자신이어야 해요. 늘 그 생각이 먼저 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건 의식하지 않게 돼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

황소윤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주 소환되잖아요. 그런데 정작 ‘시대’나 ‘세대’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쓴 적이 있어요.

사실 저는 ‘세대’나 ‘시대’라는 말을 의식하지 않아요. 대표할 수도 없고요. 네가 속한 세대를 설명해보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저는 현재를 살아가는 구성원이니까 시대의 영향을 받겠죠. 하지만 저는 시대에 맞춰서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아예 벗어나서 새로운 걸 만들어 것도 아닌, 그저 현재를 바라보면서 나만의 것을 해나가는 거예요. 

‘젊은 세대’, ‘여성 프론트퍼슨’이라는 규정만으로 황소윤을 다 설명할 수는 없죠. 황소윤 안에는 여러 가지 지향이 있는데 굳어 규정하려다 보니 모순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새소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빈티지한 사운드인데 세련됐다는 평을 듣기도 했고요.

맞아요. 당시에도 “나는 빈티지로 규정되고 싶지 않은데 이게 왜 빈티지야?”하고 생각하기도 했죠. 하하. 제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다 보니 그런 결과물이 나온 거예요. 왜 했냐고 물으면, “그냥 한 건데?”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많아요.

록 페스티벌, 예능 프로그램, 사회적 의미를 지닌 행사까지 황소윤이 있는 자리는 다양해요. 기타 피크를 입에 물고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사람, 멋지게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 진지한 글을 쓰는 사람 모두 황소윤이죠. 정반대의 활동도 자기만의 색깔로 소화하는 균형감각이 있어요.

저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무대에서 정신을 놓고 노래 부르고, 새끈하게 화보도 찍고 내 나이에 맞게 술도 막 마실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웃음) 오늘 하루만 해도 낮 동안에는 시끄러운 촬영장에 있다가, 지금은 차분하게 책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다양한 일을 하고 제 세계를 확장하는 게 재밌어요. 언제든 나를 잃지 않는 균형감각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가끔은 엉망진창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균형감각이 저를 건강하게 만들거든요.

솔로 데뷔를 해서 ‘새소년’과 전혀 다른 음악을 내놓았을 때 ‘분열’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했죠.

다양한 면을 가진 건 좋지만, 분열처럼 느껴져서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그럼 난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아예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자 하고 낸 것이 솔로 1집 <So!YoON!>이었죠. 새로운 나를 다 나눠 본 거예요. 결국 다 황소윤이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확장하고 싶어요. 언젠가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하는 질문을 받았는데 “늘 물음표가 떠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답했거든요. 아마 앞으로도 다양한 일을 즐기면서 해나가겠죠.

솔로 1집은 선우정아, 샘킴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작업해서, 매 곡이 다르게 들리는 앨범이었어요. 개성이 강한 사람과 충돌하고 맞추면서 새로운 황소윤을 만들어나가더라고요.

나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실험하는 과정이 재밌어요. 사람마다 황소윤을 해석하고 표현하려는 욕망이 다 다르거든요. 나를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이런 표현도 가능하구나 알아가는 거죠.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늘 있어요.

주로 SNS 메시지를 보내서 협업 제안을 한다고요. 설득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일단 만나서 제 기운을 전해줘요. 보통 제가 원하는 사람이 저를 원하기도 하더라고요. 하하.

스태프들과 친구처럼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게 중요해요. 돈이나 경력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서로 얻을 수 있었으면 하거든요. 보통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요.



예술가의 책임을 강조해왔어요. “마이크를 쥔 사람은 더 똑똑해야 돼요”라고 말하기도 했죠. “음악은 내게 가장 감정적인 것”이라고 했기에 새롭게 들렸는데요.

제 안에는 여러 가지 모드가 있는 것 같아요. 곡을 쓰거나 무대에 오를 때는 스스로의 감각에 온전히 몰입해요. 그리고 그 감각은 제가 일상에서 겪는 모든 것에서 오죠. ‘예술가는 똑똑해야 한다’는 말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 거였어요. 저는 세상에 제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 책임감이 있어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영향을 받는데, 노래가 가진 힘은 얼마나 크겠어요. 노래는 제 소중한 기록인 만큼 고이 담아서 드리고 싶어요.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아요. 

SNS에 올린 글 ‘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이성과 언어 같은 무형의 것이 아닌, 몸의 감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요.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몸을 바르게 하자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제일 힘들었던 기억도 몸에 대한 것이고, 제일 좋았던 기억도 몸에 관한 거더라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었어요.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게 어려운 일이니까요. 내 몸과 안 친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썼어요.

관심사가 꾸준히 달라지더라고요. 가장 최근의 관심사를 말해준다면요?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는 방법이요.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다 다르잖아요. 근데 선택지는 물건을 사거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본능적인 것밖에 없는 거예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데 말이죠. 저도 알고 보면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더라고요. 올해부터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요. 어딘가로 잠시 떠나면 해소가 돼요. 올해 5월에는 낙산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얼굴이 바뀌어서 왔대요.(웃음) 평화롭고 고요한 곳에 있는 게 저의 행복인 거죠. 그걸 알아가는 게 굉장히 큰 기쁨이에요. 알려고 하는 제 모습도 너무 좋고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각자가 추구하는 인생의 모습대로. 요즘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설가 김유원 "이기지 않는 야구선수를 떠올린 이유"

$
0
0


모두가 승리를 외칠 때, ‘이기지 않음’을 택한 야구선수.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불펜의 시간』은 승부의 룰을 비켜난 자리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혁오는 한때 MVP로 활약하며 프로 구단에 입단하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고 중간 계투로 남는다. 사회의 기준으로는 실패한 삶. 하지만 김유원 작가는 이것이 ‘깊은 만족’을 향해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선택지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떤 공을 던져야 할까?

소설가 김유원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여성영상집단 ‘반이다’로 미디어 활동을 했다. 2009년 <개청춘>(공동연출), 2011년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2014년 <의자가 되는 법>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의자처럼 살고 싶었으나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소설을 쓰고 있다. 『불펜의 시간』을 썼다. 무너지지 않고 나아가는 힘에 관심이 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

“딱 1이닝만 던지는 계투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소설이 시작됐다. 

친구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딱 1이닝만 던지고 만족하는 투수로 살고 싶다는 대답이 나왔다. 이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주인공 혁오는 선발이나 마무리 투수가 아니라 연습 공간인 불펜에 머무르는 2군 선수다. 중간을 지키는 ‘계투’에 주목한 이유가 궁금했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내릴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당시 생존을 강요하는기존 시스템에 회의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허구의 세계에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등장인물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한때 MVP로 활약하다 프로 구단에 입단했지만 지금은 슬럼프를 겪는 혁오, 고등학교 이후 야구를 그만두고 평범한 회사원이 된 준삼, 여자라는 이유로 야구의 꿈을 포기했던 스포츠신문 기자 기현. 

1이닝만 던지고 만족하는 투수를 떠올리고 보니 설정이 너무 비현실적인 거다. 일부러 볼넷을 던질 만큼 능력도 있으면서 계투가 되고 싶은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긴다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는 혁오를 떠올렸고, 그를 바라보는 평범한 직장인 준삼을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둘 다 남성인물이라 마음을 전부 싣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그라운드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여성인물 기현을 떠올렸다. 

사회의 잣대로 보면 세 인물의 ‘실패담’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실패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소설의 목표는 하나였다. 세 인물이 만족하는 결말을 내겠다. 그 후 구체적인 행동은 인물들이 만들어냈다. 그 결과가 누군가에게는 실패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작가인 나는 인물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매번 감탄하고 놀라면서 쫓아갔다.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나.

전혀.(웃음) 처음에 쓴 결말은 더 낙관적이어서 기현이 유튜브 기자로 성공하는 장면까지 있었다. 인물이 잘되는 걸 상상하니 신나서 혼자 질주한 거다. 그 버전은 ‘나이브한 결말이 최대 약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땐 그런 평조차 좋았다.(웃음) 낙관적으로만 끝낼 수 없는 다큐멘터리를 오래 만들다 보니, 소설만큼은 마음대로 가보고 싶었던 것 같다. 최종 원고에서는 인물이 나아갈 방향만 보여주고 끝맺었지만.



믿음이 깨지면서 소설이 찾아왔다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을 오래 해왔다. 

대학교 4학년 때, 뭘 할지 고민하다가 방송국 PD를 준비하려고 미디액트에서 영상 워크샵을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니까 나를 돌아볼 수 있고 사회문제에 시선을 향할 수 있어서 너무 재밌는 거다. 당시 선생님이 공동체 상영이나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회 이슈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는 말을 해주셨다. 안정성보다는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독립 다큐멘터리를 선택했다. 정해진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자유롭게 작업하고 싶었다. 

2016년 다큐멘터리 작업을 그만두고 1년간 ‘셀프 안식년’을 가졌다. 10년 동안 해온 일을 멈추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멈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오히려 불안하지는 않았다. 이제 겨우 일에 익숙해지고 경력이 되려는데 그만두는 건 아닐까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웃음)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을 지금도 좋아하지만, 10년 차가 되니 한계가 왔다. 스스로에 대해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문득 회의감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담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 그간 찍어온 다큐멘터리가 처음에 하고 싶었던 것인가 싶기도 했다.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어서, 10년이 되는 해에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1년 동안 쉬었다. 소설도 그때 쓰기 시작했다.

당시의 고민이 소설에 많이 들어갔을 것 같다. 

독립 다큐멘터리 경력에서도 알겠지만, 나는 사회에서 말하는 번듯한 성공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만드는 일을 10년 동안 했으니 사회가 변할 거라는 기대는 갖고 살았다. 직선으로 연결되는 인과관계로 인생을 바라봤던 거다. 그 믿음이 깨지면서 들었던 고민을 소설로 풀어냈다. 

소설을 쓰는 과정은 어땠나? 첫 소설인 만큼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쾌락의 글쓰기 그 자체!(웃음) 아침에 일어나서 한 문단을 쓰고 정해진 분량을 채우고 나면 잠들고 다음 날 이전 문단을 이어서 썼다. 특별한 구상이나 목표를 갖고 쓰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쓰고 싶은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물론 처음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 상상하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

‘작가의 말’에서 “쓰고 보니 지난 10여 년 동안 카메라로 보았던 현실의 조각들”이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소설에 들어가기도 했나.

소설을 완성하고 나니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더라. 세부 설정은 다르지만 핵심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실제 인물을 상대하기 때문에 이야기 전부를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민감한 문제거나 당사자가 원치 않는 등의 이유로. 영상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깊은 마음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파편들이 내게 박혀 있었다는 걸 소설을 쓰면서 알았고, 이야기를 쓰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소설을 끝까지 읽으면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이 남는다.

제작일지를 봤는데 ‘한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인물을 통해 실험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더라. 나 역시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을 찾고 있었고, 나의 한계가 곧 사회의 한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쓰면서 직접 살아보지는 못하더라도 인물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미리 경험해본 것 같다. 작지만 단단한 것을 지키는 삶. 지금은 모두가 지향하는 크고 화려한 것에 더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완전히 버리게 됐다. 



스스로 버티는 의자처럼

소설의 세 인물은 IMF 이후의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젊은 세대다. 여성 영상집단 ‘반이다’에서 처음 만든 다큐멘터리 <개청춘>(2009)과 이어지는 일관된 관심사다.

첫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만 해도 당사자였는데.(웃음) ‘88만원 세대’가 이슈가 되던 시절이었고, 20대의 목소리를 내려고 열심히 영상을 찍으러 다녔다. 그때나 지금이나 슬픈 마음이 있다.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데 어떤 책임도 없는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사회의 한계를 책임져야 하는 느낌. 그럼에도 우리가 다른 걸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그때도 했던 것 같다.

소설을 쓰고 나니 2014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의자가 되는 법>과 닮은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의 의자들이 버려지고 다시 누군가의 의자가 되기도 하는 모습에서 소설의 등장인물을 떠올렸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의자만 봐도 눈물이 났다. 한때는 소중했던 의자가 버려지는 게 슬퍼서. 나도 버려지지 않고 싶었고 어떤 존재는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버려진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끝까지 버려지지 않고 남는 것이 있었던 거다. 소설을 쓰면서도 등장인물을 통해 누구든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최근 강유가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의 촬영 감독으로 참여했다. 영화에 출연한영페미니스트들의 모습에서 소설에서 말한 ‘작고 단단한 것’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강유가람 감독을 오래 봐오면서 신뢰가 깊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참여했다. 촬영 시기와 소설 집필 시기가 겹치는데,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영화를 찍으며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않아도 일상에서 자기만의 신념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 모습이 내 안에 모여 ‘작고 단단한 것’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벌써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는데.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시스템의 안에서 바깥을 선택하는 이야기를 썼으니, 다음에는 선택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불펜의 시간』은 사회가 나빠지기 전에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득권인 인물을 다뤘다. 소설에서만큼은 이미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을 하는 부담까지 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만난 사람들은 피해자이면서도 시위를 하고 법을 공부하며 세상을 바꾸는 노력까지 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다음 소설에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불펜의 시간
불펜의 시간
김유원 저
한겨레출판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오늘의 작가] 현호정,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서 우리는 춤을 출 거야

$
0
0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명소녀 투쟁기』는 뻗어 나가는 힘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전투적인 상상력과 혁명적인 전개’(구병모)를 보여준다는 심사평처럼,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훌쩍 넘어 성실하게 달려간다. 뒤쫓아오는 죽음 앞에서 “싫다면요?”하고 막아서는 힘. 강한 에너지의 세계를 현호정 작가는 단단하게 쥐고 있다. 

작가가 처음으로 글의 힘을 인식한 건 중학교 때다. 독후감을 써냈는데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이 교무실에 불러서 “네 글을 읽고 울었다”고 했다. 저렇게 키 크고 센 사람을 울릴 수도 있다니, 글은 힘이 있구나 하고 놀랐다. 그 후 소설을 썼지만, 꽤 오랫동안 ‘지어낸 이야기’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비현실적인 세계가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진짜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쓴다’는 작가가 저승으로 향하는 설화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박지리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꿈이 아닌가 의심했다. “당시에 준비하던 연극도 취소되고, 만나던 사람이랑 헤어졌거든요. 밤새 울고 눈이 부은 상태로 전화를 받았는데, 당선이 됐다는 거예요. 아직 슬픈 상태인데 막 기뻐하지도 못하고 당황했던 것 같아요. 인생에는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었어요. 제가 꿈을 자주 꿔서, 신기한 일이 생기면 이게 혹시 꿈이 아닐까 진심으로 생각할 때가 있어요.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도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혼자 꼬집어봤어요.”



『단명소녀 투쟁기』는 열아홉 살 수정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떠나는 모험 이야기다. 수정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예언을 바꾸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북쪽으로 향한다. 「북두칠성과 단명소년」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작가는 주인공을 소년이 아닌 여자아이로 정하고, 그가 직접 운명을 뒤집는 것으로 바꾸었다. “저는 원작을 싫어했나 봐요.(웃음) 주인공은 여자아이로 하고 내가 더 멋지게 써야지 생각했어요. 살아 있어도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감각을 자주 떠올렸고, 땀 흘리면서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을 만든 게 주인공 수정이에요.”

가장 오래 고민했던 건 제목의 ‘단’이라는 한 글자였다. 처음에는 원작이 ‘짧을 단(短)’이니까 당연히 ‘끊을 단(斷)’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쓰는 동안 현실이 바뀌었다. 목숨을 끊은 여성들이 늘어났고, ‘끊을 단’을 쓸 때마다 슬프고 아픈 감각이 생생해졌다. 결국 ‘짧을 단’을 택했지만, 여러 죽음을 바라보거나 겪으면서 작가가 느낀 마음의 무게는 수정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게 4년 동안 단명소녀의 투쟁기를 품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카메라맨처럼 인물의 뒤를 쫓아가며 기록하는 듯이 글을 쓰기 때문에 인물이 멈추면 글도 멈췄다. 그러다 수정과 반대로 죽음으로 향하는 인물 ‘이안’이 나타났고, 소설은 힘을 갖기 시작했다. 결말에서 유독 고생했지만 끝을 맺자 “싸움은 승패와 관계없이 후회를 남기지 않을 때 의미가 생”긴다고 믿을 수 있었다.



소설책을 펼치면 흰색, 검은색으로 대조를 이루는 가름끈이 나온다. 이 두 가지 실처럼 소설은 삶과 죽음이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이룬다. 주인공 수정과 이안은 누군가를 죽이는 힘과 살리는 힘을 동시에 가졌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수정이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을 쓰기까지 계속 망설였다. 수정이 제 손으로 피를 흠뻑 묻히며 죽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후에야 결말로 나아갈 수 있었다. 

“수정이 최초로 등장인물을 죽인 장면을 쓰고 생각했어요. 4년 동안 한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계속 떠돌아다녔구나. 그 후로는 1-2주만에 완성했는데 스스로에게도 낯선 경험이었어요. 뭔가를 살리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가 나와서 저에 대한 의심도 했고요. 그런데 친구들과 늘 ‘죽지 말고 죽이자’라는 말을 했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너무 괴로운 상황일 때, 왜 우리는 상대를 벌주는 게 아니라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그러지 말고 우리는 차라리 죽이는 걸 택하자.”

죽음을 결단한 것만큼이나 모두를 살려주는 것 또한 작가에게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결국 나를 죽이는 존재들 때문에 살게 되는 거구나. 내가 죽인 사람을 다 살려주지 않으면 나도 살 수 없는 구조구나 느꼈어요. 수정이 모기인간을 죽였을 때, 저도 슬퍼서 한참 울었거든요. 그 슬픔이 원작 설화와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제 소설에서는 길에서 만나는 존재를 이미 알고 있고 다 나인 것 같다는 감각이 여행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살아있는 개를 어루만지는 감각, 수정과 이안이 서로를 꼭 껴안는 온기. 소설에서 살기 위해 투쟁하는 힘은 경계 없는 사랑에서 온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동물은 소중하게 다뤄진다. “저는 사랑에 거는 기대가 아주 커요. 계속 누군가를 사랑하고, 완벽하게 믿고 싶어해요. 그건 동식물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어렸을 때 수의사가 꿈이었는데요. 길을 걷다가도 작은 동물을 보면 유독 눈에 밟히고 그냥 못 지나쳐요. 존재들이 조금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수상소감에서 현호정은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와 버린 느낌으로 살아왔다고 썼다. 그리고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세계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택한다. 작가의 말처럼 연명담이 우리의 이야기라면, 위협하고 죽이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리는 함께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을 스스로 정하는 수정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게.



단명소녀 투쟁기
단명소녀 투쟁기
현호정 저
사계절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혜경 “『아무튼, 술집』, 내가 쓸 수밖에 없었던 에세이”

$
0
0


『아무튼, 술』이 나왔을 때 울었다는 작가 김혜경. 술에 관한 사랑은 누구보다 크다고 자부하는데, 김혼비 작가의 책을 읽고는 몹시 질투가 일었다. “아, 나만큼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멋진 글을 쓰다니!”그로부터 2년 후, 김혜경은 아무튼 시리즈의 마흔네 번째 책 『아무튼, 술집』을 쓰기 이른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술집 리스트를 쭉 소개할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튼 시리즈는 작가가 애호하는 세계, 작가를 만든 세계를 펼치는 에세이 아닌가. 사람 없는 술집이 의미 없듯 『아무튼, 술집』은 진한 사람 냄새가 풍긴다. 소맥의 향인 것 같다가도 위스키 한 잔을 마신 것 같기도 한 뒤끝 좋은 책. 김혜경 작가를 혜화동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만났다.



20대를 갈아 넣은 책

이곳에서 책을 썼다고요?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고 있는 유희경 시인님과 친해요. 영업이 끝난 시간에 맥주 먹으면서 썼어요. 팟캐스트 <시시알콜>을 녹음하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아무튼, 술집』이 막 나오기 직전에 유희경 시인이 인스타그램에 책 소개를 해줬잖아요. 사실 그 글을 읽고는 ‘아! 이 책 진짜 읽고 싶다’ 생각했어요. 너무나 진심이 묻어나는 추천이라서요.

엄청 고마운 사람이에요. 얼마 전에 포털 사이트에도 이 책이 소개가 됐더라고요. 놀라서 찾아봤더니 유희경 시인님이 블로그에 적어주신 글이 메인에 뜬 거였어요. (웃음) 공저로 책을 쓴 적은 있지만 단독 저서는 처음인데 많은 분들이 힘을 주셨어요. 오은 시인님도 긴 추천 글을 보내주셨고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도 축하해주셨고요. 

반응이 뜨거워요.

오은 시인님이 그러셨어요. 자만심을 갖지 말라고. (웃음) 그런데 책이 나온 뒤로는 확실히 리뷰를 찾아 읽게 돼요. 누가 내 책을 읽고 어디에 흔적을 남겨주시지 않았을까 하고요. 

책 계약은 언제 하셨어요? 

작년 7월이요. 책이 딱 1년만에 나온 셈인데, 김태형 제철소 대표님을 작년에 뵙고는 3개월 만에 책을 내고 싶다고 했었어요. 무조건 겨울에 책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왜냐면 제가 작년에 운세가 좋았거든요. 하지만 대표님을 뵌 다음날 바로 후회했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술은 사계절 마셔도 좋지만 아무래도 여름에 나오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대표님의 의견을 따랐죠. 

표지를 보고서 시종일관 깔깔, 유쾌한 책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도입이 묵직해요. 그래서 더 좋았고요. 

이 책은 제 20대를 갈아 넣은 책이에요. 10대 시절 식당에서 밥을 많이 먹어야 했던 이유부터 시작해 이상할 정도로 익숙하고 정겨워진 술집의 풍경.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과 수시로 부딪힌 술잔 덕분에 스스로를 담담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됐고요. 술집은 과거의 제가 막연히 상상만 하던 다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곳이었어요. 사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많이 덜어냈는데도요. 

책의 카피가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 술집’입니다.

‘인싸’로 많이 오해 받는데 저는 내향적 관종이에요. 지금 기자님 눈도 길게 잘 못 마주치잖아요. 그런데 이런 제가 술집에 가면 달라져요. 적극적으로 합석도 하고 서슴없이 깊은 이야기도 하고. 모두의 눈동자를 마주할 용기가 생겨요. 

책을 읽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서 쓰러져도 출근할 수 있도록 여벌의 속옷과 셔츠가 있는 백팩”을 들고 다니셨다고요.

그땐 경기도에 살았거든요. 술 마시는 곳은 거의 망원동인데 심야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하잖아요. 택시비를 계산하면 안주 두 접시고요. (웃음) 술을 계속해서 마실 수 있게 하는 월급에 대한 집착과 최소한의 사회적 체면 유지를 위한 노력이 묻어나는 아이템들을 짊어지고 광역버스를 타면 여행하는 기분이 들곤 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술집을 가기 어려워졌잖아요. 요즘은 ZOOM으로 술을 마신다고요?

원래도 여러 명이 술을 마시진 않아서요. 갈 수는 있었는데 횟수가 많이 줄었죠.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술을 마셨어요. 평일에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거든요.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마신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요즘은 ZOOM으로 친구 네 명이 주로 만나요. 제가 취업을 조금 빨리 한 편이라 올해로 직장인 8년차인데요. 아직은 체력이 되는 것 같아요. 

혼술을 하거나 집에서 마시면 돈이 많이 들진 않지만, 술집은 또 다르잖아요. 

결혼을 하고 나니까 돈 쓸 일은 별로 없는데, 먹고 마시는 데 쓰는 지출이 너무 크긴 해요. 남편이랑 가끔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데, 책이라도 나와서 다행인 것 같아요. 뭐라도 남겼으니까요. (웃음) 



내가 할 일을 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술집 사장님들이 이 책의 출간을 환대해 주셨을 것 같아요. 

302호 와인바 사징님은 책을 읽어 보시더니, 와인바에 『아무튼, 술집』을 갖고 오는 손님들에게는 책값만큼 할인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웃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자주 들르진 못하지만 좀 상황이 나아지면 거하게 돈을 쓰면서 책을 선물하려고요.

술과 술집의 즐거움을 지나치게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반응하나요? 좀 알아보지 않겠냐고 설득하시나요?

아니요. 그 사람의 인생에는 술 말고 다른 게 있으니까 살고 있겠지 생각해요. 총량의 법칙이 있잖아요. 오히려 걔가 안 마시니까 내가 이렇게 신나게 마실 수 있구나, 이렇게 만족해요. 

광고대행사에서 AE로 일하는 일상이 책에 슬쩍 담겼어요. 회사에서도 술 좋아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나요?

그럼요. 그래서 이 책을 낸 것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봐요. 내가 할 일을 했다! 생각해요. 

술 맛이 가장 좋을 때는 언제인가요?

일단 안주 맛이 좋고 옆에 승용이(남편) 같은 애들이 공감해주면 최고죠. 같이 술 마시면 좋은 상대는 아무래도 자신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아요. 취기, 텐션을 맞춰주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자기 혼자만 맨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기꺼이 취함에 동참하는? 아 그리고 최근에 한신포차에서 배달을 시작했더라고요? 스팸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자마자 숟가락을 밥그릇에 땅 치면서 ‘아! 소주다!’ 싶었어요. 그날은 신기하게 술이 안 취하더라고요. (웃음) 

가장 좋아하는 술은 소맥인가요? 

많이 마시는 건 소주인데 아무래도 위스키를 좋아해요. 가성비가 훌륭하거든요. 한 병으로 따지면 비싸지만 오랫동안 마실 수 있잖아요. 그리고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술집』과 어울리는 주종은요?

음, 소주를 많이 넣고 맥주를 조금 따른 소맥이 아닐까요?

아버지가 전작 에세이 『시시콜콜 시시알콜』을 200권이나 사주셨다고요. 그런데 이번 책은 아버지께 비밀로 하려고 했다고요. 

네, 정말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검색을 해서 알아내셨어요. 제가 그냥 6월쯤 책이 나온다고만 말했고 굳이 안 봐도 된다고 그랬거든요. 아빠 이야기가 좀 많이 나오니까. 그런데 다섯 권 정도를 사셔서 친구분들께 선물한 것 같아요. 본인은 안 보시고. (웃음) 아마도 아빠가 아빠 친구로부터 책 이야기를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렇게 책에 털어놓을 수 있는 건, 관계가 많이 회복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지금은 사이가 좋으니까 이렇게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았까 하고요. 

대화를 많이 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저는 글로 쓰다 보니까 응어리가 많이 풀렸어요. 하지만 아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으니까 아빠도 극복하는 시간이 필요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아빠가 읽어보고 제 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고요. 



만약 또 다른 아무튼 시리즈를 쓴다면 어떤 키워드가 될까요?

‘아무튼, 싸움’이요. 제가 지인들의 감정 싸움에 관해 조언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일단 제가 못난 모습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줘요. 그리고 ‘아무튼, 해장’도 좋을 것 같네요. 




*김혜경

회사 다니고 팟캐스트 하고 글 써서 번 돈으로 술집에 간다. 비록 내 명의의 집은 없지만 세상 모든 술집이 내 집이란 생각으로 산다. 술 마시며 시 읽는 팟캐스트 〈시시알콜〉 디제이로 활동 중이며, 책 『시시콜콜 시詩알콜』(공저)을 썼다.



아무튼, 술집
아무튼, 술집
김혜경 저
제철소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교육전문가 진동섭 “문해력을 길러주고 싶다면 아이 책은 스스로”

$
0
0


올해 초 포탈 인기 검색어 1위에 ‘사흘’이라는 단어가 오른 일이 있었다. 공휴일과 연휴가 겹쳐 3일 간의 휴일이 결정됐다는 것이 기사 내용이었는데 기사에 있는 사흘이라는 단어를 4일로 안 사람들이 많았던 것. 이 해프닝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한국인의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였다. 또 시험지의 긴 지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언론에서 자주 보도가 되고 있는데, 이때에도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라고 귀결이 된다. 어느덧 한국의 주요 아젠다 중 하나가 되고 있는 문해력에 대해서, 前 서울대학교 입학사정관이자 <공부가 머니?> 패널로 활동한 교육전문가 진동섭이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공부는 기존의 연구를 읽고, 들어서 알고, 그것을 자기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이다. 즉 공부머리를 키우는 데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최근 들어 문해력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올 초에 EBS에서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기획 방송이 있기도 했었는데요. 먼저 문해력이 뭔지 질문을 드립니다.  

그 동안에도 문해력이라는 말을 안 썼던 건 아닌데 대중적인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건 최근이죠. 문해력은 글을 읽고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했어요. 지금은 예전보다 좀 더 광범위하게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잘 표출하는 것까지 포함이 된 거 같아요. 서양에서 얘기하는 리터러시를 문해력이라고 번역을 해서 쓰는데, 문자를 읽는 능력보다 좀 더 수준 높은 글 읽는 능력.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문해력에 대한 책은 어떻게 쓰시게 된건가요? 

제가 원래 고등학교 논술 교사였고 현행 논술 교육 과정을 만드는 팀에 있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문해력과 관련된 조사를 해둔 게 있었죠. 어쨌든 문해력이라는 게 단번에 길러지는 게 아니거든요. 수학보다도 더 안길러져요. 이 문해력 영역이라는 것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느냐. 초등학교 3학년 또는 그 이전부터 시작된다는 거죠. 원고는 작년 여름에 썼어요.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출간하고 바로 썼어요. 작년에는 지금처럼 문해력 얘기가 많이 나오진 않았던 거 같아요. 

최근에 공휴일과 연휴가 겹쳐 3일 간의 휴일이 결정됐다는 기사가 나오자 포털 사이트에 ‘사흘’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일이 있었어요. 그 기사에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쓰나”라는 댓글이 달렸던 거죠. 3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사흘’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거죠. 이 논란 이후 문해력이라는 말이 더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도 ‘넌 참 사람이 이지적이구나’ 그랬더니 ‘왜 나를 쉬운 사람이라고 그래’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입시에 있어서 문해력은 어떻게 중요한가요? 

문해력이 떨어지면 실제로 아이들이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과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아요. 대학 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아서 가는 법과 수능 잘 봐서 가는 법이 현재는 있죠. 수능을 잘 보려면 점수가 잘 나와야 하는 과목이 몇 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이슈가 되는 과목이 국어예요. 영어가 절대 평가로 바뀐  이후에 국어 시험이 좀 어려워졌고 제시문도 좀 길어졌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걸 못 읽어요.  못 읽는 이유가 뭐냐 하면 독서 능력과 어휘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에요. 이 능력은 금방 실력이 붙지 않습니다

학교 생활과 문해력은 어떤 관계가 있죠? 

지금 학교 공부라는 게 2015 교육개정 이후 활동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토론해 보자, 보고서를 써보자,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직접 자료를 찾아서 논문을 찾아가면서 글을 써야지만 그래야지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가 있는 이런 교육을 하고 있어요. 영어로는 구성주의라고. 얘기를 하는데 경험을 구성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뭐냐 하면 문해력이에요. 

그러면 초등학교 때부터 어떻게 책을 읽어가며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요? 

정독을 해야 하나요?, 다독을 해야 하나요?, 우리 아이는 학습만화만 보는데 괜찮나요? 등을 학부모께서 많이 물어보시는데, 그게 다 교과서에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교과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어떻게 독서를 해야 하는지가 나와 있어요.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은 표지나 그림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 예상하면서 읽기가 있고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내용을 보고 예상하면서 읽은 다음 간추리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만약에 아이가 그 부분을 배울 때 시험만 잘 봤다면 문해력이 안 생겼을 거예요. 표지를 보고 무슨 내용인지 예상하며 읽기를 배웠으면 앞으로 10년 동안 그렇게 읽어야 하는 거예요. 4학년 때 배운 것은 9년 간 계속해야 하는 거고요. 계속해서 하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가 되면 아이가 독서를 잘할 수 있고 글을 빨리 읽을 수 있고 그래서 지식을 빨리 습득할 수 있고 글의 내용을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수능에서 국어는 언제부터 어려워졌나요?

2015년부터라고 주로 얘기해요. 그 전에는 수능 국어 과목 문제 수가 60개였는데 개정 이후 문항수가 45개로 줄면서 제시문이 좀 길어지고 물어보는 것도 다양한 걸 물어보게 된 거죠. 예전 같으면 ‘윗글과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윗글로 이글의 내용으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물어보았다면 지금은 조금 더 다양한 문제들이 나오고 있고요. 특히 비교해 가면서 읽기라는 개념이 생겼어요. 제시문이 하나 주어져서 이 글의 내용을 파악하는 문제가 있고 그 다음에 다른 제시문이 주어지고 두 글을 비교해보는 문제들이 생기니까 조금 더 고급 독서 능력을 추정할 수 있게 바뀐 거죠.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문해력을 길러주고 싶다면 아이들이 직접 읽을 책을 정하게 하라, 였습니다. 보통 어린이책 같은 경우는 추천도서를 읽혀야 한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요즘에는 지금 부모 세대가 자랄 때보다 도서관 시설이 잘 돼 있어요. 학교도 그렇고, 지역 도서관도 그렇죠. 대형 서점도 많이 생겼고요. 이런 환경에서 실제로 학생이 자기가 볼 책들을 골라보는 것이 선택하는 힘을 길러주게 하는 의미가 있어요. 부모가 책을 골라주는 버릇이 생기면 나중에 책을 고를 때 이외에도 다른 선택을 할 때에도 일단 엄마 얼굴을 한번 쳐다 봐요.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길러주지 못하는 결과를 갖게 되는 거죠.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역량이에요. 중학교 자유학기제 때 자기가 해야 될 과목과 해야할 활동을 선택하고 동아리를 선택하고 고등학교에 가면 배울 과목을 선택하고. 대학 진로를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이런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선택 역량이라는 게 중요한데 필독서나 주어진 책만 읽게 되면 결국 선택할 기회가 없잖아요. 학생이 선택하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을 해야 하고, 아이가 잘못 선택해도 몇 번은 봐줘라, 그리고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치게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려면 500쪽 정도의 책을 읽고 내용을 요약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500쪽이라는 기준은 어떻게 해서 나온 걸까요? 

예전에 제가 학교 교사를 할 때 논술 수업을 했어요.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제가 첨삭지도를 하는 수업을 했었죠. 2010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정의란 무엇인가』가 굉장히 유명했었어요. 그 책이 10장으로 되어 있는데, 약 500쪽 정도 됩니다. 일주일에 한 챕터 씩 읽어오고 얘기하는 것으로 수업을 했었어요. 제가 서울대 사정관이 돼서 보니까 서울대 오는 학생들은 1,2주 사이에 그 정도 두께의 책들을 읽고 요약할 수 있고 질문 두 개 정도를 붙일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500쪽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책에서 독서 모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독서 모임이 책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문해력 기르는 데 도움이 되나요? 

또래 집단에서 어떤 얘기를 하느냐가, 학생들의 공통적인 관심의 크기를 말하는 거거든요. 학생들이 모여서 드라마 얘기만 하면 드라마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고 게임 얘기를 하면 게임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독서 모임을 하게 되면 책 중심으로 모이는 거죠. 그러면서 책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책 읽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스스로 내적 보상도 되고, 학생이 이렇게 책을 읽는 방향 쪽으로 생활이 큰 비중을 두게 되는 거죠. 그래서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하는 게 좋아요. 

원탁 토론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했는데요. 주제를 가지고 이 책은 무슨 얘기가 써 있다라고 돌아가면서 얘기해 보는 거예요. 우리가 영화 한 편을 봐도 다 다르게 보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책을 읽고, 읽은 책 내용에 대해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고 글을 써보는 거죠. 그럴 때 선배나 어른이 함께 하면 좀 더 도움이 되겠죠. 어릴 때부터 친한 애들끼리 계속 같이 성장할 수 있게 해주면 더 도움이 되죠. 왜냐하면 누구에게 비판을 받으면 상처 받잖아요. 그런데 친한 사람이 얘기하면 상처를 덜 받거든요. 

독서 토론을 하는 학원도 요즘 많이 있는 것 같은데, 학원에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독서라는 건 자발성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학원을 통해서 학생이 자발적으로 독서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역량이 생겼다면 바람직하죠. 그런데 학원에 그냥 밀어 넣으면 아이가 좋아하겠어요.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효과가 떨어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부모가 어떻게 해야 될지 하는 것들은 아이하고 먼저 상의하고 아이가 가겠다고 하면 보내주고, 싫다고 하면 엄마와 책 읽기 또는 친구와 책 읽기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을 찾을 필요가 있죠.

문해력 관련해서 연령별로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말씀해주시면요?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의 가장 큰 목표는 만화와 그림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초등학교 3,4학년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들이 있어요. ‘4학년인데 책 읽어줘야 하나요?’ 읽어 주세요. 수업을 들을 때 아이들이 수업의 내용을 정확하게 듣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책을 죽 읽어주다 무슨 내용이지? 하고 물어보면서 아이가 제대로 듣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아요.  

그 다음에 ‘우리 애는 학습 문화만 봐요.’ 그러면 만화나 그림 없는 책으로 옮겨간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거나 친하게 지내도록 해서 학생이 좀 더 만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는 4학년 때 사전 찾아가면서 책읽기라는 게 나와요. 4학년 때부터 사전을 찾아가고 모르는 것들을 찾아보면서 공부를 해야 되고 사회나 과학 관련 책들을 많이 봐야 되고요. 

중학생이 되면 문학 전집을 봐야 해요. 취향에 맞는 문학 책들 보면 돼요. 그리고 인생론 같은 쉬운 철학서 읽으면 좋죠. 고등학생이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 수준보다 조금 더 어려운 책을 선택해서 지식 세계를 넓혀가면 좋습니다. 


진동섭 전문가가 알려주는 공부머리를 기르는 독서 습관 7   
(고등학교 수준) 


1. 차례를 보고 책의 구성을 파악한다

   책을 잡으면 차례부터 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2. 각 장별로 읽은 내용을 정리한다 

  책을 읽으면서 각 장별로 요약해야 한다.

3. 두고 두고 읽을 만한 책은 사서 읽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깨끗이 읽고 반납해야 하므로 중요한 대목은 사진을 찍고 파일에   의견을 기록해둘 수 있다. 자기 소유 책은 밑줄을 치거나 의견을 적을 수도 있고 한 귀퉁이에 요약을 할 수도 있다.

4. 요약한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는다 

   책을 읽는 과정 또는 읽은 뒤에는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5. 독후 토론 활동을 하자 

   같은 책을 여럿이 읽고 토론하면 더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다. 

6. 책 전체의 메시지와 자신에게 미친 영향 등을 적는다 

   요약하는 분량이 A4용지 10매 정도 된다면 마지막에 의견을 달기보다는 장별로 의견을 다는 것이 좋다. 

7. 구분해서 독서해야 한다

   정보를 얻기 위한 읽기라면 주로 속독과 다독을 해야 하지만, 신문 기사라고 하더라도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서는 정독을 해야 한다.



*진동섭 

前 서울대학교 입학사정관, 2015 개정 교육과정 연구위원이었으며 現 교육과정심의회 위원, <공부가 머니?> 교육 전문가 패널이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교사가 되었다. 1986년 첫 고3 담임을 맡으며 입시에 뛰어들었다. 서울교육청 진학지도지원단 운영위원장으로 진학지도 자료를 만들었으며, 연합학력평가 출제 위원을 역임하고, 논술 지도를 위한 교사용 자료집을 제작했다. 교과서 편찬에도 참여해 국어 교과서와 논술 교과서 및 진로와 직업 교과서를 집필했다. 제7차 교육과정이 학교에 적용되기 이전 해인 2001년에는 선택형 교육과정을 학교에 적용하는 연구학교 담당 부장교사로 일했다. 학교에서 연구부장, 교무부장, 교감 등을 지내며 학교 교육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2020년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자, 교육부가 주관하는 ‘코로나 상황의 학습 결손·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수석교사 컨설팅’에서 사전교육자료와 학생 지도 가이드북을 제작하는 일을 주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가 있다.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진동섭 저
        
포르체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Viewing all 8510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script src="https://jsc.adskeeper.com/r/s/rssing.com.1596347.js" async> </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