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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우, 조한진희 “아픈 몸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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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한진희, 박목우 저자‘잘 아플 권리’에 대한 통찰로 화제가 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조한진희. 그의 이야기는 2015년, 아픈 몸으로 살고 있는 동료들을 찾아 나선 때로 돌아간다. “소수자들은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병과 함께 춤을’, 일명 ‘질병춤’ 모임을 시작한 그는 바로 이곳에서 아픈 동료들과 질병 서사 쓰기를 진행했다. 그 작업은 시간을 건너 『질병과 함께 춤을』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책의 저자 다리아, 모르, 박목우, 이혜정은 모두 각자의 질병 서사를 솔직하고, 치열하게 기록한다. 조한진희는 “질병 안에는 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들어있다” “아픈 몸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가 되어야 좋은 사회”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가시화해야 해요

조한진희 작가님이 쓴 ‘들어가는 글’에서 작가님이 아픈 몸으로 살고 있는 동료를 찾아 나선 때의 이야기를 적으셨는데요. 아픈 나에게 다름 아닌 동료가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얘기해보고 싶어요. 

조한진희 :과거 여성단체에서 성폭력 상담을 할 때도 느낀 건데요. 피해자 자조모임을 하면, 그 과정에서 참석자들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감각을 갖게 되고요. 그로부터 아주 깊은 위로를 받아요. 나와 동질한 경험을 한, 동일한 혼란과 절망을 겪은 사람의 한 마디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는 거죠. 이 사실을 여러 현장에서 목격했고요. 때문에 아픈 동료들도 만나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저 역시 외롭고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위로 받고 싶었고요. 그래서 사람들을 찾고, 같이 이야기를 했죠.


조한진희 저자모임을 하는 내내 “질병 경험을 해석하고 설명할 ‘언어’가 중요하다는 결론”(13쪽)에 거듭 도달했다고도 하셨죠. 

조한진희 : 결국 언어가 없기 때문에 소수자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수자가 언어를 만들어야 소수자성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이때 연구자들이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요. 그와 더불어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가시화해야 해요. 그러나 특히 질병 영역에서는 당사자들의 언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요. 때문에 일단 당사자의 언어를 모아야 거기서부터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박목우 작가님도 글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다른 정신장애인 동료들을 만나고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115쪽)고 하셨는데요. 그때의 장면도 듣고 싶어요. 

박목우:저는 누군가 정해준 금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었어요. 20대 때 강제입원의 경험을 하면서 그런 삶의 태도가 몸에 배었던 것 같아요. 정신병원을 나와서도 그랬고요. 더구나 의사는 “약을 먹으면 완치될 수 있다”는 말을 했으니까요. 완치가 되면 공부도 할 수 있고, 직업도 가지게 될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45년이 되도록 저는 여전히 공부도 하지 못하고, 직업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였어요. 정신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내가 정신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거예요. 그때 정신장애인 등록을 결심했고요. 비슷한 시기에 다른 정신장애인 동료를 만났죠. 너무 놀라웠어요. 누구는 연애를 하고, 누구는 시를 쓰고, 누구는 노동을 하고 있었어요. 삶이 있던 거죠. 그때의 마음은 정말 ‘가슴이 뛴다’고밖에 표현을 못할 것 같아요. 

박목우 작가님의 글은 나를 다 드러내기로 한 마음, 손 내미는 마음이 느껴지면서도 워낙 고백적이라 쓰면서 힘들진 않으셨을까, 생각했어요. 

박목우 :사실 부모님도 “이 글은 주변에 추천 못 하겠다”고 하시긴 했는데요.(웃음) 책이 나오고 룸메이트에게 선물을 했더니 그 친구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어요. 제가 정신장애인 자립생활주택에 살고 있는데요. 함께 사는 친구가 말이 별로 없었거든요. 친구의 변화를 보면서 내가 뭔가를 솔직하게 내놓는 것이 타인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다만 글을 쓸 때는 과연 제 글이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지 부끄러움을 줄지, 계속해서 재게 됐어요. 글을 쓰면서도 환청과 망상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했던 고민이었는데요.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웠는데 글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까지 과연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가장 힘들었어요. 

 

박목우 저자워낙 사회 전체가 질병과 통증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 압박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를 책에서는 ‘건강 중심 사회’라고 말하죠. 

박목우 : 정신장애인을 이상하고, 위험하고, 불길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사회로부터 추방시켜버리던 역사가 있었잖아요. 한 번도 정신장애인이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거나 권리를 위해 싸우거나 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요. 이제 조금씩 그런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워요. 제게는 그 운동을 알게 된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사회는 정신장애인을 병원에 보내고, 그 사람의 존재를 지우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우리 삶을 뒤흔드는 것은 생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21쪽)라는 문장이 떠올라요. 

박목우 : 정치인들, 언론 등에서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해 번번이 ‘정신장애’라는 말을 사용하죠. 그게 너무 화가 나요. 무슨 일만 있으면 “정신 질환이 아닐까 의심된다”, “집단 조현병 발발이다” 라는 식으로 말을 하잖아요. <마인드포스트>라는 당사자 언론이 있는데요. 그때마다 반박 기사를 내고 있어요. 대부분은 사과를 하지만 안 그러는 정치인도 있죠.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해 소수자를 비하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오히려 소수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시키는 거예요. 적어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나 언론이라면 그런 언사는 피해주면 좋겠어요.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게 좋은 사회

한편 나라는 존재 역시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건강 중심 사회적 인식’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조한진희 :여성 안에도 여성 혐오가 있는 것과 같은 건데요. 저는 원래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침마다 수영 20바퀴를 돈 뒤에 출근하고, 주말에는 암벽 타고 그랬어요. 마흔이 되면 철인3종 경기에 나가는 게 꿈이기도 할 정도였죠. 그래서 투병 생활도 스포츠 하듯 한 거예요.(웃음) 표를 짜서 산책하고 그랬어요. 건강해져야만 내 삶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노력하면 반드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은 곧 타인에 대한 엄격함이 됐어요. 가령 아토피가 있는 사람이 튀긴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속으로 ‘그러니 그렇지’라고 생각한 시간이 있었어요. 아픈 사람에게 생활 습관을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를 강연에서도 많이 하는데요. 저도 무심코 그런 생각이 올라오곤 해요. 아픈 것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것에 계속 문제제기 하지만 나 자신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구나, 생각할 때가 많아요. 

아픈 몸을 향한 차별의 말들이 너무 많죠. 듣기에 가장 불편했던 말은 뭔가요? 이런 말은 불필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조한진희 : “노력하면 반드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어”라는 말인데요. 그게 응원의 말이라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내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 노력이 부족해서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요. 저도 그런 시간을 거쳤고요. 노력해도 건강이 회복되지 않으면 당사자는 자책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 쉬워요. 따라서 이 말이 응원의 말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면 좋겠어요. 

박목우 : 누군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간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죠. 그런데 누군가 환청이 들린다고 하거나 이상한 생각이 든다고 하면 그 사람 자체를 낙인 찍고, 배제를 해버리는 것 같아요.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해도, 지식도 없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 같은데요.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죠. 병리학적 시선만 있는 게 갑갑할 때가 많아요. 최근 WHO(세계보건기구)에서 ‘목소리 듣기 운동’을 공식 서비스로 인정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환정이나 망상을 목소리 듣기로 재해석 해내는 거죠. 당사자 운동이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잖아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책 뒷부분에 실린 ‘아픈 몸 선언문’ 가운데 “우리는 모드 아픈 몸이거나 아플 몸이다”(271쪽)라는 말이 있는데요. 무엇보다 이 말이 중요할 것 같아요.

조한진희: 지금 아프지 않은 사람도 연대자이자 조력자가 될 수 있고요. 그러다가 언젠가는 자신 역시 당사자가 될 거거든요. 저의 바람은 이래요. 질병이 있는 상태를 너무 비정상적으로, 특수한 일로, 예외적인 상태로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건데요. 생로병사가 우리 삶에서 다 살아나게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해요. 물론 아픈 건 그렇지 않은 상태에 비해서 힘들죠. 하지만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게 좋은 사회죠. 아픈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라면 결국은 다 함께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생각해요. 질병, 죽음, 나이듦이 모두 마찬가지인데요. 노화도 삶의 일부고, 질병도, 죽음도 모두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평등한 사회, 좋은 사회가 되는 길일 거예요.

 


박목우 작가님의 “삶 노동”(111쪽)이라는 말도 뜻깊었어요. 사회 일원의 범위를 확장하는 개념이라 이 개념을 한국 사회가 더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목우: 최근 조한진희 작가님 소개로 ‘돌봄윤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돌봄윤리는 인간을 상호의존적인 존재로 보는 데서 출발해요. ‘삶 노동’도 마찬가지 같아요. 중요한 건 관계성이고요. 근대사회가 구조화되면서 배제시킨 수많은 타자들을 다시 관계성 안에 놓고 이들을 환대하자는 거거든요. 그럴 때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억압들이 보이고, 숨죽였던 목소리들이 발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픈 몸 선언문’에 누구나 의견을 보낼 수 있도록 QR코드를 수록하셨잖아요. 어떤 의도가 담긴 건가요? 

조한진희:저는 2015년부터 자신의 질병 이야기를 사회에 꺼내면 좋겠다고 말해왔어요. 그래서 언젠가 “우리 사회에 소소한 질병 이야기가 더 많이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고 싶다”고 쓰기도 했는데요. 책을 읽는 즐거움도 있지만 분명히 쓰는, 발산의 즐거움이 있거든요. 그래서 ‘들어가는 글’의 마지막을 “이번에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차례다.”(23쪽)라고 적었어요. 하지만 글쓰기의 장벽을 크게 느끼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QR코드를 통해 들어오셔서 한 줄이라도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아픈 사람들이 직장에서 어떤 차별을 받는지,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는지, 한 마디라도 해볼 수 있었으면 했죠. 그래서 이 책은 뭔가를 우리와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미는 책인 셈이에요. 책을 읽고 ‘내 얘기도 해볼까?’ 라는 생각을 더 많은 분들이 하게 되시면 정말 좋겠어요. 

박목우: 아픈 몸으로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픔이 고립되고 무가치하게 버려지는 경험이 아니라 자신을 긍정하고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자원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게 되면 정말 좋겠거든요. 무엇보다 아픈 몸이 더 이상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픔으로 인한 실존적,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질병과 함께 춤을
질병과 함께 춤을
다른몸들 기획 | 조한진희 편 | 다리아 모르,박목우,이혜정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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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이 소설은 시대가 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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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nji Tachibana

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의 배경이 되는 근미래의 일본은 혐오의 광풍에 휩싸여 있다. 첫 여성 ‘혐한’ 총리가 탄생하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생활보호지급이 중지되며, 헤이트 스피치와 증오범죄가 증가한다. 그곳에 다섯 명의 재일 한국인 청년들이 있다. 가시와기 다이치, 박이화, 양선명, 윤신, 그리고 김태수. 저마다 다른 모습과 사상과 동기를 가진 이들을 한 데 묶는 힘은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다. 그들은 극우보수정당에 소속된 청년 기지마 나리토시와 만나 혐오로 물든 사회에 반격을 가하려 한다.

이용덕 작가는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3세다. ‘언젠가 재일 한국인을 중심 테마로 삼은 소설을 쓰고 싶었고, 써야만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는 그의 네 번째 작품이자 첫 장편이다. 소설의 제목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1923년의 그 공간에 소설의 배경을 겹쳐보면, 슬프게도 닮은꼴이다. 독자들은 그 모습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은 ‘혐한’, ‘혐일’의 좁은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다. 끊임없이 다른 대상을 찾아 번져나가는 혐오의 양상을 보여주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소설가 이용덕은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로 ‘제51회 문예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보답받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보답받지 못한다』로 ‘제38회 노마문예신인상’ 후보에 올랐고, 저서로 『사랑하는 것, 이해하는 것, 사랑받는 것』이 있다. 첫 장편소설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로 ‘제42회 노마문예신인상’을 수상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시대가 쓰게 만든 소설

이 소설은 “시대가 쓰게 만들었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요. 재일 한국인 3세로서 ‘언젠가 재일 한국인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네, ‘재일 한국인’을 중심 테마로 삼은 소설은 언젠가 쓰고 싶고, 써야만 하리라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쓰게 된 이상 이 한 권에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테마를 다룬 소설인 만큼, 한국 독자들에게 전작을 선보이셨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기대하신 반응이나 우려하신 부분이 있었나요? 

가장 우려했던 반응은, 이 소설의 한국어판을 출판함으로써 ‘역시 일본 사회는 이상할 정도로 차별주의적이다’라는 의견이나 일본인 전체에 대한 혐오가 증폭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리뷰 중에는 한국 국내에도 존재하는 소수파 차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종종 보여서, 그 점은 제 기우였구나, 하고 안심함과 동시에, 앞서 말한 한국 독자에 대한 우려가 오히려 제 얕은 편견이었음을 깊이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소수파이기 때문에 무심코 싸잡아 생각하기 쉬운 우리 재일 한국인을, 같은 생활권에서 살아가는 개별 존재로서의 저마다의 모습과 저마다의 사상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도 이 작품을 쓴 동기 중 하나”라고 쓰셨습니다. 각각의 인물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무엇보다 여러 명의 인물을, 저마다의 뚜렷한 인생을 그리고자 의식했습니다. 아무래도 다수파에게는 재일 한국인이 ‘수상한 소수파 집단’이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그 부분을 타파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님이 재일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품었던 의문이나 고민 같은 것도 등장인물에 투영되었나요? 

가시와기 다이치에게는 제 합리주의에 치우치려는 측면을, 양선명에게는 제 염세관과 전방위적으로 싸움을 걸고 싶어 하는 기질과 ‘비뚤어진’ 성격을, 박이화에게는 신념의 흔들림과 작가를 지망하던 반생을, 김태수에게는 정치의식과 젠더의식이 옅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을, 구장호에게는 몇 년이나 공부를 하면서도 지금까지 한국어를 습득하지 못한 어학력 부족에 대한 한심함을, 이렇게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만큼 각 등장인물에게 투영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감정, 내셔널리즘 일반에 대한 평가, 일본으로 귀화할지 여부에 대한 고민, 우리들 소수파를 압박하려고 하는 시대에 대한 대처법(정면에서 싸워야 할지, 무시해야 할지), 다른 소수파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방치되고 있는 전 세계의 부정에 어디까지 관여해야 할지 그 경계선에 대해, 집단과 개인 중 어느 쪽의 이익을 우선해야 할지 등등... 그러한 갈등도, 저 개인뿐만 아니라 다른 재일 한국인에게서 예전에 들었던 의견도 포함시키면서 버무려 녹여낸 뒤 그걸 다시 분해해서 각 등장인물에게 투영시켰습니다.

‘귀국 사업’으로 한국을 찾은 박이화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논픽션 소설처럼”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합니다. 그는 “문화나 예술에는 이름 없는 목소리들이 몇억 몇조 모여서,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그런 힘이 있어” “우리 작은 존재들의 작은 역사를 남기기 위해서는 그걸 기록할 역사가가 필요해”라고 말하는데요. 작가님께서 이번 소설을 쓰신 이유나 목적과도 닿아 있는 지점이 있을까요? 

아주 많습니다. 저는 37세에 겨우 데뷔한 늦깎이 소설가입니다. 그때까지 쌓이고 쌓였던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 ‘이대로 데뷔도 못할 것 같고, 그 누구의 눈에도 닿지 못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이렇게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괴로운 의문, 그에 대해 ‘아니, 글은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지구를 움직이는 것과 같은 가치가 있다’라는 신앙에 가까운 도달점, 그것들을 이화의 입을 통해 마음껏 펼쳤습니다.

한편 저는 작가로 데뷔할 수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한국어판까지 출판하게 되었다는 너무나 행복한 현실과, 그에 따르는 커다란 책임이 있습니다. 고작 책 한 권으로는 배외주의와 강권주의가 날로 더해가는 이 세계의 잔혹함에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지만, 지금의 저는 이 작은 저항의 과정을 소설이라는 형태로 역사에 남길 수가 있습니다. 소설가로서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세계의 빛과 어둠

이 소설은 정치운동-미디어-대중(여론)이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에게 영향 받으면서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오랫동안 갖고 계셨나요?

그렇습니다. 정치운동도 미디어도, 혹은 여론의 물결도, 때때로 눈부신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는가 하면 그 연동이 손쓸 수 없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굳이 나치스 독일이나 르완다 분쟁 같은 쉬운 예를 들 것도 없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어디서든, 그러한 일은 과거에 일어났을 겁니다. 그렇다고 정치운동이나 미디어를 과도하게 백안시하는 것 역시 현대에 흔히 등장하는 음모론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역시 과거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나면 절망이나 염세에 빠지기 쉬운데요. 거기에만 빠져 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가님은 무엇에서 희망이나 가능성을 발견하세요?

작중에도 썼습니다만, 그럼에도 일부 국가에서 여성참정권이나 신분해방을 얻어낸 역사적 성과가 있습니다. 기본적 인권, 삼권분립, 표현의 자유, 보통선거법, 이러한 개념을 권리로서 쟁취한 민주국가가, 경위가 어떻든 간에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서 몇몇 국가가 있습니다. 그 희망 쪽에도 저는 눈길을 주고 싶습니다, 아니,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아가서는 국가라는 틀과 상관없이, 이를테면 ‘국경 없는 의사회’라든가 ‘유니세프’, ‘유엔난민기구’처럼 국경을 뛰어넘어 분골쇄신하는 분들도 있고, 국내에서도(어느 나라든 간에) NGO 단체나 권력에 굴하지 않는 방송국, 또 단체 단위가 아닐지라도 의사, 교사, 소방관, 변호사, 경찰관, 혹은 늘 미소로 맞아주는 도시락집 아주머니, 아파트 관리인, 이렇게 소속이나 속성과 관계없이 훌륭한 희망의 예를 발견한 적은 없으신가요?

물론 이렇게 말하고서도 소설가로서의 저는 바로 직업병에 휩싸여, 겉으로는 훌륭한 저널리스트이면서 뒤로는 성희롱을 일삼던 남자라든가, 봉사활동에 열심이지만 사실은 차별주의자라든가, 악덕 변호사, 체벌 교사, 기타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면을 무심코 상상해 버리는데요. 그래도 선행을 전부 뒤집어서 위선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도 현실주의적이지 않은 태도가 아닐까요. 선악 이원론이 아니라, 이 세계에는 아름다운 빛이 반짝이는 분명한 순간도 있는가 하면 칠흑 같은 절망의 어둠도 펼쳐져 있습니다. 뭐, 세상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은 원래부터 절망 일색도 희망 일색도 아닌 모양입니다.

일본이라는 무대, 재일 한국인이라는 대상으로만 한정 짓지 않고 더 넓은 범위에서 혐오를 그려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테마를 다루는 소설을 쓰든 간에, 저는 늘 보편성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어느 나라나 지역의 사람이 읽어도, 혹은 100년 전의 사람이나 100년 후의 사람이 읽어도, 그곳에 문화 차이가 있어서 얼마간의 주석은 필요할지라도, 그럼에도 즐길 수 있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것이 제 강한 바람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한국의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작중 인물인 박이화의 말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기어 올라온 이 세상의 끝, 그 풍경은 분명 아름다워. 함께 믿어 보자.”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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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저 | 김지영 역
시월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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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차 “한국의 룸살롱 문화, 성형수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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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출간된 장편소설 『If I Had Your Face』에는 서울 논현동 룸살롱에서 일한 ‘규리’, 고아로 자란 ‘미호’, 임신으로 고민하는 ‘원아’,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느끼는 ‘수진’이라는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한국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는 한국의 룸살롱 문화와 성형수술, 학교폭력과 K팝 팬덤 문화,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속살이 치밀하게 담겨 있다. 미국 출간 당시 <타임>지가 선정한 ‘2020년 꼭 읽어야 하는 100권의 책’에 이름을 올리며 큰 화제가 된 『If I Had Your Face』의 작가 프랜시스 차는 그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인 룸살롱 문화와 성형수술 이야기를 소설에 담기 위해 각종 뉴스 기사, 다큐멘터리, 블로그, 책, 성형의학 논문까지 찾아가며 취재를 진행했다. 

미국, 홍콩, 한국에서 자랐고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는 프랜시스 차는 다트머스 대학에서 영문학과 아시아학 학사 학위를 받고,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경영학술지 부편집장, 서울·홍콩 <CNN인터내셔널> 여행문화편집장 등을 지낸 경력을 갖고 있다. 10대 때부터 미국과 한국을 오가느라 늘 아웃사이더였고, 따라서 불가피하게 제3자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됐다는 프랜시스 차. 그는 자신의 성장 경험을 작가로서의 자산으로 삼았다. 『If I Had Your Face』는 그런 작가의 시선에 붙들린 한국 사회의 화려함 이면에 도사린 그림자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막 자신의 데뷔작이기도 한 『If I Had Your Face』를 세상에 선보인 작가는 “제 책은 영어로 쓰였을 뿐 외국인을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많은 이야기 중 하나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할 만큼 이제 한국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에 있는 프랜시스 차 작가를 이메일로 만났다.



이야기되지 않는 사회의 한 부분

『If I Had Your Face』는 작가님의 데뷔작인데요. 출간 후 <타임>,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작품에 대한 많은 반응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철저히 예상 밖의 반응이었어요. 출판사와 에이전시의 공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글을 쓰는 동안에는 창작과정에 영향이 갈까 걱정이 되어서 출간 후 반응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야만 했어요. 거의 징크스 같았죠. 또 출간 직전 팬데믹이 닥쳤는데요. 그때는 제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거든요. 운 좋게도 2020년 초 미국에 록다운이 시작되면서 모두 소셜미디어에 몰두했고, 제 책도 자연스럽게 소셜미디어와 미디어의 보도를 통해 주목받게 되었어요. 깊은 영광이라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당시 모든 오프라인 서점들이 문을 닫아 감정적으로는 저도 조금 우울했습니다. 지금은 두 번째 책을 집필 중이기 때문에요. 다시금 창작 과정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가능하면 리뷰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첫 작품으로 룸살롱, 성형수술, 학교폭력 등의 강렬한 소재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팬데믹 때문에 덜한 것 같은데요. 제가 살던 강남에는 어디를 가나 룸살롱이 보였습니다. 제가 가는 미용실에서도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매일 찾아왔죠. 그들은 매일 오는 손님이라 가격 테이블이 다르더군요. 룸살롱 문화는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보편적임에도 (특히 여성들에게)이야기되지 않는 사회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뤄보고 싶었어요. 성형수술의 경우, 저는 성형수술을 하고 나면 인생이 어떻게 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통증에 대해 공포가 있지만 그 수술을 선택한 분들이 통증과 후유증, 회복 기간을 다 알고도 어떻게 수술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수술 후에는 어떻게 인생이 바뀌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늘 흥미로웠습니다. 비록 누구에게나 추천하지 못하는, 아주 어려운 수술일지라도 말이에요. 그런 관심이 소설에 반영된 것 같아요. 

10년 전, 작품을 처음 구상했을 때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원래는 서로 연결된 단편 소설로 쓸 생각이었어요. 각 단편마다 다른 주인공이 있었고요. 그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지금의 성격과 인생관을 갖게 되었는지 상상했거든요. 그러다 지금의 형태가 되었죠. 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가족 배경이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 등을 탐구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제 개인적인 신념과 반대되는 선택을 할 때 말이죠. 주인공은 다소 극단적으로 그려졌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평범한 가족이나 배경과 같은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처음에 구상한 데서 완성되기까지, 이야기는 얼마나 달라졌나요? 쓰면서 처음의 기획이 변하거나 다시 써야 했던 부분이 있나요? 

『If I Had Your Face』는 10년에 걸쳐 진화한 소설입니다. 사실 처음 6년간 계속 염두에 두고 쓴 주인공이 있었는데요. 막판에 편집자와 논의해 서술자를 줄이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그 주인공이 나오는 줄거리는 모두 빼게 되었어요. 원고를 제출하기 전에는 에이전트가 엔딩 부분에서 좀 서두르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두 챕터 정도 더 쓰게 되었죠. 저는 마지막에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둥근” 결말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또 깔끔한 결론보다는 불확실한 결말을 좋아해요. 우리 현실의 삶이 그렇듯 말이에요. 결국엔 주인공이 어떤 시각을 얻게 되었는지를 묘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결론을 썼어요. 


방대한 취재로 완성된 소설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장면들이 무척 인상적이에요. 취재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요? 

방대한 취재를 하기는 했습니다. 성형외과, 룸살롱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요.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많이 진행했습니다. 뉴스 기사, 다큐멘터리, 블로그, 책, 성형의학 논문까지 섭렵해야 했죠. <CNN>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한국에 대한 모든 기사의 배경을 조사했던 부분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여기에 더해 제가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던 소재들도 공부해가면서 썼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는 연구했던 부분들을 잊어야 하더라고요. 르포르타주를 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요. 제가 취재했던 부분은 소설 속 캐릭터들의 기초와 당위성을 위해서만 쓰였던 것 같습니다. 

취재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해요.  

성형외과를 많이 방문했었는데요. 역시나 상담원과 의사 선생님들께서는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았던 콤플렉스를 딱 집어 주시더라고요. 어떤 것은 저 자신도 몰랐던 것들이었는데 말이에요.(웃음) 만약에 성형을 선택한다면 이렇게 얼굴이 바뀔 거라고 3D 사진을 보여주시기도 했는데요. 정말 놀랐어요. 한번은 외국에 있는 친구가 한국에 들어와서 양악수술을 하고 싶어 한다며 상담을 했었는데요. 그 상담이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수술을 어떻게 하실 건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했더니 “레스토랑에 가서 셰프한테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묻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질문들을 싫어하셨어요.

취재를 통해 확인한 현실을 작품에 반영할 때 유의하려고 했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세워둔 규칙이 있었나요? 

제 생각은 대부분의 소설가들과 동일합니다. 작품이 “픽션”으로 분류되면, 실제 삶과 얼마나 유사한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소설은 불신을 잠재우는 작업이기 때문이죠. 규칙이 있다면, 저는 실제 사건이나 유명한 장소의 이름을 바꾸어 허구로 만들지만 그 사건이나 장소를 아는 사람에게는 인지할 수 있게끔 설정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호텔이나, 연예인 스캔들 같은 경우 말이에요.



한국의 특별함을 알려야 된다는 사명감

작가님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을 "모든 사람이 항상 '켜져 있어야 하는 매우 경쟁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칠 수 있지만, 동시에 끝없이 매혹적이고 재미있습니다."라고 하셨죠. 한국 사회의 어떤 점들이 작품에 영감을 주었는지 직접 듣고 싶습니다. 

네, 개인적인 관점일 수 있지만요.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스위치가 “켜져”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따금 제가 “한국에서 입는 갑옷”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요. 공개적인 곳은 물론 동네에서조차도 말끔한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고, 단정한 신발을 신는 등 전부 다 신경을 한 번 더 쓰고 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죠.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할 때 기억도 나는데요.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주 자세한 질문을 받은 기억이 나요. 제가 만난 사람들만 그런 것일 수 있겠지만요. 직설적인 질문들을 통해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위치를 탐색하는 것 같았어요. 일 년의 대부분을 보내는 브루클린에서는 또 다른 규칙들이 있죠. 예를 들어 이곳에서는 너무 노력하는 모습보다는 조금 쿨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른 규칙과 우선순위일 뿐이에요.  

작가님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홍콩 등 여러 사회에서 지낸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작품에는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반은 한국, 반은 미국에서 지내다보니 늘 아웃사이더였고요. 항상 저도 모르게 여러 문화를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일까 저는 새로운 문화에 바로 적응하는 편이에요. 영어로는 “code-switching”이라고 해요. 항상 관찰하고, 왜 이런 것들이 다를까,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을 하다 보니 작가로서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 독자에게는 익숙하지만 영미문학 독자들에게는 아직 낯선 한국의 모습을 작품에 담으면서 기대한 것도 있었겠죠? 

사실 독자들을 염두하고 글을 쓰면 부담감 때문에 글이 잘 써지지 않더라고요. 집필 중에는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해 깊게 파고들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한국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더 보여주고 싶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도 있나요?

한국계 소설가와 작가로 활동을 하면서 한국의 특별함을 알려야 된다는 사명감이 커요. <CNN> 문학/여행 섹션 편집장으로 있을 때 <CNN> 쪽에서는 혹시 한국관광공사에서 보낸 스파이냐고 농담을 많이 듣기도 했어요.(웃음) 


이야기되지 않는 사회의 한 부분

작품의 영상화가 진행중이죠. 드라마에 작가님도 참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의 영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의 다양한 배경 - 화려한 강남과 수백 년 된 고택 등을 자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대돼요. 개인적으로 글을 쓰면서 배경을 글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어색했는데요. 영상으로 풀어낼 수 있어 참 신난답니다. 

요즘 가장 작가님을 사로잡는 문제, 깊이 생각하고 있는 이슈는 무엇이에요?

한옥에 대한 관심이 깊어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옥을 보러 가거든요. 올해도 서울과 여러 지방의 한옥을 구경하고 왔는데요. 나무로 지어진 한옥이 언젠가는 수명이 다하리라 생각하면 아찔할 때도 있어요. 흔히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죠. 저는 우리나라 한옥을 널리 알리고 싶고요. 전통한옥들을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새로운 한옥, 현대적인 ‘모던’ 한옥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희 할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친척들을 만나면 많은 것을 물어보곤 하죠. 참 특별하신 분들이었는데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심장이 뛰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림책을 많이 읽게 되는데요. 한국의 그림책들을 읽으면 작가로서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게 돼요. 인물, 소재, 줄거리 전개 등 너무나 창의적이면서 애절한 내용이 많더라고요. 한국과 미국을 배경으로 한 그림책을 내년 쯤에 출판하기로 했는데요. 그림책을 계속 쓰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이 『If I Had Your Face』를 어떻게 읽길 바라나요? 작품을 통해 특별히 한국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모든 소설가의 마음은 같을 것 같아요. 독자 분들이 제 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에 관심을 두게 되고, 자신의 고민을 잠시 잊거나 고민을 색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제 책은 영어로 쓰였을 뿐이지, 외국인을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설 속에 유학생이 등장하기도 하는 만큼 유학생이 쓴, 현대 한국의 많은 이야기 중 하나처럼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If I Had Your Face : 프랜시스 차 '너의 얼굴을 갖고 싶어'
If I Had Your Face : 프랜시스 차 '너의 얼굴을 갖고 싶어'
Frances Cha
Pengui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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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배우 문소리 “나를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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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의 눈빛을 기억한다. 현장에 있는 모든 스태프와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모습. 노력하는 모습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문소리는 어릴 적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책 읽는 시간이 가장 편했던 아이, 언제나 또래 아이들보다 앞서서 책을 읽는 학생이었다. 중학생 때는 소설가를 꿈꾸다 고등학생 때는 국어교사로 장래희망이 바뀌었고 대학에서는 교육학을 전공하며 연극반 활동을 했다. 연극반 선배들은 그에게 두꺼운 철학책을 건네곤 했다. 지금까지 문소리는 책과 멀어진 일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 올해 그는 두 권의 책을 썼다. 영화 <세 자매>의 시나리오와 인터뷰를 담은 『세 자매 이야기』를 직접 기획했고, 반려견 ‘달마’를 주인공으로 엮은 그림동화 『세 발로 하는 산책』을 류영화, 강숙 작가와 함께 썼다. 두 권의 책 모두 혼자가 아닌 함께 쓴 책이다.



서투른 반려 인간의 부끄러운 고백

올해 겨울 팟캐스트 녹음 현장에서 뵈었죠. 그때 나눈 이야기도 좋았지만 더 인상적인 건 녹음 내내 스태프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는 모습이었어요. 좀 많이 놀랐어요. 여태껏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게스트는 없었거든요. 

일하다 생긴 버릇 같아요. 원래 낯선 사람의 눈을 잘 못 보는 성격이었어요. 지금도 카메라 앞에서 흥이 나고 그러는 사람은 아니에요. 나를 보여주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고 낯선 사람은 힘들어요.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다 보니까 하나 깨달은 게 있어요. 스태프가 편안해져야 내가 편할 수 있다는 것. 카메라는 기계인데 기계가 뭐 불편하겠어요. 진짜 카메라는 스태프들의 눈이죠.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전에 굉장히 큰 파티에서 양조위를 만난 적이 있어요. 정신 없는 와중에 둘이 눈이 마주쳤는데 그 눈빛이 굉장히 나를 존중하는 느낌이었어요. 양조위가 저를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한 생명을 원천적으로 존중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이건 흉내 낼 수 없어요. 그렇게 살아야 나오는 눈빛이니까, 순간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눈을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무언가 큰 걸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올해만 두 권의 책을 썼어요. 한 권은 세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 이야기이고 다른 한 권은 세 여자가 쓴 책입니다. 

정말 그렇네요. (웃음) 사실 『세 발로 하는 산책』은 가족 이야기라서 많이 망설였어요. 아주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책까지 낼 만한 이야기인가 싶어 고민을 한참 했어요. 계속 저한테 질문했던 거 같아요. 책으로 묶여도 될 만한 이야기인가? 그런데 올케랑 친구랑 쿵짝쿵짝 책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좋았어요. 아마 혼자 내라고 하면 못했을 거 같아요.

『세 발로 하는 산책』은 딸 ‘연두’와 조카 ‘수영’을 위한 그림동화 <달마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야기예요.

6년도 넘은 것 같아요. 지금은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즈음이었어요. 저희 집 달마가 진돗개라 덩치가 크니까 아이들이 좋아하다가도 무서워하더라고요. 달마와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던 와중에 아이들이 “오징어는 다리가 열 개, 문어는 여덟 개, 개는 네 개, 사람은 두 개인데 왜 달마는 다리가 세 개냐?”고 묻더라고요. 이 말을 들은 올케는 A4 용지를 여러 장 붙이더니 달마가 세 개의 다리를 갖게 된 지난 시간을 그림동화로 만들었어요. 아이들은 틈만 나면 달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댔어요. 우리 집에서는 참 좋아하는 이야기인데 다른 아이들에게도 읽어주면 어떨까 싶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달마의 노년 이야기를 추가했어요.

책을 두고 ‘서투른 반려인간의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처음 달마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건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달마가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게 됐을 때 참 많이 울었어요. 큰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다시 집으로 왔는데 의사 선생님이 ‘달마를 다치기 전과 똑같이 대해주라’고 당부하셨어요. 다리가 하나 없어졌다고 우리가 달마를 불쌍해하면 달마가 그걸 느끼고 더 슬퍼한다고, 그러니까 먼저 슬퍼하지 말고 예전과 똑같은 눈으로 달마를 봐주면 잘 이겨낼 거라고요.



지금 달마는 어떻게 지내나요? 

달마는 올해 열다섯 살이 됐어요. 나이가 많은 개라 거의 반나절을 누워 있지만 여전히 식성은 좋고 눈빛도 괜찮아요. 

보리가 달마를 챙기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처음 달마가 뒤뚱거리며 집에 왔을 때 보리가 갑자기 달마를 공격했어요. 그전까지는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는데요. 차고 위 명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몇 번인가 투닥거렸는데 언제부터인가 사이가 다시 좋아졌어요. 보리는 달마가 자기 뒤를 따라오는지 꼭 확인하고 달마가 오지 않으면 엘리베이터도 안 타요. 달마가 오는 걸 본 다음에 자기도 출발하고요. 이런 달마와 보리를 볼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동물도 이러는데 인간은 왜 이럴까, 싶을 때도 있고. 책을 쓰면서 달마 덕분에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그림동화의 맺음말이 “달마는 우리에게 깨달음입니다.(138쪽)”였죠.

정말 그래요. 아무리 책을 보고 공부를 해도 한 생명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주는 건 없어요. 예전에는 사람이 중요하고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구가 꼭 인간의 것이 아니에요. 인간보다 지구에서 훨씬 더 오래 있었던 나무가 있고 동물이 있으니까요. 이 존재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개념이에요. 달마와 보리 덕분에 동물권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됐고 이제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며 채식을 지향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주 가끔 닭고기를 먹을 때가 있지만 붉은 고기는 먹지 않아요. 인간과 동물, 자연환경을 위해 플라스틱을 줄이고 고기 소비도 줄이면서 축소주의자가 되고 있어요. 

세 발로 산책하는 달마와 함께 있을 때,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영화 <오아시스>를 찍었을 때가 생각났어요. 6개월 동안 휠체어 생활을 했거든요. ‘공주’라는 인물을 연기할 때만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컷이 나도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모니터를 봤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스태프가 조명을 가린다고 “공주 좀 치워 줘”라고 연출부에게 말하더라고요. 그때 많은 생각을 했었어요. 하루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까 거리에서 촬영할 때도 간판들이 시선에 안 맞아 올려 보느라고 뒷목이 너무 아픈 거예요. 모든 상황이 위협적이고. 달마도 다리를 잃고 나서 불편함이 참 많았을 거예요. 우리가 장애를 바라보는 마음이 좀더 깊어지면 좋겠어요. 장애를 다름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세 발로 하는 산책』의 추천사를 임순례 감독과 김태리 배우가 써주셨어요. 이 책의 인세는 동물권행동 카라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곰 생츄어리(sanctuary, 보호시설) 건립’에 기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책에도 등장하지만 임순례 감독님은 개를 엄청나게 사랑해서 영화 촬영 때문에 지방을 가면 그 동네 개들을 다 살피고 매일같이 물을 주고 밥을 준 다음에 촬영장에 오세요. 달마, 보리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저는 감독님께 전화를 걸어 상담하고요. 감독님과 만나면 영화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어요. 늘 개 이야기를 해요. (웃음) 이번 책도 미리 보여드리면서 달마 이야기로 책을 내니까 돈을 조금 벌게 되면 카라에 기부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곰 생크추어리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최근에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사육곰 열다섯 마리를 구조했거든요. 곰들이 생명을 위협당하는 수준의 환경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려고 한다고 말씀하셔서, 이 책의 인세를 기부하기로 했어요. 달마가 곰을 도우면 좋죠.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지향하는 삶

배우이자 제작자, 프로듀서로 참여한 영화 <세 자매>가 올해 1월에 개봉했고, 봄부터 여름까지는 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를 찍었고 지금은 넷플릭스 시리즈 <서울대작전> 촬영을 하고 있어요. 코로나 시대에 이렇게 바쁘게 살 수 있는 건 행복이지 않나 싶어요. 

계속 작품을 할 수 있는 게 복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국 영화 시장과 극장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걱정이 되고, 그 와중에 일할 수 있다는 건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에요.

<미치지 않고서야>에서는 인사팀장 역을 맡았어요. 오랜만에 출연한 TV 드라마인데 역시나 호평을 받았습니다.

처음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는 인사팀장이 그렇게 미움 받는 캐릭터인 줄 몰랐어요.(웃음)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칼을 휘두르는 직책이더라고요. 확 치우쳐 있는 악역은 아닌데 조금 어렵더라고요. 이 사람도 회사에서 맡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거잖아요.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품고. 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어요.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구나’라는 생각도 했고.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워낙 같이 연기한 배우들이 다 좋았어요. 현장 분위기도 좋고 저한테는 여러 모로 기억에 많이 남을 작품이에요. 

2018년에 출간된 한일 문화인 대담집 『부디 계속해주세요』에 참여하셨을 때 “저는 지금도 굉장히 큰 파티에 갈 때도 있고 큰 행사에 뭐 드레스를 질질 끌고 갈 때도 있지만, 제가 평범하게 산 일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제가 연기를 앞으로 하는 데에도 굉장히 탄탄한 베이스가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이야기하셨어요. 문소리의 정체성을 보여준 답이 아니었을까 싶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저는 영화로 데뷔하기 전에는 정말 평범하게 살았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에 들어와서 평범하지 않을 만큼 너무 많은 경험을 했어요. 극단에도 있었고 휴학도 하고 복학도 하고 운동권 선배들을 따라다니기도 했고 국악반에서 가야금을 2년간 배우기도 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평범하게 열심히 살았던 때예요. 그러다 영화를 하게 됐는데 사람들이 “네 연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했어요. 대체 뭐가 다르지? 생각해봤는데 학창시절까지 살아왔던 시간들이 달랐던 거 같아요. 스물다섯 살까지 보내온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내 아이덴티티를 갖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직업인으로서 배우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만 평균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 지향하려고 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특별하게 보일 거예요. 사람들 앞에 서는 배우니까요. 하지만 평범함을 지향하려고 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건, 인간 문소리뿐만 아니라 배우 문소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들었어요.

정말 그랬어요. 사람들과 섞이는 걸 잘 못해서 책을 읽을 때가 마음이 가장 편한 시간이었어요. 힘든 순간에도 책으로부터 위로를 많이 얻었고 이야기를 읽는 걸 좋아했어요. 돌이켜보면 책과 가까웠던 시간들이 시나리오를 읽는 배우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줬어요. 지금도 마음이 가장 편한 순간은 아무 생각 없이 책을 보는 시간이에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약한 사람이었는데 책에 많이 기대서 단단해질 수 있었어요.

요즘은 어떤 책을 읽나요?

아는 분들이 보내주는 책을 읽고 있어요. 배우 송선미 씨가 보내준 『어쩌면 너의 이야기』도 보고 있고 아동권리활동가로 일하다 육아휴직을 하고 출산한 아내를 위해 밥을 짓는 이야기를 담은 『아내를 위한 식탁』도 읽고, 앤 드루얀이 쓴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도 읽으려고 해요. 예전에 『코스모스』를 읽다가 요만큼 남겨 놓고 아직까지 완독을 못해서요. 얼른 『코스모스』부터 다 읽으려고요.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있는 게 중요하죠

1999년 영화 <박하사탕>으로 데뷔하셨으니 배우로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어요. 요즘 주로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그냥 재미난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어떤 뚜렷한 성과를 내자는 생각보다 내가 굉장히 재밌다고 느끼는 순간, 평화롭다고 느끼는 순간을 자주 만끽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 책도 그래요. 올케랑 친구랑 이 그림은 빼자, 이 글은 넣자고 의논하며 깔깔대는 시간이 너무 좋았으니까요. 영화가 됐든 책이 됐든 이 재밌는 순간이 너무 소중한데, 결과를 보느라 이 시간들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있어요. 최근에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요. 젊었을 때는 삶이라는 걸 떠올렸을 때 죽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든요. 일하느라 바빴고 아이 키우느라 바빴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죽음을 조금 생각하게 됐어요. 

『세 자매 이야기』를 무척 재밌게 봤어요. 김선영, 장윤주 배우와의 인터뷰도 좋았고 현장 스케치의 짧은 글도 기억에 남아요. 

영화 개봉 훨씬 전부터 생각했던 책이에요. 출판사 섭외부터 책의 구성, 필자 섭외, 내용도 모두 직접 기획했어요. 제가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했으니까 모든 현장에 계속 있었거든요. 그래서 찍어놓은 사진이 많았어요. 개봉한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추억이 많은 영화예요. 

팟캐스트 <책읽아웃>에 출연하셨을 때 “좀 질리는 스타일인데?”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고 하셨어요. (웃음) 저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일을 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에요. 가끔 열심히 하다가 ‘나 너무 재미없는 인간이 돼가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인간은 싫은데 말이에요. 배우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게 참 중요해요. 어떤 상태를 만드는 것보다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있는 게 중요하죠.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어떤 인간이 되어 있는데,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아는 게 연기할 때도 도움이 돼요.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하지만, 나를 알아가는 게 참 어렵구나 싶어요.



영화 제작, 감독, 프로듀서를 경험해본 것이 연기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많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몇 마디 글이나 말로 설명할 순 없을 거 같아요. 사람은 무척 복잡한 존재니까요. 저는 프로듀서로서 또 감독으로서 그 당시 좋은 사람들과 재미나게 열심히 작업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그걸로 족해요. 

지금까지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선택이 있다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매일이 어떤 선택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그게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알기가 어려워요. 어떤 선택이든 제가 결정한 것이라면, 간혹 제 선택이 아니더라도 저는 그 선택을, 제 삶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면서 그 과정을 더 재밌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만약 또 한 권의 책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사실 올케랑 기획한 게 하나 있어요. 이건 정말 유아용 책인데,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랑 정말 잘 놀아줬어요. 촬영 때문에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데도 아이랑 관계가 정말 좋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 애들이 아빠랑 노는 걸 보는데 아빠를 ‘빠바베리비’라고 불러요. 이게 무슨 캐릭터인가? 찾아봤는데 그런 게 없어요. 자기들끼리 지은 거예요. 하루는 우주로 떠나서 거품으로 ‘빠바베리비’를 공격하고 어떤 날은 괴물을 잡고 바나나별에서 미끄러지고 또 미끄럼방지 앱을 설치하고 우주 지도를 그려 놓고.(웃음) 이런 이야기를 아이용 책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만 하고 있어요.


 

세 발로 하는 산책
세 발로 하는 산책
문소리,류영화 저 | 강숙 그림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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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선생 나카가와 히데코 "13년의 시간, 깊어지는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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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기, 13년을 이어온 요리 교실도 휴식기에 들어갔다. 매달 150명의 수강생, 대기자도 딱 그만큼인 연희동 히데코의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의 이야기다. 하지만 문어가 그려진 작은 간판 아래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전한 활력이 느껴졌다. 아침마다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고 몇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저장 음식을 만드는 히데코 선생님의 하루. 쌓아온 시간만큼 내공도 깊어졌다. 술안주부터 지중해 요리까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다채로운 레시피가 가득하다.

키친 크리에이터 나카가와 히데코는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으로 한국 이름은 중천수자.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 아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를 배웠다. 동독과 서독, 스페인, 한국에서 20대와 30대를 보냈다. 13년 동안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운영 중이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수강생들에게 일본 음식부터 스페인, 이탈리아 요리까지 국경을 넘나들면서 동시에 채소, 도시락, 술안주, 파티 음식 등 매달 다양한 콘셉트로 재미있는 식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집에서 만나는 요리 교실

2016년 화제를 모았던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 교실』이 새로운 레시피로 돌아왔어요.

요리 교실이 벌써 13년이 됐어요. 시간 참 빠르죠? 처음에는 개정판을 내려다가 저의 성장을 담아내고 싶어서 거의 모든 레시피를 새로 썼어요. 그간의 변화도 에세이에 담아냈고요. 

1~2년에 1권꼴로 책을 내고 계시죠. 요리 에세이부터 술안주 요리책까지 벌써 14권이 나왔어요.

마흔세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10년이 넘었네요. 요리 교실을 열 때만 해도 책을 낼 줄은 몰랐어요. 당시 홍대 근처에서 열린 이우일 작가 부부의 전시에 케이터링을 나갔는데요. 그때 마음산책 대표님이 저를 눈여겨보고 출간을 제안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4번째 책까지 왔네요.(웃음)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요리 교실도 변화를 겪었을 것 같아요. 

저희 요리 교실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경험을 중시하는데, 팬데믹 시기에는 그게 어려워졌죠. 수업도 몇 달째 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수강생 대부분이 환불을 해준다고 해도 수업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 거예요. 참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집밥의 중요성이 커졌잖아요. 이번 요리책의 컨셉도 ‘집에서 즐기는 비장의 레시피’예요. 

맞아요. 집에서도 요리 교실의 레시피를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그동안 레시피도 많이 쌓였거든요. 책에 담긴 모든 레시피가 실제로 요리 교실에서 수강생들과 함께 만들었던 메뉴예요.

선생님의 실제 집밥 메뉴도 궁금해지는데요.

수강생들이 선생님은 평소에 뭘 먹냐고 많이 물어봐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저도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게 됐는데요. 사실 매일 거창한 요리를 하지는 않아요.(웃음) 특별한 날에 가끔 햄버그스테이크를 하는 정도? 카레나 일본식 감자조림 니쿠자카처럼 한번 해놓으면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이 하고요. 완전히 한국식으로 밥과 국을 차리기도 하죠.



지중해 요리부터 토종 쌀까지

책을 펼치자마자 ‘구르메 레브쿠헨’의 시간을 간직한 저장 음식이 눈에 들어왔어요. 수강생들과 함께한 13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요.

저장 음식은 계절마다 수강생들과 같이 담가서 몇 년은 먹곤 했어요. 처음에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시작했어요. 지중해 요리에는 안초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당시만 해도 조그만 캔 하나가 정말 비쌌거든요. 유자 고쇼도 한식으로 치면 다대기 같은 건데요. 유자를 많이 사서 껍질을 깎아서 만들었어요. 직접 만들면 훨씬 자연스러운 맛이 나니까요. 

일본, 스페인, 프랑스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을 담은 원 플레이트 요리 레시피도 색달랐어요. 여행이 어려운 시기니까 더 반갑더라고요.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상하게 여행의 기억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웃음) 필요 없는 부분은 지워지고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만 남는 것 같아요. 햄버그스테이크는 호텔 셰프였던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레시피예요. 다른 길을 가겠다던 딸이 뒤늦게 요리 교실을 한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60년 동안 쌓아온 레시피 노트를 보내주셨거든요. 그 이야기를 작년에 출간된 『아버지의 레시피』에 담았고, 이번 책에도 노하우를 넣었어요. 

술안주 요리 하면 ‘연희동 히데코 선생님’이잖아요. 이번 책에도 와인이나 맥주와 어울리는 레시피가 가득해요. 

제가 술을 좋아한다는 건 워낙 유명한 이야기죠.(웃음) 요즘에는 밖에 못 나가니까 집에서 마시게 되고 자연스럽게 음식도 함께 떠올라요. 술안주 레시피는 요리 교실의 단골 메뉴기도 하고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를 준비하면서 정리한 적도 있는데요. 일단 술안주는 간단한 요리여야 해요. 다 같이 술을 마시는데 집주인만 요리를 하고 있으면 진짜 화가 나거든요.(웃음) 가볍게 만들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요리가 좋죠.



‘봄나물 페스토 파스타’처럼 제철 재료의 맛을 살리는 요리가 많더라고요. 매일 장을 보던 아버지의 영향인가요?

셰프인 아버지는 요리를 업으로 한 분이라,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가기는 했지만 장사를 하기 위한 재료는 늘 똑같았어요. 제철 재료를 활용하는 법은 한국에 살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 같아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채소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여러 가지 채소를 나물로 만들어 보면서 한국식 조리법에 익숙해졌죠.

신혼 때는 시어머니의 고사리나물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요.

시어머니가 경상도분이어서 고사리나물을 자주 해주셨는데요. 겉모습 때문인지 도저히 맛있게 먹을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한동안 고사리를 먹지 않았는데, 한국 요리교실 선생님이 고사리와 루콜라를 섞어서 샐러드를 만드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고사리가 이렇게 맛있는 재료였다니. 그때 이후로 고사리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알타리무로 만든 스프도 독특했어요.

알타리무가 알고 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재료거든요. 일반 무보다 아삭하고 매운 맛이 있어요. 근데 왜 한국에서는 김치만 담글까 의문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알타리무로 스프를 만들어 봤어요. 매운맛과 단맛이 살아나면서 훌륭한 요리가 됐어요.

한국 토종 쌀을 알리는 일에도 동참하고 계시죠. 이번 책에도 토종 쌀로 만든 레시피가 실려 있어요. 

예전에는 토종 씨앗의 중요성을 잘 몰랐어요. 홍대에서 ‘수카라’를 운영했던 친구 수향이 토종 쌀을 재배하는 농장을 소개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죠. 세계적으로 농작물이 단일품종으로 생산되고 있어서, 토종 씨앗을 보존하는 게 시급한 문제가 됐어요. 저도 토종 쌀을 활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주변에 권유하면서 중요성을 알리고 있어요.



요리는 즐거운 일이에요

13년의 세월만큼 요리교실 수강생과의 인연도 깊어졌겠어요. 

오래 인연을 쌓아온 단골 수강생이 대부분이에요. 요즘 말로 ‘찐팬’이랄까요.(웃음) 다들 한번 수업을 들으면 적어도 5년 이상은 다녀요. 요리 교실에 따라왔던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 됐고요. 책이 나오면 20권 이상 사서 지인에게 나눠주는 분도 있어요. 요리책의 사진 촬영도 늘 단골 수강생들과 함께해요. 7~8년 이상 다니면서 제 요리 스타일을 잘 아는 분들이니까 외부 스태프를 부를 필요가 없는 거죠.

요리 실습 전에 문화적 배경을 꼭 설명하신다고요.

다양한 국적의 요리를 가르치니까 배경을 알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더라고요. 요리 실습을 하기 전에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려줘요. 스페인의 식문화는 어떤지, 일본에서는 무슨 나물을 먹는지. 배경을 알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레시피’ 수업에서는 아예 제가 자료를 준비해서 왜 일본에서 서양 요리가 발달했는지 세 번에 걸쳐 설명했어요. 역사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조수나 후배를 따로 두지 않고 혼자 요리 교실을 이끈다고요.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과정을 함께하지 않을 테니까요. 보통 요리 교실은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고 수강생들이 따라 하기만 하니까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저희 요리 교실은 설거지부터 뒷정리까지 같이 해요.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친해질 수밖에 없죠.

중년 남성분들도 요리교실을 찾는 게 신기했어요. 

참 대단하죠.(웃음) 보통 나이가 많은 남성 수강생들은 아내가 보내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설거지부터 뒷정리까지 요리 교실에서 다 처음 해보는 거예요. 한 달 동안 접시만 닦고, 그 다음 달은 설거지만 하고. 그러면서 집안일을 익혀 나가요.



코로나19 이후 식문화 트렌드도 많이 바뀌었어요. 배달 음식과 밀키트 제품이 유행인데요. ‘집밥’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독자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간단한 것이라도 직접 만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집밥은 무조건 정성껏,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더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아요. MSG를 조금 넣더라도 제철 재료를 써서 간단히 만드는 것이 비싼 배달음식보다 낫죠. 사실 요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거든요. 뭐든 즐기면서 해야 해요. 일단 부담을 내려 놓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교실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교실
나카가와 히데코 저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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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저에게 소설은 ‘요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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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남자와의 관계가 끝나고 무작정 인도로 요가 수행을 간 ‘메이’. 고통의 흔적이 남은 자리를 떠나면 행복할 줄 알았던 그녀는 인도에서 여러 모순을 맞닥뜨리며 도리에 혼란에 빠진다. 뒤이어 새로운 사랑이라 믿었던 ‘케이’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메이는 무작정 차문디 언덕을 오른다. 언덕의 정상에서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던 메이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가를 할수록 글쓰는 자아를 발견했다는 김혜나 소설가. 그의 장편소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이 출간됐다. 살기 위해 요가를 하고, 편지를 쓰는 메이는 “이유도 목적도 알지 못하지만, 요가를 할수록 글을 써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5년간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 

단편집 『청귤』에 실린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가 확장되어 장편소설로 출간됐어요.

사실 처음부터 장편으로 구상했던 이야기인데, 물리적인 여건상 장편을 쓰기가 어려워서 단편을 먼저 써본 거였어요. 막상 단편을 쓰고 나니 이 이야기를 더 깊게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지더라고요. 쓸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생겼고요. 긴 시간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끝마치게 되어서 기쁘고 홀가분해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탈고를 하셨다고요. 

이 소설이 원고지 550매 정도의 분량인데, 5년 가량을 붙잡고 있었어요. 1년에 100매씩 쓴 셈이죠. 청탁 받은 단편, 산문 등을 쓰고 여러 다른 작업들을 하다 보니 소설을 끝내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2019년에 해외 창작 공간인 헝가리 ‘더숲 레지던스’에 지원했죠. 선정되자마자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오직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헝가리로 떠났어요. 그런데 도착하고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 전역에 퍼져서 국경이 차단되더라고요. 덕분에 오로지 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썼어요. 해외 레지던스의 효과를 톡톡히 본 소설이에요(웃음). 

단편과 장편 모두 제목에 ‘차문디 언덕’이 들어가요. 어떤 곳인지 궁금했어요. 

인도에서 요가 수련을 할 때, 마음이 답답하거나 힘들면 차문디 언덕을 자주 올랐어요. 언덕에서 보는 일몰이 정말 아름다워서 그 풍경을 보면 저절로 삶을 긍정하게 됐거든요. 그리고 주인공 ‘메이’는 정반대의 두 남자 사이에 끼어 있는 인물이잖아요. 질병으로 외출이 어려운 ‘요한’과 여행작가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케이’ 사이에 선 상황이 언덕처럼 느껴졌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언덕의 특징이 문학적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또 인도에서는 ‘카르마’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기독교적으로 카르마를 설명한다면, 모두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인간의 삶을 의미하는데요. 이처럼 하나의 메타포로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서 제목에 꼭 ‘차문디 언덕’을 넣고 싶었어요.



인도가 던져준 질문, 소설이 되다 

어떻게 떠올린 이야기인가요? 

요가 수련을 하기 위해서 여러 번 인도를 다녀왔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본 인도의 풍경들을 소설에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인도는 문학적 영감을 주는 나라예요. 갈 때마다 질문을 던져주거든요. ‘이 세상에는 왜 계급이 존재할까? 사람들은 왜 이 삶을 그대로 수긍할까?’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을 자주 생각했어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내려놓는 것을 영어로 ‘surrender’라고 하는데 ‘surrender’와 ‘give up(포기하다)’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인도에 있으면서 깊이 한 생각들, 예컨대 ‘나에게 오는 모든 불행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같은 질문들이 저절로 소설까지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의 메이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소설 속 메이는 단단하게 성장한 느낌이었어요.

단편에서는 이야기의 단면만 표현되어서 메이의 고통과 상처가 더 크게 드러났던 것 같아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에서는 메이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누구나 잘하고, 못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모든 삶에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니까요. 장편소설은 인물의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메이가 좀 더 입체적이고 단단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요한과 메이의 관계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신체적으로는 약자인 요한이 정신적으로는 메이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어요. 

제가 요가를 오래 하다 보니 육체와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늘 생각하는 것 같아요. 소설 속 캐릭터를 만들 때도 그 부분을 신경 쓰며 창작을 하죠. 요한은 나약한 신체로 살기 위해서 정신을 강인하게 단련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에요.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근력이 아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정신력을 키운 거죠. 반면 케이와 메이 등의 인물은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내면에 아픔이 있어요. 신체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속으로 곪아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특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케이에게 마음이 가요.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금방 눈치채실 텐데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 나오는 주인공 K를 본떠 지었거든요. 저는 그 소설을 읽을 때마다 ‘K는 도대체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에 휩싸여요. 늦은 밤, K가 한 마을에 도착해서 마을 사람들과 다양한 논쟁을 벌이며 어떻게든 성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K를 배척하죠. 이 소설에는 과거 서사가 없어서 K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어요. 워낙 좋아하는 소설이라서, 언젠가 한번쯤 K의 실체를 그려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또 소설에서 메이가 케이에게 편지를 쓰듯, 저도 ‘내 옆에는 없지만, 이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케이 같은 독자들을 향해 소설을 쓰거든요. 저에게는 케이가 소설의 독자처럼 느껴져서 더 마음이 가요. 



삶이 있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요가 강사로 활동하던 중, 등단을 하셨어요. 요즘도 요가를 가르치세요? 

10여 년간 요가 강사와 소설가를 병행했는데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어요. 요즘은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요가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는 게 저의 카르마를 다하는 행위인 거죠. 

글쓰기가 요가라고요?  

국내에서는 요가가 운동이나 심신 수련법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건 요가의 일부분일 뿐이에요. 실제로 인도의 수행자들에게 요가는 하나의 신념이죠. 매일 집 앞을 청소하는 걸 자신의 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는 걸 요가 수행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충실하게 글을 쓰는 게 나의 카르마를 다하는 요가 수련이라고 생각해요. 요가를 할수록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또렷해지는 걸 느껴요. 

인도로 떠난 메이는 시종일관 혼란스러워해요. 요가를 할수록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진짜 나’를 찾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울죠. 작가님도 이런 생각을 종종 하세요? 

저는 ‘이 순간을 살아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라’ 같은 말을 안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우리는 늘 남과 비교하는 법만 배우며 살았잖아요. 나의 시선이 외부로 향할 수밖에 없도록 교육받은 세상에서 갑자기 ‘나를 사랑하라. 현재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건, 요가를 처음 하는 사람에게 물구나무 서기를 시키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 답답함을 메이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여전히 ‘지금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순간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죠. 저도 요가를 할 때 잡생각이 많이 나거든요. 그런데 문득 ‘요가를 하러 온 이 순간조차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이 순간을 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요즘은 어떤 행위를 할 때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글을 쓸 땐 오로지 글 생각만 하죠. 매번 잘 되진 않지만 늘 인지하려고 노력해요. 

저도 아쉬탕가 수련을 하고 있는데, 초반에는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게 지루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달라진 걸 발견하면서 쾌감이 생기더라고요.  

매일 변하는 몸을 발견하는 게 요가의 즐거움이에요. 그 기쁨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남과 나를 비교하는 시선이 줄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되죠. 요가를 하면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자꾸 내 안으로 가져오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요가를 할 때 자주 떠오르는 질문이 있나요? 

저는 외로움을 못 견디는 사람이라 늘 연인에게 감정적인 의지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연인과 헤어지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덧 혼자 있는 게 편해졌는데요. 여기서 새로운 질문이 생겨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이렇게 혼자 지내는 게 옳은 건가? 싶은 거죠(웃음). 한때 ‘달라이 라마’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가 말하는 행복론은 ‘모든 인간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게 핵심이거든요. 인간은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너무 관계 맺기에 소홀하고 혼자 글쓰고 요가하는 데만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 건 균형이겠죠. 자기를 지키면서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그게 제일 어려워요.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메이가 그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어요. “내 안에 아무런 기억도 상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나는 계속 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거야(304쪽)”라고 했죠.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삶이 있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생각해요. 천일야화 속 ‘세헤라자데’가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살아남잖아요. 이야기는 인간에게 생존인 것 같아요. 살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게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만들죠. 저는 이야기의 역할을 잘 이어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
김혜나 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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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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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여자들에게 빚지고 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현실이 막막하고 두려우면 으레 여성작가의 책을 파고들었고, 그 안에서 나를 설명할 언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주체적인 사유는 ‘금기’이거나 ‘사사로운 것’으로 치부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 이들의 용기는 2021년을 사는 현대 여성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되고 있다.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를 쓴 이유진 기자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책지성팀장을 지냈고, 현재 토요판부 ESC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널리스트로서, 사회학과 여성학 공부를 이어가려는 ‘주말의 연구자’로서” 탐독한 책과 역사의 기록이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에 모였다. 이유진 기자는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을 일컬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대로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를 다시 일으킬 책의 목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금지된 곳에서 읽고 쓴 여자들의 역사

첫 단독 저서입니다. ‘읽고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처음에는 책과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는데 ‘읽고 쓰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좁혀졌어요. 그 과정에서 방대한 인물과 책의 목록이 나왔고, 편집자님과 상의해서 적합한 이야기들을 추려나갔죠. 1부는 여성 인물에 대해 썼고, 2부는 ‘몸’ ‘말’ ‘피’ ‘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여성의 삶에 길잡이가 될 만한 책들을 모았어요. 

주석의 양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연구서의 성격도 가진 책이라 인물에 대한 취재와 공부, 탐색이 필요했어요. 알고 있는 인물과 내용이라 할지라도 공부를 새로이 해야 했고, 그만큼 주석의 양도 상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편집자님과 의견을 나누면서 주석을 예민하게 표시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뜻이 모여서, 아주 짧게 언급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책의 구체적인 쪽수까지 표기했어요. 원고를 다 썼는데 내용에 언급된 책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 책을 다시 구입해서 정확한 쪽수를 확인하는 등 주석을 정리하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리더라고요(웃음). 논문이나 기사는 써봤지만, 책을 쓰는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죠. 

1년 전까지 한겨레 책지성팀장으로 일하셨어요. 좋은 책을 소개하던 입장에서 책을 쓴 저자가 되어보니 어떠세요.

저자에게는 책에 실린 문장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웃음). 독자의 입장에서는 흘려 읽던 문장들도 작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썼던 것인지 알겠더라고요. 특히 편집자의 역할에 감탄했어요. 신문을 편집하는 것과 글을 책으로 묶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더라고요. 한겨레 책지성팀장으로 일하며 2016년 7월, ‘성과 문화’라는 고정면을 신설해서 여성 작가, 젠더 문제에 대한 책들을 다뤘는데요. 신문에서 서평을 썼던 인물도 일부 실렸지만, 원고는 모두 처음부터 다시 쓸 수밖에 없었어요. 책 만드는 일이 얼마나 섬세한 작업인지 실감했죠.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은 여자들이었어요

인물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서 좋았어요. 각 인물의 주목할 지점과 함께, 아쉬움까지 말씀해주신 것도 기억에 남고요. 

독자들이 인물의 다층적인 모습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컨대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한계가 있는 여성 지식인이죠. 미국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전통을 중시하면서 서구 백인 남성 철학의 전통을 뚜렷하게 따르고 있고, 본인이 여성이라서 차별을 당했다고 하지만, 페미니스트로 볼 수는 없어요. 여성 지식인이자 영화감독, 비평가, 작가였던 ‘수전 손택’은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던 야망가였고, 페미니스트들과 반목했죠. 『죽음과 죽어감』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한국 사회에서 인류의 구루처럼 알려져 있으나, 결코 성자는 아니었어요. “모든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해서 더 멋진 인물이었죠. 책에 실린 이들이 모두 선하거나 정치적으로 반드시 옳은 길을 선택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독자분들께서도 다채로운 인물의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쓰기 어려웠던 꼭지가 있을까요?  

다 어려웠는데, 특히 ‘몸’ 부분을 쓸 때 고민이 많았어요. 20~30대 여성들이 열광적으로 독서에 몰두하고, 생존을 위해 지식을 쌓기 시작한 ‘페미니즘 대중화’의 흐름 가운데서,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굉장히 많이 출간됐는데요. 그 책들을 일별하며 깨달은 사실이 있어요. 우리가 몰랐던 ‘여성 인물’에 대해 다시 공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특히 여성 개개인이 자신의 ‘몸’에 대해 굉장히 주목하고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제가 배운 여성학 지식을 활용해 ‘사회가 어떻게 여성의 몸을 유순한 신체로 만드는가’에 대해 한 챕터에 담아내고 싶었는데요. 서구 철학의 스승들이 여성을 결핍된 몸으로 환원시켰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 한국 사회에 벌어지는 여성들의 몸에 대한 실천까지 짧은 글 안에 담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불교와 페미니즘 사상을 연결한 『불교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였거든요. 

『불교 페미니즘』을 쓴 미국의 페미니스트 종교학자 ‘리타 그로스’가 2004년 김포 중앙승가대학에서 열린 ‘세계여성불자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 이분을 인터뷰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2015년 작고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가장 중요한 저서가 지난해에 번역되어 출간된 것을 발견했어요. 그게 『불교 페미니즘』이었죠. 리타 그로스는 “여성은 수행을 해도 깨달을 수 없다”는 불교의 관념에 이의를 제기했고 깨달음에는 성별이 따로 없다고 믿었어요. 너무 좋은 책이었기 때문에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아쉽게 넣지 못한 이야기도 있나요?

과학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가 실패했어요. 제 인생 책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거든요. 그래서 칼 세이건의 배우자 ‘앤 드루얀’이 펴낸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과 작가가 된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을 관통하는 코스모스적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포생물학자이자 고지리학의 대가인 ‘린 마굴리스’와 생물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 ‘도나 해러웨이’의 저작들도 담고 싶었는데 마찬가지로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아 아쉽게 제외했죠. 최근 도나 해러웨이가 쓴 『트러블과 함께하기』라는 책이 번역돼 나왔는데요. 페미니즘 계간지 『여/성이론』에 서평을 청탁받아서 지금 그 원고를 쓰고 있어요. ‘결국 이렇게 공부할 거였다면 진작 해서 책에 실을 걸’ 하고 후회하고 있어요(웃음).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읽고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는 것 외에, 책에 실린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열정적이었고,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들이었어요. 책에 실린 인물들이 모두 자기 자신을 사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건 틀림없죠. 주어진 현실에 머물지 않고, 조금이나마 진전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이었어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변화는 계속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리뷰가 무엇인가요? 

“촘촘하게 재미있다”는 한줄평을 보고 웃었어요(웃음). 제가 포인트를 둔 지점을 정확히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더라고요. 인물들에 대한 잔잔한 지식을 넣고 싶었거든요. 디테일에는 악마도 숨어있지만, 진실이 숨어있을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면 수전 손택의 ‘손택’이라는 성이 양아버지의 것이라는 내용 등이요. 또 이 여성 인물들이 끝도 없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수전 손택은 시몬 베유에 대해 비평을 했고, 에이드리언 리치는 수전 손택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했어요(웃음).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성 지식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촘촘히 쓰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이 얽히고설킨 여자들의 역사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것 같아요. 이 순간에도 우리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듯이 말이죠.

원고를 쓰면서 책에 실릴 또 다른 인물을 발굴하기도 했겠네요.  

인물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책을 일별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한 인물에 대해 공부하고 이슈를 살피다 보면 마침 그 분야의 책이 출간될 때가 많았거든요. 여성들의 분노에 대한 글을 쓰는 와중에 ‘브래디 미카코’의 『여자들의 테러』가 출간되는 식이었죠. 그래서 새로운 책을 읽고, 다시 공부하는 작업이 반복됐어요. 결국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이 저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주목해서 보고 계신 페미니즘 이슈나 사건이 있을까요? 

최근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서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가 젠더에 관한 강연을 했어요. 강연 소식이 알려지자 시청자 게시판에 그를 비난하며 방송 중단을 요청하는 글이 쏟아졌죠. 물론 EBS는 그대로 방송을 진행했지만, 이토록 세계적인 석학의 가치있는 강연이 몇몇 혐오 댓글로 곤란을 겪게 되는 광경을 보며 안타까웠고, 충격적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에 대한 혐오와 공격의 형태가 점점 강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러한 공격이 훨씬 더 강력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젠더’라는 단어를 신문에 쓸 수 없었다고요. 저널리즘계에 오래 몸 담고 계신 입장에서 어떤 변화가 느껴지세요? 

젠더라는 단어가 너무 어렵다며 신문에 쓰지 못하게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회사에 젠더팀이 생겨서 젠더 이슈를 열심히 취재하고 있죠(웃음). 제가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한 취재를 혼자 도맡아 했던 10년 전만 해도, 여성 이슈는 발제를 해도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늘 마이너한 주제로 취급됐고, 데스크 승인을 받지 못할 때도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언론사 기자들의 인식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대중의 수준도 많이 달라진 걸 실감해요.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기까지 어려움도 많으셨을 거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백래시(backlash)가 굉장히 심했거든요. 제가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성매매 방지 특별법, 호주제 폐지 등 굵직한 이슈들이 법안으로 통과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요. 그런 이슈에 대해 기사를 쓰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하루에 수백 통씩 메일로 날아왔어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도 십 년의 시간이 걸렸죠. 지금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유진 기자님”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으면 심장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어요. 저뿐 아니라 여성 이슈를 담당했던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상이죠. 여성 기자들을 향한 악의적이고 폭력적인 메일 내용 때문에 고소, 고발까지 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언론사의 대처는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기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생기고 있죠. 한겨레를 필두로 다른 언론사에도 젠더 의제를 다루는 팀이 여럿 생겼다는 것 또한 큰 변화 중 하나예요.



여성의 정체성은 굉장히 모호해요 

저자 소개에 “가부장적인 도시에서 태어나 ‘가시나’라고 불리면서 컸다”고 쓰셨어요. 기자님의 어린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대구 출신인데,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가부장적인 지역 중 하나였어요. 제 아명은 ‘순남’이었고, 순하게 지내면서 남동생을 두라는 의미였죠. 어린시절을 떠올릴 때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 오빠, 저, 여동생이 둘러앉아 수박을 먹는 사진이에요. 오빠는 수박 반 통을 앞에 두고 혼자 먹고, 저는 작은 스테인리스 종지에 담긴 수박을 먹으면서 오빠한테 더 달라고 하고 있어요(웃음).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죠. 

초등학교 때는 투표를 통해 전교회장에 뽑혔어요. 당시 우리 학교 8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이 될 뻔했는데, 선생님들이 우르르 오셔서 이 투표는 무효라고 하셨어요. 여학생이 회장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아서 결국 다른 남학생이 회장으로 선발됐죠. 가정과 학교에서 그런 경험을 거듭하다보면 차별은 디폴트값이 되는 거죠. 

페미니즘에 눈을 뜬 건 언제인가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땐 페미니즘 동아리도 없었고, 여성학 관련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여학생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관련 책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 1995년경에 기자가 됐죠. 그때도 페미니즘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며 언론계에서 좋은 여자 선배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쯤 페미니스트 저널 『IF』가 화제가 되었고, 페미니즘 동인 ‘또 하나의 문화’의 동인지 등을 살펴보며 입문하게 되었어요. 선배들과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레 페미니즘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는 여성학을 공부하셨어요. 대학원에 진학한 계기가 있을까요? 

주로 젠더/여성 분야의 글을 쓰다 보니 여성학회에 가거나 학자들을 만날 일이 많았는데요. 어느 순간, 제가 그분들의 말을 못 알아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학이 굉장히 어려운 학문이거든요. 처음에는 기사를 좀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대학원 입학 전의 이유진과 졸업 후의 이유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임윤경 교수님, 김현미 교수님, 조한혜정 교수님 등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께 배우면서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았죠. 제 인생에서 그렇게 좋은 시간은 다시 없을 것 같아요. 지금도 그 교실로 돌아가서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요.



“가운데 딸로 태어나 평생 모호한 정체성을 가졌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인류가 부르짖어온 ‘인간/혈통’의 시대가 흔들린다는 감각을 갖게 되었다.(326쪽)”는 문장이 마음에 남아요. 

저는 여성의 정체성이 굉장히 모호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가운데 딸’은 더욱 더 식별하기 어려운 정체성이었죠. 스스로 여성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타자의 정체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매순간, 본인이 언제나 타자일 수만은 없잖아요. 이도 저도 아니고, 뛰어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무척 많은데, 그런 여자들과 모호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기사를 쓸 때, 늘 “야마(핵심)가 뭐냐”는 질문을 하는데요. 야마가 없는 삶도 분명 있거든요. 직장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혹은 동시에 그 모든 사람이기도 한 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더 해보고 싶어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답할 수 없어서 우물쭈물하는 사람들. 애매하고 모호하며 소속 없는 자들의 이야기요. 

과거에 쓰신 소개문에서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스트스러움 사이,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스트스러움 사이에 끼어 있다”는 문장을 봤어요. 이 또한 비슷한 의미일까요? 

맞아요. 이 책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작가라고 할 수 없고, 이 책도 저널리스트와 서평가 사이에서 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로 느껴지세요? 

복잡한 실천이 있어야 하는 삶이요. ‘끊임없는 노동’과 ‘복잡한 생각’과 그걸 종합한 ‘실천’이 뒤따라야 하죠. 여성으로 잘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
이유진 저
나무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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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방송인 사유리 “인생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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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 출산 소식을 밝혔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결혼할 남자는 만나지 못해서, 그녀는 정자 기증을 받아 엄마가 되기로 ‘선택’했다. 세상은 그의 출산을 두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해체’나 ‘자발적 비혼모의 용기’를 말하지만, 사유리는 에세이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를 통해 ‘내가 원하는 행복을 스스로 찾아가는 길’을 이야기한다. 

엄마가 된 사유리는 인터뷰에서 ‘두려움’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한 번은 “너무 큰 행복과 함께 찾아온 두려움”을 고백했고, 다음에는 “그 무엇도 겁나지 않는 용감한 마음”을 말했다. 모두 아이를 낳기 전의 사유리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두렵지만, 두려울 것 없다는 그녀의 모순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긴 사람의 모습이었다.

사명감으로 한 일도 아닌데 젠 덕분에 나만 기분 내는 것 같아 괜스레 민망해지기도 한다. 지금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잊지 말고 젠이 자라면 꼭 이야기해줘야겠다. 엄마가 젠을 가져서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다고. 엄마가 네 덕분에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정말 고마워, 젠. (223쪽) 



결혼 대신 출산을 선택했다 

아들 ‘젠’이 곧 돌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얼마 전까지 임신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아이가 일어서서 걸으려고 한다. 앞으로 또 눈 깜빡할 사이에 뛰고, 말하겠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책을 쓴 계기는? 

아이를 낳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젠이 커서 한글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책을 읽고 자연스레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지 알게 될 테니까. 젠에게 쓰는 책이었다. 

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낸 소감은 어떤가.

1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책을 내는 것뿐 아니라 방송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람들에게 욕을 아주 많이 먹거나, 방송국에서 사유리 출연 금지를 시켜서 아예 TV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지’ 싶었는데, 젠의 이야기로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정말 신기하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을 줄은 몰랐다. 출산 소식이 전해진 이후, 걱정과 달리 대부분 사유리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정말 용기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슨 용기가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이가 없는 삶을 포기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아이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사유리의 삶에서 아이를 갖는다는 게 어떤 의미였기에? 

아이를 낳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아이를 갖고 싶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낳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리불순으로 찾은 산부인과에서 내 난소 나이가 48세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난소가 노화되어 임신이 안 되거나, 임신을 해도 유산율이 높을 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계속 ‘빨리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비혼 출산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인가? 

조급한 마음. 어쩌면 영영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다고 하니까 뭐든 빨리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렇다고 소개팅을 해서 결혼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 만나자마자 결혼하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웃음). 지금껏 수십 년을 살면서도 결혼할 남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몇 개월 안에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건 어리석은 일 같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비혼 출산)을 선택했다.

 


행복과 두려움이 번갈아 나를 찾아왔다 

유튜브 채널 <사유리 TV>에서 임신테스트를 하기 전, 긴장하며 울먹이는 모습이 뭉클했다. 처음 시도한 인공수정에 성공했는데,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하고 어땠나. 

행복이나 성공이 바로 눈앞에 오면 기쁨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언젠가 그 말을 듣고 ‘행복하면 좋지, 무슨 두려움이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임신을 확인하려고 하니 두려웠다.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것을 보자 머리가 하얘지면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켜야겠다’는 생각과 유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다. 임신 기간 내내 행복과 두려움이 번갈아 나를 찾아왔다. 

임신을 확인한 날은 반려견 모모코가 하늘로 떠난 지 1년된 날이었다고. 

그렇다. 모모코는 내가 한국에 왔을 때 처음으로 가족이 되어 준 강아지였다.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시절, 무척 외롭고 힘들었는데 모모코가 늘 내 옆에 있어 줬다. 개의 수명이 인간보다 짧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나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한 가족이었다. 모모코가 떠나고 한동안 힘들었는데 정확히 1년 뒤 임신을 확인했다.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뜨자마자 모모코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그렇게 우리는 매일 다른 사랑을 한다(114쪽)”였다. 

젠을 처음 봤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예쁘다. 보자마자 첫눈에 이만큼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정말 이 아이가 내 뱃속에 있었나’ 싶어서 신기한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요즘은 젠이 너무 예뻐서 겁이 날 때가 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치 내 심장을 밖으로 꺼내서 들고 다니는 것 같다. ‘누가 이 심장을 만지거나, 다치게 하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하며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정자 기증자를 “기프트(gift)”라고 칭하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아빠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기프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중에 젠이 기프트를 떠올릴 때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하고,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끼게 하고 싶다. 

“나는 젠이 ‘비겁하지 않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136쪽)”고 했다. 사유리가 생각하는 비겁함이란 무엇인가. 

나는 친구와 만나서 10만 원어치 음식을 먹었을 때, 내가 5만 5천 원을 내고 친구에게 4만 5천 원만 내라고 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젠도 마찬가지다. 남을 위해 약간의 손해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반대로 몇 퍼센트도 손해 보기 싫어서 머리를 굴리고, 어떻게든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욕심부리는 건 비겁한 사람이다. 

“’아이가 받을 차별이 걱정이다’라는 말에는 젠이 떠올라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적어도 그런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은 젠을 차별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차별을 없애는 데 힘써주세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165쪽)”는 부분도 좋았다. 사유리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젠이 차별당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보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으로 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더 크다. 차별을 당한 사람은 그 경험에서 많은 걸 배우기도 한다. 누구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상처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수 있지만, 그때는 내가 옆에서 함께 생각하고 아파하면서 지켜주면 된다. 그래서 차별을 당하는 것보다, 차별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젠이 막 잠들었을 때(웃음). 젠이 자면 밥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딸의 결정을 무조건 지지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이 있나. 

우리 반에 아버지가 안 계신 친구가 있었는데, 한 친구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아빠 없는 너랑은 놀지 말래.” 그 말을 들은 친구가 교실에서 혼자 울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무례한 친구에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번에는 나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유리 너랑도 못 놀아. 우리 엄마가 바보랑 놀면 바보가 옮는대”라고. 속상한 마음에 친구와 손을 잡고 울면서 집에 갔는데, 엄마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엄마도 바보니까 같이 울어버리자!” 그리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었다. 나의 긍정적인 태도는 부모님에게 배운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피해자는 우리가 아니라, 그런 말을 했던 친구였다.  

젠을 대할 때, 어린 시절에 본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나에게는 지도가 하나 있다. 젠을 키우면서 우리 엄마가 그려 놓은 지도를 읽어 나가는 느낌이 든다. 아마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지도를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자기 부모의 모습이 담긴 지도 말이다. 만약 부모님이 나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지도일 테고, 좋은 사람이었다면 ‘이대로 살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지도일 테다. 나는 엄마가 지도에 그려준 길 그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고 있다. 아이와의 사생활을 노출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 

부모님이 일본에 계시기 때문에 손자를 TV로 보게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출연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워킹맘이다 보니 일을 할 때는 젠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너무 감사하다. 다만 젠이 더 커서 방송 촬영이라는 걸 알고, 연기를 하기 시작하면 그땐 바로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어떤가. 

재미있다. 우리 가족의 인생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뿌듯하다. 다만 주말에 젠과 함께 여기저기 나들이를 다니고 싶은데 아직 차가 없어서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 빨리 운전면허부터 따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달라진 생각, 삶의 철학 등이 있나?

나는 모든 걸 귀찮아 하는 사람인데 아이와 관련된 일은 전혀 귀찮지 않다. 다른 사람이 보면 예민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위생적인 부분을 챙기려고 노력한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내 머리가 안 좋은 걸 후회했다. 머리가 좋아서 소아과 의사가 됐다면 젠을 잘 봐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웃음). 

“젠이 태어난 후에 나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게 된다”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았구나, 걱정이 많았구나, 나에게도 이렇게 예민한 부분이 있었네, 앞서 상상하고 슬퍼하는 모습도 가지고 있다니’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 

젠이 엄마의 어떤 점을 닮았으면 좋겠나.

사람을 대할 때 계산하지 않는 것. 나는 ‘이 사람이 뭘 가지고 있으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좋아하면 좋아하고, 싫어하면 싫어한다. 젠이 그런 점을 닮았으면 좋겠다. 

비혼 출산을 선택할 때,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했다는 내용의 ‘행복은 셀프’ 부분은 남녀노소 누구나 위안을 얻을 만한 이야기였다. 

출산 사실을 공개한 뒤, 수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냈다. 특히 성소수자들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나의 개인적인 결정을 보고 힘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의외였는데, 생각해보니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내 삶을 선택한 모습에 용기를 얻은 것 같다. 내가 용감한 사람이어서 그런 선택을 했다는 생각은 정말 오해이지만, 그래도 나로 인해 누군가가 힘을 얻었다니 뿌듯했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럼 사유리가 지금까지 한 선택 중, 최고는 단연 출산인가? 

그렇다. 나는 지금껏 성공한 게 하나도 없다. 운전면허도 두 번 떨어지고, 시험도 다 떨어졌다. 뭐든 중간에 그만둘 때가 많았다. 하지만 ‘젠’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내 삶에는 젠을 낳았다는 자신감이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본인이 살고 싶은 인생이 있는데 사회의 시선, 부모님의 반대 등으로 꿈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도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걸 못하면 평생 한이 된다.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 우리는 나쁜 짓만 빼고, 무엇이든 선택해도 된다(웃음). 이 책을 읽고 인생에는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내 대신 엄마가 되었습니다
후지타 사유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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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정지음, 슬픔을 뒤집고 뒤집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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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은 꽤 괜찮은 친구다.”정지음 작가는 세상은 양쪽으로 봐야 좀 더 재미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실수투성이 자신을 “뭐 어때요”하며 웃어넘기고, 슬픔을 뒤집고 뒤집다 유쾌함에 도달한다. 『젊은 ADHD의 슬픔』은 스물여섯 살에 ADHD 진단을 받은 젊은 직장인이 기울어진 일상을 울고 웃으며 지나온 기록이다. 잘 모르기 때문에 회색으로 오해되는 ADHD인의 일상은 정지음표 유머를 만나 통통 튀며 공감으로 나아간다. ‘ADHD의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는 독자 후기가 이어지는 이유다. 

작가는 ADHD 진단을 받은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화창한 날 모두가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을 보내는데, 홀로 길 위에 주저앉았다. 살면서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정상인’의 범주에서 내쳐진 기분이 들었고, 개성이라 믿었던 모든 특성이 정신질환에 종속되는 것 같았다. 낮에는 ADHD의 증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실수를 수습해야 했고, 밤이면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치열했던 학창시절, 빨리 진단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후회도 됐다.

질환을 껴안고 고통스럽게 자신을 인정하는 시기를 보내며 작가는 생각했다. ADHD를 갖고 태어난 나도 좀더 상냥하고 재미있게 표현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시작은 단순했다. 스마트폰 중독을 해결하려고 어플을 켜서 무작정 쓴 글에 많은 독자들이 응원을 보냈고 브런치북 대상을 받았다. 책 출간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쓴 건, ADHD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신질환이 미화되는 것을 경계했어요. ADHD가 특별한 능력처럼 보이면, 환자들의 진짜 고통이 지워지는 셈이 되니까요. 에디슨이나 스티브 잡스도 ADHD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성공을 이룬 사람만 조명을 받으면, 다른 ADHD인에게는 ‘너는 왜 그렇게 못 하니’ 하는 말이 돌아와요. 저는 오히려 부족함이 조명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ADHD인이 겪는 어려움이 먼저 알려져야 가능성을 봐주는 태도도 생길 테니까요.”

가볍게 시작한 글쓰기였지만, 쓰면서 자기 자신과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 “글을 쓰기 전에는 누군가가 읽어줘야 의미가 생긴다고 믿었는데, 결국 나를 위해 쓰는 것이더라고요.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은 강한 자기고백 욕구가 강할 수밖에 없어요. 사회의 억압이 강할수록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지니까요. 그 마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게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글로 쓰면 적어도 나 자신은 무한한 공감을 보낼 수 있잖아요. 첫 번째 독자는 나니까 한 사람의 인정은 얻은 거죠.” 



ADHD는 유독 오해가 많은 질환 중 하나다. 주변에 증상을 알리면, “나도 ADHD 같아”라는 반응이 돌아올 때도 많다. ADHD의 증상 자체가 먹고 자고 입는 일 등 일상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의 일상에 대입하고 “혹시 나도?”하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심각성이 무시되고는 한다. 

“가장 흔히 받는 오해는 노력과 의지가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 말을 들으면, 이해를 못 받는다는 기분이 들죠. 또, ‘너 약 먹었어?’라는 말이 상처가 될 때도 있어요. 사실 많은 ADHD인들은 부작용 때문에 약을 끊을 생각도 해요. 그런데 실수를 했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면 무척 속상하거든요. 약을 먹지 않은 ‘내’가 부정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결국, ADHD인에게 필요한 건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관계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줘야 하는 입장이면 한쪽이 지치기 쉽잖아요. ADHD인과 비ADHD인 모두 서로 보완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상대가 취약한 면이 보이면 기꺼이 내가 그 일을 맡는다거나, 그 사람이 자신 있는 일을 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건 ADHD인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일일 거예요.”



작가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독자들이 ADHD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는 후기를 보내올 때. “이 책이 찬사를 받기보다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ADHD는 성인 발병률이 약 4%나 되는데도 구체적인 어려움은 잘 이야기되지 않거든요. 오해가 풀리고 논의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ADHD를 전혀 몰랐던 분이나 ADHD 자녀를 둔 부모님도 제 책을 잘 읽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딸이 저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후기였어요. 정말 넓고 깊은 긍정이잖아요. 힘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곤 해요.”

인터뷰 내내, 정지음 작가는 우리가 부정적이라 믿어온 말을 자주 뒤집었다.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게 오히려 돌파구가 됐고, ‘완전히 지는 것’을 받아들이자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다고. 슬픔과 비관을 뒤집고 뒤집는다고 깨끗한 긍정으로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 고통이 둥글어진다.



젊은 ADHD의 슬픔
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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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식 “공무원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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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보고서로 말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무원에게 보고서 작성, 즉 글쓰기 능력은 중요하다. 글을 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민원인을 상대하거나 행사를 이끄는 일이 많은 업무 특성상 효과적으로 말하는 능력은 공직자의 필수 역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직자의 말하기, 글쓰기 실력이 승진 과정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공직자와 말하기,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일 잘하는 공무원은 문장부터 다릅니다』는 공직자를 위한 말하기, 글쓰기 지침서다. 다양한 업무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말하기, 글쓰기 팁을 유형별로 정리해 제공한다. 신문사를 거쳐 국방홍보원 원장으로 일하며 언론인에서 공직자가 된 박창식 저자는 원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쉽고 구체적으로 쓰고 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말과 글을 다루며 보낸 세월만 십수 년, 여전히 말과 글을 다룰 때 가장 즐겁다는 박창식 저자를 만나 공직자의 말하기, 글쓰기에 관해 물었다.


공직자는 글을 써야 한다. 지금은 정부기관이 권력이나 예산을 휘둘러 목적을 달성하는 시대가 아니다. 정책 관계인, 즉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와 공감을 모아나가야 한다. 말과 글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며 합의를 이뤄낼 수 있겠는가. 요즘 시대의 공직자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  (147쪽)



공직자, 말하기와 글쓰기를 잘해야 승진한다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책이다. 어떻게 쓰게 됐나?

신문기자로 일하다 언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말하기와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강의했다. 생각보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고, 학생들의 말하기, 글쓰기 실력이 나아지는 걸 보면서 큰 즐거움을 느꼈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나의 전문분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부하던 중에 국방홍보원에서 일하게 되면서 공직자가 됐고, 그 누구보다 공직자에게 말하기와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공직자를 위한 말하기와 글쓰기 책을 쓰게 됐다.

원고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공직자를 위한 글쓰기로 주제를 바꾸면서 공직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내용을 수정했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내용이 달라졌나? 

출판사와 계약한 건 3~4년 전이다. 신문사 다닐 때였는데 대통령의 말하기와 리더십이라는 제목으로 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원고가 안 써져서 고민하던 차에 국방홍보원으로 가게 됐고, 자연스럽게 대통령에서 일반 공직자를 위한 글쓰기로 책의 방향을 바꿨다.

실제로 글쓰기, 말하기 실력이 공직자의 승진이나 보직 이동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말하기와 글쓰기 실력이 공직자의 승진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말하기와 글쓰기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 가령 민간 기업에 다니는 직원이라면 상품이나 서비스를 잘 판매해서 실적을 올리면 승진할 수 있지만, 공직자는 다르다. 말과 글로 정책 서비스를 전달해야 하기에 말하기와 글쓰기를 못 하면 인정받기 어렵다.

공직자 글쓰기와 일반인의 글쓰기는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 

예를 들어 문학 글쓰기에서는 화려한 수사가 필요하다. 기업의 마케팅을 위한 글쓰기도 비슷하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 공직자의 글쓰기는 다르다. 정책 대상인 시민과 정확하게 소통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쉽게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쓰라’는 조언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만큼 구체적이지 않은 글이 많다는 뜻일 텐데 구체적으로 쓰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과거에 학교에서 받은 글쓰기 교육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관찰과 묘사가 글쓰기의 기본인데 그보다 소감이나 감상처럼 추상적인 것들을 쓰게 할 때가 많았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와 같은 육하원칙을 따라 문장을 구성해야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나. 글을 쓸 때 내용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잘 쓸지’만 골몰하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내가 전달해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꾸밈만 많고 내용이 빈약한 글이 나온다.   

공문서는 딱딱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문서를 작성하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공공기관이 선호하는 특유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어렵게 써야 잘 쓴 글이라는 인식이랄까. 

공문서가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건 사실이다. 공직자가 선호하는 특유의 방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려운 글이 더 정중하다고 생각하는 근거 없는 관습 때문에 일상에서 쓰지 않는 말을 문서에 쓰는 것 같다. 이를테면 ‘생각한다’라고 해도 될 것을 ‘사료된다’라고 쓰는 식이다.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바꾸려고 노력한다.

공직자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개조식 글쓰기’를 꼽았다. 공문서의 상징과도 같은 방식이 개조식 아닌가. 

물론 개조식 글쓰기의 장점도 있다. 단편적인 사실을 간략하고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어 용이하다. 그런데 개조식 문서만 쓰다 보니 서술형 보고서나 업무 백서처럼 개조식으로 쓰기 어려운 문서를 작성하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앞서 말한 제도권 국어 교육의 영향도 있지만, 서술형 글쓰기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더 그렇다.

쉽고 명확한 글쓰기를 위해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공직 사회의 분위기가 달라져야 글쓰기 문화가 바뀔 것 같은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현재 방식의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토론하면서 바꿔나가면 되니까. 쉽고 명확하게 쓰는 방향으로 바뀌면 시민들의 반응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점은 금물, 말이 길면 효과가 없다

공직자의 말하기 실력은 주로 어떤 상황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공직자라면 직급을 막론하고 대외적으로 말해야 할 때가 많다. 민원인을 만나서 특정 사업이나 정책 서비스를 소개할 때, 정책과 관련한 갈등 상황에 있을 때, 시기마다 열리는 각종 행사를 진행할 때 등 다양하다. 모두 공적 메시지를 전하는 상황이다 보니 말실수를 하거나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곤혹을 치른다. 모든 상황에서 말하기 능력이 중요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축사 관련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고위직 인사가 아니고는 축사할 일보다 축사를 듣는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어떤가? 

고위 공직자가 아니라도 살다 보면 생각보다 축사할 일이 많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의 승진을 축하하면서 하기도 하고, 다과회를 하면서 동료의 생일이나 입사를 기념하며 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체로 어떻게 축사하는지 생각해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인터넷에 떠도는 회식용 건배사 같은 걸 찾아서 하지 않나.

축사할 때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축사 받는 대상을 충분히 ‘취재’해야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행사 취재할 일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축사를 듣게 됐는데 ‘이건 아닌데’ 싶을 때가 많았다. 소위 말하는 고위직 인사가 마이크를 잡으면 대체로 지루하지 않은가. (웃음) 축사를 받는 대상을 취재해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소개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뻔한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축사가 많아지면 듣는 사람도 지루하지 않겠다 싶었다. 축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 배경이 있나? 

중국에 있는 조선족 동포 사회를 취재할 때의 일이다. 취재 대상이었던 분들과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축사했다. 축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만났고,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점이 좋았는지, 오늘 이렇게 또 만났으니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기대된다는 내용이었다. 뻔한 말을 주고받는 형식적인 축사가 아닌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긴 축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인연을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축사를 해야 하는구나 싶었고, 그 내용을 책에 담았다.

여러 유형의 말하기를 소개했는데 가장 자신 있는 유형의 말하기가 있다면?

잘하는 유형을 꼽을 만큼 달변가는 아니다. 다만 마이크를 건네는 일은 잘한다. 서너 사람과 둘러앉아 식사하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OO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묻는 식이다. 말의 꼬리를 가져다 물어주고 이어주는 역할을 좋아한다. 사회자 같은 역할이랄까. (웃음) 

말을 독점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다. 꼭 필요한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신나게 말하다 보면 분위기에 취해 말이 길어질 때가 있지 않나. 특히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오르면 말이 많아진다. 그러지 않으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특별한 행사나 기관장으로 말해야 할 때 내용을 최대한 간추리는 편이다. 표현 방식과 순서를 미리 메모해 발언이 최장 7~8분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기도 한다. 말이 길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필을 주도하는 공직자가 되자

뇌리에 꽂히는 ‘스티커 메시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스티커 메시지’를 찾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가지 기술적인 방법을 소개할 수 있다. 숫자를 활용하거나 스토리를 구성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 등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글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자료와 소재를 꼼꼼히 보는 게 아닐까 싶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其意自見)'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지름길은 없다.

좋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사례로 미군의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군대의 일화가 나오는 게 의외였는데 한국군과 미군의 가장 큰 차이를 꼽는다면? 

미 해병대 사령관을 지낸 유명한 장군이 있다. 전쟁의 원리가 무엇인지, 해병대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등을 정리한 해병대 교범을 장교 한 사람과 토의하면서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교본을 집필할 수 있을 정도의 글쓰기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한국과 달리 미군의 고위 공직자들은 글쓰기 능력을 갖췄다는 뜻인가?

물론 미군이라고 모든 글을 직접 쓴다는 건 아니다. 다만 미군의 사례처럼 상급자가 집필을 주도하지 않고 글을 고치기만 하면 실무자가 쓴 글보다 더 좋은 글이 나오기 어렵다는 말이다. 내용을 보완하고 더하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과정에 그치기 때문이다. 상급자가 글쓰기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뺄셈이 아닌 덧셈의 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

‘덧셈의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미국 해병대가 전쟁 시 사용할 수 있는 행동 교범을 만들다 중간에 내용을 바꿨다. ‘How to’에서 How to think로. 즉,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쟁의 본질은 불확실성에 있지 않나. 상대편은 절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How to’와 같은 매뉴얼이 의미 없는 이유다. 사령관이 직접 집필에 참여하지 않고, 글을 고치기만 했다면 일을 수 없는 일인데 글쓰기 능력을 갖추고 집필을 주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글쓰기 책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많이 참조한 것 같은데 다른 글쓰기 책과 이 책의 차별점이 있다면?

다른 글쓰기 책을 비평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책을 쓰면서 세운 세 가지 원칙을 소개하고 싶다. 첫째, ‘다소 부족하더라도 내 경험과 생각을 쓰자’ 둘째, ‘비판적으로 쓰자’, 셋째 ‘지식을 담자’ 이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독자들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면서 썼다.




일 잘하는 공무원은 문장부터 다릅니다
일 잘하는 공무원은 문장부터 다릅니다
박창식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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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교수 "일생의 한 번쯤은, 그리스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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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기 전, 김헌 교수는 답사를 떠났다. 한 차례 그리스 본토에서 4대 ‘범(汎) 그리스 제전’의 개최지를 찾아 그리스 문명을 탐색했고, 그로부터 8개월 뒤 지중해 문명을 찾아 이집트로 향했다. 책과 사진으로 연구하던 고대 문명의 흔적을 두 눈으로 생생히 바라보자 “신화 속에 들어간 듯 했다”는 김헌 교수. 그 경이로운 경험을 그냥 흘려 버릴 수 없어 적어 내려간 이야기들이 책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으로 묶였다. 신을 섬기고,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축제를 벌였던 그리스인의 발자취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값진 깨달음을 준다.



현장이 주는 감동을 담고 싶었다 

"2019년 5월 30일 목요일, 여행용 가방을 끌고 인천공항으로 갔다."는 문장으로 책이 시작됩니다. 어떤 여행이었나요? 

서울대 AFP(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를 수강 중인 한 팀이 그리스에 답사를 가자는 제안을 했어요. 덕분에 10박 12일의 일정으로 '4대 범(汎) 그리스 제전'의 개최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답사 형식으로 그리스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직접 가보니 웅장한 현장감에 감동을 받았어요. 책을 통해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만 알아왔던 곳을 실제로 보니까 '왜 그리스에서 신화가 탄생했을까'에 대한 감각이 느껴지더라고요 문명과 신화에 대한 사유를 깊이 하게 된 의미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그 여행기가 책으로 묶였습니다. 

그리스 기후를 몸소 체험하고, 현장의 공간감을 느끼다 보니 그리스인들이 왜 이 자리에 신전을 세웠고, 어떻게 모여서 시간을 보냈을지 생생히 그려지더라고요. 신전을 둘러싼 바다, 산, 들판의 어우러짐 등을 피부로 느끼며 역사적 맥락을 보게 된 거죠. 기록을 하지 않으면 이 귀한 경험이 흩어질 것 같아 틈틈이 메모를 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았죠. 그리스의 신화와 축제에 대한 책을 만들자는 내용이었는데, 답사를 다녀온 덕분에 여행담을 이야기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어요. 

책을 쓰는 것도 즐거우셨을 것 같아요. 여행을 복기하며 글을 쓰는 작업은 어땠나요? 

교수들끼리 "논문의 독자는 아무리 많아도 10명이 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하거든요(웃음). 학자로서 논리의 엄밀성을 중요하게 추구하는 글을 주로 쓰다 보니 어느 순간 회의가 들었고, 그래서 대중적인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는데요. 앞서 펴낸 책들도 즐겁게 썼지만 이번 책은 특히 더 흥미로웠어요. 몸이 느낀 공간감을 더 많은 분들이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감성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죠. 한 번쯤은 그리스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를 바랐거든요. 

장강명 소설가의 추천사가 떠올라요(웃음). "지금 당장 떠나고픈 욕구를 참을 수 없이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이 책의 아주 큰 단점이다."

책을 쓰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을 장강명 작가님이 알아봐 주셔서 고마웠어요. 비단 그리스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명승지 등도 현장을 가보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죠.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칭송 받는 것들을 실제로 보고, 경험하는 것은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리스 신화의 배경이 된 풍경

앞서 '현장의 감동'을 거듭 말씀하셨는데요. 실제로 가서 보니, 다르게 느껴졌던 장소가 있다면요. 

올림피아가 인상적이었어요. 경기장 역할을 했던 스타디온과 신전들이 배치된 맥락이 보였거든요. 사진을 보거나 책을 읽었을 때는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못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길이 그렇게 날 수밖에 없는 지형이더라고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스타디온을 짓고, 그리로 들어가기까지 신들의 가호를 받을 수 있도록 신전을 배치한 거예요. 

그리스인이 운동 경기를 하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었어요. 하나는 '죽은 자를 추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죠. 살아있는 사람들이 뛰고, 땀 흘리고, 경쟁하는 모습이 죽은 자에게 위로를 준다고 생각했고, 반대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생생히 느꼈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인간은 신 앞의 작은 존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죠. 현장에 가면 그 맥락이 보여요. 선수들이 연습하는 씩씩한 움직임을 보며 걷다가 벽 너머로 자리한 신상의 위용 앞에서 겸허해지는 일련의 경로를 통해 마음을 가다듬는 거죠.  

디오뉘소스 극장 옆에,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병원)이 자리한 것도 독특했어요.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가 이렇게 지을 것을 제안했다고요. 

당시 아테네는 혼란의 시기였어요. 밖으로는 스파르타와 전쟁 중이었고, 안에서는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나갔죠. 사람들을 치료하고,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리는 게 국가적 과제였던 그때, 아테네인들은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는 신전을 세우고 대규모 희생제를 열어 돌파구를 찾으려 했어요. 그리스인들은 병이 나으려면 의술이 아니라 신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오이디푸스 왕』의 작가 소포클레스는 병을 고친다는 건, 국부적인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극장에서 비극, 희극 공연을 보며 인생에 대해 통찰하고, 신전에 돌아와서는 신체의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러한 제안을 한 거죠. 실제로 신전에서 극장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걸으면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몸과 마음을 모두 치유해야 한다는 개념은 현대 의학에서도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네요. 

우리의 병원이 어떤 모습인지 역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죠. 현재의 병원은 의사의 권위에 환자가 주눅들고, 기능적인 측면에 치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물론 병원 안에 극장을 지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심신의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리스인의 정신은 배울 수 있어요.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친 이 시점에서도 아테네인들이 신전을 지어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우던 방식 등은 시사하는 바가 많죠. 

여전히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경험 혹은 장소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지역이 다 기억에 남지만 특히 크루즈를 타고 에게해를 나갔을 때 너무 좋았어요.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고, 곳곳에 육지와 섬이 보이는데 그 질감이 무척 거칠어요. 황토빛 땅과 새파란 바다빛, 하늘빛의 대조가 정말 신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시각적인 선명함이 주는 유쾌하고 명랑한 기운이 자연조건으로 자리한 게 인상적이었죠. 그런 독특한 풍경들이 먼 옛날 그리스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신화를 만들도록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고전, 선조들이 필사적으로 전한 이야기 

고대 그리스 문학의 어떤 점에 매료되어 서양 고전학자의 길을 걷게 되셨어요?

아버지 서재에 철학책이 많아서 어린 시절부터 철학에 관심을 가졌어요. 복잡하고 어렵지만 멋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으로 철학과에 진학했죠. 본격적인 공부는 대학원에 가면서 시작됐어요. 저는 플라톤을 연구했는데, 플라톤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그리스어를 잘 알아야겠더라고요. 때마침 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는 협동과정이 생겨서 참여했는데요. 매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만 읽다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등을 읽으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웃음). 또 그걸 표현하는 그리스인들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죠. 고대 철학의 산문에서 느끼지 못했던 그리스 운문의 운율,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치열한 행위들을 보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리스 신화를 아는 게 현대인의 삶에도 유용할까요? 

플라톤의 『국가』는 2400여 년 전에 쓰여진 책인데 여전히 사람들이 진지하게 읽어요. 그 시대에 플라톤만 철학을 하고 책을 쓴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여전히 플라톤은 살아남았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플라톤이 '수천 년 뒤에도 통할 수 있는 게 뭘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의 문제를 탐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수백, 수천 년 뒤를 예측하고 통찰했던 사유와 태도를 배우는 것은 우리 삶을 내다보는 데 아주 유용하죠. 

그리스 로마 신화도 마찬가지예요. 단순히 기괴한 괴물들이 나와 요술을 부리는 이야기에 그쳤다면 여태껏 읽히지 못했겠죠. 그 이야기 속에는 인생에 대해 깊이 깨달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삶의 지혜가 담겨 있어요. 이걸 전제하고 신화를 들여다보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죠. 예컨대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자식을 통해 자기 권력을 확장하기 위함이었어요. 제우스가 결합을 시도하면 언제나 여자 쪽에서 다 거부를 하는데요.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상대가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대상으로 변신해서 끊임없이 다가가죠. 결국 제우스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인물인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도 질문을 던질 수 있어요. '당신은 자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제우스만큼 적극적이었는가. 그만큼 자기를 낮출 수 있는가.' 이러한 지혜가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거죠. 

갑자기 제우스가 다르게 보이네요(웃음). 

저는 제우스 앞에서 항상 부끄러워요. 어떤 일을 할 때, 종종 자존심을 내세우며 주저 앉을 때가 많거든요.

언젠가 독자들이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을 때, 꼭 가보면 좋을 장소를 추천해 주세요. 

어디로 가는 여정이든 한 번은 배를 타는 기회를 꼭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리스인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바다의 기운을 통해 해양문명을 이룬 그리스의 정수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김헌 저
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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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추리소설은 저의 고향 같은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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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이자 고서적 수집가 ‘유명우’는 어느 날,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작은 책방 ‘기억 서점’을 열기로 한다. 그간 어렵게 수집해온 고서적을 판매하겠다는 것이었다. 서점은 예약제로만 운영되며, 책이 자신에게 왜 필요한지 잘 설득하기만 한다면 희귀한 책들을 무료로도 주겠다는 유명우의 말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나저나 유명우에게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유명우가 서점에서 기다리는 ‘그’는 과연 유명우가 던져 놓은 미끼를 물 것인가.

SF, 역사 소설, 청소년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써오며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 ‘NEW 크리에이터상’,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수상한 정명섭 작가는 “추리소설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기억 서점』은 그런 그가 정말로 쓰고 싶었던 이야기.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 서점의 실제 모델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니은서점’으로, 정명섭 작가는 “국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꼭 써보고 싶었다”며 ‘니은서점’을 운영하는 노명우 교수에게 허락을 구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억’이라는 것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야기했다.


『기억 서점』의 등장 인물 중에 기억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우리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실 사람은 과거에 발을 딛고 앞을 봐야 하지만 어떤 순간은 과거와 결별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그런 무거운 기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이 소설을 보시고 기억에 대한 무게를 좀 덜어내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분이 칼을 들면 어떨까

은퇴한 교수가 운영하는 서점이 배경인 추리소설이에요. 이 서점의 실제 모델이 ‘니은서점’이라고 밝히셨는데요. 

저는 큰 서점도 좋아하지만 서점 전체가 한 눈에 보이는 작은 공간을 되게 좋아해요. 그 안에 마음에 드는 큐레이션이 되어 있는 색깔 있는 곳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니은서점’이 딱 그런 서점이었어요. 여력이 되면 진열되어 있는 책을 다 사고 싶을 정도로 큐레이션이 좋더라고요. 한편 제가 ‘니은서점’ 북토크 최다 출연자거든요.(웃음) 북토크 할 때 서점을 운영하시는 노명우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이분이 칼을 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거예요. 그게 2년 전이었어요.

칼이요? 

장르에 여러 규칙이 있지만 무엇보다 저는 ‘뒤집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뒤집음은 반전과는 조금 달라요. 뒤집음이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그러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도 ‘1번’이 그런 역할을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못해서 많이 놀랐잖아요. 그런 뒤집음을 좋아하는데요. 이러한 맥락에서 노명우 교수님 같은 분이 칼을 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북토크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을 드렸죠. “이 서점을 무대로 쓰고 싶은데 서점을 좀 망가뜨려도 괜찮냐”고요.(웃음) 교수님이 얼마든지 괜찮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쓸 수 있었어요. 당연히 허락이 없었으면 불가능했고요. 그래서 보시면 알겠지만 이름도 그렇고, 주인공 ‘유명우’와 외모도 노명우 교수님과 거의 비슷하게 그렸어요.

국내 독자들이 국내 작가의 작품을 볼 때 느끼는 남다른 밀착감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이 작품에도 실제 지명뿐만 아니라 실제 있었던 범죄자의 이름 등이 등장하죠.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실제 모델이 되는 서점과 인물이 있다는 것이 독자들에게 더 흥미로운 요소가 될 것 같아요. 

추리 소설이나 범죄물은 굉장히 현실적이잖아요. 사람이 죽고, 다치고, 실종되고, 범죄가 일어나는데요. 배경이 항상 뉴욕, 로스앤젤레스예요. 사람 이름도 어려워서 이름을 따로 적어 놓거나 앞으로 넘어갔다 돌아와서 다시 읽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국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꼭 써보고 싶었어요. 그런 열망이 아마 저를 추리 작가로 이끄는 하나의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라고도 생각해요. 

‘작가의 말’에 “추리소설이 내 정체성”이라고 밝히셨잖아요. 역사 소설, 청소년 소설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하시면서도 추리소설에 이렇게 큰 애정을 갖고 계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다고 다른 장르가 별로라는 뜻은 아니고요. 다만 추리소설은 저의 고향 같은 것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것도 추리소설이고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굉장히 오랫동안 준비를 했던 셈이죠. 출판사 선정부터 기획하는 것까지 모두 개인적인 의미가 컸어요. 다른 책도 비슷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감정이 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작품이죠.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추리 소설을 쓸 때가 됐다, 라고 생각하셨을 때가 정확히 언제였어요? 

그게 2019년이에요. 그 시점에 니은서점에 가서 여기 배경으로 추리소설을 써도 되느냐고 물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한 소설

올해만도 여러 권의 책이 나왔잖아요. ‘작가의 말’에 밝혔듯 지금까지 공저를 포함 130여 권의 책을 쓰셨고요. 엄청난 생산력인데요. 작가님은 초고를 엄청 빨리 쓰시는 편이라고요? 

네,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요. 그래서 초고를 빨리 쓰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대신 퇴고는 천천히, 오래 합니다. 초고를 빨리 쓰려고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가 퇴고 시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하고요.

『기억 서점』의 경우는 초고를 얼마만에 완성하셨어요? 

초고 자체는 두 달 조금 안 걸렸던 것 같아요. 그전에, 작품의 구상은 더 오래됐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니은서점’에서 노명우 교수님한테 이런 소설을 쓰겠다고 얘기한 게 2년 정도 됐으니까요. 

기획과 구상, 자료 조사를 사전에 최대한 해두기 때문에 초고가 빨리 나오는 것이겠네요. 

맞습니다. 취재를 꼼꼼하게, 오래 하는 편이에요. 자료 조사나 구상은 글을 쓰면서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다른 작품을 쓰다가 잠깐 쉴 때 현장을 간다든지 하면서 차곡차곡 이야기를 짜두고요. 어느 시점이 돼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시점이 되면 그때 초고 작업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쓰고 있어요.

『기억 서점』 같은 추리 소설의 경우에 반전도 꽤나 중요하잖아요. 작가님은 결말을 다 정해두고 진행을 하시나요? 

때마다 다르긴 한데요. 『기억 서점』의 경우에는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한 것이에요. 그 장면이 먼저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살인마가 이 함정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또 이걸 만든 사람은 어떤 기분을 만들었을까 같은 생각을 가지고 거꾸로 역주행한 거죠.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캐릭터가 먼저 떠오르고요. 그 다음에 캐릭터에 맞는 사건이나 설정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제게는 모든 공간 자체가 소재가 되거든요. 예를 들어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공간도 제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 때 중요한 모티브가 돼요. 제가 생각하는 어떤 등장인물이 이 캐릭터와 이 공간 안에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할까, 라는 식의 생각들을 끊임없이 해보는 거죠. 그러다가 어느 지점들이 딱 마주칠 때가 있어요.

『기억 서점』에서 작가님이 가장 재미있게 쓴 장면을 꼽는다면요? 

유명우 교수가 방송에 나오는 『기억 서점』의 도입 장면인데요. 유명우 교수에게는 15년 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이 시작되는 첫 번째 발걸음이잖아요. 그런 점들이 묘사되는 장면이라 중요했어요. 사실 그 장면이 잘 쓰였기 때문에 다음까지 잘 쓸 수 있어요. 만약 그 장면이 안 풀렸다면 어려웠을 것 같거든요. 저는 글 쓰면서 희열을 그렇게 많이 느껴본 적은 없지만 그 장면을 쓰고 나서는 굉장히 안도감이 있었어요. 이 다음에 잘 써지겠구나, 잘 붙었다, 하고요.(웃음) 


은행 금고 같은 두툼한 문이 열리자 긴 터널 같은 통로가 보였다. 통로 위쪽의 형광등이 나갔는지 어두컴컴했다. 그걸 본 유명우 교수는 옛날 생각이 나서 흠칫 놀랐다. 그 바람에 뒤따라오던 FD가 휠체어 바퀴를 걷어차고 말았다. 놀란 FD가 사과하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차린 유명우 교수는 얼굴을 찡그린 FD에게 사과하고는 어둠에 휩싸인 통로로 들어섰다. 이를 악문 채.

_(11-12쪽) 


말씀하신 그 장면에서 출연 직전, 어두운 스튜디오 뒷부분을 지나면서 인물의 심리, 이전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는 감정까지 한꺼번에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중요하게 읽히기도 했어요. 

제가 실제로 경험을 하기도 한 장면이에요.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려면 좁고 긴 통로를 지나가야 되거든요. 그러면서도 저기 스튜디오 안이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잖아요. 게다가 빨리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분장부터 의상까지 모든 과정이 기계적으로 돌아가죠. 그래서 약간 부속품이 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더구나 유명우 교수는 휠체어를 타고 가야 되잖아요. 휠체어를 타고 가면서 느끼는 감정은 좀 다를 거거든요. 시선의 높이가 다르니까요. 뭔가를 시작해야 되는 순간인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복잡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15년 전 자신이 다리를 다쳤던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니까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독자들이 납득을 해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죠. 이 부분이 잘 써진 게 저도 안심이 많이 됐어요.

몰입감을 위해서 작가님이 특별히 신경 쓰는 게 있다면 뭘까요? 

장르 소설 같은 경우는 가독성이 특히 중요하죠. 저는 가독성의 핵심을 동선이라고 봐요. 예를 들어 어떤 공간에 들어와서 문을 열고, 앞에 놓인 장식품을 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피아노 사이와 진열대 사이를 지나고, 소파에 가방을 놓고, 이 자리에 앉았다, 라는 서술을 하면 좀 다르죠. 그냥 문 열고 들어와서 의자에 앉았다, 라고 하면 흥미가 떨어지잖아요. 독자들에게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주면 긴장감 또는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야 할 때 훨씬 몰입이 쉬워져요. 이런 식으로 독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장면을 현실감 있게 만드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죠. 제가 독자였을 때도 그 점이 어떤 작품이 재미가 있는지, 혹은 재미가 없는지를 결정했던 것 같아요. 



자료 조사의 진정한 가치

『프로의 장르 글쓰기 특강』에서 습작과 자료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잖아요. 취재는 어떤 방식으로 하세요? 

할 수 있는 한 현장에는 꼭 가보려고 노력하고요. 필요하면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경우가 많아요. 책이 완성되는 과정 전체를 100으로 본다면 저는 자료 조사, 인터뷰가 60 이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나 다 몽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요.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뼈를 붙일 수 있는 건 현실이기 때문이에요. 특히 추리 소설로 대표되는 장르물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나 공상이라고 해도 현실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억 서점』에서도 계속 실제 지명을 언급하잖아요. 그러면 이 서점이 진짜로 어딘가에 존재하는 서점처럼 느껴져요. 그러면 독자는 좀 더 몰입할 수 있죠. 그것이 저는 자료 조사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한편 취재한 내용이 작품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 같아요. 취재한 자료들은 어느 정도나 작품에 반영되나요? 

‘만족할 때’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어떤 특정한 주제로 쓰겠다 하면 ‘이 정도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그 장소를 가보고, 인터뷰하고, 자료를 찾으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데요. 어떤 건 며칠 조사로 될 때도 있고, 어떤 건 해를 넘길 때도 있죠. 그건 알 수 없어요. 다만 이러한 사전 작업을 충분히 하지 않고 쓰기 시작하면 나중에 책이 만족스럽지가 않더라고요. 사실 역사물 같은 경우는 논문을 굉장히 많이 읽는데요. 논문 전체가 하나도 반영 안 될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걸 억울하게 생각하면 안 되죠. 이 부분이 가장 위험한 부분인데요. 내가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보상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들을 사람이니까 당연히 하게 되거든요. 그걸 뛰어넘어야 해요.

『기억 서점』에는 여성 대상의 범죄, 어린이 대상의 범죄가 등장해요. 이런 에피소드를 작품에 반영할 때 조심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관심이 있어서 조사를 좀 했었어요. 그 와중에 피해자 가족 분들이 시위를 하고 계시는 걸 찾아가서 봤는데요. 그 더운 여름에 시위하시는 모습과 시위를 끝내고 말씀하시던 모습을 보고 이 사건에 관해 조사한 내용을 다 버렸어요. 어쩌면 제 글이 당사자한테 고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창작의 자유에 대한 많은 얘기를 하지만 저는 그게 개인의 감정보다 우선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도 작가이기 이전에 개인이니까 그런 부분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실존 인물이 아닌 사람들로 하고 있고요. 나머지 인물들도 특정 인물이 연상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특정인을 연상시킬 수 있다면 꼭 그 사람에게 사전에 허락을 받고요.

지금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민감하게 보여주지만 특정 범죄를 연상시키는 것은 절대 안 하려고 한다는 말씀이군요. 

네, 활자라는 게 한 번 나오면 지우기가 굉장히 어려우니까요. 한편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범죄 통계를 볼 수 있는데요. 두 가지에 크게 놀라실 거예요. 우선 한국에 범죄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는 점이에요. 특히 살인은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줘서 그렇지 외국에 비해서 많지 않은 편인데요. 두 번째 놀라실 지점이 살인 사건과 강력 사건의 가해자 상당 부분은 가족과 아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또 피해자는 대부분 노인, 여성, 어린이죠. 특히 어린이가 그래요. 매년 아이들이 입학해야 하는데 안 오는 아이들이 있어서 조사를 해보면 한 해에 꼭 몇 명씩은 몇 년 전에 사망했거나 실종된 사례들이에요. 그리고 대부분은 부모에 의해서 사망한 경우죠.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안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 굉장히 잔혹한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고요. 그 사실에 대한 얘기들을 『기억 서점』에서 해보고 싶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호기심

유명우 교수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해지는데요. 다음 이야기가 나올까요? 

보시면 유명우 교수는 과거의 그 기억에서 벗어나요. 다음에 똑같은 캐릭터로 또 이야기를 쓰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때는 좀 다른 얘기가 나올 거예요. 유명우는 과거를 털어버렸으니까요. 

다음 작품도 준비하고 계시죠? 

시공사와 계약한 책 역시 공간에 관한 거예요. 역시 추리물이고요. 존재했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실존하지 않는 공간이라 자료가 극히 부족해요. 당시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거든요. 건물 자체는 없어졌고, ‘안에 들어갔더니 뭐가 있었더라’라는 증언 정도만 가지고 있어서요. 완전히 다시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있어요. 

『기억 서점』이나 차기작 모두 어떤 공간의 빈 틈에 이야기를 채우는 거네요. 이런 작업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무척 좋아했는데요. 역사에 대한 관심도 실은 건물이나 탑 같은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지금은 사라진, 또는 남들이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을 변주시키는 걸 재미있어 하는 것 같은데요. 서점도 그렇죠. 죽음과는 아주 거리가 먼 공간 중에 하나잖아요. 원래 있는 걸 뒤집는 작업을 좋아하는 데다 일단 그 공간에 대해서 제가 호기심을 느껴야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요. 가급적 실제 존재했던 공간을 가지고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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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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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작가 양다솔 “절대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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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서, 괜찮을 거야.”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딸은 자신의 이야기를 엮으며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 이름 붙였다. 지난 10년간의 기록이었고, 독립출판물 『간지럼 태우기』와 메일링 프로젝트 '격일간 다솔'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양다솔의 글’이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란, 이를테면 수렵 채집인의 그것이다. “하루를 마치 하나의 삶처럼 살아내던 이들”의 마음. 그들은 절벽 위에 서서도 ‘내가 살고 싶은 하루’에 대해 생각했다. 양다솔도 그렇다. “절벽에서 보이는 풍경은 오늘도 아름답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정말 이상하게도, 전혀 가난해지지 않는다”고 쓴다.



오늘 ‘하루’만큼은 나의 것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이번 책에 『간지럼 태우기』에 실린 글들이 많이 들어갔는데요. 그 책을 쓸 때도, 제가 살면서 썼던 글들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기가 참 쉽지 않더라고요. 이번 책을 낼 때도 제목에 대해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어머니가 힌트를 주셨어요. 사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전혀 칭찬하거나 그러시지 않고 되게 비관적인 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 몇 개월째 백수로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도 잘 모르겠는데, 의외로 그렇게 사는 거에 대해서 뭐라고 하신다든지 다그치시지 않는 거예요. 어느 날은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마음이 가난하지 않아서 괜찮을 거라고. 절대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을 거니까. 그 말을 듣고 ‘내가 항상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런 마음에서 모든 글들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말씀에서 힌트를 얻어서 제목을 짓게 된 거예요.

동명의 글이 첫 꼭지로 실려 있어요. 책에 담긴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는 글이에요. 

이 책을 관통하는 마음가짐이 그랬다는 것을, 적어도 한 꼭지의 글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되게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사실은 이 마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의 글에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는 ‘절벽’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절벽에서 보이는 절경”에 대해 “아슬아슬하고 평화롭고 아찔하고 몹시 아름다웠다고 쓰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실은 쉬는 기간이 좀 길었는데요. 대부분 사람들은 회사에서 나오면 당장 불안감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똑같을 텐데’ 이러면서, (웃음) 그냥 쉬고 싶은 만큼 쉬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 시간을 너무 여유롭게 보냈어요. 보통 스펙을 쌓는다든지 뭔가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행동을 하는데, 저는 그냥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있음과 동시에, 사실상 별 수 없기 때문에 ‘아, 이제 또다시 노역을 하러 가야 될 때가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제가 어디를 다니든 저를 지키는 하루의 여러 가지 행위들을 놓치지 않을 거고 열심히 저답게 살려고 할 거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또 어떤 일이든 해야겠죠? 그렇게 담담하게 생각합니다.



내 ‘하루’를 산다는 것

“어쩌면 나의 조상은 수렵 채집인인지도 몰랐다”고 쓰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정착한 사람은 아무래도 계획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수렵 채집인들은, 계획이 뭐예요, 당장 주변에 있는 것들로 자기를 지키고 살리는 게 너무 중요하죠. 예전부터 저는 당장 오늘 하고 싶은 일들은 있는데 내년이나 내후년, 더 나중에 뭘 해야겠다거나 ‘이런 사람이 돼야지’ 하는 것들에는 깜깜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시대는 계획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잘 살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를 되게 무력하고 멍청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수렵 채집인의 존재와 역사를 알게 되면서 많이 위로 받았어요. 어쩌면 나는 정착민의 유전자보다 수렵 채집인의 유전자를 더 많이 갖고 있어서, 본능적으로 나의 근미래와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살게 하는 것에 대해 훨씬 더 관심이 있고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멋대로 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으면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이 책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돈이 없다거나 지금 당장 삶이 막막하다고 해서 ‘하루’까지 그냥 넘겨버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오늘 하루만큼은 너무나 내 것이고, 내 의지대로 살아볼 수 있는 거고, 내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포기를 하고 ‘내가 이 정도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가난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마음만큼은 엄청 돈 많이 벌어놓은 중년 여성처럼 살고 있는데요. (웃음) 모르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매우 가능하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나중에 부를 얻고 나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더라고요. (웃음)

십대 때 글방에서 친구들과 글을 쓰기 시작하셨죠. 그 시기부터 계속 혼자 글을 쓰셨어요?

혼자는 아니고, 친구들하고 모임에 가져가야 되니까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글을 쓰면 무조건 친구들한테 보여주는 게 기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럴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요? ‘너는 글을 써야 된다’고 했나요?

글이 정말 좋다고, 계속 쓰라고 했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저한테 너무 소중한 순간이 있으면 외장하드에 담듯이 글을 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간지럼 태우기』가 탄생하고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으로 이어졌군요. 

네. 이번 책에는 '격일간 다솔'의 글도 많이 들어갔는데요. 사실 『간지럼 태우기』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제가 살면서 했던 시도 중에 제일 잘 됐어요. 통계학적으로, 본인이 했을 때 제일 잘 된 걸 더 해봐야 되잖아요. 사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는 거거든요. (웃음) 누가 쓰라고 해서 쓰게 된 것도 있지만. 그래도 글쓰기라는 것은, 제가 유일하게 사활을 걸고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정말 1의 뺀질거림도 없이 최선을 다해서 무진 애를 써가며 쓰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자기가 가진 에너지를 순수하게 다 소진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격일간 다솔'도 이슬아의 제안으로 하게 된 거였는데, 제가 우물쭈물하고 있다 보니까 옆에서 떠밀어주는 친구들이 있고 저는 또 기꺼이 떠밀려서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잖아요. 그러면 최선을 다해서 하면 좋고요.



슬픔은 입장 차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서 “그녀와 내가 남남으로 만났다면 이것보단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에겐 엄마밖에 없었고, 엄마에겐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대표해서 서로를 증오했다”고 쓰셨어요.

저는 아버지도 (출가하셔서) 안 계시고, 또 외동딸이기 때문에, 진짜 세상에 나랑 엄마밖에 없다고 느끼는 때가 되게 많아요. 너무 사랑해도 당신밖에 없고 너무 싫어해도 당신밖에 없으니까... ‘감정이라는 게 무력해지는 어떤 차원의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뭐랄까요. 그녀가 저한테 얼마나 상처를 주든, 얼마나 고치기 어려운 사람이든,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그녀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그녀가 제발 부디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게 나한테 너무 중요한 거죠. 그녀가 어딘가에 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냥 나한테 너무 큰 의미인 거예요. 진짜 그 사람마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 그냥 백지 같은 그런 느낌이죠. 되게 무서우면서도 인생이 반쯤 끝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고. 그래서 저를 위해서 그녀에게 더 잘해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가 더 내 곁에서 오래 행복하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출가하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 멀어짐에 대한 아픔을 굉장히 늦게 느끼신 것 같았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아빠에 대한 감정이 되게 복잡했던 것 같아요. 「나의 코미디언」이라는 글을 정말 많이 울면서 썼는데요. 뭐랄까... 그래도 내가 당신을 너무 사랑했고, 당신이 간 게 너무너무 슬프고, 그러고 보니까 당신이 간 이후로 당신만큼 웃긴 사람을 만난 적이 없고, 당신이 나한테 줬던 기억들이 나한테는 너무너무 근본적이고, 당신 같은 존재가 없다는 걸 거의 처음으로 인정한 글이거든요. 그게 불과 최근에야 가능했기 때문에. 사람이 정확한 때에 제대로 슬퍼하지 않으면 평생 숙제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아빠가 제가 어린 시절에 가지 않고 크고 나서 가주신 건 너무 감사하거든요. 덕분에 제가 이렇게 밝고 씩씩한 사람이 됐으니까. 지금도 셋이서 같이 살던 때가 꿈에 나올 정도로 너무 그리워요. 제가 외롭지 않았던 유일한 시기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님의 글에서는, 떠올리기 힘들 것 같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계속 웃음이 묻어나요. 

제 생각에는 저의 가장 큰 방어 기제가 일단 유머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유머로 자기의 어떤 걸 얘기할 수 있다는 건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농담이라는 건 상대가 공감하지 않으면 웃지 못하잖아요. 나의 어떤 사건에 대해서 나의 시선에만 잡혀 있지 않고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그 문제를 꼬아버릴 줄 아는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게 되게 다행이라고 느껴요. 또 나한테는 엄청 슬픈 얘기가 누군가랑 얘기하다 보면 갑자기 웃긴 얘기가 돼버릴 때도 많은데, 저는 그게 좋아요. ‘슬픔이라는 게 입장 차이구나’, ‘내가 이 얘기에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슬픈 거지, 한 걸음만 떨어진 사람이 보면 웃긴 얘기인데’ 싶은 거죠. 그런 가능성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스탠드업 코미디 그룹에서도 활동하시잖아요. 

네, 그래서 제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굽이굽이 슬프고 힘든 일도 많지만 보면 다 웃기구나, 그냥 우리 사는 게 참 웃기다, 사실 사람이 사는 얘기가 제일 웃기다, 생각해요. 그런 슬프고도 웃긴 얘기가 될 때 되게 좋은 것 같고요. 웃기기 위해서 어떤 이야기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진짜 슬프게 얘기해야 될 이야기를 슬프게 얘기하지 못하는 거면 안타까운 경우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슬픈 얘기는 슬프게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는 얘기도 많다고 생각해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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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튜브 김도윤 “섭외 잘하는 비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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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수 95만 명을 보유한 재테크 채널 ‘김작가 TV’의 운영자 김도윤 작가. 소득 상위 1%의 성공을 거둔 그의 명함과 유튜브 채널 메인에는 “지금처럼 살거나 지금부터 살거나”라는 문장이 잠언처럼 적혀 있다. 그는 운이 따르지 않는 ‘지금’을 벗어나 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비결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대구에서 상경한 그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10여 년간 성공한 인물 1,000여 명을 인터뷰했다.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요?”라는 물음에 하나같이 “운이 좋았다”고 답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성공의 비밀이 ‘운’에 있다고 직감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운을 내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책 『럭키』에 담겼다.



“운이 좋았다”는 말에 담긴 비밀  

어떻게 쓰게 된 책인가요? 

지난 10여 년간 『최후의 몰입』『1등은 당신처럼 공부하지 않았다』『유튜브 젊은 부자들』 등의 책을 쓰며 1천여 명의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어요. 일하는 분야도, 나이도, 성별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죠. 성공의 비결을 물으면 약속한 듯 “운이 좋았다”고 대답한 거예요. 처음에는 겸손이자 체면을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수백 번 같은 답을 듣다 보니 ‘운에 비밀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택시를 탔는데요. 기사님께 “그동안의 인생이 어떠셨나요?”라고 물으니 “운이 없었고, 세상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른 나이에 명예퇴직을 당한 저희 아버지도 늘 같은 말을 하며 자주 신세한탄을 하셨거든요. 누군가는 “운 덕분에” 인생이 풀렸다고 하고, 누군가는 “운 때문에” 인생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차이에 성공의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가 작가님의 인생을 바꾼 셈이네요. 

완전히 바꾸었죠. 『럭키』를 출간하고, 이런 리뷰를 봤어요. ‘성공한 사람 천 명을 만났더니, 그들을 인터뷰한 사람이 성공해버린 이야기’라고요(웃음). 인터뷰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들이 있었죠. 실제로 성공한 사람을 주변에 많이 두는 건 나를 성공의 방향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30대 초반 시절, 왜 나는 이렇게 운이 없을까 한탄했다(93쪽)”고요. 작가님은 언제부터 운이 트이고 있다고 느끼셨나요? 

저는 지방대를 졸업했고, 30세가 넘어서 취직을 했어요. 또 형은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시도를 했고, 어머니도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셨죠. 객관적으로 봐도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계속 무언가를 해보려고 시도했죠. ‘나는 흙수저라서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대신 ‘인맥이 없다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때부터 좋은 운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김작가TV의 구독자가 많아서 영상에 출연해주시는 분들께 저도 도움을 드릴 수 있지만, 처음 책을 낼 때의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었잖아요.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저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고 소중한 시간을 내주셨어요. 그 자체로 굉장한 운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동시에 “운이 제 발로 찾아온 건 아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인터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던 결과니까요.



운은 한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운을 만드는 일곱가지 열쇠의 첫 번째는 ‘사람’이었어요. 

조그만 가구 하나를 조립할 때도 설명서가 없으면 헤매잖아요. 이와 똑같아요. 혼자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성공하기란 너무 어렵지만, 이미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그보다 쉽게 길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각 분야의 성공한 사람을 만나는 게 시행착오를 줄이고 운을 빠르게 당겨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은행원을 꿈꾸는 학생에게는 3개 정도의 집단을 나누어서 ‘계장급 행원’ ‘대리급 행원’ ‘은행 지점장 혹은 금융 전문가’ 등의 사람들을 만나라고 조언해요. 그럼 현실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것부터 미래를 그려보는 일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단 성공한 사람을 만나는 게 꿈을 이루는 방법의 전부이거나, 그들을 반드시 인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인생에도 셰르파가 필요하다(34쪽)”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쇼핑몰을 창업하고 싶다면, 최소한 쇼핑몰 창업 경험이 있는 사람의 조언을 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쇼핑몰과 전혀 무관한 친구들을 만나서 “나 쇼핑몰 하고 싶다”고 말해요(웃음). 누군가는 하라고 권하고, 누군가는 하지 말라고 말리겠죠. 이 대답들이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까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없는 곳에서는 좋은 답을 찾기 어려워요. 또, 실제로 성공한 사람을 눈앞에서 만나는 경험은 굉장한 동기부여가 돼요. 사람을 잘 만나는 게 중요한 이유죠.

작가님을 현재의 자리로 이끄는데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유튜브 젊은 부자들』을 집필하면서 인터뷰에 참여한 23명의 크리에이터에게 책에 싣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유튜브 수익을 물어봤어요. 그중 어느 분께서 적나라한 금액을 직접 보여주셨는데, 한 달 수익이 7천만 원 가량 되더라고요. 그동안 학벌이 좋거나,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등 나와 다른 조건을 지닌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 그런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똑같아 보이는 평범한 사람이 유튜브로 그렇게 돈을 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죠. 이 사실을 책으로 읽었다면 ‘요즘 유튜브가 대세구나’ 하고 넘겼을 지도 몰라요. 그런데 눈 앞에서 그 사람을 직접 만난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더라고요. ‘유튜브는 특별한 배경 없이도 자신만의 무기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에 투자하고 매진하기 시작했어요.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이 아닌 ‘다음’ 상황을 내다봐야 한다(79쪽)”고요. 작가님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시나요?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판단하고, 이 선택을 통해 얻어질 다음 스텝을 미리 그려보는 편이에요. 그런데 좋은 선택을 하려면 ‘실력’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A와 B라는 책이 있을 때, 평소 독서를 많이 해본 사람이어야 어떤 책이 나의 취향이고, 나에게 더 좋은 책일지 알 수 있거든요. 

저는 운의 다른 말이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단순한 예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집에 돌아갈 때 ‘운전을 하느냐’ ‘택시를 타느냐’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느냐’ 등의 선택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순간의 감정적 판단으로 운전을 하다가 음주운전이 적발되거나, 사고를 냈다면 어떨까요? 대부분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운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본인이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거죠. 

운은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네요.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운’과 ‘바꿀 수 있는 운’이 있어요. 전자는 좋은 집안, 좋은 신체조건 등 유전적·환경적 요인이죠. 이건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바꿀 수 있는 운에만 집중하면 되죠. 원하는 것이 있다면 행동으로 옮기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기다리면 어느새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운은 절대로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운의 파도에 올라타는 방법 

나에게 찾아온 운을 잘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해요. 유튜브가 대세라고 해서, 유튜브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바로 성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지난 10여 년간 인터뷰어로 일했던 경험이 유튜브 성장의 밑바탕이었다고 생각해요. 재테크 분야의 탑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그 분야의 전문가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반면 저는 금융 관련 전문 지식은 부족했지만, 인터뷰를 많이 했던 경험으로 부족한 역량을 상쇄할 수 있었어요.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내공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나에게 온 운을 캐치하려면, 충분히 자신을 갈고닦는 시간이 필요하죠. 운이 좋아서 갑자기 뜬 것 같은 사람들도 이면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1,000여 명을 인터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요. 특별한 섭외 노하우가 있을지 궁금해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섭외를 제일 잘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자부해요(웃음). 방송국, 언론사 등의 매체 파워 없이 오롯이 개인으로 섭외를 했으니까요. 노하우는 단순해요. 일단 섭외를 시도하는 거죠. 무엇보다 ‘거절’을 염두에 두고 거듭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제가 천 명을 인터뷰했다는 건 4~5천 명에게 섭외 요청을 했다는 말과 같죠. 금메달 리스트들을 인터뷰 한 『최후의 몰입』, 수능 만점자를 인터뷰한 『1등은 당신처럼 공부하지 않았다』 등을 쓸 때도 섭외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출판사와 계약했어요. 인터뷰가 원활히 이루어질까 걱정하는 출판사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죠. “저는 100% 성공할 자신이 있습니다. 책에는 30명을 인터뷰해서 싣겠지만, 섭외 요청은 150명에게 할 거니까요.” 

스스로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수많은 시도를 하고 있어요. 꾸준히 글을 쓰거나,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거나, 이력서를 내는 등의 시도로 성공의 기회를 늘려가고 있죠. 이건 성실함의 역량인데요. 이렇게 성실한 분들이 하는 치명적 실수가 있어요. 시도를 통해 나온 결과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똑같은 조건에서 재시도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력서를 10개 냈는데 모두 탈락했다면, 자격증을 따든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든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데, 계속 같은 방법으로 도전하는 거예요. 물론 사회초년생 때는 업그레이드 과정이 없어도 성실함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나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나중에는 세상이 기회를 주지 않거든요. 지금부터는 나의 시도와 결과를 복기하는 ‘스마트한 성실함’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온 운을 꼭 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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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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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이제재 시인, 쏟아지는 빛 속에서 너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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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스드 아이즈』는 반사되는 빛과 평행세계가 있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다. 시집을 펼치면 표지의 홀로그램처럼 환한 빛과 마주치고,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끊임없이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고 있는 소년도 소녀도 아닌 ‘이제재’. 자신을 열어젖히는 이 솔직한 시집에서 독자는 기꺼이 낯선 존재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게 된다.

이제재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독자를 만나는 신예다. 39편의 시를 통해, 시인은 ‘나’로 존재하는 법을 모색한다. 현실에서 자신의 몸과 불화하던 화자는 시에서만큼은 다른 차원의 평행세계를 살며 다른 몸을 꿈꾼다. 그리고 이 분투가 도달하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다. 쏟아지는 빛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며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시는 나의 또 다른 몸

‘글라스드 아이즈’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정해졌나요?

시집의 제목은 밴드 라디오헤드의 노래 ‘글라스 아이즈’에서 가져왔어요. 어느 날, 이 곡을 듣는데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난해한데도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예술은 이런 것을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제 시집의 반사되는 빛과 거울이 있는 세계관을 드러내면서도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제목으로 정했죠.

이번 시집으로 처음 독자를 만나게 됐어요. 시를 언제부터 썼는지 궁금했어요.

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면서 처음 시를 썼어요. 어릴 때는 말이 없는 아이였거든요. 말 대신 몸짓과 미소로 의사를 표현할 정도로요. 시를 쓰면서부터 언어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과거의 나는 어땠지, 나는 뭘 좋아하지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조금씩 알아갔어요. 시를 쓸 때마다 ‘너는 참 할 말이 많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시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었군요.

시를 쓰면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처음 시를 쓸 때만 해도 세상에는 저 같은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비슷한 정체성을 쓰는 사람도 없었고, 보인다 해도 혐오의 시선으로 왜곡되거나 불행한 이야기만 많았죠. 난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은데, 내게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결국, 시를 쓰면 나로 있을 수 있겠더라고요.

 “시는 나의 또 다른 몸”이라고도 했어요.

시를 통해 다르게 존재하고 싶었어요. 늘 제 몸과 불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몸의 이미지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계속 거울을 봤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몸으로 사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평행세계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지닌 나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시를 안 쓰려고 했던 시간도 있었다고요.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시가 제 모든 것이 되어 있었어요. 친구를 만나도 시 이야기만 하고,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면서 시를 쓰고. 제 삶보다 시가 너무 커져 버려서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실제로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어떤 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다시 시를 쓰겠다고 결심하니까 낫는 거예요. 그때 내 몸이 시와 연결되어 있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등단 제도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을 때는 한 가지 길만 보였어요. 한동안 등단을 해야만 시인으로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죠. 나는 계속 쓰면서 살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살 수 있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시집을 혼자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간만 하면 되는 시점에 아침달에 투고하게 됐어요. 등단 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길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환경은 파괴적인 것 같아요. 작품의 창작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저도 아침달에 시집을 투고하면서, 「성장기」라는 시를 쓸 수 있었거든요.



뒤로 뻗은 팔로 나아가기

첫 시 「배영」으로 시집을 시작한 것이 좋았어요. 시집 전체는 ‘나’로 살아가려는 분투인데, 여는 시에서는 시쓰기의 자유와 생에 대한 감각이 느껴졌어요.

질문을 받고 ‘뒤로 뻗은 팔로도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이라는 구절을 다시 떠올려 봤어요. 다른 말로 하면, ‘과거를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아닐까요.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들은 과거 자체이지만, 처음의 「배영」과 마지막의 에세이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기’가 된 것 같아요.

「성장기」는 굉장히 솔직한 시예요. ‘굴 소년’을 통해, 유년기에 겪은 정체성의 혼란이 표현되는데요. 쓰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열어젖히기 때문에, 읽는 사람도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성장기」는 오랫동안 쓰고 싶었던 시예요. 7년 전에 「중성인간」을 쓸 때부터 정체성에 대해 쓰려고 시도해왔거든요. 계속 실패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용기를 냈죠. 무엇보다 힘이 된 건, 보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어요. 내가 보일 때,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구나. 편견의 말로 오염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솔직하게 쓰고 나니 보편성도 생기더라고요. 성장기는 누구나 겪으니까요.

시집 전체에서 반사되는 빛, 거울, 유리의 이미지와 운동이 중요하게 등장해요. 

처음에 제 안에 들어온 건 ‘거울’이었어요. 거울에 비친 제 몸의 이미지가 익숙해지지 않았거든요. 내가 나로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보니, 문득 저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에도 그런 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실제로도 많이 죽고, 살아 있어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너무 두려워해요. 왜 우리는 이렇게 죽고 싶어 할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묻다 보니, ‘반사되는 빛’이 영향력을 지닌 매개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빛이 ‘나’에게서 ‘우리’로 퍼져 나가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굴의 아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작시가 인상적이었어요. 딱딱한 껍데기 속에서 축축하고 뚝뚝 흐르는 굴.

원래 저는 굴을 싫어했어요.(웃음) 뭔가 기괴하기도 하고, 여자가 생리를 할 때 ‘굴이 떨어진다’는표현도 있어서, 제게는 꺼려지는 이미지였거든요. 어느 날 정말 싫어하는 것을 떠올려보다가 ‘나는 몸을 싫어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굴과 몸을 엮어보게 됐어요. 내가 굴을 좋아할 수 있다면, 나도 내 몸을 좋아할 수 있을까 하다가 시작한 시들이에요. 어릴 때 읽었던 팀 버튼 감독의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영향을 받기도 했어요.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굴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로 인해 불화가 생기고 아버지가 굴 소년을 잡아먹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저도 모르게 굉장히 큰 두려움을 느끼며 읽었던 기억이 나요. 굴 이미지를 오래 붙잡고 있다 보니, 다른 시를 쓰고 있는데도 자꾸 침투하더라고요. 그렇게 굴 연작시가 된 거예요.

「아게르, 까마귀 마을」 같은 시들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을 받았어요. 화자는 수신자가 없는 편지를 쓰거나 가상인물의 이름을 부르죠.

시집을 다 쓰고 난 뒤의 생각인데요. 나 혼자만 있으면 매번 똑같은 ‘나’이겠지만, 인물이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 변화가 생기고 가능성이 열리는 것 같아요. ‘나’의 또 다른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기도 한 가상인물이 떠오른 거죠. 결국, 진짜 말을 건네고 싶었던 대상은 ‘우리’ 같아요. ‘나’도 1인칭이지만, ‘우리’도 1인칭이잖아요. 구체적인 얼굴을 모르더라도 ‘나’와 느슨하게 연결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나’에게서 ‘우리’로 이어지는 빛

시 「글라스드 아이즈」에서 ‘우리’는 ‘아름다움’과 만나요. ‘우리는 아름다움에 속지 않으려 했는데 우리를 더럽다고 부르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데도 아름다움이 있었어’(14쪽)

원래 의식하며 살았던 말은 아름답다의 반댓말인 ‘더럽다’였어요. 그 말이 제 주변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왔고 한동안 아름다움을 굉장히 경계했어요. 한때 ‘No Respect for Beauty’라는 제목의 시를 쓸 정도로요. 그런데 시집을 쓰는 후반부에 아름다움의 효과에서 도움을 받고 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었어요. 아름다움을 느낄 때, 살아가고 말하고 쓰고 싶어지는구나. 사실 나는 ‘우리는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요즘 저는 그 힘을 제 안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집의 마지막 에세이 「반사되는 빛」에서는 시를 쓰는 ‘이제재’의 일상이 나오죠. 어떤 상태에서 시를 쓰는지 궁금했어요.

시를 쓰려고 앉으면 어마어마하게 큰 불안이 찾아와요. 그 불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명상을 하면서 몸을 이완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씁니다. 평소에는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데요. 책은 굉장히 느리게 읽는 편이에요.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서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집중해서 읽기도 하고, 독서의 순간에 찾아오는 내 몸의 반응을 즐기기도 해요. 영상을 좋아해서, 이래경 감독의 뮤직비디오를 자주 보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영상을 매개로 시적인 것을 체험할 수 있을지 실험하고 싶어요.

곧 네덜란드 ‘틸뷔르흐’로 떠날 예정이라고요.

틸뷔르흐는 고흐가 처음 그림을 배웠던 곳이기도 하고, 직물로 유명한 도시인데요. 이번 겨울에도 몇 달간 머무를 계획이에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요. 언뜻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이제재

1993년 3월 4일생. 생년월일이 같은 아이를 두 번 만난 적 있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글라스드 아이즈』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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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 “인간을 살리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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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꽃 할머니』가 출간되고 10년이 흐른 지금, 권윤덕 작가는 『용맹호』를 통해 베트남 참전 용사에 대해 말한다. “용맹호 씨는 아침마다 자동차 정비소에 가요. 파란 하늘을 한 아름 품고요”로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용맹호는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베트남의 정글에서 보냈던 시간과 그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는 사이 용맹호에게는 귀가 하나 더 생기고, 눈이 하나 더 생기고, 온 몸에 분홍색 살점이 덕지덕지 들러붙는다.

『꽃 할머니』 『용맹호』의 사이, 작가는 『나무 도장』에서 제주 4.3 사건을 『씩스틴』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했다. 네 권의 책에 담긴 지난 10년은 ‘가해자성’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가해자는 무엇을 해야 하고, 그들 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가의 질문은 이제 우리의 것이 된다.



가해자의 자리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처음 생각하신 건 언제였나요?

『꽃 할머니』의 마지막 장면에 베트남 여성이 나오는데요. 처음에는 이라크 여성만 그렸어요. 그런데 자료를 찾으면서 2000년에 도쿄에서 열린 시민 법정 자료를 읽었어요. 세계 여성들이 연대해서 법정을 열고 위안부에 대해서 천황도 죄가 있다고 판결을 내렸는데, 그걸 보면서 ‘우리가 베트남에 가서 했던 잘못에 대해서도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음에는 베트남전에 대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용맹호’는 전쟁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입니다. 그가 겪는 죄의식이나 아픔을 어떻게 그려낼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텐데, 결국 ‘신체 변화’를 통해 보여주기로 하신 것 같아요. 

베트남전은 굉장히 잔인했고, 그런 이야기가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소개됐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어요. 가령 귀를 잘라서 철사에 꿰어서 목걸이로 하고 다닌다든지, 눈알을 빼서 병에 담아 다닌다든지... 이런 신체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거기에 더해서 고경태 기자님이 쓴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을 봤는데 그 책에 가슴이 잘린 여성의 사진이 실려 있어요. 한국군이 퐁니·퐁녓 마을에서 퇴각하고 나서 그곳에 들어간 미군이 찍은 사진인데 ‘가슴이 잘린 채 살아 있는 여자’라고 쓰여 있어요. 그걸 보고 저도 되게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가슴이 잘린 걸 그림으로 그려서 고발할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잘린 가슴이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면, 그러면 그릴 수 있겠더라고요. 거기에서 아이디어가 나온 거예요.

『나무 도장』, 『씩스틴』을 거쳐 『용맹호』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해자가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물에 몰입해서 이야기를 만드실 때는 기분이 어떠세요?

가해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인 거예요. 피해자가 용서한다고 해서 용서받는 일은 아닌 것 같거든요. 가해자 스스로가 끊임없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도, 피해자는 만 분의 일 정도나 충족될까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자리가 가해자의 자리인 거예요. 아마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자신이 가해자라는 걸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정하는 순간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명예, 돈, 지위, 다 흔들리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걸 인정하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있어야 인정할 수 있는 거고요. 그게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자기의 잘못임에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더 아래에 묻어둔 것들을 다 끄집어내야 되니까. 그래서 ‘용맹호’가 더 힘든 것일 수도 있죠.



그런 이유로 그리기 힘들었던 장면이 있었다면요?

이 장면(세 개의 눈을 갖게 된 용맹호가 퇴근길에 걸어가는 장면)을 보면, 사실 (표지판의 화살표가) 이리로 가라고 되어 있거든요. 그림 속의 여자도 그쪽으로 가잖아요. 거기가 현실이거든요. 그런데 용맹호는 반대로 가죠. 그래서 제가 이 장면을 그리면서 용맹호한테 ‘너 그쪽으로 가면 30년 넘게 가슴속 저 밑바닥에 눌러놨던 민간인 학살 부분과 마주칠 텐데, 그냥 이리로 가서 모른 체 해’라고 말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용맹호는 그쪽으로 가서 자기가 숨겨놓은 부분과 마주해야, 그래야 피해자가 무엇 때문에 아팠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공감할 수 있는 거예요.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다른 사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는 것 같아요. 4.3이나 5.18과 달리 피해자가 한국 사회 밖에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가해자라는 걸 인정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어도 이렇게 직시하기 어려운데, 가해 당사자는 얼마나 그 기억을 지우고 싶을까요.

그렇죠. 끊임없이 항변하겠죠. 그래서 참전 군인 분들이 민간이 학살 이야기가 나오면 굉장히 예민하고, 자신은 전쟁에 가서 희생하고 왔는데 범죄자로 모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학살의 주체가) 본인은 아니었다고 해도, 일부가 저지른 행위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휘하고 동참하고 묵인하고 공조했던 많은 분들이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인정하는 순간 ‘자유를 위해 싸우고 돌아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자기의 모든 기반이 흔들리는 거잖아요. 그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제주 4.3 때도, 도민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서로 대립하고 있을 때 결국은 ‘그때 참여했던 경찰이나 이런 사람들도 다 피해자다’라고 하는 인식 속에서 다시 화합이 되거든요. 참전 군인도, 물론 (전쟁 폭력의)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사자가 갖는 자기 트라우마까지도 같이 이야기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 단죄해야 돼’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가해자가 무서워서 입을 열지 못하겠죠. 그러면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지도 못할 테고요. 

맞아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당시에 (차출에) 앞장 선 한국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거든요. 그 사람들이 초기에는 자기가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가해자가 되니까 입을 열지 않고, 아무도 자기가 그런 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 거예요. 사회가 가해자라는 낙인을 찍어서 몰아내면 더 이상 그 사람이 가해자임을 인정할 수도 없고 반성할 수도 없는 거죠. 스스로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을 용기라고 말해주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일단은 침묵하겠죠. 자살하거나. 그건 아마 모든 폭력의 가해자가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가해자를 지목하고 고발하고 사과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할 수 있도록 사회가 품는 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피해자가 자기 피해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가해자가 이야기하면 되니까요. 피해자가 피해를 증명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고, 그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계속 그 늪에 빠지잖아요. 그리고 고통 속에 피해자만 있게 돼요. 가해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래서 가해자가 입을 열 수 있도록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요.



인간을 살리는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제주 4.3 사건,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베트남 전쟁까지 아픈 주제를 다뤄오셨는데요.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아무리 아프고 슬픈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회의 구조를 넘어 인간의 선한 의지를 발견할 때, 그림책을 마감할 수 있게 되지요.” 어떤 절망적인 사건 속에도, 다 선함이 있었나요?

네, 저는 그렇게 발견했어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많이 소설화, 영화화 되지 않았나요?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그건 4.3 때도 마찬가지이고 5.18 때도 마찬가지예요. 선한 사람들이 있어요. 『나무 도장』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나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있으면 확인 사살을 하잖아요.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서 확인 사살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건 자기가 할 수 있는 여건에서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예요. 총을 쏘는 사람도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그런데 이후에 아주 작은 불씨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 중에 생존자가 있어서 당시에 시체더미 밑에 있었다는 증언들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아무리 혹독한 전쟁 상황에서도 인간을 살리는 이야기는 다 있어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선한 인간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가해자들을 용서하기 힘들어져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러니 가해자는 당연히 단죄돼야 하지 않나’ 싶은 거죠.

당연히 단죄 되어야죠. 2018년에 한국에서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 법정이 열렸는데, 그때 후지이 다케시라는 분이 참석하셨어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한국 역사에 대해 연구하셨던 분인데, 그 분이 쓴 자료집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태평양 전쟁 말기에 만주 지역에서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했던 일본 군인들이 나중에 잡혀서 중국에서 교화를 받게 돼요.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나는 가해자가 아니다, 나한테 명령을 내렸던 윗사람들이 가해자다, 내가 아닌 그 사람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둬라’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교화가 되냐 하면 ‘아무리 명령을 했어도,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나다’라는 걸 인정하게 돼요.

어떻게 교화가 가능했나요?

인간으로서 받아야 되는 최고의 대접을 해줬어요. 생각할 시간을 주고, 쌀밥을 주고...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나다’라는 걸 결국 인정하게 되고, 다시 일본에 돌아와서 사람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해요. 자신이 만주국에 있을 때 일본군이 얼마나 잔혹한 짓을 했는지. 일본 사회에서는 다 부정하는 이야기인데 하거든요. 그래서 평화활동가가 돼요. 그 사례를 보고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아무리 그 사람들이 악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면, 살면서 그렇게 생각해 볼 기회나 환경을 접할 수 있다면,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을까.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인 사람은 없잖아요.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가해 사실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자기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구조 속에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자신이 존엄하게 대우받아 봐야, 다른 사람의 존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환경에서 사람은 교화되는가’를 생각하면 ‘어떤 환경에서 사람이 악랄하게 변하는가’ 알 수도 있고요. 그러면 우리는 그 환경, 구조를 바꾸자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맞아요. 어쩌면 그 구조가 용인하는 건지도 몰라요. 그 사람이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하도록 구조가 용인하는 거죠. 구조가 용인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죠. 4.3 때도 그렇고 5.18 때도 그렇고 전쟁도 마찬가지죠.

작가님은 사람이 희망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리고 아이들하고 계속 수업을 해 보면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전쟁이나 폭력의 현장에도 희망이 있다는 걸 아이들이 한 번 접하는 것과,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는 건 굉장히 다를 것 같거든요. 제가 강의할 때 항상 그 질문을 해요. ‘기차가 달려오는데 두 갈래 길이 있거든. 위로 가면 10명이 죽고 밑으로 가면 한 명이 죽어. 그럼 어디로 갈래?’ 

아이들은 ‘한 명이 죽는 길’로 가겠다고 하겠죠?

그렇죠. 그런데 어느 수업 시간에 어떤 애가 그랬어요. ‘그 한 명이 우리 엄마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제가 ‘그 한 명이 너희 엄마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면 어쩔래?’ 하고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아이들이 대답을 미적거리다가 ‘기차를 멈춰요, 제3의 길을 찾아요, 기차를 돌려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렇게 한번 생각해 보는 것과 안 해보는 것은 굉장히 차이가 있을 거예요. 우리는 역사 교육 속에서 끊임없이 ‘이 공동체가 유지되는 데 한 사람이 희생되는 건 어쩔 수 없어’라고 배웠어요. 그런데 ‘우리는 한 사람이 죽는 것도 싫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러면 사회가 바뀔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촛불혁명이겠죠. 광장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럴 것 같아요. 결국은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작가님이 아프고 슬픈 역사 이야기를 그림책에 담아내시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굉장히 가슴 아픈 이야기이고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이게 엄연히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하는 거라면 아이들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읽히기를 조금 어려워하더라고요.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벌써 읽혀야 되나,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고학년 정도면 얼마든지 읽혀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실 텐데요. 그림을 그리실 때도 장면을 충격적으로 묘사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그리려고 하면 제가 힘들어서 못 해요. (웃음) 끔찍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저는 붓을 들어서 그릴 수가 없어요. 그리고 책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야 이야기를 받아들이잖아요. 너무 끔찍하면 그냥 덮죠. 외면하고. 그리고 저는 아름다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이 있어야 되는데,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끌어오는 게 꽃이나 자연인 것 같아요. 그것과 인간을 대비시키는 거죠. 인간이 얼마큼 폭력적이고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를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시키면서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마음을 열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책을 다 보고 나서도 되돌아볼 여유가 조금은 생기고. 

25년 동안 작가로 살아오신 이야기를 담아 에세이 『나의 작은 화판』(2020)을 쓰셨습니다. 지금까지 작품의 주제나 스타일이 바뀌어 왔듯이, 앞으로도 변화가 있을 텐데요. 어떻게 바뀔까요?

원래는 다섯 권을 만들 생각이었어요. 『꽃 할머니』『나무 도장』『씩스틴』『용맹호』, 그리고 한 권을 마저 하려고 했어요.

세월호 이야기... 말씀하시는 거죠?

네. 학생들이 세월호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세월호 이야기까지) 다섯 권은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세월호 이야기의 커다란 골격은 다 잡아놨거든요. 그런데 그걸 하나하나 구체화시키려면 다 봐야 돼요. 증언들이나, 아이들이 마지막에 보내온 영상이나... 그게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은 더 내공이 쌓여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일단은 『용맹호』로 마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역류성 후두염을 치료하고 계시잖아요. 건강에 유의하셔야 할 것 같아요. 

네, 건강이 이렇게 안 나빠졌으면 내친 김에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건강이 너무 안 좋아지니까 ‘이러다가 나중에 작품을 아예 못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겁도 나고 그래서 ‘일단은 재충전이 필요하구나, 나한테 조금 쉬어가라고 하나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즐거운 작품 하려고 하고, 충전이 되고 나면 세월호 이야기도 할 생각이에요.





*권윤덕

서울여자대학교 식품과학과와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광고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술을 통해 사회참여 운동을 해 오다가 1995년 첫 그림책 『만희네 집』을 출간하면서 그림책 작 가의 길에 들어섰다. 동양 재료를 바탕으로 산수화와 공필화, 불화를 공부하며,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그림책에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만희네 글자벌레』, 『시리동동 거미동동』, 『고양이는 나만 따라해』, 『일과 도구』, 『꽃할머니』, 『피카이아』, 『나무 도장』, 『씩스틴』이 있다. 한국출판 문화상, CJ그림책상,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청강문화상,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




용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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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덕 글그림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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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박세리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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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과 여유. 필드를 떠난 박세리에게서 나오는 아우라는 방송에서 비쳐진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은퇴한 남자 운동선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때, 왜 언니의 모습은 없을까? 아쉬웠는데, 대한민국의 여자 골프를 개척한 박세리가 ‘리치 언니’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2016년 박세리는 프로 선수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2016 리우올림픽에 이어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현재는 바즈인터내셔널 대표로 골프 관련 사업을 병행하며 예능 프로그램 <세리머니 클럽>과 <노는 언니 2>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최연소 나이로 2007년 LPGA 명예의전당에 입회한 박세리는 이제 ‘골프의 전설’이라는 타이틀보다 ‘리치 언니’가 더 익숙하다. 박세리의 첫 책 『세리, 인생은 리치하게』는 인생의 두 번째 라운드를 시작한 박세리의 현재를 다룬 에세이다. 은퇴 후 반려견 삼남매와 사는 일상부터 골프 예능에 출연하기까지의 과정이 박세리답게 솔직하게 담겨 있다.



마음이 넉넉한 의미로의 ‘리치’

<노는 언니> 멤버들의 추천사를 먼저 읽었어요. ‘와, 이건 찐이다!’ 싶었습니다.

(웃음) 생각도 못했어요. 출판사에서 요청해 주셨더라고요. 받고 나서 <노는 언니> 멤버들에게 너무 고맙더라고요. <노는 언니>가 방송된 지 벌써 일년이 넘었는데 운동선수들의 방송이라서 공감대가 정말 많아요. 서로 알게 된지는 얼마 안 됐지만 통하는 게 확실히 많아요.

첫 책이에요. 그동안 출간 제안을 많이 받으셨을 텐데요. 

종종 받았어요. 운동선수의 책이라고 하면 대부분 자서전 같은 느낌이잖아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거절했는데 너무 무겁지 않은 책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골프를 시작했던 초등학생 때부터 사춘기를 지나 미국 진출까지, 평소 자주 들었던 질문이나 저에게 궁금해 하셨던 이야기를 담았어요.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면 괜찮겠더라고요.

요즘 ‘박세리’ 이름 앞에 가장 자주 달리는 타이틀이 ‘리치 언니’잖아요. 이번 책 제목이 『세리, 인생은 리치하게』입니다.

‘리치 언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리치’하면 물질적인 걸 가장 많이 상상하니까요. 그런데 책 제목의 ‘리치’는 내 삶에 갖고 있는 가치가 얼마나 많고 넉넉하냐의 ‘리치’예요. 제가 자타공인 맥시멀리스트지만 저의 맥시멈에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오래 지켜가고 싶은 인연이 들어 있어요. 누군가에게 베풀기 위해서는 저부터 넉넉해야 하잖아요.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뭔가를 나눌 수 있고요. 이런 개념으로써의 ‘리치’라면 ‘리치 언니’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확실히 골프가 대중적인 스포츠가 됐어요. 요즘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에 ‘골프’가 있고 ‘박세리’가 있습니다. JTBC <세리머니 클럽>에서도 탁월한 입담과 스포츠맨십을 보여주고 계세요. 

골프 예능이 한창 기획될 때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뭘까 생각하다가 <세리머니 클럽>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동안 생각해왔던 골프와 기부를 결합하는 포맷에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줬거든요. 매회 다양한 게스트들과 골프 시합을 하면서 미션을 성공시키면 기부를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은퇴한 후 골프를 제대로 친 적이 없어서 걱정되기도 했어요. 예전 실력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계실 테니까요. 그런데 설정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시고 현재 제 골프 실력에 관한 반응이 정말 다양하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골프가 어렵지 않다는 인식을 조금은 심어드린 것 같아 다행스러워요.

여자 운동선수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의 시작에도 ‘박세리’가 있었더라고요. 

회사 사람들과 “여자 선수들은 왜 TV에서 보기 힘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재능 있는 여자 선수들이 많은데 TV를 보면 남자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니까요. 좀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노는 언니>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여자 선수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고. 처음에는 수학여행 콘셉트가 아니었어요. 여러 차례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못 놀아본 언니들의 세컨드 라이프’라는 타이틀이 결정됐죠. 생각해보면 제작진의 용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해 전문 방송인이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니까요.

‘언니’라는 이름이 주는 든든함이 있어요. 연대도 느껴지고요.

프로그램 제목에 ‘언니’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뒤에서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사람, 넉넉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언니잖아요. 멋진 언니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출연진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나요?

이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각자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보여 드리는 거지 누가 앞장서고 누가 뒤따른다는 개념은 없어요. 그래야 프로그램이 잘될 수 있고요.

방송에서 되게 편안해 보여요.

촬영을 들어갈 때 제가 도저히 못할 것 같은 건 미리 말씀 드려요. 제작진들이 잘 반영해주시고요. 그리고 확실히 선수 때랑은 달라요. 저는 원래 아주 솔직한 사람인데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이 솔직함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었어요. 왜냐면 언론을 거치면 이 솔직함이 때때로 독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했죠. 그런데 은퇴하면서 이 강박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매사 조심하면서 살았던 시절을 지나 이제 순간순간에 솔직해질 수 있으니까요. 마음이 편안해요.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게 중요해요

112년 만에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2016 리우올림픽에 이어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어요. 선수들을 굉장히 잘 챙겨주는 감독이었다고요.

골프는 단체전이 아니니까 합숙 같은 게 없어요. 개인이 연습했던 루틴대로 훈련하는 게 맞아요. 감독이 해야 하는 역할은 선수의 좋은 컨디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죠. 2020 도쿄올림픽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성적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쟁쟁한 실력이 있는 다양한 국가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선수들이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확실히 아시아권 선수들의 성장이 눈에 띄었어요. 그동안 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주류를 이뤘는데 도쿄올림픽에서 인도, 태국, 필리핀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선수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골프의 매력은 ‘대화가 가능한 스포츠’가 아닐까 싶어요. 

맞아요. 같이 걸어갈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또 3대가 같이 할 수 있는 스포츠예요. 곰곰이 따져보면 손녀, 손자와 같이 할 수 있는 스포츠는 많지 않잖아요. 유일하게 골프만 가능한 거죠. 

여전히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골프를 잘 치는 방법’이라고요. 

정말 자주 들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하는 대답은 “연습장에서 연습을 많이 하시나요?”예요. 제가 생각하는 골프를 잘 치는 비결은 오직 연습이에요. 골프를 많이 치시는 분일수록 연습을 소홀히 해요. 널찍한 필드에서 골프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 해요. 그리고 초보자라면 반드시 프로 골퍼에게 레슨을 받으라고 말해요. 골프를 처음 칠 때는 나보다 골프를 먼저 친 친구들에게 배우곤 하는데, 기본이 망가지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해요.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게 중요해요. 무작정 친구 따라서 필드부터 나가지 말고 적어도 6개월 이상 프로 골퍼에게 제대로 레슨을 받는 게 좋아요. 

선수는 아니지만 골프를 잘 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진심으로 노력을 많이 하는 분들이죠. 골프가 워낙 예민하고 힘든 운동이에요. 모든 자연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운동이기도 하고요. <세리머니 클럽>에 출연하는 분들만 봐도 골프를 정말 좋아하는 분들은 실력이 빨리 늘어요. 평범한 대답 같지만 뭐든지 좋아해야 실력도 늘어요.

“운동하는 자녀를 둔 부모님을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바로 아이가 그걸 즐기고 있는지,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189쪽)”라고 쓰셨어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져도 스스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한계가 있어요. 많은 부모들이 노파심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려고 하는데,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아이를 지켜봐 주는 게 가장 좋아요. 운동선수로서 나의 장점이 뭔지, 단점이 뭔지 아이 스스로 찾을 수 있어야 해요. 아이가 다칠까 봐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간섭해 버리면 아이는 성장할 수 없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고 하셨죠.

맞아요.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지만 아버지가 저를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혹독하게 다그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모든 지원은 아끼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제 선택을 존중하셨어요. 그래서 미국 진출도 가능했고요. 올바른 선택이 아니더라도 제가 직접 결정하고 경험하게 하셨어요. 지금도 아버지께 가장 감사하는 건 스스로 제 길을 찾을 수 있게 지켜봐 주신 점이에요.



상황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

24년간 프로 골프 선수로 활약하고 2016년 10월 마지막 경기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끝으로 은퇴하셨어요. 올해로 벌써 5년이 됐지만 ‘1998년 US 여자오픈’ 우승 경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회자됩니다. 아마도 대한민국 골프 역사상 박세리의 맨발 투혼을 능가할 명장면은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당시 발을 내딛는 순간,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요.

어차피 제가 1점을 잃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공이 물속이 아니라 땅 위에 있는 게 보였어요. 솔직히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안전한 길보다 도전해보는 방향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시도할 수 있었던 건 어릴 때부터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연습을 해왔기 때문이에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변수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실전처럼 연습했으니까요. 결실을 맺을 수 있었죠. 제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경기예요.

슬럼프와 손가락 부상, 그리고 은퇴를 마음먹었던 2014년. 책에 담긴 그간의 이야기를 읽으니 모두 치열한 고민의 결과였더라고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슬럼프를 겪어요. 모든 슬럼프가 부상의 문제가 아니고 훈련을 게을리 해서 생기는 문제도 아니에요. 각자 다 달라요. 운동선수에게 슬럼프는 사형선고와 같이 느껴져요. 저도 처음 슬럼프가 왔을 때 미친 듯이 안간힘을 썼어요. 엄청 조급하게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 조급함이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죠. 그때까지 저는 쉬는 법은 몰랐어요.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몰랐던 거예요. 그러다 손가락 부상이 찾아왔고 어쩔 수없이 쉬게 되면서 오히려 슬럼프를 극복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어요. ‘골프가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구나, 직업이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는구나.’ 그리고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앞으로 얼마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계획을 세웠어요. 은퇴 시점은 3년 전부터 생각했고요.

박세리가 살아온 여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경험주의자’인 것 같아요. 일단 해보는 것, 실패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읽힙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두려워서 못하는 사람은 성장할 수 없죠. 일단 해보면 내 자산이 될 수 있어요. 골프도 그래요. 많이 쳐보고 많이 실수해봐야 해요. 처음에 못 치는 건 당연한 거예요. 

“운동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사업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실제 사업을 하고 계세요.

회사를 창업하게 된 건 24년 전 미국에서 만난 오랜 팬과의 인연 덕분이에요. 은퇴 후 후배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연락이 다시 닿았고 스포츠 교육과 훈련을 동시에 진행하는 아카데미 사업과 교육 콘텐츠 제작을 중심으로 두는 회사를 만들고 있어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언젠가 스포츠 스쿨을 만들고 싶어요. 선수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저희의 비전이에요.



좋은 삶을 선물하고 싶다

모찌, 찹쌀, 시루. 세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살고 계세요. 책에서 반려견과의 일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더라고요.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모찌를 보자마자 ‘쟤가 내 딸이구나’싶었거든요. 그리고 한 번 강아지와의 인연이 시작되니까 계속 묘한 인연들이 이어졌어요. 둘째 찹쌀이는 선천적으로 고관절 양쪽이 안 좋은 상태로 저희 집에 왔어요. 한 살도 안 된 강아지가 무려 두 번의 큰 수술을 견뎌야 했죠. 원래 강아지를 좋아했지만 SNS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참 많은 강아지들이 버려지고 학대당하고 실종되는 걸 알게 됐어요. 매일 가족을 찾는 유기견 소식을 보던 중에 동생을 통해 ‘먼지’를 알게 됐고 먼지는 저희 집에 오면서 ‘시루’가 됐어요. 이제는 모찌, 찹쌀이, 시루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어요.

“사지 말고 입양하되 입양은 신중하게.(44쪽)”라고 쓰셨습니다.

보호소의 강아지를 입양해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종종 읽어요. 그 마음이 어떤 건지도 잘 알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요. 동물을 입양하는 게 유행처럼 번져서 버려진 아이들이 또 다시 버려지는 일을 겪게 될까 봐요. 정말 신중하게 결정하셨으면 좋겠어요.

운동선수들이 쓴 책을 보면 대개 전성기 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세리, 인생은 리치하게』는 현재 박세리의 이야기가 많이 실렸어요. 의도하신 걸까요?

매 경기 때 이야기를 모두 실었으면 책이 정말 두꺼워졌을 거 같아요. 요즘 종종 강연을 하는데 사람들이 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도전할 수 있었냐?’의 물음이더라고요. 많은 운동선수들이 그런 것처럼 10대부터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10대를 지나와요. 너무 외롭고 힘든 시기를 통과하는데 이건 모두가 겪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직업만 다를 뿐 감정은 똑같죠.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성공만 보여주는 책을 쓰지 말자는 마음이었어요. 반전이 되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었고 좌절하는 이야기도 넣었어요. 누구든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상상해본 독자층이 있나요?

20,30대 독자들이 읽으면 ‘아, 이런 인생도 있구나’ 생각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고민하고 망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본 이야기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업도 어렵고 예전같이 생활할 수 없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쉽지 않겠지만 마음을 조금 넉넉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박세리가 펼칠 후반전은 어떤 그림일까요?

이제는 즐겁게 살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회적으로도 보탬이 되고 싶고요. 기록과 성적에만 집중했던 삶을 살았으니 지금부터는 내가 가진 노하우와 경험을 후배 선수들에게 나누고 싶어요. 존경받는 선배가 된다고 가장 좋겠고요.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대한민국 골프를 이끌어갈 유망주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이 될 것 같아요. 




*박세리

초등학교 때 골프채를 잡기 시작해 24년간 프로 골프 선수로 활약하며 세계적으로 한국 골프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온 개척자다. 중학교 때부터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불리며 ‘무서운 10대’로 활약하다가 1996년 프로로 데뷔해, 1998년부터 미국 LPGA 투어에 참가했다. 투어 첫해에 맥도널드LPGA 챔피언십에서 신인으로서는 역대 두 번째 우승을 했고, 1998년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당시 IMF 시절을 겪던 전 국민에게 잊지 못할 명장면과 함께 커다란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그해에만 4승을 거두면서 LPGA ‘올해의 신인왕’을 탔고 이를 시작으로 최연소 메이저 4승, 미국 진출 10년 만인 2007년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최연소 나이로LPGA 명예의 전당 입회 등 전설적인 ‘SE RI PAK’의 기록을 써나갔다. 현재는 ‘바즈인터내셔널’ 회사를 설립하여 골프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며 방송뿐만 아니라 여러 채널을 통해 ‘SE RI PAK’ 브랜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더 나아가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며 ‘인생 2막’을 즐겁게 시작하고 있다.



세리, 인생은 리치하게
세리, 인생은 리치하게
박세리 저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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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설가 천선란, 선한 마음을 끝까지 믿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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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처럼, 천선란은 늘 성실하게 달리고 있었다. 사이보그와 동물, 인간의 공존을 그렸던 『천 개의 파랑』, 외로움 끝에 몰린 자를 비추는 뱀파이어 로맨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거쳐, 천선란의 시선은 ‘식물’과 ‘외계인’을 향한다. 신작 장편소설 『나인』은 식물의 소리를 듣는 외계인 ‘나인’의 이야기다. 그는 한 아이가 실종된 사건을 외면하지 못하고 기꺼이 피해자의 곁에 선다. 왜 그렇게까지 애쓰느냐는 질문은 천선란의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타고난 선의로 오로지 살리는 일을 향해 달려나간다.



우리 주변에 외계인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에 ‘장편소설 하나를 완성하는 건 아주 길게 떠났던 여행을 끝내는 기분’이라 썼어요.이번에도 인물들과 헤어지기 싫어 마지막을 빠르게 쓰지 못했다고요.

맞아요. 몇 달 동안 등장인물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는데, 헤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사이보그, 뱀파이어에 이어 이번엔 외계인 이야기예요. 

단편 『어떤 물질의 사랑』이 외계인 이야기였잖아요. 그때부터 외계인 이야기를 확장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이 아니라, 영화 <E.T.>처럼 우리 속에 섞여 살면서 친구도 될 수 있는 존재. 흔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보면 “쟤 참 특이해” 하고 말하잖아요.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서, 아예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보고 싶었죠.

‘작가의 말’에 썼죠. ‘신호등 초록불이 삼 초 정도 남았는데 뛰지 않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을 볼 때도(중략) 너무도 당연했던 선의를 잃은 인간들 속에서 그 원초적인 힘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문장을 떠올린 이유는 제가 여행할 때만큼은 작은 신호도 잘 지키기 때문이에요.(웃음) 낯선 나라에서는 무서우니까 무단 횡단을 못 하잖아요. 누가 보지 않더라도 질서를 지키고 아무 이유 없이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어쩌면 낯선 곳에서 온 존재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인공 ‘나인’도 작은 것도 못 지나치는 캐릭터가 된 것 같아요. 

‘나인’은 손톱 사이에 싹이 자라고, 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외계인이에요. 그 능력을 써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주변을 살리는 길을 택하죠. 

외계인에게 가장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능력을 주려고 했어요.(웃음) 그런 인물이 여러 사건에 휘말리지만, 결국 선의를 갖고 이겨내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나인’을 떠올리니 주변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정해지더라고요.


 

모두에게 존재할 이유를 주고 싶다

『천 개의 파랑』에도 등장인물들의 연대가 돋보였잖아요. 이번 『나인』에서도 ‘나인’을 돕는 두 친구 현재와 미래가 등장해요. ‘나인’ 혼자 헤쳐나가는 스토리를 생각해보진 않았나요?

그럼 재미없지 않을까요?(웃음) 주인공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저는 늘 주변 사람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혈연관계와 다른 인물들이 나오는 것도 천선란 소설의 매력이에요. 이번 『나인』에서도 이모이지만 ‘지모’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죠.

오히려 소설의 인물이 다 비슷해지는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지모’를 만들 땐, 뭐 어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여성 캐릭터가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한 역사가 훨씬 더 길었잖아요. ‘엄마’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모’는 조연이 아니라 언제든 주연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소설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혼자 생각했던 ‘지모’의 로맨스도 있었고요.(웃음)

‘나인’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외계인 ‘승택’의 존재도 특이했어요. 사건 전개상 꼭 필요한 인물은 아니니까요.

마지막까지 ‘승택’을 뺄까 말까 고민했어요. 소설 구성면에서는 그게 더 완벽하니까요. 그런데 문득 필요 없다고 없애는 게 맞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건, 누구나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만든 캐릭터를 내 손으로 지워버리는 게 이상한 거죠. 승택이 소설 속에서 큰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꿈틀거리고 있으니 그런 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살린 캐릭터예요.

‘나인’이 맞닥뜨리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학교폭력이에요. 가해자 학생이 나오지만, 소설은 아이의 성장 환경과 어른들의 이기심을 보여주며 폭력이 저질러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집중해요.

학교폭력은 가해자 학생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어른들의 방관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폭력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가해자 학생의 삶도 있었을 거고요. 그래서 학교폭력 사건을 접하면,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사회를 생각하게 돼요. 소설을 쓸 때만큼은 가해자 아이에게 잘못을 돌아볼 기회를 주려고 했어요. 진정한 벌은 자신의 죄책감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작가님의 소설에는 늘 독자가 ‘믿을 수 있는 구석’이 있는 인물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모든 인물에게 자기 서사가 있고, 이야기의 초점이 여러 인물로 이동하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요? 

맞아요. 누군가가 제 소설을 좋아해 준다면, 그 이유가 등장인물을 너무 사랑해서였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 완전한 악역을 그린 적은 없지만, 저는 악역에게도 개인의 이야기를 줄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지만 모든 인물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게 소설이니까요. 인물 하나하나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싶어요.

소설을 쓸 때만큼은 어떤 장면이 눈앞에 보일 정도로 그 세계에 몰두한다고 한 적이 있어요. 이번 소설은 어땠나요? ‘나인’의 힘으로 땅이 파랗게 빛나는 장면도 강렬했는데요.

한창 소설을 쓸 때는 식물이 파랗게 빛나는 이미지를 아름답게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그런데 막상 다 쓰고 나니, 가해자 학생이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마음에 남더라고요. 모든 장면을 통틀어 가장 울컥하면서 쓴 대목이에요. 진심으로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온 마음을 다해 사과하는 장면을 현실에서 보고 싶었나 봐요.

소설에 맞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쓴다고요. 이번 『나인』을 쓸 때는 어땠나요?

‘소녀’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이 힘차게 부르는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처음 소재를 잡을 때는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 유아의 ‘숲의 아이’를 들었고, 아이유 ‘에잇’과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도 많이 들었죠.



열심히 달려나가는 리듬으로

‘천선란’으로 살아가는 삶도 여러 단계를 거쳐 변화하고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일을 병행하며 작가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를 거쳐, 지금의 ‘천선란’은 어떤 단계인 것 같나요?

언젠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완벽한 소설을 하나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늘 있어요. 아직 제게소설가란 아주 오랜 시간 한 문장 한 문장 꿰어나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물론 언제 그 시기가 올지는 모르겠어요. 지금은 열심히 달려 나가는 인물들이 좋고, 작가인 저도 그런 리듬으로 쓰는 것 같아요. 일단 쓰고 싶은 게 많으니 쓸 수 있을 때까지 써보고, 다음 단계를 생각하려고 해요.

이야기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단편 「서프 비트」를 메가박스 사운드 무비로 선보이기도 했고, SF 신인 작가를 멘토링 하여 창작을 돕는 아작 출판사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매체에 따라 이야기의 재미가 달라지니까,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드라마 제작사에 기획안을 보내거나, 협업을 해보기도 하고요. 현재 「서프 비트」는 웹툰과 드라마화를 진행 중이에요. 

(편집자 주: 인터뷰가 끝난 후, '2035 SF 미스터리'의 수록작 「옥수수밭과 형」이 드라마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친구인 윤혜은 작가, 윤소진 편집자와 팟캐스트 ‘일기털기’를 시작했어요. 서로의 밀린 일기를 읽고 수다를 떠는 프로젝트인데요. 

2년 정도 바쁘게 소설만 쓰고 살았어요. 돌아보면 제 생활에 소설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한창 소설을 쓸 때는 슬럼프가 안 오다가, 멈추면 한꺼번에 밀려오더라고요. 쉴 때는 쉬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 두려워지는 거죠. 그래서 매일 차분히 스스로를 다지는 연습을 하려고 친구들과 기획했어요. 녹음할 때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기분이에요. 

요즘 글쓰기 외에 푹 빠진 것이 있다면요?

배우 덕질!(웃음) 한번 꽂힌 배우가 있으면 그분이 출연한 작품을 다 봐요. 최근에는 이도현 배우가 좋아져서 작품을 다 보고 구교환 배우 덕질로 넘어갔거든요. 배우를 워낙 좋아해서 소설 인물을 구상할 때도 가상 캐스팅을 하는 편이에요. ‘나인’은 김태리와 김혜윤 배우를, ‘지모’는 문소리 배우를 떠올리면서 썼어요.

소재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소설을 쓰고 있어요. 외계인 다음은 무엇인가요?

늑대인간이 나오는 SF소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판타지의 소재를 모두 써보는 게 목표예요. 가능할까요?(웃음)



나인
나인
천선란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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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용준 “소설을 70편쯤은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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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이후 6년 만에 소설집 『선릉 산책』을 출간한 정용준 소설가는 이번 책을 내는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을 상견례 자리에 소개하는 기분”으로 표현했다. 좋기도, 떨리기도 했다는 그는 사실 3년 전부터 소설집 출간을 계획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번번이 한 편만 더 써보자”는 생각을 하며 끝까지 “안 묶이기를” 바랐을 정도로 소설집을 묶는 마음이 어려웠다고. 그것은 이 작품들이 “단순히 나만의 것은 아닌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릉 산책』에는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선릉 산책」, 문지문학상 수상작 「사라지는 것들」, 2021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으로 뽑힌 「미스터 심플」을 포함해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정용준 소설가는 여기에 “산책을 좋아하고 풀기 어려운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왜 산책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기표는 산책이지만 기의는 산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쓸 수 있는 소설과 쓸 수밖에 없는 소설. 『선릉 산책』의 이야기는 모두 쓸 수밖에 없는 소설들이었다. 



혼자만의 것은 아닌

2015년부터 2021년 사이에 발표한 단편들을 묶었어요. 소설가 분들은 소설집을 묶는 것이 한 시절을 묶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하시던데,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맞아요, 쓸 때는 매순간 정직하지만요. 써 놓은 것을 묶으면 그때 그 마음이 최선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현재는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당시에는 충실히 판단을 했어도 시간이 흘러 그때의 내 생각을 지금의 내가 다시 판단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쓸 때는 자유롭지만 묶을 때는 달라요. 확실히 그냥 썼던 것을 기계적으로 묶는 단순한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에는 그 시절에 대한 긍정이 잘 안 되기도 해서 책 한 권을 묶는 마음이 좀 어려웠고요. 그냥 계속 안 묶이기를 바랐어요.(웃음) 왜 그런지 계속 미루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막상 묶고 나니, 별것 아닌데 뭐 이렇게 고민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장편을 한 권 출간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감각이군요. 

단순히 물리적 길이로 장르를 나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에게 장편과 단편은 굉장히 다른 장르 같아요. 장편은 하나의 일관성을 갖고 있어서 3년의 시간에 걸쳐 쓴다고 해도 3년을 하나의 감정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때문에 작가와 소설이 맺는 관계를 특별히 고민하진 않아요. 그런데 단편은 적어도 저에게는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어요. 그동안 장편은 그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다 쓰는 느낌이었고, 나만 괜찮으면 되는 문제였는데요. 『선릉 산책』에 수록한 단편들은 사회인으로서 나, 작가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여러 이슈에 응답하는 나의 문장 등이 들어가 있거든요. 단순히 나만의 것은 아닌 것이 들어 있고, 적어도 작가인 나는 그것들을 행간에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에요. 좀 힘들었던 시절이었어요.

'작가의 말'에서 "여기에 묶인 소설들은 모두 산책을 좋아하고 풀기 어려운 생각에 빠져 있다"(269쪽)는 설명이 있어요. 먼저, 왜 산책이었을까요? 

풀기 어려운 상황이 감춰져 있다 올라오는 시간이 산책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별 수 없이 걷는 거죠. 산책을 하는 게 아니라 산책밖에 할 수 없는 거예요. 어떤 목적을 갖고 이동하거나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요. 달리 뭘 할 수 없어서 내 몸을 이동시키는 행위인 것이죠. 기표는 산책이지만 기의는 산책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대부분은 어색하죠. 사유의 시간에 가깝고요. 그 시간에 가장 어울리는 행위가 산책이라 인물들이 자꾸 걷게 된 것 같아요.

또 『선릉 산책』 속 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거나 이별에 아파하는 등 무척 무거운 상황에 놓여 있거든요. 이런 인물들을 자꾸 쓰게 된 이유도 있었을 것 같아요. 

작가에게는 쓸 수밖에 없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작가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독자들은 알죠. 저도 묶인 소설을 보고 후에 알게 되곤 하는데요. 저는 누구나 조금만 깊이 이야기하면 다 비극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비극적으로 살지 않을 뿐 누구에게나, 심지어 5살 어린 아이에게도 다 비극이 있어요. 그런데 사회는 우울감이라고 하는 것에 지지 않아야 한다고 압박하죠. 애도의 기간이 정해져 있고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오래 응시하기 어려운 시절이에요. 제 궁금증은 이거예요.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슬픔의 태도를 취할 수 없을 경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이것이 최근 몇 년 저의 가장 큰 화두였어요. 어떤 상실 이후의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금만 상상하면 먹먹해지고, 그 질문이 해소가 안 되니까 상상하고, 그러면 쓰고 싶고 그랬어요. 『선릉 산책』의 소설들은 그래서 다 누군가한테 선물하는 마음으로 쓴 거예요.

확실히 작가님이 상실을 겪은 인물들의 ‘다음’을 궁금해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선릉 산책』 속 작품들이 대부분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에 그는 어떤 삶을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혔고요. 

맞아요, 사실 장례식장에 가면 눈물이 쏟아지는 건 남아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롤랑 바르트는 죽음의 경험을 ‘주름’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주름으로 남고, 작가는 그 주름을 바라보면서 계속 애도하는 글을 쓰는 자라고 했는데요. 그 문장은 저도 무척 동의해요. 『선릉 산책』에 실린 소설은 그런 마음으로 쓴 것들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 소설들이 결코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슬픔보다는 쓸쓸함이라고 할까요. 그게 나쁜 게 아니라 의젓해 보이고요. 그것이야말로 진짜 파이팅 같아요. ‘그렇지, 그렇게 됐구나’ 하고 사는 게 좋아 보여서요. 그런 마음이 소설 안에 들어간 것 같아요. 저는 「사라지는 것들」에 쓴 것처럼 큰 슬픔 이후의 날들에 만만한 사람 한 명 옆에 두고 푸념하면서, “죽을 거야”라고 말해도 “일단 오늘은 말고” 하면서 사는 게 좋아요. 



나는 입장이 있고 나는 막을 거다

방금 “만만한 사람 한 명 옆에 두고”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선릉 산책』의 힘겨운 화자들 곁에 그가 더 바닥으로 내려가지는 않게 손을 잡아주는 존재들이 계속 등장해서 정말 좋았어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노력해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미스터 심플」에서 ‘미스터 심플’이 화자에게 고민 끝에 글을 좀 봐달라고 말을 걸죠. 화자 역시 마지막에는 이 사람이 너무 걱정된 나머지 글을 한 번 더 봐주겠다고 더 써보라고 해요. 살리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그러한 작은 도움이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 운명처럼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일단 자기가 누군지 알아야 하고요. 내가 어떤 결핍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뒤에 곁에 둘 만만한 사람을 찾아야죠. 이때 만만한 사람은 감정이 쓰레기통처럼 여길 사람이 아니라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고요.

그 중 특히 작가님이 깊이 연대감을 느끼는 인물이 있다면요? 

거의 제 마음에서 출발해서, 전부인데요.(웃음) 굳이 꼽자면 지금 저에게는 「사라지는 것들」의 ‘성수’ 같아요. 뭔가 마음은 있는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갖고 있는 그 답답함 때문에요. 성수는 솔직하게 말하더라도 너무 늦거나 괜히 투덜거리고 짜증만 내는 사람인데요. 성수의 엄마가 죽겠다는 결심을 말하잖아요. 이에 대해 성수는 결국 ‘그런 마음이 든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장이 있고, 나는 막을 거다’라는 태도를 갖게 돼요. 이런 마음이 돕고 싶거나 다가가고 싶은 사람에게 제가 갖는 정확한 마음 같아요. 방법은 모르겠으나 내가 귀찮게 할 거다, 정도의 마음이 가장 솔직한 마음이에요.

다른 작품들의 경우 상황이 전면적으로 좋아지지는 않지만 어쩌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의 느낌이 있는데요. 수록작 중 「두 번째 삶」은 느낌이 좀 달라요. 이 작품은 그렇지 않거든요. 

「두 번째 삶」 같은 경우 다른 모티프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가해와 피해라고 하는 것에 예민한 시대죠. 제가 그 중 여기서 묻고 싶었던 것은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이었어요. 분명히 ‘준범’은 가해자가 맞아요. 그를 두둔하려고 쓴 건 결코 아닌데요. 그러나 가해와 피해 사이에서 진짜 가해를 하고, 진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다고도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중간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기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고요. 저는 정보를 제공하고 편집하는 미디어, 중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을 옮기는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이 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에서도 그랬는데요. 단순히 어떤 범죄자나 악인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험을 보고, 1등을 가리는 건 되게 공평해 보이지만 아예 처음부터 공부 자체를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있잖아요.

팟캐스트 <책읽아웃>에 출연하셨을 때 “단 한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이 소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두 번째 삶」을 읽으면서 그 단 한 사람에게 깊이 들어가보려는 마음이 느껴지더라고요. 

오만해 보일 수 있지만요. 작가로서 갖는 가장 큰 욕망 중 하나는 한 인물을 신처럼 파악해보는 거예요. 늘 저는 한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데요. 그 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가 자신의 삶에서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다, 지나치게 과중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어떠한 사람이 너무 큰 찬사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는 너무 큰 죄책감을 갖기도 하고요. 그런 것을 질문하고 싶었어요. 



작가가 자기 윤리에 충실해야

앞서 분명히 말씀하셨지만 「두 번째 삶」의 준범은 가해자가 맞죠. 하지만 그 사람의 편을 들어보려고 계속 들어다가다 보면 억울한 부분도 발견이 되고, 이해할 부분도 생겨요. 다만 소설을 쓰면서 생기는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이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작가가 윤리적이어야 해요. 작가의 윤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이나 사회 윤리와는 다른 거예요. 소설의 정신은 한 사람의 이면과 내면, 전후 사정을 살피는 일이거든요. 그게 아니었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그냥 불륜 소설일 뿐이잖아요. 그 작품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한 사람에게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에요. 그로 인해 사회 윤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윤리로 이 사람의 사정을 해석해내는 게 저는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안티고네』의 아이러니처럼 말이죠. 왕명을 거역하고, 혈육의 장례를 치른 뒤 사형을 당하잖아요. 그 안티고네의 경우가 저는 단 한 사람의 윤리라고 생각하고요. 작가는 세상의 윤리를 바꿀 수는 없지만 윤리를 스스로 고민에 빠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윤리와 어떤 경쟁을 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고, 그것은 작가가 자기 윤리에 충실해야 될 때 생기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작가로서의 고민이 독자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사안에 쉽게 판단 내리고, 평가하기 쉬운 지금 같은 때에 단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일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고민을 담은 소설을 읽는 일도 의미가 커요. 

최근 오정희 선생님의 『중국인 거리』를 다시 읽었는데요. 너무 좋더라고요. 어떠한 가치 평가도 없이 오직 인물이 자기 삶의 디테일을 꾸리고 있었어요. 이게 저에게는 하나의 영원한 자연처럼 보이더라고요. 하다못해 주변의 연애만 해도 스토리만 놓고 보면 엉망진창이잖아요. 그렇다고 누가 거기에서 가해, 피해를 윤리적으로 따지나요. 그냥 나나 내 친구 속상하게 하는 사람이 나쁜 놈이죠.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살고요. 인간은 그걸 구분할 수 있는 존재예요. 그럼에도 내면과 감정과 무의식까지 전부 정화된 윤리로만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무서운 것이죠. 저는 그것을 잠정적인 상태로 두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행복한 집은 다 비슷하고, 불행한 집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그것이 제가 보고 싶은 문학의 세계 같아요. 새로운 작가들의 이상한 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코』의 수록 인터뷰에서 "회복될 수 없는 조건을, 사라지지 않는 흉터 같은 것을 몸과 마음에 지니고 있는 인생도 있다.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 어쩔 수 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 나는 그것을 소설로 말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작가님에게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서사를 주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이 있으세요? 

그저 그 사람이 입체적인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걸을 때, 웃을 때, 오해 받을 때의 표정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요. 가능하다면 내면도 보여주고 싶어요. 어떤 사람의 내면과 이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서사라고 생각해요. 이미 그는 잘못된 서사에 놓여 있으니까 그의 서사를 바로잡아주는 역할만 해도 되겠죠. 사실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장애를 도구화한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아요. 동질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저도 말을 더듬고, 말을 못할 때의 경험이 있거든요.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도 나오지만 사람들은 제가 옆에 있는데도 아예 나무처럼 생각했어요. 이때 그 사람에게 언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어가 있고, 감정이 있다는 두 가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를 재건해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정말로 안 쓰고 싶어요. 관두고 싶은데요. 거창하게 말해 소명이라고 해야 할지,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것도 있어요.


 

‘왜’라는 이유 없이

작품활동을 하신 지 12년이에요. 처음 소설을 쓸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떠세요?

소설가는 연차가 쌓였다고 자동적으로 거장이 되거나 하진 않아요. 어떤 작가든 매 순간 그 소설을 처음 쓰는 작가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매번 쓰는 소설의 첫 작가로서 그 소설을 잘 창작할 수 있는 능력과 생각을 갖고 있는 작가여야 될 텐데요. 그것을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더 그래요.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다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인데요. 학생들에게 말하기 전에 저 스스로 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창작자의 가장 좋은 창작법은 스스로 그냥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내 소설을 누가 읽을지도 몰랐고, 책으로 출간할지도 몰랐던 완전히 자의적인 산물이었다면 지금은 이게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섣불리 세상에 내기 어려워진 지점도 있죠.

소설을 “칠십 편쯤은 썼으면 좋겠다”(269쪽)고 말했어요. 열심히, 꾸준히 쓰는 것이 작가님의 꿈인가요?

작가의 말에 쓰려다가 너무 길어서 뺀 내용이 있는데요. ‘왜 열심히 사는 건 물리적인 걸까’가 지금 저의 화두예요. 누군가가 그냥 열심히 사는데 왜 감동을 주는 걸까요. 나 자신에게도 그것이 왜 필요할까, 생각하거든요. ‘왜’라는 이유 없이 그냥 자신의 루틴을 성실하게 지키는 게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고, 때로는 종교적으로까지 보이는지를 정말 많이 고민해요. 그건 삶의 이유하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려던 일을 계속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윤리적이구나, 라고 하는 깨달음이 있었고요. 그렇다면 계속 소설을 열심히 쓰는 건 소설가로서 윤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왜 쓰지, 뭐 쓰지, 이런 고민 없이 그냥 쓰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저에게는 윤리적이라고요. 그게 현실적으로 따졌을 때 칠십 편이 된 거예요.




*정용준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 『바벨』,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프롬 토니오』, 『가나』, 『세계의 호수』, 『유령』 등의 소설이 있다. 『선릉 산책』으로 황순원문학상과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로 소나기마을문학상을, 『사라지는 것들』로 문지문학상을, 『프롬 토니오』로 한무숙문학상을 받았다.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에 글을 썼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손과 발을 움직여서 하는 일들을 좋아한다. 잘하고 싶은 것은 살림. 계속하고 싶은 것은 읽기와 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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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초엽 “서로 다른 세계가 겹치는 순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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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거나 타인에게 이해받는 일에 실패해 본 사람은 안다. 나는 네가 될 수 없고, 너는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도 자신밖에 될 수 없기에, 완전한 이해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완전함을 향해 가는 과정이 이해의 전부는 아닐까.

『방금 떠나온 세계』는 이 물음에 대한 소설가 김초엽의 답이다. 다른 감각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일곱 편의 소설은 완전히 포개어질 수 없고, 공유될 수도 없는 무수한 세계가 홀로 우주 속을 떠돌다 다른 세계와 접촉하는 순간(322쪽)을 그린다. 끝내 닿지 못할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알면서도 그곳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는 불가해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떠나거나, 남겨지거나, 떠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두 번째 단편집이에요. 예약 판매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후련해요. 첫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하 『우빛속』)을 냈을 때는 ‘과연 이 책을 누가 읽을까’, ‘아무도 안 읽으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기다려주시는 독자님들이 있으니까 걱정보다는 책 하나를 마무리했다는 후련함, 빨리 다른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요.

첫 번째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이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았잖아요. 단편 소설집이 또 나온다고 해서 반가운 한편 놀랍기도 했어요. ‘이 생산성, 어떻게 가능한 걸까?’ 싶어서요. (웃음)

소설을 빨리 쓰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어요. 그런데 제 일상을 돌아보면 다른 사람보다 더 부지런히 쓰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다만 전업 작가니까 직장인 만큼은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다 보니까 책이 빨리 나오는 것 같아요. 책을 너무 많이 내서 독자분들이 지겨워하실까 봐 걱정하기도 했는데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에요. (웃음)

표제작이 있는 『우빛속』과 달리 새로운 제목으로 단편을 묶었어요.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표제작으로 한 건 가장 좋은 작품이어서라기보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 좋았고, 단편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이번에도 모든 단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제목을 찾으려고 했는데 하나를 선택하기 어렵더라고요. 어떤 제목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편집자님이 여러 가지 후보를 제안하셨고, 그중 하나가 ‘방금 떠나온 세계’였어요.

‘방금 떠나온 세계’는 「인지 공간」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이기도 해요.

주인공이 자기가 전부라고 믿었던 세계를 떠나면서 그 세계를 돌아보는 장면에서 나오는 문장인데요. 제목이 주는 느낌도 좋고, 각 소설 속 주인공들이 어디론가 떠나거나 남겨지거나 떠나기를 기다리는 인물이라 단편집 제목으로도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어떤 세계를 떠나지만, 떠나온 세계를 잊지 않고 되돌아보는 마음을 잘 표현하는 제목인 것 같아요.

「마리의 춤」, 「숨그림자」의 제목은 책으로 묶으면서 달라졌어요. 이유가 있나요? 

「마리의 춤」은 예전에 ‘광장’이라는 제목으로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글이에요. ‘광장’도 나쁘지 않았지만, 조금 더 제 스타일에 맞게 하고 싶어서 ‘마리의 춤’으로 바꿨어요. 「숨그림자」의 원래 제목은 ‘브라운모션’이었는데요. 화학에 브라운 운동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 개념을 차용한 제목이에요. 브라운 운동이 저한테는 익숙하지만, 독자분들한테는 낯설고 직관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숨 그림자’로 수정했고요.

김원영 변호사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 집필 시기와 소설 쓰는 시기가 겹쳤다고요.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일이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 어땠나요?

다행히 어렵지는 않았어요. 장편을 쓸 때는 소설 쓰기에만 몰입하는 시간이 꼭 필요한데 단편 쓸 때는 그렇지 않거든요. 실제로 『지구 끝의 온실』을 쓸 때는 다른 작업은 하지 않고 쓰는 데만 몰입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 소설을 쓸 때는 그럴 수 없기도 했어요. 작가로서 일정 조정을 잘하지 못할 때 청탁받은 것들이 많아서 빨리 써야 했거든요. 

같은 시기에 글을 쓰면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시사인》에 <사이보그가 되다>를 연재할 때 「로라」, 「숨그림자」, 「인지 공간」을 썼는데요. 시사인에 연재할 때만 해도 문제의식만 있었어요. 엄청난 질문들을 던지지만, 명확하게 답할 수 없을 때였죠. 이런 상태가 「로라」, 「숨 그림자」, 「인지 공간」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소설에서도 질문을 던질 뿐 결론을 내리지 않거든요. 

칼럼을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는 어땠나요?

연재한 칼럼을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는 가급적 단편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논픽션 한 권을 쓸 때도 장편소설처럼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칼럼을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책으로 만들면서 문제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정리됐는데요. 정리한 답을 가지고 소설을 고치진 않았어요. 



안 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지금까지의 김초엽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타인’, ‘이해’, ‘한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요. 타인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언제 처음 이런 내용에 주목하게 됐나요?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고, 문학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어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완전한 이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과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도 있는데요. 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내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도 세계의 일부니까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게 접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그런데 세계도, 타인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죠.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문학과 과학에서 같은 원리를 발견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네요. 

전공은 아니었지만, 인지과학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물질적인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 궁금했거든요. 첨단 과학을 이용해 타인의 마음에 가까이 갈 수도 있겠지만, 그조차도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소설을 쓰면서 나름대로 답을 내려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 다른 인터뷰에서 ‘간접 경험’이라는 표현을 쓰셨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와, 어떻게 간접 경험만으로 이런 글을 쓰지?’하고요. (웃음)

감정이나 지나간 일을 곱씹는 편이 아니에요. 상처를 받아도 잘 잊어버리고요. 그래서 오히려 직접 경험한 일을 쓰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요. (웃음)

감정과 물질세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감정의 물성」을 쓰기도 하셨죠. 요즘 물성화하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요?

비슷한 질문을 가끔 받는데요. 사실 ‘감정이 물성이 나와도 나는 안 살 거야’라는 마음으로 「감정의 물성」을 썼어요. (웃음)

반전이네요. 이유가 있나요?

소설을 보면 감정의 물성에 호의적이지 않은 ‘정하’와 감정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보현’이 등장하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저는 정하에 가까워요. 정하의 입장에서 보현과 같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쓴 소설이었기 때문에 감정의 물성이 나와도 사지 않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이런 점이 흥미로워요. ‘우주여행 갈 수 있으면 가겠냐’는 독자 질문에 ‘안 간다, 지구 최고!’라고 답하신 것도 봤거든요. (웃음) 소설과 작가가 꼭 일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소설의 배경이나 소재, 주제에 실제로는 큰 관심이 없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저도 재밌다고 생각하는 지점이긴 해요. (웃음) 소설 속에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인물이 많이 나오니까 제 글만 보는 독자님들은 작가도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내가 그런 사람인가?’하고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어요. 그저 소설 속 인물을 관찰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고요. 다만 이해하고, 탐구하면서 안 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좋아해요. 제가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 같아요.

작가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어요. 원통 안의 소녀에 나오는 ‘노아’라는 이름은 「오래된 협약」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데요. 자주 쓰는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편하게 느끼는 이름들이 있어요. 어떤 국적을 갖다 붙여도 어울리는 무국적성이 있는 이름이에요. 노아도 있고, 한나도 자주 써요. 소설 속 인물을 완벽하게 구상하기 전에 이야기 속에 이런 인물을 던져 놓으면 유용하거든요. 개성 있는 이름보다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름들을 좋아해요. 인물뿐만 아니라 제 소설의 배경도 국적이 흐릿할 때가 많고요.

「로라」에 장애나 결핍이 다양성, 개별성의 진보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두고 한 장애인 단체가 ‘장애를 낭만화’하고 있다면서 불쾌감을 표했다는 문장이 나와요. 실제로도 이런 주장에서조차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싶거든요. 육체적 통증같이 실재하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작가님도 이 문제를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대목을 넣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분명 존재하죠. 그런 고통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앞으로 나올 책에 고통에 관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요. 가령 내가 사회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한다고 해도 나의 내면 또는 몸의 고통은 있을 수 있잖아요. 모든 고통이 차별적인 것도 아니고요. 그렇기 때문에 양측 입장 모두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둘 중 하나만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고, 둘 중 하나를 가리지 않으면서 고통의 당사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주목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하나를 강조하다 보면 다른 하나가 희미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네요. 어쩌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한계를 인정하고 공부해 가는 것밖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가해한 타인이나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처럼요. 

사실 아직은 사회적인 차별이나 대상화, 타자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고통을 이용할 때가 더 많다고 느껴요. 장애인들이나 아픈 사람들이 고통스럽지 않냐고, 그러니 그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는 게 좋은 일이라고 단순화해서 말하죠. 고통을 이해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면을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해요.



첫 느낌, 첫 생각은 위험하다

「오래된 협약」은 편지 형식으로 진행돼요. 다른 방식으로 쓰인 유일한 소설이라 눈에 띄더라고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글이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형식 중 하나가 편지거든요. 편지 형식의 글이라는 게 잘 쓰지 않으면 지루해지기 쉬워서 고민했는데 소설에 있는 종교적인 분위기와 편지 형식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썼어요.

실제로 「오래된 협약」은 종교성이 짙어요. 읽으면서 혹시 종교적인 영향을 받으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지금은 종교가 없는데 어릴 때 교회에 다녔어요. 성경을 문화적 레퍼런스로 쓸 때가 있는데요. 사제나 수도원 이야기에는 확실히 어릴 때의 경험이 반영된 것 같아요. 신기한 게 종교를 가진 독자님들은 제 소설을 종교적으로 해석하기도 하더라고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구나 싶었어요. 소설에서 느껴지는 경이감을 누군가는 종교로 해석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감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소설을 쓸 때 ‘내가 가진 생각’과 ‘쓸 수 있는 생각’을 구분하려고 한다고요. 기준이 뭘까요? 

어떤 사회 이슈와 관련해서 누군가가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 어떤 사람이나 문제의 양면성을 알기 전에는 쓰지 않으려고 해요. 첫 느낌이나 생각은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결과를 만들기 쉬우니까요. 주류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치열하게 고민해서 내어놓은 결과물이 아니면 편견을 따라갈 수밖에 없죠. 대신 내가 무언가를 쓰려고 했으면 그것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려고 하고요.

시, 에세이 같은 다른 장르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나요?

시를 생각해 본 적은 없고요. 에세이는 이미 계약돼 있어요. 아마 내년에 두 권 정도 쓰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나는 창작, 독서에 관한 에세이고 또 다른 하나는 SF 게임 에세이에요. 게임을 좋아하거든요.

왕성한 활동은 내년에도 계속되겠네요. (웃음) 곧 중편소설도 나온다고요. 

지금까지는 타인을 이해하는 일에 실패하더라도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고, 불완전한 이해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이야기를 썼잖아요. 앞으로 나올 중편 소설은 이해에 실패한 사람들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예요. 동정과 연민, 존경을 동시에 받으면서 대상화되는 주인공이 다른 사람들과 비극의 장소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다크 투어리즘’을 소재로 하는 소설인데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올 예정이에요.





*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 『사이보그가 되다』가 있고, 여러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우주에 대해 상상하는 걸 좋아하지만 우주에 직접 가고 싶지는 않은 SF 작가. 환상적인 시공간을 여행하고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취미는 두 달마다 바뀌는데, 가장 오래가는 건 게임. 언젠가 집에 모든 종류의 게임 콘솔과 커다란 스크린이 구비된 게임방을 만들고, 스스로를 완전 격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방금 떠나온 세계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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