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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폭식,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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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사람들이 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쯤은 마음껏 음식을 먹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간헐적 폭식’인데, 생각보다 흔한 경우다. 하지만 자신이 폭식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흔히 폭식증이라고 하면 고도비만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어쩌면 우리는 ‘식이장애 치료가 필요한 사람 = 그 증상이 심각한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오해는 초기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실제로 식이장애를 앓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증상이 발생한 한참 후에야 병원을 찾는다. 치료자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날』의 두 저자, 김준기 정신과 전문의와 박지현 상담심리사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최초로 식이장애 클리닉을 설립한 김준기 전문의는 20여 년간 꾸준히 식이장애를 치료하고 연구해왔다. 박지현 상담심리사는 가족체계적 관점과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매년 1,000케이스가 넘는 식이장애 상담을 진행해 왔다. 두 사람은 ‘마음과 마음’ 클리닉에서 함께 환자들을 돌보면서 ‘어떻게 하면 치료의 문턱을 낮출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초기 단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날』을 공동 집필했다.

 

이 책은 ‘폭식증 자가 치료 워크북’으로써, 실제 내담자에게 적용하여 효과를 입증 받은 8주 과정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스스로 식이 태도를 점검해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폭식의 유형과 원인을 설명하며, 단계별로 해법을 알려준다. 폭식을 유발하는 신체적 상태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요인까지 함께 돌아본다. 식이장애 초기라면 약물 치료 없이도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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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장애의 밑바닥에는 ‘수치심’이 있다


‘간헐적 폭식’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내가 폭식증은 아니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폭식증을 앓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한가요?

 

주위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엄청나게 마르거나 과체중인 분들이 병원을 찾아오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마일드한 경우부터 굉장히 심각한 경우까지, 섭식장애의 범주는 다양해요. 일반적으로는 식사를 불규칙하게 드시다가 시작하는데요. 특히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식사를 거르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폭식을 할 확률이 높아지죠. 그게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폭식, 과식의 증상인데요. 그렇게 안 좋은 습관이 진행되다 보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책을 보면, 폭식증과 거식증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연결이 되어 있죠. 폭식증이나 거식증이나 출발은 똑같거든요. 식이를 제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개인의 성격적인 특성이라든지, 서로 다른 부분은 있죠. 거식증 분들은 완벽주의가 조금 더 심하다고 할까요. 절제력이 굉장히 뛰어나신 분들이에요. 그만큼 식욕을 잘 참으시는데, 그러다가 폭식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거식증은 두 종류로 나누는데요. 폭식을 동반한 거식증과 동반하지 않는 거식증이 있어요. 거식증으로 출발했다가 다시 폭식증으로 바뀌어서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는 경우도 있고요.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요? 폭식증을 앓다가 거식증이 생기기도 하나요?


거식증까지 진행되지는 않지만,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죠. 진단에 있어서는 거식증과 폭식증이 구별되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굳이 구분을 짓자면, 거식증 분들에 비해서 폭식증 분들은 더 충동조절이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감정의 기복이 굉장히 큰 거죠. 반대로 거식증 분들은 감정을 안으로 다 삭이는 분들이고요. 사실 거식증은 참아서 병에 걸리는 거거든요. 폭식증은 바깥으로 내지르는 거죠. 그래서 폭식을 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거나, 자해를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거나, 난잡한 성생활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어요. 가족 분위기도 굉장히 달라요. 거식증은 겉으로 드러나는 가족의 문제는 거의 없는 편이에요. 그런데 들여다보면 서로 불편한 이야기들은 하지 않는 거죠. 암묵적으로 가족 안에서 금지되어 있는 거예요. 감정 표출도 잘 하지 않고, 좋은 것들만 이야기하는 거죠. 반면에 폭식증 가족은 감정 표출이 과잉이에요. 누가 봐도 혼란스럽고, 큰 소리가 많이 나고, 싸우고, 그런 분위기가 있는 편이에요.

 

증상이 어느 정도일 때 폭식증, 거식증 진단을 받게 되나요?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섭식문제가 침범했을 때 진단을 내려요. 다이어트를 예로 들면, 대부분 처음에는 건강하게 시작했다고 말씀하세요. 하루 세끼 다이어트 식단으로 먹고 운동을 했다고요. 그런데 살이 조금 빠지고 나면 욕심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더 소량을 먹고 나중에는 기초대사량에도 못 미치는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는데, 폭식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결국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받죠. 사람들과 식사 약속을 해도 마음 놓고 음식을 즐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약속을 취소하기도 하고요. 폭식을 한 날에는 우울감이 심해지거나 자책하고 비난하는 감정들이 생기면서 일상생활에 침범하는 정도가 강해지죠. 나중에는 외출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대인관계 기피로 이어지기도 해요. 자신이 너무 살이 쪘다고 생각하는 거죠. 본인의 바디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일상생활이 거의 마비가 되면 저희가 섭식장애로 진단을 내릴 수 있어요.

 

폭식증이든 거식증이든, 식이장애 문제의 큰 원인 중 하나는 ‘낮은 자존감’인 것 같아요.


공통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생기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자꾸 보여지는 것에 집착을 하는 거예요. 보통 사춘기 때 발병하는데요. 왜냐하면, 안 그래도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보여지는 것조차 뚱뚱하고 예쁘지 않다고 느끼면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저희가 ‘Toxic shame(유독성 수치심)’이라고 하는 감정인데요. 식이장애 분들의 감정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게 깊은 수치심이에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끄러운 거죠. 사람들이 처음 나를 봤을 때 보이는 게 몸인데, 남들이 볼 때 마른 몸이 좋다고 생각하고 계속 마르려고 하는 거죠.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가족, 특히 양육자의 영향이 클 것 같은데요. 가정 내의 불화, 양육 과정에서의 상처를 경험한 경우가 있나요?


굉장히 심각한 트라우마가 많은 분들도 있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양육 과정에서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지 못했던 경우가 많아요. 어머니가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였을 수도 있고, 특별히 집에 문제나 불화가 없었더라도 어머니가 정서적 반응을 잘 못해줬을 수도 있죠. 어렸을 때부터 성취 중심적, 목표 지향적으로 압박을 받거나 비난을 받은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당시 어머니가 우울감이 있어서 아이와 거리를 두었거나, 아이와 스킨십하고 같이 노는 시간이 부족했을 때도 그럴 수 있고요. 사실,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스스로 드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0세부터 3세까지 사랑을 많이 받아야 ‘내가 사랑 받는 존재구나’라고 아는 거죠.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나는 쓸모 없는 존재구나, 엄마를 힘들게만 하는 존재구나, 가족 안에서 나는 안 좋은 아이구나’ 하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다가 식이장애가 생기는 경우도 있나요? 외모에 대한 강박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거의 없기는 한데요. 간혹 열에 한 명 정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다이어트에 관심도 없고 마른 몸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식이장애가 생긴 환자도 있었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사례는, 100kg의 여성분이셨는데요. 어머니가 자꾸 체중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시는 분이었어요. 본인은 지금의 몸에 만족을 하고, 오히려 말랐을 때보다 현재가 더 만족스럽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자꾸 (살을 빼라고) 스트레스를 주니까 먹는 걸로 푸는 거죠. 그런 경우도 있기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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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을 허용하세요


책에서 제안하시길, 8주 동안 ‘자기관찰일지’를 적어보라고 하셨어요.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거나 실수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식단만 적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식단일지’가 아니라 ‘자기관찰일지’인 만큼,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만 보라는 의미는 아니거든요.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관찰해 보라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자신이 식사를 어떻게 잘 조절을 했는가’에만 초점을 맞춰서, 조절을 잘하면 기분이 좋고 조절을 못하면 자책하는 내용만 써오세요. 그러면 ‘식사할 때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시라’고 말씀드리죠. 그런데 그걸 굉장히 어려워하세요. 사실은 그게 잘 안 돼서 폭식이 생긴 거거든요. 힘든 생각이나 어려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폭식을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생각과 감정에 대한 질문을 해준 사람도 없었고, 그걸 관찰해본 적도 없었던 건데요.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감정 상태나 생각을 적는 걸 어려워하세요.

 

‘외모 강박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도 식이장애가 생기는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날씬한 몸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보편적인데, 그런 말들에 흔들리지 말라고 조언해 주기도 하시나요?


행동주의적으로 방법을 제시하는 건 조금 어렵죠. 어쩔 수 없지 자극이 되니까요.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살을 빼야 될 것 같고, 아무래도 위축되잖아요. 제일 핵심은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거예요. 자꾸만 보여지는 것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하면 쉽게 흔들리죠. 마른 몸뿐만 아니라 성적, 일에서의 능력 등 끊임없이 비교를 하잖아요. 그걸 통해서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고유 가치를 확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죠.

 

결국 근본적인 치료는 자존감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거군요.


어려운 일이기는 한데요. 흔들릴 수는 있지만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하잖아요.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게 아닌데, 그걸 확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추는 게 상담의 목표이기도 해요.

 

이 책은 ‘자가 치료 워크북’이잖아요. 한편으로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전문가의 상담을 꾸준히 받지 않아도 될까요?


가능한 분도 있어요. 책을 보시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들이 수록돼 있는데요. 그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자신을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었는지, 왜 자꾸 다이어트에 집착하려고 하는지, 그런 이유만 발견하셔도 인사이트가 생길 거예요. 스스로를 애써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조금 과식했더라도 ‘괜찮아’ 하고 자신을 다독여줄 수 있다면 충분히 자가 치료가 가능하거든요. 만약 자신의 문제를 알았는데도 해결이 안 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죠.

 

폭식을 세 가지로 분류하셨어요. ‘배고픔으로 인한 폭식’, ‘감정(마음고픔)으로 인한 폭식’, ‘스트레스성 폭식’인데요. ‘마음고픔’과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은 비슷한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치료 방법의 차이가 있나요?


스트레스성 폭식은 급성 스트레스가 있는 상황에서 먹는 걸로 안식처를 삼는 경우예요. 상사가 자신을 괴롭힌다든지, 친구가 자신을 소외시켰다든지, 누가 봐도 눈에 보이는 급성 스트레스가 있을 때죠. 일단 먹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실제로 음식을 많이 먹고 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세로토닌 호르몬의 전구물질이 나와요.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조건 먹는 걸로 가는 건데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책에서도 음식 말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스트레스성 폭식은 그런 대처기술을 알려줌으로써 ‘당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행동주의 기법으로 많이 접근하고요. 마음고픔으로 인한 폭식의 밑에는 어렸을 때부터 생긴 깊고 핵심적인 감정들이 있어요. 그에 대한 정서적인 조절 치료나 트라우마 치료를 하게 되죠. 증상이 조금 나아지면 스트레스성 폭식에서 다뤘던 대처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하고요.

 

스트레스를 푸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는데요. 많은 환자들이 선택하고 효과를 봤던 건 어떤 것들인가요?


개인의 선호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거라, 환자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달라요. 음악을 듣거나 명상하는 방법을 추천해 드리기도 하고요.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손을 이용할 수 있는 작업을 알려드리죠. 개인의 취향이나 특성에 맞게 같이 찾아가요. 상담을 통해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나 잊고 있었던 부분들을 찾기도 하죠. 어렸을 때 미술을 좋아했다면 그런 학원을 등록하게 하는 거예요. 외향적인 성격의 분들이나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 분들은 혼자 하는 활동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그룹으로 같이 배울 수 있는 활동이라든지 다른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을 할 수 있게 하죠.

 

“폭식증 치료의 원칙은 ‘식욕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네 가지 식사원칙을 제시하셨는데요. 첫 번째가 ‘기계적으로 먹기’예요. 어떤 사람들은 ‘배고프지 않을 때 음식을 먹으면 필요 이상의 칼로리를 섭취하게 된다’고 주장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요. 개인마다 식이중추가 달라요. 식이중추는 배고픔과 배부름을 조절하는데요.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괜찮은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정말 특수한 케이스죠. 보편적으로 모두가 한 끼만 먹어도 괜찮은 건 아니거든요.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하루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어줘야 과식을 하지 않고 폭식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다이어트 하시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잘 참거든요. 일단 다이어트를 했다는 건 식욕을 굉장히 잘 누른다는 거예요. 특히 많이들 하시는 게 탄수화물은 안 먹는 건데, 탄수화물만 허용 안 한다고 생각하시지만 놓치시는 부분이 있어요. 만약 식사 약속이 있는데 메뉴에 탄수화물이 들어가 있다면 약속을 취소하는 거예요. 사회적인 관계도 다 누르는 거죠. 기본적으로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누르고 포기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걸 조금 허용해 주시라는 거예요.

 

식욕을 참다 보면 폭식을 하게 되는 거죠?


용수철이 눌려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게 폭식이거든요. 그러면 시상하부 안에 있는 식이중추 자체가 불안정해져요. 우리 몸에는 소위 말하는 배꼽시계라는 게 있어서, 시간을 보지 않아도 점심이면 배고픔을 느끼는데, 그렇게 하면 배꼽시계가 망가지는 거예요.

 

항상 음식을 곁에 두고 조금씩 자주 먹으면 어떨까요? 식욕을 억누르지 않아도 되잖아요.


시간을 맞춰서 먹는 게 제일 좋아요. 뇌를 안정시키는 방법이거든요. 배꼽시계를 회복하는 방법은 기계적으로 먹을 걸 넣어주는 거예요. 뇌가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배고픔을 느끼지 않더라도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 먹는 거예요. 제가 상담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자신의 배꼽시계를 믿지 말라는 거예요. 이미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렸으니까요. 규칙적으로 시간을 맞춰서 밥을 먹되, 그게 습관이 되지 않았다면, 처음에는 소화시킬 수 있는 만큼만 먹는 거예요.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할 수 있는 범주부터 시작하는 거죠. 점차 식사량을 늘려나가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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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마인드풀 이팅’을 권유하셨어요. 먹는 대상과 행위를 음미하라는 건데요. 이 방법이 폭식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식을 천천히 섭취하는 효과가 있는 건가요?


상담할 때 물어보거든요. 폭식을 할 때 어떤 맛, 감정, 생각이었냐고요. 보통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고, 그냥 정신 없이 먹었다’고 하세요. 그렇다는 건 자기의 모든 것들을 다 느끼지 않는 거예요. 폭식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 순간만큼은 힘든 생각이나 스트레스를 다 잊게 해주는 거거든요. 그때는 아예 자기가 없는 거예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이게 무슨 맛인지, 무슨 색깔인지 모르고 그냥 정신 없이 먹게 되거든요. 마인드풀 이팅이라는 건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되 자신을 보라는 거예요. 어떻게 먹고 있는지, 어떤 맛인지 보라는 거죠. 처음부터 감정을 보라고 하면 힘들어 하시거든요. 지금 내 몸 상태도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감정을 물어보면 어렵잖아요. 마인드풀 이팅의 첫 단계는 신체 감각을 보는 거예요. 그 다음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거고요. 결국에는 마인드풀 이팅을 하면서 자신을 보도록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다이어트에는 요요 현상이 뒤따르잖아요. 폭식증도 한 번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면서요? 몇 번의 굴곡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셨는데, 이 시기에 많은 분들이 포기하실 것 같아요.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죠. 그래서 잠적하시는 분도 있고요. 자책을 심하게 하시는 분들은 ‘내가 또 조절을 못했구나’ 하면서 자기 탓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상담 초반에 말씀을 드려요. 회복의 속도라는 게 일직선으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 상태가 아니라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을 한다고요.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설명 드리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폭식 자체가 나의 힘든 감정과 생각을 누르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식사를 챙겨 먹다 보면 한편에서는 살이 찐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과연 이렇게 해도 살이 빠질까?’라는 불안도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계속 자기 자신과 싸운단 말이에요.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조금 덜 먹어야 될 것 같은데, 이렇게 했다가 살이 더 찌는 거 아니야?’ 이런 두려움도 있어요. 그리고 마음의 상처라는 게 상담 몇 번 받는다고 해서 갑자기 좋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불안과 두려움을 또 다시 음식으로 달랠 수도 있겠네요.


그동안 제일 쉽게 선택했던 방법이 폭식이었기 때문에 뇌에도 이미 각인된 게 있고요. 사실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습관을 바꾼다는 게 굉장히 어렵잖아요. 치료를 받다 보면 자신을 잘 다독이면서 가기도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 많이 받거나 감정 상태를 컨트롤하기 어려울 때는 무너지기 쉽죠. 이전까지는 그럴 때 쉽게 선택했던 방법이 폭식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폭식을 안 하다가도 다시 할 수 있어요. 자연스러운 코스거든요. 그럴 때 저는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씀드려요. 당시에 내가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생각이었는지, 나를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나를 어떻게 다독이느냐가 중요한 거고요. 굴복을 반복하면서 좋아지는 거거든요.

 

식이장애 증상이 호전되면 환자가 자각하나요?


그렇죠.

 

그때 나타나는 징후들은 어떤 건가요?


감정이 가라앉고 자책하는 날이 있어도 음식으로 풀지 않아요. 그렇게 스스로 조절하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이상 힘들어도 폭식으로 가지 않는구나’라는 걸 알아가는 거죠. 그리고 폭식을 했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으면 심하게 자책을 하고 다음 날의 약속을 다 취소했다면, 이제는 예정된 스케줄도 다 소화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아니야, 어제는 그럴 수 있었어, 오늘 다시 잘하면 돼’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깜짝 놀라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생겼구나’라는 걸 알 수 있죠.

 

식이장애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폭식은 의지가 약해서, 음식 조절을 잘 못해서 생긴다고 많이들 오해하세요. 그리고 숨어서 폭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그 행위에 대해서 굉장히 부끄러워하시고 자책하시는데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식사를 잘 챙겨 먹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신체적인 폭식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감정 상태가 너무 힘들다 보니까 다이어트 문제와 겹치면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생리적인 반응이에요. 절대 의지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본인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숨어서 하면서 자책할 일도 아니에요. 조금만 도움을 받으시면 좋아지시는데,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남들하고 달리 숨어서 폭식하는 문제 있는 존재야’라고 스스로를 범죄자 취급을 해요. 낮에는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밤에는 폭식을 하니까, 그게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폭식의 원인에 대한 오해부터 바로잡아야겠네요.


이건 정말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도 아니고요. 제때 치료만 받으시면 나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의지의 문제이고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감추다가 증상이 커지는 거죠. 그리고 폭식은 자신을 비난한다고 해서 나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힘이 커질수록 극복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게 치료의 열쇠예요. 이걸 다이어트 문제라고 생각하면 이상한 곳에서 방법을 찾게 돼요. 더 살을 빼야 될 것 같고, 더 운동을 열심히 해야 될 것 같고, 더 밥을 굶어야 될 것 같고, 더 다이어트 식단을 독하게 짜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거기에서는 절대 해법이 나오지 않아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 치료의 열쇠가 있기 때문에 인식을 바꿔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해 주세요.


자기관찰일지를 꾸준히 잘 활용하시면 될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상담을 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자기관찰일지를 쓰면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폭식을 하는지 알 수 있는데요. 그러려면 일단은 식사를 잘 하셔야 돼요. 뇌를 안정시키는 게 먼저거든요. 그 다음에는 내가 지금 어떻게 먹고 있는지 식사 점검을 하시고요. 자신이 스트레스 때문에 폭식을 하는지, 밥을 잘 안 먹어서 폭식을 하는지, 마음고픔 때문인지 알아가야 돼요. 그러고 나서 깊이 있는 나를 만나러 가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왜곡된 생각들, 나에 대한 왜곡된 감정들, 자주 드는 힘든 생각, 그런 걸 들여다보는 거죠. 8주 동안 자기관찰일지를 쓰면서 나를 만나러 가는 여행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깊이 있는 나의 상처까지 보게 되면, 나중에는 자책하고 비난했던 나한테 미안해지기 시작해요. ‘나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학대했구나,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봐야겠다’ 이런 마음이 생기기 시작할 거예요.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완벽한 여성이 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잖아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인데, 스스로 자꾸 속는 거거든요.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모든 면에서 완벽해지려고 해요. 일이든 공부든 관계든 몸매든, 보여지는 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렇게 되면 자신을 학대할 수밖에 없고 자기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완벽한 여성이 되려고 하지 말고 파워풀한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가장 매력적인 건 나다움을 유지할 때인데, 다이어트에 몰입하다 보면 나다움을 놓치게 되거든요. 자기다움이 뭔지 아는 게 파워풀한 여성인데, 자꾸 퍼펙트한 여성이 되려고 하니까 모든 면에서 통제를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성취를 많이 이룬 거 같은데 허무하고 기쁘지 않고 너무 힘든 거죠.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날 박지현 저/김준기 공저 | 수오서재 |
하루에 한 챕터씩 총 8주 동안 잃어버린 식사 조절력을 회복하고 잦은 폭식으로 낮아진 자존감을 강화하는 법을 단계적으로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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