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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 “때로는 내려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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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연명의료, 거부하시겠습니까?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당신은 말기 환자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면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다. 물론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다. 완치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고, 다만 살아있는 시간을 수일에서 수개월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당신은 중환자실로 옮겨질 것이고, 하루 한두 번 가족과의 짧은 면회가 주어질 것이고, 그 시간마저도 온몸에 부착한 의료기기 때문에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죽음을 맞고 싶은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거부하고, 최대한 통증을 다스리면서, 천천히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당신의 가족이 말기 환자라면,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찰리 가드’는 생후 8주차에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판단 하에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했다. 부모의 생각은 달랐다. 현재 실험 단계에 있는 치료법을 적용하면 생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SNS와 언론에 도움을 요청했고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 찰리를 호스피스로 옮긴 후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볼 때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고민한 결과였다.

 

‘찰리 가드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찰리의 부모를 응원했고,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도 찰리에게 기회를 주기를 바랐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시도해보지 않았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평생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반대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통증을 경감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것인데, 문제는 법적으로 이 선택이 제약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던 환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는 퇴원을 원했고, 의사는 ‘퇴원하면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고 알렸다. 보호자는 퇴원을 강행했고 결국 환자는 사망했다. 법원은 환자의 아내에게 살인죄를, 담당 의사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실형을 선고했다.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2009년, 당시 78세였던 김 할머니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중환자실에 1년 이상 입원해 있었다. 가족은 ‘환자가 평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했다. 병원이 이를 거부하면서 법적 분쟁이 시작됐고, 대법원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 사회에 존엄사 논쟁을 일으켰던 ‘김 할머니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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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모습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세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을 앞둔 순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것은 ‘환자 본인의 의사’다. 그것을 확인할 수 없을 때는 가족을 비롯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과 절차를 거쳐 이들의 뜻을 따라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이와 관련된 확고한 원칙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지난 4일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안’(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을 전면 시행했다. 환자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을 경우, 의료진이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가족 2인의 일관된 진술이 있다면, 이미 연명의료가 시행되고 있는 경우라도 인공호흡기의 중단 및 제거가 가능해졌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시행으로 죽음과 관련된 자기결정권은 더욱 커졌다. 연명의료와 관련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가, 무엇이 품위 있는 죽음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의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삶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끊임없이 목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의 허대석 저자는 30년 넘게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세부 전문 분야는 종양내과학으로, 진행기 암 환자를 항암제로 치료해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상담 모임을 시작했고, 12년간 서울대학교병원 호스피스실 실장을 맡았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창립에 기여했으며, 블로그 ‘사회 속의 의료’를 통해 의료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책에는 의사로서 저자가 목격한 죽음의 순간들, 연명의료와 관련된 사례들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제 죽을 것인지는 의료진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모습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미리 준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혹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가족과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세요


책의 제목이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입니다. 죽음도 삶의 일부여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우리는 죽음과 삶을 대척점에 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생로병사가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죠. 산파가 찾아와서 출산을 도왔고, 임종도 집에서 맞았잖아요. 그런데 몇 십 년 사이에 이 모든 일들이 의료 기관으로 넘어왔어요. 그러면서 출산이나 질병 치료에 있어서는 크게 갈등이 없는데, 임종의 문제는 삶과 동떨어져 버렸어요. 생로병사라는 것이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고 죽음이라는 게 우리 삶이 완성되는 사이클 중의 하나인데도, 죽음이 의료 문제로 분리되고 기술 중심으로 흘러간 측면이 있는 거죠. 그렇게 됨으로써 얻어진 것들도 많이 있죠.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이 82세가 넘었으니까, 미국이나 영구보다 더 오래 사는 거거든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대부분 병원에 와서 사망하는 현실이 하나의 사회적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병원에서 죽음을 맞음으로써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있을까요?


사람이 한 생을 마감한다는 게, 단지 환자로서 죽는 것만은 아니거든요. 가족 내에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있었을지 모르고, 평생을 같이 살아온 아내의 남편으로서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과정도 있을 수 있어요. 직장 상사 또는 좋은 친구이기도 했을 거고요. 그런데 임종이 의료 기관으로 넘어오면서 그런 부분의 중요성이 없어져 버렸죠. 환자로서 투병하다가 죽는 모습만 남았다고 할까요. 병원에서 죽음을 맞으면서 절대적인 생존 기간이 늘어난 부분이 있겠지만요. 확대 해석하면, 우리 사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행복 지수가 떨어지고 갈등이 많은 원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어요. 또 병원이라는 환경에서는 무리하게라도 방어 진료를 하기도 하고, 그런 현상들이 연명의료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자리 잡고 있기도 하죠. 그런 것들이 한 번 바뀌어야 되는 시점이 왔다고 봅니다.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고 싶은가’와 관련된 대화는 가족 안에서도 잘 이루어지지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진료 과정에서 힘든 순간들도 있을 것 같아요.


30~40년 전만 해도 암 같은 질환은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걸 금기시했는데요. 그런 부분은 많이 개선됐어요. 그런데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인공호흡기를 달 것인지, 중환자실에 갈 것인지, 혹은 죽음의 장소로 집을 선호하는지 병원을 선호하는지, 이런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오가야 되거든요. 그런 대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죠.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도 그런 말을 직접 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대부분 의료진이 가족한테 이야기하죠. 회생 가능성이 없으니까 준비를 하시고, 가족끼리도 대화를 하시라고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가족 관계 역학 조사를 했는데, 스무 가족 중에서 대화가 조금이라도 이루어지는 가족은 일곱 가족이었어요. 열세 가족은 전혀 대화가 없었고요.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는 언제였나요?


옆에서 관찰해 보면 임종하시기 약 2~3일 전에 가족끼리 이야기를 하고, 또 가족이 의료진을 찾아와서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대부분 환자의 의식 상태가 많이 떨어져 있을 때거든요. 대화가 잘 안 되는 거죠. 죽음과 관련해서 환자 본인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게 제일 좋은데, 가족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측면이 강하죠. 우리 사회가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통의 문제도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환자에게 직접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하시는 경우가 드물죠? 보호자가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죠. 보호자들이 대부분 막아서죠. 이론적으로는 의사가 왜 그런 이야기를 안 하느냐고 할 수 있는데, 당신이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부분 환자의 가족, 보호자들이 못하게 하기도 하고요.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그 분들이 나쁜 뜻으로 그러는 건 아니에요. 대부분 분위기 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거든요. 뭔가 나쁜 상황이 임박해 오고 있다는 걸 알아요. 그걸 굳이 환자한테 가서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한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면 ‘환자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해할지도 몰라요, 자살할지도 몰라요, 제발 이야기하지 말아주세요’라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의료진이 가족의 의견을 무시하고 환자한테 가서 ‘당신 곧 죽을 건데 어떻게 할 거냐, 의향서에 서명해라’라고 할 수가 없어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커졌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결정권을 너무 강조했어요. 유럽이나 일본만 해도 죽음을 앞두고 의사 결정을 할 때 자기결정권만 전부로 보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서양의 경우에도 본인이 의향서에 서명하는 비율은 30%를 넘지 못해요.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제도를 만들 때 가족이 대리 결정하는 걸 다 허용하는 거죠. 때로는 그게 더 타당할 수도 있어요.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발휘할 때, 그 선택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흔한 상황을 예로 들면, 가족한테 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죽게 해달라고 서명할 수도 있어요.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환자의 상태가 나쁘지 않은데도요. 그런 경우에는 보편적인 가치에 의해서 판단하는 게 더 맞는 거죠.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요?


국가 지침을 아주 단순하게 만들었어요. 첫째, 본인이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했다면 그에 따르는 것이 옳다. 둘째, 본인의 의사가 명확하지 않아서 결정하기 어려울 때는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를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서 결정한다. 그렇게 간단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법을 만들어서 혼란에 빠져 있고요.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에서는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봐요. 꼭 본인이 결정을 하지 않아도 ‘환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인가’를 생각해서 결정할 수 있게 한 거죠. 그런 점도 고려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자기결정권 중심으로 법을 만들어서 스스로 발목이 잡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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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무의미한’ 의료 행위인가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상황은 어땠나요? 사전에 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었나요?


이전에도 그런 결정을 해왔는데요. 법정 양식이 있었던 게 아니고, 병원마다 임의 양식이 있었어요. DNR이라는 ‘심페소생술금지동의서’가 있었고요. 사전에 써 놓은 의향서가 현장에 반영되는 일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어요. DNR 양식도 반드시 본인 서명만을 요하지는 않았고요. 본인이나 가족이 대리 서명하면 작동을 했죠.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기 전에도 대부분의 상황은 그걸로 다 해결을 해왔던 거예요. 새로 뭔가가 달라진 건 없어요. 법제화 됐다는 의미가 있는 거죠.

 

‘보라매병원 사건’을 떠올려 보면, 이제 의사들이 사법적으로 부당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줄어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이미 부착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과정(이런 경우를 ‘연명의료 중단’이라 한다?필자 주)에서 법적인 문제가 생겼거든요. ‘보라매병원 사건’도 그렇고 ‘김 할머니 사건’도 그렇고요. 그 부분은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서 정리하는 게 훨씬 명확해졌어요. 어떤 절차를 밟아서 제거할 수 있다고 명시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법은 ‘연명의료 유보’와 관련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아요.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1년에 약 20만 명 정도인데, 그 중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논의해야 될 환자는 3~5만 명이에요. 15~17만 명은 아예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았던 거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故 김수환 추기경이에요. 그 분도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셨다면 며칠 내지는 몇 달까지도 생명을 연장하실 수 있었는데 달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연명의료결정법’ 대로 하면 불법이에요.

 

왜 그런가요?


본인이 서명을 하지 않았고, 대리서명도 다른 신부님이 했거든요. 지금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본인이 서명을 안 할 경우, 대리서명은 가족관계증명서에 나타나 있는 친족 외에는 할 수 없어요. 그런 모순이 있는 거죠. 실제 현장에서 더 큰 문제는 ‘연명의료 유보’인데 말이죠. 아예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빨리 호스피스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이 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혼란해진 거죠. ‘연명의료 중단’ 부분은 많이 정리가 됐어요.

 

책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대중에게 더 익숙한 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거든요.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논쟁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연명치료’라는 말을 썼죠. 영어로는 그냥 ‘Lifesustaining treatment’인데, 치료라는 말은 가치중립적인 용어가 아닌 거예요. 뭔가를 고쳐서 환자를 좋게 하는, 일종의 선행이라는 뉘앙스가 있잖아요. 그걸 하지 않는다고 하면 악행을 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현장 상황을 잘 모르시는 많은 분들이 단어 자체 때문에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세요. 왜냐하면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는 일에는 양면성이 있거든요. 기계적인 생명을 연장하는 선행이 될 수도 있지만, 고통 받는 기간만 연장하는 악행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택해야 된다는 논의가 있었던 거고요. ‘연명치료’라는 표현은 가치중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연명의료’라고 하는 게 옳다고 의견이 모아져서 만장일치로 통과가 됐죠.

 

어떤 의료 행위가 ‘무의미한’ 것이냐, 라는 판단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쉬운 판단은 아니죠. 무의하다는 건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이잖아요. 관점에 따라 다른 거죠. 예를 들어서, 말기 암 환자에게 호흡 곤란이 왔을 때 인공호흡기를 다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고통 받는 기간만 연장하는 거지, 실제로 의미 있는 삶이 연장되는 건 아니라고 보니까요. 그런데 환자의 가족들은 끝까지 의료 행위를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가 조사를 해봤더니, 동일한 환자를 놓고 의료진과 환자 가족 사이에 의견이 일치할 확률이 40%가 안 돼요. 의미가 있다 없다는 굉장히 가치적인 판단인 거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충돌하는 거죠. 환자와 의사 사이에도 생각이 다르고, 환자와 가족 사이에도 다르고, 또 가족 내에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어요.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판단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죠. 그런 데에서 갈등이 많이 생기고요. 그런 걸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주요한 쟁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연명 의료를 중단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았잖아요. 의사 입장에서는 연명의료를 중단해 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니까, 안타까운 순간이 있었을 법해요.


책에서도 이야기한 경우인데요. 의사들이 볼 때는 회생 가능성이 없었어요. 그리고 환자의 주 보호자인 부인이 말하길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의료진과 상의 하에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로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가족관계증명서를 확인해 보니까 호적상에 아들이 있는 거예요. 가족 내력을 보니까, 환자 분이 이혼을 하시고 지금은 후처와 살고 계신 거였어요. 아들과는 한동안 연락도 안 한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평소에 문병도 잘 안 오던 아들이 나타나서 우리 아버지를 끝까지 살려내라고 하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연명의료 행위는 의미가 없는데, 가족 간에 의견이 일치가 안 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끝까지 연명의료를 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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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현장과의 괴리 크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간병’”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건강보험 재정을 어떤 순서로 쓸 것인가를 결정할 때 간병 부분에 먼저 써요. 그 다음에 검사, 치료의 순서로 나가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제도에는 ‘간병은 가족이 하는 것’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어요. 검사와 치료를 하는 데 드는 비용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거죠.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간병을 하려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직장을 그만두고 직접 하거나, 아니면 돈을 주고 간병인을 고용해야 돼요. 그게 모순이죠. 40년 전에 우리나라에 건강보험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지금과 상황이 달랐죠. 대가족 제도였고, 그 중에 누군가는 시간을 낼 수 있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가족 구성원도 적고, 그 중에 안 바쁜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집안에 중증 질환자가 한 사람 있으면 나머지 가족들의 생활은 다 마비가 되는 거예요. 이제는 보험 재정도 커지고 시스템도 많이 좋아졌으니까 간병에 주로 투자해야 되는데 여전히 첨단 기술, 첨단 검사에 대부분의 돈을 쓰고 있어요. 개선돼야 될 부분이에요.

 

호스피스 이용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많은 것 같은데요. 호스피스 서비스와 기관을 확충하자고 하면 일부에서는 ‘그거 다 세금이잖아’라고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나라의 경우 중증 질환인 경우에는 환자들이 수도권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다 몰려와 있어요. 그러면서 임종하기 직전의 한두 달 사이에, 평생 사용하는 의료비의 거의 절반을 써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쓰는 건데,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에요. 그 돈의 절반이 아니라 1/10만 쓰면 호스피스 잘할 수 있어요. 이건 수도권 대형 병원 중심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모델이고요.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돼요. 집과 가까운 곳에 호스피스 시설이 있어서 심하게 아플 때는 시설에 갔다가, 조금 좋아지면 집에 와서 간호사의 방문을 받는 거죠. 지난 40년간 우리의 의료는 기술 중심, 수도권 대형 병원 중심으로 발전해 왔어요. 이 기본 틀이 바뀌어야 돼요. 비용 면에서 보면, 호스피스를 가는 게 건강보험 재정을 훨씬 아끼는 겁니다. 호스피스에 갈 기간에 중환자실에 가서 인공호흡기를 달면 훨씬 더 많은 돈을 써야 되거든요.

 

품위 있는 죽음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세요?


그 대답은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는데요. ‘어떤 게 바람직하지 않은 임종인가’ 하고 반대되는 부분을 생각하시면 비교적 정리가 된다고 봐요. 육신적인 면과 영적인 면,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가족의 죽음을 경험할 때, 특히 불행하고 고통적인 사람들을 보면 시신을 못 찾은 경우예요. 세월호도 그렇고 천안함 사태도 그렇죠. 시신을 찾아서 편안하게 자고 있는 모습처럼 되어 있다는 걸 확인하기를 원하죠. 고통스럽게 임종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되는 거죠. 그런데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 있으면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는 거거든요.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죽음의 모습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영적인 측면에서는 어떤가요?


환자들을 상담 해보면, 대부분 인간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생긴 상처들이 끝까지 남아 있고, 그걸 죽기 전에 풀고 싶어 하는데요. 임종 전의 두서너 달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기예요. 중환자실에 가서 인공호흡기를 달거나 의식이 없어진 상태에서는 할 수가 없는 거죠. 조금은 의식이 남아 있어야 되고,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야 하니까요. 삶에서 마무리하고 가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떠나면, 본인한테도 한이 남지만 남은 사람들한테도 굉장히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면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그 이미지가 평생 남거든요. 편안하게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중환자실에 가서 연명의료를 하지 않으면 뭔가 최선을 안 한 것처럼, 혹은 포기한 것처럼 느껴요. 그게 아니에요. 때로는 어느 시점에서는 내려놔야 해요.

 

어느 시점에는 내려놔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환자를 위한 길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죠.


사회 전체적인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봐요. 이제는 사회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더 발전했으니까 분명히 어딘가에 치료할 수 있는 약이나 의료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최선을 다해서 그걸 찾지 못했기 때문에 죽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거죠. 때로는 죽음이 불가항력적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어떤 약을 쓰다가 부작용이 생겨서 응급실에 오기도 하고, 중환자실에 왔다가 돌아가시기도 해요. 그때서야 아차, 싶은 거죠. 이럴 줄 알았으면 못 했던 이야기도 하고 정리할 시간을 가질 걸 하고 후회하는 거예요. 때로는 내려놓고 받아들여야 된다는 걸 수용하고, 한 인간으로서 떠나기 전에 정리해야 될 부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돼요. 그게 필요하다는 게 사회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고, 우리가 새로운 임종 문화를 정립해야 될 시가가 온 거죠.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해서 아쉬운 부분도 있으실 텐데요. 어떤 점이 개선되면 좋을까요?


우선, 어떤 형태로든 법이 시행됐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주변 국가에 비해서 제도화가 대단히 늦었지만, 그나마 시작한 건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그런데 너무 이상적인 법을 만들었어요. 너무 서식도 많고 현장과는 괴리가 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지킬 수 없는 거죠. 이상적으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다 이해를 하는데, 현장에서 그걸 지킬 수 없으면 범법자가 된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어떤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요?


누구도 고통스러운 임종을 원하지 않아요. 여러 조사 결과를 봐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답변이 90%가 넘어요. 그런데 법에서 요구하는 양식을 완성할 수 있는 환자는 10%가 안 되거든요. 그러면 80%는 제도상의 문제가 생기는 거죠. 제도가 너무 까다로워서 서식을 완성 못할 수 있는데, 그게 곧 ‘당신은 서식을 작성하지 않았으니까 고통스러운 임종을 원한 것이다’로 해석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현재의 법에서는 그렇게 해석하는 거예요. 모순점이 생기는 거죠. 저는 법이 최소한의 것만 정리를 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머지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규범을 정해서 할 수 있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측면이 있어요. 그 점이 조금 아쉽죠.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허대석 저 | 글항아리
잘못된 결정과 잘된 결정, 그리고 누구든 확신할 수 없는 애매한 결정들이 현장의 복잡함과 급박함 속에서 펼쳐지며, 거기 얽힌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파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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