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보통’인데 하는 말들은 보통사람 같지 않다. 사실 그가 하는 말을 곰곰이 따져 보면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다. 이를 테면 사회생활하면서 반말하지 않기, 회식 강요하지 않기, 관계를 핑계 삼아 불성실하게 일하지 않기. 지극히 평범한 문장으로 묶은 두 권의 수필집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다. 책을 읽는 순간순간 목이 따끔거렸다. 어른이 되기 싫은 한 소년의 오랫동안 고여 있었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따뜻함을 숨기려고 일부러 시니컬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수필가 김보통의 이야기다.
이미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다
수필로는 두 번째 책을 썼다. 어쩐지 두 책의 제목이 이어지는 느낌이 있다.
“행복합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안 읽어보지 않겠나? (웃음)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계피맛 사탕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어른이 되면 왜 달콤한 사탕보다 쌉싸름한 계피 맛을 좋아하게 되는지, 어쩐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책 날개에 적은 프로필 문구가 굉장히 짧다. “만화가 / 수필가 / 부정할 수 없는 어른”. 전작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에서는 일대기를 실었다. “2008년 입사 / 2013년 퇴사 & 만화가 전업 / 2015년 수필가 겸업 / 2017년 아직 불행하지 않음.”
저자 소개를 길게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첫 만화 『아만자』 를 출간할 때도 그랬다. 출판사에서는 출신학교, 회사 등 약력을 써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설득했지만, 나는 만화가로서 내 만화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나온 대학, 다닌 회사 이름을 꼭 써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홍보 문구로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다행히 출판사에서 받아들여줬다. 그래서 만화책에는 “30대 / 만화가”라고만 썼다.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을 싫어하나?
김보통 이미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은 거다. 유명한 누군가의 글이 아니라 내 수필을 소비하게 만들고 싶다. 김보통이 누군지 몰랐던 사람이 내 책을 읽었다고 할 때가 제일 좋다. 내 수필을 읽고 내 만화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 방향이 나는 좋다. 『아만자』 , 『D.P: 개의 날』을 그린 만화가의 책이라서 소비되는 것은 크게 반갑지 않다.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라는 문장에 어른이고 싶지 않은 욕망이 읽힌다.
나이가 들면 달라질 것 같았는데, 정신은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면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서글프기도 하고 무섭고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제 미성숙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면 안 되는 나이니까.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선물로 5백 원짜리 장난감을 선물 받은 일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상황을 이해한다. 이해해야 하고.
“쉬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 결심의 동기에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작은 외삼촌이 있었고.
부모님이 작은 칼국수집을 하시던 시절, 나는 대학생이었다.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놓고 혼자 끄적끄적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외삼촌이 뜬금없이 내 글을 읽었다며, 글이 너무 쉬워서 술술 읽혀서 좋다고 했다. 외삼촌은 평생 책 한 권 안 읽었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외삼촌에게 칭찬을 받아 좋았다. 그 후 글을 쓸 때마다 작은 외삼촌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글 쓸 때 내가 염두에 두는 것은 ‘더 좋은 표현이 있을까’가 아니라 ‘외삼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인가, 내가 괜히 꼬아 놓은 문장은 없을까’다.
글은 주로 언제 쓰나?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쓴다. 일부러 정신줄을 놓고 쓴다. 집중해서 말짱한 정신으로 쓰면 글이 안 나온다. 이성적인 판단을 제대로 못할 때 워밍업 하는 기분으로 쓴다.
스트레스를 글로 푸는 것인가?
지금 따로 하는 여가 활동이 없다. 집에서 턱걸이는 계속하고 있지만. 글을 쓰는 시간이 오히려 내게 휴식 시간이다. 만화는 상황을 구체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의식의 흐름대로 그리면 안 된다. 하지만 글은 혼자서 쓰는 거니까. 큰 부담은 없다.
전작을 읽고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을 읽은 독자가 많더라. 리뷰를 살펴 보니 “공감대가 많았다”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더라.
사실 내 하루 일과는 리뷰 읽기부터 시작된다. 많이 하시는 이야기가 “글을 너무 쉽게 쓴다”는 평이다. 내 책에 그럴싸한 사건은 없다. “평범한 문장이 이어지지만 여운이 남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는데, 내가 가장 바라는 바다.
즐기면서 글을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업인 만화보다 편한 작업인가?
편한 거야 물론 글을 쓰는 일이다. 이건 혼자 해도 되니까. 만화는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작업이라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하는 작업은 만화지만, 만화가로서의 김보통과 수필가로서의 김보통을 굳이 정체화 하진 않는다.
김보통의 글을 쓸 뿐이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 인터뷰할 때마다 ‘고독이’ 탈을 쓴다. (탈은 트위터에서 제작해줬다) 데뷔한 지 벌써 6년이 되어 가는데, 얼굴을 계속 감추는 일이 수월한가? 수필집에 등장하는 악독 상사들이 연락을 해온 적은 없는지 궁금하다.
전혀 없다. 내가 만화가 김보통이라는 사실을 아는 지인이 거의 없다. 친척들도 모른다. 본명도 밝히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나오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실명을 넣으라고 해서 아무거나 넣었더니 가입이 되더라. 내가 만화를 그린다는 사실은 친구 세 명 정도만 안다. 책에 등장하는 직장 에피소드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사건들이라, 책을 보고 연락이 온 동료들은 없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살면서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타인도 당연히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을 왜 못하냐고 종용하는 것 역시 안 하려고 노력한다.”(58쪽)
무의식적으로 나도 강요하는 게 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이 문제로 너무나 긴 시간 동안 고통 받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고 매사 노력한다. 솔직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자신은 없다. 나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재주가 없어서, 가능한 인간관계를 줄이고 있다. 친구들도 많지 않은 뿐더러 어시스트 분들께도 가능한 간섭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디까지나 내 일을 도와주는 파트너이지 내 부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부분은 해주고 싶다. 이번 설 연휴 때 긴 휴가를 드린 것도 내가 회사를 다닐 때, 원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조심하고 있지만 잘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지금 어시스트는 모두 몇 명인가?
정규직으로 일하는 분이 세 명이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분이 한 분 계신다. 호칭은 성은 붙여서 ‘어시님’이라고 부른다.
어시스트 채용 공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기준으로 채용했나?
그림만 봤다. 이력서도 없이 포트폴리오만 받았고, 작업실에서 1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보도록 했다. 친구나 동아리를 뽑는 게 아니니까. 우리 관계가 돈독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일을 잘하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약속대로 회식은 한 번도 안 했나?
안 했다. 어시스트 분들의 업무 시간이 12시부터 6시다. 보통 아점을 드시고 오시니까 같이 점심을 먹을 일이 없다. 일부러 업무 시간을 이렇게 조정했다. 물론 중간에 휴식 시간은 있다. 지키려고 하는 것은 퇴근 시간이다. 최대한 개인 시간을 보장해주려고 한다.
예전에 활동하던 만화가들은 보통 문하생을 모집하지 않았나?
요즘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 아예 채용 사이트에 ‘문하생 모집은 금지’라고 기재되어 있다. 구시대 악습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점점 더 없어지지 않을까.
기상 시간이 어떻게 되나.
대개 7시쯤 일어나는데 오늘은 인터뷰가 두 개 있어서 6시에 일어났다. 어제는 11시에 일어났고.
마감은 잘 지키나?
믿기 어려우실 지 모르지만, <한겨레>에 『D.P: 개의 날』을 연재할 때 단련이 돼서 마감은 잘 지킨다. 간혹 늦을 때는 있지만, 빵꾸를 낸 적은 없다.
작업 의뢰를 요청 받을 때, 승낙하는 기준이 있나?
아시겠지만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림 실력을 요구하는 분은 없다. 다만 김보통의 그림을 원하는 분들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김보통의 글을 쓸 뿐이다. 그래서 김보통의 그림, 김보통의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내게 연락한다. 지나치게 상업적인 작업은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테면 『아만자』 를 이용해서 제약회사를 홍보하려는. 이런 일은 거절하지만 상황이 맞는 일이라면 대개 수락한다.
SNS에 “반말을 하는 사람과는 일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래서 반말을 듣는 경우가 희박하다. 반말을 쓰는 사람들은 아예 내게 일을 의뢰하지도 않고. 지금까지 노동부, 민주노총, MBC노조와도 일했는데, 이런 작업을 계속 노출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일들이 껄끄러운 사람은 아예 내게 연락하지 말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일들이 들어오고 있다.
의뢰할 때, 이것만은 좀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첫 번째는 한글 프로그램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화가들은 업무 중에 한글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한글 문서를 보내주면 네이버 오피스에서 변환해서 파일을 열어야 한다. 미칠 것 같다. 제발 워드로 보내 달라. 워드는 지메일에서 바로 열린다. 두 번째는 마감 일정과 고료를 정확히 알려줬으면 좋겠다. 내 작품에 대한 감상, 칭찬은 다 필요 없으니까 부디 일정을 정확히 명시해주면 좋겠다. 고료를 보고 거절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하고 싶은 작업이고 마감 일정이 넉넉하면 고료가 적어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금 스케줄을 보고 승낙하겠다는 뜻인데, 내 작품의 팬이라면서 일정을 두루뭉실하게 이야기해주면 답이 없다. 결국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줄 뿐이다. 일정 안에서 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제발 마감 당일 날 연락해서 “작가님, 원고는요?”라고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기적인 일이 아니라면, 일주일 전에는 최소 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확인해줬으면 좋겠다. 그 외 나머지는 작가에게 달려 있는 문제고.
나는 회의적인 이상주의자다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한 이력이 있다. 강연을 하면 퇴사 준비생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고.
심지어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가도 퇴사 관련 질문을 받는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를 쓸 때, 퇴사를 부추기는 책이 되지 않길 바랐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 퇴사한다고 해서 잘 풀리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이 사회에 병든 조직이 얼마나 많길래 이렇게 번아웃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은지, 한숨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든 회사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고통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때 나와야 하는 반응은 “세상에 네 고통만 존재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이 아니다. “이 고통도 없애고 다른 고통도 없애자”고 말해야 한다. 대기업의 악행은 여전하다. 인식하고 있다면 부디 자성하길 바란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조직 구성원의 의식이라도 변해야 하지 않나 싶다. 퇴사는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책에도 썼듯이 퇴사 후 나는 몹시 힘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죽고 싶은 만큼 힘들다면 벗어나는 게 맞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는 퇴사 준비생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관리자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물론 관리자들이 이 책을 읽을 가능성은 전무하겠지만.
두 권의 수필집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김보통은 낙관주의자, 혹은 이상주의자”라는 사실이다. 텍스트만 읽으면 비관론자로 보이지만,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비관적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나는 회의주의자일 뿐이다. 굉장히 회의적인 이상주의자다. 나는 세상이 더 나아지길 바라고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곧이곧대로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계속 의심하고 불평한다. 내 오랜 별명이 ‘투덜이 스머프’인데, 사회학자 오찬호 선생님의 책을 읽으니 이 분이야말로 전문가시더라.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의 추천사에도 썼지만, 인류 역사는 늘 불편함을 느낀 자들에 의해 진보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이 사람들이라고 본다. 요즘 여권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은가? 지금 이렇게 여성의 인권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바뀔 거라고 본다.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지나가야 할 길을 지나면, 분명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도서관을 만들고자 몇 천 권의 책을 사 놓지 않았나? 지금도 이 소망은 버리지 않았는지.
내가 마지막 직업을 갖는다면 아마도 도서관장이지 않을까. 도서관은 일종의 병이다. 사실 만들고 싶은 건 많다. 카페도 만들고 싶고 작업실도 만들고 싶다. 우선 작업실을 만들어서 그 옆에 ‘보통 카페’를 열고, 또 그 옆에 ‘보통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보통 시리즈를 운영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만화를 그리는 건 내게 소명 같은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일의 가치에 대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해서 하는 일이다. 글도 삽화도 마찬가지다. 평생 만화를 할 거다,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나 욕망이 없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글을 쓰겠다는 욕심이 없다. 스쳐 지나가는 명함 중 하나가 수필가일 뿐이다.
2014년 11월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앞으로의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한다. 더 잘되면 보너스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의 김보통은 어떤가?
덤으로 살고 있는 인생, 맞다. 만화가로서 더 바라는 건 없다. 더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큰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이대로만 가도 좋다.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어시스트 분들의 월급을 잘 올려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좋겠다. 정점은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인정받는 일에 관심 없다.
수필가 김보통이 쓰고 싶은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아직도 공개하지 못한 소소한 흑역사가 많다. 흑역사를 모은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고, 군대 때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D.P: 개의 날』 는 픽션이니까 다르고. 또 “너는 안된다”고 얘기한 사람들과 그래서 정말 안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학창시절 김보통에게 망언을 퍼부은 선생님들이 총출동하는 책인가?
아마도.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수 없다. 나아가 서울에 있는 대학도 갈 수 없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간당간당 대학에 들어갔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제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한다고 말해 주신 송모모 선생님, 저는 얼마 전에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올 수 있었습니다.”라고. 내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할 때, 의문의 시선을 보낸 사람이 있었다. 그 분께도 편지를 쓰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는 데뷔 6년차에 지금까지 단독 저서 11권을 썼고 공동 저작까지 포함하면 17권을 썼습니다. 올해도 책이 5권 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 20권을 채웠습니다”라고.
회사 이야기는 언제쯤 만화로 나올까?
2,3년 후가 되지 않을까? 『미생』 이 직장인 히어로물이라면, 내가 그리는 만화는 안티 히어로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직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무척 어두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김보통의 실물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더라. 대신 밝혀주고 싶은데, 유쾌한 기운이 넘친다.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는. (웃음)
만화가 최규석 작가님이 예전에 이런 말씀을 해줬다. “충분히 삐뚤어질 수 있었는데, 희한하게 밝게 자랐다.” 나는 무게를 잡거나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다만 사람들을 웃기고 싶은 욕망은 있다. 강연을 가면 두 시간 내내 웃기는 이야기만 하고 온다. 물론 진지한 이야기를 바라는 청중도 있기 때문에 10분 정도는 진지하게 말한다. 개똥철학 같은 이야기지만 그것이 진실일 때도 있으니까.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걷자는 이야기까지는 안 할 테니, 다같이 천천히 좀 뛰면 좋겠다. 뒤에서 자꾸만 북 치고 총을 쏘면서, 1등하면 상 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장 나쁜 사람들이다. 그 밑에서 더 빨리 뛰라고 재촉하는 사람들도 나쁘고. 이 사람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다같이 천천히 뛰는 일이다. 지금처럼 죽자 사자 뛰면서 뛰는 와중에 옆에 있는 사람 다리 걸어 넘어뜨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각자의 길로 각자의 속도로 뛰었으면 좋겠다. 인생이 꼭 마라톤은 아니지 않나? 어떤 한 방향으로만 어떤 한 코스로만 달려야 하는 경기가 아니지 않나? 국가의 역할은 이 코스를 넓히는 일인데, 코스에서 이탈하면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이건 비정상이지 않은가?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 삶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께 사회학자 오찬호, 엄기호 선생님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2016년에 나온 엄기호 선생님의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를 읽어봤으면 좋겠다. 너무 좋은 책이다.
김보통 작가의 독자들에게는?
5년 전에 내게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지금의 김보통을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만화가, 수필가를 떠나 김보통의 독자로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기대에 보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김보통 글그림 | 한겨레출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뭐든지 다 해봤던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저자는 때론 농담을 던지듯 때론 고백하듯 담담하게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