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다 보니 허기졌다. 티 내지 않으려 꾸역꾸역 감춰뒀던 어떤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네게도 있는 마음이지?’라고 묻는 인물들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소설가 김금희는 첫 장편을 두고 “쓰이는 대로 썼다”고 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시작은 같은 상처를 지닌 두 남녀의 연애였지만, 두 주인공은 한 번 손을 포개어 잡는 것으로 인연을 마쳤다. 분명한 건 그들이 각자의 마음을 폐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사랑의 주체인 나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는 변화다. 『경애의 마음』 은 우리에게 결코 잊히지 않는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한번 써본 마음, 잃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마음, 말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마음.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아요. 첫 장편을 쓴 소감이 어떤지.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소설이었어요.
어떤 의미에서요?
늘 그렇듯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불안을 안고 쓰는 것 같아요.
300명 독자에게 가제본을 보내, 사전 서평을 받았어요. 작가에겐 흔치 않은 일, 굉장히 떨리는 작업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잡지에 연재한 작품이지만 완전한 퇴고를 거치지 않은 소설을 무려 300분이 읽으시는 거잖아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어쩔 수 없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출간 전 리뷰가 이렇게 많이 달린 소설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아직 떨려서 찾아보진 못했어요. 잡지에 발표했을 때보다 500매를 더 썼거든요. 혼자 작업한 시간이 길어서 힘들기도 했고, 퇴고하는 기간도 길었고요.
‘작가의 말’이 굉장히 짧아요.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해 썼다.” 독자 입장에서는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었더라고요.
작가의 말이라는 게 작가 개인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글일 텐데요. 이 책을 읽은 사람이 가장 끝에서 들었으면 하는 말을 생각하다가 나온 문장이었어요. 개인적인 감회를 길게 쓰기보다 가장 작은 소리로 남겨두고 싶었거든요. 이 소설에 마음을 주신 분들에게 답장을 드리는 마음이었어요. 뭔가 더 보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애의 마음』 의 출발이 궁금해요.
3년 전인가 4년 전인가, ‘미싱(mishin)’이란 단어가 머신(machine)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국에선 사양 산업으로 저물고 있지만, 미싱이 기계를 대표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마산에서 일했던 친척들도 생각났고,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을 젊은 사람들이 궁금해졌어요.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는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특징은 무얼까 고민하다가, 연재 제의를 받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죠.
반도미싱의 팀원인 ‘경애’와 팀장대리인 ‘상수’, 두 사람이 굉장히 닮은 인물이라 여겨졌어요.
캐릭터가 먼저 잡힌 건 상수예요. 뭔가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인물이 떠올랐고, 그와 짝패로 존재할 사람으로 경애를 생각했어요. 이 둘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요. 제가 인천에서 평생을 살았는데, 20대가 된 1999년에 저희 동네에서 호프집 화재 사건이 일어났거든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경애와 상수가 이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했다면, 어른이 돼가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애도하고 견딜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소설을 읽는 내내 경애(敬愛)는 이름의 뜻, 그리고 ‘마음’을 곱씹게 되더라고요.
‘경애의 마음’이란 제목은 초고를 쓰기 시작한지 두 달쯤 지났을 때 정했어요. 경애라는 이름을 짓고 나니 제목이 금방 따라왔죠.
경애의 너무 긴 아이디(frankensteinfree-zing)를 읽다가 웃음이 나버렸습니다. 상수는 이 이름을 읽고는 “자기가 인사과장이라면 이런 이메일을 쓰는 직원을 뽑지 않을 것 같았다. 간소하지 않다는 건 실용적이지 않다는 뜻이었고 회사에서 하게 될 ‘노동’이라는 데 감이 없다는 것(28쪽)”이라고 말해요.
첫 직장에 들어가서 이 메일을 정해야 했을 때가 생각났어요. 그전까지 제가 갖고 있던, 지금까지도 쓰는 메일 주소가 novelist79인데요. 직장에서는 이 아이디를 쓰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아이디는 소설가였지만, 그 때까지 전 소설가가 아니었거든요. 작가 지망생 김금희가 아닌 신입사원 김금희로 살아야 하니까 머뭇거려졌다고 할까요? 결국 회사 이름을 영문으로 쓴 다음 ‘79’를 보탰어요. 그래야 뭔가 떳떳하고 어른스러워지는 것 같았어요. 그때는.
상수는 고독사를 꿈꾸지만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되고 싶은 욕망이 큰 사람으로 읽혔어요. 상수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는 어떻게 떠오른 이름인가요?
원래 이 제목으로 단편을 쓰고 싶었어요. 요즘 세대를 보면 관계를 필요로 하지만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요. 온라인 세계가 등장하면서 분명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있지만, 결국 현실에서의 관계와 시소를 타게 되죠. 상수는 현실에서 아웃사이더, 고문관에 속해요. 상수가 왜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되었을지 생각해보면, 온라인에서 어떤 관계를 이어가는 세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세계가 있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연애 상담 페이지가 생각났어요.
현실에서 사람들이 가장 슬플 때가 어쩌면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지 못할 때인 것 같아요.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니까요.
아마 현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는 “네가 잘못했어”일지도 몰라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상수가 어떤 순정함을 지키려고 애쓴다고 여겨졌어요.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델리스파이스, 민들레영토, 미투데이 등이 등장해요. 2000년대 초반을 청춘기로 보낸 사람이라면, 몰입이 분명 남다르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설을 쓰면서 ‘요즘 젊은 독자들이 번개를 알까?’ 싶었어요. 저는 너무 자연스럽게 썼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20대들은 모를 것 같아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죠.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약간의 해설을 보태기도 했어요.
진도가 나지 않아서 답답했던 장면이 있었나요?
단편 작업을 할 때, 저는 주로 인물들의 내면 심리에 집중해서 쓰는 편이에요. 그래서 장편을 쓸 땐 플롯 중심으로 쓰게 될 줄 알았죠. 그런데 후반부를 쓰는 중에도 제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웃음) 경애와 상수가 은총의 집을 가는 장면을 쓸 때 비로소 느꼈어요. 쓰이는 대로 쓰는 게 내가 쓰고 싶은 장편이라는 마음에 이르게 됐죠. 그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 마음이 어떤가 들여다보았거든요
독자 리뷰를 살펴봤는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장이 있더라고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176쪽)
상수가 경애 마음속에 들어가 이해에 다다른 게, 이 문단에서 확 드러나잖아요. 이 소설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 문장을 썼을 때, 비로소 찾은 것 같아요. 경애 역시 옛 연인인 산주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었을 텐데요. 현실에서 자기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박준 시인의 추천사가 유독 오래 기억에 머물었어요. “다채로운 서사를 통해 오래 울고 있던 숱한 마음들을 불러내놓고는 이내 가만가만한 문장으로 그 면면을 어루만진다.” 정말 모든 인물의 마음을 찬찬히 되짚어줬다는 인상이 있어요. 위무 받은 느낌이랄까요?
어떤 마음이 전달됐다는 느낌을 받으면, 가장 힘이 나요. 박준 시인이 소설의 어떤 리듬에 대해 이야기해줬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제가 그랬거든요. 어떤 큰 사건에 대해 말할 것 같다가도 갑자기 멈춰 서서 뒤돌아보고, 그 마음이 어떤가 들여다보았거든요.
막 친절한 소설은 아닌데, 결말에 도달해서는 ‘왜 끝이 이렇지?’라는 의문은 없었어요. 경애가 이렇게 말했죠. “상수의 그런 밀침이 물결 정도로 지나갈 수 있도록 마음을 축소해야 한다.”(271쪽) 이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관계가 좀 더 진전될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라고 산정하고 소설을 시작했는데요. 쓰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믿음, 애정을 확인하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생생한 연애 이야기를 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무리해서 쓰고 싶지 않았어요.
상수가 말했어요. “한 개인에 대해서 그렇게 폭풍처럼 많은 것들을 알아버리는 건 기이한 경험”(207쪽)이라고. 작가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나요? 생각지도 못한 비밀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대처해요?
이런 문장을 쓴 기억이 있어요. “누군가는 비밀을 알게 돼서 오히려 사이가 멀어졌다.” 비밀을 들은 제 마음 때문이 아니라, 비밀을 전한 그 사람의 마음으로 인해 관계가 어려워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비밀의 상처가 치유되면 그 비밀을 청취한 제가 필요하지 않게 되잖아요. 그러면 비밀을 들은 관계에서의 거리 조절을 하게 되고요. 종종 어려워질 때가 있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는 어떻게 다를까요?
온라인 공간을 두고 끈끈하지 못하다, 금방 허물어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요. 전 생각이 좀 달라요. . 제가 오랫동안 트위터를 해서일지 모르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연대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맹점이 있긴 해요. 현실에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른 질감이 있으니까. 중요한 건, 어떤 세계이든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작가님이 ‘언니는 죄가 없다’의 운영자라면요. 경애와 상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경애에게는 “산주를 믿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경애가 산주를 확실하게 밀쳐내지 못하는 건, 산주가 처한 어려움 때문이거든요. 경애는 자신만이 산주를 치유해줄 수 있다고 믿는데, 이건 바꿔 말하면 산주를 믿지 못하는 것이기도 해요. 저는 대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우에 지나지 않는 상황들이 많죠. 상대방을 믿고 그대로 두었을 때, 분명 달라지는 것들 것 존재해요. 그리고 상수에게는 “좀 더 용기를 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상수는 감정을 많이 느끼는 인물이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상수 역시 상대를 좀더 믿는다면, 고립감을 덜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읽은 것만으로도 어떤 위안이 된 문장이 있어요. “상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43쪽)
사실 며칠 전 제게도 위기가 왔어요. 지금 마무리해야 하는 단편이 있는데 도저히 못 쓸 것 같은 거예요. 작업하는 카페로 가는 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늘은 그냥 밀크티나 한 잔 마시고 집에 가자고 발길을 돌렸어요. 그래서 다른 카페에 앉아있는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내 마음의 소리를 한 번 들어줘서 마음이 생각을 달리 했나? 그래서 작업하는 카페로 다시 가서 두 시간쯤 글을 썼어요. (웃음)
전작에서도 이번 작품에서도 시를 인용했어요.
신용목 시인의 「울음을 다 써버린 몸처럼」을 읽고 필사를 했어요. 특수하다 싶을 만큼 너무 좋아서 안 쓰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애가 정말 이 말을 했을 것 같았어요. 같은 문장이 두 번 나오잖아요. 그만큼 제겐 너무 중요한 문장이었어요.
누군가 이 소설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이걸 고를 거예요. “한번 써본 마음은 남죠. 안 써본 마음이 어렵습니다. 힘들겠지만 거기에 맞는 마음을 알고 있을 겁니다.”(291쪽) 혹여 상대가 모르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를 달래는 문장이기도 했어요. 어떤 상황들을 볼 때 정말 별 거 아니었고 지나가는 마음일 때도 많아요. 제 마음을 상대가 몰라줬다고 해도 끝끝내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인간이 만들어놓은 가장 내밀한 예술
요즘 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뭔가요?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도 썼는데요.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나쁨이 그러데이션처럼 퍼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 그대로 농담(濃淡) 같은 거라, 없는 사람은 없다고 여겨져요. 불과 1,2년 전만 해도 누군가에게 거리감이 느껴지면 좁혀가려고 노력했는데요. 이제는 조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 농담의 짙고 연하기를 들여다보면서 극복하면서, 사람들이 진짜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나쁘고 안 좋은 결이 있음에도 그것을 동결해주는 어떤 장점을 발견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정말로 나쁨 자체인 경우도 있으니까요.
눈치가 빠른 편인가요?
예민하긴 한데 정확하진 않은 것 같아요. 보고 싶은 결이 있으면 그 결대로 보려는 성향이 있어요. 어떤 감정이 들면 금방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도록 간직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만, 저는 결론을 금세 내버리는 편이라. 예민하긴 하지만 핀트가 좀 안 맞는? (웃음) 그런 편이에요.
얼마 전 서점에 놓인 『너무 한낮의 연애』 를 보았는데, 13쇄였어요. 전작이 큰 사랑을 받아서 부담도 있지 않을까 궁금했어요.
단편집으로 만난 독자들이 이번 작품을 통해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런 소망은 있어요. (웃음) 장편을 쓰든 단편을 쓰든 어쨌든 한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달라지지 않는 어떤 게 있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다른데? 하는 의문은 없을 것 같아요.
“주변의 기척들에 관심이 많고 그것이 주는 자극으로 소설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추상적인 질문이겠지만 소설의 쓸모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소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예술 중 가장 내밀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읽는 순간에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내밀한 상태로 통한다고 느껴요. 삶이란 어떻게 보면 가치 판단의 반복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소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긴 것이기도 하고, 국가나 장벽을 떠나 읽힐 수 있는 예술이기 때문에 내밀한 에너지를 얻는 데 소설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요.
등단한 지 곧 10년, 한국의 젊은 작가를 호명할 때 선두에 서 계세요.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느끼세요? 어떤 책임감도 있을 것 같고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어요. 첫 작품이 5년만에 나왔고 그 5년이 참 길었는데요. 어느새 제 주변에는 후배작가들이 많아졌어요. 후배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이 보여요. 그럴 때 연차를 느끼지만 9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크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말 그대로 젊은 작가라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부조리를 느꼈을 때, 어느 정도의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직장에 다녔으면 과장 정도의 직책은 달았을 연차니까요.
소설가로 살면서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퇴고하면서 원고를 매만질 때가 좋아요. 백지 상태일 때는 너무 공포스럽고요. 어느 정도 채워놓고 골라낼 때, 기분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지금 단편 하나를 막 마무리했기 때문에 향후 며칠간 기분이 좋을 거예요. (웃음)
독자와의 적절한 거리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글쎄요. 저는 기본적으로 위계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라면 어떤 행사나 SNS를 통해서일 텐데요. 독자와 내가 평등하다고 느껴요. 작가라든가 나이가 많다거나 그런 것을 의식하지 않아요. 평행한 위치에 서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껴요. 작가가 갖고 있어야 할 마음은 어느 정도의 긴장감인 것 같아요. 독자는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니까요. 내 옆에 평행하게 서 있는 독자들이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싶은지 묻고 싶어요.
삶에서나 글을 쓸 때나 열의가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우는 소리를 할 때도 있을 텐데요. 그건 울음을 그치고 나가려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너무 부조리하고 허무할 때가 많죠. 하지만 이 세계의 허무함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글을 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살자”라는 목소리를 내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요. 우울한 이야기를 쓸 때도 다르지 않아요. 결국은 같이 살아보자는 이야기가 될 거예요.
경애의 마음김금희 저 | 창비
미덥고도 소중한 소설을 곁에 둔다면 지난 세월 우리가 견뎌온 아픈 시간이 다정한 목소리와 따뜻한 유머로 위로되고, 앞으로의 삶을 좀더 단단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