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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원 “질병보다 사람 자체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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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캄캄한 밤에도 빛을 밝히는 병원이 있다. 하루가 저물 때쯤 문을 열고 자정을 넘겨 문을 닫는 ‘반딧불 의원’이다. 찾아오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바쁜 일과 중에 병원 갈 시간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직장생활에서 얻은 만성피로와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치매를 염려하고 배뇨 장애로 곤란을 겪는 어르신도 있다. 그들은 ‘반딧불 의원’의 진료실에서 이수현과 마주 앉는다. 조금은 까칠하고 냉랭해 보이는 의사 이수현은 오래도록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증상의 원인과 해결을 그들의 ‘삶’에서 찾기 위함이다.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에게 무심한 듯 툭, 진심어린 조언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는다. 덕분에 병원을 찾은 이들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간다.

 

『오늘도 괜찮지 않은 당신을 위한 반딧불 의원』 (이하 『반딧불 의원』)은 오승원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쓴 ‘페이크 다큐멘터리 드라마’다. 저자는 “환자의 이야기를 통해 질병에 대한 이해를 넓혀보고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만들어냈다.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늘 어딘가 아플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조명하고, 넘쳐나는 건강 정보의 숫자만큼이나 많이 퍼져 있는 잘못된 상식들을 바로잡는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가정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현재 서울대학교 강남센터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진료와 더불어 비만, 영양 등 만성질환과 관련된 요인에 대한 연구를 병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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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의 힘


『반딧불 의원』은 <채널예스>에 연재됐던 칼럼이기도 합니다. 당시 제목은 ‘오승원의 반딧불 의원’이었는데요. 연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출판사에서 소개를 해주셨어요. <채널예스>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나중에 그 글들을 모아서 책을 엮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주셨는데요. 이전에는 제 이름을 걸고 일반 대중서를 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책을 만드는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도 잘 몰랐죠. 그래서 저는 책에 담길 내용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방식은 출판사에서 제안해주신 대로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대학병원 의사는 너무 바쁘잖아요. 연재를 하시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연재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책을 못 썼을 것 같아요. 마감의 힘이라는 걸 엄청 깨닫게 됐어요(웃음). 사실 중간에 후회도 많이 했어요. 2주에 한 번씩 글을 보내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의사들이 다 바쁘기도 하지만, 전업 작가들도 글을 쉽게 쓰지는 않으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전업 작가도 아니고 기본적인 업무가 있다 보니까 2주에 한 편씩 글을 써서 보내는 게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아마 마감 날짜가 없었으면 못 했을 것 같아요. 혹시 또 글을 써서 책을 낼 기회가 있다면 같은 방식이어야 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못 쓸 것 같아서요(웃음).

 

연재 당시와 글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죠? 조금 다듬는 과정만 거치셨나요?


네, 그런데 많이 다듬어주셨어요. 제가 초안을 써서 보내면 편집자 분께서 다듬어서 다시 보내주셨고요. 그 과정에서 제 의도에서 많이 벗어났거나 사실과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으면 그것만 재수정해서 보내드렸어요. 편집자 분이 수정해서 보내주신 글을 보면서 많이 놀라기도 했고 느낀 바도 많았어요. 저는 대중적인 글을 쓴 적이 별로 없다보니까, 아무래도 글이 조금 딱딱한 것 같더라고요. 쉽게 쓴다고 했는데도 나중에 다시 보면 조금 어려운 거죠. 만약 제가 쓴 글을 되풀이해서 읽기만 했으면 잘 몰랐을 것 같은데, 편집자 분이 고쳐서 보내주신 글을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훨씬 더 부드럽게 읽히고 ‘일반인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렇게 전달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엮는 과정에서도 문장들이 꽤 많이 바뀌었는데요. 편집자 분들이 많이 애를 써주신 것 같아서 감사했어요.

 

편집자와의 협업이 중요하죠.


역시 편집하시는 분들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책이 나오기까지 작가보다 편집자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편집자 분들께 정말 많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반딧불 의원』의 시작은 어땠나요? 출간 제의를 받으셨나요?


출판사 대표님께서 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보셨는데,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책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메일을 보내주셨어요. 저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라 깜짝 놀랐죠. 사양을 할까 하다가 한 번 만나만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제가 가지고 있는 글들이 많아질 때 기회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래서 가볍게 한 번 만나보자라는 생각으로 출판사 대표님과 편집자 분을 만나게 됐어요.

 

형식이 독특한 책이에요. 의학 정보만 담아놓은 것도 아니고, 의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에세이도 아니죠. 마치 소설처럼 가상의 공간과 인물이 등장해요. 이런 형식은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어요?


첫 만남에서 어떤 글로 책을 만들지 상의하다가 출판사 측에서 몇 가지 형태를 제안해주셨어요. 제가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쓴 글들을 엮어보자는 제안도 해주셨고, 일종의 백과사전 형식으로 건강 정보는 전달하는 책을 만들자는 제안도 해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고민한 바로는 둘 다 책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백과사전 형식으로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책은 이미 많잖아요. 기존에 나왔던 책들과 다르게, 더 나은 내용을 전달할 자신이 없었어요. 요즘은 조금만 찾아봐도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개인적인 글들을 엮는 건 일기장 형식밖에 안 될 것 같았어요. 이걸 누가 좋아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둘 다 썩 내키지 않았는데, 이후에 제안을 해주셨던 게 지금과 같은 형식이었어요.

 

‘페이크 다큐’였나요?


네, 편집자 분이 ‘페이크 다큐’라는 게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비교하기 죄송스러운 책이지만 『82년생 김지영』을 이야기하셨었어요. 당시에 그 작품이 한창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은데요. 그런 형식의 책이라면 정보 전달과 재미라는 두 가지 측면을 다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 뒤에 제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어 보고 좌절을 했죠(웃음). 도저히 비슷하게는 못 쓸 것 같다고. 그렇지만 편집자 분이 이야기하셨던 형식은 재미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토리가 조금 가미된 정보라면 기존과 다르기도 하고, 제가 갖고 있는 환자들과의 에피소드를 조금 각색하면 비슷하게 갈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반딧불 의원’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어요?


1년여 전의 일이라 지금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는데요.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야 되니까 큰 병원보다는 작은 의원을 생각했었어요. 어떻게 보면 ‘반딧불 의원’은 약간 판타지스러운 공간이잖아요. 너무 사실적이면 안 될 것 같았고, 사실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가 되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그런 느낌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밤에만 문을 여는 병원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심야식당』의 분위기가 조금 유행했던 것 같은데, 그런 걸 병원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고요.

 

병원 이름은 왜 ‘반딧불’이에요?


실제로 ‘달빛어린이병원’이 있어요. 밤에 여는 소아과 의원인데요. 밤에 응급실을 가야 하는 아이들도 있고, 그럴 때 적절하게 진료를 받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정부에서 밤에도 문을 여는 병원에 지원을 해주기로 하고, 기존에 있는 소아과 의원들이 참여한 건데요. ‘달빛’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가 굉장히 좋은데 똑같이 쓰면 안 되니까, 어떻게 이름을 지을까 고민을 했어요. 이름만 보고도 밤에만 문을 여는 병원이라는 걸 전달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죠. 그러다가 휴일 오후에 집에 있으면서 첫째 아이한테 물어봤어요. ‘아빠가 글을 쓰려고 하는데 여기가 밤에만 여는 병원이야, 밤에만 활동하거나 밤에만 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랬더니 아들이 ‘반딧불’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이 의원의 이름은 아이가 정한 거예요.

 


질병보다 사람을 봐야 한다


주인공 이수현은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환자들에게 마음을 쏟는 의사예요. 왜 이런 인물로 그리셨어요? 저자님의 실제 모습과 닮았나요(웃음)?


아뇨, 저를 생각하고 그렇게 한 건 전혀 아니고요(웃음). 따뜻하기만 하면 재미가 좀 없을 것 같았어요. 주인공이 다 갖고 있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따뜻한 부분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복잡한 생각을 했던 건 아니고요. 이 책을 통해서 풍기고 싶은 분위기를 한 인물 안에 다 담기에는 제가 능력도 안 됐고(웃음), 그래서 다른 인물들이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병원 안에 있는 의사나 간호사한테만 이야기가 집중되는 걸 생각했던 건 아니었거든요. 이 이야기에는 ‘반딧불 의원’이 있는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그 사람들이 다 각자의 캐릭터가 있고, 모든 캐릭터가 전체적으로 버무려지기를 바랐어요. 그러면서 건물 전체가 따뜻한 분위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여러 사람이 나오려면 각각 다른 성격을 가져야 되잖아요. 부족한 부분들도 있어야 되고요. 이수현도 따뜻하기도 하고 시니컬하기도 한, 부족한 부분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성격은 조금 까칠하게 그려진 것 같아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돼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원, 불면증으로 힘들어하는 편의점 사장 등이 등장하잖아요.


사회 문제와 엮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안 했었어요. 그렇게 하면 너무 거창한 이야기가 될 것 같고요. ‘사회’라기보다는 ‘삶’인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이 질병을 가지고 오는 거니까, 똑같은 질병이라도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원인도 다르고 접근방식도 다를 수 있거든요. 그 부분은 의사 선생님들은 다 아시는 걸 거예요. 제 전공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가정의학이라는 전공 자체가 질병을 개별적으로 보기보다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을 갖고 있어요. 주치의 역할을 하는 게 가정의학과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롤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질병보다는 사람 자체를 보도록 계속 훈련을 받아요. 물론 다른 과 선생님들은 그렇게 안 하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첫 장의 제목부터 ‘과로사회’예요.


피로는 제가 제일 많이 접하는 증상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걸 첫 번째 에피소드로 쓰는 건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피로라는 게 워낙 비특이적 증상이고, 해결하는 방법이 모범답안처럼 정해진 게 아니에요. 결국 증상을 해결하려면 피로를 갖고 있는 사람을 볼 수밖에 없죠. 이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몇 시에 일어나서 얼마나 오래 일하고 몇 시간을 자는지, 그런 것들을 다 볼 수밖에 없거든요. 사회 문제를 꼭 담아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에피소드를 생각했던 건 아니고요. 의사 입장에서 쓰는 글은 좀 재미가 없고 딱딱하게 느끼실 것 같아서, 환자 입장에서 써야 될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면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 ‘내가 왜 이 증상을 갖게 됐는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구체적인 캐릭터를 생각하고 이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을 붙였어요.

 

이수현처럼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한국 의사들의 평균 진료 시간이 3분이 채 안 된다고 하던데요.


어렵죠. 대학병원이나 환자가 정말 많은 개인의원의 경우가 3~5분 동안 진료를 할 것 같고요. 개인의원 중에서도 환자가 많지 않으면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선생님들이 꽤 있으실 것 같아요. 제가 알고 있는 선생님들도 있고요. 그런데 제가 있는 곳(서울대학교 강남센터)은 본원과는 조금 달라서요. 건강검진에 대한 상담을 하면 보통 15분 정도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여유 있는 편이에요.

 

환자들은 ‘반딧불 의원’ 같은 병원을 꿈꿀 것 같은데요. 의사들에게도 꿈의 직장일 수 있겠어요. 여유롭게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요.


있죠.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하실 거예요. 3분 진료나 5분 진료를 하고 싶어서 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으니까요.

 

3분마다 진료를 한다는 게, 의사도 계속 소진되는 일일 거예요.


그렇죠. 제가 대학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을 때도 숱하게 봤던 광경이고, 이제는 많이 줄었지만 조금 있는 경우죠.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서울대병원에서도 15분 진료를 하고 있어요. 시범 사업으로 하고 있는 건데요. 그것도 제도가 뒷받침돼야 할 수 있죠. 시범 사업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의료수가를 조금 더 보장해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여유롭게 진료하고 싶은 마음은 다 있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해요. 전체적으로 의료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될 것 같아요.

 

『반딧불 의원』과 관련해서 우려하시는 부분도 있나요?


제가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다른 선생님들보다 커서 이게 이상적인 진료라고 상상하고 만든 건 아니에요. 다만 어떤 선생님들은 이 책을 보시고 ‘아이고, 참 순진하게 썼네. 밤에만 여는 병원이라니. 대학병원에 있어서 그런가, 현실을 모르고 있군’ 하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현실을 다 알지는 못하고, 개원한 의사가 아니다보니 산전수전 다 겪은 의사는 아닐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대학병원에 계속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조금 더 할 수 있는 환경이기는 하죠. 그렇지만 대학병원 선생님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고, 개원하신 선생님들의 어려움도 또 있어요. 이 책을 읽으신 환자분들이 ‘이런 의사가 있어야 되는데, 이런 병원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나라 의사들은 안 돼’ 이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반딧불 의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고요. 내용을 보시고 ‘사실은 많은 의사들이 이렇게 바라보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조금 어려움이 있다’는 걸 이해하실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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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의 근거, 놀랄 만큼 빈약하다


‘쇼닥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담겨 있던데요. 같은 의사로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저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이야기하시는 분들 많아요. 저는 순화시켜서, 어떻게 보면 약간 비겁하게 말씀을 드린 거죠. 종편이 생기면서 의사들이 나올 만한 방송들이 굉장히 많아졌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출연할 의사들이 필요하고, 의사들 입장에서도 방송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면 진료실에서 이야기할 때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고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으니까 나쁜 일은 아니죠. 그런 양쪽의 입장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순기능만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문제죠.

 

방송에 출연하신 경험도 있나요?


멋모를 때 방송에 출연했던 적이 있는데요. 방송이라는 게 항상 준비된 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해야 될 때도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있을 수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면 엉겁결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야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게 버거워서 방송에 안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방송에서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그런 게 익숙해지다 보면 문제의식이 조금 사그라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안 먹어도 괜찮아요’라는 꼭지가 있어요. 비타민제 과용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종합비타민이나 영양제, 건강보조제에 대한 견해도 의사마다 다르잖아요. 그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대중의 입장에서는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요. 어떻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요?


일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건강기능식품이나 영양제가 어디에 좋다’라는 근거가 방송에서 이야기되는 것만큼 또는 많이들 믿으시는 것만큼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거예요. 오히려 놀랄 만큼 빈약해요. 이건 팩트예요. 그런데 ‘그 근거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를 두고 시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근거가 빈약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는데,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생님들이 있고요. 빈약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있을 거예요. ‘근거가 쌓이려면 그만큼 연구가 돼야 하는데 돈도 별로 안 되는 약은 제약회사에서 투자해서 연구를 하지 않고, 그러면 앞으로도 근거가 별로 없을 텐데 손 놓고 있을 거냐’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지 말고 적극적으로 작은 근거라도 찾고, 그것들을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보자는 거예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만약,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불치병이거나 심각한 문제라면, 작은 근거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강 관련 정보들은 그런 문제에 적용되는 게 아니거든요. 비타민이나 건강기능식품도 그렇고요. 물론 암 같은 중한 질병에 관련된 부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시중에 나와 있는 정보들이 적용되는 부분들은 대체의학과 관련된 것들이에요. 병원에서 이야기하는 정통 치료가 아니고요. 그런 것들 말고도 근거가 훨씬 더 확실하고 조금 더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데, 거기에 소홀하게 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비타민은 쉽게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런 데에 혹하다 보면 기본적인 부분들을 소홀히 할 수 있죠. 잘 먹고, 잘 쉬고, 운동 열심히 하고, 체중 관리하고, 이런 것들은 재미도 없고 어렵고 오래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찾게 되죠.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그렇지만 그런 걸 너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꼭 해야 될 부분들에 소홀하게 되고, 반작용이 있는 것 같아요.

 

의사가 초기 단계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죠. 그건 문제가 아닌데, 그 내용이 방송에서 다뤄지면 대중은 실제보다 더 확실하고 중요한 정보라고 오해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쇼닥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는 것 같아요.


연구 결과는 계속 쏟아져 나오고, 짧은 기간에도 수백 수천 건의 연구들이 나와요. 일반인 입장에서 어떤 게 좋은 연구인지 판별할 수 없죠. 당연히 전문가가 해야 될 역할이에요. 그런데 연구가 갖고 있는 가치가 굉장히 다르거든요. 예를 들어서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가 있고, 수십만 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어요. 흔히 발견되는 오류는 실험실에서 했던 아주 작은 연구가 부풀려서 전달되는 경우예요. 예를 들면 특정 질병에 도움이 될 만한 가능성이 있는 성분이 하나 발견되면, 그건 하나의 가설이거든요. 그런데 기사로 나오거나 방송에서 다뤄질 때는 치료제가 발견됐다는 식으로 전달되는 거예요. 일반인 입장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죠. 굉장히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례들이에요.

 

의사들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연구 결과를 소개해야겠죠.


전문가라면 자신의 주장을 받쳐줄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고, 상반된 연구 결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 결과만 찾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의 철학이나 원칙이 중요한 것 같아요.

 


고혈압 약, 평생 먹어야 된다?


책에서 잘못 알려져 있는 건강 정보를 바로잡아 주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건 뭔가요?


고혈압 관련 약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일 것 같아요. 평생 먹어야 하는 약 중에 제일 흔한 게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약이에요. 그 약들에 대해서 환자 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대부분 비슷해요. 약을 처방하겠다고 하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시고 ‘내가 뭔가 크게 잘못했구나. 약을 먹어야 된다니,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것 같아’라고 생각하세요.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어요.

 

약을 먹기 전에 자기 힘으로 노력해보겠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그런 상황에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치료시기가 늦어지면 더 문제가 생겨요. 대개 이런 만성 질환들은 수치가 지나치게 높다거나 상황이 정말 안 좋은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처음부터 약을 쓰지 않거든요. 치료 원칙도 그래요. 일정 기간 생활습관 관리를 해보고, 열심히 해봐도 반응이 없거나 안 될 때는 약을 드시게 돼요. 많이들 잘못 생각하시는데, 자신이 뭘 잘못해서 약을 먹는 게 아니에요. 그냥 치료하는 과정 중에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옵션 중에 하나인 거예요. 저는 환자 분들께 그 점을 설명 드리는 편이에요. 그리고 약을 평생 먹는 것에 대해서 다들 두려움을 갖고 계세요. 그 이면에는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있죠.

 

약을 오래 먹는 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네. 약을 평생 먹으니까 그만큼 부작용도 경험할 수밖에 없고 내성도 생길 거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사실 저는 처방을 할 때 조건들이 잘 갖춰지면 약을 끊을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싫어하시는 선생님들도 있을 거예요. 처음부터 평생 먹어야 된다고 이야기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시거든요. 약을 끊을 수도 있는 사례가 있다는 걸 몰라서 그러시는 게 아니에요. 사실 이런 만성질환은 대부분 평생 약을 드시는데, 생활습관 관리를 잘 하고 체중을 줄이면 약의 효과를 대신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대부분 그렇게 못해요. 그걸 알기 때문에 약물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는 거예요. 제일 걱정스러운 부분은 ‘약을 끊을 수 있다더라’ 하는 생각으로 약을 잘 안 먹는 경우예요.

 

방송에서 부작용에 대한 내용이라도 나오면 흔들릴 거고요.


그렇죠. 최근에도 고지혈증 약을 먹으면 당뇨가 생긴다는 이야기들이 나왔거든요. 사실이에요. 그런데 미치는 영향이 아주 적어요. 관련된 많은 연구 결과들이 나와서 쌓이고, 의사들이 이제 믿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을 때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고지혈증 약을 오래 먹으면 혈당이 조금 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지혈증 약이 혈관 계통에 미치는 이득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드셔야 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중간 중간 혈당 검사도 하는 거죠. 그런데 방송에서 고지혈증 약을 먹으면 당뇨가 생길 수 있더더라, 하는 내용이 나오면 오랫동안 했던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돼버리는 거예요. 꼭 약을 드셔야 될 환자 분들이 안 드세요.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의사들이 약을 끊어도 된다고 섣불리 이야기를 못 하는 거죠.

 

책에도 나오지만, 독감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임산부들도 있잖아요.


예방접종을 하면 아이가 자폐증에 걸린다더라, 하는 식으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이 있는데요. 치료를 회피하거나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기저에는 불안이나 걱정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은 누구나 갖고 있잖아요. 그걸 탓하거나 왜 신뢰하지 못하냐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자꾸 설명을 해드리고 간극을 좁혀나가야 될 것 같고요. 조금 허무하고 힘이 빠지는 부분은, 그 과정을 열심히 오랫동안 해도, 방송에서 잘못된 정보가 나오거나 의도적으로 악용하시는 분들이 나타날 때예요. 얼마 전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도 한 예죠. 어떻게 보면 전문가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그런 걸 텐데 ‘왜 대중은 이상한 이야기들만 듣는 걸까’라고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계속 노력해야 될 부분인데요. 그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안타깝기는 하죠.

 

‘한미수필문학상’을 두 차례 수상하셨어요. ‘의사들의 신춘문예’라고 불리는 문학상이죠? 원래부터 글을 잘 쓰시는 분이었군요(웃음).


제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되게 어려운 일이에요. 정말 잘 쓰시는 작가 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걸 많이 봤는데, 글 쓰는 건 누구한테나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글 쓰는 과정 자체를 외면하지 않았고 뭔가를 써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복잡한 마음이 들 때 글을 쓰면, 어렵고 힘들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님한테 받은 게 조금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이번 책을 쓰면서도 그랬고요. 저희 어머니가 뒤늦게 대학을 가셨거든요. 제가 성인이 된 다음에 가셨는데 전공으로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하셨어요. 당시에는 어머니가 왜 다시 공부를 시작하셨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어머니랑 그런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제가 글 쓰는 게 힘들어도 외면하지 않고 조금씩 써왔던 건, 어머니한테 받아서 내재돼 있는 유산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책은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썼다고 하셨어요. 『반딧불 의원』을 쓰신 후에 달라지신 부분이 있나요?


제한된 시간과 환경에서 환자들에게 설명을 잘 하려면 노하우도 필요하고 고민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해요. 쉽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의사라고 다 설명을 잘하는 건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환자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잘 전달하고 환자의 행동이 바뀌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저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책을 쓰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게 됐어요. 매력적인 설명 모델이라고 할까요.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이렇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이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보니까 더 이해가 잘 된다’라고 느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요. 그러려면 일반인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게 써야 하잖아요. 그래서 평소에 진료실에서 하지 않는 이야기들도 생각하게 됐어요. 실제로 이 책을 쓰고 나서 환자들한테 설명하기가 훨씬 더 편해졌고요. 환자들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진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반딧불 의원』 의 다음 이야기도 이어질까요?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 짓고 나서 편집자 분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또 써야 되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여력이 조금 갖춰지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요(웃음). 아직 쓰지 않은 질병에 대한 이야기는 많으니까요. 조금 더 여유가 되면 이어서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반딧불 의원오승원 저 | 생각의힘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사연을 통해 자연스럽게 올바른 의학 지식을 얻도록 하는 한편, 각 에피소드의 끝에는 반딧불 의원의 진료실에서 다 다루지 못한 건강 지식들을 정리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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