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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온라인 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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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  하용가는 ‘하이 용돈 만남 가능?’의 줄임말이다. 온라인상에서 성매수를 목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하는 남성들의 인사말. 소설가 정미경은 이 여덟 글자 속에 “여성의 몸을 거래하는 문화, 여성의 몸을 비하하고 조롱하고 짓밟는 문화”가 담겨있다고 말한다.

 

상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돈으로 너의 몸을 살 수 있잖아?’라고 묻는 사람들. 그들은 여성을 ‘무엇’이라 인식하고 ‘어떻게’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폭력적일 수 있는 걸까.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다. 16년 동안 100만 유저를 거느리면서 온갖 성폭력이 이루어졌던 ‘소라넷’. 작가는 그곳을 “가장 은밀한 지옥”이라 불렀다.

 

소설은 소라넷의 ‘초대남 사건’을 다루면서, 소라넷 폐지 운동의 과정과 연대한 여성들이 이룬 승리를 기록한다.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다큐소설이다. 동지수, 구희준, 기화영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초대남 사건은 물론 불법 촬영, 데이트 강간 등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의 실체를 보여준다. 작가는 묻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우리가 정말 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공감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피해 여성들이 겪는 ‘시선에 사로잡히는 고통’에 대해서.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편집장을 지낸 소설가 정미경은 에세이『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 『넌 나의 귀여운』을 썼고, 지난해 장편소설  『큰비』로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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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페미, 새로운 페미니스트의 등장


『하용가』 를 읽는 동안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많은 독자 분들이 그러시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쓰시는 과정도 다르지 않았겠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데 두 달 정도 걸렸어요.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아서. 친구들이랑 가족들도 제가 짜증이 너무 많이 늘었다고, 성격이 괴팍해진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어요. 집필은 6월 초에 끝났는데 편집하고 책이 나오기까지 계속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환기하는 시간이 필요하셨겠어요.


네, 여행도 다녀오고 좋은 것들 보려고 했는데... 그나마 저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여자들이 여전히 있으니까, 그 부분은 항상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죠.

 

집필의 계기가 된 게 ‘초대남 사건’이었죠?


네. 『근본없는 페미니즘』의 에디팅 작업을 했었는데, 그 책에 실린 거의 대부분의 글에서 소라넷과 초대남 모집글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요. 나중에 알게 됐는데 ‘초대남 사건’이 온라인 페미를 하나로 결집시키고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더라고요. 2015년에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오면서 굉장히 큰 이슈가 됐고요.

 

해당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쓰자고 결심하셨을 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로는 이런 일이 온라인에서 일상 속의 성문화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소라넷은 폐쇄되었지만 여전히 제2, 제3의 소라넷은 건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요. 두 번째는 여성들의 힘으로 소라넷을 폐쇄시켰다는 거였죠. 그리고 온라인이라는 여성혐오적인 공간을 탈환해서 여성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이제 저는 40대 중반이고 페미니스트로 산지 20년이 넘은 올드 페미예요. 제 친구나 지인들도 온라인이 이렇게 폭력적인 공간이라는 걸 잘 몰라요. 그래서 이 소설은 기성세대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하용가』를 읽히고 싶은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하는 분들이고요. 특히 요즘 들어서 이 책을 꼭 읽히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어요.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라고 이야기하시는 분, 그리고 그에 동조하시는 분들이 정말 읽으셔야 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의 오세라비 저자의 주장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 분이 주장하는 건 남녀평등은 현실화됐고 대한민국은 치안이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거잖아요.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이 1그램의 이론과 1톤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그러면 ‘초대남 사건’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치안이 안전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물론 총기 소지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총에 의해 사망하는 확률은 비교적 낮겠죠. 그건 저도 인정해요. 그런데 제도로 잡히지 않는 놀이문화 안에서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성폭력이 자행되고 있잖아요. 그리고 피해 의식 이전에 피해 경험이 있는 거거든요. 여자들이 망상증 환자도 아니고, 무수한 피해 경험들이 쌓이고 쌓였을 때 피해 의식이 되는 거죠. 피해 경험이라는 게 직간접적인 거잖아요.

 

직간접적으로 피해 경험이 쌓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누군가 시선으로 내 몸을 훑고, 버스에서 내 몸을 만지고, 페이스북에서 ‘용돈 만남 가능?’이라는 쪽지를 받는 경험들도 있는 거고요. 여자의 몸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행해지는 폭력에 있어서 나 아닌 다른 여자가 당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간접적 경험이 돼서 공포를 유발하는 거잖아요. 범죄가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실제로 여자들이 어떤 느낌과 감정으로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거죠. 거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대한민국이 치안이 안전한 나라이고 여자들이 모든 평등의 권리를 누리는 곳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봐요.

 

앞서 ‘올드 페미’라고 하셨는데요. 페미니스트의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는 걸 체감하세요? 다른 세대가 나타났다고 느끼시나요?


다른 세대 정도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페미니스트의 등장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온라인 기반이라는 것이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고 느껴요. 예전에는 오프라인 기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이 직접 대면해서 관계를 맺었고 운동의 방식도 기존에 하던 대로 있었어요. 지금의 온라인은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방식이죠. 그래서 온라인 페미들은 기존 페미와의 유사성보다 온라인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유저들과의 유사성이 훨씬 더 크다고 봐요. 온라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면 이해하지 못하는 운동 방식이라는 거죠. 지금까지 기성 페미들이 온라인 페미들을 바라볼 때, 온라인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은 별로 안 하고, 같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이슈가 있으면 결합하고 여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제가 봤을 때 그건 기성 페미들의 로망일 뿐이에요. 이 친구들은 기성세대의 방식으로 운동할 생각이 전혀 없고, 그런 방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아요. 철저하게 익명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그래서 온라인 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공간을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여성혐오의 포문을 여는 ‘낙인 찍기’


소설에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하잖아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데이트 강간, 최음제 문제, 초대남 사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폭력의 실체가 드러나요. 이 인물들은 어떻게 탄생됐나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초대남 사건의 주된 피해자들이 10대, 20대 여성이었어요. 온라인 페미니즘의 주 연령층도 10대와 20대죠. 온라인에서 남자들이 주로 성적 대상화하는 여자들, 그리고 지금 페미니즘의 이슈를 끌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자들의 나이대에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대로 선정을 한 거고요. ‘동지수’와 ‘기화영’을 마케팅 회사의 인턴으로 선정한 건 브랜드 네이미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이 소설에서 이름 짓기에 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여자를 김치녀, 된장녀, 창년 등으로 부르면서 낙인을 찍는 건 여성혐오의 포문을 여는 거예요. 여성혐오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한데요.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희화화해요. ‘운전 못하는 김 여사’ 같은 거죠. 그러다 점점 조롱하고 낙인을 찍어요. 김치년, 창년,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언어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던 게 조건과 기회가 되면 개별적 폭력과 구조적인 폭력으로 나아가죠. 그것의 끝에는 제노사이드가 있죠. 여성을 집단 강간해서 죽이거나 영아 낙태를 하는. 저는 이 스펙트럼이 ‘걸레’로 관통된다고 봐요. 모든 여성은 걸레가 될 가능성이 있고 걸레 취급을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죠. 왜냐하면 여성의 성기가 더럽혀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걸레라는 낙인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 여사’와 제노사이드가 연결되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게 ‘걸레’라고요?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바라볼 때 가장 흔하게 쓰이면서도 가장 수치스러운 욕이 걸레라는 건데, 그 이름을 거부하는 여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지금의 온라인 페미 세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제 세대만 해도 걸레 소리를 들으면 거의 아웃되는 분위기였잖아요. 걸레니 창년이니 하는 말들을 입에 담는 것 자체도 왠지 껄끄러웠는데 그런 걸 거침 없이 표현하는 여자들이 등장했어요. ‘나는 걸레가 아니야, 나는 보지야’라고 말하는. 이름이라는 것은 존재의 모든 것인데, 이들은 세상이 부여하는 이름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온라인 페미들이 너무 좋아요(웃음). 그들의 거침없음. 그 밑바닥에 너무나 깊은 분노와 슬픔이 있다는 게 굉장히 마음 아프죠.

 

출연하신 팟캐스트 <웃자! 뒤집자! 놀자!>를 들었습니다. ‘성적 수치심’이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성적 수치심을 느껴야 성폭력 피해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기화영이라는 인물이 수치심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이기를 바랐어요. 구희준도 마찬가지이고요. 여자라면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할 것인지는 상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수치심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불쑥불쑥 치밀어도 거기에 압도되지 않기를 바랐고요. 수치심이라고 알고 있는 감정에 다른 이름-분노, 불쾌감, 무너지지 않겠다는 절박함 같은 다른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용가’라는 제목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사실 그렇게 센 제목인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남성분들의 댓글을 보니까 굉장히 불쾌감을 표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쓰는 놈들이 극소수 있을 뿐인데, 일반적인 문제인 것처럼 하는 게 불쾌하다는 거죠. 그리고 소라넷에 관해서 썼다고 하니까 불편한 거예요. 남자들만 알고 있어야 되는 것을 여자들이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의혹의 눈초리로 쳐다볼 거 아니에요? 그래서 굉장히 불편한 감정들을 댓글에 달아 놓으셨더라고요. 한편으로는 ‘본인이 가해자가 아닌데 왜 스스로를 가해자 남성으로 쉽게 동일화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피해자 여성에게 공감하면서 ‘진짜 나쁜 놈들이네, 피해자 여성분이 고통스러웠겠네’ 하면 되잖아요. 이런 문제가 나오면 온라인 페미가 성 대결을 부추긴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사실은 남성 그룹들이 성 대결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생각돼요.

 

예를 든다면요?


몰카 관련 뉴스가 올라오면 여성분들이 가해자 남성에 대해 나쁘다고 댓글을 달잖아요. 그러면 가해자를 범죄자 취급하면 되는데, 남성들은 자기네들을 욕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범죄자와 한국 남성 일반을 철저하게 분리시켜야 한다고 보고 거기에 남성들도 동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인은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드러내는 거잖아요. 그런데 마치 자기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욕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요.

 

그런 남성들이 주장하는 바는, 온라인 페미들이 ‘한국 남자는 다 그런 사람인 것처럼’ 말하니까 화난다는 거 아닌가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정말 많아요. 어느 사이트에 자기 몰카가 올라왔다고 해서 봤더니 정황상 범인이 남친 밖에 없는 거예요.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를 하죠. 경찰이 남친을 불러서 올렸냐고 물어봐요. 남친이 아니라고 말해요. 그러면 풀려나요. 휴대폰 검사도 한 번 안 하고요. 그런 일이 너무 비일비재하고, 여자들 입장에서는 찍은 놈은 있는데 처벌 받는 놈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 남자 전체를 일반화해서 욕을 하게 되겠죠. 그 상황에서 남자들이 주장해야 되는 건 ‘우리가 욕먹기 전에 빨리 범죄자를 잡아라’인 거죠. 그러니까 가장 잘못한 건 국가예요. 저는 성 대결을 조장하는 건 국가라고 봐요. 이걸 범죄자화해서 빨리 분리해내야 여자들도 ‘그래도 이 남자는 안 잡혀갔으니 믿을 만 하겠다’ 생각하죠. 지금 관계가 다 깨져버리고 있는 거거든요. 그 관계를 복원하는 게 정말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불법 촬영 범죄에 있어서는 국가가 빨리 범죄화시키고 가해자 처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범죄이고 반드시 잡힌다는 메시지도 계속 줘야 하고요. 남성 내부에서도 ‘나는 몰카를 찍지 않고 보지도 않고 유포하지 않겠다’라는 정화 운동이 일어나야 된다고 봐요.

 


‘피해자다운 피해자’라는 편견


집필을 멈추고 싶으셨던 순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소설에서 지수가 “이거 꼭 해야 돼?”라고 묻는 대사가 있잖아요. 제 심정이 딱 그거였어요. 이걸 내가 꼭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었어요. 소라넷은 ‘여성의 몸을 향한 지독히 일관된 상상력’이 있는 곳이잖아요. 모든 여자는 구멍이고 걸레라고 하는. 저는 페미니즘이라는 게 ‘여자를 쉽게 구멍으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여자는 구멍이 아니야’라는 외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소라넷은 지독히 일관되게 여자를 구멍, 걸레, 창년으로 만드는 곳이잖아요. 그런 문화가 너무나 일상적이라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계속 쓰신 데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사망한 피해자의 몰카를 두고 ‘유작’이라고 부르면서 조롱한 인간들이 있었다면서요?


인터넷 사이트에 몰카 피해자가 죽었다는 정보가 떠돌아다니면요. ‘**골뱅이’, ‘**골뱅이 자살’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나라예요.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문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대한민국의 일부분인 거죠. 그걸 우리가 조금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자꾸 ‘극소수의 미친놈들만 그러는 거야’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문화가 일반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일베나 소라넷의 문화들이 온라인상에 다 퍼져서 SNS, 심지어 단톡방에서도 여자 품평회를 하고 조롱하잖아요. 그게 너무 일상화되어 있어요.

 

『하용가』를 읽으면서 ‘왜 대한민국에 이런 남자들이 생겨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눈에 띈 대목이 있었는데요. “여자 배려하는 건 남자답지 못하다는 증거야. 여자를 가볍게, 천하게, 하찮게 여길수록 남자다워지는 거니까”라는 대사였어요. 여자를 멸시하고 혐오해야 강한 남성으로 인정받는 문화 안에서는 이런 남자가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한국의 남성이라는 정체성의 내용물들의 무엇인지, 그것이 건강한지, 그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패드립이 유행하는 걸 보면, 사실 부양자와 피부양자 사이에서는 명확히 부양자가 권력을 갖고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서는 어느 순간 역전이 되면서 엄마도 성적 대상화하는 거예요. 자기 엄마를 창녀 취급 해달라고 친구들 단톡방에 엄마 모습을 올리기도 하고요. 엄마라는 여성이 나이도 많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게 젠더 권력 관계로 가게 되면 여전히 최후의 식민지인 거죠. 그 식민지를 착취하고 침탈하면서 남성이라는 존재가 자기 정체성을 구성해 나가고요. 소라넷에 가보면 그런 현실이 너무나 많이 보여요.

 

첫 장에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의 한 문장을 쓰신 이유군요.


그렇죠.

 

“코린토스에서는 남자의 약한 모습을 본 여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데요.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들킨 남자가 반드시 여자를 응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네요.


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여자는 남자를 만나면 자기를 죽일까 봐 두려워하는데, 남자는 여자를 만나면 자기를 모욕할까 봐 두려워한다고요.

 

데이트 강간의 피해자인 구희준의 경우에는, 가해자(백철진)를 너무 쉽게 용서하는 거 아닌가요? 늦게나마 진심으로 사과하기는 했지만, 한 마디 말에 모든 걸 용서해줘야 한다는 게 피해자 입장에서 맥이 빠질 것 같기도 해요.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여러 자료를 보면서 내린 결론이 있어요. 피해자가 가장 심정적으로 원하는 건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라는 거예요. 물론 피해 경험을 하신 분들마다 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만난 분은 자신은 한 번도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보지 못했고, 그게 자기한테는 너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거기에 정말 진심이 담겨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는 걸 받아냈대요. 그 장면이 없었다면 가해자가 다른 벌을 받더라도 자기는 끝내 그 일을 자기 안에서 끝낼 수 없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 부분도 고민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제시하고 싶었던 거예요. 저는 한 번도 성폭력 가해 남성이 피해자 여성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걸 본 적이 없거든요. 여자들이 진짜 원하는 건 ‘정말 잘못했다, 미안하다, 용서해 달라,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백 번 천 번 미안하다’ 이런 말들이에요.

 

소설 속에 묘사된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를 보면 ‘나는 피해자야, 저 사람이 잘못한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내가 빌미를 줬을까? 저런 인간인 줄 몰랐던 나에게도 잘못이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니 가해자가 ‘내가 잘못한 거야, 내가 죄를 지었어’라고 말하면 불필요한 자책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자책감이라는 게 정말 떨쳐버리기 힘들잖아요. 게다가 사랑하는 사이였으니까 더 괴롭죠. 그래서 연인 사이의 폭력 문제가 쉽지 않은 거고요. 구희준의 이야기를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진짜 피해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려면, 이 피해 경험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까’ 하고요. 우리가 피해자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이든, 그건 편견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해자다운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꼭 남자들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여자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런 걸 다 벗기고 나서 피해 여성이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들, 세상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존재하는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라넷 폐지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이나 성폭력 피해자 분들을 취재하시는 과정은 어땠나요?


소설을 쓸 때는 소라넷이 이미 폐쇄돼서 볼 수 없었어요. 그런데 DSO(Digital Sexual Crime Out)에서 소라넷에 대해 카드뉴스를 만들어 놓은 게 있었거든요. 그게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됐어요. 캡쳐 화면을 보면 ‘헤어진 섹파’, ‘초대남 모집’ 같은 제목의 글들이 쫙 나오거든요. 초대남 모집글 하나 올리면 그 아래 댓글이 막 달리고요. 그 화면이 소설 쓰는 데 굉장히 많이 도움이 됐죠. 그리고 메갈리아에서 익명의 유저로 활동했던 분들을 인터뷰했는데요. 요즘 메갈리아나 워마드에 대한 논문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어서 참고를 했고, 또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해서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지만, 당시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어서 그 분들을 인터뷰했어요. 그러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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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지 않다,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결말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끝내기에는 현실과 너무 다르잖아요. 암울하게 끝내자니 마음이 불편하고요.


그러니까요. 고민 많이 했죠. ‘김세준’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제 상상력이 발동이 안 되는 거예요. 한 번도 폭력을 휘둘러본 적도 없는데, 그런 제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쓸 수는 없겠더라고요. 죽이는 장면이 상상이 안 갔어요. 그리고 현실 속의 여자들이 다 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큐소설이니까 조금 더 리얼리티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김세준을 그대로 두지는 못하겠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 죄에 맞는 처벌을 받는 방식으로 결말을 내고 싶었는데요. 그게 기화영의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여성들의 집단적인 연대로 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만약 김세준을 죽였다면 여성들의 분노나 억눌린 감정을 분출하는 판타지의 의미는 있었겠지만, 현실 속의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해소할 길 없는 분노감을 드러내주는 데에는 맞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니고 다큐이니까요. 현실 속에서 여자들이 그런 감정을 품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된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기 때문에 결론은 지금처럼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쓰셨어요. “얌전하게 살지 않기로 결심한 여자들”은 세상과 마찰하고 체제와 불화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요. 페미니즘을 알고 나면 예전에는 그냥 넘겼던 것들도 불편해지는 것 같은데요. 작가님도 그런 시기를 지나셨나요?


그렇죠.

 

그러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늘어나는데, 왜 이 길을 계속 걸어오셨어요?

 
작아지지 않으려고요. 내 존재보다 작아지지 않으려고. 그런데 세상은 내가 늘 작아지기를 원했어요.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내가 작아지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페미니즘은 나한테 작아지라고 하는 것에 맞서는 것, 나는 작지 않고 작아지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은 여자에게 자꾸 작아지라고 하고,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라고 하고, 꿈도 소박하게 꾸라고 하죠. 그 속에서 제가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이 페미니즘이었어요. 20대를 굉장히 우울하게 지내다가 대학 3학년 때 페미니즘을 만났는데, 그 후로는 한 순간도 페미니스트로 살지 않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없었어요.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편집장을 지내셨고, 이후 에세이를 두 권 쓰신 후에 소설을 발표하셨어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사실 소설을 읽은 지 얼마 안 돼요(웃음). 학부 때는 사회과학 책을 주로 읽었죠. 정치학, 여성학을 공부했으니까.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어떤 이야기가 저한테 왔던 거죠.  『큰비』 의 ‘원향’의 이야기가 왔어요. 그때 다른 자료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원향의 이야기를 봤어요.

 

무녀들이 역모를 시도한 적이 있다는 역사적 기록이었죠?


네. 그때부터 원향이라는 인물이 내 가슴에 확 와 닿았어요. 그러고 나서 꿈을 꿨는데, 무당이 와서 저한테 자기 방울을 줬어요(웃음). 원향의 이야기를 가슴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그걸 제가 어떻게 쓸 수 있겠어요. 소설밖에 없죠. 그래서 새로운 장르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쓰기 시작했어요. 사실 저는 『큰비』를 쓰고 나서 소설 공부를 새로 시작한 거죠. 그 전에는 소설을 써본 적이 없어요. 쓰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큰비』  이후의 작품이  『하용가』 인데요. 두 작품이 많이 다르잖아요.


방점을 찍는 부분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큰비』는 배경이 조선시대이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무녀들의 이야기이고 게다가 역모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금 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살리고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하용가』는 말 그대로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모두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잘 알고 있나요?’라고 질문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몰카 범죄에 대해서 사람들이 다 잘 안다고 생각해요. ‘나체 사진이나 섹스하는 동영상을 몰래 찍어서 올리는 게 몰카잖아’하고요. 그런데 그게 정말 잘 알고 있는 건지, 시선에 사로잡히는 고통을 정말 잘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자신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 세상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막막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죠. 소설가는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걸 보이게 만들고 들리지 않는 걸 들리게 만드는. 아까 전에 이 소설을 읽기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고통에 직면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독자분들도 공감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썼어요.

 

『큰비』 , 『하용가』뿐만 아니라 에세이  『남자는 초콜릿이다』 ,  『넌 나의 귀여운』까지, 쓰신 책들의 색깔이 다 달라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궁금해져요.


저도 궁금해요(웃음). 그런데 그건 제가 선택하는 것보다, 저한테 오는 이야기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아요. 어떤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하는 건 없고요. 그때그때 이야기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야기에 따라서 형식이나 플롯 같은 부분은 달라지겠죠. 개인적으로는 ‘불편한 진실’ 같은 것에 끌리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감추려고 하는 어떤 것이라든가, 사람들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안 보고 싶어 하는 것, 내 평온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버려지거나 젖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에 끌리는 것 같기는 해요.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이고 친밀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쓰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어요. 써봐야 알 것 같아요(웃음).


 

 

하용가정미경 저 | 이프북스(IFBOOKS)
초대남 모집이라는 이름의 집단강간과 지인능욕, 여성 신체의 비하와 조롱, 신상털기 등 여성의 몸을 제물로 삼아 광란의 카니발을 벌이던 소라넷을 여성의 시선으로 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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