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는 이렇게 나와 남편이 옮겨 다닌 최근 세 곳의 거처에서 용케 발견한 이웃이자, 꿈같은 행운이 우연을 가장하여 허락되는 우리 삶의 상징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집 찾는 기준에 딱따구리가 있던 건 아니다. 영국이나 한국이나 부동산에 가서 “딱따구리 소리가 들리는 집을 찾아요”라고 들이밀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단 한 번도 부동산에 그런 청을 한 적은 없었어도 이 세 보금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방향이 가리키는 곳과 딱따구리가 맞닿아 있음을 우리는 차근차근 알게 되었다.(11-12쪽)
지속가능 디자인 연구원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공대 산하 산업지속가능성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박규리와 영장류 학자 김산하 부부는 “단지 같이 있기 위해서 서로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희생하지는 말자는 합의 하에”(31쪽)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산다. 프로젝트에 따라 영국과 태국 등 세계 각지를 다니는 박규리는 번식기에는 만나 훌륭한 호흡으로 함께 알을 품고 육아를 나눠 맡으며 지내지만 평소에는 각자 지내는 딱따구리를 보며 “이마저도 우리는 딱따구리를 좀 닮았다”라고 쓴다. 이 사랑스러운 부부는 중고 가구와 살림살이로, 28명만 초대한 지리산에서의 작은 결혼으로 부부생활을 시작했다. 최근 이사한 고척동 집은 오래된, 현관 보안키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에서 먼 집이라는 남다른 조건에 꼭 맞는 산기슭 오래된 5층 아파트다. “우리에겐 당연한 일인데 사람들에게는 유별나고 희한하게 보인다”는 사실에 답답했던 『아무튼, 딱따구리』의 저자 박규리. 그는 환경 문제에 관심 두고 실천하는 일을 이렇게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부도 하고 변명도 하지만 스타일 있게 환경주의자로 사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시리즈의 열네 번째 책 『아무튼, 딱따구리』 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딱따구리를 찾고, 외롭지 않게 지속가능한 삶을 실천하기를 바라는 박규리의 응원 같은 책이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이 책은 산하 씨 동생 한민 씨가 고척동 집에 놀러오면서 아무튼 시리즈를 들고 온 데서 시작되었다.”(225쪽)고 적으셨잖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저희가 고척동으로 이사 간 지 얼마 안 돼서 한민 씨가 집에 놀러왔어요. ‘아무튼 시리즈’를 들고 와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채식에 대해 쓰고 있다고요. 먼저 산하 씨에게 “형도 할 얘기 많을 테니까 편하게 한 번 써봐.”라고 해서 제가 옆에서 ‘아무튼 옛날’을 써보라고 했어요. 산하 씨가 “옛날엔 안 그랬다”는 얘기를 자주 하거든요.(웃음) 그러다가 “근데 나는 딱따구리 할래”라고 제가 말한 거죠. 마침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강릉에 살면서 쓰던 글이 있었거든요. 재미있는 얘기가 많았어요. 또 저랑 산하 씨랑 살면서 느낀 게 있어요. 우리에겐 당연한 일인데 사람들에게는 유별나고 희한하게 보인다는 사실인데요. 꼭 그럴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마침 잘 됐다, 싶었어요. 그때 한민 씨가 출판사를 소개시켜줬고 그렇게 시작됐어요.
이야기가 ‘딱따구리’라는 존재에게 모이는 것이 참 재미있었어요.
고척동 집에 이사한 첫날부터 딱따구리 3종을 다 봤어요. 제 방 창문에서 말이에요. 고척동 집에서 유별나게 딱따구리 소리가 많이 들리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딱따구리가 짝짓기를 하는 시기라 더 많이 들렸던 것 같은데요. 매일 들리니까 매일이 정말 황홀한 거예요. 처음에는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싶었는데요. 산하 씨와 얘기를 하다가 강릉에 살 때도, 그리고 케임브리지에 살 때도 딱따구리가 주변에 있었던 게 우연은 아니구나, 생각했죠.
“알면 사랑한다는 최재천 선생님의 말씀”(153쪽)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누군가는 몰라서 알아채지 못한 것도 있을 테고요.
딱따구리를 잘 알아서 이 책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딱따구리 챕터는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웃음) 다만 산하 씨가 여러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니까 딱따구리의 생태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요. 그런 도움은 많이 받았어요.
무엇보다 발랄함과 유쾌함이 좋았어요. “궁상스러운 괴짜나 교조주의적 독설가의 함정”(28쪽)을 경계하는 모습도 좋은 시사점이 되고요.
제 캐릭터가 그런 것 같아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 안 받아들여지거나 사회에서 제대로 인식이 되지 않을 때 산하 씨는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 캐릭터인데요. 저는 산하 씨가 왜 햇볕정책을 안 펴나(웃음), 생각해요. 저는 아부도 많이 떨고요. 그런 식으로 스며들면서 딱딱하지 않게 다가가려고 해요. 산하 씨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제가 하는 역할이 있는 거겠죠.
환경에 대해 고민할 때 삶의 지향점과 실생활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중요할 것 같아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어떤 건가요?
얼마 전 있던 일이에요. 마음 맞는 동료들에게 ‘플라스틱 프리 피크닉’을 제안했어요. 빵도 비닐에 든 것은 사면 안 되고, 음식은 집에 있는 반찬통에 담아 와야 한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한 동료가 “그런데 너 초콜릿은 어떻게 생각해?”라는 거예요. 이런 것 잘하려면 저것도 잘해야 한다, 는 태도가 많잖아요. 거기에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다 죽는 게 맞을 거야.”라고요. 전부 해낼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거죠. 초콜릿은 내게 약점인데 지금 네게 선물한 초콜릿은 오가닉이고, 플라스틱 안 쓰고 종이로 포장한 거야, 라고 해서 넘어갔거든요.(웃음) 공격 받기가 쉽잖아요. 하지만 일관적으로 지속불가능한 것보다는 비일관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실천하는 사람이 공격 받을 때가 정말 많아요. 공격 받기 쉽기 때문에 선택을 보류하거나 고민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도덕을 내세우면 일관성으로 반박하더라고요. 하지만 일관적으로 안 하는 것보다는 저희가 사는 방식이 훨씬 나은 거죠. 적어도 저희가 노력한 부분에는 변화를 일으키는 거니까요. 이런 것은 어떤 사람이 실천하는 것만으로, ‘너는 왜 하지 않느냐’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공격받았다고 느끼게 마련이에요. 그러다보니 너 그건 안 하던데, 라면서 실천하는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것 같아요.
제가 일하는 연구소에 채식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어떻게 하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공장식 사육에 충격을 받아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를 몇 년 후에 봤는데요. 버거를 시키는 거예요.(웃음) 멋쩍어하긴 했지만 먹고 싶으면 먹어야죠. 적어도 멋쩍어하고, 양심에 찔려하는 것도 저는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실은 저도 얼마간 채식을 한 적이 있는데요. 주변의 놀림 같은 말들이 많았어요. 그게 참 외로웠던 기억이 나거든요. 작가님도 그런 외로움을 느낀 경험 있으시겠죠?
그럼요, 제일 친구에게도 외로움을 느끼는 걸요. 집에 놀러 가면 플라스틱 쌓여 있고 그래요. 하지만 그럴 때 “너 이러면 안 돼!”라고 하는 것보다 제가 한 번씩 걔네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요리해주고, 재활용 잘 버려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친구도 이쪽으로 넘어 오기를 기다리는 거죠. 그래도 몇 년 지난 지금 친구도 많이 바뀌었어요. 그 친구는 나쁜 사람도 아니고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뭐라고 하지 않고, 아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재미(웃음)를 만들려고 해요. 화를 다스리는 게 중요하죠.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요.
다 바꿀 수 없고, 모두를 설득할 수도 없지만 오늘, 내가, 실천한다, 는 감각이 중요하겠네요.
한 번은 일로 만난 분이 저를 대접해주신다고 참치집을 데려가셨어요. 좋은 걸 대접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참치가 정말 멋있고 훌륭한 생명인데다 멸종 위기이기도 해서 저는 안 먹으니까 다른 곳을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거든요. 하지만 결국 갔어요. 제게는 다른 것을 시켜주시고 그분들은 참치를 드시더라고요. 그런데 적어도 메시지를 전달한 것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하나 안 먹어도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안 먹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달라지는 건 크게 없겠죠. 그렇지만 저는 안 먹었고, 메시지는 전달했으니까요. 그분도 참치 두 번 드시려던 것 한 번 드시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해요. 더구나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없을 때는 이런 노력이 더 힘이 없잖아요. 또 훌륭하신 분들은 목소리가 안 크신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책이 그런 분들을 잘 모으는 계기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요.
너무 오만한 것 같아요
이 책은 지향점이 있는 삶,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는데요. “환경 문제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생활 습관과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다”(227쪽)는 말이 중요할 것 같아요.
올해 플라스틱 문제도 있었고, 폭염도 심각했고, 미세먼지도 계속 문제였잖아요. 그런데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청정기를 돌리면 그게 다시 미세먼지 발생에 기여를 하는 거거든요. 그 연결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폭염도 마찬가지죠. 너무 더우니까 에어컨 켤 수밖에 없는데요. 그게 또 문제를 일으키잖아요. 그것들을 연결하는 게 중요한데요. 다 그런 거지, 인생 뭐 있어, 라고 하는 자포자기의 태도나 해보니까 안 되던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라는 타협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분들에게 이런 환경 얘기가 고리타분하지만은 않고 재미있고 웃기고 감동적이다, 할 만하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맞아요, 불가능하지 않죠.
저는 결혼할 때 신혼여행까지 200만원 들었거든요. 그때 사람들이 그랬어요. 몰라서 그런 거지 아무리 네가 하고 싶어도 안 된다고요. 작은 결혼식이 돈 더 많이 든다면서 못하게 하는 말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되더라고요.(웃음) 모두 다 행복했어요. 결혼해서도 가구를 중고로 마련하겠다고 하니까 오래 써야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느니 별 얘기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써보니까 멀쩡해요. 이런 이야기들을 책으로 편안하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인간은 왜 여기까지만 똑똑해서 우리가 모든 종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135쪽)라는 질문에 오래 머물렀어요. 정말 자주 하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얼마 전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가 사살된 일도 있었잖아요.
저도 그 뉴스 듣고 많이 화가 났었어요. 지금 태국에서 프로젝트를 하는 중인데요. 진짜 저만 한 도마뱀이 캠퍼스에 돌아다녀요. 물론 되게 무서워요. 정말 커서요. 하지만 같이 있거든요. 이렇게 만약 이런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였다면 굳이 ‘사살했다’는 뉴스를 안 냈을 거예요. 위험하다고 하는 분위기가 있으니까 그렇게 한 거잖아요. 그보다 우선 퓨마를 왜 거기에 데려다놓았는지 말이죠. 인간이 스마트폰도 만들고, 집도 엄청 높이 짓지만 우리보다 지능이 낮다고 하는 동물들은 훨씬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요. 인간이 잘났다고 생각하니까 자연을 거슬러서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인간에게 호모 사피엔스라고 이름 붙이는 것 자체가 너무 오만한 것 같아요.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도 실은 많을 거예요.
맞아요. 다만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깊이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다 보면 너무 우울해져서 죽고 싶어요.(웃음)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스타일 있는 환경주의자가 되자”(44쪽)고도 하셨죠. 소비가 지나치게 쉬운 환경인데요. 이런 구조 안에서 가능한 스타일 있는 환경주의자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나가서 뭘 사려고 하면 살 게 없어요. 질려서 사는 것뿐이죠. 그때도 선택할 수 있을 거예요. 가령 제 파우치는 스리랑카의 란제리 공장에서 나온 브라컵 자투리 천으로 만든 건데요. 만져보면 더 재미있어요.(웃음) 또 제 펜은 심을 계속 교체해 쓸 수 있는 거예요. 몇 년 째 쓰고 있는데요. 이런 것 하나를 고를 때도 선택할 것은 있더라고요.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채러티 숍(charity shop, 중고 옷과 물품을 기부 받아 파는 가게)에서 산 건데요. 터진 부분도 있고, 땀자국도 있지만 나쁘지 않아요. 또 요즘 에코백 정말 많이 주잖아요. 그럴 때 사양하는 것도 방법이죠. 커피를 마실 때는 빨대 없이 마실 수 있다고 말하고요. 생각하면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되게 많아요. 워낙 넘치는 세상이니까요.
영국에서만 한 해 버려지는 옷이 100만 2천 톤이고,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아 서울에서만도 하루에 백 톤씩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쏟아내는 싸구려 옷들을 매주 사들이느라 빚까지 지는 시대적 풍조까지 등장했다.(중략)
누군가 가끔 나의 옷차림에 대해 칭찬을 건넬 때―대부분 예의상이겠지만―이거 채러티에서 건진 거야, 라는 답에 휘둥그레진 눈을 볼 때의 쾌감이란.(110-117쪽)
저희 집에 와본 친구가 이 책을 다 읽고 그러더라고요. 아쉬운 점이 있대요. 너희 집을 중고로 꾸몄다고 하면 구질구질하게 생각할 텐데 실은 예쁘다고, 그게 표현이 안 돼서 아쉽다고요. 그렇다고 우리집 되게 예쁘다고 쓸 순 없잖아(웃음)라고 말하긴 했는데요. ‘patina’라는 단어가 있어요. 세월이 주는 흔적은 돈으로도 못 사고요.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안 돼요. 흔하디흔한 새 제품보다 오래되고 낡은 것에서 기품과 멋을 찾는 감각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가 뭐라든지 말이죠.
때로는 소비하기가 더 쉬워요. 고쳐 쓰는 비용이 더 들 때가 있고요.
거꾸로 기업이 만들어놓은 것에 당당하게 맞선다고 생각하면 낫지 않나요? 내가 너희의 꾐에 넘어가나 봐라(웃음) 하는 거죠. 화는 좀 나지만 휘둘릴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지역 상인과 직접 소통하는 인간적인 기쁨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어요. 어디에 소비할 것인가, 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기질적으로 남들이 하는 건 일단 싫어하는 면도 있는데요. 저는 대형 프랜차이즈 가는 게 너무 싫어요. 안 가본 것도 아니고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고, 그래서 더 그 사람만의 개성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매장을 더 찾게 되는 경향이 분명히 있어요. 대기업에 돈을 주면 거기에서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알 수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거치지 않고 상인에게 직접 줄 수 있다면 큰돈은 아니더라도 기여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별로 복잡하진 않아요. 가능하면 그렇게 하려고 하고요. 그러면서 그분들과 교류하는 기쁨도 커요.
각자의 딱따구리를 찾아야
환경 문제 때문에 아이 낳기를 거부한 친구가 있어요. 우리끼리는 이야기하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책에서 그런 이야기도 솔직하게 해주셔서 좋았어요.
아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저도 주변 사람들한테 거의 말 못했어요. 유난 떤다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저 역시 마음의 결정도 아직 안 내리기도 했거든요. 그 부분은 쓸 때 저도 고민이 됐죠. 너무 내밀한 얘기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야말로 저도 용기를 냈어요. 저와 같은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요. 그러면서 이런 고민을 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어떤 문제를 ‘난 결론 냈으니까 끝’이라고 하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더라고요.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한 일 같아요.
말씀을 들으면 이런 고민들이 나를 외롭게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돼요. 내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인 거죠. 그동안은 관심사가 늘어나는 일이 곤란함이 늘어나는 일과 똑같아지는 경험을 더 많이 했거든요.
좋은 게 좋은 거다, 는 이제 끝났어요. 하던 대로 하고 남이 하니까 묻어가는 것도 더 이상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스스로를 괴롭게 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죠. 상황을 너무 경색되지 않게 하면서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을 저도 고민하는데요. 제 경우는 그래서 아첨을 떨고(웃음) 하는 거예요. 며칠 전에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고맙다고 커피를 플라스틱 잔에 빨대 꽂아서 준 거예요. 그나마 저는 이런 책도 쓰고 강의도 하니까 할 말이 있어요. “너무 고마운데…….”하면 이미 다 알아듣고요.(웃음) 이런 식으로 모두들 저마다의 방법은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각자의 딱따구리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혼자 너무 괴로워하면서까지 주변 시선에 맞출 가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회용 커피잔은 늘 고민인데요. 안 쓰려고 노력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쓰게 되기도 해요.
최근 ‘유어 보틀 위크’라는 게 있었어요. 자료를 찾다가 정다운 디자이너라는 분을 알게 됐는데요. 그분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의 모든 손님에게 잔에다 음료를 줬대요. 테이크아웃 하는 손님에게도 말이에요. 물론 회수율이 낮았는데요. 그래서 이분이 안 쓰는 텀블러를 모으기로 한 거예요. 그리고 신촌, 홍대 일대 7곳의 카페와 함께 유어 보틀 위크라고 해서 일회용품 없는 일주일 실험을 하셨더라고요. 그런 식의 창의적인 방법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 친구 얘기를 했는데요. 저도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옆에서 말없이 하는 거예요. 이걸 왜 해야 하는지 그냥 설명해주고요. 지나가는 말로 계속 하면 처음에는 안 하다가도 조금씩 바뀌겠죠. 그렇게 되기를 바라요.
재활용보다는 재사용, 재사용보다는 쓰레기 줄이기가 더 낫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각자의 일상에서 어떤 실천이 가능한지 궁금한 분들에게 몇 가지 팁을 주신다면 어떨까요?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이유가 있어요. ‘서울새활용플라자’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업사이클 디자인에 관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산업 폐기물을 모으는 뱅크, 새활용 가능한 소재를 모은 라이브러리, 전시 공간, 국내 업사이클 디자인 스타트업 등이 있는데요. 올해부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거든요. 그곳에서 얼마 전 워크샵을 했는데요. 워크샵이 끝나고 간 식사 자리에 함께 계시던 통역사 분이 물수건을 뜯다가 “같이 다니다보니 이런 것 쓰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재밌죠?(웃음) 또 치킨을 먹는데 비닐장갑을 많이 주셔서 제가 돌려보냈어요. 그런 소소한 실천은 많아요. 커피숍에서 주는 휴지도 안 쓰는 것은 제 자리에 갖다 놓고요. 음식점에서 먹지 않는 반찬은 처음부터 돌려드려요. 공짜로 주는 것도 필요 없으면 안 받고요. 그런 것들이 정말 많을 거예요.
또 써보고 싶은 책 주제가 있으세요?
좋은 기회가 돼서 이번 책은 제가 답답하게 생각했던 것을 편안하게 썼어요. 알고 보면 웃긴 이야기 되게 많잖아요.(웃음) 웃긴데 나만 알고 있어서 답답했던 게 사실 있었거든요. 그런 걸 다 풀어놓아서 더 이상 제 얘기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그런데 제가 빠른 사람은 아니에요. 오래 걸려요. 당장 뭐가 새로 나오진 못할 거예요. 차근차근, 좀 더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면 더 쓰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정말 좋아해요. 그 시대상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도 시대를 뛰어넘어 메시지를 주잖아요.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그랬고요. 그게 제게 아주 좋은 이정표가 돼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잘 묘사하면서 보편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가끔 쓸 수 있다면 그런 노력을 하고 싶어요.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었으면 하세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나만의 딱따구리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거든요. 또 미세먼지 때문에 화나고 폭염 때문에 전기세 많이 나가서 화가 나는 분들에게 이것이 환경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만의 딱따구리’는 어떤 것일까요?
인간 종 외에 다른 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이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자신만의 상징 같은 거죠.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약간 쑥스러워 하면서 자기와 여자 친구에게도 그런 새가 있다는 거예요. 뭐냐고 물었더니 비둘기래요. 할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들리는 새소리가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가족에게 가는, 자연 속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재미있게도 여자 친구에게도 그런 소리가 있었다면서 둘이 공감했대요. 너무 멋지더라고요. 누군가는 모기를 할 수도 있겠죠?(웃음) 산하 씨와 에스토니아 습지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은 상징이 모기였어요. 우리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신선했어요. 모두들 찾으시면 좋겠어요.
아무튼, 딱따구리박규리 저 | 위고
웃기고, 슬프고, 열 받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웃음을 짓게 하는 한편, 사람과 동물 모두가 처한 암울한 현실이 우리를 슬픔에 잠기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