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은 별과 시와 소설을 사랑하는, 글 쓰는 천문학자다. 이제까지 『이명현의 별 헤는 밤』 『판타스틱 과학 책장』 『외계생명체 탐사기』등의 책을 내고 ‘글 쓰는 과학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어느 날,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관상동맥 속에 스텐트를 박아넣었고 심장근육의 반 이상이 죽었다. 학교와 연구소를 은퇴하고 힘들게 숨을 고르며 책을 읽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밖에 없어서 혼신을 다해 서평에세이를 썼다.
그렇게 모인 서평이 『이명현의 과학책방』이다. 딱딱하고 지루한 평론집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경험과 현재의 감정을 드러내는 ‘자전적 과학 에세이’에 가깝다. 달력과 날씨 같이 친숙한 주제에서부터 블랙홀, 양자역학, 힉스 입자 같은 어려운 과학 개념에 이르기까지 읽다 보면 과학책을 읽고 싶어진다. 책을 읽는 책인 셈이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이명현은 과학책방 ‘갈다’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책방에 붙어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정기적으로 과학책을 소개하던 프로그램을 그만두었다. 과학책을 만나는 방식은 변했지만, 여전히 과학책이라는 화두는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국내 저자의 책이 먼저
저자 소개를 보면 전파천문학자라고 되어 있어요. 전파천문학자는 무슨 일을 하나요?
종이와 머리를 써서 천체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이론 천문학자라 부르고, 기기를 통해 천체를 관측하면 관측 천문학자라 부르죠. 관측 천문학자 중에서도 광학 망원경을 쓰면 광학 천문학자가 되고, 우주 공간을 대상으로 하지만 적외선 필터 망원경을 쓰면 적외선 천문학자가 되죠. 저는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 천체를 관측하니까 관측 천문학자이자 전파 천문학자가 되고, 연구하는 대상이 은하니까 은하 천문학자가 되죠. 은하를 관측해서 우주의 나이를 결정하기 때문에 관측 우주론자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이명현의 과학책방』은 과학책을 다룬 서평집이에요. 프레시안 북스에서 연재하던 서평을 모았다고 들었는데, 몇 년 정도 연재한 글인가요?
격주로 하는 코너였는데 3년 정도 했어요. 격주에 한 번 쓰기도 벅차서 그사이 다른 신문사 청탁은 많이 거절했었어요.
3년이면 300권이네요.
본격적으로 서평을 쓰기 전에는 한 달에 한 30권 봤어요. 필요에 따라 훅 보는 것도 있고 소설책 재밌게 읽은 것도 있고, 다큐멘터리 식으로 된 책도 좋아하고요. 늘 정독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제 마음에 들 만큼만 읽으면 되는데 서평을 쓰고 나서는 한 달에 여섯 권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정독하는 게 작가에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다 읽으려면 못 해도 3, 4일은 걸리죠. 제일 허망한 건 그렇게 다 읽고 서평을 못 쓰는 거예요. (웃음) 비판을 하든 칭송을 하든 마음이 울려야 쓸 수 있는데, 어떤 책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할 말이 없는 책이 있어요. 정서적으로 안 맞거나 동의하지 못하거나, 너무나 익숙해서요. 이런 것들은 못 쓰니 새로 책을 읽어야 할 때 힘들었죠.
공적인 서평 자리라서 말하지 못한 내용도 있었을 테고요.
실명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대부분 과학책 저자들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가능하면 실명과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를 노출하려고 했어요. 책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풍성하게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민감한 사람도 있어서 글이 나가고 이름을 고쳤던 때도 있고요.
특히나 아는 사이라면 서로 책에 관해 이야기하기 어려울 거예요.
맞아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가 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책을 평론할 의무가 없잖아요. 애정이 있는 책만 하다 보면 그 책에 대해 즐거운 이야기와 감동한 이야기만 쓰게 되고요. 저에게는 너무 좋은 책이지만 그 책이 가진 허술한 면도 같이 이야기해 줘야 하는데 사실 선택한 책들은 이미 한쪽으로 기운 책들이에요. 그렇다고 평론처럼 작정하고 쓸 수는 없고, 그런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과학책을 재밌어하거나 열심히 읽은 편이 아니라서, 이 정도로 한국 저자가 쓴 양서가 많다는 걸 새로 알았어요.
최근 한 5년 사이에 많이 늘어났어요. 이전에도 과학책 쓰시는 분들은 늘 있었는데 예전 세대는 대부분 한국어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일본어로 사고하거나 영어로 사고하고 그걸 번역해서 썼죠. 반면 저희 세대는 어릴 때부터 한국어로 사고하고 한국어로 글을 쓴 세대잖아요. 한국어로 사고하고 글을 쓰는 한국어 세대가 이야기하기 시작하다 보니 예전보다 가독성이 높아진 건 있어요.
책을 고른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국내 저자가 쓴 책이면 일단 먼저 선택했어요. 그리고 더 열심히 읽었죠. 막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비평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업자들이 읽으면서 접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번역서들도 훌륭한 책이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안 맞거나 답답한 면이 있고요. 항상 예전 것부터 훑어야 하는데 모든 옛날 것들이 1장 2장에 몰려있고 5장쯤 가야 새로운 게 나온다면 답답하게 느껴지잖아요. 국내 저자들은 그런 걸로부터 좀 자유로운 것 같아요. 같은 내용이라도 익숙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뱉어내는 것들이 있어서, 국내서적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결과보다는 풀어가는 과정의 희열
책은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을 했었나요?
초안 이후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계약을 했어요. 글이 출판사에 넘어가는 순간부터 흥미가 확 떨어져서요.
보통 저자라면 원고가 넘어간 후에도 이것저것 살펴보게 되지 않나요?
책은 저자만 쓰는 게 아니잖아요. 저자는 꼭 할 말이 있고, 출판사에서는 늘 조금만 문턱을 낮추면 책이 많이 팔릴 것 같은 유혹이 있는데 그런 걸 조율하는 게 편집자죠. 마케터는 또 다른 관점이고요. 제 생각에는 저자들이 판매나 편집자의 눈에 맞추기보다 하고 싶은 말 다 던져주고 그 다음에 편집자에게 맡기는 게 어떨까 싶어요. 맞춰서 쓰다 보면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못 하는 경우가 생기니까 저자 입장에서 계속해서 이끌어가는 동력이 떨어지겠죠. 편집자의 역할과 마케터의 역할, 저자 역할을 분리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원고 초안이 넘어가면 책 나올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고 해요. 서문을 누가 쓰는지 책 표지는 어떻게 됐는지 아무것도 몰라요.
리뷰도 덜 찾아보시는 편이시죠? 퇴고는 어때요?
리뷰를 안 봐요. 원고도 제가 쓴 걸 보내고 나면 다 지워버려요. 다른 방식으로 쓰는 저자도 결국에는 똑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를테면 김탁환 선생님은 퇴고를 한 열 번쯤 한다고 해요. 저는 퇴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대신 머릿속으로 글을 한 열 번 고쳐요. 글을 쓸 때 완성된 걸 그대로 옮겨 적는 편이죠. 사람에 따라 생각을 미리 적고 그걸 계속 고쳐나가는 방식이 있고, 계속 머릿속에서 고치고 완성본을 만든 다음 옮겨 적은 스타일이 있잖아요. 저는 후자인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 많은 버전을 만들고 막상 글을 쓸 때는 다른 생각 없이 정한 이미지를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하는데요. 책 한 권을 실제로 쓰는 시간은 한 5일 정도 걸렸어요.
서울시립과학관의 이정모 관장님도 퇴고를 안 한다고 들었어요. 과학자의 특성일까요?
그럴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과학자는 플로 차트를 전체적으로 만든 다음 알고리즘을 짜잖아요. 사고하는 방식이나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그렇게 훈련 받아서 습관이 되어 있을 순 있을 것 같아요. 전혀 다르신 분도 있어요. 윤태웅 교수님은 처절하게 장편 소설가처럼 쓴 글을 계속해서 고치는 편이라고 해요. 사람마다 특성이 있겠죠.
번역에 관한 문제가 많이 언급되어 있어요. 일반 대중이 보기에는 번역도 과학책을 읽는 하나의 걸림돌이에요.
최근에 너무 좋아졌지만 예전에 번역된 건 세월이 지나면서 언어 습관이 달라지기도 하고 번역한 분의 세대가 달라지기도 했죠. 지금처럼 밀도 있게 번역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있었으니, 예전에 번역했던 책이라도 자꾸 다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번역 문제가 아니더라도 어려운데 말이죠. ‘대중을 위한, 비과학 전문인을 위한 책이라고 해서 전문지식이 안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어려운 이야기가 쓰여 있으면 일단 겁이 나긴 하거든요.
과학은 기본적으로 수학이라는 언어로 교감해요. 이 언어는 매우 명확하죠. 하지만 과학책은 수학 언어가 일상의 언어로 한 번 번역되어서 나온 거고,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 문맥상 번역이 되어야 하듯이 번역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방식과 언어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도 하고요. 현대 과학이라는 게 원래 직관적이지 못해요. 양자 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은 거시와 미시 세계라서 뇌가 직관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훈련을 통해 사고해야 그 현상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 훈련과정이 결국 과학적인 사고방식인데, 그게 없는 상태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어렵죠.
노벨상 시즌마다 기자들이 과학자들에게 전화해서 노벨상 결과를 쉽게 설명해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20년 단위로 보면 노벨상도 패턴이 있어요. 우주론과 관련한 연구가 상을 받으면 금방 공부해서 말할 수 있는데, 고체 물리로 상을 받았다면 저는 밤새워서 공부해야 해요. (웃음) 과학자들도 자기 분야 외에는 잘 몰라요. 현재 노벨상도 이전처럼 보편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특정한 연구 결과에 주는 경우가 많아서 힘들죠.
과학현상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많이 받으실 것 같아요.
그림책이나 사진집을 볼 때도 하나하나 자세하게 보지 않고 전체 이미지로 보는 거잖아요. 수학이나 과학에도 아름다운 공식이나 수식이 있어요. 어려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어렵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써 놓으면 경외심이나 동경, 판타지로 다가올 수 있을 거예요. 어느 연령대든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게 들어가야 쉽게 설명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까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도전이 되는 게 있어야 얻는 게 있으니까요. 과학이 결과의 희열보다는 풀어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게 과학자들이거든요.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물만 가지고 서로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있어요.
개론서를 읽다 보면 ‘내가 쓴다면 더 잘 쓸 텐데’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이 책에는 이 파트가 마음에 들고 저 책에서는 저 파트가 마음에 드니까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아요. 강의할 때는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막상 책을 떼어서 붙여놓으면 뭔가 안 맞죠. 결국 개별적으로 좋아도 묶어놓으면 힘을 못 쓰게 돼요. 다소 부족하더라도 한 사람이 맥락을 잡으면 하나하나는 미흡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좋은 책이 나오기도 하고요. 그걸 잘 조화시키고 싶은 생각이 늘 있죠.
강양구 기자는 ‘삶에 무한한 애정’이 있어서 작가님의 글이 아름답다는 평을 써주셨어요.
강양구 기자와 오래된 사이에요. 십몇 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열댓 명 모이는 모임이 있어요. 다들 바쁘니까 날짜를 정해놓고 만나자 해서 매년 동지와 하지에 사적으로 만나서 노는 모임이에요.
과학자가 만나기에 제격인 날이네요. (웃음)
처음 만난 날이 하지여서 그렇게 정했어요.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끼리 교류하면서 백탑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서울 살던 한량들이 모여서 자기네들끼리 지적 교류하던 모임을 서울종로3가에 있던 탑 이름을 따서 백탑파라고 불렀죠. 거길 보면 다른 사람들의 책에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아서 팔기도 하고, 서로간에 장난치는 게 나와요. 서로 책에 추천사를 쓰고 있자면 그런 장난이 실현되는 것 같기도 하고, 되게 좋아요.
"인간은 과학에 대하여 자신의 인간다움을 주장할 때가 온 것 같다"는 김용준 선생의 말을 인용했어요. 과학에 대해 인간다움을 주장한다면, 어떤 게 인간다움일까요?
이전에는 인간다움이 철학자의 영역이었어요. 칸트의 오성, 흄의 휴먼 빙(human being)을 거쳐 『인간 본성에 대하여』라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나오고, 그 사이에는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러셀이 있었죠. 인간 본성을 논의하는 주도권이나 주체가 철학자에서 진화심리학 등의 과학으로 넘어온 것 같아요. 제 생각에 과학적으로 인간을 탐구한다는 것은 결국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드러난 진실 중에 옳은 건 많죠. 인간은 죽어요. 너무나 뻔하지만 그걸 극복하지 못해 여러 가지 가설이 생기잖아요. 내세가 생기고 내세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면 근본주의자와 테러리스트도 생기고요. 삶도 유한하고 우리는 흩어져 원소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면 허망하죠. 그 허망함을 애써 외면한 역사가 스토리와 전설과 종교를 만들고, 버티며 살아가게 하는 가치 체계를 만들었어요. 그렇다면 번개가 신이 아니고 쓰나미가 신의 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이후 우리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이 짧은 시간을 살아내야 할까요. 인간종 자체가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당장 가상의 스펙에 기대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와 내가 마음이 가는 사람들과 지금 이 순간에 훨씬 교류를 많이 해야 하고, 그러면 사람들이 더 소중하고 조금 더 평화로워질 것 같아요.
오히려 유한성이 삶의 의미와 애정을 증폭시킨다는 거죠?
그럴 수 있죠. 유한하니까 개망나니처럼 살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을 포용하면서 각자가 가진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나누려면 버려야 할 것들도 있겠죠. 전통이 세월이 지나면서 원래 뜻이 윤색되고 바뀌면서 더 이상 할 필요 없지만 관성 때문에 하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걸 꼭 과학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과학이 훨씬 더 소중한 것들에게 정교하게 가치부여를 해줄 수 있다는 거죠. 그런게 오히려 인간다움이 아닐까요?
중학교 교과서에서 진화 과정이 없어졌던 걸 굉장히 우려하셨어요. 과학의 엄밀성과 상관없이 자꾸 사람들이 과거로 돌아가려는 현상이 있어요.
터키에서는 쿠데타 이후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다 빼버렸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개체가 아니라 집단이 발현되고, 집단은 뭉쳤을 때 쉽게 바뀌죠. 그때 상식적이거나 회의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으면 어느 정도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학이 사회가 극단적인 길로 가지 않게 하는 제어장치가 되는 거죠. 제도권 안에서 그걸 인지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데, 교과서에서 그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과학적 사실을 뺀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서평 에세이를 연재하던 당시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어요. 아내 분도 잇달아 심하게 투병했고요. 요새 건강은 어떠신가요?
지금 하는 활동이 다 경제활동이라 활동을 멈출 수는 없지만, 조화를 맞춰야죠. 길게 버텨야 하니까 3일 일하면 3일은 쉬는 식으로 패턴을 정하고 있어요. 여러모로 계속 균형이 중요해서 정기적으로 한 번씩 검사를 받아요. 주기적 패턴이 있어서 계절마다 조심하려는 것도 있고요.
새끼손가락만 아파도 온 신경이 손가락에 가는데, 아플 때 광대한 것들을 설명하는 책을 읽는다면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때 당시 다른 활동을 전혀 못 해서 사람들에게 서평을 청탁하고 읽고 쓰는 게 유일한 대외활동이었어요. 다른 걸 할 수 없는 그 시절과 우연히 겹쳐서 더 열심히 읽기도 했을 거예요.
최근에는 과학책방 갈다를 운영하고 계세요. 갈다는 어떤 곳인가요?
주식회사이자 과학콘텐츠그룹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과학콘텐츠 그룹 갈다의 첫 번째 오프라인 프로젝트가 과학책방 갈다인 셈이죠. 장대익, 정대승, 이정모 작가님들과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책방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유망해서라기보다는, 저희만 해도 지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게 잡지와 책이었거든요. 그리고 과학자들이 다들 책을 쓰는 사람들이니까 책방 주인에 대한 로망과 책에 대한 부채 의식이 여전히 남아있어요. 2, 3년 후에 이런 논의를 한다면 책방을 열자는 이야기를 감히 할 수 없게 될 것 같고,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첫 오프라인 사업으로는 책방을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난 거죠. 회사 형태도 여러 가지로 논의해봤는데 자본주의 사회 아래에서는 가장 간단한 게 주식회사더라고요.
책은 몇 종 정도 갖춰져 있나요?
많지 않아요. 한 7, 8백 종? 제가 큐레이션을 맡았는데 고전적인 외국책보다는 가독성 있는 국내 작가 책을, 국내 작가 중에서도 여성 작가를 위주로 놓기로 했어요. 보통 문학가나 철학가는 작가별로 책을 모아서 사람에 대한 조망을 많이 하잖아요. 과학 책은 주로 현상 위주로 모아놓아서 저술자 자체에 대한 관심이 적죠. 여기서는 과학 저술가로 살아온 이야기, 저자로서 이야기가 있는 한 인간을 조명하려고 해요. 매니저 두 분이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본 과학책을 들여놓아서 좀 더 풍성해졌죠.
세상에서 제일 책 못 읽는 사람이 책방 주인이라는 농담이 있어요. 공간을 운영하느라 바빠서 책을 못 읽는다고요.
맞아요. 저도 많이 못 읽어요. 지하부터 2층까지 있어서 공간을 운영하고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가능하면 공간 운영은 외주를 통해 해결하고 매니저는 강의 기획과 출판사 협업을 담당하는 식으로 꾸며가는 중입니다.
들어오면서 칼 세이건 책 읽기 강좌가 크게 붙어있는 걸 봤어요.
대중적인 과학책 중에서는 어쨌든 칼 세이건의 책이 가장 풍성하고 잘 알려져서 『코스모스』부터 『콘택트』 까지 읽는 책 모임이 있습니다. 처음 특집 기획을 칼 세이건으로 했고, 10월 말에는 블록체인 특집 코너를 운영하려고 해요.처음 기획을 칼 세이건으로 했고 10월 말에는 블록체인 특집 코너를 운영하려고 해요.
『이명현의 과학책방』에 소개된 책 중에서 한 권만 꼽으라면, 역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일까요?
『코스모스』도 있지만, 정재승 교수의 『과학콘서트』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었어요. 그런 베스트셀러가 한 20위권으로 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베스트셀러 과학책의 순기능이 많지만, 다른 책이 더 많이 나와서 약진하면 좋겠어요. 한 권을 꼽자면 돌아가신 나대일 교수의 『아인슈타인과의 두뇌 싸움』이라는 책이 있어요. 자기만의 말하는 투로 아인슈타인을 설명하는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 책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어요.
책방 갈다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공간을 만들어놓으니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자발적인 독서 모임이 생기고,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북토크도 하고요. 과학과 과학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이곳을 사용할 수 있을까 싶으신 분도 연락하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락해주세요. (웃음)
이명현의 과학책방이명현 저 | 사월의책
결코 딱딱하고 지루한 ‘모범’ 가이드가 아니라, 저자 자신의 과학책 읽기 ‘희로애락’을 과감 없이 드러내는 솔직담백한 ‘자전적 과학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