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웃으면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잠깐의 무표정이 어색하리만큼.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신현림 작가는 가방 속을 뒤적이더니, 웨하스 한 봉지와 자신의 책 두 권을 꺼내놓았다. 등단한 지 23년이 지난 작가가 자신의 책을 선물로 가져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 그것도 신간이 아닌 1년 전 펴낸 책이었다. 신현림 작가는 말을 보탰다. “제가 웨하스를 좋아하거든요. 좀 큰 걸 사오려고 했는데 없더라고요. 오늘은 책 밖에 못 가져왔나? 원래 양말을 싸 들고 다녀요. 길에서 1,2천 원에 살 수 있는 양말 있잖아요. 몇 개씩 사놓고 사람들 만나면 선물해요. 그런 것밖에 못해요. 아, 운 좋으면 커피 같은 것도 줘요. 지난 달에 발리 갔다 오면서 커피를 좀 많이 사왔거든요(웃음).”
13세 사춘기 딸을 둔 엄마 작가에게 ‘귀엽다’고 표현해도 될까 싶지만, 마냥 친근한 느낌. 신현림 작가의 첫인상이다. 준비해놓은 질문들을 꺼내고 대화를 이어가는 도중, 자꾸만 이야기가 곁길로 빠졌지만 작가에게는 무작정 상대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머니를 떠나 보낸 지 3년이 지난 2011년, 작가는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를 쓰면서 회한에 잠겼다. “나는 한 번도 좋은 딸인 적이 없다”고 말했던 작가는 일 년에 예닐곱씩 경기도 의왕에 모신 어머니 산소를 찾으며 어머니를 추억한다. “엄마도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은 존재”라며 엄마만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보라”고 독자들에게 말을 건넸던 신현림 작가. 이제 혼자 남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며, “사랑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추억’이듯, 자식들도 부모에게 ‘추억’을 선물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작가는 지난 겨울, 저렴하게 나온 이탈리아 여행상품을 보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도 같이 가시겠어요?” 머뭇거리는 아버지의 대답을 뒤로 하고, 작가는 덜컥 3명의 상품을 신청했다. 작가와 딸, 아버지와 함께한 삼대의 이탈리아 여행. 아버지는 여행 중 작가에게 말했다. “네 엄마도 살아있을 때 함께 여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의 마음뿐이 아니었다. 작가는 요즘, 좋은 풍경, 맛있는 음식만 보아도 어머니, 아버지가 떠오른다. 이번 주말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티포트를 사가지고 의왕에 내려갈 계획이다. “아빠! 너무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몸 상해요”라고 적힌 경고 문구(?)를 손에 들고서.
엄마, 아빠 책을 쓰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됐어요
“세상의 아빠들, 요즘 너무 외롭잖아요.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를 쓰고 나서, 아빠 이야기도 해달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정말 힘들었어요.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어요. 엄마는 일단 함께했던 기억도 많고 태내에서 있었던 교감 같은 게 많은데, 아빠는 다르잖아요. 남자들도 엄마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 않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아빠에 대해 물어보니까 대부분 머뭇거리고 5분도 이야기를 못하더라고요. 젊은 아빠들은 아이들이랑 교감을 잘하지만, 나이 든 세대일수록 쉽지가 않아요. 가족 간에 있어서 소통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고 또 중요해요.”
“엄마처럼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였어요. 아빠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는데, 아빠를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이 정말 많지 않았어요. 하다못해 나쁜 아빠들도 많았고, 정말 다채로워서 놀랐을 정도에요. 책을 쓰면서, 남자들의 세계, 아빠들을 알았어요. 남자들끼리 만나면 가족 이야기를 정말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친한 사람들 속에서는 하겠지만요.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남자들은 소소한 것보다 굵직한 흐름만 알고 지나가잖아요. 전통적인 관습 때문에 남자가 소탈하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것도 쉽지 않고요. 아빠들이 참 외롭구나, 쓸쓸하구나. 안타까웠어요.”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고 있지만, 작가는 최근 여러 에세이를 집필했다. 『서른,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 이어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그리고 이번에 펴낸 『아빠에게 말을 걸다』까지. 작가에게 에세이는 시만큼 자유롭진 못하지만 배움의 과정을 선물한다. 신현림 작가는 “엄마, 아빠에 대한 책은 스스로도 많은 공부를 하게 된 책”이라고 말했다.
“이번 책을 쓰면서 저도 성장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점점 더 외로워하고 소외되고 있잖아요. 개인주의가 너무 심해지고 이기적이게 되다 보니, 가족 해체가 심각해지고요. 작가로서 책임감이 정말 커요. 최근에 돌아가신 고 김종학 PD 사건을 보더라도, 너무 큰 인재인데 왜 우리 사회가 돌봐주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고. 자살이 많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로서 사랑에 대한 나눔, 실천에 대한 책임을 많이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내 작업에 어떻게 반영할까, 생각하게 되고요.”
『아빠에게 말을 걸다』는 비단 부녀, 부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가장 소박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인 사랑법이 담긴 책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을 때, 관계 맺기가 힘들 때, 한 두 페이지 펴본다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다.
사랑 표현, 미루지 마세요
작가는 몇 달 전, 딸아이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다녀왔다. 아버지의 고향집 이사 날짜와 겹쳐, 단출한 모녀 여행이 되었다. 한가로운 크루즈 여행을 하며, 작가는 아버지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여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여행서를 준비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떠난 여행이지만, 후회가 되더라고요. 무리를 해서라도 아버지랑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사실 경제적인 문제도 항상 따라 오죠. 그래도 작가에게는 영혼의 재산이 중요하니까, 많이 다니고 견문을 넓히려고 해요. 지난해 아버지를 모시고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정말 좋았거든요. 아버지가 행복해 하시는 걸 눈으로 보고 느끼니까요. 아버지랑 카프리섬에서 레몬소주를 사 가지고 와서 한 잔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여동생이 그러더라고요. 여행을 가야지,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고요. 요즘 <꽃보다 할배>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랑 또 한 번 여행을 가야지, 싶어요. 아버지가 이순재, 신구 선생님 또래시거든요(웃음).”
신현림 작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 주말 아버지의 고향집으로 내려간다. 늘 손수 밥을 지어주시는 아버지는 대보름 때면 오곡밥을 빼놓지 않는다. 딸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보아도, 마냥 흐뭇한 아버지. 그 마음을 아는 작가는 가장 맛있는 얼굴로 씩씩하게 한 그릇을 비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상대방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너무 중요한데, 그런 걸 깨닫는 시간은 중년이 되어서야 가능해요. 30대까지는 뭔가 자기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렬할 때라서, 부모님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아버지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기란 쉽지 않죠. 독립해서 집을 나와야만 생각하게 돼요. 같이 살면 절대 못 느끼는, 떨어져 있어봐야 애달프고 생각하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뒤늦게 깨달아 후회가 되고 그래서 잘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작가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변했음을 느꼈다. 창작만큼이나 힘든 과정이 찾아올 때, 가족끼리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또 배우려고 애쓴다. 무엇보다 사랑의 표현을 미루지 않고 바로 전하려고 노력한다. 신현림 작가는 “너무나 큰 상실을 통해 배운 성장”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댁에 내려가서, ‘우리 아버지, 한 번 안아 드려야지’하고 팔을 내밀면 아버지가 쑥스러우셔서 몸을 저만치 빼세요(웃음). 그래도 저는 끊임없이 해요.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우리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꼭 말하고요. 가끔은 제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때도 계시지만요(웃음).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정말 훌륭한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시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자식들한테 민폐를 안 끼치려고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혜로움, 인간적인 세련됨을 느끼고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5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자식들은 혼자 되신 아버지가 적적하실 생각에 함께 살자고 청했지만, 아버지는 한사코 고향 집을 떠나기 싫다고 하셨다. 다행히 아버지의 친구들이 고향에 계셔서 외로움이 덜하다고 하시지만, 자식들은 항상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자식들한테 짐이 되기 싫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셔서요. 때로는 너무 걱정돼요. 추석 때 아버지 댁에 내려갔는데, 열이 38도까지 올라가신 적이 있었어요. 이렇게 아프신 걸 보는 게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택시를 불렀더니, 기사님이 119 응급차를 부르라고 하더라고요. 119를 부르는 게 별로 어렵지 않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일부러 응급차를 불렀어요. 가끔 아버지가 건강이 조금이라도 안 좋다는 걸 눈치채면, 바로 식구들한테 문자를 날려요. 아버지가 커피나 녹차, 뜨거운 걸 드시면 안 좋으시대요. 중국 사람들이 차를 많이 마시는데 사망률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식도암이래요. 아버지 식탁에 ‘천천히 식사하세요’라고 써놓았는데, 이번 주말에 내려가서는 ‘뜨거운 음식은 절대 드시지 말라’고 적어놓아야겠어요.”
자식은 자식들대로 부모와의 이별을 생각하며, 부모님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고 괴로운 이야기이지만, 준비할 수 있어야만 현실을 기쁘게 살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하루하루, 이별의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쏟고 사랑을 전하는 일만큼 소중한 일이 있을까 싶어요. 어머니께서 살아 생전에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사랑을 누려라’라는 말이었어요. 아버지를 떠올리면, ‘나눠줘라. 다 나눠줘라’라는 말이 생각나요. 죽을 때 가져가는 것 하나도 없으니까 있을 때 나눠주라고, 네가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다 나눠주라고.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후배들이 책을 보내주면, 일단 좋은 책이면 웬만하면 페이스북에라도 올려서 홍보를 해주려고 해요. 사진도 찍어서 올려주고 후배들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해요. 선배라고 해서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선배라고. 저도 저절로 알게 된 게 아니라, 책을 쓰면서 배우게 된 것들이에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걸 도와주고, 같이 누리고 추억을 쌓는 일만큼 소중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를 닮아 시를 쓰게 된 것일까요
신현림 작가는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내며, 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했다. 어릴 적 문학에 심취했던 남동생에게 칼럼을 써보라고 권했다. 작가와 여섯 살 터울인, 지금은 정신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신동환 원장은 누나의 제안에 아버지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이렇게 제 톤에 맞춰서 써줄 줄은 몰랐어요. 고맙고 놀라웠어요. 그동안 남동생도 참 많이 성장했구나, 느꼈고요. 내가 몰랐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남동생을 통해서 알게 된 경우도 있고,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의 역사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들이 바라보는 아버지, 딸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아버지도 그렇지만 남동생도 책 읽기를 좋아해요. 지금도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밤을 샐 거예요. 매일 병원에서 환자를 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어요. 예술 쪽에 취미를 두면 의사로서 생활하기도 훨씬 좋잖아요. 그래서 좋은 전시나 작품이 나오면 남동생에게 알려주려고 해요.”
시를 공부한 남동생과 더불어 작가의 아버지 또한, 고등학생 시절 문청이었다. 신현림 작가는 오랫동안 아버지가 시를 썼다는 사실을 문단에 데뷔한 후에야 알았다. 작가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크게 싸운 날은 어김없이 아버지가 월부로 책을 한꺼번에 사 들고 온 날이었다. 아버지 덕분에 책장에는 명서들이 빼곡히 쌓였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며칠 동안 들어야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저를 가장 많이 이해해주셨던 것 같아요. 제 책이 나오면 서점에 가서 꼭 한 두 권씩 사서 읽으시고요. 서예, 도자기, 그림도 좋아하시지만 무엇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셔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혼자 남으셨을 때,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어요. 민추협 사회국장, 의정활동을 하실 때도 그랬지만, 아버지는 행동파이고 실천적인 분이세요. 아버지는 지금도 새벽 4시가 되면 새벽기도를 칼처럼 나가시고 하루를 시작하세요. 여동생이 목사이고 저는 가톨릭, 다른 식구들은 모두 개신교이지만, 신앙이 무르익어지면 타 종교에 대해 인정하면서 같이 가게 되잖아요. 저희는 언제나 화해해요.”
누군가는 『아빠에게 말을 걸다』를 읽고 작가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사랑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하지만 작가가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민주화 운동을 하며 세상사에 더 집중한 탓에, 어머니가 오랫동안 가정형편을 살펴야 했던 시절도 꽤 길었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랑 많이 다퉜어요. 그렇지만 아버지는 많이 들어주시는 편이었어요. 젊은 사람들 입장을 많이 생각하시려고 했고요. 오히려 그런 면이 너무 강하셔서, 힘들 때도 있었어요. 『아빠에게 말을 걸다』를 쓰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각기 다른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연도 있었어요. 아버지의 외도와 같이 치유 불가능한 사건을 가진 가족들도 많았고요. 책에도 썼지만, 자식들이 먼저 좋은 아들 딸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빠들도 잘해야 해요. 가족 간에도 한 번쯤은 다툼이 필요할 수 있어요. 싸우다 보면 고민을 하게 돼요. 남동생이 한 명언 중에 잊히지 않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싸우지 않고 친해질 수 있냐’는 말이에요. 말다툼이 생기면,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먼저 굽히고 들어가야 해요.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어요. 이럴 때 마음이 고무줄 같은 사람이 먼저 마음을 내려놓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본인도 아마 미안한 일을 했을 거예요.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문제가 풀어져요.”
문득, 인생의 많은 것들이 쏜살같이 흘러갔음을 느낄 때가 있다. 모두 지나간 후, ‘내가 왜 그랬지?’하며 되묻게 되는 슬픈 날이 찾아온다. 작가는 말한다. “모든 일이 슬프게만 흘러가지 않게, 그때 그때 많은 추억을 쌓아놓으라”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어떤 힘든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려울 때만 찾는 가족이 아니라, 이 햇살이 찬란한 날에 ‘아빠, 날씨가 좋네요. 우리 어디 놀러 갈까요’라고 말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철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 깨달으면 너무 늦어요. 한이 생겨요. 요즘 노후 준비가 잘 안 되어있는 부모들이 많잖아요. 자식들이 부모가 노후 준비를 할 수 있게끔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사랑도 공짜로는 못 받아요. 부모가 자식한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추억’인데, 자식도 마찬가지에요. 부모한테 추억을 선물해야 해요. 역지사지 정신이 중요한 거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풀지 못할 관계는 없어요.”
작가는 때때로 나이를 먹고 있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나로만 가득 찬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베풀고 있을 때, 비로소 나이 듦에 감사한다. “우리는 왜 나이를 먹는 걸 고통으로만 여길까요. 제가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없이는 어떤 책도 쓸 수 없었을 거예요. 또한 감동을 줄 수 없었을 거고요. 이건 작가로서의 제 삶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이기도 해요.”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이 먼저 달라지기 바란다는 건, 정말 나태하고 게으른 태도에요. 가족 간에 사랑, 유대감이 없는 것에 대해서 고통스러워만 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해요. 세상의 많은 문제는 ‘나나나 시리즈’로 가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거예요. 나 자신을 가장 밑에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에요. 조금이라도 화해의 가능성이 있다면, 부모 쪽이든 자식 쪽이든 한 번 부딪혀 봐야 해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는 화해할 수 없어요. 자기 안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해요.”
작가는 종종 사춘기 딸과 카카오톡 대화를 하며 하트 이모티콘과 함께 ‘사랑해’라는 말을 연발한다. 딸아이는 엄마의 부담스러운(?) 애정표현에 “엄마, 왜 이렇게 느끼해? 부담스러워”라고 대꾸한다. 신현림 작가는 몇 달 전과 다른 딸아이의 변화가 새삼스럽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안 하면 언제 해요?” 표현하면서 살아야 해요.” 언젠가 딸아이는 엄마의 느끼한 사랑표현이 그리워지는 때를 만날 것이다. 표현이 머뭇거려질 때, 신현림 작가의 속삭임을 기억해보자. “지금 안 하면 언제 해요?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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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에게 말을 걸다신현림 저 | MY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좋은 딸인 적 없었다”는 신현림의 고백으로 시작한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이 3만 독자와 소통한 데 이어, “하지만 나는 살아계신 나의 아빠에게만은 좋은 딸이고 싶다”는 고백과 함께 《아빠에게 말을 걸다》가 독자를 찾아간다. ‘아버지’의 자리와 존재감을 찾으려는 사회 트렌드가 있다지만, 우리의 접근은 여전히 너무 무겁고 추상적이지 않았을까?! 이 책은 특별히 ‘아버지’가 아닌 ‘아빠’라는 호칭으로 그간 서툴렀던 관계를 밝게 회복하려는 일상적인 시도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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