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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복 “확인 구매와 발견 구매가 가능한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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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책방 관계자가 쓴 책은 이래야 한다.”

 

일본의 서점인 ‘야마시타 겐지’가 쓴  『서점의 일생』의 카피다. 책 파는 일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을 담은 이 책은 일본의 유명한 서점 가케쇼보(벼랑 책방)를 11년간 운영하면서 펼쳐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번역자 김승복은 일본의 ‘쿠온 출판사’ 대표이자 2015년부터 진보초에서 한국어 책을 파는 북카페 ‘책거리’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인. 한국 독자들이 꾸준히 일본 책방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고  『서점의 일생』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본 교토 여행에서 빼놓지 않고 들렀던 ‘가케쇼보’는 현재 근처로 이동해 ‘책과 잡화와 음악이 있는 선물가게’ 호호호좌로 변신했다. 야마시타 겐지는 이 곳에서 책도 팔고 선물도 판다. 서점인이 쓴 에세이가 줄지어 출간되고 있는 지금,  『서점의 일생』은 왜 특별할까? 번역자 김승복은 “책에 대한, 책을 파는 일을 철저하게 몸으로 체득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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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은 책

 

‘역자 후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서점의 일생』을 직접 번역한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간단히 말해 정말 좋은 책이라서요. 서점을 운영하는 일을 너무 고상하게만 표현한 책이 많은데 『서점의 일생』 굉장히 솔직하게 쓴 책입니다. 실패담도 많고요. 진짜 서점 이야기라고 할까요? 한국에도 동네서점이 많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일본의 서점, 북카페는 어떤지를 궁금해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일본에서는 『가케쇼보의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나와서 이미 인기가 있었던 책인데, 『서점의 일생』 이라는 탁월한 제목을 출판사 대표님이 제안해주셨죠. 한국 독자를 만나게 돼서 참 기뻐요.

 

‘가케쇼보’는 일본에서 서점을 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롤 모델과 같은 공간이었다고요.


책 좀 판다는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한 서점이었죠. 가케쇼보에서는 늘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어요. 공간이란 책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면, 어떤 지면에 특집을 꾸미는 편집장일 수 있는데요. 야마시타 씨의 특집 페이지는 언제나 새로웠어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빅 아티스트가 출몰하는 곳이기도 했고요.

 

일본 출판 서점 전문 저널리스트인 ‘이시바시 다케후미’ 씨는 “  『서점의 일생』이 세련된 점은 책방의 애수, 괴로움이 가득하면서도 그런 감정에 짓눌리지 않고 책방으로서 살아남는 부분에 있다(23쪽)”고 말했어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지질한 이야기일 수 있고 실패담이 더 많지만 저는  『서점의 일생』을 읽고 위로와 격려를 가장 많이 받았어요. 책방을 잘 운영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통스러울 때 가장 큰 위로는 그 고통을 먼저 겪은 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잖아요. 분명 한국의 많은 책방지기들에게 힘이 될 책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가케쇼보’를 ‘셀렉트숍’이라고 불렀지만 야마시타 겐지 씨는 ‘궁극의 보통 책방’으로 여겼다고요.


한국의 책방도 그렇겠지만 일본의 많은 책방도 콘셉트를 갖고 있어요. 책방지기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이죠. 야마시타 씨도 책방 개업 초기에는 자신이 재밌다고 생각한 책들을 마구잡이로 구비했다고 말해요. 하지만 ‘좁고 깊게’라는 광적인 상품 선별로는 인터넷에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죠. 야마시타 씨는 “가케쇼보에 놓인 책들은 나의 취향이 기준이 아니라 고객들의 취향”이라고 분명히 말해요. 그래서 작품보다 상품으로써 종합적인 균형이 맞는 책을 선별했죠.

 

책방지기 후배로서 야마시타 겐지 씨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요?


책에 대해 늘 생각하는 모습을 배웠죠. 야마시타 씨가 ‘확인 구매와 발견 구매’라는 멋진 말을 하잖아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사러 왔다가 그 옆에 놓인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발견해서 사게 되는 일 같은. 책방이라면 잘 팔리는 책을 많이 가져다 놓는 게 기본이지만, 무조건 팔리는 책만 갖다 놓아서는 안 돼요. 책방의 정체성을 알려주기 위한 책도 비치되어 있어야죠. 야마시타 씨가 이런 말을 해요. “안 팔려도 속상한 것만은 아니다.” 못 팔아도 안달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죠.

 

일본의 수많은 서점을 돌아보셨을 텐데요. 잘되는 서점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음식 맛이 좋아야 식당이 잘되는 것처럼, 서점도 마찬가지예요. 상품력이 가장 중요하죠. 그 다음에는 친절해야죠. 또 하나, 책을 파는 사람이 그 책에 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손님이 질문할 때 대답을 잘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일본의 많은 독자들도 SNS를 통해서 책을 접해요. 젊은 층은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얻지만 일본은 아직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출판사와 북카페를 함께 운영하는 장점

 

어렸을 때 책벌레셨을 것 같아요.


한강 작가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보면, 책을 너무 좋아해서 낮부터 밤까지 읽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제가 딱 그랬어요. 책을 읽고 있으면 누가 집에 들어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14살 때는 계림문고에서 나오는 책을 그렇게 열심히 봤어요. 시리즈로 나오는 책을 기다리는 맛에 살았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일본 니혼대학 예술학부 문예과를 졸업한 후 일본 광고회사에서 일하셨어요. 출판사는 어떻게 열게 되셨나요?


광고회사를 나와서 웹 에이전시를 차렸는데, 2007년 세계 금융 위기가 오면서 사업이 어려워졌어요. 직원들에게 3개월 임금을 주고 사업을 접었죠. 그리고 출판사를 차린 거예요. 외부 요인에 의해서 흔들리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어요. 쿠온에서 처음 출간한 책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예요. 반응이 좋았고 2016년에 한강 작가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지금까지 1만 부 정도 팔렸어요. 또 2022년까지 마로니에북스에서 나온 박경리의 『토지』 20권을 번역할 계획이에요. 현재는 8권까지 나왔는데요. 7년에 걸쳐 완성할 생각입니다.

 

한국과 일본 출판사들을 오가며 중개 역할도 하신다고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일본에 소개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을 한국 출판사에 연결하기도 해요. 일본에서 한국 문학 시장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올해 목표는 도쿄에서 ‘코리안 북 페스티벌’을 여는 거예요. 일본 출판사가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2015년부터 진보초에서 한국어 책을 파는 북카페 ‘책거리’를 운영하고 계세요.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들이 주로 오나요?


아무래도 한국에 관심이 많은 일본어권 독자들이 와요. 한국어 책만 파는 건 아니에요.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일본어 책도 있어요. 또 저희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도 팔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에세이, 그림책을 즐겨 읽는 분도 많이 오세요.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한국어 책은 무엇인가요?


소설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가 많이 팔렸어요. 작년에만 500권 정도 팔린 것 같아요. 또 『나는 나대로 살고 싶다』 일본어판도 인기가 많았어요. 박성우 시인의 『아홉 살 마음 사전』도 반응이 좋고요. 한국어 학습자들이 많이 사는 책 중 하나예요. 그림책 코너도 인기가 많은데요. 안녕달 작가의  『수박 수영장』 , 신선미 작가의  『한밤중 개미 요정』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어요.

 

북카페에서 하루가 멀게 행사를 여신다고요.


1년에 120번 정도 행사를 해요. 3일에 1번 꼴로 하는 셈이죠. 특히 번역에 관한 행사가 인기가 많아요. 저자를 부르긴 어려우니까 책을 번역한 사람을 자주 초대하죠. ‘책거리’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문을 열어요. 요일별로 점장이 있는데요.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세요. 저는 한국뿐 만이 아니라 런던, 타이완 등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서점을 자주 들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책을 파는 일에 열심이지 않은 것 같아요. 손님에게 말도 안 걸고 매대만 정리하고 있어요. 우리는 손님이 오면 손님에게만 집중하려고 해요. 말을 걸지 않는 걸 좋아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말을 걸면 좋아하세요.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다 보면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곤 하죠. 또 ‘책거리’는 일주일에 두 번, 웹진을 발행해요. 점장들의 추천 도서를 소개하죠. 온라인 홍보도 열심히 합니다.

 

일본 서점 투어를 하는 한국 여행객들이 자주 찾아오나요?


네. ‘책거리’는 그렇게 큰 공간이 아닌데도 한국 분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작년에는 방송인 김소영 씨가 남편 오상진 씨와 방문해서 저희 직원이 깜짝 놀랐죠. 김소영 씨의  『진작할 걸 그랬어』 에 저희 북카페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일본에도 책을 보내주셔서 읽었는데 재밌게 보았어요. 저도 정말 북카페를 진작할 걸 그랬어요. (웃음)

 

서점을 너무 하고 싶지만 여력이 안 되는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선 왜 안 되는가를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여력이 시간인지 돈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고요. 얼마나 시도를 했는가?도 생각해야죠. 만약에 정말 시도를 다 해봤는데도 어렵다면 그만둬야겠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시도했느냐?예요.

 

서점인으로 잘 버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인데요. 어쩌면 이건 전 인류의 질문이지 않을까요? 어떤 일이든 똑같은 것 같아요. 서점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버텨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버틴다가 아니라 내가 정말 좋아하면 잘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걸려도 열정을 쏟아보는 거예요. 물론 그래도 안된다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분들께는 “정말 많은 시도를 해보셨냐”고 묻고 싶어요. 문제는 전략적 고민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어요. 서점에 책만 있다고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길 바라면 안돼요. 저희가 이벤트를 자주 연다고 했잖아요. 왜 하겠어요.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책을 팔기 위해서죠. 책을 늘 같은 곳에 놓지 말고 위치를 바꿔줄 필요가 있어요. 책도 눈길과 손길을 주면 다 반응해요. 주인을 찾아가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가이코 다케시의 작품을 좋아해요. 이분의 책을 읽으면서 번역하고 싶어요. 지금은 일단 밥벌이를 위한 노동을 해야 하니까요. 이 노동이 끝나면 좋아하는 작품을 마음껏 읽으면서 살고 싶어요.

 


 

 

서점의 일생야마시타 겐지 저 | 유유
현실의 책방은 여전히 어렵고 불합리하기 그지없지만 책방의 존재 의미와 재미를 아는 책방지기들은 꿋꿋하게 책방에서의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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