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사진가 조세현은 사진을 “내 인생의 전부”라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사진이 귀하던 중학교 시절부터 찰나를 담아내는 사진이라는 신비에 매료되었고, 부모님의 반대에도 사진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 번도 꺾지 않았다. 그렇게 40년. 인물사진의 최정상에서 수많은 스타와 유명 인사들을 만나며 그들의 깊은 내면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왔다. 무엇보다 조세현은 “사람을 찍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잡지사 신입 사진기자 시절,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러 가서도 사람만 찍어서 데스크에게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을 향한 이 지독한 애정의 기원과 현재를 담은 책이 『조세현의 사진의 모험』 이다.
눈빛을 담아내는 인물사진, 피사체에 집중하게 하는 흑백사진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온 사진가 조세현은 지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진으로 말을 걸고자 한다. 2012년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설립해 노숙인을 대상으로 사진 교육을 진행하고, 사진으로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의 ‘사진의 모험’이 도착하는 지점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사진은, 찍는 것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알맞은 수식어는 ‘찍사’이다.”(6쪽)라고 하셨죠. 그저 찍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말씀 같아요. 다른 수식어를 두고 자신을 다름 아닌 ‘찍사’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의미를 알고 언어를 사용해야 해요. ‘사진’이라는 말도 일본어죠. 베낀다는 뜻의 ‘사(寫)’를 써서 복사한다는 의미로 만든 말이에요. 이 의미대로라면 진짜를 찍지 않으면 사진이 아니라는 말인데요. 요즘은 거짓말도 사진이거든요. 책에 ‘사진은 사진이 아니다’라는 글도 수록되어 있지만 이렇게 해야 사진의 한계가 넓어지는 거죠. 저는 그러면서 우리말을 생각해본 거예요. 흔히 ‘찍사’를 낮추는 말로 생각하는데요. ‘찍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세요. 도장도 찍고, 인쇄도 찍는 거죠. 뭔가를 증명하는 것. 그러니 찍사라는 말이 얼마나 좋아요? 빛을 찍어내는 거잖아요. 저는 이 말이 참 좋아요.
언제부터 찍사라는 말을 사용하셨어요?
제가 사용하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사진 찍는 사람을 찍사라고 불렀죠. 특히 저는 인물 사진이잖아요. 제가 뭐 그렇게 크리에이티브하다고, 그대로 찍어주면 끝인 거예요. 인쇄처럼 똑바로만 찍어주면 말이에요. 안 그러면 ‘찍는다’는 말을 쓰면 안 되죠. 사진을 ‘촬영한다’, 사진을 ‘만든다’ 등 말이 많은데요. 사진은 찍는다는 말이 가장 쉽고, 최고예요. 저는 이 부분에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요. 이 말을 사람들이 좀 더 부드럽게 인식하면 앞으로는 찍사라는 말이 편해지겠죠. 실은 제목에도 찍사라는 말을 쓰고 싶었는데요. 성사되진 않았어요. 하지만 표지에 이 정도라도 찍사라는 말을 넣어준 것은 출판사에 정말 고마워요.
작가님에게 사진이란 ‘말을 건다’는 행위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찍사로 살아오면서 사진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꼈다”(192쪽)라고도 하셨는데요.
작가니까요. 작가는 당연히 말을 거는 사람이죠. 문학이나 음악이나 그림이나 다 말을 거는 행위이고요. 저는 사진을 가지고 말을 거는 것인데요. 어쨌든 저는 인물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에요. 실제로 말을 안 할 수도 없어요. 침묵의 대화는 없어요. 뭔가 대화를 해야만 하는 거예요. 학생들은 오해하는 게, 모델이 좋으면 누구나 조세현처럼 찍을 수 있다는 말을 해요. 맞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학교에 모델을 데려간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그 앞에서 다 얼어버리더라고요.(웃음) 말 거는 것도 재주거든요. 유명 배우를 열 명의 프로 사진가가 찍으면 열 개 사진이 다 다르죠. 왜 그럴까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모델이 사진가를 보는 감정이 다 달라요. 그게 말 거는 재주예요. 사진가의 개성이 다 다른 거고요. 이게 인물 사진이에요. 말을 잘 걸어야 하죠. 또 좋은 사진으로 대답해야 하고요.
ⓒ조세현
얼굴형이나 주름, 눈빛을 보고 홀딱 반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바로 사진을 찍고 싶어요. 바로 말을 걸고 싶은 거예요. “너무 멋지다”고 대화하고 싶은 거죠. 꼭 멋지고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추구하는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진 찍고 싶어요. 그 충동이 바로 사진으로 말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찍사면 됐다
“사람을 좋게 보려고 마음을 쓴다”(51쪽)고도 하셨잖아요. 사진가로서, 피사체(사람)를 좋아하는 것은 좋은 사진과 얼마나 관련이 깊은 걸까요?
쉽게 말해 감정이 없다든가 혹은 사람을 미워해서는 작품을 찍을 수 없어요. 그러려면 일을 안 하는 게 나아요. 군인으로 치면 기가 꺾인 것, 전쟁터에서 바로 죽는 것이죠. 그러나 기운이 없는데, 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용기를 내서 말을 걸자, 사랑하자, 이건 아니에요. 사람 좋아하기를 타고나야 하는 것 같은데요. 가령 동물 좋아하는 분들 있잖아요. 본능적으로 좋아해요. 마찬가지로 저도 그냥 사람이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카메라에 담고 싶고요. 2000년대 초반부터 유독 전화가 많이 온 곳이 사회복지 그룹이었어요. 그 제안을 하나도 거절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거절한 적도 없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십 수년 동안 고아를 찍어왔고, 패럴림픽도 계속 참여하고 있고요. 이건 막연히 사명감 같은 건 아니었고, 좋았던 거죠. 사실 제가 복이 터진 거예요. 어디서 이런 모델을 구해요?
상업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안에도 사람에 대한 관심은 계속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감독, 광고회사 대표 제안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그냥 찍사면 됐어요. 물론 고민은 많았죠. 잘나갈 때 더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잖아요. 하지만 당연히 지금도 후회는 안 하고요.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는 건 사진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영화가 소설이라면 사진은 시죠. 우리는 영상의 시인이고요. 저는 시가 좋은 거예요.
또한 보는 사람이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 그것을 사진이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사진은 결과적으로는 보는 사람이 평가하는 거거든요.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도 “나도 설득 못 시키는데 어떻게 사진가가 되겠느냐?”인데요. 그렇지만 무조건 보는 사람에게 이끌리는 건 아니죠. 이끌어도 가야 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도 알아야 해요.
사진을 혼자 하는, 고독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님에게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인물 사진을 하셨으니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요.
사진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작업이 맞아요. 혼자 해야 하죠. 그런데 제가 하는 인물, 특히 광고는 기획 단계부터 예산도 많이 들어가고요. 수십 명의 스태프가 있고, 연기자가 필요하고,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완전히 다른 세계죠. 그런데 이건 사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사진이거든요. 가장 각광 받고요. 이것도 큰 가치가 있는 거죠. 저는 운이 좋았어요. 여러 명과 함께 하는 작업을 해서 공감대가 넓어졌죠. 어떤 작업은 혼자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타협하거나 섞이면 자기 색을 잃어버리죠. 물론 제게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고요. 광고를 하니까 당연히 타협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이 나이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공동 작업에서 타협하지 않기란 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시안이 있잖아요. 천재들이 만든 거예요. 다들 유학 갔다 온 사람들이고, 카피 하나까지도 그들 손을 거친 거죠. 캠페인 하나에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니까요. 그것을 “선생님, 이렇게 찍어주세요” 하고 갖고 와요. 찍을 수는 있겠지만 당연히 내 색깔은 안 나요. 그래서 저는 안 했어요. 자연히 고집 세다는 소문이 났고요. 그렇게 한 4-5년이 지나갔어요. 그땐 저도 힘들었죠. 그런데 다음에 어떻게 된 줄 아세요? “선생님 스타일로 찍어주세요” 하고 오더라고요. 지금은 물론이고요. 무엇보다 사진은 자기의 스타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후배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더 쉽게, 더 단순하게
흑백 사진에 대해 “직설이 아닌 은유라서 좋다”(199쪽)고도 하셨죠. 작가님의 흑백 사진 예찬, 이유를 들려주세요.
흑백이 아니었으면 사진을 안 했을 거란 얘기인데요. 흑백은 마법이죠. 색이 들어감으로써 너무 많은 진실을 잃게 되거든요. 주제를 잃게 돼요. 필요 없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요. “좋은 사진은 한 가지만 보이는 사진”이라고도 썼는데요. 단순함은 제 하나의 이상이에요. 심지어 저는 사람을 찍을 때도 얼굴만 찍어요. 복잡한 건 싫고, 누구나 보기 쉬운 게 좋아요. 그런데 쉽게 찍는다는 게 사실 어려워요. 지금 저를 찍으면 배경까지 다 나오겠죠? 그러니까 자꾸 빼야죠. 더 쉽게, 더 단순하게 하기 위해서요. 주제만 보이면 최고죠. 아기를 안고 있는 스타를 찍을 때도 아기와 스타만 보이면 되는 거예요. 저는 예술작품까진 원하지 않아요. 딱 보고 사람들이 다 누군지 알고, 느낌 좋다, 그러면 저는 돼요.
얼굴 가운데서도 눈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시잖아요. “눈은 내 인물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72쪽)라고 말하기도 하셨고요.
얼굴은 즉 ‘얼꼴’, 영혼의 모양이죠. 그 얼꼴이 얼굴 중에서도 눈에서 나오는 거예요. 사실 눈빛은 우리한테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우리가 동물을 부르면 동물이 우리의 눈을 쳐다보잖아요. 개도 그렇고, 새도 그래요. 눈으로 마음을 읽는 거예요.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리 입을 삐죽거려도 모르죠. 나머지를 다 가려도 눈만 보면 슬픈지 화가 났는지 다 알아요. 그게 눈빛이에요. 절대적으로 사진에서는 눈을 담고, 눈에 포커스를 맞춰야 해요. 눈이 온화하거나 눈이 카리스마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촬영할 때 눈빛이 달라지도록 카메라 앵글을 조절하면서 찾아내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말도 걸고, 신뢰를 쌓고요.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 이야기 가운데 법정 스님의 이야기는 울림이 컸어요. 이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스님이 제 사진을 보시더니 “조 작가, 사람의 영혼을 찍으면 어떨까?”라고 하시는 거예요. 쉬운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러면서 영혼이 있는 사진을 생각하게 됐어요. 스님이 제게 영혼이 담긴 사진을 찍으라고 말씀하신 거죠. 그게 많은 교훈이 됐어요. 평소에 사진을 안 찍으시는 분인데 제게는 곁을 주셨죠. 신뢰가 있었을 거예요. 스님의 유언 때문에 그렇지 화보집을 몇 권 내도 될 만큼 사진을 찍었어요. 이것도 하나의 증명이라고 생각하는 건데요.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사진으로 그렇게 다가가면 그런 분의 마음까지도 열 수 있구나, 생각하는 거예요.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책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여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현장으로 가서 사람들을 찍는 일도 계속 진행 중이에요. 작가님께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 지금 집중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사회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사진을 가르치고 있어요. 노숙인, 청소년 등에게 사진을 가르쳐서 직업을 구해주는 일인데요. 지금은 소프트웨어, 빅데이터 시대라 이미지와 영상에서 모든 일이 시작돼요. 사진만 배우면 앞으로 광고, 영화, 디자인 등에서 활동할 수 있잖아요. 기초학문이 된 거죠. 다문화가정, 탈북가정 청소년 등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고 있고요. ‘천사들의 편지’가 2018년에 끝났지만 그것도 계속할 거예요. 무엇보다도 제 개인작업도 중요하죠. ‘어머니 시리즈’를 통해 이 시대의 어머니 모습들을 남겨놓고 싶어요. 이 작업은 약 5년 묵혀둔 거라 멋지게 나올 것 같아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 할 거예요.
역시 사람에 대한 관심, 호기심이네요.
머릿속에서 오래 생각을 해야 해요. 갑자기 찍자고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다보니 섬들을 다니게 되고요. 장터를 다니게 됐어요. 전국의 어머니를 다 찍어야 해요.(웃음) 힘들지만 그 즐거움은 말을 못해요. 시간이 지나면 그 어머니들 다 사라지거든요. 마음이 급해요.
60대를 가리켜 “세상을 돌아볼 줄 아는 깊이와 여유가 있는 나이”(97쪽)라고 하셨어요. 지금의 나, 60대의 삶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여유가 생겼어요. 한계도 알게 되는 거고요. 욕심이 일을 망치는 게 맞거든요. 그런 면에서 연륜이나 시간이라는 건 의미가 있죠. 나이 들면 지혜롭다고 하잖아요. 그건 정말 맞는 말이에요. 저는 이제 그런 것을 사진으로 보여줘야겠죠. 인간으로서는 시간이란 숙명적인 거예요. 거부할 수 없는 것이고요. 6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의 자서전이죠. 그 말 뒤에 숨은 의미는 사진 찍는 저는 관상쟁이라는 거예요. 제게는 수만 명의 얼굴 데이터가 있어요. 그것도 고급이죠.(웃음) 미래는 모르지만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보여요. 눈 끝, 코끝, 미간, 주름 등에서 보이는 게 있어요. 얼굴에 인생의 소설이 담긴 거예요.
학생들, 사진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하는 이야기가 있나요?
그냥 사진과 제가 평생 한 인물 사진과는 조금 다른데요. 저는 인물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사람 즉, 대상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해요. 그들이 주인공이잖아요. 그들이 아니면 나는 존재할 수가 없어요. 소나무를 찍는다면 다음날 다시 갈 수 있겠죠. 그런데 사람은 하루가 다르고요. 다음날은 늙어요. 그 순간에 끝내야 한다는 게 정말 중요해요. 재촬영이란 없어요. 찍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그러면 애정과 존경이 필수죠. 친해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건 거짓말이에요. 당장 처음 본 사람과 어떻게 친해지겠어요? 애정과 존경은 상대에게 금방 보이거든요. 또 전체 사진가로 본다면 정말로 ‘다름’이 중요하단 말을 하고 싶죠. 아까 얘기한 스타일인데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해요. 남들과 똑같은 사진 찍지 말고 자기 사진을 찍으면 좋겠어요.
조세현의 사진의 모험조세현 저 | 김영사
길에서 버려진 필름을 주워들고 마치 원시인이 콜라병을 처음 발견했던 때처럼 낯섦과 알 수 없는 쾌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던 당시를 회상한다. 아직도 찍을 것이 많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고, 이 좋은 ‘놀이’를 널리,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