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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차별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는 “나는 그런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항변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선량한 차별주의자』 라는 제목은 ‘스스로 선량하다 믿는 우리 역시도 차별을 저지를 수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혹시 나는 “차별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외침에 ‘프로불편러’ 딱지를 붙인 적은 없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권리”라고 말하지는 않았나.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물음표로 바뀌는 지점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의 저자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취했던 입장이 결국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차별이라고 말한다. 통계, 사회복지학, 법학 등 저자의 다양한 전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차별은 여러 분야가 충돌하는 복잡한 문제다. 여성, 장애인, 난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슈를 따라가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구성원을 만나고 논의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다. 단단한 논리로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를 알려주는 김지혜 교수를 서면으로 만났다.
차별금지는 사회가 건강하다는 신호
첫 책입니다. 출간 후,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많은 분들이 제 책을 읽어주시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차별이 그렇게 즐거운 주제가 아닐 텐데, 이 여름의 휴가철에 책을 펼쳐주신다는 점에 크게 놀라고 있고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차별의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이야기를 꺼내기는 어려운 주제이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게 되기 쉽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 많은 분들이 더 이상 차별을 그냥 넘기지 않기 때문에 이런 책을 읽어주시는 게 아닐까 해요. 우리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수자와 차별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퀴어문화축제나 동성혼을 비롯한 성소수자 이슈와, 성폭력과 성평등정책을 비롯한 페미니즘 이슈가 사회적으로 논의되다가, 작년에는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큰 격돌이 벌어졌었죠. 서로 다른 이슈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가 어떤 소수자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편견을 만들고 증폭시키면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양상이 굉장히 비슷해 보였어요. 하지만 각 이슈에 따라 사람들은 다른 입장에 서서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쟁점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사회가 끊임없이 분할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서로 달라 보이는 이슈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소수자 차별에 문제를 제기할 때, 오히려 다수자 집단에서 “이것은 우리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리로 반박할 때가 있어요. 이런 주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기존의 세상이 기울어져 있던 상태에서 차별이 없어지는 건, 소수자에겐 이득이고 다수자에겐 손해인 상황처럼 보일 수 있어요. 상대가 무언가를 얻으면 나는 그만큼 잃는다는 제로섬게임으로 이 상황을 인식하는 거죠. 다수자가 피해를 보는 것 같고, 그래서 역차별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우리의 가치와 목표를 평등에 둔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 되거든요. 손실처럼 보이는 경험이 역차별이 아니라 사실은 평등해지는 과정이고 그 진통이라는 걸 이해하면 좋겠어요. 사회가 평등해졌을 때 다수자인 자신의 삶도 나아진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평등한 사회에서는 삶이 덜 불안하고 사회는 더 평화로워지니까요.
“희망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스스로가 차별하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차별은 나쁜 것이라는 도덕적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마음은 두 가지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평등과 차별금지를 사회정의의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있죠. 이건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신호이고, 저는 그 점이 아주 희망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 작용은, 차별이 너무 나쁜 것이라 내가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누군가 차별이라고 지적할 때, 그 말을 부정하고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자라나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혹시 나도?’ 하고 의심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유가 무엇인지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는 거죠. 그렇게 나의 사회적 위치, 가치관, 고정관념, 편견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를 수집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수치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토크니즘(역사적으로 차별받는 집단 가운데 소수만을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차별시정정책)’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기존에 여성이 2%이던 회사의 채용 정책을 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연구를 소개한 것이 있어요. 여성의 입장에서는 50%로 바뀌는 것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남성의 입장에서는 2%를 유지하는 것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그나마 남성과 여성이 비슷한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성을 10% 채용하는 것이었죠. 토크니즘은 이렇게 실제로는 아직 평등과 먼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평등이 달성되었다고 여기게 되는 착시 현상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비슷한 실험을 하면 어떨까 궁금해요. 이런 심리 상태를 이해하면, 평등을 이루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저항감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결정 장애’처럼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혐오 표현이 있어요. 이 말은 반드시 안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단어나 표현이 있다면요?
사실 항상 조심스러워요. 잘 안 보이고 모르는 게 많거든요. 많은 분들이 제가 제시한 예시 중에 “한국인 다 되었네요”가 어떻게 모욕적일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이주민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이 자신을 한국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고유의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이야기로 들리는 거예요. “한국 살기 좋지요?”라는 말도, 그 배경에 이주민이 떠나온 본국이 상대적으로 살기가 좋지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이 깔려 있으면 이주민은 그걸 감지하는 거죠. 사실 이런 건 입장이 바뀌면 금방 이해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책에도 썼듯이 단순히 쓰지 말아야 할 표현 목록을 나열하는 건 어려워요. 같은 표현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보다는 당사자가 이런 불편함을 표현할 수 있도록 주변 상황을 살피고 경청하는 존중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수자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일은 처음에는 불편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생이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큰 부분들은 우연으로 만들어지잖아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의 어떤 부모에게서 어떤 성별과 신체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하는 이런 중요한 조건들이 나의 선택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주어져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우연히 놓인 이 자리가 다수자의 위치라고 해서 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소수자를 배척하는 것이 정의롭게 보이진 않을 거예요. 우리는 모두 어쩌다 보니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이 세계에 태어났고,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건 우리의 조건이죠. 이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연구하고 논의하면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에서 지금 이 시점에 그걸 얼마나 잘 해내느냐는 현재의 우리에게 달린 거겠죠.
혐오 표현을 지적하면 “웃자고 하는 소리인데 왜 그러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웃음은 “웃기지 않다”고 말하면 좋겠어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려고 한 말이라면,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배척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유머는 이미 실패한 거죠. 가능하다면 왜 그 말이 문제인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대화할 수 있으면 바람직하겠죠. 말하는 본인이 잘 모르고 그런 말을 할 때가 많을 테니까요. 듣는 사람이 처음엔 당황해도 아주 고마워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 경우도 많을 거예요. 상대가 그런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을 때 적절히 순발력을 발휘하기가 참 쉽지 않아요. 책에도 썼듯이, 유머의 성패는 반응에 달려 있기도 합니다. 말로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면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를 줄 수 있어요. 그런 웃음을 도태시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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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이야기하는 게 먼저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지가 한참인데,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여전히 아쉽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차별금지법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차별금지법은 제정을 방해하는 사람들과 이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 때문에 본격적인 논의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지 모르겠지만,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동성애가 아니에요. 그 핵심은 고용, 교육, 재화와 시설의 이용에서의 온갖 차별을 없애는 거죠. 실제로 우리는 차별을 많이 당해요. 나이, 학력, 성별, 외모, 장애,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출신 지역, 출신 국가, 가족 상황 등 어떤 이유로든 억울한 경험을 하고, 그걸 만회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고단한 삶을 살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용, 교육, 재화나 시설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나 운영하기 쉬운 방향으로 가려고 하겠죠. 차별금지법은 여기에 공공성의 원칙을 세우는 거예요. 최소한 고용, 교육, 재화나 시설의 이용 같은 공적 영역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다양성을 포함하는 평등 사회를 설계하자는 것이죠.
이 책의 메시지가 특히 어떤 사람에게 전달되면 좋을까요?
평등과 차별금지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더 많은 책임을 가진 사람들과 이 책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대통령, 국회의원, 공무원, 교사 등 헌법상 의무를 따르고 공공을 위해 헌신하기로 약속한 사람들 말이에요. 이런 사람들이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면 사회는 변화하기 어렵겠죠. 촛불집회 때도 경험했지만 헌법은 우리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소중한 문서잖아요. 지금의 정권도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고요.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는 평등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무심할까요? 이런 분들이 좀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평등과 차별금지에 관해 고민할 수 있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소수자 감수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자신에게 보이는 풍경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당연할 거예요.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타고 그 끝까지 올라간 사람에게는 평생을 바쳐온 계층구조가 없어진다는 게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죠. 그걸 올라오지 못한 사람은 실패자로 보이고, 불평등한 것이 오히려 공정한 것이라고 느껴질 거예요. 경우에 따라서는 평등한 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겠죠. 사실 그런 사회에서는 소수만 성공하기 때문에 성공의 가능성은 매우 적고 낙오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는데도 말이죠.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이야기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사회에서의 평등의 의미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면서 헌법상 평등과 차별금지의 원칙을 우리 삶에 생생하게 살려내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을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면서 자신이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닐까 반성한다는 말씀을 해주세요. 공감해 주시니 너무 고마운 말씀이고 같이 성찰할 수 있어 기쁜 일이에요. 이렇게 성찰로 시작된 생각을 일상적이고 사회정치적인 실천으로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책의 뒷부분에서 했어요. 다소 딱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저는 시민의 저력을 믿어요. 지금은 우리 사회에 혐오와 차별이 난무한다고 개탄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어떤 저술 활동을 하실 예정이신지요?
차별은 저의 오랜 고민이고 계속될 과제일 거예요. 이주민과 난민, 성소수자 이슈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것이니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거리가 많죠. 제가 사회복지와 법학을 함께 전공했는데, 사회복지제도가 내재하고 있는 차별과 배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이번에는 책을 썼지만, 당분간은 다시 논문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주제를 하나씩 깊이 있게 연구하다 보면, 또 무언가 하고 싶은 얘기가 쌓이겠죠. 그때 다시 대중과 이야기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전에 논문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면 아주 감사한 일일 거예요.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한다.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청소년, 홈리스 등 다양한 소수자 관련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통해 사회에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ㆍ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 전산과학전공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 미국 워싱턴대학교 로스쿨 J.D.(Juris Doctor) 학위를 받았다. 서울특별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 헌법재판소 등 기관에서 일했으며, 다수의 연구논문과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공저) 『인권행정 길라잡이』(공저) 등을 쓰고, 『헌법의 약속』, 『사회보장론 입문』을 번역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저 | 창비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조직해가자고 제안한다. 평범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말하는 도발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