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로마법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단지 현재 법의 원천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로마법을 통해 인간을 둘러싼 바뀌지 않는 환경과 존재의 태도를 돌아보고, 법을 통해 역사를 인식하고자 함이지요. 법을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집행하려는 로마인들의 노력이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그런 이상 자체를 서구 문명에 도입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201쪽)
한동일은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동아시아 최초의 변호사다. 화려한 이력의 그는 그러나 자신을 그저 “제안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같이 고민하자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베스트셀러 『라틴어수업』에서 이미 삶을 성찰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고 깊이 고민하게 했던 한동일은 『로마법 수업』에서 다시 로마법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인간 삶의 의미를 탐색하게 한다. 왜 로마법인가, 라는 질문에 한동일은 “2천년 전의 로마법이 현재 우리 일상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인터뷰 말미에서 “비록 내가 보잘것없다 느껴지더라도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존재”라고 말한 한동일은 자신이 바라는 한 가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제안하는 사람 한동일은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사 중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티렌티우스의 희극 대사를 강조하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질문을 남겼다.
왜 2천년 전의 로마법인가
무엇보다 ‘왜 지금 로마법을 알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를 것 같은데요. 책을 읽고 나면 로마법을 안다는 것이 지금의 우리를 아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돼요.
로마제국 패망 후 교회가 로마법을 받아들인 것이 교회법이 되는데요. 오늘날 우리나라가 쓰고 있는 민사소송법이 교회법이에요. 원고는 무엇이고, 피고는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하나까지 다 교회법, 로마법에서 나온 것이죠. 구조와 절차 자체가 로마법에서 이어온 교회법을 그대로 받은 것이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이기 때문에 2천 년 전의 로마법이 현재 우리 일상에도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저는 우리 일상을 규제하는 룰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왜 그들은 그런 룰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하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고민을 하다 보면 현재 지금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대학원에서 같은 제목의 강의를 하셨던 것이 바탕이 된 책인데요. 대학원 강의와 비교한다면 책은 더 넓은 대상을 가정해야 하잖아요. 어떤 내용을 얼마나 담을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저는 공부하는 입장에서 공부하려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책을 쓰는 사람인데요. 그렇게 쓰는 책이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죠. 그러다 생각의 전환이 있었어요. 방학 때면 외국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는데요. 수업을 듣기 위해 오가는 시간에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이 든 거예요. ‘내가 구사하는 언어가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때부터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님과 상의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걷어낸 내용도 많고요. 대신 조금 더 들어가고 싶은 독자 분들을 위해서는 뒷부분에 부록으로 내용을 담았어요.
강의를 하실 때도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저녁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 흥미를 끌 수 있는 강의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바로 ‘질문’으로 수업을 끝내는 것이었고요.
최고의 수업은 듣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수업 내용은 생각하고, 질문할 자료를 주는 것이어야 하죠.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나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가 되어야 해요. 수업 마지막을 질문으로 끝내는 것은 애초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방식인데요. 그분의 저술 방식 하나는 ‘내가 아는 것의 3분의 1만 쓴다’였고요. 다른 하나가 ‘마지막은 꼭 질문을 한다’였어요. 저도 그 내용에 충분히 공감을 했던 거예요. 제 역할은 답을 주는 ‘선생’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을 하는 사람인 거죠.
로마법으로 다시 지금의 현실을
『로마법 수업』 은 특정 법 조항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 ‘노예’, ‘여성’, ‘결혼’처럼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에요.
일단 정통으로 로마법을 배우려면 이렇게 주제를 잡아선 안 되고 ‘사람, 물건, 소송’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잡아야 해요. 첫째, 사람의 신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죠. 신분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지니까요. 둘째, 물건은 오늘날 민사소송에 영향을 미치는데요. 빚을 졌을 때, 물건을 절도 했을 때,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다뤄야 해요. 마지막으로 어떤 절차로 소송을 할 것인가를 얘기하죠. 이걸 반드시 알아야 하는데요. 힘들죠. 어차피 한 학기 안에 그 방대한 주제를 다룰 수도 없고요.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들만 선정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가령 자유인을 어떤 등급으로 나누는지, 노예는 어떻게 처분 받았는지를 다루면서 질문을 던진 거죠. 만약 고대 로마인들이 지금 서울 땅에 오면 우리를 어떻게 느낄까, 하고요.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과연 이 헌법정신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요?(55쪽)
로마인 입장에서는 “너희들은 다 평등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죠. 그때 과연 우리는 그 질문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이 불평등의 문제는 무엇일까, 그 밑바탕에 내재한 것들은 무엇일까, 그런 것들을 함께 생각해보자고요. 그렇게 진행했어요.
그 중 ‘여성’이라는 주제는 특히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데요.
‘인간’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낙태’, ‘간음’, 이혼’ 등을 다뤘던 이유가 있어요. 로마법이 실로 엄청난 보편적 가치를 우리에게 남겼지만 한 가지, 로마법에도 아쉬운 점이 있거든요. 그것이 바로 여성이에요. 로마라는 사회 자체가 철저히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시작했고요. ‘가장’은 지금의 개념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개념이었어요. 씨족장의 개념으로, 당시 가장의 권한은 절대적이었거든요. 이 문화 안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하잘것없는 존재였던 거예요. 당연히 어린이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 로마법의 취약함을 통해 다시 지금의 현실을 다뤄보고 싶었어요.
로마법보다도 취약한 지금의 인식까지도 생각하게 하는데요. 가령 유배 가운데 가장 엄중한 영구 추방에 처해지는 경우가 “재판관이 사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금전을 수수하고 판결을 조작하는 경우, 그리고 성욕이나 연정을 일으키는 사랑의 묘약이나 낙태약을 제공하거나 사용한 경우”(38-39쪽)예요. 너무나 현재적인 항목이죠.
맞아요. 그러니까 과거의 부족한 점을 통해 오늘을 봐야 할 것도 있고요. 과거를 통해 지금을 반성해야 할 것도 있는 거예요.
어떤 주제를 강의할 때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는지도 궁금하네요.
강연 요청이 많지만 제가 응하는 곳은 두 군데, 법 기관과 대학교인데요. 사실 법조인 대상 강연에서 나온 질의응답에서 이 책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예를 들면 한 고위 법관이 “법원에 오는 다툼 중 가장 어려운 문제가 조망권에 관한 문제”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그 문제는 이미 로마시대에도 있었다”고 말하니까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또 헌법재판소 분들을 만났을 때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가 이야기됐어요. 우선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용어보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라는 용어가 더 합당할 수 있다”고 말했죠. 양심적 병역 거부라고 하면 병역을 한 사람은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한편 이것은 중세시대 천주교 신부들이 군복무를 할 수 없어 나온 개념이거든요. 이걸 알면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를 어떻게 판결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요. 낙태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식으로 법을 판단하는 분들을 우선 만나고 싶었고, 그게 책이 된 셈이에요.
대학교 강연에 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 제자에게 “선생님, 터널의 끝이 있을까요?”라고 메시지가 왔는데요. 고민하다가 “터널의 끝은 있다. 단, 끝까지 간 사람에 한해서.”라고 답을 했어요. 저는 대학교 강연에서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 책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삶의 요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었고요. 법을 아는 것을 통해 나를 좀 덜 괴롭히고 삶의 다른 면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해요.
인간은 신념과 가치관의 노예다
책에서 선생님 개인의 생각을 밝히신 부분도 곳곳에 있어요. 내 목소리를 어느 정도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정말 고민 많았어요. 제가 아직은 어딘가에 속한 몸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요. 다만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특히 ‘이혼’을 다룬 부분이었는데요. 아마도 예수는 당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결혼과 이혼제도를 보았기 때문에 ‘이혼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해석하셨잖아요. 그 대목을 읽으면서 여러 번 그럴 수도 있었겠다 생각했어요.
여성이 혼인할 때 가져가는 결혼지참금이란 것도 부유한 집안에서나 가능하지, 대다수의 가난한 집 여인들은 소나 양 몇 마리에 팔려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가난한 집 여인이 이혼당하면 남편의 집을 떠날 때 가지고 나올 재산도 거의 없었지요. (중략) 당시의 이혼제도하에서 철저히 약자의 입장이었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예수가 이혼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135쪽)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예수의 족보를 얘기해요. 그 집안이 정말 형편없었다는 거죠. 어떤 교육 받지 못한 젊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젊은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게 당시 엘리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 의사한테 가지 않고, 문제가 생겼을 때 법조인에게 가지 않고 예수한테 갔어요. 이유는 하나였을 거예요. 저 사람한테 가면 최소한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거예요. 바로 그런 사람이 생각한 거 아니겠어요? 여성이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을 봤겠죠. 그것을 보고 이혼하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그 말만 남은 게 아닐까요. 그걸 한 번 생각해보자고 하고 싶었어요.
기원전부터 중세시대까지 긴 시간 동안 로마법도 수정의 과정을 거쳤잖아요. 법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도 사회의 진보에 대한 의미를 따져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선생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인간은 신념과 가치관의 노예”라고요. 어떤 사회에서는 아주 쉽게 가능한 것이 다른 사회에서는 투쟁이 되어야 하죠. 예를 들어 이슬람의 여성이 히잡을 안 쓰고 활보하는 것은 엄청난 투쟁이지만 서구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동성혼을 최초로 합법화한 국가가 네덜란드인데요. 이는 혼인에 대한 권리가 교회에 있지 않고 시민과 개인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한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는 로마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교회 밖에서 혼인한다는 것은 공동체에서 배제된다는 의미였는데 그랬어요. 그래서 법관들을 만나면 네덜란드의 법을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말해요. 그것을 통해 미래의 입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종교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도 법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것이 법과 종교의 차이예요.
만약 『로마법 수업』 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더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으세요?
민회, 즉 국회를 다뤄보고 싶어요. 민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민회의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살펴보는 거죠. 그런데 어려운 점이 있어요. 앞서 조망권 말씀도 드렸는데요. 그것을 살펴보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조망권에 관한 법조문은 있는데 실제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는 없기 때문이에요. 만약 한다면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겠죠. 또 노예에 대해서도 깊이 다뤄보고 싶은데요. 노예도 다 같은 노예가 아니었거든요. 상급 노예에는 의사, 교사 등이 있었고요. 가장 하위에는 유명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등장하는 그런 노예가 있었어요. 그런 것을 살펴봄으로써 많은 것을 고민할 수 있겠죠.
시작하는 글에서 이 책이 “이 사회에 큰 충격과 전환을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가슴에 작은 파동은 일으킬 수 있기를”, “그 일렁거림이 ‘세계의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지길”(12쪽) 소망한다고 적으셨잖아요. 선생님이 바라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 그 외에는 없어요.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이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의 질문이었어요.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으세요?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사 중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티렌티우스의 희극 대사를 책에 인용했는데요. 그 맥락에서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책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여기 다룬 이야기들은 인간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건네는 이야기이니까요.
로마법 수업한동일 저 | 문학동네
로마시대와 현재를 부단히 오가며, 변치 않는 인간의 속성과 사람 사이의 끝없는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여준다. 혼돈과 대립의 시대에 나답게,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힌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