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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시인 “아무튼 ‘오마이걸’을 쓸 걸 그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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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이다! 오마이걸에 진심인 작가가 쓴 에세이” 『아무튼 인기가요』를 읽고 독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서효인 시인은 매주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 신곡을 찾아 헤매는 K-POP 애호가다. “이글거리는 마음의 갈피를 찾지 못하던” 학창 시절부터,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 적당히 옛것이 좋기도 한”지금까지, 그는 여전히 인기가요를 듣는다. 그의 하루를 북돋우고 위로하는 “3분의 세계”가 책 한 권에 모였다. 

노래 이야기를 하면 시커먼 밤도 새하얗게 샐 수 있다. 당신과 하루 정도는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지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물보라가 일어난다. 살짝 설렌다. 오마이걸의 <Dolphin>을 듣고 자야겠다. 

안녕, 나의 3분. 안녕, 나의 모든 것. - 174쪽 



내 취향은 B플러스 감성

‘아무튼 시리즈’ 책 날개에 쓰인 근간의 지박령이었다고요(웃음). 출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책이에요. 

아무튼 시리즈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 계약을 했는데요. 회사 다니고 하다 보니 원고 작업이 계속 미뤄졌어요. 제가 게으른 탓이죠(웃음). 

드디어 출간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후련하기도 하고, 더 잘 썼어야 한다는 아쉬움도 있어요.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았거든요. 좋아하는 마음을 다 담는 건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던 거 같아요. 애초에 불가능한 도전이었으니, 이 정도에 만족하자고 생각했죠. 

‘인기가요’를 주제로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책을 계약할 당시에는 아무튼 시리즈가 출간되기 전이라서 물성이 없었는데, 좋아하는 걸 쓰면 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소하고 누구도 쓰지 않을 법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에세이라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 중에는 암흑의 영역이 있고 밝은 영역이 있는데요(웃음). 전자가 야구라면 후자는 가요예요.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를 썼으니까 이번에는 가요로 써보자 싶었죠.  

책에 쓰지 못해서 아쉬운 이야기도 많았다고요. 

책에는 1990년대 가요와 최근 가요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거든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도 좋은 노래가 많은데 다 담지 못했어요. 군대에서 자주 들었던 ‘보아’의 노래를 포함해 SM엔터테인먼트 가수의 노래를 별로 안 썼더라고요. 아마 취향의 영역일 텐데요. 책에 제 취향은 “B플러스감성”이라고 썼잖아요. SM엔터테인먼트의 가수들은 늘 A 플러스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관심에서 살짝 빗겨 나간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서태지보다 양현석이 좋고, 이효리나 성유리가 아닌 이진을 좋아하는 B플러스 감성이요(웃음). 남과 다르고 싶은 마음일까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어요. 물건을 사거나 브랜드를 좋아할 때도 마찬가지죠. 친구들이 다 나이키 살 때 저는 혼자 리복 샀거든요(웃음).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서 약간 다른 선택을 하는 건, 가장 쉽게 나를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너무 달라지기 싫은 두려움이 있어서 완전히 남다른 선택은 못하는 거죠. 주류에서 약간 비껴가고 싶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떨어지고 싶지는 않은 비겁한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보통 출퇴근 시간에 가요를 자주 듣잖아요. 매일 아침 BGM을 선곡하는 기준이 있나요? 

아침에는 바쁘니까 주로 유튜브 뮤직에서 나만의 믹스를 듣고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어떤 노래가 새로 나왔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요. 탐색은 벅스뮤직으로, 플레이는 유튜브 뮤직으로 합니다. 

“노래는 날씨다. 날씨는 노래가 된다.(89쪽)”고 했어요. 마침 어제 눈이 펑펑 왔는데, 눈이 오면 생각나는 노래가 무엇일지 궁금해요. 

핑클의 <화이트>요. 아내랑 연애할 때 노래방에 갔는데 아내가 <화이트>를 불렀거든요. 그런데 성유리 파트까지는 잘 부르고, 옥주현 파트에서는 음이 안 올라가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목소리가 성유리 닮았다고 놀렸던 기억이 있어요. 요즘 가요 중에는 이하이의 ‘For You(Feat. Crush)’를 추천하고 싶어요. 이제 눈이 오면 설레는 마음보다 귀찮고 싫을 때가 많은데, 이 노래를 듣는 동안에는 낭만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좋은 노래, 같이 듣자”고 말하는 책 

그룹 ‘오마이걸’에 대한 이야기가 책을 열고 닫더라고요(웃음). 혹시 리뷰 보셨어요? “이 작가 찐이다, 오마이걸에 진심이다”라는 내용이 있었어요. 

봤어요. 사실입니다(웃음). 

오마이걸이 특별히 좋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마이걸이 처음 데뷔했을 당시에 황인찬 시인이 “형이 좋아할 거 같은 그룹이 있다”고 얘기해줬는데요. 무대를 찾아보고 “무슨 소리 하냐. 난 아니다”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마치 교통사고처럼(웃음) JTBC <투유프로젝트 슈가맨>에서 오마이걸 멤버 승희와 미미가 유피(UP)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는데 참 좋더라고요. 이후에 앨범 <WINDY DAY>가 발매됐고 노래와 뮤직비디오 모두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좋아하게 되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주일이 내게 주어진다면 저녁마다 가요 프로그램을 볼 것이다”라고 했어요. 가요 프로그램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가요프로그램 MC들의 독특한 화법이 있어요(웃음).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요. 출연한 가수들의 순서를 보는 것도 좋아해요. 보통 신인은 앞에 등장하고, 인기가 있을수록 마지막에 나오거든요. ‘작년에는 저 가수가 앞에서 두 번째에 나왔는데, 이제 중반부에 나오네? 10위 했네?’ 이런 변화를 보는 것도 즐거워요. 못 보던 신인이 나오면 이 그룹 뜨겠다, 못 뜨겠다 같은 걸 예측하는 것도 재미있죠. 가요를 좋아하고 무대를 봐 온 구력이 있다 보니까 정말 제가 생각한대로 흘러갈 때가 많아요. 제가 가요 프로그램 보면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으면 아내가 “어디 가서 연예기획사 대표인 척 하지 말라”고 하죠(웃음). 

각 장 마지막에는 내용에 등장하는 노래를 모은 플레이리스트가 있어요. 

‘좋은 노래, 같이 듣자’는 의미로 수다를 떠는 책이니까요. 독자분들과 함께 듣고 싶어서 플레이리스트를 넣었어요. 요즘은 『아무튼 인기가요』 덕분에 그 노래 들었다고 말씀해주실 때 제일 좋아요. 

요즘 특히 꽂힌 노래가 있나요? 

최근에는 ‘이달의 소녀’ 앨범을 잘 듣고요. ‘스트레이키즈’의 <Back door>도 좋아요. 제가 남자 아이돌 노래에는 잘 안 꽂히는데 이건 좋더라고요(웃음). ‘골든차일드’와 ‘비비(BIBI)’ 앨범도 잘 듣고 있어요. 

중년 남성이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흔히 돌아오는 반응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분위기가 좋아져요(웃음). 재미있으니까요. 요즘은 아이돌 가수의 수준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가요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걸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요.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곳곳에 K팝 팬들이 정말 많거든요. 씬 자체가 커지고 다양화돼서 팬 층도 폭넓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이유의 노래 <시간의 바깥>을 주제로 쓴 ‘시간의 바깥에서 만나’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세상을 떠난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어요. 마지막 플레이리스트를 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남성으로서 아이돌과 그들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에요. 수많은 아이러니를 동반하거든요. 아이돌 가수는 대상화되기 쉬우니까요. 나쁜 방식으로 가수를 소비하며,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캐릭터 이면에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깜빡 잊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아이돌 가수들은 10대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서 10대 후반~20대 초반에 사회생활을 하잖아요. 휘몰아치는 시간에 비해 심리적인 서포트는 너무 미미한 현실이 안타까워요. ‘시간의 바깥에서 만나’에 쓴 이야기는 제가 노래를 틀고 출근하면서 실제로 느낀 감정이었어요. 얼마 전, TV에서 우연히 가수 故서지원 씨의 노래들이 나왔는데요. 그걸 보고 ‘1990년대에서 지금까지 변한 게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안타까운 마음도 커요. 



가요가 채우는 일상의 빈틈

1990년대 가요도 많이 등장해요. 과거를 회상하는 작업은 어땠나요? 

‘기억’은 에세이를 쓸 때 늘 화두예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부분은 왜곡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하는데요. 에세이는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쓰는 장르이지만, 어쩔 수 없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흐릿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쓰면서 조심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죠. 최대한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요즘의 인기가요를 다룬 글은 밝고 경쾌한데, 과거의 인기가요를 다룬 글은 대부분 씁쓸하고 어두웠어요. 

1990년대를 응답하다 시리즈 감성으로 쓰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배제한 내용이 많았어요. 개인적 경험은 글로 풀어냈지만, 90년대를 기억하는 대다수의 사람이 공유할 추억은 쓰지 않았죠. 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그렇게 낭만적이고 그리워할 만한 시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시절이었죠. 그 야만과 폭력을 잘 해결하지 못한 채로 2020년까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3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에 비례하는 만큼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시선으로 1990년대를 봤기 때문에 씁쓸한 내용이 많았죠. 

인기가요에게 특히 고마운 순간이 있다면요. 

저희 집은 ‘파주’고 회사는 ‘강남’이라 출퇴근 시간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가량 걸리는데, 이때 가요가 없으면 뭘 했을까 싶어요. 어떤 사람들은 전철에서 책도 읽고, 그날 해야 할 업무 생각도 한다는데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거든요(웃음). 가요는 너무 열심히 하고 싶지 않은 모든 순간마다 늘 옆에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든 10~20%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이 책은 일을 하거나 공부할 때, 청소할 때 가요를 틀면 생기는 빈 공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10~20%의 자리를 가요가 채워주지 않으면 일상의 100%를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아무튼 시리즈를 한 번 더 쓴다면, 떠오르는 주제가 있나요? 

중간에 집필하면서 그런 생각했어요. ‘그냥 아무튼 오마이걸이라고 할 걸.’(웃음) 멤버 한 명 한 명, 무대, 앨범에 대해 써도 재밌었을 거 같아요. 아니면 다른 분께서 ‘아무튼 뮤직비디오’를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가요의 여러 요소 중 뮤직비디오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좋아하는 뮤직비디오 소개해주세요. 

야외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를 좋아해요. 오마이걸의 <윈디데이>, 에이핑크 <리멤버> 등이 있죠. 마마무의 <별이 빛나는 밤>, 태연 <I> 뮤직비디오는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는데 정말 명작이에요.

코로나 시국이 시작된 이후로 나온 뮤직비디오는 거의 세트 촬영이라서 아쉬워요. 최근 노래 중 가장 아쉬웠던 건 에이프릴의 <Now or Never>이에요. 그 노래의 분위기로 보면 최소한 발리까지는 가야 할 텐데, 국내 해안가 풀빌라 펜션 같은 곳에서 촬영했더라고요. 코로나 시국이 정말 원망스럽죠. 

『아무튼 인기가요』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어떤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같이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요. 음악 말고 노래. 아마 가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친구와 수다 떨 듯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읽고 나면 자기 안에 있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도 떠오를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오마이걸에게 한마디 해주세요(웃음). 

오랫동안 활동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아마 멤버들의 20대 초반, 중반, 후반의 모습이 다 다를 텐데요. 오마이걸의 다양한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서효인

시인, 출판 편집자 그리고 가요 애호가. 시를 짓고 글을 쓰고 책을 꿰며 산다. 그 사이사이에 노래를 듣는다. 1981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매일같이 여러 책을 만나고 붙들고 꿰어서 내보내는 삶을 살고 있다. 



아무튼, 인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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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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