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의 역사』, 『이중섭 평전』 등을 쓴 미술사학자 최열 저자는 2020년에 출간한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서 “나는 자꾸만 옛 그림을 들여다보며 내가 사는 이 도시의 모습을 생각했다”고 쓴다. 옛 그림 속 풍경은 대개 달라져 있었고,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풍경들은 안타까웠다. 다만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 이어 또 한 번의 방대한 작업인 『옛 그림으로 본 제주』를 펴내면서 그는 다시 한 번 “남아 있는 아름다움이 점차 더 말라가고”있다고 적는다. 제주의 풍경이 옛 그림에서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특히 “제주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길 바란다”는 저자는 이 책으로 “제주도를 단순히 관광하는 곳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장소의 내력과 특징,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역사적인 아픔 등을 돌아봤으면 한다. 이 책을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제주 사람들이 이 책과 함께 제주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곳인지 외부에 많이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림부터 꼼꼼히 한 번 보세요. 책 판형도 크고 도판이 좋거든요. 자세히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일 거예요. 한라산 그림도 확대해서 보면요. 그 안에 흰 사슴도 있고, 사냥꾼이 활로 사슴을 잡으려는 모습도 볼 수 있어요. 보고 있으면 아주 재미있어요.”
‘여기는 다르구나’를 본능적으로 느끼죠
18세기 제주 화가 김남길의 <탐라순력도>를 보고 옛 그림을 중심으로 한 제주에 관해 책을 써보자고 결심한 것이 20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제주 그림들이 그렇게 있는지 몰랐죠. 사실은 2002년보다도 더 전인데요. 우연히 헌책방에서 큰 화첩으로 만든 <탐라순력도>를 발견했어요. 아주 낡은 책이었어요.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실경이라면 흔히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의 작품들을 떠올리는데요. 실경을 이런 식으로도 그린다는 걸 책 속의 그림을 보고 알게 된 거예요. 너무 달랐어요. 또 40점이나 되니까 이 그림들로 제주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그림들이 ‘다르다’고 느낀 이유는 뭘까요?
채색법, 구도, 사물 하나 하나를 형상화하는 방식 등 모든 것들이 달랐는데요. 기존에 알고 있던 전통적인 실경의 묘사 양식과 너무 다른 거죠. 가령 언어에서, 서울 중앙의 양식을 기준으로 표준어가 있고 사투리가 있잖아요. 사투리 가운데 전라도 사투리나 경상도 사투리는 어느 정도 익숙해요. 한편 제주도 사투리는 알아 듣질 못하잖아요. 외국어처럼 느낄 만큼 말이에요. 그림도 그랬던 것 같아요. 지방 양식 중에서도 제주 그림은 아주 특별했어요.
“제주를 그린 지도야말로 제주의 풍경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경도였던 게다”(6쪽)라고 했어요. 지금 제주는 그림 속 제주와 너무 다르죠.
모든 실경이 그렇죠. 관동8경만 해도, 우리가 갈 수 있는 곳들에 가 보면 풍경이 싹 바뀌어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지형이야 갑자기 바뀔 리는 없지만 설치 시설처럼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부분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서울은 뭐, 완벽하게 바뀌었죠. 명소, 관광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등의 이유로 그런 거고요. 말하자면 인간의 욕망이 모든 것을 바꿔요. 제주 역시 그림을 들고 가면 거의 못 찾죠. 옛 지도를 들고 찾아가는 것과 같은 일인데요. 다만 그림에 나온 이곳이 어느 곳인지를 더듬어 가며 찾아가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제주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거예요. 그 인상들이 책을 보면서 점차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선생님도 그림을 알고 난 뒤 제주가 다르게 다가왔나요?
육지 사람들은 제주에 도착하는 순간 ‘여기는 다르구나’를 본능적으로 느끼죠. 정확히 언제 제주도를 처음 갔는지는 모르지만 저 역시 도착하자마자 다른 나라에 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림도 마찬가지인데요. 사실은 제주 그림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겸재 정선이 ‘성류굴’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요. 그림을 보고 실제 풍경을 마주하면 정말 달라요. 그래도 한참 동안 관찰하고 살피다가 돌아와서 후에 생각하면 그림처럼 생겼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제주도도 그래요. <탐라순력도> 같은 그림과 실제 풍경을 연결해보면 같지 않는 느낌이 드는 곳도 있는데 결국에는 그림처럼 생겼다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물론 도시처럼 확 바뀐 곳은 그럴 수가 없고요. 어느 정도 원형이 유지된 자연 풍경은 그런 느낌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이 그랬나요?
이질감과 동질감을 시차를 두고 느꼈던 곳이 산방산과 성산이에요. 그림을 보세요. 실제 모습과 너무 다르잖아요? 이렇게 안 생겼어요. 두 곳 모두 실제 장소를 먼저 가봤고, 그림을 나중에 봤는데요. 그림이 너무나 이질적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림을 보고 다시 또 제주도에 갔을 때 느낀 것은 궁극적으로는 그림처럼 생긴 게 맞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신기했죠. 독자 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그 느낌을 느껴보면 좋겠어요. 그림을 보고 풍경을 보면, 진짜로 풍경이 그림처럼 변형되어서 보이는 느낌을 받게 돼요.
억센 힘으로 가득 찬 신의 땅
물리적인 단절 때문일까요. 언어는 물론이고 그림까지도 제주만의 독특한 색이 구축되어 온 셈인데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게 돼요.
예술은 실제 사물을 인간이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표출하느냐의 과정인 건데 제주는 무엇보다도 자연 풍토가 다르고요.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문명이 다르죠. 교통이나 항해가 발달되기 전, 제주는 독립된 왕국이었잖아요. 독자적인 자신만의 문명과 공동체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언어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고유성과 원형을 갖고 있었던 셈이에요. 신라, 고구려, 백제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하죠. 이후 조선시대에 아무리 유가 문명권으로 정치, 경제, 문화가 통일이 되었다 해도 자신들만의 고유성은 사라지지 않은 거죠. 그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고유함이 있다고 봐요.
제주를 "두려울 만큼 아름답고 억센 힘으로 가득 찬 신의 땅"(94쪽)이라고 했는데요. 신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점도 제주의 특별한 지점이에요.
육지에도 유가 문명권에 편입되기 이전의 고유성이 있었을 거예요.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그것이 시각 조형으로 형상이 남아 있죠. 한편 제주에는 보편 문명 이전의 신앙, 신, 신화 같은 것들이 보편 문명 아래에서도 강렬하게 남아 있던 거예요. <탐라순력도>의 <건포배은>이라는 그림을 보면 신당을 불태우는 장면이 있거든요. 외래의 신(유교)이 토착신을 철거하는 거죠. 그럼에도 제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저항이 강하고, 억압은 덜했던 거예요. 바다로 인해 통제 수단이 아무래도 약하니까요. 어떤 방식으로든 토속 신앙이 더 잘 지켜질 수 있었겠죠. 또 한 가지, 천지개벽 신화가 제주도에 있다는 점도 중요해요. 세계적으로 천지창조 신화를 갖고 있는 종족공동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요. 제주도는 갖고 있어요. 그것이 암시하는 것은 자신들의 고유성, 정체성이 아주 강하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신화들이 강렬하게 지속되어 왔고, 지금까지도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화가 김남길의 작업이 아주 중요한 허리예요. 이 화가가 더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반드시 그렇다기보다 김남길만 이름이 남이 있으니까요. 물론 추사 김정희, 윤제홍, 정재민 등 이름이 있는 분들도 있지만 나머지는 이름이 없어요. 사실 김남길도 정말 제주 사람인지,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데리고 온 사람인지 정확히는 모르는데요. 그림에서 여러 풍경을 해석한 것을 보면 제주 사람이라는 심증은 있고요. 그래서 이 사람이 중요하죠. 그렇지만 알리고 싶어도 정보가 너무 없어요.
표지 이미지이기도 한 <제주삼현 오름도>를 보면 제주도의 위아래가 반대로 되어 있어요. 그림 방향이 한양에서 보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건데, 흥미로운 부분이죠.
육지의 시선인 거죠. 육지 사람이 보는 방향으로 그렸다는 걸 알고 봐야 해요. 한양을 그린 그림 중에도 그런 것이 있어요. 보통은 지금 북한산, 청와대 쪽 방향을 상단에 그리고 남산을 하단에 그리는데요. 거꾸로 된 도성도가 있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어람용이었던 거죠. 왕이 보도록 그린 그림인 거예요. 별도로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모르지만 주체의 시선,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늘 중요하게 배치하죠. 너희들이 갖고 있는 것 중 나한테 귀한 것을 부각시켜요. 그래서 침략자의 시선은 항만, 도로 등 교통 수단을 아주 신경 써서 그렸어요. 지도가 갖고 있는 패러다임이 그런 건데요. 제주를 그린 그림에서도 여지없이 그런 면이 관찰돼요.
중앙 중심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담긴 그림도 있는가 하면 그런 면이 거의 엿보이지 않는 그림도 있잖아요.
주문 주체, 제작 주체의 필요나 시선이 작용하는 거겠죠. <탐라순력도> 41점은 동그라미가 많잖아요. 이게 다 군부대거든요. 외지에서 부임한 이형상 목사가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점검한 것이기 때문에 <탐라순력도> 전체에 이런 정보가 중요하게 담긴 거예요. 철저하게 군사, 정치, 문화적으로 조선의 통치 이념을 부여해야겠다는 의지가 드러나요. 한편 <제주십경도>, <제주십이경도> 같은 그림들을 보면, 군부대가 크게 그려진 그림이 있긴 해도 다 그렇진 않죠. 좀 더 풀어진 시선을 느낄 수가 있어요. 훨씬 이완되고, 더 느긋해요. 풍경을 중시했고요. 그림이 말하는 이야기가 달라진 거예요. 서민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있거든요. 민가도 촘촘하게 그려놓고 말이죠. 그런 각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달라진 풍경이 워낙 많아
‘제주’와 ‘그림’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면 추사 김정희나 이중섭 등 굵직한 인물들이 자연히 연상되는데요. 제주는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특징적인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을까요?
분명히 제주의 공간이 주는 남다름이 있는 것 같아요. 추사도 제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완성되었다고 보거든요. 제주에서 추사의 예술이 용광로처럼 끓어 비로소 추사체가 꽃을 피웠어요. 제주 이전에는 사실 추사체가 아니죠. 추사가 55세에 제주도로 유배를 떠났는데요. 그 전까지는 추사체가 없었어요. 그런데 제주도에서 8년 정도 살다가 나오면서부터 그 서체가 나와요. 꽃을 활짝 피우죠. 참 신기해요. 이중섭의 경우 제주도 안에서 흔히 말하는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온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제주도에서 무르익은 거죠. 발가벗은 어린 아이들, 가족 등을 그려내면서 서서히 꽃을 피울 수 있었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 확실히 제주도라는 곳이 예술가들에게 어떤 상상력을 열어주는 공간인 것 같기도 해요.
앞서 나눈 이야기와 연결해보면, 제주만이 가진 고유성과 정체성이 외지에서 온 예술가들에게 훨씬 더 이질적이고 자극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기도 해요.
그렇죠, 충분히 그럴 거예요.
한편 훼손되고 있는 제주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도 곳곳에 드러나거든요. "아름다움이 점차 말라가고 있다"(5쪽)고 했어요.
서울은 포기했어요.(웃음) 『옛 그림으로 본 서울』에는 그래서 분노만 적어둔 거고요. 이 책에 안타까움을 그나마 표시한 것은 서울보다는 제주도가 덜 개발되었기 때문이에요. 이 글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로 적어본 것이죠. 비자림숲을 훼손하고,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고 하는 소식들을 들으면 너무나 안타까움을 많이 느껴요.
이곳만큼은 특별히 꼭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나요?
하나같이 다 그렇죠.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지 않은 곳은 전부 이미 손을 댔거든요. 사실 제주뿐 아니라 전 국토가 그래요. 포천에 산정호수가 있어요. 가 보면 호수 둘레에 산책로를 만들어놓았어요. 그건 호수가 사라진 것이라고 봐야겠죠. 산책로를 설치하지 않고, 몇 군데 접근할 수 있는 곳을 두어서 어렵게 접근하도록 하고, 그 자체를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제주도를 담은 옛 그림 역시 보면 이미 달라진 풍경이 워낙 많아서요. 어느 한 곳을 특정하기는 어려워요. 그나마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를 하니까 다행인데요. 그렇지 않은 곳들이 걱정이죠.
그림만 봐서는 알지 못하는 그림의 맥락이 있잖아요.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신화와 역사적인 맥락도 꼼꼼하게 밝혀주셨는데요. 자료가 부족하거나 하진 않았나요?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관심 갖는 범위의 기록들은 굉장히 많았어요. 오히려 다 못 본 게 아쉬워요. 책에 더 담지 못해 아쉽죠. 책 뒤에 참고문헌으로 담아둔 것은 극히 일부고요. 제가 찾아본 자료는 훨씬 더 많았어요. 제주 무가 연구나 민요 연구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제주의 향토사학자 분들이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특히 <매화도>와 <석국>을 그리신 김석익 선생이 향토사학자예요. 이분을 비롯한 제자, 후예들이 탐라에 대해 방대하게 조사해둔 것들도 많고요. 그 외에 조선 시대 김상헌의 『남사록』 같은 자료도 있어서 밖에서 본 시선, 안에서 본 시선들이 다양하게 남아 있었어요. 포구 기행 같은 것도 아름답고요. 곳곳에 중요한 책들이 많았죠.
이 책을 시작으로, 좀 더 많은 제주의 역사나 신화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평론 하시는 김유정 평론가의 『제주 돌담』이 좋을 것 같아요. 김유정 평론가는 제주도 내에서 일종의 문화해설사로서 강의도 많이 하고 있어요.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거예요.
*최열 1956년생. 미술사학자이다. “그의 이름을 빼고 한국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 그의 책들은 한 권 빠짐없이 한국미술사의 자양분이다.” 한국근대미술사에 누구도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때 최열은 직접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연구의 터를 만들었다. 그는 개척자인 동시에 실행자였다. 그는 또한 당연히 매우 치열한 학자다. 그가 펴낸 책들은 출간 이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참고문헌이다.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와 인물미술사학회 회장, 정관 김복진 미술이론상과 석남 이경성 미술이론상 그리고 정현웅기념사업회 운영위원, 월간 『가나아트』 편집장과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의 이력이 그의 족적을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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