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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납작하게 눌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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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명의의 통장을 만들거나 휴대폰을 개통할 수 없다. 수학여행은 물론 반나절의 체험학습을 가는 것도 어렵다. 봉사동아리 부장이지만 ‘1365 자원봉사포털’에 가입할 수 없고, 반에서 1등을 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건, 만 18세가 되면 말 한마디 통하지 않고, 연고도 없는 낯선 나라로 “돌아가라”는 통보를 받는다. 모두 한국에 거주하는 2만여 명의 ‘미등록 이주아동’이 겪는 일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났을 뿐인데, 아이들은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삶의 토대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있지?’ 작가 은유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야기를 접하고 거듭 되물었다고 했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노와 감동의 연료가 바닥난 것 같아서”당분간 집필 활동을 쉬겠다는 다짐은 아이들의 좌절된 삶 앞에서 뒤집어졌다. 그의 신작 『있지만 없는 아이들』에는 다섯 명의 이주아동을 비롯해 이주아동의 부모, 이주인권활동가, 이주아동을 지원하는 변호사의 인터뷰가 담겼다. 인터뷰에 참여한 아이들은 모두 같은 꿈을 말한다. 그저 ‘살아있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고,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것.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암담한 아이들의 소망은 너무 당연한 권리라서 눈물겹다. 



우리 사회 최밑단에 있는 존재들의 이야기

출간 제안을 받고 어떠셨어요?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는 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제안 메일에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기사 링크가 함께 있었는데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있지? 어째서 아이들이 제도적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거지?’ 싶으면서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저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 문제에 두루두루 관심이 많아서 책을 읽으면 적어도 한 가지씩은 알고 있는 내용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읽은 어떤 책에서도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 놀랐어요. 

그래서인지 프롤로그의 첫 줄부터 인상적이었어요. “그들의 있음을 알게된 건 지난여름이다.(6쪽)”라는 문장이요. ‘있음’에 강한 방점이 찍힌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들의 있음’이란 굉장히 타자화된 말이잖아요. 특정한 상황이나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 즉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로 그렇게 썼어요.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 무지했던 제 상태를 날 것 그대로 말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는 방증이겠죠. 

그렇죠. 너무 소수이기도 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지난겨울에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행’ 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사건도 있었잖아요. 성인 이주노동자의 상황도 이렇게 열악한데, 그들의 아이들까지는 사회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거죠.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말하기도 어렵고요. 어찌 보면 미등록 이주아동은 우리 사회 최밑단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어요. 납작하게 눌려 있기 때문에 존재조차 보이지 않는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목에서 아이들의 상황이 직관적으로 와닿아 좋았어요. 직접 지으신 건가요?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활동가들이 쓴 미등록 이주아동 관련 사례집에도 나온 문장이고, 경향신문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 다룬 기사의 제목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가제로 정해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없는 아이들’로 제목이 끝나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정말 없는 아이들로 낙인을 찍는 느낌이었거든요. 여러 후보를 놓고 고민하다 처음의 제목으로 돌아갔는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책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저를 포함해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 창비 편집자, 책에 등장하는 이탁건 변호사와 석원정 이주인권활동가가 한 자리에 모여 첫 미팅을 가졌고요. 그 자리에서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들었어요. 그후 활동가들이 쓴 미등록 이주아동 관련 사례집을 전달받아 읽기 시작했고, 다양한 사연을 고려해 인터뷰할 만한 후보를 추렸어요. 10여 명의 후보들을 두고 어떤 인물이 좋을지 편집자, 활동가 선생님과 같이 의논을 했고요. 상당한 공동작업이었어요.


 

아이들만큼은 평등하게 자라야 한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직접 만나보니 어땠나요? 

책에 나온 아이들은 모두 자기 삶에 대해 설명을 많이 해본 경험이 있었어요. 언론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한 적이 있고,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한 친구들이라 때로는 인권 강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죠(웃음). 자기 삶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불합리한 사회 모순을 직시한 자의 날카로움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어떤 사회가 올바르고 정의로운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까지 가지고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많이 배웠죠.

인터뷰에서 오고 간 말들 중, 가장 오래 곱씹었던 말이 있을까요? 

언어·청각장애가 있는 몽골 국적 부모에게서 태어난 ‘마리나’의 인터뷰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솔직히 엄마 아빠가 저를 키워준 게 아니고 제가 엄마 아빠를 키워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했는데, 여기에 정말 강렬한 진실이 담겨 있죠. 마리나뿐 아니라 한국의 아이들 중에도 가장 역할을 하면서 부모를 먹여 살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흔히 아이들은 미숙하고, 어른이 돌봐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부모자식간의 상호 돌봄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마리나가 스스로 “나는 부모를 돌보고 있다”고 말하는 모습이 당당하고 멋지기도 했고요. 

미등록 이주아동의 부모인 ‘인화’님의 인터뷰를 통해서는 체류자격이 없는 채로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가 더 입체적으로 이해되더라고요.

‘나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부모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 막바지에 섭외를 했어요. 인화님은 자신으로 인해 아들마저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자라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 분인데요. 사례집에서 인화님 사연을 보고 너무 슬펐어요. 6살짜리 아들을 방에 혼자 둔 채 밖에서 문을 잠그고 공장에 일하러 갔다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우리 사회에도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아이가 혼자 집을 지키다가 화재가 나서 사망하는 사건들이 있었잖아요. 빈곤, 돌봄 공백, 양육의 어려움이 이주민 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게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인화님을 처음 만났을 때, 힘들게 일을 하셔서 그늘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젊고, 활기찬 분이어서 놀랐어요. 이것도 제가 가진 편견이라는 걸 알았죠. 

이외에도 인터뷰를 하며 깨어진 생각, 편견 등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일방적으로 한국이 그들을 위해 일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주노동자를 바라봤어요. 그런데 이탁건 변호사와 석원정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그 생각이 깨졌죠. 이탁건 변호사가 한국에서 미등록 상태로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럼에도 수십 년을 사는 이주노동자가 있다는 건 “한국도 이 사람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을 때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렇지,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우리 사회가 안 굴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관점으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바라본 적은 없었는데, 덕분에 인식의 전환이 되었어요. 

지난 4월,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 발표가 있었다고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 건가요?

이제 국내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살았을 경우, 심사를 통해 체류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어요. 인터뷰에 참여한 마리나도 한국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케이스라 다행히 체류자격을 얻었죠. 그런데 1년마다 갱신을 해야 한다는 불편이 있어요. 왜 한국에 머무는지 서류를 매년 증빙해야 자격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이 제도로 구제되는 아동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맹점도 있고요. 기준이 모호하거든요. 만약 태어나 100일 만에 한국으로 왔다면, 여기서 나고 자란 거나 진배없는 셈인데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심사 대상이 아니에요. 그런 부분이 좀 안타까워요. 어쨌든 시작을 했다는 의의가 있으니 앞으로 개선하고 보완해 나가야죠. 

이번 책을 쓰는 동안 가장 많이 한 생각이 무엇이었나요?

프롤로그에 썼듯이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게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라는 일본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의 말에 오랫동안 감응해왔어요. 배고플 때 밥 먹고, 아플 때 치료받고, 공부하는 것까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이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는 너무 야만적이지 않나? 생각했죠. 이런 관점에서 체류자격조차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문제는 아주 극단화된 사례잖아요. 우리 사회 최밑단에 있는 존재를 이야기함으로써 여러 문제가 다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건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우리 사회 전체의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어요.


 

우리는 그들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

한 고등학교 토론대회에 참석했을 때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발언하는 학생을 보고, 이 책의 구체적인 독자의 모습으로 상정했다고 하셨어요. 그날 학생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지 궁금해요.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업종인 공장, 농죽산업의 노동력을 이주노동자가 메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나라의 경제를 지탱하는 건,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뿐이 아니라 경제구조의 가장 아래층에 있는 영세사업자의 이주노동자도 있고, 이는 한국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와 별개라고요. 또 어떤 누구라도 노동권이 보장된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죠. 만약 우리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갔을 때, 이주민이라고 해서 낮은 처우를 받고 기본권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그게 합당한 일인지 이야기해보자고요. 사실 이러한 편견은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듣거나, 인터넷 댓글 등을 보며 파편적으로 생긴 거잖아요. 편견은 모를 때 생기는 것이니, 알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주노동자를 향한 비난은 대개 비슷해요. 일자리를 빼앗는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은데 왜 이주민을 돕냐는 거죠.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를 반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다 여기 와서 아이를 낳으면 어쩌냐”고 하잖아요. 무지에서 오는 불안일까요? 

불안정한 경제구조 속에서 사는 불안이, 자기보다 취약한 대상에 대한 분노로 향하는 거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야 하는데, 약자가 자기보다 더 약자인 자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해소하는 것 같아요. 책에서 석원정 활동가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동감해요. “미등록 아동의 부모까지 국적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체류자격을 주자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평생을 살고 공교육을 받은 아이들을 여기서 살게 해주자는 것”뿐이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살겠다고 일부러 애를 낳겠느냐. 설사 그런들 그게 뭐갸 문제냐. 지금 인구가 부족해서 문제인데”라고 하시잖아요.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다문화인은 현재 243만 명으로 인구의 5.1%(통계청, 2019)라고 해요. 이주배경을 가진 인구가 전체의 5%를 넘으면 다인종국가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도 이제 다인종국가에 들어선 거죠. 시대가 변한 만큼, 외국인을 심사의 대상이 아닌 동료 시민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우리는 그들의 노동에 빚지며 살고 있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너무 바빠요.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정말 무관심해요.(203쪽)”라고 했던 인화님의 한 마디가 우리 사회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쟁이 심한 사회이기 때문에 내 몫을 지켜야 한다는 정서가 일반적이죠.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분위기가 그리 몰아가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자리도 불안정하고, 자칫하면 나의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있는 상황에서는 남을 돌아보기 어렵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그런 고민을 하는 사회여야, 나도 약자가 되었을 때 보호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희망을 보셨을 것 같아요. “김민혁의 사례를 접하며 동료 시민의 역할과 중요성을 깨달았다(18쪽)”고 하셨어요.

‘시민의 정의를 무엇으로 내릴 거냐’고 묻는다면, 저는 ‘타인의 고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시민이라 답하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민혁을 도왔던 선생님의 경우 진정한 시민의 역할을 하신 분이었어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민혁에게 ‘2주 내로 이란에 돌아가라’는 명령이 내려진 사연을 옆자리에서 우연히 듣고, 해결할 방법을 함께 찾아주신 거잖아요. 선생님의 그 마음이 없었다면 민혁은 체류자격을 얻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석원정 활동가가 말씀하신 ‘민우’의 사례에서 등장하는 담임선생님도 기억에 남아요. 자사고 학생이던 민우가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출동한 경찰에게 비자가 없는 걸 발각당하는 바람에 강제추방을 당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이주노동자 단체를 찾아가고 이 문제를 계속 파고든 게 미등록 이주아동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시발점이었잖아요. 바로 옆 사람,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 한번 눈 감으면 내 삶에 굳이 연루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갖는 관심이 마침내 사회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누군가는 그 상황에서 하루를 살고 있잖아요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가라는 소개는 들을수록 민망하다. 그럴 때면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지만, 글은 잘못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33쪽)”고 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내 목소리가 너무 컸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동안 마음에 끌리는 일,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는 일들을 해왔기 때문에 내 삶에는 충실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글에 있어서도 그런가 싶어요. 예를 들어 청소년 현장실습생 문제에 대한 르포를 썼다면, 사람들이 그 아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지 작가인 제가 부각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죠.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을 뿐인데 “좋은 일 한다, 훌륭한 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부끄럽고 민망해요. 진짜 훌륭한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는 것 같고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이후 한동안 책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것도, 그 마음의 연장선이었나요? 

그건 아니고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펴내고 피해 서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함께 하고 싶다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몸도 마음도 힘들어서 당분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글쓰기의 최전선』 이후 감사하게도 계속 책을 냈고 특히 국가폭력 피해자들,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관성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거든요. 그 문제에 대해 새롭고 낯설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글을 쓰는 즐거움이 있는데, 이제 어떤 사안을 봐도 ‘이게 문제니까 문제야’ 싶은 거죠(웃음). 그런데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어요. 초심자의 마음으로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을 시작했던 거죠.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니 어떠셨어요? 

후회했어요(웃음). 잘 알고 써도 힘든 일인데, 초심자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미등록 이주아동 사례집을 읽는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어요. 한 줄, 한 줄이 다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부모에게 체류자격이 없다고 왜 아이들까지 체류자격이 없지?’ ‘왜 형제 중 한 명만 체류자격을 인정해주는 거지?’ ‘주민등록증이 없어서 핸드폰 개설을 못 하고, 수학여행을 못 간다고?’ 너무 많은 궁금증과 생각이 올라오니까 못 읽겠더라고요. 꼭 완전히 처음 보는 과목을 새로 공부하는 느낌이었어요. 이주노동자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관련 책도 많이 읽었고요. 글을 쓰기까지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죠. 작업하는 동안은 내내 불안과 싸웠어요.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왜 하겠다고 했을까?’라면서요(웃음). 

여전히 책 작업을 할 때 불안하세요? 

그럼요. 출간 이후 석원정 활동가 선생님께서 책 잘 써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셨어요. 그래서 “선생님, 책 내고 나면 너무 불안한데 다정한 말씀 해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답장을 보냈더니 전업작가도 불안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책 나오면 항상 어디로 숨고 싶은 기분이에요. ‘실수한 거 없을까,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될까’ 싶어서 초조하고,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도 있어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옮기는 작업이 심리적으로 힘드실 것 같아요. 바뀌지 않는 사회가 답답하기도 할 테고요.  

힘든 만큼 많이 배우고, 자극을 받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내가 의협심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괴로워하는 것도 어찌 보면 사치예요. ‘내 자리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게 맞죠. 사회의 커다란 문제를 상정하고, 바꿀 수 없다고 무기력해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이에요. 누군가는 그 상황에서 하루를 살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서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는 인생수업”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언제나 글쓰기 수업의 마지막 시간에는 학인들에게 인터뷰 과제를 내주시고요. 이유가 궁금했어요. 

인터뷰는 타인의 이야기를 한두 시간 집중해서 듣는 일이잖아요. 누군가를 만나려면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하고요. 그렇게 타인과 사려깊은 자리를 갖는 건, 한 사람을 이해하는 무척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듣는 능력이 별로 없어요. 내가 동의하는 이야기는 잘 들리지만, 그렇지 않은 이야기는 흘려보내기 마련이죠. 그런데 글을 쓰려면 듣는 능력이 뛰어나야 해요. 글을 쓴다는 건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거니까요. 인터뷰를 통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감정, 위험, 사건, 경험이 있는지 듣는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재구성해 서사로 만드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좋은 글쓰기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는 타인을 만날 때마다 겸손해졌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참 많구나’ 싶거든요. 무언가를 새로 안다는 건, 자기 무지를 깨닫는 일이잖아요. 인터뷰가 그 깨달음의 기회를 주죠. 

“우리는 영원히 슬퍼야 하리라”는 문장으로 책이 끝을 맺습니다. 요즘 작가님을 가장 슬프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책이 많이 나가야 할 텐데…’(웃음) 이건 슬픔이 아니라 욕심이겠죠? 아직 이 책을 쓸 때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라서 책에 등장하는 미등록 이주아동 중 ‘카림’과 ‘달리아’가 체류자격을 얻지 못한 게 가장 속상해요. 더 나아가 국내 아이들도 생각하게 되죠. 달리아가 고3때, 친구들이 모이면 다 대학 이야기를 해서 소외감을 느꼈다고 하잖아요. 이건 미등록 이주아동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에요. 수능을 목표로 하는 교육에서는 여러 이유로 대학을 못 가는 아이들이 완전히 배제되죠. 이처럼 국내 아동들도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될 때가 있는 거예요. ‘왜 다 공부를 잘해야 하지? 왜 수능 위주의 교육을 할 수밖에 없을까? 오직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돌볼 수 있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슬플 때가 많아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길 바라시나요? 

이 책을 다 쓰고,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 박완서 선생님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어요. 개성에 살던 ‘나’가 엄마와 오빠를 따라 상경해 셋방에서 눈치를 보며 살게 되는 대목에서 “엄마는 내가 있어도 없는 아이처럼 굴길 바라고 있었다”라는 구절이 나오더라고요. 

이처럼 미등록 이주아동 외에도 가난하거나, 어떤 사정 때문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정말 많아요. 학교에서도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없는 취급을 받곤 하잖아요. 누구는 주류로 인정받고, 누구는 배제되는 모습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읽어낼 수 있어요. 이 책을 읽고 단순히 ‘미등록 이주아동 불쌍하다. 안 됐다’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있지만 없는 존재들’에도 눈 뜰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은유(김지영)

산문, 칼럼, 인터뷰 등 논픽션을 쓰고,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 『올드걸의 시집』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폭력과 존엄 사이』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출판하는 마음』 『다가오는 말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을 썼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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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저 |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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