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명소녀 투쟁기』는 뻗어 나가는 힘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전투적인 상상력과 혁명적인 전개’(구병모)를 보여준다는 심사평처럼,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훌쩍 넘어 성실하게 달려간다. 뒤쫓아오는 죽음 앞에서 “싫다면요?”하고 막아서는 힘. 강한 에너지의 세계를 현호정 작가는 단단하게 쥐고 있다.
작가가 처음으로 글의 힘을 인식한 건 중학교 때다. 독후감을 써냈는데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이 교무실에 불러서 “네 글을 읽고 울었다”고 했다. 저렇게 키 크고 센 사람을 울릴 수도 있다니, 글은 힘이 있구나 하고 놀랐다. 그 후 소설을 썼지만, 꽤 오랫동안 ‘지어낸 이야기’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비현실적인 세계가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진짜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쓴다’는 작가가 저승으로 향하는 설화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박지리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꿈이 아닌가 의심했다. “당시에 준비하던 연극도 취소되고, 만나던 사람이랑 헤어졌거든요. 밤새 울고 눈이 부은 상태로 전화를 받았는데, 당선이 됐다는 거예요. 아직 슬픈 상태인데 막 기뻐하지도 못하고 당황했던 것 같아요. 인생에는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었어요. 제가 꿈을 자주 꿔서, 신기한 일이 생기면 이게 혹시 꿈이 아닐까 진심으로 생각할 때가 있어요.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도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혼자 꼬집어봤어요.”
『단명소녀 투쟁기』는 열아홉 살 수정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떠나는 모험 이야기다. 수정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예언을 바꾸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북쪽으로 향한다. 「북두칠성과 단명소년」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작가는 주인공을 소년이 아닌 여자아이로 정하고, 그가 직접 운명을 뒤집는 것으로 바꾸었다. “저는 원작을 싫어했나 봐요.(웃음) 주인공은 여자아이로 하고 내가 더 멋지게 써야지 생각했어요. 살아 있어도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감각을 자주 떠올렸고, 땀 흘리면서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을 만든 게 주인공 수정이에요.”
가장 오래 고민했던 건 제목의 ‘단’이라는 한 글자였다. 처음에는 원작이 ‘짧을 단(短)’이니까 당연히 ‘끊을 단(斷)’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쓰는 동안 현실이 바뀌었다. 목숨을 끊은 여성들이 늘어났고, ‘끊을 단’을 쓸 때마다 슬프고 아픈 감각이 생생해졌다. 결국 ‘짧을 단’을 택했지만, 여러 죽음을 바라보거나 겪으면서 작가가 느낀 마음의 무게는 수정의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게 4년 동안 단명소녀의 투쟁기를 품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카메라맨처럼 인물의 뒤를 쫓아가며 기록하는 듯이 글을 쓰기 때문에 인물이 멈추면 글도 멈췄다. 그러다 수정과 반대로 죽음으로 향하는 인물 ‘이안’이 나타났고, 소설은 힘을 갖기 시작했다. 결말에서 유독 고생했지만 끝을 맺자 “싸움은 승패와 관계없이 후회를 남기지 않을 때 의미가 생”긴다고 믿을 수 있었다.
소설책을 펼치면 흰색, 검은색으로 대조를 이루는 가름끈이 나온다. 이 두 가지 실처럼 소설은 삶과 죽음이 팽팽한 긴장 관계를 이룬다. 주인공 수정과 이안은 누군가를 죽이는 힘과 살리는 힘을 동시에 가졌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수정이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을 쓰기까지 계속 망설였다. 수정이 제 손으로 피를 흠뻑 묻히며 죽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후에야 결말로 나아갈 수 있었다.
“수정이 최초로 등장인물을 죽인 장면을 쓰고 생각했어요. 4년 동안 한 사람을 죽이지 못해서 계속 떠돌아다녔구나. 그 후로는 1-2주만에 완성했는데 스스로에게도 낯선 경험이었어요. 뭔가를 살리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죽이는 이야기가 나와서 저에 대한 의심도 했고요. 그런데 친구들과 늘 ‘죽지 말고 죽이자’라는 말을 했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너무 괴로운 상황일 때, 왜 우리는 상대를 벌주는 게 아니라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그러지 말고 우리는 차라리 죽이는 걸 택하자.”
죽음을 결단한 것만큼이나 모두를 살려주는 것 또한 작가에게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결국 나를 죽이는 존재들 때문에 살게 되는 거구나. 내가 죽인 사람을 다 살려주지 않으면 나도 살 수 없는 구조구나 느꼈어요. 수정이 모기인간을 죽였을 때, 저도 슬퍼서 한참 울었거든요. 그 슬픔이 원작 설화와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제 소설에서는 길에서 만나는 존재를 이미 알고 있고 다 나인 것 같다는 감각이 여행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살아있는 개를 어루만지는 감각, 수정과 이안이 서로를 꼭 껴안는 온기. 소설에서 살기 위해 투쟁하는 힘은 경계 없는 사랑에서 온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동물은 소중하게 다뤄진다. “저는 사랑에 거는 기대가 아주 커요. 계속 누군가를 사랑하고, 완벽하게 믿고 싶어해요. 그건 동식물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어렸을 때 수의사가 꿈이었는데요. 길을 걷다가도 작은 동물을 보면 유독 눈에 밟히고 그냥 못 지나쳐요. 존재들이 조금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수상소감에서 현호정은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와 버린 느낌으로 살아왔다고 썼다. 그리고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 세계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택한다. 작가의 말처럼 연명담이 우리의 이야기라면, 위협하고 죽이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리는 함께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을 스스로 정하는 수정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게.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