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시인으로 글을 쓰고, 만화가로 말풍선을 채우며 매일같이 언어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언어세공가다.”
홍인혜 작가는 말에 기대어 산다. 머릿속으로 입속으로 말을 굴려보며 즐거워하고, 말들이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붙들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야기들을 모아 언어 에세이 『고르고 고른 말』을 썼다. 일상과 여행 속에서 사람과 일 사이에서 건져 올린 언어를 ‘말맛’나게 담아냈다. ‘희망의 말’ ‘나를 울린 말’ ‘그리움의 말’ ‘뜻밖의 말’ ‘단단한 말’ ‘외치는 말’ 등 세심하게 골라낸 말들이 가득하다.
일상툰 ‘루나파크’를 시작으로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받고 있는 홍인혜 작가는 광고회사 TBWA에서 일하며 홈페이지에 만화를 연재했다. 현재 회사를 떠나 다양한 분야의 창의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2018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혼자일 것 행복할 것』, 『루나 파크 옷걸이 통신』,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루나 파크』 등이 있다.
깊은 이야기를 담은 묵직한 책
이번 책의 제목을 지으시는 데 친구 분의 도움이 있었다면서요?
네. 제가 언어적인 일을 하는 사람임에도 제 책의 제목을 잘 못 지어요. 객관성을 상실해서 그런지, 이번 책도 출간이 얼마 안 남은 시점까지 제목을 못 짓고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다들 농담만 하는 거예요. ‘언어 생활이니까... 맛있는 훈제 언어 어때?’ ‘말이야 방구야는 어때?’ 이런 말들. (웃음) 그러다가 제 베프가 ‘홍, 너는 말을 고르고 골라서 하는 사람이잖아. 『고르고 고른 말』이라는 제목이 딱 맞는 것 같아’라고 했는데, 너무 감동적이고 너무 좋은 제목인 거예요. 두말할 나위 없이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출판사 분들도 너무 좋아하셔서 제목으로 결정하게 됐어요.
『고르고 고른 말』이라는 제목이 너무 잘 어울려요. 많은 말들 중에 ‘고른’ 것들의 기록이기도 하고, 작가님은 항상 말을 ‘고르고’ 난 후에 이야기하시는 분이니까요.
저도 정말 잘 지은 제목 같아요. 책 제목을 줄여서 ‘고고말’이라고 불러주시는 것도 너무 귀엽고요. 그리고 저는 흔히 쓰이는 말인데 제목에 올랐을 때 파괴력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가장 보통의 존재’라든지 ‘생각이 나서’ 이런 제목들 있잖아요. 딱 그런 제목인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지금까지 나온 작가님의 책들과 다르게, 이번 책에는 ‘루나의 카툰’이 실려 있지 않은 책이에요.
맞아요. 이전에도 에세이집 두 권을 냈는데 다 만화가 들어있거든요. 늘 처음에는 ‘만화 없이 해도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작업) 중후반부에 가면 약간 아쉽기도 하고, 출판사 분들도 만화가 들어가도 전혀 (내용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그러면 ‘그런가?’ 하면서 넣게 됐어요. 팬 분들도 ‘만화가 루나’에게 기대하시는 부분이 있고요. 그런데 제가 마지막 에세이와 이번 책 사이에 시인으로 등단을 했잖아요. 그래서 애초에 ‘이건 문인으로 내는 책이다, 문학사에 스크래치라도 내보자’ 이런 느낌으로 테마를 정했어요. (웃음) 진짜로 조금 더 문학적으로 쓰고 싶었어요. 출간 제안을 받을 때도 만화를 같이 싣자고 하시면 제가 생각하는 바와 너무 다르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이번 책의 에디터 님은 ‘깊은 이야기를 많이 담은 묵직하고 진중한 책’을 내자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딱 내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저는 시인입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직도 어색하세요?
네, 말하기가 부끄러운데... (웃음)
왜요?
...그러게요. (웃음) 늘 ‘등단하면 이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등단한 뒤에도 그렇지 않아서 ‘지면에 조금 더 시를 발표하면 당당할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지금은 ‘시집을 내면 당당할 수 있으려나’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때 되면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좀 부끄러워요. (웃음)
‘호칭’이라는 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걸 획득하기까지 열망했던 시간이 있기 때문에, 얻게 되었을 때의 만족감과 희열도 엄청 크잖아요.
그럼요. 저는 진짜 반 년 정도는 시인 뽕에 취해서 살았어요. (웃음) 그때 친구들이 ‘못 볼 꼴 봤다’고 할 정도로 장난 아니었어요. (웃음) 항상 주머니에 시집을 넣어 다니고, 친구가 5분만 늦어도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시집 펼쳐보고... 그때 좀 심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현실 감각을 찾았고요. (웃음) 인생이 되게 많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시인 뽕’에 취해 있던 시절에도 ‘저는 시인입니다’라는 말을 잘 못하셨어요? (웃음)
친구들한테는 그렇게 행세했지만, 어디에 가서 시인이라고 말하는 거에는 늘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시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고 너무 동경해서 아직도 실감이 덜 난다고 할까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시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나는 시를 잘 모르지만, 내가 맞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이라는 얘기를 다들 하거든요. 시인들도 해요. 시가 조금 특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어 생활자, 창의노동자, 그리고 창작 관종
『고르고 고른 말』을 읽어 보면, 작가님은 말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굴려보는 걸 굉장히 재밌어 하시는 것 같아요.
네, 진짜 너무 재밌어요. 「단어 올림픽」이라는 글에도 에피소드가 나오잖아요. 혼자 가만히 있을 때는 외국어를 떠올리면서 단어들끼리 경합을 펼치게 하는데, 그게 저한테는 맨날 하는 짓이라서 대단치 않게 썼거든요. 그런데 읽으신 분들이 인상 깊게 보시더라고요. ‘이러고 논단 말이야?’ 이러면서. (웃음) 저는 사전 찾는 것도 되게 좋아해서, 단어 하나에서 시작해서 이어지는 단어들을 찾아가면서 보는 것도 좋아해요. 심심할 때 유의어 사전도 찾아보고요.
‘말맛’이 정말 잘 살아있는 책이에요. 그 맛을 활자로 고스란히 재현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제가 17년째 카피라이터로 글을 쓰고 있는데, 솔직히 광고 문구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글이에요. 유튜브 볼 때 광고 나오면 다들 싫어하잖아요. 기본적으로 광고는 사람들이 안 보고 싶어 하는 글이고 ‘내가 광고를 당했다’라고 생각하는 글이라서 굉장히 맛있게 써야 돼요. 안 그러면 아무도 안 먹어주거든요. 굉장히 맛있는 설탕을 막 뿌려서 떠먹여 줘야 돼요. 그리고 한입에 쏙 들어가야 돼요. 길게 늘어지면 관심을 끊어버리니까요. 저한테는 그게 훈련이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글을 쓰면서 ‘지금 재밌나? 템포 안 떨어졌나? 사람들의 집중력이 안 흐트러졌을까?’를 판단하는 게 체화돼 있어요. 아니면 ‘너무 어렵지 않나? 여기에서 헷갈리지 않나? 이중적으로 이해돼서 사람들의 주의력이 산만해지지는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글을 쓸 때 말을 너무 많이 고르게 되는 거죠. 기본적으로 그런 훈련이 돼 있어서, 거기에서 ‘말맛’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광고의 언어’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시의 언어’는 어떤 것 같으세요?
시를 처음에 배웠을 때 되게 놀랐어요. 수업 첫 시간에 선생님이 ‘시는 진상하는 글이 아니다, 바치는 글이 아니다’ ‘시는 소통하려고 쓰는 거 아니다, 시는 아름다운 불통이다’라고 하셨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광고랑 정반대잖아요. 광고는 바치는 글이고 쉽게 써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글인데, 시는 소통하려고 쓰는 게 아니고 ‘아름다운 오해를 낳기 위해 쓰는 글, 우리에게 초대하는 수수께끼’라는 거예요. 너무 달라서 더 반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광고의 언어와 시의 언어가 완전히 다른데, 작가님은 둘 다 잘하시니까 ‘사기캐’라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웃음) 광고에서 시로 넘어갈 때 저도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사실 처음 시 수업은 엄청 거만한 마음으로 갔거든요. 그때 광고회사에서 일한지 7~9년차 될 때라서 ‘나는 준 프로인데’ 생각하면서 갔어요. 그런데 시적인 글을 못 쓰는 거예요. 너무 광고적 글쓰기가 체화돼서. 아름다운 불통을 해야 되는데 제 글은 너무 친절하고 쉽고, 그러니까 시적이지 않은 거예요. 그걸 내려놓는 데 5년 정도 걸렸어요. 등단하기까지 5~6년 걸렸는데, 그 시간 동안 시적인 글쓰기를 새롭게 익히는 과정을 거친 거예요. 지금도 광고 일에 몰입하는 시기에는 시를 못 써요. 동시에는 못 합니다.
광고 회사에 다니실 때는 어떻게 시를 쓰셨어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자고 일어나거나 술을 마시거나, 그렇게 하면서 뭔가 다른 서버에 로그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같은 자아로는 쓰기가 조금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만화는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래서 만화는 광고하다가도 할 수 있어요. 광고와 만화가 조금 가깝게 붙어 있고, 그 둘과 조금 떨어진 곳에 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앞서 ‘사기캐’라는 말씀도 드렸는데요. (웃음) 에세이, 시, 광고, 만화까지, 어떻게 다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웃음)
(웃음) 분야가 다양하기는 한데, 사실 골자에는 비슷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기본적으로 언어라는 형식에 많이 기대고 있잖아요. 광고 카피는 말할 것도 없고 시도 그렇죠. 만화는 그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연출과 대사와 내용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말풍선을 채우는 것도 글 쓰는 일이니까, 만화에서도 글이 중요해요. 결과적으로는 ‘언어에 어떤 옷을 입히느냐’가 다른 것 같아요. TV를 통해 보여주는지 문예지에 싣는지 말풍선 안에 담는지, 그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다양하지만 많이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책에서 ‘언어 생활자’ ‘창의노동자’라는 말로 스스로를 정의하셨어요. 그 외에 홍인혜라는 사람, 루나라는 창작자를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면 뭘까요?
제가 농담 삼아 ‘창작 관종’이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하는데요. (웃음) 창작하는 것 자체도 좋아하는데 그걸로 소통하는 것, 더 솔직히 말해서 관심 받는 걸 좋아해서 저는 진짜 창작 관종인 것 같아요. (웃음) 제 주변에 창작자들이 많은데, 창작하고 그 이후는 관심 없는 사람도 많거든요. 말하자면 이런 느낌 있잖아요. ‘나는 만들어냈으니까 됐다, 이게 어떻게 유통되든, 사람들이 보든 말든, 몇몇만 봐도 상관없다’ 같은. 찐 예술가죠. 그런데 저는 ‘만들어내는 건 절반은 한 거다, 이걸 발표하고 소통하는 게 나머지 반이다’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이건 개인의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나머지 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안 보여줄 걸 왜 만들어?’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라, 창작 관종이에요. (웃음)
책에서 ‘만 단위의 법칙’이 있다고 하셨어요. “독자의 수가 천 단위에서 만 단위가 될 때 피드백의 양상이 달라진다”고요. ‘호보다 오가 적극적’이라고도 하셨죠. 게시물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댓글을 잘 달지 않지만,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댓글을 단다는 이야기인데요. 현실이 그렇다 보니 ‘창작 관종’으로 사는 게 쉽지 않은 일 같아요.
그걸 수련하는 것도 한 10년 걸린 것 같아요. 이게 딜레마가 있어요. 웹툰 그리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해보면, 사실 댓글이 무서워요. 불특정 다수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런데 플랫폼에서 ‘작가님 댓글을 없애드릴까요?’라고 하면 다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해요. 댓글이 없으면 내 작품을 사람들이 어떻게 봤는지 반응을 전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원하고, 당연히 악플은 누구나 싫어하는 거죠. 저도 똑같은 심리 상태로 쭉 활동을 하다가 어느샌가 ‘내가 반응을 원하는데, 좋은 반응만을 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될 부분이 있으니까,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수련하는 과정이에요. 아직도 작은 말 한두 마디에 너무 흔들리고 마음이 안 좋고 그래요. 단지 마음만 안 좋으면 회복할 수 있는데, 문제는 길을 바꾸는 거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으니까 이제는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죠.
네. 그래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그것은 남은 평생 이어지는 수련입니다. (웃음) 아마 관 뚜껑 닫을 때쯤 ‘이제는 악플도 괜찮아’ 이러면서 죽지 않을까... (웃음)
불투명한 우리는 말을 통해 겨우 투명해진다
‘말’이라는 것이 무용하거나 미약하게 느껴질 때는 없으세요?
저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좋아하는 인간이어서, 말을 좋아하는 것도 작품 발표를 하는 것도 소통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요. 프롤로그에도 썼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우리는 결국 다 남남’이라는 사실이 슬펐어요. 내가 아무리 누군가를 좋아해도 결국 마음 어딘가에 벽이 있어서 완전히 일치될 수는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는 ‘말’이 제일 확실한 무기죠. 글도 다 말이고요. 소통이 힘든 와중에 그나마 갖고 있는 제일 확실한 무기가 말이니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야’ 이런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어요. 만약에 어떤 신이 나타나서 ‘그럼 서로의 마음이 다 들리게 해줄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게 해줄게, 그렇게 할래?’라고 한다면, 그러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저는 ‘언어에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를 어느 정도 감당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 같아요. 한계 없이 모두가 한 명인 것처럼 비밀도 없이 살게 된다면, 개별자로서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아직 『고르고 고른 말』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한 편의 글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글을 권하고 싶으세요?
「손을 떠는 영웅」이요. 저도 그 꼭지를 되게 좋아하고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글의 전반부는 되게 시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고 할까요. 제가 시를 쓰면서 익힌 감성이나 문법을 에세이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하면서 썼어요.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영웅’이라는 단어에 대한 저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라서, 이 책의 언어적인 테마도 정확하게 담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너무 매섭지 않게 마음을 움직이게 해주는 메시지가 있거든요.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뭔가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고요. 제 딴에는 그 세 가지를 다 갖춘 글이라서 생각해서 「손을 떠는 영웅」이 마음에 드는 글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참 ‘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작가님은 이 책에 어울리는 단어로 무엇을 꼽으시겠어요?
‘다정’도 있을 것 같고요. 저는 처음 만화를 그릴 때부터 ‘소심한 사람’의 테마를 계속 갖고 갔거든요. ‘루나파크는 소심한 사람들의 쉼터다.’ 그런데 소심하다는 말이 약간 비난처럼 쓰이기도 하잖아요. ‘야, 소심하게 왜 그래? A형이야?’ 이런 식으로 많이 표현했었죠. 그럴 때마다 제가 ‘나 소심한 거 아니라 세심한 거야’ 이렇게 말했거든요. 이 책을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를 꼽는다면, 저는 ‘세심’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엄청 세심하게 말을 고르고 고른 거니까.
‘아꼬와’는 어떤가요? (웃음) 책에 나오는 말이기도 한데, 너무 잘 어울리지 않나요? (웃음)
(웃음) 후기 중에 ‘아꼬와’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좋다고. ‘아꼬와’의 어원을 찾아봐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어요. ‘아깝다라는 말에서 왔다’든지 그런 말은 없는데, 그런데 느껴지잖아요. ‘닳을까 아깝다’ 이런 느낌이죠. 그 말도 좋은 것 같아요.
책에 담긴 많은 말들 가운데,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마디 말이 있다면요?
“불투명한 우리는 말을 통해 겨우 투명해진다.” 그 구절이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말 같아요. 책의 전체 내용을 담은 말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은 결국 소통이 안 될 수밖에 없는 존재잖아요. 각각의 껍질에 다 들어가 있으니까요. 우리는 다 불투명한 인간인데, 말로 흘러나오는 무언가를 통해서 속에 뭐가 들었는지 엿보잖아요. 그래서 ‘말을 통해 투명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시집을 출간하실 계획도 갖고 계세요?
영원한 꿈이고요. 계획이야 늘 있죠. (웃음) 그래서 2022년 목표는 시집을 내는 것이고요. 시집을 내려면 일단 50편 정도 꾸러미를 갖춰서 출판사를 두드려야 되는데, 그럼 그 50편이 퀄리티가 좋아야 되잖아요. 50편이 있긴 한데 퇴고를 하고 하고 또 하고 있어요. 매년 시를 보는 눈도 달라져서, 작년에 쓴 시가 올해 보면 별로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눈에 맞춰서 열심히 고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의 목표는 50편 꾸러미를 들고 출판사에 ‘한번 봐주십시오’ 이야기하는 거고요. 그러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팬 분들의 애칭이 ‘달토끼’이죠?
네. (웃음)
책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나의 주파수에 공명해줄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 문장이 퍼즐 조각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맞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 쓴다.” 이번 책과 다음에 나올 시집도 달토끼 님들의 ‘주파수’와 맞을까요?
사실 (지금까지의 작품들과) 약간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시가 조금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시는 평소에 즐겨 읽으시지 않으면 난해하게 느끼실 가능성이 좀 높잖아요. 그리고 저의 밝고 희망적인 어떤 부분은 만화나 에세이로 더 많이 풀고, 다크한 부분들을 시로 더 많이 쓰거든요. 불안 우울 슬픔 같은 걸 특히 시로 많이 쓰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조금 놀라실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해요. 일단 ‘낯설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고, 또 하나는 ‘이렇게 어두운 사람이었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달토끼 님들이 큰 애정으로 봐주시니까 막 싫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지만, 시는 워낙 난해하니까 그렇게 반응하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기존 독자 님들도 중요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시인으로서 약간 다른 분들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우리는 모두 입체다」라는 글이 떠오르네요. (웃음)
네, 맞습니다. (웃음) 에세이나 생활 만화나 광고는 그 안에 나오는 자아가 쓰는 사람과 일치하잖아요. 그래서 부도덕한 이야기를 하면 화자가 부도덕한 거잖아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부도덕한 것과는 다른 거죠. 그런데 시는 더 내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시 안에도 도덕이 있지만, 문학의 품에 있기 때문에 허용치가 좀 많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에세이에서조차 밝힐 수 없었던 더 우울하고 무거운 마음은 시로 쓰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제가 전세 사기를 당하고 그 이야기를 <전세 역전>이라는 만화로 그리는 동안 시를 진짜 많이 썼거든요. 그때는 어디에서도 그 복잡한 사연을 말할 수가 없으니까, 그 시커먼 마음을 정리해서 시로 다 쓴 거죠. 그러니까 우울하고 슬플 수밖에 없는 건데, 어쩌면 (보시는 분들은) ‘속에는 저런 마음들이 있었구나’ 싶어서 좀 놀라실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엄밀히 말해서 제 만화를 봐주신 분들이랑 (시집이) 약간 주파수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데 아직 모르죠. 시집을 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발표한 시도 많지 않고요.
독자들이 작가님께 기대하는 바와 다를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것 때문에 고민도 하세요?
기대하시는 바는 기대하시는 분야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를 ‘만화가 루나’로 좋아하시는 분들한테는 당연히 만화로 갚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전세 역전> 같은 콘텐츠도 한 거고요. 조금 더 ‘일상 기록가’로 좋아하시는 분들한테 가 닿기 위해서 『고르고 고른 말』처럼 에세이로도 소통하는 거고요. 그러다 남는 저의 마음은 또 시로 쓰고요. 사실 광고는 전 국민을 상대로 팡 쏴버리는 거고, 에세이는 소수의 독자님들한테 가닿는 거잖아요. 시의 독자는 더 소수이고. 사실 점점 마이너해지는 건데, 그런데도 각각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제가 다양한 ‘주파수’를 쏘는 거죠. 비밀 주파수로. (웃음)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요즘 후기들 읽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되게 꼼꼼하고 섬세하게 써주셔서, 달토끼 님들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웃음) 제가 만화가로서 창작 활동을 한 것도 15년 정도 됐는데, 롱런하는 게 되게 힘든 일이라는 걸 느껴요. 유튜브를 봐도 그렇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다가도 확 돌아서기도 하고. 그런데 15년 동안 계속 창작을 할 수 있다는 게, 계속 주의 깊게 봐주시는 분들한테 너무 감사해요. 독자 분들이 후기나 개인 메시지를 통해서 ‘평생 창작해 주세요, 계속 계속 이야기 들려주세요’라고 말씀해주실 때가 있는데, 그 말씀이 진짜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그런 메시지가 올 때마다 ‘관 뚜껑 닫기 전까지 창작하겠습니다, 고희까지 만화 그리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웃음) 그렇게 계속 계속, 평생 소통하면서 창작하면서 살고 싶고요. 계속 봐주시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인혜(루나) 광고회사 TBWA에서 일했고, 홈페이지 루나파크를 만들어 만화를 그려왔고, 2018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지금은 회사를 떠나 다양한 분야의 창의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여러 마리의 토끼를 쫓느라 늘 힘에 부치지만 모든 토끼가 사랑스러워 걸음을 늦출 수가 없다. 지은 책으로는 『혼자일 것 행복할 것』 『루나 파크 옷걸이 통신』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루나파크』 등이 있다. ▶ 인스타그램 : @lunapunch ▶ 트위터 : @lunapun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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