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지만 답변은 술술 나온다. 천천히 말하는 듯하지만 끝까지 말하는 사람, 박준 시인이다. 얼마 전 그는 부모님의 반려동물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병원이었는데 동물등록제 신청을 하기 위해 온 어르신들이 수의사에게 자신의 아픈 몸에 관해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기가 동물병원인 것을 잊은 채. 박준 시인은 가만히 수의사의 반응을 살폈다. 시인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 수의사는 어르신들께 위로가 될 만한 말을 건네고 있었는데, 문득 그 수의사가 작가처럼 보였다. “어떤 약을 드세요”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말할 수는 없지만 추상적인 위로를 애써 거두지 않는 사람. 만약 시인이 안 됐더라면 그와 같은 수의사가 됐으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박준 시인은 두 번째 산문집 『계절 산문』을 쓰면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이 나”인 사람들을 떠올렸다. 또렷한 위로는 아니더라도 곁에 서서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쓰는 일
촬영을 너무 잘해서 스태프들이 깜짝 놀랐어요.
제가 잘해야 빨리 끝나잖아요.(웃음)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하기로 했으니까요.
어제까지 제주에 계셨다고요.
EBS에서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짧게 제주 기행을 다녀왔어요. 라디오를 미리 녹음하고 가야 해서, 전날까지도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고민했는데 다녀오고 나니까 좋았어요. 힘든 일을 힘들 게 할 때는 싫은데, 좋은 일을 힘들 게 할 땐 좋은 것 같아요. 운동처럼요.
평소 조용히 지내는 듯하지만 잘 살펴보면 활동 범위가 넓으신 것 같아요. 학교 강연도 자주 하시고요.
강연을 일 년에 백 번 정도는 하는 것 같아요. 마치 유명하지 않은 시 홍보대사처럼. 주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는데요.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에너지가 빠진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시라고 하면 보통 추상적이고 재미없고 형이상학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시는 그냥 사람의 마음을 쓰는 거다, 세상에는 시로 이야기할 수 있는 비형식의 다른 세계가 있는데 그게 꼭 문학이 아닐 수는 있다”라고 말하죠. 학생들이 제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더라도 한 문장이라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학교에서 시인을 만나는 일이 드문 일이니 기억할 것 같아요.
최근에 대학에 갔는데 그때 만난 친구가 저를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두 번 이상 만난 친구들이 대여섯 명은 되는 거 같아요.
CBS <시작하는 밤 박준입니다>를 진행한 지 곧 2년이 돼요. 처음 DJ를 제안받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어요?
처음엔 두려웠어요. 라디오 게스트를 해봐서 방송 형식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데 대본을 쓰는 건 다른 일이니까요. 라디오 작법 책부터 구해서 읽고 좋아했던 라디오 프로그램도 찾아 듣고 했어요.
시, 산문과 라디오 대본은 많이 다르던가요?
달라요. 라디오 원고는 왠지 편하게 써도 될 것 같지만 형식이 완전히 달라요. 제가 시를 써온 방식과는 많이 달라서 초반에는 좀 헤맸어요. 그동안 저는 의미를 만든 다음, 그 의미를 다음 문장으로 이어가면서 주어를 바꾸며 글을 썼거든요. 그런데 라디오 원고는 첫 번째 주어가 끝 문장까지 따라와야 해요. 처음 경험하는 종류의 글쓰기인데 산문과 비슷할 것 같지만 다르죠. 라디오 대본을 쓴 게 곧 2년이니까 오프닝과 클로징만 1,400개. 중간에 코너 원고까지 합하면 거의 2,800개의 원고를 썼는데요. 이번 산문집에는 다섯 개만 실렸어요.
심야 방송이라 밤낮이 완전히 바뀌었겠어요.
새벽 2시에 방송이 끝나니까 집에 오면 거의 새벽 서너 시예요. 그때 잠이 들면 점심쯤 일어나서 그날의 대본을 쓰고 산책하고 저녁부터 방송을 준비해요. 가끔 외출을 하지만 이례적인 일이고요. 굉장히 단순하고 반복되는 하루인데 삶이 훨씬 간결해져서 좋아요.
‘시작하는 밤’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시인이니까 ‘시를 쓰다’의 ‘시작(詩作)’의 의미도 있고요. 프로그램이 자정에 시작하잖아요. 자정이라고 하면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만약 속한다면 ‘오늘’일 텐데요.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늦었고 무엇을 마저 하기에는 또 너무 늦은 시간성을 생각해봤어요.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던 기록
『계절 산문』은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 산문을 수록했어요. 3년 전에 나온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졌는데요.
아무래도 글을 쓸 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게 계절, 날씨, 시간인 것 같아요. 첫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두 번째 시집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했는데 이번 산문집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시를 쓸 때는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쓰거든요. 그런데 산문은 기준이 좀 달라요. ‘거짓 없이 쓰자, 자연스럽게 쓰자’가 먼저예요. 주제, 테마, 의도 같은 것이 배제된 상태에서 쓰다 보니 계절에 따라 나누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처음으로 짧은 제목의 책이에요.
『계절 산문』으로 하고 싶어서 출판사에 미리 말씀드렸어요. 이 제목을 꼭 사용하고 싶다고요.
커버는 전작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와 같은 갈색이에요.
제 머릿속의 책은 나무를 떠나지 않는 것 같아요. 종이 형식이든 질감 형식이든, 종이도 나무처럼 결이 있잖아요. 가장 책다운 건 나무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최근 출간된 작가들의 산문, 에세이를 읽으면 코로나 이후의 변화를 자주 언급해요. 그런데 시인님의 산문에서는 조금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코로나 이전과 이후에 수많은 사람의 삶이 달라졌는데 저는 크게 변한 게 없어요. 여행을 가도 주로 혼자 가고 무엇을 보고 써도 거의 혼자 하니까요. 영향이 별로 없어요. 특별히 힘든 것도 없고요.
‘~에게’라는 글이 많아요.
원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글을 편지글로 채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수신인이 명확한 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글도 있더라고요. 모든 글을 편지 형식으로 쓴다면 수신자가 헷갈릴 수 있을 것 같아 포기했어요. 제가 인간관계가 좁고 서툴고 누군가에게는 무심해 보일 수 있을 만큼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정말 없거든요. 서운함을 느껴서 떠나는 사람도 있고 이 특성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분들도 있는데요. 제가 가끔 먼저 연락하거나 전화를 한 번에 받으면 상대가 놀라서 끊는 경우가 있어요.
이게 자랑은 아니지만, 이제 주변에는 제 특성을 이해해주는 사람들만 남아 있는데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 한 번에 잘 못 해요. 아무리 친해도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이 이야기는 너무 창피한 게 아닐까, 혹은 이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가 너무 걱정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 마음이 말 대신 손끝으로 나오는 것 같아요. 하소연하듯 토로하듯 자랑하듯 쓰게 되는데, 이것도 대상이 존재하는 거잖아요. 혼자 자랑할 수 없으니까 실제든 가상이든 수신자가 정해지고 그러다 보니 ‘~에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었어요.
예전에 “편지 같은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고 말하셨죠. 여전히 같은 마음이신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잘 묻지 못해요. 예전에 허수경 선배랑 마지막 통화를 하는데 그때 선배가 통증이 심하셨거든요. 우리 둘 다 이 통화가 마지막이 될 거라는 짐작을 했는데, 제가 ‘괜찮아지실 거예요,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면서도 하나 마나 한 이야기만 계속하는 거예요. 저는 행사를 하러 바닷가 근처에 왔는데 파도가 친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아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하나 마나 한 말들을 하는데,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위로의 방식이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신박한 위로가 존재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십이월 산문」이 생각나는데요. 산사에서 기왓장에 흰 글씨로 자신의 소원을 적는 ‘기와불사’를 유심히 살펴보곤 하신다고요. “아직까지 요행이나 무리한 소원이 적힌 기왓장은 보지 못했습니다”(161쪽)라고 쓰셨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보통 가족의 건강, 평안, 행복을 빌죠. 문득 궁금해졌어요. 2022년 새해, 기왓장을 하나 건넨다면 어떤 이야기를 쓰실지.
‘20만 부 돌파’ 같은 건 쓸 수 없을 것 같고요.(웃음) 은유적으로 쓸 것 같아요. 신도 못 알아보게. 얼마 전에 오은, 김민정 시인과 처음으로 ‘기와불사’를 했는데요. 그때 주위에서 계속 바람이 불길래 “바람이 계속 불길”이라고 썼어요. 무엇을 희망하는 일이 계속됐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2017년 첫 산문집을 출간했을 때 “되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고 말하셨어요. 두 번째 산문집을 펴내는 마음은 어떤가요?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던 기록이라서요. 여전히 부끄럽지만 노력을 했으니 부끄럽지 않으려고요. 아까 사진을 찍을 때도 보셨겠지만 스스로를 좀 덜 괴롭히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나에게 해를 끼칠 만큼 조마조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자신을 괴롭히지도 말고 외면하지도 말고
시인님과 마주해 인터뷰한 게 오늘이 세 번째인데요. 뵐 때마다 편하고 이야기를 잘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사소한 질문도 공들여 생각하고 답하시는 인상이 있어요. 능수능란한 모습도 있고요.
실은 어제 많이 걱정했어요. 그동안 내가 했던 이야기와 다른 변별력이 있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실망하시진 않을까 불안했어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게 되는 불안이기도 할 텐데요. 그런데 이 불안이 빛나는 순간이 있어요. 불안 때문에 무엇을 더 준비하게 되고 스스로 조심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이 불안이 끝나고 나면 자신감이 돼요. 그래서 오늘 아침 촬영할 때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어요.
“불안이 끝나고 나면 자신감이 된다.” 정말 그럴 수 있겠네요. 불안이 많은 사람은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해서 실수를 안 하기도 하고요.
맞아요. 이제는 라디오 생방송을 매일 하니까 떨리는 일이 거의 없어졌어요. 라디오는 초 단위로 움직이잖아요. 기침을 해도 안 되고 3초간의 정적도 있으면 안 되고요.
2020년 인터뷰에서 “세 번째 시집은 7년 후 쓸 것”이라고 말하셨어요. 이제 5년 남았네요.
작가마다 혹은 사람마다 출력하는 빈도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가뜩이나 천천히 출력하는 사람이라서요. 라디오 대본이든 산문이든 하나로만 집중되진 않을 텐데요. 다시 말하면 수압이 약해질 수 있는데 수압이 약해졌다고 전전긍긍하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물이 쫄쫄쫄 흘러나오게 하자, 그런 마음이에요. 예전에는 시가 안 써지면 너무 힘들고 불행했거든요. ‘어, 나 40일 동안 시 한 편도 못 썼어’라고 불안해하면서 계속 핑계를 댔어요. ‘회사를 그만두면 시가 잘 써질까? 이 약속을 나가지 않고 시를 쓰면 써질까?’ 직장 잘못이 아닌데 자꾸 핑계를 만들다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시에 관해서는 더 초연해졌어요.
그렇네요. 수압이 강해야만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죠.
우리가 누군가를 만날 때 꼭 껴안고 있을 때도 있고 손을 잡을 때가 있고 때론 멀어질 때가 있잖아요. 너무 멀어져서 안 보일 때가 있더라도 그 멀어짐을 인정하면 언젠가는 또다시 가까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지금 시가 안 써진다고 완전히 단절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마음을 먹으면 갑자기 잘 써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예상과 다르게 안 써진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런 긍정도 갖고 있고요.
“여름보다 겨울이 글을 쓰기 좋은 계절”이라고 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 몸이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특히 몸이 아픈 계절이 있고 몸이 가벼운 계절이 있는데요. 저는 여름에는 무얼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핑계일 수도 있는데, 겨울이 글쓰기에 조금 더 적합한 조도인 것 같아요.
라디오에서 사연도 받으시죠. 시 처방도 해주시고요. 지금 글을 써야 하는데 너무 안 써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글의 장르가 무엇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요. 어떤 연주곡을 끊임없이 듣는다든가, 내가 뭔가가 잘될 때 조성한 환경을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말고 피하지도 않는 일이에요. 무엇이 안 된다고 할 때, 밥 먹고 와서 한다고 친구랑 커피를 마시고 와서 한다고 잘되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오후 두 시까지 글을 써야 했는데 못 썼어요. 결국 오후 여덟 시에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면 여섯 시간 동안도 일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시간 동안 스스로를 너무 자학하지 말고 마음을 너무 놓아서도 안 되고요. 적당히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고 그렇다고 회피하지도 않고 묵묵하게 견디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오프닝 원고가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세상을 오프닝으로 보면 돼요. 그리고 ‘나는 라디오 작가다’라는 탈을 써요. 지금 카페 안에 유리창이 크잖아요. “유리창이 크면 클수록 바람이 많이 들어옵니다. 동시에 유리창이 크면 클수록 가끔 훤히 보입니다. 유리창의 크기를 어느 정도로 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와, 지금 바로 쓰신 거네요?
네, 그런데 이게 저에 대한 믿음으로 하는 거예요. “나는 잘 쓸 수 있어”가 아니라 그냥 나를 믿고, 시작이 안 될 때는 일단 나를 믿는 거예요. 어긋나더라도 일단 해보는 거죠.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정말 큰 사랑을 받았어요. 부담도 컸을 것 같고 기대도 하실 것 같아요.
첫 산문집을 좋아해주신 분들의 기대에 배신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첫 산문집을 너무 빠르게 가볍게 편하게 읽은 분들에게는 반전도 좀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조금 더 무거워져볼까’라는 생각도 있었고, 좋아하셨던 것들을 좀 더 넣어보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느리게 읽는 사람이 있잖아요. 글에 대한 호불호도 다 다르니까요. 무게 있는 글로 인해 이 산문집을 읽게 되시는 분이 있다면 또 반갑고 감사할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책에 서명해주시는 일을 좋아하시죠. 이번에는 어떤 서명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 끝 등대」에 나오는 문장을 써드리고 싶어요. “불행이 길도 없이 달려올 때 우리는 서로의 눈을 가려주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위로라는 건 이런 것 같아요. 거대한 불행이 찾아올 때, 서로의 눈을 가려주면서 ‘너, 이렇게 보지 마’라고 말해주는 일. 누가 보면 무용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과 비슷한 의미네요.
그럴 수 있겠네요. (웃음)
*박준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 그림책 『우리는 안녕』을 펴냈다. 신동엽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편운문학상, 박재삼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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