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 밴드’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의 밴드 롤링 스톤스가 올해로 결성 50주년을 맞았다. 활동 반세기에 맞춰 그들의 대표곡 50곡을 엄선한 베스트 앨범 < GRRR! >도 막 발표되었다. 이 인터뷰는 유니버설 레코드사 주선으로 올해 10월 영국 런던에서 멤버 개별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인터뷰어는 영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출판인, 방송진행자인 마크 엘렌(Mark Ellen)이다. 롤링 스톤스의 축이자 명콤비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의 인터뷰 내용이다.
믹 재거(Mick Jagger)
새 베스트 앨범 < GRRR! >에 수록되는 신곡 「Doom and gloom」을 만들었다. 모두 함께 녹음실에 다시 모였을 때 밴드를 이끌어주는 주요 원동력은 어떤 것인가.
모두가 같은 템포로 함께 연주해야 하는데, (원동력은) 음악이다 - 내가 연주해야 하고, 또 모두 함께 연주해야 하며, 열정적으로 연주해야 하고, 노래를 익혀야 한다. 모두가 자신의 파트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단 그렇게 하고 나면, 녹음은 일종의 인공적인 수단이어서, 영화와 비슷하다. 텔레비전과는 다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지금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또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단 곡이 준비되면, 그것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볼 수도 있고, 또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볼 수 있다. 물론 막 녹음한 것과 흡사하게 들리도록 해야겠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똑같을 필요는 없다. 실제로 그럴 수도 없고.
처음 녹음했던 이후로 늘 그랬다. 레코딩 스튜디오는 그저 거대하고 훌륭한 도구일 뿐이다. 뮤지션이 연주를 아주 잘 하고, 다른 멤버들과도 잘 협연하고, 모든 것에 있어 합의점에 문제없이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롤링 스톤스는 오랜 기간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쉽다. 항상 함께 창출해내던 그루브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 후에는 각자의 오버더빙을 녹음해 넣어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확 해치우고 바로 끝내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 않다.롤링 스톤스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 비결은 무엇인가.
아주 좋은 질문이지만 결코 내가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한 가지 대답은-꽤 합리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하는데-롤링 스톤스는 출범 이후 상당히 성공적인 밴드의 자리를 유지해 왔으며, 물론 다사다난하기도 했지만, 아주 성공적이고 인기 있는 밴드로 존재해 왔다. 만약 롤링 톤스가 매우 인기 있는 밴드가 아니었다면, 지금 존재하지도 않을 거라 확신한다. 또 중요한 다른 한 부분은 아주 충실한 팬들이다.
항상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 트렌디함을 유지해 왔다. 처음 밴드를 시작했을 때 당신들은 어떤 것을 상징했고, 지금은 어떤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린, 한가한 화요일에 대학생들을 상대로 연주하는 블루스 밴드로 출발했다. 대학생들에게 우리가 상징했던 것은 새롭고 재미있는 어떤 것이었다. 아트스쿨 학생들 앞에서도 연주했다. 마치 ‘컬리지 밴드’ 같았다. 블루스를 연주했고, 리듬 앤 블루스도 약간, 로큰롤도 약간 연주했다. 하지만 주된 장르는 블루스였다. 인기가 더 많아진 후에는 그 모습은 과거가 되어 전혀 다른 모습의 밴드가 되었는데, 아이돌 밴드(teenybop band)가 되었다. 오랫동안, 록음악에 심취한 10대 소녀 팬들을 위한 아이돌 밴드였고, 그리고는 다시 컬리지 밴드가 되었다. (웃음)
우린 많은 다른 모습을 지녀왔다. (지금 내 대답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대답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다. (웃음) 하지만 우린 다른 종류의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의 밴드로 다가갔다. 영국에서 우리를 따라다녔던 15, 16, 17세의 소녀 팬들을 만났는데, 우리 공연에 왔었고, 그들에게 사인도 해주었었다. 『데일리 미러』지에 실렸던 꽤 유명한 사진 때문에 희미하게나마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몇 주 전 소머셋 하우스에서 우리가 가졌던 사진전에서 그들이 다가와 “우리 기억 안나요?”라고 해서, “기억하는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우리가 사인한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우린 아이돌 밴드였다. 그 소녀 팬들이 우리를 ‘반체제적’이라 여겼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린 그저 10대 소녀 팬들의 아이돌이었다.「Let's spend the night together」와 같은 문제작들을 발표한 후로 사람들의 태도가 변화해 왔다. 그 변화에 있어 스톤스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롤링 스톤스가, 분명히, 당시 유행했던 감미로운 조미료(사카린) 같은 음악들보다, 팝음악 전반에 더 솔직하게 접근하는 무리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었고, 가사적으로도 더 직설적이고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더 잘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직접적인 면은블루스에서 단서를 얻었다. 블루스를 아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직설화법과 우리가 택했던 보다 세속적인 주제들은, 우리가 블루스 음악에서 들었던 것들, 밥 딜런과 같은 영향력 있는 작사가들과 많은 연관이 있다.
또한 우리의 동의 아래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영화 < 크로스파이어 허리케인(Crossfire Hurricane) >에 담겨 있어, 당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두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롤링 스톤스와 다른 밴드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반감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으로선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20대의 청년이 그런 야단법석(fuss)의 극히 일부라도,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고, 자신을 그 시대에 맞추는 것 또한 어려웠다. 그 시대에 나를 맞추는 것은 나에게도 매우 어려웠다. 그 모든 분노가 왜 존재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왜 그렇게 많은 야단법석이 있어야 했는지를, 노래를 듣고 겉모습을 보고 이해하는 것도 정말 어렵다. 그렇다, 몇몇 사건들이 있었지만, 우린 사람들에게 기대되는 행동이 상당히 다른 방식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젠 (사람들의) 행동이 매우 개방적이다. 모든 종류의 행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성공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을 이야기해본다면…
우리가 첫 번째 싱글을 만들었을 때,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 싱글이 차트 하위권에 진입했을 때, 하늘을 날 듯한 기분이었고, 그 때가 우리가 마침내 해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영국 콘서트 투어를 다닌 것, 주로 극장에서 공연 포스터 아래에 우리 이름이 들어갔던 것도 ‘성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를 잡았다. 그 전에는 우리를 보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200석의 작은 클럽들에서 공연했었기 때문에, 상당히 단시간에 이뤄낸 크고 거대한 도약이었다. 그래서 우린 곧바로 우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도 더 큰 밴드가 될 거란 사실은 그 땐 몰랐지만,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었다.
50년 동안 계속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는지.
아니다,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한 순간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아마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거다. (웃음)
만약 당신이 20살의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충고를 건네고 싶은가.
“계속해. 넌 잘 해낼 거야. 살아남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웃음)
롤링 스톤스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늘 비난을 당해왔다! < 크로스파이어 허리케인(Crossfire Hurricane) >과 같은 영화를 볼 때,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다.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인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난 여기에서 어떤 기록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매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과거는 잃어버린, 또 아주 잊혀진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왜곡시키는데, 대개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그렇게 한다.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이고, 그런 기억에는 오점이 아주 많다. 그래서 모두가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침대 밖으로 나오자마자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한다 해도, 서로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열 명의 사람들이 영화 속의 교통사고를 보고 일어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실험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 매 번, 완전히, 전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니까 그것을 인생 전체에 반영한다고 상상해 보라.권력층과 수차례 충돌해왔다. 감옥에 가기도 했고, TV에서 주교에게 심문도 받았다. 낡은 가치와 가장 크게 충돌했던 사건은 무엇인가.
석쇠에 구운 주교(grilled bishop)를 좋아한다. 약간의 올리브 오일과 함께 요리해야 한다. 레드랜즈(Redlands)에서의 마약 단속 사건은 과장된 것이었다. 이젠 사라져 버린 < 뉴스 오브 더 월드 >는 당시엔 루퍼트 머독의 소유가 아니었지만, 상당히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다. 사건의 실체는, 아무런 해도 없는 주말 파티였을 뿐이다. 보헤미안적인 부분이 있긴 했지만 뭘 기대했던 건가? 그 파티는 약간 보헤미안 성향이었지만, 확신컨대, 세계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 충격적인 불법행위로 변질되었지만, 사실은 그저 문화적인 주말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사회에 위협이 되는 존재인 것처럼 비춰졌지만, 실제로 우린 교외에서 조용하고 기분 좋은 주말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완전히 왜곡된 사건이었다. 대형 체포 사건이었는데, 이상했던 것은 <타임스(The Times)>였다. 당시 타임스지는 기성 체제의 대들보와 같았다. 다른 신문들과 달랐고, 우리가 지금은 갖고 있지 않은, 미국의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와 비슷한, 공식적인 신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옹호했던 것이 ‘타임스’지였다. 그것은 꽤나 기이한 전환점이었다. 하급 언론들은 마음대로 떠들어대기 바빴던 반면에, 기성 체제의 대들보였던 타임스지가 우리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당신과 키스 리처드의 관계는 ‘결혼’에 비유되어 왔다. 현재 결혼 생활은 어떤가.
사람들은 자주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이 질문이 바로 그 중에서도 가장 멍청한 소리 중 하나다. (우리 관계는) 결혼이랑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키스와 함께 일하고 있고, 또 그를 오랜 시간 동안 알아왔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결혼과는 전혀 다르다. 결혼을 해봤기 때문에 분명히 말하는데, 전혀 결혼과 같지 않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키스와 나는 함께 일하는 관계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는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고, 때로 상대방이 아주 난감하게 굴거나 화를 낼 때도 있다. 하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연주해도 지겹지 않은 한 곡을 꼽는다면.
없다. 때때로 매일 밤 공연하다 보면, 모든 노래가 지겨워진다! 그래서 세트 리스트를 바꿔주어야 한다. 20곡의 세트리스트에서, 여섯 곡 정도만 바꿔주면, 별로 연주하고 싶지 않은 곡이 있더라도 괜찮다.
가장 의미 있는 한 곡을 꼽아 달라.
없다. 언제나 최근 곡들이 가장 좋다.
롤링 스톤스 공연에 필적할 만한 다른 로큰롤 공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로큰롤 공연들을 봐왔는데, 롤링스톤스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심사위원이 아니지 않은가! (웃음) 좋은 공연들이 아주 많다. 롤링 스톤스 공연도 좋고. 우린 최선을 다해서 좋은 공연을 펼치려 한다. 하지만 다른 좋은 공연들도 너무나 많다. 과거에 정말 좋은 공연들에 갔었는데, 앞으로도 (좋은 공연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60주년 계획을 말한다면.
60주년이라…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웃음) 없을 것 같은데! 아주 불확실하다. 보류해 두겠다.
키스 리차드(Keith Richards)
새 베스트 앨범 < GRRR! >에 수록되는 신곡 「Doom and gloom」을 만들었다. 모두 함께 녹음실에 다시 모였을 때 밴드를 이끌어주는 주요 원동력은 어떤 것인가
노래의 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단지 우리가 한동안 함께 작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5년 동안 투어를 하지 않았음을 직면하고, 불안해졌었다. 믹 재거와 나는 몇 가지 노래를 생각해 냈는데, 「Doom and gloom」에 대해 나는 처음에는 “믹, 50주년 기념으로 이건 좀 이상한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롤링 스톤스가 어떤 밴드인가! 언제나 통념에 반하는 밴드였지 않은가. 우리가 만든 노랜 훌륭했고, 가사도 좋은, 사실은 아주 재미있는 노래였다. 한 달 전쯤에 파리에서 「Doom and gloom」과 「One more shot」을 연주했다. 롤링스톤스가 예전에는 그렇게 빨리 노래를 완성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3번의 테이크가 다였다. 서로를 쳐다보며 다른 거 더 있나 라고 했을 정도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고, 롤링 스톤스는 그런 면에서 대단하다. 함께 있을 때의 케미스트리와 에너지란 측면에서.
롤링 스톤스의 어려운 부분은 멤버들을 한데 모으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일단 한 공간에 모아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하면, 찰리 와츠는 드럼 뒤에 앉고, 또 두 대의 기타가 있으면 된다. 이 모든 시간이 지난 후임에도, 여전히 엄청나게 좋은 기분이 된다. 마치 그 공간 안에 다른 누군가가 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 믹이 있고, 내가 있고, 찰리와 론 우드가 있다”고 하지만, 추진력을 주는 어떤 다른 개체가 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든!롤링스톤스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 비결은 무엇인가?
우리가 너무나 잘하기 때문이고(we're damn good), 또 우리 일을 순수하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일할 뿐, 다른 어떤 목적도 없다. 금전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물론 돈을 버는 것을 마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이 밴드의 배후에서 밴드를 이끄는 추진력은 아니다. 나는 가끔 “키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가 궁금해진다. 집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찰리 와츠, 믹, 로니와 함께 연주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어떤 자석 같은 힘이 있다. 어떤 면에선 그것이 이 질문에대한 답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힘이다.
딘 마틴(Dean Martin)이 1964년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당신들을 시큰둥하게 소개하며 “그들은 아마도 무대 뒤에서 서로에게 붙은 벼룩을 떼어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이든 보수층으로부터 받은 그런 식의 대우가 당신들에게 자극을 주었나 어떤 면에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디노(Deano)는 사랑스러운 녀석이고 대단한 술고래다(Deano라고 부른 것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비꼬는 투). 그에겐 하고 싶은 말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의 프로그램 아닌가. 그가 벼룩을 몇 마리나 떼어내야 했는지 궁금하다. 나라면 그런 식으로 사람을 공격하지 않을 거다. 당시에 스스로도 상당히 아마추어였던 나였지만, 그의 발언이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우린 이제 막 시작한 상태였고…롤링 스톤스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나.
실패한 적은 없다. 꽤 긴 징역을 선고 받을 뻔했지만, 그 사건이 오히려 내 행동을 깨끗이 정리하게 만들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였던 것 같은데, 그 때 난 이 실험이 너무 길어져 버려서 이젠 실험실을 닫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모두들 ‘와 심지어 저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라고 했다. 가치 있는 경험이었지만, 내가 ‘파멸과 어둠(Doom and gloom)’을 목격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밴드의 다른 멤버들이 롤링 스톤스에게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설명하기도, 말로 표현하기도 아주 어려운데, 우리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것은, 마이크 및 악기들과 함께 멤버들을 한 공간에 넣어두면 뭔가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린 권총으로 협박당하며 강요당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20살의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충고를 건네고 싶은가?
다신 하지 말라고 말할 거다!
롤링 스톤스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밴드의 강점 중의 하나는 아마도 우리가 아주 알기 쉽다는 점일 거라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 모두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우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이다. 난 지금 다른 멤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내 자랑을 하지는 않는다. 우린 서로를 발견했고, 뛰어난 축구팀이나 멋진 컬렉션과도 같다. 맞는 집단을 찾아내면 기적이 일어난다. 개인으로서의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된다.
롤링 스톤스 공연에 필적할 만한 다른 로큰롤 공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와 보 디들리(Bo Diddly)를 봤다 - 그렇다, 그것이 로큰롤이다! (Yeah, that's the rock and roll baby!) 난 이들을 보고 함께 일할 수 있을 만큼 특권을 누렸다. 뮤지션은, 누구든 간에, 심지어 모차르트라 해도, 자신보다 이전에 존재했던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그 인물처럼 연주하고 싶고, 그 인물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를 능가하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어떤 측면에선 경쟁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자극을 주는 어떤 것에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것에 다가가는 것이니까. 세월이 흘러 결국 그를 능가하게 되고 더 유명해지거나 한다면… 척 베리(Chuck Berry)를 그의 전성기에 무대에서 보는 것. 그런 것이 로큰롤이란 얘기다.
키스 리차드를 아버지로 둔 자녀들에게 반항은 어려운 일이었나.
그 질문은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더 좋겠다. 그들이 반항할 것이 뭐였을까, 아버지를 봐라! 집에서 나는 특별히 반항아로 여겨지지 않았다. 난 그저 아버지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규칙과 존중에 대해 가르쳤다. 내가 배운 것들을 가르쳤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너무 무례하지 않도록. 하지만 동시에 투어를 할 때는 이 규칙의 일부를 잊어버리기도 했다. 사회를 향해선, 무례하게 “네 자신을 봐라, 이 자학적인 멍청이들아!”라고 외치는 걸 좋아한다. 왜냐하면 우린 다 미쳤으니까. 이 세상을 한 번 보라. (투어, 공연 외의) 다른 경우라면 공평하게 해야 한다.
8만 명의 관객의 박수갈채만큼 멋진 소리도 없다고 들었다. 라이브공연은 중독성이 있는가.
그보다 더 멋진 유일한 것은 10만 명의 관객이다. 살면서 여러 가지 것들에 나도 모르게 한두 번은 빠져봤지만,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롤링 스톤스와 연주하는 것이다.
당신과 믹 재거의 관계는 ‘결혼’에 비유되어 왔다. 현재 결혼 생활은 어떤가.
다사다난하다, 그렇다, 물론 5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흔히들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다. 두 명의 아주 변덕스러운 남자가 있는데, 일생 동안 아주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그리고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여전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넌 뭐가 뭔지 알고 있고, 난 뭐가 뭔지 알고 있어. 서두르자.” 우리를 이끄는 무언가가 있다. 때로는 난 그를 싫어하지만 또 때로는 그를 너무나 사랑한다. 마치 형제와 같다, 나에겐 형제가 없어서 그가 내 형제다. 그런 식이다. 그의 마음에 축복을!
< GRRR! >앨범에서 라이브로 아무리 연주해도 지겹지 않은 한 곡을 꼽는다면.
「Jumpin' Jack Flash」는 아무리 연주해도 지겹지 않다. 내 생각에 이 곡은-내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해도, 너무 내 자랑을 하고 싶진 않다-이제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로큰롤 노래 중 하나일 것이다. 믹 재거과 나는 함께 마법을 생각해 낼 수 있다. 두 대의 기타를 가지고 둘러 앉아 “내게 아이디어가 있어”라고 하고는, 둘이서 그것을 연주해 보고 “그냥 소박한 연주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Satisfaction”, 내가 곡을 쓰는 이상적인 방법은 자면서도 곡을 쓰는 거다. 정말 쉽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 건 한 번뿐이었다.
롤링 스톤스의 투어는 늘 기록을 깨곤 한다. 아직 깰 기록이 남아 있는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들이 이제 막 이 기록을 깼어요, 또는 저 기록을 깼어요!”라고 말하면 난 “기록? 난 기록을 깨고 싶지 않은데. 기록을 세우려고 노력한다고!”라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더 많은 것을 달성해야 한다고 보기 보다는, 우린 그저 함께 있고 함께 연주할 수 있어, 우리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할 뿐이다. 난 그것이 놀랍다.
10대들이 롤링스톤스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은가.
모르겠다. 그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삶엔 무엇이 존재하는가? 숨을 쉬는 공기가 있고, 먹는 음식이 있다. 그들에겐 롤링 스톤스가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롤링 스톤스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롤링 스톤스가 없는 세상은 완전한 세상이 아니다.
지난 50년 간 죽 당신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은 밴드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마음에 축복을 빌어드리고 싶다. 그 분들 모두는, 자신들이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었던 것을, 우리가 대신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을 우리에게 주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 같은 것이다.
60주년 계획은 무엇인가.
60주년은 아직 꽤 남아 있다. 50주년은, 이 모든 ‘0’들은, 30, 40, 50으로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다. 60이 있으면 안 될 이유는 없다. 60주년을 맞이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세상을 떠나버렸거나.
< Rolling Stones - (I Can't Get No) Satsfaction (Li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