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행복을 전하는 시인 강원석의 오디오북이 출간됐다. 강원석 시인은 『너에게 꽃이다』, 『꽃잎을 적신 이슬을 모아』 등 총 7권의 시집을 베스트셀러에 올린 인기 작가다. 특유의 수채화 같은 시어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폭넓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그의 시는 가수 변진섭, 태진아, 추가열, 조성모 등과의 협업으로 노래로 다수 만들어져,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번 오디오북 역시 시인이 직접 낭독을 맡아, 일상 속의 행복과 낭만을 전한다. 세상에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인 강원석 시인을 만났다.
어른과 아이들을 위한 시
시인님은 '공직자 출신 시인'으로도 유명하시죠. 20여 년간 국회와 청와대, 행정안전부 등에서 일하시기도 하셨는데, 시인이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두 가지 꿈을 품었어요. 훌륭한 공직자가 되는 것과 시를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는데요. 한동안 공직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매진했는데,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든 고비가 찾아오잖아요. 저도 그 순간을 극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는데 어렵더라고요. 당시 돌파구가 된 게 '시'였어요. 저의 심정을 긴 시로 옮겨서 지인들에게 보냈는데, 다들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 위로받고 싶어서 썼는데, 시 한 편이 누군가를 살리고 인생을 바꾸는구나 놀랐어요. 한 지인의 도움으로 시집을 냈는데 감사하게도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운이 좋았죠.
시가 주는 힘을 느끼신 거네요.
아버지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웃에게 제 시집을 선물했대요. 그런데 그분이 음료수 한 박스를 사 들고 찾아온 거예요. 시집이 마음의 치유가 되어서 우울증을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요. 훌륭한 공직자가 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시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시와 친숙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강연도 많이 다니신다고요.
처음 강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강연장에서 제 시를 읽어드리니까 우는 분도 있고 큰 감동을 받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이 길이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코로나 이전에는 전국을 다니면서 강의를 100회 이상을 했어요. 코로나 때는 강의도 많이 취소되고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니 힘들었죠. 포기하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감사하게도 계속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버틸 수 있었어요.
7번째 시집 『꽃잎을 적신 이슬을 모아』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들로 엮으셨어요. 실제로 시인님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연령대가 다양한데요.
맞아요. 어린 학생들의 팬레터를 많이 받아요. 어떤 중학생은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슬픈 마음을 시로 쓰고, 제게 한번 읽어달라는 메일을 보내왔어요. 제가 장문의 답장을 쓰고 언제든 좋으니 연락해도 된다고 했죠. 나중에 통화를 해보니, 그 아이는 답장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너무 기뻤대요.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진로를 고민 중이었는데 이제 길이 보인다고요.
한 중학생은 「딸에게」라는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메일을 보냈어요. '혼자 외롭게 피어도//잊지 마/너는 꽃이야'라는 구절에서 자존감을 얻은 거죠. 그 학생이 "시인님, 우리 학교에 와서 친구들한테 강연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하더라고요. 조금 고민하다가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해서 KTX를 타고 차로 한 시간 더 달려서 학교에 찾아 갔어요.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 스무 명 정도가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시를 듣고 감동을 받았고, 앞으로도 시인님이 시를 써주었으면 좋겠다'고요. 내가 어디서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앞으로도 아이들, 어른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를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이제 시를 쓴지 7년인데 먹먹하고 아름다운 사연이 많아요. 다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죠.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100번 이상 다듬으신다고요.
시가 읽었을 때 막힘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읽었을 때 부드럽게 이어져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거든요. 그래서 항상 많이 읽고 다듬어요. 그 과정에서 시가 완성되면 굉장히 희열을 느끼죠. 7번째 시집까지 내니 시 쓰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어렵다"는 말이 나오면 계속해서 쉽게 고치려고 해요. 언제나 누구에게든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는 시를 추구해요.
대표시 「햇살 곱게 썰어서」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어요. 가수 추가열 씨와 함께 노래로도 만들어졌는데요.
따뜻한 마음을 나누자는 메시지를 담은 시여서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작년 겨울, 대한적십자사에서 지로 용지에 그 시를 넣어서 전국에 배포하기도 했죠. 일상에서 시상이 떠오른 시인데요. 주말 아침에 아내가 부엌에서 채소를 썰고 있는데, 때마침 창가에서 노란 햇살이 비치는 거예요. 마치 햇살을 썰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생각해 보면 햇살은 따뜻하게 몸을 녹여 주기도 하고 농산물을 자라도록 하는 소중한 것이잖아요. '그래, 이 소중한 걸 사람들한테 알려주자. 햇살을 곱게 썰어서 나만 갖는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과 나눠 보자. 그러고도 남으면 들꽃에게도 나눠주자. 일면식이 없는 존재에게도 소중한 것을 나누고 모두가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자.' 그런 마음을 담은 시예요.
작가님의 시가 오디오북으로도 탄생했는데요. 작가님의 목소리로 시를 들으니 새로운 느낌이더라고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나요?
어떻게 사람들이 시와 더 가까워질까 고민하던 중에, 비크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이 오디오북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쳐 있을 때, 누구나 시를 쉽게 접하면서 여유를 되찾게 하고 싶다고요. 원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데 오디오북을 내려고 출판사 등록까지 했죠. 좋은 스튜디오를 빌려서 20시간 동안 녹음했고, 전문가들이 제 낭독에 배경 음악과 효과들을 공들여 넣었어요. 독자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제작진도 저도 너무 행복해요.
좋은 시 한 편은 좋은 친구와도 같다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계세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를 맡은 거예요. 시인이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곳은 어느 기관, 단체도 없거든요. 그런데 대한적십자사에서 저를 믿고 맡겨 주셨어요. 남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는 따뜻한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제 시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요.
유독 시인님의 시는 노래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요. 변진섭, 태진아, 조성모 등 많은 가수가 시인님의 시를 노래로 불렀는데요.
지금도 써야 할 가사들이 쌓여 있어요.(웃음) 가수 변진섭 씨와의 인연은 정말 우연이었는데요. 어느 날 친구가 변진섭 씨와의 식사 자리에 초대하더라고요. 변진섭 씨가 대표 시가 뭐냐고 묻길래, 그 자리에서 시를 한 편 들려줬죠. 그러니 너무 마음에 든다고 다음에 꼭 같이 작업하자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2년 뒤 변진섭 씨가 연락이 와서 시를 가사로 써줄 수 없겠냐고 하더라고요. 가수나 작곡가는 대중적 인기를 신경 써야 하지만, 다른 한쪽에는 아름다운 노랫말에 대한 욕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주 협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시를 알리고 감동을 전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행복한 작업인 것 같아요.
경주를 테마로 만든 곡 '달빛 경주'는 가수 조성모가 불러 화제였는데요.
경주와는 인연이 깊어요. 코로나 때 대한적십자사 헌정곡 '세상은 기억하리라'를 만들었는데요. 당시 가장 먼저 방역 현장으로 달려가서 봉사한 분들이 적십자 봉사원들이에요. 그래서 그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제가 가사로 쓰고 작곡팀 '알고보니혼수상태'가 멜로디를 붙여서 가수 윤복희 씨가 불렀어요. 그걸 경주 시장님이 SNS에서 보고, 경주 시민을 위한 노래를 써달라고 요청했어요. 사실 이미 경주에 대한 시를 써둔 적이 있었어요. 경주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년 고도인 경주가 너무 아름다워서 '달빛 경주'라는 시를 썼죠. 거기에 '알고보니혼수상태'가 곡을 붙이고 가수 조성모와 인연이 되어 노래로 만들게 됐죠.
최근에는 2021년 처음 발표된 경주를 테마로 한 곡 '천년지애'가 2023년 버전으로 새롭게 나왔어요. 제가 쓴 가사에 작곡가 추가열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인데요. 경주 출신 가수 장보윤이 애절함을 잘 살려서 리메이크했어요. '달빛 경주'도 소프라노 이진희 교수가 다시 불렀고요. 시의 감성이 계속 이어지는 걸 보면서 시인으로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년,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하여 노래 '피카소의 꿈'을 대한적십자사에 헌정하시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어린이를 위한 시를 꾸준히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어른이 되면 살아온 날을 돌아볼 여유가 없잖아요. 다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다가 지치고는 하죠. 그래서 저는 동시를 쓸 때 아이와 어른 모두를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는 꿈을 키우도록 하고,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해요. 우리는 어린 시절을 잊고 살지만, 동시를 읽으면서 이 고통스러운 삶을 딛고 일어서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동시를 쓸 때 너무 행복해요.
싱어송라이터 '모나(MONA)'와 함께 R&B 곡 장르에 도전하기도 하셨는데요.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R&B를 기반으로 한 가수 모나(MONA)의 앨범을 공동 작사했는데요. 저희 딸 또래의 가수분과 새로운 장르의 곡을 만드는 건 제게도 도전이었어요. 그래서 가사를 수십 번 고치면서 썼죠. 노래가 완성된 뒤 가장 먼저 딸에게 들려줬는데"아빠, 노래 가사가 너무 좋은데 누구 노래야?" 묻길래, 아빠가 썼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더라고요. 끊임없이 노력하는 아빠를 존경하게 됐다고 했죠.
시 강연도 많이 하고 계세요. 시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해 주신다면요?
시를 어렵다는 이유는 크게 2가지예요. 하나는 시가 뭔지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저는 시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내 마음속에 있는 슬픔, 기쁨, 즐거움을 짧은 글로 표현하면 그게 시예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가 되려면 공감과 감동을 넣으면 돼요.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2가지를 불러일으키면 훌륭한 시가 되는 거예요. 절대 어렵지 않아요.
두 번째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어려운 시만 읽어왔기 때문이에요. 자신한테 와닿고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 어렵지 않아요. 학창시절 시험을 위해서 시를 배웠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졌던 거예요. 마음에 와 닿는 시를 하나 둘 찾아 읽으면, 시가 점점 더 좋아져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시비가 세워졌다고요.
대정읍에 강연을 가게 됐는데, 초청하신 분이 주민들을 위해서 시를 써 줄 수 없겠냐고 하더라고요. 원래 주제를 정해놓고 쓰면 잘 안 써지는데, 신기하게도 시 두 편이 잘 나왔어요. 그분이 다시 연락이 와서, 시가 주민들에게 큰 용기가 되기 때문에 시비를 세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마음을 담아서 시를 썼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죠.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고, 좋은 시 한 편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거든요. 그래서 독자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마음의 위로를 받고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흔히 우리가 좋아하는 시를 물으면 잘 대답을 못해요. 그래서 정말 좋은 시 한 편 외울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우리 사회가 더 낭만적인 곳이 되지 않을까. 시가 많이 읽히고 누구나 시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강원석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교방초등·창원중·창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정치학과 행정학, 법학을 공부하였다. 법학박사이다. 20여 년간 국회와 청와대, 행정안전부 등에서 일했다. 지금은 어릴 때의 꿈인 시인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열린의사회 이사와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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