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소설가 박서련은 트위터에 '오늘의 결심'을 적었다.
"지금 쓰는 소설 다 쓰기 전까지는 게이밍 노트북 열지 않는다."
3개월간 이 약속은 지켜졌고 2011년부터 구상했던 작품, 단편으로 여러 번 시도했지만 풀리지 않았던 『프로젝트 브이』를 완성했다. 2018년 첫 장편 소설 『체공녀 강주룡』을 펴낸 박서련은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새 작품을 발표했다. 지면이 주어질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 『프로젝트 브이』를 구상하면서는 "능력 때문에 뭔가 막혀버리는 상황을 이야기 속에서는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작품 연재 당시, 한 독자는 "종이책으로 나오면 딸에게 읽히고 싶은 소설"이라고 평했다. 그 독자의 딸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 박서련은 궁금하다.
고통스러울 거라고 예감하고 시작한 작품
얼마 전 집중 효도 캠프를 다녀오셨다고요?
2020년 1월부터 계획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가지 못했던 모녀 여행을 다녀왔어요. 어머니랑 어머니 친구분과 그분들의 따님들까지. 일본으로 다녀왔는데 좀 힘들었어요. 어머니들 취향이 되게 까다롭잖아요. 어머니께서 약속하셨던 대로 전적으로 제 계획에 따라주셨는데, 원래 제가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영역이 되게 적어요. 수동적이고 소극적이고, 제가 선택을 안 하는 스타일인데, 모든 걸 책임지고 결정해야 되는 상황이 너무 힘든 거예요. 여행은 막상 떠나보면 변수가 많이 생기니까요. 스트레스 받는 걸 표 내지 않으려고 되게 노력했는데, 어머니가 제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어요. 그 순간 제가 되게 잘못하고 있다고 느껴지고.(웃음) 그래도 여행은 만족스럽게 다녀왔다고 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제(3월 8일)가 '국제 여성의 날'이었죠. "책 읽는 데 좋은 시기란 따로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연중 가장 『체공녀 강주룡』을 읽기 좋은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일절이 있고 여성의 날이 있는 삼월 초순 말입니다."라고 쓰신 글을 보고 고개를 한참 끄덕였습니다.
기사가 나갈 때는 폐막한 후겠지만 『체공녀 강주룡』을 원작으로 한 창작 판소리극이 올라가거든요. 소리극으로 선보이는 건 처음인데, 대본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겸사겸사 소설도 다시 읽히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작가가 되면 글만 쓸 것 같지만 북 토크도 해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죠. 이번 주말에는 패션 잡지 촬영 일정이 있다고요. 다양한 활동을 소화해야 할 때,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요즘 수영을 다시 배우고 있는데, 수영장에서의 마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수업 끝나기 직전에는 '체력 아직 있어, 한 바퀴 더 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물 밖으로 나오면 기진맥진해서 무릎을 꿇게 되거든요. 저는 행사로 벌이를 많이 보충하는 편이어서 불러주시는 자리마다 감사하고, 촬영이나 인터뷰로 저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도 늘 너무 좋아요. 좋은 말씀 많이 듣고 에너지도 많이 얻게 되는데, 끝나기 직전 '지금 컨디션 정말 좋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지만 끝나자마자 기운이 쭉 빠져서 너덜너덜해지곤 해요. 아무래도 근본적으로는 내향인이라 그런 것 같아요.
『프로젝트 브이』는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거대 로봇 '브이'에 탑승할 최초의 파일럿을 선발하는 대회가 펼쳐지며 시작됩니다. 작가의 말에 "이전의 작업들과 전혀 다른 고통을 내게 주었다"고 하셨어요.
쓰기 전부터 이 작업은 고통스러울 거라는 예감을 갖고 시작했어요. 주인공이 저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점, 제가 너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쓴다는 것이 특히 두려웠고요. 쓰기 전 예상했던 것들이 정확히 괴로웠는데, 괴로움의 정도는 상상 이상이었어요.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 오디션에서 라이벌들을 물리쳐가는 것인지라 왠지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그냥 지고 악수하고 끝나는 친선 게임 같은 게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도망칠 수 없는 싸움이요. 그런데 모두 제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어서 아무도 이 이야기를 대신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특히 고통스러웠어요. 지나고 보니 모두 엄살 같지만요.(웃음)
파일럿 'The first HUN'을 선발하는 신청 자격 요건을 보면 '대한민국 국적의 신체 건강한 남성, 태권도 1단 이상, 해외여행 결격 사유 없을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텍스트로만 보면 되게 평범하게 읽히지만 정말 불공평하거든요. 이 조건을 설정할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알아봐주셔서 감사해요. 정확히 그 느낌을 드리고 싶었어요. 평범하게, 아무렇지 않게 읽어 내려가다가 어? 하고 걸리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작중에서도 남자인 '보람'은 이상을 눈치채지 못하고 '우람'만 멈칫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뭔가에 도전할 용기, 첫걸음을 내디딜 마음조차 막아버리는 벽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패배감을 갖게 하죠.
『프로젝트 브이』를 쓰면서 우람이라는 인물이 약간 재미없는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의심스럽기도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인물의 재미는 떨어져도 이야기는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욕심을 버리고 썼는데요. 의외로 매력적인 캐릭터가 탄생하지 않았나, 독자들께서 대리 만족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가 생각해요.
주인공 우람에게는 '김영만 박사'의 존재가 중요하죠. 김 박사는 어떤 존재일까요?
교수님, 멘토, 존경할 만한 어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담백한 관계 설정을 원했어요. 우람이 자기의 일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사람인 만큼, 김영만 박사는 우람에게 큰 존재감을 지닌 사람이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공유하는 부분이 거의 없어요. 그런 선을 굳이 넘지 않고, 넘어야 할 필요를 서로 느끼지 못하는 사제 관계로 설정했어요. 사실 종사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우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에게는 어떤 조력자들이 필요한가요?
동료, 편집자, 독자? 글을 보여주게 되는 순서대로 말해 보았습니다. 카테고리를 구분하자면 앞서 말씀 드린 대로지만, 사실은 지금 쓰는 그 글을 끝까지 써도 좋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은 것 같아요.
『프로젝트 브이』가 딱 한 권 있고, 작가님 앞에는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딱 한 명의 독자에게 책을 선물한다면 어떤 분께 드리고 싶나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요. 수능 시험, 입사 시험, 각종 고시 등. 굳이 꼭 한 분만 골라야 한다면, 수능을 앞두고 있는 여자 청소년에게 주는 게 어떨까 해요.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가장 재미있게 읽어주지 않을까 해서요. 너무 나쁜 말인가요?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직업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을 시작으로 성경 속 인물, 마법 소녀, 로봇 등 다양한 장르의 인물이 박서련 작가님의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미 존재했던 인물, 소재를 차용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시나요?
『체공녀 강주룡』의 주인공 '강주룡'의 경우 완전히 제가 상상해 낸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에서 빌려온 인물임을 자주 의식했어요. 그럼에도 제가 역사서를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소설을 쓰고 있고, 소설의 주인공 강주룡은 실존 인물 강주룡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늘 되새겼고요. 어차피 실제의 강주룡을 정확하게 재현하겠다는 건 헛된 욕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직후에 『마르타의 일』로 무척 동시대적인 인물 '수아'와 '리아'를 보여준 건 역사 소설 작가라는 이미지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이었어요. 애초에 저는 역사에 대해 잘 아는 편도 아니고요.
여러 장르의 인물을 차용하는 것은 의도한 바일까요?
제게는 기본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되, 이전에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죠. 그러니까 작품마다 많이 다른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 이야기에 녹아 있는 공통된 정서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다르게 쓰려고 해도 '박서련 소설'이라는 점을 숨길 수는 없을 거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이제는 완전히 다른 것을 쓰겠다는 강박은 슬슬 버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어요.
올해 2월 출간된 『제사를 부탁해』는 정영롱 만화가와 함께 쓴 작품입니다. 제사상 코디네이터 '수현'이 하는 일을 보며, 독자들도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 같아요. 내 제사상이 차려진다면 그 위에 무엇을 올리고 싶을까.
얼마 전 북토크를 했는데, 그때도 이런 질문이 나왔어요. 그때그때 대답이 달라지는데 처음엔 닭갈비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어머니가 만든 게장이 생각나더라고요. 간장 베이스에다가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을 넣는 약간 하이브리드 개념의 게장이거든요. 하지만 이 게장을 먹으려면 저희 어머니가 저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 굉장한 불효를 하는 말이기도 해서 다른 걸 생각해 보자면 합정 근처에 '헤이트먼데이'라는 카페에서 파는 '테린느'라는 디저트가 있어요. 꾸덕꾸덕한 브라우니 느낌의 빵인데 적당히 만족할 수밖에 없는 맛이에요.
『제사를 부탁해』는 집필 제안을 받자마자 최단 시간에 수락하셨다고요.
하루도 안 걸린 것 같아요. 저는 기억을 못 하고 있었는데 편집자님이 기억하시기로는 제안 메일을 보내고 몇 시간 만에 답장이 와서 놀라셨대요. 겪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답장을 그렇게 빨리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평소엔 너무 민폐가 되기 전에는 답장해야지 생각하는 편인데, 그땐 제가 엄청 흥분했었던 거죠.(웃음)
정영롱 작가님의 그림 중 가장 좋았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장면은 너무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액자가 활용된 연출이 들어간 그림들이에요. 유령이 된 '정서'라는 인물이 자기 영정을 바라보는 장면, 영정 프레임을 들고 활짝 웃는 장면 등. 캐릭터가 액자와 마주 보거나 액자 속으로 들어가는데, 만화의 칸 또한 하나의 액자잖아요. 액자 속의 액자를 활용하는 영롱 작가님의 연출이 천재적으로 느껴졌어요.
『제사를 부탁해』에 이런 문장이 나오죠. 수현에게 하는 말. "세상에 참 직업도 재수없는 걸 택했다." 소설가 또는 작가는 어떤 직업인 것 같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소설가는 공인은 아닌데 이름도 얼굴도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고, 대중에게 사적인 정보를 노출하게 될 때가 적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직업에 대한 의식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직업의 장점은 작품으로 생각과 말하고 싶은 바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 단점은 과하게 직업에 대한 의식을 많이 하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 이런 직업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생활의 편의를 위해 새로운 직업을 상상해 본 적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아, 약속 중간중간 뜨는 시간에 들러서 낮잠을 잘 수 있는 낮잠 카페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 적은 있어요. 퇴폐 업소 말고요. 낮잠 카페 사장님도 직업이라면 직업이겠죠?
(웃음) 문득 궁금해지네요. 『프로젝트 브이』의 우람처럼 어떤 대회에 나가면 일등을 할 자신이 있나요?
고3 때였나? 자주 가던 미용실에 갔을 때 원장님이 문득 "와, 철원에서 머리숱 제일 많아"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기왕이면 글로 일등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에 좋은 소설가는 너무 많고 재미있는 소설은 더 많아서 운이 아주 따라주지 않는 다음에야 일등은 어려울 것 같고요. 머리숱 대회에서는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도 세계 대회나 전국 대회 규모는 자신이 없고. 제가 사는 동이나 구 정도는 제가 평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웃음)
예전 『마르타의 일』을 쓰실 때, 소설을 쓰고 싶어서 안달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으시죠. 요즘도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나요?
요즘 마음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더 빨리, 더 많이 쓰고 싶은 의욕은 그대로지만 제 몸이 잘 못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몸과 마음의 속도를 맞추는 일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빨리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쓰는 것, 그러기 위해선 무얼 해야 하는가 또한 중요한 숙제가 된 거죠.
작가로서 어떤 제안을 받을 때 가장 기쁜가요?
믿고 아는 사람이 같이 작업하자고 했을 때요. 작가님이든 편집자님이든 기자님이든 원래 아는 분이 저를 한 번 더 찾아주셨을 때가 기뻐요.
내내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망
오랫동안 쓴 일기를 모은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죠. 여전히 일기를 쓰시나요?
일기는 사실 쓰지 못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일기를 제일 많이 쓰던 시기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아무도 소설 쓰기를 시켜주지 않던 때였거든요. 일기 대신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어서 제게는 잘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일기를 쓰지 않은 동안은 생활이 다 휘발된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해요. 한편 요즘 하고 싶은 작업은 제 생활 말고, 다른 주제가 있는 에세이를 쓰는 것이에요. 언젠가 또 다른 에세이를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것도 좋고 사회적인 것도 좋습니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시리즈를 봤어요. 사이비 종교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도 좀 되었는데, 참고로 보기에 좋은 자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 외로 많이 몰입하게 되어서, 시리즈에 나온 교단 중 하나를 요즘 자주 검색해 보고 있었어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렇게도 다른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괴리감 때문에 자꾸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근래 읽었던, 가장 강력하게 좋았던 소설 또는 책은 무엇인가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감명 깊게 보고 오랜만에 단행본을 다시 찾았어요. 어릴 때 스토리와 캐릭터에 몰입하며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창작자로서의 감상을 하니 색다르게 좋더라고요. 이 오래된 이야기의 원형적인 매력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야기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어른이고 해서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전질을 지르고 동생에게도 생일 선물로 사줬어요. 정말 좋아합니다.(웃음)
앞으로 나올 작품을 예고해 주신다면요.
단편 2집이 곧 나올 예정이에요. 1집이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고 있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이들의 이야기였다면, 2집의 이야기들은 한 발짝 공중으로 떠오른 느낌이에요. 저로서는 모험을 많이 해본 단편집이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일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반기에는 <삼국지> '초선'을 주인공 삼아 쓴 장편 소설이 나와요. 격월간 문학잡지 <Axt>에 연재하던 「폐월」 원고를 엮은 것인데, 이 또한 많은 모험을 감행한 이야기라서 독자님들이 어떻게 읽어주실지 기대도 우려도 큽니다.
소설가 박서련이 종국에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마침 요즘 이 질문에 닿아 있는 고민을 주로 하고 있어요. 제가 다음 세대, 다음 세기에도 읽히기를 바라는 '소설가 박서련'의 작품은 무엇인지, 이미 그것을 썼는지... 앞으로 써야 한다면 무엇이 그 이야기가 될지. 아직은 제가 쓰고 싶은 궁극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제가 죽은 이후에도 내내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망은 있습니다.
'박서련 월드'를 각별히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저는 소설을 보아주시는 분들과 이야기할 때 어쩐지 제 집을 둘러보고 가신 분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어쩐지 쑥스럽기는 하지만, 제가 오래 공들여 구석구석 이것저것 갖춰놓은 공간을 보여드린 것 같아서 왠지 부쩍 친밀해진 듯도 한, 이상한 느낌이요. 더 오래, 편히, 즐겁게 머무실 수 있도록 계속 가꾸어두겠습니다. 놀러 와주셔서 감사하고, 또 자주 찾아주시기를 바라요.
등단하고 싶은 마음,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을 오래 품고 있는 예비 작가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건 너무 좋지만 지금 쓰는 이 글을 끝까지 써도 좋을까, 완성해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게 아닐까, 걱정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독자가 아무리 줄었다고 해도, 작가가 아무리 많아졌다고 해도, 당신의 글을 원하는 독자는 분명히 있을 거예요. 어렵더라도 끝까지 힘을 잃지 않기를, 쓰는 동안의 즐거움에 몰입해 주시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래전에 정말로 오래전에 이 소설을 처음 쓰려 했을 때 썼던 첫 문장을 지금도 기억한다. '인간은 왜 탈것에 탐닉하는가?' 십여 년이 훌쩍 흐른 지금은, 탈것일 뿐 아니라 입는 것이기도 하고, 장소이기도 하며, 사용자 자신이기도 한 거대 로봇의 여러 속성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빗나간 질문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는 쓰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이 질문을 기억하는 까닭은, 그것이 바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 이 이야기의 완성을 바라왔는가에 대한."
*박서련 1989년 음력 칠석에 철원에서 태어났다.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겨레문학상과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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