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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다음 인간은 좀 더 겸손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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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사는 지금을 기계문명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고, 기계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변하는 기계는 인간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다소 식상한 예지만 스마트폰 등장 이전과 이후의 삶은 상당히 다르다. 이렇게 삶이 바뀌면 인간의 심리적인 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미래를 다룬 논의 대부분이 기술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간 삶은 어떻게 바뀔지에 초점을 맞췄을 뿐 심리적인 면을 중점으로 다룬 책은 많지 않았다.

 

이나미 심리학자가 쓴 『다음 인간』은 변화하는 사회가 개인의 심리에 미칠 영향을 자세하게 다뤘다. 미래학 책은 대개 통계를 제시한다거나 학계 권위자의 말을 인용한다거나, 대립되는 논쟁을 소개해서 딱딱해지기 십상인데, 이 책은 다소 다른 접근을 취했다. 단편 소설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다음 인간’에 관해 묘사한다. 독자가 쉽고 재밌게 읽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책에서 그려지는 ‘다음 인간’은 현대인과 다소 다르다. 성공하려는 욕구가 없고, 관계 형태도 달라진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약해질 것이며, 핏줄 중심의 민족주의도 옅어진다. 기계 문명의 발전으로 ‘소외’가 대두할 수 있으며, 이런 여러 가지 변화에 답을 주기 위해 종교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주목할 점은, ‘다음 인간’이 100년, 200년 후의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포세대는 무욕적 인간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고, 결혼하는 비율이 줄어드니 가족 이데올로기도 자연스레 약해진다.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고, 대한민국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가 늘어날수록 ‘한국인’ 관념도 바뀐다. 그러니, 『다음 인간』에서 다루는 많은 내용이 현재진행형인 셈.

 

이미 다음 인간이 등장하고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야 늘 같아요. 환자 보고, 책 쓰고. 간간이 방송 출연하고. 그렇게 지내죠.


서문에도 썼지만, 심리학이 개인의 과거에 관심이 있는 학문인데요. 『다음 인간』은 미래를 다뤘습니다.


이전에 쓴 『한국 사회와 그 적들』에서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칼 융은 과거에 머무는 걸 안 좋아했어요. 현재의 고통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라고 했죠. 그런데 조망이 부족해요. 미래학에서 조망하지만, 주로 정치나 경제 쪽 이야기를 하지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게 변할지를 다룬 책이 별로 없었어요.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이 가리키는 게 5년일 수도 있고 100년일 수도 있는데요. 대략 언제를 염두에 두고 썼나요?
 
2010년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상상했던 게 이미 등장하고 있어요. 책에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문제가 된다고 썼는데, 에볼라 바이러스가 그래요. 사람 몸처럼 생긴 인형이 성 파트너가 되는 현상, 화성으로 가는 것 등. 저만 상상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상상한 모습이죠. 속도가 워낙 빠르니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 더 빨리 나타날 겁니다. 책에는 정치ㆍ경제ㆍ환경ㆍ가족 이렇게 나눠서 썼는데요.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사람에게는 어떤 심리적 영향을 주는지 상상해 봤어요. 과거가 유럽과 미국 중심이라면 지금은 중국,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다면화되니 사람 심리도 서구 중심 심리가 아니라 더 다양해지겠죠. 대한민국도 다문화 사회로 가고요. 아프리카 학생이 우리나라 와서 노동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이 베트남 가서 자리 잡을 수도 있어요. 가족이 해체되고 결혼하는 비율이 낮아지겠죠. 결혼하지 않아도 새로운 가족 형태로 구성될 거라 봐요. 이미 셰어하우스 같은 형태가 나타나고 있잖아요.


통계도 인용했지만, 서술 방식이 주로 묘사입니다. 모르는 독자가 책을 펼쳤을 때는 소설책이라는인상도 받을 것 같은데요. 이런 서술 방식은 어떤 목적으로 선택하셨나요.


나 같은 사람은 책을 써야 하고 공부해야 하니까 집중해서 미래학 책을 보지만, 일반인이 그렇게 보진 않아요. 책 쓰는 원칙이 ‘문장은 간결하게, 어려운 걸 쉽게, 기억하기 좋게, 스토리 있게 쓰자’입니다. 에피소드 중심으로 엽편소설처럼 쓰면 독자가 읽기도 쉽고 기억에도 남겠죠. 이 책으로 많은 사람이 미래 인간을 상상해 봤으면 좋겠네요.


책을 읽으면 현재 인간과 다음 인간이 많이 다른데요. 지금 인간이 인간다운지, 오히려 다음 인간이 인간다운지가 헷갈리는데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책 같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이 어떤 존재라 생각하세요.


인간을 알려면 침팬지나 원숭이를 보면 됩니다. 침팬지나 원숭이를 보면, 외부에서 침범해서 자신의 영역이 부서지면 가족 내 폭력이 많아져요. 가정폭력이죠. 권력, 권위주의가 가부장제나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보는데, 사실은 침팬지나 원숭이를 보면 위계질서가 존재해요.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이 먹이를 더 많이 쟁취하기도 하고요. 권력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아요. 권력을 갖고 싶은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있죠. 선하게 쓰거나 악하게 쓰느냐 하는 차이가 있겠지만요. 심리학은 윤리가 아니라 상황을 봅니다. ‘인간은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인간은 이렇다’를 보여주죠. 『다음 인간』에도 윤리적인 선언이나 외침은 없어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


욕망 없는 인간, 재생산은 어떻게?


다음 인간 특징 중 하나가 무욕적 인간, 욕망이 없는 인간인데요. 그렇다면 재생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팽창해야 잘 살 수 있다는 게 신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100억의 미래, 이런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선진국 인구는 정체입니다. 미국은 백인 숫자가 점점 줄고, 20년쯤 후에는 백인이 소수가 될 거라고 전망하죠. 한국민족도 정체할 것이고 그 자리를 이민자가 메우겠죠. 북한에서 온 사람들도 포함해서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인구가 준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인데 비해 미국이 그나마 플러스 성장을 하는 건 불법 이민자를 포함한 이민자 덕이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정책이 비교적 미국에 근접합니다. 한민족이 줄어들어도, 한반도는 계속 갈 거라고 봅니다.


전체로 본다면, 지구가 시름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베리를 인용했는데, 인류가 겸손해져야 해요. 지금 인구수가 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좀 아닌 듯합니다. 특히 선진국 1인당 소비하는 에너지양과 배출하는 쓰레기양이 엄청나거든요. 인류가 저지르는 죄에요. 선진국 국민이 더는 늘면 안 돼요.


무욕적 인간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가톨릭 신자이고 기독교를 좋아해요. 그렇지만 욕망에 관해서는 기독교가 불교나 힌두교처럼 지구 전체로 확장해서 생각하는 면이 없어요. 기독교는 세상이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욕망에 대한 지나친 신화에는 프로이트 심리학도 일조했어요.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기에 정신병이 생기니, 욕망이 자연스레 표출되어야 한다고 말했으니까요. 욕망 표출도 어느 정도까지 해야지, 지금처럼 심하면 우리나 지구에 해롭습니다. 무욕 인간을 부정적으로 정의한다면 의욕 없이 백수로 사는 것 같지만, 자기 욕망을 자제한다는 면에서는 더 성숙한 인간으로 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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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모들 중 많은 이가 타이거 맘, 몬스터 맘, 헬리콥터 부모, 매니저 엄마 같은 별명을 들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자녀들을 뒷바라지한다. 일일이 스케줄을 관리하는 등 모든 것을 간섭하며 오로지 공부만을 강조한다. 이들의 열성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녀들의 삶에 대한 의욕과 회복력을 오히려 떨어뜨렸다. 삶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려 무욕 상태에 빠지는 자녀도 적지 않다. (86쪽)
 

무욕적 자식 뒤에는 열성적 부모가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상담하면서 많이 느끼셨나 봐요.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부모가 의욕이 넘치면 자녀 중 한 명은 반대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상담하다 보면 욕심 많은 부모와 히피 같은 자녀를 많이 봐요. 어쩌면 삼포시대도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전후세대, 해방둥이라고 하죠. 이들은 못 먹고 못 살아서 냉장고도 가득 차야 하고, 뭘 해도 그악스럽게 악착같이 하거든요. 부동산, 주식 등 욕망 가득한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사회가 발전하기도 했지만, 자녀들이 삼포세대가 되기도 했죠.


빌딩주인인 70대 노인이 20대 노숙자에게 죽은 사건이 있었어요. 빌딩주가 20대 노숙자를 계속 쫓아내니까 20대 노숙자가 화나서 할머니를 죽인 거죠. 현대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인데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들은 걸인이 오면 밥상을 차려서 줬어요. 물론 밥을 던져 준 사람도 있지만요. 우리 외할머니도 제대로 차려 줬거든요. 이런 정신이 해방둥이에서는 사라졌어요. 물론 그렇다고 20대 노숙자의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지만요. 어쨌든 삼포세대를 만든 책임은 해방둥이와 베이비붐 세대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너무 심하게 조이고, 몰아붙이니 오히려 아이들은 포기해요. 부모들이 그렇게 사는 걸 보니까 지긋지긋한 거죠.


그럼에도 다음 인간에게서 희망을 본다면.
 
아까는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삼포세대라고 해도 젊은 친구 중에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아요. 예전 386세대는 대학에서는 공부 안 했잖아요. 지금은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요. 부지런한 젊은이가 많죠. 그런데 이들은 자기 가족이나 가문만 생각하는 과거 세대보다는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것 같아요. 가족이 아닌 다른 공동체에서 정체성을 찾고 소속감을 느끼는데요. 예컨대 카페, 동호회, 팬클럽도 그 중 하나겠죠. 나쁘게만은 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가 상당수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나왔거든요. 왜 검은돈을 먹겠어요. 배우자나, 자식을 잘 먹여 살리려고 받죠. 가족이 깨져야 부정부패가 없어질 겁니다. 자식처럼 나와 유전자가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진화한 인간이라면 자기 핏줄이 아닌 사람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상 가족이 사치재가 됐다는 비판도 있잖아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은 배우자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이 부유층의 상징이 되는 것일 텐데요. 실제로 지금도 결혼과 양육에 드는 돈이 많이 드니 결혼을 꺼리는 젊은 사람이 늘고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굉장히 불행한 일이겠죠.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생산은 못하고 소비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사고가 전환되어야 합니다. 교육이 변해야겠죠. 지금처럼 아이를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라고 할 게 아니라 아이도 함께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독일이나 영국은 우리보다 어린 시절에 생산활동에 들어가요. 10대에 직업학교 가는 비율이 높잖아요. 이렇게 되어야, 고학력 백수가 없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10대가 생산활동 못 하는 이유는, 결국은 중소기업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고졸 취업자 처우도 열악하고요. 기업도 바뀌어야 하고, 정부 정책도 변해야죠. 대학을 안 보내도 되겠다, 이런 사회가 된다면 아이 키우는 데 돈도 덜 들 겁니다.


칼 융은 존경할 만한 학자


이나미 저자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신의학과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융연구원에서 분석심리학 과정을 공부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를 졸업, 뉴욕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를 지냈다. 현재 이나미 심리분석 연구원을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 교수와 한국 융연구원 교수를 겸하고 있다.


칼 융을 전공하셨잖아요. 융에 매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세기에 활동한 유명한 심리학자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융은 예외적으로 동양 문화를 깊이 이해한 사람이었죠.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학자였고요. 기계 문명, 대량생산에 반대하고 개인을 중시하는 심리학입니다. 숫자로 따지려 하는 심리학과는 다르게 인간의 무의식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사람을 많이 사귀는 게 아니라 진짜 나를 찾는 데 학문의 목적을 둔 사람이에요. 심리학자로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했으면서도 존경할 사람이 융입니다.
 
융 하면, 노년에 수년에 걸쳐 집을 지은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요. 선생님께는 그런 장기간에 걸쳐 시도할 계획이 있나요.


제 꿈은 소박해요. 경영하는 능력도 없고 정치나 경제에 밝지 않은데요. 제 능력은 환자 보고, 글쓰는 것밖에 없어요. 아, 또 하나. 밥은 잘합니다. (웃음) 누구든지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으면, 늙어서는 좀 소외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곳에서 나무나 야생화를 심어 보고 싶네요. 누가 써주려나 모르겠네요.


그리고 한국 신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가요, 드라마 수출을 한류라고 합니다만, 한국에는 수출할 게 많아요. 그 중 하나가 신화죠.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가 우리나라 민담을 쉽게 해석한 책이에요. 신화는 각 사회 정체성의 근간입니다. 유대인이 야훼부터 시작해서 자기 정체성을 성경에서 찾잖아요. 우리나라도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안 했죠. 예전에는 소중화였고 지금은 미국이나 유럽을 닮으려 한다든지 일본을 쫓아간다든지, 이렇게 바깥만 보느라 우리나라 안에 있는 좋은 이야기를 놓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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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간이나미 저 | 시공사
우리가 흔히 간과하고 있지만, 인간이 만든 기술은 역으로 우리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 책 『다음 인간』은 기술이 우리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하여 앞으로 나타날 ‘다음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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