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증거’, ‘희망 전도사’. 아직도 서진규 저자 앞에 따라 붙는 타이틀이다. 경남 동래군 어촌마을에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쉰아홉에 하버드대 박사가 된 서진규. 1999년 첫 책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강연자의 삶을 살게 된 그가 6년 만에 『희망수업』을 펴냈다. 서진규는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나 혼자가 아니”라고.『희망수업』은 서진규와 그의 독자들이 함께 펴낸 책이다.
서진규는 16년 동안 받은 수백 통의 편지를 토대로 『희망수업』을 집필했다. 우연한 기회에 출연한 TV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면서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유명세를 탔던 서진규. 100여 개의 출판사로부터 에세이 출간 제의를 받고 펴낸 책이『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였다. 이후 2,2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수많은 독자들을 만난 그는 10년 넘게 자신을 괴롭혔던 C형 간염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독히도 긴 치료기간을 견뎌야 했고 우울증도 찾아왔지만, 서진규는 ‘희망의 증거’였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망수업』에는 서진규의 삶을 통해 새 인생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문배달을 하던 여고생에서 국제회의 기획사가 된 윤희정 씨, 서진규의 책을 보고 꿈을 갖게 된 김영미 다큐멘터리 PD, 희귀병을 극복하고 육군 장교로 임관한 김세나 소위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내가 약해지려 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내게 들려주며 차마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내게 던져 주었다. 뜻밖에도 그 책임은 내가 살아가는 또 다른 희망이 되었다. 동시에 지난 15년여 세월 동안 강연장에서 만난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청중과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는 쉽게 거둘 수 없는 해묵은 숙제를 안겨 주었다. ( 『희망수업』 5쪽)
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직업이 있구나
책을 준비하면서 16년간 받았던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감회가 새로웠을 텐데요.
2년 전부터 이 책을 준비했는데, 편지들을 다시 꺼내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더라고요. 제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보내주신 편지들인데, 오히려 그 편지들이 저를 지금까지 있게 만들었어요. 편지를 보내신 분들의 공통점은 다들 정말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고 견뎌내신 분들이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한 70대 남자 분은 “지금 내 나이가 70세가 넘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겠다.”며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한다는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이런 편지를 받으면 정말 흐뭇하고 행복했어요.
답장을 해준 편지도 많았나요?
출판사를 통해 받은 편지들이 많았는데, 일일이 답장을 다 해주진 못했어요. 하지만 “제 책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답장을 썼어요. 그런 마음으로 시도하면 뭐든지 할 수 있거든요.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가끔은 정말 대책 없는 편지들도 있었어요. 읽다 보면 제가 더 속상해지는 그런 편지들. 제 책을 읽었다면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소연만 하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길을 이야기해줬는데 또 물어보면, 이미 이야기를 한 사람 입장에서는 속상하잖아요. 읽으면서 우울했던 편지들도 있었어요.
지난해 TV를 통해 독자 윤희정 씨와의 특별한 인연이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여고생 시절부터 저자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이였다고요.
처음 희정이의 편지를 받았을 때, 희정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젊은 시절의 저와 똑 닮아 있어 답장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죠. 신문배달을 하던 희정이는 꿈이 많았지만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뭔가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1년쯤 지나고 나서, 다시 받은 편지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캐나다로 떠난다는 소식이 있었어요. 악착같이 돈을 모아 꿈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희정이는 지금 국제회의 기획사가 되는 꿈을 이뤘어요. 제 답장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희정이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을 거예요. 그 상대가 저였다는 게, 저에겐 큰 축복이죠.
‘희망의 증거’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와중에 C형 간염으로 10년간 투병 생활을 해야 했을 때는 어떤 심정이셨나요?
병을 앓는 와중에 우울증까지 찾아왔어요. 아픈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고통스럽잖아요. 모든 게 허무하고 의미 없이 느껴졌어요. 그저 죽음이 가장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 한 켠에서는 살아야 한다고 버둥거리는 제 모습이 있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했던 저였잖아요. 사람들에게 전했던 내 삶이 거짓이 되는 건 더 괴로운 일이었어요. 그 때마다 저에게 오히려 희망을 전해준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제가 그들을 구해준 게 아니라, 그들이 저를 돕고 구해준 거였어요. 그래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게 되고, 작가와 강연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셨는데요. 이 같은 삶을 예상하거나 꿈꿨던 거 아니셨잖아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저는 사람들 앞에 서면 물도 못 마실 정도로 잘 떠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대신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얼결에 강연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되게 떨렸는데 하다 보니까 신이 나는 거예요. 여기에 온 사람들이 저를 너무 좋아해 주니까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주니까, 신이 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잖아요. 높게만 느껴졌던 강대상이 이제 너무 편해요. 모든 걸 잊게 만들어요. 강연은 저 한 사람만 좋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가끔, ‘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직업이 있구나’ 생각해요. 이런 일이 제게 주어진 게 감사하고요.
강연 중에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Declare Your Dreams to the Universe!”란 말을 자주 해요. 꿈은 혼자 간직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특히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꿈일수록 남들 앞에서 선포하는 게 중요해요. “나 ( ) 는 이 시간부로 ( )가 되기로 맹세합니다.” 이 말을 듣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그 순간, 그 꿈은 당신의 진정한 목표가 될 수 있어요.
만약 강연자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셨을까요?
박사 학위를 마쳤을 때, 미군부대에 민간인으로 재취업을 할 생각이었어요. 다만 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꾸준히 내고 싶었어요. 1999년 <일요스페셜>을 통해 제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 건데, 만약 이 일이 제게 찾아오지 않았다면 제가 이렇게 강연을 잘하는 사람일지 몰랐을 거예요. 잠재능력을 발견하지 못했겠죠. 이 최고의 능력을 모르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억울했을 것 같아요(웃음).
강연자로 청중들을 만나지만, 저자로서도 독자들을 많이 만나시는데요. 글 쓰는 일은 버겁지 않으신가요?
첫 책을 낼 때, 대필작가에게 부탁하려고 했어요. 제가 글을 쓴다는 걸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한글 타이프도 제대로 못 치던 때였고요. 그 때 중국철학을 공부하던 한국계 여학생이 제 룸메이트였는데, 제가 다른 사람한테 책을 부탁한다고 하니까 막 화를 내더라고요. “선배님, 철학을 쓰는 건데 그걸 누구한테 맡기면 어떡하냐고. 못 쓰더라도 직접 쓰고 고쳐달라고 하는 게 맞다”라고 저를 엄청 혼내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써보기로 했는데, 시작을 하고 나니 멈춰지지가 않더라고요. 10시간을 내리 쓴 날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를 쓸 때는 엉엉 울기도 했고요. 한참을 울고 또 쓰고, 정말 미친 사람처럼 썼던 것 같아요.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요.
놀라운 건, 같은 사건을 두고도 1999년에 돌아봤을 때와 지금 돌아봤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거예요.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시선이 생긴 거죠. 사고 자체가 변한 부분도 있고요. 저는 사람들한테 글을 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 글이 일기여도 좋고 편지라도 좋아요. 또 남에게 보여지고 평가 받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면 더없이 좋아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
지금 스페인어를 공부 중이시라고요.
사람은 뭔가를 배울 때 설레고 희망이 생겨요. 오늘이 내일이고,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면 재미가 없잖아요. 내 삶에 무료해지고 무의미해지는 것 같을 때, 뭔가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보다 좋은 건 없어요. 제가 국내에서도 강연을 하지만, 미국 강연을 가면 청중들이 더 열광해요. 아무래도 제 인생이 아메리칸 드림이니까요. 스페인어를 배우면 미국사회에서 여전히 어려운 여건에 있는 멕시칸을 비롯해 히스패닉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젊은 친구들 사이에 껴서 공부하다 보면 다시 젊어진 느낌이에요(웃음). 재밌고 행복해요.
딸 성아 양이 “엄마의 복제인간을 꿈꾼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성아 양 역시 하버드대에서 ‘정부, 동아시아연구’를 전공했고, 14년째 미군에서 복무 중이에요.
거의 아빠도 없이 자랐고 저는 군인으로 항상 밖에 나가 있다 보니, 제가 다정하고 살가운 엄마는 아니었어요. 다만 딸을 강하게 키우려고 애를 썼어요. 그게 딸에게 도움이 됐다고 확신해요. 딸의 롤 모델이 되기 위해 저를 다그치기도 했어요. 무한한 애정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었고 저는 채찍이 되려고 했어요. 딸은 저를 기쁘게 해주는 게 삶의 목표라도 된 듯 열심히 살았어요. 어렵고 힘든 도전을 일부러 찾아서 했고, 목표에 도달하는 열정도 보여줬어요. 성아는 제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자 가장 친한 친구에요. 이제 곧 엄마가 되는데, 저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부모로서 어떤 조언을 많이 해주셨나요?
인생은 짧고 또 한 번뿐이잖아요. 성공과 명성만이 인생의 모든 게 아니죠. “미래에만 집중하느라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 후회할 일을 가능한 줄이고, 이왕이면 네가 하는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택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줬어요.
4살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들 성욱 군과는 16년 만에 재회하셨어요. 성욱 군은 요리사를 꿈꾼다고요.
성욱이를 다시 만났을 때, 반가우면서도 미안하고 대견하고 고맙고 그랬어요. 여러 감정이 얽히고설켜서 복잡했어요. 엄마로서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성욱이가 거리낌없이 저에게 다가왔어요. 성욱이는 대학을 그만두고 요리사를 꿈꾸고 있었는데,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마로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요. 좀 더 큰 꿈을 꿨으면 하는 욕심이었죠. 그런데 성욱이를 지켜보면서, 사회적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제 관념이 무너졌어요. 남이 인정할 만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가 행복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죠.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한없이 큰데, 건강하고 성실한 청년으로 자라줘서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결국엔 모든 사람의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같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가끔 느껴요. 인생은 참 공평하다는 걸. 분명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나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 은수저가 평생 가나요?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형제의 난을 보면, 돈이 많으면 뭐하나 싶어요. 반대로 어릴 때는 불행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죽을 때까지 돈이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돈이 많다고 어디 다 행복한가요? 유명하다고, 돈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거예요.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살다 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와요. 시험대에 올라서야만 하는 순간도 많고요.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스스로의 선택인 것 같아요. 어려움을 겪고 성공한 사람들은 절실했어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했죠. 하늘은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은 주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큰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 일을 견딜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길 바라요.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길이 보이고, 도움의 손길이 분명 찾아와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에겐 쓰지 않고 버려지는 잠재능력이 엄청 많은데, 공동묘지에 가면 가장 많대요. 안 쓰고 그냥 죽어버렸기 때문인 거죠.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연속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선택은 무엇이었나요?
제 인생은 모든 게 6세 때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진짜 최고의 고통이 왔을 때, 저는 가출을 생각하기도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 시도할 수 없었죠. 온 천지가 절망으로 가득 찼고 피할 방법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 분노할 줄 알았다는 게 제가 가장 잘한 일이에요. 내가 꼭 성공해서 이 가여운 아이를 이 상태로 살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 나 스스로를 돕겠다고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긴 일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아닐까, 싶어요 아직도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던 제 어릴 때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지금도 많이 힘들 때는 그 장면 속 어린 나를 떠올려요. 내가 구해주려던 아이, 지금 내가 쓰러지면 그 아이를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전 다시금 일어설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고통을 보는 법이 달라졌나요.
아이고, 저도 한 인간이에요. 보통 사람이에요. 사람은 모두 약한 동물이에요. 가끔 내가 연예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수많은 악플을 내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저는 잠도 못 자고 미쳤을 거예요. 저도 마음이 약해요. 똑같이 외로워하고 슬퍼해요. 다만, 한 가지 무기가 있다면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예요. 모든 것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하다 보니, 반사적으로 그 힘이 나올 때가 있어요. 노력하려는 것이지, 제가 결코 뛰어난 건 아니에요.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말이 제게는 큰 의미로 다가와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도 있잖아요. 모든 건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어요. 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그 물을 꿀물로 마시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같은 현실인데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을 때, 내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고 주문을 걸어 보면 해결책이 보여요.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말도, 이걸 믿는 마음이에요.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차피 주어진 인생이라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 보는 게 좋잖아요.『희망수업』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귀를 기울여 들어보세요.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볼 것이다’라고 상상해본다면, 인생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어요. 또 다른 독자들 안에서 서진규를 뛰어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희망 수업서진규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희망의 증거’로 불리는 저자 서진규는 가발공장 직공에서 하버드 박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희망과 관련된 저서만 여섯 권(영문판 포함)에 강연회는 2,200회가 넘었다. 그런 그가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방황하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독자와 청중의 편지였다. 저자는 자신이 다시 희망을 찾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느낀 진정한 ‘희망의 힘’을 이 책 《희망 수업》에 담았다. 자신에게 희망을 전해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어디에선가 희망을 갈구하고 있을 이들에게 ‘희망의 기적’을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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