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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노포에서 오래된 것의 가치를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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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인 박찬일을 처음 알게 된 건 청담동에서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였다. 작은 입구에 골목에 위치해있어 찾기 힘들었지만 연일 자리가 없었고, 겨우 예약을 해서 찾았을 때에 신기한 메뉴 이름에 전부 다 먹어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스타셰프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때도 이 셰프가 가로수길의 레스토랑으로 옮긴다면 그곳 또한 사람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양식이라면 소고기 스테이크 같은 것밖에 없던 시절, 문어요리나 돼지고기 스테이크 같은 정통 이탈리안 요리를 한국식재료를 사용했기에 무척 인기가 좋았다.


셰프는 원래 직업이었던 글쓰기 또한 병행했다. 이탈리아 음식 이야기부터 와인까지 다양한 이탈리안 음식 관련 글로 군침을 돋구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개도 파스타를 먹는다는 말에 이탈리아행 비행기 표를 끊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혼났다. 채널예스에도 <보통날의 와인>이라는 칼럼을 연재했었다. 칼럼을 읽을 때마다 와인이 마시고 싶어져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책으로도 구입해서 와인을 마시며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그런 이탈리아 셰프가 이번에는 한국음식에 관련한 책을 냈다. 그것도 오래된 식당, 즉 노포만 다룬 책으로 제목도 『백년 식당』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책에는 한 곳도 백 년이 넘은 곳은 없다. 게다가 표지에는 셰프가 냉면을 먹고 있다. 이상할 법도 한데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 셰프이기 전에 한국인이니까.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가 읽어주는 한국인의 맛은 어떤 맛일지. 이 책 역시 읽는 내내 우래옥은 언제 갈지, 청진옥은 언제 갈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역사가 녹아내려 있는 그의 책은 단지 오래된 맛집의 소개가 아닌 매식의 역사서이자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오래된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안 되는 식당은 음식이 맛없기 때문이다. … 맛있어서 오래된 식당, 그것을 우리는 노포(老鋪)라고 부른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식당 제일 많고 그만큼 제일 잘 망하고 그만큼 맛없는 식당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을 버틴 식당이다. 그 세월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5쪽)

 

박찬일05.jpg

 

작가이자 요리사. 절박한 미각의 세대


처음 시작이 궁금합니다. 기자생활을 하다가 요리를 공부하러 이탈리아로 떠나셨습니다. 기자생활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먹고 살려고 잡지사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요리로 전직을 하게 된거죠. 요즘에는 전직이 흔하지만 예전에는 드물었습니다. 그 당시 잡지사는 급여도 좋았고 안정적이어서 사람들이 그만두니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먼저 적성에 안 맞았고, 오래 할 만한 일이 아닌 것 같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습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걸 하지 말자고 생각했었죠.


요리를 선택한 데 굳이 이유가 있다면, 저는 사먹는 음식에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직장이 있던 여의도에 식당들이 많았지만 맛도 별로 없고, 성의 없고, 손님을 사람 대접 안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레스토랑 어원의 뜻은 음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휴양을 얻기 위한다는 뜻이잖아요. 원기를 얻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내 돈 내고 스트레스 받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영화감독 트뤼포가 말한 ‘영화광의 삼단계’가 있지요. 그 중 마지막 단계인, ‘자기가 직접 만든다’가 된 것 같습니다. 음식을 좋아해서 블로그 같은 것을 하다가 음식점 하는 사람 꽤 있습니다. 그런 케이스와 비슷하지만 저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그럼 그 전에는 요리를 안 하셨었나요?


회사 다니느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참. 어머니께서 요리하실 때 요리’행위’를 도와드린 적은 있습니다. 칼을 쓰는 본격적인 ‘행위’ 말고 콩나물 다듬기라던지, 마늘 까기 등 아주 소극적인 참여를 했습니다. 관찰하고 요리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먹는 일’에 대한 갈망이 많은 세대입니다. 제가 자라던 시기는 궁핍에서 벗어나는 때로, 음식이 에너지로 존재했죠. 지금처럼 나라에서 쌀을 대주지도 못했고, 겨우 먹고 살아갔습니다. 생존, 절박한 미각이었죠. 맛있다고 느끼기 전에 일단 배가 불렀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지금도 굉장히 빨리 식사를 합니다. 형제들보다 더 먹으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죠. 물론 우리시대에도 부자고, 잘 먹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먹는 것에 미각을 느낄 겨를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글이 저와 유사한 체험을 한 독자들에게 공감을 받고, 저의 해석이 생명력을 가진다고 봅니다. 오히려 결핍이 생명력을 가지고 온 거죠.


먹는 걸 좋아하셨나요?


네. 좋아했죠. 요즘 세대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자랄 때 많이 먹잖아요. 없어서 못 먹었죠. 저의 미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거친 음식을 먹고 자랐습니다. 나폴레옹 제과점의 롤케이크처럼 진짜 맛있는 빵은 조금 전에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만, 어릴적에는 동네 가게에서 파는 크림빵, 보름달빵 같은 걸 먹고 자랐습니다. 그런 기억들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고요.

 

요리와 글은 둘 다 매우 어렵고 전문적인 일이지요. 요리를 하면서 글도 쓰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박찬일님께서는 어떤 일이 더 재미있으신가요? 어떤 쪽에 더 많은 시간을 쓰시나요?


글 쓰는 것과 요리 모두 잘 하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깜냥, 즉 능력과 시간 안에서 되는 일입니다. 글 쓰는 사람이 취미로 요리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요, 저는 모두 취미가 아닌 전문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둘 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둘 중에 더 애정이 가는 것은 글쓰기입니다. 그런 만큼 더 부담감도 있고요. 예를 들자면 엄마가 둘인 경우이죠. 원래 엄마는 투박하고 새엄마가 좀더 좋지만, 원래 엄마에게는 좀 더 본능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쓰기도 어렵지만 제가 가진 깜냥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직업으로써의 기간은 요리사가 훨씬 길어졌습니다. 기자로 일을 했던 것은 8년이지만 요리사로서는 16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요리는 아직도 어색하고, 가끔 내가 요리사가 맞는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나이 들어 배우면 어색하고 표가 나고 10대 때 배운 외국어는 좀 더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죠.

 

박찬일02.jpg


노포에서 인생을 맛보다


책을 처음 받고 표지를 보았을 때 의아했습니다. 이탈리안 셰프님이 냉면을? 『백년 식당』이라 노포 기행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저는 이탈리아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본질적으로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소견이나 태도, 관심이나 의견은 더 많습니다. 요리사이기 때문에 더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리는 모두 대동소이합니다. 이를테면 스테이크와 설렁탕은 형제입니다. 물리적이나 공학적으로 제조 과정을 보면 형제입니다. 다만 스테이크는 덩어리 고기를 지져서 소스를 곁들여 내는 거고, 설렁탕은 소스를 물에 타고 고기를 더 잘게 썰어 물에 담궈 먹는 차이인 것입니다. 영양적으로 스테이크가 좀 더 고영양이겠죠. 설렁탕은 밥을 말아 먹기 때문에 탄수화물이 더 많고요. 그러나 사실 모두 형제인 음식입니다.


서양요리를 공부하면서 동양요리에 대해 다르게 보는 능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출판사에서 제안이 있었습니다. 요리사가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낸 후배인 사진작가 노중훈씨, 기획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오래된 식당을 탐방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이탈리안 요리에 관련된 책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여정이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차이점이 있으셨나요?


이탈리아 요리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소개하는 글을 주로 썼습니다. 음식 한가지 단품부터 음식 문명에 대한 글까지 씁니다. 그런데 그건 외국인이 바라보는 이탈리아 음식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이 만약 제 글을 본다면 색다른 시각에서 보는구나 하겠죠. 서양음식에 대한 글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이 훨씬 적습니다. 제가 독특한 의견을 표명하더라도 반박할 사람이 훨씬 적고 관심을 갖는 사람도 적습니다. 그런데 한국 음식에 대한 저의 시선 자체는 대부분 (한국 사람들에게) 동의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대체로 제가 하는 이야기는 설렁탕이 언제 탄생했을 것이며, 만드는 법, 음식에 대한 태도, 먹는 이들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야말로 오천만을 대상으로 하는 글입니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것이기에 무척 어렵고 긴장되고 살 떨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얼마나 엄중한 글쓰기였겠어요.


『백년 식당』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정하신건가요?

백 년 된 식당은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백년 식당』이라는 제목은 뻥입니다. 백 년 넘은 식당이 하나도 안 나옵니다. 백이라는 숫자가 그저 아주 긴 시간이라는 뜻으로 쓰인 거죠. 


왜 우리나라에는 백 년 된 식당이 없을까요?

결정적으로 우리 정치역사와 식당역사, 즉 매식의 역사가 짧아서 그렇습니다.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작 자체가 늦었고요. 레스토랑의 형태자체가 자본주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유럽 산업의 태동기에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이동을 하고, 자야 할 곳이 생기고, 돈이 생기니 돈을 쓸 곳을 만들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필요해진 거죠. 우리나라는 그것을 못하고 식민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외세의 영향으로 조금은 생겨났지만 결국은 구한말, 개항, 식민시대를 거쳐왔습니다. 그 때 미미한 시작이 태평양 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겪으며 살아남기 힘들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시기는 식당의 공백기라고 봅니다. 피난을 해야 했고 그러면서 식당이 영업을 못했지만 그것은 기간에 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년 식당이라면 지금 2014년이니 1915년에 생겼어야 하는데 그때 있었던 식당들은 전쟁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거죠. 30년대에 생긴 식당이 거의 최초라고 봅니다. 심지어 식당들이 자기 역사를 헷갈려 합니다. 자료도 남아있지 않고, 그걸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자체가 없었습니다. 잼배옥은 3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상공회의소에 등록된 이름으로 잠배옥이 있습니다. 같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증언할 자료가 없습니다.

이제야 겨우 3-40년된 식당들이 역사를 지키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오래된 식당의 중요성을 이제야 생각하게 된 거죠. 우리는 역사를 지키는 것에 굉장히 형편없었습니다. 사진 또한 없어지거나 안 찍어서 없는 곳도 많습니다. 세무서에 식당들이 등록하게 된 것이 60년대부터 입니다. 심지어 서서갈비는 해방 전후에 생겨났지만 세무서에는 70년대나 되어서 등록되었습니다. 이건 그 식당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관점이 잘못된 거였습니다. 규모가 아주 크고 돈도 잘 버는 삼성그룹 같은 대재벌도 70년대 후반에나 역사를 정리하면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러니 식당은 어떻겠어요. 먹고 사느라 바빴죠. 취재하면서 정말 신기했습니다. 아 우리는 역사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 안 하는 민족이구나 하구요.  


백 년이 될 수 있는 식당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맛있어야 되겠죠.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술이 없어야 합니다. 주인이 그 업을 뚝심있게 지켜야 해요. 그 업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고는 관계 없습니다. 왜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장이 돈 좀 벌었다고 외제차 끌고 돌아다니면 그 식당은 오래 못 갑니다. 


백년 식당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결과론이지만 가장 오래된 식당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면 되는 겁니다. 대중의 기호가 맞아야 하고, 또한 사장이 덕이 있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눈치 안보고 오래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게 정말 좋은 조직 아닐까요? 월급을 다른 곳보다 더 주던지, 정년퇴직이 없다면 여긴 정말 좋은 곳이구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식당들은 반자본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해고를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이걸 미덕으로 보는 관점도 존재하잖아요. 오래된 식당들은 그것의 정반대에 있습니다.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거죠. 75세 노인이 모는 택시를 타면 불안한가요? 그냥 재미있게 타고 안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 그래서 회사도 그런 노인들이 있으면 더 잘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백년 식당』을 읽으면서 오래된 것의 가치를 발견해주었으면 합니다. (식당뿐만 아니라) 사람도 말입니다. 책에서 ‘오래된 식당’을 화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인지, 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봐주면 좋겠습니다. 심지어 일하는 사람도 노인입니다. 노인복지를 담당하는 분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게 나가야 합니다. 노인 쓰는 게 돈도 더 잘 벌고, 일도 더 잘합니다. 그런데 (정년이 넘어가면) 최저 임금도 못 받습니다. 노인들은 지혜가 있는 게 아니라 노동 능력이 있습니다. 


저도 취재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노인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관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인이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났는데 그들 때문에 국가의 활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읽어보면 음식점의 비법 같은 자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취재하시기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신기하게도 비결을 감추는 집이 한곳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여유가 있는 겁니다. 베낀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도 레시피를 물어보면 다 알려줍니다. (그대로 한다고 해도) 절대 그대로 안 나옵니다. 비결을 숨기는 건 꼼수가 있을 때 숨깁니다. 어떤 집은 미원을 쓰면 쓴다고 하고, 안 쓰면 안 쓴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관점 자체가 미원에 민감하니까 언급을 안 했지만 정말 솔직히 다 알려주십니다. 기술은 있겠지만 모두 비밀이 아닙니다. 취재할 때 갑자기 들어갔는데도 부엌이 아주 깨끗하고 사술이 없었습니다. 


비결이라면 굉장히 단순합니다. 좋은 재료와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압축된 공정입니다. 예를 들어 설렁탕을 끓일 때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검증된 압축된 작업을 합니다. 좋은 재료로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맛은 절대 가치가 없다. 꿩 잡는 게 매다. 어떤 맛이 인이 박인 채 기억에 저장되면, 사람들은 그 맛을 최고로 친다. 맛은 보수적이다. 각자의 어머니 손 맛이 전부 최고가 아닐 텐데도 사람들은 어머니의 맛을 찾는다. 익숙한 것에 대한 안심이다. 그런 원리가 할매 국밥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던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더 잘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 욕망을 억제하는 것! 김 씨의 말에 그 요체가 들어 있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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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8곳을 다루어 주셨는데요 평양 냉면이 2곳, 갈비가 2곳, 탕(육개장, 국밥, 설렁탕) 등이 7곳으로 가장 많네요. 탕(국물요리)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보여주는 건가요?

네. 예전부터 탕을 만드는 집이 많았고 거의 다 한식입니다. 탕이 오래 살아남은 건 조리 공정이 단순하기 때문일 겁니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많이 먹었고요. 나이가 들면 탕을 먹기 때문에 새로운 손님들이 계속 창출이 되었겠죠.

밥을 국물에 말아서 먹는 탕이라는 음식을 즐기는 건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우리처럼 탕문화를 붙들고 많이 먹는 나라는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매우 적고 기타 아시아 국가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서 옛날만큼 인기는 못합니다. 요즘에는 먹을 것들이 많아지고 새로운 음식이 대체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기사생활 때 마감을 하고 나면 청진동에 가서 해장국에 소주를 먹었습니다. 편의점 같은 게 없었죠. 그런데 요즘은 야식 먹자고 하면 편의점가서 사발면이랑 소시지 같은 거 사다 먹습니다. 편의점이 탕을 밀어낼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청진옥에게는 사발면이 적인겁니다. 여기에서 먹거리 역사의 변천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집필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드셨던 음식점은 어느 곳인가요?

우래옥에 대여섯 번은 갔네요. 취재하러 간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먹으러 갔습니다. (부산에 있는) 할매 국밥을 네 번이나 갔고 취재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게는 돼지국밥이 생소하기 때문에 그 문화를 보기 위해 더 많이 가게 되었습니다. 


연남 서서 갈비에서 굳은 살에 대한 이야기에서 찡한 경외감이 전해졌습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한 굳은 살이나 흔적이 있으셨나요?

저도 다시 생각해봐도 찡하더군요. 책에 담지 않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서서갈비 사장님께서는 정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었습니다. 부산의 할매 국밥 할머니는 너무 피곤해서 항상 화장이 떠있고, 눈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일년에 나흘- 추석 이틀, 설날 이틀만 쉬십니다. 아침에 나가서 오밤중에 집에 가는 게 그 분의 삶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삼분의 일은 일을 하고, 삼분의 일은 내시간을 보내고, 나머지는 잡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삼분의 이를 식당에 있고 나머지 삼분의 일 동안 자기 일을 하고 잠도 잡니다. 식당이 그 분의 삶인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 것이니 그러겠지 라고 쉽게 말할지 몰라도 그분은 그냥 다른 것을 할 줄 모르는 겁니다. 그분을 볼 때 가슴 아팠고 미안했습니다. 우래옥의 김지억 전무님께서는 아직도 지팡이를 짚으시고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독자들에게 그분이 계실 때 우래옥에 한번이라도 더 가는 것이 살아있는 역사를 목격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1시 반에 리셉션 하시는 태도.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어주길 바라시나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책도 있지요. 이것과도 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노인의 나라는 있더군요. 노포입니다. 노인이 잘할 수 있는 노동이 진짜 많습니다. 서양에서는 노인이 합니다. 접객도 여든살이 넘은 웨이터들이 하구요.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가치를 재발견 하기를 바랍니다. 노인복지에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도 보시면 좋겠습니다.


젓가락으로 먹는 이탈리안 요리


새로운 보금자리 <몽로>는 어떤 곳인가요? 독자들께 설명 부탁 드립니다.

<몽로>는 부담 없이 친구들과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입니다. 격식도 없고요. 양식하면 대부분 부담을 가지고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음식도 이탈리아식 음식이지만 가급적 한국식 재료를 사용해서 편안하게 젓가락으로도 먹을 수 있습니다. 포크와 나이프 같은 도구가 사람을 억압하기도 합니다. 젓가락으로 먹으면 왜 안되나 생각했습니다. 서양의 비프커틀릿, 슈니첼이 일본에서 돈까스가 되어 젓가락으로 먹듯이 그런 양식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음식 문화를 자기 마음껏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젓가락으로 파스타도 먹고 어떤 양식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유일한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개인적이며, 일방적인 존재다. 그건 음식에 있어서도 그렇다. 당신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해 자부하라. 필자는 그렇게 말한다. 음식은 한 사회의 반영이다. 거기에 선과 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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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비슷한박찬일,노중훈 공저 | 중앙m&b
백년식당에서는 맛에 대해 엄격한 두 남자가 고단하지만 기꺼운 발품으로 찾아낸 우리의 100년 식당을 소개한다. 아직 100년은 안됐지만 100년 동안 그 맛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셰프와 여행작가가 맛깔스런 이야기와 미각을 자극하는 사진으로 소개한다. 단순한 식당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와 문화와 향수가 있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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