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쓴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게 된 건 지인을 통해서였다. 셀프 인테리어 쪽으로 유명한 블로거이며『제이쓴의 5만 원 자취방 인테리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국기함을 만들었던 게 그나마 가장 인테리어에 근접했던 활동(?)이었던 필자에게 인테리어는 그렇게 흥미로운 소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쾌한 문장과 재미난 동물 사진으로 가득한 그의 블로그는 이런 나마저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중에 압권은 오지랖 프로젝트였다. 오지랖 프로젝트는 의뢰인이 자신의 자취방을 단장해 달라고 부탁하면 제이쓴이 의뢰인의 방을 의뢰인과 함께 꾸며주는 일이다. 재료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무료. 지금까지 진행한 오지랖 프로젝트는 50여 회를 넘었다. 아니 왜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방을 공짜로 꾸며주는 거지? 제이쓴을 향한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한 가지가 염려되었다. 블로그 그 어디를 봐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나, 인터뷰 진행 조건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로써 제이쓴의 얼굴을 궁금해하는 여러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할 수는 없었지만, 책과 오지랖 프로젝트 그리고 그의 삶 전반에 관해 들어봤다.
신혼집이 아니라 자취방 인테리어인 이유
본명보다는 제이쓴으로 유명하잖아요. 제이쓴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호주에서 생활할 때 외국인들이 제 한국 이름 부르는 걸 너무 어려워해서 지었어요. 한국 이름이랑 비슷하게 제이쓴으로요. 별 뜻은 없습니다.
블로그에서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십분 발휘하셨는데, 책에는 정제된 글만 실린 것 같습니다. 책 만들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아쉬운 부분은 있죠. 블로그 문장 그대로 나오면 좀 더 재밌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런데 그렇게 책을 내려면 독립출판으로 가야겠죠.
재미 없으면 안 한다는 게 인생철학이잖아요. 책 내는 작업은 어땠어요, 재밌었나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책 나오고 나서도 얼마나 책이 많이 팔리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관심 없고요. 책 나온 것 자체가 좋았어요. 굳이 책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도 오지랖 프로젝트 자체가 워낙 제게는 뜻 깊은 일이었어요. 의뢰했던 분들과 이야기하는 게 신기한 경험이고 재밌었으니까요.
월세나 전세로 사는 자취생들에게는 굳이 인테리어를 해서 방을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잖아요. 제이쓴은 어떤 계기로 내 방을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가기 위해 호주에서 한국으로 왔을 때였어요. 집이 천안이고 학교가 서울이니 통학이 힘들잖아요. 방을 얻으려고 둘러봤어요. 처음에는 풀옵션 원룸을 부모님이 말씀하셔서 봤지만 간 데마다 좁았어요. 저는 그런 데서 못 살거든요. 같은 가격으로 다세대주택을 구했는데, 넓긴 했지만 내부는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 이게 시발점이었죠. 인테리어 공부를 따로 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부딪쳤죠.
그러다 오지랖 프로젝트까지 시작했는데요. 오지랖 프로젝트가 싱글족을 대상으로 했잖아요. 신혼부부까지 범위를 넓혀도 될 것 같은데요.
신혼집은 재미 없을 거 같아요. 신혼집은 돈 내고 해야지, 왜 제게 부탁해요. (웃음) 오지랖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어쨌든 제가 싱글족이잖아요. 당연히 관심사가 싱글족이죠. 대개 싱글족은 20대에 대학을 서울로 와서 혼자 사는 기간이 10년 정도 됩니다. 빨리 결혼해야 서른인데, 그렇다고 이들에게 신혼집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충 살라고 하는 건 너무한 일이죠. 특히 이때에는 한창 20대 감성도 있을 테고, 꾸미고 싶은 시기거든요. 큰 비용 들이지 않으면서도 만족하고 살 만한 집을 다들 원해요. 그런데 방법을 잘 모르죠. 오지랖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여기 있죠.
오지랖 프로젝트의 본질은 결국 관계
블로그가 유명해지면서 프로젝트 문의가 참 많이 오잖아요. 따로 공지까지 올릴 정도인데, 어떤 기준으로 의뢰인을 정하나요?
특별한 기준은 없는데 워낙 신청글을 많이 읽다 보니 제 이목을 끄는 사람이 보여요. 예를 들면 그냥 도와 달라는 것보다는 지금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집을 바꿔서 기분 전환해보고 싶다는 사연이라든가 지방에서 처음 와서 갖는 나만의 공간이니 특별하게 꾸미고 싶다 이런 이야기, 제 가치관과 부합하는 사람을 선택하죠.
자취방 하면 꼬질꼬질함이 연상되는데요. 실제로 다른 사람의 자취방에 가 보니 어떤가요. 여성과 남자,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나요?
요즘 의뢰하는 사람은 남자가 훨씬 더 많고요. 모든 자취생은 똑같아요.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깨끗하죠.
제이쓴은 어때요? 인테리어 좋아하니 깔끔할 것도 같은데요.
저는 장난 아니죠. 털털함의 아이콘이에요. 집 들어가면 X판이에요. 요즘은 특히나 치울 시간이 없으니 지저분해요.
오지랖 프로젝트 하면서 의뢰인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다거나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거나 하는 힘든 점은 없었나요?
없어요. 어차피 취미 생활이라 즐겁게 했죠. 제게 정해진 일정이 있다면, 그 중간에 오지랖 프로젝트는 끼워 넣기만 하면 되니까 일정 조절도 힘든 게 없었죠. 이건 초기 이야기인데요. 아직 제 이름이 많이 알려지기 전에는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니 불러 놓고 주민 등록증을 보여 달라는 사람은 있었어요. 작업하는 데 TV 보시는 분도 있었고요. 그럴 때는 못하겠다고 말씀드리고 그냥 안 하고 나왔어요. 그런 분들에게는 제가 할 줄 아는 것도 해드릴 수 없어요. 반대로 제 가치관과 맞는 사람과는 제 능력 밖인 일도 해드릴 수 있더라고요.
오지랖 프로젝트 하면서 좋았던 점은 뭐에요?
별 생각 없이 시작한 블로그가 많이 알려지면서 책으로까지 나왔는데요. 기본은 사람, 관계였어요.저는 지방 사람이라 서울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혼자 살 수는 없잖아요. 야학도 하고 소방 대원도 하고 오지랖 프로젝트도 해서 지금은 사람 부자가 되었어요. 오지랖 프로젝트를 하면 그 분들이 제게 많은 걸 말씀해주세요. 인테리어 하면 속옷까지 다 봤으니까, 제게 숨길 게 없잖아요.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아무리 좋은 성장 배경과 좋은 직장을 다녀도 아픔 하나씩은 다 있잖아요. 결혼 엎어진 이야기 등등 저에게 다 해 주시거든요. 본받을 일도 많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어쩌면 저는 주변 사람이 아니고 관계 없는 사람이니까 어떤 이야기를 해도 퍼질 일이 없잖아요. 이상하게 보지도 않을 거고요.
그렇게 알게 된 분들은 지금까지 만나기도 하고요. 어느 동네에 가서든 커피 한 잔 사 주세요, 하면 다 나오세요. 이런 관계가 참 좋아요. 그리고 자취방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이 제게는 도화지에요. 하나가 끝나면 그게 저만의 예술 작품인 거죠. 작품 하면서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지만 좋은 정도가 싫은 것보다 많으니까 계속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오지랖 프로젝트는?
구세군 후생원 프로젝트죠. 그 친구를 위해 200명 넘게 도움을 주셨어요. 제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를 믿어 주신 거죠. 생필품, 젯소, 페인트 도움 정말 많이 받았죠.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해요. 단순히 돈 벌고 밥 먹고 살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영향 줄 수 있다는 게 축복 받은 인생이죠.
오지랖 프로젝트는 언제까지 할 계획이에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에요. 제가 만일 돈이 정말 많아서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겠죠. 그런 게 아니니까요.
자취생이 집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요소는?
채광, 환기가 제일 중요해요. 사람이 햇볕 안 보고 살 수 없거든요. 오지랖 프로젝트에서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반지하는 답이 좀 안 나와요. 꼭 반지하에서 살아야 할 상황이라면, 그중에서 도 지반이 높거나, 창문의 2/3라도 지상을 바라보는 그런 곳을 추천합니다.
책을 보고 스스로 인테리어에 도전하는 자취생들이 많을 텐데요. 이건 정말 생각보다 쉽다, 제이쓴이 본 책만 보면 된다, 이런 인테리어를 몇 가지 꼽아주신다면.
도배요. 그리고 커튼 다는 것도 정말 쉽죠. 디지털도어락 달고 해체하는 것도 쉬워요.
결국 인테리어가 창조이고 예술이잖아요. 필요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해외 자료 많이 찾아 봐요. 저는 휴대폰은 거의 안 보는 편인데, 주변을 많이 보죠. 절에 가서 앉아서 명상도 하고요.
제이쓴, 이렇게 산다
오지랖 프로젝트 외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시잖아요.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업무 보고, 낮에는 보통 인테리어 자료를 찾아 봐요. 매주 월요일에는 봉사활동 가고요. 의용소방대원 출동할 때도 있고. 당연히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요. 누군가가 그렇게 열심히 포스팅하는 게 안 힘드냐고 묻는데, 제게는 일과에요. 밥 먹는 거 어려워요? 맛있게 먹으면 되잖아요. 포스팅도 즐겁게 하면 돼요. 저는 블로그가 재미 없어지는 순간, 안 할 거예요.
이번 인터뷰도 그렇지만, 얼굴 공개를 안 하시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얼굴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공인도 아니잖아요. 블로그 초반에는 셀프 인테리어 때문에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어요. 왜 그렇죠?
그럼에도 독자와 만남을 했잖아요. 몇몇 독자는 제이쓴의 얼굴을 알게 되었는데요. 독자와 만남 현장은 어떤 분위기였나요.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다는 말 정말 많이 들었어요.
자유로운 영혼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 제이쓴의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며칠 전에도 부모님과 심하게 싸웠어요. 다른 부모님이 그렇듯 자식이 안정적인 직장 얻고 결혼해서 아기 낳고 하길 바라세요. 저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사는 데 관심이 없어요. 저는 이기주의자이기보다는 개인주의자이고 행복주의자입니다. 저는 행복한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스펙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데,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다 보면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말 있잖아요. 재밌어서 했다고.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아요. 최고의 영감과 동기 부여는 재미라니까요.
재미를 추구하시잖아요. 요즘 새로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딱히 없어요. 지금은 여행 가고 싶어요. 1년에 1번씩은 가려고 했는데, 쉬는 날이 없다 보니 못 가고 있어요. 저는 여행할 때 마음에 드는 곳이 떠오르면 여행지에 관해 알아보지 않고 바로 떠나요.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게 옷 버리고 현지에서 옷을 사서 갈아 입고요. 현지인처럼 생활하죠. 그게 여행이죠.
그리고 기숙사 1층 느낌이 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보통 사람들이 기숙사 1층을 좋게 기억하더라고요. 십시일반 돈 모아서 치킨 시켜 먹고 같이 TV도 보고, 서로 살아온 이야기도 하는 공간이요. 제 집을 시험 삼아 해 보고 싶어요. 작업할 공간이 필요해지니까 작업실 겸 카페로 만들고싶은 마음도 있어요. 향후 5년간 꿈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이쓴의 5만 원 자취방 인테리어제이쓴 저 | 들녘
‘자취방 인테리어 인텔리’ 제이쓴이 제시하는 유니크하고 판타스틱한 ‘자취공간 리노베이션’! 3만 원으로 ‘블랙&화이트’의 모던한 싱크대를 창조하고, 7만 원으로 자취방을 카페로 바꿔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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