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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 서현진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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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구석에 처박힌 낡은 수세미가 된 느낌

성공에 대한 의지와 에너지, 거기에 운까지 따랐던 20대의 나는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날들을 만들어갔고, 계획대로 멋진 30대를 맞이할 거라는 데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중략) 그리고 맞이한 서른. 이미 10여 년 전에 야심차게 세웠던 멋진 서른 맞기 프로젝트 속 내 모습과 달리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여자가 거울 저 너머에 있었다. (프롤로그 중)
서른 즈음이 되면 여자들은 혹독한 몸살을 앓는다. 거의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좋을 만큼 십중팔구 그러하다. 원인은 상당히 복합적이다. 이제 꽃다운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말하는 사회적 통념, 그 영향으로 ‘나도 이제 늙었나봐’ 생각이 들면서 찾아드는 서글픔,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무언가 이뤄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 중에서도 결정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다. 이따금씩 ‘내가 꿈꾸던 서른의 모습이 이런 거였나’ 자문해 볼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이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청춘의 황금기라는 20대,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절도 생각했던 것만큼 찬란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서른은 다를 줄 알았다.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어 만족할만한 수준의 연봉과 혼자 힘으로 마련한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사랑에 있어서도 진짜 멋있는 남자를 알아볼 줄 아는 안목이 생겨나고, 그들과의 연애에서 당당하고 여유 있는 태도를 잃지 않는 매력적인 여자가 될 거라고 꿈꿨다. 하지만 서른의 날들이 시작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직장 내에서 커리어는 쌓았지만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경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쟁쟁한 경쟁자들은 오히려 늘어났다. 그들은 20대 때의 나보다 더 뛰어난 스펙을 자랑하며, 내게는 시들해진 패기와 젊음까지 가지고 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월급은 만족스러운 수준이 되지 못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은 요원하다. 이렇듯 서른은 기대와 현실 사이의 낮은 싱크로율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로 인해 끊임없이 흔들리고, 또 중심을 잡아가는 사이 시간은 흘러간다.

아나운서 서현진에게도 서른은 그렇게 찾아왔을까.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안의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서현진의 서른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국가가 공인한 미녀일 뿐만 아니라 스물다섯의 나이에 MBC의 아나운서가 되면서 지성까지 인정받은 그녀가 아닌가. 미모와 능력 모두를 겸비한 그녀에게 서른은 꽤 아름다운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서른의 성장통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직장생활 5년차, 반복되는 업무는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였고 그 안에서 자신을 새로 채울 틈 없이 소진하기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는 ‘물이 바짝 말라서 흉하게 비틀어져 싱크대 구석에 처박힌 낡은 수세미가 된 느낌’이었다고 적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서른 살의 나에게 마음속으로 물어본다. ‘현진, 너 행복하니?’ 한참을 기다려도 또 다른 나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들여오지 않는다.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잔뜩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벽 쪽으로 돌아앉아 있는 내가 보인다. 축 처진 어깨에 구부정한 등을 보니 많이 지쳐 보인다. ‘왜 그래…… 너 힘드니?’ 나는 가만히 또 다른 나의 등 뒤로 다가가 두 팔을 벌려 살포시 끌어안는다. (p. 16~17)


어떡하지, 내 서른 왜 이렇게 초라해?

화면 속의 그녀는 언제나 여유가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전해주었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를 지켜야 하고, 동료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반적인 직장에서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 그로 인해 중단해야 하는 커리어 사이에서 갈등하듯이 그녀는 여자 아나운서로서 가지는 한계 때문에 고민했다. 9시 뉴스의 남자 앵커는 연륜이 깊은 중년을 선호하면서도 그 옆의 여자 앵커는 젊어야만 ‘보기 좋은 그림’ 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의 편견, 그 결과 40~50대 여자 아나운서의 활동이 극히 적은 현실.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함께 늙어가는 아나운서로 남을 수 있을까, 그녀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그 시간들 가운데에서 서현진 아나운서는 마치 운명처럼 팝페라 가수 키메라(김홍희)와 만났다. 당시 그녀가 진행을 맡았던 프로그램 <네버 엔딩 스토리>가 계기가 되었다. 성악을 전공하던 유학생에서 ‘팝페라’라는 새로운 장르의 가수가 되기까지 끊임없는 도전을 해왔던 키메라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꿈을 갖고 살아 현진아, 그리고 나중에 나처럼 나이 먹은 후에도 지치지 말고 계속 또 다른 꿈을 가져. 멋진 남편도 아니고 그럴 듯해 보이는 네 직업도 아닌 그 꿈이 네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 거야.” (p. 64)
꿈을 가지라는 키메라의 한마디는 서현진 아나운서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했다. 아나운서로서 5년 후, 10년 후의 삶을 고민하던 그녀는 버클리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서른의 나이, 직장 내에서 커리어를 견고히 하거나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 할 시기에 유학을 떠난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 그녀 자신과 주변의 우려가 뒤따랐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이 아니면 영영 용기를 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 가고 싶다는 자기 안의 목소리를 따라 떠남을 선택했다.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은 그 시간들의 기록이다. 유학을 떠나기에 앞서 노트 한 권 빼곡히 꿈을 적어 내려가던 시간들부터, 미국에서 홀로 2년 동안 공부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취재 기사를 작성하며 저널리즘을 공부했던 시간들까지, 그녀가 수많은 고민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아갔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쓰신 건가요?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해서 두려움도 있을 테고 기대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생각들이 있잖아요. 저는 서른이 그렇게 끔찍한 나이도 아니고 대단한 나이도 아니고, 그냥 순간순간 즐기고 최선을 다하면서 지내면 충분히 멋진 나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러지 못했거든요. 서른이 되면 큰일 날 것 같고 ‘어떡하지, 내 서른 왜 이렇게 초라해’ 이런 생각들 하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서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4년이 지나 서른넷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어린 나이에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싶은 거예요. 아마 지금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서른들이 너무 많을 거예요. 그러지 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웃음). ‘서른에 난 되게 특별할 줄 알았는데 내가 이래?’ 생각이 들겠지만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것만으로도 훨씬 더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시행착오도 덜하고요.

평소에도 글을 쓰면서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을 좋아하시나요?

예전에는 완전 싫어했었는데 좋아하게 됐어요(웃음). 저는 미국에서 2년 동안 공부하면서 글 쓰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미국에서 존경을 받는지 알게 됐어요. 저널리즘 스쿨 안에서도 글 쓰는 아이들을 보면, 생각이 논리적으로 잡혀있고 제일 똑똑하더라고요. 그만큼 글을 논리적으로 쓰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쓰는 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저널리즘 스쿨에서 글을 쓰고 그걸 고치고 다듬고, 구조를 바꿔보고 얼개를 풀어보는 과정을 연습하면서 매력을 알게 됐어요. 글과 마찬가지로 방송도 나를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방송은 종료되면 끝이거든요. 아무리 영상으로 남아있다고 해도 그걸 누가 다시 보겠어요. 그런데 글은 방송보다 훨씬 더 깊이가 있고, 굉장히 보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20대로 돌아가고 싶긴 하지만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서현진 아나운서가 그리던 서른의 모습은 어땠나요?

저는 서른쯤 되면 모든 게 다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인생의 노선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결혼도 했을 것 같았고 여러 가지 경제적인 부분, 그리고 직업에 있어서도 그렇고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전의 여자 나이 서른이면 지금이랑은 너무 다르지 않나요? 결혼 적령기도 훌쩍 올라갔고요. 지금 서른들은 예전의 20대 초중반 정도도 안 되는 것 같아요.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감정들도 그렇고, 사회에서의 위치도 그렇고요.

책에서 ‘우리가 서른이란 나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닐까’라고 적으셨는데, 그런 사회의 분위기나 시선들에 반발감을 가졌던 적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완전 억울해 하는 스타일이죠. ‘왜 여자한테만? 왜 대한민국이라는 이 좁은 나라에서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사실 미국에서 2년 동안 공부하면서 나이에 대해 인식하거나 압박을 느낄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곳의 학생들은 제가 한국에서 온 방송인 출신의 저널리즘스쿨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몇 년 생의 누구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몇 년 생인지, 몇 살인지 부터 물어보잖아요. 그렇게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 30대 초반의 황금 같은 2년을 보내고 한국에 왔더니 서른셋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동안 주변의 여자 친구들 대부분이, 정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결혼했더라고요. 제 주변에서는 너 이제 어떡할 거냐고 하고요. 그런 걸 보면서 생각했던 게, 우리 사회는 특히 나이 때가 되어서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으면 약간 지진아 취급을 하는 것 같아요. 평생 지진아가 된 적은 없는데 약간 지진아가 된 느낌이랄까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유학 마치고 한국에 왔을 때 처음 한동안은 힘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보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었던 서른의 모습은 어땠나요?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선배들도 그렇고, 여자 친구들도 서른 즈음에 다 결혼을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여자들은 아무리 잘나도 결혼이 삶을 굉장히 좌우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리고 어른들도 자꾸 그렇게 얘기를 하고요. 자신의 인생에서 그냥 나로서 평가받고 힘들어도 깨지고 부딪히면서 뭔가를 만들어 가고 싶어 하던, 자존감 있는 똑순이들도 서른 즈음이 되면 마찬가지더라고요. 일과 결혼 사이에서 휘둘리다 결국에는 그 쪽으로 따라가게 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다 보면 자기가 생각했던 계획이나 꿈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사회나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스스로가 몸을 끼워 맞추는 것 같아요. 나중에 마흔이 되고 쉰이 됐을 때 그들의 인생과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남들이 하니까, 아니면 남들이 이게 좋다고 하니까 그걸 이유로 선택하면 나중에 그 인생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요?

20대와 비교했을 때 30대에 생겨난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우선 되도 않는 오기와 자존심이 없어진 것 같아요. 사람마다 각자의 성격과 기운이 있잖아요. 그런데 20대 때는 나와 맞지 않는 기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 굉장히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분위기를 불편하게 하는, 그렇게 필요 없는 에너지 낭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30대에는 그게 없어졌어요. 그것이 얼마나 치기어린 짓이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며, 나 자신을 깎아먹는 일인지 알게 된 거죠. 더 많은 사람들과 둥글둥글하게 잘 지낼 수 있는 친화력이 좋아진 것 같아요. 웬만한 건 이해하고 양보하는 법도 알게 됐고, 한 마디로 세상사는 법을 좀 더 알게 됐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20대 때는 좀 뾰족뾰족 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30대 때는 이런 저런 감정도 경험하고 고생도 하고, 여러 가지 인생의 파고를 겪으면서 달라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40대가 기대되기도 해요. 주름살 생기고 늙는 것만 관리 잘 하면(웃음) 40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20대 여성과 그 시기를 지나온 여성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견제와 경쟁이 있지 않나요?

대놓고 보이는 경쟁이 있지 않나요(웃음)? 저도 사실 20대 때 생각했어요. ‘30대 때 뭐가 있겠어, 쟤네 왜 살아?’ 약간 이런 느낌이었죠.

이를테면 20대 여성들은 ‘좋은 시기 다 지났지?’라는 시선으로 30대를 바라보는 거죠. 30대 여성들은 ‘너라고 항상 20대일 것 같지?’라는 시선으로 응수하고요. 서현진 아나운서도 그렇게 느끼실 때가 있나요?

느끼죠. 학교에서 20대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 아니면 회사에서 파릇파릇한 후배들도 많이 올라오고 하니까요. 물론 모든 20대가 그런 건 아니에요. 굉장히 지혜롭고 벌써부터 철이 들어있는 아이들도 있어요. 따지고 보면 30대가 되어도 절대 철이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서른이 된다고 갑자기 굉장히 현명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죠. 그런데 저는 그런 20대들을 보면 ‘내가 조언을 한다고 해서 받아들일까?’하는 생각을 해요. 저의 경험상 그런 조언 자체가 나이가 많은 언니들의 열등감이나 질투에서 비롯되는 간섭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20대와 30대가 부딪힐 때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우선 얘기를 듣죠. 그리고 ‘그래 한 번 도전해 봐’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들의 도전을 받아들여요.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죠. 왜냐하면 알거든요. 연애에 있어서나 일에 있어서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조그만 것을 얻었다고 해서 절대 게임이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요. 경험상 그걸 깨달았으니까 내가 할 것은 기다리면서 내공을 쌓아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젊은 지금, 가고 싶은 길을 가자

서른의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뒤로하고 유학을 떠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만류하는 주변의 목소리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이 흔들렸었어요. 다들 결혼할 짝을 찾는데 나도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일을 더 열심히 해서 확실히 뭔가를 만들어 놔야 되는 거 아닌가, 별 생각을 다 했죠. 그런데 그렇게 현재와 타협해서 차선책을 찾아봤자, 결국엔 더 늦은 나이에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이 확실하고, 자아가 굉장히 뚜렷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들은 지금이 아니라도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되어있거든요. 제 인생의 경험상 비추어 봐도, 그리고 제가 아는 많은 언니들을 봤을 때도 그래요. 그래서 힘을 냈죠. ‘어차피 나는 하고 싶은 걸 하지 않고는 못 베길 타입이다’ ‘괜히 나중에 두 배 세 배의 시간을 들여서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젊은 지금 가고 싶은 길로 가자’ 그렇게 나 자신을 다그쳤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 년 정도만 늦었어도 훨씬 더 용기를 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널리즘 스쿨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언론 관련 전공자가 아닌 채로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인가요?

그런 이유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언론 전공자나 관련 공부를 한 사람들은 훨씬 더 어린 나이에 미디어 환경에 노출이 됐고, 4년 동안 체계적으로 공부를 한 거잖아요. 그런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저널리즘이라는 분야가 우리 생활과 정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잖아요. 그냥 우리 생활 얘기에요. 그게 정말 재미있고 매력적이거든요. 우리 생활 속의 이야기들을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더 세련된 방법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거니까요. 일상생활의 부분들을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방송을 더 잘하고 인생을 더 재밌게 살겠어요. 그래서 저널리즘은 정말 잘 선택한 것 같아요. 그렇게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와서 제가 더 업그레이드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건 다른 사람들이 평가해 주는 거니까요. 그런데 확실히 더 많이 보여요. 방송을 할 때도 그렇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그렇고요.

아나운서로서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생각해 본 결과 유학을 결심하셨습니다. 어떤 모습의 방송인으로 남고 싶어서였나요?

우선은 방송인으로 남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들어요.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마흔, 쉰이 넘을 때까지 방송을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아시다시피 여자 방송인 중에 마흔이 넘어서까지 활동하시는 분들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이나 방송인들이 30대 정도까지 활동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화면에서 사라지거든요. 저는 방송을 하면서 예쁘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러면서 제 나이 때에 맞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자존심 있는, 지조 있는 방송인이 되고 싶죠. 일관성 있는 방송인이요. 상황이나 실리에 따라서 캐릭터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어쨌거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송을 하고 싶어요.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아니까요.




서른,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책 속에서 자신의 연애사를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한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여러 개 중에 몇 개를 뽑은 거고 그 중에서 찌질한 것들, 아니면 나의 찌질함을 만 천하에 공개하는 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죠. 동생들에게 나름대로의 교훈을 주기 위해서 그런 에피소드들을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는데요. 연애할 때 제 모습이 그랬어요.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우선 남녀 사이가 되고 나면 그 사람 직업이 뭐든, 그 사람이 얼마나 잘났든 못났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냥 남자고 여자인 거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자를 볼 때의 체크리스트도 달라지지 않나요?

완전 많이 달라지고 늘어났죠. 눈은 좁아지고요. 장난이 아니라 정말 큰일 났어요. 시집 못 갈 것 같은데요(웃음). 저의 체크리스트 중에 상위 목록 몇 개를 보면, 저한테만 잘해주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금 똑똑했으면 좋겠고요. 다른 거 뭐가 필요하겠어요.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고, 정말 박학다식해서 인생사는 데 있어서 내가 모르는 것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되죠.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내가 너무 존경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것쯤은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어떤 특정한 조건 하나만을 보고 그 사람을 만난다면, 그 조건이 없어지면 매력이 사라지는 거죠. 결혼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가질 수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뭐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고요. 그러니까 그 한 가지가 뭔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내가 어떤 걸 포기할 수 있고 포기할 수 없는지 안다는 게 쉽지 않죠. 결국 내가 나를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거예요.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의 기저에 깔려 있는 이야기도 결국 그거예요. 우선 나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거죠.

서현진 아나운서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결혼을 하고 싶어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니까요.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선택사항이에요. 그런데 저는 결혼을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저는 혼자 있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외로움을 되게 많이 타고, 뭘 먹어도 뭘 해도 누구랑 같이 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저랑 굉장히 죽이 잘 맞는 이성 친구 같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냥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죽 맞아서 시시덕거리면서 농담하고, 예쁜 아기 낳아서 키우고, 그런 사람을 찾아요.

지쳐서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안아주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직업 특성상, 자신에게 엄격했던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심하죠. 생각해보면 저는 20대 때 정말 많은 도전을 했고, 도전에 성공하고 많은 걸 이루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저 자신한테 ‘너 진짜 잘했어, 최고야, 넌 정말 자격이 있어’ 라고 말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좀 더, 좀 더’ ‘됐어, 이제 다음 스텝이야’ 이런 식으로 채찍질만 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부족하니까 그랬을 테고, 아니면 더 잘되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어요. ‘나는 특별하니까’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러던 중에 진짜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거죠. 책 속에 썼던 그 시기에요. 나 자신한테조차도 내가 막 다뤄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내가 왜 이래야 되지?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데, 나도 좀 더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나는 나한테 이러지 말자’고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지친 나를 안아주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우선 그런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예전에 20대 때는 끝까지 해결책을 찾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굳이 그렇게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를 몰아치지 않아요. 그 점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옛날에는 무조건 나를 채찍질하고 몰아치면서 ‘나는 열심히 해야 돼, 나는 특별하니까, 더 특별해 져야 돼’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냥 ‘아휴 힘드네, 좀 쉬자’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영화나 책을 보거나 여행을 떠나는 식으로 자신한테 힐링 타임을 줘요. 그리고 ‘굳이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욕심이 없어지고 대충 살자는 게 아니에요. 주어지는 일은 굉장히 열심히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도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거야 기다려 보자’ 하고 마음을 다잡는 거죠.

또 다른 에세이로 서현진 아나운서와 만날 수 있을까요? 계획하고 계신 다음 책이 있나요?

글은 정말 계속 쓰고 싶어요. 평생 글을 쓰고 싶은데요. 그냥 일기나 미니홈피에 쓸 법한 얄팍한 이야기 말고, 쓸 거리가 있을 때 쓰고 싶어요. 진짜 내가 마음속에서 울림이 있을 때요.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을 읽은 아나운서 선배들은 저한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같은 칙릿 소설을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이번 책 속에서 제가 정말 솔직했다면서, 다음에는 욕망에 충실한 이야기를 써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써볼까?’ 잠깐 생각은 했죠. 그런데 우선 쓰고 싶은 건 여행 에세이예요.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지는 않지만 꼭 한 번 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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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서현진 저 | 글담
유독 여성들에게 민감하게 다가오는 나이, 서른. 넘어서는 안 될 선 같은 나이이자 묘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애매한 숫자다. 『다시 나를 생각하는 시간, 서른』은 서른 즈음의 여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른을 이렇게 보내라는 충고보다는 자신이 지나온 날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만 이런 게 아니야’라는 위로와 ‘아직 늦은 게 아니야’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엿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이 책은 30대의 길목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여자들에게 한걸음 다시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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