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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노장 취급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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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권에서 발화하고 있을 때 더 큰 대중문화 시장인 일본을 정복해 한류의 확산력, 폭발력, 파괴력을 주도한 인물은 말할 필요 없이 보아(BoA)다. 공인 수식이 '아시아의 별'이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K팝 글로벌 비상은 보아가 일본을 흔든 시점과 궤를 맞춘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그가 일본에 진출한지 15년이 된 해다.

 

이제 막 30대에 들어섰지만 중견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보아의 스탠스는 견고하다. 지난해 발표한 통산 8집 <Kiss My Lips>는 이즘의 올해 베스트10 앨범에 선정됐고 서울가요대상에서도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이에 대해 그는 고생한 데 따른 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견으로서의 음악지향과 갈등, 지금의 심경 등 전반이 궁금했다. 13년 만에 이즘과 만난 보아는 음악이야기에 즐겁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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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Kiss My Lips>앨범이 평단과 음악관계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다.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보상받은 것 같아서 행복하다고 밝혔는데, 앨범 작업하면서 고생스러운 게 있었다면 무엇인가.

 

아무래도 전체 노래를 다 쓴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7집<Only one>을 냈을 때 「Only one」도 제가 쓴 노래였는데 많은 분이 제가 작사, 작곡하는 것을 모르더라고요. 8집 때, 데뷔 15주년 기념으로 재밌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직접 만든 앨범을 팬들에게 선물하면 어떨까’하는 판단을 했죠. 될지 안 될지 모르겠는데 최선을 다해서 혼자 한번 써보겠다고 회사에 얘기를 했어요. 혼자 쓴 노래들도 있고 또 외국 작가들이 와서 캠프를 진행할 때 저도 같이 참여해서 쓴 노래들도 있어요. 편곡자들도 지속적으로 만났고. 시간 할애하는 것이나 계속 아이디어를 내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앨범 작업은 어느 정도 걸렸나.

 

시작한 건 2014년 초반인 1, 2월 정도부터였으니까 1년이 넘게 걸린 거죠. 앨범이 5월에 나왔으니까요. 말씀드린 대로 정성스럽게 만든 선물 꾸러미를 팬들에게 바친다는 생각에서 작업시간이 꽤 길었죠.

 

경력이나 위치 때문에 앨범 접근 방식도 달랐을 거로 본다. 우선 수록곡을 12곡으로 빼곡히 채워 대단했다.

 

사실 7집의 수록곡이 7곡 밖에 없었어요. 그때 기자분들, 관계자들로부터 이건 미니 앨범인데 왜 정규라고 하는 거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는 정말 좋은 노래만 내고 싶어서 한 건데. 그때 마음에 뭔가가 남았나 봐요. 그래서 이번에는 풀로 열두 곡을 채워서 내겠다고 그랬죠(웃음). 사실 만든 노래는 20곡 가까이 있었고요.

 

한일 양국을 왔다갔다 하고 워낙 스트레스도 많은 슈퍼스타인데 굳이 자신이 곡을 쓴다는 게 힘들 것 같다. 왜 작사, 작곡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뮤지션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인가?

 

그렇지는 않았고요, 이번 앨범은 팬들에게 선물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저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어요. 왜냐면 아이돌이란 타이틀로 데뷔했던 10대 소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앨범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다면 저 또한 '내가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거예요. 욕심이라면 그게 욕심이어서 조금 무리를 하긴 했죠. 이제는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항상 일을 할 때 일에 대한 흥미를 찾아가고 싶은 스타일이라서, 다음에 또 노래를 내게 된다면 내 노래가 아니라 다른 작가의 노래를 나만의 방식으로 꾸며서 색다른 옷을 입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꼭 내가 노래를 쓸 겁니다!'라고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8집의 12곡 중에서 후크가 명확한 「Shattered」와 「Fox」가 좋았던 기억이 있다. 「Shattered」는 곡 진행의 변화폭도 크고 몽환적이기도 하다. 노래를 작업한 과정을 듣고 싶다.

 

저랑 '언더독스' 팀하고 처음 같이 작업을 한건데요, (스스로 요청한 것이냐고 묻자) 네. 이번에 작업을 했던 팀이 ‘언더독스’랑 '스테레오타입스'랑 테디 라일리 등등이었는데, 테디 라일리 캠프와 하니까 너무 마이클 잭슨 같은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웃음) 저 또한 마이클 잭슨의 광팬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 노래를 리패키지로 내려고 했는데 여의치가 않아서 아직 발표를 못 한 상태입니다. 언젠가는 나오겠죠? 근데 언더독스가 한국에서 캠프를 갖는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욕구가 솟구쳤죠.

 

어떤 측면에서?

 

그 팀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프렌들리하고 즐거운 환경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어떨까 궁금한 마음으로 간 거죠. 캠프를 가면 되게 즐거운 게 트랙을 막 들려줘요. 그럼 뭔가 쇼핑하는 기분인거예요. (웃음) 근데 「Shattered」를 딱 들었는데 '아, 이건 꼭 써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 A&R 분들은 좀 어려운 곡이라고 하셨는데, 몽환적인 것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집했죠.

 

곡이 몽환적이지만 후크가 확실하다.

 

네. 그게 제가 멜로디를 쓸 때 습관 아닌 습관이기도 한데, 코러스 부분은 좀 확실하게 캐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같이 탑 라인을 해준 티파니라는 친구도 저랑 동갑에 잘 통해서 금방 나왔던 노래예요.

 

앨범을 딸에게 들려준다면 아델에게 선수를 뺏겨서 그렇지(웃음) 보아의 「Hello」도 만만치 않다. 예쁜 곡이다.

 

(웃음)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면서 몸 다치는 건 신경 써도 마음 다치는 건 신경을 많이 안 쓰잖아요? 그런데 내 마음에게 내가 한번이라도 진정성 있게 안부를 물어본 적이 있나, 내가 누구한테 받은 상처에 대해서 정말 진심어린 사과나 위로를 나 자신에게 해본 적이 있냐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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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을 때는 감성적이다가 글을 쓸 때는 냉철해야 하는 게 평론가들이다. 그래서 감성과 이성이 동거해 이중적이다, 심지어는 때로 변태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데 예술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네, 다들 조금 변태성이 있죠. (웃음) 저희 직업도 맨정신으로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아요.

 

백 스테이지에서 보아는 되게 침착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온 스테이지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춤춘다. 한마디로 상상과 현실의 차이가 커 보인다. 거기서 어떤 괴리를 느끼지 않나?

 

저는 사실 백 스테이지 일이 더 잘 맞는 성향 같긴 해요. 스튜디오에 있는 시간과 곡을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하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 그 긴장감 때문에 '나는 정말 무대를 올라갈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 것 같다.'고 항상 얘기해요.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시작했던 게 이제는 사람들이 '보아가 연말에 무대한대', '뭐 어떻게 할까', '당연히 라이브 하겠지?', '보아는 라이브 해야지. 미친 듯 춤추면서 그래도 라이브 해야지.' 이런 기대감이 있잖아요. (웃음) 항상 그런 기대감이 저에겐 점점 부담이 되고 강박이 되니까 무대가 이제 더 어려워지죠. 하지만 그걸 하면 너무나 뿌듯하고. 그런 면에서 저도 그런 이중적, 변태성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패티김 여사도 공연을 앞두고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화재가 나서 공연이 취소됐으면' 하고 기도하곤 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선다는 게 일반인은 하기 어렵다,

 

그렇죠. 근데 저는 공연은 조금 더 안심이 돼요. 왜냐면 만회할 기회가 뒤에 스물 몇 곡이 있으니까. 생방송 무대를 비롯한 TV 프로그램이 더 힘들어요.

 

<케이팝스타>는 너무 잘했다.

 

케이팝스타는 앉아서 듣는 입장이니까. 제가 직접 올라가서 하는 거랑은 다르죠.

 

그래도 여유 있게 하던데. 그래서 그때 '멘토 언니'가 되지 않았나.

 

멘토 언니요?(웃음) 프로그램 하는 게 재밌었어요.

 

「Kiss my lips」는 만들고 나서 이게 타이틀이다 하는 생각을 바로 했나.

 

사실 노래 12곡을 회사에 던지고 타이틀을 골라달라고 맡겼어요. 대중가수로서 앨범에 객관적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들으시고 판단을 해달라고 했는데, 압도적으로 「Kiss my lips」의 선호도가 높았다고 하고 그다음이 「Fox」, 「Smash」 그렇게 갔어요. 저는 솔직히 「Kiss my lips」를 내면서도 이 노래는 음원으로 많은 사랑을 못 받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너무 생소한 음악이니까요.

 

좀 어렵게 들릴 수도 있겠다.

 

뚜렷한 훅도 없고 이게 어디가 코러스인지 구분이 안 되는 노래기 때문에. 근데 한번쯤은 시도를 해야 하는 음악이지 않나 싶었어요.

 

「Hurricane venus」, 「Only one」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Kiss my lips」 때도 본인이 빅 스타, 월드 스타인 것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큰 것 같다. 대중가요는 소통이다. 편하게 가도 욕먹을 나이도, 위치도, 상황도 아니다. 너무 자기 위치에 따른 강박이 작용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Hurricane venus」도, 「Kiss my lips」 때도 쉽게 해도 되는데 월드스타가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차라리 「Fox」나 「Clockwork」, 「Who are you」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고려할 게 많은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결국은 음악적 선택입니다.

 

「Who are you」를 선공개로 발매한 이유는 무엇인가?

 

「Kiss my lips」가 조금은 어려운 음원이라는 판단 하에 부담 없이 가자는 판단이었어요. 더 솔직하게 「Who are you」는 100% 음원 잘 될 노래니까 한 방 치고, 「Kiss my lips」로 무대에서 보여준다는 전략이었죠. 어차피 저희는 앨범을 프로모션 하는 거고 싱글 프로모션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음악 방송을 2곡씩 할 때도 방송 3사마다 모두 다른 노래로 했어요.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음악 방송의 시청률이나 관심도가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것과 이제 그런 모습을 보여드려도 많은 분들이 찾아서 보시지는 않는다는 점이죠. 점점 음악자체가 인스턴트화 되는 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제 안에서는 8집 앨범이 중요한 해에 나온 앨범이기도 하고, 15년 이상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정규 풀 앨범을 꼭 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Kiss my lips」가 첫 싱글이었을 때 '보아는 여전히 앨범 아티스트다!'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 정도의 무게감, 존재감은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이제는 자주 하려고요. 아까 말씀하신 「Hurricane venus」도 5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내는 거였기 때문에 저도 회사도 너무 부담이 많았던 앨범이긴 했어요. 3D 티비 때문에 뮤직비디오를 3D로 찍어야 하는 등 굉장히 많은 시도를 했던 앨범이었어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오긴 했는데, 성과를 떠나서 그 노래는 지금 공연할 때 써도 너무 좋은 노래에요. 「Only one」은 더 캐주얼하게 냈던 노래기는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대중적으로 들어주셨던 것 같고. 근데 저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공백기가 길잖아요. 그 기간을 좀 줄여가면서 편하게 음악을 낼 수 있는 싱글 체제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고요.

 

「Only one」 할 때 마이크를 끄고 안무만 한 적이 있다. 내가 알던 보아라면 어떻게든 노래와 춤을 다 해냈을 것 같은데 하나를 포기하고 춤, 퍼포먼스 측면을 극대화하는 것을 봤을 때 다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좀 벗어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음악적으로도 「Hurricane venus」 이전은 컨셉트를 연기하는 보아가 노래를 부르는 거라면 「Only one」부터는 진짜 인간 보아가 자기 노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캐주얼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데, 그 중간 기점에 뭔가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것 아닌가. 6, 7집 사이의 간극이 있었던 것 같다.

 

음, 뭐가 바뀌었을까요. 나이가 들어서 유해졌나? (웃음)

 

그때 6, 7집 사이가 일본 활동에서 국내활동으로 무게중심이 좀 이동할 때 아니었나.

 

네, K팝스타를 2011년에 시작했었죠.

 

그런 것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2007-8년까지 보아는 거의 일본 가수이지 않나. 2010년까지는 일본에 임대한(?) 상황이었으니까. 일본에서는 많이들 보아를 일본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들었다.

 

초반에는 한국 출신이라는 얘기도 했었고 신문에도 '한국 출신의 가수 보아' 이렇게 나는데 사람들에게는 제가 그냥 어디 출신이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냥 '보아는 일본에서 일본어로 노래하는 가수'라고만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일본어 싱글이나 앨범 낼 때하고 한국어로 낼 때 어느 것이 더 편한가.

 

마음이요, 아님 노래 할 때요? 사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일어가 조금 더 편하다고 느꼈어요. 왜냐면 우리말로 부를 일이 5년 정도 없었으니까. 근데 또 한국에서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일을 하니까 이제는 한국어가 더 편하고 역으로 가끔 일본 가면 일본어가 막힐 때도 있어요.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적으로 크게 얻은 소득은?

 

일단은 제이팝 나름의 캐치한 멜로디 감성이요. 8집을 들으면 굉장히 제이팝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맞다. 약간 뽕끼가 전반적으로 흐른다. (웃음)

 

근데 그게 케이팝 뽕끼는 아니잖아요. (웃음) 꼭 코러스 부분에서는 알기 쉬운 멜로디여야 한다는 강박이 무의식중에 좀 있나 봐요. 어쨌든 그런 노래들이 많이 기억에 남고 좋잖아요. 또 초반에는 일본에서 음악을 더 많이 냈고, 제 목소리 컬러를 믹스 과정 등에서 좀 더 명확하게 잡아준 게 일본 쪽이어서, 그 영향이 그 이후에 많이 있었죠. 엔지니어링이라든지.

 

「아틀란티스 소녀」 들을 때 놀란 건 유난히 숨소리가 많이 들어갔다. 숨소리는 위험해서 보통은 지우려고 한다. 괜찮았기 때문에 놔둔 것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90년대만 해도 가성을 쓰는 가수는 노래를 못하는 사람처럼 많이 인식됐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진성으로 어디까지 올라가냐는 게 정말 중요했던 시기였는데 저는 가성을 쓰는 게 더 편했던 목소리였어요. 어렸을 때 소프라노를 조금 했거든요. 진성이 너무 어려웠는데 일본에서 코러스도 녹음해보고 발라드도 하면서 제 가성의 장점을 찾아준 거죠. 저는 진성, 가성을 섞는 게 너무 편했어요. 한국에서 강타 오빠가 2집 때 「늘」이라는 노래를 줬는데, 녹음을 하러 갔다가 키가 너무 높아서 “오빠 이거 키가 너무 높아서 내렸으면 좋겠어요!” 했더니 “야, 시간이 없어서 스트링을 녹음해버렸어 못 내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럼 오빠 제가 이거 가성을 좀 섞어서 불러 봐도 될까요?” 하고 불렀더니 그 목소리를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수만 선생님도 '아, 보아한테 이런 목소리가 있었어?'라고 하면서 놀라셨고요. 다른 분들도 가성을 쓰는 게 사실은 노래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던 계기였죠. 그래서 곡을 쓴 (황)성제 오빠도 저의 그런 가성이나 숨소리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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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보컬 측면에서 8집 가운데 이 노래는 잘한 것 같다는 곡이 있다면 어떤 노래인가.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Shattered」도 톤을 잡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그게 진, 가성을 섞어야 나올 수 있는 목소리라 보컬 잡는 게 어려웠어요. 또 노래를 만들면서 가이드를 만들잖아요? 그때 목소리가 훨씬 좋아요. 소리가 너무 열려있고 아무런 부담이 없으니까. 제가 「Love & hate」는 가이드 느낌이 안 살아서 녹음을 세 번 했어요.. 그래서 '우리 이거 그냥 가이드 갖다 쓰면 안 될까? 어차피 콘덴서 마이크에 했으니까 갖다 쓰자, 가사 몇 개만 고치자' 그랬어요. 그 톤이 안 잡히니까. 다 열심히 불러놨는데 어떡하죠. 너무 어렵다.

 

그런 면에서 「Kiss my lips」가 잘한 노래라고 본다.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보아다. (웃음)

 

「Kiss my lips」 믹스를 23번 했어요. 제 앨범 때문에 저희 엔지니어 기사님들이랑 녹음실이 마비가 됐었어요. 데드라인은 정해져 있지, 믹스는 밀려있지, 통과는 안 나지, 엄청 힘들어하셨어요. 근데 스테레오타입스만의 믹스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들이 트랙을 줬을 때의 그 느낌이 안 사는 거예요. 제 목소리 톤도 그렇지만 기타 루프나 이런 소리가 왜 안 살아날까, 그래서 고집도 많이 부리고 수정도 많이 보고, 마스터를 두 번 했거든요. 탐(드럼 파트) 소리 하나 때문에 '다시 해주세요~' 하기도 하고.

 

일반인으로 따지면 보아는 너무 젊다. 그런데 사람들은 완전 노장 취급을 한다.

 

저는 정말 젊게 살고 나이를 잊고 사는데, 제 나이를 주변 분들이 더 잘 아는 느낌이에요. 저는 정작 잊고 사는데 자신이 나이 먹는 건 생각 안하고 ‘벌써 보아 걔가 그렇게 됐어?’ (웃음) 하시고.

 

이것도 묻고 싶다. 「Kiss my lips」, 「Who are you」, 「Shattered」, 「Fox」란 노래도 그렇고 「Double jack」, 「Love & hate」, 「Green light」도 그런데 대체로 노래가 퍼스널(personal)한 느낌이 든다. 듣는 이에게 희망을 준다든가 하는 공적인 주제가 있을 법한데 사적인 접근이 대부분이다.

 

확실히 여자 감성이라 그런 류의 노래가 많은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여전사 같은 이미지를 하고 싶지 않아서. 항상 SM에서 하던 의미를 잘 모르는 '센' 가사들 있잖아요. 그 가사들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냥 제 나이 여자들이 느끼는 걸 쓰는 게 가장 솔직하고 나다운 게 아닐까 싶었어요. 자켓도 보면 굉장히 편안해요.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약하게 한 여자, 그거 두 개밖에 다른 게 없죠. 「Double jack」의 경우 <비긴 어게인>의 그 '더블 잭'있잖아요? 저도 더블 잭이 있긴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어요. 저희는 이어폰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빨리빨리 진행을 해야 하니까 동시에 못할 때는 그거 꽂아서 같이 듣고 그렇게만 썼지 그렇게 로맨틱하게 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웃음) 그걸 보면서 더블 잭이 Y모양인데 사람의 심장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 공유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썼어요. 그렇다고 가사가 100% 가상은 아니죠.

 

사적인 질문인데, 보아씨 부모님은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자랑스러운지 걱정하시는지 궁금하다. 일본에 오래 활동하면서 가장 예쁠 때 제대로 딸을 곁에 둬본 적이 적으시니까.

 

그래서 저희 엄마가 절대 독립 못 하게 하세요. 다 같이 살거든요. 부모님은 굉장히 개방적인 분이세요. 그래서 한 번도 뭐 해라 하지마라 강요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오빠들도 바이올린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피아노가 하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로 대학을 갔고 작은 오빠는 춤이 좋다, 만화 그리는 게 좋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기 영상을 하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공부해서 가고. 그런데도 (저의) 독립생활을 허용하지 않으시죠. 연예활동은 좋아하시고 정신건강 상태가 좋은 거에 가장 안심하세요. 사실 연예계 쪽에 오래 있으면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좀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널 보고 있으면 평범한 30살 여자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죠.

 

독립하는 걸 싫어하신다면 시집가는 것도 그렇게 달가워하시진 않겠다.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결혼하는 건 괜찮은데 혼자 사는 건 안 돼, 그런 거죠. 혼자 살면 제가 너무 놀러 다닐까 봐 안 된다는 걸까요(웃음)

 

2003년 인터뷰 마치고 '보아 저 사람은 춤추고 노래하기 전에 책 읽고 조용히 있는 문학소녀가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아까 백 스테이지에 더 어울린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때 공부를 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게요, 원래 꿈이 의사였는데. 의사할 걸 그랬나. (웃음) 2003년 무렵에는 책도 많이 읽었어요. 요즘에는 사람이 점점 나태해진다니까요. 점점 책을 안 보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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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의 베스트 곡은 무엇인가? 본인한테는 안 맞아도 대중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 또는 시류에 맞추기 위해서 한 곡이 아니라 진짜 내 취향, 내 감성, 내 스타일을 반영한 곡.

 

8집의 경우 「Who are you」랑 「Fox」인 것 같아요. 저는 좀 밝으면서도 감성적인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사실 「Only one」이나 이런 노래를 참 좋아해요.

 

「Only one」은 좋아하면서 부른 것 같았다.

 

네, 어렸을 때부터 미디움 템포 알앤비 노래를 많이 들어왔고 좋아했어요.

 

그럼 오늘날 보아를 음악하게 만든 사람들 중 결정적인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테디 라일리는 들어갈 것이고.

 

테디 라일리도 있고, 어렸을 때 보면 남들이 안 듣는 거 찾아듣고싶고 그렇잖아요. 도넬 존스라든지. 'U know what's up' 같이 되게 감미로운데 사람들 잘 모르는 노래. 지금은 많이 알려진 어셔의 댄스 노래도 슬로우 잼 감성에 끌렸죠. 이번 저스틴 비버 앨범이 너무 맘에 드는데 거기에 「Love yourself」라는 노래가 특히 좋았어요. 저스틴 비버의 EDM도 좋은데 비트가 강한 노래보다는 그런 감성적인 노래를 좋아해요.

 

한동안 SM의 간판이었고 톱스타였지만 지금은 모든 상황이 말해주듯이 주력 상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팬들로부터는 기획사로부터 홀대 받는 것 아니냐는 불평 아닌 불평이 있기도 했다. 본인으로서도 이제 내가 회사의 중심이 아니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 나이로 볼 때 힘들지 않았나.

 

주력 상품이라는 건 항상 바뀌지만 그 회사의 가장 핵심 상품은, 농심도 '너구리' 말고도 신상 라면이 널려 있지만 너구리는 스테디셀러잖아요. 그냥 물 흘러가듯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하지만 우리가 언제든 먹고 싶을 때 찾아 먹을 수 있는, 진짜 주(主)가 되는 상품. 그래서 사실 저는 주력 상품이 아니라는 부담은 없어요. 왜냐면 SM=보아지만 다른 누구를 SM은 누구다라고 얘기하진 않잖아요. 그거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앞으로 SM이 아니라 대한민국 또는 아시아 가수로서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전 정말 오래오래 이 일을 하고 싶거든요. 많은 분들이 보아는 국가대표 운동선수 같은 느낌이 있다고 하세요. 그리고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마돈나처럼 60대에 육박해도 무대에 서줬으면 좋겠다는 말인데, 요즘은 여자 댄스가수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또 저희 회사에서 '스테이션(Station)'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노래를 내는 데 저조차도 부담감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래도 정규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한 곡 한 곡 내는 거에 너무 부담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좀 더 캐주얼하게 내가 어떨 때는 정말 밝은 것도 내보고 어떨 때는 발라드도 내보고 부담 없이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는, 그런 활동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0집은 꼭 채우기 바란다.

 

그럼요. 해야죠. 이제 싱글을 내고 그 싱글들을 모아서 정규를 내는 옛날 일본식 시스템이 되는 것 같아요. 미국은 싱글을 냈다가 앨범을 내고 이걸 1, 2년에 걸쳐서 리컷해가면서 프로모션을 하는데 사실 저는 이번 앨범에서 그게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잘 안 되더라고요.

 

장기적으로 많은 공을 던져보고 싶다고 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어떤 음악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는지.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스테이션' 잡혀있는 게 있나.

 

잡혀 있는 게 있긴 한데 아직 진행이 안 됐어요. 확실하게 뭘 할 거라는 말씀은 못 드리는데 확실하게 제 노래는 아니에요. (웃음) 왜냐면 저는 작년에 과다출혈을 했거든요. 너무 많이 썼고, 한번 하면 정말 몇 년은 '로직(작곡 프로그램)'을 열지도 않아요. 다른 사람들의 감성이나 멜로디나 음악을 통해서 충격도 많이 받고 싶고, 노래하면서 그런 음악들을 꾸미는 재미가 또 있거든요.

 

2003년부터 해온 공연이 현재 98회를 했고 1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처음부터 밴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밴드 라이브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영남씨가 감탄하기도 했다. 밴드 라이브를 고집하는 이유, 앞으로 어떤 퍼포먼스나 공연을 만들고 싶은지 말해 달라.

 

제가 태어나서 처음 가졌던 공연도 밴드 라이브였고, 밴드 라이브가 없는 공연 자체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아티스트들은 MR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밴드 공연만의 드라이브감이 너무 좋고, 그게 있어야 제 에너지가 2시간 반을 채울 수 있어서 앞으로도 밴드는 계속 고집할 것 같아요.

 

100회 공연은 가능하다면 예술의 전당에서 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아마 대관을 안 해주시지 않을까요. (웃음) 댄스가수 쪽은 좀 더 박하다고 들었어요. 사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할 때도 폭죽 같은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예술의 전당에서 하게 된다면 너무 뿌듯할 것 같아요.

 

8집을 신보라고 간주하고 '이 앨범은 이렇게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한다면?

 

8집은 보아라는 여자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멋있는 보아, 귀여운 보아,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보아가 있겠지만 그냥 제 나이에 맞는 여자 보아가 표현하는 앨범이에요. 사실 제 앨범을 저도 아직 CD로 못 들었어요. ('무서워서 못 듣는 거죠' 라고 했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확실히 mp3랑 CDP는 음질이 다르니까. 이제는 듣고 싶네요.

 

보아는 아티스트로서 어떤 사람인가.

 

보아라는 사람은, 일을 참 좋아하고 항상 재밌게 살고 싶은 여자요. 그래서 어떤 걸 하더라도 스스로 흥미를 못 느끼면 100% 몰입을 할 수 없는, 그래서 항상 자신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재미를 찾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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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춤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현재 추고 있는 춤은 노력의 결과인가, 아니면 천부적인 건가.

 

노력인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정말 라이브를 못하던 가수였거든요. 일본에서 2001년에 데뷔를 하고 어떤 공연에서 라이브를 보고 에이벡스(SM과 계약한 일본 소프트회사)에 어떤 분이 '쟤는 단독 콘서트 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대요. 너무 못해서. 그래서 춤추면서 노래하는 걸 정말 많이 연구하고 연습했어요. 그래서 이만큼 할 수 있게 됐죠.

 

'ID; Peace B'는 잘했지 않나?

 

그때는 립싱크 세대잖아요. 진짜 노래를 하면서 춤을 소화하는 건 정말 못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씨가 인터뷰에서 보아가 가장 춤을 잘 추는데 그 이유는 춤에 감정을 집어넣기 때문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해석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요? 저는 음악을 들으면서 들리는 소리가 많으니까 거기에 맞춰 춤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뒤에 해주시는 분들도 다 잘하시는 분들이고 한데 그냥 제가 센터에 있어서 저만 보인다고 하신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 임진모, 황선업, 이수호, 정민재
인터뷰 정리: 임진모
사진 제공: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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