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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만의 선명함에 한 걸음 더 다가서다 - 가을방학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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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방학의 2집 앨범 자켓에는 포옹하는 남녀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파란 셔츠의 남자는 뒷모습이고, 그를 앞에서 안은 여자의 옅게 웃음 서린 얼굴은 이들의 음악처럼 따뜻하고 가깝다. 인터뷰 도중 가을방학은 대뜸 자신의 신보를 들어 보이며 그림 속 포옹이 어떤 상황인 것 같으냐고 물어 왔다. 재회 중인 듯하다는 응답이 나왔고, 헤어지기 전 마지막 인사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남녀의 관계는 연인이 되었다가 친구 사이로 변했고, 가족 간으로 정의되기도 했다.

퀴즈 같지만, 정해진 답은 물론 없다. 여러 풀이가 모두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모호한 것일까? 어떠한 절대적인 답을 좇으려 할 때 정해져 있지 않는 불명확한 상황은 혼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 경험과 정서와 직관을 통해 길어 올린 자신만의 답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면, 각자가 내린 해석은 그것이 무엇이든 점점 더 뚜렷한 형태로 뻗어 갈 것이다. 그림 한가운데 ‘선명’이라는 타이틀을 둔 것도, 더불어 이번 앨범 타이틀이 ‘선명’인 것도, 모호함을 뚫고 핀 저마다의 오롯한 색깔들을 응원하기 위함이 아닐까.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무엇도 규정할 수 없는 세상에서 선명함을 위한 길은, 결국 나 자신을 찾아 나가기 위한 과정과 같다. 두 번째의 앨범을 완성하면서, 가을방학은 자신만의 선명함에 한걸음 더 다가선 듯 보였다. 듀오만의 서정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만큼의 변화를 자연스레 담은 새 노래들은 그 정직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들 자신에 닿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었다.


오랜만에 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계피 : 1집에는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나 「취미는 사랑」처럼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해 주시는 곡이 있었는데, 이번 앨범은 딱히 꼽히는 곡은 없는 것 같아요. 수록곡 골고루 얘기를 다 해 주시는 것 같고. 또 의외로 많이 좋아해 주지 않을까 싶었던 곡이 말이 없는 것도 같고요. (어떤 곡이 그렇죠?) 「편애」요.

정바비 : 「편애」 얘기 많던데? (웃음)

계피 : 그래? 제가 오늘 검색을 잘 안 했나? (웃음)

정바비 : 아무래도 타이틀이라고 표시해 놓은 곡은 라디오 전파를 타기도 하고 노출도 많이 돼서 결국 반응이 어느 정도 오잖아요.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가중치가 있는 거라 볼 수 있는데, 우리 음악은 1집 때도 그랬지만, 공연 때 자주 안하는 노래나 타이틀이 아닌 곡, 아니면 잘 선곡이 안 되는 곡들도 사랑받는 걸 보면 딱히 노출에 치우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우리 음악의 장점이자 단점인데, 한 곡에서도 훅이 없고 앨범 통틀어서도 훅이 없어선지 그런 부분은 좀 있는 듯해요.

1집이 반응이 좋았고 여전히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어서 다음 앨범을 만드는 데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정바비 : 부담은 회사가 갖고 있었을 것 같고요 (웃음)

계피 : 우리는 없네요. 부담이라는 게. 가을방학이라는 팀 자체가 ‘작정하고 음악하자’ 하고 시작했던 게 아니었어요. 노래 부르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1집을 많이 들어주셨으니 2집에서는 반드시 다른 모습을 보여줘서 뭔가를 쌓아야겠다,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어요.

정바비 : 우리가 사실 완전히 신인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각자 원래 하던 것들이 있고, 그걸 기반으로 어느 정도 포커스를 잡아서 하는 측면도 있고요. 그래서 1집이 오히려 더 부담이 됐어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시작을 했고 기존에 하던 음악들이 있었으니까요. 좋은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우리를 소개하기는 편해졌죠. 처음부터 신인가수라고 나오면 이런 저런 설명도 해야 하고 말을 덧붙여야 하지만, 우리는 전에 하던 게 있으니 그걸 토대로 설명하면 되거든요. 2집의 출발점은 앞에 나왔던 1집을 기반으로 하는 거잖아요. 사실상 부담은 없었어요.

앨범 타이틀인 <선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정바비 : 1집 때처럼 이번에도 일본에서 라이선스 음반이 나왔어요. 인디 레코드 회사에서 나오는데 가사 해석이 다 수록돼요. 일본어로도 들어가고, 앨범 타이틀 같은 경우는 영어로도 들어가고요. 그러려면 ‘선명’이란 단어를 영어로 보내줘야 하잖아요. 뭐로 보낼까 고민하면서 ‘distinction’, ‘vivid’ 등 여러 가지를 꺼냈어요. 최종적으로 고른 게 ‘clarity’예요. clear나 clean and clear 같은 것들도 있었는데(웃음) 타이틀을 정한 데는 처음 EP 데모를 작업했을 때 워킹 타이틀로 했던 그 느낌도 아마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걸 가지고 회사 사람들, 세션 사람들 미팅하는 과정에서 더 구체화되었죠. 1집 때보다는 선명한 느낌으로 하자는 그런 식으로.

계피 : ‘선명’이라는 가제를 제가 제안했어요. 어떤 질문을 어떤 식으로 확실하게 풀고 싶다는 건 없었고 모호하게 지향점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가 자켓 디자인을 하고, 녹음을 하고 프로듀서랑 소통하는 과정에서 생각도 더 떠오르고, 처음에 잡았던 이미지와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어요. 말을 계속 품고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뒤따라서 뚜렷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1집 때랑 비교했을 때, 음악적 혹은 개인적으로 변화가 있었다면요?

계피 : 지금껏 음반을 여러 장 냈는데 음악적인 면에서 많이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녹음하는 자리 전반에 다 있었고, 의견도 계속 냈고요. 제 참여율이 다른 프로듀서 분들에 비해서 높진 않지만.(웃음) 제겐 새로운 경험이었죠.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있었어요. 제가 음악적인 용어나 코드를 모르니까, 어떤 부분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는 하는데 손짓 발짓을 하는 느낌이었죠. 불어를 모르고 프랑스인과 얘기하는 것과 비슷했던 것 같달까요. 바비 씨가 소통해 주려고 노력 많이 해 주셨어요. 프로듀서 분들께 제 의사도 계속 전해 주셨고,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정바비 : 저는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1집 때는 피드백 받으면서 놀란 부분이 많았어요. 굉장히 밝고 부드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얘기들에 특히 놀랐거든요. 물론 사운드적으로는 이지 리스닝 쪽이 맞긴 하지만 저희가 1년, 2년 거쳐서 만들어 온 전체적인 느낌은 싸하고 찬물을 끼얹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가을방학이라면 ‘방학’보다는 ‘가을’ 쪽에 포커스를 맞추는 느낌인데, 대부분이 살랑 살랑한 이지 리스닝 쪽으로 봐 주시더라고요. 저희 입장에서는 그게 재미있었고 놀라웠죠.
앨범 하나를 만들 때 20곡 정도 작업하고 음반에는 12곡씩 넣고 있어요. 어느 정도 앨범 윤곽이 드러날 시점에서 음악적 색깔 등을 보고 결정하거든요. 이번에는 총 14곡을 추린 다음에 2곡을 뺐습니다. 돌이켜 보면 1집 곡 선별을 할 때, 준비한 20곡 중에 밝은 곡이 5곡 있고 나머지는 다 어두운 곡이었어요. 그러면 밝은 곡과 어두운 곡 비율이 5대 15잖아요. 그런데 앨범을 12곡으로 채우면서 밝은 노래 다섯 곡을 다 넣으면 그 비율이 5대 7이 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밝은 색깔이 나왔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준비된 곡 중에서 밝은 곡도 한두 곡 빼고, 어두운 곡도 한두 곡 빼고 하는 식으로 선별을 했어요. 전체적인 비율이 균형 있게 맞춰졌죠. 아마 이번에 처음으로 가을방학을 듣는 분들은 1집 때와는 다르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네요.


계피 : 그래서 1집 때를 기대하는 분들은 이번 앨범을 어떤 면에서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저희 음악을 두고 발랄한가 차분한가를 굳이 따지자면, 사실 저희는 차분한 면이 더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1집은 스스로 감당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어요. 보이는 것과 스스로 표현하려는 부분에 다소 차이가 있었거든요.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런 종류의 다름에 대해 결국 이질감을 안고 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죠.


보는 시점에 따라 앨범에 대해 ‘실험적이다’라는 의견과 ‘예전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나뉘는 듯합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바비 : 실험이라고 해도 진짜 어려운 것 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녹말가루에 요오드 떨어뜨리는 정도의 실험이죠.(웃음) 우리가 실험을 한다고 할 때는 곡에 제일 잘 맞다고 생각되는 것, 이 곡에 이런 가능성이 있다 싶을 정도의 느낌을 내는 것 같아요. 사실 건방을 떨자면, 이미 1집도 해 봤고 저도 음악 오래했고 계피 씨도 보장할 수 있는 퀄리티를 내는 보컬이거든요. 컨디션이 바닥이어도 일정 수준씩 보여 주는 고정적인 능력도 있고요. 피아노 들어가고 퀄리티 있는 반주 넣고 편안한 8비트 스타일로 가면서, 시간도 좀 들이고 공도 좀 들이고 적절한 인재도 넣으면 충분히 좋은 음악이 가능하죠.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어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밸런스를 어느 정도로 잡나, 어느 정도가 우리에게 맞나 하는 것을 생각했어요. 처음엔 반반을 생각했죠. 그 기준이 어디서 나오나 하면 요즘엔 음원 위주로 음악을 듣는 분들이 있고 음반 단위로 음악을 듣는 분들이 있잖아요. 타이틀 음원만 듣는 분들께는 잘 할 수 있는 걸 들려드리면 되고, 음반을 듣는 사람에게는 우리가 해 온 여러 가지를 다 들려드리면 되고, 그 적정을 찾으면 반반의 느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최종적으로는 잘 할 수 있는 걸 ‘8’, 나머지를 ‘2’ 정도 했다고 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그 ‘2’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정바비 : 계피 씨가 좀 더 감정적으로 노래를 부른다든지 노이즈를 넣는다든지, 내레이션을 한다든지.

그렇잖아도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진 곡 「삼아일산」을 신선하게 들었습니다. 이 곡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정바비 : 저는 보통 멜로디를 먼저 쓰고 가사를 붙여요. 그런데 「삼아일산」의 경우에는 먼저 머릿속으로 하나의 소설 같은 이야기를 구성을 했고 나중에 쫙 펼쳐봤어요. 절대로 노래가 될 수 없는 내용이더라고요. 디테일을 다 잘라내기 시작했죠. 내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생각했고요. 근데 가사를 아무리 드러내 봐도 지금 실려 있는 양 이상은 안 됐어요. 노래로 하면 「Bohemian rhapsody」가 될 정도였죠. 텍스트가 상당히 많으니까. 그래서 굉장히 고민을 하던 차에 계피 씨가 KBS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멕시코 편 내레이션을 맡았던 게 생각났어요. 괜찮다고 생각했죠. 계피 씨는 말하는 목소리도 좋잖아요. ‘어, 이거 내레이션하면 되겠다’라고 떠올렸고 어울리는 반주를 만들어서 완성했죠.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애착하는 곡은 무엇인가요? 싱글로 낸다면 어떤 곡을 꼽고 싶은지?

정바비 : 「잘 있지 말아요」. 뮤지션을 떠나서 사람의 특성이 많이 드러난 곡인 것 같아요.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는 곡인 것 같고, 가을방학이라는 팀 정서에도 가장 흡사한 것 같고요. 안착에 대한 내용이잖아요. 그게 애틋하고 또 스위트한 거죠. 한동안은 작업 과정에서 송라이터가 결과물을 다 컨트롤해야 한다는 강박에 잡혀 있었어요. 제 의도와는 다르게 조악해지거나 나빠지면 ‘저것도 내가 컨트롤 했어야 하는데’하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게 아닌 것도 있다는 걸 점점 알게 되었어요. 그런 결과물 중에 가장 기분 좋게 나온 게 이 곡이 아닌가 싶어요. 아코디언 연주도 좋게 들어갔고.

계피 : 저도 「잘 있지 말아요」.

가장 힘들게 작업한 곡이 있다면요?

정바비 : 저 같은 경우는 「더운 피」. 곡에 대한 이미지가 곡 작업이 거의 끝날 때까지도 안 그려졌어요. 남들과 다른 이미지거나 성공적이지 못한 이미지, 성긴 이미지라도 있어야 뭔가 해 볼 수 있는데 그런 이미지가 나오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결과물은 다행히 잘 나온 것 같아요.

계피 : 곡 구성을 가장 많이 바꾼 게 「더운피」예요. 처음에서 아주 많이 달라졌어요. 확신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이 리듬은 넘어갈 수 없다는 부분이 있어서 들어내기도 했고, 또 그 부분이 없어지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어요.

정바비 : 비틀즈 초기 앨범은 그냥 흘러가잖아요. 사운드도 일정하고 작법도 일정하고. 그런데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같은 앨범은 곡마다 아주 다르죠. 편하게 가느냐 아니냐의 차이인데 1집이라고 한다면 앞의 경우, 편한 음악이겠죠. 플랫하면서도 편하게 따라갈 수 있는 음악을 좋아해요. 어떤 정서를 3~40분 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그게 1집의 장점이라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2집을 그렇게 할 순 없다고 생각했죠. 사실 우리는 굉장히 단순해요. 분자기호로 치면 수소 산소 탄소 정도? 그 정도로만 만드는 거 같고요. 텅스텐이나 황이 들어오진 않아요. 맞나?(웃음) 항상 뻔하죠. 어쿠스틱 피아노에 어쿠스틱 기타라든지. 미니멀리즘이죠. 거기에 계피 씨 목소리 들어가면 그걸 또 좋아해 주시고. 그런데 그게 싫었어요. 2집도 똑같이 해도 되고, 그렇게도 갈 뻔 했지만 새로운 것을 해 보는 쪽으로 선택했어요. 드럼이나 베이스도 또 넣어 보고.

정바비 씨의 작업 스타일은 어떤가요? 왠지 일상 속에서 무던히 곡을 써 내려가는, 다작하는 스타일일 것 같은데.

정바비 : 열심히 하죠.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가사는 일상의 모든 것을 쓴다고 생각하면 돼요. 다른 사람 얘기 많이 듣고요. 특별한 소스가 있진 않아요. 옛날엔 제 이야기를 많이 넣다가 그 비율을 점점 낮췄어요. 가을방학 1집 땐 거의 안 넣었죠. 이번에는 조금 있네요.

가사를 보면 내러티브를 중시하는 듯합니다. 감성적인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도 내러티브의 논리성이 일순위에 있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정바비 : 방식에 있어 일단 두 가지가 있어요. 멜로디를 먼저 작업하고 90퍼센트 이상 확정되면 가사를 쓰는 방식이 첫 번째죠. 멜로디 진행이 만들어졌을 때 얹어 올리는 건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또 한 과정은, 그렇게 편곡을 짜고 고르면서 시선을 바꾼다든지, 요소를 뺀다든지 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여배우」 같은 경우는 화자가 모호해요. 남자일 것 같지만 백퍼센트 단정 지을 수 없죠. 앞에서 말한 두 번째 과정을 이용했다면 여성 화자로도 바꿀 수 있었는데 모호한 편이 더 재밌겠다 싶어서 그대로 갔어요.

계피 : 그때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걸 추구했어요. 여성 화자가 남자이야기를 하는 게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종류의 세련됨이 어떤 건지 이제 알 듯해요. 사실 화자가 남자건 여자건 감정이입에는 그리 상관없는 것 같지만요.

계피 씨는 슬픈 내색을 하지 않는 목소리지 않나요? 가을 방학이 품은 쓸쓸한 정서의 바탕처럼도 들립니다.

계피 : 쓸쓸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게 크게 2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송라이팅 스타일이고, 하나는 노래죠. 노래에 대해서 얘길 한다면, 제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담백하다. 절제한다’라는 말이었어요. 칭찬을 많이 받았던 거죠, 운 좋게도. 돌이켜 보면 처음 노래 시작 한 게 2005년, 첫 앨범 낸 게 2007년, 벌써 8년 전 일인데, 스물네다섯 살 때예요. 그런데 사실 담백한 건 고수의 어법이에요. 제가 그 나이에 담백함을 이해한다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사연이 많지 않고서야. 과잉, 치기 열정의 나이인데 그 나이에 담백함을 풀어낸다는 건 일종의 뻥이 아니었을까.(웃음) 없는 걸 있는 척 했다기보다는 밖으로 선명하게 드러내는 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옛날 노래 들어보면, 이렇게 젊고 어릴 때에 이렇게 불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게 아닌데 말이죠. 들어주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신기하잖아요. 그런 종류의 호감이 발생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요.


정바비 씨가 생각하는 계피 씨의 보컬 매력은 무엇인가요?

정바비 : 음색. 그림 그리는 분들도 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염료로도 낼 수 없는 색이 있잖아요. 어떤 한 나무에서만 낼 수 있는 빨간색이라든지 이 그림에는 그걸 꼭 써야 한다든지. 계피 씨는 그런 유니크한 면모를 가지고 있어요. 유니크하면서도 흔치 않죠.

계피 씨는 스스로의 보컬, 음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계피 : 제 유니크함은 점점 사라질 것 같아요. 음색이라는 게 타고나는 것이잖아요. 음색 얘기를 많이 들어서 생각을 해 봤는데 배우를 보면 배우가 내는 인상은 생김새보다는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혼합된 형태에 가깝다고 느끼거든요. 음색도 그런 종류의 것이에요. 타고나는 것보다는 특징들이 계속 섞이는 거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유니크함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 더 이상 그게 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죠.

보컬적인 면에서 좋아하는 가수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계피 : 대중없이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는 구피도 좋아하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모창도 해 보고.(웃음) 딱히 취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헤비 리스너도 아니었고 취향이 세련되지도 않았고.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저는 음악에서보다 책에서 더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노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다른 창법을 하기로 선택을 한다면 연습을 하면 되는 건데, 태도는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니까요.

‘이런 가수처럼 노래하고 싶다’ 하는 분은 없나요?

계피 : 김윤아 씨. 창법이나 음색보다도 무대에 섰을 때 그 사람의 아우라가 좋아요. 이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그분의 아우라와는 굉장히 다른 색을 내는 타입이라고 깨달았어요. 매우 존경하고 있죠.


계피 씨는 전업 가수 선언을 하셨습니다. 어떤 계기였나요? 선언 이후 생활이나 마음가짐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요?

계피 : 일단 심심하고요. 시간이 진짜 많이 남아요. 나처럼 곡을 안 쓰고 가사도 안 쓰는 보컬은 평소에 뭘 하는 걸까, 생각하기도.(웃음) 다른 생활과 음악을 병행하는 건 강도가 다르죠. 뇌의 한 부분을 놀리고 살아도 되는 걸까, 슬슬 뭘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역시 다른 종류의 뇌라서…

노래 부르는 것에 있어서 고민이 많은 것처럼 보여요.

계피 : 생각을 많이 하긴 했어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얘기를 계속 듣는 게 어떤 비애냐면, 부분모델의 느낌이랄까. 나는 목소리만의 사람이 아닌데. 간극이 느껴지는 거죠. 선천적으로 타고나서 쉽게 간다는 이미지도 있는 것 같고. 물론 다 부정할 순 없지만요. 목소리가 좋아서 음악을 한다는 건 뭘까, 다른 사람의 가사로 노래한다는 건 뭘까, 얼마 전까지도 다른 일을 하던 사람인데, 이런 생각도 하고.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건 확실히 신뢰하고 있어요. 정바비 씨를 믿어요. 그렇지만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은 항상 하게 되죠.

정바비 : 돈 벌고 있지. (웃음)

계피 : (같이 웃음) 이젠 직업이니까 중요한 게 됐죠.

각자 다른 팀에서 활동을 했던 이력들이 있죠. 가을방학의 멤버라는 정체성으로서 정바비 씨와 계피 씨 각각 언니네 이발관과 줄리아 하트, 혹은 브로콜리 너마저에서 활동할 때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계피 : 그때는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이 없었어요. 폐를 끼친 부분도 있겠고, 내 주장을 제대로 할 줄도 몰랐고, 제대로 컨트롤도 못했고, 서로의 역할에 대한 혼돈도 있었죠. 뭘 잘 할 수 있냐에 대한 확신도 서로 없었어요. 있다고 해도 과잉되게 있거나, 어느 한쪽만 말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혼동 상태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근데 지금은 시간 개념이 생겼어요. 어떤 걸 하고 싶고, 할 수 없고. 이런 것들이 명확해지다 보니까 지금은 편하죠.

정바비 : 저의 경우는 음악 외에 다른 걸 해 본 적이 없어요. 과외도 알바도 안 해 봤고, 운이 좋다면 좋았던 거죠. 잘 벌어서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다른 걸 안했어요. 졸업하면서 전업뮤지션이 됐는데, ‘내가 벌어서 내가 먹고 살게 된’ 수준이 된 건 가을방학부터예요. 스트리밍이 없고 음원이 천원 인상이 되면, 기본적으로 음반 판매가 천장 단위로 올라간 아티스트는 먹고살 수 있어야한다 이런 말들이 있어요. 산업구조의 문젠지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선 낯설게 느껴져요. 운 좋게 음반이 잘 돼서 오히려 더 그렇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는 가을방학 말고도 다른 팀도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가 단적으로 비교가 돼요.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잘나가나 못 나가나라고 했을 때 전 잘 된 팀과 운을 타지 못해서 안 된 팀의 경계에 있다고 봐요. 가을방학 할 때 잘나가고 다른 팀 할 때는 못나가고. 그렇다고 다른 팀 할 때 가을방학보다 열심히 안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다른 요소가 있겠죠.


정바비의 자아가 가장 많이 담긴 팀이라면?

정바비 : 제가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내 음악이라고 틀어놓는 건 ‘바비빌.’ 줄리아 하트는 워낙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다르다 보니.

둘의 성격은 잘 맞는 편인가요?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가요?

정바비 : 결정적인 부분은 잘 맞아요. 크리티컬한 부분은 잘 맞죠. 평소에 나랑 잘 맞는 사람을 만난 기억이 오히려 없어요. 맞아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힘들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라이브 공연과 앨범 중 어디에 더 애착을 두는 편인가요?

정바비 : 공연이라는 것은 몸을 움직여서 공연장을 찾아가서 모르는 사람들 부대껴 가면서 봐야 하는 건데 음반은 인터넷으로 음원을 구입하는 거니까 수고나 품이 적게 드는 거고……, 저는 사실 음반으로 만나는 것도 좋아해요. 저도 굉장히 공연 자체를 찾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닌데,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그런 타입이 아닐까 해요. 공연을 찾아다닌다기보다는 실제로 현장에서 라이브를, 계피의 목소리를 들어 보고 싶다거나, 하는 분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취향이 확인이 되고 공동체적인 느낌이 들어 좋아요.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많이 만나는 느낌이죠. 뮤지션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일 수도 있고.

내 인생의 음반을 꼽는다면?

정바비 :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의 <Songs From Northern Britain>고등학교 때 나와서 대학교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에요. 멜로디가 정말 좋고 하모니도 좋아요.

계피 : 트래비스(Travis) 1집, 미선이 1집, 루시드 폴 1집, 스타즈 (인디)1집. 아심 1집.

요즘엔 어떤 음악을 듣고 있나요?

정바비 : 프레네시(フレネシ: Frenesi)요.
계피 : 동업자들 음악을 듣고 있어요.(웃음) 전기뱀장어 등‥

가을방학의 음악적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바비 : 기본적으로는 음반을 꾸준히 발표할 수 있는 팀이 되고 싶어요. 음반마다 기억에 남는 좋은 노래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악활동 계속 쭉 해서 나중에 공연을 했을 때, 사람들이 보면서, 우리가 들려주는 20여곡을 들으면서, ‘좋은 노래밖에 안 해’ 라고 말하는 것. 그게 뾰족한 지향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계피 : 저는 음악적인 지향점을 생각할 겨를이 없고, 음악을 진짜 하고 싶은지, 하고 싶으면 언제까지 할 건지 그걸 정하기도 바쁘기 때문에.(웃음)

마지막으로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있다면?

계피 : 밥 뭐 먹어야 하나?(웃음) 진심이에요.
정바비 : 포털사이트에서 ‘정바비’ 치면 연관 검색어로 ‘정바비 게이’가 뜨는데 어머니가 보시지 않았으면…(웃음)



인터뷰 : 조아름 윤은지 이기선
정리 : 조아름
사진 : 이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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