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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완벽할 필요 없다, 욕망의 적정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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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노력, 개인의 성공, 개인의 실패와 개인의 우울. 지난 세기, 한국 사회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기치 아래 개인의 자기계발을 중요한 미덕으로 삼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경제 성장을 위해 많은 가치를 후순위로 미뤄두었다. 개인은 언제나 노력해야 할 존재, 완벽해져야 할 존재, 성공을 지향하는 존재였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화한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문명적 대전환의 시대를 말할 정도로 변화의 물살은 거대하다. 그 물살은 심지어 빠르기까지 해서 그 안에 사는 개인은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됐다. 이제 개인들은 불안하고, 우울하다.


이런 마당에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균질성’을 추구한다. 시대는 변했는데 사회는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치열하게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개인의 불안과 우울은 그런 ‘대한민국 마음’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공부 중독』, 『심야치유식당』, 『그렇다면 정상입니다』등을 쓴 하지현 교수는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개인의 마음이란 사회와 긴밀하게 상호작용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인은 완벽해질 필요가 없다고, 욕망을 적정선에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완벽하지 않음, 그것 자체가 건강함이라는 말에 굵게 밑줄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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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균질성의 사회


최근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고 했는데요. 이 대목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도대체 이와 같은 불안의 원인이 뭘까요?

 

불안하다, 우울하다는 사람을 제일 많이 만나는데요. 시간 축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요. 불안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죠. 긴장과 불안은 사실 같은 원리예요. 적절한 수준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내 안의 자원을 끌어올리는 걸 긴장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미래에 대해 그 이상 과도한 걱정을 하거나 염려할 때 불안하다고 얘기를 하죠. 반면 과거를 반추하고, 후회하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울하다고 이야기하게 돼요. 상담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특히 불안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예측불가능성’이라는 점 때문일 거예요. 과거도 삶이 예측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었겠지만요. 특히 지금은 1년, 짧게는 6개월도 예상할 수 없게 되었잖아요. 돌이켜보면 작년 1월에는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때문에 전체적인 외부환경의 엄청난 변화 속에서 한 개인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든 거죠.

 

“많은 정신병리가 사회문화의 영향으로 발생한다”고 했어요. 사회의 영향임을 인지하는 게 중요할 텐데요. 


컵이 흔들려 물이 찰랑찰랑한 상태라고 한다면 컵을 붙잡아 멈추면 되죠. 그런데 탁자가 흔들리고 있어요. 그러면 아무리 컵을 붙잡고 있으려고 해도 안 돼요. 아래 놓인 탁자가 흔들리는데 어떻게 평온할 수가 있겠어요. 그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여있고,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라는 부분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무엇보다 ‘불확실성’이네요. 한편 불확실성이란 한국 사회만의 특징은 아니잖아요. 이것이 시대적 특징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출발점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제 ‘주도적 노마드, 유목민으로 살아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공부 중독』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공부만능주의’가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 이외의 부분도 사실은 마찬가지인데요. 이전세대까지 통용되던 부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는 징후들이 보인다는 거죠. 또한 변화의 물살이 빨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강물이 찰랑찰랑 흐른다면 나는 힘들긴 하겠지만 역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가로질러 갈 수도 있을 텐데요. 물살이 너무 빠르다면 그 물살을 거스르는 게 훨씬 힘이 들겠죠. 문제는 물살의 방향마저도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짧게 보면 십 년 전에 비해서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가던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개중에는 분명 한국 사회만의 특징도 존재해요. 특히 한국을 ‘균질성의 사회’라고 표현하고 있죠.


심리학 하시는 분들은 ‘우리성’이라고도 얘기를 하시는데요.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말을 특히나 많이 쓰잖아요. 우리 안에 들어가는 경우와 벗어나는 경우의 안전성 차이가 매우 크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요. 때문에 우리 안에 들어 있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고 거기에 매우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관혼상제에 꼭 참여를 해야 하고, 회식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든지 말이에요. 실제로도 사회의 여러 면에서 우리, 집단 안에 소속되어 많은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잖아요.


‘이 정도 해야 한다’고 하는 보통과 평균값이 있을 거예요. 세칭 중산층의 기준을 생각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이 나이에는 무얼 해야 한다, 는 부분에서 벗어나면 대단한 문제처럼 여기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들이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도,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매우 많이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거죠.

 

그 결과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타임푸어 등 수많은 ‘푸어’를 양산하기도 했어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는 점은 자기계발 열풍과도 맞닿아 있어요. 자기계발의 고급 버전이 인문학 열풍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것들이 지향하고 있는 부분은 너의 변화, 너의 성장이에요. 네가 강해지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거든요. 일견 옳지만 그 부분에서 빠져 있는 것은 사회의 영향이라는 부분, 사회의 큰 흐름이라는 부분이에요. 물론 그 안에서 성취하고 변화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을 사회의 영향 때문이라기보다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너의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들이 일반화되었다는 거예요. 차별을 일상화하는 면들을 가져오게 된 거죠.

 

차별의 일상화요?


최근 젊은 친구들을 보면 ‘지균(‘지역 균형 선발 전형’의 준말)’이니 하는 식으로 아주 세밀하게 사람을 갈라놔요. 그것은 또한 아파트 시세와도 비슷하죠. 이곳은 비교적 최근에 지었으니 비싸야 하고 저곳은 오래됐으니 싸야 하는데 그렇지만 몇 층, 또는 향(向)이 어느 쪽인 집은 더 비싸도 된다는 식으로 세밀하게 가르고 줄을 세우잖아요. 그래야 안심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차별의 일상화예요.

 

이와 유사한 문제 양상이 너무 많아요.


거식증 같은 병들, 그것은 서구화된 사회에서 특히 늘어난 거잖아요. 신체 이미지라는 것 자체가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게 되죠. 그 결과 ‘매력자본’이라는 말도 나와요. 날씬한 몸은 자기 관리가 잘된 사람의 것, 뚱뚱한 몸은 게으른 사람의 것이라고 여기죠. 체질 등 모든 것은 떠나서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선입견을 갖는 게 상당한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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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적정화하기


개인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치유를 돕는 정신과 의사에게 신자유주의가 많은 짐을 지웠다고 분석하셨잖아요. 사회에 영향을 받는 게 개인이라는 점을 생각하자면 현직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불만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아무리 개인을 만나 이야기한다 해도 그 사람의 환경적 어려움을 배제하고는 이야기하기가 참 어렵단 말이죠. 60세에 고시원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고립된 분한테 아무리 항우울증 약을 처방한다고 해도 그분의 우울증을 좋아지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같은 60세 우울증 환자여도 집도 있고, 가족도 있는 분은 상대적으로 훨씬 빨리 좋아지거든요. 어떻게 보면 곤궁함, 사회적 어려움과 빈곤이라는 부분이 사실상 개인적 치유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를 쓴 이유이기도 하겠죠?


맞아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큰 사회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요. 내가 열심히만 하면 삶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었죠. 이전 세대에는 사회가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거예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완벽이 필요 없다는 생각일 거예요. 욕망을 적정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저는 욕구와 욕망의 분명한 구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안에서 개인이 강해질 수 있는 정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 나 한 사람의 생존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자아를 완벽하게 발달시키겠다는 욕망이 의미 없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나 하나 살아남는다고, 더 강해져서 옆 사람을 누른다고, 영속하는 행복은 오지 않는다. 완벽할 필요 없음을, 이길 필요 없음을, 욕망의 적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243쪽)

 

욕망의 적정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굳이 말하자면 욕구는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죠. 욕망은 즐거움, 쾌락에 필요한 건데요. 욕구가 충족되면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대부분의 복지는 욕구의 충족조차 안 되는 영역에 작동하잖아요. 기본적으로 그것이 되어야만 안전성을 줄 수 있고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살 수는 없어요. 개인의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해요. 문제는 욕구와 욕망이 떡이 되어 붙어있다 보니 욕망의 추구가 실패했을 때 그 좌절감이 그냥 욕망을 충족하지 못했구나, 정도가 아니라 욕구도 충족 받지 못할 거라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까지 야기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둘을 적절히 분류해야 하는데 경쟁이 너무 심하다보니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런 면이 이 사회에 만연해있다고 볼 수 있어요.

 

자기계발의 환상과 불안이라는 점을 여러 번 생각하게 되네요.


저도 이제는 각종 인구 통계, 경제 통계 이런 부분들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져서요. 그런 거시적 추이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요. 요즘 나오는 이야기 중 흥미로운 게 노동 소득이 절대 자본 소득을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예요. 한국 사회는 아무리 당대에 소득이 많다 하더라도 이미 자본을 축적을 많이 해서 자본 소득을 얻는 사람들을 뛰어 넘기는 매우 어려운 형국이라는 거예요. 이전에 갖고 있던 중산층 신화는 자본 소득이 아닌 노동 소득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의 문제였거든요. 안정적으로, 좀 더 좋은 노동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자리 내지는 능력을 갖길 바라는 게 중산층의 이야기인데요. 지금은 그것 자체가 갖는 힘이 매우 미약해지고 있다는 거죠. 더 큰 문제는 교육이에요.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적인데 교육이 머니 게임처럼 되다보니 자본 소득을 보유한 사람들이 또한 좋은 노동력을 가질 수 있는 교육까지도 선점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은 자본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대단한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어요.

 

교육 기회의 불균형이 가져올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은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단하고 계세요? 중산층의 불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첫째는 내 자녀의 미래 노동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부분에서의 불안이 있고요. 둘째는 내 노동 소득의 상당 부분을 미래, 자식에 물려주기 위한 투자 때문에 자신의 노후가 불안해진다는 면이 있어요. 진퇴양난의 상태가 지금 현재의, 세칭 중산층 지식인 내지는 386 세대가 갖는 엄청난 딜레마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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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화’의 문제들


‘마음의 체력’ 즉, 정신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된 사람들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고 있어요.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주로 20대 젊은 남성들이 겪고 있다는 점도 시선을 끌고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60년대 외국에서는 청소년기에 보이던 것들이라 얘기하거든요.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 같은 건데요. 그런 모습이 지금 20대 중반에 일어나요. 10대 후반에 해야 할 것들을 공부하느라 못했기 때문에 넘어간 거예요. 이 심리는 자신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불멸일 것 같은 전능감들을 가지고 있죠. 문제는 이 전능감이 훼손되는 것이 너무 싫기 때문에 연습만 할 뿐 실천은 하지 않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높은데 비해 실제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매우 낮아요. 그 불균형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요. 그렇지만 전능감은 너무 강해서 최소한의 불편함 조차도 자신을 훼손한다고, 여겨 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을 보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면인가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적으로 많이 보이고 있는 징후들일 수 있고요. 다만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고요. 대개는 두 영역에서 발견이 돼요. 하나는 순응도가 높은, 사회화가 매우 안 된 일부 잘 관리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고요. 두 번째는 정반대인데요. 지난 10년, 20년 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건 이혼의 일상화거든요. 그런데 이혼 가정, 특히 저소득층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면 방치된 경우가 많죠. 이들을 그야말로 사회화를 접할 경험을 얻지 못하고 세상이란 정글 같은 곳이라고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이에요. 이 친구들이 경우에 따라 극우화할 수도 있는 거고요. 미숙련노동자로서 자리를 놓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가족 내에서 배웠어야 할 최소한의 훈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에 나왔기 때문에 어떤 고급 일자리의 일들을 해내지 못해요. 그런 채로 고립되어 지내다가 충동적 행동, 공격적 행동을 하는 경우들을 많이 봐요. 굉장히 우려스럽죠.

 

한편 심리학을 오남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심증이 커졌다고 하셨잖아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안다고 착각하는 데에서 부작용이 많이 발생한다고요?


일견의 성찰은 필요해요. 하지만 지나칠 때 문제가 돼요. 다 설명할 수 있고, 안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죠. 이건 불안이야, 이건 내 안의 아이가(웃음) 문제야, 이건 내 인생의 트라우마야, 하는 식으로 꽤 정확하고 유려하게 인식하거나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거든요. 왜냐하면 알면 알수록 이것은 분명하고 확고하기 때문에 해결하기엔 너무 어려운 거죠. 그런 문제들은 대부분 어릴 때 어떠했다는 것으로 수렴되니까요. 고정된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는 식으로 상당수 심리학 이론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하죠. 그러니까 그것이 프레임이 되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그런 식으로 설명해요. 하지만 그러다보면 현재 벌어지는 일도 모두 나의 불행, 결핍을 설명하는 데에만 이용되게 돼요. 우려할 만한 일이에요.

 

어떤 문제 상황이 ‘삶의 어려움’이라는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도 그것을 심리학적인 문제로 규정하는 경우 역시 많아졌다고도 하셨죠.


프로이트가 ‘있을 법한 불행인데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한다’고 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오셔서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지 않느냐고 물어요. 아니거든요. 패턴화된 경우가 많고요. 아주 특이한 사람은 드물어요. 그런데 그런 심리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과거가 이미 훼손되어 있다고 여기니까 어떤 일이 벌어져도 만족이 안 되는 거죠.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이것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경우들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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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공정함, 시대의 가치


2016년 촛불, 그러니까 광장의 경험이 ‘버전업’의 기회라고 표현했는데요. 어떤 의미일까요? 상황을 낙관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러길 기대하는 거죠. 아까 얘기했듯이 ‘나’라는 존재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십만의 사람 사이에 있음으로 해서 좀 다른, 더 큰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나만 갖는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고립감에서 벗어나 좌절감이 해결된 부분도 있고요. 그런 작은 실천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지난 몇 달 간의 변화들을 불러온 면이기도 하고요.

 

버전업 된 사회, 어떻게 전망하고 계세요?


무력감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것, 다수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도 작동하는 걸 우리가 확인하는 것, 이것이 시작되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정의라는 것과 공정함이라는 부분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에 보았던 여러 가지는 그것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고, 너무 촘촘하게 조직화되어 있는 불공평함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거잖아요. 조직화된 부분을 하나하나 드러내긴 힘들지만 핵심적인 부분이 드러났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의와 공정함을 염원하고 있다는 부분을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거예요. 큰 흐름으로 보자면 그럴 것 같아요.

 

정치적 올바름은 아주 중요한 시대정신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차별금지법 등에 대한 담론들도 그런 차원에서 더 많이 이야기되는 것 같고요.


그동안 얘기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게 된다는 게 중요하죠. 그동안 다른 걸 위해 나머지는 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데요. 그 ‘언제’가 다음보다는 필요하다면 지금 충분히 기회가 되면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죠. 충분한 합의를 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런 의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만큼은 공유하면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런 것 또한 우리가 사회에서 다뤄야 할 문제들이다, 라고 말이에요. 소수자 인권문제, 다문화 가정 문제, 기본권 문제 등 다양한 의제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부분들을 모두 다양성이라는 것 안에서 생각해야 해요. 길게 보면 생태계라는 것이 다양성 안에서 안전성이 확보되는 것이거든요. 모두 같은 권리를 가진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존해나가는 것이 인류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지금처럼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오는 시점에는 매우 필요하다는 거죠.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세요?


평소 세상에 대해 관심 많은 분들일 텐데요. 세상의 흐름과 마음의 흐름이 엇나가지 않는다는 것, 사실은 아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궁금함이 있는 분들이 보시면 좋겠어요. 우리는 끝없이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존재예요. 혼자 있고 싶은 나와 집단 속에서 안정성을 느끼는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죠. 나는 진자운동을 하고 있거든요. 어떨 땐 가치관이 헷갈릴 수 있죠. 모임이 좋기도 하다가 혼자만 있고 싶기도 해요. 그럴 때 내가 미친 게 아닌가 싶잖아요. 그러나 그 모두가 나를 규정하고 있는 거거든요. 좀 더 주도적인 면이 때때로 있을 수 있고 그것은 또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이 환경의 큰 변화 안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 그런 사람이 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책과 칼럼 등을 많이 쓰시잖아요. 마음의 진자운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분들,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분들에게 최근 읽은 책 중에 그런 분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 또 있다면요?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뒷부분에 언급한 책들만 보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권할 만한 책은 항상 <채널예스>에 소개하고 있어서요.(웃음) 『심리학에 속지마라』『정해진 미래』를 추천하고 싶어요. 『정해진 미래』는 인구 통계를 가지고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고요. 『심리학에 속지마라』는 앞서 나눈 ‘심리화’에 대한 부분을 잘 다루고 있는 책이에요. 지금은 『센서티브』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이 책도 재미있어요. 민감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고요. 내성적인 것과 민감한 것은 다르다는 주장을 하고 있거든요. 곧 <채널예스>에 칼럼을 쓸 예정입니다.(웃음)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하지현 저 | 문학동네
저자는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인의 마음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즉 사회 전반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병리학적 징후들을 통해 그 마음에 켜진 위험신호가 어디에서 온 것이고 그것이 어떤 상황과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지, 그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의미를 분석한다.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떤 마음의 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심리학적인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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